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린지 형제님, 대단히 감사합니다.) 조금 전 들어오는데, 제 아들 빌리가 말해 주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샘 존스가 그 복음 전도자였다고 했습니다. 맞습니까? [한 형제가 말한다. “샘 존스 콜웨더입니다. 샘 존스와 함께 있는 분입니다.”] 그분이 여기에 사십니다. 그러니 이곳은 거룩한 곳, 주님께 봉헌된 곳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거룩한 곳 위에 건물을 세웠습니다. 오늘 아침 우리는 이곳을 지켜 주시고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지게 하신 하나님께 이 건물을 봉헌하려고 여기 모였습니다. 저로서는 언제나 몇 말씀 전하는 것이 큰 기쁨이자 특권입니다. ... 교회 건물을 주님을 섬기는 데 쓰도록 봉헌하는 자리에서 말입니다. 자, 교회 건물은 그저 건물일 뿐입니다. 그러나 스데반이 한 번 이렇게 말했습니다. “솔로몬이 그분을 위해 한 집을 건축하였느니라.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는 손으로 만든 집들에 거하지 아니하시나니, 오히려 나를 위해 한 몸을 예비하셨나이다.” 아시겠죠?
우리는 교회란 사람들 안에 계시는 하나님의 영, 곧 그 영께서 이루시는 것임을 압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 이 교회라는 몸이 함께 모여 하나님을 경배하도록 봉헌된 모임 장소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귀한 형제님과 이 회중에게 이토록 아름다운 건물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아침 우리는 바로 그 목적을 위해, 이곳을 주 우리 하나님을 경배하는 장소로 봉헌하려고 여기 모였습니다. 봉헌 예식을 드리기 전에, 이 교회의 목사님께 성경 역대기하 5장을 읽어 주시며 이 봉헌에 참여해 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리틀필드 형제님, 역대기하 5장입니다.
[리틀필드 형제가 읽는다.] 이같이 솔로몬이 주의 집을 위해 만든 모든 일이 끝나니 솔로몬이 자기 아버지 다윗이 봉헌한 모든 것을 가져오고, 은과 금과 ... 도구를 하나님의 집 보고들 가운데 두었더라. 그때에 솔로몬이 궤를 ... 주의 언약궤를 다윗의 도시 곧 시온에서 가지고 올라오려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지파들의 모든 우두머리들 즉 이스라엘 자손의 아버지들의 우두머리들을 예루살렘에서 모으니 그런 까닭으로 일곱째 달의 명절에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이 왕에게 모이고 이스라엘 모든 장로들이 오매 레위 사람들이 궤를 들어 올리니라. 그들이 궤와 회중의 성막과 모든 거룩한 기구와 ... 성막 안에 있던 것들을 가지고 올라가되 곧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것들을 가지고 올라갔더라. 또한 솔로몬 왕과 그에게 모인 이스라엘 온 회중이 궤 앞에서 양과 소로 희생물을 드렸는데 그것들은 수가 많아 기입할 수도 없었고 셀 수도 없었더라. 제사장들이 주의 언약궤를 궤의 처소로 들여오되 곧 그 집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곳으로, 지성소로 즉 그룹들의 날개들 밑으로 들여왔으니 이는 그룹들이 궤의 처소 위에서 자기 날개들을 펴서 궤와 그것의 막대들을 위에서 덮었기 때문이더라. [모두 일어서 주시겠습니까?] 또 그들이 궤의 막대들을 끌어내었으므로 그 막대들의 끝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곳 앞의 궤에서는 보이나 밖에서는 보이지 아니하였더라. 그 궤가 이날까지 거기에 있으며 궤 안에는 ...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에서 나온 뒤에 주께서 그들과 언약을 맺으실 때에 모세가 호렙에서 그 안에 넣어 둔 두 판 외에 아무것도 없었더라. 그 뒤에 제사장들이 성소에서 나왔으니 (이는 거기에 있는 모든 제사장들이 거룩히 구별되었고 그때에는 계열별로 섬기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또한 노래하는 자들인 레위 사람들 곧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에게 속한 모든 자들이 흰 아마 옷으로 차려입고 심벌즈와 비파와 하프를 가진 자기 아들들과 형제들과 함께 제단의 동쪽 끝에 서 있었으며 제사장 백이십 명이 나팔로 소리를 내면서 그들과 함께하였더라.) 나팔 부는 자들과 노래하는 자들이 ... 하나가 되어 주께 찬양과 감사를 드리면서 한 소리를 내서 사람들이 듣게 하였으며 그들이 나팔과 심벌즈와 악기를 연주하고 소리를 높여 주를 찬양하여 이르되, 그분은 선하시며 그분의 긍휼은 영원하도다, 하매 그때에 그 집 곧 주의 집이 구름으로 가득 찼으므로 제사장들이 그 구름으로 인해 서서 섬길 수 없었으니 이는 주의 영광이 하나님의 집을 가득 채웠기 때문이더라. 하나님의 말씀 위에 그분의 가장 풍성한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때에 솔로몬이 이르되, 주께서 친히 가장 짙은 어둠 속에 거하시겠다고 말씀하셨으나 내가 그분을 위해 한 집을 건축하였나이다. 우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엄숙하게 바라보며, “주님께 드리는 건물 봉헌”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누면서,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대부분, 특히 학자들 사이에는 하나님께서 어디에나 계신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습니다. 저도 어떤 의미에서는 하나님께서 어디에나 계신다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디에나 계십니다.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에 어디에나 계신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저 대기처럼 어디에나 계시는 것이라면, 그분은 허구의 존재가 되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격을 지닌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분께서 거하시는 특정한 장소가 있어야 합니다. 그분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에 어디에나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분께서 어디에나 계시는 것은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따라서 모든 것을 아신다면 어디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 자신은 특정한 장소에 거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무한하십니다. 자, 무한이라는 말은 어떤 언어의 어떤 말로도 다 풀어 설명할 수 없습니다. 무한이라는 말은 “끝없는 무한들”과 같아서, 거기서도 계속 이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무한하십니다. 제가 무한이 무엇을 뜻하는지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면 이렇습니다. 세상이 형성되기 일억 년 전부터, 무한하신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생겨날 모든 벼룩을 알고 계셨으며, 그 각각이 눈을 깜빡일 때마다 언제 깜빡일 것인지도 알고 계셨습니다. 이것조차 무한하다는 말의 절반도 설명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무한하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에, 모든 것을 알고 계시며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다 아십니다. 그러나 그분 자신은 한 장소에 거하시는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을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자,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 가운데 거하십니다. 그분께서 이집트에서 불러내신 이들은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그분께서는 그들을 한 민족, 특별 소유 백성, 왕가의 제사장으로 택하셨습니다. 이 특정한 백성을 택하신 것입니다. 그들이 이집트에 흩어져 살고 있는 동안에도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분께서 그들을 불러내셨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교회가 되었습니다. 교회라는 말이 “분리된, 불러냄을 받은”이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교회가 되자, 하나님께서는 이 백성이 모여 교제할 수 있도록 특정한 장소를 정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과, 자신의 백성 가운데서 교제하기를 간절히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그다음 하나님께서는 번개가 번쩍이고 천둥이 울리는 불의 산으로 모세를 데리고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어떤 처소에 거하기를 원하시는지 그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모세가 땅의 성막을 하늘에서 본 것, 곧 주님의 성소를 본떠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아, 저는 이것이 참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교회 건물을 짓게 하시기 전에, 그 건물은 그분의 하늘 처소를 본뜬 것이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모든 것을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대로 만들었습니다.
