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값없이 주셨습니다. 주님, 예수님께서 갈보리에서 우리를 위해 드리신 이 위대하고 지극한 희생으로 우리에게 허락된 특권들에 감사드립니다. 그 희생으로 우리가 주님과 화해하여 다시 교제를 나누고 은혜를 입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들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원하는 바를 구하라. 그러면 그것이 너희에게 이루어지리라.”라고 기록된 것을 알고 위로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제 이것에 감사드리며, 우리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다하여 이 말씀을 믿을 믿음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이제 교회 관리인부터 목사에 이르기까지 우리 모두가 오늘의 모든 수고와 이 세상의 모든 염려를 내려놓게 하옵소서. 이제 우리 생각에 다른 것은 아무것도 두지 않고 성령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기다리며 경건히 귀를 기울이게 하옵소서. 우리가 함께 모임으로 주님을 더 알고, 선한 무언가를 이루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가 이 더운 날에 온 것은 참으로 그 때문입니다. 주님의 살아 있는 말씀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그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며 머물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우리가 세상의 모습대로 빚어지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이 새로워짐으로 변화되어 하나님의 아들의 모습을 이루게 하옵소서. 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딸이라 불릴 수 있음을 생각하면 마음이 떨리고, 그것을 아는 기쁨이 우리 혼에 넘칩니다. 우리는 바로 그분의 재림을 눈앞에 두고 서 있습니다. 모든 민족과 왕국들이 우리 발아래서 흔들리고 세상의 모든 것이 사라지고 있지만, 언젠가 그분께서 오셔서 결코 끝나지도 않고 흔들리지도 않을 왕국으로 우리를 데려가실 것을 압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그 왕국의 백성이라는 것을 생각하니! 오 하나님, 오늘 성령으로, 말씀의 물로 씻음을 통해 우리 마음과 귀에 할례를 베풀어 주옵소서. 그분의 이름으로, 그분의 영광을 위해 구하옵나이다. 아멘.
오늘 아침에는 이 주제를 다루고 싶습니다. 치유 예배를 하게 되면 조금 다른 내용을 전하려고 했습니다. 기도 카드는 여덟 시부터 여덟 시 반이나 아홉 시까지 나누어 드린다고 광고했는데, 제가 방금… 몇 분 전에 빌리가 집으로 와서 여기 사람이 거의 없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기도 카드를 나누어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교회를 바로잡기 위해 이 본문을 택할까 생각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주제는 ‘세상에 속은 교회’입니다. 이제 사사기 16장 10절부터 조금 읽겠습니다. 들릴라가 삼손에게 이르되, 보라, 당신이 나를 희롱하여 내게 거짓말을 하였도다. 원하건대 무엇으로 당신을 결박할 수 있을지 이제 내게 고하라, 하니 그가 그녀에게 이르되, 그들이 결코 쓴 적이 없는 새 줄들로 나를 단단히 결박하면 내가 약하게 되어 다른 사람과 같게 되리라, 하므로 들릴라가 새 줄들을 취해 그것들로 그를 결박하고 그에게 이르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들이 당신을 덮치고 있느니라, 하였는데 그때에도 매복한 자들이 방에 머물고 있었더라. 그가 자기 팔에서 줄들을 실같이 끊으매 들릴라가 삼손에게 이르되, 당신이 지금까지 나를 희롱하여 내게 거짓말을 하였도다. 무엇으로 당신을 결박할 수 있을지 내게 말하라, 하니 그가 그녀에게 이르되, 그대가 짜서 만든 천으로 … 내 머리털 일곱 타래를 엮으면 그리할 수 있으리라, 하므로 그녀가 걸쇠로 그의 머리털을 단단히 묶고 그에게 이르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들이 당신을 덮치고 있느니라, 하니 그가 잠에서 깨어나 베틀 걸쇠와 짜서 만든 천을 가지고 가니라. 그녀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의 마음이 내게 있지 아니하면서 어찌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 할 수 있느냐? 당신이 이같이 세 번 나를 희롱하고 당신의 큰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내게 … 말하였… 당신의 큰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도다, 하며 날마다 자기 말들로 그를 압박하고 그에게 조르므로 그의 혼이 괴롭게 되어 죽을 지경이 되었더라. 이에 그가 자기의 온 마음을 그녀에게 고하며 그녀에게 이르되, 내 머리에는 삭도를 대지 아니하였나니 나는 내 어머니 태에서부터 하나님께 바친 나사르 사람이었노라. 만일 내 머리를 밀면 내 힘이 내게서 떠나고 내가 약하게 되어 다른 사람과 같게 되리라, 하매 그가 자기의 온 마음을 자기에게 고하는 것을 들릴라가 보고는 사람을 보내어 … 블레셋 사람들의 귀족들을 부르며 이르되, 그가 내게 자기의 온 마음을 보여 주었으니 이제 한 번만 더 올라오라, 하므로 블레셋 사람들의 귀족들이 그녀에게 올라와 돈을 구하였… 아니, 손에 돈을 가지고 올라오니라. 그녀가 그를 자기 무릎에 뉘어 잠들게 하고는 사람을 불러 그의 머리털 일곱 타래를 밀게 한 뒤 … 그를 괴롭히기 시작하였는데 그에게서 그의 힘이 떠났더라. 그녀가 이르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들이 당신을 덮치고 있느니라, 하니 그가 잠에서 깨며 말하기를, 내가 예전의 다른 때와 같이 나가서 내 몸을 흔들리라, 하였으나 그는 주께서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이제 이 주제의 본문으로 요한계시록 2장 21절에서 23절까지 읽고자 합니다. 내가 그녀에게 그녀의 음행을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나 그녀가 회개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보라, 내가 그녀를 침상 속으로 던질 것이요 그녀와 함께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자기 행실을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속으로 던질 것이며 또 내가 사망으로 그녀의 자녀들을 죽이리니 그러면 모든 교회들이 나는 곧 속 중심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리라. 또 내가 너희 행위에 따라 너희 각 사람에게 주리라. 주님께서 그분의 말씀을 읽는 데 복을 더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삼손은 교회와 아주 비슷하게 올바르게 출발했습니다. 올바른 방향으로 출발했습니다. 그는 출발할 때 큰 용사라고 불렸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지키고 그분의 명령들을 행하며 주님을 섬기는 것으로 출발했습니다. 그것은 교회와 어느 정도 비슷했습니다. 교회도, 우리가 말하듯이, 세상 표현으로 하자면 첫발을 제대로 내디뎠습니다. 주님의 명령들을 지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삼손이 주님을 따르는 동안에는 주님께서 삼손을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지키고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일들에서 벗어나 곁길로 돌아서면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우리를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들을 굳게 따르며 걸을 때, 성경의 말씀 안에 머물면서 기록된 말씀대로 경배하고 영 안에서, 말씀의 진리 안에서 그분을 경배할 때, 하나님께서는 누구라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것을 따라 곁길로 돌아서겠다는 생각을 품으면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그 사람을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삼손은 오늘날 교회의 모습을 아주 잘 보여 줍니다. 교회가 처음 시작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사용하실 수 있었습니다. 교회가 주님의 명령들을 부지런히 따르고 그분의 모든 법도와 법규를 지키며 그분의 모든 명령을 행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교회와 함께하셨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는 이렇게 약해지는 지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소풍을 나온 것이 아니라 전쟁터에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되기만 하면 할 일을 다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으로 영원히 다 해결되었고, 그리스도인이면 모든 일이 쉽게 풀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절대로 그런 생각을 품지 마십시오. 저는 싸우려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려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전열에 들어서려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 군사들입니다. 훈련을 받고 자라나며 원수의 모든 전술을 알아야 합니다. 어떻게 방비하고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오직 성령께서 우리에게 계시해 주셔야 할 수 있습니다. 전쟁에 나갈 때 다른 나라가 하는 말, 그들의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우리 자신의 생각이 있어야 합니다. 곧 성령께서 우리를 이끄시는 길, 그분께서 주시는 생각을 따라야 합니다. 그분께서 그리스도인 군대의 최고 사령관이시기 때문입니다.
