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감사합니다, 부시 형제님. [녹음이 끊김.]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오후에 이곳에 오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다시 한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옹호하며 기쁜 소식, 곧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셔서 오늘날 사람들 가운데, 그분의 교회 가운데 살아 계시다는 좋은 소식을 전하러 왔습니다. 어제 계셨던 바로 그 예수님께서 오늘도, 영원토록도 동일하실 것입니다. 그분은 결코 실패하지 않으십니다. 지난 며칠 밤 동안 집회가 진행되어 온 것과 주님께서 복을 주신 일에 참으로 감사합니다. 온갖 질병과 고통에서 치유받았다는 간증들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저기 청중석에서도 치유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여기 위에서뿐 아니라, 바로 저기서도 일어납니다. 어떤 분들은 편지를 보내 이렇게 말합니다. “제 아기가 보조기를 차고 있었는데요, 집에 데려가서 보조기를 풀어 주었더니 걸을 수 있었어요.” 이렇게... 아시겠죠. 저기서 일어나는 일을 제가 다 말할 수 없는 때가 많습니다. 그저 이따금 말씀드릴 뿐입니다. 그리고 이 가운데 부분을 보면, 저 뒤에 불빛이 있습니다만, 바로 이쪽에 때때로 그 빛이 머물러 있는 것이 보입니다. 하지만 정확히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 알아볼 수가 없어서, 다른 곳으로 옮겨 갈 때까지 기다립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복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 점이 참으로 감사합니다.
보통 저희 집회에서는 일요일 오후에 제가 말씀을 전할 시간을 갖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말하는 그런 연설가는 아닙니다. 저는 교육을 별로 받지 못했습니다. 아주, 아주 조금밖에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주님을 사랑하고, 제가 참되다고 아는 그분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를 좋아합니다. 이곳에 포트웨인에서 온 친구들이 많이 계신 줄 압니다. 포트웨인 집회 때 어느 날 밤이 생각납니다. 제가 뒤쪽에... 막 들어왔는데, 거기 모든 것을 훤히 아는 분이 있었습니다. 특히 문법에 밝은 분이었습니다. 그분이 제게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형제님은 문법을 아주 서투르게 쓰시는군요.” 저는 “예, 저도 압니다.” 했습니다. 그분은 “아니, 정말 심한 실수를 하시더군요.” 했습니다. 저는 “예,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저, 열 명의 자녀가 있었기에 일을 해야 했습니다. 평생 일을 해 왔습니다.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했습니다. 그분은 “아, 그건 변명이 안 됩니다. 이제는 어른이시잖습니까.” 했습니다. 저는 “예, 맞습니다.” 했습니다.
그분은 “통신 강좌 같은 것을 들어서 문법을 좀 익히실 수 있잖습니까.” 했습니다. 저는 “예, 그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집회를 다니기 시작한 뒤로는...” 했습니다. 그분은 “아니, 그렇게 많은 사람들, 수천 명에게 말씀하시면서 ‘히즈’니 ‘헤인트’니 하는 말을 쓰시고... 부끄러운 일입니다.” 했습니다. 저는 “글쎄요, 사람들은 잘 알아듣는 것 같던데요.” 했습니다. 그분은 “제가 말씀드리죠. 가령 오늘 밤에도 아주 심한 실수를 하셨습니다. 바로잡아 드리고 싶습니다.” 했습니다. 저는 “좋습니다, 말씀하십시오.” 했습니다. 그분은 “오늘 밤 이 ‘폴핏’ 앞으로 나오는 모든 사람들이라고 하셨지요.” 했습니다. 저는 “예, 그게 맞지 않습니까?” 했습니다.
그분은 “아닙니다. ‘펄핏’이라고 하셨어야지요. ‘폴핏’이 아니라 ‘펄핏’이라고 하시면 사람들이 형제님을 더 좋아할 겁니다.”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랑하는 형제님, 저는 형제님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보십시오. 저기 계신 분들은 제가 ‘폴핏’이라고 하든 ‘펄핏’이라고 하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분들은 제가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고, 무엇을... [불명확한 말] 보기를 원합니다.”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그런 것입니다. 제가 처음 안수받았을 때가 생각납니다. 침례교회에서였지요. 젊은 설교자가 어떤지 아시지요. 특히 침례교 설교자 말입니다. 여기에도 몇 분 계시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옆구리에 끼고, 어엿한 목사님이 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성경을 들고 거리를 걸어 다니곤 했습니다. 누군가 “목사님이십니까?” 하면, “오, 예, 그렇습니다.” 했습니다.
저는 그 호칭이 꽤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런 일이 생각납니다... 아버지는 말을 아주 잘 타셨는데, 다치셨습니다. 말을 길들이기도 하고 로데오에서 말을 타기도 하셨습니다. 아주 멋지게 말을 타셨고 사격 솜씨도 뛰어나셨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말씀하시기를... 집에서 있었던 어느 날이 기억납니다. 저는 아버지처럼 되고 싶었습니다. 우리 집에는 쟁기를 끄는 늙은 말이 한 마리 있었습니다. 이 근처에 계신 분들 중에 농장에서 오신 분들이 많지요? 그러니 쟁기를 끄는 늙은 말이 어떤지 아실 것입니다. 저는 그 말을 부려 밭을 갈았습니다. 원래부터 늙은 말이었습니다. 저는 저녁 늦게까지 그 말로 밭을 갈곤 했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그 늙은 말을 해치지 않도록 쟁기에서 풀어 주기를 원하셨습니다. 아래쪽에는 작은 낡은 물구유가 있었습니다. 통나무 속을 파낸 것이었지요. 그런 것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이곳에 시골 출신이 저 혼자만 있는 것은 아니군요! 낡은 물구유와 물을 퍼 올리는 낡은 펌프가 있었습니다. 저는 어린 동생들을 모두 데려다가 헛간 마당 울타리 위에 나란히 앉혔습니다. 물구유에 물을 가득 채워 주고, 늙은 말이 물을 마신 뒤에는... 아버지는 저 뒤 어디선가 다른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저는 들어가서 아버지의 낡은 안장을 가져오고, 도꼬마리 열매를 한 줌 가져다가 안장 밑에 밀어 넣고, 배띠를 조인 다음 그 늙은 말 위에 올라탔습니다.
가엾은 말은 너무 늙어서... 몸도 뻣뻣하고 지쳐서 발을 땅에서 떼지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냥 서서 울부짖었습니다. 그러면 저는 모자를 벗어 이리저리 흔들며 “나는 진짜 카우보이다.” 했습니다. 어린 동생들이 모두 거기 앉아 있었지요. 그저 영화를 너무 많이 본 탓이었습니다. 제가 열아홉 살쯤 되었을 때, 어머니께 이곳 인디애나에 있는 그린스밀 보이스카우트 야영장에 캠핑하러 간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고는 몰래 서부로 떠나 애리조나로 갔습니다. ‘나는 말을 정말 잘 타잖아. 지금 돈도 없는데, 제대로 한번 벌어 보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마침 로데오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리바이스 바지 한 벌을 구해 입고 거기 가서 둘러보았습니다. 말을 끌어내오는 우리를 찾았습니다. 보니 울타리 곁에, 다리가 휘고 목장 생활에 찌들어 몸이 성치 않아 보이는 카우보이들이 잔뜩 앉아 있었습니다. 저는 ‘그래, 내가 있어야 할 곳이 바로 여기야.’ 하고 생각했습니다. 울타리 위에 올라가 앉았습니다.
그들이 말 한 마리를 끌어냈습니다. 진행자가 나와서 그 말이 어떤 말인지, 얼마나 유명한 날뛰는 말인지 소개했습니다. 누군가 그 말을 탈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기수 한 사람을 데려왔습니다. 그는 출발 우리를 빠져나오는 말을 어떻게든 붙잡아 타야 했습니다. 저는 밖에 서서 그 사람이 안장 위로 몸을 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몸집이 크고 다리가 긴 사람이어서 말을 잘 탈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안장에 내려앉자마자 말이 두 번쯤 뛰더니 몸을 옆으로 비틀어 펄쩍 뛰었습니다. 기수는 안장째 날아갔습니다. 그러고는... 그가 땅에 떨어지자 보조 기수들이 말을 붙잡았고, 구급차가 와서 그를 데려갔습니다. 귀와 눈과 코와 입에서 피가 흘렀습니다. 그러자 한 사람이 말을 타고 울타리를 따라 왔습니다. 말을 탄다는 카우보이들이 모두 줄지어 앉아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누구든 50달러를 주겠소.” (대공황 때였습니다.) “저 말을 30초 동안 타는 사람에게 50달러를 주겠소.” 아무도... 모두 잠자코 있었습니다. 그가 제 바로 앞으로 말을 몰고 왔습니다. “당신도 말을 타시오?” 저는 “아닙니다.” 했습니다. 하하하하. 그 말은 제가 부리던 늙은 쟁기말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하하. 그 말과는 달랐습니다.
제가 설교자라고 하며 다니던 때, 어느 날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 갔습니다. 그곳에 로버트 도허티 목사라는 자그마한 오순절 설교자가 있었습니다. 그분은 천막 집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숨이 완전히 찰 때까지 설교하고는, 두 무릎이 서로 맞닿도록 굽혀진 채 숨을 돌렸습니다. (한 블록 밖에서도 그 숨소리가 들릴 정도였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설교했습니다. 누군가 제게 “설교자이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아닙니다.” 했습니다. 하하하하.
제 느긋한 침례교식으로는 그렇게 빨리 생각이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러니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런 오후 시간을 갖기를 좋아합니다. 저녁 집회는 언제나 아픈 분들에 관한 것입니다. 이야기하는 것도, 그것은... 아픈 분들을 대하는 일이어서 또 다른 기름부음, 다른 종류의 기름부음입니다. 천사가 가까이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또 다른 차원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오늘 식당에서 누군가 다가와 치유받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얼마나 심하게 앓고 고통스러웠으며, 지금은 얼마나 건강해졌는지 말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분이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또 다른 분은 휴스턴 집회에 오셨던 노인이었는데, 경화증인가 무슨 병을 앓았고 간이 30년 동안 좋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분은 “브래넘 형제님, 바로 그날 밤에 그것이 말끔히 사라졌습니다.” 했습니다. 지금 그 노인이 바로 이쪽에 앉아 계신 것이 보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그것이 말끔히 사라졌습니다.” 했습니다. 그 뒤로 줄곧 건강하셨습니다. “저를 기억하십니까?” 하셨습니다.
