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형제님들, 정말 감사합니다. 이곳에 오게 되어 참으로 기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렇게 환영받는다는 느낌이 드니 마음이 참 좋습니다. 환영받고 내 집에 온 듯 편안하게 느껴지는 곳에 오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은 없습니다. 조금 전 저기에 서 있을 때, 사람들의 친절함을, 사람들 안에 있는 하나님의 친절함을 생각했습니다. 불과 몇 분 전에 그 메시지가 전해지는 것을 들었고, 성령께서 그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라고 응답하시는 것도 들었습니다. 또 이 형제님들이 일어나 그런 말씀을 해 주시는 것을 들으니 마음이 참 좋습니다.
그러다가 오늘 광고물 몇 장을 보게 되었습니다. 어젯밤 조셉 형제님이 말씀하셨듯이, 이번에는 제가 갑작스럽게 들르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때 해외에 나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지금 제 교회에서 세금과 관련된 조사를 받고 있어서 허가가 나지 않았습니다. 교회의 법인 설립과 정부 등록 번호 같은 것들을 갖추어야 하는 문제였습니다. 우리 태버내클은 초교파 교회라서 그런 것을 몰랐습니다. 이렇게 번거로운 절차를 다 거쳐야 하는 줄 몰랐습니다. 그냥 교회가 있고 집사들과 목사들 등이 있으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정부의 규정이 바뀝니다. 아마 49년에 바뀌었을 겁니다. 그때 저는 현장에 나가 설교하고 있었습니다. 규정이 바뀐 것이나 의회에서 한 일을 몰랐습니다.
어젯밤에도 말씀드렸듯이, 우리는 스푸트니크니 달이니 하는 이야기를 합니다만, 다른 곳에 가기는커녕 여기 있는 것조차 제대로 돌보지 못합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습니다. 돌아가는 형편을 보면, 국가로서나 국민으로서나 그 일을 썩 잘하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런데 광고물을 보다가 또 한 가지 참 좋은 일을 알게 되었습니다. 조금 전 조셉 형제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조셉 형제님, 제가 어젯저녁에 큰 실수를 했습니다. 대집회 기간에 적어도 한 번은 치유 예배를 드리지 않고 집회를 마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금요일 밤으로 정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광고물을 집어 보니, 저의 너그럽고 귀한 형제이자 친구인 그랜트 형제님이 그날 밤 성령을 구하는 예배를 인도하시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아, 저는 그 시간을 빼앗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조셉 형제님의 말로는, 그랜트 형제님이 먼저 그렇게 하자고 제안하시고, 병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밤으로 기꺼이 그 시간을 내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랜트 형제님이 여기 계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 뵙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 고결한 마음으로 그렇게 너그럽게 시간을 내주신 우리 형제님에게 주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금요일 밤 대신 목요일 밤으로 바꾸어도 똑같이 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니 예정대로 진행합시다. 저는 혼이 구원받는 것이 어떤 치유가 일어나는 것보다도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혼이 가장 중요합니다. 여러분의 질병이 낫고 몸의 고통이 치유될 수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저는 그것을 압니다. 하지만 혼이 치유되면 그것은 영원합니다. 몸이 치유되었을 때는 다시 병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혼이 가장 중요합니다.
영생이 얼마나 귀한지 값을 매겨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것을 얻기 위해 무엇을 내놓으시겠습니까? 제가 열아홉 살, 스무 살 청년으로 되돌아가 온 세상을 소유하고 병들거나 늙지 않고 오백 년을 살 수 있다고 합시다. 아니면 앞으로 한... 아니, 십 년을 더 살면서 온갖 고생을 하고 먹을 것을 구걸하며 박해를 받다가 마지막에는 순교하지만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합시다. 저는 후자를 택하겠습니다. 오백 년이 지나면 모든 것이 끝나 버릴 것입니다. 하지만 영생은 결코 끝나지 않습니다. 저는 그리스도 앞에서 영원히 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보화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우리는 참으로 알지 못합니다.
라스무슨 형제님, 오늘 밤 다시 뵈니 정말 반갑습니다. 우리가 함께 나누었던 그 많은 교제, 또 여러 사역자들과 나누었던 교제가 생각납니다. 곧 조찬 모임이 있을 것 같은데, 그때 서로 악수도 나누고, 해마다 끊임없이 자기들의 교제 모임에 와 달라고 권하고 청해 주시는 이 훌륭한 형제님들 모두와 교제할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 마음이 참 좋습니다.
제 아내도 어젯밤 환영해 주신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 인사를 전해 달라고 했습니다. 아내는 어젯밤에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조셉이라는 어린 아들이 있습니다. 조셉이 태어나기 몇 해 전에 제가 그 아이가 올 것이라고 말한 것을 기억하시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육 년 전에 주님께서 그 아이가 올 것을 제게 보여 주셨습니다. 그 아이는 아주 사내아이답습니다. 아내는 몸집이 작은 사람이고요.
누군가가... 얼마 전 여기에서 말씀을 전할 때 스페인어를 쓰는 분들을 위한 집회가 있었습니다. 제가 “이것은 국제적인 모임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일랜드계이고, 아내는 독일계이며, 우리 아기는 인디언인데, 저는 스페인어를 쓰는 분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스페인어를 쓰는 한 어린 소녀가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아기가 인디언이라기에는 피부가 좀 하얗지 않나요?” 제가 말했습니다. “하는 짓만 인디언이란다.” 정말 사내아이답습니다.
