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저녁 이곳에 와서 이렇게 따뜻한 환영을 받으니 기쁩니다. 모두 안으로 들어오고 싶어 하시는군요.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그동안 모든 집회가 치유 집회였기 때문에 말씀을 전하거나 공부하거나 다른 일을 할 기회가 별로 없었습니다. 저는 이야기하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다들 아시지요. 제가 아마... 어머니 말씀으로는 제가 걷기도 전에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을 두고 옛말에 뭐라고 하는지 아시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제 마음을 바꾸셔서 이제는 그분에 관해 이야기하게 해 주셨으니 참 기쁩니다. 아시겠죠? 저는 그저 그분에 관해 이야기하고 그분을 찬양하며,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다가 죽고 싶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성만찬 예배가 있어서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수요일 저녁에는 가르침의 예배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그때 가르치려고 합니다.
오늘 저녁에는 잠깐, 몇 분 동안,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제가... 조금 갑작스럽게 된 일입니다. 늘 그렇듯이... 성경에 “때가 맞든지 맞지 아니하든지 긴급히 하라.”고 했다고 생각합니다. 기꺼이 대답하... 여러분 안에 있는 소망에 관해 대답할 준비를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 안에 있는 소망을 간증할 수 있다면, 여러분께 그것을 전하는 것이 제게 복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여러분의 믿음 역시 같은 것에 응답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복이 되기를 바랍니다. 제 안에 있는 그 믿음이 여러분 안에도 있으며, 우리는 하나님의 왕국의 동료 시민입니다. 지금 뉴올버니 감리교회에서 부흥 집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기뻤습니다. 플리먼 형제님이 방금 말씀하신 루이빌 집회 소식은 제가 잘 못 들었지만, 여러분은 들으셨겠지요. 그런 부흥 집회가 열리는 곳 근처에 계시면 참석하십시오. 가서 하나님의 자녀들과 함께 자리를 하며 우리가 어느 편에 서 있는지 보여 주십시오. 우리는 주님의 편이며, 그분의 백성과 함께 자리를 하고 싶습니다.
네빌 형제님 말씀대로 수요일 저녁에는 가르침의 예배가 있습니다. 일종의 성경 공부 모임을 하고 계시는 것 같은데, 그렇지요, 네빌 형제님? [“그렇습니다.”] 참 좋습니다. 말씀을 가르치면 언제나 교회가 든든히 세워집니다.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오늘 아침에는 그 말씀이 얼마나 틀림없으며, 반드시 성취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이야기했습니다!
찬송이 끝난 뒤 저는 ‘무슨 말씀을 전할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모든 성도가 이마에 인을 받으리라.’는 가사가 생각났습니다. 아시겠죠? 우리가 저곳에 가면 모든 성도가 이마에 인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저녁에는 성경에서 짧은 구절을 좀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여기 어딘가, 복음서에 있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마치신 뒤에 “오늘 이 말씀들이 성취되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처음에, 사역을 시작하실 때... 물론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로 이 세상에 태어나셨습니다. 주 예수님으로 태어나셨습니다. 그리고 여드레 후 할례를 받으실 때, 그분께... 아니, 주 그리스도로 태어나셨고 예수라는 이름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는 그분에게 주어진 이름이었습니다. 그리스도는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를 나타내는 칭호였습니다. 태어나셨을 때 그분은 그리스도,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분이셨습니다.
성만찬 예배는 보통 시간이 꽤 걸린다는 것을 알기에 너무 오래 말씀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좋은... 하나님의 영께서 우리 가운데 임하심을 느끼고 예배를 드릴 수 있을 만큼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광고된 다른 모든 예배와 곳곳의 부흥 집회, 병들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기억하십시오. 형제님이 조금 전에 어떤 집을 방문했는데, 거기에 마귀 들린 소년이 있으며 놓임 받기를 원한다고 방금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함께 모여 이런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조지 카터라는 작은 자매가 있는데, 아주 여러 해 전에 환상을 통해 치유받았습니다. 결핵으로 고통받던 침상에서 일으킴을 받았지요. 여덟 해 아홉 달 동안 누워 있었고, 침상에서 몸을 일으키지도 못했습니다. 제가 그 자매를 위해 기도하러 갔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아시지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신유를 믿지 않았고, 저를 그다지 반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딸은 치유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라이트 형제님 댁에서 제가 침례 예배를 드리고 있었는데, 그 자매도 침례받기를 원했습니다. 물론 침상에서 나올 수는 없었습니다. 여덟 해나 아홉 해 동안 침상 밖으로 나오지 못했으니까요. 저는 광야에서... 아니, 숲속에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라이트 자매님이 저녁을 먹으러 오라고 종을 울렸습니다. 그런데 저는 기도에 깊이 잠겨 있었고 우리 주 예수님의 임재가 너무 가까워서 종소리가 울리는 줄도 몰랐습니다.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층층나무 덤불 사이로 빛이 비치는 것을 보았고, “카터네 집을 거쳐 가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라이트 형제님, 형제님도 저와 함께 계셨습니다. [라이트 형제님이 “아멘.”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그곳에 갔을 때 환상에서 말씀하신 그대로, 정확히 그렇게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홉 해 여덟 달 동안 침상에서 꼼짝하지 못하고 고통받던 조지는 즉시 치유받았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심한 감기 같은 것에 걸렸을 때 말고는 다시 앓아누운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몹시 아프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해외로 떠나기 전에 여기 라이트 형제님 댁에서 집회를 할 때 그 자매가 왔었습니다. 자매가 떠난 뒤 저는 라이트 형제님께 “주님의 영 안에서 무언가가 자꾸 조지에게 가라고 제 마음을 재촉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들으니 유방암 말기라고 합니다. 살기를 포기하고, 그대로 죽음을 받아들이려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돌아왔다는 말을 듣고는, 그 가엾은 자매가 침상에서 일어나 이제는 치유받을 것을 믿는다고 했답니다. 하나님께서 죽을 수밖에 없는 한 인간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을 믿으니 참 큰 믿음입니다. 저는 조지를 제 자매로 사랑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생명을 살려 주시도록 저와 함께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그곳에 갔을 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그분께서 말씀해 주시기만 한다면 좋겠습니다.
그 밖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있습니까! 와이즈하트 씨, 전에 이곳에 나오던 짐 와이즈하트 형제님의 형제분 아들이 지금 저 병원에 있습니다. 방금 전화를 했는데, 호지킨병에 걸렸답니다. 여러분도 아시듯 그것은 암보다 더 나쁩니다. 얼마 전 바로 이 태버내클에서 그 병이 치유된 일이 있었습니다. 기억하시지요. 의사가 살날이 삼십 일 남았다고 했던 젊은 여학생이었습니다. 여기 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생이었지요. 그 어머니가 앞으로 나와 삶을 그리스도께 드리고 침례를 받았으며, 딸도 그렇게 했습니다. 사람들은 “아이에게는 숨겨 주세요. 죽음이 닥쳐왔다는 것을 알리지 마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전에 그날 아침 그 아이가 여기 기도 줄을 따라 내려오고 있을 때 성령께서 그 아이를 붙드시고, 아이가 한 일 등을 아셨습니다. 그러고는 즉시 치유되어 병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이삼 년 전 일입니다. 제가 일 년쯤 전에 그 아이를 만났습니다. 이제는 결혼한 것 같은데, 아주 잘 지내고 있으며 그 병이 다시 나타난 적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호지킨병도 치유하실 수 있습니다. 어떤 병이든 상관없습니다. “나는 네 모든 질병을 고치는 주니라.” 그러니 잠깐 그분께 말씀드립시다. 병자들을 대신하여, 그리고 예배가 계속 진행되도록 기도합시다.
자애로우신 하늘 아버지, 우리가 이 아담하고 사랑스러운 곳에 모였습니다. 눈으로 보기에는 그리 대단하지 않을지 몰라도, 아버지, 이곳에서 저희에게 참으로 여러 번 복을 주셨음을 알기에 저희는 집에 온 듯 편안합니다. 이 작은 곳을 생각하면 그날 밤 형에게서 도망하던 야곱과 같은 마음이 듭니다. 그는 환상 가운데 하나님의 천사들이 사다리로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고, 돌들을 굴려 모아 놓고 “이곳은 주님의 집이로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버지, 오늘 저녁 주님의 집, 벧엘에 모인 이 사람들에게 복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병든 이들을 위한 저희의 기도를 들어 주옵소서. 우리 형제님을 찾아온 그 마귀 들린 청년을 위해 기도합니다. 주님, 사랑하는 조지를 위해 기도합니다. 하나님, 죽음이 그 자매를 삼키지 못하게 하옵소서. 지금까지 십이 년, 십사 년 동안 살려 주셨으니 앞으로도 계속 살려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 몸에서 결핵을 완전히 없애 주신 주께서는 암도 없애 주실 수 있습니다. 주께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버지, 저희는 주님을 사랑하며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이것을 구합니다. 저 병원에는 그 청년, 젊은 군인이 누워 죽어 가고 있으며 모든 희망이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주께서 바울에게 “바울아, 기운을 내라.”고 말씀하신 때도 바로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주님, 다시 말씀하여 주옵소서. 그 청년의 생명을 살려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허락하여 주옵소서. 주님, 죽지 않게 하옵소서. 그가 살아서 그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하옵소서. 이제 오늘 저녁 예배에서 저희를 도와주옵소서. 저희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한마디도 알지 못하기에 모든 것을 주께 맡기며, 영광이 주께 돌아가기를 구합니다. 주의 아들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옵나이다. 아멘.
