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형제님들, 정말 감사합니다. 참 좋습니다. 이렇게 해 주시니 정말 환영받는 느낌이고 마음이 참 좋습니다. 이번 주 이곳에 머무는 동안 여러분이 저를 얼마나 따뜻하게 맞아 주셨는지, 이보다 더 환영받을 수 있을까 싶습니다. 여러분 모두를 만나 뵙게 되어 정말 좋습니다. 그런데 형제님들을 많이 만나 뵐 기회는 없었고, 어쩌다 한 분씩만 만났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녁에는 줄을 따라 쭉 가면서 한 분 한 분 모두와 악수했습니다. 아, 그런데 클리본 형제님, 이리 오십시오. 저 뒤에 있는 제 어린 딸 베키야, 이분이 부스클리본 형제님이시다. 나의 오랜 친구이시고, 그 유명한 찬송 「영광을 떠나 내려오셨네」를 쓰신 분이야. 저는 가는 곳마다 그 찬송을 불러 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제가 죽을 때, 제가 아직... 더는 살아 있지 않다면... 예수님께서 오실 때 그분을 위해 「영광을 떠나 내려오셨네」를 불러 주었으면 합니다. 베키야, 이분이 그 찬송을 쓰신 부스클리본 형제님이야. 제 어린 딸 베키는 피아노를 배우고 있는데, 처음 배운 곡이 「영광을 떠나 내려오셨네」입니다. 부스 형제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일이 잘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아, 그런데 부스 형제님이 이곳에 계신 친구분들 가운데 몇 분과 연락하시면서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다... 글을 쓰셨는데, 이번 주에 관해서... 원래는 일주일 내내 집회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는... 부스 형제님이 오후 집회를 맡기로 되어 있었지만, 일정을 사흘로 줄여야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직접 맡게 되었습니다. 그리스어와 히브리어를 비롯해 일곱 나라 말로 설교할 수 있는 목사님이 계신데,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 제가 그분을 대신해야 했으니 제 기분이 어떠했겠습니까. 수준이 뚝 떨어진 셈이지요. 저의 켄터키식 옛말인 ‘his’, ‘hain't’, ‘tote’, ‘fetch’, ‘carry’ 같은 말은 이런 성직자분들의 말과는 다르게 들립니다. 그런데 제 동역자 가운데 한 분인 리 베일 박사님이 부스 형제님을 모시고 무언가 함께하시려는 모양입니다. 그리스어를 가르치시는 일 때문에 그분의 주소를 받아 두셨으면 합니다. 그리스어로 가르치는 분을 생각해 보십시오. 저는 영어로도 가르치지 못합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모든 좋은 것으로 가르침을 받는 자는 그분과 함께 나눌지니... 어떻게 되어 있지요? 그런 뜻의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함께 교제하게 되어, 또 하나님의 복이 모두에게 임하게 되어 참으로 기쁩니다. 저는 여러 분과 함께 집회를 해 왔지만, 이곳처럼 훌륭하게 협력해 주시는 분들은 참 드뭅니다. 저는 이것이 지금 이곳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일의 시작이라고 믿습니다. 사람들이 함께 모여, 서로의 교리가 무엇이든 울타리를 허물고 서로 교제할 때 말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뿐이시며 우리는 그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만일 내일 아침 네 시에 여러분 모두가 저와 함께 인디애나로 간다면, 어떤 분은 쉐보레를 타고 가고, 저는 포드를 타고, 다른 분은 뷰익을 타고, 또 다른 분은... 조지아, 인디애나에 이르러 계속 나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요점은 그것입니다. 어느 차를 타든 똑같이 갈 수 있습니다. 지금도 그렇다고 저는 믿습니다. 중요한 것은 영광을 향해 바른 방향으로 출발하는 것입니다. 계속 나아가십시오. 그러면 됩니다.
이제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제가 교단 사이의 장벽을 말할 때 많은 분이 저를 오해하셨습니다. 교단이 잘못되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교단 주위에 울타리를 쳐서 다른 사람은 아무도 교제할 수 없게 한다면, 바로 그것이 잘못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교단들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시겠죠? 교단들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만이 유일한 무리다’라고 생각하게 되면, 하나님은 저쪽으로 가셔서 다른 사람에게 복을 주시고, 우리만이 유일한 무리가 아님을 보여 주십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일하십니다. 저는 그분께서 그렇게 하시는 것이 참 기쁩니다. 우리는 모두 사람이요, 그분의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인디애나에는 이런 옛말이 있습니다. 어떤 나이 든 농부가 “모두가 똑같이 보지 않아서 다행이야”라고 했습니다. 모두가 그 농부처럼 그의 아내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로 생각한다면, 모두가 그 아내를 원할 테니까요. 그러니 우리가 서로 다르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오늘 오후에 말씀드렸듯이 하나님은 다양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서로 다르게 만드십니다. 산들도 서로 다르게 만드십니다. 산과 사막, 바다와 호수, 작은 물고기와 큰 물고기, 큰 사람과 작은 사람, 뚱뚱한 사람, 몸집이 넓은 사람, 마른 사람, 무심한 사람도 만드십니다. 그분이 만드십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그것이 그분이 일하시는 방식입니다. 그분이 그렇게 하기를 좋아하신다면, 아멘입니다. 저도 그렇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자신이 하나님의 창조물이요, 그분이 창조하신 피조물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 제 감사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강단 뒤에 앉아서, 형제님들이 저를 위해 해외 사역을 위한 사랑의 헌금을 거두셨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저는 보더스 형제님과 몇몇 형제님을 만났습니다. 우리가 이곳에 머무는 기간은 사흘뿐입니다. 이런 건물과 전기 등을 거저 제공해 주는 것은 아니지요. 그래서 저는 “형제님들, 저를 위한 사랑의 헌금은 거두지 마십시오. 그냥 경비에 보태십시오. 경비를 다 충당하지 못하시면... 앤젤러스 템플에서 제게 사랑의 헌금을 주셨습니다. 그것을 경비에 보태겠습니다. 이렇게 훌륭하게 협력하는 분들을 만난 것만으로도 제가 받은 것보다 천만 배나 더 가치가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제 마음의 소원은 형제들이 하나 되는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교회가 자기들의 생각과 장벽을 허물고 서로를 끌어안으며, 그 하나 됨을 위해 영원토록 우리는 형제요, 하나로 연합한 큰 그리스도인 군대라고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저는 옛적의 시므온처럼 두 손을 들고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주여, 이제 주께서 주의 말씀대로 주의 종이 평안히 떠나도록 허락하소서.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나이다.” 그렇습니다. 저는 그런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그것이 제 마음의 소원이었습니다.
제가 침례교회에서 나왔을 때, 그들이 저를 쫓아내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제 부르심에 따라 스스로 나왔습니다. 지금도 선교침례교회와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오순절 쪽으로 왔을 때 저는 한 무리만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오순절이라고 부르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오순절에도 침례교만큼이나 많은 교단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침례교와 장로교를 비롯한 제 친구들에게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오순절이 스스로를 하나의 조직이라고 생각하거나 말하려 한다면, 그것은 잘못입니다. 오순절은 조직이 아니라 경험입니다. 아시겠죠? 우리는 새로 태어남으로 오순절을 경험합니다. 오순절은 감리교인도 할 수 있는 경험입니다. 침례교인이든 가톨릭교인이든, 오순절의 경험을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오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이 일들을 허락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제가 이곳에 와 보니, 바로 제가 애써 이루려던 일이 제 곁에 있었습니다. 제 마음이 어떻겠는지 아실 것입니다. 오늘 저녁에는 집으로 돌아가기가 정말 싫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주신 그 돈은... 저는 평생 헌금을 거둔 적이 없습니다. 거기에 가장 가까이 간 것은 한번 정말 곤경에 처했을 때였습니다. 아내와 제가 가지고 있던 어떤 물건의 할부금을 낼 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여보, 오늘 저녁에는 헌금을 거두어야겠어”라고 했습니다. 저는 제퍼슨빌에 있는 침례교 태버내클에서 십칠 년 동안 한 푼도 받지 않고 목회했습니다. 생계를 위해 따로 일했습니다. 지금도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교인들이 제게 헌금을 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은 가진 것이라면 무엇이든 제게 주려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냥 일을 하고, 그들이 자기 돈을 간직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그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자, 가서 헌금을 거두겠어”라고 했습니다. 아내가 말했습니다. “나도 가서 보겠어요. 당신 얼굴에 어떤 표정이 나타나는지 보려고요.” 저는 “좋소, 아가씨. 사랑하는 여보, 뒤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어요. 내가 어떻게 하는지 보여 주겠소”라고 했습니다. 저는 교회로 갔습니다. 우리에게는 헌금 접시도 없었습니다. 교회에는 그런 것이 전혀 없었고, 있었던 적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지금은 있습니다. 저는 그곳을 떠났습니다. 지금은 목사님께 사례를 드려야 합니다. 제가 가서 말했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해야 해서 죄송합니다만, 작은 차질이 생겼는데 그것을 해결할 돈이 없습니다. 오 달러쯤 필요합니다. 여러분이 오 센트나 십 센트씩이라도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집사 한 분인 나이 든 어부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짐 아저씨, 이리 오셔서 제 모자를 가져다가 돌려주시겠습니까?” 그가 “물론이지요, 빌리 형제님” 하면서 모자를 가지러 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제게서 바로 이만큼 떨어진 곳에 자그마한 할머니 한 분이 앉아 계셨습니다. 안쪽에 주머니가 달린 이런 작은 앞치마를 두르고 계셨습니다. 그런 앞치마를 보신 분이 얼마나 됩니까? 이렇게 두르고 다니는데 안쪽에 주머니가 있는 것입니다. 그분은 기도의 용사였습니다. 제가 그분 쪽을 보니, 앞치마 밑으로 손을 넣어 위쪽에 딸깍 잠그는 쇠장식이 있는 작은 지갑을 꺼내고, 거기서 오 센트짜리 동전들을 꺼내고 계셨습니다. 형제여, 저는 그것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 돈을 받았다가는 목이 메었을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보고 말했습니다. “아, 그냥 농담이었습니다. 정말 그러려던 것이 아닙니다. 짐 형제님, 제 모자는 도로 놓아두십시오.” 제가 헌금을 거두는 데 가장 가까이 갔던 때가 그때였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자전거를 타고 다니던 노인이 한 분 계셨는데, 그 자전거가 타락한 상태였습니다. 타락했다고까지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냥 낡고 닳아 버린 것이었지요. 아시겠죠? 그분이 그것을 제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음 날 십 센트 상점에 가서 빨간색과 흰색 페인트를 한 통씩 샀습니다. 아시다시피 그것은 제퍼슨빌 농구팀의 색깔입니다. 아이들의 마음을 끄는 데 아주 효과가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전거 전체를 흰색과 빨간색으로 칠하고 밖에 내놓은 다음, 오 달러에 판다는 큰 표지를 붙였습니다. 다음 날 팔렸습니다. 그 돈을 냈고, 결국 헌금을 거둘 필요가 없었습니다. 제가 헌금을 거두는 데 가장 가까이 갔던 일이 그것입니다. 오늘 저녁에는 집회가 끝난 뒤 제게 전달해 주실 귀한 사랑의 헌금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약속드리겠습니다. 그 돈은 담배나 위스키나 잘못된 일에 쓰이지 않을 것입니다. 호주와 주님께서 보내시는 곳 어디에서든 복음을 전하는 데 쓰일 것입니다. 그곳에서 혼들이 왕국 안으로 태어난다면, 그날에 여러분의 공로로 돌아갈 것입니다... 저는 오직 성령의 인도를 따르고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반드시 해야 할 일입니다. 여러분이 저를 보내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돈과 십일조가 저를 보내고 있습니다.
여기 손수건과 스카프 등이 놓여 있는 것이 보입니다. 얼마 전 멕시코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납니다. 일 년쯤 전이었는데, 이제 거의 이 년이 되어 가는군요. 그들은 우리에게 투우장을 내주겠다고 약속했다가 사용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곳 교회가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에, 우리는 멕시코 사람들을 넓은 공터로 데리고 나가야 했습니다. 그들은 참 사랑스러운 분들입니다. 그들은 아침 아홉 시부터 그곳에 모였는데, 저는 밤 아홉 시가 되어서야 도착했습니다. 앉을 자리도 없어서 서서 서로에게 몸을 기대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큰일들을 행하고 계셨습니다. 저는 사흘 밤을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눈먼 멕시코인 형제 한 분이 강단으로 올라왔습니다. 가엾은 노인은 맨발에 누더기 옷을 입고 있었으며, 앞을 전혀 보지 못한 채 강단 위를 걸어왔습니다. 계속 무슨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 통역자인 에스피노자 형제님이...