자, 모세가 보았을 것을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그는 먼저 땅의 재료, 곧 가죽, 양가죽으로 그것을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성막, 혹은 천막이라고 부를 것입니다. “거처”라는 뜻입니다. 이 성막, 곧 천막에는 구분된 세 공간이 있었습니다. 영광의 세계도 분명히 그와 같을 것입니다. 우리가 보니 한 곳은 뜰, 곧 회중이 모이는 곳이라 불렸습니다. 그다음은 성소라고 불렸습니다. 그리고 그다음은 지성소라고 불렸습니다. 이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가리켰습니다. 그 안에 있던 기구들까지도... 그 벽 안에 있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말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의 충만하심이 거합니다. 모든 것이 그분을 향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육신이 되신 하나님, 이 땅에 거처를 정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래서 스데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솔로몬이 그분을 위해 한 성전을 건축하였느니라.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는 손으로 만든 전들에 거하지 아니하시나니, 오히려 나를 위해 한 몸을 만드셨나이다.”
그 건물 안의 모든 기구는 그리스도의 모형이었습니다. 희생물을 씻던 물두멍이 그랬습니다. 희생물을 잡아 태우던 놋 제단도 그랬습니다. 제단의 놋까지도 심판, 하나님의 심판을 말합니다. 놋입니다. 광야에서 만들었던 놋뱀처럼, 놋으로 만들어진 그 뱀은 뱀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심판, 이미 내려진 심판을 말했습니다. 엘리야가 올라가 바라보며 “하늘이 놋과 같았습니다”라고 말했을 때, 그것은 죄 많은 민족에게 임한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놋은 심판을 말합니다. 뱀 자체와 장대는 이미 내려진 심판을 말했습니다. 뱀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또 그것은 오실 그리스도를 말했습니다. 그분께서 죄가 되시고 하나님의 심판이 그분 위에 쏟아질 것을 말했습니다. 사람이시며 하나님이신 그분께서 내려오셔서 천사들보다 낮아지셔야 했습니다. 우리 모두의 죄를 위해 죽으실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분의 혼은 죽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분의 몸은 희생물이 되어 죽을 수 있도록 육신의 몸이 되어야 했습니다. 처녀에게서 태어난 몸이 희생물로 죽어야 했습니다. 죄인인 우리가 이것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도록 말입니다.
또 우리는 하나님께서 방이 셋인 집에 거하시는 것을 봅니다. 여러분이 사는 집도 그런 집입니다. 어떤 사람도 세 방보다 더 많은 방에서 살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방이 스물한 개나 열다섯 개 있는 집에 가서 보고 놀랍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실제로 사는 방은 셋뿐입니다. 부엌, 응접실, 침실입니다. 침실이 세 개 있을 수도 있습니다. 햇볕이 드는 베란다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셋뿐입니다. 식당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부엌에서 갈라져 나온 것에 불과합니다. 부엌은 먹는 곳입니다. 응접실은 교제하는 곳입니다. 침실은 쉬는 곳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교회에 정하신 질서를 말합니다. 우리는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좋은 것들을 먹음으로 부엌에 들어갑니다. 그것은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 그다음 우리는 거룩히 구별되는 데로 들어가 서로 교제하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모든 죄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침례를 받으면 안식과 안전이 있는 곳을 얻습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 피로 거룩히 구별되는 것, 성령 침례입니다.
요한일서 5장 7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늘에 증언하는 세 분이 계시니 곧 아버지와 말씀(곧 아들)과 성령님이시라. ... 또 이 세 분은 하나이시니라. ... 땅에 증언하는 셋이 있으니 ... 물과 ... 피와 영이라. 또 이 셋은 하나로 일치하느니라. 아들 없이 아버지를 모실 수는 없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을 모두 모시지 않고 성령을 모실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거룩히 구별되지 않고도 의롭게 될 수는 있습니다. 또 성령을 모시지 않고도 거룩히 구별될 수는 있습니다. 그 셋은 하나로 일치합니다. 그러나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하나이십니다. 여러분은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 한 뜰에 있을 수 있습니다. 또 다른 곳에서는 죄의 생활에서 깨끗해지고 거룩히 구별될 수 있습니다.
자, 자연적인 일이 그러하듯 영적인 일도 그렇습니다. 여자가 아기를 낳을 때, 먼저 나오는 것은 물입니다. 두 번째로 나오는 것은 피입니다. 세 번째로 나오는 것은 생명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그분의 교회를 깨끗하게 하여 그분 자신 안으로 들이시기 위한 요소들이 그분의 몸에서 나왔습니다. 사람들이 그분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을 때 물과 피가 나왔으며, “내 영을 아버지 손에 맡기나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모두 한 성령에 의해 침례를 받아 한 몸 안으로 들어와 안식합니다. 아, 세상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교회가 온갖 교리로 저를 붙들기 전에 하나님께서 저를 붙드신 것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저는 안식처를 찾았습니다. 아, 그 달콤한 거처, 그곳에서는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에게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그 영원한 안식을 찾은 것입니다.
