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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그동안 대전도 집회에 한 번도 오신 적이 없는 분이 스물네 분쯤 계시는군요. 사랑하는 여러분, 진심으로 환영하며 주 예수님 안에서 사랑합니다. 오늘 밤 그분의 영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크게 감동시키셔서, 여러분이 그분을 더욱더 사랑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자, 이것은 언제나 근본적으로 올바른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며, 그 모든 부분이 영감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 안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자신의 말씀 안에 계신다면, 여러분이 말씀을 받아들일 때 하나님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며, 하나님의 동기이며, 하나님의 태도이며, 하나님의 사랑이며,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모든 것이 인쇄된 그분의 말씀 안에 있습니다. 만일 그 말씀들이 여러분이 집어서 삼킬 수 있는 낟알이나 씨앗 같다면, 그 하나하나가 여기서 하겠다고 말씀하는 그대로 이루어 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으로 그 말씀들을 받아들입니다.
얼마 전에 어떤 분이 제게 물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그런 환상들이 올 때, 그것도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입니까?” 저는 말했습니다. “그것은 이차적인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만일 그것이 이 성경과 맞지 않는 말을 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틀린 것입니다. 이것이 먼저입니다.” 자, 이것이 하나님입니다. 그분은 “나는 너를 치유하는 주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치유는 하나님에게서 옵니다. 치유하시는 분은 그분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하나님에게서 옵니다. 여러분과 저에게 주시는 그분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 믿을 수 있는 그 믿음의 경지까지 올라가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아십니까? 때로는 우리가 감정에 이끌려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이려고까지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여러분은 “저는 믿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사탄도 믿습니다. 그것이 여러분이 구원받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여러분이 구원받으면, 구원의 인인 성령침례를 받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믿었고,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믿음의 인으로, 곧 그 믿음을 확증하는 것으로 할례를 주셨습니다. 그 믿음이 올바르다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이를테면 빵 한 덩이 값이... 십 센트라고 합시다. 자, 여기 십 센트짜리 동전이 있습니다. 이것은 빵 한 덩이가 아니지만, 저는 이 십 센트로 빵을 삽니다. 마찬가지로 저는 믿음으로 구원을 삽니다. 믿음이 구원은 아닙니다. 믿음이 구원을 사는 것입니다. 믿음은... 십 센트짜리 동전으로 빵 한 덩이 값을 치르지만, 그 동전이 빵 한 덩이는 아닙니다. 아시겠죠. 그러므로 여러분이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은 여러분의 믿음이 이루어 내는 것을 여러분에게 돌려주심으로 그 믿음을 확증하십니다. 여러분은 “제게는 치유받을 믿음이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런 믿음이 있다면 여러분은 치유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을 지키실 의무가 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여러분이 “저는 구원받았다고 믿습니다.”라고 말한다면, 하나님은 그것을 확증하시려고 성령을 주시며, 성령의 증거를 주십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참으로 믿을 때, 마음속의 모든 죄가 사라지고 어둠이 대낮으로 바뀌며, 옛사람은 사라지고 새사람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믿습니다.”라고 말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저 “교회에 가입했습니다.”라고 할 뿐, 계속 똑같은 삶을 삽니다. 그분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신 것입니다. 아시겠죠. 하지만 그분이 받아들이셨을 때는 여러분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고, 그러면 여러분은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신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저는 신유를 믿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받아들일 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다. 여러분이 참으로 믿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다. 여러분이 믿지 않는다면...
제가 주님을 위해 하는 일은 그 사람을 이 수준까지 끌어올리려고 힘쓰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믿음이 소극적인 것이 아니라 확고한 것이 되는 수준 말입니다.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제자들은 예수님을 좀처럼 믿지 못했습니다. 그분이 수수께끼 같은 말씀을 너무나 많이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가르치셨다가 다시 저렇게 가르치시니, 모든 면에서 자신의 말씀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비유들을 이해하지 못했고, 누구도 그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계속 그렇게 지내다가 그분의 사역이 끝날 무렵, 아마 요한복음 15장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보소서, 이제는 주께서 명백히 말씀하시고 비유로 말씀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하나님으로부터 오셨다는 것을 알며, 아무도 주께 무엇을 말씀드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아나이다.” 아시겠죠. “이로써 우리는 주께서 하나님으로부터 오셨다는 것을 아나이다.” 예수님께서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시겠죠, 아시겠습니까. 그들은 그분이 행하신 일을 믿음으로 보았고, 영의 나타나심을 통해 어떤 위대한 계시가 알려졌습니다. 그러자 그들의 믿음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이 경지로 높아졌습니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하나님으로부터 오셨음을 확신하나이다.” 아시겠죠. “이제 우리가 믿나이다.”
심리 작용이 아무리 커도,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아무 의미도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정정하겠습니다. 심리 작용도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실재를 대신하지는 못합니다. 그렇습니다. 심리 작용은 여러분이 어떤 것을 생각하거나, 정신적으로 마음을 고조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재는 하나님이 그에 응답하셔서 여러분이 마음으로 생각한 것을 확증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져오는 것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그것이 여러분에게 확증될 때, 실제로 증거가 됩니다. 확고한 무엇이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에서 몇 절을 읽겠습니다. 들어 보십시오. 바리새인들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유대인들의 치리자더라. 바로 그가 밤에 예수님께 나아와 그분께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왜냐하면... [왜 그것을 압니까?]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그런데도 그분은 모든 신학과 그들의 모든 가르침에 반대하셨습니다. 그것들을 제쳐 두시고 하나님에게서 오는 명백한 진리를 가르치셨습니다.]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기적들을 아무도 할 수 없나이다.