삼손은 잘했습니다. 그는 위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우리가 표현하듯이, 좀 건들거리며 돌아다니기 시작했고, 자기 영역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교회도 자기 영역을 벗어나기 전까지는 잘 달려왔고 문제가 없었습니다. 삼손이 여자들에게 눈길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처녀들에게 눈길을 준 것이 아니라 블레셋 처녀들에게 눈길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교회가 한 일과 어느 정도 비슷합니다. 교회는 자기에게 속한 이들과 사랑을 나누기 시작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믿지 않는 자들을 따라 나가 그들에게 추파를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큰 실수, 가장 큰 실수 가운데 하나를 저지른 것이 바로 그때입니다. 교회가 옳지 않은 일들을 하기 시작한 때입니다. 삼손처럼 나쁜 무리와 어울리기 시작했습니다.
삼손은 주님의 백성과 함께하는 동안에는 잘 지냈습니다. 그러나 나쁜 무리와 어울리며 눈길을 주기 시작하자 곤경에 빠졌습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교회가 날마다 경건히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를 때에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셨고, 기적과 표적과 이적들이 교회를 따랐습니다. 그러나 세상과 나쁜 교제를 맺기 시작하자… 교회가 한 가장 나쁜 일 가운데 하나이자 처음 한 일 가운데 하나는 조직을 만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다른 신자들과의 교제를 끊어 버렸습니다. 나라들이 조직을 갖추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위대한 복음은 한 나라나 한 민족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오라.”는 것입니다. 모든 민족과 족속과 언어와 백성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경계선을 긋기를 결코 의도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세상처럼 되고 싶어 했습니다. 세상과 견주고, 세상을 모방하고, 세상처럼 행동하고, 그들이 하는 말을 하고, 그들이 성공한 방식으로 성공하고 싶어 했습니다. 세상이 하는 일을 따라 해서는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법규와 그분께서 일하시는 방식을 따를 때에만 성공할 수 있습니다. 세상을 본떠서는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담배 회사가 텔레비전으로 가장 큰 성공을 거두었고, 맥주와 위스키를 파는 사람들이 텔레비전의 도움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해서 교회도 텔레비전으로 성공하리라는 뜻은 아닙니다. 교회의 성공은 복음과 하나님의 권능을 선포하는 데, 그리고 영의 실증에 있습니다. 텔레비전이 담배 회사와 다른 회사들을 위해 이러이러한 일을 해 주었으니 우리도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그 사람들과 견주려 해도 그럴 성경 근거가 없습니다. 그렇게 하는 동안 많은 사람을 모을 수는 있겠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은 그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온갖 색깔로 화려하게 깃발을 높이 날리고, 거대한 조직을 갖추어 화려하고 굉장한 일을 벌이면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영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선 채로 날마다 죽어 가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 우리 수가 천만 명이라도 성령께서 함께하시지 않는다면, 성령께서 함께하시는 열 명으로 서 있는 편이 낫습니다. 우리는 세상과 견줄 수 없습니다.
처음 일어난 일 가운데 하나는 교회가 스스로 조직을 만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첫 조직은 가톨릭교회였고, 그다음에 루터교회가 나왔습니다. 그들이 가톨릭교회 안에서 조직을 만들어 교회를 조직체로 만들었을 때, 어느 날 외침이 들렸습니다.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들이 당신을 덮치고 있느니라.” 그러자 삼손이 자신을 결박한 가톨릭교회의 줄들을 끊었고, 마르틴 루터가 그 조직과 함께 나왔습니다.
그다음에는 들릴라가 그랬던 것처럼 또 다른 줄로 교회를 묶었습니다. 그들이 시작한 것은… 하나님께서 부르신 사람들, 성령께서 부르신 사람들을 세우는 대신에… 그들은 어쩌면 글자도 몰랐을 수 있지만 그리스도는 알았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멋을 부리며 정치 연설가들을 본뜨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설교자들에게 ‘박사 학위’를 주어야 했고, 누구나 신학박사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것이 교회를 묶는 또 하나의 줄이었습니다. 사람들이 공부하러 떠납니다. 신학교마다 더 뛰어난 학자를 길러 내려고 합니다. 자기 교회들이 “우리 목사님은 신학박사입니다.” 하고 자랑할 수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서로 상대방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갖추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그것은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든 세상 지식을 가져다가 그것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일입니다! 세상적인 야심과 지식으로는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합니다. 성경은 그것이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라고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저마다 모든 지식을 갖추려고 합니다. 무엇을 해야 하고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압니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속 깊이 들어가 죄를 드러내는, 권능이 실증되는 성령의 메시지 대신 그저 정치 연설이 되어 버립니다. 그들은 정치 연설을 하도록 훈련을 받지만, 우리에게는 그런 것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말씀이 우리에게 온 것은 말로만… 아니, 복음이 말로만 온 것이 아니라 권능과 성령의 나타나심을 통해 왔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권능을 실증하는 그것이 복음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모두 신학교에 가서 높은 교육을 받습니다. 사람들 앞에 어떻게 서야 하고, 자신을 어떻게 내보여야 하며, 어떻게 옷을 입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배웁니다. 문법은 절대 틀려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정치 연설에는 좋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구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말이 아닙니다. 바울은 “내가 전하는 복음은 그렇게 온 것이 아니라, 성령의 새롭게 하심과 실증하는 권능을 통해 왔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지혜가… 아니, 여러분의 신뢰가 사람의 지혜에 있게 하려고 잘 다듬어진 연설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권능을 실증함으로 온 것입니다. 그것이 복음입니다. “그분의 부활의 권능 안에서 그분을 아는 것”입니다.
각 교단에서 저마다 자기가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똑똑하다고 생각하려 합니다. 감리교는 “우리에게 가장 똑똑한 사람이 있습니다.”라고 할 것입니다. 침례교도, 그리스도의 교회도, 그 밖의 교회들도 모두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우리가 가장 똑똑합니다. 우리, 우리 사람들은 그저 평범한 사람이 나가서 복음을 전하게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사람을 직접 골라 뽑습니다. 오 하나님, 자비를 베풀어 주옵소서! 직접 골라 뽑는 것입니다. 자기들의 특정한 교리를 주입받은 사람이면 교회에 세웁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식으로도 그 사람을 만지실 수 없습니다. 저는 성령께서 직접 고르시고 하나님께서 일으켜 세우신 사람이 제게 설교하기를 원합니다. 사람이나 교단이 고른 사람이 아니라요. 온통 지식뿐입니다! 그들은 “오, 우리는 그것을 다 압니다.”라고 말하지만, 그중에는 성령에 관해 기초적인 것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성령을 부인합니다.
