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그것은 외국으로 보내집니다. 그래서 저는 늘 와서 여러분께 잠시라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저는… 박스터 형제님과 다른 분들이 헌금을 걷습니다. 우리 대전도 집회의 돈 문제는 참 신기했습니다. 저는… 참 기쁩니다. [불명확한 말] 이렇게 이 자리에서 말씀드릴 수 있어서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제게 밥벌이 수단이 된 적이 없습니다. 제가 복음을 그렇게 생각하고, 달리 길이 없다면, 집으로 돌아가서 예전에 하던 인디애나주 수렵 감시원 일을 다시 구해 일하겠습니다. 저는 제퍼슨빌의 태버내클에서 12년 동안 설교하면서 봉급이나 헌금이나 그 무엇도 한 푼 받지 않았습니다. 저는 일을 했습니다. 그것으로 살았습니다. 지금이라도 어디서 일을 구할 수 있다면… 이 말이 아주 이상하게 들리겠지요. 하지만 시카고에 있는 동안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면… 아마 저기 길에서 곡괭이와 삽을 들고 하는 일 말고는 저를 써 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저는 제 생활을 책임지기 위해 필요한 일이라면 하겠습니다. 겸손한 척하려는 말이 아닙니다. 제 진심입니다. 아시겠죠? 그러면 제 마음도 더 편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집회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다음 집회에서 무슨 일이 있을지 알기 위해 끊임없이 하나님과 함께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함께 모이는 큰 집회에는 비판하는 사람도 있고, 온갖 사람이 다 있습니다. 사탄은 단 한 번의 실수를 기다립니다. 그러면… 그 하나를 빌미로 온갖 것을 들이대려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래서… 저는 조심해야 합니다. 여러분, 지난 집회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이 조금이라도 사실과 달랐다면 어찌 되었겠습니까? 무슨 일이 벌어졌겠습니까? 여러분 중 많은 분이 저 뒤에 있는 제 책,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을 읽으셨습니다. 간증들과 다른 내용들을 보셨지요. 비판자나 정신이 온전치 않은 사람이나 온갖 사람이 곧장 단상으로 뛰어올라와서, “지금 당장 너를 죽여 버리겠다. 네 몸의 뼈를 모조리 으스러뜨리겠다.”고 말하던 그 위태로운 순간들에,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충분히 그럴 만한 힘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목회자들은 움츠러들어 달아났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 서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의 생명을 치시고, 그 사람이 바닥에 쓰러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불명확한 말]
그 자리에 서 있으면 사람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그건 심리학이야. 당신은 사람들의 생각을 읽고 있는 거야.” 여러 단체에서 온 사람들, 그리고 대개는 설교자들이 단상으로 뛰어올라와 말합니다. “그건 심리학입니다. 당신은 사람들의 생각을 읽고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의 권능이 임하여 그것을 물러나게 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시겠죠? 그것이… 스웨덴이나 핀란드나 아프리카나, 어디를 가든 늘 대적하는 자가 있습니다. 사탄입니다. 그래서 많은 분이… 제가 여러분을 찾아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마음을 여러분은 모르십니다. 저는 간절히 그러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는… 제 삶을 기준으로 삼아 여러분도 저처럼 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아시겠죠? 저는 그분이 원하시는 대로 살아야 합니다.
저는 사람의 종이 되든지 하나님의 종이 되든지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종이 되려면 삼가야 합니다. 여러분을 아무리 사랑해도 사람들과 만나는 일을 삼가야 합니다. 저는 혼자 떨어져 살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제가 얼마나 사람들을 사랑하는지, 제 마음을 여러분은 모르십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함께 있으려면 사람들과 떨어져 있어야 합니다. 누구라도, 제 가족이라도 그렇습니다… 며칠 전에는 제 친형제가 차를 몰고 여기까지 왔고, 제 아내도 그들과 함께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형제는 [불명확한 말] 제 육신의 형제입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몇 년 동안 우리 집에 오지도 않았잖아요.” 어머니는 우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빌리, 왜 그 아이들 집에 가지 않니?” 하지만 저는… 제 어머니이시고 저는 어머니를 사랑합니다. 하지만 그 이유는… 오늘 오후 이곳에 [불명확한 말] 앉아 있는 여인이 제 아내입니다. 저는 하나님과 아내에게, 한 여자를 향한 남자로서의 애정은 모두 아내에게만 바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렇게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길을 가는데 젊은 여자가 다가와 “브래넘 형제님이신가요?” 하고 묻는다고 합시다. “네, 그렇습니다.” “아, 저는 형제님을 사랑해요.” 우선 제가 그 여자를 사랑한다고, 그 여자에게 사랑을 느낀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제 첫째 의무는 아내에게 서약한 사랑입니다. 저는 그것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이 첫째입니다. 그러니 저는… 이쪽에서 아무리 마음이 가더라도 그것이 옳을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먼저 이 약속에 충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과 어긋난다면 저는 이 약속을 먼저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께 그렇게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진리와 복음, 그리스도와 사람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사람들을 온 마음으로 사랑하지만, 제 첫째 사랑은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제 첫째 의무는 그분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그분을 섬겨야 합니다. 이해하시겠지요?
이 선교 헌금도, 저는 그 돈을 쓰려고 애써 왔습니다… 저는 평생 헌금을 걷어 본 적이 없습니다. 평생 헌금을 걷어 본 적이 없습니다. 한 번 있었던 일이 생각납니다. 가끔 이 이야기를 하는데, 아내가 저를 나무랍니다. 그러니 아내는 오늘도 또 저를 나무랄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이제 그 이야기를 하려니까요. 결혼한 지 2년쯤 되었을 때였습니다. 아시다시피 불황기라 살기가 어려웠습니다. 저는… 도무지 수입으로 생활비를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분도 그런 적이 있으십니까? 우리 모두 그런 적이 있지요. 여러분도 그랬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저는 일주일에 한 16달러나 18달러 정도를 벌었는데, 아이들도 돌보고 이것저것 해야 했습니다. ‘아,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말했습니다. “여보, 있잖아. 오늘 저녁에는 헌금을 걷어야겠어.” 아내가 말했습니다. “그럼 나도 가서 당신이 헌금 걷는 것을 봐야겠네요.” 저는 한 번도 걷어 본 적이 없었는데, 아내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1932년, 바로 그때 작은 교회를 지었습니다. 교회를 세우려고 돈을 빌렸지만, 헌금을 한 번도 걷지 않았습니다. 교회 뒤편의 작은 상자에는 “너희가 이 내 어린 자들 중 가장 작은 자들에게 한 것은 곧 내게 한 것이니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거기에 상자가 있다는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돈을 갚을 날이 되면 돈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것이 믿음의 삶입니다. 그 일을 하나님께 맡기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제가 바로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날 저녁 교회에 가서 헌금을 걷으려 했던 일이 기억납니다. 사람들이 제게 돈을 주려 하지 않아서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그분들은 저를 위해 죽기라도 할 분들이었습니다. 그분들은… 필요하다면 정말 그렇게 해 주실 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받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젊었고 일을 했으며 직장이 있었습니다. 다른 분들도 일하는데, 저라고 왜 못 하겠습니까? 사역에 크게 지장도 없어서 계속 일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제가 이렇게 말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여러분, 이런 말씀을 드리기가 좀 어렵습니다만, 제가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제가, 제가… 헌금을 걷겠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와이즈하트 형제님, 제 모자를 가져다주시겠습니까?” 헌금 접시도 없었습니다. “제 모자로 걷어 주시겠습니까?” 그가 “그럼요, 빌리.”라고 했습니다. 조금 이상하다는 듯 저를 올려다보더니 가서 제 모자를 가져왔습니다. 제가 내려다보니 웨어라는 자매님이 바로 가까이 앉아 계셨습니다. [불명확한 말] 연세 드신 작은 어머니 같은 분이었는데, [불명확한 말] 작은 체크무늬 앞치마를 두르고 계셨습니다. 앞치마 안쪽 옆에 주머니가 달려 있었습니다. 아시지요? 여기 계신 어머니들 중에는 무슨 말인지 아실 겁니다. 그분이 손을 내려 앞치마 자락을 젖히더니, 위에서 딱 소리가 나게 여닫는 작은 돈지갑을 꺼내시는 것이 보였습니다. 아시지요? 그 작은 지갑을 열고 안에 든 5센트짜리 동전들을 뒤적이기 시작하셨습니다. 아, 저는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가난한 노인분의 돈을 받았다면 평생 마음에 걸렸을 것입니다. 그분을 보니 목이 꽉 메었습니다. 그래서 말했습니다. “여러분, 그냥 여러분의 믿음을 시험해 본 것입니다. 정말 걷으려던 것은 아닙니다.” 저는 [불명확한 말]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내는 거기 앉아서 제가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아시겠지요?
한 노인분이 계십니다. 이 근처에서 이런 집회를 하면 거의 빠짐없이 오시는 분입니다. 오늘 여기 계신지는 모르겠습니다. 이름은 존 라이언입니다. 눈이 멀었던 그 존 라인이 아니라, 다른 존 라이언입니다. 머리와 수염을 길게 기르셔서 ‘다윗의 집’에 속한 분 같아 보입니다. 해먼드 집회와 자이언 집회에도 오셨습니다. 어쩌면 여기 어디에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분이 저를 보러 오셨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오셨는데, 아마 3달러쯤 주고 산 자전거였을 것입니다. 그건 정말… 아시겠지요? 긴 머리카락은 날리고, 수염은 한쪽으로 나부끼면서 저를 보러 오셨습니다. 그런데 거기 계시는 동안 자전거가 타락한 모양입니다. 침례교인이 ‘타락했다’니, 참 대단한 말을 했지요? 하지만 그분이… 아무튼 자전거는 타락했습니다. 그분이 일어나서 말씀하셨습니다. “빌 형제님, 그건 그냥 가지세요.” 그리고 지나가는 차를 얻어 타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제게 자전거를 주셨습니다. 그날 저녁 집에 돌아가니 아내가 말했습니다. “헌금을 걷겠다고 하지 않았어요?” 월요일이 되어 저는 ‘이제 어떻게 하나?’ 했습니다. 가서 페인트 한 통을 15센트쯤 주고 사 왔습니다. 그 낡은 자전거를 손질하고 칠해서 10달러에 팔았습니다. 결국 헌금을 받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그건… 하지만 마음이 그래서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 가난하고 연세 드신 작은 여인께서 1센트짜리 동전이며 그런 것을 넣으시려는 줄 알았습니다. 어쩌면 다른 데 쓰려고 모아 두신 돈이었을 텐데요. 저는 젊은 사람이었고, 그분은 예순다섯 살쯤 되셨습니다. 저는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같은 마음으로 하려고 합니다. 우리 집회는 사람들에게 돈을 구걸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제 집회 책임자 중 누군가 돈을 구걸한다는 말을 단 한 번이라도 듣게 되면, 그 사람은 더 이상 책임자가 아닙니다. 그런 책임자는 두지 않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제 필요를 채워 주시지 않는다면, 그것은 제가 집으로 돌아가기를 원하신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다른 환상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그런 일을 잘하지 못합니다, 보제 형제님. 저는… 보니 제가 이것에 너무 가까이 있는 모양입니다. 처음 이런 것으로 말하려 했을 때가 생각납니다. 겁이 나서 혼이 났습니다. 이런 것은 본 적도 없었으니까요. 오순절 집회에 갔는데, 저를 막 단상으로 초대했습니다. 얼마나 가까이 있어야 하는지도 몰랐고, 이것이 무서웠습니다. 이것을 쳐다보며 뒤로 물러났지요. 여기 미셔와카 근처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보제 형제님이 말한다.] 네. 알겠습니다. 자, [브래넘 형제님이 옆에 있는 누군가에게 말한다.] 네, 그렇습니다. 아마 그럴 겁니다. 저는 정말 이것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니까요. 그것만은 확실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돈이란 결국 큰 역할을 하지요, 형제님? 이제야 꼭 해내게 되었군요.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형제님. 아주 친절하시군요.
오늘 오후 여기 함께 있는 동안… 박스터 형제님이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선교를 위해서…” 저는 할 수가… 할 수는 [불명확한 말] 주님을 위해 헌금을 걷어야 할 때가 된다면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 자신을 위해서는 할 수 없습니다. 얼마 전 큰돈이 제게 주어졌습니다. 여러분 중 많은 분이 그 이야기를 들으셨지요. 저는 그 돈을 쳐다보는 것조차 거절했습니다. 여러분 모두를 행복하게 해 드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저 골라서 [불명확한 말] 지금 우리 가운데… 150만 달러였습니다. 아시겠죠? 저는 그것을 보는 것조차 거절했습니다. 신문에도 그 기사가 실렸습니다. 하지만 저는 원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닙니다. 돈이나 인기나 그런 것에 생각을 쏟는 사람은 분명 바깥에 있는 사람입니다. 역사를 읽으며 제가 주목한 것이 세 가지 있습니다. 목회자의 삶을 애초부터 무너뜨리는 것들입니다. 하나는 돈, 곧 돈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다음은 인기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스스로 대단한 인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다음은 여자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돈과 여자와 인기를 좇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자녀들을 다루실 때 문제가 되었던 세 가지 주된 것이 바로 이것들입니다. 그에 딸린 다른 많은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하나님께서 어떤 형제에게 복을 주시고, 사람들을 돕도록 조금 더한 무엇이나 어떤 것을 주시기 시작하면, 그 사람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이지?’ 하고 생각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때 그는 내리막길로 들어섭니다. 어떻게 올라갈 수 있는지 말씀드릴까요? 내려가십시오. 올라가는 길은 내려가는 것입니다. 자기를 낮추는 자를 하나님께서 높이십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질 것입니다.