“기억나지 않습니다.” 하고 말하면 좀 야박하게 들리는 것 같습니다. 저도 그렇게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이야기를 해 주시면 마치 꿈에서 본 것처럼 느껴집니다. 지난번 밤에 저기 누워 있던 마비된 어떤 여인이 치유받았다고 사람들이 말해 주었습니다. 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분들에 관해 무언가 꿈을 꾼 것만 같습니다. 오늘 오후에는 본문을 조금 읽고 익숙한 주제로 잠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오후에는 ‘성도들에게 단 한 번 전달된 믿음을 위해 싸우라’는 주제로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착각해서, 집회를 알릴 때... 저는 2시 30분까지 이곳에 오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만일 다음 일요일까지 머무르게 된다면, 주님께서 원하시면 그때 ‘성도들에게 단 한 번 전달된 믿음을 위해 싸우라’는 주제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성경에서 좀 익숙한 대목을 읽으려 합니다. 요한복음 11장에 있는, 죽었던 한 사람이 죽음에서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사람을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셨던 바로 그 주님으로 오늘도 계시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여러분, 그분은 그러하십니다. 정말입니다. 동일하신 주 예수님이십니다.
제 생각에 이 성경 전체, 그 모든 짜임새는 극적인 이야기입니다. 에덴에서 시작하여 문을 통해 밖으로 나왔다가, 십자가의 길을 따라 바로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입니다. 모두 하나님께서 그분의 생각 속에 펼쳐 놓으신 하나의 큰 그림입니다. 세상의 기초도 놓이기 전, 달이나 별이나 그 무엇도 있기 전에, 저 공간에 앉아 계신 하나님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분은 생각 속에서 앞으로 모든 것이 어떻게 될지 그 그림을 그리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에 그저 말씀하셨습니다. “있으라.” 그러자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분은 얼마나 놀라우신 분입니까! 그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 다음 그 크고 주권적인 사랑으로 내려오셔서 저와 여러분 같은 잃어버린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모습을 보십시오!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시인이 이렇게 노래한 것도 당연합니다. “하나님의 사랑, 얼마나 풍성하고 순결한가! 헤아릴 수 없이 깊고 강하구나! 영원토록 변함없이 이어질 성도들과 천사들의 노래여.” 11장 18절부터 성경 말씀을 조금 읽겠습니다. 베다니는... 이제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십오 스타디온쯤 떨어진 가까운 곳이므로 ... 유대인들 중의 많은 자들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와서 그들의 오라비에 관하여 그들을 위로하더라. 그때에 마르다는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가서 그분을 맞이하되 마리아는 여전히 집에 앉아 있더라. 그때에 마르다가 예수님께 이르되, 주여,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으리이다. 그러나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 하나님께 구하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주께 주실 줄 내가 아나이다. (바로 이 말씀이 놀랍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일어나리라, 하시니라. 마르다가 그분께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할 때에 그가 다시 일어날 줄 내가 아나이다, 하매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 누구든지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죽지 아니하리라. 이것을 네가 믿느냐? 그녀가 그분께 이르되, 그러하오이다, 주여,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하니라.
잠시 머리를 숙이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저희는 영원에 들어서기 전인 이편에서 또 하루를 맞아 이곳에 서 있습니다... 아니, 주님의 오심을 앞두고 있다고 말씀드렸어야 했습니다. 이 청중 가운데 아직도 주님의 사랑하는 아들을 자신의 구원자로 영접하지 않은 분들이 있을 수도 있음을 압니다. 공원을 지나오면서 수영장마다 사람이 가득하고, 반쯤 벗은 젊은 여인들이 공원에 누워 몸을 쭉 뻗은 채 아무 걱정 없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토록 떠받드는 아름다운 몸도 언젠가는 벌레들이 살갗을 뚫고 기어 다니게 되고, 그들의 혼은 심판대에서 하나님을 대면해야 함을 생각합니다. 주님, 오늘 오후에 어떤 일이 일어나 사람들을 깨우고, 저희가 끝에 가까이 와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번 한 주 동안 저희를 위해 행하신 일들, 귀먹은 자들이 듣게 하시고 다리 저는 자들이 걷게 하신 일들, 또 행하신 수많은 큰 표적과 이적들에 감사드립니다. 참으로 부인할 수 없고 조금도 거짓이 없는, 이 마지막 날에 인류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입니다.
오늘 이 사람들이 주님을 경배하려고 이 천막 아래 모였습니다. 주님, 주님의 자녀 중 많은 이들이 지쳐 갑니다. 악인들이 번성하는 것을 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다윗을 바라보게 하소서. 주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그래, 나도 악인이 커다란 월계수같이 뻗어 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을 보아라. 그때 모든 것이 드러난다. 죽음의 천사가 방 안으로 들어오고, 안개가 방 안에 떠돌기 시작하며, 우리가 골짜기로 내려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그때에는 어찌하겠느냐?” 하셨습니다. 하나님, 오늘 주님의 자녀들을 복 주시고, 그들의 믿음을 북돋아 주시며, 그들의 혼을 복 주셔서 우리 구원의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게 하소서. 아픈 이들이 치유받게 하소서. 여기 앉아 있는 병들고 고통받는 많은 이들이 마음속으로 성령을 받아들이고, 오늘 그들의 믿음이 환히 빛나며 감격에 휩싸이게 하소서. 아버지, 허락하소서. 이제 주님, 주님의 무익한 종인 저를 도와주소서. 주님의 종을 통해 전보다 더욱 말씀하여 주소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하옵나이다. 아멘.
6시쯤이면 기도 카드를 나누어 주기 시작할 테니, 저희는 그 전에 일찍 자리를 비워야 합니다. 여러분이 기도하시는 동안 잠깐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오후 이곳에 그리스도인이 얼마나 계십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참 좋습니다. 오, 거의 100퍼센트쯤 되는군요. 오늘 오후 우리가 읽은 본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초기 사역에 관한 것입니다. 그분은 막 인기를 얻으셨습니다. 그분을 보면 첫해에는 인기가 아주 높았고, 둘째 해에는 인기가 꺾이더니, 결국 사람들이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새로웠고, 어디서나 번쩍번쩍해 보였습니다. 사람들의 생각을 아시고, 아버지께서 보여 주신 일들을 행하시는 이 놀라운 분을 보려고 모두 몰려왔습니다. 눈먼 자들이 보게 하시고 귀먹은 자들이 듣게 하셨습니다. 그런 일은 들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그분을 마귀라고 선언했습니다. (제가 마이크에 너무 가까이 서 있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그분을 마귀라고 했습니다. 물론 사람들은 배운 대로 행동합니다. (이렇게 하면 괜찮습니까, 더 낫습니까? 좋습니다. 여러분의 귀가 멀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네 종교 지도자들이 그분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분의 인기는 크게 떨어졌습니다. 다만 가난한 계층,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달랐습니다. 성경은 “보통 사람들이 그분의 말을 즐겁게 듣더라.” 하고 말합니다. 하지만 사회적 지위가 높고, 이 세상의 것들을 많이 소유하고, 돈이 많은 부류는 그분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아무개 박사가 그분은 광신자요 마귀이며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분을 멀리하고 자기네 무리에게로 갔습니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참으로 맞습니다. 그러나 그분을 믿고 사랑한 사람들은 그분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런 가정 중 하나가 나사로라는 청년과 두 누이의 가정이었습니다. 한 사람은 마리아, 다른 사람은 마르다라는 이름이었습니다. 역사가들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나사로는 서기관으로, 율법을 쓰고 그 사본을 베껴 만드는 일을 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엄격한 일이었는지 아는 분이라면, 글자에서 획 하나만 굽어져도 다른 뜻이 된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그러니 완벽해야 했고, 그 글을 쓰는 사람도 정직하고 평판이 좋으며 거룩해야 했습니다. 따라서 그는 품성이 훌륭하고 신앙적으로도 좋은 평판을 지닌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또 마르다와 마리아는 바느질을 해서 성전에 쓸 휘장 같은 것들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부모가 세상을 떠나 그들만 남아 있었습니다. 이때는 예수님의 양부 요셉도 세상을 떠난 뒤였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사시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너무 유명해지셔서, 그분의 일이 멀리 퍼져 결국 그곳을 떠나셔야 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분이 살고 계셨는데... 때가 되었습니다. 모든 것은 제때에 이루어집니다. 그것을 믿으십니까? 모든 것이... 가을에 밀을 심으면 봄에 싹이 납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싹이 나게 하십니다. 봄에 옥수수를 심으면 가을에 거둡니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습니다. 그분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작이 있었고, 가장 좋은 때가 있었고, 끝을 맺으실 때는 그림자가 드리웠습니다.
형제 여러분, 우리의 사역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좋은 때가 있고, 시작이 있고, 중간이 있고, 가장 좋은 때가 있고, 그런 다음 끝을 맺습니다. 여러분의 삶도 아기로 시작하여 청소년기를 지나 중년에 이르고, 그러고는 끝을 맺습니다.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과 같습니다. 모든 것에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무슨 일을 하시려 할 때마다, 심판을 보내시기 전에 언제나 먼저 자비를 보내십니다. 사람이 그 자비를 저버리면 심판밖에 남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자비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여러분에게 남는 것은 심판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무슨 일을 하시기 전에 언제나 사람들에게 미리 보여 주십니다. 여러분이 믿어 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오늘 우리가 이 코너스빌에 와 있는 것이 앞으로 있을 일을 미리 보여 주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광대 노릇을 하려고 일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구경거리를 벌이지 않으십니다. 목적이 있어 행하시며, 말씀 하나하나가 정확히 제자리를 찾아갑니다. 일 점 일 획도 어긋날 수 없습니다. 그 말씀은 영원히 섭니다. “주의 말씀은 영원히 하늘에서 확증되었나이다.”라는 성경 말씀이 생각납니다. 천국에서는 아무도 그 말씀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의심하는 것은 우리 죽을 인간들입니다. 천국에 있는 모든 것은 그분의 말씀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것으로 확정됩니다. “주의 말씀은 영원히 하늘에 정착되었나이다.” 이미 확정되어 있는 것입니다.