여기 계신 멕시코 분들 가운데 에스피노자 형제님을 아시는 분이 많으실 것입니다. 그분이 통역하고 계셨습니다. 그 노인은 치유자가 어디 있는지 알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더니 기도하려고 주머니에 손을 넣어 묵주를, 묵주 구슬을 꺼냈습니다. 저는 그분에게 “어르신,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분을 보았습니다. 바라보니... 신발도 없는데, 저는 꽤 좋은 신발을 신고 있었습니다. 제 발을 그분의 발 옆에 대 보고 신발이 맞을지 살펴보았습니다. 맞았다면 벗어 드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 겉옷은... 저는 페니스에서 파는 옷을 입는데, 가격이 십칠 달러에서 이십칠 달러입니다. 그분이 입고 있는 옷보다는 좋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분과 어깨를 맞대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분의 어깨가 훨씬 넓었습니다. 그때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 가엾은 노인은 평생 제대로 된 식사 한 번 못 했을지도 모릅니다. 기름기 묻은 작은 토르티야 같은 것으로 끼니를 때우며, 아마 여러 자녀를 키웠을 것입니다. 일하느라 먼지를 뒤집어쓰고 지저분해진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운명마저 그에게 그렇게 가혹해서 앞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말입니다.
자, 들어 보십시오. 병자를 위해 기도하는 비결 하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치유자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도 그것을 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러 번 제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그렇게 될 수 있는 길은 한 가지뿐입니다. 그들의 고통 속으로 들어가 함께해야 합니다. 정말로 그 고통을 느껴야 합니다. 거기 서 있는 가엾은 노인을 보면서, 제 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면 저분과 나이가 비슷하셨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분을 두 팔로 감싸 안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하고 생각했습니다. 기도는 통역하지 않습니다. ‘이 가엾은 노인이, 어쩌면...’ 바로 그때 그분이 “글로리아 아 디오스”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발음이 맞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영어도 제대로 못한다고 말씀드렸으니, 스페인어는 못한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하지만 그 말이 ‘하나님께 영광을’인가, 그런 뜻이라는 것은 압니다. 그분은 강단 위를 뛰어다니며 사람들을 모두 끌어안았습니다. 저만큼이나 잘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분의 눈을 열어 주셨습니다.
다음 날 저녁에는 낡은 숄과 모자가 무더기로 쌓여 있었습니다. 이 길이의 세 배나 되는 더미가 이만큼 높이 쌓여 있었습니다. 어느 것이 누구 것이고, 무엇이 무엇인지 어떻게 구분했을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믿었습니다. 무언가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날 밤 에스피노자 형제님이... 저는 이런 일이 확실하게 확인되고 입증되기 전에는 결코 말하지 않습니다. 한 여인이 죽은 아기를 안고 오후 두 시 무렵부터 빗속에 서 있었습니다. 빌리가 제게 왔을 때, 그는 기도 카드를 나누어 주려고 했지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 함께 다니며 기도 카드를 나누어 주고, 그것을 팔거나 그러지 못하게 살펴야 했습니다. 아시다시피 그는 스페인어를 할 줄 몰랐습니다. 이 자그마한 여인이 기도 줄에 들어오려고 하는데, 안내위원들이 떼로 달려들어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 그 여인은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이만한 키의 자그마하고 사랑스러운 여인이었는데, 몸무게는... 백십 파운드쯤 되고 나이는 스물여덟 살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담요에 싸인 죽은 아기를 안고 계속 비명을 지르고 있었습니다.
빌리가 제게 와서 말했습니다. “아버지, 어떻게든 하셔야겠어요. 저분을 막기에는 안내위원 수가 모자라요.” 여인은 그들 위로 기어오르든 무엇이든 하려 했습니다. 절박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잭 무어 형제님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슈리브포트의 잭 무어 형제님을 아시는 분이 많을 것입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잭 형제님, 가서 그 아기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그러면 그 여인이 진정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작은 아기가 앉아서 저를 바라보며 웃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환상이었습니다. 저는 “잠깐만요”라고 했습니다. 그 어린아이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습니다. 여인은 아기를 온통 싸 놓고 있었습니다. 그 여인이 쓰러졌습니다. 저는 “이리 데려오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여인이 “파드레, 파드레...” 하고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늘... 그것은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파드레, 파드레... 저는 여인을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리고 “아기가 죽었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물론 그 여인은 말로 답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아기 위에 손을 얹었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방금 제게 보여 주신 그 어린아이가 이 아기입니까?”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아기가 소리를 지르고, 발을 힘껏 차며 목청껏 울기 시작했습니다.
에스피노자 형제님은 의사들을 찾아가고 모든 것을 조사하여 그 일을 끝까지 확인했습니다. 의사가 그날 오후 두 시에 사망을 선고했습니다. 이 일은 그날 밤 아홉 시 삼십 분쯤에 일어났습니다. 그 아기는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도 멕시코에서 건강하게 살아 있습니다. 아시겠죠? 어떤 일이든 그것을 대하는 여러분의 태도가 중요합니다. 그 여인은 가톨릭교인이었습니다. 그것이 여인에게 장애가 되지 않았습니다. 오순절 쪽에서 부흥회를 한다고 해서 감리교인이라는 것이 장애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무엇이든 간에,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우리가 듣는 것은 전달자가 아니라 메시지입니다.
우리는 이 손수건들 위에 기도합니다. 많은 분이 손수건에 기름을 바르는 것을 압니다. 괜찮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고 복 주시는 일이라면 저는 무엇이든 찬성합니다. 하지만 성경을 보시면, 바울은 거기에 기름을 바르지 않았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의 몸에서 손수건과 앞치마를 가져간 것입니다. 아시겠죠? 저는 바울이 그 생각을 엘리야가 지팡이를 가져다가 아기 위에 놓았던 일에서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아시겠죠? 엘리야가 만진 것은 복을 받는다는 것을 그가 알았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여인으로 하여금 그것을 믿게 할 수 있었다면... 바울 성도는 세상을 떠난 지 여러 해가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치유한 것은 바울 성도가 아니었습니다. 바울 성도가 섬기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믿음이었습니다. 바울 성도는 떠났지만 예수님은 영원히 살아 계십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여러분의 믿음을 감사하게 여깁니다. 손수건을 이곳에 가져오지 않으셨다면, 인디애나주 제퍼슨빌로 제게 편지를 보내십시오. 여러분의 주소를 얻으려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편지에 답하는 비서들의 급료 등을 대기도 벅찹니다. 제게는 무슨 프로그램도 없고, 후원받으려는 것도 없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한 푼도 요구하지 않으며 여러분은 한 푼도 보내실 필요가 없습니다. 때로는 우편요금을 보태려고 돈을 보내 주시는 분도 있습니다. 우리는 해마다 전 세계로 수천 개씩, 수천 개씩, 또 수천 개씩 보냅니다. 보내 드리는 것은 기도한 천, 제가 직접 기도한 작은 리본입니다. 제 아이가 아프다면 저도 제가 신뢰하는 누군가가 보내 주기를 바랄 것입니다. 편지는 비서가 준비하지만, 천 위에는 제가 기도합니다. 틀림없습니다. 여러분도 원하신다면... (감사합니다, 형제님.) 지금 당장 필요하지 않더라도 편지를 보내 받아 두시고, 성경의 사도행전 19장에 끼워 두십시오. 무슨 일이 생기면 그것을 가져다가 환자 위에 놓으십시오. 시간이 허락한다면 실제로 일어난 놀라운 일들, 듣고 머리카락이 곤두설 만한 경험들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제 여기 있는 것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주의 말씀을 기념하여 이 손수건과 스카프들이 여기에 놓여 있습니다. 성경에는 사람들이 바울 성도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갔다고 기록되어 있음을 우리는 압니다. 주님, 우리가 바울 성도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은 여전히 예수님이십니다. 주님은 사람을 차별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베드로도 주님께서 사람이나 민족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거룩하게 그분을 섬기는 모든 사람을 받아 주신다고 말했습니다. 주님, 이 작은 꾸러미들을 보낸 사람들을 주님께서 돌아보시리라 믿습니다. 한때 이스라엘이 모세의 인도를 따라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려다가 궁지에 몰렸을 때, 홍해가 약속의 땅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았다고 합니다. 양쪽에는 산이 있고, 뒤에서는 파라오의 군대가 추격해 오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주님의 지시를 따르려 했는데, 홍해가 길을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하나님께서 그 불기둥을 통해 진노하신 눈으로 내려다보시자 바다가 겁을 먹고 물러났으며, 바다를 가로지르는 길이 생겨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을 향해 계속 갈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주님, 이 손수건들이 병들고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닿을 때, 불기둥을 통해서가 아니라 주님의 아들 예수님의 피를 통해 바라보아 주시고, 병과 질병이 물러가게 해 주옵소서. 주님의 약속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며 길을 가는 이 사람들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너희가 건강하여 잘되기를 내가 바라노라” 하신 약속을 향해 나아가게 해 주옵소서. 허락해 주옵소서, 주님. 이러한 마음으로, 이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우리는 이것들을 병들고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보냅니다. 아멘. 집회가 끝나면 곧바로 여러분의 꾸러미를 찾아가십시오.
이제 감사드리며 [녹음 중단] 저를 다시... 주님께서 원하신다면, 그분들이 저를 초청해 주셨습니다. 여러분이 말씀하시기도 전에 여러분의 아름다운 마음이 그것을 제게 전해 주었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는 그것을 주님께 맡겼습니다. 때가 되면 사람들에게 알리고, 주님께서 오라고 인도하시는 대로 곧 이 계곡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여러분도 제가 그렇게 오기를 바라시리라 확신합니다. 저는 주님께서 가라고 인도하시는 곳으로만 갑니다. 장소가 너무 작거나 너무 큰 법은 없습니다. 저는 얼마 전 스무 명이 들어갈 수 있는 곳에서 집회를, 부흥회를 열었습니다. 형편이 딱했지만 그래도 했습니다. 주님께서 저를 그곳으로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큰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니 너무 작은 곳은 없습니다. 아시겠죠? 이곳은 참 훌륭합니다. 많은 사람이 모였고, 좋은 분들, 사랑스러운 분들이 계시니 우리가 바랄 수 있는 모든 것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가운데 계심을 확신합니다.
이제 집회를 시작하면서, 시간을 너무 길게 끌고 싶지는 않습니다. 여러분께 알려 드리고 싶은 것은, 이 세 번의 집회... 아니, 네 번, 모두 합하면 다섯 번이 될 것 같은데, 제가 참으로 기쁘게 지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주 예수님께서 살아 계심을 입증하시는 것을 보셨습니다. 우리의 육체와 눈과 입술과 손을 통해, 그분께서 이 땅에 계실 때 하셨던 바로 그 일들을 행하시고 이루셨습니다. 제 대전도 집회의 표어는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입니다. 그분은 언제나 동일하십니다. 앞으로도 언제나 그러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대부분이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어젯밤에 오셨던 분은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아주 좋습니다. 청중 가운데 많은 분이 오셨군요. 저는 치유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환상이며, 예수님께서 살아 계시고 이 땅에 계실 때 하셨던 것과 같은 일을 같은 방식으로 행하고 계신다는 것을 교회에 보여 주는 표적입니다. 우리가 여러 번 살펴본 그대로입니다.
오늘 저녁에는 여기 계신 우리의 귀한 친구 보더스 형제님이 읽으시는 것을 들은 본문에서 단 세 단어를 택하려고 합니다. 그분은 참으로 훌륭한 일을 해 주셨고, 여러 일을 준비하도록 도와주시는 제 절친한 친구입니다. 형제님이 읽으신 마태복음 17장 5절의 마지막 세 단어를 택하려고 합니다. 그 말씀은 이렇습니다. ...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말하자면 복음의 본문입니다... 그러니 잠시 머리를 숙이고 그분께 말씀드립시다. 주님, 세상 어디에든 제가 사람들을 이끌어 드릴 분이 계신다면, 그것은 이 짧은 세 단어,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가 가리키는 주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구원자요 치유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녁 이곳에 수천 명이 앉아 있지만, 저는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 말씀을 붙잡고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실 주님을 의지합니다.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있는 모든 남자와 여자와 소년과 소녀가 이제 마음을 가라앉히게 하시고, 성령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취하여 각 사람에게 필요한 그대로 마음에 전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네 입을 열라. 내가 그것을 채우리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 저는 오늘 저녁 이와 같은 청중에게 말할 능력이 없기에 주님을 신뢰합니다. 이들은 주님의 피로 사신 사람들입니다. 실제 주님의 피 두 방울만 접시에 담겨 제게 있었다 해도, 저는 그것을 얼마나 가슴 가까이 품었겠습니까. 그러나 오늘 저녁 제 앞에는 주님께서 보시기에 그보다 더 귀한 것이 있습니다. 주님의 피로 사신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그토록 사랑하셔서, 그들의 죄가 깨끗해지고 질병이 치유되도록 주님의 피를 내어 주셨습니다. 이제 주님, 성령께서 이 흙으로 된 입술을 사용하시고 듣는 이들의 귀에 기름부어 주셔서, 말씀이 좋은 땅에 떨어져 백 배의 열매를 맺게 해 주옵소서. 오늘 저녁 이곳을 떠날 때, 엠마오에서 오던 사람들이 말한 것처럼 우리도 “그분께서 길에서 우리와 말씀하실 때에 우리 마음이 우리 속에서 뜨겁지 아니하더냐?”라고 말하게 해 주옵소서. 그분의 이름으로, 그분의 영광을 위해 구합니다. 아멘.