바울은 히브리서에서 안식일을 설명하며 “하나님께서 안식일에 안식에 들어가신 때가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시 어떤 날을 한정하셨다”고 하며, 다윗의 글에서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오늘이라 말씀하시며, 너희가 내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퍅하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또 이사야서 28장에서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반드시 훈계 위에 훈계가 있어야 하고 줄 위에 줄이 있어야 하되 여기에도 조금 저기에도 조금 있어야 하느니라. 선한 것을 굳게 붙들라. 이는 내가 더듬는 입술과 다른 언어들로 이 백성에게 말할 것이기 때문이라. 이것이 안식이니라.” 아, 그 완전한 안식입니다. 회중 가운데서 제단으로, 제단에서 그리스도의 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침상, 밤, 은밀한 곳, 안식처입니다. 의롭게 되는 것은 마르틴 루터가 가르쳤습니다. 거룩히 구별되는 것은 존 웨슬리가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성령 침례는 오순절 교회가 가르쳤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원하고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십시오. 그 방 안에 있는 동안 여러분은 지성소에서 하나님과 함께 감추어져 있습니다! 여러분은 처음 난 자들의 교회 안에 있습니다. 침례를 받아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여러분은 심판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피를 통과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라.”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심판을 대신 받으셨으므로 여러분은 결코 심판을 겪을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참으로 거하시는 곳에 들어가는 길은 성령의 침례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회중입니다. 죄인이 들어와 듣습니다. 그것이 먹는 곳입니다. 그는 자신이 죄 있는 죄인으로서 죽음에 처해 있고 마땅히 죽어야 하지만, 예수님께서 자기를 대신해 죽으셨다는 것을 배웁니다. 그러나 “믿음은 들음에 의해 온다”는 말씀을 들을 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이 합당하지 않지만 믿으며, 자기를 대신해 고난받으신 주 예수님의 죽음을 받아들인다고 간증합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죄를 속죄하셨으며, 말씀을 통해 믿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삶을 바꾸어 바르게 살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 마음에는 여전히 그릇된 일을 하려는 욕망, 곧 악의 뿌리가 남아 있습니다. 나무를 베기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은 자기가 한 일뿐입니다. 아담이 한 일이 아니라 자기가 한 일, 자기가 지은 죄들입니다. 자기가 한 일에 대해서는 용서를 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담이 한 일에 대해서는 용서를 구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거룩히 구별하는 일을 통해 들어와 그 마음을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고 죄의 모든 요소를 뿌리 뽑습니다. 사람들은 거룩히 구별된다는 말에 걸려 넘어집니다. 그러나 그것은 “깨끗하게 되어 섬김을 위해 따로 구별된다”는 뜻의 그리스어 합성어입니다. 제단이 그릇을 거룩히 구별하고 깨끗하게 했으며, 그릇은 섬김을 위해 따로 구별되었습니다. 그러나 섬김을 위해 따로 구별되었다고 해서 아직 섬기는 데 쓰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께서 이 거룩히 구별된 그릇에 오실 때, 그 그릇을 채우시고 주님을 섬기는 데 쓰시는 것입니다.
방이 셋인 집입니다. 여러분 자신도 방이 셋인 집에 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혼과 몸과 영으로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세 구획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셋 안에 거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셋으로 완전하십니다. 교회는 셋으로 완전해집니다. 성경의 수는 어긋나지 않습니다. 경배에서 나오는 칠, 시험에서 나오는 이십사, 희년에서 나오는 사십, 그리고 오십입니다. 성경의 수는 완전하게 맞아떨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셋으로 완전하십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한 분의 완전하신 하나님을 이룹니다. 동일한 하나님의 세 직분입니다. 교회는 의롭게 되는 것과 거룩히 구별되는 것과 성령 침례를 통해 완전해집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구속의 날까지 봉인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한 번 깨끗해진 사람은 더 이상 죄를 바라는 마음이 없습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습니다.
요즘 이것을 흉내 내며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일이 이렇게 많지만 않다면, 여러분은 성령의 권능으로 거룩히 구별된 참된 교회와, 사람의 어떠한 생각도 뛰어넘는 교제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들어와서 자기도 그렇게 되었다고 주장하는 모방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외적인 감정의 표현을 보이려고 소리치고 방언을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형제님,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시나무와 엉겅퀴가 밀과 함께 자라지만, 그 열매로 그것들을 압니다. “그것들을 뽑지 말고 함께 자라게 두라. 수확하는 천사들이 그것들을 갈라놓으리라.”
방이 셋인 집입니다.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 섬김입니다. 하나는 여러분의 몸, 곧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위해 하는 일입니다. 다른 하나는 여러분의 영, 곧 여러분이 그리스도에 대해 품는 생각입니다. 또 하나는 여러분의 혼, 곧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가진 믿음입니다. 방이 셋인 집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도록 완전히, 전적으로 바쳐진 집입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 피로 거룩히 구별되는 것, 성령으로 충만해져 하나님과 함께하는 평안과 안식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믿음에서 물러서는 일이 이렇게 많은 것도 당연합니다. 오늘날 교회에 문제가 이렇게 많은 것도 당연합니다. 사람들이 자기가 죽는 그곳에 들어갈 때까지 하나님과 함께 끝까지 나아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기 자신의 지적인 생각에 대해 죽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작은 씨는 썩기 전에는 생명을 낳을 수 없습니다. 아주 노랗고 단단한 껍질에 싸인 옥수수 한 알을 땅에 심어 보십시오. 그러나 그 옥수수가 죽고 그 몸이 썩기 전에는 결코 새싹을 내지 못합니다. 새 생명이 들어오면 그것은 처음 생명과는 전적으로, 완전히 다릅니다. 부드럽고 유연하며 살아 있습니다. 그것은 겉껍질에 싸여 있던 그 작은 생명의 알맹이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태어난 남자나 여자도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지적으로 아주 뛰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태어나고 여러분의 지적인 것들이 생각 속에서 썩어 없어져서, 오직 그리스도만 붙들고 그분께서 여러분을 자신의 영으로 채워 주셔야 합니다. 그때 세상의 것들이 여러분에게 어리석게 여겨지고,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의 삶에서 위대하며 으뜸이 됩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모세가 ... 아니, 아론과 선지자들 등이 그렇습니다. 저는 오늘날 어떤 설교자도 이 성소 안에 들어가기 전에는 복음을 전할 자격이 없다고 믿습니다. 바로 그곳에서 기적들이 일어났습니다.
오늘날 육에 속한 교회가 기적을 믿지 못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함께 안식하는, 기적이 일어나는 곳에 들어가 본 적이 없습니다. 아론의 지팡이에 싹이 난 곳이 바로 거기였습니다. 죽어 있던 것이었습니다. 광야에서 가져온 낡고 마른 막대기가 그 지성소 안에서 새 생명을 얻어 꽃을 피우고 싹을 내고 잎을 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지성소 안에 놓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죽은 죄인, 썩어 있고 생각과 사고가 육에 속해 있으며 하나님의 권능을 비판하는 사람을 데려다가 성령의 임재 안으로 이끌어 보십시오. 그에게 무슨 일인가 일어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홀로 있는 그곳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모세는 다음 장에서 “그분께서 짙은 어둠 속에 거하신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이 그곳입니다. 생명이 머무는 곳이 그곳입니다. 썩어 부패하는 것 한가운데입니다. 생명은 어디에 머뭅니까? 씨가 썩은 뒤 그 씨 안에 머뭅니다. 씨가 자신에 대해 죽으면 새 생명을 낳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디에 머무십니까? 여러분이 자신에 대해 죽고 그분께 기회를 드릴 준비가 되어 있다면, 그분은 여러분과 함께 머무실 것입니다. 섬김, 몸, 지적인 영, 생각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여러분의 믿음입니다. 방이 셋인 집입니다.
