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앉으셔도 좋습니다. 오늘 저녁 이곳에 오게 된 것은 참으로 특권입니다. 이곳에서 주 예수님을 섬기는 것은 큰 특권입니다. 공간이 충분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여러분이 서 계셔야 하니 피곤하실 줄 압니다. 이 집회장이... 더 넓은 장소를 구할 수 있는지 물어보았지만, 지금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메시지는 가능한 한 짧게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조금만 인내하며 기다려 주십시오. 내일 저녁 집회와 일요일 오후, 그리고 일요일 저녁 집회도 기억해 주십시오.
오늘 저녁, 주님의 뜻이라면 성경 한 구절을 읽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가 오늘 저녁 말씀을 전할 때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이곳에 온 뒤로 목이 쉬었습니다. 심한 감기에 걸린 것은 아니고, 목을 너무 많이 썼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이쪽으로 좀 옮기겠습니다... 저것의 위치를 바꾸고요. 됐습니다. 이러면 조금 더 낫겠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우리 모두에게 아주 익숙한 성경 말씀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이 복된 옛 성경에 있는 말씀입니다. 저는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이 진리임을 믿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도 그렇게 믿는 줄 압니다. 아주 익숙한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아니하고 영존하는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제 잠시 머리를 숙이고 기도하겠습니다. 오 복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 주 예수님을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일으키신 하나님, 천구백 년이 지난 지금도 그분은 살아 계신 분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분의 권능과 임재는 천구백 년 전 갈릴리를 거니실 때와 똑같이 지금도 충분합니다. 우리 아버지여, 우리에게 이 일을 행해 주셨으니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어둡고 악한 시대에는 세상 곳곳에, 나라들과 정치와 삶의 모든 영역에 혼란이 너무나 많습니다. 심지어 그리스도인의 삶에까지 혼란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지금도 살아 계시고, 성경이 그분에 대해 말씀하신 대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하신 것을 알기에 우리는 참으로 기쁩니다. 끝이 급속히 다가오고 그분의 오심이 가까웠다는 표적들을 볼 때, 그분께서 동일하시며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해 자신을 주셨다는 복된 약속을 의지하며 우리 마음은 기쁨으로 뛰어오릅니다.
하나님, 오늘 저녁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우리의 죄들과 범법들을 용서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지친 마음에 필요하오니, 오늘 저녁 지극히 넘치도록 풍성하게 베풀어 주옵소서.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복 주시고, 오늘 저녁 기대하며 찾아온 모든 병자를 고쳐 주옵소서. 주님께서는 굶주린 사람을 한 사람도 만족시키지 않은 채 돌려보내지 않으실 줄 압니다. 그것이 주님의 성품이며, 주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읽은 말씀에 복을 주시고, 오늘 저녁 메시지를 위해 이 말씀의 맥락을 깨닫게 해 주옵소서. 모든 것을 충족시키시는 분,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아멘.
일요일학교에 한 번이라도 다녀 본 아이치고 이 짧은 성경 구절을 외우지 못할 아이는 없을 것입니다. 영원무궁하신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아주 작은 한 부분입니다. 분량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읽는 행위나 읽는 분량이 아니라, 우리가 읽는 말씀의 가치입니다. 길고 짧은 것은 상관없습니다. 우리가 읽은 말씀의 가치가 중요합니다. 바로 거기에 우리의 믿음을 두고 안식할 수 있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일입니다. 사물의 가치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제가 사는 곳에서 강 건너편인 켄터키주 루이빌에서 한 어린 소년이 자기 집 다락방에 올라가 있었습니다. 가족이 간직해 온 오래된 물건과 유품들을 뒤지다가 낡은 궤짝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소년은 무엇이 들어 있을까 하며 신이 나서 그 낡은 궤짝을 뒤졌고, 누렇게 변한 작은 우표 한 장을 찾았습니다. 한 변이 겨우 반 인치쯤 되는 우표였습니다. 소년은 그것을 보며 말했습니다. “이거라면 5센트는 받을 수 있겠지. 5센트면 아이스크림콘 하나를 살 수 있어.” 그래서 아이스크림콘을 생각하며 거리를 달려 우표 수집상에게 갔습니다. 수집상이 그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소년은 5센트 넘게 받을 생각도 하지 않고 물었습니다. “이 우표를 얼마에 사시겠어요?”
그러자 그가 말했습니다... 우표 수집상은 그것을 살펴본 뒤 오래된 우표인 줄 알고 말했습니다. “1달러 주마.” 아, 소년은 무척 기뻤습니다. 아이스크림을 여러 개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우표를 1달러에 팔았습니다. 그로부터 약 6주 뒤에 이 우표 수집상은 그것을 50달러에 팔았습니다. 얼마 후에는 500달러에 팔렸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 가치가 25만 달러라고 합니다.
한 변이 반 인치인 작은 종잇조각이라면 길에서 주울 가치조차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러나 가치가 있었던 것은 그 종이가 아닙니다. 가치는 그 종이에 담긴 것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그렇습니다. 단지 말씀이 적힌 종이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들은 결코 실패하지 아니하리라.” 그러므로 오늘 저녁, 요한복음 3장 16절은 비록 분량은 짧아도 세상을 구원하기에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 땅의 모든 병자를 고칠 만큼 충분한 가치가 그 안에 있습니다. 모든 죄인에게는 용서이며, 지친 모든 사람에게는 기쁨입니다. 소망 없는 사람에게는 소망이고, 성도에게는 양식입니다. 병든 사람에게는 치유이고, 괴로워하는 사람에게는 용서입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받아들이면 이 모든 것이 여러분의 것이 됩니다.
오래전에 이런 사건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 링컨 시대였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한 사람이 범죄를 저질러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그 죄에 대한 형벌은 총살형이었습니다. 그의 좋은 친구 한 사람이 빠져나가 대통령 앞에 무릎을 꿇고 이 사람을 사면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링컨 씨는 집무실 밖에 있었지만, 그 사람을 사면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작은 종이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아무개를 사면함. 미국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 그 친구는 고개를 숙여 감사드린 뒤 곧바로 감옥에 있는 그 사람에게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친구, 자네 사면장을 받아 왔네!” 그가 말했습니다. “어디 보세.” 친구는 그 작은 종이를 내밀었습니다. 그러자 죄수가 말했습니다. “아, 이걸로는 안 돼. 진짜 사면장이라면 아주 커다란 종이에 적혀 있어야지. 내가 왜 사면되었는지도 적혀 있을 거야. 자네가 나를 놀리는군.” 아무리 설득해도 그는 자기 사면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그 사람은 총살당했습니다.
잘 보십시오. 미국 대통령이 서명한 문서가 있고, 거기에 “이 사람을 사면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 문서는 그가 처형되기 전날 작성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건은 연방법원의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연방법원이 내린 판결은 이렇습니다. 사면을 사면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사면이 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도 그렇습니다. 그것을 용서로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용서입니다. 그것을 치유를 베푸는 용서로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치유입니다. 올바른 마음 자세로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모든 신성한 약속은 참됩니다.
오늘 저녁 저는 복음 사역자로서 이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이것이 실제로 입증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세계를 다니며 수만 명 앞에서 말씀을 전하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참됩니다! 하나님의 어떤 약속이든 올바른 마음 자세로 대하면 그 약속이 이루어집니다. 여러분이 올바른 마음 자세를 가질 수 있다면 말입니다. 오늘 저녁 우리가 읽은 성경 말씀에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고 하셨습니다. 오늘날 세상이 애타게 필요로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입니다. 여러 곳을 다니며 보니, 사랑은 버림받은 돌과 같았습니다. 그 돌이 빠져 있어서 건물이 서로 맞추어 세워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회와 하나님의 교회와 침례교인들과 감리교인들이 서로 사랑하기만 하면, 모두 손을 잡고 형제가 될 것입니다.
그것이 세상이 애타게 갈망하는 가장 절실한 필요이며,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교회를 살펴보면, 교회를 가로막아 온 것은 사랑에 대한 잘못된 이해였습니다. 사랑에는... 참된 사랑에는 서로 다른 두 종류가 있습니다. 그중 하나를 그리스어로 “아가포”라고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변질된 사랑이 필리오 사랑이며, “인간의 사랑”을 뜻합니다. 필리오는 “교제”라는 말에서 나왔습니다. 필리오 사랑은 여러분이 아내에게 품는 사랑입니다. 어떤 남자가 아내에게 추근거리거나 아내를 모욕하면, 여러분은 그 일로 그 남자의 머리를 총으로 쏘아 버릴 것입니다. 필리오 사랑은 그렇게 만듭니다. 거기에는 질투가 따릅니다. 그 밖에도 여러 가지가 함께 따릅니다. 그러나 아가포 사랑은 여러분이 그 사람의 죄 많은 혼을 위해 기도하게 만듭니다. 이것이 두 사랑의 차이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사랑의 시작입니다. 사랑의 샘입니다. 오늘날 교회에는 바로 그것, 원수까지도 사랑하게 만드는 참된 아가포 사랑이 부족합니다.
