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좋은 저녁입니다. 아니, 좋은 오후입니다. 저는 늘 이것을 혼동합니다. 켄터키에서는 이 시간을 저녁이라고 합니다. 여기 켄터키에서 오신 분이 계셔서 제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만, 우리는 이곳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집회에 참석하게 되어 기쁩니다.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는 것은 언제나 특권입니다. 저는 그것을 좋아합니다. 제가 [녹음 공백] 그 유명한 찬송이 쓰인 무대 뒤편에 있었습니다. 레디거 형제님 다음으로 폴 레이더가 그곳 목사로 계셨습니다. 제가 그 뒤에 서 있었는데, 집회가 막 끝난 뒤였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둘러서 있어서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저를 데리고 건물 안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 남자가 뒤로 와서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제가 말했습니다. “예, 선생님.” 그가 말했습니다. “참, 형제님 문법은 정말 형편없군요.” 제가 말했습니다. “예, 선생님. 저도 압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정말 형편없는 말을 쓰시더군요. 영어를 아주 뜯어고치시는... 망쳐 놓으십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예, 선생님.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형제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그런 문법을 부끄러워하셔야 합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부끄럽습니다만, 그래 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제가 더 잘할 줄을 모르거든요.” 그가 말했습니다... “글쎄요...” 제가 말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돌봐야 할 아이들이 열 명이나 있어서, 일을 하며 어머니와 아이들을 부양해야 했습니다. 그 뒤 주님께서 저를 보내신 이후로는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이제는 그게 변명이 안 됩니다. 다 큰 어른이시잖습니까.” 그는 참 어려운 말들을 썼습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더군요. 그가 말했습니다. “이제는 변명할 수 없습니다. 이제는 그보다 더 잘하셔야지요.”
제가 말했습니다. “글쎄요, 아픈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런 일을 하느라 너무 바빠서, 저는...” 그가 말했습니다. “통신 강좌를 들으십시오.” 제가 말했습니다. “예, 맞는 말씀입니다만, 그럴 겨를이 없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참 형편없는 말들이에요. 특히 오늘 밤에 하신 말 가운데 이런 게 있었습니다. ‘지금 이 폴핏을 지나가는 모든 사람은’이라고 하셨지요.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저는 잘못된 게 없는 것 같은데요. 폴핏을 지나가는 게 뭐가 잘못됐습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폴핏’이 아니라 ‘풀핏’, 강단이라고 제대로 발음하시면 회중이 형제님을 더 좋게 여길 겁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형제님, 말씀드리지요. 좋습니다. 하지만 저 사람들은 제가 폴핏이라고 하든 풀핏이라고 하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제가 바른 삶을 살고, 제가 말하는 것을 실제로 나타내기를 바랍니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그것입니다. 그게 중요한 겁니다. 저분들 중에 너무 고상해서 제 말을 못 알아들을 분은 없습니다. 어떻게든 알아들으실 겁니다.” 그러니 제 문법을 양해해 주십시오. 썩 좋지는 않습니다만, 말씀 안에서 많은 경우... 저는 말씀에 관해 이야기하기를 좋아합니다. 말씀에 대해 많이 아는 것은 아니지만, 말씀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말씀을 쓰신 분은 아주 잘 압니다. 그게 중요한 것 아닙니까? 저는 그 저자를 압니다. 그분은 제게 참으로 놀라운 분이십니다. 그분의 은혜로 저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너무도 기쁩니다.
보통 일요일 오후에는 제가 말씀을 전하면서 설교를 하든, 무엇이든 좋다고 여겨지는 일을 하도록 시간을 주십니다. 저는 설교자가 아닙니다. 말하자면 ‘예비 타이어’ 같은 사람이지요. 타이어에 펑크가 나면 쓰는 것 말입니다. 지금 펑크가 난 것은 아닙니다. 베일 박사님이 어디 계신가 보려던 참이었습니다. 펑크가 난 것은 아닙니다만, 저는 여전히 예비 타이어에 불과합니다. 우리 주님에 대해 잠시 이야기하려는 것입니다. 저는 그분을 사랑합니다. 보통 일요일 오후 집회는 선교 사업과 선교 헌금 등을 위한 시간입니다. 그렇게 돈을 모아서 충분히 마련되는 대로 다시 해외로 갑니다. 그리스도가 절실히 필요하면서도 그분에 관해 단 한 번도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 가는 것입니다.
그곳에는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하고 굶주리는 가엾은 어린아이들이 수천, 수만 명이나 있습니다. 그 아이들도 제 아이나 여러분의 아이와 똑같이 예수님에 관해 들을 권리가 있습니다. 똑같은 권리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아이들을 위해 죽으신 것처럼 그 아이들을 위해서도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녹음 공백]. ...복음 안에서 사랑하는 아버지 같은 분은, 일흔다섯이나 일흔여섯이 된 지금도 여생을 아프리카의 전쟁터에서 보내고 싶어 하십니다. 얼마 전 시카고의 한 단체가 저에게 연락해서, 제가 받아들이기만 하면 시카고 가스펠 태버내클을 사서 냉방 시설을 갖추고 내부와 모든 것을 전부 새로 고쳐 주겠다고 했습니다. 시카고하이츠에 큰 집도 사 주겠다는 것입니다. 제가 그곳 목사가 되어, 미국에 돌아올 때 그 자리를 맡기만 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제가 목사가 되고 보스워스 형제님도 함께 오셔서 제 동역 목사가 되시는 것입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형제님, 그런 제안은 미국 전역에서 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좋다고 하시기 전에는 아무것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 뒤에...” 우리는 그 일에 관해 보스워스 형제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바다 건너에서 들려오는 부름을 듣고 있는데, 나 역시 어떻게 목사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곳에 한 번 가서 실상을 보면 여러분은 예전과 같을 수가 없습니다. 정말입니다. 저는 미국인입니다. 이곳 미국에서 태어났습니다. 지난 전쟁에는 제 형제 네댓 명이 참전했습니다. 이제 곧 입대할 아들도 여기 있습니다. 프랑스와 독일에 갔을 때, 저는 성조기 아래서 목숨을 바친 수많은 미국인, 아니, 브래넘 성을 가진 이들의 무덤을 지나갔습니다. 저도 그 대의를 위해 그곳에 누워야 한다면 기꺼이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그렇지만 선교사가 필요한 곳이 있다면 바로 미국입니다. 그렇습니다. 사실입니다. 제가 아는 한 하나님에게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은 미국입니다. 미국인으로서 존중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교육과 가르침을 너무 많이 받았고, 너무나 많은 것이 손쉽게 주어져서 하나님을 신뢰할 줄 모릅니다. 아무것도 알지 못...
우리는 그저... 회중 가운데 가 보면, 이 사람은 “글쎄, [불명확한 말]”이라고 합니다. 여기 앉아 있는 이 얼마 안 되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여기서, 여기서, 또 여기서, 사방에서 그런 것이 오는 것을 느낍니다. 한 사람은 이런 생각을 하고, 또 한 사람은 저런 생각을 합니다. 저는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압니다. 물론 압니다. 하나님께서 드러내 주십니다. 한 사람은 “아무개 박사가 저건 정신 감응이라고 했어”라고 말하고, 이 사람은 “저 사람은 강신술사야”라고 하고, 또 이 사람은 “저건 마귀야”라고 합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움직이실 수 없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한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한마음이 되어야 하나님의 복과 권능이 그분의 백성에게 쏟아집니다. 그렇게 되기 전까지 우리는 허공을 치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너무도, 너무도 힘든 일입니다. 거의 죽을 지경이 됩니다.
제가 말할 때는 보통 한 번에 다섯 시간 넘게 하지 않으니,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어떤 분들은 제가 일단 말을 시작하면 언제 그쳐야 하는지 모른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오늘 오후에는 잠시 양해해 주시면, 본문 하나를 택해서 복음에 관해 조금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이런 집회를 계속한 지 이번이 다섯째 주입니다. 사랑하는 그리스도인 여러분, 그것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설명하려고 해 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그럴 필요가... 말로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제가 혼자 지내기만 좋아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한 분 한 분과 앉아서 한두 시간씩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큰지 여러분은 모르실 겁니다. 하지만 어떤 일이 일어나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기름부음이 처음 임하기 시작하면, 누구에게 말을 걸든 그 일이 일어납니다. 아시겠죠? 대개 집회를 마치고 나갈 때... 밤에 제가 여기 서 있고 그 일이 일어나는 동안에는 괜찮습니다. 그때는 제 힘이 얼마나 되는지도 모릅니다. 또 그 상태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을 때도 괜찮습니다. 문제는 그 사이를 오갈 때, 기름부음 안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그 중간에 있을 때입니다. 설명해 드리지요. 이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선지자나 시인 같은 사람들이 언제나 신경증 환자로 여겨진다는 것을 보셨습니까? 그런 줄 알고 계셨습니까? 미국에서 가장 위대한 시인, 미국에 가장 훌륭한 민요를 남긴 사람은 아마 스티븐 포스터가 아니었습니까? ‘고향의 옛사람들’, 그러니까 ‘스와니강’ 같은 노래들 말입니다.
얼마 전 저는 ‘내 옛 켄터키 고향’의 집에 서 있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태어났습니다. 책상 위에 이렇게 손을 얹고 있었습니다. 스티븐 포스터가 영감을 받아 ‘옛 켄터키 고향’을 쓴 곳입니다. 그곳에서 그의 초상화와, 그를 어루만져 영감을 주었다는 천사의 그림 같은 것을 보았습니다. 안내원이 지나간 뒤에 저는 혼자 앉아 생각했습니다. “포스터 선생, 당신은 그것을 머리로 받았지, 마음으로 받지는 못했군요.” 그는 영감을 받아 노래를 쓸 때마다 나중에 나가서 술에 취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마침내 어떻게 생을 마쳤는지 여러분도 아십니다. 그 영감 속에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온 뒤, 하인을 부르고 면도칼을 집어 들어 자살했습니다. 스티븐 포스터의 최후였습니다.
저는 윌리엄 카우퍼를 생각했습니다. 그 유명한 찬송을 쓴 사람입니다. 여러분도 들어 보셨지요. 피로 가득한 샘이 있으니, 임마누엘의 핏줄에서 흘러나왔네. 죄인들이 그 물결 아래 몸을 잠그면, 죄의 얼룩 모두 씻기네. 이삼 년 전, 영국에서 그의 무덤 곁에 섰습니다. 그곳에서 그의 삶 이야기를... 윌리엄 카우퍼가 그 찬송을 쓸 때에는 그 영감 안에 올라가 있었고, 신경증 환자로 여겨졌습니다. 그 영감에서 벗어난 뒤에는 마차를 타고 자살하려고 강을 찾았습니다. 자신이 어디 있는지, 무엇을 하는지, 아무것도 몰랐던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는 어딘가 위에 올라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시인들의 경우입니다. 선지자들을 보십시오. 니느웨로 가던 길에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탄 요나를 보십시오. 그는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배 밖으로 던져졌고, 고래가 그를 삼켰습니다. 그렇게 니느웨로 돌아와 예언을 전했습니다. 그 도시는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만큼 컸고 인구가 백만이 넘었습니다. 그중에는 오른손과 왼손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선지자가 거리를 다니며 예언을 외치자 사람들이 회개하여 짐승들에게까지 굵은 베옷을 입혔습니다. 그러고 나서 영감이 그를 떠나자 작은 박나무 아래 앉아서 하나님께 자기 목숨을 거두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는 어딘가 위에 올라가 있었고, 영감이 그 위에 머무는 동안에는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떠나면 어떻게 됩니까? 아시겠죠?
선지자 엘리야를 보십시오. 그날 갈멜산에 서서 하늘에서 불을 불러 내렸고, 같은 날 하늘에서 비도 불러 내렸습니다. 그런데 영감이 떠나자 이세벨의 위협을 받고 광야로 달아났습니다. 광야로 달려가 사십 일 밤낮을 헤매다가 하나님께서 그를 찾으셨습니다. 그는 어딘가 동굴 안으로 기어들어 가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아시겠죠? 설명하려고 해 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그저 홀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 안에 있을 때는 괜찮습니다. 밖에 있을 때도 그렇지만, 그 사이를 오갈 때가 문제입니다. 아시겠죠? 그저...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는지 모릅니다. 그것은 무엇을 말해 줍니까? 한 가지를 말해 줍니다. 형제님, 강 건너에는 한 나라가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든 손을 뻗어 그곳에 이르는 것입니다. 저는 모릅니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영광스러운 어느 날, 제 여정의 끝에 이르면, 저도 언젠가는 그 끝에 이르러야 하는데, 아마 노인이 되어 그렇게 되겠지요. 예수님께서 더 기다리신다면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브래넘 집안 사람들은 대부분 아주 늙으면 몸을 떱니다. 친할아버지는 아흔여덟이셨고, 친할머니는 백열 살에 돌아가셨습니다. 외할아버지는 아흔여섯이셨던 것 같습니다. 삼 년쯤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외할머니는 [불명확한 말] 때문에 젊어서 돌아가셨습니다. 서른 살쯤 되는 젊은 나이였습니다. 어쨌든 집안사람들은 늙으면 모두 떨림증으로 몸을 떱니다. 그들은 신경이 예민한 아일랜드계 사람들이고, 몹시 민감합니다. 저도 그 나이까지 산다면 늙어서 몸을 떨게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마지막 길에 이르러, 파도가 저를 덮치는 것을 느끼고 제 시간이 끝났음을 알게 될 때, 죽음의 요르단 강가에 서서 죽음이 밀려오는 것을 느낄 때, 저는 투구를 벗어 강가에 내려놓고 싶습니다. 복음의 신발도 벗어 내려놓고 싶습니다. 낡은 검을 거두어 영원의 칼집에 꽂고, 떨리고 흔들리는 손을 들어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아버지, 구명정을 보내 주십시오. 오늘 아침 제가 건너갑니다.”
저는 그분께서 그곳에서 저를 맞아 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러고 나서 들려 올라가면, 제가 가시덤불과 언덕과 골짜기와 험하고 거친 곳을 헤치며 지나온 길을 내려다보고 싶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고 가르치며 걸어온 길 말입니다. 그날 그분께서 저를 맞아 주시리라 믿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이생에서 그분의 요구에 응하여 그분을 자신의 유일한 구원자로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을 맞아 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복 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성경 한 부분을 읽겠습니다. 제 말은 실패하겠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실패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집회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조금이라도 읽으려고 합니다. 제 말은 다른 사람의 말과 다를 바 없지만, 그분의 말씀은 영원무궁하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은 실패할 수 없습니다.
전에 여기서 짤막한 주제로 설교한 적이 있는데, 오늘 이곳으로 내려오면서 문득... 새로운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제 생각에는... 기다리는 동안 유다서를 읽다가, 처음 몇 절을 읽고 그것에 관해 잠시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유다서 1절을 보면 이렇게 읽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하나님 아버지에 의해 거룩히 구별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보존되어 있으며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그는 죄인들이 아니라 선택받은 자들에게 이 말을 전하고 있습니다. 아시겠죠? 이 편지는 믿지 않는 자들에게 보낸 것이 아닙니다. 이제 들으십시오. 긍휼과 화평과 사랑이 너희에게 더욱 많이 있기를 원하노라. 사랑하는 자들아, ...공통의 구원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쓰려고 모든 열심을 내던 차에 성도들에게 한 번 전달된 믿음을 위해 너희가 힘써 싸우라고 내가 너희에게 써서 권면할 필요가 생겼나니
주님께서 이 말씀에 복을 더해 주시기 바랍니다. 성도들에게 한 번 전달된 믿음에 관해 잠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제 생각에는... 여기 그리스도인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건물 전체에 그리스도인들이 계시는군요. 좋습니다. 이것을 말씀드리기에 아주 알맞은 때입니다. 죄인들은 해수욕을 하러 가거나 도박을 하러 가거나 그러겠지만, 그리스도인들은 틀림없이 하나님의 집에 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아버지, 오늘 아버지의 긍휼과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크나큰 희생으로 우리를 다시 하나님 아버지께 구속하신 아버지의 아들 예수님을 감사드립니다. 그분의 고난의 띠 안에서 사랑받는 우리가 되었습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구속하셨습니다. 한때 우리 가련한 이방인들은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단절된 채, 세상에서 긍휼도 소망도 없이 우상을 숭배하며 마귀의 지옥으로, 죄인의 무덤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때가 되어 사랑스러운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죄 있는 육신의 모양을 취하시고, 우리를 위해 죄가 되셨습니다. 아, 그 위대한 대속이여. 아름다운 분께서 추한 우리를 대신하셨습니다. 거룩한 분께서 거룩하지 못한 우리를, 의로운 분께서 죄인인 우리를 대신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받으시고 친히 음성으로 증언하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이제 한때 멀리 떨어져 있던 우리가 말씀을 통해 물로 씻음을 받아 가까워졌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 하나님의 아들딸이라 불리기까지 합니다. 마지막에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으나, 그분과 같은 몸을 가지게 될 줄 압니다. 그분께서 계신 그대로 그분을 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영광스러운 소망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언젠가는 병자를 위해 더 이상 기도하지 않게 될 것을 압니다. 기도해 주어야 할 병자가 없을 것입니다. 회개의 설교도 더 이상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곳에는 회개할 사람이 아무도 없고, 모든 것이 완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오늘이라 불리는 동안 오늘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높은 부르심의 푯대를 향해 밀치며 나아가게 해 주십시오. 이제 성령을 보내셔서 이 몇 마디 말을 사용해 주십시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지만, 주님께서는 “네가 입을 열면 내가 그것을 채우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지난 이십 년 동안 제 삶에서 이 약속을 이루어 주셨으니, 오늘도 다시 허락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저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제게 무엇이 필요한지 모르지만 주님께서는 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겨 드리오니,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이제 몇 마디, 잠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오늘 밤 집회에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제시간에 마치려고 합니다. 우리는 정말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그리스도인 여러분, 플로리다는 사람들의 마음을 붙잡기가 어려운 곳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런 것을 알았습니다. 정말로... 그러나 언젠가는 플로리다가 없어질 날이 올 것입니다. 가라앉을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그토록 숭배하는 것들이 사라질 것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만이 여러분을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마땅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리에 있지 않다면, 아니, 하나님께서 있어야 한다고 하시는 자리에 있지 않다면, 그것이 문제입니다.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옳으나 그것의 끝은 사망의 길들이니라.”