자, 모세가 만든 이 집에는 들어가는 길이 있었습니다. 저는 어떤 길이었는지 주목했습니다. 이 건물 안에 들어가기 전에... 경배하러 들어가기 전에 준비되어 있어야 했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백성이 자신을 경배하러 이 건물에 들어올 길을 마련하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한 번도 멍에를 멘 적이 없는 붉은 암송아지를 내게 데려오라.” 암송아지입니다. 그것은 붉어야 했습니다. 주홍색이어야 했습니다. 붉은색은 구속을 말합니다. 피, 붉은색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죄가 붉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피가 붉습니다. 붉은 유리 한 조각을 들고 그것을 통해 붉은 유리 한 조각을 바라보며 무슨 색이 나오는지 보십시오. 붉은 것을 붉은 것을 통해 보면 희게 보입니다. “우리 죄들이 주홍 같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의 피를 통해 그 죄들을 보시면, 그것들은 눈같이 희게 됩니다. 붉은색, 구속입니다. 붉은 것을 붉은 것을 통해 보면 희게 보입니다. 여러분이 구주라고 고백한 그분, 곧 하나님의 아들의 피를 통해 하나님께서 보실 때, 그분은 더 이상 여러분의 죄를 보지 않으십니다. 그것들은 눈같이 희게 되었습니다. 붉은 것을 붉은 것을 통해 보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붉은 암송아지를 데려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그분께서는 믿지 않는 사람을 위해 거룩히 구분하는 물을 마련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또 말씀하셨습니다. “목에 한 번도 멍에를 멘 적이 없는 이 암송아지를 데려오라.” 이것은 아무것과도 멍에를 함께 메지 않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날 문제는 우리가 온갖 것과 멍에를 함께 메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와 교단들은 세상과 멍에를 함께 메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권능은 하나님 외에는 누구와도 멍에를 함께 메지 않습니다. 어떤 교단도 “우리에게 그 권능이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 권능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어떤 교회나 교단이나 특정한 사람이나 신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습니다! “믿지 않는 자들과 멍에를 같이 메지 말고 저들 가운데서 나오라.” 하나님과 멍에를 함께 메십시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위에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니 너희가 너희 혼을 위한 안식을 찾으리라.”
아무것과도 멍에를 함께 메지 않았고, 목에 멍에를 멘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 암송아지는 대제사장이 잡아야 했습니다. 주 예수님의 죽음을 목격한 사람은 대제사장 가야바였습니다. 또 그 암송아지는 이스라엘 온 회중 앞에서 잡아야 했습니다. 예수님께 사형을 선고하고 그분의 죽음을 목격한 것은 이스라엘이었습니다. 세상의 불신과 멍에를 함께 멘 것입니다. 보십시오. 그다음에는 이 암송아지를 태워야 했습니다. 발굽과 머리와 뿔과 암송아지 속의 똥까지, 모든 것을 태워야 했습니다. 그리고 태울 때 주홍색 양털과 백향목과 우슬초를 넣어야 했습니다.
자, 성경에서 주홍색은 피로 물들인 양털을 가리킵니다. 주홍색입니다. 붉은색은 우리의 구속을 뜻합니다. 그 주홍색 양털을 암송아지와 함께 불 속에 던져 넣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백향목은 십자가를 말합니다. 십자가, 곧 백향목은 희고 그 안에 붉은 줄무늬가 있습니다. 흰색은 십자가의 의를 말합니다. 붉은색은 그것을 의롭게 만든 피를 말합니다. 십자가는 저주였습니다. “나무에 달리는 자는 저주받았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십자가를 타고 흘러내리기 전까지 십자가는 저주였습니다. 그 후로 우리는 십자가를 가슴에 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의이기 때문입니다. 백향목 안에 있는 붉은색이 그 흰색을 의롭게 만드는 것입니다. 백향목을 그것과 함께 태워야 했습니다.
그다음에는 주홍색 양털과 함께 우슬초를 던져 넣어야 했습니다. 백향목과 우슬초입니다. 우슬초는 그저 흔한 풀일 뿐입니다. 이것은 복음을 결코 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이 가르쳐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겸손하게 가르쳐야 합니다. 여러분 앞에 있는 풀처럼 겸손해야 합니다. 복음을 사람들에게 결코 복잡하게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겸손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에서 어린양의 피를 가져다가 문설주 위의 인방에 바를 때 사용한 것은 우슬초였습니다. 우슬초, 풀, 그저 흔한 풀입니다. 거룩히 구분하는 물에 관한 복음의 겸손함을 나타냅니다. 거룩히 구분하는 물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을 함께 태워야 했습니다. 암송아지, 주홍색 양털, 백향목, 우슬초를 모두 함께 태워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재는 바깥뜰의 ... 거룩한 곳에 보관해야 했습니다.
하나님, 이것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지게 해 주십시오. 거룩하지 않은 입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때는 이러하셨지만 지금은 다르시다고 말하는 사람의 입으로 전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을 섬기도록 바쳐진 거룩히 구별된 입술을 통해, 살아 계신 하나님의 권능으로 전해야 합니다. 이 재, 곧 거룩히 구분하는 물을 거룩한 곳에 보관하십시오. 주 예수님의 이름을 받아들이고 그분을 구주로 고백하는 믿는 사람은 세상에 속한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됩니다. 만일 그런 일을 한다면 신속히 회개해야 합니다. 거룩히 구분하는 물인 그 말씀은 거룩한 곳에 보관하고 깨끗한 손으로 다루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도 먼저 이 세상의 염려와 것들로부터 거룩히 구별되지 않고서는 복음을 전할 자격이 없습니다.
거룩히 구분하는 물입니다. 그것이 무슨 일을 했습니까? 믿지 않는 사람, 곧 이스라엘에서 태어났으나 떠나 헤매던 사람이나 타국인이 교회에 들어오면, 먼저 바깥뜰에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양식을 주는 곳, 말씀을 전하는 곳에서, 깨끗한 마음과 깨끗한 손을 가진 사람이 주홍색 양털과 태운 암송아지와 백향목과 우슬초를 다루며, 거룩히 구분하는 물을 가져다가 그 사람에게 뿌렸습니다. 설교자는 깨끗하고 순수하며 섞임 없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의 손은 세상의 것들에 더럽혀지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말씀은 거룩한 곳에 보관되고 거룩한 손으로 전해집니다. 에베소서 6장은 우리가 말씀의 물로 씻긴다고 말합니다. 구분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 의해 오며 들음은 말씀에 의해 오느니라.”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이 건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여기 천막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관계없는 사람이거나,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 있거나, 한때 믿다가 뒤로 물러섰거나, 세상으로 나갔거나, 이스라엘 밖에서 태어난 사람은 누구든지 들어오기 전에 먼저 와서 거룩히 구분하는 물을 뿌림 받아야 합니다. 그를 세상의 것들로부터 구분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의 갈망과 사랑과 바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향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는 말씀을 그 무엇보다 더 귀하게 여깁니다.
