[일곱교회시대]일곱 교회 시대 강해 5 버가모 교회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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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Chapter 5 - The Pergamean Church Age

CAB - 05




윌리엄 매리언 브래넘


‘일곱째 천사의 음성….’ 계시록 10:7







버가모 교회 시대


일곱 교회 시대 강해


제 5 장 


소 개


윌리엄 브래넘의 놀라운 사역은 말라기 4:5,6, 누가복음 17:30, 그리고 계시록 10:7 말씀에서 예언된 일들에 대하여 성령께서 응답하신 것이었습니다. 이 세계적인 사역은 많은 다른 성경 예언들이 절정에 달한 것이었고,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 그분의 영으로 지속적으로 역사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에 언급된 이 사역은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케 하는 사역이었습니다. 


여러분이 기도하면서 이 메시지를 읽을 동안 인쇄된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마음에 쓰이기를 우리는 기도합니다. 정확하면서도 축약하지 않은 번역을 제공하고자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영어 오디오 파일들이 브래넘 형제가 하신 영어 설교를 가장 잘 대표할 것입니다. 윌리엄 브래넘이 설교한 1,100여개의 설교들은 여러 언어로 통역과 번역이 되어 있으므로,   www.messagehub.info 에서 무료로 다운로드하고 인쇄할 수 있습니다.  더 자세히 알고자 하시면 이메일로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이메일: biblechurch77@gmail.com


이 설교책자는 전체 복사하여 수정을 하지 않고 무상으로 배포하는 경우에만 복사하여 배포하실 수 있습니다. 제  5  장


버가모 교회 시대

(THE  PERGAMEAN  CHURCH  AGE)


계시록 2:12-17



버가모 교회의 천사에게 편지하기를 좌우에 날선 예리한 검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알고 네가 어디 사는 것을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의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내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리를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네게도 내가 미워하는 니골라당의 교리를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버가모


퍼가멈(Pergamum 고대 이름)은 미시아에 위치한 성으로, 세 개의 강이 지나는데 그 중 한 강은 바다로 흘러갔습니다. 이 성은 아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성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버가모는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도서관 다음으로 둘째가는 도서관을 가진 문화의 성읍이었습니다. 그러나 죄가 성행하기도 했는데 사원 안에 가두어 먹였던 산 뱀의 행태로 숭배했던 에스큘러피우스를 경배하는 방탕한 의식들을 행했습니다. 물댄 작은 숲과 공중로와 공 원들이 있는 이 아름다운 도시에는 소수의 헌신적인 신자 무리가 살고 있었는데 이들은 허식적인 아름다움에 속지 않고 그 곳을 가득 채웠던 사탄 숭배를 혐오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시  대


버가모 시대는 주후 312년에서 606년까지 약 삼백 년간 지속되었습니다.(Eng.p. 159)


사  자


각 시대에 보냄을 받은  사자를 선택하는 우리 하나님이 주신 규칙을 사용해서, 즉, 첫번째 사자 바울의 사역과 가장 흡사하게 닮은 사역을 가진 사람을 뽑는데, 우리는 아무 망설임 없이 마틴(Martin)을 버가모의 사자라고 선언합니다. 마틴은 315년에 헝가리에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일생을 바쳐 한 일은 그가 뚜르즈와 그 주변에서 감독으로 수고했던 프랑스에서였습니다. 그는 399년에 죽었습니다. 이 위대한 성도는 훌륭한 그리스도인이었던 성 패트릭의 삼촌이었습니다.

