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어젯밤 이후로 우리는 모두 충만해졌습니다. 오늘 많은 사람이 성령을 받았다는 좋은 소식을 들었습니다. 참으로 기쁩니다. 오늘 저녁에는 우리 타버내클의 동역자 가운데 한 분인 그레이엄 형제님이 함께하셔서 기쁩니다. 유티카에 있는 성결교회 목사님이십니다. 그리고 잭슨 형제님도 어젯밤에 여기 계셨던 것 같습니다. 아니, 누가 그러는데 지금도 저 뒤 회중 가운데 계신다고 합니다. 예, 이제 저 뒤에 계신 잭슨 형제님이 보입니다. 러들 형제님도 오늘 저녁에 오셨습니까? 이쪽 62번 도로에 있는 또 한 분의 동역자이십니다. 그분들이 오셔서 반갑습니다. 그리고 우리... 아, 팻 형제님과 회중 가운데 계신 다른 모든 형제님들도요. 오늘 저녁 여러분 모두 이곳에 오셔서 기쁩니다.
사정에 맞게 하자면, 훌륭한 설교자 몇 분을 이 자리에 모셔 여러분에게 말씀을 전하게 해야겠습니다. 어젯밤에 너무나 좋은 시간을 보내느라 목이 쉬었기 때문입니다. 제 아내는 제가 잘못하면 바로잡아 주는 사람입니다. 형제님들, 무슨 말인지 아시지요. 아내가 그러더군요. 어젯밤에는 제가 이 기계에 대고 말해서 뒤쪽 사람들이 제 말을 듣지 못했다고요. 그래서 시작하기 전에 한번 시험해 보겠습니다. 이렇게 하면 더 나을까요? 맨 뒤에서도 이쪽이 더 낫습니까? 아니면 이렇게 하는 게 더 낫습니까? 이게 더 낫습니까? 여보, 이번에는 내가 당신에게 한 점 땄구려. 사람들이 이게 더 낫다고 하네요. 좋습니다. 아, 이런! 여자란 말입니다. 이번에는 제대로 한 점 땄습니다. 오랫동안 한 번도 이기지 못했거든요. 대개는 아내가 옳습니다.
우리는 지난 사흘 저녁 집회에서 참으로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는 그랬습니다. 그런데 녹음테이프가, 어젯밤 것만 빼고는... 제가 고드 형제님에게 전화해서 타버내클을 위해 와서 녹음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듣기로는 빌리 폴이 그분의 차를 가지고 나갔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아는 바로는 녹음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날 것은 놓친 셈입니다. 교회를 위해, 누군가 우리가 무엇을 믿는지 말할 수 있도록 교회에 남겨 두고 싶었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질문에 제때 답변을 마칠 수 있다면 ‘큰 집회’에 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그리고 내일 아침에는 치유 집회가 있습니다. 병든 분들을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누어 드릴 수는... 아니, 그냥 가서 “자, 당신과 당신과 당신을 부르겠습니다”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하면 옳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도 카드를 나누어 드린 뒤, 그 카드들 중에서 몇 분을 강단으로 부릅니다. 그러고 나서 성령께서 계시하기 시작하시면, 치유 집회를 위해 회중 가운데로 역사하셔서 거기 있는 사람들을 불러내십니다. 주님의 뜻이라면 내일 아침에도 치유 집회 직전에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아내가 웃는 게 보이네요. 여보, 내 말이 전혀 안 들리오? 아, 들린다고요. 잘됐습니다. 아내는 맨 뒤에 앉아서, 만일... 제 말이 안 들리면 “안 들려요, 안 들려요” 하며 고개를 젓습니다.
그다음 내일 저녁에는 전도 집회와 물침례 예식이 있습니다. 내일 저녁 설교를 마치자마자 휘장을 걷고 여기서 물침례를 베풀겠습니다. 주님의 뜻이라면... 주님의 뜻이라면 아침에... 아니, 내일 저녁에는 ‘한 표적이 주어졌습니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수요일 저녁에 우리가 여기 있게 되면, 주님께서 제가 수요일 저녁에 여기 있는 것을 허락하시면, ‘우리가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노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바로 성탄절 전날이지요. 그리고 성탄절이 지나면 곧 성탄절 휴일 주간이 됩니다. 그때 편지를 모두 가져옵니다. 머시어 형제님과 다른 분들이 대개 그 편지들을 다 꺼내 놓습니다. 우리는 편지들을 모두 펼쳐 놓고 그 위에 기도하면서, 세계 어느 곳으로 가야 할지 주님께서 인도해 주시기를 구합니다.
그리스도인 실업인회에서는 훌륭한 일정을 마련해 놓았습니다. 곧 플로리다에서 열리는 집회에 참석하는 일정입니다. 거기서 킹스턴으로 갔다가 아이티로, 다시 푸에르토리코로 내려가고, 남아메리카에 들어갔다가 멕시코를 거쳐 다시 올라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저를 노르웨이로 인도하시는 것 같습니다. 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이라는 작은 책을 아시지요? 노르웨이에서 가장 많이 보급된 종교 출판물입니다. 주님께서 거기서 하신 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제가 그곳에 갔을 때는 병자들에게 안수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사흘 저녁을 거기 있었지만 병자들에게 안수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실 수 있는지 보십시오. 사람이 너무 많이 몰려서, 제가 집회 장소까지 갈 수 있도록 기마경찰들이 말을 타고 사람들을 거리에서 비켜나게 해야 했습니다. 저는 병자들에게 안수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위해 기도했고, 서로에게 안수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브래넘 형제님에게 무슨 말을 한다.] (예,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내일 아침에는... 오늘 저녁에는 이 질문들만 다루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주 좋은 질문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이 문제들을 얼마나 오래 다루게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내일 아침 여덟 시부터 여덟 시 반까지 빌리 폴이나 진이나 리오 가운데 한 사람이 여기서 기도 카드를 나누어 드릴 것입니다. 타지에서 오신 분들께, 잊지 않으시도록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기도 줄에 서고 싶으시다면, 가능하면 타지에서 오신 분들을 우선하고자 합니다.
가끔 여기 교회에서는 사람들이 “글쎄...” 하고 말하는 일이 있습니다. 우리가 타지에서 오신 분들을 앞으로 모시면... 누군가는 “저는 그분들이 어디가 아픈지 몰랐습니다.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했을 수도 있지요”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동네 사람들을 모시면 “아, 그 사람들을 알고 계셨을 수도 있잖아요”라고 합니다. 그러고는... “글쎄요, 제 생각에는 기도 카드 때문입니다”라는 말도 나왔습니다. 그러면 기도 카드가 없는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하루 이틀도 아니고 계속... 뭐라고 하셨습니까? [브래넘 형제님에게 마이크에서 물러나 달라고 부탁한다.] 마이크에서 물러나라고요? 아시다시피 저는 언제나 중도를 지키며 설교합니다. 그러니 이쯤에 서면 되겠군요. 이렇게 하면 더 낫습니까? 좋습니다. 무엇이 문제인지 말씀드리지요. 여기 방송 설비가 아주 형편없습니다. 아주 형편없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더 좋은 것을 마련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새 타버내클을 곧 짓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 주변을 좀 정리해서 여기를 넓히고 공간도 더 마련하여 여기서 집회를 열 준비를 할 수 있다면, 그때는 공간이 넉넉해질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내일 아침에는 이 청년들 가운데 한 명이나 세 명이 여덟 시 반... 아니, 여덟 시부터 여덟 시 반 사이에 카드를 나누어 드릴 것입니다. 그러면 모두 자리를 잡을 시간이 생깁니다. 제가 카드를 어떻게 나누어 드리는지, 또 왜 그렇게 하는지를 말씀드리고 있었습니다. 질서를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만일 제가 지금처럼 여기 들어와서 “이 여자분, 이 여자분, 저 남자분, 그리고 이 여자분을 앞으로 모십시오...”라고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러면 좀... 좀 곤란하겠지요. 그리고 만일 여러분이... 저는 여러 번 이렇게 하기도 했습니다. 내일 아침에 사람이 너무 많지 않으면 똑같이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타지에서 오신 분들 중에 몸이 아픈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일어서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머시어 형제님, 저를 구하러 오시는군요. 도와주시려고요? [머시어 형제님이 대답한다.] 아, 오시는 게... 자기 자신을 구하러 오시는 거랍니다. 제가 오늘 형제님의 여자 친구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러니 제게 아주 잘하셔야 합니다. 좋습니다. 잘됐습니다. 리오 형제님, 그 용기가 참 좋습니다. 무엇이 제대로 안 되면, 우리가 아는 대로 최선을 다해서 바로잡읍시다. 그러니까 타지에서 오셨고 몸이 아픈 분들께 손을 들어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그 자리에 서서 성령께서 역사하기 시작하실 때까지 한 사람에게 집중하고, 그다음에는 회중 전체를 대상으로 합니다. 이곳에서 그렇게 하는 것을 보신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물론이지요! 그러므로 어느 방식을 쓰든 상관없습니다. 그저...
이 점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내일 아침에 다시 설명해 보겠습니다. 이방인들에게 주어진 복음은 믿음의 복음이지, 결코 행위의 복음이 아닙니다. 어젯밤에도 말씀드렸지요. 오순절에 성령께서 임하신 후,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내려갔을 때에는, 사도행전 19장 5절에서, 그들이 성령을 받도록 안수해야 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내려갔을 때에도 안수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고넬료의 집에 있는 이방인들에게 갔을 때에는 “베드로가 이 말들을 할 때에...”였습니다. 안수하지 않았습니다.
그 어린 소녀, 야이로의 딸이 죽었을 때, 그 제사장은 “오셔서 아이에게 안수하소서. 그러면 살겠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방인인 로마 백부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께서 내 지붕 아래로 들어오심을 내가 감당할 자격이 없나이다. 말씀만 하옵소서.” 바로 이것입니다. 시로페니키아 여인, 실제로는 그리스 사람이었던 그 여인에게 예수님께서 “내가 자녀들의 빵을 가져다가 개들에게 주는 것은 합당하지 아니하니라”라고 말씀하시자, 그녀는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밑에 있는 개들도 아이들의 빵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말을 하였으니 그 마귀가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좋은 말을 하십시오. 다른 사람에 관해 좋은 말을 하십시오. 예수님에 관해 이야기하십시오. 충실한 말, 참된 말을 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마귀들이 떠나갑니다. 주님께서는 한 번도... 그 소녀를 위해 기도하지 않으셨습니다. 소녀가 치유되었다는 말도 한마디 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이 말을 하였으니, 이 말을 하였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얼마 전 해티 라이트는 아무것도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거기 앉아 있었지만, 성령을 기쁘시게 하는 올바른 말을 했습니다. 그러자 성령께서 이렇게 응답하셨습니다. “해티,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구하라. 네게 무엇이 있든, 무엇을 원하든 구하라. 이것이 참인지 아닌지 알아보아라. 무엇이든 구하라.” 몸이 온통 뒤틀린 채 거기 앉아 있는 장애 있는 여동생의 치유든, 저 언덕에서 더는 땅을 파며 일하지 않아도 될 만 달러든, 몹시 쇠약해진 몸에 젊음이 돌아오는 것이든 말입니다. “무엇을 구하고 싶든 지금 구하라. 지금 당장 그것이 와서 네게 주어지지 않으면 나는 거짓 선지자다.” 놀라운 일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이 산에게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여러분도 들으셨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들어서고 있는 사역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길에서 아주 멀리까지 왔습니다. 주 예수님의 오심이 가깝습니다. 순식간에, 눈 깜짝할 사이에 변화되어 떠날 수 있는 교회 안에는 휴거될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가지 못합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 믿음이 있게 될 것입니다.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교회의 권능이 일어나면 그 형제들을 일으켜 데려올 것이고, 저 교회의 권능이 일어나면 그 형제들을 일으켜 데려올 것이며, 저 교회의 권능은 또 다른 형제들을 일으켜 데려올 것입니다. 그러면 전반적인 부활이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잊지 마십시오. 내일 아침 여덟 시부터 여덟 시 반까지 기도 카드를 나누어 드립니다. 그 시간이 되면 몇 사람이 와 있든 카드를 나누어 주는 일을 그만하고, 뒤로 가서 앉으라고 부탁했습니다. 어차피 그때쯤이면 다 나누어 드렸거나, 그 가운데 어딘가에서 부를 만큼은 나누어 드렸을 것입니다. 청년들이 여러분 앞에서 카드를 전부 뒤섞을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원하시면 한 장 받으시고, 또 원하시면 받으시고, 그런 식으로 합니다. 그러면 제가 들어와서 그저... 주님께서 어디서부터 부르라고 하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만일 “아무도 부르지 말아라”라고 하시면 아무도 부르지 않겠습니다. 무엇이든 주님께서 하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어쨌든 그 사역은 이제 거의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더 큰 것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이 강단에서... 아니, 이 설교단에서 그때마다 말씀드린 것은 지금까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습니다. 손에 관한 사역을 기억하십니까? 그것이 어떤 일을 했는지 보셨지요? 마음의 생각을 알아내는 사역도 어떤 일을 했는지 보셨지요? 이제 이것을 지켜보십시오. 말씀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슨 일을 하는지 보십시오. 제가 몇 년 전에 여기 교회에, 지금 타버내클에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몇 년 전, 삼사 년 전에 무엇인가 실체를 드러내려 하고 있고, 곧 일어나려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것이 막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모습을 갖추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아, 얼마나 감사한지요. 참으로 기쁩니다.
이제 아주 어려운 질문들이 있으니 곧바로 들어가겠습니다. 누군가 제가 가지고 온 이 책들을 보고 있기에 “똑똑한 사람은 한 권만 있으면 됩니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똑똑한 사람이 아닙니다. 찾아보려면 여러 권이 있어야 합니다. 자, 이것은 디아글롯이고, 이것은 성경이며, 이것은 성구 사전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의 거룩한 뜻과 말씀에 꼭 맞게 이 질문들에 답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도우시고 인도해 주시기를 구하겠습니다.
이제 잠시 머리를 숙이고 기도합시다. 주님, 지난 사흘 저녁 동안 저희를 위해 행하신 일을 마음 깊은 곳에서 감사드립니다. 아, 목사님들이 저 뒤 방에 모여 악수하며, 새로워진 믿음으로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전화도 걸어옵니다. 저희 마음은 기뻐합니다. 사람들은 주님의 성령을 받는 방법을 하나하나 정확히 알려 주는 주님의 말씀을... 그 말씀을 본 뒤에 성령을 받고 있습니다. 주님, 그 일을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저희가 단순한 사람들이기에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저희에게 그토록 단순하게 알려 주십니다. 하나님, 저희가 언제나 자신을 온전히 단순하게 만들 수 있도록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자신을 낮추는 자가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지혜는 하나님께 어리석은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설교의 어리석은 것으로 잃어버린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아버지, 지금 제게는 염려하는 신실한 마음으로 보내온 여러 질문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라도 잘못 대답하면 그 사람을 잘못된 길로 이끌고, 그를 괴롭히는 질문을 잘못 이해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 하나님, 주님의 성령께서 저희 위에 역사하시고 이 일들을 계시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성경에 “구하라. 그러면 너희가 받을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너희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 저희가 지금 그렇게 주님의 긍휼의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주님의 거룩한 공의의 그늘 아래 서서, 하나님의 그리스도의 피와 성령을 간구합니다. 저희는 성령에 관해 사흘 저녁 설교를 마쳤다는 이유만으로 오늘 저녁 이곳에 온 것이 아닙니다. 지극한 경외심과 진실한 마음으로 왔습니다. 오늘이 이 땅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인 것처럼 왔습니다. 주님께서 저희 기도에 응답하실 것을 믿고 왔습니다. 주님, 이제 주님의 영생으로 저희를 만족하게 해 주시기를 구합니다. 주님의 말씀으로 응답하실 때 성령께서... 오 하나님, 저희 가운데 계신 분이 주님 자신이심을 저희가 알게 되었사오니, 오늘 저녁 저희가 알고자 하는 것을 그분께서 계시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저희 혼이 안식하고 생각이 평안하며,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앞으로 나아가 주님께서 약속하신 복을 받아 누리기 위해서만 이것을 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옵나이다. 아멘.
제게 주신 질문은 하나를 제외하고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그 하나는 그저께 저녁에 마틴 형제님이 물으신 질문이었는데, 제가 답해 드렸습니다. 어젯밤에도 여러 장이 들어왔지만 그것들은 기도 요청이었습니다. 마틴 형제님은 요한복음 3장 16절... 아니, 요한복음 3장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에게서 태어나지 아니하면 왕국을 볼 수 없느니라”라는 말씀을 제가 내보낸 히브리서 테이프와 비교해서 물으셨습니다. 어제 저녁 이곳 뒷방에서 그분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전에는 답변할 기회가 없었는데, 거기서 그 문제에 관해 답해 드렸습니다. 어젯밤에 여기 안 오셨던 분이 계십니까? 어젯밤 안 오셨던 분들은 손을 들어 보십시오. 아, 여러분도 함께 계셨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참으로 영광스러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성령께서...
잠시만 말씀드려도... 괜찮겠지요. 지금 이것은 녹음되고 있습니다. 혹시 어떤 목사님이나 다른 분이 제가 이제 말씀드릴 내용, 혹은 질문에 대한 답변에 동의하지 않으시더라도, 형제님, 이상하게 여기지 마시고 이 테이프가 우리 타버내클에서 녹음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우리 교인들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러 다른 신앙을 가진 목사님들이 둘러앉아 계십니다. 제가 이 주제로 다시 들어가고 싶은 이유는, 어젯밤에 들어오지 못한 우리 교인들 가운데 오늘 저녁 오신 분들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허락하신다면 어젯밤 말씀드린 내용을 잠시 다시 살펴보고 싶습니다. 오순절에 관한 것, 곧 성령을 받는 것에 관한 내용입니다.