이렇게 오후에 말씀드리는 일은… 저는 설교자가 아닙니다. 박스터 형제님과 스타 형제님, 보제 형제님, 그리고 여기 앉아 계신 다른 목회자들처럼 교육을 받은 분들 뒤에 서면, 제 얼마 안 되는 초등 교육으로는 별로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정말입니다. 포트웨인 집회에서 있었던 일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한창 설교를 하고, 집회가 끝난 뒤 좀 쉬려고 휘장 뒤로 왔습니다. 너무 기운이 없어서 걸어 돌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학식이 높은 분이 제게 다가와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형제님의 문법은 형편없습니다.” 저는 “네, 저도 압니다. 저는 7학년까지만 학교에 다녔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제가 열 명을 돌봐야 했거든요…”라고 했습니다. “아, 그건 변명이 안 됩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정말이지, 오늘 밤 실수가 얼마나 많았는지요. 그보다는 문법을 잘 알아야 합니다. 형제님의 말을 듣는 청중을 생각해 보십시오. 창피한 일입니다.” 아마 웹스터 씨의 친척쯤 되는 분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제가 “선생님, 옳은 말씀인 줄 압니다. 하지만…”이라고 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통신 강좌라도 들을 수 있잖습니까.” 저는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전에는 대가족을 돌보며 이래저래 생활을 꾸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주님의 일로 너무 바빠서 강좌를 들을 시간이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그건 변명이 못 됩니다.”라고 했습니다. “오늘 밤 형제님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오늘 밤 이 폴핏을 지나가는 여러분은 믿으면 다 나을 것입니다.’” 저는 “네, 그게 뭐가 잘못됐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저는 차이를 모릅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폴핏’이라고 하면 안 되고 ‘풀핏’이라고 해야지요.” 또 말했습니다. “‘풀핏’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형제님을 더 높이 평가할 겁니다.” 하지만 그분이 저를 조금 너무 몰아붙였습니다. 아시겠지요? 그래서 저는 그분의 어깨에 손을 얹고 말했습니다. “형제님, 마음을 상하게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기 있는 분들은 제가 강단을 ‘폴핏’이라고 하든 ‘풀핏’이라고 하든 개의치 않습니다. 그분들은 제가 복음을 전하고, 제가 말하는 것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여 주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는 것, 그분들이 바라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그렇습니다. [불명확한 말] 그래서 저는… 제가 목회자나 설교자라고 말하지 않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아버지는 말을 타는 분이셨습니다. 로데오를 따라다니시며 곡예 같은 승마를 하셨습니다. 권총 사격도 잘하셨습니다. 작은 깡통들을 가져다가 이렇게 던져 놓고, 총 두 자루로 쏘아서 그 깡통이 계속 굴러가게 하시는 것을 보곤 했습니다. 저는 소총을 들고도 이만한 라드 기름통 하나 못 맞혔을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달랐는지 보십시오. 말을 타시는 솜씨도 참… 코와 귀에서 피가 터져 나올 정도로 타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아, 대단하다. 아버지는…’ 하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제법 자랐을 때 “나도 아버지처럼 될 거야.”라고 했습니다. 저희 집에는 밭을 가는 늙은 말이 한 마리 있었습니다. 저는 평생의 대부분을 인디애나에서 살았습니다. 밭을 가는 늙은 말이 있었는데, 열네 살쯤 되었습니다. 그 말로 온종일 밭을 갈았습니다. 그리고 통나무를 파서 만든 낡은 물구유가 있었습니다. 그런 것을 보셨습니까? 오래된 통나무를 파서 만든 것 말입니다. 어, 여기 시골 분들이 많이 계시는군요! 정말 좋습니다. 그럼 이제 웃옷을 벗고 넥타이도 풀겠습니다.
그 낡은 물구유가 있는 곳에서는 펌프로 물을 퍼 올려야 했습니다. 아시지요? 말에게 먹일 물을 충분히 받으려면, 일이 끝나기 거의 30분 전부터 아이들 중 하나가 펌프질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 다음 아버지가 못 보시게 헛간 뒤로 갔습니다. 제가 살금살금 들어가 아버지의 안장을 가져왔습니다. 말에게 물을 먹이고 마구와 장비를 벗긴 다음, 그 늙은 말 등에 안장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도꼬마리 열매를 한 움큼 집어 안장 밑에 집어넣고, 배띠를 바짝 조였습니다. 아시겠지요? 밀짚모자를 쓰고 그 늙은 말 등 한가운데 올라앉았습니다. 불쌍한 늙은 말은 너무 늙고 뻣뻣하고 지쳐서 발을 땅에서 뗄 수도 없었습니다. 그저 울부짖을 뿐이었습니다. 말이 거기 서서 울부짖으면 저는 모자를 손에 들고 고함을 지르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제 형제들은 모두 울타리 기둥에 올라앉아 지켜보았습니다. 저는 카우보이였습니다. 정말 말을 잘 탔지요. 그 불쌍한 늙은 말을 타는 건, 여기서 흔들목마를 타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리 험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열여덟 살쯤 되었을 때 저는 ‘이제 나이도 충분히 먹었으니, 서부로 가서 카우보이가 되자.’고 생각했습니다. 아마 영화를 너무 많이 보았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서부로 갔습니다. 마침 로데오가 열릴 때 애리조나에 도착했습니다. 저는 그곳으로 갔습니다. 돈이 조금 있어서 가죽 덧바지를 한 벌 사려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크고 멋진 것으로 한 벌 찾아 주었습니다. 그것을 이렇게 입어 보았습니다. 저는 아직 어린아이 같은 몸집이었으니까요. 입고 나니 가죽이 18인치쯤 땅에 끌렸습니다. 뒤로 깃털을 늘어뜨린 작은 당닭 같았습니다. 아시겠지요? ‘애리조나의 옷은 우리 켄터키 사람들에게 너무 크구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리바이스 청바지 한 벌을 사 입고 밖으로 나가, 로데오에서 말을 타는 우리 울타리에 올라갔습니다. 진행자가 지나가며 말하는 것이 들렸습니다. “자, 다음 말은 ‘캔자스 아웃로’입니다. 아무개 선수가 탈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계속 소개했습니다. 울타리를 따라 보니, 다치고 험한 날씨에 시달려 모습이 거칠어진 카우보이들이 그 위에 앉아 있었습니다. 저는 그들을 훑어보며 ‘나도 저 사람들과 함께 저기 있어야 해.’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 우리 울타리에 앉았습니다. 청바지를 입고, 제게 너무 커서 양쪽이 귀까지 늘어지는 모자를 썼습니다. 1달러 95센트밖에 안 주었으니 그리 비싼 것도 아니었습니다. 저는 진짜 카우보이가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늙은 밭갈이 말을 타 보았으니까요.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어.’ 하고 생각했습니다. 진짜 날뛰는 말을 타는 것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잠시 뒤 그 말을 좁은 출발 칸, 가축을 가두는 칸으로 몰아넣었습니다. 말이 나올 때, 안장을 조여 매자 그 사람이 서 있다가 어떻게든 몸을 맞추어 안장으로 내려앉으려 했습니다. 말이 비명을 지르고 울부짖고 콧김을 뿜는 소리를 듣고 저는 ‘어이쿠, 저건 우리 집에 있던 그 늙은 밭갈이 말이 아니구나.’ 했습니다. 말이 그 안에서 뛰쳐나오자 그 사람이 곧장 안장에 올라탔습니다. 말이 옆으로 두 번쯤 빙 돌더니, 몸을 비틀어 펄쩍 뛰었습니다. 그러자 안장이고 사람이고 모조리 날아갔습니다. 그가 땅에 떨어지자 보조 기수들이 말을 붙잡고 구급차는 그 사람을 데려갔습니다. 코와 귀며 온몸에서 피가 흘렀습니다. 진행자가 말을 타고 지나가며 말했습니다. “누구든 저 말을 30초만 타면 50달러를 주겠습니다.” 저는… 그가 말을 타고 이쪽으로 내려오며 말했습니다. “좋습니다.” 카우보이들은 모두 울타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누구든 저 말을 30초만 타면 50달러를 주겠습니다.” 거의 지금 돈으로 2천 달러를 주겠다는 것과 같았습니다. 이야, 50달러라는 말이 얼마나 솔깃했던지요. 그가 저를 똑바로 보며 물었습니다. “자네, 말을 타나?” 저는 “아닙니다.”라고 했습니다. 저건 밭갈이 말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래서 지금도 이런 이야기를 할 때… 집에 있는 교회 근처에서는 “설교자십니까?” 하면, “그렇지요.”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처럼 이런 설교자들 가운데 나와 있을 때 “설교자십니까?” 하면, “아닙니다.”라고 합니다.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주님의 말씀을 사랑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교제할 때면, 어디서든 그분을 경배하기를 좋아합니다. 이런 곳에서는 보통 몇 가지 짧은 본문을 사용합니다. 집에서는 성경을 펴서 구약과 신약 등을 가르칩니다. [불명확한 말] 그리스어나 히브리어로 가르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그 언어들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저 제가 여기서 보는 대로, 성령께서 제게 계시해 주시는 대로 가르칩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오늘 오후에는 여기서 짧은 본문 하나를 택하고 싶습니다. 어쩌면 여러분 중에는 제가 이 본문으로 설교하는 것을 들어 보신 분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전국을 다니며 네댓 가지 짧은 주제로 설교합니다. 이를테면 「와서 한 사람을 보라」 같은 것입니다. 가끔 그 주제를 사용합니다. 그것은… 「우물가의 여인」입니다. 매번 다르게 들리도록, 보통 다른 각도에서 접근하려고 합니다. 그런 짧은 본문을 쓰는 것은, 그쪽으로 너무 깊이 들어가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밤 돌아와 다시 집회를 맡을 때는 기름부음이 다르므로, 때때로 그것이 저를 힘들게 합니다. 아시겠죠? 또는 「이것을 네가 믿느냐」, 「하나님을 보는 네 가지 길」, 「그때 그분이 외치셨다」, 그런 짧은 주제들입니다. 오늘 오후에는 요한복음에서 읽으려고 합니다. 그, 그… 「주님, 지금이라도」입니다.
요한복음 11장을 읽겠습니다. 말씀을 읽으면, 하나님께서 말씀을 읽는 일을 통해 결과를 이루실 것입니다. 그렇게 믿지 않으십니까? 전에 어디선가 이 본문으로 말씀드린 적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이 근방이었을 수도 있고, 다른 지방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랬다면 이번에는 다른 각도에서 접근해 보겠습니다. 그것을 택해서… 설교는 박스터 형제님이 하십니다. 저는 그저 내려와서 말씀을 드립니다. 이렇게 하면 오늘 오후에 제 마음도 조금 편해지고, 저녁 집회를 위해서도 도움이 됩니다.
요한복음 11장, 18절이나 19절쯤에서, 18절부터라고 합시다. 그 성경 말씀을 조금만 읽겠습니다. 이제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십오 스타디온쯤 떨어진 가까운 곳이므로 많은 유대인들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와서 그들의 오라비의 일로 그들을 위로하더라. 그때에 마르다는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서 그분을 맞이하되 마리아는 그냥 집에 앉아 있더라. 그때에 마르다가 예수님께 이르되, 주여,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으리이다. 그러나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 하나님께 구하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주께 주실 줄 내가 아나이다, 하니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일어나리라, 하시니라. 마르다가 그분께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할 때에 그가 다시 일어날 줄 내가 아나이다, 하매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누구든지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이것을 네가 믿느냐? 하시니 그녀가 이르되… 그러하오이다, 주여,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하니라. 자, 잠시 고개를 숙이고 이 책의 저자께 말씀드립시다.
