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감사합니다, 베일 형제님. 이곳에 계신 여러분 한 분 한 분께 아침 인사를 드립니다. 다시 이 채터누가 지역에 와서 제... 제 사역의 일부로 형제님들을 도와 이미 세워진 사역을 계속하고, 우리 주 예수님이라는 이 터 위에 세워 나갈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큰 특권입니다. 우리는 이번 집회에서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지난번 이곳에서 우리가 함께했던 집회가 오랫동안 제 마음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 후로 강물도 많이 흘러갔습니다. 많은 일이 이루어졌고, 우리 주님을 위해 많은 싸움을 싸워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오늘 아침 이 식탁에서 여러분 남녀 성도님들과 함께하니 참으로 좋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왕국의 동료 시민이며, 똑같이 귀한 믿음을 가진 형제자매들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저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저 그분의 영광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제게 목소리가 있다면, 제가 가진 그것을 그분의 영광을 위해 쓰고 싶습니다. 저도 베일 형제님이나 여기 계신 많은 분들처럼 말을 잘했으면 좋겠습니다만, 하나님께서는 저를 그 일로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다른 종류의 사역으로 부름받았습니다. 그러니 베일 형제님의 자리나 여러분의 자리를 대신하려 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그분의 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아마 그분이 제 자리를 대신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각자 부르심 안에 머물면서 하나님의 위대한 왕국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 정다운 남부로 다시 내려오게 되어 기쁩니다. 남부 주들에는 제가 좋아하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제가 여기 이 땅에서 태어났거든요. 그래서 고향에 돌아오는 것 같은 느낌이 있습니다. 제가 저 멀리 북부로 가면 사람들이 말합니다. “이보시오, 당신 남부 출신이군요.” 저는 영국에 가기 전까지는 제가 영어를 하는 줄 알았습니다. 제가 가 본 어느 곳보다도 영국에서 통역자가 더 필요했습니다. 제가 말을 할 때마다 그들은 “텍사스 어디서 오셨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말할 때는 “저 아래로” 내려가는 겁니다. 아시겠지요? 아주 멀리 아래로 말입니다.
한번은 런던에서 길모퉁이에 갔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찾아가는 길이었습니다. 저는 남의 흉내를 잘 내는 사람과는 거리가 멉니다만, 한번 흉내를 내 보겠습니다. 길모퉁이에 어떤 신사가 팔에 지팡이를 걸치고 서 있었습니다. 전형적인 영국 코크니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안녕하십니까?” 하고 인사했습니다. 그는 안경 너머로 저를 보며 대답했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어떻게 가는지 알려 주시겠습니까?” 그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고 저를 보더니 말했습니다. “물론이지요, 이보게. 이쪽으로 세 블록 가서, 저쪽으로 돌아 세 블록을 가고, 곧장 가게. 틀림없이 찾을 걸세.”
오늘 아침 여기서 그 말을 알아들을 분은 아마 데이비드 두플레시 형제님뿐일 겁니다. 아, 제가 영어에 그리 능숙하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디서든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이 좋았습니다. 그들도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제가 좀... 보통 그리스도인 실업인회 조찬 모임에서는 그분들에게 설교를 조금 하곤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목사님들 앞이니 그렇게 하려 들지 않겠습니다. 그저 성경 말씀을 좀 읽고 싶습니다. 우리가 모일 때마다 성경을 읽고 해야 하니까요. 제 생각에는 그것이...
초창기에는 사람들이 모일 때마다 빵을 떼고 성만찬을 나누었습니다. 저도 그것이 좋습니다. 물론 우리는 이제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분의 말씀을 조금이라도 읽는 것이 좋습니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해도 이것만 얻는다면 좋을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마지막으로 맡기신 사명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마지막 유언이야말로 충분한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세상을 떠나시며 교회에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 여기 있습니다. 마가복음 16장 14절부터입니다. 그 뒤 열한 제자가 음식 앞에 앉아 있을 때에 그분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것과 마음이 강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그분께서 일어나신 뒤에 그분을 본 자들의 말을 그들이 믿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더라.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온 세상으로 가서 모든 창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 믿고 침례를 받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나... 믿지 않는 자는 정죄를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내쫓고 새 언어들로 말하며 만일 그들이... 뱀들을 집어 올리거나 어떤 치명적인 것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 사람들이 나으리라. 그러므로... 주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신 뒤에 들려서 하늘로 들어가시고 하나님 오른쪽에 앉으시니라. 그들이 나가 모든 곳에서 복음을 선포하매 주께서 그들과 함께 일하시며... 따르는 표적들로 말씀을 확증해 주시니라. 아멘.
이것을 위대한 사명이라고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처음 제자들을 보내셨을 때에도, 마태복음 10장을 보면, 가서 병든 자들을 고쳐 주고 나병 환자들을 정결하게 하며 죽은 자들을 일으키고 마귀들을 내쫓되,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신 사명은 온 세상으로 가서 처음에 했던 그대로 계속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병든 자들을 고쳐 주고, 병든 자들에게 안수하며, 마귀들을 내쫓으라는 것입니다. 형제님들, 여러분 같은 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이 큰 싸움에 [녹음 중단] 기독교라 불리는 세상에서, 그 사명이 주어졌던 그때와 똑같이 지금도 꼭 필요하다고 믿는 한 사람으로 여러분 곁에 설 수 있다는 것은 제게 특권입니다. 우리가 일하는 이 넓은 현장에서는 각 교파가 성경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지고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중에는... 여기서 그리스도께서 주신 사명은 온 세상으로 가서 복음을 선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복음은 말씀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권능과 나타나심을 통해서도 이루어집니다. 이런 표적들이 따르려면, 그렇게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말씀이 살아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에 생명을 주어 이런 표적들을 일으키시는 분은 성령이셔야 합니다. 형제님들은 그것을 믿으십니다. 제가 침례교회를 떠나 오순절 형제님들과 함께하게 된 것은 그분들에게 무언가가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분들은 이것을 믿습니다. 그런데 와 보니 교파가 여럿이었습니다. 처음... 처음 만난 무리는 많은 사람이 이렇게 부르는 분들이었습니다. 오늘 아침 여기 계신 형제님들 가운데서도 아마 같은 교파인 분들이 많이 계실 겁니다. 일신교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분들을 오순절이라고 부르는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좋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무리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분들은 삼위일체파라고 불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또 다른 무리를 알게 되었는데, ‘예수 유일파’라고 했습니다. 그 뒤에는 하나님의 성회, 하나님의 교회, 예언의 교회 등 여러 갈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형제님들, 제가 설명드리고 싶은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저는 어떤 방법으로든 감히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하려 하지 않습니다. 형제님들과 여러분의 선배들이 사십 년 전, 제가 어머니 품에 안긴 아기였을 때, 초창기에 이 복을 가지고 나아가셨다고 믿습니다. 여러분은 그저 감정을 조금 고조시키고 생각을 들뜨게 해서 나아간 것이 아닙니다. 성령 침례를 받고 나아가셨습니다. 그리고 무언가를 세우셨습니다. 기초를 놓으셨습니다. 제가 다른 기초 위에 세우려는 사람이 되는 일이 결코 없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그 기초를 놓으셨다면 우리는 그 기초 위에 세웁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고 있다고 제가 믿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래서 오늘날 저는 여러 무리 중 어느 하나에 소속되거나 어느 한쪽 편을 들지 않습니다. 저는 어떤 무리의 편을 들려고 여기 온 것이 아닙니다. 제가 지키고 있는 한 원칙 때문에 여기 왔습니다. 그 원칙은 하나님의 왕국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여기 이 원칙 위에 세우고 있고, 하나님의 성회는 저쪽에, 일신교는 이쪽에, 또 여러 무리가 있습니다. 초교파를 둘러싸고 무리들이 그렇게 자리 잡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모두가—마땅히 그래야 하고, 저는 그렇다고 믿습니다—근본적으로 그리스도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느 무리의 편도 들지 않습니다. 가령 “나는 하나님의 교회 교인이 되겠습니다”라고 한다면, 그것도 좋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성회에 속하는 것만큼이나 하나님의 교회에 속하는 것도 좋습니다. 일신교든 다른 무엇이든, 거기에 속하는 것만큼이나 하나님의 성회에 속하는 것도 좋습니다. 제게는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하나의 큰 창고, 하나의 위대한 근본이 있습니다.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그 때문에 저는 이런 자세로 형제님들과 함께 서 왔습니다. 여러분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짐을 함께 지며, 성경에 근거하여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쪽에 섰다는 것을 알고 마음에 기쁨을 품은 채 여러분과 함께 비방을 견디려는 것입니다. 제가 어느 도시에 갈 때 초교파적으로 가기를 좋아하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모든 사람, 한 사람 한 사람 모두를 환영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기를 좋아합니다. 어떤 사람이 일을 해야 한다면, 교단에 속해 있든 독립 교회에 있든, 그리스도 위에 세우고 있는 한 저는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겠습니다. 그가 감리교인이든 침례교인이든 장로교인이든 루터교인이든, 무엇이든 간에 저는 그와 함께하고 싶습니다.