지금 제 앞에 펼쳐 놓은 책, 어젯밤 읽던 그리스어 번역본인 엠패틱 디아글롯에서 읽겠습니다. 이것은 그리스어를 영어로 옮긴 원전 번역입니다. 다른 번역자들과 다른 판본들을 거치지 않고 그리스어에서 곧바로 영어로 옮긴 것입니다. 영어 단어에는 흔히 여러 뜻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제가 지금 ‘보드(board)’라고 한다고 합시다. 이 단어를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그를 지루하게 한다는 뜻이겠지요.” 아닙니다! “숙식비를 냈다는 뜻이겠지요.” 아닙니다! 그러면 그가... “집 옆면에 있는 널빤지입니다.” 그렇지요. 또는 그중 어느... 네댓 가지 서로 다른 뜻으로 쓰일 수 있으니 문장을 보아야 합니다. ‘시(see)’라는 말도 영어로 ‘이해하다’라는 뜻입니다. 같은 소리의 ‘시(sea)’는 물이 모여 있는 바다를 뜻합니다. ‘시(see)’는 ‘바라보다’라는 뜻도 있지요. 그런데 이 번역본들에서, 제가 어젯밤 사도행전 2장을 말씀드릴 때 여기에 쓰인 단어는 “불의 혀들이 그들 위에 앉았다...”입니다. 잠시 그 대목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더 나아가기 전에 잠깐 돌아가서 다시 살펴보면 어떻겠습니까?
여러분의 킹제임스 성경이든 지금 읽고 계신 다른 번역본이든, 그곳을 펴십시오. 제가 읽겠습니다. 이제 아주 주의 깊게 들으십시오. 오해하지 마십시오. 오늘 제 누이를 비롯해서 많은 분이 전화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모건 부인도요... 그분들 가운데 많은 분이 어젯밤 오셨습니다. 모건 부인은 십육칠 년 전에 루이빌에서 암으로 가망이 없다는 판정을 받고 사망자 명단에 올라 있었던 우리 자매님 가운데 한 분입니다. 오늘 저녁에도 저 뒤에 앉아 계신 것 같습니다. 그분 말씀이 제가 마이크에 곧바로 대고 말해서 들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분들을 위해 잠시 이 부분을 다시 살펴보려 합니다. 사도행전 2장의 이 말씀을 읽겠습니다. ...오순절 날이 충만히 찼을 때에 그들이 다 같은 생각을 품고 있었으며... 저는 ‘한마음으로’라는 말보다 이 표현이 더 좋습니다. 거의 어떤 주제에 관해서든 뜻을 같이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그들의 생각이 같았기 때문입니다. ...같은 생각을 품고 같은 곳에 있었더라. 갑자기 하늘로부터 거센 바람이 몰아치는 것 같은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던 온 집안을 가득 채웠더라. 무릎 꿇고 있거나 기도하고 있던 것이 아니라, 앉아 있었습니다. 갈라진 혀들이... ‘혀들’, 철자로 T-o-n-g-u-e-s입니다. ‘갈라진’은 ‘나누어진’이라는 뜻입니다. ...불처럼 그들에게 나타나, 하나가... ‘하나’, 단수입니다. ...그들 각 사람 위에 머물렀더라. 그리고 그들이 다 충만하여... ‘그리고’는 접속사입니다. ...다 성령으로 충만하여, 영께서 그들에게 말하게 하시는 대로 다른 방언들로 말하기 시작하더라. 그때 예루살렘에는 하늘 아래 모든 민족에서 온 독실한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는데, ...이 일이... 이 소문이 퍼지자 무리가 함께 모여 당황하였으니, 이는... 각 사람이 그가 자기 언어로 말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더라.
이제 주목하십시오! 불이 임했을 때에는 혀들이었고, 그들이 말할 때에는 언어였습니다. 혀와 언어는 아주 큰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다 같은 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어로 ‘혀’는 이것을 뜻합니다. [브래넘 형제님이 몸짓으로 설명한다.] 귀는 이것이지요. 그 말은 언어를 뜻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몸에 있는 혀라는 부분을 뜻합니다. 잘 보시면 ‘불의 혀들’이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혀처럼 생겼다’는 뜻이며, 길게 솟은 불꽃, 혀처럼 날름거리는 불꽃과 같습니다. 이제 어디에 강조가 있는지 보십시오. 이 대목들을 하나하나 잊지 마십시오. 오늘 저녁에는 작은 극처럼 상황을 그려 보겠습니다. 판단은 여러분께 맡기겠습니다. 만일 무엇인가 맞지 않는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판단하실 일이라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나 누구든지 하나님께 무엇을 받는 길은 오직 믿음뿐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하기 전에,
제가 하는 일을 믿으려면 먼저 제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왜 아내와 결혼하셨습니까? 아내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을 겪어 보고, 지켜보고, 어떤 가정에서 자랐는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았습니다. 하나님과 성경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환상들과 이 불기둥과 이 모든 일이 일어나는 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분의 말씀을 따라 그분을 시험해 보았고, 그것이 진리임을 압니다. 그러니 그분의 말씀을 따르십시오. 그러다가 어디선가 조금이라도 혼란이 생기면, 어딘가 잘못된 것이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들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신의... 아니, 자신의 법칙을 벗어나거나 거슬러 일하신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러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름에 겨울이 오지 않고, 겨울에 여름이 오지 않습니다. 봄에 잎이 떨어졌다가 가을에 다시 돋아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어젯밤에는 솟아오르는 우물물로 농작물에 물을 대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혹은 칠흑같이 어두운 들판 한가운데 서서 이렇게 말한다고 해 봅시다. “오, 위대한 전기여, 네가 이 들판에 있는 줄 안다. 지금 나는 길을 잃어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다. 길을 보고 걸을 수 있게 빛을 비추어 다오! 이 들판을 환하게 밝힐 만큼 전기가 충분히 있지 않으냐.”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방에도 저 전등들이 없어도, 저것 없이도 방을 밝힐 만큼 전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다룰 줄 알아야 합니다. 더는 소리를 지를 수 없을 때까지 전기를 향해 외쳐도 불은 켜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전기의 법칙에 따라 행하면 빛을 얻습니다. 하나님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위대한 창조주시며,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지금도 하나님이십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그분의 법과 지시를 따라야만 그분께서 일하십니다. 여러분, 저는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저는 그것이 실패하는 것을 본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주목합시다. 누가복음 24장 49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에 따라 구원받고 성화된 사도들에게 명하셨습니다. 그들은 주 예수님을 믿어 의롭게 되었으며, 예수님께서 “아버지, 진리로 그들을 거룩히 구별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이니이다”라고 하신 요한복음 17장 17절에서 성화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말씀이셨습니다. 또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병든 사람들을 고치고, 마귀들을 내쫓으며, 죽은 사람들을 살리는 권능을 주셨고, 그들은 기뻐하며 돌아왔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어린양의 생명책에 올라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그 내용을 살펴본 것을 기억하시지요. 그러나 그들은 아직 회심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시던 그날 밤 베드로에게 “네가 회심한 뒤에 네 형제들을 강하게 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이 바로... 여러분은 영생에 이르도록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오시면, 그것이 영생입니다. 여러분은 ...에 이르도록 믿고 있는 것입니다. 성화될 때 성령으로 잉태되지만, 성령께서 들어오시기 전에는 성령에게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아기는 어머니의 태 안에서도 생명이 있어서 작은 근육들이 움직입니다. 그것도 생명입니다. 그러나 콧구멍으로 생명의 호흡을 들이마시면 다른 삶이 시작됩니다. 다릅니다.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감리교 형제님, 순례성결교회와 나사렛교회 형제님들, 성령 침례는 성화와 다릅니다. 성화는 깨끗하게 하는 것이며, 생명을 맞을 준비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오시면 그것이 생명입니다. 준비는 그릇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고, 성령은 그릇을 채우시는 것입니다. 성화는 ‘깨끗하게 되어 섬김을 위해 구별되다’라는 뜻입니다. 성령은 그 그릇을 실제로 섬김에 쓰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그릇입니다.
우리는 성령이 여러분 안에 계신 하나님 자신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모세와 함께하신 불기둥 안에서 하나님은 여러분 위에 계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여러분과 함께 계셨습니다. 이제 성령 안에서 하나님은 여러분 안에 계십니다. 세 하나님이 아니라, 세 직분으로 일하시는 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낮추셔서 사람 위에 계시던 자리에서 내려오셨습니다. 사람은 그분께 손댈 수 없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죄를 지어 그분과의 교제로부터 스스로 떨어져 나갔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분께서는 사람 위에 계셔야 했습니다. 황소와 염소의 피로는 그분께서 다시 사람과 교제하실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법과 규례를 통해, 황소와 양 등을 드리는 것으로 앞으로 올 이때를 미리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내려오셔서, 처녀에게서 태어난 성화된 몸 안에 거하셨을 때, 바로 하나님 자신이...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셨는지 아십니까? 그분께서는 그저... 우리 장막들 가운데 자신의 장막을 두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장막에 거하셨습니다. 우리와 함께 자신의 장막을 치셨고, ...이 되셨습니다. (내일 아침에 그것을 설교할 것이니 여기서는 그만두어야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와 함께 장막을 치셨는지, 곧 거하셨는지 말입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4장에서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너희가 내 안에 있음을 너희가 알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입니다. 목적이 무엇이었습니까? 그분의 계획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는 계획이 있었습니다. 사람들 가운데서 일하기를 원하셨기에, 이스라엘 자손 위에 머물렀던 신비한 불, 곧 불기둥 안에서 그 계획을 이루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다음 그 동일한 불이 예수님의 몸 안에 나타났습니다. 그분께서는 자신이 바로 그 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있기 전에 내가 있느니라.” 그분이 그 불이셨습니다. “나는 하나님께로부터 왔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노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분께서 죽으시고 장사되시고 부활하신 뒤, 성 바울이 아직 사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때에,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그분을 만났습니다. 그분께서는 다시 그 불기둥으로 돌아가 계셨습니다. 빛이 그의 눈을 멀게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곳에 그분께서 계십니다. 동일한 불기둥, 동일한 하나님께서 같은 표적과 같은 일들을 행하고 계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분께서 자기 백성 가운데 일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우리 안에 계십니다. 지금은 여러분과 함께 계시지만, “내가 너희 안에 있으리라. 완결되는 끝까지, 곧 세상의 끝까지, 내가 너희와 함께, 곧 너희 안에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분께서 우리와 함께 계실 것입니다.
이제 주목하십시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기다리라고 명하셨습니다. ‘머무르라’는 말은 ‘기다리라’는 뜻이지 ‘기도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기다리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아직 설교할 준비가 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눈앞에 계신 그분의 모습을 보고서만 그분의 부활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먼저 위로부터 오는 권능을 입기 전에는 더 이상 설교하지 말고,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저는 어떤 설교자도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이라고, 혹은 바르게 임명받을 수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무한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번 행하신 것은 언제나 그렇게 행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오순절에 가서 오순절의 체험을 받기 전까지 설교하지 못하게 하셨다면, 누구든지 성령으로 충만해지기 전에는 강단에 설 권리가 없습니다. 자기 마음속의 강렬한 욕망으로 나섰거나 어떤 조직이 보냈을 수는 있겠지요. 정확히 그렇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지기 전에는 어떤 조직에서 배운 지적인 생각으로 사람들을 이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충만해지면 비둘기의 양식을 그들에게 줍니다. 어젯밤 말씀드린 어린양과 비둘기 말입니다.
주목하십시오. 그분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거기 머물러라. 내가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보낼 때까지 그저 기다려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남녀 백이십 명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성전에 있는 다락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이제 오순절 명절이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성소를 깨끗하게 하고 유월절 어린양을 잡은 때부터 오순절이 올 때까지였습니다. 오순절은 수확의 첫 열매를 드리는 때, 희년, 오순절의 희년이었습니다. 그리고 건물들에는... 저는 그 나라들에 가 보았습니다. 동방의 나라들은 건물 안에 계단이 있는 경우가 드뭅니다. 계단은 바깥에 있었습니다. 전해지는 바로는 성전 바깥에도 계단이 있어서, 멀리 작은 방으로 이어졌다고 합니다... 계속 위로, 위로, 위로 올라가면 저 꼭대기에 작은 방이 있었습니다. 성전 꼭대기에 있는 창고 같은 곳, 어떤 작은 방, 다락방이었습니다. 성경은 그들이 거기 있으면서 문을 닫았다고 말합니다. 유대인들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대제사장 가야바와 본디오 빌라도와 그들이 주 예수님을 죽인 뒤였으므로, 주 예수님을 경배하는 그들을 갈기갈기 찢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그리스도인들을 모조리 없애려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문을 닫고 기다렸습니다.
그런 방들에는 창문이 없습니다. 창문이라고 해 봐야 문짝처럼 열어젖히는 작은 격자창이었습니다. 그런 방 안에는 작은 기름등잔이 매달려 타고 있었습니다. 혹시 캘리포니아의 클리프턴스 카페테리아에 가시면 지하로 내려가 보십시오. 그 다락방과 아주 비슷한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가 보신 적이 있습니까? 여기서 몇 분이나 가 보셨습니까? 고개를 끄덕이시는 분들이 보입니다. 그러면 제가 무엇을 말하는지 아시겠군요. 좋습니다. 내려가면 겟세마네 동산을 보실 텐데, 그전에 그런 동방식 방 가운데 하나로 들어가게 됩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거기에는 올리브기름을 채운 작은 등잔에 양털 심지를 넣어 불을 밝히고 있습니다. 자, 그들이 바깥쪽으로 올라가서 그 위에 있었다고 합시다. 그들은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올라가 몸을 숨겼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다락방으로 가라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다만 “예루살렘에서 기다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아래쪽 집에 있었다면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들어와 그들을 잡아갈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 위 꼭대기의 작은 낡은 방, 다락으로 가서, 유대인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문을 걸어 잠갔습니다. 거기 앉아 열흘 동안 기다렸습니다.
지금 우리는 사도행전 1장을 보고 있습니다. 이제 주의 깊게 들으십시오. 장면이 그려지십니까? 건물 바깥에 작은 계단이 위로 이어져 있었고, 그들은 그 작은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래 성전에서는 오순절 명절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아, 굉장한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이제 오순절 날이 충만히 찼을 때, 그들은 모두 같은 생각을, 같은 생각을 품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약속하신 것을 보내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오늘 저녁 여기 계신 분들이 모두 똑같은 생각을 품어 보십시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십시오. 그 일이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그들에게 주셨던 것과 똑같은 약속입니다.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지시를 따르고 하나님의 법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할 때까지 기다리라.”
그들은 유대인들을 무서워했습니다. 그 점을 기억하십시오. 유대인들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급하게 부는 바람 같은 소리가 났습니다. 실제로 급하게 부는 바람이 아니라, 급하게 부는 바람 같은 것이었습니다. 잠시 후에 번역자의 설명을 읽겠습니다. 급하게 부는 바람 같은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초자연적인 바람, 아, 그들이 느낄 수 있는 무엇이었습니다. 그 바람이 그들 안에 있었습니다. 급하게 부는 바람이, 급하게 부는 바람 같은 것이 왔습니다. 바람이 몰아친 것이 아니라, 마치 무엇인가 이렇게 하는 것처럼 급하게 부는 바람 소리만 났습니다. [브래넘 형제님이 바람 소리를 낸다.] 여러분도 느껴 보셨습니까? 아, 이런! 급하게 부는 바람 같았습니다. 이제 보십시오. 그것이 가득 채웠습니다... 여기에는 “모든...”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어에는 “온”, 대문자로 W-h-o-l-e, “온 집안”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 안의 모든 곳입니다. 틈새마다, 구석마다, 벌어진 곳마다 그것으로 가득한 듯했습니다. “형제님들, 제가 느끼는 것을 여러분도 느끼십니까?” 하고 물을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아닙니다! 급하게 부는 바람 같은 것이 온통 가득했습니다. 이제 보십시오. “급하고 강력한 바람 소리 같은 소리가 나더니, 그리고...” 접속사입니다. 이제 이 ‘그리고’들을 잘 보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성경이 말하지 않는 것을 말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치...” 처음 일어난 일은 급하게 부는 바람 같은 것이 그들에게 임한 것입니다. “그리고...” 기억하시지요? 어젯밤에 제가 식료품점에 가서 빵 한 덩어리와 고기를 샀습니다. 그것은 함께 간 다른 물건입니다. 빵은 하나이고, 고기는 다른 하나입니다. 소리도 그들에게 임한 하나의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곧 그들 앞에, “혀들이... 갈라진 혀들이 나타났더라.”
여기 계신 분 중에 세실 드밀의 ‘십계’를 보신 분이 있습니까? 명령들이 기록될 때 그 모습을 어떻게 담아냈는지 보셨습니까? 저는 몰랐습니다. 그 영화에서 제가 본 것 중에 정말 마음에 드는 점이 두세 가지 있었습니다. 첫째는 에메랄드빛입니다. 실제로 꼭 그렇게 보입니다. 또 하나는 명령들이 기록되고 그 일이 끝난 다음, 큰 불기둥에서 작은 불꽃들이 날아가는 모습입니다. 보셨습니까? 그것을 보셨습니까? 저는 오순절에 나타난 것이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에게 나타났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 안으로 떨어졌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불꽃들이, 그렇게 부르겠습니다, 혀들이 나타났습니다. 혀와 같은... 여기 있는 이 혀처럼, 혀의 모양을 한 불꽃입니다. 제가 말씀드렸듯이 귀는 귀이고, 손가락은 손가락입니다. 손가락이라고 해서 그것을 만져 느꼈다는 뜻이 아니라, 손가락처럼 생겼다는 뜻입니다. 귀라고 해도 그들이 들었다는 뜻이 아니라, 귀처럼 생겼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혀처럼 생긴 불이었습니다. 누군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혀처럼 생긴 불이었습니다.
