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자, 제 장례식에서도 그 정도면 충분하겠습니다. 아주 좋겠습니다. 저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생각하기를 참으로 좋아합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습니까? 오늘날 사람들이 그분을 그저 어떤 철학자쯤으로 말하려 하지만, 저는 그분이 임마누엘 하나님이셨다고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찬양은 그분께 돌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분의 거룩하고 경외할 이름에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그분의 이름으로 살고, 그분의 이름으로 일하고, 그분의 이름으로 노래하고, 그분의 이름으로 설교하고, 그분의 이름으로 치유합니다. 그분의 이름으로 죽고, 그분의 이름으로 다시 일어나고 싶습니다. 그렇습니다. 어젯밤에 백스터 형제님께... 제가 이렇게 부탁했습니다. “백스터 형제님, 부탁 하나 들어주시겠습니까? 조금 일찍 가고 싶습니다. 기도 줄을 빠르게 진행할 거라면, 저를 위해 한 가지 설교를 해 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그분이 그 설교를 하시는 걸 듣기 좋아합니다. 그분이 “무슨 설교입니까?” 하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삼갈입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삼갈은 블레셋 사람들을 모조리 죽입니다. 저는 그들을 없애 버리는 게 좋습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습니까? 성경은 그들을 그 땅에 남겨 두면 여러분의 살에 가시가 되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그들을 없애 버립시다. 그래서 어젯밤 저는 편히 앉아서 삼갈에 관한 설교를 아주 즐겁게 들었습니다.
오늘 그분이 “나사로의 부활에 대해 설교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마 전에도 설교한 적이 있을 겁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으로 우리에게 복된 저녁을 주시기를 바라며, 하나님의 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바랍니다. 오늘, 위대한 분들이 강단에 서셨던 뜻깊은 이 태버내클에 오게 되어 기쁩니다. 이제는 천국으로 가신 분들입니다. 이 말이 얼마나 사실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믿을 만한 분들에게 들었는데, 고인이 되신 폴 레이더 형제님, 제가 확실히는 모르지만 이 태버내클을 세우신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태버내클을 세우신 분입니다. 저는 평생에 한 번, 포트웨인에서 그분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젯밤 여기 강단에서 환상 가운데 그분의 모습이 보였다고 합니다. 그분은 죽은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십니다. 그분의 이름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사람들의 마음속에 불멸의 이름으로 남을 것입니다.
그분이 캘리포니아에서 임종을 맞으실 때 사람들이 찬송을 부르고 있었다고 합니다. (제가 레이더 형제님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아니, 사람들이 레이더 형제님에 대해 한 말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그분은 유머가 상당하셨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슬픈 찬송들을 부르고 있자, 그분은 “이봐요, 지금 죽는 사람이 접니까, 여러분입니까?” 하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 커튼을 걷어 주십시오... 아니, 차양을 올리고, 정말 신나고 좋은 복음 찬송을 불러 주십시오.” 사람들은 「십자가 아래서」인가, 그런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분은 “이게 더 좋군요” 하셨습니다. 그리고 “루크는 어디 있습니까?” 하고 물으셨습니다. 물론 형제가 죽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던 루크가 방으로 들어오자, 그분은 루크의 손을 꼭 잡고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루크, 우리가 함께 먼 길을 걸어왔네. 그런데 생각해 보게. 지금부터 5분 후면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입고 그분 앞에 서 있을 걸세.” 위대한 사람들의 삶은 모두 우리에게 일깨워 줍니다. 우리도 우리의 삶을 숭고하게 하여, 떠날 때 뒤에 시간의 모래 위에 발자국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저 위대한 명설교자 빌리 선데이도 이 태버내클에서 여러 주 동안 계속 부흥집회를 열어 설교했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 중에도 그분의 설교를 들으러 오셨던 분들이 있을 겁니다.
그분이 돌아가셨을 때가 기억납니다. 저는 어린 소년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빌리 선데이가 톱밥 깔린 길을 걸어갔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아마 여러 차례 사람들에게 이 통로를 따라 앞으로 나오라고 하셨을 겁니다. 그분은 침대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죽으신 게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있으러 가신 겁니다. 성경에는 그리스도인이 죽는다고 한 구절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죽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죽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는데, 어떻게 그 생명에 끝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끝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우리 마음이 기뻐집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마침 제가 들어왔을 때 백스터 형제님이 저를 위한 사랑의 헌금을 걷고 계셔서 그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런 일까지 해야 한다는 것이 죄송합니다. 저는 매주 사랑의 헌금을 받습니다. 백스터 형제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집회 경비를 충당하고, 그것을 마련하여 모든 비용을 다 지불하고 나면, 저희가 각자 사랑의 헌금을 받습니다. 친구 여러분, 제 혼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감사를 드립니다. 참으로 고맙습니다. 제가 아는 한 최선을 다해 경건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 돈을 쓰겠습니다. 이번 집회에서 받은 두 번의 사랑의 헌금으로 처음에 진 빚을 갚을 수 있다면... 제가 집회에 가면 사람들이 그곳에서 선교 헌금 같은 것을 걷고 있어서, 그것이... 그분들은 할 수가... 아마 제 경비 정도나 대주실 겁니다. 다음에는 캔자스시티에 갔다가 로스앤젤레스로 갑니다.
그런데 저희는 어디로든 움직이기가 조심스럽습니다. 해외에 갈 때가 다가오고 있고, 제가 가야 한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언제든 저를 부르실 수 있고, 언제든 가야 하므로, 여행 일정을 너무 많이 잡기가 조심스럽습니다. 예방 주사도 맞았고 필요한 준비도 모두 마쳤으니, 주님이 가라고 부르시면 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저는 천국에 갈 때도 그렇게 준비되어 있고 싶습니다. 주님이 부르시면 즉시 갈 수 있도록 모든 준비가 되어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헌금에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제 기본 경비를 치르고도 남을 만큼 된다면, 그 나머지는 해외 선교에 쓰겠습니다.
오늘 오후 이 집회에도 선교사들이 계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아신다면... 제가 그곳에 갔을 때의 이야기는 여러분 중 많은 분이 아실 겁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곳으로 가라고 하셨는데, 제가 여러 설교자들의 말에 설득되어 그곳에 가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제가 가기를 원했기 때문에 저는 다른 곳으로 갔다가 톡톡히 대가를 치렀습니다. 주님은 제가 그렇게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생충 때문에 병이 났습니다. 의사조차도 제가 살아날 가망이 전혀 없다고 했습니다. 제게 남은 시간은 열 시간이었는데, 주 예수님께서 환상 가운데 오셔서 “다 끝났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약 여덟 시간 후에 바로 그 의사에게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선생님, 기생충 검사를 해 주십시오” 하고 말했습니다. 그는 “목사님, 목사님에게는 기생충이 있습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건 다 드렸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드릴 약은 다 드리고 약 상자까지 던져 드린 셈인데, 그래도 기생충이 있습니다.” 저는 “하지만 지금은 없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는 “아닙니다. 있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검사해 주시겠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냥 제 부탁으로... 비용은 내겠습니다. 우리 주님이 무엇을 하실 수 있는지 보여 드리고 싶을 뿐입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는 “목사님, 기생충이 있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검사를 해 주십시오” 하고 말했습니다. 검사를 해 보니 완전히 음성이었습니다. 그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제가 신뢰하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입니다. 그분이 제게서 기생충을 없애 주셨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는 “목사님, 이제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다시 해외로 갑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또 그 같은 곳으로 돌아가신다고요?” 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렇습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아내와 아이들을 남겨 두고 세상을 떠날 뻔했고, 온갖 일을 겪고, 비행기들이 추락하고, 건너오는 길에 앞서 가던 52명이나 죽었는데, 또 가시겠다는 말씀입니까?” 하는 식으로 말했습니다. 저는 “상관없습니다. 이 마음 깊은 곳에서 무엇인가가 저를 부르며 돌아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살든 죽든 저는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친구 여러분, 그렇습니다. 오늘날 시카고나 다른 도시의 거리를 둘러보고 아이들을 보고, 식당에서 크고 훌륭한 식사가 차려지는 모습 같은 것을 보며 생각합니다... 저는 이런 나라에 감사하지만, 저 아프리카 어디엔가는 사탕 한 조각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옷 한 벌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목욕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깨끗한 물 한 모금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어린 흑인 소년이 있습니다.
그 가엾고 배고픈 어린아이는 눈에 낀 때를 닦아 내며 그렇게 울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한 번만이라도 듣고 싶어 합니다. 그 아이에게도 날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저기 앉아 있는 제 어린 딸과 똑같이 들을 권리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누군가는 전해 주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누군가는 전해 주어야 하며, 제 마음에는 그 일을 하려는 부담이 있습니다. 그 헌금에 참여하신 한 분 한 분을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제 자신의... 제가 그저... 그것 외에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습니다. 친구 여러분, 저희도 보통 사람들처럼 삽니다. 돈이 목적이었다면 저는 백만장자가 되었을 겁니다. 한 번의 헌금으로 150만 달러를 제게 주겠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FBI 요원들이 그것을 가져왔지만, 저는 쳐다보는 것조차 거절했습니다.
그는 “브래넘 형제 목사님, 이게 무엇인지 모르시는군요” 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상관없습니다. 저는 사람들의 돈을 받지 않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가난하게 이 세상에 왔습니다. 가난하게 떠날 겁니다. 여기 사람들이 이렇게 앉아 있는데 제가 어떻게 부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얼마 전에는 제게 커다란 캐딜락을 주려고 했습니다. 밖에 있는 제 낡은 소형 쉐보레 트럭은 거의 타락한 상태였기에, 저는... 침례교인이 쓰기에는 대단한 말이지요? 타락이라니요. 하지만 타락할 수 있습니다. 그가 “타고 다니시는 차가 저겁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렇습니다. 아주 좋은 차입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가 “브래넘 형제님, 저희가 아바크에게 캐딜락을 주었습니다. 형제님께도 집에 타고 가실 새 차를 한 대 드리겠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형제님, 고맙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는 캐딜락을 타고 다닐 수 없습니다. 그런 차를 타실 수 있는 분들은 좋습니다만, 저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가령 제가 아칸소를 지나간다고 합시다. 거기에는 가난한 목화 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머니들은 아침부터 밭에서 50파운드나 100파운드쯤 되는 목화 자루를 등에 메고 끌고 다닙니다. 가엾은 그들의 작은 손에는 목화 껍질 가시가 박혀 있고, 아침으로는 기름진 베이컨과 옥수수빵을 먹습니다. 그런데 “저기 브래넘 형제님이 커다란 캐딜락을 타고 지나가네?” 하겠습니까? 저는 아닙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런 건 제 체질에 맞지 않습니다. 제가 마땅히 받을 것만 받는다면, 걸어 다니거나 자전거 같은 것을 타고 다녀야 할 겁니다. 그렇습니다. 진심으로 드리는 말입니다. 저는 시카고에서 가장 아름답고 좋은 집에 살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긋나기보다는, 하나님의 은총을 받고 싶습니다. 제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그런 모든 분들을 참으로 고맙게 생각합니다. 아무것도 없던 가난한 사람들이 형편이 나아져 아담하고 좋은 집과 자동차를 갖게 되는 걸 보면 좋습니다. 아, 가난한 사람들이 그렇게 되는 걸 보는 것이 저를 얼마나 기쁘게 하는지 여러분은 모르실 겁니다... 저는 가난하다는 게 무엇인지 압니다. 지금도 가난합니다. 죽을 때도 가난할 겁니다. 사람들이 형편이 나아지고 하나님께 복을 받는 모습을 보는 것이 제게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모릅니다. 제 마음을 울립니다. 제가 지난번 이곳에 왔을 때 그 집에 머물렀던 형제님들이 지금 여기에 앉아 계십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집이었습니다. 그분들은 거의 빈손으로 시카고에 왔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아름다운 집과 사랑스러운 자녀들과 훌륭한 아내들이 있고, 그분들은 사역과 주님의 일에 힘쓰는 귀한 형제님들입니다. 아, 이런 분들을 보면 저는 무릎을 꿇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드릴 말씀이 많지만,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것이 드릴 수 있는 가장 큰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축복해 주신다면, 저는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저를 축복해 주신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자,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고 싶지 않습니다. 오늘 오후에는 잠깐 설교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니,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저는 설교자가 아닙니다. 저는 그저... 며칠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저는 예비 타이어입니다. 타이어가 펑크 났을 때 쓰는 거지요. 지금 펑크가 난 것은 아니지만, 오늘 오후에는 그냥 저라는 예비 타이어를 끼워 놓은 겁니다. 설교자라는 말을 하니, 제가 사람들에게 자주 들려주는 작은 이야기가 하나 생각납니다. 어머니가 여기 계시는데, 이제 손가락으로 귀를 막으셔도 됩니다. 제 아버지는 말을 타는 분이셨습니다. 아주 잘 타셨습니다. 사격 솜씨도 좋으셨습니다. 총을 들고 큰 진흙 구슬들을 던져 올린 다음, 한 총으로 구슬 아랫부분을 맞혀 더 높이 띄우시고는 다른 총으로 그 구슬을 깨뜨리셨습니다. 저는 그렇게 해서는 빨래통도 맞히지 못했겠지만, 아버지는 명수셨습니다. 저는 늘 아버지처럼 되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어릴 때 밭을 갈던 일이 생각납니다. 어머니가 저를 부르시면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제게 들리는 건 “엄” 하는 소리뿐이었습니다. “윌리엄!” 하시는 거지요. 저 멀리 밭 뒤쪽에서도 그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낡은 밀짚모자를 벗어 흔들고, 그 낡은 고삐줄을 잡았습니다. 밧줄 고삐로 밭을 갈아 보신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손 좀 들어 보십시오. 여기에도 시골 출신들이 몇 분 앉아 계시군요. 그렇습니다. 목에 걸었던 그 낡은 고삐줄을 벗어 놓고 점심을 먹으러 들어가곤 했습니다. 하루 종일 밭을 갈고 나면 얼마나 피곤했는지 기억합니다. 저녁에 우리가 들어올 때도 아버지는 아직 밭에 계셨습니다. 저는 소젖을 짜야 해서 일찍 들어와야 했습니다. 그러고는 가서 물통 있는 데로 내려가곤 했습니다. 말에게 물을 먹이는 물통이 뭔지 아시는 분 계십니까? 아, 이제 제 고향 이야기가 나오는군요. 그렇지 않습니까? 좋습니다.
