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감사합니다, 백스터 형제님. 여러분, 좋은 저녁입니다. 아니, 좋은 오후라고 해야겠군요. 남부에서는 이 시간이면 저녁이라고 하고, 일곱 시가 지나면 밤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게... 도무지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겠습니다. 사람들이 제가 ‘디너’를 먹는다고 할 때는 일곱 시입니다. 어머니가 밭을 갈던 저를 부르셨을 때는 열두 시가 디너 시간이었습니다. 지방에 따라 아침, 점심, 저녁을 ‘브렉퍼스트, 런치, 디너’라고 부르더군요. 그러면 저는 어디서 한 끼를 빼앗긴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래서 저는... 그저 자라 온 방식에 달린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오늘 오후 이곳에 와서 기쁩니다. 이 강당 안이 몹시 덥습니다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 주시고 복을 주시리라 믿습니다. 오늘 밤이 이 예배, 이번 집회의 마지막 밤입니다. 우리는 이곳을 떠나 펜실베이니아주 이리로 갈 것입니다. 어느 곳이든, 언제든 여러분 모두 오시기를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우리는 어디서든 친구들을 만나면 늘 기쁩니다.
방금 몇 분 전에 안내위원들을 만났습니다. 저는 늘 집회에 들어오기만 하니 아무도 만나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형제님 몇 분을 막 알아 가려 할 때면 “자, 안녕히 계십시오. 우리는 다른 곳으로 가야 합니다”라고 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셔서 해외, 아프리카에서 돌아오면 다시는 순회 일정을 정해 놓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것 때문에 늘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어느 곳에 가 있을 때... 지금 이곳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바로 여기 머물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일정이 잡혀 있으니 다른 곳으로 가야 합니다. 그것이 늘 문제입니다. 저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자, 여기서 너를 통해 할 일은 끝났다. 다른 곳으로 가거라” 하실 때까지 이곳에 머물고 싶습니다. 아시겠죠? 지금 여기서도 닷새나 엿새 동안 집회를 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이제 막 커지고, 정말로 깨닫고 믿음을 갖기 시작하는 바로 이때에...
이번 집회의 지난 이틀 밤에 제가 느낀 기름부음은... 제가 어떤 곳의 어떤 집회에서든 느껴 본 가장 큰 기름부음 가운데 하나였다고 생각합니다. 그제 밤에 있었던 일을 능가하는 경험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분께서 제게 걸어와 얼굴을 마주하셨을 때, 저는 그저... 언제 단상을 떠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이 근처 어디 차고 안에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랬습니다... 다음 날 아침 형제들에게 “아픈 사람이 남아 있었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모두가 그 은혜를 입었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어쩌면 여러분은 바로 그때 그것을 기대하지 않고 계셨는지도 모릅니다.
사역을 처음 시작할 무렵 일리노이주 밴데일리아에서, 한번은 그것이 그렇게 임하자 어디에도 연약한 사람이 하나도 남지 않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람들이 휠체어와 목발과 들것과 온갖 것을 구석에 쌓아 놓고 실어 갔습니다. 그저... 모든 사람에게 한꺼번에 임했습니다. 오, 오늘 밤에도 그런 일을 다시 보고 싶습니다. 여기 아래를 내려다보니 많은 분들이 보입니다. 여기에 대략... 몸이 불편하거나 여러 가지 질환이 있던 분들 가운데 치유받은 분들이 있습니다. 저는 사람들을 보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 때가 많습니다만, 그것이 요점은 아닙니다. 제가 건강해 보이는 분들을 부르는 이유는... 겉으로 건강해 보이는데도 실제로 무슨 문제가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데 놀라운 점이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몸에 문제가 있는 사람을 보고, 그 사람이 몸이 불편한 것을 보면서 “몸이 불편하시군요” 하고 말한다면, 물론 누구나 육안으로도 볼 수 있는 일입니다. 저도 그분이 몸이 불편하다든지 그런 상태에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분이 치유받은 것을 보기 전에는 좀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치유받은 것이 보이면 그분을 부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그분을 위해 일을 이루셨고, 그분의 믿음이 바로 그 지점에 도달한 것입니다. 그뿐입니다. 이것 뒤쪽에서는 잘 들리지 않는 것 같은데, 그렇습니까? 소리는 형편없는데 전부 저쪽으로만 나가는군요.
오늘 오후 백스터 형제님이 말씀하셨는데, 제 생각에는... 오늘 오후에는 제 삶 이야기를... 그 이야기를 들어 보신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아주 소수군요. 그러면 제가... 헛되이 같은 말을 되풀이하려는 것이 아니라, 아직 듣지 못한 분들을 위해 다시 한번 대강 말씀드리더라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용서해 주시겠습니까? 그저... 자랑할 만한 이야기는 전혀 아닙니다. 제가 주님을 대한 모습을 생각하면 부끄러워해야 할 이야기입니다. 그래도 그 이야기 몇 페이지를 다시 넘겨 보는 동안... 이곳의 심한 더위 때문에 전부 말씀드리지는 않고 중요한 대목만 짚으려 합니다. 다만 제 실수가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디딤돌이 되어, 여러분은 그 실수를 피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이제 자라나며 앞날이 남아 있는 젊은이들이 그 나이가 될 때까지... 제 실수를 보시고 그대로 따라 하려 하지 마십시오. “브래넘 형제님이 그렇게 하셨지만, 나는 그 일을 피하겠습니다”라고 하십시오.
저 뒤에서는 안 들리시죠? 그럴 줄 알았습니다. 여기 이 마이크가 작동하는지 모르겠군요. 작동한다면 하나를 이 뒤쪽에 놓을 수도 있겠지만... 스피커가 없으면 그것도 뒤로 전달되지 않고 앞으로 나가겠군요. 참 안됐습니다. 저는... 좋습니다. 만일 가지고 계시면... 의자를 옮기시라고 하려 했지만 그렇게 하실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참 안됐습니다. 언젠가는 제가 강당을 지어서, “이렇게, 제가 원하는 대로 해 주십시오”라고 말하고, 저렇게 둘러서 설치하게 하겠습니다. 어쩌면 그게 맞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씀드리면, 지금 주님께서 제게 그 일을 두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조금 듭니다. 미국 어딘가에 중심이 되는 장소를 마련해서 저는 늘 거기에 있고, 사람들은 어디서든 원하는 대로 그곳에 오게 하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러면 저는 밤낮 그곳에 머물 수 있습니다. 보십시오. [불분명한 말] 그것이 사람들 가운데 역사하는 것을 보면 성령의 뜻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그 생각이 제 마음에 있었을 뿐입니다. 아시겠죠?
그리스도인 여러분,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오늘 밤은... 오늘 여기 올 때는 기름부음 아래 있으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고, 그저 두세 번 기도했을 뿐입니다. 오늘 오후에는 설교하거나 제 삶 이야기를 할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백스터 형제님이 그 이야기를 부탁하셨습니다. 그것도 좋은 일이 될 것 같습니다. 그 이야기를 하는 김에 말씀드리면, 앞으로 그런 모습을 보시고 누군가 “브래넘 형제님은 더 이상 집회가 없으시대”라고 하더라도 제가 뒤로 물러났다거나 그런 이유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저는 하나님의 완전한 뜻을 찾고 있습니다. 허용하시는 뜻이 있고 완전한 뜻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형제님들? 저는 오랫동안 허용하시는... (이제 좀 더 잘 들리십니까?) 완전한 뜻 안에 있기보다는 허용하시는 뜻 안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완전한 길이 있고 허용되는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단상에서, 또 제 방 등에서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보여 주실 수 있다면, 제가 어디에 있기를 원하시는지, 또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는지도 정확히 말씀해 주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모든 일을 다 정해 놓고 있는 한, 제가 직접 일을 이끌고 있는 한 그분께서 손대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어떤 일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직접 하려고 하는 한... 누군가 여러분을 헐뜯는데 여러분도 맞서 그 사람을 헐뜯는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싸움을 싸워 주실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직접 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그저 손을 놓고 그분께서 하시게 하십시오. 그분께 맡기십시오. 오늘날 그리스도인에게 있는 가장 큰 무기는, 제가 아는 한,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찌할 수 없을 때 그분께 맡기기만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돌보실 것입니다. 믿지 않으십니까? 그러니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서 제가 해외에 나가 있게 되면, 그동안 여러분이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실 것을 의지하겠습니다. 특히 우리가 예루살렘에 들어가게 된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곳에 있는 수십만 명의 유대인을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셨다는 사실조차 전혀 알지 못했던 사람들입니다. 이제 그들에게 수백만 권의 성경이 보내져 그분에 관한 이야기를 읽고는 “그분께서 선지자의 표적을 행하시는 것을 보여 주십시오. 그러면 그분을 메시아로 받아들이겠습니다”라고 합니다. 오, 우리가 바라는 것이 바로 그것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내려오셔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임재를 그 유대인들 가운데 나타내시고,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그들이 예전에 살던 나라에서 행한 일들을 말씀해 주시는 등의 일을 하신다면, 그때 그들이 그분을 메시아로, 자기들의 구속주로 받아들이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그것이 아마도 유대인들, 주리고 목말라 하는 그 사람들을 이끌어 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오늘날 주님께서 오심을 보여 주는 가장 큰 표적 가운데 하나는 유대인들이 세계 각지에서 돌아오는 모습입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예전에 저는 “나라들은 무너지고, 이스라엘은 깨어나니, 성경이 예고한 표적들이로다” 하는 짧은 노래를 부르곤 했습니다. 무화과나무가 싹을 낸다는 등의 내용이 있었습니다. 얼마 전 한 불신자와 이야기했는데, 오 년쯤, 사오 년 전의 일입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이봐요, 목사님.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부르는 분이 틀린 말씀을 하셨다는 것을 성경과 그분의 말씀으로 증명할 수 있습니다.” 저는 “아닙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그렇습니다. 성경으로 증명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4장에서 그분은 ‘이 모든 일이 일어날 때, 그 세대는 모든 일이 성취되는 것을 보기 전까지 지나가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바로 그분이 뜻하신 말씀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하지만 그 세대는 이미 오래전에, 아주 오래전에 다 죽었잖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닙니다. 그 세대가 아니라, 무화과나무가 싹을 내는 것을 보는 세대입니다. 그때까지 지나가지 않을 세대는 그 세대입니다... 그분께서 ‘이 세대가’라고 하셨을 때, 그분이 말씀을 건네고 계시던 세대가 아니라, 말씀의 대상으로 가리키시던 세대였습니다. 그분이 가리키신 세대입니다. 이것을 보는 그 세대는 모든 일이 성취되기까지 지나가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저는 지금 주님께서 오시기를 기다리는 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있다고 믿습니다. 바로 지금 우리는 그분의 오심의 그림자가 드리운 때에 있다고 믿습니다. 오, 어느 복된 날 그분께서 동쪽 지평선을 뚫고 나타나셔서 자기 교회를 맞으러 내려오실 것을 안다는 것은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그분께서 은혜로 저를 여러분과 한 무리에 넣어 주셨으니 오늘 참으로 기쁩니다. 여러분은 그곳에 가시리라 믿습니다. 그분의 은혜로 저도 여러분과 함께 가게 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야기할 시간은 충분하겠지요? 영원토록 말입니다. 이제 가능한 한 빨리 서두르겠습니다. 너무 오래 이야기하지 않도록 시계를 꺼내 놓겠습니다. 시작도 조금 늦었군요. 저는 어떤 일이든 서두르고 싶어 하지 않아서 늘 늦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문제는 너무 서두른다는 것입니다. 저는... 결혼할 때도, 제 결혼식에도 늦었습니다. 누가 “자기 장례식에도 늦겠군요”라고 하더군요. 저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하하하.
어떤 분이 제게 말하려고 했는데... 제게 보험을 팔려고 하는 분이었습니다. 제가 보험이 하나도 없었거든요. 보험을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많은 미국 사람들이 보험료를 내느라 가난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라고 하자, 그분이 “보험을 전혀 안 드셨군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닙니다,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아, 실례했군요, 빌리. 보험을 드신 줄 몰랐습니다.” 저는 “들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어떤 보험에 드셨습니까?” 저는 “복된 확신이여, 예수님은 나의 것, 오, 미리 맛보는...”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분이 잠깐 멈추어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몇몇 사람 가운데 서 있던 그분은 “하지만 빌리, 그걸로는 저 위 묘지에 묻힐 수 없잖아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알지요. 하지만 거기서 저를 꺼내 줄 것입니다. 거기 들어가는 일은 걱정하지 않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불분명한 말] 우리는 거기 들어가는 일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나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니 오늘 오후 성령께서 하나님의 보험 대리인으로 이곳에 계시며, 누구든 받으려는 사람에게 보험증서를 나누어 주십니다. 여러분도 받을 수 있습니다. 아직 구원받지 못했고 우리 주 예수님의 은혜를 모른다면 오늘 그분을 받아들이십시오.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고 정죄에 이르지 아니하리라.” 저는 그것이 놀랍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마이크에서 큰 소리가 난다.] 저것 정말 소리가 크군요. 그렇지요?
좋습니다. 이제 성경을 좀 읽겠습니다. 성경을 읽지 않고는 어떤 예배도 온전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기 집을 떠나 오신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집을 떠나 계신 분들요. 오, 보십시오. 집만 한 곳은 없지요? 아무리 초라해도 집만 한 곳은 없습니다. 오늘 오후에는 집에 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제게 있었던 집과 지금 있는 집, 또 우리가 가게 될 집에 관해서입니다. 가정은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세우셨습니다. 이 말씀을 위해 히브리서 13장 10절부터 성경을 읽겠습니다. 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 성막을 섬기는 자들은 그 제단에서 나오는 것을 먹을 권리가 없느니라. 그 피... 그 짐승들의 피는 죄로 인해 대제사장이 성소 안으로 가지고 들어가고 그것들의 몸은 진영 밖에서 불사르나니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친히 자신의 피로 백성을 거룩히 구별하시기 위해 성문 밖에서 고난을 당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그분의 치욕을 짊어지고 진영 밖에 계신 그분께 나아가자. 여기에는 우리에게 영구한 도시가 없고 오히려 우리가 다가올 도시를 찾나니
이제 잠시 머리를 숙이겠습니까? “복되신 구주여, 주께서 저희를 인도하시리니, 천사들이 함께 영원히 그분을 찬양하려 기다리는 저 복된 해변에 이를 때까지 인도하시리라.” 시인의 노랫말입니다. 주님, 오늘 저희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이 땅에서 무엇인가를 이룬 사람들은 주님을 신뢰한 사람들이었음을 압니다. 주님은 시인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고, 교회에 말씀하시며, 지친 자들을 기쁘게 하시고, 잃어버린 자들을 구원하시고, 병든 자들을 낫게 하셨습니다. 소망 없는 자들에게 소망을 주시고, 저희에게 이토록 큰 약속을 주셨습니다. 여기는... 이것은 그저 음화요 그림자이며, 언젠가 죽음이 그 사진을 음화에서 양화로 현상할 것입니다. 저희가 죽음이라는 그 무서운 산성 용액을 통과하면, 그때는 저희가 알려진 것같이 알고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여 보게 될 것입니다. 주님, 오늘 이곳에서 시편을 노래하고 간증하며 주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저희 자신을 준비할 때, 저희를 만나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이곳에 주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오늘 주님의 종이 되게 해 주십시오. 저희 모두에게 복을 주시고, 이제 성령께서 모든 사람의 마음을 붙들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제가 걸어온 그 길고 피와 눈물로 얼룩진 여정을 다시 돌아보고 마음속으로 되새길 시간이 두려워 제 마음이 괴롭습니다. 그러나 그 일을 생각할 때 저는 그 찬송을 생각합니다. “놀라운 은혜, 그 소리 얼마나 감미로운가. 나 같은 비참한 자를 구원하셨네. 한때 길을 잃었으나 이제 찾은 바 되었고, 눈멀었으나 이제 보네.” 주님, 오늘 저희를 도와주시고, 성령께서 이곳에 계셔서 이 모임 가운데 저희에게 복을 주시옵소서. 주님의 사랑하는 자녀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이제 제 삶의 일부를 말씀드리려 합니다. 백스터 형제님이 여러분께 여러 번 말씀하셨을 것이고 제 책에도 나옵니다만, 주님의 천사께서 어떻게 제게 오셨고 제 삶을 어떻게 인도하셨는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오늘 오후에는 다른 쪽에서, 그저 한 인간의 삶이라는 면에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제 아버지는 배우지 못한 분이었습니다. 아마 자기 이름을 눈앞에 써 놓아도 읽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하셨습니다. 우리는 켄터키 산간 지방에서 자랐습니다. 어머니의 아버지는 학교 선생님이셨으므로 어머니는 상당히 좋은 교육을 받으셨습니다. 하지만 이곳에 제가 태어난 켄터키의 버크스빌 근처 출신이 계시다면 아시겠지만, 그곳에서는 개울물이 불어나면 학교는 끝이었습니다. 아이들 대부분은 옥수수밭에서 목이 굽은 괭이로 프리버스[원문 불명확]와 잡초를 베며 교육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무척 어려운 시절을 보냈고 아주 가난하게 자랐습니다.
