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감사합니다. 잠시 머리를 숙이실까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오늘 오후에 이렇게 모이게 해 주시고, 주님의 무익한 종들인 저희에게 온갖 복을 베풀어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주님, 이 찬송에 담긴 영감을 감사드립니다. 주님께 영감을 받아 이 찬송을 지은 분의 목소리가 바로 이 성막의 통로들을 따라 여러 차례 울려 퍼졌습니다. 그분의 용감한 혼은 오늘 주님의 왕국에서 안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그분을 축복하소서. 그분이 이루신 일들이 오래도록 남게 하소서. 아버지, 저희의 범법을 용서하소서. 이렇게 쓴 위대한 시인을 생각합니다. 위대한 이들의 삶은 모두 우리에게 일깨워 주네 우리도 우리의 삶을 숭고하게 할 수 있음을, 떠날 때 우리 뒤에 남길 수 있음을, 시간의 모래 위에 발자국을. 주님, 저희가 일어나 일하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언제 어떤 일로 부르시든 준비되어 있게 도와주소서. 저희가 실패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게 하소서.
하나님, 이제 오늘 오후 저희에게 복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말씀을 읽는 일을 축복하소서. 저희가 함께 보낼 이 짧은 시간 동안 주님의 복이 저희 위에 머물게 하소서. 아버지, 사랑의 헌금을 감사드립니다. 드린 분들과 드리지 못한 분들 한 분 한 분에게 주님의 복이 머물게 하소서. 이 헌금이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만 쓰이게 하소서. 아버지, 허락하소서. 언젠가 저 더 좋은 땅, 강 양편에 생명나무가 꽃피는 그 강가에 앉을 때, 지금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있는 모든 사람이 그곳에 있게 하소서. 주님, 허락하소서. 그들에게 아름다운 집이 있게 하소서. 저희가 고요한 저녁에 함께 앉아 끝없는 영원을 같이 보낼 수 있게 하소서. 지금 전투가 벌어지는 동안 깃발을 높이 들고 방패를 닦으며 믿음으로 전진하도록 도와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곳에 오니 참 기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모인 곳에 있는 것은 언제나 기쁩니다. 목사님께서 저를 위해 사랑의 헌금을 걷으실 줄은 몰랐습니다. 보통 집회 때 그렇게 해 주시지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분이 저를 위해 사랑의 헌금을 걷으시는 것을 들은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저 자신은 평생 한 번도 헌금을 걷어 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그 일을 잘할 사람은 못 되는 것 같습니다.
오늘 오후에 제 아내가 이곳에 벌써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둘러보았지만 보이지 않더군요. 어머니는 여기 계십니다만… 한번은… 마침 이쪽을 보다가 이 이야기에 나오는 분이 눈에 띄어서, 그 이야기를 해 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전에 말씀드렸을지도 모릅니다. 아시다시피 전도 사역을 하며 이곳저곳 다니다 보면, 살아가면서 겪은 작은 일들을 여러 번 이야기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제가 우리 교회를 목회하던 때가 생각납니다. 제퍼슨빌에 있는 제가 목회하던 교회의 교인 몇 분이 오늘 오후 예배에 와 계십니다. 다음 주말에는 많은 분이 오실 것입니다. 제가 그곳에서 12년 동안 한 푼도 받지 않고 목회했던 것이 생각납니다. 저는 생계를 위해 일을 했고, 할 수만 있다면 지금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제 사역 때문에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한번은 수입으로 지출을 감당할 수 없는 형편에 처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 일을 겪어 보신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아시다시피 우리는 모두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생활비가 모자랐습니다. 그때 저는 상당히 큰 타격을 받은 상태였습니다. 전쟁 중에 고압 전선을 따라 하루에 30마일씩 걸으며 순찰했습니다. 전선을 순찰하는 일이었습니다. 우거진 숲 같은 곳을 헤치고 걸어야 했으니, 아,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요! 하루에 30마일씩, 일주일에 엿새를 걸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임금은 시간당 60센트쯤이었는데, 제 형제들 중에는 시간당 3달러를 버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계속 버텨 나갔습니다. 그들이 저를 저버리지 않았으니, 저도 그들을 저버리지 않고 일했습니다.
그런데 지불해야 할 돈을 내지 못해서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헌금을 걷어야겠어요.” 아내가 말했습니다. “어떻게 하시는지 보겠어요.” 그래서 저는 교회로 갔습니다. 교인들은 기꺼이 헌금을 했을 것입니다. 아주 기쁘게 했을 겁니다. 다만 제가 부탁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날 밤 연로하신 와이즈하트 형제님이… 여기 태버내클에서 오신 여러분 중 많은 분이 그분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지금은 영광 가운데 계신 그분은 연세가 많으셨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헌금을 걷으려고 합니다. 누가 제 모자를 좀 가져다주시겠습니까?” 그러자 제 아내는 ‘이번에는 정말 하려나 보네’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 모자를 가져왔습니다. 내려다보니 제 앞에 자그마한 부인이 앉아 계셨습니다. 있지요, 그런 작은 체크무늬 앞치마를 두르고 계셨습니다. 형편이 어려운 그 연로한 부인은 교회를 위해 기도로 참 큰 힘이 되어 주신 분이었습니다. 그분이 작은 앞치마 한쪽을 들어 올리더니, 손을 넣어 안쪽 주머니에서 위에 딸깍 잠그는 고리가 달린 작은 동전 지갑을 꺼냈습니다. 지갑을 꺼내 5센트짜리 동전 같은 것들을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음, 저는 그걸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 모자를 가져온 와이즈하트 형제님이 저를 보고 계셨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와이즈하트 형제님, 잠깐만요. 그냥 농담으로 한 말입니다. 정말 그러려던 것은 아닙니다.”
흰 수염에 긴 백발을 지니신 어르신이 이쪽에 앉아 계십니다. 그분은 그보다 얼마 전에 자전거를 타고 그곳에 오셨습니다. 벤턴하버 근처에 사시는 제 오랜 친구입니다. 그분이 제게 그 자전거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자전거가 거기 있었습니다. 저는 그 낡은 자전거를 가져다가 새로 칠하고 조금 손질해서 10달러에 팔았습니다. 결국 그 헌금을 걷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도 제 필요를 채워 주셨습니다. 그러니 제게는 헌금을 걷는 일이 좀 어렵습니다. 라이언 형제님, 저는 그 자전거를 분명히 기억합니다. 그렇습니다. 꼭 필요한 때였지요.
날이 아주 덥습니다. 오늘 오후에는 “여정”이라는 주제로 말씀드리려 했는데, 여기 들어온 뒤에 생각을 조금 바꾸었습니다. 너무 더우니 오래 붙잡아 두지 않고 조금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이 지나면 폭염이 한풀 꺾일 거라고 합니다.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어쩌면 다음 일요일이나 이번 주 중에 그 주제를 다루겠습니다. 여러분께 꼭 전해 드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젯밤 이곳에서 오늘은 “내가 광신자인 이유”를 말씀드릴지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제가 왜 광신자(Holy Roller)인지 알고 싶으십니까? 주님의 말씀을 통해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우리 주 예수님을 위해 여러 곳을 다녔고, 많은 교파의 교회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아직 광신자를 한 명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 사람들이 어디 있는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교회 명부와 통계와 온갖 것을 다 살펴보았지만, “광신자들”이라는 이름의 교회는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게 뭔지 아십니까? 마귀가 교회에 붙인 이름일 뿐입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그런 광신자는 없습니다. 저는 한 명도 본 적이 없습니다. 정부도 그런 사람들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그들이 어디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그저 마귀가 그렇게 이름을 붙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다서에서 몇 구절을 읽고 싶습니다. 아주 짧은 책으로, 25절이 전부입니다. 이것을 읽으려고 합니다. 그 전에, 제가 하던 말을 끝내지 못했습니다. 이런 집회 기간에는 저는 신경이 몹시 긴장된 상태에 있습니다. 누구나 아는 일입니다. 특히 환상을 볼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동시에 두 세계에서 살고 있는 셈입니다. 세상이 전혀 알지 못하는 차원에 있으니, 그것을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늘 좀 예민하고 긴장되어 있습니다. 집회가 길어질수록 더 심해집니다. 그러니 꽤 힘이 듭니다.
그래도 이 말씀은 드리고 싶습니다. (혹시 제가 무엇을 잊어버리더라도 일부러 그러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에게 헌금에 대해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금액이 얼마가 되든, 우선 이곳의 집회 경비가 충당되는지 보겠습니다. 부족하면 물론 그 헌금에서 경비를 지불할 것입니다. 경비가 충당되고, 또 충분해서… 제 생활에 필요한 것보다 조금 더 있다면 말입니다. (제게는 아이가 둘… 셋 있고 아내가 있으니, 어떻게든 그들의 생계를 꾸려야 합니다.) 그러고도 남는 것이 있으면 해외 선교 사역에 쓰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마음을 아십니다. 저는 가난하게 이 세상에 왔고, 똑같이 가난하게 떠날 것입니다. 원했다면 백만장자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아시는 그분 앞에서 말씀드립니다. 만일 오늘 오후에 제가 가서 100달러를 내보이지 않으면 죽임을 당해야 한다면, 저는 그저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 어머니 집을 수리하고 있는 시공업자가 지금 이 자리에 계십니다. 제가 그분께 600몇 달러를 빚지고 있는데, 이 집회가 끝나야 갚을 수 있습니다. 아시겠죠? 그분이 어머니 집을 고쳐 주고 계십니다. 여러분께 그저 알려 드리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이, 전도자들이… 어떤 형제가 실제로… 저는 믿지 않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들이 나가서 많은 돈을 걷고 많은 일을 한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달린 일입니다. 저는 제 몫에 대해서만 답하면 됩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니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서 제 마음을 아시고, 제가 받는 대로 드리려고 온 마음을 다해 힘써 온 것을 아십니다. 저는 그것을 곧바로 복음을 위해 다시 내놓습니다. 전부 다 그렇게 합니다. 그날 그분 앞에 설 때 제 보물이 그 위에 있기를 바랍니다. 제가 언제 이곳을 떠날지 모르니, 아시겠죠, 제 보물이 거기 있기를 바랍니다.
