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오늘 밤 저희는 늘 하던 대로 찬송을 부르고 말씀을 읽은 다음 말씀을 전하며 주님께 나아옵니다. 이제 남은 예배는 주님께서 이끌어 주시고 도와주셔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완전히 실패할 수밖에 없음을 압니다. 주님께서 이곳에 계시며 모든 것을 아시고, 주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심을 저희는 믿습니다.
지금 제 손에는 병들고 고통받는 이들에게 보낼 편지들과 손수건들이 들려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떠난 뒤 홍해가 앞을 가로막고 광야와 뒤쫓아 오는 파라오의 군대 사이에서 궁지에 몰렸을 때의 성경 말씀이 생각납니다. 성경의 한 기록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불기둥을 통해 내려다보시다가, 자신의 자녀들이 약속의 땅으로 걸어가는 길을 바다가 가로막았기 때문에 바다를 향해 진노하셨습니다. 그러자 바다가 겁을 먹고 뒤로 물러나 이스라엘이 건널 마른 길을 내주었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동일한 하나님이십니다. 지금 저는 이 손수건들을 들고 있습니다. 어쩌면 저 바깥 에버글레이즈 어딘가에 가엾은 늙은 아버지가 앉아 있을지도 모릅니다. 눈먼 늙은 어머니가 손에 지팡이를 들고 바닥을 더듬으며 길을 찾고 있거나, 열이 나는 어린아이가 어디엔가 누워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머니는 손수건이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피할 길을 마련하셨습니다. 성경에서 성 바울의 몸에 있던 손수건들을 가져갔다고 한 데서 저희가 얻은 이 작은 증표들을 놓고 기도합니다. 저희가 성 바울은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주님은 여전히 예수님이심을 압니다. 하나님, 저희가 드리는 이 믿음의 기도를 기념하여 이 작은 증표들을 병든 몸에 얹을 때, 하나님께서 다시 그 눈으로 내려다보시고 그들을 묶고 있는 원수가 겁을 먹고 물러가게 하옵소서. 그들이 건강을 약속받은 땅으로 건너가게 하옵소서. 주님, 허락하옵소서. 그들 가운데 낫지 못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게 하옵소서. 오늘 밤 이곳에서도 똑같이 행하여 주옵소서. 성령께서 이 집회를 맡아 주시고 집회 가운데, 사람들 가운데 들어오시며 사람들의 마음속 깊이 들어가셔서, 그분의 임재로 오늘 밤 큰일들이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구하옵나이다. 아멘.
병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손수건들을 보내는데, 제가 받는 간증 가운데 대부분은 손수건을 통해 일어난 일들입니다. 그렇습니다. 더 많은 사람에게 닿을 수 있기 때문에 주님께서 참으로 많은 일을 행하셨습니다. 제퍼슨빌에서 하루에 아마 천 장쯤 우편으로 보낼 것입니다. 그렇게 보내 드립니다. 언제든 한 장 필요하시면, 당장 필요하지 않더라도 성경 속에 넣어 두십시오. 사도행전 19장에 넣어 두십시오. 그동안 어떤 일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났는지 말씀드릴 시간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손수건을 받아 지금 쓸 일이 없으면 성경 사도행전 19장에 넣어 그대로 두십시오. 위급한 일이 생기면 그 손수건을 꺼내 크루프에 걸렸든 어떤 병에 걸렸든 그 아이에게 얹으십시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십시오. 우리 주님께서 행하신 일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그것은 다만 하나의 작은 접촉점일 뿐입니다… 제가 이것들을 보낼 때는 일정한 양식의 편지도 함께 보냅니다. 그리고 모든 분께 아침 아홉 시, 낮 열두 시, 오후 세 시에 기도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전 세계에서 그렇게 합니다. 다른 나라들에서는 같은 시간에 그 기도의 사슬을 이어 가려고 한밤중에 일어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말 그대로 수만 명, 수천에 수천을 곱할 만큼 많은 사람이 같은 시간에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들으실 수밖에 없습니다. 기도로 하늘을 향해 몰아붙이는 것이니, 들으실 수밖에 없습니다. 그 가운데 신실한 사람이 얼마나 많을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이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기도합니다. 손수건을 몸에 얹고 기도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행하신 그 일들에 관해 제게는 영광스러운 간증이 참으로 많습니다.
지금 저는 서 있기가 힘들 만큼, 여느 때 못지않게 몹시 지쳐 있습니다. 제게는 벌써 여러 주째 이어지는 일이고, 환상도 많이 보았습니다. 그동안 주님께서 저를 도와주셨습니다. 주님의 자애로우심에 저는 참으로,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물론 우리 모두가 그렇습니다. 오늘 밤에도 그분께서 함께하시고 도와주시기를 믿습니다. 이제 본문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한 본문을 가지고 잠깐 말씀드리려 합니다. 저는 본문을 정하는 데 그리 능하지 못합니다. 좀처럼 그 본문에 머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저 무언가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밤 교회에 가면 이것을 전해야겠다” 하고 생각하지요. 평생 그렇게 해 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것을 하겠다고 생각하기만 하면, 혼자 있을 때 주님께서 다른 것을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무엇을 설교할지 미리 알리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저 주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것을 하면 그뿐입니다. 그분께서 제게 주시는 대로 사람들에게 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때로는 좀 거칠기도 하지만, 여러분에게 유익할 것입니다. 그것이 저를 구원했고, 지난 이십삼 년 내내 저를 행복하게 지켜 주었습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을 전하며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제 삶에 단 한 가지 후회가 있다면, 아주 어린 소년이었을 때 예수 그리스도와 제 죄들의 용서를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부모님들께 말씀드립니다. 자녀들 앞에 바른 가정의 모습을 보여 주십시오. 그렇게 해야 합니다. 제가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자랐더라면, 오늘 밤 우리 주 예수님과의 동행에서 더 멀리 나아가 있었고 더 많은 사람이 구원받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희 집안은 신앙이 있는 가정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직 그 놀라운 은혜로 저를 구원해 주셔야 했습니다. 그 뒤로 저는 가족들 가운데 몇 사람을 주님께 인도했습니다. 어머니에게 침례를 베풀었고, 아버지는 그리스도께 마음을 드린 뒤 제 품에서 돌아가셨습니다. 할아버지께는 거의 아흔이 되셨을 때 강에서 침례를 베풀었습니다. 제 형제들 가운데 몇 사람에게도 그렇게 했습니다. 그리고 여기 있는 제 아들과, 일곱 살 된 제 딸도 있습니다. 다른 딸은 아직 침례받기에는 너무 어립니다. 겨우 두 살입니다. 그 아이가 살아서 침례받을 나이가 되면 제가 침례를 베풀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미 주님께 맡겨 드린 아이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헌아라고 부릅니다. 아기를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할 수 있는 한 성경을 그대로 따르려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아기에게 침례를 베푸셨다거나, 성경 어디에서든 아기에게 침례를 베풀었다는 말씀은 보지 못했습니다. 그저 아이들을 주님께 데려왔습니다. 제가 찾을 수 있는 성경 말씀은 그것뿐입니다. 주님께서 그들을 팔로 안으시고 축복하셨습니다.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허락하라” 하셨습니다. 아이들에게 물을 뿌리든 침례를 베풀든 그렇게 하기를 원하시면 괜찮습니다. 이 손수건들과도 같습니다. 많은 사람이 손수건에 기름을 바릅니다. 좋습니다. 아주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한 손수건에 기름을 발라도 괜찮습니다. 다만 잠깐 제 말을 들어 주시고 이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바울은 기름을 바르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그의 몸에서 가져갔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바울의 몸에서 가져갔습니다.
바울은 자기가 만진 것에 복이 있어서 그것을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 생각에 바울이 그 성경 말씀을 어디서 얻었는지 아십니까? 수넴 여인의 아기가 죽었을 때, 그 여인이 아기가 왜 죽었는지 알아보려고 엘리사에게 갔던 일을 기억하십니까? 엘리사는 손에 지팡이를 들고 있었습니다. 그의 종, 아마 게하시였을 것입니다, 그에게 말했습니다. “이 지팡이를 가지고 앞서 가거라. 누가 네게 말을 걸어도 말하지 말고, 가서 아기 위에 얹어 놓기만 하여라.” 엘리사는 자기가 만진 것에 복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안에 계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수넴 여인이 그것을 믿게 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여인은 그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 안에 하나님께서 계신다는 것은 알았지만, 지팡이 안에 계신다고는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지팡이는 아무 일도 하지 못했습니다. 여인이 믿었더라면 지팡이도 똑같은 일을 했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물론입니다. 그래서…
하지만 엘리사가 왔을 때 한 일이라고는 아기 위에 자기 몸을 눕힌 것뿐이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 아이에게 생명을 돌려주셨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자신의 종 안에 계셨고, 여인은 그것을 믿었습니다. 그러니 바로 그 일이 일어나야 했습니다. 기도 줄을 부르면 사람들이 강단으로 나오는 것을 봅니다. 제가 그들을 그냥 지나가게 하려 하면, 이내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가 그들을 위해 기도하거나 손을 얹어 주거나 무언가 해 주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되기 전에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이 바로 그런 방식으로 기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어떤 여자, 어떤 사람이었지요, 야이로가 말했습니다. “오셔서 제 딸에게 손을 얹어 주십시오.” 그것은 예수님의 손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로마인은 “주님께서 제 집에 들어오심을 제가 감당할 자격이 없사오니 말씀만 하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어느 쪽으로 믿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믿는 대로 될 것입니다. 오늘 밤 여러분에게 전할 이 짧은 말씀을 본문이라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길”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본문에서 읽을 내용은 하나님의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고 병든 자들을 부르고, 병든 자들이, 아니, 장로들을 불러서 병든 자에게 기름을 바르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할 것입니다. 또 “의로운 사람의 효력 있고 뜨거운 기도”라고 했습니다.
의로운 사람이라고 해서 죄 없는 사람은 아닙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같이 동일한 성정의 지배를 받은 사람”이라고 한 것을 보십시오. 그에게도 기복과 변화가 있었으며, 그의 삶을 기록한 성경은 그에게 우리와 같은 기복이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의아해할 때도 있었고, 성질을 억제하지 못할 때도 있었으며, 잘못되는 일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자기가 합당하지 못함을 고백하고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그를 의롭게 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 안에서 의로운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의롭습니다. 저는 제 자신 안에서 거룩해질 수 없습니다. 제 자리에 서서 하나님 앞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거룩하게 됩니다. 제 거룩함이 아니라 그분의 거룩함입니다. 제 거룩함은 전혀 통하지 않지만, 그분의 거룩함은 통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그분을 받아들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을 받아들이셨으니 저도 받아들이셔야 했습니다. 제가 그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아멘. 그래서 이것이 실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니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의지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죄를 지어도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형제님, 죄를 지으면 그저 하나님에게서 멀어진 것입니다. 해야 할 일은 하나뿐입니다.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죄짓기를 원하고 죄에 대한 욕망이 아직 마음에 있다면, 그것이 없어질 때까지 제단 앞에 머물러야 할 때입니다. 여러분은 죄를 지을 것입니다. 어쩔 수 없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고의로 짓는 죄는 아닙니다. “진리에 관한 지식을 받은 뒤에 고의로 죄를 지으면”, 아시겠죠, “다시는 죄로 인한 희생물이 남아 있지 아니하니라.” 그러나 여러분은 날마다 죄를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또 끊임없이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으므로 하나님께 끊임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날마다 죽어야 했다면 저는 얼마나 더 그래야 하겠습니까…? 바울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지키기 위해 날마다 죽어야 했다면, 저는 죽을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그렇게 해야 합니다. 자신에 대해 죽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길로 들어서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든 길은 두 가지뿐입니다. 바른 길과 잘못된 길입니다. 그 두 길은 여러분의 길과 하나님의 길입니다. 자기 길과 하나님의 길에 동시에 서 있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길에 들어서려면 자기 길을 잊어야 합니다. 자기 길에서 나와야 하나님의 길에 들어설 수 있습니다. 자기 길에 있는 한 그분의 길 밖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자기 길을 버리고 자기 생각을 버리고 모든 것을 버린 뒤, 오직 한 가지,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만 의지하십시오. 그것뿐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옳다는 것을 압니다.