제가 태어난 작은 오두막에는 방이 두 개 있었습니다. 얼마 전에 저기 있는 제 책에 넣으려고 그 작은 통나무집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아버지는 젊었을 때, 아마 스무 살쯤에 켄터키를 떠나셨습니다. 저는 세 살쯤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인디애나로 이사하셨습니다. 우리는 제퍼슨빌 바로 위쪽, 제퍼슨빌에서 북동쪽으로 나가는 유티카 파이크 길가에 살았습니다. 저는 거기 유티카 파이크 학교에서 공부했습니다. 지금도 그 옛 터가 남아 있습니다. 나무들도 아직 주위에 있습니다. 저는 그곳을 지날 때면 어린 시절을 생각하며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거의 참지 못합니다. 그 시절만 한 때가 없습니다. 제 아버지는 돌아가셨습니다. 제 팔에 누워 계셨습니다. 머리카락이 제 팔에 드리워진 채 저를 올려다보고 미소를 지으시더니, 그 파란 눈을 감고 하나님을 만나러 가셨습니다. 여러 해 전입니다. 어머니는 제가 알기로 오늘도 살아 계십니다. 이제 연로해지셔서 제가 떠나려 할 때마다 그 가엾은 어머니는 울며 몸을 떠십니다. “빌리, 언젠가 네가 돌아오면 엄마가 여기 없을 거야”라고 하십니다. 저는 “어머니, 성문에서 기다리세요. 오래 걸리지 않을 거예요. 저도 곧 따라갈 테니까요”라고 합니다.
어머니는 늘 제가 비행기를 타는 것을 좀 걱정하십니다. 제가 비행기로 자주 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모두, 여기 계신 거의 모든 분에게 소년 시절, 아니, 어린 시절의 경험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 잠시 고향 집으로 돌아가 봅시다. 그 옛날로 돌아가고 싶지 않으십니까? 오, 저는 무엇이든 내놓겠습니다. 오늘 제게 백만 달러가 있다면, 돈이 생기는 즉시 틀림없이 주님의 일을 위해 쓰겠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그 집회장과 다른 것들을 짓고, 제가 말했던 모든 것을... 한 푼도 남김없이 주님의 일을 위해 쓰겠습니다. 하지만 오늘 그 돈이 제게 주어져 이 세상의 즐거움을 누리는 데 쓰게 된다면, 그 돈을 다 내놓고 제 아버지가 저 통로를 걸어와 제게 다가와서 “잘 있었느냐, 아들아” 한마디 하시고 사라지는 모습을 단 한 번만이라도 다시 볼 수 있다면, 저는 한 푼도 남김없이 내놓겠습니다. 저는 그저... 여러분도 먼저 가신 부모님을 위해 똑같이 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그 시절은 지나갔습니다.
여기 있는 젊은이 여러분, 어머니 아버지가 얼마나 좋은 친구인지는 그분들이 떠나시기 전까지는 모릅니다. 떠나신 뒤에야 그분들이 어떤 분이셨는지 정말 알게 됩니다. 요즘 아이들이 부모님을 “늙은 영감, 늙은 할멈”이라고 부르는 소리를 많이 들었습니다. 오, 절대로 그러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그분들이 어떤 분이신지 모릅니다. 무엇이 가장 좋은지 그분들은 아시고 여러분은 모릅니다. 아버지가 관에 누워 계신 모습을 보았을 때, 쉰두 살인데 머리 가장자리에 흰빛이 조금씩 도는 것을 보고 저는 ‘나를 걱정하신 일이 많아서 저런 흰머리가 생겼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드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그때는 이미 너무 늦었습니다. 그러니 나중에 후회할 일은 지금 하지 마십시오. 오늘만 바라본다면 비참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저 앞에 있는 끝을 바라보시고, 그 끝까지 그것을 위해 사십시오.
우리가 어렸을 때 언덕 위에 살던 집은 낡고 작은 집이었는데, 어쩐지 커 보이기도 했습니다. 절반은 널판, 아니, 비바람을 막는 외장 널판이고 절반은 통나무로 된 집이었습니다. 통나무 위에 외장 널판을 댄 아주 튼튼한 집이었습니다. 저는 그 집이 그 자리에서 절대로 없어지지 않고 영원히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우리에게 영구한 도시가 없고 오히려 우리가 다가올 도시를 찾습니다. 톨리도에 들어와, 아름다운 집들이 있는 여러분의 거리를 지나 이쪽 뒤로 갔을 때... 며칠 전 차를 타고 다니다가 제 낡은 트럭을 세웠습니다. 그 차도 거의 절반은 뒤로... 아니, 신앙이 퇴보했다고 할 수는 없고, 십오만 마일을 달렸습니다. 그저 닳아 버린 것이지 신앙이 퇴보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그 근처 개울 몇 군데를 따라가 보았는데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아름다운 집들과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마치 낙원에 사는 것 같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곳은 호수 바로 곁의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저도 이곳에 살고 싶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여기 톨리도가 더 이상 없을 때가 올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언젠가 원자폭탄이 이곳을 강타할 것입니다.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것이 사실임을 아십니다. 우리는 이제 그런 시대에 들어와 살고 있습니다. 때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늦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얼마 전 그 말을 들었을 때, 저는 벨기에와 그 주변 사람들이 전쟁에서 돌아왔던 일을 생각했습니다. 밤이면 밖에서 등불을 켰고 어린아이들이 등불을 들고 뛰어다녔습니다. 러시아 국경 부근에서는 사람들이 써레 같은 것을 끌며 땅을 긁고 있었습니다. 원반 쟁기로 갈 수가 없었습니다. 눈이 내리기 전에 곡식을 심으려고, 흙이 일어날 만큼만 겨우 긁고 있었습니다. 눈이 내리기 전에 그 곡식을 심지 못하면 이듬해에 거둘 것이 없고, 그러면... 모두 굶어 죽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곡식을 심으려고 밤낮으로 일하며 땅을 긁었습니다. 제 동역자인 목회자 형제님들, 오늘날 영적으로도 그와 같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마음에 이 곡식의 씨를 뿌리려고 밤낮으로 다녀야 합니다. 때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늦었습니다. 추수 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밤낮으로 이 일에 힘씁시다.
이제 말씀드린 대로 오늘 오후 우리 모두 잠시 고향 집으로 돌아가 봅시다... 우리가 살던 그 작고 낡은 집이 생각납니다. 밖에는 사과나무들이 서 있었고, 우리는 그 안으로 들어가곤 했습니다. 아버지는... 우리는 아버지를 아빠라고 불렀습니다. 아버지는... 몸집은 작아도 워낙 힘이 세셔서 저는 아버지가 절대로 돌아가시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벌목하는 분이셨습니다. 굵고 힘센 근육을 가지고 계셨고, 소매를 걷어 올리고 오래된 사과나무 아래에서 씻으시곤 했습니다. 여러분도 사과나무 아래 작은 의자 위에 세숫대야를 놓고 쓰셨습니까? 거기에는 금이 간 낡은 거울 조각 하나가 놓여 있고, 씻을 때 쓰는 비누는 나뭇가지 위에 얹혀 있었습니다. [불분명한 말] 모두들 웃으시는군요. 여러분도 그런 경험이 있으셨겠지요... 저만 시골 출신은 아니군요.
짚을 채운 요 위에서 주무셔 본 분, 손을 들어 보십시오. 아, 저는 외투를 벗겠습니다. 집에 온 것 같군요. 짚으로 채운 요라, 참 좋지요. 옥수수 껍질을 넣은 베개는요? 오, 그렇습니다. 히코리 나무 연기에 훈제한 햄과 수수 당밀만큼이나 미국다운 것들 아닙니까? 정말 멋집니다. 우리에겐 그 낡은... 어느 날 밤은 절대로 잊지 못합니다. 타작이 끝난 뒤 요에 새 짚을 채웠습니다. 커다란 증기 롤러처럼 생긴 탈곡기가 왔다 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잠자리 안에 무엇인가 저와 함께 있어서 겁이 났습니다. 알고 보니 어머니 말씀으로는 요 안에 메뚜기가 들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 위로 뛰어올라서 저는 무엇인가가 저를 잡은 줄 알았습니다. 요에 넣은 새 짚 속에 메뚜기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새로운 날들만 한 때는 없지요?
아버지가 식탁을 만드시던 것도 생각납니다. 판자를 대고 그 뒤에 긴 의자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러면 이 아일랜드 꼬마들 무리가 식탁 밑으로 달려 들어가 제 자리에 앉았습니다. 얼굴을 씻고 머리는 아주 매끈하게 빗어 넘기고, 작은 얼굴은 껍질 벗긴 양파처럼 반질반질했지요. 그렇게 식탁 뒤에 앉았습니다. 식사는 모든 것을 한 냄비에 넣고 끓인 멀리건 스튜였습니다. 멀리건 스튜가 무엇인지 아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오, 온갖 것을, 제 생각에는 행주까지 넣어 함께 끓인 다음 돌아가며 접시에 부어 주는 요리입니다. 팬에 구운 옥수수빵을 드셔 보셨습니까? 오, 참 좋지요? 이제 꼭 집에 온 것 같습니다. 그러니 제가 ‘힛’, ‘헤인트’, ‘캐리’, ‘페치’ 같은 시골 말을 온통 써도 괜찮으시겠지요? 그저 집에 온 것 같습니다. 그리고 [불분명한 말] 어머니는 옥수수빵을 반으로 잘라 접시에 놓으셨습니다. 저는 아버지 옆에 앉았고, 접시가 돌 때마다 각자 제 몫을 떼어 먹었습니다. 저는 늘 모서리를 골랐습니다. 껍질이 많아서 콩국과 함께 먹기 좋았기 때문입니다. 커다란 그릇에 담은 콩국과 이만한 양파 한 조각, 옥수수빵, 샘물에 담가 두었던 커다란 잔의 버터밀크라면, 오늘 오후 참 좋지 않겠습니까? 음, 참 좋겠습니다. 우리는 샘으로 내려가, 물이 낡은 통 위로 흘러내리게 해 두었던 그 차가운 버터밀크를 가져오곤 했습니다. 정말 좋았습니다.
식사 시간이 되어 우리 모두 아버지와 함께 식탁에 모이던 때가 생각납니다. 아버지는... 그 시절을 살았다는 것이 참 좋습니다. 오늘 오후에도 잠시 다시 그 자리에 앉아 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가고 저는... 우리는 토요일 밤이면 시내에 갔습니다. 여러분도 토요일 밤에 식료품을 사러 가던 때를 기억하십니까? 우리에게는 낡은 저지 마차가 한 대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뒤에 짚을 깔아 주시면 우리 아이들은 모두 거기 올라타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앞에 앉으셨습니다. 작은 노새 한 마리가 끄는 마차를 타고 칠 마일쯤 떨어진 시내로 갔습니다. 아버지의 하루 품삯은 칠십오 센트였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한 주를 지낼 식료품과 여러 물건을 사셨습니다. 식료품 값을 치르면 가게 주인 그로어 씨가 작은 사탕 봉지, 옛날식 박하 막대사탕을 우리에게 주었습니다. 오, 참 맛있었습니다. 그래서...
문제는 그 작은 브래넘 아이들은 여덟 명쯤인데 사탕은 여섯 개쯤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덟 쌍의 작은 아일랜드 눈동자가 사탕을 정확히 똑같이 나누는지 지켜보았습니다. 날씨가 추우면 우리는 마차 뒤에서 이불을 덮고 앉았습니다. 사탕을 받으면 다른 아이들은 모두 제 사탕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작은 꾀를 부렸습니다. 여기 있는 소년들은 따라 하지 마십시오. 안 통할 수도 있으니까요. 저는 사탕을 먹는 척하다가 종이봉지 조각 같은 것을 뜯어 싸서는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월요일까지 기다렸습니다. 어머니가 “윌리엄” 하고 부르시면, “네, 어머니” 했습니다. “샘에 가서 물 한 통 길어 오너라.” 커다란 삼나무 물통과 바가지가 있었습니다. 샘까지 내려가야 했는데, 그 물통이 무거웠습니다. 그러면 저는 바로 아래 동생 에드워드를 불렀습니다. 별명으로 험피라고 불렀지요. “에드워드, 이렇게 하자. 네가 나 대신 물 한 통 길어 오면 내가 열을 셀 때까지 이 막대사탕을 핥게 해 줄게.” 하하하. 그래서 월요일에는 사탕이 남아 있는 한 제가 해야 할 심부름이 별로 없었습니다. 저는 사업가였지요. 하하하. 동생이 사탕을 핥는 동안 저는 수를 세었습니다. “하나, 둘, 셋...” “그렇게 빨리 세지 마.” 저는 “둘, 셋” 했습니다. “너무 빨리 세잖아.” 다시 처음부터 세면 동생은 두어 번 더 핥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는 사탕을 다시 싸 두었다가 다른 심부름이 생기면 꺼냈습니다. 월요일은 편안했습니다. 저는 한가한 사람이었지요. 오,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정말 맛있는 사탕이었습니다. 내일 나가서 허쉬 초콜릿 한 상자를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때 그 사탕 같은 맛은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정말 맛있었습니다.
소금 뿌린 크래커와 함께 드셔 보셨습니까? 옛날 통에 넣어 팔던 큼직한 크래커 말입니다. 그 크래커와 박하사탕을 함께 드셔 보셨습니까? 흑설탕과 함께 드셔 보셨습니까? 제가 살면서 두 번째로 훔친 것, 제가 아는 한 그것뿐인 것은 아버지의 흑설탕 한 줌이었습니다. 상자에 흑설탕을 넣어 두고 아침 식사에 먹을 당밀을 만들었습니다. 흑설탕 당밀을 드셔 보셨습니까? 오, 저는 잠시 후 여러분 중 누군가의 집에 가서 식사를 해야겠습니다. 제가 들어가자 동생이 말했습니다. “형이 가서 설탕을 가져오면 내가 크래커를 가져올게.” 저는 “그래” 했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밭에서 김을 매고 계셨습니다. 저는 들어가서 우리 둘이 먹기에 넉넉하도록 한 움큼 집었습니다. 그것을 들고 나오는데, 거짓말을 할 때는 똑바로 쳐다볼 수도 없지요. 나가는 길이 밭 옆으로 난 그 길뿐이라, 그렇게 밭을 따라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보시며 “윌리엄, 어디 가니?” 하고 물으셨습니다. “네?” “어디 가느냐?” “헛간에 가요.” 아버지는 “손에 든 게 뭐냐?” 하셨습니다. 저는 ‘어, 어’ 하고 생각했습니다. 손을 바꿔 들며 “어느 손이요?” 했습니다. 하하하하하. “이리 와.” 오, 하하하. 저는 그 뒤로 오랫동안 설탕을 먹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하하. 그래도 참 맛있긴 했습니다. 아직 설탕 얘기를 하는 겁니다. 하하하. 아버지는 저희에게 매를 드실 때 가죽 벨트 조각으로 만든 면도칼 가는 가죽띠를 쓰셨습니다. 오, 저는... 문 위에는 ‘황금률’을 걸어 두셨는데, ‘십계명’이 모두 달려 있었습니다. 히코리 나뭇가지였습니다. 이만큼 긴 가지에 열 개의 잔가지가 달려 있었지요. 우리는 장작 헛간에서 아버지 주위를 온 힘을 다해 빙빙 돌면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테이프의 공백] 그런 아버지가 더 많으면 훨씬 나을 것입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일요일 오후에 아이의 비위를 맞추며 영화 보러 가라고 오십 센트를 주는 대신에 말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얼마 전 아픈 분을 위해 기도하러 어느 집에 갔습니다. 어린 남자아이가 들어왔고, 어린 메리가 발을 구르며 “나 이거 안 먹을 거야”라고 했습니다. “글쎄, 엄마...”라고 했습니다. 남자아이는 “이 오렌지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하더니 그것을 집어 들고 저쪽에 내던졌습니다... “괜찮아, 얘야”라고 하더군요. 오, 하하하. 그 애가 찰스 브래넘의 아들이었어야 했습니다. 하하하. 그랬다면 한두 주 동안은 오렌지를 먹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버지는 그 버릇을 고쳐 주셨을 것입니다. 낡은 머스킷총에서 장전봉을 꺼내, 늘 하시던 표현대로 “우리 안에 있는 마귀를 두들겨 내쫓으셨을” 것입니다. 아마 그런 뜻이었겠지요. 어쨌든 그때는 마귀가 나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저는 아버지를 사랑합니다. 제가 매를 맞을 일을 하지 않았는데 때리신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저는 오늘도 아버지를 사랑합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와 앉아서 이야기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언젠가는 그렇게 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그곳에 가면 서로 알아보리라 믿습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습니까? 지금 제가 여러분을 알듯이, 그때도 여러분을 알아보리라 믿습니다. 다만 그때는 우리가 죽지 않는 사람이 되어 서로 알아볼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은 엘리야와 모세를 알았습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그들을 알아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영광스럽게 된 몸으로 돌아오셨을 때도 우리는 그분을 알아봅니다. 성경은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분과 같은 몸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분을 그분께서 계신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그런 몸을 갖게 됩니다. 그분은 음식을 드시는 등의 일도 하셨습니다. 저는 우리가 갈 천국이 참으로, 참으로 실제인 장소라고 믿습니다. 아멘. 이제 제가 학교에 들어갔을 때가 생각납니다. 얼마 전 학교가 있던 옛터에 서서 바라보았는데, 가슴이 터질 것 같았습니다. 그 학교에 다니던 때가 기억납니다. 우리 가엾은 어린아이들은 입을 옷이 거의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철저한 아일랜드 사람이셨습니다. 식료품 값을 치르는 데 필요한 돈을 빼고는 남는 돈을 모두 술 마시는 데 쓰셨습니다. 우리는 입을 옷도 없이 학교에 갔습니다. 어느 겨울 내내 그랬던 것이 기억납니다. 가난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만, 저는 입을 외투조차, 아니, 입을 셔츠조차 없었습니다. 웨이선 부인이라는 부유한 분이 주신 외투가 하나 있었는데, 소매에 작은 독수리 무늬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이렇게 핀으로 여며 입고 매일 학교에 갔습니다. 종이 한 장도 빌려 써야 했고 공부할 책도 없었습니다. 제가 무식한 것도 당연하지요. 아니, 배움이 없다고 하는 게 맞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종이도 책도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지금처럼 지역사회나 학교에서 학용품을 대 주지도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해 저는 공부하고 싶었지만 공부할 책과 학용품이 없어 그럴 기회가 없었습니다. 봄이 되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저는 겨울 내내 셔츠 없이 지냈습니다. 학기가 끝나기 전 날씨가 제법 따뜻해졌는데, 하루는 선생님이 “윌리엄, 그 외투 입고 있으면 덥지 않니? 외투를 벗어라” 하셨습니다. 저는 외투를 벗을 수 없었습니다. 셔츠가 없어 맨살이 드러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니에요, 선생님. 조금 추워요”라고 했습니다. “이런 날 추워?” “네, 선생님.” “이리 와서 난로 옆에 앉는 게 좋겠다.” 아, 선생님이 그 커다란 난로에 불을 지피시자 제 얼굴에서 땀이 줄줄 흘렀습니다. 선생님은 “아직도 서늘하니? 아직 추워?” 하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네, 선생님” 했습니다. 선생님은 “집에 가는 게 좋겠다. 네가 아프구나” 하셨습니다. 저는 아프지 않았습니다. 셔츠가 없어서 외투를 벗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다시 학교에 갈 수 있을까 생각하며 며칠을 기다렸습니다. 우리 집에서 조금 떨어진 언덕 너머에 고모가 살고 계셨습니다. 우리는... 그 집 식구들이 놀러 오곤 했는데, 그분에게 여... 저와 비슷한 또래의 딸이 있었습니다. 그 아이가 우리 집에 자기 원피스를 놓고 갔습니다. 어느 날 저는 그 옷으로 셔츠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래쪽은 잘라 내고 윗부분을 바지 안에 쑤셔 넣어 입고 학교에 갔습니다. 소매는 이렇게 짤막했고, 옷에는 온통... 옷 주위에 이렇게 둘러 달린 것을 뭐라고 하지요? 아, 맞습니다. 지그재그 장식 띠입니다. 그런 것이 온통 달려 있었습니다. 그러자 아이들이 “그거 여자애 원피스잖아”라고 했습니다. 저는 “내 인디언 옷이야” 했습니다. 하하하. 인디언 옷이라고 했지요. 그 아이의 원피스에 지그재그 장식 띠가 온통 달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저를 보고 웃곤 했습니다.
