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테네시주 클리블랜드, 이곳에는 제게 소중한 벗들이 참 많습니다. 모든 교파의 교회에 속한 주 예수님의 벗들이 있습니다… 다시 클리블랜드에 올 기회가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우리의 소중하고 고결한 형제님, 리틀필드 형제님과 함께하려고 이곳에 오고 싶은 마음으로 가슴이 설렜습니다. 그런데 강단에 올라와 보니 쿡 형제님과 홀 형제님, 그리고 저와 아주 가까운 소중한 벗들인 여러 사역자들이 여기 계십니다. 앞으로 은혜로운 집회가 열릴 것을 생각하니 기쁩니다. 우리는 주님께 큰일들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라디오로 듣고 계신 분들께도 특별히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여러분도 오늘 저녁 이곳에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언제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 것처럼 앉아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얼굴에 어린 기대를 보실 수 있을 텐데요. 녹음기들이 돌아가고, 사람들은 부채를 들고 부채질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가운데서도 사람들의 얼굴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기를 크게 기대하는 표정이 보입니다.
간이침대와 휠체어 등에 환자들을 모시고 들어오기 시작하는군요. 우리는 이곳에서 놀라운 치유 집회가 열리기를 기대합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우리와 만나 주시고 그분의 백성을 축복해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내일 저녁부터 치유 집회가 시작된다고 알리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러니 내일 오후 여섯 시 반부터 일곱 시 사이에 청년들이 기도 카드를 나누어 드릴 것입니다. 치유 집회 때 사람들이 강단 앞에 질서 있게 줄을 서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그다음 날인 수요일 저녁에도 또 집회가 있습니다. 우리가 치유 집회라고 부르는 집회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누군가를 치유하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께서 이미 그들을 치유하셨다는 사실을 알려 드리면 그들이 그것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죄인에게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하시며, 그가 받아들이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이미 그를 구원하셨다는 사실을 알려 주려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갈보리에서 “다 이루었다”라는,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말씀을 하셨을 때 완성하신 일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그 말씀을 하셨을 때 구원의 온 계획, 하나님의 마음에서 인류를 위해 하실 수 있는 모든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완성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완성하신 것을 받을 믿음만 가지면 됩니다.
그리고 제가 이곳에 온 큰 이유 중 하나는, 수요일 아침으로 알고 있는데, 이 예배당을 주님께 봉헌하는 것입니다. 리틀필드 형제님이 목회를 맡으실 예배당으로 알고 있습니다. 수요일 오전 열 시에 있을 것입니다. 그 예배당 안에 들어올 수 있는 그리스도인은 모두 그 자리에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예배당만 주님께 봉헌하여 주님을 섬기는 데 쓰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삶도 그분을 섬기도록 드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교회 건물은 그저 사람들을 비바람으로부터 가려 주는 역할을 하지만, 교회는 바로 우리입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선택받은 우리가 교회입니다. 그래서 수요일 오전 열 시, 이 예배에서 우리 자신을 새롭게 헌신하려는 것입니다. 일을 하신다면 사장님께 그 시간에 잠깐만 자리를 비우게 해 달라고 부탁하십시오. 허락해 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뜻깊은 시간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늘 저녁에는, 한 형제님이 제게 기회를 주셔서… 이렇게 와서 잠시 여러분에게 성경에 관해 말씀드리는 특권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성경의 책장을 넘길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성경을 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성경을 열어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한 분, 그리스도뿐이십니다. 성경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늘이나 땅이나 땅 아래에서 그 책을 취하거나 그것의 봉인들을 떼거나 심지어 그것을 들여다보기에도 합당한 자를 찾지 못하였더라.” 그런데 세상의 창건 이후로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께서 그 장면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분께서 왕좌에 앉으신 분의 오른손에서 그 책을 취하셨습니다. 그분은 합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녁 우리가 인내하며 귀를 기울일 때, 그분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열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 전에 머리를 숙이고 이 책, 성경을 쓰신 분께 말씀드립시다.
주님, 저희가 주님을 얼마나 흠모하는지 표현할 말을 인간의 언어에서는 찾을 수 없습니다.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고, 영원한 생명의 근원이시며, 선하고 완전한 모든 선물을 주시는 주 하나님, 저희는 참으로 온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흠모합니다. 오늘 저녁 저희가 주님의 자녀, 아들딸이라 불리는 특권을 누리니 얼마나 기쁜지요. 주님, 저희가 어떤 식으로든 이것을 받을 자격을 갖추었다고 생각할 마음은 추호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순전한 은혜로 저희를 이 위대하고 특별한 자리로 불러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저희가 영생을 얻었으며 마지막 날들에 일으켜질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저희는 주께서 친히 호령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하늘로부터 내려오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일어날 그때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때 살아서 남아 있는 저희는 순식간에, 눈 깜짝할 사이에 변화되어 그들과 함께 채여 올라가 공중에서 주님을 만날 것입니다. 이것이 저희 마음을 얼마나 벅차게 하는지요.
주님, 오늘 저녁 희생을 감수하며 집회에 온 이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주님의 선하심과 긍휼로 가득 채워 보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밤새도록, 그리고 내일 온종일 그들의 마음이 주님께 찬양을 부르게 해 주시옵소서. 저희는 걷지 못하는 사람들과 고통받는 사람들, 이곳 들것에 누워 있거나 저기 좌석에 앉아 있는 몸이 아픈 사람들, 치유해 주시는 주님의 은혜가 필요한 이들을 잊지 않겠습니다. 주님, 이 집회가 끝날 때 저희 가운데 연약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기를 기도합니다. 모든 죄인이 구원받고, 뒤로 물러난 사람들이 주님의 집으로, 주님의 아들과의 교제로 다시 불려 오게 해 주시옵소서. 병원에서, 병약한 이들의 학교에서, 그 밖의 어느 곳에서든 라디오에 주파수를 맞추고 듣는 이들도 잊지 않겠습니다. 주님의 성령께서 이 라디오를 통해 그들의 방으로 찾아가 주시옵소서. 주님, 그들의 마음에 주리고 목마른 심령을 주시고, 주님의 선하심으로 그것을 채워 주시옵소서. 이 책을 읽으려고 책장을 펼 때, 이 책을 쓰신 분께서 성령을 보내셔서 그 말씀들이 저희에게 살아 있게 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저희가 받으러 온 것을 받게 해 주시옵소서. 주님의 은혜와 권능을, 저희 죄들의 용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주님의 아들이시며 저희 구원자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옵나이다. 아멘.
