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기도하기 위해 머리를 숙입시다. 전능하신 하나님, 오늘 밤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님 앞에 머리를 숙입니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주셔서 우리가 구속받고, 언젠가 우리를 구원하신 그분을 바라볼 특권을 갖게 해 주셨으니,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경배를 주님께 드립니다. 오늘 밤 우리는 이곳에 와서 그분의 이름으로 모였습니다. 두 사람 이상이 그분의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는 어디든 우리 가운데 계시겠다고, 또 우리가 무엇이든 한마음으로 구하면 이루어 주시겠다고 그분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 오늘 밤 우리는 온전히 한마음이 되어 구합니다. 이 건물 안에 아직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오늘 밤 구원받게 하시고, 라디오로 듣는 이들 가운데 그런 사람이 있다면 오늘 밤 구원받게 하옵소서. 병들고 고통받는 모든 사람을 고쳐 주시고 주님의 이름에 영광을 받으옵소서. 우리는 주님의 종이며, 우리가 아는 한 최선을 다해 주님을 섬기려고 이곳에 왔습니다. 이제 우리 자신과 우리의 영과 생각과 우리의 모든 것을 주님을 섬기는 데 쓰시도록 주님의 손에 맡깁니다.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앉으셔도 좋습니다.
저는 차 안에 앉아 악단이 연주하는 음악을 즐겁게 들었습니다. 파이퍼 부인께서 노래로 전하시는 메시지도 우리는 언제나 참 좋아합니다. 그리고 데이비드 형제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주님의 그 용사가 주 예수님에 대해 품고 있는 생각을 말하는 것을 들으면, 저는 언제나 감동을 받습니다. 형제님은 이곳에서 매일 아침 열 시쯤 집회를 인도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녹음 담당 형제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들이 그 말씀을 녹음하고 있더군요. 나중에 제가 들을 수 있는 곳에 가서 모두 들을 수 있도록, 하나도 빠짐없이 보관해 두겠다고 했습니다. 형제님의 말씀은 분명 여러분에게도 유익할 것입니다.
저는 두플레시 형제님을 안 지 몇 년 되었습니다. 제가 그분을 안 것보다 그분이 저를 안 지가 더 오래되었습니다. 제가 모르는 사이에 그분이 집회에 참석하시곤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분의 가족을 아는데, 모두 훌륭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제가 남아프리카에 갔을 때 그분의 형제가 제 통역을 맡았습니다. 훌륭한 그리스도인 신사였습니다. 저는 데이비드 형제님의 영을 좋아합니다. 지금은 가셨으니 제 말을 듣지 못하실 겁니다. 하지만 저는 그분의 영이 좋습니다. 온유하면서도 곧바로 핵심을 짚고, 어떤 일에도 타협하지 않으면서 여전히 온유합니다. 저는 그런 모습이 좋습니다. 아시다시피 예수님은 결코 나약한 분이 아니셨습니다. 여성스러운 분이 아니라 남자다운 분이셨습니다. 그러면서도 온유하게 핵심을 바로 말씀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을 보면, 저는 그 사람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계신다는 생각이 듭니다.
두플레시 형제님은 내일도 설교하십니다. 제게 말씀하시기로는 내일 밤에 떠나셔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분의 부인과 이야기를 좀 나누지 못해서 아쉬웠습니다. 참으로 훌륭한 부인입니다. 며칠 전 아침 조찬 모임에서 만났는데, 아주 훌륭한 부인이셨습니다. 참으로 전형적인 아프리카너 여성이셨습니다. 주님의 뜻이라면 올해 남아프리카에 가서 데이비드 형제님과 함께 다시 큰 대전도 집회를 열기를 바랍니다. 제가 주님을 위해 열었던 집회 중 으뜸가는 집회가 바로 그곳에서 열렸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날 오후, 복음을 전혀 접하지 못했던 이교도 삼만 명이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했습니다. 신원표로 집계된 이교도 삼만 명, 담요를 두르고 사는 원주민들로서, 제가 알기로는 전에 예수님의 이름조차 들어 보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원주민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들 가운데는… 그 무리에 이슬람교도가 만 명쯤 있었다고들 했습니다. 아시겠죠?
몇 년 전에 한 선교사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분은 귀한 보석 하나를 얻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여러 해 동안 선교지에서 일하면서 이슬람교도 한 사람을 주님께로 인도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인도하기가 가장 어려운 사람들입니다. 바꾸지 않는 옛 메대와 페르시아의 전통을 이어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자기 종교가 최고입니다. 자기 종교가 가장 좋다고 하니, 좀처럼 그들을 바꿀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우리가 잘못한 부분은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우리는 가서 교회를 세우고, 교단을 만들고, 학교를 세웠습니다. 그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자기 교회에 맡기신 사명은 정확히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복음을 선포하고, 병든 자들을 고쳐 주고, 죽은 자들을 일으키고, 나병 환자들을 정결하게 하는 것, 그것이 맡기신 사명입니다. 아시겠죠? 그런데 우리는 그것 말고 다른 일들을 해 왔습니다. 그래서 복음이 마땅히 퍼져야 할 만큼 퍼지지 못한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기본 명령으로 돌아갑시다. 그렇습니다. 명령으로 돌아갑시다.
“내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들리면 모든 사람들을 내게로 이끌리라.” 제가 이렇게 미국을 다니는 까닭도 그것입니다. 헌금을 거두지 않고, 사람들이 자원하여 제게 무언가 주고 싶을 때 주는 것만 받아, 저곳으로 떠나 몇천 명의 혼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할 만큼 돈을 모으려는 것입니다. 그러면 심판의 날에 여러분에게도 그 공로가 돌아갈 것입니다. 주님께서 제게 가라고 사명을 주셨고, 여러분은 제가 가도록 돕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날에는 우리 모두가 그 일에 함께 참여한 것이 될 것입니다. 그날이 와서 모든 일이 끝났다는 것을 알게 되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그때 함께 앉아서… 얼마나 좋은 시간이 되겠습니까!
어디로 가든 비행기에서 내리면 공항에 사람들이 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저 기억하세요? 그때 저를 위해 기도해 주셨지요.” 기차를 타면 누군가 지나가다가 말합니다. “브래넘 형제님 아니세요? 십 년 전에 형제님 집회에서 제 암이 나았습니다.” 그러면 저는 우리가 저편 강가에 함께 앉을 때는 어떨까 생각합니다. 여기서는 그저 이렇게 말하지요. “예, 그 집회 기억합니다. 주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안녕히 가세요.” 하지만 그곳에서는… 우리가 그곳에 가면 저는 여러분 한 분 한 분과 만나기로 약속하고 싶습니다. 한 분씩 천 년 동안 함께 앉아 있고 싶습니다. 아시겠죠? 그곳에 가면 시간이라는 것이 없을 테니까요. 그러니 우리는 그저… 잠깐 몇 분 이야기하는 것처럼, 한 분씩 천 년 동안 함께 앉아 그때 모든 이야기를 나눌 것입니다. 참 좋을 것입니다.
녹음테이프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씀드리는데, 어떤 분들이 제게 “메시지는 어디에서 구할 수 있습니까?” 하고 물으셨습니다. 이곳에서 전한 메시지들은 그다지 좋지 못했습니다. 목이 쉬었고 피곤했으며, 제 앞에 놓인 일도 많고, 세상은 전혀 모르는 일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쉬고 난 뒤 우리 태버내클 등에서 전한 메시지들도 있습니다. 서로 다른 설교가 오백 편쯤 모두 테이프에 녹음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형제들이 그것을 판매대에 갖다 놓고…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테이프 원가보다 아주 조금 더 받고 팝니다. 거의 취급 비용만 받고 드리는 셈입니다. 판매대에서 얼마든지 구하실 수 있습니다. “메시지는 어디에서 구할 수 있습니까?”라고 적은 쪽지들이 제게 왔습니다. 그러니 판매 코너의 서적 판매대에서 구하시면 됩니다.
어젯밤 우리는 참으로 영광스러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적어도 저는 그랬습니다. 저는 그저… 어젯밤에 우리가… 그때 생각이 납니다. 밖으로 나가면서 교회 사람들이 서서 큰 소리로 외치며 주님을 찬양하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그때 저는 예전에 한 번… 저는 낚시를 무척 좋아합니다. 아시다시피 설교자들은 거의 모두 낚시를 좋아하지요. 거기서 그들이… 베드로와 사도들이 한번은 낚시를 하다가 주님을 뵈었습니다. 그래서 설교자들이 낚시를 좋아하는 모양입니다. 닭고기를 먹는 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다들 좋아하기는 하지요… 수탉이 울었던 일 말입니다.
저는 뉴햄프셔 북쪽 깊숙한 곳에 가 있었습니다. 흰꼬리사슴의 본고장에서 작은 시내송어를 낚고 있었습니다. 배낭을 메고 사흘이나 들어가야 하는 산속에 있었습니다. 작은 천막을 치고, 밤에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지내려고 안에 난로도 놓았습니다. 이른 봄이었습니다. 저는 개울을 따라 올라가며 낚시를 했는데, 고기가 많이 잡혔습니다. 그날 아침 일찍, 해가 뜨기 한참 전에 플라이 낚싯줄을 가지고 올라갔습니다. 손도끼도 가지고 갔습니다. 좀… 작은 손도끼로 버드나무 가지를 좀 쳐내려고 했습니다. 아래쪽 깊은 물웅덩이에 큰 송어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는데, 그곳으로 플라이 미끼를 제대로 던질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침으로 먹을 만큼 고기를 꽤 잡아 돌아오는 길에 무슨 소리가 들렸습니다. 길모퉁이의 작은 덤불 너머를 보니, 제 작은 천막이 바닥까지 완전히 찢겨 있었습니다. 작은 이인용 천막이었습니다. 그 안에는… 다 자란 암곰 한 마리와 새끼 두 마리가 들어와 있었습니다. 녀석들이 천막을 사정없이 망가뜨려 갈기갈기 찢어 놓았습니다. 먹어 치우는 게 문제가 아닙니다. 부수어 놓는 게 문제입니다. 안에 낡은 난로 연통이 있었는데, 어미 곰은 그저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들으려고 그것을 툭툭 치고 있었습니다. 그저… 보니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더군요.