그 겨울 학교의 아이들이... 1917년이었습니다. 인디애나에 큰 눈이 내렸습니다. 그때까지 기억하시는 분이라면, 여기 오하이오에도 눈이 왔을 것입니다. 진눈깨비가 내렸고 눈더미는 때로 십칠, 십팔 피트나 되었습니다. 아이들 대부분은 썰매가 있어 썰매를 탔습니다. 동생과 저는 썰매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쓰레기 더미에서 낡은 설거지 대야 하나를 주워 왔습니다. 우리는 그 대야 안에 들어갔습니다. 표면이 온통 얼어붙어 있어서, 우리는 앉아서 서로 다리를 감고 언덕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갔습니다. 다른 아이들만큼 근사하지는 않아도 우리도 똑같이 미끄럼을 탔습니다. 그 대야 바닥이 빠질 때까지는 괜찮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썰매를 찾아야 했습니다. 우리는 통나무 하나를 구해 짧게 잘랐습니다. 우리는 땔감을 강가나 숲에서 잘라 가져와야 했습니다. 저녁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깜깜해질 때까지 나무를 톱질해야 했습니다. 그 통나무를 타고 얼음 위를 미끄러져 내려갔던 일이 생각납니다. 그 학교에 다니는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제가 잘못 아는 게 아니라면 오늘 오후 여기 우리 타버내클 교회에서 오신 분들이 계십니다.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그 아이는 로이드 포드였습니다. 그를 아시는 분들께 말씀드립니다... 라이언 형제님은 로이드 포드가 누구인지 분명히 아실 것입니다. 조금 전에 여기서 라이언 형제님을 뵌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 그분과 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이어서 군복을 입을 만큼 자란 사람은 모두 군복을 입었습니다. 오, 저는 군인이 너무나 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제가 군대에 갈 나이가 되자 받아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결국 저는 군대에 들어가 군복을 입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눈에는 안 보일지 모릅니다. 겉에 입은 것이 아니라 안에 입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대열에 들어갔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성령을 주셨고, 저는 오늘 전쟁 중에 있습니다. 옳은 것과 그른 것 사이의 싸움에서 옳은 것 편에 서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보이든 보이지 않든 저는 제 군복을 느낍니다.
그 아이에게 제가 말했습니다. “네가...” 그 아이에게는 보이스카우트 제복이 있었고, 「패스파인더 매거진」을 팔았습니다. 저는 “그 옷이 낡으면 나한테 줄래?”라고 했습니다. 그 아이는 “그래” 했습니다. 저는 옷이 그렇게 오래가는 것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후, 그 아이가... 마침내 오랫동안 그 옷을 입지 않는 것을 보고 “로이드, 그 제복은 어떻게 됐어?” 하고 물었습니다. 그 아이는 “엄마한테 물어볼게” 했습니다. 그러더니 “없어. 엄마가 웃옷으로 깔개를 만드셨고, 바지는 아빠 바지 깁는 데 쓰셨어. 각반 한 짝밖에 안 남았어”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거라도 가져다줘” 했습니다. 그래서 옆에 조그만 조임끈이 달린 각반 한 짝을 얻었습니다. 그것을 차고 학교에 가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하루는 외투 안에 넣어 갔다가 통나무를 타고 언덕을 내려갈 때 다리를 다친 척했습니다. “아이고, 다리를 몹시 다쳤어. 그러고 보니 여기 내 스카우트 각반이 한 짝 있어.” 그 각반을 끌어 올려 찼습니다. 오, 그때는 제가 정말 대단한 사람이나 된 줄 알았습니다.
낡은 칠판 앞으로 나갔던 것이 생각납니다. 시골 학교에 다녀 보셨습니까? 한 곳에 여덟 학년이 있는 시골 학교에 다닌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불분명한 말] 저는 문제를 풀려고 칠판 앞에 이렇게 섰습니다. 이쪽 다리에 각반을 차고 있었으므로 몸을 이렇게 옆으로 틀고 문제를 풀었습니다. 모두 그 각반 한 짝을 보라는 것이었지요. 아이들이 모두 웃기 시작하자 저는 울기 시작했고, 선생님은 저를 집으로 보내셨습니다. 하하. 오, 그때는 참 힘겹게 살았습니다. 어느 크리스마스 무렵 어머니가 팝콘을 튀기신 것이 생각납니다. 정말 귀한 것이었습니다. 동생과 저는 다른 아이들처럼 점심을 싸 갈 수 없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의 어머니들은 오븐에 빵을 구워 주셨는데, 오, 정말 근사했습니다. 우리는... 그 아이들은 샌드위치를 가지고 왔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정도 높이의 작은 당밀 통을 썼습니다. 한쪽에는 푸성귀를 담은 작은 병, 다른 쪽에는 콩을 담은 작은 병을 넣고, 그 사이에 각자 먹을 빵 한 조각씩과 숟가락을 끼웠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샌드위치와 케이크, 쿠키 같은 것을 먹으니 그 아이들 앞에서는 먹기가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언덕 너머로 가 앉았습니다. 그 작은 병들을 우리 사이에 놓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동생에게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지금은 영광 가운데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마주 앉아 함께 먹곤 했습니다.
어머니가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하려고 팝콘을 튀기셨던 것이 생각납니다. 우리는 삼나무 한 그루를 가져와 그 둘레를 팝콘으로 감았습니다. 팝콘이 넉넉히 남아서 어머니가 작은 통 하나에 가득 담아 따로 주셨습니다. 그날 우리는 그것을 학교에 가져갔습니다. 열 시쯤 되자 저는 그게 얼마나 맛있을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손을 들었습니다. 선생님이 묻자 저는 “잠깐 나가도 될까요?”라고 했습니다. 선생님은 “그래” 하셨습니다. 외투 보관실을 지나가면서 뚜껑을 열고 팝콘을 아주 크게 한 줌 집었습니다. 밖으로 나가 낡은 굴뚝 뒤에 서서 그것을 먹었습니다. 정말 맛있었습니다. 점심때가 되면 동생이 줄어든 것을 알아챌 줄 알았습니다. 우리는 언덕 비탈에 앉았습니다. 아이들이 그렇듯 팝콘부터 먹고 싶었습니다. 뚜껑을 열어 보니, 제가 집어 먹은 한 줌 때문에 거의 절반이 없어졌습니다. 동생이 “이것 봐, 무슨 일이 있었지?”라고 했습니다. 저는 “분명히 있었지” 했습니다.
얼마 전 텍사스에서 부흥집회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였습니다. 집을 나와 사람들에게서 잠시 벗어났던 것이 기억납니다. 잠깐 벗어날 수 있게 되자 아내와 어린 딸을 데리고 차를 타고 길을 나섰습니다. 우리는 옛 학교에 들렀고, 아내와 딸은 제비꽃을 따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낡은 펌프에서 다시 한번 물을 마시고 싶었습니다. 물을 마셨는데, 여러분, 이 나라에는 플로리다에서 애리조나에 이르기까지 아름다운 경치가 있을지 몰라도, 좋은 물은 바로 우리 지역에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이곳 미국 중부, 석회암 채석장이 있는 지역의 물보다 좋은 물은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 물을 마시다가 이렇게 울타리에 기대어 옛 학교가 있던 곳을 바라보았습니다. 학교는 없어졌습니다. 전쟁 때 우리 아이들이 그곳에 줄지어 서 있던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우리가 신었던 양말은 어쩌면 흘러내려 있었고, 신발 밖으로 발가락이 거북이 머리처럼 튀어나와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서로의 어깨에 손을 얹었고, 선생님은 커다란 막대기를 들고 우리 줄을 맞추셨습니다. 그렇게 발을 맞춰 걸으며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저는 그 줄을 따라 한 명씩 떠올렸습니다. ‘그래, 랠프 필즈는 영원으로 갔지.’ 소년 서너 명을 더 불러 보았습니다. ‘윌리엄 헨슬도 영원으로 갔어. 그 옆에는 누가 섰지? 나였구나.’ 저는 생각했습니다. ‘내 옆은 누구였지? 에드워드, 영원으로 갔어.’ 제 바로 뒤를 보니 빌 올트가 있었습니다. 영원으로 갔습니다. 그 뒤의 하워드 히긴스도 영원으로 갔습니다... 오, 옛집이 서 있던 언덕 너머를 보니 주택단지가 들어서 있었고 집은 없어졌습니다. 그곳은 예전 같지 않았습니다. 옛 샘은 막혔고, 밭은 남의 집 잔디밭이 되었습니다. 겨우 이십몇 년 사이의 일이었습니다. 저는 거기서 울기 시작했습니다. ‘오, 하나님, 여기에는 우리에게 영구한 도시가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아버지 생각이 났습니다. ‘검은 물결 머리의 아버지가 밭을 가로질러 오시는 것을 보곤 했지. 대문 앞에서 어머니와 우리 아이들을 만나면 우리를 품에 안고 집 안으로 들어가셨지.’ 하지만 아버지는 가셨고, 그 집도 이미 무너져 없어졌습니다. “여기에는 우리에게 영구한 도시가 없고 오히려 우리가 다가올 도시,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만드신 도시를 찾습니다.”
거기 서서 울기 시작했습니다. 옛날 동생 몫의 팝콘 한 줌을 가져다 먹었던 날이 생각났습니다. 저는 그저... 처음으로 제가... 어려울 때는 빵 끄트머리라도 먹었습니다. 사실입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닙니다. 정말입니다. 저는 늘... 누가 샌드위치 같은 것을 사 주면 저도 그 사람에게 사 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집회를 몇 번 열어 헌금도 한두 번 받았습니다. 그래서 “오, 하나님, 오늘 저를 이곳에서 들어 올려 동생에게 그 팝콘 한 줌을 가져다주게 하실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주님, 그 팝콘 한 줌을 동생에게 줄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드리겠습니다. 무엇이든요”라고 했습니다. 동생은 열아홉 살에 죽었습니다. 제가 서부의 목장에서 일하고 있을 때였는데, 저를 부르며 죽었습니다. 병원에서 “가기 전에 형 빌을 한 번만 더 보게 해 주세요. 형에게 착하게 살라고 전해 주세요” 하는 소리가 거리까지 들렸다고 합니다. 그렇게 동생은 떠났고, 제게는 동생에게서 팝콘 한 줌을 빼앗았다는 오점이 남아 있었습니다. 동생을 묻던 무덤이 생각납니다. 오, 우리는 참으로 형제였습니다. 첫눈이 왔을 때 어머니 담요 하나를 가져다가 동생 무덤 위에 덮어 주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추울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동생이 거기에 있지 않고, 먼저 갔다는 것을 압니다.
제가 울기 시작하자 아내와 어린 딸이 듣고 와서 말했습니다. “빌, 쉬러 집에 온 줄 알았는데요.” 그들은 저를 데리고 와 아이를 제 어깨에 앉혔습니다. 저는 옛터를 돌아보며 노래했습니다. 귀한 추억, 오래도록 남아서, 언제나 내 혼을 가득 채우네. 고요한 한밤중에, 귀하고 거룩한 모습들이 펼쳐지네. 그곳을 바라보다가 돌아서서 우리는 차에 타고 떠났습니다. 저는 소년 시절에 다소 수줍음이 많았습니다. 그런 이야기 중 상당수는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다소 수줍음이 많았는데, 이상하게 들리실지 모르지만 저는 사실 여자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여자아이들도 전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술을 마시러 다니던 강가에서, 남편은 함께 오지도 않은 유부녀들이 올라와 남편에게 얼마나 신실하지 못하게 행동하는지 보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자들이 저렇다면, 어느 여자하고도 상관하고 싶지 않아”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결코 결혼하지 않고 여자들과 아무 관계도 맺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저는 덫으로 짐승을 잡는 사냥꾼이 되려고 했습니다. 사냥과 덫놓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니 제가 어떻게 결혼하게 되었는지 궁금하시겠지요. 열일곱, 열여덟 살쯤 되어 처음 데이트했던 때가 기억납니다. 남자아이들이 모두 그렇듯 처음 좋아하는 소녀를 만나면, 눈은 비둘기 같고 이는 진주 같고 목은 백조 같고, 여러분도 아시지요. 살면서 본 사람 중 가장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저도 그런 소녀를 만났습니다. 얼마나 예뻐 보였는지 모릅니다. 우리 집 가까이 살던 소년이 “이렇게 하자...”라고 했습니다. 그 아이에게도 여자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애들을 함께 만나자”라고 했습니다. 그 소녀들은 학교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함께 만나자. 내가 아버지의 낡은 포드를 가져올게.” 차 뒤쪽을 잭으로 들어 올리고 휘발유를 조금 넣고 시동 손잡이를 돌려야 했습니다. 예전에 어떻게 했는지 기억하시지요... 우리는 휘발유 이 갤런을 살 돈을 모았습니다. 그 정도면 오래 탈 수 있었습니다. 여자친구들을 데리고 차를 타러 나갔습니다. 그날 밤 밖으로 나갔던 일은 절대로 잊지 못합니다. 샌드위치와 콜라를 사려고 작은 가게에 들렀습니다. 들어가서 샌드위치를 사 왔고, 우리는 콜라를 마시고 샌드위치를 먹었습니다. 제가 병을 돌려주러 갔습니다. 여자아이들이 잘난 체하며 담배 같은 것을 피우기 시작한 때였습니다. 돌아와 보니, 놀랍게도 저의 작은 여왕이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습니다.
