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감사합니다, 박스터 형제님. 감사합니다, 박스터 형제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좋은 저녁입니다. 아니, 좋은 오후입니다. 오늘 오후 이 자리에 나와, 우리가 섬기는 이 위대하신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제 마음의 사랑을 여러분께 말씀드리게 되어 참 기쁩니다. 저 영광스러운 옛 찬송, “오직 믿으라”를 들으니 그 곡을 지은 폴 레이더가 생각납니다. 그분이 그 곡을 쓰실 때 저는 어린 소년으로 그분 발치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 곡이 제가 온 세계를 다닐 때 부르는 주제 찬송이 될 줄은 그때 그분도 거의 모르셨을 겁니다. 그런데 제가 포트웨인에 갔을 때, 첫날 밤 폴이 공부하던 그 방에 있었는데, 확성기를 통해 “오직 믿으라, 모든 것이 가능하니”라는 찬송이 들려왔습니다. 저는 그 위대하고 용감한 영웅을 생각했습니다. 폴 레이더에 대해 들어 보신 분이 얼마나 됩니까? 아, 거의 모두로군요. 아, 그분은 얼마나 장하게 죽음을 맞으셨는지요. 그분은 죽지 않았습니다. 그저 주님과 함께 계시려고 가셨습니다. 그분은…
그리스도인은 죽지 않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은 죽는다고 말하는 구절은 없습니다. 사람이… 쾌락 가운데 사는 사람은 살아 있는 동안에도 죽은 자입니다. 죽음은 “분리,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를 뜻합니다. 죄인들은 분리되지… 죄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있지만, 그리스도인은 결코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지 않습니다. 그저 몸을 여기에 남겨 두고 주님과 함께 있으러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폴은… 저는 그분이 떠나시던 모습이 참 좋습니다. 그분은 장난을 아주 잘하셨습니다. 그분을 아시는 분들은 그분이 어떻게 장난치셨는지 기억하십니까? 늘 장난을 치셨습니다. 언제나 누군가에게 조그만 농담을 던지곤 하셨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시기를, 그때… 무디 성경학교의 작은 합창단이 와서 찬송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방의 차양을 내려놓고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폴이 둘러보며 말했습니다. “이봐요, 누가 죽는 겁니까? 접니까, 여러분입니까?” 그리고 말했습니다. “저 커튼, 저 차양을 올리고, 정말 좋고 불같이 뜨거운 복음 찬송을 좀 부르십시오.” 그래서 그들이 “십자가 아래서”를 부르기 시작하자, 그분이 “그게 더 듣기 좋군요.” 하셨습니다.
그러고는 오랫동안 함께해 온 형제 루크를 침대 곁으로 불러 손을 잡으셨습니다. “루크, 우리가 참 먼 길을 함께 걸어왔구나.”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아라. 앞으로 오 분 뒤면 나는 그분의 의를 입고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서 있을 거야.” 그분은 고개를 숙이고 주님을 만나러 가셨습니다. “그분의 의를 입고 그분 앞에 서 있을 거야.” 저도 그렇게 가고 싶습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습니까? 위대한 이들의 삶은 모두 우리에게 일깨워 주네. 우리도 우리의 삶을 숭고하게 할 수 있으며, … 떠날 때 뒤에 남길 수 있음을, 시간의 모래 위에 발자국들을. 그렇지 않습니까? 저는 그 시, “인생 찬가”를 좋아합니다. 그리하여 어쩌면 또 다른 이가, 인생의 엄숙한 바다를 항해하다가, 외롭고 파선한 형제가, 그것을 보고 다시 용기를 얻으리.
예전에는 짧은 시들이 저에게 큰 용기를 주곤 했습니다. “콜럼버스”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항해하라, 항해하라, 계속, 계속 항해하라.” 저는 용기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겁쟁이는 정말 싫습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습니까? 두려워하는 사람 말입니다… 당당히 서십시오. 여러분 뒤에 올바른 뒷받침이 있다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 서십시오. 그것을 위해 살 뿐 아니라, 죽을 각오도 하고, 무슨 일이든 할 각오를 하십시오. 옳은 것은 옳은 것입니다. 다른 이들도 옳은 것을 위해 죽었습니다. 복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복음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지 않는다면, 저는 그분을 반대할 것입니다. 그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할 테니, 밖에 나가서 할 수 있는 모든 말로 그분을 반대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분이 옳으심을 압니다. 그러므로 저는… 온 마음으로 그것을 믿습니다. 이것의 일부만 옳고 나머지는 옳지 않다면, 하나도 옳지 않은 것입니다. 전체가 옳든지, 전체가 틀리든지 합니다. 모든 말씀이 참됩니다. 복음의 어느 부분에든 여러분의 혼을 걸고 믿을 수 있습니다. 모두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두렵거든 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안다면, 좋습니다. 그때는 다릅니다.
제가 방금… 조금 전에 몇몇 형제님들을 만났는데, “브래넘 형제님, 언제 한번 사냥에 모시고 가고 싶습니다.” 하셨습니다. 저도 정말 가고 싶습니다. 저는 사냥을 좋아합니다. 제가 어린 소년이었을 때 하나님을 만난 곳도 바로 그런 자연 속이었습니다. 그분의 자연 속에서 그분을 보았습니다. 여러분도 그분의 자연 속에서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나무들을 보십시오. 새들을 보십시오.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보십시오. 꽃 한 송이를 보십시오.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저 커다란 칼라 꽃의 얼굴을 바로 들여다보면서 하나님이 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 꽃을 똑바로 바라보고, 그것이 어떻게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지 보면서도 그렇게 말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의 정신에 뭔가 문제가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이 근처에 사시는 여러분은 마당을 온통 아름다운 꽃들로 단장하고 계십니다. 저는 그것이 좋습니다. 이곳은 꽤 추워지겠지요. 이제 얼마 뒤, 몇 달 뒤면 서리가 그 작은 꽃을 때릴 것이고, 꽃은 작은 고개를 숙일 것입니다. 죽을 것입니다. 꽃에서는 꽃잎이 떨어지고, 줄기에서는 잎들이 떨어질 것입니다. 그 꽃에서 작은 검은 씨앗 하나가 떨어질 것입니다. 그러고 나면 장례 행렬이 이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장례 행렬을 데려오십니다. 가을에 큰 구름을 보내십니다. 그 구름이 울면 비가 내려 그 작은 씨앗을 땅 아래, 깊숙한 곳에 묻어 줍니다. 그러고는 얼어붙는 겨울이 와서 땅을 얼립니다. 아마 깊이 육 내지 팔 인치까지 얼겠지요. 그 작은 씨앗은 부풀어 얼어붙고 터집니다. 속이 흘러나옵니다. 그러고는 지루하고 긴 겨울을 지납니다.
자, 여러분의 꽃을 찾아가 보십시오. 알뿌리는 다 말라 없어졌습니다. 줄기도, 꽃도, 꽃잎도, 씨앗도 없어졌습니다. 씨앗은 터져 속이 흘러나왔습니다. 모든 것이 사라졌습니다. 그것으로 꽃은 끝난 것입니까? 아, 아닙니다. 아시겠죠? 따뜻한 햇살이 그 땅을 조금만 감싸기 시작하면 됩니다.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에 생명의 싹이 숨어 있습니다. 그 꽃은 다시 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꽃 한 송이가 다시 살 길을 마련하셨다면, 그분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여러분과 저는 어떻겠습니까? 우리는 얼마나 더 확실히 다시 살겠습니까?
얼마 전 어떤 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작은 구내식당에 앉아 “농업 시간”이라는 방송을 듣고 있었습니다. 방송에서는 옥수수를 완벽하게 만들어 냈다고 했습니다. 과학자들의 기술이 너무나 뛰어나서, 기계로 옥수수를 만들어 내면 어느 것이 어느 것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쪽 자루에서 공장에서 만든 옥수수를 한 움큼 꺼내고, 저쪽에서 밭에서 자란 옥수수를 한 움큼 꺼내어 살펴보아도, 아무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섞어 놓으면 가려낼 수 없습니다. 실험실에 가져가 잘라 보아도, 각각 들어 있는 칼슘과 수분 등의 양이 똑같습니다. 그런데 말했습니다. “둘을 구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옥수수 낟알을 땅에 묻는 것입니다. 사람이 만든 것은 그대로 없어지고 말지만,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신 것은 다시 살아납니다.” 저는 곁에 계시던 그 연로한 감리교 목사님께 말했습니다. “제 손을 꼭 잡으시는 게 좋겠습니다. 제가 여기서 목사님을 난처하게 만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 두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은… 겉모습은 같고, 둘 다… 둘 다 사람일 수 있습니다… 서로 수혈도 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 사람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임으로 생명의 싹이 있고, 다른 사람은 죄들과 범법들 가운데 죽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길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 길로 들어가 그분의 길을 따라 걷기만 하면, 반드시 저편 기슭에 이를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오늘 오후에는 제가 아주 조금 늦었습니다. 보통 정각에서 십오 분쯤 지나서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박스터 형제님이… 아내에게 들으니, 형제님이 저를 설교자라고 하셨다더군요.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것은 잘못 아신 것입니다. 저는 설교자가 아니니까요. 저는 소위 여분의 타이어 같은 사람입니다. 여분의 타이어를 어디에 쓰는지 아십니까? 타이어에 펑크가 나면 여분의 타이어를 끼우고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리에게 펑크가 났다는 뜻은 아닙니다. 박스터 형제님, 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다. 하하하. 제가, 제가… 아, 이건 사과를 드려야겠군요. 형제님이 저를 가만두지 않으시겠습니다. 저는 그저 제가 말하려는 요점을 설명하려던 것입니다. 저기서 듣고 계실 겁니다. 좋습니다. 우리에게 펑크가 났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우리에게는 그런 일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여분의 타이어란 펑크가 났을 때 끼우고 돌아오게 해 주는 것입니다. 저는 그저 남는 시간에 나오는 것입니다.
대개 일요일 오후가 되면 박스터 형제님이 저를 데리고 나오셔서 저의 삶 이야기를 하거나 우리 주님에 대해 조금 말씀드리게 하십니다. 그러면 제게는 긴장이 풀립니다. 설교를 할 때는… 저는 밤낮으로 하루 종일 설교해도 아무렇지 않습니다. 전혀 힘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치유받을 사람 한 명을 대하거나 환상 하나를 보고 나면, 여덟 시간 설교하는 것보다 더 힘이 빠집니다. 아시겠죠? 생명력이 빠져나가는 것 같습니다. 설교할 때는 힘을 얻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임하면 힘이 빠집니다. 차이가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을 설명해 보려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제가 아무리 설명하려고 해도 여러분께 다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이해하려고 해 주십시오. 아시겠죠? 그리고 제 말을 믿어 주십시오. 그것은 사람의 생명력이 쑥 빠져나가게 하는 것입니다. 한때 저는 예수님께서 어떻게 그 모든 파도 속에서 배에 누워 계실 수 있었을까, 어떻게 폭풍이 일고 있는 것을 모르실 수 있었을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하루 종일 사람들을 고치시고 환상을 보시면서 그분에게서 권능이 나갔기 때문에 몹시 지치셨던 것입니다. 너무나 지치셔서 일어날 수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랬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와서 그분을 깨워야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한 목사님이 “브래넘 형제님, 한 가지 바로잡아 드리고 싶습니다.” 하셨습니다. 괜찮습니다. 저는 그런 말을 기쁘게 받습니다. 누구든 저를 도와주거나 뭔가 알려 줄 수 있다면 말입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형제님이 밤에 사람들에게 말씀하실 때, 그들 중 몇 사람이 그것을 독심술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알고 계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형제님이 그들이 몇 년 동안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일을 과거로 돌아가 말해 주실 때, 그 생각은 완전히 무너집니다. 그러면 그들도 그것이….” 그러면서 그분이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생각을 읽는 일이 맞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제가 “글쎄요, 저는…” 하자, 그분이 “그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예, 압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성경 말씀을 하나 드리지요.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그분도 그것이… 무슨 말씀인지 아시겠습니까?
그분은 그들의 생각을 아셨습니다. 지금도 아십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제가 무슨 말씀을 드리는지 아시겠지요?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셨습니다. 그분은 무엇을… 그들이 말했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 누가 가장 큰가 하는 것들을 왜 너희 마음속으로 따지느냐?” 또 그들이 “이 사람이 신성모독 하는도다.” 했을 때… 그분은… 그들의 생각을 아셨습니다.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셨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죄들을 용서받을지어다.’ 하고 말하는 것과,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이 똑같이 쉽지 않으냐?” 아시겠죠? 어느 쪽입니까? 아시겠죠? 그분은… 그러니 그것은 바로 그분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니 그분을 신뢰하고 믿으십시오.
이런 일이 생각납니다… 저는 강단에서 농담을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기는 농담할 곳이 아니니까요. 이것을 농담으로 여기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저는 강단에서 그런 것을 하는 데 찬성하지 않으니까요. 이것은… 그저 작은 일화입니다… 제가 처음 침례교 설교자로 안수를 받았을 때, 아, 그 성경을 갖게 된 것이 얼마나 기뻤는지요. 어디를 가든 성경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전에는 나약한 사람이나 성경을 들고 다닌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늘 권투를 했습니다. 한 번 호되게 얻어맞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스리폴스 시티즈의 밴텀급 선수권을 노리는 데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러고는 한 경기에서… 그때는 저를 이길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웨스트버지니아주 헌팅턴에서 온 빌리 프릭이라는 작은 친구가 어느 날 밤 저를 거의 죽을 지경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일로 제 의기는 완전히 꺾였습니다. 그전까지는 프로 경기 열다섯 번을 치러 모두 이겼습니다. 그런데 그다음 경기에서는 그 친구가 저를 아주 혼내 주었습니다. 하.