자, 유다서에서 이렇게 읽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하나님 아버지에 의해 거룩히 구별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보존되며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여기서 그가 특정한 사람들에게, 또한 특정한 때를 두고 직접 말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너희에게 더욱 많이 있기를 원하노라. 사랑하는 자들아, … 공통의 구원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쓰려고 모든 열심을 내던 차에 성도들에게 단 한 번 전달된 믿음을 위해 너희가 힘써 싸우라고 너희에게 써서 권면할 필요를 느꼈노니 이는 알지 못하는 가운데 기어 들어온 어떤 자들이 있기 때문이라. 그들은 이 정죄를 받도록 … 미리 정해진 자들이요,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색욕거리로 바꾸고 유일하신 주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경건치 아니한 자들이라.
이제 그분께 잠시 기도드리겠습니다. 아버지, 이제 저희를 받아 주시겠습니까? 저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른 채 여기 서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말씀에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고 기록되어 있고, 저희는 그 말씀을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 오후에 제가 왜 주님을 사랑하고, 왜 하나님의 거룩함과 긍휼이 있는 이 아름다운 길에서 주님을 섬기기로 택했는지 설명하려 하오니, 저희를 도와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제가 이렇게 택한 것은 주님의 뜻에 따른 것이라고 믿습니다. 주님의 성령으로 제 입술에 할례를 베푸소서.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그들의 귀에도 할례를 베푸소서. 성령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져다가 저희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마음마다 전해 주소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저는 유다서를 자주 인용하기를 좋아합니다. 그가 쓴 절 수는 많지 않지만, 기록한 내용은 마지막 날들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계속 읽으면, 그가 이어서 마지막 날들에 무엇이 있을지,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예언하며 보여 줍니다. 그것은 정해진 때를 위한 것입니다. 제가 잠시 다루려는 그의 주제는… 그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교회, 곧 하나님 안에 있고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히 구별되어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 쓰고 있습니다. 그들의 믿음을 불러일으켜, 성도들에게 단 한 번 전달된 믿음을 위해 힘써 싸우게 하려고 그들에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모든 사람의 소원이라고 믿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것은 제 믿음에 어긋납니다”라고 말합니다. 여러 믿음이 있지만, “그 믿음”은 하나뿐입니다. 아시겠죠? 그러니 바로 그것이… 우리가 볼 수 있다면… 계속해서 성경을 읽어 보십시오. 아직 읽어 보지 않으셨다면 여러분 모두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마지막 날들에 무엇이 여기 있을지, 사람들이 무엇을 할지를 어떻게 예언했는지 보십시오. 그래서 저는 이 장이 지금 교회에 주어진 것이라고 믿습니다. 성도들에게 단 한 번 전달된 믿음을 위해 여러분이 힘써 싸우도록 말입니다. [브래넘 형제님이 목을 가다듬는다.] 실례합니다.
자, 그것을 알아내려면 처음으로 돌아가야 하겠습니다… 지금은, 아, 제 생각에는, 오늘날 세계에 서로 다른 교파가 600개쯤 있다고들 하는 것 같습니다. 600개 혹은 그 이상입니다. 미국에는 400몇 개의 교파가 있는 것 같습니다. 각기 서로 다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한 몸입니다. 저는 선교침례교회에서 안수를 받았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침례를 받고 들어가 교제를 나눈 교회가 선교침례교회였습니다. 거기서 목사가 되었고 교회가 발급한 자격증도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깨닫기 시작했을 때… 처음부터 이 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어느 교회도 반대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감리교인이든 침례교인이든 무엇이든 간에, 저는 어떤 교회도 비방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특정한 교회가… 제 생각에, 만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늘 오후에 여기 계신다면 오직 그 교회만을 승인하실 그런 특정한 교회는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받아 주실 사람은 마음이 정직한 사람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아시겠죠? 마음이 순수한 자들이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여러분이 감리교인이든 침례교인이든 무엇이든, 마음이 순수한 자들이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그분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비방하려는 것이… (실례합니다.) 이 말로 어떤 조직이나 어떤 무리를 비방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왜 택했는지… 아니, 제가 왜 광신자인지, 그런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왜 그런 사람인지를 말씀드리려는 것뿐입니다.
여기서 유다는 성도들에게 단 한 번 전달된 믿음을 위해 힘써 싸우라고 사람들을 권면하고 있었습니다. 그때가 오순절 후 몇… 약 30년이었는데, 그 짧은 동안에 믿음에서 떨어져 나갔다면, 온갖 교파와 불일치와 여러 가지 것들이 교회 안으로 슬며시 들어와 이런 일들을 일으킨 이 1,900년 동안에 우리는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오늘 오후 우리 각자가 마음속으로 처음으로 돌아가, 성도들에게 단 한 번 전달된 이 믿음이 무엇인지 알아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알아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성도들에게 단 한 번 전달된 믿음이 어떤 믿음이었는지 알아볼 의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성도들에게 단 한 번 전달된 믿음이 어떤 믿음인지 찾을 수 있다면, 우리 마음이 그것을 받아들일 만큼 겸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그저 “이것이 바로 그 믿음이니,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싶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저는 하나님께 교회가 있다고 믿습니다. 이 교회 안에서는, 이것이… 많은 사람이 제가 영원한 보장을 극단적으로 주장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오해입니다. 아닙니다. 제가 영원한 보장을 믿는 것은 오직 이런 뜻입니다. 교회는 영원한 보장을 받았다고 믿습니다. 여러분이 그 교회 안에 있다면, 교회와 함께 보장을 받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그 안에 있는지 없는지는 여러분과 하나님 사이의 문제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나 저는 그 교회가 거기 있을 줄 압니다. 하나님께서 점이나 주름 없이 거기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분의 말씀이 옳다고 믿습니다. 교회가 거기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교회가 올 것이고, 하나님께서 자기 교회를 데리러 오실 것입니다… 아니,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이며, 그분은 점이나 주름 없는 교회를 받아들이실 것입니다.
자, 처음으로 돌아갑시다. 우리가 정말… 사람들의 문제는 여기 중간부터 잘라 내고 “여기서부터 시작하자”라고 하는 데 있습니다. 그것은 사다리를 타고 지붕에 올라가려 하면서 위에서 열 번째 가로대부터 시작하려는 것과 같습니다. 아시겠죠?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이든 맨 기초까지 내려가서, 어디에 기초를 놓고 있는지 알아보는 것입니다. 기초를 찾는 것입니다. 신유에 대해 알고 싶거나 어떤 것이든 알고 싶다면, 곧바로 처음으로, 기초로 돌아가서, 시작한 그 자리 위에 세워 나가십시오.
성경의 모든 가르침의 기초는 창세기에서 시작됩니다. 모든 것이 그렇습니다. 창세기라는 말은 “시작” 또는 “씨앗이 되는 장”을 뜻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2년 동안 줄곧 창세기를 공부했습니다. 아서 핑크와 매킨토시를 비롯해서, 제가 아는 모든 주석가의 글을 읽었습니다. 그것들을 읽는 데 너무나 지치고 싫증이 나서 그냥 내려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 이것이 주님의 주석입니다.” 저는 오직 한 권의 책만 가진 사람인데, 그 책은 성경입니다. 저는 그저 성경이 말씀하는 것을 믿고, 다른 사람의 말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창세기는 모든 씨앗이 뿌려진, 씨앗이 되는 장이었습니다. 오늘날 세상에서 여러분이 보는 모든 것은 창세기에서 나왔습니다. 모든 것이 그 옛날 처음에 시작되었습니다. 그것은 농작물을 심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씨앗을 심었는지 보십시오. 이만큼 자랐을 때 어떤 모습이든 상관없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어떤 씨앗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씨를 맺을 때 무엇이 될지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밀이든 옥수수든 무엇이든 그렇습니다. 잡초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래쪽에 있는 것이 밀이라면 위에서도 밀을 맺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본래 그것인 것을 맺는 것입니다.