저는 우리가 이곳에서 경배하는 분, 주 예수님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너무나 선하시며, 우리 모두는 그분을 사랑합니다. 오늘 저녁 그분을 볼 수만 있다면, 그분께서 우리 가운데 계심을 깨닫는 일이 분명 우리 마음 가장 깊은 곳까지 와닿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분은 여기 계십니다. 제가 확언합니다. 땅과 바다와 하늘을 가득 채우시는 그분의 영께서 오늘 저녁 이 예배당에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찬양을 기쁘게 받으시며 경배받기를 좋아하십니다.
이제 우리가 여기 모인 이유에 관한 몇 가지 기본적인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집은 바로잡는 집입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법이 나옵니다. 우리가 사는 이때, 특별히 이 어둡고 그늘진 시간에, 여러 나라를 다니며 살펴본 제 생각으로는 이제 남은 소망은 오직 하나, 주 예수님의 재림뿐입니다. 그분이 처음 이곳에 오셨던 것이 확실한 만큼 다시 오실 것도 확실합니다. 저는 온 마음으로, 제 온 생명을 다해 그것을 믿습니다.
오늘 아침에 살펴본 것처럼 그분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이 그분의 말씀으로 나타나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낯선 분들도 계실 테니 말씀드리면, 오늘 아침의 주제는 “처음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이 하나님이셨더라.”였습니다. 말씀은 시작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말씀이 되기 전에는... 말이란 생각이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말씀으로 만드시기 전에 먼저 생각하셔야 했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발하셨고, 그것이 실체가 되었습니다. 바로 그분께서 발하신 말씀으로 주 예수님을 이곳에 보내셨습니다. 그 말씀이 실체가 되어 하나님의 아들이 되셨습니다. 죄 없는 분이 죄 있는 자들을 대신하여 죽으셔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다시 하나님과 교제하게 하셨습니다. 한때 하나님과 멀어져 있던 우리가 의로우신 하나님의 아들의 피를 드림으로써 이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처음에 구속자로 오신 것이 확실한 만큼, 두 번째에는 신랑으로 오실 것입니다. 각각... 그분은 오십니다. 물론 우리는 종종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 벌써 여러 해 동안 이렇게 생각해 왔지 않은가.’ 하고 생각합니다. 그분이 처음 오시기 전에도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두 번째 오실 때에도 틀림없이 같은 생각을 할 것입니다. 성경에서 그들이 “우리 조상들이 잠든 때와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말하리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생각하지 않는 시각에 그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마땅히...
미국에 사는 우리 미국인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많은 것을 요구하실 것입니다. 우리에게 참된 복음의 빛이 있는데도, 마땅히 활용해야 할 만큼 활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저녁 저는 그리스도인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성령을 슬프게 하다가 어떻게 자신에게 주어진 회개의 때를 놓칠 수 있는지, 잘못된 선택으로 어떻게 그리스도와 아무 상관도 없는 자로 완전히 낙인찍힐 수 있는지에 관해서입니다. 이런 말은 좀 가혹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말이 거칠어져야 우리가 주 예수님을 귀하게 여깁니다.
오늘 제가 나가는데 한 형제가 만나서 “브래넘 형제님...” 하고 말했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그분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인도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보니...” 하더니 “그런데도 매번... 저는 건강한데, 무슨 일이든 늘 저를 짓누릅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나아오는 아들마다 반드시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모두가 그렇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시험을 받아야 합니다. 아무 잘못도 없는 것 같은데 하나님의 채찍이 우리에게 내려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는 것은 우리가 아들임을 입증하시려는 것입니다. 징계를 견디지 못하는 자는 사생아입니다. 다시 말해 참된 하나님의 아들이 아닙니다. 그러나 꿋꿋이 서서 채찍을 맞고 모든 일이 어긋나도, 여전히 위를 바라보며 “주님,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그런 남자나 여자가 바로 참된 아들입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 바로 그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저는 그 말씀이 좋습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습니까?
“환난이 인내를 이루고, 인내가 소망을 이루며, 소망이 부끄럽게 하지 아니하는 줄 알기 때문이라.” 바로 그것입니다. 아시겠죠? “환난이 인내를 이루느니라.” 인내하십시오. “소망이 부끄럽게 하지 아니하느니라.” 오늘 저녁 우리에게는 그 소망이 있습니다. 모든 환난 가운데서도 그것은 여전히 역사합니다. 환난은 우리가 인내하며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게 합니다. “그분께서 두 번째로 하늘로부터 영광과 위엄 가운데 나타나실 때 바다가 자기 안에 있는 죽은 자들을 내줄 것입니다. 그분 안에서 잠든 자들의 썩을 몸이 변화되어 그분 자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이 될 것입니다. 그분은 모든 것을 자신에게 복종시키실 수 있습니다.” 그러니 오늘 저녁 우리는 주님이 오실 그 위대한 날을 기다리며 행복하게 기뻐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여기서 다시 말씀에 관해 말씀하십니다.
조금 전에 사랑하는 한 형제가 잠깐 저를 만나러 왔습니다. 지금 이 건물 안에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눈에는 보이지 않는군요. 그분이 “브래넘 형제님, 저는 말씀을 귀하게 여깁니다.”라고 했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말씀입니다! 말씀은 굳게 서 있습니다. 그것은... 누군가가 한 말만을 의지해 믿음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 기초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큰 기초가 어디 있겠습니까? 모든 하늘과 땅이 사라져도 그분의 말씀은 영원과 같이 끝이 없습니다. 영원토록 계속해서 나아갈 것입니다. 변함없을 것입니다. 보십시오, 예수님은...
성만찬 예배가 있으므로 이제 곧바로 본문으로 서둘러 들어가야겠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참여할 몫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남녀노소 여러분 모두, 이제 주의 만찬을 준비하도록 마음을 가다듬으십시오. 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있나니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일으키리라. 먹지 않는 자는 나와 아무 상관이 없느니라.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가 받을 정죄를 먹고 마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엄숙한 시간입니까! 잠시 후에 있을 이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일을 이제 준비합시다. 제 생각에 이 태버내클에서 우리가 갖는 가장 뜻깊은 시간 중 하나는 성만찬을 나누는 밤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이곳에서 사역하시던 초기였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분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셨을 때였습니다. 안식일에 성전에 앉아 계셨는데 성전에서 섬기는 사람이 읽으시라고 두루마리를 드렸습니다. 살펴보시면 우리에게도 같은 관습이 좀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경을 읽으신 다음 그 성경 말씀에 근거하여 가르치셨습니다. 때로는 유대인들의 생각과 반대되는 가르침이었지만, 누가 그분을 책잡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분은 영광의 주님이셨습니다. 그분은 거기서 이사야가 “그분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주의 받아 주시는 해를 선포하게 하셨느니라.”고 한 부분을 읽으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책을 덮고 두루마리를 말아 내려놓으신 뒤 사람들을 향해 “오늘 이 말씀이 너희 앞에서 성취되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사야는 이보다 수백 년 전, 아마 오백 년에서 팔백 년 사이의 옛날에 영감을 받아, 그리스도께서 오시면 “주의 받아 주시는 해를 선포하도록” 기름부음 받으시리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러므로 정확히 그렇게 이루어져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선지자를 통해 말씀을 하셨고, 그분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아침 이사야에 관해 살펴본 것처럼,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그들 앞에서 권능 있는 일을 많이 행하셨는데도 그들은 믿을 수 없었습니다. 이사야가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 주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나이까?”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들에게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니, 그들이 회심할 수도 있으리라.”고 말했습니다. 이사야가 그렇게 말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 앞에서 행하시는 기적과 여러 일을 깨달을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 바로 그 예언이... 보십시오. 예언은 되풀이됩니다. 하나님의 말씀들이 되풀이되고 주기를 따라 돌아온다는 것을 아셨습니까? 예를 들어, 한번은 제가 성경의 한 구절을 읽고 성경 전체에 걸쳐 난외주를 따라 찾아보고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2장... 아니, 제 생각에는 1장에, 주께서 선지자를 통해 하신 “이집트에서 내가 내 아들을 불러내었노라.”는 말씀이 성취되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집트에서 불려 나오신 일을 말한 것입니다. 그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불러내셨을 때도 가리켰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분의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마태가 가리킨 성경 말씀은 바로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신 그 구절이었습니다. 그분은 자기 아들 예수님도 이집트에서 불러내셨습니다. 아시겠죠?
오늘 저녁 우리가 여기서 읽는 이 성경 말씀들이 이방인의 시대에 다시 성취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니라.” 하나님께서 기적과 표적과 이적을 행하고 계신데도 사람들은 그저 눈을 감아 버립니다. 그렇게 되리라고 예언이 말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는 예수님께서 “받아 주시는 해를 선포하시리라.”고 예언했습니다. 오늘 저녁 우리가 다루려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 “받아 주시는 해”란 이런 것입니다. 그 당시에, 일정한 햇수가 지날 때마다... 받아 주시는 해는 옛 기록에서 “희년”이라고 부르던 해입니다. 그것은 매... 제 생각에는 칠 년마다 희년이 찾아왔습니다. 칠 년마다 그들은 땅을 쉬게 했습니다. 그 땅에서 열매를 기르지도 않았고 농작물을 심지도 않았습니다. 칠 년마다 밭에서 농작물 재배를 쉬었으며, 그때가 희년이었습니다.