그것을 보면 십 년쯤 전에 캘리포니아에서 어느 날 읽었던 작은 책이 생각납니다. 헌책방에서 집어 든 책이었습니다. 저자가 누구였는지는 잊었습니다. 그저 십 센트짜리 작은 책이었지만, 우스갯소리처럼 보이고 재치 있게 쓰였어도 그 안에 사리에 맞는 좋은 내용이 있었습니다. 저는 거기서 하나님께로부터 온 듯한 내용을 발견했습니다. 그 짤막한 이야기 하나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커다란 닭장에, 알아야 할 모든 지식을 다 갖추었다고 생각하는 작은 수탉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그 수탉이 상자 위로 날아올라 작은 부리로 상자를 네댓 번 두드리고, 작은 머리를 뒤로 젖히더니, 여러분이 수탉 우는 소리를 그렇게는 들어 보지 못했을 만큼 크게 울었습니다. 그렇게 다른 닭들의 주의를 끌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닭장에 계신 신사 숙녀 여러분, 오늘 아침에는 우리가 막 마련한 훌륭한 교육 계획에 관해 여러분 모두에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 작은 안경을 부리 위로 끌어 내리면서 말했습니다. “저는 연구를 통해 많은 지식을 얻었습니다. 우리 닭들은 더 많은 지식을 통해 발전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께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느 특정한 우리나 구덩이를 파며 일하면 더 잘 울게 해 주고 깃털을 더 아름답게 해 줄 특정한 비타민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오, 우리가 여러 가지 면에서 어떻게 더 나아질 수 있는지 제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자 작은 붉은 볏이 달린 어린 암탉들이 꼬꼬댁거리며 말했습니다. “정말 멋지지 않니?” 그들은 그 수탉을 대단히 흠모했습니다. “오, 정말 총명한 수탉이야!” 이런 신학교 출신 설교자들 중 몇몇이 생각납니다. “참으로 총명한 분이야! 우리가 다른 닭들과 어울리고 있을 필요가 없어. 우리 모두 저 수탉을 따라가야 해.” 그런데 그 작은 수탉이 연설을 마치기도 전에, 깃털이 그다지 화려하지 않은 작은 닭 한 마리가 닭장의 다른 쪽에서 달려와 말했습니다. “얘들아, 잠깐만! 방금 라디오에서 속보를 들었어. 닭값이 파운드당 사 센트 올랐대. 우리 모두 내일 도살장에 가게 됐어. 네 지식이 무슨 소용이 있겠니?” 형제여, 우리가 쌓을 수 있는 그 모든 지식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우리는 여섯 피트 땅속으로 들어갈 몸입니다! 우리는 조금씩, 매 순간 죽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지식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분을 알기 원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렇게 합니다.
얼마 전에 제가 말했던 작은 카나리아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그 새는 알아야 할 모든 지식을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는 것이 너무 많아서 다른 모든 카나리아에게 인간에 관해 설명해 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새장 위로 날아올라 인간에 관해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에 관해서는 자기가 다 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퍼듀대학교 교수가 다가와 그 새에게 아주 세련된 말로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그 작은 새는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돌렸습니다. 새에게는 눈이 있었으니 교수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귀가 있었으니 교수의 말소리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물론 교수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몰랐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카나리아의 뇌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저 새의 뇌를 가졌을 뿐입니다. 그것이 가진 전부입니다. 인간의 뇌가 없으니 인간처럼 생각할 수 없습니다. 인간도 하나님처럼 생각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인간입니다. 세상의 모든 지식도 카나리아의 뇌에 지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그것으로 하는 모든 일은 자신을 해칠 뿐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들이 가서 조직에 가입하고 새로 태어나는 대신 악수로 대체하는 것은, 새로 태어나는 일을 건너뛰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새로 태어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성경에 근거하여 그것을 가르치는 것을 알기에, 무언가 다른 것으로 대신하려 합니다. 오순절 사람들도 무언가로 대신하려 한다는 점에서는 똑같이 나쁩니다. 그들은 품위 있게 하기를 원합니다. 아주 격식을 갖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악수하고 교회에 가입하고, 물을 뿌리는 세례나 침례를 받겠습니다.” 하거나 다른 무언가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새로 태어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저는 때때로 브래넘 태버내클도 그것을 두려워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는 모두 출산이 어떻다는 것을 압니다. 어디서 태어나든, 장소가 어디든, 출산은 온통 지저분해지는 일입니다. 아기가 옥수수 껍질 더미 위에서 태어나든, 딱딱한 바닥에서 태어나든, 분홍색으로 꾸민 병실에서 태어나든, 어쨌거나 온통 지저분해지는 일입니다. 송아지가 태어나든 다른 무엇이 태어나든 다 그렇습니다. 새로 태어나는 일도 그에 못지않게 온통 엉망이 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너무 점잔을 뺍니다. “우리는 악수하는 곳으로 가겠습니다. 큰 소리로 울지 않고, 제단을 두드리며 울부짖지도 않는 곳으로 가겠습니다.” 여러분은 너무 인간적인 모습에 머물려고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탄생입니다. 생명을 낳는 철저한 죽음이 필요합니다!
씨앗, 묵은 감자 하나, 씨감자를 가져다가 땅에 심습니다. 새 감자를 얻으려면 먼저 그 묵은 감자가 썩어야 합니다. 옥수수 알갱이도 썩기 전에는 새 생명을 낼 수 없습니다. 남자든 여자든, 자기 지성과 자아가 썩고 죽기 전에는 결코 새로 태어날 수 없습니다. 제단에서 철저히 죽고, 울부짖고, 온통 흐트러져서, 빳빳한 옷깃의 풀기마저 다 빠질 지경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영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울부짖든, 방언을 하든, 펄쩍펄쩍 뛰든, 머리 잘린 닭처럼 퍼덕이든 상관없습니다. 새 생명을 낳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다른 것으로 바꾸었습니다. 점잖고 격식 있는 방식을 원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며칠 전 금요일에 아내와 가게에 가고 있었습니다. 이 문제를 자꾸 되풀이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길을 가면서 저는 고개를 이쪽저쪽으로 계속 돌려야 했습니다. 여자들이 벗고 다녔기 때문입니다. 저는 눈이 보이지 않았을 때 하나님께 약속했습니다. 제 눈을 고쳐 주시면 옳은 것만 보겠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차에 작은 십자가를 달아 두었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 십자가를 바라보며 “오 하나님, 저것이 저의 피난처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면서요. 저는 그 여자들을 보았습니다. 미다가 말했습니다. “오늘은 치마를 입은 여자를 한 명도 못 봤네요.”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빌, 저기 상체에 저 작은 끈들을 두른 여자를 보세요. 저 여자가 저것이 잘못인 줄 모른다는 거예요? 저것이 잘못인 줄 모른다면 제정신이 아닌 거예요.” 저는 말했습니다. “여보, 잠깐만. 저 여자는 미국인이야. 미국인들이 하는 대로 하는 거지.”
저는 말했습니다. “여보, 얼마 전에 핀란드에 갔었잖아.” 그곳에서 제 말문을 막히게 했던 마니넨 박사에게 제가 따져 물었습니다. 우리는 건강 목욕탕, 이른바 사우나에 가려고 했습니다. 안으로 데려가서 뜨거운 물을 붓는데… 아니, 달군 돌에 물을 부어서 땀을 흘리게 합니다. 그런 다음 얼음물에 뛰어들었다 나오게 합니다. 그다음에는 방으로 데려가는데, 거기에는 간호사들이 있습니다. 여자들이 벌거벗은 남자들의 몸을 씻겨 주고 다시 탕으로 들여보내는 것입니다. 저는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니넨 박사님, 그건 잘못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좋습니다, 브래넘 목사님. 그게 잘못이라고 합시다. 그러면 여자의 옷을 벗겨 알몸으로 진찰대에 눕혀 놓고 성기관을 하나하나 검사하는 미국 의사들은 어떻습니까? 병원에 있는 간호사들은 어떻고요?” 저는 말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마니넨 형제님. 형제님 말씀이 옳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관습입니다. 파리에 갔을 때는 남녀가 같은 소변기를 쓴다는 것을 거의 믿을 수 없었습니다. 길가의 화장실이 남녀 공용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여자들이 해변으로 수영하러 갈 때, 청년과 그의 여자 친구가 갈 때 탈의실이 없다는 것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마지막 한 벌까지 옷을 다 벗은 다음, 등을 돌려 작은 끈을 걸치고 수영하러 갔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습니다. 그들은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것이 프랑스의 관습입니다.
아프리카에서는 여자와 남자가, 젊은이와 노인이 옷을 하나도 입지 않은 채 초원을 걸어 다닙니다. 화장실이나 그런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고, 서로의 시야에서 벗어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무엇이 다른지 모릅니다. 그들은 무엇이 다른지 모릅니다. 그것이 그 나라들의 관습입니다. 그러나 저는 말했습니다. “여보, 우리는 달라. 우리는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야. 우리는 여기서 순례자요 나그네야. 그래서 이런 것들이 그토록 잘못되어 보이는 거지. 성경이 말씀하잖아. ‘그런 것을 고백하는 자들, 그렇게 말하는 자들은 자기들이 순례자요 나그네임을 나타내느니라. 그들은 다가올 도시를 찾고 있느니라.’”