자, 보십시오! 에덴동산에서부터 예언되어 온 예수님의 오심에 바로 앞서, 침례자 요한이 올 것이라는 예언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가랴는 (이제 그 가정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신앙심이 깊고 거룩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가정에는 매우 안타까운 일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기를 원했습니다. 당시에는 아기를 낳지 못하는 것이 수치였습니다. 오늘날에는 거의 아기를 낳는 것이 수치가 되어 버렸습니다. 얼마나 달라졌습니까! 사람들은 아이를 기를 시간이 없습니다. 자, 들으십시오! 오늘 오후는 제가 여기 집회에서 주님과 함께하는 시간입니다. 그분께서 제게 하라고 하시는 말씀만 하겠습니다. 하지만 슬픈 시대입니다. 세탁기와 식기세척기, 온갖 것들이 만들어져 여자들에게 시간이 많이 생기자, 그들은 술집 같은 데서 빈둥거리며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온 나라를 돌아다닙니다. 그렇습니다. 남의 일에 참견하고 게으름을 피우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시간은 많고 할 일은 없습니다. 차라리 솔을 들고 빨래터로 돌아가, 이런 종류의 세탁기로 제 어머니가 하셨던 것처럼 빨래를 하는 편이 더 나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지금... 그것만이 아닙니다. 남자들은 밖에 나가 골프 같은 것을 치려고 시간을 앞당겨 놓아야 합니다. 운동을 좀 해서 살을 빼야 하는 것이지요. 얼마나 딱한 일입니까! 그런데 세상 다른 곳에서는 사람들이 굶어 죽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 때문에 우리가 정죄받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분명히 정죄받을 것입니다. 제가 다른 나라들을 떠나올 때, 가엾은 어린아이들이 손을 비비고 눈을 비비며 울었습니다. 조그만 얼굴들이 더러운 채로, 빵 한 조각을 달라고 울고 있었습니다. 미국에서는 때로 오후나 오후 중반에 한 접시에 8달러나 하는 음식을 먹으면서, 그 절반은 긁어서 쓰레기통에 버리고 돼지 먹이로 줍니다. 옳지 않습니다! 형제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런 일들의 대가도 우리에게 치르게 하실 때가 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 사가랴와 그의 아내 엘리사벳은 의롭고 거룩한 사람들이었으며, 늘 기도했습니다. 이제 이사야의 예언이 이루어질 때가 되었습니다. 그 말씀이 선포된 것은 800년... 아니, 712년 전이었습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으리라.”
하나님의 예언의 바퀴들이 돌아가는 것을 보십시오. 그 예언이 이루어지려는 바로 그때, 한 부름받은 사람이 그곳에 도착하면 또 다른 부름받은 사람도 그곳에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정확히 제때에 이곳에 오실 것입니다. 교회도 정확히 제때에 올라갈 것입니다. 아무것도 어긋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그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자, 이 사람들을 보십시오. 틀림없이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말씀이 이루어질 수 있는 곳을 찾아보시려고 이 땅에 내려오셨을 것입니다. 그러고는 사가랴라는 의로운 사람을 찾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낮고 궁핍하고 버림받은 사람들을 얻으려고 기다리십니다. 제가 그분을 사랑하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그분이 저를 건져 주셨습니다. 이 세상의 가난한 사람들, 마음이 겸손하고 기꺼이 배우려는 사람들입니다.
그분은 여전히 자기 직무를 충실히 지키며 향로를 흔들고 있는 사가랴를 찾으셨습니다. 그날 그가 분향하러 들어갔을 때, 사가랴는 이제 나이가 많은 사람이었고 아내도 아이를 낳을 나이가 훨씬 지나 있었습니다. 주님의 천사가 제단 오른쪽에 서 있었습니다. 사가랴가 돌아서서 보니, 천사장 가브리엘이었습니다.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많은 천사를 보내실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수호천사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예수님께서 “너희가 이 작은 자들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바라보느니라.” 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리스도인들에게 무슨 일을 하는지 조심하십시오. 그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는 것보다는 목에 돌을 달고 바다에 빠져 죽는 편이 더 낫다고 하셨습니다. 조심하십시오. 아시겠죠.
하나님께서는 많은 천사를 보내십니다. 그러나 가브리엘이 영광 가운데서 내려온다는 말을 들으면, 그것은 그저 사소한 일이 아닙니다. 중대한 일이 일어나려는 것입니다. 가브리엘은... (자, 바로 이것입니다.) 가브리엘이 그리스도의 첫 번째 오심을 알렸습니다. 그리고 가브리엘이 그리스도의 두 번째 오심을 알릴 것입니다. 아멘. 그는 영광 가운데 존엄하신 분의 오른편에 서 있는 천사장입니다. 그런데 여기 이 제사장이 서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밖에서 기도하는 동안, 아마 그도 기도하며 향로를 흔들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가 보니 그곳에 가브리엘이 서 있었습니다. 어떤 심정이었겠습니까! 그 천사는 사가랴에게... 그가 하나님의 호의를 입었다고 말했습니다. “사가랴야, 여기서 섬기는 날들, 곧 제단에서 섬기는 날들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거든, 저 실로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면 네가 아내와 함께하게 되고, 아내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라.” 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소식입니까!
자, 보십시오. 그토록 종교 관습에 굳어진 사람이, 천사 앞에 서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하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 “그럴 수 없습니다. 제 아내는 쉰 살, 아니면 예순 살입니다. 제가 아내가 열일곱, 열여덟 살의 어린 소녀였을 때부터 함께 살아왔는데, 이제는 아이를 낳을 나이가 지났습니다. 이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라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저는 이 대목이 좋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말씀을 반드시 이루기로 작정하셨습니다. (다음 일요일에는 그 택하심과 부르심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보십시오. 그가 말했습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 서는 가브리엘이라. 내 말들은 그것들의 때에 성취되리라. 네가 의심하였으므로 아기가 태어나는 날까지 말을 하지 못하리라. 그의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참으로 놀랍지 않습니까? 자, 보십시오. 여러분은 그 천사가 죽었다고 믿으십니까? 아닙니다. 그는 오늘 오후에도 듣고 있습니다. 보십시오. 그러고 나서 보니, 사람들은 그가 왜 그토록 오래 머무르는지 모두 의아해했습니다. 그래서 그를 보러 갔더니 그가 손짓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가 환상을 본 줄 알았습니다. 그는 집으로 갑니다. 그러자 가브리엘이 말한 그대로 되었습니다. 엘리사벳이 수태했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말씀하셨으니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엘리사벳은 나이가 많아서, 아마 폐경이 된 지도 여러 해가 지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그 제사장은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의심했습니다. 이전에도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예가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자기에게 일어나는 일은 의심했습니다. 여러분은 “이 사람이 치유받고 저 사람이 치유받는 것은 봅니다. 하지만 제가 치유받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합니다. 아니, 여러분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저 사람이 성령을 받은 뒤로 참으로 행복해한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저는 이웃들이 저를 비웃을까 봐 겁이 납니다.” 합니다.
이웃이 무슨 말을 하든 무슨 상관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광대로 만드시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로 만드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이웃이 무슨 말을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느냐가 중요합니다. 아멘. 벌써 경건한 감동이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정말입니다. 성령께서... 저는 그분이 그분의 백성을 복 주시려고 오늘 오후 이곳에 와 계신다고 믿습니다. 오, 사가랴가 그때 의심하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그러나 얼마 뒤 엘리사벳은 수태했습니다. 아기를 수태하여 낳을 것이었으므로 여섯 달 동안 몸을 숨겼습니다. 그리고 여섯 달 뒤... 이제 시선을 다른 곳으로, 저 나사렛으로 돌려 봅시다. 세상에서 가장 악한 도시였습니다. 코너스빌이나 제퍼슨빌이나 그 어느 도시보다도 더 악했습니다. 오, 끔찍한 곳이었습니다.
자, 보십시오. 여기서 잠깐 극을 보듯 생각해 봅시다. 월요일이라고 상상해 봅시다. 보통 여자들에게는 가장 힘든 날입니다. 제가 집에 있을 때는 그랬습니다. 저는 빨랫물이며 온갖 것을 날라야 했습니다. 오늘 오후에 어머니도 이곳에 와 계신 줄 압니다. 몇 분 전에 저기 제 형제가 보였습니다. 그러니 어머니도 와 계실 것 같습니다. 저는 아까시나무 가지를 잘라 끌고 와서 불 속에 밀어 넣고, 바깥에 놓인 낡고 커다란 솥에 빨랫물을 끓여야 했습니다. 참! 어머니가 과일 졸임을 만드시던 것도 기억납니다. 저는 거기 들어가곤 했는데, 여름철이라 땀이 났습니다. 그 조그맣고 노란 박 모양의 토마토 말입니다. 그것으로 졸임을 만들면 꽤 맛있습니다. 추운 아침에 뜨거운 비스킷 사이에 넣어 먹으면 정말 맛이 좋습니다. 어머니가 그것을 솥에 부으면 저는 “아, 엄마, 불이 이만하면 충분히 뜨겁잖아요.” 했습니다. 어머니는 “아직 충분히 뜨겁지 않아.” 하셨습니다. 솥에서는 계속 끓고 김이 났습니다. 저는 “왜 아직 충분히 뜨겁지 않아요?” 하고 물었습니다.