이제 들으십시오. 여기 그리스어 번역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보십시오. 갑자기 급하고 강력한 바람 같은 소리가 나더니... 3절입니다. 그리고 갈라진 혀들이 그들에게 나타났더라. 갈라진 혀들이 그들 안에 있었다거나, 그들이 갈라진 혀로 말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갈라진 혀들이 그들에게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이제 보십시오. 아직 그들 위에 머문 것이 아닙니다. 그 방 안에서, 이 바람 속에 있듯이 맴돌고 있습니다. ...불처럼 그들에게... 갈라진 혀들이 그들에게 나타나... 곧 그들 앞에 나타나, ...불처럼... 불과 같은 혀들이, ...하나가... 단수입니다. ...그들 각 사람 위에 머물렀더라. 그들 안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그들 위에 머물렀습니다. 이제 킹제임스 번역 때문에 어떻게 뜻이 빗나갈 수 있는지 아시겠습니까? “갈라진 혀들이 그들 위에 임하여... 아니, 머물러...” 킹제임스에는 어떻게 되어 있지요? “그들 위에 앉으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올라가서 앉을 수는 없지요. 우리는 그것을 압니다. 그러나 원문은 “그들 위에 머물렀다”라고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정확하게 확인해 보겠습니다. 예! “그들 각 사람 위에 머물렀더라.” 불의 혀 하나가 그들 각 사람 위에 머물렀습니다. 보이십니까? 이해하십니까? 그것이 두 번째로 일어난 일입니다. 첫째는 바람이었고, 그다음에는 불의 혀들이 나타났습니다.
작은 기름등잔들이 타고 있는 이 작은 방 안에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그들이 거기 앉아 있는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한 사람이 “아!” 하고는 건물 안을 둘러보았습니다. 온 건물에 그것이 가득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보세요!”라고 했습니다. 불의 혀들이... 건물 안을 돌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보십시오. 이 불의 혀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다음을 보십시오. 그리고... 또 하나의 접속사입니다. 다른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이 다 성령으로 충만하였더라. 두 번째로 일어난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바꾸어서 “그들에게 불의 혀들이 임하여 여기서 알아듣지 못할 말을 떠들다가, 밖으로 나가 알지 못하는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다”라고 하려 합니다. 여러분, 성경에는 그런 내용이 없습니다. 성령을 받으면서 알지 못하는 방언으로 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성경과 다르게 하는 것입니다. 잠시 후에 제가 알지 못하는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믿는다는 사실을 보여 드리고 입증하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성령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성령의 은사입니다. 성령은 영이십니다.
이제 보십시오. 이 혀들이 불처럼 방 안에 있었고, 각각의 사람 위에 머물렀습니다. 그다음 그들은 성령으로 충만해졌습니다. 두 번째 일입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충만해진 뒤에 방언으로... 아니, 방언이 아니라 언어들로 말했습니다. 그 점을 보셨습니까? 성령께서 말하게 하시는 대로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이 소문이 퍼졌습니다. 보십시오. 잊지 않으시도록 다시 그 장면을 그려 봅시다. 성경에 따르면 그들은 다락방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급하게 부는 바람 같은 소리가 그들에게 임했습니다. 그것은 성령이었습니다. 그것이 성령의 나타나심이었다고 믿는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바람 같은, 초자연적인 바람이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알아차렸습니다. 그 안에 작은 불의 혀들 백이십 개가 있었고, 그것들이 내려와 각 사람 위에 머물기 시작했습니다. 무엇이었습니까?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 자신이신 불기둥이 그분의 백성 가운데 자신을 나누어 주시며 그들 안으로 들어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는 그 전부가 있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영을 한량없이 받으셨습니다. 우리는 일정한 분량으로 받습니다. 제 말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우리는 양자로 받아들여진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생명, 그분의 영생이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이제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때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충만해졌습니다.
여러분께 한 가지 묻겠습니다. 소문은 언제 퍼지기 시작했습니까? 그들이 다락방을 나와 계단을 내려가 왕궁 뜰로... 아니, 성전 뜰로 나가야 했다면, 그곳은 아마 그들이 있던 자리에서 도시의 한 블록 정도 떨어져 있었을 것입니다. 위층에서 내려와 모든 사람이 모여 있는 뜰로 나갔던 것입니다... 그들은 성령에 취한 듯한 모습으로 나왔습니다. 사람들이 “이 사람들은 새 포도주에 잔뜩 취하였다”라고 했으니까요. 사람들은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각 사람이 이렇게 말하려 했습니다. “성령께서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제게 임했습니다. 저는 성령으로 충만해졌습니다.” 그 사람은 갈릴리 사람이었지만, 그의 말을 듣는 아랍 사람이나 페르시아 사람은 자기 언어로 들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알지 못하는 방언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떻게 저마다 태어난 곳의 언어로 듣느냐? 말하는 이 사람들이 모두 갈릴리 사람들이 아니냐?” 아마 그들은 갈릴리 말로 말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듣는 사람들에게는 자기들이 태어난 곳의 언어로 들렸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 질문에 대답해 보십시오. 어떻게 베드로가 거기 일어서서 갈릴리 말로 말했는데도, 그 많은 사람이 모두 그의 말을 알아들었습니까? 베드로가 한 가지 언어로 말하는 동안 바로 그 자리에서 삼천 혼이 그리스도께 나왔습니다. 물론입니다! 하나님께서 기적을 행하고 계셨습니다. 베드로 앞에 있던 그 동일한 청중은 메소포타미아에 사는 사람들, 나그네들, 개종자들 등 온 세상에서 온 갖가지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서서 한 가지 언어로 설교했는데, 모든 사람이 알아들었습니다. 삼천 명이 회개하고 곧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으니까요. 어떻게 된 것입니까?
여러분, 저는 교단에 속한 오순절 형제님들이 당장 이것을 받아들이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성경 전체에서 그 내용을 따라가 보시고, 성령을 받으면서 자기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는 방언으로 말한 경우가 언제 있었는지 말씀해 보십시오. 만일 그때 그렇게 받았다면, 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는... 매번 같은 방식으로 일어나게 하셔야 합니다. 이제 저는... 고넬...의 집에서는, 기억하십시오. 어젯밤 사마리아로 내려가 보았을 때, 우리는 그들이 다른 방언으로 들었다는 기록이 하나도 없음을 확인했습니다. 그것에 관한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세 민족의 사람들이 있던 고넬료의 집에 갔을 때, 그들은 방언들로 말했습니다. 그렇게 했을 때, 만일 그렇게 했다면, 베드로는 그들이 처음에 받았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이방인들이 하나님께 은혜를 받은 줄 알았습니다. 자기들이 처음에 성령을 받은 것처럼 그들도 받았기 때문입니다. 잠시 후에 그와 관련된 질문을 다루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여러분이 이해하시도록 기초를 놓으려 했습니다.
다르게 배워 온 사람들이... 저는 그들에게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사랑하고 귀한 오순절 형제님들, 제 말을 들어 주십시오. 저는 밖에 나가서 이것을 가르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논쟁을 일으키는 일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진리를 얻지 못한다면 언제 출발하겠습니까? 우리를 바로잡아 줄 어떤 일이 여기서 일어나야 합니다. 이제 여기서 휴거될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진리가 드러나야 합니다.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사람이 성령을 받을 수 있습니까? 애초에 혀가 없는 가련한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성령이 침례라면... 그러면 방언으로 말하기나 방언 통역 같은 이 모든 은사는 성령 침례를 통해 몸 안에 들어온 뒤에 받는 것입니다. 그 은사들이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자, 보십시오. 사도들 이후 세계에서 처음 조직된 교회인 가톨릭교회가 받아들이리라고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가톨릭교회는 마지막 사도가 죽은 지 수백 년이 지난 뒤, 사도들 이후 약 육백 년 뒤에 조직되었습니다. 니케아 공의회 직후, 니케아 교부들이 모여 조직을 만들었을 때입니다. 그때 그들은 보편 교회, 곧 가톨릭교회를 세웠습니다. 그 안에서 세계 교회를 만든 것입니다. ‘가톨릭’이라는 말은 ‘보편적’이라는 뜻입니다. 어디에나 있다는 뜻이지요. 로마... 이교 로마가 교황 로마로 바뀌었습니다. 그들은 베드로의 자리를 대신할 우두머리로 교황을 세웠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왕국의 열쇠를 주셨다고 생각하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 교황은 무오한 존재였으며, 오늘날까지도 가톨릭교회에는 그렇습니다. 그의 말이 법이며 질서입니다. 오류가 없는 교황인 것입니다. 그것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러고는 사람들이 이 가톨릭 교리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하고, 화형에 처해지고, 온갖 일을 당했습니다. 우리는 요세푸스의 성스러운 기록들과 폭스의 ‘순교자 열전’, 그리고 다른 많은 성스러운... 히슬롭의 ‘두 바빌론’과 위대한 역사 기록들을 통해 모두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우리가 알듯이 천오백 년의 암흑시대가 지난 뒤에, 성경은 사람들에게서 빼앗겼습니다. 우리가 알기로는 한 작은 수도사가 그것을 숨겼고, 그런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 뒤에 첫 번째 종교개혁이 일어났습니다. 마르틴 루터였습니다. 그는 나서서 가톨릭이 그리스도의 몸, 실제 몸이라고 부르는 성찬의 빵은 그리스도의 몸을 나타낼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그 성찬의 빵을 제단 난간에... 아니, 계단에 던졌고, 그것을 그리스도의 실제 몸이라고 부르기를 거부했으며,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라고 설교했습니다. 가톨릭교회가 그에게 동의하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지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오류가 없다는 그들의 수장이 안 된다고 말하는데 말입니다. 좋습니다.
마르틴 루터가 의롭게 됨을 설교한 뒤에, 존 웨슬리가 성화를 설교하며 나타났습니다. 그는 사람이 의롭게 된 다음에도, 의롭게 된 것은 좋지만, 성화되어 깨끗해져야 하며 예수님의 피로 악의 뿌리가 제거되어야 한다고 설교했습니다. 루터교인들이 성화를 설교하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웨슬리가 성화를 설교하고 그 뒤 여러 작은 분파가 나왔습니다. 웨슬리 감리교회와 나사렛교회 등이 생겨나 자기 시대 내내 그 불이 타오르게 했습니다. 그다음 오순절 사람들이 나타나 “성령은 침례입니다. 우리는 성령을 받을 때 방언으로 말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나사렛교인들과 웨슬리 감리교인들과 그 밖의 사람들이 그것을 믿으리라고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마귀라고 불렀습니다. 좋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들은 쇠퇴하기 시작했고, 오순절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오순절도 흔들림을 겪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조직을 만들고 그 불이 꺼져 버려서, 더는 다른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자기들의 규칙과 규정이 있으니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러니 성령께서 오셔서 어떤 것의 진리를 계시하시고, 자신의 임재와 말씀으로 그것을 입증하실 때, 오순절 사람들이 “저도 동의하겠습니다”라고 말하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루터처럼, 웨슬리처럼, 또 다른 이들처럼 홀로 서야 합니다. 그때가 왔으므로 여러분은 그것 위에 서야 합니다. 바로 그것 때문에 제가 미운 오리 새끼가 됩니다. 그것 때문에 제가 다른 것입니다. 저는 사랑하는 오럴 로버츠 형제님이나 토미 오스본, 토미 힉스와 그분들처럼 일을 시작할 수 없습니다. 교회들이 제게 동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 사람은 영원한 보장을 믿어. 침례교인이야. 방언으로 말하는 것이 성령을 받은 최초의 증거라는 것을 믿지 않아. 그 사람에게서 떠나!”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정면으로 마주하십시오. 그것을 마주하고 따져 보십시오. 감리교인들은 루터교인들과 이 문제를 마주할 수 있습니다. 오순절 사람들은 감리교인들과 마주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으로 오순절 사람들과 마주할 수 있습니다. 정확히 맞습니다. 진리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분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가 빛 가운데 걷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왕의 대로를 따라 올라가고 있습니다. 더 나아갈수록 더 많은 은혜, 더 많은 권능, 더 많은 초자연적인 것이 주어집니다. 우리가 지금 거기에 있습니다. 지금은 성령께서 처음에 계셨던 것처럼 빛의 모습, 불기둥으로 내려오셔서 자신을 나타내신 때입니다. 그분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 행하신 바로 그 일들을 행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옳은지 아닌지 어떻게 아느냐? 너희가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를 믿는 자는 또한 내가 하는 그 일들을 할 것이요.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오순절 형제님들, 저는 여러분과 함께합니다. 저도 여러분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저도 성령을 받았습니다. 방언으로 말한 적도 있지만, 성령을 받을 때 그것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저는 성령 침례를 받았고, 방언으로 말했으며, 예언도 했고, 지식과 지혜와 통역의 은사도 받았으며, 온갖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이제 저는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그런 것들 가운데 어느 것이든 제게 역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과 불이 제 혼 안에 있습니다. 위에 머물렀던 그 불의 혀가... 제 안에 들어와 하나님을 거스르는 모든 것을 태워 버렸습니다. 이제 저는 그분의 영의 인도를 받습니다. 그분께서 “이리로 가라”라고 하시면 저는 갈 것입니다. “저리로 가라” 하시면 갑니다. “여기서 말하라” 하시면 말합니다. “이것을 하라, 저것을 하라...” 바로 그것입니다. 마치... 여러분은 성령의 인도를 받습니다. 그것이 여러분 안에 계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든 그분께서 자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이제 들으십시오. 질문을 시작하기 전에 여기 사전에서 한 대목을 읽겠습니다. 바티칸 번역 제7권, 190... 1205쪽입니다. “무리를 흥분시킨 것이 외국어로 말하는 그 사람들의 목소리였는지, 아니면 초자연적인 바람이 급하게 불었던 사건에 관한 보고나 소문이었는지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그들도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보십시오. 그것이 사람들이었는지... 제가 장면을 그려 보겠습니다. 가난하고 누더기를 입은 갈릴리 사람들 한 무리가 있습니다. 그들이 거기 거리에 나와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광경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들은 두 손을 높이 들고 다락방에서 나와 계단을 내려와 거기로 갔습니다. 그저 충만해 있었고, 아직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들이 밖에 나와 비틀거리고 있었다고 합시다. 그러자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그리스 사람 하나가 제게 달려와 “저는 갈릴리 말을 합니다”라고 한다고 합시다. 여러분이 그에게 달려가 “이 사람아, 자네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라고 묻습니다. “저는 성령으로 충만해졌습니다. 저 위 방에 하나님의 권능이 임했습니다. 제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 하나님께 영광을!” 또 이쪽의 다른 사람은 아랍 사람에게 이야기하는데, 갈릴리 사람인 그가 아랍 말로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그들도 분명히 말하지 못합니다. 무리가 함께 모였을 때 사람들을 모이게 한 것이 급하게 부는 바람이었습니까, 아니면 그들이 외국어로 말하는 것이었습니까? 성경은 정확하게... 살펴볼 수 있는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밖에 있던 사람들은 “우리가 어떻게 저마다 태어난 곳의 언어로 듣느냐?”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그 언어로 말하고 있었다고 하지 않고, 사람들이 그렇게 듣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다음 같은 무리, 같은 사람들에게 이 일을 설명했습니다. 베드로가 무엇인가 위에 뛰어올라 말했습니다. “갈릴리 사람들과 예루살렘에 거하는 너희들아, 이것을 너희에게 알려 주리니...” 사람들은 갈릴리 말이라는 언어는 없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알려 주리니 내 말들에 귀를 기울이라.” 그가 그 모든 사람에게 무슨 언어로 말했습니까? “지금은 낮 세 시이므로 너희가 짐작하는 것처럼 이들은 술 취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오히려 이것은 선지자 요엘을 통해 말씀하신 것이니라. ‘하나님이 말하노라. 마지막 날들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아들딸들은 예언하리라.’” 그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너희가 사악한 손으로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았도다. 다윗이 그분에 관해 말하기를, ‘...그의 혼을 지옥에 남겨 두지 아니하시고 그분의 거룩한 자가 썩음을 보지 아니하게 하시리라’ 하였도다.”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동일한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삼으셨음을 너희에게 알려 주노라.” 그들이 이 말을 들었을 때... 아멘! 누가 들었습니까? 하늘 아래에서 온 모든 사람이 들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습니까? 그는 “이제 갈릴리 말로 하겠습니다. 그다음에는 이 언어로, 또 이 언어로 하겠습니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가 이 말들을 할 때에 그들은 “사람들아 형제들아, 우리가 구원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그 방법을 알려 주었습니다. 언제나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계속 위로 나아가며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는 것, 하나님과 가까이 걷는 것입니다.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루터가 의롭게 됨을 받았을 때 그는 그것을 성령이라고 불렀습니다. 성령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일부를 조금 부어 주셨습니다. 그다음에는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웨슬리는 성화를 받고 “자, 여러분이 환호하면 받은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환호했어도 받지 못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오순절 사람들이 방언으로, 알지 못하는 방언으로 말했을 때에는 “자, 받은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받지 못했습니다. 그것을 알게 해 주는 표적으로 그런 것들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무를 아는 유일한 길은 그 나무가 맺는 열매를 보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의 역사, 성령의 열매입니다. 그러므로 권능이 충만하고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을 보면, 변화된 삶을 보게 됩니다. 믿는 사람들에게 이런 표적들이 따르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들이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내쫓고 새 언어들로 말하리라. 뱀에게 물려도 해를 받지 않으리라. 치명적인 것을 마셔도 죽지 않으리라.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 사람들이 나으리라.” 아! 이런 표적들이 믿는 사람들에게 따릅니다. 그러나 어떻게 그 안에 들어갑니까? 그 은사들은 몸 안에 있습니다. 어떻게 몸 안에 들어갑니까? 말해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침례를 받아 한 몸 안으로 들어갑니다. 고린도전서 12장 13절입니다. 한 성령에 의해 우리가 모두 그 몸 안으로 침례를 받아 들어가며, 모든 은사가 우리에게 역사할 수 있게 됩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누군가 이 테이프를 듣거나, 이 자리에 계신 분 중에 동의하지 않는 분이 있더라도, 형제님, 우호적으로 해 주십시오. 저는 여러분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질문: 오늘 저녁 첫 번째 질문입니다. 브래넘 형제님, 저는 텔레비전이 세상에 저주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누가 쓰셨든, 저도 동의합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세상에 저주가 되게 만들었습니다. 세상에 복이 될 수도 있었지만, 저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런 것은 무엇이든 여러분 자신이 무엇을 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텔레비전이 저주라면 신문도 저주이고, 라디오도 저주이며, 전화도 많은 경우에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하지만 얼마 전 저녁에 그 형제님이 말씀하셨듯이, 요즘에는 텔레비전에 볼 만한 프로그램이 거의 없습니다. 돈이 너무 많이 듭니다... 온전한 복음을 전하는 가난한 설교자는 텔레비전 방송 비용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느 자리였는지, 그 형제님인가 다른 분이 얼마 전 저녁에 “라디오의 먼지를 터십시오” 혹은 “구석에 두었던 라디오를 다시 꺼내서 그 프로그램들을 들으십시오”라고 하신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사랑하는 분이여, 누구신지는 몰라도 저는 분명히 동의합니다. 그것은 인류에게 가장 저주스러운 것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정부에 세금으로 내야 할 이 많은 돈을 가져다가 담배와 술을 선전하는 프로그램 같은 것들의 광고비로 써 버리고, 정부에 낼 세금에서 그 금액을 공제합니다. 그러고는 돌아다니며 설교자들을 붙잡아 법정으로 끌고 가, 그들에게서 얼마 안 되는 돈을 뜯어내려 합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끔찍한 일입니다. 이제 그것은... 아시지요. 우리가 실제로 보게 되는 일입니다. 자매님이든 형제님이든, 누구시든 이 질문을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질문: 이제 좋은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질문입니다. 성경에는 사무엘기상 18장 10절처럼 하나님으로부터 온 악한 영이 어떤 일을 했다고 하는 구절들이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악한 영’이라는 말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설명해 주십시오. 주님의 도우심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악한 영이시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모든 존재의 모든 영은 하나님께 복종합니다. 그분께서는 모든 것이 자신의 뜻에 따라 움직이게 하십니다. 이 질문은 하나님에게서 나와 사울을 괴롭힌 악한 영에 관한 것입니다. 사울은 침울하고 무너진 모습... 상태에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가 믿음에서 떠났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믿음에서 떠나면 악한 영이... 하나님께서는 악한 영이 여러분을 괴롭히도록 허락하실 것입니다.