주님께서 여러분 한 분 한 분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오후에 이곳으로 오면서 잠깐 말씀드릴 성경 구절을 생각했습니다. 시편 119편에 있습니다. 시편… 59절을 읽고 싶습니다. 내가 나의 길들을 생각하고 … 주의 증언들을 향해 내 발을 돌렸사오며 오늘 저녁 이것을 주제라고 한다면, “우리의 길을 돌아보며”라는 주제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다윗이 이 시편을 쓸 당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고 합니다. 다윗도 우리 모두와 똑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있었고, 갈등도 있었습니다. 그때 그는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는 사람이 아무 어려움 없이 일생을 살아갈 것이라고 약속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어려움을 감당하기에 충분한 은혜를 약속하셨습니다. 그분의 은혜가 충분하다는 것을 아는 것, 그것이 제 마음을 벅차게 합니다. 우리가 깊은 절망에 빠지고 어려움과 혼란을 겪어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끝까지 이끌어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분께서 길을 아신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가 그분께 구할 것은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에게 말했듯이, “너희가 이전에 이 길을 지나지 아니하였느니라.” 우리는 이 길을 가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길을 아시는 그분께서 우리에게 길을 가리켜 주실 수 있습니다.
저는 다윗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누군가 그의 집을 감시하고 있었습니다. 사울과 그의 군대가 그를 죽이려고 집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다윗이 초조하게 손을 비비면서 방 안을 이리저리 오가고, 창밖을 내다보며 덤불 속의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를 살피는 모습이 보이는 듯합니다. 언제 화살 하나가 허공을 가르며 날아와 자기 가슴을 꿰뚫을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때 그에게 이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나의 길들을 생각할 때, 주의 증언들을 향해 내 발을 돌렸나이다.” 보통 사람은 어려움을 겪을 때 비로소 하나님을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까지 기다려야 그분을 생각한다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저는 많은 사람들의 말을 들었는데, 그중에는 자신이 믿는 사람이 아니라고,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런 사람들이 다치거나 어려움을 당하면 어떻게 되는지 보았습니다.
들은 이야기로는, 밥 잉거솔이 병실에서 죽어 가면서 이렇게 외쳤다고 합니다. “오 하나님, 하나님이 계시다면,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몸이 건강할 때는 대단한 말을 할지 모르지만, 죽음이 문을 두드리면 생각이 달라질 것입니다. 저는 살아오는 동안 교회에도, 하나님께도, 옳은 것이라면 무엇에도 관심이 없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어려움을 당해서 의사가 암이 몸을 다 갉아먹고 있다고 말하기만 하면, 당장 자신을 위해 기도해 줄 사람을 찾아다니기 시작할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여러분이 그분을 인정하게 만드시는 방법이 있습니다.
몇 달 전, 저는 우리 시의 존경하는 판사님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와 가까운 벗으로, 제가 타버내클에 있을 때면 꽤 자주 오시는 분입니다. 인디애나주 제퍼슨빌의 보터프 판사님입니다. 저는 어느 어머니의 아들이 차를 훔쳐 그곳에 와 있는 일로 그분과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 청년과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가 저를 껴안으며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판사님께 한 번만 더 저를 용서해 달라고 부탁해 주시면, 약속하겠습니다. 일요일 성경학교에 나가고, 교회 문이 열릴 때마다 빠짐없이 가겠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얘야, 내가 판사님께 부탁을 많이 드렸지만, 그분도 선서한 분이니 공정하게 판결하셔야 한다. 그래도 가서 말씀드려 보마.”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존경하는 판사님, 이 청년을 한 번 더 용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제게 이렇게 하겠다, 저렇게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판사님의 대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분은 책상 뒤에서 일어나 제가 있는 쪽으로 걸어와 제 손을 잡았습니다. 저도 일어섰습니다. 그분은 제 어깨를 감싸며 말했습니다. “빌리, 내가 징역형을 선고하는 사람은 누구나 설교자가 되고 싶어 하더군. 곤경에 빠졌으니까. 하지만 많은 이들이 사면을 받기도 하고 형기를 채우기도 하는 것을 보았네. 다시 자유의 몸이 되면 다 잊어버리더군.” 사람들은 대개 어려움을 겪을 때 하나님을 찾습니다.
이스라엘도 어려움을 겪으면 하나님을 찾곤 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쳐들어오거나 시리아 군대가 주위를 에워싸고 진을 치면, 그제야 나가 언약궤를 가져와서 노래를 부르고 희생물을 드리곤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필요한 것이 모두 채워지면, 곧바로 돼지가 진창으로 돌아가듯, 개가 자기가 토한 것으로 돌아가듯 되돌아갔습니다. 사람들은 등 떠밀려야 무엇인가 하고, 등 떠밀려야 주님을 경배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저녁 우리가 앉아서 곰곰이 생각해 본다면, 영생보다 더 위대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영생에 도대체 얼마의 값을 매길 수 있는지 말씀해 보십시오. 오늘 밤 여러분이 주머니에 천억 달러를 가지고 죽어 간다 해도, 그 돈은 영생에 견줄 수 없습니다. 영생은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돈을 하나님의 왕국이나 선한 일에 쓰지 않으면, 하나님 보시기에 더러운 것일 뿐입니다.
오늘 저녁 월스트리트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 것 같습니까… 제가 설교하러 갔던 곳 중에는 생활 방식이 아주 원시적이어서 해변에서 작은 조개껍데기들을 찾는 곳도 있습니다. 조금씩 굽은 조개껍데기를 돈으로 씁니다. 또 제가 설교했던 어떤 곳에서는 동물의 이빨을 뽑아 가져와 교환했는데, 그것이 화폐였습니다. 오늘 저녁 그 사람들이 월스트리트 시장으로 와서 조개껍데기와 동물에게서 뽑은 냄새나는 이빨을 내놓고 우리의 금본위 채권으로 바꾸어 달라고 한다면, 월스트리트에서는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그 냄새나는 것들 가지고 여기서 나가시오”라고 할 것입니다. 우리의 돈과 우리의 위대함도 하나님 앞에서는 그와 같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너무나 선하셔서 돈 없이, 값없이 우리에게 주시는데 우리는 거절합니다. 제정신이라고 할 수조차 없지 않습니까.