주 예수님, 생명의 주인이시며 은혜로 모든 좋은 선물을 주시는 분이시여,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우리 공로 때문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마음에 널리 부어졌기 때문임을 압니다. 한때 우리는 하나님과 단절된 외인이었고, 말 못 하는 우상들을 경배하던 이방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정해진 때에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습니다. 죄 없으신 분이 죄 있는 자들을 대신하여 죽으시고, 우리를 아버지께로 데려가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딸입니다. 우리가 어떤 모습이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지만, 그분과 같은 몸을 갖게 될 줄 압니다. 우리가 그분을 계신 그대로 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 죽지 아니함을 덧입고, 그분의 영으로 옷 입기를 바라며 이 몸 안에서 얼마나 신음하는지요. 언젠가는…
우리는 구약 시대에 황소와 염소의 피가 죄를 없애지 못했다는 것을 압니다. 그것은 죄를 덮었을 뿐입니다. 살아 있는 자들은 낙원에서 죄가 제거될 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그분은 죄를 없애셨습니다. 죄와의 관계를 끊으셨습니다. 덮어 두신 것이 아니라 없애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때 이후로는, 이 땅의 성막이 해체되어도 영광 가운데 우리를 기다리는 성막이 있습니다. 우리는 곧바로 아버지의 임재 안으로 가서, 거기서 죽지 아니함을 입습니다. 오, 오늘 오후에라도 이 땅의 성막이, 이 성막이 없어지게 된다 해도… 우리는 죄 가운데 태어나고 불법 가운데 형성되었으며, 거짓말을 하며 세상에 나왔고, 본성으로는 죄인들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의 혼을 구속하셨으며, 우리를 위해 복된 몸을 마련해 두셨습니다. 결코 병들지 않고, 심지어 시험도 받지 않는 몸, 그분 자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몸입니다. 그때 우리는 그분을 계신 그대로 보게 될 것입니다.
아버지, 이제 주님의 말씀에 나아갑니다. 그 책을 펴거나 봉인들을 풀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창건 때부터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 그분은 합당하셨습니다. 그분이 오셔서 그분의 오른손에서 책을 받아 책을 펴시고 봉인들을 푸셨습니다. 이제 성령께서 오셔서 우리가 방금 읽은 이 말씀들 위에 임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시고, 여기 이 회중 가운데 두루 나아가시며, 성령께서 우리 교회에 꼭 필요한 것, 곧 믿음을 주시옵소서. 주님, 오늘 저녁 집회를 준비해 주시옵소서. 오늘 저녁이 가장 위대한 집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여기 있기 때문이 아니라, 주님께서 여기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 필라델피아 교회가 세워진 이래 가장 위대한 집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밤 큰 진동이 일어나, 하늘의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저기 큰 경기장이나 어느 강당으로 다시 보내시고, 석 달이나 넉 달 동안 시카고를 뒤흔들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넘치도록 풍성히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지금 마음들을 준비시켜 주시옵소서. 땅을 갈아엎고, 청미래덩굴과 찔리는 가시와 가시덤불과 쓴 뿌리를 모조리 뽑아내 주시옵소서. 성령을 내려 주셔서, 오늘 밤 위대한 집회 가운데 하나님의 천사가 이 건물을 휩쓸고 지나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형제님.
이제 잠깐 말씀에 들어가겠습니다… 시계를 풀어 놓겠습니다. 벽시계가 어디 있는지 모르겠군요. 그게… 최대한 오래 걸리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준비할 시간을 넉넉히 드리려고 합니다. 그리고 조금 전 제 아들이, 오늘 저녁 기도 카드를 원하시는 분들은 가능하면 저녁 6시에 오셔서 받으시라고 알려 달라고 했습니다. 질병으로 고통받으며 도움이 필요하신 분들은 오늘 저녁 6시에 오셔서 기도 카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의 성경 본문은 그 직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아니, 이때는 우리 주님께서 사역하시던 시절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계셨으므로 그분의 명성이 막 널리 퍼지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흠모할 만한 아름다움이 없는 한 사람이셨습니다. 그분은, 그다지 눈에 띄는 외모가 아니셨습니다. 아마 몸집도 작고 연약해 보이는 분이셨을 것입니다. 성경은 그분에게 아름다움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키가 6피트나 되고, 사울처럼 7피트나 되는 건장한 사람이 아니셨습니다. 몸집이 작은 분이셨습니다.
성경은 “우리는 그분을 피하듯 얼굴을 가렸으나, 그분이 하나님께 맞고, 맞으며, 얻어맞고 고난을 당한다고 여겼도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분 안에서 행하시는 일들이 탁월했으므로, 사람들은 그분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밤에 그분을 찾아온 니고데모라는 위대한 선생도 이렇게 말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선생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님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선생님이 하시는 이 일들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니이다.” 그들은 추호도 의심할 여지 없이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목회자들은 말했습니다. “저 사람은 정신과 의사야. 독심술을 하는 사람이야. 당신 생각을 읽는 거야. 그래서 저 사람들의 병이 무엇인지 아는 거야. 당신 생각을 읽는 거라고.” 그분은 생각을 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생각을 읽는 분이셨습니다. 놀라셨지요? 하지만 그러셨습니다. 그들의 생각을 아셨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생각을 읽는 것이 무엇입니까? 아시겠죠? 저기 길모퉁이에 앉아 여러분의 손바닥을 들여다보는 여자들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 것은 마귀가 참된 것을 흉내 내려고 만들어 놓은 대용품입니다. 진짜 1달러짜리 지폐를 흉내 낸 위조지폐 같은 것입니다. 아시겠죠?
하나님께서 하신 모든 일에 대해 마귀는 대용품을 만들고 가짜를 만들어 냈습니다. 아시겠죠? 그래서 마지막 날에는 두 영이 나란히 가는 것입니다. 형식에 치우치고 근본 교리만 고수하면 영을 완전히 놓칩니다. 아시겠죠? 그런가 하면 극단으로 치우친 사람들은 온갖 주의에 깊이 빠져 버립니다. 하지만 길 한가운데로는 하나님의 참 교회가 나아갑니다. 굳게 서서 하나님의 권능으로 충만한 교회입니다. 참 교회가 있는 곳은 바로 거기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은 무엇이든, 사탄에게는 그것을 흉내 내는 것이 있습니다. 사탄은 그것을 본떠 무엇인가 만듭니다. 예수님은 정말로 그들의 생각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당시 정통 신앙의 큰 지도자들은 말했습니다. “저자는 이 나라에서 제일가는 점쟁이야. 마귀들의 우두머리인 바알세붑이야.” 그렇지 않습니까? 설교자들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당시의 위대한 성경 교사들은 “그는 바알세붑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마귀는 무엇이라고 했는지 봅시다. 마귀는 말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우리는 당신이 누구신 줄 압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분이십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 경우에는 목회자들보다 마귀들이 하나님을 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바울과 실라가 그곳에서 하나님을 위해 큰일들을 하고 있을 때, 작은 여자 점쟁이 하나가 날마다 거리로 뛰어나와 바울 뒤에서 외쳤습니다. “이 사람들은 우리에게 생명의 길을 알려 주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설교자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들은 사기꾼이다. 세상을 뒤집어 놓는 사람들이다. 몹쓸 자들이다.” 그리고… 목회자들은 “저들은 사기꾼이다.”라고 하고, 마귀는 “저들은 하나님의 사람들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어느 쪽이 옳았습니까? 마귀가 옳았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물론입니다. 그러니 그런 사람들까지도… 여러분은 말씀이라는 데만 너무 치중하여 ‘아, 말씀, 말씀.’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물론 옳습니다. 하지만 복음은 말씀으로만 온 것이 아니라 성령의 권능과 그것을 나타내 보이심으로 와서, 그 말씀이 생명이 되게 했습니다. 아시겠죠? 밀알을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좋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결코 수확을 얻을 수 없습니다. 땅에 묻어서 새 생명을 내게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말씀은 옳습니다. 물론 이것이 하나님의 길입니다. 하지만 말씀만 가지고는… “글자는 죽이되 영은 생명을 주느니라.” 제 말뜻을 아시겠습니까? 그렇기에 원수도 하나님을 증언해야 했습니다. 여기서 그분이 사역을 펼치시자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교회들은 모두 그분에게 문을 닫아 버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구든 저 사람 말을 들으러 가면 당신의… 증서를 반납하십시오. 나가야 합니다. 더 이상 우리 일원이 아닙니다.” 그런데 마르다와 마리아와 나사로라는 남매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기적들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정통 신앙 지도자들이 무엇이라고 하든, 교회가 무엇이라고 하든, 아무것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분을 믿고 그분을 따라갔습니다. 그분이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베다니에 있는 그들의 집에 와서 머무셨습니다.
그들과 함께 지내시는 동안 사역이 크게 확대되어, 어느 날은 그 집을 떠나셔야 했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들어 그분을 밀어내다시피 했습니다. 그곳에 사람이 너무 많았습니다. 사람들이 수천 명씩 그분께 몰려왔습니다. 그러면 그분은 사람들 사이에서 빠져나와 다른 곳으로 가셨습니다. 아버지와 단둘이 계시며 기도하시려고요. 도시들이 그분을 불러도, 그분은 혼자 산으로 올라가 아버지께서 어느 쪽으로 인도하시는지 살피셨습니다. 아버지의 일을 하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아버지의 일에 힘써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사회적 지위나 그런 일에 몰두하기보다, 아버지의 일에 힘써야 합니다.
이제 잠시 이 놀라우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그분이 오시는 모습을 봅시다. 그분이 오시기 직전에… 우선 그분이 오시기 전에 예고가 있었습니다. 교회는 모두 뒤로 물러나 혼란에 빠져 있었습니다. 오늘날과 거의 같았습니다. 이쪽에는 이것이 있고, 바리새인과 사두개인과 세리들, 여러 무리가 있고, 온갖 주의가 있었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나타나서 자신이 위대한 인물이라고 주장하며 수백 명을 광야로 이끌고 갔고, 그들은 멸망했습니다. 여러분도 그 이야기를 아십니다. 그런 일이 있었지요… 그러나 마침내 그분이 오실 때가 되었습니다. 그분은… 남은 자들은 그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한번 보십시오. 한 노인과 한 여인이 보입니다. 여인은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나이를 훨씬 넘겼습니다. 그녀는 말했습니다. 그들은 그 오랜 세월 동안 하나님께서 자기의 수치를 없애 주셔서 아이를 낳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히브리 여인에게 아이를 갖는 것은 영예로운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그것을 얼마나 바꾸어 놓았습니까. 아이를 낳는 것이 거의 불… 수치스러운 일이 되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아멘이라고 하지 않으셔도 사실입니다. 여자는 아기를 돌보기보다, 코가 납작한 작은 개 한 마리에 100달러를 주고 사서 어머니의 사랑을 쏟는 편을 더 좋아합니다. 그것이 사실인 줄 여러분도 아십니다. 작은 스웨터를 입혀 길을 데리고 다니지요. 여기서 제가 본 병원 가운데 거의 가장 큰 곳 중 하나가 개 병원이었습니다. 저는 이해가 안 됩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튼 그것은 여러분과 하나님 사이에서 해결할 일입니다. 이제 보십시오. 사가랴는 의로운 사람이요 제사장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서, 사람들이 기도하는 동안 분향하는 직무를 맡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향을 피우고 있을 때, 약속의 때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제단으로 보내셨습니다. 여러분은 천사를 믿으십니까? 네, 그렇습니다.
얼마 전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형제님께 말씀하시는 그분에 관해 잘못 알고 계십니다. 그분은 주님이셨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천사였습니다. 그분은 ‘나는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보내심을 받았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아니셨습니다. 천사였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아, 그건 전부 잘못된 이야기입니다. 브래넘 형제님, 옛날 성경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지요. 다니엘과 그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에게는 천사들이 있었고 그랬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신약의 교리가 아닙니다.” 그분은 또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곳에서 말하고, 성경이 침묵하는 곳에서는 침묵합니다.”라고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성경이 말하는 많은 일에 대해서는 참 조용하셨군.’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것을 믿지 않는다는 말씀입니까?” 그분은 “그렇습니다. 교회를 인도하시는 분은 성령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섬기는 영들도 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형제님, 신약에는 없습니다.” 저는 “아, 신약에도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성령입니다. 천사가 아니라 성령…”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보십시오, 한 가지 묻겠습니다. 마리아를 만난 분은 하나님의 천사였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그렇지요. 하지만 그건 오순절 전입니다. 오순절 이후로는 성령이셨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분명히 성령께서 교회를 인도하십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보십시오. 빌립이 성령의 침례를 받았다고 믿으십니까?” 여러분 모두 그렇게 믿으십니까? 물론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사마리아에 내려가 부흥 집회를 열고 있을 때, 누가 그에게 “가자 사막으로 나아가라.”고 말씀했습니까? 성령이었습니까? 아닙니다. 주의 천사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가자 사막으로 나가서 말하라.” 보십시오. 베드로가 성령을 받았다고 믿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봅시다. 베드로가 성령의 침례를 받았다고 믿으십니까? 그날 밤 그가 감옥에 있고, 저기 요한 마가의 집에서 그를 위한 기도 모임이 열리고 있을 때, 창문으로 비쳐 들어온 빛처럼 나타나 그를 위해 문을 열어 준 이는 누구였습니까? 성령이었습니까? 주의 천사였습니다.