이제 그분의 종으로서 저는 정직해야 하며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도 알아서는 안 됩니다. 말씀드렸듯이 저는 학식이 없고, 우리가 세상의 지혜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저를 부르시고 죄의 삶에서 구속하신 분은 압니다. 그분과 교제하며 사귐을 나눕니다. 또한 그분께서 그리스도인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지 압니다. 그래서 오늘 이곳에 오면서, 성도들에게 한 번 전달된 믿음을 위해 힘써 싸우는 것에 관해 말씀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여기에는 여러 사람이 섞여 있습니다. 이 백오십 명가량, 여기에 몇 분이나 계시든, 아마 개신교인도 가톨릭 신자도 있을 것입니다. 개신교, 가톨릭, 감리교, 침례교 등등 말입니다. 저는 그 어느 교회에도 반감이 없습니다. 조금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 마음을 아십니다. 저는 그 어느 곳에도 속해 있지 않습니다. 그저 나왔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모두에게 속해 있습니다.
얼마 전 아칸소주 리틀록에 갔습니다. 평생 가장 지독한 비난 기사가 났습니다. 기자는 자칭 침례교 설교자라는 사람이 병을 고친다며 너무 많은 구급차를 불러들여 거리가 막혔다고 썼습니다. 전차도, 거리를 다니는 버스도 움직일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정말 호되게 비난받았습니다. 그런데 한 노인이 치유를 받았습니다. 여러 해 동안 목발을 짚고 다니던 분이었습니다. 몸이 뻣뻣하게 굳어 있었는데, 이튿날 그 목발에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라는 표지를 달고 거리를 걸으며 계속 기쁨의 함성을 질렀습니다. 그러고 나서 일요일에 제가 말씀을 전하고 있는데, 그분이 일어나 말했습니다. “설교자 선생.” 제가 말했습니다. “예, 어르신.” 그가 말했습니다. “이해가 안 되는 게 하나 있소.” 제가 말했습니다. “무엇입니까, 어르신?”
그가 말했습니다. “당신 설교를 들었을 때는 틀림없이 나사렛교인이라고 생각했소.” 그분도 나사렛교인이었습니다. “틀림없이 나사렛교인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러다가 오순절교 사람들이 모두 모여 있는 것을 보고는 틀림없이 오순절교인일 거라고 생각했소. 그런데 이제는 침례교인이었다고 하시는구려. 이해가 안 되오.” 제가 말했습니다. “간단합니다, 어르신. 저는 오순절 나사렛 침례교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감리교, 침례교, 여러분 모두, 모든 사람을 대표합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입니다. 하지만 우리 각자는 자기 교회가 바로 참된 교회라고 생각하고 싶어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셔야 합니다. 지당한 일입니다.
제가 그 모두를 대표하고 있으니, 돌아가서 ‘그 믿음’이 무엇인지 알아봅시다. 많은 사람이 말합니다. “나는 거기 가지 않습니다. 내 신앙에 어긋나거든요. 내 신앙은 그런 것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믿음은 오직 하나입니다. 교회도 하나요, 몸도 하나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믿으십니까? 교회는 오직 하나이며, 그 교회에는 가입하는 것이 아닙니다. 태어나서 교회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제가 브래넘 가문에 속한 지, 오는 4월 6일이면 브래넘 가문에 속한 지 사십사 년이 됩니다. 그런데 그들은 저더러 가문에 가입하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아시겠죠? 왜 그렇습니까? 저는 브래넘으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브래넘이니, 그것으로 브래넘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원래 가족에 속하므로 가입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교회에 가입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교회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태어나서 그 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에게서 태어나면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딸이 됩니다. 그것이 없다면 그저 교회에 속해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다시 태어나면 그리스도께 속하게 됩니다. 우리는 반드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제가 믿는 근본 교리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요한복음 3장입니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에게서 태어나지 아니하면 결코 왕국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아무리 신실해도 그렇습니다. 우리의 신실함은 아무런... 오늘 오후 갠지스강에 가서, 어머니들이 어린 아기를 악어에게 던져 희생물로 바치며 나일강의 신들을 달래는 것을 보십시오. 그러면 이것이 어떤지 알게 될... 여러분의 신실함도 한번 시험해 보십시오. 그들의 신실함과 나란히 놓고 여러분이 얼마나 신실한지 보십시오.
중국에 가서 사람들이 발을 꺾어 몸의 모양을 망가뜨리는 것을 보십시오. 인도에서는 코에 창을 꿰고, 손가락에 가시를 찌르고, 못이 박힌 침상에 눕고, 몸을 베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손을 들고 주먹을 흔들며 사십 년씩이나 지내 손톱이 손등을 뚫고 나왔습니다. 그러면서 “내 혼에 평안을 얻기 전까지는 절대로 손을 내리지 않겠다”고 합니다. 여러분의 신실함을 그것과 한번 견주어 보십시오. 이렇게 커다란 화로에 불을 담아 놓으면, 자기 신을 기쁘게 하려고 그 불 한가운데를 걸어 지나가야 합니다. 여러분의 신실함을 그것과 한번 견주어 보십시오. 아시겠죠? 자기 몸을 불로 지지고 괴롭힙니다.
신실함은 그것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법은 단 하나, 반드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다시 태어나지 않았다면 아직 거기에 이르지 못한 것입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제가 사람이 되려면 태어나야 했습니다. 어떤 경우든 태어나야 했습니다. 기계적으로 저를 만들어 낼 방법은 없습니다. 사람이 되기 위해 태어나야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도 태어나야 했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출생입니다. 실제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사람이 새롭게 태어납니다. 새로운 혼이 들어옵니다. 이제 돌아갑시다. 여러분이 잠시 저와 함께 성경을 들여다보시겠다면... 성경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근본 진리입니다.
이것을 살펴보려면... 원하건대, 이제 주의 깊게 들어 주십시오. 제가 이야기를 제대로 엮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오직 영감으로 말합니다. 영감이란 여기서 무엇을 발견하면 붙잡아서 내어 주는 것입니다. 저쪽에 있으면 손을 뻗어 붙잡아 내어 줍니다. 옛날식 사사프라스 약차 같은 방식일지 몰라도, 받아 간직하면 유익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속을 든든히 채우고 여러분을 붙들어 줄 것입니다. 그것이 저를 구원했으며 여러분도 구원할 것입니다. 얼마 전, 제가 거의 탈진하여 쓰러질 지경이었을 때 누군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제가 팔 일 밤낮 동안 강단을 떠나지 않고 병자를 위해 기도하도록 두었습니다. 제가 모두를 위해 기도하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멈출 때는 시작할 때보다 사람이 세 배쯤, 어쩌면 그보다 더 많았습니다. 밤낮으로 줄이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저는 강단 옆에 기대어 잤습니다. 강단 곁에 앉아 오렌지 주스 같은 것을 마셨습니다. 그리고 밖으로 나왔을 때는 제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렇게 약 팔 개월 동안 정상적으로 지내지 못했습니다. 그때 누군가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그 모든 시간 동안 신앙을 지키셨습니까?” 제가 말했습니다. “아니요. 그 시간 동안 신앙이 저를 지켜 주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지킬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저를 지켜 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그렇게 하십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우리가 그분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지키십니다. 제가 붙들고 있을 수 있느냐가 아니라, 그분께서 붙들고 계셨느냐가 중요합니다. 그것이 핵심입니다. 그분께서 하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저를 위해 하신 일로 오늘의 제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여러분도 지금의 여러분이 된 것입니다. 이제... 밖에 나가 밭을 본다고 합시다. 큰 밭이 잘 갈리고 아주 훌륭하게 정돈되어 있는데 무언가 심겨 있습니다. 무엇이 심겨 있는지 알아내는 유일한 방법은, 가서 흙덩이를 들추어 그 밑에 있는 씨가 무엇인지 보는 것입니다. 어떤 씨를 심었는지 보면 어떤 수확을 거둘지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썩지 않는 씨, 없어지지 않는 씨로 심겼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없어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없어질 수 없습니다. 이제 모든 씨는 그 종류대로 맺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거대한 시대를 알아보기 위해 거슬러 올라가 봅시다. 제가 읽은 역사 지식은 얼마 안 되지만, 제가 생각할 수 있는 역사 전체에서 암흑시대를 제외하면 가장 엄청나고 어두운 시기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가 바로 지금 그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천 년 동안 그리스도교를 가르쳤는데도, 이 년 전 세상에서는 믿지 않는 자 천삼백만 명이 생겨났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세상이 이제껏 보지 못한 가장 어두운 시기입니다. 우리는 전에 없던 최고의 대학들을 갖고 있습니다. 전에 없던 최고의 학교들을 갖고 있습니다. 이제껏 강단에 선 사람들 가운데 가장 교육을 잘 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교 신앙은 오랜 세월 중 어느 때보다도 줄어들었습니다. 사실입니다.
의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는 전에 없던 최고의 의사들이 있습니다. 전에 없던 최고의 과학이 있습니다. 전에 없던 최고의 의약품을 사용합니다. 이제껏 알던 것 중 가장 훌륭한 병원들과 가장 잘 훈련받은 간호사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병은 세상이 이제껏 들어 본 적이 없을 만큼 많습니다. 죄와 불신이 세상이 이제껏 들어 본 적이 없을 만큼 많기 때문입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우리가 문명이라고 부르는 시대에 오히려 비문명적으로 되었습니다. 잘못된 길을 택한 것입니다. 저는 여러 번 말합니다... 오늘 오후 말씀을 듣고 있는 여러분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 세상 전체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이야기하기가 훨씬 쉽습니다. 저는 여덟 살짜리 아이에게 어딘가 대학에서 학위를 두 개나 받은 사람보다 천 배는 더 빨리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게 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은 너무나 똑똑하지요. 자기가 다 안다고 생각하니 아무 말도 해 줄 수 없습니다. 생각을 굳혀 놓고 자신을 낮추지 않으려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과 치유의 권능, 하나님의 권능은 엄청난 신비가 아닙니다. 바로 여러분 곁에 있는 것입니다. 아, 참! 하나, 둘, 셋만큼이나 단순합니다. 그저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그것이 전부입니다. 그만큼 단순합니다. 어린 딸에게 무엇을 사 주겠다고 말하면 그 아이는 그저 믿습니다. 그뿐입니다. 아이들이 강단에 올 때 보십시오. 하나도 빠짐없이 치유받는지 보십시오. 아이들은 그저 믿기 때문입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저기서 단상으로 부를 때 그 아이들을 보십시오. 불러냈을 때 어디가 아프든 상관없습니다. 걷지 못하든, 앞을 못 보든, 무엇이든 벌떡 일어나는 것을 보십시오. 그 자리에서 받아들이는 것을 보십시오. 그러나 나이 든 사람들은 앉아서 이렇게 말합니다. “잠깐만요. 저는 움직일 수 없습니다. 오랫동안 이 발을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아이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납니다.
아이는 그렇게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것을 따져 보려고 합니다. 납득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날 밤 베드로가 멈추어 서서 따져 보았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주님, 물 위를 걸으라고 하셨지요. 어디 좀 봅시다. 저는 철저한 과학자이고, 물의 화학식을 압니다. H2O입니다. 사람은 수소와 산소 위를 걸을 수 없습니다. 시도해 볼 필요도 없지요. 주님은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그랬다면 베드로는 결코 물 위를 걷지 못했을 것입니다. 오직 한 가지... 그는 어떻게 되는지 따지지 않았습니다. 그저 하나님을 그분의 말씀대로 믿고 걸어 나갔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런 일을 하시는지 따져 보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저 받아들이고 나아가십시오. 모세가 불타는 떨기나무를 보려고 돌아섰을 때 이렇게 말했다면 어땠겠습니까? “잠깐, 잎사귀를 좀 따야겠어. 실험실에 가져가서 이 잎의 어떤 화학 성분 때문에 타지 않는지 알아봐야겠어. 불에는 이상이 없어.” 그랬다면 결코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신을 벗고 겸손히 와서 앉았고,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겸손히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며 그분께 나아가야 합니다. 어떻게 보이든 상관없습니다. “하나님, 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으니 저는 믿습니다. 그것으로 끝입니다.”
이제 오늘 우리에게 왜 이런 사람들이 생겨났는지 알아봅시다. 이것이 조금 간지럽게 느껴지더라도... 지금 무언가 솟아오르는 것 같습니다. 경건한 감동이 느껴집니다.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좋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실지도 모릅니다. 창세기로 돌아가서 시작을 살펴봅시다. 오늘날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은 창세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창세기는 성경에서 씨가 심기는 장입니다. 모든 것이 창세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창세기... 창세기라는 말은 ‘시작’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의 씨를 심으신, 씨가 심기는 장입니다. 악한 자도 자기 씨를 심었고 하나님께서도 그분의 씨를 심으셨습니다. 그래서 지금 땅에서 그 수확물들이 자라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예를 들어 바빌론이라는 말을 봅시다. 창세기에 나옵니다. 처음에는 ‘동산의 문들’, 또는 ‘하늘로 가는 문들’이라고 불렸던 것 같습니다. 그다음에는 ‘혼란’이라 불렸습니다. 바빌론은 저 처음에 시작되었고, 우상 숭배가 처음 일어난 곳이었습니다. 창세기에서 그것을 발견합니다. 그러고 나서 성경 중간에서 발견하고, 또 요한계시록에서 다시 나타나는 것을 발견합니다. 아시겠죠? 창세기에서 나왔습니다. 바빌론이 줄곧 자라 올라온 것입니다. 계속 올라가서 창세기에서 씨를 맺습니다. 이제 창세기에서는 두 소년으로 시작해야겠습니다. 인류는 아담과 이브에게서 나왔고, 아담과 이브에게서... 물론 이브는 딸들도 낳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누군가 흔히 의아해합니다... 오래된 질문은 “가인은 어디서 아내를 얻었는가?”입니다. 가인은 자기 누이와 결혼했어야 합니다. 다른 수가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여자의 출생을 거의 기록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남자들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오늘날 미국은...
여러분은 제 자매들입니다. 아시겠죠? 하지만 보십시오. 온 우주에서 남자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인정을 받는 곳은 단 한 곳뿐입니다. 오늘날 미국의 신은 여자입니다. 그렇습니다. 저 젊은 여자들 가운데 하나의 옷을 벗겨 수영복을 입힌 채 어딘가 해변에 앉혀 놓으면, 그 여자는 여러분 도시에 있는 모든 밀주 술집보다 더 많은 남자를 지옥으로 보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자가 미국의 신입니다. 여자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남자들이 빠져들게 만듭니다. 마귀는 처음부터 그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여자를 택한 것입니다. 물론 여자는 구속받았으며, 자매가 되어 경건하게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형제님,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성령으로 태어난 훌륭한 옛날식 어머니들이 더 많아져 아이들을 바르게 기르는 것입니다. 청소년 비행을 말하지만, 문제는 부모의 비행에 있습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켄터키 사람들이 무식하다고 합니다. 그곳 밖에 사는 우리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무식함을... 그곳 사람들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말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곳의 옛날 어머니들이 자기... 자기 딸이 밖에서, 이곳 해변의 어떤 여자들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았다면, 형제님, 그 딸은 일주일 동안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일어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어머니가 히코리나무 가지를 꺾어다가, 딸에게 남아 있는 그 얼마 안 되는 치마마저 떨어져 나가도록 때렸을 겁니다. 제 생각에는 팜비치와 이 주변 다른 곳들에서도 그런 일을 훨씬 더 많이 실천한다면, 우리나라의 사회적인 품격과 도덕성이 더 나아질 것입니다. 아멘. 형제님, 구식이고 거침없는 말일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오는 진리입니다. 저는 우리가 제자리를 벗어나 이런저런 일을 한다고 믿습니다. 사실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어떻게 입고 무엇을 입으라고 말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여러분과 하나님 사이의 일입니다. 하지만 들으십시오. 사람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으면,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돌보십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이렇게 해야 한다거나, 드레스와 치마는 이렇게 입어야 한다거나, 남자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규칙을 두지 않습니다. 그런 규칙은 없습니다. 제가 사는 지방에도 이런 것이 있습니다. 참나무가 있는데, 작은 관목 참나무는 겨우내 잎을 달고 있습니다. 봄이 되어 새잎이 돋게 하려고 묵은 잎을 하나하나 따 줄 필요는 없습니다. 새 생명이 올라오게 두면 묵은 잎은 떨어집니다. 남자든 여자든 하나님의 영에게서 태어나면 성령께서 옛 생활을 떨어져 나가게 하시고 새 생활이 돋아나게 하십니다. 아멘.
아, 우리나라의 형편을 보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우리가 이 나라를 얼마나 더럽혔는지 보십시오. 우리가 아니라... 저는 러시아나 다른 나라가 우리에게 해를 끼칠까 봐 두렵지는 않다고 수없이 말했습니다. 다른 나라들 가운데 우리와 싸우는 나라들이 있습니다. 제가 두려워하는 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더럽히는 것은 바로 우리 가운데 있는 썩어 빠진 모습입니다. 사과를 망치는 것은 그것을 쪼는 울새가 아닙니다. 사과를 죽이는 것은 그 속에 있는 벌레입니다. 바로 이곳 우리 자신의 형편입니다. 우리가 지금 하는 일은 어느 나라든 그 기둥을 무너뜨립니다. 여성의 도덕성만 타락시켜 보십시오. 나라가 어떻게 되는지 보십시오. 역사를 거슬러 읽고 알아보십시오. 바로 거기에 이 나라의 몰락이 있습니다. 세상 그 무엇보다 확실합니다.