오, 우리에게 그 사랑만 있다면, 부흥이 이 나라를 이 해안에서 저 해안까지, 북쪽에서 남쪽까지 휩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그 사랑이 없는 까닭은... 교회가 마땅히 나아가야 할 만큼 나아가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신학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신학에 더할 참된 사랑만 있으면 됩니다. 우리는 침례를 뒤로 받아야 하느냐, 앞으로 받아야 하느냐, 그 밖의 여러 가지를 두고 너무나 많이 논쟁합니다. 그러나 어떤 방식으로 침례를 받았든, 어느 교회에 속해 있든,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어떤 증거가 있든, 사랑이 없다면 하나님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사랑이 뻗어 나가 그 끝에 이르면, 주권적 은혜가 그 사랑이 향하던 것을 이루어 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그 사랑이 갈 수 있는 끝에 이르렀을 때, 그 사랑이 주권적 은혜를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구주를 주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얻은 것은 바로 그렇게,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사랑 때문에 무언가가 생겨났습니다. 구주 예수님께서 오시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참으로... 너무도 쉽게 잊어버리는 위대한 옛이야기입니다.
오래전 저 멀리 스위스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여기 저와 비슷한 나이의 남녀분들 중에는 독본에서 이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있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스위스는 독일에서 나와 산으로 올라간 소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끼리 작은 경제생활을 꾸리고 있었습니다. 전쟁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전쟁이 닥쳤습니다. 스위스 사람들은 낡은 낫과 막대기와 돌, 그리고 손에 잡히는 것은 무엇이든 가지고, 평원에서 적을 맞서려고 산에서 내려왔습니다. 그들은 모두 뒤로 몰린 채 거기에 서 있었습니다. 작은 무리일 뿐인 그들을 향해 대군이 벽돌담처럼 밀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가망이 없었습니다!
그들 가운데 아르놀트 폰 빙켈리트라는 영웅이 있었습니다. 그는 전장에 나가기 몇 시간 전에 아내와 어린아이들에게 입 맞추며 작별했습니다. 그는 자기 가정을 사랑했습니다. 자기 나라를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랑이 그를 가만히 있을 수 없게 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스위스의 동포들이여, 오늘 나는 스위스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소.” 그들이 물었습니다. “아르놀트 폰 빙켈리트, 무엇을 하려는 것이오?” 그가 말했습니다. “나를 따라와 가지고 있는 것으로 싸우시오.” 그는 두 팔을 치켜들고, 하나의 거대한 벽처럼 진군해 오는 창들을 바라보며 가장 빽빽한 곳을 찾았습니다. 창들이 가장 빽빽한 곳을 찾아낸 그는 “자유를 위해 길을 내라!” 하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두 손을 치켜든 채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외쳤습니다. “자유를 위해 길을 내라!” 그는 대열에서 나오기 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산 너머에 작은 흰 집이 있고, 어린아이 둘과 사랑하는 아내가 있소. 나는 그들을 다시 보지 못할 것이오. 그들을 돌보아 주시오. 그러나 나는 그들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겠소.”
사랑은 여러분을 행동하게 만듭니다. 교회가 마음속에 하나님의 참된 사랑을 품으면 행동하게 됩니다.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이... 단지 충성을 바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께서는 여러분의 후원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과의 교제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여러분과 교제하시는 것입니다. 아르놀트 폰 빙켈리트는 적진을 향해 돌진하며 한 아름의 창을 끌어안고, 그 위로 쓰러지면서 창들이 자기 심장을 찌르게 하여 목숨을 바쳤습니다. 그 행동이 워낙 용감하여 적군이 무너져 달아났습니다.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낫과 돌과 바위와 막대기를 손에 들고 외치며 달려들었습니다. 그들은 적을 나라 밖으로 몰아냈습니다. 그날부터 오늘날까지 스위스에는 전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 영웅적 행위에 견줄 만한 일은 좀처럼 없고, 그보다 더한 일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 아담의 타락한 후손들이 궁지에 몰린 그날에 비하면 그것은 작은 일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선지자들과 율법들이 보내졌으나 그들은 거부했습니다. 마귀와 죄와 질병이 아담의 후손들을 궁지로 몰아넣었습니다. 그때 하늘에서 한 분이 앞으로 나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땅으로 가겠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사랑은 그분을 행동하게 했습니다. 그 사랑으로 구주께서 오시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땅에 오셔서 창들이 가장 빽빽한 곳, 곧 죽음을 찾아 그 속으로 자신을 던지셨습니다. 그분께서 위로 올라가신 날, 성령님을 보내시고 교회에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받아 가지고 힘껏 싸우라!” 오늘날 교회가 놓치고 있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성령님에 의해 우리 마음에 넓게 부어진 하나님의 사랑,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받기를 두려워합니다. 여러분은 그보다는 사람이 만든 어떤 신학을 가지고 싸우려고 합니다. 그러면 패할 것입니다! 인도자께서 주신 것, 그분을 행동하게 했던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저는 그것을 보았습니다. 여러분 중 많은 분이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정신이상자가 강단으로 달려 올라왔던 때의 이야기를 책에서 읽으셨을 것입니다. 제 개인적인 삶의 한 부분을 조금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날 밤 6천5백 명 앞에서 그 정신이상자가 저를 죽이려고 강단으로 달려 나왔습니다. 몸무게가 250파운드, 어쩌면 그보다 더 나가고 키가 거의 7피트나 되는 아주 크고 건장한 거구였습니다. 정신병원에서 나온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믿음에 대해 말씀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제 몸무게는 128파운드였습니다. 저는 약 300명의 설교자들이 강단에서 달아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그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설교자들을 미워했습니다. 경찰도 그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가 강단으로 달려 나올 때 저는 그를 몰랐습니다. 그는 크게 고함을 지르더니 이를 악물고 눈을 뒤로 치켜떴습니다. 그리고 제 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이 위선자야. 이 음흉한 뱀 같은 놈아. 이 강단 위에서 하나님의 종인 척하고 있구나. 넌 위선자일 뿐이야.” 모두 숨을 죽였습니다. 그때 제가 뒤쪽 대기실에서 그리스도께로 인도했던 체구가 작은 경찰관 두 사람이 그를 붙잡으려고 달려 나왔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손짓하며 말했습니다. “이것은 혈과 육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사람이 올라왔을 때 제게 두려움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나니.” 사람들이 치유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을 충분히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말씀을 지키지 않으실까 봐 두려운 것입니다. 사람들이 성령을 받으면 누가 자기를 비난할까 봐 두려워하는 이유도 그것입니다. 누가 웃고 조롱할까 봐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사랑이 들어오면...
모세가 이집트를 떠나게 한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왕좌가 그의 발 앞에 있었지만, 그는 그리스도의 치욕을 이집트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습니다.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이제 내가 여러분의 형편을 더 좋게 해 주겠소”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 백성과 함께 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영께서... 그를 백성과 함께 서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백성과 함께 서신 것도 그 때문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나와서, 살든 죽든 그리스도 편에 서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교제하고 서로 사랑하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면 마귀가 무엇을 말하거나 행하든 두렵지 않습니다.
그 정신이상자가 커다란 두 팔을 뒤로 젖혔을 때 무언가가 일어났습니다. 오, 제가 늘 그렇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것이 제게 밀려왔습니다. 그는 크고 힘센 두 팔을 뒤로 젖혔습니다. 이런 일을 장난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아프리카의 주술사들이나 인도의 부두교 주술사들을 만나면 그들이 여러분에게 도전할 것입니다. 그러나 참으로 그분을 사랑한다면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분께서 “내가 너희와 함께 있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 저는 그것이 실패하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앞으로도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사람이 제게 바짝 다가왔고, 사람들은 숨을 죽였습니다. 그는 숨을 들이마시고 가래를 끌어올려 제 얼굴 가득 침을 뱉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이 음흉한 뱀 같은 놈아. 네가 얼마나 하나님의 종인지 내가 보여 주마. 한 방에 저 청중 한가운데까지 날려 보내 주겠다.” 그는 그 위협을 실행하고도 남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몰랐습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점이었습니다. 저는 조용히 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제 마음은 그를 향해 사랑으로 뻗어 나갔습니다. 이것은 상상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실제여야 합니다. 사람들은 꾸며 낸 사랑을 너무 많이 보아서 이제 진절머리가 납니다. 있는 그대로의 사람이 되십시오.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리스도인답게 사십시오.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을 그렇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그가 더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저는 그를 사랑했습니다. 그가 본심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저 사람이 저런 말을 하게 만드는 것은 마귀다. 나처럼 자기 가족을 사랑하고, 먹고 마시고 사람들과 교제하기를 좋아할 사람이다. 그런데 마귀에게 사로잡혀서 저러는 것이다. 그도 나와 똑같은 인간이다.’ 그런 생각들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해 주시지 않으면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는 제게 다가와 팔을 뒤로 젖히며 말했습니다. “너를 한 방에 저 청중 한가운데로 날려 보내서 그 작고 약해 빠진 몸의 뼈를 모조리 부러뜨려 주겠다.” 저는 입을 열지도, 한마디 말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무언가가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성령님께서 말씀하기 시작하셨습니다. “네가 오늘 밤 하나님의 영께 도전했으므로, 너는 내 발 위로 쓰러질 것이다.” 양쪽에서 위협이 나온 것이고, 둘 다 예언이었습니다. 그는 “너를 한 방에 청중 한가운데로 날려 보내겠다”라고 했고, 하나님의 영께서는 “너는 내 발 위로 쓰러질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내가 누구 발 위로 쓰러지는지 보여 주마.” 그는 저를 때리려고 팔을 뒤로 젖혔습니다. 그래도 제게는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저는 남에게 보이려고 그곳에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사람들에게 가라는 사명을 받고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가 저를 치려는 순간, 제 안에서 무언가가 말했습니다. “사탄아, 그 사람에게서 떠나라.” 그러자 그의 커다란 눈이 튀어나오는 것 같더니, 이를 악물고 몸을 돌려 제 발 위로 쓰러졌습니다. 경찰관이 와서 그를 굴려 옮겨야 했습니다. 무엇이었습니까? 사랑입니다. 사랑은 이 땅 위에서 가장 강한 원수도 이깁니다. 사랑입니다. 여러분께 삶의 속내를 조금 말씀드린 것입니다.
