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한 형제님이 브래넘 형제님을 위해 성경을 읽습니다. “사사기 16장 4절부터 22절까지입니다. 제가 읽는 동안 앉으셔도 됩니다. 꽤 긴 성경 본문이지만, 브래넘 형제님이 읽어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 뒤에 그가 소렉 골짜기의 한 여인을 사랑하였는데 그녀의 이름은 들릴라더라. 블레셋 사람들의 귀족들이 그녀에게로 올라와 그녀에게 이르되, 그를 꾀어 그의 큰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또 우리가 어떤 방법으로 그를 이기고 결박하여 그를 괴롭게 할 수 있을지 알아보라. 그러면 우리가 즉 우리 각 사람이 은 천백 개를 네게 주리라, 하니 들릴라가 삼손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당신의 큰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또 무엇으로 당신을 결박하여 괴롭게 할 수 있을지 내게 고하라, 하매 삼손이 그녀에게 이르되, 그들이 결코 말린 적이 없는 푸른 버드나무 가지 일곱 개로 나를 결박하면 내가 약하게 되어 다른 사람과 같게 되리라, 하므로 그때에 블레셋 사람들의 귀족들이 말린 적이 없는 푸른 버드나무 가지 일곱 개를 그녀에게 가져오매 그녀가 그것들로 그를 결박하였더라. 한편 사람들이 매복하여 그녀와 함께 방에 머물고 있었으므로 그녀가 그에게 이르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들이 당신을 덮치고 있느니라, 하니 그가 그 버드나무 가지들을 마치 삼실이 불에 닿아 끊어지는 것같이 끊었으므로 그의 힘이 알려지지 아니하니라. 들릴라가 삼손에게 이르되, 보라, 당신이 나를 희롱하여 내게 거짓말을 하였도다. 원하건대 무엇으로 당신을 결박할 수 있을지 이제 내게 고하라, 하니 그가 그녀에게 이르되, 그들이 결코 쓴 적이 없는 새 줄들로 나를 단단히 결박하면 내가 약하게 되어 다른 사람과 같게 되리라, 하므로 들릴라가 새 줄들을 취해 그것들로 그를 결박하고 그에게 이르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들이 당신을 덮치고 있느니라, 하였는데 그때에도 매복한 자들이 방에 머물고 있었더라. 그가 자기 팔에서 줄들을 실같이 끊으매 들릴라가 삼손에게 이르되, 당신이 지금까지 나를 희롱하여 내게 거짓말을 하였도다. 무엇으로 당신을 결박할 수 있을지 내게 말하라, 하니 그가 그녀에게 이르되, 그대가 짜서 만든 천으로 내 머리털 일곱 타래를 엮으면 그리할 수 있으리라, 하므로 그녀가 걸쇠로 그의 머리털을 단단히 묶고 그에게 이르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들이 당신을 덮치고 있느니라, 하니 그가 잠에서 깨어나 베틀 걸쇠와 짜서 만든 천을 가지고 가니라. 그녀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의 마음이 내게 있지 아니하면서 어찌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 할 수 있느냐? 당신이 이같이 세 번 나를 희롱하고 당신의 큰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도다, 하며 날마다 자기 말들로 그를 압박하고 그에게 조르므로 그의 혼이 괴롭게 되어 죽을 지경이 되었더라. 이에 그가 자기의 온 마음을 그녀에게 고하며 그녀에게 이르되, 내 머리에는 삭도를 대지 아니하였나니 나는 내 어머니 태에서부터 하나님께 바친 나사르 사람이었노라. 만일 내 머리를 밀면 내 힘이 내게서 떠나고 내가 약하게 되어 다른 사람과 같게 되리라, 하매 그가 자기의 온 마음을 자기에게 고하는 것을 들릴라가 보고는 사람을 보내어 블레셋 사람들의 귀족들을 부르며 이르되, 그가 내게 자기의 온 마음을 보여 주었으니 이제 한 번만 더 올라오라, 하므로 블레셋 사람들의 귀족들이 손에 돈을 가지고 그녀에게 올라오니라. 그녀가 그를 자기 무릎에 뉘어 잠들게 하고는 사람을 불러 그의 머리털 일곱 타래를 밀게 한 뒤 그를 괴롭히기 시작하였는데 그에게서 그의 힘이 떠났더라. 그녀가 이르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들이 당신을 덮치고 있느니라, 하니 그가 잠에서 깨며 말하기를, 내가 예전의 다른 때와 같이 나가서 내 몸을 흔들리라, 하였으나 그는 주께서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한편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붙잡아 그의 눈들을 뺀 뒤 그를 가자로 데리고 내려가 놋족쇄로 결박하고 그가 감옥 집에서 맷돌을 돌리게 하였으나 그들이 그의 머리를 민 뒤에 그의 머리털이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 그 형제님이 회중에게 브래넘 형제님을 소개합니다. “브래넘 형제님이십니다.”]
오늘 저녁 이곳에 와서, 이렇게 은혜로운 그리스도인 여러분께 말씀드릴 귀한 기회를 얻게 되어 참으로 기쁩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인사드립니다. 제가 이곳에서 보낸 며칠은 제 삶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날들에 속합니다. 오늘 아침 제가 잘못했던 일을 고백했을 때, 목회자들이 한 분 한 분, 실업인들이 한 분 한 분 뒤편에서 울며 저를 찾아왔습니다. 나가서 기도로 돌파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그런 모습이 좋습니다. 고백이 있는 한 부흥의 희망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기쁩니다. 어젯밤에는 우리의 훌륭한 로버츠 형제님이 그리스도인 실업인회에 직접 메시지를 전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저녁 짧게나마 교회에 말씀을 전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집회를 후원하는 목회자들이 많이 참석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향해 이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오늘 저녁 제 주제는 “삼손아, 네 힘은 어디로 갔느냐?”입니다.