그들은 그렇게 알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아볼 수 있는 경지까지 그들의 믿음을 끌어올리는 일을 행하셨습니다. 자, 교회가 신학만 가르친다면,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 여러분이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그 교회에서 일하시며 믿음을 그 경지까지 끌어올리시면, 그때 여러분은 압니다. 신유도 그러합니다. 이제 제가 잠시 말씀드리려는 본문은 14절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놋뱀을 든 것 같이 사람의 아들도 반드시 들려야 하리니.
예수님께서는 이해하지 못하는 이 높은 치리자에게 말씀하시면서, 자신이 말씀하시는 내용에 대한 성경적 증거로 구약 성경을 제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교리는 철저히 성경의 근본에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 교리에 대한 그들의 신학에 어긋났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신학에서는 매우 정통적이었습니다. 그들은 믿었고, 자신들이 믿는 것에 대해서는 아주 철저한 신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그것, 곧 진리가 없었습니다. 성경은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옳으나”라고 말씀합니다. 모든 면에서 옳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의 끝은 사망의 길들이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옳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모든 시대에 하나님은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를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분은 그것을 입증하셨습니다. 그것을 증명하셨습니다.
얼마 전, 약 이 주 전에 제가 어떤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는 “구약 시대에 하나님이 병자들을 고치셨지요.”라고 말했습니다. 또 “신약 시대에도 병자들을 고치셨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분이 그들에게 병자를 고칠 권능을 주셨다는 것은 인정하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의 말씀을 통해서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성경은 그분이 언제 그것을 그들에게서 거두셨다고 말합니까?” 아시겠죠. “저는 그것이 어디에서 왔는지 보여 드릴 수 있습니다. 그것이 주어진 곳을 선생님도 아십니다. 그러니 그것을 거두신 곳을 보여 주십시오. 그러면 믿겠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항상, 세상 끝까지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내가 하는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 내가 세상 끝까지 너희와 함께, 곧 너희 안에 있겠기 때문이라.” 이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며 그들에게 비유를... 아니, 한편으로는 예언이라고 하겠습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본보기였습니다. 그분은 “모세가 광야에서 놋뱀을 든 것 같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생각에 기초를 놓기 위해 잠시 이스라엘 자손에게로 돌아가겠습니다. 서둘러 살펴보면서 성령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들여다보게 하실지 보겠습니다. 이것은 미리 생각해 둔 것이 아닙니다. 저는 그저 여기 와서 성경 한 구절을 읽었습니다. 말씀이 어디로 향하든 그대로 따라가는 것입니다.
지금 저는 이스라엘이 사백 년 동안 속박 가운데 있었던 일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사백 년 동안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보십시오. 그 사백 년의 속박 동안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무슨 일을 하셨다는 말이 단 한 마디도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사백 년 동안 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에게 있었던 마지막 선지자는 요셉이었습니다. 요셉은 어떤 일들을 행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하나님에 의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었습니다. 선물들과 부르심에는 뜻을 돌이키는 일이 없습니다. 사람에게 애초에 없는 것을 억지로 집어넣을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택하심 가운데,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어떤 일들이 일어나도록 택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은 처음부터 끝에 무슨 일이 있을지 아실 수 있습니다. 이미 그것을 정해 놓으셨으므로, 반드시 그 지점에 이르러야 하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태어날 때부터 영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선지자이며, 선견자이며, 꿈꾸는 자이며, 꿈을 해석하는 자였습니다. 영적인 사람이었습니다. 형제들에게 미움을 받고 아버지에게 사랑받은, 그리스도의 완전한 모형이었습니다. 그는 영적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까닭 없이 그를 미워했습니다. 그리고 아주...
모든 성경 말씀에는 겹치는 의미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주기를 따라 반복됩니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거기에는 “이집트에서 내가 내 아들을 불러내었노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마태가 가리킨 그 성경 말씀은 사실 이스라엘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내가 이집트에서 내 아들 이스라엘을 불러내었노라.”라고 말씀하셨을 때 말입니다. 그분은 자신의 아들 이스라엘을 불러내셨지만, 그 말씀은 예수님을 뜻하기도 했습니다. “이집트에서 내가 내 아들을 불러내었노라.” 이렇게 되풀이되는 것을 아시겠습니까? 시간의 주기는 얼마씩 지나면 다시 돌아옵니다. 역사는 되풀이되며, 성경 말씀도 시대를 거치며 되풀이됩니다. 영적인 관점에서 성경을 연구하여, 성경 말씀이 어떻게 되풀이되고 그렇게 주기를 따라 반복되는지 살펴본 학자라면 누구나 그것을 압니다. 분명히 그렇습니다.