시간이 좀 늦었으니 너무 오래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 이제 머리를 숙여 주님께 말씀드릴 때 주님께서 우리를 축복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극히 은혜로우신 아버지, 우리 마음의 느낌을 표현할 말을 도무지 찾을 수 없습니다. 얼마 전 집회에서 한 분이 말했듯이, 그분은 서로 다른 일곱 가지 언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주님께 가까이 갔을 때 자기의 느낌을 표현할 말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 느낌을 주님께 표현할 새 언어를 그에게 주셨습니다. 주님, 저희도 바로 그런 심정입니다.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또 지금까지 저희에게 어떤 분이 되어 주셨는지 감사드릴 말을 아무리 생각해도 만들 수가 없습니다. 계속 저희와 함께해 달라고 주님께 나아가 간구하기에는 저희의 경외심도, 저희가 할 수 있는 깊은 생각도 충분하지 못합니다. 오, 주님, 저희에게는 주님이 필요합니다. 찬송가 작가가 말했듯이, “주님이 필요합니다. 오, 주님이 필요합니다. 매시간 주님이 필요합니다.” 주님, 저희는 그런 심정입니다. 그러니 주님께서 말씀하시고 주님의 복을 나타내시는 이 위대한 날에 저희가 앉아 있는 지금, 저희에게 가까이 와 주십시오. 오늘 밤 저희는 다시 말씀을 들으러 왔습니다. 주님의 종이 전하는 이 말을 사용하셔서 주님의 백성들의 마음에 말씀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밤 이곳을 떠날 때는 저희 마음이 주님의 사랑으로 가득 차서, 평생 어느 때보다도 더욱 주님을 섬기겠다는 결심을 품고 이곳을 떠나게 해 주십시오.
오늘 밤 저희 가운데 찾아온 나그네가 있어, 주님의 영으로 받는 침례 가운데 주님을 알지 못하거나 믿음의 고백으로도 아직 주님을 알지 못한다면, 이 시간이 그가 하나님께 영원한 “예”를 드리고 자기의 모든 것을 내어 맡기는 시간이 되게 해 주십시오. 이미 그렇게 했으나 믿은 뒤 아직 성령을 받지 못했다면, 오늘 밤 그의 삶에 하나님의 선물을 받게 해 주십시오. 주님, 저희 가운데 병든 이들이 있다면, 오늘 밤 새롭게 얻은 믿음과 건강으로 기뻐하며 하나님께 감사드리면서 이곳을 떠나게 해 주십시오. 주님, 저희는 주님을 의지합니다. 주님께서 저희를 좋은 것들로 채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이기 때문이요.” 이제 저희의 필요에 따라 저희 마음에 말씀해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아멘.
오늘 밤 제가 택한 주제는 “나의 길을 생각했을 때”입니다. 성경을 좀... 아니, 시편 119편 59절에 있는 성경 한 구절을 읽고 싶습니다. 내가 나의 길들을 생각하고 주의 증언들을 향해 내 발을 돌렸사오며 다윗은 이 시편을 쓸 때 어려움에 처해 있었습니다. 사울이 그를 죽이겠다고 위협하던 때였다고 합니다. 그의 집은 감시를 받고 있었습니다. 사울의 사람들이 숨어서 다윗이 나오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가 그가 나오면 죽이려 했습니다. 오늘 밤 저는 다윗이 손을 비틀어 쥐며 방 안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대개 사람은 어려움에 빠져야 하나님께 돌아섭니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 혹은 하나님의 임재와 복에서 떠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려면 그런 일들이 있어야 한다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십니다. 생각에 잠긴 그의 모습이 보이는 듯합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하나님의 선하심이 터져 나오자 그는 노래하기 시작합니다. “내가 나의 길들을 생각했을 때 주의 증언들을 향해 내 발을 돌렸습니다.”
몇 달 전, 저희가 사는 인디애나주 제퍼슨빌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한 어머니의 부탁을 받았습니다. 저와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법원 판사에게 가서 자기 아들을 위해 중재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아들이 자동차를 훔쳐 교도소에 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판사에게 전화를 걸어 “내일 아침 재판이 시작되기 조금 전에 잠시 개인적으로 말씀을 나눌 수 있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는 “그러지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의 집무실로 가서 문을 두드렸고, 안에서 문을 열어 주었습니다. 판사는 안에 있던 남자에게 잠시 나가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 손을 힘차고 따뜻하게 잡으며 “브래넘 형제님, 오늘 아침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판사님, 한 가지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판사님도 언젠가는 의로우신 재판관 앞에 서시리라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또 판사님께서 아시는 한 최선을 다해 정직하게 판결하셔야 한다는 것도 압니다. 그런데 잠시 후 재판하실 그 소년의 어머니가 어젯밤 제게 전화를 해서, 아들이 자기 어깨에 기대어 흐느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어머니, 하나님께서 저를 풀려나게만 해 주시면 평생 하나님을 섬기겠어요.’” 판사는 저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빌리, 그거 아십니까? 제가 교도소로 보낸 사람 중에 떠나기 전에 설교자가 되고 싶어 하지 않은 사람이 아직 하나도 없습니다.” 아시겠죠? 우리는 어려움에 빠져야 하나님을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꼭 그렇게 되어야 한다니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실상이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저버리고 우상들을 따라가며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을 하다가 어려움에 빠졌을 때, 그제야 하나님께 돌아와 부르짖었습니다. 양과 짐승들을 희생물로 드리며 밤낮으로 긍휼을 구해 부르짖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게 있었던 그 이상한 일이 오늘날 교회에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하러 오셔서 모든 일이 끝나고 나면, 그들은 그 일을 모두 잊어버립니다.