다 같이 잠시 머리를 숙여 기도합시다. 사랑하는 하늘 아버지, 저희의 온 마음과 온 힘과 저희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다하여 주께 나아와 주의 은혜를 구합니다. 혹 저희가 행하거나 말한 것, 심지어 생각한 것 가운데 주를 기쁘시게 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주님, 이런 것들을 용서해 주시기를 구합니다. 저희는 참으로 언젠가 주께서 사랑하시는 아들, 주 예수님의 의로 옷 입고 주의 왕국에 받아들여질 준비가 되어 주 앞에 서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저희의 정신이 온전할 때에, 저희의 모든 죄에 대한 용서를 구합니다. 저희 삶에서 갑자기 부르심을 받아 회개할 시간이 없을 때가 올지도 모릅니다. 주님, 오늘 저녁 저희에게 말씀이 낭독되었으니, 성령께서 그 말씀을 취하여 저희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마음에 나누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이 대집회에도 계속 복을 내려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먼저 지금까지 전해진 말씀에 감사드리며, 간증과 설교로 마음의 진실함을 전한 고결하고 용감한 십자가의 군사들로 인해 감사드립니다. 이루어진 모든 일에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계속 역사해 주시기를 구합니다. 샤카리안 형제님과 그리스도인 실업인회 회원 모두, 이곳에 함께 모인 모든 목회자와 단체에 복을 내려 주옵소서. 이 대집회가 서부 해안에서 열린 가장 위대한 대집회 가운데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 앞으로 하루 이틀 안에 이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 캘리포니아주 전체를 일깨우고, 그들을 회개로 이끌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를 알게 하옵소서. 오늘 저녁 성령께서 저희에게 역사하시기를 더 기다리는 동안, 지금 저희 모두에게 복을 내려 주옵소서. 주의 아들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제게 삼손이라는 이 사람은 언제나 구약에서 유난히 두드러진 인물이었습니다. 제가 맨 처음 설교해 보려고 했던 주제가 “큰 용사 삼손”이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저는, 저는 힘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삼손에게는 힘이 있었습니다. 주님의 힘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가 선사 시대의 거인처럼 엄청나게 큰 사람이었다고는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이 성문들을 들어 언덕 위로 지고 올라가거나 맨손으로 사자를 죽이는 것을 본다고 해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는 삼손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땅꼬마,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사람이었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주의 영께서 그에게 임하시면, 거기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사람들은 그 자신의 힘으로는 그런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니 그것은 분명 주님의 힘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위대한 일을 이루시기 위해 단순한 것들을 쓰십니다. 그저 평범한 것들입니다… 때로 우리는 뭔가 큰 것을 찾느라, 하나님께서 쓰시려는 바로 그 참된 것을 그냥 지나쳐 버립니다.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삼손과 들릴라의 모습은 교회와 아주 닮았습니다. 오늘 저녁 저는 그들을 그렇게 비유하고 싶습니다. 삼손은 주님을 따르는 동안에는 위대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동안에는 하나님께서 그를 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에도 똑같이 하셨습니다. 교회가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동안에는 하나님께서 교회를 쓰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삼손처럼 교회가 곁길로 벗어나면,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그 교회를 쓰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무언가를 찾아 일하셔야 합니다. 교회든 단체든 개인이든, 그분의 명령 안에서 신실하게 걸을 때에만 쓰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삼손은 참 잘해 나갔습니다. 출발이 좋았습니다. 한눈을 팔기 전까지는 잘해 나갔습니다. 그런데 한눈을 팔기 시작하자 곤경에 빠졌습니다. 그것이 타락으로 향한 첫걸음이었습니다. 오늘 저녁 저는 교회도 믿지 않는 자에게 한눈을 팔기 시작할 때, 그것이 타락으로 향한 첫걸음이라고 믿습니다. 이 블레셋 여인은 믿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삼손은 그 여인의 아름다움에 끌렸습니다. 교회도 세상에 한눈을 팔고 세상을 본뜨려 하기 시작하면서, 그와 같이 매혹된 경우가 아주 많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삼손은 나쁜 무리와 어울리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나쁜 무리와 어울리고 있다면 주님의 뜻을 벗어나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하십시오. 남부 출신이신 제 어머니는 제게 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벼룩 있는 개와 함께 누우면, 일어날 때는 너한테도 벼룩이 붙어 있는 법이다.” 좀 거친 표현이지만, 일상의 상식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세상 것들과 어울리면서도 주님 앞에서 영적이고 겸손한 상태를 유지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과 어울리는지를 보면 여러분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옛말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네가 어울리는 사람들을 보여 다오. 그러면 네가 누구인지 말해 주겠다.” 교회가 세상과 어울리기 시작하면, 세상과 다를 것이 없어집니다. 삼손처럼 한눈을 팔기 시작할 때 성령과의 교제를 떠나고, 하나님과 천사들과 하나님의 상속 백성과 함께하는 자리에서 벗어납니다.
교회가 한눈을 팔기 시작한 것은 세상이 주는 성공을 바라보며 세상 것을 본뜨려 하기 시작했을 때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세상과 보조를 맞추라고 정하신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만큼 영리하거나 똑똑했던 적이 없습니다. 성경에도 이 세상 왕국의 자녀들의 왕국이… 왕국의 자녀들보다 더 영리하다고 기록되어 있는 줄 압니다. 그들이 더 영리합니다. 가인과 아벨 때부터 그랬습니다.
