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맥퍼슨 자매님은 저 작은 문을 지나 이 단상으로 나오시곤 했습니다. 지금도 이곳에는 그분을 기억하는 마음이 살아 있으리라고 확신합니다. 저는 사흘쯤 짧은 휴가를 내어 플로리다로 낚시하러 갔습니다. 목을 좀 쉬게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아주 특별한 일을 겪었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그 이야기를 여러분에게 좀 전해 드리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오키초비 늪지 깊숙이 들어가 낚시를 했고, 저는 물고기를 꽤 많이 잡아 꿰미에 꿰었습니다. 저와 함께 간 형제님들 가운데 한 분이... 조지아주 티프턴에서 오신 에번스 형제님이었습니다. 그분에게는 그 늪 근처에 살면서 늘 그곳에서 낚시하는 형제가 있었습니다. 그분은 오래전부터 제게 한번 내려오라고 권했습니다. 최근에 제가 시오 존스 형제님 댁에 있었는데, 그날 아침에는 에번스 형제님과 함께 아침 식사를 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방에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에번스 형제님이 수렵 감시원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물고기가 든 자루를 숨기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에번스 형제님, 기분을 상하게 해 드리려는 건 아닙니다만, 형제님이 낚시하시는 곳은 늪지 수로 같은 곳이지요?” 그분이 “그렇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얼마 전에 형제님과 아드님 두 분, 또 다른 한 사람이 거기에 갔었지요. 물고기가 자루 가득 있었는데, 수렵 감시원에게 붙잡힐까 봐 두려워서 그곳을 빠져나오기까지 물고기를 다섯 번이나 숨기셨습니다.” 그분이 “맞습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형제가 그보다 한두 주 전에... 아니, 한두 달 전에 낚시하러 갔다가, 죄송합니다, 작은 땅방울뱀에게 물렸습니다. 이곳에 있는 다이아몬드 무늬 방울뱀과는 조금 다르지만, 독이 아주 강한 뱀입니다. 그분의 몸이 아마 두 배로 부어서 치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그리스도인이 아닌 죄인이었습니다. 그래서 몹시 고생했습니다. 그분이 다시 나왔을 때도 다리에는 깁스를 하고 있었습니다. 뱀에게 물린 곳이... 너무 심해서 다리를 절단해야 할지도 모른다고들 했습니다.
그 뒤 우리가 그곳에 나가 있을 때, 그분의 그리스도인 형제가 제 옆에서 낚시하고 있었습니다. 제 낚싯줄에 큰 물고기가 걸렸는데, 낚싯대는 아주 작은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물고기를 끌어올리려고 늪지 수로를 오르내리며 물고기와 씨름하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물고기의 힘을 빼 놓고 수초 가장자리까지 끌어왔을 때, 에번스 씨가 말했습니다. “잠깐만요, 브래넘 형제님.” 그러더니 신발을 벗고 바짓단을 걷어 올리며 “제가 잡아 드리겠습니다.” 하고는 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들어서자마자 커다랗고 녹슨 빛깔의 방울뱀이 그분을 물었습니다. 그분은 비명을 지르며 둑으로 뛰어나왔습니다. 다리의 뼈가 얼음으로 변한 것 같은 느낌이 들 만큼 몹시 아프다고 했습니다. 뱀에게 물려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물리자마자 몸에 이상이 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분을 업고 2마일을 가야 한다면, 나보다 훨씬 덩치가 큰 분인데, 어떻게 이 늪에서 모시고 나가지?” 그때 이 성경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들이 뱀과 전갈의 머리를 밟으리라.” 그래서 제가 “잠깐만요, 에번스 형제님.” 하고, 두 독니가 박힌 자리에 손을 얹었습니다. 방울뱀에게 물린 두 구멍에서는 피가 조금씩 배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주님의 말씀... 주님의 말씀에는 그들이 뱀의 머리를 밟아도 해를 입지 않으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제가 그 말을 하자마자... 주님께서 어디엔가 곁에 서 계셨던 것이 분명합니다. 말씀을 인용하는 소리를 들으시자 모든 통증이 즉시 사라졌습니다. 우리는 그날 남은 시간 내내 낚시를 했습니다. 그날 밤 돌아가자 그분의 형제가 말했습니다. “어서 병원으로 가. 언제 갑자기 독이 퍼질지 몰라.” 그러자 그 그리스도인 형제는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나를 돌보셨다면, 끝까지 지켜 주실 거야.”라고 했습니다. 그 뒤로도 지금까지 아무런 이상이 없었습니다. 주 예수님께서 그 일을 행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데는 유익이 있습니다. 죄인은 뱀에게 물려 거의 죽을 뻔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물리고도 치료조차 받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책에 있는 모든 말씀이 참됨을 보여 줍니다. 모든 말씀, 모든 장, 모든 절, 모든 줄이 진리입니다.
이곳 성전의 여러분이 저희에게 참 잘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하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보다 더 바랄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떤 날 저녁에는 회중에게 말씀을 전하며 믿음을 세워 드리고, 그다음에는 기도받을 줄을 세워 병자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영께서 무엇을 하라고 하시든 그대로 하도록 힘쓰겠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제가 이제 막 도착했고 피곤하기도 해서, 여러분에게 말씀을 좀 전하려고 합니다. 오래 붙잡아 두지는 않겠습니다. 이렇게 집회를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만일... 저는 로스앤젤레스가 옛날과 같은 부흥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아직 로스앤젤레스를 놓아 버리지 않으셨다고 늘 믿어 왔습니다. 지금도 이곳에 그분의 손길이 머물러 있습니다. 여기에는 많은 것이 얽혀 있습니다. 이 성전만 해도 기도와 눈물과 희생 위에 세워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것들과, 오늘날에도 그것을 지키려고 수고하는 남녀들을 잊으실 수 없습니다. 방문하신 여러분, 저와 함께 그분들에게 어깨를 보태 드립시다. 병들고 고통받는 사람들과 죄인들을 데려오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합시다. 죄인들이 구원받게 하면 부흥이 일어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병자를 치유하신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것은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분께서 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먼저 시작하려는 것은 죄인들이 구원받게 하는 일입니다.
자, 말씀을 읽기 전에 말씀을 기록하신 분께 말씀드립시다. 함께 고개를 숙여 주십시오. 지극히 은혜로우신 아버지, 오늘 저녁 이 예배를 성경의 순서에 따라 시작할 수 있음을 아는 것은 크나큰 특권입니다. 성경에서 우리는 전투에 앞서 음악이 울려 퍼졌다는 것을 읽습니다. 그들이 노래를 연주하고, 그 뒤를 언약궤가 따르고, 그다음에 전투가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저녁에도 참으로 아름다운 음악이 연주되고 찬송이 불렸으니, 이제 우리가 말씀을 전하려 합니다. 그리하여 전투가 시작되게 하옵소서. 오 하나님, 하나님의 천사들이 이 건물의 구석구석과 모든 통로와 모든 좌석에 자리를 잡게 하옵소서. 옛날과 같이 죄를 깨닫게 하는 역사가 임하여, 죄인으로 이 건물에 들어온 사람이 한 사람도 그대로 나가지 못하게 하옵소서. 구원받지 못한 채 들어오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왕국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옵소서.
주님, 병들고 궁핍한 이들, 고통을 겪으며 몸에 주님의 은혜로운 치유의 권능이 절실히 필요한 이들도 기억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들은 주님을 위해 일하기를 원합니다. 분명 많은 약속을 하며 자신을 주님께 헌신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헌신하면서 어떤 일들을 하겠다고 큰 약속을 드렸을 것입니다. 주님, 그들의 기도를 들어 주옵소서. 이 시간이 그들에게 주님께서 찾아오시는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이 성전과 이곳이 지향하는 모든 일과 이곳의 일꾼들을 복 주옵소서. 주님, 이 성전을 세운 분이 살아서 이 건물을 드나들던 시절에 있었던 것 같은 옛 부흥을 보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분이 오늘 저녁 이 소리를 듣고 이 광경을 내려다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분이 사랑하고 사람들과 함께 수고했던 이 도시에서 또 한 번 부흥이 일어나는 것을 보는 것이 그분의 마음속 소원일 것임을 확신합니다. 주님, 허락해 주옵소서. 우리가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이며 주님께 찬양을 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옵나이다. 아멘.