노예가 팔려 갔거나, 히브리인이... 어떤 사람이 자기 자녀들을 노예로 판 경우에는... 끔찍하게 들리겠지만, 저는 며칠 전 밤에 서서 바로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남자들이 자기 딸들인 젊은 여자들을 데려다가 노예 시장에 세우고 옷을 벗겨 노예로 팔았습니다. 우리와 함께 있던 사람 중 하나가, 우리 일행은 아니고 그곳에서 합류한 사람이었는데, 예쁜 젊은 여자를 삼십오 달러에 사고, 자동차 소유권 증서를 받듯이 법적 문서를 받았습니다. 어떤 여자들은 십 달러에 팔렸습니다. 그냥 넘겨진 여자들도 있었습니다. 얼마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존중하지 않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사람과 여자가 짐승이나 다름없는 처지가 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와 그 도덕 등을 두고 얼마나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자유를 누리는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을 이렇게 대하고 있으니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들은 노예를 팔았습니다. 이 여자는 팔려 가서 아내가 될 수도 있고 하녀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여자를 팔면서 이를 들여다보고, 얼마나 튼튼한지, 일을 할 수 있는지, 처녀인지 아닌지 등을 살펴봅니다. 돈을 낼 수 있고 돌볼 수 있는 만큼, 원하는 대로 얼마든지 살 수 있습니다. 율법 시대에도 똑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노예를 데려다가 팔았습니다. 그런데 칠 년마다 희년이 찾아왔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큰일이었고 오늘날 사람들에게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참으로 중요한 때였습니다!
노예들은 밭이든 어디든 일하는 곳에 있었습니다. 아마 감독, 곧 주인이 지운 짐 아래서 허리가 휘어 있었겠지요. 그 주인은 그들을 온전히 지배하는 주인이었습니다. 이 노예가 자기 소유임을 보여 주는 법적 문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노예를 말처럼 다루거나 마음대로 대했습니다. 자기 노예였으니까요. 그러나 칠 년마다 희년이 돌아오는 것이 하나님의 법이었습니다. 희년이 돌아오면 제사장이 타고 다니며 그 땅 곳곳에 나팔을 불었습니다. 그러면 값을 주고 사들여 종이 된 모든 노예에게 자유의 몸이 되어 다시 집으로, 사랑하는 이들에게 돌아갈 특권이 주어졌습니다. 은혜로 다시 구속받는 것이었습니다. 노예는 아무것도 지불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들도 아무것도 지불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예입니까! 오늘날 우리나라와 다른 모든 곳에서 남자와 여자들이 자신을 죄에 팔아넘기고 있습니다. 술을 마시고, 도박하고, 방탕하게 놀고,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며 마귀의 노예가 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이곳에서 한 젊은 여자를 만났습니다. 그분은 “브래넘 형제님, 이 위스키의 사슬만 끊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내놓겠어요.”라고 했습니다. “어릴 때 술 마시는 남자아이와 사귀면서 시작했어요. 함께 술을 섞어 마시기 시작했고, 저는 완전히 술의 노예가 되었어요. 술이 없으면 미칠 것 같아요. 이것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좋겠어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스스로는 할 수 없지만, 자매님을 위해 그 사슬을 끊어 주실 수 있는 분을 저는 압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매님을 자유롭게 하려고 오셨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살펴보시면, 그 희년이 이제 다시 상징적으로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때가 되면 부흥이 그 땅에 일어납니다. 바로 저 위대한 웨일스 부흥도 얼마 전에 끝났습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온 나라 곳곳에 가서 빌리 그레이엄이나 오럴 로버츠 같은 이들을 세울 수는 있습니다. 아무리 애쓰고, 아무리 크게 사람들을 조직하고 결속하려 해도, 부흥을 가져오시는 분은 하나님이셔야 합니다. 아무리... 우리는 그리스도인 실업인회 조직을 만들려고 합니다. 좋은 일입니다. 지금은 초교파 목회자 협회를 만들려고 합니다. 그것도 모두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형제여, 사람들만의 일인 한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께서 사람들 가운데 임하셔야 합니다!
그 위대한 웨일스 부흥이 시작되었을 때, 그것은 웨일스 사람들에게 희년의 때였습니다. 글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 몇이 그저 복음을 전하는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과 영광이 내리기 시작하자 사업가들이 일터에 가서 책상에 앉아 어린아이처럼 울다가 사업장 문을 닫았습니다. 밭의 농부들은 쟁기에 앉아 밭을 갈다가도, 짐승들을 멈추고 밭으로 내려섰습니다. 지독한 죄인들이 하나님께 손을 들고 자비를 구하며 부르짖었습니다. 길을 걷는 사람들, 어디에나 있는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호루라기 소리며 여러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부흥이 일어난 것입니다. 오늘 저녁 미국에 필요한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빌리 그레이엄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오럴 로버츠가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오늘 저녁 필요한 것은 성령께서 사람들 가운데 역사하시며 자유의 해를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새 조직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새 체제가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오직 성령께서 죄를 깨닫게 하시는 권능으로 임하시는 것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이 머리가 하얗게 셀 때까지 복음을 전할 수도 있고, 머리가 하얗게 셀 때까지 표적과 이적을 행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람들 가운데 나아가 역사하기 시작하시지 않는 한...
그 부흥이 시작되었을 때, 한 목회자가 길 아래로 물이 통하는 수로가 있는 곳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는 말을 세우고 그 수로 밑으로 들어가 “전능하신 하나님, 여기 이 도시는 온통 더럽혀져 있습니다. 이 수로 위를 지나가는 남녀노소 모두가 주의 영으로 말미암아 죄를 깨닫게 하옵소서.”라고 했습니다. 그는 가서 신실하고 훌륭한 기도의 용사 한 사람을 데려다가 그 밑에 두고 기도하게 했습니다. 그곳에 머물며 밤낮으로 금식하고 기도하게 했습니다. 자신은 계속해서 시내로 들어가 저녁 식사가 나오기 전에 식탁에서 축복 기도를 해도 되겠느냐고 허락을 구했습니다. “그러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가 일어서서 “주 하나님, 이 식탁에 앉는 모든 남자와 여자가 죄를 깨닫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전해졌고 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사람들이 그 수로 위를 지나다가 길에서 말을 멈추고 눈물을 흘리며 울기 시작했다. 남자와 여자들이 식탁에 와서 앉아 음식을 받았다가 그것을 밀어 놓고 눈물을 흘리며 울고 회개했다.” 오늘 저녁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들 가운데 나아가시는 바로 그런 부흥입니다.
우리는 집회를 시작하고 표적과 이적을 행할 수 있습니다. 제가 여기서 그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집회에 나가면 때때로 눈먼 사람이 보고 귀먹은 사람이 듣습니다. 사람들이 주위로 와서 보고는 “놀랍군요.”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부흥 집회가 끝나고 나면 그들 소식은 다시 들리지 않습니다. 다시 밖으로 돌아가서는 “아, 그렇지요. 저는 그런 것을 믿습니다.”라고 합니다. 오늘 저녁 필요한 것은 새로운 설교자가 아닙니다. 필요한 것은 성령께서 사람들 가운데 나아가 그들을 움직이시고 의에 주리고 목마르게 하시는 것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이기 때문이요.” 어디서든 그 일을 하시는 분은 성령이셔야 합니다.
그 당시에 이 제사장들이... 노예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 옥수수밭에서 괭이질을 시키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주인은 내려오면서 채찍으로 그를 때립니다. “어서 서둘러! 이 일을 빨리 해야 해!” 그러나 나팔 소리가 들리는 순간 그 사람은 괭이를 내던지며 “이제는 더 이상 괭이질하지 않겠소.”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 감독, 곧 노예를 부리던 자는 더 이상 그에게 손대는 것이 금지되었습니다. 그가 자유로워졌기 때문입니다. 왜입니까? 좋은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희년이 온 것입니다. 속죄가 이루어졌고, 모든 노예가 자유롭게 될 수 있었습니다.
저도 기억합니다. 오, 그 좋은 소식이 제 마음에 들려왔을 때를 말입니다. 저는 병원 침대에 누워 있던 보잘것없는 어린 죄인이었고, 의사는 “삼 분밖에 더 살지 못할 거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늘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희년이 왔다고 제게 알려 주었습니다. 저는 주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죄의 모든 족쇄를 벗어 던진 뒤 마귀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내 삶을 그리스도 예수님께 드렸다. 그러니 너는 더 이상 나를 해칠 수 없고, 더 이상 나를 채찍질할 수도 없다.” 그 후로 마귀는 여러 번 저를 위협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부터 제게 손을 대지 못했습니다. 그저 허세를 부릴 뿐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채찍이 딱딱 소리를 내며 휘둘러지는 소리 등을 듣습니다. 하지만 소용없습니다. 이제 저는 주님의 것이므로 마귀가 저를 붙잡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사람을 보십시오. 자유롭게 떠날 수 있게 되면 자기 집으로, 사랑하는 이들에게로, 아내와 자녀들에게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는 자유로워졌습니다. 더 이상 노예로 있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비극은 여기에 있습니다. 그 사람이 돌아가고 싶지 않고 그곳에 남기를 원하면, 주인이 다가와 “계속 내 노예로 있고 싶으냐?”고 묻습니다. “예.” 그러면 그를 성전으로 데려가 그 사실을 사람들 앞에 알리고 공개적인 증거로 삼은 뒤, 그의 귀를 기둥에 대고 송곳으로 뚫어 귀에 표를 냈습니다. 그러면 그는 결코 자유로워질 수 없었습니다. 평생 종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자유로워지라는 부름과 그 기회를 고의로 거절했다면, 살아 있는 동안 계속해서 그 노예 주인을 섬겨야 했습니다.
잠깐 마음을 가라앉히십시오. 지난 사십 년 동안 미국에서는 성령께서 사람들 가운데, 개개인 가운데 역사하시며 표적과 이적과 온갖 기적을 베푸시는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습니다. 매춘부들 가운데서 자라고 사생아로 태어난 사람들 등이 훌륭한 사람과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눈멀었던 사람들이 시력을 되찾았습니다. 닫혔던 귀가 열렸습니다. 병들고 고통받는 이들, 마귀에게 묶여 있던 이들에게 위대한 희년의 때가 온 것입니다! 병자가 있는 곳, 눈먼 이가 있는 곳, 몸이 불편한 이가 있는 곳, 모든 면에서 수천에 수천을 헤아리는 기적이 사람들 가운데 일어났습니다. 지난 사십 년 동안 교회들에서는 성령 침례의 부흥이 계속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나라 전체로서, 개개인으로서, 교회 집단으로서 우리가 그것을 물리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우리는 등을 돌리고 그것을 거절했습니다.
