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보스워스 형제님, 감사합니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오후 이곳에 와서 우리의 사랑스러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게 되어 대단히 기쁩니다. 여러분의 밝은 모습을 보니 정말 기쁩니다. 오늘은 제게 참으로 밝은 하루였습니다. 바깥은 흐리지만, 저는 평생 알았던 것보다 우리 주님의 사역을 더 많이 알아 가기 시작했습니다.
어젯밤에 제가... 지난 화요일 밤이었습니다. 빌러 형제님과 여러분, 녹음하고 계시다면 형제님과 우즈 형제님께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지난 화요일 밤과 어젯밤 녹음을 꼭 저를 위해 보관해 주십시오. 그 녹음을 갖고 싶습니다. 지난 화요일 밤이었는데, 제가 왜 어떤 일을 시도했는지는 여러분에게 설명드렸습니다. 어젯밤에는 성령께서 이리저리 움직이시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이쪽 구석, 이쪽 어딘가에 말을 못 하는 분들이 모여 앉아 계셨습니다. 저는 그것이 그분들 위에 머물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옮겨 갔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그분들에게 어떻게 전해 주어야 할지 정확히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고는 지켜보니 건물 뒤쪽으로 곧장 가서, 뒤에 서 있던 어떤 부인 위로 갔습니다. 다시 돌아와서는 여기 이 구석으로 갔습니다. 계속 이리저리 움직였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 사람들이 믿게 할 수만 있다면, 바로 지금 일어날 텐데. 그걸로 되는 건데. 그때 일리노이주 밴데일리아에서 있었던 것처럼 절정에 이를 텐데. 그러니 그저...” 그러다 갑자기 그것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마치 물방울이 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믿기만 하십시오. 자, 귀를 기울이십시오. 여러분이 한 번도 보지 못한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다음으로 기억나는 것은 아들과 다른 사람들이 저를 어딘가 다른 곳으로 데리고 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정말 영광스러웠습니다. 이제 우리 집회가 무언가를 이루어 갈 준비가 되어 가고 있다고 믿습니다. 사람들이 그 뜻을 알아차리고 깨닫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밴데일리아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씀드리겠습니다. 조금 전 차에서 내렸을 때, 지금 이 건물 안 어딘가에 계신 한 부인과 그 딸이 밴데일리아에서 있었던 일을 제게 간증해 주셨습니다. 그분이... 제가 제대로 전해야 할 텐데요. 제대로 전하기를 바랍니다. 조금 전에 제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제가 밴데일리아에 있을 때 그 부인은 설거지를 하고 계셨다고 합니다. 그분에게는 자몽만큼 큰 종양이 있었는데, 손을 털자 주님께서 “밴데일리아로 올라가서 치유받아라” 하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남편에게 가서 말했더니 남편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여보, 도저히 갈 수 없소. 내게는 십 달러밖에 없는데, 그 돈은 다른 데 꼭 써야 하오.”
그날은 토요일이었고, 부인은 몹시 낙심했습니다. 그러고는 하던 일을 계속하면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제게는 이미 말씀하셨으니, 이제 남편에게도 잠시 말씀해 주십시오. 이 십 달러를 어떻게 써야 할지 말입니다.” 그러고 나서 이튿날 아침에 일어났는데 비가 오고 있었다고 합니다. 남편이 와서 말했습니다. “밴데일리아에 가고 싶다고 했소?” 그래서 두 사람은 길을 떠났습니다. 그분들이 도착했을 때는 비 때문에 천막에서 집회를 할 수 없게 되어 강당으로 옮긴 뒤였습니다. 저는 기력이 완전히 소진되어 서 있기도 힘들었습니다. 부인은 기도 카드를 구할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분은 기도 줄에 올라오는 데 기대를 걸고 계셨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자, 모두 줄을 서십시오. 저는 여러분에게 안수만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일어나는 것을 보신 일이 참되다고 믿으신다면, 그저 여러분의 손을... 제가 여러분이 지나가실 때 손을 얹기만 하겠습니다. 믿으시면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모두 치유받을 것입니다.” 여러분, 제가 이렇게 말하는 근거는 그분께서 제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분은 “네가 기도할 때 신실하고 사람들이 너를 믿게 하면, 그 기도 앞에는 아무것도 서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시겠죠? 그런데 가장 중요한 점이 있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저는 그 사람들이 저를 믿게 할 수 없습니다. 저는 교육도 받지 못했고, 말도 아주 서툴며, 아, 개인적인... 제게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시겠죠? 저는 그저... 텅 비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어떻게...?” 하고 여쭈었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모세에게 입증을 위한 두 가지 표적이 주어졌듯이, 네게도 주어질 것이다.” 아시겠죠? “이것으로 사람들이 너를 믿을 것이다.”
그때 제가 알 수 있었던 것은 그저 그 사람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뿐이었습니다. 손을 잡거나, 그 손을 붙들고 있거나, 이렇게 그 사람 위에 제 손을 얹으면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분께서 말씀하시도록 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언제나 백 퍼센트 정확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분은 다른 이 일도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쨌든 그 부인이 제 앞을 지나갔습니다. 그분의 말로는 제가 그분에게 손만 얹었다고 합니다. 그분은 제가 멈춰 서서 자신과 함께 기도하고, 자신에게 종양이 있다는 것과 그런 모든 일을 말해 주기를 바라셨다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되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자신에게도 그렇게 해 주기를 원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달리 선택할 수 없으니, 주어지는 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분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부인은 낙심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약 한 달 뒤부터 그것이 더는 아프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여기 배에 종양이 있던 자리가 아프지 않았던 것입니다. 검사를 받으러 갔더니 종양이 사라졌고, 그 뒤로 다시 생기지 않았습니다. 자몽만 한 그 종양이 사라진 것입니다.
그 부인 자신은 그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셨습니다. 그분은 제 앞을 지나가셨는데, 하나님께서는 이미 여기 아래, 줄의 이쪽 끝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부인이 설거지를 할 때, 아니면 다른 일을 할 때였는지, 아무튼 손을 물에 담그고 있었다고 하신 것 같습니다. 부인이 손을 털었습니다. 그때 말씀하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분의 생명은... 아마 그 종양이 악성으로 변하여 그분이 죽게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죽기를 원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그곳으로 올라가도록 그분의 마음을 움직이셨습니다. 그렇게 하신 다음에는 남편도... 남편의 마음도 움직이셔야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고서도, 때로는 응답하실 시간을 드리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 신유를 믿지도 않는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습니다. “오, 주님, 세상의 전쟁들을 끝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참, 신유를 위해서는 한 사람의 생각만 바꾸시면 됩니다. 하지만 전쟁을 끝내려면 얼마나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셔야 하는지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그 일을 하시려면 얼마나 힘드시겠습니까. 이 사람에게도, 저 사람에게도, 또 저기 있는 사람에게도 역사하셔야 합니다. 그러나 신유를 위해서는 한 사람에게만 역사하시면 됩니다. 바로 여러분 자신입니다. 그것뿐입니다. 그러니 세계의 모든 국제 정세를 바꾸어 달라고 구하는 것보다 신유를 믿는 것이 더 쉽습니다.
어쨌든 그 부인은... 하나님께서 남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이 그곳에 왔고,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저는 그 부인에게 말했습니다. “그분이 지나오실 때 믿기만 하시면, 누구든지, 그러면... 하나님께서 똑같이 행하실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이 바로... 그 부인이 이 건물 안에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조금 전 바깥에서 사진을, 동영상을 찍고 계셨습니다. 부인, 여기 계십니까? 계시면 손을 들어 주십시오. 그 부인이... 어디요? 아, 예, 바로 여기 앉아 계시는군요.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바로 그 부인이... 사람들이 보실 수 있도록 다시 일어서 주십시오. 얼마나 되었지요? 자매님, 칠팔 년쯤 되었지요? 종양도 없고, 아무것도 없고, 모두 사라졌으며, 모든 것이 온전합니다. 다 함께 “주님, 감사합니다” 하고 말합시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실제로 계십니다.
무엇이 그렇게 했습니까? 하나님을 향한 그 부인의 믿음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그 부인의 믿음이 그 일을 이루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처음부터 그분을 치유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믿으십니까? 예수님께서 갈보리에서 죽으셨을 때 무엇을 하셨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갈보리에서 죽으셨을 때 모든 사람을 치유하셨습니다. 그렇습니까? 갈보리에서 죽으셨을 때 모든 사람을 구원하셨습니다. 그 뒤로는 죄인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았습니다. 그분은 세상 죄를 제거하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십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그렇다면 저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묻습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그것을 받아들이기 전에는 여러분에게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그것을 받아들이면 그리스도인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미 자신을 심판한 것이므로, 심판을 받을 필요도 없습니다. 긍휼을 지나쳐 버리면 이미 심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네가 그것을 먹는 날에, 그날에 네가 죽으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기회조차 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받아들이든지, 아니면 하나님 앞에 나아가든지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미 심판을 받았기 때문에 다시 심판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한 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그것을 먹는 날에, 그날에 네가 죽으리라.” 그것으로 결정된 것입니다. 여러분과 그 심판 사이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만이 서 있습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롭게 된 것이 기쁩니다. 이번 주에 일어난 일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전혀 보지 못하던 사람들이 시력을 얻었습니다. 귀먹은 사람들도, 온갖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우리가 온 마음으로 믿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마치... 보스워스 형제님, 저는 이제 사역을 시작하는 새사람이 된 것 같습니다. 해외에서 다시 돌아와서 미국의 이런 집회들에 다시 뛰어들 때가 벌써부터 기다려집니다.
어젯밤에는 오늘 오후에 선교에 관해 설교하겠다고, 아니 말씀드리겠다고 알렸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 버렸으니, 작은 주제 하나를 택해 잠시 말씀드리고 바로 마치는 편이 낫겠습니다. 곧 이어서 또 예배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밤은 우리가 지금까지 가졌던 집회 가운데 가장 큰 집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도 바라시지요? 오늘 밤에는 단 한 가지도 남김없이,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하나님께서 치유하시기를 소망합니다. 그렇게 하실 줄 믿습니다. 저는 이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내일은 다음 집회가 열리는 플로리다주 웨스트팜비치로 떠납니다. 지금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제가 볼 수 있는 데까지는 휠체어 하나와 간이침대 하나만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오후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바라보고 사십시오. 믿음을 가지십시오.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잠깐 전하는 동안... [브래넘 형제님이 기침한다.] 실례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믿음을 북돋아 주실 것을 온 마음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때로는 이런 생각이 듭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그토록 많은 일을 하시는데도 우리가 마치 의식도 없는 사람처럼 가만히 앉아 있을 때, 주님은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 모두 잘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저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저 앉아서 “주님, 저를 위해 무언가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이미 하신 일보다 더 많은 것을 하실 수 없습니다. 이미 우리를 치유하셨습니다. 이미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이미 우리에게 기쁨을 주셨습니다. 자신의 평안을 주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큰 방패요 작은 방패이시며, 우리의...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그분 안에 있습니다. 우리를 도로 하나님의 아들딸들로 구속하시기 위해 이미 구속의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세상에서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은 오직 한 가지, 육체의 죽음뿐입니다. 우리는 모두 죽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본향으로 데려가시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본향에 이르려면 죽음을 통과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그분의 발 아래 있습니다. 죽음을 제외한 모든 것입니다. 그런데 죽음은 이미... 죽음의 형벌은 이미 제거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곧바로 그분의 임재 안으로 들어갔다가, 언젠가 다시 돌아와 불멸의 존재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이 땅에서 천 년 동안 살게 됩니다. 아멘. 저는 그것을 믿습니다. 저는 철저히 천년왕국을 믿는 사람입니다. 천년왕국을 믿습니다. 여러 시대에 걸쳐 이 모든 히브리 선지자들이 다가올 천년왕국의 황금시대에 관하여 말했다고 믿으며, 우리가 그것을 누릴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주님과 함께 천 년 동안 통치할 것입니다.