형제님들이 서로 다른 교파에 속해 계신 것을 아니까, 이 말씀을 조금 드려도 되겠습니까? 제 생각에는... 제가 사람들 앞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은 없습니다만, 이 지역에서, 그리고 지금은 전국에서도 이렇게 되어 가고 있습니다. 마귀가 우리를 계속 갈라놓을 수만 있다면... 마귀는 우리끼리 서로 총을 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쏘고 싶은 곳마다 훤히 드러난 표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쏘고 있는데, 총을 쏜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아시겠지요? 그러니 마귀는 뒤로 물러앉아 느긋하게 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한번이라도... 제가 이 말씀을 좀... 하나님을 통해 제가 여러분에게 호의를 얻었다면, 형제님들, 이 말은 믿어 주십시오. 여러분이 다른 사람에게 복이 되고 또 복을 받기 원하신다면, 누군가 여러분에게 잘못을 했을 때, 그가 분명히 정당하게... 아니, 제 말은 그가 여러분에게 잘못을 했고, 여러분도 그가 잘못한 것을 알고 있을 때 말입니다. 그가 여러분에게 악을 행한 것입니다. 그것을 입에 올리지 마십시오. 기도로 그를 하나님 앞으로 데려가십시오. 그저 이기적인 마음으로 “뭐, 이렇게 해야 하니까” 하는 식으로 하지 마십시오.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임재 안에 서십시오. 기도는 마땅히 그렇게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드려야 합니다. 이렇게 말씀드리십시오. “아버지, 여기 제 형제가 있습니다. 그는 정당하게... 그가 제게 악을 행했으니 벌을 받아 마땅합니다. 그런데 그가 왜 그랬는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 다음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말씀하시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아마 그 사람이 무엇을 겪었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어딘가에서 마귀가 그를 비틀어 놓아 그런 일을 하게 한 것입니다. 그가 분명히 잘못했더라도 말입니다. 하나님의 왕좌 앞을 떠나기도 전에 여러분은 그 사람이 안타깝게 느껴질 것입니다. 그 형제를 불쌍히 여기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이 땅으로 돌아오면 그 형제에게 가서 악수하게 될 것입니다. 그가 겪은 일을 알기 때문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한 인간과 함께 하나님의 임재 안에 서 있으면서 누군가를 정죄할 수는 없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그가 지독한 죄인이라 해도 말입니다. 그렇다면 잘못을 저지른 형제는 어떻겠습니까? 제가 그에게 잘못이 있다고 말한다 해도 말입니다. 때로는 잘못이 없는데도 부당한 비난을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가 잘못했다 해도, 그를 하나님의 왕좌 앞으로 데려가서 우리 형제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거기 서십시오. 그도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며, 그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어쩌면 그의 앞날이 달려 있을 수도 있음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왕좌 앞에서 돌아올 때면, 우리 모두에게 잘못이 있고 서로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을 것입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제 이 위대한 원칙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위대한 교회가 “자, 우리 모두 이 조직이나 저 조직에 속합시다”라고 할 필요 없이, 마음으로 연합하여 한뜻이 된다면, 이 세상에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부흥이 일어날 것입니다. 오순절의 체험을 가진 사람들이 그저 마음으로 하나가 된다면 말입니다. 교파들은 저마다 원하는 대로 운영하게 두십시오. 이런 사소한 마찰 따위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그것은 마귀가 이 위대한 교회를 늘 혼란 속에 빠뜨리려는 것에 불과합니다. 결국 사도행전 10장 35절에는 하나님께서 사람이나 민족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을 섬기며 의를 행하는 사람들을 귀히 여기신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사실임을 압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귀히 여기십니다.
사역에 관해, 그것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 드리기 위해 오늘 아침 이 말씀을 드리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여러분, 형제님들은 어디보다도 힘든 현장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저는 아프리카에도, 인도에도 가 보았고, 두루... 사실상 세계 전역에 가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곳 미국처럼 싸워 나가기가 힘든 현장은 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평생 보아 온 어느 곳보다도 이곳에 선교사들이 더 절실히 필요합니다. 교육받은 이교도는 교육받지 못한 이교도보다 상대하기가 더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교도란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사람들을 상대하고 계십니다. 여기서 싸워 나가셔야 합니다... 선교사에게는 말라리아나 아메바 같은 것들을 비롯해 맞서야 할 일들이 많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상대해야 할 마귀의 영들이 없습니다. 제 말은 교양을 중시하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간 그런 마귀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 상대하기 힘든 것이 무엇인지 말하자면 바로 그것입니다.
최근에 저는 목사님들 몇 분과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형제님들, 존중하는 마음으로 말씀드립니다. 저는 그분들보다는 차라리 주술사들 몇 사람과 아침 식사를 하는 편이 나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니 끔찍하게 들리겠습니다만 말입니다. 그 목사님들보다는 주술사들에게서 더 나은 환대를 받고, 많은 경우 마음도 더 잘 통했을 것입니다. 참으로 끔찍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데서 우리를 건져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너무 지성에 치우쳐 있습니다. 모든 것이 영에게서 멀어졌습니다. 말씀, 말씀, 말씀만 말합니다. 하나님... 물론 저는 말씀을 믿습니다. 하지만 영이 말씀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어딘가에서 무언가가 뒤섞인 것입니다.
가인을 보십시오. 가인은 아벨만큼이나 종교적이었고, 말씀을 따르는 것도 아벨 못지않았습니다. 차이를 만든 것은 계시였습니다. 두 사람 다 경배했고, 두 사람 다 희생물을 가져왔고, 두 사람 다 제단을 쌓았고, 두 사람 다 교회에 속해 있었으며, 두 사람 다 신실했고, 두 사람 다 경배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신실함과 근본주의를 존중하셔야 할 텐데, 왜 가인은 받아 주지 않으셨습니까? 하지만 아벨은 의로운 사람이었으며 계시를 통해서—그 시절에는 성경 기록이 없었습니다—하나님께서 그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우리를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한 것은 과일, 곧 사과와 오렌지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피, 곧 생명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여행길에서 모압 자손과 맞닥뜨렸습니다. 모압, 곧 모압 땅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들도 이스라엘이 믿는 바로 그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단단히 조직되어 하나의 큰 민족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나라가 없이 장막에 살았습니다. 무례하게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한 가지 요점을 말씀드리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초교파에 더 가까웠습니다. 아직 자기 땅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형제의 땅을 통과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답을 받았습니까? 거절당했습니다. 모압 사람들은 발람을 불러내어 제단 일곱 개를 쌓게 했습니다. 발람이 그 위에 정결한 희생물 일곱 마리, 곧 수소들을 올려놓은 것을 주목하십시오. 또 숫양 일곱 마리도 올려놓았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을 말해 주었습니다. 아래쪽 이스라엘 진영에도 똑같은 희생물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근본적인 교리로 보자면 모압도 이스라엘 못지않게 철저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보지 못한 것이 오늘날 세상도 보지 못하는 바로 그것입니다. 거기 있던 선지자도 그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발람은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틀림없이 그런 백성을 정죄하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매 맞은 반석, 놋뱀, 불기둥, 곧 그 표적들과 이적들을 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사람들과 함께 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신 곳에는 표적들과 이적들이 일어났습니다. 언제나 그랬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오순절 교회를 바라보는 태도가 바로 그렇습니다. “아, 저 사람들은 뒤죽박죽 모여 있다. 이렇다, 저렇다, 또 어떻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곳이 어디 있습니까? 그렇지 않은 교회가 하나라도 있다면 말해 보십시오. 우리 침례교회를 보십시오. 그 교파들과 갈라져 나온 분파들을 보십시오. 자유 침례교, 하드셸 침례교, 원시 침례교, 서로 다른 분파가 서른몇 개나 됩니다. 오순절 못지않습니다. 그들도 똑같이 서로 다투고 싸웁니다. 감리교회를 보십시오. 심지어 가톨릭교회도 그렇습니다. 어느 곳이든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보지 못하는 것은... 그들은 신문 때문에 형제님들을 공격할 때가 많습니다. 여러분이 실수하면, 우리 형제 중 한 사람이 실수하여 부도덕한 일을 하면, 보십시오. 전국의 신문이 할 수 있는 데까지 그것을 퍼뜨릴 것입니다. 그것이 마귀입니다. 하지만 저쪽의 다른 목사 중 한 사람이 그런 일을 하면 잠잠히 덮어 버립니다. 그러나 하늘의 기록에는 똑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형제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이유는 진영 안에 왕의 외치는 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들에게 표적들과 이적들이 따르고 있습니다. 그들도 실수하고, 온갖 사상과 허튼 일들에 빠집니다. 형제님들도 아시지요. 우리도 그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가운데는 흉내 내는 일 같은 옳지 못한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참된 것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그분도 바리새인들 못지않게 근본적인 교리에 충실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그것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근본적인 교리에 충실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그분의 사역에는 표적들과 이적들이 따랐습니다. 바리새인들에게도 그분이 가지신 것과 똑같은 말씀이 있었습니다. 같은 말씀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영적 계시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셨을 때 그 사실을 증언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나 곧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 하느냐?” 어떤 사람은 엘리사라고 했고, 어떤 사람은 선지자라고 했으며, 또 여러 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분께서는 “하지만 너희는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주께서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가톨릭교회에서는 베드로가 그 반석이며, 이 반석 위에 교회가 세워졌다고 합니다. 개신교회에서는 반석이신 예수님 위에 세워졌다고 합니다. 일부러 다르게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 위에 있기만 하다면, 그분들이 원하는 대로 믿게 두십시오. 하지만 저는 두 견해와 다르게 생각합니다. 교회는 베드로 위에 세워진 것도 아니고, 그리스도 위에 세워진 것도 아니라, 그분께서 그리스도이시라는 영적 계시 위에 세워졌다고 믿습니다. 아시겠지요?