이탈리아든 프랑스든 아프리카든 그 밖의 어느 나라에서든,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남자나 여자는 그런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 옷을 입지 않습니다. 그렇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스리시고 만드신 다른 나라에 속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천국에서 왔습니다. 여러분 안에 있는 영이 여러분의 삶을 움직입니다. 미국인이면 미국인들이 하는 대로 할 것입니다. 프랑스인이면 프랑스인들이 하는 대로 하면서 다른 쪽을 비판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속했다면 천국에서 하는 대로 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영은 위로부터 왔으며, 그 영이 여러분을 다스리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살펴볼 만한 작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성경에서 이 새로운 도시를 찾던 사람들은 다르게 행동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순례자요 나그네임을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가인의 편에 있던 사람들은 도망자와 변절자가 되었습니다. 반면 그리스도인들은 순례자요 나그네였습니다. 도망자에게는 집이 없습니다. 변절자는 끔찍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순례자는 실재하는 사람이며, 다른 나라의 실제 땅에서 와서 고향으로 가는 길을 찾는 사람입니다. 그는 자기 삶을 통해 자기가 무언가를 지니고 있음을, 다른 나라에서 왔음을 고백합니다. 바로 그것이 이유입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하는 사람들, 그런 옷을 입는 사람들은…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남아프리카에서 제가 문명의 손길이 닿지 않은 이교도 삼만 명을 보았을 때, 벌거벗었거나 담요를 걸친 원주민들을 보았을 때… 열여섯, 열여덟, 스무 살 된 처녀들과 총각들이 옷 한 조각 걸치지 않고 서 있었습니다. 얼굴에는 진흙을 바르고, 몸에는 칠을 하고, 코에는 뼈를 꿰고, 귀에는 나무토막을 달고, 머리에는 사람의 뼈인지 어떤 뼈를 엇갈리게 꽂고, 몸에는 짐승의 이빨을 달고 있었습니다. 세상에 태어났을 때처럼 벌거벗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성령을 받은 뒤에는, 일어나 부끄러워 팔을 모아 가슴을 가리고 물러가 입을 옷을 찾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세상에 대해 순례자요 나그네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그들은 세상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렇습니다.
오, 그렇습니다. 이 사람들은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합니다. 교회에 속해 있습니다. 그들은 밖에 나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감리교인입니다. 우리는 침례교인입니다. 우리는 오순절교인입니다. 우리는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입니다. 우리는 이 교인이고, 저 교인입니다.” 그것은 이 문제와 아무 상관도 없습니다. 여러분의 영, 여러분 안에 있는 생명이 여러분을 움직이며 여러분이 누구인지 드러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는 처음에 이스라엘이 했던 것처럼 되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이교 민족에게 왕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기들의 왕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런데 이교 민족들에게 왕이 있는 것을 보고는 그 민족들처럼 행동하고 싶어 했고, 자기들을 위해 왕을 사들였습니다. 그렇게 하자 곤경에 빠졌습니다. 그것이 차츰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이 차츰 그들 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아합에게까지 이르렀습니다. 왕이 한 명씩 바뀔 때마다 거기에 조금 더 가까이,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다가, 결국 그들의 생명을 짜내 버렸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가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참된 왕께서 오셨을 때에는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교회도 똑같은 일을 했습니다. 교회가 받아들인 것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정치와 교육을 받아들였습니다. 조직과 사교 모임과 큰 교회들을 받아들였고, 높은 자리에 올라 사람들과 거리를 두는 설교자들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참된 왕께서 오셔도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바로 자기들의 왕이신 성령을 십자가에 못 박고 있습니다.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며, 오히려 그분을 비웃고 조롱합니다. 유대인들이 자기들의 메시아에게 한 그대로 교회도 자기들의 메시아에게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알지 못합니다. 영적으로 꿰뚫어 보는 눈이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 커다란 건물들에 너무 길들여져서 세상과 견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과 견주라는 권면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자신을 낮추라는 권면을 받았습니다.
하나님 안에서는 한 사람만 있어도 다수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역 현장에 나가 있는 치유 전도자들 사이에는 그런 경쟁이… 경쟁자들이 있습니다. 어떤 이는 말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제 집회에는 수천 명이 모입니다. 당신보다 제 집회가 더 큽니다.” 그것이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한 명이든 백만 명이든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께 충실합니까? 그분의 말씀에 충실합니까? 성령의 시험을 견딥니까? 그것은 참됩니까?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경을 두고 타협합니다. 우리 오순절 사람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이 성경의 근본 교리들을 놓고 타협합니다. 감정을 상하게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제 교회에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무엇이든… 제 교회에서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복음을 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순절 설교자 수만 명이 성경에는 ‘아버지, 아들, 성령’의 이름으로 받는 침례라는 것이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대주교든 누구든, ‘아버지, 아들,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은 사람이 어디 있는지 보여 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타협합니다. 조직들이 그렇게 해 왔기 때문입니다. 신약성경에서, 그리고 역사에 따르면 그 이후 삼백 년 동안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조직입니다. 조직이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타협입니다!
오늘날 그들은 거리에서 일하던 전도자들을 모두 거리에서 데려갔습니다. 교회에서 탬버린을 치워 버렸습니다. 교회의 모든 영광을 앗아 가고, 신학교식 설교, 그 작은 수탉의 볏을 뽐내는 듯한 설교를 들여왔습니다. 사교계에 어울리도록 온통 매끈하게 다듬은 설교 말입니다. 여자들은 반바지와 살갗처럼 몸에 딱 달라붙는 옷을 입고, 남자들은 담배를 피우고 도박하고 음담패설을 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거친 말인 줄 압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한마디 해야 할 때입니다. 타협하고, 굴복하고, 세상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 저 혼자 서야 한다 해도 상관없습니다.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아무도 없어도 저는 하나님의 성경의 진리를 전하고 그 진리 편에 서겠습니다. 죽는다 해도 여전히 진리 편에 서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진리를 원합니다. 저는 교회를 기준 삼아 맞추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 삼아 제 자신을 맞추고 싶습니다.
그런데 들릴라는, 여러분도 보셨겠지만, 삼손에게 힘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힘이 어디에 있는지는 몰랐습니다. 그것이 무슨 힘인지도 알 수 없었지만 삼손이 어떤 큰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것을 알아내고 싶었습니다. 들릴라는 자기의 아름다움으로 계속 삼손을 유혹했습니다. 오, 아주 육감적으로 차려입었습니다. 삼손 앞에서 걸어 다니고, 요즘 십 대 소녀들 중 몇몇이 하는 것처럼 히히 웃었습니다. 여러분이 무슨… 스트립쇼 같은 것을 하며 행동할 때처럼, 삼손을 자기에게 끌어들이려 했던 것입니다.