담배 피우는 여자에 대한 제 생각은 늘 같았고, 한 번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여자가 할 수 있는 가장 저속한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제가 여러분께 복음을 설교하러 나온 것은 아닙니다. 그 일은 이분들이 하십니다. 하지만 자매님, 한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것이 미국 안에 있는 가장 악한 내부의 적입니다. 의사들의 통계는 젖을 먹고 자란 아이들 가운데 팔십 퍼센트가 열여덟 달이 되었을 때 니코틴 중독으로 죽는다고 증명합니다. 그것은 통계입니다. 저는 정부 자료에서 얻었습니다. 그것은 니코틴이 [불분명한 말]. 얼마 전, 몇 시간 전에 아침 식사를 하면서 이 근처 작은 음식점에 앉아 있었는데, 쉰 살쯤 된 여자가 얼굴에 매니큐어를... 아니, 그걸 뭐라고 하든지, 얼굴 전체에 잔뜩 발랐는데 헛간 하나를 칠할 만큼이었습니다. 그 여자가 거기 앉아서 손에 담배를 들고 이렇게 하고 있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이 흉내 내신다.] 그렇게 타락하고 더럽혀진 그 여자가 불쌍했습니다.
형제님, 들으십시오. 러시아가 쳐들어와 우리를 무너뜨릴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스스로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자신의 도덕이 우리를 타락시키고 있습니다. 사과를 쪼는 울새가 사과를 망치는 것이 아니라, 속에 있는 벌레가 사과를 죽이는 것입니다. 지금 문제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흰개미들이 우리나라의 기초를 갉아먹고 있습니다. 일어나 나가지 마십시오. 제 말을 들으십시오. 여자분들, 그런 것들을 쓰고 계시다면 예수님을 위해 더 이상 쓰지 마십시오. 오늘을 그날로 삼고 지금부터 그만두십시오. 제가 섬기는 하나님의 천사께서 제게 계시하신 바와 같이, 그런 일을 하는 여러분에 대한 평가가 천국 문에 갔을 때에도 그보다 나아지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분명히 문밖에 서게 될 것입니다. 명심하십시오. 저를 하나님의 선지자로 받아들이신다면, 영광의 문에 들어갈 생각이 있으시다면 그런 것들을 멀리하십시오. 그렇습니다.
제가 어린 소년일 때 그분께서 만나 주셨을 때, 처음 하신 말씀이 “절대로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지 말고, 어떤 식으로든 네 몸을 더럽히지 말아라. 네가 나이가 들면 할 일이 있을 것이다”였음을 압니다. 여러분이 아시듯, 그 천사께서 저 아래 덤불에서 저를 만나 주셨을 때... 그 예쁜 소녀가 거기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습니다. 저는... 소녀는 “담배 피워 봐, 빌리”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니, 나는 담배를 안 피워” 했습니다. 소녀는 “너 춤도 안 춘다고 했지?”라고 했습니다. 일행은 춤추러 가려고 했습니다. 저는 “안 춰” 했습니다. 소녀는 “춤도 안 추고, 술도 안 마시고, 담배도 안 피우고, 그러면 뭘 좋아하니?”라고 했습니다. 저는 “사냥과 낚시를 좋아해...”라고 했습니다. [테이프의 공백]
저는 그냥 일어나 그날 밤 언덕을 넘어 들판에 가 앉았습니다. 달빛이 비치고 있었습니다. “나는 친구를 사귈 수가 없어. 다른 소년들 사이에서 따돌림받는 처지야. 주님, 누군가 저를 죽게 해 주세요. 이렇게 살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갇힌 사람이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보니 그 모든 일이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 안에 있었습니다. 그때 친구를 많이 잃었을지 모르지만, 옳은 일을 하고 그분을 붙들었기 때문에 오늘은 만 배나 더 많이 돌려주고 계십니다. 그때 저는 “오, 모르겠습니다. 차라리 삶을 끝내려 하는 편이 낫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조금 후에는 ‘그래도 끝까지 견뎌 보자’고 생각하며 계속 살아갔습니다. 세월이 흘렀고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결혼하게 되었을 때... 이 소녀를 만났습니다. 오늘 오후 여기 앉아 있는 제 아들이 자기 어머니에 대해 이 이야기를 알게 되어 참 기쁩니다. 아내는 어느 모로 보나 정숙한 여성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 소녀였습니다. 만나 보니 참 좋은 사람이어서 교제하기 시작했습니다. 담배도 피우지 않고 술도 마시지 않고 춤도 추지 않았고 그런 장소에 가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던 일은 밤에 차를 타고 다니는 것뿐이었고, 정해진 시각인 아홉 시까지 돌아와야 했습니다. 저는 돌아오곤 했습니다. 아내는 참 정숙했고 부모님도 좋은 분들이셨습니다. 참 좋은 소녀라고 생각했지만, 그 아버지는 펜실베이니아 철도의 조직 담당자로 대공황 때도 한 달에 오백몇 달러를 버셨습니다. 저는 도랑을 파며 시간당 이십 센트를 벌었습니다. 그런 소녀를 아내로 맞아 살려면 얼마나 필요했겠습니까? 하지만 아내는 정말 사랑스러웠습니다. 오늘도 제가 얼마 전에 심은 꽃들이 아내의 무덤에 있습니다. 그 아래 아내가 누워 있습니다. 아내의 몸이요. 혼은 제 아기와 함께 영광 가운데 있습니다. 오늘도 저는 마음을 다해 아내를 사랑합니다. 아내는... 얼마나 사랑스러운 사람이었는지요.
그렇게 아내가 제 삶에 들어왔습니다. 마침내 제가 “이제 당신은...”이라고 말해야 하는 지점에 이른 것을 알았습니다. 결혼하거나, 아니면 그 소녀를 놓아주어 다른 사람을 만나게 해야 했습니다. 그런 소녀, 그런 정숙한 여성이라면 틀림없이 잘해 줄 사람을 만날 것이고, 제 수입으로는 돌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작별하고, 그녀를 돌볼 수 있는 다른 청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 소녀를 사랑했기 때문에, 함께 지내는 것을 희생하더라도 돌봐 주고 넉넉히 살게 해 줄 사람에게 보내 주려 했습니다. 결심하려 애쓰다가 ‘어쩌면 내가 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먹여 살릴 수 있을지도 몰라’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꺼내기가 너무 어려워.’ 마침내 ‘어떻게 물어볼까?’ 생각했습니다. 제가 어떻게 했는지 궁금하시겠지요. 저는... 한 달쯤 용기를 내려고 애썼습니다. 형제님들도 그렇게 어려우셨는지 모르지만 저는 몹시 힘들었습니다. 그 소녀를 보면 예쁘고 착한 소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우리가 함께 살면 행복하지 않을까. 가진 것이 많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말할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말해 보려고 했지만 저는... 그 묘한 기분을 아시지요. 목이 메어서 도무지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청혼했는지 아십니까? 저와 결혼해 주겠느냐고 편지를 써서 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친애하는 아가씨께’ 같은 말투는 아니었습니다. 그것보다는 조금 더, 뭐라고 하지요, 낯간지러운 말투였지요. 저와 결혼해 주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어느 날 밤 그것을 전부 써서 편지봉투에 넣고, 다음 날 출근하면서 우체통에 넣었습니다. 일요일 밤, 아니, 수요일 밤에 그 소녀를 교회에 데려가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수요일 밤이 가까워지자 긴장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생각도 못 하고 우체통에 넣었는데, ‘어머니가 그 편지를 보시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어머니도 좋은 분이고 오늘 오후 이곳에 계실지도 모릅니다. 나쁜 뜻으로 하는 말이 아닙니다만, 아버지는 정말 좋은 분이셨습니다. 브룸바흐라는 성의 독일인이셨습니다. 어머니는 스코틀랜드계였고, 저는 아버지 찰리와는 잘 지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와 저는... 서로 생각이 맞아야 하는데 잘 맞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좀 고상한 취향을 지니셨고, 저는 그저 시골 농사꾼 청년이었습니다. ‘만일 그 어머니가 편지를 보셨다면, 오, 거기 가서 한 소리 듣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수요일이 되자 너무 긴장되어 거의 갈 수가 없었습니다. 저에게는 신앙이 퇴보한 낡은 포드 한 대가 있었는데, 그 차야말로 정말 퇴보한 차였습니다. 거의 시속 사십 마일을 낼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이십 마일, 위아래로 이십 마일이었지요.
제가 미시간주 도와지액에 계신 존 라이언 형제님을 처음 방문한 것도 바로 그 포드를 타고서였습니다. 라이언 형제님, 이 이야기 기억하시죠. 저는 ‘오, 이런’ 하고 생각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제가 아는 한, 제 삶 이야기를 할 때 라이언 형제님이 자리에 계신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습니다. 잠시 후에는 그분 이야기도 나올 것입니다. 그때 저는 ‘어머니가 편지를 보셨으면 어떡하지? 문제가 생길 텐데’라고 생각했습니다. 수요일 밤이 되어 집 앞에 차를 세웠습니다. 경적을 울리면 안 된다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소년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사귈 만한 소녀라면 집 안으로 들어가 데려올 만한 가치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집 앞에 앉아서 경적을 울리면 안 됩니다. 그래서 문으로 가서 두드렸습니다. 소녀가 와서 문을 열고 말했습니다. “어머, 안녕하세요, 빌리. 들어오세요.” 저는 ‘아이고, 나를 안에 들여놓고 문을 닫으면 꼼짝없이 당하겠구나. 집 안으로 끌어들이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고마워요, 호프. 여기 현관에 앉아 있어도 될까요?”라고 했습니다. “아니에요, 어서 들어오세요.” ‘아이고.’ 안으로 들어가 모자를 손에 들고 물었습니다. “교회 갈 준비 거의 다 됐어요?” “잠깐이면 돼요. 어머니, 제가 준비를 마치는 동안 빌과 이야기 좀 나누세요.” 오, 브룸바흐 부인이 들어와 앉으셨습니다. 땀이 난다는 것이 뭔지 그때 알았습니다. “날씨가 참 좋군요”라고 했습니다. “그렇군요, 빌리.” 조금 앉아 있는데 그 소녀가 영영 준비를 마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마침내 나와서 “저녁 날씨가 정말 좋네요. 교회까지 걸어가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 이제 그 시간이 왔구나. 당신 모습을 잘 보아 둬야겠다. 마지막으로 함께 있는 시간이 될 테니까. 분명해. 이제 끝났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탄이 어떻게 거짓말하는지 아시지요. 무엇이든 믿게 만듭니다. ‘이것으로 끝이구나. 그만 만나자고 하려는 거야.’ 교회에 갔지만 그날 밤 목사님이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전혀 듣지 못했습니다. 그저 소녀를 보며, 얼마나 예쁘고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생각하고, 부디 잘해 줄 사람을 만났으면 하고 바랐습니다. 소녀를 보며 ‘오...’라고 생각했습니다. 데이비스 형제님이 앞에서 설교하고 계셨지만 저는 무슨 말씀인지 듣지 못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밖으로 나가며 ‘이제 그 말을 듣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집으로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달 밝은 밤이었습니다. 나무 그늘 아래로 걸어갔다가 밖으로 나오면... 그 소녀의 눈은 짙은 갈색이었는데, 돌아볼 때면 저는 그저... 그 묘한 기분을 아시지요. 여러분도 다 그러셨습니다. [불분명한 말] 그렇습니다. 저는 제 일을 인정할 뿐입니다. 하하하.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죠. 손을 들어 보십시오. 이제 낫군요. 그렇습니다. 그런 기분이 들었습니다. 집 가까이 왔을 때는 소녀가 잊었거나 편지를 못 받았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우체통에 걸렸을지도 모르니까요. 그러자 제법 용기가 나서 길을 걸으며 활기차게 이야기했습니다. 다음 일요일 밤 이야기도 하면서 걸어갔습니다. 기분이 아주 좋았습니다. 그런데 집에서 한 블록쯤 남았을 때 소녀가 “빌리”라고 했습니다. 저는 “네?” 했습니다. “편지 받았어요.” 오,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어, 어, 받았어요?” “네.”
계속 걸어가는데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제발 무슨 말 좀 해요’라고 생각했습니다. 여자들은 그렇게 사람을 조마조마하게 만들 줄 알지요. 이런 대목에서는 남자분 한 분쯤 “아멘”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용기를 내십시오. 하하하. 그러더니 소녀는... 저는 ‘어떡하지?’ 하고 생각했는데, 소녀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집까지 몇 집 안 남았으니 제가 무슨 말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읽어 봤어요?” 하고 물었습니다. “네.” 그 말뿐이었습니다. 저는 ‘제발 말을 해요. 다시 오지 말라고 하든지, 쫓아내든지, 뭐라도 해요. 나는 너무 조마조마하니까요’ 하고 생각했습니다. “전부 읽었어요?” 하고 물었습니다. “네.” “어떻게 생각했어요?” “좋았어요.” 그래서 우리는 결혼했습니다. 하하하. 그렇게 된 것입니다. 여기 인디애나주 포트웨인에서 결혼했습니다.
그렇게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소녀가 자기 부모님께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을 때는 절대로 잊지 못합니다. 그게... 오, 다시 처음부터였습니다. 잘 넘겼다고 생각했는데 이 일이 앞에 남아 있었습니다. 저는 “호프, 우리는 모든 것을 반반씩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알지요?” 했습니다. 아시겠죠? “내가... 이런 일도 반반씩 하기로 하죠. 지금부터 시작하는 게 어때요?” “무슨 말이에요?” 저는 “당신은 여자니까 어머니께 여쭤보고, 나는 남자니까 아버지께 여쭤보는 게 좋겠어요”라고 했습니다. “좋아요.” 저는 “그러면 내가 먼저 아버지께 여쭤보게 해 줄래요?”라고 했습니다. 아버지의 약속부터 받으면... “그럼 오늘 밤 여쭤보세요.”
하지만 그 모든 일을 겪고 난 그날 밤에는 도저히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기다렸다가 다음번에 다시 찾아갔습니다. 우리는 현관에 잠시 앉아 있다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버지는 앉아서 타자를 치고 계셨습니다. 우리가 들어가자 소녀는 “우리도 준비를 해야 하니까 오늘 밤에는 아버지께 여쭤보는 게 좋겠어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네, 맞아요” 했습니다. 안으로 들어갔더니 그분은 타자를 치고 계셨습니다. 저는 어머니와 잠깐 이야기하고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나가려고 하는데 소녀가 저를 보기에, 잊지 않았다는 몸짓을 했습니다. 그러고는 “브룸바흐 씨?” 하고 불렀습니다. “왜 그러니, 빌?” “잠깐... 잠깐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그분은 돌아보며 “그래, 말해 보렴” 하셨습니다. “제 말은... 밖에 현관에서요.” 그분이 브룸바흐 부인을 돌아보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이고, 드디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현관으로 나갔고 그분도 나오셨습니다. 저는... 도무지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무슨 말을 하려고 할 때마다 기운이 쭉 빠졌습니다. “오늘 밤 참 아름답지요, 찰리?”라고 했습니다. “그래, 그렇구나, 빌.” 잠시 앉아 있었습니다. “몹시 더웠지요.” “그래. 그 아이와 결혼해도 좋다, 빌.” 하하하. 저는 지금도 그분을 사랑합니다. “진심이세요?” “그래, 진심이다.” 오, 그 자리에서 그분을 껴안고 싶었습니다. “그 아이와 결혼해도 좋다” 하셨습니다.
저는 “찰리, 따님에게 좋은 가정을 마련해 주신 것을 압니다. 따님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사 주실 수 있지만 저는 못 합니다. 제 벌이가 적습니다. 하지만 찰리, 따님을 저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제 몸에 숨이 붙어 있어 일할 수 있는 동안은 일해서 따님을 먹여 살리겠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절대로 잊지 못합니다. 그분도 이제는 먼저 가셨습니다. 그분이 제 어깨에 손을 얹고 말씀하셨습니다. “빌, 나는 네가 그 아이와 결혼하는 게 좋겠다. 네가 그 아이를 사랑하고 그 아이도 너를 사랑하는 줄 안다. 가진 것이 많아도 잘해 주지 않을 사람보다 네가 결혼하는 게 좋겠다. 결국 삶이란 세상 재물을 얼마나 소유했느냐가 아니라, 자기에게 주어진 몫에 얼마나 만족하느냐에 달린 것이란다.” 그 말씀도 옳습니다. [불분명한 말] 저는 “감사합니다, 찰리.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결혼하여 방 두 개짜리 작은 집을 빌려 들어갔습니다. 어떤 살림으로 시작했는지 절대로 잊지 못합니다. 대공황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지요? 오, 정말... [테이프의 공백] 그 난로 값이 이 달러쯤 들었습니다. 시어스 로벅에 가서 칠하지 않은 작은 식탁 세트를 사다가 제가 칠했습니다. 온통 커다란 세 잎 클로버를 그려 넣었습니다. 저는 [불분명한 말]. 아내는 독일계이고 저는 아일랜드계였으니까요. “빨갛게 칠하고 커다란 초록 클로버를 그려 넣자”라고 했습니다. 그저... 우리는... 참 행복했습니다. 세상 재물은 많지 않았지만 행복했습니다. 우리 집이었습니다. 그 뒤 처음으로... 우리는 정말 행복했습니다. 아내는 셔츠 공장에서 일했고, 가구를 살 돈을 모으려고 애썼습니다. 결혼한 지 몇 달이 지났습니다. 일 년쯤 뒤 작은 빌리 폴이 태어났습니다. 오, 아내가 거의 죽을 뻔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는 동안 저는 바닥을 얼마나 왔다 갔다 했는지 모릅니다. 아이가 태어나 우는 소리를 듣자 저는 외쳤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아들입니다. 이 아이의 이름은 빌리 폴이라고 하겠습니다!” [테이프의 공백]
몇 분 뒤 의사 선생님이 나오셔서 “목사님, 여기 왔다 갔다 하며 닳게 만든 리놀륨 바닥 값은 청구해야겠습니다. 아들이 생기셨습니다” 하셨습니다. 저는 “네, 이름은 빌리 폴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무렵 라이언 형제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루이빌의 예배에서 만나 그분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그분이 저를 초대하셨고, 그때 저희 집에도 오셔서 하루는 앉아 계셨습니다. 당시 제게 오순절 신앙은 낯선 것이었는데, 그분은 여러 번 제게 설명하려 하셨습니다. 그날 앉아 계시다가 벌떡 일어나 손을 들고 알지 못하는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다 멈추어 저를 똑바로 보시고는 다가와 제 어깨에 손을 얹고 말씀하셨습니다. “빌리 형제님, 지금은 아직 어린 청년입니다. 아직 젊은 혈기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그것이 가라앉을 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형제님을 사용하여 여러 나라를 뒤흔드실 것입니다.” 그리고 나가셨습니다.