얼마 전 제 고향에서 한 주제로 설교했습니다. 사람들이 안내문을 내걸었습니다. 저는 미국 정부의 전복에 관해 설교했습니다. 성경에서 악한 영들이 나가, 거짓말하는 영들이 선지자들 속으로 들어가 거짓말하게 하고, 아합을 그곳으로 끌어올려 죽게 만든 대목을 본문으로 삼았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저 아래의 악한 영들은... 제가 파리에 갔을 때, 그곳들은 너무도 타락해 있었습니다. 인간이 그렇게까지 낮아질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 우리가 받아들이는 모든 유행은 바로 그 파리에서 시작됩니다. 이곳 할리우드로 와서 영화 화면이며 온갖 것을 통해 퍼집니다. 여러분은 모두 앉아서 그것들을 봅니다. 어린 소녀와 소년들은 거기에 들어갔다가 나와서는 배우들을 흉내 냅니다. 그 배우들 가운데는 네댓 번씩 결혼하고 서너 명씩 다른 남편과 아내를 둔 사람들도 있는데, 그들을 본보기로 삼습니다. 형제님, 우리가 본받아야 할 본보기가 있다면 하나님의 성경에서 찾아야 합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그렇고말고요. 우리의 수확물이 거기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저 처음, 에덴동산의 시작을 돌아보십시오. 두 소년, 가인과 아벨이 나왔습니다. 좋습니다. 그들이 나오는 모습을 주목하십시오. 두 소년은 에덴의 동쪽에 있던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뒤에... 오늘 아침 팜비치의 거리를 지나며, 아름답고 큰 집들을 보고 에덴동산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타락한 하나님의 아들들이 지은 것들입니다. 그것이 그들의 마음속에 있다면 하나님께서 [불명확한 말] 하셨음을 우리는 압니다. 하지만 누구나 죽어서 그 집들을 떠나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젠가 다시는 떠나지 않을 집으로 갈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곳에서 영원히 살 것입니다.
그곳을 지나가면서 저는 그 놀라운 모습에 대해, 에덴이 어떠했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사람이 죄를 지었을 때... 제게는 제 생각과 이해가 있습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쫓아내셨습니다. 한 천사가 문에 서서 문을 지키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생명나무에 가까이 가지 못하도록 아무도 그 문으로 드나들 수 없게 했습니다. 저는 생명나무가 예수 그리스도였다고 믿습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있나니.” 그분이 생명나무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룹, 곧 불타는 칼을 든 천사로 그것을 지키고 계셨습니다. 그때 가인과 아벨은 자신들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며 언젠가 죽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구하려고 왔습니다. 그들 각자가... 가인은 땅을 가는 자였고, 아벨은 양치기였습니다. 주목하십시오. 그들 각자가 하나님을 경배하러 왔습니다.
이제 앞으로 십오 분이나 이십 분 동안, 여기에 제 생각의 토대를 두려고 합니다. 두 소년이 옵니다. 하나는 사탄에게 속한 가인이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 속한 아담에게서 난 아벨이었습니다. 둘 다 잘 보십시오. 오늘날 교회들을 보여 주는 아주 선명한 모습입니다. 이제 여기서 시작하겠습니다. 표적과 이적이 있는 쪽과, 그 맞은편에 근본주의자들을 놓고 그것이 얼마나 참된지 알아보겠습니다. 주목하십시오. 가인과 아벨은 하나님을 경배하러 왔습니다. 둘 다 그랬습니다. 가인은 자기 희생물을 가져왔습니다. 아벨도 자기 것을 가져왔습니다. 둘은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났습니다.
저는 가인도 아벨만큼 신실했다고 믿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도 아벨 못지않게 믿는 자였습니다. 경배의 근본적인 면에서는 그도 아벨만큼 근본에 충실했습니다. 두 소년 모두 자신들이 잃어버린 상태임을 알았습니다. 두 소년 모두 하나님께 은혜를 입고 싶어 했습니다. 둘 다 희생물을 가져왔습니다. 둘 다 경배했습니다. 둘 다 교회에 속해 있었습니다. 만일 교회에 속하고 희생물을 바치고 경배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전부인데도 하나님께서 가인을 정죄하셨다면, 그렇게 하신 것은 불의합니다. 맞습니다. 불의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 경배뿐이라면, 가인도 아벨과 똑같이 경배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아벨보다 더 아름답게 경배했을지도 모릅니다.
가인은 사탄에게 기름부음을 받은 자였다고 생각합니다. 내려온 사탄의 아들이었습니다. 잠시 뒤에 가인과 아벨에 관해 또 하나의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그들이 왔을 때... 가인이 희생물을 가져왔을 때, 그것은 아마 아벨의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을 것입니다. 가인은 땅을 가는 자였습니다. 자기 제단을 꾸밀 백합과 아름다운 것들이 있었습니다. 보십시오. 이것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언젠가 우리 모두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설 때, 이것이 그다지 틀린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가인의 본성을 보십시오. 자기 아버지 사탄의 본성을 닮았습니다. 그가 와서, 여러분이 이것을 보시기 바랍니다, 아름다운 희생물을 마련했습니다. 아마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하듯 백합과 온갖 것으로 꾸몄겠지요.
부활절마다... 얼마 전 큰 교단 교회의 한 목사가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이 부활절에 오면 저는 늘 ‘성탄절과 새해를 즐겁게 보내십시오’라고 인사합니다. 다음 부활절까지는 다시 못 볼 테니까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우리 교인들입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목사님은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그들이 오지 않는 이유는 그들 안에 이끌어 주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제가 젊었을 때의 일입니다. 저는 전신주에서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전력 회사에서 일하며 전등을 꺼야 했습니다. 그리고 길 건너로 요금을 받으러 갔습니다. 그 안에 젊은 여자가 있었는데, 제가 문을 두드리자 나와서 말했습니다. “누구세요?” 제가 말했습니다. “공익사업 회사에서 왔습니다. 장부 담당자가 말씀하시기를, 요금 보내는 것을 잊으신 것 같다고 해서요.” 그녀가 말했습니다. “아, 네. 어머니가 보내셨는데... 어머니가 보내려고 하시다가 여기에 두고 가셨어요. 받아 가시겠어요?”
제가 말했습니다. “예.” 그녀가 요금 고지서를 주었습니다. 저는 납부했다고 표시했습니다. 그것을 돌려주려는데, 무슨 지그 춤을 추는 사람인지 누군지가 ‘톱과 낫’을 틀어 대며 온갖 소동을 피우고, 무슨 부기우기 음악인가 하는 것을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가 입은 옷은 산탄총의 장약 마개로나 쓸 만큼밖에 안 되는 작은 옷이었습니다. 참으로 딱했습니다. 들으십시오. 제게는 딸이 둘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걸 ‘선탠’, 햇볕에 그을리는 것이라고 하지요. 하나님께서 제가 살아 있게 해 주셔서 제 딸 가운데 하나가 그런 옷을 입는다면, ‘선탠’이 아니라 ‘선 탠’, 아들이 그을려 주는 것을 당할 겁니다. 찰리 브래넘인 제 아버지의 아들, 바로 제가 통 널빤지로 있는 힘껏 때려 줄 것입니다. 그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매질입니다. 틀림없습니다. 밖에서 그런 모습으로 다니니 세상이 타락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여러분 남자와 여자들은 어떻게... 여러분 남자들은...
이제 제게 화가 나실 겁니다. 이왕이면 지금부터 화를 내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자기 아내가 밖에 나가 그렇게 행동하고 담배를 피우며 돌아다니도록 내버려 두는 남자 여러분, 그것이 여러분에게 남자다운 면이 얼마나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그렇습니다. 진짜 기개 있는 남자라면 그런 일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맞습니다. 형제님, 소화하기 힘든 말일지 모르지만 그렇더라도 받아들이십시오. 여러분에게 유익한 말이니까요. 아멘. 정확히 그렇습니다. 참으로 기개 있는 남자는 말입니다... 언젠가 제 아내도 그렇게 할지 모릅니다. 그렇게 하는 날이 브래넘의 집을 떠나는 날입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저는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저는 허락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남자들이 일어서면... 죄송합니다. 저것이 저보다 목소리가 크군요. 하지만 보십시오. 저는 흥분한 게 아닙니다. 제가 어디에 있는지 압니다. 무슨 말을 하는지도 압니다. 보십시오. 그렇습니다.
그 젊은 여자는 “투들디, 투들디” 하고 소리치며 방바닥을 가로질러 갔습니다. 그리고 그... 그녀는 무슨 헛간 스윙 댄스인가 뭔가가 열릴 거라고 하더니, 라디오 앞으로 가서 라디오 속 남자에게 입맞춤을 날렸습니다. 너무 들떠서 제가 문 앞에 있는 것도 몰랐습니다. “안녕, 자기. 오늘 밤 거기서 만나.”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래, 거기에 가겠지. 틀림없어. 거기에 갈 거야.” 그녀는 건너가더니 춤추는 것처럼 소리치며 방 안을 빙 돌았습니다. “아, 죄송해요. 제가 춤추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요.” 제가 말했습니다. “그런 것 같더군요.” 그녀가 말했습니다. “아, 정말 좋아해요.” 제가 말했습니다. “그런 것 같습니다. 여기 거스름돈입니다.” 그러고 돌아갔습니다. 제가 전신주에서 내려오고 있는데,
또 다른 큰 교회의 브라운 박사가 왔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빌리, 정말 궁금하군. 우리 교회에 오는 사람이 아주 많았는데, 일 년 중 적어도 여섯 달은 우리 교회 일요 성경학교에 나오겠다고 약속하는 카드에 서명하게 했네. 카드를 오백 장 보냈는데, 일요일에 몇 명이나 응답했을 것 같은가?” 제가 말했습니다. “모르겠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두 명이었네.” 저는 그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오늘 밤 그 여자를 헛간 댄스에 나오게 하려고 클레이턴 맥미첼 씨가 카드에 서명하게 해야 할 것 같습니까?” 아니지요. 그 여자의 마음에는 그런 것을 먹고 사는 영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에게서 태어났다면 교회 종이 울릴 때 가지 않고는 못 배깁니다. 속에서 부르짖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깊음이 깊음을 부르는 것입니다. 가야만 합니다. 아멘. 형제님, 바로 여기부터 바르게 되어야 합니다. 속에 있는 그 영이 아직도 세상을 숭배한다면, 하나님의 사랑은 여러분 안에 있지도 않습니다.
그 영이 세상을 미워하고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교회에 가고 모임에 참석하려고 카드에 서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문이 열리면 여러분은 거기에 있을 것입니다. 가지 않고는 못 배깁니다. 속에서 무엇인가 여러분을 이끌고 있습니다. 오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출생입니다. 오늘날 교회에는 그것이 필요합니다. 그 오래된 육적인 아담의 본성이 아직 사람 안에 있는 동안에는, 그는 여전히 죄인입니다. 이따금 교회에 나갈 수 있습니다. 교적부에 이름을 올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그 안에 있는 한, 여전히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지 않습니다. 아멘. 기분이 참 좋습니다. 보십시오. 형제님,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처음에 있던 가인과 아벨을 보십시오. 가인이 와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을 경배했습니다. 아, 참! 우리가 부활절에 하듯이 백합을 온통 늘어놓았습니다.
사람들은 제단에 백합을 올려 꾸미려고 전국에서 말 그대로 수백만 달러를 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단 위의 백합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제단 위에 여러분이 있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백합이 아닙니다. 여러분입니다. 제단은 백합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이 가진 모든 것과, 여러분의 전부를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여러분 자신을 제단 위에 놓고 “하나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아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것입니다. 오늘 오후 이 팜비치에 필요한 것도 그것입니다. 새 시장도, 새 경찰 조직도 아닙니다. 훌륭한 옛날식 사도 바울의 부흥과 성경, 교회로 다시 돌아오는 성령,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남자와 여자들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모루에서 불꽃이 튀듯 표적과 이적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시작되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형제님, 그렇게 하기 전까지 우리는 잃어버린 상태이며 결코 부흥을 일으킬 수 없을 것입니다.
미국은... 얼마 전 빌리 그래함이 어떤 집회를 열었습니다. 집회를 마친 뒤 육 주 동안 삼만 명, 아니 이만 명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만큼의 회심자를 얻었다고 했습니다. 육 주 뒤에 다시 갔더니 그중 스무 명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사람들이 감정적으로 들떠 일어나 “그리스도를 나의 구원자로 받아들입니다”라고 말하고는 다시 앉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부흥이 일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다시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믿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남자와 여자들이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고 새롭게 되는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그리스도인일 수밖에 없습니다. 태어남으로 그리스도인이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에게 서약을 시키거나 카드를 주거나 찾아갈 필요가 없습니다. 형제님, 그가 다시 태어났다면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면 거의 문을 걸어 잠가야 할 것입니다. 아멘. 형제님, 말 앞에 수레를 둔 것입니다. 순서가 거꾸로입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먼저 그리스도를 모셔야 합니다. 교회 대신 그리스도를 첫자리에 두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것입니다. 오늘 미국에 필요한 것도 그것입니다. 온 나라와 온 세상에 필요한 것은 옛날식 부흥의 움직임,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부흥입니다. 가인은 물론 종교적이었습니다. 다른 사람 못지않게 종교적이었습니다. 종교란 가리개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이브는 자기들이 벌거벗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자신들을 위한 종교를 만들었습니다. 보십시오. 아담은 하나님과 떨어져 있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하나님을 찾으려 하지 않고 하나님에게서 숨으려 했습니다. 그것이 오늘날 사람의 본성입니다. 여전히 그러합니다. 나와서 “교인으로 지낸 지 십 년이지만, 하나님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릅니다”라고 고백하는 대신, 교회의 이름 뒤에 숨으려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 그렇게 합니다. 우리 감리교인도, 침례교인도, 장로교인도, 오순절교인도 모두 그렇게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유죄입니다. 아멘.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나오는 대신... 아담이 동산을 뛰어다니며 “아버지, 아버지, 어디 계십니까? 아버지, 아버지!” 하고 외쳤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동산을 뛰어다니며 “아담아,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고 외치신 분은 아버지셨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는 것을 알자 아담은 무화과나무 잎으로 앞치마를 만들었습니다. 오늘날을 얼마나 잘 보여 줍니까. 앞치마는 가리개였습니다. 종교는 ‘가리개’라는 뜻입니다. 그는 무화과나무 잎으로 앞치마를 만들어 몸에 둘렀습니다. 아담과 이브가 저 뒤의 작은 교회에 서서 “이제 하나님께서 다시 부르시면 나갑시다”라고 말하는 동안에는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마주해야 하자 무화과나무 잎으로 만든 종교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떤 교회의 신조 뒤에 숨는 남자와 여자는 누구나 죽는 날에 무화과나무 잎 종교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아담은 말했습니다. “아, 제가 벌거벗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했을 때 그것을 알았습니다. “제가 벌거벗었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벌거벗은 것을 누가 네게 알려 주었느냐?” 그때 그들은 세상 말로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기 시작했습니다. “주님께서 제게 주신 저 여자가...” 하며 이것저것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서 가죽을 구해 그들에게 앞치마를 주셨습니다. 가죽을 얻으시려면 무엇인가를 죽이셔야 했습니다. 대신할 무언가가 죽어야 했습니다. 세상에서 유일한 것은... 여러분의 죄를 가려 주는 것은 감리교나 침례교나 장로교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갈보리에서 무언가를, 그분의 아들을 죽이셨습니다. 그것이 그들의 가리개입니다. 인간에게 있는 유일한 가리개입니다. 받아들이십시오. 아무리 극단적으로 보여도,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은 세상에서 언제나 광신주의로 여겨졌습니다. 잠시 뒤에 그것을 입증해 드리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그들을 보십시오. 두 사람이 거기서 경배하고 있습니다. 둘 다 신실합니다. 둘 다 하나님을 향해 외치며 찬양하고 온갖 것을 합니다. 가인은 공산주의자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믿는 자였습니다. 자, 보십시오.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이 하나님께서 계신다고 믿는 것뿐이라면, 가인은 의로웠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이 말이 조금 스며들도록 두겠습니다. 왼쪽 다섯째 갈비뼈 안까지 들어가게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이 하나님께서 계신다고 믿고 무릎을 꿇어 그분을 경배하는 것뿐이라면, 가인은 의롭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마귀도 그것이 사실임을 믿는다고 했습니다. 마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공개적으로 고백했습니다. 그것이 그들을 구원하지는 않았습니다. 형제님, 우리는 바르게 해야 합니다. 언젠가는 잘못되었다는 것이 드러날 것입니다. 누군가는 옳고 누군가는 틀립니다. 성경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 좋겠습니다. 여러분은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허구적으로 자신이 다시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서 세상에 속한 모든 것을 실제로 죽이셔서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의 새로운 창조물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옛것들이 지나갔음을 압니다. 아직도 세상이나 세상의 것들을 사랑한다면,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이 너희 안에 있지도 않다”고 말씀합니다. 아멘. 단도직입적인 말이지만, 형제님, 겉에만 하얗게 칠하는 말은 아닙니다. 여러분을 씻어 희게 만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침을 흘려서 죄송합니다. 처음부터 설교자가 아니라고 말씀드렸지요. 가나안의 포도를 많이 먹었더니 침이 흐릅니다. 가나안에는 침이 많이 흐릅니다. 아멘.
아, 형제님.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령께서 다시 옛날처럼 휘저어 주시는 일입니다. 형제님,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시기 전에 제게도 그것이 먼저 와야 했습니다. 다시 급하고 강력한 바람이 불어와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오순절 날처럼 말입니다. 그들은 모두 종교적인 사람들이었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었지만, 가서 성령침례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자 여러분, 이 말을 들으십시오. 이 말을 들으면 따끔하실 겁니다. 그곳에, 백이십 명이 기도하러 모두 올라갔을 때 그들이... 우리 침례교인들처럼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아십니까? 악수하고 교적부에 이름을 올리고 “예, 저는 다시 태어났습니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받은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그런 구절이 없습니다. 우리 가톨릭 신자들은 와서 혀를 내밀어 거룩한 영성체를 받고 성령을 받았다고 합니다. 성경에 그런 구절은 없습니다.