어머니는 “툭툭 터지기 시작해야 제대로 된 거야. 툭툭 터져야 해. 그렇게 터질 때까지 계속 장작을 넣으렴.” 하셨습니다. 부글부글 끓고, 공기가 올라와 툭툭 터지는 것이지요. 참 좋은 예라고 생각했습니다. 참된 옛 성령 집회가 생각납니다. 장작을 구해다가, 사람들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할 때까지 계속 불에 넣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면 봉해 보관할 준비가 된 것입니다. 쇠를 달구려면, 그것으로 다른 무엇을 만들 준비를 하려면, 뜨겁게 달구어야 합니다! 모루 밑에 놓고 불꽃이 튀도록 두드려 모양이 잡혀 가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집회를 뜨겁게 하셔야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그분을 향하게 하셔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빚기 시작하셔서, 순수하고 섞임 없는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딸로 만드실 수 있습니다.
자, 보십시오! 마리아가 물을 머리에 이고 집으로 오는 모습이 보입니다. (동방의 방식이었지요.) 처녀의 샘에서 돌아와 거리를 따라 올라갑니다. 거리를 걷다가, 아마 자기가 사는 골목길로 접어들었을 것입니다. 한쪽에 있는 조그마한 판잣집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매우 가난했고, 과부인 어머니와 살고 있었습니다. 이 월요일(빨래하는 날)에 그 길을 올라가고 있었는데, 그녀는 처녀였습니다. 도시가 아무리 악해도 그녀는 처녀였고,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큰 빛이 그녀 앞에 나타납니다. 그 빛 아래에는 천사장 가브리엘이 서 있었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놀라지 마십시오. 아멘은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라는 뜻입니다.) 천사장이 거기 서서 말했습니다. “마리아야, 평안할지어다. 네가 여자들 가운데 복이 있도다. 네가 하나님 앞에서 호의를 입었느니라.”
“네? 제가요? 이 나라에서 가장 악한 도시 출신인 제가요? 여기 뒷골목에 사는 보잘것없는 가난한 소녀인 제가요? 그런데도 제가 하나님의 호의를 입었다고요?” “그래, 네가 하나님의 호의를 입었느니라.” 했습니다. 그 어린 처녀는 두려웠습니다. 이 천사가 인사를 했고, 그의 위에는 빛이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는 그 빛 가운데 서서 “평안할지어다.” 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두려웠을 것입니다. 누구나 두려웠을 것입니다. 이제 그가 그녀에게 말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잘 보십시오. 그가 말했습니다. “네가 하나님 앞에서 큰 호의를 입었느니라. 네가 아기를 낳고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리라.” 그녀는 “어떻게 이런 일이 있으리이까?” 했습니다. 그는 “성령께서 너를 덮으시리라.” 했습니다. 아멘. “네게서 태어날 그 거룩한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리리라.” 자,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은 이것을 믿으십니까?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얼마 전에 어떤 사람과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그가 “목사님, 정말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으시는 것은 아니겠지요?” 했습니다. 저는 “예, 저는 믿습니다.” 했습니다.
그는 “자, 보십시오. 그건 그저 작은 실수였던 겁니다. 요셉이 이 여자... 그 소녀와 사귀고 있었잖습니까.” 했습니다. 요셉은 아내를 잃고 자녀가 넷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보십시오. 그 여자와 사귀고 있었으니 그저 작은 실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했습니다. 저는 “아닙니다! 저는 그분이 처녀에게서 태어나신, 순전한 하나님의 아들이셨다고 믿습니다.” 했습니다. 그는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 사람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는 “브래넘 형제님, 그것은 과학의 모든 법칙에 어긋납니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보십시오. 밀조차도 꽃가루 없이는 자라지 않습니다. 옥수수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컷과 암컷이 둘 다 없으면 번식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나무도 구멍을 뚫고 바꾸어 주는 일 같은 것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벌이 수컷과 암컷 사이에서,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 꽃가루를 옮겨 주지 않으면 자라지 않습니다. 과학의 모든 법칙에 어긋납니다.” 했습니다. 저는 “하지만 이분은 과학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했습니다. 그는 “그건 있을 수 없습니다.” 했습니다. 저는 “한 가지 묻겠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지 않으십니까?” 했습니다. 그는 “예, 믿지 않습니다. 그것이 처녀 탄생이었다고 믿지 않고, 그런 일이 과거에 있었거나 앞으로 있을 것이라고도 믿지 않습니다. 그 사람 요셉이 그분의 아버지였습니다.” 했습니다.
저는 “한 가지 묻겠습니다. 그러면 사람이, 위대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다는 말씀이십니까?” 했습니다. 그는 “그런 분은 없습니다.” 했습니다. 저는 “좋습니다. 제 말을 따라와 보십시오. 창조주 하나님께서 이 아기를 태어나게 하시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믿으시는군요... 그분에게 땅의 어머니가 있었다는 것은 인정하시지요. 저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분에게...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군요. 좋습니다. 땅의 아버지도 있었다고 합시다.” 했습니다. 그는 “그렇지요.” 했습니다.
저는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첫 번째 사람은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이 어떻게 생겨났습니까? 그를 올챙이라고 하든, 개구리 새끼라고 하든, 원숭이라고 하든, 무엇이라고 부르고 싶으시든 간에, 그가 어떻게 생겨났습니까? 방금 하신 말씀대로라면 그에게도 아빠와 엄마가 둘 다 있어야 했습니다.”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의 부모는 누구였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 사람은 지금까지도 제게 대답하지 못했고, 대답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아기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혈세포가 남성에게서 온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사실이며, 우리도 알고 있습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 중에 농사를 짓는 분들이 많습니다. 암탉은 여름 내내 알을 낳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수탉과 함께하지 않았다면 그 알은 결코 부화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새들이 둥지를 짓고 있습니다. 어미 새가 저기 나무에 둥지를 틀고 알을 한 둥지 가득 낳을 수 있습니다. 수컷과 가까이한 적이 없어도 말입니다. 그리고 그 둥지에 앉아 알을 품고 이리저리 굴려 주며, 따뜻하게 해 주느라 바짝 말라 둥지에서 날아오를 수도 없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수컷과 함께하지 않았다면 그 알들은 그대로 둥지에서 썩을 것입니다. 생명의 싹은 수컷에게서 오므로 그 알들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이 근처에 있는 차갑고 형식적인 교회들이 생각납니다. 알을 한 둥지 가득 모아 놓고 주위로 끌어모아 집사라고 부릅니다. 형제 여러분, 차라리 그 둥지를 허물고 다른 것을 구하는 편이 낫겠습니다. 그들은 신유도 믿지 않고 하나님도 믿지 않습니다. 수컷과 함께하여 생명을 접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이유입니다. 사실입니다. 차라리 둥지를 비우고 다시 시작하는 편이 낫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대단한 집사이고, 그를 잘 다듬어 이런저런 이름으로 부르며, 등을 두드려 주고, 교적부에 이름을 올려 주어도, 다시 태어나기 전까지는 여전히 죄와 범법 가운데 죽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진리입니다.
자, 보십시오. 빨리 돌아가겠습니다. 영이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어린 처녀를 덮으셨습니다. 그리고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여인의 태에 혈세포 하나를 창조하셔서 아들, 곧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성막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아멘! 그러므로 우리는 성관계에서 비롯된 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창조된 피, 곧 하나님 자신의 피로 구원받습니다. 그분이 바로 갈보리 십자가에서 흘려진 피이셨습니다. 제가 구원과 신유를 믿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갈보리 십자가에서 그분의 아들의 혈관을 통해 쏟아진 것은 하나님 자신의 피였기 때문입니다. 아멘. 그렇기에 우리는 반대에 맞서 서서 “이것이 옳습니다!” 하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본이 되는 사실로 돌아가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알아보면, 여러분이 어디에 서 있는지 알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피로 구원받습니다.
이 어린 처녀는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보십시오. 제가 마리아를 좋아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아멘. 그 설교자 사가랴처럼 의심하는 대신, 그녀는 “주의 여종을 보소서. 당신의 말씀대로 그 일이 내게 이루어지리이다.” 했습니다. 그녀는 사가랴처럼 모든 것을 따져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보십시오, 제 아내는 늙었습니다.” 하며 이런저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예가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성전에 있던 한나를 보십시오. 사라를 보십시오. 나이 많은 여인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아 아이를 낳은 일이 많았습니다. 그에게는 예가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는 일을 믿어야 했습니다. 제가 마리아를 좋아하는 이유는 이것입니다. 그녀는 생명을 느끼기 전에, 겉으로 드러나는 신체적인 변화가 있기 전에, 몸에서 무언가 하나라도 멈추기 전에, 생명이든 무엇이든 느끼기 전에, 밖으로 나가 자기가 아기를 낳을 것이라고 간증하기 시작했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믿을 마리아들을 더 허락하소서! 하나님께서 그분의 천사를 통해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어떤 일이 일어나든 상관없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믿었으므로 아기를 낳을 것이었습니다. 아멘.
오늘 오후 이 청중 가운데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우리 중에 아픈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믿고 기뻐하기 시작하십시오. 마리아는 사람마다 찾아다니며 말했습니다. “제가 아기를 낳을 거예요.” “네가 어떻게 알아?”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처녀가 말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저는 그것이 좋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녀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믿고 기뻐하기 시작했습니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누군가에게 가서 알려야 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은 누구나 다른 누군가에게 알려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길을 떠났습니다. 천사가 엘리사벳에 관해 말해 주었습니다. 엘리사벳은 그녀의 사촌이었습니다. 그녀는 엘리사벳을 찾아가야 했습니다. 그래서 나사렛 거리를 지나 유대로 나가고, 산간 지방으로 올라가 엘리사벳을 찾아갔습니다. 자기에게 일어날 일을 알려 주려고 말입니다. 마리아는 엘리사벳이 이미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되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두 사람은 함께 기뻐하는 시간을 갖게 될 것이었습니다.