그렇게 하신 분이 지금 저기 앉아 계십니다. 저는 그 어른을 사랑합니다. 그분은 자기 집으로 돌아가셨고 저도 그 집을 방문하곤 했습니다. 우리가 돈을 모았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 여행에 쓸 돈이 얼마였는지 절대로 잊지 못합니다. 육 달러나 칠 달러를 모았습니다. 저는 지쳐 있었습니다. 목회자로 설교하며 그곳에 작은 타버내클 교회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휴가를 얻어 라이언 형제님을 만나러 도와지액에 갔습니다. 우리는 호수에 가서 낚시를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미셔와카를 지나왔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오순절 교단 사람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미셔와카였던 것 같습니다. 그곳을 지나는데 커다란 집회장이 있었고 사람들이 거리며 사방으로 넘쳐 나 있었습니다. ‘이게 무슨 일이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자동차 뒤쪽에 “예수님께서 구원하십니다” 같은 글들을 붙여 놓은 것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제 낡은 포드를 세우고 ‘이게 무슨 일일까?’ 했습니다.
들어가 보니 종교 집회였습니다. 그런데, 오, 그렇게 예의 없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었겠습니까! 소리를 지르고 외치고 펄쩍펄쩍 뛰고 있었으니, 침례교인으로서는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그들의 행동을 보며 ‘정말 끔찍하지 않나? 교회 예절이 전혀 없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무엇인가 제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날 밤 내내 머물고 싶었습니다. 가진 돈을 세어 보니 집에 돌아갈 휘발유를 살 돈은 있었습니다. 내려가서 오래되어 굳은 빵을 좀 샀습니다. 그것으로 이틀쯤 지낼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묵을 방도 없고 방을 구할 돈도 없어서 그날 밤에는 옥수수밭에 가서 잤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모든 목회자를 단상으로 오게 했습니다. 집회를 열고 있었습니다. 그날 밤 사회자가 말했습니다. “여기 계신 모든 목회자님, 여러분 모두 설교하실 시간은 없지만 한 분씩 일어나 성함과 어디서 오셨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제 차례가 되자 “빌리 브래넘, 복음 전도자입니다. 인디애나주 제퍼슨빌에서 왔습니다”라고 하고 앉았습니다.
그날 낮에는 젊은 목회자들이 많이 설교했습니다. 그런데 밤에 설교할 목회자를 모셔 나왔는데, 아주 연로한 흑인 형제님이었습니다. 뒤통수 둘레에 흰머리가 조금 남아 있었고, 큰 벨벳 깃이 달린 길고 커다란 목회자용 외투를 입고 있었습니다. 그 가엾은 어른이 이렇게 걸어 나오셨습니다. 그분이 앞에 서셨는데, 저는 마이크를 그때 처음 보았습니다. 그분이 설교를, 말씀을 시작하셨습니다. 본문은 욥기에서 택하셨는데, 아마 7장이나 8장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세상의 기초들을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새벽별들이 함께 노래하였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기뻐 소리를 질렀느니라...” 그 어른이 너무 연로하셔서 정말 안쓰러웠습니다. 설교하시다 쓰러지지 않도록 올라가서 팔을 붙들어 드리고 싶었습니다. ‘왜 젊은 분들 중 한 사람을 세우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젊은 분들이 하루 종일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설교했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그 설교자는 아주 먼 과거로 돌아가... 예수님을 이렇게 하늘을 가로질러 모셔 오시더니, 재림 때 가로놓인 무지개를 타고 내려오시는 데까지 말씀하셨습니다. 그 대목에 이르자 그 노인이 “야호!” 하고 외치며 펄쩍 뛰어올라 두 발꿈치를 부딪치더니, 발끝으로 뛰듯 단상을 벗어나며 “여기는 내가 설교하기에 자리가 모자라는군!” 하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저는 ‘형제님, 성령께서 노인을 저렇게 행동하게 하신다면 내게는 어떻게 하실까? 내가 원하는 것이 저거야. 바로 저것이야. 내가 원하는 것이 저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단상에서 내려오며 ‘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내가 설교하기에 자리가 모자라”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와, 어딘가 젊음의 샘에 다녀오셨나 보다. 나도 저것을 원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날 밤 옥수수밭에서 바지의 주름을 펴고 싶어서 좌석 두 개 사이에 이렇게 끼워 놓았습니다. 주름진 시어서커 천으로 만든 바지였습니다. 그것을 내려놓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 사람들은 참으로 놀라운 사람들입니다. 제가 저들 앞에서 호의를 얻게 해 주십시오. 저도 그런 은혜를 얻게 해 주십시오. 저들은 제가 원하는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씻고 들어갔던 것이 기억납니다. 열 시쯤이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식사할 수도 있었지만 헌금에 보탤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함께 먹고 싶지 않았습니다. 제게는 작은 빵이 있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며 수도꼭지에서 물을 실컷 마시고, 낡은 포드를 세우고 들어갔습니다. 사람들은 손뼉을 치며 늘 부르던 짧은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 피였음을 나는 아네, 그 피였음을 나는 아네.” 오, 모두가 소리를 지르고 뛰어다녔습니다. 저는 ‘이런 일이 있다니!’ 하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한 흑인 형제님 옆에 앉았습니다. 그들은 북부에서 집회를 열었습니다. 흑인과 백인이 함께 모이는 일 때문에 남부에서는 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 흑인 형제님 곁에 앉았습니다. 티셔츠와 시어서커 바지를 입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저를 몰랐습니다. 앉아서 듣고 있는데, 아마 신시내티에서 온 커크스라는 분이 나오셨습니다. 오순절 교단 중 하나에 속한 분이셨는데 어느 교단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로 그분의 교회 이름은 라우, R-a-u-g-h, 독일식 이름인 라우, 라우인지 그 비슷한 이름이었습니다. 저는 자리에 앉아서 ‘오늘은 정말 좋은 시간을 보내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 목회자가 나와서 말했습니다. “어젯밤 단상에 젊은 설교자가 한 분 계셨습니다. 아마 여기 모인 분들 가운데 가장 젊은 분이었을 겁니다. 성함은 브래넘, 빌리 브래넘입니다. 회중 가운데 계십니까? 오늘 아침에는 그분께 메시지를 전해 달라고 하겠습니다.”
오, 저는 몸을 아주 낮게 움츠렸습니다. 시어서커 바지와 티셔츠 차림이었으니까요. 아주 낮게 숙였습니다. 그분은 다시 알렸습니다. “밖에 계신 분들 가운데 인디애나주 제퍼슨빌에서 오신 빌리 브래넘이 어디 계신지 아는 분 있습니까? 단상으로 오시라고 전해 주십시오.” 저 많은 설교자들 앞에 저런 꼴로 올라갈 수는 없었습니다. 저는... 설교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 낡고 시골스러운 침례교식 느릿느릿한 말투로는 그분들처럼 그렇게 빨리 생각해 낼 수도 없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꼼짝 않고 앉았습니다. 자리에 바짝 웅크렸습니다. 그 흑인 형제님이 저를 보며 “그 사람이 누군지 아세요?” 하고 물었습니다. 오, 난처해졌습니다. 이제는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습니다. “이보세요, 제가 그 사람입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씀하지 마세요. 보세요, 시어서커 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있잖아요.” 그분은 “이 사람들은 옷차림은 상관하지 않아요. 어서 올라가세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안 됩니다. 올라갈 수 없어요. 가만히 계세요”라고 했습니다. 앞에서는 “누구 아시는 분... 브래넘 목사님이 어디 계신지 아십니까?”라고 했습니다. 그 흑인 형제님이 “여기 계십니다!” 하고 외쳤습니다. 휴! “여기 계십니다.” 시어서커 바지에 티셔츠 차림으로 말입니다. “올라오십시오, 브래넘 씨.” 오, 돌아보니 그 형제님은 그냥 웃고 계셨습니다.
걸어 나가며 ‘주님, 제가 기도하기는 했지만 이제 저기 올라가면 무슨 말을 해야 합니까?’라고 생각했습니다. 귀가 새빨개져서 조심조심 단상으로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어떡하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거기 매달려 있는 마이크도 무서웠습니다. 줄에 매달아 내려놓은 마이크였습니다. 성경을 들었는데 너무 떨려서 거의 붙들 수가 없었습니다. “부자가 지옥에서 눈을 들고 그때 부르짖으니라”라는 대목을 본문으로 삼았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가 부르짖었고, 그러자 저도 부르짖었습니다. 하하하. 무엇인가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반 시간쯤 아무것도 몰랐고, 사람들이 저를 밖으로 데리고 나왔습니다. 그렇게 소리치는 것은 평생 처음 들었습니다. 텍사스에서 온 어떤 분이 카우보이 장화에 커다란 모자를 쓰고 다가와 “저는, 저는 아무개 목사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시어서커 바지도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분을 보았더니 “복음 전도자라고 들었습니다. 텍사스에 오셔서 저희 부흥집회를 인도해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다른 분이 다가왔는데, 골프 바지, 그러니까 니커보커 바지를 입었습니다. “저는 플로리다에서 왔습니다. 거기 큰 무리, 교회가 있는데 교인이 이만큼 됩니다. 와 주시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저는 ‘내 티셔츠도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니구나. 모두 고향 사람들처럼 편안한 분들이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 생각에는...
어디선가 인디언들을 가르치고 있던 여자분도 오셨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는 그렇게 초청을 적기 시작했고, 종이 뒷면에 줄줄이 적힌 초청을 받았습니다. 낡은 포드에 뛰어올라 길을 달렸습니다. 오, 정말! 서둘러 집으로 갔습니다... 도착했을 때... 아내는 늘 사랑스러웠습니다. 라이언 형제님, 아시지요. 아내는 늘... 긴 검은 머리를 하고 문밖으로 뛰어나와 저를 맞아 주었습니다. “아주 행복해 보여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여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교회를 찾았어요. 자기 신앙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들이에요. 소리를 지르고 외치고 온갖 것을 해요”라고 했습니다. “어디 다녀왔어요?” “그러니까, 저 위 미셔와카 근처예요. 오, 교회라고 하면 말이지요, 당신도 그런 교회는 본 적 없을 거예요. 믿기 어렵겠지만, 이것 좀 보세요.” 저는 종이를 꺼내며 “일 년 내내 다닐 만큼 많은 교회에서 초청을 받았어요”라고 했습니다. “당신이요, 여보?” “네, 내가요.” 아내는 “그렇군요...” 했습니다. “나와 함께 가겠어요?”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어디든 당신과 함께 가겠다고 약속했잖아요.” 참된 아내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그 용감한 혼을 평안히 쉬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내는 “어디든 함께 갈게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좋아요. 이제 부모님께 말씀드립시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가서 말씀드렸습니다... 아내는 자기 어머니께 말씀드리기로 했습니다. 제가 어머니께 말씀드리자 어머니는 “그래, 좋아, 빌리. 나도 어릴 때 켄터키에서 그런 사람들을 보았단다. 거기 옛 론스타 예배당이 있었지. 사람들이 제단에 엎드려 기도하고 외치며 뛰어다녔어”라고 하셨습니다. 옛 선교침례교였습니다. 어머니는 “그런데 요즘 인디애나와 이 근처 교회들에서는 그런 모습이 사라졌구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되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요즘 침례교에서는 악수하고 종이에 이름을 적으면 그만입니다. 형제님, 저는 그런 식으로 받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제단에 엎드려 서로 등을 두드리며 마침내 응답을 얻을 때까지 기도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일어날 때는 무엇인가를 얻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설교자와 악수한 것이 아니라,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떠나려 할 때 아내의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호프, 물론 네가 갈 수는 있겠지. 그렇다만 이 말은 해 둔다. 네가 가면 엄마는 마음이 찢어져 죽어 무덤에 눕게 될 거다.” 오, 바로 그 말이었습니다. 여러분, 제가 실수한 것이 여기였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 대신 장모님의 말을 들었습니다. 그때 제가 그대로 갔더라면 이 위대한 일이 더 일찍 나타났을 것이고 교회도 더 멀리 나아갔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 실수에 귀 기울이십시오. 슬픔이 시작된 곳이 여기입니다. 호프는 “그래도 갈게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장모님의 마음을 상하게 해 드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장모님은 “차라리 저 교회에 가서 빚을 다 갚고 사택도 마련하고, 좀 분별 있는 사람처럼 행동하지 그러니? 그러는 대신 [불분명한 말]. 내 딸이 전국으로 끌려 다니며 오늘은 먹고 내일은 굶게 내버려 둘 줄 아니? 갈아입을 옷도 없이 말이야. 그런 쓰레기 같은 무리와 끌려 다니게 할 줄 알아?”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알게 된 것은, 다른 뜻 없이 오직 사실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만, 장모님이 쓰레기라고 부르신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정확한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내 딸이 그런 사람들과 끌려 다니게...”라고 하셨습니다. 형제님, 제 실수 때문에 우리는 얼마 후 아내를 묻어야 했습니다.
절대로 잊지 못합니다. 어려움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병들어 제 팔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열다섯 살 된 동생은 차 옆에 매달려 타고 있었습니다. 동생이 차를 얻어 타려고 하자 태워 준 운전자는 술에 취해 있었고, 동생의 머리가 기둥에 부딪치게 했습니다. 동생은 목이 부러지고 간이 뒤집혀 다른 동생의 품에서 죽었습니다. 그 일이 일어났을 때 저는 단상에 서서 설교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와서 제게 알려 주었습니다. 여러분, 범법자들의 길은 험합니다. 세상의 누가 무엇이라고 하든 거기에 귀 기울이지 마십시오.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일을 하십시오. 설령... 얼마 전 어떤 사람이 와서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제게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형제님이 이것도 그만하고 저것도 그만하시기를 원하시는 줄 압니다.” 저는 “형제님, 마음을 다해 사랑합니다만 그런 말을 가지고 제게 오지는 마십시오. 성경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여자는 “하지만 저도 선지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저는 그분과 서로 말씀을 나누는 사이입니다. 그분께서 제가 무엇인가 알기를 원하시면 직접 제게 말씀하실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한번은 두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그중 젊은 선지자가 내려가 제단을 향해 예언했고... 아마 열왕기상 13장일 것입니다. 그가 제단을 향해 예언하고 마비된 왕의 팔을 고쳐 주었습니다. 주님께서 그에게 다른 일을 하라고 말씀하신 뒤에, 다른 선지자가 ‘주님께서 내게로 들르라고 하셨네’라고 말했습니다. 두 선지자 이야기 기억하십니까?”라고 했습니다. 선지자든 누구든 상관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라고 하시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십시오. 다른 모든 것은 내려놓고(아시겠죠?) 오직 하나님께 순종하십시오.
동정심과 감정에 이끌려 저는 “여보, 그 일은 그냥 두고, 우리는 계속...”이라고 했습니다. 아내는 “빌, 당신과 함께 갈게요. 당신이 하려는 일은 무엇이든 할게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일은 그만두고 우리 교회 빚을 마저 갚읍시다. 그러면 아마 나중에는 갈 수 있을 거예요”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슬픔이 닥쳤고 어려움이 하나씩 연달아 닥쳐왔습니다. 모든 일이 그랬습니다. 그 직후 1937년 홍수가 밀려왔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때 사랑하는 라이언 형제님도 그 도시에 계셨습니다. 홍수가 불어나고 사람들이 제방 위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낡은 배가 한 척 있어서 타고 나가곤 했습니다. 배에 올라 서서 강을 따라 내려가며 제방 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설교했습니다. 다시 상류로 올라갔다가 또 내려오며 제방에 있는 사람들에게 설교했습니다. 라이언 형제님, 그곳에서 마지막으로 형제님을 뵈었던 기억이 납니다. 몇 주 전,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저는 형제님이 돌아가셔서 영원으로 가신 줄 알았습니다. 어떻게 되셨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작은 체구의 조지 형제님도 계셨고, 그 밤이 왔습니다. 크리스마스 바로 전날이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아내는 아이들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려고 강 건너로 갔습니다. 그 사이에 또 일 년, 일 년 조금 넘게 지났습니다. 사이가 일 년 열한 달쯤... 두 아이 사이가 열한 달이었습니다. 딸이 태어났습니다. 저는 성경의 샤론의 장미를 따라 그 아이를 샤론 로즈라고 불렀습니다. 아주 귀여운 아기였습니다. 이제 겨우 옹알이를 할 만큼 자랐는데 얼마나 귀여웠는지 모릅니다. 저는 어린아이들을 정말 사랑합니다.
