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감사합니다, 형제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앉으셔도 좋습니다. 오늘 밤 다시 오언즈버러에 와서 자매님... 로저스 형제님 내외분과 이곳 오언즈버러의 친구 여러분께 인사를 드리게 되어 참으로 기쁩니다. 저희는 이곳에 계신 여러분 모두를 자주 생각했고, 주 예수님께서 여러분에게 얼마나 복을 주셨는지도 생각했습니다. 제가 지난번에 왔을 때는 이곳 건물의 천장 마감도 아직 안 되어 있었던 것 같은데, 그때는 그저... 이제는 단단한 나무 마루도 깔려 있고 아주 잘되어 가고 있군요. 정말 좋습니다.
날씨가 궂지만 오늘 밤 이곳에 오게 되어 기쁩니다. 며칠 전 사탄이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니, 어제였습니다. “눈이 너무 많이 와서 거기까지 갈 수 없다는 것 알지? 가지 못할 거야.” 저는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갈 겁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런 약속을 주셨습니다.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이든지 구하라. 내가 그것을 행하리라.” 이것이 우리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를 믿는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하라고 하신 대로 행하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하라. 그러면 너희가 받으리라. 너희에게 주어지리라.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너희가 받으리라.” 참으로 놀라운 약속 아닙니까? 그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참으로 기쁩니다. 인자하신 하늘 아버지께서 그 인자하심으로 우리가 원하거나 바라는 것을 받을 수 있는 이 특권을 주셨습니다. 물론 그분의 뜻 안에 있는 것이라야 합니다. 그것이 그분의 말씀에 맞으면 그분의 뜻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이 그분의 뜻임을 아는 것입니다.
조금 전까지 저와 함께 차에 앉아 있던 감리교 목사님이 계십니다. 참으로 훌륭하고 사랑하는 형제님으로, 부인과 가족과 함께 저를 따라 내려오셨습니다. 예배당에 들어오기 직전에 우리는 바로 그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시기에... 저는 말했습니다. “콜린스 형제님, 제가 늘 가장 먼저 알아보려 한 것은 어떤 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하는 것이었고, 그런 다음 그 일을 하려는 제 동기를 살펴보았습니다.” 제게 이기심이 전혀 없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알며, 그분의 뜻이기 때문에 그 목적으로 행한다면 그분은 여러분을 저버리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라 해도 여러분에게 이기적인 동기가 있다면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과 다름없습니다. 이루어지지 않을 테니까요. 하지만 모든 회선이 막힘없이 연결되고 소리가 똑똑히 들리면, 아시겠죠, 그때는 믿는 자들에게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제가 여러분을 마지막으로 뵌 뒤로 이 앞 강물도 참 많이 흘러갔습니다. 아마 한 2년쯤 되었지요? 아니면 1년입니까? 한 2년 되었군요. 저는 인도와 스위스, 독일을 비롯한 여러 곳에 다녀왔습니다. 사랑 많으신 우리 하늘 아버지께서 잃어버린 죄인들을 그분의 피 흘리신 귀한 옆구리로 이끄시는 것을 보았고, 사람들을 고치시고 기적을 행하시는 것도 보았습니다. 물론 그것이 회심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온 뒤에는 조금 쉬고 있었습니다.
제가 아는 한 다음 치유 집회는 이제 몇 주 뒤 멕시코 본토에서 열립니다. 멕시코시티에 있는 투우 경기장에서 열릴 것입니다. 우리는 18일부터 25일까지 그곳에 있을 예정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이곳저곳을 다니며 형제들을 찾아뵙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 목사님께서 “내려오셔서 저희를 위해 한두 차례 집회를 열어 주시지요”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바로 얼마 전에 거절했는데... 강 건너에 있는 제 사촌 비버트 형제님께 “안 되겠습니다, 비버트 형제님. 갈 수가 없습니다”라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한 이틀 뒤에는 “예, 로저스 형제님. 가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로저스 형제님이 거절을 못 하게 하셨거든요. 그래서 오늘 밤 비버트 형제님이 오셔서 “브래넘 형제님, 이건 어떻게 된 겁니까?”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조금만 뒤에요, 비버트 형제님. 형제님께도 가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비버트 형제님을 아시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좋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는 그분이 제 친사촌인 줄도 몰랐습니다. 제 고모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저는 몰랐습니다. 그저 이름이 비버트이고 그곳에서 설교하는 분이라는 것만 알았지요. 그런데... 그분이 “빌리, 나 모르겠어?” 하시더니 “자네 아버지와 우리 어머니가 남매잖아” 하셨습니다. 브래넘 집안이 이렇습니다. 아시겠죠. 고모가 비버트라는 분과 결혼하셔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분은 비버트이고 저는 브래넘인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그분은 참 좋은 분입니다. 아주 훌륭하고, 이곳 로저스 형제님과도 가까운 친구입니다. 오늘 밤 제 방에서 로저스 형제님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비버트 형제님을 올라오시게 해서 찬송을 부탁드리세요”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비버트 형제님, 외투를 입으시는 게 좋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브래넘 형제님, 제가 참석해야 할 남자 기도 모임이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밤 그 기도 모임으로 돌아가야 하니 양해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로저스 형제님이 주님을 위해 어떻게 일해 나가고 계신지 듣고 아주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형제님, 저쪽에 있는 것이 침례탕이지요? [형제가 “예, 그렇습니다”라고 말한다.]
얼마 전의 일입니다. 지금 저를 바라보며 웃고 계신 감리교 목사님이... 제가 감리교회에 갔었는데, 그곳 하워드 파크의 감리교 목사님이, 아니, 저는 제퍼슨빌의 파크 감리교회라고 부릅니다. 어느 날 밤 그곳에서 설교하기로 해서 그분을 찾아갔었습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제가 빌리의 태버내클에 갔었지요. 몸을 물에 잠그는 침례를 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데리고 갔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그... 그 안에 들어갔는데...” 그러더니 “그걸 뭐라고 부르지요?” 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감리교인이 말하기에는 너무 벅찬 단어지요. 침례탕이라고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곳에는 이만한 아주 작은 물그릇이 놓여 있었습니다. 제가 목이 말랐다면 거의 다 마셔 버릴 수도 있을 만큼 작았습니다. 그것을 위해 거기 놓아둔... 저는 침례탕이라는 말은 감리교인이 입에 담기에는 너무 벅찬 단어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웃으면서 “우리도 여기 그런 것을 하나 마련해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제 제대로 되어 가시는군요”라고 했지요. 로저스 형제님은 벌써 제대로 되신 것 같습니다. 아주 좋습니다.
말씀드리지만, 우리가 나누는 이 교제란... 그 형제님은... 뉴올버니에 있는 메인 스트리트 감리교회에서... 그분과 저는 이곳 켄터키에서 골짜기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자랐습니다. 제가 제퍼슨빌에서 교회를 목회할 때 누군가 회심해서 찾아오면 제가 말하기를... 그분이 제게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제게 물을 뿌리는 세례를 베풀어 주십시오. 이유를 말씀드리지요. 저희 집안은 모두 감리교인이었습니다. 그래서 물을 뿌리는 세례를 받고 싶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형제님, 그러면 저희 교회에서는 좋은 교인이 되실 수 없겠습니다.” 아시겠죠. “하지만 저 아래에 계신 럼 형제님은 형제님이 만나 보신 분 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분에 속합니다. 제가 그분께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그분이 물을 뿌리는 세례를 베풀어 주실 수 있습니다. 좋은 분입니다. 그곳은 지독하게 메마르지만, 좋은 교회입니다.” 그런데 그분에게 회심한 사람이 오면 “럼 형제님, 제게 침례를 베풀어 주십시오. 저희 집안은 침례교인이었습니다”라고 하곤 했습니다. 그러면 그분이 “그러면 저희 교회에서는 좋은 교인이 되실 수 없겠습니다. 하지만 제퍼슨빌에 있는 우리 빌리 형제에게 가 보시는 게 좋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말씀드리지요. 그 사람은 물개입니다. 물에 빠뜨려 버릴 겁니다. 마지막 공기 방울이 올라올 때까지 붙들고 있을 겁니다”라고 했지요. 우리는 그렇게 지냈습니다. 모든 교회가 그렇게 지낼 수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지금쯤 천년왕국이 시작되겠지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시는 가운데 모두가 서로 교제할 수 있다면 말입니다. 참으로 놀랍지 않습니까? 장차 그렇게 될 것입니다.
세계를 다니며 형편을 살펴보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주님의 뜻이라면 내일 오후나 저녁 집회에서는 ‘때의 표적들’에 관하여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고 여러분에게 아주 분명하게 드러내 주셔서, 우리가 주 예수님의 오심이 드리우는 그림자 속에 살고 있음을 여러분이 확실히 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분께서 성경에 예고하신 모든 일이 바로 지금 성취되었습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성경의 어느 한 구절도 어기지 않으시고 도리어 성취하시면서 언제든 오실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시간이 더 늦었다고 믿습니다.
얼마 전 스웨덴에 갔을 때입니다. 전쟁 직후에 그곳에 갔었습니다... 아니, 죄송합니다. 핀란드였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독일군과 러시아군 때문에, 두 전쟁이 잇달아 일어나서 아주 끔찍한 일을 겪었습니다. 얼마나 끔찍한 일을 겪었는지요. 그들은... 들판은 전쟁터가 되어 버렸고, 농작물을 심을 기회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거의 밀과 보리로 살아가는데, 늦가을이 되어 가고 있었고 그들은... 여자들이 밖에 나와 있었습니다... 트랙터도 없었습니다. 몹시 가난했습니다. 남자들과 여자들이 직접 멍에를 메고 써레를 끌고 있었습니다. 조그만 써레처럼 생긴 것으로, 작은 원판 같은 바퀴가 굴러가며 겨우 흙을 조금 일으키는 도구였습니다. 땅을 갈 시간도 없었습니다. 가을 눈이 내리고 나면 더는... 봄까지 땅을 다시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어떻게든 땅을 긁고 또 긁으며 서두르고 있었습니다. 밤이 되어도, 아닙니다, 멈추지 않았습니다. 밤새도록 써레질을 했습니다. 여기 앞에 앉아 있는 이 남자아이들만 한 어린아이들까지 등불을 들고 어머니 앞에서 달렸습니다. 어쩌면 밭고랑 저쪽 끝 어디에서는 어린 여자아이가 아기를 돌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어머니는 멍에를 메고 써레를 끌며 땅을 긁고 있었습니다. 어린 남자아이는 밤에 등불을 들고 앞에서 달렸습니다. 밤낮으로 땅을 긁어, 어떻게든 씨를 넣을 만큼만 일구는 것이었습니다. 눈이 내리기 전에 씨를 넣지 못하면 이듬해에는 거둘 것이 없어 굶주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죽게 될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습니다. 바라보면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오 하나님, 이것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에 얼마나 큰 계시가 되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어디서나 땅을 긁어야 합니다. 나라 곳곳에서 온전한 기간을 들여 부흥회를 할 시간은 없을지도 모릅니다. 어디서든 땅을 긁어 말씀을 심으십시오. 아무도 일할 수 없는 밤이 오기 때문입니다. 지금 씨를 심지 않으면 내일 거둘 것이 없습니다. 이 생각을 품고 머리 숙여 기도하겠습니다.
인자하신 하늘 아버지, 오늘 밤 다시 함께 모일 수 있는 이 크고 영광스러운 특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시간이 영원 속으로 합쳐지기 전 이편에서 또 하룻밤을 맞았습니다. 아직 문이 열려 있는 자유로운 나라에서 복음을 전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복음을 듣기를 사랑하기에 이처럼 비와 눈이 내리는 궂은 밤에도 나오는 사람들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길이 미끄럽고 여러 어려움이 있어도 그들은 복음을 듣기 위해 나옵니다. 복음은 한 번도 그 권능을 잃은 적이 없고, 앞으로도 잃지 않을 것입니다. 타락한 세상 앞에 그리스도를 높이 들어 올릴 때, 그것은 세상에 있었던 그 무엇보다도 강하게 사람들을 끌어당깁니다. 아버지, 이 모든 일로 인해 감사드립니다.