얼마 전, 지난해 제가 멕시코에 갔을 때 일입니다. 그날 아침에 어린 아기가... 사람들이 그 아기를 집회에 데리고 왔습니다. 아기는 그날 아침 9시에 죽었습니다. 수만 명의 사람들이 서 있었습니다. 그날 밤 2만 명이 그리스도께로 나왔습니다. 2만 명입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가톨릭 신자나 복음주의 신자가 나오라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그리스도를 전혀 받아들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나오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확인해 표시한 사람이 2만 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래쪽에서 한 작은 여인이 담요를 안고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빌리는 기도 카드를 나누어 준 사람과 함께 있었고, 안내원이 200명이나 300명쯤 있었습니다. 그 안내원 300명이 그 작은 여인이 줄로 들어오는 것을 막지 못했습니다! 여인은 그들의 등을 타고 넘어왔습니다. 아, 무슨 일이었습니까? 그날 아침 9시에 자기 아기가 죽었고, 그때는 밤 10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한참 동안 실랑이가 벌어졌습니다. 많아야 스물다섯 살인, 매우 아름답게 생긴 작은 여인이 계속 울부짖었고, 안내원들은 그 여인을 뒤로 밀어내려고 했습니다. 여인은 그들의 다리 밑으로든 어깨 위로든, 어떻게 해서든 들어오려고 했습니다. 자기 아기를 향한 사랑이었습니다. 저는 “파드레!” 하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파드레는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여인은 가톨릭 신자였습니다. 여인이 그렇게 외치고 있을 때 빌리가 제게 와서 말했습니다. “아버지, 저 여자분을 어떻게 좀 해 주셔야겠어요. 기도 카드가 없는데, 카드도 없이 줄에 들어오게 하면 공평하지 않아요. 다른 사람들은 기도 카드를 받으려고 오늘 아침 날이 밝자마자 여기 서 있었거든요.” 제가 말했습니다. “무어 형제님.” 루이지애나주 슈리브포트의 잭 무어 형제님입니다. “아래로 가셔서 그 아기든 무슨 문제든 기도해 주실 수 있는지 보십시오.” 그가 내려가기 시작했을 때, 저는 앞을 바라보다가 환상 가운데 어린 아기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말했습니다. “잠깐만요, 무어 형제님.”
보십시오. 주권적인 사랑은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를 이끌어 냅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제가 아기에게 가는 편이 좋겠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안내원 여러분, 이것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 규칙에 따르면 기도 카드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도 그 작은 여인이 이리 오게 해 주십시오.” 여인은 올라오자 엎드렸습니다. 저는 “일어나십시오”라고 했지만, 제 말을 알아듣게 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 담요 위에 손을 얹었습니다. 아기는 보지도 못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주 하나님...” 담요는 흠뻑 젖어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비가 내렸습니다. 사람들은 앉을 곳도 없어서 서로 몸을 기대고 서 있었습니다. 그 큰 투우장 안에 눈에 보이는 데까지 사람들이 서 있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주 하나님, 저는 이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방금 환상 가운데 어린 스페인 아기를 보았습니다.” 저는 그 젖은 담요 위에 손을 얹었습니다. 제 재판관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십니다. 아기가 날카롭게 소리를 내더니 크게 울음을 터뜨렸고, 자기를 덮은 담요를 발로 차기 시작했습니다.
무엇이었습니까? 사랑, 아기를 향한 어머니의 사랑이었습니다. 남에게 보이려는 것도 아니고 위선도 아닌, 자기 아기를 향한 참되고 진실한 사랑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를 이끌어 냈습니다. 그것을 믿는 것은 얼마나 단순합니까. 얼마 전 일입니다. 우리 모두 알다시피, 아주 난처한 상황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저는 현관에 앉아 여기 있는 제 동역자들, 고드 형제님과 머시어 형제님과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전날 자기 아기를 죽인 젊은 흑인 여자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여자는... 혼인 밖에서 아이를 낳았습니다. 여자는 아기를 담요로 싸서 질식시킨 뒤 택시를 타고 강으로 가서 아기를 강에 던졌습니다. 택시 운전사가 해안경비대에 신고했습니다. 그들은 그물로 그 꾸러미를 건져 올렸고, 죽은 아기를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아기는 물에 빠져 죽은 것이 아니라 질식해서 죽었습니다. 신문에 그 여자의 사진이 실려 있었습니다. 저는 현관에 앉아 형제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런 여자는... 여자라고 불러서도 안 됩니다. 개도 그 여자보다는 도덕성이 낫습니다.”
바로 그때 길 아래에서 무언가가 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저희 집은 큰길에서 골목길로 들어와 네 번째 집입니다. 여기서는 작은 도로라고 부르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울타리가 둘러진 집은 저희 집뿐입니다. 올라와 진입로로 들어오는 것을 보니 늙은 주머니쥐 한 마리였습니다. 여기 버지니아에 사는 여러분은 주머니쥐가 무엇인지 아실 것입니다. 저는 인디애나주에서 여러 해 동안 야생동물 보호관으로 일했습니다. 야생동물을 연구했고, 그것은 제가 공부하는 분야 중 하나입니다. 주머니쥐가 낮에는 돌아다니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압니다. 주머니쥐는 밤에 돌아다니고 낮에는 숨어 잡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리오, 진, 저것 좀 보세요. 주머니쥐가 오네요.” 그것은 우리 집 대문 앞에 오더니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보니까 이렇게 몸을 한쪽으로 기울이고 다리 하나를 질질 끌고 있었습니다. 저는 벌떡 일어나 밖으로 달려갔습니다. 마당에 갈퀴가 놓여 있기에 집어 들어 주머니쥐 위에 얹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지금 날씨가 더우니까 광견병에 걸렸을지도 모릅니다.” 7월이었던 것 같습니다. 6월이나 7월이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광견병에 걸렸을지도 모르니까, 더 가지 못하게 막는 게 좋겠습니다.”
주머니쥐를 멈춰 세우고 문득 보니, 다리가 온통 짓이겨져 있었습니다. 자동차에 치였거나 개들에게 물린 것이었습니다. 다리는 두 배로 부어 있었습니다. 여러분을... 역겹게 해 드리려는 것은 아니지만, 파리들이 알을 낳아 다리 전체에 구더기와 파리알이 가득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아, 며칠 전에 다쳤군요.” 저는 갈퀴로 그것을 누르고 있었습니다. 보통은 이른바 “주머니쥐처럼 죽은 척하기”를 하며 드러눕습니다. 그러나 이 암컷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마당 갈퀴를 물어뜯었습니다. 주머니쥐는 두 번째 동물인데, 캥거루와 주머니쥐, 이 두 동물만 새끼를 넣어 다니는 주머니가 있습니다. 보니까 그 주머니를 늘어뜨렸을 때, 그 안에 털도 나지 않은 이만한 새끼 주머니쥐 아홉 마리가 있었습니다. 새끼들은 어미의 젖을 빨려고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형제들, 이것 보세요. 어미였군요!” 그리고 “진, 이리 와 보세요”라고 했습니다.
바로 그때 우드 부인과... 우드 씨는 전에 여호와의 증인이었습니다. 그들의 아들은 다리가 마비되어 몸 밑으로 오그라들어 있었는데 치유를 받았습니다. 얼마나 깨끗이 나았는지 지금은 어느 다리가 오그라들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저희 옆집으로 이사 왔고, 부인은 수의사입니다. 그가 보러 왔고, 부인이 말했습니다. “저것 좀 보세요.” 제가 말했습니다. “형제들, 저 주머니쥐가 아기를 물에 빠뜨려 죽인 그 여자보다 훨씬 더 어머니답습니다. 어쩌면 한 시간도 더 살지 못할 텐데, 남은 그 한 시간을 기꺼이 새끼들을 위해 싸우는 데 바치려 합니다. 참된 어머니입니다.”
