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 여러분 모두 이것을 잘 살펴보시고, 적어 두십시오.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제가 아는 데까지 답변할 뿐입니다. 아시겠죠. 여러분이 생각하시기에 올바르게 답변되지 않았다면… 다른 질문을, 다시 강단에 올려 주시거나… 저희에게 말씀해 주시든지,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하고 싶습니다. 여기 네빌 형제님과 제가 어떤 점에서는 의견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백스터 씨는, 제 집회에서 가장 가까이 동역하는 분 가운데 한 사람인 백스터 씨는 저와 여러 해를 함께했습니다. 참으로 성경을 잘 강해하는 분이지만, 천년왕국은 믿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는 [말이 불분명함] 성경을 공부할 때 여러분 자신의 생각을 사용하십시오. 자신의 지식이나 생각을 사용하려고 하면, 분명히 [말이 불분명함].
자, 저는 이 성경 구절들이… 여기 있는 것 가운데는 그저 짤막한 의견 같은 것도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먼저 답변하려고 분류해 보았습니다. 이 가운데 몇 가지를 찾아내려면 잠시 성구사전을 사용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제가 여기서 잘못 인용하거나 하면, 꼭 알려 주십시오. 쪽지를 써서 말씀해 주십시오. 자, 이것을 펼치기 전에…
친구 여러분, 제가 이렇게 하는 데는 목적이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아시지요. 이 집회에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 눈보라 속에서 저를 돌이키셔서 바로 이 일을 위해 여기로 돌려보내셨다고 믿습니다. 이곳 태버내클에는 오랫동안 어딘가 조금 잘못된 것이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찾고 싶습니다. 찾아내면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교회가 조화를 이루어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진보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어딘가 조금 잘못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구원을 받고 있습니다. 사실입니다. 그것은 훌륭한 일입니다. 하지만 마땅히 나아가야 할 만큼 나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설교자들도 배출하고 여러 가지 일을 해야 합니다. 메시지가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 목사 형제님을 모시고 나가기도 했고, 네빌 형제님과 저는 함께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저는 보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목회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그것이 제 의무입니다. 그리고 어젯밤… 제가 무엇을 보든, 지금 이것은 교회 안의 일입니다. 그래서 이 집회를 광고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알리기만 했습니다. 그저… 물론 누구나 환영합니다. 오시기를 바랍니다. [녹음 중단.] 하지만 이것은 교회 안의 일입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첫날 밤에는 오늘날 교회가 이 시대에, 지리적으로, 성경 안에서 어느 위치에 앉아 있는지를 가르치면 교회가 반드시 그것을 듣고 깨어날 것이다. 그런 다음 「짐승의 표」에 관해 말하여 그것이 무엇인지 보게 하자. 그다음에는 「하나님의 인」입니다. 이것이 이제 서로 반대되는 양쪽이고, 어둠과 빛이며, 안에 있느냐 밖에 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지금 가르쳐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친구 여러분, 저는 하나님 앞에서 진심으로, 겸손하게 말씀드립니다. 지난 사흘 밤처럼 말씀을 전하도록 성령의 기름부음이 임하는 것을 느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저를 완전히 사로잡았습니다. 집에 돌아가서도 잠을 잘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토록 강한 기름부음이었습니다! 저는 어디선가 무엇인가를 찾아내리라는 바람으로 이런 질문들을 내어 놓았습니다. 사람들의 심정을 여기 종이에 모두 적어 보게 한 것입니다. 이렇게 해도 찾아내지 못하고 주님께서도 계시해 주지 않으시면, 찾아낼 때까지 계속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찾아보면 어딘가에 묻힌 작은 금덩어리 하나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간에게도 그런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그것을 없애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다시 나아가 하나님의 왕국 안에서 전진할 것입니다.
자, 주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펼치기 전에… 여러분은 각자 내일 아침에 일요학교가 있지요. 물론 자기 일요학교에 빠지라고 하지는 않겠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자기 교회에서 맡은 의무입니다. 그렇습니다. 다만 일요학교에 다니지 않는 분은 내일 아침에 저희에게 오십시오. 또 내일 일요일 저녁에 여러분의 교회에서 예배가 없다면 이곳에 오셔도 좋습니다. 언제든지 기쁘게 맞겠습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제 안부를 전해 주십시오. 저는 여기 자주 오지 못합니다. 저쪽 방을 들여다보니, 제가 써 놓은 작은 종이 한 장이 아직 이 교회의 기념물로 남아 있더군요. 제가 “주님께서 저를 다른 곳으로 부르십니다.”라고 했고, 우리 모두 울며 눈물을 흘렸지요. 처음 떠나던 밤이 기억납니다. 제가 처음 부르심을 받았을 때를 여기서 기억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여러분 모두 헌금을 모아 저를 세인트루이스로 보내 주셨고, 거기서 어린 베티 도허티가 치유되었습니다. 저는 머물렀습니다…
기억하시지요. 입을 외투가 없어서 여기 계신 어떤 분의 외투를 빌려 입었습니다. 낡은 객차 좌석에 앉아 세인트루이스로 갔습니다. 그때를 기억하십니까? 형제님 한 분의 외투를 빌렸는데 제게는 너무 컸습니다. 그래서 팔에 걸치고 갔습니다. 날씨가 쌀쌀했지만 제게는 외투가 없었으니까요. 그렇게 세인트루이스로 가서 도허티 형제님을 만났습니다. 그분의 어린 딸은 그곳의 모든 의사와 전문의와 병원이 포기한 상태였습니다. 미친 듯이 날뛰고 있었습니다. 시내 곳곳의 목사님들이 와서… 모두 거기서 아이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들어가서 기도했습니다. 그 가엾은 사람들은 안색이 잿빛이었습니다. 안에 있던 어린 딸은 비명을 지르고 울며 몸부림쳤습니다. 아이는 더 이상 사람 같은 소리조차 내지 못했고, 짐승 같은 소리를 냈습니다. 너무 목이 쉬어서… 아, 석 달이나 넉 달쯤 그랬습니다. 척수막염이었습니다… 아니, 척추에 생긴 성 비투스 무도병이었습니다. 작은 입술은 온통 헐어 피가 났고, 손가락도 물어뜯어 여기저기 피가 났습니다. 그렇게 계속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습니다.
저는 기도하고 교회로 내려갔습니다. 몇 시간이고 기다렸습니다. 밖의 낡은 차 안에 앉아서 기다렸습니다. 하늘로부터 응답을 듣기 전에는 그 일을 두고 떠나지 않을 작정이었습니다. 차 안에 앉아 있는데 환상이 제 앞에 펼쳐졌습니다. “가서 아버지에게 말하라.” 하셨습니다. “그 부인에게 말하라. 며칠 전 시내에서 작은 흰 주전자를 샀는데, 아직 한 번도 물을 담지 않았느니라.” 또 말씀하셨습니다. “세 번째 서랍을 찾아보라고 하라. 종이에 싸여 있고 아직 사용하지 않은 손수건이 있을 것이다. 주전자에 물을 채우라고 하라. 아버지를 네 오른편에, 할아버지를 네 왼편에 세우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하고 기도하라. 네가 기도를 시작하면 그 부인이 그 천으로 아이의 얼굴을 닦게 하라. 기도 중간에는 아이의 손에 대고, 그다음에는 발에 대게 하라. 그런 다음 서서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라고 하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시지요? 그 아이는 바로 거기서 치유되었습니다. 우리는 손을 잡고 길을 걸으며 함께 탄산음료를 마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인트루이스가 들썩였습니다. 그곳 제 집회에는 첫날 밤에 만 사천 명이 왔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그 방식에서 벗어나, 사람들이 줄을 서서 한 사람 다음에 또 한 사람, 그다음에 또 한 사람씩 지나가게 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저 한 집에 가서 일이 끝날 때까지 머물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모든 집회보다 더 나았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자, 이 말씀의 저자께 말씀드리는 동안 머리를 숙입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자하심을 의지하여 아버지께 나아갑니다. 그분의 이름으로 신성한 긍휼을 구하오니, 우리의 죄와 주를 거슬러 저지른 허물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오늘 밤 이 작은 교회에 어떤 죄가 있다면, 주님, 여기 서 있는 종으로서, 양 떼를 돌보는 목자로서 기도합니다. 성경이 “성령께서 너희를 감독자로 삼으신 그 양 떼에게 주의를 기울여 그들을 먹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 이제 그들을 위해 중보하오니, 그들을 축복하시고 그들의 모든 죄를 사면해 주시옵소서. 백성 가운데 있는 질병을 치유해 주시옵소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 이제 주의 긍휼이 우리 위에 머물기를 기도합니다. 여기 제 앞에는 여러 가정, 여러 사람이 종이에 써 보낸 요청들이 놓여 있습니다. 보통의 학교 교육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참으로 깊은 성경 질문들입니다. 주 예수님, 저희에게 주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제 막 이것들을 집어 들고, 방에 들어가 기도한 다음 나와서 여기서 분류했습니다. 지금 답변할 것들은 한쪽에, 성경을 찾아보아야 할 것들은 다른 쪽에 놓았습니다. 주님, 지금 제가 아는 것은 거기까지입니다. 이 순간부터 주께서 맡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밤 여기 있는 주의 백성, 말하는 자의 입술과 듣는 자의 귀에 기름을 부어 주시옵소서. 성령께서 오셔서 이 말씀을 붙드시고 모든 마음속에 바로 넣어 주시옵소서. 온유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하시고, 전하는 것 또한 그렇게 되게 하시옵소서. 오늘 밤 예배가 끝나 집으로 돌아갈 때 “그분의 임재와 축복으로 인해 우리 마음이 우리 속에서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말하게 하시옵소서. 주님, 무엇을 말해야 할지 알지 못하므로, 이 질문들과 함께 제 자신을 주께 맡기오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응답해 주시옵소서. 아멘.
친구 여러분, 경건히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세어 보니… 대부분의 질문이 어떤 것인지 보여 드리겠습니다. “빌 형제님, 다음 주까지 계속해 주십시오.” “한 주 더 머물러 주십시오.” “조금 더 머물러 주십시오.” “빌 형제님, 다음 주까지 조금 더 머물러 주십시오. 저희 혼은 이런 양식을 갈망합니다.” “이 교회는…라고 가르칩니까?” 이것은 여기에 잘못 끼어들었군요. 자리가 잘못됐습니다. “제게 두 아들이 있는데, 두 살…” 제가 섞어 놓았나 봅니다. 이것도 이쪽에 놓아야겠습니다. 개인적인 일에 관한 것이군요. “빌 형제님, 한 주 더 하시겠습니까… 저희는 이런 복음의 가르침을 한 주 더 듣고 싶습니다.” “제 요청은 한 주 더 머물러 달라는 것입니다. 조금만 더 계셔 주시면 참 좋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저희는 언제나… 언제나 더 배울 수 있습니다.” “한 주만 더 머물러 주시겠습니까?” “빌 형제님, 저희를 위해 한 주 더 설교해 주십시오. 저희는 정말 그 설교가 그립습니다.” “빌 형제님, 하나님께서 형제님의 생각을 바꾸셔서 한 주 더 머물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제 질문은 이것입니다. 비행접시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표적으로 보내시는 것입니까? 그리고 한 주 더 머물러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한 주 더 머물러 주십시오.”
[브래넘 형제님이 네빌 형제님과 이야기한다.] “자, 여기 또 하나는 이렇게…” 이렇게 물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심판자이신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지금 이 거룩한 자리에 서서 말씀드립니다. 집을 떠나기 전에 주의 영께서 이 질문이 여기 놓여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것에 관해 아무것도 몰랐지만, 여기 있을 줄은 알았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은 잘못된 종파입니까?” 보십시오, 누군가… 제가 이곳에 내려오기 전, 집 욕실에 서 있을 때 성령께서, 저의 엄숙하신 심판자 하나님께서 그것이 강단에 놓여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에 관해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그냥 계속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제가 어젯밤에 한 말을 아시지요? 그렇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 일이었습니다.
자, 이제 여기 있는 것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특정한 것을 딱 집어 어떤 사람이나 개인을 그런 식으로 지목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함께 놓고 가르치는 방식을 좋아합니다. 이해하시지요? 제가 여기 서서 “네빌 형제님은 이렇고 저렇고, 이런저런 사람입니다…”라고 한다면… 그분에 관해 그런 말을 해야 한다면, 그분 집에 가서 따로 불러 그 일에 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네빌 형제님께 직접 말하겠습니다.
자, 여기 질문들이 있습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여기 한 묶음이 놓여 있습니다. 이렇게 적혀 있군요. “개신교회가 가톨릭교회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다는 뜻으로 말씀하셨습니까?
‘짐승의 형상’은 무슨 뜻입니까?” 이것은 지난번의 질문 가운데 하나로… 아마 사람들 마음에…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제가 아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 답변하겠습니다. 그분께서 제게 지식을 주신다면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아시듯 저는 방금 여기 강단에서 이것들을 집어 들었습니다. 질문: “개신교회가 가톨릭교회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다는 뜻으로 말씀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도우시면 이것부터 답하겠습니다. 저는 가톨릭교회가… 그저께 밤에 짐승의 표는 반드시 로마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렇지요? 로마 외에는 다른 어떤 나라에서도 나올 수 없습니다. 그것이 자리 잡은 곳, 놓여 있는 곳이 거기입니다. 저는 가톨릭 신자들을 반대하지도, 그 누구를 반대하지도 않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우리는 모두 천국에 가려고 하는 죽을 사람들입니다.
교황은 가르치는 한 사람이고, 캔터베리 대주교도 또 한 사람입니다. 그 밖에도 또 있고, 또 있고, 또 있습니다. 저 역시 가르치는 사람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그들은 아마 제가 광신자이고 틀렸다는 식으로 가르칠 것입니다. 그리고 제게도 권리가 있습니다… 제가 성경으로 입증할 수 있다면… 아니, 그들이 성경으로 제가 광신자임을 입증할 수 있다면 저는 광신자입니다. 하지만 제가 성경으로 그들의 체제가 잘못되었음을 입증할 수 있다면, 그것이 잘못되었고 성경이 옳습니다. 한 구절만이 아니라 성경 전체, 모든 곳에서 일관되어야 합니다. 자, 저는 “가톨릭교회는 어머니 교회였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교회 조직에 관해서라면 가톨릭교회가 어머니 교회입니다. 가톨릭교회는 최초로 형성된 교회로, 대략… 우리가 가진 가장 좋은 역사 기록에 따르면 서기 606년 무렵, 그 언저리였습니다. 초기 교부들, 사도들 다음 두 번째나 세 번째쯤 되는 사람들이 사라지고, 작은 분파들로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로마인들이 개종했고, 로마 제국은 국가를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그 뒤 교회와 국가가 연합하여 ‘보편 종교’라는 종교를 시작했습니다. 가톨릭이라는 말은 ‘보편적인’이라는 뜻입니다. 그들이 교회를 조직했는데, 온 세계 역사에서 종교, 곧 그리스도교가 조직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유대교는 결코 조직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자유로운 백성이었습니다. 교회들은 있었지만 조직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조직이 아니라 한 민족을 다루셨습니다. 그것은 한 민족이었습니다. 그런 뒤 가톨릭교회가 최초의 조직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그 조직이 무엇인지 찾아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면 그것은 단 한 사람, 한 사람이 지배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그 사람은 로마의 일곱 언덕 위에 자리 잡은 교회에 있어야 했습니다. 또 세계 모든 나라에 통치권, 종교적 통치권을 행사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세상에 그와 같은 것은 달리 없습니다.
우리는 공산주의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 적그리스도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공산주의는 러시아 같은 나라가 아닙니다. 공산주의는 하나의 영입니다. 미국도 그것에 잠식되어 있습니다. 교회들 안에, 사람들 안에, 사업에, 어디에나 있습니다. 공산주의, 그 영이 학교와 가정, 모든 곳에 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반대되는 교회를 조직했을 때… 우리는 일곱 교회 시대와 예언을 살펴보며,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그것들을 정확히 어떻게 우리에게까지 이어 오셨는지 보았습니다. 역사와 성경을 통해 각 시대가 성경에 따라, 역사와 일치하게 들어왔음을 알았습니다. 암흑시대를 거쳐 각 시대가 정확한 때에 들어왔습니다. 가톨릭교회는 암흑시대에 형성되었습니다.