이제 우리는 성령과 교제하던 옛 길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한눈을 팔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기 시작한 일 한 가지는, 초기에 하나님께서 교회를 쓰시기 시작하셨을 때, 그들이 처음으로 한 일이 가톨릭교회라는 교회를 조직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최초의 조직이었습니다. 저는 조직 자체를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 조직이 경계를 넓혀 다른 조직과 만난다면 말입니다. 그러나 자기 경계 안에만 갇혀 교제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잘못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세상을 본뜨려고 하기 시작했습니다. 가톨릭교회가 조직되었을 때, 마귀는 교회를 결박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들이 당신을 덮치고 있느니라” 하는 도전의 외침이 들렸을 때, 마르틴 루터라는 사람이 일어나 모든 줄을 끊고 나와 의롭게 됨을 선포했습니다. 음. 그러자 마귀는 그것이 교회의 감추어진 권능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들릴라의 목적은 그의 힘을 찾아내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힘을 알아내면, 바로 거기서 그를 무너뜨릴 수 있었습니다. 마귀도 교회에 그와 같이 하려고 합니다. 그 권능의 비밀을 찾아내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마르틴 루터를 일으키셨을 때 가톨릭의 줄들이 끊어졌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그를 다시 결박했습니다. 세상이 그를 루터교회 안에 묶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블레셋 사람들이 당신을 덮치고 있느니라” 하는 비명이 들렸을 때, 존 웨슬리가 일어나 성화, 곧 은혜의 두 번째 역사를 전했습니다. 그러자 그 줄이 끊어졌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묶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메시지가 들려왔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나를… 당신을 덮치고 있느니라.” 그러자 오순절 무리가 일어났습니다. 그것이 결박의… 교단의 장벽 등에 얽어매던 끈들을 끊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그들도 거의 다 묶여 있는 모습을 봅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사실입니다. 지금 우리는 세상이 다른 교회들을 묶어 놓았던 바로 그것이 오순절교회도 묶어 놓고 있는 것을 봅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우리가 처음으로 하려 했던 일은 다른 사람들처럼 거창하게 과시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설교자들, 우리의 목사들, 우리의 목자들을 데려다가 신학박사로 만들려 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신학박사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성령 침례가 필요합니다…?… 우리 가운데 그런 것들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런 것으로 교회를 묶으려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그들이 하려는 일은 교회의 겸손함, 그 낮아진 마음에서 벗어나, 더 잘 차려입는 사람들, 더 많이 배운 사람들을 교회 안에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목회자들을 데려다가 어느 신학교로 보내 많은 학문을 배우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교회에서 성령의 권능을 빼앗고 교회를 결박할 뿐입니다. 정확히 그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을 봅니다. 여러분께 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어떤 분은 말합니다. “우리 목사님은 전에는… 예전에는 하나님을 위해 불타는 설교자가 우리에게 있었는데…” 오늘날 그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 되기보다 신학교의 부름을 받습니다. 돈 때문에, 먹고살기 위해, 또는 대단한 사람이 되기 위해 그 길에 들어섭니다. 참으로 우리 주님과 얼마나 다릅니까. 주님께서는 이 땅에 오셨을 때 우리 모두의 본이 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섬기는 주님이셨습니다. 있을 수 있는 가장 낮은 일을 맡으셨습니다. 발을 씻겨 주는 하인이 되어 종이 되셨습니다… 하늘의 하나님이셨으면서도 종이 되셨습니다. 가장 낮은 자 가운데서도 가장 낮은 자가 되셨습니다. 오늘날은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조금 복을 주시고 좋은 교회를 맡겨 주시면, 그 사람은 섬김을 받으려 하지 않고는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영적으로 병들었다는 표시입니다. 예수님께서 섬겨 주신 사람들은 약한 사람들뿐이었습니다. 랍비, 박사, 존귀한 목사라는 호칭을 바라는 사람들… 아, 그 이기적이고 경건하지 못하고 마귀적인 호칭들… 우리는 형제들이며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것을 원합니다. 집회 같은 데 올 때에도 가슴을 잔뜩 내밀고 거들먹거리며 들어옵니다. 그러면 그런 사람들에게 최고의 예우를 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서로에게서 받는 존경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제가 어떤 존경을 바란다면, 참된 존귀를 주시는 하나님께로부터 받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이 서로에게서 존귀를 구한다면 어떻게 믿음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수확물에서 가장 좋은 진액을 빼내는 것과 같습니다. 교회의 감추어진 권능을 빼앗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서 그것을 고갈시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처럼 행동하려고 합니다.
저는 이런 것들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니, 담배 회사들과 담배, 그리고… 코카콜라와 다른 회사들, 맥주 회사들이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차지하고 크게 확장해 나갔습니다. 그러자 우리도 재빨리 그 자리를 차지하려 합니다. 자, 그것이… 저는 그것을 반대하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은 세상과 경쟁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여기 있습니다. 호텐토트인이 이집트 기사에 대해 아는 것만큼도 하나님에 대해 모르는 지식인들이 한 무리 모여 앉아 있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으로 다시 태어나, 하나님을 자기 구원자로 알고, 성령께 자신을 내어 드릴 줄 아는 사람입니다.
오늘날 교회 전체가 아주 위태로운 형편에 놓여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이 삶에 있는 목회자들을 데려다가 어디론가 보냅니다. 시신을 방부 처리하는 곳 같은 데로 보내, 일종의 방부액을 잔뜩 주입합니다. 그리하여 나가서 말씀을 전하고 사람들을 성경과 성령을 믿는 믿음으로 이끄는 대신, 여러 신조와 심리학을 배워 사람들에게 가르치게 합니다. 그들을 처음보다 하나님에게서 더 멀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교육 프로그램이 우리를 데려다 놓은 곳이 정확히 거기입니다…?… 교육으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과학으로도 알 수 없습니다.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그분을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렇지만… 하나님은 오직 믿음으로만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는 지식의 나무가 있었고, 사람은 완전히 그 지식의 나무에 매달려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지식의 나무 밑에서 살며 그 나무에서 떨어지는 열매를 먹는 동안에는 생명나무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입니다. 동시에 두 곳에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지성의 거인들과 위대한 철학자들을 만들어 냅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런 철학자들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들은 다시 태어난 겸손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것을 보면, 각 교단이 조금 더 지적인 사람들을 교회 안에 끌어들이려고 목회자들에게 조금 더 높은 수준의 교육을 시키려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이제 오순절 사람들도 가장 훌륭한 건물을 짓습니다. 그중에는 수백만 달러를 들여 지으면서 주님께서 곧 오신다고 설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런데도 그들은 세상이 그렇게 하고, 다른 교회들도 그렇게 한다는 이유로 그렇게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하든 우리에게는 상관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올바로 사십시오. 그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나 에덴동산에서 마귀는 사람의 머리를 택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택하셨습니다. 이제 마귀는 지적인 영역으로 들어와 자기 종교를 지적인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여러분은 지적으로는 결코 하나님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새 출생, 곧 다시 태어남으로 그분을 알아야 합니다. 인생의 자랑, 육신의 정욕, 눈으로 볼 수 있는 것… 그러나 하나님께서 들어오시면 사람의 마음에 들어가셔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믿음으로 믿게 하십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그것을 뒤바꾸어 놓았을 뿐입니다. 그리고 오순절교회에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저는 해마다 그들이 다른 교회들을 무너뜨리고 결박했던 바로 그 상태로 빠져드는 것을 봅니다. 정확히 사실입니다. 지식, 지식, 우리가 구하는 것은 온통 지혜입니다. 지식을 더 얻을수록 말을 더 잘하고, 더 높은 학문을 활용하며, 심리학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동안 사람들을 하나님의 거룩한 성경에서 떼어 놓고 있습니다. 생명과 믿음에서 떼어 놓고 있습니다.