제가 갈퀴를 조금 들고 있으니, 저는... 우드 부인이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저 어미를 어떻게 하실 거예요?” 제가 말했습니다. “모르겠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죽이는 게 낫겠어요. 저 어린 새끼들도 데려다가 죽이세요. 입이 둥글어서 젖을 빨 수도 없고, 어미 젖을 먹으면 죽을 테니까요.” 제가 말했습니다. “저는 도저히 못 하겠습니다.” 부인이 말했습니다. “사냥꾼이신 줄 알았는데요.” 제가 말했습니다. “저는 사냥꾼이지, 마구 죽이는 사람은 아닙니다!” 부인이 말했습니다. “설마 진심은 아니시겠죠.” 부인은 자기가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인도적인 관점에서는 옳았습니다. 부인이 말했습니다. “저렇게 고통당하게 내버려 두실 거예요?” 제가 말했습니다. “우드 부인,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저는 도저히 저 어미를 죽일 수 없습니다.” 부인이 말했습니다. “그럼 제 남편 뱅크스에게 죽이라고 하세요.” 제가 말했습니다. “안 됩니다. 그분에게도 그렇게 하게 할 수 없습니다.” 부인이 말했습니다. “그럼 저렇게 누워서 죽게 내버려 두시겠다는 거군요!” 제가 말했습니다.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제가 그것을 이렇게 들어 올렸습니다. 갈퀴 말입니다. 그러자 어미는 새끼 주머니쥐들을 재빨리 주머니에 모아 넣고 우리 집 문 앞으로 달려가더니, 쓰러져 옆으로 넘어갔습니다. 쓰러졌기에 죽었는지 알아보려고 흔들어 보았습니다. 부인이 말했습니다. “그럼 저 어린 새끼들이 어미의 그 젖을 먹고 끔찍하게 죽도록 내버려 두실 거예요?” 제가 말했습니다.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하루 종일 사람들이 오고 갔습니다. 밤이 되었는데도 어미는 여전히 거기 누워 있었습니다. 우드 씨가 저를 사람들에게서 좀 벗어나게 해 주려고, 잠시 드라이브를 하자며 데리러 왔습니다. 환상들을 보면 몸이 약해집니다. 저는 시골로 잠시 차를 타고 나갔습니다. 그러다가 11시쯤 돌아왔는데, 늙은 어미 주머니쥐가 여전히 거기 누워 있었습니다. 움직일 수 있었다면 해가 졌을 때 움직여 떠났으리라는 것은 누구나 압니다. 그러나 거기 누워 있었습니다. 아내가 말했습니다. “빌리, 저렇게 죽게 내버려 둘 거예요?” 제가 말했습니다. “벌써 죽은 것 같소. 젖을 빠는 저 새끼들 좀 봐요. 굶주리고 있소. 어미가 죽어서 젖이 안 나오는 모양이오.” 제가 발로 몇 번 툭툭 찼습니다. 발로 건드리자 얼굴 한쪽에 살짝 이를 드러내는 듯한 모습이 보여서 “죽지는 않았소”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들 빌리는 낚시를 갔다가 자정쯤 돌아왔습니다. 아이도 어미가 누워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밤새 그 생각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아주 일찍 나가 보니, 그 주머니쥐가 온몸에 이슬을 뒤집어쓴 채 누워 있었고 새끼들은 여전히 젖을 빨고 있었습니다. 문득 옆을 보니 어린 딸 리브가가 서 있었습니다... 아주 영적인 아이인데, 얼마 전에 처음으로 환상을 보았습니다. 아이가 말했습니다. “아빠, 저 늙은 어미 주머니쥐를 어떻게 하실 거예요? 죽었어요?” 제가 말했습니다. “모르겠구나, 얘야. 이렇게 이른 시간에 밖에 나와 있으면 안 되지. 어서 집 안으로 들어가거라.” 제가 말했습니다. “[불분명한 말] 잠옷만 입고.” 그리고 말했습니다. “어서 집에 들어가 자거라. 아빠도 곧 들어갈게.”
저는 서재로 들어갔습니다. 자리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이렇게 이마를 문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실지는 여러분과 하나님 사이의 일입니다. 그런데 무언가가 제게 말했습니다. “저 어미를 어떻게 할 것이냐?” 제가 말했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저는 별생각 없이 대답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아, 저는 저 어미를 죽이고 싶지 않습니다.” 그 음성이 말했습니다. “그런데 너는 어제 저 어미가 참된 어머니라고 설교하지 않았느냐?” 제가 말했습니다. “예, 맞습니다.” 그 음성이 말했습니다. “저 어미는 기도받을 차례를 기다리며 네 문 앞에 스물네 시간이나 누워 있었는데, 너는 거기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구나.” 제가 말했습니다. “저는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말했습니다. “도대체 내가 누구와 이야기하고 있는 거지?” 고개를 흔들며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음성이었어.’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오 하나님, 주님은 길 없는 하늘에서 독수리를 인도하십니다. 참새 한 마리도 주님께서 모르시는 사이에 길바닥에 떨어질 수 없습니다. 저 가엾고 아무것도 모르는 주머니쥐를 이 계단까지 인도하셨다는 말씀입니까?’ 제가 말했습니다. “주님의 어리석은 종을 용서해 주옵소서.”
제가 밖으로 나가니 어린 베키는 여전히 난간 너머로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어미가 서 있는, 아니, 누워 있는 곳으로 내려갔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주 하나님, 저를 용서해 주옵소서. 제가 이 어미 주머니쥐를 위해 기도하기를 원하셨고, 본능을 통해 여기로 인도하셨다면...” 그것은 동물이기에 혼이 없습니다. 아십니까? 그 주머니쥐는 많은 설교자들보다 하나님에 대해 더 잘 알았습니다. 어미는 거기 누워 있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주 하나님, 저를 용서하시고 이 어미가 낫게 해 주옵소서.” 제 앞에 지금 성경이 펼쳐져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인 실업인회 간행물에서 이 이야기를 읽으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전국 언론인 AP 통신에도 실렸습니다. 그 늙은 어미 주머니쥐는 일어나 새끼 아홉 마리를 모아 넣고 그 길로 걸어 나갔습니다. 꼬리를 옆으로 돌린 채 더없이 행복하게 걸어가다가, 대문에서 마치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듯 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새끼들을 데리고 숲으로 갔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지금도 숲에서 행복하게 함께 지내고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이 사실임을 아십니다. 오, 이것이 참된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세상은 참된 무언가를 보고 싶어 합니다.
오늘 저녁 여기 계신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그분의 사랑을 죄인에게 전하기를 바라며 여러분을 의지하고 계십니다. 남자든 여자든 여러분에게는 이런 면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작은 창조자입니다. 곁에 있고 싶은 사람을 만나 본 적이 있습니까? 그들이 자기 주위에 만들어 내는 분위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좋은 사람인데도 도무지 곁에 있고 싶지 않습니다. 그들이 사는 방식과 생각하는 방식이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 냅니다. 그것이 여러분이 살아가는 작은 분위기입니다.
마치기 전에 이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작은 옛이야기 하나가 떠오릅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저는 사냥을 좋아합니다. 예전에는 뉴햄프셔의 북부 숲에서 사냥하곤 했습니다. 아, 저는 숲에 들어가는 것이 참 좋습니다. 그 숲에는 하나님을 느끼게 하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사람이 꽃이나 나무나 흐르는 작은 시냇물을 보고 어떻게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자연 속에 살아 계십니다. 여기 버지니아에 있는 나무가 여름에 아름다운 잎을 내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또 무엇이 그 나무의 수액을 아래로 내려가게 하여 뿌리 속으로 들어가 겨울 동안 숨어 있게 합니까? 막대기에 물을 묻혀 보십시오. 그렇게 되는지 보십시오. 하나님이십니다!
지난여름 여러분이 심었던 그 작은 꽃, 지금은 죽은 그 꽃을 그렇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서리가 내려 꽃을 죽이자, 꽃은 작은 고개를 숙이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장례 행렬이 이어졌습니다. 시월의 비가 눈물을 흘리며 그 작은 씨앗을 묻어 주었습니다. 씨앗은 얼었습니다. 씨앗이 터져 속살이 흘러나왔습니다. 이제 씨앗도 속살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저 땅속 어딘가에 과학이 찾아내지 못하는 생명의 씨가 숨겨져 있습니다. 저 동쪽에서 떠오르는 해가 충분히 비추면 그것은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꽃을 그토록 사랑하셔서 꽃이 다시 살 길을 마련하셨다면, 자신의 형상대로 지으신 사람이 다시 살 길은 얼마나 더 확실히 마련하셨겠습니까! 하나님은 자연 속에 계십니다. 사랑 속에 계십니다.
저는 친구 한 사람과 북부의 흰꼬리사슴을 사냥하곤 했습니다. 그는 사냥을 잘했습니다. 저는 그와 사냥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는 발자국도 잘 추적했습니다. 그가 길을 잃을까 봐 걱정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하루에 30마일씩 산을 누비고 다녔습니다. 바람에 쓰러진 나무들을 넘어 어디로 가든 그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는 늘 사격도 잘하고 추적도 잘했습니다. 그와 함께 사냥할 수는 있었지만, 제가 본 사람 중 가장 못된 사람이었습니다. 마음이 아주 잔인했습니다. 저를 괴롭게 하려고 어린 암사슴과 새끼 사슴을 쏘곤 했습니다. 죄인들이 어떤지 아시지요. 그저 잘난 체하려고 그러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그렇게 합니다.
사람들은 제가 여자가 담배 피우는 모습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압니다. 그래서 마귀는 담배 피우는 여자들을 [불분명한 말] 제 주위로 보내 뽐내게 합니다. 뽐내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드러낼 뿐입니다. 그뿐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법에서 잡아도 된다고 허용하면 새끼 사슴을 쏘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러나 심술을 부리려고 줄줄이 쏘아 죽여서는 안 됩니다. 새끼 사슴을 잡는 것 자체는 괜찮습니다. 아브라함은 송아지를 잡았고, 하나님께서 그것을 드셨습니다. 그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그러나 악한 마음으로 그렇게 한다면... 그는 저를 괴롭게 하려고 그런 짓을 즐겼습니다. 어느 해 제가 그곳에 갔더니, 그가 작은 호루라기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것으로 어린 새끼 사슴이 우는 소리를 똑같이 낼 수 있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버트, 설마 그걸 쓰려는 건 아니겠지!” 그가 말했습니다. “아, 빌리, 정신 좀 차려. 자네 설교자들은 겁이 너무 많아.” 제가 말했습니다. “아니, 우리는 겁이 많은 게 아니라 그런 악한 마음이 없는 거야.” 그가 말했습니다. “정신 좀 차리라고.”
