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오늘 아침 가능하다면 지극히 거룩하신 그분께서 이 땅에 내려오셔서 저 같은 죄인을 구속해 주신 것에 대해 제 마음의 심정을 표현하고 싶습니다. 여기 있는 사역자들도 똑같이 느끼리라고 확신합니다. 아담의 타락한 족속과 맺어 주신 이 언약의 사역자로 저희가 세움을 받은 것은 주님의 은혜로 된 일입니다. 아버지, 저희가 오늘 아침 이곳에 모인 목적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알고, 아니, 그 뜻을 알기 위해 공부하고,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실재하시는 분임을 알게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는 것입니다. 심판 날에 저희가 반드시 이 세대와 마주 서게 될 줄을 알기 때문입니다. 사역자인 저희는 재판하는 자가 될 것이며, 저희가 말씀을 전한 사람들이 저희가 가져다준 말씀을 어떻게 대했느냐에 따라 그들의 영원한 행선지가 결정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그날 저희는 저희가 말씀을 전한 세대의 편에 서거나 그들을 거슬러 재판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 간구하오니 예수님의 이름을 통해 저희가 그릇된 말을 단 한마디도 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신실한 마음과 열린 생각으로 주님께 속한 것들을 받아들이게 하시고, 오늘 아침 주님을 만났기에 더욱 잘 준비되어 오늘 이후 저마다의 사역 현장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주님, 허락해 주십시오. 오셔서 저희를 위해 말씀하시는 분이 되어 주시고, 저희의 귀와 혀와 생각이 되어 주시겠습니까? 제 마음의 묵상과 제 생각, 제 안에 있는 모든 것과 여기 있는 제 형제자매들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주님의 눈앞에서 받으실 만한 것이 되게 해 주십시오. 여기 임재하신 주님의 영으로 저희가 가득 채워지고 충만해져서, 이 방이... 이 방, 저희가 앉아 있는 이 건물이라기보다 저희가 살고 있는 이 몸이라는 건물이 온전히 하나님의 영광의 구름이 되게 해 주십시오. 오늘 아침 저희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이곳을 떠나, 저희가 살고 있는 죽어 가는 이 세대에게 메시지를 전하려는 결의가 생애 어느 때보다도 굳세어지게 해 주십시오. 주님, 저희의 간구를 들으시고 주님의 말씀을 통해 저희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주님의 아들이시며 저희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오늘 아침 시편에 있는 성경 말씀을 조금 읽고자 합니다. 시편 105편입니다. 그중 일부만 읽겠습니다. 이 성경 구절들을 적어 두시는 분들... 보니 사역자들이 많이 계시고, 또 다른 분들도 계십니다. 말씀을 읽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보통 몇 시에 마칩니까? 열두 시쯤입니까? 뭐라고요? 감사합니다.) 시편 105편입니다. 오 주께 감사하며 그분의 이름을 부르고 그분께서 행하신 일들을 백성들 가운데 알릴지어다. 그분께 노래하며 그분께 시로 노래하고 너희는 그분의 모든 놀라운 일들을 말할지어다. 너희는 그분의 거룩하신 이름을 자랑하라. 주를 구하는 자들의 마음은 기뻐할지어다. 주와 그분의 능력을 구하라. 항상 그분의 얼굴을 구할지어다. 그분께서 행하신 그분의 놀라운 일들과 그분의 이적들과 그분 입의 판단의 규범들을 기억할지어다. 오 그분의 종 아브라함의 씨야, 그분의 택하신 자들인 야곱의 자손아, 너희는 그리할지어다. 그분은 주 우리 하나님이시니 그분의 판단의 규범들이 온 땅에 있도다. 그분께서 자신의 언약 곧 친히 천대에 이르기까지 명령하신 그 말씀을 영원히 기억하셨으니 이 언약은 그분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것이며 이삭에게 하신 그분의 맹세라. 그분께서 바로 그것을 야곱에게 법으로 확정하시고 이스라엘에게 영존하는 언약으로 확정하셨나니 이르시기를, 내가 가나안 땅 곧 너희의 상속재산 몫을 네게 주리라, 하셨도다. 그때에 그들은 수적으로 단지 몇 사람에 불과하고 참으로 아주 소수였으며 그 땅에서 나그네였고 그때에 그들이 한 민족에게서 다른 민족에게로, 한 왕국에서 다른 백성에게로 갔도다. 그분께서는 어느 누구도 그들에게 부당하게 행하는 것을 용납하지 아니하시고 참으로 그들로 인해 왕들을 꾸짖으시며 이르시기를, 나의 기름 부음 받은 자들에게 손을 대지 말고 나의 대언자들에게 해를 끼치지 말라, 하셨도다. 주님께서 이 말씀을 읽은 일에 복을 내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전해 가면서 참고하려고 성경 구절 몇 군데를 여기 어딘가에 적어 두었습니다.
오늘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다음 대통령은 누가 될까요? 아시다시피 선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다음 임기에는 누가 대통령이 될까요? 제가 알고 있다면 어떨까요? 아시는 분은 오직 한 분, 하나님뿐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될지 제게 계시해 주셔서, 제가 여기 피닉스에 서서 이러이러한 사람이 다음 미국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면 어떨까요? 그 말이 신문 같은 데 실리고, 제가 정확히 맞힌다면 말입니다. 완벽하게 맞아서 제가 말한 모든 것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제가 그런 일을 한들 도대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신문들이 그것을 알리고 소식이 퍼져 나가겠지요. 어쩌면 어떤 사람이 그런 예언을 했는데 그것이 사실이 된다면, 모든 신문과 잡지들이 그 소식을 전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도 아시듯이 하나님께서는 그런 식으로 일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권능과 은사들을 어리석은 일에 쓰지 않으십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될 사람이 대통령이 될 것입니다. 지금 누가 대통령이 될지 알아도 우리에게 한 푼의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누가 대통령이 될지 안다고 해서 우리에게 조금도 유익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런 식의 일을 하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제가 그런 예언을 하고 그것이 이루어져서 신문과 잡지에 실린다면, 그것은 제 영광이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겠지요. “브래넘 형제님이 얼마나 위대한 선지자인지 보십시오. 그 일이 일어나기 훨씬 전에 누가 대통령이 될지 정확히 말해 주었습니다.” 그러면 제게 영광이 돌아올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나 다른 어떤 사람에게 영광이 돌아가도록 일하시는 데 관심이 없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광을 위해, 유익이 되는 일을 하시는 데 관심이 있으십니다.
