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교회시대]일곱 교회 시대 강해 6 두아디라 교회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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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Chapter 6 - The Thyatirean Church Age

CAB - 06




윌리엄 매리언 브래넘


‘일곱째 천사의 음성….’ 계시록 10:7







두아디라 교회 시대

일곱 교회 시대 강해

제  6 장

소 개


윌리엄 브래넘의 놀라운 사역은 말라기 4:5,6, 누가복음 17:30, 그리고 계시록 10:7 말씀에서 예언된 일들에 대하여 성령께서 응답하신 것이었습니다. 이 세계적인 사역은 많은 다른 성경 예언들이 절정에 달한 것이었고,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 그분의 영으로 지속적으로 역사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에 언급된 이 사역은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케 하는 사역이었습니다. 


여러분이 기도하면서 이 메시지를 읽을 동안 인쇄된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마음에 쓰이기를 우리는 기도합니다. 정확하면서도 축약하지 않은 번역을 제공하고자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영어 오디오 파일들이 브래넘 형제가 하신 영어 설교를 가장 잘 대표할 것입니다. 윌리엄 브래넘이 설교한 1,100여개의 설교들은 여러 언어로 통역과 번역이 되어 있으므로,   www.messagehub.info 에서 무료로 다운로드하고 인쇄할 수 있습니다.  더 자세히 알고자 하시면 이메일로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이메일: biblechurch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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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 장

두아디라 교회 시대

(THE  THYATIREAN  CHURCH  AGE)


계시록 2:18-29



두아디라 교회의 천사에게 편지하기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놋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가라사대

내가 네 사업(행위)과 사랑과 섬김과 믿음과 네 인내와 행위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또 내가 그녀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음행을 회개하고자 아니하는도다

볼지어다 내가 그녀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로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 던지고

또 내가 사망으로 그녀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리를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이 없노라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내가 또 그에게 새벽별을 주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두아디라


역사적으로, 두아디라성은 계시록에 나오는 모든 일곱 개 성 중에서 가장 눈에 띄지 않는 성이었습니다. 그것은 미시아와 이오니아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많은 강에 둘려 쌓여 있었지만 돛단배가 무척 많은 성이었습니다. 그 성의 가장 칭찬할 만한 특징은(Eng.p. 214) 토기장이, 제혁업자, 직물업자, 염색업자, 의상제조자 등등의 연합 상인 조합인 길드 때문에 경제적으로 부유했다는 점입니다. 자주장사 루디아의 고향도 바로 이 성이었습니다. 그녀는 바울이 유럽에서 처음으로 개종시킨 자였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이 성을 이미 네째 시대를 위한 영적 요소들을 갖고 있는 곳으로 선정한 이유는 그곳의 종교 때문이었습니다. 두아디라의 주된 종교는 황제 숭배 이단과 결탁된 아폴로 티림나이오스를 숭배하는 것이었습니다. 아폴로는 태양신이었고 그의 아버지 제우스 다음 가는 세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악을 다른 데로 돌리는 자 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는 종교적인 법과 속죄(즉 속죄를 뜻하는데, 잘못된 행위나 죄를 수정하는 것)를 관장했습니다. 플라톤은 그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는 사망과 탄생 이후에 관련된 의식들 뿐 아니라 신전과 제물과 신들의 섬김에 대한 제도를 인간들에게 설명해 준다.  그는 선지자들과 신탁을 통해서 인간들에게  미래 와 그의  아버지의 뜻 에 대한 지식을 알려 주었습니다. 두아디라에서 이 의식은 다리가 셋인 의자에 앉아 마법에 쌓여 있는 동안 메시지를 전하는 한 여선지자에 의해서 집행되었습니다.

이 종교의 세력은 대단했습니다. 그것의 무서운 힘은 신비의 영역에만 있는게 아니라, 아폴로 신전 경배에 속하지 않으면 아무도 사람들에게 살 길을 제공한 상인 조합인 길드에 들어갈 수 없었다는 사실에 있었습니다. 우상 숭배적인 잔치와 호색적인 유흥에 참여하길 거절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이 일 세기 조합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누구든지 사교적 상업적 생활에 끼기 위해서는 실행에 옮기는 이교 우상 숭배자가 되어야 했습니다.

두아디라라는 이름 자체가  지배하는 여자 라는 뜻임은 가장 주지해 볼만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 시대는 지배적인 세력, 무분별하고 모든 것을 침입하고, 모든 것을 정복하여 횡포로 다스리는 세력을 특징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배하는 여자는 세상에서 가장 커다란 저주입니다. 세상이 이제껏 보아 오던 중 가장 현명한 사람은 솔로몬이었는데,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돌이켜 전심으로 지혜와 명철을 살피고 궁구하여 악한 것이 어리석은 것이요 어리석은 것이 미친 것인 줄을 알고자 하였더니 내가 깨달은즉 마음이 올무와 그물 같고 손이 포승 같은 여인은 사망보다 독한 자라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는 저를 피하려니와 죄인은 저에게 잡히리로다 전도자가 가로되 내가 낱낱이 살펴 그 이치를 궁구하여 이것을 깨달았노라 내 마음에 찾아도 아직 얻지 못한 것이 이것이라 일 천 남자 중에서 하나를 얻었거니와 일 천 여인 중에서는 하나도 얻지 못하였느니라.  전도서 7:25-28.(Eng.p. 215) 바울은,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권위를 빼앗는 것을 허락치 아니하노니 하고 말했습니다. 에덴 동산 이후부터, 여자는 계속 성공적으로 남자를 주관하려 애써 왔고, 오늘날은 여자들 세상입니다, 미국의 여신은 벌거벗은 여성입니다. 그 하늘에서 떨어진 여자 우상이(그녀의 팔은 철막대기였음을 기억하시죠), 첫번째 즉 에베소 시대의 특성을 기술했던 것처럼, 그래서 그녀의 세력은 절대적인 권위, 그녀의 철 같은 기질로 빼앗은 그런 권위를 얻을 때까지 자라났습니다.

그런데 여자는 철 같은 성격을 가지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여자는 성경에 의하면, 남자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그것은 여자에게 내려진 명령입니다. 진실로 여성적인 여자는, 정말로 여자다운 여자, 그런 성향을 소유한 여자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문간에 까는 매트는 아닙니다. 진정한 남성은 여자를 문간 매트로 만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권세 아래 있기를 원하고 남자를 지배하려고 하지 않을 것인데, 남자가 그 집의 머리이기 때문입니다. 여자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그 이미지를 깨뜨린다면, 그녀는 왜곡되었습니다. 여자로 하여금 권위를 갖도록 내버려 두는 남자도 역시 그 이미지를 깨뜨렸고 왜곡된 사람입니다. 그것이 바로 여자가 남자에게 속한 것을 입지 못하며 머리를 자르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여자는 결코 남자에게 속한 옷을 입거나 머리를 잘라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하면, 그녀는 권위를 취함으로써 남자의 영역을 침범하고 자기 자신을 왜곡시키게 됩니다. 그런데 여자가 해서는 안되는 일이라고 명령된 강대상에 침입한다면, 그녀는 자기가 속해 있는 영이 뭔지를 보이는 것입니다. 지배하는 여자가 되는 것은 적그리스도이고 로마 카톨릭 교회의 씨들이 그녀가 이 사실을 아무리 강렬하게 부인한다 해도 그녀 안에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에서 볼 것 같으면, 하나님은 참되시며 사람의 말은 다 거짓말이라 할지어다. 아멘.

태초로 돌아가 봅시다. 오늘 우리가 아는대로 처음 육적인 피조물 안에는,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쌍으로, 수컷과 암컷으로 만드셨습니다. 닭 두 마리가 있었습니다--수탉과 암탉, 소 두 마리가 있었습니다--암소와 수소. 그런 식으로. 그러나 인간은, 한 사람 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쌍이 아니었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그는 유혹에 넘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타락을 유도하려고 사람의 부산물을 택하셨습니다. 여자는 결코 하나님이 만드신 진짜 산물로서 하나님의 손에서 새 것으로 걸어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남자에게서 산출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남자로부터 그녀를 나오게 하셨을 때, 그녀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다른 암컷들과는 현저히 달랐습니다. 그녀는 유혹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Eng.p. 216) 피조물 가운데 어느 암컷도 부도덕할 수 없지만 인간인 여성은 거의 아무 때든지 손댈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그녀 안에 있는 그 연약성은 사탄으로 하여금 뱀을 통해 그녀를 유혹하게 했고 여자를 하나님과 그의 말씀 앞에서 매우 독특한 위치에 두었습니다. 그녀는 한 편으로는 추하고 더럽고 가증스러운 모든 것들의 예표이며, 다른 한 편으로는 깨끗하고 아름답고, 하나님의 성령과 축복들을 받을만한 거룩한 모든 것들의 예표입니다. 한 편 그녀는 음행의 포도주에 취한 음녀라고 불립니다. 다른 한 편으로 그녀는 그리스도의 신부라고 불립니다. 한 편으로 그녀는 비밀 바벨론, 하나님 앞에 가증한 것이라 불리는데 다른 한 편으로는 새 예루살렘, 우리 어머니라고 불립니다. 한편 그녀는 너무도 더럽고 악하고 음란하여 간단히 그녀에게 가장 적합한 장소인 불못에 던져지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하늘에 높이 들려져 여왕에게 어울리는 유일한 곳인 바로 그 하나님의 보좌에 함께 앉게 됩니다.