요셉이 영적이라는 이유로 그의 형제들이 까닭 없이 그를 미워한 것은 오늘날 소위 교회라는 것의 모형입니다. 감리교, 침례교, 장로교, 오순절교, 성결교, 그 밖의 모든 교파에서 함께 멸시하는 사람들, 곧 이 교회들의 형식적이고 미지근한 교인들 말입니다... 그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각 교파마다 다시 태어난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저 평범한,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 영적 계시로 하나님께 입증받은 적 없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말만 하는 사람들은... 여러분이 권능과 치유와 구원이 참으로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대한 영적 계시입니다. 다른 어디에서도 그것을 배울 수 없습니다. 오직 계시로만 배웁니다.
잠시 본문에서 벗어나도 된다면 이것을 보십시오. 창세기로 돌아가면, 아벨과 가인이 각각 희생물을 가지고 왔을 때, 그 두 사람은 모두 신자였습니다. 아벨과 가인은 둘 다 신자였습니다. 그들은 불신자가 아니었습니다. 가인은 불신자도, 공산주의자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신자였습니다. 자,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이 주님을 믿는 것뿐이라면, 아벨과 똑같은 믿음을 가진 가인을 정죄하신 것은 부당한 일이었습니다. 경배할 믿음, 희생물을 드릴 믿음, 믿을 수 있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믿기만 하면 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할 일은 그것뿐입니다. 그러나 그다음에는 하나님이 무언가를 하셔야 합니다.
입증에 관해 주목하십시오... 가인은 경배했습니다. 가인은 교회, 곧 제단을 세웠습니다. 가인은 그 제단에서 경배했습니다. 가인은 희생물을 드렸습니다. 그는 아벨 못지않게 종교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가인은 행위의 열매, 밭의 열매들을 가져다가 제단 위에 놓았습니다.
틀림없이 가인은 ‘우리를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한 것은 열매다. 내가 수고하여 다시 가져와야 할 것이다.’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는 인간적인 관점에서 그렇게 했습니다. 그 나무의 열매가 금지된 열매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열매를 가져다가 제단 위에 놓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벨에게 그의 믿음을 통해 영적으로 계시하셨습니다. 그 원인은 열매가 아니라 피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 계시를 두고, 처음으로 세워진 교회 건물들, 처음으로 쌓은 제단들에서 찬성과 반대가 갈렸습니다. 아벨은 영적 계시를 받았습니다. 기록된 말씀이 없었으므로, 하나님이 그에게 그것은 열매나 손으로 수고한 행위가 아니라고 계시해 주셨습니다. 그는 피를 가지고 와서 피를 드렸으며, 그것은 그가 의롭다는 것을 증언했습니다. 그것이 그에게 영적으로 계시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변화산에서 내려오셨을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나 곧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 하느냐?” “어떤 이들은 주를 모세라 하고,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며, 선지자들이라고 합니다.”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그러자 베드로가 [들어 보십시오.] 앞으로 나와 말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말씀하셨습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것을 네게 계시한 것은 살과 피가 아니니라.” 아멘. 보십시오. “너는 이것을 신학교에서 배운 것이 아니다. 사람들에게서 배운 것이 아니다.” 바울은 자신이 사람들의 지혜를 전하러 온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권능을 전하러 왔으며, 그것은 여러분의 믿음이 사람들의 지혜에 기초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에 기초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네가 복이 있도다. 이것을 네게 계시한 이는 살과 피가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주목하십시오. “이 반석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 여기 계신 성직자 여러분, 제 형제들인 가톨릭 여러분은 “그분은 반석인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우셨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만일 그렇게 하셨다면, 그는 며칠도 안 되어 믿음에서 뒤로 물러났습니다. 보십시오.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 위에 세워졌다고 했습니다.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이것을 네게 계시한 이는 살과 피가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영적 계시 위에 그분은 자신의 교회를 세우시며, 지옥의 문들은 그것을 이기지 못합니다. 그리스도가 그 반석이라는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어떤 의미에서는 그리스도가 반석이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베드로에게 말씀하신 것은 영적으로 계시된 진리, 곧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하나님의 증거였습니다. “그것을 네게 계시한 이는 살과 피가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것을 네게 계시하셨느니라.” 영적 계시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셔야만 여러분은 그것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계시한 이는 살과 피가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것을 네게 계시하셨기 때문이니라.” 영적 계시입니다.
그러므로 보십시오. 그 선지자 요셉이 죽은 뒤, 저 아래 있던 자손들에게는 어디에도 돌파구가 없었습니다. 교회는 아마 여전히 예전만큼 정통적이었을 것입니다. 사백 년이 지난 모세의 시대에도 그들에게는 여전히 장로들과 서기관들과 그 밖의 사람들이 있었고, 종교적이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그동안 내내 교회는 잠들어 있었습니다. 우리가 여러 해 동안 살아온 시대가 바로 그런 시대입니다. (그렇습니다.) 잠든 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약속의 때가 가까워졌을 때 하나님은 또 한 사람, 미리 예정되고 미리 정해지며 택함받은 피조물을 내려보내 세상에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그가 태어나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의 부모는 그 아이가 하나님의 귀한 아이임을 알았으므로, 파라오의 모욕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아기였을 때부터 하나님이 백성을 찾아오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하는 온갖 조직 활동, 함께 모여 꾸미는 모든 일, 우리의 모든 계획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시작하시지 않으면, 그것을 적은 종이만큼의 가치도 없습니다. 그 일을 하시는 분은 그분입니다. 그 일을 할 열쇠를 가지신 분은 오직 그분뿐입니다.