눈으로 볼 수 없고 어느 감각도 옳다고 말해 주지 않으며 모든 감각이 틀렸다고 말하더라도, 여러분은 그것이 옳다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옳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길은 그분의 말씀이었으며, 지금도 그분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살도록 마련하신 길은 여러분의 감각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에 사람을 자신의 형상대로 두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초자연적인 존재이시므로 그 사람도 초자연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 뒤 하나님께서는 그를 다섯 감각 속에 두셨습니다. 그러나 그 다섯 감각 가운데 어느 것도 그의 하늘 본향을 알려 주지 않습니다. 그 다섯 감각은 땅의 거처를 알려 줍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다섯 감각을 주신 것은 이 땅의 거처와 접촉하게 하려는 것이지, 하나님과 접촉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감각, 이 다섯 감각은 사람의 몸을 다스리고, 두 감각은 속사람을 다스립니다. 그것은 믿음과 불신입니다. 오늘 밤 여러분은 그 둘 가운데 하나를 가지고 있습니다.
에덴동산에는 두 나무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지식의 나무였고, 하나는 생명나무였습니다. 사람은 결코 지식으로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얼마나 교육을 많이 받았든, 목사님이 얼마나 똑똑하고 학위를 얼마나 많이 받았든, 여러분은… 하나님은 교육으로 알려지는 분이 아니며 과학적 연구로 알려지는 분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아는 길은 오직 믿음뿐입니다. 쪼갠 콩과 커피도 구별하지 못하더라도,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을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반드시 믿음의 행위여야 합니다. 사람이 이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을 때에는 영생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그 생명나무를 떠나 지식의 나무로 갔을 때, 첫입을 베어 무는 순간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지식의 나무를 베어 물 때마다 자신을 파괴합니다.
얼마 전 큰 파업이 있었을 때 길을 가다가 석탄을 실은 차가 올라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파업이 끝났군요. 광부들이 다시 일하나 봅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다가 “이 일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전기가 끊기기도 하고 그러니까” 하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모든 지식은… 사람이 처음 이쪽 나무, 지식의 나무를 베어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 나무를 베어 물 때마다 하나님에게서 그만큼 더 멀어집니다. 교육을 다 받으면 된다고 생각할 때… 온갖 학위와 다른 것들을 다 갖춘 사람들이 제게 와서 “브래넘 형제님, 저는 구원받고 싶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신학박사에 법학박사 학위까지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저 이 위에 든 것이 많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아래는 어떻습니까? 아시겠죠? 바로 거기가…
하나님은 족보학을 알아서 아는 분이 아니라, 무릎 꿇는 학문으로 아는 분입니다. 거기서 하나님께서 아십니다. 책을 공부해서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무릎을 꿇고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처음에, 보십시오, 사람은 거기서 화약을 베어 얻었습니다. 그것으로 무엇을 했습니까? 그것은 지식, 지식의 나무였습니다. 자기 동료들을 죽입니다. 다음에는 자동차를 베어 얻었습니다. 자동차는 모든 전쟁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입니다. 그것도 여전히 지식입니다. 이제는 수소폭탄까지 손에 넣었습니다. 그것으로 무엇을 하려는지 모르겠습니다. 보십시오. 사람은 지식의 나무를 먹음으로써 끊임없이 자신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지식과 그 모든 우쭐대는 지식은 잊어버리고, 이것이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라는 것만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믿기를 원하시는 것은 그분의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해 마련하신 길이며, 언제나 그래 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었던 모든 사람, 이 세상에서 무언가를 이룬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그대로 믿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조지 워싱턴이나 에이브러햄 링컨, 그 밖에 누구든 돌아보십시오. 위대한 미국인들과 역사 속 위대한 사람들을 살펴보면, 그들은 하나님을 신뢰한 사람들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길입니다. 사람이… 하나님께서는 이쪽에서 사람을 돌보고 계셨지만, 사람이 제힘으로 해 보려고 나섰을 때 그것이 힘든 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덮을 것 없이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는 것을 알았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덮을 것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가죽을 마련하여 그를 덮어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덮인 채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길이었습니다.
사람은 지식으로 자기 길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이것 봐, 나는 벌거벗었어” 하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무화과나무 잎들을 꿰매어 앞치마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길이 아니라 하나님의 길을 따라야 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스스로 길을 만들려고 합니다. “나는 교회에 다닙니다. 이런 일도 하고, 착한 사람입니다”라고 합니다.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것은 여러분을 위한 하나님의 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길은, 여러분을 위해 무언가를 죽이셔야 하는 길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분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였습니다. 피는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언제나 죄인인 모든 사람이 피할 수 있는 길이며, 어떤 필요가 있든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길입니다. 그것은 피를 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는 길입니다.
얼마 전 아주 유명한 교회 하나가, 그 교회 교인들도 오늘 밤 여기 많이 앉아 계십니다만, 심지어 찬송가에서 피를 빼려고 한다는 신문 기사를 보았습니다. 피, 피에 관한 찬송들을 찬송가에서 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종교는 도살대의 종교가 아닙니다. 우리는 보기 좋고 경건한 것을 원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붓다나 그 밖의 다른 것들과 같은 수준으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들으십시오. 거기서 피를 빼면 더 이상 구원이 없습니다. 그뿐입니다. 오직 피만이, 아니, 구원은 오직 생명을 통해서 오며 생명은 피 속에 있고, 그 피가 드려졌기 때문입니다. 오직 피 흘림을 통해서만 죄의 사면이 있습니다. 저는 피가 뿌려진 옛 신앙을 좋아합니다. 저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분께서 고난받으실 때 하나님께서 거기를 바라보셨고, 우리를 위해 그 피가 흘려졌으므로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을 받아들이셨다는 것을 다시 입증해 주셔야 합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분을 받아들일 수 있지만, 그분께서 여러분을 받아들이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받아들이실 때까지 바로 거기에 머무르십시오. 그리고 받아들이시면 성령침례로 여러분을 자신의 왕국 안에 봉인하십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구속의 날까지 안전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을 슬프게 하지 말라. 그분에 의해 너희가 봉인되었느니라, …까지.” 다음 부흥회까지입니까? 아닙니다. “…구속의 날까지.” 그렇지 않습니까? 오르락내리락하거나 들락날락하는 일이 없습니다. 참으로 하나님 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무언가를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정말 그분 안에, 정말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그분만이 여러분의 유일한 길입니다. 마음을 온전히 드렸고 돌아갈 다리는 모두 불태웠으며, 위에 있는 것들에 애착을 두고 인내로 여러분 앞에 놓인 경주 길을 달려갑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길을 만드시는 것을 보십시오. 그분은 길을 마련하십니다. 그분은 양을 부르셨습니다. 저는 성경에서 왜 우리를 양에 비유했을까 늘 생각했습니다. 여기 양을 기르는 분이 계시는지 모르지만, 저도 양을 좀 몰아 보았습니다. 자랄 때 소를 치기도 했고 여러 일을 했습니다. 사실 제 삶의 대부분을, 어렸을 때부터 목장을 드나들며 지냈습니다. 하지만 정말 속수무책인 것이 무엇인지 보려면 길 잃은 양을 보십시오. 양은 길을 잃으면 도무지 길을 찾지 못합니다. 그뿐입니다. 코요테 같은 것이 와서 잡아갈 때까지 그 자리에 서서 울기만 합니다. 그저 길을 잃은 것입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형제님, 길을 잃은 사람도 그렇습니다. 자신을 아무리 고쳐 보려고 해도 소용없습니다. 목자가 와서 데려갈 때까지는 전혀 어찌할 수 없습니다. 자신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할 길은 전혀 없습니다. 표범이 제 얼룩을 힘껏 핥아도, 여러분이 세탁용 소다나 원하는 무엇으로든 문질러 씻겨도, 얼룩이 더 선명해질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을 고치거나 이것을 버리거나 새 삶을 시작하겠다고 마음먹는 것으로는 안 됩니다. 우리에게 남은 일은 하나뿐입니다. 말씀에서 하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다시 태어나든지, 아니면 잃어버린 자로 남든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에게서 태어나지 아니하면 결코 왕국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작은 사람이든 큰 사람이든 배우지 못했든 어떤 사람이든 그 조건들을 충족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출생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중생이며 새로운 창조입니다.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창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임으로써 말입니다.
이제 그때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길을 택하는 사람은 광신자로 멸시받습니다. 그는 어느 시대에나 세상에서 광신자로 여겨집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과 신앙과 구원이 세상 사람들에게 인기를 누린 때는 결코, 결코 없었습니다. 그분께서는 “너희가 사…”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은 자기에게 속한 사람들을 압니다. 그렇습니다. “너희가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사랑은 너희 안에 있지도 않느니라.” 그러므로 믿음으로 걸어가는 길은 언제나 힘겹게 싸워 나아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에게 힘겨운 싸움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세상이 내려다보며 “저 사람들은 미친 게 틀림없어. 어리석게 행동하잖아”라고 합니다. 언제나 그래 왔습니다. 그가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해 마련하신 피할 길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홍수 이전 세상에서 아버지 노아가, 그는 농부였는데, 어느 오후에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말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오늘 주님께서 내게 말씀하시며 큰 방주를 지으라고 하셨소.” 아내가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릅니다. “노아, 당신이 어떻게 방주를 지어요? 당신은 농부잖아요. 어떻게 방주를 만들 수 있겠어요?” “하나님께서 비가 와서 온 세상이 물에 잠기고 모든 사람이 익사할 거라고 하셨소. 그리고 내가 그분의 말씀을 따르면 피할 수 있다고 하셨소.” 여러분, 우리가 언제나 피할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의 계획을 따르는 것입니다. 오직 그 길로만 피할 수 있습니다.