천년왕국 뒤에 재림하신다는 견해도 있고, 천년왕국 전에 재림하신다는 견해도 있고, 천년왕국이 없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저는 그런 것을 전혀 믿지 않습니다”라고 하셔도 괜찮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형제입니다. 똑같은 형제입니다. 다만 저는 그런 통치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시간이 있으면 오늘 오후에 이것을 자세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분께서 어떻게 펼쳐 나타내셨다가 다시 거두어들이시는지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시간이 시작되기 전에 어떻게 그분을 펼쳐 나타내셨는지, 보아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 크신 존재로부터 자신을 펼쳐 나타내어 로고스로, 그다음에는 사람으로 나타내셨는지 말입니다. 또 어젯밤에 말씀드린 것처럼, 사람을 통해 어떻게 자신을 계속 펼쳐 나타내시는지 말입니다. 불기둥에서 아들 안으로, 그리고 사람 안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그리고 사람이 죽음에서, 죽음의 형벌에서 어떻게 이끌려 나왔으며, 어떻게 내려왔는지 말입니다. 이제는 의롭게 됨을 통해, 성령침례를 통해 다시 돌아가는 길에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다시... 이 죽을 몸에서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불멸의 존재로 돌아갔다가, 다시 육체 안으로 들어갑니다. 하나님께서 처음에 사람을 있게 하셨듯이,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아, 놀랍습니다. 아시겠죠?
사람은 이런 사람이 되기 전에는 영인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사람을 자신의 형상대로 만드셨습니다. 그렇다고 하실 분이 얼마나 됩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형상이십니까? 그분은 영이십니다. 그렇습니까? 그러므로 육체를 가진 사람을 만드시기 전에 영인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그런 다음 사람이 땅의 거처와 접촉할 수 있도록 오감을 지니게 하셨습니다. 손은 원숭이처럼, 발은 곰처럼 만드셨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모릅니다. 그러나 어쨌든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내려오셔서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실 때에는, 사람을 다시 자신에게로 구속하시기 위해 사람의 형상을 취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구속받은 삶에서 곧장 나아가, 이 구속받은 삶에서 다시 초자연적인 몸을 입은 불멸의 삶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육체 안으로 돌아옵니다. 마치... 우리를 다시 에덴동산으로 데려가시는 것입니다. 똑같은 일입니다.
그날 아침 아담이 이브의 팔을 잡고 동산을 거닐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웠을지 상상할 수 있습니까? 아, 커다란 새들이 날아다니고, 평화가 있으며, 병도 없고, 결코 죽지도 않는 곳입니다. 이브는 예뻐 보이려고 얼굴에 바르는 이런 매니큐어를 쓸 필요도 전혀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잘못 말한 줄 알았습니다. 누가 웃으셨군요. 그걸 뭐라고 부르지요? 어쨌든 얼굴에 바르는 칠 말입니다. 매니큐어, 뭐더라, 그런데 그건 머리카락에 쓰는 것 아닌가요? 머리카락에 바르는 것이지요. 아무튼 어떻게 하는 것인지, 저는 모릅니다. 무언가가 있지요. 말을 할수록 더 엉망이 되는군요. 한번은 아내가 양말, 아니 스타킹 한 켤레를 사 오라고 보냈는데, 그 일을 잊을 수 없습니다. 뒤에 모양이 제대로 잡힌 것, 아시지요? 뒤에 그 작은 이상한 것이 있는 종류를 사야 했습니다. 두 종류가 있었는데, 하나는 시폰이고 다른 하나는 레이온이라고 했습니다. 시폰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맞습니까, 자매님들? 시폰이지요? 저는 길을 걸으며 “시폰, 시폰, 시폰, 시폰” 하고 큰 소리로 외웠습니다. 누군가 “안녕, 빌리” 하고 불렀습니다.
저는 “안녕, 안녕. 시폰, 시폰, 시폰, 시폰, 시폰, 시폰” 하고 대답했습니다. 내려가다가 누군가와 낚시 이야기를 하게 되어 그만 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예전에 사귀던 아가씨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안녕, 델마.” 그녀가 “안녕, 빌리. 뭘 찾으세요?” 하고 물었습니다. “호프가 양말 한 켤레를 사 오라고 했어.” “호프는 양말을 신지 않잖아요.” “분명히 신는데.” 그녀가 말했습니다. “실례지만, 호프는 스타킹을 신지요.” “그래, 그게 필요해.” 저는 ‘벌써 실수를 해서... 무식한 티를 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녀가 물었습니다. “어떤 걸 원하세요?” “어떤 것들이 있지?” 저는 그녀가 그 이름을 말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레이온이 있어요.”
제가 말했습니다. “그게 필요해.” 아, 저는 두 종류가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 종류로 줘. 뒤에 그 모양이 제대로 있는 것, 그거 말이야.” 그녀가 그것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육십 센트를 내야 하는 줄 알았는데, 이십 센트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두세 켤레 줘” 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봐요. 나는 아브라함의 아들이오. 내게 유대인 기질이 좀 있어서 물건 사는 요령을 안단 말이오. 여자들은 루이빌까지 가서 하루 종일 싼 물건을 찾느라고 돌아다니고, 돈을 다 쓰고 집에 돌아와도 여기 집 근처에서 산 것보다 별로 싸게 사 오지도 못하잖소. 나는 시내에 가서 한 켤레 값으로 스타킹 세 켤레를 사 왔소.” 아내가 물었습니다. “시폰으로 샀어요?”
제가 “그럼요” 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시폰과 레이온이 따로 있는 줄 몰랐습니다. 제게는 다 똑같이 들렸습니다. 얼마 후 아내는 다른 스타킹 한 켤레를 샀습니다. 제가 실수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일에서는 손을 떼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얼굴이나 머리카락에 바르는 이런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것은 여자분들끼리 이야기하실 일이지요? 좋습니다. 주님을 사랑하시는 분은 “아멘” 하십시오. 이제 주님의 말씀을 조금 읽고 그 말씀 안에서 잠깐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그저 작은... 제가 여러 번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설교자가 아닙니다. 저는 그저 옛날식 사사프라스 나무 같은 시골 촌사람으로서, 옛날식 시골의, 하늘빛처럼 푸르고 죄를 죽이는 신앙을 믿는 사람입니다. 여러분도 그것을 믿으십니까? 그러면 우리는 잘 지낼 수 있습니다.
저는 그런 신앙이 겉만 하얗게 칠하는 것이 아니라, 씻어서 하얗게 만든다고 믿습니다. 여러분을 죄에서 깨끗하게 하고, 바르게 세우며, 여러분 안의 굽은 것들을 모두 펴서, 굽은 거리에서 영광의 큰길로 옮겨 놓습니다. 여러분도 그것을 믿으십니까? 물론입니다. 천국의 기쁨의 종이 울리고, 여러분은 날마다 영 안에서 걷게 됩니다. ...있는 자들에게는 정죄함이 없습니다. 교회에 가입한 자들에게는? 악수한 자들에게는 정죄함이 없습니까? 침례받은 자들에게는 정죄함이 없습니까?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어떻게 그 안으로 들어갑니까? “우리가 모두 한 성령에 의해 침례를 받아 한 몸 안으로 들어왔느니라.” 그렇습니까?
요한복음 11장입니다. 성경을 조금 읽겠습니다. 18절입니다.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십오 스타디온쯤 떨어진 가까운 곳이므로 유대인들 중의 많은 자들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와서 그들의 오라비에 관하여 그들을 위로하더라. ...마르다는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바로 가서 그분을 맞이하였으나 마리아는 가만히 집에 앉아 있더라. 그때에 마르다가 예수님께 이르되, 주여,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으리이다. 그러나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 하나님께 구하시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주께 주실 줄을 내가 아나이다, 하니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일어나리라, 하시므로 마르다가 그분께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할 때에 그가 다시 일어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하매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누구든지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이것을 네가 믿느냐? 하시니 그녀가 이르되, 그러하오이다, 주여, 주께서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실 분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세상에 오실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잠시 고개를 숙입시다.
아버지, 오늘 오후 이 몇 마디 말씀을 축복하시고,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서 합당한 자리를 차지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제 입술에도 합당하게 두셔서, 우리가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고 사람들이 들음으로 믿음을 얻도록 해 주십시오. “믿음은 들음에 의해 오며”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밤 집회에까지 병든 사람이나 몸이 불편한 사람이 한 사람도 남지 않게 하시고, 오늘 오후에 모두 치유받게 해 주십시오. 주님, 허락해 주십시오. 모든 죄인이 구원받고, 뒤로 물러난 사람들이 회복되게 해 주십시오. 이 예배를 통해 영광을 받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여러분이 저와 함께 기도하시는 동안 잠시 이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저도 저 시계를 보면서, 여러분이 오늘 밤 예배에 돌아오실 시간이 넉넉하도록 마치겠습니다. 나사로가 무덤에서 일으켜진 일, 또 어떤 방식으로 일으켜졌는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는 어떻게 무덤에서 나왔습니까?
먼저 그 배경을 알아보고 살펴보겠습니다... 이제 저와 함께 기도하시며 잠깐만 온전히 주의를 기울여 주십시오. 저는 부활을 믿습니다. 육체를 가진 몸의 부활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를 가진 몸으로 다시 오실 것을 믿습니다. 지금 이 땅에서 그분의 교회가 그분을 대표한다고 믿습니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겼다고 믿습니다. 교회는 성령으로 충만한 교회이며, 거룩함을 철저하게 끝까지 전파한다고 믿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성경에서 죄를 위한 헌물을 드릴 때 산비둘기 두 마리를 가져왔던 일이 생각납니다. 아니, 나병을 정결하게 할 때였습니다. 성경에서 나병은 죄의 모형이었습니다. 비둘기 두 마리를 가져다가, 그중 한 마리의 머리를 잡아 떼고 이렇게 거꾸로 들고서, 그 피가 살아 있는 짝에게 흘러내리게 했습니다. 그러고는 살아 있는 비둘기를 창문으로 가져가 놓아주었습니다. 그 비둘기가 작은 날개를 파닥일 때, 죽은 짝의 피가 땅에 떨어졌습니다. 죽은 짝에게서 나온 그 피가 땅에 부딪쳐 튀면서 주님께 “주님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하고 외쳤습니다.
이것은 교회를 얼마나 완전하게 보여 줍니까. 예수 그리스도, 곧 하나님께서 내려오셔서 육신으로 나타나시고, 죄 있는 육신의 모양을 취하시고, 갈보리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죽은 짝의 피가 교회, 곧 살아 있는 신부에게 뿌려집니다. 신부는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가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전능자여” 하고 외칩니다. 나병을 완전하게 정결하게 하는 것입니다. 나병에는 치료법이 없었습니다. 아직도 찾지 못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나병을 고치실 수 있습니다. 나병에 도움이 될 만한 것조차 찾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나병은 죄의 모형입니다. 아주 서서히 시작되고, 통증도 없이 스며들어서, 죽어 갈 때까지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온몸에 커다란 흰 사마귀 같은 것이 나고,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온갖 일이 일어납니다. 여러분을 먹어 들어가서... 나병은 사람을 그대로 먹어 치웁니다. 이 나병을 치유하실 수 있는 분은 예수님뿐이셨습니다. 오늘날에도 이 나병을 치유하실 수 있는 분은 예수님뿐이십니다.
이제 예수님의 사역이 시작될 무렵을 보겠습니다. 그분은 참으로 위대한 분이셨습니다. 이 땅에는 그분과 같은 분이 한 번도 없었고, 앞으로도 그분과 같은 분은 없을 것입니다. 그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독생자이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을 통해 입양된 아들들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하나님의 독생자이십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아들이었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믿으십니까? 그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분은 하나님께서 낳으신 아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낳으셨습니다. 피도 마찬가지입니다. 피는 남성에게서 옵니다. 우리는 그것을 압니다. 어머니는 아이를 위한 부화기일 뿐입니다. 어머니의 피는 아이와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아이가 어머니의 피 속에서 태어나기는 하지만, 그 피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아이 안에는 어머니의 피가 한 방울도 없고, 아버지의 피가 있습니다. 생명은 피에 있습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 가운데 많은 분은 농사를 지으시거나, 닭 같은 것을 구하러 농장에 가실 것입니다. 암탉을 보십시오. 암탉은 알을 낳을 수 있습니다. 반드시 수탉과 함께 있어야만 알을 낳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낳아도 똑같은 알이고 모든 것이 똑같습니다. 그러나 그 알은 결코 부화하지 않습니다. 그대로 놓여 있다가 썩어 버릴 것입니다. 그 알을 품게 할 수는 있지만, 수정이 되지 않았다면, 암탉이 수탉과 함께 있지 않았다면, 결코 부화하지 않습니다. 쓸모가 없습니다. 그 안에 피가 없기 때문입니다. 피는 수컷에게서 옵니다. 그러니 그것은... 암탉이 아무리 그 알을 품고 앉아, 너무 야위어서 둥지에서 일어나지 못할 지경이 된다 해도 상관없습니다. 그 알은 부화하지 않습니다. 썩어 버릴 것입니다.
