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네빌 형제님이 요한복음 17장을 읽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들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향해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왔으니 아버지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사 아버지의 아들도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도록 하옵소서. 아버지께서 그에게 모든 육체를 다스리는 권능을 주셨으니 이것은 그가 아버지께서 그에게 주신 모든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게 하려 하심이니이다. 영생은 이것이니 곧 그들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인 아버지와 아버지께서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내가 땅에서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였사오니 곧 내가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끝마쳤나이다. 오 아버지여, 세상이 있기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그 영광으로 이제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아버지께서 세상 가운데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아버지께서 그들을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켰나이다. 이제 그들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이 그 무엇이든 다 아버지에게서 나왔음을 알았나이다.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고 그들은 그것들을 받았으며 내가 아버지로부터 나왔음을 확실히 알았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음을 믿었나이다. 내가 그들을 위해 기도하나이다. 내가 세상을 위해 기도하지 아니하고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해 기도하오니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니이다.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인데 내가 그들 가운데서 영광을 받게 되었나이다. 이제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이들은 세상에 있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오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들을 아버지의 이름으로 지키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내가 그들과 함께 세상에 있을 때에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지켰나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들을 내가 지켰고 멸망의 아들 외에는 그들 중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였으니 이것은 성경기록이 성취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이제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것들을 말하는 것은 그들이 내 기쁨을 자기들 안에서 성취하게 하려 함이니이다.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으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것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기 때문이니이다. 나는 아버지께서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실 것을 기도하지 아니하오며 그들을 악에서 지켜 주실 것을 기도하나이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것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나이다. 아버지의 진리로 그들을 거룩히 구별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이니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그렇게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또 내가 그들을 위해 나 자신을 거룩히 구별하오니 이것은 그들도 진리로 거룩히 구별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내가 이들만을 위해 기도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말로 인하여 나를 믿을 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오니 이것은 그들이 다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그들도 우리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사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세상이 믿게 하옵소서.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것은 우리가 하나인 것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나니 이것은 그들이 하나로 완전해지게 하려 함이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를 사랑하신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 함이니이다. 아버지여, 원하건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들도 내가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게 하사 아버지께서 세상의 창건 이전에 나를 사랑하셨으므로 친히 내게 주신 내 영광을 그들이 보게 하옵소서. 오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은 아버지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는 아버지를 알았고 이들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음을 알았나이다.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밝히 드러내었고 또 밝히 드러내리니 이것은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실 때 보여 주신 그 사랑이 그들 안에 있게 하며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네빌 형제님이 말합니다. “요한복음 17장 전체를 읽었습니다. 주님께서 이 말씀 낭독에 복을 더해 주시기 바랍니다.” 녹음 공백. 회중이 「나를 더 가까이 이끄소서」를 부르고, 이어서 네빌 형제님이 브래넘 형제님을 소개합니다.]
고맙습니다, 형제님. 네빌 형제님, 주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도 네빌 형제님과 똑같습니다. 그 선물을 뜯으려고 성탄절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이 어른은 한 번 되고 아이는 두 번 된다고 하지요. 그런데 네빌 형제님은 새 양복을 입으시니 참 멋져 보이십니다. 저도 이 교회에서 평생 본 것 중 가장 멋진 외투 하나를 받았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저를 실제보다 조금 더 큰 사람으로 봐 주신 것도 감사합니다만, 내일은 조금 더 작은 것으로 바꿔 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외투로 감쌀 사람에 비해 옷이 조금 큽니다. 성경에 이불이 사람에게 너무 짧았다는 말씀을 들으셨지요... 아니, 침상이요. 지금 제 경우도 거의 그와 비슷합니다. 외투가 조금 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말 멋집니다. 그곳에 한 치수 정도 작은 것이 있어서 제게 아주 잘 맞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저도 형제님처럼 입고 나와서 보여 드리겠습니다. 저도 외투를 입은 채 설교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외투를 입을 수 있어서 감사했지요. 평생 좋은 외투를 가져 본 적이 없었습니다. 좋은 외투를 갖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제가 처음 이 교회를 떠나갔을 때를 여러분이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로버트 도허티의 딸을 보러 이 교회를 떠나 세인트루이스로 가던 그날 밤이 어땠는지 기억하십니까? 스펜서 자매님과 형제님은 기억하실 겁니다. 여기 계신 로이 슬로터 형제님도, 또 여러 분이... 제게는 외투 한 벌조차 없었습니다. 교회에서 차비로 11달러를 모아 주셨습니다. 저는 제 형제의 외투를 빌렸습니다. 제 몸에 거의 두 배나 컸는데, 입은 모습이 너무 볼품없어서 들고 다녔습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없이 다니는 것도 보기에 좋지 않아서 들고 다녔습니다. 그곳에 도착해서 이틀쯤 머물자 주님께서 역사하시기 시작했고, 어린 베티를 고쳐 주셨습니다. 얼마 전에 그 아이를 만났는데, 지금은 아름다운 젊은 여성이 되었습니다. 그때는 무도병에 걸려서 며칠이고 짐승처럼 누워 몸을 이리저리 경련하고 있었습니다. 최고의 의사들도 그 아이를 포기했습니다. 저는 그날 낮과 저녁에 그곳에 머물렀습니다. 주님께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환상으로 보여 주시며, 그대로 하기만 하면 어린 베티가 놓임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목사와 그의 아버지에게 서 있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부인에게 말했습니다. “일전에 시내에 나가 작은 냄비들을 사셨는데, 파란 법랑 냄비도 하나 사셨지요. 지금 찬장 아래쪽에 있습니다. 거기에 넣어 둔 뒤로 한 번도 옮기지 않으셨습니다.” 그 부인이 깜짝 놀라며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가서 그것을 가져다가 물을 채우고, 작은 흰 수건도 가지고 이리 오십시오.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어린 베티가 나을 것입니다.” 아시겠죠?
[로이 슬로터 형제님이 말합니다. “브래넘 형제님, 괜찮으시다면 저도 한 말씀만 드리고 싶습니다.”] 네, 말씀하십시오. [“형제님이 그곳에 계셨을 때, 제가 전화를 드렸던 것 기억하십니까? 저희 딸이 아팠습니다. 형제님은 사모님께 전화를 걸어 말씀하셨지요... 먼저 제가 전화를 드려서 이렇게 전해 달라고 했습니다. ‘벌써 의사 다섯 명이 의학적으로는 가망이 없다고 했습니다.’”] 네. [“형제님이 들어오셨을 때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슬로터 형제님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받으시겠어요?’ 그러자 ‘제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분입니다’라고 하셨던가,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그리고 가서 기도하셨지요. 가서 사모님께 전화하시고, 저희에게 전화해서 ‘딸은 괜찮을 겁니다’라고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모님은 아이가 아프다는 것도 모르셨지요.”] 네. [“그리고, 그래서 다음 날 아내가 갔는데, 아이는 병원에 있었습니다. 의사들이 들어와서 그들이... ‘뭔가 일어났습니다. 뭔가...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아내가 ‘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의사들이 아마 자신들이 무슨 조치를 했는지 하나씩 짚어 보기 시작했습니다. 아내는 ‘아닙니다. 브래넘 형제님의 기도 덕분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네, 기억납니다. [“딸에게 열이 있었는데, 그 의사 다섯 명도 무엇이 잘못됐는지 몰랐습니다. 그러니까 그게... 그때 말입니다. 그런데 제가 왔을 때, 형제님께 전화하려고 밭에서 나오고 있었습니다. 마침 아내도 형제님께 전화하라고 제게 아이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 아이가...”] 네. [“...거기로 나와서, ‘브래넘 형제님께 전화하라고요.’ 그렇게 우연히 밭에서 마주쳤습니다. 제가 형제님께 전화를 드리자 형제님은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전화하셔서 ‘딸은 괜찮다고 전해 주십시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딸은 괜찮습니다...?...”] 네.
여보, 당신도 기억하지요? 우리가 세인트루이스 집회에 갔을 때 슬로터 형제님의 어린 딸이 몹시 아팠던 일이요. 우리는 옛 벨처 배스 호텔에 있었습니다. 저는 그 일이 아주 또렷이 기억납니다. 그 소식을 전해 듣고 주님 앞으로 나아갔더니, 주님께서 환상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슬로터 형제님 댁에 전화를 걸어 말했습니다.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라고 전해 주십시오.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이는 살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는 살았습니다. 주님은 참으로 선하셨습니다.