그러면 그 암송아지의 피는 어떻게 했습니까? 그들은 암송아지의 피를 큰 접시에 받아 성막 문으로 가서, 문을 가로질러 일곱 줄로 발랐습니다. 그러면 이제 경배하러 오는 사람, 물을 뿌림 받아 세상의 것들로부터 구분된 그 사람은 문 안으로 들어갈 때 반드시 그 피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신조를 바라보는 것이 아닙니다! 교단을 바라보는 것이 아닙니다! 죽은 희생물의 피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그 피를 일곱 번 뿌렸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땅 위에 존재할 칠천 년 전부를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과 만나실 교제의 유일한 근거는 피였으며 앞으로도 피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피를 통한 교제입니다.
자, 뜰에서 교제 안으로 들어옵니다. 믿는 사람들의 교제 안으로 들어오기 전에, 여러분은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해져야 합니다. 아무리 성경을 잘 알고, 누가 성경을 아무리 잘 설명해 주었다 해도, 여러분은 반드시 주 예수님의 피를 인정하고, 흡연과 음주와 도박 같은 세상 습관에서 깨끗해지고 거룩히 구별되어야 합니다. 부도덕한 옷을 입는 여성 여러분, 그리고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카드놀이를 하고 당구장에 드나드는 집사들과 그 밖의 교인 여러분, 그것들은 세상의 것들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것들로부터 구분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여러분의 본성을 바꾸는 것입니다. 그것을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그 피를 인정해야 합니다. 에덴동산에서 죄를 범한 바로 그날부터 모든 세대에 걸쳐, 하나님께서는 사람과 다시 교제할 길을 마련하셨습니다. 그것은 피를 통해서였습니다. 여러분의 교회가 얼마나 훌륭한지, 교단으로서 얼마나 대단한지, 얼마나 잘 준비되어 있는지, 얼마나 크게 외쳤는지, 무슨 방언을 했는지는 상관없습니다. 여러분을 세상의 것들로부터 구분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뿐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처음 봉헌된 그 성전 안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무엇이었습니까? 먼저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그다음 와서 피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말합니다. “거룩히 구별되는 것이라니, 구식이군.” 거룩히 구별된다는 것은 “깨끗해진다”는 뜻입니다. 자기를 죄에서 깨끗하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인정할 수 없는 사람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참 교회와 결코 교제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제가 교단으로서의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들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교단들은 많이 있습니다. 네다섯 개의 서로 다른 교단이 있는데, 그들도 다른 교단들만큼 훌륭합니다. 그러나 피가 적용되기 전까지는 그 모든 것이 정죄 아래 있으며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 우리를 눈같이 희게 하는 그 흐르는 피가 귀하도다. 나는 다른 샘을 알지 못하네. 예수님의 피밖에 없네. 어떤 교단도, 어떤 교회도, 어떤 건물도, 어떤 장벽도, 그 무엇도 아닌, 오직 예수님의 피뿐입니다. 깨끗하게 하는 샘으로 제가 아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러 오는 모든 사람은 먼저, 자기가 이 교제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죽으시고 피를 흘리신 희생물이 계셨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어젯밤 제가 말하려고 했던 것은 하나님의 영으로 태어난 사람들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세상의 것들을 보지 못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들은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영은 거룩함과 의가 거하는 위에서 옵니다. 그곳에서는 그분의 피 묻은 옷 위에 있는 예수님의 피가 날마다 하나님 앞에 드리워져 있습니다! 천사들이 그 피 앞에 절합니다. 하늘의 모든 것이 그 피 앞에 절합니다. 땅 위에서 천국에 가는 모든 것도 그 피 앞에 절할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 피를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 일곱 줄의 피 아래로 들어올 때, 이제 경배하는 사람들이 교제하러 들어옵니다. 아, 어떤 사람들은 나가서 말씀을 듣고 신학교에 가서, 교회의 가르침을 모두 배웠다고 생각하며 자기가 설교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자기들의 ...에서 자기들을 깨끗하게 한다는 것을 인정하기 전까지는 설교할 자격이 없습니다.
어떤 설교자들은 칼라를 뒤로 돌려 입고 입에 담배를 문 채 거리를 다닙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해수욕장을 비롯한 온갖 곳에 나가 자기 교인들과 함께 누워 있고, 교회에서 번코 게임과 파티를 벌이면서 설교자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아닙니다! 그것은 사람이 만들어 낸 설교자들입니다!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설교자들은 피를 통과해 들어옵니다. 여러분의 교단이 이 나라만큼 오래되었다 해도 상관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으로 인정하신 것은 피였습니다. 피는 하나님께서 혼을 깨끗하게 하려고 마련하신 유일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실 유일한 것, 그리고 하나님께서 교제하실 유일한 대상은 피 아래 있는 사람들입니다. “내가 그 피를 볼 때에 넘어가리라. 내가 너희를 넘어가리라.” 언제나 피를 통해서입니다! 사람은 반드시 그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이제 이 세 방 안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경배하러 들어오는 것입니다. 우선, 안으로 들어가면 거기에 셋이 있습니다. 이 바깥에는 그곳에 이르기까지 세 단계가 있습니다. 첫째는 말씀으로 씻는 물을 통한 구분입니다. 둘째는 자기가 그 아래를 지나가는 피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피 아래로 들어올 때 그는 모든 성도와의 교제 안으로 들어옵니다. 문 위에 피의 표를 바르시고 죽으신 그분의 영에 의해 침례를 받아 그 몸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그는 거룩히 구별되고, 그다음 성령으로 충만해져 침례를 받아 믿는 이들의 몸 안으로 들어옵니다. 하나님께서 만나 주시는 곳은 흘려진 피 아래입니다.
하나님께서 첫 번째 성막에서 만나 주신 곳이 그곳입니다. 하나님께서 두 번째 성막에서 만나 주시는 곳도 그곳입니다. 오늘 아침 이 성막이 여기에 세워진 것도 바로 그것을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저기에 회중이 있는 곳, 곧 뜰이 있습니다. 여기에 성소, 곧 제단이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는 설교자가 서는 곳, 곧 백성에게 말씀을 전하는 지성소입니다. 지성소 안으로 들어가는 것 말입니다. 그 안에 들어가 본 사람이 아니면 아무도 설교할 자격이 없습니다. 자, 그가 이곳에 들어올 때, 와서 말씀을 인정하면 말씀의 물로 씻깁니다. 그다음에는 피를 인정하여 거룩히 구별됩니다. 그러면 믿는 사람들과, 또 하나님과의 교제 안으로 들어옵니다. 그러면 이 성막 안에서... 아, 참 좋습니다. 참으로 경건한 마음이 듭니다.