그런데 이 두아디라 교회 시대에서 그녀는 주관하는 여자입니다. 그녀는 비밀 바벨론입니다. 그녀는 큰 음녀입니다. 그녀는 거짓 여선지자 이세벨입니다. 왜죠? 진정한 여성은 하나님에게 순종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가 그녀의 머리입니다. 그녀는 말씀 외에 다른 말을, 그분의 생각 외에 다른 생각을, 그분의 인도하심 외에 다른 인도함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교회는 어떻습니까? 이 교회는 말씀을 내쫓고, 성경과 경건한 자들의 가진 값진 글들을 없애버렸습니다. 진리를 전하는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왕과 방백들과 국가들을 장악했고--군대들을 조종하며 자기가 그리스도의 진실한 몸이며 자기의 교황들은 그리스도의 대리자들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교회는 마귀에게 완전히 미혹되었고 이제는 자기가 다른 이들을 미혹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사탄의 신부이며 그의 사생아 종교를 낳았습니다.

암흑 시대 동안 내내 그녀는 지배했습니다. 약 900여년 동안 그녀는 약탈하고 멸망시켰습니다. 그녀는 예술을 죽였고, 과학을 멸했고, 죽음 외에는 아무 것도 산출하지 않아 마침내 진리의 빛이 거의 전적으로 사라져 오로지 희미한 은빛 빛줄기만 남게 했습니다. 감람유와 포도주는 흐르는 걸 멈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세상 왕국들을 장악하고 모든 사람들은 자기에게서 시민권을 찾으라고 명령을 내렸다 해도, 하나님에게 속한 적은 무리가 있었는데, 그들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었고 그녀는 그들을 멸망시킬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적은 양무리를 지켰습니다, 그들은 멸망당할 수 없었습니다. 이 로마 교회는 왕족의 씨를 모두 멸하는데 성공할 뻔했던 아달랴 여왕처럼 이교도적이고 사악했습니다,(Eng.p. 217) 하지만 하나님은 한 사람을 지키셨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충성된 자들이 더 많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긴긴 어두운 밤에 적은 양무리를 지키셨고 그들의 진리에서 마침내 루터라는 사람이 일어났습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와 그들의 경배 형식에 대해 뭘 좀 아시는 분들은 어째서 이 두아디라성이 성령에 의해서 암흑 시대에 있는 그 교회를 대표하기 위해 택함을 받았는지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눈 바로 앞에 그것이 있습니다.


시  대


두아디라 시대는 다른 시대들보다 가장 길게, 606년부터 1520년까지, 약 900년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사  자


그 교회는 오랫동안 두 무리로 서로 나뉘어졌습니다, 동부와 서부로. 가끔 개혁자가 한 쪽 또는 양쪽 부분에서 일어나 잠시동안 그 교회의 몇 분당을 하나님과의 더 깊은 관계로 이끌었습니다. 서부에 있던 그런 사람은 아씨씨의 프란시스였습니다. 한 동안은 정말로 성공적이었지만, 결국에 가서 그의 사역은 로마의 성직계급에 의해 짓밟혔습니다. 세속의 삶을 포기한 상인이었던 리옹의 피터 왈도는 주님을 섬김에 있어 매우 활동적이 되었고 많은 사람들을 주님께로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활동에 방해를 받았고 교황에게 파문을 당했습니다. 성경에 비춰 조사해 볼 때 서부에서도 동부 그룹에서도 이 시대에 보냄을 받은 사자가 될만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브리티쉬 아일즈에 두 사람이 있었는데 그들의 말씀의 사역과 행적은 진리의 시험을 견딜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두 사람은 성 패트릭과 성 콜럼바였습니다. 사자가 되는 몫이 떨어진 것은 콜럼바에게 였습니다.

두아디라 시대에 보냄을 받은 사자가 성 콜럼바였다 할지라도 저는 잠시 우리에게 본보기가 되고 또한 쟌다르크처럼 성 패트릭도 자기들의 사람이라는 로마의 주장이 거짓말인 것을 알리기 위해서 성 패트릭의 생애를 알아 보고 싶습니다. 패트릭은 클라이드 강둑에 있는 보나번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성 마틴의 누이에게 태어났습니다. 어느 날 그의 두 누이들과 함께 해변에서 놀고 있는데, 해적들이 다가와 셋을 다 납치해갔습니다. 그 누이들의 행방은 아무도 모르지만, 패트릭은(그의 이름은 써캣이었습니다) 북 아일랜드에 있는 한 족장에게 팔렸습니다. 그의 의무는 돼지를 치는 것이었습니다. 이 일을 하기 위해서 그는 개들을 훈련시켰습니다.(Eng.p. 218) 그의 개들은 너무도 잘 훈련이 되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멀고 가까운 곳들로부터 개를 사러 왔습니다. 그 외로운 상태에서 패트릭은 하나님을 찾았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나서 도망을 하여 자기 집 부모님에게로 돌아가고픈 간절한 소망이 싹텄습니다. 그는 훈련사로서의 자기 능력을 한껏 써먹기로 계획을 짰습니다. 그는 개들에게 자기 위에 올라타 자기 몸을 잘 감싸고 명령을 받기 전에는 움직이지 않도록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주인이 개 몇 마리를 파는 날이 왔을 때, 패트릭은 우두머리 개를 제외한 다른 개들은 배 안으로 들어가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때 비밀 신호를 받은 그 우두머리 개는 도망을 가 승선을 거부했습니다. 주인과 구매자가 그 개를 잡으려고 애쓰는 동안, 패트릭은 배 안으로 들어가 개들에게 자기 몸을 덮어 싸라고 신호를 내렸습니다. 그리고나서 휘파람을 불어 그 우두머리 개를 배 안에 들어와 자기 위에 앉게 했습니다. 패트릭을 아무데서도 찾을 수 없자 그 구매자는 돛을 올리고 바다로 전진했습니다. 육지에서 너무 멀리 왔기 때문에 선장이 배를 돌릴 수 없을 것을 확신한 후, 패트릭은 개들이 소동을 피우게 만드는 또 다른 신호를 개들에게 내렸습니다. 그리고나서 그는 나와서 선장에게 그를 그의 집 해변에 내려주지 않는다면 개들로 계속 소동을 피우게 하고, 배를 뺐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선장은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는 그 소년의 이야기를 듣더니 기꺼이 그의 집 해변에 내려 주었습니다. 거기서 패트릭은 성경 학교에 갔고 아일랜드로 돌아와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많은 표적과 기사를 보이며 수천명의 사람들을 주님께 인도했습니다. 한 번도 그는 로마에 간 적이 없었고 한 번도 로마에 의해 위임을 받지도 않았습니다. 그 문제의 진실은 로마가 마침내 그 섬에서 발판을 얻고 시기가 적절하다고 생각했을 때, 성 패트릭 밑에서 주님께로 온 처음 무리들로부터 여러 해를 지내는 동안 불어났었던 100,000여 명의 그리스도인들을 죽였다는 사실입니다.

성 패트릭이 죽고 60년 정도 후에, 콜럼바가 북 아일랜드에 있는 카운티 도네갈에서 퍼거스 왕족에게 태어났습니다. 그는 총명하고 성별된 학자가 되었고 성경 대부분을 암기하는데 전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들을 수 있는 음성으로 그에게 선교사가 되라고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후, 아무 것도 그를 막을 수 없었고, 그의 기적적인 사역은 많은 역사가들로 그를 사도들 버금가는 사람이라고 환호하게 만들었습니다. 초자연적 이적들이 따르는 그의 사역이 너무나 위대해서 어떤 이들은(특히 로마에 있던 연구자들) 그 이야기가 과장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전도 여행 중 한 번은, 그가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에 이르렀을 때,(Eng.p. 219) 성문이 굳게 닫힌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개입하사 그로 설교하기 위해 그 사람들에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소리를 높여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기도할 때 궁중 마법사들은 큰 소음으로 그를 방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콜럼바는 찬양을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노래를 부르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그의 목소리의 음량을 증폭시켜서 이교도들의 외치는 소리를 가라앉히셨습니다. 갑자기 성문이 저절로 활짝 열렸습니다. 콜럼바는 들어가서 복음을 전했고, 많은 사람들을 주님께로 이끌었습니다.

또 한 번은 한 마을에서 배척을 당한 적이 있었는데, 그가 떠날려고 돌아서자, 그 마을 추장의 아들이 갑자기 심하게 아프게 되어, 죽음 직전에 있었습니다. 그러자 성 콜럼바는 재빨리 수색하여 불리우게 되었습니다. 그가 믿음의 기도를 드리자, 그 소년은 즉시 나았습니다. 그래서 그 마을은 복음의 전도에 문을 열게 되었습니다.

콜럼바와 그의 동역자들에 의해 전해진 순수한 복음은 전 스코틀랜드에 확산되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아일랜드와 북유럽에도 넘쳐 흘러들어갔습니다. 복음을 확산시키는 그의 수단은 어쩌면 한 명의 지도자 밑에 있는 열 두 명의 남자들이 새로운 지역에 들어가 실제로 복음이 중심을 이루는 소도시를 세우는 것에 있었습니다. 이 열 두 명의 남자들은 목수들, 교사들, 설교자들인데 모두 다 말씀을 구슬꿰듯 잘 알고 있고 거룩하게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작은 부락은 벽으로 둘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곧 이 포위는 말씀을 배우고 나가서 선교사, 지도자, 설교자로서 주님을 섬기기 위해 준비를 하는 학생들과 그들의 가정에 있는 그들의 가족들로 둘러 싸이게 되었습니다. 남자들은 결혼할 자유가 있었어도 결혼을 하지 않았는데, 하나님을 더 잘 섬기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들은 정부의 도움도 받지 않으려 했는데, 그럼으로써 그들은 정치와 관계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종교들을 공격하는 대신에 그들은 진리를 가르쳤는데 이유는 진리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염두해 두신 목적을 성취하기에 충분한 무기라고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전적으로 로마에서 떨어져 있었습니다.