그러니 모든 것을 알아보려면 창세기로 돌아갑니다. 예를 들어 어떤 단어를 살펴봅시다… 여기서 “바벨론”을 작은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바벨론”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아봅시다. 살펴봅시다. 처음으로 그 이름이 언급된 곳… 아니, 우리가 “바벨론”을 처음 발견하는 곳을 보면, 니므롯이 그곳을 세웠습니다. 니므롯은 함의 아들이었습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이것은 저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러다가 한때 “하늘의 문” 또는 “낙원의 문”인지, 그런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그 뒤에는 “혼잡”이라고 불렸습니다. 저 옛날 창세기에 바벨론이 있습니다. 여기 느부갓네살 왕의 시대에도 있습니다. 이리로 계속 이어져 와서 다시 요한계시록에서 끝나는데, 우리는 여전히 바벨론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아, 시간이 있어서 “바벨론”이라는 주제를 성경 전체를 따라 살펴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무엇을 시작하든 처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성도들에게 단 한 번 전달된 믿음에 대해서라면, 우리가 무엇을 이야기하려는지 알려면 맨 처음으로 돌아가 그 믿음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면 지상 최초의 두 사람, 아담과 이브부터 시작합시다. 그들이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은 너희가 가져도 되지만, 한 가지는 만져서는 안 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금지된 나무였습니다. 물론 그것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생각이 있고, 저도 제 생각이 있습니다. 어쨌든 그들은 죄를 지었습니다. 그들이 죄를 짓자 죽음이 왔습니다. 그 후 하나님께서 저녁 서늘할 즈음에 아담과 이야기하시려고 내려오셨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이브가 어디 덤불 속에 숨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그분 앞에 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무화과나무 잎으로 앞치마를 만들어 몸에 둘렀기 때문입니다. 보십시오. 인간은 맨 처음부터 자신을 위한 덮개를 만들려고 합니다. “덮개”라는 말의 뜻은… 종교라는 말은 “덮개”라는 뜻입니다. 인간은 자기 손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고 그분 앞에서 벗어날 길을 만들려 했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의롭게 되어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으면 하나님을 피해 가려는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어느 때, 어느 시대에도 사람이 하나님을 찾은 적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찾으십니다. 인간의 본성은 하나님에게서 달아나는 것입니다. 아담은 죄를 지었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동산을 뛰어다니며 “아버지, 아버지, 어디 계십니까?” 하고 외쳤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하나님께서 “아담아,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고 외치셨고, 아담은 숨어 있었습니다. 차이를 아시겠습니까?
오늘날에도 인간의 본성은 그렇습니다. 바로 오늘, 시카고의 모든 사람이 자기 자신에게 정직하기만 하다면, 정말 정직하기만 하다면, 구원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이 거리마다 몰려들어 다 들어서지도 못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게 정직하기만 하다면, 이 도시의 술집이며 다른 온갖 곳들이 문을 닫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술을 마시고, 온갖 일을 하며 그 뒤에 숨으려 하고, 그것에서 벗어나려 하고, 자기에게서 떨쳐 버리려 합니다.
그것이 인간의 시작입니다. 인간이 본래 어떤 존재인지 보여 줍니다. 애당초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본성, 그 타락한 상태에서 인간은 정말 아무것도 아닙니다! 타락한 본성으로는 짐승보다도 도덕 수준이 낮습니다. 참 엄청난 말이지요? 그러나 그리스도인 여러분, 그것은 사실입니다. 타락한 본성을 가진 인간은 세상의 어떤 짐승보다도 더 타락해 있습니다. 그의 도덕 수준에 비길 짐승은 없습니다… 어미 돼지나 어미 개 같은 짐승들이 어떤지 아시지요. 새끼들을 기르고, 그것으로 그만입니다. 그러나 부도덕한 여자나 남자는… 남자는 짐승 같은 욕정을 채우려고 어머니의 품에서 아기를 내던질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타락하고 비천해져서 짐승보다도 못해졌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인간이 그런 상태에 있을 때에는… 아무리 신사처럼 행동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가 없으면 잃어버린 자이며 파멸한 자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은 신앙을 가지면 미친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신앙은 세상에서 사람의 정신을 온전하게 해 주는 유일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도 미치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미친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시고 온전한 정신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은 언제나 그런 일을 해 왔습니다.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여 제정신이 들게 했습니다. 자기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는 아무도 완전히 온전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지 못합니다. 듣기 거북하겠지만 사실입니다. 우리는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아담은 죄를 지었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그분 앞에… 곧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무화과나무 잎으로 앞치마를 만들어 두르고 덤불 뒤로 숨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오셔서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담은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마주해야 했을 때, 자기가 스스로 만든 종교로는 하나님 앞에서 버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생각을 기초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그 종교, 자기가 만든, 사람이 만든 종교는 하나님을 마주해야 할 때 버틸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저는 20년 동안 목회를 하며 죽어 가는 사람들을 제 팔에 안아 보았습니다. 온갖 신앙 고백을 하는 사람들도 보았고, 사람이 만든 종교를 가진 사람들도 보았습니다. 그런데 인생길의 끝에 이르면 그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그들이 자기에게 달려드는 마귀들을 쫓아내려고 싸우며 비명을 지르는 것을 보고 들었습니다. 심지어 집사라는 사람들, 그중에는 설교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런가 하면 제가 팔에 안고 있을 때 손을 들며 이렇게 말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제 손을 잡아 주세요. 기쁜 날, 기쁜 날, 예수님이 내 죄를 씻어 주신 날! 깨어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시고, 날마다 기뻐하며 살게 하셨네.”
말씀드립니다만, 사람이 정말 하나님의 영으로 다시 태어나면 참으로 큰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는 그분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인격이 그 안에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비천한 곳에서 숭고한 곳으로 옮겨 갈 뿐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습니다. 죽음에는 두려움이라는 끈이 어디에도 매여 있지 않습니다. 아,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죽음과 죄와 질병과 슬픔 등에서 자유롭습니다.
이것을 보십시오. 아담이 죄를 지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죽음을 대신할 것을 마련하셔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죽음을 선고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가셔서 가죽을, 아마 양 가죽을 구하셨습니다. 아담과 이브를 덮어 주시려면 가죽으로 앞치마를 만들어 주셔야 했습니다. 가죽을 얻으려면 무엇인가를 죽이셔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죽음을 정하셨으니, 무엇인가가 대신 죽어야 했습니다.
이제 잠시 그 장면을 마음속에 그리며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달이나 별이 생기기도 전, 그 아득한 옛날 어떤 빛도 존재하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영원 속에 계셨습니다. 모든 공간을 덮으시는 바로 그 하나님께서… 여기 팔로마산에는 1억 2천만 광년 떨어진 우주 공간까지 볼 수 있는 망원경이 있습니다. 그것을 마일로 환산하면, 숫자 9를 줄지어 써서 시카고를 한 바퀴 두를 정도의 마일 수가 될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그 너머에도 여전히 달들과 별들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몹시 비판하던 어떤 사람이 말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시 살아난다는 말씀입니까? 당신이 다시 태어난 사람들이라고 부르는 그 사람들이요? 그 사람들을 장작처럼 쌓아 놓아도 이 땅에 다 둘 수 없을 텐데요.” 제가 말했습니다. “그 사람들이 이 땅에 장작처럼 쌓여 있을 거라고 누가 말했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렇게 있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하늘에 계신 제 아버지께서는 저기에 서서 손에 바람을 후 불어 달들과 별들과 달들을 만드셨습니다. 저 밖에는 수백만의 세계가 있을 것입니다. 아, 그 광대한 곳들 가운데 우리가 어디에서 살게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 말했습니다. “열 도시를 다스리는 것과 이 모든 도시는 어떻습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이기는 자가 다스리게 된다고요?” 제가 말했습니다. “하나님께는 세계 위에 또 세계가 있고, 처소 위에 또 처소가 있습니다.” 우리의 작고 유한한 생각으로 어떻게 하나님을 제한할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밖을 내다보며 그분의 우주에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광대하신지 알게 되면, 그분을 표현할 길이 전혀 없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분께서 오늘날 시카고에서 가장 천한 사람, 가장 심한 술주정뱅이나 창녀에게까지 내려오셔서 그들을 구원하실 만큼 깊은 관심을 가지신다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습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이제 에덴에 계신 그분이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왜 네 남편의 말 대신 저 뱀의 말을 들었느냐? 네 남편이 너를 다스리는 자이니라.” 그분은 그들에게 저주를 내리시고 내보내셨습니다. 아마 그다음으로, 제가 마음속에 그려 볼 수 있는 가장 극적인 장면이 눈에 보이는 듯합니다. 자그마한 이브가 거기 서 있는 모습입니다… 화가들은 이브를 무시무시한 모습에, 머리칼이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를 만큼 삐죽삐죽한 모습으로 그리지요. 아담도 어깨가 헛간 문짝만 한 끔찍한 동굴인으로 그리고요. 그것은 틀렸습니다. 그런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의 본성만 보아도 그보다는 나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제가 보는 것은 세상에서 체격이 완벽한 남자입니다. 너무 크지도 너무 작지도 않고 꼭 알맞습니다. 이브는 거의 이 땅에서 살았던 여자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여자로 보입니다. 아담이 그곳에서 이브를 보았을 때… 하나님께서 그의 옆구리에서 일부를, 갈비뼈 하나를 취하셔서 그 여자를 만드셨을 때, 그가 이브를 보고, 아, 그것은… 아직도… 그때의 영향은 지금까지 아담의 아들들에게 남아서 여자를 아름답게 바라보게 합니다. 그 아름답고 자그마한 여자가 그의 곁에 앉아 있고, 그는 자기 팔에 그녀를 끼고 하나님의 낙원들을 거닐며 이끌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이제 그들은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네가 땅의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는 말씀이 들리는 듯합니다. 가엾은 이브는 자기가 무슨 일을 했는지 알았기에 아담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아담은 이브를 팔로 감싸 안았습니다. 두 사람은 정죄받은 채 에덴에서 걸어 나갔습니다. 그들이 에덴에서 걸어 나갈 때, 두 사람의 아름다운 몸을 두른 피 묻은 양 가죽이 다리에 철썩철썩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그 광대한 공간이 모두 네 글자로 된 한 단어, L-O-V-E, 사랑으로 모아졌습니다. 그분은 그들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그들이 떠나는 것을 차마 보고만 계실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브를 부르시고 “내가 네 씨와 뱀의 씨 사이에 적의를 두리라” 하시며 구원자를 약속하셨습니다. 바로 그 구원자께서 자기 피가 묻은 옷자락이 다리에 부딪치는 가운데 골고다 언덕을 걸어 올라가셨고, 사람을 구속하시려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거기서 두 아이가 나왔습니다. 하나는 가인이고 하나는 아벨이었습니다. 이제 주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거기서 처음 두 아들이 나왔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아벨은 죽임을 당했고, 셋이 그 자리를 대신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처음으로 돌아가, 이 두 아들의 씨에서 제가 지금 말씀드리려는 것이 어떻게 나오는지 살펴봅시다. 가인과 아벨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뒤 자기들이 죄를 지었고 하나님에게서 분리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두 아들은 각기 하나님 앞에서 은총을 얻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희생물을 드리려고 와서 제단을 쌓았습니다.