“살과 피가 그것을 네게 계시하지 아니하였고”—어떤 신학교나 학교, 신학이나 지식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살과 피가 그것을 네게 계시하지 아니하였고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하셨느니라. 이 반석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영적 계시입니다. 말씀으로도, 교파로도, 신조로도, 그런 것들로도 아니라,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시라는 영적 계시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생각으로 믿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으로 믿을 때 영생을 갖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5장 24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영원한’이라는 단어를 살펴보고 무슨 뜻인지 알아보십시오. 그리스어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조이(Zoe)’, 곧 ‘하나님 자신의 생명’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여러분 안에는 죽지 않는 생명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분께서 하나님의 독생자이심을 믿고, 그분을 여러분 자신의 구주로 영접했기 때문입니다. 지성으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출생으로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영적 계시로 그것을 여러분에게 내려 주시고 알려 주신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 의해 옵니다. 믿음은 들을 때, 듣는 것입니다. 하지만 믿음 자체가 그 실물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제가 여기서 굶어 죽어 가면서 여러분에게 빵 한 덩이를 달라고 한다고 합시다. 그런데 여러분이 제게 이십오 센트를 주십니다. 그것은 빵 한 덩이를 살 수 있는 돈입니다. 그러면 저는 빵 한 덩이를 받았을 때와 똑같이 그 이십오 센트로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아직 빵 한 덩이가 아닙니다. 빵 한 덩이가 아닙니다. 그래도 저는 그것으로 행복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 이십오 센트를 간직하고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제 목숨을 건지겠습니다.” 그렇게 알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빵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여러분은 믿음으로 구원받지만, 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입니다. 제 말뜻을 아시겠습니까? 제가 말씀드리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세상은 그것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세상 사람들이 우리가 가진 오순절 신앙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이유는, 우리 서로를 대하는 태도 때문입니다. 형제님들, 사실입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냉담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이 사람이 저 사람을 비난하고, 저 사람이 이 사람을 비난하며, 이쪽이 저쪽을, 또 이 교파를 비난하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겁을 냅니다. 저는 해결책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애써 보았습니다. 한쪽은 원하지만... 이 무리가 집회를 후원하려고 하면, 나머지는 관여하려 하지 않습니다. 제가 얼마나 난처한 처지에 놓이는지 짐작하시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말합니다. “이쪽에 맡기면 다른 쪽은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면 함께 모이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어느 쪽도 없이 혼자 가자. 그래도 가자.” 그것은 잘못이었습니다. 잘못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도에서 똑같은 일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거기서는 한 번 앞으로 나오라고 초청했을 때 회심한 사람이 아마 아프리카에서 회심한 사람의 두 배는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일을 뒷받침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들은 불교 사원 같은 곳으로 돌아갔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조직들, 선교부 같은 것이 있어서 회심한 사람들을 데려갈 수 있는 곳들, 전국 각지의 이런 교회들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니 제가 독립적인 입장을 지키려 할 때 얼마나 난처해지는지 아시겠습니까? 오럴 로버츠가 한번 제게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분은 제가 알기로 오순절 하나님의 교회인지, 오순절 성결 하나님의 교회인지, 그중 한 교회에 속해 있습니다. 어쨌든 그분에게는 소속 교회가 있습니다. 반면 저는 교회에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교회와 함께 서 있습니다. 저는 모든 교파에 걸쳐 있는 참 교회, 그리스도의 몸과 함께하면서 우리를 하나로 모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형제님들이 이해하실 수 있도록 그것을 설명드리고 싶었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곳에 가서 회심자들을 얻게 된다고 합시다. 그저 가서 집회를 열고 “제가 여기 있습니다”라고 하십시오. 사람들은 올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체가 있는 곳, 거기에 독수리들이 함께 모이리라.” 하지만 그들이 회심한 다음에는 누가 그들을 맡겠습니까? 그들을 받아 줄 사람이 거기에 있습니까? 여러분이 복음으로 이미 잡은 사람들을 보존할... 지켜 줄 사람은 누가 있습니까? 그 물고기들을 누가 거두겠습니까? 물가에 누워 있으면 죽고 말 것입니다. 그 일을 해 줄 누군가가 거기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그저... 형제님들, 저는 여러분 없이는 일할 수 없습니다.
아, 모두가 마음으로 하나가 될 수만 있다면 좋겠습니다. 같은 근본을 위해 작은 차이들을 허물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오늘 이 도시에 빌리 그레이엄이 온다면, 제가 여기 머문 만큼의 시간 안에 아마 일만 오천 명이나 이만 명쯤으로 여기 이 작은 집회장을 가득 채우며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은 함께 모이고 한뜻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문자로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영으로 얼마나 더 잘해야 하겠습니까? 한 형제가, 오럴 로버츠나 다른 형제 중 누군가가 이 도시에 온다면, 우리가 그 일을 뒷받침합시다. 형제들 곁을 지키는 것은 우리의 의무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면 어떤 결과가 있습니까?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세상 사람들에게 어떤 결과를 줍니까? 보십시오... “저들을 보시오. 여기 이 사람을 데려다 놓았군.”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부흥의 영향은 오랫동안 남을 수 있습니다. 만일...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교회에 유익이 될 것입니다. 오늘 밤 회심자가 백 명 생겨서 형제님들의 교회에 한 사람씩 간다면, 어느 교회든 말입니다. 그것은 형제님의 교회, 또 형제님의 교회, 또 형제님의 교회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모든 곳을 통해 하나님의 왕국에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제가 세우려고 애쓰는 대상은 여기, 바로 그것입니다. 여기 아래에서 이 방식으로 침례를 받든 저 방식으로 받든 제게는 상관없습니다. 도대체 그것이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특이한 점들이 있는데도 성령을 주셨고, 제게도 특이한 점들이 있는데도 성령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 순종한 사람들에게 성령을 주십니다. 그렇다면 누가 그분께 순종했습니까? 아시겠지요?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소한 차이를 따지고 나눕니다. 그것이 바로 마귀가 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형제님들, 저는 정말 혹독한 박해가 우리를 한데 몰아넣을 때가 오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가 될 것입니다. 교회가 함께 모일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씀드리고 보니, 저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시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솔로몬의 성전을 지을 때, 그 돌들은 세계 곳곳에서 깎아 냈습니다. 어떤 돌은 이렇게 잘랐고, 다른 돌은 저렇게 잘랐습니다. 하지만 한데 모았을 때는 망치 소리 하나, 톱질 소리 하나 없이 돌마다 제자리에 꼭 맞아 들어갔습니다. 그것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였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예언 교회와 또 다른 큰 교회, 리 대학인지 이곳의 어느 곳인지, 그곳을 통해서, 그리고 하나님의 성회 형제님들을 통해서, 독립 교회 형제님들을 통해서, 일신교 형제님들을 통해서, 여러분 모두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돌을 깎아 내고 계신다고 믿습니다. 언젠가 그 으뜸 돌, 버림받은 그 돌이... 교회가 어느 정도 높이 올라갔을 때, 그들은 이상한 돌 하나가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아무리 찾아도 맞는 자리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이 으뜸 모퉁잇돌이었습니다. 형제님들, 저는 머지않아 우리가 깨닫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 으뜸 모퉁잇돌은 우리 마음속에 계신 하나님의 사랑, 곧 그리스도이며, 그분께서 우리 모두를 하나로 묶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위대한 교회의 꼭대기가 완성되고, 하나님께서 그 교회를 영광으로 데려가실 것입니다.