제가 자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꼭 그와 같다고 말입니다. 우리가 갖추고 있는 온갖 경건의 형식, 교회에 다니고 십일조를 내며 착실한 교인이 되는 일과 그 모든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형제님, 그래서는 결코 어디에도 이를 수 없습니다. 짝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접촉하여 다시 태어나기 전에는, 둥지에 썩은 알만 가득할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가 너무 야위어서 일어나지 못할 때까지 그것을 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주의밖에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러나 형제님, 말씀드립니다. 사람이 다시 태어나기 전에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생명이 그 사람 안에 들어오기 전에는 다시 태어날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어떻게 계획하셨는지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이곳에 오게 하신 남성 쪽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성관계가 있을 수 없었습니다. 성적 욕망도 있을 수 없었습니다. 만일 그런 일이 있었다면 예수님은 처녀에게서 태어나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그분께서 이 마리아를 덮으시고, 그 안에 하나님의 아들을 낳게 한 혈구를 창조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거룩한 피를 통해 생명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성관계를 통해 받은 우리의 피는 물러나고, 우리 죄들을 속죄하는 속죄의 피, 곧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여러분은 그것을 믿으십니까? 구원받으셨다면 그렇게 믿으셔야 합니다. 다른 것을 받아들여서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오직 그분만이 처녀에게서 태어나신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여인을 덮으셨습니다. 그 여인은 남자를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저 그 여인을 덮으시고 그 안에 이 세포를 창조하셨습니다.
얼마 전 산에 올라갔을 때의 일입니다. 제가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애커먼 박사님이 오늘 오후 여기 앉아 계신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우리는 함께 산에 올라가 있었습니다. 그곳의 목장주인 한 사람이 제게 왔는데, 완전히 신앙을 부정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저와 논쟁하려고 했습니다. 처녀 탄생 같은 일은 없으며, 다 허튼소리이고, 어느 시대에나 늘 있는 그런 작은 실수였을 뿐이며, 그 아기의 아버지는 요셉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그 아기의 아버지는 하나님이셨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그런 일은 없습니다. 그런 일은 없어요. 전부 과학 연구에 어긋납니다. 옥수수조차도 자연적인 암수가 없으면 결실할 수 없습니다. 여자도 실제로 남자와 함께하지 않고는 아기를 낳을 수 없습니다.”
제가 “당신은 믿습니까...?” 하고 말했습니다. 그 사람은 방금 전에 제게 최초의 인간이 해면동물이었다가, 올챙이가 되고, 개구리가 되고, 다시 올챙이인지 무언가가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거기서 불을 먹는 용으로 계속 이어 나가더니, 마침내 원숭이가 되고, 그다음에 깃을 달고 넥타이를 매어 주고는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흠, 그런 터무니없는 소리가.” 기억하십시오. 그 문제에 관한 다윈의 윤리학을 읽어 보셨습니까? 참으로 정신 나간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여기 강 이쪽에 사시는 여러분은 이곳 학교에서 그런 것을 가르치도록 내버려 둡니다. 이것은 기독교가 약해졌다는 증거입니다. 그 작은 올챙이가 수천 년 동안 어깨로 기어 다니다가, 그 자리에 작은 혹이 생기고 팔 하나가 나왔다고 말합니다. 그러고는 그쪽으로 기어 다니기를 그만두고, 다른 쪽으로 또 천 년 동안 기어 다니자 또 다른 혹이 생기고 팔 하나가 더 나왔다고 합니다. 터무니없는 소리입니다. 아, 그런 것을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저는 그만한 믿음이 없습니다. 저는 그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믿습니다. 그것뿐입니다. 제게는... 그것을 믿으려면 제게는 너무 큰 믿음이 필요합니다. 저는 차라리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하신 말씀을 믿겠습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어쨌든... 그러고 나서 제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 어머니가 계셨고, 아버지도 계셔야 했다고 믿는 것이군요?” 그가 “그렇습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한 가지 묻겠습니다. 최초의 사람은 어디에서 왔습니까? 그 사람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누구였습니까? 과학에 따르면 그에게도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두 있어야 했습니다. 최초의 사람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누구였습니까? 원숭이든, 올챙이든, 해면동물이든, 무엇이었든 간에, 당신의 말대로라면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어야 했습니다.” 그는 오늘날까지도 제게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대답할 수도 없습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들은 두 눈 사이가 어찌나 좁은지 연필 하나를 이렇게 놓기만 해도 눈이 가려질 정도입니다. 정말입니다. 사실입니다. 결론부터 내리려고 아무것에나 덥석 뛰어듭니다. 멈추어 서서 따져 보려 하지 않습니다. 이것에 비추어 따져 보십시오. 이것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과학적인 책입니다. 이것만이... 여러분이 어디에서 왔고, 누구이며, 어디로 가는지를 알려 주는 유일한 책이 여기 있습니다. 그런 책은 오직 하나, 이 성경뿐입니다. 저는 그 모든 말씀을 믿습니다. 여기 기록된 그대로 믿습니다. 어떤 대목에라도 제 혼을 걸고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라고 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얼마 전 어떤 젊은이가 학교에 갔습니다. 그곳에서 배우지 말아야 할 것을 아주 많이 배웠습니다. 저는 학교나 교육이나 신학교 같은 것들을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설교자를 부르시면, 어느새 사람들은 그를 신학교로 데려가, 그 안에 있는 하나님께 속한 것을 모조리 빼내고, 그다음에는 신학을 집어넣어 그렇게 내보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거기에 들어갔을 때보다 더 나빠집니다. 사실입니다. 여러분, 저는 하나님과 그분의 일에 관해 말씀드리려고 여기 올라왔습니다. 제가 아는 것은 그저 도끼를 나무뿌리에 내리치고, 나뭇조각이 어디로 튀든 그대로 두는 것뿐입니다. 그렇습니다. 형제님, 이것은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안에 넣으신 것을 빼냅니다. 제게는 커다란 시체 안치소를 돌아다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차갑고 죽어 있는 곳, 고드름이 달리고, 영적 온도계가 영하 구십 도쯤을 가리키는 곳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시체 안치소에서는 늘 죽은 사람을 데려다가, 계속 죽은 상태로 있게 하려고 그 안에 무언가를 주입합니다. 꼭 그와 같습니다. 그 안에서 생명이 될 만한 것을 모두 빼내고 죽은 것을 집어넣습니다. 그렇습니다. 계속 죽어 있게 하는 것입니다. 아,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그런데 이 젊은이의 어머니가 병이 들었습니다. 폐렴에 걸렸습니다. 의사가 죽게 될 것이라고 했기 때문에, 어머니는 아들에게 집에 오라고 연락했습니다. 성령을 받은 한 부인이 영의 인도를 받아 찾아와서 말했습니다. “신유를 믿으세요?”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들어 본 적이 없어요.”
그 부인이 말했습니다. “성경에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 사람들이 나으리라’고 하셨어요.” 그러자 어머니는 그 일에 관해 모두 알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그 부인은 가서... “우리 목사님이 와서 기도하시게 해 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순복음 목사님이 찾아와 그 여인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목사님이 와서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그 여인을 치유하셨습니다. 몇 주 뒤 아들이 집에 와서 말했습니다. “어머니, 저는 참 이상한 것이 있어요. 어떻게 그렇게 빨리 나으셨어요?”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아들아, 네게 해 줄 말이 있단다. 여기 우유를 팔러 오던 그 부인이 있지? 그 부인이 저 아래 성령에 취해 구르는 사람들이 모이는 작은 곳에 다닌단다. 그 사람들이 신유를 믿는다는 것을 아니? 그 목사님이 여기 오셔서 성경 마가복음 16장을 읽어 주셨단다. 믿는 자들에게 이런 표적들이 따르며,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 사람들이 나으리라고 말이다. 목사님이 나를 위해 기도하고, 기름을 바르고, 안수하셨더니 주님께서 나를 치유해 주셨단다. 오, 주님을 찬양하라.” 아들이 말했습니다. “어머니, 말도 안 돼요. 그런 사람들과 어울리시면 안 됩니다. 어머니도 그 사람들처럼 행동하기 시작하시잖아요. 부끄러운 일이에요.”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하지만 아들아, 그분이 성경에서 읽어 주셨단다.” “어머니, 신학교에서는 마가복음 16장 9절부터는 영감을 받은 말씀이 아니라고 배웠어요.”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할렐루야!” 아들이 말했습니다. “어머니, 왜 그러세요? 무슨 일을 하시는 거예요?”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영감을 받지 않은 말씀으로도 나를 치유하셨다면, 영감을 받은 말씀으로는 무엇을 하실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단다. 얼마나 더 큰 일을 하시겠니.” 그렇습니다. 영감을 받지 않은 말씀으로도 그 일이 가능했다면, 실제로 영감을 받은 말씀으로는 무엇을 하겠습니까? 여러분,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그분의 삶이 세상에 드러난 일을 살펴보면서, 잠깐 그분의 삶으로 돌아가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서 그분을 보내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믿으십니까? 하나님께서 여자의 씨와 뱀의 씨 사이에 적개심을 두겠다고 말씀하셨고, 그리스도 안에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무언가를 하실 때가 되었을 때, 하나님은 어떤 일을 하시기 전에 언제나 심판에 앞서 긍휼을 보내십니다. 언제나 경고를 보내십니다. 사람들이 그 경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남은 것은 오직 하나, 심판입니다. 그렇습니다. “너희가 죄 가운데서 죽으면 내가 있는 곳에 올 수 없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설교자들과 온갖 것을 보내 경고하십니다. 자신의 영을 보내 사람들에게 경고하십니다. 예수님을 보내시기 전에, 그분의 오심을 준비하라고 사람들에게 경고를 보내셨습니다. 여기서 잠깐 멈추어, 더없이 신실한 마음으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온 세상에서 일어나는 것을 보고 계신 이 일들은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경고라고 저는 믿습니다. 한국에서는 감리교인들과 침례교인들과 그곳의 여러 사람들이 큰 부흥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그들이 성령을 받고, 방언을 말하고, 치유 예배와 그 밖의 온갖 일을 행하고 있습니다. 형제님, 압박이 닥치게 두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을 하나님께로 밀어 줄 것입니다. 여러분이 감리교인인지 침례교인인지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기도하기 시작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나머지를 돌보실 것입니다. 그저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십시오.
막 돌아온 한 목사님이 제게 말했습니다. 그 사람들 가운데 들어가서 “이분들이 다 오순절교인입니까?” 하고 물었다고 합니다. “이 사람들 가운데 오순절교인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다들 방언을 말하고 외치는 것을 보십시오.” 그 사람이 말했습니다. “하하, 압박을 받아서 그렇게 된 것이지요.” 그것뿐입니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 안에 밀어 넣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 교회는 우리 교회이고, 저 교회도 우리 교회다” 하는 생각을 합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지었을 때, 그 재료들은 세계 곳곳에서 잘려 나왔습니다. 그것들이 한데 모였을 때, 어떤 돌은 이쪽으로 돌리고 어떤 돌은 저쪽으로 돌렸지만, 사십 년 동안 톱 소리나 망치 소리가 나지 않았습니다. 모든 돌이 자기 자리에 꼭 들어갔고, 성전이 세워졌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도 그와 같을 것입니다. 마음이 순수한 자들이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건축자들이 아무 진전도 이루지 못하는 까닭은, 그때 그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으뜸 모퉁잇돌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감리교인, 침례교인, 오순절교인 할 것 없이 모두에게 있는 문제가 그것입니다. 으뜸 모퉁잇돌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부당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온갖 신학과 여러 가지를 갖추고, 이것에 관해서도 말하고, 우리 교회가 무엇을 믿는지, 무엇을 믿지 않는지 말합니다. 그것을 가르쳐 넣고, 주입하고, 온갖 일을 합니다. 그러나 성령침례와 하나님의 권능이 사람들 가운데 자유를 가져오는 것은 거부당합니다. 바로 그것이 예수님을 만나러 본향에 갈 교회를 세울 모퉁잇돌입니다. 할렐루야. 저는 그것을 믿습니다.