우리 감리교인들은 육 개월 동안 수습 기간을 거칩니다. 성경에는 그런 구절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합니다. “오순절 날이 충만히 찼을 때에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력한 바람 소리 같은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던 온 집안을 가득 채우고.” 하나님의 권능이 그 사람들을 온통 감싸고 기름을 부으셔서, 그들은 거리로 뛰어나가 외치고 춤추고 소리치며 술 취한 사람들처럼 행동했습니다. 그것이 성경입니다.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입니다. 여자 여러분, 들으십시오. 복된 처녀 마리아도 그런 방식으로 받아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어머니도 그런 방식으로 오게 하셨다면, 여러분은 얼마나 더 그렇게 와야 하겠습니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생명입니다. 허구적인 신학 체계나 사람의 이론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옛날의 성령침례가 다시 사람의 삶에 돌아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님 안의 새로운 창조물로 만드는 일이 필요합니다. 아멘. 제 말에 스스로 아멘을 붙이는 것이 아닙니다. 아멘은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 형제님, 보십시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만을 요구하셨다면 가인은 의롭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거절하셨습니다. 그의 영은 잠깐 있다가 사라질 것들만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기 아버지의 본성을 가졌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천국에서 미가엘의 것보다 더 크고 아름다운 교회를 갖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천국에서 쫓겨났습니다. 그 본성이 여기 아래, 제단을 아름답게 꾸미는 가인에게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여기 있습니다. 사람들은 크고 훌륭한 교회를 짓습니다. 여러분 오순절교인들도 다른 사람들만큼이나 멀리 벗어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에 많은 사람이 모이고, 도시의 유력 인사들이나 그런 사람들이 온다고 해서 무언가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양이 더 많아진다고 생각하겠지요. 하나님께서는 길모퉁이든 골목이든 어디서나 여러분을 만나 주실 것입니다. 작은 선교소에 있을 때가 훨씬 더 나았습니다. 아멘.
아, 참!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오늘날 우리가 그리스도교의 이름으로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른다니, 얼마나 부끄러운 모습입니까. 우리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에 관해 아는 것이 호텐토트족이 이집트의 밤에 관해 아는 것만큼도 없습니다. 아멘. 죄송합니다, 형제님. 제가 돌아다니려면 공간이 많이 필요한 모양입니다. 제 형제님, 주목하십시오. 하지만 저는 신실한 마음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온 마음을 다해 드리는 말씀입니다. 가인은 무릎을 꿇고 하나님을 경배했습니다. 아벨도 하나님을 경배했지만, 아벨에게는 앞을 내다보는 눈이 있었습니다. 가인은 “사과 때문에 우리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열매를 바쳤습니다. 얼마나 무지합니까? 오늘날에도 똑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아름다움이라니... 근사하고 아름다운 교회와 제단으로 하나님을 달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얼마나 무지합니까? 오늘날에도 똑같습니다. 자기 아버지를 닮은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러나 아벨은 피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멘. 형제님, 우리가 그곳으로 돌아가려면 피가 필요합니다. 아벨은 나가서 작은 어린양 한 마리를 데려다가 목에 포도덩굴을 맵니다. 그때에는 삼으로 만든 끈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가 옵니다. 아름다운 모습이 아닙니다. 작은 어린양을 그렇게 제단 위 바위로 끌고 옵니다. 아름다운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자유롭게 태어난 우리 교회가 생각납니다. 아름다운 것은 없습니다. 어린양을 들어 바위 위로 내던집니다. 돌 하나를 집어 듭니다. 그때에는 창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날카로운 돌을 집어 들고 어린양의 머리를 뒤로 젖혀 목을 내리치기 시작합니다. 어린양이 죽는 소리를 들어 보셨습니까? 평생 들어 본 것 가운데 가장 가슴 아픈 소리입니다. 어린양이 죽는 소리 말입니다. 그 가엾고 작은 어린양이 죽어 가며 피를 흘리고 울어 대고, 피가 이렇게 뿜어져 나와 작은 털을 흠뻑 적십니다. 하나님께서 내려다보시며 “그것이 옳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사람은 영적이었습니다. 앞으로 올 무언가를 내다보았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말하고 있었습니까? 천구백 년 전에 [불명확한 말] 그것은 약 사천 년이었습니다. 그 뒤 하나님의 어린양께서 갈보리산으로 끌려가셨습니다. 그곳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사람들은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았고, 치유를 위해 등을 때려 온몸에 채찍 자국을 내었습니다. 피 묻은 머리카락에서는 어깨로 피가 흘러내리고, 조롱하며 뱉은 침 덩어리가 온몸을 뒤덮었습니다. 그분께서 외치셨습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아담은 그 어린양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어린양은 다른 언어로 말하고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다른 언어로 말씀하시며 죽으셨습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완전하고 아름답고 거룩한, 거의 믿기 어려울 정도의 모형입니다. 그분께서 거기 계셨습니다. 얼마나 대조적입니까. 다른 쪽을 보십시오. 온갖 아름다움을 갖춘 가인, 훌륭하고 큰 제단, 영광스러운 경배를 보십시오. 아, 더할 수 없이 경건하고 아름답습니다.
여기에는 아벨이 있었습니다. 조그마한 양을 끌고 왔지만 별것 없었습니다. 그저 커다란 돌 하나가 놓여 있었고, 그는 작은 양을 내리쳐 그 생명을 빼앗고 있었습니다. 양이 울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무엇을 말하고 있었습니까? 아벨은 앞을 내다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었던 아담에게서 태어났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에게서 태어난 교회도 앞을 내다보고, 장차 올 보상과 상을 바라봅니다. 세상이 무엇이라 하든 개의치 않습니다. 우리를 얼마나 구식이라고 부르든, 이러니저러니 얼마나 말하든 상관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셨는지 알고, 그것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하게 두십시오.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언제나 특이한 백성이었습니다. 이제 보십시오. 다른 한 가지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서두르겠습니다. 이것을 보시기 바랍니다.
가인이 옵니다. 둘러보다가 아벨의 희생물이 받아들여진 것을 보고 질투했습니다. 오늘날에도 그런 일이 아주 많습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십시오만, 그렇습니다. 맞습니다. 질투입니다. “아, 저들은 멍청한 자들이야. 아무것도 아니야. 교육도 받지 못했어. 아무것도 모르는데... 저들이 어떻게 알겠어? 우리는 학위가 있어.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 알아.” 좋습니다. 계속 그러십시오. 눈먼 자가 눈먼 자를 인도하게 두면 모두 도랑에 빠질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다 알고 있지요. 그렇고말고요. 그러다가 그는 저쪽으로 갑니다. 무엇을 합니까? 질투가 나고 화가 납니다. 그것은 어디서 왔습니까?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 아닙니다. 마귀에게서 왔습니다. 그래서 나가 자기 형제를 죽였습니다.
여기서 짤막한 비유를 하나 보여 드리겠습니다. 많은 사람은 골고다에서 십자가 세 개만 보았습니다. 네 개가 있었습니다. 십자가가 네 개 있었습니다. 십자가는 나무였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기 예수님이 계셨고, 오른쪽에는 강도 하나, 왼쪽에는 강도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유다가 가서 돌무화과나무에 목을 맸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것도 예수님께서 달리신 것과 똑같은 십자가였습니다. 성경은 “나무에 달리는 자는 저주받았느니라”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 사람들은 그분을 나무, 곧 십자가에 매달았습니다. 없애기 위해... 우리를 위해 저주가 되셨습니다... [불명확한 말] 이제 보십시오. 여기에는 지옥에서 와서 다시 지옥으로 돌아가는 멸망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천국에서 오셔서 다시 천국으로 돌아가시는 하나님의 아들이 계셨습니다. 완벽하게, 유다와 예수님은 다시 육신으로 나타난 모습이었습니다. 유다와 예수님. 두 사람 모두 형제였습니다. 한 분은 목사였고 다른 하나는 회계 담당이었습니다. 왼쪽 강도는 “만일”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물음표를 단 것입니다. “네가 만일 그러하거든 너 자신과 우리를 구원하라. 네 능력을 보여라. 지금 기적을 한번 행해 보아라. 네가 만일 그러하거든.”
다른 강도는 말했습니다. “주여, 주께서 주의 왕국으로 들어오실 때에 나를 기억하옵소서.” 유다는 회개하지 않은 죄인을 데리고 지옥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회개한 죄인을 데리고 가셨습니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완벽합니다. 복음 설교자, 믿는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 상황을 거두어 가십니다. 그들은 그래도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대로 계속 나아갑니다. 이제 주목하십시오. 시간이 많지 않으니 서두르겠습니다. 잠시 더 보겠습니다. 잘 보십시오. 가인과 아벨에게서 두 나무가 시작됩니다. 자라 올라가는 모습을 보십시오. 바로 거기서 두 나무가 시작됩니다. 오늘날 우리는 바로 그 가운데 있습니다. 이것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바로 그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언제나 서로 대조를 이루었습니다. 홍수로 멸망하던 때의 방주를 보면, 비둘기가 있었고 까마귀가 있었습니다. 둘 다 새였습니다. 둘 다 같은 장소에 있었습니다. 아래층은 기어 다니는 것들이 있는 곳이었고, 중간층은 새들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노아도 바로 같은 부류 안에 있었습니다. 그 비둘기가... “나에게는 날개가 있어”라고 했을 것입니다.
까마귀도 “나도 있어”라고 했겠지요. 둘 다 새였지만, 하나는 하나님께 속했고 다른 하나는 마귀에게 속했습니다. 한 마리를 풀어 주었는데, 무엇을 먹으려 하는지를 보면 구별할 수 있었습니다. 까마귀는 죽은 짐승의 시체에서 다른 시체로 날아다니며 먹는 것으로 만족했습니다. 오늘날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면서도 여전히 예전처럼 담배 피우고 술 마시고 방탕하게 다니는 사람과 같습니다. 교회에 얼마나 많이 속해 있든 상관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여전히 죄인입니다. 그러나 비둘기를 풀어 주었을 때, 비둘기는 그 냄새를 견디지 못했습니다. 돌아와야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비둘기의 본성 때문입니다. 비둘기가 그런 것을 먹을 수 없었던 이유는 쓸개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을 소화하지 못합니다. 다시 태어난 그리스도인도 그렇습니다. 쓸개, 곧 쓴 것이 제거되어 더 이상 세상이나 세상의 것들을 소화할 수 없습니다. 아시겠죠? 그것은 모두 죽은 것입니다. 더 보십시오.
에서와 야곱이 있습니다. 잠시 그들을 봅시다. 에서는 야곱보다 훨씬 더 훌륭하고 신사다운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그리스도인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그렇습니다. 에서는 눈먼 늙은 아버지를 보살폈습니다. 가축을 쳤습니다. 사냥을 나가 사슴을 잡아 와서 늙은 아버지께 드렸습니다. 야곱은 그저 집에서 빈둥거리며 지내는, 조금 게으른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에게는 어떤 차이가 있었습니까? 야곱은 하나님께 받을 보상, 곧 그 장자권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오늘날의 완벽한 모형입니다. 누군가는 말합니다. “여기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에 다니고 일요일마다 빠짐없이 갑니다. 교회에 돈도 잘 냅니다. 도시에서 제일 좋은 교회에 속해 있습니다. 자녀들도 잘 교육합니다. 그런 일을 합니다.” 아주 훌륭합니다. 시민으로서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형제님, 그것은 그리스도교 신앙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조금도 없습니다. 교회에 다니십시오. 팜비치나 플로리다의 모든 교회 교적부에 이름을 올려 보십시오. 조금도 유익을 주지 못할 것입니다. 설교자가 조기를 달고 여러분이 천국에 갔다고 말해 줄 수는 있어도,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여러분은 잃어버린 자입니다.
이제 이것을 분명하고 바르게 해 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주목하십시오. 이어서 하나님께서 자기 종 야곱을 어떻게 입증하셨는지 보십시오. 어떻게 그를 이끌어 내시고, 그가 그분의 사람임을 표적과 이적으로 증명하셨는지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그분을 믿는 자들을 입증하셨습니다. 그것을 명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을 입증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얼마나 근본 교리에 충실한가가 아닙니다. 우리는 근본주의에 따라 심판받지 않습니다. 물론 저는 근본주의가 옳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얼마나 근본에 충실한지, 우리의 믿음에 얼마나 정통적인지에 따라 심판받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과 입증에 따라 심판받습니다.
주목하십시오. 여기에 아름다운 모습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올라옵니다. 이스라엘이 모압 땅으로 옵니다. 모압에 이르렀을 때, 그곳에는... 선지자, 곧 설교자가 하나 있었습니다. 큰일을 하는 위대한 사람이었습니다. 발락이 말했습니다. “이제 내려오시오. 여기 돈이 많이 있소. 내려와서 저 올라오는 광신자를 저주해 주면 주겠소. 이집트에서 올라와 내 땅을 지나가려는 저 ‘홀리롤러’라는 광신자 말이오. 와서 저주해 주시오.” 그가 종교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물론입니다. 발람은 계속 갔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십니까? 늙은 노새가 돌아서서 그에게 방언으로 말하며 정신을 차리게 하려고 했지만, 그는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내려갔습니다. 그곳에 도착했을 때, 그들이 얼마나 근본 교리에 충실했는지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그 모압 사람들은 믿지 않는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믿는 자들이었습니다.
왼쪽에는 가인, 오른쪽에는 아벨입니다. 성경을 따라 자라 올라가는 모습을 보십시오. 왼쪽에는 가인, 오른쪽에는 아벨입니다. 이제 보십시오. 선지자가 내려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므로 우리는 이 일에서 근본에 충실해야 합니다. 나를 위해 제단 일곱 개를 쌓으시오.” 바로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는 근본적인 면에서 옳았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거기에 수소 일곱 마리를 올려놓으시오.” 그것도 근본적으로 옳습니다. 성경이 말한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숫양도 일곱 마리 올려놓으시오. 언젠가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이기 때문이오. 그것을 위해 희생물을 바쳐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오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읽을 수 있는 그대로, 근본 교리에 충실했습니다. [녹음 공백]
근본 교리의 교사들이었습니다. 바로 저 아래 서 있는 이스라엘도 같은 수의 희생물, 똑같이 약속된 희생물을 바치고 있었습니다. 양쪽 모두 완벽하게 근본에 충실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 말씀뿐이라면, 한쪽도 다른 쪽만큼 옳았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제단 일곱 개를 요구하셨습니다. 수소 일곱 마리를 요구하셨습니다. 그분의 목적을 위해 숫양 일곱 마리를 요구하셨습니다. 일곱은 완전함입니다. 경배의 날, 칠 일 등등입니다. 그리고 칠천 년, 그다음에 천년왕국, 아니, 육천 년이고 일곱째가 천년왕국입니다. 성경의 모든 것은 모형입니다. 아시다시피 셋, 일곱, 열둘, 스물넷, 마흔, 쉰으로 나타납니다.
좋습니다. 이 일곱으로 드리는 경배에서, 근본적인 면으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만족하신 것처럼 이 근본주의자들이 가르치는 것에도 완벽하게 만족하셨습니다. 그러나 여기를 보십시오. 여기 한 무리의 신자들이 서서 그들의 형제 이스라엘을 질투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무엇 때문에 질투했습니까? 양쪽 모두 성경적으로 정확히 같은 일을 하고, 정확히 같은 교리를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아멘. 이제 정말 경건한 감동이 느껴집니다. 주목하십시오. 이것을 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이 나무들을 따라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몇 분 뒤에는 그것을 플로리다주 팜비치까지 가져올 것입니다. 좋습니다. 여기 있습니다. 곧장 플로리다주 팜비치로 가져와서 창세기부터 바로 여기까지, 그리고 요한계시록에서 끝나는 데까지 입증하겠습니다. 진리입니다. 그들이 여기 서 있습니다. 좋습니다.
이쪽 신자들이 저쪽 신자들을 질투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저쪽 신자들과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이유입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와서 나를 위해 저주해 주시오.” 그래서 희생물과 제단을 마련하고 그 위에 수소들을 올려놓았습니다. 큰 예복을 입은 통치자들과 위대한 박사들과 주교들과 대주교들이 모두 예복을 입고 둘러섰습니다. [녹음 공백] 연기 피어오르는 희생물들 주위에 말입니다. “오, 위대하신 여호와여. 우리 땅은 저 홀리롤러 무리로 더럽혀지기를 원치 않습니다. 아, 이쪽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해 주십시오.” 누군가 말했습니다. “그들이 홀리롤러였습니까?” 물론 홀리롤러였습니다. 그랬느냐고요? 그들이 건너 나왔을 때... 그 말에 화내지 마십시오. 그들이 이집트에서 나와 분리의 홍해, 곧 예수님의 피를 나타내는 바다를 건너왔을 때, 여선지자 미리암과 선지자 모세가... 모세는 영으로 너무나 충만해져서 두 손을 들고 영 안에서 노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미리암은 너무 기뻐서 탬버린을 집어 들고 치기 시작했습니다. 춤을 추기 시작했고, 이스라엘의 딸들도 그녀를 따라 강둑을 내려가며 영 안에서 춤췄습니다. 그것이 홀리롤러가 아니라면 저는 그런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그들은 홀리롤러였고, 그들의 집회에는 신유가 있었습니다. 홀리롤러였습니다.