그래서 그때는 늘… 그 시절 저는 “설교자는 그저 나약한 사람이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언젠가 제가 설교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더없이 나약한 사람이 될 거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구원받고 나니, 아, 저는 그 성경을 들고 다니고 싶었습니다. 누구에게든 제가 목회자라고, 설교자라고 말하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미셔너리 침례교회에서 제게 지역 권면 설교자 자격증을 주었습니다. 인디애나주에서 결혼식과 장례식을 집례하고, 침례를 베푸는 등의 일을 할 수 있는 자격이었습니다. 저는 “아, 얼마나 놀라운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누군가 “설교자십니까?” 하고 물으면, “예, 그렇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설교자라고 말하는 것이 기뻤습니다.
그러니 이런 일이 생각납니다… 제 아버지는 말을 타는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아주 뛰어난 명사수이셨습니다. 공연단을 따라다니셨습니다. 총을 다루셨는데, 제가 본 최고의 명사수 가운데 한 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큼직한 구슬을 하나 꺼내 이렇게 굴리셨습니다. 그것이 구르다가 멈추면, 두 자루의 총을 가지고 계시다가, 한 총으로 쏴서 구슬을 공중으로 튕겨 올리고, 그것이 땅에 떨어지기 전에 다른 총으로 쏴 깨뜨리셨습니다. 저는 사 피트 앞에 세워 놓은 돼지기름 통도 맞히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아버지를 닮으려면 한참 멀었습니다. 아버지는 말 타기를 좋아하셨습니다. 야생마를 길들이셨습니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만난 곳도… 오클라호마에 계실 때 아버지가 말을 길들이고 계셨습니다. 말을 아주 잘 타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른이 되면 아빠처럼 될 거야. 진짜 야생마 길들이는 사람이 될 거야.” 하고 말하곤 했습니다.
생각납니다. 낮에 늙은 쟁기말을 끌고 나가 하루 종일 밭을 갈곤 했습니다. 그 불쌍한 말은 몹시 지쳐 있었습니다. 원래도 늙은 말이었습니다. 오래된 물통은 통나무 속을 파서 만든 것이었습니다. 옛날 통나무 물통을 보신 분이 얼마나 됩니까? 오늘 여기 남부 출신들이 많이 계시군요. 짚을 넣은 요에서 주무셔 본 분은 얼마나 됩니까? 이봐요, 저만 시골뜨기가 아니군요, 그렇지요? 아이고. 히코리 나무로 훈제한 햄이나 수수 당밀만큼이나 미국적인 것 아닙니까? 우리는 헛간 뒤쪽으로 내려갔습니다. 제가 그 늙은 말에게 물을 먹였습니다. 저는 맏이였고, 어린 동생들을 모두 줄지어 세워 놓았습니다. 그러고는 그 늙은 말에 올라탔습니다. 아버지의 안장을 가져다가 도꼬마리 가시 열매를 한 움큼 그 아래에 넣고, 안장을 단단히 조인 다음 훌쩍 올라탔습니다. 불쌍한 말은 너무 늙고 지쳐 있었습니다. 그저 울기만 했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울었습니다. 날뛰려고 했지만, 몸이 너무 뻣뻣했습니다. 지쳐서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발을 땅에서 떼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면 저는 밀짚모자를 벗어 이쪽저쪽으로 흔들었습니다. 진짜 카우보이가 된 줄 알고 그 늙은 말 위에서 이렇게 몸을 흔들며…
어느 날 저는 서부로 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집을 뛰쳐나와 애리조나로 갔습니다. 마침 로데오가 열릴 때 도착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이제 진짜 카우보이가 될 때가 왔다.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재능이 내 안에 있잖아.” “분명히 나는…” 아이들이 어떤지 아시지요. 저는 열여덟 살쯤이었습니다. “가서 가죽 덧바지 한 벌을 사야겠다.” 하고 말했습니다. 가 보니 멋진 것이 한 벌 있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입어 보았습니다. 입고 보니 가죽이 바닥에 십팔 인치나 남아 늘어져 있었습니다. “이쪽 사람들은 인디애나 사람들보다 다리가 좀 더 긴가 보군.” 하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리바이스 청바지를 하나 샀습니다. 밖으로 나가니 사람들이 저를 말이 나오는 좁은 통로 안으로 들어가게 해 주었습니다. 진행자가 나와서 말을 한 마리 끌어냈습니다. 사람들이 무법자라고 부르는 그 야생마들을 보았습니다. 사막에서 온 워낙 거친 말들이라 앞에 건초를 놓아 주어도 먹지 않았습니다. 말들을 우리에서 그 좁은 통로로 몰아넣어 나오게 했습니다. 나오면 무슨 수를 써서든 붙잡아 올라타야 했습니다. 말들이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중 한 마리를 보는 순간, 저것은 우리 늙은 쟁기말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도 말을 타서 돈을 벌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 온몸이 성치 않고 다리가 휘었으며 비바람에 거칠어진 그 카우보이들과 함께 말 우리 울타리에 올라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저 어린애였지요. 거기 앉아서 그 사람들을 둘러보며 생각했습니다. “나도 저 사람들만큼 그럴듯해 보일까?” 그러자… 진행자가 나와서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 말을 타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이 위에 서 있었습니다. 말에 안장을 채우지 않고, 좁은 통로로 나올 때 붙잡는 것이었습니다. 말이 지나가는 바로 그 순간, 그 사람이 안장에 내려앉았습니다. 아, 그 말은 네 발을 모두 세숫대야 안에 모을 수 있을 만큼 웅크렸다가, 달도 넘겨 던질 듯이 뛰었습니다. [불명확한 말] 제가 보니, 그 말은 옆으로 두 번쯤 홱홱 튀더니, 공중으로 뛰어올라 몸을 옆으로 비틀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솟구쳐 이렇게 머리가 발을 넘어가듯 뒤집히더니 땅에 떨어졌고, 귀와 눈에서 피가 흘렀습니다. 보조 기수들은 말을 붙잡고 구급차는 그 사람을 데려갔습니다.
진행자가 그쪽으로 걸어오며 말했습니다. “이 말을 육십 초 동안 타는 분에게 오십 달러를 드리겠습니다.” 사람들이 말을 붙잡았습니다. 모두 꼼짝 않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곧장 제게 와서 물었습니다. “말을 타십니까?” 저는 “아닙니다.” 했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회심하고 성경을 끼고 다닐 때도 꼭 그랬습니다… 그저 지역 침례교 설교자였으면서, “이봐요, 저는 설교자입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세인트루이스의 천막 집회에 갔더니, 도허티 목사님이라는 성결파 설교자가 계셨습니다. 오순절 설교자였습니다. 그분의 설교를 들으러 갔습니다. 그분의 어린 딸이 막… 그곳에 부름을 받았었지요. 그래서… 여러분도 그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셨지요. 성 비투스 무도병에서 그런 식으로 치유받은 첫 번째 아이였습니다. 그 설교자가 그곳에서 집회를 하고 있었는데, 본문을 택해 설교하기 시작했습니다. 얼굴이 불타는 듯이 보일 때까지 설교했습니다. 힘이 다 빠져 무릎이 이렇게 꺾이면서 바닥까지 내려앉아서도 계속 설교했고, 다시 일어나 숨을 돌렸습니다. 길 아래 네다섯 구획 떨어진 곳에서도 여전히 그분의 설교 소리가 들릴 정도였습니다. 누군가 돌아다니다가 “설교자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아닙니다.” 했습니다. 하하하. “아닙니다.” 저의 느릿느릿한 침례교 방식으로는 그렇게 빨리 생각하지 못하겠더군요. 그뿐입니다. 저는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일요일 오후에 나오는 것이 좋습니다. 그 기름부음 아래 있지 않고, 그저 말씀을 전하러 나오는 것입니다. 그 아래 있지 않은 채… 밤에는 신경이 얼마나 팽팽하게 긴장하는지 아시면 놀라실 겁니다. 바로 이런 상태입니다. 마귀의 힘들이 이 안에서 움직이고, 여러 가지 일들이… 전에도 집회에 와 보셨으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셨을 겁니다. 비판하는 사람이 달려 나오거나 무슨 말을 하면, 바로 대응할 태세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아시겠죠? 말 한마디만 잘못해도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누군가 강단에 올라옵니다. 몇 주 전에 이곳에서 한 사람이 강단에 올라와서 말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저는 거의 기진맥진한 상태였습니다. 그 사람의 손을 잡았습니다. 환상을 보지 않으려고, 그저 손을 잡고 기도하려던 것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이렇게 제 손 위에 자기 손을 올려놓았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신체 기관에는 아무 이상이 없습니다.” 제가… 그 사람이 “아닙니다, 있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아닙니다. 다시 한번 봅시다.” 하고 손을 잡았습니다. 병균으로 인한 병이면 감지됩니다. “아닙니다. 아무….” 그 사람이 “제 기도 카드를 보십시오.”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기도 카드에 무엇을 적으셨든 그것은 저와 상관없습니다. 제가 책임지는 것은 오직 여기서 나타나는 것뿐입니다.” 그 사람이 말했습니다… 그러자 한 형제님이 기도 카드를 가져다 읽었습니다. 결핵이 있다고 했고, 또 무엇이 있었는지는 잊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그런 병이 없습니다. 어쩌면 회중 가운데 계실 때 믿음을 가지셔서, 여기 오시기 전에 치유받으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팔천오백 명 앞에서 돌아서더니 말했습니다. “자, 보십시오. 저게 꾸며 낸 수법입니다. 저기서 가졌다는 내 큰 믿음 말입니다.”
저는 몸을 돌렸습니다. 바로 그때 제 앞에서 흰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습니다. 거기에 있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마귀의 자식이여, 왜 이 강단에 올라와 하나님을 속이려 합니까? 당신의 정체가 드러났습니다. 어젯밤 당신은 회색 양복에 빨간 넥타이를 맨 남자와 식탁에 앉아 있었습니다. 당신은 어떤…” 자, 어느 교회인지는 말하지 않겠습니다만, 어쨌든… “당신은 어떤 교회에 속해 있습니다. 두 사람이 어젯밤에 모여서 여기 오겠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텔레파시라고, 환자가 기도 카드에 적어 놓으면 누군가 그 카드를 집어 든다고 했지요.” 제가 말했습니다. “환자가 자기가 저지르는 간음이나 그런 일들을 기도 카드에 적는다고 생각합니까? 당신은 이것을 텔레파시라고 생각했습니다. 저 사람들이 기도 카드를 받아, 그 내용을 텔레파시로 제게 전달한다고 말입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그것은 [불명확한 말].”
회중 가운데서 한 사람이 외쳤습니다. “맞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제가 바로 그 사람과 함께 앉아 있던 사람입니다.” 그 남자가 강단을 향해 달려 나왔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그 병들이 당신에게 임할 것입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강단에 쓰러져 제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말했습니다. “하나님, 죄 많은 제 혼에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아시겠죠? 여러분이 무슨 일을 하는지 조심하십시오. 그렇습니다. 그가 어떤 신학적 가르침을 받았든 상관없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자기 백성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때 제가 기름부음 아래 있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아시겠죠? 조심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서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분의 책임입니다. 제 책임은 이 자리에 서서 진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책임은 저와 함께 서 주시는 것입니다. 사실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이것은 불같은 시험을 거쳤습니다. 그런 시험을 거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기에, 오늘도 승리의 편에 서 있습니다. 아직 절반도 다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직 초기 단계입니다. 저 앞에서 그것이 그 큰 인 가운데 나타날 때를 지켜보십시오. 이 낡은 세상이 지금까지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흔들림을 겪을 때가 올 것입니다. 큰일들이 앞에 놓여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그것들을 이루어지게 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여 주실 때를 기다릴 뿐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오후에 나올 때는, 말하자면 옷깃을 좀 풀어놓고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서 기분이 좋습니다. 여러분도 그러셨으면 합니다.