바울이 말한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방언으로 말하면서 통역하는 사람이 없다면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우리는 자기 자신만 영광스럽게 할 뿐입니다.” 그것은... 아니, “자기 자신만 세울 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과는 좀 어긋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 자신이 높임받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자신을 세우려 하지 말고, 우리가 하는 모든 일로 하나님을 높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아침 제가 누가 대통령이 될지, 정확히 언제 당선될지, 표를 얼마나 더 얻거나 덜 얻을지, 그 밖에 무엇을 안다 해도, 그것을 말해 주는 것은 조금도 유익이 없다고 믿습니다. 제가 안다 해도 그냥 말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을 것입니다. 알려야 할 이유가 없으므로 그것을 널리 알리려 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어차피 그렇게 될 것이고,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가 우리에게 그리 큰 차이를 만들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신의 은사들을 사용하실 때에는 자신의 영광과 자기 백성의 영광, 자기 교회의 영광을 위해,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고 하나님의 왕국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사용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교회에 이런 것들을 주시는 이유, 교사와 선지자와 복음 전도자와 목사를 두시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들은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있습니다. 선지자는 세상에 나가 어울리면서 발람처럼 은사를 이용하여 해를 끼치거나 돈을 벌거나 해서는 안 됩니다. 선지자라면 교회에 하나님을 드러내 보이고 세상일에 끼어들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자, 우리에게는... 오늘날 우리가 보는 것과 같은 일들을 세상에서 볼 때, 사역자인 우리가 받은 명령을 따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명령은 영들을 분별하고 그 영을 시험하라는 것입니다. 저는 무엇이든 그 영을 시험하고 분별하는 일이 오늘날 교회에 아주 중요한 교훈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그 사람이 속한 교단이나 함께 모이는 단체를 보고 사람을 판단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감리교든 침례교든 장로교든 오순절 교회든, 무엇이든 말입니다. 사람이 속한 교단을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언제나 그 사람이 지닌 영을 보고 판단해야 합니다. 아시겠죠? 그 영입니다. 그 사람이 늦은 비 쪽이든 이른 비 쪽이든, 안쪽 비든 바깥쪽 비든, 비가 전혀 없든, 무엇이든 그런 것으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그의 영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우리는 영들을 분별해야 합니다.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품고 무엇을 이루려 하는지 보십시오. 그 사람이 어떤 은사를 가지고 있다면, 그 은사가 아무리 크다 해도...
오늘 아침 저는 이 점을 교회에 전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여러 교단에 속해 있지만, 함께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제가 여러분께 전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사실 갈라져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모양으로 다듬어진 돌들이며,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는 “은사들”과 관련된 일이 참 많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다른 사람이 지닌 은사를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합니다. 저는 이런 것들이 은사라고 믿습니다. 우리가 보는 이런 일들은 은사이며,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께서 뜻하신 바른 방식으로 사용하지 않으면, 은사가 없을 때보다 은사를 가지고 있을 때 더 큰 해를 끼칠 수 있습니다. 며칠 전 저녁에 저는 강단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단 한 건의 치유도, 그 밖의 어떤 일도 없다 해도, 저는 차라리 교회 안에 형제 사랑이 있는 것을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아시겠죠? 이런 것들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큰 은사를 가지고 왔다고 합시다. 그가 우리 교단에 속했든 다른 교단에 속했든, 그가 어느 교단에서 왔는지, 옷을 어떻게 입는지로 판단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보아야 할 것은 그 은사로 무엇을 하려는지, 어떤 목적을 품고 있는지입니다. 자기 영향력을 이용하여 자기 이름을 크게 떨치려 한다면, 저는 그것이 잘못임을 알 만큼 영을 분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가 아무리 훌륭한 교사이고, 아무리 능력이 크고, 지식이 풍부하고, 그 은사가 어떻게 역사하든, 그리스도의 몸에 유익이 되는 일을 이루려 하지 않는다면 여러분 자신의 영적 분별력이 그것은 잘못이라고 말해 줄 것입니다. 아무리 정확하고 완벽하고 어떠하다 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위해 무언가를 이루는 데 쓰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잘못입니다.