집회에서... 우리 주 하나님, 양 떼의 위대한 목자께서 얼마나 기적적인 방법으로 움직이시는지 여러분이 보실 수 있도록,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조금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형제님들이 이해하실 수 있도록 오늘 아침 이 말씀을 드렸습니다. 누군가 “브래넘 형제님은 하나님의 성회 교인입니까? 일신교 교인입니까?”라고 묻는다면, 그렇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성회 교인이고, 일신교 교인이고, 하나님의 교회 교인이고, 순례자 성결교인이고, 나사렛교인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속한 그리스도께 속해 있습니다. 아시겠지요? 그러니 형제님들 한 분 한 분에게 저도 속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함께 형제들입니다. 우리가 살고자 하는 방식, 우리가 행동하고자 하는 방식이 바로 그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도 자기 자녀들 가운데 서로 의견이 맞는 아이 둘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한 가족입니다. 물론 그렇습니다. 생김새가 다를 수도 있고, 입맛이 다를 수도 있고, 모든 면에서 다를 수도 있지만, 그래도 한 가족입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의 가족입니다. 저는 “지미, 나는 네 편이야. 존, 나는 네 반대편이야”라고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지미, 존, 우리는 같은 가족이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우리는 모두 이 농장에서 가족의 생계를 위해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제 입장입니다. 언제든 누가 물으면 형제님들이 그렇게 알려 주십시오. 저는 참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며 몹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복되신 우리 주님께서 오시리라는 소망이 있습니다. 주님의 나팔 소리가 울리고 시간이 더는 없으며 밝고 아름답고 영원한 아침이 밝아올 때, 그분께서 택하신 사람들이... 하나님의 교회도, 하나님의 성회도, 모두 말입니다. 택하신 사람들이 저 하늘 너머 그들의 본향에 모일 때, 저 위에서 이름을 부를 때에, 나 거기 있으리.
저는 형제님들과 함께 거기 있을 것입니다. 한마음 한뜻으로, 다시는 헤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날을 위해 수고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남았습니까? [누군가 “원하시는 만큼 쓰십시오”라고 말한다.] 십 분만 더 주십시오. 간증 하나만 하겠습니다. 괜찮겠습니까, 형제님? 여러분 모두 많이 바쁘십니까? 어디선가 어떤 일이 일어났던 작은 체험 하나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집회 중에는 이런 이야기를 별로 하고 싶지 않습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로 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형제님들은 사리 분별을 하는 분들이시니 이해하실 것입니다.
얼마 전 인도에서 있었던 집회 이야기입니다. 환상에는 틀림이 없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최근에 인도와 아프리카에 가는 환상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아프리카로 가고, 그다음에 인도로 가라.” 그런데 일이 좀 뒤섞이고 하면서 집회 책임자가 제게 말했습니다... 책임자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습니다. 저는 베일 형제님을 책임자라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한 분의 책임자, 곧 성령께서 계십니다. 베일 형제님은 제 동역자이고 제 형제입니다. 다만 집회를 준비하고 저를 돕고 계실 뿐입니다. 제가 여러분의 집회를 책임지는 사람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그분도 제 집회의 책임자가 아닙니다. 또... 여기 계신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모두 한 대가족이고 하나의 큰 몸입니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 위에 있지 않습니다. 모두가 같습니다. 우리는 함께 일하는 하나님의 한 공동체입니다.
그날 아침 저는 환상을 보자마자 그것을 적어 두었습니다. 그런데 집회 책임자, 지금은 편의상 그렇게 부르겠습니다만, 그분이 인도로 갈 준비를 해 놓았습니다. 그분은 아프리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시카고에서 제게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아프리카는 그냥 건너뛰고 인도로 갑시다.” 제가 말했습니다. “형제님께 맡기겠습니다. 주님께서 제가 일하기 원하시는 곳이라면 어디든 좋습니다.” 형제님들, 오늘 밤 여기서도 제 마음은 그렇습니다. 우리가... 저는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 밤마다 오천 명을 돌려보내는 것보다는, 이곳 육천 명이 들어가는 강당에 집회 참석자가 다섯 명뿐이더라도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작든 크든, 무엇이든 말입니다.
저는 얼마 전 스무 명이 들어가는 교회에서 부흥회를 열었습니다. 부흥회를 말입니다. 제게는 텔레비전 방송도 없고, 후원해야 할 방송 프로그램 같은 것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경비를 대 주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러니 저는 그런 것들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이 있으면 감당해야 할 책임에 매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오럴 로버츠 형제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저와 아주 가까운 친구이고, 참으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오럴 로버츠가 스무 명이 들어가는 교회에 와서 이삼 일 동안 집회를 열 수 있겠습니까? 그분의 사역을 유지하려면 하루에 칠천 달러나 팔천 달러가 듭니다. 물론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만큼 큰 책임에 매여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분이 하는 일을 할 만한 지적 능력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그것을 아시기에 오럴에게 그 일을 맡기십니다. 저에게는 이렇게 지내게 하셔서 제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의 한계를 깨닫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그러니 저는 돈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바로 그것입니다. 그분께서 보내시는 곳이면 어디든 갈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 제가 아프리카에 가서 십만 명에게 설교하기를 원하신다면, 돈을 마련해 주실 것입니다. 어차피 모든 돈이 그분의 것이니 제가 달라고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제게 주십니다. 팀북투든 그래블 스위치든 어디에 있는 연로한 성도에게 가서 열 사람에게 설교하라고 하신다면, 아멘, 가서 그분께서 끝났다고 말씀하실 때까지 머물겠습니다. 저는 그렇게... 그렇게 살려고 합니다. 저에게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뒷받침해야 할 방송 프로그램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제가 지금 이렇게 말하는 것은... 이것이 제 몫이라는 뜻입니다. 오럴 로버츠 형제님에게는 하나님께서 다른 일을 맡기셨습니다. A. A. 앨런 형제님과 그 밖의 많은 형제님들처럼 큰 라디오 방송 같은 사역을 하는 분들에게는 돈이 필요합니다. 저도 그분들을 후원합니다. 그분이 제 형제라는 것을 알기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합니다. 저는 그분의 자리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솔직히 그 자리를 대신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조금은 다행스럽습니다. 그런 일들을 꾸려 나갈 지적 능력이 제게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 모습대로 지냅니다. 업쇼 하원의원이 늘 말했듯이, “그렇게 타고나지 않았다면 될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을 빨리 깨달을수록 우리에게 좋습니다. 그저 자기 모습대로 사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만드신 그대로의 여러분을 원하십니다. 그것을 기억하시고, 그저... 문 앞의 발판이라면 발판이 되십시오. 제가 발판이 되어야 한다면, 하나님께서 가지셨던 것 중 가장 좋은 발판이 되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무엇이든, 그분을 위해 제가 맡은 직무를 최선을 다해 감당하게 해 주십시오.