성 콜럼바는 (스코틀랜드 남서쪽 해안에서 떨어져 있는) 하이 섬에 커다란 성경 학교를 세웠습니다. 그가 그 섬에 갔을 때, 그곳은 너무도 불모의 땅이고 돌이 많아서 그들 모두에게 필요한 충분한 양식을 제공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콜럼바는 한 손으로는 씨를 심고 한 손은 높이 들고 기도했습니다. 오늘날 그 섬은 세계에서 가장 비옥한 땅 중 하나입니다. 이 성경이 중심이 된 섬에서 지혜와 하나님의 능력으로 충만된 위대한 학자들이 나왔습니다.

저는 이 위대한 하나님의 종과 그가 행한 훌륭한 일들에 대한 역사를 읽었을 때,(Eng.p. 220) 모든 사람을 손아귀에 넣기 위한 욕심이 가득한 교황의 세력이 와서 결국에는 이 선교지역을 더럽히고 콜럼바가 가르친 진리를 멸했다는 것을 알고 제 마음은 슬퍼졌습니다.


인 사 말


계시록 2:18,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놋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가라사대. 

두아디라 시대에 주신 신성의 계시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육신으로 계셨을 때 인자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는 육신의 모습으로 계신 분을 알지 못합니다. 그는 더이상 자기 안에 모든 예언들을 모으고 계셨던 인자, 위대한 선지자가 아니십니다. 그 독생자는 아버지의 품 안에 돌아가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부활의 능력으로 주님을 압니다. 그는 부활하시고 그의 강한 권세를 취하시고 모든 것 위에 계시고 자신의 영광을 찬미하는 모든 것 위에 계십니다. 그는 자신의 영광을 다른 사람과 나누어 가지지 않으실 것입니다. 교회에 대한 지도권을 다른 어느 누구에게도 내놓지 않으실 것입니다.

두아디라를 내려다 보시고, 여기에서 그는 이 성에서 이 네째 시대에 그분에게만 속한 영예가 다른 자에게 수여되어 있는 것을 보십니다. 그분 홀로 아버지의 독생자이신데, 아폴로가 하나님의 아들로 숭배되는 것을 보시고, 그의 눈은 분노와 심판의 불꽃으로 빛납니다. 교인들이 정부 권력의 후원을 받아, 신의 아들(제우스의 아들 아폴로)을 숭배하는 이교 숭배자들처럼, 인간 통치자를 높여 경배하는 두아디라 시대의 종교에 내릴 그의  심판은 분명히 너무도 무시무시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정확히 그가 본 것이기 때문입니다. 태양신(아폴로)의 의식들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 우상숭배에 완전히 잠식된 로마 카톨릭 교회는 정부와의 결혼을 통해서 한 사람을 실제적인 신(교황)으로 승격시켰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와 알베루스 펠라기우스는 공식적으로 다음과 같이 진술했습니다:  교황은 영적인 눈으로 그를 보는 사람들에게 한 인간이 아니라 한 신으로 보이는 것 같다. 그의 권세는 무한정하다. 그는 그가 뜻하는 것을 옳다고 선언할 수 있고 적절하다고 여기는 대로 그들의 어떤 권리라도 빼앗을 수가 있다. 이 우주적인 권세를 의심하면 구원으로 들어가는 문에서 배척 당한다. 그 교회의 가장 큰 적은 진정한 순종의 멍에를 지지 않으려 하는 이단들이다.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하나님의 아들)라. (Eng.p. 221) 디모데전서 2:5. 그러나 로마 교황은 그 말씀을 바꿨습니다. 그는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들이 아니라)사람 사이에 한 중보자.  그래서 지금 그는 중보자와 사람들 사이에서 중보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들 외에는 다른 중보자가 없습니다. 교황은 로마 교회를 통한 구원을 선포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아들을 통하지 않고는 구원이 없습니다. 그 눈이 불 같은 심판으로 빛나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가 이 세상의 악한 왕국들을 짓밟아 가루로 먼지로 만들어 버릴 준비가 되어 서 계시는데 그의 발이 빛난 놋 같은 것도 당연합니다. 놋으로 된 그 강한 발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 말들은 우리를 위해 심판을 하며 걸으셨습니다. 그 발들은 지금 우리의 기초인데 이유는 그가 얻으신 것은 우리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안에 동일시되어 서 있습니다.

우리가 본 하나님의 아들을 부인하고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 부르는 사람들에게는 죽음을 결정한 모하멧주의가 일어난 것은 바로 이 시대 일이었습니다.

거짓 교회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첫번째 계명을 무시하고, 교황을 예수 그리스도의 자리에 두고 우상 숭배를 채택하고, 교회 내에 성상들을 세우기를 거절한 사람들에게는 사형을 강행할 정도로까지 우상 숭배를 실행하였기 때문에, 곧장 두번째 계명을 어기는 단계로 나아간 것도 역시 이 시대에 일어났던 일입니다. 842년에서 867년까지, 띠오도라 여황제 치하에서만 해도, 100,000여명의 성도들이 성상들을 무가치한 것으로 여겼다 해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정말로 이 시대는 회개를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영광의 주님이 거기 서 계십니다. 하나님 유일하신 하나님이--그의 말씀이 제쳐지고, 그가 거절을 당했지만, 인간의 손과 마음은 그분을 폐할 수 없습니다. 그들이 그분을 부인한다해도, 그는 신실하신 분입니다.  어린 양들아 두려워 말라, 너희에게 나라를 주시는 것이 너희 아버지의 기쁘신 뜻이니라 내가 놋 발과 불꽃 같은 눈으로 올 때 보수하리라, 심판은 내가 하는 것이라, 내가 갚아주리라. 하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찬  사


계시록 2:19,  내가 네 행위(work)와 사랑과 섬김과 믿음과 네 인내와 네 행위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여기서 우리는 또다시 똑같이 시작되는 말씀을 발견합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라.  하나님의 아들은 직접,  내가 한 일(work)로 나를 믿으라. 하셨습니다. 그는 지상에 계실 때, 자신의 행위를 강조하셨습니다. 그가 하신 일들은 그를 믿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그의 사역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였습니다.(Eng.p. 222) 그의 성령은 사도 바울 안에서,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에베소서 2:10. 이 일들은 그것들이 바울이  그 안에서 지으심을 받았다 고 말하면서 기술한 주님과의 관계를 나타내기 때문에 주님에 대한 믿음을 고무시키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행위는 결코 우리 구원을 위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대신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믿음이 이미 주님 안에 놓여져 있음을 행위는 나타낼 것입니다. 선한 행위들이 여러분을 구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구원 받은 삶에서 주님께 드려지는 열매로 나올 것입니다. 저는 착한 행실들을 믿습니다. 구원을 받지 않았다 해도 사람은 선한 일을 해야 하고 최선을 다해 해야 합니다. 악한 일을 행하면서 자기들은 주님의 뜻을 행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끔찍한 광경일까요. 그것은 그 주교들과 교황들과 로마의 성직 계급이 행하고 있었던 일입니다. 그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죽이고, 불구로 만들고, 온갖 악한 일을 저지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말씀이 가르치는 것과 정반대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 악한 시대에서 그 진실한 신자들은 계속 선을 행하면서, 비록 많은 이들이 그 이유로 죽는다 해도 하나님을 존중하기 위해서 저주를 축복으로 돌렸고 진리를 행했기 때문에, 어두운 곳에서 빛처럼 빛났습니다.

이 절에서 주님은 그들이 변화된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자녀들을 칭찬하고 계십니다. 그들의 행위는 내부에 있는 새로운 성령을 증거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의 선한 행위를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라면 여러분은 옳은 것을 행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행위는 여러분의 마음이 옳다는 것을 보여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여러분들이 가장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외에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을 때 주님의 뜻을 행할 것이고 그것이 여러분의 생명을 요구한다 할지라도 주님의 뜻을 행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네 사랑과 섬김과 믿음과 인내를 아노라  보시면 그들의 사랑은  행위 와  섬김  사이에 놓여 있습니다. 적절한 위치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이 없는 우리 행위는 하나님 앞에 받아 들여지지 않고 우리의 섬김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인들에게 말하는 바울은,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랑으로 하지 않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 신자들은 구원의 수단으로써 또는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기 위해서 일을 한 그 니골라당 계층에 있지 않았다는 것을 바로 여기에서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성령에 의해 마음 속에 넓게 자리잡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에서 우러나와 일을 했습니다. 그들의 마음 속에 있던 그 사랑은 자기 자녀들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고 하셨습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본 이교도들은,(Eng.p. 223)  그들이 얼마나 서로를 사랑하는지 보라. 고 말했습니다. 요한은,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났다. 고 말했습니다. 요한 1서 4:7.

저는 여기에서 한 가지 경고를 하고 싶습니다. 성경은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으리라고 말세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시대인 라오디게아에서는, 자신에 대한 사랑과 물질에 대한 사랑이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사랑을 대신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마지막 시대에 죄의 권세를 대항하며 예방해야 합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너무도 강팍해져가고 있는데, 이유는 그들이 이 마지막 시대의 영의 영향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서고 그로 우리의 삶에 그의 사랑으로 충만하게 채우시도록 해야 하는 때입니다, 안그러면 우리는 마지막 시대 교회의 차가움을 느끼고 홀로 우리를 도우실 수 있는 하나님의 진리를 거절하게 될 것입니다.

그 어둡고 무서운 시대에 참 포도나무는 하나님과 형제들에 대한 사랑을 붙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에 대해 그들을 칭찬하셨습니다.