어쩌면 그는 뛰어난 지적 능력이나 영적 능력으로 사람들을 모을 수 있는 큰 은사를 지녔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은사로 자신을 유명하게 만들고 큰 이름을 얻어서, 다른 형제들이 자신을 대단한 인물로 우러러보게 하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잘못입니다. 어쩌면 여기서 어떤 특정한 것을 세우려 하면서, 다른 사람들은 모두 물러나고 자기와 자기 무리만 앞에 나서기를 바라는지도 모릅니다. 그것도 역시 잘못입니다. 아시겠죠?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은사를 가지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한다면, 그가 어디에 속했든 저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그 사람 자체를 분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안에 있는 영, 그 생명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라고 하신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 사람의 무리를 분별하라는 사명을 받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사람 안에 있는 영을, 그가 무엇을 하려 하는지, 그의 삶 속에 있는 영이 그를 어디로 이끌려 하는지를 분별하라는 하나님의 강권과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가 사람들을 이끌되 흩어 놓으려는 것이 아니라 한데 모으려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를 모두 하나의 교단으로 모으려는 것이 아니라 서로 이해하고 교제하며 영 안에서 하나 되게 하려는 것임을 알 수 있다면, 그가 이른 비 쪽이든 늦은 비 쪽이든 무엇이든 그의 영과 목적은 바른 것입니다. 그가 어떤 운동에 속했든, 그 안에 있는 영은 사람들을 자기 자신이나 다른 어떤 것에서 돌이켜 갈보리를 바라보게 하려 합니다. 그가 이루고자 하는 유일한 일은 그들이 갈보리를 바라보게 하는 것입니다. 그는 자기 이름이 알려지든 알려지지 않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자기 운동이... 그것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 자체는 괜찮습니다. 아시겠죠? 그가 감리교인이든 장로교인이든 로마 가톨릭 신자든, 어느 교단에 속하기를 원하든 그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그가 무엇을 하려 하는지, 마음에 품고 이루려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보십시오. 그러면 그 사람의 삶 속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의 동기가 자기 교단을 위한 것인지, 자신을 위한 것인지, 세상의 명성을 위한 것인지, 큰 이름을 얻어 “내가 그것을 예언했는데 정확히 이루어졌습니다”라고 말하려는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바로 그런 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교사로서, 선지자로서, 선견자로서 하나님께 받은 것을 사용하려 한다면...
신약의 선지자는 설교자입니다. 우리 모두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설교하는 사역자는 누구나 선지자, 곧 신약의 선지자입니다. 그가 예언하고 설교하되, 자신을 높여 큰 이름을 얻거나 자기 조직을 세우려는 것이 아니라면 그렇습니다. 물론 그는 어떤 조직에 속해 있어야 합니다. 저는 아무 조직에도 속해 있지 않으면서도 여러분은 속해 있어야 한다고 설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나 자기 교회가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도 속한 곳이 있어야 합니다. 이곳저곳 떠돌아다니기만 하지 말고, 출석하면서 내 교회라고 부를 만한 곳이 있어야 합니다. 십일조를 드리고 그 사역을 지원할 곳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선택하십시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여러분의 무리에 속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와의 교제를 끊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아시겠죠? 그의 영을 분별하고 마음에 같은 목적을 품었는지 보십시오. 그러면 서로 교제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의 위대한 대의를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대의입니다. 저는 그것이 전적으로 옳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구약 선지자들의 동기와 목적을 살펴보면, 그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구약 전체의 주제는 한 가지를 중심으로 세워져 있었습니다. 곧 오실 메시야였습니다. 그들은 단지 돈이나 명성을 얻으려고 나가서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으로 기름부음을 받았고, 오실 메시야를 예언했습니다. 그들은 영으로 기름부음을 너무나 충만하게 받아서 때로 자기들 안에 계신 영처럼 행동했습니다. 마치 자기 자신에 관해 말하는 것처럼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께서 그 사람들을 어떻게 행동하게 하셨는지 보십시오.
예를 들어 위대한 선지자 모세를 봅시다. 그 사람에게는 이기적인 목적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는 이집트의 왕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세상을 자기 발아래 둘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 선지자였기 때문에 파라오의 딸의 아들이라 불리는 것을 거절했습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핍박과 시련을 당하기로 택하고, 천국의 보화를 이집트의 보화보다 더 큰 보화로 여겼습니다. 그는 세상의 명성과 호사와 삶이 제공하는 것들을 버렸으며, 스스로 그것들을 누리기를 거절했습니다. 그는 그것들을 넘어 바라보아야 했습니다. 아시겠죠? 그는 그런 사람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오늘날의 사역자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가 성령 침례를 받았고, 그 말씀을 전하면 자기 명성이 줄어들 것을 안다고 합시다. 어딘가 아주 작은 교회로 가게 되거나, 어쩌면 거리로 나앉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마음속에 무언가가 불타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는 주님의 오심을 보고 있습니다. 자기 교회가 크든 작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오늘 먹을 것이 있든 없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좋은 옷이 있든 없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가 마음에 두는 것은 오직 하나, 곧 자기 안에서 부르짖는 그 생명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무언가를 이루려 합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은 자기 안에 계신 영의 생명을 행동으로 그대로 나타낼 것입니다. 제 말씀을 따라오고 계십니까? 그는 그것을 행동으로 나타낼 것입니다.
