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제가 이곳에 올 때면 조금 끼어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네빌 형제님이 워낙 따뜻이 맞아 주시거든요. “자, 브래넘 형제님, 강단에 올라오셔서 말씀을 전해 주십시오” 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저는 형제님의 말씀을 좀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오늘 저녁에 다시 오면 형제님의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미리 그렇게 말씀드려 두겠습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모두 몸과 마음이 평안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모습이 좋아 보이니 감사합니다.
밖은 날씨가 궂지만 이 타버내클 안은 따뜻하고 좋습니다. 우리가 모이는 이 자그마한 낡은 지붕과 네 벽, 주님을 경배할 수 있는 이 따뜻하고 좋은 장소가 있어 감사합니다. 다른 곳에 있는 경배 장소만큼 시설이 충분하지는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늘 찾아가는 것은 성령님의 임재입니다. 그분의 임재를 찾는 것이지요. 그것이 우리 혼에 와닿습니다. 방금 형제님이 말씀하신 대로 “오늘은 날씨가 궂고 길이 매우 미끄럽습니다.” 빌리와 저는 얼마 전에 미끄러운 길을 900마일이나 달려왔습니다. 시속 12마일이나 15마일쯤, 어느 때도 30마일을 넘지 못하고 그저 조금씩 움직였습니다. 버스들이 도랑에 빠져 있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때 운전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압니다.
오늘은 우리 몇 사람만 모였으니 앞으로 옮겨 앉고 싶으시면 잘 들리는 곳 어디든 앉으셔도 좋습니다. 어젯저녁에는 꽤 바빴습니다. 네빌 형제님께 전화를 드려서 방송 때 말씀하시도록... 오늘 아침에 와서 병자들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알려 드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돌아온 뒤로 아주, 아주 바빴기 때문에 연락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이제 시카고 집회를 위해 다시 떠날 준비를 하고 있고, 그다음에는 피닉스와 서부 해안으로 갑니다.
우리는 빙엄턴, 뉴욕주 빙엄턴에서 참 좋은 집회를 했습니다. 제가 그 이름을 잘 발음하지 못합니다. B-i-n-g-h-a-m-t-o-n입니다. 빙엄턴이지요. 예. 저는 자꾸 빙햄턴이라고 발음하게 됩니다. B-i-n-g, h-a-m, t-o-n, 그러니까 빙햄턴 말입니다. 하지만 그곳 사람들은 그냥 빙엄턴이라고 합니다. 조니 형제님, 맞습니다. [“제 가족이 바로 그 근처에 삽니다.”] 아, 그러세요? 참 좋군요. 우리는 그곳 엔디콧 강당에 있었습니다. 존슨시티에 있는 그곳을 아시지요. 그곳에서 정말 놀라운 집회가 있었습니다. 아무 준비도 없이 갑자기 들어갔는데도 말입니다. 어느 날 그분들이 제게 전화를 했습니다. 가야 할 곳이 그렇게 많은데도 성령께서 “그곳으로 올라가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가 보니 그 이유를 알겠더군요. 가톨릭 신자가 많이 섞여 있는 무리였는데, 그 집회는 그분들에게 눈을 크게 열어 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엿새, 이레 밤 정도 지냈을 뿐인데도 그분들은 몹시 주리고 목말라했습니다. 집회를 마련하거나 천막을 치고 저더러 다시 와 달라고 합니다. 어떤 마음인지 아시겠지요. 그래서 제가 가든지, 아니면 그곳에서 함께 집회하기를 원하는 빌러 형제님이나 다른 형제들 가운데 한 사람을 보내겠다고 했습니다.
물론 인도하심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제 마음은 언제나 여전히 해외를 향해 타오릅니다. 어떻게든 오늘 아침 예배가 끝나고 나면 아프리카나 인도, 그런 곳으로 떠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 나라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필요가 있는지, 또 그들이 얼마나 다정하며 복음을 받기를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지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우리처럼 사소한 차이를 두고 다투는 일이 없습니다. 그들은 그저 주 예수님에 관한 말씀을 듣고 싶어 합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그처럼 단순하게 받아들이니 그들은 그저... 그 말씀을 참 좋아합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든 주님에 관한 것이라면 당장 알고 싶어 합니다. 물론 이곳 미국에서는 서로 생각이 다르고, 소위 “꼬투리를 잡아 따지는” 일이 있습니다. 그런 식이지요.
그런데 목사님 몇 분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어떤 형제님이 쓴 책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그 책에서 저를 좀 호되게 비판했더군요. 괜찮습니다. 저는 그 형제님을 모르고, 그 형제님도 저를 모릅니다. 괜찮습니다. 아마 좋은 형제님인데 그저 오해하신 것일 겁니다. 사람이 어떻게... 쉽게 그럴 수 있지요. 조금 오해한 것입니다. 우리는 신유와 병자를 위한 기도를 믿습니다. 아마 그 형제님도 믿으시겠지만, 그저... 아시다시피 그런 작은 오해가 생기곤 합니다. 저는 그 귀한 형제님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제가 그분과 이야기하고 그분도 저와 이야기한다면 아마 서로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 상관 없습니다.
자, 이제 오늘 아침에는 복음서에서, 말씀을 조금 펴서 읽어 보겠습니다. 말씀을 좋아하시지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지난 넉 달이나 다섯 달 동안 10장을 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 생각했습니다. ‘오늘 아침 네빌 형제님이 나더러 말씀을 좀 하라고 하시면 어떡하지? 어디까지 했더라? 10장인가?’ 찾아보니 몇 달에 걸쳐 10장을 마쳤더군요. 그래서 “그러면 11장에서 시작해야겠다” 했습니다. 그런데 들여다보니 제가 참 좋아하는 장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아니야, 여기서 시작하면 안 되겠어. 한 사람마다 2년씩 걸릴 테니까” 했습니다. 거기 나오는 믿음의 영웅들 한 사람 한 사람 말입니다. 11장을 제대로 설명하려면 창조의 시작으로 돌아가서 거기서부터 내려와야 합니다. 그것만 해도 두세 주는 걸리겠지요. 그다음 에녹으로 넘어가 그가 어떻게 주님과 동행했는지 보려면, 그 두 절을 다루는 데도 여러 주가 걸릴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노아가 나오고, 그다음에는 아브라함, 그렇게 계속됩니다. 아, 아브라함에 한번 들어가면 그저... 얼마나 오래 머물지 알 수 없습니다. 이쪽저쪽으로, 이쪽저쪽으로 샅샅이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주제는 언젠가 부흥회를 하며 연속으로 다루면서 11장을 계속 이어 가야겠습니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넘어가서 1장을 시작했었지. 그것도 꽤 좋겠는데.’ 저는 히브리서의 가르침을 좋아합니다. 깊고 풍성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그것을 좋아하리라 믿습니다. 그러니 오늘 아침에는 괜찮으시면 7장을 조금 읽으면 어떨까 합니다. 그곳을 펴 보십시오. 먼저 우리가 나눌 말씀의 바탕을 조금 살펴보겠습니다. 6장의 일부, 몇 절에서 시작하겠습니다. 그것이 서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살렘의 왕 멜기세덱이라는 큰 주제, 그분이 누구셨으며 그리스도와 어떤 관계셨는가 하는 내용입니다. 그분에게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으며, 날들의 시작도 생명의 끝도 없었습니다. 그분은 시작이 없으셨습니다. 시작하신 적도 없고 끝나실 일도 없습니다. 아버지나 어머니도, 후손도 없었습니다. 그분은 살렘의 왕이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만났던 이분이 누구셨을까요... 그가 만났던 한 분 말입니다. 잠시 앞부분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책장을 펼쳐 놓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열어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한 분, 주 예수님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늘에도 땅에도 땅 아래에도 그 책을 펴거나 그 봉인들을 풀 수 있는 이도, 그럴 자격이 있는 이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오셔서 그 오른손, 하나님의 손에서 책을 받으셨고, 책을 받아 봉인들을 푸시고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셨습니다. 그것을 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한 분뿐입니다. 그러니 그분만이 하실 수 있다면... 제 생각은 어쩌면 백만 마일이나 빗나갈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도 멀리 빗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아침에는 그분의 생각이 우리의 생각이 되게 해 주시리라 믿겠습니다. 그렇지요? 그러면 우리도 최선을 다해서... 저도 제가 아는 한 최선을 다해 설명하겠습니다.
저는 이것을 미리 공부하지 않았습니다. 정말로 그저 이곳에 와서 말씀을 펼쳤습니다. 예전에는 이런 공부를 하러 올 때 다음 주에 다룰 내용을 한 주 동안 미리 묵상하며 연속으로 이어 갔습니다. 성경 이곳저곳에서 찾은 구절들, 제가 찾을 수 있는 세세한 것들을 모두 적어 두었습니다... 한 주 동안 방에 들어가 앉아서 말씀을 공부하고 묵상했습니다. 성령께서 무언가 주시면 적어 놓았습니다. 다시 앉아 생각하다가, 그분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든 적었습니다. 그런 다음 일요일에 이곳에 와서 종이들을 사방에 펼쳐 놓았습니다. 여러분도 내용을 따라가며 받아 적으려면 공책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성경 구절들을 받아 가면 한 주 동안 그것을 공부하고 서로 연결해 보았습니다. 참으로... 본문도 훌륭하지만, 그 본문을 더욱 크게 드러내 주는 것은 앞뒤 문맥입니다. 본문의 문맥이지요. 그래서 오늘은 그저 와서 어디서든 잠시 말씀을 나누고, 주님께서 도와주시리라 믿겠습니다.
이제 머리를 숙이겠습니다. 인자하신 하늘 아버지, 아버지께서 행하신 모든 일에 감사드립니다. 특히 주님,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질병과 고난이 우리 집 문에 이르지 않도록 지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것이 얼마나 기쁜지요. 이 겨울 아침 하나님의 집에 모여 아버지의 거룩함의 아름다움 가운데 아버지를 경배하는 특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지께서 친히 흘리신 피로 우리를 씻으시고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창조물로 만드셔서, 흠도 없고 책망할 것도 없는 자로 하나님 앞에 세워 주셨음을 알기에 아버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릅니다.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고 그분과 같은 몸을 갖게 될 때를 기다립니다. 아, 우리는 그 시간을 사모합니다. 오늘 이렇게 모여 뉴욕까지 무사히 다녀오게 해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이곳에 있는 교회와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일들, 우리가 감사드려야 할 그 큰 복이 수천 가지나 됩니다. 아버지께서는 그 모든 것을 아십니다. 우리가 머리 숙여 아버지께 찬양을 드립니다.
아버지, 오늘 아침 이 말씀을 사용해 주십시오. 지금 복을 내려 주십시오. 교회에 복을 주시고 목사님에게 복을 주십시오. 하나님, 그와 함께하시며, 오 하나님, 그가 수천 사람에게 복이 되게 해 주십시오. 교회의 집사들, 재산 관리 위원들, 교인들, 평신도들, 모두와 함께해 주십시오, 아버지. 저기 어린아이들과 함께 있는 주일학교 교사들과 함께해 주십시오. 오늘 아침 그 어린 마음들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뜨거워지게 해 주십시오. 이곳 교회에 있는 우리도 그와 같이 도와주십시오. 돌아갈 때에는 엠마오에서 돌아왔던 사람들처럼 “그분께서 길에서 우리와 말씀하실 때에 우리 마음이 우리 속에서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말하게 해 주십시오. 그분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자, 히브리서에서... 제가 이 불빛 아래서 눈을 자꾸 가늘게 뜹니다. 이제는 소년이 아니니까요. 늙어 가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눈밭에 반사되는 빛 때문에 색안경을 맞추려고 했습니다. 아프리카로 여행을 가려고...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메인주로... 아니, 캐나다로 사냥하러 가려고 했습니다. 눈에 햇빛이 반사되기 때문에 안경을 써야 합니다. 해가 나오면 눈이 부셔서 볼 수가 없거든요. 눈이 아주 아파져서 고개를 숙여야 합니다. 이렇게 아래를 내려다보며 걸으려 해도 아픕니다. 그런데 어떤 종류든 선글라스를 쓸 때마다 속이 너무 메스꺼워 고개도 들기 어려웠습니다. 언제나 그랬습니다. 그래서 어데어 의사 선생님에게 전화해서 “어떤 색을 써야 할까요? 초록색, 파란색, 검은색을 다 써 봤습니다” 했습니다. 그분이 “빌리, 안경 문제가 아니라 자네 눈 문제야. 마흔이 넘었지?” 하셨습니다. 저는 “예” 했습니다. “이보게, 그 늙은 눈이 나빠지는 거야.” “아닙니다. 제 눈은 좋습니다.” “어허!” 저는 “아, 그럼요. 잘 볼 수 있습니다” 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강 건너 어느 전문의에게 가서 눈 검사를 받게 하셨습니다. 저는 그것이 주님의 뜻임을 알았습니다. 그 의사는 잘 알려진 그리스도인이었고, 제가 다시 아프리카에 갈 때 함께 가고 싶어 했기 때문입니다. 루이빌의 큰 헤이번 빌딩에 있는, 그 도시에서 가장 훌륭한 안과 의사 가운데 한 분이었습니다. 그분이 제 눈을 검사했는데, 제 눈이... 그분은 저를 작은 방으로 데려가 불을 조절해 어둡게 하시고, 눈이 그 어둠에 맞춰 확대될 때까지 잠시 앉아 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작은 기구를 켜시더니 “20/20입니다” 하셨습니다. 저는 양쪽 눈으로 각각 읽을 수 있었습니다. 다시 켜시고 “15/15입니다” 하셨습니다. 양쪽 눈으로 읽을 수 있었습니다. 또 켜시고 “10/10입니다” 하셨는데, 역시 양쪽 눈으로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 이상 검사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어느 거리든 읽을 수 있었지요. 그러더니 그분이... 그다음에는 이렇게 작은 기구에 놓고 작은 카드를 가져다가 제 쪽으로 점점 가까이 가져오셨습니다. 바로 여기까지 오자 저는 “죄송합니다” 했습니다. 그분이 “마흔이 넘으셨지요?” 했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눈은 좋습니다. 하지만 남자든 누구든 마흔이 넘으면 머리가 희어지듯이 실제로 안구가 납작해집니다. 자연스러운 현상이지요. 납작해지면 이렇게 필요한 만큼 확대되지 않습니다. 가까이 있는 것을 볼 때 안구가 납작해져 잘 확대되지 않으니 볼 수 없는 겁니다. 조만간 가까운 것을 보실 때는 안경 하나를 마련해서 쓰고 읽으셔야 할 겁니다.” 저는 “아이고, 선생님!” 했습니다. 이렇게 저한테서 멀리 떼어 놓으면 완벽하게 보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가까이 가져오면 안 보입니다. 그래서 조금 뒤로 물려야 합니다. 그 이야기를 네빌 형제님에게 했더니 형제님이 “그렇지요. 그런데 조금 있으면 계속 더 멀리, 더 멀리 내밀다가 팔이 짧아서 닿지도 않게 됩니다” 하셨습니다. 그래도 눈이 좋아서 감사합니다. 멀리 있는 것은, 아, 저기 벤치에 놓인 머리카락도 거의 보일 정도입니다. 그런 쪽으로는 아주 좋습니다. 그저 나이가 드는 것이지요. 그뿐입니다.