그 뒤 홍수가 났던 것이 기억납니다. 아내는 크리스마스에 아이들에게 줄 물건을 사러 강 건너에 갔고, 저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보니 아내가 길에서 쓰러져 사람들이 데려다 놓았습니다. 저는 달려 들어가 아내를 보았습니다. 저는... 제퍼슨빌에 샘 아대어 의사라는 제 친구가 있는데,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의사 가운데 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함께 학교에 다녔고 친구로 지내며 낚시도 함께 했습니다. 함께 어울려 다녔습니다. 지금도 이웃에 삽니다. 제가 그분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램프 하나를 막 가져다드린 참이었습니다. 크리스마스 전날 밤이었습니다. 전화를 걸어 “샘, 호프가 쓰러졌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곧 갈게, 빌.” 그가 와서 “오, 열이 화씨 백오 도야. 폐렴에 걸렸어. 빌, 밤새 깨어 있으면서 마실 것을 줘야 해”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했습니다. 그날 밤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아내를 도와 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도하고 있는데, 검은 천이 제 앞에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1937년 홍수가 불어나 스프링가 위로 이십이 피트까지 차오르는 것을 보고 예언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미쳤군. 정신이 나갔어”라고 했습니다. 폴스시티 운송회사에 가서 그 이야기를 전했을 때도 “아, 빌리, 집에나 가”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육 주도 지나지 않아 스프링가 위로 물이 이십이 피트나 차오른 것으로 측정되었습니다. 예언했던 그대로였습니다.
그 천이 내려오는 것을 보고 저는 교회에 가서 말했습니다. “제 불순종이 제 마음에 슬픔을 가져온 것 같습니다. 제 아내는 가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아, 아내를 생각하는 마음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겁니다”라고 했습니다. 아내는 점점 더 나빠졌습니다. 라이언 형제님, 그 끔찍한 밤에 홍수가 밀려들어 제방을 뚫었습니다. 사람들이 울면서 거리를 걷고 있던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저는 작은 순찰차를 몰고 홍수에서 사람들을 구해 내려고 일하고 있었습니다. 내려가 보니... 아내는 정부 보급창에 마련된 임시 병원으로 옮겨져 있었습니다. 다른 곳은 모두 물에 잠겼습니다. 아내를 보러 그곳에 갔다가 주위를 살피던 중 조지 디아크 형제님을 만났습니다. 지금은 영광 가운데 계십니다. 그분은 “제가... 아까 연합형제교회 근처에서 형제님을 봤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라이언 형제님을 보셨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연합형제교회 근처에 계십니다.” 조지 형제님이 저를 껴안으며 “빌리 형제님, 다시 못 만나더라도 아침에 만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때가 우리가 다음에 만날 시간입니다. 그분은 홍수 때 세상을 떠나셨고 지금은 영광 가운데 계십니다. 돌아가실 때 “아, 빌 형제님을 한 번만 더 볼 수 있다면. 아, 그분이 여기 계시기만 한다면” 하셨습니다. “아, 어디 계십니까?” 하시다가 창문을 보며 “오, 예수님, 오실 줄 알았습니다” 하셨습니다. 두 팔을 내뻗고 하나님을 만나러 가셨습니다.
그 뒤 저는 더 내려갔습니다. 체스트넛가 위쪽에 있는 둑을 홍수가 금방이라도 뚫을 것 같았습니다. 사람들이 전화를 걸어 “빨리 내려오세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강가에서 자랐으므로 배를 꽤 잘 다룬다고 생각했습니다. 재빨리 배를 가져갔습니다. “여자 한 분이 저기 갇혀 있어요”라고 했습니다. 바라보니 한 여자가 현관 지붕 위에 서서 아기를 안고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하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습니다. 집은 이렇게 흔들리고, 홍수가 밀려와 휩쓸고 지나가는데 물이 팔십 마일이나 펼쳐져 있었습니다. 저는 배를 타고 골목길을 따라 이렇게 올라갔습니다. 물살을 타고 내려가 그 집 뒤편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집에 배를 댔는데 여자는 기절해 있었습니다. 그 여자를 들어 배에 태웠습니다. (그날 밤 열한 시쯤이었습니다.) 어린 여자아이 두세 명도 있었습니다. 거기서 빠져나와 강둑에 닿았습니다. 정신을 차린 여자는 “내 아기, 내 아기, 아, 내 아기를 두고 오지 마세요” 하고 계속 외쳤습니다. 저는 저쪽에 아주 작은 아기가 또 있는 줄 알았습니다. 여자가 안고 있던 아이는 두 살쯤 되었습니다. 제가 현관에서 여자를 들어 올렸을 때 이미 기절해 있었으니, 침대 같은 곳에 아기가 남겨졌는지 보려고 다시 돌아갔습니다.
도착해서 배를 묶어 놓고 집 안으로 들어가 샅샅이 살폈습니다. 그러나 여자가 말한 아기는 바로 그 두 살짜리 아이였습니다. 그때 집이 기초에서 떨어져 떠내려갔습니다. 저는 재빨리 뛰어나와 배에 올라탔고, 물속에 손을 넣어 풀림매듭을 풀었습니다. 얼음과 진눈깨비, 추위와 바람, 눈보라가 몰아쳤습니다. 배에 올라 시동줄을 당겼습니다. 시동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물살이 배를 이렇게 휘감더니 마켓가로 끌고 나가 강 한가운데로 쓸어 갔습니다. 바로 아래에는 오하이오 폭포의 급류가 맹렬히 쏟아지고 있었고, 이 건물만큼 높은 파도가 거센 물살과 함께 뛰놀고 있었습니다. 저는 배에 서서 시동줄을 당기며 모터를 켜려고 했지만 시동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이제 그 쓰레기 같은 무리가 어디 있느냐?”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형제님, 범법자들의 길은 험합니다. 아무도 여러분을 쓰레기라고 부르게 내버려 두지 마십시오. 안 됩니다. 줄을 당겼지만 시동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오, 하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발 이 강에서 죽고 싶지 않습니다. 제 아기와 아내가 저기 몹시 아파 누워 있습니다. 하나님, 제발 죽지 않게 해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줄을 당겨도 시동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돌아보니 배에 벌써 물이 거의 절반이나 찬 채 폭포 쪽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십 분만 더 지나면 늦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시 당기며 ‘오, 하나님, 제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당겼습니다. 그때 모터가 푸드득거렸고, 한 번 더 당기자 시동이 걸렸습니다. 저는 배에서 이렇게 몸을 돌려 방향을 틀고 되돌아와, 뉴올버니 쪽으로 내려가는 케인런 개울 부근에서 빠져나왔습니다. 다시 제퍼슨빌로 돌아와 걸어 올라갔습니다. “아내를 보러 가야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누군가 “부인이요? 어디 계신데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저기 정부 병원에요”라고 했습니다. “거긴 전부 떠내려갔어요.”
오, 저는 배에 뛰어올라 달려... 아니, 차에 올라탔습니다. 제가 타고 다니던 작은 순찰 트럭을 최대한 빨리 몰아 정부 시설로 갔습니다. 아는 분인 위클리 소령을 만나 “소령님, 병원이 떠내려갔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분은 “네, 목사님, 그쪽은 모두 물에 잠겼습니다. 하지만 환자들은 모두 빠져나온 것 같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제 아내가 어떻게 됐는지 아십니까?” “모르겠습니다.” 가서 다른 사람을 만났더니 “네, 부인과 다른 분들 모두 가축 운반용 화차에 타고 찰스타운 쪽으로 갔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차를 몰고 찰스타운 쪽으로 갔지만, 랭커상지 개울이 역류하여 사 마일이나 되는 거센 물길이 되어 있었습니다. 가서 배를 가져왔으나 아무리 애써도 그 물살을 뚫을 수 없었습니다. 배는 뒤로 튕겨 나왔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몇몇 사람이 “그 열차가 저 철교를 건너다가 물에 떠밀려 선로를 벗어났어요”라고 했습니다. 찰스타운과 제퍼슨빌 사이였습니다. 저는 그곳으로 가려다가 혼자 고립되고 말았습니다. 거기 앉아서 여러 날 동안 그 모든 일을 곱씹어야 했습니다. 마침내 건너갈 수 있게 되어 찰스타운에 도착했지만, 사람들은 제 아내 소식을 듣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오랜 친구를 만나 함께 거리를 걸었는데 그가 “운행 담당자에게 물어보자”고 했습니다. 그 담당자는 “아, 그렇습니다. 인디애나주 콜럼버스에서 병든 어머니 한 분과 아이 둘을 내려 주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친구가 저를 차에 태워 콜럼버스로 데려다주었습니다. 그곳 침례교회로 뛰어 들어갔는데, 체육관 방을... 강당을 환자들을 수용하는 곳으로 쓰고 있었습니다. 들어가 보니 사람들이 울고, 서로를 넘어 다니고 있었고, 작은 간이침대들이 늘어서 있었습니다. 저는 소리치기 시작했습니다.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오, 호프, 여보, 어디 있어요? 어디 있어요?” 하며 여기저기 뛰어다녔습니다. “어디 있어요?” 저 안쪽 구석에서, 절대로 잊지 못합니다. 앙상한 손 하나가 이렇게 올라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테이프의 공백] ...사랑하는 아내가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재빨리 다가가 내려다보니 짙은 눈은 깊이 움푹 들어가 있었고, 아름답고 매끄럽던 얼굴은 홀쭉해져 있었습니다. 아내가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오,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침대 곁에 주저앉아 “오, 하나님, 긍휼을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아내는 “내 모습 끔찍하죠?”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니에요, 여보, 괜찮아요. 빌리 폴과 아기는 어디 있어요?”라고 했습니다. “아이들은... 누군가 저 아래 방에서 데리고 있어요.” “살아 있고 괜찮아요?” “네.” 그때 누군가 제 어깨를 두드렸습니다. 의사였습니다. “브래넘 목사님이십니까?” 저는 “네” 했습니다. “샘 아대어 선생님 친구분이시죠?” “네.” “잠깐 이리 오십시오.” 따라가자 그분이 말했습니다. “목사님, 충격을 받으시겠지만 알고 이겨 내실 수 있도록 말씀드리겠습니다. 부인께서 급성 결핵에 걸리셨습니다. 얼마 살지 못하십니다. 지금 죽어 가고 계십니다.” 저는 “선생님, 그럴 수는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사실입니다. 부인께는 알리지 마시고 평소처럼 대해 주십시오. 아대어 선생님도 알고 계시는데 직접 말씀드리기 어려워 제게 전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알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아내가 떠난다는 것을 알고 다시 곁으로 갔습니다. 오, 정말... 저는 의사에게 물이 빠지면 아내를 집으로 데려가도 되는지 물었습니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고, 아내를 살리려고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살릴 수 없었습니다. 인공기흉 요법도 해 주었습니다. 인공기흉 시술 기계를 구해 왔습니다. 그 도시에는 한 대도 없었습니다. 아내가 제 손을 붙들면 손가락을 하나씩 떼어 내야 했습니다. 옆구리에 구멍을 내고 폐를 주저앉게 했습니다. 다시 그 일을 겪는다면 그 치료는 하지 않겠습니다. 아내는 그렇게 고통받고 또 고통받았습니다. 마침내 루이빌에서 밀러라는 훌륭한 의사가 오셨습니다. 저를 한쪽으로 불러 “브래넘 목사님, 부인께서는 이제 얼마 살지 못하십니다. 떠나시게 될 겁니다. 살아남으실 수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때 저는 순찰을... 계속 일했습니다. 그 무렵 자연보호 업무에 들어가 수렵 감시원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사방에 빚을 졌기에 일을 해야 했습니다. 아내는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며 병원에 누워 있었습니다. 하루는 밖에 나가 있다가 돌아오라는 무전을 들었습니다. 살아 있는 동안 그날은 절대로 잊지 못할 것입니다. 멈추어 서서 허리띠를 풀고 총과 모자를 내려놓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머리를 숙였습니다. 제 교회도 없어진 것 같았습니다. 모든 것이 사라졌고 저는 완전히 기진해 있었습니다. 삶은 제게 아무 의미도 없었습니다. 저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 제가 한 번만 더 볼 때까지 아내가 죽지 않게 해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집에서 이십 마일쯤 떨어져 있었습니다. “아내를 한 번 더 볼 수 있도록 제발 죽지 않게 해 주십시오.” 경광등과 사이렌을 켜고 길을 달려 병원 앞에 세우고, 있는 힘껏 계단을 뛰어 올라갔습니다. 보니 가엾은 아대어 선생님이 복도를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분을 사랑합니다. 그분에게는 제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제 친구였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늘 친구였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걸어오다가 저를 보더니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습니다. 그분은 옆으로 돌아 달려가려 했고, 저는 “잠깐만, 샘” 하고 다가가 물었습니다. “갔어?” “그런 것 같아, 빌.” “같이 가 줘, 친구.” “아, 빌, 같이 가자고 하지 마. 부탁이야. 나는 거기 들어갈 수 없어. 호프가 나를 위해 파이를 얼마나 많이 구워 줬고 우리가 함께 얼마나 많이 먹었니. 내 누이 같은 사람이야, 빌.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 하나님은 내가 할 수 있는 걸 다 한 줄 아셔. 자네를 위해 최선을 다했어. 하지만 갔어.” 저는 “선생, 같이 가 줄 수 없어?”라고 했습니다. “더는 견딜 수 없어, 빌.” 저는 “나는 가겠어” 했습니다. 그는 “그러지... 잠깐, 간호사와 함께 가”라고 했습니다. 간호사가 약을 조금 가지고 와서 “잠깐 이 약을 드세요. 신경을 가라앉혀 줄 거예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니요, 필요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혼자 병실에 들어가려는데 간호사가 “함께 가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닙니다. 혼자 가고 싶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들어가 뒤로 문을 당겨 닫고 다가갔습니다. 아내의 얼굴에 시트를 덮어 놓았습니다. 시트를 걷었습니다. 내려다보니 사랑하는 아내가 거기 누워 있었습니다. 몸은 이렇게 오그라들어 있었습니다. 머리에 손을 얹으니 끈적했습니다. 숨 쉬는 것도 보이지 않았고, [불분명한 말]. 저는 아내를 흔들며 “호프, 여보, 제발 나에게 한마디만 해 줘요. 온 마음으로 당신을 사랑해요. 늘 사랑했고, 언제까지나 사랑할 거예요. 제발 한 번만 더 말해 줘요”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흔들며 “호프!” 하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아내가 눈을 떴습니다. 죽음이 서린 채 크게 뜬 그 눈은 천사의 눈 같았습니다. 아내는 저를 보고 미소를 짓더니 가까이 숙이라는 손짓을 하며 “아, 왜 나를 불렀어요?”라고 했습니다. “당신을 불렀다고요? 여보, 나는...” 아내는... “내가 잘못했나요?” 아내는 “아니에요, 잘못한 건 아니에요”라고 했습니다. 바로 그때 간호사가 뛰어 들어와 “브래넘 목사님, 나가셔야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아내는 “힐다, 이리 와요”라고 했습니다. 자기 친구였습니다. 그다음 말이 제 마음을 그렇게 울렸습니다. “당신도 결혼하면 우리 남편 같은 사람을 만나면 좋겠어요. 내게 참 잘해 주고, 나를 잘 이해해 주었어요.” 어떤 심정이었을지 아실 것입니다. 저는 “아니에요, 여보. 당신에게 해 주고 싶은 만큼 해 주지 못했어요”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서너 달에 한 번 아내의 무명 원피스 한 벌을 사는 일도 따져 보아야 했습니다. “당신도 아이들을 먹여 살리려고 일하며 나를 도와주었잖아요.” 그 간호사는 울기 시작하더니 병실을 나갔습니다. 저는 “당신을 다시 불러온 게 잘못이라고 왜 말했어요?” 하고 물었습니다. 아내는 “오, 빌, 당신은 그것에 관해 설교하고 이야기했지만 그것이 어떤 곳인지 실감하지 못해요. 나는 흰 천사들의 무리에게 이끌려 집으로 가고 있었어요. 동양의 어떤 곳 같은데, 커다란 새들이 나무에서 나무로 날아다니고 정말 평화로웠어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마음을 다해 믿습니다. 아내의 눈이 열려 그 환상을 보았고, 낙원으로 들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믿으실지 모르지만, 저는 성도들이 떠나는 침상 곁에서 여러 해 전에 먼저 간 사랑하는 이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고 들었습니다. 여러분도 그러셨을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이것은 교리가 아니라 그저 하나의 생각입니다. 어차피 죽음은 몹시 힘든 일인데, 그 아침에 혹시...