지금 하나님은 여러 나라에서 사람들이 막다른 데까지 가도록 내버려 두고 계십니다. 우리에게는 거창한 4대 강국이며 국방부며 그 밖의 모든 것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심판하실 때를 정해 놓으셨습니다. 모든 것은 그때를 향해 움직여 갈 것입니다. 모든 것은 저 위 하늘에서 그분이 말씀하시는 대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모세가 등장했을 때, 그는 모세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선지자로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내려보내 땅에서 생명을 주셨으니, 세상의 모든 파라오를 다 합해도 그를 죽일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선지자였습니다. 모세가 등장하자마자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백성을 구출하도록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였습니다. 하나님이 한 사람을 보내시자마자, 초자연적인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가 그렇게 오랫동안 죽은 채 있고, 여러분의 교회에 부흥이 없으며, 목사는 차갑고 메마른 설교만 들고 서 있고, 누군가 “아멘.”이라고 말하면 모두가 집사들이 그 사람을 건물 밖으로 데리고 나가 주기를 바라는 교회가 있습니다. 교회가 그렇게 되면, 잠든 채로 있게 됩니다. 그러나 오, 하나님이 그분의 사람을 한번 보내시도록 해 보십시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십시오. 제단에 부흥의 불이 다시 돌아올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혼에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부르짖을 것입니다. 삶이 바로잡힐 것입니다. 교회에서 치유가 일어날 것입니다. 표적과 이적이 일어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계신 곳에는 새로운 창조가 오고, 새로운 생명이 오며, 새로운 소망이 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오시면 모든 것이 옵니다. 언제나 그랬습니다.
자, 다시 신속히 살펴보겠습니다. 그 여정에서... 오늘날 여정에 있는 교회의 완전한 모형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가시면서 그들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시고 길을 마련해 주신 것을 보십시오. 그러다가 교회가 식어 가는 때가 왔고, 그들은 불평하며 하나님과 모세를 비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식어 가기 시작하자, 진영에 병이 들어왔습니다. 불뱀들이 들어와 사람들을 물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에는 병이 크게 퍼졌고, 백성 중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들이 자기들의 잘못을 고백하자마자, 모세는 가서 그들을 위해 중보했습니다. 오늘 밤 이 미국 전역에 필요한 것은 옛날 방식의 진실한 고백입니다. (그렇습니다.)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자비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저 교회에 가입하거나, 오래 계속되는 집회를 시작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곳곳에서 옛날처럼 고백하는 것입니다. “주님,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불법 술집과 모든 매음굴의 문을 닫으십시오. 판매대에서 담배를 치우십시오. 더 이상 위스키를 팔지 못하게 하십시오. 우리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다는 것을 하나님께 증명하십시오. 나이트클럽의 문을 닫으십시오. 무릎을 꿇고 기도를 시작하십시오. 그것이 부흥을 시작하는 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들이 쏟는 온갖 노력을 보십시오. 모두 헛수고입니다. 여러분이 이 일에 신실하다는 것을 하나님께 참으로 증명하기 전에는, 모든 것이 헛수고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의 치유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저 이 기도 줄을 지나고 또 다른 기도 줄을 지나면서, 이 사람에게 손을 대고 저 사람에게 손을 대며, 이것이... 하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여러분이 신실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돌아갈 길을 완전히 끊어 버리며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라고 할 때까지는 안 됩니다. 그때 무언가가 일어날 것입니다. 성령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저는 여러 해 동안 성령을 구해 왔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을 꾸짖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잘못 배웠거나, 무엇인가 잘못되었거나, 여러분이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을 지키실 의무가 있습니다. 베드로는 오순절 날 이렇게 말했습니다. “회개하고 너희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 너희 죄들의 사면을 얻으라. 그러면 너희가 성령님을 선물로 받으리니.” 그것은 성경 말씀입니다. 제가 읽을 수 있는 그대로, 더없이 명백한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회개하고 침례를 받았다면, 하나님을 향한 여러분의 믿음이 올바르다면, 하나님은 여러분이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그 순간에 성령을 주실 의무가 있습니다. 그것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그것을 입증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올바르고, 올바르게 배웠으며, 그것을 믿고 확신을 가지고 나아간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령을 받기 원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성령을 주기 더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자, 조금만 더 나아가 보겠습니다. 모세가 가서 하나님께 말씀드렸을 때... “하나님, 제가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했습니다. 성령께 주목하십시오. 서둘러 보겠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놋으로 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고, 이스라엘 한가운데에 높이 세우라. 누구든지 이 뱀을 바라보고 믿는 자는 자기 병에서 나으리라.”
먼저 놋과 장대, 뱀의 형상이 만들어졌는데, 그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말해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시면서 “모세가 광야에서 놋뱀을 든 것 같이, 사람의 아들도 같은 목적을 위해 반드시 들려야 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처음에 한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백성이 처음에 한 일은 하나님과 다투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죄를 지었습니다. 그래서 뱀들이 그들을 물었던 것입니다. 그들과 함께 있던 이집트 의사들의 지혜로도 뱀에 물린 상처를 고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없애시면 병도 없애실 수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그가 뱀을 만들었습니다.