이제 한 가지를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십니다. 회중 여러분, 그렇게 믿으십니까? 그분은 절대적으로 공의로우십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종교만을 요구하신다면, 가인도 아벨만큼 의로웠습니다. 두 아들 모두 하나님 앞에 나아왔습니다… 가인은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습니다. 무신론자도, 불신자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믿는 사람이기만을 요구하신다면, 가인을 정죄하신 것은 불공정한 일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 말은 여러분의 교회 예복 조끼를 조금 조여 들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들어 보십시오. 주목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실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저는 믿는 사람입니다”라고 한다면, 가인도 그랬습니다! 마귀도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믿는 사람으로 나아왔습니다. 여러분이 “저는 교회에 다닙니다. 제단 앞으로 나아갑니다”라고 한다면, 가인도 그랬습니다! 가인도 주님을 위해 제단을… 곧 교회를 세웠습니다. 여러분이 “저는 교회 교인입니다”라고 한다면, 가인도 그랬습니다! 가인도 희생물을 드렸습니다. 여러분이 “저는 해마다 교회에 얼마씩 냅니다”라고 한다면, 가인도 그랬습니다! “저는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와 주님을 경배합니다.” 가인도 그랬습니다! 가인은 믿는 사람이었고, 경배하는 사람이었으며, 근본 교리에 관한 한 아벨만큼이나 옳았습니다. 아멘. 아, 저는 이것이 참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자, 놀라지 마십시오. 제가 어디 있는지 압니다. 그런데 지금 제 안에서 믿음이 뜨겁게 솟아오릅니다.
보십시오. 그 찬반 양쪽을 보고, 그 부정과 긍정을 보고, 처음에 가인이 그곳으로 나아오는 것을 보면… 지금 우리는 창세기로, 그 나무의 시작으로 돌아왔습니다. 거기에 심겨졌습니다. 가인은 철저한 근본주의자였고, 아벨만큼이나 근본 교리에 충실했습니다. 그는 주님을 사랑했고 주님을 경배했습니다. 주님을 위해 제단을 쌓았으며, 주님께 희생물을 드렸고, 주님께 한 서원을 지켰습니다. 오늘날 어느 근본주의 교사가 가르칠 수 있는 만큼이나 신앙적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벨의 헌물을 받아 주셨습니다. 아벨은 의로웠으며, 믿음으로 가인보다 더 뛰어난 희생물을 드렸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있다면 그 점을 깊이 파고들고 싶습니다. 이제 여기에 두 나무의 시작이 있습니다. 잘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는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있습니다. 가인과 아벨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이 바로 그곳, 에덴동산에 심겼고, 창세기의 그 자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바로 거기서 말입니다.
자, 계속 보십시오… 시곗바늘이 돌아가는군요. 시간이 몇 분 남지 않았지만, 이제 곧바로 요점으로 들어가 제가 뜻하는 바를 여러분이 아실 수 있게 하겠습니다. 이 더위에 여러분이 고생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잠깐만 더위를 잊읍시다. 마음을 여십시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앞에는 영원이 있습니다. 그러니 오늘 여러분은 정신을 차리고 주의를 기울여, 무엇을 듣고 있는지,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지를 유념해야 합니다. 사람이 신실하면서도 틀릴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옳으나.”
자, 가인과 아벨을 보십시오. 이제 계속 따라가 봅시다. 성경 어디에서나 이 흐름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저 에덴에서 시작된 두 덩굴이 계속 자라 올라옵니다. 계속 자라 올라옵니다. 이제 마침내 거의 씨가 여무는 때, 추수 때가 되었습니다.
이 흐름을 에서와 야곱에게까지 이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원수이고, 하나는… 잘 들으십시오. 신앙적인 면에서 보면 에서가 야곱보다 훨씬 더 신사다운 사람이었습니다. 에서는 연로하고 눈먼 아버지를 돌보았고, 가축을 쳤습니다. 그는 신사다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할렐루야!) 장자권을 가졌습니다! 그는 바로 거기에 핵심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장자권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받아 주셨고, 에서는 하나님 앞에서 정죄받았습니다.
세상이 멸망하던 때 방주로까지 돌아가 보십시오. 까마귀와 비둘기가 같은 횃대에 앉아 있었습니다. 한쪽도 다른 쪽과 마찬가지로 새였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무엇이 달랐습니까? 하나는 본성이 까마귀였고, 다른 하나는 본성이 비둘기였습니다. 한쪽도 다른 쪽처럼 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본성과 먹성이 달랐습니다. 까마귀는 썩은 사체를 먹고 이곳저곳을 다니며 까악까악 우는 것으로 만족했습니다. 비둘기가 스스로 행복하고 신앙적이라고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까마귀도 행복했고 아마 신앙적이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비둘기는 그 냄새를 견디지 못하고 다시 돌아왔습니다. 아멘. 오늘날 많은 사람은 자기가 신앙적이라고 생각하며 교회에 다니고 이런저런 것을 하면서도, 술을 마시고 제멋대로 살고 부도덕한 행동을 하면서 여전히 자기가 신앙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본성이 어떤지를 보여 줍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영으로 태어나면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하나님의 본성을 지니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세상에 속한 것들이 죽어 없어집니다. 그렇습니다. 아, 얼마나 놀랍습니까! 여기 밀 한 알은 밀을 맺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 씨앗, 그 시작이 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썩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심겼습니다. 우리가 썩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심겼고 성령께서 이 씨앗에 물을 주신다면, 그분을 믿는 모든 사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다시 나타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나올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셔서 사람들이 자기의 참모습대로 사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저는 오늘 오후 차라리 이 강단을 떠나겠습니다… 제가 그리스도의 친구가 아니라면 원수가 되겠습니다. 반대편에 서겠습니다. 믿을 가치가 있고 증언할 가치가 있다면, 그것을 위해 살고 죽을 가치도 있습니다.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받았느니라.”
보십시오. 이제 조금 더 나아갑시다. 이 둘을… 이것을 보십시오. 이쪽에 있는 하나는 저쪽에 있는 하나만큼이나 근본 교리에 충실합니다. 이 둘을 이스라엘 자손의 여정까지 따라가 봅시다. 이 덩굴들이 계속 자라 올라옵니다. 여기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올라옵니다. 이집트에서 나와 약속의 땅으로 가는 도중에 모압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모압은 롯의 딸들에게서 나왔습니다. 그들은 무신론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에도 제사장들이 있었고 설교자들도 있었습니다. 선지자도 있었습니다. 그 선지자는 돈에 미친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통과해야 했을 때 모압 왕 발락은 그들을 거절했습니다. 자, 준비하십시오. 이제 나옵니다. 보십시오. 그는 사실 자기 형제인 이스라엘을 거절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양쪽 다 같은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정말입니다. 그 선지자, 발람이 이 백성을 저주하려고 내려가기 시작했을 때, 내려가는 길에 성령께서 노새를 통해 알지 못하는 방언으로 말씀하셨습니다. 허! 여러분도 적어도 노새만큼은 분별력이 있겠지요. 보십시오! 노새가 나와 눈먼 선지자를 꾸짖었습니다. 그런 선지자들을 돌이키게 하는 좋은 방법이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리로 내려가지 말고 물러서 있으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아! 그의 생각은 큰 것들에 가 있었습니다. 왕이 그를 어떻게 후하게 대우해 줄지 이런저런 말을 했으니까요. 그래서 그는 영적인 면에는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물질적인 면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가 내려왔을 때… 자, 보십시오. 여기 아래 진영에는 이스라엘이 있습니다. 여기 위 산에는 모압이 있습니다. 여기에… 아, 근본주의자 여러분, 이제 놀라실 겁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십시오. 근본 교리 면에서는 여러분이 옳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모압과 발락과 발람이 나왔고, 그가 말했습니다. “저 아래 저 광신자 무리를 보시오. 저들을 저주해 주시오.” 그러자 발락이 말했습니다. “저는 주님께서 제게 말씀하시는 것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발락은 발람에게 이스라엘의 가장 바깥쪽 부분을 보여 주었습니다. 오늘 오후 여기 있는 우리 근본주의자 여러분, 우리의 교사들도 우리에게 광신자들의 가장 바깥쪽 부분만 보여 준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런저런 일이 있다. 이 사람은 저 사람의 아내와 달아났고, 이 사람은 저런 일을 했다”라고 말하지요. 우리 가운데도 똑같은 일이 있지 않습니까? 있습니다! 다만 그들은 덮어 두지 못하는 것을 우리는 덮어 둘 수 있습니다.