그날 우리는 정오쯤까지 사냥했습니다. 지금처럼 땅에 눈이 덮여 있었습니다. 발자국 하나도 보지 못했습니다. 점심때쯤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의 뒤에 있었습니다. 작은 공터가 나왔고, 그는 몸을 웅크리고 쪼그려 앉았습니다. (여기 남부 분들은 쪼그려 앉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시지요.) 저는 그가 점심을 꺼내려나 보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손에 무엇을 들고 있었겠습니까? 그 작은 호루라기였습니다. 저는 ‘설마 저걸 불지는 않겠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불었습니다. 놀랍게도 30야드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커다란 암사슴 한 마리가 일어섰습니다. 암사슴은 어미 사슴입니다. 얼굴에 굵은 핏줄이 보였고, 커다란 갈색 눈과 아름다운 귀가 보였습니다. 사슴은 일어서서 주위를 살폈습니다. 그 시간에 그런 일이 있는 것은 드뭅니다. 사냥꾼이라면 누구나 잘 압니다. 그가 다시 호루라기를 불었습니다. 그러자 사슴이 탁 트인 곳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사냥철에 그렇게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사슴의 본성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행동입니다. 사슴은 주위를 살폈습니다. 무슨 일이었습니까? 어미였던 것입니다. 자기 새끼가 곤경에 처해 있었습니다.
버트는 멋쩍게 씩 웃으며 저를 올려다보았습니다. 저는 ‘아, 버트, 설마 그러려는 건 아니겠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장전 손잡이를 뒤로 당겨 30.06 소총에 탄환을 밀어 넣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는 총을 내려 겨누었습니다. 그때 사슴이 사냥꾼을 보았습니다. 사슴은 움찔했습니다. 바라보더니,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습니다. 보통은 달아납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새끼가 곤경에 처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슴은 그것을 꾸며 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참되고 진실한 어미의 사랑이었습니다. 사슴은 사냥꾼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가 소총을 겨누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백발백중의 명사수였습니다. ‘버트, 설마 그렇게 하지는 못하겠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가까이 서 있었기에 ‘잠시 후면 저 사슴의 심장이 반대편으로 완전히 뚫려 나가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사슴은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죽음이 바로 앞에 있어도 여전히 어미였습니다. 그 안에 참된 사랑이 있었습니다. 새끼가 곤경에 처해 있었습니다. 목숨을 잃는 한이 있어도 사슴은 위험을 향해 걸어 나왔습니다. 그 새끼를 찾고 있었습니다.
저는 차마 볼 수 없었습니다. 어느 순간이든 그가 사슴을 산산이 쏘아 버릴 줄 알았습니다. 고개를 돌리며 생각했습니다. ‘오 하나님, 어떻게 저렇게 잔인할 수 있습니까?’ 저는 총소리가 나기를 기다리며 귀를 기울였습니다.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총은 발사되지 않았습니다. 돌아보니 총구가 이렇게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그가 돌아서서 저를 보았습니다. 총을 땅에 내던지더니 제 다리를 붙잡았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빌리, 이제 더는 못 하겠어. 자네가 아는 그 예수님께로 나를 인도해 줘.” 바로 그 눈더미 위에서 저는 그 잔인한 사람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했습니다. 오늘 저녁 그는 사랑스러운 성도입니다.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그가 참된 것을, 죽음 앞에서도 드러나는 참된 사랑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친구 여러분, 그것이 오늘 저녁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저녁 그리스도인들은 그래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드러내야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스도인으로서 여러분은 이 나라에서 가장 좋은 교회에 다닐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오셔서, 여러분을 광신자라고 부르는 사람들 앞에서도 굳게 설 수 있는 사랑을 주신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와 함께 설 것입니다. 그분을 치유자로 받아들인다고 해서 정신이 나갔다는 말을 들어도, 여전히 굳게 서서 하나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그 사랑이 여러분 안에 있습니까? 없다면, 죄인인 친구 여러분과 믿음에서 떠난 여러분, 하나님께서 그것을 주시려고 여기 계십니다. 머리를 숙이는 동안 생각해 보십시오. 기도하기 전에 한 가지 묻겠습니다. 진지하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오, 브래넘 형제님, 저는 오래전부터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라고 하실 것입니다. 오래전에 교회에 가입했을지도 모릅니다. 전에 성령 안에서 춤을 추었을지도 모릅니다. 전에 방언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교회의 어떤 신조에 따라 침례를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매일 밤 촛불을 켜고 묵주 기도를 드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정말 그분을 사랑하여, 그 사랑을 드러내기 위해 죽음을 무릅써야 하더라도 그분의 사랑을 드러낼 수 있습니까?
여기 계신 분들 가운데 참으로 아는 분들은 모두... 신실하게 대하십시오. 여러분은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습니다. 자기 마음에 그 사랑이 없다는 것을 알지만 하나님께서 주시기를 원하는 분들은 모두 그분께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150명, 200명, 아마도 300명쯤 손을 드셨습니다. “하나님, 제게 그 사랑을 주십시오. 어미 사슴이 새끼를 향한 사랑을 드러냈던 것과 같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제게 주십시오.”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하나님의 사랑은 그것보다 더 큽니까?” 하고 물으실 것입니다. 훨씬 더 큽니다. “어머니는 젖 먹는 자기 아기를 잊을지라도 나는 결코 너희를 잊을 수 없노라. 너희 이름이 내 손바닥에 새겨져 있느니라.” 그렇습니다. 로마의 못으로 새겨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아들을 주셨으니.” 그사이에 마음을 정하신 분이 더 있습니까? 여기 어린 친구,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선생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아직 손을 들지 않은 다른 분은 없습니까? “하나님, 제게 긍휼을 베풀어 주십시오.”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제가 손을 들면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하고 물으실 것입니다. 물론 있습니다. 진심이라면 사망에서 생명으로 바뀝니다. 선생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신실하게 대하십시오. 어린 친구,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위층에도 더 계시군요. 예,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주시기를... 저기 형제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제게 생명을 주십시오.”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교회 회...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자매님도, 그리고 저 자매님도요. “저는 교회 회원입니다, 브래넘 형제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아직 그 사랑이 없습니다. 제게 없으니, 있다고 생각해 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저는 참된 것을 원합니다.” 여기 벽 쪽에 계신 형제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밖의 현관에도, 어느 곳에서든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죄인인 친구든, 믿음에서 떠난 사람이든, 그저 차갑고 미지근한 교인이든, “긍휼을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하십시오. 선생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하려면 참된 남자다운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형제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보십니까?” 하고 물으십니까? 물론입니다. 그분은 여러분을 보고 계십니다. 젊은이,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열다섯 살이군요.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여기 젊은이,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그저 교회에 가입하려고 하고, 조금 외치거나 조금 춤추거나 방언을 하기도 합니다. 그것도 괜찮습니다. 저는 그것을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형제님, 거기에 하나님의 사랑이 함께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바울은 말했습니다. “대언들은 있다 해도 없어질 것이요, 타 언어들도 있다 해도 그칠 것이며 지식도 있다 해도 사라지리라. 그러나 완전한 것은 사랑이라. 그것이 오면 영원히 지속되리라.”
사람들이 찬송을 지으려고 하다가 정신이 이상해지기도 합니다. 아무도... 누군가 언젠가 이렇게 썼습니다. 바다를 잉크로 가득 채우고, 하늘을 양피지로 만든다 해도, 땅의 모든 줄기가 펜이 되고, 모든 사람이 글 쓰는 이가 된다 해도, 저 높은 하나님의 사랑을 기록하려면 바다의 잉크도 다 마르리라. 두루마리를 하늘 끝에서 끝까지 펼친다 해도 그 사랑을 다 담을 수 없으리라. 땅이 원자력에 흔들려 술에 취해 집에 돌아오는 사람처럼 비틀거릴 때, 바다가 울고 또 울어 사막이 되고, 그 울음이 하나님의 귀에 이른 것을 보게 되며, 별들이 빛나기를 거부할 때에도, 하나님의 사랑은 여전히 동일할 것입니다. 결코 실패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그토록 사랑하셔서 자신의 아들을 주셨습니다. 여러분이 구원받고 그분의 영으로 충만해지며, 성령님을 통해 그분의 사랑이 여러분 마음속에 전해지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여러분이 모든 사람을 사랑하게 만듭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기복을 겪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실 어떤 형편에 있든 지붕 꼭대기에 올라선 것처럼 마음이 높이 솟아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알기 때문입니다. 기도하기 전에 더 계십니까? 위층의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선생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친구분,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좋습니다. 머리를 숙인 채로 계십시오. 이 아래 계신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그저 ‘일 분만 더 기다려 볼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손을 드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하고 물으실 것입니다. 이런 뜻입니다. 여러분이 과학의 모든 법칙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과학은 여러분의 손이 아래로 처져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중력이 손을 아래로 붙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손을 위로 드셨습니다. 어떻게 하셨습니까? 여러분 안에 영이 있기 때문에 과학의 법칙을 깨뜨린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는 영이 있습니다. 그 영이 여러분이 잘못되어 있다고 판단했고, 여러분은 창조주께 손을 드셨습니다. 그분께서 모르신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내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올 수 없으며, 오는 모든 자에게 내가 영존하는 생명을 주고 마지막 날에 그를 일으키리라.” 진심으로 그분께 손을 든다면, 그것은 사망과 생명의 문제입니다.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결코 심판에 이르지 아니할 것이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느니라.” 손을 들고 말하십시오. “주님, 저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습니다. 제게 참으로 필요한 그 사랑, 아가포 사랑을 주십시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것을 받아들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주님께서는 하늘을 향해 들린 수많은 손을 보셨습니다. 기록하는 천사들이 가까이 서 있는 줄 확신합니다. 주님께서 가까이 계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들을 둘러 진을 치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천사들은 떠나지 않고 그대로 머뭅니다. 그곳에 진을 치는 것입니다.) “그분을 두려워하고 사랑하는 자들을 둘러 진을 치고 있느니라.” 이제 주님,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오늘 저녁 메시지의 열매로 받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들이 평안하고 신실하게 일생을 살아가도록 이끌어 주옵소서. 언제이든 죽음이 닥치는 그날에는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들의 혼을 요르단강 건너편, 하나님의 품으로 데려가게 하옵소서. 그곳에서 영원히 지켜질 것입니다. 주님, 허락해 주옵소서.