여기 제 마음에 떠오른 말씀 한 구절을 읽고 싶습니다. 아주 익숙한 성경 구절입니다. 아주 어린 유치원 아이도 안다고 할 만한 말씀이지요. 요한복음 3장 16절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아니하고 영존하는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리고 시편 22편 11절에서 이 말씀을 읽겠습니다. 나를 멀리하지 마옵소서. 고난이 가까이 있으나 도울 자가 없나이다. 오늘 저녁에는 다섯 단어를 본문으로 삼아 잠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는 “사시고”이고, 둘째는 “죽으시고”입니다. 셋째는 “묻히시고”입니다. 넷째는 “부활하시고”입니다. 다섯째는 “오시고”입니다. “사시고, 죽으시고, 묻히시고, 부활하시고, 오시고.” 이것만으로도 아침까지 이곳에서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이 본문을 제대로 다루기에는 턱없이 부족할 것입니다. 그래도 각각에 대해 잠시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다윗이 이 시편 22편을 기록하면서 쓴 이 말씀들은 갈보리에서 그리스도께서 부르짖으신 말씀으로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제가 이것을 택한 이유는 부활절이 막 지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성경대로 셋째 날에 예수님을 일으키셔서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입증하신 그 위대한 날의 감동이 아직도 사람들에게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살아 계실 때 사랑을 받으셨습니다.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살아서는 날 사랑하셨고, 죽으셔서는 날 구원하셨네. 묻히셔서는 내 죄를 멀리 가져가셨네. 부활하셔서는 값없이 날 영원히 의롭게 하셨네. 언젠가 주 오시리, 오 영광스러운 날!
그분은 살아 계실 때 사랑하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셨고,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처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결코 없습니다. 아기였던 그분의 작은 손이 아름다운 어머니의 고운 뺨을 처음 어루만지셨을 때부터, 십자가에서 마지막 원수를 용서하셨을 때까지 그분은 사랑이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신 분이셨습니다. 아무도 예수님처럼 사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아주 작은 아기의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세상의 죄를 없애시려고 오셨습니다. “예수”라는 이름만 입에 올려도, 그 안에는 “사랑”을 뜻하는 무엇이 있습니다. 오늘날 세상에 더 필요한 것은 과거의 어느 예수님이나 높은 윤리를 가르치는 예수님이 아닙니다. 주 예수님의 교회 안에서 나타나실 수 있는 사랑의 예수님입니다. 특히 교회의 지체들은 언제나 서로 사랑으로 맞이해야 합니다.
여러 곳을 다니면서 생각해 보면, 오늘날 교회에 빠져 있는 큰 것이 있다면, 오늘날 교회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 가운데 하나가 있다면... 부흥을 가로막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실 때 나타내셨던 그 하나님의 사랑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은 그런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었고, 하나님께서는 원수들을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세상이 사랑받을 만하지 못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세상을 사랑하셨습니다. 그 차이는 말로 표현할 때에도 나타납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품는 것 같은 사랑은 필리오 사랑입니다. 그러나 아가파오 사랑은 신적인 사랑입니다. 로스앤젤레스에 부흥을 일으킬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 모두가 서로를 가로막는 여러 장벽을 허물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랑 안에 함께 모이는 때라고 믿습니다. 오순절교인들과 침례교인들과 장로교인들이 그렇게 함께 모여,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 줄 수 있다면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같이 우리도 서로 사랑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같이 말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아무도 그런 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 그들이... 인간적인 사랑으로는 말입니다. 그런 사랑은 끝까지 견디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은 그렇게 자신을 나타내지 못합니다. 우정이 이어져 있는 동안에는 그렇게 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정이 돌아서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기 시작합니다. “그 사람은 이러이러한 일을 했어. 그 여자는 이러이러한 일을 했어. 그들은 신앙에서 떠났어. 그들은...” 참된 하나님의 사랑은 신앙에서 떠난 그 사람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갑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타락한 남자나 여자를 일으켜 주려고 지옥의 가장 낮은 곳까지 가서 몸을 굽힙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교양 있고 교육을 잘 받은 훌륭한 교회가 있습니다. 옷차림도 훌륭하고, 건물도 훌륭하고, 성가대도 좋고, 음악도 아름답습니다. 세상에 있었던 것 가운데 손꼽힐 만큼 훌륭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나 절실히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간음죄를 짓고 그분 앞에 끌려온 창녀를 만나셨을 때 그 사랑을 잘 나타내셨습니다. 사람들이 그 여자를 끌고 와서 말했습니다. “율법은 이 여자를 죽이라고 요구합니다. 당신은 어떻게 하라고 하시겠습니까?” 제가 말씀드리지만, 그분은 돌아서서 이 말씀을 하심으로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 주셨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그런 빗나간 사람을 받아 주시다니,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 보십시오.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고 그 여자의 잘못을 용서해 주시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분은 갈보리에서 죽어 가실 때 다시 한 번 그 사랑을 크게 나타내셨습니다. 십자가에서 하신 마지막 말씀 가운데, 원수들이 뱉은 침이 얼굴에 매달려 있는데도 그분은 부르짖으셨습니다.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아무도 그분처럼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랑은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그것은 성령을 통해 오는 하나님의 선물이며, 오직 그 길로만 여러분이 그 사랑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내가 사람들의 언어들과 천사들의 언어들로 말할지라도 그런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산들을 옮길 믿음이 있을지라도...” 성경은 그렇게 말씀합니다...
며칠 전에 저는 이 성경 말씀을 두고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그것을 찾는 자들이 적으니라.” 그때 저와 함께 차를 타고 가던 젊은이가 물었습니다. “이 세대에서 구원받을 사람이 얼마나 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여덟 명, 열 명쯤이지요.”라고 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아, 형제님, 그렇게 말씀하지 마십시오.” 제가 말했습니다. “그러면 쉰 명까지 늘리겠습니다. 제가 늘릴 수 있는 건 거기까지입니다.” 그가 “쉰 명이라고요?”라고 물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말씀하셨습니다. ‘노아의 날들이 어떠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이 오는 것도 그러하리라.’ 노아의 날들에는 여덟 혼이 구원받았습니다.” 자, 기억하십시오. 매일 한 세대가 사라집니다. 그 세대가 끝나는 것입니다. 하루에 쉰 명씩 6천 년을 계산하면 얼마나 되는지 보십시오. 그가 말했습니다. “그러면 브래넘 형제님, 이것을 여쭤보고 싶습니다. 성령을 받았다고 하는 그 모든 사람들은 부활에 참여하지 못합니까?” 제가 말했습니다. “성령을 받았다면 참여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나치게 강조해 온 것은 참된 것, 곧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라 다른 것들입니다.”
바울은 말했습니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내가 모든 지혜와 모든 지식을 가졌다 해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내가 사람들과 천사들의 언어들로 말하면서도 그 사랑이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것들, 곧 대규모 치유 부흥 집회와 기적이 일어나는 일에 너무나 큰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 날에 많은 사람들이 내게 와서 말하기를, ‘주여, 주여, 내가 주의 이름으로 마귀들을 내쫓지 아니하였나이까? 주의 이름으로 많은 능력 있는 일들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내가 그들에게 말하되,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라. 나는 너희를 알지도 못하였노라.’ 하리라.” 얼마나 큰 실망이겠습니까! 그런데 자신들이 그곳에 있을 자격조차 없다고 생각했던 이들에게 그분이 말씀하실 때에는 얼마나 놀랍겠습니까... “언제 주님께서 주리셨기에 저희가 먹을 것을 드렸습니까? 언제 헐벗으셨기에 저희가 옷을 드렸습니까? 언제 주님께 이런 일이 있었는지 저희는 몰랐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이들에게 그것을 하였으므로 내게 하였느니라.”