우선 그 뱀은 에덴동산에서 이미 심판받은 죄를 나타냈습니다. 다리를 빼앗긴 그 뱀 말입니다. 놋은 하나님의 심판을 나타냈습니다. 놋 제단과, 아합이 그 나라를 오랫동안 다스리던 엘리야 시대의 놋 같은 하늘이 그러했습니다. 장대는 십자가를 나타냈습니다.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나타냈습니다. 왜 그분은 그것을 미리 보여 주셨습니까? 하나님은 처음에 이스라엘 자손이 그분이 앞으로 하실 일에 대해 이자를 미리 받게 하셨던 것입니다. 보십시오. 하나님의 생각 속에서 그리스도는 이미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분은 세상의 기초가 놓인 때부터 죽임을 당한 어린양이셨기 때문입니다. 에덴에서 하나님의 생각 속에 계시던 그리스도는 아직 실체로 나타나지 않으셨습니다. 그 생각이 그분의 말씀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이 이루어질 줄 아셨습니다. 그분이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예금이 들어오기 전에 이스라엘 자손이 이자를 받게 하셨습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지 아셨기에, 그것을 보여 주시려고 여기에 그것을 나타내는 무언가를 만드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뱀을 통해 앞으로 일어날 일을 볼 수 있었고, 그것을 통해 치유를 받았습니다.
죄를 없앨 수 있게 되면, 치유도 반드시 받게 됩니다. 오, 세상에. 감리교인들은 그 말을 들으니 기쁘지 않습니까? 보십시오. 원인을 없애면 이미 치유를 얻은 것입니다. 이자를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한하신 생각 속에서, 수백 년 뒤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우리를 위해 죄가 되시며 십자가에 못 박히실 것을 미리 아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도 전에, 놀라운 일로 이스라엘이 치유받게 하셨다면,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뒤에는 얼마나 더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그것이 모형이었다면, 실체로는 얼마나 더 하시겠습니까? 오늘날 우리에게는 모세에게 있었던 것보다 얼마나 더 위대한 계획이 있습니까? 그런데도 모세가 광야에서 나왔을 때, 그들 가운데는 쇠약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사십 년입니다. 의사 모세입니다. 오늘 밤 여기 의사 선생님이 계신다면, 모세의 처방을 좀 얻고 싶으실 것입니다.
그는 이백만 명을 인도했습니다. 이백만 명 중에서 매일 밤 아기가 몇 명이나 태어나겠습니까? 노인은 몇 명이나 있었겠습니까? 장애인은 몇 명이나 있었으며, 그들 가운데 병은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런데 의사 모세는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모두 돌보았고, 그들 가운데 쇠약한 사람이 하나도 없이 끝까지 이끌었습니다. 의사 선생님, 선생님은 한 가족도 그렇게 잘 돌보지 못하실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왜 그랬습니까? 의사 모세에게는 처방전이 있었습니다. 그가 어떤 처방전을 가지고 있었는지 모두 보고 싶으십니까? 제가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의 서류 가방을 들여다봅시다. “나는 너를 치유하는 주니라.” 그에게 필요한 처방전은 그것뿐이었습니다. “나는 너를 치유하는 주니라.” 의사 선생님, 그것을 선생님의 서류 가방에 넣으십시오. 말씀드립니다만, 선생님의 환자들은 나을 것입니다. “나는 너를 치유하는 주니라.”
아기를 가진 어머니가 몹시 아파도, “나는 너를 치유하는 주니라.” 뱀에게 물려도, “나는 너를 치유하는 주니라.” 누군가 다리가 부러져도, “나는 너를 치유하는 주니라.” 그분이 그 언약 아래서 그렇게 하셨다면, 오늘날의 언약은 얼마나 더 위대합니까? 모형 아래서 그렇게 하셨다면, 실체 아래서는 무슨 일을 하시겠습니까? 그리스도인 여러분, 제가 무엇을 믿기 시작했는지 아십니까? 우리는 바로 이 세상이 지금까지 목격한 가장 위대한 시대의 시작을 살고 있다고 믿습니다. 저는 막혀 있던 모든 통로가 뚫리고 있다고 믿습니다. 온갖 교리와 신학, 온갖 것들, 곧 불신으로 막혀 있었습니다. 그것이 대대로 전해 내려왔습니다. “오, 치유 같은 것은 없습니다. 기적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우리는 그저 자동적으로 그것을 믿습니다. 그러나 이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때에 이르렀습니다. 사람에게 맡겨졌다면 우리는 여전히 저 옛날의 형식적인 방식에 머물러 있었을 것입니다.