세상이 교회에 한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자, 당신의 큰 힘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가 조직을 만들면 그 힘이 꺾일 것이다.” 가톨릭교회가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들이 당신을 덮치고 있느니라.” 그러자 루터가 나왔습니다. 그다음에는 다시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다른 줄로 나를 묶으면 나를 붙잡아 둘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했습니다.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들이 당신을 덮치고 있느니라.”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웨슬리가 나와 그 줄들을 끊었습니다. “당신은 줄곧 나를 속였군요.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줄 몰라요, 삼손? 자, 마음속의 진실을 말해 줘요.” “좋소. 다른 줄로 나를 묶으시오.” “좋아요, 이제 그렇게 하겠어요.” 그것이 무엇입니까? 교단이라는 줄입니다. “나를 풀어 주어 아무 교단에도 속하지 않게 하시오. 그러면, 말하건대, 당신은 나를 꺾게 될 것이오.” 그래서 오순절 사람들이 나왔습니다. “당신의 힘은 어디에 있습니까?” “블레셋 사람들이 당신을 덮치고 있느니라.” 그러자 삼손이 다시 그 줄들을 끊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것이 오순절 사람들까지 붙잡았습니다. 그들은 대단한 신학박사들, 위대한 인물들을 목사로 세웠습니다. 그들에게도 감리교나 침례교나 그 밖의 어떤 교회 못지않게 학문과 의식이 있습니다. 교회에 들어가도 ‘아멘’ 소리 한마디 들을 수 없습니다. 북극에서 막 내려온 에스키모 무리만큼이나 차갑습니다. 차갑습니다! 무관심합니다! “이제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들이 당신을 덮치고 있느니라.” 미국이여, 블레셋 사람들이 너를 덮치고 있느니라. 영 안에서 하나 됨이 어디 있습니까? 오순절의 하나 됨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의 성회, 연합 오순절교회, 하나님의 교회, 이런 교회 저런 교회가 저마다 다른 주의를 내세웁니다. 이쪽은 이것, 저쪽은 저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갈라져 있습니다. 어느 도시로 부흥회를 하러 갔을 때 한 교회가 주관하면 다른 교회들은 참석조차 하지 않을 지경입니다. 미국이여, 공산주의자들이 너를 덮치고 있느니라.
우리의 권능은 어디 있습니까? 우리의 영광은 어디 있습니까? 어찌 된 일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권능 대신 사람의 지혜를 따라갔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우리 설교자들과 다른 이들이 너무 굳고 점잔만 빼며 우리를 조직에 묶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우리까지 너무 점잔을 빼고 목이 곧아져, 이제 교회에서는 외치는 소리를 전혀 들을 수 없습니다. 누가 우는 소리도 들을 수 없습니다. 회개하며 기도하던 의자는 지하실로 치워졌습니다. 교회에는 더 이상 영광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뒤로 물러앉아 최대한 꼿꼿하게 버틸 뿐입니다. 우리는 자유롭지 않습니다. 묶여 있습니다. 마귀가 현대주의 마귀들과 함께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를 묶어 놓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에는 더 이상 권능이 없습니다. 더 이상 자유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점잔을 빼며 굳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순절 사람들 가운데 오셔서 그분이 하나님이심을 보여 주시고 부활의 표적들을 입증하셔도, 그들은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영광! 참으로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제가 전국을 다니는 동안 하나님께서 일하시며 표적들을 행하시는데도 사람들은 앉아서 말합니다. “그런가 보네요. 괜찮은 것 같아요. 아, 그런 일이 가능하다는 건 알아요.” 그것이 그들을 움직이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들릴라, 곧 세상에 묶여 있기 때문입니다. 족쇄를 차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들을 심지어… 연합체 안에까지 묶어 놓았습니다.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들이 당신을 덮치고 있느니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오, 우리에게는 큰 교단들이 있습니다.” 물론입니다. “우리의 교인 수는 어느 때보다도 많습니다.” 그러나 영은 어디 있습니까? 성령은 어디 있습니까? 마귀가 바로 그런 일을 했습니다. 유혹하여 교회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마귀는 계속 교회를 유혹했습니다. “내게 와라. 네가 이렇게만 하면 여기 아주 커다란 예배당을 주겠다. 네게 있는 그 광신적인 설교자를 내보내고 분별력 있는 사람, 신학박사를 데려오면, 우리가 멋지고 크고 품위 있는 교회를 짓고 다른 교회들처럼 될 것이다.” 부끄러운 줄 아십시오! 저는 차라리 쪼갠 커피콩과 콩도 구별하지 못할지라도,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의 권능으로 타협하지 않는 사람이 있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이제 너무 점잔만 빼게 되었습니다. 가련한 성도 한 사람이 집회 중에 그 분위기를 뚫고 방언을 하거나, 조금 외치거나, 무슨 행동을 하면 나머지 사람들이 모두 목을 빼고 돌아봅니다. “저게 뭐지? 도대체 왜 저러지? 어디선가 광신자가 하나 들어왔나 봐.” 그것이 사실인 줄 여러분도 압니다! 가련한 성도 한 사람이 들어와 기쁨에 겨워 손을 들고 울며 주님을 찬양합니다. 누군가 복음이 전해지는 데 ‘아멘’ 하고 외치면, 나머지 사람들은 그가 무슨 말을 했나 보려고 돌아봅니다. 이것이 오순절 사람들입니다. 무엇이 잘못되었습니까? 여러분은 감리교를 본뜨고, 침례교를 본뜨고 있습니다. 그들은 가톨릭을 본떴고, 가톨릭은 지옥을 본떴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다 지옥을 본뜨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들릴라는 여러분을 유혹해서 큰 교회들과 훌륭한 고학력 목사들을 따르고, 더 높은 계층의 사람들을 받아들이게 했습니다. “있잖아요, 여기 누구누구는 백만장자인데, 그 사람만 우리 회중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면…” 오, 이런! 그가 다시 태어나지 않았다면 그곳에 있을 자격이 없습니다. 백만 달러가 있어도 저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캐딜락 마흔 대를 가졌든 무엇을 가졌든 그는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바로 그 새로 태어나는 자리까지 내려가 성령으로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콧물을 흘리고—이 표현은 용서하십시오—울고, 부르짖고, 격하게 반응하면서 새로 태어나 그곳에서 나와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는 그것을 받았다는 것을 삶으로 입증해야 합니다. 아멘.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그것입니다.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들이 당신을 덮치고 있느니라.” 공산주의자들이 여러분을 덮치고 있습니다. 세상이 여러분을 덮치고 있습니다. 마귀가 여러분을 덮치고 있습니다.