지금 목이 조금 쉬어서 마이크 가까이에 서겠습니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많은 청중이 모였다고 하셨는데, 이처럼 많고 필요한 것도 많은 청중에게는 본문이 좀 짧지 않습니까?”라고 하실지도 모릅니다.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본문의 양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내용입니다. 종이에 쓰인 분량으로 보면 짧습니다. 잉크도 그 세 단어를 쓰는 데 많이 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뜻은 얼마나 큽니까! 그것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모든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그 말씀은 결코 효력을 잃지 아니하리라.” 얼마 전 우리 도시에서... 아니, 강 건너 켄터키주 루이빌에서, 한 어린 소년이 낡은 건물 다락방에 올라가 이것저것 둘러보며, 어린 소년들이 으레 하듯 뒤지고 다니다가 낡은 궤짝을 발견했습니다. 여덟 살이나 열 살쯤 된 아이답게 그 궤짝을 뒤적이며 살펴보다가 작은 노란 우표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소년은 그것을 집어 들고 생각했습니다. ‘이 우표가 아직 쓸모가 있을까?’ 가로세로 겨우 반 인치쯤 되는 것이었습니다. 소년은 말했습니다. “아주 오래되었고, 이건...” 그러다가 “저 아래쪽에 우표를 모으는 친구가 있어. 이 우표를 주면 오 센트쯤 줄지도 몰라”라고 했습니다. 물론 그 오 센트로 아이스크림을 사 먹을 생각이었습니다.
소년은 낡은 다락방에서 내려와 우표 수집가를 찾아갔습니다. 그 사람은 우표를 받아 확대경 밑에 놓고 살펴보더니 말했습니다. “얘야, 이걸 얼마에 팔겠니?” 소년이 말했습니다. “얼마를 주시겠어요?” 장사할 줄 아는 소년이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일 달러짜리 지폐 한 장을 주마.” 아, 그 거래는 순식간에 이루어졌습니다. 그 돈이면 아이스크림을 몇 개나 살 수 있겠습니까? 소년은 일 달러를 주머니에 넣고 나가면서, 저 친구가 이 우표에 일 달러나 주었으니 자기가 정말 그를 속인 것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그로부터 한 달쯤 뒤에 그 우표가 오백 달러에 팔렸다고 합니다. 나중에는 더 큰 액수에 팔렸고, 지금은 수백, 또 수백 달러를 훨씬 웃도는 가치가 있다고들 합니다. 아시겠죠? 중요한 것은 그 작은 노란 종잇조각이 아니라, 그 종이 위에 무엇이 있느냐였습니다. 오늘 저녁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말씀의 분량이 얼마나 되느냐가... 아니, 종이 값이 얼마이고 잉크 값이 얼마이냐가 아니라, 그것이 무엇이냐가 중요합니다. 단 세 단어로 된 이 짧은 본문 하나에 온 세상을 구원하기에 충분한 것이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가리켜 주기 때문입니다.
제 기억으로는 에이브러햄 링컨 시대의 일이었습니다. 한 군인이 죄를 지어 처형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총살형을 당할 예정이었습니다. 그의 좋은 친구 한 사람이 훌륭한 그리스도인이었던 위대한 링컨 씨를 찾아가 무릎을 꿇고 말했습니다. “링컨 대통령님, 그들이 한 사람의 목숨을 빼앗으려 합니다. 대통령님께서 한마디만 해 주시면 그 사람은 사면될 수 있습니다. 군 복무 중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저질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그를 압니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닙니다. 링컨 대통령님, 그를 사면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링컨은 바빴기 때문에 종이 한 장을 집어 들어 “아무개를 사면하라. 에이브러햄 링컨”이라고 썼습니다. 그 사람은 정중히 인사하고 감방으로 달려가 말했습니다. “친구여, 자네는 자유야. 이 위대한 미합중국의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이 자네를 사면한다는 문서를 받아 왔네. 여기 그분의 서명이 있어.”
그러자 감옥에 있던 사람이 말했습니다. “왜 나를 괴롭히는가? 내가 내일 아침 총살당할 것을 알면서 왜 나를 조롱하는가? 그런 종잇조각을 가져와서 이게 링컨 씨의 이름이고 그분이 서명한 것이라고 믿게 하려 들다니. 그럴듯하게 장식되어 있어야 하지 않나. 인장이 찍혀 있어야지. 그것은...” 친구가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바쁘셨네. 링컨 씨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분의 서명을 알아볼 거야.”
하지만 그 사람은 그것을 거절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그는 총살당했습니다. 자유로워졌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뒤 이 사건은 연방 법원에서 재판을 받았고, 연방 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결했습니다. 이 사람이 자유이며 총살당해서는 안 된다는 문서에 미국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의 이름이 서명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총살당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된 것입니까? 법원의 판결은 이러했습니다. “사면은 사면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한 사면이 아니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이것은 도전입니다. 명령입니다. 사면입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여러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그 안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저 또 하나의 종잇조각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일을 하시기 전에, 어떤 주목할 만한 일을 하시기 전에, 언제나 그 일을 하실 것이라고 알려 주십니다. 저는 지금 바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나라 구석구석에 전도가 이루어지고 있으니, 무슨 일이 일어나려는 것입니다. 이때에도 큰일이 일어나려 했기에, 그분은 세 종을 부르셨습니다. 구약에서는 세 사람이 증인이 됩니다. “두세 증인의 입으로 모든 말이 확정되게 하라.” 하나님은 여러 규모의 모임에서 사람들을 만나 주십니다. 어떤 때는 많은 사람을, 어떤 때는 적은 사람을 만나십니다. 한번은 오백 명을 만나셨고, 또 한번은 칠십 명을, 그다음에는 열두 명을, 세 명을, 심지어 한 사람까지도 만나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그토록 실감 나게 다가오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따로 부름받았습니다. 잘 보시면, 예수님은 어디를 가시든 언제나 그 세 사람을 데리고 가셨습니다. 딸을 일으켜 주셨던 그 제사장의 집에서도... 저는 늘 이렇게 생각하고 싶었습니다. 그 세 사람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었습니다. 베드로는 믿음을 나타냈습니다. 야고보는 소망을, 요한은 사랑을 나타냈습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하나님을 증언합니다. 그들은 우리가 변화산이라고 알고 있는 곳으로 올라갔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곳이었을 것입니다. 나중에 베드로는 서신 하나에서 그곳을 거룩한 산이라고 불렀습니다. 산 자체가 거룩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거룩한 산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산 위에 계신 거룩한 하나님이십니다. 거룩한 교회도 아니고, 거룩한 사람들도 아닙니다. 교회와 사람들 안에 계신 성령이십니다. 그곳에 그분이 계셨습니다. 그들이 올라갔을 때 그들은... 땅에서 증언하는 이도 셋이었습니다. 이것은 아주 특별한 일이었으므로, 하늘과 땅이 일치하도록 하늘에서도 세 분이 오셨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모습이 변하신 주 예수님, 하늘에 속하신 분을 보았고, 모세와 엘리야도 보았습니다. 세 분이었습니다. 땅에서 셋, 하늘에서 셋이었습니다.
이곳에서 그분이 하고 계셨던 일은... 하나님은 자신이 하지 않으실 일을 사람에게 하라고 요구하신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제가 여기 클리본 형제님의 찬송을 고맙게 여기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저는 그 찬송을 부르기 좋아합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그저 선지자 한 사람으로 만들고, 그분에게서 신성을 빼앗으려 하는 시대에 말입니다... 얼마 전, 그분을 그저 선지자요 선한 사람이요 교사로 믿는 교회에 다니는 한 여인이... 그분이 그런 분에 불과하시다면 우리는 모두 여전히 죄 가운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와께서 그 몸을 창조하셨고, 자신이 거하실 성막을 친히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자신이 거하신 성막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셔서 세상을 자신과 화해하게 하셨습니다.
그 여인이 제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목사님 말씀을 듣기 좋아합니다. 신실해 보이시니까요. 하지만 한 가지 잘못된 점이 있습니다.” 저는 “잘못된 점을 하나밖에 못 찾으셨다면 저는 기쁩니다”라고 했습니다. 여인이 말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을 너무 많이 자랑하십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제게 혀가 천만 개 있다 해도 그분을 충분히 자랑할 수는 없습니다. 그분의 존귀하심을 찬양할 말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천사들도 그것을 표현할 말을 찾지 못합니다.” “하지만” 하고 여인이 말했습니다. “그분은 그저 사람이셨는데, 목사님은 그분을 하나님으로 만들려 하십니다.” 저는 “그분은 하나님이시며 사람이셨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여인이 말했습니다. “목사님 자신의 성경으로 그분이 그런 분이 아니셨다는 것, 단지 사람, 선한 사람, 교사에 불과하셨다는 것을 증명해 드린다면... 그분은 그뿐이셨습니다.” 저는 “성경이 그렇게 말한다면요”라고 했습니다. 여인이 “좋습니다” 하더니 말했습니다. “요한복음 11장에서 그분이 나사로의 무덤으로 가실 때 우셨다고 성경에 나옵니다. 그것은 그분이 사람에 불과하셨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자매님, 그 논리는 굶어 죽은 닭의 그림자를 넣고 끓인 국물보다도 더 묽습니다. 아무것도 떠받칠 수 없는 논리입니다. 그분이 무덤으로 내려가실 때 우셨던 것은 참으로 인간적인 면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조금 처진 어깨를 펴시고 ‘나사로야, 나오라!’ 하셨을 때, 죽은 지 나흘이나 된 사람이 두 발로 일어서서 다시 살았습니다. 그것은 사람 이상의 분이셨습니다.”
그분이 산에서 내려오셔서 배가 고파 나무에서 먹을 것을 찾으셨을 때, 그분은 사람이셨습니다. 배고픔을 느낀 것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토막으로 오천 명을 먹이셨을 때, 그분은 사람 이상의 분이셨습니다. 사람 안에 계신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날 밤 그 작은 배에 누워 계셨을 때, 바다의 만 마리 마귀가 그분을 물에 빠뜨려 죽이겠다고 맹세하고, 폭풍 속의 작은 병마개처럼 배가 이리저리 흔들리는 가운데서 주무셨을 때, 그분은 사람이셨습니다. 그러나 배의 줄에 발을 올려놓으시고 “잠잠히 있고 고요히 있으라” 하시자 바람과 파도가 순종했을 때, 그분은 사람 이상의 분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들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분이 십자가에서 사람처럼 울부짖으며 죽으신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부활절 일요일에 로마의 봉인은 무덤을 닫아 둘 수 없었습니다. 바위도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분은 봉인을 깨뜨리시고 다시 일어나셨습니다. 시인이 이렇게 말한 것도 당연합니다. 살아 계실 때 나를 사랑하셨고, 죽으심으로 나를 구원하셨네. 묻히심으로 내 죄를 멀리 가져가셨고, 일어나심으로 영원토록 값없이 나를 의롭게 하셨네. 언젠가 그분 오시리니, 오, 영광의 날이여!