그 모퉁잇돌은 발길에 차여 잡초 더미 속에 버려졌습니다. 그들은 교회를 짓고 또 지었지만, 알고 보니 비워 둔 그 자리에 모퉁잇돌이 꼭 맞았습니다. 오늘날 모든 권능과 표적과 이적이 빠진 그 자리에 성령께서 꼭 맞으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교회 안으로 하나님의 권능을 가져오시는 분이 바로 성령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멘.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경고를 보내십니다. 예수님께서 오시기 바로 전에, 가브리엘이라는 이름의 천사를 하늘에서 내려보내셨습니다. 물론 지위가 낮은 천사들도 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천사들을 보기도 합니다. 성경에 따르면 모든 사람에게는 수호천사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얼마 전 한 목사님이 제게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천사를 보는 일 같은 것은 없습니다. 천사가 교회를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교회를 인도하십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보내어진 섬기는 영들, 곧 천사들이 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그런 것을 믿지 않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형제님 교회가 무엇을 믿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저는 성경이 무엇을 가르치는지 압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다니엘 시대나 그 옛날에는 천사들이 있었을지 모르지만, 성령께서 오신 뒤로는 없습니다. 천사는 없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빌립이 성령을 받았다고 믿으십니까?” “물론입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크게 일어나고 있던 부흥을 떠나, 광야로 나가 에티오피아 사람을 만나라고 그에게 와서 말한 이는 누구였습니까? 성령이었습니까? 아닙니다. 주의 천사가 그에게 왔습니다.” 그렇습니까? 빌립은 성령을 받았습니다. 베드로가 성령을 받았다고 믿는 분은 얼마나 됩니까? 여러분 모두 믿으십니다. 그렇다면 그날 밤 감옥에 있던 그에게 온 이는 누구였습니까? 이튿날 아침 그의 목을 베려 하고 있었고, 요한 마가의 집에서는 기도 모임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에 빛을 비추고, 불빛이 와서 그의 위에 머물며 그를 건드려 일으키고, 족쇄를 풀고, 문을 열어 그를 거리로 내보낸 이는 누구였습니까? 주의 천사였습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베드로는 성령을 받았습니다. 저 위대한 성도 바울은 어떠했습니까? 열나흘 밤낮으로 달도 별도 보이지 않았고, 살아남을 희망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가 배 안의 조리실로 내려가 기도한 다음 나와서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기운을 내라.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천사가 어젯밤 내 곁에 서서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였느니라.”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천사였습니다.
저 섬, 밧모섬을 보십시오. 요한계시록 전체가 천사에 의해 계시되었습니다. “나 예수는 속히 일어날 일들을 너희에게 보이려고 내 천사를 보내었노라.” 그렇습니까? 요한이 천사에게 경배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참된 천사는 결코 자신이 경배받도록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아닙니다. “하나님께 경배하라”고 말할 것입니다. 사실입니다. 물론 거짓 천사들도 있습니다. 거짓 영들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참된 천사는 언제나 여러분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하늘에서 온 천사라도 너희가 이미 들은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러니 그 천사가 무엇을 가르치는지 살펴보십시오. 복음에 따라 인도하고, 교리가 건전하며, 모든 것이 성경에 맞는다면 믿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천사들을 보내 세상에 경고하십니다. 저는 오늘날에도 이 땅에 천사들이 있어, 다가올 심판을 세상에 경고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여기서 비행접시에 관해서도 몇 분 동안 조금 말씀드릴 수 있겠지만, 그렇게 시간을 쓰지는 않겠습니다. 어쨌든 이것을 주목하셨습니까? 오늘날의 모습을 완전하게 보여 주는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롯을 불러내려고 그곳에 천사들을 보내셨습니다! 사실입니까?
보십시오. 의로우신 분, 위대하신 하나님의 아들께서 오시기 바로 전에 하나님께서 천사를 내려보내셨습니다. 그 천사는 존경받는 한 가정으로 찾아왔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천사들이 찾아오기를 원하시면, 사가랴의 가정처럼 되십시오. 그와 사라는 주님 앞에서 올바르게 살며, 주님의 모든 법규와 모든 명령을 지켰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받은 말씀과 빛에 온전히 순종하며 살았습니다. 사가랴의 직무는 백성이 기도하는 동안 제단에서 향을 태우며 흔드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이 향을 흔들고 있을 때, 제단 오른편에 가브리엘, 그 위대한 천사장이 서 있었습니다. 천사들은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브리엘이 온다는 말을 들으면 준비하십시오. 중대한 일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가브리엘은 예수님의 첫 번째 오심을 알렸습니다. 가브리엘은 예수님의 두 번째 오심도 알릴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보십시오. 가브리엘이 사가랴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사가랴는 늙었고, 그의 아내는 늘 자녀를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오늘날과는 얼마나 다릅니까. 우리 나라의 모습은 부끄럽습니다. 사람들이 나라를 더럽히고 있습니다. 잘못된 것은 아무것도... 누군가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공산주의자들이 미국을 휩쓸고 미국을 차지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해치는 것은 공산주의자가 아닙니다. 바로 우리 가운데 있는 우리 자신의 부패가 우리를 해치고 있습니다. 사과를 해치는 것은 사과를 쪼아 먹는 울새가 아니라, 사과의 속을 썩게 하는 심 속의 벌레입니다. 지금 우리 가운데 있는 도덕적 타락, 여자들이 담배를 피우고 위스키를 마시며, 밤이면 술집과 그런 곳들이 가득 차고, 욕을 하며 소란을 피우는 것, 그것이 우리를 죽이고 있습니다. 여기저기 있는 교회들이 하나님의 성품의 모양은 있으나 그것의 능력은 부인하는 것, 그것이 우리를 죽이고 있습니다. 아멘. 정확히 그렇습니다.
여기 사가랴가 서 있었습니다... 이 말씀에 주목하십시오. 천사가 말했습니다. “여기서 섬기는 날들이 끝나면 네 아내에게로 돌아가라. 네 아내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며, 너는 그의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그런데 이 무감각한 사람을 보십시오. 사람이 얼마나 무감각해질 수 있는지 보여 줍니다. 그에게는 하갈과 사라 같은 많은 본보기가 있었습니다. 사라는 백 세가 되어 아이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말했습니다. “이런 일은 일어날 수 없습니다. 제 아내는 너무 늙었습니다.” 천사가 말했습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 서는 가브리엘이라. 내 말들은 그것들의 때에 성취되리라. 그러나 너는 아기가 태어나는 날까지 말을 하지 못하리라.”
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온 하늘이 그것을 기록합니다. 제가 말씀드립니다. 반드시 일어나고야 맙니다! 아무리 우스워 보이고 아무리 이치에 맞지 않아 보여도, 어쨌든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내 말들은 그것들의 때에 성취되리라.” 사람들은 그가 나오지 않자 바라보며 무슨 일이 생겼는지 의아해했습니다. 얼마 후 그가 나왔을 때, 사람들은 그가 말을 못 하게 된 것을 알았습니다. 말을 할 수 없었던 그는 사람들에게 물러가라고 손짓했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의 아내가 수태했습니다. 아내는 몸을 숨겼습니다. 그러고 나서 약 여섯 달 뒤, 저는 이 대목을 작은 극처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나사렛으로 내려가 봅시다. 악한 도시, 에번즈빌보다 훨씬 더 악한 도시입니다. 악합니다. 정말 세상에서 가장 나쁜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한 어린 처녀가 살고 있었습니다. 도시가 아무리 악하고, 다른 여자들이 어떻게 행동하며, 다른 남자들이 어떻게 행동하든, 여러분은 어디서든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보십시오. 그 처녀가 처녀의 샘으로 내려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앞으로 몇 달 안에 저도 그곳을 지나가 보고 싶습니다. 커다란 동양식 물항아리를 머리에 이고, 물을 길어 올라옵니다. 빨래하는 날입니다. 제가 집안에서 겪어 본 날 가운데 가장 힘든 날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우리 집에는 전기 세탁기가 있지만, 저는 아직도 집에서 빨래하는 날이 돌아오는 것이 싫습니다. 어머니는 예전에 켄터키에서, 오래된 삶는 통, 뒤뜰에 놓아둔 낡은 솥을 쓰셨습니다. 그 옛날 솥들을 기억하시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시골 분들을 보십시오. 이제 넥타이를 풀어도 되겠군요. 집에 온 기분입니다. 형제님, 그렇습니다. 그 낡은 솥 말입니다. 저는 나무를 베고 그 솥을 나르고, 밑에 나무를 넣고 불을 때어 옷을 삶아야 했습니다. 아, 집에서 만든 잿물을 쓰고, 그런 비누와 여러 가지를 가져다가 빨래판에 문질러 빨면, 땀으로 범벅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그때가 생각납니다. 가을이 되면 사람들이 와서 그 솥을 가져다가 잼을 졸였습니다. 기억하십니까? 저는 잼을 졸여야 했습니다. 한번은 아까시나무 기둥이며 낡은 울타리 가로대 같은 것을 쪼개서, 그것이 충분히 끓도록 불을 때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보기에는 병에 담아 보관해도 될 만큼 뜨거워 보였습니다. 작고 노란 토마토, 아시지요? 박처럼 생긴 토마토 말입니다. 그걸 따끈한 비스킷 사이에 넣고, 옛날식 하얀 시골 버터를 조금 곁들이면 지금도 정말 맛있겠습니다. 맛있지 않겠습니까? 아, 정말이지 제대로 된 음식입니다. 어머니가 커다란 솥에 그것을 가득 넣고 졸이시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나무를 쪼개 밑에 넣었습니다. 제가 말하곤 했습니다. “엄마, 이제 뜨거워요.” 어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얘야, 더 뜨거워져야 한단다.” 제가 물었습니다. “왜 더 뜨거워져야 해요?”
어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톡톡 터지기 시작할 만큼 뜨거워져야 한단다.” 이렇게 퐁, 퐁, 퐁 하고 말입니다. “그러면 달아지고 있는 거야.” 그렇군요. “계속 장작을 넣으렴. 좀 있으면 충분히 달아질 거야. 그래야 즙과 모든 것이 한데 섞이고, 설탕도 즙과 어우러져서, 병에 담아 보관할 준비가 되는 거란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옛날식 성령 집회도 바로 그렇구나. 형제님, 옛 복음의 장작을 계속 집어넣으십시오. 충분히 뜨거워져서 간증 모임이 열리고, 이렇게 톡, 퐁, 톡, 퐁, 톡 하고 터지게 하십시오. 마귀는 모두 쫓겨나고 성령께서 사람들 가운데 활발히 움직이시며 사람들을 달게 만드십니다. 그러면 옛날식 부흥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계속 장작을 올려놓고, 힘껏 불고 부채질하십시오.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돌보실 것입니다. 잼이 달아지면 병에 담아 둘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천사가 가브리엘에게 말하던 일, 아니 가브리엘이 그 제사장에게 말하던 일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가랴는 집으로 올라갔고, 약 여섯 달 뒤 마리아가 이 솥, 아니 물항아리를 머리에 이고 옵니다. 바로 길 앞에 커다란 빛이 하늘에서 내려와 비쳤습니다. 이 빛 속으로 위대한 천사장 가브리엘이 걸어 들어오며 말했습니다. “마리아야, 평안하냐? 네가 여자들 가운데 복이 있도다.” 그 인사에 어린 처녀는 조금 놀라 뒤로 물러섰습니다. 무슨 일인지 몰랐습니다. 자기 앞에 위대한 천사장이 서 있었습니다. 천사는 마리아의 사촌인 사가랴의 아내 엘리사벳에 관해 모두 말해 주었습니다. 요한과 예수님은 이복... 육촌이었습니다. 아니, 사촌, 육촌이지요. 마리아와 엘리사벳이 사촌이었습니다. 천사는 그 일에 관해 말해 주고는 “네가 남자를 알지 못한 채 아이를 낳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마리아가 말했습니다.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천사가 말했습니다. “성령께서 너를 덮으실 것이다. 네게서 태어날 그 거룩한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리리라.”
이제 그 차이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형제님, 충격을 견딜 조끼를 입고 이 말을 들으십시오. 저기 한 설교자는 과거에서 살펴볼 수 있는 온갖 본보기를 갖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자기 아내와 함께 살면, 아내가 늙은 나이에 아이를 낳으리라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어린 여인은 한 번도 일어난 적 없는 일을 믿어야 했습니다. 처녀 탄생으로 태어난 아기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의문을 제기하는 대신 천사가 한 말을 그대로 믿고 기뻐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말씀드립니다. 오늘날 에번즈빌에 필요한 것은 다른 온 세상에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그대로 믿고 그 말씀 때문에 기뻐하기 시작할 마리아 같은 사람들입니다. 마리아는 태동이 느껴질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확실해질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손이 조금 나아지면 믿겠습니다. 발을 좀 더 움직일 수 있게 되면 믿겠습니다”라고 하며 기다리지 마십시오. 지금 믿고 기뻐하기 시작하십시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그대로 믿으십시오. 말씀은 그분이 말씀하신 바로 그것을 이루어 낼 것입니다. 아멘. 형제님, 지금 저는 성령에 취해 구르는 사람 같은 기분입니다. 어차피 저를 그렇게 부르실 테니, 지금부터 그렇게 부르셔도 좋겠습니다.