그들은 돌아가서 하나님의 영이 기적을 행하시고 그분의 부활을 나타내는 일들, 곧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일들을 행하시는 것을 보고 말합니다. “있잖아요, 내 생각에는 브래넘 형제님이 텔레파시를 많이 쓰는 것 같아요. 우리 목사님은 그것이 마귀에게서 온 것이라고 하셨어요.” 가련하고 위선적이며 미혹에 빠진 불신자여, 겉만 번드르르하게 꾸민 자여, 양의 옷을 입은 늑대여!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나의 날도 알았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에게는 여러분을 나머지 세상 사람들처럼 만들려는 사울들 한 무리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말씀을 두고 타협하지 않고, 진리를 전하며, 성령 침례 위에 굳게 서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세상이 무슨 일을 했습니까? 여러분의 모든 권능을 밀어 버렸습니다. 오순절이여, 여러분은 나사르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세상이 분명 여러분의 권능을 밀어 버렸습니다. 이제는 다른 교회들만큼이나 점잔만 빼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이 본문을 마무리하면서 제가 생각할 수 있는 영광스러운 일이 하나 있습니다. 삼손이 묶여 있는 동안에! 우리는 부흥을 일으킬 수 없습니다. 우리의 충실한 빌리 그레이엄 형제님이 하는 말을 들어 보십시오. “우리 시대에 부흥을!” 오럴 로버츠가 외치는 말을 들어 보십시오. “우리 시대에 부흥을!” 다른 사람들의 말도 들어 보십시오. “우리 시대에 부흥을!” 그런데 우리가 묶여 있으면서 어떻게 부흥을 일으킬 수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조직과 전통으로 성령을 묶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부흥을 일으킬 수 없습니다. 아멘. 날씨도 더운데 이 말씀이 몹시 뜨거운 줄 압니다. 하지만 진리입니다. 그렇게 묶여 있고 점잔만 빼면서 어떻게 성령의 부흥을 일으킬 수 있습니까! 성경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성품의 모양”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의 모양은 있으나 그것의 능력은 부인하리니.” 무엇의 능력입니까? 조직의 능력입니까? 세상의 능력입니까? 교회의 능력입니까? 성령의 권능입니다! 그것이 교회 안의 비밀이 숨겨진 곳입니다. 교회가 옛날 그대로의 성령 대신 고학력 설교자와 큰 건물과 화려한 치장을 받아들인다면, 차라리 다시 작은 선교 예배당으로 돌아가는 편이 낫습니다. 아멘. 사실입니다. 사람들이 성령을 소멸하고, 묶어 놓고, 두려워하면서 어떻게 성령의 부흥을 일으키겠습니까? 문제가 바로 거기 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당신을 덮치고 있느니라.” 그러나 우리에게 있는 한 가지 복된 소망은, 삼손이 감옥에 있는 동안에… 그들이 삼손을 붙잡았을 때 맨 먼저 한 일이 무엇입니까? 먼저 그를 묶었습니다. 그에게서 힘을 빼앗았습니다. 그의 비밀을 알아낸 것입니다. 그들은 여러분의 비밀을 알아냈습니다. 세상이 여러분의 비밀을 알아냈습니다. 이제 여자들은 모두 머리를 짧게 자릅니다. 세상과 같은 모습으로 가는 것입니다. 남자들은 모두 나가서 세상처럼 행동합니다. 농담과 음담패설을 하고, 나가서 담배 몇 개비를 피우고, 이웃의 아내들과 놀러 다니며, 그 밖에 그런 온갖 일을 해도 괜찮다고 합니다. 직장을 지키려고 사교상 술도 조금 마십니다. 저는 어떤 일자리를 위해서라도 타협하느니, 차라리 엎드려 소다 크래커를 먹고 시냇물을 마시며 하나님 앞에서 깨끗하고 순결하게 있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실입니다. 하나님께 충실하십시오.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들이 당신을 덮치고 있느니라.” 브래넘 태버내클이여, 세속주의가 여러분 가운데 스며들고 있습니다. 어떻게 된 것입니까? 여러분의 비밀을 드러내 버렸습니까? 몇 년 전 톱밥 위에서 뒹굴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주신 그 비밀을 드러내 버렸습니까? 사교적이고 형식적인 예배를 하면서 그것이 빠져나가도록 내버려 두었습니까? 여러분에게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하나님께서 내려오셔서 기적을 행하시고, 회중 가운데를 쭉 다니시며 사람들에게 그들 마음의 비밀과 모든 것을 말씀하시고, 병들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고치시고, 표적과 이적들을 행하실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힘껏 그분의 말씀이 전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말합니다. “뭐, 괜찮은 것 같아요. 우리가 너무 피곤하지만 않으면 가끔 듣기는 좋아요.” 이것이 브래넘 태버내클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여러분을 덮치고 있습니다.
…할 때. 예전에는 말씀이 선포되면 오래 믿어 온 성도들이 눈물을 머금고 일어섰습니다. 흐느끼면서 걸었습니다. 어쩌면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두세 번 돌아다니다가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토록 성령으로 충만했던 것입니다! 말씀이 그들에게 양식을 주었습니다!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브래넘 태버내클이여, 블레셋 사람들이 여러분을 덮치고 있습니다. 오순절이여, 블레셋 사람들이 여러분을 덮치고 있습니다. 물론 나머지 여러분은 오래전에 블레셋 사람들에게 붙잡혔습니다. 장로교인이나 침례교인이나 감리교인이나 가톨릭교인이나 어떤 특정한 사람이 아니면 아무도 들어올 수 없게 자신들을 조직에 꽁꽁 묶었을 때 말입니다.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과는 아무런 상관도 맺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우리 시대에 부흥이란 말입니까? 부흥을 주시는 바로 그분이 세상에 묶여 계신데 우리가 어떻게 부흥을 누릴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세상이 있는 곳에는 들어오시지 않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믿으셔도 됩니다. 여러분이 세상과 어울리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입니다. 세상이 스며들도록 내버려 두고 세상처럼 행동하기 시작하면 여러분은 끝난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족쇄를 끊고 하나님께로 오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다시 세상에 추파를 던지기 전까지 여러분을 사용하실 것입니다. 오늘 아침 메시지를 마무리하며 제가 가진 유일한 소망은 이것입니다. “삼손이 묶여 있는 동안에 새 머리털이 자라났습니다.”
하나님, 마지막 때가 이르기 직전에 우리에게 또 하나의 교회를 보내 주옵소서. 성령의 권능이 영의 실증 가운데 그 교회에 들어오고, 마가복음 16장이 그 교회를 따르게 하옵소서. 사도행전 2장 4절과 사도행전 2장 38절, 그 모든 것이 교회를 따라 함께하게 하옵소서. 표적과 이적들이 사도들과 함께합니다. 그분의 부활을 나타내는 큰 표적들이 그들과 함께합니다. 우리가 감옥에 있는 동안에도,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큰 살육을 위해 분명 어딘가에서 새로운 것을 자라게 하고 계십니다. 오늘 아침 여기 계신 그리스도인 친구여, 그것이 여러분이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힘이 자라기 시작한 것이기를 바랍니다. 오늘 아침의 이 메시지, 또 이 메시지가 전해질 각지에서도, 이 메시지가 여러분 안에 비타민을 공급하여 여러분의 삶에 영적인 권능이 다시 자라나게 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도하며 믿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기도합시다.
오 주 하나님, 하늘과 땅의 창조주이시며 영원한 생명의 근원이시요 모든 선하고 영적인 선물을 주시는 분이시여, 오늘 아침 이 말씀들을 받아 마음속에 심어 주시고 물을 주옵소서, 주님. 사람들이 이것을 두고 기도하게 하옵소서. 세상이 교회를 유혹하다가 마침내 그 권능을 알아내고, 비밀의 장소를 찾아내며, 비밀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어 그것을 밀어 버렸다는 것을 보게 하옵소서. 한때 승리를 외치고 한때 승리를 누리던 사람들을 붙들어 그 힘을 밀어 버렸습니다. 이제 그들이 수요일 밤에 집에 머물러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게 했습니다. 그들의 마음에서 기쁨을 빼앗고,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게 했습니다. 그들에게 세상을 더 주어, 세상적인… 복음이 전해지는 것을 듣기보다 세상의 오락을 더 갈망하게 했습니다. 큰 악대와 온갖 소란, 고함과 떠들썩한 행동이 없으면, 그들은 더 이상 옛 복음을 원하지 않습니다. 혼에 기쁨의 눈물을 가져다주고, 신유를 회복시키며, 사도들의 은사를 교회에 회복시키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이 시대의 메시아를 모셔 오는 그 복음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자기들의 왕들에게 묶여 참된 왕을 따를 수 없었고, 그 참된 왕께서 오셨을 때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던 것처럼, 오 주님, 오늘날도 그렇습니다. 영광의 왕께서 성령의 모습으로 나타나셨지만, 주님, 그들은 그것을 모릅니다.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들은 조직에 너무 꽁꽁 묶여 있어서 이해하지 못합니다. 자기들의 조직 안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님, 사람들에게 이런 일을 한 것은 마귀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삼손이, 마음이 참된 사람들이, 갈망하고 울며 간구하고 굳게 붙드는 사람들이, 주님, 계속 붙들고 있게 하옵소서. 이 새로운 것이 자라날 때까지, 시온에 다시 기쁨이 솟아날 때까지, 알아보고 이해할 수 있는 무리가 나타날 때까지 그렇게 하게 하옵소서. 메시아를 볼 수 있고 세상에 감추어진 숨은 권능을 볼 수 있는 무리, 지금은 세상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는 무리가 나오게 하옵소서. 주님, 그들이 이것을 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옵나이다. 아멘.