자, 보십시오. 엘리사벳을 만나러 올라오는 마리아가 보입니다. 엘리사벳은 마리아가 오는 것을 보고 맞으러 나옵니다. 아마 달려 나가 팔로 감싸 안고 껴안으며 입을 맞추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오, 엘리사벳, 만나서 정말 기뻐요.” “마리아, 나도 너를 보니 정말 기쁘구나.”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 인사했습니다. 서로 사랑했습니다. 이제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거의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사랑 말입니다. 형제 여러분, 참으로 안타깝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더 이상 서로를 돌보지 않습니다. 예전에 우리가 시골에서 농장을 갖고 살 때는 이웃에 누가 아프면, 우리가 그 집에 가서 옥수수를 베어 주거나 장작을 패서 들여다 주었습니다. 도울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이웃이 죽었다는 것도 신문에서 읽어야만 압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지냅니다. 형제 사랑이 끊어졌습니다. 사실이 아닙니까?
얼마 전에 누군가와 차를 타고 가고 있었는데, 제 아내를 아는 한 여자가 거리를 지나가다가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했습니다. 저는 “당신도 저분에게 인사했어요?” 하고 물었습니다. 아내는 “네.” 했습니다. 저는 “난 못 들었는데요.” 했습니다. 아내는 “돌아보고 웃었잖아요.” 했습니다. 저는 “그건 아니지요. 그저 실없이 씩 웃은 거잖아요.” 했습니다. 사람들은 돌아다니며 “하.” 하고 웃습니다. 저는 그런 것이 싫습니다. 여기 마이애미에서 집회를 마치고 나오던 때였습니다. 보즈워스 형제님이... 그곳에 어떤 공작부인이 있었는데, 천막의 작은 가림막 뒤쪽에 있었습니다. 보즈워스 형제님이 “브래넘 형제님, 우리가 이곳을 쓰도록 해 준 공작부인이 형제님과 악수하고 싶어 합니다.” 하셨습니다. 저는 “그분도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나을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저 한 여인일 뿐입니다.” 했습니다. 아시겠죠. 그분은 “이야기는 나눌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곳을 지나가게 되면 악수는 할 수 있다고 했지요.” 하셨습니다. 저는 “그건 형제님께 맡기겠습니다.” 했습니다.
그래서 그 일요일 오후 설교 집회가 끝난 뒤 뒤쪽으로 걸어갔습니다. 그 여자는 아스피린 상자 안에 다 넣을 만한 양의 옷만 입고 있었습니다. 그 여자가 다가왔습니다. 손잡이가 달린 안경을 이렇게 멀리 내밀어 들고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안경을 그렇게 멀리, 그렇게 쭉 내밀고는 아무도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 그 여자는 이렇게 고개를 치켜들고 안경 너머로 보면서 다가왔습니다. 양팔에는 팔찌가 주렁주렁했고, 귀걸이는 마귀의 안장에 달린 등자처럼 늘어져 있었습니다. 그렇게 안경을 눈앞에 대고 걸어 내려오더니 “브래넘 박사님이신가요?” 했습니다. 저는 “아닙니다, 부인. 저는 브래넘 형제입니다.” 했습니다. 그 여자는 “아, 브래넘 박사님, 만나 뵙게 되어 더없이 반가워요.” 했습니다. 크고 살진 손을 이렇게 치켜들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손을 잡고 “자, 이리 내려 주십시오. 그래야 다음에 다시 뵈면 알아보지요.” 했습니다.
그 모든 것은 다 꾸며 내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허튼짓입니다! 그렇습니다. 도대체 여러분이 누구입니까? 50달러짜리 코트를 입고, 비가 오면 코로 빗물이 들어가 익사할 만큼 콧대를 치켜들고 다니면서, 자신이 대단한 사람인 줄 압니다! 여러분은 여섯 피트짜리 흙덩이입니다. 여러분의 혼은 구원받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잃어버린 자입니다! 달리 빠져나갈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세상이 그렇습니다. ‘아, 우리는 대단한 사람들이야. 번듯한 곳에 속해 있지.’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을 비웃고 홀리롤러라고 부릅니다. 오, 참으로. 마리아가 달려 나가 엘리사벳을 붙잡고, 두 사람이 서로 팔로 감싸 안는 모습이 보입니다. 마리아가 “오, 엘리사벳, 만나서 정말 기쁘고 반가워요.” 하고 말하는 것이 들립니다. 엘리사벳이 어머니가 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되신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하고 말합니다. 자, 잠시 그 장면을 극처럼 생각해 봅시다.
엘리사벳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 들립니다. “그래, 마리아야, 맞아. 하지만 걱정이야.” “왜요?” “임신한 지 여섯 달인데 아직 생명의 움직임이 없거든.” 그것은 전혀 정상적이지 않은 상태입니다. 두세 달쯤이면 움직이는데 말입니다. 그녀는 “여섯 달인데 생명의 움직임이 없어서 걱정이야.” 합니다. 그러자 마리아가 말합니다. “저라면 걱정하지 않겠어요. 들어 보세요. 엘리사벳이 어머니가 되실 것을 알아요. 천사가 그렇게 말해 주었거든요. 그런데 그 천사가 제게도 나타나서, 제가 남자를 알지 못하면서도 아들을 낳을 것이고, 그 이름을 예수라 할 것이라고 했어요.” 예수라는 그 이름이 죽을 인간의 입술에서 처음 나오는 순간, 어머니 태 속에 있던 그 죽은 아기가 성령침례를 받고 기뻐서 뛰고 껑충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형제 여러분! 그 이름이 여인의 태 속에 있는 죽은 아기까지 기뻐 뛰게 한다면, 다시 태어난 교회에는 얼마나 큰 일을 일으켜야 하겠습니까? 분명합니다. 예수라는 이름이 죽을 인간의 입술을 통해 처음 발해졌을 때 말입니다! 아멘. 마귀들이 소리 지르며 나오고, 죄인들이 흐느껴 우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 이름을 함부로 내뱉고 어설프게 공경하면서 그 이름의 권능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 그 이름을 믿고 공경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것입니다.
그녀가 “네 문안하는 소리가...”, “복이 있도다...” 했습니다. 성령께서 그 어머니에게도 임하셨습니다. 그녀는 “내 주의 어머니가 어찌 내게 오시는가?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리자마자 내 아기가 태 속에서 기뻐 뛰놀았도다!” 했습니다. 소리 높여 외치는 것이 무슨 새로운 일이라고 합니까? 아니,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신앙입니다! 소리 높여 외치는 신앙 말입니다. 세상이 세워지기도 수천 년 전에, 하나님께서 어느 날 욥에게 물으셨습니다. “내가 세상의 기초를 놓을 때, 새벽별들이 함께 노래하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기뻐 소리를 지를 때, 네가 어디 있었느냐?” 무슨 새로운 것이라고 합니까? 우리는 그저 옛날에 있던 것을 새로 체험한 것뿐입니다. 분명합니다. 기뻐 소리를 질렀습니다! 얼마나 굉장한 시간이었겠습니까! 참으로!
이 아기는, 이 요한이 태어나면 어떤 아기가 될 것이었겠습니까? 참으로! 그가 광야에서 나오는 모습이 보입니다... 칼라를 뒤로 돌려 입고 하루 세 번씩 닭튀김을 먹는 그런 모습이 아닙니다. 아닙니다! 낡은 양가죽을 몸에 두르고 낙타 가죽 띠를 차고 있었지만, 그는 회개를 전했습니다! 온 주변 지역을 뒤흔들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형제 여러분, 그리스도를 단순하면서도 권능 있게 전하면, 그때마다 나라들을 뒤흔들 것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에게 실재로 드러나실 때 말입니다. 분명합니다. 언제나 그랬습니다. 모든 시대를 통틀어 하나님의 권능은 언제나 그분의 백성과 함께했습니다. 어젯밤에 이스라엘 자손 이야기를 짚어 나가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이 어떤 곳에 이르렀을 때, 우리도 때때로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그들이 가데스바네아에 이르렀을 때 막막해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길을 마련하셨습니다. 홍해에 이르렀을 때는 하나님께서 홍해를 열어 주셨습니다.
그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머리 위에 빵을 담은 작은 그릇 하나를 인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이 그 나라에서 나왔습니다. 여러분의 악한 짓을 전부 끊을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모습 그대로 오십시오. 그렇게 하면 됩니다. “이것을 버리고, 이런저런 것을 해결한 다음에 오겠습니다.” 하고 말합니다. 지금 오십시오. 있는 모습 그대로 오십시오. 보십시오. 그들이 건너편으로 건너갔을 때 빵이 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길을 마련하십니다. 그날 밤 그들이 잠자리에 들었을 때, 선지자가 밖으로 나가 기도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다음 날 아침 깨어나 온 땅을 둘러보니, 서리처럼 만나가 땅에 가득 내려 있었습니다. 꿀과 과자 같은 맛이었습니다. 그들은 나가서 그것을 주워 먹기 시작했습니다. 오,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만나 말입니다. 광야를 지나는 여정 전체가 오늘날 우리의 만나를 보여 주는 참으로 아름다운 모형이었습니다. 그들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셨습니다... 곧 만나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반석에서 나는 꿀맛이로구나.” 하고 말했습니다. 여러분도 그것을 맛본 적이 있습니까? 하늘로부터,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하늘의 만나를 말입니다. 제가 맛본 어떤 꿀보다도 더 답니다.