잠시 후에 한 대목을 읽어 드리고 싶습니다. 여기서 또 하나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모든 영은 하나님께 복종해야 합니다. 여호사밧과 아합이 전쟁에 나가려던 때를 기억하십니까? 어느새 그들은... 성문에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여호사밧은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두 왕이 거기 앉아서 군대를 합쳤습니다. 그러고 나서 여호사밧이 말했습니다. “우리가 나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주님께 여쭈어봅시다.” 아합은 가서 자기가 거느린 선지자 사백 명을 데려왔습니다. 먹을 것을 주어 살찌게 하고 모든 것을 마련해 주었으므로, 그들은 형편이 좋았습니다. 그들이 와서 모두 한목소리로 예언했습니다. “올라가십시오.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실 것입니다. 라못길르앗으로 올라가십시오. 하나님께서 거기서 왕을 위해 그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그중 한 사람은 뿔 한 쌍을 만들어 쓰고, 몸으로 보여 주려고 이리저리 달리면서 “이 쇠뿔로 그들을 나라 밖까지 완전히 밀어낼 것입니다. 그 땅은 왕의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그런 것을 다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성경과 같은 소리가 나지 않으면 어딘가 잘못된 것입니다. 참된 신자라면 누구나... 그래서 여호사밧은 말했습니다. “저 사백 명은 다 괜찮아 보입니다. 좋은 사람들 같습니다.” 아합은 아마 “아, 좋은 사람들이고말고요”라고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호사밧은 “한 사람 더 없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사백 명이 한목소리로 말하는데 왜 한 사람이 더 필요합니까? 어딘가 소리가 제대로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예, 여기 임라의 아들이 한 명 더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자가 싫습니다.” 물론이지요. 기회만 있으면 그의 교회를 닫아 버릴 것입니다. 그를 나라 밖으로 쫓아낼 것입니다. “물론입니다. 그자가 싫습니다.” “왜 싫어하십니까?” “그는 언제나 저를 거슬러 나쁜 일만 예언합니다.” 저는 바로 그때 여호사밧이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서 미가야를 데려오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그를 데리러 올라갔고, 이제 그가 내려왔습니다... 그를 데리러 올라갈 때 전령을 보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잠깐만요. 지금 저 아래에는 신학 박사가 사백 명이나 있습니다. 이 나라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들로, 피에이치 더블 엘디니 뭐니 하는 학위를 다 가지고 있습니다. 배우지도 못한 가련한 당신 같은 사람이 그 모든 성직자와 다른 말을 하지는 않겠지요.”
임라가... 아니, 미가야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입에 넣어 주시기 전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겠습니다. 그때가 되면 그분께서 말씀하신 그대로만 말하겠습니다.” 저는 그것이 좋습니다. 좋습니다. 다시 말해서 “말씀을 지키겠습니다”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하든 상관없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글쎄요, 말씀드리지만 쫓겨나고 싶으면 같은 말을 하는 게 좋을 겁니다.” 그래서 그는 그곳으로 내려갔습니다. 그가 물었습니다. “내가 올라가도 되겠느냐?” 그는 “올라가십시오”라고 했습니다. 또 “오늘 밤 시간을 주십시오. 주님과 그 일을 의논해 보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좋습니다. 그날 밤 주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셨고, 다음 날 그가 올라가서 말했습니다... 올라가던 중이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올라가십시오. 그러나 저는 이스라엘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산 위에 흩어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 이런! 그 말에 왕은 김이 빠졌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내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럴 줄 알았습니다. 그는 늘 꼭 저렇게 나를 거슬러 나쁜 말을 합니다.” 왜 그랬습니까? 그는 말씀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왜입니까? 그보다 앞선 선지자, 참 선지자인 엘리야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는 “네가 죄 없는 나봇의 피를 흘렸으므로 개들이 네 피도 핥으리라”라고 했습니다. 그에게 나쁜 일을 말했던 것입니다. 엘리야는 이미 천국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미가야는 엘리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 말씀을 지켰습니다. 저는 그것이 좋습니다. 말씀을 지키십시오.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그분의 권능은 지금도 동일하도다. 성령은 원하는 자는 누구든지 받을 수 있으니, 오게 하라”라고 말한다면, 말씀을 지키십시오.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상관없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잘 먹고 얼마나 많은 학교를 다녔든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자 그가 말했습니다... 머리에 뿔을 쓰고 왕의 나라 바깥으로 적들을 밀어내겠다던 그 덩치 큰 사람이 다가와, 이 작은 설교자의 입을 후려쳤습니다. 그는 그가 고작 작은 성령파 광신자라고 여겼고, 그렇게 해도 아무 말이 없을 줄 알았기에 그저 입을 후려친 것입니다. 그는 “한 가지 묻겠다. 하나님의 영께서 내게서 나가 어느 길로 가셨기에 네가 그 영을 받았느냐?”라고 했습니다. 그는 “당신이 저기 포로가 되어 우리 안에 앉게 되면 알게 될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왕좌에 앉아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아멘! 이제 들으십시오! “하늘의 군대가 그분 주위에 모여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었습니까? 그분의 선지자는 이미 아합에게 일어날 일을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은 엘리야가 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기름부음 받은 선지자가 한 말이었습니다.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라는 주님의 말씀이었습니다. 미가야는 말했습니다. “저는 하늘의 모든 군대가 큰 회의를 하려고 하나님 주위에 모인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서로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를 내려보낼까? 너희 중 누가 내려가 아합을 속여 그를 그곳으로 나가게 하겠느냐? 화살에 맞게 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게 할 자가 누구냐? 누구를 내려보낼 수 있겠느냐?’”
어떤 이는 이렇게, 어떤 이는 저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악한 영, 거짓말하는 영이 아래에서 올라와 말했습니다. “허락만 해 주신다면, 저는 거짓말하는 영이오니, 내려가 그 설교자들 모두에게 들어가겠습니다. 그들에게는 성령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들로 하여금... 그들은 그저 학교에서 교육받은 젊은이들입니다. 제가 내려가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들어가 그들을 속이고 거짓 예언을 하게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했습니까? 그는 “그렇게 해서 그들을 속이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내려갔습니다. 그분께서... 하나님께서 “가도록 허락하노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내려가 학교에서 교육받은 사역자들인 그 거짓 선지자들 안으로 들어가, 거짓 예언을 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거짓말하는 영이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만 더 보실 수 있습니다. 잠깐만요. 이것을 보십시오. 저와 함께 고린도전서 5장 1절을 펴 보시기 바랍니다. 잠시만요. 고린도전서... 무엇인가를 보고 싶으시다면 이것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그 악한 영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말입니다. 좋습니다. 바울이 말합니다. 너희 가운데 음행이 있다는 말이 공공연히 알려졌는데 그런 음행은 이방인들 가운데서도... 거론되지 않는 것으로... 그런 일이 교회 안에 있다니,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곧 어떤 사람이 자기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는 것이라. 그런데도 너희가 우쭐대며... 아니하고... 어디 봅시다. 제가 두 장을 넘긴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너희가 우쭐대며 오히려 슬퍼하지도 아니하고... 잠시만요. 제가... 예, 맞습니다. 예. ...슬퍼하지도... 그렇습니다. ...우쭐대며... 슬퍼하지도 아니하고 이런 일 행한 자를 너희 가운데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니라.
모르겠습니다. 누가 이 말에 무어라고 하거나 반박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저는 그저 제가 믿는 것을 옹호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한 번 성령으로 충만해지면 성령을 잃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내가 진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지만 영으로는 함께 있어 마치 거기 있는 것같이 이런 일을 그렇게 행한 자에 관하여 이미 판단하되, 너희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과 함께 같이 모였을 때 내 영도 함께하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런 자를 사탄에게 넘겨주어 육체를 멸하도록 판단하였으니 이것은 영이 주 예수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있는 그분의 몸인 거룩한 교회에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구약 이후, 신약에서의 일입니다. 사람들 가운데 자기 아버지의 아내와 함께 살 만큼 더럽고 추악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에 관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 안에 그런 일이 있으니... 너희 교회는 그를 마귀에게 넘겨주어 멸하게 하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반드시 이루셔야 할 일이 있어서 누군가에게 채찍을 가하셔야 할 때에는, 악한 영을 풀어 보내 그 사람을 괴롭히고 돌아오게 하십니다. 이제 우리는 이 사람이 나중에...
바로 그것이 오늘날 교회들의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들어와 지체가 된 뒤에 악을 행하기 시작하면, 여러분은 함께 모여 바로 이 일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브래넘 타버내클은 그렇게 하십시오. 여러분이 그를 감싸고 있는 한 그는 피 아래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똑같은 일을 계속, 거듭거듭 반복합니다. 여러분이 함께 모여 그를 마귀에게 넘겨주어 육체가 멸해지게 하십시오. 그의 영이 주님의 날에 구원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채찍이 임하는 것을 보십시오. 마귀가 그를 붙잡는 것을 보십시오. 악한 영이 그를 사로잡는 것입니다. 그러자 여기 이 사람은 바로잡혔습니다. 돌아왔습니다. 고린도후서를 보면 그가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깨끗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욥을 보십시오. 완전한 사람,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의 영을 완전하게 하시려고 악한 마귀가 그에게 임하여 그를 징계하고 그 밖의 여러 일을 하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악한 영들은...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계획과 뜻을 이루시려고 악한 영들을 여러 번 사용하십니다.
질문: 이제 정말 어려운 질문이 있습니다. 필체가 같아 보여서 같은 분이 쓰신 것 같습니다. 사람이 회심하고 휴거에 들어가려면 성령을... 성령을 받아야 한다면, 책임을 질 나이가 되기 전에 죽은 아이들은 어떤 상태가 됩니까? 그들은 언제 일어납니까? 형제님, 자매님, 그것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제가 찾아본 바로는 성경 어디에도 그것에 관한 말씀이 없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을 말씀드릴 수는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믿는 여러분에게 힘이 될 것입니다. 이분은 알고 싶어 하십니다. 아주 좋은 질문입니다. 이분은 어떤 부활에... 아기가 어떻게 되는지 알고 싶어 하십니다. 휴거에 들어가려면 성령을 받아야 하니 말입니다... 제가 말씀드렸듯이, 그것은 맞습니다. 성경에 따른 것입니다.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천국에 가는 데 필요한 조건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들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선택받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남은 사람들은... 나머지 죽은 자들은 천 년 동안 살지 못합니다. 천년왕국 이후에 둘째 부활이 있고, 크고 흰 왕좌의 심판이 있습니다. 그것이 정확한 성경의 순서입니다. 그런데 이분은 아기들은 어떻게 되는지 알고 싶어 합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태어나기 전에 성령을 받았습니까? 성령을 받았던 것입니까? 그것은 제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해 봅시다. 우리는 죽은 아기들은 부모가 어떤 사람이든 구원받는다는 것을 압니다. 저는 그 점에서 선지자 학교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죄 많은 부모에게서 난 아기가 죽으면 지옥에 가서 썩어 없어지고, 그것으로 끝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요한은 예수님께서 오실 때 “세상 죄를 제거하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라고 말했습니다. 그 아기가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어야 할 인간이고, 예수님께서 죄를 제거하려고 죽으셨다면, 예수님께서 바로 그 목적으로 죽으셨을 때 모든 죄는 하나님 앞에서 제거되었습니다. 여러분의 죄도 용서받았습니다. 제 죄도 용서받았습니다. 여러분이 용서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분의 사면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기는 그 사면을 받아들일 수 없고, 아무 짓도 하지 않았습니다. 전혀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아무 거리낌 없이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휴거에 들어갑니까?”라고 물으실 것입니다. 이제 이것은 제 말입니다. 지금 제 생각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하지 마십시오. 저는 이것을 성경으로 입증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이 땅에 살 모든 사람을 아셨다면... 그것을 믿으십니까? 그분께서는 모든 각다귀, 모든 벼룩, 모든 파리를 아셨습니다. 이 땅에 있을 모든 것을 아셨습니다. 그것을 아셨다면...
보십시오. 예를 들어 모세를 생각해 봅시다. 모세는 태어났을 때 선지자였습니다. 예레미야가... 전에,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네가 어머니의 태 안에서 지어지기도 전에, 네가 그 태 안에서 지어지기도 전에 내가 너를 알고 거룩히 구별하였으며, 너를 민족들을 향한 선지자로 세웠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침례자 요한이 태어나기 칠백십이 년 전에 이사야는 환상으로 그를 보고 “그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예정, 곧 미리 아심은 어린 아기들에 관한 모든 것, 그들이 무엇을 하게 될지를 다 아십니다. 그분께서는 그들이 죽을 것도 아셨습니다. 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르시는 가운데 일어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에게 일어날 수 없습니다. 마치 선한 목자께서 어떻게 들어가시는지... 이것을 성경으로 설명하려 해도, 성경이 이렇다 저렇다 말씀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저 제 생각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질문: 다음 질문은 아마 누군가가... 제가 얼마 전 저녁에 한 말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아내가 아이를 낳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을 설명해 주십시오. 아내는 아이를 낳음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잠시 디모데전서 2장 8절을 펴 봅시다. 아이에 관해 성경이 무엇이라고 하는지 알아봅시다. 그것이 가톨릭 교리라는 것은 압니다. 가톨릭은 여자가 출산을 통해, 아이를 낳음으로 구원받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저는 그것을 믿지 않습니다. 디모데전서 2장, 8절부터 시작해서 잠시 읽어 봅시다. 좋습니다. 들으십시오. 또한 이런 식으로 너희 여자들도 단정한 옷으로 자기를 꾸미되... 이런 것을 부탁할 필요가 없어야 하겠지요? 이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얌전하게... 휴! ...맑은 정신으로 하고 장식한 머리나 금이나 진주나 값비싼 옷으로 하지 말며, 형제님들, 제가 여러분을 돕고 있는 셈이기를 바랍니다. 매일, 혹은 사흘마다 새 모자들을 사는 것 말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따른다고 고백하는 여자들에게 합당한) 선한 행위로 하기를 원하노라. 너희 여자들은 전적으로 복종하며 잠잠히 배울지니라. 더욱이 나는 여자가 가르치거나 남자에게 권위를 행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여자는 잠잠히 있을지니라. 이는 아담이 먼저 지어지고 그 뒤에 이브가 지어졌으며, ...아담이 속지 아니하고 여자가 속아 범법 가운데 있었기 때문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수태와 해산을 거칠 때에 구원을 받으리니, 만일... 지금 그분께서는 아이를 낳는 세상 여자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그녀가 믿음 안에 거하면... 아시겠습니까? 계속 거한다면 말입니다. 그녀는 이미... 그가 말하는 여자는 이미 구원받은 여자입니다. ...그리고 사랑과 거룩함 안에 맑은 정신으로 거하면.
아이를 낳는 행위가 그녀를 구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을 기르며 자신의 의무를 다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처럼 아이 대신 고양이나 개나 다른 것을 키우면서 거기에 어머니의 사랑을 쏟고, 자기는 밤새 밖에 나가 돌아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죄송하지만 실제로 그렇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몹시 무례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사실입니다. 아이에게 매여 살기 싫어서 아이를 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서 믿음과 거룩함 안에, 맑은 정신으로 계속 거한다면 구원받을 것입니다. 그 ‘만일’이라는 조건은 여러분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도 다시 태어난다면 구원받을 것입니다. 믿으면 치유될 수 있습니다. 성령을 믿고 받을 준비를 한다면, 준비가 되어 있다면 성령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녀도 이런 일들을 계속 행하면 구원받을 것입니다. 단지 여자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형제님, 자매님, 그렇습니다. 이것은 전혀 가톨릭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이제 저는... 여기 또 아주 까다로운 질문이 있습니다. 그다음에 하나가 더 있습니다. 아마 그것까지 할 시간이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시간을 다 써 버렸군요. 이것은 그저 부흥 집회의 여파입니다. 이 질문들은 집회가 끝난 뒤에 뒤따라온 것들입니다.