그다음에 종교개혁, 곧 마르틴 루터가 등장했습니다. 마르틴 루터에게는 빛이 있었습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빛, 종교개혁 때의 믿음으로 의롭게 됨이었습니다. 독일인 사제였던 그는 그것을 부인했습니다. 성만찬의 빵을 들고서… 그들은 “이것은 그리스도의 몸이다.”라고 말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것을 바닥에 던지며 “이것은 그리스도의 몸이 아닙니다. 얇은 빵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가톨릭교회를 부인하고 초기 종교개혁 때 거기서 나왔습니다. 마르틴 루터가 그렇게 했습니다. 그것은 놀라운 운동이었습니다. 그런데 루터가 잘못한 것은, 가톨릭교회가 했던 것처럼 또 다른 집단을 조직하고 사람들을 조직한 일이었습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빛이 왔습니다. 새로운 빛이 왔을 때 하나님은 자기 백성과 함께 나오셨습니다. 루터교회 안에 조직되어 있던 사람들은 함께하려면 자기 교회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가톨릭 신자들도 마찬가지였지만, 많은 가톨릭 신자가 나와서 루터교인이 되었습니다. 그 뒤 웨슬리가 성화의 메시지를 가지고 왔을 때, 많은 루터교인은 자기 교회를 떠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떠나서 웨슬리 교회를 이루었습니다. 그다음, 의롭게 됨과 성화에 이어 오순절이 왔습니다. 그리고 오순절… 많은 사람이 감리교 등을 떠나 오순절교인이 되었습니다. 더 큰 빛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 오순절도 그들 모두와 똑같이 조직되어 버렸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직설적인 말이지만 성경에서 읽어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의사 같은 분이 이런 말을 해도 듣지 않습니까. 저는 성경으로 가르치는 여러분의 형제입니다. 성경은 가톨릭교회를 ‘매춘부, 창녀’, 영어로 w-h-o-r-e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따르는 개신교회들을 어머니들… 아니, 그 어머니에게서 난 창녀들이라고 불렀습니다. 어떤 관계인가 하면, 가톨릭교회가 그것을 조직해서 모든 사람이 당시 자기들에게 있던 빛… 아니, 당시 자기들에게 있던 것을 믿게 했다는 것입니다. 루터교인들도 똑같이 했습니다. 성경은 그녀가 그런 종류의 큰 여자라고 했습니다. 그런 여자는 어떤 여자입니까? 간음하며 사는 여자입니다. 교회들이 사람들과 영적 음행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여기 성경은 이것을 가르치는데, 그들은 성경과 아무 상관이 없는 신조 따위를 한 무더기 만들어 냅니다.
저는 거의 이십여 년 동안 바로 여기 서서 어느 목사님에게든 언제든 오시라고 요청했습니다. 여러분의 교과서나 신조를 가져오지 말고, 성경을 가지고 오셔서 성경의 빛으로 이것이 틀렸음을 입증해 보시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모순에 관해서는 사람들이 “모순이 있다!”고 말합니다. 저는 성경에서 모순 하나를 보여 주면 두 달 치 임금까지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런 것은 없습니다. 있다고 생각하지만 없습니다. 성경이 서로 모순된다면 아무 쓸모도 없고 믿을 수도 없습니다. 모든 말씀이 영감을 받았으며, 성경에는 모순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면 개신교회는 그 조직에 있어서 가톨릭교회와 똑같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저는 가톨릭 신자들에게 반감이 없습니다. 바로 지금 여기 앉아 계신 가장 친한 친구들 중에도 가톨릭 신자가 아주 많습니다. 그저께 밤에 제가 성령을 통해 개신교와 가톨릭에 관한 엄한 메시지를 전했을 때, 가톨릭 신자들이 바로 여기 제단으로 와서 제 손을 잡았습니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입니다. 가톨릭 사제들과는 토론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이 성경이 말씀의 전부라고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교회’라고 하고, 우리는 ‘성경’이라고 합니다! 가톨릭 신자는 “우리 가톨릭 신자들은 교회에 가서 경배하지만, 개신교인들은 집에 머물러 성경을 읽습니다.”라고 합니다. 저는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교회에 가서 경배합니다. 하지만 무엇을 경배합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다음 문제는 그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자신이 그분의 말씀 안에 계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저는 그것을 믿습니다. 저는 성경을 경배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개신교와 이런 교회 조직 방식에 동의하지 않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것을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동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그들과 사이가 틀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들은 제 형제들입니다. 그들과 다투지는 않지만, 그들의 말에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 밖의 모든 것을 거짓으로 여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그 관계입니다… 성경은 가톨릭교회인 이 여자를, 성경 요한계시록 17장에서 ‘창녀’라고 부르며, 그녀가 창녀들의 어머니라고 했습니다. 또 성경에서 여자는 교회를 나타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녀에게 창녀인 딸들이 있다는 것은, 그들이 아들일 수 없고 딸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들이어야 합니다. 개신교는 가톨릭에서 나왔습니다.
이제 다음 짐승… 다음 것은 이것입니다. 질문: “‘짐승의 형상’은 무슨 뜻입니까?” 앞의 질문과 연결되는 질문입니다. 질문하신 분이 좋은 질문을 하셨습니다. 자, 만일… 성경은 가톨릭교회가 짐승이라고 분명히 가르칩니다. 성경은 짐승이 ‘권력’을 뜻한다고 했습니다. 그렇지요? 짐승… 성경은 짐승이 ‘권력’을 뜻한다고 말합니다. 그 짐승은 바티칸 시국, 가톨릭의 교계 조직이었습니다. 자, 그 교회의 권력이 바로 짐승이었습니다. 그 뒤 개신교회가 가톨릭교회에서 나와 자기들끼리 작은 권력을 조직했습니다. 그것이 형상입니다.
어떤 것이… 제 형상으로 무언가를 만들었다면 저를 닮아야 합니다. 이 교회의 형상으로 무언가를 만들었다면 이 교회를 닮아야 합니다. 무언가가 만들어졌습니다… 짐승… 이 짐승을 위한 형상을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루터교, 감리교, 침례교, 오순절교, 성결교, 그 모든 분파입니다. 그들이 조직을 이루어 짐승과 똑같은 형상을 만들었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렇다면 브래넘 형제님, 모든 가톨릭 신자와 감리교인과 침례교인이 다…라는 말씀입니까?” 저는 그런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 교회들 안에는 다시 태어난 그리스도인이 수천, 수천, 수만 명이나 있습니다. 하지만 조직은 그들을 신조에 억지로 맞추려 하고, 그 사람들은 그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교회가 조직되면 신조 아래 들어갑니다.
제게는 성경 외에 어떤 신조도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신조이며, 성령께서 그것을 해석하십니다. 그분은 한 빛에서 또 다른 빛으로 계속 이끌어 가십니다. 제가 오늘 전하는 복음은, 만일 제가 백 년을 더 살게 된다면, 우리가 그렇게 살게 된다면, 더 많은 빛이 있을 것입니다. 끊임없이 그렇게 되어 왔습니다. 옛날에는 소달구지를 탔습니다. 여러분의 증조부께서 증조모를 만나러 가실 때 말입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만나러 T형 자동차를 타고 가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거의 제트기를 타고 갑니다. 우리는 전진하고 있습니다. 과학도 전진하고, 교육도 전진하고, 복음도 전진하고 있습니다. 성경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이리저리 달음질하며 지식이 증가하리라.” 그러므로 그것이 연결되는 지점입니다. 그래서…
개신교의 교단 교회들이 짐승의 형상인 것은, 가톨릭과 정확히 똑같이 교단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어느 시대에도 자기 교회를 조직하라고 명령하신 적이 없으며, 언제나 그것을 엄히 정죄하셨습니다! 이제 이해하십니까? 사람이 아니라 교회입니다! 사람들을 어떤 빛 아래 묶어 두려 할 때… 보십시오! 사람들이 여러분더러 옛날로 돌아가 소달구지를 타고 다니라고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더 나은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때의 일도 그와 같습니다. 누가 제게 “아, 이것만 하고 저것만 하면 됩니다.”라고 한다면, 저는 다른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목회자들의 문제는 늘 뒤만 돌아본다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삼백 년도 채 안 된 때에 어떤 프랑스 과학자는 “사람이 시속 30마일이라는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게 된다면, 중력이 그를 지구 밖으로 끌어낼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시속 30마일입니다! 오늘날 과학이 그 말을 기준으로 삼겠습니까? 전혀 아닙니다! 아닙니다. 지금은 사람을 시속 900마일이나 1,000마일로, 때로는 로켓에 태워 시속 1,600마일로 움직이게 하며,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과학은 사람의 생각을 통해 더 큰 일을 이루어, 목회자들이 사람의 영을 통해 이끈 것보다 훨씬 더 멀리 사람을 이끌었습니다. 과학이 가진 것은 지식의 나무뿐인데도 말입니다. 영은 한계가 없는데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는 이것입니다. 과학은 몇 년 전에 과학이 무슨 말을 했는지 돌아보지 않습니다. 지금 가진 것을 가지고 다른 것을 향해 나아갑니다.
하지만 설교자에게 물어보십시오. “자, 무디가 그것에 관해 무슨 말을 했는지 봅시다. 웨슬리가 뭐라고 했는지 봅시다.” 저는 그들이 무슨 말을 했는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그것에 관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를 압니다! 이것이 그것이며, 저는 여전히 더 큰 것을 기대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부정한 영 셋이 짐승의 입에서 나왔다.”고 했습니다. 무엇인지 아십니까? 부정한 영들… 개구리 같습니다. 개구리가 어떻게 보는지 유심히 보셨습니까? 개구리는 언제나 뒤를 봅니다. 앞을 보지 않습니다. 뒤를 보고, 늘 뒤를 봅니다. 뒤를 돌아봅니다. 그러나 에스겔서에 나오는 서로 다른 네 머리를 가진 네 생물은 앞을 보고 있었고, 뒤로 갈 수 없었습니다. 언제나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어디로 가든 똑바로 앞으로 갔습니다. 차이를 아시겠죠? 바로 이것이 개신교와 가톨릭의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늘 가톨릭을 비난하지만, ‘검댕 묻은 냄비가 주전자더러 검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그리스도인이십니까?”라고 묻습니다. “저는 침례교회에 다닌다는 것을 알아 두십시오.” 그것은 어디 농장에 속해 있다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그 질문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저는 가톨릭교회에 다닙니다.” 그래도 그것이 여러분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지는 않습니다. 침례교회나 감리교회에 속해 있다는 것이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지는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길은 하나뿐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자기 힘으로 이루어 낼 수 없고, 어떻게도 할 수 없습니다. 자신을 잊고 자신에 대해 죽어서, 그리스도께서 들어오셔서 여러분 안에 그리스도의 삶을 사시도록 해야 합니다.
“사람이…하지 아니하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성령과 물에서 태어나지 아니하면 결코 왕국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가톨릭 신자든 감리교인이든 침례교인이든 누구든, 죄들의 사면을 위해 물로 침례를 받고 성령침례를 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잃어버린 자입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니 감리교인이라도 성령침례를 받고 물로 침례를 받았다면, 예수님은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가톨릭 신자라도 그렇게 했다면 천국에 들어갈 것입니다. 하지만 가톨릭교회나 감리교회나 침례교회의 신조만 붙들고 있다면, 여전히 잃어버린 자입니다. 세상이 오늘날 이런 상태가 된 것은 사람들이 꼭… 그들은 “그것은 제 신앙에 어긋납니다.”라고 합니다. “신유를 믿습니까?” “그것은 제 신앙에 어긋납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교회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교회의 신조가 그렇게 만들어 놓았고, 여러분은 교회가 말하는 대로 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가톨릭을 향해 소리칩니다. 그들도 똑같이 합니다. 그것이 짐승과 짐승의 형상입니다! 성경은 “누구든지 그것을 받는 자는 하늘의 왕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개들과 마법사들 등이 있는 바깥으로 쫓겨나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영원무궁토록 고통을 받으리라.”고 말합니다. 친구여, 거기서 나오십시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으십시오! 그렇습니다.
자, 이것을 보겠습니다… 지금 하는 김에 이것들도 보지요… 오늘 어떤 분이 제게 물었습니다. 두세 번이나 받은 질문입니다. 질문: “브래넘 형제님, ‘짐승의 표’에 관해서, 머리에 숫자를 문신으로 새기거나 손에 무언가를 새길 것이라고 믿지 않으십니까?” 아닙니다! 절대로 그런 것을 기대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거래 거부가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 연합에 속하지 않으면 아무도 사거나 팔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일종의 조합처럼 되어, 그것을 조합으로 묶고 종교를 조합화할 것입니다. 제 말을 기억하십시오. 멀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보게 될 것입니다. 바로 눈앞에 와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것을 모르는 것은 늘 여기 집에만 있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이 우세한 나라들에 한 번 저와 함께 가 보십시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게 될 것입니다. 형제여, 그들은 사람들에게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 모두 지시합니다.
성경은 여기서 미국이 어린양같이 올라왔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예언에서 그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종교의 자유입니다. 그러다가 곧 그들이 그것들을 하나로 합쳤고, 그것은 용처럼 말하며 자기 앞에 있던 용과 똑같은 권력을 행사했습니다. 그것이 미국입니다! 그렇습니다. 얼마 전 제 친구인 한 목사님이 “브래넘 형제님, 미국은 선조들이 종교를 토대로 세웠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결코 무너지게 두지 않으실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유대인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좋은 위치에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들도 포로로 끌려가게 두셨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지나간 어떤 세대를 편애하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이 바르게 걷든지, 아니면 왕국 밖에 있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정말입니다! 꽤 거친 말이지만 여러분에게 유익합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날의 문제는, 여기 옛날부터 계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할리우드식 전도가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온갖 요란함과 소란, 화려함, 나팔을 불어 대는 일 같은 것이 너무 많습니다. “일어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실 분은 누구십니까? 형제님,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곧바로 천국에 가십니다.”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거짓말입니다! “사람이 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 그가 다시 태어났다면, 그곳에서 그에게 임했던 바로 그 축복이 이곳에서도 그에게 임할 것입니다. 지난 한 주 동안 우리는 성경을 통해 그것을 거듭 살펴보았습니다. 동방 사람들, 곧 동양의 민족인 유대인들에게 성령이 임하셨을 때, 큰 표적과 나타남과 함께 임하셨음을 알았습니다. 성경은 어둠인지 낮인지조차 분간하기 어려운 때가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저녁 끝 무렵까지 쭉 흐린 날 같은 때입니다. 그러다가 저녁 마지막 몇 분 동안 해가 나타날 것입니다. “저녁때에 그것이 빛이 되리라.” 그렇지요? 그러므로 이것은 서방 사람들, 곧 이방인들이 그때 유대인들이 받았던 똑같은 성령을 똑같은 표적과 나타남과 함께 받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물론 세상 사람들은 여러분을 광신자라 하고 ‘머리가 이상하다’고 할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그렇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특별한 백성이며,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이상하게 보입니다. 제 집 이웃에서도 그런 것을 봅니다. 그곳 사람들은… 제 어린아이들까지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을 깨끗하게 하고 가능한 한 바르게 살도록 애쓰지만, 이웃들이 아이들을 차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차별합니다. 저는 압니다. 제게는 어떤 일들을 아는 길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며 집회에서 보셨습니다. 시내 목사님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압니다. “빌리는 좋은 사람이야. 그 사람에게 나쁜 감정은 없어. 하지만 그 사람들은 우리와 조금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지.”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것이 표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표가 거기 있습니다.
보십시오. 어젯밤에, 유대인들이 성령을 받기 구백 년 전에 성령께서 예언하시며 그것이 무엇인지를 말씀하신 것을 보았습니다. “잉크통을… 서기관의 잉크통을 가진 사람이 예루살렘 한가운데로 다니며 그들의 이마에 표를 찍었다.” 그렇지요? 교회가 하나님께 정죄받기 전에 그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뒤 서기 96년에 티투스가 예루살렘 성벽을 포위하고 성을 불태웠습니다. 예언대로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그 성전에서 남은 것이라고는 돌들을 쌓아 둔 낡은 벽 하나뿐입니다. 유대인들이 거기 통곡의 벽에서 울고 통곡하며 문질러 반들반들해졌습니다. 성전에서 남은 것은 그것뿐입니다. 그리고 같은 자리에 오마르 사원이 서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대로 “황폐하게 하는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서 있는 것을 너희가 보거든” 하셨고, 그다음에는 밑줄로… 괄호 안에 “누구든지 읽는 자는 깨달을지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거기에 있었습니다. 또 이방인들이… 그 경륜이 끝나기까지 얼마나 지나야 하는지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성벽을 짓밟다가, 그 뒤 하나님께서 다시 유대인들에게 돌아가실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그때에 와 있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유대인들이 수천 명씩 돌아가고 있습니다. 어젯밤에 살펴보았듯, 성경은 꼭… 마치 신문을 읽는 것 같습니다. 신문보다 더 분명합니다.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자.