그런데 얼마 안 가 사람들은 매번 배급받을 필요가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나가서 오랫동안 먹을 만큼 넉넉히 가져오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는 것도 그와 같습니다. 부활절에 한 번 가고는 다음 해까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에 규모가 큰 어느 복음주의 교회의 목사님이 제게 말했습니다. “브래넘 목사님, 저는 부활절이면 교인들에게 늘 즐거운 성탄절을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고 인사합니다. 다음 부활절까지는 다시 보지 못할 테니까요.” 왜 그런지 아십니까? 그때도 사람들이 그렇게 해 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날마다 새로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져다가 남겨 둔 것은... 그래도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했는데, 그것이 상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꿈틀거리는 벌레가 생겼습니다. 쓸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체험 중 많은 것이 그렇습니다. 오순절 신앙 안에서도 그렇습니다. 거기에 꿈틀거리는 벌레가 잔뜩 생겼습니다. 그것을 없애야 할 때입니다. 40년 전에 우리가 무엇을 했느냐가 아니라 오늘 무엇을 하느냐입니다. 오늘 제가 하나님과 함께하는 체험은 무엇입니까? 상해 버렸습니다. “20년 전에는 놀라운 체험을 했습니다.” 하고 말합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오래전에 그분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자, 보십시오. 저는 이 대목이 좋습니다. “꿀맛이 난다.” 했습니다. 다윗이 생각납니다. 다윗은 목자였습니다. 옛날 목자들은 옆구리에 이런 작은 주머니를 차고 다니곤 했습니다. 그 안에 꿀을 넣었습니다. 자신들도 조금씩 먹었습니다. 그런데 양이 병들면 석회암 바위로 갔습니다. 꿀을 조금 꺼내 바위에 골고루 발랐습니다. 그러고는 아픈 양을 그 바위 가까이 데려왔습니다. 아픈 양은 꿀을 먹으려고 핥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바위의 석회질도 핥아 먹게 되어 그 아픈 양이 나았습니다.
그것을 보니 이런 생각이 듭니다. 형제 여러분, 오늘 오후 제게는 꿀이 가득 든 주머니가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반석이신 그리스도 예수님께 바르겠습니다. 그러니 아픈 양들인 여러분은 그것을 핥기 시작하십시오. 제가 말씀드리지만,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아멘. 저는 그 꿀을 교회에 바르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있어야 할 곳, 여러분을 치유할 권능과 구원이 있는 그리스도 예수님께 바르겠습니다. 그러니 아픈 양들인 여러분은 어서 핥기 시작하십시오. 금세 낫지 않는지 보십시오. 반석이신 그리스도 예수님 위에서 말입니다. 핥고, 핥고, 핥고, 또 핥습니다. 더 많이 핥을수록... 반석에는 병을 낫게 하는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옛날에는 광견병 치료용 돌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누가 개에게 물리면... 미친개에게 물리면, 그 사람을 데려다가 그 돌에 붙여 놓았습니다. 그가 돌에 붙어 있으면 나았고, 붙어 있지 않으면 죽었습니다. 저는 한 반석, 곧 영원한 반석을 압니다. 죄로 병들었든 몸이 병들었든, 누구나 그 영원한 반석으로 와서 거기에 붙어 매달릴 수 있습니다. [불명확한 말.]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갈보리의 치유하는 권능으로 이끌어 주실 의무가 있습니다. 오늘날 그 권능이 그리스도 예수님이라는 반석을 통해 흐르며, 병든 모든 사람을 치유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죄인을 온전하게 하고 낙심한 사람에게 기쁨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위에서 말입니다. 형제 여러분, 오늘날 이 나라 곳곳에 필요한 것은 종교 모임이 아닙니다. 그런 모임은 이미 온 나라에 너무나 많습니다. 얼마 전에 명목상의 교회들 사이에 아주 잘 알려진 한 전도자가 이 나라를 순회했습니다. 보스턴과 그 위쪽의 또 다른 곳에 갔는데, 여섯 주 만에 2만 명이 회심했다고 말했습니다.
평신도들과 목회자들로 이루어진 한 무리가 되돌아가 그 카드들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런데 두 달쯤 뒤에는 끝까지 남아 있는 사람을 스무 명도 찾지 못했습니다. 왜입니까? 충분히 나아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끝까지 붙들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경에 나오는 참된 옛 바울의 부흥이며, 교회에서 다시 성령이 선포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기 있는 제 형제와 제가 함께했던 때가 생각납니다. 어느 날 우리는 개울에 나가 있었습니다. 어린 소년들이었지요. 그러다가 거북 한 마리를 발견했습니다. 여기 인디애나에서는 그것이 어떤 것인지 아실 것입니다. 다리를 휘저으며 걷는 모습이 우습게 생겼지요. 우리는 그것이 너무 재미있어서 다가갔습니다. 녀석은 “휙.” 하더니 제 껍데기 속으로 쏙 들어갔습니다.
신유를 믿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납니다. 도시에 대전도 집회가 열리면 “흥, 거기 가지 마십시오. 저 홀리롤러 무리에게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합니다. 아시겠죠, 바로 그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기다려, 내가 움직이게 해 줄게.” 했습니다. 나뭇가지 하나를 잘라 녀석을 세차게 때렸습니다. 아무 소용도 없었습니다. 때려서 억지로 받아들이게 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은 도무지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저는 “내가 너를 가만두나 봐라.” 했습니다. 거북을 개울로 데려가 물속에 집어넣었습니다. 거품 몇 개만 올라왔을 뿐, 그게 다였습니다. 형제 여러분, 이런 식으로 침례를 주든 저런 식으로 주든, 머리부터 넣든, 뒤로 넣든, 세 번을 위아래로 담갔다 꺼내든 네 번을 하든, 원하는 대로 하십시오. 마른 죄인으로 들어가 젖은 죄인으로 나옵니다. 여전히 죄인입니다.
제가 어떻게 했는지 아십니까? 작은 불을 피우고 그 녀석을 그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러자 움직였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교회에 가입하고 침례를 놓고 논쟁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교회라도 움직이게 할 성령과 불입니다. 성령께서 다시 교회에 계시게 하고, 사도들과 교사들과 그 밖의 이들이 제자리에 서게 하십시오. 그러고 나서 성령께서 그런 교회를 다스리시게 해 보십시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십시오. 표적과 이적과 기적들이 따를 것입니다. 분명히 그럴 것입니다. 여러분이 제가 미쳤다고 생각하는 줄 압니다. 이 일이 있고 나면 저를 홀리롤러라고 부르실 테니, 지금부터 그렇게 부르셔도 좋습니다. 어쩌면 제가 그런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여러분도 여기 서 있는 제가 느끼는 것을 느낀다면 똑같이 하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에게 복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만나가 어떻게 제 생각에 떠올랐는지... (그 이야기를 다시 떠나기 전에 말입니다.) 그것은 모형이었습니다. 옛것은 모두 새것의 모형이었습니다. 성령께서 만나를 비처럼 내리시는 것이 보입니다. 그 만나는 그들의 양식으로 계속 주어질 것이었습니다. 여행 내내 한 번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자, 보십시오. 만나가 계속 내렸습니다. 모세는 아론에게 “나가서 만나를 몇 오멜 가득 담아 와서, 저 안쪽 지성소의 궤 주위에 두라. 이후에는 제사장마다...” 잘 들으십시오. “제사장 직분에 들어오는 모든 제사장이 처음 내렸던 원래의 만나를 한입 먹을 수 있게 하라.” 했습니다. 그 안에서는 만나가 상하지 않았습니다. 지성소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사장 직분에 들어오는 사람마다 제사장으로 세워질 때, 만나를 한 움큼 떠서 입에 가득 먹여 주었습니다. 그러면 처음 내렸던 원래의 만나를 맛보았습니다. 성령을 보여 주는 얼마나 놀라운 모형입니까! 오순절 날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복을 쏟아 주셨을 때, 그들은 모두 작은 방 안에 문을 닫고 모여 있었습니다. 120명이었고, 여자들과 남자들이 함께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소리 같은 소리가 나고 그들이 앉아 있던 온 집안에 그것이 가득했습니다. 갈라진 혀들이 그들 위에 머물렀습니다. 그들은 성령으로 충만해졌습니다. 거리로 나가 간증하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자, 보십시오. 그것이 예수님께서 오실 때까지 이 시대를 지나 성령의 교회를 지탱해 줄 우리의 만나였습니다. 할렐루야! 보십시오. 얼마나 오래 지속될 것이었습니까? 자기 성경도 모르는 선생님, 말씀해 보십시오.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그들이 비틀거리고 소리 지르기 시작하자, 바깥의 교권적인 순복음의 놀라운... 아니, 광신적인 세상이 그에게 와서 “이 사람들이 술에 취했다!” 했습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가톨릭 친구 여러분, 그리고 다른 모든 분들도 들으십시오. 복된 처녀 마리아도 그들 가운데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들 하나님의 어머니조차 성령으로 가득 차 술 취한 여자처럼 행동하게 되기까지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오게 하지 않으셨다면, 여러분은 그보다 못한 것으로 어떻게 들어가려 하십니까? 어떻게 되겠습니까? 스스로 생각해 보십시오. 성경은 마리아가 그 안에 있었다고 말합니다. 바로 그리스도의 어머니도 오순절로 가서 예루살렘 성 안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성령으로 너무나 충만해져서 술에 취한 것처럼 비틀거릴 때까지 말입니다! 아멘! 그것이 진리입니다! 그것이 성경입니다.
그들이 밖에 나와 있을 때, 겁쟁이였던 그 베드로가 성령으로 충만해진 뒤 비누 상자 위에... 아니, 나무 그루터기 같은 것 위에 올라섰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웃으며 “저 홀리롤러 무리 좀 봐. 저기 있는 저들을 봐. 술에 취한 것처럼 행동하는군. 비틀비틀하고 있어.” 했습니다. 그런 집회에 가 보신 적이 있습니까? 참으로 좋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모형인 모세를 보십시오. 그들이 홍해를 건너 저편에 이르렀을 때, 모세는 뒤를 돌아보고 그 모든 노역 감독들이 물에 빠져 죽은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를 통과하여, 깨끗하게 하심에서 거룩하게 하시는 권능으로 나아가 죄로부터 구별되는 것의 모형입니다. 뒤를 돌아보면 담배 피우는 일, 술 마시는 일, 카드놀이 모임, 영화, 세상의 온갖 저속한 것들이 모두 그리스도의 피 안에서 죽어 있습니다. 모세는 두 손을 들고 영 안에서 노래하기 시작했습니다. 여선지자 미리암은 탬버린을 들고 물가를 따라 내려가며 뛰고, 탬버린을 치고, 춤을 추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딸들도 그녀를 따라 악기를 치고 노래하며 춤을 추었습니다. 그것이 참된 옛 성령 야외 집회가 아니라면, 저는 그런 집회를 본 적이 없습니다. 아멘. 영 안에서 노래하고, 영 안에서 춤추었습니다. 아멘.