아,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그대로 믿는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치유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으십시오. 하나님께는 여전히 그분의 천사들이 있고, 그분의 사람들이 있으며, 그분의 사역이 있습니다. 언제나 그러셨듯이 모든 것을 갖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분의 말씀을 믿을 사람도 있습니다. 어린 마리아가 돌아다니며 “저는 아기를 낳을 거예요” 하고 말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남자를 알지도 못하면서 말입니다. “어쨌든 저는 아기를 낳을 거예요.” 아, 마리아. 의사가 이렇게 말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쯧쯧쯧쯧, 마리아, 그런 말을 하면 광신주의를 일으키게 되는 줄 알아요? 그런 것을 간증하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당신을 저기 성령에 취해 구르는 사람들과 한패로 여길 거예요. 바로 그...” “선생님, 지금 제가 아기를 가졌든 아니든 상관없어요. 어쨌든 저는 아기를 낳을 거예요.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으니까요.” 아멘. 그것으로 결정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것이 기준을 잡는 다림줄입니다. 자, 이제 마리아를 봅니다. 시골로 올라갑니다. 아, 사촌의 소식을 들었기에 만나러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 멀리 시골로 마리아, 아니 엘리사벳을 만나러 갔습니다. 엘리사벳은 이제 여섯 달 동안 몸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기에게 아직 생명이 없었습니다. 엘리사벳이 마리아가 오는 것을 보았을 때... 아, 아무런 징후도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래도 아기를 낳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너무 기뻐하며 달려가는 마리아의 모습이 보입니다.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만나러 갑니다. 엘리사벳이 마중 나와, 제 생각에는 마리아를 두 팔로 끌어안고 포옹하며 입을 맞추고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아, 마리아, 얘야, 만나서 정말 반갑구나.” 두 사람이 서로 껴안습니다. 예전에는 여자들이 그렇게 했습니다. 남자들도 참 좋은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어디선가 그것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제 서로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서로에게 따뜻한 마음도 없습니다. 요즘은 이웃이 죽었다는 것도 신문에서 읽어야 비로소 알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도 서로에게 따뜻한 마음을 갖지 않습니다. 켄터키에서는 누가 아프면 우리가 가서 옥수수 껍질을 벗겨 주고, 장작을 패 주고, 온갖 일을 도와주곤 했습니다. 이제는 그런 일을 전혀 모릅니다. 아무도 모릅니다. 형제 사랑이 사라져 가는 것만 같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마리아와 엘리사벳이 서로 껴안는 모습이 보입니다. 여기서 제 아내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아직 어디 있는지 찾지 못했지만, 이 근처 어딘가에 앉아 있습니다. 얼마 전 아내가 시내에 가던 길이었습니다. 함께 차를 타고 길을 가는데 어떤 아가씨가 “안녕하세요, 브래넘 자매님” 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아내가 대답하는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 아가씨가 당신에게 인사했소” 하고 말했습니다. 아내가 말했습니다. “저도 인사했어요.” 제가 말했습니다. “그런데 못 들었는데요.” 아내가 말했습니다. “미소 지었잖아요.”
그저 조금 싱긋 웃은 것입니다. 아십니까? 저는 옛날식 감리교인들이 펌프 손잡이를 움직이듯 이렇게 힘껏 흔드는 악수가 좋습니다. 형제님, 거기에는 정이 있습니다. 폴 레이더가 한번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내와 사소한 말다툼인지 무슨 다툼인가를 했다고 합니다. 그는 식탁에 앉아 신문을 읽고 있었는데, 평소 문을 나설 때는 늘 아내에게 작별의 입맞춤을 했습니다. 그날 아침에도 일어나 문을 나서려는데, 아내가 고개를 숙이고 문 앞에 서 있었습니다. 아내가 입술을 내밀자 그가 입을 맞췄습니다. 그가 대문을 나서면 아내는 늘 서 있었고, 그는 대문을 닫고 돌아서서 “다녀올게요” 하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날 아침에도 돌아서서 “다녀올게요” 하고 말했습니다. 아내가 “잘 다녀와요” 하고 말했습니다. 길을 걸어가면서 그는 그 일을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내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하지? 주님께서는 내가 그런 마음을 품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잖아. 어쩌면 내 잘못이었을지도 몰라.’
그 일을 생각하다 보니... 아, 마음이 너무 불편해져서 집으로 되돌아갔습니다. 대문을 지나 현관으로 달려가 문을 활짝 열었더니, 아내가 문 뒤에 서서 울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아내를 바라보더니, 돌려세워 힘껏 끌어안고 입을 맞추며 “다녀올게요” 하고 말했습니다. 아내가 “잘 다녀와요” 하고 말했습니다. 그는 대문을 나가 문을 닫으며 “다녀올게요” 하고 말했습니다. 아내가 “잘 다녀와요” 하고 말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다른 점은 단 하나, 두 번째에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형제님, 신앙에 대한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거기에는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무언가가 있어야 합니다. 확실한 것, 실제인 것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까이 계시다는 것을 알고 느끼게 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또 이 사람이 우리의 친구요 형제임을 느끼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정입니다.
마리아와 엘리사벳이 그곳에서 기뻐하며 참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보입니다. 마리아가 말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아, 엘리사벳, 정말 기뻐요. 이렇게 나이가 많으신데 아기를 낳으신다니요.” “그래.” 엘리사벳이 말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사실이야. 그런데 마리아, 조금 걱정이 되는구나. 이제 여섯 달 동안 몸을 숨기고 있었는데, 아직 아기에게 생명이 없어.” 그것은 정상이 아닙니다.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첫 번째로... 이제 예수님에 관해서 말입니다. 그것은 정상이 아닙니다. 두세 달쯤이면 생명이 있습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그런데 여섯 달이 되었는데도 아직 생명이 없어.” 그래서 엘리사벳은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마리아가 말했습니다. “가브리엘이 저를 만나셨고, 그분께서 저를 덮으시며 제가 남자를 알지 못한 채 아이를 낳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어요. 또 그 아이의 이름을 예수라고 하라고 말씀하셨어요.”
마리아가 “예수”라고 말하자마자 작은 요한에게 생명이 들어왔고, 기뻐서 어머니의 태 안에서 뛰놀기 시작했습니다. 형제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인간의 입술로 처음 발해졌을 때, 죽은 아기에게 생명을 가져왔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권능으로 태어나, 다시 태어난 교회에는 어떤 일을 해야 하겠습니까? 처음 그 이름을 말했을 때 아기에게 생명을 가져왔다면 말입니다. 그 아기는 생명만 받은 것이 아닙니다. 영생을 받은 것입니다. 어머니의 태 안에서 성령침례를 받았습니다! 할렐루야! 아, 경건한 마음이 솟아납니다. 형제님, 보십시오. 그 여인이 그 이름을, 그 어머니가 예수라는 이름을 말했을 때, 엘리사벳도 동시에 성령을 받았습니다. 엘리사벳이 말했습니다. “내 주의 어머니가 언제 내게 왔는가?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리자 곧바로 아기가 내 태 속에서 기뻐 뛰놀았도다!” 할렐루야!
형제님, 제가 말씀드립니다. 그 이름이 죽은 아기에게 그런 일을 한다면, 하나님의 영으로 다시 태어난 병든 남자나 여자에게는 무엇을 하겠습니까? 그들에게도 생명을 줄 것입니다. 언제나 죽음을 물리치고 생명을 가져올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그 위대하고 놀라운 이름, 그분은 얼마나 놀라운 분이셨습니까. 아, 시간이 더 있으면 좋겠지만, 시간이 빨리 지나가고 있습니다. 서둘러야겠습니다. 이제 잠깐 이쪽으로 가 보겠습니다. 이 작은 아기 요한이 태어났을 때, 그는 공동묘지에 가지 않았습니다. 아니, 신학교 말입니다. 같은 곳이고 똑같은 것입니다. 저는 언제나 신학교 출신 설교자를 보면 부화기에서 나온 병아리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저 삐악, 삐악, 삐악 울기만 하고, 찾아갈 어미가 없습니다. 기계로 만들어 낸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이런 사람들 가운데 많은 이들의 문제가 그것입니다. 하나님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며, 치유의 권능과 하나님의 권능을 부인하는 까닭은 찾아갈 참된 아버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뒷받침해 주는 것은 신학교입니다. 저는 언제든지 온 세상이 저를 대적하더라도, 성령께서 저를 뒷받침해 주시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뒤따르는 표적과 이적으로 자신의 말씀을 확증하시면, 여러분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보여 줍니다. 아멘. 아멘! 아멘은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라는 뜻입니다. 놀라지 마십시오. 저는 아직 아무도 해친 적이 없습니다. 여기서 침을 많이 흘리지만, 가나안에서 새 포도를 많이 먹었기 때문에 침이 나는 것입니다. 클로버를 먹는 말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형제님, 보십시오. 저는 제가 어디에 있는지 압니다. 저는 흥분한 것이 아닙니다. 제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압니다. 그러니 저는 사람들을 해치지 않습니다. 그저 서서 마음을 여시고 그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그렇게 하시면 됩니다.
어릴 때 우리는 수영하러 가곤 했습니다. 보통 저는 다른 아이들보다 입은 것이 적었습니다. 멜빵바지 한 벌에 여물 묶는 끈을 둘렀고, 단추 대신 못을 꽂았습니다. 시골에서 자란 여러분도 그렇게 해 보셨습니까? 우리는 모두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누가 마지막으로 들어가느냐를 놓고 아슬아슬하게 겨루었습니다. 저는 늘 맨 먼저였습니다. 벗을 신발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벗을 신발 자체가 없었습니다. 제가 할 일은 못 하나를 뽑는 것뿐이었습니다. 옷은 공중에 그대로 남아 있고, 저는 이미 물속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그러면 아이들이 물이 어떤지 알려고 저를 보았습니다. 물이 차가우면 손가락 하나를 들었습니다. 차갑다는 뜻입니다. 손가락 두 개를 들면 물이 좋으니 들어오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면 옷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모두가 물웅덩이에 들어왔습니다. 형제님, 지금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아직 그 물웅덩이에 들어와 본 적이 없는 분들을 향해, 제가 손가락 두 개를 들고 있습니다. 아주 좋습니다. 뛰어들어 직접 알아보십시오. 정말 놀랍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사람들을 흠뻑 적십니다. 성령, 거룩하게 하시는 권능, 깨끗하게 하심, 치유입니다. 아, 경이롭습니다. 아멘.
보십시오. 아, 요한이 태어났을 때를 생각해 봅니다. 그런 아기라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그는 신학교에 가지 않고, 저 숲속으로 나가 하나님과 함께 머물렀습니다. 계보학을 공부하는 대신 무릎을 꿇고 ‘무릎학’을 배웠습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형제님, 그는 광야에서 나왔습니다. 턱시도를 입고, 옷깃을 뒤로 돌리고, 하루 세 끼 프라이드치킨을 먹으며 나온 것이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 젊은이는 커다란 양가죽 한 장을 이렇게 몸에 두르고 나왔습니다. 그러나 회개를 전파했습니다! 할렐루야! 그가 전한 메시지는 요르단 주변의 온 지역을 뒤흔들었습니다. 오늘날 에번즈빌과 다른 모든 곳에 필요한 것은 그렇게 설교할 침례교 설교자들입니다! 죄와 타협하지 않고, 그렇습니다, 복음을 전할 사람들입니다.
헤롯이 자기 형제 빌립의 아내와 함께 그곳에 나왔습니다. 누군가 “결혼과 이혼에 관해서는 설교하지 않으시나요?” 하고 말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요한은 헤롯의 얼굴 바로 앞에 손가락을 내밀고 말했습니다. “당신이 그 여자를 취하는 것은 율법에 어긋나느니라!” 할렐루야! 자기 안에 성령침례가 있는 사람이 눈앞에 죄를 두고 어찌 그것을 정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휴! 기분이 참 좋습니다. 형제님, 제가... 여러분은 “미쳤군요” 하고 말하실 것입니다. 좋습니다. 제가 미쳤다면 그냥 내버려 두십시오. 저는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찾으려고, 세상이 보기에는 미친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에는 늘 어리석게 보입니다. 그러나 세상에 아무리 어리석게 보여도 상관없습니다. 저는 즐기고 있습니다. 한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세상이 가진 것과 같은 생각을 지녔을 때보다, 이런 생각을 지닌 지금 훨씬 더 즐겁게 지내며 건강과 형통과 모든 것을 누리고 있습니다. 아멘.