모세가 그것을 드러낼 때가 되었을 때를 보십시오... 그의 온 삶은 그리스도의 영을 나타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그 안에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세 안에 일정한 분량으로 계셨습니다. 살펴보면 그는 핍박의 시기에 태어났습니다. 그를 잡으려고 아이들을 죽였습니다. 예수님께 했던 것과 똑같았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이 너무나 불순종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진노하신 때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비켜서라. 내가 이 무리를 모두 멸하고 네게서 다른 세대를 일으키리라.” 모세는 하나님의 심판을 가로막으며 몸을 던지고 말했습니다. “그들을 데려가시기 전에 저를 데려가십시오.” 달리 말하면, “그들에게 가시려면 먼저 저를 넘어가셔야 합니다”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 같은 이 죄인들을 땅 위에서 모두 쓸어버리려 하셨을 때, 그리스도께서 그 앞을 가로막으며 자신을 던지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실 수 없었습니다. 자신의 아들을 넘어가실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 안에 있는 그 영이 마치 십자가처럼 심판 앞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들에게 가실 수 없습니다. 먼저 저를 데려가셔야 합니다.” 모세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이 보이십니까? 그는 이집트의 왕이 될 수도 있었고, 세상의 모든 호사를 누리며 인기를 얻을 수도 있었고, 당시 세상의 위대한 왕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핍박과 고난을 받는 쪽을 택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치욕을 이집트의 보화보다 더 큰 보화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보십시오. 그는 그 앞을 가로막으며 자신을 던졌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모세 안에 계신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보통의 생각을 하는 지성적인 사람이라면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편한 길을 택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아무리 광신자로 보였어도, 그가 이루려 했던 것은... 아시겠죠? 그는 하나님의 참 선지자였습니다.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 무언가를 이루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큰 예언의 은사로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이집트에 서서 그 예언의 은사로 “잠깐 기다리십시오. 제가 이러이러한 일을 예언하겠습니다. 제가 이러이러한 말을 하겠습니다”라고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랬다면 온 세상에 이름을 떨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에는 그런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의 마음에 그런 생각이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큰 은사를 가진 사람이 자기 자신을 영화롭게 하려고 무엇인가 하는 것을 보면, 여러분 자신의 영의 분별력이 그것은 잘못이라고 말해 줍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무언가를 이루려 했습니다. 그것이 아무리 좋지 않고 악하게 보이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려도, 모세 안에 계신 영께서는 그를 곧장 그가 마땅히 해야 할 일로 이끄셨습니다. 그의 안에 계신 영께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요셉은 태어났을 때 아버지에게는 사랑받고 형제들에게는 미움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의 완전한 모형입니다. 그리고 오직... 그는 그들과 같은 아버지를 둔 혈육의 형제였습니다. 그런데 형제들이 그를 까닭 없이 미워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를 선지자, 영적인 사람, 선견자로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이유로 그들은 그를 미워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으로서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요셉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을 보십시오. 그가 한 일을 보십시오. 그는 그리스도의 역할까지 행동으로 나타냈습니다. 형제들에게는 미움받고 아버지에게는 사랑받았습니다. 영께서 그를 다르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영적인 사람이었습니다. 환상을 보았고 꿈을 해석했습니다. 자신의 영광을 위해 그렇게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안에 무엇인가 있었기 때문에, 곧 하나님의 영이 계셨기 때문에 그렇게 했습니다. 자기 뜻으로 나가서 구덩이에 던져지고, 불쌍한 늙은 아버지가 그 오랜 세월 슬퍼하게 하고, 은 거의 서른 닢에 팔리려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구덩이에서 끌어 올려졌고, 당시 세상을 다스리던 왕 파라오의 오른팔이 되었습니다. 그가 있던 감옥에는 잔을 맡은 자와 빵 굽는 자가 있었는데, 감옥에서 그가 예언한 대로 한 사람은 죽고 다른 사람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신 것을 보셨습니까? 아버지는 요셉에게 여러 색깔의 옷을 주었습니다. 무지개, 곧 언약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 예수님께 언약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유대인 형제는 까닭 없이 그분을 미워했습니다. 그분을 미워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분은 영적인 분이셨으며, 나타나신 하나님의 말씀이셨습니다. 그분은 아버지의 뜻을 행하러 오셨고 성경 말씀을 성취하러 오셨습니다. 그들에게 평안을 주러 오셨지만 그들은 그분을 오해하고 까닭 없이 미워했습니다. 그들은 잠시 멈추어 그분이 무엇을 이루려 하시는지 알아보려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그분이 자기들과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판단했습니다. 그들은... “그는 자기를 이러이러한 자로 만든다. 자기를 하나님으로 만든다.” 그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 안에 계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셔서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셨다고 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영광의 하나님이셨습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그는 그 앞에 몸을 던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위선으로 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안에 계셨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요셉도 그런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의 안에 계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통해 일하시며 자신을 나타내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결코 자기 영광을 위해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이든... 제가 오늘 아침 여러분께 말씀드리는 것처럼, 그 제사장들에게 영을 분별하는 능력만 있었더라면 말입니다. 세상이 그분에 대해 아무리 이러쿵저러쿵 말했어도, 그들이 말씀을 살피고 그분의 목적을 보았더라면 알았을 것입니다. 그분은 언제나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려고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말했습니다. “아, 이 사람은 위대한 치유자야. 이런 일들을 행하잖아.”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보여 주시기 전에는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 그 일들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안에 거하시는 아버지 곧 그분께서 그 일들을 하시느니라.” 그분은 결코 영광을 자신에게 돌리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종도 영광을 자기에게 돌리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이라면 하나님의 은사로 자기 자신이나 다른 무엇을 영화롭게 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가 올바르게 이루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입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같은 일이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사람이 무엇을 하려는지 알아보기 위해 영을 분별해야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 합니까? 자기 자신을 영화롭게 하려 합니까?
사람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영은 그 사람이 하나님처럼 행동하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도 당연합니다. “‘너희는 신들이라’ 하고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하나님의 영이 임한 자들을 신들이라 하셨다면, 내가 하나님의 아들인데 어떻게 나를 정죄할 수 있느냐?” 여러분이 모세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을 볼 수 있다면... 그는 하나님이었습니다. 모세는 신이었습니다. 요셉은 신이었습니다. 선지자들은 신들이었습니다. 성경이 그들을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께 자신을 온전히 내어 드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하고 있었으므로 신들이었습니다. 사람이 그처럼 영으로 기름부음을 받으면... 자, 이 말씀을 아주 깊이, 왼쪽 다섯 번째 갈비뼈 아래까지 새겨 두십시오. 사람이 하나님의 영으로 기름부음을 받으면, 그의 습관과 행동과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그 안에서 움직이시는 것입니다. 때때로 사람들은 그를 잘못 판단합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그는 시편 23편에서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마치 그가... 마치 다윗 자신이 그 사람인 것처럼 말입니다. “나를 지나가는 자들이 모두 나를 향해 입술을 내미나이다.” 그는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너무나 충만하게 받았고, 하나님께 너무나 온전히 자신을 내어 드렸으며, 그 기름부음이 그 위에 그렇게 임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하나님의 영으로 부르짖을 때, 누군가 거기 서 있었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저것 봐. 누군가 자기를 향해 입술을 내밀고 있다고 생각하는군. 하나님께서 왜 그를 버리셨다는 거지?” 그것은 다윗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을 통해 부르짖으시는 영이셨습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내 모든 뼈가 나를 쳐다보나이다. 그들이 내 손과 발을 찔렀나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기 있는 위선자가 하는 말을 들어 보시오. 누구의 손이 찔렸다는 거요? 누구의 발이 찔렸다는 거요?” 그것이 지적인 판단입니다. 그러나 영을 분별하는 사람은 그의 안에서 하나님의 영께서 부르짖고 계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영으로 기름부음을 받으면 하나님의 행동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행동은 결코 우리를 갈라놓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행동은 우리를 하나로 모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며,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를 하나로 모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서로 사랑하라.”