마틴은 직업군인의 직업을 수행하면서 그리스도께 나왔습니다. 아주 획기적인 기적이 일어났던 것도 그가 아직 이 직업에 종사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 기적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 거지가 시내 거리에서 아파서 누워 있습니다. 그 거리는 마틴이 보초를 맡고 있던 곳이었습니다. 거지는 얇은 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겨울의 찬 바람은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마틴이 지나가게 될 때까지는 아무도 거지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이 불쌍한 사람의 딱한 처지를 보자, 여벌 옷이 없었지만 마탄은 외투를 칼로 둘로 잘라 얼어가는 그 사람의 등 위에 그 천을 둘러주었습니다. 그는 그 거지를 잘 간호해주고 자기 갈 길로 갔습니다. 그 날 밤 마틴에게 환상 가운데 주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은 거지처럼, 마틴의 반쪽 옷을 어깨에 두르고 서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마틴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틴은 예비 신자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이 옷으로 날 입혔노라." 그때부터 마틴은 온 정성을 다해 주님을 섬기려고 애썼습니다. 그의 생애는 하나님의 권능을 표명하면서 기적의 연속이 되었습니다.

군을 떠나 교회에서 지도자가 된 후 마틴은 우상숭배에 대하여 아주 강경한 태세를 취했습니다. 그는 작은 숲들의 나무들을 잘 랐고 우상들을 깨고 제단들을 허물었습니다. 그러한 그의 행동에 대해 이교도들이 대항했을 때 그는 엘리야가 바알의 선지자들에게 했던 식과 흡사하게 그들에게 도전했습니다. 그는 자기를 나무 밑둥에 묶으라고 제의했습니다. 그래서 나무가 잘려 넘어질 때 하나님이 개입하여 나무가 쓰러질 때 그 나무를 돌려 놓지 않으시면 마틴을 뭉게도록 말입니다. 그 사나운 이교도들은 언덕 한 편에 자라고 있던 한 나무에 마틴을 묶었고, 자연적인 중력의 당김이 나무가 쓰러지자마자 그를 뭉게게 하리라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나무가 쓰러지기 시작할 그 때, 하나님은 그 나무를 빙 돌게 하여 모든 자연 법칙에 어긋나게 언덕 위로 향하게 하셨습니다. 나무는 쓰러질 때 도망가던 이교도 몇을 뭉게버렸습니다.

역사가들은 적어도 세 번은 마틴이 예수의 이름으로 믿음으로 죽은 자를 일으켰다고 인정했습니다. 한 번은 마틴은 죽은 애기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엘리사처럼, 그는 그 애기 위에 자기 몸을 쭉 펴 포개고 기도했습니다.(Eng.p. 160) 그 애기는 다시 살아나 건강한 몸이 되었습니다. 또 한 번은 마틴은 박해가 한창이던 때에 사형장에 끌려가고 있었던 한 형제를 도와 구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마틴이 도착했을 때에는 그 불쌍한 사람은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를 나무에 매달아 죽였습니다. 그의 몸에는 생기가 없었고 그의 두 눈은 돌출되어 나와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틴은 그를 꺼내렸습니다. 마틴이 기도하자 그 사람은 생명을 되찾았고 기뻐하는 가족들에게 돌아갔습니다.

마틴은 원수가 그 누구이든지간에 결코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많은 성령 충만한 성도들의 죽음에 책임이 있던 악한 황제를 개인적으로 대면하러 갔습니다. 그 황제는 알현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틴은 황제의 친구인 로마에 있던 잔인한 감독 다마써스를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거짓 포도나무에 속한 이름뿐인 그리스도인인 그 감독은 중재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틴은 왕궁에 돌아갔습니다. 이젠 성문이 잠겨 버렸고 사람들은 그를 들어오게 하지 않았습니다. 마틴은 얼굴을 땅에 대고 주님 앞에 엎드려 궁전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드렸습니다. 그는 일어나라고 말하는 한 음성을 들었습니다. 일어나자 성문들이 저절로 열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뜰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거만한 통치자는 고개를 돌려 그와 얘기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마틴은 다시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불꽃이 보좌에서 계속 나왔고 불쾌한 황제는 재빨리 자리를 비웠습니다. 진정 주님은 교만한 자를 낮추시고 겸손한 자를 높이십니다.