그들에게는 맞은 반석과 놋 뱀이 있었고, 따라가는 불기둥이 있었습니다. 홀리롤러였습니다. 물론입니다. 그들 가운데 표적과 이적과 기적이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나 근본적인 면에서, 이쪽 근본주의자 무리도 저들만큼 말씀의 근본에 충실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을 입증하고 계셨습니다. 할렐루야! 바로 그것입니다. 오 하나님, 긍휼을 베풀어 주십시오. 오늘날 사탄이 사람들의 눈을 얼마나 멀게 했는지 생각하면 [불명확한 말]. 그들도 똑같이 경건하게 희생물을 바쳤습니다. 만일 이스라엘이 올라와서 “잠깐만요. 성경으로 증명해 드리겠습니다”라고 했다면, 한마디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곧바로 이스라엘의 입을 막았을 것입니다. 그들에게도 말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근본주의 신자도 여러분의 입을 막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내게는 말씀이 있습니다. 말씀이 그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복 주시기를.”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잠깐,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입증해 주셨습니까? 여러분의 교회에는 표적과 이적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그런 곳에 거하십니다. 그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여러분은 표적과 이적을 봅니다. 그분은 창조주이시며,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그런 분으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오후 여러분이 앉아 있는 이 세상을 만드셨습니다. 그분께서 하신 일은 그저 “있으라”고 말씀하신 것뿐입니다. 여러분이 앉아 있는 이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이 실체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분은 없는 것들을 있는 것처럼 믿으셨습니다. 그분 자신의 말씀이 “있으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에게서 다시 태어난 사람,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누구든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상황이 어떠하든 그대로 믿습니다. 모든 교사와 박사들이 어디에 있든, 무엇이든, 온 세상이 이렇다 저렇다 하든 상관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으므로 참이라고 믿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됩니까?”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성령을 받으시겠습니까?”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받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그들이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내쫓고 새 언어들로 말하며, 뱀들을 집어 올리고 치명적인 것들을 마시며,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 사람들이 나으리라.”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아, 우리는 말합니다. “오늘날 믿는 사람은 교회에 가고 십일조를 내는 사람입니다. 자기 좌석이 있습니다. 교회에 창문을 달아 줍니다. 좋은 사람입니다.” 성경은 그것을 믿는 자라고 한마디도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우리 전통을 택하여 하나님의 법을 무효로 만든 것을 아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그들이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내쫓고 새 언어들로 말하며, 뱀들을 집어 올리거나 치명적인 것들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 사람들이 나으리라.”
얼마 전 어떤 젊은이가 묘지로, 아니 신학교로 갔습니다. 거의 같은 곳이지요. 그가 무엇을 얻으려고 떠났는데... 늘 신학교 출신 목사입니다. 저는 신학교를 반대하지 않습니다. 저도 얼마간 교육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늘 부화기에서 나온 병아리가 생각납니다. 기계로 부화한 병아리는 “삐악, 삐악, 삐악” 해도 찾아갈 어미가 없습니다. 그들이 배우는 것은 신학뿐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령침례입니다. 성령을 대신할 자리에 신학을 받아들였다니 부끄러운 일입니다. 아멘. 제가 여러분의 귀를 먹먹하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저 자신은 복을 받고 있습니다. 좋습니다. 저 혼자뿐이라 해도 속에서 벅차오르고 있습니다. 보십시오. 아, 참! 오늘 오후 팜비치 전체가 옛날식 집회에서 하나님께 두 손을 들고 찬양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권능이 이곳을 휩쓸 것입니다. 이곳이 얼마나 바짝 마르겠습니까. 앞으로 며칠 안에 누가 히힝거리는 소리를 내려 해도, 밀주 장수는 침 뱉을 만큼의 물기를 모으려면 삼십 분 동안 마중물을 넣어야 할 것입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옛날식 성령 집회입니다. 그것이 문제를 해결할 것입니다. 아멘. 농담으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저는 강단에서 농담하는 것을 옳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진실입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근본 교리입니다. 물론입니다. 그도 다른 사람만큼 근본 교리에 충실했습니다. 그도 똑같이 근본적으로 옳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보십시오. 발락 왕이 “자, 이쪽을 보시오”라고 말하며 이스라엘의 맨 끝부분을 보여 주었습니다. 우리도 신유를 전하고 하나님의 복을 믿는 사람들을, 그 맨 끝부분만 보고 있지는 않습니까? 제 생각에는 그가... 이 남자가 저 남자의 아내와 달아났다는 것입니다. 우리 침례교인들과 감리교인들도 똑같은 일을 하면서 그저 조용히 덮어 두지는 않았습니까? 제게 아니라고 하지 마십시오. 저는 여러분과 함께 있어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실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렇고말고요. 물론입니다. 형제님, 말씀드리겠습니다. 죄는 어디에 있든 죄입니다.
이를테면 아들을 설교자로 만들려고 신학교에 보낸 이 소박한 어머니처럼 말입니다. 아, 참! 괜찮습니다. 저는 좋은 일이라고 믿습니다. 물론입니다. 훌륭하고 영적인 학교라면 보내십시오. 하지만 차갑고 형식적인 저 영안실 같은 곳으로 데려간다면... 영안실이 무엇인지 아시지요. 누가 죽으면 데려가서 무언가를 주입하여 죽은 상태로 보존하는 곳입니다. 꼭 그와 같습니다.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을 모조리 빼내고 신학을 가르친 뒤, 처음 왔을 때보다 더 나빠진 모습으로 집에 돌려보냅니다. 그렇습니다. 그런 작은... 그런 신학교 중 하나에 갔는데, 그 소박한 어머니가 병이 났습니다. 폐렴에 걸려 죽을 것 같았습니다. 앞으로 스물네 시간 안에 나아지지 않으면 집으로 와야 한다고 아들에게 연락했습니다. 그런데 그러고 나서 어머니가 편지를 쓰지 않았습니다. 몇 주 뒤 아들은 휴가를 얻어 집으로 왔습니다. 어머니는 괜찮다고 편지를 보내기는 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어머니, 여쭤볼 게 있어요. 사랑하는 어머니, 어떻게 그렇게 빨리 나으셨어요? 의사가 무슨 약을 드렸나요?”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아들아, 네가 모르는 이야기를 해 주마. 여기 시내의 작은 선교소 말이다. 네가 광신자들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경배하는 곳, 알지?” “네, 알아요.”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그곳 여자가 내가 아프다는 말을 듣고 찾아왔단다. 의사는 이미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했어. 양쪽 폐가 모두 막혔으니 그저 견뎌 내야 한다고, 내가 하룻밤도 못 넘길 거라고 생각했지. 그런데 그 여자가 그 말을 듣고 와서 ‘우리 목사님이 오셔서 기도해 주시게 하지 않겠어요? 신유를 믿으시는 분이에요. 당신도...’라고 했어.” “그래서 나는 ‘아, 저는 그런 건 전혀 몰라요’라고 했지.” “그 여자가 ‘우리 목사님이 오셔서 이야기하게 해 주세요’라고 하더구나.”
“그래서 목사님이 오셨단다. 마가복음 3장 6절, 마가복음 16장을 읽어 주시면서 ‘너희 가운데 병든 자가 있느냐?’ 하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씀하셨어.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 사람들이 나으리라’고 말이다.”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그분이 성경에서 그것을 읽어 주시기에 나는 ‘성경에 있다면 참말이지요’라고 했단다. 그래서 나를 위해 기도하시고 안수해 주셨어. 그런데 아들아, 다음 날 아침에 나는 완전히 나았단다.” 그가 말했습니다. “아, 어머니는 모르셔서 그래요. 저 광신자들은 학교에 다니지 않아요. 아무것도 몰라요. 우리는 신학교에서 그보다 더 잘 배웠어요.”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아, 그래?” 그가 말했습니다. “그럼요. 신학교에서 배우기를, 마가복음 16장 9절부터는 영감으로 기록된 것이 아니래요. 영감받은 말씀도 아니에요.” 그 소박한 여인이 말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할렐루야!” 그가 말했습니다. “어머니, 왜 그 사람들처럼 행동하세요?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네요.”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아들아, 할렐루야!” 그가 말했습니다. “어머니, 왜 그러세요?”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단다. 하나님께서 영감받지 않은 말씀으로 나를 고치실 수 있다면, 정말 영감받은 말씀으로는 무슨 일을 하실 수 있을까?”
아멘. 그렇습니다. 영감받지 않은 것으로 그런 일을 하실 수 있다면, 정말 영감받은 것으로는 어떻겠습니까? 형제님, 성경은 모두 영감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저는 그 어느 부분에라도 제 혼을 걸겠습니다. 진리입니다. 문제는 우리의 게으름 때문에 믿음으로 하나님의 요구에 응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이제 마치기 전에 이것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여기 근본주의자들이 왔습니다. 아, 그들은 저쪽에 저주를 내리려 했습니다. 그에게 맨 끝부분을 보여 주었습니다. 선지자는 떠나갔습니다. 영을 찾으려고 비유를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영을 찾았을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 입에 넣어 주는 말 외에는 아무 말도 하지 말라.” 그가 말했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모압으로 돌아갔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이제 왕이 얼마나 추한지 그에게 보여 주시오. 신유를 믿는 저 아래 광신자 무리, 치유를 위한 저 놋 뱀을 가진 자들이 얼마나 나쁜지 말이오.” 그들은 병이 나면 그것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면 나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에게는 복이 있었습니다. 목마르면 반석으로 가서 마시고 그저 기뻐했습니다. 아주 요란하게 행동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불기둥이 그들 위에 머물렀습니다. 하나님의 복이 그들과 함께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저들이 얼마나 나쁜지 보시오.” 그렇습니다.
그러나 선지자가 돌아왔을 때, 하나님께서 그 선지자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야곱에게 불법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그를 맨 끝부분에서 보지 않는다. 산꼭대기에서 그를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야곱 안에서 아무 불법도 발견하지 못했다.” 왜 그렇습니까? 그곳에 그분의 입증이 있었습니다. 그분의 권능이 있었습니다. 맞은 반석과 놋 뱀, 그들 앞서 가는 속죄가 있었고, 그들 위에는 하나님의 표적이 있었으며 표적과 이적이 있었습니다. 아시겠죠? 가인과 아벨 때부터 똑같은 일입니다. 근본 교리만이 아닙니다. 근본 교리도 있지만, 믿는 자에게 표적들이 뒤따릅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예수님께로 계속 올라와 보십시오. 잠시 그분을 보십시오. 아, 저는 그것을 생각합니다. 그분께서 오셨을 때 어떠했습니까? 당시 제사장들과는 의견이 맞지 않았지만, 교리의 근본에 충실하셨습니다. 기억하십시오. 그 제사장들은 건달이 아니었습니다. 신사들이었습니다.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있는 학자들 못지않은 학자들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분께서 무엇을 하셨기 때문입니까? 그들의 교회를 뒤흔드셨습니다. 그들의 신조를 무너뜨리셨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너희 전통을 택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무효가 되게 하였다. 풀숲에 숨은 뱀 같은 무리들아.” 아, 참! 그들이 말했습니다. “아, 이제는 두고 볼 수 없소. 그런 말을 들으러 가는 사람은 누구든 자기 교적 서류를 가지고 나가 버리시오.”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씨들은 그대로 자라나고 있습니다. 나무들도 똑같이 계속 자랍니다. 그들은 그분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왜 그분은 옳으셨고 나머지 사람들은 틀렸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분과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은 뒤, 사도행전 2장 4절, 사도행전... 제 말은 2장 24절입니다. 거기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나사렛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그를 통하여 너희 한가운데서 행하신 표적들과 이적들과 기적들에 의해 하나님께서 너희 가운데서 확증하신 사람이시니라.” 그들이 그분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알았던 것은 그것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분과 함께하시며 표적과 이적을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물러앉아 말했습니다. “기적의 시대는 지나갔어. 그런 것은 없어. 저자는 독심술사야. 광신자야. 아무것도 아니야. 우리 교회와 같은 것을 믿지도 않아. 어느 교회에도 속하지 않았어.” 그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분께서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곳에 머무셨습니다. 다른 것은 상관없었습니다. 타협하지 않는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요한처럼 도끼를 나무뿌리에 대고, 나뭇조각이 어디로 튀든 내버려 두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침례자 요한 같은 옛 설교자입니다. 아멘. 도끼를 나무뿌리에 대고 분명히 말할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맞추든지 아니면 물러나라는 것입니다. 아멘.
그들이 말씀에 맞춘다면,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영적인 표적과 이적으로 그것을 입증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신학을 받아들였습니다. “자, 우리는 좀 더 잘 압니다. 우리는 그런 광신자들이 아니니, 그저 기다리겠습니다.” 아시겠죠? 피도, 그 밖의 모든 것도, 권능과 표적과 이적도 모두 설명으로 없애 버렸습니다. 그러니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친목 단체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말씀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드리겠습니다. 오늘 아침 이 도시에서 여러분의 큰 교회 하나를 지나갔습니다. 거기에... 제 눈에는 교회가 가득 찬 것 같았는데, 교인들의 이삼십 퍼센트가 예배와 예배 사이를 기다리며 밖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습니다.
며칠 전, 제 좋은 친구인 침례교 설교자 셰이퍼 박사가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귀하고 경건하고 사랑하는 형제님입니다. 침례교만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감리교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동역 목사는 애즈버리 대학 출신 감리교인인데, 경건하고 다시 태어났으며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또 나이 든 모르드개 F. 햄 같은 많은 옛 침례교인들도 성령으로 충만합니다. 물론입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긍휼을... 옛날 켄터키에서 우리 침례교인들이 성령을 받았을 때에는 여러분처럼 받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걸어 나와 설교자와 악수하고, 침례를 받고, 교적부에 이름을 올립니다. 우리는 제단 앞에 엎드려 성령을 받을 때까지 서로 등을 두드려 주었습니다. 형제 여러분, 우리는 무언가를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맞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침례교인들이 더 많아지는 것입니다.
그 침례교 설교자가 바로 제 앞에 앉아 말했습니다. 형제님,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교인 열 명은 완전히 술주정뱅이입니다. 이 교회 교인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다른 남자의 아내와 살고 온갖 일을 합니다. 내가 그들을 내보내려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여러분 교인들이 나를 내쫓을 겁니다.” 오늘날 이렇게 되어 버렸습니다. 교단들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불러내어 교회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할렐루야! 교회라는 말 자체가 ‘불러냄을 받은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내 백성아, 그 가운데서 나오라. 하나님이 말하노니 너희는 분리되라. 그러면 내가 너희를 받아들이리라.” 그 일은 여러분 교단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교단 교회 시대는 조금 모세와 같습니다.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 대신 자기를 영화롭게 하다가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줄곧 그의 곁에 있었고,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으로 건너가게 했습니다. 오늘날 교회 교단은 “누가 교인을 가장 많이 모을 수 있는가? 누가 이 사람을 가입시킬 수 있는가?”를 좇아갑니다. “44년에 백만 명 더!” 온갖 구호를 외칩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람들을 얻고 나면 무엇이 있습니까? 할렐루야! 하지만 여호수아, 곧 표적과 기적과 권능은 줄곧 교회와 함께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풀어놓기를 두려워합니다. 교회를 휴거 때 영광으로 데려갈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겁내지 마십시오. 그것은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뜻입니다. 아시겠죠? 아닙니다. 그것은 여러분을 해치지 않습니다.
형제님, 주목하십시오. 얼마 전 아프리카에서 돌아온 뒤 브리티시컬럼비아에 갔습니다. 보스워스 형제님, 저는 너무 지쳐서 거의 서 있을 수도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저를 그곳으로 짧은 여행에 데려가려고 했습니다. 저는 도슨크리크에서 인디언과 에스키모 사람들에게 설교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들은 제가 사냥꾼이고 사냥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그곳 산에 들어가려 했습니다. 홀로 하나님과 함께하며 바라보고 경배하려 했습니다. 얼마 전에는 콜로라도의 산속에 앉아 있었습니다. 엘크 사슴을 사냥하고 있었는데 이른 가을이어서, 아직 엘크가 내려올 만큼 눈이 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곳에 앉아 있었고, 아,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얼마나 불타올랐는지 모릅니다.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삼십오 마일이나 사십 마일쯤 떨어져 있었고, 말 다섯 마리쯤에 짐을 실어 갔습니다. 그 깊숙한 곳에 혼자 있었습니다. 제가 걷고 있는데 폭풍이 몰려왔습니다. 한동안 비가 내리다가 바람이 불고, 잠시 얼어붙었다가 해가 나옵니다. 가을 산의 날씨가 어떤지 여러분도 아시지요.
저는 소총을 들고 걷고 있었습니다. 큰비가 쏟아져서, 나무와 오래전에 쓰러진 나무 뒤로 들어가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습니다. 그곳에서 고개를 숙이고 서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오 하나님, 얼마나 놀라우신지요. 주님은 산의 하나님이십니다. 골짜기의 하나님이십니다. 어디에나 계십니다.” 폭풍이 한바탕 몰아쳤습니다. 얼마 뒤 바람이 너무 차가워서 바라보니, 해가 저쪽 산의 틈 사이로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상록수들이 얼어붙은 곳을 따라 큰 무지개가 골짜기에 걸렸습니다. 아, 참! 저는 하나님께서 어디에나 계신다고 믿습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 무지개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예, 주님. 제가 이 깊은 산속에 있습니다. 저 무지개 속에서 주님을 봅니다. 물론입니다. 주님께서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에서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앉아 계신 그분을 바라보니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시며, 그 위에는 언약의 무지개가 있었습니다.” 아, 저는 기뻐하기 시작했습니다.
곧이어 이쪽 위에서 늙은 회색 늑대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래 골짜기에서 짝이 응답했습니다. 제 어머니는 인디언 혼혈입니다. 저도 그 피를 어느 정도 이어받아서, 깊음이 깊음을 부르는 그 소리와 야생을 사랑합니다. 이 아래에서 엘크 무리의 소리를 들었고, 저쪽에서는 짝이 응답했습니다. 아, 저는 소리치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오 하나님, 여기서 영원히 살게 해 주십시오. 여기 머물게 해 주십시오. 저는 이렇게 살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여기 살게 해 주십시오.” 저쪽에서 늑대가 울부짖는 소리를 들어 보십시오. 제 안에서 무언가가 움직였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 얼마나 영광스럽고 놀라운지. 오 하나님, 주님은 이 산꼭대기에 살고 계십니다.” 그때 작은 소나무다람쥐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떤 것인지 아실지 모르겠습니다. 이만한 조그마한 녀석입니다. 숲에서 가장 시끄러운 녀석입니다. 낡은 그루터기 위에 앉아서 “짜르르, 짜르르, 짜르르, 짜르르, 짜르르, 짜르르, 짜르르” 하며 저를 갈기갈기 찢을 것처럼 울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얘야, 뭐 때문에 그렇게 흥분했니?”