[테이프의 공백.] …권능을 지금, 오 주님, 지금 권능을 보내 주소서 모든 이에게 침례를 베푸소서. 그들은 다락방에 있었네, 모두가 한마음이었네, 우리 주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이 내려오셨을 때. 오 주님, 지금 주님의 권능을 보내 주소서, 오 주님, 지금 주님의 권능을 보내 주소서. 오 주님, 지금 권능을 보내 주소서 모든 이에게 침례를 베푸소서. 저는 그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요! 그저 그분의 권능을 보내 주시기를! 그들은 다락방에서 모두 한마음으로 있었습니다. 세상이 그들 안에서 모두 빠져나갔습니다. 그들은 비워졌고, 성령께서 오셨습니다. 오늘날에는 이렇게 말합니다. “오셔서 교회에 가입하고 명부에 이름을 올리십시오.” 또는 “몸을 굽히고 ‘저는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합니다.’라고 말한 다음 일어나십시오.” 마귀도 똑같이 합니다. 물론입니다. 유다가 침례를 받았을 때 마귀도 침례를 받았습니다. 유다가 나가서 복음을 전했을 때 마귀도 나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성령을 받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숨겨진 권능은 거기에 있습니다. 그 부활, 추호의 의심도 없이 확실히 아는 것 말입니다. 아멘.
그분께서 여기 계십니다. 바로 그 성령, 메시아 위에 계셨던 그분께서 지금도 그분의 교회 위에 계십니다. 그분은 결코 떠나지 않으십니다. “내가 세상의 끝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너희 안에 있겠노라. 내가 거기에 있겠노라. 내가 하는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 이보다 더 많은 일들을 하리니, 이는 내가 내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라.” 그러나 세상은 그것을 두고 타협합니다. “오, 그런 시대는 지나갔어요!” 그것이 바로 마귀가 여러분에게 바라는 일입니다. 그들은 여러분이 겉모습을 화려하게 꾸미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침례를 받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여러분은 “오, 저는 저렇게 요란하게 구는 것을 전혀 믿지 않아요.”라고 말합니다. 계속 사십시오… 계속 죄 가운데 사십시오. 죄 가운데 사십시오. 그러나 여러분이 썩기까지, 자기 생각에 대해 썩고 자기 방식에 대해 썩기까지는… 그러고 나서 새롭게 되고 다시 태어나면, 그 새 생명은 땅속에 들어갔던 것과는 전혀 다를 것입니다.
옥수수 알갱이는 노란색으로 땅에 들어갔다가 초록색으로 올라옵니다. 단단한 껍질에 싸인 채 들어갔다가, 바람에 흔들리는 유연한 모습으로 올라옵니다. 오, 영광! 할렐루야!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알갱이는 몸을 움직여 위치를 바꾸는 것밖에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작은 잎은 휘어지며 기뻐하고, 그러면서 자라고 튼튼해집니다. 옥수수 알갱이가 죽고 썩기 전에는 결코 잎이 될 수 없습니다. 죽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썩어야 합니다. 다시는 원래대로 돌아올 수 없지만, 그 안에서 생명이 나옵니다. 조금 전에 말했듯이, 탄생은 끔찍한 일입니다. 지저분하고 더럽고, 더러움 중에서도 가장 더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바로 거기에 생명이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이 더럽다고 여기고, 감리교와 침례교와 오순절의 신조들도 더럽다고 여기며, 제단에서 철저히 죽을 때 새 생명이 들어옵니다. 성령께서 여러분을 그 위로 올려 주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어느 영광스러운 날에 우리는 그분을 뵐 것입니다.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 닿을 수 없는 저편에서 그분을 뵐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믿습니까?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 닿을 수 없는 저편에, 나를 위한 기쁜 내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젯밤 여기 모퉁이에 서 있다가, 몸집이 작은 랍비 로슨을 본 것 같았습니다. 예전에 그가 여기 와 있을 때에는 낡은 지팡이를 빙 둘러, 그 목으로 저를 끌어… 지팡이로 제 목을 걸어 여기 강단으로 끌어올리곤 했습니다. 그리고 “나를 위해 … 기다리고 있네.”라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테이프의 공백.]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다! 세상을 몰아냈습니다. 저는 사물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습니다. 해마다 끊임없이 이 미국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며 너무나 걱정했습니다. 여자들과 남자들이 어떻게 자신을 타락시키며 죄 속으로 들어가는지 보고 걱정하다가, 두세 번은 거의 쓰러질 지경이 되었습니다. 어제 저는 하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이제 더는 걱정하지 않겠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그렇게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무너진 틈에 서서 제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다해 그것에 맞서 외치겠습니다.”
며칠 전 그린스 밀에 있는 제 동굴, 광야 깊숙한 곳에서 하루 종일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세 시쯤 되었는데 해가 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동굴에서 나와 커다란 바위 위에 서서 저편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거기 서서 동쪽을 바라보며 주님을 찬양했습니다. 골짜기 건너 다른 산들을 바라보니, 산꼭대기 나무들 뒤로 해가 내려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나무에는 잎이 무성했고, 더할 수 없이 고요했습니다. 저는 말씀드렸습니다. “주님, 어느 날 주님께서는 모세를 반석 틈에 숨기시고 그 곁을 지나가셨습니다. 그가 지쳐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지나가셨을 때 그는 그것이 ‘사람의 등처럼 보였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주님, 저를 그 틈에 숨겨 주옵소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바로 그때 제 한쪽 옆에서 작은 바람이 덤불을 지나 내려왔습니다. 바람은 계속 움직여 바로 제 곁으로 내려왔고, 그 작은 바람이 숲을 통과해 내려갔습니다. 저는 거기 서 있었습니다… 언젠가, 어디서 언제일지는 하나님만 아시네, 죽을 인생의 바퀴들이 모두 멈추리, 그때 나는 시온산에 가서 살리라.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 닿을 수 없는 저편에서, 언젠가, 어디서 언제일지는 하나님만 아시네, 무슨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끝이 날 것입니다. 돌아가는 이 작은 바퀴들이 모두 말입니다. 죽을 인생의 바퀴들이 모두 멈추리, 그때 우리는 시온산에 가서 살리라. 낮게 내려오라, 정다운 마차여, 나를 본향으로 데려가러 오네. 낮게 내려오라, 정다운 마차여, 나를 본향으로 데려가러 오네. 당신이 나보다 먼저 그곳에 가거든, 나를 본향으로 데려가러 오네. 보스워스 형제님과 내 모든 친구에게도 전해 주오, 나를 본향으로 데려가러 온다고, 이제 낮게 내려오라. 언젠가 그 마차가 내려와 저를 태울 것입니다. …마… 나무마다 불타오를 것입니다. 하나님의 천사들과 불병거들이 …나를 본향으로 데려가러. 낮게 내려오라, 정다운 마차여, 나를 본향으로 데려가러 오네.
머지않아 어느 날, 어느 날 제 죽음의 시간이 깊어 갈 즈음에, 저는 그분께서 오시기를 기다립니다. 그렇습니다. 요단강 건너 바라보니 무엇이 보였나, 나를 본향으로 데려가러 오네. 옛 엘리야가 요단강 건너를 바라보던 것처럼 말입니다. 빛나는 천사들 한 무리가 나를 데리러 오네, 그들은 나를 본향으로 데려가러 왔네. 낮게 내려오라, 더 낮게 내려오라, 정다운 마차여, 나를 본향으로 데려가러 오네. 낮게 내려오라, 정다운 마차여, 나를 본향으로 데려가러 오네.
이 마차의 복되신 마부이시며, 오래된 시온의 배, 생명의 배를 이끄시는 주 예수님께서 이 건물 안을 다니며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분께서 여기 임재해 계십니다. 그분을 무덤에서 일으키신 바로 그 성령께서 여기 계십니다. 기도 카드를 나누어 드리지 않았으니, 이곳에 기도를 받으러 다른 도시에서 오신 분들 가운데 제가 모르는 분이 계십니까? 제가 모르는 분들은 손을 들어 보십시오. 손을 들어 보십시오. 저는 그분들을 모릅니다. 저기 계신 분, 뒤에 콧수염이 있는 몸집 작은 분인 것 같은데, 저 뒤쪽에서 누가 손을 드셨습니다. 예, 그분, 손을 드셨습니까? 좋습니다. 저 뒤에 계신 선생님도요. 좋습니다. 모두 저와 처음 만나는 분들입니까? 바로 그 주 예수님, 이곳 양 떼의 동일한 목자께서 하신 약속들이 참되다고 믿습니까? 그분께서는 자신의 교회에 기름을 부으십니다. “내가 하는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 이보다 더 큰 일들도 하리니, 이는 내가 내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라. 이보다 더 많은 일을!” 여러분은 그것을 믿습니까?