바울이 성령을 받았다고 믿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바울이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열나흘 밤낮을 지내는데, 달도 별도 보이지 않고 모든 희망이 사라졌을 때, 그는 기도하러 배의 조리실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기운을 내라.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천사가 어젯밤 내 곁에 서서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였느니라.” 그렇지 않습니까? 주의 천사였습니다… 요한계시록 전체도 천사의 증언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나 예수는 내 천사를 보내어 이 일들을 증언하게 하고 교회에 기록하게 하였노라.” 그렇지 않습니까? 요한이 엎드려 천사에게 경배하려 하자, 천사는 “그리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조셉 스미스가 아닙니다.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참된 천사는 경배받는 것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아시지요. 절대로 그러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경배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는 지금도 천사들이 있고, 그들은 사람들을 찾아옵니다… 천사를 숭배하자는 뜻은 아닙니다. 천사들은 하나님의 속성인 존재들로서, 사람들을 통해 교회를 섬기도록 보내심을 받았습니다. 아, 오늘날 우리는 참된 사도적 교회가 누리던 복에 얼마나 못 미칩니까. 우리는 거기까지 이르렀다고 하고, 복의 잔 가장자리에 입을 대어 그 복을 맛보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얼마나 못 미치는지요. 우리는 물거품 위에서 춤이나 추면서, 그 밑바닥이 어떤지는 모릅니다. 사실입니다. 여러분, 제가 여기 서 있을 때 책임을 지는 대상은 회중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그렇습니다. 제 말은 반드시… 제가 하는 말을 수백만 명이 듣고, 한마디 한마디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니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께 최대한 진실해야 합니다. 오늘 저는 우리가 아직 겉면조차 긁어 보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더 깊이 내려가야 합니다. 아, 우리는… 읽기입니다, 읽기와 쓰기, 셈하기 같은 수준입니다. 보십시오. 이제 이 천사가 왔는데, 그는 가브리엘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급 천사들도 보내십니다. 그렇습니다. 어쩌면 여기 오시는 분도 그러실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천사를 보았다고 생각하거나 그런 일을 내세워 우쭐해집니다. 그것은 그저 모조품입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천사를 보았고,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께서 사명을—그 천사가 하나님께로부터 그에게 사명을 전했고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았다면, 그것은 끝까지 정확히 증언되어 참임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렇게 믿으십니까?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참이 아닙니다. 이것 한 가지는 의지할 수 있습니다. “너희가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그것은 참입니다.
이것을 보십시오. 그 천사는 가브리엘이었습니다. 하급 천사들도 옵니다. 하지만 가브리엘이 오는 것을 보거나 듣는다면, 큰일이 곧 일어날 터이니 준비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을 알린 이가 가브리엘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성경은 가브리엘이 재림을 알릴 것이라고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그가 하나님의 나팔을 불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주님의 오심을 알릴 하나님의 천사 가브리엘, 하나님 오른편에 서 있는 그 천사입니다. 이 위대한 가브리엘이 내려왔습니다. 사람들이 밖에서 기도하는 동안, 제사장은 여기서 향로를 흔들며 향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그는 제단에 서 있었습니다. 제단 옆을 바라보니, 거기에 위대한 천사장이 서 있었습니다. 제사장은 두려워졌습니다. 천사는 그의 삶과 여러 일들, 그리고 그가 하게 될 일을 모두 말해 주었습니다. “여기서 네 직무의 날들이 끝나면, 집으로 가서 네 아내 엘리사벳에게 돌아가라. 그녀가 아이를 낳을 것이니, 너는 그의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그런데 보십시오. 그 제사장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들이 있을 수 있습니까? 제 아내는 늙었습니다.” 아시겠죠?
주님의 모든 빛 가운데 걷는 의로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들어가실 수 있는 가정은 그런 가정입니다. 집에서 온갖 파티를 열고 맥주며 그런 것을 내놓는다면, 하나님께서는 거기로 여러분을 찾아오시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정결한 가정을 이루고 하나님을 위해 살며, 기도하고 성경을 펼쳐 놓고, 그 성경에 눈물 자국도 조금 남아 있다면, 하나님께서 찾아오실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이 오실 길을 열어 드렸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런 가정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기도에 응답하셨을 때, 사가랴는 거의 죽을 만큼 놀랐습니다. 물론이지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천사는 말했습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 서는 가브리엘이라. 내 말들은 제때에 성취되리라.” 그러고 나서 그가 밖으로 나오자, 사람들은… 그는 말을 못 하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는 날까지 말을 못 하게 될 것이었습니다. 사가랴가 나오자, 사람들은… 그는 사람들에게 손짓했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환상 같은 것을 보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집으로 돌아갔고, 엘리사벳은 수태하여 여섯 달 동안 숨어 지냈습니다. 그녀는 어머니가 될 것이었습니다.
이제 저 아래 나사렛을 보십시오. 그 나라에서 가장 악한 도시였습니다. 아마 시카고보다도 더했을 것입니다. 제가 온 제퍼슨빌만큼이나 나빴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곳에 한 어린 처녀가 있었습니다. 마흔다섯 살쯤 된 남자와 약혼한 처녀였습니다. 그 남자는 아이가 넷쯤 있는 홀아비였습니다. 그녀는 동양식으로 집에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아마 월요일이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듯 물동이에 빨랫물을 담아 머리에 이고 걸어가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갑자기 커다란 빛이 그녀 앞에서 번쩍였습니다. 그녀는… 그 어린 처녀는 놀랐습니다. 바라보니 가브리엘이 곁에 서 있었습니다. “마리아여, 평안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또는 “멈추어라.”라는 말입니다. “네가 여자들 가운데 복이 있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촌 엘리사벳이 늙은 나이에 수태하여 아이를 낳게 되었다는 것을 말해 주었습니다. 또 그녀 자신도 남자를 알지 못한 채 아이를 갖게 되리라고 했습니다. 사가랴와 얼마나 다른지 보십시오. 그 목회자는 성경을 읽고 또 읽고, 읽고 또 읽고, 거듭거듭 연구했습니다. 본보기도 많았습니다. 구약에 사라도 있었고, 한나도 있었고, 본보기가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그 일이 이루어질지 의심했습니다. 하지만 이 어린 소녀는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말했습니다. “주의 여종을 보소서. 당신의 말씀대로 그 일이 내게 이루어지리이다.” 얼마나 다릅니까.
때로는 여러분이 스스로 무감각해질 수 있습니다. 성경을 신문 읽듯 읽고, 신문을 믿는 정도의 믿음으로 대하면 무감각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는 기록된 그대로 믿고,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그대로 믿으십시오. 그녀가 이것을 읽자마자, 아니, 이것을 자기 앞에서 보았을 때, 주의 천사가 말했습니다. “네가 아기를 낳을 것이다.” 그녀가 무엇을 믿어야 했는지 보십시오.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는 일을 믿어야 했습니다. 사가랴는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성경에는 그런 일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본보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완전히 불가능하고, 그전에는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일을 믿어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저 “주의 여종을 보소서. 그 일이 내게 이루어지리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오늘, 바로 지금도, 최근의 이 부흥이 세계를 휩쓰는 가운데 큰 대전도 집회들에서 세계 곳곳의 수백 명이 치유를 받았습니다. 바로 오늘, 바로 이 순간에도, 미국의 집회들에서 수십 명, 또 수십 명이 하나님의 권능으로 치유받고 있습니다. 날마다, 밤마다 본보기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앉아서 의아해합니다. “하나님, 왜 이것을 해 주시지 않습니까?”, “왜 저것을 해 주시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그대로 믿으십시오.
마리아는 “주의 여종을 보소서.”라고 말했습니다. 기뻐하기 시작했습니다. 행복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으니 자기가 아기를 갖게 될 줄 알았습니다. 어젯밤에 제가 이것에 관해 조금 말씀드린 것 같습니다. 그녀는 태동이 느껴질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확실히 확인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어떤 징후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그저 천사가 한 말이 참이라고 믿었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을 의심한다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심한다면 하나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요, 보지도 맛보지도 느끼지도 냄새 맡지도 듣지도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아멘. 지금 제 마음에 조금 경건한 감흥이 일기 시작합니다. 저는… 좋습니다. 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그대로 믿으십시오. 마리아는 듣자마자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오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오느니라.” 그렇지 않습니까? “믿음은 들음에서 오느니라.”
여러분이 자유롭게 될 수 있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즉시 믿으십시오. 그것을 기뻐하십시오. 여러분이 받아들인 다음에 하나님께서 증거를 보여 주실 것입니다. 하지만 먼저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저는 그것을 믿습니다. 받아들입니다. 기뻐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통해 의를 이루십니다. 그분이 저의 치유를 위해 채찍에 맞으셨음을 믿습니다. 믿습니다. 받아들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저를 위해 치유를 이루십니다. 아시겠죠? 제가 믿는 즉시입니다. 제가 믿기 전에는 도와주실 수 없습니다. 제가 먼저 믿고 고백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자기 말씀을 지키실 의무가 있습니다. 그분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면 모든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모든 일을 하실 수 없다면 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닙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좋습니다. 보십시오. 이 아이가 어떤 아이가 되겠습니까? 어떤 사람이겠습니까? 하나님은 자기 말씀을 지키십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이든 하겠다고 약속하셨다면 그대로 행하실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집트에서 인도되어 나왔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광야를 지나는 동안 돌보아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돌보겠다고 하셨고, 실제로 돌보셨습니다. 그 길이 어디로 이어지든, 하나님의 길을 가로막는 원수는 누구나 물러났습니다. 그들이 홍해에 이르는 모습이 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데리고 가실 길을 지도에 그려 놓으셨습니다. 그들은 곧장 홍해 앞까지 나아갑니다. 도무지 건널 길이 없습니다. 여기에는 파라오의 군대가 있고, 한쪽에는 산이 있고, 여기에는 파라오의 군대, 앞에는 홍해가 있습니다. 모세가 두 손을 들어 올렸습니다. 시편 72편은 하나님께서 내려다보셨다고 말합니다. 그분은 바다 밑으로 놓여 있는 그 길을 보셨습니다. 그곳에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약속의 성취를 바라며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그대로 믿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불기둥을 통해 진노하신 눈으로 내려다보셨습니다. 그러시자 바다가 겁을 먹고 이렇게 뒤로 물러나 마른 길을 내었고, 이스라엘은 마른 땅으로 걸어 건넜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그대로 믿으십시오. 그들이 홍해를 건널 때, 할례받지 않은 자들, 오늘날 믿는 척하는 사람처럼 흉내를 내며 똑같이 해 보려던 사람들은 멸망했습니다. 반대편 사람들이 멸망하는 것을 보자 큰 승리가 찾아왔습니다. 미리암이 영 안에 들어가 탬버린을 집어 들고 물가를 따라 춤을 추며 내려갔습니다. 좀 놀라우시지요? 춤을 추고 탬버린을 두드렸습니다. 이스라엘의 딸들도 그 뒤를 따라 탬버린을 두드리며 영 안에서 춤을 추었습니다. 그것이 옛날식 부흥 집회가 아니라면, 저는 부흥 집회가 무엇인지 모릅니다. 승리였습니다. 저 뒤에는 죽은 자들이 누워 있었습니다. 그들을 괴롭히던 모든 것들, 그 자들이…
여러분을 괴롭히던 그 몹쓸 병, 그 위장병이… 오, 정말이지요! 그 담뱃대, 그 죄, 여러분을 뒤로 물러서게 하고 붙들어 두던 것들이… 여러분이 저기 예수님의 피를 통과하여 걷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혼을 깨끗하게 하셨을 때, 또 한바탕 춤추는 잔치가 벌어질 것입니다. 천국의 기쁨의 종들이 여러분 마음속에서 울려 퍼질 것입니다. 지도자 모세도 너무나 흥분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두 손을 허공에 높이 들고 영 안에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장막 집회 때와 같지 않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가꾸던 모든 곡식을 두고 나왔습니다. 가진 것을 모두 두고 나왔습니다. 머리에 이고 나온 작은 바구니에 있던 반죽으로 만든 빵도 다 먹었습니다. 빵도 없고 먹을 것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다.” 좋습니다. 그날 밤 잠자리에 들었다가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땅에 만나가 가득 깔려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모두 공급하신 것입니다. 온 땅에 만나가 깔려 있었습니다. 그들은 나가서 그것을 거두었습니다. 먹어 보니 꿀맛이 났습니다. 아, 여러분도 그것을, 만나를 좀 먹어 본 적이 있습니까? 얼마나 아름다운 모형입니까.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은 넉넉히 거두지 말라. 토요일에, 오직 토요일에만 안식일 동안 먹을 만큼 거두라.” 또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은 오늘 먹을 만큼만 거두고, 내일은 새것을 거두라.” 오늘날 사람들의 문제는 20년쯤 전에 했던 체험에 의존하려 한다는 데 있습니다. 그 만나가 어떻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하룻밤 사이에 꿈틀거리는 벌레가 생겼습니다.
우리 오순절 체험 가운데 많은 것이 바로 그래서 문제입니다. 우리는 저 먼 옛날 일어난 일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에 벌레가 생기고 묵은 것이 됩니다. 오늘은 어떻습니까? 오늘이 바로 그날입니다. 오늘이 바로 그때입니다. 좋습니다. 여기서 제가 주목하는 것이 있습니다. 놀랍습니다… “바위에서 나는 꿀 같은 맛이로다.”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얼마나 달콤한가!”라고 했습니다. 꿀에는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보십시오. 다윗은 목자였는데, 목자들은 옆구리에 주머니를 차고 다녔습니다. 그 주머니에 꿀을 넣었습니다. 양이 병들면 그 꿀을 조금 꺼내 바위에 발랐습니다. 그러면 병든 양이 다가가 바위를 핥기 시작했습니다. 꿀을 핥아 먹는 동안 바위의 석회도 함께 먹게 되었고, 그 석회가 병든 양을 낫게 했습니다.