자, 저 요한을 보십시오. 그곳에 서서 거침없이 설교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아, 얼마나 힘차게 나무뿌리에 도끼를 내리쳤습니까.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 속에 던져졌습니다. 휴, 대단한 침례교 설교자였습니다. 형제님, 그는 성령을 받은 침례교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정말 힘차게 전했습니다. 그는 믿었을 때 성령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받을 자격이 없는데도 주어지는 은혜로 받았습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다른 모든 사람도 그렇게 받습니다. 믿을 때 받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믿은 이래로 성령님을 받은 적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은 영생입니다. 성령침례는 내려와 표적과 이적을 가져옵니다. 아멘. 아, 저는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요.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자신의 말씀을 지키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매번 자신의 말씀을 지키실 것입니다. 백 번 중 아흔아홉 번이 아니라, 백 번 중 백 번 모두,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지키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여정을 떠났을 때를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이집트에서 나와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돌보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약속하신 바로 그것을 행하셔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들이 그곳에서 강을 건넜을 때를 생각합니다. 먹을 것도 없고, 갈 곳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선지자를 통해 돌보아 주겠다고 하신 말씀만 의지하여 나온 것입니다. 그들이 건너편에 서 있었고, 감독들은 모두 죽어 바다에 누워 있었습니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때였습니까. 얼마 전 저는 ‘에덴에서 나온 두 나무’라는 제목으로 설교하면서, 그들이 성령에 취해 구르는 사람들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누군가 제 말에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위대한 선지자 모세가 성령에 취해 구르는 사람이었다는 말입니까?” 제가 말했습니다. “물론입니다. 그는 분명 성령에 취해 구르는 사람이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말도 안 됩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한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모세는 홍해를 통과한 뒤, 자기를 몰아붙이고 백성들이 원하지 않는 일을 하게 하던 그 모든 것들을 보았습니다. 더러운 습관이나 구경거리를 보러 다니는 일과 그 밖의 여러 가지처럼, 그들을 몰아붙이던 것들 말입니다. 그것들은 여러분이 원하지 않는 일을 하게 만듭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것이 잘못인 줄 압니다. 그런데도 밖으로 나가 그런 일을 하니, 그저 그것의 노예인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이 홍해에서 물에 빠져 죽은 것을 보았을 때, 모세는 손을 높이 들고 영 안에서 노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누이인 여선지자 미리암은 탬버린을 들고 춤을 추기 시작하여 강을 따라 달려갔습니다. 아니, 영 안에서 춤을 추었고, 이스라엘의 모든 딸들이 그 뒤를 따랐습니다.” 아멘!
그것이 성령에 취해 구르는 사람들의 집회가 아니라면, 저는 그런 집회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아멘. 아멘. 얼마 전 여기서 했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제가 이곳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저는 숲에 들어가 혼자 있는 것이 좋아서 사냥을 좋아합니다. 약 이 년 전, 브리티시컬럼비아에서 어느 날 밤 한곳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사냥을 하다가 그곳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아무 데도 없었습니다. 포장도로에서 천백 마일이나 떨어져 있었습니다. 우리는 여러 마리의 말을 타고 갔고, 저는 회색곰을 쫓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딘가에서 길을 잃어,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주님, 돌아가도록 도와주십시오. 저와 함께 계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말을 타고 가는데 어두워졌습니다. 바람에 나무가 쓰러진 곳에 이르렀습니다. 아니, 불에 탄 곳이었습니다. 아주 높이 솟은 나무들이 무리 지어 서 있던 곳이었습니다. 달빛이 비치고 있었습니다. 으스스해 보이는 곳을 말하려면, 그런 곳에 한번 들어가 보셔야 합니다. 음, 신학교보다도 더합니다.
그런 곳에 들어가면, 크고 으스스한 나무들이 가득 서 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거센 바람이 내려왔습니다. 하늘에서 세차게 바람이 불어와 그 나무들에 부딪치자, 전보다 더 으스스해졌습니다. 나무들이 “으음, 우우” 하고 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아이고’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고는 말했습니다. “이것 참, 저 커다란 나무들을 보라. 왜 저 나무들은... 아주 꼿꼿하고 뻣뻣하게 서서 움직이지도 못하는구나. 바람이 불면 ‘으음’ 하고 소리만 내는구나.” 그때 요엘서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털벌레가 남긴 것을 자벌레가 먹었고, 자벌레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었으며” 하는 말씀입니다. 문득 요엘의 예언이 생각났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가 남긴 것을 다른 것이 먹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이 아주 좋지 않은 광경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요엘서 3장에서 하나님께서 “내가 회복시키리라. 주가 말하노라” 하고 말씀하신 것이 생각났습니다.
저는 ‘주님, 이 부분은 어디에 해당합니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문득 아래를 보니 그 바람이 다시 그곳을 지나 불어왔습니다. 저는 말을 세우고, 바로 거기에서 성령에 취해 구르는 사람처럼 행동하며 힘껏 외쳤습니다. 두 손을 하늘 높이 들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계속 그렇게 했습니다. 문득 바라보니 말이 귀를 세우고 저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이 사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의아해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나무 주위를 빙빙 돌며 외치고 주님을 찬양했습니다.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무언가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 커다란 나무들이 서 있는 것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그래, 저것은 여기 우뚝 서 있는 커다란 교회들과 똑같구나. 하나님께서 오순절 날에 하셨던 것처럼 급하고 강력한 바람을 보내실 때마다, 저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커다란 묘비처럼 서서 이렇게 말하는 것뿐이구나. “으음, 기적의 시대는 지났어. 으음. 신유 같은 것은 없어. 으음. 저건 성령에 취해 구르는 사람들이야. 으음. 그런 것과는 상관하지 마. 으음.” 그저 신음하고, 신음하고, 또 신음할 뿐이구나.’ 그것뿐입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그렇다면 도대체 왜 바람을 보내셨습니까?’ 그때 다시 바람이 불어오는 소리를 듣고, 문득 아래를 보니 어린 나무들이 무리 지어 자라고 있었습니다. 작은 나무들이 모여 있었는데, 바람이 그 나무들에 부딪치자, 그 나무들은 살아 있고 유연했습니다. 그저 몸을 굽히며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저기 성령에 취해 구르는 사람들의 집회가 있구나. 바로 저기 있구나. ‘내가 회복시키리라. 주가 말하노라.’” 그렇습니다. 아무도 그것들이 교회가 아니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아무도... 그러나 형제님, 그 안의 생명이 먹혀 사라졌습니다. 감리교가 남긴 것을 침례교가 먹었고, 침례교가 남긴 것을 장로교가 먹었고, 장로교가 남긴 것을 루터교가 먹었습니다. 형제님, 그렇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하나는 치유를 빼 버리고, 하나는 방언을 빼 버리고, 또 다른 하나는 그 밖의 모든 것을 빼 버렸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것은 하나도 믿지 않는 커다랗고 뻣뻣한 것만 남았습니다.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그러나 형제님, 하나님께서 “내가 회복시키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할렐루야! 바로 그 아래에서 성령에 취해 구르는 사람들이 한 무리 올라왔습니다. 더할 나위 없이 푸르고 유연했습니다. 사람들은 “당신은 교육도 받지 못했잖소” 하고 말합니다. 저는 푸른 박처럼 풋내기이지만, 바람에 몸을 맡길 줄은 압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바람을 보내시면 저는 그 바람과 함께 신나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미쳤다고 말하게 두십시오. 저는 상관없습니다. 바람과 함께 신나게 움직일 만큼 풋풋하면 됩니다. 영이 불어오시면 그대로 몸을 맡기십시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부흥을, 성령의 권능을 보내노라.” “주님, 믿습니다. 믿습니다.” 그저 기뻐하는 것입니다. “나는 너를 치유하는 주니라.” “주님, 믿습니다. 믿습니다.” 아멘. 휴! 제 몸집이 두 배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기쁨도 두 배로 느낄 수 있을지 모릅니다. 형제님, 그렇게 된다면 제가 그것을 어떻게 감당할지 모르겠습니다.
아, 물론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지키십니다. 모세에게도 지키셨습니다. 언제나 지키십니다. 그들이 빵도 없이 그곳으로 들어갔던 밤을 생각합니다. 머리 위에 인 반죽 그릇에 담아 온 얼마 안 되는 빵은 이튿날 아침에 모두 떨어졌습니다. 그날 온종일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들어가 누웠을 때, 걱정하는 것은 그들이 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먹을 것은 없었고, 들어갈 옥수수밭도 없었습니다. 옥수수를 재배할 곳도 없었습니다. 넓은 광야뿐이었고, 풀 한 포기도 없었습니다. “어떻게 먹을 것을 구하지?” 그것은 여러분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문제입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돌보리라. 나는 주다. 나는 여호와이레, 주께서 예비하신 희생물이다. 길이 없는 곳에 내가 길을 내리라. 내가 곧 길이다.” 자, 이튿날 아침에 나가 보니 땅 위에 온통 빵이 놓여 있었습니다. 만나였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들은 그것을 주워 먹기 시작했습니다. “음, 꿀맛이 나는군” 하고 말했습니다. 여러분도 그것을 맛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것은 육적인 첫 번째 교회가 여정을 시작할 때의 일이었습니다.
이제 영적인 두 번째 교회가 여정을 시작할 때를 보십시오. 오순절 날이 충만히 찼을 때에, 그들은 여기저기의 자기 교회들에서 모두 나왔습니다. 갑자기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력한 바람 소리 같은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던 온 집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갈라진 혀들이 불처럼 그들에게 나타나 날름거렸습니다. 아, 그러다 하나님의 권능이 그들에게 임하자, 자신이 감리교인인지 침례교인인지 무엇인지도 잊어버리고, 소리를 지르며 비틀거리면서 거리로 나갔습니다. 마리아도 함께 있었습니다. 다른 모든 사람도 하나님의 권능 아래 외치고 춤추며, 술 취한 사람들처럼 행동했습니다. 성경이 그들이 그렇게 했다고 말합니다. 그 뻣뻣한 바리새인들이 주위에 서서 “이 사람들이 새 포도즙으로 충만하다” 하고 말했습니다. 베드로가 그들 가운데 서서 말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과 유대에 거하는 자들아, 이것을 너희에게 알려 주리니 내 말들에 귀를 기울이라. 지금은 낮 세 시이므로 너희가 짐작하는 것처럼 이들은 술 취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이것이 바로 그것이니라.”
이것이 그것이 아니라면, 저는 그것이 올 때까지 이것을 붙들고 있겠습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이것은 선지자 요엘을 통해 말씀하신 바로 그것이니라. 하나님이 말하노라. 마지막 날들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아들딸들은 예언하며, 내 여종들과 하녀들에게 내가 내 영을 부어 주리라. 내가 위로 하늘과 아래로 땅에서 표적들을 보이리라.” 그 밖에도 말씀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되었을 때, 그 사도에게 만나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회개하고 너희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 죄들의 사면을 얻으라. 그러면 너희가 성령님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손들과 멀리 떨어져 있는 자들 곧 주 우리 하나님께서 부르실 모든 사람들을 향한 것이니라.” 무엇이었습니까? 그때 원래의 만나가 내렸습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남겨 두려고 할 때마다 그 안에 벌레가 생겼습니다. 오늘날 우리 오순절 교회들 가운데 많은 곳의 문제가 그것입니다. 고여서 썩고, 벌레가 생겼습니다. “주님께서 십 년 전에 내게 성령을 주셨어”라고 말하려 합니다. 오늘은 어떻습니까? 그렇습니다.
형제님, 같은 자리에 두 번 불을 피울 수는 없습니다. 앞으로 나아갑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다른 것을 준비해 두셨습니다. 믿으십니까? 그분께서 아론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가서 그것을 두 오멜 가득, 여러 오멜을 거두어 지성소 뒤로 가져가라. 우리가 거기에 간수하여, 이후로 제사장 직분에 들어오는 사람마다 들어와서, 그날, 첫날에 내렸던 참된 첫 만나를 한입씩 먹을 수 있게 하리라.” 아, 그것은 오순절을 얼마나 잘 보여 주는 모형입니까. [녹음 공백] ...하나님께 나아옵니다. 이제 그들이 성령침례를 원하면 장벽이 무너집니다. 여러분은 한 줌이나 한입만이 아니라, 오순절 날에 내렸던 진짜 만나, 곧 성령침례를 마음 가득 받을 수 있습니다. 비슷하게 생긴 것이 아니라, 원래의 것, 진짜인 것을 받는 것입니다. 오순절 날 그것과 함께 내렸던 똑같은 표적과 똑같은 이적과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침례를 주실 때 우리도 다시 받습니다.