 나는 네 섬김을 아노라  예수님께서는,  가장 큰 자는 모든 이를 섬기는 자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현인은 그 말에 주석을 붙였습니다. 그가 한 말은 이것입니다,  역사만이 그 말의 진리를 증명할 것이다.  그 사람 말이 옳았습니다. 역사상 진실로 위대한 사람들은 다 종들이었습니다. 섬김을 받고자 명령한 사람들, 압제한 사람들, 항상 우두머리쪽에 있으려고 애쓰던 사람들은 부끄러워하며 내려갔습니다. 굉장한 부자들도 그들이 자기들의 재산을 올바로 사용하지 않았을 때는 하나님에게 정죄당합니다. 그러나 역사를 조사해 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을 섬긴 사람들이 진실로 위대한 사람들이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역사는 결코 많이 섬김을 받은 사람들에게 갈채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남들을 위해서 많은 일을 행한 사람들을 영원히 칭송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 자신에게 그것을 적용시켜 봅시다. 인자조차도 섬김을 받으러 오신게 아니라 섬기러 오셨듯이, 우리도 그 본을 따라야 합니다. 사도들의 발에 몸을 굽히고 그들의 피곤하고 더러운 발을 씻으시고 계신 주님을 보십시오. 주님은,  나의 하는 것을 이제는 너희가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 그러나 내가 하는 것을 본대로 너희도 행해야 하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를 가장 높은 위치로 올리실 수 있도록 종이 되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성도들의 심판 때, 우리는 주님께서  착하고 충성된 종아 잘 하였다, 주의 기쁨에 참예하라. 고 말씀하시는 소리를 듣게 될 것입니다. 항상 종이 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쓰고 쓰여지는 사람들은 어느 날엔가는 주님과 함께 주님의 보좌에 앉게 될 것입니다. 그때는 모든 것이 보람있게 느껴질 것입니다.  새벽부터 해질 때까지 주인을 위해 일하세, 주님의 놀라운 사랑과 돌보심을 모두 얘기하세, 이 생이 끝나고 이 세상에서 우리 일이 마쳐지고, 저기서 이름을 부르면 나 거기 가겠네. (Eng.p. 224)

 내가 네 믿음을 아노라.  그런데 여기서 그는 버가모에 있던 교회에게 하셨듯이,  너는 내 믿음을 지켰다 고 말씀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는 지금 그의 믿음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게 아닙니다, 그들의 성실함에 대해서 그들에게 칭찬을 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들의  인내 도 언급하십니다. 그런데 성실과 인내는 늘 붙어다닙니다. 사실 인내는 성실의 결과입니다, 야고보서 1:3에서,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느니라 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인내를 얻기 위한 다른 방법은 절대로 없습니다. 인내는 우리 믿음의 시련을 통해 와야 합니다. 로마서 5:3,  환난은 인내를 이룬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내의 완성을 얼마나 높이 여기시는지는 야고보서 1:4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완전입니다. 그리고 그 완전은 인내입니다--하나님을 의뢰하고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품을 개발시키는 과정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암흑 시대의 성도들을 얼마나 높이 칭찬하셨습니까.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들처럼 인내하고, 사랑스럽고, 충실하게 그들은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들이 삶 가운데서 원했던 전부는, 그저 주님을 섬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상이 얼마나 클까요.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이것은 정말로 놀랄만한 것입니다. 시대의 어둠이 깊어갈 때, 순교자들의 영예의 명단이 길어져 갔을 때, 그들은 더욱 더 열심히 일했고, 더욱 더 섬겼고, 그들의 믿음은 증가했습니다. 에베소 시대에서 사랑이 식었다는 것은 얼마나 비극적인 일이었습니까. 그런데 다른 시대들에서는 증가된 사랑의 봉사에 대해 정말로 아무 말도 없었는데, 이 시대에, 시대들 중 가장 어두운 시대에, 그들은 주님을 더 많이 섬겼습니다. 그것은 얼마나 위대한 교훈입니까. 주님께 드리는 이 은혜스러운 사랑의 봉사는 그치지 않고 오히려 증가합니다. 그것이 그 비밀입니다. 원수로 우리의 주님께 드리는 섬김을 방해하도록 유혹하게 해 보십시오--우리의 답은 더 많이 섬기는 것입니다. 약한 자들이 두려움 가운데서 부르짖을 때, 그때가 승리를 외칠 때입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알고,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그런데 우리가 이미 말씀드렸듯이, 이 시대는 암흑 시대라고 불리는데 이유는 역사상 정말로 가장 어두운 시기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때는 자기가  그리스도의 대리자--교회와 세계 위의 최고의 권위자 라고 주장했고, 그의 지시 하에 개혁 시대를 제외한 다른 어떤 시대보다도 더 많은 피를 흘리게 했던 종교재판소를 설치했던 교황 이너슨트 3세의 시대였습니다. 이 때는 호색 통치, 음녀의 지배 시대였습니다. 싸가리우스 3세는 정부를 두고 있었고  교황 성가대에 애인들과 사생자들로 채웠고(Eng.p. 225) 교황궁을 강도의 굴혈로 바꾸었습니다.  아나스타시우스 3세는 싸가리우스의 정부였던 마로지아에게 목졸려 죽었습니다. 요한 11세는 마로지아의 사생자였습니다. 요한 12세는 마로지아의 손자였고 그는  과부들과 처녀들을 욕보였고 간음하는 현장에서 그 여자의 성난 남편에게 살해당했습니다.  이때는 서로 저주하고 싸우는 두 노선의 교황들로 분리된 교황의 시대였습니다.(한 쪽은 아비뇽에서 한 쪽은 로마에서 다스렸습니다.) 이 교황들은 부도덕한 성행위로 죄를 지었을 뿐 아니라(수십명의 사생아들을 키우고, 동성애를 하는 등등) 가장 거액의 돈을 내는 사람들에게 성직자의 직분을 파는 죄를 지었습니다.

이 때는 빛이 너무도 희미하게 비쳤던 시대였습니다, 하지만 소수의 신자들은 어둠이 깊어갈수록  더욱 더 열성적으로 일했는데 그 시대의 끝에 가서는 많은 이들이 개혁을 시도하고자 일어날 정도였습니다. 그들은 너무도 열성적으로 일하여 다가오는 개

혁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 대한 말씀대로,  네 나중 (시대의 끝) 행위는 처음 것보다 많았습니다. 

두아디라라는 말은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그 중에는  계속적인 희생 이 있습니다. 많은 이들은 이것이 그리스도의 희생 제물을 계속 바치는 미사의 사용에 대한 예언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것은 훌륭한 생각이지만, 주의 진실한 신자들의 삶과 일에 나타난 계속적인 희생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분명히 이 두아디라 성도들은 최상의 사람들이었고, 성령과 믿음으로 충만한 사람들, 선한 일을 위해 지음 받은 자들이었으며, 주님을 찬미하고, 자기 목숨을 아깝게 여기지 않고 기꺼이 자기들의 모든 것을 향기나는 제물로써 주님께 바친 사람들이었습니다.


책  망


계시록 2:20,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참음)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이제 이 절과 함께 저는 여러분이 23절까지 내려가 제가 지금까지 여러분에게 말씀드린 커다란 진리의 증거를 보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사망으로 그녀의 자녀들을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줄 알지라.”  저는 계속해서 실제로는 두 교회가 있다고 말해왔습니다,(Eng.p. 226) 성령이 각 시대에 두 교회가 하나인 것처럼 그들에게 말씀하고 계신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여기서 말씀은 교회들이 있다고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분명하게 그 교회들 중 몇 교회는 명확하게 그가 뜻과 마음을 감찰하시는 분임을 모르고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들에게 그러함을 증명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교회가 이 진리를 모르는 교회일까요? 물론, 거짓 포도나무 무리입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신자들은 분명하게 심판은 하나님의 집에서 시작됨을 알고 있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그들은 심판을 받지 않으려고 자신을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거짓 포도나무인데도 이 교회들을 당신의 교회라고 부르시죠? 그 문제의 진실인즉 그들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령으로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육적으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들은 헛되이 그 이름을 지니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7:7,  “사람의 계명으로 교리를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그러나 그들은 정말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아니라면 그들이 다른 뭐가 될 수 있겠습니까? 모하멧교인은 모하멧교인입니다. 그가 어떻게 살든지간에 그것이 그의 종교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론적으로 코란이 가르치는 것을 찬성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도 그가 예수는 동정녀에게서 나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가 인류의 구세주이라든가 등등의 사실에 찬성하는 한은 그리스도인입니다.(사실, 라오디게아 시대에서는 자기들에게 그의 신성을 부인할 권리는 남겨 두고도 예수님의 좋은 면에 찬성하기 때문에 자신들을 그리스도인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사회주의 복음을 전하는 무리들과 함께 크리스찬 과학교도들도 이미 그렇게 했습니다) 그는 이름뿐인 그리스도인이며 교회에 속해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진정한 영적인 신자가 아닙니다. 신자란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침례를 받고 주님의 지체인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라지들이 밀과 함께 자라고 뽑히지 않게 된 것은 하나님의 명령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묶여서 불태워지는 그들의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아닙니다.

그래서 성령은 이 혼합된 무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한편으로 그는 칭찬하시고, 한 편으로는 꾸중하십니다. 그는 진정한 신자의 옳은 면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는 거짓 포도나무에게 주님 앞에서 의로운 모습으로 서 있게 되기를 바란다면 무엇을 해야할 지 경고하십니다.