여러분, 그런데 두려운 점은 이것입니다. 성령을 슬프게 하는 일을 거듭하다가 마지막 선을 한 번 더 넘으면, 여러분은 경계선을 넘어선 것입니다. 더 이상 회개가 남아 있지 않은 곳에 이르렀으며, 어둠의 왕국 안에 봉인되어 주 예수님을 결코 보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생명의 소망을 결코 보지 못하고, 영구히, 영원토록 제외된 자로 낙인찍힐 것입니다. 얼마나 엄숙한 경고입니까! 오, 성령께서 그것을 여러분 마음 깊이 새겨 주시기 바랍니다. 경계선에 서 계신 여러분, 여러 번 ‘온전히 자신을 내어 드린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은데, 언제 그렇게 할지 마음을 정할 수만 있다면.’ 하고 생각하신 여러분. 오, 형제자매여, 이번이 그렇게 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아십니까? 오늘 밤이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될 기회를 갖는 마지막 밤일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오늘 밤 여러분이 하나님의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거절함으로써, 이제부터는 하나님 보시기에 배교자로 낙인찍힐지도 모릅니다.
마지막 날에는 오직 두 부류의 사람만 있을 것입니다. 두 부류 모두 표를 지니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표는 한 점 의심의 여지도 없이 성령 침례입니다. 얼마 전 바로 이곳에서 제가 그 말씀을 전했습니다. 성령의 도우심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인이 성령 침례임을 입증했습니다. 에베소서 4장 30절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을 슬프게 하지 말라. 그분에 의해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봉인되었느니라.”고 말합니다. 성령이 없으면 여러분은 봉인되지 않은 것입니다. 성령이 하나님의 인입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봉인되지 않은 모든 사람은 짐승의 표를 받았습니다. 짐승의 표는 배교의 표, 곧 성령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죠?
그러므로 희년이 오거나 나팔 소리가 울릴 때, 사람들이 성령을 받고 있는데 여러분이 의식적으로, 고의로 그것을 거절하면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다시는 여러분에게 말씀하실 의무가 없으십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제외된 자로 낙인찍힙니다. 구약의 모든 옛 모형은 신약의 모형과 그림자일 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문을 두드리셨는데도 그분을 거절하고 물리친다면, 여러분은 귀가 뚫릴 위험한 경계선에 서 있는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 의해 오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오느니라.”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귀를 막으셔서 다시는 깨달을 수 없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평생 복음을 비판하는 일밖에 하지 못하다가 죽어 영원히 잃어버린 자가 될 것입니다. 지금이 얼마나 중대한 때입니까! 희년의 때이며 문들이 열려 있는 때입니다! 바로 이 성령 침례가...
저는 지난 사 년, 오 년, 육 년 동안 성령에 관한 역사를 공부해 왔습니다. 지금 제게 다가오는 이때가 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치유 집회를 맨 앞에 두는 일을 잠시 내려놓고 복음을 전할 때가 오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맨 먼저 해야 했던 일은... 사람들은 “왜 이것을 하지 않습니까? 왜 저것을 하지 않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그 신적 은사로 제가 가장 먼저 해야 했던 일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그들은 듣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그것을 확증해 주셨고, 이제 그들은 저를 믿습니다. 말해진 것들이 한 마디 한 마디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움직이며 정확히 그대로 행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제 제가 하는 말을 그들이 믿을 것입니다. 그러니 제가 먼저 알아내야 할 것은 제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심판 날에 하나님께서 그것에 대한 책임을 제게 물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입니다.
오순절 이후 처음으로 성령 침례가 임한 곳은 백 년 전 러시아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역사입니다. 그들은 백 년 전에 성령 침례를 받고 표적과 이적을 행했지만, 나라 전체가 그것을 거절하고 물리쳤습니다. 그렇게 한 뒤 이제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종교를 대적하는 쪽으로 돌아서서 차갑고 잔인한 마음의 공산주의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으면 그분은 여러분을 정죄할 영에게 여러분을 넘겨주실 것입니다. 버림받은 생각에 내맡겨져 거짓말을 믿고 그것으로 정죄받게 될 것입니다. 오늘 저녁 러시아가 서 있는 자리가 바로 거기입니다. 성령 침례라는 희년의 메시지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 보시기에 정죄받은 것입니다. 그들은 버림받은 생각에 내맡겨졌습니다. 거짓말을 믿었고, 그것 때문에 하나님 보시기에 정죄받았습니다. 그다음 성령 침례가 임한 곳은 튀르키예였는데, 튀르키예 사람들도 그것을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그 아르메니아 사람들을 십자가에 못 박고, 이렇게 칼들이 위로 솟아 있는 물 저장 구덩이 등에 떨어뜨려 수백 명씩 죽였습니다. 오늘 저녁 튀르키예가 어디 있는지 보십시오. 그 나라의 때는 지나갔습니다!
형제여, 미국에는 사십 년 동안 옛 사도적 설교, 희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라 전체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저는 그들이 받아들이지 않을까 두렵습니다만, 그들은 밖으로 제외되어 어둡고 철저한 배교 가운데 봉인될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교단은 다 좋습니다. 그러나 형제여, 하나님께서는 교단을 보지 않으십니다. 개개인을 보십니다. 그리스도교는 교단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교는 한 사람이 살아가는 삶입니다. 아멘. 언젠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성령께서 이같이 말씀하십니다. “미국은 전체적으로 하나님을 거절해 왔으며, 요한계시록 13장에 따라 짐승의 표를 받을 것이다.” 우리는 그쪽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나라든 그냥...
하나님께서는 나라를 편애하지 않으십니다. 사람을 편애하지도 않으십니다. 그분께서 원하시는 것은 “누구든지 원하는 자”입니다. 어떤 나라가 꽃피고 이 모든 일을 행하며 굳게 선다면 그 제국은 영원히 존속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손을 대지 않고 산에서 깎여 나온 바위가 오실 때 모든 세상 제국이 무너질 것입니다. 그 바위는 세상의 모든 왕국을 산산조각 낼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스리고 통치하실 것이며, 그분의 통치에는 끝이 없을 것입니다. “그의 이름은 조언자, 평화의 통치자, 강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불릴 것이요, 그의 어깨에는 정권이 놓이고 그 왕국에는 끝이 없으리라.” 그것이 권능과 그 권능을 나타내심 가운데 임할 하나님의 왕국입니다. 그러나 나머지 모든 세상은 부서지고 산산조각 날 것입니다. 그들은 그것을 거절할 것입니다. 나라들이 거절하고, 교회들이 거절하고, 개개인이 거절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나라들을 심판하시고, 교회들을 심판하시고, 개개인을 심판하실 수 있습니다. 사람이 진리에 이르고도 그 진리대로 걷지 않으면, 성경에 따르면 그는 하나님의 성령을 모독한 것, 곧 거절한 것이며 구속받을 날이 지나 버린 것입니다.
여러분, 이곳을 다니면서 여러분이 누리는 것들을 보십시오... 우리는 좋은 옷, 가장 좋은 옷을 입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잘 차려입는 사람들은 미국인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잘 먹는 사람들도 미국인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좋은 자동차를 몰고 다닙니다. 세계 어느 누구보다 돈도 많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좋은 교회들도 있습니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좋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모든 것을 누리면서 나라 전체는 점점 하나님에게서 돌아서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개인에게 두었고, 교단에 두었고, 나라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제가 한 남자에게 “그리스도인이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분명히 말씀드리는데, 나는 미국인입니다. 그리스도교 국가에 속한 사람입니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한 여자에게도 “그리스도인이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여자는 “젊은 양반, 분명히 말씀드리는데 나는 매일 밤 촛불을 켭니다.”라고 했습니다. 촛불을 얼마나 켜든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이 나라에 얼마나 살든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어느 교회에 속해 있든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사람이 하나님의 영으로 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왕국을 보지 못하리라.” 이것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경고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친구 여러분, 제가 여러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여러분은 모릅니다. 여러분은 깨닫지 못하십니다. 제가... 강단에 서 있다는 이유만으로 여러분을 꾸짖으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한다면 제 위치를 이용하여 여러분을 부당하게 대하는 셈입니다. 하지만 오늘 저녁 제가 드리는 말씀은 이것입니다. 복음의 경고를 들으십시오! 그리스도께로 피하십시오! 모든 것을 내려놓으십시오! 존스 양을 기다리지 마십시오. 교회에서 시작되기를 기다리지 마십시오. 바로 지금 여러분 자신에게서 시작하십시오. 여러분을 그토록 오래 묶어 온 죄의 노예로 평생 살도록 하나님께서 정하실 때가 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든 그렇게 하십시오!
얼마 전 누군가가 “하지만 브래넘 형제님!”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사람은 정말로 신실한 태도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살고 있는 삶은 죄 가운데 사는 삶이었습니다. 그는 “아, 저는 신실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신실하시다면 신실하다는 것을 입증하십시오. 지금 살고 계신 그 죄를 버리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아, 아시다시피 얽힌 일이 너무 많습니다.”라고 하더군요. 저는 “신실하시다고 생각했는데요.”라고 했습니다. 그는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무슨 일을 해야 하든,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오는 것입니다. 다시 태어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무엇입니까?