오늘 밤 이 교회에 함께 모인 우리가 기도하오니,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는 모든 혼에게 복을 내려 주옵소서. 주님, 그들이 무엇 때문에 왔는지 저희는 모릅니다. 마음에 짐을 안고 온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죄 가운데 있으며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 있는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병들어 주님의 치유가 필요한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가정의 어려움, 아내와 남편과 어린 자녀들의 어려움입니다. 하나님, 그것이 무엇이든 우리는 주님을 말하려고 왔습니다. 오늘 밤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예배를 마치고 이 문들이 열려 사람들이 각자 있는 곳으로 돌아갈 때, 엠마오에서 오던 이들처럼 “우리 마음이 우리 속에서 뜨겁지 아니하더냐?”라고 말하게 하옵소서. 주님, 허락하옵소서. 오늘 밤 말씀하여 주옵소서. 이곳 목사님이신,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요 주님의 종인 로저스 형제님과 집사님들, 일하는 이들, 평신도들, 그리고 다른 교회에서 방문하신 모든 분에게 복을 내려 주옵소서. 주님의 아들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 복을 구합니다. 아멘.
오늘 밤 성경 낭독은 구약으로 가서 한 절만 읽겠습니다. 본문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본문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어제저녁 내려오면서... 그곳 사택에서는 언제나 금요일이 목회자들의 날이라 목회자들이 찾아오게 하고... 오, 어제는 사람들이 참 많이 모였습니다. 그 큰 환상이 막 일어났다는 것을 알고 왔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제 평생 알았던 것 중에서 가장 큰 일에 뛰어들려고 합니다. 몇 분은 오늘 새벽 거의 한 시까지 머무르셨는데, 저는 또 일찍 일어나야 했습니다. 그러고 오늘 이곳에 내려와 방에 들어가 막 문을 닫았는데 누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비버트 형제님이었습니다. 그분이 떠나실 때쯤 우리는 급히 내려가 샌드위치를 먹어야 했습니다. 그런 다음 저는 “우즈 형제님, 올라가 계시다가 돌아올 시간이 되면 알려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저는 외투를 벗었습니다. 아직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였습니다. 외투를 벗고 앉아 성경을 펼쳤는데 누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우즈 형제님이었습니다. “교회로 올라갈 시간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여기 왔습니다. 그러니 오늘 밤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는 동안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열왕기하 4장 30절을 짧은 본문으로 읽겠습니다. 말씀을 살피는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 뜻을 풀어 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아이의 어머니가 이르되, 주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리이다, [생각해 보십시오.] 하므로 엘리사가 일어나 그녀를 따라가니라. 주님께서 이 낭독에 복을 더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구약을 읽으면 우리의 생각은 옛날로 돌아갑니다. 구약은 신약의 모형이기 때문에, 저는 늘 구약에서 말씀 전하기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구약과 신약을 함께 연결할 수 있다면 어린아이들조차도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며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시는지 머릿속에 그려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밤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이 사람은 선지자 엘리사였습니다. 며칠 전 밤에도 제가 이 이야기를 했는데, 조금 전 들어오다가 생각이 났습니다. 제가 여덟 살 난 딸, 어린 리브가에게 물었습니다. “얘야, 엘리야와 엘리사는 어떻게 달랐지?” 아이가 대답했습니다. “아빠, 엘리야가 나이가 더 많았어요.” 저는 “맞아”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길을 걸어가는 걸 네가 보았다면, 나이 말고는 겉모습에서 어떤 차이를 볼 수 있었을까?” 하고 물었습니다. 아이가 대답했습니다. “젊은 선지자는 대머리였다는 걸 알아요. 그래서 아이들이... 아이들이 그를 ‘대머리’라고 불러서 그가 아이들을 저주했잖아요. 그리고 나이 많은 선지자는 더 늙은 사람이었겠지요.” 저는 말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에게는 또 다른 점이 있었단다.” 그는 털이 많은 사람이었고, 허리에 가죽을 둘렀습니다. 성경은 그가 털이 많은 사람이었고 허리에 가죽을 둘렀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엘리야 위에 있던 영이 엘리사에게 두 몫으로 임했습니다. 그런 다음, 기적을 크게 행하던 그 사람들에게서 그 영이 다시 임했습니다. 처음에는 기적과 표적으로 역사했고, 두 번째에는 기적과 표적을 두 몫으로 행했으며, 그다음에는 또 다른 사람에게 임했는데 그는 기적을 전혀 행하지 않았습니다.
여기 어린 남자아이들이나 여러분 중 누가 그 영을 가졌던 세 번째 사람이 누구인지 말해 줄 수 있겠습니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예? 공부하는 학생 가운데 손을 들고, 그 동일한 영을 가졌던 세 번째 사람이 누구인지 말할 사람이 있습니까? 예? 침례자 요한입니다. 그가 광야에서 나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회복하러 오리라고 말씀하신 엘리야가 바로 이 사람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 영은 엘리야를... 요한을 엘리야와 똑같이 옷 입게 했고, 아마 행동도 그와 같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한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동일한 영이 오늘날 이 땅에 다시 두 번째로 오리라고 예고되어 있습니다. 저는 그 영이 오늘 이 땅에 있다고 믿습니다. 그 영은 하나님의 강력한 사람을 통해 위대한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는 기적을 행하지도, 기적에 관해 말하지도 않지만, 회개의 메시지로 세상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 뒤에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설교를 많이 하시지는 않았고, 설교를 많이 하는 분은 아니셨지만, 요한의 사역이 때에 맞는 사역이며 입증된 사역이라는 증거로 표적과 이적을 행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니 역사가 다시 되풀이되는 날을 살아서 보게 된 것을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바로 그 날에 살고 있습니다.
저는 늘 엘리야를 아주 체구가 크고 키가 큰 사람으로, 어쩌면 마른 사람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이 그 위에 계실 때 그가 두려움 없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그 위에 계시는 한, 누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든, 세상이 무슨 말을 하든 염려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저는 지금 교회도, 어느 때의 교회든, 누구든 거의 그런 태도를 갖게 된다고 믿습니다. 병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영이 가까이 계시고 여러분이 그 사실을 아는 한 아무것도 여러분을 괴롭히지 못합니다. 사람이 아무리 심하게 앓고 있더라도 성령께서 방에 들어와 그 사람에게 기름을 부으시면, 잠시 뒤에는 달라진 사람을 보게 될 것입니다.
며칠 전 밤, 저는 병원에 누워 죽어 가는 어린 환자를 찾아갔습니다. 달이 차지 않은 아기가... 제왕절개를 해야 했습니다. 아기는 죽은 지 나흘이나 닷새 되었고, 요독증이 있었습니다. 오, 얼마나 심각한 상태였는지, 수혈하기도 어려웠습니다. 심장은 몇 배나 커져 있었고, 의사들은 그 여자가 두 시간도 더 살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 여자는 믿음에서 떠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말을 건네며 “사랑하는 자매님, 자매님은 그곳에서 침례를 받았고, 태버내클의 유아 명부에도 올라 있었지요...” 하자, 그 여자가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제가 멀리 떠나 방황했습니다. 그런데, 오, 제가 결혼했어요. 믿지 않는 청년과 결혼했습니다. 저는 도저히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가 없었습니다. 지난여름에는 물에 빠져 죽을 뻔해서 자비를 구하며 부르짖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제 때가 가까웠으니 돌아오라고 경고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이제 또 이렇게 되었습니다. 형제님이 시내에 계신 것을 알고 사람을 보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산소 텐트 안에서 힘겹게 숨을 쉬며 말했습니다. 그러고 우리는 무릎을 꿇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자매님, 예수님은 제단에서 처음 자매님을 받아 주셨던 날과 똑같이 오늘도 기꺼이 자매님을 다시 받아 주려 하십니다. 오히려 더 받아 주고 싶어 하십니다. 자매님은 여전히 그분의 자녀이고, 그저 그분의 뜻에서 벗어나 있을 뿐이니까요.” 그 여자는 몸부림치는 가운데 하나님께 얼굴을 돌렸고, 젊은 두 뺨에 눈물이 흘렀습니다. 열여덟 달 된 아기를 두고 떠나야 하는데, 배 속에는 또 한 아기가 죽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며, 믿음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5분도 되지 않아 그 여자는 산소 텐트 안에서 일어나 앉아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제 혼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다. 제가 다시 하나님 앞에 바로 서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의사가 살펴보더니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침이면 수술로 아기를 꺼내도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기름부음이 내려오면 얼마나 달라지는지 보십니까? 전혀 달라집니다. 이전에는 “아, 그저... 이제 끝이야, 이제 끝이야”라고 생각하며 두려워했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자 모든 얽매임이 풀렸습니다.