제가 그리로 가면 형제들도 모두 와서 저를 지켜보곤 했습니다. 저는 집에서 언덕 너머 보이지 않는 쪽으로 돌아갔습니다. 집에 들어가 아버지 안장을 가져오고, 도꼬마리 열매를 한 움큼 집어 안장 밑에 던져 넣은 다음, 그 늙은 말 위에 안장을 조여 매고 올라탔습니다. 가엾은 그 말은 몹시 지친 데다 늙고 몸도 뻣뻣해서 발조차 땅에서 떼지 못했습니다. 그저 울부짖기만 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모자를 벗어 흔들며 말을 타는 진짜 카우보이가 된 듯했습니다. 형제들은 모두 거기 앉아 저를 응원했습니다. 저는 진짜 카우보이였습니다. 열아홉 살쯤 되었을 때 저는 집을 뛰쳐나갔습니다. 어머니는 그 일로 아직도 저를 충분히 혼내지 못하셨습니다. 그렇게 저는 집을 나와 서부로 갔습니다. 말을 타는 사람이 되려고 했습니다. 은장식 안장을 가지려 했지요, 오스본 형제님. 무슨 말인지 아실 겁니다.
그래서 서부로 갔습니다. 애리조나에 갔는데 로데오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돈이 좀 필요하군” 하고 말했습니다. 리바이스 바지를 한 벌 사 입고 그곳에 가서, ‘나도 타야겠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라고 나보다 말 타는 걸 더 잘 알겠어’ 하고 생각했습니다. 로데오가 열리는 곳의 울타리 위에 올라앉았습니다. 잠시 후 사람들이 말들을, 사납게 날뛰는 말들을 풀어놓았습니다. 그곳에는 유명한 말이 한 마리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자, 누구든 이 말을 탈 수 있다면...” 하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유명한 기수 한 사람을 데려왔습니다. 보니 그 사람은 그 말을 타면 아마 200달러나 그 이상을 받을 모양이었습니다. 멋들어진 옷을 쫙 차려입고 안장에 뛰어올랐습니다. 말이 출구를 나올 때 그는 어떻게든 붙잡고 버텼습니다. 그런데 말이 나와서 옆으로 몸을 비틀며 한 번쯤 펄쩍 뛰자, 안장은 한쪽으로 날아가고 사람은 다른 쪽으로 날아갔습니다. 보조 기수들은 말을 붙잡았고, 구급차는 기수를 데려갔습니다. 그 사람의 귀와 눈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울타리를 따라오며 말했습니다. “여기 카우보이들 중에 누구든 저 말을 타고 1분을 버티면, 1분에 100달러씩 주겠소.” 아무도 말이 없었습니다. 그가 말을 타고 더 내려오다가 저를 똑바로 바라보았습니다. 저는 리바이스 바지를 입고 다른 카우보이들 못지않게 거들먹거리며 거기 앉아 있었습니다. 철없는 아이였지요. 그런 모습으로 앉아 있었는데, 그가 제게 바로 다가와 “말을 타는 사람이오?” 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아닙니다. 아닙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저 말이 아버지의 뻣뻣한 늙은 쟁기말이 아니라는 걸 알았던 겁니다. 그 말과는 다르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러다가 처음 목사 안수를 받았을 때, 저는 성경을 옆구리에 끼고 다니곤 했습니다. 누가 “설교자십니까?” 하고 물으면,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설교자입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어느 날 천막집회에서 한 순복음 설교자가 설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숨이 찰 때까지 설교해서 얼굴이 빨개지더니, 무릎을 굽혀 바닥까지 몸을 낮췄다가 다시 올라오며 숨을 들이쉬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계속 설교했는데, 도시의 두 블록쯤 떨어진 곳에서도 그 소리가 들릴 정도였습니다. 누가 “설교자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아닙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정말 설교할 줄 아는 사람의 설교를 듣고 나니, 그때부터 저는 더 이상 설교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설교자라고 말할 때 늘 조심합니다. 아시겠죠? 하지만 우리가 함께... 주님의 복을 누릴 수 있는 자리에 가는 것은 참 좋습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습니까?
저기 앉아 있는 어린 오스본 군을 보니 생각이 납니다. 오늘 아침에 저와 그 어린 소년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러고 보니 한 번은... 참으로 옛날식 성령 집회를 보십시오. 그런 집회를 좋아하시는 분 계십니까? 좋아하십니까? “아멘” 해 보십시오. 그럼요, 좋아하고말고요. 예전에 우리는 그런 집회를 팝콘 집회라고 불렀습니다. 팝콘 집회가 뭔지 아십니까? 조그만 노란 옥수수 알갱이 하나를 뜨거운 난로 위에 놓습니다. 그러면 크기는 두 배가 되고, 무게는 절반으로 가벼워지며, 노란색에서 흰색으로 변합니다. 그것이 팝콘 집회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게 바로 그것입니다. 간증하기도 두려워하던 작은 사람이 갑자기 펄쩍 일어납니다. 휴거될 준비를 하고, 좀 누렇던 옷을 흰옷으로 갈아입습니다.
그러니 어느 날 아침 낚시하던 일이 생각납니다. 여기에도 저와 같은 낚시꾼 친구들이 많이 계시겠지요. 이렇게 가까이에 호수가 있으니까요. 저는 저 멀리 북부 숲속에서 낚시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팬케이크를 아주 좋아합니다. 팬케이크 좋아하시는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아, 저는 팬케이크가 정말 좋습니다. 그래서 당밀을 한 통, 아주 큰 통으로 가져가곤 했습니다. 저는 침례교인이니까요. 조금 뿌리기만 하는 게 아니라 푹 담급니다. 당밀을 부을 때 듬뿍 붓습니다. 온통 두껍게 덮이도록 말입니다. 그래서 ‘아, 이것만 있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큰 당밀 통을 가져가서 그곳에 작은 천막을 쳤습니다. 그 숲에는 흑곰이 많았습니다. 형제님의 아들도 얼마 전에 흑곰 한 마리 때문에 무슨 일을 겪었지요. 사실 흑곰은 별것 아닙니다. 어쩌다가 그렇게 악명이 붙었는지 모르겠지만, 문제는 닥치는 대로 찢어 놓는다는 겁니다. 아, 그건 지독합니다.
저는 작은 천막을 쳐 놓고 커다란 무지개송어를 잡고 있었습니다. 개울 아래쪽으로 내려갔다가, 손에 작은 손도끼, 조그만 야영용 도끼를 들고 돌아왔더니 천막이 주저앉아 있었습니다. 보니 어미 곰 한 마리와 새끼 곰 두 마리가 거기 앉아 있었습니다. 어미 곰은 제가 버드나무 숲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조금 달아나 언덕 비탈로 올라갔습니다. 그러고는 새끼들을 부르자 한 마리가 따라갔습니다. 다른 한 녀석은 이렇게 저를 등지고 있었습니다.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저 녀석들이 한 짓 좀 봐. 이런, 다 찢어 놓았잖아’ 하고 생각했습니다. 새끼를 데리고 있는 곰은 사람을 할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너무 가까이 가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총도 있었지만, 새끼들을 숲에 고아로 남겨 두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저... “저리 가!” 하고 소리쳤습니다. 어미는 조금 더 달아나 계속 다른 새끼를 불렀지만, 그 녀석은 가지 않았습니다.
저는 ‘저 작은 녀석이 무엇에 저렇게 정신이 팔렸지?’ 하고 생각하며 둘러보았습니다. 돌을 던지려고 이쪽으로 계속 돌아가 보았지만, 그 녀석은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습니다. 그저 이렇게 고개를 숙이고 무엇인가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도대체 저 녀석이 무엇에 저렇게 열중하고 있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꼭 그런 일이 있을 때는 카메라를 안 가지고 있지요. 그래서 이쪽으로 돌아가 보았습니다. 제가 “거기서 일어나!” 하고 소리치자 그 녀석이 돌아서서 저를 보았습니다.
그 작은 녀석이 제 당밀 통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두 팔로 꼭 끌어안고 있었습니다. 뚜껑을 열어 놓고 작은 앞발을 이렇게 푹 집어넣고 있었는데, 얼굴 전체가 당밀투성이였습니다. 조그만 배도 당밀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습니다. 눈을 연신 깜박거리며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이렇게 핥다가 작은 앞발을 푹 집어넣고는 또 당밀을 핥았습니다. 저는 “실컷 즐겨라, 녀석아” 하고 말했습니다. 그 모습은 참으로 옛날식 성령 집회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꿀단지를 열고 손가락을 푹 집어넣어 눈썹이며 온몸에 다 묻히는 것 말입니다. 자기가 어디 있는지도 잊을 만큼, 참으로 옛날처럼 즐거운 시간을 누리는 겁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녀석이 당밀을 실컷 먹고 나서였습니다. (온몸에 당밀을 묻힌 채였고, 어미는 계속 그 녀석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통을 내려놓고 달아났습니다. 제가 그쪽으로 가 보니 어미와 다른 새끼가 그 녀석을 핥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거의 핥아서 맛볼 수 있을 정도의 옛날식 집회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정말 옛날식 집회 말입니다.
좋습니다. 요한복음 11장입니다. 이제 말씀을 조금 읽고 기도하겠습니다. 18절부터 이렇게 읽겠습니다. 이제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십오 스타디온쯤 떨어진 가까운 곳이므로 유대인들 중의 많은 자들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와서 그들의 오라비에 관하여 그들을 위로하더라. 그때에 마르다는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가서 그분을 맞이하되 마리아는 여전히 집에 앉아 있더라. 그때에 마르다가 예수님께 이르되, 주여,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으리이다. 그러나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 하나님께 구하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주께 주실 줄 내가 아나이다, 하니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일어나리라, 하시니라. 마르다가 그분께 이르되, 마지막 날들에 부활할 때에 그가 다시 일어날 줄 내가 아나이다, 하매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 누구든지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이것을 네가 믿느냐? 하시니 그녀가 그분께 이르되, 그러하오이다, 주여,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하니라.
고개를 숙이겠습니다. 주님, 우리는 장터에서 노는 아이들처럼 서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가 행복해하며 기뻐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압니다. 주님은 주님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아버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었으니, 우리의 마음을 가라앉혀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성령께서 모든 사람의 마음을 붙잡아 주시옵소서. 주님, 허락하시고, 오늘 모든 죄인이 구원받게 하시옵소서. 타락한 사람마다 하나님의 왕국으로 돌아오게 하시고, 이 건물 안의 모든 병든 사람이 나아서 나가게 하시옵소서. 아버지, 허락하시고, 이제 성령께서 오셔서 하나님께 속한 것들을 가져다가 각 사람의 마음에 필요한 대로 나누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구합니다. 아멘.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이 장의... 배경을 조금 살펴보겠습니다. 저기 시계가 보이는 것 같으니, 이제 여러분이 온전히 주의를 기울여 주시면 시간을 너무 많이 쓰지는 않겠습니다. 오늘 저녁 집회나 내일 무슨 일이 있을까 하는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지금 바로 주 예수님께서 여기에 계신다는 것을 생각합시다. 그리고 각자가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죄인이라면 말입니다. “하지만 주님, 제게 주실 것이 있다면 제 마음에 말씀해 주십시오.” 성령 침례를 받지 못한 분은 모두 이렇게 말씀드리십시오. “주님, 저는 성령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무엇이든, 저는 두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태어나고 싶습니다. 주님이 ‘사람이 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 그 왕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저는 다시 태어나고 싶습니다.”