커다란 마른 들판 한가운데 방주를 세워 놓고 열심히 짓는 노아가 보이는 듯합니다. 하늘에서 빗방울 하나 떨어진 적이 없는 곳입니다. 하늘에서 비라는 것이 내려온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하늘에 구름도 생긴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노아는 거기서 열심히 방주를 짓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어리석게 보였겠습니까? 육신의 생각으로는 그 사람이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오후에 일을 마치고 도시에서 집으로 돌아오며 하는 말이 들리는 듯합니다. “이봐, 저기서 떠들어 대는 비 이야기를 믿어? 저 늙은 괴짜를 어떻게 생각해? 세상에, 여태 본 사람 중에 가장 미친 사람 아니야? 하늘에서 물이 떨어질 거라면서 저기서 방주를 짓고 있잖아. 저 사람은 미쳤어. 저 위에는 아무것도 없어.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여기 아래서 이렇게 물이 흐르게 하여 땅을 적셔 주셨는데.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어.”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것이 피할 길이라고 말씀하셨으므로, 노아는 그대로 짓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노아의 날들이 어떠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이 오는 것도 그러하리라”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땅 위에서 사람들에게 그만큼 미친 짓처럼 보이는 계획이 진행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만큼 어리석게 보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그대로 믿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열심히 방주를 짓고 있을 것입니다. 그 방주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회심한 사람들을 그분 안으로 데려오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그것만이 유일하게 피할 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정말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그는 백이십 년 동안 설교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무시하고 비웃고 놀리고 조롱하고 빈정거렸습니다. 노아의 날들과 같이, 먹고… 그때 세상은 어떠했습니까?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갔습니다. 지금 하는 것처럼 온갖 일을 했습니다. 그들의 문명은 지금 우리의 문명보다 훨씬 뛰어났습니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시면 저기 있는 피라미드를 한번 재현해 보십시오. 그것을 한번 지어 보십시오. 스핑크스나 그와 같은 것을 만들어 보십시오. 이집트 사람들이 시신을 방부 처리하여 만든 것처럼 미라를 만들어 보십시오. 우리가 그 시대 문명과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거기에 한참, 한참 못 미칩니다.
지금보다 더 뛰어난 문명이 있던 시대에 한 사람이 방주를 짓고 있었습니다. 비가 올 것이라고 했지만, 세상이 생긴 뒤 이천 년 동안 하늘에는 구름 하나 없었습니다. 구름도, 천둥 한 번도, 번개도, 그 밖의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그런 일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의 위대한 영께서 이 세상을 밀어 원래 상태에서 벗어나게 하고 뒤로 기울여 구름이 생기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반드시 그 말씀 그대로 될 것입니다. 노아는 계속 지었습니다. 방주가 물 위에 떠 있는 것처럼 역청을 바르고 그 안에 타르를 발랐습니다. 비만 오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을 휩쓸 홍수가 날 것이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경고를 받고 믿음으로 움직여 방주를 지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길을 따라 일한 것입니다.
오, 방주의 마지막 부분을 붙이며 계속 망치질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둘러서서 웃으며 “이봐, 그 거대한 물건을 가지고 뭘 할 거야?”라고 합니다. 그를 놀리고 온갖 짓을 합니다. 그러나 그는 그저 계속 지었고, 그 끝에 서서 힘껏 설교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하나님께서 더 이상 참지 않으시는 날이 왔습니다. 땅 위에 이상한 느낌이 감도는 모습이 보이는 듯합니다. 지금과 비슷합니다. 모두 불안해하며 “무슨 일이 일어나려는 거지?” 합니다. 거리에 나가 어떤 죄인에게 말을 걸어 보아도 그렇습니다. 술집에 들어가 보아도 모두가 무언가 일어나려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렇습니다! 무언가 일어나려 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심판이 임해 있고,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있습니다.
여기 들판에서 풀을 먹는 어린양을 상상해 보십시오. 가엾은 작은 양은 아무것도 보지 못하지만 불안해지기 시작합니다. 무언가 일어나려 합니다. 저쪽 수풀 속에서는 사자 한 마리가 몸을 웅크리고 다가오고 있습니다. 양은 어딘가에서 그것을 느낍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려 한다는 것을 압니다. 사자를 볼 수는 없지만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압니다. 형제님, 오늘날도 그렇습니다. 오늘날 하나의 장면이 마련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온갖 암흑과 어둠과 죄와 이런 일들이 뒤섞여,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사건의 무대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우리가 마지막 날을 맞이하려면 먼저 사람들이 마지막 날의 영에 들어가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치유 집회의 영에 들어가기 전에는 여기서 치유 집회를 가질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그런 분위기에 들어가기 전에는 성령으로 충만해지는 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땅에 심판을 불러오는 분위기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같은 분위기 속에 있습니다.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온갖 그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한편 하나님의 영광은 성령의 권능 가운데 전파되고 나타나고 있습니다. 교회를 영광으로 데려갈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어떠한 것인지 그 본보기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제가 여기 서 있는 것만큼 확실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것을 무시하고 관심을 두지 않으며 떠나갑니다. 마지막 날의 영에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의로운 백성에게 진노를 쏟으신다면 하나님께서 불의하신 분이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분을 무시하고 떠났으며 사탄이 그들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때에 그들은 그렇게 서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길을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피할 길입니다. 그 길은 다시 태어남으로 들어가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처음 번개가 일어나 하늘을 가로질러 번쩍이자 노아가 “여보, 어서 가세” 하는 모습이 보이는 듯합니다. 그의 아들들도 아내들에게 “어서 가요”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방주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지? 어디서 번쩍했는데”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얼마나 강한 이끌림이 있었던지 동물들까지도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 위에 어미 새가 앉아 있고 아비 새는 계속 노래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 듯합니다. 첫 번개가 번쩍이며 처음으로 표적들과 이적들이 일어나기 시작하자, 아비 새가 말하는 것이 보입니다. “어미 새, 어서 곧장 방주로 가자. 노아가 일어날 거라고 한 바로 그 일이야. 우리 안에서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영이야. 방주로 가자.” 어미 낙타는 저기 산비탈에서 풀을 먹고 있고 아비 낙타는 이쪽에 있습니다. 첫 번개가 하늘을 가르고 표적들과 이적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자, 아비 낙타가 어미 낙타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어서 가자. 바로 그거야. 여기 속에서 무언가 잡아당기고 있어. 무언가 나를 움직이고 있어. 방주로 들어가야 해.” 여러분, 하나님께서 그들이 방주 안으로 들어오도록 정하셨던 것입니다.
저는 오늘날 곳곳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오실 표적들과 이적들이 나타날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도록 하나님께서 정하신 모든 남녀가 그 이끌림을 듣는다고 믿습니다. 그들은 할 수 있는 한 빨리 방주로 달려가 안전한 곳으로 들어갑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피할 길을 마련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표적들이 나타나고 이적들이 나타나며 신비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봅니다. 그렇습니다. 하늘을 나는 비행접시와 그 밖의 온갖 것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저 크고 두려운 주의 날이 오기 전에 위로 하늘과 아래로 땅에 표적들이 있으며 불기둥과 연기가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바다가 울부짖고 해일이 덮치는 것 등 이 모든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의 심장이 쇠약해집니다. 지금은 심장병이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시대입니다. 두려움, 혼란스러운 시대, 민족들 사이의 고통이 있습니다. 오, 선지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말 없는 마차들이 넓은 길에서 달리며 횃불같이 보이고 번개같이 달려가리라.” 말씀하신 모든 것이 오늘날 우리 눈앞에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시는 경고입니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 준비하십시오! “브래넘 형제님, 제가 왜 하나님 만날 준비를 해야 합니까?” 형제님, 결혼식도 준비하고 다른 어떤 일도 준비하지 않습니까? 이런 일들이 다가오는 것을 보면 하나님 만날 준비를 하십시오. 머리에서 흰머리 하나를 볼 때마다, 하나님 만날 준비를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장의사 앞을 지날 때마다, 하나님 만날 준비를 하라는 뜻입니다. 아기가 태어날 때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 만날 준비를 하십시오. 장례 행렬이 지나갈 때마다 하나님 만날 준비를 하십시오. 경고하는 복음을 들을 때마다 하나님 만날 준비를 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피할 길을 가지고 계십니다. 지금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거기가 안전한 곳입니다. 그 동물들은 모두 둘씩 짝을 지어 곧장 방주로 들어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진노를 진심으로 피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해 언제나 길을 내십니다. 계속 살펴보면 생각할 수 있는 일이 많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오래된 책 가운데 하나인 욥기가 생각납니다. 종기가 온몸에 난 채 서 있는 욥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때때로 사람들은 “욥이 죄를 지었어”라고 했습니다. 많은 경우에… 오늘 누군가가 “이 사람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고 저 사람에게 저런 일이 일어났으니, 그것은 그들이 죄인이라는 증거지”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그들이 죄인이라는 증거는 아닙니다. 전혀 아닙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질병이 오는 것을 허락하십니다. 하지만 욥처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깨끗하고 거리낌 없다는 것을 마음속으로 안다면, 욥에게도 위로자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칠 일 동안 욥에게 등을 돌리고 앉아 그가 몰래 죄를 지은 사람이라고 비난했습니다. [녹음 공백.] “당신은 어리석은 여자처럼 말하는군요. 주께서 주셨고 주께서 가져가셨으니 주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시기 원하노라.” 형제님, 욥은 한 가지를 알았습니다. 하나님만이 유일한 길이며 자신이 붙들 수 있는 모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주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시기 원하노라”라고 했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 벌거벗고 왔으니 벌거벗고 갈 것이다. 그러나 주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시기 원하노라”라고 했습니다. 그런 처지에 있는 사람, 하나님의 말씀을 기꺼이 붙들려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무언가 보내 주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자신에게로 이끌어 주셔야 합니다.
오늘 밤 여러분은 여기 앉아서 신유를 원하고 있습니다. 신유라는 것이 있음을 믿습니까? 온 마음으로 믿는다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여러분에게 알려 주셔야 합니다. 아멘. 하나님의 말씀이 그것을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곳에 선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기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정확히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기다렸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모든 일이 잘못되는 것 같고 위로자들마저 위로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행하셔야 했습니다. 동쪽에서 작은 사람 하나, 엘리후가 왔습니다. 엘리후가 욥 앞에 서서 “자, 보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어린아이도 알아듣게 말해 보겠습니다. 욥은 “보십시오, 나무는 죽어도 다시 사는 것을 봅니다. 꽃도 죽어도 다시 삽니다. 하지만 사람은 누우면 숨을 거두어야 하고 소멸됩니다. 아들들이 그를 존귀하게 하려고 와도 그는 어디에 있습니까? 오, 주께서 나를 무덤에 감추신다면” 하는 등 여러 말을 했습니다. 엘리후가 말했습니다. “욥이여, 잠깐만요.” 저는 이 부분이 좋습니다. “욥이여, 잠깐만요. 당신은 하나님을 부당하게 비난하고 있습니다. 저 꽃은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 꽃이 다시 살 수 있는 길을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제가 온 북쪽 지방에서는 우리가 기르는… 거기 여자분들도 여러분처럼 꽃을 좋아합니다. 여름에는 그 작은 꽃들이 아름답습니다. 그러다가 서리가 내립니다. 어떤 꽃은 어리고 어떤 꽃은 늙었지만, 서리가 내려 꽃들을 얼리면 그것이 죽음입니다. 꽃들은 작은 고개를 숙이고, 이내 꽃잎이 떨어지며 작은 검은 씨앗 하나가 떨어져 나옵니다. 그러고는 꽃들을 위한 장례 행렬이 이어집니다. 가을비가 지나가며 울듯이 내리고 그 작은 씨앗을 땅속에 묻습니다. 추운 겨울이 옵니다. 지금쯤 그쪽은 땅이 사오 인치 깊이까지 얼었을 것입니다. 작은 꽃잎은 없어지고 알뿌리는 말라 버렸으며 작은 씨앗은 터져서 속이 흘러나왔습니다.