엘리야는 두려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엘리야는 사역하는 동안 두드러진 기적을 네 번 행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그랬습니다. 엘리사는 영을 두 몫 받았기 때문에 두드러진 기적을 여덟 번 행했습니다. 여러분은 그 선지자들을 살펴보면서 그곳에 그리스도와 교회가 얼마나 아름다운 모형으로 나타나 있는지 보신 적이 있습니까? 엘리야는 자신이 떠날 것, 하나님께서 자신을 데려가실 것을 알았을 때, 밭을 갈고 있던 엘리사를 찾아갔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엘리사에게 가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엘리사를 보자 그는 달려가 자기 겉옷을 그에게 던져 걸쳤습니다. 하나의 표적이었습니다. 그가 그렇게 하자 엘리사가 “먼저 가서 제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입 맞추며 작별하게 허락해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이상한 점을 보셨습니까? 그는 가서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입 맞추며 작별하도록 허락받았습니다. 그런데 신약 성경에 나오는 사람은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입 맞추며 작별하러 가도록 허락받지 못했습니다. “죽은 자들이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다른 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이야기에 들어갈 시간이 없겠습니다. 어쩌면 조금 뒤에 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는 가서 밭을 갈던 소를 잡았습니다. 멍에를 메던 소들을 잡고, 농기구들을 가져다가 밭에 쌓아 불을 피웠습니다. 농기구들을 불태우고 소를 구워 희생물을 드렸습니다. 무엇이었습니까? 육지에 매어 둔 모든 밧줄을 끊었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 주는 표적이었습니다. 그는 정말 전적으로 사역하러 나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선지자로 나서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이 땅에서는 다시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보지 못할 터였습니다. 그래서 입 맞추며 작별한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자신에게 있던 일할 도구들도 밭에서 불살라 하나님께 희생물을 드렸습니다. 주님의 선지자가 되기 위해 정말 모든 것을 포기했음을 보여 주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밤 우리가 거기서 얼마나 큰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께 와서 손에 쟁기를 잡고 나아가다가, 뒤돌아보기만 해도 그 사람은 쟁기질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처럼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어중간한 회심, 머리로만 하는 회심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몸에는 생각할 수 있는 서로 다른 두 요소가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추론합니다. 하나, 곧 추론하는 것은 지적인 생각입니다. 다른 하나는 혼인데, 혼은 추론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얼마 전에는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과학이 성경을 비웃으며, 성경이 “사람이 자기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그도 그러하니라”라고 한 것을 두고 말했습니다. “성경은 온통 뒤죽박죽이다. 사람의 심장에는 생각할 수 있는 지적 기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년에 과학은 하나님께서 옳으셨다는 것을 입증했습니다. 동물이 아니라 사람의 심장 안에, 혈구 하나도 없는 작은 공간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혼이 거한다고 말합니다. 곧 사람이 자기 혼으로 그곳에 산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각자는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때... 누군가가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어. 그렇게 되지 않을 거야”라고 합니다. 그러나 혼 깊은 곳의 무언가가 여러분에게 그 일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누가 뭐라고 하든, 아무리 이치에 맞지 않아 보이든, 여러분은 그렇게 되리라는 것을 아는 듯합니다. 여러분의 혼이 증언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경이 그렇게 하라고 한 대로 추론이 무너진 것입니다. 추론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오늘 밤 이곳의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말씀드립니다. 어느 교회에 속해 있든 상관없습니다. 지금 그것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어느 교회에 속했는지를 놓고 논쟁하기에는 이 길을 너무 멀리 왔습니다. 성경이 분명히 “우리가 모두 한 성령에 의해 침례를 받아 한 몸 안으로 들어왔느니라”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생각은 이것저것 따집니다. 치유 대전도 집회의 부흥회에서 사람들의 생각이 그런 데 사로잡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자, 보십시오. 이것은 전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라고 합니다. 여기 휠체어에 앉은 부인이 계십니다. 저는 그분을 모릅니다. 뵌 적도 없습니다. 어쩌면 마비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디가 잘못되셨는지 저는 모릅니다. 무엇이든 간에 말입니다. 마비가 있다고 해 봅시다. 어쩌면 여러 해 동안 그곳에 앉아 계셨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따져 보면... 의사들은 뼈에 칼슘이 쌓여 있어 이제 움직일 수 없다고 합니다. 척추가 부러졌을 수도 있고, 그런 식으로 무언가 잘못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여기 시력을 잃어 눈이 먼 사람이 앉아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가 “글쎄, 지금...” 하면서 따집니다. “의사들이... 저는 가장 뛰어난 의사들을 찾아갔는데, 제 상태가 앞으로도 전혀 달라지지 않을 거라고 합니다.” 그러면 머리로 하는 추론은 “맞는 말이야”라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그 지적인 추론 안에 머무르는 한, 결코 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추론을 무너뜨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혼이 “예수님은 나의 치유자이시며, 나는 지금 그것을 믿고 받아들인다”라고 말하면, 추론은 물러갑니다. 여러분의 혼이 첫자리를 차지하고,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든 전혀 따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그대로 믿습니다. 그것이 결과를 가져옵니다. 참으로 단순한 일입니다.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가서 “자, 내게 당신을 고칠 능력이 있습니다. 내게 이것을 할 능력이 있습니다. 또는...”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그대로 믿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혼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동의하지만, 여러분의 추론은 그것과 어긋납니다. 어떤 사람이 “저는 그 삶을 살 수 없습니다”라고 합니다. 며칠 전 회심했던 그 어린 여자는 “브래넘 형제님, 저는 그렇게 살 수가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추론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 여자의 혼에 와닿자, 그때 무언가가 실제가 되었습니다. 더는 추론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그대로 믿는 것입니다. 아멘. 보십시오. 여러분이 추론을 버리면 혼은 분명하게 응답할 것입니다.
얼마 전 어떤 교회에 다니던 여자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두세 번 한 적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 일어난 일이라 여기서는 안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여자가... 그 여자는 교회와 가까이 지내며 살아왔고, 그곳의 한 청년과 결혼했습니다. 청년은 회심했지만 여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러고 그들은 그 동네에서 이사했습니다. 그 여자는 교회 피아노 반주자였습니다. 다른 동네로 이사했는데, 그곳의 여자들은 이전 동네 여자들만큼 도덕적이고 깨끗하지 않았습니다. 아주 짧은 옷을 입고 밖에 나가 잔디를 깎고, 그런 옳지 않은 일들을 했습니다. 다시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것이 잘못임을 압니다. 여러분의 옷을 벗게 하는 것은 오직 마귀입니다. 성경에서는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일을 하게 하는 것은 오직 마귀의 힘들이었습니다. 세상은 그런 것들로 가득합니다. 심지어 그렇게 하는 것을 종교적으로도 받아들입니다. 분명 그것은 마귀입니다.
그러자 이 여자가 말했습니다. “잠깐만. 우리 어머니는 그저 시대에 뒤떨어진 구식 그리스도인이었어. 다른 여자들도 나와 똑같이 교회에서 좋은 평판을 누릴 수 있는데, 내가 왜 그들처럼 하면 안 되지?” 아시겠죠. 처음부터 그런 생각이 있었던 것입니다. “나도 그들만큼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어. 그들도 똑같이 존중받고 있잖아”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추론입니다. 그 여자의 혼은 그것이 잘못이라고 말해 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여자는 그것을 밀쳐 버렸습니다. 그리고 아랑곳하지 않고 그런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 여자들 대부분이 담배를 피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현대에 여자들이 저지른 가장 잔인하고 나쁜 일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지만 그 여자는 “다른 여자들도 담배를 피우는데 내가 왜 못 피워?”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오, 참으로 멋지다는 것이지요. 남편이 타이르려고 했습니다. “여보, 우리는 그렇게 하면 안 돼.” 그 여자는 “이봐요, 존...”이라고 했습니다. 아시겠죠. 그래도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 혼은, 성경이 말하기를... 들으십시오. 성경은 “죄를 짓는 혼, 그 혼은 죽을지니라”라고 했습니다. 죽음이라는 말은 ‘분리되다’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혼은 마침내 여러분에게서 분리될 것입니다. 죽음은... 제가 지금 죽거나 어느 그리스도인이 죽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에게서 분리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하지만 서로에게서는 분리될 것입니다. 분리입니다. 그 여자는 계속해서 그 혼을 근심하게 했고, 마침내 혼이 그 여자에게서 떨어져 떠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한 젊은 남자가 동네로 이사 왔습니다. 유부남이었습니다. 그 여자는 그 잘생기고 매끈한 젊은 남자와 아주 가깝게 지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그 남자가 여자를 차에 태워 여기저기 데리고 다녔고, 마침내 뒤뜰 울타리에서 잘 자라는 인사로 입 맞추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얼마 뒤 여자는 남편을 떠났고 남자는 아내를 떠나, 둘이 결혼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납니다. 하지만 믿지 않는 그 혼은 마침내 하나님에게서 떠나 버렸습니다. 아시겠죠. 멀어졌습니다. 그 여자는 추론을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교회에서 피아노를 연주했고, 좋은 교인이었으며, 다른 누구 못지않게 훌륭한 교인이었습니다. 그 남자와 함께 다른 동네로 이사했고 계속 교회에 다녔습니다. 교적 이명서를 다른 교회로 가져갔습니다. 그러고 어느새 이 여자는 결국 그 뒤에... 그 남자가, 그리고 여자든 남자든 누구나 알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자기 배우자에게 불충실한 사람은 여러분에게도 불충실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 남자는 다른 여자와 사귀기 시작했습니다. 그 여자도 다시 나가 이 남자 저 남자와 어울려 다니다가, 결국 혼인 신고 없이 한 남자와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그 대가가 그 여자에게 닥쳤습니다. 하복부에 이곳저곳 통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병원에 가 보니 심각한 악성 종양이었습니다. 의사는 “죽을 준비를 하십시오. 죽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제 친구인 어떤 목사님이 그 여자의 혼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찾아갔습니다. 그 여자는 담배를 연달아 피워 대면서 분명히 알아들으라는 듯 말했습니다. “제가 오시라고 한 적 없어요. 저도 당신 못지않게 훌륭한 사람입니다.” 바로 그 태도 자체가 그 여자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 주었습니다. “저는 교회에 다녀요. 교회에서 자랐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들으십시오. 저도 자매님과 같은 교단에 속해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자매님은... 다시 태어나셔야 합니다. 그 남자는 어떻게 된 겁니까?” 그 여자가 말했습니다. “문은 저쪽이에요. 당신이 필요했다면 사람을 보냈겠지요.” 목사님은 “알겠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뒤 그 목사님과 이야기하면서 저는 “그 여자를 지켜보십시오”라고 했습니다. 목사님은 제가 가서 기도해 줄 수 있도록 그 여자를 준비시키려고 했던 것입니다. 저는 그 여자가 치유되었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인생길 끝에 이르렀을 때 그 여자를 지켜보십시오. 그것밖에 없습니다. 혼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대신 그 죄를 짓고 추론을 따라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 혼이 그 여자를 따라잡을 것입니다.” 그 여자가 죽을 때가 되었을 때, 목사님이 곁에 있었고 방 안에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그저 평상시 같았습니다. 그 여자는 자신이 괜찮다고 생각했고, 자신이 괜찮다고 절대적으로 믿었습니다. 그런데 죽을 때가 되자, 피와 신경으로 작용하는 뇌의 지적 기능이... 그것은 여러분이 죽을 때 소멸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지적 기능과 추론은 사라질 것입니다. 추론은 하나님의 임재 안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상대로 따질 것입니다. 살아 있는 것은 혼입니다. 그 여자의... 피가 뇌세포로 흐르기를 멈추고 신경이 기억을 멈추면서, 추론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 여자가 근심하게 하여 내쫓았던 혼, 그 오랜 세월 그 여자에게 죽어 있었던 혼이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여자는 “하나님, 저는 구원받지 못했어요!” 하고 비명을 질렀습니다. 목사님은 “자, 자, 자, 진정하세요”라고 했습니다. 그 여자는 “저는 구원받지 못했어요!” 하고 외쳤습니다. 의사가 달려와 “히스테리를 일으키는군요”라며 주사를 놓았습니다. 그래도 그 여자는 계속 소리쳤습니다. 의사는 또 주사를 놓았습니다. 마침내 그 여자는 “저는 구원받지 못했어요! 저는 구원받지 못...!”이라는 말을 입에 담은 채 죽었습니다. 주사가 그 증언을 멈추게 했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다른 사람들의 귀에 들리지 못하도록 그 여자의 입술을 봉했습니다. 하지만 깨달은 그 혼, 근심하여 떠났던 그 혼은 영원이 있는 한 그 여자를 괴롭힐 것입니다.
그러니 기억하십시오. 추론을 따라가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바로 서 있는지 확실히 하십시오. 그렇게 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영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온 혼이 하나님의 말씀이 옳다고 증언합니다. 그 말씀에 머물며 한 말씀 한 말씀을 다 믿으십시오. 그때 여러분의 영이 그분의 영과 함께 증언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여기 있습니다. 잘 들으십시오. “너희가 세상이나 세상의 것들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너희 안에 있지도 않다”고 성경이 말합니다. 지금 루터교인이나 플리머스 형제단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저는 성결교인들과 오순절교인들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을 두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보십시오. 엘리야는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어디에 서 있는지 알았기에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그가 떠날 준비를 하면서 자기 담요를, 아니, 겉옷을 엘리사 위에 얹자, 엘리사는 육지에 매어 둔 모든 밧줄을 끊고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소들을 잡고 희생물을 불태웠으며, 하나님을 따르기 위해 모든 것에서 자신을 분리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주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유일하게 참된 길입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여러분 뒤에 있는 것들을 불태우십시오. 모든 것을 끊어 버리십시오. 여러분의 동료들이, 아니, 교제하는 관계가 여러분을 당구장으로, 술자리로, 카드놀이 모임으로, 또는 이런 다른 곳들로 이끌어 간다면 그리스도께 나올 때 그것을 끊어 버리십시오. 하나도 남김없이 버리십시오. 거룩한 손을 들고 그분께 나아와 “하나님이여, 죄인인 내게 긍휼을 베푸소서”라고 하십시오. 여러분이 교회에 속해 온 기간이 아무리 길어도, 그것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에게 너무나 잔인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며, 사람들은 그런 상태로 세상을 떠납니다. 그리스도 대신 교회를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보십시오. 그다음에 일어난 일은 그들이 모형과 실체였음을 보여 줍니다. 엘리야가 돌아와 엘리사를 만났을 때, 다른 곳인 길갈로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엘리사는 “주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왜입니까? 그는 이미 다른 모든 것을 끊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따를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었습니다. “제 일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이미 불태워 버렸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는 이 땅에서 마지막으로 입 맞추며 작별했습니다. 그러니 당신과 함께 가겠습니다.” 모든 밧줄을 끊으면 사람은 그렇게 합니다. 그렇습니다. 계속 나아갔습니다. 그가 “나는 선지자들의 학교로 올라가겠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너는 여기 머물러라”라고 했습니다. 그는 “당신의 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여정의 두 번째 단계인 선지자들의 학교로 갔습니다. 그다음에는 그곳에서 요르단으로 나아갔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내가 요르단으로 가는 동안 여기 머물러라.” 그는 “주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참 교회의 모형입니다.