그런데 그분은 아프리카에는 가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좋습니다. 가지 맙시다”라고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돌아오는 길에 제 방으로 갔습니다. 그랬더니 문간에 빛이 떠 있었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말한 대로 아프리카로 가라.” 몇 분 뒤 그 형제에게 다시 연락해서 말했습니다. “우리는 아프리카로 갑니다.” 일 년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만, 다른 길이 생겨 저는 다시 인도로 가는 길에 있었습니다. 포르투갈 리스본에 이르렀을 때, 거기서 집회를 하기로 되어 있었고, 이어 건너가 로마의 바티칸 시국 바로 곁에서 치유 집회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포르투갈에 있는 동안 병이 났습니다. 왜 그런지 몰랐습니다. 저는 총독과 함께 밖에 나가 생선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생선을 올리브유로 요리하는데, 아, 저는 정말 속이 안 좋았습니다. 예의를 지켜 먹으려고 애썼지만, 입 주위가 하얗게 질릴 정도였습니다. 올리브유로 요리한 그 생선 때문에 속이 너무 안 좋았습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좀 편찮아 보이십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호텔 방으로 내려갔더니 얼마 뒤 의사가 올라왔습니다. 정말이지, 흉을 보려는 것은 아닙니다만, 의사가 저기 저 물건 위에 있는 상자만 한 알약을 가지고 와서는 저더러 삼키라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는 제가 타는 말에게도 그런 건 안 주겠습니다. 이건 너무... 아니, 목으로 넘길 수가 없겠는데요.” 평생 그렇게 큰 알약은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쪼개서 먹어도 되겠습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안 됩니다. 삼키세요.” 제가 말했습니다. “그럼 이 속이 좀 가라앉을 때까지 잠시만 기다리겠습니다.” 저는 의사가 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것을 버렸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좋은 분이었습니다. 가톨릭 신자였는데, 우리는 주 예수님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주님에 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날 밤 제가 그렇게 심하게 앓는 동안 빌리가 제 곁을 지켰고, 다른 사람들은 저를 거기 두고 떠났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빌리, 아침까지 버티지 못할 것 같구나.” 너무 아파서 더는 숨도 쉴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아파서 숨이 거의 나오지 않아 억지로 숨을 쉬어야 했습니다. 밤새 그렇게 보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저는 목욕을 하려고 욕조로... 아니, 그 큰 욕조에 들어가려고 욕실로 향했습니다. 수건이 여기 이 식탁들보다 두 배나 컸습니다. 그렇게 목욕을 하려는데, 거기에 그 빛이 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먼저 아프리카로 가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저는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주님, 그저 어디 산속에 작은 오두막이나 얻어, 늘 원했던 대로 덫을 놓고 사냥하며 살게 해 주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이 될 수 없습니다. 주님을 섬길 지적 능력조차 없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그 말씀을 까맣게 잊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적어 두었고,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지갑에 넣어 둔 줄 알았는데 없군요. 하지만 종이에 적어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께서 계속 인도로 가라고 하셨기에 저는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고 돌아온 뒤로 지금 사 년 동안 제가 주님께 불순종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적어 놓은 그 환상을 보니, 수백 번이나 읽었던 것이지만 말입니다. 그 환상에는 제가 먼저 인도로 갔다가, 그다음 아프리카로 돌아갈 것이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분께서는 먼저 아프리카로 가고 그다음 인도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그분을 실망시킬 것을 아셨지만, 그분의 말씀, 그분께서 하시는 말씀은 틀릴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환상에 실제로 적힌 내용은 제가 먼저 아프리카로... 아니, 먼저 인도로 갔다가 아프리카로 돌아갈 것이라는 말입니다. 지금 제가 가려고 하는 곳이 거기입니다. 지금부터 칠월까지 잡혀 있는 스무 번에서 서른 번 정도의 집회를 마치는 대로 우리는 아프리카로 갈 것입니다. 저기 계신 형제님, 사랑하는 데이비드 두플레시 형제님이 그곳에 가서 형제들이 함께 모일 수 있도록 이야기를 나누고 오셨습니다.
인도에서 있었던 그 집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그곳에 갔을 때는 연합이 없었습니다. 형제들이 모두 갈라져 있었습니다. 한 교회가 저를 후원했는데, 나머지 교회들은 그 교회를 좋아하지 않아서 함께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런 것입니다. 실제로 인도에는 사억 칠천만 명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가장 약한 종교가 기독교입니다. 기독교가 말입니다. 가톨릭까지 모두 합쳐도 우리는 삼 위나 사 위 정도입니다. 이슬람교는 우리의 두 배나 세 배 규모입니다. 기독교 전체를 다 포함해서 그렇다는 말입니다.
제가 그곳에 갔을 때, 이 한 교회의 원칙은 이랬습니다. “인도를 인도인에게 넘겨주시오. 우리에게는 선교사도 필요 없고, 미국인도 필요 없소.” 제가 봄베이에 도착했을 때 감리교 감독과 여러 지도자가 서 있었습니다. 그분들이 말했습니다. “브래넘 선생, 인도에 오셨지만 선교사로 오지는 마시오. 우리가 당신네 미국인들이 이제껏 알았던 것보다 성경을 더 많이 알고 있소.” 비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이 책은 동양의 책입니다. 서양의 책이 아니라 동양의 책입니다. 동양의 관점으로 보면 새로운 책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그분들이 말했습니다. “당신네가 나라를 이루기 이천 년 전부터 우리에게는 성경이 있었소.” 그렇습니다. 도마가 그곳에 갔습니다. 성 도마 교회가 있는데, 우리가 그곳에 있을 때 제가 가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나라를 이루기 이천 년 전부터 그들에게는 성경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서양의 생각을 가지고 동양의 생각에 맞추려 합니다. 서로 정반대인데 말입니다. 성경의 모든 비유와 여러 가지 것들... 여러분이 그곳에 가서 그들의 생활방식을 알게 된다면, 성경이 새로운 책으로 펼쳐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동양의 생활방식 속에서 쓰인 동양의 책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서양의 생활방식으로 사는 서양 사람들입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이번 주에 설교를 시작할 때 ‘동양과 서양이 만날 때’를 설교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함께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 다른 교회가 우리 형제들과 의견을 같이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교회를 좋아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보니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미국은 미국인에게 넘겨줍시다.” 그 인도인들은 말했습니다. “우리 재산은 우리가 소유하고 싶습니다. 미국의 감리교, 침례교, 오순절 사람들이 우리 재산을 소유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바로 여기서 우리가 직접 소유하고 싶습니다. 우리에게 갖게 해 주십시오. 형제님들은 우리를 방문하러 오십시오.” 듣기에는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런 식으로 거기 있는 것은 옳지 않았습니다. 그 선교사들은 자신들이 지켜 온 것을 위해 그곳에서 수년 동안 피땀을 흘렸습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그곳에서 아메바병과 황열병과 흑수열, 또 온갖 병으로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 한 사람이 그렇게 세워 놓은 일에 제가 등을 돌려야 하겠습니까? 저는 그의 형제입니다.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그 재산은 도대체 누구의 것입니까? 하나님의 것입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곳에서 그렇게 했고, 그들은 협력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날 밤... 아니, 그날 낮에 시장이 저를 자이나교 사원으로 데려갔습니다. 자인, 잔, 기억이 나지 않는데, 자인입니다. 그들은 특이한 종파입니다. 가톨릭과 더 비슷한 방식입니다. 그들은 방석에 앉아 있는 자기들의 교황에게 저를 데려갔습니다. 그들이 어떤 고행을 하는지 보여 드리겠습니다. 남자들과 여자들이 앉아서 작은 걸레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개미 한 마리도 죽이지 않습니다. 일도 할 수 없고, 필요한 것은 모두 구걸해야 합니다. 그 인도인들 중 사억 명은 거의... 제 생각에는 일하는 사람이 칠천만 명쯤 되고, 나머지 사억 명은 거지입니다. 그들은 개미를 밟지 않으려고 걸어가면서 바닥이나 땅을 걸레로 닦습니다. 환생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 개미가 자기네 사람 중 하나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죽이지 않습니다. 파리도 벼룩도 죽이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손가락을 직접 수술하다가 그 일로 죽었습니다. 수술에 쓴 칼을 소독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세균 하나라도 죽일까 봐 두려웠던 것입니다. 다시 돌아오는 길에 있는 자기 조상 중 하나일지도 모르니까요.
보십시오. 세상은 그런 무지 속에 살고 있는데, 참된 복음을 가진 우리는 서로에게 총을 겨누고 있습니다. 형제님들, 제 말뜻을 아시겠습니까? 내가 하나님의 교회 교인이 되어야 하는지, 하나님의 성회 교인이 되어야 하는지를 두고 다투고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싶습니다. 그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종이 되고 싶습니다. 보십시오. 그러고 나서... 그 사람들은 그런 모습으로 앉아 있었습니다. 그들은... 면도를 할 수 없었습니다. 면도하는 것이 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염을 뽑아야 했습니다. 머리카락도 뽑아야 했습니다. 아, 그들이 해야 하는 일들은 끔찍했습니다. 거기 그 교황이 그렇게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듣기로는 열일곱, 제 생각에는... 아니, 일곱이나 여덟 개의 서로 다른 무리가 거기 와 있었고, 제가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저마다 제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사람인지 말했습니다. 자이나교 사람들은 자기들이 창세기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있었다고 했습니다. 자기들이 기독교보다 훨씬 우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에게도 옳은 말이 많이 있습니다. 그 교황이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네는 스스로 종교적인 사람들이라고 합니까? 그러면서 그쪽의 과학자들을 모두 동원해 누군가를 도우려 하기는커녕, 서로를 산산조각 낼 원자폭탄을 만들고 있소.” 그 말이 옳았습니까, 틀렸습니까?
보십시오. 거짓말에는 모두 진실이 많이 섞여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진짜 거짓말이라면, 아주 제대로 된... 우리가 악의적인 큰 거짓말이라고 부르는 것이나, 사소하고 무해해 보이는 거짓말 말입니다. 그 작고 무해해 보이는 거짓말이 진짜 거짓말입니다. 커다란 악의적 거짓말은 알아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작은 거짓말에는... 마귀가 이브에게 한 거짓말 같은 것입니다. 그저 아주 조금만 빗나가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들이 듣고 있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아, 침례에 대한 당신의 원칙이 옳습니다.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습니다.” 하지만 마귀는 여러분이 저기 있는 형제를 사랑해야 한다는 사실은 알려 주지 않습니다. 그 형제가 옳든 그르든, 하나님의 왕국과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십시오.