그러니 이곳에서는 늙어 가지만 저곳에서는 젊어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좋은 점입니다. 어느 영광스러운 날 주 예수님께서 오시면, 우리는 가장 좋았을 때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가 영원히 살 것입니다. 다만 죽음이 들어와 이런 일을 한 것입니다. 죽음이 들어와 여러분의 머리에 흰머리를 심었습니다. 죽음이 들어와 여러분의 얼굴에 주름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죽음은 여러분을 데려갈 수 있을 뿐입니다. 그뿐입니다. 그러고 나서 회복될 때에는 죽음이 여러분에게 손대기 전 가장 좋았던 모습, 스물한 살이나 스물두 살 무렵의 모습, 바로 그 모습으로 부활할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성경으로 증명할 수 있습니다. 무슨 일이 오든 가든 아무 상관 없이 우리가 다시 새롭게 돌아온다는 것을 아니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우리는 히브리서를 바울이 썼다고 믿습니다. 그가 썼음을 보여 주는 기록은 없지만, 글이 바울의 문체와 같기 때문에 바울이 히브리서를 썼다고 믿습니다. 신학자들도 대부분 바울의 글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누가 썼든, 어느 기록자가 썼든, 이것은 분명 걸작이며 영감으로 기록되었고 성경의 나머지 부분과 이어집니다. 이 책은 모든 그림자를 끌어옵니다. 저는 교육을 받지 못하고 글에 서투르기 때문에, 제가 말씀의 진리를 제대로 붙들었는지 알기 위해 일종의 모형 연구자가 되어야 합니다. 언제나 구약을 돌아보기 때문입니다.
이곳에 앉아 계신 분들 가운데 서너 분은 이 교회가 생겼을 때부터, 제가 처음 안수받았을 때부터 계셨습니다. 아마 20여 년이 되었을 겁니다. 그동안 저는 줄곧 모형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제가 태양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더라도, 달이 하늘에서 빛나며 땅에 빛을 비추는 것을 보았다면 태양이 빛나기 시작할 때 어떤 모습일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달을 보았으니까요. 달은 태양을 반사합니다. 구약에서 율법 아래 있던 옛것들은 모두 복음 안에 있는 것들의 모형, 곧 반영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니 구약을 알면 신약이 어떤 것인지 상당히 잘 알 수 있습니다. 바울도 여기 히브리서에서 바로 그 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구약이 모형으로 보여 주었던 것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것입니다. 신약은 그 실체입니다. 모두 그것을 믿으시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제가 신유를 그렇게 강하게 믿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구약 시대에도 신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훨씬 더 좋은 것이 있습니다. 구약의 그 작은 것 아래서도 신유가 나타났고, 신약은 그보다 훨씬 더 크고 훨씬 더 좋은 것이라면, 신약의 신유는 어떠하겠습니까? 아, 훨씬 더 풍성합니다. 바울이 여기 히브리서에서 말하듯 신약에는 “더 좋은 것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이 이루어 낸 것도... 아, 좋았습니다. 가령 제가 밤에 여기 나와서 무언가를 하려고, 책을 읽거나 야외 예배를 드리거나 어디론가 여행하려고 하는데 달빛이 비치고 있다면 참 좋습니다. 감사하지요. 그러나 달이 그만큼 할 수 있다면 태양은 얼마나 더 하겠습니까? 태양은 강합니다. 달빛을 그저 사라지게 해 버립니다. 그뿐입니다. 더 이상 달빛이 없는 것이지요. 잘 보시면 해가 뜰 때 달이 빛나지 않는 것은 달과 해가 함께 합쳐지기 때문입니다. 달과 해는 하나입니다. 아셨습니까? 달은 공중에 매달려 있는 물체일 뿐입니다. 해가 그것에 빛을 비추고, 달은 그 빛을 땅으로 반사합니다. 해가 달을 통해... 달에 빛을 비추면 달이 반사하는 것입니다. 해가 이쪽으로 돌아가 있으면 저쪽 달에 빛을 비추고, 달은 그 빛을 땅으로 되비춥니다. 달리 말하면 해와 달은 남편과 아내입니다. 또는 해와 달은 예수님과 교회입니다. 예수님께서 떠나 계시는 동안 교회를 통해 그분의 빛을 비추십니다. 그러니 달이 빛을 비춘다면 해는 얼마나 더 하겠습니까? 율법이 빛을 주었고 율법이 치유를 주었다면, 복음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 권능이 넘칠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언제 그...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를 지나 여행하던 중에 하나님과 모세를 조롱하고 비난하기 시작했고, 죄를 지었습니다. 뱀들이 들어와 그들을 쏘고 물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죽어 가는데 어떤 치료법도 듣지 않았습니다. 수천 명씩 죽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모형을 만드셨습니다. 모세에게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달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모형이었습니다. 그렇지요?) 그 뱀 말입니다. 복음 안에서 아직 어린 분들은 ‘왜 뱀이 그리스도를 나타낼까?’ 하고 궁금해하실지 모릅니다. 뱀, 곧 그 뱀 자체가 이미 심판받은 죄를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에서 뱀을 심판하셨습니다. 거기서 그에게 심판을 내리셨습니다. 다리를 없애시고 사람의 형상에서 끌어내려 어떤 수준으로... 자, 그것은 원래... 보십시오, 뱀은 처음부터 파충류가 아니었습니다. 성경은 “그는 짐승이었고 들의 모든 짐승 중에서 가장 간교했다”고 했습니다. 사람처럼 걸었고, 모든 면에서 “가장 간교했습니다.” 그러나 저주가 그에게 내려 그의 간교함, 곧 아름다움을 앗아 갔고, 그를 땅에 던져 배로 기어 다니게 했습니다.
장대 위의 뱀은 이미 심판받은 죄를 나타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놋으로 만들었습니다. 놋은 하나님의 심판을 나타냅니다. 땅의 심판이나 사람의 생각에 따른 심판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놋 제단, 희생물을 태우던 그 제단은 놋으로 만들었습니다. “놋 제단”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속했다는 뜻입니다. 그 놋에서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대가가 치러졌습니다. 예를 들어 엘리야가 나갔을 때 “하늘이 꼭 놋과 같았다”고 했습니다. 아합의 시대에 백성이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그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 것입니다. 게하시가 올라가 하늘이 어떤지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내려와서 “놋과 같습니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요한계시록 1장에서 예수님이 보이셨습니다... 아니,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가 그분을 보았습니다. 일곱 금 촛대 가운데 서 계셨고 발은 놋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 놋은 교회를 통해 세상에 임하는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지요.
그 뱀, 그 놋이 그것을 말해 줍니다. 자, 보십시오. 그것을 들어 올렸고, 장대 위에 있는 모습은 십자가를 나타냈습니다. 세 가지입니다. 잘 보십시오. 무엇 때문에 들어 올렸습니까? 그들의 뱀을 용서받도록... 아니, 그들의 죄를 용서받고 뱀에 물린 것을 치유받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바라본 사람은 누구나 살았고, 바라보기를 거절한 사람은 죽었습니다. 자, 어떤 식으로든 죄를 다루면서... 신유를 다루지 않고서는 어떤 식으로도 죄를 다룰 수 없습니다. 그럴 수가 없습니다. 신유 없이 복음을 전할 길은 없습니다.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여기를 보십시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여기 서서 주먹으로 저를 힘껏 때리고 있다고 합시다. 그 사람이 주먹으로 저를 때리지 못하게 하려고 팔을 잘라 낼 필요는 없습니다. 아니면 발로 저를 차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발을 잘라 낼 필요도 없습니다. 해야 할 일은 머리부터 그 사람을 죽이는 것뿐입니다. 그렇지요? 머리를 죽이면 팔도 죽이고 발도 죽이고 몸의 나머지 부분도 모두 죽이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머리에서부터 죽이면 말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아침 우리가 여기 있게 된 이 모든 원인의 머리는 무엇입니까? 모든 것의 근원은 무엇입니까? 이 모든 질병과 죄와 수치를 만들어 낸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죄였습니다. 죄가 있기 전에는... 질병은 죄의 속성, 곧 죄를 따라오는 것입니다. 만일 아무... 달리 말하면 죄에서 나온 것입니다. 죄가 있기 전에는 질병도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걱정도 없고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늙는 일도, 몸이 쇠하는 일도, 마음의 아픔도, 깨어진 가정도,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완전했습니다. 그것을 일으킨 것이 죄, 바로 s-i-n, 죄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질병이 죄를 따라왔습니다. 깨어진 가정, 그 속성들, 부도덕한 생활, 그런 모든 것이 죄를 따라왔습니다. 그러니 죄를 죽이면 그 속성들도 죽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손댈 수가... 이것을 건드리지 않고는 죄를 건드릴 수 없습니다. 또 이것을 건드리면 죄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니 죄를 죽이면 모든 것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질병에 관해서, 때로 병에 걸리면 “내가 죄를 지었나?” 하고 말합니다. 여러분 자신이 죄를 지어서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질병은 찾아옵니다... 부모의 불법이 자녀와 손자와 그 자녀에게 삼사 대까지 이릅니다. 그저 사람의 몸이 점점 쇠하고 닳아 가며 죄가 쌓이는 것입니다. 성병 같은 것이 그렇게 아래 세대로 이어집니다.
얼마 전 이곳의 유명한 의사가 두 소녀를 진찰했습니다. 두 아이는 시력을 잃어 가고 있었습니다. 검사해 보니 성병이었습니다. 이 도시에서 살던, 더없이 깨끗하고 도덕적인 어린 아가씨들이었는데 둘 다 눈이 멀어 가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안경을 맞춰 주었지만 시력은 계속 더 나빠졌습니다. 혈액 검사를 해 보니 병이 드러났습니다. 거슬러 올라가 확인해 보니 증조할아버지에게서 온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보십시오, 여러 세대를 거쳐 내려옵니다. 몸을 쇠하게 합니다. 그러니 죄를 다룰 때에는 동시에 질병도 다루는 것입니다.
모세는 그 뱀을 들어 올렸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3장에서 “모세가 광야에서 놋뱀을 든 것같이 그렇게 사람의 아들도 반드시 들려야 하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지요? 달리 말해 그것은 태양에 대한 달과 같았습니다. 앞으로 올 것의 그림자였습니다. 그렇다면 놋뱀을 들어 올리는 데 신유가 있었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들어 올리는 데도 신유가 있어야 합니다. 놋뱀은 하나님의 심판, 곧 하나님의 거룩한 심판으로 죄가 이미 심판받은 가운데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반영한 것뿐이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그분을 심판하고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거룩한 심판은 죄 없는 한 분을 죄가 되게 하여, 아멘, 바로 거기서 그 죄를 심판했습니다. 그분이 우리가 받을 하나님의 심판을 짊어지셨고 제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여러분의 죄와 죄책, 지옥행 표와 고통의 처소로 가는 표를 가져가셨습니다. 그것을 친히 짊어지시고 우리 대신 죽으셨으며, 저를 대신해 지옥으로 보내지셨습니다. 아멘.
하나님은 그분을 거기 그대로 두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를 의롭게 하시려고 사흘째 되는 날 그분을 일으키셨습니다. 그곳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님을 일으키셨으므로, 제가 의롭게 되었다는 사실을 확실히 증명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저도 그분과 함께 부활하여 하늘의 처소들에 앉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으로 확정되었습니다. 의롭게 하셨습니다. 우리를 의롭게 하시려고 살아나셨습니다. “살아서 나를 사랑하셨고, 죽어서 나를 구원하셨네. 묻혀서 내 죄를 멀리 지고 가셨고, 일어나 값없이 영원토록 나를 의롭게 하셨네. 어느 날 다시 오시리, 오 영광스러운 날!” 바로 그것입니다. 바로 그것이지요. 거기에 “내 소망은 오직 예수님의 피와 의 위에 세워졌네. 내 혼을 둘러싼 모든 것이 무너질 때, 그분이 나의 모든 소망과 의지가 되시네. 굳건한 반석 그리스도 위에 내가 서리. 다른 모든 땅은 가라앉는 모래, 다른 모든 땅은 가라앉는 모래라.”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거기,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아, 제가 그것을 생각하고, 그곳을 생각하면! 예수님이 말씀하셨듯 “모세가 뱀을 든 것같이”, 같은 목적, 같은 일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그렇게 사람의 아들도 반드시 들려야 하리라.”