하나님께서 그토록 긍휼히 여기셔서 사람의 죄를 용서하시고 영생을 주셨다면, 그 사람은 평생 하나님 앞에서 경외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결코 하나님의 증언들에서 발을 돌리지 않을 만큼 말입니다.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게 걸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저 그런 식입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합니다. 우리는 모두 어려움에 빠지기 전에 하나님을 구해야 마땅합니다. 어려움에 빠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하나님을 구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지금 그분을 찾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분은 고난 중에 그 즉시 만날 도움이시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아마 저 뒤에 있는 제 아내는 저보다 더 잘 기억할 것입니다. 신혼여행 때 저는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해야 했습니다. 신혼여행을 갔을 때 돈이 조금밖에 없었기 때문에, 아내를 데리고 뉴욕으로 올라가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간 김에 사냥을 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아내를 비스듬한 지붕을 댄 작은 임시 오두막에 남겨 두었습니다. 저는 제가 인디언 못지않게 숲을 잘 아니까 숲에서 길을 잃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내에게 정해진 시간에 돌아오겠다고 말하고 길을 나섰습니다. 아내는 도시에서 자라 평생 산에 가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불에 감자를 좀 구워 놓아요. 구운 감자에 소금과 후추를 뿌리고 작은 버터 조각을 얹어 먹읍시다.” 저는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될 거요. 두 시에 돌아오겠소”라고 했습니다.
그때 겨우 다섯 살쯤 된 어린 빌리의 머리에 손을 얹어 주고는 숲속으로 내려갔습니다. 거대한 나무들이 우거진 숲을 이리저리 걸으며 곰의 흔적을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얼마 후 능선 너머에서 무언가를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또 다른 능선을 넘고, 다시 다른 능선을 넘어 ‘자이언츠’라고 불리는 골짜기까지 내려갔습니다. 애디론댁 산맥에 있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사슴 한 마리를 쏘았습니다. 아주 커다란 사슴이었습니다. 저는 “곰보다 낫군. 이제 돌아가야겠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보니 폭풍 구름이 낮게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저는 “자, 내가 바로 이쪽으로 내려왔지”라고 했습니다. 숲에 가 본 사람은 누구나 압니다. 폭풍 구름이 몰려오면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합니다. 안개가 끼어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계속 위쪽으로 올라갔습니다. 빠져나갈 곳을 찾으려고 너무 멀리 걷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니, 사슴을 쏘았던 자리로 되돌아와 있었습니다. 연달아 세 번이나 그랬습니다. 인디언들은 그것을 ‘죽음의 걸음’이라고 부릅니다. 원을 그리며 걷는 것입니다. 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같은 자리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벌써 폭풍이 몰아치고 눈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제 어떻게 하지? 평생 숲에 와 본 적이 없는 아내와 아이가 이 숲속에 있는데, 오늘 밤 둘 다 죽고 말겠구나.” 보통 때 같았으면 동굴을 찾아 들어가 하루나 이틀,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나와서 위치를 확인하고 갔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내와 아이는 스스로 몸을 지킬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저는 말했습니다. “잠깐만. 네가 지금 제정신을 잃고 있는 것뿐이야.” 그렇게 되면 몸에 열이 나고, 그러면 길을 잃게 됩니다. 그러고 나면 결코 나갈 길을 찾지 못합니다. 대개는 어디로 곤두박질쳐 죽게 됩니다. 저는 제가 원을 그리며 걷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어떤 원을 그리고 있는 것이었습니까? 사슴을 쏘러 갈 때 바람이 제 얼굴로 불어왔는데, 돌아오는 길에도 바람이 다시 제 얼굴로 불어왔습니다. 바람이 나무 꼭대기에서 빙빙 돌고 있어서 대략적인 방향조차 알 수 없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좋아, 다시 한 방향으로 곧장 가자.” 그리고 말했습니다. “방향을 바꾸지 않을 거야. 똑바로 갈 거야. 내 방향이 옳다는 걸 알아. 나는 숲을 아주 잘 아는 사람이니 숲에서 길을 잃을 리가 없어.” 그렇게 스스로를 다그치며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머리로 하는 판단이었습니다. “나는 아주 뛰어난 사냥꾼이니까 길을 잃을 수 없어.” 그러나 걸어가면서 제가 길을 잃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도 때로 그렇습니다. 교회에 가입했으니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우리에게 길을 잃었다고 말해 주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죽음이 닥칠 때까지 기다려 보십시오. 그때 어떤 생각이 드는지 보십시오. 지금 확실히 해 두는 편이 낫습니다. 그렇게 진심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제게 말씀하시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주는 고난 중에 그 즉시 만날 도움이시라.” 저는 “이제 내가 제정신을 잃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제가 완전히 길을 잃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모자 위에 무릎을 꿇고 소총을 나무 옆에 세워 둔 뒤 말했습니다. “주 하나님, 제가 길을 잃었습니다. 주님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일어나서 “자, 다시 똑바로 가자”라고 했습니다. 두세 걸음을 옮겼을 때 어떤 손이 제 어깨 위에 놓였습니다. 무엇인지 보려고 돌아섰는데, 마침 구름이 걷히면서 허리케인산 꼭대기의 탑이 보였습니다. 저는 캐나다를 향해 곧장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저를 돌려 그 탑을 향하게 하셨습니다. 저는 방향을 정확히 그 탑 쪽으로 잡고 섰습니다. 울면서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분께서 제 발을 다시 올바른 길로 돌려 주셨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제게 참으로 위대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길을 잃었을 때 그분께서 제 얼굴을 갈보리로 돌려 주셨던 그날의 순간에는 반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 순간을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제정신일 때 주님께 나아갑시다.
얼마 전 제단으로 나오라는 초청을 하고 있는데 젊은 흑인 청년 한 사람이 집회 안으로 급히 들어왔습니다. 밖에서 들어온 것입니다. 그는 앞으로 와서 말했습니다. “오늘 밤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습니다.” “그럼요. 그런 일이라면 언제나 반갑지요.” 그는 말했습니다. “제가 그리스도인이 되려는 이유는, 제가 떠돌이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북쪽 숲 지대를 이리저리 떠돌다가 돈이 다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연세 많은 흑인 아주머니가 요리를 하는 벌목장에 일자리를 얻었습니다. 그분의 일을 거들고 설거지 같은 일을 해서 다시 길을 떠날 돈을 마련하려고 했습니다. 저희는 뒤쪽의 작은 방에서 잤는데, 커다란 천막 천 한 장으로 그분의 공간과 제 공간을 나누었습니다. 어느 날 밤 머리까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다가 창밖에서 큰 소리로 말하는 소리에 잠이 깼습니다. 이불 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더니 한 사람이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짐, 최대한 빨리 오두막으로 돌아가세. 저 토네이도가 바로 이쪽으로 오고 있으니, 몇 분 안에 우리가 통째로 휩쓸려 영원 속으로 들어가 버릴지도 몰라.’”