바로 그때, 바람에 쓰러진 그 오래된 나무 밑에서 커다란 독수리가 나왔습니다. 아, 얼마나 위엄 있게 생긴 큰 새였는지요. 거기에 앉아서 크고 부드러운 눈으로 둘러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 저것 때문에 겁을 먹었구나.”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주님, 제가 여기 서서 주님을 경배하고 야생의 부름을 들으며 경배하고 있는데, 어떻게 주님께서...?” 저는 하나님께서 어디에나 계신다고 믿습니다. 보고자 하면 어디서든 그분을 볼 수 있습니다. 그분은 사방에 계십니다. 지금 여기 제 손 위에 비치는 빛만큼이나 분명하게 느낄 수 있는 분이십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왜 저 독수리를 제 앞에 두셨습니까? 죽은 짐승을 먹는 새인데, 왜 저 독수리가 여기 올라와 이 시간을 깨뜨립니까?” 그러고는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주님을 바라보겠습니다. 저 독수리에게 무슨 좋은 점이 있습니까?”
그 독수리가 거기에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가만히 저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 나를 무서워하는구나.” 제가 말했습니다. “이봐, 내가 너를 쏠 수도 있다는 걸 아니?” 녀석은 큰 눈을 번뜩이며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저를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또 그 작은 다람쥐를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렇게 계속 서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너를 그렇게 용감하게 만드는 거니? 이해가 안 되는구나.” 제가 말했습니다. “하나님, 주님께서 용기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압니다. 자신의 확신을 지키는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옳다는 것을 알면 그 자리에 서서 버텨야 합니다. 주님께서 용기를 사랑하시는 줄 압니다. 무엇이 저 독수리를 저렇게 용감하게 합니까? 저 녀석이 용감하다는 것은 압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내가 너를 쏠 수도 있다는 걸 아니?” 하지만 녀석은 제게 기회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제 소총은 나무에 기대어 있었습니다. 제가 소총에 이렇게 손을 얹었습니다. 녀석이 저를 흘끗 보는 것이 보였습니다. 큰 눈을 딱 고정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무엇 때문에 저렇게 용감할까?” 그러다가 녀석이 줄곧 날개를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문득 알아차렸습니다. 이제 알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날개 두 개를 주셨고, 녀석은 크게 한 번 뛰어 날개를 두어 번 퍼덕이면 제가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벗어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자기 날개를 신뢰했습니다. 그 날개가 자기를 그곳에서 데리고 나갈 것을 알았습니다. 날개가 거기에 있는 것이 느껴지는 한, 제가 소총에 얼마나 손을 대든, 작은 숲 다람쥐가 얼마나 시끄럽게 울어 대든 개의치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날개 두 개를 주셨고, 녀석은 그것을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정말 그렇구나. 마귀가 무엇이라 하든, 내 주위에 성령께서 계신 것이 느껴지는 한 누가 무슨 말을 하든 상관없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복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성령을 주셔서 모든 것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정말 모든 것에서 말입니다. 죽음조차 여러분을 해칠 수 없습니다. 할렐루야! 언젠가 저는 날아갈 것입니다. 그곳의 독수리를 보며 말했습니다. “독수리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제가 그렇게 바라보는데, 녀석은 앉아서 계속 재잘거리는 그 작은 다람쥐가 지겨워졌습니다. 제가 자기 친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가 자기를 해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작은 다람쥐를 바라보더니, 그저 지겨워져서 이렇게 크게 한 번 뛰고 날개를 두 번쯤 퍼덕였습니다. 그러고 무엇을 했는지 아십니까? 그저 날개를 펼쳐 고정하자, 어느새 솟아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날개를 퍼덕이지 않았습니다. 그저 펼쳐 고정했을 뿐입니다. 산 위로 기류의 물결이 밀려올 때마다 그것을 타고 올라갔습니다. 올라갔습니다.
저는 그곳에 서서 아기처럼 울었습니다.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주님. 주님을 찬양합니다.” 누가 거기에 있었다면 정신병원에서 나온 사람이 산에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저는 목청껏 소리를 지르며 온 힘을 다해 나무 둘레를 돌고 또 돌고 또 돌았습니다. 누가 무엇이라 생각하든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었습니다. 제게는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어쨌든 저는 가끔 그런 식으로 마음이 격해질 때가 있습니다. 경배하면서 말입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 저 큰 녀석을 보라. 저 많은 사람처럼 퍼덕이고 애쓰고, 또 퍼덕이고 애쓰지 않는구나.” 그런데 사람들은 “아, 사람들이 나를 제대로 대우하지 않아. 내 것을 가지고... 침례교로 가야겠어. 침례교도 나를 제대로 대우하지 않는군. 오순절교로 가야겠어”라고 합니다. 그렇게 여러분은 교적 서류를 여기저기 들고 다닐 뿐입니다. 닳아 버렸습니다. 왜 그것을 천국에 두고 잊어버리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런데 독수리는 무엇을 했습니까? 날개를 퍼덕이지 않았습니다. 그저 날개를 어떻게 펼쳐 놓고 힘이 밀려올 때 그것을 타는지 알았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오 하나님, 주님의 권능 안에서 날개를 펼쳐 놓을 줄 아는 믿음을 주십시오. 그래서 이 땅에 매인 재잘거림에서 벗어나 올라가게 해 주십시오.” 재잘거리는 소리가... 작은 다람쥐는 이런 식으로 말합니다. “짜르르, 짜르르, 짜르르. 기적의 시대는 지나갔어. 신유 같은 것은 없어. 그런 것은 없어... 사도 시대는 끝났어.” 독수리는 그저 그것을 벗어나 올라갔습니다. 퍼덕이지 않았습니다. 그저 날개를 펼쳐 놓고 타고 올라갔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이것이 참된 것이 아니라면 저는 참된 것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것을 벗어나 올라가십시오. 그저 날개를 펼쳐 놓으십시오. 하나님의 권능이 밀려오면 그것을 타고 올라가십시오. 하나님의 권능이 움직여 오면 그것을 타고 더 올라가십시오. 어느새 그들의 소리조차 들리지 않게 됩니다. “우리 교회에 속하지 않으면, 여기 속하지 않으면 당신은...” 하는 소리 말입니다. 여러분은 그저 그것을 벗어나 올라갑니다. 계속, 계속, 계속, 계속 올라갑니다. 아, 얼마나 놀랍습니까.
브리티시컬럼비아를 지나 내려오면서 커다란 회색곰을 사냥하고 있었습니다. 포장도로에서 천백 마일이나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렇게 깊이 들어갔다가 방향을 잃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빠져나가는 길을 찾을 거야. 시간만 충분히 있으면...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시니까.” 그 깊은 곳에서 길을 잃었고, 어두워지고 있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는 알아. 작은 지점 하나를 찾으면 돼.” 그래서 출발했습니다. 시간이 아주 늦어 달이 나왔고, 저는 옛날에 불탄 지역을 지나갔습니다. “참 이상하네” 하고 생각했습니다. 달이 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나가다가 문득 보니... 으스스했습니다. 불에 타서 껍질이 부풀어 오른 커다란 나무들이 있었습니다. 한때는 높이 솟은 큰 소나무들이었습니다. 이제 겉옷을 입으십시오. 높이 솟은 큰 소나무들이 그곳에 살아 서서 여러 일을 하고 있었지만, 불이 와서 모두 태워 버렸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주님, 이것은 무엇입니까?”
곧 말을 세워 매어 두었습니다. 밤 아홉 시쯤이었습니다. 둘러보니 달빛이 불에 타 껍질이 부푼 그 오래된 나무들을 비추었습니다. 어딘가 묘지에 있는 비석들이 생각났습니다. 바람이 하늘에서 내려와 불기 시작하더니, 더없이 애처로운 소리를 냈습니다. “우우.”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 정말 으스스한 곳이구나.” 그렇게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아, 참. 저것을 봐. 주님, 왜 저를 여기에 멈추게 하셨습니까?” 사방을 둘러보았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래, 맞아.” 요엘이 한 말이 생각났습니다. “쐐기벌레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었고, 메뚜기가 먹은 것을 털벌레가 먹었으며, 하나가 남긴 것을 다른 하나가 먹었다.” 그런 식으로 마침내 모두 먹어 치웠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이것이 다시 살겠는가? 이런 일이 다시 이루어지겠는가?” 저는 생각했습니다. “요엘이 말한 것이 이것이구나.” 그러고는 생각했습니다...
자세히 보며 알아차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바람이 다시 와서 “우우우” 소리를 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우리 교회들이 바로 이렇게 되었구나.” 오래전 감리교와 침례교는 큰 부흥회와 치유 대전도 집회를 열었습니다. 감리교인 여러분, 제게 아니라고 하지 마십시오. 저는 여러분의 역사를 읽었습니다. 감리교가, 웨슬리가 이곳에 왔을 때에는 들어갈 곳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크고 뻣뻣하게 굳은 교회들이 이미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갔기 때문에, 그도 이곳 같은 장소나 구할 수 있는 작은 학교 건물에서 해야 했습니다. 웨슬리에게는 부흥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성령침례를 받아 바닥에 쓰러지면, 다른 사람들이 그 얼굴에 물을 끼얹고 부채질해 주었습니다. 그들은 밤새 바닥에 누워 있곤 했습니다. 허! 물주전자가 있었다니 안타깝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끝내 성령을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아시겠죠? 사람들은 그의 얼굴에 물을 끼얹으며 흔들었습니다. “아, 기절했어. 기절했어.” 성령께서 그에게 역사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아직 이런 것들을 알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아시겠죠? 그렇게 그가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얼마나 큰 부흥이 있었습니까. 누구도 그들에게 부흥이 없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분명히 부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그 큰 교회들은 말합니다. “나는 교회입니다. 이래라저래라 하지 마십시오. 미국 정부의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을 가지고 있습니까? 죽고, 불에 그슬려 껍질이 부풀었습니다. 과거의 모습이 남긴 흔적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의 급하고 강력한 바람을 교회 가운데 보내실 때마다 여러분은 말합니다. “우우우, 기적의 시대는 지나갔어. 신유 같은 것은 없어. 우우우. 저건 강신술이야. 저건 마귀야. 우우우. 저런 말 들으러 가지 마. 하나님은 이제 사람들을 고치지 않으셔. 기적의 시대는 지나갔어.” 성령께서 그들 가운데를 지나가실 때 일어나는 일이라고는, 그들이 신음하고 끙끙거리며 소란을 피우는 것뿐입니다. 아, 형제님, 이 말은 깊이 들어갔지요? 속 한가운데까지 쑥 들어간 것이 느껴졌습니다. 제가 가 닿기를 바란 곳이 바로 거기입니다. 좋습니다.
그런데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일어나는 일이라곤 그것뿐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요엘서에서 ‘주가 말하노라. 내가 회복시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문득 뒤를 돌아보니, 그 나무들 아래에서 또 다른 나무들이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작디작은 나무들, 어린 소나무며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돋아나고 있었습니다. 바람이 그 나무들에 닿을 만큼 낮게 내려오자, 형제님, 그들은 뻣뻣하게 굳어 서 있지 않았습니다. 생명이 있었기 때문에 그저 바람에 몸을 맡겨 흔들리며 뛰놀고 기뻐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할렐루야. 주가 말하노라. 내가 회복시키리라. 또 다른 교회를 일으키리라. 저들이 뻣뻣해져 하나님의 권능을 부인하면, 나는 그것을 받아들일 다른 사람들을 일으키리라.” 할렐루야! 후! 아멘. 여러분은 제가 미쳤다고 생각하실지 모릅니다. 그렇다 해도 그냥 두십시오. 저는 이대로 행복합니다. 세상에 속해 있었을 때보다 지금이 더 낫습니다. 그러니 그냥 두십시오. 저는 괜찮습니다. 아무도 해치지 않습니다.
형제님, 들으십시오. 여러분에게 이것이 있다면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께서 이끄시는 것입니다. 그들은 뻣뻣하게 굳어 있지 않습니다. “나는 그런 것들은 믿지 않아. 우우우.” 그 작은 나무들은 아주, 아주 유연해서 그저 바람에 몸을 맡기며 흔들렸습니다. 기뻐하며 뛰놀았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이 모습은 훌륭한 옛날식 성령 부흥회 같구나.” 정확히 그렇습니다. 감리교와 침례교와 그 모든 교회 바로 아래에서 돋아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주가 말하노라. 내가 회복시키리라.” 거기... 아, 형제님. 오늘날 교회에 필요한 것은... 벗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가 초자연적인 일들에서, 성도들에게 한 번 전달된 믿음에서 벗어날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그 교회를 선반 위에 밀어 두시고 앞으로 나아가 다른 사람을 택하여 계속 가십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교회 역사를 연구하십시오. 어느 시대든 기적과 표적과 신유와 하나님의 권능이 없이 부흥이 있었는지 알아보십시오. 모든 부흥에는 그것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그 교회가, 이십 년쯤 지나거나 개혁자들이 두어 차례 지나가면, 사람들은 그들의 발자취를 따랐고 교회는 형식적으로 굳어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교회를 선반 위에 두시고 다른 것을 일으키셨습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여기에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나무들이 자라 올라오는 것입니다. 그 나무가... 아,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우스꽝스러워 보이는지요.
잠시만 양해해 주시면 한 가지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떤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한때 하나님께서 이집트에 있는 백성을 구출하려고 하셨습니다. 광야 저편에 모세라는 여든 살 노인을 두고 계셨습니다. 어느 날 아침 그가 이리저리 걸어 다녔습니다. 그는 늙은... 믿음에서 물러나 있었습니다. 그곳으로 돌아가 에티오피아 여자와 결혼했고 어린아이 둘을 두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그곳에서 양을 치며 주님을 찬양하고 있는데, 주님께서 불타는 떨기나무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자, 모세야. 내가 너를 이집트로 보내겠다.” 세상에서 가장 막강한 기계화 부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가 있는 곳입니다. “너를 그곳으로 보내 장악하게 하겠다.” 그가 말했습니다. “주님, 저는 갈 수 없습니다. 가지고 갈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가 말했습니다. “막대기입니다.”
얼마나 작은 것입니까. 얼마나 중요한 것입니까. 오늘 여러분의 손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막대기조차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간증할 수 있습니다. 노래할 수 있고, 전도지를 나누어 줄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말해 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손에 무엇이 있든, 나가서 그것으로 무언가를 하십시오. 움직이십시오. 자, 시작합시다. 부흥이 움직이게 합시다. 이 좌석들을 채웁시다. 사람들이 구원받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합시다. 이 주변 교회들을 세워 불붙게 합시다. 감리교와 침례교, 우리 모두 함께 말입니다. 세워 나갑시다.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 이루어 봅시다. 물론입니다. 모세가 말했습니다. “주님, 막대기입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좋다. 이제 그것을 네 손에서 던져라.” 모세의 손에 있을 때에는 대단한 것이 아니었지만, 하나님의 손에 들어가자 심판의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한 어린 소년이 물고기 다섯 마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소년의 손에 있을 때에는 대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손에 들어가자 오천 명을 먹였습니다. 여러분이 가진 것도 여러분 손에 있을 때에는 대단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번 그분께 드려 보십시오. 여러분에게 있는 작은 재능을 그분께 드리십시오. 그분의 손에서 무엇이 되는지 보십시오. 그렇습니다. 모세가 말했습니다. “좋습니다, 주님. 가겠습니다.” 상상해 보시겠습니까? 짤막한 극으로 그려 봅시다. 다음 날 아침입니다. 여든 살 노인이 옵니다. 수염은 이렇게 늘어져 있고, 몸은 작고 야위었으며, 손에는 휜 막대기를 들고 있습니다. 작은 노새를 끌고 가는데, 그 위에는 여자가 걸터앉아 양쪽 허리에 어린아이 둘을, 한쪽에 아이 하나를... 그렇게 이집트로 내려갑니다. 누군가 말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모세, 어디로 가시오?” “하나님께 영광! 이집트로 내려가서 장악하려고 하오.” “장악한다고? 장악한다고? 우스꽝스럽군.” 그들은 말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훈련받은 병사 백만 명이 있소.”
“상관없소. 하나님께서 이 막대기를 들고 내려가 장악하라고 하셨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나는 그렇게 하겠소.” 정말 우스꽝스러워 보였지만, 그는 해냈습니다. 할렐루야!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스꽝스러운 것을 사용하여 그분의 권능을 증명하십니다. 할렐루야! 저는 그것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없는 것들을 택하여 있는 것들을 쓸모없게 하십니다. 아멘. 물론 그렇게 하십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분이 이것으로 어떻게 이런 일을 하시겠습니까?”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일은 순종하는 것입니다. 삼손이 그곳에 서 있습니다. 어느 날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쫓아왔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기름부음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나실인이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그에게 들이닥쳤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내게 왔다.” 둘러보았지만 그는... 전사가 아니었습니다. 칼을 쓸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노새의 턱뼈 하나를 발견하고 그 노새 턱뼈를 집어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임하시자 블레셋 사람 천 명을 죽였습니다. 아멘.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임하신 것입니다. 차이를 만드는 것은 그것입니다.