저를 모르신다고 손을 드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선생님 마음속에 있는 것을 제게 알려 주실 수 있다고 믿습니까? 그분의 옷에 손을 댄 여인 때처럼 제게 말씀하실 수 있다고 믿습니까? 그분이 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을 느끼실 수 있는 대제사장이심을 믿습니까? 하나님께서 선생님의 형편을 제게 계시해 주신다면, 제가 그분의 선지자임을 믿으시겠습니까? 그분께서 여기 임재해 계시며, 그래서 이것을 허락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겠습니까? 선생님은 아내를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아내분은 고관절이 부러졌습니다, 고관절이 탈구되었습니다. 맞습니다. 맞으면 손을 드십시오. 좋습니다. 가서 아내분이 나은 것을 보십시오. 아멘. 저 뒤에 일어나셨던, 콧수염이 있는 몸집 작은 분은 어떻습니까? 온 마음으로 믿습니까? 하나님께서 선생님의 문제를 제게 알려 주실 수 있다고 믿습니까? 아드님이 나을 것이라고 믿습니까? 믿으십니까? 아드님이 있는데 뇌성마비가 있습니다. 맞습니다. 선생님은 아니… 그는 켄터키에서 왔습니다. 맞으면 손을 드십시오. 저는 선생님을 모르지요? 제가 안다면… 이렇게 손을 들어 보십시오. 우리는 서로 모릅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계십니다. 믿습니까? 믿으시는 대로, 선생님이 믿으신 그대로 된 아드님을 보십시오. 마음에 새겨 두십시오.
여기에서 손을 드신 분이 누구였지요? 제가… 선생님이셨습니까? 좋습니다, 선생님. 제가 하나님의 선지자임을 믿습니까? [남자가 “아멘.”이라고 말한다.]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일어나실 필요 없습니다. 그냥 그 자리에 서 계십시오. 좋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의 문제는 당뇨병입니다. [“맞습니다.”] 그것이 발에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예.”] 오하이오에서 오셨습니다. [“예.”] 성함은 밀러 씨입니다. [“맞습니다.”] 집으로 돌아가서 나으십시오. 좋습니다.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좋습니다. 여러분은 믿습니까? 믿을 수만 있다면! 여기 앉아 계신 부인, 손을 드셨습니까? 안경을 쓰신 체격이 큰 부인, 온 마음으로 믿습니까? 믿습니까? 제가 하나님의 종임을 믿습니까? 믿으십니까?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부인의 문제가 무엇인지 제게 알려 주신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심장병입니다. 맞으면 손을 드십시오. 좋습니다.
바로 옆에 계신 부인이 손을 드셨습니다. 심장, 하지만 실제 문제는 눈입니다. 저는 이분을 압니다. 좋습니다. 네가 만일 믿을 수 있거든! 저 뒤에, 그다음에 계신 남자분도 심장병이 있고 피부병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고쳐 주실 것이라고 믿습니까? 선생님, 믿습니까? 저 뒤 어디엔가 손을 드신 남자분이 있습니다. …하지 않으셨던… 슈버트 씨입니다. 좋습니다, 선생님. 좋습니다. 믿습니까? 선생님도 눈 때문이지요? 또 저쪽에 앉아 계신 어머니를 위해서도 기도하고 계십니다. 맞으면 손을 드십시오. 우리는 처음 만나는 사이입니다. 맞습니까? 손을 흔들어 보십시오. 서로 손을 흔들어 보십시오. 좋습니다. 맞습니다. 믿을 수 있다면 받을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건물 안에 계십니다. 그분은 동일한 분이십니다. 이것이 여러분에게 어떤 영향을 줍니까? 세상이 여러분의 힘을 모두 빨아들이도록 내버려 두셨습니까? 영광! 저는 새로 태어나기를 원합니다! 새 생명을 원합니다! 제가 광신자라고 불려야 하든, 무엇이 되어야 하든, 그것이 어떤 차원으로 오든 상관없습니다. 어떤 차원으로 오든 상관없습니다. 저는 지금 제게 임해 계신 것과 같은 참된 성령을 원합니다. 그것을 계속 간직하고 싶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보다 그것을 원합니다. 아멘! 믿습니까? 그분께서 여기 계심을 믿습니까? 그러면 서로에게 손을 얹으십시오. 그분께서 더 하실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한 가지라도 말씀해 보십시오. 없습니다. 이제 믿음을 가지십시오. 다 이루어졌음을 믿으십시오.
주 하나님, 하늘과 땅의 창조주이시며 영생의 근원이시요 모든 좋은 선물을 주시는 분이시여, 주님의 영께서 여기서 이토록 기름을 부어 주고 계십니다, 주님. 마치 건물이 숨을 쉬며 앞뒤로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주님, 사람들이 왜 이것을 이해하지 못합니까? 그들이 세상과 너무 많이 어울리고, 너무 차갑고 형식적이고 점잔만 빼게 되어서, 이제는 주님을 알아보지 못합니까? 주 하나님, 이 권능이 모든 사람에게 임하게 하시고, 모든 병든 사람이 낫고 모든 죄인이 구원받으며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하옵나이다. 아멘.
믿습니까? 손을 드십시오. 치유를 받아들이십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가서 여러분이 믿는 바로 그대로 된 것을 보십시오. 그대로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 위로 환상이 펼쳐지는 것이 보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오늘 저녁에 다시 와야 합니다. 지금 믿지 않으면 결코 믿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한 번 그렇게 하셨을 때 그들이 말했습니다. “당신은… 메시아께서 오시면 이런 것들을 우리에게 말씀하실 줄 우리가 압니다.” 그 여인이 말했습니다. “메시아께서 그렇게 하실 줄은 압니다. 그런데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분께서 “내가 그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여인이 도시로 달려 들어가 말했습니다. “와서 내가 어떤 사람이었으며 무슨 일을 했는지 아는 사람을 보십시오. 이분이 메시아가 아니십니까?” 그분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 날들에 이런 일들이 다시 나타나리라. 교회는 진리를 전하며 말씀 위에 서 있으리라. 하나님의 모든 명령들을 행하리라. 나는 세상과 어울리지 아니하리라. 그리고 나는 그 가운데서 움직이며 같은 일들을 행하리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들은 고집이 세며 높은 마음을 품으며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는 쾌락들을 더 사랑하며, 협정을 어기며 거짓 고소하며, 하나님의 성품의 모양은 있으나.” 아주 종교적이고 교회에도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의 모양은 있으나 그것의 능력은 부인하리니 이런 자들에게서 돌아서라!” 여러분, 방금 그분께서 불러내신 분들, 교회 안 어디에 계셨든지, 이제 그 환상은 제게서 사라졌습니다. 제가 여러분에 대해 알지 못하는데도 말씀드린 것이 사실이었다면, 누구든 손을 들어 보십시오. 교회 안 여기저기, 곳곳에 있습니다. 좋습니다. 저는 그분들을 모르고, 뵌 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여기 계시며 그분들을 아십니다. 제가 아니라는 것을 모르시겠습니까?
들으십시오! 그분께서 제게 그것을 맡기신다면, 말씀의 진리도 제게 맡기실 것입니다. 진리는 오직 말씀을 통해서만 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회개하고 너희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 죄들의 사면을 얻으라. 그러면 너희가 성령님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손들과 멀리 떨어져 있는 자들 곧 주 우리 하나님께서 부르실 모든 사람들을 향한 것이니라.” 여러분은 믿습니까? 잠시 후 침례 예식이 있을 것입니다. 고개를 숙입시다. 침례를 준비하는 동안 목사님께서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곧 침례 예식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