그가 말했습니다. “창가로 뛰어가 밖을 보니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길게 깔때기 모양으로 뻗은 구름이 보였고, 천둥과 번개가 끊임없이 몰아쳤습니다. 번개가 칠 때마다 나무들이 뿌리째 뽑히는 것이 보였고, 뱀의 꼬리처럼 길게 뻗은 그 거대한 것이 우리 오두막을 향해 곧장 오고 있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천막 천이 스치는 소리가 나더니 그 연세 많은 아주머니가 말했습니다. ‘얘야, 내 쪽으로 오너라. 여기 등불을 켜 놓았다.’ 그래서 그쪽으로 갔더니 그분이 ‘너는 그리스도인이니?’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아니요, 저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라고 했습니다. ‘기도해 본 적은 있니?’ ‘아니요, 한 번도 기도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기도하는 게 좋겠다. 이런 회오리바람은 모든 것을 땅바닥에 쓰러뜨려 버린단다.’”
그가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등불을 올려놓은 작은 상자 곁에서 그 아주머니 옆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무서워서 기도할 수가 없었습니다. 생각을 제대로 가다듬을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하려고 할 때마다 나무가 뿌리째 뽑혀 오두막을 들이받고 창문들이 터져 나갔습니다. 너무 무서워서 기도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 침착한 노성도를 앉아서 바라보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분은 세상에 아무 걱정도 없는 사람처럼, 자기가 잘 아는 어떤 분에게 계속 말씀을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주님, 저는 너무 무서워서 기도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살려만 주시면 이 일이 지나간 뒤에는 기도하겠습니다.’”
아시겠죠? 때로는 어려움이 닥쳐야 우리가 깨닫고, 우리의 소망을 하나님께 돌리며 우리 자신을 그분께 내어 맡깁니다. 자기의 길들을 생각하고 그것을 확실히 해 두려고 했던 사람이 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의 길들만 아니라 자녀들의 길들도 확실히 해 두려고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해 마련하신 유일한 길로 나아갔습니다. 번제물을 드리며 피 아래로 나아간 것입니다. 여러분 중 많은 분이 분명히... 욥의 이야기를 읽으셨을 것입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내 자녀들이 나가서 잔치를 벌이고 있구나. 혹시 죄를 지었을지도 모르니 그들을 위해 제물을 드리겠다.” 그는 정상적이고 온전할 때 확실히 해 두기를 원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오늘 밤 이 아름다운 우리나라의 어머니들과 아버지들이 밖에서 잔치를 벌이며 술을 마시고 돌아다니는 대신,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기도로 자녀들을 하나님께 데려오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쓴다면, 청소년의 비행이 더 줄어들 것입니다.
욥은 피의 길로, 피 흘림의 길로 나아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과 교제하신 유일한 근거는 흘린 피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과 교제하시는 다른 길은 없습니다. 오직 흘린 피를 통해서만 하십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은 하나의 경배 장소로 와야 했습니다. 그곳은 흘린 피 아래였습니다. 그리고 어려움이 욥을 덮쳤을 때 그는 이렇게 외칠 수 있었습니다. “내 구속자께서 살아 계시며 마지막 날들에 그분께서 땅 위에 서실 것을 내가 아노라. 피부를 갉아먹는 벌레들이 이 몸을 멸한 뒤에도 내가 내 육체 안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또 그는 “그분께서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분을 신뢰하리라”라고 외칠 수 있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어려움에 처했을 때 어느 길로 돌아서야 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신경증적인 시대에 우리 중 어떤 이들은 다른 길로 갑니다. 수많은 사람이 정신과 의사에게 갑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정신과 의사에게 갑니다. 그리고 그 정신과 의사도 정신과 의사에게 가야 합니다. 우리의 길을 하나님께로 돌립시다. 그분은 우리의 치유자이십니다! 우리 마음이 우리를 정죄하지 아니하면,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이 확신이 있습니다. 욥은 진실한 마음으로 “내 구속자께서 살아 계신 것을 내가 아노라”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길들을 생각하고 그분께로 돌아섰습니다.
다윗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헷 족속 우리야의 아내인 아름다운 밧세바를 취했고, 그녀가 가진 아이의 아버지가 될 참이었으며, 용감한 그녀의 남편을 전쟁에서 죽게 했습니다. 그러나 선지자 나단이 찾아와 그의 죄들을 드러내자, 다윗은 자기의 길들을 생각하고 굵은 베를 입고 재 가운데서 회개하며 돌아섰습니다. 그렇게 돌아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을 들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증언을 향해 발을 돌리는 남자나 여자의 말을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들으실 것입니다. 다윗은 죽어 마땅했고, 자기 자신에게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그러나 나단은 “왕이 결코 죽지 아니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알고 있으며 자기가 잘못했다는 것도 알고 있음을 나단은 알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자기 형제의 아내를 더럽혔습니다.