제가 모퉁이를 돌아오자 어미가 제 소리를 들었습니다. 땅에는 아직 서리가 조금 남아 있었습니다. 어미는 고개를 들더니 새끼들에게 낮게 소리를 내어 부르고는 달아났습니다. 작은 새끼 한 마리는 어미를 따라 달아났습니다. 아주 작은 녀석이었지요. 조그맣고 귀여웠습니다. 그렇게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다른 새끼가 오지 않자 어미가 잠깐 멈추더니 그 새끼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낮게 소리를 내는데, 새가 우는 것 같은 소리가 났습니다. 어미는… 그런데 다른 새끼는 앉아 있었습니다. 저를 등지고 이렇게 등을 잔뜩 구부린 채 앉아 있었습니다. 무언가 하고 있기에 저는 ‘뭘 찾아냈나 보군. 거기 아주 푹 빠졌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미가 다시 부르더니 제 쪽으로 돌아오려는 듯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아시다시피 새끼를 건드리면 어미 곰이 발톱으로 할퀴는 수가 있습니다. 제 손에는 손도끼가 있었고, 천막 안에는 녹슨 권총 하나가 놓여 있었지만 천막은 찢겨 있었습니다. 저는 어미를 죽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숲에 고아 두 마리가 남을 텐데, 그런 일을 저지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미가 달려오면 재빨리 올라갈 수 있는 나무가 있는지 살폈습니다. 그러고는 ‘저 작은 녀석이 왜 저러는지 봐야겠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녀석은 무언가에 아주 열중해 있었는데, 저를 등지고 있어서 무엇을 하는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계속 어미를 주시했습니다. 어미가 자꾸 새끼를 부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옆으로 돌아가 새끼가 보이는 곳까지 갔습니다. 녀석이 제 당밀 통을 열어 놓았더군요. 그래서 저는…
저는 팬케이크를 좋아합니다. 저기 계신 형제자매님들 가운데도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당밀 한 통을 가져갔습니다. 그리고… 저는 뿌리기만 하는 것은 믿지 않습니다. 푹 담가 침례를 줍니다. 저는 침례교인이니까요. 정말 듬뿍 붓습니다. 당밀을 아주 많이 말입니다. 그런데 그 작은 녀석이 그 통을 열었던 것입니다. 곰은 원래 단것을 좋아하지요. 녀석은 작은 앞발을 통 안에 넣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앞발을 푹 집어넣었다가 얼굴 위로 들어 올리면서 이렇게 핥아 먹었습니다. 통을 더없이 깨끗하게 훑어 먹었습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통 당밀투성이였습니다. 저는 “거기서 나와!” 하고 소리쳤습니다. 녀석이 돌아서 저를 보았지만, 눈에 당밀이 들어가서 보지를 못했습니다. 제가 본 것 중 가장 귀여운 광경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물론 그때 사진기는 없었습니다.
어미는 계속 그 새끼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렇지. 저 녀석에게는 정죄가 없지. 정말 당밀 통에 팔꿈치까지 손을 푹 담그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어젯밤 우리가 한 일이 바로 그런 것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든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그저 당밀 통에 손을 넣고, 온몸에 당밀을 묻히고 있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 작은 녀석이 어미와 형제에게 가자 그들이 녀석을 핥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몸에 묻은 당밀을 핥아 먹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도 어젯밤 당밀을 충분히 묻히셨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어젯밤 우리가 나눈 간증을 사람들이 오늘 하루 종일 그렇게 맛보았기를 바랍니다. 자연 속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지 살펴보면 참으로 놀라운 일들이 있습니다. 정말 놀랍습니다. 산꼭대기에 올라가 앉아서, 잠시 시간을 내어 주님을 경배해 보십시오. 정말 좋습니다.
주님의 뜻이라면 일요일 오후에 나의 삶 이야기를 해 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일요일 오후입니다. 아주 여러 해 만에 처음 하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토요일 아침에는 클리프턴스 카페테리아에서 실업인 조찬 모임이 있습니다. 오실 수 없다면—그곳은 늘 사람들로 꽉 찹니다—오실 수 없다면 라디오를 틀어 들으십시오. 정말 좋은 시간을 갖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일요일 오후와 일요일 저녁에는 다시 이곳에 모입니다. 물론 이 도시에 오신 방문객이고 달리 가실 곳이 없다면 템플로 오십시오. 일요학교 예배에 오시면 기쁘게 맞이하겠습니다. 분명 여러분의 혼이 양식을 얻을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펴겠습니다. 어젯밤 읽던 곳에서 한 절만 읽고 싶습니다. 우리는 로마서 4장 20절까지 읽었습니다. 오늘 밤에는 21절을 읽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어젯밤에는 창세기 11장에서 시작하여 창세기 16장까지 살펴보면서, 아브라함의 삶에서 중요한 대목만 짚었습니다. 자, 여기에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그분께서 약속하신 것을… 그분께서 지키실 수 있음을 온전히 확신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을 지키실 것입니다. “그분께서 약속하신 것을 그분께서 또한 이행하실 수 있음을 온전히 확신하였으니.”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약속을 지키십니다. 아브라함은 온전히 확신했습니다. 육신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나 다른 누구에게 아무리 터무니없게 보이더라도, 아브라함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였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약속이 무엇인지, 얼마나 터무니없어 보이는지를 그렇게 많이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누가 그 약속을 주셨는지를 보았습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보고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제 오늘 밤 살펴보려는 대목까지 가기 위해 배경을 조금 되짚어 보겠습니다. 주님의 뜻이라면 내일 밤에는 이 아브라함 공부를 절정에 이르게 하려고 합니다. 저는 신학자나 교사라고 하기에는 한참 부족합니다. 하지만 그분에 관해 제가 아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제게 그토록 큰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것을 말할 때 느끼는 것만큼, 여러분도 들으면서 큰 의미를 느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 모두가 복을 받을 것입니다. 어젯밤 우리는 아브라함이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라보시고 그 마음을 보신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렇게 사람을 보십니다. 사람의 마음을 보십니다. 사람은 겉모습을 보지만 하나님은 마음을 보십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아무리 가난하고, 아무리 자격이 없어 보이고, 아무리 교육을 받지 못하고, 글을 모른다 해도 상관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마음을 보십니다. 언제나 그것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다루시는 곳은 마음입니다.
며칠 전 밤에 우리는 이런 주제를 다루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마귀는 지성을 통해 사람의 머리를 택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택하셨습니다. 믿음으로 걷는다면 눈으로 볼 수 없고 머리로 따져 납득할 수도 없는 것들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런 추론들을 무너뜨립니다. 하나님께서 무언가 말씀하시면 더 이상 머리로 따져 보지 않습니다. 그 말씀이 마음속 깊이 스며들게 하고, 거기에 어긋나는 것은 무엇이든 없는 것으로 여깁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바라봅니다. 누가 그 약속을 주셨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이 그토록 뒤엉켜 있는 까닭이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지적인 설교가 너무 많습니다. 성령 충만한 교회들이 영 안에서 경배하는 대신, 지적인 메시지들을 듣고 있습니다. 이것은 머리로 따져서 알아낼 수 없습니다. 도무지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 템플에 한 주 더 있을 수 있다면, 제 마음에 있는 주제를 좀 다루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참 교회가 회복되는 것에 관한 주제입니다. 털벌레가 먹고, 쐐기벌레가 먹고, 이 여러 벌레들이 먹어 버린 것 말입니다. 같은 벌레가 그저 서로 다른 생애 형태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것이 모조리 먹어 버렸습니다. 그들이 먹어 버리고 이렇게 온갖 사람이 만든 것들을 세워 놓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통해 회복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루터기에서 바로 자라나게 하실 것입니다. “내가 회복하리라. 주가 말하노라.” 어떤 신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에게서 나올 것입니다. “내가 회복하리라.” 이 털벌레와 자벌레 같은 것들이 하나님의 유산을 갉아먹어 그루터기만 남겨 놓았습니다. 그러나 회복은 이것들을 통해 오지 않을 것이며, 그분은 이것들을 사용하지도 않으실 것입니다. 그분은 그루터기에서 곧바로 회복을 이루어 내실 것입니다. “내가 회복하리라. 주가 말하노라.” 그분은 사람들 안에 믿음을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바로 앞에 있는 마지막 책, 짧은 유다서에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공통의 구원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쓰려고 모든 열심을 내던 차에 성도들에게 한 번 전달된 믿음을 위해 너희가 힘써 싸우라고 내가 너희에게 써서 권면할 필요가 생겼나니.” 그들이 그 믿음에서 떠났던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신 지 삼십삼 년 뒤인 그때 이미 떠났다면, 오늘 밤에는 얼마나 더 멀리 떠났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교회를 이전의 상태로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믿습니다. “내가 회복하리라.”
그러니 우리는 돌아가야 합니다. 제가 아브라함에 관해 가르친 까닭도 여러분에게 알려 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오늘 밤 교회 안에서, 사람들 가운데, 모든 교회에서 제가 가장 두드러지게 발견하는 것은 이렇습니다. 제가 교회라고 할 때는 모든 교회를 말합니다. 저는 서로 다른 두 부류의 사람들을 봅니다. 근본주의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들이 차지한 위치를 알지만, 그것을 위한 믿음이 없습니다. 반면 오순절 사람들은 믿음은 많지만 자신들이 누구인지 모릅니다. 그러니 한 사람은 은행에 돈이 많이 있는데 수표를 쓸 줄 모르고, 다른 사람은 수표는 쓸 줄 아는데 은행에 돈이 하나도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이 둘을 함께 모을 수 있다면 말입니다. 오순절 사람들 안에 있는 믿음을 근본주의 신앙을 가진 사람들 안에 넣을 수 있다면—제가 하려는 말은 오순절 사람들 안에 있는 성령을 근본주의 신자들 안에 모실 수 있다면—혹은 그들의 위치를, 근본주의 신자들이 아는 것처럼 오순절 사람들에게도 자신들의 위치를 알게 해 줄 수 있다면, 무언가 일어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성령을 받은 사람들의 문제는, 그들이 그저… 성령께서 어떻게 일하시게 해야 할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 일하시게 하는 대신, 그 힘을 전부 증기처럼 뿜어 버립니다. 환호하고 찬양하는 데 다 써 버리는 것입니다. 그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이제 일하게 합시다. 주님을 위해 일하게 합시다. 벤저민 프랭클린이 전기를 붙잡았을 때와 같습니다. 그는 “잡았다! 잡았어!” 하고 소리치기 시작했습니다. 느꼈으니 전기를 붙잡았다고 말할 수는 있었습니다. 붙잡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활용하지 않으면 아무 유익도 없을 것입니다. 이제 전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 보십시오. 우리가 성령께서 일하시게 한다면, 전기가 세상을 밝힌 것처럼 성령께서도 복음으로 세상을 밝히실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성령께서 일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사람들은 구경을 즐기고 있습니다.