그렇습니다. 그분은 사람 이상의 분이셨습니다. 자신의 아들 안에 계신 하나님, 영이신 하나님께서 처녀 탄생을 통해 친히 창조하신 성막에 거하신 것입니다. 그 거룩한 성막 안으로 오셔서 인류에게 자신을 나타내시고,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를 표현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분은 그곳에 서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육체가 되셔야 했던 것은 고통을 겪으시고 죽음의 고뇌를 당하셔서, 모든 피조물을 위해 죽으실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그분이 무엇을 하고 계셨는지 아시지요. 구약에는 한 법이 있었습니다. 이제 이 말을 들으시고 뼈는 골라내십시오. 이런 법이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집에서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킹제임스 성경의 요한복음 14장 번역을 주의 깊게 보신 적이 있습니까?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이상하게 들리지 않습니까? “내 아버지 집에, 작은 집 안에 많은 저택들이 있다.” 아시겠죠? 제임스 왕 시대에는 그 집을 ‘영지’라고 불렀고, 왕은 그 영지의 아버지였습니다. 올바른 번역은 이것입니다. “내 아버지 왕국에 많은 궁전들이 있다.” 한 사람은, 모팻인지 다른 누구인지 누구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킹제임스 성경보다 더 우스꽝스럽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내 아버지의 아파트 건물에 많은 아파트가 있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그곳에서 아파트를 빌려 살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참뜻대로 번역하면 “내 아버지 왕국에...”입니다. 다만 왕을 위해 번역하면서 당시 사람들이 쓰는 말로 옮겨야 했는데, 그것이 성경 시대의 말과 더 비슷했던 것입니다. 아버지가 아주 큰 농장을 소유하고 있고 그 가정에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그는 자녀이며 태어나자마자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 점에서 우리 순복음 사람들이 조금 실수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고의는 아니었겠지만, 성령을 받기만 하면 그것으로 다 되었다고 사람들에게 말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 막 시험을 받는 자리에 놓인 것뿐입니다.
이 아이는 태어났을 때부터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밖으로 나가 이 아이를 교육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가정교사, 곧 양육자를 찾았습니다. 자기 아들이 가능한 한 가장 좋은 교육을 받으며 자라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그 가정교사는 아들이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아버지에게 늘 보고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얼마나 잘 보여 주는 모형인지 보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의 집안에 태어났을 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교회를 위해 가장 좋은 교사를 찾으려고 하늘을 두루 살피셨습니다. 그분은 감독도 대주교도 아니었습니다. 성령이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다시 태어난 교회의 교사요 가정교사가 바로 성령이십니다.
그 가정교사가 부끄러운 얼굴로 아버지 앞에 나아가 “아버님께서 그토록 사랑하시는 그 아들이, 아, 그 아이가 말썽꾸러기입니다. 전혀 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버님의 일에는 관심도 없고, 그저 빈둥거리며 돌아다닙니다”라고 말해야 했다면, 기분이 어떠했겠습니까? 얼마나 마음이 안 좋았겠습니까. 오늘 성령께서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나아가 교회의 행실을 아버지께 보고하실 때 무슨 말씀을 하시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여기서 아주 독하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냥 넘어가고 몇 가지만 짚겠습니다. 그분이 아버지 앞에 나아가 “저 아래 다시 태어난 교회가 기적의 시대는 지나갔다고, 심지어 그릇된 것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신다면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많은 집사가 네 번이나 다섯 번씩 결혼하고도 여전히 집사 직분을 맡고 있다는 행실을 보고하셔야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런 말씀을 하시려면 얼굴이 붉어지실 것입니다. 여자들이 머리카락을 잘라 버리고, 치마 대신 반바지를 입는다는 것 말입니다. 음! 참으로 끔찍했을 것입니다.
아, 얼마 전에 누군가 제게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저는 그런 반바지는 입지 않습니다. 저는 그... 뭐라고 부르지요? 슬랙스를 입습니다.” 그것은 더 나쁩니다. 성경은 여자가 남자에게 속한 옷을 입으면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무슨 일이 생긴 것입니까? 전에는 오순절 교인 여러분이 그런 일을 하는 것이 잘못이었습니다. 누군가 어디선가 빗장을 풀어 놓았습니다. 그때 잘못이었다면 지금도 잘못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는 그런 일들을 아버지 앞에 보고하셔야 합니다. 끔찍하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그렇게 행하는 소식을 전하셔야 하니, 아, 얼마나 괴로우시겠습니까.
또 그분의 딸들과 아들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고 말씀드리기 위해 성령께서 어떤 일을 겪으셔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굴뚝을 달아 놓지 않으셨습니다. 공기를 들이마시라고 폐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사람들이 설교자들의 말은 듣지도 않고 “그래도 나는 하겠어”라고 한다는 소식을 전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설교자가 강단에서 그런 일을 지적할 만큼 설교자답지 못하고, 복음보다 자기 밥벌이를 더 생각할 때 그분은 무슨 생각을 하시겠습니까? 그 설교가 어떻겠습니까? 아, 뜨끔한 말이 될 수 있겠지만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그렇게 때리시... 여자들만 너무 몰아붙이십니다”라고 하십니다. 좋습니다. 그러면 남자분들, 이제 여러분 차례입니다. 아내가 그런 옷을 입고 담배를 피우도록 내버려 두는 남자라면, 여러분이 어떤 사람인지 드러내는 것입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저는... 그런 여러분을 남자로서 존중하기가 어렵습니다. 사실입니다. 몸집이 크고 근육이 좋을 수도 있겠지요... 저는 몸무게가 이백 파운드나 나가고 근육이 쇠처럼 단단해도, 그 속에 사내다운 데라고는 한 치도 없는 남자들을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남자는 근육으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느라 바지 무릎이 얼마나 늘어났느냐로 평가됩니다. 그렇게 [불명확한 말]. 남자는 근육이 아니라 성품으로 평가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보다 위대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키나 몸집이 아니라 성품으로 평가되셨습니다. 자, 저는 병자들을 위해 기도하러 왔습니다. 그런 일들은 그분들이 맡아서 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 형편을 보십시오. 영, 성령께서 아버지 앞에 나아가실 때 얼마나 얼굴이 붉어지시겠습니까. 그분이 오셔서 “하나님의 성회와 하나님의 교회가 서로 화합하지 못합니다. 감리교와 침례교는 다투고 있습니다. 장로교는 자기들이 다 안다며 다른 이들을 아무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라고 말씀하신다면 어떻겠습니까? 교회의 가정교사이신 성령께서 그것을 아버지 앞에 보고하셔야 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여러분이 이런 문제를 가지고 성령께 나아가지 않는 이유는 다른 종류의 가정교사를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사실 여러분의 가정교사가 아닙니다. 성령이 하나님께서 택하신 가정교사이십니다. 그런 일들은 다 괜찮다고 말해 주는 사람을 구할 수는 있겠지만, 그는 하나님의 가정교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가정교사는 하나님의 말씀의 지시를 따릅니다. 아멘. 음! 그러나 그것이 진리입니다.
그런데도 그 아들이 여전히 순종하지 않으려 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 아들은 아들이기는 합니다. 아들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결코 유업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며 이렇게 말합니다. “순종하지 않으니 믿고 맡길 수가 없구나. 그냥 두는 수밖에 없겠다. 그래도 그는 언제나 아들이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영으로 태어났다면... 저는 이 점을 고수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여러분의 모든... 그 영광을 잃습니다. 그러면 그 아들이 착하고 순종하는 아들이라면 어떻겠습니까? 아, 그가 얼마나 아버지를 사랑하는지요. 가정교사는 얼마나 기쁘게 이렇게 말하겠습니까. “아, 아버님,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아버님의 그 아들 말입니다. 아버님을 꼭 닮았습니다. 정말입니다. 지금도 아버님의 일을 얼마나 잘 돌보는지... 아버님 못지않게 잘 돌보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가슴이 얼마나 뿌듯하겠습니까. “아, 그렇지. 내 아들이야.” 저는 그분께서 우리를 그렇게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그렇게... 우리는 이 말씀의 지시를 따르고, 이 말씀대로 살고, 이 말씀대로 전하고, 이 말씀을 따라 죽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기를 원하시는 일이 그것입니다.
그 아이가 순종했다면, 그가 성년이 되었을 때 특정한 날을 정했습니다. 지금 오순절 교회도 성년이 되었어야 합니다. 사십 년이 넘었으니, 한 오십 년쯤 되었지요. 그러니 성년이 되었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아들이... 양자됨을 받거나 아들의 자리에 세워지는 날이 옵니다. (형제님들, 제가 말하려는 것은 아들로 세우는 것입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지요.) 지위에 맞는 자리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상속자가 됩니다. 그들은 그 아들을 거리로 데리고 나가 특별한 옷을 입힙니다. 그리고 의식을 거행합니다. 그 의식이 끝나면, 그 아이는 자기가 태어난 바로 그 가문 안에서 아들의 자리에 세워지거나 양자됨을 받습니다. 이제 수표에 그의 이름을 서명하면 아버지의 서명과 똑같은 효력을 갖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상속자가 됩니다. 자기 지위에 맞는 자리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께서 이곳에서 자기 아들에게 하고 계셨던 일이었습니다. 그 아들을 찾으셨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찾으셨습니다.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하나님은 아들을 그 산 위로 데리고 올라가셨고, 하늘의 증인들을 내려오게 하셨으며, 땅의 증인들을 올라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셨습니까? 불멸의 옷을 입혀 주셨습니다. 그분의 옷은 해처럼 빛났습니다. 할렐루야! (이 말에 놀라지 마십시오.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라’라는 뜻입니다.) 불멸의 옷을 입혀 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무슨 뜻입니까? “내가 그를 아들의 자리에 세운다. 나는 뒤로 물러선다.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아, 베드로는 흥분했습니다. 초자연적인 일이 일어날 때 사람들이 흥분하는 것처럼, 그도 몹시 흥분했습니다. 대개는 모세와 함께 갔던 것처럼, 또 마지막 날들의 이 마지막 부흥에 함께 따라온 것처럼, 섞인 무리가 있습니다. 섞인 무리 말입니다. 언제나 그런 무리가 생깁니다. 베드로는 초자연적인 일을 보자 몹시 흥분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합니다. 그는 곧바로 교단들을 만들어 모든 체계를 갖추고 싶어 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이렇게 합시다. 모세와 함께 율법을 지키려는 사람들을 위해 장막 하나를 짓읍시다. 그리고 이쪽에는 또 다른 교회를 지어서 선지자들의 말씀을 지키려는 사람들을 모두 모읍시다.” 그런데 그가 다음과 같이 말한 것에 주목해 주십시오. “하나님의 은혜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려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이쪽에 또 하나의 장막을 짓읍시다.”
그러나 그 말이 그의 입에서 다 나오기도 전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다. 저는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 참으로 기쁩니다. 율법이 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율법 안에는 은혜가 없었습니다. 율법은 제가 죄인이라고 말해 주는 경찰관이었습니다. 저를 감옥에 넣었지만 꺼내 줄 능력은 없었습니다. 아, 저는 참으로 기쁩니다. 그다음은... 모세는 하나님의 율법을 대표하여, 여러분이 유죄이고 죽어 마땅하다고 말했습니다. 거기에는 긍휼이 없습니다. 그것은 율법입니다. “네가 그것을 먹는 날, 그날에 죽으리라.” 그렇다면 엘리야는 무엇을 대표했습니까? 하나님의 공의였습니다. 저는 공의를 원하지 않습니다. 긍휼을 원합니다. 저는 그분의 공의를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의 긍휼을 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저를 위해 그분의 공의를 충족시키셨습니다. 아멘.
옛 엘리야는 하나님의 사명을 받아 그 언덕 위로 올라갔습니다. 왕이 그의 행방을 알아내고 말했습니다. “오십 명을 데리고 올라가서 그를 끌어내려라. 그 광신도를 여기로 끌어내려 본때를 보여 주겠다.” 엘리야는 그릿 시냇가의 바위 위에 앉아 있었고, 검은 종들이 매일 그를 시중들었습니다... 까마귀들이 빵과 고기를 가져다주었고, 그는 물을 마셨습니다. “불쌍한 엘리야”라고들 하지요. 그는 우리 가운데 많은 사람보다 형편이 더 나았습니다. 그는 거기서 잠을 잤고... 그러다가 보니 오십 명의 군대가 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는 일어나 말했습니다.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그들을 태워 버리기 원하노라.” 그러자 불이 내려왔습니다. 그들은 타 버렸습니다. 그것이 공의입니다. 그들은 그 땅에 들어와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왕이 말했습니다. “아, 그날 뇌우가 있었던 모양이군.” 사람들이 어떻게 설명을 붙이려 하는지 아시지요. “벼락을 맞은 게 틀림없어. 다른 오십 명을 보내겠다.” 엘리야는 그들이 오는 것을 보자 일어나 말했습니다.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그들을 태워 버리기 원하노라.” 불이 내려와 그들을 태워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왕은 오십 명씩 보내는 데 지쳤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그분의 공의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분의 긍휼을 원합니다.