그렇게 십이월, 일월, 이월, 삼월, 사월, 오월이 지나갑니다. 이제 오월이 옵니다. 사월 말에서 오월 초가 됩니다. 씨앗도 없어지고 속도 없어지고 꽃잎도 없어지고 줄기도 없어졌습니다. 눈에 보이던 그 꽃의 모든 것이 사라졌습니다. 정말 사라졌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길을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어딘가에 작은 생명의 씨가 누워 있습니다. 저 동쪽에서 해가 떠올라 땅을 따뜻하게 비추기 시작하는 것만큼 확실하게, 그것은 다시 살아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다시 살 길을 마련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꽃이 다시 살 길을 만드셨다면, 자신의 형상대로 지으신 사람은 어떻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다시 살 길을 참으로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하지만 욥은 말하면서, 사람이 자기 죄와 범죄들 때문에 하나님에게서 끊어졌음을 보았습니다. 엘리후는 사람의 범죄들이 어떻게 그를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했는지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욥은 그것을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서 있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얼마 뒤 엘리후가 말했습니다. “그러나 한 분이 오십니다. 의로운 분, 그 틈에 서서 한 손은 죄 많은 사람에게, 한 손은 거룩하신 하나님께 대실 분입니다. 그러면 꽃이 땅에서 올라오는 것처럼 사람도 땅에서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또 말했습니다. “봄이 되면 꽃이 올라오는 것을 보면서도, 당신은 사람이 누워 숨을 거두면 어디에 있느냐고 합니다. 사람이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길을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람을 다시 그 길에 놓아 주실 분이 오십니다. 할렐루야! 오, 그것을 생각하면 제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 “이것을 사람들에게 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외침이 터져 나옵니다. “그렇습니다. 이 몸이 서게 될 그 길에 사람을 다시 놓아 주실 분이 오십니다. 그분께서 여기 있는 죄의 틈에 손을 대시고 그 안으로 들어가 죄를 친히 짊어지심으로, 사람이 다시 땅에서 나올 수 있도록 돌아갈 길에 다리를 놓으실 것입니다.” 욥은 그것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선지자였기에 이 작은 선지자 엘리후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이내 욥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눈앞에 자신의 쌍안경을 내려 주셨습니다. 욥은 사천 년 뒤를 내다보고 말했습니다. “내 구속자께서 살아 계시며 마지막 날들에 그분께서 땅 위에 서실 것을 내가 아노라. 살갗의 벌레들이 이 몸을 멸할지라도 내가 여전히 내 육체 안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내가 몸소 그분을 보리니 다른 것이 아니요, 내 눈이 바라보리라.” 그렇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보았습니다. “다른 것이 아니요, 내 눈이 바라보리라”라고 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자기가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길 안에 있고 자기 안에 생명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나는 그분을 믿고 있으므로 그날에 내가 일어날 줄 압니다”라고 했습니다. 마지막 날에 예수님께서 서셔서 사람을 위해 그 길에 다리를 놓으실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믿는 사람들을 위해 피할 길을 마련해 오셨습니다.
모세가 생각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이집트에 있었습니다. 저 아래 이집트에서 이집트의 노역 감독들에게 맞고 매질당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피할 길을 마련하셨습니다. 모세라는 사람을 보내셨습니다. 모세가 그들을 데리고 나오기 전에, 그들은 죄를 짓고 하나님에게서 멀어져 있었습니다. 모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그곳으로 보내시며 어린양을 잡아 희생물로 드리고 그 피를 문 위의 인방과 문기둥들에 바르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십시오. 인방, 곧 문 윗부분과 문기둥들입니다. 바닥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피는 내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올려다보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문에 정확히 십자가 모양이 됩니다. 그 당시 모든 아버지는 자기 가정의 제사장이었습니다. 집집마다 어린양을 잡아야 했습니다. 어린양은 십사 일 동안 따로 두고 시험해야 했습니다. 모든 고소자 앞에서 시험받으신 그리스도의 완전한 모형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에게는 흠이 없었습니다. 이 하나님의 어린양에게서 어떤 흠이라도 찾아낼 수 있었는지 잠깐 보겠습니다. 물론 그분의 친구들은 그분을 증언할 것입니다. 그분의 원수들을 보겠습니다. 그분의 큰 원수 가룟 유다는 그분께서 거기에 달리신 것을 보고 “내가 무죄한 피를 배반하여 넘겼노라”라고 했습니다. 대제사장의 발 앞에 돈을 던져 놓고 가서 밧줄을 구해 목을 매었습니다. 로마의 백부장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돌아가실 때 땅이 흔들리고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느끼자, 가슴에 손을 얹고 “진실로 이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했습니다.
아버지께서 친히 하늘의 시야를 닫으셨습니다. 선지자가 일어날 것이라고 말한 대로 대낮에 한밤중처럼 어두워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저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그렇게 하셨습니다. 저 재판석에 앉아 있는 높은 사람, 빌라도를 보십시오. 사람들이 이른 아침에 그를 불러냈습니다. 그는 마음이 잔뜩 들끓고 어쨌든 몹시 언짢았으며, 이 사람을 좀 미워했습니다. 사람들은 이른 아침에 판결을 내리게 하려고 그를 데려다가 재판석에 앉혔습니다. 그리고 그분을 끌고 왔습니다. 빌라도는 그분이 자기를 위해 기적을 행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자기를 기쁘게 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그가 막 예수님께 유죄 판결을 내리려 할 때, 무언가 길을 따라 있는 힘껏 달려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무엇입니까? 궁전에서 내려오는 말입니다. 한 사람이 말에서 뛰어내려 달려옵니다. 누구입니까? 궁전의 경비병입니다. 그는 주머니에서 편지를 꺼내 빌라도 앞에 엎드려 건넵니다. 빌라도가 그것을 집어 펼칩니다. 그는 격분한 채 예수님께 유죄 판결을 내리려 하고 있었습니다. 편지를 읽기 시작하자 손이 떨리고 무릎이 서로 부딪치기 시작합니다. 그 잔인한 황제를 순식간에 바꿀 만한 무엇이 편지에 적혀 있습니까? 무슨 일이 그런 사람을, 그를… 아니, 그들의 황제를 그렇게 만들겠습니까? 잠깐 그의 어깨 너머로 들여다보겠습니다. 이교도인 아내에게서 온 편지입니다. “당신은 이 의로운 사람과 조금도 상관하지 마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분으로 인해 많은 일들로 시달렸나이다!” 그가 말했습니다. “물을 가져오너라. 내 손을 씻겠다. 나는 이 일과 상관없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는 그가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그곳에서 피할 길을 마련하고 계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맞습니다.
오늘 밤 여러분을 위해서도 길을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여러분도 빌라도처럼 그분을 자기 손에서 씻어 버리려 하십니까? 결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빌라도를 정당화합니까? 아닙니다. 빌라도는 손을 씻었다고 의롭게 되지 않았습니다. 빌라도가 의롭게 되었다면 여러분도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여러분은 밤마다 이것을 봅니다. 손을 씻고 “나는 이것과 아무 상관도 하지 않겠어. 돌아가겠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 손에서 씻어 낼 수는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빌라도의 최후를 아시지요. 그는 저 위 노르웨이, 스웨덴 근처에서 몸을 던져 죽었습니다. 지금도 해마다 사람들은 그가 예수님에 대해 손을 씻었던 바로 그 푸른 물이 솟는 것을 보러 거기에 갑니다. 미신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해마다 그것을 보려고 모입니다. 아닙니다. 씻어 없앨 수 없습니다.
저 아래 이집트에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불러내라…” 저는 이 말씀을 좋아합니다. “내가 차이를 두겠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구별하십니다. “이집트 사람들과 이스라엘 사람들 사이에 차이를 두겠다. 그 차이는 어린양의 피 흘림으로 생길 것이다.” 불러내어 분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구별되어 서는 사람들을 부르십니다. 교회 안의 많은 사람이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이 젊은이를 원합니다. 막 대학을 졸업했는데, 사교 모임에서 술도 한잔할 줄 알고, 어찌나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지요.” 하나님께서는 섞여 어울리는 사람들을 원하지 않으시고, 구별되어 서는 사람들을 원하십니다. “나를 위해 바울을 따로 세우라.” 세상의 것들로부터 자신을 분리하십시오. 하나님, 긍휼을 베푸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순수한 복음을 전할 옛날 같은 설교자들을 주옵소서. 검은 것은 검다고, 흰 것은 희다고 하며, 복음이 누구에게 닿든 그대로 전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침례자 요한은 “도끼가 나무의 뿌리에 놓였느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런 설교자들을 더 주십시오! 그러면 우리는 모든 일에서 다시 하나님의 길로 돌아갈 것입니다. 아멘.
자, 보십시오. 그분께서 “어린양을 잡아 저녁에 죽이라”라고 하셨습니다. 저녁에 죽으신 그리스도의 완전한 모형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온 회중이 그 죽음을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그리스도 때에도 그렇게 했습니다. 그날 밤을 위해 피를 문에 발라야 했습니다. 죽음의 천사가 그 땅을 돌아다닐 것이었습니다. 피가 없는 곳마다 죽음이 있을 것이었습니다. 형제님, 죽음의 천사가 이 땅을 돌아다니는 때가 있다면 바로 오늘 밤입니다. 그는 제사장이 서 있는 교회 문으로 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권능을 부인하는 교회에는 “하나님의 모든 영광이 떠났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죽음의 천사가 들어가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사람들은 형식에 매여 죽어 버리고 하나님의 권능을 부인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이내 죽음이 그 무리 전체를 덮습니다. 그들에게는 아무것도 믿게 할 수 없습니다. 믿을 수가 없습니다.
이 죽음의 천사를 보십시오. 아버지의 모습이 보이는 듯합니다.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린 뒤, 한번 어린양의 피 아래 들어갔으면 출발 명령이 내려질 때까지 그 아래 머물러야 했습니다. 형제님, 이것은 나사렛 교인 여러분에게 좋은 말씀입니다. 보십시오. 피 아래로 들어갑니다. 그 피를 문 위 인방과 문기둥에 바르고 그 아래로 들어갑니다. 사람이 그 문을 통해 집에 들어오면 누구든 이집트를 떠나라는 출발 명령이 내려질 때까지 거기에 머물렀습니다. 저는 그것이 좋습니다. 거기 머무르십시오! 그날 밤 잔치에 가는 젊은 여자들이 이스라엘 처녀에게 이렇게 말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레베카, 어서 와.” 그런 식으로 “나와, 우리 같이…”라고 합니다. “나는 그럴 수 없어.” “왜?” “우리는 피 아래 있거든.” 오, 오! “우리는 피 아래 있어.” “그러지 말고 어서 가자. 너희 아버지가 믿는 그 미친 종교는 말도 안 돼.” “하지만 말이야, 내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그 피 밖으로 나가면 안 된다고 말하고 있어.”
그들은 큰 잔치와 그런 곳들로 갔습니다. 그러다가 자정 무렵부터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조금 전에 말한 대로 지금 다시 세상에 감도는 느낌과 같습니다. 무언가 잘못되었습니다. 크고 울부짖는 듯한 어둠이 땅을 덮었습니다.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집에 있는 어린 소년이 보입니다. 이제 우리가 가 보려는 집입니다. 그 아이를 보십시오. 이렇게 말합니다. “저게 뭐예요? 좀 이상한 느낌이 들어요. 무도회에 갔던 아가씨들이 모두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고 있어요.”