단상에서든 여러 다른 곳에서든, 어디서든 살펴보십시오. 이곳만이 아니라 어디서든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앞으로 나오면서 기대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들은 요즘 이런 식으로 분위기를 지나치게 몰아가는 신유 대전도 집회를 너무 많이 겪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내 손에 있습니다! 후! 느껴집니까? 느껴져요? 느껴지십니까?” 아닙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느끼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손은 느낄지 모르지만, 느끼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결코 “느꼈느냐?”라고 묻지 않으셨습니다. “믿었느냐?”라고 하셨습니다. “느꼈느냐?”가 아닙니다. 믿는 것입니다. 믿음은 느낌이 아닙니다. 믿음은 여러분이 감각으로 느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증언해 줄 감각은 없습니다. 오직 그것을 아는 제육감, 그 믿음만이 있습니다. 그것을 만져 느끼거나, 맛보거나, 냄새 맡거나, 듣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압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으니 그것으로 확정된 것입니다.
언젠가 제가 사람들을 흔들어 이런 할리우드식 전도에서 벗어나게 하고, 성경으로,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로 돌아오게 할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면, 그때는 무언가 일어날 것입니다. 제가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템플에서 한바탕 열기가 일기는 했지만, 저는 이 템플에서 부흥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부흥은 새로운 교인들을 데려오는 것이 아닙니다. 부흥은 이미 있는 것을 다시 살아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부흥입니다. 바다에 부흥이 일어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바닷물이 뛰어오르고 요동치며 파도가 부딪칠 때, 그 안에 있는 물은 아주 잔잔할 때보다 한 방울도 더 많아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부흥이 일어나 모든 쓰레기를 해변으로 밀어냅니다. 바로 그런 일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 밤 교회에 필요한 것이 바로 그런 부흥입니다. 교회 안의 모든 허튼 것을 내던져 해변으로 밀어내고, 복음의 견고한 사도적 기초로 돌아오게 하는 부흥입니다.
성경도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와서 내게서 금을, 불로 정제한 순금을 사라.” 옛날 금을 두드려 다듬는 사람들은 금을 가져다가 두드리고, 뒤집어서 또 두드렸습니다. 불순물을 두드려 빼내다가, 두드리는 사람 자신의 모습이 그 금에 비칠 때까지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면 불순물이 빠져나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성령으로 그리스도인과 교회를 붙들어 복음으로 두드리십니다. 이쪽저쪽으로, 또 이쪽저쪽으로 두드리셔서 그 안에 예수님이 비치게 하십니다. 성령께서 교회 안에 예수님의 일들이 계속되는 것을 보실 수 있게 되면, 그때 일들이 잘 풀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에는 불순물이 너무 많습니다. 너무나 많은… 물론 그들은 훌륭한 사람들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들, 가장 뛰어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교회는 스스로 준비해야 합니다. 준비하십시오. 성경은 “신부가 자신을 예비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며칠 전 피스가에서 그것을 설교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약속을 주신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그의 씨에게 전적으로 아무 조건 없는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여러분이 아브라함의 씨라면, 아브라함이 그랬던 것처럼 분명히 그 약속의 상속자입니다. 아시겠죠? 여러분이 아브라함의 씨라면 아브라함의 믿음이… 이것은 육신의 씨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유대인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울이 말한 것처럼, 겉으로 유대인인 사람이 유대인이 아닙니다. 속으로 영적인 유대인이어야 합니다. 유대인, 참된 영적 유대인은 아브라함이 믿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에 어긋나는 것은 무엇이든 없는 것으로 여기는 사람입니다.
그런 교회가… 그런 교회를 이룰 수 있다면, 오늘 밤 바로 여기 모인 사람들을 그런 상태가 되게 할 수 있다면, 이곳에 부흥이 일어날 것입니다. 자정에도, 새벽 한 시에도, 새벽 다섯 시에도 이 건물 안을 밤새 걸어 다니며 주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이곳에 부흥이 일어나, 아침이면 신문 기자들이 문 앞에 서 있을 것입니다. 온 세상 곳곳으로 소식이 퍼질 것입니다. “앤젤러스 템플에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오순절 날과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원하십니다. 원하시지만 자기 자녀들을 깨우실 수가 없습니다. 그들이 그것을 깨닫게 하실 수가 없습니다.
어젯밤 우리는 아브라함에게 언약이 확증되는 대목까지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 일을 하실 것인지, 어떻게… 아브라함에게 보여 주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취하여 희생물로 삼으실 것인지를 보았습니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 아브라함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저 계속 믿는 것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아들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 아브라함아, 네가 어떤 일을 하면 내가 내 아들을 보내겠다”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그것을 하겠다. 이미 이루어졌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창건 때부터 죽임을 당한 하나님의 어린양이셨습니다. 이런 생각을 해 보셨습니까? 여러분의 이름은 그리스도께 마음을 드리던 그날 밤에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아셨습니까? 성경은 “너희 이름은 세상의 창건 때부터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었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미리 아심입니다.
무엇이 두려우십니까? 왜 그렇게 두려워하십니까? 여러분은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당당히 나아가 원수와 맞서지도 못하고, 마귀가 하는 말은 무엇이든 거짓말이라 하며 하나님의 말씀은 참되다고 하지도 못하는 것 같습니다. 아시겠죠? 여러분은 하나님께 택함받았습니다. 스스로 자신을 택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택하셨습니다. 언제 택하셨습니까? 세상이 창건되기 전, 어린양이 죽임을 당했을 때입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씀합니다. 성경의 요한계시록 20장인 것 같습니다만, 마지막 날들에 적그리스도가, 세상의 창건 때부터 어린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땅에 거하는 모든 사람들을 속였다고 했습니다. 언제부터입니까? 세상의 창건 때부터입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아심으로 여러분을 보시고 여러분의 이름을 그 책에 기록하셨을 때부터입니다. 어린양이 죽임을 당했을 때 여러분도 그 어린양과 함께 죽임을 당했습니다. 할렐루야! 아, 놀랍습니다!
사람들은 두려워합니다. “아, 내가 그저… 저, 저는 두려워요… 저, 제가 실수할지도 몰라요.” 실수한다고요? 그저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더 나쁠 수는 없습니다. 일어나 움직이십시오. 그 일을 해내십시오. 어떤 식으로든 노력하십시오. 움직여야 합니다. 성령께서 어떤 사람에게 역사하기 시작하시면, 그 사람은 어깨를 펴고 고개를 들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걸어가야 합니다. 물론입니다. 그 말씀을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그 약속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저 말씀을 보고는 “글쎄…” 하고 말합니다. 한번은 늙은 어부가 바다에서 돌아오는데, 바다로 내려가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바다에 관한 이야기는 들었지만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책으로 읽고 참 멋지겠다고 생각했기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좀 쉬면서 바다에 가 봐야겠어. 커다란 바닷물결이 반짝이는 모습과, 푸른 하늘을 비추는 깊은 바다와 갈매기들을 보고, 짭조름한 바닷바람 냄새도 맡아 봐야겠어. 정말 멋질 거야!” 그렇게 가다가 바다에서 돌아오는 노련한 늙은 뱃사람을 만났습니다. 뱃사람이 물었습니다. “여보시오, 어디로 가시오?” 그는 “바다로 갑니다” 하고 대답하며, 바다가 얼마나 멋질지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뱃사람은 말했습니다. “에이, 별것도 없소.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모르겠소. 나는 육십 년 전에 바다에서 태어나 그 뒤로 줄곧 바다에서 살았소. 뭐가 그렇게 가슴 뛰는 일인지 모르겠소.”