이 말 때문에 여러분의 속이 좀 메스꺼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속이 메스껍지 않으면 아무 효험도 없을 것입니다. 어머니가 저 뒤에 앉아 계십니다. 제가 어린아이였을 때 우리는 농장에서 살았고, 저는 늘… 토요일 밤마다… 우리에게는 먹을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낡은 냄비에 고기 껍질을 넣고 끓여서 기름을 뽑아 옥수수 전병을 만드셨습니다. 우리는 형편이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토요일 밤마다 낡은 삼나무 목욕통에서 목욕을 하고, 겨울 동안 감기 같은 것 때문에 우리 모두 아주까리 기름을 한 번씩 먹어야 했습니다. 제가 아주까리 기름을 얼마나 많이 먹었는지, 말씀드립니다만,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이 났습니다. 저는 코를 쥐고 어머니께 가서 말하곤 했습니다. “엄마, 이걸 먹으면 속이 너무 메스꺼워서 못 견디겠어요.” 어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속이 메스껍지 않으면 아무 효험도 없는 거야.” 어쩌면 오늘 오후 이 말씀도 그런 것 같습니다. 여러분을 뒤흔들지 않으면, 여러분의 영적 소화 기관을 움직이게 하지 않으면… 할렐루야! 여러분이 깊이 생각하고 궁금해하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자, 여기 모압이 있었습니다. 믿는 사람이었고, 근본 교리에 충실했습니다. (형제님, 이 말이 조금 스며들게 하겠습니다.) 그는 근본 교리에 충실했습니다. 이스라엘만큼이나 충실했습니다. 보십시오. 이 선지자, 그들의 교사가 그곳에 나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여호와께서 무엇을 요구하시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단 일곱을 쌓았습니다. (정확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도록 정해진 일이었습니다. 그는 여호와께 드리는 그 일곱 제단 위에 정결한 희생물 일곱, 곧 수송아지 일곱을 놓았습니다. 그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말해 주는 어린양 일곱도 드렸습니다. 근본 교리에 대해 말하자면, 그도 똑같이 충실했습니다. 그들이 바로 저 아래에서 드리는 것과 똑같은 헌물이었고, 모든 것이 같았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기서 드리는 것과 똑같은 헌물을 아래에서도 똑같이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말했습니다. “저들을 보시오. 저들은 한 민족도 아닙니다. 모압에게는 이렇게 큰 조직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모압 땅이지만, 저들은 떠돌아다니는 사람들, 여기저기 흩어진 광신자 무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멘. 아, 형제님, 잠시 후면 제가 왜 광신자인지 아시게 될 것입니다.
여기를 보십시오. 에덴에서부터 자라 올라오는 그 덩굴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말합니다. “이스라엘이라고요, 브래넘 형제님? 이스라엘이 광신자들이었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형제님, 그들이 홍해를 건너 승리했을 때, 여선지자 미리암은 탬버린을 집어 들고 소리를 지르며 뛰고 춤추기 시작했고, 그렇게 강을 따라 내려갔습니다. 그게 광신자가 아니라면 저는 광신자를 본 적이 없습니다! 사실이지 않습니까? 모세는 영으로 얼마나 충만했던지 두 손을 번쩍 들고 영 안에서 노래했습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길을 잃은 것이 아닙니다! 바로 그 덩굴이 자라 올라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박해하는 자들은 여기 반대편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너무나 비슷해서 가능하다면 택하신 자들까지 속일 것입니다.”
자, 이렇게 계속 올라옵니다. 보십시오. 이 백성이 저 백성과 똑같은 희생물을 드렸습니다. 근본 교리 면에서 모압 사람들도 이스라엘만큼이나 근본 교리에 충실한 교사들이었습니다. 같은 희생물, 같은 헌물, 같은 하나님, 모든 것이 같았습니다. 근본 교리 면에서는 그들과 똑같았습니다.
그런데 차이가 무엇이었습니까? 자,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잘 들으십시오. 하나님께서… 근본 교리에 충실한 것만이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전부라면, 그분이 양쪽 다 인정하지 않으실 경우 공의롭지 못한 분이 되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적으로 근본 교리에 충실한 것만이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전부라면, 모압도 같은 하나님께 같은 헌물을 드렸으니 이스라엘만큼이나 근본 교리에 충실했습니다. 그는 왕족들을 모두 데리고 나왔고, 그들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희생물 주위에 섰습니다. 선지자는 예언하러 나아갔습니다. 완벽했습니다! 옳았습니다! 그런데 차이가 무엇이었습니까? 이들은 분명 근본 교리에 충실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저들을 표적과 이적으로 입증하고 계셨습니다. 바로 거기에 차이가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거기에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초자연적인 것이었습니다. 아벨에게도 초자연적인 것이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성경 전체에 걸쳐 있었습니다. 여기 아래 있는 이들에게는 무엇이 있었습니까? 그들 위에는 불기둥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신유의 인장이 있었습니다. 할렐루야! 그들에게는 환호와 영광을 돌리는 일과 춤과 찬양이 있었습니다. 근본주의 교사들은 다른 말로 그들을 광신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모두… 근본 교리 면에서는 양쪽 다 정확히 같은 희생물로 같은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무리를 입증하시며 “이들이 내 백성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내 백성이다.”
보십시오. 계속 자라고 있습니다. 잠깐만요. 하나님께서는 표적과 이적으로 그들을 입증하심으로, 그들이 자기 백성임을 증명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언제나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백성이었습니다. 창세기의 맨 처음부터 그들 가운데는 표적과 이적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 교회가 오늘날에도 존재하며, 표적과 이적이 따르고 있습니다. 아시겠죠? 하나님께서 입증하시는 것입니다. 제가 말했듯이 근본 교리 면에서는 양쪽 다 옳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것은 내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이 그것을 증명하셨습니다.
자, 보십시오. 발람이 돌아왔을 때 발락은 그에게 이스라엘의 가장 바깥쪽, 가장 못한 부분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셨을 때는 “내가 산꼭대기에서 너를 보았노라. 나는 야곱에게서 불법을 보지 못하였노라”라고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왜 그렇습니까? 그분은 저 매 맞은 반석과 거기에 달린 놋뱀 너머로는 보실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속죄가 그들 앞에 가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말씀드립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사람들이 잘못한 일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의 그 겸손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놋뱀과 같이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사람의 아들도 반드시 들려야 하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근본주의자는 “우리도 그것을 믿습니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표적들이 따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택하신 자들까지 속일 만큼 아주 비슷합니다.
그 나무를 조금 더 위로 따라가 봅시다. 예수님의 시대에 이르렀습니다. 여기 근본주의자들, 학자들, 교사들,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랍비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말씀을 몰랐다고 감히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셨고, 그분도 그들만큼이나 근본 교리에 충실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분과 함께 일하시며 표적과 이적이 그분을 따르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근본주의자들은 그분을 바알세붑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니 오늘날 제가 그보다 덜한 말을 듣기를 어떻게 기대하겠습니까?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내는 놀라운 일들을 믿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가, 그들이 집주인을 바알세붑이라고 불렀는데, 어떻게 다른 대접을 기대하겠습니까? 그들이 누구입니까? 근본주의 교사들입니다. 그렇습니다. 똑같이 근본 교리에 충실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을 함부로 공격하지 마십시오. 그는 여러분이 믿는 것과 같은 복음을 믿습니다. 죽음, 장사, 부활, 승천, 주님의 오심을 믿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것을 입증하는 하나님의 표적들이 없습니다.
아, 제가 왜 광신자인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그 표적이 자라 올라오는 것을 봅니다. 그들이 나아가고 교회가 전진할 때 거기 있는 그를 보십시오. 요엘이 보았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그의 눈에 쌍안경을 대어 주셨습니다. 그는 저 시간의 흐름을 따라 내다보며 교회를 보았고, 이 덩굴이 뜯기고 파괴된 것을 보았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털벌레가 남긴 것을 쐐기벌레가 먹었고, 쐐기벌레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었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또 다른 벌레가 먹었도다.” 그가 말했습니다. “이 교회가 다시 자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회복하리라. 주가 말하노라.” 그 선지자 요엘은 믿음의 눈으로 내다보며 이 덩굴이 창세기에서부터 자라 올라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이 온통 망가… 그곳 예루살렘에서 성령이 내리신 후, 그는 암흑시대가 다가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덩굴이 파괴되고 그루터기만 남도록 꺾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회복하리라. 주가 말하노라.” 아, 그 말씀이 없었다면… 가지들은 죽일 수 있을지 몰라도 생명은 교회 안에 있습니다. 그 생명은 땅의 기초가 놓인 때부터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것이 [불명확한 말]. 하나님께서 회복하실 것입니다! 오직 마지막 [불명확한 말]. 그분은 자기를 믿을 누군가를 얻으실 것입니다. 아멘! 제가 광신자가 된 기분입니다. 들으십시오! 주목하십시오! “내가 회복하리라. 주가 말하노라.”