얼마 전 이곳 로스앤젤레스에서 읽었던 작은 책이 생각납니다. 여러분… 신성모독적인 뜻으로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제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거기에는 상식에 맞는 이야기가 좀 있었습니다. 아니, 유머라고 해야겠군요. 대략 이런 이야기였습니다. 어떤 닭장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눈이 초롱초롱한 작은 수탉 한 마리가 상자 위로 뛰어올라 작은 부리로 상자를 네댓 번 쪼더니 말했습니다. “이 닭장의 신사 숙녀 여러분, 오늘 아침 여러분께 강연을 하고 싶습니다. 저는, 저는 많은 지식을 얻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이곳을 가장 잘 운영할 수 있는지 말입니다. 어떻게 해야 아름다운 깃털을 기를 수 있는지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자 작은 볏을 늘어뜨린 어린 암탉들이 모두 꼬꼬댁거리며 말했습니다. “정말 귀엽지 않아요?” 그것을 보면 이 신학교 출신의 풋내기 설교자들 중 몇 사람이 생각납니다. 그러더니 그 수탉은 계속 말했습니다. “아름다운 깃털이 자라게 하려면 어떤 비타민을 먹어야 하는지 저는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또 여기 우리 보금자리를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그 작은 수탉이 한창 연설하는데, 깃털이 별로 없는 작은 수탉 하나가 닭장 밖에서 달려왔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잠깐만, 젊은이.” 그리고 말했습니다. “방금 최신 속보를 들었네. 닭 값이 파운드당 4센트 올랐고, 내일 우리는 모두 도살장으로 간다네.” 그러니 여러분의 지식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언젠가 작은 카나리아 한 마리가 횃대에 앉아 말했습니다. “우리의 이 작은 교단에서 나는 가장 똑똑한 카나리아 가운데 하나야. 나는 지식을 아주 많이 얻어서 인간에 대해 다 알고 있어. 인간들이 우리보다 우월하다고들 하지만, 나는 다 알고 있어.” 바로 그때 퍼듀 대학의 교수가 다가와 말했습니다. “이 하찮은 작은 녀석아…” 그러고는 대단한 말들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카나리아는 눈을 깜박거리며 쳐다보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습니다. 교수는 작은 카나리아에게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카나리아가 보지 못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눈이 있었습니다. 듣지 못해서 그런 것도 아니었습니다. 귀가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이해하지 못한 까닭은, 카나리아의 뇌를 가지고 있어서 인간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 신학교의 가르침과 지식 가운데 많은 것이 꼭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너무나 카나리아의 뇌와 같습니다. 지식으로는 하나님의 신비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성령께서 계시하고자 하실 때 성령에 의해서만 계시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는 카나리아의 뇌로 하는 설교가 너무나 많습니다. 자신들이 안다는 이야기를 늘어놓지만, 알고 보면 아무것도 모릅니다. 우리의 이 작은 유한한 생각이 어떻게 전능하신 하나님의 무한하신 생각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우리가 그렇게 스스로를 낮은 수준에 가두어 무리 짓는지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이런 일을 하고 사람들을 조직하며, 특정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러 가기 위해 이런 모임들을 일찍 끝내는 이유는, 제게 한 가지 뜻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모르며 새 출생을 다른 무언가로 대신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피해 가는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이 새 출생을 가르친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악수나 그 밖의 온갖 것으로 새 출생을 대신해 놓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결코 새 출생을 대신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체험이어야 합니다.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출생이든 어수선하고 지저분하다는 것을 모두 압니다. 아기가 태어날 때는, 마룻바닥에서든, 옥수수 껍질 더미 속에서든, 분홍색으로 꾸민 병실에서든, 어수선하고 지저분합니다. 그러나 생명을 낳습니다. 새 출생도 그렇습니다. 어수선하고 지저분하지만 생명을 낳습니다. 격식을 갖추거나 꾸미는 일도, 신조를 선언하는 일도 아닙니다. 그것은 성령 침례입니다. 참으로 믿는 교회의 비밀은 그것입니다.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아, 여러분이 울고 엉엉 흐느끼며, 소리를 지르고 침까지 흘리며 제단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그것이 생명을 낳습니다. 여러분에게서 빳빳함을 빼냅니다. 마땅히 되어야 할 사람으로 만듭니다. 여러분 안에서 세상의 모든 것과 고집스러운 태도를 없애 줍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그저 걸어 나와 “예수님을 제 개인의 구원자로 받아들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런 것은 결코 새 출생을 대신하지 못합니다. 남자들과 여자들이 제단으로 나와, 정말로 자신에 대해 죽고 다시 태어날 때까지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주변에 누가 있는지도 잊어버리는 그런 새 출생 말입니다. 밤샘 기도회와 성령의 권능이 교회 안에 다시 돌아와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옛날 사도 바울 때와 같은 참된 부흥입니다. 또 성경의 성령을 다시 권능 가운데 전하되, 부활의 권능 안에 있는 단순한 설교로 전하는 것입니다. 위대한 사도 바울은 말했습니다. “나는 너희의, 너희의 믿음이 사람의 지혜 위에 세워지도록 지혜의 말로 너희에게 나아오지 아니하고, 너희 믿음이 성령 위에 세워지도록 성령의 권능을 전하며 나아왔노라.” 오늘날 교회에는 그것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다른 것들로 대신하고, 품위를 따지며 빳빳하고 굳어질 때, 바로 그 비밀을 잃고 있는 것이며 우리의 머리털이 밀리고 있는 것입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아, 들릴라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았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정확히 알았습니다. 요전 날, 지난 토요일에 아내와 저는 먹을 것을 사러 식료품점에 가고 있었습니다. 이 문제를 자꾸 되풀이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이 일 때문에 제가 악명이 높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잘못은 잘못입니다. 일이 잘못되어 있는데 어떻게 입을 다물고 있을 수 있습니까? 오늘날 교회의 문제는 너무 나약해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약한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작은 도시에서 가는 길에, 아마 여자들을 적어도 이백 명은 지나쳤을 텐데, 치마를 입은 사람은 한 명 보았습니다. 나머지는 여자들이 입고 다니는 그 짧고 부도덕한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아내가 제게 말했습니다. “빌리, 저 여자가 자기가 벌거벗고 있다는 걸 모른다는 말이에요? 모른다면 제정신이 아닌 거예요. 미친 거죠.” 맞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여보, 아니에요. 그저 미국 사람인 거예요. 미국의 관습을 따르고 있을 뿐이에요.” 아내가 말했습니다. “하지만 좀 봐요. 저 여자가 자기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말이에요…” 저는 말했습니다. “아니에요, 몰라요. 그저 미국의 영이 그 여자 위에 있는 거예요.” 그리고 말했습니다. “내가 핀란드에 있었을 때, 그들이 나를 그런 곳 가운데 한 곳으로 데려갔어요…” 여기 핀란드 분이 앉아 계시다면, 제가 이 단어를 제대로 발음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사운다. 목욕탕, 핀란드식 목욕탕입니다. 제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 성령께서 안으로 들어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알고 보니, 그 안에 남자들의 몸을 씻겨 주는 여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뮤니언 박사에게 물었습니다. “이것이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는 말했습니다. “미국 의사들이 여자들을 진찰대에 눕혀 옷을 벗기고 진찰하는 것이 옳은 만큼 옳습니다.” 그러니 보십시오. “암거위에게 맞는 소스는 수거위에게도 맞는 법입니다.” 아시겠습니까? 냄비가 주전자더러 검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프랑스에 가면 남자와 여자 모두 같은 화장실을 씁니다. 아프리카의 깊은 밀림 지역으로 가면 옷을 전혀 입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보십시오. 그것은 그 나라의 관습입니다. 아내가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미국 사람이 아니에요?” 저는 말했습니다. “아니에요. 우리는 다른 나라에서 왔어요. 우리는 여기서 순례자요 나그네예요. 우리는 다가올 도시를 찾고 있어요.” 또 말했습니다. “우리는…에서 태어났기 때문이에요. 우리의 영은 다른 나라, 거룩함과 하나님과 의가 다스리고 통치하는 천국에서 와요.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순례자요 나그네라고 고백해요. 우리는 건축자와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신, 다가올 도시를 찾고 있어요.”