“그는 우리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고 우리 불법들로 인해 상하였도다. 그가 징벌을 받음으로 우리가 화평을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길을 잃었고,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불법을 그에게 지우셨도다.” 바로 그것입니다. 아! 저는 그 옛 성경 시대를 생각합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환상 가운데 앞날을 바라보며, 그분이 예루살렘을 지나 갈보리로 가셔서 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지고 가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거기서 그는 “그는 우리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셨다”고 했습니다. 이사야가 어느 날 그 모습을 잠깐 보고 말했습니다. “그는 우리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고 우리 불법들로 인해 상하였도다. 그가 징벌을 받음으로 우리가 화평을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도다.”
그들이 그곳을 바라보며 무덤으로 들어갔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다윗이 이렇게 말한 것도 당연합니다. “내 육체도 소망 중에 안식하리라. 그분께서 자신의 거룩한 자가 썩음을 보지 아니하게 하시고, 또 그분께서... 그분의 혼이 지옥에 있게 하지 아니하시며 자신의 거룩한 자가 썩음을 보지 아니하게 하시리라.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고 내 혀가 즐거워하였도다.” 다윗은 그림자 가운데 그것을 미리 보고 기뻐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시면 영원부터 영원까지 모든 것이 확정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멘. 그때 모든 것이 끝나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치유가 있는 때가 오리라고 말했습니다. 치유를 말하느냐고요? “그는 우리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셨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도다”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성경에서 빼내겠습니까? 형제님,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헐뜯고 맞서 싸우고 온갖 일을 할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그것은 계속 나아갈 것입니다. 끝없는 세월, 아득한 시대들을 지나서도 여전히 계속될 것입니다.
바울은 여기서 참 놀라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6장 앞부분으로 돌아가 조금 살펴봅시다. 여기 12절이나 13절쯤에서 시작하겠습니다. 이제 성령께서 내려와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 위에 머무시니, 그 바탕을 조금 살펴보겠습니다. 6장에서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다루고 있습니다. 지난번에 그것을 전부 살펴보았습니다. 6장을 시작했다가 「용서받을 수 없는 죄」로 들어갔지요. 이제 용서받을 수 없는 죄가 무엇인지 아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그렇습니다. 복음의 진리를 거절하는 것입니다. 맞습니까? “진리에 관한 지식을 받은 뒤에 고의로 죄를 짓는 자에게는 다시는 죄로 인한 희생물이 남아 있지 아니하니라.” 성경은 복음이 여러분 앞에 명백히 제시되고 여러분도 그것을 보았는데, 남들과 달라지고 싶거나 이 무리의 의견에 동조하고 싶어서 고의로 돌아선다면 성령을 모독한 것이며 이 세상에서도 오는 세상에서도 결코 용서받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았습니다. 그런데도 말했습니다... 그분이 누구신지 알았습니다. 니고데모가 그것을 표현했습니다. 그는 “물론입니다. 우리는 당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알고 있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는 “그들이 ‘그에게 마귀가 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이 거기 서서 앞일을 알려 주시고, 회중을 바라보며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생각 속에 무엇이 있는지 말씀하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병자들을 치유하실 수도 있었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시면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아, 그건 마귀야”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잠깐 기다려라. 지금은 너희가 나를 거슬러 말하므로 그것을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이 오면 그런 말을 하지 말아라. 기억하라. 성령이 너희 마음속에서 경고하실 것이다. 지금은 그렇게 할 수가 없다. 내가 둘러싸여 있는 이 혈구가 아직 깨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날 창이 이 옆구리를 열면 혈구가 드러날 것이다. 그러면 내 생명이 흘러나와 아버지께로 들어갔다가 신성과 권능의 모습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때 혈구가 거기에 있을 것이며, 성령이 어디에서나 모든 사람의 마음을 다루실 것이다. 그때 너희 앞에 제시된 진리를 고의로 거절한다면, 이 세상에서도 오는 세상에서도 결코 용서받지 못한다.” 보십시오, 조심히 걸어야 합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누구든지 진리에 관한 지식을 받은 뒤에 고의로 죄를 짓거나 믿지 아니하면 다시는 죄로 인한 희생물이 남아 있지 아니하고, 대적을 삼킬 심판과 불같은 격노에 대하여 두렵게 기다리는 일만 남아 있느니라. 모세의 율법 아래서 그림자를 멸시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인해 긍휼을 얻지 못하고 죽었거든, 당연히 받을 것으로 생각되는 형벌은 얼마나 더 극심하겠느냐.” 설교자든 누구든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발로 밟고 자기를 거룩히 구별한 그 언약을”, 기억하십시오, 거룩히 구별된 사람입니다, “거룩하지 않은 것으로 여기며 은혜의 역사에 무례히 행한 자 말이니라.” 보십시오, 그에게는 불같은 격노밖에 남지 않았고, 그것이 대적을 삼킬 것입니다. 복음의 진리를 보고도 그저 인기를 얻으려고, 자기 교회에 다니려고, 또는 자기 뜻대로 하려고 그것을 짓밟고 넘어간다면, 형제님, 그때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을 한 것입니다. 이것은 제 말이 아닙니다. 저도 다르게 만들고 싶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그것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시고, 그분이 그 문제를 다루십니다.
이제 여기 13절에서 시작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자에게... 아니,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을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을 때에 더 큰 이를 두고 맹세할 수 없었으므로 자신을 두고 맹세하여,” 우리가 어떤 언약 아래서 살고 있는지 상상할 수 있습니까? 이제 모든... 조금 더 읽어 봅시다.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네게 복을 주고 복을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 이런 식으로 그가...”
아브라함에게 이 약속을 주시고, 그가 무엇을 하든 그에게 복을 주고 번성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보십시오. 하나님은 그 후에 그것을 두고 맹세까지 하셨습니다. 반드시 그렇게 하시겠다고 맹세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하신 그 맹세를 확증하시겠다고 자신을 두고 맹세하셨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무엇을 확증하셨습니까?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조건 없이 그에게 언약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브라함이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몇 주 전에 그것을 살펴보았지요. 하나님께서 친히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세상의 창건 전에 그를 선택하셨기 때문에 언약을 주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 땅에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은 그에 관해 모두 아셨습니다. 그가 무엇을 할지 아셨습니다. 은혜로 아브라함을 택하셨고, 아브라함뿐 아니라 그를 이을 아브라함의 씨도 택하셨습니다. 아! 우리에게 얼마나 굳건한 기초가 있습니까! 모든 통치자의 통치자, 모든 신의 하나님, 모든 왕의 왕, 모든 주의 주, 모든 시작의 시작이신 그분께서 친히 자신을 두고 맹세하셨습니다. 더 큰 이가 없으시기에, 아브라함과 그의 씨에게 이 언약을 확증하시겠다고 자신을 두고 맹세하신 것입니다.
자, 아, 이것이 무언가를 뿌리째 뽑고, 끌어내고, 밀어내고, 제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똑바로 마주 보고 어떤 것인지 살펴봅시다. 필요하다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으로 돌아가 하나님께서 어떻게 자신을 두고 맹세하셨는지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두고 맹세하신 곳이 어디인지 아는 분이 있습니까? 창세기 22장을 펴 봅시다. 아마 16절쯤일 것입니다. 창세기 22장 16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자신을 두고 맹세하신 곳이 나옵니다. 좋습니다. 제가 틀리지 않았다면 바로 여기일 것입니다. 22장 16절입니다. 예, 보십시오. 15절입니다. “주의 천사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그를, 곧 아브라함을 불러, 이르되, 주께서 말씀하시느니라. 내가 나를 두고 이것을 맹세하였노라... 네가 이 일을 행하여 네 유일한 아들을 바치기를 마다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내가 네게 복을 주고 복을 주며 내가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니, 네 씨가 하늘의 별들같이, 바닷가에 있는 모래같이 되며 네 씨가 자기 원수들의 문을 소유하리라.”
하나님은 자신을 두고 그것을 맹세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이것을 듣고도 “할렐루야” 하고 외치고 싶지 않다면 여러분은 죽은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아,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네가 이 일을 행하였기 때문이다. 다른 누군가가 앞으로 무엇을 하느냐 때문이 아니라 네가 이 일을 행하였기 때문이다. 네가 믿음으로 걸었으니 내가 그것을 귀히 여긴다. 이제는 행위를 귀히 여기지 않을 것이다. 이것을 귀히 여기지 않을 것이다. 믿음을 귀히 여기겠다. 그리고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른 채 네가 이 일을 행하였으므로 내가 너를 구원하였다. 네 씨도 구원하겠다. 내가 나 자신을 두고 맹세하겠다.” 아멘. “네 씨가 자기 원수들의 문을 소유하리라.” 아멘. 제게는 그것으로 확정되었습니다. 그저... 더 필요한 것은 없습니다.
바울은 여기 히브리서에서 그것을 다시 끌어와 언급합니다. 갈라디아서와 에베소서, 그리고 곳곳에서 그것을 끌어와 우리의 기초가 굳건함을 말합니다. 아멘. 어떤 이교도의 미신 위에 세워 놓은 신화 같은 것이 아닙니다. 맹세로 주어진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입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자신을 두고 맹세하셨습니다. 아, 주의 성도들이여, 얼마나 굳건한 기초입니까! 그렇습니다. 마귀들이 오고, 힘들이 닥쳐오고, 질병이 오고, 죽음 자체가 여러분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볼 때에도 그것은 설 자리를 잃습니다. 복음의 빛 아래 내놓으면 햇볕 아래 눈처럼 녹아 버립니다.
보십시오, 여러분, 때로는... 사람들이 이런저런 온갖 글을 써서 사람들을 개신교회에서 가톨릭교회로 가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톨릭에서는 말씀이 영감으로 주어졌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믿습니다. 마가복음 16장도 영감으로 기록되었다고 믿습니다. 물론입니다. 영감으로 기록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마귀가 그 가운데서 역사하여 “교회가 말씀보다 위에 있다”고 말하게 했습니다. 반면 어떤 개신교인은 자기 생각과 맞지 않는 작은 것을 보면 “이것은 영감으로 된 것이 아니다. 이것은 말씀을 잘못 해석한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그저 무언가를 갖다 맞추어 자기만의 신학에 들어맞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것은 전혀 상관없는 일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저는 한 말씀 한 말씀을 다 믿습니다. 이것을 빼고 저것을 빼는 것은 제가 할 일이 아닙니다. 저는 그 기준에 맞게 살면 됩니다. 그뿐입니다... 아니, 그 요구에 맞게 말입니다. 제가 그에 맞게 살아야 한다면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맹세하시고 “누구든지 여기에 무엇을 더하거나 여기서 무엇을 빼면, 생명책에서 그의 부분도 그만큼 제하여지리라” 하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니 우리는 그것을 믿습니다. 우리의 기초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하고 확실하다면, 형제님, 아무것도 여러분을 흔들 수 없습니다. 닻을 내린 것입니다. 아멘. 아, 참으로! 좋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 이제 15절입니다. “이런 식으로 그가 끈기 있게 견딘 뒤에 그 약속하신 것을 얻었느니라.” 아, 우리가 7장까지 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가 끈기 있게 견딘 뒤에”, 아멘, “그 약속하신 것을 얻었느니라.” 오늘 아침 여러분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믿음을 굳게 세우고 “이것은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무슨 일이 오든 가든, 오늘은 편하고 내일은 힘들어도, 그다음 날 사람들이 놀리고 그다음 날 비웃으며 그다음 날 미쳤다고 해도, 저는 견딥니다. 아멘. “그 뒤에...” “견디기 전에”가 아니라 “견딘 뒤에 그 약속하신 것을 얻었느니라”입니다. 아멘. 아, 바로 그것입니다. 보이십니까? 형제님, 그것은 모든 마귀와 그 밖의 모든 것을 털어 버립니다. 보십시오, 보십시오. 바로 그것입니다. 사탄이 와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아, 내가 말해 주지. 자네는 그저 조금 흥분한 것뿐이야. 이 문제를 좀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게 어때?” “사탄아, 이것은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이다!” 하고 말하십시오. 아무리 힘들게 닥쳐와도, 어떻게 보여도, 누가 무슨 말을 해도 그렇습니다. “저는 인내하며... 하고 싶습니다.” 안달하지 마십시오. 늘 안달하면서 인내할 수는 없습니다. 그저 돛의 방향을 똑바로 잡고 계속 걸어가야 합니다. 무슨 일이 생기든 계속 나아가십시오.
들으십시오. 한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보십시오. 믿음은 스스로 의식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멘. 믿으십니까? 저는 여러 해 동안 세상을 다니며 온갖 처지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것을 배웠습니다. 믿음은 스스로 의식하지 않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기가 그것을 가졌다고 의식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폭풍 속에서 거센 바람이 배를 이쪽저쪽으로 몰아칠 때에도, 마귀 떼와 마주 서 계실 때에도, 어디에 매달려 계시든 흔들리지 않으셨습니다. 더없이 평온하고 고요하게 계속 걸어가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분은 두려움이나 주위의 어떤 것도 의식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일이 일어날까,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에 그 일이 일어날 것을 아셨습니다. “아, 내가 응답받을 때까지 충분히 기도했을까? 충분히 오래 금식했을까? 이것을 했을까?” 하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그런 것을 의식하지 않고 계속 걸어가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진리라고 믿으셨습니다. 말씀은 성취되어야 했고, 그분은 자신의 삶이 그 말씀을 성취하기 위한 것임을 아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도 그 말씀을 성취하기 위해 여기 있습니다. 두려움을 의식하지 말고 걸어가십시오. 비난을 의식하지 말고 걸어가십시오. 세상을 의식하지 말고 걸어가십시오. 그리스도 안에서 걸어가듯 그분과 함께 걸어가십시오. 오른쪽이나 왼쪽에 신경 쓰지 말고 그저 계속 나아가십시오. 교회에 무슨 일이 생겨도 하나님과 동행하십시오. 할렐루야! 질병이 덮쳐도 하나님과 동행하십시오. 이웃이 여러분을 좋아하지 않아도 하나님과 동행하십시오. 그저 계속 하나님과 동행하십시오. 어느 날 에녹이 그렇게 걸었습니다. 그가 어떻게 했는지 아십니까? 하나님과 함께 집까지 줄곧 걸어갔습니다. 길을 그렇게 멀리 올라가다 보니 더 이상 돌아오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멘. 하나님과 동행하십시오. 의사가 죽을 것이라고 해도 하나님과 동행하십시오. 예. 의사가 여러분은 할 수 없다고 해도... 자, 하나님과 동행하십시오. 그저 하나님과 동행하십시오. 그것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내가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고 너를 버리지 아니하리라. 내가 세상의 끝까지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하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주신 그 언약을 확증하시겠다고 맹세하셨습니다. 그러니 그저 하나님과 동행하십시오.