그들이 요르단을 건넜을 때, 그것은... 요르단은 언제나 죽음을 나타내는 표적이었습니다. 그들이 요르단을 건넜을 때 엘리야가 돌아서서 물었습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당신의 영이 제게 두 몫으로 임하기를 바랍니다”라고 했습니다. “네가 큰 것을 구했구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큰 것을 구하기를 원하십니다. 오, 하나님께는 저 위에서 복이 떨어지는 일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구해도 지나칠 수 없습니다. 넓은 바다 한가운데에 있는 요만한 물고기가 “이 물을 너무 많이 마시면 안 돼. 바다가 말라 버릴지도 모르니까”라고 말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믿는 자에게 주실 하나님의 복이 언젠가 다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보다 더 이치에 맞습니다. 온 하늘이 여러분의 것입니다.
그가 두 몫을 구했을 때 엘리야가 말했습니다.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떠날 때 네가 나를 보면 그것을 받으리라.” 그리고 그가 들려 올라갔을 때, 엘리사는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습니다. 그의 겉옷이 다시 떨어졌고, 영이 두 몫으로 엘리사에게 임했습니다. 보십시오. 이 두 몫이 임하자 그는 나아가 두 배의 일을 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었습니다. 그분께서는 “내가 하는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 이보다 더 많은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내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그분께서 들려 올라가시는 것을 보았고, 약속이 임할 때까지 같은 도시에서 기다렸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 기름부음을 주셨던 성령이 두 몫으로 교회 위에 다시 임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혼이 감동을 받고 여러분의 추론이 무너지면, 참되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것이 없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니라.”
엘리야에게 기름부음이 있었던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아주 두드러지는 사실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으면 사람들이 그것을 압니다. 그들은 마음속으로, 아니, 추론으로는 “아, 저 사람 미쳤어. 오, 나는...”이라고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여러분을 존경합니다. 그렇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렇습니다. 자기 추론에 맞추려 하므로 여러분과 다툴 수도 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것을 존경합니다. 그들의 혼이 너무 무감각해져서 추론밖에 남지 않은 경우가 아니라면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 참된 삶을 살고, 그렇게 살아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과 함께한다면, 자기 혼이 아직 하나님과 닿아 있는 사람은 누구나 그것을 존경할 것입니다. 아멘. 그래서 저는 교단을 두고 다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분명 그렇습니다.
보십시오. 수넴 여자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라 수넴 여자였습니다. 그 여자는 참되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이 계심을 믿었기에 훌륭한 여자였습니다. 그리고 엘리야가 그분을 대표한다고 믿었습니다. 엘리야의 기적들에 관해 들었고, 그가 행한 일들을 알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간증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 의해 오며.” 오늘날 교회가 소홀히 하는 것은, 오늘 살아 계신 우리의 위대하고 권능 있으신 예수님을 간증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그분을 제한하려고 합니다. “그분은 옛날에 그러셨지요”라고 말하려 합니다. 그러나 오늘도 그분은 그때와 동일하십니다. 이것을 보는 눈이 열려 알고 있는 교회는 언제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가는 곳마다 “예수님은 살아 계시며 다스리십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그 여자는 엘리야가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이 그 길로 지나갈 때면 언제나 그에게 작은 호의라도 베풀려고 했습니다. 그에게 친절하게 대하려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 있다면 서로 친절하게 대하는 것입니다. 형제나 자매의 잘못을 보거든 절대로, 절대로 누구에게도 입 밖에 내지 마십시오. 혼자 간직하고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들에게 친절하게 대하십시오.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계시면 여러분은 서로 친절하게 대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여, 내가 주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분께서 아버지의 일을 하셨듯이 우리도 주님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분께서 아버지의 일을 시작하고 속죄를 완성하여 우리가 메시지를 전할 길을 열어 주시도록 그분 안에 계셨던 동일한 영, 그 영이 여러분 안에 계시면 여러분도 사람들에게 같은 태도를 보일 것입니다. 그들이 누구든, 어디에 있든, 그들을 돕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려 할 것입니다. 사람들을 도우려 할 것입니다. 아멘. 좀 강한 말이지만 진리입니다. 그렇습니다. 친구 여러분, 이제 우리는 끝에 가까워지는 때에 이르렀습니다. 무엇인가 해야 합니다. 보십시오. 이제 당장 휴거될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내일 밤 제가 재림에 관해 말씀드리고 나면, 여러분도 그것을 생각해 보고 재림이 얼마나 가깝다고 생각되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을 보십시오. 이 수넴 여자가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우리를 찾아 지나가는 거룩한 사람이 있잖아요. 부탁이에요. 그분을 위해 집 옆에 조그만 방을 하나 지읍시다.” 다시 말해 “그분이 이 근처에 계실 때 될 수 있는 대로 가까이 있고 싶어요. 그분은 유대인이고 우리는 이방인인 줄 알아요. 하지만 그분은 거룩한 사람이고, 우리도 그분을 그렇게 인정하잖아요. 우리는 그분이 진실한 사람이라고 믿어요. 우리에게는 그렇게 할 돈도 충분히 있으니, 집 옆에 작은 방을 하나 짓고 그 안에 작은 의자와 작은 침대를 놓읍시다. 그분이 지나가실 때... 물과 물병 같은 것도 두어서, 몸을 씻고 기운을 차리며 누워 다리를 펴실 수 있게 합시다”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모든 것을 미리 아시고 준비하고 계시는지요. 아멘.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전능하십니다. 어디에나 계십니다. 모든 것을 아십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분입니다. 세상이... 하늘에 별이 하나도 있기 전에, 궁창에 빛이 하나도 있기 전에, 하나님은 장차 살아갈 모든 선지자와, 남자와 여자들이 하게 될 모든 일을 아셨습니다. 그분은 무한하십니다. 대홍수로 멸망시키기 전처럼, 그분께서는 자신의 백성에게 경고하시고 모든 것을 준비하십니다. 오늘도 사람들을 준비시키고 계시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 여자를 준비시키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 작은 침대가 나중에 무슨 일을 했는지 보십시오. 할렐루야!
보십시오. 그 여자는 그렇게 하라는 영감을 받았기 때문에 침대를 마련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무엇을 하라는 계시를 주시고, 그것이 여러분이 하려는 어떤 일이든 옳은 일이라면, 행하십시오. 내일까지 기다리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실 때 행하십시오. 그 여자는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우선 여러분도 광신자가 되고 싶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말씀에 맞는 일이라면 행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지금 여러분에게 말씀하시거나, 오늘 밤이나 내일, 혹은 여러분의 삶 어느 때든 말씀하신다면, 여러분은 자신이 마땅히 살아야 할 자리에 살지 않았다는 것을 압니다. 실제로 혼 안에 소유하지 못한 것을 소유했다고 고백하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께 숨겨지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바로 서야 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날마다 해가 비치는 자리에 살아야 합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나아가 그것을 달라고 구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 주실 것입니다. 영감이 여러분을 그 길로 이끌고 있기 때문이며,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이 여자가 “저는 믿어요”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제가 이렇게 표현해도 된다면, 이것은 극처럼 꾸며 하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여보, 이분은 경건한 사람이에요. 제가 그분을 위해 무언가 해야 한다고 마음속에서 자꾸 말해요. 그래서 당신에게 여쭤보려고 해요. 당신이 남편이고 집안의 머리이니 당신에게 여쭤보는 거예요. 목수들을 불러서 저기 이 거룩한 분을 위한 작은 방 하나를 짓게 허락해 주시겠어요? 그리고 여보, 왠지 그분께 작은 침대를 하나 사 드려 그 방에 놓아야 할 것 같아요. 참 좋지 않겠어요? 그저 그렇게 하라는 이끄심을 느껴요.” 여러분도 그런 이끄심을 받은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이끄시며, 자신의 놀라운 일들을 이루시려고 신비한 방식으로 일하시는 것입니다. 그 여자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하지 않았다면 어땠겠습니까? 끔찍한 어둠과 비극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여자는 거르지 않고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했기 때문에 복과 기쁨이 있었습니다. 아시겠죠.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행하십시오. 성경은 “영이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속히 행하라”고 말합니다. 아멘.
이제 그 여자를 보십시오. 작은 방을 짓고 그 안에 자그마한 물건들을 놓았습니다. 엘리야가 지나갈 때마다 머물 곳이 생겼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엘리야가 왔습니다. 그 여자는 그가 언젠가는 오리라는 것을 알고 그를 위해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여기에 핵심이 있습니다.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도 언젠가 똑같은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분은 언젠가 오실 테니, 여러분도 이 안에 작은 자리를 마련해 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지금 준비하십시오. 그분과 함께 갈 것은 그것뿐이기 때문입니다. 그 밖의 것들, 우리의 집과 가정, 땅과 인기, 육체와 옷, 모든 것은 내려놓고 이 땅에 남겨 둘 것입니다. 하지만 이 안에 있는 이것만은 그분과 함께 갈 것입니다. 준비하십시오. 지금 준비해 두십시오. 속지 마십시오. 저는 자신이 바르다고 생각하다가 마지막에 가서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의 임종을 너무 많이 지켜보았습니다. 그러니 그분이 오시기 전에 이 엄숙한 경고를 받아들이십시오. 그분을 위한 자리를 준비해 두십시오.
그렇게 엘리야가 왔습니다. 아마 문지기가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그곳 동양의 관습을 아셔야 할 텐데, 그들이 어떻게 하는지, 그 사람이 어떻게 말하는지... 나와서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선지자님, 이곳에 저희 여주인께서 선지자님을 위해 마련하신 처소가 있습니다. 여주인께서 선지자님께 들어가시라고 말씀드리도록 제게 권한을 주셨습니다. 모든 것이 준비되어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가 물을 조금 가져오겠습니다. 몸을 씻고 기운을 차리십시오. 빵 굽는 사람이나 요리사가 식사를 준비하는 대로, 양고기구이와 빵을 가져다 드려 기운을 차리시게 하겠습니다. 저희 여주인의 호의입니다.” 엘리야는 “참 좋군요. 고맙다고 전해 주십시오”라고 했을 것입니다. 올라가 안을 살펴보니 모든 것이 반짝반짝하고 깨끗했습니다. 예수님은 오실 때 여러분이 그렇게 되어 있기를 원하십니다. 세상의 온갖 것으로 단장하는 것이 아니라, 깨끗하게 하는 복음으로 말끔히 닦여 있기를 원하십니다. 복음은 겉에 흰 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씻어서 희게 만듭니다. 아멘. 여러분의 삶에서 성령께서 정결하게 하심으로 모두 깨끗해져, 세상의 것들에서 분리되는 것입니다. 옛것은 죽어 지나가고 모든 것이 새로워집니다. 아시겠습니까? 좋습니다.