우리는 이런 세상 것들을 찾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께서 사람 안에 들어오시면 그 사람을 변화시키십니다. 여러분을 움직이십니다… 여러분 안에 있는 생명이 여러분을 움직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문제는 너무 세상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람 안에, 그 마음 안에 계시는 성령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새 출생이 있어야 합니다. 그 사람을 변화시켜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는 것입니다. 아프리카의 깊은 오지에서 저는 여자들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처럼 완전히 벌거벗고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그들에게 임하시자, 벌거벗은 몸을 가리려고 두 팔로 몸을 감싸고, 옷을 찾을 때까지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문명인이라고들 하면서, 우리는 해마다 옷을 더 벗어 버리고도 성령을 받았다고 주장합니다. 성령께서는 한 사람에게는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는 저렇게 역사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드리겠습니다. 미국이든 핀란드든 프랑스든 어디서든, 여자나 남자가 하나님의 왕국에서 태어나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세상의 일을 그칩니다. 그런 것들은 그 사람에게 죽은 것이 됩니다. 그 사람은 죽었고, 그의 생명은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성령으로 봉인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부흥입니다. 우리를 흔들어 깨우는 일, 옛날과 같은 오순절 부흥입니다. 하나님의 영을 슬프게 하여 우리에게서 떠나시게 한 채 이 커다란 시체 안치소들 안에 사느니, 길모퉁이에서 탬버린을 두드리는 편이 훨씬 나을 것입니다. 마귀는 훔치고 빼앗으려고 옵니다. 마귀가 할 줄 아는 일은 그것뿐입니다.
왕들이… 이스라엘이 처음 타락하기 시작했을 때, 무엇 때문에 그렇게 되었습니까? 그들이 이집트에서 나왔을 때에는 하늘의 왕께서 그들을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왕이셨습니다. 그것이 그들의 권능의 비밀이었습니다. 그들의 성공의 비밀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왕이셨다는 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착한 뒤에는 어떻게 했습니까? 그것은 모형으로 보여 준 오순절교회였습니다. 오래전 하나님께서 왕이셨을 때, 우리가 집회에 들어가 하나님의 권능이 임하면 우리는 외쳤고, 뛰었으며, 우리는, 우리는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감리교인들이 어떻게 하는지, 침례교인들이 어떻게 하는지, 장로교인들이 어떻게 하는지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감리교인도 침례교인도 장로교인도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으로 태어난 오순절 사람들입니다. 그런 것들로 우리를 절대 묶지 마십시오. 그러나 세상은 여러분의 비밀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기 시작했습니다. 무엇이 저 권능을 일으키는가? 이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들은 그것을 알아내며, 기적의 시대는 지나갔다고 말하려 합니다. “신유 같은 것은 없다. 이렇게 외치고 주님을 찬양하는 것, 이 모든 표적과 이적은 옳지 않다.” 그들이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그들은 다시 태어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성경은 그분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며, 그분의 권능도 동일하다고 말씀합니다. 그들이 제게 그런 말을 하러 온 것은 너무 늦었습니다. 저는 체험했고, 제가 무엇을 말하는지 압니다. 그분께서는 여전히 하나님이시고 언제나 하나님이실 것입니다. 오순절 날에 하나님이셨던 것과 똑같이 오늘 저녁 바로 이 건물 안에서도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게는 같은 복, 같은 것이 있습니다. 그분께서 사람들을 같은 상태로 이끄실 수 있다면, 매번 같은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환경입니다. 여러분의 환경입니다. 달걀을 가져다가 부화기 안에 넣으면, 똑같이 병아리가 깨어납니다. 왜 그렇습니까? 달걀을 부화시키는 것은 환경이기 때문입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침례교인이든 장로교인이든 가톨릭교인이든 루터교인이든, 그 생명의 씨눈, 곧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올바른 환경 안에서… 그들은 교회가 무슨 말을 하든 개의치 않습니다. 세상이 무슨 말을 하든 개의치 않습니다. 그들은 그것이 살아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순절 날에 하셨던 것처럼, 틀림없이 나아가 그 사람 위에 성령을 부어 주실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끼리 조직을 만들고, 서로에게서 떨어져 나가며, 권능을 부인하고, 그 밖에 그런 일을 해서는 결코 그것을 이룰 수 없습니다. 결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그리스도인 실업인회를 좋아합니다. 여기에 오면 아직 영이 살아 있습니다. 자, 저는, 저는… 그들은 자유롭습니다. 모두 함께 모여, 말하자면 서로의 껌까지 나누어 씹습니다. 그들은, 그들은 참으로 교제하는 모임입니다. 그들은 참으로 서로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세상 것들이나 유행에는 마음을 쓰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함께 모이는 일입니다. 거기서 벗어나십시오. 마귀가 여러분에게서 그 성령의 권능을 빼앗아 가지 못하게 하십시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그것이 교회의 생명입니다. 그것을 빼내면 친목 단체가 됩니다. 교회에서 영을 빼내면 친목 단체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친목 단체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은 친목 단체를 원하는 사람들의 몫입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충만하고 그리스도께서 왕이신 교회를 원합니다. 저는 지금 경건한 감흥을 느낍니다.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런 교회를 갖게 되실 것입니다. 다시 태어나고, 충만하며, 피로 씻김 받고, 영으로 충만하여 모든 정죄함이 사라진 교회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들은 육신을 따라 걷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 걷느니라.”