그것은 얼마나 오래 머물러야 했습니까? 만나는 그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갈 때까지 내렸습니다. 성령께서는 오순절 날부터 이곳에 계시며, 우리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날까지 우리와 함께 머무실 것입니다. 아멘. 오늘날 교회에 필요한 것이 그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교인 수가 그토록 많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 “44년에는 백만 명 더” 같은 온갖 구호를 갖고 있습니다. 사람들을 데려와 악수하고, 침례탕에 넣어 침례를 주고, 다시 데리고 나옵니다. 그러면 그들은 밖으로 나가 담배를 피우고, 구경거리를 보러 다니고, 춤추러 갑니다. 돼지가 진창으로 돌아가고 개가 자기가 토한 것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꽤 강한 말씀입니다. 탈지유가 아닙니다. 그러나 형제님,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날 교회에 필요한 것은 옛날 사도 바울 시대의 참된 부흥이며, 성경의 성령이십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얼마 전의 일이 생각납니다. 제가 어렸을 때였으니, 꽤 오래전입니다. 이런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는 것을 보면서 저는 ‘음...’ 하고 생각했습니다. 거북이 한 마리를 보았는데, 그 녀석은 참 우습게 생겼습니다. 저와 제 동생이 보니, 큰 다리를 축 늘어뜨리고 이렇게 걷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 녀석에게 다가가자 “쑥” 하고 얼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것을 보면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많은 사람이 생각납니다. 복음을 설교하기 시작하면 “나는 저곳에 다시는 안 가겠어. 아니, 아니야. 못 가겠어” 하고 말합니다. 그러십시오. 안으로 움츠러드십시오. 저는 “내가 저 녀석을 걷게 만들겠어”라고 말했습니다. 가서 회초리를 가져와 거의 죽을 만큼 때렸지만 나오지 않았습니다. 때려서 사람들을 그렇게 하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저는 “어떻게든 해 보겠어”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등딱지 윗부분을 잡아 들어 개울로 데려가 물속에 푹 넣었습니다. 거품 몇 개만 올라왔을 뿐입니다. 그 녀석은 그대로 등딱지 속에 있었습니다.
형제님, 이쪽으로든 저쪽으로든, 얼굴을 앞으로 하든 뒤로 하든, 두 번이든 세 번이든 원하는 대로 침례를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른 죄인으로 들어갔다가 젖은 죄인으로 나올 뿐입니다. 다를 것이 없습니다. 거품 몇 개가 올라오고, 그것을 놓고 떠들고 야단을 칠 수는 있어도, 그 사람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어떻게 했는지 아십니까? 종이 한 장과 나무를 모아 불을 피우고, 그 위에 거북이를 올려놓았습니다. 형제님, 그러자 그 녀석이 걸었습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 오늘 제게 필요한 것, 교회에 필요한 것이 있다면, 침례를 두고 논쟁하는 것도 아니고, 이 교회냐 저 교회냐를 두고 논쟁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령과 불이 쏟아져 내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성령을 부으시면 그들은 걸을 것입니다. 밖으로 나와 움직이기 시작할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멘. 그렇습니다. 아, 예수님께서 돌아오시는 모습이 보입니다. 시간이 어찌나 빨리 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너무 길게 말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형제님, 보십시오. 오늘 본문의 그때에 그분을 바라보니, 그분의 사역이 너무 컸기 때문에 그 집을 떠나셔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분께서 그 집을 떠나시자 병이 들어왔습니다.
그리스도인 여러분, 오늘 여기서 한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집을 떠나시면, 그곳에 병이 들어올 것입니다. 틀림없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몰아내면 고난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집 안에 카드 한 벌을 들여놓고, 기도하는 골방 대신 카드놀이 탁자를 놓으면, 좋습니다, 고난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런 연애 소설 잡지들을 가져다가 성경이 있던 자리에 놓으면 고난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 점은 틀림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설교자가 반바지를 입는 것은 여성답지 못하다고 말했다고 해서 화를 내며 교회에 가기를 그만두면, 여러분은 그 길로 가고 있습니다. 틀림없이 고난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계속 그렇게 해 보십시오. 알게 될 것입니다.
이 경우에는 그들이 예수님을 몰아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의 사역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 가라는 환상을 주셨기 때문에 떠나셨습니다. 그러자 고난이 들어왔습니다. 나사로가 병이 들었습니다. 역사가들의 말에 따르면 나사로는 폐에 문제가 있었다고 합니다. 의사들은 아무 도움도 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오셔서 그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분이 오셨을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그대로 계속 가셨습니다. 그들은 다시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분은 오시지 않고 계속 가셨습니다. 형제님, 여러분이었다면 감리교회에서 침례교회로 옮겨, 이명증서를 가져다주었을 것입니다. “다시는 저 목사하고 상종하지 않겠어.” 오순절교회에서 나사렛교회로 옮겼을 것입니다. “나, 나는 다시는 저 사람들하고 상종하지 않겠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아무것도 하실 수 없는 까닭이 그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이곳저곳으로 이명증서를 들고 다녀서 닳아 버릴 지경입니다. 형제님, 한 번 하늘에 여러분의 이름을 올려놓으시지 않겠습니까? 그 이름은 거기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명증서를 들고 다닐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저는 신앙고백을 증명하는 이명증서로 들어왔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신앙고백이라니요. 마귀 자신도 믿고 떱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다시 태어났다는 표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표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해질 때까지 여러분은 여전히 어둠 속에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보십시오. 여기 그분께서 계셨습니다. 신앙고백이라고 하면서, 이곳저곳으로 증서를 들고 다닙니다. 형제님, 이것을 부끄럽다고 하지 않고 무엇을 부끄럽다고 하겠습니까. 여러분의 이름이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돌보실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옛날식 부흥입니다.
그와 관련해 한 가지가 생각납니다. 문득 거북이 생각이 났습니다. 한번은 낚싯줄로 거북이를 잡았는데, 그 머리를 잘랐습니다. 무는 거북이였습니다. 낚싯바늘을 빼고 싶지 않아서, 그것을 물가 둑에 던져 놓았습니다. 어린 동생이 연못가로 와서 물었습니다. “형, 아까 뭘 잡았어?” 제가 말했습니다. “거북이.” 동생이 물었습니다. “어떻게 했어?” 제가 말했습니다. “죽였어. 저 아래 흑인들에게 가져다주려고 해. 거북이 수프를 끓이는 데 쓰라고 좀 가져다주려고...” 아주 큰 녀석이었습니다. 동생이 물었습니다. “죽었어?” 제가 말했습니다. “그럼.” 동생이 말했습니다. “그런데 머리가 없잖아.” 제가 말했습니다. “응, 머리는 저 뒤에 있어.”
동생은 머리가 있는 곳으로 가서 막대기를 가져다가 그곳에 갖다 댔습니다. 그 거북이는 머리가 잘린 뒤에도 덥석 물었습니다. 머리가 이렇게 놓여 있는데, 막대기를 갖다 대자 “딱” 하고 문 것입니다. 어린 동생이 말했습니다. “형, 죽였다며.” 제가 말했습니다. “머리와 몸을 떼어 놓았지. 죽었을 거야.” 동생이 다시 막대기를 갖다 대자, 그것이 [브래넘 형제님이 손뼉을 친다.] 또 머리로 덥석 물었습니다. 동생이 말했습니다. “죽었으면서 죽은 줄 모르는 거지?” 오늘날 참 많은 사람의 문제가 바로 그것입니다. 죽었으면서도 그것을 모릅니다! 형제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살려 주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 얼마나 영광스럽습니까.
이제 그분께서 도시로 들어오시는 모습이 보입니다. 승리하시고, 떠나셨다가, 이제 돌아오시는 길입니다. 여기 마르다가 있습니다. 그들은 나사로를 장사 지냈습니다. 죽은 지 나흘이 되어 벌써 썩었습니다. 아니, 부패라고 하든지 무엇이라고 부르셔도 좋습니다. 제 아이들에게는 썩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잘 이해될 테니, 그대로 말하겠습니다. 그의 몸은 썩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몸을 뒤로 가져가 무덤에 넣고 덮은 뒤 돌아왔습니다. 나흘이 지났고, 모든 희망이 사라졌습니다. 그 작은 가정이 겪어 본 가장 어두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참으로 그분다우시지 않습니까? 가장 어두운 시간이 오면, 그때 예수님께서 오십니다. 여러분에게도 그랬습니까? 켄터키주 루이빌의 유대인 병원에서 제가 누워 있을 때도 그랬습니다. 의사는 제가 앞으로 삼 분밖에 살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여기 밀타운의 어린 조지 카터도 있었습니다. 구 년 팔 개월 동안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 아이의 교회는 기적의 시대가 지났다고 가르쳤습니다. 하나님께서 환상을 주시며 “그곳으로 내려가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장 어두운 시간이었을 때, 그 아이는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몸무게가 삼십칠 파운드였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언제나 그렇습니다. 가장 어두운 시간에 예수님께서 오십니다. 제 가정에서도 모든 것이 너무 어두워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모를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오십니다.
예수님께서 마을로 들어오셨습니다. 마르다에게는 그분을 책망하고 꾸짖을 권리가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왜 제 오라버니에게 오시지 않았습니까?” 하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했다면 기적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강단에 경건하게 나아오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들이 무엇을 받는지 보십시오. 어떤 일에나 어떻게 다가가느냐가 중요합니다. 마르다가 어떻게 다가갔느냐가 중요했습니다. 마르다에게는 그럴 권리가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오늘날 우리 미국 사람들이 “그 목사하고는 아무 상관도...” 하고 말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사람들이 모두 마르다를 조롱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이봐, 그 많은 신유를 행한다던, 성령에 취해 구르는 그 설교자는 어디 있소? 그래, 친구가 죽으니 가 버렸군. 자, 당신들이 교회를 나올 정도로 따르던 그 사람은 어디 있소? 그렇게 대단한 설교자인 줄 알았는데, 진짜 시험이 닥치자 가 버렸구먼.”
그러나 마르다는 말씀을 읽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이를 주셨고 엘리야가 말해 주었던 수넴 여인에 관해 읽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죽었습니다. 그 여인은 왜 아이가 죽었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엘리사를 만나러 갔습니다. 저는 그것이 좋습니다. 그 여인은 말했습니다. “이 노새에 안장을 얹고 앞으로 가라. 내가 명하지 않거든 멈추지 말라.” 선지자를 찾으러 갈멜산으로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 여인은 그 선지자가 하나님의 대표자임을 알았습니다. 왜 아이를 데려가셨는지는 몰랐습니다. 자신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사람이었는데, 엘리사가 아이를 낳을 것이라고 말했고, 실제로 낳았습니다. 그 어린아이가 열 살이나 열두 살이 되었을 때, 오전 열한 시쯤에 아마 일사병에 걸렸던 것 같습니다. “내 머리야” 하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는 아이를 들에서 돌려보냈습니다. 아이는 어머니의 무릎에 누워 있다가 정오 무렵 죽었습니다. 어머니는 아이를 데리고 올라가 엘리사의 침상에 눕혔습니다.
형제님, 그 여인은 무언가를 알고 있었지요? 선지자의 방, 목회자의 침상은 아이를 눕히기에 좋은 곳이었습니다. 그 여인은 아이를 그 침상에 눕혀 놓고, 이 노새에 안장을 얹어 길을 떠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모든 것을 자신의 종들에게 계시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엘리사가 그 여인이 오는 것을 보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저 수넴 여인이 오는구나. 마음에 슬픔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내게 숨기셨으니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르겠다.” 저는 이 대목이 좋습니다. 보십시오. 그가 말했습니다. “네가 잘 있느냐? 네 남편이 잘 있느냐? 네 아이가 잘 있느냐?” 그 여인은 선지자가 있는 곳까지 와서 “잘 있나이다” 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좋습니다. 모든 것이 괜찮다는 것입니다. 아이는 시신이 되어 있고, 남편은 미친 사람처럼 방 안을 서성이며, 자신의 마음은 찢어지고 있는데도 “잘 있나이다. 잘 있나이다”라고 합니다. 그 여인은 하나님의 대표자에게 이르렀습니다. 여러분도 자기 목회자에게 그렇게 나아가야 합니다. 그 여인은 달려가 그의 발 앞에 엎드려, 아이가 죽었다는 숨겨진 사정을 털어놓았습니다. 그가 자기 종에게 말했습니다. “게하시야, 네 허리를 동이고 내 지팡이를 가져다가 그 아이에게 놓아라.”