성경을 조금 읽고, 몇 마디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제가 너무 길어지면 누군가 일어나서 그만하라고 말해 주시겠습니까? 저는 이야기하기를 워낙 좋아해서 너무 오래 이야기할 수도 있으니까요. 오래 붙들어 두지 않고, 잠깐만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짤막한 본문 몇 군데를 읽을 때면 그런 일이 많습니다. 이런 오후에는 무슨 말씀을 할지 미리 공부하지 않습니다. 늘 그렇게 해 왔습니다. 저는 언제나 성령께 맡깁니다. 그분이 제게 하라고 하시는 말씀을 합니다. 성경을 읽고도 그 말씀은 전혀 다루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분께서 제게 다른 일을 시키실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저는 모릅니다. 그런데 오늘 오후에는 제가 읽어 본 익숙한 본문을 읽으려고… 어쩌면 주님께서 “와서 한 사람을 보라”라는 말씀을 전하게 하실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주에 그 말씀은 여러 번 언급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1장에 있는 “나사로의 부활”을 읽으려고 합니다. 나사로가 실제로 부활했다고 믿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좋습니다. 오늘 오후 이곳에 그리스도인, 그리스도를 믿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온 회당에 가득하군요. 아, 백 퍼센트입니다. 좋습니다. 참 좋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방향으로 접근해 보겠습니다. 죄인들에게 설교하는 대신, 그리스도인들에게 설교하겠습니다. 주님께서… 신유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어쩌면 주님께서 신유에 대해 여러분에게 용기를 줄 말씀을 해 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해 주실지도 모릅니다. 계시록… 요한복음 11장을 펴 봅시다. 여기 성경 몇 절을 읽겠습니다. 요한복음 9장… 11장 18절쯤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이곳에서 우리가 이 말씀을 함께 공부한 것을 기억하며 나중에 읽으실 수 있도록 성경에 표시하고 싶으시면, 기억해 두십시오. 11장 18절입니다. 한편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십오 스타디온쯤 떨어진 가까운 곳이므로 유대인들 중의 많은 자들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와서 그들의 오라비에 관하여 그들을 위로하더라. 그때에 마르다는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바로 가서 그분을 맞이하였으나 마리아는 가만히 집에 앉아 있더라. 그때에 마르다가 예수님께 이르되, (자, 잘 들으십시오.) 그때에 마르다가 예수님께 이르되, 주여,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으리이다. 그러나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 하나님께 구하시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주께 주실 줄을 내가 아나이다, 하니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일어나리라, 하시므로 마르다가 그분께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할 때에 그가 다시 일어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하매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누구든지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이것을 네가 믿느냐? 하시니 그녀가 그분께 이르되, 그러하오이다, 주여, 주께서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하니라.
이제 고개를 숙이시겠습니까? 우리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오늘 우리는 아주 오래전에 일어난 위대한 사건에 관한 주님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새롭습니다. 읽을 때마다 우리 마음에 무언가를 줍니다. 여러 시대를 거쳐 보존된 주님의 말씀을 감사드립니다. 오늘 우리가 성경을 받을 수 있도록 목숨을 바쳐 그 피로 땅을 적신 이들로 인해 감사드립니다. 감사와 겸손으로 고개를 숙여 그들의 삶을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그들이 다시 몸의 형체를 입고 죽지 않는 존재가 될 그날까지, 그 용감한 혼들에게 안식을 주소서. 주님, 죽은 이 사람을 무덤에서 일으키신 동일한 예수님께서 오늘 오후 이곳에 계심을 믿습니다. 그분께서 우리도 일으키실 수 있음을 믿습니다. 실제로 그분은 육체적으로 죽은 자들을 일으키고 계시며, 인체를 연구하여 사망을 선고하는 의사들의 진술 등 확실한 증거들로 이를 증명하고 계십니다. 죽었다고 선고된 이들이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권능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오늘 오후 이곳에 앉아 있는 이들 중에는 몸이 쇠약하여 육체의 치유가 필요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서 이 짧은 구절들을 택하여 읽었습니다. 삼위일체의 세 번째 위격이신 성령, 곧 주님께서 보내시겠다고 말씀하신 약속된 위로자께서 이제 들어오시옵소서. 그분께서는 하나님의 것들을 받아 우리에게 보여 주실 것입니다. 여기 있는 주님의 겸손한 종이 말할 때, 말하는 입술을 거룩하게 하소서. 주님, 그 입술에 할례를 행하셔서 합당하지 않은 모든 말을 없애 주소서. 그것을 받아들일 저들의 마음과 귀에도 역사하셔서, 성령께서 말씀을 곧바로 마음에 가져다주시옵소서. 그 말씀이 좋은 땅, 비옥한 땅에 떨어져 백 배의 열매를 맺게 하소서. 주님, 오늘 오후 우리가 아직 말씀을 전하고 있는 동안, 오순절 날 그러하셨듯이 성령께서 급하고 강한 바람같이 이 회당 안으로 들어오시옵소서. 바깥 거리가 사람들로 가득 차게 하소서. 하나님, 아버지, 허락해 주시옵소서. 쇠약한 이들은 건강하게, 다리 저는 이들은 걷게, 눈먼 이들은 보게, 귀먹은 이들은 듣게, 말 못 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며, 질병에 매인 이들이 자유롭게 되게 하소서. 진영 안에 너무나 큰 기쁨이 있어, 모든 마음이 너무나 벅차올라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는지도 모를 정도가 되게 하소서.
하나님, 감각에 매인 이 삶에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 주시옵소서. 모든 것이 가능한 그 영역으로 우리를 데려가 주소서. 주님, 오늘 허락해 주소서. 우리에게 또 한 번 오순절 날을 재현해 주시옵소서. 주님, 지금 우리가 드리는 이 기도의 절박함과 신실함을 보시고, 성령을 보내셔서 이 기도에 응답해 주시기를 구합니다. 주님의 종의 생각과 제 사고와 말을 인도하시고, 저들의 마음이 말씀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게 하소서. 주님, 우리는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모르지만, 주님께서는 이 회중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아십니다. 하나님, 오늘 믿음이 크게 세워져서, 오늘 밤이 이제껏 집회에서 있었던 가장 위대한 절정 가운데 하나가 되게 하소서. 오늘 밤 그토록 충만하게 부어 주셔서, 사람의 자녀들 가운데서 결코 잊히지 않게 하소서. 주님의 종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주님, 우리가 여기 있기 때문이 아니라, 주님께서 여기 계시고, 주님께서 교회를 맞아들이러 오실 때가 가까워 오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축복해 주소서. 이 근처 어디에든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오늘 예수님을 보고 구원받게 하소서. 그분의 이름으로 구하옵나이다. 아멘.
이제 잠시 나사로의 부활이라는 주제로, 이것을 믿으라는 말씀을 본문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은 너무나 놀라우십니다. 얼마 전 큰 천문대에 서 있었습니다. 그 망원경을 들여다보면 빛이 일억 이천만 년 동안 가는 거리의 우주까지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그분의 우주가 얼마나 광대한지 알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이 태양을 보며 이것만이 유일한 태양인 줄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 너머에 태양들이 있고, 또 태양들, 궤도들, 태양들, 행성들, 또 태양들이 있어 그 수가 수백만에 이릅니다. 하나님께서 이 온 우주 위에 앉아 그것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누구신지 상상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누구시며 어떤 분이신지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 모두의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오늘 제가 여기 서서 어떤 마음인지 아실 겁니다. 여기 앉아 계신 목사님들이 의식됩니다. 학업을 마치고 학위를 받으신 분들이 계십니다. 설교자이시며, 어떻게 설교를 구성하고 짜임새 있게 엮어 성령께서 그 안에서 역사하시게 하는지 아는 목사님들이 계십니다. 그런데 저는 이 위에 서서 “힛”, “헤인트”, “테인트”, “캐리”, “페치” 같은 사투리와 온갖 서투른 문법으로 말합니다. 그래서 몹시 의식됩니다. 하지만 그런 데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제 형제님들이 저를 위하고 사랑하신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는 오늘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시기를 원합니다. 우리 모두 바로 그 때문에 여기 있습니다. 그러니 감각에 매인 그런 느낌을 떨쳐 버리고 싶습니다.
광대한 우주 가운데 계신 하나님… 한번 상상해 보시겠습니까… 제가 생각하는 하나님, 하나님의 삼위일체가 무엇인지 작은 그림으로 보여 드리겠습니다. 신성의 삼위일체를 두고 세상에는 여러 논쟁이 있습니다. 그들이 그저… 그들은… 모두 같은 것을 믿습니다. 그런데 마귀가 그들 사이에 끼어들어 모두 갈라놓았습니다. 그뿐입니다. 하나님은 공기와 같으십니다. 온 우주를 가득 채우십니다. [녹음 공백] … 그분의 아들. 아들은 누군가에게서 태어나야 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에게서 나오신 하나님의 아들, 로고스께서 땅 위를 운행하셨습니다… 그 공간에서 흰 광채가 나오는 모습으로 그려 봅시다. 그것이 하나님의 아들, 로고스였습니다. 그분은 부모의 문 앞에서 노는 어린아이처럼, 그 공간에서 이리저리 움직이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있게 될 것들을 생각 속에 그리셨습니다.
그분이 둘러보시며 말씀하시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어디에도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저 광대한 공간뿐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 그 온 공간을 채우고 계셨습니다. 그러고는 이 하나님께서 로고스라는 형체를 입으셨습니다. 그분께서 “빛이 있으라.” 하시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저쪽에서 원자 하나가 터졌고 태양이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신성이십니다. 태양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수백만 년이 흘렀습니다. 그러다가 거기서 한 조각이 떨어져 날아갔습니다. [브래넘 형제님이 동작으로 설명하신다.] … 별입니다. 그분은 거기 서서 그것을 바라보셨습니다. 그것은 계속 떨어져 내려갔습니다. 수백만 년 동안 떨어진 뒤에, 그분께서 이쪽에서 멈추게 하셨습니다. [브래넘 형제님이 동작으로 설명하신다.] … 또 하나가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것이 어떤 곳 가까이까지 떨어지게 두셨다가 멈추게 하셨습니다. 그분은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언젠가 땅이 있게 되리라는 생각을 품고 계십니다. 땅 위에 인류가 있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위에 계십니다. 그분은 하늘에 십이궁을 쓰고 계십니다. 십이궁은 그리스도의 초림을 나타내는 처녀궁으로 시작해서, 재림을 나타내는 레오, 사자궁으로 끝납니다. 그분은 첫 번째 성경을 쓰고 계십니다. 성경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늘에, 하나는 피라미드들에, 하나는 여기에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 안의 모든 것은 삼위일체입니다. 사람도 삼위일체이듯이 말입니다. 좋습니다. 태양에서 떨어져 나온 별들과 행성들로 그 모든 것을 기록하신 뒤, 저 멀리 어딘가에 큰 얼음 덩어리가 놓여 있는 것이 보입니다. 이 땅입니다. 그분께서 땅 위를 운행하시고, 그것을 태양 주위로 옮기셔서 말리셨습니다. 그러고는 땅 위에서 창조를 시작하셨습니다.
그 모든 창조를 마치신 뒤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복수입니다. “우리의,” 복수입니다.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자.”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는 분이시고, 로고스께서 그 형체로, 그저 상상 속의 장면으로 말씀드리자면, 광채의 형체로 계셨다면, 그것은 초자연적인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을 자신의 형상대로 만드셔야 했습니다. 요한복음 4장은 하나님은 영이시라고 말합니다. 그러니 영인 사람을 만드셔야 했습니다. 이제 그분께서 그것을 내려오게 하십니다. 신성은 보이지 않습니다. 신성은 초자연적인 것입니다. 그러고는 거룩한 광채에서 작은 흰 구름으로, 좀 더 눈에 보이는 것으로 내려오게 하십니다. 그것이 사람입니다. 그에게 그 왕국을 다스릴 권한을 주셨습니다. 오늘날 성령께서 교회를 인도하시듯이, 그는 짐승들을 다스렸습니다. 하지만 땅을 갈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사람을 땅 위의 사람의 형상으로 두시고, 땅의 흙으로 그를 창조하셨습니다.
과학이 혼동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입니다. 그들은 “아닙니다.” 하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원숭이 같은 손을 주셨을 수도 있습니다. 침팬지 같은 얼굴을 주셨을 수도 있습니다. 곰 같은 발을 주셨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 안에 혼을 넣으셨습니다. 이 흰 구름, 신성이 내려왔습니다. 동물 안으로가 아니라 사람 안으로 말입니다. 이제 사람들이 돌아가서 오래된 뼈를 파내고 싶다면, 얼마든지 파내게 두십시오. 온갖 화석을 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뜻하는 바에 아무 영향도 주지 않습니다. 거기에 그분이 계십니다. 여기에 이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죄를 지었습니다. 그가 죄를 짓고 타락하자, 그 안의 작은 구름은 손상되고 검어졌습니다. 그러자 로고스께서 내려와 육체가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습니다. 이 사람을 구속하여 아버지의 사랑 안으로 다시 데려가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분은 성령 침례를 통해 들어오셔서 사람에게서 죄를 쫓아내시고, 사람이 다시, 다시 하나님과 교제하게 하십니다. 그것을 믿습니까? 다시…
자, 보십시오. 그러니 여러분은 그런 존재입니다. 오순절 교인 여러분의 문제가 바로 그것입니다. 저는… 오늘 오후에는 제가 설교를 맡았습니다. 이 강단에서 말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곳에 서 있을 때는 누구도 육체를 따라 알고 싶지 않습니다. 오순절 교인들의 문제가 바로 그것입니다. 자기들이 누구인지 깨닫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아들딸입니다. 여러분 손에는…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한번은 성경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너희는 신들이라.”
보십시오. 신성… 저는 찰스 브래넘의 일부입니다. 제 아버지, 찰리 브래넘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버지의 일부입니다. 이마가 아버지를 닮았습니다. 머리카락도 아버지와 같았습니다. 체구도 아버지처럼 작습니다. 성품도 아버지를 닮았습니다. 그분이 제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영으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면, 신성이 사람 안에 거하십니다. 할렐루야! 그러니 눈먼 눈이 열리는 일쯤이야 어떻겠습니까? 사람들은 하나님께 불가능한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믿으면 여러분에게 불가능한 것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가 아니라 여러분에게 말입니다. 신성이 사람 안에 계십니다. 저 영원의 무대를 상상해 보십시오. 거기에 서서 손에서 세계들을 굴려 내시고 이것들을 창조하신 바로 그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자신의 아들이 되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그분의 일부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 안에 거하시며, 사람 자신이 신성입니다. 할렐루야! 바로 그것입니다. 받아들이기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잠시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아시겠죠? 그분은… 하나님께서 사람 안에 거하십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 됩니다. 사람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 계신 성령께서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창조주께서 피조물 안에 사십니다. 아, 그것을 생각할 때면! 그러니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서서 원하는 것을 구하십시오. 그러면 이루어질 것입니다. 거기에 그분이 계십니다. 하나님이십니다. 거기에 그분이 계십니다.