마틴의 주님을 섬기는 열정이 그토록 강렬하자 마귀는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진리의 원수들은 마틴을 살해할 암살단원들을 고용했습니다. 그들은 그의 집에 은밀히 들어 왔고 그를 막 죽이려고 하던 순간 마틴이 일어나 꽂꽂이 서서 그의 목을 칼에 갖다 대었습니다. 그들이 앞으로 뛰려고 하자, 하나님의 권능이 갑자기 그들을 방 여기 저기로 밀어 던졌습니다. 그 거룩하고 두려운 분위기에 너무도 놀란 그들은 손발로 기어다니며 마틴을 죽이려고 한 것을 용서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흔히 주님이 두드러지게 사용하시게 되면 사람들은 교만으로 치켜올려집니다. 그러나 마틴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항상 겸손한 하나님의 종의 자리를 지켰습니다. 어느 날 밤 마틴이 설교단으로 가려고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어떤 거지가 그의 서재에 오더니 옷을 좀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마틴은 그 거지더러 집사장에게 가보라고 했습니다. 교만한 집사는 그에게 나가라고 명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다시 마틴을 찾아왔습니다. 마틴은 일어나서 거지에게 자기가 입고 있던 좋은 옷을 주고 집사더러 덜 좋은 다른 옷을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그날 밤 마틴이 말씀을 전할 때,(Eng.p. 161) 하나님의 양떼는 그의 몸 주위에 부드럽고 흰 빛이 감싸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정말로 이 사람은 위대한 사람이요 그 시대에 보냄을 받은 진짜 사자였습니다. 결코 다른 것은 하나도 바라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만을 바라던 그는 아주 헌신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마틴은 먼저 기도하고 성령에 의해 하늘로부터 보내져 내려온 하나님의 온전한 뜻을 알아 전할 수 있을 정도로 영적인 상태에 놓이게 될 때까지는 결코 설교하라는 권유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종종 마틴은 충만한 확신을 위해 기도하는 동안 사람들을 기다리게 하곤 했습니다.

마틴과 그의 권능의 사역에 관해 좀 알아본 것은 사람들로 성도들에 대한 박해가 약화되었다고 생각하게 할지도 모릅니다. 그렇지 않았습니다. 성도들은 악한 자를 도구로 삼은 마귀에게 여전히 멸망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나무에 묶여 화장당했습니다. 엎드려 통나무에 못박혔고 들개들이 풀려나와 그들의 살과 내장들을 물어뜯어 희생자들은 무시무시한 고초를 당하며 죽어갔습니다. 태아들은 임신 중인 어머니에게서 찢겨 나와 돼지에게 던져졌습니다. 여자들의 가슴은 잘려졌고 그들의 심장 맥박이 피를 쏟아내는 동안 똑바로 서 있도록 강요당했고, 마침내는 쓰러져 죽었습니다. 그런데 이 일이 이교도만의 행위가 아니라 많은 경우에 있어 말씀을 대변해 일어서고 성령에 복종하여 일어선 이들 충성스런 십자가의 군병들을 제거함으로써 하나님께 은혜를 베푼다고 느꼈던 자칭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야기된 것이었으므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훨씬 큰 비극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6:2, "사람들이 너희를 출회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 하리라." 마태복음 24:9,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이적과 기사와 성령의 권능에 의하여, 마틴은 정말로 그 시대에 보냄을 받은 사자로 입증되었습니다. 그러나 위대한 사역을 은사로 받았을 뿐 아니라, 그 자신도 영원히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했습니다. 그는 조직에 대항했습니다. 그는 고위직 가운데 있던 죄에 저항했습니다. 그는 말과 행동에서 진리를 옹호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승리로 가득찬 삶을 살았습니다.