그런데 아, 생각해 보면 그곳에서... 베드로가 아직 이 말을 하고 있을 때, 그 말이 입에서 나오기도 전에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그러니 모세의 말은 듣지 말라, 공의의 말은 듣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이 그분 안에서 충족되었습니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더는 율법이 없습니다. 더는 심판이 없습니다. 그분께서 우리의 심판을 담당하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참으로 기쁩니다. 율법은 저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는 저를 위해 무엇을 하실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는 그분의 율법이나 공의를 대표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긍휼과 사랑을 대표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아니하고 영생을 갖습니다. 그리스도는 제게 사랑을 주실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제게 영생을 주실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제 몸에 치유를 주실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제게 만족을 주실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제 우울함을 없애시고 행복을 주실 수 있습니다. 율법은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선지자들도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오늘날 교회도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세상도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돈도 오늘날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친구들도 오늘날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그 일을 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그분뿐입니다.
지금 여기 계신 여러분 가운데 많은 분이 암과 심장병으로 죽어 가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며칠 안에 세상을 떠나실 분들입니다. 의사들도 여러분을 포기했습니다. 진료소도 여러분을 포기했습니다. 병원도 여러분을 포기했습니다. 그들이 여러분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나는 네 모든 질병을 고치는 주니라.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사랑으로 나아오십시오. 오늘날 세상은 사랑이 없어 죽어 가고 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에게는 학식이 뛰어난 훌륭한 교회들과 멋진 건물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강단은 약해졌습니다. 무언가 잘못되었습니다. 회중은 예전처럼 서로를 아끼지 않습니다. 무언가 빠져 있습니다. 그리스도인 여러분, 세상은 그것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서로를 사랑하는 사랑의 침례입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것에 의해 모든 사람들이 너희가 내 제자임을 알리라.” 사람이 자기 친구들을 위해 자기 생명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아무에게도 없습니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그 일을 하실 수 있었던 분은 오직 그분뿐이었습니다. 어떤 천사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 밖의 어떤 존재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분이 그 일을 하셨습니다. 여러분에게는 그분과 반대되는 다른 어떤 말에도 귀를 기울일 권리가 없습니다. 오직 그분을, 그분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입니다.
성경은 “너희는 땅의 소금”이라고 했습니다. 소금은 닿아야 맛을 냅니다. 그러나 그 짠맛을 잃었다면, 아무리 많이 닿아도... 교회가 바로 그런 상태입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형제 사랑을 잃었습니다. 서로를 아끼는 마음을 잃었습니다. 세상은, 사람들은 참된 것을 찾고 있습니다. 그들은 너무나 많은 흉내와 꾸밈을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예, 저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신유를 믿습니다”라고 하면서 행동은 다르게 합니다.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라고 하면서 나가서 그런 옷들을 입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라고 하고는 행동을... 밖에 나가 담배를 피우고, 주사위 도박을 하고, 그 밖의 온갖 일을 합니다. 부끄러운 줄 아십시오. 저는... 저는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형제여, 저는 지금 조금이라도 여러분을 바로잡아 드리는 편이 낫겠습니다. 그러면 심판 때 제가 갔을 때 여러분이 “브래넘 형제님, 그때 그렇게 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하실 것입니다. 그때는 이미 늦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을 향한 사랑과 존중입니다. 그들이 어느 교단에 속해 있든, 형제라면 형제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해야 합니다. 다른 어떤 것도 마음에 닿지 못할 때에도 사랑은 닿을 것입니다.
저는 사냥꾼입니다. 동물의 습성을 압니다. 사람들은 “브래넘 형제님, 손에 칼 하나만 들고 그런 곰에게 다가가는 것이 무섭지 않습니까?”라고 합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그 동물을 두려워하면 동물이 안다는 것을 저는 압니다. 허세로 속일 수 없습니다. 동물은 압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않는 것도 압니다. 아시겠죠? 동물도 본능으로 그것을 안다면, 사람은 어떻겠습니까? 그림으로 그린 불을 내세울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아, 저는 그리스도인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과거에 있었던 무언가의 불을 그림으로 그려 놓는 것입니다. 추위에 떠는 사람에게 “옛날에 타올랐던 저 커다란 불이 보이지요? 가서 몸을 녹이십시오”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림으로 그린 불은 몸을 따뜻하게 하지 못합니다. 실제로 그때와 같은 불이어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는 하나님의 사랑의 불이 필요합니다. 과거의 교리만으로 따뜻해질 수는 없습니다. 지금 성령이 계셔야 합니다. 처음에 오순절의 불을 보내셨던 바로 그 영이 오늘도 같은 오순절의 불이 되어, 하나님의 사랑으로 서로를 사랑하도록 사람들의 마음을 불태우셔야 합니다. 그들은 단 하나의 목표, 혼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나아갔습니다. 동기도 하나, 사랑이었습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얼마 전 저에게 친구가 하나 있었습니다. 저는 북쪽 숲에서 그와 함께 사냥하곤 했습니다. 제가 함께 사냥해 본 사람 가운데 가장 뛰어난 사냥꾼 중 하나였습니다. 명사수였고, 짐승의 자취도 잘 찾아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본 사람 가운데 가장 잔인했습니다. 정말로 잔인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제가 설교자라는 이유로 저를 놀리곤 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그를 좋아했습니다. 숲에서 지내며 그런 사람 수백 명을 그리스도께 인도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와 함께 사냥하기를 좋아했습니다. 어디에 혼자 두어도 괜찮았기 때문입니다. 그를 찾아다닐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어디 있는지 알았습니다. 이름은 버트였습니다. 제가 그곳에 가면, 그는 저를 괴롭히려고 작은 새끼 사슴들을 쏘곤 했습니다. 새끼 사슴을 잡고 싶어서 잡는다면 괜찮습니다. 아브라함도 송아지를 잡아 하나님께 대접했습니다. 그러나 그저 못되게 굴고 잘난 척하려고 돌아서서 새끼들을 쏘는 것은... 때로는 무슨 말을 하느냐보다 어떤 태도로 말하느냐가 문제입니다. 무엇을 하느냐보다 어떤 태도로 하느냐가 문제입니다. 그는 그저 제 마음을 아프게 하려고 그 어린 새끼 사슴들을 쏘곤 했습니다.
저는 말하곤 했습니다. “버트, 자네는 내가 본 사람 가운데 가장 잔인한 사람이야. 왜 그런 짓을 하나, 버트? 그 가엾은 어린것들을...” 그가 말했습니다. “아, 빌리, 정신 차려. 자네는 겁 많은 설교자일 뿐이야. 그게 전부라고. 사냥은 잘하지만, 난... 자네는 겁쟁이야.” 저는 말했습니다. “버트, 이것은 겁이 많은 게 아니야. 분별 있게 행동하려는 거야.” 저는 칠 년 동안 야생동물 보호관으로 일했습니다. 주 정부 소속 보호관이었습니다. 저는 야생동물을 사랑합니다. 그것들이 마구 도살당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무엇이든 함부로 짓밟히는 것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그가 제게 말했습니다... 한번은 제가 그곳에 가니 그가 작은 호루라기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 작은 호루라기로 새끼 사슴이 엄마를 찾으며 우는 소리를 똑같이 낼 수 있었습니다. 작은 울음소리를... 새끼 사슴은 어린 아기 사슴입니다. 그는 엄마를 찾으며 우는 새끼 사슴의 소리를 똑같이 낼 수 있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버트, 그런 짓을 하지는 않겠지.” 그는 “아, 그만해, 설교자” 하더니 말했습니다. “설교자들은 다 그게 문제야. 마음이 너무 약해. 자네는 계속 그렇게 겁쟁이로 살게. 나는 사냥감을 잡으러 가겠어.” 저는 말했습니다. “버트, 나는 자네를 사랑해. 하지만 그런 짓은 하지 말게.” 그날 우리는 사냥을 하러 갔습니다. 사냥철도 제법 늦은 때였습니다. 일이 늦게까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몸에 기운을 돋우려고 뜨거운 초콜릿 음료를 통에, 보온병에 담아 갔습니다. 몹시 추울 때는 때때로 영하 십 도, 십오 도, 이십 도까지 내려갔고, 우리는 그 뜨거운 초콜릿을 조금씩 마셨습니다. 점심을 먹을 때나 다쳤을 때나 추울 때면, 그 뜨거운 초콜릿을 한 모금 마시곤 했습니다.
사냥철도 늦은 때였습니다. 총소리가 나기 시작하면 그 작은 사슴들은 곧장 몸을 숨기러 달아납니다. 그러고는 정말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밖으로 나오면 안 된다는 것을 압니다. 눈은 육 인치쯤 쌓여 있어서 자취를 쫓기에는 딱 좋은 날씨였습니다. 저는 곧 사슴을 만나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날 아침 우리는 출발했고, 그가 앞장섰습니다. 체리산에 올라 워싱턴 쪽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렇게 그가 가다가... 보통 우리는 정오까지 함께 사냥한 뒤 갈라졌습니다. 버트는 한쪽으로 가고 저는 다른 쪽으로 갔습니다. 그러고는 각자 길을 돌아 야영지로 향해 그날 밤에 도착하곤 했습니다. 정오쯤 되어 그는 이 건물의 절반쯤 되는 작은 빈터에서 자리에 앉았습니다. 눈 위에 앉더니 옆구리 뒤쪽으로 손을 뻗었습니다. 저는 초콜릿을 꺼내고 우리가 간단히 요기를 하려는 줄 알았습니다. 저는 소총을 나무에 기대 놓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꺼낸 것은 그 작은 호루라기였습니다. 그는 도마뱀 같은 눈으로 저를 올려다보며 말했습니다... 그것을 이렇게 입에 물었습니다. 저는 “버트, 그러지는 않겠지”라고 했습니다.
그는 작은 아기 사슴이 우는 소리를 똑같이 냈습니다. 그러자 빈터 바로 건너편에서 크고 아름다운 암사슴 한 마리가 일어섰습니다. 암사슴은 어미 사슴입니다. 너무 가까워서 큰 갈색 눈과 쫑긋 세운 크고 예쁜 귀가 보일 정도였습니다. 그것은 드문 일이었습니다. 그 시간에는 일어서지 않습니다. 누워 있습니다. 어미 사슴이 살펴보았습니다. 그가 저를 돌아보는데, 마치 ‘내 말이 맞지?’ 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버트, 설마, 설마 그런 짓을 하지는 않겠지.’ 그는 말했습니다... 다시 그 어린 암사슴... 작은 어미... 새끼 사슴처럼 우는 소리를 냈습니다. 제가 보니 이 큰 사슴이 곧장 빈터로 걸어 나왔습니다. 전혀 흔치 않은 일이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어미였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 어미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아기가 어려움에 처해 있었던 것입니다. 그 어미 사슴은 위선자가 아니었습니다. 남에게 보이려고 교회에 가는 것 같은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그 안에 무엇인가 있었습니다. 어미였습니다. 사랑이 있었습니다. 그 사랑은 자기 아기를 향한 것이었습니다. 어미로 태어났습니다. 그 어미 사슴은 다시 귀를 기울였습니다.
버트는 손을 내려 30.06 소총의 노리쇠를 당기고, 총알을 총열 안으로 밀어 넣은 다음 겨냥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 이럴 수가. 잠시 후면 저 어미의 심장을 완전히 날려 버리겠구나.’ 어미 사슴은 그 빈터로 곧장 걸어 나왔습니다. 사슴을 사냥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것이 전혀 흔치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런데 왜 그랬습니까? 그 안의 어떤 것이 어미를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어미 사슴이 몸을 돌렸습니다. 바로 덤불 건너편의 사냥꾼을 보았습니다. 그는 백발백중의 명사수였습니다. 조준경의 십자선이 어미 사슴의 심장 한가운데 놓여 있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 차마 볼 수가 없어. 어떻게 저것을 보겠나? 저 귀한 어미를... 저 충실한 심장을 완전히 날려 버릴 텐데. 백팔십 그레인짜리 연질 탄두야. 저 거리라면 몸에 이만한 구멍을 내겠지.’ 어미 사슴과의 거리는 삼십 야드도 되지 않았습니다... ‘총알이 명중하면 저 사슴은 몇 번이고 나뒹굴 거야. 저 충실한 심장은 완전히 날아가 버리겠지.’ 저는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저런 짓을 할 수 있을까?’
저는 고개를 돌렸습니다. 차마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참되고 충실한 것이 그렇게 쓰러지는 것을 볼 수 없었습니다. 고개를 돌리고 아주 조용히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저 사람이 그런 짓을 하지 못하게 해 주십시오. 저 가엾은 어미는 자기 아기를 찾으러 나와 있습니다.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안에 무엇인가 있습니다. 어미로 태어났고, 아기는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위험이 있어도, 그런 어미들은 위험을 모릅니다. 그래도 앞으로 나아갑니다.” 저는 기다리고 또 기다렸지만, 총소리는 나지 않았습니다. 돌아보니 총열이 이렇게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그가 저를 올려다보는데, 굵은 눈물이 두 뺨을 타고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는 총을 땅에 내던지고 제 바짓가랑이를 붙잡았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빌리, 이제 더는 못 견디겠어. 바로 이 눈더미 위에서, 자네가 말하는 그 예수님을 가르쳐 주게. 참으로 사랑을 가지신 그분 말이야.”