그 위대한 선지자들을 보십시오. 그들 안에서 영께서 움직이시는 것을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신들”이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들이 신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에게는 영께서 일정한 분량으로 임하셨지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 그 한 분께 임하셨을 때에는 한량없이 임하셨습니다. 신성의 모든 충만이 몸으로 그분 안에 거했습니다. 그분은 완전한 본보기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영광의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분 안에 계신 하나님께서 다니셨던 것입니다. 그분의 삶을 보십시오. 구약 전체에서, 그분은 구약의 주제이셨습니다. 옛날 구약의 모든 선지자가 부르짖었습니다. 자신을 두고 부르짖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 아래서 부르짖었습니다. 그 영께서 그들이 하나님처럼 행동하게 하셔서 신들이라 불릴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그 영의 충만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났습니다.
다윗이 이스라엘 왕의 자리에서 쫓겨나고 자기 백성에게 배척당했을 때를 보십시오. 그는 예루살렘 북쪽의 올리브산으로 올라가면서 그 도시를 돌아보고, 자신이 배척당한 것을 슬퍼하며 울었습니다. 그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리스도의 영이셨습니다. 오백 년 뒤에 다윗의 자손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 산에 앉아, 배척당한 왕으로서 도시를 바라보며 우셨습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암탉이 자기 병아리들을 모음같이 내가 얼마나 자주 너희를 모으려 하였더냐.” 너희의 여러 교단과 그 모든 것을 말입니다.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내가 얼마나 자주 그렇게 하려 하였더냐!” 다윗 안에 계셨고 그리스도 안에 충만하게 나타나셨던 바로 그 영께서 오늘날 교회 안에 계시며, 사람들에게 부르짖고 계십니다. “내가 얼마나 자주 너희를 모으려 하였더냐!” 분열과 불화로 형제 관계가 깨어지고, 그리스도인들이 살아가면서 서로 대적하는 것을 보면, 여러분의 마음속에 계신 하나님의 영께서 부르짖으십니다. 하나님의 참 선지자인 여러분은 무언가를 이루려 하고 있습니다. 참된 교사는 교회를 영 안에서 하나 되게, 영 안에서 하나 되게 하여 하나님을 알아보게 하려 합니다. 그들이 어느 교단에 속했든, 사정이 어떻든 그것을 이루려 합니다. 우리는 영을 분별하여 그 사람 안에 있는 영이 하나님의 영인지 아닌지 알아봅니다.
그분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 두루 다니시며 선을 행하셨음을 우리는 봅니다. 또 제 생각에 떠오른 것이 하나 있습니다. 다윗이 왕으로서 배척당했을 때를 보셨습니까? 그가 도시를 떠나는데, 그의 형제여야 할 한 베냐민 족속 사람이 있었습니다. 다윗이 배척당한 것을 슬퍼해야 했을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다리를 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불편한 몸을 끌고 따라가며 다윗에게 흙을 던지고, 온갖 욕설을 퍼붓고, 주님의 이름으로 그를 저주했습니다. 이 자그마하고 다리를 저는 베냐민 족속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다윗 왕을 저주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과 마귀의 영이 어떻게 일하는지 보십시오.
보십시오. 그는 다리를 절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참된 하나님의 영이 나타나시는 것을 조롱하는 오늘날 사람들의 영적 불구 상태를 나타냅니다. 왕으로서 배척당하던 다윗 안에 계신 분은 그리스도의 영이셨습니다. 오늘날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 무언가를 이루려고 애씁니다. 감리교인과 오순절 교인, 침례교인과 오순절 교인, 장로교인과 모든 사람을 하나로, 그리스도의 몸으로 모으려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이들을 조롱합니다. 영께서 역사하시는 것을 보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저것 봐, 저건 오순절 교인이잖아. 저리 치워 버려! 다른 남자의 아내와 달아난 사람을 나는 알아. 저 사람은 술에 취했던 걸 알아. 이 사람은 이런 일을 했고 저 사람은 저런 일을 한 것도 알아.” 그 모든 일을 말하지만, 그들은 자기 일은 감출 만큼 수완이 좋습니다. 자기 일은 감출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드러나 있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의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호위병이 말했습니다. “내 왕을 저주하는 저 개의 머리를 벨까요?”
다윗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을 보십시오. “그를 내버려두라. 주께서 그에게 나를 저주하라고 말씀하셨느니라.” 이 말씀을 이해하시겠습니까? “그를 내버려두라. 주께서 그에게 나를 저주하라고 말씀하셨느니라.”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주먹을 들고 그와 싸우고 싶어 합니다. 아시겠죠? 그의 머리를 잘라 버리려 합니다. “이봐, 저 사람을 쫓아내. 우리에게 속한 사람이 아니야.” “그를 내버려두라. 주께서 그에게 나를 저주하라고 말씀하셨느니라.” 다리를 저는 그 자그마한 사람이 따라 달려가며 다윗에게 흙을 던졌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영께 하는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들은 광신적으로 뒹구는 무리야. 그런 부류야. 그들에게는 아무것도 없어. 신유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야. 천사 같은 것은 없어. 선지자 같은 것은 없어.” 그런 말을 다 합니다. “기적의 시대는 지나갔어.” 흙을 던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을 내버려두십시오! 다윗이 권세를 되찾아 돌아왔을 때, 할렐루야, 그가 이스라엘의 온전한 왕으로 돌아왔을 때... 염려하지 마십시오. 오늘날 우리가 그 영을 받아 그분의 역할을 행동으로 나타내고 있는 이 예수님께서 두 번째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육체를 입고 영광과 권능과 위엄 가운데 오실 것입니다.