그 뒤로 많은 일이 있었지만, 그분은 여전히 동일한 주 예수님이십니다. 얼마나 놀라운지요. 저는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만일 제가 세상의 모든 돈을 한 푼도 빠짐없이 물려받고, 이 땅에서 천 년을 살게 된다 해도, 저는 지금 제가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는 이 한 가지, 곧 영생을 택하겠습니다. 영속하는 생명은 얼마 후 끝날 것입니다. 영생은 끝이 없습니다. 시작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감사합니다.
방금 네빌 형제님이 저를 위해 요한복음에서 성경 말씀을 읽어 주셨습니다. 그중 21절 말씀에 잠깐 여러분의 주의를 돌리고 싶습니다. 예수님은 기도하시면서 이렇게 간구하셨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다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그들도 우리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사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세상이 믿게 하옵소서. 이 말씀에 제목을 붙인다면, 「한 교회 안에서 한 분 하나님과의 연합」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무언가를 이루도록 만드셨습니다. 사람이 지음 받은 목적이 그것입니다. 사람은 평생 무언가를 이루려고 애써 왔습니다. 그가 이루는 일들은... 그렇게 하려고 애쓰는 이유는 그렇게 하도록 지음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언가를 이루면서 자기 힘으로 해 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거기서 잘못을 범하고 곤경에 빠집니다.
자, 성경의 씨앗이 되는 장인 창세기, 그 시작을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사람이 마땅히 어떠해야 하는지 아시고 그 모습대로 만드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의 사람보다 더 훌륭하게 설계할 수는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을 만드시기 시작하셨을 때, 가장 낮은 생명, 말하자면 올챙이와 개구리부터 시작하여 가장 높은 생명인 사람에 이르렀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살아가면서 사람이 무언가를 이루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 하나님을 배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기적인 동기를 품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자신을 위한 무언가를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님께서 그를 두신 바로 이 행성을 타락시키고 말았습니다. 그 지경이 되자 창조주께서도 사람을 만드신 일을 마음으로 슬퍼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시고 다스릴 권한을 주셨으며,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하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그 피조물이 모든 힘과 능력을 이기적인 욕망과 성취에 쏟아붓는 모습을 보셨으니, 하나님께서 어떤 심정이셨을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물로 온 세상을 멸하시며 사람에게 큰 교훈을 주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땅에 홍수를 일으켜 모든 것을 멸하시고, 노아와 그의 가족이라는 남은 자들만 남겨 두셨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큰 교훈을 겪고 나오자마자, 얼마 지나지도 않아... 사람은 고생을 해 봐야만 배우는 것 같습니다. 우리 자녀들에게서도 그런 모습을 봅니다. 알아듣게 하려면 여러 번 엄하게 벌을 주어야 합니다. 사람은 스스로만으로는 애초에 완전히 실패한 존재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잃자 자기 혼자 독립된 존재가 되었고, 더 이상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자기 힘으로 무언가를 해 보려는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그런 일은 모두 헛수고가 되고 만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곧바로 그들은 또 무언가를 이루려고 내려갔습니다. 성경은 그들이 탑을 세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길로 오지 않고 하늘로 기어 올라가 천국에 들어가려 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함께 연합할 때 더 많은 것을 이룰 수 있습니다. 한 사람만 놓고 보면 그 힘은 한 사람의 힘에 한정됩니다. 두 사람이면 힘이 두 배가 됩니다. 네 사람이면 네 배가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 되고, 동기도 하나이며, 목표도 하나이고, 이루는 일도 하나가 되도록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사람은 그렇게 설계되었습니다. 그런데 홍수 시대에 멸망을 겪고 난 직후에, 사람은 다시 스스로 주도권을 잡으려 했습니다.
이 모든 일이 벌어지는 동안에도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은 육체와 씨름하십니다. 사람이 자기 힘으로 이루려는 일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이기적인 동기와 목표에서 돌아서서 하나님께서 세워 놓으신 계획을 따르게 하려고 애쓰십니다. 사람이 자기 계획대로 일하는 한 실패할 것입니다. 사람이 올바르게 이루려면 올바른 목표와 올바른 동기로 돌아와야 합니다. 곧 자기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야 합니다. 다른 기초는 모두 가라앉는 모래 위에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연합하려고 했고, 하나의... 한 사람처럼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그들이 이룬 연합은 정치권력 아래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가 되었고, 목표도 하나, 이루는 일도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하나 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에 어긋났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사람은 계속 나아갔고, 마침내... 그렇게 사람들이 연합하면 큰일을 해냅니다. 오늘날 세상을 보십시오. 사람들이 잘못된 계획 아래서라도 함께 연합하면 큰일을 해냅니다.
그들은 탑을 세웠습니다. 오늘날의 과학도 온갖 기계와 장비를 동원해서 그런 탑을 세울 수 있을지 저는 의문입니다. 그들은 함께 연합했기 때문입니다. 생각도 하나, 혼도 하나, 목적도 하나, 동기도 하나, 목표도 하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그들을 멸하시려는 생각을 하셔도 하늘로 곧장 올라가 그분과 함께 있을 수 있을 만큼 높이 탑을 쌓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그분을 막을 수 없을... 아니, 그분도 그들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함께 조직을 이루었고, 또다시 하나님의 뜻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함께 연합하려고 애쓰는 오늘날의 모습을 얼마나 잘 보여 줍니까? 우리도 연합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잘못된 체제 아래 연합하고 있습니다. 마귀가 하나님의 것들을 본떠 흉내 내는 것을 눈여겨보셨습니까? 하나님께서 뜻하신 것들을 가져다가 어떻게 하는지 보셨습니까? 잘못된 것은 참으로 교묘하게 속입니다! 훤히 드러나는 거짓말이면 누구나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99퍼센트쯤 진실이 섞여 있는 거짓말, 바로 그것이 사람을 속입니다.
마귀가 어떻게 이브를 속였는지 보셨습니까? 그가 이브에게 한 말은 한 가지를 빼고 모두 정확히 사실이었습니다. “너희 눈이 열리고 선악을 알게 될 것이다. 또 너희는 신들과 같이 될 것이다. 지금은 너희가 선악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 말들은 모두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브가 “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라고 하자, 그는 “너희가 절대로 죽지 아니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아시겠죠? 그토록 많은 진실 속에 거짓말을 아주 조금 섞어 놓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땅에 계실 때 말씀하신 것처럼,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를 뜨게 하느니라.” 완전히 옳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옳은 것이 아닙니다. 구원의 계획은 정확해야 하고, 하나님의 약속도 정확하며, 그 약속은 정확히 이루어집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딘가에 잘못이 있는 것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가 하나님께서 뜻하신 일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면, 그 체제 어딘가에 잘못이 있는 것입니다. 틀림없이 그렇습니다.
시계처럼 정교한 기계를 생각해 보십시오. 모든 부품이 조화를 이루어 움직이면 정확한 시간을 가리킬 것입니다. 그러나 한 부품은 이쪽으로, 다른 부품은 저쪽으로 움직이면 시간을 맞추지 못합니다. 보석 부품이 아무리 좋아도 모두 하나로 맞물려야 합니다. 우리가 함께 연합하여 하나 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마귀가 어떻게 흉내를 내는지 봅니다. 모든 불의는 의로움이 왜곡된 것일 뿐입니다. 거짓말은 진실을 뒤집어 놓은 것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선한 일들이... 악한 일은 선한 일이 왜곡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불의는 의로움이 왜곡된 것입니다. 사탄은 스스로 아무것도 창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을 가져다가 왜곡할 수밖에 없습니다. 남편이 아내와 함께 사는 것은 전적으로 옳습니다. 그러나 다른 여자를 받아들이면, 똑같은 행위라도 왜곡된 것이며 죽음입니다. 하나는 생명을 가져오고 다른 하나는 죽음을 가져옵니다. 사탄이 손댈 수 있는 모든 것이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을 가져다가 뒤바꿀 뿐입니다.
이슬람교에 대해 생각해 보셨습니까? 무함마드의 무덤에는 이천 년 동안 안장을 얹은 흰말이 있었습니다. 네 시간마다 경비가 교대하고, 다른 흰말을 끌어옵니다. 언젠가 무함마드가 일어나 말을 타고 온 세상을 정복할 것이라고 끊임없이 믿으며, 경건한 마음으로 그렇게 합니다. 그들은 그것을 믿습니다. 그런데 왜 흰말일까 생각해 보셨습니까?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흰말을 타고 오실 것이며, 피에 담근 옷을 입으셨고 그분의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불린다”라고 하는 것을 아십니까? 주 예수님께서 흰말을 타시고, 뒤에는 군대들을 거느리신 채 하늘에서 오실 것입니다. 그것을 뒤바꾸어 무함마드가 흰말을 타는 것으로 만든 왜곡된 종교가 보이십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하늘에서 오시고, 무함마드는 땅에 속했습니다. 그러므로 사탄은 땅의 것들로 일하고, 하나님은 하늘의 것들로 일하십니다. 바빌론의 탑을 생각하며 야곱의 사다리와 비교해 보셨습니까? 그들은 하늘까지 닿도록 탑 둘레에 계단을 쌓으려 했습니다. 하늘에서 땅까지 닿고 천사들이 오르내리던 야곱의 사다리를 왜곡하려 했을 뿐입니다! 왜곡하는 것입니다!