오늘 밤 저는 생각해 봅니다. 이런 말은 하고 싶지 않지만, 어쩌면 오늘 밤 이곳에 다윗처럼 죄를 지은 또 다른 다윗이 앉아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이 밤에 불을 끄면, 여러분 때문에 사랑하는 아내가 더럽혀지거나 가정이 무너진 그 형제의 얼굴이 방 벽에 어른거리는 것입니다. 혹은 어떤 여자는 남의 남편과 달아나서 자기가 무너뜨린 그 여자의 가정을 보는 것입니다. 그 일로 여러분은 회개하고 굵은 베를 입으며 죄를 자백해야 합니다. 오늘 밤 교회에 필요한 것은 자백하고 잘못을 바로잡아 주 하나님의 증언들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긍휼과 용서가 있습니다. 매시간 죽음과 마주하며 걷고 있음을 알면서 계속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런 일이 끊임없이 마음을 괴롭힐 것 같습니다. 왜 우리는 이기심과 탐욕과 불경건 가운데 계속 살아가며 세상 것들에 눈을 두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증언으로 돌아갈 때입니다. “내가 나의 길을 생각했을 때 주의 증언을 향해 내 발을 돌렸습니다.”
선지자 야곱은 장자권 때문에 앞을 못 보는 자기 아버지에게 거짓말을 하여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어느 날 그의 마음에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간절한 열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그는 그 일이 다 덮였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고향 가까이 이르기 시작했을 때 에서가 자기를 만나러 나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제야 그는 자기가 속이며 걸어온 길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강 저편에서 밤새도록 기도했습니다. 자기가 형을 어떻게 속였는지 생각하자, 그 일은 그를 밤새도록 기도하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바로 그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십니다.
예전에 교회에서 철야 기도회를 하자고 부르던 때가 생각납니다. 설교가 선포되면 교회 안에 눈물이 없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모두 하나님 앞에서 울며 부르짖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너무 느슨해져서, 사람들이 자기 마음대로 살면서도 여전히 자기가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본향에 가까이 이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우리의 길들을 생각하고 그분의 증언들을 향해 발을 돌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위대한 선지자 모세는 늙은 양치기가 되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산 뒤편에서 양들이 만들어 놓은 작은 길을 따라 걷고 있었습니다. 아마 그에게 아주 익숙한 길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날 아침은 다른 아침들과 조금 달랐습니다. 무언가가 그의 주위에 있는 것 같았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예수님께서는 한 번은 “만일 이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를 지르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천사들이 그에게 설교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갑자기 그는 자기의 길들을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자기가 어떻게 인생에서 실패했으며, 자기 백성이 속박 가운데 있는 동안 자기는 안전한 곳을 찾으려 했는지를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여기 있는 모든 설교자의 마음에 이것을 새겨 주셔서 그 짐을 지게 해 주십시오. 세상이 죄로 뒤덮이고 교인들이 죄 가운데 살고 있는데,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편히 쉴 수 있겠습니까? 신조들과 교단들 때문에 교회가 갈기갈기 찢어지고, 형제간의 교제가 갈라지며, 사람들이 세속적으로 변해 가는데 어떻게 우리가 잠잠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거룩함을 요구하시며,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할 텐데 말입니다.
모세는 자기의 길들을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자기가 받은 교육과 훈련을 의지해 나섰던 것을 생각했습니다. 그는 자기 삶에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자기 방식대로 그것을 이루려고 했습니다. 우리 설교자들 중 많은 이가 그런 문제에 빠집니다. 삶에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는데, 나가서 기적의 시대는 지나갔고 성령 침례 같은 것은 없다고 가르치는 교육을 받습니다. “그것은 지나간 시대의 일이었다”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길들을 생각하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 말씀을 기록하신 바로 그 하나님께서 지금도 살아 계시며, 그 말씀에 대해 여러분에게 책임을 물으십니다.
그것은 잘못입니다. 하나님은 무한하시므로 그분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완전해야 합니다. 그분은 변하실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꿀 수 없습니다. 우리의 생각을 그분의 생각에 맞게 바꾸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생각을 여러분 안에 품으십시오. 그러면 그분께서 생각하시는 것처럼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가 그런 일들을 생각하기 시작하자, 마음이 몹시 괴로워지는 모습이 보이는 듯합니다. 자신의 과거와 마주하고도 마음이 괴롭지 않을 사람은 없습니다. 지금 성령께서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을 각자의 과거로 데려가 그것을 돌아보게 하시고, 그다음 그분의 증언으로 돌아서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그가 생각하기 시작할 때, 긴 흰 수염을 늘어뜨린 그 노인의 모습이 보이는 듯합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내가 인생을 살아오다 보니 여든 살이 되었구나. 젊었을 때 이것을 생각하고 옳은 일을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이제는 너무 늦었어.” 그러면서 수정처럼 맑은 커다란 눈물방울이 흰 수염을 타고 흘러내립니다. 바로 그 무렵, 그가 자기의 길을 생각하고 있을 때 산비탈에서 탁탁 소리가 났습니다. 자기의 길들을 생각하던 그는 말했습니다. “옆으로 돌아서 하나님께서 하신 이 일이 무엇인지 보리라.” 저는 하나님께서 오늘 밤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는 가까운 곳에 그 불타는 떨기나무를 가져다주시리라 믿습니다. 우리가 자기의 길들을 생각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모세가 양들과 들짐승들이 다니는 길에서 발을 돌려, 하나님께서 그를 홍해와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신 그 길로 향했을 때, 그 일이 모세를 변화시켰습니다. 자기의 길들을 생각한 것입니다. 그분의 길들을 생각하는 것은 우리에게 유익합니다.