자, 성령을 받기 전에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 점을 이해하십시오. 성령이 여러분의 믿음의 인이라는 말입니다. 아시겠죠?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하나님을 믿었고, 그 후 하나님께서 그에게 약속의 인을 주셨습니다. 아시겠죠? 여러분도 믿음으로 하나님을 믿고 믿음으로 의롭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 침례로 그리스도의 몸 안에 인침을 받습니다. 감독들과 대감독들을 비롯한 여러 사람이 와서 그것을 간증하는 것을 여러분이 듣습니다. 아직 받아 보지 못했다면, 와서 직접 경험해 보십시오. 참 좋습니다. 어떻게... 한번은 제가 앓던 병에서 회복된 뒤에 어떤 사람이 물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앓으시는 동안에도 신앙을 지키셨습니까?” 저는 “아닙니다. 저는 못 지켰습니다. 앓는 동안 신앙이 저를 지켜 주었습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니까 성령이 저를 지키시는 것이지, 제가 성령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그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저를 지키십니다. 저는 그저 성령을 받았고, 성령은 저를 돌보십니다. 모든 믿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오후의 본문은 바로 예수님의 사역이 막 시작되어 한창 꽃피던 때의 일입니다. 그분이 나오셔서 병든 사람들을 고치기 시작하시자 큰 무리가 그분께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그분의 사역 첫해였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사역 둘째 해에는 사람들이 그분의 흠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셋째 해에는... 그다음 해 중반에 사람들은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언제나 그런 식으로 흘러갑니다. 부흥이 일어나면, 아, 온통 화려하게 반짝입니다. 그러다가 부흥이 가라앉습니다. 어느새 정말 진실한 것만 남고, 나머지는 떠나 버립니다.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런데 이때 예수님은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우리가 배운 바에 따르면, 얼마나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베다니에 살던 마르다와 마리아는 정통 교회, 곧 유대교회를 떠나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예수님은 그들의 집에 머물고 계셨다고 합니다. 그들에게는 나사로라는 오라비가 있었는데, 그가 서기관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양피지에 율법을... 율법의 글자 등을 쓰는 것이 그의 일이었습니다. 마리아와 마르다는 성전에 쓸 장식용 직물 같은 작은 물품들을 만들었다고 배웠습니다. 그렇게 바느질로 생계를 꾸렸습니다. 이 무렵 예수님의 삶에는 놀라운 일들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그분을 보고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분이 부르심을 받아 이 집을 떠나셔야 할 때가 왔습니다.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 이상하게 보이지만, 때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예수님은 탄생부터 놀라우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세상에 오셨을 때는 사생아라는 누명이 따라다녔습니다. 사람들이 그분의 아버지는 요셉이고, 그 아이는... 그 어머니는 두 사람이 정식으로 결혼하기도 전에 아이를 가졌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삶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나가실 때는 사형을 당하셨습니다. 마구간 문으로 들어오셔서 사형을 당하고 나가셨습니다. 세상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그렇게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태어나시기 바로 전에...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일을 미리 준비하십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믿지 않습니까? 주의 깊게 들어 주십시오. 저는 오늘 온 마음으로 믿습니다... 자, 이것은 그저 브래넘 형제 개인의 말입니다. 아시겠죠? 저는 여러분이 지금 보고 있는 일들이 하나의 준비라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절정을 앞두고 무엇인가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세상에 경고하시며, 사람들이 그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남는 것은 하나뿐입니다. 심판입니다. 노아가 세상에 경고했지만, 사람들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시대에 걸쳐 하나님께서는 늘 경고하셨습니다. 그분은 긍휼을 보내십니다. 사람들이 긍휼을 뿌리치면 심판밖에 남지 않습니다. 그러나 긍휼 많으신 아버지께서는 먼저 긍휼을 보내십니다.
이때, 주 예수님이 오시기 바로 전에 사람들이... 교회는 그분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주 적을 정도까지 내려가 있었습니다. 오늘날처럼 그저 무관심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언제나 그분을 믿는 남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중 한 사람이 사가랴라는 사람이었고, 그의 아내 이름은 엘리사벳이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율법을 따라 행하고 하나님의 모든 법규와 명령을 지키는 의로운 사람들이었습니다. 사가랴가 성전에서 맡은 일은 향을 피우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밖에서 기도하는 동안 사가랴는 향을 피웠습니다. 시간이 있으면 이제 그 배경을 충분히 살펴보고, 향이 무엇을 뜻하는지 기초를 놓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그 향은 그분의 피입니다. 샤론의 장미, 골짜기의 백합이십니다. 그리고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머리 꼭대기에서부터 수염을 타고 옷자락까지 흘러내리도록 이 기름으로 부음을 받아야 했던 것 말입니다. 그가 들어갈 때... 누가 여러분에게 순복음 사람들이 좀 시끄럽다고 말하거든, 들려줄 말이 있습니다.
아론은 일 년에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갈 때 특정한 옷을 입어야 했고, 기름부음을 받아야 했으며, 피를 가지고 들어가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의 옷자락에는 석류와 방울, 석류와 방울이 달려 있었고, 그는 걸을 때 “거룩, 거룩, 주께 거룩” 하는 소리가 나게 해야 했습니다. 사람들이 그 사람이 아직 살아 있고, 하나님께서 휘장 뒤에서 그를 죽이지 않으셨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 소리였습니다. 방울 울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교회에 생명이 있는지 알 수 있는 유일한 길도, 어딘가에서 조금 소리가 나기 시작할 때입니다. 가끔 작은 “아멘” 소리나 무엇이든 좀 들리는 겁니다. 소리를 좀 내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브래넘 형제님, 그건 감정적인 겁니다”라고 합니다. 자, 저는 감정이 없는 것은 무엇이나 죽어 있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신앙에 감정이 없다면 그것을 묻어 버리십시오. 그렇습니다. 아무 쓸모가 없기 때문입니다. 죽은 겁니다. 이제 이 사가랴가 보이는 듯합니다. 이 장면을 조금 극적으로 그려 봅시다. 그는 거기서... 그와 아내는 오랜 세월 아이를 원했고, 기도하며 바르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그냥 지나가 버릴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이를 얻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시는 때는 바로 가장 어두운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응답하시는 때가 그렇습니다.
우리는 서두릅니다. “어젯밤에 기도를 받았는데, 오늘 아침에도 나아진 것 같지 않습니다.” 너무 서두르는 겁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들이고 그 약속을 굳게 붙드십시오. 바로 그 자리에 머무십시오. 그들은 여러 해 동안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이제 엘리사벳은 늙어 아이를 낳을 나이가 지났습니다. 아이를 갖게 되리라는 희망은 모두 사라진 듯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사가랴가... 성전에 있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향로에 불을 피워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기 자리로 가서 서서, 그것을 앞뒤로, 앞뒤로 흔들었습니다. 향로가 오가고 향유가 타면서 향이 피어올랐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자기 오른쪽을 바라보니, 거기에 천사가 서 있었습니다. 하나님께는 언제나 천사들이, 섬기는 영들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믿습니까? 천사들은 죽지 않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습니까? 하나님께서 땅에서 무엇인가를 하려 하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어떤 일을 하시기 전에, 먼저 그 일을 알리십니다.
천사들이 찾아옵니다. 아마 저를 찾아오는 천사나 여러분을 찾아오는 천사 등이 있을 겁니다. 작은 일을 맡은 천사들도 있겠지만, 이 천사 가브리엘이 온다는 말을 들으면 주의하십시오. 무엇인가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가브리엘이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을 알렸고, 가브리엘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도 알릴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아멘. 저는 벌써 경건한 감동이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보십시오. 그분이 오시는 것을 생각하면... 사가랴가 거기 서 있었습니다. 그는 천사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천사는 “사가랴야” 하고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말해 주었습니다. 여기서 직무를 수행하는 날들이 끝나면 집에 돌아가 아내와 함께 지내고, 아내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자, 저 설교자를 보십시오. 오늘날의 어떤 설교자들과 아주 비슷합니다. 그는 “아니,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제 아내는 너무 늙었습니다” 하는 식으로 말했습니다. 천사는 “나는 하나님 앞에 서는 가브리엘이라. 네가 내 말을 의심하였으므로 아기가 태어나는 날까지 벙어리가 되리라” 하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 말씀을 없앨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유효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 말씀은 하늘에 영원히 확정됩니다. 바로 거기에 준비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이미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아, 우리 같은 죽을 인생들이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이것으로 확정되었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그대로 믿고, 무엇이 닥쳐오든지, 얼마나 여러 방향에서 옆으로 밀어붙이든지 그대로 서는 겁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붙듭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고, 저는 그것을 믿습니다. 그것으로 끝입니다. 아멘. 천사는 “아기가 태어나는 날까지 네가 벙어리가 되리라. 그러나 내 말들은 그것들의 때에 성취되리라” 하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뜻을 정하셨습니다. 여러분이 “그 광신자 무리는 언젠가 타 없어질 것이고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라고 아무리 말해도,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남을 것입니다.
그가 다시 밖으로 나왔을 때, 물론 우리가 알다시피 사람들은, 그들은... 그는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말할 수가 없어 사람들에게 손짓했습니다. 그런 다음 집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직무를 마친 뒤 집에 돌아갔고, 아내가 수태하여 여섯 달 동안 몸을 숨겼습니다. 이제 여섯 달이 끝날 무렵, 그 천사가 다시 옵니다. 아멘. 그 나라에서 가장 악한 도시인 나사렛에 한 어린 처녀가 살고 있었습니다. 거의 시카... (실례했습니다.) 아무튼 제가 사는 제퍼슨빌만큼 나쁜 곳이었습니다. 아, 아주 나쁘고 악한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그 도시가 아무리 나빠도, 여러분은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때처럼 진실한 마음들을 찾고 계십니다. 그분은 이 가난하고 평범한 어린 처녀를 찾으셨습니다. 월요일 아침, 빨래하는 날이었다고 생각해 봅시다. 머리에는 물동이 하나를 이고 양쪽 옆구리에도 하나씩 끼고 걸어옵니다. 우물에서 돌아오는 길입니다. 그녀는 어떤 남자와 결혼할 예정이었습니다. 아직 젊은 처녀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눈앞에 빛이 비치고, 그 빛 가운데 위대한 천사장 가브리엘이 서서 “마리아야, 평안할지어다!” 하고 말합니다.
그녀는 깜짝 놀랐습니다. 천사는 그녀가 남자를 알지 못하면서 아이를 세상에 낳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촌 엘리사벳도 수태하여 아이를 낳게 되리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또 그분이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므로 그분의 이름을 예수라 하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인사를 받았으니 그 어린 처녀가 놀랄 만도 했습니다. 여러분도 놀라실 겁니다. 길 앞에 천사가 팔을 벌리고 서서 “나는 하나님 앞에 서는 가브리엘이라” 하고 말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분명 두려우실 겁니다. 그 어린 처녀가 하는 말이 들리는 듯합니다... 이제 주목해 주십시오. 바로 이것입니다. 이 말이 아주 깊이 스며들어, 왼쪽 다섯째 갈비뼈 아래까지 내려가 단단히 자리 잡기를 바랍니다. 한쪽에는 말씀을 아는 제사장, 설교자가 있었고, 그에게는 본보기가 많았습니다. 하갈도 아이를 얻었고, 사라도 그랬으며, 다른 많은 사람들도 아이를 얻었습니다. 그에게는 본보기가 많았지만 천사를 의심했습니다. 그러나 이 어린 처녀는 한마디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주의 여종을 보소서. 당신의 말씀대로 그 일이 내게 이루어지리이다” 하고 말했습니다. 아멘. 그렇게 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그대로 믿으십시오. 마리아를 보십시오. 확실해지기도 전에, 생명의 징후가 조금이라도 나타나기도 전에, (남녀가 함께 모인 자리지만, 들어 보십시오.) 몸에 아무런 징후가 나타나기도 전에, 아이를 갖게 되리라는 사실로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런 징후가 있기 전이었습니다. 하나님, 오늘 오후 시카고에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그대로 믿을 이런 마리아들을 주시옵소서. 아멘. 제가 흥분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제 자신에게 “아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멘은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라는 뜻이고, 저는 그것을 믿습니다. 좋습니다.