얼마 전에 여기 캐나다에서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라스무센 형제님과 제가 캐나다에서 가고 있었습니다… 박스터 형제님. 우리는 저 북쪽 숲속 깊숙이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밤 제가 말을 타고 가는데 커다란 소나무 숲이 있었습니다. 저는 자연을 참 좋아합니다. 하나님을 뵙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이 제 최초의 성경이었습니다. 자연에 나타나신 하나님이었습니다. 제가 바라보며 지나간 숲은 한때 거대한 소나무들이 우뚝 솟아 있던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러 해 전에 산불이 휩쓸고 가서 모두 타 버렸습니다. 그저 커다란 무더기의… 으스스해 보였습니다. 크고 오래된 하얀 나무들 위로 달빛이 비쳤고, 나무들은 바싹 말라 하얗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때 산 사이로 바람이 불어 내려왔습니다. 그러자 그 나무들이 모두… “우우우, 우우우” 하며 몹시 처량한 소리를 냈습니다. 저는 ‘아, 으스스한 곳이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이 성경 말씀이 제 생각에 떠올랐습니다. “털벌레가 남긴 것을 쐐기벌레가 먹었고, 쐐기벌레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었도다.” 그런데 그것은 그분의 교회였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주님. 저 옛날 종교개혁 이후 가톨릭이 남긴 것을 근본주의자들이 먹었고, 근본주의자들이 남긴 것을 장로교인들이 먹었고, 장로교인들이 남긴 것을 침례교인들이 먹었고, 침례교인들이 남긴 것을 나사렛교인들이 먹어, 끝내 다 먹어 치웠습니다. 그러나 “내가 회복하리라. 주가 말하노라!”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가지실 것입니다! “내가 회복하리라. 주가 말하노라.”’ 저는 거기 서서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바람을 불어 내려 보내셨습니다. 그 크고 오래된 나무들은 그저 “우우우” 소리만 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오순절 날 하늘에서 내려온 그 급하고 강한 바람과 꼭 같구나.’ 오늘날 시카고 주변 같은 곳에 있는 저 크고 오래된 냉랭한 교회들에 그 바람이 불어닥치면, 들리는 것은 신음하고 울며 “기적의 시대는 지나갔다!”라고 말하는 소리뿐입니다.
근본 교리에 충실합니까? 나무들이기는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한때 나무였습니다. 감리교, 침례교, 장로교, 무디 교회, 그 밖의 모든 교회에는 거대하고 우뚝 솟은 첨탑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기적의 시대는 지나갔다고 말합니다. 털벌레가 교회의 모든 복을 먹어 치워서, 이제는 “할렐루야”도 없고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도 없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더 이상 신유도, 방언으로 말하는 일도 없습니다. [불명확한 말.] 할렐루야! 죽었습니다!
제가 서서 바라보는데 바람이 다시 불어왔습니다. 그런데 나무들은 바람에 따라 휘어지는 대신 “우우우” 소리를 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꼭 저런 모습이구나. 하나님께서 이 도시에 부흥을 보내시면, 그들은 “그런 것은 믿지 마십시오. 기적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성령 같은 것은 없습니다. 아무개 박사님께서…”라고 말하지.’
아! 그래서 저는 낙심했습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내가 회복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바로 그때 바람이 조금 낮게 내려왔습니다. 그러자 그 아래에 어린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할렐루야! 영광! 작은 나무들이 또 있었습니다. 그것들은 교파주의로 뻣뻣해지고 타 버린 나무들이 아니었습니다. 복음주의 교파들을 아우르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처럼 초교파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다시는 한 나라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초교파적이었습니다.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이 작은 나무들이… 그 바람이 닿기 시작하자, 작은 나무들이 즐겁게 뛰놀고 춤추며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할렐루야! “내가 회복하리라. 주가 말하노라!” 오순절 날 내렸던 바로 그 성령의 권능이구나…’ 저 처량하게 신음하는 옛 교회들이 “나는 감리교인이다, 나는 침례교인이다”라며 신음하고 싶다면 계속 그렇게 하십시오. 아래에서는 어린나무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생명이 그 나무를 떠났지만, 다시 자라 올라오고 있습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이 작은 나무들은 뿌리를 더 깊이 내려 더 단단히 붙잡습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회복하리라. 주가 말하노라.” 하나님께서 일으키고 계십니다. 처음 내린 비는 이미 지나갔습니다. 물집이 생겨났고, 권능은 교회를 떠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마지막 날들에 지금 늦은 비를 보내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의 권능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그분께서 바람과 비를 보내시는 것이 확실한 만큼, 거기에 서서 기뻐할 나무가 있다는 것도 확실합니다. 그 작은 나무들이 바람을 따라 휘어지며 얼마나 기뻐했는지요! 그 바람이 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작은 나무는 “할렐루야, 할렐루야! 저는 믿습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저는 믿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나무가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랬습니다. 근본적인 면에서는 저 나무들도 이 작은 나무와 똑같이 나무였습니다. 그러나 형제님, 그들은 영을 따라 휘어질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 밤에도 그것이… 아니, 오늘도 문제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 거대한 교회들은 영을 따라 휘어질 수 없습니다. 조직이 너무 굳어져 있어서 그렇게 하면 그 조직이 무너져 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불명확한 말.] 이스라엘이 올라오는데, 찌꺼기니 광신자들이니 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할렐루야! 더없이 유연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들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새 나무는 살아 있고 옛 나무는 죽어 있었습니다. 그들이 휘어질 수 없는 까닭은 죽었기 때문입니다! 죽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출생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마지막 날들에 늦은 비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권능과 표적과 이적이 나타납니다. 저 옛 나무들이 오래전에 누렸던 바로 그 기쁨이 새 세대에 돌아왔습니다. 아멘! “내가 회복하리라. 주가 말하노라.” 바로 그것입니다.
위대한 성 바울을 봅시다. 그가 거기 서서 믿음의 눈으로 시간의 바다 너머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마지막 날들에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 마지막 날들에 사람들이 고집이 세고 높은 마음을 품으며,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는 쾌락들을 더 사랑하리라고 했습니다. 일요일 오후에는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대신 나가서 골프를 칩니다. 일요일 밤에는 너무 더워서 올 수 없다며 문을 닫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는 쾌락들을 더 사랑하며, 협정을 어기며, 거짓 고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선한 자들을 멸시합니다. 여러분은 말합니다. “아, 믿지 않는 사람들을 두고 한 말이군요.” 아닙니다. 그런 말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의 모양은 있으나.” 근본 교리 면에서는 한쪽도 다른 쪽만큼이나 충실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의 모양은 있으나 그것의 능력은 부인하리니 이런 자들에게서 돌아서라!” 그렇다면 이제 광신자가 되십시오! 할렐루야! 그래서 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 제가 그 바람에 몸을 맡기며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예, 주님. 주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신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믿습니다. 주님은 오늘도 살아 계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영께서 이쪽에서 저쪽으로 휩쓸고 지나가십니다. 여러분은 우리가 미쳤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저 생명이 있고 유연한 것입니다. 원한다면 계속 신음하십시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그 어린나무들이 계속 자라 올라오고 있습니다. 계속 자라서 씨를 맺을 것입니다.
보십시오. 저는 오늘 오후 성 바울과 함께 서서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사람들이 이단이라 하는 (곧 어리석고 미쳤다고 하는) 그 길을 따라 나는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께 경배합니다.” 오늘날 세상이 “광신자”라고 부르는 바로 그 길을 따라 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합니다.
저는 저 두 씨앗이 자라 올라오는 것을 보았을 때, 저쪽의 것에서 벗어났습니다. 이제 우리의 머리가 거의 구름 위로 솟아올랐고, 그 나무에는 큰 꽃이 피었으며, 하나님께서는 그 위에 늦은 비를 부어 주고 계십니다. 그 나무는 무슨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치유, 구원, 성령 침례, 은사들의 회복입니다. 이처럼 다양한 일들이 모두 나타나고 있습니다. 여기 이 나무에 있습니다. 둘 다 똑같이 근본 교리에 충실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은사들을 회복시키심으로 이쪽을 입증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다른 이들은 앉아서 그것을 두고 신음하며 이러쿵저러쿵하고, 우리를 광신자 무리라고 말합니다. 저는 오늘 그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헤아림을 받는 것이 기쁩니다! 어떻게 하겠습니까? 주의 멸시받는 소수의 무리와 함께 그 길을 가려네. 예수님과 함께 시작했으니, 오 주님, 끝까지 이끌어 주소서!
얼마 전 이 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전도자 중 한 사람과 이야기하면서 성령 침례에 관해 물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형제님, 한번은 사람들이 제게 그런 것이 필요하다고 자꾸 말했어요. 그러다가 주님께서 저를 교사로 원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다른 유명한 전도자는 “저는 그것이 진리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제 집회에서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제 인기가 떨어질 테니까요”라고 말했습니다. 형제님, 저는 어떤 성막의 문에든 제 이름을 금빛으로 새겨 놓거나 그 밖의 무엇을 얻고 어느 교파에 속해 있다고 말하느니, 차라리 배를 깔고 엎드려 시냇물을 마시고 소다 크래커를 먹으며 하나님을 위해 살겠습니다. 저는 유연하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어디로 이끄시든 그 길로 가고 싶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시는 것을 하고 싶습니다. 그분이 성령의 권능을 보내시면 저는 그것을 믿고 싶습니다. 그분이 제게 이것을 하라고 말씀하시면 저는 그것을 하고 싶습니다. 세상이 뭐라고 하든 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공통의 구원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쓰려고 모든 열심을 내노니, 성도들에게 단 한 번 전달된 믿음을 위해 너희가 힘써 싸우라.” 오늘 저는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이 저를 하나님의 종이라고 믿으신다면, 여러분은 지금 성도들에게 단 한 번 전달된 믿음이 회복되는 날에 살고 있습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성령의 교회에 내리는 늦은 비의 권능 아래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 교회는 온갖 저명한 신학 박사들을 모든 교파에서 불러내고 있습니다. 지난 3주 동안 바로 제 집에서, 가장 저명한 몇몇 인사들이, 심지어 인도의 모든 복음주의 교회를 총괄하는 인도의 대주교까지 성령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수단 선교회 회장인 리드헤드 박사는 몇 주 전에 그 선교회에서 쫓겨났습니다. 성령을 받고 영께서 말하게 하시는 대로 방언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명한 남침례교 인사인 도널드 리 박사가 며칠 전 제 방에 앉아서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제가 마음을 다 쏟아 놓았더니 성령께서 제게 임하셨습니다. 방 안을 걷고 있었는데, 더는 영어로 말할 수조차 없었습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형제여, 구속의 때가 가까웠네, 사람들의 마음이 두려움에 무너지네. 성령으로 충만하라, 등불을 손질하여 밝게 하라, 위를 보라! 너희의 구속이 가까웠네. 그렇습니다. 우리는 마지막 시대에 있습니다. 저물녘에 빛이 있으리, 영광으로 가는 길을 너 정녕 찾으리라.