지금 유엔이 모든 나라를 하나의 연합된 권력 아래 큰 형제 공동체로 만들려고 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셨습니까? 연합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것 아래 연합하고 있습니다. 사탄이 모든 나라를 지배합니다. 성경은 사탄이 이 땅의 통치자라고 말합니다. 사탄이 예수님을 매우 높은 산으로 데리고 올라가 세상의 모든 왕국을 보여 주며 “이것들은 내 것이다”라고 했을 때, 예수님은 아니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실제로 그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쟁과 살인이 일어나는 이유는 세상의 이 왕국들이 마귀의 지배를 받기 때문입니다. 마귀의 지배를 받는 한, 전쟁과 싸움과 서로 죽이는 일은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가올 왕국을 기다립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더 이상 전쟁이 없을 왕국입니다. 거기에는 영속하는 평화가 있을 것입니다.
러시아에는 가짜 오순절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그것은 마귀의 역사입니다. 그들은 모든 사람을 공산주의에 강제로 끌어들이려 합니다. 누구나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성령 아래 있던 오순절의 교회가 바로 그런 상태였다는 것을 아십니까? 사람들이 자기 소유를 팔아 제자들의 발 앞에 놓았고, 제자들은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마귀가 세상에 들어와 정치권력을 만들어 사람들을 강제로 그렇게 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어떤 일도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여러분 자신의 자유의지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경고하시거나 여러분의 길을 가로막으실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직접, 스스로 결정하여 그분 앞으로 나아가 그분을 자신의 구원자로 모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탄은 하나님의 계획을 자기 계획으로 왜곡했습니다.
가톨릭교와 가톨릭교회가 모든 사람을 가톨릭 신자로 만들려고 한다는 것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그렇게는 되지 않습니다. 사람이 만든 계획 아래서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교회 연맹 아래 있는 개신교회가 이런 작은 교회들을 모두 몰아내려고 한다는 것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앞으로 교회 연합에 속하지 않으면 교회에 갈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이곳 같은 작은 곳들은 분명히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이런 성경 말씀이 있습니다. “적은 양 무리야,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왕국을 너희에게 주시는 것을 참으로 기뻐하시느니라.” 우리가 기대하며 기다리는 것은 그것입니다.
그러니 아시겠죠? 이것은 모두 원수가 무언가를 이루려고 애쓰는 일입니다. 하지만 잘못된 계획 아래서 하는 일입니다. 자기 계획을 따르지만, 그에게는 독창적인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가져다가 불의한 것으로 왜곡해야만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그들은 세상을 왜곡하려고... 아니, 나라들이 하나로 크게 연합한 형제 공동체로 바꾸려고 합니다. 그것이 사람이 만든 허울 아래 이루어진다면 지도자가 있을 것이고, 그 지도자는 마귀일 것입니다. 그가 그들 모두의 지도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왕국은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왕국은 우리 마음속에 있습니다. 그것은 영적인 왕국이며, 우리는 태어남으로 그 안에 들어갑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왕국이 오지만, 폭력 없이는 오지 않는다. 그리고 하나님의 왕국은 너희 안에 있다.” 성령, 곧 하나님의 왕국이 사람 안에서 움직이며 그를 다스리고 지배하는 것, 그것이 그 왕국입니다. 그런데 이 나라들은 서로 속이며 돌아다니고, 평화를 말하면서도 등 뒤에는 서로를 멸할 준비가 된 칼을 감추고 있습니다.
며칠 전 저는 훌륭한 군목 한 분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캘리포니아에서 우리나라 최고의 과학자들 중 몇 사람이 비밀 비공개 회의를 하려고 모였습니다. 내용이 너무 끔찍했기 때문에 군목을 한 명 불렀습니다. 제 친구인 그 군목이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그 회의에 들어가도록 허락하기 전에 제 증조할머니까지 신원 기록을 조사하더군요.” 그리고 말했습니다. “차라리 거기에 가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겁니다. 과학자들이 일어나 말하기 시작하자 방 안에 어두운 기운이 내려앉는 것 같았습니다. 냉장 창고에 들어간 것처럼 오싹하더군요. 정말 피가 얼어붙는 것 같았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그들은...” 우리는 이 일을 말할 수 없습니다. 맹세로 비밀을 지키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말했습니다. “이것만은 말씀드려도 됩니다. 육군과 항공대, 비행부대 같은 것들을 없애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겁니다. 온 지구를 단 일 초 만에 파괴할 수 있는, 그토록 치명적인 무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거리로 뛰쳐나와 목청껏 비명을 지를 것입니다. 땅에 떨어지면 단 한 발로 주위 175마일, 깊이 100피트가 넘는 곳까지 날려 버릴 수 있는 폭탄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디로 가서 숨겠습니까? 천 피트나 땅을 파면 어떻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땅속의 화산 분출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설령 땅속 천 피트 아래까지 팔 수 있다 해도, 머리 위로 그런 충격이 가해지면 몸이 가루가 되어 버릴 것입니다. 그 군목이 말했습니다. “육군의 최고 과학자 한 사람이 일어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저는 늙은 소 한 마리와 수레를 가지고 산 너머로 가서 이 모든 것을 잊고, 이 땅에서 남은 짧은 생애를 보내다가 떠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현실을 마주해야 합니다. 산 너머로 간들 소용이 없습니다. 그 산들도 가루나 화산재가 될 뿐입니다.’”
오, 형제님, 그런 때에 피할 곳이 어디인지 알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귀합니까! 우리에게는 피할 곳이 있고, 피난처가 있습니다. 그 피난처는 주님의 영속하는 보호의 날개 아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죽을 수 없는 불멸의 혼이 있습니다. 그것은 원자나 수소나 산소, 또는 이 땅의 어떤 것으로도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창조하셔서 여러분에게 주신 영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압니다. 우리는 참으로 어떤 시대, 어떤 때에 살고 있습니까! 사람이 이루고 또 이루어서 결국 이런 것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제 그것들을 가지고 무엇을 하겠습니까?
보십시오. 사탄은 사람의 머리를 이용합니다. 에덴동산에서 사람의 머리, 그의 생각을 이용하기로 택했습니다. 그것을 교회에까지 끌어들였습니다. 마귀는 사람의 눈을 이용하려고 그의 머리를 붙듭니다. 잘 보시면, 사람이 참으로 다시 태어나 영적인 사람이 되지 않았다면 눈으로 볼 수 있는 것, 곧 삶의 자랑을 택합니다. 많은 사람이 무언가를 이루겠다며 교회에 가입하려고 합니다. 종교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 합니다. 그러고는 찾을 수 있는 가장 큰 교회를 찾을 때까지 둘러봅니다. 사람은 큰일을 하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이름을 크게 내고 싶어 합니다. 육신에 속하여 어리석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 내 교단을 가질 수만 있다면! 내 교단에 몇천 명만 더할 수 있다면, 이 나라에서 같은 종류의 교단 중 가장 커질 텐데.”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하지만 사람을 더 많이 모으고 있으니 무언가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몇 년 전, 아마 1944년에 침례교에서 “44년에 백만 명 더”라는 구호를 내걸었습니다. 백만 명을 더 모았을 때 무엇을 얻었습니까? 그들이 참으로 다시 태어난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아니었다면, 친목 단체에 가입한 것과 같았습니다. 이름만 침례교인이었습니다. 다른 교단들도 보십시오. 루터교, 장로교, 오순절교, 그 밖의 교단들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무언가를 이루려고 애씁니다. 큰일을 하려고 합니다. 눈으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눈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것이 해서는 안 될 일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마귀는 사람의 눈을 붙들고 아름다운 것을 보여 줍니다. 그것을 보도록 눈을 열어 줍니다. 교회 안에도 그것을, 사람의 지적인 사고 안에도 그것을 끌어들였습니다.