이 성막 안에는 대제사장 아론이 있었습니다. 아, 이 교제 안에 들어온 다음, 그는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기름부음 받은 대제사장입니다. 다윗은 “우리 형제들이 하나가 되어 동거하는 것이 얼마나 기쁜가”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아론의 머리에 부어 그의 옷자락까지 흘러내린 귀중한 기름부음의 기름에 비유됩니다. 이 기름부음의 기름은 성령을 나타냅니다. 아론은 대제사장으로서 그리스도의 모형이었습니다. 그리고 보십시오. 그 기름부음의 기름 속에는 샤론의 장미와 골짜기의 백합화 향유가 들어 있었습니다. 아름답게 서 있는 그 크고 붉은 꽃, 샤론의 장미는 그리스도를 나타냅니다. 그 꽃을 짓이기고 으깨어 그 안의 향유를 짜내기 전에는 결코 향유를 얻을 수 없습니다. 주님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도록 말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사신 위대하고 아름다운 삶은 하나님의 손에 쓰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분께서 갈보리에서 짓눌리고 으깨어지고 침 뱉음을 당하며 바로 그 생명까지 쥐어짜이시기 전에는 결코 향유가 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이 우리를 위한 기름부음을 이루었습니다. 그분은 골짜기의 백합화이셨습니다. 백합화에서 무엇을 얻습니까? 아편입니다. 아편은 무슨 일을 합니까? 고통을 달래 줍니다. 사람을 잠들게 하여 꿈의 세계로 들어가게 합니다. 성령께서는 무슨 일을 하십니까? 성령의 아편은 모든 고통을 덜어 줍니다. 모든 눈물을 거두고, 모든 마음의 아픔을 고쳐 줍니다. 골짜기의 백합화입니다.
그러면 대제사장은 무엇으로 기름부음을 받습니까? 구원과 치유를 위한 것으로 받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어둠 속에서 언제나 빛을 비추는 빛나는 새벽별입니다! 그 작은 빛이 그 무서운 어둠과 희생물들 사이를 지나갈 때,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가 확증되었습니다. 골짜기의 백합화, 빛나는 새벽별, 샤론의 장미, 제 혼에는 만 명 가운데 가장 아름다우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아론을 대신하여 대제사장으로 서는 목회자는 교제를 위한 기름부음을 받아야 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집 안에 교단의 장벽을 세울 수 없습니다. 이 교회는 장로교 소속이고, 이곳은 감리교나 침례교나 오순절 교회나 그 밖의 어떤 교단 소속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죄에서 구분되고 성령으로 충만해진 모든 사람에게 열린 집이어야 합니다! 그들이 주님의 기름 안에서 교제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아, 얼마나 좋은 경배 장소입니까.
그 기름은 모든 교단에, 영으로 태어난 모든 형제에게까지 흘러내립니다. 그들은 자유롭게 그 집 안으로 들어옵니다. 아론이 기름부음 받은 채 서 있습니다. 오늘 아침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교회 여러분, 장로교 여러분, 감리교 여러분, 침례교 여러분과 교제하시려고 기름부음 받은 분으로 서 계십니다. 거룩히 구분하는 물을 거치고 피를 인정하며 거룩히 구별되어, 침례를 받고 그 몸 안으로 들어온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그렇습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이름표가 붙어 있든 상관없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며 이 교제를 누릴 권리가 있습니다. 그 길을 통과해 왔기 때문입니다. 교단의 장벽은 여러분을 가로막겠지만, 성령께서는 여러분을 하나님께 속한 그 교제 안으로 이끄실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해 왔습니까? 이것이 첫 성막의 질서입니다. 이것이 이 성막의 질서가 아니라면, 이 성막은 무너지고 실패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헛되이 지은 것입니다. 생활에 쓸 것을 희생하여 이 아름다운 건물을 지으신 여러분, 이것은... 저는 이 건물의 설계도를 얻고 싶습니다. 저희도 제퍼슨빌에 하나 지으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건물이 마음에 듭니다. 저는 여러분의 목사님을 사랑하고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형제님, 그것이 주님의 집의 질서입니다. 이것은 봉헌된 성전입니다. 그때는 그것이 그림자 속에 있었습니다. 모세가 그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다윗이 선지자와 함께 앉아 있다가, 선지자 나단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백향목 집에 살면서, 내 하나님의 언약궤는 아직도 저 밖 천막 아래 있게 하는 것이 옳습니까?” 나단은 선지자였기에 다윗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다윗이여, 하나님께서 왕과 함께 계시니 왕의 마음속에 있는 모든 것을 행하소서.”
다윗은 그분을 위해 집을 짓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그날 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의 동기와 왕의 동기, 그리고 그들의 목적을 보셨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라. 그가 누구였느냐? 내가 그를 양 우리에서, 양 몇 마리를 따라다니던 데서 데려왔다.” 그분께서는 여러분을 어디에서 데려오셨습니까? “내가 그에게 이름을, 위대한 이름을 주었다.” 어느 날 주님께서 그것을 제게 보여 주셨을 때 저는 생각했습니다. “오 하나님, 제가 무엇이 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저 뒤편에서 제퍼슨빌밖에 모르던 보잘것없는 작은 설교자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제 동굴 곁에서 주님께서 제게 그 대목을 펼쳐 주셨습니다. 저는 그때 처음으로 그것을 읽었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오럴 로버츠나 빌리 그레이엄, 혹은 그들 중 누구와 같은 위대한 이름을 주겠다. 내가 너를 어디서 데려왔느냐? 너는 무엇이었느냐?”
“그러나 네가 성전을 짓게 할 수는 없다. 네 아들이 그것을 짓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 그것은 모형과 그림자였습니다. 솔로몬이 그분을 위해 성전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참 아들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처녀에게서 태어나신 그분께서 참 성전을 지으셨습니다! 그분의 몸 안에 하나님의 영원한 성전이 있습니다. 그러나 모형과 봉헌의 차원에서 솔로몬이 성전을 지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성전은 온갖 서로 다른 종류의 돌을 잘라 만들었습니다. 돌을 이렇게도 자르고 저렇게도 잘랐습니다. 그런데 사십 년 동안 그것을 세우면서 톱 소리나 망치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완벽하게 잘라 놓았던 것입니다.
자, 돌 하나가 다른 돌과 달랐습니다. 오늘 아침 여기 계신 교단의 여러분, 하나님의 교회와 두세 개 서로 다른 교단에 속한 여러분이 있습니다. 또 모든 오순절 교인들, 일신교를 믿는 분들, 이일성이나 삼일성을 믿는 분들, 여러분이 무엇이든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목적을 가지고 이 일을 하신다는 것을 아십니까? 그 돌들은 세계의 서로 다른 곳에서 서로 다르게 잘랐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함께 모였을 때는 톱 소리나 망치 소리가 없었습니다. 언젠가 위대한 건축가께서 오실 것이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 곧 일신교와 이일성과 삼일성을 믿는 여러분, 하나님의 교회들, 오순절 교회, 하나님의 성회가 모두 불평 한마디 없이 함께 모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마디마디 서로 맞아 들어갈 것입니다. 아, 기름부음을 받으십시오. 대제사장께서 기름을 부어 주고 계십니다. 그분께서 언제나 기름부음 받은 채 이 건물 안에 서 계시며, 하나님의 영으로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손을 내밀어 악수하게 하십시오. 어느 교회에 속했든 상관없습니다. 그는 여러분의 형제이며, 그 여인은 여러분의 자매입니다. 여러분이 교단의 장벽을 세우고 주 예수님의 몸 전체를 인정하지 못할 때, 하나님께서는 이 성막을 떠나실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 모두가 구원받을 수 있도록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목적을 가지고 이 일을 하고 계십니다.