몇 년 전 어느 분 곁에 서 있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온 분이 제게 “빌리...”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블레드소 씨, 다 괜찮으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여든 살쯤 되셨습니다. “오, 다 괜찮네, 빌리. 주님을 너무나 뵙고 싶네. 내 삶은 다 닳아 끝나 가고 있어. 그분을 뵙고 싶네.” 그분은 거기 서서 제게 말씀하고 계셨고, 아내도 거기 있었습니다. 그분이 “어머니, 아, 정말 여러 해 동안 못 뵈었네요” 하셨습니다. “빌리, 자네도 어머니가 보이나?” 저는 “아니요” 했습니다. “어머니를 아나? 어머니, 이 사람은...” 블레드소 부인이 “여보, 당신...” 하자, 그분은 “내 정신이 나간 게 아니야”라고 하셨습니다. “누이야”라고도 부르셨습니다. 그 누이는 여러 해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가 내려가는 그 위대한 시간에, 하나님은 이 혼이 몸에서 나오는 것이 입에서 이를 뽑아내는 것 같음을 아십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어머니에게 “요단가로 내려가 서 있거라. 오늘 아침 아들이 건너온다” 하시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 눈이 자연 세계에서 영적 세계로 옮겨 갈 때, 그것이 보이게 되어 그들이 서 있는 것을 실제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아내가 낙원으로 들어가고 있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보, 어떤 모습이었어요?” 하고 물었습니다. “오, 정말 아름다웠어요.” 아내는 말했습니다. [테이프의 공백] “그게 뭐예요, 여보?” 아내는 “어서 돌아가야 해요. 내가 왜 가는지는 알겠지요?”라고 했습니다. 오, 그 말이 제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저는 “알아요” 했습니다. “어머니 말씀을 듣지 말았어야 했어요.” 저는 “알아요. 당신 어머니의 말을 듣지 말았어야 했어요. 여보, 언젠가 꼭 만회하겠어요. 하나님께서 저를 도우시기를 빕니다”라고 했습니다. 아내는 “빌, 당신이 그대로 나아가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일을 했더라면 오늘은 달랐을지도 몰라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맞아요” 했습니다. “하지만 여보, 당신도 어쩔 수 없었어요. 좋은 마음으로 하려고 했던 거잖아요.” 저는 “알아요, 여보” 했습니다.
아내가 “한 가지 약속해 줄래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무엇인데요?”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아이처럼 울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오, 제가 그리스도께 한 일, 제가 저지른 잘못을 생각하면... 저는... 아내가 “한 가지 약속해 줘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무엇인데요?” 했습니다. “죽음이 당신을 자유롭게 할 때까지 이 성령의 복음을 계속 전하겠다고 약속해 줘요.” 저는 “약속할게요” 했습니다. 아내는 “또 하나, 혼자 살지 않겠다고 약속해 줘요”라고 했습니다. “아, 여보, 그건 약속할 수 없어요. 그건 약속 못 해요.” “내게는 아이가 둘 있어요. 아이들이 이 집 저 집으로 끌려 다니게 하고 싶지 않아요. 성령 침례를 받은 좋은 여자를 찾아 결혼해서 아이들에게 가정을 만들어 줘요.” 저는 “여보, 그건 약속할 수 없어요. 당신을 너무 사랑해요”라고 했습니다. 아내는 “빌, 누군가 나타날 거예요. 약속해 줄래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글쎄, 그건 약속 못 해요” 했습니다. 아내는 “약속도 못 받고 가게 하지는 말아요”라고 했습니다.
아내가 말했습니다. “또 하나, 루이빌에 갔을 때 사냥하려고 작은 소총을 사고 싶어 했던 일 기억해요?” 저는 총과 낚시 같은 것을 정말 좋아합니다. 제가 떠나려 할 때였는데 아내가 말했습니다. “당신이 사고 싶어 했던 그 작은 소총 말이에요. 계약금이 삼 달러였죠.” 저는 “네” 했습니다. 총값은 십칠 달러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신에게 첫 할부금을 낼 돈이 없었잖아요.” 저는 “기억해요” 했습니다. “빌, 그 소총을 당신에게 꼭 사 주고 싶었어요. 당신이 준 생활비로 아무것도 사지 않고 모아 두었어요. 내가 가고 나면 집에 가서 저 낡은 접이식 침대 밑을 봐요. 위쪽 종이 위에 놓여 있을 거예요.” 집에 가서 보니 이 달러 팔십 센트쯤 있었습니다. 아내가 소총의 첫 할부금을 내 주려고 모아 놓은 돈이었습니다. 제 마음이 어땠을지 여러분은 모르실 것입니다. 참으로 훌륭한 아내였습니다.
아내는 “또 하나, 당신에게 사과하고 싶어요. 잘못한 일이 있어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무엇인데요?”라고 했습니다. “당신에게 숨긴 게 있어요.” “뭔데요, 여보?” “그때 내게 스타킹을 사 준 일 기억해요?” “잘 모르겠어요.” “포트웨인에 가려던 때요.” “네.” “그때 사 온 스타킹은 다른 종류였어요.”
어떻게 된 일이냐 하면, 아내는 목욕을 하고 있었고 우리는 포트웨인에 가려고 했습니다. 그때 아내의 아버지가 포트웨인에 사셨으므로 그곳에 가려고 했습니다. 저는 거기... 레디거 타버내클 교회가 어디 있는지 아시지요. 제가 얼마 전에 집회를 했던 곳입니다. 당시에는 버트 윌리엄스가 거기서 설교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밤 그곳에 가려고 했습니다. 아내는 “내 스타킹 한 켤레만 사다 줘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여성복을 디자인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아내는 스타킹 한 켤레 값으로 육십, 칠십 센트쯤 주었습니다. 제가 갔습니다... 종류가 두세 가지였는데, 하나는 뭐라고 하죠, 시폰이라고 합니까? 맞습니까? 다음 것은 그 비슷한 이름인데, 레이온, 맞지요? 레일론, 네. 어느 것이 더 좋습니까? 시폰이지요? 그 시폰 말입니다. 아내가 원한 것은 그것이었습니다.
길을 걸어가며 잊지 않으려고 “시폰, 시폰, 시폰, 시폰, 시폰, 시폰” 하고 되뇌었습니다. 누가 “안녕, 빌리”라고 했습니다. 저는 “안녕하세요. 시폰, 시폰, 시폰, 시폰, 시폰, 시폰” 했습니다. 오빌 스폰을 지나치는데 그가 말했습니다. “빌리, 저기 부두에서 이만한 퍼치가 잡혀. 아, 자네가 꼭 봐야 해.” 저는 “정말이에요, 오빌?”이라고 했습니다. 그와 이야기하다 보니 무엇이었는지 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내려갔습니다. 십 센트 상점에서 양말을 판다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거기서 일하는 여자도 알았습니다. 가서 델마가 다가오자 “안녕하세요, 델마”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안녕하세요, 빌 형제님. 무엇을 찾으세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호프가 양말 한 켤레를 원해요”라고 했습니다. “호프가 양말을 원할 리가 없는데요.” 저는 “아닙니다. 한 켤레 필요하대요”라고 했습니다. “호프는 양말을 안 신어요.” 저는 “신어요. 풀 스타일로 원해요. 있잖아요, 뒤에 조그만 그게 있는 것 말이에요. 풀 스타일로 원해요”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녀가...
아, 틀렸군요. 풀... 그걸 뭐라고 하죠? 패션. 네, 맞습니다. 저는 그런 것을 잘 모릅니다. 그래서 “그런 종류를 원해요”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그건 스타킹이에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 그렇군요” 했습니다. “어떤 종류를 원하세요?” 이미 무식한 티를 내고서 또 모르는 것을 드러내기 싫어 “어떤 종류가 있나요?”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레이온부터 여러 가지가 있어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걸 원해요” 했습니다. 그 두 종류 이름은 들어 본 적이 없어서 다 똑같이 들렸습니다. “바로 그 종류로 주세요”라고 했습니다. “호프가 레이온 스타킹을 원한다고요...?” 저는 “네” 했습니다. 한 켤레에 이십 센트쯤밖에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가져오자 저는 “그 값밖에 안 한다면 두 켤레 주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두 켤레를 받아 집으로 갔습니다. 물건을 싸게 샀을 때는 아내에게 자랑해야 하지 않습니까? 저는 “아, 이것 좀 말해 줘야겠어요. 그저, 그저...”라고 했습니다. “나는 아브라함의 아들이라고요” 하며 아내에게 떠들었습니다. “여자들은 하루 종일 가게를 돌아다니며 리본 같은 물건의 싼 것을 찾지만, 나는 시내에 가서 양말 두 켤레를 사고도, 원한다면 한 켤레를 더 살 돈이 남았어요. 두 켤레나 사고도 돈이 남았다고요. 당신들은 루이빌까지 가서 쇼핑하지요. 나처럼 유대인 기질이 있어야 한다니까요.” 그렇게 늘어놓았습니다. 아내는 “레이온을 샀어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네!” 했습니다. 제게는 다 같은 이름으로 들렸습니다.
포트웨인에 도착해서 아내가 스타킹을 또 한 켤레 사야 했을 때는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임종을 앞두고 아내가 말했습니다. “빌, 그건 나이 든 여자들이 신는 거였어요. 당신 어머니께 드렸어요. 당신이 사 온 것 때문에 마음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숨겼어요.” 오, 그 말을 듣고 제 마음이 어땠을지 모르실 것입니다. 저는 “여보,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이라고 했습니다. 아내는 “이제 약속해 줄래요? 혼자...”라고 했습니다. 저는 “나는...” 했습니다. 아내가 올려다보며 “빌, 나는 가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가요, 여보?”라고 했습니다. “네.” 저는 “여보, 당신이 가면...”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믿지 않습니다... 무엇이든... 여러분은 원하는 대로 믿으십시오. 저는 그리스도인이 죽는다고 믿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그것을 뒷받침하는 말씀이 없습니다. 없습니다.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고, 그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누구든지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그렇습니다. 저는 “여보, 당신의 몸을 여기서 데리고 나가 월넛리지에 묻겠어요. 예수님께서 지체하시면 나는 어딘가 전쟁터에 있을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당신 곁에 묻혀 있을 거예요”라고 했습니다. “해가 빛을 내지 않고 달이 피처럼 검게 변하는 그 아침에, 세상이 온통 차갑게 기다리고 있을 때, 당신이 나보다 먼저 가면 그 도시의 성문으로 가요. 동쪽 성문에 가서 서 있다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같은 분들이 들어오는 것을 보거든, 있는 힘껏 ‘빌!’ 하고 외쳐요. 내가 아이들을 모아 데리고 그 성문에서 당신을 만날게요.” 아내는 앙상한 두 팔을 들어 저를 껴안았습니다. 저는 작별의 입맞춤을 했습니다. 아내는 눈을 감고 하나님을 만나러 갔습니다. 그것이 아내와의 마지막 만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저는 두 배로 일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전도 집회를 연달아 다니며 밤낮으로 힘써 설교하는 것입니다. 그때 제가 잃어버린 것을 만회하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오, 집에 돌아왔을 때는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집에 가서 자려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어머니 집으로 오기를 원하셨지만 저는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의 작고 낡은 집으로 갔던 것이 생각납니다.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집 안의 모든 것을 합쳐도 십 달러면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것이었습니다. 아내는 집을 깨끗이 가꾸었고, 그 집은 우리의 집이었습니다. 집만 한 곳은 없었습니다. 아무리 초라해도 집만 한 곳은 없습니다. 어머니 집도 내 집 같지 않고, 다른 어디도 그렇습니다. 그날 밤 거기 가서 누워 잠들려 했던 것을 절대로 잊지 못합니다. 종이를 넣어 둔 난로 쇠살대 안에 작은 생쥐가 들어가 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거기 누워 사탕을 먹곤 했습니다. 손을 움직이는 소리 같았습니다... 저는 울기 시작했습니다. 문을 닫았더니 문 뒤에 아내의 기모노가 걸려 있었습니다. 문 뒤에 걸려 있었습니다. 오, 모든 슬픔이 다시 밀려왔습니다. 누워서 울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브로이 씨였습니다. 그분이 와서 “빌리 형제님” 하고 불렀습니다. 저는 “네” 했습니다. “나쁜 소식이 있습니다.” 저는 “프랭크 형제님, 방금 아내를 시신 안치소에 데려다 놓고 왔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것뿐이 아닙니다. 아기 샤론 로즈도 죽어 가고 있습니다.” 저는 “설마 그럴 리가요”라고 했습니다. “아대어 선생님이 지금 병원으로 데려가고 있습니다. 아이가 죽어 가는 것 같다고 합니다.”
더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일어나 걸으려 했지만 걸을 수가 없었습니다. 힘이 다 빠졌습니다. 사람들이 제 팔을 부축했습니다. 그분은 저를 낡은 트럭에 앉혀 병원으로 데려갔습니다. 안으로 걸어 들어가니 샘이 문 앞에 서 있었습니다. “빌리, 아이에게 가지 마. 죽어 가고 있어. 엄마에게서 결핵성 수막염이 옮아 척추까지 퍼졌어. 아이가 죽어 가고 있어. 빌리 폴 때문에 들어가서 아이를 볼 수는 없어”라고 했습니다. 저는 “선생, 내 아기를 봐야 해. 보게 해 주겠지? 선생?”라고 했습니다. “빌, 빌리 폴 때문에 그럴 수 없어. 수막염이야. 자네 옷에 묻혀 다른 곳으로 옮기기라도 하면...” 저는 “선생, 거기 가게 해 주든지, 아니면 클로로포름을 주어 아이와 함께 죽게 해 줘. 이제 내게 삶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 내가 가진 것은 모두 사라졌어”라고 했습니다. 그도 울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간호사는 거기 서서 “브래넘 형제님, 안에 들어가시게 할 수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간호사가 등을 돌리자 저는 몰래 돌아서 지하의 격리된 곳으로 내려갔습니다. 몹시 허술한 병원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아이의 얼굴에는 파리가 앉지 못하게 얇은 거즈 천을 덮어 놓았습니다. 수막염 때문에 일어나는 작은 경련이 [불분명한 말]. 파리들이 아기의 눈에 앉아 있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눈에서 파리를 쫓아 주고 아이를 내려다보며 “샤론 로즈, 아가, 아빠를 두고 가지는 않을 거지?”라고 했습니다. 통통한 작은 다리와 오그라든 작은 손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불분명한 말] 그렇게 몸을 움츠리며 떨고 있었습니다. 작은 입술을 떨며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저는 “샤론, 아빠를 두고 가려는 거니?”라고 했습니다. 아이는 몹시 떨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저를 올려다보는데 너무 심하게 고통받아서 그 작은 아기의 눈 하나가... 눈이 이렇게 몰려 있었습니다. 그렇게 고통받는 아이를 보는데, 작은 손을 제게 뻗으려 하는 것 같았습니다. 오, 제 가슴을 찢어 내는 것 같았습니다. ‘오, 하나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날 이후로... 그래서 저는 사시가 있는 아이들을 보면, 오, 차마 바라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일을 하십니다. 그 안에서 좋은 것을 얻어 내시기 위해 때로는 무엇인가를 으깨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 작은 아이를 보며 바닥에 무릎을 꿇고 “오, 사랑하는 하나님, 제가 한 일을 후회합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제게서 데려가셨는데 이제 아기까지 데려가시는군요. 오, 하나님, 제발 제 딸을 데려가지 마십시오. 저는 마음을 다해 이 아이를 사랑합니다. 주님을 섬기겠습니다. 그때 저곳으로 가라고 하셨는데 가지 않은 것 외에는, 제가 아는 한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습니다. 제발 제 아기를 데려가지 마십시오. 저는 이 아이를 사랑합니다. 오, 안 됩니다. 하나님, 제발 말씀해 주십시오. 이 아이 대신 저를 데려가십시오”라고 했습니다. 눈을 들어 보니 검은 천이 펼쳐지며 내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 아이가 떠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일어나 아이를 보고 “아가, 하나님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바란다. 너는 아빠의 사랑하는 딸이야”라고 했습니다. 머리에 손을 얹고 “오, 하나님, 왜 저를 이렇게 찢으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주님을 향한 제 믿음은 변하지 않습니다. 옛날 욥처럼, 주님께서 저를 죽이실지라도 저는 온 마음으로 주님을 믿겠습니다. 주님을 신뢰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샤론 로즈, [불분명한 말] 아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를 바란다. 잠시 후 천사들이 와서 네 작은 혼을 엄마에게 데려갈 거야. 아빠는 네 몸을 여기서 안아다가 엄마 품에 누이고 내일 묻어 줄게.” 저는 “주님,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습니다. 이제 제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아이의 작은 머리에 이렇게 손을 얹었습니다. 더는 저 자신을 가눌 수 없었습니다. 몸이 무너지는 것을 느끼며 바닥에 쓰러졌습니다. 하나님의 천사들이 와서 아이를 안고 그 작은 혼을 데려갔습니다. 작은 입은 더 이상 떨리지 않았고 작은 다리도 곧게 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아이를 데려가셨습니다. 저는 가슴이 산산조각 난 채 거기 서 있었습니다. ‘오, 하나님, 오, 긍휼을...’ 하고 생각했습니다. “주님, 왜 저를 데려가지 않으십니까? 주님, 그저, 그저 저를... 어릴 때는 모두 저를 비웃고 계집애 같다고 불렀습니다. 저는 굶주렸고 이것저것 없이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이제 작은 가정을 주셔서 바르게 살려고 애썼습니다. 작은 가정을 주셨는데, 제게서 빼앗아 가지 마십시오. 하나님, 저도 그들과 함께 가게 해 주십시오. 더는 이곳에 남겨 두지 마십시오. 남아 있고 싶지 않습니다.” 울면서 [불분명한 말] 저는 “그러나 하나님, 제 마음속에는 무엇인가 있습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무엇을 하셨든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을 향해 두 손을 들었습니다.