한번은 미식축구 경기장에서 설교했습니다. 들어가 보니 그곳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걸어가며 보다가, 문 위에 걸린 작은 표지를 발견했습니다. 거기에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싸움에서 중요한 것은 개의 몸집이 아니라 개 안에 있는 투지의 크기다.” 좋은 말입니다. 개의 크기가 아닙니다. 투지의 크기입니다. 형제님, 여기 계신 율법주의자들은 그것을 의분이라고 부르고 싶어 하시겠지요. 자, 시작합시다. 할렐루야! 이 일에 분발하여 나가서 말하십시오. “하나님, 주님은 실제로 계십니다. 주님은 제 구원자이시며, 저는 주님을 섬기고 싶습니다.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든 상관없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주님을 섬기겠습니다.” 나가서 무언가를 하십시오. 물론입니다. 저는 성경에서 저기 있는 작은 삼갈을 봅니다. 그에 대해 아는 일은 아주 드뭅니다. 별로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가 그곳에 앉아 있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들어왔는데, 이스라엘에는 재판관들이 없어서 그들은 하고 싶은 대로 했습니다. 꼭 오늘날 교회들의 모습과 같습니다.
좋습니다. 그러다가 블레셋 사람들이 들어와, 들어와서 그들의 먹을 것을 빼앗아 갔습니다. 작은 삼갈이 밖에 서 있습니다. 지난해에 그들은 삼갈이 가진 것을 모두 빼앗아 갔습니다. 삼갈은 그곳에 서 있었습니다. 가엾은 아내가 서 있는데 소매는 다 해졌고, 어린아이들은 맨발이었습니다. 그가 서 있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여름 내내 일해서 곡식을 얼마간 거두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여보, 저 저주받을 블레셋 사람들이 오지만 않으면 이번 겨울에는 굶지 않아도 될 것 같소. 이제 밀이 충분히 있으니 아이들에게 밀과 빵을 줄 수 있겠소. 여기 보리도 있구려. 아침에는 죽을 먹을 수 있겠소. 다 괜찮을 것 같소. 여보, 당신에게 정말 미안하오. 당신의 가엾은 팔이 너무 안쓰럽고, 옷도 다 없어졌구려. 조금 팔아서 당신 옷을 마련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소.”
그때 “쿵, 쿵, 쿵, 쿵” 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여러분도 교회를 영적으로 잘 시작했다고 생각할 때 꼭 이렇습니다. 마귀가 무언가를 들여보냅니다. 늘 그렇게 합니다. 그렇습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그가 창밖을 내다보았습니다. 헛간 문을 열고 보니 무장한 군인 육백 명이 오고 있었습니다. 덩치 크고 뚱뚱한 자들이 갑옷과 방패를 갖추고 걸어왔습니다. 삼갈의 먹을 것을 빼앗아 건너편으로 가져가려고 오는 것입니다. 그는 그들을 바라보다가 아내를 보았습니다. 뺨을 타고 눈물이 흐르는 모습이 보입니다. 둘러보았습니다. “갑옷과 창만 있다면... 하지만 내가 무엇인가? 나는 농부다. 저들과 싸울 수 없다. 게다가 수가 너무 많다. 나는 하나인데 저들은 육백이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잠깐, 나는 이스라엘 사람이다. 할례를 받았다.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다.” 할렐루야!
신유를 두고 여러분에게 승산이 없어 보여도, 옛날의 구원을 두고 여러분에게 승산이 없어 보여도, 무슨 상관입니까? 우리는 할례를 받았습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영을 취하여 세상을 잘라 내셨습니다. 그가 밖을 내다보고 그것을 보자 의분이 일어났습니다. 그는 전사가 아니었습니다. 학교에 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는 훈련을 받을 시간도 없었습니다. 애초에 그런 것은 전혀 몰랐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가진 것 중 맨 먼저 손에 잡히는 것을 움켜쥐었는데, 소몰이 막대기였습니다. 소몰이 막대기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끝에 놋 조각이 달린 큰 막대기입니다. 쟁기가 막혔을 때 끼인 것을 털어 내기도 하고, 소를 찔러 문을 통과하도록 몰기도 하는 도구입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알고, 그 힘으로 길 한복판에 뛰어나갔습니다. 전사도 아니었고 설교자도 아니었습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었습니다. 오늘날 여러분과 똑같았습니다.
여러분은 말합니다. “설교는 설교자가 하게 두십시오. 그가 부흥을 가져오게 하십시오.” 여러분도 해야 합니다. 여러분 집에서 기도 모임을 가지십시오. 가지고 노는 그 카드들을 태워 버리십시오. 냉장고에서 그 맥주를 치우십시오. 부흥을 시작합시다. 그렇습니다. 그렇고말고요. 그는 막대기를 움켜쥐고 길 한복판으로 뛰어나갔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임하시자 블레셋 사람 육백 명을 죽였습니다. 할렐루야! 이제부터 저를 홀리롤러라고 부르시겠지요? 하지만 기분이 정말 좋습니다. 천국에 가기 위해 그것이 필요하다면 저는 그렇게 되고 싶습니다. 저는 홀리롤러가 아닙니다. 아닙니다. 평생 그런 사람을 본 적도 없습니다. 저는 일곱 바다를 항해하며 세계를 세 번 돌았지만, 아직 홀리롤러는 본 적이 없습니다. 거룩함을 믿는 사람들은 보았지만 홀리롤러는 보지 못했습니다. 평생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참석하고 섬긴 모든 집회를 생각하면, 오늘날 직간접적으로 천만 명과 알고 지내는 것 같습니다만, 아직 홀리롤러는 보지 못했습니다. 아닙니다. 그런 교회도 본 적이 없습니다. 이것을 여기서, 정부에 등록된 것을 살펴보니... 서로 다른 교회가 구백육십몇 개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어느 곳에도 홀리롤러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보지 못했습니다. 마귀가 교회에 붙인 이름입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사람이 구원받으면 홀리롤러라고 부릅니다. 바로 마귀가 붙이는 낙인입니다.
이제 여러분, 이것을 주목하십시오. 예수님은 거절당하셨습니다. 좋습니다. 그러면 위대한 사도 바울을 봅시다. 이제 이 줄기를 계속 따라 올라갑시다. 보십시오. 어떤 믿음을 위해 싸워야 합니까? 처음 성도들에게 전달된 믿음입니다. 표적과 이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줄곧 그분의 교회를 무엇으로 입증하셨습니까? 교인 수가 아닙니다. 표적과 이적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누가 가장 많은 사람을 모았는가가 아닙니다. 누가 교리의 근본에 가장 충실한가도 아닙니다. 표적과 이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곳에 계셨습니다. 이제 보십시오. 창세기에 그 씨가 있습니다. 지금 보십시오. 이제 우리는 어디에 있습니까? 요한계시록에 있습니다. 그것이 퍼져 나갑니다. 마태복음 13장은 “씨 뿌리는 자가 밀을 뿌렸고, 누군가는 잡초를 뿌렸다”고 말했습니다. “둘 다 같이 자라게 두라”고 하셨습니다.
보십시오. 우리는 언제나 세상이 얼마나 악한지 말합니다. 밀주 술집과 위스키, 합법화된 음주, 도박, 매춘 등 온갖 일이 벌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늘 그것만 말하지만,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교회가 어디에 있는지도 보십시오. 할렐루야! 우리는 계속 올라가고 있습니다. 표적과 이적이 곳곳에서 나타납니다. 교회도 씨를 내고 있습니다. 거의 다 왔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곧 수확이 시작됩니다. 아, 교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렇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무슨 교회입니까?” 다시 태어난 교회입니다. “감리교입니까?” 우리 모두입니다. 아멘. 다시 태어난 교회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모두입니다. 감리교, 침례교, 장로교, 오순절교, 가톨릭, 우리가 무엇이든 하나님의 영에게서 태어났다면 하나님의 아들딸입니다. 우리는 초자연적인 일들을 믿습니다. 신유를 믿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을 믿습니다. 그것을 받아들입니다. 그분께서 표적과 이적을 행하시는 것을 봅니다.
이제 보십시오. 마지막으로 말씀드립니다. 이제 우리는 요한계시록에서 마무리로 나아갑니다. 바울이 한 말을 들어 봅시다. “이것을 알라. 마지막 날들에”, 그것이 끝이지요? “위험한 때가 오리라.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나는 이러이러한 곳 출신이오.” “자기를 사랑하며... 교만하며 자랑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을 행하려는 자들을 멸시하며.” 아시겠죠? “브래넘 형제님, 그것은 공산주의자들을 뜻한 겁니다.” 아닙니다. 근본주의자들을 뜻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의 모양은 있으나 그것의 능력은 부인하리니 이런 자들에게서 돌아서라. 이들은 집집마다 다니며 미련한 여자들을 이끄는 부류니라.” 온갖 사교 모임과 함께 바느질하고 꿰매면서 아무개 여자의 이야기를 합니다. 늙은 수탉이나 삶아 팔아서 설교자에게 돈을 줍니다. 아, 참. 십일조를 내십시오. 그러면 그런 일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 밖에도 이런 온갖 일을 합니다. “하나님의 성품의 모양은 있으나 그것의 능력은 부인하리니 이런 자들에게서 돌아서라.” 하나님, 우리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십시오.
그리스도인 여러분, 여러분에게 상처를 주려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믿음을 북돋우려는 것입니다. 누가 무슨 말을 하든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에 어긋나면 귀 기울이지 마십시오.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창세기부터 저곳에 씨를 심으셨습니다. 오늘 이곳을 보십시오. 교회에 가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생각을 잘 해 보십시오. 이제 마치겠습니다.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성경을 따라 이 두 줄기를 보십시오. 이렇게 자라 올라옵니다. 가인과 아벨, 두 사람 모두 경배하는 자였습니다. 둘 다 믿는 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쪽을 입증하시고 저쪽을 거절하셨습니다. 그가 아무리 근본 교리에 충실해도 거절하셨습니다. 그에게 표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시대로 계속 올라오십시오. 둘 다 근본 교리에 충실합니다. 둘 다 거기에 서 있습니다. 한쪽도 다른 쪽만큼 성경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표적과 이적으로 입증하셨습니다. 이쪽만큼 근본 교리에 충실한 저쪽을 거절하셨습니다. 표적과 이적 때문에 그를 거절하신 것입니다. 아시겠죠? 선택과 부르심은 언제나 하나님께 속합니다. 계속 올라오십시오.
예수님 시대를 보십시오. 그들이 올라옵니다. 예수님도 근본 교리에 충실하셨습니다. 정통 제사장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제사장을 거절하시고 예수님을 받으셔서 표적과 이적으로 입증하셨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이 하나님의 사람이심을 알았습니다. 초자연적인 일들, 곧 표적과 이적이 그분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이제 위대한 사도 바울입니다. 그에게 권위가 있다고 믿으십니까? “아멘” 하십시오. 위대한 사도 바울은 말했습니다. “자, 잠깐만요. 내가 이것을 성경에 쓰고 있습니다. ‘마지막 날에 그들도 똑같이 근본 교리에 충실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의 모양은 있으나, 권능을, 이쪽에 있는 이 위대한 권능을 부인할 것입니다. 그쪽에도 하나님의 성품의 모양은 있을 것입니다. 그들도 여러분만큼 성경적으로 정확할 것입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을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을 믿을 것입니다. 훌륭한 교회도 있을 것입니다. 저 아래 있던 것과 같은 것을 가질 것입니다. 여기 있던 것과 같은 것을 가질 것입니다. 여기에도 같은 것, 저기에도 같은 것을 가질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 있던 그 교회도 여기, 그리고 여기 있었습니다. 그렇게 마지막에는 씨를 맺고 나갑니다.’” 형제님, 오늘 그 덩굴에서 내려오십시오. 이쪽으로 건너오십시오. 오늘이라 불리는 동안 들어오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길을 마련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얼마 전 눈먼 늙은 바디매오에 관해 읽고 있었습니다. 그는 노인이었습니다. 어느 날 밤 아내가 병에 걸렸습니다. 그에게는 지나가는 여행자들의 눈길을 끌려고 서로를 뛰어넘어 재주를 부리는 작은 비둘기들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지나가다가 그것을 보고 멈추면 눈먼 바디매오에게 동전 하나씩을 주었습니다. 그렇게 생계를 이어 갔습니다. 이야기에 그렇게 나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병이 났습니다. 그는 밖으로 나갔습니다. 믿는 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고쳐 주시리라고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실제로 계심을 믿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주 하나님, 제 가엾은 아내를 위해 의사가 더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아내의 목숨을 살려 주시면, 내일 이 산비둘기들을 가져다가 주님께 희생물로 바치겠습니다.”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희생을 하려고 해도... 쉽고 편한 것으로 하려고 합니다. 아시겠죠? 그것은 희생이 아닙니다. 아프고 살을 에는 것이 희생입니다.
다음 날 아침 아내가 나았습니다. 그는 산비둘기들을 가져다가 바쳤습니다.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에게 여덟 살쯤 된 금발의 어린 딸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평생 딸을 보지 못했습니다. 눈이 멀었기 때문입니다. 그 딸이 병이 났습니다. 그래서 그날 밤 밖으로 나가 기도했습니다. “주님, 제 어린 딸을 고쳐 주시고 죽지 않게 해 주시면, 제...를 드리겠습니다.” 그에게는 어린양이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는 개가 눈먼 사람을 인도합니다. 당시에는 어린양이 눈먼 사람을 인도했습니다. 그에게도 성문까지 이끌어 주는 작은 어린양이 있었습니다. 성문에 이르면 멈추어 어린양을 매어 두곤 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하나님, 제 어린 딸을 고쳐 주시고 죽지 않게 해 주시면, 내일 제 어린양을 드리겠습니다.” 다음 날 아침 어린 딸이 나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고쳐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가 올라갑니다.
이야기에 따르면 대제사장 가야바가 서서 말했습니다... 그들이 희생물을 바치는 곳으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눈먼 바디매오, 어디로 가는가?” 그가 말했습니다. “대제사장님, 제 어린양을 바치러 갑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어젯밤 제 딸을 고쳐 주셨습니다. 제 어린양을 드리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아, 눈먼 바디매오, 그 어린양을 바칠 수는 없네. 내가 돈을 줄 테니 저 장사꾼들에게서 어린양을 사게. 저 우리 쪽에 가면 어린양을 줄 걸세. 내가 돈을 줄 테니 어린양 한 마리를 사게.” 그가 말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아무 어린양이나 드리겠다고 약속하지 않았습니다. 이 어린양을 드리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어린양입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눈먼 바디매오, 그렇게 해서는 안 되네.” 그가 말했습니다. “하지만 대제사장님, 하나님께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하지만 눈먼 바디매오, 그 어린양은 자네의 눈일세.” 바디매오가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대제사장님. 하지만 눈먼 바디매오가 하나님께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눈먼 바디매오의 눈을 위한 어린양을 마련하실 것입니다.”
약 육 개월 뒤, 추운 십일월의 어느 날 그는 성문에 앉아 떨고 있었습니다. 인도해 줄 어린양도 없고, 재주로 눈길을 끌어 줄 비둘기도 없었습니다. 석탄 값을 낼 돈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 순종했습니다. 그러다가 거리에서 소란한 소리가 다가오는 것을 들었습니다. “무슨 일이지?” 외치고 울고 소리 지르는 소리가 났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신 곳에는 언제나 무언가 들뜨는 일이 있습니다. “누가 오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눈먼 바디매오의 눈을 위한 어린양을 마련하셨습니다. 어린양께서 오셨습니다. 오늘 오후 이곳에 있는, 영적으로 눈이 멀었거나 육신의 눈이 먼 모든 남자와 여자를 위해 그 어린양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어린양께서 마련되어 있습니다. 받아들이시겠습니까? 괜찮으시면 함께 고개를 숙입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때때로 생각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잘해 주시니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우리에게 복 주시고 도와주십시오. 우리는 자격이 없습니다. 긍휼을 구합니다. 오늘, 눈먼 바디매오의 눈을 위해 마련되었던 바로 그 어린양이 여기 계심을 압니다. 주님, 이곳을 지나가 주십시오. 영적으로 눈먼 모든 눈을 열어 주십시오. 주님의 교회가 기적과 표적과 이적으로 살아 있는 교회임을 오늘 보게 해 주십시오. 주님, 허락해 주십시오.
아직 태어나지도, 성령으로 충만해지지도 못하고 전통에 떠밀려 한쪽으로 치우쳐 있던 많은 남자와 여자들이, 지금 마음속에서 겸손히 이렇게 말하게 해 주십시오. “주 예수님, 이제 저를 인도하실 어린양으로 주님을 받아들입니다. 제 눈은 멀어 있었습니다. 다시 태어나는 체험을 한 적이 없습니다. 지금 저를 태어나게 해 주십시오. 오늘 오후, 죄가 사라졌음을 알고 주님의 영으로 충만해졌음을 아는 기쁘고 자유로운 마음으로 이곳을 나가고 싶습니다. 제 삶에도 표적과 이적이 따르고, 주님께서 환상과 꿈으로 제게 나타나실 것을 알고 싶습니다. 저도 거리에 나가 주님을 위해 일하고 간증하며 주님의 일을 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여기 앉아 있는 모든 남자와 여자에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나님, 무엇을 말할지도 모르고 두서없이 전한 이 몇 마디 말을 받아 주십시오. 어떻게든 주님의 영광스럽고 사랑스러운 방식으로 이 말들을 모두 모아 사람들의 마음에 전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버지, 의도한 목적대로 이루어지게 해 주십시오. 제가 그 말들로 무엇을 뜻했는지 주님께서는 아십니다.