그녀는 성내 곳곳을 다니며 사람들에게 자기가 남자를 알지 못하면서 아이를 갖게 되리라고 말합니다. 물론입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그대로 믿은 것입니다. 그녀는 곧장 유대 산간 지방으로 올라갔습니다. 엘리사벳의 이야기를 들었고, 그 사촌도 복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참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들은 그렇게 합니다. 누군가 성령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으면, 가서 자세히 알아봅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고쳐 주시면, 옆집 사람도 와서 함께 즐거워하며 기뻐합니다. 그녀는 곧장 베들레헴을 지나 유대로 올라갔습니다. 사라가... 아니, 엘리사벳이 있는 곳에 이르렀을 때... 마리아와 엘리사벳은 사촌이었습니다. 요한과 예수님은 육촌이었습니다. 집 가까이 왔을 때, 방 깊숙이 있는 엘리사벳이 보이는 듯합니다. 그녀는 몸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커튼을 들어 올리자 젊은 처녀가 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녀는 “내 사촌 마리아구나” 하고 말하며 밖으로 나갔습니다. 아, 얼마나 행복했을지 눈에 선합니다. 그녀는 마리아에게 팔을 두르고 껴안으며 입을 맞추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는 여자들이 그렇게 서로를 맞았습니다. 그런데 형제 여러분, 아십니까? 이제 시대가 달라졌습니다. 서로 그런 사랑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이제는 말도 건네지 않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예전에 농장에서는 누가 병이 나면, 우리가 가서 그 사람의 장작을 패 주거나 건초를 쌓아 주거나, 필요한 일이면 무엇이든 했습니다. 대수롭게 여기지도 않았고, 가서 밤새 곁을 지켜 주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신문에 나지 않으면 이웃이 죽은 줄도 모릅니다. 형제 사랑이 이렇게 사라진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전 같은 사랑이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아버지는 돈이 떨어지면, 수확할 때까지 지내려고 이웃에게 가서 50달러를 빌리곤 하셨습니다.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담보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담보 없이 5달러도 빌릴 수 없습니다. 형제 사랑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아, 우리에게 그 사랑이 얼마나 필요한지 모릅니다!
얼마 전이었습니다. (아내가 여기 있는데, 나중에 제게 이 일로 한마디 하겠지요.) 우리가 시내에 갔을 때, 아는 젊은 여자가 길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제가 “저 사람 봤어?” 하고 물었습니다. 아내는 “인사했어요” 하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인사하는 걸 못 봤는데” 하고 말했습니다. 아내는 “보고 웃었어요”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건 말을 건넨 게 아닙니다. 제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아시겠지요. 저는 옛날 시골식으로, 펌프 손잡이를 움직이듯 크게 위아래로 흔들며 악수하는 게 좋습니다. “안녕하십니까, 형제님. 잘 지내십니까?” 하고 말하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요즘에는 그 대신 그저 좀 싱겁게 씩 웃으며 “안녕하세요” 하고 말합니다. 저는 그런 게 싫습니다. 너무 차가워서 얼어 죽을 것 같습니다. 어느 날, 저기... 보스워스 형제님과 제가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 있을 때, 거기에 천막을 쳤습니다. 젊은 형제 한 분이 집회를 열다가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 제가 이틀 정도 도우러 내려갔습니다. 거기에 무슨 공작부인인가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 저는 체면이나 격식 차리는 일은 잘 모릅니다. 어쨌든 대단한 지위의 여자였습니다. 그 여자는 자기 땅에, 거기 자기 공원이 있는 곳에 이 천막을 세우도록 허락해 주었습니다.
제가 그곳에 내려가 설교하고 있는데, 보스워스 형제님이 “브래넘 형제님, 바로 여기 뒤쪽에 서 계시겠습니까? 공작부인이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누구라고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분은 “공작부인입니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분이 누군데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이 땅을 쓰게 해 준 부인입니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래서 그분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나을 게 뭡니까?” 하고 말했습니다. 아시겠죠? 그러자 그분이 “여기 서 계십시오. 이리 오실 겁니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몇 분 뒤에 아주 몸집이 큰 여자가 이렇게 돌아왔습니다. 막대 손잡이가 달린 안경을 손에 들고, 얼굴에서 이만큼 떨어뜨려 들고 있었습니다. 안경을 그렇게 멀리 들고는 제대로 볼 수 없지 않습니까. 그 여자는 구식 산탄총의 화약 마개로나 쓸 만큼 적은 옷을 걸치고 와서는, 이렇게 서 있다가 이런 식으로 걸어왔습니다. “브래넘 박사님이신가요?” 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아닙니다, 부인. 아닙니다. 저는 브래넘 형제입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 여자는 크고 살찐 손을 이렇게 들어 올리며 “브래넘 박사님, 만나 뵙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손을 잡고 말했습니다. “자매님, 이리 보십시오. 그 손을 이 아래로 내려 주십시오. 다음에 뵈어도 알아볼 수 있게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요즘 우리는 너무도 많이, 말하자면... ‘있는 척한다’는 표현처럼 겉치레를 하려고 합니다. 도대체 여러분이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여러분도 그저 사람일 뿐입니다. 얼마 전에 경기장... 아니, 박물관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그 안에 몸무게가 150파운드인 사람의 몸을 그려 놓은 그림이 있었습니다. 몸을 구성하는 화학물질의 값이 84센트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84센트짜리에 100달러짜리 양복을 입히고는, 자기가 대단한 사람인 줄 알고 콧대를 하늘 높이 치켜들어 비라도 오면 익사할 것처럼 돌아다닙니다. 몸무게가 150파운드라면 여러분은 84센트밖에 안 됩니다. 84센트짜리에 500달러짜리 밍크코트를 둘러 입고, 이웃에게 말도 건네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오늘날 세상의 문제입니다. 아멘. 사람들이 거만하고 뻣뻣하게 굽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으셔서 여러분 안의 그런 것을 푹 누그러뜨리셔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정확히 같은 위치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하나의 본으로 만드셨습니다. 여러분이 더 좋은 동네에 살고, 더 좋은 교회에 다닌다 해도, 하나님께서 만드신 사람일 뿐입니다. 여러분이 누구이기에 자랑합니까? 영광은 하나님께 돌아갑니다. 그렇습니다. 거기 두 소년이 서 있었는데, 하나가 그것을 보더니 “존, 우리도 별로 값이 안 나가네, 그렇지?” 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얘야, 보렴. 그건 네 몸 이야기야. 하지만 네게는 만 개의 세상만큼이나 귀한 혼이 있단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몸은 언젠가 흙으로 돌아가겠지만, 네게는 영원히 살 혼이 있단다. 그 혼을 잘 돌보렴” 하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을 구속하시려고 영광에서 내려와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혼에 얼마나 큰 가치를 두셨는지 보십시오. 문제가 그것입니다. 우리는 겉을 바라보고 겉을 돌보면서, 속은 내버려 둡니다. 그렇습니다. 마르다가... 아니, 마리아가 엘리사벳에게 달려가 껴안고 입을 맞추며 다독이는 모습이 보이는 듯합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아...” 하고 말합니다. 그들의 대화를 들어 봅시다. 마르다가 하는 말이 들리는 듯합니다... (자, 이것은 장면을 극적으로 그려 보는 겁니다.) 마르다... 아니, 마리아가 이렇게 말하는 게 들리는 듯합니다. “아, 엘리사벳, 정말 기뻐요. 소식을 들었어요.” 어떻게 들었는지는 말하지 않고, “언니가 어머니가 되실 거라는 소식을 들었어요” 하고 말합니다.
엘리사벳이 “그래, 맞아” 하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걱정이 되는구나.” “왜요?” “아이를 가진 지 여섯 달인데, 우리가 아는 한 아직 아무런 생명의 움직임이 없단다.” 그건 정상이 아닙니다. 아시겠죠? 석 달쯤, 두 달쯤이면 생명의 움직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정상이 아니야. 아직 생명의 움직임이 없어서 걱정이 돼. 벌써 여섯 달인데” 하고 말하는 겁니다. 마리아는 “그런데 가브리엘 천사가 저를 만나서, 저도 남자를 알지 못하면서 어머니가 될 거라고 말했어요. 제가 이 아이를 낳고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게 될 거라고 했어요” 하고 말했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의 입술을 통해 그 예수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말해졌을 때, 어머니 태 속에 죽은 채 누워 있던 어린 요한이 성령을 받고 기뻐서 뛰며 펄쩍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죽은 아기에게 생명을 가져다준다면, 다시 태어난 교회에는 어떤 일을 일으켜야 하겠습니까? 할렐루야! 아멘. 그렇습니다. 그녀는 “내 주의 어머니가 어찌 내게 오시는가?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즉시로 아기가 내 태 속에서 기뻐 뛰놀았도다” 하고 말했습니다.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아, 형제 여러분, 우리는 안개 속에서 헤매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디 있는지 압니다. 물론입니다.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즉시로 아기가 내 태 속에서 기뻐 뛰놀았도다”라고 했고, 요한은 성령을 받았습니다. 아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어떤 일을 합니까? 저는 그 이름이 주술사들을 묶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이름이 마귀들을 묶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이... 부끄러운 꼴로 강단 위에 쓰러지고, 자기 자리에 쓰러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마비되어 거기 앉아 있었습니다. 아! 아버지를 믿는 믿음, 아들을 믿는 믿음, 성령을 믿는 믿음, 셋이 하나 안에 계시네. 마귀들은 떨고, 죄인들은 깨어나리니, 여호와를 믿는 믿음은 무엇이든 흔들어 놓으리라.
그렇습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굳게 붙드십시오. 그렇습니다. 아, 하나님께는 언제나 그분을 믿는 백성이 있었습니다. 저 옛날 그분이 광야에서 나오셨을 때... 아니, 이스라엘 자손을 광야로 이끌어 들이셨을 때 말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시간이었습니까! 그들이 홍해를 건너 저편에 이르렀을 때, 옛날식 야외집회를 열었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그들을 부리던 감독들이 모두 바다에 죽어 있었습니다. 미리암은 영 안에서 춤을 추며 탬버린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옛날식 야외집회의 아주 전형적인 모습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모세는 영 안에 들어가 손을 들고 영 안에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아멘. 그것이 옛날식 집회가 아니라면, 저는 그런 집회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겁니다.
자,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들이 막 건너왔을 때 가진 것이라고는 머리에 이고 온 작은 빵 상자뿐이었습니다. 그것도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땅에 만나가 가득 깔려 있었습니다. 흰 서리처럼 보였습니다. 그들은 맛을 보려고 혀로 핥아 보았다고 합니다. 얇은 과자와 꿀 같은 맛이 났습니다. 아, 그거야말로 침례교인이 좋아할 음식이었지요? 얇은 과자와 꿀 말입니다. 좋습니다. 그래서 먹기 시작했습니다. 맛이 좋았습니다. 다윗이... 시편 기자가 한번은 이렇게 말했던 것 같습니다. “주께서 선하신 것을 맛보고 알지어다. 반석 속의 꿀 같은 맛이로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반석 속의 꿀입니다. 성경에서 반석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언제나 반석입니다. 그분이 그 반석이셨습니다. 광야에 있던 반석이셨고, 그 반석은...
옛날에는 무슨 일이 있었냐 하면... 누군가 미친개에게 물리면, 그 사람을 광견병 치료석으로 데려가 그 돌에 붙여 놓곤 했습니다. 그 사람이 거기에 붙어 있으면 나았고, 붙어 있지 못하면 죽었습니다. 오늘날 제가 아는 가장 나쁜 미친개는 마귀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그에게 물렸다면 그 돌, 그 반석이신 그리스도 예수께 가십시오. 갈보리의 만세 반석을 붙드십시오. 저를 위해 갈라지신 반석이여, 제가 그 안에 숨게 하소서. 세상이 뭐라고 하든, 여러분의 교회가 뭐라고 하든, 의사가 뭐라고 하든, 만세 반석을 붙드십시오. 거기에 붙어 있으십시오. 꼭 붙드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낫게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믿지 않습니까? 아멘. 그렇습니다. 아! 또 한 가지, 그 만나는 반석 속의 꿀 같은 맛이 납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받아 보셨습니까? 맛보신 적이 있습니까? 오늘날 우리에게도 영적인 만나가 있습니다. 그렇게 믿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여정에 있는 동안 내내 그 만나를 공급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성령의 모형이었습니다. 그렇게 믿습니까? 육적인 사람에게는 육적인 만나를 공급해 주셨습니다. 이제 영적인 사람은 하늘에서 오는 만나, 곧 성령을 받습니다.