며칠 전, 쉰 번째 생일을 지낸 뒤 아내와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나도 늙어 가는구려. 언젠가는 이 성경을 우리 아들의 손에 넘겨줘야겠소.” 그리고 우리가 젊었을 때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우리가 결혼한 지 이렇게 여러 해가 되었는데, 바로 어제 일만 같구려. 인생이 이렇게 빨리 지나갔소. 그런데 여보, 이 말을 들어 보시오.” 저는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방에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신다면 어떻겠소? ‘네게 선택권을 주겠다. 앞으로 오십 년을 더 살되 가난과 질병과 어려움을 겪고, 버림받고 멸시받으며 몹시 힘들게 지낼 것이다. 그 오십 년 동안 끼니마다 구걸해서 먹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오십 년이 끝나면 네게 영생이 있을 것이다. 아니면 온 세상과 모든 돈을 네게 주고, 너를 다시 열여덟 살로 돌려놓아 백만 년 동안 온 세상의 왕으로 삼겠다. 그러나 백만 년이 끝나면 그것으로 전부 끝이다.’”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주님, 구걸을 하든 무엇을 하든 좋습니다. 제게 영생만 주십시오.” 언젠가는 제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는 때가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게 영생이 있다면, 하늘에 하나님이 계시는 한 저는 언제나 그분과 함께 살 것입니다.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세월이 지나도 우리는 계속 살아갑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부이며 그분의 아들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궁지에 몰려야만 그것을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우리에게는 참으로 무서운 원수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최대 원수입니다. 그러니 이런 어려움이 닥치기 전에 주님께 돌이키는 것이 좋습니다. 대개는 어려움 때문에 사람들이 주님께 나아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려움이 닥치기 전에 나아와야 합니다.
이를테면 어떤 그리스도인의 삶이든 우리 앞에 놓고 생각해 보면… 한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얼마 전, 북부 숲 지대에 한 흑인 청년이 있었습니다. 스물다섯 살쯤 되었는데, 그저… 우리가 떠돌이라고 부르는 부류였습니다. 예의 바른 사람이었고, 도망자나 무법자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예의 바른 사람이었지만, 정처 없이 떠돌기를 좋아하고 갈 곳도 할 일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인생을 사는 것은 참으로 끔찍한 일입니다. 얼마 전 저는 어떤 사람에게 점심을 주었습니다. 부랑자였는데… 제가 물었습니다. “이 생활을 언제 시작했습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한 이십 년 전이오.” 제가 물었습니다. “어디로 가십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가는 데 없소.” “그럼 어디서 오셨습니까?” “뭐, 온 데도 없소.” “얼마나 더 이렇게 지내실 생각입니까?” “글쎄, 모르겠소.” 아무 의욕도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가장 의욕에 찬 사람이어야 합니다. 죽어 가고 멸망해 가는 세상에 이 영생의 영광스러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는 일어나 그 일에 나서야 합니다.
그 청년은 제가 오래전에 사슴 사냥을 하곤 했던 북부 숲 지대로 흘러들어 왔습니다. 그는 일자리를 구하고 있었습니다. 돈이 하나도 없었는데, 벌목 작업반장이 그를 고용하여 나이 든 흑인 요리사를 돕게 했습니다. 어느 날 저녁,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도 끝낸 뒤였습니다… 그들은 뒤쪽의 작은 방에서 자는데, 둘 사이에는 작은 천막 천 하나만 쳐져 있었습니다. 그 청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갑자기 잠이 깼습니다. 창문 곁에 서 있는 두 남자의 말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 제가 평생 들어 본 것 가운데 가장 구슬픈 소리가 났습니다. 얼굴을 덮고 있던 담요를 걷어 젖히고 얼른 벌떡 일어났습니다. 번개가 계속 번쩍여 방 안이 환해졌습니다. 그 두 사람이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짐, 우리 숙영지로 내려가는 게 좋겠어. 십 분 뒤에는 우리가 여기 없을지도 몰라. 저 회오리바람이 이쪽으로 오고 있거든.’” 그가 벌떡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니, 마침 뱀처럼 거대한 소용돌이 모양의 구름이 산을 휩쓸며 나무들을 뜯어내 공중으로 뒤틀어 올리고 있었습니다. 나무들이 통째로 수백 피트 높이 공중에 날아오르며 오두막을 향해 곧장 다가오는 모습을 본 것입니다.
그때 천막 천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고 합니다. 천 너머에 있던 나이 든 요리사가 말했습니다. “얘야, 이쪽으로 오너라. 등불을 켜 놓았다.” 그가 건너가 보니 나이 든 요리사가 등불을 켜 놓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주 예수님을 네 구원자로 알고 있니?” 그가 말했습니다. “아니요, 아주머니. 저는 평생 기도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기도하는 게 좋겠다. 몇 분 뒤면 우리가 이 땅에서 휩쓸려 사라질지도 모르니까.” 그는 그 경건하고 성도다운 노부인이 비누 상자 곁에 무릎을 꿇고 더없이 차분하게 기도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기도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하고 말하려고 할 때마다 바로 그때 나무가 오두막에 부딪쳤습니다.” 그가 제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너무 무서워서 기도가 안 나왔습니다. 겨우 이 말만 했습니다. ‘주님, 저를 살려만 주시면 폭풍이 불지 않을 때 주님께 나오겠습니다.’ 그래서 제가 오늘 저녁 여기에 온 것입니다. 지금은 폭풍이 불지 않습니다. 하지만 마음속의 그 약속과 그때의 기억은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제정신이 들고 생각이 온전할 때, 모든 것이 평온할 때 하나님께 나오는 것이 옳습니다. 생각할 시간이 있고, 온전하고 진지한 마음으로 나올 수 있을 때가 하나님께 나아올 때입니다. 그러면 그분은 고난 중에 그 즉시 만날 도움이 되십니다. 그 청년은 폭풍이 불어닥치는 동안에도 그 나이 든 성도가 그처럼 경건하고 평온하고 차분하게 기도하던 모습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어려움이 닥칠 때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분은 고난 중에 그 즉시 만날 도움이 되십니다.