오늘날을 보여 주는 얼마나 아름다운 모형입니까. 여러분, 들으십시오. 제게는 여기 꿀이 한 주머니 가득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반석이신 그리스도 예수님께 바르겠습니다. 병든 양들인 여러분은 이제 핥기 시작하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나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확실합니다. 갈보리에서 핥아 드십시오. 어떤 사람의 손이나 미신에서가 아니라, 갈보리에서 말입니다. 침례교회나 감리교회나 장로교회나 오순절교회에서가 아니라, 갈보리, 영원한 반석에서 핥아 드십시오. 거기서 핥아 드십시오. 그러자 그들은 나았습니다. 병든 양들이 핥기 시작해야 할 때가 있다면, 바로 오늘입니다.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너희가 이렇게 하기를 원하노라. 나가서 그것을 큰 오멜 용기들에 가득 거두어 따로 두고 성소 안으로 가져가라. 앞으로 뒤따라오는 모든 세대가 들어올 때…” 제사장직에 들어가는 모든 사람, 제사장이 될 자격이 있는 사람은 들어가서 처음 내린 만나를 한 입 먹을 수 있었습니다. 성소 안에 둔 그것은 썩지 않았습니다. 본래의 가치를 그대로 간직했습니다. 제사장으로 임명된 뒤에는 모든 제사장이 휘장으로 나아가, 만나가 처음 내린 날의 그 만나를 한 입씩 먹을 수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처음 내린 만나를 오멜 용기에 가득 거두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오순절 날의 성령을 보여 주는 얼마나 아름다운 모형입니까. 하나님께서 육적인 교회를 이끌어 광야를 통과하게 하셨듯이, 이제는 영적인 교회를 인도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만나, 우리의 생명을 유지해 주는 공급원은 성령을 통해 옵니다. 사도들이 모든 두려움과 의심을 벗어나 다락방에 모이자, 하나님께서 성령의 침례를 주셨습니다. 그것이 내려왔을 때, 그것은 하늘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온 우리의 만나였습니다. 세찬 바람이 몰아치는 것같이 그들이 앉아 있던 온 방을 가득 채웠습니다. 불 같은 갈라진 혀들이 그들 위에 내려앉았습니다. 그들은 건물에서 거리로 나가 설교하고 간증하기 시작했으며, 하나님께서는 기적들을 행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의 만나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중 일부를 따로 두셨습니까? 베드로는 사도행전 2장 30절과 38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회개하고 너희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 죄들의 사면을 얻으라. 이는 너희가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이기 때문이라.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손과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 곧 주 우리 하나님께서 부르실 모든 사람을 향한 것이니라.”
그러니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 여전히 부르고 계신다면, 임마누엘의 혈관에서 흘러나온 피로 가득한 샘에 나아오는 모든 남녀는, 하나님의 왕국 안에서 제사장이나 자녀, 곧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자녀가 되어, 처음 임했던 그 성령의 침례를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한 입만이 아니라, 오순절 날 임했던 것과 똑같은 권능으로 혼 전체가 충만해질 권리가 있습니다. 저는 흥분해서 이러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어디에 있는지 압니다. 형제님, 한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날 교회에 필요한 것은 새 시장도 아니고, 새로운 민주당원도 아니며, 새로운 공화당도 아닙니다. 옛날 그대로의, 하나님께서 보내신 성령의 부흥이 필요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성령께서 교회에 다시 임하셔야 합니다. 필요한 것은 그것입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그들이 목마를 때 반석을 쳤습니다. 광야에서, 아니, 반석에서 물을 마셨습니다. 무엇이 필요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필요를 채워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땅에 오실 때가 되었을 때도 하나님께서 준비하셨습니다.
이제 어린 마리아를 보십시오. 사촌 엘리사벳을 보러 광야로, 산간 지방으로 떠납니다. 예수님과 요한은 이복… 아니, 육촌 사이였습니다. 마리아와 엘리사벳은 사촌 사이였습니다. 그들이 산간 지방으로 갔습니다. 곧 마리아가 사촌과 교제를 나누려고 올라갔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저… 세상에서 가장 죽어 있는 것은 사해입니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아무것도 내보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집회에 와서 하나님께서 우리 혼을 영광으로 채워 주시면, 가는 곳마다 하루에 50명에게 말해야 합니다. 날마다 또 다른 50명, 또 다른 50명에게 말해야 합니다. 내어 주십시오. 그래야 그 물 저장고가 깨끗하게 유지됩니다. 좋습니다. 보십시오. 그들은 산간 지방으로 올라갔습니다. 마리아가 가까이 다가오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 여인이 뛰어나오는 모습도 보입니다. 그녀가 거기 앉아 있습니다. 이 장면을 조금 극처럼 그려 봅시다. 거기 앉아서 뜨개질을 하거나, 코바늘뜨기를 하거나, 그 당시 여자들이 하던 그런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마리아가 오는 것을 보자 코바늘과 뜨개질하던 것을 내려놓고 재빨리 일어났습니다. 얼른 다가가 마리아를 품에 안고, 두 팔로 끌어안고 입 맞추며 말했습니다. “아, 마리아, 너를 보니 정말 반갑구나.” 서로를 향한 사랑, 그런 것이 지금은 거의 다 사라졌습니다. 사실이 아닙니까? 거의 다 사라졌습니다…
오늘날에는 신문을 읽기 전까지 이웃이 죽은 줄도 모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예전에는 농장에서 다른 농부에게 돈이며 무엇이든 빌릴 수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한번 해 보십시오. 담보가 있어야 합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사랑, 오늘날 세상이 목말라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가르침에서 그렇게까지 정통만 고집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떤 분은… 어쩌면 여기서 우리 둘만 모여도 같은 일에 동의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에는 동의할 수 있습니다.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널리 부어졌다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합시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서로 사랑할 때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얼마 전 저는 플로리다에 내려가 있었습니다. 잠깐 이 이야기를 하고 지나가겠습니다. 보즈워스 선생님을 여러분 중 많은 분이 아십니다. 어르신 보즈워스, F. F. 보즈워스 형제님은 오래전에 이곳에서 큰 집회들을 여셨습니다. 여기 시카고에 계신 연세 드신 어머니 아버지들 가운데는 그분을 기억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우리가 거기에 내려갔을 때 그분은… 처음 제 집회에 오셨을 때, 우리는… 저는 한 젊은이가 집회를 열고 있는 그곳에 내려갔습니다. 그들은… 그분은 그 젊은이가 거의 버티지 못할 지경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내려가 집회를 열었는데, 그날 밤 공작부인 한 분이 왔습니다. 그렇게 부르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군요. 상류 사회에 속한 그런 부인 말입니다. 보즈워스 형제님이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여기 이 모든 부동산의 소유주인 공작부인이 형제님을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저는 “지금은 만날 수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천막을 지나 뒤편의 작은 기도실로 가 보니, 그 부인이 거기 서 있었습니다. 아, 형제님, 옷은 너무 적게 입고 화장은 너무 많이 했더군요. 커다란 귀걸이 두 개가 늘어져 있었는데, 마귀의 등자 같았습니다. 목 한가운데 안장을 얹고 그대로 타고 내려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 부인이 거기 있었습니다. 안경 하나를 꺼내 손에 들고 있었습니다. 그 여자를 놀리려는 것은 아닙니다만, 입은 옷을 다 뭉쳐도 구식 산탄총의 화약 마개 하나 만들기에 부족할 정도였습니다. 그 부인은 막대기가 달린 안경을 이렇게 내밀어 들고 서서 물었습니다. “브래넘 박사님이신가요?” 저는 “아닙니다, 부인.”이라고 했습니다. 그 부인은… 저는 “저는 브래넘 형제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부인이 말했습니다. “어머, 만나 뵙게 되어 정말 황홀하군요.”
저는 그 여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습니다. 손을 뻗어 그 커다란 모자, 아니, 통통한 손을 잡았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반지가 한 40개쯤 끼워져 있었습니다. 그 손을 잡고 말했습니다. “손을 이 아래로 내리세요. 그래야 다음에 뵈어도 알아보지요.” 그렇습니다. 잔뜩 점잔을 빼고 있었지요. 그 여자는 무엇이었습니까? 결국 저기 있는 6피트 남짓의 흙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이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온갖 부패와 그런 것에 자기 혼을 푹 담그고 사는데, 어떻게 더 나은 것을 기대하겠습니까? “같은 깃털을 가진 새들이 함께 모인다.”고 하지요. 여러분, 겉모습이 가장 아름다운 새들 중에도 썩은 것을 먹는 새들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겉모습을 보지 않는다면, 중요한 것은 속입니다. 그렇습니다. 좋습니다. 자, 마리아가 뛰어나와 만났습니다… 마리아가 가서 [불명확한 말] 엘리사벳을 껴안았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아, 언니가 아이를 갖게 되었다니 정말 기뻐요.” 그녀는 “그래, 내가 아기를 낳게 될 거야. 정말이야.”라고 했습니다. 마리아가 말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제게도 나타나셨어요.” 아시겠죠? 그녀에게도 전할 복이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제게 나타나셔서, 제가 남자를 알지 못한 채 아기를 낳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분의 이름을 예수라고 하라고 하셨어요.”
우리가 아는 바로는 아기 요한은 아직 생명을 받지 못했습니다. 엘리사벳은 걱정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때 임신한 지 여섯 달이었는데, 아기에게 생명이 없었습니다. 정상적이지 않았습니다. 두세 달쯤이면 있어야 하니, 전혀 정상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여섯 달이 되었는데도 생명이 없었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라는 이름을 말하자마자 아기 요한이 생명을 받아, 어머니의 태 속에서 기뻐 뛰기 시작했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의 입술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처음 발해졌을 때 죽은 아기에게 생명이 주어졌다면, 다시 태어난 교회에는 그 이름이 어떤 일을 하겠습니까? 할렐루야. 병든 사람에게는 어떤 일을 하겠습니까? “예수”라는 그 이름이 죽은 아기를 살렸습니다.
성경은 요한이 어머니의 태 속에서 성령의 침례를 받았다고, 곧 성령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충만하여 태어났습니다. 할렐루야. 바로 그것입니다. 기쁨을 받아 뛰고 도약하기 시작했습니다. 성령께서 그 어머니에게도 임하셨고, 그녀는 예언했습니다. 아, 우리가 하나님의 왕국에 얼마나 못 미치는지 아시겠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그 뒤 마리아는 그녀와 여러 날 머물다가 돌아갑니다. 아기 요한이 태어났을 때를 보십시오. “이 아이가 어떤 아이가 될까?” “글쎄, 이 아이를 세미너리, 신학교에 보내야겠군.” 세미터리, 공동묘지라고 하든지, 뭐라고 부르든지 좋습니다. 둘 다 죽어 있는 곳이니까요.
신학교 출신 설교자를 보면 제게는 부화기에서 나온 병아리가 생각납니다. 부화기 병아리는 기계적으로 만들어집니다. 그 작은 것이 어미를 찾아 삐악삐악 울지만, 찾아갈 어미가 없습니다. 부화기 설교자도 꼭 그렇습니다. 읽기와 쓰기와 셈하기를 배웠고, 아주 점잖게 서는 법, 고개를 숙이는 법, 죽어 가는 송아지처럼 “아멘” 하고 외치는 법은 압니다. 하지만 하나님에 관해서는, 호텐토트족이 이집트의 밤에 관해 아는 것만큼이나 아는 것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실인 줄 여러분도 아십니다. 아멘이라고 하지 않으셔도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제 아들이 알파벳조차 몰라도 상관없습니다. 그리스도와 죄의 완전한 용서를 알고, 성령의 침례를 받기를 원합니다. 할렐루야. 쪼갠 완두콩과 커피콩을 구별하지 못한다 해도, 제게는 상관없습니다. 그리스도와 죄의 용서를 알기만 하면 됩니다.
이 어린아이를 보십시오. 아홉 살에 광야로 나갔습니다. 방부액을 주입받으러 어떤 신학교로 간 것이 아닙니다. 아닙니다. 광야로 나가 서른 살이 될 때까지 하나님과 함께 살았습니다.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는 여러분이 아십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그 이야기를 되풀이하지 않겠습니다. 여러분이 아십니다. 그러나 서른 살이 되었을 때, “이 사람이 어떤 설교자가 되겠습니까?” 이제 그가 광야에서 나옵니다. 칼라를 뒤로 돌려 입고 턱시도 웃옷을 걸친 채, 날마다 점심으로 닭튀김과 비스킷을 먹으며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아닙니다. 할렐루야. 그는 털이 수북한 낡은 바지를 입고, 이렇게 양가죽 띠를 허리에 두르고 광야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회개를 선포했습니다.