이제 이 구속주께서 오시기 전에… 우리 본문의 시대에, 예수님은 아주 유명해지셨습니다. 그분은 끔찍한 멸시 속에서 태어나셨지만 말입니다. 마구간 문을 통해 들어오셔서 사형이라는 길로 나가셨습니다. 그것을 아셨습니까? 광신자로 여겨져 비웃음과 침 뱉음과 조롱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바로 영광의 하나님이셨습니다. 마구간 문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마구간, 혹은 구유에서 태어나셨습니까? 생각해 보셨습니까? 그래야만 했습니다. 그분은 어린양이셨기 때문입니다. 어린양은 집 안에서 태어나지 않습니다. 헛간과 들에서 태어납니다. 아벨은 포도나무 덩굴로 어린양을 이끌어 갔습니다. 제단 위에서 그것을 희생물로 드렸고, 아벨도 자기가 드린 어린양이 죽었던 바로 그 제단에서 죽었습니다. 그리스도께 나아오는 모든 신자는 자기의 죽어 가는 어린양, 그리스도와 함께 같은 제단에서 죽어야 합니다. 새 창조물이 되려면 그리스도 안에서 죽어야 합니다. 세상의 것들에 대해 죽고 다시 태어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새 창조물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을 희생하는 그 같은 제단에서 죽는 것입니다. 좋습니다.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 어떤 일을 하시기 전에, 언제나 메시지를 보내어 경고하시고 준비시키십니다. 아, 지금 제 마음에 믿음의 열정이 솟아납니다. 보십시오. 좋습니다. 지금 어떤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고 믿습니다. 노아의 날들에 그러셨듯이 하나님께서 경고하시며 백성을 준비시키고 계십니다. 무슨 일이 곧 일어나려 하고 있습니다. 원자력 같은 것들이 우리를 향해 터져 나오기 직전입니다. 순식간에 수백만 명이 죽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 하나님께서는 휴거를 위해, 하나님의 아들의 오심을 위해 자기 교회를 준비시키고 계십니다.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땅에 어떤 것을 보내시기 전에는 언제나 자신의 메시지를 보내십니다. 하나님은 어떤 일들을 입증하거나 확증하시기 위해 자신의 천사들을 보내십니다.
천사들 중에는 낮은 천사들도 있고 높은 천사들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시기 직전에 하나님은 위대한 천사장 가브리엘을 보내셨습니다. 보십시오. 사람들은 사천 년 동안 메시아를 기다려 왔습니다. 이제 오래된 예언의 바퀴들이 맞물려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때가 거의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교회 제도 같은 데로 치우쳐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호텐토트족이 이집트의 밤에 대해 아는 것만큼이나 하나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성경에 대해서는 무엇이든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성경을 아는 것만으로 마귀와 한번 싸워 보십시오. 마귀는 여러분 누구보다 성경을 더 잘 압니다.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라야 하느니라.”
보십시오. 그들은 모든 일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는지 자기들 나름대로 다 헤아려 놓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결코 자신을 증언 없이 내버려 두신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 하나님께서 영광 가운데서 가브리엘을 내려보내시는 장면을 생각해 봅시다. 낮은 천사들이 온다는 소식도 들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브리엘이 오면 큰일이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가브리엘이 오면… 그는 천사장입니다. 무언가 큰일이 곧 일어나려는 것입니다. 들으십시오. 가브리엘은 그리스도의 초림을 알렸고, 그리스도의 재림도 알릴 것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나팔을 울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좋습니다. 초림 때로… 잠시 돌아가 그 장면을 그려 봅시다. 사가랴라는 나이 든 제사장이 보입니다. 훌륭한 인물이었습니다. 그와 그의 아내 엘리사벳은 선한 사람들이었고, 온 마음으로 주님을 섬겼습니다. 성전에서 그의 임무는 백성이 기도하는 동안 제단 위에서 향을 태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모든 율법과 법규를 지키며, 하나님 앞에서 흠 없이 걷고 있었습니다.
그날 성전에서 희생물을 드리는… 사가랴가 보입니다. 백성은 기도하고 있었고 그는 향을 태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영광 가운데서 위대한 천사장이 내려와 그의 곁에 서서 말했습니다. “사가랴야,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여기서 섬기는 날들을 마친 뒤에, 집으로 돌아가 네 아내와 함께 있게 될 것이다. 네가 아이를 얻을 것이며, 그의 이름을 요한이라 부를 것이다.” 그 사람에게 얼마나 놀라운 인사였겠습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의 사람, 성경 전체를 아는 사람, 제사장, 선택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천사를 믿지 못했습니다. 자,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결정하시면, 미리 정하신 그분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자 가브리엘이 말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네가 내 말을 믿지 아니하므로… 나는 하나님 앞에 서는 가브리엘이라. 그 말들은 때가 되면 성취될 것이다. 이미 말해졌느니라. 그러나 아기가 태어나는 날까지 너는 말을 하지 못할 것이다.” 사가랴에게는 많은 선례가 있었습니다. 사라는 아이를 낳을 나이가 지났고, 아흔 살이었습니다. 폐경이 된 지도 사십 년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아들을 얻었고, 세상은 그 아들을 통해 복을 받았습니다. 하갈도… 아니, 한나 말입니다. 아이를 낳을 나이가 지난 한나가 어느 날 실로의 성전으로 올라갔습니다. 비틀거리며 들어가 제단 앞에 엎드려 손을 들고 울부짖으니, 사람들이 술에 취한 줄 알았습니다. 술에 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오해를 받은 것입니다. 지난번 밤에도 많은 사람이 내려가면서 말했습니다. “저 위에는 틀림없이 광신자들이 한 무리 모였나 봐. 모두 소리 지르고 야단법석이잖아.” 여러분이 미친 것이 아닙니다. 그저 오해를 받는 것입니다. 그뿐입니다.
한나는 지극히 신실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제사장까지 비틀거리며 나와서, 술에 취했느냐고 물었습니다. 한나가 말했습니다. “저는 취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제 치욕을 없애 주소서.’ 하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여자들이 어떤 모자를 쓰고 어떤 옷을 입고 있는지 살피러 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분께 무언가를 구하러 갔습니다. 오늘 오후 여러분이 오셨다면, 목발을 짚든, 휠체어를 타든, 어떤 상태이든 상관없습니다.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러 오셨다면, 구하십시오. 그러면 받을 것입니다. 그녀는 오해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일어났을 때, 제사장은 그녀가 신실한 것을 보고 말했습니다. “주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그녀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믿으며 집으로 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때 아기를 그녀의 품에 안겨 주실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구 개월 뒤에 어린 사무엘이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그를 성전으로 데려갔습니다.
사가랴에게는 이런 모든 선례가 있었지만, 천사를 믿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아니, 천사가 그에게 말을 못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집으로 갔고, 아내가 수태했습니다. 그로부터 약 육 개월 뒤, 어느 날 한 어린 처녀가 물을 나르고 있었습니다. 열여덟 살쯤 되었는데, 아이가 넷 있는 마흔다섯 살쯤 된 홀아비 요셉과 약혼한 상태였습니다. 그녀는… 그날이 월요일이었다고 해 봅시다. 빨래를 해야 하니 여자들에게는 거의 가장 힘든 날입니다. 저도 집에 있을 때는 아직도 월요일마다 빨랫물을 날라야 합니다. 그러니… 아, 월요일이었다고 해 봅시다. 그녀가 우물에서 오는 모습이 보입니다. 나사렛은 이 땅에서 가장 악한 도시였습니다. 이리보다도 더 나빴습니다… 예. 그녀가 거기서 물을 나르고 있었지만, 처녀였습니다. 바르게 살았습니다. 여러분의 도시가 얼마나 악하든 상관없습니다. 어디서나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아멘. 그녀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동방에서는 물을 머리에 이고 날랐습니다. 어린 처녀가 머리에 물을 이고 걸어오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그런데 갑자기 큰 빛이 그녀 앞에서 번쩍였습니다. 그 빛 가운데 저 강대한 천사 가브리엘이 서 있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마리아야, 평안하냐? 네가 여자들 가운데 복이 있도다.” 얼마나 놀라운 인사입니까. 그녀는 그 천사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방식에 놀랐습니다. 그 어린 처녀는 두려워했습니다. 여러분도 두려워했을 것입니다. 저도 두려웠습니다. 보니 그녀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천사는 그녀의 사촌 엘리사벳이 늙고 나이가 지났는데도 아이를 낳게 될 것이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마리아와 엘리사벳은 사촌이었고, 요한과 예수님은 육촌이었습니다. 그러고는 그녀도 남자를 알지 못한 채 아기를 낳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자, 그 차이를 보십시오. 말씀에 수많은 선례가 있었던 제사장은 천사의 메시지를 믿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 소녀는… 그때까지 그런 식으로 아기가 태어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녀는 말했습니다. “주의 여종을 보소서. 당신의 말씀대로 그 일이 내게 이루어지기 원하나이다.” 할렐루야! 놀라지 마십시오. 저는 제가 어디에 있는지 압니다. 보십시오. 할렐루야는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뜻입니다. 그분은 모든 찬양을 받기에 합당하십니다. 좋습니다.
그녀는 그분을 믿었습니다.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을 믿었습니다. 천사가 말했습니다. “성령께서 너를 덮으실 것이며, 네게서 태어날 그 거룩한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리리라.” 그녀는 “당신의 말씀대로 그 일이 내게 이루어지기 원하나이다.” 하고 말했습니다. 곧바로 그녀는 아기가 태어나기도 전에, 남자를 알지 못하면서도 자기가 아기를 낳을 것이라고 사람들에게 간증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것도 느끼기 전에, 어떤 생명의 움직임도, 어떤 증거도 있기 전에, 그렇게 되리라고 간증하러 다녔습니다. 하나님, 이곳 이리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을 수 있는 마리아들을 더 많이 주소서. 무엇을 보거나 느끼기 전에, 그분의 말씀을 그대로 믿으십시오. 할렐루야! 아, 참 기분이 좋습니다. 제가 미쳤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만약 미쳤다 해도 행복하니, 그냥 내버려 두십시오. 좋습니다.
아, 형제님. 누구든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는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녀는 그렇다고 말하고 그것을 간증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을 믿으면 여러분을 고쳐 주시겠다고 하셨다면, 그 말씀을 받아들이십시오. 여러분이 얼마나 불구인지, 얼마나 눈이 먼 상태인지를 보지 마십시오. 그분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그것을 간증하기 시작하십시오. 하나님께는 그것을 이루실 책임이 있습니다. 아멘. 좋습니다. 침례교인치고 제가 꽤 시끄럽다고 생각하십니까? 아, 침례교인들도 조금 흥분할 때가 있습니다. 저는 좀 다른 침례교인입니다. 성령 받은 침례교인입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저는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필요한 침례교인은 바로 그런 성령 받은 침례교인입니다. 제 형제들 중 몇몇이 나서서 같은 것을 받는다면, 침례교회도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
그녀가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사람들마다 찾아다니면서 남자를 알지 못하면서도 아기를 낳을 것이라고 말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상상할 수 있습니까? 저는 압니다… 천사가 사촌의 소식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곧장 유대의 산지를 지나 사촌을 만나러 갔습니다.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좋은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사라가… 아니, 엘리사벳이 앉아서 아마 뜨개질을 하고 있었겠지요. 마리아가 오는 것을 보고 달려 나가 팔로 감싸 안기 시작했습니다. 그 시절에는 서로 사랑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것을 잃었습니다. 사실인 줄 아실 겁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심지어… 여러분은 심지어… 시내에 나가면 그들처럼 높은 지위에 있지 않고서는 사람들에게 말도 거의 붙일 수 없습니다. 그러다가 시내에서 만나 인사하면, 그저 어색하게 씩 웃을 뿐입니다. 아, 형제님, 저는 옛날식으로 펌프 손잡이를 올렸다 내렸다 하듯 힘차게 악수하는 것이 좋습니다. 속마음까지 닿도록 말입니다. 도대체 우리가 뭐 그리 대단합니까? 아멘. 그렇습니다. 사랑이 없습니다… 신문에서 읽기 전까지는 이웃이 죽은 줄도 모릅니다. 이제는 사람들을 향한 사랑이 없습니다. 그것을 잃었습니다.
오래전에는 돈이 떨어지면 이웃에게 가서 오십 달러를 빌려 그때를 넘기곤 했습니다. 차용증에 서명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서로 믿었습니다. 이제는 십 달러짜리 담보를 얹어 놓지 않고서는 오 달러도 빌릴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이 없습니다… 성경은 말씀했습니다. “사랑이 식어지므로, 사랑이… 불법이 성행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세상의 문제가 바로 그것입니다. 사람들은 사랑에 굶주려 죽어 가고 있습니다. 가르침도 많고 교회도 많지만,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할렐루야! 오늘 제가 왜 이러는지 아십니까… 보십시오. 형제님,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들이 거기 있었습니다. 그녀가 행복해하며 기뻐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달려가서 팔로 감싸 안았습니다. 아, 그 소식을 들었으니 얼마나 행복했겠습니까.