형제 여러분, 보십시오. 그들이 모두 크게 기뻐하고 있을 때, 저 반대쪽에서는 사람들이 조롱하고 웃으며 그들을 놀렸습니다. 베드로가 비누 상자나 나무 그루터기 위에 서서 말했습니다. “너희 유대 사람들아, 이것을 너희에게 알려 주리니 너희는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이 사람들은 너희가 짐작하는 것처럼 술 취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지금은 낮의 세시니라.” 술집은 문도 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것이 바로 그 말씀이니라!” 했습니다. 형제 여러분, 이것이 그 말씀이 아니라면, 저는 그 말씀이 이루어질 때까지 이것을 붙들고 있겠습니다. 아멘. 그가 말했습니다. “이것은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로 그것이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마지막 날들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 위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아들딸들은 예언할 것이요, 내 여종들과 시녀들 위에도 내 영을 부어 주리라.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 아래로 땅에서 표적들을 보이리니, 불기둥들과 연기니라. 크고 두려운 주의 날이 이르기 전에, 누구든지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그들은 마음속으로 찔려 “사람들아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까?” 했습니다. 베드로는 “회개하고 너희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 죄들의 사면을 얻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성령님을 선물로 받으리라.” 했습니다. 무엇입니까? 만나입니다. 우리에게 한 항아리 가득 있으니 저 안에 두려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자녀들과 자녀들의 자녀들,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 그리고 오늘날 성령을 받기 원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같은 만나가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그들은 성령처럼 보이는 어떤 것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오순절 날 내렸던 원래의 만나를 입에도 가득, 마음에도 가득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세대를 위해 그것을 간직해 두셨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같은 결과가 나타납니다. 술 취한 사람들처럼 비틀거리고, 영으로 충만하며, 표적과 이적이 나타납니다. 아멘. 휴, 경건한 감동이 느껴집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복을 주셨으며, 내려와 계시겠다고 약속하셨는지 보십시오.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너희 자녀들과 자녀들의 자녀들,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 곧 주 우리 하나님께서 부르실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니라.” 인디애나주 코너스빌이든, 어디든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여전히 부르고 계신다면 모든 제사장에게 여전히 주고 계십니다. 우리가 제사장들입니까? 왕가의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민족으로서, 하나님께 나아가 영적 희생물을 드립니다. 무엇입니까? 그분의 이름을 찬양하는 우리 입술의 열매입니다. 오늘 오후에는 제가 침을 참 많이 흘리는군요. 왜 그런지 아십니까? 제가 막 가나안으로 건너와 이 새 포도를 좀 먹고 있거든요. 잔뜩 취해 가고 있습니다. 아멘! 그래서 침이 흐르는 것입니다. 좋습니다! 오, 이것은 실재입니다. 오, 이 아기가 어떤 아기였을지 알겠습니다. 태어나기도 전에 어머니 태 속에서 뛰었고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는 위선자가 되지 않을 것이었습니다. 자신이 말하는 것을 실제로 지니게 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와서 성령을 전했습니다.
그는 거기 서서 설교했습니다... (서둘러야겠습니다. 시간이 참 빨리 가는군요. 저는 이제 막 아주 좋은 기분이 들기 시작했는데 말입니다.) 보십시오. 거기서 잠시 눈여겨보면...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우리 모두 그분의 탄생, 태어나셨을 때의 일과 그분의 사역을 알고 있습니다. 이제 빨리 본문으로 가겠습니다. 그분께서 오시는 모습을 보십시오. 어느새 그분은 인기가 너무 높아져서 나사로의 집을 떠나셔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집을 떠나시자 슬픔과 질병이 들어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집을 떠나시면 슬픔과 질병이 들어올 것입니다. 그런데 이 경우에는 누가 그분을 억지로 내보내거나 쫓아내서 떠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환상을 보셨고, 하나님께서 다른 곳으로 보내고 계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나사로가 병들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의 비난하는 사람들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들이 “어허, 그 친구는 어디 갔나? 그 신유를 행하는 자는 어디 있나?” 했습니다. “사람을 보내 오시라고 했지만, 그분은 그 청을 외면하셨습니다.”
오, 이런! 목사님께 사람을 보내 와 달라고 했는데, 그 청을 외면하고 오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제 그 목사하고는 더 이상 상종하지 않겠어. 여기 하나님의 성회로 가서 가입하든지, 이 교회에 가입하든지, 저 교회에 가입하겠어.” 그러니 여러분이 아무 데도 이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도 제게 이런 말을 하라고 시킨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형제 여러분, 목사님을 신뢰할 수 없다면 그분을 그만두게 하십시오.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목사님을 신뢰한다면 그분은 오늘 여러분을 도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분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믿으십시오. 때로는 여러분이 손가락을 딱 튕길 때마다 올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분은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일을 따라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말하기를... 다시 사람을 보냈습니다. 다시 사람을 보내자 그분은 더 멀리 가셨습니다. 참, 얼마나 어려운 형편입니까! 나사로는 병이 아주 심해져서 죽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데려다가 시신을 방부 처리했습니다. 그리고 무덤으로 옮겨 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때 그가 죽은 줄 아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이야기입니다. 이제 그분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십니다. 어떤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 들리는 듯합니다. “그래, 그 홀리롤러가 이리로 오고 있다더군. 그 신유를 행하는 자가 또 온대. 허, 나사로는 벌써 죽었잖아. 아, 그분이 여기 계셨으면 고쳐 주셨을 텐데.” 분명 그렇습니다. 하지만 마르다는... 저는 마르다가 좋습니다. 여러 일에 그토록 굼뜨던 사람이었지만, 보십시오. 마르다가 온갖 일을 하느라 분주한 동안, 마리아는 줄곧 예수님의 발 앞에 앉아 듣고 있었습니다. 이제 그것이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자, 그녀가 달려 나갑니다... 예수님께서 오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거리를 따라 내려옵니다. 비난하는 사람들이 “이제 어디 가나?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이야? 그분을 만나러 나가는 모양이군.” 하고 말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고 그대로 헤치고 나아갔습니다. 예수님께서 계신 곳까지 나아갔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그녀는 그분을 나무랄 권리가 있어 보였습니다. “왜 제 오라버니에게 오지 않으셨습니까?” 하고 말할 수도 있었습니다. 잘 들으십시오. “저희가 부를 때 왜 오지 않으셨습니까? 저희는 교회를 떠나고 모든 것을 버리고 제사장도 떠났습니다. 그분의 뜻을 거슬렀고, 주님을 저희 집에 모셨습니다. 저희 돈을 드리고, 저희 음식으로 대접하고, 옷도 드렸습니다. 그런데 제 오라버니가 병들어 사람을 보내 오시라고 했을 때, 저희에게 등을 돌리고 떠나셨습니다.” 그 모든 말이 사실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형제 여러분, 이제 한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어떤 은사를 대하든, 여러분의 태도, 여러분이 그것을 대하고 다가가는 자세가 그것에서 무엇을 받게 될지를 결정합니다. 여러분은 그저 잘못된 방식으로 하나님께 나아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 안으로 걸어 들어오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분께 달려 나가 그분의 발 앞에 엎드려 “주님.” 하고 말했습니다. 그분은 바로 주님이셨습니다. “주여,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으리이다.”
오, 저는 그것이 좋습니다. 그녀는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았습니다. 그녀가 그런 믿음을 어디서 얻었을까 생각해 보면, 아마 성경에서 예전에 수넴 여인이 있었던 이야기를 읽었을 것입니다. 그 여인은 자녀가 없었는데 엘리사가 축복하여 아기를 낳았습니다. 그 아이가 열 살이나 열두 살쯤 되었을 때였습니다. 어느 날 (제 생각에는 그 어린아이가 일사병에 걸렸던 것 같습니다) 오전 11시쯤에 들어와 “내 머리, 내 머리!” 하고 외쳤습니다. 아버지는 그를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아이는 들어갔고, 정오에 죽었습니다. 그 여인은 선지자가 머물 작은 방을 지어 놓았었습니다. 그 어머니를 보십시오. 얼마나 알맞게 행동했습니까. 죽은 어린 아들을 안아 선지자의 방으로 올라가 선지자의 침상에 눕혔습니다. 아이를 눕히기에 좋은 곳이었습니다. 그녀는 “지금 노새에 안장을 얹으십시오. 앞으로 가고, 내가 명하지 않으면 멈추지 마십시오.” 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좋습니다. 남편은 “오늘은 월삭도 안식일도 아니니 선지자가 거기 없을 텐데.” 했습니다. 그녀는 “모든 것이 잘될 거예요.”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선지자들에게 모든 것을 알려 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도 아시지요. 엘리야가 자기 동굴 곁에 서 있다가 바라보고 게하시에게 말했습니다. “저기 그 수넴 여인이 오는구나. 울고 있구나. 무슨 일이 있나 보다. 하나님께서 내게 숨기셔서 나는 알지 못한다.” 아시겠죠.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에게 알려 주셔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수넴 여인이 곧장 달려왔고, 게하시가 그녀에게 달려 나갔습니다. 엘리야가 “네가 평안하냐? 네 남편이 평안하냐? 아이가 평안하냐?” 하고 물었습니다. 자, 제가 좋아하는 대목이 여기 있습니다. 그녀는 “모든 것이 평안합니다.” 했습니다.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녀는 그가 하나님의 선지자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사람에게 가기만 하면 아이가 왜 죽었는지 알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괜찮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선지자 안에 계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의 발 앞에 엎드려 자기 사정을 털어놓았습니다. 선지자는 게하시에게 “허리를 동이고 내 지팡이를 가져가라. 누구든 네게 말을 걸어도 말하지 말고, 가서 이 지팡이를 죽은 아이 위에 놓으라.” 했습니다. 저는 바울이 자기 몸에서 손수건을 가져가게 한 것을 여기서 배웠다고 생각합니다. 엘리야는 자기가 만지는 것은 무엇이든 복을 받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 그 여인으로 하여금 그것을 믿게만 할 수 있다면 말입니다. 그러나 그녀의 믿음은 지팡이에 있지 않았고 선지자에게 있었습니다. 그녀는 “주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오니, 제가 당신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바로 곁에 있겠습니다.” 했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자기도 허리를 동이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길을 나섰습니다. 게하시는 그보다 앞서 갔다가 돌아와 “아이에게 생명이 없습니다. 죽었습니다.”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엘리야가... 죽은 아이가 누워 있고 사람들이 곡하며 울고 있는 곳에 도착합니다. 그를 보십시오. 아이가 있는 방으로 들어갑니다. 방 안을 이리저리 걷습니다. 저는 그것이 좋습니다. 한 번. “주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방 안을 이리저리 걷습니다. 밖에서는 모두 울부짖고, 걷잡을 수 없이 소리를 지르며 야단이었습니다. 그는 그저 방 안을 이리저리 걸었습니다. 가서 자기 몸을... 한 사람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그와 같은 성정을 지닌 사람들이라고 말했습니다. 천사가 아니라 한 사람입니다. 사람이며 선지자입니다. 그는 죽은 아이 위에 자기 몸을 뉘었습니다. 잠시 그렇게 누워 있었습니다. 자기 입술을 아이의 입술에, 코를 아이의 코에, 이마를 아이의 이마에, 손을 아이의 손에 맞대고 그렇게 누워 있었습니다. 제 생각에 엘리야는 작고 마른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 바로 위에 몸을 뉘었습니다.