흙을 던지던 그 자그마한 사람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자비를 구했습니다. “그를 내버려두라.”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그를 출교시키지 마십시오. 이 모든 일이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우리에게는 한 가지 할 일이 있습니다. 계속 전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영을 분별하고 목적을 바르게 지킵시다. 우리 각자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여기에 있습니다. 교제하며 함께 나아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의 목적이 잘못되어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시겠죠?
우리는 하나님의 영께서 그분 안에 계셨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옛 선지자들은 모두 그분에 관해 말했습니다. 모든 영이 부분적으로, 그 작은 분량 하나하나가, 자기 자신을 영화롭게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참 선지자들 말입니다. 참 선지자는 모두 그분을 드러내며 그분에 관해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말한 모든 것이 그분 안에서 성취되었습니다. 그것은 그들 안에 계신 분이 하나님의 영이셨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 말씀이 성취되었습니다. 그것은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자신에 관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시겠죠? 하나님께서 이 선지자들을 통해 자신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자기에게 영광을 돌리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음 대통령은 누구인가? 다음에 누가 이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 또 머리를 때리면서 “누가 너를 때렸는지 말해 보아라. 그러면 믿겠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나타내기 위한 것입니다. 여기 계신 웨더스 형제님이나 쇼어스 형제님, 저기 계신 아무개 형제님을 위대한 사람으로 만들어, 그가 속한 무리의 다른 사람들보다 더 크게 하고 피닉스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이 되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윌리엄 브래넘을 대단한 사람으로 만들려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을 하려는 것입니까? 오럴 로버츠나 빌리 그레이엄을 대단한 사람으로 만들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 무언가를 이루려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모든 은사와 그런 것들은 한 사람을 다른 사람보다 더 크게 만들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모두 함께 일하여 그 몸을 온전하게 하고, 한 백성,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 되게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거꾸로 나아가는 것을 보더라도 저주하지 마십시오. 그냥 내버려두십시오. 누군가는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권능 가운데 오실 때까지 기다려 보십시오.
이 모든 선지자가 말하는 것을 봅니다. 그들 모두는 하나님과 오실 메시야를 영화롭게 했습니다. 그들이 영 안에 들어갔을 때에는 메시야께서 하신 것처럼 행동하고 말하며 그 삶을 살아 냈습니다. 십자가 이전에 그분의 오심에 관해 말하면서 그렇게 했다면, 그분께서 오신 이후에는 얼마나 더하겠습니까? 메시야의 영께서 교회 안에 임하셔서 메시야처럼 행동하고 일하고 역사하며 살게 하실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입니다. 그 영을 분별하여 하나님께 속했는지 아닌지 보십시오. 그분처럼 행동하는지 보십시오. 여러분의 감정이... 여러분이 아무 잘못도 없고 하나님의 영을 받았다는 것을 아는데도, 누군가 여러분을 거슬러 문제를 일으키고 여러분의 삶에 흙을 던진다면, 따로 떨어져 나가려 하지 마십시오. 그들에게 고약하게 대하려 하지 마십시오. 그들을 저주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시험하시려고 그렇게 하셨음을 알고, 그저 계속 걸어가십시오. 그 사람도 어차피 그것을 직면해야 할 것입니다.
며칠 전 풀러 형제님의 교회였던 것 같은데, 캐나다의 자전거 타는 소년에 관해 말씀드렸습니다. 모두들 이 소년보다, 이 연약한 꼬마보다 자전거를 더 잘 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소년만 유일하게 손잡이를 놓고 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기쁩니다... 저도 손잡이를 붙잡고 타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십자가의 양쪽을 붙잡고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제 손에 가져온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주님, 십자가를 붙잡게 해 주십시오. 제게는 지적인 능력이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저 여기를 붙잡고 저 멀리를 바라보게 해 주십시오.”
그들에게는 폭이 12인치인 널빤지를 타고 도시의 한 블록 길이만큼 가면 100달러짜리 슈윈 자전거를 받는 일이 있었습니다. 손잡이를 잡지 않고 탈 수 있는 그 소년들은 시내에 가서 어머니의 식료품을 사 올 때도 손잡이에 손 한번 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모두 눈길을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손잡이를 붙잡는 데 익숙하지 않아서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이 자그마한 소년은 자전거에 올라 손잡이를 붙잡고 끝까지 갔습니다.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어떻게 한 거니?” 소년이 말했습니다. “얘들아, 너희가 잘못한 게 바로 이거야. 너희 모두 나보다 자전거를 더 잘 타지만, 너희는 여기를 보고 있었어. 보니까 긴장이 돼서... 균형을 잡으려다가 떨어진 거야. 나는 여기를 전혀 보지 않았어. 끝을 보면서 흔들리지 않고 갔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지금 이런 사소한 일들을 보지 마십시오. “이 사람이 이런 일을 했나, 저 사람이 저런 일을 했나?” 끝을 보며 흔들리지 말고 나아가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오십니다. 끝을 보며 그저 흔들리지 말고 나아가십시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에 마음을 빼앗기지 마십시오. 저 마지막 때, 우리가 서서 자기 삶에 대해 답해야 할 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바라보십시오.