질문: 브래넘 형제님, 이 질문은 타자로 쓴 것이군요, 사람이 방언으로 말하고 자신이 전한 메시지를 스스로 통역하는 것이 성경적입니까? 그렇다면 고린도전서... 아니, 고린도서 14장 19절과 고린도서 14장 27절을 설명해 주십시오. 좋습니다. 그 말씀으로 가서 무엇이라고 하는지 봅시다. 그러면 우리가 이것을 성경에 맞게 행하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성경에 맞게 하기를 원합니다. 고린도서 14장입니다. 이분은 사람이 방언으로 말한 자기 메시지를 스스로 통역하는 것이 성경적인지 알고 싶어 합니다. “그렇다면 고린도서 14장 19절을 설명해 주십시오.” 어디 봅시다. 14장 19절입니다. 좋습니다. 여기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들에서는 내가 알지 못하는 타 언어들로... 만 마디 말을 하느니 차라리 이해하면서 다섯 마디 말을 하여 내 목소리로 다른 사람들도 가르치리라. 그다음 알고 싶어 하시는 구절은 27절입니다. 만일 어떤 남자가 알지 못하는 타 언어로 말하거든 두 남자나 많아야 세 남자가 순서대로 하고 한 남자는 통역할 것이요.
이분이 무엇을 물으려는지 알 것 같습니다. 잠시 후에 한 대목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이 형제님이나 자매님이 묻고자 하는 것은 “방언으로 말하는 사람이 자기가 말한 메시지를 통역해도 됩니까?”인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친구여, 같은 장의 13절을 읽어 보시면 거기에 답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알지 못하는 타 언어로 말하는 자는 통역할 수 있도록 기도할지니. 물론입니다. 자기 메시지를 통역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그저... 그저... 이 부분을 모두 읽으면 알 수 있습니다... 그 장 전체를 읽어 보십시오. 아주 좋습니다. 그 점을 설명해 줍니다.
방언으로 말하는 것에 대해... 지금 그 문제를 다루고 있고 이것이 녹음되고 있으니, 저는 신유와 성령 침례와 그리스도의 재림과 다가올 세상의 권능을 믿는 것만큼 방언으로 말하는 것도 믿는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것도 그만큼 믿습니다. 그러나 저는 방언으로 말하는 것에도 제자리가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스도의 오심에도 제자리가 있고, 신유에도 제자리가 있는 것처럼, 모든 것에는 제자리가 있습니다. 여러분께 이제 이것을 말씀드릴 기회가 생겼으니 설명하고 싶습니다. 누구에게든 상처가 된다면 그런 뜻은 없습니다. 혼란을 일으키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들어 보십시오. 오순절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방언으로 말하는 일에서 무엇이 문제였습니까? 저도 그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저도 오순절 사람입니다. 문제는 이것입니다. 그들이 그것을 경외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그것을 아무렇게나 내버려 둔다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들으십시오. 교회는 이렇게 세워져야 합니다. 오순절 교회에서는... 제가 이 교회의 목회를 맡고 있다면, 제가 어떻게 질서를 세울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늘 여기 있으면서 목회한다면 말입니다. 저는 성경에 있는 모든 은사를 인정할 것입니다. 신자들에게 먼저 성령 안으로 침례를 받으라고 하겠습니다. 그다음 고린도전서 12장의 모든 은사가 제 교회 안에서 역사하게 할 수 있다면, 온몸이 움직이도록 그 모든 은사가 역사해야 할 것입니다. 잘 보시면... 지금 비난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기억하십시오. 저는 거스르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겠습니다. 성령을 모독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것을 잘못 말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하나님은 아십니다. 그저 거의 이십 년 동안 연구해 온 성경의 관점을 여러분께 알려 드리려고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저는 거의 삼십 년 동안 설교했습니다. 온갖 일을 다 겪으며 그저 헤쳐 왔습니다. 그 삶이 어떠했을지 짐작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온 세상에서 각 사람과 그 교리를 지켜보았습니다. 제게 중요한 일이기에 그런 것들을 살폈습니다. 저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중요한 일입니다. 저는 이 땅을 떠나야 합니다. 여러분도 떠나야 합니다. 만일 제가 거짓 선지자로 떠난다면 제 혼을 잃을 것이고, 여러분의 혼도 함께 잃게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일용할 양식보다 중요하고, 인기보다 중요하며,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합니다. 제게는 생명이 걸린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언제나 마음 가장 깊은 곳까지 진실하기를 원합니다.
오순절 교회에 가 보면, 처음에는... 모든 교회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중 어떤 교회들은... 대개 교회에 가서 설교하기 시작하면, 설교하는 중에 누군가가 일어나 방언으로 말합니다. 그 귀한 분이 성령으로 온전히 충만해 있을 수 있고, 그 사람을 통해 말씀하시는 분이 성령이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강단에 있는 이 사역자가 영감을 받아 말하고 있다면, 선지자들의 영은 선지자에게 통제를 받습니다. “모든 것을 ...하게 할지니라.” 바울의 이 대목을 보십시오. 왜 그가 “한 사람이 말할 때” 등등, “그가 들어왔을 때 이것은 혼란이다”라고 하는지 말입니다. 제가 사람들을 앞으로 초청하고 있을 때 누군가 일어나 방언으로 말하면, 그러면 그저... 초청을 그만두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것 때문에 초청이 끊어집니다.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일어나 방언으로 말할 때, 앉아서 껌을 씹고 이리저리 둘러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면 조용히 하고 들으십시오! 그것이 참으로, 그 사람 안에서 말씀하시는 분이 성령이시라면, 조용히 앉아 귀를 기울이고 경외하십시오. 통역이 여러분에게 임할 수도 있습니다. 조용히 앉아 통역을 기다리며 들으십시오. 만일 교회 안에 통역하는 사람이 없다면, 그들은 그 몸 안에서 잠잠히 있어야 합니다. 또 알지 못하는 방언으로 말할 때에는, 성경이 말하기를 자기 자신에게, 곧 자기와 하나님께 말하라고 했습니다. 알지 못하는 방언으로 말하는 자는 자기를 세웁니다. 이것은 알지 못하는 방언입니다. 방언인 지방 말이나 언어는 그것과 다릅니다. 그는 “아무것도... 소리를 내는 것은 무엇이든 의미가 있다”라고 말합니다. 나팔이 울리면 무슨 신호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저 불기만 해서는 전쟁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알 수 없습니다. 누군가 방언으로 말하면서 그냥 “뚜” 하고, 그것이 전부라면, 무엇을 해야 할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러나 기상나팔이 울리면 “일어나라!”라는 뜻입니다. 소등나팔이 울리면 “누워라”라는 뜻입니다. 돌격나팔이 울리면 “돌격하라”는 뜻입니다. 그저 말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전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 통역하는 사람이 없다면... 하지만 통역하는 사람이 있다면 방언은 교회 안에 있어야 할 것입니다.
친구여, 이제 질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저는 오천 마디... 아니,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다섯 마디를 말하는 편이 알지 못하는 방언으로 오천 마디를 말하는 것보다 낫습니다.” 그 구절이 무슨 숫자라고 되어 있든 말입니다. 그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계속 아래로 읽어 보십시오. “...계시나, 세워 주기 위한 통역이 아니면”이라고 했습니다. 세워 주기 위한 것입니다. 제가 대략적인 모습을 그려 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목회자로 부르셔서 앞으로 세워질 이 교회를 목회하게 된다면, 저는 이렇게 하겠습니다. 교회 안에서 은사를 받은 사람을 한 사람 한 사람 찾아보겠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이 예배 시작 약 한 시간 전에 별도의 방에 모이게 하겠습니다. 성령 아래 앉아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한 사람이 오는데, 방언으로 말하는 은사가 있습니다. 그가 방언으로 말합니다. 모두 조용히 앉아 있습니다. 그다음 한 사람이 일어나 그가 한 말을 통역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교회에 전하기 전에, 성경은 두세 증인에게 판단을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들은 영을 분별하는 사람들입니다. 악한 힘들이 여러 번 그 안에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바울도 그것을 말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권능도 그 안에 있습니다. 악이 자리 잡지 않은 회중이 어디 있는지 말씀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아들들이 모였는데 사탄이 그 가운데 있지 않은 곳이 어디인지 말씀해 보십시오. 어디나 그렇습니다. 그러니 그것을 보고 언짢아하지 마십시오. 사탄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자, 이 상황을 봅시다. 누군가 방언으로 말합니다. 거기에는 분별의 영을 받은 세 사람이 앉아 있습니다. 한 사람이 방언으로 말하며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성경을 인용하는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헛된 반복을 하지 않으시고, 우리에게도 하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이 아니라, 교회에 주시는 메시지입니다.
지금까지 이번 부흥 집회에서 두 가지 일이 있었습니다. 각각 어땠는지 보십시오. 완전했고, 정확히 맞았습니다. 그렇게 역사했습니다. 한 사람이 일어나 방언으로 말하고 통역한 뒤에, 곧바로 방금 선포된 메시지를 입증했습니다. 얼마 전 저녁에는 다른 사람이 일어나 예언의 영감을 받아 말했습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면서 말한 뒤, 마지막에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이 있도다”라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무엇인가가 즉시 저를 사로잡아 이렇게 말하게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것이 주님께서 오신 것임을 믿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통...입니까? 그러고 나서 어젯밤 성령께서 이 건물 안에 임하셨습니다. 그것은 세워 주기 위한 것입니다. 저는 사람들이 성령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려고 거기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귀가 사람들 주위에 들어와 “듣지 마라. 가만히 앉아 있어라”라고 했습니다. 제 누이가 말했습니다. “빌, 오빠가 설교하는 동안 너무 행복해서 일어나 벽을 뚫고 뛰쳐나갈 수 있을 것 같았어.” 저는 “일어나서 뛰어라”라고 했습니다. 그것뿐입니다. 누이는 “하지만 오빠가 그렇게 하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이 환호하기 시작하니까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어”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건 마귀야. 사탄이야. 그가 들어와 그렇게 할 때, 너는 그래도 일어났어야 했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영적 희생물을 드리는 제사장들이며, 입술의 열매로 그분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이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말씀드리지요. 그러자 성령께서 터져 나오듯 임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믿는 사람은 복이 있도다”였습니다. 저는 이삼 일 저녁을 연이어 그것을 사람들 마음에 심으려 했습니다. 그러자 성령께서 영감으로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무엇이라 말하기도 전에 이미 그것을 다시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이 가운데 오셨음을 믿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제가 계속 이야기하던 것이었습니다. 성령은 여러분 안에 계신 하나님 자신입니다. 그들이 그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자 성령께서 사람들 가운데 임하셨습니다. 예언이 어떻게 사람들을 세워 주는지 보셨습니까? 이제 예언과 선지자는 다릅니다. 예언은 이 사람에게서 저 사람에게로 옮겨가지만, 선지자는 요람에 있을 때부터 선지자로 태어납니다. 그들에게는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가 있습니다. 그들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이사야나 예레미야, 또는 다른 선지자들 앞에 서서 판단하는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 가운데 있는 예언의 영은 주의해서 살펴야 합니다. 사탄이 그 안으로 슬며시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판단을 받아야 합니다.
이제 부흥 집회를 연다고 합시다. 목사님들, 이 점을 아주 주의 깊게 보십시오. 우리가 부흥 집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좋습니다. 아니면 그저 정기 예배를 드리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교회는 불타고 있습니다. 늘 그래야 합니다. 어쩌면 은사를 받은 사람이 대여섯 명 있습니다. 한 사람이 방언으로 말하고, 두세 사람이 방언으로 말할 수도 있고, 네댓 사람이 방언으로 말할 수도 있습니다. 방언의 은사로 알지 못하는 방언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중 두세 사람은 통역할 수 있습니다. 지혜의 은사를 받은 사람이 한두 명, 혹은 세 명 있을 수도 있습니다. 좋습니다. 그 은사 받은 사람들이 모두 모입니다. 여러분에게 그런 은사를 주신 것은 장난삼아 쓰거나 “하나님께 영광! 저는 방언으로 말합니다! 할렐루야!”라고 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면 자기 품위를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일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교회에서 여러분이 맡은 역할은 본 예배가 시작되기 전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우리 가운데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다음 여러분은 그 방으로 가서 함께 앉습니다. 복음의 동역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거기 앉아 “주님, 오늘 저녁 저희에게 알려 주고 싶으신 일이 있습니까? 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저희에게 말씀해 주옵소서”라고 하며 기도와 간구를 드리고 찬송을 부릅니다. 곧 성령께서 내려와 누군가에게 임하시고, 그가 방언으로 말합니다. 한 사람이 일어나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라고 말합니다. 무슨 내용입니까? 들어 보십시오. “가서 존스 형제에게 지금 사는 곳에서 떠나라고 말하라. 내일 오후에 회오리바람이 그 지역을 휩쓸고 그의 집을 가져갈 것이니라. 살림을 챙겨서 떠나라!” 듣기에는 좋습니다. 그러나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거기에는 분별의 영을 받은 남자 세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한 사람이 “주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도 “주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라고 합니다. 그것이 셋에 대한 둘, 곧 두세 증인입니다. 좋습니다. 그들은 종이에 그것을 적습니다. 성령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좋습니다. 다시 기도하며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잠시 후에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한 선지자가 일어섭니다,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오늘 저녁 뉴욕시에서 한 여자가 올 것이니라. 그녀는 들것에 실려 있으며, 들것에 실려 이 건물에 들어올 것이니라. 머리에 초록색 스카프를 두르고 있고, 암으로 죽어 가고 있느니라. 그녀가 이렇게 된 이유는 주님께서 그녀의 한 일을 문제 삼고 계시기 때문이니라. 그녀는 열여섯 살 때 그분의 교회에서 돈을 훔친 적이 있느니라. 브래넘 형제에게 이 일을 그녀에게 말하라고 하라.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그녀가 그것을 바로잡으면 치유되리라.” 잠깐만요. 아주 좋은 말 같지만 잠깐 기다리십시오. 분별하는 분이여, 이 종이에 이름을 쓰시겠습니까? 이름을 쓰시겠습니까? “주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한 사람도 “주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라고 합니다. 그러면 적습니다.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오늘 저녁 어떤 여자가 이곳에 올 것이며, 이런저런 일이 있으리라.” 영을 분별하는 사람들 가운데 두세 사람이 거기에 서명합니다. 이런 메시지들이 모두 주어집니다. 좋습니다.
그러다가 종소리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예배가 시작될 때가 된 것입니다. 그러면 그 메시지들을 가져와 바로 이 책상 위에 놓습니다. 놓아야 할 곳이 바로 여기입니다. 저는 어딘가에서 말씀을 연구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잠시 후 찬송을 부르고 나면 제가 나옵니다. 교회는 모두 질서 있게 되어 있고, 사람들은 들어와 앉아서 묵상하며 기도합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해야 합니다. 서로 이야기하려고 교회에 오지 말고, 하나님과 이야기하려고 오십시오. 서로의 교제는 밖에서 하십시오. 지금 우리는 하나님과 교제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여기 와서는 조용히, 경외하는 마음으로 말하고, 모든 일 가운데 성령께서 움직이십니다. 피아노 연주자는 찬송 시간이 시작되기 약 오 분 전에 피아노에 와서 아주 부드럽게 연주하기 시작합니다. 내 구주께서 돌아가신 십자가 아래, 그곳에서 죄 씻음 받으려 울부짖었네... 혹은 다른 좋은 찬송을 아주 조용하고 부드럽게 연주합니다. 그것이 집회 가운데 성령의 임재를 가져옵니다. 좋습니다.
사람들이 거기 앉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참으로... 울기 시작하여, 예배가 시작되기도 전에 제단 앞으로 나와 회개합니다. 성령께서 거기 계십니다. 교회가 해산의 수고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기도하며 자기 자리를 지킵니다. 거기 앉아 껌을 씹으며 “리디, 립스틱 좀 빌려줘. 나는... 있잖아, 알지? 내가 필요한데... 말이야, 지난번에 거기 쇼핑하러 갔을 때, 정말 네 발을 밟을 뻔했지 뭐야. 내가 그런 걸 본 적이 있었나... 너는 그걸 어떻게 생각해?”라고 하지 않습니다. 아, 이런! 그러면서 하나님의 집이라고 합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이 함께 모인 자리입니다. 우리가 그곳에 앉아 있습니다. 곁에 앉은 남자가 “있잖아요, 우리가 거기 갔을 때 이러이러하고 저러저러해서...”라고 합니다. 밖에서는 괜찮지만, 이곳은 하나님의 집입니다.
기도하며 들어와 여러분의 자리를 지키십시오. 형제님들, 저는 지금 여러분의 교회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하는지 저는 모릅니다. 이 타버내클에 말하고 있습니다. 제 집안에 대고 하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들어와 있으면, 이윽고 목사가 나옵니다. 그는 새 힘이 넘칩니다. 이것저것 온갖 질문에 답하느라 시달릴 필요가 없습니다. 자기 사역의 이슬을 머금은 채 바로 나옵니다. 성령의 권능 아래 있다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는 더 많은 불의 혀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곧장 들어옵니다. 이제 거의 하나의 기둥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가 여기 나와 이것을 집어 듭니다. “교회에서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존스 형제는 집에서 떠나라. 내일 오후 두 시에 회오리바람이 그의 땅을 휩쓸 것이니라. 살림을 챙겨서 떠나라.’” 존스 형제가 그것을 듣습니다. 좋습니다.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오늘 저녁 아무개라는 여자가 이곳에 올 것이니라. 그것은... 그녀가 이러이러한 일을 했느니라.” 제가 방금 말한 것처럼 그렇게 전합니다. 좋습니다. 그것은 그때까지 놓아둡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이제 그들은 이미 교회 안에서 자기 역할을 한 것입니다. 좋습니다. 그다음 목사가 말씀을 듭니다. 곧 설교를 시작합니다. 아무것도 방해해서는 안 됩니다. 앞의 일은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이제 계속 진행합니다.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설교가 끝나면 치유를 위한 기도 줄이 시작됩니다. 한 여자가 옵니다. 누군가가 방언으로 그 여자가 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모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압니다. 모두 알고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 위에 머물러 있는 그 불의 혀들과 함께 믿음이 어떻게 자라기 시작하는지 아시겠습니까? 그것이 한데 모이기 시작합니다. 이미 다 이루어진 일입니다. 그뿐입니다. 그 여자에게... 제가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 앉아 계신 뉴욕시에서 오신 아무개 부인... ” “아, 맞습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주님께서 교회에 주신 메시지입니다. 열여섯 살 때 어느 곳에 계시면서... 교회 돈을 가져가, 훔쳐서 밖에 나가 그 돈으로 새 옷을 사지 않으셨습니까?” “아, 맞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그것을 하나님께서 오늘 저녁 아무개 형제님이 방언으로 말하고, 아무개 형제님이 통역하는 것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여기 분별하는 아무개 형제님이 그것이 주님께로부터 온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예!” “그러면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가서 그것을 바로잡으십시오. 그러면 암이 나을 것입니다.”