오순절 날 교회가 시작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처음 만나가 내린 일은 그것의 아주 아름다운 모형입니다. 그들은 모두 다락방에 한마음으로 모여 있었고, 갑자기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소리 같은 소리가 났습니다. 그들이 앉아 있던 온 집안에 그 소리가 가득했습니다. 갈라진 혀들이 그들 위에 나타났는데, 불 같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충만하여 거리로 나가 소리를 지르고 외치며 그렇게 했습니다. 밖에 서 있던 종교계 사람들은 모두 “이 사람들은 술에 취했군. 새 포도즙으로 충만하구나. 저 소리 좀 들어 봐. 평생 저렇게 시끄러운 소리는 들어 본 적이 없어” 하고 말했습니다. 오늘 오후 여기에 계신 사랑하는 가톨릭 친구 여러분, 한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복되신 처녀 마리아도 그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자, 잘 들으십시오. 여러분이 점잖은 체하고 싶습니까?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도 그 이상 특별히 대우하지 않으셔서, 그녀가 그곳에 올라가 성령 침례를 받고 술 취한 여자처럼 행동하기 전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었다면, 여러분이 그곳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얼마나 더 성령 침례를 받아야 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녀는 술에 취한 듯 비틀거렸습니다. 할렐루야!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렸습니다. 술 취한 사람이 “아, 다 좋아” 하고 말하는 걸 들어 보셨습니까? 자, “독주에 취하지 말고 영에 취하라.” 할렐루야!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죄를 태워 없애는, 이렇게 술 취한 듯하게 하는 옛날식 성령 침례입니다. 이중의 치유입니다. 옛 산골의, 하늘빛처럼 맑고 죄를 죽이는 신앙입니다. 할렐루야. 오늘날 세상에 필요한 것은 옛날 바울 같은 부흥이며, 성경의 성령이 다시 교회에 오시는 것입니다. 아멘. 그것이 오늘날 교회의 문제입니다. 형식적이고 무관심해진 이유가 그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이 모두 이것을 받자, 사람들이 의아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아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만나를 먹고 있었습니다. 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회개하고 너희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 죄들의 사면을 얻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성령님을 선물로 받으리니” 하고 말했습니다. 무엇입니까?
처음 만나가 내리자마자, 하나님께서는 아론과 모세에게 “밖에 나가 만나를 몇 오멜 가득 거두어 지성소 안에 두어라. 너희 자손의 자손들, 제사장 직분을 맡는 모든 사람이 처음 내린 만나를 맛보게 하려 함이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아, 제사장이 되면 얼마나 큰 특권을 누렸습니까! 자, 기억하십시오. 지성소 밖에 있는 것은... 보존된 것은 그 안에 둔 것뿐이었습니다. 밖의 것은 24시간도 가지 못했습니다. 벌레가 생겼습니다. 그것이 오늘날 오순절 교회의 문제입니다. 아멘. 무엇이 문제입니까? 일 년 전에 여러분이 한 체험에는 오늘 장구벌레가 생겼습니다. 그것을 버리고, 지금 새롭게 체험합시다. 터진 물 저장 웅덩이의 고인 물에서 꿈틀거리는 작은 흰개미인지 무엇인지, 여러분도 아실 겁니다. 저는 어제 무엇을 가졌는지 압니다. 오늘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도 압니다. 할렐루야! 저는 더 받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주님, 날마다 제 혼을 채워 주시옵소서. 그렇습니다.
그러면 들어오는 제사장마다 처음 내린 만나를 한 입 먹을 수 있었습니다. 자, 보십시오. 베드로는 회개하고 침례를 받으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이 만나가, 다시 말해서, 여러분의 자녀들과 자녀들의 자녀들, 그리고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 곧 주 우리 하나님께서 부르실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는 가운데 막힌 벽이 무너졌습니다. 누구든, 누구라도, 다시 태어나기를 원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와 제단 앞에 무릎을 꿇고 손을 들어, 비슷한 것이 아니라 오순절 날 내렸던 바로 그 만나를 한입 가득 먹을 수 있습니다. 같은 일들, 같은 나타남, 같은 권능, 같은 증거입니다. 그들이 오순절에 받았던 모든 것을 오늘날 우리도 받을 수 있습니다. 비슷한 것이 아니라 똑같은 것입니다. 아멘. 할렐루야. 옛날 그 사람들은 이 오멜 안에서 그것과 비슷하게 생긴 것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바로 처음의 것을 받았습니다. 할렐루야. 오늘날에도 원래의 성령 침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저는 기쁩니다. 권능과 표적들, 같은 이적들과 같은 기적들, 부활하신 동일한 주 예수님을 말입니다. 후! 형제 여러분!
아, “이 약속은 너희 자녀들과 너희 자녀들의 자녀들,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 곧 주 우리 하나님께서 부르실 모든 사람을 향한 것이니라.” 다윗은 “반석 속의 꿀 같은 맛이로다” 하고 말했습니다. 반석 속의 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행하는 동안, 반석에 갈라진 틈이 있으면 그 반석 속에 들어가 꿀을 찾았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바로 그 반석 안에 있었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에게 필요한 모든 것도 바로 그 반석이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다윗은 목자였으므로... 예전 목자들은 옆구리에 전대를 차고 다녔습니다. 병든 양이 생길 때마다 그 전대에서 꿀을 꺼내 바위, 석회암 바위에 발라 놓곤 했습니다. 그러면 양이 그 꿀을 핥으면서 바위의 석회질도 먹게 되었고, 그것이 병든 양을 고쳤습니다. 형제 여러분, 제게도 그 꿀이 전대 가득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오순절 교회나 침례교회가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위에 바르겠습니다. 그러니 병든 양인 여러분은 핥기 시작하십시오.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이 그 꿀을 핥기 시작하면, 오늘 제가 이 강단에 서 있는 것이 확실한 것처럼, 신유도 핥아 먹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나을 때까지 핥고, 핥고, 핥고, 또 핥으십시오. 아멘.
아,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이 그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위에 꿀을 부으십시오. 얼마나 놀라우시고, 얼마나 영광스러우시고, 얼마나 권능이 크시며, 얼마나 모든 것이 되시는지요! 그저 핥기 시작하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십시오. 그 암이 사라진 것을 보게 될 겁니다. 보이지 않던 눈이 열리고, 불구의 다리로 걷고, 말 못 하던 혀가 말하며, 듣지 못하던 귀가 듣는 것을 보게 될 겁니다. 할렐루야! 아멘. 아, 얼마나 좋습니까. 보십시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것이 다시 교회 안에 돌아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믿습니까? 얼마 전에 제 형제와... 아, 여러 해 전 일이군요. 어느 날 제 형제와 제가 내려가서 거북이 한 마리를 보고 있었습니다. 뭔지 아시지요. 여기 계신 여러분은... 거북이 말입니다. 걷는 모습이 좀 우습지요. 한 마리가 걷는 것을 보고 제가 “저 우스운 녀석 좀 봐” 하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가까이 가자 그 녀석이 어떻게 했는지 아십니까? 다가가자마자 “쉿” 하더니 등딱지 안으로 움츠러들었습니다. 어떤 교인들이 생각납니다. 그렇습니다. 참된 복음을 가지고 그들에게 가까이 가면, 그들은 자기 껍질 안으로 움츠러듭니다. “난 그런 것 안 믿어. 기적의 시대는 지나갔어” 하고 말합니다. 아, 그렇습니다. 저는 “거기서 나와!” 하고 말했습니다. 그래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꾸짖어서 나오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가까이 가며 “내가 나오게 하고 말겠어” 하고 말했습니다. 회초리를 가져다가 그 녀석을 실컷 때렸습니다. 전혀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저 그대로 안에 있었습니다. 때려서 받아들이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의 프로그램이든 무엇이든, 결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혼을 내 주겠어!” 하고 말했습니다. 그 녀석을 개울로 데려가 물속에 집어넣었습니다. “물에 빠져 죽든지, 걸어 나오든지 해라” 하고 말했습니다. 물속에 넣었더니 거품이 두세 개 올라왔을 뿐, 여전히 등딱지 속에 꼭 들어앉아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사람들을 얼굴부터 앞으로, 뒤로, 세 번, 네 번, 거꾸로 침례를 주든, 물을 뿌리든, 원하는 대로 무엇을 하든, 그들은 여전히 죄인입니다. 그런데 형제 여러분, 제가 종이 한 장을 가져다가 작은 불을 붙여 그 녀석 위에 놓았더니, 야, 그제야 정말 움직이더군요. 그렇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령과 불의 침례가 옛날처럼 부어지는 것입니다. 다른 무엇으로도 움직이지 않는 교회를 그것이 움직이게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믿습니까? 교회에 불이 좀 들어오게 하십시오. 문제는 우리가 불을 모두 난로에 넣고 제단에서는 치워 버렸다는 데 있습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이제 저기 요한이... 아니, 사가랴가 보이는 듯합니다.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그는 나와서 입을 열어 예언하며, 무슨 일이 일어날지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 아이가 도대체 어떤 아이인가 하는 것을 압니다. 온 지방 사람들이 이 아이가 어떤 아이가 될지 궁금해했습니다. 사가랴가 예언했고, 그 어머니도 아이가 태어날 때 예언했습니다. 요한은 아홉 살쯤 되었을 때, 무슨 공동묘지... 아니, 신학교에 가지 않았습니다. (제가 늘 거기서 말을 잘못하지요. 둘이 너무 비슷해서 구별하기가 어렵습니다. 공동묘지와 신학교는 둘 다 죽은 곳입니다.) 좋습니다.
형제 여러분,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신학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태어나기 위해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릎을 꿇는 학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의 단순함입니다. 저는 부화기에서 나온 병아리가 늘 참 불쌍했습니다. 부화기에서 병아리가 깨어납니다. 삐악, 삐악, 삐악 울지만 찾아갈 어미가 없습니다. 호텐토트족이 이집트의 밤을 모르듯 하나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신학교 출신 설교자가 생각납니다. 신학 지식은 많고, 종이에 적힌 것을 잔뜩 읽어 댑니다. 저는 알파벳도 모르지만 성령의 권능 아래 성경을 설교할 수 있는 사람을 택하겠습니다. 십 년 동안 그의 목구멍에 밀어 넣을 수 있는 모든 신학보다 그런 사람이 더 좋습니다. 할렐루야. 후! 제가 왜 이렇게 느끼는 걸까요? 보십시오. 아멘. 그렇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교회 안을 새롭게 깨끗이 하는 일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믿지 않습니까?
거의... 짝짓기 철이 오면, 어느새 새들이 나가 둥지를 짓습니다. 나무 위에 둥지를 만들고, 거기에 알을 낳으면 어미 새가 알을 품습니다. 따뜻하게 해 주고, 부화시키고, 떠나갑니다. 그런데 그 어미 새가 수컷과 접촉하지 않았다면... 생명의 씨는 수컷에게서 옵니다. 우리는 그것을 압니다. 암탉은 알을 낳을 수 있지만, 수컷과 함께한 적이 없다면 그 알은 결코 부화하지 못합니다. 그렇습니다. 씨는 수컷에게서 옵니다. 새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컷과 함께한 적 없는 어미 새라도 둥지를 지어 크고 둥근 알들을 보기 좋게 가득 낳을 수 있습니다. 거기 앉아 알을 품고 따뜻하게 하다가 너무 야위어서 둥지에서 날아오르지도 못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래도 그 알들은 그대로 놓여 있다가 썩습니다. 그렇습니다. 수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결코 부화하지 못합니다.
형제 여러분, 저는 오늘날 교회들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집사들과 그런 사람들이 아주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등을 두드려 주어야 하고, 그들이 이런저런 사람이라는 이유로 교회에서 우두머리를 비롯한 여러 자리에 앉힙니다. 우리의 둥지는 썩은 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접촉한 사람입니다. 이제 둥지를 쏟아 버리고 다시 시작할 때입니다. 그렇습니다. 둥지를 뒤집어엎고, 창조주 예수 그리스도와 접촉했으며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믿는 사람을 그 안에 들이십시오. 할렐루야! 어차피 저를 광신자라고 부르실 테니, 지금부터 그렇게 부르셔도 좋습니다. 아시겠죠? 그렇습니다. 오늘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교회에 생명, 곧 영생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들이... 남녀가 다시 태어나게 한다면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교회에서 치유 대전도 집회를 하자고 말하면... 사람들은 “흥, 난 그런 낡은 것 안 믿어” 하고 말합니다. 물론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 사람은 썩은 알이니까요. 그렇습니다.