무엇이었습니까? 그는 참된 것을 보았습니다. 꾸며 낸 것이 아닌, 실제로 드러나는 무언가를 보았습니다. 진실한 것이었습니다. 그 눈더미 위에서 저는 그 잔인한 마음의 죄인을 주 예수님께 인도했습니다. 어미 사슴이 참된 것, 사랑, 참사랑을 나타내 보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죽음도 그 밖의 어떤 것도 그 사랑을 갈라놓을 수 없었습니다. 성경은 어머니가 젖 먹는 자기 아기를 잊을 수 있을지라도 “나는 결코 너희를 잊을 수 없다. 너희 이름이 내 손바닥에 새겨져 있다”라고 했습니다. 친구 여러분,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그분이 여러분에게 영원한 사랑을 주시는 분입니다. 머리를 숙입시다. 기도하기 직전에, 오늘 저녁 이 많은 청중 가운데 얼마나 많은 분이... 이제 집회를 마치면서 정직해지십시오. 저 어미 사슴이 품었던 모성애만큼의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의 마음에 있어서, 세상에 나타내 보일 수 있기를 진심으로 원하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청중 가운데 올라오는 손들을 보십시오. 말 그대로 수백 명입니다. “주님, 제게 그런 사랑을 주십시오. 형제들을 향한 사랑, 제 사람들을 향한 사랑,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이 되게 하는 하나님의 사랑, 참된 출생을 경험한, 다시 태어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사랑을 주십시오.” 지금 정말 그런 마음이십니까? 여러분은 그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제 잠시 기도하기 위해 머리를 숙이십시오. 마음속으로 기도하며 말하십시오. “하나님, 제 마음에 사랑을 넣어 주십시오. 그분이 부르시는 소리를 듣습니다. 제가 손을 들게 한 그 작은 음성은 무엇입니까?” 그것이 그분이십니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아니하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오 주님, 수많은 어머니와 아버지, 젊은이와 노인들이 손을 들고 있습니다. “너희에게는 이런 사랑이 필요하다” 하고 말씀하시는 작은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제 그 사랑을 받아들이려고 겸손히 나아옵니다. 말씀에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 이들에게 이 큰 사랑을 주옵소서. 그 사랑이 마음을 흠뻑 적셔서, 원수 앞에라도, 위험 앞에라도, 무엇 앞에라도 곧장 나아가 잃어버린 혼들을 하나님의 왕국으로 데려오게 해 주옵소서. 그것이 아버지의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반드시 내 아버지 일을 수행해야만 함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라고 하셨듯이 말입니다. 그분의 일은 잃어버린 혼들을 구원하는 것이었습니다. 주님, 오늘 저녁 이들 각 사람이 우리가 말하는 이 깊은 사랑을 받도록 허락해 주옵소서. 이 메시지로 얻은 귀한 열매로서 그들을 주님께 맡깁니다. 그들은 주님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할 것이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느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분과 말씀을 나누신 영, 그리고 그들은 그분을 받아들였습니다. 이제 아버지, 그들을 완전한 평강 가운데 지켜 주옵소서. 그들의 마음이 주님께 머물게 해 주옵소서. 제가 이 땅에서 그들과 악수하지 못하더라도, 바로 강 건너 더 좋은 땅에서 악수하게 해 주옵소서. 주님의 아들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아, 여러분도 그분을 사랑하시지 않습니까? 그 찬송을 부릅시다. 「주를 사랑해」의 첫 화음을 쳐 주십시오. 이제 여기 계신 모든 분이 저와 함께 부르십시오. 모두 함께 경배합시다. “주를 사랑해, 주를 사랑해, 날 먼저 사랑하셨으니.” 사랑받을 만하지 못했던 우리를 그분은 사랑하셨습니다. 이제 모두 부릅시다. 다 함께. 좋습니다. 주를 사랑해, (그분을 경배하십시오.) 주를 사랑해, 날 먼저 사랑하셨으니, 내 구원을 사셨으니, 갈보리 십자가에서. 마음이 좋지 않습니까? 주 예수님의 피로 참으로 깨끗이 씻긴 마음이 드시면, 손을 들고 부르십시오. 주를... 이제 그분만 바라보며 경배하십시오. 그분께 말씀드리십시오. 주를 사랑해, 날 먼저 사랑하셨으니, 내 구원을 사셨으니, 갈보리 십자가에서.
그분의 선하심과 우리를 위해 해 주신 일을 생각하면서 이 곡을 흥얼거려 볼까요? [브래넘 형제님이 허밍을 시작한다.] 이제 눈을 감으십시오. 그분이 바로 앞에 계신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온 하늘과 땅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분, 그분은 아버지의 사랑을 나타내시는 분입니다. ... 날 먼저 사랑하셨으니. [브래넘 형제님이 허밍을 시작한다.] 아, 그분은 놀라우신 분이 아닙니까? 주를 사랑해... 저는 경배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분의 임재를 사랑합니다. 날 먼저 사랑하셨으니, 내 구원을 사셨으니, 갈보리 십자가에서.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은 영존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성령을 통해 우리 마음에 부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이 마음 깊이 스며들며, 이 소박한 이야기들을 듣고 나니, 그분의 거룩한 임재가 우리의 혼을 씻어 주시는 것을 느낍니다. 주님, 일 년쯤 전에 그 사람을 다시 만나 그가 저를 끌어안았을 때 참으로 기뻤습니다. 그는 “빌리, 나는 그 눈더미를 결코 잊지 못할 거야”라고 했습니다. 벌써 십사 년쯤 되었지만, 지금도 사랑스러운 그리스도인이며 교회의 집사입니다. 주님, 그 일이 참으로 기쁩니다. 그렇게 나타내 보이는 것이... 하나님은... 만일 이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즉시 소리를 지를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원하시는 어떤 것을 통해서든, 동물들을 통해서도 자신의 사랑을 나타내실 수 있습니다. 무엇이든 취하여 자신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그것이 참으로 기쁩니다.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님으로 인해 참으로 기쁩니다. 지금 우리는 그분의 말씀을 중심으로 교제하고, 성령 안에서 교제하고 있습니다. 주님, 우리가 언제나 안전하게 매인 채 이런 상태에 있게 해 주옵소서.
기도 줄이 끝나면 집회도 마칩니다. 앞으로 몇 달 안에 제가 돌아오더라도, 여기 계신 분 중에는 그때 계시지 않을 분들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 문에서 만날 때까지는 이번이 마지막 만남일 것입니다. 그때는 모든 것이 끝나 있을 것입니다. 주님, 오늘 저녁 주님께서 보내셔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있는 모든 사람이 그날 그곳에 있게 해 주옵소서. 그곳에서 다시 “주를 사랑해, 주를 사랑해, 날 먼저 사랑하셨으니”를 부르게 해 주옵소서. 아버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오니 이러한 복을 허락해 주옵소서. 이제 주님, 기도 줄에 설 사람들을 부르려 합니다. 이제 이 계곡을 떠나면서 주님께 한 번 더 구합니다. 오늘 저녁 주 예수님의 임재가 너무도 분명하여, 그분께서 이 땅에 계실 때 하셨던 바로 그 일들을 행하시도록 허락해 주옵소서. 모든 마음을 그분께 맡기게 해 주옵소서. 제 마음도, 주님, 성령께 온전히 내어 드릴 수 있게 해 주옵소서. 성령께서 제 눈과 입술을 사용하셔서 환상을 보고 그것을 정확히 말하게 해 주옵소서. 사람들이 그것이 주님이시며 주님의 약속임을 알게 하옵소서. 우리는 주님을 찬양하겠습니다. 이 모든 것을 그분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사진사가 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저는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잠시 시간을 드렸습니다. 기도 줄이 시작되면 사진을 찍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천사는 빛이십니다. 제가 번쩍이는 빛을 보면 집회가 방해받습니다. 아시겠죠? 빌리와 다른 사람들이 그 점을 알려 드렸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형제님들이 집회가 시작되기 전인 지금 사진을 찍고 계신 것입니다. (자, 빌리는 어디 있습니까?) [녹음 중단.] ... 그러니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제가 바다 건너에서 주술사들과 하나님의 영에 도전하는 온갖 것들 사이에 있을 때... 여러분 가운데 많은 분이 그 메시지들을 들으셨습니다. 도전을 받을 때마다 주 하나님께서 도우러 오시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불명확한 말].
책에서 읽으신 것을 기억하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워싱턴주 시애틀의 그 정신 이상자 말입니다. 제 기억으로는... 타코마였지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하십니까? 아프리카의 주술사들이나 인도의 성자들은 어떻습니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십시오. 사람들이 돈을 주고 저를 최면에 걸리게 하려고 보낸 사람은 어떻습니까? 그는 캐나다 토론토의 집회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가 앉아서 저를 최면에 걸리게 하려 할 때, 저는 그 악한 영을 느꼈습니다. 잠시 동안 어디 있는지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찾아내고 말했습니다. “왜 마귀가 당신 마음에 그런 일을 하려는 생각을 넣었습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 사람은 마비되었고, 지금도 마비된 상태입니다. 그것이 팔 년 전의 일입니다. 사람들은 그를 집회장 밖으로 메고 나갔습니다. 우리는 교회 놀이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여기 이 작은 도시, 산타로사에서는 어땠습니까? 제가 산타로사에 갔을 때 그곳에 계셨던 분, 산타로사에서 오신 분이 여기 계십니까? 피닉스의 일을 기억하십니까? 그 사람이 “나는 머리를 숙일 필요가 없어”라고 했습니다. 산타로사에서 그의 아내는 제 발을 붙잡고 진흙 속으로 끌려갔습니다. 육 주 뒤에 그녀의 남편은 완전히 정신이 나간 채 앉아서 난폭하게 날뛰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습니다.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공무원이었습니다. 저는 그를 찾아가 하나님께 긍휼을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치유하셨습니다. 그는 아내를 끌어안고 정상으로 돌아와 집으로 갔습니다. 아시겠죠? 친구 여러분, 성령이십니다. 경건한 태도로 존중하십시오. 존중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아무것도 받을 수 없습니다.
마르다가 예수님을 맞으러 나왔을 때를 보십시오. (자, 50번부터 75번까지입니다. 저쪽 반대편으로 나오십시오.) 마르다가 예수님을 맞으러 나왔을 때, 그분을 원망할 만한 이유가 있어 보였지요? “불렀을 때 왜 오지 않으셨습니까? 제 오라버니가 죽어 가고 있었는데 오시지 않았습니다. 왜 오지 않으셨습니까?”라고 말할 수도 있었습니다. 만일 마르다가 그렇게 말했다면 그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시겠죠? 하지만 마르다는 “주여...”라고 말했습니다. 그분은 바로 주님이셨습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으리이다.” 이 말을 들어 보십시오. “그러나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 하나님께 구하시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행하시리이다.” 바로 그것입니다. 무슨 일인가 일어나야 합니다.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누구든지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이것을 네가 믿느냐?” 마르다가 말했습니다. “그러하오이다, 주여. 주님은 친히 말씀하신 바로 그분이심을 믿습니다. 주님께서 세상에 오실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습니다.” 다음 말씀은 “그를 어디에 묻었느냐?”였습니다. 아, 무슨 일인가 일어나야 합니다. 아시겠죠? 마르다는 그분의 아들을 존중함으로 하나님을 존중했습니다. 여러분이 아들을 공경하면 아들을 보내신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분의 전달자를 공경하면 메시지를 보내신 분을 공경하게 됩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저는 사역하는 내내 그것을 보아 왔습니다. 좋습니다. 이제 75번부터 100번까지입니다. L-75번부터 100번까지, 안내위원들이 줄에 세워 드리는 대로 자리를 잡으십시오.
이 집회장 어디에 계시든, 아프신 분이 얼마나 되는지 보고 싶습니다. 기도 카드가 없는 분들 말입니다. 기도 카드를 가진 분들은 모두 줄로 가고 있으니까요. 기도 카드는 없지만 예수님께서 치유해 주실 것을 믿고, 그렇게 해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은 손을 들어 주십시오. 저것을 보십시오.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저는 여러분을 버려두지 않겠습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보게 할 수만 있다면... 이제 주의 깊게 들으십시오. 여러분이 기다려 온 결정적인 순간이 지금일지도 모릅니다. 아주 주의 깊게 들으십시오.