다윗은 자기를 향해 흙을 던지는 그 자그마한 베냐민 족속 사람에게 눈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그는 다리를 저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그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호위병이 그의 머리를 베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를 내버려두라.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렇게 하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를 저주하라고 하셨으니 내버려두라.” 다윗은 언젠가 자기가 권세를 되찾아 돌아오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 베냐민 족속 사람에게도 자기 차례가 올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교회는 승리 가운데 일어설 것입니다. 어쨌든 저는 그분의 병든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보냄을 받았을 뿐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입니다. 그들이 어디에 있든 어느 교회에 속하든 제게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저는 그분의 병든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분의 영광을 위해 은사를 나타내려 합니다. 그래서 제가 어떤 조직에도 속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자, 기억하십시오. 조직에 속하는 것은 괜찮습니다. 제가 지금 그것을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 뜻을 분명히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모든 교회에 그리스도인들, 곧 그분의 자녀들을 두고 계신다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에 관해 제게 물으신 적이 없습니다. 저는 그저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고, 이런 일들을 행하며, 그분을 나타내라고 보냄을 받았습니다.
자, 예수님과 이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은 참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 안에 하나님의 권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을 통해 자신에 관해 말씀하시고, 자신의 영광 가운데 오고 계셨던 것입니다. “대통령은 누구인가? 누가... 누가 그렇게 될 것인가? 올해 비가 충분히 올 것인가?” 그런 것은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 교회를 바로 세우는 것, 하나님의 권능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자기 이름을 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 모든 선지자가 그분에 관해 말한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우리는 봅니다. 그분께서 구약의 주제이셨기 때문입니다. 아담부터 말라기까지 모든 선지자가 바라본 분은 예수님, 곧 오실 메시야였습니다. 모든 선지자가 주님의 오심을 말했습니다. 각 사람이 자기 몫을 보탰습니다.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것만 말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을 다룰 시간이 더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그들이 말한 모든 것이 이루어졌습니다. 여기 보십시오. 선지자들이 한 말 가운데 몇 가지를 살펴봅시다.
“처녀가 수태하여 아이를 낳으리라.” 그렇게 되었습니까? 물론입니다.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 평화의 통치자, 강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불리리라.” 그분은 바로 그런 분, 정확히 “영존하시는 아버지”이셨습니다. 이 땅의 어떤 사람도 “아버지”라 불러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의 아버지는 하나님이십니다. 자, 다시 봅시다. “그는 우리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고 우리 불법들로 인해 상하였도다. 그가 징벌을 받음으로 우리가 화평을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도다.” 빌라도의 재판정에서, 바로 그 사람은, 그의 등이 아홉 가닥 채찍으로 그렇게 맞고 있는데도, 성경에서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음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를 없애라, 그를 없애라” 하던 그 제사장들에게는 영을 분별하는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분이 십자가 위에서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고 부르짖으시는 것을 듣고 그들은 입술을 내밀며 그런 행동들을 했습니다. 그들에게는 분별력이 없었습니다. 아시겠죠? 그들은 그 영을 분별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다윗이 시편 22편에서 말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그 말씀대로 행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입술을 내밀었습니다. 그 베냐민 족속 사람이 다윗에게 한 것과 똑같았습니다. 그는 다윗이 왕국을 다스리는 원칙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다윗이 완전히 틀렸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윗 안에 계신 하나님의 영께서 그 일을 행하고 계신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그 사람의 영을 분별해야 할 대목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가 무엇을 하려 합니까? 무엇을 이루려 합니까? 어느 단체에 속했는지, 이것저것이 어떠한지, 백인인지 흑인인지 황인인지, 어떤 사람인지가 아닙니다. 그가 무엇을 이루려 하는지 보고, 그것을 받아들이며,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 무엇을 하려는지 봅시다. 우리와는 생각이 달라 이상하게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 무언가를 이루려 한다면 전적으로 괜찮습니다. 그 사람 안에서 그것을 분별하십시오. 그가 틀렸더라도 마음이 진실하다면, 하나님께서 얼마 후에는 그 일의 진리로 이끄실 것입니다. 그를 내버려두십시오. 내버려두고 그가 무엇을 하려는지 보십시오.
이제 여기서 우리는 그분의 죽음을 봅니다. 그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면서 선지자들이 그분에 대해 말한 모든 것을 부르짖으셨을 때, “그들이 내 손과 발을 찔렀나이다” 하신 그 말씀이 거기서 성취되었습니다. 선지자들이 옳았습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했거나 자기 자신인 것처럼 부르짖었지만, 그것은 십자가에서 나타났습니다. “그는 범법자들과 함께 계수되었도다.” 그분께 실제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범법자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그가 죽어서 부자와 함께 묻혔도다.” 그렇게 되었습니다. 부자의 무덤에 묻히셨습니다. “내가 그의 혼을 남겨 두지 아니하리라... 그분께서 내 혼을 남겨 두지 아니하시리라.” 다윗이 말했습니다. 다윗 안에 계신 하나님의 영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분께서 내 혼을 지옥에 남겨 두지 아니하시고, 그분의 거룩한 자가 썩음을 보지 아니하게 하시리라.” 마치 다윗이 그 거룩한 자가 될 것처럼 말입니다. 그것은 다윗이 아니었습니다. 다윗 안에서 하나님의 영께서 부르짖고 계신 것이었습니다. 아시겠죠? 사람 안에서 하나님의 영께서 부르짖고 계신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저기 있는 저 늙은 위선자가 하는 말을 들어 보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는 위선자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안에서 하나님의 영께서 부르짖고 계신 것이었습니다. 아시겠죠? 하나님의 영께서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그의 혼을 지옥에 남겨 두지 아니하시고, 나의 거룩한 자가 썩음을 보지 아니하게 하시리라.”
형제 여러분, 끝으로 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시간이 자꾸 흘러가지만, 여기 있는 이 성경 구절들로 마무리하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생각해 봅시다. 구약의 모든 주제가 그분에 관한 것이었고, 하나님의 영으로 기름부음 받은 모든 거룩한 선지자가 말한 그 모든 것이 그분 안에서 글자 그대로 정확히 성취되었다면,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리는 그 위대한 분은 분명히 신약 교회를 어떻게 세워야 하는지 아실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믿지 않으십니까? 그분은 신약 교회를 어떻게 세워야 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있으실 것입니다.