오르막도 내리막도 있을 것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가시덤불을 지나고, 날카로운 바위를 넘고, 벼랑을 지나고, 산비탈을 내려가고, 산을 오르고, 물을 건너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동행하십시오. 그렇습니다. “올라야 할 언덕이 그토록 많아도”, 그 옛 찬송을 들으셨지요, “길 끝에 이르면 그것들이 얼마나 작아 보일까.” 아, 아! 그저 거기를 보십시오. 지나온 모든 것을 말입니다. 뒤에 남은 발자국을 돌아보면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가... 견딘 뒤에 그 약속하신 것을 얻었느니라. 진실로 사람들은... 더 큰 자를 두고 맹세하나니 맹세는 확증되어... 확증을 위한 맹세는 그들에게 모든 다툼을 끝내는 것이니라.” 달리 말해 사람들이 맹세할 때, 여러분에게 와서 맹세하면 모든 다툼이 끝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믿으니까요. “이런 이유로 하나님께서도... 더욱 풍성히”, 아, 풍성히, “약속의 상속자들에게 자신의 계획이 불변함을 보여 주시려고”, 아, “그 일을 맹세로써 확증하셨나니,” 하나님은 자신의 계획을 통해 여러분에게 보여 주기를 원하셨습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두고 불안해하지 않도록 맹세로 확증하셨습니다. 자, 여기를 보십시오. “이것은 우리 앞에 놓인 소망을 붙잡기 위해 피난처로 도피한 우리가 하나님께서 거짓말하실 수 없던 두 개의 변경할 수 없는 것들로 말미암아 확고한 안위를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거짓말하시는 것은 절대 불가능합니다. 그것이 한 가지입니다. 그렇지요? 하나님께서 거짓말하시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거짓말하실 수 없습니다. 그다음은, 거짓말하실 수 없는 하나님께서 친히 그것을 완전하게, 이중으로 확실하게 하시려고 그것을 두고 맹세하셨다는 것입니다. 아멘. 그분이 이 맹세를 확증하시겠다고 말입니다. 아, 얼마나 놀라운...
그 맹세가 무엇인지 돌아가서 볼까요? 잠깐만, 잠깐만 보겠습니다. 며칠 전 창세기에서 읽고 있었습니다. 창세기 15장입니다. 여기 있군요. 여러분의 마음을 참 기쁘게 해 줄 말씀을 읽고 싶다면 하나님께서 무엇을 두고 맹세하셨는지 들어 보십시오. “이 일들 뒤에 주의 말씀이 환상 속에서 아브라함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지극히 큰 보상이니라.” “나는 네 방패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방패이시면 마귀가 어떻게 여러분을 치겠습니까? 보십시오, 보십시오. “나는 네 방패요, 네가 받을 지극히 큰 보상이다.” 누구십니까? “내가”, 주님께서, “네가 받을 지극히 큰 보상이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주 하나님이여, 무엇을 내게 주려 하시나이까? 나는 아이 없이 지내오며 내 집의 청지기는 다마스쿠스 출신의 이 엘리에셀이니이다, 하고 아브라함이 이르되... 또 아브람이 이르되, 보소서,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므로, 보소서, 내 집에서 태어난 자가 내 상속자이니이다, 하매 보라, 주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이 사람은 네 상속자가 아니요, 오직 네 배 속에서 나올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25년 전에 이미 그렇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아브라함이 궁금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이제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보십시오, 저는 백 살입니다.”
자, 보십시오. “그분께서 그를 데리고 나가...” 여기 나옵니다. “그분께서 그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 이르시되, 이제 하늘을 쳐다보고 네가 별들을 셀 수 있거든 내게 세어 보라, 하시며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씨가 그와 같으리라, 하시니라.” 그런데 그는 백 살인데도 자식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저 하늘을 바라보아라. 저 별들을 셀 수 있겠느냐?”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캘리포니아의 팔로마산에... 아니, 윌슨산에 있는 큰 천문대에 가 보면, 망원경으로 1억 2천만 광년이나 되는 우주 공간을 볼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눈으로는 몇천 마일, 어쩌면 200만 마일이나 몇백만 마일밖에 보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1억 2천만 년입니다. 보십시오, 태양계에 있는 별들이 보입니다. 어떤 별은 더 가깝고 어떤 별은 더 멀리 있습니다. 그런데 빛이 1억 2천만 년 동안 가는 우주 공간을 내다보는 것입니다. 빛이 얼마나 빨리 가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빛이 1억 2천만 년 동안 가는 거리라니, 숫자 9를 이 교회 둘레에 열 바퀴나 늘어놓아도 그것이 몇 마일인지 적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너머에도 여전히 달들과 별들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씨입니다. 그것들을 세어 보십시오. 셀 수 없을 것입니다. “네 씨가 그와 같으리라.” 들으십시오. 바로 이것이 그렇게 되게 했습니다. “그가 주를 믿으니”, 아,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그는 “주님, 제가 어떻게 할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이러이러한 일을 하겠습니다. 이것을 하거나 저것을 하겠습니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주님을 믿었고,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이루시겠다고 맹세하셨습니다.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네가 그것을 상속하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의 우르에서 데리고 나온 주니라, 하시매 그가 이르되, 주 하나님이여, 내가 그 땅을 상속할 줄을 내가 무엇으로 알리이까? 하니,” “지금 제게는 자식이 없습니다. 무슨 표적이라도 주시겠습니까?”
저는 표적을 찾아다니는 사람은 아니지만 표적을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사람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표적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믿지 못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사람들이 돌아다니면서 성경에서 초자연적인 것을 전부 빼 버렸습니다. 그저 빼 버렸습니다... 어떤 사람이 와서 “나는 구원받았습니다”라고 합니다. 물론입니다. 그를 의심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의심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잔뜩 술에 취해 입에 시가를 물고 비틀거리며 거리를 걸어옵니다. “야호!” 하고 소리 지르며 숨 쉴 때마다 욕을 합니다. 그러면서 “나는 믿으니까 구원받았어”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뭐라고 하겠습니까?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우리 교회는 나를 받아 줬어. 나는 교인이야.” 어떻게 하겠습니까?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표적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바로 그렇습니다. 그것을 보여 주는 표적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니 그저 믿음만으로 된다면, 그 믿음만으로는 되지 않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고, 그렇습니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표적을 주셨습니다. 표적, 곧 인으로 할례를 받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씨는 여전히 할례를 받습니다. 달, 곧 율법이 빛을 잃고 아들이 오실 때까지 그 시대 내내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 오셨을 때에도 그분은 여전히 그들에게 할례를 베푸셨습니다. 오늘날에도 아브라함의 모든 아들은 할례를 받습니다. 육체가 아니라 마음에 받습니다. 성령께서 마음에 할례를 베푸시고 세상에 속한 것들을 잘라 내셔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창조물이 되게 하십니다. 할례는 “불필요한 살을 잘라 내는 것”입니다. 남자만 할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언약 안에 있던 것은 오직 남자들뿐이었습니다. 여자는 결혼함으로 그 안에 들어왔습니다. 여러분이... 오늘날에는... 자, 제가 ...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에 여자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여자는 참 놀라운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남자에게 여자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실 수 있었다면 그렇게 하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자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여자들의 세상입니다. 여자가 모든 것을 움직입니다. 여기 계신 가정의 어머니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말합니다. 할리우드의 어느 스트립쇼 여자 하나가 어떤 모양으로 머리를 자르기만 하면, 여자들이 모두 똑같이 머리를 자르는 것을 보십시오. 또는 어떤 옷차림을 유행시키면 여자들이 모두 똑같이 따라 하는 것을 보십시오. 소위 그리스도인이라는 사람들까지 모두 그럽니다. 그렇습니다. 여자들의 세상입니다.
여자 천사의 그림을 그리는 것을 보셨지요. 그런 것은 없습니다. 성경에서 단 한 곳이라도 보여 주십시오. 천사는 모두 남자이지 여자가 아닙니다. 여자 천사, 성모 마리아니 하는 것들, 그런 것은 없습니다. 여자 천사가 있다고 말한 곳을 성경에서 한 곳이라도 찾아보십시오. 언제나 “그”입니다. 미가엘, 가브리엘. “그가 칼을 뽑았다.” 언제나 “그, 그, 그, 그”입니다. 그렇습니다. 여자는 남자를 위해 만들어졌지, 남자가 여자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물론입니다. 에덴동산에서 마귀가 자기 도구로 삼은 것도 바로 여자였습니다. 지금도 여자를 사용합니다. 그렇습니다. 회심한 여자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회심한 여자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인 여자는... 좋은 여자는 구원 외에 남자가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좋지 않은 여자는 그 밖에 남자가 만날 수 있는 가장 나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솔로몬은 좋은 여자는 남자의 왕관에 달린 보석이지만, 의롭지 못한 여자는 그의 피 속에 든 물이라고 했습니다. 그의 피는 그의 생명입니다. 피 속에 물이 들어 있는 것보다 더 심한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그를 죽일 것입니다.
이제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십니다. 잘 보십시오. “그가 이르되, 주 하나님이여, 내가 그 땅을 상속할 줄을 내가 무엇으로 알리이까? 하니 그분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해 삼 년 된 암송아지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 두 마리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오라, 하시니라.” 여기 나옵니다. 잘 보십시오. “그가 이 모든 것을 그분께 가져다가 그것들을 한중간에서 둘로 쪼개고 각각의 조각을 서로 마주 보게 놓았으나”, 아, 여기에는 얼마나 깊은 뜻이 있습니까! “새들은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그는 암송아지와 염소 등을 쪼개 조각들을 서로 마주 보게 놓았습니다. 한 경륜에서 다른 경륜으로 서로 맞물려 이어질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산비둘기와 새들은 쪼개지 않았습니다. “공중의 날짐승들이 그 사체들 위에 내려올 때에 아브라함이 그것들을 쫓아내었더라. 해가 졌을 때에 깊은 잠이 아브람을 덮치고, 보라, 큰 어둠의 공포가 그를 덮쳤는데 그분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확실히 알라. 즉 네 씨가 자기들의 소유가 아닌 땅에서 나그네가 되어 그 땅 사람들을 섬기겠고 그 사람들이 사백 년 동안 그들을 괴롭히리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먼 후손들, 그의 다섯 대 아래 후손들이 낯선 땅에서 400년 동안 나그네로 살며 괴로움을 당하리라고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그 기간이 정확히 얼마나 될지 정해 주셨습니다.
자, 보십시오. “그들이 섬길 그 민족을 내가 또한 심판하리니 그 뒤에 그들이 큰 재산을 가지고 나오리라.” 그들은 그렇게 나왔습니다. “또 너는...” 보십시오. 제가 말하는 것은 거룩... 보십시오. 또 ...조차 아닌... 조건 없이 말입니다. 보십시오. “또 너는 평안히 네 조상들에게로 가겠고”, 아멘, “...너는 평안히 네 조상들에게 가겠고 충분히 나이 들어 묻힐 것이니라.” “네가 어떤 일을 한다면”이 아니라 “내가 이미 이루었다. 내가 정해 두었다”입니다. 아멘. 아, 저는 이것을 깨달을 때면 너무 벅차서 온몸의 신경이 위아래로 뛰는 것 같습니다. 그 약속을 생각하면, 아, 형제님!
오늘 아침 아내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아내를 바라보며 “여보, 있잖아...” 했습니다. 제 형제와 그 가족에 관해, 아이들이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리브가는 이제 거의 숙녀가 되어 갑니다. 그래서 “리브가가 이 학교에 들어가야 할 때가 되기 전에 이곳을 떠나도록 해 보고 싶어”라고,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또 “우리도 이제 어린아이가 아니잖아. 적어도 나는 아니지. 나도 곧 마흔여섯이 될 거야. 늙어 가고 있어” 했습니다. 그러나 아, 제 생각이 하나님께서 제게 약속하시며 하신 맹세로 옮겨 가면, 그런 것은 모두 사라집니다. 모든 것이 달라 보입니다. 자, 보십시오. “...충분히 나이 들어. 그러나 그들은 네 번째 세대의 때에 여기로 다시 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불법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아브라함에게 조건 없이 주셨습니다. 이제 보십시오. 이 말씀을 하셨을 때... 아, 여기에 아름다운 그림이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마치기 전에 하나님께서 그려 놓으신 이 그림을 다 살펴볼 시간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보십시오.
그분은 “나를 위해 삼 년 된 암송아지를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셋을 주목하십시오. 성경의 모든 것은 셋입니다. 셋이 하나로 합쳐집니다. 아버지, 아들, 성령, 세 하나님이 아닙니다. 한 분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 세 가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모두 한 가지 본질, 곧 사랑입니다. 또 의롭게 됨, 성화, 성령 침례가 있습니다. 서로 다른 세 경륜도, 세 가지 은혜의 역사도 아닙니다. 하나의 역사가 세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의롭게 됨 아래서 루터와 함께 계셨던 바로 그 성령께서 성화 아래서 웨슬리와 함께 계셨고, 지금은 성령 침례 가운데 교회에 계십니다. 같은 성령입니다. 두 성령이 아니라 같은 성령입니다.