어떻게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갑니까? 한 성령에 의해 우리 모두가 침례를 받아 한 몸 안으로 들어갑니다. 성령에 의해서입니다. 거기에 비밀이 있습니다. 마귀가 그것을 알아챘습니다. 어떻게 들어와 여러분에게서 빼앗을지, 여러분 안에 있는 그것을 빼낼지 정확히 압니다. 조직을 만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말합니다. “우리는 저 무리와 다릅니다. 우리에게는 더 나은 설교자들이 있습니다.” 신학교에서 태어나 비타민을 먹고 자란 이 작은 신학교 수탉아, 네가 프라이팬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기나 하느냐?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울어 대느냐? 아시겠습니까? 오늘날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참된 옛날식 성령 침례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생을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분께서는 그때와 똑같이 오늘도 살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쁜 깃털과 지성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여기 어린 암탉들을 온통 잘 차려입혀 놓고 그런 일들을 하지만, 여러분이 프라이팬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그것이 여러분에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 모든 지성이 결국 무엇을 이루겠습니까?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것들에서 벗어나 성령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능으로 돌아가고, 옛날과 같은 집회로 돌아가고, 밤샘 기도회로 돌아가, 기도하며 자신에 대해 죽을 때까지 머무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것입니다. 들릴라, 곧 세상이 오순절교회의 비밀을 알아냈습니다. “이 교회가 품위를 따지게 하고, 아주 큰 교회 건물들과 훌륭한 교양을 갖춘 설교자들을 주기만 하면, 오래지 않아 완전히 묶어 놓을 수 있을 거야.” 그리고 거의 그렇게 해 놓았습니다. 맞습니다. 마귀가 그렇게 했습니다.
아, 이스라엘이 정착했을 때… 이동하고 있을 때는 괜찮았습니다. 계속 나아가고 있는 동안에는 괜찮았지만, 팔레스타인에 들어가 정착하자 행동하기… 블레셋 사람들과 이방 세상처럼 행동하고 싶어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왕을 원했습니다. 사울을 자기들의 왕으로 받아들였을 때,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왕이심을 부인한 것입니다. 우리도 성령 대신 교단의 장벽과 악수와 격식을 갖춘 것들을 받아들일 때, 우리의 왕이신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마침내 그들을 아합에게로, 완전한 타락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래서 참된 왕께서 오셨을 때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한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들은 성령을 받아들이는 대신, 이 모든 다른 철학과 교리와 심리학과 온갖 것을 받아들였습니다. 이제 왕께서 교회 가운데 계시는데, 그들은 그것을 모릅니다. 그들은 그분을 거절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을 거절했던 것과 정확히 똑같이, 교회가 오늘날 그분을 거절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땅의 왕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교회를 목양할 사람으로 하나님을 아는 사람 대신 학력 있는 설교자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저는 제 가족이 온갖 교육을 받은 설교자들의 말을 들으러 가는 것보다, 알파벳도 모르지만 그리스도를 아는 설교자의 말을 들으러 가는 편이 낫겠습니다. 교육은 학교에 가서 받으면 됩니다. 그러나 교회는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곳이 아닙니다. 성령의 권능과 그것을 나타내 보이는 일을 위한 곳입니다. 오늘 저녁 교회에 필요한 것은 그것입니다. 맞습니다. 그런 것들에서 벗어나십시오. 그러나, 아, 들릴라가, 어느새… 삼손은 애초에 멈추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들릴라가 그에게 눈짓했을 때, 고개를 돌리고 계속 걸어갔어야 했습니다. 이브는 잠깐 멈추었다가 곤경에 빠졌습니다. 삼손도 잠깐 멈추었다가 곤경에 빠졌습니다. 세상이 교회나 개인에게 무언가를 제시할 때, 멈추지 마십시오. 계속 나아가십시오. 오늘 저녁 교회에 필요한 것은 이런 지적이고 격식을 차리는 자부심 때문에 멈추지 않고, 성령 안에서 계속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저 계속 밀고 나아가십시오. 계속 나아가십시오…?…
우리가 “우리 교단이 가장 큽니다”라고 말해도, 그것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아, 시장님이 우리 교회에 나오십니다.” 그래도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누가 오든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 모시고 싶은 분은 그분이십니다. 길모퉁이의 작은 전도처이든 궁전이든, 그리스도께서 계시는 곳이라면 어디든 교회의 집, 성도들의 집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들릴라는 정말로 여러 수를 써야 했습니다. 삼손을 멈춰 세워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그녀는 그가 하나님의 큰 용사이며 감추어진 힘을 가졌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를 멈춰 세우려고 온갖 유혹의 수단을 써야 했습니다. 세상이 교회에 한 일이 그것입니다. 온갖 수를 썼습니다. 이것을 할 수도 있고, 여기서 더 나아질 수도 있고… 이것저것 온갖 것을 할 수 있다고 하다가, 마침내 교회가 거의 죽은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우리에게는 예전에 하던 집회가 없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이야기합니다. 빌리 그레이엄과 오럴 로버츠 형제님과 저, 우리 모두가 우리 시대의 부흥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교회가 세상에 묶여 있는 한, 어떻게 부흥을 맞을 수 있겠습니까? 삼손이 묶여 있는데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비밀이 알려졌고 하나님께서 그의 권능을 밀어 버리셨습니다. 더 이상… 이제 사람들이 그런 지경에… 이 부화기 출신 설교자들이 우리를 너무나 완고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정직한 사람들조차 기도로 승리에 이를 때까지 매달리는 선한 옛 성도를 조롱합니다. 누군가가 외치거나 방언을 하거나 성령의 어떤 권능을 나타내는 것을 들으면,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그 사람들을 조롱합니다. 무엇이 잘못되었습니까? 그것은… 그 모든 것이 한 일이라고는 권능을 밀어 버린 것뿐입니다.