보십시오. 그 사람은 너무 오래 그 안에 있다 보니 감격을 잃어버렸습니다. 여러분도 그렇습니다. 성령께서 일하시는 것을 너무 많이 보아서 그것이 승리를 잃어버렸습니다… 아니, 그것으로 인한 여러분의 승리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저 흔한 일이 되어 버립니다. 하나님께서 무언가 보여 주시고 움직이시며, 영이 여러분에게 임하고 말씀이 나와도 이렇게 말합니다. “예, 꽤 좋네요. 분명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습니다.” 아, 이럴 수가! 우리는 감격해야 합니다! 날마다 새로워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언제나 우리에게 새로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음껏 누리는 일이 우리를 그저 감격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무엇을 하실지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언약을 살펴보며, 사람들이 어떻게 언약을 맺었는지 보았습니다. 계약서를 둘로 찢어서 한 사람은… 계약서의 한쪽을 갖고, 다른 사람은 다른 쪽을 가졌습니다. 그 계약을 이행할 때는 두 사람이 함께 와야 했고, 계약서 두 조각이 꼭 맞아야 했습니다. 아시겠죠? 계약서를 써서 찢어 놓은 다음, 그것과 똑같은 것을 한번 만들어 보십시오. 절대로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종이가 찢어진 자국이며 모든 것이 완벽하게 맞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씨와 계약을 맺으실 때, 자신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님을 십자가로 데려가셨습니다. 그것을 믿으십니까? 그곳으로 데려가 희생물로 찢으시고, 그분의 몸을 무덤에서 일으켜 영광 가운데 있는 자신의 보좌, 자신의 오른편에 앉히셨습니다. 그리고 계약의 다른 쪽인 영을 교회로 다시 보내셔서 교회를 충만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내가 하는 그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라고 하신 것은 당연합니다. 그분의 일들은 계속되었습니다. 언제까지입니까? “너희는 온 세상으로 가라. 누구든지… 그리고 복음을 선포하라. 믿고 침례를 받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나 믿지 않는 자는 정죄를 받으리라. 그리고—접속사입니다—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어디까지입니까? 온 세상까지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입니까? 모든 창조물에게입니다. 사도들이 어떻게 그 일을 다 할 수 있었겠습니까? 아직 다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 사명은 여전히 그대로 유효합니다. “조금 있으면 세상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그 그리스어 코스모스는 “세상의 질서”라는 뜻입니다. “세상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나를 보리니—‘너희’, 그것은 교회입니다—내가—인칭대명사입니다—세상의 끝까지 너희와 함께, 심지어 너희 안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 사도들의 끝까지가 아니라 세상의 끝까지입니다. “그리고 내가 하는 그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들이 너희 안에 거하면…” 여기서 거한다는 것은 “그곳에 머문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약속, “나는 너를 치유하는 주니라”라는 말씀을 마음속에 받아들이십시오. 마음속에 넣고 그곳에 머물게 하십시오. 절대로 빼내지 마십시오. 그곳에 머물게 하십시오. 그 말씀에 따라 행동하십시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들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원하는 바를 구하라. 그러면 그것이 너희에게 이루어지리라.” 아, 이것이 참된 진리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성령, 그리스도 안에—거하고 내 말들이—내 모든 약속들이—너희 안에 거하면—그곳에 머물면—그저 너희가 원하는 바를 구하라. 그러면 그것이 너희에게 이루어지리라.”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가 아흔아홉 살쯤 되었을 때, 백 살에서 한 살 모자란 나이가 되었을 때에도 어린 이삭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그 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을 지키셔야 합니다. 하나님이시라면 자신의 약속을 지키셔야 합니다! 아, 제가 할 수만 있다면… 그 사실이 왼쪽 다섯 번째 갈비뼈 아래로 깊이 스며들어 거기에 머무르게 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아시겠죠? 하나님께서 약속하시면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을 지킬 의무가 있으십니다. 그분은 그것을 고치실 수 없습니다. 바꾸실 수 없습니다. 우리는 유한합니다. 우리는 “제가 그곳에 가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뜻이라면”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보십시오. 우리는 유한합니다. 우리는 말을 하고도 실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무한하시며 실수하실 수 없습니다.
그분이 무엇을 하시든 그것은 완전하게 이루어집니다. 더 나아질 수가 없습니다. 그분이 행동하시는 방식은 언제나 완전합니다. 죄인 하나가, 첫 번째 죄인이 그분께 와서 회개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 회개를 받아 주셨다면, 두 번째 죄인이 올 때에도 처음과 똑같이 행하셔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치유를 받으려고 그분께 왔고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믿음을 근거로 고쳐 주셨다면, 다음 병자가 올 때에도 똑같이 하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첫 번째 사람을 고치셨을 때 잘못하신 것이고 실수하신 것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서서 “사도들 시대에 사람들을 고쳐 준 것은 내 실수였다. 나는 이제 사람들을 고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셔야 할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절대로 아닙니다! 하나님께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있습니다! 하나님께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우리의 믿음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믿을 수 있다면 말입니다.
모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치유를 위한 속죄는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죄들을 위한 속죄도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모든 것이 준비되었습니다. 오십시오! 그렇습니다. 혼인 만찬이 차려졌습니다. 사람들은 핑계를 댔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가서…”라고 하셨습니다. 마지막 부름은 가서 병든 자와 다리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는 것이었습니다. 혼인 만찬 바로 전에 열리는 치유 대전도 집회입니다. 이제 우리가 어느 때에 와 있는지 아시겠습니까? “거리와 큰길과 산울타리로 가서 다리를 못 쓰는 자들, 다리 저는 자들, 눈먼 자들을 데려오라. 그들을 고쳐 주고 내가 그들에게 내 긍휼을 보이게 하라. 그러면 그들이 나를 믿으리라.” 그렇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지막 부름입니다. 만찬에 오라는 부름은 치유입니다. 마지막 부름입니다.
이제 아브라함이 아흔아홉 살이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우리는 이제 창세기의 다음 장인 17장으로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다시 나타나셨습니다. 이번에 나타나셨을 때에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거기 쓰인 히브리어는 엘 샤다이입니다. 그 뜻은… 엘은 “하나님, 강하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창세기 3장에서 나온 “강하신 분”입니다. 엘, “하나님, 생명을 주시는 분”입니다. 샤드, s-h-a-d는 여성의 “젖가슴”을 뜻합니다. 샤다이는 복수로 “젖가슴들을 지닌”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강하신, 젖가슴을 가지신 하나님”이라는 이름으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백 살이나 되어 몸이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노인에게 그렇게 나타나셨으니, 얼마나 놀랍습니까! 그에게 구십 세인 아내 사라를 통해 아기를 갖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신 뒤였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놀라운 약속입니까! “아브라함아, 너는 늙었다. 네 힘이 다 빠졌다. 너는 지난 이십오 년 동안 나를 신뢰해 왔다. 이제 내 이름이 무엇인지 알려 주고 싶구나. 내 이름은 젖가슴을 가진 자, 강한 자다. 나는 젖가슴을 가진 하나님이다.” 여기서 보십시오. “젖가슴 하나를 가진 하나님”이 아니라 “젖가슴들을 가지신 분”입니다. 영과 몸 모두를 위한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셨고, 그분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습니다. 젖가슴을 가지신 분, 강하신 분, 힘을 주시는 분입니다.
작은 아기를 생각해 보십시오. 약해지고, 쇠약해져서 죽어 가는 아기입니다. 어머니는 그 아기를 품에 안아 자기 젖가슴에 댑니다. 작은 아기는 보채며 웁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젖을 빨기 시작하자마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어머니의 힘을 자기 몸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울음을 그치고 웃기 시작합니다. 만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렇습니다. 믿는 자가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의 힘을 그 믿는 자의 몸속으로 부어 주십니다. 그는 회복되어 가면서 만족합니다. 할렐루야! 믿는 자는 말씀에서, 젖가슴을 가지신 분에게서, 신약과 구약에서 젖을 빱니다. 하나님의 약속에서 젖을 빠는 것입니다. 치유이든 구원이든 무엇이든,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가슴에 기대어 더없이 만족합니다. 아무도 그를 흔들어 그곳에서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생명을 걸고 붙든 채 젖을 빨아 하나님의 힘을 자기 몸속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이 이 나라에서 가장 악한 여자였고, 그 이름조차 개들이 짖으며 부르기에도 합당치 않을 만큼 악명이 높았다 해도, 한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그것을 굳게 붙들어 산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 안에 자신의 힘을 부어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너무나 거룩해져, 모두가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밀주업자였든, 도박꾼이었든, 어떤 사람이었든, 젖가슴을 가지신 하나님을 붙잡기만 하면 상관없습니다. 젖을 빠는 내내 여러분의 작은 발이 움직이고 손도 움직입니다. 무엇입니까? 성장통을 겪는 것입니다. 그 상태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젖가슴을 가지신 분, 힘을 주시는 분, 모든 것을 충족시키시는 분입니다.
“아브라함아, 너는 늙었다. 어린 아기와도 같구나. 네 몸에는 생명력이 없고, 너는 그저… 네 몸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나는 젖가슴을 가진 자다. 그저 내 약속을 붙잡고 계속 젖을 빨아라.” 그는 이십오 년 동안 젖을 빨았습니다. 우리는 십 분도 빨지 못하면서 자신을 아브라함의 씨라고 부릅니다. “할렐루야, 나는 아브라함의 씨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그대로 붙드십시오! 그곳에 그대로 머물면서, 만족을 주시는 분의 젖을 빠십시오.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께서 자기 죄들을 위해 죽으셨다는 것을 듣습니다. 믿음은 들음에 의해 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셨으니, 그는 받아들여진 사람입니다. 혼인 만찬에 초대받은 것입니다. 그러면 그는 자기의 모든 것을 다해 붙잡고 계속 젖을 빱니다. 그의 영이 자라기 시작하고, 성령으로 충만해져, 참으로 다시 태어난 그리스도인이 될 때까지 젖을 빠는 것입니다. 병든 사람이 그분께서—믿음은 들음에 의해 옵니다—하나님께서 치유자이시라는 말씀을 듣습니다. 그러면 그저 다른 쪽 젖가슴으로 가서 하나님의 선하심에 기대십시오. 날마다 성경에서 그분의 약속을 끌어내어 받아들이고, 읽고, 믿고,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찬양하면서, 완전히 나을 것을 믿고 만족하십시오.