이세벨 그 여자


사도 야고보는 우리에게 죄의 경로를 보여주었습니다. 야고보서 1:14-15,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Eng.p. 227)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자 그것이 교회 시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정확하게 묘사한 말씀입니다. 죄가 사소한 한 감정으로부터 시작된 것처럼, 교회의 사망도 단순히 부주의하게 지나쳤던 니골라당의 행위들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 행위로부터 그것은 하나의 교리가 되었습니다. 그 교리로부터 그것은 정부의 권력과 이교주의를 도입해 끌어안았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에서 그것은 자신의 여선지자(교사)에게 가고, 그래서 그것은 계속 순회하다가 마침내는 불못에 가게 될 것입니다, 결국 둘째 사망 때, 그것이 가는 곳이 바로 그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네째 시대에 대항하는 하나님의 전적인 외침은 이 여선지자 이세벨을 탄핵하는데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이 그녀를 그토록 탄핵했는지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성경에서 그녀의 역사를 찾아보아야 할텐데 그녀가 옛날에 한 일을 알게 되면, 우리는 이 때에 무슨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이세벨에 대해서 우리가 배운 것 중 가장 중요하고 우선되는 사실은 그녀는 아브라함의 딸이 아니며, 이스라엘 지파로 들어올 때 모압 여인 룻의 경우처럼 영적인 허가를 받은 것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아닙니다. 이 여자는 아스다롯을 섬기는 제사장인 시돈왕 엣바알의 딸이었습니다. (열왕기상 16:31) 그는 선왕인 펠레스를 살해하고 왕좌를 차지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녀가 살인자의 딸이었음을 금세 알 수 있습니다.(이것은 확실히 가인을 상기시킵니다) 그런데 그녀가 이스라엘의 한 사람이 된 방법은 하나님이 이방인을 허용하기 위해 정하신 영적인 경로를 통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이스라엘 열 지파의 왕인 아합과 결혼함으로써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보니까 이 결합은 영적인 게 아니라 정략적인 결합이었습니다. 그런데 우상 숭배에 흠뻑 빠져 있었던 이 여자는 유일하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가 되고자 하는 소원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이스라엘을 여호와에게서 멀어지게 하려는 노골적인 의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열 지파)는 이미 황금소를 경배하는 게 어떻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경배를 받고 모세의 율법이 인정되고 있었기 때문에, 아직은 우상 숭배에 젖어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합이 이세벨과 결혼하고나서부터, 우상 숭배는 놀랄만한 형태로 전진해 나갔습니다. 이스라엘의 목숨이 경각에 놓이게된 때는 이 여자가 아스다롯(비너스)과 바알(태양신)에게 바쳐 세운 신전들에서 여제사장이 되었을 때였습니다.

이것을 염두해두면, 우리는 하나님의 영이 이 두아디라 시대에서 제시하시는 것을 볼 수 있게 됩니다.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Eng.p. 228)

아합은 이세벨과 결혼했는데 그것은 왕국을 굳건하게 하고 지키려고 한 정략결혼이었습니다. 그 일이 바로 콘스탄틴 대제 치하에서 결혼했을 때 교회가 행한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비록 거기에다 영적인 분위기를 더했다 할지라도 정치적인 이유때문에 서로 연합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콘스탄틴이 그리스도인이었다고 저를 설득시킬 수는 없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처럼 위장한 이교도였습니다. 그는 군사들의 방패에 흰 십자가를 그렸습니다. 그는 콜롬부스 기사를 창설한 자였습니다. 그는 성 소피아 사원의 첨탑 위에 십자가를 세워 그런 전통을 시작한 사람이었습니다.

모든 이들 즉 이교도들, 이름뿐인 그리스도인들과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을 한데 모으려는 생각은 콘스탄틴의 생각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잠시 동안은 그가 성공을 거둔 것처럼 보였는데, 그 이유는 진짜 신자들이 그들이 말씀에서 멀어져버린 사람들을 돌이킬 수 있나 보려고 왔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진리 가운데로 되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들은 그 정치적 기구로부터 탈퇴해야만 했습니다. 그들이 탈퇴하자, 그들은 이단으로 몰려 박해를 받았습니다.

우리에게 지금 똑같은 일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지금 여기서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다 함께 모이고 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이건, 카톨릭교인이건, 개신교인이든 모든 사람에게 적합한 성경을 쓰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니케아 공회를 가지고 있는데 그들은 그것을 바티칸 공의회(에큐메니칼 공회)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조직들이 누구를 대적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그들은 진정한 오순절교인들에게 싸움을 걸고 있습니다. 저는 오순절교라는 조직을 말하는게 아닙니다. 진리가운데 행하기 때문에 성령으로 충만하고 그들 가운데 표적과 은사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오순절교인인 사람들을 말하는 겁니다.

아합이 정치적인 이유로 이세벨과 결혼했을 때, 그는 장자권을 팔았습니다. 형제여, 여러분이 조직에 가입한다면 여러분이 믿고 싶든 믿고 싶지 않든 간에 여러분은 여러분의 장자권을 파시는 겁니다. 나왔다가 다시 돌아간 모든 오순절교인들은 자기 장자권을 팔았습니다, 그런데 장자권을 파시면, 여러분은 에서와 똑같이 됩니다--울고 모든 것을 회개한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게 됩니다.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있는데, 그것은,  “내 백성아, 거기서 나오라, 그녀의 죄에 참예하지 말라!” 입니다. 그런데 제가 옳다고 생각하지 않으시면, 이 한 가지 질문에 대답해 보십시오. 어느 교회나 어느 하나님의 움직이심이 조직 속으로 들어가 교파가 된 이후로 부흥을 하고 돌아온 적이 있었는지 살아 있는 사람 중에 제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역사를 읽어보십시오. 하나도 찾을 수 없을 겁니다--하나도.

이스라엘이 세상과 연합하고 정치적인 이유로 영적인 것을 떠났을 때는 이스라엘엔 한 밤 중 시간이었습니다. 교회가 똑같은 일을 했던 때는 니케아에서 자정의 시간이었습니다.(Eng.p. 229) 지금 교회들이 한데 모이고 있는 것도 자정의 시간입니다.

그런데 아합이 이세벨과 결혼했을 때, 그는 이세벨로 하여금 국고를 가지고 아스다롯과 바알을 경배하는 두 개의 거대한 집을 세우도록 허락했습니다. 바알을 위해 건축된 건물은 모든 이스라엘인이 들어가 경배할 수 있을 만큼 컸습니다. 그런데 콘스탄틴과 교회가 결혼했을 때, 그는 교회에게 건물들을 주었고 제단과 우상들을 세웠고 이미 형태를 드러내고 있던 성직 계급을 조직했습니다.

이세벨이 배후에 국가의 권력을 가지게 되었을 때 그녀는 자기 종교를 사람들에게 강요했고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을 죽였습니다. 상황이 얼마나 심각했느냐면 그 시대의 사자인 엘리야가 자기가 유일하게 남은 자라고 생각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칠천 여명의 사람들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당장 저 밖에 침례교들, 감리교들, 장로교들, 기타등등의 종파들 가운데에도, 나와서 하나님께 돌아올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결코 사람들을 반대하지 않고, 그러지도 않았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반대하는 것은 종파-조직 체제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싫어하시기 때문에 그것을 반대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잠시 멈추고 우리가 두아디라에서의 경배에 대해 말씀드렸던 것을 재검토해 봅시다. 저는 그들이 황제와 함께 아폴로(태양신이었죠)를 숭배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이 아폴로는  악을 다른데로 돌리는 자 로 불렸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서 악을 다른 곳으로 돌렸습니다. 그는 사람들을 축복했고 그들에게 진정한 신이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을 가르치는 신이라 여겨졌습니다. 그는 경배와 신전 의식, 숭배, 희생 제물과 사망과 사망후 삶에 대해서 설명했습니다. 그가 이 일을 한 방법은 다리 셋 달린 의자 위에 도취되어 앉아 있던 여선지자를 통해서였습니다. 세상에! 여러분 아시겠습니까? 여기에 이세벨이라는 그 여선지자가 있고 그녀는 사람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교리는 하나님의 종들을 유혹해서 행음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음행은  우상 숭배를 뜻합니다. 영적인 의미에서 입니다. 그것은 불법적인 결합입니다. 아합의 결합과 콘스탄틴의 연합은 둘 다 불법적이었습니다. 둘 다 영적인 음행을 저질렀습니다. 모든 행음자들은 결국에는 불못에 들어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때, 카톨릭 교회의(교회는 여성입니다, 여자입니다) 가르침은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합니다. 현대판 아폴로인 교황은 실제로 사람들을 가르쳐 우상들과 연합하게 했습니다. 로마 교회는 이제 사람들에게 거짓 여선지자가 되었습니다. 로마 교회는 사람들로부터 주님의 말씀을 빼앗고 자기의 생각들이(Eng.p. 230) 죄사함을 이루는 것, 하나님의 축복을 가져오는 것이라고 자기 생각을 주었고, 신부들은 그들은 생명 뿐 아니라 사망도 다스릴 권세가 있다고 단호히 진술할 만큼 멀어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기 맘대로 연옥이 있다고 가르치고 있는데, 여러분은 말씀 가운데서는 그것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기도와 미사와 돈이 여러분을 연옥에서 끌어내 천국에 들어가게 할거라고 가르칩니다. 그 가르침의 기본이 되고 있는 전 체제는 틀린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계시의 확고한 기초 위에 놓여 있지 않고 자기 자신의 마귀적인 비진리라는 떠내려가고, 가라앉는 모래 위에 놓여 있습니다.