보십시오. 엘리야가 들어가서 말합니다. “이것 보게. 참 좋지 않은가? 여기 나만을 위해 아주 예쁜 작은 침대도 마련해 두었네. 좀 누워야겠군.” 종이 발을 씻겨 주었으므로 그는 샌들을 벗고 침대에 누워 “아, 참 좋구나”라고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오늘 밤 우리 마음에 오신다면, 세상의 모든 것이 없어진 것을 보실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그러면 그분께서 다음 말씀을 이루실 수 있을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모든 자들아, 너희는 내게로 오라. 너희 위에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니 너희가 안식을 찾으리라.” 그리스도와 함께 쉬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며칠 전 밤, 주님께서 제게 안식에 관한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모든 원리는 안식 위에 기초합니다. 밤 열 시쯤 잠에서 깼습니다. 설교를 들을 청중이 아무도 없어서 저는 그저... 아내에게 가서 깨운 뒤 새벽 한 시까지 안식에 대해 설교했습니다. 좋은 청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안식이라는 것이 제 마음속에서 불타고 있었습니다. 저는 “우리가 왜 근심합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저 쉬고 있습니다. “내게로 오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찾으리라. 너희 위에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안식을 찾는 것입니다. 그러고 그동안... 저는 말했습니다. “일단 그리스도께 나아와 그분을 믿고 그분을 받아들이며 안식에 들어가면, 세상의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리는 듯합니다. 그러면 안식을 얻습니다. 여러분의 혼이 안식을 얻습니다. 그 상태로 들어가 거기에 있게 됩니다. 그때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쉬고 있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침대에 누워 쉬고 있을 때 영이 그에게 임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이 수넴 여자에게 물어보아라. 이 모든 친절에 보답하여 우리가 무엇을 해 줄 수 있겠느냐고 물어보아라.” 하나님께 은혜를 받고 싶다면 하나님께 호의를 베푸십시오. 그분께 나아오십시오. 여러분이 죄인이며 치유받고 싶다면 먼저 와서 여러분의 삶을 그분께 드리십시오. 그저 교인일 뿐인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다면 먼저 오십시오. 먼저 그리스도께 오십시오. 그러고 나서 교인이 되면 됩니다. 아시겠죠. 엘리야는 쉴 곳을 얻었고, 그 뒤 영이 그에게 임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가서 우리가 이 여자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아보아라.”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군대 대장에게 말해 주겠소? 왕에게 말해 주겠소? 다시 말해, 그들은 나를 불러 만나곤 하오. 내가 그들을 위해 기도도 하고 여러 일을 해 주어서 아는 사이요. 그들에게 말해 주겠소?” 그 여자는 “아닙니다. 저는 그저 제 백성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저는 이방인이니 제게 그다지 큰 의미가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이라고 했습니다. 보십시오. 많은 사람은 주님을 위해 무슨 일을 하면... 아, 그 일을 나팔 불어 알리고 싶어 합니다. 아시겠죠. “저 교회가 어떻게 저렇게 멋진 창문들을 갖게 되었는지 아세요? 이것이 어떻게 생겼는지 아세요? 제가 했거든요.” 그런 일을 하거든 혼자 간직하십시오.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구제할 때 사람들 앞에 나팔을 불지 마십시오. 그러면 그들에게서 보상을 받게 됩니다. 마음속에 간직하십시오. 그러면 “은밀한 가운데 보시는 분께서 너희에게 드러내... 공개적으로 보답해 주시리라”고 하셨습니다.
보십시오. 저는 이것이 참 좋습니다. 아, 그저 소박하고 단순한 옛 복음이지만 그 이야기는 결코 빛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보십시오. 그가 이런 상태에 있었고 이것이... 아닙니다, 그 여자는 그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게하시가 그에게 와서 “그 여자에게는 아이가 없고 남편은 늙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말했습니다. “돌아가서 그 여자에게, 올해 생명의 때쯤에는 자기 품에 아들을 안게 되리라고 전하여라.” 아마 그 여자는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게 무슨 일일까? 내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큰 일이잖아. 내가 직접 생명을 낳게 된다니,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하지만 따지지 않겠어.” 그리고 그 일이 이루어졌을 때... 사람이 성령의 기름부음 아래서 말하면 그 일은 일어날 것입니다. 그 사람은 선지자였습니다. 그가 말한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 여자는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를 사랑하며 살았습니다.
아이가 열두 살쯤 되었을 때였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와 함께 들에 나가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마 칠십 대인 노인이었을 것입니다. 그가 아마 부유한 사람이었으므로, 수확철에 그곳에 나가 있었는데 아이가 일사병에 걸렸든지 무슨 일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아이가 “내 머리야, 내 머리야” 하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는 하인 한 사람에게 아이를 어머니에게 데려가게 했습니다. 어머니가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있다가 정오쯤 되었을 때 그 아기가, 어린아이가 죽었습니다. 이제 아기는 죽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기를 주셨다가 여기서 다시 데려가신다면, 그 아기가 여자에게 무슨 유익이 있었겠습니까? 그 여자가 어떻게 했는지 아십니까? 그저 미지근한 교인이었다면 그 자리에서 원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아니었고 준비해 두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복을 받았습니다. 그 일이 일어나자 그 여자는 아기를 안았습니다. 어떻게 했는지 보십시오. 아기를 안고 문을 나가 길을 따라가서 모퉁이를 돌았습니다. 그리고 엘리야의 방에 데리고 들어가 엘리야의 침대에 눕혔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자리에 눕혔습니까. 아멘. 엘리야의 침대 위였습니다. 보십시오. 제가 말하려는 것은 그 여자가 영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어느 시대든 영감받은 사람들은 세상이 보기에 이상하게 행동하지만,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자기 몸에 있던 손수건과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들고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안에 무언가가 있는 것입니다. 오, 여러분이 이것을 보게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무언가가... 의사가 그곳에 서 있었다면 어땠겠습니까? 어머니가 뻣뻣하게 굳은 죽은 아기를 안고 옵니다. 일사병으로 쓰러져 눈은 뒤로 돌아갔고, 입은 벌어져 있고, 혀는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가 그 죽은 아이를 안고 와서 설교자의 침대에 눕히려고 돌아가는 것입니다. 의사는 “이 광신자 같으니”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 여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신의 영감이 하라고 하는 일을 그대로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잠깐 멈추어도 되겠습니까?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가... 제가 한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보십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는 전적으로 영적 계시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에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아담과 이브가, 그리고 카인과 아벨이... 두 아들이 하나님께 나아가 제단을 쌓고 하나님을 경배했습니다. 둘 다 그랬습니다. 하나는 믿는 사람이었고 다른 하나는 믿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단지 그분을 믿는 믿음, 그분을 믿고 교회에 가입하고 희생물을 드리는 것만 요구하신다면, 카인을 정죄하시는 하나님은 잔인하고 불공정하실 것입니다. 카인도 아벨과 똑같은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마귀가 어떻게 사람들을 사로잡았는지 보십니까? 사람들은 “나는 교회에 다니잖아. 물론 하나님을 믿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믿어”라고 생각합니다. 지옥의 모든 마귀도 똑같이 믿으며 공개적으로 고백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마귀는 “우리는 당신이 누구신지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시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수천 명 앞에서 공개적으로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했습니다. 그들은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회심은 하나의 체험,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얼마나 영광스러운지 보십시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그 여자는 이 영감이 자신에게 임했음을 알았을 때 정확히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그것이 초자연적인 것과 일치함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브래넘 형제님,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라고 하겠지요. 저는 하나님이 전능하시고 지극히 높으시며 모든 권능을 가지신 전능자라는 사실에 맞추어 여러분의 믿음의 기초를 놓으려는 것입니다. 그분은 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의 본성은 변하지 않습니다. 제 본성은 변할 수도 있고 여러분의 본성도 변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본성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그분께서 여전히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위대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시며 모든 권능이 그분의 손안에 있다면, 오늘 밤에도 그분은 동일한 여호와이십니다. 그분이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면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하실 수 없다면 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영감은 여러분에게 그것을 말해 줍니다. 추론은 그렇지 않다고 하지만 영감은 그렇다고 합니다. 생각에서가 아니라 혼에서 오는 영감입니다. 생각으로 하는 추론, 사람이 만들어 낸 이른바 신학은 여러분을 아주 종교적인 사람으로 만들 것입니다. 여러분을 아주 종교적으로 만들고 안식일을 지키게 하며 이 모든 다른 일들도 하게 하지만, 기적을 행하시고 초자연적인 일을 이루시는 전능자가 계심은 부인하게 할 것입니다. 마지막 날들에 사람들이 그렇게 되리라고 영께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고집이 세며 높은 마음을 품으며, 하나님의 성품의 모양은 있으나 그것의 능력은 부인하리니 이런 자들에게서 돌아서라.” 교회여, 깨어나십시오. 아벨은 어떻게 올바른 희생물을 드리는 법을 알았습니까? 영감을 받았던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대체로 카인처럼 행동합니다. 카인은 틀림없이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멋진 제단을 지으면... 여호와를 위해 아름답게 꾸미자. 그런 곳에서 경배하자.” 그는 들의 백합을 가져왔습니다. 제단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땅의 열매를 가져와 거기에 놓았습니다. 모든 것을 멋지게 꾸미고, 훌륭한 교회와 훌륭한 제단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여호와여, 이것을 주께 드립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거절하셨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교인들이 더 잘 차려입고, 목사가 좀 더 격식을 갖추며, 소위 그렇게 광신적이지 않은 더 좋은 교회에 가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세상의 생각이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는 것을 아십니까? 이 세상의 지혜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어리석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설교의 어리석은 것으로 세상을, 아니, 믿으려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이 둘은 얼마나 서로 반대됩니까. 자, 서둘러 이 끝부분, 이 결론으로 가겠습니다.
잠깐 보십시오. 아벨은 영감을 따라 나아왔을 때 아름답게 꾸민 것은 없었지만, 영감 가운데 나아왔습니다. 양을 드려야 한다고 말해 줄 성경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것이 양임을 그에게 계시하셨습니다.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 줄 영감은 없었습니다... 카인은 말했습니다. “자, 그것은 열매야.” 추론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사과를 먹었을 테니 열매와 제물을 가져가자. 그러면 여호와께서 이것을 받으실 거야. 저것보다 이것이 보기에 더 좋으니까 여호와께서 이것을 받으실 거야.” 오늘날 사람들도 똑같이 생각하며 복음이 전해지는 작은 선교회 같은 곳을 피합니다. 때로는 사람들이 우리가 말하는 현대식 방식에 딱 맞게 옷을 입지 않는다는 이유로 피합니다. 그들은 세상처럼 행동하고 세상처럼 되고 싶어 합니다. 제가 방금 말씀드린 그 여자처럼 말입니다. 그것은 추론이기 때문이며, 여러분은 그것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안 됩니다. 영감을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내려오셨을 때... 이 점을 지금 확실히 해 둡시다.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내려오셔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나 곧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 하느냐?” 한 사람은 “주께서는 엘리야이십니다”라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은 “주께서는 그 선지자이십니다”라고 했습니다. 또 다른 사람은 “주께서는 예레미야이십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주께서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살과 피가 이것을 네게 계시하지 아니하였고,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것을 네게 계시하셨느니라. 이 반석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
수넴 여자는 바로 그것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죽은 아기를 그 설교자의 침대로 데려가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영감이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다니는 시늉만 해 왔다고 영감이 여러분에게 말한다면, 오늘 밤 여러분의 더러운 습관들을 버릴 때라고 영감이 말한다면, 영감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성령께서 말씀하시며 길을 열고 계시는 것입니다. 결코 거절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무엇이든...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여러분이 깨끗하고 의롭게 행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의 말씀에 일치합니다. 그 말씀과 맞습니다. 아멘.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다른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든, 그것이 말씀에 맞는다면 여러분을 이끄는 것은 영감입니다. 그것이 말씀에 맞는다면 영감이 여러분을 이끌고 있는 것입니다.