그렇지 않습니까? 해가 지는 이 마지막 날들에 하나님께서는 이방인 가운데서 불러내고 계십니다. 감리교인, 침례교인, 장로교인, 루터교인, 근본주의자, 그 모든 이들 가운데서 불러 이쪽으로 데려오십니다. 그분은 자기 이름을 위해 이방인 가운데서 한 백성을 취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다음 이방인 경륜을 끝내시고 유대인들에게로 돌아가실 것입니다. 교회가 휴거될 때가 오고, 교회는 본향으로 갈 것입니다! 큰 표적과 이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위를 보십시오! 제가 왜 광신자인지 아시겠습니까? 그렇습니다.
형제님, 저는 이것을 위해 온갖 일을 겪었습니다. 저는 우리 주님을 사랑합니다. 온 마음을 다해 그분을 사랑합니다. 세상이 뭐라고 하든 상관없습니다. 사람들은 저를 교회에서 쫓아냈습니다. “빌리, 자네는 미쳤어. 악몽을 꾼 거야. 저녁에 뭘 먹었나?”라고 말합니다. 저는 며칠 전 데이비스 박사에게 그가 광신주의라고 불렀던 것이 무엇을 했는지 이야기해 줄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남아프리카에서 하루는 제가 제단 앞으로 나오라고 초청했는데, 3만 명이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였습니다. 그것은 지난 100년 동안 모든 선교회가 합쳐서 그리스도께 인도한 사람들보다 더 많은 수입니다. 선교사에게 주어진 기본 명령은 “예루살렘 시에 머물라”입니다. 무슨 묘지에 머물라는 것이 아닙니다… 아니, 신학교든 뭐라고 부르든 말입니다. 둘 다 죽은 곳입니다. 좋습니다. 교육을 받을 때까지 예루살렘 시에 머물라. 아닙니다. 신학을 배울 때까지. 아닙니다. “높은 곳으로부터 오는 권능을 입을 때까지! 성령께서 너희에게 임하신 뒤에, 그때에 너희가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또 땅의 맨 끝 지역까지 이르러 나를 위한 증인이 되리라.” 그렇습니다. 그것이 진리입니다. 아,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아, 제 안에서 믿음이 뜨겁게 솟아오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저를 그분의 성령으로 채우셨음을 느낍니다. 저는 하나님의 아들딸들 가운데 앉아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싸워야 했고 먼 길을 왔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마지막 설교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도 저는 바울처럼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내가 하늘에 나타난 그 환상에 불순종하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날에…” 저는 집에서도 거의 쫓겨날 뻔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제가 미쳤다고 생각했습니다. 교회는 저를 쫓아냈고, 다른 온갖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별것 아닙니다. 마지막 날들에 그분의 교회 안에 생명이 오도록 예수 그리스도께서 갈보리에서 죽으신 그곳에 씨앗을 심기 위해, 초기의 순교자들과 성도들이 겪어야 했던 일에 비하면 작은 일입니다.
보십시오. 언젠가는 저도 마지막 가시덤불을 통과하게 될 것입니다. 이 길을 얼마나 더 가야 할지는 모릅니다. 언젠가는 그곳에 이르러야 합니다. 여러분도 모두 그렇습니다. 언젠가 마지막 산을 넘고 마지막 강을 건너,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으로 가던 것처럼 모든 가시덤불과 수풀을 헤치고 나아갔을 때… 만일 제가 늙을 때까지 살고 예수님께서 지체하신다면… 브래넘 집안 사람들은 모두 늙으면 마비증이 와서 몸을 떱니다. 연로하신 할아버지도, 모두 그랬습니다. 아마 제 얼굴 둘레로 흰 머리카락 몇 가닥이 늘어지고, 주름투성이 노인이 되겠지요. 제가 그렇게 오래 산다면, 여기 계신 많은 분은 그보다 훨씬 전에 영원 속에 가 계실 것입니다. 저도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때까지 산다면, 마지막 싸움을 싸우고 마지막으로 광신자라는 말을 듣는 제 모습을 그려 볼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길의 끝이 다가옵니다. 저는 진실한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려고 힘써 왔습니다. 저는 그분의 부활의 권능 안에서 그분을 알고 싶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부르실 때 죽은 자들 가운데서 나오고 싶습니다. 길의 끝에 이르러 차가운 파도가 얼굴에 부딪치는 것을 느끼면, 저 앞에 요르단이 있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아!
제 심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싶습니다. 아, 제게는 참으로 큰 날이 될 것입니다. 그 길을 돌아보며 제가 헤쳐 와야 했던 가시덤불 하나하나를 볼 것입니다. 사람들이 저를 광신자라고 부르고 온갖 이름으로 불렀을 때, 저는 믿음의 검으로 계속 싸워 헤쳐 나갔습니다. 계속 나아가며 뒤따라오는 사람들을 위해 길을 냈습니다. 그때 저는 마비증으로 몸을 떨며 지팡이에 의지해 서 있는 노인일 것입니다. 눈은 흐려지고, 요르단의 파도가 얼굴에 와 닿는 것이 느껴집니다. 저는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구원의 투구를 벗어 물가에 내려놓고, 믿음의 갑옷을 풀고 싶습니다. 이 오래된 검을 들어 영원의 칼집에 다시 꽂고 싶습니다. 두 손을 들고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아버지, 오늘 아침 구명정을 보내 주소서. 제가 본향으로 갑니다.” 강 건너 저편에서, 저는 광신자라 불리며 성도들에게 단 한 번 전달된 믿음을 위해 힘써 싸웠던 사람들과 만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한 분 한 분에게 이것을 허락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저는 그분께로 오시라고 여러분을 초청합니다. 산들바람이 시원하게 불고, 강 양쪽에 늘 푸른 나무가 서 있으며, 그 잎사귀가 민족들을 치유하는 저 건너편에서, 우리가 그 강가에서 만나 그분을 섬기며 그분과 함께 살기를 바랍니다. 제가 그곳으로 건너갈 때는 늙은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몸을 주셨습니다. 저는 스물세 살쯤까지 자랐고, 그때가 가장 좋았습니다. 지금은 몸이 쇠하고 있습니다. 20년이 더 지나서, 이제 나이를 느끼기 시작합니다. 어깨가 굽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머지않아 제가 사랑하는 그분을 뵙게 될 것도 압니다. 그렇습니다. 저 건너편 물가에는 사랑하는 이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아무리 늙고 주름지고 쇠약해져도, 머리가 아무리 희어져도, 제 발이 그 복된 기슭에 닿으면 눈 깜짝할 사이에 변화되어 다시 젊은이가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다시는 죽지도 않고 다시는 병들지도 않으며, 영원히 살 것입니다.
의인에게 주실 보상이 믿는 모든 사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 오후 여러분도 믿는 사람이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잠시 머리를 숙이고 기도합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길은 점점 어두워집니다. 귀하신 주님, 가까이 머물러 주소서. 저희와 함께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구속의 날이 가까이 온 것을 아는 이 회중과 함께하소서. 내일 무슨 일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한 가지는 압니다. 제 혼에 닻을 내린 그것은… 오 하나님, 길 잃고 파멸한 한 가엾은 소년을 생각합니다. 하나님에게서 멀어져 죄 많은 가정에서 자라고, 손에 낚싯대를 든 채 저 개울가에 앉아 울고 있던 소년입니다. 평안도 없었습니다. 큰 바람이 나무 사이로 불며 “강 건너에 한 땅이 있다”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저를 구원해 주신 것이 너무나 감사합니다. 주님, 오늘 제 마음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특권인지요. 그리고 주님께서 입증하시는 위대한 손길로 그 사역을 확증하시고, 표적과 이적이 따르는 것을 봅니다. 이것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주님, 저희를 도와주소서. 하나님, 오늘 이곳의 가엾은 죄인과 믿음에서 물러난 사람과 다시 태어나지 않은 사람, 저기 서 있는 교회 교인에게 복을 주소서. 물론 그들은 성경을 압니다. 사탄도 압니다. 마귀도 믿고 떱니다. 아버지, 그들 중 많은 사람이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고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주님, 주님께서는 그에게 할례의 인을 표적으로 주셨습니다. 아버지, 사람이 참으로 믿을 때 주님께서 성령의 표적으로 그를 인치신다고 저는 믿습니다. “이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말라. 그분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너희의 구속의 날까지 봉인되었느니라.” 하나님, 육신의 몸으로 땅에 계셨던 이후로 가장 위대한 표적들을 오늘 보여 주고 계시오니, 긍휼을 베푸소서. 이 회중에게 복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저희가 주님을 기다리는 동안, 많은 사람이 주님의 영으로 충만해지기로 결심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여러분 모두 머리를 숙이고 기도하는 가운데, 지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정말 성령으로 충만합니까? 하나님의 왕국 안에 있습니까? 아니면 단지 철저하게 근본 교리를 믿는 사람일 뿐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아직 여러분에게 아무것도 입증해 주신 적이 없습니다. 아, 그 나무에서 떠나십시오. 하나님의 권능이 움직이는 여기 반대편으로 오십시오. 지친 자에게 안식이 있네, 지친 자에게 안식이 있네, 지친 자에게 안식이 있네, 그분이 너를 자유롭게 하실 때. 요르단 저 건너편, 아름다운 에덴 들판, 생명나무 꽃피는 곳에 너를 위한 안식이 있네. 예수님은 모든 사슬을 끊으시네, (교파들, 형식적인 것, [불명확한 말].) 예수님은 모든 사슬을 끊으시네, 그분이 너를 자유롭게 하시니. 나 영원히, 영원히 그분을 찬양하리, 나 영원히, 영원히 그분을 찬양하리, (그분이 여러분을 불러내실 때 기꺼이 따르십시오.) 나 영원히, 영원히 그분을 찬양하리, 그분이 나를 자유롭게 하시니. 주님, 이제 이 집회는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께서 본향으로 부르고 계신 그 길 잃은 사람은 어디 있습니까? 우리 영원히, 영원히 그분을 찬양하리.