오, 오늘날 세상에는 얼마나 절실히 필요한 것이 있는지요! 그것을 분명히 해 드릴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에스겔 9장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날에 들어갈 사람들에게 인을 치도록 성령께서 보내심을 받으셨을 때,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도시를 지나가며 그 도시 한가운데서 이루어지는 가증한 일들로 인해 탄식하고 부르짖는 사람들의 이마에 표를 찍으라.” 그리고 죽이는 천사들에게는 “그들을 따라가서 이 인이 없는 자들을 모조리 멸하라.”라고 하셨습니다. 자, 여러분이 마음속으로 그 일을 해 보십시오. 오늘 밤 로스앤젤레스 곳곳을 다니며, 도시의 죄를 너무나 깊이 염려한 나머지 그곳에서 벌어지는 가증한 일들 때문에 밤낮으로 울고 탄식하는 사람마다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표를 해 보십시오. 내일 저녁에 그런 사람 여덟 명을 이곳에 데려와 보십시오.
그렇습니다.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아시겠죠? 우리는 다른 것들이 들어와 참된 것의 자리를 차지하도록 내버려 두었습니다. 우리가 빠뜨리고 있는 것은 사랑입니다. 살아서는 날 사랑하셨네. 제가 죄인이었을 때 그분은 저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제가 사랑받을 만하지 못했을 때에도 그분은 여전히 저를 사랑하셨습니다. 교회를 위한 저의 기도는 우리에게 그러한 사랑이 있어서, 사람들이 우리를 사랑하든 사랑하지 않든 우리가 그들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 필요한 것은 사랑을 나타내는 일입니다. 심지어 여러분의 얼굴에 침을 뱉는 사람이 있다 해도, 위선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그 사람의 혼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사랑입니다. 로스앤젤레스에 필요한 부흥은 그런 사랑이 나타나는 부흥입니다. 살아서는 날 사랑하셨고, 죽으셔서는 날 구원하셨네...
이 땅에서 가장 놀라운 삶을 사셨던 분은 아직 젊으셨을 때 죽으셔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며, 그분의 심판에는 공의가 이루어져야 했기 때문입니다. 기록되기를 “네가 그것을 먹는 날, 그 날에 죽으리라.”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죽음을 요구했습니다. 우리 가운데 누구도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죽을 수 없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죽음을 맞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그분뿐이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죄 가운데서 태어나고, 불법 가운데서 형성되고, 거짓을 말하며 세상에 나왔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죄가 있었습니다. 그러니 선한 사람이라 해도 자신에게 죄가 있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위해 죽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 가운데 아무도 그런 자리에 설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죽음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으시기 위해 내려오셔서 육체로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시고 영은 죽지 않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영으로는 죽으실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을 드러내시고, 영광의 자리에서 구유로 내려오셔서, 죄 있는 육체의 형상을 입으셔야 했습니다. 죽으심으로 그분의 교회를 확보하시려고... 아니, 그분의 교회를 구속하시고 다시 자신과 화목하게 하시려고 말입니다. 오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을 때 행하신 일을 그 누구도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분의 육체가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속죄 헌물을 드릴 때 염소 두 마리를 가져왔습니다. 이 염소들은... 예수님께서 그 둘을 나타내셨습니다... 아니, 그 둘이 예수님을 나타냈다고 해야겠지요. 염소 한 마리는 죽임을 당했고, 다른 한 마리는... 속죄 염소라 불리는 이 염소 위에 그 민족의 죄를 얹었습니다. 그 염소는 광야로 나가 죽어야 했고, 그곳에서 짐승들 틈에 홀로 있어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염소가 되셔야 했습니다.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그분은 어린양이셨습니다. 양이셨습니다. 하지만 여러분과 저를 위해 염소가 되셨습니다. 염소인 우리가 양이 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죽어 마땅한 죄인이었고, 죽음에 매여 있었고, 모두 정죄 아래 팔려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리스도께서 제가 되셨습니다. 그리하여 제가 그분의 은혜로 그분이 되어, 영광 가운데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분이 품으셨던 사랑, 그 사랑을 어떻게 나타내셨는지 보십시오. 우리를 구원하려고 죽으시기 위해 그분이 어떤 존재가 되셔야 했는지 보십시오. 갈보리에서 죽으셨을 때 그분의 죽음은... 그 죽음과 같은 죽음은 결코 없었습니다. 로마 군인이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을 때 옆구리에서 물과 피가 나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는 한 번은 화학자에게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물었습니다... 그 사람은 그리스도인이었는데,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는 창이 옆구리에 닿아서... 아니, 옆구리를 찔러서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훨씬 전에 이미 죽으셨습니다. 그분은 비통함 때문에 죽으셨습니다. 칼이 그분을 죽인 것이 아니고, 못을 박은 것이 그분을 죽인 것도 아닙니다. 그분을 죽인 것은 비통함이었습니다. 그분이 사랑하셨던 사람들, 기적을 베푸셨던 사람들, 사랑을 나타내 보이시고 먹이셨던 사람들을 바라보셨는데, 그들이 자신을 거부하는 모습을 보셨던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도 비통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슬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비통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그토록 큰 비통함을 느낄 수 있는 존재로 이루어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충만이 그분 안에 거했기 때문입니다. 그분 안에는 하나님의 신격의 모든 충만이 몸으로 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거하신 성막인 인간의 육체를 통해, 자신의 아들 안에서, 세상을 향한 자신의 마음과 사랑을 나타내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갈보리의 십자가에 달려 계셨습니다. 여러분이 십자가상에서 보듯 허리에 작은 천 조각을 두르신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그분을 벌거벗겼습니다. 줄 수 있는 모든 수치를 주고 갈보리에 매달았습니다. 그분은 치욕과 멸시와 거절을 당하시고 침 뱉음을 당하셨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 자신이 달리신 십자가를 만드신 분이 그곳에 매달려 죽어 가고 계셨습니다. 산에서 바위들이 갈라져 떨어진 것도 당연합니다. 영원한 반석이 세워지고 있었기에 바위들이 터져 나왔습니다. 시인이 이렇게 노래한 것도 당연합니다. 바위가 갈라지고 하늘이 어두워지는 가운데, 나의 구주 머리 숙여 죽으셨네. 열린 휘장이 길을 드러내었네, 천국의 기쁨과 끝없는 날로 가는 길을. 그분이 그곳에서 그렇게 죽으셨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휘장이 열렸습니다. 우리가 시간의 장막 너머를 내다보며 그곳의 소망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상하시고 짓이겨지시고 침 뱉음을 당하시고, 가시와 못이 그분을 꿰뚫은 것을 볼 때, 그것이 무슨 일을 이루었습니까? 길을 열었습니다. 죄 있는 죄인인 제가... 저는 그분이 거기서 값을 치르셨다는 것을 압니다.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어떤 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저의 어떤 선함으로도 아닙니다. 제게는 선함이 없고 여러분도 그렇습니다. 그분의 희생을 통해, 그분의 죽음을 통해, 우리는 그분을 믿음으로 의롭게 됩니다. 우리가 의롭게 서는 근거는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제가 한 일이나 여러분이 한 일이 아니라 그분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입니다. 이것이 복음 이야기가 아니라면 저는 복음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오, 제게 그것을 주시고 나머지는 다 가져가십시오. 저를 위해 죽으신 그분을 보십시오.
제가 어떻게 의로울 수 있겠습니까? 저는 스스로 의롭게 될 수 없습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하지만 그분을 바라보며 이렇게 노래하며 나아갈 때, 제 손에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고, 오직 주님의 십자가만 붙듭니다... 바로 거기서 제가 믿음으로 의롭게 됩니다. 그분이 저 대신 죽으셨고 갈보리에서 제 자리를 대신하셨음을 믿는 것입니다. 악한 영들의 힘이 둘러싸고 있을 때, 사람들이 죽음에 붙들려 있는 모습을 볼 때, 그리고... 마귀가 그들을 묶어 놓고 사로잡고, 어떤 사람들은 구속복을 입은 채 감시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때, 제가 단상에 서서 의지하는 것은 오직 그것뿐입니다. 그럴 때 저는 무엇을 의지합니까? 갈보리를 바라보며, 거기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값을 치르셨다는 것을 압니다. 제 마음에 신앙의 감격이 솟아납니다.