오, 그때는 기도하기에 너무 늦었습니다. 이내 아이가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합니다. 소년이 하는 말이 들리는 듯합니다. “아빠, 말씀에 집집마다 맏아들이 죽을 거라고 했어요?” “그렇단다.” “그럼 아빠, 우리 집은 어떻게 돼요?” “얘야, 우리는 더할 나위 없이 안전하단다.” “안전한지 어떻게 알아요?”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단다. 우리는 피 아래 있어.” 조금 뒤 아이가 말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얼마 후 제가 창밖을, 아니, 그 소년이 창밖을 내다봅니다. 보십시오. 크고 검은 두 날개가 공중을 가르며 다가옵니다. 죽음입니다. 검은 날개가 오늘날 이 나라를 뒤흔든 때가 있다면, 우리는 지진을 겪었고 전염병을 겪었으며 이 땅에 올 수 있는 온갖 일을 겪었습니다. 이집트에서 그랬던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멸망 전에 이집트를 친 마지막 재앙은 죽음이었습니다. 교회를 친 마지막 재앙도 영적 죽음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마지막입니다.
교회들이 죽어 가고 있습니다. 교회들이 쇠해 없어지고 있습니다. 오, 우리는 여러 날 이어지는 집회는 열지만 부흥은 없습니다. 부흥이 없습니다. 미국에 큰 부흥이 있다고들 합니다. 어디에 있는지 말해 보십시오.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는 미국에서 부흥의 첫 단계에도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사람들에게 신학과 그런 것들을 가르치려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길, 곧 성령침례를 통해 그들을 돌이키고 갈보리의 길을 통해 하나님께 돌아가게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교회로 데려오고, 교회에 가입시키고, 침례를 주어 교회에 넣고, 악수하여 교회에 넣고, 이명 증서를 가져와 교회에 넣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 안에 태어나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부흥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시 한번 옛날 같은 감동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옛날 존 웨슬리의 부흥처럼, 사람들이 밤새도록 서서 설교하고 성령의 권능이 회중 위에 임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그것이 다시 필요합니다. 아멘! 지금 제 마음에 신앙의 열기가 솟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 들으십시오. 한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나라에 절실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더 많은 신학교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더 많은 설교자가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우리에게 있는 설교자들이 성령으로 충만해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그것입니다. 제가 여기 서 있는 것만큼 확실한 진실입니다. 이제 또 한 가지를 보십시오. 그 어린 소년이… 우리는 그 날개들이 내려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한 집에 닿자 비명이 들렸습니다. 그런데 소년이 말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아빠, 거기에 피가 묻어 있는 게 확실해요?” 아버지가 나가서 거기를 살펴보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래, 얘야. 피로 덮여 있구나.”
그 날개들이 그 집을 향해 옵니다. 그러나 이렇게 내려오려다가 피를 봅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그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넘어가리니, 내가 넘어가리라.” 그렇습니다. 넘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피할 길입니다. 오늘 밤 하나님께서는 지금 미국에 존재하는 차갑고 형식적이며 무관심하고 경건하지 못한 상태에서 여러분이 피할 길을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교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그리스도께서 하지 말라고 하신 일은 모두 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병든 자들을 고치고 죽은 자들을 일으키며 나병 환자들을 정결하게 하고 마귀들을 내쫓으라”라고 하신 것은 부인합니다. 설교자들을 교육해 신학을 갖추어 내보냅니다. 그분께서 하지 말라고 하신 바로 그 일을 합니다. 그러면서 그것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합니다. 아멘!
형제님, 그것은 진실입니다. 제가 마땅히 해야 할 방식으로 말하지 못할지는 몰라도, 마음에 있는 그대로 말합니다. 투박한 말일지 모르지만, 이제는 사람들이 고무장갑을 끼고 나약하게 다루듯 하지 말고 복음을 다룰 때입니다. 진실을 말하십시오!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여기서는 여러분을 미워할지 몰라도 심판대에서는 사랑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나약하게 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나약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행한 가장 위대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사람을 판단하실 때… 누군가는 “정말 남자답지 않습니까?”라고 합니다. 어깨가 이만큼 넓고 팔이 이만큼 굵다는 것입니다. 짐승처럼 힘센 자일지는 몰라도, 그 속에 남자다운 데라고는 조금도 없을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근육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인격으로 판단합니다. 저는 몸무게가 이백 파운드나 되는 남자가 자기의 짐승 같은 욕정을 채우려고 어머니 품에서 아기를 내던지고 그 여자를 강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손에 박인 굳은살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느라 바지 무릎이 불룩 튀어나온 것으로 판단합니다. 할렐루야!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사람들이 더 많아지는 것입니다. 참으로 경건하고 옛날 같은 성령의 확신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저는 세상의 모든 선생이 제 아들에게 신학을 억지로 집어넣으려 하는 것보다, 알파벳도 모르는 사람이라도 그런 사람이 제 아들과 함께 저기 빗자루풀이 무성한 곳의 그루터기 옆에 서서 아들이 성령을 받을 때까지 기도해 주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아멘! 형제님, 그것은 진실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위해 마련하신 길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들이 저기서 행진해 나왔을 때에는 없었습니다… 출발 명령을 받고 길을 나섰습니다. 다리를 건너, 저쪽으로 갔을 때, 하나님께서는 바닷속 바닥으로 그들을 위한 다리를 놓아 주셨습니다. 건너편에 도착한 뒤 마실 것이 필요해졌을 때, 물이 모두 떨어졌습니다. 거기에 못이 하나 있었지만 물이 써서 마실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무를 마련해 두셨습니다. 그는 그저 거기로 가서 나무를 베어 못에 던졌습니다. “원하는 만큼 마시라.” 하나님께서는 길을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우리는 여행 중이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위한 길을 가지고 계십니다. 할렐루야! 하나님, 긍휼을 베푸소서. 분명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이 도시를 뚫을 길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찾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 그것을 계시해 주옵소서. 보십시오. 길이 있었습니다. 산비탈에 관목 한 그루가 서 있었습니다. 모세가 그것을 베어 거기에 던지고 말했습니다. “원하는 만큼 마시라. 좋은 물이다.” 얼마 뒤 다시 물이 필요해졌을 때 그들은 광야 깊숙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서 반석을 치라”라고 하셨습니다. 반석입니다. 그들은 찾을 수 있는 작은 곳마다, 아마 모든 곳을 샅샅이 뒤지고 오아시스마다 살폈을 것입니다. 샘이 있던 곳이면 어디든 그 아래를 살피고 돌을 들어 올렸습니다. 그러나 물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터무니없어 보이는 일을 행하셨습니다. 광야에서 가장 메마른 것을 두고 “가서 거기에 말하라. 물이 있는 곳이 거기다”라고 하셨습니다.
오늘날도 그렇게 보입니다. 신유와 하나님의 권능과 성령침례가 바티칸 같은 곳에서 나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길모퉁이에 있는 작은 ‘성령에 취한 광신자들’ 무리를 택하십니다. 그들은 알파벳도 모를지 모릅니다. 물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께서는 겉치레나 그런 것들로 일하지 않으십니다. 배우지 못한 사람들에게 긍휼을 베푸십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무식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성경은 그들이 아주 무식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들을 주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아름다운 문이라는 곳에 있던 사람을 고칠 만큼 믿음이 있었습니다. 베드로에게는 아나니야에게 “너는 거짓말하고 있다!”라고 말할 만큼 하나님의 권능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돈을 감추었구나. 삽비라, 너도 똑같이 했다.” 그들은 너무 겁을 먹어 심장마비로 죽었습니다. 사람들이 그들을 들고 나가 묻었습니다. 아멘! 그 동일한 하나님께서 오늘날도 살아 계십니다. 그 동일한 계획이 오늘날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하나님께서 저 광야를 지나며 일하고 계셨습니다. 먹을 것이 필요한 때가 왔습니다. 먹을 것이 필요해지자 하나님께서는 그저 하늘에서 만나를 비처럼 내려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길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먹고 살겠습니까? 여기에는 빵도, 밀도, 옥수수도 없는데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무 상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리로 나오라. 나머지는 내가 돌보겠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하늘에서 만나가 비처럼 내렸습니다. 영광스럽지 않습니까? 그저 만나를 비처럼 내려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나가서 줍기만 하면 됩니다. 하지만 한 번에 너무 많이 줍지는 마십시오. 오늘 밤에 내일 밤까지 먹을 만큼 모아 두려 하면, 그것에 장구벌레가 생기고 썩었습니다.
그것이 오늘 밤 교회에 있는 문제의 절반쯤 됩니다. 고여서, 저 위 남부에서 우리가 장구벌레라고 부르는 것들이 생긴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의 체험에 있는 문제가 그것입니다. “나는, 나는 저 옛날 십 년 전에 복을 받았습니다”라고 합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지금은 기도로 얼마나 준비되어 있습니까? 아일랜드에서 건너오던 작은 아일랜드 어머니가 생각납니다. 딸을 만나러 뉴욕에 가는 길이었습니다. 오는 도중 배가 가라앉을 지경이 되어 구조 신호를 보냈습니다. 아래층에서는 무슨 재즈 음악을 연주하고 모두가 춤추고 있었습니다. 선장, 그 배의 선장이 내려와 말했습니다. “여러분, 잠깐만요. 음악을 바꾸십시오. 삼십 분을 버티면 도착하겠지만, 버티지 못하면 바다 밑으로 가게 됩니다.”
그러자 모두가 “내 주를 가까이”를 연주하기 시작했고, 모두 바닥에 엎드려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작고 낡은 옷을 이렇게 여미고 긴 소매를 드리운 그 자그마한 아일랜드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영광입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선장이 “부인, 왜 그러십니까?”라고 했습니다. “저는 행복해요.” “제 말을 잘못 알아들으셨군요. 지금부터 삼십 분 뒤에 우리가 바다 밑에 있을 수도 있다고 한 말을 들으셨습니까?” “알아들었어요.” “그런데 왜 기도하지 않으십니까?” 그녀는 말했습니다. “저는 기도로 준비가 다 되어 있어서 기도할 필요가 없어요.” 그렇습니다. “기도로 준비가 다 되어 있어요. 오, 영광입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부인, 어떻게 그러실 수 있습니까? 기도로 준비가 되어 있다 해도 무엇 때문에 그렇게 외치십니까?” 그녀는 말했습니다. “지금부터 삼십 분을 버티면 뉴욕에 도착한다고 하셨지요?” “그렇습니다.” “버티지 못하면 바다 밑으로 간다고 하셨지요?” “그렇습니다.”
그녀는 “영광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만나러 가는 딸이 뉴욕에 있어요. 그리고 버티지 못하더라도 영광의 나라에 딸이 하나 있어요. 삼십 분 뒤면 둘 중 하나를 만나게 됩니다. 할렐루야,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기도로 준비를 갖추고 떠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길을 걸으며 어느 순간이든 준비되어 있으십시오. 아멘. 그분께서 어느 순간에 자기 앞으로 오라고 부르실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곳을 지나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러다가 그곳에는 치료약이 없었고, 모세 의사도 알맞은 혈청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뱀에 물린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길을 마련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는 뱀을 만들었습니다. 놋으로 만들어 장대에 달았습니다.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가서 그 장대, 그 장대 위의 뱀을 보고 하나님께서 거기에 세우셨다는 것을 믿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러면 나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저기 가서 뱀독에 쓰는 약초를 구해 한번 붙여 봐야겠어”라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이봐, 존, 어디 가?”라고 했습니다. “뱀독에 쓰는 약초를 구해 여기에 붙여 보면 낫는지 보려고.” “나는 그저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길을 따르겠어. 뱀을 바라보고 살겠어.”