그가 몸을 일으켰습니다. 아이를 만져 보니 따뜻해지고 있었습니다. 다시 이리저리 걷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그분의 선지자 안에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시 이리저리 걸었습니다. 가서 죽은 아이 위에 자기 몸을 다시 뉘었더니 아이가 일곱 번 재채기를 했습니다. “이 아이를 데리고, 가서 수넴 여인을 이리로 데려오라.” 했습니다. 아이가 살아났습니다. 그 일곱 번의 재채기를 살펴볼 시간이 있으면 좋겠습니다만, 서둘러야 합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마리아는... 아니, 마르다는 틀림없이 그 이야기를 읽었을 것입니다. 그 수넴 여인이 하나님께서 그분의 선지자 안에 계심을 알았다면, 분명히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 안에 계신다는 것을 마르다도 알았습니다! 그 여인은, 곧 수넴 여인은 선지자라는 하나님의 선물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올바로 다가갔습니다. 마리아도 그분의 아들 안에 있는 하나님의 선물을 알아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분께 달려와 엎드렸습니다. (자, 잠시 잘 들으십시오.) 그분의 발 곁에 엎드려 말했습니다. “주여,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으리이다. 그러나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 하나님께 구하시면 하나님께서 행하시리이다.”
그 청년은 저기 누워 있었습니다. 죽은 지 벌써 나흘이 되어 벌레들이 그 몸을 뚫고 기어 다녔습니다. 썩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만한 시간이 흘렀으니 코도 이미 내려앉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라도, 주여, 주께서 무엇이든 하나님께 구하시면 하나님께서 행하시리이다.” 여기 계신 분들 중에는 이 근방에 있는 의사란 의사는 다 찾아가 본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의사들이 아마 포기하면서 “당신에게는 희망이 없습니다.”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라도, 주여.” 무엇이든 하나님께 구하시면 하나님께서 행하실 것입니다. 그것을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마음을 바꿉니다. 그분이 그녀를 보시며 “네 오라비가 다시 일어나리라.” 하셨습니다. 그녀는 “예, 주님. 마지막 날에 그가 다시 일어날 줄 압니다. 그는 착한 청년입니다. 마지막 날, 전체 부활 때에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했습니다. 그분을 보십시오. 외모는 대단하지 않으셨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그를 흠모할 만한 아름다움이 없도다.” 했습니다. 아마 자그마하고 여윈 분이셨을 것입니다. 그분은 작은 몸을 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누구든지 살아서 믿는 자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이것을 네가 믿느냐?”
그녀가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모든 바퀴가 정확히 맞아 들어갑니다. 하나님께 무언가를 바라는 한 여인이 온전히 기름부음을 받아 그분 앞에 서서 말합니다. “예, 저는 주님이 메시아이심을 믿습니다.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습니다. 주님은 수확의 주님이십니다. 주께서 무엇이든 하나님께 구하시면 하나님께서 행하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메시아 안에서 그렇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으므로 제가 주님께 구하고 있습니다. 지금 바로 주님 앞에 서 있습니다. 이제라도, 주여, 주께서 무엇이든 구하시면 하나님께서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그분은 “네 오라비가 다시 일어나리라.” 하셨습니다. 그녀는 “마지막 날들에 말이지요.” 했습니다. 그분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누구든지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이것을 네가 믿느냐?” 하셨습니다. 그녀는 “예, 주님. 주님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습니다.” 했습니다.
오늘 오후 여러분은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것이 성령이라고 믿으십니까? 똑같은 태도로 대하십시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십시오. 여러분이 그것을 성령으로 알아보기만 한다면, 필요한 것이 무엇이든 하나님께서 주실 것입니다. 문제는 여러분이 그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슬을 풀어 버리고 “이것은 실재입니다!” 하십시오. 그렇습니다. 그녀는 “주께서 무엇이든 하나님께 구하시면 하나님께서 행하실 것입니다.” 했습니다. 그분은 “네 오라비가 다시 일어나리라.” 하셨습니다. 그녀는 “예, 주님, 부활할 때에 말이지요.” 했습니다. 자, 보십시오. 그분은 “너희가 그를 어디에 두었느냐?” 하셨습니다. 그리고 가십니다. 몇 년 전에 어떤 사람이 제게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정말 그분이 하나님이셨다고 믿으신다는 말씀입니까?” 저는 “예, 그렇습니다.” 했습니다. 그 사람은 “그분이 단지 사람이었음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했습니다. 저는 “그분은 사람 이상이셨습니다.” 했습니다. 그 여자는 “아, 그분은 선지자였지요.” 했습니다. 오늘날 이런 얕은 가르침들이 사람들을 그런 상태로 몰아넣은 것입니다. 저는 “형제님, 그분은 하나님이셨거나, 아니면 속이는 자였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거짓말쟁이였다는 말입니다.” 했습니다.
그 사람은 “브래넘 형제님, 그분은 하나님이 아니셨습니다.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그분이 하나님이 아니셨음을 성경으로 증명할 수 있습니다.” 했습니다. 저는 “성경으로 증명해 주신다면 받아들이겠습니다.” 했습니다. 그 여자는 “좋습니다. 요한복음 11장에서 성경은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무덤으로 내려가실 때 우셨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그분이 사람이었다는 증거입니다. 죽을 인간처럼 눈물을 흘리셨잖습니까.” 했습니다. 저는 “물론 우셨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하나님이자 사람이셨습니다. 나사로의 무덤으로 내려가셨을 때 사람처럼 우셨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 죽어 썩은 채 나흘 동안 무덤에 누워 있었고, 그분이 돌을 굴려 내시자 악취가 사방에 퍼졌습니다. 바로 그렇게 우셨던 그분께서 거기 서서 ‘나사로야, 나오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죽은 지 나흘이 되어, 그 혼도 어딘가로 나흘 길을 가 버린 사람이 일어나 제 발로 섰습니다. 그것은 사람 이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을 통해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자 사람이셨습니다.” 했습니다.
물론 그날 밤 산 위에서 밤새 금식하며 기도하실 때 그분은 사람이셨습니다. 다음 날 아침 내려오셔서 무언가 드실 것을 찾아 저 나무를 살펴보셨지만, 드실 것이 없었습니다. 나무에 무화과가 없었습니다. 배고프실 때 그분은 사람이셨습니다! 그러나 비스킷 다섯 개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5천 명을 먹이셨을 때, 그것은 사람 이상이었습니다. 그분의 아들 안에 계신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루 종일 설교하고 치유하시느라 너무나 지쳐서 그날 밤 저 배에 누워 계셨을 때, 그분은 사람이셨습니다. 제 생각에는 바다의 마귀 만 마리가 그날 밤 그분을 물에 빠뜨리겠다고 맹세했을 것입니다. 그 작은 배가 바다 위에서 병마개처럼 떠다니자 마귀가 “이제 잡았다.” 했습니다. 배가 그렇게 위아래로 요동쳤지만, 그분은 너무 졸리고 지치셔서 그 소동에도 깨어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제자들이 그분을 깨웠습니다. 누워 주무실 때 그분은 사람이셨습니다. 그러나 배의 돛줄에 발을 올려놓고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자 바람과 파도가 그분께 순종했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은 이것을 믿으십니까? 그렇습니다.
갈보리에 달려 비명을 지르며 자비를 구하고,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고 외치실 때 그분은 사람이셨습니다. 온몸의 근육이 떨리고 생명의 피가 뚝뚝 흘러내렸습니다! 그분은 사람이셨습니다! 사람들은 그분을 묻었고, 그분은 사람처럼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부활절 아침에 일어나셨을 때는 사람 이상이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입증하셨습니다! 할렐루야! 한 여인이 그분의 옷단에 손을 대고 완전히 치유받았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믿으십니까? 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고 믿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믿으십니까? 그분이 이 땅에서 행하신 표적과 이적들이 바로 이곳에서 밤낮으로 행해지고 있다고 믿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믿으십니까? 저는 성령께서 지금 바로 이곳에 계시다고 믿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믿으십니까? 여러분이 지금 무엇이든 하나님께 구하면 받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믿으십니까? 할렐루야! 여러분은 제가 미쳤다고 생각하시겠지요. 좋습니다! 저를 그냥 두십시오. 저는 행복합니다.
성령께서 이곳에 계십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믿으십니까? 저는 모든 아픈 사람이 지금 당장 치유받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믿으십니까? 모든 죄인이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믿으십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 이곳에 계십니다! 믿으신다면 일어서십시오. 지금 그분을 찬양합시다. 모두 다, 모두 기도하십시오. 전능하신 하나님, 오소서. 주 예수님, 주님의 성령의 권능을 보내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들에게 복을 내려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