그리 오래전은 아니지만, 북부 숲에서 있었던 일이 기억납니다… 제 어머니는… 이 아래쪽 보호구역 출신으로 인디언 혈통이 절반입니다. 그래서 저는 숲을 너무나 잘 아는 사람이라 길을 잃을 리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막 결혼했을 때였습니다. 아내를 이용한 것처럼 보이겠지만, 저는 신혼여행으로 아내를 사냥에 데려갔습니다. 아내는 그날 아침 우리가 들어간 작은 한쪽 지붕 오두막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올라오면서 곰 발자국을 본 것 같소. 그 곰을 추적해 보고 정오쯤 돌아오겠소.” 아침 아홉 시쯤이었습니다. 저는 그 곰의 자취를 따라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습니다. 결국에는 놓쳐 버렸습니다. 작은 골짜기를 올라오다가 사슴 한 마리를 보았습니다. “저 녀석을 집에 가져가면 좋겠군”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슴을 쏘고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구름이 낮게 내려앉고 안개가 밀려오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산에서 안개를 만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분은 아시겠지만, 그럴 때는 꼼짝 말고 대피해 있어야 합니다.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내는 숲에 와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서둘렀습니다. 작은 개울을 따라 걷고 또 걸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제 알겠어. 이 개울이 굽어지는 곳에서 건너서 반대편으로 내려가면 돼.’ 어떻게 빠져나가야 할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굽이에 다다랐을 텐데’ 하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멈춰 섰고 땀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그 사슴 바로 옆에 서 있었던 것입니다. 한 바퀴 돌아 제자리로 온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세 번을 돌았습니다. 인디언들은 이것을 죽음의 걸음이라고 부릅니다. 원을 그리며 걷고 있는데, 어디로 빠져나가야 합니까? 저는 길을 잃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자기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오늘 저녁 이 건물 안이나 라디오를 듣는 분들 가운데,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지 않은 남녀가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교회에 다니거나 어떤 기도나 신조를 외우는 것으로 그것을 덮어 두고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것은 아닙니다. 다시 태어나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것, 그것이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그분과 바른 관계를 맺으십시오.
저는 더 걸어가며 말했습니다. “나는 숲을 이렇게 잘 아는데 길을 잃을 리 없어.” 또 말했습니다. “빌 브래넘, 정신 차려. 바보 같은 짓이야. 여기서 나가는 길을 알잖아. 계속 가.” 안개가 너무 짙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걷기 시작했습니다. 조금 지나자 어떤 말씀이 계속 들려왔습니다. “나는 고난 중에 그 즉시 만날 도움이라.” 조금 더 걸어가자 그 말씀이 음성으로 들리게 되었습니다. “주는 고난 중에 그 즉시 만날 도움이시라.” 저는 생각했습니다… 무릎을 꿇고 말씀드렸습니다. “주님, 길을 잃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저는 살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제 아내와 아직 젖먹이인 빌리는 살 자격이 있습니다, 주님. 그들이 죽게 하지 마십시오.” 저는 기도하고 일어나 말했습니다. “자, 이제 내가 아는 한 최선의 길을 택해야겠다.” 그래서 곧장 앞으로 걷기 시작했습니다. ‘맞게 가고 있어… 정확히 맞아. 바람이 얼굴을 향해 불고 있으니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바로 그때 어떤 손이 제 어깨에 얹히는 것 같았습니다. 누가 제게 손을 댔는지 보려고 돌아섰습니다. 위를 보니 하늘 한 귀퉁이가 걷히면서, 제가 가려던 허리케인산과 산림 감시탑이 보였습니다. 아, 그때의 기분이란요. 그분은 고난 중에 그 즉시 만날 도움이십니다. 지금 그분과 바른 관계를 맺으십시오. 그러면 죽음이든 질병이든 어떤 일이 여러분에게 닥쳐도, 그분은 그 즉시 만날 도움이 되십니다.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저는 가려는 방향으로 손을 똑바로 뻗었습니다. 제가 선택했던 길로 갔다면 캐나다로 들어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쪽으로, 그분께서 저를 돌이켜 주신 오른쪽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두 손을 높이 들었습니다.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세 시간가량 걷자 거의 어두워졌습니다. 그러고는 완전히 어두워졌습니다. 감시탑에서 오두막까지 약 육 마일 이어지는 전선을 볼 수 없었습니다. 저는 제가 허리케인산에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방향을 바꿀 수 없었기에 넓적한 바위들을 타고 올라갔습니다. 아, 바르게 가려고 할 때 때로는 길이 험합니다. 하지만 그 길이 옳은 길이며, 유일하게 빠져나갈 길입니다. 저는 걸었습니다. 어두워진 뒤에는 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을 때까지 두 손을 들고 있었습니다. 두 손은 차가웠고 눈보라가 불었습니다. 저는 ‘저 전선에 닿을 수만 있다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너무 어두웠습니다… 멈춰 서서 잠깐씩 팔을 쉬게 하며 방향을 잃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손을 들고 걷기 시작했습니다. 제 손이 그 전선에 닿았을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여러분은 모를 것입니다. 그 전선을 붙잡고 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해 봄에 저도 그 전선을 설치하는 일을 도왔습니다. 그 전선을 붙잡고 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전선을 따라가는 길의 끝, 전선이 끝나는 바로 그곳에 사랑하는 가족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벅찬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저는 그보다 더 심하게 길을 잃고 있었습니다. 그때 사랑의 손길이 제 마음을 만져 갈보리 쪽으로 돌이켜 주었습니다. 저는 무언가 저를 붙잡을 때까지 두 손을 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경건한 마음으로 그것을 붙잡고 조용히 천천히 걸어왔습니다. 언젠가 이 줄의 끝에서는 저의 사랑하는 이들과 제 주님이 기다리고 계실 것입니다. 그분은 고난 중에 그 즉시 만날 도움이십니다. 욥도 고난 가운데서, 아니, 고난이 닥치기 전에 말했습니다. “혹시 내 자녀들이 죄를 지었을 수도 있으니, 그들을 위해 번제 헌물을 드리겠다.” 그는 자녀들의 길을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무슨 일이 일어날 경우를 대비했습니다. 그들이 그의 가르침에서 벗어났을지도 몰랐기 때문입니다.