그렇지만 그들의 머리에 찍힌 표는 문신이 아니었지요? 무엇이었습니까? 성령침례였습니다. 그러면 이 마지막 날에 있을 표는 무엇입니까? 성경은 마지막 날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인이 성령침례라고 했습니다. 자, 이것은… 에베소서 4장 30절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을 슬프게 하지 말라. 그분에 의해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봉인되었느니라.” 성경이 말합니다. 에베소서 1장 13절도 같은 말을 합니다. 그 밖의 여러 곳에서도 성령이 하나님의 인이라고 말합니다. 인이란 무엇입니까? 어떤 것이든 완성되기 전에는 인을 칠 수 없습니다. 루터교인들은 인침을 받지 않았습니다. 은혜의 경륜이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의롭게 됨을 전했습니다. 감리교인들도 인침을 받지 않았습니다. 제가 지금 어떤 질문으로 다가가고 있는데, 조금 뒤에 그것을 다루겠습니다. 인침을 받지 않았습니다.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령침례는 하나님의 역사의 완성입니다.
그분은 “하늘에 증언하는 세 분이 계시니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시며, 이 세 분은 하나이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아들 없이 아버지를 모실 수 없고, 성령 없이 아들을 모실 수 없습니다. 그분들은 하나이십니다. 또 “땅에 증언하는 셋이 있으니 물과 피와 영이라. 이 셋은 하나가 아니라 하나로 일치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의 완전한 인침 안에서 말입니다. 루터 때의 의롭게 됨은 물이고, 성화는 피를 통한 것입니다. 의롭게 됨은 로마서 5장 1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받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화평을 누리는도다.” 믿음으로 의롭게 됨입니다! 피를 통한 성화는 히브리서 13장 12절과 13절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피로 백성을 거룩히 구별하시기 위해 성문 밖에서 고난을 당하셨느니라.”
누가복음 24장 49절입니다. “보라,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노라. 그러나 너희는 높은 곳으로부터 오는 권능을 입을 때까지 예루살렘 시에 머물라.” 사도행전 1장 8절입니다. “성령께서 너희에게 오신 뒤에 너희가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의 맨 끝 지역까지 이르러 나를 위한 증인들이 되리라.” 성령침례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계속되게 되어 있었습니다! “조금 있으면 세상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나를 보리라. 내가 세상 끝까지 너희와 함께, 너희 안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 내가 하는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 그분의 영께서 교회를 통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분은 “너희가 조롱을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집주인인 나를 점쟁이들의 우두머리 바알세붑이라 불렀으니, 이제 그 집안에 속한 자들은 얼마나 더 심하게 부르겠느냐?”라고 하셨습니다. 또 “사람들이 너희에 관해 온갖 말을 할 때에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크게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 보상이 크니라. 그들이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성경입니다. 거기 있습니다. 그러니 친구 여러분, 여러분은 반드시 그것을 받아야 합니다. 이제 선택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도덕적 존재입니다.
그것이 개신교회와 가톨릭교회의 관계입니다. 성경에 따르면 그 둘이 함께… 오직 교회만 붙드는 사람 말입니다. 예수님이 아니라 교회를 말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고, 하나님께 길을 열어 주시고 자신을… 빛을 주시기를 기도하는 사람은 어느 교회에 있든 구원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자기 교단만 붙들고 있다면, 성령침례를 대신하는 배교의 표를 받은 것입니다. 서로 반대입니다! 가톨릭과 개신교가 똑같습니다. 성경은 그 여자가 창녀이고, 그 딸들도 창녀들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분명합니까? 좋습니다.
질문: “그러면 성령은… 지금도 안수로 성령을 받습니까? 제자들, 베드로와 바울 등이 그렇게 했는데, 지금도 가능합니까? 바울도 이 방법으로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쪽지를 쓰신 사랑하는 형제님이나 자매님, 성령은 분명히 안수로 받습니다. 많은 사람이 저를… 저는 오순절교인으로 낙인이 찍혔고, 오순절교인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오순절 조직에 속한 적이 없습니다. 모든 조직에서 완전히 자유로우며,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계속 그렇게 지내려 합니다. 그래야 제가 바로 그 틈에 서서 “우리는 형제입니다! 이리 오십시오. 함께 따져 봅시다.”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제가 처음 시작했을 때… 여기 계신 여러분은… 여기 앉아 계신 제 비서들과 다른 분들도 아십니다. 오늘날 저는 전 세계 천만 명 이상의 사람들과 연락할 수 있습니다. 얼마나 큰 조직을 시작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하지만 저는 조직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성경에 어긋납니다. 저는 조직 안에 있는 사람들이 구원받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제가 하는 일입니다. 주님께서 사람들 사이에서 제게 주신 영향력은 어떤 조직에 쏟지 않고 반드시 그분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겠습니다. 그것이 마땅히 돌아가야 할 예수 그리스도께 드리겠습니다. 어떤 조직도 여러분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안수에 관해서… 이제 견해를 좀 달리하려고 합니다. 저의… 자, 사랑하는 오순절교인 여러분, 저와 사이가 틀어지지 마십시오. 하지만 여러분이 어떤 곳에 와서 “성령을 받기 위해 가서 기다리겠습니다.”라고 할 때 말입니다. 오순절교에서 그 말을 얼마나 써 왔습니까! 여러분의 감정을 상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역 현장에서 저를 가장 많이 지원하는 사람들은 오순절교인들입니다. 그들은 신유의 메시지와 하나님의 권능을 믿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그 교회들에 있는 개인들 가운데 영생을 얻도록 미리 예정된 사람들은 올 것입니다. 그뿐입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올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정죄받도록 미리 예정되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아무도 멸망하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이시기에 그들이 그것을 정죄할 것을 보셨습니다. 그뿐입니다. 미리 보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미리 아심입니다. 이런 일들을 보시는 것입니다. 그분은 바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교회가 정확히 어떤 위치에 서 있을지 예고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아셨습니다.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부터 교회가 오늘날 이와 같을 것을 아셨습니다. 제가 오늘 밤 이 강단에 서 있을 것도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부터 아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시며, 처음부터 끝을 아십니다.
그런데 오순절교인들은 이렇게 가르쳐 왔습니다… 이 말 때문에 제게 반박이 많이 돌아올지도 모르지만, 말씀을 다루려면 정직해야 합니다. 그런 식으로 ‘기다리는’ 것은 없습니다! 여러분이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기다리라는 말은 ‘기도하라’가 아니라 ‘기다리라’는 뜻입니다. 승천 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 성소를 깨끗하게 하신 후입니다. 그리고 속죄일 후, 부활… 그분이 죽임을 당하신 속죄일에서 승천까지 사십 일이고, 그다음이 오순절입니다. 오순절이라는 말은 ‘쉰’이라는 뜻입니다. 속죄 제물을 드린 뒤 오십 일이란 뜻이었습니다. 속죄 제물이 드려진 뒤에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문자적으로, 지리적으로, 완벽하게 이루어져야 했습니다. 오순절은 추수의 첫 열매를 가져와 기뻐하는 축제의 때였습니다.
이제 교회, 곧 성령의 교회, 예수님께서 오실 때까지 이천 년 동안 계속될 교회의 첫 열매가 오순절에 나왔습니다. 오순절 열흘 전이었고, 깨끗하게 한 뒤… 희생물을 죽인 뒤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까지 사십 일이었습니다. 그분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높은 곳으로부터 오는 권능을 입을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장… 사도행전 2장입니다. “오순절 날이 충만히 찼을 때에 그들이 다 한마음이 되어 한곳에 있었는데, 갑자기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력한 바람 소리 같은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던 온 집안을 가득 채우고, 그들이 다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성령께서 그들에게 말하게 하시는 대로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하더라.”
그러자 바깥의 종교계, 큰 정통 교회들이 와서 그 사람들이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행동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와서 비웃고 조롱하며 “이 갈릴리 사람들 좀 보아라! 다 술에 취했구나!”라고 했습니다. 오해가 보이십니까? 그리고 가톨릭 친구 여러분,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도 그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마리아도 성령을 받고 그와 같이 되지 않고서는 천국에 들어가게 하지 않으셨다면, 자매님은 그보다 덜한 것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그러니 잘난 체하는 자세에서 내려옵시다. 내려옵시다.
세상이 무슨 말을 하는지 신경 쓰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보십시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설계도대로 지어야 합니다. 그분께서 베드로에게 “이 반석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밖의 온갖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대적하겠지만 이기지는 못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차라리 해를 멈추는 편이 빠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속 나아가도록 정하셨습니다. 제가 처음 회심했을 때는 저기 계신 가엾은 어머니까지 제가 미쳤다고 생각하셨습니다. 장모님은 “정신병원에 보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시내 설교자들은 “저러다가 곧 불이 꺼질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타올랐지만 여전히 타고 있고, 갈수록 더 잘 탑니다. 왜 그렇습니까? 꺼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십니다! 꺼지기는커녕 이제 전 세계로 번졌습니다.
바로 여기 아래 오하이오강에서 제가 침례를 줄 때 그분께서 하신 말씀과 똑같습니다. 이십삼 년 전에 여러분 중 많은 분이 거기 서 계셨습니다. 바로 오하이오강이었습니다. 그 빛, 곧 천사가 우리가 있는 곳으로 내려와 “침례자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에 앞서 가도록 보냄을 받은 것같이, 네 메시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가져오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분이 아직 오시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무엇을 했는지 보십시오. 온 세계를 휩쓸었습니다. 오늘날 지금, 그동안 이루어진 노력을 생각해 보면, 문자 그대로 수백만 명에 이르렀습니다. 가톨릭의 「선데이 비지터」조차 그 노력만으로 수백만 명이 모여들었다는 것을 언급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듣고 말합니다. “저것이 진리다! 이제 당장 이 세상 것들을 모두 정리하고 가서 참된 복음을 전하겠다.” 그래서 우리를 ‘순복음’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순복음을 조롱합니다. 하지만 형제여, 저는 무엇이든 반쪽은 원하지 않습니다. 제게는 전부여야 합니다. 일부가 좋다면 나머지도 좋습니다. 온전한 복음입니다!
자, 보십시오. 그때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오순절의 사람들이 기다렸습니다. “갑자기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력한 바람 소리 같은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던 집안을 가득 채우고.” 그 뒤로는 단 한 번도 기다릴 필요가 없었습니다. 베드로가 이방인들에게 이 말들을 할 때, 그들이 침례를 받기도 전에 성령께서 그들 위에 내려오셨습니다. 그렇지요? …할 때에. 사도행전 10장 44절입니다. 베드로가 아직 이 말들을 할 때에 성령님께서 말씀을 들은… 자들에게 내려오시매 할례자들에 속한 자들과… 베드로와 함께 온 자들이… 이방인들에게… 성령님이 선물로 부어진 것으로 인해 놀라니 이는 그들이 타 언어들로 말하며 하나님을 크게 높이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더라. 그때에 베드로가 이르되, 이들이 처음에 우리처럼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물을 금할 수 있느냐? 그리고 그는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다릴 필요도, 머물며 기다릴 필요도 없습니다.
사도들의 방식입니다. 하나님께는 정해진 틀이 없습니다. 마음이 갈망하면 여러분이 갈망하는 것을 주십니다. 성령을 원한다면 바로 지금 여러분에게 임하실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전하러 내려갔을 때… 베드로에게는 왕국의 열쇠들이 있었습니다. 잠시 뒤에 다룰 질문 중에 그것이 있습니다. 그에게 왕국의 열쇠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고넬료의 집에 문을 열어 주었고, 사마리아 사람들에게도 열어 주었으며, 이쪽에서도 열어 주었습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빌립이 거기로 내려가 그들에게 전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었습니다. 그 뒤 베드로가 내려가 그들에게 안수했습니다. 그때 그는 거기 있던 그 마법사에게 무엇인가를 했습니다. 거기에 마법사 시몬이 있었는데, “내가 누구에게든 안수하면 성령을 받게 하는 그 은사를 제게 주시면 돈을 드리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지요?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목깃을 뒤로 돌려 입고 와서 안수하며 “사도의 축복을 드립니다.”라고 하는 어떤 대주교들 같은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가 안수했을 때는 무슨 일이 일어났으며, 지금도 그렇습니다. 저는 안수할 때 성령께서 그들에게 임하시자 사람들이 파리처럼 툭툭 쓰러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안수에 관한 사도들의 가르침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생각이 조금 다르시면 내일 밤 제게 쪽지를 써 주십시오. 좋습니다.
질문: “세계 인구의 삼분의 이가 아직 복음을 듣지 못했다면… 복음의 말씀을, 얼마나…” 실례합니다. 잉크로 쓴 것인데, 제가 여기서 땀을 흘려 번졌습니다. 봅시다. “세계 인구의 삼분의 이가 아직 복음을 듣지 못했다면, 어떻게 우리 주님께서 지금 오실 수 있습니까?” 삼분의 이가 아직 복음을 듣지 못했는데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얼마 전 리드헤드 박사님, 수단 선교회 회장님이 오셨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순… 가장 큰 사도적… 실례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근본주의 선교 단체인 수단 선교회입니다. 리드헤드 박사님은 학위가 너무 많아 본인도 몇 개인지 모를 정도인데, 일 년 반 조금 더 전에 제 집에 오셨습니다. 그분과 침례교 목사인 하이먼 애플먼이 제 집에 서 있었습니다. 애플먼은 지금 성령을 받고 멕시코에서 설교하고 있습니다. 그분이 집으로 와서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오순절교인들과 함께 일하십니까?” 저는 “예, 그렇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저는 리드헤드 박사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들어오시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예. 무엇 하나 여쭙고 싶습니다. 침례교회에서 안수를 받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나왔습니다. 그것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침례교회가 하는 말이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것을 전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침례교회에 반감은 없습니다. 다른 어느 교회 못지않게 좋은 교회입니다. 다만 자유로울 수 있도록 거기서 나왔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물론 우리가 침례교인인 것은 아시겠지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예, 압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이 성령침례는 무엇입니까? 제가 가 보니 사람들이 의자를 걷어차고 발을 구르며 소리를 지르고 난리를 치더군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저도 그런 것을 다 보았습니다. 하지만 형제님, 그 모든 것 뒤에는 참되고 진짜인 성령침례가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브래넘 형제님, 저도 받을 수 있습니까? 제게는 명예가 너무나 많습니다! 저는 박사이고, 이것도 저것도 있습니다. 철학박사 학위도, 학사 학위도 있고, 온 세계에서 받은 온갖 학위와 명예 학위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어디 계십니까?”라고 했습니다. 저는 “형제님, 그분은 바로 여기 이 방 안에 계십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미국에서 막 교육을 받고 온 독실한 이슬람교도와 마주 서서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그 죽은 옛 선지자를 버리고 부활하신 주 예수님을 받아들이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가 말하더군요. ‘선생님, 당신의 부활하신 주 예수님이 나의 무함마드보다 내게 무엇을 더 해 줄 수 있습니까? 두 분 모두 경전을 썼고 우리는 그것을 믿습니다. 두 분 모두 죽었습니다. 또 두 분 모두 죽은 뒤의 삶을 약속했고, 우리는 그것을 믿습니다.’” 그분은 “아,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기쁨이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우리도 있습니다. 나도 당신만큼 심리적인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맞는 말입니다. “그가 ‘자, 우리의 무함마드는… 당신은 주 예수가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났다고 주장하지요.’라고 했습니다.” 리드헤드 박사님은 “그렇습니다. 그분은 부활하셨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입증해 보십시오! 입증해 보십시오! 그것을 입증할 시간이 이천 년이나 있었는데, 세계의 삼분의 일 정도만 그 소식을 들었습니다. 우리의 무함마드가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기만 한다면 온 세계가 이틀 안에 알게 될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또 ‘우리의 무함마드는 죽은 뒤의 삶 외에는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주 예수는 자기가 행한 바로 그 일들을 당신들과 당신들 교사들도 하리라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니 교사인 당신들이 지금 그것을 보여 주십시오. 그러면 그분이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났다는 것을 믿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브래넘 형제님, 저는 이렇게 발로 흙을 문지르다가 화제를 바꾸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많은 학위를 가지고도 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학위들 속에 하나님께서 어디 계십니까? 철학박사, 신학박사, 법학박사 같은 것으로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단순한 믿음으로, 성령침례로 알게 됩니다. 그것만이 유일한 길입니다. 여러분 안에 계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하나님의 아들로 만드시고 본성을 바꾸십니다. 모든 것을 만드시고 말씀으로 세상이 존재하게 하신 창조주 하나님, 바로 그 동일한 영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모든 것을 믿습니다. 믿을 수 있다면 불가능한 것은 없습니다! 작은 신조 하나에 머물러 “나는 믿지 않아, 받아들이지 않아. 하나님께서 이런 일을 하신다는 것을 믿을 수 없어. 믿을 수 없어.”라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불신으로 하나님을 제한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래서 리드헤드 박사님이 거기 서서 “브래넘 형제님, 사람이 정말로 성령을 받을 수 있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저는 “예, 리드 박사님, 받으실 수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께서 제 마음을 아신다면, 그리고 저는 형제님을 믿습니다. 지금 영감을 받아 알고 계시니, 제 부탁은… 제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믿으십니까?”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렇다는 것을 압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어떻게 받아야 합니까?”라고 했습니다. 저는 “무릎을 꿇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그 낡은 커피 탁자 옆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제가 바로 여기 위에서 가져간 것인데, 조금 전에 여기서 그것을 고쳐 주신 분이 저기 뒤에 앉아 계십니다. 거기 있다가 그분이 무릎을 꿇으며 탁자 위의 유리를 깨뜨렸습니다. 그분은 “하나님, 제 죄 많은 혼에 긍휼을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분에게 안수했고, 바로 거기서 성령침례가 그분에게 임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그분은 가는 곳마다 침례교회에 불을 붙여 놓았습니다! 여기저기 모두 그렇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이… 예수님은 …까지는 오실 수 없습니다…
들으십시오! 우리는 전 세계에 전도지를 뿌립니다. 어느 작은 구석에 가도, 누군가 신학을 가지고 다녀가며 전도지를 나눠 주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오늘날 해외에 가서 선교사라고 해 보십시오. 사람들이 어떻게 비웃는지 보십시오. 인도에 들어가 “저는 선교사입니다.”라고 해 보십시오.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려 하십니까?” 그들은 성경을 더 많이 압니다… 그곳 아이들 가운데는 여기 미국의 어떤 교사들보다 성경을 더 많이 아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결국 성경은 동방의 책입니다. 그리고 기억하십시오. 미국이 생기기도 수백 년, 수백 년, 또 수백 년 전에 그들에게는 복음이 있었습니다. 성 도마가 설교하던 그 큰 교회가 오늘날에도 인도에 서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여러분의 가르침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려 하십니까?”라고 합니다. “우리는 미국 선교사입니다.”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려 합니까? 위스키 마시는 법입니까? 그곳 여러분의 교회에서 다들 하는 일이 그것이지요! 담배 피우는 법입니까? 아내와 이혼하는 법 같은 것을 가르치려 합니까? 그런 것을 하려거든 우리는 원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신학인가 뭔가를 가지고 와서 말씀을 좀 가르치려 한다면, 우리는 당신들보다 더 많이 압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분은 말했습니다. “하지만 말씀이 말하는 것을 실제로 보여 주러 온다면 받아들이겠습니다.” 아멘! 바로 그것입니다. 그들이 갈망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제 말을 기억하시고 여러분의 성경 여백에 적어 두십시오. 이것은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이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인도에 도착하면 수만 명에 수천을 곱한 사람들이 구원받는 소식을 듣게 될 것입니다. 성령께서… 저는 여기 제 성경에 적어 두었고, 여기 수만 권의 성경에도 적혀 있습니다. 그 어린 소년의 부활처럼, 그분이 환상으로 “거기 삼십만 명이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맞는지 보십시오! 그렇게 복음이 하룻밤 사이에 전해질 것입니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그렇게 휩쓸고 갈 것입니다.