교회들은 조직에서 종파로 그리고는 거짓된 가르침으로 나아갔습니다. 그건 맞습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들은 하나님이 자신의 말씀 속에 계신다는 걸 믿지 않습니다. 믿지 않습니다. 믿는다면, 그들은 회개하고 다시 돌아왔을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은 그의 교회 안에 계신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성경을 카톨릭 교회의 역사서로 만들 것입니다.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들이 물 침례 하나만 가지고도 어떻게 했나 보십시오. 그들은 물 침례를 그리스도인의 침례에서 이교적인 직함으로 주는 세례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제가 어떤 카톨릭 신부님과 만났던 일을 얘기해 드리겠습니다. 한 번은 제게 침례를 받았던 한 여자애가 카톨릭으로 개종했습니다, 그래서 그 신부님은 그녀에 대해서 저와 면담을 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는 그녀가 어떤 침례를 받았는지 물었습니다. 저는 제가 아는 유일한 지식인 그리스도인의 침례로 침례를 주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녀를 물 속에 장사했었습니다. 그 신부님은 옛날에 카톨릭 교회는 그렇게 했었다고 제게 말해주었습니다. 저는 곧장 언제 카톨릭 교회가 그렇게 했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들의 역사를 읽었는데 그가 말했던 사실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그것은 성경에서 찾을 수 있고 예수님이 카톨릭교회를 조직했다고 제게 말했습니다. 저는 베드로가 정말로 첫번째 교황이었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베드로가 그랬다고 그는 강조하며 말했습니다. 저는 미사가 그들이 옳고 결코 바꾸지 않았다는 것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 라틴말로 드려지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맞다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그들이 처음에 가졌던 것으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방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그에게 말했고, 저는 그에게 만약 카톨릭 교회가 진짜로 사도행전을 믿는다면, 저는 옛날 식 카톨릭교인이라고 알렸습니다. 그는 저에게 성경은 카톨릭 교회의 기록이며 하나님은 교회에 계신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은 그의 말씀 안에 계시므로 그의 의견에 반대했습니다. 하나님은 참되시다 하고 모든 사람은 거짓말쟁이라 할지어다. 만약 여러분이 말씀에서 제하거나 말씀에 더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더하는 자에게는 재앙을 더하고 감히 감하는 자에게는 생명책에서 그들의 참예함을 제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계시록 22:18, 19.(Eng.p. 231)

제가 로마 카톨릭 교회가 어떻게 하나님은 말씀 안이 아니라 교회 안에 계신다고 믿는지 보여드리겠습니다. 여기에 요한 23세의 일기에서 뽑은 글이 있습니다.  “내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교황선거회의에 참석한 추기경단을 통해 나에게 전달된 주님의 뜻에 순수히 복종함으로 이 직분을 수락한 이후로, 교황으로서 삼 년 동안 체험한 내 경험에 의하여, 현재에 관련된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미래에 관해서는 완벽한 평온함을 가진다, 는 이 좌우명을 증거하고, 이 좌우명이 나를 지속적으로 감동시켰기 때문에 나는 그것에 진실히 행하고자 한다.” 이 교황은 하나님께서 그의 뜻을 계시하여 교회를 통해 말씀하셨다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잘못된 말입니까. 하나님은 그의 말씀 안에 계시고 말씀으로 그의 뜻을 계시하십니다. 그는 또한 그가 사람들의 말에 절대적인 의뢰를 하겠고 그럼으로써 그것에 평정을 가지고 순종했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은 무척 좋게 들리지만 너무도 틀린 말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있었던 왜곡과 똑같습니다.

자, 여기 계시록 17장으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거짓 예언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 여자, 교회를 봅시다. 1절에서 하나님은 그녀를 큰 음녀라고 부르십니다. 왜 그녀가 음녀입니까? 우상 숭배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사람들도 똑같은 일을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러면 우상 숭배에 대한 치료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여자는 음녀인데 왜냐하면 말씀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그녀는 많은 물 위에 앉아 있는데, 물은 사람들 무리들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확실히 거짓 교회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교회는 적기 때문입니다--그것을 찾는 자가 적더라.

그녀가 사람들 눈에 얼마나 멋있게 보이고 그녀의 말이 얼마나 철학적이든지간에, 그녀가 하나님 눈에 어떻게 보이는지 보십시오. 그녀는 그 음행으로 더럽고 취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순교자들의 피에 취했습니다.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을 죽이고 무릎 꿇고 바알을 숭배하지 아니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멸망시킨 이세벨과 똑같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바로 카톨릭 교회가 행한 일 때문입니다. 그들은 교황의 지배에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인간의 말 대신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했던 사람들은 대개 잔인한 방법으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사망에 관여한 이 교회는 죽은 상태인데 그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녀 안에는 생명이 없었고 그녀에게는 아무런 표적도 따르지 않았습니다.


회개할 기회


계시록 2:21,  “또 내가 그녀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음행을 회개하고자 아니하는도다.”  여러분 이 교회는 실제로 아합보다 더 악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아합은 잠시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서 부드럽게, 고분고분 행했었다는 걸 아십니까?(Eng.p. 232) 여러분은 로마 카톨릭 교회에 대해서는 그렇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그녀는 결코 회개하지 않았고 완고하게 자기로 회개하도록 도우려는 자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다 죽였습니다. 그것은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각 시대마다 사자들을 계속 일으켜 세우셨을 뿐 아니라 그 사자들을 위한 훌륭한 조력자들도 세우셨습니다. 그는 각 시대마다 훌륭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주셨고 그들은 교회를 다시 하나님에게로 돌리고자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그녀에게 회개할 기회와 도움을 주셨습니다. 그녀가 회개하고 회개한 열매를 보였습니까? 아닙니다. 그녀는 결코 회개하지 않았고 결코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녀는 취했습니다. 그녀는 영적인 일들에 지각을 상실했습니다.

그런데 로마 카톨릭 교회가 자기 신조들을 개신교의 신조와 일치하게 함으로써 개신교 교회들과 연합하려고 시도하고 있다고 해도 로마 교회가 성도들을 살해한 것을 회개했다고 잘못 생각하지 마십시오. 한 번도 사과도 하지 않았고 그녀가 집단 살해한 것은 잘못한 일이라고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녀가 이 특정한 때에는 얼마나 다정다감해 보일지라도, 그녀는 일어나서 죽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살인이 그녀의 악하고 회개하지 않은 마음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음녀에게 내린 형벌


계시록 2:22-23,  “볼지어다 내가 그녀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로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 던지고 또 내가 사망으로 그녀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주리라.” 

뭐라구요? 이 여자가 자녀가 있다구요? 그리고 그녀가 음녀라구요? 만약 그녀가 음행을 통해 자녀가 있다면, 그녀는 말씀에 이른 대로 반드시 불에 탈 것입니다. 정확히 사실입니다. 그것이 그녀의 종말입니다. 이유는 그녀가 불에 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끝은 불못입니다. 그러나 잠시 멈추고 이 자녀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십시오. 자녀들은 여자에게서 나옵니다. 이 여자가 자녀가 있었는데 그녀에게서 나온 자녀들이지만 그들은 그녀가 행한 똑같은 일을 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조직에서 나왔는데 다시 조직 속으로 들어가지 않은 교회가 하나라도 있다면 제게 보여 주십시오. 한 교회도 없습니다. 하나도 없습니다. 루터교인들은 나왔다가 다시 조직을 만들었고 오늘날 그들은 이 에큐메니칼 운동과 제휴하고 있습니다. 감리교들도 나와서 곧바로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오순절교인들도 나와서 곧바로 조직을 만들었습니다.(Eng.p. 233) 다른 무리가 나올텐데,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들은 진리를 알기 때문에 다시 조직을 만들지 않을 것입니다. 그 무리는 마지막 날의 신부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 음녀는 자녀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이 누구였죠? 딸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녀처럼 그들도 교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아주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이세벨과 아합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딸은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과 결혼했고 열왕기하 8:16에 보면,  “여호람이 장인의 길로 행하니라” 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람은 이 결혼을 통해서 우상 숭배로 접어들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유다를 우상 숭배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지적한 대로, 그것이 이 딸 교회들이 행하고 있는 일입니다. 그들은 진리로 시작했다가 조직과 결혼하고 전통과 신조 등등을 위해 말씀을 떠납니다. 그런데 제가 이것을 이해시켜 드리겠습니다. 히브리서 13:7에서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이르고 너희를 다스리는 자들에게 순종하라.”  우리를 다스리는 것은 사람들이 아니라 말씀입니다. 그런데 남편인 남자는 여자의 머리입니다. 그는 여자를 다스립니다. 그러나 교회는 역시 여자입니다, 그리고 교회를 다스리는 것은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입니다. 교회가 말씀을 거절하고 어떤 다른 머리를 취한다면 교회는 간음녀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전통과 신조들을 위해 말씀을 포기하지 않은 교회가 있다면 제게 이름을 대보십시오. 그들은 모두 다 간음한 여자들입니다--그 어머니의 그 딸입니다.