그들을 돌보아 주옵소서. 그들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들은 이 메시지의 열매이며, 주님께서는 그들을 사랑의 선물로 주님의 아들, 주 예수님께 주고 계십니다. 오늘 저녁 이 집회에 주님의 사랑이 보내졌습니다. 그 사랑으로 죄인들과 믿음에서 떠난 사람들이 울며 손을 들었습니다. 이제 그들을 그리스도께 드리옵소서. 그들은 사랑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영존하는 생명을 주고 마지막 날에 그들을 일으키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오늘 밤부터 그들에게 사랑이 드러나게 하옵소서. 방금 이야기한 그 늙은 어미 사슴처럼, 하나님의 참된 사랑이 드러나게 하옵소서. 주님, 허락해 주옵소서. 주님의 아들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들을 주님께 맡깁니다. 아멘.
[녹음 공백.]... 성경은 그분께서 지금, 바로 지금 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을 느끼실 수 있는 대제사장이시라고 말씀합니까? 그분께서 “조금 있으면 세상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나를 보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너희”는 누구입니까? “세상”은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너희”는 누구입니까? 그분의 교회입니다. “너희는 나를 보리니, 내가”—여기서 ‘내가’는 인칭대명사입니다—“너희와 함께, 심지어 너희 안에, 세상의 끝까지 있으리라.” 이것을 아시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내가 하는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 여러분 모두 그것을 믿으십니까? 좋습니다. 그러면 그... 그분은 이방인 앞에서는 그 표적을 단 한 번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앞에서만 행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것은... 그때는 유대인 시대의 끝이었습니다. 지금은 이방인 시대의 끝입니다. 그것이 메시아로서 그분의 표적이었습니다.
그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다면, 그때 하신 것과 똑같은 일을 지금도 하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때 그렇게 하신 것이 잘못이었던 셈입니다. 어떤 상황이 생겼을 때... 주의 깊게 들으십시오. 어떤 상황이 생겼을 때 하나님께서 처음 행동하신 방식대로 매번 동일하게 행동하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처음 행동하신 것이 잘못이었던 셈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그분께서 그때 자신을 그런 방식으로 알리셨고, 이방인들에게도 그렇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면... 역사를 살펴보십시오. 지금까지 이런 일은 없었습니다. 이방인 여러분, 여러분은 마지막 부르심을 받고 있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이제 나머지는 주님께 달려 있습니다. 저는 주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을 뿐입니다. 오늘 저녁,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신 하나님의 아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으로 자신을 나타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허락해 주옵소서. 그리고 마지막 때에, 오늘 저녁 여기 있는 모든 혼을 안전하게 돌보시고 죽음의 강을 건너게 하옵소서. 마지막 날들에 우리 주님과 함께 일어나게 하시고, 우리가 그분과 함께 앉고 함께 살며 영원히 그분과 함께 있게 하옵소서. 이제 우리는 주님께서 여기 계심을 압니다. 주님께서 “어디든지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함께 모인 곳에 내가 그들의 한가운데 있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 오늘 저녁 여기서 주님께서 계심을 나타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아멘.
어디부터 부르고 있었습니까? 뭐라고요? Y요? 좋습니다. 기도 카드 Y입니다. 우리가 부른 것이, 첫날 밤에는 25번까지, 그다음에는 50번까지, 또 30번인가 그랬던 것 같습니다. 자... Y입니다. 기도 카드 Y입니다. 작은 카드에 Y가 적혀 있습니다. 불리지 않더라도 카드를 가지고 계십시오. 차례가 올 것입니다. 어디부터 시작할까요... 오늘 밤은 카드 전체에서 이곳저곳 건너뛰며 골고루 섞어서 불러 보겠습니다. 여기서 몇 분, 저기서 몇 분씩 부르겠습니다. 몇 장 나누어 주었습니까? 100장이군요. 좋습니다. 자, Y 1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1번을 가진 분은 누구입니까? 기도 카드 Y 1번을 가진 분이 있습니까? 손을 들어 주십시오. 어디 계십니까? 자매님, 제가 있는 이곳으로 와 주시겠습니까? Y 2번,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Y 2번. 저 뒤에 계신 자매님이군요. 담당 청년들이 카드를 가져와 모두 섞은 다음 회중에게 나누어 줍니다. 오래전부터 오신 분들, 전에 이곳에 오신 분들은 우리가 어떻게 하는지 아십니다. 우리가 여기로 내려와 카드를 전부 섞고, 원하는 분 누구에게나 나누어 줍니다. 매일 밤 바로 이곳에 올 때까지는 기도 줄을 어디서 시작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때 여기서 시작하기도 하고 저기서 시작하기도 하며, 이렇게 모두 섞어서 부릅니다.
좋습니다. Y 2번, 3번은요? Y 3번,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3번, 저 남자분이군요. 4번,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Y 4번? 저 뒤쪽에 계신 신사분이군요. 선생님, 이리 와 주시겠습니까? 좋습니다. 보십시오. 건물 곳곳에 계십니다. Y 5번,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Y 5번. 바로 저 끝에 계시군요. 선생님, 이리 오십시오. 좋습니다. 이제 여기서 멈추고 다른 번호로 가겠습니다. Y 50번으로 가겠습니다. Y 50번을 가진 분은 누구입니까? Y 50번, 손을 들어 주십시오. 건물 안 어디든 계십니까? 뒤쪽이요? 누가 뒤쪽에 있다고 하시네요. 일어서... 아, 여기 계시는군요. 좋습니다, 선생님. 이리 오십시오. Y 50번, Y 51번은요? 좋습니다. Y 51번, Y 52번,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52번, 53번, 53번이요? 좋습니다. 바로 이리 오십시오. 54번은요? Y 54번, 55번은요? Y 55번, 손을 들어 주십시오. 보이지 않네요. 좋습니다. 그러면 50번대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이제... Y 95번으로 해 보겠습니다. Y 95번을 가진 분은 누구입니까? 손을 들어 주십시오. Y 95번. 여기군요. 좋습니다. 어디 계시든 나오십시오. 96번? 96번? 좋습니다. 97번? 97번, 나와 주십시오. 98번? 99번? 100번? 이렇게 하면 전체에 걸쳐 골고루 섞이게 됩니다... 누가 서든 상관없습니다. 다만 누군가를 이 강단으로 모시려는 것입니다.
이제 한 가지 묻겠습니다. 제가 서 있는 이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아십니까? 저는 복음 설교를 전했습니다. 신유에 관한 내용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 있는 혼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을 구원받게 하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서게 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여기 있는 이유입니다. 신유는 여러분의 생명보험 증서에 딸린 혜택과 같습니다. 하나의 혜택입니다. 다윗이 말했습니다. “오 내 혼아, 주를 찬송하며 그분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이것을 아시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그분이 무엇을 하십니까? “네 모든 불법을 용서하시고 네 모든 질병을 고치시는 분.” 그렇게 말했습니까? 그것은 거기에 따르는 혜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여러분 중 얼마나 많은 분이 이것을 믿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분이 동일하시다면, 원칙과 권능과 행동과 말씀, 모든 면에서 어제와 오늘이 같아야 합니다. 이것을 아시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좋습니다.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이제 잠깐만 아주 경건하게 계셔 주십시오. 움직이지 마시고 아주 조용히 앉아 계십시오. 여기 기도 카드가 없지만 하나님께서 고쳐 주시기를 원하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기도 카드가 없는 분들은 손을 들어 주십시오. 어디가 어디이고 누가 누구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좋습니다. 이쪽을 봐 주십시오. 주의 천사의 기름부음이 임하면, 그리스도께서... 이제 그 사진을 보신 분이 얼마나 됩니까? 여기 사진이 있습니다. 좋습니다. 그 사진은 여기 워싱턴 D.C.에 있습니다. [불분명한 말]. 초자연적 존재가 사진에 찍혔다는 사실을 FBI나 그 밖의 어떤 기관이 과학적으로 입증한 경우는 이것뿐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을 인도한 불기둥... 그 불기둥이 그리스도였다는 것을 아시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성경을 읽는 여러분 말입니다. 그분께서 땅에 계실 때 “나는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며 하나님께로 돌아가노라”라고 말씀하신 것을 아시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그것을 아시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그분께서 하나님께로 돌아가셨을 때, 부활하신 뒤에 바울이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그분을 만났습니다. 그분은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다시 불기둥이셨습니다. 바울의 눈을 멀게 한 빛이셨습니다. 맞습니까? 베드로가 기도하고 있을 때 그분은 빛으로 감옥에 들어오셔서 그를 구출하셨습니다. 앞에 있는 문들을 열어 그를 데리고 나오셨습니다. 맞습니까?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그것은 무엇을 하겠습니까? 어떤 영이든, 어떤 것이든, 어떤 생명이든 자신이 무엇인지 증언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기서 사진을 보고 있는 그 하나님의 천사, 그 하나님의 천사가 그리스도께 속한 것이라면, 그리스도의 일들을 나타낼 것입니다. 이것을 아시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그리스도의 일들을 나타낼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일들을 나타내지 않는다면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제게 존 딜린저의 영이 있다면, 저는 총을 가지고 다니는 악명 높은 인물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영이 있든, 바로 그것이 여러분이 누구인지 증언합니다.