여러분 모두는 언젠가 해골 하나와 뼈 무더기가 되어 이 주변 어딘가의 흙 아래 누울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오늘 저녁 여기 앉아 계신 것이 확실한 만큼, 여러분은 그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신실해야 하겠습니까? 제 뜻을 아시겠습니까? 어쩌면 지금부터 한 시간 뒤에 그 길을 떠날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 열두 달 안에, 내년 이맘때는 여러분 뼈에 살 한 점 남아 있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 이십오 분 안에 여러분 몸에 생명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끝없는 세월이 끝날 때까지, 그런데 끝은 결코 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곳으로 들어갈 때의 그 상태가 여러분의 영원한 상태가 됩니다. 그러므로 형제여, 미지근하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설 수 있는 위험한 자리, 미지근한 상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뜨겁든지 차든지 하라. 온 마음으로 내 편에 서든지, 나를 반대하라.”고 하셨습니다. 그저 제법 괜찮은 삶을 사는 것으로는 결코 인정받지 못합니다. 여러분 자신의 의라는 누더기는 심판 날에 결코 버티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교회에 다닙니다.”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이 일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교회에 속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좋은 일이지만 구원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오늘 아침에 말씀드린 것처럼, 그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찾으러 사방을 다녔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이미 그의 마음속에 계셨습니다. 그가 행한 일들, 소리 높여 외치고 방언을 말하는 것 등은 모두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먼저 그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속성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먼저 이 안에 그리스도를 모셔야 합니다. 그러면 그런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모시지 않고도 그런 일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떤 처지에 놓인 것입니까?
저는 이교도들이 소리 높여 외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이곳저곳 다니며 하도 기이한 일을 벌여서 무엇이든 믿게 될 만한 광경을 보았습니다. 자루에서 이렇게 밧줄을 쏟아 놓고 무슨 주문 같은 것을 외우면 밧줄이 공중으로 꼿꼿이 섭니다. 커다란 코브라를 가져오면 그 뱀이 달려듭니다. 독니가 있는지 없는지 보려고 천 조각을 던지면 독니가 천에 걸리는 것이 보입니다. 그런데 그 주변을 돌며 가락을 조금 연주하고 주문을 외우더니, 뱀을 자기 목에 감습니다. 코브라는 그를 쳐다보며 덤벼들 것처럼 하다가도 멈춥니다. 여러분은 가까이 가지 마십시오. 여러분을 죽일 것입니다. 저는 또 그들이 밖에 서 있다가 불길이 잦아들어 숯불이 된 불밭을 걸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입고 있던 것을 벗고 그 불붙은 숯 위를 곧장 걸어가는데 아무 일도 없고, 전혀 다치지 않습니다. 깊은 구덩이에 깨뜨린 유리를 가득 넣어 이렇게 위로 삐죽삐죽 솟게 해 놓습니다. 거기에 달려가 크게 뛰어들어 누워서 이리저리 계속 구릅니다. 그리고 일어나면 긁힌 데 하나 없으며, 다시 뛰어나옵니다. 그것은 믿음입니다. 하지만 형제여, 그것이 구원은 아닙니다. 아닙니다. 오, 마귀에게는 사람들을 속이는 얼마나 교묘한 수법이 있는지요!
구원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전능하신 하나님과 개개인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오, 친구 여러분, 오늘 저녁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여러 해 전에 우리가 가졌던 옛 집회 같은 것이 온 나라를 휩쓰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 가정을 바로잡고, 집에서 악한 것을 치우고, 집 안에서 벌이던 온갖 어리석은 짓을 그만두던 그런 집회 말입니다. 모든 가정이 하나하나 바른 길에 들어섰습니다. 그들은 악한 짓을 그만두었습니다. 속이는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거짓말을 그만두었습니다. 서로 정직하고 절제하며 살았습니다. 그리스도인답게 살았습니다. 바로 그런 신앙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가진 바로 그 신앙이 갈래갈래 뻗어 나가더니 너무나 틀에 박혀서 거의 할리우드 쇼가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사실인 줄 아십니다. 우리는 어떤 곳에 가서 큰 악단을 세우고 음악을 연주하며 야단법석을 떨고... 그리스도인인 척 행동합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가서 한 번만 심기를 거슬러 보십시오. 어떤 반응을 받는지 보십시오. 아시겠죠? 그리스도교는 오래 참음, 선함, 온유, 부드러움, 인내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리스도께서는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셨느니라.” 그렇지 않습니까? 그리스도교는 사람이 살아가는 삶입니다. 개인적인 체험입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그러니까 이 사람이... 나는 이 사람이 이런 일을 하는 것을 압니다. 그가 병자들을 위해 기도하면 낫는다는 것을 압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그가 그리스도인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믿음은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으로서 그 자리에 이르기만 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여기 태버내클에 모인 우리 작은 무리 여러분, 마녀와 마술사가 어떻게 기적을 행하는지 보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물론 그들도 기적을 행합니다. 그리스도교에서 나타나는 모든 외적인 현상이 그들에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그리스도인일 수는 없습니다. 그들의 삶을, 그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보십시오. 그곳 사람들은 심지어 다른 여자와 사는 것, 곧 간음을 신앙으로 삼습니다. 바로 그런 사람들이 표적과 이적을 행합니다. ...안에서는 아닌... 그들이 할 수 없는 일이 한 가지 있습니다. 제가 어떤 주술사나 그 밖의 누구도 하는 것을 보지 못한 일이 딱 하나 있습니다. 그들은 이 밧줄을 세우는 것 같은 기적을 행할 수 있습니다. 불을 다스리는 마술을 부려 불 속을 달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일들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을 치유하지는 못합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사람들에게 저주를 걸어 병이 생기게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저주를 거두어 치유할 수는 없습니다.
성경 시대 내내 그랬습니다.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했을 때 그들은 종기와 부스럼이 생기게 할 수는 있었지만 없앨 수는 없었습니다. 파리와 이가 생기게 할 수는 있었지만 그것들을 없애지는 못했습니다. 병자를 치유하시는 분은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들도 영 안에서 춤출 수 있습니다. 저는 여러 번 보았습니다. 온갖 동작을 할 수 있지만 병자를 치유하거나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거짓된 것을 분별하는 일은 모든 남자와 여자 각자의 문제가 됩니다! 성경은 마지막 날에 두 영이 너무나 비슷하여 할 수만 있으면 바로 그 선택받은 자들까지 속이리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영들이 일어나 표적들을 보이며 많은 사람을 속이리라.” 그렇습니다. 그러나 “내 양들은 내 음성을 아느니라. 낯선 자는 따르지 아니하리라.” 오, 우리가 얼마나 중대한 날에 살고 있습니까! 희년의 때가 거의 끝나 갑니다.
친구여, 들으십시오. 오늘 저녁 그리스도 없이 이곳에 와 계시고 그분을 알지 못하신다면 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속에 계심을 마음으로 정말 확신하고, 한 점 의심 없이 분명히 안다면 좋습니다. 그러나 “브래넘 형제님, 언젠가 제단 앞에서 마음이 무너져 울었습니다.”라고 한다면, 그것을 근거로 삼지 마십시오. “브래넘 형제님, 한번은 정말 은혜로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온통 돌아다니며 영 안에서 춤을 추었습니다.”라고 해도, 그것을 근거로 삼지 마십시오. 아시겠죠? “한번은 어떤 사람을 위해 기도했더니 나았습니다.”라고 해도, 그것을 근거로 삼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근거로 삼아야 할 것은 그리스도께서 마음에 계실 때, 큰 시련과 어려움이 닥쳐도 그분이 여전히 여러분에게 사랑스러운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한결같이 걸어갑니다. 모든 일이 어긋나고, 모두가 여러분을 반대하고, 온갖 일이 이렇게 돌아가도 여러분은 여전히 다정하고 사랑스럽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대로 계속 나아갑니다. “여러분의 영이 그분의 영과 더불어 여러분이 하나님의 아들딸임을 증언합니다.” 친구여, 오늘 저녁 여러분의 혼에서 그것이 울려 나오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왕국에서 제외되는 표를 받지 맙시다. 하나님의 왕국 안으로 들어갑시다. 사람이 하나님의 왕국 안에 있다는 표를 한번 받으면, 여정이 끝날 때까지 봉인됩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을 슬프게 하지 말라. 그분에 의해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봉인되었느니라.”
우리에게는 사람들을 제단 앞으로 초청하여 나오게 하는 오래된 관습이 있습니다. 그 일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여러 해 전 감리교회에서 시작한 훌륭한 옛 관습입니다. 그때도 좋았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좋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반드시 제단 앞으로 나와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 시대에는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그저 그들을 믿는 사람들로 여겼습니다. 사도 시대에는 그 모든 기간에 걸쳐 제단 앞으로 초청하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제단 앞으로 초청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믿는 사람마다 침례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들은 믿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온전히 확신하고, 마음속에서... 상상 속이 아니라 마음속 깊은 데서 무언가가 울리며 “이제 나는 구원받았다.”고 말한다면, 형제여, 바로 그것이 여러분에게 필요한 전부입니다. 그것을 입으로 고백하십시오. 여러분의 말을 밖으로 내십시오. 그리고 그때부터 여러분의 삶을 지켜보십시오. 옥수수가 도꼬마리 열매를 맺을 수 없듯이, 그런 사람도 악한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그는 반드시 좋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정죄에 이르지 아니할 것이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믿었기 때문입니다.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입니다. 그것이 여러분 마음속의 생각이 되었습니다. 그다음에는 고백으로 표현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나를 시인하는 자는 나도 내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그러면 무언가가 닻을 내립니다. 그것이 실재입니다.