어젯밤 이곳에 휠체어를 타고 온 부인 한 분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여기서 보이지 않는군요. 제가 어젯밤에, 아니, 이삼 일 전에 그분을 위해 기도하러 내려갔습니다. 그분은 휠체어에서 일어나 저쪽으로 걸어갔습니다. 어떤 남자가 도와주려 하자 “저리 비켜 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계속 걸어갔습니다. 어젯밤 휠체어를 타신 분들을 위해 기도하러 내려갔을 때, 저는 그분을 위해 기도하려고 했습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주님께서 이미 저를 고쳐 주셨어요. 잠깐 앉아서 쉬고 있을 뿐이에요. 조금 있으면 일어날 거예요. 오늘 네다섯 번 걸었어요. 계속 좋아지고 있어요.” 아마 오늘 밤은 저기 회중 가운데 어딘가 앉아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어딘가… 어쨌든 여기 휠체어에는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그 젖가슴을 붙잡았기 때문입니다! 젖을 빨아 힘을 되찾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입니다.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저는 참 기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어린 자녀들을 먹이시고, 말씀을 통해 믿는 자들 안에 자신의 힘을 부어 주십니다.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그러니 믿는 자는 엘 샤다이께 나아와 그분의 가슴에 기대고, 그분의… 그분의 말씀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힘을 자기 몸속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오, 주님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너는 늙었고 한창때가 지났으며, 아주 나이가 많다. 백 살이나 되었다. 그래도 너는 그 약속을 믿었다. 하지만 나는 젖가슴을 가진 하나님이다. 내가 네 안에 내 힘을 부어 주겠다. (그분이 그렇게 하셨는지 아닌지는 내일 밤에 살펴보겠습니다.) 내가 너를 젖 먹여 다시 힘을 되찾게 하겠다. 너는 그 약속을 계속 믿기만 하여라.” “주님, 저는 이십오 년 동안 그 약속을 붙들어 왔습니다.” “그저 계속 붙들어라. 놓지 말아라.”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것이 진리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사라가 이제 거의 백 살이 되었어도, 이십오 년 전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아기를 사라를 통해 얻게 될 것을 알았습니다. 아직 아기가 생길 기미가 하나도 없었고, 여자가 아기를 가질 수 있도록 몸에서 자연스러운 일이 일어날 조짐도 전혀 없었습니다. 폐경이 된 지 여러 해가 지났습니다. 구십 세였는데, 여자는 마흔 살에 폐경을 맞습니다. 그렇습니다. 때로는 마흔다섯 살이면 끝납니다. 그런데 이 여자는 구십 세였습니다! 아, 놀랍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녀들이라고 합니다. 그렇지요. 아브라함의 자녀들입니다. 그러면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이것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성경입니다. 하나님의 진리이며 그분의 약속입니다. 저는 직접 적용하고 시험해 보았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면, 그분께서 여러분에게 그 말씀을 실현해 주신다는 것을 저는 압니다. 그분은 그것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이제 사라가 여기 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롯은 소돔으로 내려가 또다시 온갖 일에 휘말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이 엘 샤다이, 강하신 분이라고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뒤, 아브라함은 들판에 있는 참나무 아래에 장막을 쳤습니다. 어느 날, 한창 더운 때였습니다. 아마 오후 서너 시쯤, 서쪽으로 기운 해가 가나안 땅을 뜨겁게 비추던 때였을 것입니다. 그 뜨거운 햇볕을 바로 쬐면 금세 물집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는 장막 문에 고개를 숙이고 앉아, 아마 하나님에 관해 묵상하거나 생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눈을 들어 세 사람이 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쩐지 아브라함은 그들을 친절하게 맞고 싶었습니다. 그 사람들의 걸음걸이가 좀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은 길에서 묻은 먼지를 뒤집어쓰고 평범한 옷을 입은 채 걸어왔습니다. 아브라함은 나가서 그들을 초대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런 식이었을 것입니다. “선생님들, 피곤하시겠습니다. 발이 많이 지치셨겠군요. 여기 그늘이 좋은 나무가 있습니다. 들어와서 이 나무 그늘 아래 앉지 않으시겠습니까? 제가 물을 좀 가져다가 발을 씻어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상쾌해지실 것입니다. 시원한 물도 한 잔 드십시오. 그러고 나서 여행을 계속하시면 됩니다.” 그들은 말했습니다. “그렇게 하시오, 아브라함. 그렇게 하시오. 그대가 말한 대로 그렇게 하시오.”
저는 아브라함이 작은 장막들 사이로 달려가 큰 장막에 이르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사라, 어서 가루 세 통을 부어 반죽하시오. 덩어리가 하나도 없게 하고, 불에 빵을 좀 구우시오. 밖에 손님들이 오셨소. 저분들에게는 왠지 예사롭지 않은 데가 있소. 보통 설교자들이 아니오.” 그러고는 장막 뒤로 뛰어나갔습니다. 거기에 송아지들을 가두어 두는 작은 우리가 있었습니다. 그는 만져 보아 가장 살진 송아지를 골라 종들에게 주면서 “어서 가서 잡아 준비하여라”라고 했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밖으로 나갔습니다. 사라가 빵을 구워 아브라함에게 주자, 그는 그것을 가지고 나가 손님들에게 주었습니다. 그들은 앉아서 먹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송아지 갈빗살을 먹고, 우유를 마시고, 옥수수빵과 버터도 먹고 있었습니다. 꽤 좋은 식사였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들을 모두 밖에 모시고 식사를 대접했습니다. 저는 아브라함이 파리를 쫓는 나뭇가지를 가져와 파리를 쫓아 주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파리 쫓는 나뭇가지가 무엇인지 아실지 모르겠습니다. 파리 쫓는 나뭇가지를 아시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여기 켄터키 출신들이 계시는군요. 우리 집에는 불과 몇 년 전까지도 방충망 문이 없었습니다. 늘 그런 나뭇가지를 썼습니다. 일요일 식사 때 서서 파리를 쫓는 일은 제 차례였던 것 같습니다. 작은 통나무집에는 창문도 없고, 밀어서 맞닫는 문만 있었습니다. 파리가 들어오니 계속 쫓아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브라함이 그곳에 서서 나뭇가지로 파리를 쫓는 모습을 그려 봅니다. 그는 그들을 계속 내려다보며 생각했습니다. ‘참 예사롭지 않은 분들이야. 먼지를 뒤집어쓰셨으니 먼 길을 오셨군.’ 이윽고 그들이 식사를 마쳤을 때… 그 사람들이 음식을 먹고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평범한 옷을 입었고 옷에는 먼지가 묻어 있었으며, 고기를 먹고 우유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 한 분은 하나님 자신이셨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씀합니다. 아브라함은 그분을 주님이라고 불렀습니다. 대문자로 된 L-o-r-d, 엘로힘, 위대하신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많은 저술가들이 그것을 신현이라고, 그런 식으로 설명하려 한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고기를 먹고, 우유를 마시고, 옥수수빵을 드시고 계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분명히 사람의 육체를 입고 앉아 계신 사람이었습니다. 얼마 전에 어떤 사람이 제게 말했습니다. “빌리, 그분이 사람이었다고 믿는다는 말은 아니겠지요?” 저는 “물론 사람이셨습니다! 육체 안에 계신 하나님이셨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그 육체는 어디서 구하셨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하늘과 땅의 위대하신 창조주께 천사 둘이 함께 있었습니다. 성경은 그들이 두 천사와 하나님 자신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그러니까, 그 몸을 어디서 구하셨느냐고요?” 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우리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습니까? 열여섯 가지 원소입니다. 석유, 칼슘, 칼륨, 그리고 우주 광선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저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리 오너라, 가브리엘. 이리 오너라, 미가엘. 잠깐 내려가 조상 아브라함을 만나 보자.’ 그러고는 손을 뻗어 칼슘 한 줌과 칼륨 조금과 우주 광선을 취하시고 ‘훅’ 하고 이렇게 불어 그것들을 하나로 만드신 다음, 그 안으로 들어가 아브라함과 말씀을 나누셨습니다.” 할렐루야! 그분이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저는 부활에 있어서도 그분을 믿습니다.
얼마 전에 제가 남은 머리카락 두세 가닥을 빗고 있는데 아내가 말했습니다. “빌리, 당신 머리가 거의 다 벗겨졌네요.” 저는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았소”라고 했습니다. 아내가 “그럼 대체 어디 있는지 말해 봐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좋소. 그 머리카락이 내게 나기 전에는 어디에 있었는지 당신이 말해 주면, 지금 어디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지 내가 말해 주겠소.” 아멘. 그렇습니다. 형제 여러분, 저는 부활을 믿습니다! 언젠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우리는 그분의 형상대로, 그분의 모습대로 나올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로 말입니다. 천사가 아니라 남자와 여자로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사들을 만드셨습니다. 우리는 결코 천사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천사가 되도록 지음받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사람으로 지음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그분은 사람이 사람으로 있기를 뜻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본입니다.
그분은 이 몸을 만드시고 그 안으로 들어가 식사하신 뒤, 아브라함이 보는 앞에서 사라지셨습니다. 하나님 자신, 엘로힘이셨습니다. 그분이 그곳에서 아브라함과 말씀을 나누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낯선 분이 어떻게 그가 결혼했다는 것을 아셨습니까? 아내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아셨으며, 그 이름이 사라라는 것은 어떻게 아셨습니까? 여러분은 밤마다 이 건물 안에서 같은 성령께서 같은 말씀을 하시는 것을 봅니다. 옷에 먼지가 묻은 낯선 분이 사람의 육체를 입고 “아브라함아,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아, 장막에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그 장막이 그분의 뒤에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네가 그동안 줄곧 하나님을 믿어 왔는데, 내가 네게 무엇을 숨길 수 있겠느냐? 내가 다음 달에, 사라의 생명의 때에 맞추어 너를 찾아오겠다.” 장막 안에 있던 사라는 큰 소리로 웃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그녀가 속으로, 마음속으로 웃었다고 했습니다. 혼자 빙긋 웃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 천사께서… 사람의 육체를 입고, 빵을 먹고, 떡과 고기를 드시던 그분께서, 장막을 등진 채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사라가 웃었느냐?” 그분은 사라를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라가 누구인지 아셨고, 아브라함에게 아내가 있다는 것도 아셨으며, 그 여자가 장막 안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아셨습니다. 할렐루야! 그분이 우리의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저는 어째서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왜 장막 안에서 웃었느냐?”