히브리서에서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을 느끼실 수 있는 대제사장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성경 말씀임을 아시는 분은 모두 “아멘” 하십시오. 바로 지금 그분은 대제사장이시며, 유일한 대제사장이십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한 중재자는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은 지금 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어제가 아니라, 지금 느끼실 수 있습니다. 성경은 그분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고 말합니다.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조금 있으면 세상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나를 보리니, (‘너희’! 누구입니까? 믿는 사람입니다.) 내가 세상의 끝까지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 그분이 여전히 같은 대제사장이시며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고, 오늘 저녁 이 성막 안에 자기 백성 가운데 계시며 자기 백성을 사용하신다면, 그분은 이 땅에 계실 때와 같은 방식으로 행하실 것입니다. 같은 대제사장이시라면 말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그분께 닿았다면, 닿은 줄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분이 같은 방식으로 행하실 것이기 때문에, 같은 대제사장이심을 알게 될 것입니다.
친구 여러분, 보십시오. 짧은 이야기 하나가 생각납니다. 예수님의 부모는 오순절을 지키러 올라갔습니다. 이제 잘 들으십시오. 그들은 예수님이 열두 살이셨을 때 그분과 함께 경배하러 오순절에 올라갔습니다. 경배를 마치고 돌아올 때, 그들은 그저... 그분이 친척들 틈에 있으려니 하고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한참 길을 간 뒤 그분을 찾기 시작했지만 찾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 교회가 하는 일이 그것입니다. 그분이 어디 계시는지 찾으려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친척들 가운데서 그분을 찾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분은 거기에 계시지 않습니다. 때로는 교회에 가입하면 그분을 찾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서도 찾지 못할 것입니다. 어디서 그분을 찾겠습니까? 그분을 두고 떠난 곳입니다. 교회여, 여러분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의아해합니다. “예전에 계셨던 그 위대하신 예수님은, 이런 일들을 약속하셨는데 왜 행하지 않으시는가?” 무엇이 문제입니까? 그분을 두고 떠난 곳으로 돌아가십시오. 교회는 어디에 예수님을 두고 떠났습니까? 오순절에 두고 떠났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잘 들으십시오. 얼마나 많은... 여러분 모두 그것이 진리임을 아십니다. 요한복음 17장... 15장이었던 것 같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 기억하십시오. 포도나무 자체가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닙니다. 가지가 열매를 맺습니다. 가지는 어디서 생명을 얻습니까? 포도나무에서 얻습니다. 포도나무가 자라나 가지 하나를 내면, 첫 가지가 어떤 가지이든 그 같은 생명에서 나오는 두 번째 가지도 같은 종류의 가지가 됩니다. 가지 하나를 예로 들어 봅시다. 포도나무라고 하면, 포도를 맺겠지요. 다음에 나오는 것이 호박이 되고 그다음은 수박이 되지는 않습니다. 모든 포도나무... 그 포도나무에서 나오는 모든 가지는 포도 가지일 것입니다. 포도나무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온 첫 포도나무가 성령과 권능으로 충만한 오순절 교회를 낳았다면, 두 번째 가지도 같을 것이고, 세 번째 가지도 또 그런 교회일 것입니다. 그분이 내시는 가지마다 같은 종류의 가지일 것입니다. 우리는 어디선가 그분을 두고 떠났습니다. 그들이 그랬던 바로 그곳, 오순절 절기에서 말입니다. 오순절 절기입니다. 예수님은 같은 하나님, 같은 그리스도,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분은 여전히 그때와 동일하십니다. 지금도 그러하십니다. 다만 약속하신 대로 그분의 일을 이어 가시기 위해 그분의 영이 여기 안에 계십니다.
예를 들어 여기 사람들이 줄을 서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와서 “브래넘 형제님, 저는 아픕니다. 저를 치유해 주실 수 있습니까?”라고 하면 어떻겠습니까? 못합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제게 주신 이 양복을 입고 여기에 서 계신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분이 여기 서 계시는데 사람들이 와서 “주님, 저를 치유해 주시겠습니까?”라고 한다면 말입니다. 그분은 “너는 나를 믿는 사람이라고 말하느냐? 내 말씀을 읽었느냐?”라고 하실 것입니다. “예, 주님. 아, 저는 주님의 말씀을 사랑합니다. 읽습니다.” “그런데 내게 너를 치유해 달라고 하느냐? 내가 이미 한 일을 어떻게 다시 할 수 있느냐? 나는 이미 너를 치유했다. 너를 위해 죽었을 때 너를 치유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분이 죽으셨고 치유가 완성되었다면, 여러분이 할 일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뿐입니다. 그분은 여러분에게 무언가를 말씀해 주실 수도... 그때 하셨던 것과 같은 일을 하시고, 그때처럼 어떤 표적을 행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 표적이 무엇이었습니까? 사람들이 그분을 메시아로 알게 한 표적은 무엇이었습니까? 보십시오. 그분이 베드로에게 그가 누구인지, 그의 아버지 이름이 무엇인지,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 말씀하셨을 때, 베드로는 그분이 메시아이심을 알아보았습니다. 그가 가서 다른 사람을 찾았는데, 빌립이 그렇게 했습니다. 나다나엘이 예수님께 왔을 때, 예수님은 그가 누구인지, 어디 있었는지 말씀하시고, 나무 아래에 있는 그를 보았다고 하셨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이스라엘의 왕이시니이다.” 예수님은 “내가 이것을 네게 말하였으므로 네가 믿느냐? 너는 이것보다 더 큰 일들을 볼 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믿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가셨습니다. 이제 그들 앞에서도 그 일을 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가셨고, 우물에서 한 여인을 만나셨습니다. 그 여인과 잠시 대화하셨습니다. 대화를 나누시는 동안 그분은 여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인의 문제가 어디 있는지 알아내셨습니다. “가서 네 남편을 부르고 여기로 오라”라고 하셨습니다. 여인이 말했습니다.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 네게 남편이 다섯 있었고, 지금 함께 사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다.” 여인이 말했습니다. “제가 보니 선생님은 선지자이십니다. 그러나 메시아께서 오시면 이런 일들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실 줄을 우리는 압니다.”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말하고 있는 내가 그니라.” 여인은 도시로 달려가 말했습니다. “와서 내가 행한 일들을 내게 말한 사람을 보십시오. 이분이 바로 그 메시아가 아닙니까?”
그것이 어제 메시아의 표적이었다면, 또 그분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면, 같은 일을 하셔야 합니다. 성경 말씀에 맞지 않습니까? 오늘 오후에 말씀드렸듯이, 그것이 말하는 우림과 둠밈입니다. 이제... (제가 ...부터 모두 불렀습니다.) 좋습니다. 빠진 분들이 있습니다. 100번이 없습니다. 기도 카드 100번입니다. 어쩌면 듣지 못하는 분일지도... 카드를 살펴보십시오. L 기도 카드 100번이 없습니다. 좋습니다. 여기 계시면 손을 드십시오. 아니면 누군가 살펴서... 아직 나오지 않은 기도 카드가 있습니까? 기도 카드가 있는 분은 손을 들어 주십시오. 자매님이 100번입니까? 카드가 몇 번입니까? 뭐라고요? 그러면 그냥 저쪽 줄에 들어가십시오. 아시겠죠? 줄에 서십시오. 카드가 있으면 들어가십시오. 여기 계시지 않았군요. 그것은 어젯밤... 그저께 밤의 카드였습니다. 괜찮습니다. 가서 줄에 서십시오. 괜찮습니다. 들어오고 싶으시면 자리를 잡으십시오. 여기 어디든 들어오십시오. 괜찮습니다. 누군가 줄에 세워 드릴 것입니다. 기도 카드가 있으면 들어오실 수 있습니다.
더 기도 카드가 있습니까? 그게 전부군요. 좋습니다. 자, 보십시오. 저 자매님, 몇 번입니까? 저기 안내위원이 도와드리게 하십시오. 좋습니다. 이제 기도 카드는 없지만 예수님께서 낫게 해 주실 것을 믿는 분은 손을 들어 주십시오. 이 기도 줄을 시작하기 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한 분 한 분마다 멈추어 환상을 볼 수는 없습니다. 어떤 작은 여인이 그분의 옷에 손을 댔을 때, 그분은 자신에게서 효능이 나가 약해진 것을 느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일을 기억하시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그분은 누가 그 효능을 끌어갔는지 찾으려고 둘러보셨고, 그 작은 여인을 찾아내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여인이 믿었기 때문에 혈루증이 멎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저기 계신 아프신 분들, 모두 저를 바라보지 마십시오. 그분이십니다. 그분을 바라보고 믿으십시오. 아시겠죠? 그분의 옷에 손을 대고, 그분이 어제와 같은 대제사장이신지 보십시오. 이렇게 말씀드리십시오... 이제 모두 경건한 태도로 조용히 하십시오. 보십시오. 그분이 같은 대제사장이시고 제가 진실을 말했다면, 이 마지막 밤에 하나님께 이렇게 말씀드리십시오. “주님, 저는 기도 카드가 없습니다. 저 사람은 저를 모릅니다. 저는 아픕니다. 제가 주님의 옷에 손을 대게만 해 주시고, 주님께서 저 형제님을 통해 말씀하시고 돌아서서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말씀하셨을 때처럼, 곧 그 여인이 주님의 옷에 손을 댔을 때 그 여인에게 말씀하시고 그 여인의 문제를 알려 주셨듯이 말입니다. 저를 위해 그렇게 해 주시기만 하면, 저는 받아들... 제 마음에서 모든 미신이 사라질 것입니다. 주님께서 하나님이심을 믿으며, 영원토록 주님을 경배하겠습니다.” 하나님께 그런 식으로 기도하시고, 이쪽을 바라보며 그분이 무엇을 하실지 보십시오.
얼마나 큰 도전입니까. 저는 확신합니다... 여러분 모두 이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여기 계신 분 가운데 이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다면, 이리 오셔서 같은 일을 하십시오. 저는 강단에서 내려가겠습니다. 여기 와서 같은 일을 하고 싶은 분은 누구든 환영합니다. 청중이 조용하군요. 그러면 경건한 태도로 듣고, 기도하고, 믿으십시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시겠습니까? 바로 지금, 제가 아무리 설교를 많이 해도, 만약 그것이... 모두 잘못된 것입니다. 좋은 일이기는 한데, 실제로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 어떤 분이 루터교 대학에서 저를 찾아와 성령을 받기 원한다고 했습니다. 그 루터교 대학에서는 이미 사백 명이 넘게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은사에 대해서는 많이 들었습니다. 책을 쓴 어떤 분을 찾아갔더니, ‘저는 그런 은사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저 글로 썼을 뿐입니다’라고 하더군요.” 물론 글은 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은사들이 실제로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하나님께서 실제로 계신 것처럼 실제로 있습니다. 그분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아주 경건한 태도를 가지십시오. 형제님들, 한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뒤에 계신 여러분, 저는 평생 이보다 더 훌륭한 신자들을 만나 본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제게 기도가 필요합니다. 저기 계신 기도 카드가 없는 여러분도 모두 이쪽을 바라보고, 기도하기 시작하고, 믿기 시작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실지 보십시오. (괜찮습니다. 바로 거기입니다.)
이제 기도 줄에 서 계신 분 가운데 저와 초면인 분, 제가 여러분을 모른다는 것을 아시는 분은 모두 손을 들어 주십시오. 좋습니다. 청중 가운데도 저와 초면인 분, 아프신데 제가 여러분을 모르는 분은 손을 들어 주십시오. 오늘 저녁 이 집회장 제 앞에 보이는 분들 가운데 제가 아는 분은, 바로 여기 앉아 있는 좋은 친구 율리우스 스타드스클레브 형제님과 그 부인뿐입니다. 어딘가... 여기 계시군요. 바로 그분 맞은편에 계십니다. 저기 청중 가운데 제가 안다고 말할 수 있는 분은 그분들뿐입니다. 저를 아는 분은 많을지도 모르지만, 저는 그분들을 모릅니다. 이제 믿으십시오. 아주 경건한 태도를 가지십시오. 이것이 입증할 것입니다...