아프리카에서 단 한 번의 제단 초청으로 삼만 명이 하나님을 받아들였을 때, 저는 “손을 들고 성령을 받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어떤 미국 선교사가 와서 교회에서 가르치고 언어를 배우기를 기다리지 마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어머니들은 선교사를 보내려고 빨래판에 빨래를 하는데, 선교사는 좋은 큰 차를 타고 다니며 그 땅의 풍요를 누립니다. 그러다가 전도지 몇 장을 나눠 주고 돌아옵니다. 그들은 그런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입증되었습니다. 며칠 전 밤, 바로 여기 유대인 병원에서 목사들과 의사들이 모인 가운데 신유를 주제로 이야기하면서 제가 말했습니다. “제가 주님의 천사에 관해 말씀드렸을 때, 여러분은 저를 광신자라고 부르며 악몽을 꾼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교회만 해도 수천 명을 보내고 수백만 달러를 써 가며 아프리카에 선교사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제가 가 보니, 사람들이 작은 진흙 우상을 들고 다니며 그 우상에게서 도움을 구하면서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더군요.” 저는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광신주의’라고 부른 것이 오 분 동안 그리스도께로 인도한 혼의 수가, 우리가 수백만 달러와 수천 명의 선교사로 지난 백오십 년 동안 인도한 수보다 많았습니다.” 그들은 입을 다물었습니다.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사실이 거기 있었습니다. 저는 그 사람들에게 “교육을 받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저 이 복음을 가지고, 질병 때문에 백인조차 들어갈 수 없는 저 토착민들의 땅으로 가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저는 더반 신문에 실린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왼손과 오른손조차 구별하지 못하는 한 노인도 성령침례를 받고, 매주 평균 천 명에게 침례를 주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복음은 그렇게 아주 짧은 시간에 나아갑니다. 온 세계를 덮는 데 약 여섯 달이면 됩니다. 좋습니다.
질문: “크리스천 사이언스에 관해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좋습니다. 이 질문을 하신 형제님이나 자매님, 여러분의 종교를 두고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크리스천 사이언스는 심리학입니다. 신유는 하나님의 권능입니다! 크리스천 사이언스는 정신이 물질을 지배한다고 합니다. 크리스천 사이언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부인합니다. 크리스천 사이언스는… 아닙니다. 저 위에 에디 부인의 책들이 있고, 모두 읽어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크리스천 사이언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며 그분을 ‘선지자’로 여깁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이 아니셨습니다.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분은 신성을 지니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것을 정신이 물질을 지배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팔이나 배에 경련이 나거나 머리가 아프면, 저는 그것이 아프다는 것을 알 정도의 분별력은 있습니다. 제가 아프다고 생각하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권능이 그것을 없앨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제가 그것에 관해 생각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크리스천 사이언스는, 앞서 받은 다른 질문과 함께 말씀드리자면, 현대의 여러 분파 가운데 하나이며 깊고 어두운 오류입니다. 그렇습니다. 친구여, 누가 쓰셨든 감정을 상하게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정직해야 합니다. 질문을 쓰신 분과 제가 언젠가 함께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서서 설명해야 하며, 저도 제가 한 말에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알지 못한다면 답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좋습니다.
질문: “자, 저희가… 여기서 멀리 살면… 태버내클에 참석하기에는 너무 멀리 삽니다. 교회들이 어머니 교회, 곧 가톨릭을 따르고 있다면, 저희는 어디에 참석하여 함께 모이는 것이 좋겠습니까?” 이 질문을 쓰신 사랑하는 형제님이나 자매님, 어느 교회에 다니라고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저라면 이렇게 하겠습니다. 형제님, 자매님, 아직 성령침례를 받지 않았다면 성령침례를 받으십시오. 그다음에 성령침례를 받은 다른 사람들이 있는 회중으로 가십시오. 그런 사람들과 함께 모이십시오.
얼마 전에 어떤 사람을 보았는데, 태어난 지 십 년… 아니, 태어났다는 게 아닙니다. 실례합니다. 앞을 못 본 지 십 년 된 사람이었습니다. 큰 교회에 속해 있었고 미주리주 케넷에 살았습니다. 여러 해 전에 구두 수선공이었는데 눈이 멀었습니다. 그가 강단으로 올라오자 성령께서 그가 누구인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눈이 먼 지 얼마나 되었는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또 그가 저지른 어떤 추한 일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제가 거기에 갈 때까지 살게 해 주시면, 그 일을 바로잡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하자 눈이 열렸습니다. 그는 바로 이 성경에서 여러 장을 연달아 읽었습니다. 그는 자기 교회로 돌아가 찬양을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목사가 말했습니다. “어차피 그렇게 되었을 겁니다. 그저 감정이 고조되었을 뿐이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런 것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마귀에게서 난 것입니다!” 누구든 마귀가 치유할 수 있다는 성경 구절 하나만 보여 주십시오. 마귀가 치유할 수 있다는 구절을 보여 주신다면, 저는 마귀가 여러분의 아버지임을 입증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렇게 하신다면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그것이 없습니다. 입증할 수 없습니다. 시도하고 싶다면 얼마든지 하십시오. 하지만 형제여, 고집 센 종교인들이며 온갖 사람들이 이미 그렇게 도전해 왔습니다. 그러니 그런 말은 하지 마십시오. 보십시오! 바로 그 사람이 마음속으로 그 말을 믿기 시작했습니다. 석 달 뒤 그는 처음과 똑같이 눈이 먼 채 제 집회에 왔습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분파들을 멀리하십시오. 믿는 사람들과 함께 모이고 교제하십시오. 성경은 “믿지 않는 자들과 멍에를 같이 메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너희 자신을 분리하라.”고 하셨습니다. 나오십시오! 성경은 “그들 가운데서 나와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그러면 내가 너희를 받아들이리라. 나는 교회 한가운데 서 있는 주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오십시오! 그런 사람들과 어울리지 마십시오! 하지만 어떤 교회든 좋은 교회에 속하십시오. 감리교든 침례교든 장로교든 캠벨파든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그 안에 참된 신자들이 있는 곳 말입니다. 그들은 교회의 신조가 무엇이라고 하는지 개의치 않고, 형제자매들을 만나 함께 하나님을 경배하러 갑니다. 좋습니다.
질문: “어젯밤에 요한계시록 7장에 나오는, 모든 지파와 민족에서 나온 아무도 셀 수 없는 큰 무리에 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신부라는 말씀으로 이해했는데, 제대로 들었습니까?” 예, 제대로 들으셨습니다. 그들이 신부입니다. 자, 요한계시록 7장을 자세히 보시면, 그가 십사만 사천 명을 보았습니다. 형제님이 그렇다고 비난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 십사만… 보통 십사만 사천 명이 신부라고 믿는 사람은 여호와의 증인입니다. 그것은 오류입니다! 요한은 그들을 모두 알아보고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들은 모두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는 “만 이천 명은 갓, 만 이천 명은 스불론, 만 이천 명은 베냐민, 만 이천 명은 유다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지요? 이스라엘에 열두 지파가 있고, 열둘에 열둘을 곱하면 십사만 사천입니다. 그렇지요? 그는 “모두 이스라엘 자손”이라고 했습니다. 요한은 그들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다음에 이쪽을 보고 말했습니다. “보라, 모든 족속과 언어와 민족에서 나온 아무도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예복을 입고 서서,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흔들며 외치고 왕께 호산나를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들은 누구입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이들은 큰 환난에서 나와 어린양의 피에 자기 예복을 씻은 자들이니라. 그들은 하나님 앞에 있으며, 어린양과 함께 그분의 성전에서 그분을 섬길 것이니라. 밤낮으로 그분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거기에 신부가 있습니다. 아내, 이방인 신부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신부는 이방인입니다. 그분은 “이방인들 중에서 한 백성을 취하러 오시리라.”고 하셨습니다. 무엇을 위해서입니까? “그분의 이름을 위해서”입니다. 세상에는 젊은 여자가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한 여자를 아내로 맞았습니다. 그 여자는 미다 브로이였지만, 지금은 윌리엄 브래넘의 부인입니다. 더 이상 브로이가 아니라 브래넘입니다. 그와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신부가 되는 것입니다. 신부의 지체들이 되는 것입니다.
질문: “바티칸 시국 위에 있는 라틴어는 무엇입니까? 어떻게 합해서 육백육십육이 되는지, 무슨 뜻인지 알고 싶습니다.” 그것은 위에 있는 게 아닙니다… 라틴어… 그 라틴어는 바티칸 시국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교황이 앉아 있는 왕좌 위에 있습니다. 거기에 ‘VICARIUS FILII DEI’라고 쓰여 있습니다. 원하시면 내일 아침에 그것을 전부 적어 가져오겠습니다. 종이에 써서, 원하시면 내일 아침에 가져다드리겠습니다. 로마 문자로 VICARIUS FILII DEI라고 써 볼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 말은 ‘하나님의 아들을 대신하여’라는 뜻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의 계승자라는 것입니다. 가톨릭교회는 베드로가 첫 교황이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계승자였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오류입니다! 자, 그들은 그 뒤를 잇는 모든 교황도 계승자라고 주장하며, 현재의 교황도 예수 그리스도의 계승자라고 합니다. 거기 위에 ‘예수 그리스도의 계승자, VICARIUS FILII DEI’라고 쓰여 있습니다. 로마 문자를 가지고, X는 10, V는 5 하는 식으로 ‘VICARIUS FILII DEI’를 써 보십시오. 그리고 선을 그어 더하면 육백육십육이 됩니다. 직접 써서 확인해 보십시오.
저는 가톨릭교회의 「우리 신앙의 사실들」이라는 책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 가족이 아일랜드계 가톨릭 신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압니다. 그것은 절대적인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거기에… 성경은 “그가 로마의 일곱 언덕 위에 있는 교회, 또는 장소, 또는 교회에 앉을 것이며, 그의 권력이 온 세계에 미치리라. 그는 적그리스도라 불리느니라.”고 했습니다. 그 교회에서 그 뒤에 태어난 작은 교회들이 나왔습니다. 성경은 “그 여자는 창녀였고, 그를 따르는 자들도 창녀들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들도 같은 방식으로 조직하고 자기들의 신조와 교리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다만 조금 덜… 그녀만큼 강하지는 않지만, 그들 역시 권력을 가졌습니다. 짐승은 ‘권력’을 뜻합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가톨릭이 가장 큰 권력을 가졌습니다. 그다음은 감리교, 그다음은 장로교, 루터교, 침례교, 그런 식으로 내려갑니다. 그것들은 작은 조직 권력들이었습니다. “우리 교회! 우리 교회! 우리 교회! 우리 교회!” 하지만 참된 신자는 그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나의 그리스도! 나의 그리스도! 나의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차이가 그것입니다. 어떻게 압니까? 성령께서 표적들과 이적들로 증언하십니다.
여기 짤막한 것이 있는데, 제게 되돌려 주는 답변 같은 것입니다. 읽고 싶지는 않지만 누군가 여기 올려놓았습니다. 질문: “형제님은 왜 이 태버내클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지 물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몇몇 집사들이 방언의 은사와 치유를 부인하기 때문입니다. 저희 모두 그것이 사실임을 압니다.” 제가 이번 대전도 집회에 있는 동안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려 주십시오. 그러면 그 문제를 신속히 제거하겠습니다.
질문: “그리스도인은 세족을 행해야 하는지,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 대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야 하는지 설명해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좋습니다. 같은 것을 묻는 질문이 여기 세 개쯤 있었습니다. 세족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자, 여러분의 생각이 달라도 괜찮습니다. 잠깐 몇 구절만 읽겠습니다. 함께 읽고 싶으시면 요한복음 13장을 펴십시오. 잠깐만요. 여기서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하신 말씀을 들으십시오. 그런 다음 신약의 다른 곳으로 가서 그것이 계속 행해졌음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2절부터 시작합니다. 이제 저녁 식사가 끝날 무렵에 마귀가…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속에 그분을 배반하여 넘기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넘겨주신 것과… 자기가 하나님으로부터 왔다가 하나님께로 갈 것을 아시고. (그분은 영에서 나오셔서 육신으로 들어오셨다가 다시 영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아시겠죠.) 저녁 식사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몸에 두르시며 그 뒤에 대야에 물을 부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몸에 두른 수건으로 닦기 시작하시니라. 그때에 그분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다가가시니 베드로가 그분께 말하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기시나이까?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 베드로가 그분께 이르되, 절대로 주께서 내 발을 씻기지 못하시리이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씻겨 주지 아니하면 나와 함께할 몫이 네게 없느니라. (아, 상상이 되십니까! 좋습니다.) 시몬이… 그분께 이르되… 내 발뿐만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옵소서.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이미 씻긴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너희는 모든 곳이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이는 그분께서 자기를 배반하여 넘길 자가 누구인지 아셨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그분께서 이르시기를, 너희가 다 깨끗하지는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이렇게 그분께서 그들의 발을 씻겨 주시고 옷을 입으신 뒤에 다시 자리를 잡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너희가 나를 선생과 주라 부르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니라. 그런즉 너희 주와 선생인 내가 너희 발을 씻겨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겨 주어야만 하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행하게 하려고 내가 너희에게 본보기를 주었느니라. … 너희가 이것들을 알고 그것들을 행하면 행복하니라.
디모데후서에서 바울은 교회에 편지하면서 “성도들의 발을 씻긴 적이 없는 과부는 교회에 받아들이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경 시대 내내 세족이 행해졌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제가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고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면, 죽을 때까지 그것을 행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맡기신 명령입니다.
자, 다음은 따끔한 질문입니다. 질문: “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대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야 합니까?”