그러나 친구 여러분, 우리가 배워 온 것이 우리를 바른길에서 벗어나게 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배웠습니다. 처음에 감리교인들은 “형제여, 그들이 소리 높여 외칠 수 있는 데 이르면 성결을 받은 것이며,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진 것입니다.”라고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다지 잘되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나사렛교인들은 소리 높여 외치고 손을 들고 통로를 오르내리며 달릴 수 있게 되면 “이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 많은 사람이 그렇게 외치며 통로를 달리고는 밖에 나가 아무렇게나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오순절 사람들이 나왔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은사들을 다시 회복시키기 시작하셨을 때 사람들이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이것이다. 이제 받았다. 우리는 모두 준비됐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받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방언으로 말하면서도 아무렇게나 살았던 것입니다.
형제여,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확실히 하십시오! 소리 높여 외치는 것은 좋습니다. 저는 성결을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제 성결이 아니라 그분의 성결입니다. 아시겠죠? 그렇습니다. 제 거룩함이 아니라 그분의 거룩함입니다. 그분, 곧 성령께서 자신의 거룩함을 이 안에 넣으시면, 그것은 그분의 거룩함이지 제 거룩함이 아닙니다. 저는 죄인이지만 그분은 주님이십니다. 저는 성결을 믿고, 소리 높여 외치는 것도 믿습니다. 다시 태어난 사람에게는 어떤 식으로든 그것이 드러나리라고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방언을 말하는 것을 믿습니다. 방언 통역을 믿습니다. 병자를 치유하는 것을 믿습니다. 예언을 믿습니다. 기적을 행하는 것을 믿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여러분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뒤에 따라오는 일입니다.
우리는 “소리 높여 외치면 받은 것이다. 예언을 하면 받은 것이다.”라고 말하려 해 왔습니다. 하지만 그가 받은 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나무에서 사과 하나를 땄다고 해서 그 나무를 가진 것은 아닙니다. 아시겠죠? 나무의 한 속성에서 나온 것을 가진 것입니다. 바로 그것 때문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마음속에 한번 깊이 자리 잡으시면, 이 다른 모든 일은 저절로 일어납니다. 지금 겨울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참나무를 제외한 모든 나무가 잎을 떨굴 것입니다. 참나무는 잎을 그대로 붙들고 있을 것입니다. 봄이 오면 그 잎은 죽은 묵은 잎입니다. 새잎이 돋도록 밖에 나가 잎을 따 줄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새 생명이 올라오게 두면 묵은 잎은 떨어지고 새잎이 돋습니다.
그리스도교도 그와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저는 한때 욕을 했습니다. 사람의 모자가 벗겨져 날아갈 만큼 지독하게 욕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욕을 끊었습니다. 저는 제가 그리스도인임을 압니다.” 아닙니다. 그것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아닙니다. “전에는 술을 마셨는데 끊었습니다.”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도덕적인 차원에서 그 일을 그만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은 그분 자신을 여러분 마음속에 모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세상 것에 대하여 죽고,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사십니다. 아시겠죠? 술을 완전히 끊고도 그리스도인이 아닐 수 있습니다. 십계명을 다 지키고도 그리스도인이 아닐 수 있습니다. 십계명이 여러분을 구원할 수 있었다면 예수님께서 죽으실 필요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영생을 주시려고 죽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성령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율법을 지키거나 무슨 일을 하거나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행위입니다. “너희가 행위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요,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받았느니라.”
그러니 마음속에 주 예수님을 모셨다면 여러분은 그분과 화평을 누립니다. 돌아보십시오... 여러분의 삶을 말입니다. 제가 보고 싶은 그리스도인이 어떤 사람인지 말씀드리겠습니다. 길을 걸으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저기 보세요. 저 가는 사람 보이십니까? 저 사람은 그리스도인입니다. 저는 그 사람 교회에 다니지는 않지만, 형제여, 저 사람은 그리스도인입니다. 말씀드리지만, 저는 그가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저 여자 보이십니까? 네. 여자들 사이에서는 그다지 인기가 없어 보일지 몰라도 그분은 그리스도인입니다. 정말입니다. 그분은 그리스도인입니다.” 온 도시가 “저기 그리스도인이 있다.”고 말하게 하십시오. 사람들이 알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여러분이 봉인되었다고 했습니다.
무언가에 인장을 찍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이렇게 들어서 인장을 찍습니다. 눌러 찍으면 양쪽 면에 자국이 납니다. 사람들은 여러분이 오는 모습도 보고 가는 모습도 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속속들이 그리스도인이며 하나님의 영으로 봉인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여러분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압니다. 그렇습니다. 누르는 것이며, 표를 새기는 것이며, 봉인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때 여러분은 하나님의 왕국 안에 봉인되는 것입니다. 서류가 공증인에 의해 법적으로 한번 봉인되고 그 이름이 서명되면, 형제여, 그 서류가 있는 한 법적으로 유효합니다. 그렇습니다. 사실이지요?
사람이 하나님의 영으로 태어나면, 믿는 척하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해지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구속의 날까지 그 안에 그를 봉인하신 것입니다. 그는 오늘도 그리스도를 닮을 것입니다. 내일도 그리스도를 닮을 것입니다. 그다음 날도 그리스도를 닮을 것입니다. 시련 가운데서도 그리스도를 닮습니다. 어려움 가운데서도 그리스도를 닮습니다. 배고플 때도 그리스도를 닮습니다. 기쁠 때도 그리스도를 닮습니다. 어디서 그 남자나 여자를 보든 그리스도를 닮아 있습니다. 성령으로 봉인되었기 때문입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죠? 그것은 여러분 자신의 영이 아닙니다.
형제자매여, 하나님을 너무 오래 가볍게 대하지 마십시오. 희년의 때가 여러분의 문을 지나가 버리는 시간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마귀의 기둥으로 끌려가 귀가 뚫리고, 더 이상 영광스러운 복음을 듣지 못하게 됩니다. “무슨 뜻입니까?” 여러분이 복음을 조금도 원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령을 모독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성령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할 때 성령을 모독했습니다. 그들은 그분을 바알세붑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분께서 행하시던 바로 그 일을 두고 “당신은 바알세붑을 의지해 그 일을 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들이 무슨 일을 했는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들은 그분을 믿지 않았습니다. 사람에게 진리가 제시되었는데도 그가 진리를 믿기를 거부하고 믿으려 하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끝납니다. 확실합니다.
그러니 오늘 저녁 여러분이 예전에 겪은 조그마한 체험 외에는 주님을 알지 못한다면 말입니다. 그분을 사랑스럽고 자애로우며 사랑이 많으신 구주로 알지 못한다면, 오늘 저녁 바로 지금 그분을 알지 않으시겠습니까? 제단 앞으로 나올 필요는 없습니다. 원하시면 나오셔도 됩니다. 하지만 그분을 알지 못한다면... 잠깐 제 말을 들어 주십시오. 여러분의 형제인 제가 여러분의 눈에 은혜를 입었다면, 저를 그분의 종이라고 믿으신다면... 이제 조금 개인적인 말씀을 드리지만 이유가 있어서 하는 말입니다. 제가 전능하신 하나님과 교통해 왔다고 믿으신다면, 그것을 믿으신다면 이제 제 말을 들으십시오. 해가 뜨기 전에,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고 원수와 화평하며 하나님과 화평하다는 사실이 마음속에 굳게 닻을 내리도록 하십시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받아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화평을 누리는도다.” 로마서 5장 1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받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화평을 누리는도다.”
어떤 이웃이나 여러분에게 해를 끼친 다른 사람에게 적의를 품고 있다면, 그 사람이 정말로 여러분에게 해를 끼쳤고 여러분이 마음으로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면, 그런 체험을 근거로 삼지 마십시오. 여러분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여러분을 사랑하는 사람들만 사랑한다면 죄인들도 그렇게 합니다. 이제 그저 종교적인 행동처럼 흉내만 낼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와 그렇게 해야 합니다. 제가 며칠 전에... 아니, 오늘 아침에 저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드린 것도 그 때문입니다. 저는 사람들을 비판하게 되었습니다. 여자들이 옷을 입는 방식이나 그런 것들을 비판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되고 싶지 않습니다. 그것은 잘못입니다. 지금 바로 여기서 제가 잘못했다고 고백합니다. 목회자들이 나가서 성경적이지 않은 일을 하는 것을 보면 “저것은 잘못이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누구이기에 그들을 심판합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의 심판자이십니다. 하나님, 제게서 그 영을 없애 주옵소서. 저를 주 예수님처럼 되게 하옵소서.
형제여, 이것은 사실입니다. 들으십시오. 언젠가, 언젠가 여러분에게는 더 이상 교회에 있을 기회가 없을 것입니다. 제가 떠났다가 돌아오면 아내가 말합니다. “누구누구 아시죠?” “응.” “그분이 며칠 전에 돌아가신 거 아세요?” 여기 제가 어릴 때 함께 놀던 오랜 친구, 윌 에드거 킹이 있습니다. 제 단짝 친구였습니다. 어릴 때부터 우리는 함께했습니다. 잠도 함께 잤습니다. 어린 시절 함께 지내고 낚시도 하며 그렇게 자랐습니다. 그런데 제가 해외에 있는 동안... 건장한 젊은이였고 한때 신유로 치유도 받았던 그가 길을 걷다가 심장마비로 갑자기 죽었습니다.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윌 에드거 킹은 저보다 여덟 살이나 열 살쯤 젊었습니다. 몸무게가 백팔십 파운드쯤 되는 건장한 젊은이로, 걸어 다니는 모습이 건강 그 자체였습니다. 좋은 아내와 서너 명의 어린아이를 둔 젊은이가 그대로 쓰러진 것입니다. 그는 남부 전역의 슈퍼마켓들을 위한 총괄 구매 책임자였습니다. 좋은 직장, 사랑스러운 가정과 가족이 있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이 손가락을 한 번 딱 튕긴다.] 하지만 저렇게 갑자기 데려감을 당했습니다. 형제여, 하나님께서... 그의 혼은 그에게 올바른 심판을 내려 주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저녁 여기 앉아 있습니다. 내일 아침 어디에 있을지는 하나님만 아십니다. 이제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지 않다면... 기도하는 동안 바로 지금 마음속으로, 제게나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마음속으로 말씀드리십시오. “주 예수님, 저는 그저 가볍게 여기며 지내 왔습니다. 그러나 오늘 저녁 마음속에, 지금이 주님을 온전히 제 구주로 받아들이고 싶은 때라는 것을 느낍니다. 이제부터 주의 은혜로 갈보리를 똑바로 바라보며 올곧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저희가 사랑하고 신뢰하는 하늘 아버지, 이것을 알기에... 저는 목회자이자 사람들에게 영적인 것을 베푸는 제사장으로서, 오늘 저녁 여기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한 점 의심의 여지도 없이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제가 한 모든 말에 대해 답해야 함을 압니다. 아버지, 여기 있는 남자와 여자들을 봅니다. 사랑스러운 사람들이며, 제가 무엇이든 부탁하면 해 줄 사람들입니다. [녹음 공백]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보면, 마음씨가 착합니다. 주님, 이들과 함께하는 한 인간으로서, 그리스도를 받아들여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버림받는다는 그 날카로운 말씀을 전하기가 어렵습니다.