저는 바울이 사람들에게 손수건을 얹는 일을 여기에서 배웠다고 생각합니다. 엘리사는 자신이 손대는 모든 것이 복을 받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자기 몸 안에 하나님의 권능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나무에서 나온 가지들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하나님의 대표자이므로, 하나님께서 오직 자신을 통해 역사하실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가 손대는 것을 하나님께서 복 주셨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내 지팡이를 가져다가 그 아이에게 놓아라.” 그런데 그 여인의 믿음은 지팡이에 있지 않았습니다. 여인이 말했습니다. “주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고 당신의 혼이 결코 죽지 않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제가 무언가를 알기 전까지는 당신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저는 그것이 좋습니다. 끝까지 그 자리를 지키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사도 자기 허리를 동이고 길을 떠났습니다. 게하시가 앞서갔습니다. 목회자 여러분도 한 가지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누가 네게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말아라.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서 이 사명을 수행하여라.”
우리 설교자들이 그런 일을 훨씬 더 많이 한다면,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따라 나아가고 사람들이 하는 말에 귀 기울이기를 그만둔다면, 훨씬 더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많은 일을 해낼 것입니다. 그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라”라고 했습니다. 그러고는 엘리사가 그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게하시가 들어가 이 지팡이를 놓았습니다... 물론 아무 효과도 없었습니다. 당연합니다. 그 여인의 믿음은 그것에 있지 않고 선지자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선지자가 도착했을 때를 보십시오. 그는 들어가서 하나님께 애타게 부르짖기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안으로 들어가 방 안을 이리저리, 앞뒤로 왔다 갔다 하며 걸었습니다. 그것은 모두... 그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 안에 계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 죽은 아이 위에 자기 몸을 눕히고, 자기 입술을 아이의 입술에, 자기 코를 아이의 코에 대고, 잠시 그대로 누워 있었습니다. 아이를 만져 보니 따뜻했습니다. 그는 앞뒤로 걸으며 기도하고, 다시 이리저리 걸었습니다. 그러고는 가서 다시 아이 위에 자기 몸을 눕혔습니다. 아이가 일곱 번 재채기를 하고 살아났습니다. 그렇습니까?
보십시오. 마르다는 틀림없이 그 이야기를 읽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사 안에 계셨다면, 분명 자신의 아들 안에도 계실 것임을 알았습니다. 오라버니는 죽었지만, 마르다는 예수님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갑니다. 그분을 꾸짖으려고 나온 것이 아니라 경배하려고 나왔습니다. 달려와 그분의 발 앞에 엎드려 말했습니다... 이제 마르다가 하나님께 어떻게 다가가는지 보십시오. 자기 뜻대로 와서 해 주지 않으셨다고 꾸짖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경배하려고 그분의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 바르게 나아온 것입니다. 올바른 마음가짐으로 나아왔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나아와야 합니다. 그런 올바른 마음가짐으로 그분께 나아와야 합니다. 마르다는 그분의 발 앞에 엎드려 “주여” 하고 말했습니다. 그분은 바로 주님이셨습니다. 그분께서 자신을 누구라고 하셨는지에 따라, 마땅한 호칭을 드린 것입니다. 마르다가 말했습니다. “주여,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으리이다.” 아, 보십시오. 마르다는 올바른 곳에서 올바른 분 앞에 있습니다. 슬픔에 메말라 있고, 가엾은 눈에는 눈물 자국이 나 있었습니다. 아마 아름다운 처녀였을 것입니다. 눈에는 눈물 자국이 나 있고, 생계를 책임지던 사람이 사라졌습니다. 오라버니는 죽어 장사 지냈고, 죽은 지 나흘이 되었습니다. 이미 몸에는 구더기가 있었습니다. 마르다가 말했습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으리이다. 그러나 이제라도...” 저는 그 말이 좋습니다.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 하나님께 구하시면 하나님께서 행하실 것입니다. 주여, 이제라도, 오라버니가 죽었고, 죽은 지 나흘이 되어 냄새가 납니다. 그러나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 하나님께 구하시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주께 주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형제님, 저는 톱니들이 이렇게 맞물리는 모습이 보이는 듯합니다. 아시겠죠? 무언가 일어나야 합니다. 마르다는 올바른 분 앞에 있고, 올바른 태도와 올바른 접근 방식을 갖추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바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지금 그렇게 될 수 있지 않습니까? 마르다가 말했습니다. “주여,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 하나님께 구하시면...” 의사가 여러분이 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을지도 모릅니다. 암에 걸렸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무슨 상관입니까? “주여, 이제라도.” 그분은 여전히 여러분의 말을 들으시며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 계십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믿으십니까? 중보하고 계시는 것을 믿으십니까? “주여,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 하나님께 구하시면 하나님께서 행하실 것입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오라비가 다시 일어나리라.” 마르다가 말했습니다. “아, 예, 주님. 마지막 날들에 그가 다시 일어날 줄 압니다. 착한 사람이었으니 마지막 날들에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그 유대인들은 죽은 사람들이 모두 부활할 것을 믿었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아, 저는 그 말씀이 좋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누구든지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형제님, 그분은 겉으로 볼 때 대단해 보이지 않으셨지만, 그 안에는 진리를 뜻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누구든지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이것을 네가 믿느냐?” 마르다가 말했습니다. “예, 주님. 그 모든 말씀을 믿습니다. 주께서 세상에 오실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대표자가 여기 계시고, 마음이 찢어진 여인이 여기 있으며, 저쪽에는 죽은 사람이 누워 있습니다. 마음이 찢어진 이 여인이 온전한 믿음으로 다가오며, 여기 계신 하나님의 선물, 곧 하나님의 아들을 알아보고 있습니다. 세상에 주어진 가장 큰 선물입니다. 그분께 마땅한 호칭을 드리고, 마땅한 경배를 드립니다. 마르다가 말했습니다. “주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습니다. 주께서 무엇이든 하나님께 구하시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주께 주실 것입니다.” 무언가 일어나야 합니다. “예, 주님, 믿습니다. 주께서 세상에 오실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를 어디에 묻었느냐?” 이제 그분께서 가십니다. 이 대목과 관련하여, 얼마 전, 오래전에 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심을 믿지 않는 한 여인을 만났습니다. 오늘날 교회들에서 흔히 그렇게 가르친다는 것을 아십니까? 여러분 모두 아십니까? 그들은 예수님을 그저 선지자나 선한 사람으로 믿습니다. 그분께서 하나님이 아니셨다면 아무것도 아니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니셨다면, 세상에 있었던 가장 큰 속이는 자이셨습니다. 그저 선지자이셨다면, 그분의 피도 제 피보다 나을 것이 없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사람이기만 한 분이 아니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이제 들으십시오. 여기 계신 여러분 가운데 이 교회에 속하신 분들께 말씀드립니다. 저는 조롱하는 것도 아니고 여러분을 겨냥해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 교회는 크리스천 사이언스입니다. 그 여인이 말했습니다. “그분이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면,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제가 말했습니다. “예, 성경으로 증명할 수 있다면 받아들이겠습니다.” 그 여인이 말했습니다. “그분이 그저 사람이었다는 것을 성경으로 증명하겠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그분은 사람이셨습니다. 예,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그 여인이 말했습니다. “그래도 그분은 평범한 사람에 불과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사람이기만 한 분이 아니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 여인이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그분은 하나님이 아니셨습니다. 성경으로 증명하겠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어디서 증명하시겠습니까?”
그 여인은 요한복음 11장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나사로의 무덤으로 가실 때 그분은 우셨습니다. 울 수 있었다는 것이 하나님이 아니셨다는 증거입니다.” 하! 제가 말했습니다. “이것 참! 그 논거는 굶어 죽은 닭의 그림자로 끓인 국물보다도 묽습니다. 아무것도 지탱할 수 없는 논거입니다. 그분이 우셨다는 이유로 하나님이 아니셨다고 믿는다는 말입니까?” 그 여인이 “예” 하고 대답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무덤으로 내려가실 때 울며 가셨습니다.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하나님이시면서 사람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셔서 세상을 자신과 화해하게 하셨습니다. 그분께서 우셨을 때는 사람이셨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 죽어 나흘 동안 누워 있던 그곳에 서셔서, 그 작으신 몸을 쭉 펴시고 ‘나사로야, 나오라!’ 하고 말씀하셨을 때, 형제님, 그것은 사람이기만 한 분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 인간의 입술을 통해 말씀하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죽은 지 나흘 된 사람이 땅 위에 서서 다시 살았습니다. 그의 몸은 어딘가 나흘 길 되는 곳에 있었습니다. 그가 어디에 있었는지 저도 모르고 여러분도 모르니, 그것을 두고 논쟁하지는 않겠습니다. 어쨌든 죽은 지 나흘이 되었는데, 그분께서 “나사로야, 나오라!” 하고 말씀하시자, 죽은 지 나흘이 되어 몸속에 구더기가 기어 다니던 사람이 두 발로 서서 다시 살았습니다! 형제님, 그것은 사람이기만 한 분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날 밤 산에서 내려오셨을 때, 그분이 사람이셨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너무 배가 고프셔서 나무를 샅샅이 살펴보셨지만 먹을 것이 없었고, 그 나무를 저주하셨습니다. 배가 고프셨을 때는 사람이셨습니다. 그러나 비스킷 다섯 개와 작은 물고기 두... 작은 물고기 세 조각으로 오천 명을 먹이셨을 때는 사람이기만 한 분이 아니셨습니다! 그분 안에 계신 하나님이셨습니다! 물론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날 밤 저 배에 누워 계셨을 때 그분은 사람이셨습니다. 배가 이리저리 떠다녔고, 바다의 마귀 만 명이 그분을 물에 빠뜨려 죽이겠다고 맹세했습니다. 작은 배가 병마개처럼 오르락내리락했습니다. 마귀가 말했습니다. “이제 잡았다. 저기 누워 잠들어 있구나. 병자들을 치유하느라 너무 지쳐서 움직이지도 못한다.” 그곳에 누워 잠들어 계셨을 때 그분은 사람이셨습니다. 사실입니다. 그러나 배의 돛줄에 발을 올려놓으시고 위를 바라보며 “잠잠히 있고 고요히 있으라” 하고 말씀하셨을 때는 사람이기만 한 분이 아니셨습니다. 자신의 아들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할렐루야!
저 갈보리에서 죽어 가시며 긍휼을 구해 부르짖으셨을 때 그분은 사람이셨습니다. 그러나 부활절 아침에 일어나셨을 때, 죽음과 지옥의 결박을 끊으셨습니다! 그것은 사람이기만 한 분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아들 안에 계신 하나님이셨습니다. 이것을 네가 믿느냐? 저는 어제 계셨던 그 동일한 예수님께서 오늘도 계시며 영원토록 계실 것을 믿습니다. 이것을 네가 믿느냐? 저는 기도 줄에 들어갈 수 없었던 한 여인이 그분의 옷단을 만져 완전히 온전하게 되었다고 믿습니다. 이것을 네가 믿느냐? 저는 눈먼 사람을 보게 하시고, 귀먹은 사람을 듣게 하시며, 말 못 하는 사람을 말하게 하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믿습니다. 여러분, 이것을 믿으십니까? 저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사람들에게 성령을 주시고, 이렇게 소리 지르고 외치며 행동하게 하신다고 믿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믿으십니까? 저는 성령께서 지금 바로 이곳에 계신다고 믿습니다. 이것을 네가 믿느냐? 저는 그분께서 이 건물 안의 모든 사람을 치유할 준비가 되어 있으시다고 믿습니다. 이것을 네가 믿느냐? 저는 그분께서 모든 사람을 성령침례로 채우실 준비가 되어 있으시다고 믿습니다. 이것을 네가 믿느냐? 할렐루야!
저는 그분께서 바로 지금 여기 계신다고 믿습니다. 여러분도 믿으십니까? 이것을 네가 믿느냐? 모두 일어나 지금 바로 그분께 찬양을 드립시다. 저는 여러분이 성령침례를 받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것을 네가 믿느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어젯밤 행하셨던 것처럼 오늘 밤에도 그렇게 되게 하십시오. 성령의 권능이 이 건물 전체에 임하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 의심과 두려움을 없애 주시고, 바로 지금 성령침례를 내려 주십시오. 허락해 주십시오. 저는 그분께서 여러분 모두를 충만하게 하시려고 여기 계신다고 믿습니다. 이것을 네가 믿느냐? 저는 여러분이 치유를 받아들이시면 휠체어에서 일어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것을 네가 믿느냐? 저는 여러분이 치유를 받아들이시면 간이침대에서 내려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것을 네가 믿느냐? 저는 그분께서 그 암을 치유하시려고 여기 계신다고 믿습니다. 이것을 네가 믿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