얼마 전 위대한 복음 전도자 빌리 그레이엄이 여기 루이빌에서 성경을 높이 들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기준입니다!” 그의 말은 옳습니다. 정확히 옳습니다. 제 고향인 켄터키의 복음 전도자 모디카이 햄과 저는 같은 식탁에 앉아 있었습니다. 빌리는 모디카이 햄의 사역을 통해 회심했습니다. 우리가 그곳에 앉아 있는데, 그가 말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바울은 한 도시에 가서 한 사람을 회심시켰습니다. 일 년 뒤에 돌아가니 그 한 사람을 통해 서른 명이 생겼습니다. 저는 한 도시에 가서 이만 명을 회심시키는데, 일 년 뒤에 돌아가면 스무 명도 찾을 수 없습니다. 뭔가 잘못됐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여러분 게으른 설교자들이 건물 안 사무실에서 책상에 발을 올려놓고 앉아, 사람들을 찾아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빌리, 지적으로는 아주 훌륭한 말입니다.” 제 말을 인용하지는 마십시오. “하지만 그것이 이유는 아닙니다. 바울을 통해 회심한 그 한 사람을 찾아간 목회자들은 누구였습니까?” 그것이 이유가 아니었습니다.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날 소위 집회라는 것들은, 물론 큰 집회이기는 하지만 사람의 지적인 부분에만 작용합니다. 사람이 부흥회의 분위기에 사로잡혀 “네, 그리스도를 영접합니다”라고 말합니다. 많은 군중 속에 있기 때문에 지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앞에 훌륭한 사역자들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적인 이해일 뿐입니다. 그런 사람은 끝까지 나아갈 수 없습니다. 머리에서 마음으로 내려와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코 시험을 견디지 못합니다.
지적인 이해도 좋습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눈이 그것을 바라볼 때, 마귀는 여러분의 눈을 이용합니다. 에덴동산에서 드러났듯이 마귀는 사람의 머리에서 일하기로 택했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택하십니다. 마귀는 사람이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을 보여 주며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오실 때는 마음으로 오십니다. 그리고 눈으로 보지 못하는 것을 믿음을 통해 마음으로 믿게 하십니다. 성경에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여기서 일하시고, 사탄은 여기서 일합니다. 그렇다면 큰 학교들과 신학교들이 대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너무나 자주 그것을 여기서 끌어올려 여기로 가져갑니다. 실은 여기서 내려, 여기 사람의 마음으로 가져가야 하는데 말입니다.
성경은 “사람이 자기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그가 그러하다”라고 말합니다. 불신자들과 비평가들은 늘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사람의 심장에 사고 기능이 있다고 하다니, 하나님도 참 어리석으시다. 그 안에는 생각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그런데 약 사 년 전에 과학은 사람의 심장에 사고 기능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사람의 심장에는 작은 방, 세포 하나도 없는 작은 공간, 작은 구획이 있다는 것입니다. 동물이나 다른 생명체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심장에는 그런 작은 공간이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결론을 내리지 못하다가 마침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곳은 혼이 거하는 자리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정확하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자기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그가 그러하다.” 머릿속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머리를 뜻하셨다면 “머리”라고 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마음”이라고 하셨습니다!
모세가 다가갔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야,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모세가 이렇게 말했다면 어떻겠습니까? “잠깐만요, 주님. 제 모자를 뜻하신 것인 줄 압니다. 모자만 벗겠습니다. 그편이 더 경건합니다.” 하나님은 모자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신”이라고 하셨습니다! 바로 그것을 뜻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악수하고 교회에 가입하라는 뜻으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너희가 반드시 다시 태어나야 하며,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라고 하셨습니다. 명부에 이름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다시 태어나고, 혼이 변화되며, 온 존재가 새롭게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그런 체험을 한 적이 없다 해도, 창조되었다는 점에서는 여전히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타락한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무를 가져다가 건물을 만들고, 철을 가져다가 기계를 만들고, 보석을 가져다가 시계를 만들 수 있습니다.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본래 창조된 것 중에서 무언가를 가져다가 그 원래 상태를 왜곡하여 큰 것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창조할 수는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창조하실 수 있습니다. 그분 한 분뿐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보는 것은, 사탄이 사람의 머리를 택하면서 그의 지적인 부분을 붙들었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교회도 사람의 지적인 부분에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아, 훌륭한 교회입니다. 우리에게는 큰 교단이 있습니다. 우리 교단은 이 나라에서 가장 오래되었습니다.” 그러나 형제님, 남자든 여자든 소년이든 소녀든 철저히 회심하지 않았다면 그런 지적인 이해를 가지고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뜻하지도 않고 저것을 뜻하지도 않습니다. 기적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이런 다른 일들은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그 시대는 지나갔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지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 사람이 머릿속의 작은 지식을 하나님께 내어 드리고,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이 자기 마음속에 내려오시도록 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진리”라고 하고, 모든 약속을 “신성하다”라고 할 것입니다. 그때 그는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를 이룰 수 있습니다.
사람의 심장 속 그 작은 방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해 만드신 것입니다. 그곳은 하나님의 통제실입니다. 하나님은 거기에 앉으셔서 여러분을 다스리십니다. 그곳이 하나님의 자리입니다. 그 통제실에서 지시를 보내십니다. 마귀의 영의 본성이 거기에 들어 있는데, 어떻게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일하실 수 있겠습니까? “이 땅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은 죄 가운데 태어나고 불법 가운데 형성되며, 세상에 나와 거짓을 말한다.” 맞습니다. 그러니 아담에게 속한 그 육적인 본성으로는, 지성을 통해서가 아니면 사람이 어떻게 무엇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사람이 새로운 창조물이 되어 옛사람이 사라지고, 새사람이신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마음속 보좌에 앉으시면, 삶이 달리 보이고 새로운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이기적인 동기와 자신을 큰 인물로 만들려는 거창한 생각에서 돌아서, 하나님을 인정하며 갈보리를 향해 곧장 나아갑니다. 그러면 그의 모든 것, 목표와 동기와 이루는 일과 그의 온 존재가,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생명을 위해 값을 치르신 십자가의 영광 안에 있게 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생명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사람이 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왕국을 이해할 수도 없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할 능력이 여러분 안에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그 작은 자리를 만드셨습니까? 그 안에 무언가가 채워지도록 만드셨습니다. 여러분은 무언가로 채워져야 합니다. 아무것으로도 채워지지 않은 채 사람으로 있을 수는 없습니다. 이제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 때가 왔습니다. 바로 지금입니다. 온 땅에서 결정을 내리도록 몰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역자들이 도표를 들고 일어나 짐승의 표가 무엇인지 설명하려는 것을 들어 보았습니다. 이런저런 도표를 가지고 말입니다. 도표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인을 받지 않은 자들은 모두 짐승의 표를 받았다”라고 말합니다. 이 땅에는 두 부류밖에 없습니다. 한 부류는 하나님의 표를 받았고, 다른 부류는 마귀의 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표를 받지 않은 사람은 모두 마귀의 표를 받았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이 사실을 단단히 새겨 드리겠습니다. 무례하거나 모질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말하고 경고하려는 것입니다. 사람은 이에 대해 무언가를 해야 합니다. 피할 수 없이 여러분 앞에 닥친 일입니다. 반드시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그러니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이 무엇인지 제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여 드릴 수 있다면, 여러분은 알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에베소서 4장 30절에서, 그리고 성경 곳곳에서 “성령이 하나님의 인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없으면 반대편의 표를 받은 것입니다. 아무리 지식이 많고, 큰 교단에 얼마나 많이 속해 있으며, 얼마나 경건하고 종교적이든 상관없습니다. 사탄도 그랬습니다. 사탄은 갈라진 꼬리와 갈라진 발굽이 달린 커다란 짐승이 아닙니다. 그는 영입니다. 성경은 “할 수만 있으면 바로 그 선택받은 자들도 속일 만큼 교활하다”라고 말합니다. 