경건한 마음과 존중하는 마음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미국의 어머니 아버지들이 욥처럼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들인다면, 청소년 비행이 줄어들 것입니다. 문제는 오늘날 미국의 어머니 아버지들이 자녀들에게 술을 마시고, 카드놀이를 하고, 담배를 피우고, 그 밖의 그런 일들을 하도록 이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청소년 비행을 낳습니다. 사실 청소년 비행이 아니라 부모의 비행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그분을 찾는 일을 소홀히 하다가 어려움이 닥칩니다. 욥에게 어려움이 닥쳤을 때, 그는 이미 번제 헌물을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믿는 자를 받아 주시는 유일한 근거, 곧 번제 희생물과 피에 근거하여 나아갔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집에 어려움이 닥쳤을 때 하나님은 고난 중에 그 즉시 만날 도움이셨습니다. 사람들이 욥에게 남몰래 죄를 짓는 자라고 비난했을 때, 그는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요구를 충족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내 구속자께서 살아 계시며 마지막 날에 그분께서 땅 위에 서실 것을 내가 아노라. 벌레들이 이 몸을 멸할지라도 내가 여전히 내 육체 안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길로 나아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교회에 등록한 자격으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희생물을 통해 나왔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이 왕좌에 앉아 있을 때였습니다. 선지자 나단이 들어와 그의 마음속 비밀들을 드러내기 시작하자, 다윗은 자신의 죄악 된 길들을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그는 선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었지만, 우리야의 아내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잘못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왕 다윗이 자신의 길들을 생각하자, 그는 굵은 베옷을 입고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자신의 죄악 된 길들을 생각했기 때문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게 된 것입니다. 야곱도 그랬습니다. 그는 형을 속였고, 장인과 함께 지내며 낙타와 양과 온갖 것을 가지고 호화롭게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으로 돌아가고, 교회로 돌아가고, 다시 바른길로 돌아가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아내들과 자녀들과 가축 떼를 데리고 길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에서가 온다는 소식을 듣자 그는 자신의 길들을, 남을 속이며 살아온 길들을 생각했습니다. 그는 에서를 속였고, 에서가 자신을 만나러 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오늘 저녁에도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지만, 그 고백을 속임수로 만들 뿐인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언젠가 죽음이 문가에 슬며시 다가올 것입니다. 그때는 여러분도 자신의 길들을 생각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야곱은 자신의 길들을 생각하면서 시내 건너편에 남아 밤새도록 기도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길들을 생각하고, 그로 인해 기도하고 회개한다면 달라질 것입니다. 세상이 달라질 것입니다. 교회가 달라질 것입니다. 사람들이 달라질 것입니다.
모세도 그랬습니다. 어느 날 아침 익숙한 길을 내려가면서 자신의 길들을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이스라엘의 구출자로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그는 어떻게 했습니까? 하나님의 길을 택하지 않고 자기 길로 가서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길과 자신이 얼마나 실패했는지, 그리고 안락하게 살고 있는 자기 모습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주님의 사역을 양치기 일과 바꾸었던 것입니다… 오늘 저녁 라디오를 통해서든 이 건물 안에서든, 하나님께서 사역으로 부르셨지만 돈을 더 벌 수 있다는 이유로 더 쉬운 길을 택한 많은 남녀에게 제가 설교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거기에는 없었… 여러분은 복음을 전해야 할 때 양을 치고 있습니다. 그 안락한 길을 택하기는 너무나 쉽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자신의 길을 생각하고 있을 때, 길에 불타는 떨기나무가 나타났습니다. 하나님, 오늘 저녁 자신의 길들을 용기 있게 돌아보려는 모든 남녀에게 불타는 떨기나무를 보내 주시옵소서. 여러분의 삶을 살펴보십시오. 어떻게 살고 있는지 돌아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오늘 밤 오신다면 어떻겠습니까? 자신의 길들을 생각하십시오. 베드로는 원수의 불 곁에 서서 몸을 녹이며 욕을 하고 예수님을 부인하고 있었습니다. 그 수탉이 세 번째 우는 소리를 듣자, 그는 자신의 길들을, 자신이 예수님을 어떻게 대하고 있었는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사역하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길들을 생각하게 되는 데 수탉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저녁 우리 중 많은 이들에게는 닭이 울 때가 다 되었습니다. 우리가 깨어나 자신의 길들을, 주 예수님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할 때입니다. 온갖 자칭 종교들이 세련되게 단장한 이 새로운 현대 시대에, 우리는 자신의 길들을 돌아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실 때 걸으셨던 옛길, 희생의 길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길들을 생각해 봅시다. 가룟 유다도 있었습니다. 대제사장이 은화 서른 개를 세기 시작했을 때… 유다는 그 은화가 짤랑거리는 소리를 듣고, 은화 서른 개에 예수님을 팔아넘긴 자신의 길들을 생각했습니다. 그러고는 밧줄을 가져다가 목을 매달았습니다.
오늘 저녁 이곳에 계시거나 라디오로 듣는 여러분 중에, 이웃을 조금 속이거나 부정직한 거래를 조금 한 분들이 많지는 않은지 생각해 봅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 돈이 짤랑거리는 소리가 계속 들려서 여러분이 무릎을 꿇고 회개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여러분 가운데 많은 이들이 하나님께 드릴 몫을 내놓지 않고, 주님의 집에 드려야 할 그것을 밖에서 다른 데 쓰고 있습니다. 위스키와 담배와 궐련에, 차를 타고 돌아다닐 휘발유에 쓰고 있습니다. 그것을 드리는 것은 여러분의 엄숙한 의무입니다. 자신의 길들을 생각하십시오. 생각해 보십시오. 은화 서른 개… 한 로마 군인도 그랬습니다. 그분의 옆구리를 찌르고 물과 피를 본 뒤, 한낮에 해가 지고 산에서 바위들이 갈라지는 것을 본 뒤였습니다. 그는 그것을 보고 자신의 길들을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고는 가슴을 치며 외쳤습니다. “진실로 이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오래 기다린 뒤였지만, 자신의 길들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저녁 라디오로 듣는 분들과 이곳에 모인 회중 가운데 많은 분이 자신의 길들, 자신이 행한 일들과 행하지 않고 남겨 둔 일들을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도 잘못된 일을 하는 것만큼 큰 잘못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그것이 그에게 죄가 되느니라.” 여러분이 자신의 길들을 생각하고 계신다면, 제가 확실히 소개해 드릴 수 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시인이 말했듯이, 피로 가득 찬 샘이 있네, 임마누엘의 핏줄에서 흘러나온 피라네. 죄인들이 그 물결 아래 잠기면, 모든 죄의 얼룩을 씻는다네. 죽어 가던 그 강도도 그날 그 샘을 보고 기뻐했네. 그만큼 더러운 나도 거기서 내 모든 죄를 씻을 수 있기를. 옛 구세군 찬송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부르곤 했습니다. 오, 그 흐르는 피 귀하도다, 나를 눈같이 희게 하네. 나는 다른 샘을 모르네, 오직 예수님의 피뿐이라네.