그 모습이 보입니다. 자기 형제 빌립의 아내와 살고 있던 헤롯이 올라왔습니다. 장로 몇 사람이 나와서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오늘은 결혼과 이혼에 관해서 설교하지 마십시오. 저기 헤롯이 앉아 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요한, 그런 사람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그는 헤롯의 면전으로 곧장 걸어가서 말했습니다. “당신이 그 여자를 취하는 것은 율법에 어긋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요한 같은 사람들을 주시옵소서. 오늘날 침례교회에는 침례자 요한과 같은 사람이 더 필요하다고 저는 말합니다. 타협하지 않고, 헤아릴… 헤아릴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전할 사람 말입니다. 형제님, 그는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학교에 하루라도 다녔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어떤 학위도 없었습니다. 학사니 학사 학위니 무엇이라 부르든지, 신학박사니 무슨 박사니, 뭐라고 하든지 그런 것이 없었습니다. DD가 무슨 약자인지 아십니까? ‘데드 도그’, 죽은 개입니다. 좋습니다. 그에게는 그런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그들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말해 주었습니다. 하나님, 그런 침례교인들을 더 주시옵소서. 정확히 그렇습니다. 그는 서서 말했습니다. “당신이 그 여자를 취하는 것은 율법에 어긋납니다.” 사실입니다.
며칠 전 어떤 분에게 여자 한 분 이야기를 했습니다. 피아노를 치고 있는 여자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이것은 여러분 자신의 일입니다.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아시겠죠? 그런데 그 여자는 화장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거의 헛간 하나를 칠하고도 남을 만큼 칠해 놓았습니다. 그때 그 남자가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이 사람이 제 아내입니다. 성도예요.” 저는 말했습니다. “형제님, 마음을 상하게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만, 제게는 세인트, 성도가 아니라 헤인트, 귀신처럼 보입니다. 성도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 말이… ‘헤인트’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남부에서는 ‘유령’을 뜻합니다. 좋습니다. 말씀드리겠습니다. 들으십시오. 성경에서 남자를 만나려고 얼굴에 화장한 유일한 여자는 이세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여자를 개들의 먹이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아주 선하고 성령을 받았다고 하는 그런 사람을 보면, “안녕하세요, 개 먹이 아가씨.”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여자를 개 먹이라고 부르십니다. 개에게 주는 먹이입니다. 아시겠죠? 좋습니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장갑을 벗어 던지고 강단에 서서, 성령의 권능과 그 권능을 나타내 보이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음을 선포하는 설교자들입니다. 사람들을… 사람들을 이쪽에서 조금 흔들고, 저쪽에서는 조금 타협해 주어야 하는 식입니다. 루터교가 바로 그렇게 했습니다. 감리교가 그렇게 했고, 침례교가 그렇게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오순절교가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휴! 이러고 나면 여러분이 저를 좋아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한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제가 하나님 앞에 책임을 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어쩌면… 저는 그것이 하나님의 엄숙한 진리라고 믿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그 마음을 바로잡는 것뿐입니다.
우리는 모두 여기 중동, 아니, 중동부 주들에 살고 있습니다. 여기 참나무가 있습니다. 해마다 겨우내 그 참나무에는 잎이 그대로 붙어 있습니다. 봄이 되어도 묵은 잎이 나무에 남아 있습니다. 가서 그 잎을 일일이 딸 필요가 없습니다. 새 생명이 올라오게만 하십시오. 그러면 묵은 잎은 떨어집니다. 사람이 정말 다시 태어나고, 그… 그 마음이, 여자든 남자든, 옛 생명은 떨어져 나가고 새 생명이 들어와 그 자리를 차지합니다. 그저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게 되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 것입니다. 친구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이쯤에서 입을 다무는 게 낫겠군요. 그렇습니다. 제 삶 이야기 가운데, 처음 데이트를 해 보던 때가 생각납니다. 제게는 한 소녀가 있었고, 저는… 첫 여자 친구가 생기면 어떤지 아시지요. 아, 눈은 비둘기 같고, 목은 백조 같고, 이는 진주 같았습니다. 제가 본 여자 중 가장 예쁘다고 생각했습니다. 함께 나갔는데, 우리는… 남자 친구 하나와 제가 콜라와 샌드위치를 샀습니다. 저는 제 여자 친구에게 샌드위치를 주려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 아이가 샌드위치를 먹고, 우리는 콜라를 마셨습니다. 저는 병을 돌려주려고 안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다시 나와 보니… 그때는 여자들이 막 품위를 잃기 시작하던 무렵이었습니다. 그 아이가, 거기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아이를 바라보았습니다. 저는 늘 담배 피우는 여자에 대해 나름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여자가 할 수 있는 가장 비천한 행동입니다. 얼굴 붉히지 마십시오. 아시겠죠? 그런 잘못을 했더라도 일어나 나가지 마십시오. 좋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오늘 오후 바로 여기 단상에서 하나님의 천사가 제게 증언하시는 그대로 하나님께서 그것을 여기신다면, 여러분이 그분 앞에 설 때 저 문을 통과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정말입니다. 우선 끊으십시오! 그만두십시오! 이것들을 벗어 버리십시오. [불명확한 말] 심판의 시간이 가까이 왔습니다. 동정녀 마리아도 저 다락방에 들어가 성령의 침례를 받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술 취한 여자처럼 비틀거리며 나와야 했다면, 여러분도 그보다 값싼 것으로는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 여자분과 남자분들, 제 말을 들으십시오. 저는 진실을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이 속에 하나님을 모십시오. 그러면 나머지는 그분께서 책임지실 것입니다. 이제 주위를 한번 보십시오. 여러분은 “나는 받았습니다.”라고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열매를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아무 말 하지 말고 계속 나아가십시오. 여러분이 어디에 서 있는지 스스로 알 것입니다. 좋습니다.
이제 보십시오. 요한이 나와서 설교하기 시작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정말이지, 있는 힘을 다해 회개를 외쳤습니다. 도끼를 나무뿌리에 놓고,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마다 찍어 바다에 던집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아니, 불에 던진다는 말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침례를 받으시고 곧바로 물에서 나오셨을 때 하나님의 음성이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그를 매우 기뻐하노라.” 그분은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셨습니다. 남자든 여자든 성령의 침례를 받는 즉시 마귀가 사방에서 달려듭니다. 그렇지 않다면 다시 돌아가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병 고침을 받을 때마다 증상들이 다시 여러분 주위를 맴돌며 찾아옵니다. 그렇지 않거든 조심하십시오. 아시겠습니까? 사탄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으면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찾아내려 합니다. 그러다가 그분의 사역이 크게 일어나자 그분은 길을 떠나셨습니다. 밖으로… 이제 우리의 본문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빨리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제 보니, 나사로가… 예수님께서 그 집을 떠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집을 떠나시자마자 질병이 들어왔고, 슬픔이 들어왔습니다. 그리스도인 여러분, 들으십시오.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가정을 떠나시면 질병과 환난이 바로 그 뒤를 따라 들어올 것입니다. 그분께서 여러분의 가정을 떠나시면 환난을 맞을 준비를 하십시오. 바로 그때 환난이 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을 여러분의 집에 기꺼이 모셔 들이십시오. 보이지 않는 손님으로 모시십시오. 식탁에 앉아 음식을 먹을 때 그분께 감사드리지 않고 먹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도 식사할 때 전혀 감사드리지 않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사과나무 아래 있는 돼지처럼 무지합니다. 돼지는 사과나무 아래 앉아서 하루 종일 사과가 머리 위에 떨어져도 거의 꿀꿀거리지도 못할 만큼 먹기만 합니다. 그 사과가 어디서 오는지 보려고 위를 쳐다보는 법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정확히 사실입니다. 사람들도 꼭 그렇습니다.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본성의 애정이 없으며 협정을 어기며 거짓 고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자들을 멸시하며 배신하며 고집이 세며 높은 마음을 품으며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는 쾌락들을 더 사랑하며 하나님의 성품의 모양은 있으나 그것의 능력은 부인하리니 이런 자들에게서 돌아서라.” 영께서 디모데서에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람들이 오늘날 바로 그런 삶을 살고 있으며, 오순절 사람들도 그 속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성결을 말하는 여러분도 곧장 그 속으로 뛰어들고 있습니다. 사실입니다. 아, 참으로 슬픈 광경입니다. 형제님,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부흥입니다. 마음을 뒤흔들고, 무너뜨리고, 부수어 다시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게 하는 부흥입니다. 보십시오. 이제 예수님께서 그 집을 떠나시는 모습이 보입니다. 나사로가 병이 들었습니다. 이것은 역사 기록인데, 나사로가 폐에서 출혈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저는 모릅니다. 성경에 있는 말씀이 아니라 역사가가 쓴 글입니다. 출혈을 일으켰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집을 떠나셨을 때, 마르다와 마리아와 그들 모두는 회당을 떠나 예수님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람을 보내 예수님께 와서 나사로를 위해 기도해 주시라고 청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을 것 같습니까? 그분은 그대로 계속 멀리 걸어가셨습니다.
만일 여러분이었다면 어땠겠습니까? 목사님께 사람을 보냈는데 오지 않으셨다면, “아니, 저 위선자 같으니. 나는 다시는 필라델피아 교회에 가지 않을 거야. 다시는 돌아가지 않을 거야. 목사님이 오지 않았으니까.”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리아와 마르다가 그렇게 생각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목사님께서 제게 이런 말을 해 달라고 부탁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냥 제가 말씀드린 것입니다. 어느 교회나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목사님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믿고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라면 내보내고, 하나님의 사람인 다른 분을 모셔 오십시오. 그렇습니다. 교회가 멈추게 하지 마십시오. 그렇습니다. 계속 나아가십시오. 그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라면, 마땅히 살아야 할 대로 살지 않고, 행하고 처신하며 전해야 할 대로 하지 않는다면, 내보내고 그렇게 할 다른 분을 세우십시오.
그러니 여러분에게는 신뢰가 있어야 합니다. 이곳은 심판의 집, 곧 하나님께서 내려오셔서 심판을 내리시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여러분의 목사님은 의로운 사람이어야 합니다. 회중은 백 퍼센트 목사님과 함께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온전히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곳에서 여러분이 그렇지 못하면 사탄이 들어올 길이 생깁니다. 어딘가에 틈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모든 것을 말끔히 바로잡으십시오. 그러고는 그들이 예수님께 다시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시는 대신 그저 계속 가셨습니다. 오시지도 않았고, 그 일에 관해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아버지께로부터 환상을 보셨습니다. 가능하면 오늘 밤에 거기서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나사로가 죽게 될 것이라는 환상을 아버지께로부터 보셨으며, 그 환상을 따라야 하셨습니다. 물론 그분은 그렇게 하셨습니다. 계속 가셨습니다. 얼마 후에 그들이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잠들었다면 잘되고 있는 것이군요. 회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아지고 있는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그분은 그들이 알아들을 말로 알려 주셨습니다. “그가 죽었느니라.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라. 그러나 내가 그를 깨우러 가노라.” 그분은 어디로 가실지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알려 주셨습니다. 그분은 사람이 시키는 대로가 아니라 아버지께서 하라고 하신 대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따르셨습니다. 무엇을 하셔야 할지 정확히 알고 계셨습니다.
그들 가운데 몇몇이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이봐. 저 광신자가 여기 다니면서 신유를 전하더니, 아, 나사로가 그런 출혈로 병들었다는 말에 그건 자기가 감당하기엔 너무 큰 일이라는 거지. 슬그머니 떠나는 것 봤나? 이제 두고 보자고.” 좋습니다. 그때 그분께서 “내가 그를 깨우러 가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첫날이 지나갔습니다… 슬픈 일들이 닥쳤고, 사람들이 나사로를 데려다가 시신에 방부 처리를 하고 밖으로 옮겨 무덤에 묻었습니다. 모든 희망이 사라졌습니다. 둘째 날이 지나갔지만 여전히 캄캄했습니다. 셋째 날이 지나자 몸이 썩기 시작했습니다. 넷째 날에는 이미 그가 떠나 버린 뒤였습니다.