두세 개가 있는데, 바로 여기 하나 있습니다. 질문: “빌 형제님, 어젯밤 말씀하신 거짓 침례는 무엇입니까? 물침례입니까, 성령침례입니까? 물침례라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라고 하셨는데, 왜 마태복음 28장 19절에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라고 합니까? 설명해 주십시오.” 이런 것은 좀 따끔합니다. 여기 어딘가에도 같은 질문이 또 있었는데, 아, 세 군데쯤 있군요. 찾아보겠습니다. 봅시다. 몇 분만 더 참아 주시겠습니까? 좋습니다. 이제 시작해서 이 질문들에 답하겠습니다. 빨리 훑어볼 수 있겠지요. 나머지는 내일, 달리 시간이 없으면 일요학교 때라도, 아니면 어느 때라도 다룰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분들이 이것을 묻는 것은 아마 내일 침례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느 방식으로 침례를 받든 제게는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성경에 있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어젯밤 우리는 가톨릭교회가 조직될 때 거짓 성만찬을 내놓았음을 보았습니다. 거룩한 성체성사, 곧 성만찬을 받으면 성령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성령이 아닙니다. 얇은 빵입니다. 개신교회는 악수하고 명부에 이름을 올리는 것을 성령을 받는 것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참으로 받는 길은 성령침례였습니다.
또 가톨릭교회는 교리문답을 내놓았습니다. 루터에게도 있었고, 감리교회에도 있고, 성공회에도 있으며, 다른 많은 교회에도 있습니다. 교리문답입니다. 가톨릭교회의 많은 전통이 여전히 개신교회에 붙어 있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그것이 개신교회를 가톨릭과 똑같은 모습으로 만듭니다. 그러나 성경의 모든 페이지를 통틀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받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초기 가톨릭교회 이전에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받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누군가 그 안에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을 사용하여 침례받은 사람 하나를 찾아 제게 알려 주고 보여 줄 수 있다면, 제발 보여 주십시오. 저는 이십여 년 동안 그것을 보고 또 보고 또 보고 또 보고 또 보았습니다. 그것은 오류입니다. 가톨릭의 신조이지 성경의 명령이 아닙니다.
이제 왜 그런지 알아보겠습니다. 사랑하는 형제님의 질문으로 가겠습니다. 요한복음… 아니, 마태복음 28장 19절입니다. 자, 돌아가 봅시다. 함께 읽을 수 있도록 여러분도 성경을 펴십시오. 여기서 그것을 말합니다. 성경에서 한 곳… 예수님께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모든 말을 확증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저는 성경에서 “가룟 유다가 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었다.”는 곳을 보여 드릴 수 있습니다. 또 “가서 너도 그와 같이 하라.”는 곳도 보여 드릴 수 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지금 하늘에 있는 사람의 아들”, 곧 자기 자신이 “다시 올 때에”라고 하신 곳도 보여 드릴 수 있습니다. 그분은 바로 여기 땅에 서 계셨습니다. “지금 하늘에 있는 사람의 아들”이라고 하시면서 바로 여기 땅에 서 계셨습니다. 하나님을 알아야 그분의 말씀을 압니다. 여러분은… “서로 모순됩니다. 혼란스럽습니다.”라고 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하나님께서 학자들 같은 사람들에게 숨기려고 그렇게 기록하셨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제단에서 겸손해지면 하나님께서 계시해 주실 것입니다.
자, 여기 마태복음 28장 19절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이런 호칭들이 언급되는 유일한 곳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가르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침례를 주며. 그런데 여러분이 침례받는 방식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아들의 이름으로, 성령의 이름으로”입니다. 그것은 성경에 있지도 않습니다. 여기에는 “모든 민족들을 가르치고 그 이름으로 그들에게 침례를 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의 성경을 똑바로 보시고 ‘이름들로’라고 되어 있는지, ‘이름으로’라고 되어 있는지 보십시오. 자, 여러분은… 얼마 전 집회에서 한 사람이 “성경에는 모순이 있습니다. 설명해 주셨으면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라고 하셨는데, 왜 베드로는 사도행전 2장 38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었습니까? 이것이 모순이 아니라면, 저는 모순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바르게 찾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브래넘 형제님, 제가 이 방식으로 받든 저 방식으로 받든 차이가 있습니까?”라고 했습니다.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성경으로 입증해 드리겠습니다. 만일… 만일 모세가… 하나님께서 모세가 떨기나무로 다가올 때 “모세야, 신을 벗으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가 “주님, 저는 경건한 사람입니다. 신발은 벗기가 좀 어려우니 모자를 벗겠습니다.”라고 했다면 어떻겠습니까? 하나님은 ‘모자’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신’이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것이 진리입니다. 자, 만일…
여기, 이것은 열흘입니다. 이것은 승천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들려 올라가실 때, 제자들에게 온 세상에 가서 모든 민족들을 가르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열흘 뒤…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성령이 오실 때까지 다락방에서 기다렸습니다. 그 뒤 전하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구원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너희가 각각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그다음 고넬료의 집에 가서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또 다른 곳에 가서 이미 침례를 받은 사람들을 만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다시 침례를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마리아로 내려가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침례를 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호칭들을 사람에게 선포하며 침례를 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결코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그렇다면 모순이 있군요.”라고 합니다. 아닙니다. 지금 성령께 여쭈어 보십시오. 어떻게 계시해 주시는지 보십시오. 마음을 여십시오. 편견을 품지 마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수 없습니다. 하지만 편견을 품지 않는다면 이렇게 말하십시오. “브래넘 형제님, 저는 참으로 진리를 찾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서 이렇게 하라.”고 하셨는데, 그들이 가서 다른 것을 했다면,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그것을 축복하셨다면, 성경 전체에 걸쳐 그렇게 하셨다면 말입니다. 그들이 예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을 했습니까? 그랬다면 불순종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불순종을 결코 인정하시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실 분이라면 하와를 인정하시고 처음부터 모든 일을 끝내셨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면 반드시 지키셔야 합니다. 그분은 주권자이십니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잘못했든지… “아, 그것은 사도들이 한 말입니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것은 사도들이 한 말이지요. 저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대로 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도들이 예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신 일을 했다면 어떻게 됩니까? 그리고 이 성경을 기록한 사도들이… 바울은 이 모든 것을 기록했고, 사람들에게 다시 침례받게 한 사람도 바울이었습니다. 바울이 이것을, 이 신약의 대부분을 기록했다면, 여러분이 읽으려는 성경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 쓴 성경입니까?
그저 이렇게 합시다… 아주 상식적으로 물어보고 말씀이 무엇이라고 하는지 봅시다. 이것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알도록 가르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라고 하신 뒤에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었다면, 그는 예수님의 말씀과 반대로 한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니 거기에는 무언가가 있어야 합니다. 이제 알아보고 성령께 보여 달라고 합시다. 먼저… 첫 성경 구절인 마태복음 28장 19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가르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침례를 주며.
여러분의 성경을 내려다보십시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들로’라고 되어 있습니까?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아들의 이름으로, 성령의 이름으로’라고 했습니까? ‘그 이름으로’라고 했습니다. 그렇지요? ‘이름’은 단수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면 어느 이름으로 침례를 주기 원하셨습니까? 아버지의 이름입니까, 아들의 이름입니까, 성령의 이름입니까? 그분은 ‘그 이름으로’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그 가운데 어느 것도 이름이 아닙니다. 여기 아버지가 몇 분이나 계십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좋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이름이 ‘아버지’인 분은 누구입니까? 아버지는 이름이 아닙니다. 호칭입니다. 여기 아들은 몇 분이나 있습니까? 물론 모든 남자는 다 아들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중 이름이 ‘아들’인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것은 이름이 아니라 호칭입니다. 그렇지요? 이름이 아니라 호칭입니다. 그러면 이름이 ‘인간’인 분은 누구입니까? 여기 인간이 몇 분이나 있습니까? 여러분 모두입니다. 그런데 누구의 이름이 ‘인간’입니까?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무엇인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이름이 아닙니다. 그분이 무엇이신지를 말합니다. 저는 인간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나 아들이나 성령은 이름이 아닙니다. 하나의 이름에 속하는 세 호칭일 뿐입니다.
이제 잘 들으십시오. 보십시오. 어린아이도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겠습니다. 가령 이야기책을 읽는데 “존과 메리는 그 뒤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고 되어 있다고 합시다. 그러면 “존과 메리가 누구지?” 하고 궁금할 것입니다. 존과 메리가 누구인지 알려면, 이야기의 처음으로 돌아가 쭉 읽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렇지요?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여기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라.”고 하셨는데, 아버지도 이름이 아니고 아들도 이름이 아니고 성령도 이름이 아니라면, 무엇… 이분은 누구십니까? 우리는 그분이 누구신지 알고 싶습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이것은 마태복음 마지막 장의 마지막 절입니다. 마태복음 첫 장, 첫 절들로 돌아가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누구신지 알아봅시다. 저는 저기 있는 아이들도 이해하도록 이렇게 하려는 것입니다.
먼저 여러분의 삼위일체, 곧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에 관한 생각부터 바로잡겠습니다. 첫째, 성경에는 삼위일체가 단 한 곳도 언급되지 않습니다. 찾아서 보여 주십시오. 그런 것은 없습니다. 그것은 가톨릭의 오류이며 개신교인 여러분이 거기에 머리를 숙이고 있습니다. 보십시오. 이것은 무엇입니까? 제가 이분은 누구라고 했습니까? 아버지입니다. 이분은 누구십니까? 아들입니다. 이분은 누구십니까? [회중이 “성령!”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아버지는 누구의 아버지입니까? 아들의 아버지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므로 이분은 예수님의 아버지입니다. 이제 혼동하지 마십시오. 이쪽은 아버지, 이쪽은 아들, 이쪽은 성령입니다. 그렇지요? 사람들은 이것을 ‘서로 다른 세 분, 서로 다른 세 하나님, 서로 다른 세 인격’이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좋습니다.
마태복음 1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로 시작합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하며 계속 내려가 18절에 이릅니다. 한편 예수 그리스도의 태어나심은… 여기 18절입니다. 한편 예수 그리스도의 태어나심은. (여러분의 성경으로 따라오십시오.) … 이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태어나심은 이러하니라.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였을 때… 그녀가 아버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아이를 밴 것이 드러나매. 제가 바르게 읽었습니까? 무엇이라고 되어 있습니까? [회중이 “성령님.”이라고 말한다.] 누구로 말미암아 아이를 배었습니까? 누군가는 이분이 그분의 아버지라고 했던 것 같은데요? 성경은 이분이 그분의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 그녀가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아이를 밴 것이 드러나매. 그렇다면 어떤 아이가 되는 것입니까?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하나님이 자기 아버지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지요? 하나님이 그분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면 성령은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성경은 성령이 그분의 아버지라고 했고, 예수님은 하나님이 자기 아버지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이 그분의 아버지라고 했는데, 성경은 여기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서로 다른 두 분이라면 하나님은 아무 관계가 없고, 성령이 그분의 아버지이십니다.
조금 더 읽어 봅시다. 그녀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므로 그녀를 공개적인 본보기로 삼으려 하지 아니하여 은밀히 그녀를 버리려고 마음먹었으나. 그러나, 보라, 그가 이 일들을 생각할 때에… 주의 천사가 꿈에 그에게 나타나 이르되, 너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그녀 안에 수태된 그것은 성령님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아버지 하나님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입니다.) 여러분의 삼신론적 생각이 어디로 가는지 아시겠습니까? 그렇게 하면 예수님이 사생아가 됩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오류입니다. 성경 근거가 없습니다. 그러니 아버지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이 같은 분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아니면 예수님께 서로 다른 두 아버지가 있게 됩니다. 그렇지요? 물론 그렇습니다. 성경은 “성령이 그분의 아버지”라고 했고, 또 “하나님이 그분의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누가 그분의 아버지입니까? 성령과 하나님은 동일한 영이십니다. 같은 분입니다. …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진 것은 선지자를 통해 주께서 말씀하신 것이 성취되게 하려 함이더라. 이르시되, … 처녀가 아이를 배어… 아이를 낳을 것이요, 그들이… (이분입니다.) … 그들이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들에서 구원할 것이기 때문이라.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진 것은… 성취되게 하려 함이더라. …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불리리니, 이것을 번역하면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라.
그러므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누구십니까? 베드로가 잘못했습니까? 그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했습니다. 그것은 세 호칭입니다. 저는 목회자이며 아버지이고, ‘목사’라고도 불립니다. 그것은 호칭입니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제 이름이 아닙니다. 제 이름은 윌리엄 브래넘입니다. 그분은 아버지셨고, 아들이셨고, 성령이셨습니다. 친구여, 여러분은 세 하나님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것은 잘못입니다. 오류입니다. 삼신론자들은 세 경륜을 혼동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불기둥 안에서 이스라엘 자손 위에 머무셨던 영이십니다. 그렇지요? 하나님께서 거기 계셨습니다. 그다음 하나님께서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습니다. 그렇지요? 자기 아들 안에서 말입니다. 이제 그분은 자신을 낮추어 내려오셔서 성령으로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오셨습니다.
하나님은 3피트짜리 자와 같습니다… 예, 3피트짜리 자 말입니다. 처음 12인치는 아버지 하나님이셨고, 그다음 12인치는 아들 하나님이셨습니다. 같은 하나님입니다. 세 번째 12인치는 성령 하나님이셨습니다. 같은 하나님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십니다.”라고 합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조금 있으면 세상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나를 보리라. 내가…”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인칭대명사입니다. “내가 세상 끝까지 너희와 함께, 너희 안에 있으리라.” 그렇다면 성령은 어디 계십니까? “내가 너희를 위로 없이 버려두지 아니할 것이며, 다시 와서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 경륜 가운데 계신 한 하나님이십니다. 아버지로서의 경륜, 아들로서의 경륜, 성령의 경륜, 모두 같은 하나님입니다. 그분께서 “가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침례를 주라.”고 하셨을 때, 그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침례를 줍니다. 보십시오. 여기 침례들을 살펴봅시다. 신약에서 침례가 처음 언급된 것은 침례자 요한 때였습니다. 그렇지요? 이것을 여기 위에 놓겠습니다. 침례를 바르게 이해하려면 먼저 신성을 바르게 이해해야 합니다. 침례자 요한, 첫 번째 침례입니다. 침례가 두 번째로 언급된 것은 사도행전 2장 38절입니다. 새 교회에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습니다. 두 번째 장소는 고넬료의 집… 아니, 실례합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도행전 7장 48절과 49절입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10장 49절은 고넬료의 집에서 그들에게 침례를 준 곳입니다. 그다음 침례를 언급하면서 어떤 이름이나 호칭을 부른 곳은 사도행전 19장 5절이었습니다.
자, 오순절 날 침례를 받았을 때, 그들은 사도행전 2장 38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렇지요? 적어 두고 찾아보십시오. 그다음 이틀 뒤 빌립이 내려가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에게 전하고 병자들을 치유하며 큰 집회를 열었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었습니다. 베드로가 내려가 안수하자 그들은 성령을 받았습니다. 며칠 뒤 베드로가 지붕에 올라갔을 때 배가 고팠고, 환상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고넬료의 집으로 보내셨습니다. 베드로가 아직 이 말들을 할 때에 성령이 그들 위에 내려오셨고, 그들은 처음에 있었던 것처럼 방언으로 말하며 행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베드로는 “이 사람들은 아직 침례도 받지 않았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 모두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라고 명령했습니다.
성경에 있는 모든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습니다. 바울… 아니,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지 않았습니다. 회개의 침례를 받았습니다. 고린도전서로 가 봅시다… 아니, 잠깐 사도행전 19장으로 가 봅시다. 잠시 이것을 읽어 보겠습니다. 친구 여러분, 이것은… 성경이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자, 여기를 보십시오.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는 동안 바울이… 위 지방들을 거쳐… 에베소에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믿은 이래로 성령님을 받은 적이 있느냐? … 그들이 이르되… 우리는 성령님이 계신지조차 알지 못하노라. … 그가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침례를 받았느냐? “아, 우리는 침례를 받았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어떻게 받았느냐?”라고 했습니다. … 그들이 이르되, 요한에게… … 그가 이르되, 요한은 다만 회개의 침례를 주며… 자기 뒤에 오실 분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고 말하였느니라.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다시 침례를 받으니라. …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님께서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그들이 타 언어들로 말하고 예언하였더라. 위대한 성 바울입니다…
들으십시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께 침례를 준 바로 그 사람, 침례자 요한에게 침례를 받았다면 어떻겠습니까? 거룩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여자에게서 태어난 자들 가운데 침례자 요한만큼 큰 사람은 없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는 모든 선지자 가운데 으뜸입니다. 예수님을 물로 모시고 들어가 바로 요르단강에서 침례를 주었습니다. 형제여, 제가 그에게 침례를 받았다면 아주 자랑스럽게 여겼을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런데 바울이 돌아서서 “이제는 그것으로 안 됩니다. 다시 침례를 받아야 합니다.”라고 합니다. “하지만 바울, 우리는 물에 잠겼습니다! 바로 요르단강에서 요한에게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는 “이제는 그것으로 안 됩니다. 다시 침례를 받아야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어떻게요?” 그는 “요한은 회개의 침례를 주었습니다. 이것은 죄들의 사면을 위한 것입니다. 하늘 아래 사람들 가운데 주어진 다른 이름은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다시 침례를 받아야 했습니다. 성경 어디에서도, 또 마지막 사도가 죽은 뒤 처음 육백 년 동안의 모든 역사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외에 다른 방식으로 침례를 준 적이 없습니다.