저는 달리 깨끗해질 길을 모릅니다. 다른 길을 모릅니다. 여러분의 죄들을 자백하는 것 외에 달리 무엇을 해야 할지 모릅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으십시오. 아주 작은 일들도 깨끗이 정리하십시오. 포도를 망치는 것은 작은 여우입니다. 얼마 전에는 저 자신도 자백할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집에 있었는데, 어떤 사람들이 날마다 저를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큰 사무실… 그들은 저를 너무나 지치게 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마침내 세상이 제 머리 꼭대기를 잡아 뽑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너무 신경이 곤두섰습니다. 집회에 가려고 해도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집회들이 저를 기다리고, 수백 명의 그리스도인이 기도받으려고 기다리고, 아픈 아이들은 울고, 부모들은 병든 가족들과 죽어 가는 가족들을 데리고 호텔과 모텔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누군가의 사건 때문에 변호사와 함께 사무실에 머물러 있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이리저리, 사방에서 저를 몰아붙였습니다.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모든 질문에 답하고 나면, 곧바로 처음부터 같은 것을 다시 물었습니다.
저는 점심을 먹으러 집에 갔습니다. 그들은 그날 오후에는 자리를 비워도 된다고 했습니다. 저는 밀린 환자 심방을 좀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제 개인 전화였습니다. 저는 전화 응대 대행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아내가 전화기로 가서 수화기를 들고 받았습니다. 그러더니 전화기를 손으로 가리고 말했습니다. “빌리, 그 변호사들이 또 전화했어요.” 저는 말했습니다. “아, 반나절을 더 그렇게 보낼 수는 없소. 똑같은 말을 하고 또 하고, 하고 또 했소. 날마다, 날마다 그랬소. 그런데 또 전화를 한단 말이오? 못 하겠소. 나는… 그저… 기도를 받으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저는 “나 여기 없다고 하시오” 하고는 집 뒤로 뛰어갔습니다.
몇 분 뒤 돌아왔을 때, 사랑하는 아내가 문간에 서 있었습니다. 아내가 저를 바라보았고, 눈이 마주치자 그 뜻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아내가 말했습니다. “빌리, 그게 정말 옳은 일이었나요?” 자신을 정당화하고 싶은 마음을 아시지요. 저는 말했습니다. “그럼, 물론이지. 나는 여기 없었잖소.” 아내가 말했습니다. “하지만 전화가 울릴 때는 여기 있었잖아요.” “하지만 당신이 그렇게 말할 때는 여기 없었소. 그러니 괜찮소.” “빌리,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아, 그런 것 같소.” 저는 나가려고 모자를 집어 들었습니다. 환자를 심방하러 내려갔습니다. 아픈 어린 아기를 위해 기도하려고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한 남자가 그 아기를 데리고 오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기를 위해 기도하려고 들어가 손을 얹으려는데, 무언가 제게 말씀했습니다. “거짓말한 그 손을 이 아이에게 얹을 수 있느냐?” 성경은 요한일서 3장 21절에서 말씀합니다.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정죄하지 아니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확신을 갖느니라.”
이것이 오늘날 그리스도인 교회의 문제입니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는 것은 자백하지 않은 죄 때문에 우리 마음이 우리를 정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사실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정직한 것입니다. 저는 다시 기도하려고 했지만, 그 아기에게 손을 얹을 자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말했습니다. “선생님, 약속은 꼭 지켜 드리겠습니다. 여기서 기다려 주십시오.” 저는 급히 전화기로 가서 그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잠시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물론이지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다 갔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잠깐만 사무실에 계십시오.” 서둘러 그곳으로 내려가 방에 들어갔습니다. “변호사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아까 전화하셨을 때 저는 거기 있었습니다. 전화하셨을 때는 그동안 변호사님들이 저를 너무 초조하게 만들어서 제가 무엇을 하는지 거의 모를 지경이었습니다.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아내에게 그렇게 대답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거짓말이었습니다. 제가 변호사님께 거짓말을 했고, 아내도 거짓말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하지만 빌리, 바로 그때는 안에 안 계셨잖아요. 부인께서 안 계신다고 했는데요.” 저는 말했습니다. “없었습니다. 하지만 안에 있지 않으려고 집에서 뛰쳐나가 집 뒤로 갔던 것입니다. 어쨌든 거짓말입니다. 저를 용서해 주시겠습니까?” 그는 방을 가로질러 와서 제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습니다. 그의 회색 눈에 눈물이 조금씩 고이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는 제 손을 잡고 저를 껴안았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저는 형제님을 크게 신뢰해 왔지만, 이제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신뢰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자신의 길들을 생각할 때 그렇게 됩니다. 저는 가서 그 아기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다음 날 다시 돌아가서, 저는 멀리 떨어진, 기도하러 가곤 하는 제 동굴로 올라갔습니다. 하루 종일 그곳에 있었고, 어느덧 저녁이 가까워졌습니다. 서너 시쯤 동굴에서 나와 깊숙이 숨어 있는 큰 바위 곁에 섰습니다. 사람들은 약 십오 년 동안 저를 찾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결코 그곳을 찾지 못했습니다. 제가 겨울에 갔다가 사람들이 그곳을 찾는 모습을 본 적도 있습니다. 거의 다 왔다가도 돌아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무언가 신비롭게 그들의 발길을 돌립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그 동굴을 주셨습니다. 제가 기도하러 가는 곳입니다. 그 안에는 제단과 모든 것이 있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손대지 않았습니다. 오래전 처음 발견했을 때부터 그대로 있었습니다. 저는 온종일 기도하며 말씀드렸습니다. “주 하나님, 제가 잘못했고, 제 아내도 잘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주님, 그것을 아내의 죄로 돌리지 말아 주십시오. 부디 저희를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 저는 주님 앞에서 깨끗하게 있고 싶습니다. 주님의 병든 자녀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는 부름을 받을 때, 제 마음에 정죄함이 없기를 원합니다. 저는 바르게 살고 싶은데, 그 일이 저를 정죄합니다. 저는 그 어린 아기를 위해 기도할 수 없었습니다. 저를 용서해 주시겠습니까?” 저는 그날 아침 일곱 시쯤부터 오후 서너 시까지 그곳에서 기도하며 울었습니다.