그분이 그곳에서 그 일을 이루셨습니다. 그 사람은 자유로워질 권리가 있습니다. 사탄은 더 이상 그들을 붙잡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이 그것을 보게 할 수만 있다면 말입니다. 자신들의 아픔과 통증이나, 자신들을 위해 기도하는 어느 설교자나, 어떤 거룩한 교회가 아니라 말입니다. 그런 것들도 좋습니다. 함께 따르는 것들입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위해 하신 일을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유롭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아멘. 그것이 복음입니다. 바위가 갈라지고 하늘이 어두워지는 가운데, 나의 구주 머리 숙여 죽으셨네. 열린 휘장이 길을 드러내었네, 천국의 기쁨과 끝없는 날로 가는 길을. 그분이 죽으신 곳이 바로 거기입니다. 살아서는 날 사랑하셨고, 죽으셔서는 날 구원하셨네... 제가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죄를 없애야 합니다. 그분이 저를 위한 속죄 헌물이 되셨기에 죽으셨습니다. 자, 죄가 죽었다면, 그분은 묻히셔서 제 죄를 멀리 가져가신 것입니다. 그분은 밖으로 나간 속죄 염소셨습니다. 속죄 염소는 백성의 죄를 짊어지고 죽으러 광야로 나갔습니다. 그곳으로 나가 백성의 죄를 지고 멀리 가져간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백성의 죄를 지고 멀리 가져가셨습니다. 너무나 멀리 가져가셔서 하나님의 망각의 바다에 던져 넣으셨습니다. 죄가 죽었다면 묻어 버리십시오. 그래서 우리에게 침례탕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믿으면 나아와 자기 죄를 고백합니다. 죄에 지쳤고, 죄와 갈라섰으며, 죄에서 떠났고, 죄에 넌더리가 났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니 죄는 죽은 것입니다. 그 믿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묻히심 안에서 의롭게 서 있으므로, 죄는 더 이상 그를 지배할 힘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제단으로 걸어 나와 고백합니다. “저는 죄에 신물이 나고 지쳤습니다. 더 이상 죄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것을 묻습니다.
죄를 묻을 때, 무엇이든 묻을 때에는 먼저 죽어 있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묻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게 치우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묻는 이유도 그것입니다. 그 몸이 부패하는 모습을 눈에 보이지 않게 하여 우리에게서 감추는 것입니다. 죽음이 하는 일을 보는 것은 암울한 일입니다. 그런데 죄가 끝났을 때, 죄가 붙잡던 힘을 잃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갈보리에서 죄를 정죄하시며 죽으신 그 죽음 안에서 죄가 죽었을 때, 그것을 받아들인 죄인은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 이렇게 외칠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제 죄를 멀리 가져가셨습니다. 저의 죄를 지시는 분, 예수 그리스도께 그 죄를 얹으셨습니다.” 그분은 그 두 짐승을 다 나타내셨습니다. 죽으시는 일과 죄를 없애시는 일, 둘 다 말입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그분이 되셨습니다... 우리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염소였습니다. 그분이 우리를 위해 염소가 되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죄가 되셨습니다. 그분이 그렇게 벌을 받으셔야 했던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 모든 죄가 그분 위에 놓였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자신의 몸으로 그 죄를 지고 갈보리로 가져가셔야 했습니다. 모욕과 치욕을 당하시며, 죄를 지신 채 그곳에 달려 계셨습니다. 옷이 벗겨져 벌거벗으시고, 피를 흘리시며, 양처럼 울부짖으셨습니다. 그분이 귀한 머리를 돌리실 때, 피에 젖은 머리카락이 어깨 위로 늘어져 피가 뚝뚝 떨어졌습니다... 아마 빌리 선데이가 한 말인 것 같습니다. 나무마다 천사가 앉아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십자가에서 손을 빼내시고 손가락만 한번 움직여 주십시오. 저희가 이 광경을 바꾸겠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 채 그분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찬사를 드렸습니다. 그들은 말했습니다. “그가 남들은 구원하였으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물론 그럴 수 없으셨습니다. 자신을 구원하셨다면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구원받도록 자신을 내어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 이야기입니다. 살아서는 날 사랑하셨고, 죽으셔서는 날 구원하셨네. 묻히셔서는 내 죄를 멀리 가져가셨네... 죄는 끝났습니다. 다 끝났습니다. 하나님의 망각의 바다에 들어갔으니,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여 우리에게 책임을 묻지 않으십니다. 오, 그 일로 우리가 “할렐루야!” 하고 외칠 수 없겠습니까? 물론입니다.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루셨습니다. 오, 참으로! 물론 우리가 외칠 수 있습니다.
자, 이제 그 모든 것 가운데 가장 위대한 것이 나옵니다. “부활하셔서는 의롭게 하셨네...” 그분이 행하신 이 모든 큰일은 놀라웠습니다. 더없이 훌륭했습니다. 거기에 더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도 죽을 수 있고, 사람도 고통받을 수 있고, 사람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일어나셨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부활로 영수증을 써 주셨습니다. 그것을 받아들이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충족되었습니다. 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부활하셔서는 의롭게 하셨네... 하나님께서는 부활을 통해 그분이 사기꾼도 가짜도 아니심을 입증하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을 일으키셨습니다. 그 영, 곧 영원하신 영이신 여호와 하나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무덤에 있던 죽은 몸을 일으키셨습니다. 죽어서 사흘 동안 묻혀 있던 그 몸을 하나님께서 부활절 아침에 일으키셨습니다. 의롭게 하시려고...
형제님, 우리가 그곳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께로 나아갈 때에는 아무것도... 나아가는 사람은 은혜의 왕좌로 담대히 나아가야 합니다. 의심하며 나아가서는 안 됩니다. 기도받을 줄로 나아오실 때 이런 생각으로 의심하며 나오시면 안 됩니다. “이 사역자가 나를 위해 기도해 주면, 혹시 이분에게 치유의 능력이 있을지도 몰라.” 형제자매 여러분, 치유의 권능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십자가에, 갈보리에서 완성하신 일에 있습니다. 나아오실 때는 의롭게 되기 위해 나아오십시오. 여러분이 이렇게 믿음을 고백할 때 의롭게 됩니다. “그분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내가 고침을 받았습니다. 저는 이 믿음 위에 서겠습니다. 의사는 제가 죽어 가고 있다고 합니다. 종양이든 결핵이든, 무슨 병이든 제게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저녁 저는 굳게 섭니다. 그분이 저를 사랑하셨고, 저를 위해 죽으셨고, 저를 구원하셨고, 제 죄를 멀리 묻어 버리셨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셨을 때, 그분을 믿는 우리를 의롭게 하셨습니다. 그분이 죽으심으로 이루고자 하셨던 모든 것을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는 우리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고 우리 불법들로 인해 상하였도다. 그가 징벌을 받음으로 우리가 화평을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도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일으키시고 영수증을 써 주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영수증이었습니다. 땅이 떨리며 흔들리기 시작하고, 태양이 어두워지기... 아니, 그 부활절 아침에 땅을 비추기 시작했을 때, 하늘이 흔들렸습니다. 지옥이 흔들렸습니다. 낙원이 흔들렸습니다. 땅이 흔들렸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영광 가운데 천사들이 “할렐루야!”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낙원에서는 옛 구약의 성도들이 “그분의 이름에 영광을!”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이 무덤에서 일어나셨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분은 무덤과 죽음과 지옥과 질병을 이기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완전한 자유를 가로막는 모든 장벽과 모든 것을 이기셨습니다. 여러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해결되었습니다. 그것을 위한 고난도 이미 받으셨고, 이미 받아들여졌고, 이미 피 흘리셨고, 이미 죽으셨고, 이미 일어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을 의롭게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믿을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의롭게 하십니다. 그분은 무덤에서 일어나셔서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입증하셨습니다. 붓다는 훌륭한 말을 좀 했습니다. 붓다는 2천3백 년 전에 죽어 무덤에 들어갔고, 아직도 거기에 있습니다. 무함마드도 훌륭한 말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그도 죽어 무덤에 있고, 그곳에 있은 지 약... 거의 1천9백 년이 되었습니다. 무덤에 있고, 그 뒤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위대한 사람들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중국의 위대한 철학자 공자, 그 밖에도 많은 위인들, 시인들과 작가들, 신들, 또 다른 이들도 자신들의 자리에서는 위대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부활절 아침에 자신의 아들을 일으키셨을 때 그것을 입증하셨습니다. 그분은 성령을 보내셨고, 이제 우리에게는 그 영수증이 있습니다. 영원으로부터 들려오는 그분의 외침을 저는 들을 수 있습니다. “내가 살아 있으므로 너희도 살아 있느니라.” 아멘. 맞습니다. “내가 살아 있으므로 너희도 살아 있느니라.” 아멘.