아버지, 그 사실로 우리는 제가 이들을 향해 순수하고 신적인 사랑을 품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해치려는 마음이 아니라 영원토록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저는 심판 날에 이들을 대신하여 서 주실 주의 아들, 주 예수님을 이들에게 제시했습니다. 아버지,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받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손을 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마음이 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이곳에 주님과 가까이 걷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자신을 내어 드리고 싶어 합니다. 지금 바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주님, 저는 믿음으로 그것을 믿습니다. 그들이 지금 모든 작은 짐을 벗어 버리며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인생이 이토록 연약하고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니, 오늘 밤부터 제가 가진 모든 것을 주 예수님을 위해 쓰고 싶습니다.” 하나님, 오늘 밤부터 그들이 그렇게 걷게 하옵소서. 그리고 아버지, 바로 그 사람들이 이 앞으로 나와 오늘 저녁 성만찬, 곧 주 예수 그리스도의 찢기신 몸을 받게 하옵소서. 신실한 마음으로 그렇게 하면, 마지막 날에 그들을 일으키시고 영생을 주시겠다고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자애로우신 아버지, 이 일들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주의 아들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옵나이다. 아멘.
몇 분이나 헌신하셨는지 묻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중 많은 분이 그렇게 하셨다고 믿습니다. 저 자신도 마음속으로 그렇게 했습니다. “주님, 제게서 그 비판하는 영을 없애 주옵소서.” 저는 사람들 면전에서 비판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합니다. 길을 걷는 여자를 보고, 특히 그런 경우인데, 옷을 바르게 입지 않은 것을 보면 “참 끔찍하지 않은가?”라고 합니다. 마음속으로만 하지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는 않습니다. 결국 그것은 그 여자의 일입니다. 그 여자는 자유롭게 도덕적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할 권리는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그 여자의 생명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제가 비판할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저는 강단에서 제가 아는 한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하고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기겠습니다. 친구 여러분, 주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잠시 후에 성만찬 예배를 드리겠습니다. 성만찬을 믿으시는 분이 몇 분이나 됩니까? 감사합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행하라고 하신 일입니다. 그분의 찢기신 몸의 조각들을 취하고, 그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그렇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진리임을 믿으며 여기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잠시 우리와 교제하고 싶으신 분들은, 우리와 함께 머물러 이 시간을 나누어 주시면 기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시면 잠시 후에 예배를 마치겠습니다. 그래도 다른 분들과 함께 남아 계셔서 우리가 어떻게 성만찬을 나누는지 보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은 단지... 이것은 신유를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알고 계십니까? 이스라엘이 그 모형, 곧 어린양인 유월절 제물을 먹었을 때, 그들은 광야에서 사십 년을 여행하고 나왔지만 그들 가운데 허약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사십 년 동안 허약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성만찬은 믿는 자들의 표적입니다.
이제 교회를 위해 고린도전서 11장 23절부터 읽겠습니다. 바울의 말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해 준 그것은 내가 주께 받은 것이니... 주 예수님께서 배반당하신... 바로 그 밤에 빵을 집어 감사를 드리신 뒤에 그것을 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너희를 위해 찢긴 내 몸이니 나를 기억하여 이것을 행하라, 하시고 저녁 식사 뒤에 또한 그와 같은 방식으로... 잔을 집으시고 이르시되, 이것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상속 언약의 잔이니 너희가 그것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것을 행하라, 하셨느니라. 이는 너희가 이렇게 할 때마다,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너희가... 주의 죽으심을 그분께서 오실 때까지 보이기 때문이라. (놀랍지 않습니까?) ...그분께서 오실 때까지 그분의 죽으심을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이 빵과 이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가 있으리라.
“브래넘 형제님,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이런 뜻입니다. 와서 성만찬에 참여한 뒤 나가서 그리스도인이 살아야 할 삶과 다른 삶을 산다면, 여러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일에 비방과 수치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이라면 오십시오. 아니라면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 보십시오. 오히려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리한 뒤... 그 빵을 먹고... 그 잔을 마실지니 자, 29절입니다. 이는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가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며 자기가 받을 정죄를 먹고 마시기 때문이라. 이런 까닭으로 너희 가운데서 많은 자들이 병들고 약하며... 많은 자들이 잠들어 있도다.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을 판단하려 하면 판단을 받지 아니할 것이나 우리가 판단을 받았으면 주께 징계를 받았나니 이것은 우리가 세상과 함께 정죄를 받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 우리 자신을 살피며 “나는 합당하게 걷고 있는가?”라고 물읍시다. 저는 합당하게 걷지 못합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제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제가 합당하게 걷도록 하십니다. 저는 그분을 사랑합니다. 그분을 증언합니다. 저는 완전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결코 완전해지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도 완전하지 않습니다. 결코 완전해지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분을 사랑하며, 그분은 제가 그분을 위해 살게 하십니다. 저는 그렇게 살며 그분을 증언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나가서 방탕하게 놀거나 그분의 이름에 비방을 가져오는 악한 일을 하지 않습니다. 제가 무슨 잘못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주님께 징계를 받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하십니까? “우리가 세상과 함께 정죄를 받지 아니하게 하려 하심이라.”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별하십니다. 기억하십시오. 이집트에 있던 믿는 자들은 모두 안에 있었습니다. 무엇 아래 있었습니까? 피 아래 있었습니다. 어린양이 죽임당했습니다. 그 피를 우슬초에 적셔 문에 뿌렸습니다. 어디에 뿌렸는지 보십시오. “문의 상인방에.” 그것은 문짝 곁에 있는 문설주입니다. “문의 상인방과 문기둥에.”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이 오셔서 죽임당하시기 수백 년 전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린양의 모형에서는 그 피를 상인방과 문에 뿌렸습니다. 그 피 아래로 들어온 모든 이스라엘 사람은 다시 밖으로 나가는 것이 금지되었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밖으로 나갈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피 아래 있었습니다. 행진하라는 명령, 앞으로 나아가라는 명령이 올 때까지 나갈 수 없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한 번, 곧 한 희생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히 구별된 자들을 영원토록 완전하게 하셨느니라. 한 번, 영원히.” 더 이상 되돌아가지 않습니다. 더 이상 이리로 가지 않고, 더 이상 저런 일을 하지 않습니다. 아, 신앙에서 물러나 잘못을 저지를 수는 있습니다. 그저 회개하고 계속 나아가십시오. 아시겠죠?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한번 사람을 성령으로 채우셔서 그의 혼을 거룩하게 하시면, 그 혼은 영원히 보호받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더 이상 밖으로 나가려는 욕망이 없습니다. “경배하는 자가 한 번 깨끗하게 되면 더 이상 죄를 의식하지 않기 때문이라.” 아니, “욕망이 없느니라.”가 옳은 번역입니다. “경배하는 자가 한 번 깨끗하게 되면!” 오, 제가 이 말씀을 깊이 새겨 드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경배하는 자”, 곧 믿는 자는 “한 번 깨끗하게 되면 다시는 죄를 향한 욕망이 전혀 없느니라.” 영원히 끝난 것입니다! “한 희생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을 영원토록 완전하게 하셨기 때문이라.” 세상은 죽은 것이 됩니다. 더 이상 세상을 마음에 두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애착은 위에 있는 것들에 놓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면서 여전히 세상적인 삶을 산다면 주님께 징계를 받습니다. 세상과 함께 정죄받지 않도록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함께 모일 때에...”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가 먹으려고 함께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 (보십시오.) 누구든지 시장하거든 그는 집에서 먹을지니 이것은 너희가 함께 모여 정죄에 이르지 않게 하려 함이라. 남은 일들은 내가 가서 질서 있게 세우리라.
여기 바울을 보십시오. 고린도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거기에 와서는 주님의 상에서 취하기까지 했습니다. 먹고 마시며 온갖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바울은 “함께 모일 때에 시장한 사람이 있으면 집에서 먹게 하라. 그러나 함께 모일 때에는 서로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서로 기다려 주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여기 이 형제는 성만찬에 참여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달려가서 그를 잡아 끌어내지 마십시오. 그를 인내로 대하십시오. 예배가 끝난 뒤 어느 저녁에 친절한 마음으로 그의 집을 찾아가 앉아서 말하십시오. “형제님, 제가 틀렸다면 용서해 주십시오. 그런데 며칠 전 여기 길에서 형제님이 술에 취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가 무슨 일을 했든 말입니다.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와 함께 계셨는데, 성만찬에 참여하고 계시는군요. 형제님, 저는 형제님을 사랑합니다. 우리 둘이 이 문제를 놓고 기도하며 바로잡읍시다.” 아시겠죠? 서로 기다려 주십시오. 서로를 섬기십시오. 다른 사람보다 큰 사람이 되려 하지 마십시오. 얼마나 작은 사람이 될 수 있는지 힘써 보십시오. 저는 “스스로 보기에 결코 큰 사람이 되지 말라.”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큰 사람이 되려면 하나님 보시기에 큰 사람이 되십시오. 스스로 보기에는 작은 사람이 되십시오. 자신을 낮추는 사람마다 하나님께서 높이실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을 높이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낮추실 것입니다. 아시겠죠? 작은 사람이 되십시오.