보십시오. 불과 몇 시간 뒤였습니다… 소돔에 가서 메시지가 한 번 더 전해졌는데, 그것은 나갈 준비를 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하늘에서 불이 떨어졌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행하셨습니다. 유대인 경륜이 끝날 무렵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똑같은 일을 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사마리아인들에게 가셨을 때에도 똑같은 일을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이방인 시대의 끝에 와 있으니, 그분은 똑같은 일을 하셔야 합니다. 그 시대의 맨 마지막, 끝날 무렵이 되어서야 그 일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소돔의 날들에 그러했던 것같이…” 아, 그 말씀이 깊이 스며들게 하십시오! “소돔의 날들에 그러했던 것같이 하나님의 아들이 올 때에도 그러하리라.” 하나님의 영이 사람의 육체 안에, 자신의 교회 안에 계시면서 메시아의 표적을 드러내고 나타내십니다. 그날에 하셨던 것처럼, 그리스도의 날들에 하셨던 것처럼, 이방인 경륜이 끝나는 때인 지금도 그렇게 하고 계십니다. 폭탄이 떨어지기 불과 몇 시간 전, 세상이 멸망하기 전에 말입니다. 위대한 사람들, 과학자들, 장군들 등이 다음 전쟁은 겨우 삼 분쯤 지속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할리우드와 바인 거리에 정확히 맞도록 시간을 맞추어 놓았습니다. 시카고의 레이크사이드 드라이브와 뉴욕시와 모든 곳을 향해 시간을 맞추어 놓았습니다. 그 폭탄들은 준비되어 있습니다. 우리도 모스크바와 여러 곳에 정확히 맞도록 시간을 맞추어 놓았습니다. 언젠가 단 한 사람이 실수해서 그중 하나를 발사하면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그때 성경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남아 있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친구 여러분,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고 계신지 보이지 않습니까? 자신의… 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의 영을 꼬집어 깨우고 그것을 믿을 수 없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 아브라함 때와 꼭같이 하나님의 영이 나타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기억하십시오. 그분은 소돔에 내려가서 그 일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에게 그 일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메시지가 마땅히 나아가야 할 만큼 길이 열리지 않는 것입니다. 오직 택함받은 자들, 교회에 속한 사람들, 아브라함의 씨에게만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 아브라함의 자녀 여러분, 설마 그렇게 눈이 어두운 것은 아니겠지요. 제가 제 자신에 관해 말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제가 그런 말을 해서 그것이 저 자신이라고 한다면, 저는 거짓말쟁이일 것입니다. 저는 우리 가운데서 같은 일을 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영, 주님의 천사에 관해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기 그 사진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학이 그 사진을 찍었습니다. 사진기의 과학적이고 기계적인 눈이 찍은 것입니다. 조지 J. 레이시는 그날 밤 휴스턴에서 찍힌 그 사진을 조사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저는 때때로 형제님이… 심리 작용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제게 그렇게 말하더군요. 형제님은 사람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대단한 독심술가라고요. 저는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심리 작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사진기의 기계적인 눈은 심리 작용을 찍지 못합니다. 빛이 렌즈에 닿았습니다. 그 빛은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자손들을 따라갔던 바로 그 불기둥입니다. 오늘 이곳에 계신 것도 그와 동일한 분, 동일한 그리스도이십니다. 성경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광야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인도했던 불기둥이 언약의 천사, 그리스도, 처음에 하나님에게서 나온 로고스였다는 것을 압니다. 그분이 육체가 되셔서 이 땅에서 예수라는 이름의 사람의 몸 안에 거하셨을 때 무엇을 하셨는지 보십시오. 어떤 육체 안으로 내려오셔서 아브라함과 말씀을 나누셨을 때 무엇을 하셨는지 보십시오. 이 땅에 계시면서 갈릴리를 걸어 다니셨을 때 무엇을 하셨는지 보십시오. 그런데 오늘 밤 그분이 다시 여기 계십니다. 우리 모두 안에, 온 교회 안에 거하시면서 같은 일을 하고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이제 여러분의 생각을 분명히 해 드리겠습니다. “그리스도는 빛이 아니다” 하는 생각이 느껴집니다. 그리스도는 바로 그 빛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계실 때 “나는 하나님에게서 왔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면 그때 그분은 무엇이셨습니까? 불기둥이셨습니다. “나는 하나님께로 간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그분이 죽으시고, 묻히시고, 부활하신 뒤, 바울이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갑자기 큰 빛이 그를 땅에 쓰러뜨렸고 그의 눈이 멀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바울은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그들은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 그는 “주여, 누구시니이까?”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나는 예수라”라고 하셨습니다. 무엇입니까? 자신의 약속을 이루기 위해 다시 불기둥이 되신 것입니다. “나는 영의 세계에서 왔고 영의 세계로 돌아간다.” 그 육체가 이곳에 온 것은 오직 우리 죄인들을 구속할 희생물이 되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가 그분의 은혜로 그 안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자가 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들어오라는 초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씨 여러분, 지금이 여러분의 때라는 것을 모르겠습니까? 지금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시는 때라는 것을 모르겠습니까?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오늘 밤 교회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교인들이 아닙니다. 미국은 수많은 전도자들이 거듭거듭, 또 거듭 샅샅이 훑고 지나가, 그저 타 버린 땅이 되었습니다. 사실입니다. 미국은 분명히 죄를 지어 자신의 은혜의 날을 잃어버렸습니다. 책에 적어 두십시오. 미국에서는 다시는 전반적인 부흥이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약 삼 년 전에 그 시점을 지나 버렸습니다. 다시는 부흥이 없을 것입니다. 여기 젊은 여러분 가운데 몇 분은 제가 한 말을 적어 두십시오. 빌리 선데이 시대와 같은 전국적인 부흥은 더 이상, 다시는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실 때까지 이따금 작은 불길처럼 잠깐씩 일어나는 일은 있겠지만, 그런 부흥은 다시는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미국에서 돌이켜 다른 나라들로 가셨습니다. 그곳에서는 사람들이 나아옵니다. 그곳에서 주님께서 표적 하나만 보이셔도 수천 명의 이교도들이 제단으로 달려올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미국 사람들에게는 그 일을 거듭거듭 보여 주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이쪽 말, 저쪽 말로 가르침받아 온통 혼란스러워져 있으면서도, 잠시 멈추어 자기 성경을 살펴보려 하지 않습니다.
아시다시피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먹고 살도록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너무도 많은 방식을 정해 놓았습니다. “이런 식이어야 해. 우리 교회에서 말하는 식이어야 해.” “우리 교회에서 말하는 식이어야 해.” 예수님께서 처음 오셨을 때는 그들의 교회에서 말하던 것과 전혀 달랐습니다. 그분이 다시 오실 때에도 오늘날 그들이 말하는 것과 전혀 다를 것입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것을 지혜롭고 분별 있는 자들의 눈에는 숨기고, 배우려 하는 이런 아기들에게 드러내리라.” 배우려는 마음이 있다면 성경을 들고 성경기록들을 탐구하십시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것들은 나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들이니라. 너희가 그것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줄로 생각하는데 그것들은 나에 대하여 증언하느니라.”
아시다시피 그분이 오셨을 때 그분의 사역은 너무도 초자연적이어서, 그 시대 설교자들의 눈을 멀게 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말했습니다. “아, 저 사람이 사람들에게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말해 주고, 그들의 이름 같은 것을 알려 주는 것은 그 안에 마귀의 영이 있기 때문이야. 바알세붑이야.”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일에 대해서는 내가 너희를 용서하겠다. 그러나 언젠가 성… [테이프 끊김] …이 와서 같은 일을 할 것이다. 그것을 대적하여 한마디라도 하면, 이 세상에서나 오는 세상에서나 결코 용서받지 못하리라.” 소돔을 주목하십시오.
그분은 “노아의 날들에 그러했던 것같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성모독하는 자들 같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또 “소돔의 날들에 그러했던 것같이…”라고 하셨습니다. 소돔 때는 불이 떨어졌습니다. 이번에도 불이 떨어질 것입니다. 물이 아니라 불입니다. 하늘에서 불이 떨어질 것입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저 위에 있는 그 화산 가스들… 언젠가 사람들이 미사일 하나를 그곳으로 쏘아 올리면, 아마 이런 식으로 연쇄 반응을 일으켜 그렇게 될 것입니다. 때가 가까웠습니다. 그리 오래 남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과학은 자정까지 삼 분 남았다고 합니다. 어느 순간 시계가 그 시각을 알릴 것입니다. 그러면 불과 몇 분 안에 끝나 버릴 것입니다. 세상은 불길에 휩싸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교회는 영광의 처소로 갈 것입니다. 그러니 시간의 끝이 그토록 가까웠다면, 주님의 오심은 더 가깝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앉아서 이런 일들을 보고 있습니다. 집에 가서는 “참 놀랍지 않았어?”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을 집어 들고, 마음속으로 기도하며 처음부터 살펴보기 시작하십시오. “주 하나님, 그토록 가까웠습니까? 오 주님, 주님의 말씀을 알도록 도와주십시오.” 말씀을 탐구하고, 몸을 숙여 들여다보고, 계속 붙드십시오. 몇 끼를 거르고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권능으로 너무도 충만해져 교회에 돌아올 것이고, 이곳에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그것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그 징표를 보고 있습니다. 아브라함… 그것이 아브라함에게 어떻게 주어졌는지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소돔에 불이 떨어지기 전에 그 표적을 보았습니다. 아브라함의 씨도 오늘날의 현대 소돔에 불이 떨어지기 전에 같은 표적을 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무례하게 굴려는 것이 아닙니다. 라디오로 듣는 여러분과 여기 계신 여러분을 꾸짖으려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을 야단치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여러분을 깨우고 싶습니다! 미처 깨닫기도 전에 지나가 버릴 것입니다. 찾아오시는 날, 여러분이 알았던 그날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앉아 예루살렘을 바라보셨을 때, 그분의 영이… 그분은 우시며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네가 네 날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 알기만 했더라면! 그러나 이제는 지나갔구나.” 때때로 제 마음 깊은 곳에서는 성령께서 그저 사람들을 위해 울고 계시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아, 저는… 피곤하고, 지치고, 기진맥진합니다. 아내는 말했습니다. “여보, 이제 또 나갈 수는 없어요. 당신은 금방이라도 쓰러지겠어요. 하루 종일 사역했잖아요. 몇 주고 계속 그래 왔잖아요. 당신 안색이 너무 안 좋아요. 너무 신경이 예민해져서 식탁에도 앉아 있지 못하잖아요. 밤이면 방 한가운데서 베개를 품에 안고 그것을 위해 기도하고 있잖아요. 너무 신경이 예민해졌어요. 여보, 그러다 죽기 전에 집에 있어요!” 저는 말했습니다. “하지만 여보, 저 밖에 있는 귀한 혼들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잖소. 나는 해야 하오!” 그래서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려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여기 온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을 사랑하기 때문에, 복음으로 여러분을 흔들어 사람들이 빠져 있는 형식적인 태도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여기 왔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십시오! 철야 기도회, 가정의 부흥, 여러분의 혼의 부흥이 있어야 합니다. 다시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말씀에 따라 행동하며,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분을 믿으십시오. 여러분은 아브라함의 씨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약속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표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 영을 주목하십시오.