그 사람은 살았고, 약초는 소용이 없었습니다. 아멘. 오늘 밤 하나님께는 치료제가 있습니다! 할렐루야! 그 치료제는 성령침례를 통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여러분은 제가 미쳤다고 생각하실지 모릅니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행복합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전에 그랬을 때보다 지금 이렇게 사는 것이 더 행복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사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아시겠죠? 저는 지금 참으로 기분이 좋습니다. 좋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길을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한때 엘리야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나라는 너무 죄가 많으니 내가 심판을 내리겠다. 그러나 엘리야, 너를 위해서는 피할 길을 마련하겠다.” “주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 산 위 그릿의 물가로 올라가 앉아 있거라.” 엘리야는 거리를 지나가며 “내가 비를 부를 때까지는 비가 오지 않을 것이다. 나는 저 위 산으로 올라가 앉아 있겠다”라고 했습니다. 가뭄이 들었을 때… 사람들이 지나가며 이렇게 말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저 위에 있는 미친 늙은 괴짜 좀 봐. 저 산 위의 작은 샘 곁에 앉아 있어. 저 위에는 물이 없다는 걸 알 텐데.”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계속 물이 흐르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해 주시는 것이 저는 참으로 기쁩니다. 그렇게 산 위에 앉아 있는데…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저 늙은이는 틀림없이 저 위에서 바싹 말라 버렸을 거야.”
아닙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는 그저,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길을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거기 올라가 앉아 있거라. 내가 이미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너를 먹이게 하였느니라.” 사람들은 “저 가엾은 늙은 괴짜가 저 위에서 굶어 죽고 있군”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오히려 더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아마 오늘 밤 여기 계신 많은 분보다 더 잘 지냈을 것입니다. 그에게는 시중들어 주는 흑인 하인들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그런 하인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까마귀들이 와서 시중들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그에게는 흑인 시종들이 있었지만, 여러분 절반은 그런 시종이 없을 것입니다. 까마귀들이 지나가면서 그에게 와서 시중을 들었습니다.
얼마 전 어떤 설교자가 제게 말했습니다. “빌리, 그 까마귀들이 그 사람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주었다는 걸 정말 믿는다는 말인가?” 저는 “성경이 그렇게 말하므로 믿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한 가지 묻겠네. 도대체 그 까마귀들은 샌드위치를 어디서 구해 엘리야에게 가져다주었나?” 저는 “모릅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아는 것은 까마귀들이 구했고, 까마귀들이 가져왔고, 엘리야가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끝입니다.” 또 말했습니다. “지금도 똑같습니다. 무엇 때문에 제가 이렇게 행동하는지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아는 것은 하나님께서 가르치셨고, 성경이 그렇게 말했고, 성령께서 가져다주셨으며, 제가 받아서 즐겁게 지낸다는 것뿐입니다.” 어떻게 오는지 저는 모릅니다. 그냥 여기에 있습니다. 할렐루야, 저는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저는 그저 먹습니다. 성령께서 가져오시면 “예, 주님”이라고 합니다. “
그런데 사람들이 너를 성령에 취한 광신자라고 부를 텐데.” 주님, 상관없습니다. 저는 그저 이것이 좋습니다. 기분이 좋으니 계속 먹겠습니다. 내려 주십시오. 아멘. 그저 이 샌드위치를 좀 더 크게 한입 베어 먹게 해 주십시오. 그것뿐입니다. 사람들이 “이런, 거기 서서 찾아보려고…”라고 하는 말이 들립니다. 그런데 광신자라는 그 늙은 설교자는 저 위에 앉아 아무 걱정도 하지 않습니다. 아시겠죠? 하루 종일 거기 앉아 있습니다. “오 주님,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 저는 그저 주님을 찬양합니다.” 까마귀가 와서 “엘리야, 여기 있습니다”라고 합니다. 그 커다란 샌드위치를 받아 들고 “오!”라고 합니다. 저 아래 사람들은 자기 혀를 씹고 있습니다… 그저 시냇가로 내려가 원하는 만큼 마십니다. 그런데도 미쳤다고 불립니다.
형제님, 바로 그렇습니다. 우리가 성령침례를 받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우리를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형제님, 우리는 결코 마르지 않는 샘에서 마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솟아오르는 영원한 생명수를 마시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길입니다. 분명 그렇습니다. 그저 교회에 가입하고 설교자와 악수하려 하지 말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으십시오! 할렐루야.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마련하신 길입니다. 믿기만 하면 그분께서는 언제나 피할 길을 내실 것입니다. 믿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분께서는 엘리야에게 피할 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때가 되었는데 비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가서 준비하라”라고 하셨습니다. 자, 엘리야는 이스라엘의 부흥을 준비했습니다. 그다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원하는 일을 말하겠다. 돌 열두 개를 가져다가 여기 한데 굴려 모아라.”
그것은 모든 것을 바로잡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길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가서 이스라엘 각 지파를 위해 돌 하나씩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무엇이 문제인지 아십니까? 우리는 오순절 돌 하나를 굴려 놓고 “이것이다”라고 하려 합니다. 감리교인들은 돌 하나를 굴려 놓고 “이것이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 돌을 하나도 빠짐없이 한데 굴려 모으고, 어디에 있든 온 교회 위에 옛날 같은 성령의 부으심이 임하기를 원하십니다. 오, 형제님, 가슴에 와닿았습니까? 저는 느꼈습니다. 그렇습니다. 형제님,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그것입니다. 모든 믿는 사람을 한데 모으고 복음을 전하십시오. 아무것도 감추지 말고, 온 교회 위에 성령침례가 부어질 때까지 그리스도의 온전한 복음을 전하십시오. 그것만이 부흥을 맞이할 길입니다.
엘리야가 말했습니다. “이제 모두 한데 모아라. 그들 각자를 대표할 돌 하나씩을 여기로 가져오너라.” 그리고 그 위에 자기 희생물을 놓았습니다. 앞으로 나가 말했습니다. “이제 주님, 주님께서 하늘의 하나님이시며 제가 주님의 선지자임을 알게 하옵소서.” 그러자 불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형제님, 감리교인들이 자기들만 이 땅의 유일한 백성이라는 생각을 잊고, 침례교인들도 자기들만이라는 생각을, 오순절 사람들도 자기들만이라는 생각을 잊을 수 있을 때, 우리 모두 한데 모여 “주님, 불을 보내 주옵소서”라고 한다면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일신교 오순절과, 둘을 주장하는 오순절과, 셋을 주장하는 오순절과, 다섯을 주장하는 오순절과, 그들 모두가 머리를 맞댈 수 있을 때 말입니다. 모든 감리교인이 물을 뿌리는 것이든 침례를 받는 것이든 물을 붓는 것이든 이것을 하는 것이든 잊어버리고, 모든 사람이 한데 모여 그런 자잘한 것들을 다 잊은 채 “하나님, 권능을 보내 주옵소서”라고 한다면, 모든 일은 저절로 제자리를 찾을 것입니다. 성령으로 마음을 바르게 하십시오. 그러면 성령께서 나머지를 돌보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멘. 저는 그런 부흥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길로 들어가십시오. 구원의 돌을 굴려 오십시오. 저는 그것을 믿습니다. 방언하는 돌을 굴려 오십시오. 저는 그것을 믿습니다. 통역의 돌을 굴려 오십시오. 저는 그것을 믿습니다. 신유의 돌을 굴려 오십시오. 저는 그것을 믿습니다. 형제님, 이제 불을 맞을 준비를 하십시오. 그것은 여러분의 것입니다. “주님, 이제 저는 신학 같은 것은 모두 잊겠습니다. 이 돌들을 굴려 모으고 있습니다. 그 위에 제 몸을 가로눕히고 ‘오 주님, 저를 태워 주옵소서’라고 하겠습니다.” 그분께서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분께서 여러분을 붙드실 것입니다.
형제님, 그렇게 해야 합니다. 생각 속의 모든 것을 비우고 하나님의 말씀이 마련된 길이 되게 하십시오. 감리교 의식도 아니고 이 의식이나 저 의식도 아니며, 이 신학이나 저 신학도 아닙니다. 성경이 옳다고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내 말은 참되다 하고 모든 사람의 말은 거짓말이라 하라”라고 하셨습니다. “마지막 날들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라.” 감리교인, 침례교인, 장로교인, 가톨릭교인, 루터교인,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말입니다.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라.” “내 백성아, 너희는 그들 가운데서 나와 그들의 죄들에 참여하는 자가 되지 말라. 내가 너희를 받아들이리라.”
죄는 그저 도덕적 습관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 “이 사람은 담배를 피웁니다. 그것은 죄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아닙니다. 그가 거짓말하는 것이 담배는, 아니, 그가 거짓말하는 것, 도둑질하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그것은 죄가 아닙니다. 죄의 속성입니다. 그가 죄인이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하는 것입니다. 죄인이 아니라면 그런 일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죄인이기 때문에 그렇게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저는 담배도 피우지 않고 술도 마시지 않습니다”라고 합니다. 그것이 여러분을 죄인으로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그저 그리스도인의 속성입니다.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다른 쪽 일을 한다면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믿는다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것이 차이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말들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내가 일으키리라…” [녹음 공백.] 사람들은 그것을 가졌다고 공언하지만, 그들의 삶은 갖지 못했음을 증명합니다. 열매로 그들을 압니다. 자, 이제 엘리야입니다. 그가 산에서 내려오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어느 날 내려온 또 다른 사람이 생각납니다. 그는 나병에 걸려 있었고, 이름은 나아만이었습니다. 그가 내려와서… “오!” 그는 들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 의해 오지 않습니까?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옵니다.” 그는 시리아의 모든 의사에게 가 보았지만, 아무도 그의 나병을 고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포로로 잡혀 온 작은 소녀가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아이에게는 아마 좋은 그리스도인의 체험, 좋은 구원의 체험이 있었을 것입니다. 소녀가 말했습니다. “우리나라에 엘리야라는 분이 있는데, 신유를 행하는 분이에요. 제가 알기로는 아직 나병이 나은 사람이 없지만, 가서 그분에게 기도받으면 나으실 거라고 믿어요.” 오, 우리에게는 그런 어린 소녀들이 더 필요합니다. 그렇습니다.
좋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말에 안장을 얹고 가서 그 사람을 한번 봐야겠다.” 갈아입을 옷 몇 벌, 은 몇 파운드, 금 몇 파운드를 마련해 가지고 갔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마음속으로 정한 방식대로 신유를 원했습니다. “나는 이런 식으로 고침을 받을 것이다.” 그래서 그곳에 가서 엘리야 앞까지 수레를 몰고 갔습니다. 엘리야는 뒤에 앉아 있었습니다. 저기 작은 진흙집 안의 작은 의자에 앉아 성경을 읽고 있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게하시가 들어와 “오, 주인님”이라고 했습니다. “무슨 일이냐?”