제가 여러분을 고칠 수 있다고 말한다면 잘못 말하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을 고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입니까? 제가 가진 것은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은사입니다. 누군가 제게 손을 얹어 주어서 받은 은사가 아닙니다. 그런 식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선물들과 부르심에는 뜻을 돌이키는 일이 없습니다. 그것들은 태어날 때부터 주어져 평생 함께합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모세는 선지자로 태어났습니다. 침례자 요한은 태어나기 712년 전부터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네가 네 어머니의 태에 잉태되기도 전에 내가 너를 알았고, 너를 거룩히 구별하였으며, 너를 민족들을 향한 선지자로 세웠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선택과 부르심입니다. 여러분이 다른 사람보다 더 낫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같습니다. 우리는 그저 자녀들입니다. 다만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에게는 이 일을, 어떤 사람에게는 저 일을 하도록 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택하신 자리를 택하면, 자신을 내어 맡길 수 있고 그 영이 여러분을 통해 일할 것입니다. 여기 계신 사역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분들은 부르심을 받은 설교자들입니다. 이분들이 이곳에 올라와 설교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분들은... 저는 설교자가 아닙니다. 저는 교육을 받지 못했으므로 설교자라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저기 계신 몇몇 분은 이곳에 올라와 설교하실 수 있고, 그 설교에는 영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께 자신을 내어 맡기는 것입니다. 이분들에게는 그렇게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는 무엇입니까? 사도들입니다. 그다음은 선지자들, 그다음은 교사들, 그다음은 복음 전도자들, 그다음은 목사들입니다. 누구나 그것을 압니다. 이것들이 교회의 직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셨습니다. 이제 우리의 주장이 옳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으며, 이것이 자신을 내어 맡겨 그분께서 일하시도록 하는 은사라면, 그분은 자신이 누구인지 증언하실 것입니다. 여기 한 여인이 서 있습니다. 저는 생전 이분을 본 적이 없습니다. 여기 계신 분 중 저와 전혀 모르는 사이인 분들은 손을 들어 주십시오. 전혀 모르는 사이여서 제가 여러분을 모르는 분들입니다. 기도 줄에 계신 분 중 제가 모르는 분들은 모두 손을 들어 주십시오. 좋습니다. 보십시오. 전혀 모르는 사이입니다. 아는 분이 한 분도 없습니다. 이 여인이 손을 들었으니 저도 손을 들겠습니다. 우리는 만난 적이 없습니다. 잠깐 이 앞으로 걸어 나오십시오. 회중이 보시기를 원합니다. 이것은 마귀가 하듯 어두운 방에서 하는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 모두 앞에서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빛의 하나님이십니다. 빛 가운데 사십니다. 그분은 태워 버리는 불이십니다.
이 여인과 저는 서로 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이분을 모르고, 이분도 저를 모릅니다.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왜 시간을 끌고 계십니까?” 하고 물으실 것입니다. 주의 천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분께서 기름을 부어 주시지 않으면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시는 분은 그분입니다. 말씀에 대해 이야기하던 제가 영께 자신을 내어 맡기면 역사가 일어납니다. 제가 이 여인에게 말한다면... 이분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일 수도 있고, 위선자일 수도 있고, 매춘부일 수도 있고, 성도일 수도 있고, 병든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분에 대해 아무것도 모릅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분을 아십니다. 이분이 어떤 사람이든, 제가 다가가서 “자매님, 병이 있으시군요”라고 하고, “예”라는 대답을 듣고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나으실 것입니다”라고 한다면, 이분에게는 제 말밖에 없습니다. “추측해서 말할 수도 있겠지”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이분의 과거 삶으로 돌아가 무언가를 말씀해 주신다면, 이분이 아는지... 그것이 맞는지 아닌지 이분 자신이 알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임이 틀림없습니다. 틀림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시겠다고... 그분께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참되게 경배하던 사람들은 모두 그분께서 그렇게 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었습니다.
마침내 사도들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습니다. 주님께는... 주님은 모든 것을 아시므로 아무도 주님을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으로,” 곧 그들의 생각을 알아차리고 이런 일들을 아시는 것으로, “우리는 주님께서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았음을 압니다.” 예수님께서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모든 일을 행하신 뒤에 말입니다. 이제 이 여인은 이것을 알고 있습니다. 주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우물가에서 하셨던 것과 똑같은 일을 여기서 행하신다면, 여러분 중 얼마나 많은 분이 마음을 다해 믿으시겠습니까? 좋습니다. 이제 바로 이 뒤쪽에 서 주십시오. 제 목소리가 얼마나 큰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저 장비를 조작하시는 분은 잘 살펴 주십시오. 성령의 기름부음이 임하면 제 목소리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없습니다... 다른 세계에 있으면서 말하는 것이므로 알 수가 없습니다.
아주 경건하게 계십시오. 이 여인이 판단하도록 하십시오. 혹시 누구든... 여기 이 여인을 아는 분이 있습니까? 이 건물 안에 아는 분이 계십니까? 예, 저 뒤쪽에 아는 분들이 계시는군요. 좋습니다. 이분을 아는 분들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아실 것입니다. 이제 기도합시다. 아주 경건하게 계십시오. 제가 어떤 자리에 서 있는지 아시지요. 저는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대표하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과 함께 머물며, 그분을 믿고 신뢰하도록 용기를 드리려고 합니다. 그분께서 이 일을 하시는 이유는 그것뿐입니다. 꼭 하셔야 해서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말씀이 성취되도록 하십니다. 그때 치유하신 것도 꼭 하셔야 해서가 아니라 말씀이 성취되도록 하신 것입니다. 지금도 같습니다.
물론 손에 성경을 들고 계신 모습이 보입니다. 물론 그것으로 시늉만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이분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입니다. 믿는 분입니다. 저는 이분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물에서, 우물에서, 아니, 우물가의 여인에게 말씀하셨던 것처럼... 방금 무언가가 일어났다는 것을 느끼고 계십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자매님, 그 사진을 보셨습니까? 지금 그렇게 느끼게 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회중이 볼 수만 있다면, 이 여인에게... 이분과 저 사이에 빛이 서 있습니다. 이제 이분이 제게서 천천히 멀어져 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몹시 심한 신경 질환으로 고통받고 계시며, 그것을 위해 제가 기도해 주기를 원하십니다. 사실입니다. 지금 보니 이 여인이 몸을 떨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보았습니다. 그런 일이 자주 있습니다. 그런 상태입니다... 얼마 동안 그렇게 지내셨습니다. 갱년기에 시작되었습니다. 시작될 때는 지금보다 젊어 보이는 여인이셨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잠깐만요. 조금 더 이야기하며 다른 것이 있는지 보겠습니다. 예, 그것 말고도 옆구리에 통증을 일으키는 문제가 있고, 몸 안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그 내부의 문제는 장에 생긴 질환입니다. 그것 때문에 수술을 받으셨는데, 그것이 통증을 일으켰습니다. 이 도시 분이 아니시군요. 다른 도시에서 오셨습니다. 리치먼드입니다. 집으로 가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낫게 해 주십니다. 그분께서 과거의 일을 아셨다면 앞으로 있을 일도 분명히 아실 것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경건하게, 아주 경건하게 계셔 주십시오. 자리에 그대로 앉아 기도해 주십시오. 자매님,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입니까? 그렇습니까? 처음 만나는 것이군요. 하나님은 우리 두 사람을 모두 아십니다. 성경에서 그분의 아들 예수님을 통해 하셨듯이 제게 나타내 주신다면... 그분의 아들은... 죽으셨습니다. 그것은 그 영이 저와 여러분 같은 죄인들에게 다시 임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고, 그 일을 계속할 수 있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믿으십니까? 그분께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라 가지가 열매를 맺습니다. 그리고 가지는 포도나무 안에 있는 것과 똑같은 생명을 나타낼 것입니다. 사실이지요? 그러므로 그분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면 그것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여기 앞쪽, 가슴에 통증을 일으키는 것으로 고통받고 계십니다. 오른쪽 아래에 있습니다. 쓸개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뿐 아니라 위장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위산이 지나치게 많이 분비되기 때문입니다. 이 도시 분이 아니시군요. 이 주에서 오신 것도 아닙니다. 그곳은... 메릴랜드입니다. 이분은... 성함은 베시 워딩턴 부인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며 기뻐하고 즐거워하십시오. [불분명한 말]. 믿으십니까? 하나님을 믿기만 하십시오. 아주 경건하게 계십시오. 믿기만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허락하실 것입니다.