그 여자는 아기를 안고 돌아가 자기 침대에, 아니, 그 사람의 침대에 눕혔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남편이 들어왔습니다. 사람들은 울며 비명을 지르고 소란을 피웠습니다. 아기가 죽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여자는... 아멘. 저는 이것이 참 좋습니다. 그 여자의 믿음이 행동하고 있었습니다. 더없이 침착했습니다. 그 결정적인 순간에 무언가가 그 여자를 사로잡았습니다. 무언가가 붙잡았던 것입니다. 가족이 죽었을 때 무언가가 그 여자를 붙잡았다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이 가까운 오늘 밤에는 얼마나 더 무언가가 우리를 붙잡아야 하겠습니까. 무언가가 그 여자를 사로잡았습니다. 영감이었습니다. 그 여자는 돌아가서 어린아이를 안아 선지자의 침대 위에 눕혔습니다. 남편은 “아이고, 여보, 아이고, 여보, 어떻게 하면 좋겠소?”라고 했습니다. 그 여자는 “다 괜찮아요, 여보”라고 했습니다. 아멘. 그 여자의 믿음이 그 여자를 행동하게 했습니다. 휠체어에 계신 자매님, 하나님이 치유자이심을 아무리 많이 믿는다 해도, 그 믿음이 행동으로 옮겨지지 못하면 언제까지나 휠체어에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혼 깊은 곳에서... 추론이 아니라 이 안의 무언가가 그렇다고 말하는 데까지 여러분의 믿음이 행동할 수 있게 되면, 형제님,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납니다. 여러분은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사실입니다.
그다음에 일어난 일을 보십시오. 그 여자가 말했습니다. “노새에 안장을 얹어 주세요.” 아멘. “그리고 갈멜산을 향해 달릴 수 있는 대로 힘껏 달려요.” 저는 그것이 좋습니다. “나귀에 안장을 얹고 앞으로 가라. 내가 명하지 않으면 속도를 늦추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좋습니다. 그 여자는 하나님의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에 있었습니다. 필요가 있었고, 엘리야가 하나님을 대표하는 사람임을 알았습니다. 엘리야가 아기에게 생명을 돌려주리라는 것은 몰랐습니다. 하지만 엘리야가 하나님의 종으로서 더없이 확실하게 인정받고 입증되었다는 것은 알았습니다. 오늘 밤 성령은 그분이 여기 계시며, 그분의 권능이 믿는 자와 함께한다는 것을 입증하십니다. 우리를 이끌어...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결정을 내리게 하는 영감으로 그것을 깨닫기만 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웃이 어떻게 생각할지, 다른 사람이 무슨 말을 할지, 우리 목사가 뭐라고 할지, 우리 교인들이 뭐라고 할지, 우리 이웃들이 뭐라고 할지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이끄시는 곳을 따라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여자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들이 노새를 타고 떠났습니다. 그 여자는 “하나님의 그 사람에게 갈 수만 있다면 이유를 알게 될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여자가 왔을 때...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자기 선지자들에게 일어날 일을 다 말씀하시지는 않습니다. 자신이 원하시는 대로 알려 주실 뿐입니다. 하나님은 주권자이십니다. 여러분은 사람들이 그저 세계를 돌아다니며 마구잡이로 사람들을 고치고 모든 일을 하는 모습을 결코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평생 힘을 다해 그런 생각을 무너뜨리려 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대전도 집회에서 보시듯, 저는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라고 하시는지 먼저 환상을 보기 위해 모든 것을 엄숙하게 지켜봅니다. 발을 구르고 차고 기름을 바르고 그 밖의 온갖 일을 해도, 마귀에게 그 안에 있을 권리가 있다면 말입니다. 마음속에 자백하지 않은 것이나 불신, 의심, 무엇이든 있다면, 여러분이 행하기를 거부한 일이든 아니든, 마귀는 바로 그곳에 머물 것입니다. 그렇게 할 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무작정 고치신 적이 없습니다. 그분은 “아버지께서 먼저 내게 보여 주시지 않으면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결코 예수님과 같은 수준에 있지 못할 것입니다.
얼마 전, 기적을 믿지 않고 성령침례조차 믿지 않는 어떤 교단의 목사가 제게 말했습니다. “설교자 양반, 들어 보시오. 당신이 사도라면, 선지자라면...” 저는 “선생님, 저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사도도 선지자도 아닙니다. 저는 주 예수님의 종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당신이 치유자라면...”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저는 제가 치유자라고 말한 적도 없습니다. 주 예수님이 치유자이십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하지만 당신이 사도들 같은 사람이라면...”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절대 아닙니다. 다만 같은 은혜로 구원받았을 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그러면 같은 성령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겁니까?” 저는 “이제 말이 맞아 가는군요. 그렇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당신이 성령을 가진 사도들 같은 사람이라면, 왜 여기 병원에 가서 ‘여러분 병든 사람들 모두 일어나 걸어 나가시오’라고 하지 않는 거요? 그러면 모두가 순종하고 당신이 하라는 대로 할 것 아니오.” 저는 “예수님께서 지금도 구원하신다고 믿으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물론이오.” 저는 말했습니다. “그럼 저 유흥 술집과 경마장과 술집들로 가서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인입니다. 나오십시오. 세상에서 벗어나십시오’라고 해 보십시오.” 그는 “그들이 믿는다면 그럴 수 있소”라고 했습니다. 저는 “저도 그렇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물론이지요. 바로 그것입니다. 그것은 정확히 속죄에 근거해 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브래넘 씨, 기억하시오. 사도들은 한 번도 실수하지 않았소. 그들이 기도해 준 사람은 모두 나았소.” 저는 말했습니다. “제 여덟 살짜리 딸에게는 그런 말을 하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성경을 그 정도밖에 모르신다면 아이가 선생님을 부끄럽게 만들 테니까요. 세상에, 박사 학위까지 있는 사람이 성경을 그렇게밖에 모릅니까.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내려오셨을 때, 사도들은 그곳에서 간질을 앓는 아이에게서 마귀를 내쫓으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와서 말했습니다. ‘아이를 주님의 종들에게 데려왔지만 그들은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데려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언제까지 믿지 않겠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아이를 그곳에 데려왔습니다. 그분께는 아무 문제도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분께서 그 영을 부르시자 그것이 아이에게서 떠났습니다. 사도들은 “어찌하여 우리는 그를 내쫓을 수 없었나이까?”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실패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친구 디모데가 위장병으로 앓는 채로 남겨 두었습니다. 바울은…?…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것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한량없이 영을 받으셨고, 우리는 분량대로 받았습니다. “어떻게 사람을 정죄할 수 있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몇 번의 실패를 이야기하시는데, 그리스도인이라면 몇 번의 성공도 이야기하지 그러십니까?” 그의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멀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겪은 어떤 신학적 경험에 따라 그의 지성이 그를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저는 “바로 그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그럼, 당신이... 당신의 설교에서 예수님께서 ‘내가 하는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고 말씀하셨다고 하는 것을 들었소. 그렇다면 빵을 떼어 오천 명을 먹이는 것을 보여 주시오.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것도 보여 주시오.” 저는 말했습니다. “우리는 아직 어린아이 단계입니다. 점점 자라고 있습니다. 당신들 같은 형식적인 광신자 무리만 치워 버리면 곧 그렇게 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은...” 저는 말했습니다. “이제 치유는 더 이상 의문의 대상이 아닙니다. 의사들조차 인정합니다. 미국 의사협회 전체에서도 가장 뛰어난 의학 단체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신유가 온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회중 가운데 역사하실 수 있을 만큼만이라도 당신들 불신자 무리를 비켜나게 할 수 있다면,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자라 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기적들도 똑같은 방식으로 시작된 것을 보십시오. 계속 나아가 마침내 죽은 자들의 부활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보십시오. 그 여자가 선지자에게 갔는데, 선지자가 말했습니다. “저기 수넴 여자가 오는구나. 하나님께서 그 여자의 마음속에 있는 일을 내게 숨기셨구나.” 그는 몰랐습니다. 멀리서 오는 여자를 보고 그는 말했습니다. “게하시야, 이 일이 좀 걱정되는구나. 달려가서 무슨 일인지 물어보아라. 보니 슬픔이 가득한 것 같구나. 고개를 떨구고 있고, 저 작은 노새를 거의 죽을 만큼 몰아왔구나. 여기 오고 있는데... 가서 무슨 일인지 물어보아라.” 게하시가 달려가서 말했습니다. “네가 잘 있느냐? 네 남편이 잘 있느냐? 네 아이가 잘 있느냐?” 보십시오. 여기 저를 언제나 놀라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 여자가 말했습니다. “잘 있습니다.” 아멘. “잘 있습니다.” 그런데 아기는 시체였습니다. “남편도 잘 있고, 저도 잘 있고, 아기도 잘 있습니다.” 그 여자는 선지자가 있는 곳까지 와서 그의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에게 사정을 털어놓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그가 게하시에게 말했습니다. “게하시야, 이 지팡이를 손에 들고 어서 가거라.”
오, 세상에! 오늘날 설교자에게 필요한 것은 지팡이를 들고 나서는 것입니다. 소와 도구들을 불태우고 준비하십시오. 그가 말했습니다. “너는 어서 가거라. 누가 친목 모임에 초대하더라도 가지 말아라. 수프 저녁 식사 모임을 연다고 해도 그 말에 넘어가지 말아라. 교회에서 멈춰 번코 게임을 하자고 해도 그 말에 넘어가지 말아라. 누가 네게 인사하더라도 인사하지 말고, 곧바로 가서 이것을 아기에게 놓아라.” 이것이 오늘 교회가 받은 사명입니다. “모든 무거운 것과 너무 쉽게 우리를 얽어매는 죄를 떨쳐 버리고 인내로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경주 길을 달려가”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은 “이렇게 큰 구름 같은 증인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니”라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어떻게 기적들이 이루어지는지 말하며, “모든 무거운 것과 너무 쉽게 우리를 얽어매는 죄를 떨쳐 버리자”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사소한 사교적인 일들 때문에 너무 자주 멈춥니다. 세상과 타협하려고 너무 자주 멈춥니다. 조금 지나치게 광신적이 되지는 않았는지 살피느라 너무 자주 멈춥니다. 저는 두렵습니다... 저는 광신자보다 두려워하는 사람이 더 두렵습니다. 그렇습니다. 오, 세상에! 저는 불이 전혀 없는 것보다는 작은 산불이라도 있는 편이 낫겠습니다. 물론 그렇습니다. 세상이 차가울 때면 언제든, 빙산 곁에 있는 것보다는 탁탁 소리를 내며 불꽃이 튀는 불 곁에 있고 싶습니다. 물론입니다. 불을 그림으로 그려 놓지 마십시오. 그림 속의 불로는 따뜻해질 수 없습니다. 진짜 불이 있어야 합니다. 사도들이 행했던 일만 보는 것이 아니라 사도들 안에 계셨던 성령을 보십시오. 오늘도 동일한 성령이시기 때문입니다. 계속 나아갑시다.
150년 전 과학은 사람이 시속 30마일이라는 엄청난 속도로 달리게 되면 중력이 그를 지구 밖으로 날려 버릴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때는 소달구지를 타고 다녔기 때문입니다. 과학이 오늘도 그 시절을 돌아보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제트기로 시속 1,600마일을 달리며 여전히 계속 나아가고, 더 멀리 나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침례를 믿을 수 있고 병든 사람의 치유를 믿을 수 있는 데까지 왔습니다. 죽은 자들의 부활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향해 계속 나아갑시다. 과학자는 어느 정도까지만 나아가다가 뒤로 물러나고 맙니다. 우리에게는 풀어 놓은 자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그것을 행하리라”고 하신 신성한 약속이 있습니다. 아멘. 지금 제 마음에 믿음이 뜨겁게 솟습니다. 오, 세상에! 그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믿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니라.” 하나님, 이제 병든 사람을 위한 믿음은 충분히 있습니다. 하나님, 다른 무언가를 위한 믿음도 충분히 주십시오. 저는 배가 고프고, 제 식욕이 부풀어 오릅니다. 저는 하나님을 더 많이 원합니다.