이곳에 죄인이 계시다면, 모두 머리를 숙이고 있는 바로 지금 일어서 주시겠습니까? 이렇게 말하십시오. “브래넘 형제님,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가운데 계시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집회들을 보았고, 형제님이 하신 말씀이 모두 진리라고 믿었습니다. 저는 온통 혼란스러웠지만, 오늘 창세기로 돌아가 보니 왜 혼란스러웠는지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그리스도를 제 구주로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일어서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이 건물 어디에든 죄인이 계십니까? 누군가 일어나 이렇게 말하십시오. “저는 죄인입니다, 브래넘 형제님. 그리스도를 제 구주로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이곳에 아직 성령 침례를 받지 못한 분이 계십니까? “브래넘 형제님, 저는 여러 해 동안 교회 교인이었습니다”라고 말씀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젊은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형제님. “저는 여러 해 동안 교회 교인이었지만 성령을 받은 적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형제님의 기도를 들으시고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하시며, 걷지 못하는 사람을 걷게 하시고, 마음속의 비밀을 드러내신다면, 형제님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 밤 제게도 성령을 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속지 마십시오. 정말로 성령을 받으십시오. 일어서서 잠깐만 그대로 서 계십시오. 또 다른 분 계십니까? 더 일어나십시오. 일어서시겠습니까? “저는 성령을 원합니다.” 길이 점점 어두워질 때, 귀하신 주님, 가까이 머무소서, 내 생명이 거의 다했을 때, 강가에 나 서리니, (예, 주님.) 내 발을 인도하시고 내 손을 잡으소서. 귀하신 주님, 내 손 잡고 본향으로 이끄소서. 귀하신 주님, (정말 그분을 원하시면, 지금 일어나 손을 드시겠습니까?) 나를 이끄시고 서게 하소서, (예, 주님, 저도요.) 나는 피곤하고 연약하며 지쳤나이다. 폭풍을 지나, 밤을 지나, 빛을 향해 나를 이끄소서. 여기 내 손을 드리니, 귀하신 주님, 본향으로 이끄소서. 귀하신 주님, 내 손을 잡으소서…
주님, 여기 서 있는 이들을 보소서. 아버지, 이 성도들이 찬송하고 영께서 건물 안에서 움직이고 계십니다. 주님, 이들이 손을 들고 있습니다. 성령 침례를 원합니다. 주님, 이들은 이제 이런저런 모든 것에서 벗어나기로 했음을 알고 있습니다. 주님의 표적과 이적을 볼 수 있는 곳으로 건너오고 있습니다. 실재하는 것, 장자들의 교회, 하나님의 영으로 태어난 하나님의 아들들 가운데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하늘 아래 모든 교파에서 나와, 오늘 오후 이곳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주님, 이들이 이제 요르단으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배를 띄워 주소서. 주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그렇게 하실 줄 압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허락하소서.
이제 머리를 숙인 채로 찬송을 한 절 더 부르는 동안, 영의 침례를 원하시는 분들은 아주 조용히 제단 주위로 나아오시겠습니까? 귀하신 주님, (바로 이리로 나오십시오. 정말 원하시면 이리로 오십시오.) 나를 이끄소서,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아, 여기를 보십시오. 오늘 오후 폴 레이더가 살아 일어나 이 광경을 볼 수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 연약하며 지쳤나이다. 폭풍을 지나, 밤을 지나, (할렐루야!) 빛을 향해 나를 이끄소서. 귀하신 주님, 내 손 잡고 본향으로 이끄소서. 귀하신 주님, 내 손을 잡으소서, 나를 이끄시고 서게 하소서, 나는 피곤하고 연약하며 지쳤나이다. 폭풍을 지나, 밤을 지나, 빛을 향해 나를 이끄소서. 이제 귀하신 주님, 내 손 잡고 본향으로 이끄소서.
오늘 오후 요르단을 건너고 싶은 분이 또 계십니까? 갈렙과 여호수아처럼 약속의 땅에 건너가서 증거를 가지고 돌아오고 싶은 분이 또 계십니까? 그들이 돌아왔을 때는 어디엔가 다녀왔다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커다란 포도송이들을 가져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제 몇 분 안에 성령으로 채워 주실 것입니다. 오늘 오후 바로 여기에 서 있는 남녀들 가운데 성령을 받을 이들이 있습니다. 신실한 마음을 가진 사람마다 바로 이곳에서 성령으로 충만해질 것입니다. 여러분이 원하고, 굶주린 채 그저 헤매고 다닌다면, 저기서 기뻐 외치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세상을 떠나신 그 연로한 어머니를 기억하십니까? 그 훌륭한 옛 웨슬리 신앙의 어머니에게 천국에서 만나겠다고 약속하고서도, 여러분은 그저 교회에 가입하기만 했습니다. 오늘 오후 이쪽으로 건너오지 않으시겠습니까? 오셔서 빛 가운데 걸으시겠습니까? 저 건너편에 내 아버지 계시네, 저 건너편에 내 아버지 계시네, 저 건너편에 내 아버지 계시네, 저편 기슭에. 오, 어느 밝은 날 그분을 만나러 가리, 어느 밝은 날 그분을 만나러 가리, 어느 밝은 날 그분을 만나러 가리, 저편 기슭에. 오, 그 밝은 날이 내일일 수도 있네, 그 밝은 날이 내일일 수도 있네, 그 밝은 날이 내일일 수도 있네, 저편 기슭에서. 얼마나 기쁜 만남이 될까, 얼마나 기쁜 만남이 될까, 얼마나 기쁜 만남이 될까, 저편 기슭에서?
표를 팔고 있습니다. 그 오랜 배가 출항하고 있습니다. 복음의 나팔이 울리고 있습니다. 오늘 오후 오셔서 표를 받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 여러분에게 침례를 주셔서 그 몸 안에 들어가게 하시고, 길의 끝에 이를 때까지 여러분을 안전하게 보장해 주십니다. 오지 않으시겠습니까? 모든 것이 준비되었습니다. 지금 성령 침례를 원하며 여기 서 계신 여러분, 저를 하나님의 종, 그분의 선지자라고 옳게 판단하신다면, 오늘 오후 여러분을 이 제단으로 데려오실 수 있는 분은 성령 그분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는 것을 아십시오. 자신의 임재로 여러분을 채워 주실 뜻이 없으셨다면, 여러분을 여기로 데려오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자신을 온전히 맡기고 주변의 모든 것을 잊으십시오. 서 있는 모든 나무도 잊으십시오. 이 사다리를 곧바로 타고 예수 그리스도께로 올라가 성령 침례를 받으십시오. 여러분 위에 부어질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여기 나머지 여러분 가운데 성령을 받으신 분은 얼마나 계십니까? 일어서십시오. 지금 이 건물 안에서 성령으로 침례를 받으신 분은 모두 이분들과 함께 서십시오. 복음 사역자들은 빨리 강단 앞으로 나오십시오. 성령으로 충만한 모든 설교자는 잠시 여기 강단으로 오십시오. 여러분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가장 영광스러운 광경을 보게 될 것입니다. 사역자 여러분, 지금 바로 강단으로 나와 주시겠습니까? 성령으로 충만한 분들은 잠시 이 위로 오십시오. 저기 계신 성령으로 충만한 여러분은 잠시 서서 하나님께 생각을 집중하십시오. 믿는 여러분, 여기서 주위의 모든 것을 차단하고 마음을 모으십시오. 지금이 그 시간입니다. 지금이 그때입니다. 여기가 그곳입니다. 지금 무언가가 일어나려 하고 있습니다. 지금이 바로, 말할 수 없이 넘치도록… 여기서 부흥이 시작될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일이 움직이기 시작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시카고를 밑바닥까지 불태울 것입니다. 여기 있는 이 무리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제게 주어진다면, 여러분은 거리와 이 주변 교회들, 곳곳에서 부흥이 일어나는 소식을 듣게 될 것입니다.
사역자 여러분, 여기로 올라오십시오. 강단 가까이로 오십시오. 성령 침례를 받으신 여러분 모두 이 사람들 위로 손을 내미십시오. 저기 계신 성령을 받은 여러분도 한 분 한 분 이 사람들을 향해 손을 내미십시오. 그렇습니다. 자, 여러분, 그분을 원하십니까? 그분이 여기 계십니다. 오 전능하신 하나님, 생명의 창시자시요 모든 좋은 선물을 주시는 분이여, 이 백성 위에 주님의 영을 부으소서. 주님, 이들을 성령으로 채우소서. 주님,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이 이들 위에 임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