기억하십시오. 백향목은 레바논에서 잘라 욥바까지 물에 띄워 보냈습니다. 욥바에서는 소가 끄는 수레로 예루살렘까지 운반했습니다. 레바논의 키 큰 백향목들에는 금을 입혔습니다. 성전 안 어디에서도 톱 소리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한 일이 하나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도 바로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곳저곳 옮겨 다니는 천막에서 고정된 건물이 된 첫 성막을 세울 때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건물 곁에서, 어느 정도 짓다가 발견했습니다. 이상하게 생긴 돌 하나를 발견한 것입니다. 그것은 별난 돌이었습니다. 나머지 돌들과 달랐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것을 버렸습니다! 잡초가 쌓인 곳으로 내던졌습니다! 그들은 “저 돌은 이 건물에 맞지 않겠어”라고 말했습니다. 그 돌을 발로 차서 잡초 더미 속으로 밀어냈습니다. 그러나 계속 위로 쌓아 올리며 어떤 지점에 이르자, 자꾸 걸리는 곳이 생겼습니다. 얼마 뒤에는 건물에 빈자리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맞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오늘날 여러분 교회들이 바로 그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여러분 교단들은 건물을 짓고 회칠도 하고 건물을 갖추었습니다. 그러나 어딘가에 빈자리가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들은 무엇을 찾았습니까? 버림받은 돌입니다. 예수님께서 으뜸 모퉁잇돌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교단을 만들고는 “우리에게는 있지만 나머지 여러분은 그 안에 있지 않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으뜸 모퉁잇돌인 하나님의 사랑을 빼놓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얼마나 많은 기적을 행할 수 있는지, 선지자가 얼마나 많은지, 얼마나 많은 은혜의 일을 행하는지는 상관없습니다. 그것은 결코 맞아 들어가지도, 아무것도 이루지도 못할 것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는 사랑으로 함께 녹아들고 굳게 결합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돌을 버렸습니다.
동굴 속에 있던 엘리야와 같습니다. 그는 먼저 큰 천둥과 요란한 소리가 지나가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다음에는 많은 번개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다음에는 세찬 바람이 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 가운데 계시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해 온 일이 그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는 불과 피와 연기와 세찬 바람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세차고 강한 바람 소리를 너무나 많이 듣다 보니, 고요하고 작은 음성을 듣기는 거부해 온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성막은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려 듣기를 바랍니다. “주를 기다리는 자들은 자기 힘을 회복하리니 그들은 독수리같이 날개 치며 올라갈 것이요, 달려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라.” 그것은 당황스러운 일입니다. “그들은 걸어가도 기진하지 아니하리라.” 주님, 가르쳐 주십시오. 주님, 기다리는 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그렇습니다. 그들에게 바로 그 돌이 있었습니다. 버림받은 돌이 모퉁이의 으뜸, 곧 으뜸 모퉁잇돌이 되었습니다. 바로 그곳이 그 돌의 자리였습니다. 그들이 제대로 가서 그 버림받은 돌을 가져다가 끼워 넣자, 완벽하게 맞았습니다! 그러자 건물이 하나로 조립되었습니다. 건물이 하나로 조립되어 모두 완성되자, 솔로몬은 봉헌하는 날을 선포했습니다. 그 성막도 바로 이 성막처럼 지었습니다. 회중이 있는 곳, 뜰, 제단, 지성소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따라야 했던 원칙을 보십시오. 그들이 무엇을 지켜야 했는지 보십시오. 그들이 어떻게 이 공동의 교제 장소를 가져야 했는지 보십시오.
이 성막이 언제나 그 원칙들을 지키기를 바랍니다. 그때는 모형이었지만 지금은 실체입니다. 그때는 죽은 짐승의 제단에서 속죄소에 뿌렸지만,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속죄소에 뿌려집니다. 우리는 들어올 때 그 피와 하나님의 권능으로 이루어지는 치유를 인정해야 합니다. 순복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와 같은 요소들을 거쳐 들어온 형제나 자매가 교제를 원한다면 누구와도 교제해야 합니다. 그 사람의 교단이 가로막게 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그러면 이 교회는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서 있을 것입니다. 저는 그때가 가까웠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궤를 안으로 들여오고, 거룩히 구분하는 물을 뜰에 놓고, 붉은 암송아지를 잡아 그 피를 문 위에 줄무늬로 바른 다음, 모든 것이 질서대로 갖추어졌을 때, 솔로몬은 백성을 불러 모았습니다. 오늘 아침 여러분의 목사님이 여러분을 불러 모으신 것처럼 말입니다. 아, 참된 봉헌과 교제의 시간이었습니다. 마치면서 이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들은 백성을 불러 모았습니다. 사람들이 들어와 보니 마침내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만나실 장소가 생겼습니다. 그분의 복음을 위한 준비가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나아가는 길이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모든 것이 바르게 갖추어졌습니다. 보십시오. 그들은 여러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의 아들들을 불러냈습니다. 그들은 제단 동쪽으로 내려갔고, 흰옷을 입고 기쁨으로 노래했습니다. 백성이 하나님을 찬양하니 마치 하나의 목소리처럼 들렸습니다. 그것이 오순절이 아니라면, 저는 평생 오순절을 본 적이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 권능과 그 거룩... [테이프에 공백이 있음.]