“그는 우리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도다.” 여러분의 때가 오기 전에 죽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분이 살아 계시므로 여러분도 살아 있습니다. 죽음이 제 숨을 끊어 놓아도 저는 여전히 살아 있을 것입니다.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결코 심판에 이르지 아니할 것이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느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누구든지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오! 저는 바로 거기에 제 혼의 닻을 내립니다. 시인이 이렇게 쓴 것도 당연합니다. 그 밝고 구름 없는 아침에,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일어나 그분의 부활의 영광을 함께 누릴 때, 그분이 택하신 이들이 모여 하늘 너머 본향에 이를 때, 저 위에서 이름을 부를 때, 저도 거기 있으리라. 왜 그렇습니까? 살아서는 날 사랑하셨고, 죽으셔서는 날 구원하셨네. 묻히셔서는 내 죄를 멀리 가져가셨네. 부활하셔서는 값없이 날 영원히 의롭게 하셨네. 언젠가 주 오시리, 오 영광스러운 날!
제 어깨가 굽어 가는 것을 봅니다. 예전에는 근육이 있던 제 팔에도 살이 붙고 있습니다. 오, 저는... 보십시오, 저는 죽어 가고 있습니다. 얼마 후에 그분이 저를 부르실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 안에는 영생이 있습니다. 그분이 저를 위해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분께 바친 이 몸을 구속하시려고 말입니다. 어느 영광스러운 날에 그분이 오실 것입니다. 저는 온 마음으로 그것을 믿습니다. 그분의 은혜로 저는 싸움터에 머물겠습니다. 죽음이 저를 놓아줄 때까지 설교하고 병자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그러고는 본향으로 가서 왕관을 쓰겠습니다. 그분이 값을 치르시고 값없이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일으키셨을 때 제 믿음이 옳음을 입증해 주셨습니다. 그러니 저를 기다리는 왕관이 있습니다.
제자들을 찾아오신 뒤 40일이 되었을 때, 그분은 산 위에 서 계십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를 이 땅에 붙들어 두는 것은 중력입니다. 우리가 여기 땅 위에 있을 때 우리를 붙잡는 것은 중력입니다. 그런데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그분을 좀 더 높이 올라오게 하기로 마음먹으셨습니다. 중력이 붙들고 있던 힘을 잃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저도 언젠가 그렇게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습니까? 이 땅에 얽매인 상태가... 집회 중에 저는 그것이 금방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주변에서 붙잡고 있던 것이 풀려 나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언젠가는 실제로 그렇게 될 것입니다. 상관없습니다. 사람들이 여러분을 무덤에 넣고, 그 위에 묘비를 세우고, 단단히 봉해 놓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팔이 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일어나리라.” 언젠가 주 오시리, 오 영광스러운 날! 그렇습니다. 그분은 오십니다.
중력이 붙들고 있던 힘을 잃기 시작했습니다. 그분의 발이 떠오르기 시작하자 그 아래로 땅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한 것이 있습니다.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받아들여 내가 있는 곳, 거기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오늘 저녁 진실한 마음으로 그 노래를 부를 수 있어서 저는 참 기쁩니다. 살아서는 날 사랑하셨고, 죽으셔서는 날 구원하셨네. 묻히셔서는 내 죄를 멀리 가져가셨네. 부활하셔서는 값없이 날 영원히 의롭게 하셨네. 언젠가 주 오시리, 오 영광스러운 날!
그러니 한 가지 작은 생각이 떠오릅니다. 제가 이 말을 했는지... 언젠가 책에서 읽은 이 작은 이야기를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여기 미국에 있던 한 사람의 이야기인데, 이름이 그린필드입니다. 그분이 세상을 떠난 지 이제 아마 75년쯤 되었을 것입니다. 그분이 돌아가신 지, 아마... 그보다 더 오래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죽기 전에 자신이 영광의 나라에 간 꿈을 꾸었습니다. 그곳에 올라가 문에 이르러서는 그곳의 성도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대니 그린필드입니다. 전도자입니다. 제 자리를 차지하러 왔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잠깐만요, 선생님. 여기 책에 이름이 있어야 합니다.” 책을 살펴보더니 말했습니다. “여기에 그린필드... 다니엘 그린필드는 없습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아, 잘못 보신 게 분명합니다. 저는 미국에서 전도자로 일했습니다.” 그가 “아닙니다. 여기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이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원하신다면 큰 흰 왕좌의 심판에 선생님의 사정을 호소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자 그분은 “이제 제게 남은 길은 그것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고는 한동안 공중을 지나가는 것 같았다고 합니다. 점점 더 밝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뒤 더 밝아지자 그분의 움직임은 점점 느려지다가 멈추었습니다. 빛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사방이 빛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때 이런 음성을 들었다고 합니다. “나의 공의의 왕좌로 다가오는 자가 누구냐?” 그분이 말했습니다. “저는 다니엘 그린필드입니다. 천국 문에 갔었는데 문지기가 저를 돌려보내며 주님의 심판 앞에 서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 사정을 호소하려고 이곳에 섰습니다, 주님.”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좋다. 그러면 나의 공의로 너를 심판하겠다. 나의 공의는 완전함을 요구한다. 네가 땅에 있을 때 거짓말한 적이 있느냐?” 그린필드가 말했습니다. “저는 제가 정직하고 진실하게 살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빛 앞에 서니, 옳지 않은 말을 한 적이 많이 있음을 보았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일요일마다 교회에 갈 수 있습니다. 매우 종교적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입니다. 십일조도 드리고, 로스앤젤레스에서 손꼽히는 선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에게 있는 것이 그것뿐이라면, 흰 왕좌의 심판 앞에 섰을 때 많은 것들이 여러분 앞에 드러날 것입니다. 구원받을 사람이 적다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린필드가 말했습니다. “저는 제가 진실을 말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했던 말 가운데 정확히 옳지 않은 것이 많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예, 저는 거짓말을 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물으셨습니다. “그러면 도둑질한 적은 있느냐?” 그린필드는 생각했습니다. “이번 질문에는 대답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 빛 앞에 서자 자기가 했던 떳떳하지 못한 거래들이 많이 보였다고 합니다. 평소 세상에서 살 때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보십시오, 우리는 지금 음화 쪽에 있을 뿐입니다. 어두운 안경을 쓴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분 앞에 서게 되면 그 안경이 벗겨질 것입니다. 그때는 그분과 얼굴을 마주 대하여 볼 것입니다. 그때는 두려운 일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린필드가 말했습니다. “예, 저도... 저도 도둑질을 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다니엘 그린필드, 나의 공의는 완전함을 요구한다! 살아 있는 동안 완전했느냐?” 그린필드가 “아닙니다, 주님. 저는 완전하지 못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린필드는 “불법을 행하는 자여, 내게서 떠나라.”라는 그 거센 음성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 “어떤 음성이 들렸는데, 평생 들어 본 것 가운데 가장 다정한 음성이었다.”고 했습니다. 돌아보니 “지금까지 본 것 가운데 가장 다정한 얼굴이 보였다.”고 합니다. “어느 어머니도 그런 표정을 짓거나 그렇게 말할 수 없을 것 같았다.”고 했습니다. “그분이 가까이 걸어오셔서 그의 어깨에 손을 얹으시고 하나님께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 사실입니다. 