지난 백오십 년 동안 과학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보십시오. 생각해 보십시오. 백 년 전에는 소식을 전하는 방법이 편지를 보내거나 입으로 말해 귀로 듣게 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전화, 전보, 무선 전보, 텔레비전으로 소식을 전할 수 있습니다. 소식을 전하는 방법과 그동안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생각해 보십시오. 백오십 년 전에 어떤 프랑스 과학자가 있었습니다. (지금 이름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얼마 전에 그에 관해 읽었습니다.) 그는 이런 것을 증명했습니다. 아니, 증명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지구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대로 돌고 있다면, (지구의 둘레가 이만 오천 마일이므로 시속 천 마일이 넘는 속도로 돌아야 할 것입니다.) 사람이 시속 삼십 마일이라는 엄청난 속도로 움직일 경우, 중력이 그를 지구 밖으로 떼어 낼 것이라고 했습니다. 과학적 증거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그는 대체 무엇을 날리고 있었을까요? 기구였을까요? 보십시오. 오늘날 사람들이 그 말에 신경을 씁니까? 여러분은 자동차에 올라타 시속 백 마일로 달리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얼마 전에 작은 포드 자동차를 보았습니다. 어떤 종류의 소형 포드였는데, 시속 백오십 마일로 달린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발전해 왔기 때문에 그 과학자가 한 말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습니다. 이제 원자를 쪼개고 있습니다. 원자를 통해 공기 중의 원소들을 이리저리 다루면서, 과학이 무엇을 알아내기 시작했는지 아십니까? 원자는 거슬러 올라가며 분해되다가 하나님께 이릅니다. 빛도 거슬러 올라가 하나님께 이르렀습니다. 이제 과학은 여러 가지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 근거를 다시 하나님께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다시 그분께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아내고 있습니다.
얼마 전 제가 여기 왔을 때, 한 뛰어난 과학자가 이 강단에서 말했습니다. 그는 뒤쪽 방에서 제게 그 빛, 곧 나타나는 그 천사의 빛에 관해 물었습니다. 종이에, 사진에 그 빛이 찍혀 있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브래넘 목사님, 죽어 가는 한 성도에게 계측기를 연결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녀가 죽어 갈 때 방에 조용히 들어가서 연결했는데, 그녀는 그것을 전혀 몰랐습니다. 죽음이 그녀에게 닥쳤을 때, 그녀는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눈을 들어 하나님께 자기의 모든 원수를 용서해 달라고 구했으며,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해 감사드렸습니다. 계측기의 눈금을 0에 맞추어 놓았는데, 그 여자에게서 큰 힘이 솟아 나왔습니다. 초자연적인 무언가가 그녀에게서 나와 그 계측기에 잡혔습니다. 거짓말 탐지기와 같은 원리로 만든 것이었는데, 여러분의 신경이...”
여러분은 거짓말을 하도록 지음받지 않았습니다. 손목에 어떤 장치를 두르고 거기에 앉혀 놓은 다음, 무슨 말을 해 보게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그것은 여러분이 거짓말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줄 것입니다. 여러분의 신경을 통해 흐르는 빛, 그 에너지에 압력이 가해지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사람의 혼이며, 처음에 거짓말하도록 지어진 것이 아니라 진실하도록 지어졌습니다. 과학은 그것을 특허품으로, 또는 그런 단계까지 만들어 놓았습니다. 진실에 대해서도 똑같은 것이... 그런데 죽어 가던 이 하나님의 성도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자기 집에서 쫓겨났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녀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그분을 믿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녀가 미쳤다고 했습니다. 그 여자에게서 무선 소식을 전 세계에 다섯 번이나 보낼 만큼의 힘이 나왔습니다. 다섯 번이었던 것 같습니다. 죽어 가는 그 여자에게서 나온 힘 말입니다. 죽음을 맞는 그 시간에 신실한 마음으로 드린 그 기도는 달과 별들을 넘어 하나님의 보좌까지 나아갔습니다.
그다음 그는 성병으로 죽어 가는 불신자 한 사람에게 조용히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감정을 한껏 자극하려고 젊은 여자 한 명을 그곳에 들여보냈습니다. 그 남자가 여자에게 화를 내며 욕설을 퍼붓고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기 시작하자, 계측기는 그 그리스도인에게서 이쪽으로 움직였던 만큼 반대쪽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자 그 과학자는 회심하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을 영화롭게 사용하며 자신을 믿는 사람들을 그토록 존중하신다면, 저도 이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을 구주로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그가 말했습니다. “브래넘 목사님, 구주와 성도들 주위에 있는 그 빛은 그저 머릿속에서 만들어 낸 생각이 아니었습니다. 옛날 놋뱀 때와 마찬가지로, 그것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이제 그것은 과학적으로 사실임이 증명되었습니다. 할렐루야. 그러나 모든 신자 주위에 권능이 있었던 것은, 그것을 사진에 담을 카메라가 생기기 전부터였습니다. [테이프에 공백 있음.]
주의 말씀은 참됩니다. 주님, 이제 주의 사랑하시는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는 이 몇 마디 말씀을 전하는 동안 저희와 함께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분은 “내가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 하나님, 저희가 사람들 앞에서 그분을 들어 올리도록 도와주십시오. 그분을 높이 높이며 “저기 그분이 계십니다. 아버지께서 높이신 그대로입니다.”라고 말하도록 도와주십시오. 그분은 모든 천사장보다 높이 올라가셨으며, 하늘에서 불리는 모든 이름보다 그분의 이름이 높습니다. 그분은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을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능이 내 손에 주어졌느니라.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라. 보라, 내가 세상의 끝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 제가 가진 이 보잘것없고 미천한 방식으로... 하지만 이것도 복을 받은 것이어서, 저는 고맙고 감사하게 여깁니다... 그날 밤 저를 만나 주셨던 하나님의 위대한 천사가 지금 여기 단 위에 서서, “기도 줄을 불러라.”라고 제게 경고하는 듯합니다. 아버지, 오늘 밤 많은 사람을 믿게 할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예배가 끝났을 때, 하나님, 모든 불신자가 여기 제단으로 달려와 “이제 믿습니다.”라고 말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성령이 없는 이들은 오늘 밤 자리에 앉아 있는 동안 성령을 받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을 구하고 있는 이들에게 주의 임재로 인해 오늘 밤이 영광스러운 밤이 되게 해 주십시오. 주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브래넘 형제님이 옆에 있는 한 형제에게 말씀한다. 기도 카드를 나눠 주셨는지 모르겠군요. 어젯밤에는 무슨 카드였지요, J였습니까? J 카드의 앞부분을 불렀지요? 한... 몇 명이었습니까, 어젯밤에 스무 명이었습니까? 다 하지는 못했습니까? 좋습니다. 그럼 마지막... 열다섯 명쯤 했던가요... 어젯밤에 제가 그랬습니까?] 좋습니다. 오늘 밤에는 먼저 열다섯 명을 여기로 부르겠습니다. J-85번, 85번부터 100번까지 하겠습니다.