동굴 입구에는 큰 바위가 놓여 있습니다. 동쪽을 향하고 있는데, 우거진 수풀과 숲 깊숙한 곳입니다. 저는 밖으로 나와 그 바위에 올라 두 손을 들고 주님을 찬양했습니다. 그곳에 서서 자신의 길들을 생각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주님, 제가 어쩌다 그런 일을 했을까요? 사람이 어쩌다 그토록 마음이 시달릴 수 있을까요? 하지만 주님께서 저를 사랑하셔서 그 일을 생각하게 하시고, 제게 그것을 드러내 주시고, 제가 잘못했다고 말씀해 주셨으니 너무나 기쁩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제가 바르게 행하기를 원하시며, 저를 사랑하신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이 자신의 길들을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죄들과 그런 일들로 여러분을 정죄하시면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분께서 저를 용서해 주시리라는 확신을 얻고 그곳에 서서 찬양하고 있을 때, 성경 구절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저는 말씀드렸습니다. “주님, 한때 주님께서는 모세를 반석 틈에 숨겨 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지나가실 때, 그는 사람의 뒷모습 같았다고 말했습니다. 주님은 이곳에서 제게 그토록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주님, 한 번만 더 그렇게 해 주실 수 있습니까? 제가… 알 수 있도록요. 저는 예물을 가지고 제단으로 가다가, 가서 화해하고, 주님의 말씀대로 예물을 드리러 다시 돌아왔습니다. 저를 용서하신다면 제 곁을 지나가 주시고, 제가 주님을 보게 해 주십시오.” 라디오로 듣는 여러분이 이 말을 얼마나 믿을지 모르겠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저를 광신자라고 부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여러분과 하나님 사이의 일입니다. 제가 그렇게 말씀드렸을 때, 제 왼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여러분이 사진에서 보는 저 작은 불기둥과 비슷하게, 작은 바람이 덤불 속에서 소용돌이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내려와 그렇게 제 곁을 휘돌아 지나갔습니다. 그러고는 숲을 지나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저는 목소리를 높여 울고 또 울었습니다. 하나님께 소리쳐 말씀드렸습니다. “주님, 온 마음을 다해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시며, 온 마음을 다해 주님께 돌이켜 회개하는 사람들을 용서하시는 분이시니 너무나 기쁩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자기 죄들을 숨기는 자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나 자기 죄들을 자백하는 자는 긍휼을 얻으리라.”
내일 저녁 치유 집회가 시작되기 전에, 우리의 길들을 생각해 봅시다. 머리를 숙이고 기도하면서 우리의 길들을 생각합시다. 라디오로 듣는 여러분도 지금 함께하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길들을 생각하십시오. 여러분이 한 일들과 하지 않은 일들을 생각하십시오. 이 두서없는 몇 마디를 모아 이렇게 말씀드리십시오. “오 주님, 저를 살펴 주십시오. 저를 시험해 주십시오. 제게 어떤 부정한 것, 어떤 잘못된 것이 있다면 주님,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새롭게 출발하게 해 주십시오. 다시 새롭게 나아가게 해 주십시오. 저는 의롭지 못함을 고백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제 죄들을 자백합니다. 그러나 그분의 의 안에서 나아와 제 죄들의 용서를 구합니다.” 오늘 저녁 이곳에 모인 큰 무리, 여기 눈앞에 있는 회중 여러분, 그리스도인이든 죄인이든 제가 말씀드리는 동안 자신의 길들을 생각하셨습니까? 그리고 다시 발길을 돌려 온전히 희생하는 삶으로 향하고 싶으십니까? 그리스도인들은 너무나 쉽게… 아, 너무나 게을러져서 기도하기를 소홀히 하고, 간증하기를 소홀히 하고, 옳은 일을 행하기를 소홀히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면 안 됩니다. 그 일로 정죄함을 느끼고 오늘 저녁 마음에 가책이 있어서, 자신을 위해 짧게라도 기도해 주기를 원하신다면, 이곳 회중 가운데 계신 여러분은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좋습니다. 좋습니다. 저기 뒤쪽까지… 위층에도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그게 무슨 도움이 됩니까?”라고 말씀하실지 모릅니다. 한 번 손을 들어 보고 어떤 느낌인지 보십시오. 그리고 저 멀리서 라디오로 듣는 여러분, 라디오 옆에 계신 아버지, 건너편에 앉아 바느질하시는 어머니, 병원에 계신 여러분, 이미 말씀에 비추어 자신을 살펴보셨습니까? 집에 아픈 사람이 있는 여러분, 빗나가는 아들을 둔 여러분, 그 아이와 이야기해 보셨습니까?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딸이 있다면, 그 아이들과 이야기해 보셨습니까? 품에 안아 주셨습니까? 일요일 성경학교 교사가 해 주겠거니 하며 그저 소홀히 내버려 두셨습니까? 하나님께서 그 아이를 여러분에게 주셨습니다. 그들과 이야기하는 것은 여러분의 의무입니다. 그런 일이 있다면 지금 손을 들고 말씀드리지 않으시겠습니까? “주님,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지금 저는 제 길들을 생각하며 주님의 증언들을 향해 제 발을 돌리고 있습니다. 제가 돌아옵니다.” 어쩌면 여러분은 참된 체험을 했을 것입니다. 삶 가운데 성령을 받은 직후에는 마음이 불타올랐고, 혼이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쩌다 보니 거기서 멀어졌습니다. 그것이 여러분에게서 멀어진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그것에서 멀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한때 하나님과 함께 누렸던 그 기쁨을 다시 얻고 싶을 것입니다. 그것을 원하신다면 손을 들고 말씀드리십시오. “하나님, 제 구원의 기쁨을 제게 회복시켜 주십시오.”