이제 그녀가 하는 말이 들리는 듯합니다… 서로 팔로 감싸 안고 사랑을 나누며 꼭 끌어안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좋습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습니까? 여자들이 그렇게 서로 반갑게 만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습니다. 또 남자들이 붙잡고… 조금 전 한 젊은 분이 저쪽으로 와서 제 손을 잡고 저를 팔로 감싸 안으며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저는 형제님 집회에 있었습니다. 제 어린 딸이 치유받았습니다.” 무슨 병이었는지는 잊었습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형제님이 서서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시며, 그 아이에게 어떤 일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지요.” 보십시오. 그분은 꼭 그대로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고는 저를 끌어안았습니다. 저는 그것이 좋습니다. 아멘. 저는 그저 옛날식 산골의 촌스러운 사사프라스 설교자입니다. 저는 그것이 좋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저는 그것을 믿습니다. 저는 옛날의, 하늘빛처럼 맑고 죄를 죽이는 신앙을 믿습니다. 그것은 겉에만 하얀 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씻어 희게 하고,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새 창조물이 되게 합니다. 아멘. 마귀는 화가 납니다.
보십시오. 얼마 전 저는 플로리다에 있었습니다. 제가 참을 수 없는 것은 자기가 남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형제님, 그런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그렇습니다. 도대체 여러분이 무엇입니까? 육 피트 길이의 흙일 뿐입니다. 얼마 전 박물관을 지나가다가, 몸무게가 백오십 파운드인 사람의 몸을 분석해 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 가치는 팔십사 센트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백오십 파운드인 사람의 몸에 들어 있는 화학물질을 다 합해도 팔십사 센트어치라는 것입니다. 닭 둥지에 뿌릴 흰 칠 정도밖에 안 됩니다. 그리고, 아, 잘은 모르지만, 펜 끝에 올려놓을 수 있을 만큼의 칼슘인지 뭔지가 조금 있습니다. 팔십사 센트어치인데, 거기에 오 달러짜리 모자를 씌우고 콧대를 치켜듭니다. 비가 오면 코로 물이 들어가 익사할 정도로 말입니다. 어떤 여자들은… 그렇습니다. 그러고는 자기가 대단한 줄 압니다. 그렇습니다. 형제님, 오늘날 세상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사람이나 새로운 대통령이 아닙니다. 옛날 사도 바울 때와 같은 부흥과, 성경에 있는 성령께서 그분의 권능 가운데 다시 그분의 교회에서 선포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집회와 부흥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집회를 오래 이어 가고는 있지만 부흥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부흥이 필요합니다. 허물어뜨리고, 밑바닥까지 내려가서, 제사장이 제단을 붙잡고 울게 하십시오. 아멘. 아멘. 흥분하지 마십시오. 아멘은 “그렇게 되기를”이라는 뜻입니다. 예전에 제가 개 한 마리를 길렀습니다. 그 개는 폴캣, 그러니까 스컹크만 빼고는 무엇이든 몰아붙여 붙잡았습니다. 스컹크를 몰아넣으면 빙빙 돌며 짖기는 해도, 가서 잡아 오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할 일은 덤불 더미를 들어 올리고, 개를 두드려 주며 “물어, 프리츠!” 하고 말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러면 형제님, 그 개가 가서 스컹크를 잡았습니다. 제가 아는 가장 지독한 스컹크는 마귀입니다. 형제님, 오늘 오후 그놈을 몰아붙이고 싶다면, 그저 “아멘!” 하고 외치십시오. 그것이 “물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가서 그놈을 잡아 몰아붙이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보십시오. 한번은 마이애미에 있었는데, 어떤 공작부인인가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보스워스 형제님이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어떤 섬인가 어디의 공작부인이 형제님을 만나고 싶어 합니다.” 저는 “그분이 다른 사람보다 뭐가 더 대단합니까?” 하고 말했습니다. 아시겠죠? 그분이 말했습니다.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천막 바로 뒤에서 잠깐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저는… 그분이 집회를 맡아 관리하시는 분이니 어쩔 수 없었습니다. “알겠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분이 천막 밖으로 나가자, 거기에 조그맣게 밧줄을 둘러놓은 곳이 있었습니다. 그쪽으로 한 여자가 오는데, 입은 옷을 다 모아도 구식 총에 화약 마개로 틀어막을 만큼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귀걸이를 이렇게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는데, 마귀가 그 목을 안장으로 삼고 귀걸이는 등자로 삼은 듯했습니다. 어쨌든 마귀가 그 여자를 타고 온 지옥을 누비고 다닌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여자가 막대기에 달린 안경을 들고 이렇게 멀리 내민 채 걸어왔습니다… 사람은 안경을 그렇게 멀리 내밀고 보지는 않지 않습니까? 이렇게 막대기에 달아 내밀고 말입니다. 그 여자는 막대기를 이렇게 내밀고, 이렇게 내려다보며 걸어왔습니다. 아, 어디에 부딪히지 않은 것이 신기했습니다. 이런 모습이었습니다. 제게 다가와서 물었습니다. “브래넘 박사님이신가요?” 저는 “아닙니다. 아닙니다.” 했습니다. “저는 브래넘 형제입니다.” 그 여자는 손을 치켜들더니 말했습니다. “만나 뵈어 더없이 기쁘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손을 이리 내려주십시오. 다음에 다시 뵐 때 알아볼 수 있도록요.” 그렇습니다. 형제님, 도대체 우리가 무엇입니까? 육 피트 길이의 흙입니다. 할렐루야! 우리의 마음을 바꾸어 주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불명확한 말]. 우리 자신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그분의 은혜로 우리가 구원받았습니다.
얼마 전, 나이 든 작은 부인 한 분이 그 도시의 큰 교회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딸과 가족들이 그 교회에 가입해서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낡고 소박한 무명옷, 그런 천을 뭐라고 부르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옷을 입고 들어갔습니다. 목사님이 무슨 말씀을 하자 “주님을 찬양합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모두 연못의 거위처럼 목을 쭉 빼고 무슨 일인가 하고 이렇게 돌아보았습니다. 아, 모두가 놀랐습니다. 누가 “아멘” 하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 부인은 아직 신앙이 조금 남아 있는 켄터키에서 온 분이었습니다. 그렇게 그분이 와 있었는데, 목사님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자, 그 부인이 “영광!” 하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이 [브래넘 형제님이 헛기침하신다.] “방해가 되는군요.” 하고 말했습니다. 아, 형제님, 저는 여러분이 그런 말을 하지 않으면 설교에 방해가 됩니다. 좋습니다. 보십시오. 목사님이 몇 마디 더 하자, 그분이 “주님을 찬양합니다. 맞습니다.” 했습니다. 그러자 안내인들이 와서 그분을 교회 밖으로 내보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 그렇습니다. 저분의 이름은 인명사전에는 없을지 몰라도, 분명 어린양의 생명책에는 적혀 있을 겁니다.” 저는 제 이름도 거기에 있기를 원합니다. 형제님, 인명사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인명록에 제 이름이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서로 맞추려는 풍조가 대단한 시대입니다. 그렇게 믿으십니까? 집 앞 계단을 빨갛게 칠해 보십시오. 그러면 이웃들도 금세 모두 빨갛게 칠할 것입니다. 서로 맞추는 시대입니다. 누구나 다른 누군가를 흉내 내고 싶어 합니다. 맞추는 것입니다. 저는 늘 구두가 바지와 어울리든, 셔츠가 겉옷과 어울리든 상관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저는 제 체험이 하나님의 성경과 맞기를 원합니다. 그분께서 “너희가 반드시 다시 태어나야 하리라.” 하셨을 때, 오순절 날 사람들이 성령 침례를 받았을 때, 저는 그것을 원합니다. 제 체험이 그것과 일치하기를 원합니다. 아멘. 베드로는 “이것이 바로 그것이라.” 하고 말했습니다. 만약 이것이 그것이 아니라면, 저는 그것이 올 때까지 이것을 붙들고 있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멘. 이것으로도 참 즐겁습니다. 좋습니다.
마리아가 팔을 벌려 감싸 안으며 말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아, 엘리사벳, 다시 만나니 얼마나 반가운지 몰라요. 늙은 나이에 아이를 낳으실 거라는 소식을 방금 들었어요.” 엘리사벳이 하는 말이 들리는 듯합니다. “그래, 마리아. 맞아. 아이를 낳게 되었단다. 그런데 걱정이 돼. 육 개월이나 되었는데 아직 아무 움직임이 없어.” 완전히 비정상인 것입니다. 생명의 움직임은 대략… 서너 달쯤 되면 느끼지요. 대략 그쯤, 두 달 반쯤에요. 그녀가 말했습니다. “그런데 아직 아무 움직임이 없구나.” 마리아가 말했습니다. “있잖아요…” 아! 제가 여기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도저히 못 있겠습니다.
보십시오. 그녀가 말했습니다. “있잖아요, 성령께서 내려와 저를 덮으시고, 저도 남자를 알지 못한 채 아기를 낳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분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하셨어요.” 그녀가 “예수”라고 말하는 바로 그 순간, 어린 요한이 어머니의 태에서 뛰놀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뛰며 생명을 받았습니다. 인간의 입술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처음으로 불렸을 때, 죽었던 아기가 어머니의 태 속에서 살아났습니다. 형제님, 그 이름이 죽은 아기를 살린다면, 다시 태어난 교회에는 어떤 일을 해야 하겠습니까?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다리 저는 사람을 걷게 하고, 눈먼 사람을 보게 하며, 귀먹은 사람을 듣게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어린 요한이 어머니 태 속에서 죽어 있었는데, 엘리사벳이 말했습니다. “내 주의 어머니가 내게 오다니 어디에서 이 일이 내게 오는가?” 그리고 말했습니다.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리자 곧바로 내 아기가 내 태 속에서 기뻐 뛰놀았도다.” 얼마나 놀라운 아기입니까! 할렐루야! 얼마나 놀라운 이름입니까!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리자 내 아기가 내 태 속에서 기뻐 뛰놀았도다.”
형제님, 그렇다면 다시 태어난 사람들의 무리에게는 어떤 일을 해야 하겠습니까? 하지만 그 이름을 저주하고, 그 이름을 조롱하고, 그 이름을 의심하면서 그 이름에서 기쁨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마음속으로 그 이름을 경외해야 합니다.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좋습니다. 그들은 거기서 며칠을 지냈습니다. 그러고 얼마 뒤 어린 요한이 태어날 때가 되었습니다. 그가 태어나고… 아홉 살쯤 되었을 때, 그는 무슨 신학교나 공동묘지로 떠나지 않았습니다. 신학교라고 하려던 것입니다. 거의 같은 것이지요. 죽은 곳입니다. 그렇습니다. 아십니까? 신학교 출신 설교자를 보면 저는 언제나 부화기에서 나온 병아리가 생각납니다. 조그만 부화기 병아리가 삐약삐약 울어도, 찾아갈 어미가 없습니다. 읽기와 쓰기와 산수는 알면서, 하나님에 대해서는 토끼가 눈신 신는 법을 아는 것만큼도 모르는 부화기 출신 설교자도 거의 그와 같습니다. 사실인 줄 아실 겁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그것에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상의 모든 교육을 받았다고 그것을 제 아들에게 억지로 주입하려는 사람보다는, 쪼갠 콩과 커피콩도 구별하지 못하지만 성령을 아는 사람이 제 아들과 함께 있는 편이 낫겠습니다. 그렇습니다. 할렐루야! 믿음의 열정이 솟아납니다. 보십시오. 형제님, 한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강력으로 되지 아니하며 오직 내 영으로 되느니라.”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그분을 믿었습니다.
자, 보십시오. 이 아이는 어떤 아이가 되기로 되어 있었습니까? 아홉 살에 광야에 들어가 그대로 지냈습니다. 그리고 서른 살이 되어 나왔을 때는, 형제님, 사방에 나뭇조각이 튈 만큼 힘차게 일했습니다. 그가 요르단 강둑에 나와 복음을 전하자, 예루살렘 주위 온 지방이 들썩였고, 사람들이 강둑에 서 있는 그의 말을 들으러 나왔습니다. 그는 크고 멋진 턱시도를 입고 옷깃을 뒤로 돌려 세워 차려입지 않았습니다. 아닙니다. 낡은 털옷 바지를 입고 허리에는 양가죽 띠를 두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르단 주위 온 지방을 뒤흔들었습니다.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성령 침례로 그리스도를 전했기 때문입니다. 형제님,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도 그리스도의 복음이 그 권능 가운데, 그러면서도 그 단순함 속에서 전해지면, 어디서든 민족들을 끌어당길 것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복음이 사람들을 이끄는 힘입니다. 아멘.
박스터 형제님이 내려와도 된다고 해 주셔서 기쁩니다. 믿음의 열정이 솟아납니다. 보십시오. 그러고는 그가 무슨 일을 했습니까? 온 지방을 뒤흔들었습니다. 어느 날 오전 열한 시쯤 그가 설교하고 있었는데, 맞은편에 작은 제사장 하나가 서서 말했습니다. “랍비여, 날마다 드리는 희생물이 없어질 때가 온다는 말입니까? 당신이 틀렸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한 사람이 희생물이 될 때가 올 것입니다.” “아, 그럴 수는 없습니다.” 하고 제사장이 말했습니다. 사람이 너무 많아져서 강 건너편에도 세워 놓아야 할 정도였습니다. 무리가 그렇게 커졌습니다. 그러다가 보니, 한 분이 걸어 내려오고 계셨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보라…” “보라”는 “바라보라”는 뜻입니다. “세상 죄를 제거하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그분이 오십니다. 서른 살쯤 된 평범하고 체구가 작은 분이 푸른 겉옷을 입고 머리카락을 날리며 그쪽으로 걸어 내려오십니다. 아, 얼마나 놀라운 분입니까! 형제님, 말씀드리겠습니다. 저기에 모든 통치자의 통치자, 모든 왕의 왕, 모든 주의 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거룩한 약속이 계십니다.