한 전기 작가는 마틴에 대하여 이렇게 썼습니다. "그가 화를 내거나 불안해 하거나 슬퍼하거나 웃는 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항상 한 가지 모습을 하고 있었고 인간성을 초월한 것처럼 보였고, 그의 표정엔 천상의 기쁨 같은 게 번져 있었다. 그의 입술에선 그리스도 말고는 다른 어떤 것도 결코 입에 올려지지 않았고, 그의 마음 속엔 경건과 평화와 동정심 말고는 결코 다른 어떤 것도 없었다. 종종 그는 심지어 자기를 비난하는 자들의 죄때문에 울었다. 그런데 그 비난자들은 마틴이 조용하고 마음이 다른 데 가 있을 때 독사 같은 입술과 독이 가득한 혀로 마틴을 공격했다.(Eng.p. 162) 많은 이들은 그들 자신은 소유하지 못했고 흉내낼 수도 없었던 덕성들 때문에 마틴을 미워했는데, 슬프게도 그를 가장 심하게 공격했던 사람들은 주교(감독)들이었다."


인 사 말


계시록 2:12하, "좌우에 날선 예리한 검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세째 교회 시대에 주어진 메시지가 나올 참입니다. "그의 교회 가운데 계신 그리스도"에 대한 이 개봉된 드라마의 세번째 장면이 막 계시될려고 합니다. 나팔 같은 음성으로 성령은 그 비할데 없으신 분, "좌우에 날선 예리한 검을 가지신 분!"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빌라도가 조롱의 표시로 자색 옷이 입혀진, 얻어맞고 가시관을 쓰셨던 하나님의 어린 양을  "너희의 왕을 보라!"하면서 소개했을 때와 이 소개는 얼마나 크게 다릅니까. 이제 왕복을 입으시고 영광으로 관을 쓰시고서 `하나님의 권능이신 그리스도' 주님이 서 계십니다.

`좌우에 날선 예리한 검을 가지신 이'라는 말에는 신성에 대한 또다른 계시가 있습니다. 에베소 시대에, 기억을 더듬어 보시면, 그는 불변하는 하나님으로 나타나 있었습니다. 서머나 시대에서 우리는 한 분이신 참된 하나님으로서 그를 보았고 그분 외에는 다른 신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버가모 시대에서는 그의 신성에 대한 더 나아간 계시가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인 좌우에 날선 예리한 검과 연관이 있음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에베소서 6:17,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계시록 19:13, 15상,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요한복음 1:1-3,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 동일한 (말씀)이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한 1서 5:7, "하늘에서 증거하는 이가 셋 있으니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이라 이 셋은 하나니라."