수탉이 세 번 운 뒤 베드로는 고개를 들어 주 예수님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길들을, 자기가 우리 주님께 한 일을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언과 주님의 말씀이 그의 눈앞에 떠올랐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말씀하셨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말씀하신 바로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어떻게 대했는지, 점잖은 사람들 앞에서 어떻게 그분을 부인했는지, 어떻게 세상 사람의 하나가 되어 그들처럼 행동하려 했는지, 그런 자기의 길들을 생각하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자기의 길들을 생각하자, 그는 어둠 속으로 나가 비통하게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지금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에 수탉이 우는 때라고 믿습니다. 홀로 하나님과 함께하며 비통한 눈물을 흘리고 “하나님, 저를 긍휼히 여겨 주십시오”라고 말할 때입니다. 오늘 밤 여기 있는 남자들과 여자들, 소년들과 소녀들 가운데도 바로 그것이 필요한 사람들이 틀림없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그것이 필요합니다. 홀로 하나님과 함께하며 우리가 걸어가는 길들을 생각하고, 그분의 증언을 향해 발을 돌려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주 예수님을 배반한 대가로 돈을 받으려고 대제사장 곁에 서 있던 사람은 유다였습니다. 저는 결코 그의 처지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 밤 시카고에는 가룟 유다보다 죄가 더 큰 사람들이 있습니다. 유다는 뇌물을 받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원칙들을 팔아넘기고 봉급과 캐딜락 자동차와 큰 집들을 얻었습니다. 그들은 성령 침례를 부끄러워합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것을 부끄러워합니다. 너무 점잖은 체합니다. 그래서 교회에 가입하는 것입니다. 새로 태어나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그렇게 합니다.
여러 부류의 사람이 섞여 있는 자리에서 이 말씀을 드립니다만, 여러분의 형제로서 하는 제 말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기가 태어날 때는, 바닥에서 태어나든 짚을 채운 요 위에서 태어나든 잘 꾸며 놓은 병실에서 태어나든, 어느 경우에나 지저분해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 일이 생명을 가져옵니다! 새로 태어나는 것도 그렇습니다. 지저분해지지만 생명을 가져옵니다! 영생을 가져옵니다! 아멘. 생명을 가져옵니다. 생명, 저는 그것이 어떤 수준에서 이루어지든 상관없습니다. 저는 그 생명을 얻기 원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영원히 사는 이유입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피하려고 교회에 가입합니다. 유다가 그랬듯이 자기들의 장자권을 팔아넘깁니다.
그는 은전이 자기 손에 떨어지며 짤랑거리는 소리를 듣고 “무죄한 피를 배반하여 넘겼다”라고 외쳤습니다. 저는 인생의 끝에 이르렀을 때 저와 주님 사이에 그런 것이 가로막고 있기를 원치 않습니다. 여러분도 그러지 않기를 바랍니다. “내가 무죄한 피를 배반하여 넘겼다!” 그리고 그는 지름길을 택했습니다. 밧줄을 가지고 나가 목을 매어 죽었습니다. 여러분이 자신의 과거를 생각하면, 그것은 여러분을 하나님께로 이끌든지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할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런 길을 택할 수 있습니다. 혹은 타락한 상태에서 담배를 피우며, 그것을 담배 연기로 날려 버리려 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더럽히고 거짓말하고 도둑질하고 속였거나, 전하려고 하는 그 복음을 부인한 뒤에, 술집에 내려가 위스키를 마시며 그 일을 잊으려 할 수도 있습니다. 화려한 것을 갖추고 다른 사람들처럼 보이며 오늘날 사람들처럼 행동하려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달라지기를 원하십니다. 다를 것을 요구하십니다. 여러분도 은 삼십 개를 받고 한 것과 똑같이 죄가 있는 것입니다. 지름길을 택할 수야 있습니다. 물론입니다. 하지만 그런 지름길이란 애초에 없었습니다. 성경 시대를 돌아보십시오. 베드로처럼 자기의 길들을 생각하고 그분께 나아온 사람들은, 베드로는 긍휼을 얻었습니다! 지름길을 택한 사람들은 하나님도 없고 소망도 없고 그리스도도 없이 저 너머 어디인가 영원 속에 있습니다. 그분께로 향하는 길을 택하십시오. 그 길은 열려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로마 군인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찌른 뒤에 물과 피가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한낮에 해가 지고 바위들과 산들이 갈라지는 것을 보았으며, 구름 한 점 없는데 천둥소리를 듣고 번개를 보았습니다. 그는 자기 가슴을 치며 “진실로 이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자기의 길들을 생각했습니다. 자기가 한 일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전해지는 말로는, 십자가 아래로 내려갔다고 합니다. 자기의 길들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증언으로 돌아선 것입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에 관한 책임에서 벗어나려고 손을 씻은 뒤, 십 년이 지나서도 여전히 자기 손에서 그리스도의 피를 지우려 하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여러분도 오늘 밤부터 십 년이 지난 뒤에도 이 메시지를 손에서 털어 버리려 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가 씻고 또 씻고 또 씻어도 그것을 지울 길은 없었습니다. 자기가 죽인 그분께 돌아서기에는 자존심이 너무 강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스위스의 한 못에 몸을 던져 죽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성금요일마다 그 푸른 물이 끓어오른다고 합니다.
오늘 밤 여러분은 자기의 길들을 생각하고 계십니까? 마음속으로 돌아가 여러분이 했던 어떤 일과 걸어온 길을 생각하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그리고 양심에 가책을 느끼신다면, 지름길을 택해 교회에 가입하거나 무슨 다른 일을 하거나, 죽도록 술을 마시거나 하지 마십시오. 제가 한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피로 가득 찬 샘이 있으니, 임마누엘의 혈관에서 흘러나온 피입니다. 죄인들이 그 흐름 아래 잠기면, 모든 죄의 얼룩을 씻습니다. 죽어 가던 그 강도는 (자기의 길을 생각하고) 기뻐했습니다. 자기 생전에 그 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악한 나도 그곳에서 내 모든 죄를 씻을 수 있습니다. 주님의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그 피의 흐름을 믿음으로 본 뒤로, 구속하시는 사랑이 내 노래의 주제가 되었고, 죽을 때까지 그러할 것입니다. 그때 더 고귀하고 감미로운 노래로, 구원하시는 주님의 권능을 노래하겠습니다. 이 서툴게 발음하며 더듬거리는 가련한 혀가 무덤 속에 잠잠히 누울 때에 말입니다. 그분께 달려가십시오. 그 샘에는 여러분을 위한 자리가 있습니다. 머리를 숙입시다. 여러분의 길을 생각하십시오.