존스 형제는 집으로 가서 짐수레들을 가져다 대고, 가구를 실어 그곳을 떠납니다. 내일 오후 두 시가 되면 [브래넘 형제님이 설명하기 위해 소리를 낸다.] 모든 것이 날아갑니다. 그러면 교회가 영광을 돌립니다... “주 예수님, 주님의 선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를 세우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렇게 말했는데도 그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어떻습니까? 그러면 여러분 가운데 악한 영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 악한 것을 원하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하늘에 참된 오순절의 것이 가득한데, 왜 악한 것을 원하십니까? 마귀가 내놓는 낡은 대용품을 받지 마십시오. 참된 것을 받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위해 그것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옳다는 것을 입증하시기 전에는 더 이상 그런 모임을 갖거나 이 자리에 무엇을 올려놓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복음의 역사에서 교회를 돕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것이 무엇인지 이해하십니까?
방언, 알지 못하는 방언은... 말하는 사람이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릅니다. 말은 하지만, 모든 소리에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이 손뼉을 친다.] “글럭, 글럭, 글럭!” 어딘가에서는 그것도 언어입니다. 아프리카에 갔을 때 저는 믿어지지 않았지만, 소리가 나는 모든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었습니다. 성경은 뜻이나 의미가 없는 소리는 없다고 했습니다. 만들어지는 모든 소리에는 무언가에 대한 의미가 있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듣곤 했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면, 한 사람은 “바바, 바바바바바”라고 하고, 다른 사람은 “웁웁웁웁웁”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이었습니다. 거기에는... 제게는 아무 뜻도 없었지만, 그들에게는 지금 제가 여러분께 말하는 것과 똑같은 언어였습니다. 줄루어, 코사어, 반투어와 그 밖의 통역자들이 이어서 통역하면, 하는 말을 모두가 알아들었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사람들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고 그저 무의미한 말소리라고 생각해도, 그렇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을 경외하고 제자리에 두어야 합니다.
어쩌면 아무 메시지도 없었을 수 있습니다. 이제 예배가 끝났고, 사람들을 앞으로 초청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저 뒤에서도 메시지가 없었습니다, 기회가 생기자마자 일어납니다. 성령께서... 성경은 “통역하는 사람이 없으면 잠잠히 있을지니라”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말하고 싶어도 잠잠히 있으십시오. “그렇게는 못 하겠습니다”라고 하십니까? 성경은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그것으로 끝입니다. 잠잠히 있어야 합니다. 그런 다음 모든 것이 질서 있게 되어 기회가 왔을 때, 성령께서 그에게 임하여 메시지를 전하게 하시면 전하십시오. 정확히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통역이 나옵니다. “여기 샐리 존스라는 여자가 있습니다.” 여기 그 이름을 가진 분은 안 계시기를 바랍니다만... “샐리 존스, 그 여자에게 오늘 밤이 부르심을 받는 마지막 밤이라고 말하십시오. 이 땅에 있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잡으십시오.” 그러면 샐리 존스는 최대한 빨리 제단 앞으로 달려올 것입니다. 그것이 그녀에게 주시는 마지막 부르심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메시지를 주거나, 무엇을 입증하거나, 그런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실제로 역사하는 오순절 교회입니다. 악한 영들이 슬며시 들어올 가능성이 없습니다. 이미... 성경이 정확히 알려 주기 때문입니다. “순서대로 하되 세 사람이 할 것이요, 두 사람 이상이 판단할지니라.” 이것이 교회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누군가 방언으로 말하는 동안 벌떡 일어나 소란을 피우고 웃으며 떠듭니다. 다른 사람은 둘러보고, 엉뚱한 이야기를 하고, 이리저리 몰려다닙니다. 목사는 무엇을 하고 있고, 다른 누군가도 몰려다닙니다.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어쩌면 목사가 설교하고 있는데 누군가 일어나 끼어듭니다... 성경을 읽고 있는데 누군가... 성경을 읽고 있는데 저 뒤에서 누군가 방언으로 말합니다. 아, 안 됩니다! 설교자가 설교단에서 설교하는데 누군가 일어나 방언으로 말하며 끼어듭니다. 그것 자체는 괜찮습니다. 성령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성령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성령을 사용하는 법 말입니다. 이제 제가... 한 가지 더 할 여유가 있으십니까? 내일은 일요일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제...
여기 하나 있습니다. 제 생각에 아주 은혜로운 질문입니다. 여러분, 몇 분만 더 참아 주십시오. 이것을 꼭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일부러 이것을 남겨 두었습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먼저 이분이 물은 두 가지를 읽겠습니다. 오래된 종이에 아주 아름다운 필체로 썼습니다. 어느 질문에도 이름이 없어서 누구인지 전혀 모릅니다. 질문: 브래넘 형제님, 사역자들이 집회에서 오랫동안 돈을 내라고 호소하면서, 하나님께서 회중 가운데 몇 사람이 얼마씩 내야 한다고 자기에게 말씀하셨다고 하는 것이 옳습니까? 옳다면 알고 싶습니다. 잘못이라면 그것도 알고 싶습니다. 이 문제 때문에 몹시 괴로웠습니다. 친구여,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렇다고 제 생각이 옳다는 뜻은 아닙니다. 저는 그것이 끔찍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사역의 현장으로 보내셨습니다. 적어도 ...할 것 같아 보이는 때도 있었습니다. 제게는 돈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저 헌금 접시를 돌리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집회 책임자가 와서 “빌리, 오늘 밤 우리는 오천 달러 적자입니다. 제퍼슨빌에 그것을 갚을 돈이 있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괜찮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여기 보내셨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오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저 헌금 접시를 돌리십시오.” 그러면 집회가 끝나기 전에 누군가 “주님께서 제 마음에 이 일을 위해 오천 달러를 드리라는 감동을 주셨습니다”라고 합니다. 먼저 인도를 받아서 해야 합니다.
저는 억지로 끌어내고, 애원하고, 구걸하여 돈을 거두는 것을 옳다고 믿지 않습니다.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형제님, 만일 그렇게 하고 계시더라도 제 말 때문에 마음 상하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형제님께는 그렇게 할 권한을 주셨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 입장에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믿지 않습니다. 저는 사역자들이 가서 이렇게 말하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얼마 전 제가 바로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이것은 오순절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것은... 교회들, 다른 교회들입니다. 큰 야외 집회에서였습니다. 거티, 그때 저와 함께 계셨지요. 다른 분들도 많이 계셨습니다. 유명한 교단 두세 곳이 함께 큰 대집회를 열었는데, 여기 시내의 현대 교회들 같은 일반 교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오후 내내 시간을 들여 강단에 서서 위협했습니다. 그 집회에 돈을 내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농작물을 망치시고, 아이들에게 소아마비를 주시고, 그런 일을 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성경을 앞에 두고 말씀드리는데, 정확한 사실입니다. 저는 “그것은 하나님과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을 모독하는 일입니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보내시면 돌보실 것입니다. 그분께서 보내시지 않았다면 교단이 돌보게 하십시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내셨다면 그분께서 돌보실 것입니다.
질문: 성령을 받은 교회에서 성탄절 연극을 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그리스도에 관한 것이라면 괜찮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산타클로스에 관한 것이라면 저는 그를 믿지 않습니다. 저는 이미 그런 것을 믿을 나이는 지났습니다. 산타클로스를 전혀 믿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하는 이런 자잘한 성탄절 행사들 중에는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제 생각에 사람들은 성탄절에서 그리스도를 모두 빼내고 산타클로스를 넣어 버렸습니다. 산타클로스는 꾸며낸 이야기입니다. 아이들 문제로 여러분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한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얼마 전, 이십오 년이나 삼십 년쯤 전에, 이 도시의 한 목사님이 제게 다가왔습니다. 시내의 어떤 큰 교회 목사님으로, 제가 아주 잘 알고 마음을 나누던 가까운 친구였습니다. 그리고 찰리 보해넌, 마이크 형제님, 제 좋은 친구 찰리 보해넌을 기억하시지요... 그가 자기 사무실에 앉아 말했습니다. “나는 다시는 내 아이들에게 그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이고, 손주들에게도 그런 말을 하게 하지 않을 겁니다. 내 아들이 열두 살쯤 되었을 때 내게 와서 산타클로스 이야기를 하더군요...” 그래서 그가 “얘야, 해 줄 말이 있구나. 엄마가...” 하고, 그가 무엇을 했는지 계속 설명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아이가 돌아와 말했습니다. “그럼 아빠, 예수님도 그런 거예요?” 진실을 말하십시오. 산타클로스는 크리스 크링글, 또는 성 니콜라스라는 사람에 관해 가톨릭이 꾸민 것입니다. 오래전 독일의 한 가톨릭 성인이 아이들에게 좋은 일을 하러 다녔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전통으로 전해 내려온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분은 참으로 계시며 살아 계십니다. 이제 마지막 질문이 있습니다. 아주...
보십시오. 그 점에서 제게 동의하지 않으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동의하지 않으시더라도 우호적으로 해 주시겠습니까? 저는 여러분을 사랑하며, 여러분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습니다. 정직하고 싶습니다. 제가 ...할 수 없다면, 제 아이에게 거짓말을 한다면 저는 거짓말쟁이입니다. 저는 아이에게 진실을 말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산타클로스에 관해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 물론 산타클로스가 있지. 성탄절 밤에 아빠를 잘 보렴.” 얼마 전 제가 아래쪽에 갔을 때, 어린 여자아이에게 시험 삼아 그 말을 해 보았습니다. 그저께 제대로 한 방을 받았습니다. 제가 그 건물 안에 있었습니다. 아래쪽 퀘이커 메이드에 사람들이 서 있었는데, 저는 식료품을 사러 내려갔습니다. 아내와 함께 그 안에 있었습니다. 열여덟 달도 채 안 되어 보이는 아주 어린 여자아이가 거기 서서 이렇게... “딩글 벨, 딩글 벨...” 하고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아이는, 아시지요, 작은 카트 뒤쪽 아기 자리 안에 앉아 있었습니다. 제가 “산타클로스를 기다리고 있니?”라고 물었습니다. 아이는 “그건 우리 아빠예요, 아저씨”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이고, 귀여운 아가야, 축복을 받으렴. 참 지혜롭구나”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제 정말 어려운 질문입니다. 이것을 다루고... 마치겠습니다. 아, 훌륭한 성경 말씀이지만 누구에게나 어려운 구절인 것 같습니다. 저도 여러 해 동안 이 구절에 막혀 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지금 바로 저 뒤에 앉아 있는 제 귀한 아내도 오늘 오후 제가 이 질문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 “빌, 그건 어떻게 답하실 거예요? 나도 늘 궁금했어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어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여보, 오늘 저녁에 오시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최선을 다해 보겠소”라고 했습니다.
질문: 브래넘 형제님, 히브리서 6장 4절부터 6절까지 설명해 주십시오. 이것은 참으로... 이제 여기서 우리의 믿음, 은혜, 신자들의 보장, 성도의 견인... 성도들의 견인이라고 해야겠군요, 그 점을 주의해서 보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6장 4절부터 6절입니다. 이것을 마칠 때에는 여러분께 아주 분명하게 설명드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죄송합니다. 오늘 저녁 전할 말씀을 준비해 왔는데, 내일 아침 예배에서 그것을 전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다음 저는 떠날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어려운 구절입니다. 주의해서 보셔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 교회는 앞으로 나와 환호하는 모든 사람, 방언으로 말하는 모든 사람, 설교자와 악수하는 모든 사람이 영생을 받았다고 믿거나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영생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셨다면, 그것은 영원히 여러분의 것이라고 믿습니다. 보십시오. 그렇지 않다면 예수님은... 거짓을 가르친 분으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에서 그분께서는 “내 말들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결코 심판에 이르지 아니할 것이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그분과 논쟁해 보십시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자는...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느니라.” 지금 성경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오는 모든 자는... 내 아버지께서 먼저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느니라. 내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자는 내게 올 것이요. 내게 오는 모든 자에게 내가 영존하는 생명을 주고”, 요한복음 6장입니다, “마지막 날에 그를 일으키리라.” 그분의 말씀입니다.
이제 보십시오. 에베소서 1장으로 돌아가고 싶다면, 바울이 설교합니다... 고린도 사람들은 저마다 방언과 노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른 교회들에는 그런 문제가 없었다는 점을 보십시오. 그는 그 문제에 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에베소 교회나 로마 교회에 방언을 언급한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들에게도 고린도 사람들처럼 방언과 다른 모든 것이 있었지만, 질서가 잡혀 있었습니다. 고린도 사람들은 도무지 질서를 잡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내려가 교회의 질서를 세웠습니다. 저는 오럴 로버츠가 말하듯이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이라고 믿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믿으시지요? 그러면 여러분은 “그렇다면 방언을 말하는 오순절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브래넘 형제님?”이라고 물으실 것입니다. 저는 그들이 성령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받았습니다. 좋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보십시오. 그분이 선하신 하나님이라고 믿으십니까? 도마가 한 번은 “주님, 아시다시피...”라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분을 믿었습니다. “아, 우리는 그분이 실제로 살아 계신 줄 알아!”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도마는 “아니야, 아니야, 나는 믿지 않아. 내가 믿으려면 증거가 있어야 해. 그분의 옆구리와 손의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아야 해”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선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도마야, 오너라. 여기 있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도마는 “아, 이제 믿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래, 도마야. 너는 나를 보고 만지고 내 옆구리에 손을 넣어 본 뒤에 믿는구나. 그러나 보지 않고도 믿은 자들의 보상은 얼마나 더 크겠느냐”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선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물론 여러분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십니다. 그저 그분을 믿읍시다. 그것이 사탄에게 치명타입니다. 형제여, 사람이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그대로 믿으면 그것은 언제나 사탄을 죽이는 타격이 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사탄에게 가장 강한 타격입니다. 제가 말했듯이 “사람이 ...로만 살 것이 아니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얼마 전 저녁에도 말씀드렸지요, “...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이제 이것을 보십시오. 1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교리에 관한 기초 원리들을 떠나서 완전함으로 나아가... 먼저 여러분이 아셨으면 하는 것이 있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누구에게 말하고 있습니까? 히브리 사람들입니다. 이 히브리서를 가르친 대상이 히브리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그렇지요? 예수님을 거절했던 유대인들입니다... 이제 이해가 되십니까? 그는 유대인들에게 말하면서 율법의 그림자가 그리스도의 모형임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옛것들이 모두 새것의 모형이었습니다. 이제 보십시오. ...그리스도의 교리에 관한 기초 원리들을 떠나서 완전함으로 나아가...
그는 지금까지 교리에 관해 말해 왔습니다. 이제 나아가 완전해진 것들을 이야기하자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령에 의해 구속의 날까지 봉인되면 하나님 안에서 완전해집니다. 요한일서에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자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나니, 하나님의 씨가 그의 안에 머물러 있으므로 그가 죄를 지을 수 없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 스스로 충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죄를 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씨가 그 안에 있으므로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바로 그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무엇을 하느냐, 무엇을... 세상이 여러분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어떻게 생각하시느냐가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할 수 없습니다. 만일 제가 시내에서 시속 사십 마일로 달려도 된다는 시장의 서면 명령을 가지고 있다면, 어떻게 경찰이 저를 체포할 수 있겠습니까? 체포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피의 제물이 끊임없이 있어서 그분께서 저를 보실 수도 없고, 저와 하나님 사이에 완충물, 곧 피의 방패가 있는데, 제가 어떻게 죄를 지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죽었고,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져 있으며, 성령에 의해 봉인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도대체 하나님 보시기에 잘못된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히브리서 10장은 “우리가 진리에 관한 지식을 받은 뒤에 고의로 죄를 지으면 다시는 죄로 인한 희생물이 남아 있지 아니하느니라”라고 합니다. 여기 안에서는 고의로 죄를 짓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이제 계속 읽어 봅시다. 좋습니다. ...완전함으로 나아가 죽은 행위들로부터의 회개와...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침례들에 관한 교리와... 안수와 죽은 자들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의 기초를 다시 놓지 말지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 이제 이분이 설명을 요청하신 부분, 4절부터입니다. 이는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선물을 맛보며 성령님께 참여한 자가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오는 세상의 권능을 맛본 자들이, 만일 떨어져 나가면 다시 그들을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니 그들은 자기들을 위해 하나님의 아들을 새로이 십자가에 못 박고 공개적으로 그분을 모욕하느니라. 이렇게 읽으면 사람이 성령을 받고도 다시 믿음에서 떠나 멸망할 수 있다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런 일이 불가능합니다. 그렇게 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될 수 있다면 그리스도께서 거짓말하신 것입니다. 한 번 빛을 받은 자들이... 불가능합니다. 이제 여기를 보십시오. 누구에게 말하고 있습니까? 경계에 머물러 있는 그 유대인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충만해진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맛보았다면”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알아보고 놓치지 않도록 비유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그는 이 유대인들에게 쓰고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경계에 머무는 신자들이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이런 행위들을 떠나 완전함에 관해 이야기합시다. 지금 침례들과 죽은 자들의 부활과 안수와 그 모든 것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제 나아가 완전함에 관해 이야기합시다. 여러분이 성령 안으로 들어오는 때에 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오랫동안 집회 주변을 맴돌았습니다...” 여러분도 그런 사람들을 보셨습니다. 주변에 머물면서 들어오지도 나가지도 않습니다. 성령을 좋게 여깁니다. 주위로 오기는 합니다. 그러다가 성령께서 어떤 일을 하시면, 세상에, 벌떡 일어나 환호하며 이리저리 뛰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직접 성령을 받으려고는 하지 않습니다. 아니요, 하지 않습니다! “아, 예, 그것은 좋지요. 아, 하지만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합니다. 경계에 머무는 신자들입니다. 맛볼 수 있을 만큼 가까이 왔지만 받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주변을 맴돌다가 결국 완전히 떠내려갑니다. 타버내클에서도 그렇게 한 사람들의 이름을 많이 댈 수 있습니다. 다시 완전히 떨어져 나가면, 그들을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하는 데... 그들에게는 회개가 없습니다. 그들은 성령을 슬프게 하여 떠나시게 한 것입니다. 그토록 가까이 왔는데도...