작은 옥수수 싹이 여기 처음 올라왔을 때, 농부는 그 작은 싹들이 돋아난 것을 보고 “아, 멋지구나!” 하며 기뻐했습니다. 얼마 뒤 그 부분은 늙고 시들어 버렸지만 옥수수는 계속 자랐습니다. 처음 이 아래 줄기에 있던 생명이 여기 위의 이삭과 알갱이에도 똑같이 있습니다. 그저 계속, 계속, 계속, 계속 자라난 것입니다. 교회도 그렇게 예수님께서 오실 그 완전한 날을 향해 자라 갑니다. 같은 성령이고 같은 것입니다. 다만 경륜이 다를 뿐입니다.
이것이 이어져 가는 것을 보십시오. 암송아지와 염소와 모든 것을 가져올 때 삼 년 된 것이어야 했습니다. 서로 다른 세 경륜, 아버지로 계심, 아들로 계심, 성령입니다. 삼 년, 모든 것이 삼 년이었습니다. 아버지, 아들, 성령을 뜻했습니다. 그 경륜 아래 계셨던 하나님께서 이 경륜에도, 저 경륜에도 계시며 언제나 같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며 경륜이 셋입니다. 세 하나님이 아니라 같은 하나님의 세 경륜입니다. 불기둥 안에 계셨던 바로 그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계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계셨던 바로 그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안에 계신 하나님, 영광의 소망입니다. 그렇지요? 이제 성령 침례가 사람 안에 거하니 여러분은 무엇이 됩니까? 하나님의 아들들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낮추어 내려오셔서 처녀 마리아를 덮으셨을 때, 그분은 생명이셨습니다. 그 생명이 덮어서 자기 주위에 혈구를 창조했습니다. 혈구가 어디서 오는지는 누구나 알 것입니다. 남자에게서 옵니다. 그렇지요? 생명은 혈구 안에 있으며, 혈구는 여자에게서가 아니라 남자에게서 옵니다. 생명이 있는 곳은 남자의 정자입니다.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친히 처녀 마리아의 태 안으로 들어오셔서 창조된 혈구로 자신을 감싸셨습니다. 할렐루야! 그 때문에 우리에게 영생이 있습니다. 죄로 인해 저기서 그 혈구가 칼에 찔려 터졌을 때, 하나님께서 거기서 풀려나셨습니다. 그분은 혈구를 깨뜨려 여시고 우리를 씻으셨으며, 성령으로 우리를 그분 자신 안으로 이끄셨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들이며 하나님의 일부입니다. 신성 자체가 믿는 사람마다 그 안에 거합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태어난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일부입니다. 그가 초자연적인 것을 믿는 것도 당연합니다. 무엇이든 믿을 수 있는 것도 당연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의 안에 하나님의 한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죄와 그 밖의 모든 것이 이 몸을 만들어 낸, 그 죽을 몸 안에 싸여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오직 하나님께서 하신 어떤 역사가, 다시 태어나게 하는 역사가, 그분 자신의 피 흘리심을 통해 내려와 그 안에 있던 피를 걷어 내고, 길을... 그것을 옆으로 치우시고, 이 죄 많은 사람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소망을 주셨습니다. 그 소망을 위해서라면 그저 거기 서 있는 것처럼 서슴없이 죽을 수 있습니다. 그에게 말씀해 보십시오. 물론 그는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내쫓고 새 언어들로 말하며 뱀들을 집어 올리고, 혹은 치명적인 것들을 마시며, 혹은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 사람들이 나으리라.”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가 그분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무엇이든 건져 내는 경우에 계십니다. 길을 내실 것입니다. 길이 없을 때 길을 내십니다. 그분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똑같이 믿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자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거나 하나님의 딸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그와 함께 계시므로 달리 할 수가 없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한 부분입니다.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불기둥 안에서 지니셨던 모든 것을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다 쏟아 넣으셨습니다. 그분 안에 하나님의 신격의 모든 충만이 몸으로 거했습니다. 그렇지요? 성경은 하나님, G-o-d, 하나님 자신, 여호와, 전능하신 분, 작은 방패, 방패, 그분의 모든 구속의 이름들, 그분의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 다 쏟아 넣으셨다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의 혈구에서 형성되셨습니다. 그 혈구의 바깥 껍질 자체는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보다 수십억 곱하기 수십억 배나 더 작았지만, 그것이 몸, 곧 주 예수님이었습니다. 그 안에는 하나님 자신이 계셨습니다. 그분은 혈구를 둘러싸셨습니다. 자신의 피를 취해 자신의 피를 쏟으시려고... 아니, 값없이 주시려고 말입니다. 그 혈구가 깨짐으로써, 우리의 죽을 몸이, 그것이 깨져 여기서 우리의 생명이 떠나가며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피의 구속을 통해 나갈 때, 우리가 그 몸 안으로 들어와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 자신의 일부가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형제님, 그것을 소화할 수 있다면 여러분에게 참으로 유익할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보여 드릴 방법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분이 덮으신 여자의 태 안으로 내려오신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영으로 내려오셔서 그 안에 계십니다. 그분은 누구십니까? 창조주 자신입니다. 바로 그때 그분이 들어가 계셨던 태를 가진 그 여자를 친히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작게 하셔서 내려오시고 이 혈구 안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주위에 무언가를 짓기 시작하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었습니까?
보십시오, 맨 처음에 이 일을 일으킨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피, 피입니다. 생명은 피 안에 있습니다. 처음에 그것을 일으킨 것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이제 그것을 없애려면 하나님께서 친히 내려오셔야 합니다. 그래서 그분은 자신을 아주 작게 하셨습니다. 마리아의 태 안으로 들어오셔서 자기 주위에 벽, 곧 혈구를 창조하셨습니다. 어떤 남자도 그 일에 관해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이 혈구를 창조하셨습니다. 그 혈구에서 또 하나가, 또 하나가, 또 하나가 생겨났고, 모든 신경과 온갖 것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 안에 사시면서 성막을 만들고 계셨으며, 그리스도 안에 거하셨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걸어 다니신 것입니다. 그분은 “나와 내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내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니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빌립이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 그러면 제게 족하겠습니다” 했습니다. 그분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있었는데도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보면 아버지를 보는 것인데, 어찌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 하느냐?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내 아버지께서 지금 내 안에 살고 계시니라. 일들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안에 거하시는 그분이 그 일들을 하시느니라.” 아!
제가 어떻게 어떤 사람에게 그의 문제가 무엇인지 말해 줄 수 있겠습니까? 그의 10년 뒤 앞날이나 40년 전의 모습을 어떻게 말해 줄 수 있겠습니까? 제가 아닙니다. 할렐루야! 제 안에 사시는 그분입니다. 내려오셔서 그분의 피로 저를 그분과의 교제 안으로 이끄신 그분입니다. 할렐루야! 제 손이 어떻게 병자를 치유하는 일을 하겠습니까? 제 손에는 조금도 능력이 없습니다. 제가 아닙니다. 여기 안에 거하시는 그분께서 하십니다. 이 사람이 어떻게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까? 그는 복음을 전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할 만한 것이 그 안에 없습니다. 본래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내려와 그 안에 거하셨고,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가 왜 말씀을 믿습니까? 그 말씀을 만드신 바로 그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설교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은사가 어떻게... 보이십니까? 바로 그것입니다. 말씀을 기록하신 바로 그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안에 계시며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진리다. 누가 무슨 말을 하든 상관없다. 그것이 진리다.” 바로 그것입니다. 사람 안에 계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알아보십니다. 할렐루야! 그것으로 확정됩니다. 여기 안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그렇지요?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기 들어오시면 자신의 말씀을 알아보시고 “물론, 그것은 진리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이 어딘가에서 그것을 이리저리 뜯어고치려 한다면 그것은 여러분과 하나님 사이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알아보십니다. 아멘. 아, 그 사실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감동을 줍니까!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말씀입니다. 보십시오. 오늘 아침 뉴올버니의 그 작은 나사렛교회 설교자가 그것의 다른 면을 다루는 것을 들었습니다. 형제님, 모든 성경기록이 영감에 의해 주어졌다는 점을 정말 힘 있게 전하더군요. 예. 그렇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아브라함에게 무엇을 하실지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맹세하셨습니다. 더 큰 이가 없었으므로 자신을 두고 맹세하셨습니다. 그러니 하나님 자신이... 불기둥 안에 계실 때의 그분의 모든 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은 하나님께서 비우셨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비운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시지요? 그분 자신을 그리스도 안에 쏟아 넣으셨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자신의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 쏟아 넣으셨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동등함을 강탈로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이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그분을 죽인 것도 그 때문입니다. 안식일을 어기고 자신을 하나님으로 삼았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안식일의 주이셨고, 하나님 임마누엘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자신과 화해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지니신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 쏟아 넣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지니신 모든 것은 교회 안에 쏟아 넣으셨습니다. 그러니 그리스도께서 신학자들이 무슨 말을 하든 아버지를 믿으셨다는 것이 보이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그들은 “저 사람은 미쳤다”고 했습니다. “저 사람은 바알세붑이다. 마귀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지금은 나를 두고 그렇게 말해도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성령이 오면 그런 말을 하려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아버지를 믿으셨기 때문입니다. 선생들이 무슨 말을 하든 그분은 아버지를 믿으셨습니다. 그렇지요? 하나님께서 자신의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 쏟아 넣으셨고, 신성이 그리스도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후! 여러분이 이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지니신 것을 성령을 받은 신자 안에 쏟아 넣으셨습니다. 그러니 누가 무슨 말을 하든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었고, 그리스도의 모든 것이 믿는 사람인 여러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무언가를 말씀하신 뒤에 그것을 부인하며 서 계실 수 없습니다. 자신의 말씀을 거두실 수 없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실 수 없습니다... 저는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무슨 말을 했다가 “아, 죄송합니다. 그런 뜻으로 말하려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그럴 수 없습니다. 자신이 하신 말씀을 지키셔야 합니다. 아, 그분은 하나님이시며 오류가 없으시므로 하신 말씀을 지키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오래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시고 “내가 너와 너를 이을 네 씨를 구원하겠다”고 자신을 두고 맹세하셨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의 씨는 무엇입니까? 확실한 소망을 가진 사람은 누구입니까? 이 기초 위에 세워진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저 아무나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게, 주여, 주여, 하고 말하는 자가 다 들어가지는 아니하고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이것이 아버지의 뜻입니다. 이것이 그분의 말씀입니다.
“그날에 많은 사람들이 내게 와서 ‘주여, 제가 주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설교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주의 이름으로 마귀들을 내쫓지 아니하였나이까? 주의 이름으로 이 모든 일들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라.” 그분은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라. 내가 너희를 알지도 못하였노라” 하실 것입니다. 사람들은 감정으로, 신학으로, 성경적으로 무언가를 고조시키며, 성경을 가르치려 하면서 거기에 자기 해석을 붙이고 그런 말들을 합니다. 하나님의 성품의 모양은 있으나 그것의 능력은 부인합니다.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 날들에 그들은 고집이 세며 높은 마음을 품으며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는 쾌락들을 더 사랑하며 협정을 어기며 거짓 고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선한 자들을 멸시하리라.” 그들을 비웃고 온갖 이름으로 부릅니다. “하나님의 성품의 모양은 있으나”, 설교자들과 교인들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의 모양은 있으나 그것의 능력은 부인하리라.” 바로 그것입니다. “이런 자들에게서 돌아서라. 이러한 부류는 집집마다 다니며 여러 가지 욕심, 온갖 욕심에 끌리는 미련한 여자들을 이끄는 자들이니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작은 무언가가 나타날 때마다 소란을 피웁니다.
그러나 다시 태어난 그리스도인은 자기가 어디에 서 있는지 압니다. 아무것도 그를 움직이지 못합니다. 곧장 갈보리로 걸어갑니다. 길을 가다 보면 흉내 내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형제님, 그것은 실제로 그것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줄 뿐입니다. 가짜 달러와 위조지폐가 있지만, 그것은 진짜 달러가 있다는 것을 보여 줄 뿐입니다. 그것을 굳게 붙드십시오. 계속 나아가십시오. 아브라함은 견딘 뒤에... 그것을 견뎠습니다. 큰 고난의 싸움과 그 밖의 모든 것을 견뎠습니다. 견딘 뒤에 약속을 얻었습니다.
그분은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같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얀네와 얌브레가 무엇을 할 수 있었는지 보십시오. 모세가 한 일과 거의 똑같은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할 수 없었습니다. 병자를 치유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만이 그들과 모세의 차이를 보여 주었습니다. 모세가 지팡이를 던지면 뱀이 되었고, 그들도 할 수 있었습니다. 모세가 땅에 벼룩을 불러올 수 있었고, 그들도 할 수 있었습니다. 모세가 땅에 종기를 불러올 수 있었고, 그들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없앨 수 없었습니다. 불러올 수는 있어도 쫓아낼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치유자이심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 구원을 흉내 내는 것, 동물들을 둘로 쪼갰습니다. 암송아지와 염소와 양, 그 모든 것이 구원의 모형이었다는 것은 누구나 압니다. 양과 염소와 수소와 암송아지 등의 피를 흘려 드리는 제물을 통해 죄들의 사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산비둘기에 이르렀을 때는... 산비둘기가 질병을 위한 제물이었음을 여기 계신 누구나 아실 것입니다. 나병 환자는 자기 질병 때문에 산비둘기를 드려야 했습니다. 새는 질병을 위한 제물의 모형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둘로 쪼개려 할 때에는 안 되었습니다.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것은 흉내 낼 수 없습니다. 하나님 외에는 치유할 수 있는 이가 아무도 없습니다. 구약에서도 같았습니다. 그분은 “나는 네 모든 질병을 고치는 주니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밖에 나가 위선자처럼 행동하며 “아, 나는 구원받았어. 하나님께 영광! 그래, 나는 받았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속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형제님, 병에 걸렸다가 치유를 받느냐 못 받느냐 하는 때가 되면, 그것이 무엇인지 저절로 드러납니다.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가 드러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아, 저는 그것을 믿지 않습니다!”라고 하십니까? 물론 믿지 않겠지요. 애초에 믿을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여러분 안에 없기 때문입니다.