간호사가 들어와 아기를 보더니 작은 두 손을 포개어 주었습니다. 제게 와서 저를 일으켜 데리고 나갔습니다. 며칠 뒤 아이를 언덕 위로 데려갔을 때, 감리교 목사인 스미스 형제님이 서서 장례 설교를 하고 계셨습니다. 아이를 엄마와 함께 묻으려고 내려놓을 때 저는 아이를 보았습니다. 그분은 흙덩이를 손에 들고 돌아오다가 저를 보시고는 고개를 돌리셨습니다. 그저... 오, 저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열여덟 달 된 작은 빌리 폴을 이 팔에 기대어 안고 있었습니다. “빌리, 아가, 언젠가 너와 아빠도 엄마와 여동생을 보러 갈 거야”라고 했습니다. 그분이 관 위에 흙덩이를 떨어뜨리며 “재는 재로, 티끌은 티끌로, 흙은 흙으로”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오, 작은 단풍나무 사이로 바람이 내려와 불기 시작하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강 너머에 한 나라 있으니, 달콤한 영원이라 불리는 곳. 믿음의 말씀으로만 그 해변에 이르네. 한 사람씩 그 문에 들어가 죽지 않으시는 분과 함께 거하리. 언젠가 당신과 나를 위해 저 황금 종들이 울리리라.” 저는 무덤에서 돌아섰습니다. 제 팔에 안겨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는 가엾은 작은 빌리가 생각났습니다. 젖병을 챙겨 주머니에 넣고 아이를 이렇게 안은 채 거리를 걸었습니다. 이리저리, 저 아래로... 어느 날 밤에는 거의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이렇게 품에 안고 걸었는데, 아이는 엄마를 찾으며 울었습니다. 찾아갈 엄마가 없었습니다. 마당으로 돌아오는데 아이가 “아빠, 우리 엄마 어디 있어?” 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뵈러 가셨어”라고 했습니다. “언제 돌아와? 엄마 보고 싶어.” 저는 “글쎄, 아가, 아빠도 모르겠어. 돌아오실 거야”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걷다가 어른들이 앉곤 하던 나무를 돌아갔습니다. 거기에 작은 사냥개가 있어서 쓰다듬어 주려고 했습니다. 아이가 저를 보고 “아빠, 저 구름 속에서 엄마를 본 것 같아”라고 했습니다. 오, 저는 아이를 안은 채 거의 넘어질 뻔했습니다. 비틀거리다가 그만 쓰러졌습니다. 오, 일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한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가엾은 아이는 거기 앉아서 엄마를 찾으며 울고 있었습니다. 저는 ‘하나님... 제가 잘못한 줄 압니다. 하지만 저는... 언젠가는 분명히 달라지겠지요’ 하고 생각했습니다.
살아가며 일을 해 보려고 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일하러 갔던 것이 기억납니다. 퍼블릭 서비스 회사에서 전선 일을 했습니다. 이른 아침 전봇대에 올라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멀리 언덕 위에 낡고 험한 십자가 서 있으니, 고난과 수치의 표상이로다. 거기 있다가 문득 올려다보니 해가 이쪽으로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햇빛이 저와 전봇대의 가로 철대를 비추자, 언덕 비탈에 십자가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몸 하나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저는 ‘그래, 맞아. 내 죄가 그분을 저기에 달리게 했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아내가 간 것은 이해할 수 있었지만 아기는... 아기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데려가셨을까요? 아래를 내려다보니 신경이 몹시 떨렸습니다. 고무장갑을 벗었습니다. 바로 곁으로 이천삼백 볼트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비겁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샤론, 아빠가 잠시 후 집에 가서 너를 만나겠다”라고 했습니다. 그 전선을 손으로 잡으려고 장갑을 벗었습니다. 온몸의 뼈가 부러질 일이었습니다. 저는 저 자신을 다스릴 수 없을 만큼 제정신을 잃어 가고 있었습니다. 진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전봇대에서 어떻게 내려왔는지는 지금도 모릅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전봇대 곁에 이렇게 웅크리고 앉아 울고 있었습니다. 온몸에 끈적한 땀이 굵게 맺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정해 놓지 않으셨더라면... 저는 미리 정하심을 믿습니다. [테이프의 공백] [불분명한 말] 저는 바로 거기서 죽었을 것입니다.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날 아침에는 일을 그만두고 나왔습니다. 도저히 견딜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 집에 갔다가 그날 저녁 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문 옆으로 손을 뻗어 우편물을 집어 안으로 들어갔는데, 첫 편지에 “샤론 로즈 브래넘 양”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아이의 작은 크리스마스 저축, 팔십 센트였습니다. 모든 슬픔이 다시 밀려왔습니다. 저는 부엌에 놓고 자던 낡은 군용 간이침대 곁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날씨가 추워져 바닥에 서리가 덮여 있었습니다. 무릎을 꿇고 “하나님, 제발 저도 가게 해 주시든지, 어떻게든 해 주십시오. 제 마음을 가라앉혀 주십시오. 이대로는 견딜 수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울며 기도하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꿈에 저는 서부 어느 곳에 있었습니다. 커다란 서부식 모자를 쓰고 “마차 바퀴가 부러졌네”를 휘파람으로 불며 초원을 가로질러 걷고 있었습니다. 문득 보니 포장을 씌운 낡은 마차가 한 대 있었고 바퀴 하나가 부러져 처져 있었습니다. 그 곁에는 십 대의 아름다운 아가씨가 서 있었습니다. 금발이 바람에 날리고 눈은 푸르며 아름다웠습니다. 지나가며 모자를 벗고 “안녕하세요, 아가씨”라고 했습니다. 다시 걸어가며 “마차 바퀴가 부러졌네”를 휘파람으로 불었습니다. 그 아가씨가 “안녕하세요, 아빠”라고 했습니다. 저는 돌아보며 “뭐라고 했어요?”라고 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아빠, 라고 했어요.” 저는 “아가씨, 나더러 아빠라니, 당신은 나와 같은 나이잖아요”라고 했습니다. “아빠, 여기가 어디인지 모르시는군요.” 저는 “이해가 안 되는구나” 했습니다. “땅에서는 제가 아빠의 작은 샤론이었어요.” “샤론?” “네, 아빠. 이곳에는 어린 아기들이 없어요. 모두 같은 나이이고 죽지 않아요.” 저는 ‘오’ 하고 생각하며 “엄마는, 엄마는 어디 있니?”라고 물었습니다. “아빠를 기다리고 있어요.” 아이는 “빌리 폴은 어디 있어요?”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조금 전에 그 아이를 두고 왔단다. 이게 이해가 안 되는구나”라고 했습니다.
아이는 “엄마는 아빠의 새집에서 기다리고 있어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새집이라고? 아가, 여기 뭔가 잘못됐구나. 브래넘 집안은 떠돌이들이야. 우리에게는 집이 없어. 그저 가난한 사람들이란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빠, 여기에는 집이 있어요.” 돌아보니 큰 궁전이 있었고 그 주위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저기가 아빠 집이에요. 엄마가 저기서 기다리고 있어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돌아서서 “나의 집, 정다운 집”을 부르며 이렇게 길을 따라 집으로 걸어갔습니다. 아내가 다시 저를 맞으러 나왔습니다. 천국은 실제인 장소입니다. 아름다운 모습의 아내는 늘 그랬듯 두 팔을 내밀었습니다. 검은 머리는 빛나고, 그 눈도, 온몸도 다시 완전히 건강했습니다. 팔을 벌리며 “빌”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내에게 다가가 이렇게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집회를 마치고 몹시 지쳐 돌아오면 아내는 여러 번 저를 안고 토닥여 주곤 했습니다. “오, 여보, 너무 애썼어요. 젊은 나이에 건강을 해칠까 걱정돼요”라며 등을 그렇게 토닥였습니다. 저는 아내의 무릎 앞에 엎드렸고 아내는 팔로 저를 감싸며 “빌”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여보, 이해가 안 돼요. 저 아래서 샤론을 만났어요”라고 했습니다. “네, 당신을 기다리러 내려가겠다고 하더군요.” “우리 딸이 아름다운 아가씨로 자랐지요?” “네.” 저는 “빌리 폴을 기다리고 있다고 하더군요”라고 했습니다. “네. 들어오지 않을래요?” 저는 몸을 일으키며 “여보, 너무 지쳐서 견딜 수가 없어요. 이 아픈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또 저 아픈 사람을 위해 기도했어요”라고 했습니다. 그때는 아직 지금 같은 집회를 하기 전이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아내는 “빌, 다 알아요”라고 했습니다.
병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일... 그래서 저는 언젠가 떠날 때 단상에서 떠나게 될지도 모른다고 믿습니다. 아시겠죠? 저는... “병든 사람들을 위해 계속 기도했어요. 너무 지쳐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요”라고 했습니다. 아내는 “알아요. 앉지 않을래요?”라고 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주 커다란 모리스 안락의자가 놓여 있었습니다. 아내를 보니 아내도 저를 보고 미소 지었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한번은 제가... 우리에게는 좌판을 히코리 나무껍질로 엮은 낡은 의자뿐이었습니다. 그런 의자가 어떤 것인지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히코리 나무껍질을 가로세로 엮은 것인데, 두 개가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거기 있었고, 저는 십오 달러짜리 모리스 안락의자를 샀습니다. 먼저 일 달러를 내고 매주 일 달러씩 갚기로 했습니다. 오륙 달러쯤 갚았는데, 그다음에는 도저히 할부금을 낼 수 없었습니다. 형편이 어려워져 수입으로 지출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아시지요. 무슨 뜻인지 아실 것입니다. 할부금을 내지 못하자 독촉장이 왔습니다. 의자를 가지러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돌아오니 아내가 저를 위해 버찌파이를 구워 놓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내에게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아내는 문 앞에서 저를 맞으며 “아...” 했습니다. 그날 밤 낚시라도 가기를 원했습니다. 버찌파이를 구워 놓고 “당신에게 가장 맛있는 버찌파이를 만들어 놨어요”라고 했습니다. 제가 버찌파이를 좋아하는 줄 알았습니다. 저는 뭔가 일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녁을 먹은 뒤 아내는 “아이들에게 낚시할 지렁이를 파 오라고 했어요. 강에 가서 낚시해요”라고 했습니다. 아내가 무척 들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식사를 마친 뒤 저는 “잠깐 거실에 가 봅시다”라고 했습니다. 아내는 “아니에요, 아니에요, 밖으로 나가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내를 한 팔로 감싸며 “오, 여보, 당신은 참 사랑스러운 아내예요”라고 했습니다. 문 안으로 들어가자 아내가 제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빌, 당신을 위해 그 의자를 지키려고 정말 애썼어요.” 저는 “알아요, 여보. 하지만 어쩔 수 없었잖아요”라고 했습니다. 때로는 견딜 수 없을 만큼 지쳐 돌아와 그 낡은 작은 모리스 의자에 앉곤 했습니다. 작은 발 받침도 있었습니다. 거기 앉아서 잠들 때까지 성경을 읽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사라졌습니다. 우리에게 없었습니다. 값을 치를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지치곤 했습니다. 이제 이 환상에서 아내를 만났을 때, 아내가 둘러보며 “그 의자 기억해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네” 했습니다. “할부 회사에서 가져갔던 의자요.” “네, 기억해요, 여보.” “하지만 빌, 이 의자는 절대로 가지러 오지 못해요. 이미 값을 다 치렀거든요. 당신 것이에요. 앉아서 잠깐 쉬어요.”
오, 그리스도인 여러분, 언젠가, 사람의 이해가 미치지 못하는 곳에... 저는 압니다. 언젠가, 언제 어디인지는 오직 하나님만 아십니다만, 죽을 인생의 수레바퀴가 모두 멈출 때 저는 시온산으로 길을 떠날 것입니다. 거기서 다시 아내를 보고 예수님을 뵐 것입니다. 제 아기를 보고 사랑하는 이들을 볼 것입니다. 나를 기다리는 기쁜 내일이 있네, 진주 문들이 활짝 열리는 곳. 이 슬픔의 골짜기를 건너면, 나는 저편에서 쉬리라. 할렐루야! 오늘 저는 마음을 다해 그분을 사랑합니다. 아이처럼 울고 싶지 않습니다. 오, 하나님, 긍휼을 베풀어 주십시오. 이 늙은 [불분명한 말]은 거리를, 눈물과 마음의 고통과 어려움을 지나왔습니다. 오, 아버지, 저는 평생 주님을 섬겨 왔습니다... 왜 제가 전에 [불분명한 말]. 사랑하는 예수님, 이 십자가가 어떤 것이든, 얼마나 치욕스러워 보이든, 마음을 다해 주님을 위해 살며 그 일을 하려고 애썼습니다. 사랑하는 예수님,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은 제 마음을 거듭거듭 깨뜨리셨지만, 저는 그 일로 인해 주님을 사랑합니다. 이제 사랑하는 하나님,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이루도록 도와주셔서 제 달려갈 길을 기쁨으로 마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언젠가 삶이 끝나고, 지금 제가 걸어가는 이 길과 [불분명한 말]. 제 삶은 이미 절반 이상 지나갔습니다. [불분명한 말] 언젠가 제 혼은 저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오, 새벽별이시여, 그때 제 곁에 서 주십시오. 나라를 가로질러 다니며 사랑스러운 친구들과 복음의 사역자들을 만나고, [테이프의 공백] ...기도하며 병들고 고통받는 사람들, 병상에 누운 가엾은 어머니들을 봅니다. 오, 저는 그 결핵의 마귀가 얼마나 미운지 모릅니다. 제 가족을 산산이 부숴 놓았습니다. 오, 하나님, 도와주십시오. 주님, 부르심에 신실하도록 도와주십시오. 언젠가 모든 일이 끝났을 때, 오늘 오후 이 작은 무리와, 오, 저는 [불분명한 말] 그 밖의 수많은 이들이, 마지막 전투를 싸우고 마지막 설교를 마친 뒤에는 주님 앞에 기뻐하며 서게 해 주십시오. 불멸의 관을 쓰고 사랑하는 이들을 만나게 해 주십시오.
오늘 이곳의 많은 분들이 삶의 슬픈 거리를 지나왔습니다. 사랑하는 이들, 어머니와 아버지, 자녀들이 먼저 갔습니다. 집이라 부를 수 있는 곳이라면, 그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들은 압니다. 여기 있는 많은 남자분들은 집으로 돌아가도 아이들의 엄마가 없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압니다. 엄마 품에서 놀던 어린 아기가 땅속에 묻히는 것을 보는 심정이 어떤지 아는 분도 많습니다. 하나님, 저희는 예수님께서 오시고 무덤들이 열리며 사랑하는 이들이 죽지 않는 몸으로 다시 나타날 날을 기다립니다. 오, 주님, 저희가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는지요. 저희 믿음을 굳게 지켜 주십시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오늘 이곳에 죄를 용서받아 주님을 알게 된 적이 없고,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이신 주님의 사랑하는 아들을 한 번도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오늘 부드럽고 겸손한 마음으로 손과 마음을 주님께 올리며 이렇게 말하게 해 주십시오. “사랑하는 예수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 저를 받아 주십시오. 제 삶을 드려 주님을 섬기고 싶습니다. 브래넘 형제님의 실수를 보았으니, 주님께서 저를 그런 시궁창으로 끌고 가셔야 할 만한 일은 결코 하지 않겠습니다. 지금 주님께 손을 내밀어 주님의 은혜로 그 길을 피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사랑하는 아버지, 허락해 주십시오. 기다리는 이 회중에게 복을 주십시오.
이제 잠시 머리를 숙인 채 계십시오. 아이처럼 울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기도하는 동안, 오, 그 끔찍했던 시간들을 다시 겪으려니... [테이프의 공백] 오, 주님, [불분명한 말] 이제 앞으로 나와 자기 삶을 그리스도께 드리실 분이 여기 계십니까? 누구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심을 믿으신다면... [테이프의 공백] 손을 들고 “브래넘 형제님, 저는 아직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하실 분 계십니까? 손을 들고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하나님께서 제게 긍휼을 베풀어 주시도록 구해 주십시오” 하시겠습니까? 이 건물 안에 한 분도 안 계십니까? 형제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죄인 한 분이... 형제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손을 보았습니다. 또 누구 계십니까? “브래넘 형제님,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기도하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라고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