대니 그린필드는 땅에서 나그네로 살 동안 완전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땅에 있을 때 그가 한 일이 하나 있습니다. 그는 제 편에 섰습니다. 이제 그가 이곳 천국에 있으니 제가 그의 편에 서겠습니다. 그의 모든 죄를 제 계산에 올려 주십시오.’” 그분이 갈보리에서 그 값을 치르셨기 때문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제가 의지할 분은 바로 그분입니다. 제가 감리교인인지, 침례교인인지, 오순절교인인지에 의지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소리 높여 외쳤는지, 방언을 말했는지, 병자를 위해 믿음의 기도를 했는지에 의지하지 않겠습니다. 그런 것에 의지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저곳을 향한 제 믿음에 의지하겠습니다. 그분이 저를 사랑하셨고, 죽으셨고, 저를 구원하셨고, 부활하셔서 의롭게 하셨던 그곳 말입니다. 제가 이 땅에 있는 동안에는 그것을 근거로 그분의 편에 서겠습니다. 그 위대한 심판의 아침, 그 날에 그분께서 제 편에 서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 날에 누가 여러분의 편에 서 주겠습니까? 여러분의 목사님이 그러실 수 있습니까? 여러분의 교회가 그러실 수 있습니까? 잠시 고개를 숙이며 그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사랑하는 하나님, 이것은 바로 지금 우리가 답해야 할 엄숙한 질문입니다. 누가 우리의 편에 서 주겠습니까? 우리의 친구들이겠습니까? 그들이 아무리 충실하고, 우리 편에 서 주려고 온 힘을 다한다 해도 말입니다. 우리가 온 마음으로 사랑하는 목사님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분은 서서 우리를 위해 소리 높여 호소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그분 자신도 긍휼을 구하며 부르짖어야 합니다. 오, 그 날에는 예수님 외에 아무도 우리 편에 서실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저는 주님께서 주님의 교회에 주신 사랑을 이야기하려고 했을 뿐입니다. 교회는 성경의 기적들에는 도달한 것 같습니다. 교인들을 모으는 일과 전도와 선교사들을 보내는 일에도 도달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하지만 주님, 이제 사랑에도 도달하게 해 주옵소서. 교회를 참된 아가파오 사랑, 참되고 거룩한 사랑으로 불붙게 할 사랑입니다. 뺨을 돌려 댈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을 구원할 수만 있다면 기꺼이 자기 생명도 내어 줄 수 있는 사랑입니다. 하나님, 우리가 주님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 마음에 그 사랑을 주옵소서.
우리가 고개를 숙이고 있는 동안, 오늘 저녁 이 많은 회중 가운데 얼마나 많은 분이 자리에서 일어나 이렇게 말씀하고 싶으신지요. “저는 바로 지금 예수님의 편에 서겠습니다. 주님, 제가 이렇게 하오니 그 날에 저를 위해 서 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편에 설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지금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저는 많은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교회의 교인입니다.” 교인이실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이든 이렇게 말씀하시겠습니까? “주님, 제가 지금 서겠습니다. 그 날에는 저를 위해 서 주십시오.” 우리가 기도하는 동안 지금 자리에서 일어나십시오. 일어서시기만 하십시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참 좋습니다. 좋습니다. 살아서는 날 사랑하셨고, 죽으셔서는 날 구원하셨네. 묻히셔서는 내 죄를 멀리 가져가셨네. 부활하셔서는 값없이 날 영원히 의롭게 하셨네. 언젠가 주 오시리, 오 영광스러운 날!
오늘 저녁 이곳에 앉아 계신 군목님 한 분은 얼마 전에 큰 과학 모임에 참석하셨습니다. 여러분도 모두 보셨을 것입니다. 아마 이번 달 「룩」 잡지였을 텐데, 그 장군이 다음 전쟁은 불과 몇 분이면 끝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지금도 그들 중 단 한 사람이 이런... 이런 논쟁을 하다가 발끈하기만 하면 됩니다. 이런 표현을 용서하십시오. 그들이 벌이는 논쟁 가운데서 폭탄 하나만 터뜨리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저 바다에 잠수함들을 두고 떠오를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곳곳에서 그 폭탄들을 발사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쪽으로 날아오고, 저쪽으로 날아옵니다. 세상은 그것을 견딜 수 없습니다. 세상은... 저 시계가 2분을 더 가기도 전에 이 모든 것이 끝날 수 있습니다. 위험을 무릅쓰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올바로 서 있는지 확실하지 않다면... 자매님, 이 곡의 화음을 좀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한 제 기도를 들어 주시리라고 믿으십니까? 이리로 오십시오. 제가 잠깐... 저기 불빛 아래 계신 분들, 잠시 이리로 걸어 나오시겠습니까? 바로 여기로 오셔서 함께 서서 기도합시다. 괜찮으시면 지금 바로 오십시오. 앉지 마십시오. 이 앞으로 걸어와 서십시오. 이렇게 말씀하십시오. “저는 교인으로 지내 왔습니다. 부끄러워하지 않겠습니다. 바로 이 앞으로 나가 서겠습니다. 저는 나아가고 싶습니다. 정직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사람들 안에 들어가시는 것을 볼 수만 있다면, 부흥이 시작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분이 제 기도를 들으시고 눈먼 이들의 눈을 뜨게 해 주신다면(앞으로 며칠 동안 여러분은 분명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실 것입니다), 또 기도를 통해 뱀에 물렸을 때 독의 작용이 그 자리에서 완전히 멎게 해 주신다면 말입니다. 저는 육신의 생명이 끝난 사람들, 의사들이 눈을 감겨 주고 손을 포개어 놓은 뒤 돌아선 사람들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무엇을 통해서입니까? 기도를 통해서입니다. 기도에는 의미가 있습니다. 발코니에 계신 여러분을 기다리겠습니다. 바로 내려오십시오. 여기 서서 함께 기도합시다. 바로 내려오시겠습니까? 함께 기도합시다. 우리가 하려는 일이 그것입니다. 그 사랑을 갖기 원하시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오늘 저녁 여러분의 마음에, 이 도시에서 벌어지는 가증한 일들 때문에 탄식하고 부르짖을 그런 사랑이 없다면...
여러분, 들으십시오. 저는 여기 있는 성경을 공부하는 어느 분과도 그 문제를 논의하겠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천사가 도시에서 벌어지는 가증한 일들 때문에 울고 부르짖는 사람들에게만 인을 칠 수 있었다고 말씀했습니다. 그 말씀을 읽어 보신 분은 모두 “아멘” 하십시오. 그렇습니다. 도시의 가증한 일들로 인해 탄식하고 부르짖는 사람들만입니다. 여러분은 “저는 오랫동안 오순절교인이었습니다.”라고 하실 것입니다. 좋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형제님, 아버지의 일을 하고 계신다면, 잃어버린 세상을 염려하는 그 마음은 어떻습니까? “저는 매일 저녁 복을 받습니다.”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그 선하고 겸손하고 다정하고 온유한 영이 여러분 위에 있지 않다면... 성령의 열매는 무엇입니까? 사랑, 화평, 기쁨, 오래 참음, 선함, 부드러움, 인내입니다. 위험을 무릅쓰지 마십시오. 아침이면 너무 늦을 수도 있습니다. 한 시간 뒤에는 너무 늦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치유 예배도 시작하기 전에, 어떤 일이든 있기 전에, 지금 나오시지 않겠습니까? 바로 내려오셔서 말씀하십시오. “주님, 올바르게 되기를 원합니다. 제 안에 제가 사랑하게 만드는 영이 있기를 원합니다. 예수님께서 저를 위해 하신 일에 감사하게 하는 영이 제 안에 있기를 원합니다. 제 마음이 부드럽고 사랑으로 가득해져서, 의무감 때문이 아니라 진심으로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자, 발코니에 계신 분들 가운데 내려오셔야 할 분들이 있습니다. 걸어 나오십시오. 여러분과 천국 사이에 남은 거리가 그 몇 걸음일지도 모릅니다. 반드시 그렇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렇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이 그 몇 걸음뿐일지도 모릅니다. 오늘 밤 만일 예수님이... 무슨 일이 벌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여기 어디에선가 바위 하나가 터지고, 저 뒤에서도 하나가 터지고, 라디오에서는 다급한 소리가 울리고, 사람들은 거리로 뛰어나가고, 원자폭탄이 떨어진다면... 그때 여러분은 무엇이라도 내놓으려 하지 않겠습니까? 그때는 너무 늦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십니까? 교회는... 중력이 붙잡으려... 아니, 붙잡고 있던 것을 놓아 버릴 것입니다. 제가 이 강단에 서 있는 것만큼이나 분명하게, 그 교회는 휴거될 것입니다. 무덤이 열리고, 죽은 자들이 나와 주 예수님을 만나러 갈 것입니다. 수만 명, 그렇습니다, 수천만 명의 교인들이 뒤에 남을 것입니다. 나오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사랑이 있는지 확실히 하십시오.