그는 종교적입니다. 가인도 아벨만큼 종교적이지 않았습니까? 가인도 아벨과 똑같이 예물을 드리지 않았습니까? 가인도 아벨과 똑같이 주님을 위해 교회를 세우지 않았습니까? 가인도 아벨과 똑같이 엎드려 경배하지 않았습니까? 가인도 아벨과 똑같이 희생물을 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한 사람은 지적인 이해로 나아왔습니다. 꽃과 땅의 열매를 가져다가 제단을 아름답게 꾸몄습니다. 지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벨은 믿음으로 어린양을 택했습니다. 피와 생명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아벨은 어린양을 바위로 끌고 가, 피를 흘리며 죽을 때까지 그 작은 목을 내리쳤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가 의로운 아벨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맞습니다. 아벨은 어떻게 그것을 알게 되었습니까? 지성이 아니라 계시로 알게 되었습니다. 마음으로 알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반석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 영적인 계시, 영적인 깨달음입니다! 성경은 “사람은 겉모습을 보나 하나님은 마음을 보신다”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무언가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의심으로 가득 차 있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련한 마음에 의심이 넘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근심과 염려가 가득할 수도 있고, 괴로움이 가득할 수도 있습니다. 또 종교로 가득할 수도 있습니다. 지적인 것, 그럴듯하게 향기를 입힌 신학으로 가득하여, 오랫동안 존재해 온 큰 교회에 속해 한껏 자신만만하게 앉아 있을 수도 있습니다. 형제님, 말씀드리겠습니다. 늙어 죽을 때까지 그 교회에 사람들을 데려와도, 결국 바벨탑 하나를 더 세우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어리석음으로 가득할 수도 있고, 허튼 것으로 가득할 수도 있으며, 어떤 것으로든 가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빈 채로 있을 수는 없습니다. 성경이 그럴 수 없다고 말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정한 영이 사람에게서 나와 마른 곳들을 지나가며 쉴 곳을 구한다. 그러다가 자기보다 더 악한 다른 마귀 일곱을 데리고 돌아오니, 그 사람의 마지막 형편이 처음보다 여덟 배나 더 나쁘게 된다.” 사람들이 부흥회에 나와 지적인 이해에만 이끌릴 때, 이런 집회에서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그러고는 가서 어느 교회에 가입한 뒤 그것으로 그만이라고 하며 만족합니다. “이 정도면 됐어. 다른 이런 터무니없는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야. 그런 것은 있어서는 안 돼.” 목회자도 말합니다. “아, 그런 것은 다... 아주 옛날 다른 시대의 일입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그 마귀가 다른 마귀 일곱을 데리고 돌아와, 그 사람은 종교적인 마귀가 됩니다. 그러면 정말로 가득 차서 교만과 시기까지 갖게 됩니다. 성경을 쓰신 바로 그 하나님께 화를 내기까지 합니다. 성경을 내려다보며 “‘내가 하는 이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 그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야!”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온 세상으로 가서 복음을 선포하라”라고 하셨습니다. 교회에 주신 마지막 사명입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어디까지입니까? “온 세상”입니다. 누구에게입니까? “모든 창조물”에게입니다. 그들 중 일부에게만 이런 표적이 따른다는 것입니까? 성경은 “그들에게 따르리니”라고 말합니다. 믿는 모든 사람에게입니다. “그들이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내쫓고 새 언어들로 말하며, 뱀들을 집어 올리거나 치명적인 것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 사람들이 나으리라.”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표적들이 믿는 자들에게 따르리니.”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나 지적으로만 믿는 교인들이 아니라, 다시 태어난 신자들입니다. 지적인 데서 마음으로 나아온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의 통제실에서 보좌에 앉으셔서 여러분의 감정을 다스리고, 믿음을 다스리며, 성품을 다스리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채우고 싶어 하십니다. 왜 채우고 싶어 하십니까? 무엇으로 채우고 싶어 하십니까? 하나님 자신, 곧 성령으로 여러분을 채우고 싶어 하십니다.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24장 49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성령께서 너희에게 오신 뒤에 너희가 권능을 받고, 그때에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땅의 맨 끝 지역까지 이르러 나를 위한 증인들이 되리라.” 언제입니까? 박사 학위를 받을 때입니까? 문학사 학위를 받을 때입니까? 아닙니다. “성령을 받으면, 이 세대와 앞으로 올 세대들에서, 땅의 맨 끝 지역까지 이르러 나를 위한 증인들이 되리라.”
오순절 날, 성령께서 급하고 강력한 바람같이 하늘에서 내려오셔서 그들이 앉아 있던 온 집안을 가득 채우셨을 때, 그들 가운데 표적들과 이적들이 일어났습니다. 지적으로 생각하던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사람들아 형제들아, 우리가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회개하고 너희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 죄들의 사면을 얻으라. 그러면 너희가 성령님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손들과 멀리 떨어져 있는 자들 곧 주 우리 하나님께서 부르실 모든 사람들을 향한 것이니라.”
그것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채우고 싶어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여러분을 채우고 싶어 하십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연합할 것입니다. 무엇과 연합합니까? 교회와입니까? 아닙니다. 여러분은 연합할 것입니다! 무엇과입니까? 신조와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과 연합할 것입니다! 그분과 아버지께서 하나이신 것같이, 여러분과 그분도 하나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여러분 안에 사실 것입니다. 성령께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 땅에 계셨을 때 행하신 바로 그 일들이 여러분 안에서도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분이 그렇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오늘 저녁에 읽은 기도에서, 하늘에 계신 우리 주님은 자신과 하나님이 하나이신 것같이 우리도 하나 되게 해 달라고 아버지께 기도하셨습니다. 그분들은 얼마나 가까우셨습니까? 하나님은 그분 안에 계신 생명이요 영이셨습니다. 우리가 그분과 하나라면, 우리는... 그분의 생명과 영이 우리 안에 계실 것입니다. 그러면 땅에 속한 육적이고 지적인 이해와 신조와 교리가 사라지고, 새롭게 되어 다시 태어나는 성령 침례의 순전한 체험이 사람의 마음속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때 여러분은 하나가 되고, 형제가 참으로 형제가 되며, 자매가 자매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목표와 동기와 여러분의 모든 것, 앞으로 되고 싶고 되려고 애쓰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왕국을 위한 것이 될 것입니다. 어느 교회를 대표하든,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말입니다.
오늘날 성령이 지금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수만 명, 수백만 명이 “그렇지 않다”라고 말합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성령의 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대부분 가난한 사람들, 세상에서 낙심하고 버림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이심을 믿는다는 이유로 교회에서 쫓겨난 사람들이지만, 그들은 그분의 영으로 충만해졌습니다. 그들은 목적이 하나요, 마음이 하나입니다. 어떤 사람들입니까? 감리교인, 침례교인, 장로교인, 가톨릭교인, 여호와의 증인, 정교회 신자, 유대인, 모두 함께 하나가 됩니다. 신조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도 아니고, 교단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 것은 마귀가 지적인 이해를 통해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여러분 안에 하나님의 왕국이 있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마음의 보좌, 그분의 통제실에 앉으셔서 여러분의 감정을 다스리고, 능력을 다스리고, 이해를 다스리시며, 교제와 사랑 안에서 여러분을 자신과 하나가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으로 채우십니다. 권능으로 채우십니다. 영으로 채우십니다. 하나님 자신의 신성한 본성으로 채우시고, 여러분의 육적인 본성을 그분의 본성으로 바꾸십니다. 그렇게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창조물이 됩니다.
그러면 그 사랑으로, 밖에 나가 보면 새들의 노래마저 달라진 듯합니다. 오, 그리스도께서 오시면 얼마나 달라집니까! 돌이켜 보며 이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내가 어떻게 여태 이걸 멀리했을까? 어떻게 이걸 거절했을까?”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원수도 없습니다. 모두 사랑스러워 보입니다. 지금껏 여러분에게 한 모든 일을 용서할 수 있습니다. 가장 지독한 원수라도 길에서 그를 위해 기도하고, 팔로 감싸 일으켜 줄 수 있습니다. 그가 어떤 신조를 따르고 어느 교단에 속해 있든 상관없습니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죽어 주신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것으로 여러분을 채우고 싶어 하십니다. 그것이 충만함입니다. 그것이 왕국입니다. 우리는 그 안에서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단을 키우거나 어떤 종파나 신조를 키우기 위해 하나가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왕국을 넓히기 위해 하나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설계도를 따릅니다. 복된 성경이 무엇을 말하든, 그때마다 여러분 안에 계신 성령께서 외치십니다. “그렇다. 그것은 내 말이다!” 여러분은 “존스 박사가 그렇게 말했습니까? 이것은 어떻습니까? 아무개 박사가 그렇게 말했습니까?”라고 하지 않습니다. 어느 박사가 무슨 말을 했든 상관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그것이 진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들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그때 우리는 하나입니다.