그러다가 어느새 누군가가 왔습니다. 그때 마르다와 마리아는 집에 앉아 울고 있었습니다. 생계를 책임지던 사람이 떠났고, 모든 것이 사라졌습니다. 무엇을 잃었는지 보십시오. 그들은 자기 교회를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들이 신뢰했던 그분마저 자신들을 저버리신 것 같았습니다. 모든 희망이 사라졌습니다. 오라버니는 죽었습니다. 교회에서도 쫓겨났습니다. 신유를 가르치시며 그들의 목사님과도 같았던 이분마저 떠나셨습니다. 모든 희망, 모든 것이 사라졌습니다. 바로 그 무렵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그분은 대개 바로 그때 오십니다. 가장 어두운 시간에 오십니다.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는 가장 어두운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저기 병원에 누워 있었습니다. 의사가 들어와 저를 바라보더니 말했습니다. “이보게, 이제 살 수 있는 시간이 3분밖에 남지 않았네. 심장이 1분에 열일곱 번 뛰고 있어.” 가장 어두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여기 인디애나폴리스의 E. 하워드 캐들 목사님도 있었습니다. 술에 취해 길바닥에 누워 있었고, 파리들이 입에 알을 낳고 있었습니다. 그는 비틀거리며 자기가 다니다가 타락해 떠났던 교회로 들어갔습니다. 민주당 사람들이 그곳을 큰 집회장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는 술에 취해 지하실로 내려가 석탄 더미 쪽으로 비틀거리며 갔는데, 거기에 어머니의 사진이 놓여 있었습니다. 거기서 그는 기도했습니다. 그가 겪은 가장 어두운 시간이었습니다. 추위에 떨며 술에 취해 정신을 잃은 때였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저기 메이요 형제 의사들이 제게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을 때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언제나 가장 어두운 시간에 그분께서 오십니다. 그분은 언제나 그러십니다. 바로 그때, 꼭 알맞은 때에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이제 마르다는 그런 일에, 저는—하나님의 왕국과 같은 일에는 매우 소홀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여인의 용기에 감탄합니다. 예수님께서 오셨다는 말을 듣자마자 있는 힘껏 달려갔습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이제 저 여자가 가는 것 좀 봐. 자, 저기 가는군. 그 광신자가 돌아온다던데.” 마르다는 그 사람을 그냥 제쳐 두었습니다. 예수님께 가고 싶었던 것입니다. 마르다는 성경의 어느 곳에서 이런 이야기를 읽고 있었습니다. 한때 수넴 여인이 있었는데, 어떤 선지자에게 큰 호의를 베풀었습니다. 그 여인은 그가 선지자임을 알았습니다. 그의 이름은 엘리사였습니다. 엘리사는 그 여인을 축복하면서 어느 날, 어느 때에 아기를 낳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여인이 아이를 낳을 나이가 지났을 때 그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그 여인은 아기를 낳았습니다. 그 어린아이가 일사병 같은 것에 걸렸던 모양입니다. 아이가 “내 머리야. 내 머리야.”라고 했습니다. 오전 열한 시쯤 아버지와 함께 들에 있었는데, 아버지가 종을 시켜 집으로 보내 어머니의 무릎에 앉혔습니다. 아이는 정오까지 거기 누워 있다가 죽었습니다. 그 수넴 여인을 보십시오. 얼마나 믿음이 신실했습니까.
그 여인은 곧바로 아기를 안고 엘리사가 자던 작은 방으로 올라갔습니다. 선지자가 지나갈 때 잘 수 있도록 그곳에 거처를 마련해 주었던 것입니다. 아이를 데려가기에 얼마나 좋은 곳입니까. 선지자가 자던 침상으로 올라간 것입니다. 그 여인은 아이를 침상에 눕혔습니다. 그러고는 종에게 내려와 말했습니다. “이제 나귀에 안장을 얹고 앞으로 가거라. 멈추지 말아라.” 아, “내가 시키지 않으면 멈추지 말아라. 저 선지자가 계신 갈멜산으로 가자.” 남편이 말했습니다. “초하루도 안식일도 아니오. 그분은 거기 안 계실 거요.” 그 여인이 말했습니다. “다 괜찮아요. 가게 해 주세요.” 저는 그런 결단이 좋습니다. 그런 것이 좋습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는 히브리어로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뜻이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좋습니다.
그 여인은 길을 떠났습니다. “속도를 늦추지 말아라. 이제 몰아라. 이 노새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몰아라.” 갈멜산 가까이 갔을 때, 그 여인은 한 가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기를 주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이 아는 한, 이 땅에서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서 대표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사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아기를 데려가셨는지는 몰랐지만, 그 선지자를 만날 수만 있다면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 안에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 선지자에게 갈 수만 있다면 내 아기가 왜 죽었는지 알게 될 거야. 아기가 태어날 거라고 말해 준 분이 바로 그분이었어. 나는 그분이 하나님의 선지자라는 것을 알아. 그분에게 갈 수만 있다면 돼. 힘껏 몰아야 할지도 모르고 먼 길을 가야 할지도 몰라. 하지만 선지자에게 갈 수만 있다면 왜 이 아기가 떠났는지 알려 주실 수 있어.” 그렇게 해서 선지자가 거기 서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선지자들에게 말씀해 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엘리야가 문으로 걸어 나왔고, 게하시가 함께 있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저기 수넴 여인이 오는구나. 걱정스러운 모습이구나. 무슨 일이 잘못되었어.” 그는 “하나님께서 내게 숨기셨으니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라고 했습니다. 그 여인이 오는 것을 보고, 가까이 왔을 때 말했습니다. “그대는 평안하냐? 그대의 남편도 평안하냐? 아기도 평안하냐?” 이 말을 들으십시오. “다 평안합니다.” 영광을 돌립니다. 지금 여기서는 설교하기에 자리가 너무 좁군요. 한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다 평안합니다.” 왜 그랬습니까? 아기는 시신이 되어 있고, 남편은 손을 비비며 방 안을 서성거리고, 자기 마음은 찢어지는데도 “다 평안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음.
그 여인은 선지자에게 가기만 하면 된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해야 할 일은 그것뿐이었습니다. “엘리사여, 제가 선지자님을 만났습니다. 선지자님은 하나님을 대표하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선지자 안에 계십니다. 이제 제가 여기에 왔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밝혀 주실 것을 믿고 안심합니다. 다 평안합니다.” 그 여인은 달려와 그의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 게하시는 “이런.”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자기 주인에게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여인을 벌떡 끌어 일으켰습니다. 엘리사가 말했습니다. “그냥 두어라. 그 여인의 마음이 슬프구나. 무슨 일인지 나는 모르겠다.” 그러자 그 여인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보십시오. 엘리사가 말했습니다. “게하시야, 내 지팡이를 가지고 먼저 가서 아기에게 가거라. 누가 말을 걸어도 대꾸하지 말아라. 누가 인사해도 인사하지 말아라. 누가 ‘안녕하세요.’ 해도 아무 말도 하지 말아라. 곧장 가거라.”
오늘날 문제가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는 메시지를 받았으면서도 사교 모임과 만찬과 파티와 그런 온갖 일 때문에 가던 길을 멈춥니다. 작은 바느질 모임에 가고, 아무개 여자 이야기를 하느라 멈춥니다. 그러니 아무런 진전도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은 사람은 “앞으로 나아갑시다.” 합니다. 좋습니다. “그런데 내 지팡이를 가지고 가거라.” 엘리사는 그 지팡이에 손을 댔습니다. 엘리사는 자기가 만지는 것은 무엇이든 복을 받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가 왜 병자들에게 안수합니까? 왜 장로들을 안수하여 임명합니까? 엘리사는 자기가 만진 것은 복을 받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바울도 거기서 배워 자기 몸에 닿았던 손수건을 가져가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아시겠습니까? 바울은 자기가 만지는 것은 무엇이든 복을 받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믿고자 한다면, 무엇이든 그가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안수했을 때와 똑같은 복을 받는다고들 합니다.
엘리사는 그 지팡이에 복이 임할 줄 알았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게하시야, 내 지팡이를 네 손에 쥐고 네 앞에 들고 이제 앞으로 나아가거라. 무슨 일이 있어도 멈추지 말아라. 누가 말을 걸어도 말하지 말아라. 이제 네게 맡겨진 사명이 있다. 이 지팡이를 가지고 가거라.” 그것도 좋았습니다. 손수건도 좋았습니다. 그러나 그 수넴 여인은 하나님께서 지팡이 안에 계시는지 아닌지는 몰랐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선지자 안에 계신다는 것은 알았습니다. 그 여인이 말했습니다. “주께서…” 그가 말했습니다. “이제 이 여인과 함께 가거라.”
그 여인이 말했습니다. “주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옵나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리이다.” 아, 바로 그것입니다. “저는 바로 여기, 선지자님 곁에 있겠습니다. 이제 저를 맡으셨으니, 우리가 이 일을 알게 될 때까지 여기 있겠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함께 가시오…” “안 됩니다.” 게하시가 앞서 갔고, 엘리사는 허리를 동여매고 그 여인과 함께 길을 떠났습니다. 이렇게 그들이 갑니다. 그 여인은 자기 마음이 간절히 바라던 대로 선지자와 함께 내려갑니다. 엘리사가 말했습니다. “나는 모르오. 그분께서 그 일에 대해 아무것도 말씀하지 않으셨소. 알려 줄 수가 없소. 그러니 내가 그곳으로 내려가겠소.” 게하시가 돌아왔습니다. “아이 위에 지팡이를 놓았느냐?” “예.” “무슨 기미가 있더냐?”
“생명이 없습니다. 아직 잠들어 있습니다. 여전히 죽어 있습니다. 아이가 떠났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 여인의 믿음은 지팡이에 있지 않았습니다. 선지자에게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그것을 알았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지팡이와 함께하신다고 믿었다면 똑같은 일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여인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선지자 안에 계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엘리사가 갔습니다. 이웃들이 모두 문 앞에 모여 울고 비명을 지르고 신음하며 그렇게 야단이었습니다. 늙은 엘리야는 그런 무리 가운데로 들어갔습니다. 들어가서 문을 당겨 닫았습니다. 거기에는 작은 시신이 누워 있었습니다. 죽은 지 아주 여러 시간이 지났으니, 아마 저녁 늦은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엘리사는 방 안을 이리저리 걸었습니다. 아, 할렐루야. 방 안을 이리저리 걷다가 그쪽으로 갑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 안에 계심을 알았습니다. 그는 아기 위에 자기 몸을 뉘고 자기 입술을 아이의 입술에, 코를 아이의 코에, 이마를 아이의 이마에 대었습니다. 기도가 아니라 자기 몸을 거기에 대고 있었습니다. 자기 몸을 댔습니다. 그렇게 누워 있었습니다.
얼마 후 그는 아이의 살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일어났습니다. 다시 걸었습니다. 아, 방 안을 이리저리, 이쪽으로 저쪽으로 걸었습니다. 밖에서는 통곡하며 비명을 지르고 야단인데 엘리사는 걷고 있습니다… 다시 돌아가 아기 위에 자기 몸을 덮듯이 엎드렸습니다. 그러자 아기가 일곱 번 재채기를 했습니다. 아이를 안아 올리며 말했습니다. “이제 저 수넴 여인을 불러라.” 바로 그것입니다. 틀림없이 마르다는 그 이야기를 읽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선지자 안에 계셨다면 분명히 그분의 아들 안에도 계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할렐루야. “내 오라버니가 죽었지만 하나님의 아들에게로 가자. 거기 가면 위로를 얻을 거야.” 그 여인은 곧장 달려갑니다. 이제 보십시오. 마르다가 그분을 나무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분을 비난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왜 제 오라버니에게 오지 않으셨습니까? 저희가 부를 때 왜 오지 않으셨습니까? 저희는 주님을 따르려고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교회를 떠났습니다. 이 도시에서 누리던 체면도 다 잃었습니다. 저희는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절친한 친구를 위해 와서 기도해 달라고 사람을 보냈을 때 주님은 거절하셨습니다.” 마르다에게 그럴 권리가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이 그렇게 했다면 이 이야기는 결코 기록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대하는 여러분의 태도입니다. 하나님의 신성한 은사를 대하는 여러분의 태도에 따라 여러분이 구하는 바로 그것을 얻게 됩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아, 보제 형제님, 바로 여기서 멈추어 한 30분 동안 이 점을 힘주어 전하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의 태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은사를 보내실 수 있고, 여러분이 무엇을 하든… 여러분이 어떤 태도로 그것을 대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분의 얼굴을 때리고 침을 뱉고 온갖 짓을 한 사람들을 보십시오.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믿고 그분의 옷자락을 만진 여인은 병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좋습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십니다. 신성한 은사가 무엇이든, 그것을 대하는 여러분의 태도가 여러분이 거기서 무엇을 얻을지를 결정합니다.
그러니 그곳에서… 그 여인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분께 곧장 달려갔습니다. 그 여인을 보십시오. 저는 이 장면이 좋습니다. 곧장 달려가서, 이 젊고 아름다운 유대인 처녀가 그분의 발 앞에 엎드려 말했습니다. “주여.” 그분은 주님이셨습니다. 바로 그 호칭입니다. 저는 주님이심을 믿습니다. “주여,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으리이다.” 그것을 보십시오. 모든 어둠, 모든 의심, 모든 두려움, 그 모든 것이 사라졌습니다. 이제 예수님과 함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여인은 그분이—하나님께서 그분의 선지자 안에 계셨다면 그분의 아들 안에도 계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때 하나님을 대표하는 분이 바로 그분이셨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한 번에 이 땅에 그분을 대표하는 중심적인 분을 한 분 두십니다. 한 엘리야가 있었고, 엘리야가 들려 올라가자마자 엘리사가 왔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중심적으로 대표하는 분은 오직 한 분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을 중심적으로 대표하는 분이 누구신지 아십니까? 성령이십니다. 하나님을 대표하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이제 오늘 오후 여러분이 그분께 나아가 그분께서 복 주시는 것을 느낄 수 있다면, 아, 무슨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분께서 여러분의 몸을 한 번 만지시는 것을 느끼자마자, 그리고 그 자리에서 믿음으로 “예, 저는 그것을 믿습니다.”라고 확증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 여인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말했습니다. “주여,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으리이다.” 수넴 여인이 선지자에게 했던 것처럼 마리아도 하나님의 아들에게 그렇게 했습니다. 그 여인은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그 여인은 그분을 주님으로 알아보았습니다. 그분은 주님이셨습니다. 다른 일이 어떻든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그 여인은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그분께 은혜를 입을 수만 있다면 구하는 것을 얻을 터였습니다. 수넴 여인이 엘리야에게 은혜를 입고자 했던 것도 그래서였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 여인은 그곳에 하나님을 대표하는 분이 계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에게 은혜를 입을 수만 있다면, 그것이 바로—바로 그때 그 문제가 해결될 것이었습니다. “이제 내가 예수님께 은혜를 입을 수만 있다면 이 문제는 해결돼.”