여기 한 여인이 서 계십니다. 제가 아는 한 평생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분입니다. 우리가 서로 초면이라고 손을 드셨지요. 그렇다면 이것은 성경, 요한복음 4장의 모습과 꼭 같습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처음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난 것은 지금이 처음입니다. 이제 성령께서 이곳에 오신다면... 제가 이 여인에게 먼저 하는 것은 성령의 기름부음이 임하는 것을 여러분이 보시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하고, 그 한 분은 지나가게 하고, 제가 그 일에서 회복할 때까지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다가 또 한 사람을 보고, 어젯밤처럼 진행하려 합니다. 제가 예전에 하던 방식보다 이 방식이 더 좋으셨습니까? 예전 방식보다 이쪽이 더 좋은 분은 손을 들어 주십시오. 전에는 한 사람이나 두 사람, 세 사람, 네 사람, 다섯 사람만 맡았습니다. 그저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계속했습니다. 그러면 그때쯤 저는 너무 약해져서 사람들이 강단에서 저를 메고 나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마 한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성령께서 드러내 주시면, 그다음에는 그 일이 청중 가운데로 나아가 곳곳에 있는 사람들을 찾아내고, 그러다가 가끔 다시 기도 줄로 돌아옵니다. 저는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저 하나의 은사입니다... 시작하기 전에 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저 제가 성령 안에서 제 자신을 편히 내어 맡기고, 그분께서 주관하시게 하는 방식입니다. 저는 그분이 무엇을 하실지, 무슨 말씀을 하실지 모릅니다. 은사입니다. 저는 무엇을... 제가 어떻게 하는지 모릅니다. 다만 그분이 제게 말씀하셨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믿습니다. 저는 지금 그분께서 바로 여기에 서 계시다고 믿습니다. 제가 제 자신을 편히 내어 맡기기만 하면, 그분이 주관하시며 움직이기 시작하실 것입니다. 그분은 아직 한 번도 저를 실망시키지 않으셨고, 지금도 실망시키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분이 말씀하신 것이 진리임을 제가 믿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저 자매님과 이야기를 나누려 합니다. (이 마이크의 음향을 맡으신 분께 말씀드립니다. 환상이 임했을 때는 제가 말을 하고 있는지조차 모를 때가 있습니다. 다른 세계에 있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러니 사람들이 듣지 못하면 소리를 높여 주십시오.) 이것이 우리의 첫 만남인데, 성령께서 제가 모른다는 것을 자매님도 아시는 어떤 일, 제가 알 길이 없는 어떤 일을 제게 드러내신다면, 이미 있었던 일이든 무엇이든,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자매님은 아실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기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초자연적인 존재가 하시는 일이어야 합니다. 제가 자매님을 알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자매님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그저 거기 서 계신 한 여인이고, 이것이 우리의 첫 만남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손을 듭니다. 저는 자매님을 전에 만난 적이 없습니다. 자매님도 우리가 서로 만난 적이 없다고 손을 드셨고, 여기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아시겠죠? 이렇게 우리가 서 있습니다. 어느 구석이 아니라, 저를 바라보는 수천 명의 사람 앞에 바로 여기 서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말씀하신 대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고, 제게 찾아와 이 메시지를 받으시고, 제게 사람들에게 전하라고 하신 이 천사가... 저는 그 목적을 위해 태어났습니다. 그렇다면 그분이 원하시면, 기적이 아니고서는 알 수 없다고 자매님도 아실 만한 일을 자매님에 관해 제게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신다면 그것을 행하신 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으시겠습니까? 믿으시는군요. 청중 가운데는 믿으실 분이 얼마나 됩니까? 그것은 그분의 약속입니다. 그분은 꼭 해야만 하셔서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일을 하시는 유일한 이유는 말씀이 성취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분이 반드시 사람들을 치유하셔야 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선지자가 그분이 그렇게 하실 것이라고 말했기에, 그 말씀이 성취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취되는 것입니다.
청중 여러분이 아직 제 목소리를 들으실 수 있다면, 제 앞에 서 있는 여인은 주위에 아주 어두운 그림자가 있습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암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얼굴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실입니다. 어둠의 그림자가 있습니다. 처음 오신 분, 이전에 여기에 와 보신 적이 없는 분은 손을 들어 주십시오. 이 집회에 한 번도 와 보신 적이 없는 분입니다. 제가 짐작한 것, 우연히 맞힌 것이라고 생각하신다면, 이 여인과 조금 더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주님은 제 마음을 아십니다. 이것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아십니다. 예, 다시 나타납니다. 여인에게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죽음을 뜻하는 어두운 그림자이며, 암입니다. 그 암은 결장에, 창자에 있습니다. 그리고 위장병도 있습니다. 그것도 사실입니다. 자매님은 이 도시에 사시는 분이 아닙니다. 이곳에서... 동쪽에 있는 프레즈노라는 도시에서 오셨습니다. 맞습니다. 성함은 덩컨 부인입니다. 사실입니다. 이제 믿으십니까? 집으로 가십시오. 믿으신 대로 그렇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암은 더 이상 자매님을 괴롭히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집에 돌아가 건강하게 지내실 수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줄을 따라 지나오는 동안 기도합시다. 저기 기도 카드가 없는 분, 기도하십시오. 기도 카드가 없는 여러분은 그냥 기도하십시오. 저기 있는 누군가, 여러분이 보시도록 말입니다. 기름부음이 여기에 있습니다. 성령께서 여기에 계십니다. 믿음을 가지십시오. 의심하지 마십시오. 바로 여기 앉아서 저를 바라보는 자그마한 여인은 위장병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낫게 하신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믿으시지요? 저기 검은색처럼 보이는 작은 숄을 두르고 바로 거기 앉아 있는 자매님 말입니다.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좋습니다. 치유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기도 카드가 없으시지요. 저는 자매님을 모르고, 만난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자매님은 거기 앉아서 대제사장께 닿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계셨고,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다. 무엇에 닿으셨습니까? 저와는 이십 피트나 떨어져 있습니다. 대제사장께 닿으신 것입니다.
부탁 하나 들어주시겠습니까? 자매님이 치유받으셨으니, 옆에 앉아 있는 여인이 마음속으로 자기 눈의 문제도 치유받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치유해 주실 것을 믿으십니까? “저 사람이 그 여인의 생각을 읽었군”이라고 하십니까? 아닙니다. 기도를 들었습니다. 어떻게 들었습니까? 성령을 통해서입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두 분 다 집으로 돌아가 건강하게 지내실 수 있습니다. 예. 바로 여기 줄 끝에 앉아 있는 자그마한 남자분은 근육에 문제가 있습니다. 맞습니다, 선생님. “주님, 저도 받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맞습니까? 맞습니까? 맞으면 자리에서 일어서십시오. 이제 치유받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낫게 하십니다. 믿으십니까? 보십시오. 저는 저분을 모릅니다. 평생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저와는 전혀 모르는 사이입니다. 그러나 저분이 닿은 것은 제가 아닙니다. 저 위에 계신 어떤 분, 곧 대제사장께 닿은 것입니다. 오늘 저녁 우리가 어디에 앉아 있는지 실감하실 수 있습니까? 우리 가운데 계신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리에 있습니다. 아멘. 이제 온 마음으로, 여러분 안의 모든 것을 다해 믿으십시오. 믿으십시오. 받으실 수 있습니다.
오십시오. 이제 믿으십니까? 모두 기도합시다. 이제 몇 분 동안은 환상을 보지 않도록 하면서 기도 줄을 진행해 보겠습니다. 좋습니다. 자매님, 이제 기도받으러 오십시오. 여러분 모두 기도하십시오. 제가 이제 이분들 모두를 위해 기도할 수 있도록, 기도 줄이 지나가는 동안 저기서 기도하겠다고 약속하실 분이 얼마나 됩니까? 주님, 예수님의 이름으로 우리 자매님을 치유해 주옵소서. 자매님, 오십시오. [녹음 공백.] 당뇨병입니다... 이쪽에 서십시오. 당뇨병이 있는 분은 모두 일어서십시오. 바로 이쪽에 서십시오. 믿으면서 오십시오. 자매님, 오십시오. 종양이 있습니다. 종양이 있는 분은 모두 일어서십시오. 자매님, 바로 이쪽으로 오십시오. 통로 끝으로 계속 내려가십시오. 믿음을 가지십시오. 이리 오십시오. 이분도 당뇨병이 있으니 바로 여기에 서십시오. 믿음을 가지십시오. 이 여인에게는 암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암이 있는 분은 모두 일어서십시오. 자매님, 이쪽에 서십시오.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자매님, 이리 오셔서 이쪽을 보십시오. 종양 수술을 앞두고 계십니다. 좋습니다. 바로 저쪽에 서십시오. 종양이 있는 분은 모두 일어서십시오. 이쪽으로 오십시오. 선생님, 여기를 보십시오. 저를 그분의 선지자로 믿으십니까? 관절염이 있습니다. 관절염이 있는 분은 모두 일어서십시오. 선생님, 바로 이쪽으로 오십시오.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이분에게는... 문제가 있는 곳은 등 쪽입니다. 신장입니다. 저쪽에 서십시오. 신장병이 있는 분은 모두 일어서십시오. 좋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실 것입니다. 이제 온 마음으로 계속 믿으십시오. 자매님, 바로 여기에 서십시오. 자매님, 이쪽으로 오십시오. 저를 하나님의 종으로 믿으십니까? 좋습니다. 여성의 병, 부인병이 있습니다. 부인병이 있는 분은 모두 일어서십시오. 이제 이쪽으로 계속 내려가십시오. 오십시오. 자, 자매님, 이쪽을 보십시오. 관절염이 있습니다. 바로 이쪽으로 내려와 서십시오. 좋습니다. 강단에서 내려가 줄을 서십시오. 믿음을 가지십시오.
자매님, 이리 오십시오. 그 작은 스페인식 베일이 참 좋습니다. 신경성 질환으로 고통받고 계십니다. 이 청중의 십 분의 구가 그런 병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경성 질환이 있는 분은 모두 일어서십시오. 바로 이 아래에 서십시오. 이리 내려와 믿으십시오. 선생님, 이리 오십시오. 영어를 하십니까? 좋습니다. 저를 보십시오. 저를 하나님의 선지자로 믿으십니까? 하나님께서 무슨 문제가 있는지 제게 드러내 주시면, 그것을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천식이 있습니다. 이쪽에 서십시오. 천식이 있는 분은 모두 일어서십시오. 여기 이 여인은... 여기를 보십시오. 관절염입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 몸이 뻣뻣합니다.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쪽에 서십시오. 여기 이 남자분은... 선생님, 이리 오십시오. 위장병입니다. 바로 이 뒤쪽에 서십시오. 위장병이 있는 분은 모두 일어서십시오. 믿음을 가지십시오. 위장병입니다. 바로 이 뒤쪽에 서서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아, 여러분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기 있는 사람들을 치유하실 수 있다면, 여기서와 똑같이 저기 있는 여러분도 치유하실 수 있습니다. 자매님, 이쪽을 보십시오. 여기, 이리 오시는 이 여인 말입니다. 이쪽을 보십시오. 심장병이 있습니다. 좋습니다. 심장병이 있는 분은 모두 일어서십시오. 자매님, 바로 이리 내려오십시오. 좋습니다. 자매님, 이쪽을 보십시오. 관절염입니다. 계속 이 뒤쪽으로 들어오십시오. 여러분 모두 지금까지 보지 못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지켜보십시오. 자매님, 바로 이 뒤쪽에 서십시오.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바로 이리 오십시오. 이분은... 종양 수술을 앞두고 계십니다. 이제 바로 이 뒤쪽에 서십시오.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다음 자매님, 이쪽을 보십시오. 관절염입니다. 이제 곧장 이리 내려오십시오.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천식입니다. 바로 이 아래에 서십시오.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믿으십니까? 하나님께서 선생님에 관한 어떤 일을 제게 말씀하실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사실 선생님은 자신을 위해 여기 오신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 때문에 오셨습니다. 아버지입니다. 아버지는 여기 계시지 않습니다. 이 나라에 살고 계십니다. 숲이 있는 지역에 계십니다. 펜실베이니아에 계십니다. 맞습니다.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아버지의 위에 종양이 있는데, 선생님은 그것이 암일까 두려워하고 계십니다. 맞으면 손을 흔드시겠습니까? 아멘. 그렇습니다. 바로 이 뒤에 서십시오. 자, 이제 되었습니다. 기도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아파서 서 계신 여러분은 각자 서 있는 다른 사람에게 손을 얹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쫓아내실 수 있다면, 그 마귀의 정체가 드러난 것입니다. 아시겠죠?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십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본 것 가운데 가장 놀라운 치유의 기도 줄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 말을 잘 들으십시오. 바로 이것입니다. 서로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오 주 하나님, 하늘과 땅의 창조자이시며 영존하는 생명의 창시자요 모든 좋은 선물을 주시는 분이여, 이 사람들에게 주님의 복과 주님의 찬양과, 그 모든 것을 내려 주옵소서. 주 하나님, 허락해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이 임하여 모든 사람을 치유하게 해 주옵소서. 사탄아, 여기서 나와라. 너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패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