어떤 사람이 말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압니다. 하지만 그는 제 형제입니다. 저는 그의 종이 되고 싶습니다.” 아시겠죠? 서로의 종이 되십시오. 서로 얼마나 사랑해야 하느냐 하면, 오, 여러분이... 우리가 부르던 짧은 찬송이 있습니다. 지금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불렀지요.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우리 마음을 묶는 띠는 복되도다. 한마음으로 나누는 교제는 저 위에서 나누는 교제와 같도다. 우리가 서로 헤어질 때 마음속에 아픔이 있지만, 마음으로는 여전히 하나 되어 다시 만나기를 소망하리라.
제가 저 산탄젤로 지하묘지에 서서 보니, 땅 밑으로 거의 일 마일이나 쭉 이어져 있었습니다. 죽은 이들을 묻어야 했던 무덤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모퉁이에는 아주 작은 무덤들이 있었는데, 아이들의 무덤이었습니다. 아이들은 모퉁이에 묻었습니다. 거기 아래에는 작은 교회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거기에 숨어 있어야 했습니다. 저는 그들이 사람들을 기둥에 묶어 불태우고 사자들에게 먹이로 주었던 옛 로마 대성당에 내려갔습니다. 그곳 한가운데로 걸어 나가 섰습니다.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그때까지 그곳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사자들이 나오던 커다란 공간에는 흙이 무너져 내려 쌓이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마 사자 굴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곳, 그리스도인들이 죽었던 곳쯤으로 걸어갔습니다. 거기 서서 손을 들었습니다. “오 예수님, 저는 참으로 합당하지 못한 피조물입니다. 제 형제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여기서 사자의 입 등에 목숨을 내어 주며 자기 간증을 확증했다는 것을 생각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서 있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누군가 세워 놓은 낡고 험한 십자가가 저쪽에 서 있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찬송을 흥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멀리 언덕 위에 낡고 험한 십자가 서 있으니, 고난과 수치의 상징이라.” 오랜 세월에 걸쳐 사람들은 얼마나... 온 세상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순교한 이들의 피로 흠뻑 젖어 있습니다. 저는 ‘우리는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조그마한 선교 여행을 떠나며, 박해를 조금 받을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비웃음을 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람들이 마구 차고 다니는 축구공 같은 신세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저보다 앞선 사람들도 그렇게 발로 차였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일을 하고 이런저런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제게는 전해야 할 복음이 있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주님이 계십니다. 이루어야 할 목표가 있습니다. 길 끝에 이를 때 저는 여러분 모두와 함께 이렇게 말하며 이르고 싶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웠노라.” 언젠가 어느 밤에는 분명 제가 강단에 서 있을 때 얼굴이 창백해지고 입술이 닫힐 것입니다. 그러면 저는... 저는 늘 그렇게 강단 위로 쓰러져 영광의 본향으로 가고 싶었습니다. 언젠가는 마지막 설교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제단 앞으로 초청할 것입니다. 마지막 병자를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저는 손에 성경을 들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며 죽고 싶습니다.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끝마치십시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그것이 무엇이든 여러분의 삶에 그리스도께 어긋나는 것이 있다면 고백하고, 이제 이 앞으로 나와 주의 만찬에 참여합시다. 그리스도인의 믿음 안에서 우리 마음을 하나로 합하여, 주 예수님께 우리가 온 마음으로 그분을 사랑함을 알려 드립시다. 음악을 연주하는 동안 지금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테디, 부탁하네... 구역별로 나오는 것 같군요. 그렇지요, 형제님들? 이제 장로님들이 앞으로 나와서 이곳에 서서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어디서부터, 어느 쪽부터 시작합니까, 네빌 형제님? 이쪽입니까? [네빌 형제님이 대답한다.] 좋습니다. 여기 형제님들이 모두 한꺼번에 나오지 않아도 되도록 방식을 마련해 놓았습니다. 이제 나오셔서 우리와 함께 성만찬에 참여하십시오. 여러분이 우리와 함께 이 만찬을 드시면 기쁘겠습니다. [브래넘 형제님이 집례하는 가운데 성만찬의 빵과 포도주가 나누어진다. 녹음 공백.]
오늘 저녁 우리 모두 그리스도인이어서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우리가 방금 행한 이 일은 거의 이천 년 된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떠나시기 전에 이 일을 행하라고 하셨고, 다시 오실 때까지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실패할 수 없고 결코 실패할 수 없는 자신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확신을 주셨습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있나니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일으키리라.”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6장입니다. 세상의 거짓 종교들, 태양 숭배와 우상 숭배, 초자연적인 존재에 관한 그 모든 생각을 보고 나니, 이 말씀은 제게 참으로 큰 소망을 줍니다. 이 말씀이 얼마나 틀림없는지 보십시오! 그 말씀이 틀림없다는 것을 입증하신 분이 마지막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겠다는 이 신적 약속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오늘 이곳에 처음 오신 분들께 말씀드립니다. 우리가 방금 행한 것에 더하여 조금 더 할 일이 있습니다. 먼저 성경에서 읽어 드리겠습니다. 요한복음 13장 2절부터입니다. 저녁 식사가 끝날 무렵에, 마귀가...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속에 그분을 배반하여 넘겨주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넘겨주신 것과... 자기가 하나님으로부터 왔다가 하나님께로 갈 것을 아시고 저녁 식사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몸에 두르시며 그 뒤에 대야에 물을 부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몸에 두른 수건으로 닦기 시작하시니라. 그때에 그분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다가가시니... 베드로가 그분께 말하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기시나이까?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 하시니 베드로가 그분께 이르되, 절대로 주께서 내 발을 씻기지 못하시리이다, 하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응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겨 주지 아니하면 나와 함께할 몫이 네게 없느니라, 하시므로 시몬 베드로가 그분께 이르되, 주여, 내 발뿐만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옵소서, 하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이미 씻긴 자는 씻을 필요가 없고... 씻을... 발을 씻지 않는 것 외에는, 모든 곳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이는 그분께서 자기를 배반하여 넘길 자가 누구인지 아셨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그분께서 이르시기를, 너희가 다 깨끗하지는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이렇게 그분께서 그들의 발을 씻겨 주시고 옷을 입으신 뒤에... 다시 자리를 잡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너희가 나를 선생과 주라 부르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니라. 그런즉 너희 주와 선생인 내가 너희 발을 씻겨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겨 주어야만 하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고 내가 너희에게 본보기를 주었느니라. 너희가 이것들을 알고... 그것들을 행하면 행복하니라.
이 태버내클이 생긴 지 이십여 년 동안 세족을 늘 행하는 것이 이곳의 규례였습니다. 오순절 교회 이전에 침례교인들이 그것을 행했고, 오순절 교회도 초기에 받아들여 계속 행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녁 우리도 늘 하던 대로 이 규례를 지킵니다. 여기에 “기도실”이라고 부르는 방이 있습니다. 여자분들은 그곳으로 가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남겨 주신 이 위대한 규례를 지킵니다. 남자들은 이쪽 사무실, 집사실로 가서 세족을 행합니다. 오늘 저녁 우리와 함께한 낯선 분들, 아니, 낯선 분이 아니라 왕국의 동료 시민인 여러분께, 남자든 여자든 전에 이 일을 해 보지 않으셨다면, 우리와 함께 이 교제에 참여하시도록 부탁하며 초대합니다. 한 번도 해 보지 않으셨다면 오늘 저녁 우리와 함께 처음으로 교제해 주시면 기쁘겠습니다. 다만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 없거나, 곧 집으로 가야 할 일이 있거나 하시더라도, 오늘 저녁 이곳에 함께해 주셔서 기뻤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설교를 그렇게 끊어 가며 한 점 등에 대해서는 좀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저는 원래부터 설교를 잘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게다가 좀 갑작스럽게 하게 되니 제게는 어려웠습니다. 조금 지나면 주님께서 이런 면에서 저를 도와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서부에서 돌아온 뒤에... 주님께서 그곳에서 저를 충분히 쉬게 해 주셔서, 돌아온 다음 네빌 형제님과 제가 며칠 저녁 동안 여기서 말씀을 가르치는 좋은 옛 방식의 부흥 집회를 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저를 만난 어떤 분이 강에 내려가 침례받기를 원하셨습니다. 누구든 어디서든 기꺼이 침례를 드리겠습니다. 좋습니다.
여러분은 언제든 브래넘 태버내클에 오시면 환영받습니다. 우리는 어떤 교단에도 속하지 않습니다. 교단들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자신은 교단이 아닙니다. 그러니 언제든 환영합니다. 이곳에는 교인으로 가입하는 제도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서로 교제하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십니다. 다시 만날 때까지 하나님의 평안과 은혜가 여러분 한 분 한 분과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가운데서 질병을 없애 주시고, 오늘 저녁 무사하고 평안하게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며, 건강과 힘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수요일 저녁 여기서 다시 뵙기를 바랍니다.
그때까지 그분의 은혜가 여러분과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일어서 주시겠습니까? 그 뒤에... 이곳 목사님인 네빌 형제님이 기도로 마쳐 주시겠습니다. [네빌 형제님이 기도한다. 세족을 위해 각 방에서 예배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