원하는 가톨릭 사제에게 가서 누가 그것을 바꾸었는지 물어보십시오. 무엇이라고 하는지 보십시오. 교리문답을 가져다 읽어 보십시오. “물론 개신교인들 가운데 일부도 구원받을 것입니다. 우리의 침례에 복종하기 때문입니다.”라고 합니다. 그들이 바꾸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할 권력과 권위가 있다고 말하며, 여러분은 그것을 믿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말하고 주장하며, 개신교회는 거기에 머리를 숙입니다. 하지만 성경적으로는 그것에 관한 근거가 조금도 없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다시 침례를 받아야 했습니다.
자, 서둘러 들으십시오. 바로… 이런 질문들로 여러분을 너무 오래 붙들고 싶지 않습니다.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변화산에서 내려오셨던 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무엇이라고 하느냐?” “어떤 이들은 침례자 요한이라 하고,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며, 어떤 이들은 선지자라고 합니다.” 그분은 “하지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주께서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살과 피가 이것을 네게 계시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이것을 어떤 교회에서 배운 것이 아니니라. 어떤 신학교에서 배운 것도 아니니라. 내 아버지께서 이것을 네게 계시하셨느니라. 이 반석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가톨릭교회는 “그것은 베드로였습니다. 거기 바위가 있었고, 지금도 바티칸 시국 아래에 있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일은 예루살렘… 아니, 팔레스타인에서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것이 그 반석이었다고 말합니다. 개신교회는 “교회가 세워진 반석은 베드로였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그 교회는 며칠 뒤에 타락한 셈입니다.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신성한 계시 위에 세워졌습니다. “베드로야, 살과 피가 이것을 네게 계시하지 아니하였고,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계시하셨느니라. 이 반석 위에”, 곧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영적 계시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결코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 그래서 제가 말하는 것입니다. 루터교든 감리교든, 어떤 교회든, 오순절교든 무엇이든 전혀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영감의 권능 안에서 전진할 때, 교회는 계속, 계속, 계속, 계속 나아갈 것입니다. 어떤 교단도 막을 수 없고, 세상의 어떤 것도 막을 수 없습니다. “이 반석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 영적으로 계시된 진리입니다!
자, 보십시오. 그다음에 그분은 “너는 시몬이라. 내가 네게…”라고 하십니다. 그에게 영적으로 계시된 진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사이의 차이를 알았습니다. 그에게 영적 계시가 있었습니다. 오늘 밤 여러분이 이해하고 있는 것도 그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그것을 열어 주고 계십니다. 그분은 “너는 시몬이라. 내가 하늘의 왕국의 열쇠들을 네게 주리라. 무엇이든지 네가 이 땅에서 묶으면 나도 하늘에서 묶으리라. 무엇이든지 네가 이 땅에서 풀면 나도 하늘에서 풀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마태복음 16장입니다. “무엇이든지 네가 땅에서 묶으면 나도 하늘에서 묶으리라. 무엇이든지 네가 땅에서 풀면 나도 하늘에서 풀리라. 내가 네게… 열쇠들을 주리라.” 무엇의 열쇠입니까? “하늘의 왕국”입니다. 하늘의 왕국은 무엇입니까? 성령입니다. 성경은 “하늘의 왕국은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아니, ‘하나님의 왕국’입니다. 실례합니다. “왕국은 너희 안에 있느니라.”
또 그분은 “여기 서 있는 자들 가운데 몇 사람은 하나님의 왕국이 권능 있게 오는 것을 볼 때까지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불과 며칠 뒤에 오순절이 왔습니다. “여기 서 있는 몇 사람”, 그분이 하시던 바로 그 말씀에서 “여기 서 있는 너희 중 몇 사람은… 너희는 변모하였느니라. 너희는 하나님의 왕국이 권능 있게 오는 것을 볼 때까지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은 “왕국은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을 때, 기억하십시오. 그분의 옆에는 사망과 지옥의 열쇠들이 있었습니다. 왕국의 열쇠들이 아닙니다. 그것은 교회에 주어졌습니다. 베드로에게 그 열쇠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지키신다고 믿습니까? 지키시지 않는다면, 형제여, 그분은 하나님이 아니셨습니다. 그뿐입니다. 그분은 “베드로야, 내가 왕국의 열쇠들을 네게 주리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성령의 열쇠들’입니다. “무엇이든지 네가 땅에서 묶으면 나도 하늘에서 묶으리라.”
그들이 얼마나 잘못했는지 보십시오. 나가서 죄를 용서해 주는 등의 일을 합니다. 얼마나 큰 오류입니까! 봅시다. 그 열쇠들이 그에게 주어졌습니다. 이제 그분은 얼굴을 곧바로 오순… 아니, 예루살렘으로 향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셋째 날에 일어나시고, 사십 일 동안 이 땅에서 사람들 가운데 계신 뒤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하나님의 왕국이 자기들에게 임하는 것을 볼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때에 아버지께서 영적인 형태로 그들에게 왕국을 회복하실 것입니다. 그들은 예루살렘 성으로 올라가 열흘 밤낮을 기다렸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성령침례, 곧 하나님의 왕국이 권능으로 그들에게 임했습니다. 그렇지요?
자, 보십시오! 교육을 받지 못해 자기 이름조차 쓰지 못하던 베드로가, 교황 말입니까? 예, 교황입니다! 그가 작은 비누 상자인가 무엇인가 위에 올라서서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유대 사람들과 예루살렘에 거하는 너희에게 이것을 알려 주리니 내 말들에 귀를 기울이라. 지금은 낮 세 시이므로 너희가 짐작하는 것처럼 이들은 술 취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오히려 이것은 선지자 요엘을 통해 말씀하신 것이니라. ‘하나님이 말하노라. 마지막 날들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아들딸들은 예언할 것이요, 내 여종들과 하녀들에게 내 영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하리라. 내가 위로 하늘과 아래로 땅에서 이적들을 보이리니, 불과 불기둥과 연기니라.’” 그는 계속 다윗 등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때 비판하던 사람들이 거기 서서 “형제들이여, 우리가 구원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했습니다. “아, 베드로, 조심하십시오. 지금 열쇠들을 차고 있습니다.” 그렇지요? 최초의 복음 메시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며칠 전,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베드로야, 내가 네게 열쇠들을 주노라. 네가 무엇을 묶든지 나도 묶고, 무엇을 풀든지 나도 풀리라. 이제 네가 무엇을 하든지 내가 하늘에서 인정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이 말씀을 지키는 분이라면 그 말씀을 지키실 것입니다. 여기 그가 있습니다. 성령이 처음으로 임하셨고, 사람들은 베드로에게 “구원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조심하십시오. 처음으로 왕국에 열쇠를 꽂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며칠 전에, 열흘 전에 ‘가서 사람들에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라.’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지만 당신에게 영적 계시가 있었기에 열쇠를 주셨습니다. ‘내 교회가 세워질 것이며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
여러분의 신조와 교리,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가지고 오십시오. 하지만 그것들은 비참하게 무너질 것입니다. 이미 그렇게 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살아 계신 하나님의 권능은 영원토록 계속 나아갈 것입니다. 라듐에서 뻗어 나오는 한 줄기 광선처럼, 보십시오, 끝없이 나아갑니다. “베드로, 당신에게 열쇠들이 있습니다. 당신이 여기서 무엇을 하든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인정하셔야 합니다.” 그렇지요? “무엇이라고 하겠습니까, 베드로? 우리가 구원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가서 ‘성모 마리아여’라고 기도하거나 구일기도를 드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은 없습니다. 와서 악수하고 교회 명부에 이름을 올리고 물을 조금 뿌리게 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 것은 없습니다. 그것은 개신교회가 머리를 숙이고 따르는 가톨릭 교리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모두 가십시오… 예수님께서 며칠 전에 제게 여러분 모두 가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영적 계시를 가진 사람이라면 그렇게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회개하고 너희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 죄들의 사면을 얻으라. 그러면 너희가 성령님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손들과 멀리 떨어져 있는 자들 곧 주 우리 하나님께서 부르실 모든 사람들을 향한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때 열쇠가 들어가 잠겼습니다. 하늘에서 잠긴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요한의 제자들에게 “성령침례를 받으려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다시 침례를 받아야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전에는 몰랐어도 이제는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지요! 좋습니다. 여러분에게 달렸습니다. 사실입니다. 그러나 삼신론적, 삼위의 침례는 신약 교회에서 인정된 적이 없습니다. 오직 가톨릭교회에서만 그랬습니다. 개신교회는 거기에 머리를 숙이고 있습니다. 보십시오! 많은 사람이 이 일로 여러분과 사이가 틀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형제여, 여러분은 선택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저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고 성령침례도 받았습니다.”라고 합니다. 저는 여러분의 말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의심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저는 믿습니다. 그곳 사람들이 침례를 받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성령을 주셨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베드로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해 주었을 때, 그들은 가서 그대로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여러분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압니다. 그렇습니다. 빛이 나타났을 때 그 빛 가운데 걷기를 거부하면 어둠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아멘. 좋습니다. 실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그대로 이루어지이다.”라고 외친 것을 용서해 달라는 것은 아닙니다. 아닙니다. 다시 “아멘”을 외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렇고말고요. 질문: “브래넘 형제님, 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줍니까? 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대신 그렇게 합니까?” 성경이 그렇게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분명합니까? 질문: “브래넘 형제님, 왜 발을 씻깁니까?” 성경이 그렇게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저는 온전한 복음을 믿습니다. 자, 이제 “말씀하신 거짓 침례란 무엇입니까?” 바로 그것입니다. 정확히 그것입니다. 어디에도… 신약을 다시 읽어 보시고 단 한 사람이라도 어디서…
사랑하는 여러분, 감정을 상하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겸손히 이것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어떤 모습인지 보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여러분의 교회나 누가 머릿속에서 우쭐해져 만들어 낸 어리석고 바보 같은 생각으로 보지 말고, 성경에 비추어 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보십시오. 그렇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신약 이래로 보지 못한 초자연적인 표적과 일들이 따르는 이런 사역을 제게 주시고, 제가 그런 오류 가운데 걷도록 두시겠습니까? 결코 아닙니다. 형제여, 해외에서 돌아오면 저는 대부분의 시간을 신유와 기적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데 쓸 것입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정말입니다.
질문: 자, 봅시다. “이 교회는 성령을 받으려면 방언을 해야 한다고 가르칩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그렇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방언은 성령의 은사이지 성령 자체가 아닙니다. 은사입니다. 이 나무는 아홉 가지 열매를 맺습니다. 그렇지요? 나무를 보니 사과가 달려 있으면 사과나무라고 합니다. 나무에 배가 달려 있으면 배나무라고 합니다. 나무껍질이 플라타너스 껍질이라도 배가 달려 있다면, 그 나무의 생명은 무엇입니까? 배나무의 생명입니다. 그렇지요?
이 하나님의 나무는 아홉 가지 영적 열매를 맺습니다. 그렇지요? 좋습니다.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가르침, 지식, 지혜, 깨달음, 또 방언과 방언 통역이 주어졌느니라.”고 했습니다. 아홉 가지 서로 다른 영적 은사가 이 하나님의 나무에서 자랍니다. 그렇지요? 그러니 방언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것들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방언을 하고도 성령을 받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이것을 기억하십시오. 저는 바로… 마녀와 마법사들이 와서 방언을 하는 것을 보았지만, 그들에게는 성령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와서 소리를 지르고 뛰는 것도 보았지만, 성령이 없었습니다. 얼마 전에 애리조나주 더글러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옥수수 춤을 추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들이 거기서 하는 옥수수 춤을 보았습니다. 그 마법사가 나와서 요란하게 온갖 행동을 하며 자기 몸에 흙을 끼얹었습니다. 그렇다고 구원받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 사람은 주술사였습니다.
저는 인도에서… 아프리카에서 주술사들이 와서 주문을 외우며 그렇게 제게 도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심지어 사람의 두개골에 담긴 피를 마시기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런 것과 맞설 때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권능이 그 사람을 묶어 움직일 수 없게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면 그는 그렇게 여러분을 쏘아보고, 사람들이 그를 들고 나갑니다. 그렇습니다. 형제여, 하나님은 실제로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영이시며, 방언이나 이것저것 하나에만 제한되어 계시지 않습니다. 저는 어떤 사람이든… 바로 이것이 이 교회의 문제입니다. 오순절교는 그 한 가지에 치우쳐 지나쳤습니다. 사람들에게 안수하여 성령을 받게 하는 대신, 제단에 무릎 꿇게 하고 등을 두드리며 “말해요! 말해요! 말해요!” 하고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말을 되풀이하게 하다가 방언이 아니라 혼란을 얻게 했습니다.
참으로 성령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영에게서 태어났다면 경건한 삶을 살 것입니다. 그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끔찍한 삶을 살았고, 여러분도 그것을 압니다. 그들의 열매가 그들에게 성령이 없음을 입증했습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방언이 아닙니다. 그것은 성령의 은사입니다. 베드로는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라. 그러면 성령을 받으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이런 방언과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들었을 때, 그는 “성령의 은사를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받은 것은 성령의 은사들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아멘. 좋습니다. 서둘러야겠습니다.
질문: “제게 두 아들이 있는데 하나는 두 살, 하나는 다섯 살입니다. 둘 다 물을 뿌리는 세례를 받았습니다. 물에 잠기는 침례를 받아야 합니까?” 자매님이든 형제님이든, 그것은 여러분에게 달렸습니다. 제게는 어린 딸이 있습니다… 제 아들 빌리 폴은 열여섯 살 때 제가 바로 여기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었습니다. 제 딸은 여덟 살입니다. 아이가 와서 제 무릎에 올라앉더니 “아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싶어요. 침례를 받고 싶어요.”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여덟 살 된 그 아이에게 침례를 주었습니다. 어린아이들이 침례받기를 원하면 침례를 주십시오. 원하지 않으면, 그대로 두십시오. 여러분에게 달렸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하십시오.
질문: “교회의 휴거에는 성령침례를 받은 사람들만 참여합니까, 아니면 모든 신자가 포함됩니까?” 그것을 충분히 설명할 시간이 없습니다. 하지만 형제여, 오직 성령을 받은 신부만 휴거에 참여할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다른 사람들이 잃어버린 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보십시오! 누가 세상을 심판하겠습니까? 성도들입니다. 다니엘은 “그가 옛적부터 계신 분께 나아가는 것을 보았는데, 수만에 수만을 곱한 자기 성도들과 함께 왔더라.”고 했습니다. 그렇지요? 휴거로 교회는 이미 올라가 있었습니다. 그런 다음 그들이 내려오고 심판이 열렸습니다. 책들이 펼쳐졌습니다. 그렇지요? 또 다른 책, 곧 생명책이 펼쳐졌습니다. 성화되었지만 성령을 받지 못한 신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열 처녀가 신랑을 맞으러 나갔는데 그중 다섯은…이라고 가르치지 않으셨습니까? 그들은 모두 처녀였고 순결하고 거룩했습니다. 이쪽 사람들은 잠들어 성령을 받지 못했고, 저쪽 사람들은 성령을 받아 등잔에 기름이 있었습니다. 신랑이 왔을 때 외치는 소리가 나자, 그들은 “아, 우리도 갑시다. 기름을 좀 나눠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는 “파는 자들에게 가서 사라. 기도하여 받으라. 지금 받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받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가 있는 동안 처녀들은 혼인 만찬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바깥 어둠 속으로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갈았습니다. 어젯밤, 아니 그저께 밤에 요한계시록 12장에서, 붉은 용이 입에서 물을 내뿜어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들을 지키는 여자의 씨 가운데 남은 자들과 싸운다고 배우지 않았습니까?
여자분들은 옷본을 놓으시지요. 좋은 천 한 폭입니다. 모두 같은 천인데, 자르려는 모양대로 옷본을 이렇게 놓습니다. 그런 다음 자릅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선택입니다. 잘라 낸 천으로 옷을 만들고, 나머지 천도 쓰입니다. 다른 부분과 똑같이 좋은 천이지만, 여러분이 선택하여 그 부분을 고른 것입니다. 그렇지요? 나머지도 똑같이 거룩하고 좋으며 값도 같지만, 그것이 여러분의 선택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택하심을 받아 휴거에 들어간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성경은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천 년 동안 살지 못하였더라.”고 했습니다. 그렇지요? 그러므로 오직… 여러분이 잃어버린 자가 되지는 않겠지만, 성령으로 충만한 신부가 휴거에 들어갈 것입니다. 나머지는 심판을 통과할 것입니다. 신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질문: “예수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야 한다면, 왜 예수님은 마태복음 28장에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라.’고 하셨습니까?” 이것은 방금 설명을 마친 바로 그 질문입니다.