보십시오. 자, 보십시오. “너희는 갈라지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 속죄 제물들을 보여 주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 경륜들이 나뉘는 때, 율법과 은혜가 언젠가 나뉘는 때가 있으리라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동물을 둘로 쪼갰습니다. 그 모든 일을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산비둘기, 곧 치유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같은 분입니다. 보십시오. 구약에서 얀네와 얌브레가 서 있었을 때, 모세가 지팡이를 던져 뱀이 되게 할 수 있었고 그들도 할 수 있었습니다. 모세가 벼룩을 부를 수 있었고 그들도 불렀습니다. 흉내입니다. 그런데 나뉘지 않은 이 다른 쪽으로 넘어갔을 때는... 신유에 이르자 모세는 치유할 수 있었습니다. 곧 종기를 없앨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 자신에게도 종기가 났습니다. 없앨 수 없었습니다. 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이것은 하나님의 손가락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신유는 나눌 수 없습니다. 치유하실 수 있는 분은 언제나 오직 그분뿐이었습니다. 마귀에게는 치유할 능력이 하나도 없습니다. 전에도 없었고, 치유할 수 없습니다. 그는 치유할 수 없습니다.
보십시오. 예수님의 제자들이 나갔다가 어떤 사람이 마귀들을 내쫓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이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마귀들을 내쫓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따르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막았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지 말라. 내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고서 쉽사리 나를 비방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느니라. 우리와 함께하지 아니하는 자는 우리를 반대하는 자요, 우리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널리 헤치는 자니라.” 그렇지요? 어떤 사람이 마귀들을 내쫓아 실제로 결과를 얻고 있다면, 그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굳건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그분은 아셨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 마귀는 그 믿음을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결과를 얻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는 하지 않았으면서 자기가 했다고 말하며 왔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결과를 얻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마귀들을 내쫓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에게는 하나님께 속한 무언가가 있음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으면 그 일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에게는 결과가 있었습니다.
거기 있는 그 희생물들 가운데 나눌 수 없는 것들을 보십시오.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그렇습니다. 나눌 수 없습니다. 그것들은 쪼개지 마십시오. 그러나 이 짐승들은 쪼개고 서로 마주 보게 놓으십시오. 율법과 은혜는 서로 맞물려 이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치유는 그렇지 않습니다. 언제나 같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것들은 그대로 두십시오. 자, 보십시오. 아, 그 일을 하시기 전에... 아브라함은 동물들을 죽여 거기에 펼쳐 놓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했습니다. 그러자 어두워졌습니다. 그는 새들이 내려앉지 못하게 했습니다. 어두워지자 새들은 보금자리로 돌아갔습니다. 무서운... 먼저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잠들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이것에는 네가 할 일이 하나도 없다. 너도 너를 이을 네 씨도 자기 구원을 위해 할 일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이 나무에 손을 대면... 여기서 먹으면 살 것이고, 저기서 먹으면 죽을 것이다.” 그것은 언약입니다. 여러분 앞에 그것이 놓여 있습니다. “네가 이것을 하면, 저것을 하면 죽을 것이다. 거기서 살며 이것을 먹으면 살 것이다.” 그런데 아담은 저것을 먹고 죽었습니다. 은혜가 왔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그렇게 하셨을 때 이집트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께서는 이미 자신의 말씀으로 무엇을 하실지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을 데리고 나오실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지킬 의무가 있으십니다. 자신의 말씀을 지켜야 하시는 하나님께서 그곳에 가셔서 구원자 모세를 보내셨을 때, 은혜가 그것을 마련한 것입니다. 모세가 와서 이스라엘 자손을 이끌고 나왔습니다. 그들이 모세와 함께 나와 광야에 이르자 말했습니다. “아, 우리에게 할 일을 주십시오. 우리는 조직을 만들고 싶습니다. 우리에게 할 일을 주십시오. 이런 것을 만들게 해 주십시오. 지킬 율법을 주십시오.” 출애굽기 19장은 이스라엘이 저지른 가장 큰 실수였습니다. 은혜가 이미 그들의 구원을 마련했는데, 그들은 무언가를 해서 그것을 얻을 자격을 갖추려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아브라함에게 무엇을 하실지 맹세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우리에게 율법을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율법은 결코... 아무도 그것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결코 지키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을 성취하러 오셨고, 은혜가 다시 구원자를 마련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씨를 구원하시겠다고 맹세하셨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귀를 기울이지도 않는 반역하고 마음이 완고하며 목이 뻣뻣한 사람들을 어떻게 구원하시겠습니까? 그들에게는 온갖 신학과 그 밖의 모든 것이 있었다고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쪽은 이것을 취하려 하고 저쪽은 저것을 취하려 합니다. 하나님은 내려다보시며 오늘날 교회들이 어떻게 한데 뒤섞여 이런 온갖 혼란을 이루고 있는지 보셨습니다. 그분은 길을 내셔야 했습니다. 그렇게 하시겠다고 맹세하셨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만이 아닙니다. “네 안에서 땅의 모든 족속들이 복을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이 똑같이 말입니다. “내가 한 씨를 부르겠다.” 할렐루야! 아! “내가 하겠다.” 그리고 오늘날에...
아브라함의 씨는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느니라.” 이 작은 혈구의 한 부분이 그림자로서 아브라함을 속죄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믿으니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하나님은 주권적인 은혜로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아브라함이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는 그저 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제 보십시오. 하나님의 자녀는 누구나 같은 방식으로 부름을 받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죄인이라면 하나님께서 부르시지 않는 한 하나님께 올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내 아버지께서 부르시지 아니하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느니라. 아버지께서 그를 부르시면, 오는 모든 자에게 내가 영존하는 생명을 주고 마지막 날에 그를 일으키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주권적인 선택으로 아브라함의 씨를 부르셨습니다. 그렇다면 그 혈구 안에 있던 바로 그런 생명이 아브라함 위에 있었고, 그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다고 불렀다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에 불가능한 일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면, 아브라함의 씨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아, 이것을 놓치지 마십시오. 제발 놓치지 마십시오. 제 정수리에서부터 그것이 내려오는 것을 느낍니다. 여기를 보십시오. 보십시오. 여러분이 아브라함의 씨라면 하나님과 다툴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의 씨는 이 영의 일부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받아 주셨다는 증거로 살을 잘라 내는 할례의 표적을 주셨습니다. 이 마지막 날들에는 성령으로 믿는 사람마다 할례를 베푸셔서, 모든 의심과 불신을 잘라 내고 하나님의 말씀이 순수하고 거룩하며 진리임을 믿게 하셨습니다. 할례는 모든 불신, 모든 것을 잘라 내는 것입니다. 해안에 매어 놓은 줄을 하나도 남김없이 끊고 “하나님, 살든 죽든, 가라앉든 물에 빠져 죽든 저는 아버지를 믿습니다. 아버지의 말씀입니다. 저는 그것을 믿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 제 뜻을 아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맹세할 만한 다른 이가 없으므로 나 자신을 두고 맹세하겠다.” 그분은 존재하는 모든 것 가운데 가장 크신 분이었습니다. “아브라함과 그의 씨를 구원하겠다고 나 자신을 두고 맹세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의 씨는 누구입니까?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들이 아브라함의 씨입니다. 보십시오. 보십시오. 아브라함에게서 이삭이 나왔고, 이삭을 통해 그리스도가 오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갑니까?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을 수 있는 길은 오직... 성경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는 죽었고, 아브라함의 씨가 되어 약속에 따른 상속자들이니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지요? 후!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씨요, 약속에 따른 상속자들이니라.” 그러니 그 혈구를 통해, 여러분의 타고난 혈구가 떨어져 나가고, 아브라함의 씨 곧 그리스도의 혈구로 여러분이 감싸인 것입니다. 그 혈구 안에 담길 수 있는 것은 오직... 불법이나 더러움이나 추잡함이 아닙니다. 그 혈구 안에 담길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 곧 성령뿐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자신이 멸망하실 수 없는 것처럼 멸망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날에 내가 그들을 일으키리라. 그분께서 의롭다 하신 자들은 이미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임재와 생각 안에서는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마다 지금 이미 그분 앞에서 영화롭게 되어 구속의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후! 아, 아! 보이십니까? 하나님께서 은혜로 여러분을 아브라함의 씨로 부르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씨 한 사람 한 사람을 일으키시겠다고 자신을 두고 맹세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책임지겠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아브라함의 씨가 됩니까? 죽어서 여러분의 생명이 감추어짐으로써입니다. “한 성령에 의해 우리가 모두...” 이명 증서로 들어가는 것도, 물을 뿌려서 들어가는 것도 아닙니다. “한 물로”입니까? 아닙니다. “한 성령에 의해 우리가 모두 침례를 받아 그리스도 예수님이신 이 혈구 안으로 들어왔느니라.” 처음에는 오직 하나의 혈구가 있었고, 우리는 침례를 받아 그 안으로 그분과 함께 들어갑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아들딸이며, 그분과 함께 왕국의 공동 상속자가 되어 아버지께서 하시는 모든 말씀을 진리로 믿습니다. 할렐루야! 형제님... 아버지를 믿는 믿음, 아들을 믿는 믿음, 성령을 믿는 믿음, 하나 안에 계신 셋, 마귀들은 떨고 죄인들은 깨어나리, 여호와를 믿는 믿음은 무엇이든 흔들리라. 그렇습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거기에 그 혈구가 있습니다. 어디서 시작되었습니까? 하나의 혈구였습니다. 그렇지요? 그 혈구 안에는 무엇이 있었습니까? 하나님의 생명이었습니다. 그 혈구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죄가 그것을 찔렀습니다. 로마의 창이 그것을 찔렀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죄가 그 위에 놓였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바로 거기서 의롭게 됨의 대가가 치러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으로 영원히 확정되었다”고 하셨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고 그 혈구가 찔렸습니다. 거기 갈보리에서 혈구가 터졌을 때, 피가 그 주위에서 “쉬이이” 하고 뿜어져 나와 흩뿌려졌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이전에는 아무도 들어간 적 없는 그 껍질을 열어 여러분과 저를 그 혈구 안으로 이끄시려는 것입니다. 피를 통과하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말씀의 물로 씻으시려는 것입니다. 피 흘림이 없이는 죄들의 사면이 없습니다. 잃어버린 죄인을 은혜로 붙드셔서 이 혈구를 통과해 안으로 끌어들이시고 성령을 주십니다. 또 이 사람을 이쪽으로 끌어들여 성령을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왕국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공동 상속자가 됩니다. 후! 여러분 안에 계신 하나님이 깨어나시게 하십시오. 아니면 여러분 자신을 죽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깨어나실 수 있습니다. 그분을 알아보시겠습니까?... 혈구를 통과해 여러분을 끌어들이셨고, 흩뿌려진 피를 통과해 끌어들이셨습니다.
그 혈구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저 없어지고 흘러나가 버렸습니까? 아닙니다. 흩뿌려졌습니다. 열려 풀어졌습니다. 열려 풀어져서 많은 아들이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이 하나의 혈구, 이 한 사람으로는 아들들이 태어날 수 없었습니다. 이 하나의 영이 이 혈구 안에 들어오셨고, 그 둘레로, 그분 둘레로 그렇게 형성되었습니다. 누구도 들어간 적이 없었고, 그전에는 결코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친히 내려와 구유에 누운 아기가 되셨고, 자라서 사람이 되셨습니다. 모든 것이 그 하나의 혈구를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그렇게 찔려 갈보리에서 터졌습니다. 죄가 그것을 흩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의롭게 하시려고 그분을 일으키셨습니다. 이제 그 영 주위에는... 바로 그 영께서 오늘날 이 땅에 살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주위에는 이렇게 흩뿌려진 피가 있습니다. 들어갈 수 없도록 단단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들어올 수 있도록 열려 있습니다. 여러분이 들어올 수 있도록 열려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죄인을 이 혈구를 통과하여 그분께로 끌어들이시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들리면 모든 사람들을 내게로 이끌리라.”
그분이 그 죄인을 혈구를 통과해 끌어들이실 때, 모든 불의에서 그를 깨끗하게 하십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성령으로 그를 그분 자신 안으로 이끄십니다. 죄인은 성령에 의해 침례를 받아 그 안으로 들어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창조물이 됩니다. 그를 이 안으로 끌어들이십니다. 그 안에 있는 사람의 그 부분은 하나님께 속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딸입니다. 세상에 대한 모든 욕망은 죽었습니다. 그와 세상 사이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믿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에 그는 “그것이 진리입니다. 살든 죽든 무슨 상관입니까? 그것이 진리입니다. 저는 계속 나아갑니다”라고 합니다. 후! 실례합니다. 제 교회에서는 제가 조금 격의 없이 행동합니다. 아멘. 아! 내 소망은 오직 예수님의 피와 의 위에 세워졌네. 내 혼을 둘러싼 모든 것이 무너질 때, 그분이 나의 모든 소망과 의지가 되시네. 굳건한 반석 그리스도 위에 내가 서리. 다른 모든 땅은 그저 가라앉는 모래라.