하나님께는 자신의 약속을 지키실 책임이 있습니다. 옛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이끌어 내셨을 때, 아니, 광야로 이끌어 내셨을 때, 그들을 돌보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으면 하나님께서 행하실 책임이 있습니다. 물이 필요하면 그들은 반석으로 갔습니다. 먹을 것이 필요하면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만나를 비같이 내려 주셨습니다. 홍해도 갈라 주셨습니다. 만나가 내려오는 모습을 보십시오. 오늘날 우리 교회를 보여 주는 얼마나 아름다운 모형입니까. 하나님께서 육적인 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셨듯이, 오늘날 교회를 영적으로 인도하고 계십니다. 이것을 보십시오. 그들이 홍해를 건넜을 때, 그들을 부리던 감독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홍해는 그리스도의 피입니다. 사람이 그 피를 통과하여 세상의 것들로부터 성별되고, 이쪽 기슭, 새로운 땅으로 옮겨져 새로운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미리암이 거기 있었습니다. 몹시 기뻐서 탬버린을 들고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강둑을 따라 춤추며 갔습니다. 이스라엘의 딸들이 뒤따라 춤추었습니다. 모세는 영 안에 들어가 영 안에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것이 옛날식 성령 집회가 아니라면, 저는 평생 그런 집회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들이 새로운 땅으로 건너온 뒤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돌보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보니 그날 밤 그들에게 빵이 없었습니다. 빵에는 신경 쓰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만나를 비같이 내리시니 땅에 떨어졌습니다. 그들은 나가서 주워 먹었습니다. 맛이 꿀과 같다고 했습니다. 여러분도 먹어 보셨습니까? 아, 좋습니다. 정말! 한번 맛보셔야 합니다. 꿀 말입니다. 옛날 다윗을 아시지요? 목자였습니다. 맛이 꿀과 같다고 한 사람이 바로 그였습니다. 반석 속의 꿀 같은 맛입니다. 다윗이 그것에 대해 말할 때… 그는 늘… 목자들은 옆구리에 주머니를 차고 거기에 꿀을 넣어 다녔습니다. 양이 병들면 반석 위에 꿀을 발라 놓았습니다. 그러면 양이 가서 그 반석을 핥았습니다. 반석에 묻은 꿀을 핥으면서 반석의 석회도 핥아 먹게 되어 병이 나았습니다. 아시겠죠? 반석에 꿀을 발라 양이 핥게 했습니다. 양은 꿀을 핥았습니다. 꿀을 핥다가 석회암 반석의 석회를 조금 먹게 되었습니다. 그 석회가 양을 낫게 했습니다.
옛날에는 사람이 미친개에게 물리면 데려다가 광견병 치료석에 대곤 했습니다. 돌에 붙어 있으면 나았고, 붙어 있지 않으면 죽었습니다.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제가 아는 가장 지독한 미친개는 마귀입니다. 그놈이 여러분을 물어 병들게 했다면, 반석이신 그리스도 예수님께 가십시오. 거기에 붙으십시오. 매달리십시오. 꼭 붙잡으십시오. 떠나지 마십시오. 십자가의 두 날개를 붙잡고 매달리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나을 것입니다. 아멘. 다시 그 만나 이야기로… 여기서 다른 것 하나를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이런 옛 금덩이 같은 말씀들을 참 좋아합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먼지를 털어 내고, 어떤 모습인지 보십시오.
그러고는 하나님께서 아론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자, 그것을 남겨 두려고 하지 말라. 남겨 두면 상할 것이다.” 많은 오순절 교인들의 문제가 바로 그것입니다. 남겨 두는 것입니다. “저는 이십 년 전에 어떤 체험을 했습니다.” 형제님, 오늘날 그 체험에는 장구벌레가 생겼습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말합니다. “성령 침례를 받았을 때 제게는 기쁨과 화평과 오래 참음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그때의 체험은 이미 지나갔습니다. 오늘 새로운 체험을 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그들은 날마다 새로운 만나를 거두었습니다. 만나는 하나님에게서 내려온 성령의 완전한 모형입니다. 그들이 광야를 지나갈 수 있도록 지탱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영께서 우리를 지탱하시며 이 여정을 지나가게 하시듯이 말입니다. 우리는 약속의 땅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에게 말해 주었으리라.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해 처소를 예비하리라.”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는 약속의 땅으로 가는 중입니다. 보십시오.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에게서, 하늘에서 내려오시는 성령으로 양식을 공급받습니다. 우리 혼에 반석 속의 꿀같이 달콤합니다. 저는 살아가는 매시간 그것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죽습니다. 사실입니다. 그것이 제게 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살 수 없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살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보십시오. 잘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먼저 이 모형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모세가 아론에게 말했습니다. “나가서 만나를 몇 오멜 가득 거두어 지성소 안 깊숙이 두어라.” 그러면 그 뒤에 오는 모든 세대에서, 여정을 마친 뒤에 제사장이 되어 그 안에 들어가 제사장으로 섬길 자격을 얻은 사람은 거기 들어가 이 만나, 맨 처음의 만나를 조금 가져다가 맛보고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는 그 만나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입니다. 이것을 지성소 안 깊숙이 보관하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그대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거기서는 상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늘에서 직접 오는 것이고, 하나님의 권능이 지성소 위에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제사장은 자기가 제사장이 되면, 처음에 내렸던 본래의 만나를 맛볼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여정 내내 주어진 만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셨고, 이스라엘 자손을 먹이셨다는 기념이었습니다. 오순절 날, 교회가 세워지고 성령 침례가 임하게 되었을 때, 우리의 만나가 하나님에게서, 하늘에서 내려왔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노라. 그러나 너희는 높은 곳으로부터 오는 권능을 입을 때까지 예루살렘 시에 머물라. 그 뒤에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펜실베이니아주 이리와 세상 맨 끝 지역까지 이르러 나를 위한 증인들이 되리라.” 아멘.
보십시오. 그들은 그곳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홍해를 건넜던 것처럼, 제자들도 교회를 깨끗하게 하시려고 그리스도께서 붉은 피를 쏟으신 뒤에 돌아갔습니다. 오순절 날이 충만히 찼을 때에… 아! 자,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하는지 보십시오. 개신교회에서는 앞으로 나가면 이렇게 말합니다. “믿… 받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습니까?” “믿습니다.” “명부에 이름을 적으십시오. 육 개월의 관찰 기간을 거쳐 교회에 받아들이겠습니다. 가서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떠들며 마음대로 하십시오.” 가톨릭교회에서는 앞으로 나가 혀를 내밀고 성만찬, 거룩한 영성체를 받습니다. 좋습니다. 그러면 교회 회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둘 다 옳지 않습니다. 오순절 날이 충만히 찼을 때, 사제가 손에 성찬함을 들고 길을 따라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목사가 신학교에서 걸어 나와 “이제 저는 존스 박사입니다. 오른손을 잡고 여러분을 교회의 교제 안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이명서를 통해 여러분을 받아들이겠습니다.” 하고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오순절 날이 충만히 찼을 때에, 그들은 모두 한곳에 한마음으로 있었습니다. “저는 감리교인입니다. 저는 침례교인입니다. 저는 루터교인입니다.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한곳에 한마음으로 있었습니다. 갑자기 하늘로부터 소리가 났습니다. 길에서나 신학교에서가 아니라,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력한 바람 소리 같은 소리가 났습니다. 그들이 앉아 있던 온 집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성령께서 그들 위에 내리셨습니다. 그들은 거리로 나가 비틀거리고 말을 더듬으며, 마치 술 취한 사람들처럼 행동했습니다. 잠깐만요, 여러분. 복된 처녀 마리아도 그곳에 들어가 똑같은 것을 받아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처녀 마리아조차 성령 침례를 받지 않고는 천국에 들어가도록 허락하지 않으셨다면, 여러분도 어떤 교회에 꼭 붙어 있다는 것만으로, 그보다 못한 것을 가지고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성령을 받든지, 아니면 밖에 남든지 할 것입니다. 그뿐입니다. 그뿐입니다. 형제님, 그것이 복음의 가르침입니다. 여러분을 태우고, 그슬리고, 물집이 나게 하고, 온갖 것을 다 할지라도 여러분에게 유익이 될 것입니다.
제가 어린 소년이었을 때는 아주까리 기름을 늘 먹어야 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묵은 고기 껍질을 삶아 기름을 얻어 옥수수빵에 넣었습니다. 토요일 밤마다 아주까리 기름을 먹어야 했습니다. 낡은 통, 아래로 손을 뻗어… 낡은 통에서 목욕을 했습니다… 어머니께서 우리 몸을 문질러 씻기시고, 주전자에 물을 더 넣고, 물을 조금 더 부으신 다음 또 몸을 문지르셨습니다. 그러고는 코를 막고 아주까리 기름을 먹었습니다. 아이고, 아이고. 그것을 먹고 얼마나 속이 메스꺼웠는지요. 부엌에 들어가기만 해도 구역질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코를 막고 헛구역질을 하며 말했습니다. “엄마, 이걸 먹으면 너무 메스꺼워요.” 어머니는 “메스껍지 않으면 아무 효험도 없는 거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오후에도 그 말이 적용됩니다. 이것이 여러분 속을 아주 제대로 뒤집어 놓지 않으면, 여러분에게 아무 유익도 주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계속하십시오. 바로잡으십시오. 그것만이 할 일입니다. 새롭게 다시 시작하십시오. 아멘. 옛날식 복음은 여러분에게 아주 좋은, 꼭 필요한 것을 줄 것입니다. 아멘. 맞는 말인 줄 아실 겁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여러분을 새 창조물로 만들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 없어도 될 것들을 토해 내게 할지도 모릅니다. 좋습니다.
그들은 성령 침례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마리아를 자신의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으셨습니다. 좋습니다. 성령을 받자 그들은 거리로 나가 소리 지르며, 술 취한 사람들처럼 행동하고 비틀거렸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성령을 받는다고 말하면서, 혀 아래에 얇은 성찬 떡을 넣거나 목사와 악수합니다. 아, 형제님, 저는 그 낡은, 눈물 한 방울 없는 고백에 정말 지쳤습니다. 그것으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마치… 어딘가에 있는 마른 헝겊에서 물을 짜 마시려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롭고 충만한 성령 침례가 내려와 사람들을 다시 일깨우는 것입니다. 얼마 전 이곳 호수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내려가 보니 큰 부흥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파도가 계속 뛰고, 솟구치고, 뛰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잔잔할 때보다 물이 더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부흥이 일어나고 있구나.”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바람이 우리에게 불어와 여러분을 조금 흔들어 깨우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얼마나 영광스럽습니까… 그때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자, 이쪽을 보십시오.” 사람들이, 형제들이 모두 달려 모여들어 말했습니다. “이 사람들 좀 봐. 모두 새 포도주에 취했어.” 종교인들이 한 말입니다. “저 여자들 좀 봐. 내가 뭐랬어? 다들 새 포도주에 취했잖아.” 그러자 베드로가 앞으로 나왔습니다. 아마 길거리에서 상자 위에 올라가 설교하는 사람이었나 봅니다. 사람들은 저도 그런 설교자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좋습니다. 그는 상자든 나무 그루터기든 무엇인가를 가져다 그 위에 올라서서 말했습니다. “유대 사람들과 예루살렘에 거하는 자들아, 이것을 너희에게 알려 주리라. 지금은 겨우 낮 세 시이므로 너희가 짐작하는 것처럼 이들은 술 취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오히려 이것은 선지자 요엘을 통해 말씀하신 것이니라.” 형제님, 그가 얼마나 힘 있게 설교했는지 지옥의 종유석을 흔들어 마귀의 눈에 떨어지게 할 정도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말했습니다… 그들은 이 모든 것을 보았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이것이 일어나리라고 예언된 바로 그 일입니다.”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너희는 각자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 죄들의 사면을 얻으라. 그러면 너희가 성령님을 선물로 받으리라.”
그것이 무엇입니까? 동일한 약속입니다. 그들에게 영생을 주려고 내려온 동일한 만나입니다. 만나가 이스라엘 자손을 광야를 지나가게 했듯이, 동일한 성령 침례가 교회를 영광에 이르기까지 이끌어 갑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그때의 제사장들처럼… 가운데 가로막힌 벽이 무너졌습니다. 누구든 그리스도께 나아와 그분께서 계신 것과 그분을 찾는 이들에게 보상하시는 분임을 믿고, 죄들을 버리고 두 팔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면, 그것을 닮은 것, 흉내 낸 것이 아니라, 오순절 날 임했던 것과 같은 진짜 성령 침례로 가득 찬 참된 마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동일한 표적들과 이적들과 그 밖의 모든 일이 일어나게 할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사실인 줄 아실 겁니다. 그것은 여러분도 술 취한 사람처럼 똑같이 행동하게 합니다. 오순절 날 그들이 했던 것처럼 행동하게 합니다. 모든 신자는 그것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제사장 직분에 들어오는 모든 제사장이 만나를 받을 수 있었던 것과 같습니다. 할렐루야! 아, 제 몸집이 두 배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아마 소리도 두 배로 낼 수 있을 테니까요.