주님, 저희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저희의 길을 생각하고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침이 오기 전에 너무 늦어 버릴지도 모릅니다. 저희 마음은 떨리고, 죽음이 저희에게 다가올 것이며, 저희는 기도할 수 없음을 알았던 그 젊은 흑인 청년처럼 될 것입니다. 하지만 저희가 온전한 정신으로 이곳에 앉아 있고, “피로 가득 찬 샘이 있으니”라는 찬송의 전주가 흐르는 지금, 저희의 길들을 생각하고 주님의 증언들로 돌아서게 해 주십시오. 저희의 발을 그 생명의 길로 인도해 주십시오. 예수님께서 빌라도의 재판정에서 갈보리까지 걸어가신 그 피 묻은 길로 인도해 주십시오. 저희가 자신을 부인하고 그분의 십자가를 지고 그분을 따르게 해 주십시오. 저희가 생각하는 동안 성령께서 저희 마음에 말씀해 주시고, 저희가 이기적인 길에서 돌아서 주님의 길로 향하게 해 주십시오.
이제 머리를 숙이고 모두 기도하는 가운데, 여러분의 길들을 생각하면서 마음이 편치 않다면 지금 나아갑시다.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이렇게 말씀드립시다. “주님, 제가 저의 길들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젊은 형제님, 하나님께서 형제님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저의 길들을 생각하며 지금 돌아섭니다. 아, 오래전에 성령을 받았지만, 그동안 제가 저지른 일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저의 길들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잘못했다는 것을 압니다. 지금 이렇게 서서 주님의 증언들을 향해 제 발을 돌립니다. 이 교회가 지금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 주님, 제가 주님의 증언들로, 주님의 말씀으로 돌아섭니다. 주님의 증언들은 이러합니다.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또 그 증언들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네 죄를 숨기면 성공하지 못할 것이나, 네 죄들을 자백하면 긍휼을 얻으리라.’”
여러분이 행한 모든 일을 용서받기 원하고, 오늘 밤부터 하나님께 헌신하는 삶을 살겠다고 약속하시는 분들은 지금 서 있는 이 두 청년과 함께 일어서십시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이곳저곳 모든 곳에 계신 여러분 모두에게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좋습니다.
저도 서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저를 살피시고 시험하시기를 원합니다. 제 안에 부정한 것이 있다면 제게 드러내 주십시오. 제가 그것을 자백하고 바로잡겠습니다. 그분께서 원하시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가서 하겠습니다. 제가 죽어 가고 있다면 바로 그렇게 부르짖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죽어 가고 있다면 여러분도 그렇게 부르짖을 것입니다. 그러니 폭풍이 오기 전에 지금 돌아서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러면 여러분의 고난의 시간에 욥과 함께 “내 구속자께서 살아 계신 것을 내가 아노라”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어서시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기도하기 전에 더 일어설 분이 계십니까? “오 주님,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자매님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할 동안 그대로 서 계십시오. 예, 저 위 발코니에서도요. 좋습니다. 믿음은 들음에 의해 옵니다. 오 주님, 제가 저의 길들을 생각했을 때 주님의 증언들을 향해 제 발을 돌렸습니다. 위험이 문 앞에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조금이라도 양심에 가책이 있다면, 지금 기도하기 위해 일어서십시오.
많은 분이 서 계시고 더 많은 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신실함입니다. “제가 저의 길들을 생각했을 때... 주님, 제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생각해 보니, 주님께 돌아섭니다.” 우리 중에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매시간 그분께 돌아서지 않아도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저는 믿습니다. 주님이 필요합니다. 오, 주님이 필요합니다. 매시간 주님이 필요합니다. 오, 저의 구원자시여, 지금 저를 축복해 주십시오. 주님께 나아갑니다. 주님, 제가 나아갑니다. 제가 서 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입니다. 제가 잘못했다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에 이렇게 서 있으며, 주님의 긍휼을 구합니다.
제가 계속 기다리는 이유는 사람들이 계속 일어서기 때문입니다. 단 일 분만 더 기다리는 것이 죽음과 생명을 가를지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지금부터 한두 시간 뒤, 어떤 청년이 혈전증이나 심장마비를 일으켜 자기가 하나님을 만나러 가고 있음을 알고, 침대에서 “그런데 오늘 밤 교회에서 내가 일어서기만 했더라면 어땠을까. 지금은 너무 괴로워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라고 소리 지를지도 모릅니다. 저의 친구여, 지금 일어서십시오. 이 샘으로 오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긍휼을 베푸실 것입니다.