제가 아닙니다. 저는 사람입니다. 한때 죄의 시궁창에서 그분이 건져 올리신 육체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그분이 의로운 사람을 찾으신다면 누구를 택하시겠습니까? 우리 가운데 의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할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이렇다 저렇다 뭐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분은 누군가를 사용하실 것입니다. 그 점은 분명히 믿으셔도 됩니다. 그분이 말씀하셨고, 그분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세상이 창건되기 전부터 자신이 무엇을 하실지 아셨습니다. 물론 아셨습니다. 정확히 어느 때에, 무엇을 하실지, 메시지가 어떻게 전해질지, 사람들이 어떻게 등을 돌릴지, 어떻게 나태하게 딴생각에 잠긴 채 가 버릴지,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받아들여 마음이 뜨거워질지 아셨습니다. 그런 일들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돌이켜 생각하며 이렇게 말하려 합니다. “아, 그건 그저 사람일 뿐이야. 그냥 텔레파시나 뭐 그런 것이겠지.” 그분의 시대에도 사람들은 똑같이 말했습니다. “그들이 집주인을 바알세붑이라 불렀거든 그의 제자들은 얼마나 더 심한 말로 부르겠느냐?” 그들이 바알세붑의 일이라고 했던 바로 그 일을 제자들이 하고 있지 않다면, 어떻게 그것을 바알세붑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마지막 날들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마지막 시간에 와 있습니다. 마지막 날들일 뿐 아니라 마지막 시간입니다. 친구 여러분, 기도하는 동안 그것을 생각하십시오. 머리를 숙이십시오. 라디오로 듣는 여러분, 그곳의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지금은 엄숙한 순간입니다. 결단할 때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 해야 할 때입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물론 죄인들에게도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밤에는 주로 교회에게, 교회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일이 해마다 이 나라를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끝이 가까웠습니다. 표적들은 이미 행해졌습니다.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무화과나무가 싹을 낼 때를 주목하라.” 또 말씀하셨습니다. “무화과나무가 어떻게 싹을 내는지 살펴보라. 무화과나무와 다른 모든 나무가 싹을 내는 것을 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너희가 아느니라.” 이제 여기를 보십시오. 유대 민족에게 부흥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가톨릭교회에도 부흥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침례교에는 빌리 그래함 아래서, 감리교에는 잭 슐러 아래서, 오순절에는 오랄 로버츠 아래서 부흥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모든 나무가 싹을 내고 있습니다. 때가 가까웠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어느 특정한 사람을 지목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하나의 민족으로 다루시기 때문입니다. 이방 세계에서는 개인들을 다루십니다.
이제 기도합시다.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일어나리라고 말씀하신 일, 그 본보기를 여러분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의 씨가 아니라면, 여러분은 잃어버린 자입니다. 약속은 아브라함과 그의 씨에게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그 약속은 전적으로 아무 조건 없이 주어졌습니다. 이제 깨어나서 함께 기도합시다. 라디오로 듣는 여러분, 그곳에 있는 아브라함의 씨 여러분, 병들고 도움이 필요한 여러분, 술집에 있든 당구장에 있든 어디에 있든, 자동차를 타고 가고 있든, 지금 잠깐 조용한 자리를 찾으십시오. 함께 기도합시다. 식탁에 앉아 식사하고 있는데 이 메시지가 방 안으로 들려온다면, 잠시 머리를 숙이십시오. 손을 식탁에 얹고 말하십시오. “하나님, 제게 긍휼을 베풀어 주십시오. 저는 잃어버린 자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 무언가 제 마음에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말하십시오. “주님, 제가 그 사람이 되게 해 주십시오.” 식당에 있다면 우리가 기도하는 동안 지금 하나님께 약속하십시오. 그런 다음 잠시 어디론가 나오십시오. 당구장에 있든 어디에 있든 나오십시오. 차를 운전하고 있다면 길가로 차를 빼서 안전하게 세운 뒤 무릎을 꿇으십시오. 서둘러 집으로 가서 침실에서 무릎을 꿇고 “주님, 주님과 이 일을 의논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하십시오. 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때가 늦었습니다. 준비합시다.
그리고 여기 교회에 있는 여러분, 그리스도인 여러분, 아브라함의 씨 여러분, 아침의 별들인 여러분, 죄의 수렁에 쌓인 먼지에서 나온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빛나는 별들로 만드셔서 밝은 새벽별 곁에서 빛나게 하셨습니다. 몸을 흔들어 깨우고, 일어나 먼지를 털어 내십시오. 기도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여기 계심을 믿고 압시다. 예수님을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일으키시고, 모든 죄를 없애기에 충분한 희생물로 우리에게 내어 주신 영원하신 하나님, 주님, 지금 머리를 숙이고 있는 저 라디오 청취자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오 하나님, 주님의 긍휼로 그들을 구원해 주시기를 구합니다. 마음속에 느끼는 그 작고 낯선 느낌이 주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임을 알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내 아버지께서 먼저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느니라. 내게 오는 모든 자들에게 내가 영생을 주고 마지막 날에 그들을 일으키리라.” 주님께서 그렇게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분을 통해 복을 받는 위대하신 아브라함의 씨, 주 예수 그리스도여, 오늘 밤 허락하옵소서. 주님, 저곳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저는 있다고 믿습니다—바로 지금 주님께 온전히 자신을 내어 드리게 하옵소서.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읽고 약속을 보며 “소돔의 날들에 그러했던 것같이”라고 하신 주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 자신을 나타내시며 초자연적인 역사의 표적들을 보이신 것입니다. 그 뒤 여러 해가 지나 위대한 모세는 그분이 오시면 하나님이신 선지자가 되시리라고 약속했습니다. 마음이 참된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분을 보고 메시아이심을 알았습니다.
우물가의 여자는 자기 죄들을 지적받았을 때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선지자이신 것이 틀림없습니다. 메시아께서 오시면 이런 것들을 우리에게 알려 주실 줄을 우리가 압니다.” 예수님께서는 “네게 말하고 있는 내가 그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여자는 도시로 달려가 이렇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와서 내가 행한 일들을 내게 말한 사람을 보십시오. 이것이 메시아의 표적이 아닙니까?” 주님께서는 소돔처럼 세상이 불로 멸망하기 직전에, 같은 일이 이방인들에게 찾아오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여기 있는 아브라함의 씨들이 바로 그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주 하나님,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주님, 속히 그들을 흔들어 깨워 주옵소서. 육체를 보지 않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거하셨던 바로 그 육체는 그 일이 있은 지 얼마 뒤 사라졌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저 사용하셨을 뿐이므로 없어졌습니다. 지금 그분께서 사용하시는 육체도 언젠가는 사라질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더디 오시면 땅의 흙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은 영원히 살아 계실 것입니다. 주님, 사람들이 이것을 보게 하옵소서. 병들고 고통받는 이들을 고쳐 주옵소서. 하나님, 긍휼을 베푸시고 잃어버린 자들을 구원해 주옵소서. 오늘 밤 방황하는 소년이나 소녀, 남자나 여자를 돌아오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양 우리로 안전하게 돌아오게 하옵소서. 주님, 허락하옵소서. 또 눈앞에 있는 이 회중 가운데서 성령께서 마음들을 붙들어 깨워 주시고, 이 건물 안에 큰 믿음이 모이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일들을 보고 하나님을 믿게 하옵소서. 바로 그 목적을 위해 이런 일들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저는 언젠가 예수님을 뵙고 싶습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습니까? 저 멀리 있는 나라의 해안에 이르면 예수님을 뵙고 싶습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습니까? “나는 예수님을 뵙고 싶네, 그대도 그렇지 않은가”라는 옛 찬송을 아시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아름다운 옛 찬송입니다.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낡은 작은 난로로 가서 불을 피우려 했던 기억이 납니다. 불이 붙지 않아 거기 앉아 있었습니다. 아, 추웠습니다. 작은 오두막 바닥에는 온통 서리가 끼어 있었고, 저는 불을 붙이려고 애썼습니다. 바람이 굴뚝을 타고 내려오니 불이 붙지 않았습니다. 그때 인디애나폴리스에서 방송하는 캐들 자매님이 나와 “나는 예수님을 뵙고 싶네, 그대도 그렇지 않은가”를 불렀습니다. 저는 그 차갑고 서리 낀 바닥에 앉아 하나님께 두 손을 들고 말했습니다. “주님, 지금 그분을 뵙게 해 주십시오. 이제 너무 지쳤습니다. 지금 본향이 그립습니다. 이곳을 떠나고 싶습니다.” 사람들은 때때로 그런 마음이 듭니다. 때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외롭게 하시고, 그분을 뵙고 싶어 하게 하시며, 그분 뵙기를 주리고 목마르게 사모하도록 그런 일을 허락하십니다.
여기 왼편 줄을 따라 바로 뒤쪽에 앉아 기도하는 분이 있습니다. 부인 한 분입니다. 암을 앓고 있습니다. 부인, 하나님께서 고쳐 주실 것을 믿으시면… 그 빛이 바로 여기 뒤에 앉아 있는 부인 위에 있습니다. 저기 제 며느리 로이스 바로 뒤에 앉아 있습니다. 저 뒤쪽 끝에 있는 그분이 마음을 다해 믿기만 하면, 믿으시면 치유받을 수 있습니다. 바로 여기 아래쪽입니다. 여기서 저를 똑바로 보고 있는 부인입니다. 저기 줄 끝에 앉아 고혈압으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믿으시면… 예, 그분에게 손을 얹어 주세요. 그렇게 하셨으니… 저기 그분 옆에 앉아 있는 당신 자신에게도 정맥류가 있습니다. 맞습니다. 제가 누구를 말하는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손을 들어 주십시오… 좋습니다. 이제 당신도 치유받았습니다. 집에 돌아가 건강하게 지내셔도 됩니다. 아멘.