어느새 이 사람들이 거기 앉아 있고, 교인들 대부분이... 제가 설교하고 있습니다... 형제 여러분, 들어 보십시오. 언젠가 저는 하나님 앞에서 대답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러분 성결파 사람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여러분의 여자들이 밖에 나갈 때 어떤 옷차림을 했는지 말입니다. 얼마 전에 어떤 사람이... 제게 트럭을 운전하는 사람이 한 명 있었는데, 담배를 피웠습니다. 한 사람이 제게 말했습니다. “우리 성결파 사람들 곁에 그런 사람을 두시면 안 됩니다.” 저는 “그 사람은 좋은 사람입니다. 자기가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지도 않습니다. 저는 그저 밖에 있는 트럭 가운데 하나를 운전하게 하고 있을 뿐입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는 “형제님, 그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 저 사람은 담배를 피우잖습니까” 하고 말했습니다. 바로 그날, 캘리포니아의 제 집회에서 그들이 데려왔습니다... 그가 “저희 지방회 장로님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안녕하십니까? 형제님, 만나 뵙게 되어 기쁩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 장로가 “제 아내입니다.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형제 여러분... 자매 여러분, 이 말에 마음 상하지 마십시오. 아시겠죠? 그 여자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화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커다란 귀걸이 두 개가 길게 늘어져 있었는데, 마귀가 그 여자의 목을 안장으로 삼고 그 귀걸이를 등자로 삼아 올라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온갖 희한한 옷을 입고 앉아 있었습니다. 저는 “저분이 저 설교자의 아내라는 말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가 “그렇습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저분이 성도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는 “그렇습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제게는 성도가 아니라 귀신처럼 보이는군요” 하고 말했습니다. 그런 모습으로 거기 앉아 있었습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울타리를 내려놓았습니다. 바로 그 결과가 이것입니다. 교회가 뻣뻣한 형식에 빠졌습니다. 사람을 깨끗하게 하는 옛날의 복음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아멘. 여러분에게 한 가지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자매 여러분, 들어 보십시오. 저는 늘 여자들에 대해 제 나름의 생각이 있었습니다. 오늘 보니 의학계에서는 인후암과 폐암의 98퍼센트가 흡연에서 온다고 하는데, 여자들도 담배를 피웁니다. 폐암과 인후암에 걸린 남자가 더 많지만, 여자들도 이제 걸리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생기는 데 약 20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서 쥐 일곱 마리를 우리에 넣고, 하루에 담배 일곱 개비 분량의 연기를 쐬게 했더니, 일 년 후 일곱 마리 모두 암에 걸렸습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인의 90퍼센트가 담배를 피웁니다. 그렇습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또 여자들이, 여러분이 미국에서 여자들이 매니큐어에 해마다 몇천억 달러를 쓰는지 아신다면 말입니다. (입술에 바르는 것 말입니다. 그게 뭔지 저는 모릅니다.) 아무튼 사람들이 얼굴에 바르고 화장하는 그런 것으로 얼마나 많은 수백만 달러를 벌어들이는지 말입니다. 그런데 저편에는 가난한 어린아이들이 있고, 여기에는 갈 수가 없어서 활동하지 못한 채 앉아 있는 선교사들이 있습니다. 갈 돈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 날에 여러분에게 그 책임을 물으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그리스도인들이라면서,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면서, 온갖 치장을 하고 화장한 채 돌아다닙니다. 성경에서 얼굴에 화장을 한 여자는 단 한 명, 이세벨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여자를 어떻게 하셨는지 아십니까? 개들에게 먹이로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렇게 행동하면서 자기를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여자를 보면, “안녕하십니까, 개 밥 아가씨?” 하고 말하십시오. 그 여자는 그런 존재, 개 밥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여자를 개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아,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옛날처럼 성령이 사람들 가운데 힘차게 역사하셔서 남녀를 다시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시는 것입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세상이 죽었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이 요한이라는 사람이 태어나서, 유대 광야에서 나오는 모습이 보이는 듯합니다. 턱시도를 입고 옷깃을 뒤로 돌린 채 하루 세 끼 닭튀김과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메뚜기와 야생 꿀을 먹었고, 커다란 양가죽을 몸에 두르고 낙타 가죽 띠를 매고 있었습니다.
아, 얼마나 대단한 설교자입니까! 머리카락이 이렇게 얼굴 주변으로 덥수룩했습니다. 그러나 형제 여러분, 그는 신학도 몰랐고, 이런 신학교 경험도 전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보내실 때까지 하나님의 권능 아래 광야에 머물렀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들을 우리에게 더 주시옵소서. 형제 여러분, 그가 거기서 나왔을 때 외모가 그렇게 유창하지는... 아니, 말이 그렇게 유창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무엇을 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유대와 예루살렘 주변 모든 지방을 뒤흔드는 설교를 했습니다. 모두 그의 말을 들으러 나왔습니다. 왜입니까? 그가 그리스도를 전했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신학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오늘날 세상의 문제는 우리가 성령 대신 신조 같은 것들을 가져다 놓았다는 데 있습니다. 신조는 결코 교회를 전진시키지 못합니다. 성령이 교회를 인도하십니다. 아멘. 형제 여러분, 그것은 옛날식 사사프라스 복음입니다. 그러나 그 복음이 저를 구원했고, 여러분에게도 똑같은 일을 할 것입니다. 진리입니다. 강한 말입니다. 저도 강한 말이라는 걸 압니다. 그러나 형제 여러분, 때로는 다시 빚어지기 전에 먼저 부서져야 합니다. 사실입니다.
요한이 거기 서서 설교하는 모습이 보이는 듯합니다. 그는 요르단강 주변의 모든 지방을 뒤흔들었습니다. 그곳으로 예수님이 내려오셔서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이 곧바로 물에서 올라오시자 하늘이 열리고, “이는 내가 그 안에 거하기를 기뻐하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하는 말씀이 들렸습니다. 예수님이 나아가셨습니다... 이제 우리 본문으로, 그 대목으로 빨리 돌아옵니다. 잘 들으십시오. 그때 그분의 사역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분은 베다니의 마르다와 마리아 가족과 함께 지내러 가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부르심을 받아 그곳을 떠나셨습니다.
예수님이 그 집을 떠나시자 병과 슬픔이 들어왔습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의 가정을 떠나셔도 병과 슬픔이 들어올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보십시오. 가정에서 예수님을 거절하고, 가족 기도와 성경 읽기 같은 것을 그만두면, 어려움이 들어올 줄 아십시오. 그렇습니다. 바로 그때 어려움이 이미 오고 있는 겁니다. 예수님은 떠나셨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쫓겨나신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부도덕 때문에 떠나신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께서 환상을 보여 주셨기 때문에 떠나셨습니다. 그분은 가셨습니다. 나사로가 병이 나자, 그들은 그분께 사람을 보내 와서 기도해 주시기를 청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계속 가셨습니다. 아, 오늘날 여러분의 목사님이 그러신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분은 떠나가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다시 사람을 보냈습니다. 나사로가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그들의 청을 무시하고 계속 가셨습니다. 여러분의 목사님에게서 이런 일이 있었다면, 여러분은 “저 위선자! 난 하나님의 성회로 가겠어. 저 사람과 더 상대하지 않겠어”라고 하겠지요. 하나님의 성회에서도 그렇게 하면, “감리교회나 침례교회로 가겠어”라고 할 겁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교회 증서를 이 교회에서 저 교회로, 또 이 교회에서 다른 교회로 들고 다녀서, 종이가 다 닳고 누렇게 될 지경입니다. 어린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게 하고, 그 자리에 굳게 머무십시오. 아멘.
어쨌든 여러분의 교회 증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조금도 유익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증서를 결코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자기 아들의 피로 저 위에 있는 그분의 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만 하나님께서 인정하십니다. 그렇게 되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나사로는 죽었습니다. 그 가정이 맞은 가장 어두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따르려고 자기 교회를 떠났고, 회당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그들을 실망시키셨습니다. 때로는 삶이 그렇게 되지 않습니까? 세상의 온갖 일이 다 일어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성경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반드시 선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 모든 일이 있고 나서, 예수님은... 그분이 들으셨습니다... 그분은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처음에는 “나사로가 잠자는도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아, 그가 잠자면 좋아지리이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알아듣는 말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시겠죠?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내가 거기에 있지 아니하였던 것을 너희를 위해 기뻐하노라. 그러나 내가 가서 그를 깨우리라.” 그분은 내려가십니다. 아버지께서 이미 그분에게 무엇을 해야 할지 보여 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사흘을 머무르셨습니다. 그 시간이 다 찼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그렇게 아셨습니다. 그분이 오십니다. 자, 보십시오. 마르다와 마리아에게는 그분을 나무랄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처럼 보입니다. “이것 보십시오” 하며 꾸짖고, “왜 오지 않으셨습니까?” 할 수도 있었겠지요. 마르다는 여러 일에서 더뎠지만, 예수님이 오신다는 말을 듣자 그분을 맞으러 나갔습니다. 길모퉁이에 서 있는 바리새인들이 하는 말이 들리는 듯합니다. “하하! 그 광신자는 지금 어디 갔지? 그 신유자는 말이야. 그 사람 친구가 병들어 누워 있더니 이제는 죽었잖아. 왜 오지 않았지? 그렇다니까. 어차피 다 정신감응이라고 내가 말했잖아.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했지.” 그들은 그렇게 길모퉁이에 서 있습니다. 마르다가 옵니다. 그들은 “저기 그 무리 중 하나가 오는군. 우리가 회당에서 쫓아낸 여자야. 다시 돌아올 생각인가?” 하고 말합니다.
“당신들이나 그 회당에 다니세요.” 마르다는 예수님을 만나러 가고 있었습니다. 그분께 말씀드릴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마르다가 성경에서 그 이야기를 읽었으리라고 믿습니다. 수넴 여인이 괴로움 가운데 선지자를 찾아가야 했던 이야기 말입니다. 수넴 여인은 자기의 죽은 아기를 두고, 하나님께서 그분의 선지자 안에 계심을 믿었습니다. 마르다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선지자 안에 계셨다면, 틀림없이 그분의 아들 안에도 계시겠지” 하고 말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자” 하고 말했습니다. 수넴 여인은 “모든 것이 잘되었습니다. 선지자에게 가기만 하면 그분이 이해하실 겁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수넴 여인의 그런 점이 좋습니다. 그녀는 “앞으로 나아가라. 내가 명하지 아니하거든 가는 것을 조금도 늦추지 말라” 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말이 좋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라.” 그렇습니다. 그녀가 선지자에게 이르렀을 때, 선지자는 “저 수넴 여인이 오는구나. 그녀가 괴로워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그것을 내게 숨기셨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는 “너는 잘 있느냐? 네 남편은 잘 있느냐? 네 아이는 잘 있느냐?” 하고 물었습니다. 아, 저는 이 대목이 참 좋습니다.
그녀는 “모든 것이 잘되었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아멘! 아, 기분이 좋습니다. 군대 사이로 달려 들어가고 담을 뛰어넘을 것 같습니다. 보십시오. “모든 것이 잘되었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왜입니까? 아기는 시체가 되어 거기 누워 있었습니다. 남편은 울부짖으며 집 앞을 미친 듯이 오가고 있었습니다. 이웃들은 모두... “모든 것이 잘되었습니다.” 아멘. 저는 그 말이 좋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하게 했습니까? 그녀는 하나님의 대표자인 그 선지자 엘리사에게 왔습니다. 그에게 다가와 “모든 것이 잘되었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너는 잘 있느냐?” “예.” “네 남편은 잘 있느냐?” “예.” “아기는 잘 있느냐?” “모든 것이 잘되었습니다.” 그러고는 달려가 그의 발 앞에 엎드려,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밝히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지금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하고 말했습니다. 엘리사에게... 아니, 게하시에게 자기 지팡이를 가지고 가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가 그곳에 가서 아기를 깨워 다시 돌려주었습니다.
마르다는 아마 그 이야기를 읽었을 것입니다. 그 여인이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대표자에게 갈 수 있기만 하면, 모든 것이 잘되었습니다. 그래서 마르다는 ‘수넴 여인이 선지자에게 가서 그렇게 할 수 있었다면, 하나님의 아들에게 가면 얼마나 더 큰 것을 얻겠는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자, 그녀가 오는 모습을 보십시오. 그분을 꾸짖으며 “왜 오지 않으셨습니까? 우리는 주님의 교회를 떠나겠습니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녀는 자기가 있는 곳... 아니, 그분이 계신 곳으로 곧장 달려가, 그분의 발 앞에 엎드려 “주여” 하고 말했습니다. 그분은 주님이셨습니다. 그녀는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에 맞는 올바른 호칭으로 불렀습니다. “주여,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으리이다” 하고 말했습니다. 얼마나 그분을 높이는 말입니까. “주여!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으리이다.” 자, 보십시오. “그러나 이제라도, 주님.” 죽은 지 나흘이나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라도, 주님, 주께서 무엇이든 하나님께 구하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주께 주실 것입니다.” 저는 그 말이 좋습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습니까? 죽은 지 나흘이 되었는데도, “그러나 이제라도, 주님, 주께서 무엇이든 하나님께 구하면” 하는 겁니다.