음녀와 음녀의 자녀들에게 내리는 형벌은 무엇일까요? 글쎄요, 그것은 이중일 것입니다. 먼저 그는,  “내가 그녀를 침상에 던지리라.” 고 하셨습니다. 23절 후반부에 의하면, 그것은 환난, 대환난의 침상입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5:1-13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열 처녀가 있었습니다. 다섯 처녀는 슬기로왔고 다섯 처녀는 어리석었습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등에 기름을(성령) 가지고 있었지만 나머지 다섯 처녀는 없었습니다.  “보라, 신랑이 오도다” 하는 외침 소리가 나자, 슬기로운 다섯 처녀가 결혼하러 들어가는 동안 그 어리석은 다섯 처녀는 기름을 구하러 뛰어가야 했습니다. 밖에 남아 있던 다섯 처녀는 대환난에 남겨지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휴거 때 올라가지 못한 사람들 모두에게 일어날 일입니다. 그 일은 음녀와 음녀의 딸들에게 일어날 일입니다. 두번째로, 말씀은 그가 그들을 사망으로 죽이겠노라고 아니 직역하면,  “그들을 사망으로 죽게 하라” 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상한 말입니다. 우리는,  교수형으로 또는 전기 의자로 또는 다른 식으로 그들을 죽게 하라 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그들을 사망으로 죽게 하라” 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망 자체가 그들의 죽음의 원인입니다. 그런데 저는 여러분들이 이것을 분명하게 이해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이세벨의 딸이 유다 집에 결혼하고(Eng.p. 234) 그럼으로써 유다를 곧바로 우상 숭배를 하게 만들고 하나님으로 유다를 죽이도록 만든 얘기를 하겠습니다. 그것은 발람이 행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여기에 이교주의를 가진 이세벨이 있었습니다. 저기에는 적절하게 하나님을 경배하고 말씀아래서 사는 유다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세벨은 자기 딸을 여호람에게 결혼시킵니다. 그 일이 있자마자, 여호람은 그 백성들이 우상 숭배자들이 되게 만듭니다. 그 결혼이 성사되자마자, 유다는 죽었습니다. 영적 사망이 들어왔습니다. 로마의 첫번째 교회가 조직을 만들자마자, 그것은 죽었습니다. 루터교가 조직을 하고나자, 사망이 찾아왔고 그들은 죽었습니다. 오순절교가 마지막으로 왔는데 그들도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그들이 믿지 않는다 해도, 성령은 그곳을 떠났습니다. 정말로 떠났습니다. 그 결혼은 사망을 불러들였습니다. 그리고나서 단일성설의 빛이 왔습니다. 그들은 조직을 만들고 죽었습니다. 그리고나서 하나님의 불이 1933년 오하이오강 위에 내렸고, 병고침의 부흥 운동이 전세계를 휩쓸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어떤 조직을 통해서도 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오순절 무리들을 떠나셨고, 조직 밖으로 나가셨고, 그가 미래에 하실 일도 역시 조직 밖에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들을 통해서는 역사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오로지 살아있는 지체들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그 살아있는 지체들은 바벨론에서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아시다시피,  ‘사망’  혹은  ‘조직’ 이 왔고, 교회는 죽었습니다, 아니면 그것을 좀더 명확하게 말하자면 사망은 잠시 전에 생명만이 지배했던 곳에서 거주자가 되었습니다. 처음 이브가 인류에 사망을 가져왔던 것처럼 이제는 조직이 죽음을 가져왔습니다, 왜냐하면 조직은, 이세벨 여선지자에 의해 확산된 니골라당주의와 바알주의라는 두 개의 부패시키는 주의의 산물이기 때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브는 그들이 저지른 끔찍한 행위때문에 뱀과 함께 불에 태워졌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아담이 끼어들어 이브가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해 자기에게로 재빨리 끌어당겼습니다. 그러나 이 사탄적인 종교가 시대들을 걸쳐 완전히 퍼지면, 개입할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고, 그녀는 자기를 미혹한 자와 함께 불에 태워질 것입니다. 음녀와 음녀의 자녀들 그리고 적그리스도와 사탄은 모두 다 불못에서 자기들의 자리를 찾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여기서 저는 앞질러 나가고자 하는데 어쩌면 이것을 마지막 시대에 주는 메시지로 남겨두어야만 할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명확하게 조직과 조직을 통해서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 다루고 있기 때문에, 지금 말씀드리는게 적합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경고를 하고 싶습니다. 계시록 13:1-18,  “내가 바다 모래 위에 서 있었더라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된 이름이 있더라 내가 본 짐승은(Eng.p. 235)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르고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가로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또 짐승이 큰 말과 참람된 말 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 두 달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훼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과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훼방하더라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창세 전에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 사로잡는 자는 사로잡힐 것이요 칼로 죽이는 자는 자기도 마땅히 칼에 죽으리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 오니 새끼 양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 저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짐승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 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 육십 육이니라.”(Eng.p. 236)

이 장은 로마 카톨릭 교회의 힘과 조직을 통해서 그 교회가 행할 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교회는 거짓 포도나무라는 점을 명심하십시오. 주님의 이름을 따르고는 있지만 단지 거짓말로 그럴 뿐입니다. 그것의 머리는 주님이 아니고 사탄입니다. 그것은 결국에는 짐승과 완전히 일치될 것입니다. 자줏빛 짐승을 타고 있는 음녀는 분명하게 그녀의 권세는 우리 하나님, 주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힘의 신(사탄)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17절에서, 그것은 그녀가 이 땅의 무역에 대해 총지배권을 얻을 것을 강조하며 보여주는데, 아무도 그녀가 없이는 사거나 팔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로마가 로마와 무역에 관계했던 왕들과 지도자들과 상인들과 모든 사람과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계시록 18:9-17에서 증명됩니다.

계시록 13:14에서, 우리는 짐승이 자기를 위해 만들어진 우상을 통해 영향력을 확산시키고 있음을 배웠습니다. 만들어진 그 우상은 세계적인 에큐메니칼 공회(바티칸 공회)인데, 여기서 모든 조직된 교회들이 로마 카톨릭 교회와 함께 모일 것입니다(지금 그렇게 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 연합이 공산주의 세력을 저지하기 위해서 일어나리라는 건 꽤 가능성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느부갓네살 같은 공산주의가 음녀의 몸을 태우기 위해 일으켜 세워졌기 때문에, 로마는 정복되고 멸망될 것입니다. 로마 교회가 간 곳마다 공산주의가 따른 것을 주목해 보십시오. 그런 식으로 되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에게 경고하는데, 공산주의가 여러분의 유일한 적이라고는 생각하지 마십시오. 아닙니다. 대적은 또한 카톨릭 교회입니다, 어쩌면 더욱 더 그럴 겁니다.

그런데 계시록 13:1-4을 읽고 이것을 계시록 12:1-5과 비교해 봅시다. 계시록 13:1-4,  “내가 바다 모래 위에 서 있었더라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된 이름이 있더라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르고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가로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계시록 12:1-5,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 두 별의 면류관을 썼더라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써 부르짖더라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Eng. p. 237)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면류관이 있는데 그 꼬리가 하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사탄과 사탄의 종교는 이 두 짐승들 속에 있습니다. 계시록 14장에서, 죽도록 상처를 받았다가 다시 살아난 그 짐승은 야만인들의 습격에 넘어져 잠시 세력을 잃었던 이교도인 로마 제국입니다. 그러나 그 나라는 교황이 다스리는 로마로 세력을 회복했습니다. 여러분 아시겠습니까? 모든 것을 짓밟음으로써 다스리고 가장 강한 제국이 되었던 그 나라는 마침내 죽을 정도로 상처를 입었습니다. 군대들과 기타 등등으로 다스릴만한 그 나라의 국력은 실제로는 쇠잔해졌습니다. 그러나 콘스탄틴대제 밑에서 그 나라는 생기를 되찾았는데 그 이유는 교황이 다스리는 로마가 전 세계를 침투했고, 그 나라의 세력은 절대적이기 때문입니다. 교황의 로마는 왕들과 상인들을 이용하고 있으며 종교적 경제적인 힘을 엄청나게 가지고 이 현 시대의 여신으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또한 남자아이를 삼키려고 기다리면서 서 있던 용입니다. 헤롯은 주 예수님을 죽이려고 애썼지만 실패했습니다. 나중에 예수님은 로마 병정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박혔지만 지금은 보좌에 올라가 계십니다.

그런데 제가 말씀드린 것과 함께, 다니엘의 환상을 상기해 보십시오. 신상의 마지막 부분, 세계의 마지막 세력은 발에 있었습니다. 그것은 철과 진흙이었습니다. 보십시오, 철은 로마 제국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는 강한 철이 아닙니다. 진흙이 안에 섞여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거기에 있고 민주주의 국가들과 더 많은 독재 국가들 두 곳에서 세상 모든 일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로마의 교회는 모든 나라 안에 있습니다. 그것은 그 안에 다 섞여 있습니다.

철과 진흙에 대해 좀 말씀드리겠습니다. 흐루시초프가 유엔(UN)에서 책상을 자기 신발로 두드린 때를 기억하고 계십니까? 글쎄요, 거기에는 다섯  동방국가와 다섯 서방국가들이 있었습니다. 흐루시초프는 동방국을 아이젠하워대통령은 서방국을 대표해 말했습니다. 러시아 말로, 흐루시초프는 진흙이고 아이젠하워는 철을 의미합니다. 세계의 두 정상급 지도자들, 철과 진흙의 두 발의 커다란 두 발가락들은 나란히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모든 것의 끝에 다 있습니다.

4절에서  “누가 능히 짐승과 더불어 싸우리요.” 라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현재 세계에는 커다란 이름들이 있습니다. 강한 나라들이 여럿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로마는 일을 좌우하고 있습니다.(Eng.p. 238) 교황은 운전자 좌석에 앉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세력은 증가할 것입니다. 아무도 그에게 싸움을 걸 수 없습니다.

6절,  “짐승이 입을 벌려 훼방하되 (사람의 계명을 교리로 가르치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는 자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며)” 그는 하나님의 능력을 훼방했습니다--그 이름을 직함들로 바꾸고 달리 하는 것을 거절하면서 말입니다.

7절,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우고.” 박해입니다--카톨릭 종교가 그곳에서 행한 일 때문에, 러시아에서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받게 하려고 주님의 이름으로 진실한 신자들과 모든 사람들을 처형합니다.