여기서 저와 함께 성경을 펴신다면, 지금은 시간이 없다는 것을 압니다만, 신명기 1장을 펴서 읽으시면 같은 내용을 보실 것입니다. 적어 두십시오. 신명기 1장입니다. 19절에서 시작해서 26절까지 읽으십시오. 신명기... 알게 되실 것입니다... 자, 보십시오. 온 이스라엘이... 그 사람들이 한 일은 가데스바네아에 온 것입니다. 아, 무엇인가 보입니다! 이 타버내클, 이 오순절 세계는 지금 가데스바네아에 있습니다. 네빌 형제님, 정확히 그렇습니다. 우리는 가데스바네아, 세상의 심판석에 있습니다. 그것이 심판석이었습니다. 정탐꾼들이 나갔습니다. 여기서 여호수아가 말했습니다. “이제 내가 정탐꾼들을 보냈습니다...” 아니, 모세입니다. “내가 정탐꾼 열두 명을, 너희 지파마다 한 사람씩 보냈느니라. 그 땅을 정탐하고 돌아와 보고하도록 보냈느니라.” 그렇지요? 그들이 돌아왔을 때 열두 명 가운데 아홉 명이 말했습니다. “아, 좋은 땅입니다. 하지만, 아, 세상에, 우리는 차지할 수 없습니다. 아, 이런! 아모리 사람들이 거기 있는데, 그들 옆에 서면 우리는 메뚜기 같습니다. 그들은 무장한 사람들이고 성벽은 큽니다. 아, 너무... 우리를 여기 데려오는 것보다 차라리 저 아래 이집트에서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작은 갈렙과 여호수아가 벌떡 일어나 그들을 조용히 시키고 “우리는 충분히 차지할 수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이 바로 그 사람들입니다. 보십시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갈렙과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그 땅을 약속하셨음을 알았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큰지, 장애물이 얼마나 많은지, 얼마나 높은지, 얼마나 엄청난지는 상관없습니다. 그것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우리는 차지할 수 있습니다.” 그 이백오십만 명 중에서 그 땅으로 건너간 사람이 그 두 사람뿐이었다는 것을 아십니까? 그들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진리라는 믿음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아멘! 타버내클은 지금 가데스바네아에 서 있습니다. 보십시오. 그 사람들은 그 땅의 포도를 맛볼 만큼 가까이 왔습니다. 포도를 먹었습니다. 갈렙과 다른 사람들이 건너가 포도를 가지고 돌아왔을 때, 그 사람들은 몇 알을 따서 먹었습니다. “아, 맛은 좋지만 우리는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선한 일을 맛보고, 성령을 맛보며, 그 선하심을 보고 맛본 자들, 하나님의 말씀을 맛본 자들...” 보이십니까? 그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단 한 사람도 건너가는 것을 허락받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있던 땅, 이쪽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건너가지 못했습니다. 맛볼 만큼 가까이 왔지만, 그것을 받아들일 은혜와 믿음이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이 편지를 쓰신 귀한 분이여, 이제 들어 보십시오. 바로 다음 절을 읽어 봅시다. 잠깐 보십시오. 바울을 보십시오. 7절을 읽겠습니다. 자기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땅을 가는 자들에게 합당한 채소를 내는 땅은 하나님께 복을 받지만, 가시와 찔레를 내는 것은 버려지고 저주함에 가까이 있어 마지막에는 불살라지리라. 그가 무엇을 말하는지 아시겠습니까? 이제 보십시오. 여기 이 질문이 있었습니다. 이제 말씀드리고 마치겠습니다. 이 문제가 여러 해 동안 저를 죽일 듯이 괴롭혔습니다.
한 번은 인디애나주 미셔와카에서 사람들이 방언으로 말하는 집회에 갔습니다. 지금 저는 우리 교인들 앞에 서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 사람들 이야기를... 제가 들려드린 제 삶 이야기와, “여기 있네. 여기 있어”라고 했던 그 흑인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셨습니다. 그 이야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그 나머지는 이렇습니다. 저는 두 남자를 보았습니다. 한 사람이 메시지를 전하면 다른 사람이 통역했습니다. 그러면 그 다른 사람이 메시지를 전하고, 처음 사람이 통역했습니다. 형제여, 그들은 정확했습니다. 저는 ‘세상에! 이런 것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천사들 가운데 있구나”라고 했습니다. 그런 것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사람이 말하면 다른 사람이...
저는 보잘것없는 젊은 설교자로서 뒤에 앉아 있었습니다. [테이프에 공백이 있음.] ...언젠가 두 사람 모두를... 그리고 그들과 악수를. 평생 그런 사람들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한 사람이 메시지를 말하면 다른 사람이 통역했습니다. 아, 정말! 놀라웠습니다! 한 사람이 말하고 다른 사람이 통역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그들이 두 손을 들면 얼굴이 분필처럼 하얗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 세상에, 나는 지금까지 어디에 있었던 거지? 바로 이것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아, 오순절 사람들이 옳구나”라고 했습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제가 전에 본 것이라고는 이 근처에서 여자 두어 명이 어딘가에 작은 선교회를 차려 놓은 정도였습니다... 그들은 말다툼을 하며 서로 “독수리 둥지”라고 부르고... 아시지요. 그런 식으로 서로 다투었습니다. 지금 여자들을 무시하거나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상태가 아주 침체되어 있었습니다. 여러분 중에 혹시... 그레이엄 형제님, 기억하시지요. 그때 형제님은 어린 소년이었습니다. 그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을 듣고 저는 ‘아, 내가 천사들을 만났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아마 둘째 날이었을 것입니다. 건물 모퉁이를 돌다가 그 남자들 중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저는 “안녕하십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는 “안녕하십니까?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라고 했습니다. 저는 “브래넘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어디서 오셨습니까? 이곳 분이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아닙니다. 제퍼슨빌에서 왔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아, 좋군요. 오순절 교인이십니까?”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닙니다. 저는 성령을 받는 오순절 방식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배우려고 여기 왔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아, 아주 좋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와 이야기하면서, 우물가의 여인에게 하셨던 것처럼 그의 영을 감지해 보니, 그는 참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형제여, 정말 올바른 소리가 났습니다.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제 집회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신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그 사람은 온전히 올바른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바로 이것이구나! 아, 얼마나 놀라운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날 저녁 무렵, 오후 어느 때에 다른 사람을 만났습니다. 저는 “안녕하십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는 “안녕하십니까?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라고 했습니다. 제가 이름을 말하자 그는 “오순절 교인이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아닙니다. 정확히 오순절 교인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저 배우러 여기 왔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성령을 받으셨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저는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이 받은 것을 기준으로 하면 저는 못 받은 것 같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방언으로 말해 보셨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닙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그러면 받지 못하셨군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런 것 같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설교한 지 겨우 이 년쯤, 그보다도 덜 되었습니다. 그것에 관해 아는 것이 많지 않습니다. 제가 모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해할 수가...”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를 붙들어 두고 그의 영을 감지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했을 때, 제가 위선자를 만나 본 적이 있다면 바로 그 사람도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아내는 검은 머리였는데, 그는 금발 여자와 함께 살며 그 여자와의 사이에 아이 둘을 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방언과 통역은 더없이 완벽하게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주님, 제가 지금 어디에 들어온 것입니까?”라고 했습니다. 천사들 가운데 있다고 생각하다가, 이제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저는 “저는 근본적인 성경 신앙을 믿습니다. 성경이어야 합니다. 올바라야 합니다. 주님, 어딘가 잘못된 것이 있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날 저녁 집회에 갔는데, 그 영이 임했습니다. 형제여,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성령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제 영과 함께 그것이 성령이라고 증언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젊은 설교자였고 영 분별에 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하지만 거기 앉아 있었습니다. 저를 구원하신 바로 그 하나님이심을 알았습니다. 그때와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지붕을 뚫고 올라갈 것 같았습니다. 그 건물 안에서 느껴지는 것이 그토록 놀라웠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곳에는 천오백 명쯤 있었습니다. 저는 ‘아, 세상에!’라고 생각했습니다. 두세 무리가 함께 모였습니다. ‘정말,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이 건물 안에 저 위대한 영이 그렇게 임하고 있는데, 저기서 벌어지는 일을 보라. 저 사람들이 방언으로 말하고 통역하며 메시지를 완벽하게 전하는데, 한 사람은 위선자이고 다른 한 사람은 참된 하나님의 사람이다.’ 그래서 저는 ‘이제는 완전히 혼란스럽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직후, 제 좋은 친구 데이비스 형제님이, 아시지요, 저를 인형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여자들의 장난감이라는 말이지요. 저는 미혼이었습니다. 그는 저를 두고 그렇게 떠들며, 계속 이런저런 말로 저를 놀렸습니다. 당시 우리는 작은... 여러분의 어머니와 우리 모두는 이곳저곳에서 집회를 열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타버내클이 아직 운영되고 있지 않았고, 여러 곳에서 작은 집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타버내클을 세운 지 여러 해가 지난 어느 날, 저는 그린스밀의 제 동굴로 기도하러 올라갔습니다. 데이비스 형제님이 자기 신문에 저에 관해 끔찍한 말을 썼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를 사랑했습니다. 아무 일도 생기기를 원하지 않았기에 그를 위해 기도하러 올라갔습니다. 거기 올라가 동굴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안에 이틀쯤 머물렀습니다. 저는 “주님, 그를 용서해 주십시오. 진심으로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러고 보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성경 말씀 하나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저는 밖으로 나갔습니다. 산 아래쪽에는 개울에서 돌아 올라오는 작은 길을 가로질러 통나무 하나가 누워 있었습니다. 그 통나무는 지금도 거기 있습니다. 얼마 전에도 그 위에 앉았습니다. 저는 통나무에 걸터앉아 저 멀리 산들을 바라보며 성경을 이렇게 펼쳐 놓았습니다. ‘그러고 보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한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구리 세공업자가 내게 많은 해를 끼치고 이런저런 말을 하였다.” 저는 ‘그것을 좀 읽어 보아야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성경을 펴면서 “자...”라고 했습니다. 얼굴을 닦았는데 바람이 불어 책장이 히브리서 6장으로 넘어갔습니다. 저는 “거기가 아닌데”라고 하며 다시 이렇게 넘겨 놓았습니다. 그런데 또 바람이 불어서 다시 그곳으로 넘어갔습니다. 저는 “이상하군. 바람이 자꾸 저렇게 그곳으로 넘기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럼 읽어 보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한 번 빛을 받고... 성령님께 참여한 자가 되고, 하나님의... 말씀과 오는 세상의 것들을 맛본 자들은... 불가능하니라. 저는 ‘여기서는 아무것도 모르겠는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장의 나머지를 계속 읽었습니다.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럼 이것은 이것으로 끝이군”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보니 다시 그곳으로 돌아갔습니다. 저는 성경을 집어 들고 ‘이게 무엇일까?’라고 생각했습니다. 계속 읽고, 읽고, 또 읽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구나”라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계속... 아래로 읽었습니다. ...한 번 빛을 받은 자들은... 불가능하니라... 계속 내려가다가 여기 이런 대목에 이르렀습니다. 자기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땅을 가는 자들에게 합당한 채소를 내는 땅은 하나님께 복을 받지만, 가시와 찔레를 내는 것은 버려지고... 저주함에 가까이 있어 그 심판은 불살라지는 것이니라. 저는 “이것은 무슨 뜻일까?”라고 했습니다.
그때 저는 그곳에서 다른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그것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앉아 있다가, 주님께서 저 아래 데이비스 형제님과 다른 사람들에 관한 환상을 주시려나 보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앉아서 보니, 제 앞 골짜기 너머로 무엇인가 돌고 있었습니다. 세상이 돌고 있었습니다. 보니 땅이 온통 갈려 있어서, 전체를 쟁기질해 놓은 것 같았습니다. 한 사람이 앞에 씨를 가득 담은 아주 큰 것을 차고 나아가며 온 땅에 씨를 뿌렸습니다. 그분은 둥근 지구의 곡면을 따라가다가 제 시야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분이 보이지 않게 되자마자, 아주 음흉하게 생긴 사람이 검은 옷을 입고 나타나 이렇게 돌아다니며 “휙휙” 하고 나쁜 씨를 뿌렸습니다. “휙휙.” 저는 그것을 지켜보았고, 땅은 계속 돌아갔습니다...
잠시 후 밀이 돋아났습니다. 밀이 돋아나자 그 속에서 찔레와 엉겅퀴와 가시나무와 냄새나는 잡초와 온갖 것이 자라났습니다. 박주가리 같은 풀과 온갖 것이 밀 사이에서 자라났습니다. 모두 함께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몹시 심한 가뭄이 왔습니다. 작은 밀이 이렇게 고개를 숙였고, 작은 찔레와 엉겅퀴와 가시나무도 고개를 숙였습니다. 풀마다 “하, 하, 하, 하” 하고 이렇게 숨을 쉬었습니다. 그 소리가 들릴 정도였습니다. 그들은 비를, 비를 달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다가 아주 큰 구름이 오더니 물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그곳에 비가 떨어지자 밀이 벌떡 일어나 “영광! 할렐루야! 주님을 찬양하라!” 하고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냄새나는 잡초도 벌떡 일어나 “영광! 주님을 찬양하라! 할렐루야!” 하고 외쳤습니다. 가시나무를 비롯해 모두가 들판을 돌아다니며 춤추고 “영광! 할렐루야! 주님을 찬양하라!” 하고 외쳤습니다. 저는 “이해가 안 되는구나”라고 했습니다.
환상이 떠난 뒤, 저는 다시 그 말씀으로 돌아갔습니다. “버림받음에 가까운 찔레는...” 그때 깨달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의로운 자들과 불의한 자들 위에 비가 내리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집회에 앉아 방언으로 말하고 환호하며, 참된 성령이 역사하는 가운데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행동하면서도 하나님의 왕국 안에 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날에 많은 사람이 서서 이르기를, ‘주여, 내가 주의 이름으로 마귀들을 내쫓지 아니하였나이까? 주의 이름으로 예언하지, 곧 설교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주의 이름으로 많은 능력 있는 일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라.” 예수님께서는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라. 나는 너희를 알았던 적조차 없노라”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어떻습니까?
여기서 뜻하는 바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들은 하늘에서 내리는 좋은 비를 맛보았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들이 잘못되어 있었습니다. 애초에 그들의 목적이 올바르지 않았고, 동기가 올바르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을 알 수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수확 때에 그가 “제가 나가서 그것들을 다 뽑아 버릴까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분께서는 “함께 자라게 두라. 그날에 이 가시나무와 엉겅퀴는 함께 불태워지고, 밀은 곳간으로 들어가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어느 것이 가시나무이고, 어느 것이 엉겅퀴이며, 어느 것이 밀인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너희가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형제님, 자매님, 보십시오.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하든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 결국 그 결과를 피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니 성령 침례를 구하는 여러분은... 누가 이 질문을 썼든 저는 기쁩니다.
그때 경계에 머물던 신자들도 그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들도 다른 이들과 똑같이 할례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으로, 바로 그 가장자리까지 갔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 가장자리까지 걸어갑니다. 성령 침례 바로 앞까지 가서 거절합니다. 자기 것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받는 성경적인 침례 바로 앞까지 갔다가, 보지 않으려고 등을 돌리고 거절합니다. 성경 전체 어디에도 누군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받았다는 구절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단 한 구절도 없습니다. 가톨릭교회가 그것을 시작했고, 루터를 거쳐 나와 웨슬리에게 내려갔으며, 여기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방식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그것이 사도적 침례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교단에 그대로 머물 수는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이런 것들이 보이십니까? 성령 침례, 성령의 은사들, 하나님께서 나타내시는 일들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오래 참음입니다. 여러분은 “하지만 브래넘 형제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저는 오래 참습니다”라고 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보이기는 합니다. 얼마 전 오하이오에 갔는데, 누군가 제게 물었습니다... 이곳으로 편지를 보내 제가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는지 물었습니다. 저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그들이 알아냈고, 협력하던 사역자 열여섯 명이 떠났습니다. 그것이 오래 참음이군요, 그렇지요? 오래 참음과 선함과 온유와 부드러움과 인내와 성령입니다.