여기서 우리는 그가 말씀과 연관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말씀입니다. 말씀이 바로 그분입니다. 그의 이름 안에 있는 말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라고 말하고 있는 요한복음 1:1에서(Eng.p. 163) `말씀'이라고 번역된 말의 어원은 `로고스(logos)'인데 그것은 `생각 또는 개념'을 뜻하는 말입니다. 로고스는 `생각'과 `말'이라는 이중적 의미를 가진 말입니다. 그런데 `표현된 생각'은 `말 또는 말들'입니다. 그건 놀랍고도 아름답지 않습니까? 요한은 하나님의 생각이 예수 안에 표현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도 히브리서 1:1-3에서 아주 똑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로고스)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람 안에 표현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표현된 형상이었습니다. 요한복음1:14에서 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실상이 육신이 되어 우리들 가운데 거하셨습니다. 아무도 가까이 할 수 없었고 아무도 본 적도 없으며 볼 수도 없었던 위대한 영인 하나님이 이제 육신의 장막을 쓰시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충만함을 표현하면서 사람들 가운데 거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자가 나타내셨느니라." 때때로 자신의 임재를 구름이나 불기둥으로 표명해 사람들의 마음에 두려움을 갖게 하시던 하나님, 그의 중심의 속성들이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의 계시로써만 알려졌던 하나님이 이제는 자신을 나타내시는 임마누엘(우리와 함께 하신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나타낸다(declare)는 말은 우리가 종종 주석(exegesis)이라고 번역하는 헬라어 어원에서 온 말로 철저하게 설명하여 분명히 밝힌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살아계신 말씀인 예수께서 행하신 일입니다. 그는 하나님이셨으므로 우리들에게 하나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그는 요한이 요한 1서 1:1-3에서 그에 관하여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하고 명확하게 우리에게 하나님을 나타내셨습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로고스는 말을 뜻합니다.)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게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자니라.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Eng.p. 164) 우리의 하나님께서 진실로 나타내졌을 때, 그는 육신 안에 표명되었습니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그런데 우리는 아까 히브리서 1:1-3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이 표현된 형상이었음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는 사람 안에 있는 자신을 사람에게 표현하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나 이 절들에서 특히 1절과 2절에서 주목해야 할 게 또 있습니다.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그런데 여러분의 성경에 주석을 보면 정정해 놓은 게 보이실 겁니다. `로(by)'라는 말은 올바른 번역이 아닙니다. `로'는 `안에(in)'로 바꾸어야 합니다. 그러면 올바르게 됩니다. "옛적에 말씀으로 선지자들 안에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사무엘상 3:21하,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시니." 이 말씀은 요한 1서 5:7을 완벽하게 "성령과 말씀은 하나"임을 증명합니다. 예수님은 아버지를 나타내셨습니다. 말씀은 아버지를 나타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살아있는 말씀이셨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도 그는 여전히 그 살아있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 그는,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요한복음 14:10. 아들 안에 계신 하나님의 완벽한 표명은 말씀과 행위로 표명하시는 내주하는 성령에 의한 것이었음이 여기서 가장 분명하게 제시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지금까지 쭉 가르쳐오고 있는 것입니다. 신부가 말씀 신부의 상태로 돌아가게 될 때, 신부는 예수님이 행했던 일들을 그대로 생산할 것입니다. 말씀은 하나님이십니다. 성령은 하나님이십니다. 그것들은 모두가 하나입니다. 서로 떨어져서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영을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질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선지자들에게 일어났던 일입니다. 선지자들은 내주하는 하나님의 영을 가지고 있었고 말씀이 그들에게로 왔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에게 일어났던 일입니다. 예수님 안에는 측량할 수 없는 성령이 있었고 말씀이 그에게 왔습니다.(예수님은 행하시면서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셨습니다. 내 교리는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것이니라. 사도행전 1:1, 요한복음 7:16.)

이제 생각해 보십시오, 침례 요한은 선지자인 동시에 그의 시대의 사자였습니다. 요한은 어머니의 뱃 속에서 이미 성령으로 충만되어 있었습니다. 그가 요단 강에서 침례를 베풀고 있었을 때, 하나님의 말씀(예수)이 그에게 왔습니다. 말씀은 언제나 진정으로 성령 충만된 자들에게 옵니다. 그것이 성령으로 충만한 상태에 대한 증거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증거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Eng.p. 165) 그가 또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우리는 진리가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요한복음 17:17하. 또 요한복음 8:43을 보면,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 예수님께서 세상은 성령을 받을 수 없다고 말씀하신 걸 보셨습니까? 제가 방금 읽은 이 절에서 보면, 그들은 말씀을 받아들일 수도 없습니다. 왜죠? 성령과 말씀은 하나이기 때문이며, 만약 여러분이 선지자들처럼 성령을 가지고 있다면 말씀이 여러분에게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말씀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요한복음 14:26을 보면,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여기서 또다시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 때문에 말씀이 오는 것을 찾았습니다. 또 요한복음 16:13을 보면, "그러하나 진리(말씀)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이니이다)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하나님의 말씀)을 말하시며 (말씀)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예언의 말씀을 가져오는 영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침례 받는 것의 증거가 방언으로 말하는 것이나 방언 통역하는 것이나 예언하는 것이나 소리지르고 춤추는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았음을 여러분 아주 주의깊게 보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은 그 증거는 여러분이 진리 안에 있는 것이라고 즉 여러분 시대에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증거는 그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과 상관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4:37에서, "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혹 신령한 자로 생각하거든 내가 너희에게 편지한 것이 주의 명령인 줄 알라." 자 그걸 보십시오. 내주하는 성령의 증명은 하나님의 선지자가 교회의 질서를 세우면서 그의 시대에 준 말씀을 인정하고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또다른 계시를 주장했던 자들에게 이렇게 말해야만 했습니다, (36절)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난 것이냐 또는 너희에게만 임한 것이냐?" 성령으로 충만한 그리스도인 신자냐 아니냐하는 증거는 진리(말씀)를 생산해내는 것이 아니라 진리(말씀)을 영접하는 것이고 믿고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계시록 22:17을 보셨습니까,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보십시오, 신부는 성령이 말씀하신 말과 똑같은 말을 말합니다. 신부는 자기가 성령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하는 말씀 신부입니다. 각각의 교회 시대에서 우리는 이 말을 듣습니다. "귀 있는 자는(Eng.p. 166)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성령이 말씀을 줍니다. 여러분이 성령을 가지고 있다면 여러분들은 그들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이 각자 자기 시대의 말씀을 받았던 것처럼 여러분들도 여러분 시대에 주어진 말씀을 들을 것입니다.