젊은이, 그렇게 마비된 채 지낸 지 오래되었군요. 그러나 이제라도, 주님. 여기 앉아 계신 많은 분이 암이나 심장병을 앓고 계십니다. “그러나 이제라도, 주님.” 의사는 “당신은 나을 수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라도, 주님, 주께서 무엇이든 하나님께 구하면.” 그분은 아버지의 오른편에 앉아 계십니다. 그렇게 믿습니까? 중보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이제라도, 주님. 하나님, 무엇을 구하시든 제가 그것을 하겠습니다. 주님이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시든 하나님께서 하실 것입니다. 이제라도 말입니다.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기도 줄에 서려고 애썼습니다. 기도 카드를 받으려고 애썼습니다. 기도를 받으려고 애썼습니다. 저는 다리가 불편합니다. 너무 오랫동안 걷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제라도, 주님. 주님이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시든 하나님께서 그것을 주님께 주실 것입니다. 아멘. 할렐루야!
이제라도, 주님. 저기 휠체어에 앉아 있는 자매님은 그렇게 마비된 채 여러 해를 지내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라도, 주님. 주님이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시든 하나님께서 그것을 주님께 주실 것입니다. 그분은 아버지의 오른편에 앉아 여러분을 위해 중보하고 계십니다. 주님이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시든 하나님께서 그것을 주님께 주실 것입니다. 아, 저는 그 말이 참 좋습니다. 자, 보십시오. 예언의 바퀴들이 이제 맞물려 움직이고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괴로워하는 여자가 거기 있습니다. 오라버니가 죽었습니다. 그녀는 그에게 생명을 줄 수 있는 유일한 분께 오고 있습니다. 이제 그녀는 조건에 맞게 나아갑니다. “주여” 하고 말했습니다. 그분은 주님이십니다. “주께서 무엇이든 하나님께 구하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주께 주실 줄 제가 압니다.” 말씀드립니다. 이제 무엇인가가 맞물리기 시작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분은 “네 오라비가 다시 일어나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녀는 “예, 주님. 그가 다시 일어날 줄 압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모든 사람의 부활을 믿었습니다. 그녀는 “주님, 저도 압니다. 마지막 날들에 모든 사람이 부활할 때 그도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그는 좋은 사람이었으니, 마지막 날들에 부활할 때 다시 일어날 줄 압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분을 보십시오. 성경은 “그를 흠모할 만한 아름다움이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작고 마른 분이셨습니다. 몸집이 크고 위풍당당한 제사장 같은 모습이 아니라 작고 마른 분이셨습니다. 그분은 그 작은 몸을 곧게 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할렐루야.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이것을 네가 믿느냐?” 보십시오. 모든 것이 꼭 맞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녀는 “그러하오이다, 주여. 주님이 자신에 대해 말씀하신 그대로이심을 제가 믿습니다. 주님은 세상에 오실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제가 믿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무엇인가가 반드시 일어나야 합니다. 무엇인가가 반드시 일어나야 합니다. 그녀는 그분을 인정하고, 그분의 신성을 인정하고, 그분의 권위를 인정하며, 그분이 전능하신 하나님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서 그분이 지니신 권능을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주님이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시든 하나님께서 주님께 주실 것입니다. 주님은 주님이 말씀하신 바로 그분이심을 제가 믿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아! 이제 무엇인가가 반드시 일어나야 합니다. 줄들이 한데 모여 감겨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분은 “그를 어디에 묻었느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그녀는 “와서 보시옵소서” 하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떠나갔습니다.
얼마 전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종교인 크리스천 사이언스를 두고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 종교를 믿는 한 여자가 제게 “브래넘 목사님,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너무 강조하십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어떻게 그렇게...” 하고 말했습니다. 그 여자는 “그분을 너무 자랑하십니다. 당신의 하나님... 당신의 하나님이라고 하시는데... 누구나 자기 자신이 신입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아닙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분은...” 하고 말했습니다. 그 여자는 “그분은 한 인간에 불과했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 여자는 “아니에요. 하나님이셨을 리가 없어요. 제가 성경으로 그분이 평범한 인간에 불과하셨다는 것을 증명하면, 받아들이시겠어요?” 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예, 부인. 성경이 그분을 평범한 인간이라고 했다면, 저는 성경이 말하는 것을 믿겠습니다. 하지만 먼저 어느 구절로 가시려는지 알고 싶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 여자는 “자, 제가 증명해 드리겠어요” 하며 바로 이 성경 구절을 사용했습니다. “예수님이 나사로의 무덤으로 가실 때, 성경은 ‘그분께서 우시더라’라고 했어요. 사람처럼 우셨다는 것은 그분이 죽을 수 있는 인간이셨다는 증거예요” 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맞습니다, 부인. 우실 때 그분은 사람이셨습니다. 무덤에 가셨을 때, 슬퍼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슬퍼하셨습니다. 사람들이 기뻐할 때는 그들과 함께 기뻐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사람 이상의 분이셨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나사로의 무덤으로 가실 때는 사람처럼 울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거기 서서 그 작은 몸을 가다듬으시고 ‘나사로야, 나오라’ 하고 말씀하셨을 때는 말입니다.” “죽은 지 나흘이 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혼은 어딘가로 나흘 길이나 가 있었습니다. 썩어 가던 몸도 자기 주인을 알아보았습니다. 그 혼은 떠난 지 나흘이 되었습니다. 어디로 갔는지는 저도 모르고 여러분도 모르니, 그 일로 논쟁하지 맙시다. 그러나 그 혼이 몸으로 돌아왔고, 죽은 지 나흘이 된 사람이 제 발로 일어서서 다시 살았습니다. 형제 여러분, 그때 말씀하신 분은 사람 이상의 분이셨습니다. 그것은 자기 사람 안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믿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날 밤 몹시 배고픈 채 산에서 내려오셨을 때, 그분은 사람이셨습니다. 먹을 것을 찾으려고 나무 이곳저곳을 살펴보셨습니다. 배고프셨을 때 그분은 사람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빵 다섯 개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떼어 오천 명을 먹이셨을 때, 그분은 사람 이상의 분이셨습니다. 그 사람에게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신 사람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날 밤 작은 배 뒤쪽에 누워 계셨을 때, 그분은 사람이셨습니다. 배는 바다의 파도 위에서 병마개처럼 이리저리 흔들렸고, 바다의 만 마리 마귀들이 그날 밤 그분을 물에 빠뜨려 죽이겠다고 맹세했습니다. 폭풍이 강풍이 되어 몰아쳤습니다. 배에는 물이 차오르고 있었습니다. 돛은 날아가 버렸습니다. 제자들은 두려움에 기가 꺾였습니다.
그처럼 배가 부서지는 소란에도 깨지 않고 계셨을 때, 그분은 사람이셨습니다. 온종일 병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시고 거기 누워 계신 사람이셨습니다. 그분에게서 권능이 나갔으므로 지쳐서 쉬고 계셨습니다. 잠드셨을 때 그분은 사람이셨습니다. 그러나 그 배의 돛줄에 발을 올려놓으시고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고 말씀하셨을 때, 바다와 파도가 그분께 순종했으니 그분은 사람 이상의 분이셨습니다. 아들에게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 안에 계시며 세상을 자신과 화해하게 하고 계셨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믿습니까? 저 갈보리에서 하늘과 땅 사이에 달려 피를 쏟으시며 긍휼을 구해 외치셨을 때, 그분은 사람이셨습니다. 여호와 자신의 피가 죄악 된 세상 위에 떨어져, 그분의 피로 그 세상을 적시고 있었습니다.
그분이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고 외치셨을 때, 죽으셨을 때 그분은 사람이셨습니다. 그러나 부활절 아침, 무덤들이 열리고 사망의 봉인과 결박이 풀리며 그분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 승리하여 일어나셨을 때,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증명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살아서는 날 사랑하셨고, 죽으셔서는 날 구원하셨네. 장사되셔서는 내 죄들을 멀리 가져가셨네. 부활하셔서는 값없이 날 영원히 의롭게 하셨네. 언젠가 주 오시리, 오, 영광스러운 날!
여러분은 이것을 믿습니까? 저는 그 동일한 예수님께서 오늘 여기에 계심을 믿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믿습니까? 저는 그 동일한 예수님께서 오늘 저녁... 아니, 오늘 부활하신 분으로 우리 가운데 계시며, 그 부활 가운데 표적들과 이적들을 나타내고 계심을 믿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믿습니까? 저는 한 여인이 그 옷자락에 손을 댔던 바로 그분이심을 믿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믿습니까? 저는 그분이 나사로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신 그분이심을 믿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믿습니까? 저는 그분이 히브리 아이들을 타는 풀무불에서 건져 내신 분이심을 믿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믿습니까? 저는 그분이 지금 바로 여기에 계심을 믿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믿습니까? 지금 우리 혼 안에서 느끼는 것이 바로 그분이라고 믿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믿습니까? 지금 이 청중 위에 부어진 기름부음이 바로 그것이라고 믿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믿습니까?
저는 그분이 지금 모든 병든 사람을 고치시려고 여기에 계심을 믿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믿습니까? 저는 그분이 지금 모든 사람을 성령으로 채우시려고 여기에 계심을 믿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믿습니까? 할렐루야! 저는 그분이 지금 곧 그 일을 하시리라고 믿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믿습니까? 저는 걷지 못하는 사람이 걷고, 눈먼 사람이 보고, 듣지 못하는 사람이 듣게 될 것을 믿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믿습니까? 일어나 서서 그분을 찬양합시다. 저는 하나님께서 그 일을 하시리라고 믿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믿습니까? 목소리를 높여 하나님께 외칩시다. 할렐루야.
아버지,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저희가 믿습니다. 오늘 주님이 여기 저희와 함께 계심을 믿습니다. 주님의 권능이 영원함을 믿습니다. 주님은 실패하실 수 없음을 믿습니다. 주님이 높은 곳에서 주님의 영을 부어 주셨음을 믿습니다. 오순절이 여기에 있음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여기 있음을 믿습니다. 표적들과 이적들이 여기 있음을 믿습니다. 성령이 여기 계심을 믿습니다. 주님, 저희는 이 모든 것을 믿습니다. 이제 급하고 강한 바람처럼 성령을 다시 보내 주시옵소서. 주님, 그들이 앉아 있는 이 방을 채워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권능이 이 건물 안을 휩쓸게 하시고, 주님, 주님의 모든 표적들과 이적들, 오늘날 믿는 자들의 표적들을 다시 부어 주시며, 평안과 기쁨과 만족을 주시고, 병든 사람을 고치시고, 죽은 사람을 일으키시며,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시옵소서. 하나님, 허락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살아 계신 하나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저는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성령을 받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원하시는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손을 흔드십시오. 성령을 원하시는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계속 손을 흔들고 위를 바라보십시오. 위를 바라보며 계속 흔드십시오. 주님, 제가 믿습니다. 주님, 제가 믿습니다. 구주여, 산을 옮길 수 있을 때까지 주님을 향한 제 믿음을 높여 주시옵소서. 주님, 제가 믿습니다. 제 모든 의심이 그 샘에 묻혔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얼마나 놀라운 시간입니까! 죄인 여러분 중에 여기 앞으로 나와 “브래넘 형제님, 저는 지금 구원받고 싶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저의 구주로 받아들이고 싶습니다”라고 말하기를 원하는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손을 드십시오. 손을 드십시오. 모든 죄인 여러분, 손을 드십시오. 어디에 계시든지요. 그렇습니다. 이리 오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듣지 못하는 사람의 귀를 여시고 눈먼 사람이 보게 해 달라는 제 기도를 들으신다면, 여러분의 구원을 위한 기도도 듣지 않으시겠습니까? 지금 모든 죄인을 초대합니다. 우리가 찬송하는 동안 이리 나오십시오. 인자하신 구주여, 저를 지나치지 마소서. 제 겸손한 부르짖음을 들으소서. 다른 이들을 부르실 때 저를 지나치지 마소서. 친구 여러분, 들어 보십시오. 폴 레이더 형제님이 내려다보며 오늘 오후 여러분의 목사가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이것은 폴 레이더 형제님이 열던 것과 같은 예배입니다. 영원한 영광의 세계에서 늘 푸른 나무들 곁, 하나님 곁에 앉아 있는 그 옛 빌리 선데이, 바로 이 강단에서 설교했던 그가 오늘 오후 이곳에 들어온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는 “톱밥 깔린 길을 따라 앞으로 나오십시오!” 하고 외칠 겁니다. 그렇습니다.