오늘 오후 우리도 성령께 은혜를 입을 수만 있다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바로 그것으로 해결됩니다. 성령은 하나님을 대표하는 분이십니다. “조금 있으면 세상은 나를 다시 보지 못하되 너희는 나를 보리라. 내가 너희와 함께, 곧 너희 안에 있으리라.” 그분께 은혜를 입으십시오. 그러면 오늘 밤 여러분이 어떤 병을 앓고 있든, 무엇이든, 회중 가운데서 여러분을 불러내시는 것을 보십시오. 그분께 은혜를 입으십시오. 그러면 오늘 밤 교회에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십시오. 오늘 밤까지 갈 것도 없이 바로 지금, 바로 지금 말입니다.
아, 그 여인은 그분께 나아가 말했습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으리이다.” 그런데 보십시오. “주여, 제 오라버니가 저기 죽어 있습니다. 죽은 지 나흘이 되었습니다. 살을 먹는 벌레들이 몸을 들락날락하고 있습니다. 썩기 시작했고 지독한 냄새가 납니다. 죽었습니다. 저기 무덤에서 냄새가 납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라도, 주여, 주께서 무엇이든 하나님께 구하시면 하나님께서 행하실 것입니다.” 그 여인은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느낌이 마음 깊은 곳에서 조금 들었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믿지 않습니까? “이제라도, 주여, 주께서 무엇이든 하나님께 구하시면 하나님께서 행하실 것입니다.”
아, 여기 있는 모든 암 환자, 심장병이 있는 모든 사람, 어떤 병이든 앓는 모든 사람이 그렇게 되기를 얼마나 하나님께 바라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시카고에 있는 거의 모든 병원을 찾아다녔을 것입니다. 어쩌면 모든 진료소에 가 보았을 것이고, 어디든 다 다녀 보았을 것입니다. 어떤 형편이든, “그러나 이제라도, 주여, 주께서 무엇이든 하나님께 구하시면 하나님께서 행하실 것입니다.” “이제라도…” 여러분은 말합니다. “브래넘 형제님, 의사가 제게 살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라도, 주여, 주께서 무엇이든 하나님께 구하시면 하나님께서 행하실 것입니다.” 기도는 상황을 바꿉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브래넘 형제님, 저는 걸을 수 없습니다. 다시는 걷지 못할 거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라도, 주여, 주께서 무엇이든 하나님께 구하시면 하나님께서 행하실 것입니다.”라고 하십시오. 바로 그것입니다. 보십시오. 그러면 무슨 일인가 반드시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보십시오. 저는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오라비가 다시 일어나리라.” 아. 그 여인이 말했습니다. “예, 주여, 오라버니는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착하고 훌륭한 유대인 청년이었습니다.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잘못한 일이 없었습니다. 모든 일을 다 행했고, 주님을 믿었고, 그러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부활할 때 그가 일어날 줄 압니다.” 그분을 보십시오. 성경은 우리가 그분을 흠모할 만한 아름다움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몸집이 작고 연약하며 허리가 굽어 보이는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그 작은 몸을 곧게 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할렐루야. 그분은 지금도 그러하십니다. 아.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누구든지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이것을 네가 믿느냐?” 그 여인이 말했습니다. “그러하오이다, 주여, 주는 세상에 오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무슨 일인가 반드시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을 생각하십시오.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십시오. 바로 이것입니다. 그 여인은 모든 선지자 위에 계신 선지자 앞에 있었습니다. 수넴 여인이 이 땅에 죽을 육신을 입고 태어난 선지자, 곧 엘리야 선지자 곁에 서서 그의 표적과 이적과 예고를 통해 그가 선지자임을 알고 구하는 것을 얻었다면, 마리아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그분께 나아왔습니다. 그분을 “주여.”라고 불렀습니다. 그분이 누구신지 알았습니다. 그 여인은 “주님께서 세상에 오실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저는 믿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여기 고백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기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분께서 행해 주시기를 바라는 불가능한 일을 마음에 품고 있지만, 하나님의 은사를 알아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그분의 아들을 알아보고 있습니다. 정확히 그 자리에 와 있습니다. 톱니들이 하나하나 이렇게 정확한 자리에 맞물려 들어가고 있습니다. 무슨 일인가 반드시 일어나야 합니다.
“저는 믿습니다. 비록 오라버니는 죽었고 저기 무덤에서 썩고 있으며, 죽은 지 나흘이 되었지만 말입니다. 저는 어떤 일에도 원망을 품지 않습니다. 이제는 그 일에 대해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세상에 오실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주님께서 무엇이든 하나님께 구하시면 하나님께서 행하실 줄 믿습니다.” 아.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누구든지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이것을 네가 믿느냐?” 그 여인이 말했습니다. “예, 주여.” “그를 어디에 묻었느냐?” 이제 그분께서 가십니다. 아. 그보다 나흘 전에 그 장례 행렬, 몇 안 되는 유대인들이 마음이 찢어져 울면서, 예수님께서 무덤으로 내려가시며 우셨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얼마 전 어느 교회의 훌륭한 낭독자 한 분이 제게 와서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형제님은 예수님을 너무 많이 자랑하십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예수님을 너무 많이 자랑한다고요? 그분에 대해서는 아무리 말해도 다 할 수 없습니다.” [불명확한 말]. 그 여자가 말했습니다. “아, 그분은 그저 사람이었습니다. 철학자였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바로 그런 분이셨습니다.” 그 여자는 “아니에요. 그분은 하나님이 아니셨어요, 브래넘 형제님. 하나님이 아니셨어요.”라고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면서 세상을 자기와 화해하게 하셨습니다.” 그 여자가 말했습니다. “아, 사랑이라든가 그런 면에서는 하나님이셨지요.” 제가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그분은 여호와이셨습니다.” 사람들은 그분이 그저 선한 사람, 평범한 사람이었다고 하면서 그분을 이리저리 밀어내려 합니다. 그분은 신성하신 분, 육체로 나타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전파되셨으며 하늘로 올려져 영접받으시고 아버지의 오른편에 앉아 계신 분이셨습니다. 분명히 그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단지 사람만이 아니셨습니다. 하나님이시며 사람이셨습니다. 육체로는 사람이셨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바로 그런 분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내려오셔서 시험과 순교의 고난을 당하시고, 그가 인류에게 넘겼던 죄들을 친히 떠맡아 우리의 죄를 몸소 지신 것입니다.
그 여자가 말했습니다. “마음을 열기만 하시면 그분이 그저 사람이셨다는 것을 성경으로 증명해 드릴 수 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성경으로 증명해 보십시오. 그러면 믿겠습니다.” 그 여자가 말했습니다. “나사로를 부활시키러 내려가셨을 때, 그곳으로 가시는 길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우셨습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우시더라.’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그분이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셨다는 증거입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예, 우셨을 수 있습니다. 사실입니다. 나사로를 만나러 가시는 길에서 인간이라는 면으로 보자면 그분은 사람이셨습니다. 육체로는 사람이셨지만 영으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우셨습니다. 그것은 한 사람이 우는 것이었습니다. 나사로의 무덤으로 내려가시면서 우실 때 그분은 사람이셨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서서 그 작은 몸을 곧게 펴고 ‘나사로야, 나오라.’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리고 죽은 지 나흘 된 사람이 다시 살아났을 때, 그분은 단지 사람만이 아니셨습니다. 그분을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 안에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죽을 육신을 통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썩음은 자기 주인을 알아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믿습니까?
그날 밤 그분께서 저 산 위에 계시다가 내려오셔서 작은 무화과나무를 이리저리 살펴보셨지만 먹을 것이 하나도 없었을 때, 그분은 사람이셨습니다. 배가 고프셨습니다. 배가 고프실 때 그분은 사람이셨습니다. 그러나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셨을 때 그분은 단지 사람만이 아니셨습니다. 그 사람 안에 계신 하나님이셨습니다. 할렐루야. 그날 밤 바다의 마귀 일만이 그분을 물에 빠뜨려 죽이겠다고 맹세했을 때, 작은 배 뒷전에 누워 계셨던 그분은 사람이셨습니다. 폭풍이 일어났고, 작은 배는 저 호수 위에서 병마개처럼 이리저리 요동쳤습니다. 마귀가 말했습니다. “오늘 밤 저자를 물에 빠뜨려 죽이겠다.” 그분은 몹시 피곤하셨습니다. 하루 종일 설교하고 병을 고치시는 동안 그분에게서 권능이 나갔으므로 너무나 피곤하셔서 폭풍도 그분을 깨우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이 깨웠을 때 거기 누워 주무시던 그분은 사람이셨습니다. 그러나 배의 돛줄에 발을 얹으시고 “잠잠하라. 고요하라.”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분은 단지 사람만이 아니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을 통해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믿습니까?
저 갈보리에서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외치셨을 때 그분은 사람이셨습니다. 한 사람으로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부활절 아침에는 죽음과 썩음의 봉인을 깨뜨리고 일어나 위에 계신 아버지께로 올라가심으로써 단지 사람만이 아니심을 보이셨습니다. 육체 안에 계신 하나님이셨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믿습니까?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믿습니까? 여러 해 동안 혈루증을 앓아 몸이 연약했던 한 여인이 그분의 옷자락을 만지자, 흐르던 피가 멎고 즉시 그쳤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믿습니까?
야이로의 딸은 죽었습니다. 그분께서 강을 건너 그곳으로 올라오시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올라가 그 아이를 위해 기도하겠노라.” 그런데 사람 하나가 와서 말했습니다. “따님이 이미 죽었습니다. 선생님을 번거롭게 하지 마십시오.” 야이로의 마음은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검은 눈으로 돌아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내가 말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분께서는 죽은 아이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 그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잠들었느니라.” 그러자 그들은 “저 광신자가 여기에…”라고 했습니다. 그분께서 “그들을 내보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을 방에서 내보내신 뒤에 그분은 아이에게 다가가셨습니다. 그분은 다른 언어로 말할 수 있는 성령의 권능에 사로잡혀 계셨습니다. 이 땅의 모든 것으로는 그분께 도움이 되지 않을 터였고, 그분께서는 거기서 다른 언어로 “다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딸아, 일어나라.”라는 뜻이었습니다. 침상에 누워 있던 그 소녀는 죽어 떠나갔습니다. 그분께서는 영의 세계를 향해 한 말씀을 하셨고, 죽었던 그 소녀는 그 영의 세계에서 돌아와 두 발로 일어서 다시 살았습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여러분은 이것을 믿습니까? 그분께서는 오늘 여기에 계십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믿습니까?
약 7년 전, 인디애나주의 그린스 밀에 서 있을 때였습니다. 저는 거기서 환상들과 여러 일 때문에 마음이 괴롭고 혼란스러웠습니다. 초자연적인 권능이 덤불 속에서 말을 하고 있었는데, 목사님들은 그것이 마귀니 거기에 전혀 관여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밤 빛이 바닥을 가로질러 번쩍였고, 한 분이 팔짱을 끼고 제게 걸어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면전에서 보내심을 받고 와서 네가 병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 주노라. 이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이다. 너는 사람들의 마음속 비밀을 알게 될 것이고, 그 밖에도 여러 일이 일어날 것이다. 네가 사람들로 하여금 너를 믿게 하고, 기도할 때 신실하다면, 어떤 것도 네 기도 앞에 서지 못할 것이다.” 여러분은 이것을 믿습니까?
저는 그분께서 바로 지금 여기에 계신다고 믿습니다. 지금 교회 안을 움직이는 이 느낌, 은하수가 건물 위로 드리우듯 다가오는 이 느낌이 바로 오순절 날 임하셨던 동일한 성령이라고 믿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믿습니까? 저는 여러분의 마음 깊은 곳에서 무언가 움직여 바로 거기서 터질 듯하게 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오늘 오후 성령께서 들어오시려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믿습니까? 저는 그분께서 바로 지금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을 고치실 줄 믿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믿습니까? 두 손을 들고 그분께 찬양을 드립시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주 예수님, 저희는 [불명확한 말]. 주님의 선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오 하나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심을 믿습니다. 주님께서 한 백성을 준비시키고 계심을 믿습니다. 오, 주 예수님, 오셔서 이 사람들을 고쳐 주옵소서. 이곳에 성령을 보내 주옵소서. 오 하나님, 세차게 몰아치는 강한 바람처럼 이 통로들을 두루 흐르옵소서. 모든 마음을 만져 주시고, 믿음을 느껴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불명확한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