감리교인이든, 침례교인이든, 장로교인이든, 여러분이 누구든 우리는 하나입니다. 마귀가 여러분의 눈을 이용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쓰시도록 하십시오. 눈으로 보며 그것이 무엇인지,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 이해하려고 한다면, “어떻게 그런 식으로 될까?” 하고 묻습니다. 성령을 받으면 그런 의문을 품지 않습니다. 아직도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한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 마음속에 계시지 않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성령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 중 단 하나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아멘, 아멘!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불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가 일흔다섯 살이고 사라가 예순다섯 살일 때, 그들에게 아이가 생길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는 이십오 년 동안 걸어가며 모든 것을... 매일 그는 “사라, 여보, 몸은 어때요?” 하고 물었습니다. “늘 그렇듯이 아무 차이도 없어요.” 사라는 폐경이 지난 지 사십 년이나 되었습니다. 열일곱 살 때부터 그와 함께 살았지만 아이를 낳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 말씀에 어긋나는 모든 것을 없는 것으로 여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라고 불렀습니다. 첫 달이 지났습니다. “사라, 몸은 어때요?” “달라진 게 없어요.” 그가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래도 우리는 아기를 갖게 될 거예요!” 일 년이 지났습니다. “몸은 어때요?” “달라진 게 없어요.” “그래도 우리는 아기를 갖게 될 거예요!” 성경은 “그가 약해지기는커녕 계속 강해졌다”라고 말합니다. 더 큰 기적이 될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십오 년이 지났습니다. 이제 사라는 아흔 살, 아브라함은 백 살입니다! 어느 날 한 천사가 내려와 장막을 등지고 서서 “아브라함아, 내가 너를 찾아오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아브라함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어린 이삭이 태어났습니다. 왜입니까? “아브라함이 불신으로 하나님의 약속에 관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오히려 강하여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그의 머릿속에 있지 않고 마음속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보좌는 사람의 마음속에 있습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하나가 됩니다. 목적도 하나, 이루는 일도 하나입니다. 감리교 형제 한 사람이 백 명의 혼을 하나님께로 인도했다면, “아멘, 아멘!”입니다. 장로교인이든 누구든 한 혼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했다면, “아멘, 아멘!”입니다. 토미 오스본이 올해 백만 명의 혼을 인도하고, 오럴 로버츠가 백만 명, 빌리 그레이엄이 백만 명, 다른 교단들도 각각 백만 명의 혼을 인도한다면, 저는 서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루려는 것은 하나님의 왕국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려는 목표는 바로 혼들을 그분께 보내는 것입니다. 그들이 다시 태어난 그리스도인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입니다. 함께 연합해 있습니다. 우리는 형제입니다. “그들은 감리교가 아니잖아. 침례교가 아니잖아. 이것도, 저것도, 다른 무엇도 아니잖아”라고 하는 동안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동기도 온통 잘못되었고, 목표도, 이루는 모든 일도 잘못되었습니다. 여러분 자신은 작은데, 자기 힘으로 무언가를 하여 크게 보이게 하려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밀이 자라는 모습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밀대가 꼿꼿이 서서 이렇게 흔들리는 것이 보이면, 거기에 알곡이 없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비어 있는 것입니다. 알곡이 가득 찬 이삭은 언제나 고개를 숙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긍휼로 가득 찬 사람은 겸손히 고개를 숙입니다. “자기를 낮추는 자는 하나님께서 높이실 것이요,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리라.” 친구 여러분, 이제 사람들은 이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자신이 하나이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 되기를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분 안에 계셨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께 들어오시도록 하면 그리스도와 하나가 됩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분께 우리 마음의 통제실을 맡겨 드리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가 됩니다.
우리는 성탄절을 앞두고 있습니다. 여러 때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끔찍한 일들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마주하는 이 모든 일 가운데 무엇이 오고 가든, 그것이 무슨 상관입니까? 그리스도께서 통제실에 계셔서 우리를 다스리시고, 우리를 다스리시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을 믿음을 주신다면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마음속에 계시며, 그분의 말씀이 옳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의 말씀 중 어떤 것도 부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자신의 것을 알아보십니다. 오, 실제로 계시는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아니 얼마나 기쁜지요.
얼마 전 이 인디애나주에, 농장에서 자란 소년 둘이 있었습니다. 더없이 가난한 농장 소년들이었습니다. 둘은 함께 자랐습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결혼했고, 며칠 뒤에는 다른 사람도 결혼했습니다. 그중 한 사람은 도시로 가서 살았습니다. 주식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어릴 적 가르침에서 떠나 잘못된 길로 들어섰습니다. 주식에 손을 대어 갈수록 부자가 되더니 마침내 수백만 달러를 가진 부자가 되었습니다. 시카고로 올라가 큰 거리 한 곳에 궁전 같은 집을 지었습니다. 그와 아내는 나이트클럽을 드나들고, 칵테일을 마시고, 밤새 밖에서 지냈습니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가져다줄 집사와 온갖 것을 두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사는 사람에게는 평안이 없습니다. 괴로운 마음에는 평안이 없습니다. 죄로 가득한 마음에는 평안이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람이 술을 마시고 싶어 하며 그것을 “사는 것”이라고 하고, 아주 즐겁게 지낸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그가 비어 있음을 보여 줍니다. 백만 달러를 버는 사람은 이백만 달러를 원합니다. 오늘 밤 파티에 가서 한 잔 마시는 사람은 또 한 잔을 원합니다. 한 번 아내에게 불충실했던 남자는 다시 그럴 것입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시겠죠? 무엇을 해도 결코 만족하지 못합니다. 손에 백만 달러가 있든 천만 달러가 있든, 밤이면 곤드레만드레 취해서 눕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는 악몽에 시달리고 마음이 괴로운 채 눈을 뜹니다. 그것을 평안이라고 하십니까? 평안이 아닙니다. 반면 머리를 누일 베개조차 없고, 변변한 신발 한 켤레도 없으며, 집에서 제대로 된 한 끼를 먹을 형편도 못 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다스리시면 행복하게 잠들고 행복하게 깨어납니다. 그것이 지속되는 평안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 사람은 그 가르침을 잊어버리고 도박에 빠졌습니다. 성탄절이 되자 친구가 생각나서 편지를 썼습니다. 부자의 이름은 짐이고, 가난한 친구는 존이었습니다. 그는 편지에 이렇게 썼습니다. “존, 명절에 올라와서 나를 만나 주면 좋겠네. 다시 만나 이야기하고 싶어. 자네를 못 본 지 여러 해가 되었군.” 존이 답장을 썼습니다. “짐, 나도 가고 싶네. 하지만 갈 수가 없어. 갈 돈이 없다네.” 며칠 뒤 우편으로 수표가 왔습니다. “오게. 어쨌든 자네가 왔으면 좋겠네.” 그래서 시골 사람 존은 갈 준비를 했습니다. 깨끗하고 괜찮은 작업복 바지에 캐디 모자를 쓰고, 색이 다른 작은 웃옷을 입고 기차에 올랐습니다.
그가 도착하자 운전기사가 큰 리무진을 대 놓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존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모자를 손에 들고 리무진에 올라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차는 시카고의 커다란 궁전 같은 집으로 갔습니다. 그는 차에서 내려 문 앞으로 가서 초인종을 눌렀습니다. 집사가 나와 말했습니다. “손님, 명함을 주시겠습니까?” 존은 무슨 말인지 몰라 모자를 건넸습니다. 방문할 때 내는 명함 같은 것은 전혀 몰랐습니다. 세상 재물을 많이 가진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집사가 말했습니다. “명함을 주십시오.” 존이 말했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짐이 오라고 해서 왔다는 것밖에 모릅니다.”
그래서 집사는 돌아가 아직 침대에서 나오지 않은 존의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이상하게 생긴 사람이 문 앞에 서 있습니다. 옷차림이... 저런 옷차림은 처음 봅니다. 짐이 오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들어오라고 하게.” 그는 실내복을 걸치고 복도로 나와, 옛 시골 친구를 만나 악수했습니다. “존, 자네를 보니 얼마나 반가운지 몰라!” 그 시골 친구는 서서 방 안을 둘러보며 말했습니다. “짐, 자네는 정말 많이 가졌군.” 짐이 말했습니다. “한번 구경시켜 주지.” 그는 존을 위층으로 데리고 가서 햇볕이 드는 베란다로 나가 창문을 열었습니다. 존이 물었습니다. “마사는 어디 있나?” “아, 아직 안 들어왔네. 어젯밤에 나갔어.” “두 사람은 어떻게 지내나?” “별로 좋지 않아. 존, 자네와 케이티는 어떻게 지내나?” “아주 잘 지내네.” “아, 부인은 집에 있나?” “그렇네. 아이가 일곱이야. 자네들에게도 아이가 있나?” “아니, 마사는 아이를 낳으려 하지 않았네. 아이가 있으면 사교생활에 지장이 생기니 없는 게 낫다고 생각했지.” 그가 커튼을 젖히며 말했습니다. “여길 보게. 저쪽 은행이 보이나?” “보이네.” “내가 저 은행의 은행장이야. 저 철도회사가 보이나?” “보이네.” “내가 저 회사 주식을 백만 달러어치 가지고 있네.”