자, 피곤하십니까? 피곤하신 줄 압니다. 하지만… 질문: “하나님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침례를 인정하지 않으십니까? 이 이름으로, 이 이름들로 침례를 받고 성령을 받은 사람들도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러 오시지 않았습니까? 이런 침례도 인정되지 않겠습니까?” 예, 예수님은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러 오셨습니다. 보십시오. 요한복음 14장에서… 거의 다 되었습니다… 제게… 세 개 정도만 더 기다려 주시면 끝날 것 같습니다. 자, 내일 새로운 질문들을 또 받으면… 오늘 밤 것에 대해 질문이 정말 많이 돌아올 것 같기 때문입니다. 보십시오… 그래도 이것은 교회 안의 일입니다. 우리가 지금 다루는 것은 이것입니다.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를 나타내러 오셨습니다. 처음에 하나님은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그렇지요? 그러면 하나님은 무엇이십니까? 영이십니다. 요한복음 4장에서 예수님께서 우물가의 여자에게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은 영이시니 그분께 경배하는 자들이 반드시 영과 진리로 그분께 경배할지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지요? 하나님께서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셨다면 어떤 사람을 만드셨습니까? 영으로 된 사람입니다. 창세기 2장에는 땅을 갈 사람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자기 형상이 아니라 동물 생명의 형상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이 동물적인 사람 안에 사람의 영을 넣으시자 그는 살아 있는 혼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사람과 동물의 차이입니다. 동물은 자동차를 만들지 못하며, 자기 생활을 돕기 위해 그런 일들을 하지 못합니다. 동물, 말 못 하는 짐승입니다. 혼이 없습니다. 읽고 쓰지도, 말하고 이야기하지도 못합니다. 말 못 하는 짐승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짐승처럼 육신을 입고 있으면서도 그 안에 하나님의 혼이 있어서 불멸하게 됩니다. 또 발명할 수 있습니다. 그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십시오.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거의 하나님과 동등합니다. 타락한 상태에서도 놀랍습니다. 사람을 보십시오.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육신으로 타락했을 때… 하나님께서 자신 외에 다른 존재를 내려보내셨다면 불의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의롭게 그 일을 하실 유일한 길은 친히 사람의 자리를 대신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여기 이 여자를 위해 네빌 형제님을 죽게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제가 여러분을 다스릴 권한을 가지고, 여기 이 여자를 위해 저 여자를 죽게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렇게 하면서 의로울 수는 없습니다. 제가 사형을 선고했지만 여러분이 살기를 원한다면, 여러분을 의롭게 하기 위해 제가 여러분의 자리를 대신해야 합니다. 그래서 영의 형상으로 계셨던 하나님… 아니, 형상이 없으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 형태가 없다고 했습니다. 자, 그러므로 하나님은 형태를 취하셔야 했습니다. 처녀를 덮으시고 그 안에 혈구 하나를 창조하셨습니다. 성적인 일은 아무 관계가 없었습니다. 혈구 하나를 창조하셨고, 그것이 자라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려오셔서 자기 아들 그리스도 예수 안에 거하셨고, 그분이 이 땅에 계신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요한복음에서… 도마가 “주여,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소서. 그러면 우리에게 족하겠나이다.”라고 했을 때, 그분은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있었는데도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어찌 네가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소서.’라고 하느냐?”라고 하셨습니다. “나를 보면 아버지를 보는 것이니라. 나와 내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내 아버지께서 내 안에 거하시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얼마 전 제가 이야기하고 있는데 한 여자가 벌떡 일어나 “아, 브래넘 형제님, 무슨 뜻인지 알아요. 두 분은 하나시지요. 물론 하나예요. 형제님과 부인도 하나잖아요. 그분들이 하나라는 것도 그런 뜻이에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실례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저를 보고 계십니까?”라고 했습니다. 그 여자는 “물론이지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제 아내가 보입니까?”라고 했습니다. 그 여자는 “아니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러면 그분들이 하나라는 것은 저와 아내가 하나라는 것과 다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지요. “그렇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보고 아버지를 보지 않을 수는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분명히 그렇습니다. 3피트짜리 자의 두 번째 부분이며, 같은 자입니다. 하나님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셨든지, 아니면 세상에서 가장 큰 사기꾼이셨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들으십시오. 얼마 전에 한 여자가 제게 “입증해 보이겠어요…”라고 했습니다. 크리스천 사이언스를 믿는 여자였습니다. 크리스천 사이언스 친구 여러분, 잠시 경건히 들어 주십시오. 그 여자는 “그분이 한낱 사람이었다는 것을 입증해 보이겠어요. 형제님은 예수님을 너무 치켜세우세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밤낮으로 그분을 높여도 그분께 마땅히 돌려드려야 할 것을 다 드릴 수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당연히…” 이사야가 그분의 이름을 붙이려다가 “놀라우신 분, 조언자, 평화의 통치자, 강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그 모두입니다. “알파와 오메가, 시작과 끝마침”, “다윗의 뿌리요 후손이요 빛나는 새벽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십니다. 성경은 “그분 안에는 하나님의 신격의 충만이 몸으로 거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충만이 그분 안에 있었습니다.
그 여자는 “말씀드리지요. 그분이 나사로를 일으키려고, 나사로를 위해 기도하러 내려가셨을 때를 보세요. 그분이 단지 사람이었다는 것을 입증해 보이겠어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어디 해 보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 여자는 “성경은 그분이 우셨다고 했어요. 울 수 있었다는 것이 사람이었다는 증거지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물론입니다. 울고 계셨던 것은 아들이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시며 사람이셨습니다. 그분은 저나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셋으로 이루어진 존재셨습니다. 우리는 혼과 몸과 영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신성 안에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그런 분이셨습니다. 신성 그 자체이셨습니다! 친자녀들이 자기 피를 요구하며 외치는데 어떻게 하실 수 있었겠습니까?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분의 친자녀들이 그분의 피를 요구하며 외쳤습니다. 그들을 위해 우신 것도 당연합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자식들이 자기 피를 요구하며 외치면 어떤 마음이겠습니까? 그들을 영원히 지옥에 정죄하든지, 아니면 자기 생명을 내주든지 해야 했습니다. 그분은 자기 자녀들을 위해 생명을 내어 주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신성이 그분 안에 거하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그런 분이셨습니다. 그 여자는 “보세요. 브래넘 목사님, 입증해 보이겠어요. 그분이 우셨다는 것은 사람이었다는 증거예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부인, 그분이 기도하실 때… 우실 때는 사람이셨습니다. 맞습니다. 우실 때는 사람이셨습니다. 하지만 작고 연약한 몸을 곧게 펴시고 죽은 지 나흘 된 사람에게 ‘나사로야, 나오라.’고 하셨을 때, 죽은 지 나흘 되어 썩고 벌레가 살갗을 기어 다니던 그 사람… 썩음이 자기 주인을 알아보고, 혼이 자기 창조주를 알아보았습니다. 죽은 지 나흘 된 사람이 자기 발로 일어서서 다시 살았습니다! 그것은 사람 이상이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날 밤 산에서 내려와 배가 고파 먹을 것을 찾으려고 나무를 살피실 때 그분은 사람이셨습니다. 무화과나무에서 먹을 것을 찾으실 때 사람이셨습니다. 그러나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토막을 가지고 오천 명을 먹이셨을 때, 그분은 사람 이상이셨습니다! 그 안에 계신 하나님이셨습니다! 익힌 물고기를 떼어 내어도 여전히 익힌 물고기가 나오고, 구운 빵을 떼어 내실 수 있는 유일한 창조주, 그분은 어떤 원자를 방출하신 것입니까? 할렐루야! 그분은 원자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사람 이상이셨습니다!
온종일 설교하고 병자들을 치유하신 뒤 그날 밤 배에 계셨을 때, 그분은 사람이셨습니다. 몹시 지치셨고, 바다의 만 마귀가 그분을 익사시키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그 조그만 배는 병마개처럼 이리저리 튀고, 거대한 파도는 사방에서 번쩍였습니다. 그분은 누워 계셨고, 너무 피곤하셔서 파도에도 깨지 않으셨습니다. 마귀들은 “잠든 틈에 잡자!” 하며 으르렁거렸습니다. 그분이 깨어나셨을 때는 사람이셨습니다. 너무나 지치셨습니다. 그러나 배의 가장자리에 발을 올려놓고 “잠잠히 있고 고요히 있으라!”고 하시자 바람과 파도가 순종했을 때, 그분은 사람 이상이셨습니다! 하늘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이셨습니다! 사도가 “이분이 어떤 분이시기에 바람과 파도까지 그분께 순종하는가?”라고 한 것도 당연합니다.
그분은 사람 이상이셨습니다. 하나님이셨습니다. 죄를 없애기 위한 희생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는 사람이셨습니다. 손에 못이 박힌 사람이셨습니다. 머리에 가시가 씌워진 사람이셨습니다. 조롱하는 군인들이 침을 뱉은 사람이셨습니다. 상하고 채찍에 맞고 상처를 입은 사람이셨습니다. 사람이셨습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외치셨을 때는 사람이셨습니다. 도와 달라고 부르짖는 사람이셨습니다. 그러나 부활절 아침 무덤에서 사망의 봉인이 깨어졌을 때는 사람 이상이셨습니다! 하나님이심을 입증하셨습니다! 살아서 나를 사랑하시고, 죽어서 나를 구원하셨네. 묻히셔서 내 죄를 멀리 가져가셨네. 일어나셔서 값없이 영원히 나를 의롭게 하셨네. 어느 날 다시 오시리, 아, 영광스러운 날이여! 아, 갈라지는 바위와 어두워지는 하늘 가운데 내 구주께서 머리를 숙이고 죽으셨네. 열리는 휘장이 길을 드러냈네. 천국의 기쁨과 끝없는 날로 가는 길을. 에디 프루잇이 이렇게 외친 것도 당연합니다. 모두 예수 이름의 권능을 찬양하라! 천사들아 엎드려라. 왕의 면류관을 가져와 그분께 씌우고 만유의 주로 모셔라.
그 위대하신 분이 주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은 육신에 가려진 여호와 하나님이셨습니다. 성경은 “너희가 말이나 행위로 무엇을 하든지 모든 것을 그분의 이름으로 하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하늘에 있는 온 가족의 이름이 ‘예수’이고, 땅에 있는 온 가족의 이름도 ‘예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그분의 이름으로 살고, 그분의 이름으로 가르치고, 그분의 이름으로 죽고, 그분의 이름으로 묻히고, 그분의 이름으로 침례받고, 그분의 이름으로 부활하고, 그분의 이름으로 천국에 갑시다. 그것이 그분의 이름이며, 그분의 신부는 ‘예수 부인’이라는 이름을 가집니다. 그분은 자기 이름을 위해 이방인들 중에서 한 백성을 취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일신교파 사람이 아닙니다. 아닙니다. 삼위일체를 믿는 여러분, 그런 생각은 버리십시오. 저는 일신교파 사람이 아닙니다. 아닙니다. 일신교파도 아니고 삼위일체파도 아닙니다. 저는 성경이 말하는 것을 믿습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아멘. 휴! 한 가지에 너무 오래 머무는군요. 무엇이었지요? 답변을 했습니까? 봅시다. 무슨 질문이었지요? 아, 맞습니다. 아버지께서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 계셨는가 하는 것이었지요. 그분은 사람이셨으며, 하나님이시자 사람이셨습니다.
질문: “오순절교회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지 않습니까?” 일부는 그렇습니다.
질문: “성령침례를 받지 않고 죽으면 잃어버린 자가 됩니까?” 아닙니다. 신자라면 부활 때, 둘째 부활에 나올 것입니다. 성령침례를 받았다면 첫째 부활에 참여할 것입니다. 지금은 거의 제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만족스럽지 않다면 제게 물어보십시오. 성경 구절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여기 두세 가지를 더 다루고 끝내려고 합니다.
질문: “빌 형제님, 성경에 도박에 관한 말씀이 있습니까?” 예, 말합니다. 하지만 지금 바로 구절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군인들이 그분의 옷을 놓고 도박을 했다는 것 같은 내용은 알지만, 지금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질문: “고린도전서 15장 29절을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네빌 형제님, 괜찮으시면 거기서 고린도전서 15장 29절을 찾아 주십시오. 다루겠습니다. 내일 그것을 다시 알려 드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VICARIUS FILII DEI’를 어떻게 쓰는지, 그 문자 같은 것 말입니다. 원하시면 알려 주십시오.
질문: “에스겔 38장과 39장의 예언은 휴거 전에 성취됩니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다음으로 기대하는 것은 교회의 휴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다음에 곡과 마곡이 내려오는 것은, 그 뒤에 들어오는 러시아 군대입니다… 보십시오! 보해넌 씨는 이곳 전력회사의 관리 책임자였는데, 아주 훌륭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어느 날 제게 “빌리, 요한계시록을 읽으려고 해 보았고, 우리 목사님께 설명도 부탁했네. 함께 살펴보다가 모두 뒤죽박죽이 되었지. 요한이 그날 밤 뭔가를 먹고 꿈을 꾼 모양이야.”라고 했습니다. 저는 “보해넌 씨, 그런 말씀을 하시면 안 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아무도 그것을 이해할 수 없잖아.”라고 했습니다. 저는 “육에 속한 사람은 이해할 수 없지만, 성령께서는 계시해 주실 수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빌리, 여길 보게. 신부가 시내산에 서 있었네. 그런데 여기서는 용이 입에서 물을 내뿜어 신부와 싸우고 있었어. 동시에 신부는 천국에 있었지. 어디 그것을 설명해 보게.”라고 했습니다.
저는 “보해넌 씨, 문제는 서로 다른 세 가지를 혼동하여 모두 신부라고 부르신다는 것뿐입니다. 어린양과 함께 시내산에 서 있던 십사만 사천 명을 신부라고 부르시지만, 그들은 신부가 아닙니다. 또 그들을… 용이 입에서 물을 내뿜어 싸운 여자의 씨 가운데 남은 자들도 신부라고 부르시지만, 그들은 신부가 아니라 남아 있던 자들이었습니다. 신부는 천국에 있었고, 십사만 사천 명은 저기에 있었으며,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은 여기서 핍박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라고 했습니다.
형제님, 찾으셨으면 지금 읽어 주십시오. [네빌 형제님이 고린도전서 15장 29절을 읽는다.] 그렇지 아니하여 만일 죽은 자들이 결코 일어나지 아니한다면 죽은 자들을 대체해서 침례를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그렇다면 그들이 무슨 이유로 죽은 자들을 대체해서 침례를 받느냐? 형제 여러분, 그것을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죽은 사람들을 위해 침례를 받는 사람들은 모르몬교인들입니다. 저는 그들의 성전에 여러 번 가 보았고, 그들은 아주 좋은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이 모르몬교인일 수도 있습니다. 감정을 상하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친구여, 아버지를 대신해서 침례받을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아버지 자신이 해야 했던 일입니다. 나무는 기울어진 쪽으로 쓰러집니다. 여기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을 두고 말했습니다. 죽은 자들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줍니까? 죽은 자들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제 말뜻을 아시겠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내일 우리가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가 됩니다. 죽은 자들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는 계속해서 죽은 자들의 부활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그분의 죽으심과 장사되심과 부활 안으로 침례를 받습니다. 그래서 죽은 자들 안으로 침례를 받는 것입니다.
좋습니다. 이제 이것 다음에는 하나 정도만 남은 것 같습니다. 질문: “빌 형제님, 성령침례를 어떻게 받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기도와 온전히 내어 드린 삶을 통해 받습니까, 아니면 치유를 받듯이 받아들이는 것입니까? 여기서 형제님이 저를 위해 기도해 주셨을 때, 치유를 위한 믿음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성령침례를 위해서도 기도하며 안수하십니까? 저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습니다. 최근에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다시 침례를 받아야 하는지 알려 주십시오.” 사랑하는 그리스도인 친구여, 제가 여러분에게 무엇을 하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을 제시할 뿐입니다. 지금 우리가 말하는 중에도 성령께서 임하실 수 있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이기에, 우리가 말하는 동안에도 임하실 수 있습니다. 말씀드리지만, 사람들이 올바르게 가르침을 받는다면… 여기 옛날부터 계신 분들께 한 가지 묻겠습니다. 태버내클에 오래 계신 분들은 제가 사람들에게 침례를 줄 때를 보십시오. 목회자 여러분도 이것을 본보기로 삼으십시오. 저는 그 사람들이 물에 들어가기 전에 삶을 깨끗하게 정리할 때까지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기 약속을 지키셔야 한다는 것을 믿게 했습니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자마자 성령은 바로 거기 계셔서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물에서 올라왔을 때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그저… 목자들이여, 양들을 가르치십시오. 여기 성경 안으로 이끄십시오. 어떤 교회의 낡은 교과서를 떠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이 성경으로 내려오십시오. 그러면 그런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예, 안수는 우리가 성령을 받을 수 있는 방법입니다. 기름부음 받은 사람이 안수함으로써 받을 수 있습니다.