아, 형제님, 자매님, 우리는 가데스바네아에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맛보고 있습니다. 어젯밤 성령께서 우리 위에 임하셨습니다. 급하게 부는 바람처럼 들어오셨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많은 사람 위에 머무셨습니다. 오늘 목사님들은 이곳저곳 가정을 방문하며 성령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안수하고 기도해 주셨습니다. 대용품을 받지 마십시오. 어떤 소리로 만족하지 마십시오. 어떤 느낌으로 만족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빚어 새 창조물, 새로운 사람으로 만드실 때까지 거기서 기다리십시오. 지금은 맛보는 중입니다. 그저 맛보는 중입니다. 그러나 비둘기가 여러분을 곧장 상으로 인도하게 하십시오. 어린양과 비둘기가 함께 앉아 영원토록 하나님의 말씀을 풍성히 먹게 하십시오. 하늘과 땅이 없어질 때에도 그것은 서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진리입니다.
제가 과격하다고 생각하지 말아 주십시오. 그랬다면 그럴 뜻은 없었습니다. 이 질문들에 답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제가 아는 한 최선을 다해 답했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6장을 보시면, 바울은 “우리는 여기까지만 당신과 함께 가겠습니다”라고 하는 히브리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가까이 옵니다. “이제 여러분은...”이라고 했습니다. 가까이 와서 맛본 사람들...
제가 문득 건물 뒤쪽을 보았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증거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이분을 너무 눈에 띄게 하는 것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얼마 전 집회를 마치고 돌아와 여기서 여러분께 소식을 전했습니다. 제 좋은 친구이며, 개인적으로 가까운 벗이고, 사냥 동료이며, 제게 잘해 준 사람, 우리 교회에 다녔고 제 형제였던 사람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그를 버스티라고 불렀습니다. 이름은 에버렛 로저스이고, 밀타운에 살았습니다. 제가 여기 와서 그 소식을 전한 것을 몇 분이나 기억하십니까? 그는 이곳 병원에 누워 있었습니다. 의사들이 수술하려고 배를 열었지만 암이 너무 가득해서 그대로 다시 꿰맸습니다. “이제 급격히 쇠약해질 것입니다. 몇 주 안에 세상을 떠날 것이고, 그것으로 끝입니다. 더는 가망이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여기 강단에 서서 그를 위해 기도한 것을 기억하십니까? 마음을 갉아먹는 듯한 무언가를 느끼며 병원으로 내려가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방에 들어가서 제가 ...할 수 있도록 사람들을 모두 내보내자마자... 에버렛 형제님이 거기 누워 있었습니다. 여러분, 이것을 기억하십시오. 제가 들어가 “버스티 형제님”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를 버스티라고 불렀습니다.
오래전 그곳에서 나뭇가지를 얹은 가설 천막 집회를 열었을 때, 저 언덕 너머의 감리교인들이 모두, 거티도 그중 한 분입니다, 몰래 와서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보려고 포도 덩굴 사이로 엿보곤 했습니다. 감리교회에서 출교당할까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중 제가 가서 거기서 환상을 보았습니다. 고기가 통 안에 잔뜩 쌓여 있었습니다. 또 제가 물고기를 많이 잡아 줄에 꿰고, 그 줄들에 물고기를 걸어 놓은 다음 줄들을 묶었습니다. 그러다가 보니... 이것은 모두 환상 속의 일이었습니다. 그날 밤 저는 가설 천막 아래 서 있던 사람들을 남겨 두고 라이트 형제님 댁의 언덕 위로 올라갔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도 그들은 저를 찾지 못했습니다. 저는 “아무도 ...하지 마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제가 서서 설교하는 동안 그 빛이 왔습니다. 그 불기둥이 바로 여기 제 앞에 머물더니 “여기를 떠나 숲으로 가라. 내가 네게 말하리라”라고 했습니다. 바로 그날... 그다음 날 그들이 언덕 위에서 저를 찾았습니다. 저는 올라가서 차를 잡초 속에 숨겨 두고, 산 위에서 밤새 그리고 다음 날 온종일 기도했습니다. 몇 사람이 올라와... 차를 발견하고 그곳으로 올라왔습니다. 바로 그날 여기 계신 그레이엄 스넬링 형제님이 성령과 사역자로서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제가 누워 있던 그 산비탈에서 그분께서는 해야 할 여러 가지 일을 말씀해 주셨고, 우리는 서로 교제했습니다. 그분께서 줄에 꿰어 놓은 물고기들을 보는 환상을 주시며 “이것이 네 밀타운 교회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중 네다섯 마리가 펄떡이며 떨어졌습니다. 저는 “저들은 누구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분께서는 “그중 하나는 가이 스펜서와 그의 아내이니라. 또 하나는 그곳의 다른 스펜서와 그 집 사람들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누가 떨어져 나갈지 한 사람 한 사람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아무도 음식을 먹지 마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제 아내와 저는 아직... 결혼하기 전이었습니다. 아내는 스펜서 자매님 댁에 가서 하룻밤을 지냈습니다. 훌륭한 여자분입니다. 훌륭한 사람인 가이 스펜서는 세상에서 더없이 좋은 사람입니다. 그가 그곳으로 내려갔고, 오펄이 말했습니다. “자, 봐요...” 미다에게 말하기를 “미다, 나는 빌 형제님을 믿어요. 하지만 오펄은 배가 고프면 햄과 달걀을 먹어야 해요”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가서 햄과 달걀을 볶아 놓고 앉아 먹으려다가 식사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식탁에 몸을 숙이고 울기 시작하여 음식에 손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찾으러 왔습니다.
그날 저 위 언덕에서 그분께서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제게 정확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사람들이 떠나고, 그다음에는 이 사람들이 떠날 것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분께서는 통에 담아 둔 고기를 많이 가지고 계셨습니다. “이것을 나중에 밀타운 사람들을 위해 쓸 수 있도록 간직하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다가 얼마 전 저녁에 크리치 형제님의 말을 들었을 때... 어젯밤에는 여기 앉아 계셨습니다. 크리치 형제님, 오늘 저녁에도 오셨습니까? 크리치 형제님이 제게 와서, 제게 전화했고, 크리치 자매님은 울고 있었습니다. 그 자매님의 아버지가 누워 있었기 때문입니다... “빌 형제님, 아버지에게는 말씀하지 마세요. 돌아가시게 되었어요. 암이 온몸을 먹어 버렸대요. 의사들이 열어 보니 암으로 가득했대요”라고 했습니다. 윌 홀, 여러분 모두 기억하시지요, 그도 같은 의사가 열어 보았을 때 암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날 아침 저는 다람쥐 사냥을 가려다가, 방 안에 사과들이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이야기를 기억하십니까? 그런데 그 사람은 오늘도 살아 있습니다. 여러 해 전의 일입니다. 그와 버스티 형제님은 친구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병원으로 갔습니다. 새 병원인데, 뉴올버니에 있는 그 병원을 무엇이라고 부르는지 잊어버렸습니다. 새 병원입니다. 버스티를 보러 그곳에 갔습니다. 방에 들어가 “버스티 형제님”이라고 하자, 그는 “빌 형제님”이라고 했습니다. 크고 힘찬 손으로 제 손을 꽉 잡았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입니다. 그분 앞이라고 하는 말이 아니라, 낡은 푸른 셔츠 아래 뛰는 심장 가운데 그만큼 좋은 마음도 없을 것입니다. 그가 제 손을 잡았습니다. 저는 그의 집에 가서 먹고 자곤 했습니다. 친형제나 다름없었습니다. 그 아이들과 모두, 우리는 한 핏줄의 형제들 같았습니다. 좋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는 주님과 함께 깊은 곳으로 나아오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에게 침례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그 감리교 설교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받은 사람은 누구든 내 천막에서 나가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조지 라이트와 다른 사람들이 나왔습니다. 그날 오후 저는 토튼스포드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려고 내려갔습니다. 그의 온 회중이 물속으로 들어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저 계속 나아갔습니다. 괜찮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하시면 누가 여러분을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그 사람이 어디로 갔는지,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저는 병원에 들어갔습니다. 거기 버스티가 누워 있었는데, 암이 너무 가득해서 의사들은 ...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다시 봉합했을 뿐입니다. 버스티가 제게 “빌 형제님, 여기에는 목적이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다. 저는 “예, 버스티”라고 했습니다. 제가 이야기해 온 그 급하게 부는 바람 같은 영이 들어오는 것이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제가 여기 들어갔을 때, 저 구석에 무지개가 서 있었습니다. 무지개는 언약,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날 산에서 저와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저는 버스티 형제님에게 손을 얹고 기도했습니다. 의사는 “그는 쇠약해질 것입니다. 점점 나빠질 뿐입니다. 가망이 없습니다. 며칠 안에 세상을 떠날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버스티 로저스는... 그 일이 있은 지 여러 주, 여러 주, 또 여러 주가 지났고, 오늘 저녁 버스티 로저스는 바로 여기 뒤편 교회에 앉아 있습니다. 제가 평생 보아 온 그 어느 때 못지않게 건강하고 튼튼해 보입니다. 버스티 형제님, 일어서십시오. 저기 계십니다. 모두 하나님께 찬양을 드립시다.
그들은 다락방에 모였네, 모두 그분의 이름으로 기도했네. 성령으로 침례를 받고, 섬김을 위한 권능이 임했네. 그날 그들에게 행하신 일을, 그대에게도 똑같이 행하시리. “나도 그들 중 한 사람”이라 말할 수 있어 참 기쁘네. 나도 그들 중 한 사람, 그들 중 한 사람, “나도 그들 중 한 사람”이라 말할 수 있어 참 기쁘네. 할렐루야! 그들 중 한 사람, 나도 그들 중 한 사람, “나도 그들 중 한 사람”이라 말할 수 있어 참 기쁘네. 이 사람들은 스스로 내세우거나, 세상의 명성을 자랑하지 않을지라도, 모두 자기의 오순절을 받아, 예수님의 이름으로 침례받았네. 이제 그분의 권능이 여전히 같다고, 가까이 멀리 두루 전하네. “나도 그들 중 한 사람”이라 말할 수 있어 참 기쁘네. 나도 그들 중 한 사람, 나도 그들 중 한 사람, “나도 그들 중 한 사람”이라 말할 수 있어 참 기쁘네. 할렐루야! 그들 중 한 사람, 나도 그들 중 한 사람, “나도 그들 중 한 사람”이라 말할 수 있어 참 기쁘네. 이제 오라, 나의 형제여, 이 복을 구하라. 그대 마음의 죄를 씻어 주고, 기쁨의 종을 울리게 하며, 그대 혼이 계속 불타게 하리. 아, 지금 내 마음속에서 타오르네. 아, 그분의 이름에 영광을. “나도 그들 중 한 사람”이라 말할 수 있어 참 기쁘네. 함께 부릅시다! 아, 그들 중 한 사람, 그들 중 한 사람, “나도 그들 중 한 사람”이라 말할 수 있어 참 기쁘네. (할렐루야!) 그들 중 한 사람, 그들 중 한 사람, “나도 그들 중 한 사람”이라 말할 수 있어 참 기쁘네. 그들 중 한 사람인 분은 몇 분이나 됩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아, 이런! 아, 나도 그들 중 한 사람이니 얼마나 기쁜가. 그들 중 한 사람, 그들 중 한 사람, “나도 그들 중 한 사람”이라 말할 수 있어 참 기쁘네. 할렐루야! 그들 중 한 사람, 그들 중 한 사람, “나도 그들 중 한 사람”이라 말할 수 있어 참 기쁘네. 그들은 그 다락방에 모였네, 모두 그분의 이름으로 기도했네. 그들은 성령으로 침례를 받았고, 그때 섬김을 위한 권능이 임했네. 그날 그들에게 행하신 일을, 그대에게도 똑같이 행하시리. “나도 그들 중 한 사람”이라 말할 수 있어 참 기쁘네. 아, 그들 중 한 사람, 그들 중 한 사람, “나도 그들 중 한 사람”이라 말할 수 있어 참 기쁘네. 할렐루야! 그들 중 한 사람, 그들 중 한 사람, “나도 그들 중 한 사람”이라 말할 수 있어 참 기쁘네. 이제 후렴을 다시 부르는 동안,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몸을 돌려 곁에 계신 분과 악수하면서 “당신도 그들 중 한 사람입니까?”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좋습니다. 그들 중 한 사람. [이름 불명확] 형제님, 형제님도 그러신 줄 압니다. [이름 불명확] 형제님, 형제님도 그러신 줄 압니다.) [브래넘 형제님이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악수한다.] ...그들 중 한 사람. 아, 그들 중 한 사람, 그들 중 한 사람, “나도 그들 중 한 사람”이라 말할 수 있어 참 기쁘네.
아, 여러분도 그들 중 한 사람이어서 기쁘지 않으십니까? 그들 중 한 사람이 되고 싶은 분은 몇 분이나 됩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좋습니다. 이제 여러분을 위해 이 찬송을 부르겠습니다. 그러니 오라, 나의 형제여, 이 복을 구하라. 그대 마음의 죄를 씻어 주고, 기쁨의 종을 울리게 하며, 그대 혼이 계속 불타게 하리. 아, 지금 내 마음 깊은 곳에서 타오르네. 모든 영광을 그분의 이름에. “나도 그들 중 한 사람”이라 말할 수 있어 참 기쁘네. 그들 중 한 사람, 그들 중 한 사람, “나도 그들 중 한 사람”이라 말할 수 있어 참 기쁘네. 할렐루야! 그들 중 한 사람, 나도 그들 중 한 사람, “나도 그들 중 한 사람”이라 말할 수 있어 참 기쁘네. 그 어린 소녀가 베드로에게 “당신도 그들 중 한 사람이 아니오?”라고 했던 말을 기억하십시오. 저는 참 기쁩니다. 여러분도 그렇지요? 아시다시피 베드로는 오순절 날 “이것이 바로 그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언제나 “이것이 그것이 아니라 해도, 그것이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이것을 받았으니 기쁩니다”라고 말해 왔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이것을 기뻐합니다. 나도 그들 중 한 사람, 나도 그들 중 한 사람이니, “나도 그들 중 한 사람”이라 말할 수 있어 참 기쁘네. 아, 그들 중 한 사람, 그들 중 한 사람, “나도 그들 중 한 사람”이라 말할 수 있어 참 기쁘네.
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늘의 처소들에 함께 앉아 성령과 교제하고, 말씀으로 교제하며, 앞으로 올 좋은 일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놀랍지 않습니까? 참으로 좋습니다. 이것을 알게 되어 저는 참 기쁩니다. 여러분도 그렇지요? 그리스도인이어서 기쁘지 않습니까? 여러분의 죄가 피 아래 있어서 기쁘지 않습니까? 머지않아 그분께서 오실 것이고, 우리는 그분과 함께 갈 것입니다. 그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에게서 늙음이 모두 벗겨지고, 모든 질병과 모든 고통, 죽을 수밖에 없는 이 삶이 모두 바뀔 것입니다. 아, 이런! 여기 서 계셨던 사랑하는 연로한 형제님들이 생각납니다. 기억납니다... 랍비 로슨을 몇 분이나 기억하십니까? 아, 거의 모두 기억하시네요. 그분이 낡은 지팡이를 바로 여기에 걸어 놓던 모습이 보이는 듯합니다. 저는 저 뒤에 앉아 있곤 했습니다. 그분은 이 짧은 찬송을 부르셨습니다... (테디 형제님, 잠깐만요.) 곡조가 생각나는지 보겠습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기쁜 내일이 나를 기다리네, 진주문이 활짝 열리는 그곳에서. 이 슬픔의 장막을 건너가면, 나는 저편에서 쉬리라. 언젠가 육신의 친족도 닿을 수 없는 곳에서, 언젠가, 어디서 언제인지는 하나님만 아시네. 죽을 인생의 바퀴들이 모두 멈추면, 그때 나는 시온산에 가서 살리라.
우리 안에서 돌아가는 이 작은 바퀴들, 보는 것, 맛보는 것, 느끼는 것, 냄새 맡는 것, 듣는 것, 죽을 수밖에 없는 이 삶에서 돌아가는 이 작은 감각들과 바퀴들이 언젠가는 멈출 것입니다. 그때 저 자신도 여러분도 시온산에 가서 살 것입니다. 아, 저는 이 찬송이 좋습니다. 여러분도 그렇지요? 우리에게 그 복된 확신이 있음을 압니다. 좋습니다. 우리가 늘 침례 때 부르는 찬송을 몇 분이나 아십니까? 아니, 바꾸겠습니다. 마치는 찬송을 부릅시다. 예수님의 이름을 지니고 가라, 슬픔과 고통 가운데 있는 아이여. 그 이름 기쁨과 위로를 주리니, 어디로 가든지 지니고 가라.
예수님의 이름을 지니고 가십시오. 떠나가실 때 꼭 그렇게 하십시오. 좋습니다. 이제 모두 함께 부릅시다. 잊지 마십시오. 내일 아침 여덟 시에 집회를 위한 기도 카드를 나누어 드립니다. 집회는 아홉 시 반에 시작하고, 저는 열 시에 설교하겠습니다. 병자들을 위한 기도는 열한 시쯤 시작합니다. 내일 오후, 아니, 내일 저녁에는 타버내클에서 전도 설교를 전하겠습니다. 내일 저녁에는 죄를 회개했지만 아직 침례받지 않은 모든 분을 위해... 침례탕을 열어 놓겠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침례를 베풀 것입니다.
이제 모두 함께 목청껏 찬송합시다. 버스티 형제님, 제가 얼마나 기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지 형제님은 모르실 것입니다. 그분이 의사에게 갔는데, 듣기로는 의사가 그를 보고 도무지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몰랐다고 합니다. 같은 사람이라고 믿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는 일은 비밀이 아닙니다. 그렇지요? 좋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힘차게 부르십시오!) 지니고 가라, 슬픔과 고통 가운데 있는 아이여. 그 이름 기쁨과 위로를 주리니, 어디로 가든지 지니고 가라. 귀한 이름 (귀한 이름!), 아, 얼마나 달콤한가! 땅의 소망이요 천국의 기쁨이라. 귀한 이름 (아, 귀한 이름!), 아, 얼마나 달콤한가! 땅의 소망이요 천국의 기쁨이라. 좋습니다. 이제 예배를 목사님께 맡기겠습니다. 몇 말씀을 하시거나, 누군가에게 마치는 기도를 부탁하시거나, 마음에 두신 대로 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