“저 밖에 시리아 군대의 대장인 위대한 나아만이 와 있습니다. 나병에 걸렸습니다.” “요르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담그라고 하여라.” “나가서 만나 보지 않으십니까?” “아니다. 시간이 없다. 지금 주님과 대화하고 있다.” 그래서 그가 말합니다. “성경을 읽으며 기도하고 계시기 때문에 나오시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요르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담그라고 하십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얼마나 화를 냈는지요! 오! 지금 사람들이 하는 것과 같습니다. “나는 그 따위 곳에 다시는 가지 않겠어. 흥! 그 성령에 취한 광신자들 무리와는 다시는 상종하지 않겠어.” 납탄을 먹은 개구리처럼 잔뜩 부풀어서는 그렇게 돌아다닙니다. “나는 다시는 그런 것과 상관하지 않겠어. 도저히 믿을 수 없어. 아니, 아니, 절대로.” 바로 그래서 지금 여러분이 그런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길을 분명히 놓아 주셨습니다. “내가 저 진흙탕 물에 몸을 담그라고? 절대로 안 돼. 시리아의 물들이 저 물보다 더 좋잖아.”
며칠 전 누군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거기 내려가 다른 사람들처럼 울고 야단을 치고, 엉엉 소리 내어 울란 말입니까?” 저는 “구원받고 싶다면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저는 절대로 그런 짓을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러면 지금 상태로 계속 사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제가 여기서 설교하고 있었는데 어떤 여자가 울고 있었습니다. 그 여자가 손을 들고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젊은 침례교 교사 하나가 제게 와서 말했습니다. “빌리, 언제쯤 그 성령에 취한 광신자들에게서 벗어날 겁니까?” 제가 “뭐라고요?”라고 했습니다. 그는 “그 성령에 취한 광신자들 말입니다. 지난번 밤에 당신의 메시지를 잘 듣고 있었는데, 그 여자가 일어나 두 손을 하늘로 들고 울기 시작했어요. 방해가 되지 않았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닙니다. 그 여자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방해가 되었을 겁니다. 그것은 제게 방해가 되지 않았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그거 아십니까? 창문 차양이 올라가듯 제 등줄기를 따라 오싹한 소름이 올라왔습니다.”
저는 “젊은이, 천국에 가기라도 하면 얼어 죽겠군요”라고 했습니다. “소름이 한쪽으로 올라갔다 다른 쪽으로 내려갈 테니까요. 그렇습니다. 그들은 주님 앞에서 밤낮으로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전능자여’ 하고 외치고 있습니다. [불명확한 말.]” 아멘.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길입니다.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형제님은 그 새로운 종교를 가르치고 계시는군요”라고 합니다. 아닙니다. 저는 그저 옛 신앙에 새롭게 흠뻑 빠진 것입니다. “소리 지르고 울고 야단을 치는 그런 종교 말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세상의 기초를 놓을 때, 그 옛 신앙이 처음 생겨났을 때 네가 어디 있었느냐?” 또 말씀하셨습니다. “새벽별들이 함께 노래하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기뻐 소리를 질렀을 때 말이다.” 오! 오, 형제님.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길, 그것뿐입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것을 하는 것입니다. 자, 이내 나아만이 보입니다. 그는 잔뜩 화가 나서 길을 올라갑니다. “다시는 그곳에 가지 않겠어.” 그 가운데 한 사람에게는 이렇게 말할 만큼 구원의 믿음이 있었습니다. “아버지여, 선지자가 무슨 어려운 일을 시키면서 이 돈을 다 내고 병을 고침받으라고 했다면 받아들이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저 요르단강에 가서 몸을 담그라고 했다는 이유로 하기 싫어하시는군요.” 그가 말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음, 한번 해 봐야 할지도 모르겠구나.” 이제 그가 내려갑니다. 내려가서 그 진흙탕 요르단강을 바라봅니다. “음, 저 광…” 마치… 무슨 말인지 아시지요. “내가 저곳까지 내려가야 하나?” 좋습니다. 그러면 나병을 그대로 가지고 계십시오.
그래서 그는 저 아래로 내려갑니다. 많은 사람이 그러듯, 그도 높은 말 위에서 내려오는 모습이 보입니다. “저런 사람들 무리에게 가려고 내 자신을 낮춰야 하다니.” 그가 물속으로 들어갑니다. 음, 이렇게 코를 막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다시 나와서 말합니다. “거봐, 아무것도 없다고 했잖아. 여전히 나병이 있어.” “아닙니다. 선지자는 ‘일곱 번’이라고 했습니다. 일곱 번이 다 될 때까지 계속 몸을 담그십시오.” “그런데 브래넘 형제님, 얼마나 오래 담가야 합니까?” “할 때까지입니다.” “무엇을 할 때까지입니까?” “받을 때까지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권능을 입을 때까지 예루살렘 시에서 기다리라.” “이틀 동안입니까?” “할 때까지입니다.” “얼마나 오래입니까?” “할 때까지입니다. 권능을 입을 때까지입니다.” 그렇습니다. 그저 그때까지 거기 머무르십시오. 그것이 주님의 말씀입니다.
자, 한때 여호사밧이라는 사람이 광야로 행진해 나갔습니다. 그런데 길을 나서면서 나침반을 가져가는 것을 잊었고, 주님을 섬기는 [불명확한 말] 그러다가 곤경에 빠졌습니다. 여러분도 무슨 일에서 주님을 섬기는 것을 말로만 하면 곤경에 빠집니다. 그들은 그렇게 곤경에 빠졌습니다. 그곳에 나간 지 칠 일이 되었는데 먹을 것이 없고 물도 다 말라 버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정말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없었습니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문득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위한 길을 마련해 놓으셨을 텐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주님께 여쭐 수 있는 선지자가 어디 있지 않습니까?”라고 했습니다. 누군가 말했습니다. “예, 저 아래 엘리야가 있습니다. 올라가서 엘리야의 생각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오, [불명확한 말] 엘리야는 참 선지자입니다.” 그래서 그에게로 갔습니다. 여기 선지자가 나옵니다. [불명확한 말] 해가 떠오르고 있습니다. 그는 좀 화가 나서 “왜 내게 오는 것입니까? 왜 나를 찾아옵니까?”라고 했습니다. 오, 그는 정말 언짢아져서 마음이 뒤집혔습니다. “내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라고 했습니다. [불명확한 말.] “내가 여호사밧이 앞에 있는 것을 존중하지 않았다면 당신을 쳐다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잔뜩 격해져서 “음악을 좀 연주해 주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탬버린을 연주했습니다. 여러분이 선지자가 될 수 없다면, 음악을 연주하여 선지자 위에 영이 내려오시게 하는 악기 중 하나는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불명확한 말] 악기들이 모두 울리고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불명확한 말.] 공중에서 만남이 있으리, 달콤하고도 달콤한 훗날에, 하나님의 아들이 친히 이끄시리, 그 공중의 만남에서. 선지자는 영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영 안에 들어가자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그 영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불명확한 말.] 그 영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들은 [불명확한 말] 즐거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선지자의 권능 가운데 하나님의 영이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영이 선지자에게 임하자 그는 일들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도 영 안에 들어가면 일들을 보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들은 영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보기 위해 이제 막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길에 들어서는 것입니다. 그는 “저기 나가서 도랑을 파기 시작하라”라고 했습니다. [불명확한 말.] 오, 이제 우리 모두 이것을 좀 보십시오. [불명확한 말.] 그저 그것을 걷어 차 버리고 계속 파십시오. [불명확한 말.] “치유의 표적이 보이지 않아요. 이것도 보이지 않아요.” 바로 그것이 문제입니다. [불명확한 말]의 문제가 그것입니다. 삽을 들고 도랑을 파십시오. 아무 표적도 보지 못할 것입니다. 비도 보지 못할 것입니다. 어떤 [불명확한 말]도 없을 것입니다. 할렐루야! 제가 오늘 밤 생각하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참된 옛 성령의 부흥이 [불명확한 말]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휩쓰는 것입니다. 여기 있는 설교자들이 [불명확한 말]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으십시오. 그러면 옛날 같은 부흥이 있을 것입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형제님, 오늘날 이 교회에 필요한 것, 오늘날 이 나라에 필요한 것은 질투와 그 사소한 [불명확한 말]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오십시오. [불명확한 말.]
제가 어린 소년이었을 때, 어머니와 함께 고생하며 옥수수빵을 만들 기름을 얻으려고 냄비에 고기 껍질을 삶곤 했습니다. 우리는 옥수수빵과 당밀 같은 것으로 먹고살아야 했습니다. 돼지기름이 없어서 어머니는 남은 고기 껍질을 구해야 했습니다. 토요일 밤마다, 저는 결코… 어머니에게는 큰 찻주전자와 커다란 삼나무 목욕통이 있었습니다. 주전자 가득 뜨거운 물을 부으면 저는 목욕을 해야 했습니다. 토요일 밤이면 언제나 목욕한 뒤 피마자유를 듬뿍 먹었습니다. 그것을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 음식을 먹고 나면 말입니다. 그것을 먹으려 할 때 어머니가 오시면 저는 코를 막고 말했습니다. “엄마, 엄마, 제발 그러지 마세요. 오, 이걸 먹으면 속이 너무 메스꺼워요.” 어머니는 “속이 메스껍지 않으면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단다”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밤 제 말도 그렇습니다. 속이 제대로 메스꺼워지지 않으면 설교자가 여러분에게 아무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조금 뒤흔들어 놓을 것입니다. 이중 초점 안경을 쓰고 온전한 복음을 바라보십시오. 할렐루야. 아멘!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길을 택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여러분을 바로잡아 내일은 기분이 더 좋아질 것입니다. 그대로 꿀꺽 삼키며 말하십시오. “그래, 맞는 것 같아. 저 사람에게 가서 악수하고 화해해야겠어. 그런 다음 집회에 협력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계속 나타나는 것을 보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해야겠어.” 그러면 여러분은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오! [불명확한 말] 그에게는 무언가 있습니다. 좋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길입니다. 그렇습니다. 좋습니다. 그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물을 얻었고 도랑들이 물로 가득 찼습니다. 그러고는 그 물을 실컷 마셨을 뿐 아니라, 저쪽으로 가서 돌을 가져다가 거기 있던 차갑고 형식적인 옛 우물들을 모두 막아 버렸습니다. 여러분도 오늘 밤 참으로 깊이 파십시오. 이 건물이 성령침례로 가득 차고 사람들이 치유받고 영으로 충만해져, 거리로 나가 외치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내일은 그 술집들로 내려가 간증을 하고 온갖 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게 될 때까지 계속 파기만 한다면, 우리는 이런 돌들로, 그렇습니다, 간증의 돌들로 이 근처의 차갑고 형식적인 옛 우물 몇 개를 막아 버릴 것입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저는 온 마음으로 그것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길을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성경에 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피가 흐르는 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오, 몹시 심했지만 의사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병자들을 고치는 한 분에 관해 들었습니다. 얼마 후 어느 날 밤… 그분은 그것을 아셨고, 큰 폭풍 속에서 밤새 바다를 건너느라 애쓰셨습니다. 다음 날 아침 작은 배가 저 아래 버드나무 사이로 들어왔습니다. 여자는 언덕 위에 앉아 있다가 그것을 보았습니다. 그러자 마음속에서 무언가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길을 마련해 놓으셨어.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면 나는 나을 거야.” 이제 여자가 내려갑니다. 어느 시대나 그랬듯,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길을 따르려 하면 어디서나 반대에 부딪칩니다. 여자가 목사와 마주치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가 말합니다. “지금 어디로 가려는 겁니까?” “그분의 옷에 손을 대고 싶어요.” “말도 안 되는 소리!” 여자는 그를 지나 계속 밀고 나아갔습니다.