그래서 그 여자가 말했습니다... 엘리야가 지팡이를 들고 그렇게 나가는 것을 보고 그 여자는 “저는 그것으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여자는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지팡이 안에 계시는지는 몰랐지만, 하나님께서 그 선지자 안에 계신다는 것은 알았습니다. 그래서 “주께서 살아 계시고 당신의 혼이 결코 죽지 않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저는 당신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는지 알고 싶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아멘. 여러분이 식은 감자 조금으로 만족하려 하지 않는다면... 이런 표현을 용서하십시오. 마귀가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하려 한다면 말입니다. “그저 교회에 가입해. 한쪽에 서 있어. 천년왕국의 영광스러운 어느 날에는 병든 사람들이 치유되고, 다시 그런 체험들이 있을 거야.” 마귀가 그 말을 여러분의 목구멍에 밀어 넣게 놔두고 다른 무언가를 기다리려 한다면, 여러분은 파이와 아이스크림, 닭튀김과 좋은 것들을 그냥 지나치고 있는 것입니다. 아멘. 저는 교회에 가입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와 사귀어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신학적 잣대들이 돌아다니며 뭐라고 하든, “나는 그것을 믿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잣대들 말입니다. 이것을 하면, 저것을 하면, 이것을 하면 된다는 식입니다. 저는 그런 낡은 잣대들이 싫습니다. 그것을 내던지고 주 예수님을 얻으십시오. 그 여자는 말했습니다. “저는 당신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이 일에 당신이 계신 줄 알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분이 감리교회나 침례교회나 오순절교회나 루터교회 안에 계시는지 모릅니다. 그것은 모릅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압니다. 그분은 제 마음속에 계십니다. 아멘. 그곳이 그분의 거처입니다. 그 여자는 “저는 당신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바로 당신 곁에 머물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오, 그 여자는 자기 입장을 굳게 지켰습니다. 그것을 믿는 자기 믿음을 굳게 지켰습니다. 온갖 낫과 그 밖의 모든 것을 뚫고, 핍박하는 자들과 비웃고 조롱하는 자들을 모두 지나서 온 것입니다. “이봐. 나는 늘 저 여자에게 뭔가 수상한 데가 있다고 생각했어. 지금 어디로 가는지 봐.” 아시겠죠. 바로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께 가려면 모든 장벽을 뚫고 지나가며 뒤에 있는 모든 울타리를 불태워야 합니다. 세상이 뭐라고 하든, 교회가 뭐라고 하든,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엘리야가 그 여자와 함께 갑니다. 여러분도 그런 태도로 예수님께 나오면 그분께서 인생길 끝까지 여러분과 함께 가실 것입니다. 예, 그러실 것입니다. 언젠가는, 할렐루야, 우리 모두 그곳에 이르러야 합니다. 저는 되고 싶습니다... 그때 그분이 제 친구가 되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제가 속한 교회들은 불타고 원자폭탄 같은 것들로 산산조각 나겠지만, 저의 주님은 영원히 사실 것입니다. 저는 그분 안에 있고 싶습니다. 그것이 제 동기이며 제 마음의 소원입니다. 그분 안에 있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그가 방으로 갔습니다. 이제 마치면서 서둘러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는 아기가 있는 방으로 갔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방바닥을 이리저리 오갔습니다. 이리저리 오갔습니다. 밖에서는 사람들이 격하게 울며 소란을 피웠습니다. 그는 영이 아주 깊이 기름부으실 때까지 방바닥을 이리저리 오갔습니다. 그러고 달려가 아기 위에 몸을 던졌습니다. 자기 입술을 아이의 입술에, 머리를 아이의 머리에, 코를 아이의 코에, 손을 아이의 손에 댔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그를 통해 그 아기에게 임했습니다.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는 일이나 그 밖의 일처럼 말입니다. 그러자 아기가 일곱 번 재채기를 하고 살아났습니다. 그 여자의 영감이 결실을 맺고 있었습니다.
형제님, 언젠가 해가 빛을 내기를 거부하고, 달이 지고 별들이 땅으로부터 얼굴을 감추며, 마지막 설교가 전해지고, 성경이 닫힌 채 놓여 있고, 교회들이 산산조각 나고, 바위들이 요동하며 부르짖는 그때, 저는 그분을 알고 싶습니다. 아멘. 시인이 노래에서 말한 것처럼 말입니다. “아담이 이브를 흔들어 깨우며 ‘이브, 여보, 바로 이때야’라고 말하는 것이 보입니다. 이브는 손을 뻗어 아벨을 흔들며 ‘아벨아’라고 합니다. 아벨은 셋을 흔듭니다. 셋은 노아를 흔듭니다. 노아는 아브라함을 흔듭니다.” 아멘. 때가 왔습니다. 그분의 부활의 권능 안에서 그분을 아는 것입니다. 나를 이끌어 온 영감, 그 때문에 광신자로 불리고 온갖 이름으로 불렸지만, 그 영감이 나를 결승선까지, 보상받는 자리까지 이끌어 왔음을 아는 것입니다. 어머니들, 여기 계신 백발의 연로한 어머니들과 아버지들,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을 그리스도께 이끈 영감이... 여러분은 수많은 위험과 수고와 올무를 지나왔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느 아침엔가 결실을 맺을 것입니다. 결실을 맺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실 것입니다. 우리는 채여 올라가 공중에서 그분과 함께할 것입니다.
그 선지자의 침대에 몸을 펴고 누워 있는 아기를 보십시오. 영감이 그 아기를 준비된 그곳에 눕혔습니다. 오늘 밤 하나님은 두 팔을 벌리고 계시며 여러분의 마음이 그곳에 놓여 있습니다. 그분은 그 안에 자리를 준비하기 원하십니다. 오셔서 손을 뻗어 여러분을 들어 올리고, 부활 때 여러분을 데려가실 수 있도록 말입니다. 아브라함 앞에 걸어오셨던 바로 그 전능하신 하나님, 위대하신 여호와이십니다... 어떤 사람이 “그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셨다는 말입니까?”라고 했습니다. 물론입니다. 성경이 그렇다고 했습니다. 두 천사가 있었고, 걸어와서... 그가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들이 그 소를 먹고... 아니, 송아지를 먹고, 우유를 마시고, 옥수수빵과 버터를 먹었습니까? 그분이 하나님이셨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과 두 천사였다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아, 당신은 불신으로 하나님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것도 하실 일이...”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가브리엘아, 이리 오너라. 미가엘아, 이리 오너라. 여기 내 곁에 서거라.”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후우! 그 몸속으로 들어가거라.” 아멘. 손을 내미시며 “후우! 그 몸속으로 들어가거라” 하셨습니다. “한 줌의 원자와 우주의 빛 조금, 우주 미터 조금, 석유 성분들아, 이리 오너라” 하셨습니다. 이 몸을 이루는 것들입니다. 그분은 그것을 빚으시고 그 안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옷에 먼지를 묻힌 채 내려와 아브라함과 이야기하셨고, 사라가 장막 안에서 웃을 때 그분은 사라에게 등을 돌리고 계셨습니다. 그분께서 “사라야, 왜 웃었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사라는 “저는 웃지 않았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께서 “아니다. 너는 웃었다”라고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그분은 아브라함 앞에 나타나시려고 스스로 몸을 빚으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몸을 빚으신 하나님께서 오늘 밤 우리의 혼을 손안에 두고 계십니다. 자리를 넓히고 그분이 거하실 곳을 마련합시다. 그리하여 영광스러운 어느 날 그분께서 땅에 다시 오실 때 말씀하시면, 우리가 그분의 모습으로 나타나 그분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저는 그분을 보고 싶습니다. 그때 그분과 함께 가고 싶습니다. 오늘 세상이 무슨 말을 하든 저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그러실 것입니다.
오늘 밤 이곳에 계신 죄인 된 친구여, 아직 그 체험이 여러분의 것이 아니라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기다리십니다. 마음을 열어 그분이 들어오시게 하십시오. 추론을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저는 꽤 착하게 살아왔습니다”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좋습니다.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다시 태어났습니까? 그분이 지나가실 때 여러분의 죽은 자도 일으키시고 여러분을 다시 살리시도록 준비해 두셨습니까? 그러셨기를 바랍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머리를 숙이는 지금 그렇게 할 준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잠시 머리 숙여 기도하는 동안 오르간 반주자가 나와 주셨으면 합니다. 괜찮으시다면 모두 기도해 주십시오. 엄숙하고 위대한 순간입니다. 오늘 밤 여기 어린 소년 한 명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며칠 안에 사역자로 쓰실 준비를 하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여기 아직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은 가엾은 죄인 된 청년이나 어떤 여자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잠시 뒤 그의 삶이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교회에 다니지만 실제로 그리스도인이 되어 본 적은 없는 미지근한 교인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제 친구여, 어떻습니까? 여러분이 인생길 끝에 이르면 여러분의 혼은 몇 주 전 루이빌에서 죽은 그 여자와 같겠습니까? 여러분의 추론이 무너져 내릴 때 여러분의 혼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 하늘 아버지, 주님의 사랑하는 자녀이신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오늘 밤 이 회중을 주님께 올려 드립니다. 주님, 성령께서 이곳 회중 가운데 나아가셔서 이 통로들을 오가며 샅샅이 살펴 주시도록 주님께 올려 드립니다. 저희는 모릅니다. 이것이 마지막 부르심일 수도 있습니다. 조금 전 이런 글을 읽었습니다. 백만 마일 넘게 운전했던 몸집 크고 건강한 버스 운전사가 시내 정류장에 들어왔습니다. 몸에 조금 이상을 느껴 정류장을 빠져나와 길가에 차를 댔는데, 그곳에서 죽었습니다. 모르는 일입니다. 그 시간이 될지도 모릅니다. 저희는 모릅니다. 하지만 아버지, 그물을 물에 드리웠습니다. 오 하나님, 물고기들이 그 안으로 들어오게 하옵소서. 복음의 그물입니다. 아버지, 지금 잃어버린 자와 믿음에서 떠난 자, 미지근한 자, 이 길에서 지친 자를 구원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을 위하여 구합니다.
우리가 머리를 숙이고 있는 동안, 오늘 밤 여기 죄인인 소년이나 소녀, 남자나 여자 가운데 이렇게 말할 분이 있습니까? “브래넘 형제님, 저는 그것이 진리라고 믿습니다. 온 마음으로 믿습니다. 이제 손을 들겠습니다. 브래넘 형제님께라기보다는 하나님께 손을 듭니다. 기도할 때 저를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젊은이,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또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예. 또 계십니까? 그저 손을 들고 말하십시오. “브래넘 형제님, 지금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저는 죄인입니다. 정말로 하나님 앞에 바로 서고 싶습니다. 제가 바로 서 있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제가... 할 필요가 없습니다. 제 영감이... 무언가가 제 위에 임하여 ‘얘야, 오늘 밤 바로 너란다’라고 말합니다.” 그분께서 여러분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말해 왔습니다. 이 설교 전체가 여러분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실제로 세상의 모든 것을 끊어 버리고 자리를 준비한 적이 없습니다. 아직도 세상에 대한 욕망이 있습니다. “아, 물론 저는 교회에 속해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세상을 향한 사랑이 아직 그곳에 있습니까?