다른 분들이 내려오시는 동안 잠시 고개를 숙입시다. 개인 전도 일꾼들도 이제 주위로 와 주십시오. 함께 기도하러 나오시는 여러분도 오십시오. 죄인인 친구여, 오십시오. 신앙에서 떠난 분도 오십시오. 미지근한 교인도 오십시오. 함께 천국에 갑시다. 여러분은 지금 이 기도를 받으려고 여기 앞으로 나오셨습니다. 저는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고 싶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했는지 확실히 하고 싶습니다. 이번 주는... 다가오는 한 주 동안에는, 예수님께서 더디 오신다면, 이 성전에서 놀라운 시간이 펼쳐질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저는 모든 죄가 깨끗이 제거되고, 사람들을 침울하게 하는 저 모든 마귀가 쫓겨나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가 참된 신적인 사랑을 품고 일어서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이 도시에는 지금까지 알려진 적 없는 큰 진동이 일어날 것입니다. 다리를 저는 이들, 눈먼 이들, 걷지 못하는 이들, 온갖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이제 다 나오셨습니까? 정말 확실하십니까? 이것은... 여러분의 죄가 분명히 보혈 아래 있고, 이 도시의 죄 때문에 여러분의 마음에 간절함이 있어서, 밤마다, 밤마다 하나님께 “오 하나님!” 하고 울며 기도하실 수 있습니까? 낮에도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들이 죄 가운데 그렇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십니다. 얼마나 죄악으로 가득한지 바라보면, 두 뺨에 눈물이 흐르고 마음이 슬퍼집니까? 여러분 안에 있는 영이 그런 영입니까? 성령으로 인침을 받는 것은 그런 영을 가진 사람들뿐입니다. 성경은 정확히 그렇게 말씀합니다. 성령으로 인침을 받은 사람들 안에는 그런 영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그 영의 열매는 무엇입니까? 사랑, 오래 참음, 부드러움, 온유, 인내, 화평입니다. 모든 사람과 화평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들이 여러분과 의견이 달라도 괜찮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교회는 그런 교회입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제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아침이 되기 전에 여러분이 그분께 자기 편에 서 달라고 부를지도 모릅니다. 그분은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어젯밤 앤젤러스 성전에서 그 설교자가 말하고 있을 때 내가 네게 말한 것을 알지 않느냐? 왜 내려오지 않았느냐? 너는 네 마지막 날을 거절했구나.”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저는 교인이었습니다.”라고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와서 말하리라.” 토미 오스본, 오럴 로버츠, 윌리엄 브래넘, 그 밖에도 나가서 치유 집회를 하는 모든 사람들 같은 이들입니다. “그들 가운데 많은 이가 그 날에 서서 이렇게 말하리라. ‘주여, 제가 주의 이름으로 마귀들을 내쫓았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큰일들을 행했습니다.’” 그분은 “나는 너희를 알지도 못하였노라.”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그런 은사들은 믿음을 통해 역사하지만, 온전하게 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이 그 일을 합니다. 사랑은 우리를 하나님과 하나로 녹아들게 합니다. 하나로 연합하고, 한 마음과 한 영이 되게 합니다. 살아서는 날 사랑하셨고, 죽으셔서는 날 구원하셨네. 제가 그분께 감사드릴 수 있겠습니까? 묻히셔서는 내 죄를 멀리 가져가셨네. 부활하셔서는 값없이 날 영원히 의롭게 하셨네. 자, 저는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기다리고 있습니다... 언젠가 주 오시리, 오 그 영광스러운 날! 이렇게 말씀하십시오. “주님, 오늘 밤이 되게 해 주십시오. 주님의 뜻이라면 오늘 밤이 되게 해 주십시오.”
좋습니다. 지금 저곳에서, 바로 회중 앞에서, 옆에 앉은 이웃들 앞에서 이렇게 말씀하실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브래넘 형제님, 저는 일어나 저 앞으로 나갈 용기가 없습니다. 그러고 싶기는 합니다. 형제님이 말씀하시는 그런 영이 제 안에 없다는 것을 압니다. 예수님께 있던 그런 영, 그분이 품으셨던 그런 사랑, 그분이 드리셨던 그런 희생 말입니다. 그분 안에 있던 그 영이 제 안에도 있어서, 제가 온유하고 부드럽고 인내하며 사랑하고 오래 참고 부드럽게 행하도록 해야 합니다. 하지만 제게는 그것이 없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저는 성질을 부립니다. 저는 그것에서 벗어나도록 성결하게 된 적이 없습니다. 제 생각에는 의심이 있습니다.” 무언가 잘못되어 있습니다. 물론입니다. 성령께서 들어오시면 그 자리를 차지하시고 그런 것들을 모두 뿌리 뽑으십니다. 쓴 뿌리가 모두 사라지고, 그러면 모든 사람을 다정하게 대하며 모든 사람을 사랑하게 됩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됩니다. 여러분은 말씀하십니다. “제게는 그것이 없습니다. 일어설 용기조차 없습니다. 하지만 이만큼의 용기는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께 손을 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 지금은 제가 주님의 편에 나서지 못하겠습니다. 그만한 용기가 없습니다. 하지만 오 주님,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앞으로 나오지 않으신 회중 가운데 계신 분들,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자, 이곳에 서 계신 여러분 한 분 한 분께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자신을 드렸다는 것을 온 마음으로 엄숙히 아시기 바랍니다. 단지 이런 이유로 통로를 걸어 나오지는 마십시오... “저는 지옥에 가고 싶지 않습니다.”라는 이유만으로 나오지 마십시오. 물론 가고 싶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렇게 나오십시오. “하지만 예수님, 제 마음에 무엇인가 와닿았기에 나옵니다. 주님께서 저를 위해 하신 일을 봅니다. 그런데 제게는 주님께서 요구하시는 그것이 없습니다. 그것을 받으러 나옵니다. 저는 그것을 원합니다.” 왜 대용품을 받으십니까? 왜 교인이 되는 것으로, 어떤 작은 흥분으로, 또는... 저는 흥분도 믿고, 소리 높여 외치는 것도 믿고, 방언을 말하는 것도 믿고, 신유도 믿습니다. 그런 것들을 모두 믿습니다. 하지만 제가 지금 말하는 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먼저 하나님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가졌어도 하나님은 모시지 못할 수 있습니다. 바울도 그럴 수 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많은 사람이 와서 그것들을 가졌다고 말하며, 가졌음을 고백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이것이 없었습니다. 아시겠죠?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주님, 제게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저를 그런 사람으로 만들어 주실 주님의 영이 제 마음에 필요합니다. 다정하고, 친절하고, 부드럽고, 겸손하며, 용서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주님, 이제 주님 앞에 고개를 숙이고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주님, 지금 제 삶을 바꾸어 주십시오. 제 자신을 열어 드립니다.’ 그리고 말씀드립니다. ‘주님,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저를 바꾸어 주십시오. 주님께서 하셔야 합니다. 제 감정이 저를 이 제단으로 데려왔습니다. 하지만 저를 바꾸려면 이제 주님의 영이 필요합니다. 주님, 오셔서 행해 주십시오. 오셔서 제 안에 그 영광스러운 갈망을 넣어 주십시오.’” 바로 그것입니다. 얼마 전에 제가 어떤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오, 저는 예수님께서 이제 언제라도 오시리라고 믿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그런 말씀은 하지 마십시오, 브래넘 형제님. 걱정이 됩니다.” 제가 “걱정이 된다고요?”라고 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그럼요. 저는 지금 평생 어느 때보다 돈을 많이 벌고 있습니다. 