저기 회중석에 계신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쪽을 바라보십시오. 의심하지 마십시오. 이제 미신적인 생각을 떨쳐 버리고 이렇게 말하십시오. “주 하나님, 저 설교자는 방금 주님의 말씀에 따라 주님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고 제게 말했습니다. 저는 저 위에 있지도 않고 기도 카드도 없습니다. 제게는 기도 카드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님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대제사장이시며, 저의 연약함을 느끼시는 주님께 손을 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님, 저는 저분의 말이 참됨을 믿습니다. 이제 주님께 나아가오니, 주님께서 동일하신 분임을 제게 보여 주십시오. 그리고 주님께 이렇게 청하겠습니다. 청해... 브래넘 형제님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돌아서서 여기 회중석에 앉아 있는 저에 대해 무언가 말해 달라고요.” 이 건물 어디에 계시든, 이제 신실하게 그렇게 하며 그분께서 하시는지 보십시오. 신실하게 대하기만 하십시오. 의심하지 마십시오.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아십니다. 제게는 처음 보는 분이십니다. 제가 아는 한 생전 선생님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두 사람을 모두 아십니다. 주 하나님께서 선생님의 문제가 무엇인지 제게 나타내 주신다면, 선생님은 받아들이시겠습니까? 누군가 그분께 손을 댔습니다. 이분에게 있는 영이 여기 있는 다른 사람에게도 있습니다. 아이, 어린 남자아이입니다. 그 아이의 모습이 여기 계속 나타납니다. 탈장이 두 군데 있습니다. 그 아이는 바로 저기에 앉아 있습니다. 선생님도 탈장이 있으시군요. 정확히 맞습니다. 보십시오. 그 영은 그렇게 하면 들키지 않고 넘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저 악귀들이 서로를 끌어당기며 도움을 청하려고 소리치는 것이 보입니까? 저는 그 검은 줄기를 따라가서 보았습니다.
선생님은 저기 앉아서 기도하고 계셨지요? “하나님께서...”라고 하셨습니다. 바로 제가 말씀드린 대로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의심하지 말고 믿으십시오. 그렇습니다, 선생님. 탈장이 있으십니다. 그리고 제가 어딘가를 보니... 수술인가 무언가를 받고 계신 것 같습니다. 전립선 문제입니다. 그 때문에 수술을 받으셨습니다. 전립선 문제입니다. 이 고장 분도 아니십니다. 제게는 메릴랜드로 보입니다. 선생님 곁에서 선생님을 위해 기도하는 남자 한 분이 보입니다. 키가 크고 몸이 굽었으며 안경을 쓴 분입니다. 선생님은 사역자이시고, 선생님을 위해 기도하는 분은 형제분인데 그분도 사역자입니다. 선생님은 D. T. 파크 목사님이십니다. 맞습니다. 선생님, 가십시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자매님, 방금 자기 안에서 하나님의 영을 느끼신 분 말입니다. 기도해 오신 그 고혈압 말입니다. 바로 그때 믿으십시오. [불분명한 말] 기름부음, 그 고혈압이 사라질 것입니다. 이분은 무엇을 만졌습니까? 누구를 만졌습니까? 대제사장이십니다. 제가 아닙니다. 저와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믿으십니까? 이분은 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을 느끼실 수 있는 대제사장께 손을 댔습니다. “네가 만일 믿을 수 있거든 모든 것이 가능하니라.”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인 것 같습니다. 처음 만나는 것이지요? 자매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것이 진리라고 믿으십니까? 예? 하나님께서 그 당뇨병을, 그 마비된 상태를 고쳐 주시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제 일어서서 나음을 받으십시오. 믿으십니까? 모든 것이... 믿기만 하십시오.
선생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고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면... 제가 선생님을 고쳐 드릴 수는 없습니다. 도와드리는 것은... 제가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는다면 참으로 못된 사람일 것입니다. 오늘 저녁 제가 설교해 온 그 사랑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기 전에 저부터 가서 그 사랑을 받아야겠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자신의 교회에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분께서 제게 아무리 많은 기름부음을 주셨더라도 선생님이 믿지 않으시면 결코 역사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을 하는 것은 제가 아닙니다. 선생님 자신의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선생님의 믿음이 이 일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안에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분께는 영이 한량없이 계셨지만, 제게는 작은 한 숟갈만큼 있을 뿐입니다. 바다에서 한 숟갈의 물을 떠낸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 한 숟갈 속의 성분은 온 바다에 있는 것과 똑같습니다. 같은 종류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셨고, 저는 은혜로 구원받은 죄인입니다. 그분께서 이 일을 하겠다고 약속하셨고, 그 말씀을 지키십니다.
이분은 자신의 어떤 상태를 위해 제가 기도해 주기를 원하십니다... 눈에 지장을 주고 있습니다. 피부에 질환이 생겨 온몸에 퍼졌고, 눈에까지 번져 눈에 지장을 주고 있습니다. 사실입니다. 이 고장 분도 아니십니다. 어떤 곳에서 오셨는데... 노스캐롤라이나입니다. 성함은 C. T. 캠벨 자매님이십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 나으십시오. “네가 만일 믿을 수 있거든 모든 것이 가능하니라.”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처음 만나는 것 같은데요? 저는 전에 선생님을 본 적이 없지만 하나님은 선생님을 아시지요? 저를 그분의 종으로 믿으십니까? 예, 선생님, 여기서 하고 계신 일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선생님께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었습니다. 지금 몸이 아주 약하고, 지난 한두 주 사이에 수술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암이었고, 선 조직에 생긴 암이었습니다. 믿으십니까? 그것뿐 아니라 선생님 곁에 여인이 나타납니다. 오늘 저녁 여기 와 있습니다. 지금 저를 끌어당기는 것이 느껴집니다. 선생님의 아내입니다. 몸이 온통 부어 있고, 자신도 암일까 봐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가서 아내에게 손을 얹으십시오. 두 분 모두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음을 받으십시오. “네가 만일 믿을 수 있거든 모든 것이 가능하니라.”
믿고 계십니까? 안녕하십니까? 겉옷을 보니 메노나이트 형제님이신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굳게 서 계신 것을 귀하게 여깁니다. 제게는 메노나이트 친구가 수백 명 있습니다. 혹시 폴 보이드를 아십니까? 모르시는군요. 그는 제 아주 좋은 친구입니다. 그 밖에도 메노나이트 형제들이 많이 있습니다. 잊을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어느 날 밤 포트웨인에서 제가 집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메노나이트 소녀가 피아노를 치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몸이 불편한 어린 남자아이를 제게 데리고 왔습니다. 성령님께서는 그 아이에게 장애를 일으킨 원인에 대해 말씀해 주고 계셨습니다. 성령님께서 아이가 나았다고 선포하시는 동안, 그 메노나이트 소녀는 “위대한 의사께서 이제 가까이 계시네”를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어린아이는 제 품에서 뛰어내려 강단 밖으로 달려갔고, 어머니는 기절했으며, 소녀는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그 상아 건반들은 계속해서 “위대한 의사께서 이제 가까이 계시네, 동정하시는 예수님”을 연주했습니다. 수백, 또 수백 명이 제단으로 몰려나왔습니다. 그리스도는 지금도 살아 계십니다.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두 사람을 모두 아십니다. 주 하나님께서 선생님이 그분께 무엇을 원하는지 제게 나타내 주신다면, 그것을 주시리라고 믿으시겠습니까?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러면 구하시는 것을 받으시기를 기도합니다. 선생님은 자신을 위해 여기 오신 것이 아닙니다. 여기 없는 다른 사람을 위해 오셨습니다. 여자분인데, 암으로 죽어 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입니다. 이제 믿으십니까? 구하신 것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마음을 다해 믿으십니까? 잠깐만요. 회중석에서 무언가가 일어났습니다. 거기에 [불분명한 말] 있는 것 같습니다. 예, 일어났습니다. 바로 이쪽에 앉아 있는, 얼굴이 좀 붉은 이 여인이 기도하고 있습니다. 부비동에 문제가 있고, 주님께서 고쳐 주시기를 원합니다. 자매님, 그분을 치유자로 받아들이십니까? 그러십니까? 그렇다면, 믿을 수만 있다면, 그분께 구하신 것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기입니다. 그 여인이 놓친 것 같습니다. 천사가 곧바로 그분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끝에 앉아 있는 다른 분에게로 갑니다. 대장염이 있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대장염을 고쳐 주시리라고 믿으십니까? 좋습니다. 치유를 받으셨습니다. 이제 그것이 떠나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갔습니다. [불분명한 말].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의심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모두 치유받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믿으십니까? 그 여인 바로 뒤, 맨 뒷줄에서 세 번째 자리에 앉아 기도하고 계신 분 말입니다. 목에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고쳐 주시리라고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일어서십시오. 치유를 받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담대히 요청합니다. 이것을 믿으십시오.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이제 이렇게 하십시오. 서로에게 손을 얹으십시오. 여기 있는 우리 모두 함께 기도합시다. 모두 다요. 지금 손을 얹으십시오. 그렇습니다. 경배하는 마음으로 임하십시오. 주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마귀를 정죄합니다. [불분명한 말]. 사탄아, 여기서 나와라. 이 사람들을 내버려 두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