여기 앉아 있는 모든 병자가, 하나님의 어린양께서 지나가신다는 그 외침을 오늘 듣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누구였습니까?” 믿지 않는 자는 “잠잠히 있으라”고 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그는 훨씬 더 크게 외쳤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긍휼을 베푸소서.” 그에게는 필요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린양을 마련하셨음을 알았습니다. 하나님, 기도합니다! 아무도 잠잠히 있지 말고 어린양께서 멈추실 때까지 외치게 해 주십시오. 그분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해 주기 원하느냐?” “주여, 내가 시력을 받게 해 주옵소서.” 그분께서 그의 눈을 만지시자, 볼 수 없던 눈에 시력이 열렸습니다. 하나님, 오늘 성령께서 모든 마음과 모든 눈을 만지셔서 영적인 시력과 육신의 시력이 모두 회복되게 해 주십시오. 주님, 허락해 주십시오. 모두를 함께 복 주십시오. 긍휼을 베풀어 주십시오. 주님, 영광스러운 어느 날, 언제인지는 모릅니다. 언젠가 저는 마지막 설교를 해야 합니다. 언젠가 이 사람들도 마지막 설교를 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 서야 합니다. 저는 저 큰 나무들이 자라 올라오는 것을 봅니다. 창세기부터 보았습니다. 하나님, 오늘날 여기서도 그것을 봅니다.
주님, 제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제 마음은 불타고 제 혼은 피를 흘립니다. 남자와 여자들이 몰래 어둠 속으로 끌려가 있는 것을 봅니다. 아버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한 가지를 말하면 저들은 반대하며 이런 말을 하고, 저것을 말하면 또 다른 말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이제 주님께 맡깁니다. 모든 마음에 말씀해 주십시오. 우리가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고 있는 동안, 아무도 보지 마시고 주님과 저만 이것을 보게 해 주십시오. 피아노나 오르간이 조용히 연주되는 동안... 여기 누군가, 제가 보기에는 고개를 든 분이 없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이렇게 말할 분이 계십니까? “브래넘 형제님, 참으로 하나님 앞에서 저는 성령을 받지 못했다는 것을 압니다. 제 자신을 속이려 해 봐야 소용없습니다. 받지 못한 줄 압니다. 제게는 그런 표적이 따르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라’고 하셨는데, 제게는 따르지 않습니다. 저는 아니라는 것을... 성령을 받지 못했다는 것을 압니다. 브래넘 형제님,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하나님께서 형제님의 기도를 들으셔서 눈먼 자의 눈을 여시고, 귀먹은 자가 듣고 보게 하시며, 걷지 못하는 자가 걷게 하신다면, 분명히 저를 위한 기도도 들어주실 것입니다.”
손을 들고 “브래넘 형제님,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라고 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 바랍니다. 그분도, 그분도, 그분도, 그분도요. 아, 참! 계속 고개를 숙이고 계십시오. 여러분의 손이 보입니다. 서른, 마흔, 쉰 개의 손이 올라왔습니다. 오 그리스도여. 사랑하는 하나님, 부디 도와주십시오. 우리와 영원 사이에는 단 한 걸음밖에 남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내일 무슨 일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 바로 지금, 십자가에 못 박히셨던 분의 위대하고 전능하신 임재가 여기 놀랍게 서서 지켜보고 계시는 동안 복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손을 든 모든 사람에게 성령침례를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처음에 내렸던 오순절의 복이 다시 일어날 만큼 큰 권능으로 그들의 마음을 채워 주시기를 원합니다. 주님, 그들은 지치고 피곤합니다. 어떤 분들은 나이 들어 머리가 희어졌습니다. 해가 지고 있습니다. 시간의 저녁별이 나오고 있습니다. 하나님, 그들이 성령을 받게 해 주십시오.
삶을 힘겹게 헤쳐 온 가엾은 늙은 어머니들과 아버지들입니다. 어쩌면 전에는 기회가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이제 그들에게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비둘기가 그들의 마음에 내려앉아 하나님의 영으로 채우셔서, 그들의 삶이 권능으로 가득하게 해 주십시오. 큰 표적과 이적이 일어나 이 완고한 도시가 부서지고 무너지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의 임재가 모든 교회로 들어가 옛날식 부흥이 일어나고, 이 도시에서 그 소식이 온 나라로 퍼져 나가게 해 주십시오. 주님, 허락해 주십시오. 많은 사람은 손을 들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원했지만 그저... 마음에 느끼는 찔림이 충분히 강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그들도 복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모두에게 성령을 주십시오. 구원받지 못한 자들을 구원하시고 병자들을 고쳐 주십시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고개를 드십시오. 한 가지 여쭙겠습니다. 제 거친 말투를 용서해 주십시오. 여러분, 저는 다른 방법을 모릅니다. 제가 아는 유일한 방법은 그분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그대로 말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말합니다. 저는 그저 좀... 아시지요.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여러분은 본문을 잘 엮어서 전하는 학자들, 말솜씨가 세련된 학자들의 말을 듣는 데 익숙하십니다. 저는 여기 올라올 때 무엇을 말할지 몰랐습니다. 그저 그렇게 말해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에게서 오기 때문에 진리라는 것을 압니다. 종이에 써 온 것도 아닙니다. 저는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여러분이 제게 화나도록 꾸짖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을 바로잡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참된 아버지라면 누구나 자녀를 바로잡을 것입니다. 물론입니다. 여러분이 여기 앉아 계신 것을 알았고, 쉰 명 이상이 성령침례가 필요하다고 손을 들었습니다. 형제님, 자매님, 그것이 없으면 여러분은 분명히 멸망할 것입니다. 거기에 못 미친 채 머물지 마십시오. 보십시오. 제 성경을 가슴에 얹고 말씀드립니다. 저는 신실하려고 애썼습니다.
제가 모르는 것이 많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압니다. 진심으로 압니다. 언젠가 저는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그곳에 서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말하고 행한 것을 해명해야 합니다. 그러니 제가 틀렸다면, 신실한 마음으로 그런 것입니다. 고의가 아닙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그리스도인 친구 여러분, 성령이 없다면 오늘 오후 기도하러 제단 앞으로 나와 성령을 받고 싶으신지 묻고 싶습니다. 이 앞으로 나오고 싶으십니까? 하나님께서 긍휼 가운데 병자를 고치는 기도를 들어주신다면...
여기 있던 사람들에게서 종양이 사라졌다는 편지, 그런 것들이 몸에서 없어지고 있다는 편지가 계속 오고 있습니다. 관절염으로 제대로 걷지 못하던 사람들까지 이곳을 거쳐 갔고, 저는 그들에게 아내와 다른 사람들에게 손을 얹으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말했습니다. “집에 돌아가 아내에게 손을 얹었더니 침대에서 일어났습니다. 다 끝났습니다. 아주 잘 지냅니다.” 여러 곳에서... 이 작은 무리 가운데서 말입니다. 여러분, 저는 진실을 말하려고 애쓰고 있고, 하나님께서 제가 진실을 말하고 있음을 입증하고 계십니다. 제가 아닙니다. 그분입니다. 그분입니다. 그 일을 하시는 분은 그분이십니다. 이제 그분께서는 바로 지금 치유하시려고 여기 계십니다. 모든 것을 아십니다. 바로 지금입니다. 밤이 될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께서 바로 여기서 지금 치유하고 계심을 압니다. 이제 저는 압니다... 누군가를 압니다... 바로 지금 성령께서 제 위에 계시며 설교에서 다른 사역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많은 분이 치유를 받으러 여기 오셨기 때문에, 지금 성령께서 제 위와 주위에서 움직이시는 것을 느낍니다. 그 종이에 사진이 실린 하나님의 천사입니다. 사실입니다.
바로 지금 제 위에 머물러 계신 것이 보입니다. 바로 여기 앞에 계십니다. 움직이십니다... 제게는 마치... 아, 이것을 설명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은 광신자야”라고 하실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아닙니다. 광신자가 아닙니다. 여러분의 형제입니다. 여기 젊은 군인이 서 있습니다. 저기 서 있는, 앉아서 기도하는 젊은이 말입니다. 예. 당신은 아픕니다. 치유가 필요하지요? 귀에 무슨 문제가 있지요? 귀에서 진물이 나는군요. 낫지 않습니다. 그렇지요? 귀에 손을 대십시오. 주 예수님, 지금 그 병을 없애 주셔서 그를 낫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오 하나님. 가엾은 젊은이가 여기서 군 복무를 하고 있습니다. 귀가 좋지 않습니다. 어쩌면 오늘 그가 치유받기를 원하셨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의 입증으로 이루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설교하신 뒤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이제 주님, 주님의 종으로 기도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제 형제의 치유를 구합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 바랍니다, 형제님. 이제 멎을 것입니다. 괜찮아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 바랍니다.
성령을 원하시는 분 계십니까? 우리가 ‘거의 설득되었으나’를 부르는 동안 이곳으로 나와 여기 서 주시겠습니까?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자매님, 이 곡의 화음을 잡아 주시겠습니까? 회중이... 여기로 나오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믿으려 ‘거의 설득되었으나’; [녹음 공백] 우리는 여러분을 감리교나 침례교에서 데려오려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성령을 받고, 하나님의 복으로 충만해져 자기 교회로 돌아가시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여러분의 목사님도 고마워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령을 받았다고 하시면 정말 기뻐하실 것입니다. 여기에는 이 앞으로 나와 서 있어야 할 분들이 더 있습니다. 만일 바로 지금 예수님께서, 여러분에게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면 어떻겠습니까? 밖을 보니 무지개들이 하늘을 가로질러 번쩍이고, 해는 져서 저 서쪽에 걸린 채 검은 피처럼 뚝뚝 흘러내린다면 말입니다. 그때는 너무 늦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다는 확신이 없다면, 지금 나오시겠습니까? 한 번 더 불러 주시겠습니까? 여러분의 어머니와 아버지들도 오래전에 이 옛 찬송들을 부르셨습니다. 나오시겠습니까? 이제 우리가 부르는 동안...
[녹음 공백.] 오르간이 연주되는 동안에 말입니다. 여기에 서 있어야 할 분들이 더 있습니다. 제게 아니라고 하지 마십시오. 그런 분들이 계신 줄 압니다. 이 말을 하도록 이끌림을 느낍니다. 어느 날 밤, 바로 이 도시 한복판에서 이렇게 하도록 이끌림을 느꼈습니다. 제가 무엇을 했는지 아십니까? 강단에서 내려갔습니다. 젊고 훌륭한 침례교인 여자에게 말했습니다. “자매님, 오늘 밤 주님께서 자매님을 부르십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누가 내게 그런 말을 해 주기를 원했다면, 좀 분별 있는 사람에게 부탁했겠죠. 당신 말고요.” 제가 말했습니다. “알겠습니다. 좋습니다. 성령께서 오늘이 자매님의 날, 자매님의 때라고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녀는 아주 매력적으로 생긴 여자였는데, 코를 치켜들고 문밖으로 걸어 나갔습니다. 밖에는 덩굴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날 밤 제가 밖으로 나왔을 때, 그녀는 저를 얼마나 멋지게 호되게 몰아세웠는지 모릅니다.
약 삼 년 뒤, 같은 도시의 거리를 걷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좋은 집안 출신이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그리스도인이었고, 훌륭한 침례교회에 다녔습니다. 거리를 걸어 내려가다가 길 건너 아주 나쁜 동네를 보니, 그 여자가 가고 있었습니다. 치마는 축 늘어져 있었고 모습이 끔찍했습니다. 정말 그 여자인지 확인하려고 길을 따라 걸어갔습니다. 그녀가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어머, 설교자 선생이네.” 말이 몹시 흐렸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그녀가 말했습니다. “그날 밤 교회에서 나를 불러낸 사람이 당신이지요?” 제가 말했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하.” 그녀는 손가방에 손을 넣더니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습니다. “한 대 피우실래요?” 제가 말했습니다. “부끄러운 줄 아십시오.” 그녀가 말했습니다. “그럼 술 한잔 하실래요?” 그러더니 위스키 병을 꺼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종에게 그런 것을 권하다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이제 내게 무슨 일이 더 생기겠어요.” 그녀는 담배를 조금 빨았습니다. 마리화나였습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설교자 선생, 그날 밤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다고 말했던 것 기억해요?” 제가 말했습니다. “예, 분명히 기억합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당신이 진실을 말한 적이 있다면 바로 그때였어요. 바로 그날 밤 이후로 내 마음이 그렇게 딱딱해졌어요.” 그리고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 어머니의 혼이 지옥에서 팬케이크처럼 지글지글 타는 걸 봐도 웃을 수 있어요.” 그녀는 돌아서서 담배 연기를 내뿜고 거리를 걸어갔습니다. 매춘부요, 술주정뱅이요, 마약 중독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거절하지 마십시오. 그분께서 마지막으로 한 번 문을 두드리실 때가 올 것입니다. 다시 기도합시다. 주님, 제가 왜 그 말을 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원하신다고 느껴서 말했습니다. 이제 여기 아버지가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아버지, 그들을 주님께 맡겨 드립니다. 지금 그들을 이 제단 앞으로 보내 주셔서 주님의 영을 받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구원받지 못했다면 구원해 주십시오. 성령이 없어 주님을 만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바로 오늘 저녁 그들에게 성령을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제 잠시 기다리는 동안, 자매님, 다시 연주해 주시겠습니까? 끝까지 연주만 해 주십시오. 경건하게 계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나오기를 원하신다고 느끼시면 나와서 우리와 함께 서십시오. 이렇게 하는 동안, 오늘날 믿는 자에게 성령침례가 주어진다고 믿는 사역자가 여기 몇 분이나 계십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복음의 사역자 여러분, 모두 이곳으로 오셔서 이 사람들 주위에 서 주시겠습니까? 성령침례를 구하며 여기 서 있는 믿는 여러분, 여러분이 참으로 고맙습니다. 주님께서 여기서 제게 주신 작은 사역이 효과를 거두어 여러분이 믿었다는 사실이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일로 반드시 여러분에게 복 주실 것입니다. 저는 겸손한 종으로서 주님을 나타내기 위해 제가 아는 모든 것을 다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그분께서 바로 지금 여기 서 계십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성령침례를 주실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이것은 선물입니다. 믿음이 아닙니다. 선물입니다. 이것은 그렇게 오지... 여러분은 말합니다. “글쎄요, 저는 받았다고 믿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선물, 받을 자격이 없어도 주시는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냥 주십니다. 여러분이 믿기 때문에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기 때문에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것을 구하려고 그분께 나왔습니다. 그분께서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이기 때문이요.”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성령을 주실 것입니다. 마음을 열고 이렇게 말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저는 믿는 자입니다. 아버지의 자녀입니다. 이제 성령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시기를 원합니다. 세상에 속한 모든 것을 제단 위에 놓습니다. 모든 것을 제단 위에 놓습니다.”
지금 여기 서 있는 많은 분이 울고 있고, 눈물이 뺨을 타고 흐릅니다. 그것이 성령입니다. 바로 지금 그분께서 여러분 위에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을 채우고 싶어 하십니다. 뒤에 있는 회중이 이 앞에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젊은 여자들과 젊은 남자들, 나이 든 사람들의 뺨에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위에 머물러... 여기 하나님의 천사가 바로 서 계십니다... 지금 그들의 머리 위 오 피트도 안 되는 곳에 계십니다. 사진에서 보시는 바로 그 천사께서 지금 여기 그들 위에 서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믿는 자 안에 자신을 부어 주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제 믿기만 하십시오. 그분께 구하고 그대로 받아들이십시오. “주님, 주님을 믿습니다”라고 말하십시오. 그러면 성령께서 오실 때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마음속으로 부어지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그때 두 손을 들고 감사하십시오. “주 예수님, 감사합니다. 제게 성령침례를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말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권능이 온몸에 밀려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그때부터 여러분은 다른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이제 여기 계신 모든 분, 괜찮으시면 고개를 숙이십시오. 이 사람들 주위에 서 있는 사역자 여러분, 가까이 가서 그들에게 손을 얹으십시오. 성경은 그들에게 손을 얹으라고 했습니다. 이제 한 분 한 분 믿는 자에게 손을 얹으십시오.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성령침례를 구하는 이들에게 손을 얹으십시오. [녹음 공백] 성령께서 그녀의 마음에 들어오고 계십니다. 이제 믿는 자들에게 손을 얹고, 그들에게 받으라고 하십시오... 저기 계신 여러분도 마음 깊이 신실하게 임하십시오. 좋습니다. 이제 모두 기도합시다. 여러분 모두 기도하십시오. 각자의 기도를 드리십시오.
이제 아버지, 기도하면서 바로 이 시간에도 세상 곳곳에서 수백만의 기도가 아버지의 귀에 들어가고 있음을 압니다. 아버지께서는 그 모두를 들으십니다. 아버지께서는 어느 기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모두 들으십니다. 이제 주님, 이 귀하고 가엾은 자녀들이 나옵니다. 이들을 위해 긍휼을 구합니다. 오 영원하신 하나님, 복을 보내 주십시오. 지금 이 사람들 바로 위에 머물러 계신 성령께서 바로 지금 그들에게 내려 주시기를 원합니다. 모든 마음이 그분을 받아들이게 하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과 권능이 바로 지금 그들에게 임하게 해 주십시오. 큰 표적과 이적이 그들의 삶을 따르게 하시고, 자기 생각을 놓아 버리고 지금 주님께 돌이키게 해 주십시오. 회중이 무엇이라 하든 개의치 않고, 누가 무슨 생각을 하든 개의치 않으며, 오직 주님께서 요구하신 것을 알게 해 주십시오.
“성령님께서 너희에게 오신 뒤에 너희가 권능을 받으리라.” 이 사역자들이 그들에게 손을 얹고 있는 지금, 성령의 권능이 그들 모두에게 내려 주시기를 원합니다. 성령께서 표적과 이적으로 그들을 따라 주시기를 원합니다. 위대한 일들이 이루어지게 해 주십시오. 오늘 오후 이 작은 모임에서 옛날식 성령 집회가 터져 나오게 해 주십시오. 주님, 허락해 주십시오. 이제 사탄아, 너는 네 권세를 잃었다. 네 힘을 잃었다. 성령께서 여기 계셔서 주관하시고 이 사람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그들을 채우신다. 성령께서 이들의 마음속에서 앞길을 이끌어 주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이제 계속 손을 들고 계십시오. 계속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계속 찬양과 영광을 드리십시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그저 감사하십시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을 주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