이곳 회중 가운데 정말 많은 손이 올라와 있습니다. “제 구원의 기쁨을 제게 회복시켜 주십시오.” 이제 우리 마음을 살펴서 잘못된 것이 있는지 알아봅시다. 그리고 기도할 때… 제가 기도하는 동안, 여기 계신 여러분과 라디오로 듣는 여러분도 마음을 살피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십시오. 이제 우리는 기도로 은혜로운 예배를 드리려 합니다. 기도합시다. 주님, 오 위대하신 하나님, 위대하신 엘로힘, 여호와여, 손가락으로 권능을 발하여 명령들을 쓰신 분, 콧구멍으로 숨을 내쉬시자 그 바람이 사해를 말리게 하신 분, 요르단의 강둑들을 뒤로 물리시고 길을 가로질러 강을 펼치셔서 주님의 자녀들이 마른땅으로 건너게 하신 분, 나사로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시고 다니엘을 사자 굴에서, 히브리 아이들을 불타는 용광로에서 이끌어 내신 분이시여, 오늘 저녁 테네시와 그 주변 모든 지역에 성령을 보내 주시옵소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께서 저희를 다루실 때 저희가 자신의 길들을 생각하게 해 주시옵소서.
주님, 저희 안에 어떤 죄가 있다면 그것을 저희 삶에서 없애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저희는 정죄함에서 자유롭기를 원합니다. 기록된 바,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들은 육신을 따라 걷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 걷느니라.” 주님, 오늘 저녁 육신을 따라 걸으며 눈에 보이는 것들을 좇는 많은 사람이 돌이켜, 보이지 않는 믿음을 마음에 받아들이게 해 주시옵소서.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바로 예수님을 받아들여 그분께서 들어오셔서 그들의 온 존재를 주관하시게 해 주시옵소서. 주님, 저희는 다시 병든 사람들과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라디오로 듣는 이들과 눈앞의 회중 가운데 도움이 필요한 이들, 여기 들것에 있는 사람들, 의자에 앉은 사람들, 간이침대에 누운 사람들, 그 밖의 모든 이를 위해 기도합니다. 주님, 그들을 치유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해 주실 줄 믿습니다. 어느 날 주님께서 나무 하나를 지나가시는데 그 나무에는 열매가 없었습니다. 주님께서 그 나무에 “아무도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음 날 그 나무는 시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이 저희를 정죄한다면 어떻게 믿음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마음이 저희를 정죄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들으신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그러므로 주님, 오늘 저녁 병든 이들을 위한 저희 기도를 받아 주시옵소서. 저는 그들 앞에 놓인 이 산, 곧 질병에게 말합니다.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떠나라. 그 병이 말라 없어지기를 바랍니다. 병든 사람이 모두 치유되고, 죄를 지은 사람이 모두 용서받기를 바랍니다. 빗나간 모든 소년 소녀가 오늘 저녁 하나님께 다시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허락해 주시옵소서. 그리고 이곳에서 앞으로 있을 세 번의 집회를 통해 참으로 놀랍게 성령을 부어 주셔서, 여기 테네시 전역에 옛날과 같은 부흥이 일어나게 해 주시옵소서. 리 칼리지와 다른 여러 큰 기관들 같은, 이곳의 큰 종교 중심지들에 부흥이 일어나 그들의 마음을 불타오르게 하고 수천 명의 사람이 그리스도께 인도되게 해 주시옵소서. 주님, 지금 시작되어 온 세상으로 퍼져 나가게 해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 절박한 때와 싸움이 닥치고 안개가 낮게 깔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모른 채 제자리만 맴돌게 될 때가 오기 전에 그렇게 해 주시옵소서. 고난 중에 그 즉시 만날 도움이신 그분을 지금 찾게 해 주시옵소서. 그분의 이름으로, 그분의 영광을 위해 구하옵나이다. 아멘.
여러분은 그분을 사랑하십니까? 여기 모인 회중 여러분, 손을 들고 “주를 사랑합니다”라고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주를 사랑해”의 화음을 잡아 주십시오. 아시지요. “주를 사랑해, 주를 사랑해.” 이곳의 회중과 라디오로 듣는 회중이 함께 이 좋은 찬송을 부릅시다. 주를 사랑해, 주를 사랑해, 날 먼저 사랑하셨으니, 내 구원을 사셨으니, 갈보리… “주를 사랑해.” 좋습니다. 이제 저와 함께 부르시겠습니까? 좋습니다. 찬송 인도자는 어디 계십니까? 주를 사랑해, 나 (일어서셔도 됩니다.) 주를 이곳 회중 여러분. … 먼저 사랑하셨으니 라디오로 듣는 여러분, 집에 계신 어머니, 아버지도 함께 일어서십시오. 손을 드십시오. … 내 구원을 사셨으니, 갈보리 십자가에서.
지금 차의 라디오를 켜 놓고 드라이브인에 계신 여러분, 도로를 달리는 여러분, 잠시 한쪽에 차를 세우시지 않겠습니까? 우리와 함께 이 찬송을 부르십시오. 저기… 여자 친구와 함께 있는 청년, 남자 친구와 함께 있는 젊은 여성 여러분, 그렇게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면, 지금 그리스도께 자신을 내어 드리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의 가정이 되지 않고서 가정을 꾸리려 한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지금 시작하십시오. 누구든지, 어디서든지 시작하십시오. 이제 우리와 함께 다시 부릅시다. 하나님께 목소리를 높여 찬양하며 두 손도 하나님께 들어 올립시다. 좋습니다. 주를 사랑해, 주를 사랑해, 날 먼저 사랑하셨으니, 내 구원을 사셨으니, 갈보리 십자가에서. 믿는 여러분 모두, 주님께 크고 힘차게 “주님을 찬양합니다”라고 말씀드립시다. 함께 합시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아, 이렇게 하니 참 좋지 않습니까? 그 말들이 여러분 속을 말끔히 씻어 주고, 마음이 달라지게 하지 않습니까? 이제 메시지는 끝났습니다. 지금 우리는 주님을 경배하고 있습니다. 여기 보이는 회중 가운데 그리스도인은 몇 분이나 계십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그리스도인은 모두 손을 드십시오. 아, 거의 백 퍼센트군요. 다시 부릅시다. 그러면서 이웃과 악수하십시오. 앞에 계신 분, 곁에 계신 분, 양옆에 계신 분, 뒤에 계신 분과 악수하십시오. “주를 사랑해”를 부르면서 앞뒤로 서로 악수하십시오. 자, 모두 함께합시다. 주를 사랑해, 주를 사랑해, 날 먼저 사랑하셨으니, 내 구원을 사셨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