이제 머리를 숙이고 기도합시다. 서 계신 여러분 각자가 자기의 말로 기도하십시오. 주님, 저희 안에 선한 것이 없음을 알고, 경외하는 마음으로 조용히 잠잠히, 겸손하게 주님께 나아갑니다. 저희 안에는 온전한 것이 전혀 없습니다. 저희는 온통 더러워져 있습니다. 죄 가운데 태어났고 불법 가운데 형성되었으며, 거짓말을 하며 이 세상에 왔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본성으로 죄인입니다. 주님, 저희에게는 주님의 은혜와 긍휼과 거룩함이 필요합니다. 저희 자신 안에는 그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희의 교회들도 신조들도 결코 저희를 가려 줄 수 없습니다. 그것들은 무화과나무 잎에 불과합니다. 처음에도 거절당했으니 마지막에도 거절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희는 주님의 증언들을 향해, 주님의 말씀을 향해 발을 돌리고 있습니다. 저희의 잘못과 죄들을 자백하며 주님의 용서를 구하고 있습니다. 주님, 저희의 더러움이 무엇이든, 그 강도가 보고 기뻐했던 저 샘이 저희의 모든 죄를 씻게 해 주십시오. 주님, 허락해 주십시오. 오늘 밤 저희가 갓 태어난 아기처럼 새롭고 깨끗하게 이 건물을 떠나게 해 주십시오. 오늘 밤 저희를 이 땅에서 불러 가시더라도, 저희는 갈 준비가 되어 있으리라고 느낍니다. 저희의 발이 주님의 증언들을 향해 돌아섰기 때문입니다. 주님, 제가 숲속에서 길을 잃었듯이 저희도 길을 잃었습니다. 그날 그 탑을 보았을 때 제 마음이 얼마나 기뻤는지요. 오늘 밤 저희 마음은 갈보리의 탑을 보고 기뻐합니다. 그곳에는 안전함이 있고, 그곳에 들어온 길 잃은 이들을 주님께서 찾으시고 본향으로 인도해 주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자백하며 서 있는 이 사랑하는 이들, 이 남자들과 여자들, 소년들과 소녀들을 축복해 주십시오. 말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이들은 그 일들을 생각해 왔습니다. 다윗이 그랬듯이, 이들도 다른 일들로 지은 죄가 우리야의 아내를 취한 다윗의 죄만큼 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의 말을 들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다윗의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 그가 심은 것을 거두게 하셨지만, 그래도 그는 여전히 주님의 종이었습니다. 그가 주님께 돌아섰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그를 용서하셨습니다.
이들은 오늘 밤 유다처럼 교회에서 돌아서지 않고 십자가로 왔습니다. 술을 마셔서 이 일을 없애려 하지 않고 기도로 없애려 합니다. 야곱처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천사가 이들을 축복하고 모든 죄와 수치를 없애 줄 때까지 부르짖을 것입니다. 주님, 저는 주님께서 지금 그렇게 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믿습니다.
우리가 머리를 숙이고 있는 동안, 일어나 서 계신 여러분, 오늘 밤 여러분의 발을 하나님께로 돌렸다고 느끼시는 분들에게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분께 손을 들어 보이십시오. 제가 그분께 “주님, 제가 발을 돌렸습니다”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백 퍼센트입니다. 여러분의 발을 하나님의 증언들을 향해 돌렸으니, 그분께서 해 주실 것입니다. 모든 죄를 없애 주시고 평안과 만족을 주실 것입니다. 세상은 그런 일을 해 줄 수 없습니다.
이제 회중은 고개를 들고 여러분 곁에 서 있는 남자들과 여자들을 보셔도 됩니다. 그분들이 앉으면 손을 잡고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하며 예수 그리스도 안의 교제로 맞아 주시기 바랍니다. 서 계시던 분들이 앉을 때 주위의 그리스도인들은 “형제님,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해 주십시오. 무엇인가 잘못된 일이 있었는데 이제 그것이 모두 사라졌다고 느끼신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긍휼을 베푸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여러분 가운데 병든 분이 계십니까? 손을 드십시오. 이제 서로 병든 분들에게 손을 얹으십시오. 어젯밤에도 말씀드렸듯이, 저는 기도해 왔습니다. 제 삶에서 이 한 가지를 원합니다. 기도할 때 제가 구하는 것을 받으리라고 믿기를 원합니다. 켄터키주 루이빌의 하나님의 성회에 속한 참 좋은 형제, 로저스 형제님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회에 계신 여러분은 사역자 명부에서, 뭐라고 부르든 그 책에서 그분을 보실 것입니다. 참 좋은 형제입니다. 사흘쯤 전에 제 서재에 와서 함께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루이빌에 부흥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말했습니다. “그러기를 바랍니다.” 그가 돌아서서 저를 보았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로저스 형제님, 얼마 전 그 동굴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한 가지는 정직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기를 바랍니다.” 저는 정말 부흥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하자면, 그렇게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어느 쪽이라고도 판단하지 않습니다. 부흥을 보고 싶지만, 일어날지 일어나지 않을지는 모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살펴보고, 우리 안에 부정한 것이 있는지 알아보기를 원합니다. 우리 마음이 우리를 정죄하지 아니하면 구하십시오. 구하는 것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치유를 구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자신의 치유를 구하시고, 곁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치유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치유하실 것입니다.
이제 기도합시다. 주님, 주님께서 저희의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신 것처럼, 주님의 증언들에는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도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몸이 병든 이들이 있어, 아프고 몸이 좋지 않아서 주님을 제대로 섬길 수가 없습니다. 지친 몸을 이끌고 교회에 와서, 이런 상태로 앉아 주님의 종인 사역자가 전하는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괴로움과 아픔을 겪고 있습니다. 하나님, 바로 지금 이 일이 해결되게 해 주십시오. 그들의 마음이 “나는 네 모든 질병을 고치는 주니라”, 또 “믿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니라” 하신 주님의 증언으로 향하게 해 주십시오. 저희 마음에 정죄함이 없이 이제 주님을 믿습니다. 주님께서 저희를 치유하시고 저희의 모든 질병을 없애 주시리라 믿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것을 구하오니, 그렇게 될 것입니다. 아멘.
주님, 여기에 병들고 고통받는 이들을 대신하는 편지들과 작은 카드들과 소포들이 있습니다. 저희는 성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갔다고 배웠습니다. 저희가 성 바울이 아님은 알지만, 주님께서는 여전히 하나님이십니다. 주님, 이 손수건들이 병든 이들에게 닿을 때 원수가 그들을 놓아주고 그들이 치유되게 해 주십시오. 저희는 하나님의 증언들, 하나님의 성경의 증언들을 따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저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셨고 바로 지금 저희에게 성령과 신유를 주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