그 마지막 생각을 이해하셨습니까? 반복하겠습니다, 각 교회 시대는 똑같은 권고로 끝납니다. "귀 있는 자는(개인)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지어다." 성령은 말씀을 줍니다. 성령은 각 시대를 위한 진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각 시대마다 선택된 자들이 있어 왔고 그 택함받은 무리는 항상 `말씀을 들었고' 말씀을 받아들여 그들 안에 씨를 가지고 있음을 증명하였습니다. 요한복음 8:47,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그들은 말씀(예수)과 그들의 시대를 위한 그의 말씀들을 거절하였습니다. 하지만 참된 씨는 하나님에게 속하였으므로 말씀을 받아들였습니다. "네 모든 자녀는 하나님(성령)의 교리를 받을 것이며," 이사야 54:13. 예수님은 요한복음 6:45에서 똑같은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말씀과 하나됨은 여러분들이 하나님에게 속하였는지와 성령으로 충만한 자인지의 여부를 증명합니다. 다른 기준은 없습니다.

그러면 방언과 통역과 다른 은사들은 무엇입니까? 그것들은 표명들입니다. 그것은 말씀이 가르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7을 읽어보십시오,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표명)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 다음에 바울은 그들 표명들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 좋은 질문이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 모두가 이 질문을 물어보고 싶어하는 걸 압니다. 진정으로 성령 충만되지 않으면 정말로 성령을 표명할 수가 없는데 왜 그 표명이 성령 침례의 증거가 아닌가? 이제 저는 옳은 것을 말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전 사람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그들의 교리를 거스르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모든 뜻을 전하지 않는다면 전 하나님의 참된 종이 아닐 것입니다. 맞지 않습니까? 잠시동안 발람에 대해 알아 봅시다. 그는 종교적이었고 하나님을 경배했습니다. 그는 제물을 올바르게 드리는 것과 하나님께 다가가는 올바른 방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참된 씨 선지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불의의 삯을 취했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백성들을 음행과 우상 숭배의 죄 가운데로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누가 감히 하나님의 영이 세상이 지금껏 본 중에서 절대적으로 정확한 예언의 제일 아름다운 부분 중 하나에서 그를 통해 표명했음을 부인하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절대로 성령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또, 여러분은 대제사장 가야바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성경은 그가 주님이 죽어야만하는 죽음의 종류에 대해 예언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가야바가 친애하는 늙은 시므온이나 그 다정한 안나라 하는 성도처럼 성령 충만하고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이라고 기록된 것이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Eng.p. 167) 그러나 가야바는 성령의 진짜 표명을 가졌습니다. 우린 그걸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증거로서의 표명이 어디에 있습니까? 거기엔 없습니다. 여러분이 진실로 하나님의 성령으로 충만되어 있다면,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삶 속에서 말씀의 증거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제게 주신 계시로 말미암아 제가 얼마나 깊이 이 진리를 느끼고 이해하는지 여러분에게 보여드리죠. 그런데 말씀드리기 전에, 전 이 말을 하고 싶습니다. 여러분들 중 많은 분들이 절 선지자라고 믿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선지자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하나님이 저에게 주시는 환상들은 결코 틀리지 않음을 알고 있습니다. 단 한 번도. 만약 누가 환상이 한 번이라도 어긋난 적이 있었음을 증명할 수 있다면 저는 그것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이 절 이만큼이나 따라왔으니, 제 얘기를 해 드리겠습니다.