성전은 봉헌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오늘 아침 봉헌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기억하십시오. 이스라엘은 성전을 봉헌할 준비만 된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들어온 그곳에서 자신들도 다시 하나님께 바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의 오순절 교회와 여기 계신 이 목사님, 저는 이 목사님이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마음으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정해 주신 원칙들을 지키는 분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니 교회를 봉헌한다는 것은 단지 와서 “주님, 이 건물을 주님께 드립니다”라고 말하는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주님, 우리 자신을 희생물로 주님께 드립니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부활절 아침마다 원하시는 것은 제단 위의 백합화가 아니라 제단 위의 죄인입니다. 건물의 품격과 아름다움을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것도 좋습니다. 솔로몬의 성전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규정 아래로 들어오는 것,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여 나아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마침내 모두가 거할 수 있는 한 장소를 마련하고, 피를 통한 교제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러 그곳에 왔을 때, 그들은 기쁨으로 노래하기 시작했습니다. 하프를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한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마치 하나의 목소리로 노래하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그때 솔로몬은 주님께 기도하며 봉헌하려고 일어섰습니다. 그가 그렇게 했을 때를 보십시오. 기억하십시오. 궤는 이미 그룹들의 날개 아래로 들어와 성소 안쪽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자신을 바쳤을 때, 교회가 아니라, 건물이 아니라, 사람들이 한마음이 되어 한마음으로 기도하고 한마음으로 노래하며 모든 것이 한마음이 되었을 때, 성령께서 불기둥의 모습으로 건물 안에 들어오셔서 그곳에 임하셨습니다. 그 건물 안에 영광이 너무나 가득하여 제사장들이 더 이상 섬길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 다시 그렇게 되게 해 주십시오. 이 작은 성막에 다시 임하게 해 주십시오. 우리는 주 예수님의 피를 통과하여 ... 아니, 그 피 아래로 걸어 들어옵니다. 죄를 고백하고 그분의 영으로 충만해져서 이곳에 옵니다. 오늘 아침 여러분도 이스라엘이 그들의 성막을 기뻐했던 것처럼, 이 작은 성막을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그들이 들어온 것과 같은 질서 아래로 들어오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마음에 기쁨이 임할 것입니다. 영으로 태어난 사람은 누구도 결코 정죄하지 않겠다고 마음에 새기십시오. 그분의 모든 종과, 그분의 모든 백성과 교제하겠다고 말입니다. 이곳이 초교파적인 기관으로 서 있기를 바랍니다. 나그네가 지나다 들를 수 있는 곳으로 서 있기를 바랍니다. 길가에 자리한 집과 같은 곳이 되기를 바랍니다. 순례자와 나그네가 그 문 안으로 들어와 쉴 수 있는 곳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교회의 목사님이 살아서 주님께서 오시는 것을 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회중이 성장하고 여러분이 하는 모든 일에서 번창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복이 이곳 위에 머물기를 바랍니다. 저는 그분의 은혜로 목회자가 된 사람으로서, 이 작은 교회에 이 복을 선포합니다. 다음 약속을 지키는 동안입니다. 이 교회가 하나님의 질서 아래 머물면 서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질서에서 벗어나면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마음의 문마다 그 인방 위에 반드시 피가 있게 하십시오. 그곳 문 인방 위에 말입니다. 교단의 장벽도 없고 차별도 없으며,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입니다.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와서” 교제할 수 있게 하십시오. 이 거룩한 성소에서 순복음을 전하는 일을 결코 그치지 마십시오. 이곳에 부활하신 예수님의 기적과 표적과 이적이 언제나 있기를 바랍니다. 대제사장이 아편의 기름으로 기름부음을 받아 모든 상한 마음을 달래 주시기를 바랍니다. 샤론의 장미, 영의 달콤함이 기름부음의 기름과 함께 이토록 풍성하게 이곳에서 전해지고 이곳에서 드러나, 나라 곳곳에서 사람들이 들어와 “진실로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십니다”라고 말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형제님의 설교에 표적과 이적이 따르기를 바랍니다. 만일 그분이 다른 곳으로 가시거나 세상을 떠나신다면, 샘 존스와 그 동료들 때부터 여러 해 동안 이어져 온 것처럼, 그 뒤를 이을 사람이 이 건물 안으로 들어오기를 바랍니다. 이 성령의 복음이 이곳에서 전해지는 일이 결코 그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결코 타협하거나 어떤 교단을 따라 경계선을 긋지 않기를 바랍니다. 언제나 누구든지 원하는 사람에게 열려 있기를 바랍니다. 그가 와서 주님의 샘들에서 마시게 하십시오.
우리가 솔로몬처럼 봉헌 기도를 드리는 동안, 회중은 일어서서 손을 들고 각자의 방식으로 기도하며, 이 성막과 경배 장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주 우리 하나님께서 마침내 피 아래, 영의 교제 안에 자신의 이름을 두실 장소를 찾으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모두 고개를 들고 각자의 방식으로, 이 성전과 함께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바칩시다.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는 사람들의 손으로 만든 이 성막을 주님께 가지고 주님의 임재 안으로 나아갑니다. 눈물과 희생과 수고로 그 재료를 샀습니다. 세심한 손길들이 설계하여 이곳을 만들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다윗의 마음에 있었던 것과 같은 부담이 있었습니다. “우리 중 많은 사람이 좋은 집에 살면서 이렇게 낡고 허물어진 오두막에서 경배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오 주 하나님, 그렇게 되게 해 주십시오. 이제 모형의 실체 안에서, 이 성막에서 동일한 성령과 하나님의 동일한 규정들이 전해지게 해 주십시오. 오늘 성령께서 움직이시고 그 문을 통해 들어오셔서 모든 사람 위에 임해 주십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권능이 이 성막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 이곳이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영광을 위해 서 있게 해 주십시오.
주 하나님, 우리가 이곳을 주님께 맡깁니다. 손으로 한 일과 노동과 수고와 염려를 맡깁니다. 주님, 그것이 헛되지 않게 하시고, 성막을 봉헌하는 오늘 아침 주님께 바쳐진 이곳의 메시지를 사람들이 깨닫게 해 주십시오. 주님, 주님의 영께서 이곳에 들어오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 밖에 있는 남자나 여자 누구든지 그 문 안으로 걸어 들어올 때, 자기가 피 아래로 들어오고 있음을 깨닫게 해 주십시오. 그리스도의 복되심과 영의 달콤함이 이곳에 얼마나 깊이 느껴지는지, 남녀가 이곳에서 전해지는 복음을 들으려고 도시 곳곳과 주변에서 몰려들게 해 주십시오. 이 회중이 성령 침례로 맛을 내고 소금으로 간을 맞춘 것처럼 되어, 땅의 소금이라 불리게 해 주십시오. 주님, 허락해 주십시오. 오늘 아침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
우리는 이 성막을 주님께 드릴 뿐 아니라, 이 성막과 이곳이 지향하는 뜻을 위해 섬기도록 우리 자신도 주님께 드립니다. 오 하나님, 오늘 아침 우리를 받아 주십시오. 우리는 주님의 자녀들입니다. 오늘 아침 우리는 여기 두 발로 서서 손을 들고 눈을 들어 위를 바라봅니다. 성령께서 여기 계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주님, 우리의 말을 들으시고 우리의 기도를 받아 주십시오. 우리가 주님께 드리는 우리 손의 일, 곧 주님의 선하심을 기리는 이 기념물도 받아 주십시오. 하나님의 권능으로 우리의 희생을 받아 주시고 우리도 함께 받아 주십시오. 성막과 회중 모두를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아들의 일을 위해 봉헌해 주십시오. 우리가 이것을 주님께 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앉으셔도 됩니다.
이제 이 성막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것입니다. 여러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것입니다. 언제나 자신을 깨끗하게 지키고 여러분의 교회를 깨끗하게 지키십시오. 교회를 바르게 지켜서, 지나가는 누구나 들어와 여러분과 교제하고 싶어 하게 하십시오. 누구에게나 손을 내밀어 도울 수 있을 만큼 따뜻하고 온유한 영을 지니십시오. 그 사람이 얼마나 밑바닥까지 떨어져 있든 상관없습니다. 바로 그것을 위해 이곳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리는 성소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