미지근한 교인이나 그와 같은 처지에 있는 분 가운데 손을 들고 이렇게 말할 분이 있습니까? “브래넘 형제님,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하나님, 지금 제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저는 한 번도 다시 태어난 적이 없습니다. 제가 교회에 속해 있다는 것은 압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집 안을 말끔히 비우고 부활을 위한 자리, 새 삶을 위한 자리를 마련한 적은 없습니다. 믿는 사람이지만 그렇게 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 지금 제가 그것을 바라고 있음을 기억해 주십시오. 지금도, 또 제가 죽는 시간에도 저를 기억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 손을 들고 “주님, 이것이 주님께 드리는 제 표적입니다. 지금 저를 기억해 주시기를 원합니다”라고 하시겠습니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으로서, 저는 그런 체험을 지닌 여러분을 평안 가운데 만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예배당 어디에 계시든 손을 드시겠습니까? 주님께서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손을 드시겠습니까? 또 계십니까? “하나님, 오늘 밤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제게 필요가 있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처지에 서 있습니다. 제가...라는 것을 압니다”라고 하십시오.
보십시오. 형제님, 자매님, 이것을 장난으로 대하지 마십시오. 그저 장난삼아 하지 마십시오.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확실히 하십시오. 아시겠죠. 어쩌면 여러분의 양심은 오랫동안 무감각해졌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말합니다. “바로 나입니다. 이제 제가 하나님께 진실하지 못했음을 깨닫습니다. 저는 진실하지 못했습니다. 제 안의 무언가가 늘 저를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그 온전한 자유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셰키나 영광 안에 숨어 있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제가 아주 떠나 버린 것처럼 느낄 때가 있습니다. 믿음에서 떠났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저... 도저히 그 삶을 살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저를 도와주시도록 주님께 손을 들겠습니다.” 손을 드시겠습니까? 또 손을 드실 분이 있습니까? 잠시 기다리며 다른 분이 계신지 보겠습니다... 주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손을 보십니다. 선생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또 계십니까? 선생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동안 성령께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살피며 모든 것이 말끔히 정리되어 있는지 보고 계십니까?
어느 날 어느 교회에서는 잔잔한 오르간 음악이 흐르고, 바닥을 삐걱거리며 관 하나가 들어올 것입니다. 그것이 여러분일 것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여러분일 것입니다. 그때 여러분의 처지가 어떻겠습니까? 돌아올 수 있다면 “오, 여기서 벌떡 일어나 잠깐만 제단 앞에 무릎 꿇게 해 주십시오. 바로잡고 싶은 일이 많이 있습니다”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때는 너무 늦습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오늘이 구원의 날입니다.” 하시겠습니까... 또 계십니까? 네댓 분이 손을 드셨습니다. 그저 이렇게 말씀하시겠습니까? “하나님,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제게 도움이 필요합니다. 지금 믿음으로 나아갑니다. 나의 복되신 구속자여, 정말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싶습니다.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드립니다. 주님께서 저를 위해 주셨으니 저도 주님께 드립니다. 이제 은혜를 통해 믿음으로 나아갑니다. 바로 오늘 밤 주 예수님께서 저를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시리라고 믿습니다.”
제가 말하는 다시 태어남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하신다면, 저는 성령침례를 받지 않은 분을 두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새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손을 들고 “이제 저는 믿습니다. 성령을 받고 싶습니다. 설교자 형제님,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라고 하시겠습니까?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또 누가... 선생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좋습니다. 얼마나 귀한 시간입니까. 잠시만 더 머리를 숙이고 있는 동안 제가 찬송을 부르겠습니다. 자매님이 연주하는 대로 우리가 아주 조용히 부르겠습니다. 이리 올라와 바로 여기 무릎 꿇어 주시겠습니까? 제가 내려가 함께 기도하고 여러분에게 손을 얹게 해 주십시오. “부드럽고 다정하게 예수님이 부르시네.” 좋습니다. 부드럽고 다정하게 예수님이 부르시네, 부르시네……………
어린 소녀여,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나오시겠습니까? 이 어린 아가씨가 말했습니다. “저는 그리스도를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브래넘 형제님, 저는 다시 태어나지 못했습니다. 성령을 받지 못했습니다. 꼭 받고 싶습니다.” 같은 처지에 있는 분이 또 계십니까? 죄인이든 누구든,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고, ...이 없다면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 결코 왕국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나오시겠습니까? 자기 삶을 그리스도께 드리러 나오기 위해 휠체어를 타야 했던 청년이 여기 옵니다. 죄인으로서 손을 들었습니다. 제 형제여,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브래넘 형제님이 제단 앞에 나온 사람들과 함께 기도한다.] 들으십시오. 나오시겠습니까? 손을 드셨던 분들 말입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표적이 되어야 합니다. 가엾은 청년이 휠체어를 타고 자리를 떠나 여기 와서 제단에 몸을 기대고 울고 있습니다. 자신이 죄인이라고 하며 기도 중에 기억해 달라고 해서, 눈물이 두 뺨을 타고 흐릅니다. 나오지 않으시겠습니까? ………….집으로 오라, 지친 자들아, 집으로 오라. 간절하고 다정하게 예수님이 부르시네, 부르시네, 오 죄인아, 집으로 오라!
성령을 받기 원하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지금 이리 올라와 무릎 꿇으시겠습니까? 하나님, 곧 성령을 마음에 받아들여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 가기 원하십니까? 모든 것이 새로워질 것입니다. 그분께서 여러분에게 말씀하고 계심을 여러분은 압니다. 회중을 보십시오. 저는 놀랍기까지 합니다. 여기 교회에서... 사람들의 마음이 너무 차가워져서 이제는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못한다는 것을 아십니까? 그저... 너무 무관심해져 버렸습니다. 이것은 이 시대의 영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마음이 무너지고 시대의 혼란에 당황하는 마지막 때에 와 있습니다. 사람들에게서 타고난 애정이 사라졌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멀어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오늘 밤 여기서 여러분의 마음이 무너져 내리고, 눈물이 두 뺨을 타고 흐르며, 어머니와 딸, 아버지와 아들이 우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놀랍습니다. 성령께서 여기 계십니다.
나오지 않으시겠습니까? 여러분의 때가 지금일지도 모릅니다. 기억하십시오. 이 시대 끝에 저는 여러분 곁에 서야 합니다, 친구여. 기억하십시오. 제 잘못은 아닐 것입니다. 오늘 밤 저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다시 태어나는 체험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나오지 않으시겠습니까? 한 번 더 찬송하는 동안 나오시겠습니까? 부드럽고 다정하……… 오늘 밤 나오지 않으시겠습니까? 아버지와 어머니가 기도하러 가시곤 하던 옛날식 회개의 기도석으로 바로 내려오십시오. 당신과 나를 부르시네,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보라, 문 앞에서……… [브래넘 형제님이 제단 앞에 나온 사람들과 함께 기도한다.]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아버지, 주님의 아들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주님께서는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그것을 행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자매에게 예수님의 피를 주옵소서…?… 마음이…?… 되도록, 주님…?…
이 젊은 자매가 한 것처럼 하시지 않겠습니까? 교회에 속해 있지만 자신이 하나님의 뜻 안에 바로 있지 않음을 깨달았습니다. 나와서 받아들이시지 않겠습니까? ……..오 죄인아……… 오늘 밤, 부디 오십시오. 제가 여러분에게 간청하는 동안, 여기 이 아침 아직 낮인 동안에, 이 기도석 주위로 오십시오. 지금 나오실 분이 있습니까? 어쩌면 여러분이 거기 계시는 동안 어떤 죄인, 어떤 사람이 여러분과 함께 오려고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개인 전도하는 분들 중에서 지금 제단 주위를 다닐 분들은 이쪽으로 걸어와 주십시오. 어쩌면 어떤 죄인이나 미지근한 교인이 함께 나올지도 모릅니다.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토록 신실한 마음으로 잃어버린 혼을 위해 기도하시니 말입니다.
오늘 밤 예배당에 앉아 계신 남자분들, 한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조금 전에 남자 네댓 분이 손을 드는 것을 보았습니다. 오늘 밤 우리 가운데 훌륭한 감리교 설교자 한 분이 앉아 계십니다. 얼마 전 그분에게 사람들이 찾아갔습니다. 누군가 걸어가 말을 건넸고, 그분은 그리스도께 나아왔습니다. 그래서 오늘 밤 그분은 하나님께 구원받고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한 훌륭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누군가 그분에게 관심을 가져, 와서 함께 무릎 꿇고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나와서 그렇게 하시지 않겠습니까? 그분이 나아왔기 때문에 오늘 밤 사역자가 되어 있습니다. 한 번 더, 나오시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한 번 더 찬송하는 동안 나오십시오. 간절하고 다정하게 예수님이 부르시네, 부르시네, 오 죄인아……… 보라, 문 앞에서 그분이 기다리며 지켜보시네, 당신과 나를 지켜보시네. 집으로 오라, 집으로 오라, 너희, ………… 형제님, 이제 해결되었다고 느끼십니까? 아멘. 휠체어에 계신 이분이 방금 구원받고 그리스도를 받아들였습니다. 치유도 받기에 좋은 때입니다. 간절하고 다정하게 예수님이 부르시네, 부르시네, 오 죄인아, 집으로 오라!
휠체어에 계신 자매님, 그리스도인이십니까? 의자를 이쪽으로 옮겨 오시지 않겠습니까? 의자에 앉은 채로 이리 오십시오... 형제님은 바로 거기 앉아 계십시오. 누가 저 자매님을 이쪽으로 옮겨 드리십시오. 병이 있어 치유가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지금이 바로 치유받기에 좋은 때입니다. 그 밖에 병든 분 가운데 이 주위에 무릎 꿇기 원하는 분은 나오십시오.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와서 생명수 샘들에서 마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기 계십니다. 믿으십니까? 또 병들어 도움이 필요한 분이 있습니까? 주위에 무릎 꿇으십시오. 이제 기도하겠습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만나 주시기에 좋은 때입니다. 오늘 밤이면 왜 안 되겠습니까? [브래넘 형제님이 누군가에게 말한다.] 말씀이 떠나가게 두지 말고, 빛을 향해 네 눈을 감지 말라. 오 죄인아, 네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고, 오, 오늘 밤 구원받으라. (브래넘 형제님이 병든 사람들과 기도하려고 내려간다.) 그러니 오늘 밤이면 왜 안 되겠는가? 오, 오늘 밤이면 왜 안 되겠는가? 오, 오늘 밤이면 왜 안 되겠는가? 오, 왜 병들어 있어야 하는가? 오늘 밤이면 왜 안 되겠는가?
오, 그리스도인 친구여, 나오지 않으시겠습니까? 여기 저희와 함께 제단 앞에 무릎 꿇고 싶은 분이 있습니까? 병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제가 저 아래로 내려갔는데, 암으로 죽어 가는 한 남자가 치유받으려고 바로 여기 제단 앞에 무릎 꿇고, 예수님을 자신의 치유자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방금 저 아래로 내려가 그분을 위해 기도하고 손을 얹었습니다. 여러분도 이 주위로 나오시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지금 우리에게 크게 부어 주시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 모두... 제단 주위에 무릎 꿇기 원하는 분들은 우리가 기도하는 동안 지금 나와서 무릎 꿇어 주시겠습니까? 제 친구여,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주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엘리야의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 계십니다. 지금도 고치십니다. 혼과 몸을 모두 온전하게 하십니다. 그분은 온전한 복음의 사람이십니다. 온전히 권능 있으신 분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모든 권능을 가지신 하나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그저 나아와 믿으십시오. 여러분은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사람들이 제단 주위로 모여드는 동안, 이 일에 마음을 두는 분은 모두 머리를 숙입시다. 우리가 무릎을 꿇든 서 있든, 할 수 있는 어떤 자세로든 기도하는 동안 모두 기도하십시오. 지금 모두 각자 자기 방식으로 기도하십시오. 여러분의 교회에서 기도하는 방식대로 기도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