이제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보십시오. 그 사람들이 거기 앉아 있었고, 그들 모두가 말을 마친 뒤... 아니, 몇 사람이 말을 마친 뒤에 저는 제가 무슨 말이라도 하지 않으면 그리스도를 배신하는 사람이 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일어나 말했습니다. “여러분.” 형제들이 아니었기에 형제들이라고 부를 수는 없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벼룩 한 마리도 죽이려 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여러분의 죄를 위한 피의 희생을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피가 해독제입니다. 우리를 에덴동산에서 나오게 한 것이 피였고, 혈구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우리를 죽음으로 이끈 것은 생명, 왜곡된 생명이었습니다. 우리를 다시 생명으로 돌아오게 하려면 그와 같은 혈구가 깨져야 합니다. 이것은 왜곡된 생명입니다. 형제님들, 제가 여러분에게 바라는 것은, 여러분이 아무리 잘 고치고 덧대려 해도, 또 아무리 이것을 잘해 보려 해도, 아무리 깨끗하게 살려고 애쓰고 아무리 의롭게 살려고 애써도, 결코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시는 것입니다. 이 생명은 처음부터 하나님께 정죄를 받았습니다. 고치고 덧댈 것이 아니라 죽고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출생이어야 합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아시겠습니까?”
더 나아지는 것, 교회에 가입하는 것, 악행을 그만두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일을 다 하고도 영생이 없을 수 있습니다. 교회에 가입하고, 교파에 소속되고, 한 치의 어긋남 없이 올바르게 살 수도 있습니다. 바리새인들도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그것을 행위에 두려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무언가, 우리가 세울 수 있는 무언가에 말입니다. 하나님께는 우리의 건물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는 우리의 혼이 필요합니다. 그때 그곳에서, 그날 밤 제가 말했습니다. “오늘 밤 참 하나님이신 분께서 말씀하시게 합시다.” 그리고 단상에서... 이제 여러분이... 제가 이렇게 하는 것은,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형제님들이 하나님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 보시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날 밤 집회가 시작될 때, 방석에 앉은 라자들도 있었고, 이슬람교도들과 불교도들도 있었습니다. 제가 설교할 단상에 도착하는 데만 두 시간 반이 넘게 걸렸습니다. 시장은 제가 사흘... 아니, 예정했던 닷새 동안 머문다면 봄베이에 외지에서 온 사람이 오십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추산했습니다. 그들은 소문을 듣고 찾아왔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목사들이 협력하기 싫다면 그냥 두자.” 하지만 그것은 제 실수였습니다. 협력을 얻을 때까지 돌아왔어야 했습니다. 그날 밤 집회에 갔을 때 기도 카드를 나누어 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도저히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군인들에게 한 사람씩 데려오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수천 명씩 수천 번, 수천의 수천에 달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누가 기도 줄의 첫 번째가 되겠습니까? 말조차 통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그들에게 계시하시고 알려 주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무엇이 있는지 보고, 이름을 한 글자씩 말해 주었습니다. 발음조차 할 수 없었으니까요. 장소도... 그때 성령을 통해 그들에게서 오는 생각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이것을 정신 감응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주님,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만 한다면.” 서너 사람이 지나갔습니다. 팔이 없는 나병 환자가 지나갔고, 저는 그를 품에 안고 사랑을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 자기를 아껴 준다는 것을 알자 그는 그저 울었습니다. 형제님들, 세상은 사랑에 굶주려 죽어 가고 있습니다. 형제님도 자기 형제를 품에 안아 보십시오. 상황이 조금이라도 달라지지 않는지 보십시오. 나병 환자에게 역사했던 그 사랑이, 여러분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형제에게도 역사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그를 품에 안자 그는 울었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두 번째쯤 되는 사람이 눈먼 사람이었습니다. 앞에도 다른 눈먼 사람이 지나갔습니다. 저는 그가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모든 것을 말해 주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주 하나님께서 형제님을 고치셨습니다. 오래전에 그분께서 형제님을 위해 죽으셨고, 형제님의 치유는 이미 확보되어 있습니다. 이제 그것을 믿기만 하십시오. 가십시오. 나으십시오.” 나병 환자 두세 사람이 지나갔습니다. 제가 본 것은 그들이 누구인지, 또 무엇이... 그것뿐이었습니다. 저는 그 이상 말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볼 수 있는 것만 말하고, 거기서 말을 멈춥니다. 그때 이 눈먼 사람이 왔습니다. 그가 누구인지 알려 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거지이고, 자녀가 둘 있고, 아내가 있습니다. 아내는 마른 분입니다.” 아내의 이름과, 성을 뺀 이름도 알려 주었습니다. 거기까지는 괜찮았습니다. 그런데 그를 보내려 할 때 환상이 펼쳐졌습니다. 그때는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앞의 것은 그 사람 자신이 하고 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단상에서 보는 것은 여러분이 하는 것이지, 제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자신의 믿음이 하는 것입니다.
환상이 펼쳐졌을 때 보니 그 사람이 제 앞에 서 있었습니다. 지금보다 머리가 조금 더 희어 보였고, 볼 수 있었습니다. 눈이 열려 있었으며 기뻐하면서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핵심입니다. 바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오 하나님, 바로 이것입니다.” 형제님들, 도저히... 우리는 영원을 향해 가는 사람들입니다. 언젠가는 그분의 임재 안에 함께 서게 될 것입니다. 그분을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여 뵙는다는 말입니다.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그 일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알 때는, 바로 그것입니다. 저는 단 한 번도 그것이 빗나가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얼마 전 워털루에서 그 목사들이 저를 몹시 반대한 뒤, 저는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주님, 제가 난처한 처지에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수백 명이 그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더할 수 없이 냉담했습니다. 제가 거기 서 있는데, 갑자기 무슨 소리가 들렸습니다. 비행기가 지붕으로 들어오는 줄 알았습니다. 돌아보니 베일 박사님은 오르간을 보고 있었습니다. 오르간을 치는 여자가 오르간의 공기 흐름을 거꾸로 돌린 줄 알았던 것입니다. 알고 보니 전자 오르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소리가 위에서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우렁찬 소리였습니다. 그 소리가 내려와 제 겉옷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건물 전체를 휩쓸었습니다. 사람들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저렇게 고개를 뒤로 젖힌 채 뒤로 넘어졌습니다. 바람처럼 세차게 몰아쳤지만 바람이 아니라 소리였습니다. 성령께서 건물 안을 지나가시며... 흔들렸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테이프에 녹음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위대하신 성령께서는 어떤 경우에도 잘못 행동하시지 않는다. 성경에 있는 것 외에는 무슨 일을 하시는 것도 본 적이 없다.” 집에 가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성령께서 그렇게 행동하셨다면 그것이 성경 어디에 있습니까?” 요한복음 12장을 보면 우리 주님께서 기도하시고 아버지께서 그분께 응답하여 말씀하실 때, 어떤 사람들이 “천둥이 쳤다”라고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형제님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살아 계십니다. 우리는 지금 그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저 멀리에 있는 무언가를 찾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지난 시대들에서 그랬던 것처럼, 여러분도 그것을 그냥 지나쳐 버리지 마십시오. 침례자 요한의 날에 그랬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사람들은 이 성령께서 어떤 분이신지 모릅니다. 성령은 그분을 중심으로 조직 하나를 만들기 위한 분이 아닙니다. 형제님들, 제가 그것을 비판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은 다툼거리도 아닙니다. 사랑하고 경배해야 할 분입니다. 여러분을 서로 갈라놓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서로 하나로 모으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도구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를 갈라놓을 때는 하나님의 왕국을 더 낫게 하는 데 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것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참된 성령께서 그것을 우리에게 가져다주실 것입니다. 형제님들, 반드시 그러실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향한 그리스도 자신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인도 집회로 돌아가 보십시오. 그 사람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가 푸른 그림자처럼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환상이 제게서 떠났을 때, 아, 그 느낌, 그 느낌은 어떠했겠습니까! 저는 그 일이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반드시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제가 나서서 상황을 주도할 수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제가 책임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런 표현을 용서해 주십시오. 제가 아니라 역사하시는 성령께서 책임자이셨다는 말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오셔서 조지 워싱턴이 대통령 묘지에서 일어날 것이라는 환상을 제게 보여 주신다면, 저는 온 세상을 초청하여 그 일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하겠습니다. 분명히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면 그 일은 일어납니다. 어떻게 빗나갈 수 있겠습니까? 저는 마흔여덟 살입니다. 두 살짜리 어린아이 때부터 환상을 보아 왔는데, 단 한 번도 빗나간 적이 없습니다. 제게는 그것이 하나님입니다.