J-85번을 가진 분은 누구입니까? 손을 드십시오. 부인, 가지고 계십니까? 여기로 오십시오. 바로 이 아래로 오십시오. J-86번을 가진 분은 누구입니까? 기도 카드 86번,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86번? 86번? 좋습니다, 부인. 87번? 87번을 가진 분은 누구입니까? 좋습니다. 88번? 좋습니다. 89번, 기도 카드 89번을 가진 분은 누구입니까? 여기 계십니까? 손을 드십시오. 89번? 그분이 가지고 계십니까? 90번, 기도 카드 90번을 가진 분은 누구입니까? 91번, 92번, 93번, 94번, 95번? 95번, 제가 보았습니까? 좋습니다. 96번, 97번, 98번, 99번, 100번? 잠시 이분들부터 해 보겠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저 기도 줄에 아침이 되기 전에 죽을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모릅니다. 제가 그렇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무언가가 기도 줄을 세우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그렇게 하려는 것입니다.
여기 믿는 분들 중에, 병이 있어서 오늘 밤 하나님이 고쳐 주시기를 원하는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저분들이... 하는 동안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여러분이 어디 계신지 보려고 했습니다. 그분이 여기 계십니다. 이유는 모르지만, 음악이 연주되거나 어떤 일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여기 와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렇게 되는 일은 드뭅니다. 오늘 밤 여러분이 온 마음으로 믿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믿기를 바랍니다. 기도 줄을 부르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입니다. 기도 줄을 세우기도 전인 바로 지금, 그것이 회중 위로 움직이는 것이 보입니다. 저는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참으로 감사합니다.
오, 바로 이 순간 이 교회가 여기 있는 이 위대한 영역 안으로 들어가고,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의 마음이 그 안에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말씀드립니다만, 내일 아침 신문은 그 소식으로 가득할 것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내일이면 저 아래 뉴올리언스와 다른 모든 곳에서 사람들이 올 것입니다. 지금 모두가 이 영역 안으로 들어갈 수만 있다면, 며칠 안에 온 세상 곳곳에서 갈급한 그리스도인들이 비행기를 타고 이곳으로 올 것입니다. 오, 이것을 표현할 말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은 제가 아닙니다. 저는 사람입니다. 아시겠죠. 저는 그저 사람일 뿐이지만, 그분은 하나님입니다. 얼마나 놀랍고, 얼마나 경이롭고, 얼마나 영광스러운지요. 우리는 그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요. 그분은 얼마나 귀하신 분인지요.
저는 예전에 “그분은 제게 너무나 귀하시기에”라는 옛 찬송을 부르곤 했습니다. 부인, 그것을 믿으시지요? 믿으십니까? 제가 부인의 관절염이 사라졌다고 말씀드린다면, 온 마음으로 믿으시겠습니까? 그것을 믿으십니까? 예? 그분이 부인을 고쳐 주실 것이라고 믿으십니까? 이미 고쳐 주셨습니다. 부인은 이미 치유받았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분은 얼마나 영광스러우신지요. 부인, 다른 도시에서 오셨지요? 미시간주 그랜드래피즈에서 오셨습니다. 거기 앉아서 무언가를 생각하고 계셨습니다. 문제는 기억력이 자꾸 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생각이 제대로 나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부인 옆에 앉은 저분도 미시간주에서 오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부인이 여기 와서 구하고 계신 것은 하나님과 더욱 가까이 동행하는 삶입니다. 그것을 얻게 될 것이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기억력이 돌아왔으며, 다시는 그것 때문에 어려움을 겪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늘 밤 여기 계십니다.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거기 앉아 계신 부인, 고통이 멎기를 원하십니까? 방광 질환이며 다른 문제들이 있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부인은 치유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인을 낫게 하십니다. 이제 부인의 믿음이 부인을 치유했습니다. 지금 통증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사실이라는 것을 아시지요. 아멘. 우리에게 이 기도 줄이 꼭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에게는 그것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믿을 작은 믿음뿐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믿을 수 있다면, 나머지 일은 하나님이 여러분을 위해 하실 것입니다. 그분은 얼마나 놀라우신 분인지요.