루터 시대에 일어난 일이 그것입니다. 루터는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학파가 들어왔습니다. 그것이 루터가 말했던 것들을 밀어 버리기 시작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밀어 버리는 것입니다… 웨슬리 시대에도 똑같았습니다. 신유와 여러 기적 등이 있었고, 성화를 전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무리들이 들어오자, 그것을 밀어 버리기 시작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머리털 타래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이 마지막 날들에 오순절교회 안에 계시는 성령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머리털 타래를 밀어 버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비밀, 그것이 있는 곳을 찾아내어 기도회를 중단시키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오순절교회가 있습니다. 이곳에 온 뒤 그 교회에 다니는 분과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오순절교회는 수요일 저녁에 어떤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려고 15분 일찍 마칩니다. 모두 지하실로 내려가 어떤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봅니다.
요전 날 한 목회자가 제게 말했습니다. 어떤 분과 저녁을 먹으러 갔는데, 저녁 준비를 하는 동안 그 목사의 아내가 “우리는 수지를 사랑해요”인가 하는 것을 보러 가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저녁을 해 주기도 전에 말입니다. 형제님, 말씀드립니다. 그런 일이 생긴다는 것은 가정생활이… 그러니 청소년 범죄가 있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 비밀이 드러난 것도 당연합니다. 그것이 사람들에게서 성령 침례를 빼앗아 갔습니다. 그들은, 그들은 하나님께 돌아오는 대신 세상 것들을 좇고 있습니다. 멈추십시오. 보십시오. 들으십시오. 주님의 오심이 가까이 있습니다. 우리의 지식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우리의 큰 건물들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리의 지적인 말들이 무엇을 하겠습니까? 필요한 것은… 그날에 버티어 설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뿐입니다. 그분의 피로 씻김 받고 성령 침례로 그분의 의를 입어야 합니다. 교회가 그것을 잃으면 끝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것이 질식해 가는 것을 봅니다. 유혹하고, 말을 걸고… 우리의 신조와 교단과 종파의 장벽과 품격과 화려한 것들이 성령을 슬프게 합니다. 그 모든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것임을 아십니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깨끗이 씻긴 참된 교회입니다. 참으로 깨끗하고, 백 퍼센트 하나님을 위해 나서며, 부끄러워하거나 주저하지 않고 전적으로 나서는 교회입니다. 세상이 무슨 말을 하든 우리는 개의치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계시고, 우리가 마음 쓰는 것은 오직 그분뿐입니다. 그분께서는 우리 마음 안에 계시며, 우리는 영과 진리로 그분을 경배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교회에 원하시는 것은 그것입니다.
들릴라는 이것저것 또 다른 것을 보여 주며 애를 썼고, 마침내 삼손은 그녀에게 넘어갔습니다. 교회도 세상 것들에 넘어갔습니다. 그러다 어느새 교회 안에서 신유가 거의 사라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저는 집회에 갑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제게 주신 작은 은사, 그분의 부활의 증거와 영의 분별이라는 그 은사를 통해… 그런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저는 오순절 사람들이 앉아서 “아, 괜찮은 것 같군…”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성령의 권능이 그렇게 역사하는 곳에서, 다시 태어난 그리스도인이 세상 것들 때문에 그토록 죽은 상태가 되어 그렇게 앉아 있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죄인들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으려고 제단으로 나아가기 시작해도, 그리스도인들은 앉아서 껌을 딱딱 터뜨리며 바라봅니다. 사실입니다. 예전에는 제가 나왔던 침례교회, 저 아래 옛 켄터키 침례교인들 가운데서는… 죄인인 청년 하나가 제단으로 나아가기 시작하면, 그곳의 어머니들이 모두 그의 목을 끌어안았습니다. 그는 제단에 닿기도 전에 구원을 얻곤 했습니다. 무엇이 잘못되었습니까? 그들은 그 비밀을 밀어 버렸습니다. 기도생활에서 떠났고, 성령에게서 떠났습니다.
울어 대는 수탉들, 카나리아의 뇌를 가진 배운 카나리아들이 하나님의 모든 사정을 여러분에게 설명하려 합니다. 그런 식으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다시 태어날 때 그분을 압니다. 그분을 알 수 있는 길은 오직 그것뿐입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하나님이십니다. 그 어느 때와도 똑같이 오늘도 하나님이십니다. 엘리야와 함께 산 위에 계셨던 하나님이십니다. 다니엘과 함께 굴 안에 계셨던 하나님이십니다. 똑같이… 그분께서는 오순절의 하나님이십니다. 교회 안에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녁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의 모든 품격과 화려한 것들을 떠나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성령께 돌아가십시오. 어젯밤 여기서 했던 것 같은 밤샘 기도회로 돌아가십시오.
이 말이 아프게 찌른다는 것을 압니다. 가혹합니다. 저는 이렇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성도들이… 오순절 성도들이 내는 돈이 제 아이들을 먹입니다. 오순절 성도들이 내는 돈으로 제가 세계를 다니며 이교도들에게 전할 수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을 꾸짖고 이렇게 행동합니다. 저는, 저는 세상이 들어오는 것을 봅니다. 저는 열심이 있습니다. 제 아내가 다른 남자에게 눈길을 주는 것을 보면, 제가 즉시 나서서 아내를 꾸짖는 모습을 보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세상에 눈길을 주기 시작하는 것을 보면, 제 안에서 무언가가 치밀어 오릅니다.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습니다. 무슨 말이든 해야 합니다. 저를 무엇이라고 부르셔도 좋습니다. 저는 그저 그것을 털어놓아야 합니다. 저는, 저는 교회를 두고 질투합니다. 교회가 세상에 얽히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가 결코 세상에 얽히지 않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틴 팬 앨리에서 경배해야 하더라도 교회가 자유롭게 있게 하십시오. 영 안에서 자유롭기만 하다면, 그대로 두십시오. 교회에는 신학교도 묘지도, 거기에 딸린 그 무엇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필요한 것은 성령 침례와 새롭게 됨입니다. 다윗은 말했습니다. “내 구원을 새롭게 하소서. 내 구원의 기쁨을 회복시켜 주소서.” 교회는 그것을 잃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래도 계속 그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도 더 이상 교회를 흔들어 깨우지 못합니다. 그들에게 그저 너무 흔한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들은 가서 “그래, 꽤 괜찮군. 응” 하고는 떠나갑니다. 아, 그것은 우리를 무릎 꿇게 하고 회개하게 해야 합니다. 눈물을 흘리게 해야 합니다. 구원을, 또는… 그리고 혼들을 구원하는 일을 가져와야 합니다. 