제가 세상 사람들에게 그것을 보게 하지 못한다 한들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어느 시대에도 그들은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의로우셔서 그래도 그것을 보내십니다. 그리고 모든 일이 끝나면 사람들은 말합니다. “우리는 몰랐습니다. 정말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몰랐습니다.” 그렇습니다. 언제나 그랬습니다. 형제님들, 오늘도 그렇습니다. 들으십시오. 지금이 그 시각이고, 지금이 그날입니다. 여러분은 저 멀리에 있는 무언가를 찾고 있고, 마귀는 무언가를 저 멀리 언젠가로 미루어 놓으려 합니다. 그러다 여러분이 깨닫기도 전에 천년왕국에 들어가 있게 될 것입니다. 지금이 마지막 때입니다. 그 환상이 왔을 때 눈먼 사람은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여전히 거기 서 있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오늘 여러분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자이나교 사원에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창세기 이전부터 시작되었다고 하셨고, 이 하나님이 얼마나 부족한 분인지, 또 그분의 제자들이 이러저러한 일을 했다고 하셨습니다.” 또 여러 말을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생각을 압니다. 여러분은 제가 정신 감응으로 생각을 읽는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본 것이라고는 여기 이것뿐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생각 속에 있는 것이 그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말했습니다. “여기에 눈먼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자기가 태양을 바라보다가 이십 년 전에 눈이 멀었다고 방금 증언했습니다. 영께서 그에게 알려 주신 대로였습니다. 그는 태양을 숭배했습니다. 그는 눈이 멀어 있었고, 두 눈이 제 셔츠만큼이나 하얬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다시 시력을 얻으면 자기에게 시력을 주시는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는 바꿀 마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말했습니다. “여기 계신 이슬람교도들이 수가 가장 많으니, [녹음 공백] 여기 와서 이 사람의 시력을 되돌려 주십시오.” 바로 그것입니다.
형제님들, 하나님께서 먼저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다면, 곧 그 환상이 없었다면, 저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자, 와서 이 사람에게 시력을 주십시오.” 또 말했습니다. “부처를 숭배하는 여러분, 저는 불교 승려에게 와서 이 사람에게 시력을 주라고 도전합니다. 또는 자이나교인 여러분, 우리가 오늘 여러분의 사원에 갔었지요. 여러분 사제 중 누구라도 와서 이 사람에게 시력을 주라고 도전합니다. 그러면 이 사람은 자기에게 시력을 주시는 하나님을 경배할 것입니다.” 아, 형제님! 그들은 조용해졌습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이 사람에게 태양을 숭배한 것이 잘못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는 숭배...” 그리고 제가 말했습니다. “저도 이 사람이 잘못했다고 믿습니다. 창조주 대신 피조물을... 창조된 것을 숭배하고 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저도 이 사람이 잘못했다고 믿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이슬람교도 여러분이 이 사람을 개종시킨다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생각하는 방식만 바꿀 뿐입니다. 자이나교인 여러분이 이 사람을 받아들인다면 어떻겠습니까? 생각하는 방식을 바꿀 것입니다. 불교도 여러분이 이 사람을 받아들인다면 어떻겠습니까? 생각하는 방식을 바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심리 작용입니다.
하지만 형제님들,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감리교가 이 사람을 위해 침례교보다 무엇을 더 해 줄 수 있겠습니까? 미국에도 똑같은 일이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경배하는 하나님은 한 분이십니다. 하지만 침례교인들은 모든 사람이 침례교인이 되기를 원하고, 모든 감리교인도 그렇게 되기를... 오순절은 모두를 오순절로 만들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모두 자기네 편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성회도 모두 자기네 편이 되기를 원합니다. 무엇입니까? 아, 이런 식으로 침례를 받아야 한다,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한다, 어떤 말을 해야 한다, 또 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심리 작용입니다. 저는 감정을 상하게 하려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지만 형제님, 정직하게 말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함께하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녹음 중단] 사실입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미국에도 똑같은 일이 있습니다. 그저 이 교회에서 저 교회로 옮겨 다닙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저를 제대로 대해 주지 않으면 하나님의 성회에 가입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성회에서 저를 제대로 대해 주지 않으면 일신교인이 되겠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무엇입니까? 똑같은 것입니다. 이교도들, 믿지 않는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사실입니다. 한 번 그리스도 안에 닻을 내렸으면 거기에 머무십시오. 그렇습니다.
그때 제가 말했습니다. “물론 어느 쪽이든, 누가 되었든, 다른 쪽보다 이 사람에게 더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슬람교도 여러분도 이 사람에게 시력을 줄 수 없습니다. 자이나교인 여러분도, 불교도 여러분도, 어느 누구도 이 사람에게 시력을 줄 수 없습니다. 저 역시 이 사람에게 시력을 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말했습니다. “자신의 아들 예수님을 일으키신 하늘의 하나님께서 이 사람이 시력을 얻을 것이라는 환상을 제게 보여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정신 감응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만일 이 사람이 시력을 얻지 못한다면 저는 거짓 선지자입니다. 이제 이 사람이 시력을 얻는다면, 여러분 가운데 몇 분이나 여러분의 이교도 신들을 버리겠다고 손을 드시겠습니까? 여러분의 사제들이 어디 서 있는지 보십니까? 그들은 모두 침묵하고 있습니다. 침묵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하늘의 하나님께서 방금 제게 무언가를 보여 주시지 않았다면 저도 침묵했을 것입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이제 이것이 옳은지 아닌지 알아보겠습니다.”
모두가 조용해졌습니다. 저는 그 가엾은 노인을 제 품으로 끌어안고 말했습니다. “하늘과 땅을 만드신 주 하나님, 성경 시대에 있었던 일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오늘 주님께서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옵소서. 주님의 교회가 지옥의 모든 문을 이길 것입니다. 반드시 그렇게 될 것입니다. 여기 앉아 있는 이 사람들 가운데 많은 이가 이곳에서 수고하면서 이런 일들은 다른 시대에 속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음을 알게 하옵소서. 그들은 주어진 형편과 설교할 수 있는 자료 안에서 자신들이 아는 한 최선을 다해 설교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주님께서 이 자리에 오셨습니다...” (물론 기도는 통역하지 않습니다.)
주님께 기도하는 동안 저는 그 사람을 제 가슴에 기대게 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제 품에서 떼어 놓았더니 그는 온 힘을 다해 소리를 질렀습니다. 달려가서 더반 시장을 붙잡고 입을 맞췄습니다. 그의 시력은 여기 계신 어느 분 못지않게 좋았습니다. 그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거기 서 있던 그가 무릎을 꿇고, 두 손을 하늘로 치켜들고, 울었습니다. 수천 명이 그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인도 대통령에게까지 간증했습니다. 저 위 뉴델리에는 백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원형 극장이 있습니다. 제가 원한다면 이번 시월에 인도 전역이 연합하여 집회를 열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때 제가 말했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 가운데 몇 분이나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시겠습니까? 이슬람교도와 불교도, 그 밖의 여러분 말입니다.” 사방에서 손이 올라갔습니다. 사방에서 말입니다. 사람들이 몰려들어 제 신발을 벗겨 버렸고, 제... 찢었습니다. 저는 그곳을 빠져나오는 데 한 시간이 넘게 걸렸고, 옷은 갈기갈기 찢겼습니다. 다섯 겹, 여섯 겹으로 줄을 서도 그들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다리 사이로 기어들어 오고 온갖 방법으로 들어왔습니다. 인도인들은 미신을 믿어서, 어떻게든 들어와 여러분을 만지거나 무언가 그런 일을 하려고 합니다. 어머니들은 가까이 와서 만지게 하려고 아기들을 던지기까지 했습니다. 사람들을 더는 통제할 수 없었고 수용할 장소도 없었기에, 저는 다음 날 그 도시를 떠나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서 복음을 선포하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학교와 조직과 교육을 중심으로 세워 왔습니다. 그것을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반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분께서는 “복음을 선포하라”라고 하셨습니다. “교회를 지으라”라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조직을 세우라”라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학교를 세우라”라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신학교를 가지라”라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복음을 선포하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돌아서서 다른 일을 했습니다. 이교도들이 오늘날 그런 처지에 있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이런 일들이 있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하지만 형제님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살아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같은 하나님이십니다. 생각나는 작은 이야기 하나만 말씀드리고 마쳐야겠습니다. 이삼 분만 시간을 내주신다면 말입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저는 사냥을 좋아합니다. 여기 앉아 계신 형제님은 브리티시컬럼비아 북부에서 오셨습니다... 어느 날 저는 산에서 내려왔습니다. 수염이 이만큼 길었고, 희어지고 있었습니다. 커다랗고 낡은 챙 넓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작업복을 입고 있었는데, 이 주가 넘도록 목욕을 하지 않았습니다. 말은 스물한 마리를 데리고 있었습니다. 목욕을 하지 않은 데다 더럽고 땀에 절어 있었으니, 아마 말보다 제게서 더 심한 냄새가 났을 겁니다. 산에서 곰 사냥을 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서 혼자 하나님과 함께했던 체험은 제가 죽을 때까지 제 안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저는 작은 마을에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이 방 절반만 한 가게 하나가 있었는데, 온갖 물건이 다 있었습니다. 거기 있던 서른 살쯤 된 젊은 여자는 평생 도시를 본 적이 없었습니다. 평생 말입니다. 그렇게 깊숙한 곳이었습니다. 제대로 포장된 도로를 처음 만나는 곳은 아마 에드먼턴, 에드먼턴 근처였을 겁니다. 사백, 오백 마일쯤 떨어져 있었을 것입니다. 한 이백 마일쯤 되었을 것 같습니다. 포장도로까지 이백 마일이었습니다. 거기를 떠나면 또 다른 길이 나오는데, 아주 멀리 뻗어 있습니다. 저 위 브리티시컬럼비아 북부의 이스트 파인스였습니다.