존은 아래를 내려다보며 큰 정원과 모든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았습니다. 존은 밀짚모자를 손에 들고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좋군, 짐. 자네가 그렇게 가진 것이 정말 감사하네. 나와 케이티는 가진 게 별로 없어. 우리는 아직도 그 작은 나무널 지붕 집에 산다네. 많지는 않아도 아주 행복하지.” 바로 그때 성탄 찬송을 부르는 한 무리의 노랫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모든 것이 잠잠하고 모든 것이 밝네. 저 동정녀 어머니와 아기 둘레에, 참으로 여리고 온유하신 거룩한 아기.
짐은 돌아서 존을 바라보았고, 존은 짐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존, 물어볼 게 있네. 우리가 소년이었을 때, 저 아래 길가의 작고 오래된 빨간 교회에 가서 그 시골 성가대가 이런 노래를 부르는 것을 듣곤 했던 것 기억하나?” “기억하지.” “아직도 거기 다니나?” “그렇네. 아직도 그 교회에 속해 있지. 이제 그곳 집사야. 짐, 자네는 어떤가? 이 아래에서 얼마나 많이 가졌는지 이야기했는데, 이 위쪽에는 얼마나 가지고 있나?” 그가 말했습니다. “존, 유감이지만 그 위에는 아무것도 없네. 어느 해 성탄절 직전에, 우리에게 신발도 없었던 때를 기억하나? 우린 성탄절 폭죽을 구하는 데 더 관심이 있었지. 성탄절 폭죽을 사려고 토끼를 잡을 상자 덫을 놓으러 갔잖아. 어느 날 아침, 자네 상자 덫에 커다란 산토끼가 잡혀 있던 것 기억하나?” 존이 말했습니다. “그래, 기억하네.” “폭죽을 좀 마련하게 됐지. 자네가 가서 폭죽을 사 와서는 나와 나누었어.” “그랬지.”
그가 말했습니다. “존, 내가 가진 건 무엇이든 자네와 나누겠네. 그런데 자네가 내게 나누어 주면 좋겠는 것이 하나 있어. 맨발로 그 작은 먼지 길을 걸어 그 작고 오래된 교회에 다시 갈 수만 있다면, 성가대가 노래하고 옛 방식의 시골 설교자가 설교할 때 살아 계신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만 있다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내놓겠네. 무엇이든 주겠어! 다시 돌아가 그 옛길을 걸으며 누렸던 복된 평안을 얻을 수만 있다면, 철도회사 주식 전부와 은행 지분 전부, 이 집과 모든 것, 내가 가진 것을 다 주겠네.” 존이 그를 팔로 감싸 안고 말했습니다. “예전에 부자인 세 현자가 와서 아기 예수님의 발 앞에 모든 것을 내려놓았고, 죄 사함을 받았네. 비록 내가... 짐, 자네가 복을 받아 이 모든 일을 이룬 것은 훌륭하다고 생각하네. 하지만 나는 자네가 가질 수 있는 그 모든 재물보다, 저 아래에서 짚을 채운 요 위에서 잠을 자더라도 아내와 일곱 아이와 함께 살며 내 마음속의 이 평안을 누리는 편이 더 좋네.”
그렇습니다, 친구 여러분. 부는 돈으로 재는 것이 아닙니다. 큰 명성이나 인기로 재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왕국이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와 감정을 변화시키고,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창조물로 만들며, 영생을 주는 것, 그것이 부입니다. 그것이 이 땅에서 가장 큰 부입니다. 기도합시다. 우리가 고개를 숙이고 있는 동안에 말씀드립니다. 오늘 밤 여러분은 세상 재물로는 가난하십니까? 석탄값이나 기름값, 그 밖의 비용을 어떻게 낼지조차 모르십니까?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오늘 밤 여러분은 이 땅에서 가장 행복한 가난한 사람이 되어 이 건물을 나갈 수 있습니다. 오늘 밤 여러분은 이곳에서 살... 이곳을 떠나면서, 어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부를 가지고 나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그리스도 예수님과 연합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분이 여러분의 혼에 들어오셔서 통제실을 맡으실 수 있습니다. 무엇이 오고 가든, 여러분은 남은 평생 행복할 것입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주어진 가장 큰 선물입니다. 물론 여러분도 친구들에게 성탄절 선물을 줍니다. 좋은 일입니다. 마음의 표시이지요. 형제님, 오늘 밤 여러분에게 어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선물이 주어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선물, 곧 그분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을 여러분 개인의 인도자, 여러분 개인의 구원자, 여러분의 하나님, 구속자, 왕으로 받아들이시겠습니까? 그분은 혼과 몸을 고치십니다. 통제실을 맡으십니다. 두려움과 의심이 있다면 지금 내려놓으십시오. 그분이 왕이 되시게 하십시오. 그분이 들어오셔서 맡으시게 하십시오. 그분이 주님이 되시게 하십시오. 주님이란 “다스리는 분”입니다. 주권이란 “다스리는 권한”입니다.
여러분은 “아, 저는 여러 해 전에 그분께 마음을 열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분이 여러분의 주님이 되셔서 완전히 다스리신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감정과 믿음과 모든 것을 다스리십니까? 성경을 읽을 때 그 말씀 하나하나가 진리입니다. 평안이...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운 일이 닥쳐도 마음속에는 평안이 있습니다. 오늘 밤 원자폭탄이 이 땅을 산산조각 낸다 해도, 그 재가 땅에 내려앉기도 전에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영광 가운데 모이게 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그런 위로가 있습니까? 없다면, 그리고 그것을 원한다면, 조용히 바로 손을 들어 이렇게 말씀하시겠습니까? “주님, 저를 긍휼히 여겨 주십시오. 이제 저는 하나님의 왕국에 속한 자녀의 한 사람으로서, 제 동기와 목표에서 주님과 연합하기를 원합니다. 주님은 저에 대해 모든 것을 아십니다. 주님, 저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 주시고, 주님의 것이 되게 해 주십시오.” 젊은이,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선생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또 여러분에게, 형제님에게도, 저기 계신 여러분, 여러분, 여러분에게도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감리교회 같은 데서는 옛 방식으로 제단 앞으로 나오는 것을 믿는다는 것을 압니다. 그것도 좋습니다. 형제님,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만져 주시지 않으면 하나님께 손을 들 수도 없고, 그 방향으로 몸을 움직일 수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께서 먼저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손을 들게 하신 그분을 존중하고 귀히 여기며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겠습니까? “네, 주님. 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입니다. 제 모든 죄를 이제 주님의 제단에 내려놓습니다. 주님, 바로 지금 저 자신을 주님께 바칩니다. 이 시간부터는 주님을 위해 살겠습니다. 모든 습관과 모든 죄, 모든 것을 바로 여기서 버리고 제 마음을 비웁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의 주인이 되어 주십시오. 제 마음의 주님이 되어 주십시오. 주님, 제 삶에서 주님의 마땅한 자리를 차지하시고 저를 다스려 주십시오.” 이제 기도하는 동안 진심으로 그렇게 하십시오.
주님, 주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이렇게 기록된 것을 배웠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먼저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자는 내게 올 것이다.” 사람이 십 년, 이십 년, 오십 년, 칠십오 년, 혹은 그보다 더 오래 살았어도 아직 나오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빛이 그 사람의 길을 가로질러 비추는 때가 올 것입니다. 그때가 기회입니다. 아직도... 아직도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계시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오늘 밤 하나님은 많은 사람이 손을 들어 예수님을 하나님의 위대한 성탄절 선물로 받아들이게 하심으로, 우리에게 긍휼을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내신 본래의, 유일하고 참된 성탄절 선물은 그분의 독생자이십니다. 주님, 이들을 받아 주십시오. 이들이 임종의 베개에 머리를 누일 날이 올 것입니다. 혹은 길에서 자동차에 깔려 신음하거나, 물에 빠져 목에서 가르랑거리는 소리를 낼지도 모릅니다. 이들이 어떤 최후를 맞을지 저는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 저는 이것을 압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누구든지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주님, 저는 그것이 주님의 말씀임을 믿습니다. 제가 살든 죽든, 그것은 여전히 주님의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온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지만 주님의 말씀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내가 그에게 영존하는 생명을 주고, 마지막 날들에 그를 일으키리라.” 그가 바다에 빠져 죽든, 불에 타든, 그 재가 땅의 사방으로 흩날리든, “주 하나님께서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하늘로부터 내려오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우리가 그들과 함께 채여 올라가 공중에서 주를 만나 영원히 그분과 함께 있으리라.” 주 하나님, 저희는 그 일이 일어날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오늘 밤 이곳으로 들어와 고개를 숙인, 이 땅의 가난하고 버림받은 사람들을 보십시오. 주님께서 그들을 취하여 만드신 흙을 향해, 주님께서 지체하시면 그들이 돌아갈 흙을 향해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들은 주님께 손을, 자기 손을 들고 “주님, 제가 잘못되었습니다. 저를 받아 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오, 어떻게 한 사람이라도 거절하시겠습니까? 주님은 그럴 수 없으십니다. 주님, 그렇게 하실 수 없으십니다. 그들이 마음 깊은 곳에서 진심으로 그렇게 했다면, 그들을 거절하시고도 여전히 하나님이실 수는 없습니다. 그들이 진심으로 왔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아버지께서 주님께 드리시는 사랑의 선물입니다.