8절, “창세 전에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서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양들은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에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택하심을 받은 자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속을 것입니다. 그러나 양들은 속임에 넘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주님을 따라갑니다.

이제는, 이것을 보십시오, 우리가 여러분들에게 보여주려고 했던 것을요. 첫번째 시대에 시작되었던 이 죽음의 씨--이 조직의 씨는 마침내 모든 가증한 새가 모인 나무로 자랐습니다. 그녀가 생명을 주는 자라고 주장하지만, 그녀는 사망을 주는 자입니다. 그녀의 열매는 사망입니다. 그녀에게 참예한 자들은 죽었습니다. 자기 안에는 육적 영적 구원이 있다고 세상을 속이는 이 강력한 세계 교회 체제는 무리들을 속여 멸망시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사망의 화신일 뿐 아니라, 이 죽은 썩은 고기 피조물은 그 자체가 사망 즉 불못으로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오, 그녀 안에 머물러 있음으로써 그들의 종말이 어떠할 지 사람들이 알 수만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녀에게서(거기서) 나오십시오, 왜 죽으려고 합니까?”


마지막 경고


계시록 2:23, “또 내가 사망으로 그녀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하나님은 마음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것은 결코 변하지 않았습니다. 결코 변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여기, 모든 시대를 통해 두 무리가 있는데, 둘 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그들의 계시와 하나님과 그들의 관계를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들을 아신다하며.”(Eng.p. 239) 디모데후서 2:19. “주님은 뜻을 살피신다.” 살피신다는 말은, ‘거슬러 오른다’ 또는 ‘따라잡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들(뜻)을 다 훑어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 속에 무엇이 있는지 아십니다. 그는 우리들 안에 있는 것의 정확한 표명인 우리의 행위를 보십니다. 의로움이든 악함이든 다 우리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의 동기들, 우리의 의도들--주님은 모든 행동을 지켜보시기 때문에 모든 것이 주님에게는 아시는 바 됩니다. 그런데 모든 행동, 모든 말은 우리 삶을 회계할 때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거짓 포도나무에게는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었는데 그들은 그 대가를 단단히 치를 것입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성도에게 어울리는 삶을 살지어다. 우리는 사람들을 속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주님은 결코 속일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 암흑 시대에 주신 약속


계시록 2:24-25.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리를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이 없노라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그런데 약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다시 이 책에서 성령에 의해 말해진대로 그 교회는 서로 휘감고 있는 가지들이 구성하는 두 개의 포도나무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리를 받지 아니하고.” 바로 그겁니다. 주님은 두 무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한 무리는 교리를 가지고 있고, 다른 한 무리는 교리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바로 거기에 그들이, 서로의 교리가 다른 쪽의 교리를 반대하면서 전국에 걸쳐 분산되어 있습니다. 한 쪽은 하나님께 속하여 하나님의 깊은 것을 알고, 다른 한 쪽은 사탄에게 속하여, 사탄의 깊은 것을 압니다.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이 없노라.” 짐이라는 말은 무게나 압력입니다. 암흑시대의 압력은 굽히느냐 부러지느냐였습니다. 절하느냐 죽느냐였습니다. 사탄적 숭배를 뒷받침하는 제국의 힘은 종교재판소였습니다. 조직되거나 목숨을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각 시대는 각기 압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마지막 시대의 커다란 짐은 우리가 살기엔 부적합해 보이고 복잡한 시대에서의 부와 안이한 생활과 정신적 긴장의 압력입니다. 이 네째 시대는 명확한 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 보입니다. 그것은 로마에 대항하고, 죽더라도 말씀을 위해 나서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였다.” 이 절은 주석가들이 빼놓은 구절인데 이 절이 어떤 교훈이나 어떤 경험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실제로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아는 것은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깊은 것이 무엇인지 먼저 알아봅시다,(Eng.p. 240) 그러면 그 반대가 사탄에게 적용될 것입니다. 에베소서 3:16-19.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이제 이 절을 보면, 하나님의 깊은 것을 경험하게 되면, 그것은 그 사람 안에 내주하시는 하나님의 영을 실제적으로 개인적인 체험을 하게 되고,  그의 마음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으로 비췸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사탄의 깊은 것은 그가 이것을 멸하려고 하리라는 점에 있을 것입니다. 사탄은 늘 그러듯이 이 하나님의 실재하심을 대신할 대용물을 만들려고 할 것입니다. 어떻게 그 일을 할까요? 그는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지식을 빼앗아 갈 것이고--“하나님이 말씀하셨다고?” 자기 말을 내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멸할 것입니다. 그리고나서, 그는 우리 영 안에 계신 개인적인 그리스도를 대치시킬 것입니다.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가 이스라엘로 똑같이 행하도록 만든 것처럼, 하나님 대신에 한 인간이 왕으로 다스리게 하였죠. 교회 등록 때문에 거듭남의 체험은 거절당할 것입니다. 사탄의 깊은 것은 그 시대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거짓말과 살인과 끔찍한 범죄들 즉 사탄의 깊은 것의 열매는 거기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상  급


계시록 2:26-29.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내가 또 그에게 새벽별을 주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주님께서 그의 자녀들에게 주님이 의로운 일(work)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알리시려고 애쓰고 계심은 일에 대한 성령의 진술로 보아 매우 명백합니다. 네 번이나 그는 일(행위)에 대해서 언급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는, 끝까지 충성스럽게 하나님의 일을 계속하는 자는 만국을 다스릴 권세를 받겠고, 어떤 상황이라도 강력하게 다룰 수 있는, 필요하다면 가장 맹렬한 원수도 무너뜨릴 수 있는 강하고 유능하며 불굴의 통치자가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가 권세로 다스리는 모습은 바로 아들이 다스리는 모습과 같을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놀라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에 비추어서 이 약속을 보기로 합시다.(Eng.p. 241)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는 강력한 로마는 왕들과 군대들과 입법자들을 고용하면서, 그 앞에 있는 모든 것을 깨뜨리고 부수고 있습니다. 로마는 자기에게 무릎을 꿇지 않으려는 수백만명을 살해했고 수백만명도 더 되는 사람을 굶겨 죽였습니다. 로마는 아무 때라도 참을 수 없으면 왕들을 세우거나 폐합니다. 네, 그녀의 간섭은 모든 나라를 실제로 무너지게 했는데 로마는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멸할 생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행위는 마귀의 행위입니다, 마귀가 했듯이 살인하고 거짓말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이 내 원수들을 내 앞에 데리고 와서 죽여라”하고 말씀하실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때 그의 의로운 분노가 훼방하던 자들 위에 내릴 때 의인들은 그들의 주와 함께 있게 될 것입니다. 영광 중에 주님과 함께 오는 의인들은 이 땅을 파괴하고 하나님의 성도들을 크게 파멸시켰던 자들을 멸할 것입니다. 이 시대는 뺨을 돌려대는 시대, 끔찍스런 고통을 당하는 시대였습니다, 하지만 진리가 승리하는 날이 오고 있는데 누가 그 불을 견디며 안전할 수 있겠습니까? 오로지 주의 구속받은 자들 뿐입니다.

“내가 그에게 새벽별을 주리라.” 계시록 22:16과 베드로후서 1:19에 의하면, 예수님은 새벽별입니다.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그래서 성령은 암흑 시대의 택하신 자들과 이어오는 시대들에게 자신과 관련된 약속을 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앞서 말씀드렸듯이, 예수님은 자신을 각 시대의 사자들과 일치시키십니다. 그들은 그에게서 각 시대를 위한 말씀의 계시를 받습니다. 이 말씀의 계시는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세상에 나오게 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완전한 결합을 하게 합니다. 이 사자들은 별이라고 불리는데 그들은 아들이신 예수님의 빛을 빌린 또는 반사하는 빛으로 비추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또 밤에 ‘빛을 가진 자’이기 때문에 별이라고 불립니다. 그래서 죄의 어두움 속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빛을 전달합니다.

이 시대는 암흑 시대입니다. 이 시대는 주님의 말씀이 거의 전적으로 사람들에게서 숨겨졌기 때문에 특별히 더 어둡습니다. 지존하신 분에 대한 지식은 거의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사망은 믿는 자들의 엄청난 수를 정복하여 숫자가 많이 줄어들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것들은 이 때에 가장 저조하고, 사탄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완전히 정복한 것처럼 보입니다.

밤이 없는 땅을 차지하리라는 약속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었다면, 그 사람들은 암흑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성령이 그들에게 새벽별을 약속하고 계신 것도 그런 까닭에서 입니다.(Eng.p. 242) 그는 미래의 왕국에서 아무도 접근할 수 없는 빛 가운데 거하시는 큰 별되신 예수님이 그의 개인적인 임재로써 그들에게 비춰주시리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는 더이상 암흑 가운데서 빛을 주기 위해서 별(사자들)을 사용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과 그의 왕국을 나누시면서, 얼굴을 맞대고 그들에게 직접 말씀하실 것입니다.

햇빛이 빛나기 시작할 때 보이는 것이 새벽별입니다. 우리의 태양(예수님)이 오실 때, 사자들은 더이상 필요하지 않을 것이고, 그는 우리에게 직접 용기를 내라는 메시지를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나라를 다스리실 때와 우리가 그의 임재하심 가운데서 살 때, 말씀의 빛은 우리의 완벽한 날에 더욱 밝고 밝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한 분 외에 무엇을 더 바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모든 것, 그야말로 완벽한 모든 것이 되지 않습니까?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아멘. 그렇습니다, 주 하나님, 당신의 영으로 말미암아, 우리로 당신의 진리를 듣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