그것이 돈이든, 인기이든, 큰 설교자이든, 이것이든, 의사이든, 자동차이든, 이것이든 저것이든 다른 무엇이든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모든 땅은 가라앉는 모래입니다. 아, 아! 제 머리에 남은 머리카락이 희어지고 육체가 쇠해 가는 것을 볼수록 그 사실을 더욱 느낍니다. 저의 유일한 소망은 거기에 있습니다. 주 예수님, 제 손을 잡고 저를 이끌어 주십시오. 주 하나님, 제가 계속 나아가게 해 주십시오. 세상의 어떤 것에도 마음을 두지 않고, 제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해 주십시오. 그분은 자신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생명을 내놓으셨습니다. 자신을 희생물로 드려 저를 아버지 안에서 그분과의 교제로 이끄시려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죄인들이 어떻게 그것을 보고도 돌아설 수 있습니까? 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좋습니다. 이제 서둘러야겠습니다. 마치기 전에 서둘러야 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이 소망은”, 19절입니다, “혼의 닻과 같이...” 여기 또 나옵니다. 혼의 닻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이 소망은 닻과 같으니.” 무엇이든 닻으로 고정되면 움직일 수 없습니다. “나를 온전히 지키는 닻이 있으니, 바다 물결이 밀려와도 굳건하고 확실하네. 나를 온전하게 하는 반석에 닻을 내리고, 구주의 사랑에 안전하고 확실히 터를 잡았네.” 이 닻입니다. 어느 날 제가 저 흩뿌려진 피 너머에 있었을 때, 어느 날 하나님께서 이 불쌍하고 잃어버린 죄인을 붙드셔서 그 피를 통과해 끌어들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를 이쪽으로 데려오셔서 그 안에 닻을 내리게 하시고 두 팔로 감싸 주셨습니다. 다른 모든 것이, 무엇이든 간에 “제 혼은 주를 바라봅니다.” 보십시오. “굳건하고 확실한 닻이 있네.” 여기를 보십시오.
“우리에게 있는 이 소망은 혼의 닻과 같이 확실하고 굳건하여...” 온갖 교리와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이쪽에서 저쪽으로 밀려다니고, 이쪽 편을 들었다가 저쪽 편을 들며 자기가 어디 서 있는지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나는 너희가 굳게 서기를 원하노라”라고 말했습니다. “오늘 나는 이것이고, 내일은 다른 것이다”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혼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닻을 내리게 하십시오. 다시 태어나십시오. 하나님의 생명이 여러분 안에 살고, 여러분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음을 추호의 의심도 없이 아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모든 소망은 저 갈보리 위에 세워집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의 마음에 흘러넘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한 말씀 한 말씀을 진리로 믿습니다. 그 어느 부분을 위해서든 기꺼이 죽을 수 있습니다. 제 뜻을 아시겠습니까? 굳건하고 확실합니다.
자, 보십시오. 다시 읽겠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이 소망은 혼의 닻과 같이 확실하고 굳건하여... 그... 뭐라고 하지요, 휘장 안에 있는 것 속으로 들어가는데,” 무엇입니까, 무슨 휘장 안입니까? 제가 무슨 휘장을 말하는 것입니까? 피의 휘장입니다. 피입니다. 우리는 찢어진 휘장을 지나왔습니다. 영광이 결코 사라지지 않는 곳으로 말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부르는 그 찬송을 아시지요? “할렐루야! 할렐루야! 나는 찢어진 휘장을 지나왔네.” 그분의 옆구리가 찢어졌을 때 나온 피입니다. “나는 찢어진 휘장을 지나왔네. 영광이 결코 사라지지 않는 곳으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나는 왕의 임재 안에 살고 있네. 나는 찢어진 휘장을 지나왔네. 영광이 결코 사라지지 않는 곳으로.” 내 어려움이 이쪽에서 오든 저쪽에서 오든, 영광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나는 찢어진 휘장을 지나왔네. 영광이 결코 사라지지 않는 곳으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나는 왕의 임재 안에 살고 있네.”
그분은 그분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님의 찢어진 옆구리를 통해 저를 그분과의 교제 안으로 이끄셨습니다. 저를 그분의 일부로 만드셔서 모든 것을 믿고, 그분을 믿고, 그분을 신뢰하며, 거기 서 있게 하셨습니다. 영광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분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므로 영광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나는 찢어진 휘장을 지나왔네. 영광이 결코 사라지지 않는 곳으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나는 왕의 임재 안에 살고 있네.” 제 소망은 거기, 오직 그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저를 구원한 피를 통과해 왔습니다. 저를 치유한 피를 통과해 왔습니다. 제가 이 안에 있는 동안 무엇이 필요하든, 저 갈보리에서 나온 그 속성들을 구하면 그것들이 제 것입니다. 값없이 제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그것들을 제게 주실 수 없다면 그 이유를 알려 주실 것입니다. 그래도 제 믿음은 그분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합니다. “주님, 저에게 무엇이 가장 좋은지 아버지께서 아신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저 자신을 아버지께 맡깁니다. 제가 여기 있습니다.” 아멘. 아, 바로 그것입니다. 제 신뢰는 그분, 하늘의 하나님께 있습니다.
자, 보십시오. “그곳에 앞서 달려가신 분이...” 아! 여기를, 여기를 보십시오. 저는 알아차리지도 못했습니다. 여기 마지막 절, 20절을 보십시오. 후! 얼마나 놀랍습니까! “앞서 달려가신 분 곧 예수님께서”, 앞서 달려가신 분입니다, “멜기세덱의 계통에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사 우리를 위해 거기로 들어가셨느니라.” 앞서 달려가신 분, 우리보다 먼저 가신 그 사람, 오셔서 우리 자리를 대신하신 분은 다름 아닌 하나님 자신이셨습니다. 그분은 사람들에게 증명하시려고 내려오셔서 자신을 사람으로, 앞서 달려가는 자로 만드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렇게 하시겠다고 맹세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겠다고 맹세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맹세하셨습니다. 그분 자신을 두고 우리에게 이 일들을 맹세하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내려오셔서 앞서 달려가는 자가 되셨습니다. 친히 앞서 달려가는 자가 되셨습니다. 이 세상에 들어와 사셨습니다. 주위에는 온통 죄가 있었지만 그분은 죄를 초월하여 사셨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지요?
그런 다음 그분은 아래로... 내려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죄인처럼 죽으셨습니다. 육체에 나타난 모든 것이 그분의 죽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사람들이 그분을 때렸습니다. 거기에 매달았습니다. 죽을 만큼 피를 흘리셨습니다. 사람들이 와 보니 그분은 죽어 계셨습니다. 하늘이 그분이 죽으셨음을 선포했습니다. 땅이 그분이 죽으셨다고 말했습니다. 모든 것이 그분이 죽으셨다고 말했습니다. 로마 군인이 그분의 심장에 창을 찔러 넣자 피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분리되어 나온 피와 물은 비통함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것이 그분이 죽으셨음을 말해 주었습니다. 보십시오, 사람이 거기 매달려 있는데 피와 물이 쏟아졌다면, 피와 물이 분리되었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분은 죽으셨습니다. 칼 때문에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찔린 상처 때문에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비통함 때문에 죽으셨습니다.
이 세상 어떤 것도 피와 물을 갈라놓지 못합니다. 어떤 과학자에게든, 어떤 의사에게든 물어보십시오. 그들은 오직 극심한 비통함으로만 그렇게 된다고 말할 것입니다. 때로 사람들이 너무 심하게 고통받으면... 아시다시피 마음의 상처 같은 슬픔 때문에 때로는 심장마비가 일어나고, 피와 물이 분리되면서 죽게 됩니다. 그것이 주 예수님을 죽게 한 것입니다. 그분은 여호와의 손 아래서 죽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형벌을 온전히 받으셨습니다. 공의입니다. 하나님께서 공의를 요구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도 그분의 생명을 빼앗을 수 없었습니다. 그분은 “내가 그것을 내놓으리라. 아무도 그것을 빼앗을 수 없느니라. 내가 그것을 내놓고 다시 일으키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을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고되고 잔혹한 죽음을 통해 그것을 보여 주시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앞서 달려가게 하셨습니다. 그분은 사람으로 이곳에 내려오셨습니다. 사셨습니다. 잡수셨습니다. 마셨습니다. 우셨습니다. 주무셨습니다. 사람처럼 우리와 함께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 저 십자가에 몸을 펴고 죽으셨고, 그 시신에 방부 처리가 이루어졌습니다. 칼로 그 몸에서 피를 빼냈습니다. 천에 싸여 무덤에 놓이셨습니다. 사흘 낮과 밤 동안 무덤에 계셨습니다. 그분의 혼은 지옥으로 갔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거룩한 자가 썩음을 보게 하거나 그분의 혼을 지옥에 머물게 두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를 의롭게 하시려고 사흘째 되는 날 그분을 일으키셨습니다. 우리를 의롭게 하시려고 높은 곳으로 올리셨습니다. “살아서 나를 사랑하셨고, 죽어서 나를 구원하셨네. 묻혀서 내 죄를 멀리 지고 가셨고, 일어나 나를 의롭게 하셨네.” 모든 일을 앞서 달려가는 자로서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을 일으키셨듯이, 그 생명의 일부를 안에 지닌 사람도 마지막 날에 모두 일으키실 의무가 있으십니다. 앞서 달려가신 분입니다. 그분을 천국으로 데려가 자신과 함께 있게 하시고 오른편에 앉히셨습니다. 권능과 위엄 가운데 모든 달과 별, 천사와 천사장보다 훨씬 높은 곳에 말입니다. 가장 높으셨던 분께서 가장 낮은 존재가 되셨습니다. 그 사이에 있는 것을 취하여 자신에게로 이끌고, 세상을 자신과 화해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까? 거룩하고 높으신, 가장 높으신 분께서 사람을 자신보다 조금 낮게 지으셨습니다.
사람은 여기까지 곤두박질쳤습니다. 때가 차기까지는 양과 염소의 피가 앞으로 이루어질 가능성 속에서 그를 이만큼 붙들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하나님께서 친히 내려오셨습니다. 천사도 그룹도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오셔서 지옥까지 내려가셨습니다. 사람을 지옥에서 들어 올려 그분과 함께 천국으로 데려가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잃어버린 양을 찾으러 오셨습니다. 그 양을 찾아 어깨에 메셨고, 오늘도 그를 메고 사닥다리를 올라 영광을 향해 가고 계십니다. “내가 땅에서부터 들리면 모든 사람들을 내게로 이끌리라.” 그분은 누구셨습니까? 주님 뜻이면 다음 일요일에 그것을 살펴보겠습니다. 멜기세덱의 계통에 따라 제사장이 되신 이 예수님은 누구셨습니까? 날들의 시작도 햇수의 끝도 없으셨던 멜기세덱입니다. 그분에게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마리아가 그분의 어머니라고 하셨지요. 아, 형제님. 그분은 세상의 창건 때부터 죽임을 당한 어린양이셨습니다. 마리아가 있기 전부터 그분은 계셨습니다. 아멘. 아, 그분을 뵙고 싶네, 그 얼굴을 바라보고 싶네. 그곳에서 구원의 은혜를 영원히 노래하리. 영광의 거리에서 내 목소리 높이리. 염려는 모두 지나고 마침내 집에 이르러 영원히 기뻐하리.
“그런데 브래넘 형제님, 무엇을 걱정하십니까? 왜 그렇게 힘껏 설교하십니까? 왜 이런 곳으로 가십니까...” 아, 저는 만족한 채 지낼 수 없습니다. 저 혼자 가서는 안 됩니다. 이 두 손이 죽을 몸에 속해 있는 것은 한 번뿐입니다. 이 입술이 죽을 몸에 속해 있는 것도 한 번뿐입니다. 그리고 형제자매 여러분도 죽을 몸으로 사는 것은 한 번뿐입니다. 제 안에 계신 이 영께서 지친 육체와 피곤한 시간을 통해 여러분에게 부르짖으시는 것은 단 한 가지 때문입니다. 여러분을 여기 이 교제 안으로 이끄시려는 것입니다. 교회 안으로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으로 이끄시려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여러분은 굳건하고 확실한 소망을 갖습니다. 하나님의 맹세로 닻을 내린 소망입니다. 그분은 그것을 확증하시고, 앞서 달려갈 분을 저곳으로 보내어 그분이 누구신지 보여 주셨으며, 마지막 날에, 그날 곧 부활의 날에 그분을 일으키셨습니다. 그것은 그분 안에 있는 우리도 부활 때에 나올 것임을 증명했습니다. 지금 이 휘장을 통과하여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게 된 사람마다 하나님은 내려다보시며 “내가 이미 그를 영화롭게 하여 저 하늘에 앉혀 놓았다”고 말씀하십니다. 보이십니까?
저는 잘못된 길로 갈 수 없습니다. 제 안에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그분은 반드시... 아, 물론 저는 여기 이 작은 타버내클로 돌아와 이곳을 넓히고, 네빌 형제님과 함께 일할 수 있습니다. 아마 제 아이들이 굶지 않게 할 수 있겠지요. 물론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아마 지금도 세상에는 제 친구들이 충분히 있어서, 제가 원한다면 전국을 돌며 한 번 크게 모금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10만 달러를 주겠지요. 백 살까지 산다 해도 남은 평생을 지낼 수 있을 것입니다. 10만 달러라면 아마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저 조금씩 이곳저곳에서 아껴 가며, 덫으로 짐승을 잡거나 사냥을 좀 하고, 여름에는 블랙베리도 따면서 말입니다. 그런 몇 가지 일을 하면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이 일을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아, 아! 그런 것은 제 마음을 전혀 움직이지 못합니다.
이 속에 있는 무언가가 저기 나병 때문에 손이 뭉툭하게 닳아 버린 불쌍한 이교도를 바라봅니다. 거리의 저 불쌍한 눈먼 사람, 배고파 손을 내미는 어린아이를 바라봅니다. 누군가 그들을 사랑하신다고 말해 주기만 한다면 그들은 끼니도 거르고 다른 무엇이든 없이 지낼 것입니다. 그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들은 개처럼 죽어 갑니다. 하나님에 관해 아무것도 모른 채 짐승처럼 구덩이에 묻힙니다. 하루에 4만 명이 죽어 갑니다. 하루에 4만 명이 하나님도 없이, 그리스도도 없이, 소망도 없이 죽어 갑니다. 아, 제가 어떻게 가만히 있겠습니까? 하나님, 제가 그저 머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젊어져서 그분이 저를 데려가실 때까지 계속 그렇게 지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설교하고 또 설교하고 또 설교하며, 울고 간청하고 애쓸 수 있을 텐데요. 보십시오, 미국 사람들은... 그 사람들은 무엇을 말해 주든 믿습니다. 미국 사람들에게는 여러분이 들어가 진리가 어디에 있는지, 바로 여기에 있음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밖으로 나가 교회에 가입하고 “뭐, 나도 당신만큼 훌륭해. 상관없어”라고 합니다. 아! 그것을 보면 “좋습니다, 형제님. 괜찮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가 이 안에 있지 않으면 잃어버린 자라는 것을 압니다. 잃어버린 자입니다.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저 밖에는 그를 구원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구원은 여기 있습니다. 여기, 흩뿌려진 피를 통해, 피를 통해, 찢어진 휘장을 통해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이 안으로 이끄셔서 하나님의 아들딸로 만드셨습니다. 그것이 유일한 길이며 제가 아는 유일한 것입니다. 하나님, 긍휼을 베푸소서.