이제 주님의 종으로서 그들을 주님께 맡깁니다. 그들의 혼과 몸과 영을 주님께 맡깁니다. 주님, 복되게 지키시는 주님의 보호 아래 그들을 붙들어 주십시오. 그들에게서 모든 악을 없애 주십시오. 죄와 습관들을 없애 주시고, 오늘 밤부터는 다시는 그런 것들이 그들을 괴롭히지 않게 해 주십시오. 그들의 마음속 통제실에 하나님을 모시고 자유로운 사람들이 되어 이곳을 떠나게 해 주십시오. 원수가 그들을 유혹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통제실에 계시며, 원수에게서 그들의 고개를 돌려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십시오. 주님, 저희가 주님의 왕국을 세울 것입니다. “아버지의 왕국이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주여, 우리를 인도하사 시험에 들지 말게 하시고 악에서 우리를 구출하옵소서. 왕국과 권능과 영광이 영원토록 아버지의 것이니이다.” 아멘.
그렇게 기록되었으니, 그렇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손을 들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여러분의 구원자로 받아들인 모든 분은 마음에서 믿음으로 그분을 받아들이십시오. 눈이 말해 주는 것이나 생각이 말하는 것, “나는 끊을 수 없어. 할 수 없어. 이 일을 그만둘 수 없어”라는 것을 따르지 마십시오. 그것은 지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마음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너는 내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기억하십시오. 마음속에서 들리는 그 음성을 들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말씀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밤이 사라져야 하듯 다른 모든 것도 사라질 것입니다. 밤과 낮 중에 어느 쪽이 더 강합니까? 해가 떠오르면 밤이 어떻게 되는지 보십시오. 그저 사라져 더 이상 있을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이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오시면, 그의 모든 지적인 생각은 사라지고 어둠과 의심도 사라집니다.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런 것이 있을 자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빛이 그의 혼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는 빛 가운데 걷습니다. 빛 안에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하십니다. 이제 우리 모두 함께 찬송 하나를 부르고 싶습니다. 나는 왕의 자녀! 왕의 자녀! 나의 구원자 예수님과 함께, 나는 왕의 자녀! 지금 그런 마음인 분이 얼마나 됩니까? “나는 왕의 자녀입니다” 하며 손을 드십시오. 아까 손을 드셨던 분들도 드십시오. 믿으십시오. 그 믿음을 굳게 붙드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의 마음을 아십니다.
목사님, 이리 오셔서 함께... 저는 찬송을 인도할 줄 모르지만, 이 찬송을 부릅시다. 저를 도와주시겠습니까? 모두 함께 부릅시다. 좋습니다. 이제 이 찬송을 부르겠습니다. 좋습니다. 자매님이 반주로 화음을 잡아 주시러 오시는 것 같습니다. 둘러보아도 어디에도 안 보이셔서 제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나의 아버지는 집과 땅이 풍족하시고, 세상의 부를 그 손에 쥐고 계시네”를 아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좋습니다. 이제 모두 함께 부릅시다. 나의 아버지는 집과 땅이 풍족하시고, 세상의 부를 그 손에 쥐고 계시네! 루비와 다이아몬드, 은과 금으로 그분의 금고는 가득하고, 그 부는 헤아릴 수 없네. 이제 아주 조용히 부릅시다. 나는 왕의 자녀! 왕의 자녀! 나의 구원자 예수님과 함께, 나는 왕의 자녀!
놀랍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왕의 자녀라고 믿으십니까? 왕의 자녀라고 믿는 분들은 모두 손을 드십시오. 좋습니다. 다시 이 찬송을 부르는 동안 여러분 뒤에 있는 분, 앞에 있는 분, 오른쪽과 왼쪽에 있는 분과 악수하십시오. 그분이 어떤 사람이든, 여러분이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든, 왕의 자녀라면 그렇게 하십시오. 다시 부릅니다. 나는 왕의 자녀! 왕의 자녀! 나의 구원자 예수님과 함께, 나는 왕의 자녀! 천막이든 오두막이든, 내가 왜 염려하랴? 저곳에서 나를 위해 궁전을 짓고 있는데! 루비와 다이아몬드, 은과 금으로 그분의 금고는 가득하고, 그 부는 헤아릴 수 없네. 나는 왕의 자녀! 왕의 자녀! 나의 구원자 예수님과 함께, 나는 왕의 자녀! 예수님처럼 되기를, 예수님처럼 되기를, 이 땅에서 그분처럼 되기를 나는 바라네. 이 땅에서 영광에 이르는 인생의 모든 여정 동안, 오직 그분처럼 되기만을 구하네.
그것이 여러분의 소원입니까? 그분은 참으로 놀라우십니다! 저는 제 안의 모든 것으로 그분을 사랑합니다. 이십팔 년 전에 제가 가진 모든 것을 주 예수님께 내어 드렸습니다. 그 뒤로 저는 싸움터에 서서, 사람들이 그 영광의 왕관을 바라보도록 인도하려고 제가 아는 모든 방법으로 힘써 왔습니다. 주님의 오심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얼마 전 어떤 사람이 제게 말했습니다. “아, 목사님, 그런 말씀은 하지 마세요!” 제가 물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십니까?” “네, 하지만 아직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저는 말했습니다. “제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행복한 일은 주님께서 오시는 것입니다.”
바울은 인생길의 끝에서 말했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끝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므로, 이후로는 나를 위해 의의 왕관이 예비되어 있나니 주 곧 의로우신 심판자께서 그 날에 그것을 내게 주실 것이요, 내게만 아니라 그분의 나타나심을 사랑하는 모든 자들에게도 주시리라.” 무엇과 바꾸겠습니까? 제게 무엇이 있기에 그러겠습니까? 저는 나이가 들어갑니다. 썩을 것으로 가득한 이 늙고 연약하고 병든 몸은 순식간에, 눈 깜짝할 사이에 변화될 것입니다. 저는 영원히 젊을 것입니다. 다시는 앓아눕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는, 결코 늙지 않을 것입니다. 죽지 않을 것입니다. 병들지 않을 것입니다. 마음 아픈 일이나 염려도 없을 것입니다. 그분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몸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살 만하지 않다면, 그것이 제가 아는 가장 위대한 일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어떻게 그것을 얻습니까? 거저 주시는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문을 두드리시면 저는 말합니다. “네, 주님. 주님은 저의 창조주이십니다. 주님을 받아들입니다.” 그분은 성령으로 저를 자기 안에 봉인하십니다. 그러면 제게는 예수님과 그분의 피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무엇이 나의 죄를 씻을 수 있나? 예수님의 피밖에는 없네. 무엇이 나를 다시 온전하게 할 수 있나? 예수님의 피밖에는 없네. 오, 나를 눈처럼 희게 하는 그 흐르는 피는 얼마나 귀한가! 나는 다른 샘을 알지 못하네. 예수님의 피밖에는 없네.
기쁘지 않으십니까? 어떤 신조도 그렇게 할 수 없음을 압니다. 어떤 교단도 그렇게 할 수 없음을 압니다. 어떤 교회도 그렇게 할 수 없음을 압니다. 어떤 사람도 그렇게 할 수 없음을 압니다. 어떤 물도 그렇게 할 수 없음을 압니다. 어떤 신학도 그렇게 할 수 없음을 압니다. 예수님의 피밖에는 없습니다! 내 소망은 예수님의 피와 의로움보다 못한 어떤 것 위에도 세워지지 않네. 내 혼의 주위 모든 것이 무너질 때, 그분이 나의 모든 소망과 의지가 되시네. (여러분도 그렇습니까?) 반석이신 그리스도 위에 우리가 서 있네. 다른 모든 땅은 가라앉는 모래, 다른 모든 땅은 가라앉는 모래라네. 이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아기 헌아식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줄 압니다. 이를 위해 목사님께 예배를 넘겨 드리겠습니다. 네빌 형제님, 앞으로 오십시오. 주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