믿을 수 있습니까? 보십시오. 저 뒤 멀리 남자 한 분이 있습니다. 그 빛이 있습니다. 제가 그것을 똑바로 보고 있습니다. 그 남자는 손에 문제가 있고 무릎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간질도 앓고 있습니다. 방금 병원에서 왔습니다. 저 남자 뒤쪽에 계신 분, 믿으시면, 주 예수님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치유받을 수 있습니다. 좋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기 계심을 믿습니까? 주님의 천사께서 그 육체를 입은 사람 안에 계셨을 때 하신 것처럼, 그분께서 일들을 드러내실 수 있다고 믿습니까? 제가 등을 돌리고 여러분이 기도하면, 그분이 똑같은 일을 하실 수 있다고 믿습니까? 믿습니까? 그러면 그분이 동일한 그리스도, 아브라함과 말씀하셨던 그 사람의 육체 안에 계셨던 동일한 성령이심을 받아들이겠습니까? 그것을 믿습니까? 그러면 여기 여자분들 가운데 몇 분이 기도해 보십시오.
주님, 주님의 영광을 위해 그렇게 되게 하옵소서. 그렇게 되게 하옵소서. 주님, 제가 모르는 누군가가 기도하게 하옵소서. 오늘 밤 그렇게 되게 하셔서, 이 사람들이 이 메시지가 참으로 진리임을 보게 하옵소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렇게 되게 하옵소서. 제 바로 뒤에 여자 한 분이 있습니다. 부인병을 앓고 있으며 수술을 앞두고 있습니다. 젊은 여자입니다. 그분 주위가 아주 밝게 보이는 것으로 보아, 얼마 전에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바로 여기 뒤쪽 통로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저기 고개를 숙이고 있는 분, 마음을 다해 믿습니까? 이제 일어서십시오. 부인, 저는 당신을 모르지요? 우리는 전혀 모르는 사이이지요? 당신과 저 말입니다. 말씀드린 것이 모두 사실입니까?
장막을 등진 채 사라에 관해 아셨던 그 사람 위에 계신 바로 그 천사께서, 이 여자분에 관해서도 아셨습니다. 같은 하나님께서 오늘 밤 여기 계십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자녀들에게 같은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이제 믿습니까? 마음을 다해 믿습니까? 이제 말씀드리겠습니다. 여기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죄인이 있는데 마음속에 낯선 느낌이 든다면, 아무런 설득 없이 지금 이 앞으로 나오고 싶습니까? 확신이 생겼습니까? 잠깐 이리로 나오십시오. 죄인인 친구여, 이리로 오십시오. 함께 기도합시다. 하나님을 모르는 죄인 여러분, 나오시겠습니까? 하나님께로 돌아오고 싶은, 믿음에서 멀어진 분이 있습니까? 잠깐 이 앞으로 나오십시오. 앞으로 며칠 밤은 전적으로 치유에만 쓰려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부흥을 원합니다. 저는 만족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움직이시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자녀 여러분, 보십시오. 제가 여러분을 사랑한다는 것을 믿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제가 여러분을 야단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하지만 이 주변에는 할리우드의 영향이 너무 많습니다. 세상 유행을 너무 많이 따릅니다. 염려가 너무 많습니다. 거기서 벗어나십시오! 우리에게는 부흥이 필요합니다! 아멘. 아, 참으로! 여러분,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깨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길의 끝에 와 있습니다. 심판이 여기 있습니다! 아멘.
아, 제가 할 수만 있다면… 더필드 형제님, 형제님은 제가 만난 분들 가운데 가장 훌륭한 분 중 한 분입니다. 두플레시 형제님,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사람들이 보게 해 줄 방법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친구 여러분, 우리는 당장 깨어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은 휴거를 놓칠 것입니다. 어느 때라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자신을 헌신하고 싶은 분이 얼마나 됩니까? 손을 드십시오. 일어서십시오. 하나님께 새롭게 자신을 드리십시오. 헌신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분은 손을 드십시오. 제가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친구 여러분, 제가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환상을 좀 더 보아 주시겠습니까?”라고 합니다. 이미 보인 그것을 믿지 않으신다면, 더 보아도 어차피 믿지 않으실 것입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그 환상들은 제 기력을 약하게 만듭니다. 저는 이번 주 토요일과 일요일까지 마칠 만큼 힘을 기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가진 것 중 가장 큰 치유 집회가 될 것입니다. 제가 힘을 아껴 두는 것은 바로 그 밤들에 제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붓기 위해서입니다.
이제 사람들이 그리스도께 자기 삶을 드리려고 앞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개인 상담을 돕는 분들 가운데 몇 분은 이들과 함께 걸어 주십시오. 나오십시오. 그리스도가 필요한 다른 분들도 여기 제단 앞으로 걸어 나오십시오. 친구 여러분, 지난번 밤에 말씀드렸듯이, 여러분은 거세게 몰아치는 바람 소리와 수많은 지진과 온갖 뒤흔드는 일들을 너무 많이 듣다 보니, 그 마지막 것을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고요한 작은 음성이었습니다. 아시겠죠? 그것은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오, 그래. 그래. 바로 저거야! 이제 알겠어!” 아, 우리가 거기에 깨어날 수만 있다면!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누가 기도해서 이 사람들이 자신을 헌신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에 그 일을 할 수 있는 목회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스스로 해야 합니다. 해야 하는 사람은 바로 여러분입니다.
이제 옆 사람에게 손을 얹고, 그 사람이 하나님께 헌신하도록 기도할 분이 얼마나 됩니까? 자신을 위해 기도하지 말고 옆 사람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옆에 서 있는 사람의 헌신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렇습니다. 바로 그렇게 하십시오.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다른 사람을 위해 무언가 하십시오.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 제 형제를 주님께 드려진 사람으로 삼아 주십시오. 제 자매를 주님께 드려진 사람으로 삼아 주십시오. 그들에게 주님의 영을 부어 주십시오”라고 말하십시오. 그렇습니다. 이제 기도하십시오.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자신의 삶에서 하나님의 권능을 느끼면 두 손을 들고 말하십시오. “주님, 감사합니다. 지금 주님께 약속드립니다.”
오 주 하나님, 하늘과 땅의 창조주여, 이 무리 위에 주님의 성령을 보내 주시고, 성령의 침례로 이곳을 채워 주옵소서. 주님, 허락하옵소서. 주님의 영을 부어 주옵소서. 사람들의 불신을 책망하시고, 믿음과 권능과 기쁨과 평안과 만족을 내려 주옵소서. 그들이 엘 샤다이께 나아와 그분의 젖가슴을 붙잡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힘과 권능을 다시 자기 혼과 몸속으로 받아들이게 하옵소서. 주님, 허락하옵소서. 주님의 종의 기도를 들어 주옵소서. 그들이 기도하고 믿고 행동하며, 이들이 아브라함의 씨임을 믿고 성령께서 여기 계심을 아는 가운데, 허락해 주옵소서. 아멘.
“나는 그분을 찬양하리라.” 아, 참 좋습니다. 기도를 그렇게 많이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믿기만 하면 됩니다. 여러분은 기도를 아주 많이 했습니다. 이제 믿기 시작하십시오. 모든 무거운 것과 여러분을 너무 쉽게 뒤흔드는 죄, 곧 불신을 벗어 버리십시오. 여기에 다시 태어난 그리스도인이 얼마나 있습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보십시오. 아, 참 좋습니다. 이제 찬송합시다. 눈을 감으십시오. 두 손을 드십시오. 지금 한결 나아졌다고 느끼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마음속에 믿음이 생겨, 막힌 뚜껑을 날려 버리고 계속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자신이 아브라함의 씨라는 것을 느낍니까?
오르간을 치는 자매님이 “나는 그분을 찬양하리라” 곡조를 연주하고 있습니다. 소리 높여 부릅시다. 하나님께 두 손을 들고 찬송합시다. 나는 그분을 찬양하리라, 나는 그분을 찬양하리라, 죄인들을 위해 죽임당하신 어린양을 찬양하리라. 모든 백성아, 그분께 영광을 돌려라. 그분의 피가 모든 얼룩을 씻어 주셨네. 모두 함께 합시다. 감리교 여러분, 침례교 여러분, 오순절 여러분, 이제 모두 함께 부릅시다. 나는 그분을 찬양하리라, 나는 그분을 찬양하리라, 죄인들을 위해 죽임당하신 어린양을 찬양하리라. 모든 백성아, 그분께 영광을 돌려라. 그분의 피가 모든 얼룩을 씻어 주셨네. 이제 다시 부르는 동안 몸을 돌려, 앞사람과 뒷사람, 옆 사람과 악수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 형제자매님,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하나님을 찬양합시다”라고 말하십시오. “마음이 한결 좋아졌습니다. 이제 계속 나아갈 힘이 생깁니다”라고 말하십시오. 찬송하면서 그렇게 말하십시오. 자, 함께 합시다. 나는 그분을… 위층 발코니에 계신 분들도 함께 합시다. 이제 딱딱함을 내려놓으십시오. 나는 그분을 찬양하리라, 죄인들을 위해 죽임당하신 어린양을 찬양하리라. 모든 백성아, 그분께 영광을 돌려라. 그분의 피가 모든 얼룩을 씻어 주셨네.
제가 힘주어 설교하고, 할 수 있는 한 힘껏 말씀을 여러분에게 전해야 했다고 해서, 여러분에게 화가 났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시겠지요? 그저 여러분의 믿음을 세우려고 했다는 것을 아시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게 믿으시면 손을 들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두 손을 들고 여러분과 함께 찬송하겠습니다. 나는 그분을 찬양하리라, (할렐루야!) 나는 그분을 찬양하리라, 죄인들을 위해 죽임당하신 어린양을 찬양하리라. 모든 백성아, 그분께 영광을 돌려라. 그분의 피가 모든 얼룩을 씻어 주셨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믿는 여러분, 엘 샤다이의 품에 기대어 하나님께 원하는 어떤 약속이든 받아 누릴 수 있다고 느끼는 여러분은 모두 “아멘” 하십시오. 아주 크게 “아멘!” 하십시오. 그렇습니다. 아멘은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충성스러운 마음에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좋습니다. 이제 기도하기 위해 머리를 숙입시다. 좋습니다. 더필드 형제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