여러 해 전에 처음 오순절교 사람들을 만났을 때, 저는 그들의 캠프 모임 중 하나에 참가했었는데 거기에는 방언과 방언 통역과 예언의 많은 표명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두 명의 설교자들이 다른 형제들 중 어느 누구보다도 더 많이 말하며 열중해 있었습니다. 저는 완전히 그 예배에 빠져들었고 정말로 다양한 표명들에 관해 흥미를 느꼈습니다. 그들은 생생한 소리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될 수 있는 대로 이들 은사들에 대해 모든 걸 배우고자 하는게 간절한 소원이었기 때문에 저는 그 두 사람들에게 그것들에 관해서 말해 보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제 속에 거하는 하나님의 은사를 통해 저는 첫번째 사람 안에 있는 영을 알아보려고 했습니다. 그가 하나님에게 속한 사람인지 아닌지. 그 다정하고 겸손한 형제와 짧게 대화해보고나서 저는 그가 진짜, 독실한 그리스도인임을 알았습니다. 그는 진짜였습니다. 다음 젊은 남자는 첫번째 남자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그는 자랑을 늘어놓았고 교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 얘기를 하는 동안 환상이 하나 제 눈 앞을 스쳐갔는데 그가 금발의 여성과 결혼했는데 밤색 머리의 여자와 동거하며 두 자녀를 가진 것을 보았습니다. 위선자가 있다면, 그가 바로 위선자였습니다.

자 말씀드리죠,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찌 안 놀랄 수 있었겠습니까? 여기 두 남자가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진짜 신자였고 다른 한 사람은 죄많은 모방자였습니다. 하지만 둘 다 성령의 은사를 표명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혼돈으로 괴로왔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해답을 달라고 간구하려고 그 모임을 떠났습니다. 저는 혼자 비밀 장소로 가서 성경책을 옆에 두고 기도하며 해답을 위해 하나님을 기다렸습니다. 어떤 구절의 성경을 읽을 줄 몰라 저는 무심코 성경을 열어 마태복음에 있는 어떤 곳을 보았습니다. 저는 잠시 동안 읽다가 성경을 내려놓았습니다. 잠시 후 바람이 방 안으로 들어와 성경의 페이지를 히브리서 6장으로 넘겼습니다. 저는 6장을 읽어내려가다가(Eng.p. 168) 히브리서 6:4-9의 그 이상한 절에서 특별히 감명을 받았습니다.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의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와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나은 것과 구원에 가까운 것을 확신하노라."

저는 성경을 덮고 내려놓고 잠시 동안 묵상하다가 좀 더 기도를 했습니다. 저는 여전히 해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저는 아무런 뜻없이 다시 성경을 열었지만 읽지는 않았습니다. 갑자기 바람이 다시 방 안으로 들어와 또 한 번 페이지를 히브리서 6장으로 넘기고 바람이 그치자 거기에 그대로 펴져 있었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었습니다. 제가 그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