언젠가는 끝날 것입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설교하고, 저 오래된 성경을 마지막으로 덮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니면 그 성경들 가운데 하나를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마지막 찬송을 부를 것입니다. 마지막 설교를 할 것입니다. 마지막 병자를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제가 하는 모든 일에는 마지막 한 번이 있을 것이고, 그것으로 끝나면 다시는 죽을 몸으로 살지 않을 것입니다. 죽을 생명의 바퀴들이 지금 제 몸 안에서 돌며 손을 뻗게 하고, 눈을 보게 하고, 입술을 말하게 합니다. 그 안에서 돌고 있는 모든 바퀴가 멈출 것입니다. 그뿐입니다. 그러나 형제님, 이 안에 있는 작은 무언가는 그때 다른 곳으로 갑니다. 그때 조금 더 높이 올라갈 것입니다. 저 위에는 손으로 만들지 않고 하나님의 모습을 따라 지어진 몸이 저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 강가에 제가 서 있을 때, 제 걸음을 인도하시고 제 손을 잡아 주소서. 귀하신 주님, 제 손을 잡고 저를 이끄소서. 그렇습니다. 길이 어두워져 갈 때, 귀하신 주님, 가까이 머무소서.
저는 그분이 제 곁에 서 계시기를 원합니다. 의사가 없든, 다른 사람이 아무도 없든 상관없습니다. “주님, 제 곁에 서 주십시오.” 제 생명이 거의 다하고 숨이 잦아들며 맥박이 소매 위쪽으로 올라갈 때, 아내와 아이들이 침대 주위에 서서 손을 비틀고 친구들이 바라보며 “아, 브래넘 형제님” 할 때 말입니다. 그 강가에 제가 서 있을 때 제 걸음을 인도하시고 제 손을 잡아 주소서. 귀하신 주님, 제 손을 잡고 저를 이끄소서. 제 소망은 바로 거기에 세워져 있습니다. 약속하시고 아브라함을 두고 맹세하신 그분께서, 제가 이것을 받아들이면 다시 태어나게 하시리라는 소망입니다. 세상의 자연적인 것들이 사라질 것입니다. 사람의 모든 신학이 사라질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만 믿으며, 그분 위에 설 것입니다. 그 길 끝에 이르면 저를 죄인에서 그리스도인으로 바꾸어 놓은 그 초자연적인 권능 가운데 바로 거기 서 있고 싶습니다. 그날 저는 제 모든 것 되시는 그분을 신뢰하겠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아직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오늘 하십시오. 우리가 기도하는 동안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하늘 아버지, 혼 깊은 곳에서부터 아버지의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소망이 오직 예수님의 피와 의 위에 세워져 있음을 아니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요! 주위의 모든 곳, 그 밖의 모든 곳에서 땅의 소망이 모두 무너지고 사라져도 우리에게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껍질들이 떨어져 나갑니다. 땅의 것들은 태양 앞의 밤처럼 흩어지지만, 주 예수님은 우리 삶에서 한결같으십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오늘 아침 여기 있는 사람 가운데 자신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음을 추호의 의심도 없이 확실히 알지 못하는 이가 있다면... 선한 행위도 교회도 다른 아무것도 구원할 수 없고, 오직 아버지, 아버지만이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이... 아버지, 오늘 아침 제 서툰 말로, 아버지께서 제게 주신 그대로 전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서툴게 전했어도 오늘 아침 이 건물에 있는 남녀들이 그것을 받아, 이 흩뿌려진 피를 통과해 걸러져 하나님과의 교제 안으로 들어와야 함을 알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한 성령으로 하나님의 왕국에서 예수님과 함께 공동 상속자가 되어야 함을 알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어떤 사람이 우리를 밀어 넣은 것이 아닙니다. 혈구 안에 계신 영께서 우리를 당기시고 자신에게로 이끄셨습니다. 우리는 피를 통과했고, 이제 그리스도 안으로, 교제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아버지, 그들이 그 안에 있지 않다면, 여러 해 교인이었고 아무리 애써 왔다 해도 바로 이 시간 그들을 통과하게 하여 아버지 안으로, 아버지와의 교제 안으로 이끌어 주십시오. 이 땅의 삶이 끝날 때 우리 안에 영생, 곧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하시게 해 주십시오. 마지막 날에 그분이 일으켜지신 것처럼 우리도 일으켜지게 해 주십시오.
평생 이리저리 흔들리기만 하고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 실제로 무엇인지 전혀 몰랐던 교인들과 사람들이 거기 서 있는 모습을 본다면 얼마나 낙담하겠습니까! 아버지께서 “사람이 물과 성령에게서 태어나지 아니하면 결코 왕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는데도 말입니다. 아버지, 그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영생이 있는 곳은 오직 그곳뿐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서 그들에게도 돌아서고 싶은지 물으셨을 때 그 사도는 “우리가 어디로 가겠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오직 주께만 영존하는 생명이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오늘 아침 이 건물에 있는 모든 남자와 여자, 소년과 소녀를 그 교제 안으로 이끌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 모든 것을 아버지의 아들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맡깁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거티 자매님. 그때는 어찌하리? 그때는 어찌하리? 그 큰 책이 펼쳐질 때, 그때는 어찌하리?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 이 메시지를 거절하는 사람들이 그 이유를 답하라는 말을 듣게 될 때, 그때는 어찌하리? 그때는 어찌하리? 그때는 어찌하리? 그 큰 책이 펼쳐질 때, 그때는 어찌하리? 오늘 이 메시지를 거절한 사람들이 그 이유를 답하라는 말을 듣게 될 때, 그때는 어찌하리? 형제자매 여러분, 아무리 오래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해 왔어도 오늘 아침 그리스도와 함께 그 혈구 안에 있지 않다면 이 하루를 그냥 보내지 마십시오. 오늘 들어오십시오. 그것은 여러분의 것입니다. 제단 앞으로 나올 필요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받아들이는 것뿐입니다. 믿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응답으로, 여러분의 믿음이 아브라함처럼 곧게 향해 있다면, 성령을 주셔서 그분의 왕국 안에 여러분을 봉인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구속의 날까지 봉인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을 슬프게 하지 말라. 그분에 의해 너희가 너희의 구속의 날까지 봉인되었느니라”라고 말합니다.
“브래넘 형제님, 저는 제가 그 안에 있기를 기도하며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할 분이 얼마나 됩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아, 건물 곳곳에서 드시는군요. “저는 그 안에 있기 위해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100퍼센트입니다. 아, 얼마나 놀라울까요? 아! 마지막 전투가 끝나고, 무기가 모두 쌓여 있고, 전쟁의 연기가 잦아들고, 해가 지고, 책들이 닫히고, 우리가 심판대에 서 있는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때는 어찌하리? 그때는 어찌하리? 그 큰 책이 펼쳐질 때, 그때는 어찌하리? 오늘 이 메시지를 거절하는 사람들이 그 이유를 답하라는 말을 듣게 될 때, 그때는 어찌하리?
우리가 그것을 받아서 기쁘지 않습니까? 하나님, 저는 너무나 행복합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과 끝없는 영원을 함께 보내리라는 것을 아니 너무나 행복합니다. 이것은 그저... 아, 우리가 지나가는 이 오래된 가시덤불의 작은 그림자가 무엇이겠습니까? 저 작은 언덕이 무슨 대수입니까? 아무것도 아닙니다. 받아들입시다. 이제는 내몰리는 말 못 하는 가축처럼 되지 맙시다. 영웅이 됩시다. 밖으로 나가 예수님을 모르는 우리 이웃들을 데려옵시다. 오늘 아침 술집에 가 보십시오.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모든 유흥 장소를 보십시오. 가득합니다. 오늘 오후 극장들은 즐거움과 쾌락을 찾는 사람들로 꽉 찰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면서도 매일 교회에는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합시다. 가서 다른 사람들에게 전합시다. 이것을 알고도 자기 보물함에만 넣어 둘 만큼 이기적이고 싶습니까? 아니지요, 형제님. 그것을 깨뜨리고 나아가 다른 일을 합시다. 그분이 지니셨던 위대한 것들, 보십시오, 무엇을... 그분은 우리가 모두 들어올 수 있도록 내려와 자신의 것을 깨뜨리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께서 우리 안에 계신다면 우리에게도 같은 생각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가서 다른 사람도 구원받게 합시다. 그들에게 이야기합시다. 그렇지요?
이제 마치기 전에 기도받고 싶은 병자가 이 건물 안에 계십니까? 계시면 손을 드십시오. 좋습니다. 여기, 바로 여기 계신 이 형제님입니다. 또 계십니까? 좋습니다. 저기 뒤에 한 분 더 계시군요. 제 어머니입니다. 좋습니다. 또 계십니까? 좋습니다. 여기 뒤에 계신 형제님이군요. 좋습니다. 모두 지금 바로 이곳으로 나와 주시겠습니까? 장로님들도 앞으로 모시겠습니다. 괜찮으시면 나오십시오. 우리가 이분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여기에는 몸을 위한 구원, 곧 신유도 있습니다. 아,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자녀들을 치유하시기를 얼마나 기뻐하시는지요! 장로님, 기름을 가지고 계시지요. 이제 바로 이 제단 앞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형제님. 거티 자매님, 「위대한 의사」를 연주해 주십시오. 나머지 우리는 잠시 겸손하고 조용히 있겠습니다. “위대한 의사께서 이제 가까이 계시니, 동정하시는 예수님이시네.”
이제 형제님들, 그리고 어머니, 믿음으로 곧바로 주 예수님과 함께 이 혈구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그곳에서는 구속의 모든 복이 여러분의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그리스도인인 줄로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얻어 주신 모든 것에 대한 권리가 있습니다. 정당한 권리입니다. 여러분의 소유입니다. 여러분이 소유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브라함처럼 하는 것뿐입니다. 그는 싸움을 견딘 뒤에 약속을 얻었습니다. 사탄은 여러분이 쉽게 얻도록 그냥 두지 않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믿어야 합니다. 견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는 “그 땅은 너희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그 땅은 블레셋 사람들과 그 밖의 모든 것으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그가 “너희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주었다. 이제 가서 차지하라” 하고 말했습니다. 신유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의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속해 있습니다. 이제 가서 차지할 수 있습니까? 오늘 아침 가서 차지하십시오. 나아가십시오. 여러분의 것입니다. 아무것도 여러분을 해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종들로서, 아버지의 장로가 여기 제 곁에 서 있는 가운데, 주님, 우리는 아버지의 말씀을 따라 병자들에게 기름을 바르러 나아갑니다. 아버지께서 “그들은 장로들을 부를지니라. 장로들은 그들에게 기름을 바르고 그들을 위해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입술에서 흘러나온 마지막 말씀에도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 사람들이 나으리라.” 사도들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동일한 말씀을 확증하려고, 우리는 아버지께서 병자들을 치유하시리라 믿으며 그들에게 기름을 바르고 안수하러 갑니다.
여기 세 남자와 제 어머니가 서 있습니다. 하나님, 이들이 이 혈구를 통과해 주 예수님과의 교제 안으로 이끌려 왔으니, 바로 지금 아버지의 성령께서 이들의 마음속에 역사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이 죽을 생명들은 언젠가 끊어지겠지만 영생은 영원히 살아 있음을 압니다. 이 몸의 삶이 끝나는 즉시 그들을 맞을 다른 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이들은 간증하고 싶어 합니다. 이들은 죽을 몸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 삶이 끝나면 다시는 죽을 몸으로 살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이번 한 번뿐이며, 그것으로 영원히 결정됩니다. 그때부터는 죽지 않는 몸으로 살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죽을 몸으로 살며 자기와 같은 죽을 사람들에게 외칠 기회가 있는 동안, 하나님, 이들의 몸을 치유하셔서 나가 말씀을 전하고 사람들에게 그것을 이야기하게 해 주십시오. 허락해 주십시오, 주님. 이러한 근거로 아버지의 종으로서, 곧 제사장으로서, 또는 사역자로서 이 간구를 아버지께 드립니다. 이들이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살아서 건강하게 지내도록 이들을 아버지께 데려옵니다. 주 예수님의 피를 통해 이 간구를 드립니다. 이제 우리는 아버지께서 하라고 말씀하신 것을 하려고 나아갑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불신의 모든 영에 맞서 그것을 그들에게서 쫓아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일들이 이들의 몸에서 이루어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아들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여기 있는 우리 형제에게 이 기름을 바릅니다. 원수에게 맞서 “너는 이 형제에게서 떠나라” 하고 명합니다. 이 형제의 몸의 질병이 떠나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아버지를 섬기게 해 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합니다. 아멘. 우리 형제가 이 기름부음의 기름을 여기에, 제 어머니의 머리에 바릅니다. 하늘과 땅의 창조주이시며 영존하는 생명의 창시자이시고 모든 좋은 선물을 주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여인에게서 태어나 죄 있는 육신과 같은 모습으로 만들어지고 빚어지신 아버지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님을 일으키셨습니다. 이는 그분이 거기서 사망의 쏘는 것을 없애시고 우리 몸의 질병을 자신의 몸에 짊어지시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아침 우리가 이것을 행하며 그것을 받아들입니다. 이것은 제 어머니를 위한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할 때 어머니를 치유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아버지의 아들들로서 간구하오니, 질병의 영이 제 어머니에게서 떠나고 어머니가 자유롭게 되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