그것은… 주님의 오심이 우리를 너무나 강하게 재촉하여, 우리가 길모퉁이마다 서서 누군가에게 전하려 애쓰게 해야 합니다. 무슨 일이든 하십시오. 조금 있으면 그렇게 하기에는 너무 늦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한 가지 희망은, 그때… 저는, 저는 이 말씀을 드리고 마치겠습니다. 우리에게 한 가지 희망이 있습니다. 그들이 삼손을 묶어 둔 동안, 새 머리털 한 다발이 자라났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여기 어딘가에서 새로운 머리털 한 다발을 자라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그것이 블레셋 사람들을 이전에 겪어 보지 못한 만큼 뒤흔들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마련하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교회들을 통해 그렇게 하지 않으신다면, 그리스도인 실업인 한 사람을 쓰실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어떤 식으로든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권능의 머리털 한 다발, 성령의 감추어진 권능이 틀림없이 다시 자라날 것이며, 마지막 날들에 그 일을 해낼 것입니다. 그것이 자라날 때 우리 모두가 그 머리털 다발에 속하게 되기를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기도하기 전에, 머리를 숙이고 계신 여러분께, 여러분의 형제로서, 여러분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이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여러분을 찾아와 등을 토닥여 드리려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는지 확실히 하기 위해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예전에 가졌던 체험을 다시 얻고, 성령 안에서 새롭게 되기를 바라며 “브래넘 형제님, 하나님께서 제 힘을 새롭게 해 주시도록 지금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라고 하실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복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사방에 들린 손들을 보십시오. “하나님, 제 힘을 새롭게 해 주십시오.” 아, 얼마나 놀랍습니까. “저를 갈보리로 다시 데려가 주십시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리게 해 주십시오. 모든 것을 버리고 주께 굳게 붙게 해 주십시오.” “모든 것을 버리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려 하지 않는 자는…” 이것은 희생의 길입니다. 세상을 본뜨지 않는 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본이십니다. 날마다 죽고 예수님을 따라 걸으십시오. 아, 저의 소중한 친구여, 그분께서 여러분에게 그렇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아… 지금 머리를 숙이실 때,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생각에 간직하십시오. 이렇게 말씀드리십시오. “하나님, 저를 다시 데려가 주십시오. 어떤 대가를 치르든 상관없습니다. 어떤 일이든 상관없습니다. 더 이상 세상에 한눈팔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저는 참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교회가 마땅히 나아가야 할 대로 하나님과 함께 나아가기만 한다면, 우리 주위에 몸이 불구인 사람이나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라니요? 저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습니다. 저는, 저는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 저는…” 하고 말씀하시겠지요. 그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소홀히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것입니다. 성령 안에서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것에 물을 주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령을 슬프게 하여 떠나시게 하고 있습니다. 어젯밤 한 여인이 저를 찾아와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저는, 저는 몹시 아픕니다.” 또 말했습니다. “제게는 더 이상 기도의 능력이 없습니다. 저의, 저의 기도생활이 사라졌습니다.” 그녀는 말했습니다. “나이도 들어가는데, 저는, 저는 이런 모습으로 떠나고 싶지 않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성령을 슬프게 하여 여러분에게서 떠나시게 하는 것입니다. 지금 그분께서 여러분에게 오시도록 하십시오.
주 예수님, 이 사람들을 주께 데려옵니다. 그러나 주님, 말씀으로 엄하게 대했습니다. 말씀은 양날 달린 칼과 같아 들어갈 때도 나올 때도 벱니다. 그러나 주님, 바로 그런 것들이 저희를 지금의 저희로 만듭니다. 할례를 행하시고 세상에 속한 육신을 모두 잘라 내시며 새 생명을 주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주님, 이 출생은 땅에 놓인 씨앗과 같습니다. 그 씨앗이 죽어 썩을 때까지는… 썩으면서 새 생명이 나옵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저희의 지적인 관념이 죽어서 썩어 버릴 때에야 새 생명이 태어납니다. 새 생명은 죽음이 있을 때에만 올 수 있습니다. 죽음과 생명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아버지, 저희는 새 곡식 알, 땅속에 들어가는 그 누런 낟알이 단단하고 굳어 있고 무감각하다는 것을 압니다. 그것이 죽어 썩으면 작은 푸른 싹이 나옵니다. 땅속에 들어가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그러나 나올 때에는 유연합니다. 바람이 불면 흔들리고 부드럽습니다. 새 생명입니다. 색깔도 다릅니다. 십자가 아래 엎드려 자기의 지적인 생각에 대해 썩어 버리는, 완고한 교인도 그와 같습니다. 그러나 그 상태에서 새 생명이 나올 때,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나옵니다. 살아 있고, 자라며, 말씀과 영께 유연하게 반응합니다. 전에는 뻣뻣하고 빳빳하게 누워 있었지만, 영께서 바람처럼 그에게 불어오시면 영을 따라 움직이고 흔들립니다.
하나님, 오늘 저녁 손을 든 모든 사람 안에 성령께서 새 생명을 창조해 주시옵소서. 주님, 저희 모두가 자신에 대해 죽어 가는 동안, 저희는 오순절 사람이라고 고백하오니 오순절의 체험이 저희에게 터져 나오게 하옵소서. 저희 자신의 생각이 죽고, 성령께서 저희의 존재를 맡아 다스리셔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 저희 안에 소망과 열심을 창조해 주옵소서. 주님, 전도하고, 설교하고, 간증하고, 무슨 일이든 하며 밤낮으로 계속 나아가려는 열심을 주옵소서. 저희가 생각하는 것보다 때가 더 늦었기 때문입니다. 곧 예수님께서 오실 것입니다. 그분께서 오시지 않더라도 저희의 삶은 곧 끝날 것입니다. 그러면 영원토록, 왜 더 많이 하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앉아서 배를 채우고 가서는 게으르게 뒹굴던 그 시간을, 왜 무언가를 하는 데 쓰지 않았을까? 왜 나가서 그 시간을 써서 무슨 일이든 하지 않았을까? 하나님, 다가오는 저녁에 이 집회가 성령으로 움직이게 해 주옵소서. 주님, 이곳의 모든 사람이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에는 이 대집회를 떠나지 않게 해 주옵소서. 지난 이삼 일 저녁의 설교로 심긴 씨앗들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표적과 이적과 기적과 새롭게 받는 성령 침례로 물을 주셔서, 남자들과 여자들이 생명의 새로움 가운데 일어서게 하옵소서. 활기를 잃었던 사람들이 새로운 희망을 품고 그리스도 안에서 앞으로 나아가, 그분께서 다시 오실 수 있도록 그 일들을 이루게 하옵소서. 주님, 그렇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