형제님, 어쨌든 저는 이것이 참 좋습니다. 오늘 이 교회에 필요한 것은 참된 부흥입니다. 새로운 교리나 새로운 질서가 아니라, 여러분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이 다시 불붙는 것입니다. 얼마 전 한 형제님과 시냇가를 걷다가 거북이 한 마리를 발견했습니다. 이곳에도 그런 것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육지거북, 거북 말입니다. 생김새가 참 우스웠습니다. 발을 이렇게 벌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저 우습게 생긴 녀석 좀 봐요.” 했습니다. 가까이 내려가자, 그놈이 이렇게 껍데기 속으로 쏙 들어가 버렸습니다. 이런 그리스도인들이 생각납니다. 복음을 쏟아 놓기 시작하면, 미지근한 교인들이 껍데기 속으로 쏙 들어갑니다. “나는 아무개 교회 소속입니다. 아무개 박사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고 그 안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저는 “저놈을 걷게 해 보겠어요.” 했습니다. 가서 긴 회초리를 하나 잘라 와서 마구 때렸습니다. 그래도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때려서 그렇게 만들 수 있습니다.
제가 “한번 두고 보자.” 하고는 그놈을 시냇가로 데려가 물속에 집어넣었습니다. 거품만 몇 개 올라왔습니다. 형제님, 여러분은 마른 죄인으로 물에 들어갔다가 젖은 죄인으로 나올 수 있습니다. 거품 몇 개만 올라올 뿐입니다. 이 방식으로 침례를 주든, 저 이름으로 주든, 이렇게 위아래로 하든, 앞뒤로 하든, 물을 뿌리든, 마음대로 해도 그는 여전히 죄인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종이 한 장을 가져와 작은 불을 피우고 그 위에 그놈을 올려놓았습니다. 그제야 걸었습니다. 형제님,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설교단 뒤에 다시 서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권능을 전하는 설교자들입니다. 성령과 불 침례가 백성 위에 내려오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걷게 될 것입니다. 일요일 오후에 이곳 해변에 나와 수영복 차림으로 몸을 쭉 펴고 누워 있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교회로 걸어가게 할 것입니다. 골프 치러 내려가거나… 아, 형제님, 뜨끔하십니까? 오늘 아침 거기로 걸어 내려가 보니, 그 해변 여기저기에 숙녀들이 누워 있었습니다… 여자들 말입니다. 숙녀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숙녀는 그런 일을 하지 않습니다. 해변에 수영복을 입고 몸을 쭉 펴고 누워 햇볕에 피부를 태우고 있었습니다.
저에게 딸이 하나 있습니다. 여섯 살입니다. 그 아이가 그렇게 누워 있는 것을 제게 들키기만 해 보십시오. 그 아이는 ‘선탠’을 하게 될 것입니다. 햇볕이 아니라 찰리 브래넘의 ‘아들’이 널빤지를 들고 힘껏 두들겨 주는 것입니다. 제대로 혼이 나서 집으로 돌아가게 할 것입니다.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겁니다. 이곳 사람들 중에는 켄터키의 늙은 어머니들을 무식하다느니 하고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이 이곳에 와서 여러분에게 딸을 어떻게 키우는지 가르쳐 줄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딸에게 그 짧은 옷을 입혀 거리에 세워 놓고는, 어떤 남자아이가 딸을 두고 한마디 하면 그 아이를 감옥에 보내려고 합니다. 매를 맞아야 할 사람은 바로 여러분입니다. 그렇습니다. 형제님, 하나님의 사랑이 마땅히 있어야 할 곳, 여러분의 마음 안에 있다면, 자녀에게 그런 옷을 입히지 않을 것입니다. 휴, 이제 입을 다무는 게 좋겠습니다. 이 형제들이 여러분께 복음을 전하러 왔으니까요.
형제님, 저는 자기답게 진실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아멘. 성령의 권능이 그런 것들로부터 여러분을 깨끗하게 하신다고 믿습니다. 거기 누워서 스스로를 욕되게 하지 마십시오. 들으십시오, 형제님. 무엇을 먹는지 보면 여러분을 알 수 있습니다. 독수리는 무엇이든 먹습니다. 비둘기는 자기가 먹을 것을 압니다. 그렇습니다. 둘은 서로 교제하지 않습니다. 같은 깃털을 가진 새들끼리 모입니다. 그런 곳들을 멀리하고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온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한다면, 그런 것들이 들어올 자리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또 한 번의…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행동하면서 부흥을 말합니다. 좋습니다. 본문을 계속 살펴봅시다. 좋습니다. 어쨌든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유명해지신 뒤에 나가시니, 이적들이 그분을 따르기 시작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사람들을 불러내어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과 함께 계시며, 자신을 그분께 나타내고 계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분은 마르다와 마리아와 그분의 친구인 나사로와 함께 살러 가셨습니다. 나사로의 집에 계시다가… 어느 날 그 집을 떠나셨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어서가 아니라, 사역이 그분을 다른 지방으로 내보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주신 환상을 이루기 위해서였습니다. 보십시오. 그분이 집을 떠나셨습니다. 그분이 집을 떠나시자 슬픔과 질병이 들어왔습니다. 그분께서 여러분의 가정을 떠나시면, 슬픔과 질병이 들어올 것입니다. 좋습니다.
나사로가 병들었습니다. 신학자들은 그가 폐출혈로 죽었다고 믿습니다. 저는 모릅니다. 성경에는 아무 말도 없습니다. 어떤 저술가들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좋습니다. 그가 병들었습니다.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믿음을 시험하십니다. 그것을 믿습니까? 하나님께 나아오는 모든 아들은 시험을 받아야 합니다. 불같은 시련이 닥치는 것을 이상히 여기지 마십시오. 그것은 오직 여러분의 믿음을 온전하게 하고 더 가까이 이끌기 위해 행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금보다 더 가치가 있습니다. 좋습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자, 마리아와 마르다는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께 돌아오셔서 그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하십시오.”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부름을 그냥 외면하셨습니다. 더 먼 다른 도시로 가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다시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분은 여전히 그 부름을 외면하셨습니다.
여러분의 목사님이 그렇게 하신다면 어떻겠습니까? 아, 여러분은 “저 위선자 같으니!”라고 말할 것입니다. 목사님들이 제게 이 말을 하라고 시키신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저 위선자 같으니! 나는 아무개 박사님 교회에 가서 가입하겠어. 저 사람이 안 해 준다면…” 하고 말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줄 모르십니까? 그런 태도 때문에 그가 여러분을 도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지만, 여러분이 그를 믿기 전에는 여러분을 도울 수 없습니다. 목사님이 선한 분이라면 그분을 믿으십시오. 그분이 신유를 믿고 전하며 그 말씀을 굳게 지키고 올바른 삶을 사신다면, 이 땅의 어느 누구 못지않게 여러분을 위해 기도할 권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그분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믿고 신뢰해야 합니다. 그들이 다시 사람을 보냈지만, 그분은 계속 가셨습니다. 자, 보십시오. 제가 좋아하는 부분입니다. 그분이 돌아서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느니라.” 실제로 그가 그런 상태였습니다. 그러자 제자가 말했습니다. “아, 그가 잠들었으면 잘될 것입니다.” 그제야 예수님께서 그들이 알아듣는 평소의 말로 알려 주셨습니다.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너희를 위해 내가 거기에 있지 않은 것을 기뻐하노라. 그러나 내가 그를 깨우러 가노라.” 아! 하나님… 무덤에서 지켜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이미 그 일에 대해 보여 주셨는지 아닌지 말입니다. “내가 그를 깨우러 가노라.” 그들은 돌아왔습니다.
그 작은 가정에서 첫날이 지나갔습니다. 그들은 나사로를 데려다가 시신을 방부 처리하고 무덤에 안치했습니다.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배운 바로는 나사로는 성전의 서기관이었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작은 장식용 직물 같은 것을 만들었습니다. 부모님은 돌아가셨습니다. 이제 생계를 책임지던 사람도 없어졌습니다. 어두운 시간이었습니다. 둘째 날이 지났습니다. 그들은 무덤에 가서 애곡했습니다. 셋째 날이 지나고 넷째 날이 지났습니다. 칠십이 시간, 사흘 밤낮이 지나면 부패가 시작됩니다. 살을 먹는 벌레들이 그의 몸속에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모든 희망이 사라졌습니다. 그 작은 가족이 이제껏 겪은 가장 어두운 시간이었습니다. 여러분도 그런 때를 겪어 보셨습니까? 저희 가정에서도 겪었습니다.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내고 어둠에 싸이는 때 말입니다.
그 작은 가족이 이제껏 겪은 가장 어두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그분은 대개 가장 어두운 때에 오십니다. 제가 저 메이오 병원에 누워 있었습니다. 메이오 형제들이 저를 보고 검사를 했습니다. 그러고는 말했습니다. “브래넘 목사님, 이런 말씀을 드려 유감입니다만, 이제 끝입니다. 해 드릴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이제 끝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아! 오, 자비로우신 주님! 형제님, 저기 의자에 앉아 몸을 떨고 계신 지금이 가장 어두운 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틀 밤 동안 형제님을 지켜보았습니다. 바로 이때 예수님께서 오신다면 얼마나 놀랍겠습니까? 암에 걸려 앉아 계시고, 의사가 살 수 없다고 말한 분은 어떻습니까? 가장 어두운 때에, 그때 예수님께서 오십니다. 그분은 언제나 가장 어두운 때에 바로 거기 계십니다. 히브리 아이들이 불타는 용광로 안으로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디딜 때, 그때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피 흘리는 병을 앓던 여인이 [불명확한 말] 자기 돈을 전부 의사들에게 써 버리고도 아무 효험이 없었을 때, 그때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그분은 바로 거기 계십니다. 지치지 마십시오. 그분을 사랑한다면 그분 곁에 그대로 머무십시오. 그분이 거기에 계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어떤 이들이 “선생님께서 오셨다.” 하고 말했습니다. 마리아는 늘, 아니 마르다는 좀 더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불타고 있었습니다. 얼굴 위로 너울을 내리고 길을 나섰습니다. 어떤 이들이 하는 말이 들리는 듯합니다. “신유를 전하던 그 광신자 설교자는 어디 있지? 응? 시험이 닥치자 도망가 버렸지, 안 그래? 지금 어디 있어? 그 신유로 병 고친다는 사람은 어디 있느냐고?” 마르다와 그 가족은 교회를 떠났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누구나 성전에서 쫓아낸다고 엄하게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런 처지였습니다. 더는 회당에서 교제할 수 없었습니다. 교회도 잃고, 목회자들도 잃고, 친구들도 잃고,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전부 없어졌습니다. 모든 희망이 사라졌습니다. 그들은 외로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예수님께서 지나가셨습니다. 그러자 마르다가… 옷자락을 걷어 몸에 두르고 달려 나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어떤 이들이 “이제 어디로 가려는 걸까?” 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저는 늘 이렇게 생각해 왔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께만 갈 수 있다면, 자기가 알고 싶은 것을 모두 알게 될 것임을 마음 깊이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옛날 성경에 있는… 수넴 여인처럼 말입니다. 마르다는 아마 이 이야기를 읽었을 것입니다. 수넴 여인이 자기 아이를 잃었을 때… 제 생각에는 아이가 일사병에 걸렸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이를 주셨습니다. 아이는 아홉 살, 열 살, 열두 살쯤으로 자랐습니다. 어느 날 열한 시쯤, 아버지와 함께 들에 나가 있다가 “내 머리야, 내 머리야.” 했습니다. 집으로 들어왔는데 일사병에 걸려 있었습니다. 그러고는 죽었습니다. 여인이 말했습니다. “나귀에 안장을 얹고 앞으로 가라. 내가 명하지 않으면 멈추지 말라. 갈멜 산에 계신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가자.” 그녀는 하나님께서 엘리야 안에 계신 것을 알았습니다. 자, 마치기 전에 잘 들으십시오. 그녀는 하나님께서 엘리사 안에 계신 것을 알았습니다. 엘리사에게만 갈 수 있다면, 아이를 되찾지는 못할지라도 왜 아이를 데려가셨는지는 알게 될 것이었습니다. 남편이 말했습니다. “오늘은 월삭도 아니고 안식일도 아니오. 그분이 거기 안 계실 거요.” 그녀는 “다 잘됩니다. 어서 가라.” 하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나귀를 타고 갔습니다… “내가 명하지 않으면 속도를 늦추지 말라.”
그녀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다가오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때 그는 몰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선지자들에게 모든 것을 다 말씀하지는 않으십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저기 수넴 여인이 오는구나. 무슨 일이 생겼구나. 그 마음에 슬픔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내게 숨기셨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는 무슨 일인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가 다가가… 그녀가… 그가 물었습니다. “네가 잘 있느냐? 네 남편이 잘 있느냐? 아이가 잘 있느냐?” 저는 이것이 좋습니다. 그녀는 “다 잘됩니다.” 했습니다. 선지자에게 도달한 것입니다. 이제 모든 것이 괜찮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나귀를 타고 그의 곁까지 와서 내려… 뛰어내려 그의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 게하시가 자기 주인에게 매달린 그녀를 떼어 놓았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녀가 가까이 오지 못하게 막는 것입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그녀를 가만두라. 그 마음에 슬픔이 있다. 하나님께서 내게 숨기셨다.” 그러자 그녀는 아이가 죽었다는 것을 그에게 털어놓았습니다.