거기 서서 말에 달린 피니언(pinions)을 당기고, 또 조이려고... 그때 한 사람이 그쪽으로 내려오더니 말했습니다. “안녕하세요, 브래넘 형제님.” 그 사람이 바로 이 형제님입니다. 농부였습니다. 주님께서 환상을 주시고 그를 사역으로 부르셨습니다. 이제 그는 쿠바에서 막 돌아와 다시 사역 현장으로 가는 길입니다. 제가 아주 먼 북쪽 지방에 있었을 때였습니다. 수염도 그렇게 길고 그런 모습이었는데, 어떤 여자가 다가와 제 등을 톡 건드리며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아니세요?” 제가 말했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어떻게 저를 아셨습니까?” 그 여자가 말했습니다. “형제님 책을 가지고 있어요.” 제가 말했습니다. “이런 깊숙한 곳에서 어떻게 책을 구하셨습니까?” 일 년에 두 번 개썰매로 우편이 왔습니다. 아, 그 위대한 때에 그들은 동서로부터 올 것입니다.
한번은 콜로라도의 깊은 산속에서 엘크 사냥을 하고 있었습니다. 짐승을 죽이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하나님과 단둘이 있고 싶어서였습니다. 여러분은 말끔하게 꾸며 놓은 플로리다를 얼마든지 즐기십시오. 그것은 사람이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그대로, 손대지 않은 자연 그대로가 좋습니다. 저는 산을 아주 높이, 정말 높이 올라갔습니다. 엘크들이 아직 내려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래로 몰아낼 만큼 눈이 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사람이 있는 곳에서 적어도 삼십오 마일이나 사십 마일 떨어진 깊숙한 곳에 있었습니다. 버사 패스와 래빗 이어 패스 사이, 어릴 적 제가 소를 몰던 트러블섬강 깊숙한 곳이었습니다.
그 이야기가 나온 김에 여기서 조금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예전에 봄철에 소 떼를 한데 모아 아라파호 숲으로 올려보낼 때면 저는... 헤리퍼드 협회는 그 골짜기에 소를 방목합니다. 건초 일 톤을 기를 수 있고 상공회의소에서 받은 낙인이 있으면, 여름에 아라파호 숲에서 소 한 마리를 방목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거기서 소를 몰았고, 우리 낙인은 삼각대 모양이었습니다. 커다란 다이아몬드... 우리 옆은 바 다이아몬드 낙인을 쓰는 그라임스 목장이었습니다. 경주마를 기르는 그라임스는 여러분도 다 아실 겁니다. 그분은 늘 사람 스무 명쯤을 고용했습니다. 우리 목장은 작았습니다. 저 위 트러블섬강 동쪽 지류에서 관개수를 받는 맨 끝자리에 있었습니다. 강은 이렇게 갈라져서 북쪽과 동쪽과 서쪽 비탈에서 흘러 내려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안에서 소를 방목했습니다. 그곳으로 백오십 마일, 이백 마일에 걸쳐 방목했습니다.
그곳에는 사유지에서 정부 소유지에 이르는 경계 울타리가 있었습니다. 저는 낮에 거기 앉아서 그들이 소 떼를 통과시키는 것을 지켜볼 때가 많았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는 안장 앞의 뿔에 한쪽 다리를 걸치고 앉아 지켜보았습니다. 산림 관리원이 거기 서서 지나가는 소의 수를 세었습니다. 그는 소들을 검사했습니다. 형제님들, 그가 주로 본 것은 낙인이 아니라 소의 혈통이었습니다. 낙인이 있으면 들어갈 수 있었고, 그것도 관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낙인이 찍혀 있든 중요한 것은 소의 혈통이었습니다. 순종 헤리퍼드가 아니면 그 숲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저는 심판 때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교회 교인인지 하나님의 성회 교인인지가 아니라, 피의 표가 그 차이를 보여 줄 것입니다. 어떤 낙인을 달고 있든 상관없이 다시 태어난 사람들만 들어갈 것입니다. 그 산 위에서 저는 지켜보았습니다. 폭풍이 몰려와서 나무 뒤로 가, 폭풍이 부는 동안 잠시 서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폭풍이 지나간 뒤 나무 뒤에서 나왔습니다. 그곳은 한동안 폭풍이 불고 비가 오다가, 잠시 눈이 내리고, 그러다 해가 나서 눈을 녹이고, 또 비가 내리기도 합니다.
제가 나왔을 때는 날씨가 추워져 있었습니다. 나무 뒤에 숨어 있는 동안 그렇게 된 것입니다. 해는 서쪽으로 지고 있었습니다. 그 거대한 눈이 이쪽을 내다보고 있었고, 비가 얼어붙은 상록수들이 있는 골짜기 위로 무지개가 걸렸습니다. 나무 위에 얼음이 어떻게 어는지 아시지요. 햇빛이 거기에 비쳐 무지개를 만들었습니다. 저는 그 무지개를 보았습니다... 제 어머니, 아니, 제 외할머니는 여기 위쪽에 있는 원주민 보호구역 출신이었습니다. 제가 회심했다고 해서 제 안에 있는 그 깊음의 부름까지 없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숲을 사랑합니다. 저는 거기 서서 울기 시작했습니다. “오, 위대하신 여호와여” 하고 생각했습니다. 어젯밤에도 말씀드렸듯이, “그분께서는 자신의 눈으로 제 걸음을 인도하십니다.” 그분께서 거기서 보고 계셨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생각했습니다. “그렇다. 해가 서쪽에서 저물고 있고, 하루가 끝났다. 무지개는 언약을 나타낸다. 우리는 마지막 때에 와 있다.” 조금만 둘러보면 어디서든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그저 바라보기만 하면, 여러분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형제 안에서도 그분을 볼 수 있습니다. 조금만 둘러보면 여러분이 좋아하지 않는 조직 안에서도 그분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뿐입니다. 그분께서 거기 계실 것이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것을 바라보다가 저는 울기 시작했습니다. 잠시 뒤 산꼭대기에서 늙은 회색 늑대가 우는 소리가 들렸고, 아래쪽에서 그 짝이 대답했습니다. 아시다시피 다윗은 “깊음이 깊음을 부를 때”라고 했습니다. 깊음이 깊음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늙은 수컷 엘크가 나팔처럼 우는 소리도 들렸습니다. 폭풍이 그들을 흩어 놓았습니다. 세찬 바람이 불고 나무들이 쓰러지는 동안 떼가 흩어진 것입니다. 그들은 다시 모이려고 서로를 향해 울고 있었습니다. 늑대의 짝이 부르고 있었습니다. “다시 모이자.” 그 눈이 무지개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다시 모이자.” 영께서 교회를 부르고 계십니다. “다시 모이자. 하나가 되자.” 하나님께서 거기 계셨습니다.
저는 거기 서서 경배하다가, 아, 있는 힘껏 그 나무 주위를 빙글빙글 뛰어다녔습니다. 제 마음을 터뜨리려고 목청껏 소리치며 손을 흔들었습니다. 누군가 저를 보았다면 분명히 성령에 취해 구르는 광신자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아니면 제가 미쳤다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나무 주위를 빙글빙글 뛰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분을 봅니다. 모든 것이 부르고 있습니다. 깊음에서 깊음을 부르고 있습니다. 지금 영께서 교회를, 자신의 몸을 부르시는 것과 같습니다. “함께 모이자. 함께 있자. 해가 지고 있다.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때가 늦었다. 함께 모이자.” [회중 가운데 한 사람이 권면한다.] 아멘. 영께서 어디서 말씀하셨습니까? 무지개가... 해가 무지개를 불렀을 때, 늑대가 제 짝을 불렀을 때, 엘크가 제 짝을 불렀을 때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짝인 교회를 부르고 계십니다. 형제님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여러분을 돕기 위해, 하나님의 왕좌 앞에서 여러분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여기 서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형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