아, 남녀 여러분. 여기 예수 그리스도 없이 계신 분들 가운데 성령 침례를 원하시는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손을 드십시오. 우리가 찬송하는 동안 지금 앞으로 나오시겠습니까? 「인자하신 구주여, 저를 지나치지 마소서」입니다. 좋습니다. [회중이 「저를 지나치지 마소서」를 부른다.] 이리 나와서 [불명확한 말] 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을 만나시겠습니까(또는 찾으시겠습니까)?”일 수 있음.] 오, 저를 지나치지 마소서. 자, 오십시오. 함께 앞으로 나옵시다. 제단 둘레에 서십시오. 구주여...... 제 겸손한 부르짖음을 들으소서. 다른 이들을 부르실 때 저를 지나치지 마소서. 구주여...... 제 겸손한 부르짖음을 들으소서. 다른 이들을 부르실 때 저를 지나치지 마소서.
친구 여러분, 들어 보십시오. 영원으로 넘어가기 전에 하나님께 올 수 있는 기회가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릅니다. 지금 오시지 않겠습니까? 지금 오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받아들이고 성령 침례를 받으시지 않겠습니까? 오늘 성령을 받지 못하셨다면, 지금이 바로 하나님께서 오순절을 다시 일으키실 때일지도 모릅니다. 이제 몇 분 뒤에는 이 건물이 하나님의 권능으로 환해지고, 사람들이 성령 침례를 받고 이곳을 나가게 될지도 모릅니다.
보십시오. 여기 아마 이백 명쯤 되는 사람들이 제단 둘레에 서 있습니다. 우리가 한 번 더 찬송하는 동안, 지금 오셔서 함께 서시지 않겠습니까? 오십시오.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여러분이 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좋습니다. 바로 돌아서서 누군가와 악수하며 “그리스도인이십니까?” 하고 물으십시오. 좋습니다. 인자하신 구주여, 저를 지나치지 마소서. 제 겸손한 부르짖음을 들으소서. 다른 이들을 부르실 때 저를 지나치지 마소서. 구주여, 구주여, 오, 제 겸손한 부르짖음을 들으소서. 다른 이들을 부르실 때 저를 지나치지 마소서.
이제 하나님의 영이 하시는 말씀을 듣지 않으시겠습니까? 여러분은 이 집회들에 앉아서 초자연적인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실제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표적들, 예수님이 계셨던 성경 시대 이후로 다시 일어나지 않았던 표적들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머지않아 심판이 이 세상을 덮칠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왕국 밖에 있다면, 그런 상태로 심판을 맞지 마십시오. 지금 곧 오십시오. 젊은이,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최근에 그리스도께 마음을 드렸군요. 아직도 당신 위에 빛이 떠 있는 것이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성령을 받으십시오. 바로 거기 서서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몇 분 전 제가 처음 제단으로 나오라고 초청했을 때, 성령께서 당신에게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와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요. 그렇습니다. 저는 당신이 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지금 이 무리와 함께 서 있어야 할 분들이 더 있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가 「오, 왜 오늘 밤은 안 됩니까?」를 부르는 동안, 한 번 더 나오시지 않겠습니까? 형제님, 그 찬송을 아십니까? 좋습니다. 「오, 왜 오늘 밤은 안 됩니까?」입니다. 지금 곧 나오시겠습니까? 구원받기를 원하십니까? 오, 왜 오늘 밤은 안 됩니까? 옛날 웨슬리식으로 제단에 나오라고 초청하는 것입니다. 좋습니다. 형제님들, 부탁합니다. 오, 왜 오늘 밤은 안 됩니까? 오, 왜 오늘 밤은 안 됩니까? 구원받기를 원하십니까? 그런데 왜 오늘 밤은 안 됩니까? 내일은 해가 떠오르지 않아 오랫동안 속아 온 그대의 눈을 비추지 못할지도 모르니, 지금이 그때입니다. 오, 지혜롭게 되어 오늘 밤 모두 구원받으십시오. 오, 왜 오늘 밤은 안 됩니까? 오,
지금 오시지 않겠습니까? 계신 통로에서 이리로 나오십시오. 지금 움직여 이리로 나오시면, 하나님께서 지금 여러분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오시겠습니까? 구원받으십시오. 왜 오늘 밤은 안 됩니까? 잠시 고개를 숙이겠습니다. 주 예수님, 주님은 여기에 있는 모든 남자의 마음을 아십니다. 모든 여자와 소년과 소녀와 어린아이의 마음을 아십니다. 이것이 예수님 오시기 전에 있을 마지막 제단 초청일지도 모릅니다. 여기 있는 남녀 가운데는 오늘부터 일주일 뒤에는 이곳에 있지 못할 사람도 있을지 모릅니다. 하루를 더 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 지금 그들의 마음에 말씀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는 오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은혜가 있음을 압니다. 그리스도 없이 죽는 것은 마귀의 지옥으로, 끊임없이 형벌을 받는 영원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그분의 영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은 그것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영생이 됩니다. 주님, 오늘 그것을 허락해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주님의 백성에게 다시 말씀해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자, 고개를 숙이고 계신 동안, 저 뒤 청중 가운데 이렇게 말하는 분이 계십니까? “브래넘 형제님, 저는 저 사람들과 함께 앞에 서서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만큼 마음에 찔림이 크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기도할 때 저를 기억해 주시겠습니까?” 손을 들고 “접니다, 브래넘 형제님” 하고 말씀하시겠습니까? 저는 여러분의 마음을 모릅니다. 하나님은 아십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자매님. 손이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손이 보입니다. 이쪽에도 손을 들고 “나갈 만큼 마음에 찔림이 크지는 않지만, 브래넘 형제님, 저를 위해 기도해 주셨으면 합니다” 하고 말할 다른 분이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형제님. 이제 제단이 비어 있거나, 여러분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팔을 벌리고 서 계십니다.
여기 계신 남녀 중에 하나님께 받을 것이 필요한 분은 누구나 지금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믿습니까? 지금 온 마음으로 믿는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자, 죄인들과 성령을 구하는 여러분, 친구 여러분, 성령을 구하는 분들께 성령이 어떤 분이신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애써 찾고, 애걸하고,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여러분 곁에 계십니다. 아시겠죠? 여러분은 “우리는 기다리는 집회가 필요합니다”라고 합니다. ‘머물러 기다리다’는 ‘기다리다’라는 뜻이지 ‘기도하다’라는 뜻이 아닙니다. 베드로가 아직 이 말들을 할 때에 성령님께서... 그들은 사십 일이 끝날 때까지... 아니, 오순절까지 오십 일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 후로는 더 이상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당장 받을 수 있습니다. 더 머물러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바로 지금입니다. 그저 기꺼이 받으려는 마음을 가지십시오. 곧바로 하나님께 손을 내미십시오. 얼마 전 그 대감독이 여기 서 있었을 때... 제... 대적했습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넉 달 전에는 저를 비난하고 조롱하며 온갖 말을 했는데, 방으로 들어와 “성령을 받고 싶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저 그분에게 안수했더니 성령이 그분 위에 임하셨습니다.
남부의 저명한 근본주의자 가운데 한 분인 리 박사는, 그곳 [불명확한 말]에 와서 저를 주술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는 제 집에 앉아 눈물을 뺨으로 흘리고 있었습니다. 성령을 받아서 영어로 말하기도 어려워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브래넘 형제님, 이제 저도 형제님의 형제입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아, 얼마나 달라졌습니까. 하나님께서 리 박사와 리드헤드 박사, 그 감독을 비롯한 모든 사람에게 해 주신 일을, 지금 바로 여기서 가장 작고 낮은 사람에게도 해 주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평범하고 가난한 사람, 거리에서 들어와 자기 죄를 회개하는 술주정뱅이에게도 하나님께서 이 복된 성령을 주실 것입니다. 어젯밤 제가 바워리... 아니, 여기 빈민가를 차로 지나가면서, 삶의 다른 쪽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가엾은 술 취한 사람들이 거리에 무더기로 누워 있었고, 보즈 형제님과 제가 그곳을 지나갔습니다. 참으로 비참한 광경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여러분이 그렇게 되었을 겁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제가 그렇게 되었을 겁니다.
아, 어머니들, 소년들, 한때 훌륭했던 남자들이 이제 그곳에 누워 있었습니다. 제 마음에서 피가 나는 것 같았습니다. 어젯밤 집에 돌아온 뒤에도 그 생각 때문에 몇 시간 동안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주님,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오늘 여러분에게 온전하고 맑은 정신으로 이곳에 서서, 저 갈보리를 똑바로 바라볼 특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고 지금 곧 성령 침례를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믿습니까? 자, 여러분이 한 가지 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하시겠습니까? 옆에 누가 서 있는지 잊고, 이 방에 누가 있는지 잊고, 심지어 여러분이 어디 있는지도 잊고, 이렇게 말씀드리십시오. “주 예수님, 제가 주님께 갑니다. 주님께서 제게 성령을 약속하셨습니다. 주님의 도우심으로, 성령 침례를 주실 때까지 저는 이 제단을 결코 떠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확고하고 신실한 마음을 가지신다면, 여러분은 성령 침례를 받아 하나님의 왕국 안에 인침을 받고 이곳을 나갈 것입니다. 얼마 동안입니까? 이 땅에서 여러분에게 정해진 여정이 끝날 때까지입니다. 에베소서 4장 30절은 “하나님의 거룩한 영을 슬프게 하지 말라. 그분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봉인되었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성령 침례를 받으면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 안전하게 지켜집니다. 그것을 원하십니까? 이 건물 안에서 지금 성령 침례를 원하시는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좋습니다. 하나님이 거짓말쟁이십니까? 하나님께서 틀린 것을 말씀하신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와서 생명수 샘들에서 마시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께서 하시기를 바라는 일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제단 둘레에 서 계신 분들은 각자 서로에게 손을 얹으십시오. 저 바깥에 계신 분들 가운데 성령을 원하시는 분들도 서로에게 손을 얹으십시오.
그리고 마음속으로 이렇게 거듭 말씀드리십시오. “하나님, 지금 제게 성령을 주실 때까지 저는 이곳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실 것입니다. 믿습니까? 자, 손을 듭시다. 고개를 들고, 성령 침례를 주심에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합시다. 주 예수님, 지금 곧 성령을 내려 보내 주시옵소서. 주님, 여기 모든 사람의 마음을 채워 주시옵소서. 성령의 권능이 이 사람들 위에 내리기 시작하게 하시옵소서. 주님, 표적들과 이적들이 따르게 하시옵소서. 오늘이 이번 부흥집회에서 가장 큰 날이 되게 하시옵소서. 성령이 내리시고 병든 사람들이 고침받게 하시옵소서. 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듣고, 눈먼 사람들이 보며, 하나님의 영이 여기 있는 모든 믿는 사람의 마음을 채우게 하시옵소서. 주님, 허락해 주시옵소서. 이제 저희가 구했습니다. 주님은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기도했을 때 그들이 함께 모인 건물이 흔들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 모든 혼에 옛날과 같은 흔들림을 보내 주셔서, 이 사람들이 성령 침례를 받게 하시옵소서.
계속 찬양하십시오. 그분께 계속 찬양을 드리십시오. 어디 서 있는지 잊으십시오. 손을 드십시오. 그분께 찬양을 드리십시오. 손을 드십시오. 계속 그분을 찬양하십시오. 이쪽을 쳐다보지 마십시오. 저 위 하늘을 바라보십시오. 그분께 찬양을 드리십시오. “주님, 감사합니다. 주 예수님, 감사합니다. 주님,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하고 말씀드리십시오. 그저 그분께 찬양을 드리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지금 여러분을 성령으로 채워 주실 것입니다. 아멘. 아멘. 얘야,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란다. 아멘. 계속 그분을 찬양하십시오. 계속 그분을 찬양하십시오. 그분을 바라보며 “주 예수님, 감사합니다” 하고 말씀드리십시오. 그렇습니다. 어머님, 바로 그것입니다. 지금 바로 여기 서 계신 한 자매님이 성령을 받았습니다. 또 한 분입니다. 자, 계속하십시오. 그렇습니다. 계속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할렐루야. 청중 여러분 모두 그분께 찬양을 드리십시오. 그분을 찬양하고 영광을 돌리십시오.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아멘. 할렐루야. 손뼉을 치십시오. 그분께 찬양을 드리십시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하고 말씀드리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