사업도 더 잘됩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형제님, 그러면 그리스도인이라고 하시면서 주님께서 오시는 것을 두려워하십니까?” [테이프 공백.] “주님께서 오시는 것은 제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순간입니다. 제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입니다.” 제가 지금 여기 있는 것은 바로 그분이 오신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가장... 그분을 뵐 수 있는 그때가 제 삶에 왕관이 씌워지는 때입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그분의 나타나심을 사랑하는 모든 자들에게 의의 왕관이 예비되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분의 나타나심을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말입니다... “주 예수님, 오시옵소서. 예, 주님, 지금 오시옵소서. 주님께서 기뻐하신다면, 주님, 지금이 그 시간입니다.” 그런 마음이어야 합니다. 저를 사랑하시고, 저를 위해 죽으시고, 저를 위해 묻히시고, 부활하셔서 값없이 영원히 의롭게 하셨습니다. “이제 주님께서 오시기를 기다립니다. 주님 안에 있던 것과 같은 영이 제 안에 있기를 원합니다. 제 원수가 뱉은 침이 제 얼굴에 매달려 있어도 온 마음으로 ‘그 일로 당신을 용서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영을 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아니,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인해 우리를 용서하신 것같이 저도 다른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좋습니다. 이제 고개를 숙이고 기도합시다. 빌리, 괜찮다면 여기 저와 함께 서 주십시오. 여러분 가운데 한 분이 이어지는 집회를 맡아 주시면 좋겠습니다. 자, 고개를 숙이신 채 하나님께 잘못했다고 고백하십시오. 이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해 주시고, 여러분 안에 넣어 주시기를 원한다고 말씀드리십시오... [테이프 공백.] 여러분, 제 말을 들으십시오. 제가 여기 서 있는 것만큼이나 분명히, 그분은 그렇게 해 주기를 원하십니다. 자, 보십시오. 여러분이 어떻게 오셨습니까? “내 아버지께서 먼저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느니라.” 여러분은 왜 일어나 나오셨습니까? 무엇인가 잘못되었음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모든 잘못을 바로잡는 제단에 와 계십니다. 여러분을 위한 희생물이 제단 위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었습니까? 피 흘리는 희생물,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분이 부르짖으십니다.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들은 그렇게 하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이제 우리가 기도할 때 그것을 바라보십시오. 믿음으로 그분의 머리에 손을 얹으십시오. 여러분 자신을 한번 그려 보십시오. 여러분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어린양을 데려와서 자기... 어린양에게 손을 얹고 그 목을 베었습니다. 그 작은 양이 몸을 떨고 울면서 죽어 가고, 경배하는 사람의 두 손에 피가 흘러내릴 때, 그 사람은 깨달았습니다... 자신이 죽어야 하는데 양이 자기를 대신해 죽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제 믿음으로 예수님의 머리에 손을 얹으십시오. 피와 물이 갈라질 때까지 버림받으신 그 고통을 느껴 보십시오. 그 고통을 느끼며 말씀하십시오. “주 하나님, 이것을 근거로 제가 지금 죄인으로 나아옵니다. 제게 긍휼을 베풀어 주십시오.” 사랑하는 하나님, 제가 이 거룩한 강단 곁에 서 있는 제 자리를 깨닫습니다. 저는 저 위대한 아침에 저곳에서 만나야 할 남녀들의 죽음과 생명 사이에 서 있습니다. 오, 제가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여 그가 나을 수도 있고, 그 일은 잊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 여기에는 혼들이 걸려 있습니다. 저는 조금도 의심할 여지 없이 저들과 함께 의로우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 서서 이 사역에 대해 회계 보고를 해야 합니다. 주님, 여기 저들이 있습니다. 저들은 믿었기에 나왔습니다. 성령께서 저들이 잘못하고 있었음을 책망하셨기에 이제 그것을 바로잡으려고 나왔습니다. 제가 저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주님, 제가 할 줄 아는 것은 여기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전하는 것뿐입니다. 지금 저들이 자기 잘못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저들이 기꺼이 고백하면 하나님께서 용서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약속하셨습니다. 저들의 마음에 있는 소원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기록되기를, “그분 앞에서 올바르게 걷는 자들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하였기 때문입니다. 저들은 마음에 사랑의 영이 있기를 원합니다.
아버지, 우리는 너무나 많이 외쳤고, 너무나 많은 기쁨을 누렸습니다. 주님, 우리가 가장 중요한 것을 잊은 것은 아닌지 두렵습니다. 굴 어귀에 서 있던 엘리야처럼 말입니다. 바람과 천둥소리를 들었지만 그것은 그를 놀라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고요한 작은 음성을 기다렸습니다. 주님, 지금 말씀해 주옵소서. 저들의 마음 깊이 그 고요한 작은 음성으로 말씀해 주옵소서. “내 자녀야,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네가 지은 모든 죄를 나 자신의 희생물, 나의 독생자 위에 놓노라. 너는 믿었기 때문에 고백하고 있구나. 너를 도울 수 있는 이는 오직 그분뿐이었고, 그분은 그 일을 하셨느니라. 그분은 자신의 고난으로 너희 모두를 의롭게 하셨느니라. 나는 그분을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 그것을 입증하였노라. 이제 그분 안에 있던 그 영을 네게 주노라. 용서하고, 사랑하고, 부드럽고, 오래 참고, 선하고, 온유하고, 친절하고, 부드럽고, 인내할 수 있는 그 영을 주노라.” 하나님, 바로 지금 저들에게 허락해 주옵소서. 이제 주님, 그 날에 제가 저들과 함께 그곳에 나아갈 때, 제가 할 줄 아는 것은 저들을 여기로 데려와 주님께 행해 주십사 간구하는 것뿐입니다. 주님께서 지금 행하고 계시고, 이미 이루어졌으며, 저들이 그것을 믿고 바로 지금 마음 깊이 받아들이고 있다는 믿음으로, 제 믿음을 저들의 믿음과 함께합니다. 오늘 저녁 성령께서 그리스도께 데려오신 사랑의 선물로 저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주님께 드립니다.
자, 고개를 숙이고 계신 여러분은 자신이 해 온 일들이 참으로 부끄럽게 느껴지실 것입니다. 많은 분이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했지만, 잃어버린 혼들을 위해 마땅히 품어야 할 만큼의 부담을 품지 못했습니다. 교회에는 다녔을지 모릅니다. 어떤 일들, 좋은 일들을 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제는 마음이 다릅니다. 이제 나가면서 이런 마음이 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무엇인가 말씀하셨고, 이제 그분을 향한 사랑이 더 커졌습니다.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 보입니다. 그렇다면 손을 들어 주십시오. 제단 주위에 계신 여러분 모두, “지금 그렇게 느낍니다.”라고 말씀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 놀랍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백 퍼센트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것은 어떤... 감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겸손히 나아와, 조용히 걸어와, 그 작은 음성을 귀 기울여 듣는 것입니다. “예, 주님. 그러면 제가 주님을 받아들입니다. 주님, 이제 주님을 믿습니다. 온 마음으로 주님을 믿습니다. 오늘 저녁 이곳을 떠나 겸손하고 부드럽게 살겠습니다. 오늘 저녁 잃어버린 죄인들을 향한 부담을 마음에 품고 떠나겠습니다. 죄인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밤부터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겠습니다.” 이제 회중 모두 어디에 계시든 고개를 숙여 주십시오. 빌리 애덤스 형제님께 이 집회를 계속해 주시도록 부탁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