저 뒤에 앉아 계신 노인께서는 그동안 앓아 오신 전립선 질환이 어떻게 될지 생각하고 계십니다. 어르신, 수술을 받으셨지요? 아직도 괴로우시군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떠났습니다. 하나님이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을 가지고 믿으십시오. 저기 허리에 문제가 있는 젊은 여성도, 그것이 어떻게 될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쳐 주십니다. 아멘. 저 뒤에 앉아 계신, 부비동에 문제가 있는 부인, 그 병에서도 낫기를 원하시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부인? 좋습니다. 이제 치유받으셨습니다. 집으로 가셔도 됩니다. 할렐루야. 그분이 여기 계십니다. 새벽별이십니다.
오십시오, 부인. 예수님이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다고 믿으십니까?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입니다. 저는 부인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부인을 아십니다. 부인은 당장 그분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의사에게 다녀오셨습니다. 의사가 진찰했습니다. 검사한 곳은 가슴, 오른쪽 가슴이었습니다. 암입니다. 부인에게는 가망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의사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부인을 치유하시려고 죽으셨습니다. 그것을 믿으십니까? [“주님을 찬양합니다.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제 자매가 자유롭게 되도록 이 마귀를 정죄합니다. 아멘. 하나님이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부인.
오십시오, 부인. 제가 아는 한 우리는 전혀 모르는 사이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는 서로 모릅니다. 저는 평생 부인을 뵌 적이 없습니다. 며칠 전에 큰 슬픔을 겪으셨지요? 사랑하는 분이나 친구가 돌아가셨거나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목사님이셨습니다. 부인에게는 종양이 있습니다. 맞습니까? 나을 것이라고 믿으십니까? 전능하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여인을 축복합니다. 주님, 그녀를 고쳐 주십시오. 아멘. 하나님이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부인. 누군가 보이지 않습니다. 빌리 폴입니다. 어디 갔는지는 모르지만, 저는 그의 영을 압니다. 그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도 압니다. 그런데 그의 영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분이 환자입니까?
부인, 저는 부인에게 낯선 사람입니다. 부인은 저를 모르시고, 저도 부인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둘을 다 아십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믿으십니까? 부인은 누군가를 대신하여 여기 서 계십니다. 자매입니다... 아니, 부모 중 한 분만 같은 자매입니다. 부모가 두 분 다 같은 자매는 아닙니다. 부모 중 한 분만 같은 자매입니다. 그분이 최근에 갑자기 병이 났습니다. 그 병은, 아마 그분이 말씀하시기를... 제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류머티즘열이라고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맞습니까? 의사... 부인에게는 아픈 딸도 있습니다. 그 딸도 열이 있습니다. 아픈 아들도 있습니다. 부인의 치아를 위해 제가 기도해 주기를 원하시지요? 이리 오십시오. 하늘과 땅을 만드신 사랑하는 하나님, 제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하는 이 여인 위에 주의 복을 내려 주십시오. 아멘.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다른 사람의 일로 저를 만나고 싶으시지요? 정신 이상 같은 문제 때문에 한 형제를 위해 제게 기도를 부탁하고 싶으시군요. 그렇지 않습니까? 제가 기도해 드리기를 원하시는 나이 많은 여인도 있습니다. 부인의 어머니입니다. 당뇨병이 있으십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부인에게는 하나님과 더욱 가까이 동행하는 삶이 필요합니다. 늘 그것을 원하셨습니다. 그분의 뜻을 정확하고 완전하게 행하고 있다고 참으로 느끼는 경지에는 아직 이르지 못하셨습니다. 이제 부인의 온 삶을 그분께 내어 맡기고, 집으로 돌아가 구하신 것을 받으시겠습니까? 그렇게 자신을 온전히 바치면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하실 것이라고 믿으십니까? 저도 믿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주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제가 주의 이름으로 축복하는 이 여인에게 복을 내려 주십시오. 아멘.
안녕하십니까? 저는 온 마음으로 그분을 사랑합니다. 여러분, 이보다 더 필요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그저... 이것은 그저... 저는 이것을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오, 무엇이 더 필요하십니까? 성령께서 무엇을 더 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저... 오, 바로 이 순간에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안녕하십니까, 부인?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입니다. 그렇지요? 저는 부인을 모릅니다. 다만... 제가 아는 한 부인과 접촉할 수 있는 길은 하나님뿐입니다. 하나님의 자비를 통해서만 저는 부인에게 사역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저 사람일 뿐입니다. 부인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으시지요? 그리스도인이시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슬픈 소식을 들으셨습니다. 의사가 나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암에 걸리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부인은 이 도시 사람이 아닙니다. 호수 같은 것이 많은 고장에서 오셨습니다. 위스콘신, 위스콘신주 오언입니다. 성함은 리걸입니다. 이름의 머리글자는 H. F.입니다. 이제 집으로 가십시오. 치유를 받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인을 낫게 하십니다. 그것을 못마땅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너는 베드로라. 네 이름은 게바라 불리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인, 믿으십니까? 부인병이 있으시지요? 바로 저기 계신 부인도 같은 병이 있습니다. 저 부인은 갑상선종도 있습니다. 두 분 다 치유받았습니다. 믿으십니까? 잠시 일어서십시오. 자리에서 일어서십시오. 어떤 병이 있는지는 상관없습니다. 자리에서 일어서십시오. “저는 이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이제 그분을 저의 치유자로 받아들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저는 모든 병을 정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입니다. 저는 주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불명확한 단어]를 쫓아냅니다. 그리하여 마귀의 힘이 이 한 사람 한 사람에게서 떠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