자, 보십시오. 목사 형제님들, 바울이 병자들에게 손수건을 놓을 생각을 얻은 것이 바로 여기서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엘리사가 게하시에게 말했습니다. “내 지팡이를 가지고 가라. 내 지팡이를 가지고 가되, 누가 인사하더라도 답례하지 말라.” 오늘날 우리가 사명을 받았을 때의 문제가 바로 그것입니다. 가다가 멈춰서 다른 일을 하려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하지만 그는 말했습니다. “답례하지 말라. 내 지팡이를 가지고 가서 아이 위에 놓아라.” 엘리사는 하나님께서 자기 안에 계신 것을 알았습니다. 자기가 만지는 것은 무엇이든 복을 받았습니다. 그 여인도 같은 것을 믿게 할 수만 있다면… 바울이 자기 몸에 닿았던 손수건을 놓는 생각을 얻은 것이 바로 여기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안에 계시고 자기가 만지는 것은 복을 받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만 사람들이 그것을 믿는다면 말입니다.
그래서 게하시가 먼저 갔습니다. 물론 아이는 깨어나지 않았습니다. 여인은 엘리사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주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고 당신의 혼이 결코 죽지 않음을 두고 맹세하오니, 저는 당신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그러자 엘리사는 허리를 동이고 떠났습니다. 집에 가 보니 죽은 아이가 누워 있고, 사람들이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아, 얼마나 알맞은 일이었습니까. 그녀는 그를 위해 작은 집을 지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를 데려다가 그가 누웠던 침대 위에 눕혔습니다. 아이를 눕혀 놓기에 좋은 곳이었지요? 그 침대 위 말입니다. 그러고는 선지자가 들어갔습니다. 방 안을 이리저리 걸었습니다. 이쪽저쪽으로, 방 안을 오가다가, 죽은 아이의 몸 위에 자기 몸을 포갰습니다. 그러자 아이가 일곱 번 재채기를 하고 살아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선지자 안에 계셨습니다.
마리아는 생각했습니다… 아니, 마르다는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선지자 안에 계셨다면, 분명히 자신의 아들 안에도 계실 것이다.” 그래서 그분을 만나러 달려갔습니다. 아, 형제님, 할렐루야! 그녀는 달려… 저는 흥분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 제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압니다. 자, 보십시오. 그녀는 그분을 만나러 갔습니다. “이적의 시대는 지나갔어.” 하고 말하는 비판자들 사이를 뚫고, 그들을 밀치며 계속 나아갔습니다. 그분께 가고 싶었습니다. 그분께 도착해서는 “왜 제 오라버니에게 오지 않으셨습니까? 저희는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하며 책망하고 나무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것은 1951년식 반응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렇게 했다면 이적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녀는 있는 힘껏 달려갔습니다. 그분께 도착하자 그분의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 아, 저는 그것이 좋습니다. 그녀는 단순하게 나아왔습니다. 올바른 태도로 나아왔습니다.
지금 제가 무슨 말씀을 드리는지 이해하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나아가는 길이 있습니다. 단순함입니다. 자신이 남보다 낫다고 결코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뭔가 해 주셔야 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여러분이 하나님께 빚지고 있습니다. 겸손히 오십시오. “아무것도 없습니다, 주님. 제게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겸손히 나아옵니다.” 저 멕시코에서 스페인계 사람들이, 그 가톨릭 신자들이 왔을 때,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자마자 따로 기도받으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가까이 가서 곁을 지나갈 수만 있으면, 그것만으로 만족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까지 그들 가운데 한 사람도 거절당한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겸손히 말입니다. 물론 우리는 교육을 너무 많이 받았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과 온갖 세부 사항까지 다 압니다. 아시겠죠? 너무 많이 압니다.
그런데 여기 마르다가 달려와 그분의 발 앞에 엎드려 말했습니다. “주여…” 그것이 그분께 합당한 호칭이었습니다. 그분은 주님이셨습니까? “주여,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으리이다.” 아!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라도, 주여, 무엇이든 하나님께 구하시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주께 주실 것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겸손히 그분의 발 앞에 엎드려, 한 사람을 올려다보며 그분이 자신을 누구라고 하셨는지 그대로 부르는 것입니다. 세상이 그분을 광신자라고, 바알세불이라고, 영매라고, 점쟁이라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그녀는 말했습니다. “주여,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으리이다.” 그분을 향한 믿음을 고백하며, 그분이 누구신지에 합당한 호칭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이제라도 무엇이든 하나님께 구하시면, 하나님께서 행하실 것입니다.” 아, 저는 그것이 좋습니다.
여러분은 말합니다. “브래넘 형제님, 저는 오랫동안 이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라도… “브래넘 형제님, 의사는 제가 심장병에 걸렸다고 했습니다. 언제든 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라도, 주여. 여러분은 말합니다. “하지만 브래넘 형제님, 제 몸은 암에 먹혀 버렸습니다.” “그러나 이제라도, 주여, 무엇이든 하나님께 구하시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주께 주실 것입니다.” 그분은 아버지의 오른편에 앉아 중보하고 계십니다. “이제라도, 주여, 무엇이든 하나님께 구하시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주께 주실 것입니다.”
그분의 모습이 보입니다. 겉모습은 별로 볼품이 없으셨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흠모할 아름다움이 그분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분은 키가 육 피트나 되는 건장한 분이 아니셨습니다. 작고 연약한 분이셨습니다. 어깨가 굽은 채로 그 작은 몸을 곧추세우셨습니다. 서른 살이 되기 전부터 수염이 희어졌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어깨가 굽어 계셨는데, 말씀하셨습니다. “네 오라비가 다시 일어나리라.” 아! 그녀가 말했습니다. “예, 주님. 마지막 날 그가 다시 일어날 줄을 압니다.” 그 유대인들은 모두가 부활하는 날을 믿었습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마지막 날 그가 다시 일어날 줄 압니다. 그는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 그를 일으키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러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 나는 그렇다.” “앞으로 그럴 것이다. 전에는 그랬다.”가 아닙니다. “나는 그렇다.” 현재형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 나를 믿는 자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아!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누구든지 내 안에서 사는 자는… 그리고 나를 믿는 자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그분이 물으셨습니다. “이것을 네가 믿느냐?” 그녀는 말했습니다. “그러하오이다, 주여. 저는 주님을 믿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바로 그분이심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습니다. 이 땅에 내려오신 하늘의 주님이심을 믿습니다. 무엇이든 하나님께 구하시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주께 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로 되어 있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습니다.” 아! 무슨 일인가 일어나야 합니다. 무슨 일인가 일어나야 합니다. 모든 것이 이렇게 맞물려, 하나로 모이고 있었습니다. 아!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를 어디에 묻었느냐?” “와서 보십시오.” 이제 그분이 가십니다.
얼마 전 어떤 교회에 속한 한 작은 부인이 저와 논쟁하려 했습니다. 모든 것을 과학적으로 안다는 사이언스 교회였습니다. 그분이 물었습니다. “브래넘 목사님, 정말 그분이 하나님이셨다고 믿는다는 말씀입니까?” 제가 말했습니다. “저는 그분이 하나님이셨음을 압니다.” 그 여자가 말했습니다. “그분은 그저 한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그분은 사람 이상의 분이셨습니다. 하나님이시며 사람이셨습니다.” 그 여자가 말했습니다. “사람일 뿐이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셔서 세상을 자신과 화해하게 하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아닙니다.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그분은 신성을 지닌 사람이셨습니다.” 그 여자가 말했습니다.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분이 하나님이 아니셨다는 것을 성경으로 증명할 수 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부인, 들어 보십시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한 처녀를 덮으셨습니다. 남자를 통해 아이가 태어날 때, 혈구가 남성에게서 온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여러분도 그것을 믿으시지요?
이곳을 보니 닭도 기르고 여러 새들도 있더군요. 봄철의 새들 말입니다. 어미 새가 나가서 둥지 가득 알을 낳고, 그 위에 앉아 품고 따뜻하게 해 주다가, 너무 여위어서 둥지에서 날아오를 수 없을 정도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수컷과 함께하지 않았다면 그 알들은 결코 부화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대로 누워 썩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오늘날 교회의 문제도 거의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큰 둥지 안에 썩은 알만 가득합니다. 그것을 꺼내 버리고 새롭게 다시 시작할 때입니다. 그리스도와 접촉한 사람이라야 합니다… 예, 그렇습니다. 그리고… 암탉이 알을 낳을 수는 있지만, 수컷과 함께하지 않았다면 그 알은 결코 부화하지 않습니다. 생명의 씨는 남자에게서 옵니다. 여러분은 아니… 혈구는 남자에게서 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구속받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그분께서 처녀 마리아를 덮으시고 창조하셨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 여인의 태 안에 혈구를 창조하셨습니다. 성적 욕망으로 남자를 알지 않은 채 말입니다. 그것을 믿습니까? 그 혈구가 자라 하나님의 아들이신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그 섞이지 않은 피, 성적 욕망 없이 여호와께서 창조하신 피를 통해, 갈보리 십자가에서 그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를 죄와 질병에서 구속하십니다. 할렐루야! 형제님, 저는 오늘 오후 그것을 위해 죽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믿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잃어버린 자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온 마음으로 믿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창조된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 안에 계셔서 세상을 자신과 화해하게 하셨습니다.” 그 여자가 [불명확한 말] “그분은 한낱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니셨습니다. 제가 성경으로 증명하겠습니다. 받아들이시겠습니까?” 하고 말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성경으로 증명하신다면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러면 제가 부인의 생각이 틀렸음을 입증하면 부인도 받아들이시겠습니까?” 그 여자가 말했습니다. “먼저 목사님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겠습니다.” 제가 “어디 해 보십시오.” 했습니다. 그 여자가 말했습니다. “그분이 나사로의 무덤에 내려가셨을 때, 무덤에 가서 우셨습니다. 마음에 슬픔이 있었기 때문에 우셨으니, 그분이 한낱 사람이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분은 우셨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예, 부인. 나사로의 무덤으로 가시면서 사람처럼 우셨다는 데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거기 서서 그 작고 연약한 몸을 곧추세우시고 ‘나사로야, 나오라.’ 하셨을 때는,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 이상의 분이 거기 계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통해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할렐루야! 죽은 지 나흘이나 된 사람이 제 발로 일어서서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것을 믿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부인, 사실입니다. 그날 밤 산에서 내려오셔서 주리셨을 때 그분은 사람이셨습니다. 먹을 것을 찾으려고 나무를 이리저리 살펴보셨습니다. 사람처럼 배가 고파 먹을 것을 찾으셨습니다. 주리셨습니다. 그러나 작은 빵 다섯 개와 작은 물고기 다섯 마리를 가지고 오천 명을 먹이셨을 때는 사람 이상의 분이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 안에서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창조주 자신이셨습니다.” 할렐루야! 휴! 어차피 저를 광신자라고 할 테니, 여기 있는 동안 실컷 즐거워하는 편이 낫겠습니다. 형제 여러분, 말씀드리겠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보십시오. 주리셨을 때는 사람이셨지만, 오천 명을 먹이셨을 때는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날 밤 거친 바다가 요동치고 출렁이며, 바다의 마귀 일만이 그날 밤 그분을 물에 빠뜨려 죽이겠다고 맹세했을 때, 배 뒤쪽에 누워 계신 그분은 사람이셨습니다. 너무나 지쳐 움직일 수도 없이 배 뒤편에 누워 계셔서, 거센 파도조차 그분을 깨우지 못했습니다. 잠드셨을 때는 사람이셨습니다. 하지만 일어나셨을 때, 할렐루야, 앞으로 나오셔서 배의 밧줄에 발을 딛고 위를 바라보며 “잠잠히 있고 고요히 있으라.” 하시자, 파도와 바람이 그분께 순종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분께서… 바람과 파도가 그분께 순종했을 때, 그분은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 이상의 분이셨습니다. 하나님이셨습니다.
형제님, 갈보리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그분은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고 부르짖으셨습니다. 사람처럼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부활절 아침에 일어나셨을 때, 지옥과 사망과 무덤의 모든 족쇄를 끊으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하나님, 임마누엘이심을 증명하셨습니다. 오늘날 그분은 높은 곳에 올라 계십니다. 이것을 믿습니까?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이것을 믿습니까? 지금 바로 여기에 계십니다. 이것을 믿습니까?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을 믿습니까? 저는 지금 성령께서 이 회당을 두루 돌고 계신다고 믿습니다. 이것을 믿습니까? 우리가 지금 당장 우리 모두를 고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것을 믿습니까? 할렐루야! 이것을 믿습니까? 하나님의 천사가 지금 바로 이 회당을 두루 돌고 계십니다. 이곳에 있는 남자든 여자든 치유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지금 바로 자기 발로 일어서서 치유받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것을 믿습니까? 일어서십시오. 할렐루야! 오 하나님, 생명의 창시자시며 모든 좋은 선물을 주시는 분이시여, 지금 바로 이 백성에게 주님의 복을 보내 주소서. 주님, 모두를 고쳐 주소서. 주님의 자비가 내리게 하소서. 주님의 권능이 이곳에 임하여 지금 바로 모두를 고치게 하소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저들이 앞으로 나와 건강하게 되게 하소서. 손을 드십시오. 그분을 찬양하십시오. 지금 여기에 계십니다. 사람들을 고치고 계십니다. 권능이 나가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이것을 믿습니까? 그분은 여기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