그다음 그곳에 올라가서는 브리검 영과 그의 무리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다음 [불명확한 말] “기적의 시대는 끝났소.” 여자는 그저 아래로 내려가 그들의 다리 사이를 지나 계속 갔습니다. 세상과 장난하고 있을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녀에게는 유일한 길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속에 하라고 하신 것을 하는 길이었습니다. 아멘. 오늘 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길을 따르십시오. 여자는 뚫고 들어가 그분의 옷에 손을 대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분을 껴안고 온갖 행동을 하며 “오, 선생님, 선생님은…”이라고 하고 있었습니다. 그분께서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환상이 어디에 있는지 보려고 둘러보셨습니다. 지금 행하시는 것과 똑같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라고 하셨습니다. 아멘! 무슨 일이었습니까? 많은 사람이 이 말 저 말 온갖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분께서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라고 하시자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온 무리가 선생님께 손을 대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알고 있다. 그러나 누군가 내게 손을 대었다”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밤 우리가 원하는 것이 그런 손길입니다. 오늘 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길입니다.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그것이 그분께서 마련하신 길입니다. 바라보고 사십시오! 그분께서는 길을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주님, 믿습니다!”라고 하십시오. 지금 저기 아기를 데리고 나가는 부인처럼 말입니다. 그 부인은 그 아기가, 걸어 나가면서 믿고 있습니다. 부인, 아기를 안고 계신 분, 이쪽으로 돌아보십시오. 그 아기를 위해 온 마음으로 믿습니까? 그 증상이 아이에게서 떠날 것을 믿습니까? 당뇨병이 아이에게서 이미 사라졌다고 믿습니까? 사라졌습니다. 그러니 그대로 가십시오. 그렇게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길입니다. 아멘!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길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모든 죄인을 위해 마련하신 길입니다. 믿는 사람은 누구든 지금 당장 받을 수 있습니다. 믿습니까?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길입니다.
어느 날 어린 딸을 잃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오셔서 그 아이에게 손을 얹으셨습니다. 아이는 나았습니다. 어느 날 바디매오라는 자그마한 노인이 있었는데, 말하자면 그분의 옷단에 손을 대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불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길을 받아들였고 나았습니다. 그것을 믿습니까? 보십시오! 할렐루야! 형제님, 저는 기쁩니다. 이제 여러분은 그 분위기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모든 것이 제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불명확한 말] 여러분의 생각을 일깨우십시오. 마음속으로 “하나님, 받아들입니다. 온 마음으로 믿습니다”라고 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지금 바로 여기에 계시며 모든 사람을 낫게 하실 것입니다. 믿습니까?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길입니다. 그 어린 아기를 데리고 있던 여자, 그 여자가 마음속으로 의아해하며 막 나가려 했을 때, 완전히 몸을 못 쓰게 되어 [불명확한 말]. 무슨 일이었습니까? 하나님께서 길을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형제님, 한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교회는 여러 번 완전히 형식에 매이고 무관심해졌습니다. 교회가 지금과 아주 비슷해졌습니다. 저마다 신조가 있었고, 저마다 교파가 있었고, 저마다 이것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이것을, 다른 사람은 저것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는 때가 왔습니다. 그분은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길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한 여자가 그분의 옷단에 손을 대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에 올라가신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길을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사도 베드로의 그림자 안에 사람들이 누워 있다가 나았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길입니다. 또 바울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는 그들 모두를 위해 기도해 줄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길을 마련하셨습니다.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을 가져오게 하셨고 부정한 영들이 나갔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교회가 어딘가 두려움에 사로잡힌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다락방에 올라가 열흘 밤낮을 머물렀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력한 바람 같은 소리가 났습니다. 설교자가 길을 걸어 올라와 “이제 여러분을 회원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라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 겁 많은 사제가 “여러분에게 거룩한 성체를 드리겠습니다”라고 한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길로 불이 왔습니다. 성령께서 급하고 강력한 바람같이 하늘에서 내려오셔서 그들이 앉아 있던 온 집안을 가득 채우셨습니다. 그들은 앞으로 걸어 나와 “제 이름을 교인 명부에 올리고 싶습니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길로 회개했습니다. 그들은 달리고 소리 지르며 방언하고, 이리저리, 이리저리 뛰면서 외치고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교회가 생겼습니다. 오!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길입니다! 그것은 지금도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길입니다. 하나님은 조금도 변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복음이 나를 위한 증언으로 모든 족속과 언어와 민족에게 선포되어야 하리라.” 그 뒤에 그분은 다시 오실 것입니다. “너희는 온 세상으로 가서 복음을 선포하라. 믿고 침례를 받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나 믿지 않는 자는 정죄를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라.”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길입니다. “병든 자들을 위해 기도하라.”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길입니다. “내가 하는 이 일들.” “나는 환상을 본다.” “너희 마음속에 무엇이 있든 이 일들을 하라.” “내가 하는 이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길입니다. 이것이 플로리다 팜비치와 온 세상에서 나의 부활에 관하여 나를 위한 증언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길입니다. 할렐루야! 오, 저는 그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요. 오, 그분께서 마련하신 길이 여기에 있습니다. 모든 죄인을 위해 마련하신 길입니다. 성령을 구하는 모든 사람을 위해 마련하신 길입니다. 무엇이든 모든 것을 위해 마련하신 길입니다.
부인, 거기 체크무늬 옷을 입고 앉아 계신 분, 기도 카드가 없으시지요? 바로 거기 앉아 계신 부인 말입니다. 기도 카드가 없지만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옆구리에 문제가 있으시지요? 그것을 고침받고 싶으십니다. 하나님께서 낫게 하실 것을 믿습니까? 하나님께서 치유하실 것을 믿습니까? 왼쪽 옆구리지요? 침대에서 일어나려 하며 왼쪽 옆구리를 움켜잡는 모습이 보입니다. 맞지요? 좋습니다. 이제 그것이 떠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길을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부인을 치유하시려고 여기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가실 때 하나님의 영원한 평강과 은혜가 부인 위에 머무르기를 바랍니다. 아멘! 온 마음으로 그분을 믿습니까? 이쪽을 바라보고 사십시오. 믿으십시오.
거기 앉아 계신 부인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온 마음으로 믿습니까? 거기 탈장으로 앉아 계신 분, 하나님께서 그 탈장을 낫게 하실 것을 믿습니까? 믿습니까? 이미 행하셨다는 것을 믿습니까?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길을 받아들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길은 지금 부인에게 임하는 것이 느껴지는 그 권능입니다. 마음을 열면, 바로 거기 부인 위에 서 계신 하나님의 천사가 낫게 하실 것입니다. 믿습니까? 믿을 수 있다면 치유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거기 고혈압으로 앉아 계신 부인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믿으십니까… 아니, 바로 거기 심장병으로 앉아 계신 분 말입니다. 맞지요? 지금 부인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권능이 온전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믿습니까? 일어서십시오. 심장병이 떠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길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아멘! 믿기 시작하십시오. 한 여자가 마이애미에서 여기로 올라오는 것이 보입니다. 그 여자는 저혈압이 있고 빈혈이 있습니다. 바로 거기 앉아 계십니다.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자매님, 집으로 돌아가 건강해지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입니다. 아멘.
바로 옆에 앉아 계신 부인도 고혈압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부인도 집으로 돌아가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선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할렐루야! 아멘. 하나님의 천사가 여기 계십니다. 제 온몸이 너무 감각이 없어 손을 눌러도 거의 느낄 수가 없습니다. 저 뒤에 앉아 계신 선생님, 폐에 문제가 있으시지요? 좋습니다. 일어서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치유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아멘!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으라고 여러분에게 담대히 촉구합니다.
저기 앉아 있는 한 남자가 보입니다. 바로 저… 저 어딘가입니다. 잠깐만요. 그 남자는 관절염이 있고 치질도 있습니다. 맞습니다. 옆에 앉아 계신 분은 부인이시지요? 맞습니까? 부인, 일어서십시오. 환상에서 바로 그 부인이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잠깐만요. 경건하게 계십시오. 제 생각에는, 그렇습니다, 담낭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코에 무언가, 콧물이 흐르게 하는 무언가가 있는데, 건초열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름이 조 아닙니까? 사람들이 조라든가 그런 이름으로 부르지 않습니까? 아니면 조 스톤이나 그와 비슷한 이름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의사가 선생님을 진찰할 때 듣고 있노라니 그렇게 들린 것 같았습니다. 선생님, 집으로 가십시오. 선생님도 마이애미에서 오셨지요? 제가 평생 한 번도 뵌 적이 없지만, 사실 아닙니까? 맞지 않습니까? 부인에게 손을 얹으십시오. 부인도 남편에게 손을 얹으십시오. 두 분 다 치유를 받아들이십시오. 건강해져서 집으로 가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은 제가 미쳤다고 생각하실지 모릅니다. 여러분, 저는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압니다. 성령침례가 모든 사람을 위해 여기에 있고, 치유가 모든 사람을 위해 여기에 있습니다. 아멘! 제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하시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제가 무엇을 느끼는지 압니다. 여러분 모두 치유받기에 알맞은 분위기에 지금 들어와 있습니다. 믿으시겠습니까?
저의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지금 이 건물 위 사방으로 다니고 계십니다. 하나의 커다란 노란 덩어리에서 줄기들이 여기저기 아래로 늘어져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 그분의 말씀을 받아 “주님, 사실입니다”라고 말하며 받아들임으로써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길을 택하십시오.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오! 지금 이곳의 모든 영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제 통제 아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실입니다. 지금 저를 하나님의 선지자로 믿으시면 여러분 가운데 병약한 사람이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믿기만 하신다면 말입니다. 저는 말할 수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확증하고 뒷받침하시며 사실이라고 말씀하시려고 여기에 계십니다. 머리를 숙이십시오.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제가 달리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온 회중 위로 그것이 움직이는 것을 봅니다. 오 아버지, 하나님, 간구합니다. 이 큰 권능으로 일하시며 이곳에 계시는 동안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을 치유해 주옵소서. 이 큰 권능이 회중 위에 움직이는 지금, 성령께서 바로 내려오시게 하옵소서. 이것이 주님께서 마련하신 길입니다! 베드로의 그림자 안에 누운 사람들이 모두 고침받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이 말들을 할 때에 성령께서 그들 위에 임하셨습니다.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성령께서 모든 침울한 영, 모든 의심하는 영을 몰아내 주옵소서. 그리고 그분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심을 입증하기 위해 지금 임재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증언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려 하는 이 의심의 마귀, 경건하지 못한 영의 벽들을 무너뜨려 주시고 모든 사람이 치유받게 하옵소서.
오, 마귀야, 하나님의 아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네게 명하노니 이 사람들을 풀어 주어라. 그들에게서 나와라!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되기를 바랍니다. 거기에 관절염으로 앉아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 여자는 마귀의 힘에 묶여 앉아 있습니다. 저기 있는 여자는 폐경 때문에 정신을 잃어 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받아들이고 자리에서 일어나기만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 모두 지금 완전히 치유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승리를 자기 것으로 주장하십시오. 지금은 외칠 때입니다. 그러면 여리고 성벽처럼, 여러분의 길을 막고 있는 원수가 땅에 무너지고, 마귀의 모든 힘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깨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