질문: “빌 형제님, 설교자가 말씀을 전하는 동안 누군가 일어나 방언으로 메시지를 전하면 질서에 어긋납니까?”
이분은 질문이 세 가지인데, 다음 질문은 이렇습니다. 질문: “또한 제단 초청을 할 때 그렇게 하는 것도 질서에 어긋납니까?”
세 번째입니다. 질문: “또한 예배 중에 목회자가 거룩한 강단 뒤에 서 있을 때, 누군가 교회에서 일어나 그가 한 말이나 행동을 책망하는 것은 질서에 어긋납니까? 태버내클에서 이런 일들이 모두 여러 번 있었습니다.” 이제 이것을 빨리 다루겠습니다. 이것은 교회에 관한 일입니다. 이곳을 찾아오신 방문객 여러분, 이제 교회를 조금 꾸짖어야 하니 잠깐만 양해해 주십시오. 자녀 여러분, 들으십시오. 그런 은사들은 놀라운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저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그런 은사들을 알맞은 자리에서 사용하지 않으면 여러분에게 해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사역 현장에서 병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돈을 받는 훌륭한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것은 잘못입니다. 치유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병자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라면, 돈을 받지 않고도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만큼 점잖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형제여, 제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단 한 번도 사람들에게 돈을 받거나 그런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한 번의 헌금으로 들어온 문자 그대로 백오십만 달러도 거절했습니다. 여러분도 아십니다. 바로 여기 신문에 났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그런 일을 하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잃게 될 것입니다.
방언을 말하며 방언의 은사를 가진 여러분,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이 태버내클에 필요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여기 있기를 바랍니다. 다만 질서가 있어야 합니다. 설교자가 설교하는 동안에는 절대로 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하면 질서에 어긋납니다. 하면 안 됩니다. 성경이 “대언자들의 영은 대언자들에게 통제를 받나니”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설교하고 있을 때는 그에게 발언권이 있고, 회중이 그의 말을 듣고 있으며, 성령께서 그를 통해 말씀하려 하십니다. 그가 끝냈을 때가 메시지를 전할 때입니다. 그러니 질서를 벗어나지 마십시오. 그러면 전해지고 있는 메시지를 방해하고 성령을 슬프게 합니다.
얼마 전 워싱턴 어디에선가 집회를 했는데, 수천 명이 앉아 있었습니다. 참으로 성경을 잘 강해하는 제 집회 책임자가 거기 서서 신유에 관해 말하고 있었습니다. 기름부음 아래 성령께서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한 여자가 일어나 방언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분은 잠깐 기다렸다가 계속했습니다. 성령께서… 슬퍼하시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그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가 다시 말하기 시작했는데 그 여자가 또 일어났습니다. 그러자 그는 “자매님, 주님의 이름으로 앉으십시오. 질서에 어긋납니다.”라고 했습니다. 목사님들이 그 여자를 데려가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것은 이렇습니다. 그런 은사들이 세상에 있고, 지금 교회 안에 있습니다. 은사들이 교회 안에 있지만, 가엾은 어린 자녀들은 그 은사들을 받고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배우지 못했습니다. 잘못 다루면 유익보다 해를 더 많이 끼칩니다. 마치 어떤 사람이 나가서 병자를 위해 기도하여 치유되자 “이제 그 대가로 천 달러를 주셔야 합니다.”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유익보다 해를 더 많이 끼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일에 그런 수치를 가져오느니 차라리 그 병자가 그대로 죽는 편이 더 나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목사든 전도자든 누구든 설교하고 있을 때는 잠잠히 계십시오. 바울이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너희가 다 한 사람씩 말할 수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분명히 맞습니다. 또 “나는 너희가 다 방언으로 말하기를 원하노라. 그것은 좋은 일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방언의 은사가 없으면 방언을 말할 수 없습니다. 지금 이 교회에도 그런 은사가 많이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이쪽 감리교회에도 그런 은사가 많고, 저쪽 침례교회에도 많습니다. 그 은사가 역사할 수 있도록 말씀만 전해진다면 말입니다.
씨를 땅에 심어 놓고 가꾸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마른 흙 속에 놓여 썩고 아무 쓸모도 없을 것입니다. 이런 은사들은 줄곧 교회 안에 있었습니다. 다만 이제야 물이 내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오순절의 비가 내려 물을 주고 열매를 맺게 합니다. 그러니 알맞은 자리에서 사용하십시오. 자,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다음 질문은 그분이 물으신 이것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단 초청을 할 때는요? 아니요, 그때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고린도서를 펴서 읽어 보시고 잘 살펴보십시오. 여기 방언을 말하는 은사를 가진 분들이 계시면 주의해서 보십시오. 성경에서 그들이… 예배가 끝난 뒤 하나님의 축복이 회중 위에 내렸을 때, 그때 말하기 시작했고 하나님을 크게 높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것은 누군가에게 직접 주는 메시지였습니다. 그저… 이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단순히 육신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에게 어떤 일을 하라는 메시지이거나 교회를 세우는 내용일 것입니다. 교회를 영광스럽게 하는 것일 것입니다.
바로 이 점에서 오순절교인들은 자기 이름에 수치를 가져왔습니다. ‘오순절’이라는 이름만 꺼내도 사람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가 버립니다. 소란스러운 행동을 너무 많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들은 진심이었지만 가르침을 받지 못했습니다. 바울은 “내가 저기 오순절교회에 가면 질서를 세우리라.”고 했습니다. 질서가 있어야 하며, 모든 것을 성령께서 정하신 대로 질서 있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는 말했습니다. “너희가 들어와서 모두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는데, 배우지 못한 사람이 들어오면 ‘모두 미친 것 아닙니까?’ 하고 나가 버리지 않겠느냐?” 오순절교회가 꼭 그렇게 했습니다. 그는 “그런데 너희 중 한 사람이 예언하며 어떤 비밀을 드러낸다면, 너희 중 한 사람이 선지자라면”, 다시 말해서 “그러면 사람들이 엎드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십니다.’라고 하지 않겠느냐?”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제가 방언의 은사를 어떻게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려면 예언의 은사도, 그 다른 은사들도 부인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교회, 큰 교회들, 나사렛교회와 필그림 성결교회 등은 어떤 사람이 방언을 하면 마귀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성령을 모독하는 것이며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유대인들이 그렇게 했습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들을 조롱했고, 그 때문에 정죄받고 잃어버린 자가 되었습니다. 맞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대적하여 한 마디라도 말하면 이 세상에서나 오는 세상에서나 결코 용서받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조심하십시오. 이해하지 못하면 조용히 앉아 계십시오.
성령을 받고 직분에 부르심을 받은 여러분, 교사들… 상상해 보십시오. 제가 여기 서서 가르치려고 하는데, 옆에서 어떤 사람이 벌떡 일어나 동시에 가르치기 시작하고, 저기서는 또 다른 사람이 서서 기쁨의 노래를 부른다면 어떻겠습니까? 얼마나 혼란스럽겠습니까! 방언도 그와 같습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대로 질서 있게 하면 방언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저는 참을 수가 없습니다.”라고 합니다. 아닙니다. 참을 수 있습니다. 바울이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너희 중 방언을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통역자가 없으면 잠잠히 있으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말이 나오려고 해도 잠잠히 계십시오. 형제여, 그것은 은사입니다. 언젠가 하나님께서 여기서 부흥회를 열게 하셔서 이런 것들을 자세히 설명해 드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것이 은사이며, 그 은사는 언제나 역사하려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말입니다. 하지만 그 은사를 언제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알기 위해서는 여기 성령의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영광! 성경은 성령께서 오시면 교사가 필요 없다고 했습니다. 성령 자신이 교사이십니다.”라고 합니다. 아, 형제여! 어쩌면 그렇게 성경을 피상적으로 읽을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성령께서 왜 교회 안에 교사들을 세우셨겠습니까? “저는 누가 가르쳐 줄 필요가 없습니다. 성령께서 가르쳐 주십니다.”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교사를 통해서 가르쳐 주십니다. 그분은 교회 안에 교사들을 세우셨습니다. 그분은 “모두 교사이겠느냐, 모두 사도이겠느냐, 모두 병 고치는 은사들이겠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성령께서 이런 것들을 교회 안에 두셨습니다. 그분은 그 모든 것을 역사하게 하시고, 각각은 질서 있게 움직입니다.
그것은 제 발과 같습니다. 한 발은 “이쪽으로 가겠다.”고 하고, 다른 발은 “나는 이쪽 뒤로 가겠다.”고 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한 손은 “위로 가겠다.”고 하고, 다른 손은 이쪽으로 빙빙 돌아갑니다. 그러면 몸은 어떤 꼴이 되겠습니까? 하지만 여기 생각이 “발들아, 둘 다 앞으로 가라. 손들아, 함께 가라. 머리야, 똑바로 있어라. 팔들아, 너희도 그렇게 하라.”고 하면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며 걷습니다. 이제 그곳에 도착했는데, 아직 팔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발은 자기 일을 마쳤습니다. 목사가 설교를 마친 것입니다. 이제 “팔들아, 너희 일을 하라.”입니다. 제 말뜻을 아시겠습니까? 그런데 팔이 이렇게 뻗어 나가며 “아, 어디 있지? 어디 있지?” 하고 계속 찾는다면 어떻겠습니까? 아직 그곳에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팔아, 잠잠히 있어라. 조금 있으면 네가 쓰일 때가 올 것이다. 거기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라. 제 말뜻을 아시겠습니까? 그것이 은사입니다. 성령의 은사가 역사하는 것입니다.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여러분도 그렇습니까? 아멘. 들으십시오. 여러분에 관해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 인내심이 많으십니다. 열 시 이십 분입니다. 친구 여러분, 이제 이렇게 보십시오. 이것은 제가 아는 데까지 말씀드린 것입니다. 많은 질문을 서둘러 다루어야 했습니다. 동의하지 않더라도 저와 사이가 틀어지지 마십시오. 제 형제로 있어 주십시오. 저는 여러분을 사랑하고, 제 마음에 있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할 뿐입니다. 이것이 제가 믿는 것이고, 제가 설명하는 방식이며, 성경에서 가져와 전하는 방식입니다. 여러분이 “브래넘 형제님, 저는 그렇게 믿지 않습니다.”라고 해도 전혀 괜찮습니다. 서로를 다르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며, 그저 형제이자 친구로 계속 함께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저는 감리교회나 침례교회에 속해 있으면 어쨌든 구원받는다고 믿습니다.”라고 해도 좋습니다, 형제여. 전혀 괜찮습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에 저는 여전히 여러분을 ‘나의 형제’라고 부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똑같이 형제이자 친구로 지낼 것입니다. 다만 저는 여기 있는 이 며칠 동안 이 교회가 지키는 가르침을 교회에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 교회가 지키는 것입니다. 만일 여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받는 침례와 성령침례, 성령의 은사들이 나타나는 것을 믿지 않는 집사가 있다면, 바로 지금 제가 여기 서 있는 동안, 그 집사는 바로잡히기 전까지 이 교회에 있을 자격이 없습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교회 위원회에서 그 일을 처리해야 합니다. 분명합니다. 이 교회는 집사들이 다스리는 교회가 아닙니다. 오직 성경과 성령께서 다스리는 교회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것들이 이 교회의 가르침이라고 믿습니다.
우리에게는 교적이 전혀 없습니다. 여기 등록된 교인은 아무도 없지만, 오는 사람은 누구나 교인입니다. 우리는 모두 성령침례를 통해 한 몸의 지체들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그리스도인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성령을 받으시기를 간곡히 권합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은 뒤 이미 성령을 받으셨다면,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브래넘 형제님,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하십니까? 그 질문에는 답변을 드렸습니다. 저는 바울이 한 말대로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침례를 받아야 합니다. 자, 여기를 보십시오. 사도행전… 이것을 읽읍시다. 갈라디아서 1장 9절입니다. 적으시는 분은 적어 두십시오. 바울이 말했습니다… 이것을 말한 바로 그 사람이 이 가르침을 가르쳤습니다. 이제 믿으십니까? 그렇지요? 바울은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다시 침례를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 바울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라고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 8절입니다.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이것 외에 다른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면 그는 너희에게 저주를 받을지어다.” 대주교든 교황이든 목회자든 선지자든 목사든 하늘에서 온 천사든 누구든지, 그는 “이것 외에 다른 것을 가르치면 너희에게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지요? 그리고 다시 반복했습니다. “내가 말한 것같이 다시 말하노니, 이것 외에 다른 것을 가르치면 그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그렇지요? 그러니 주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말씀에서 읽어 드렸으니, 여러분이 결정하십시오.
이 좋은 옛 찬송을 사랑하는 분은 몇 분이나 계십니까? 내 믿음이 주를 바라봅니다. 갈보리의 어린양, 거룩하신 구주여. 이제 기도하는 내 말을 들으시고, 내 모든 죄책을 없애 주시며, 오늘부터 내가 온전히 주의 것이 되게 하소서! 이 교회에 계신 여러분께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죽어 가는 사람이 죽어 가는 사람들에게 설교하며, 이것이 제가 전하는 마지막 설교일 수도 있음을 알고 말씀드립니다. 저는 설교할 때마다 마지막 설교인 것처럼, 죽어 가는 사람이 죽어 가는 사람들에게 전하듯 하려고 합니다. 형제 여러분, 이 지역과 이 나라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웃 여러분께 묻습니다. 이 집회들을 마친 뒤 하나님과 더 가까이 동행해야겠다는 필요를 정말 느끼십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형제로서 말씀드리는데, 여러분이 하나님과 더 가까이 동행하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심판 날에, 제가 설교했던 이 밤들이 큰 녹음테이프처럼 재생되고 제 목소리가 나올 때, 저는 거기 서서 설명해야 할 것입니다. 그날 제 말이 저를 축복하든지 정죄하든지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지난 이십여 년 동안 제가 해 온 말입니다. 스무 살쯤 된 어린 청년 때부터 복음을 전했고, 지금은 마흔다섯 살입니다. 저는 조금도 바꾸지 않았습니다. 성경이 그대로 있는 한 바꿀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주교들이든 누구든 이것을 철저히 들이대 보았지만, 아직 말씀에 근거하여 반박할 수 있는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자, 저는… 며칠 전 이 사제가 “브래넘 목사님, 우리는 성경을 기준으로 삼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교회가 기준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과는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성경에 근거하려 한다면 그것은 다릅니다.
저는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여기 계신 가톨릭 친구 한 분 한 분, 개신교 친구 한 분 한 분, 또 심지어… 그들도 더는… 만일 누가… 저는 여러분 모두를 사랑합니다. 그 말이 참인지 아닌지는 하나님께서 아십니다. 기도 줄에서 보십시오. 눈먼 사람이나 다리 저는 사람에게 ‘가톨릭’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바로 여기 강단… 바로 여기에 앉아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톨릭 신자인데 암이 온몸을 먹어 들어가 죽어 가던 분입니다. 제 집에 왔을 때 성령께서 그에게 임하셔서 그 암을 치유하셨습니다. 그분은 그가 가톨릭 신자인지 아닌지 말씀하시지 않았고, 저도 그에게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곳에 와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분이 바로 거기 앉아 있습니다. 루이빌에서 사업하는 분입니다. 그분은 여러분이 가톨릭 신자인지 아닌지 묻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님을 갈망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이기 때문이라.” 그렇지요? 아멘. 주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이 좋은 옛 찬송, 「우리를 하나로 묶는 복된 인연」을 아시는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여기 마흔 살이 넘은 분들은 저와 함께 손을 들고 “사십 년 전부터 그 옛 찬송, 「우리를 하나로 묶는 복된 인연」을 기억합니다.”라고 해 보십시오. 복되도다, 우리를 하나로 묶는 인연,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우리 마음을 맺어 주네. 뜻을 같이하는 마음들의 교제는 하늘의 교제와도 같도다. 이런 옛 찬송들을 좋아하지 않습니까? 들으십시오.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있는 온갖 소란스러운 것들 대신 이런 옛 찬송들이 더 많다면 교회가 더 좋아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성령께서 쓰게 하신 이런 좋은 옛 찬송들, 그 옛 노래들을 좋아합니다.
켄터키 산골에 있는 집 뒤에 앉곤 하던 한 흑인 노인이 기억납니다. 피곤해지면 낡은 통나무에 앉아 손으로 그것을 두드리곤 했습니다. 지금도 또렷이 기억납니다… 머리 가장자리에 흰 머리카락이 조금 둘러 있었습니다. 그분은 이 옛 찬송을 부르곤 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는 노래입니다. 내가 일어나 예수께 가리니, 그분이 두 팔로 나를 안아 주시리. 사랑하는 내 구주의 품에는 아, 만 가지 아름다움이 있네. 가락이 그리 많지는 않았습니다. 이 옛 노래를 들어 보신 분은 몇 분이나 계십니까? 아, 좋습니다. 들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