먼저 여러분의 주의를 이곳 마태복음 16장으로 돌리고 싶습니다. 그때 그분께서 내려오셔서 제자들과 말씀을 나누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나 곧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 하느냐?” 그들이 말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주께서 엘리야라 하고, 어떤 이들은 아무개라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다른 아무개라고 합니다.” 이렇게 여러 사람을 말했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주께서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요나의 아들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살과 피가 이것을 네게 계시하지 아니하였고,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것을 네게 계시하셨느니라. 내가 또한 네게 이르노니 너는 시몬... 베드로라. 이 반석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 여기서는 교회에 관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제 자세히 보십시오. 만일 제가 틀렸다면 하나님께서 저를 용서하시고 여러분도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가톨릭 교회는 거기 놓인 돌이 베드로였고, 그분께서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우셨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그것이 잘못임을 압니다. 우리 개신교인들은 그것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개신교인들은 “그분은 그분 자신 위에, 자기 자신 위에 교회를 세우셨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잘 보신다면, 저는 우호적인 마음으로 그 말에 동의하지 않고자 합니다.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분 자신에 대한 영적 계시 위에 세우신 것입니다. 아시겠죠? “살과 피가...” 여러분은 이것을 신학교에서 배운 것이 아닙니다. 신학교가 아무리 좋다 해도 말입니다. 어떤 교회의 신조를 통해 배운 것도 아닙니다. 신조가 아무리 좋다 해도 말입니다. 그것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살과 피가 이것을 네게 계시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것은 지적인 이해가 아닙니다. 말을 어떻게 해야 하고, 어떻게 몸을 숙여야 하며, 이 땅에서 어떤 위대한 일을 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위대한 것을 세우거나 위대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계시입니다. 그분은 말씀이셨습니다. “처음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이 하나님이셨더라. 그 말씀이 나타나 우리 가운데 거하셨도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계시였습니다.
베드로 안에 계신 영께서 영적 계시를 통해 그분은 나타나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계시하셨습니다. 영광의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 반석 위에, 곧 말씀에 대한 영적 계시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라.” 왜 그렇습니까? 그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서 성령으로 말하여 그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했다면, 이편에서도 같은 영께서 바로 그 동일한 것을 계시하시는 것입니다. 보이십니까? “살과 피가...” 여러분은 그것을 신학교에서 배울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배워서... 신학박사 학위인 D.D.나 철학박사 학위인 Ph.D., 또 L.D.를 받거나... 그런 것은 다 좋습니다. 저도 그런 학위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래도 그것은 이것이 아닙니다. 꼭 그런 학위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있으면 좋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갖고 거기에 더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더한 것을 지워야 한다면, 이것을 택하십시오. 이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것이 그것이 아니라 해도, 어쨌든 제게 이것을 주십시오. 저는 이것을 원합니다! 이것을 말입니다!
“살과 피가 이것을 네게 계시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여러분은 그것을 교육을 통해 배운 것이 아닙니다. 교단을 통해 배운 것도 아닙니다. 그것들은 좋습니다. 교육도 교단도 좋습니다. 그것도 일부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거기에 너무 무게를 두면서 영적 분별을 버리고 있습니다. 아시겠죠? “살과 피가 이것을 네게 계시하지 아니하였고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것을 네게 계시하셨느니라. 이 반석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 “결코 이길 수 없으리라”는 말씀은 그것들이 교회를 대적하리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이제 지옥의 문들이 무엇을 대적하는지 보십시오. 교단을 대적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부는 교단을 인정합니다. 세상은 우리 교단들을 모두 인정합니다. 우리 각자는 미국 시민으로서 교단을 가질 권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좋습니다. 우리는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옥의 문들이 대적하는 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으로 지금 여기 계신다는 영적 계시를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것들이 대적하는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대적하겠으나 결코 이기지 못하리라.”
바로 이것입니다. 영적 분별입니다. 누구든 제가 일하는 목적과 같은 목적을 이루려 한다면 제 형제입니다. 선지자든 목사든 집사든 누구든, 하나님께서 이 방식으로든 저 방식으로든 그를 존귀하게 하시고, 저를 낮추시든 무엇이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시게 하십시오. 그래도 그는 제 형제입니다. 우리는 같은 것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저 동일한 왕국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그는 제가 일하는 것과 같은 것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영적 분별, 하나님의 영적 계시입니다. 여기 보십시오. 여러분이 그것을 원하신다면...
예수님... 며칠 전 저녁에 어딘가에서, 어쩌면 저 아래에서였을 텐데, “처음부터 그러했던 것은 아닙니다”라는 설교를 했습니다. 이제 잠깐 우리가 다룰 본문을 찾기 위해 처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처음에 가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지적인 사람이었고, 말하자면 훌륭한 교회를 세웠습니다. 훌륭한 제단을 만들고, 희생물을 드리고, 기도하고, 신실하게 행하고, 감사를 드리고, 십일조를 냈습니다. 모든 면에서 아벨만큼 종교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벨은, 그 당시에는 성경이 없었지만, 영적 계시를 통해 우리를 죄짓게 한 것이 밭의 열매가 아니며, 그들이 먹은 것이 사과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시겠죠? 사과가 아니었습니다. 계시가 그에게 그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를 거기서 나오게 한 것도 열매가 아니었습니다. 생명이었습니다. 생명에서 끊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가서 어린양을 가져다가 자신을 대신하여 믿음으로 드렸습니다. 그 믿음은 영적 계시입니다. 아멘! 하나님의 계시, 영적 계시입니다. 그것이 열매가 아니며, 사과도 복숭아도 자두도 배도 아니라는 것이 그에게 계시되었습니다. 그것은 생명에서 끊어진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가서 생명 하나를 가져다가 열매 대신 드렸습니다.
열매는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의 손으로 한 일입니다. 거기서 여러분이 하는 일이란 “가서 이것을 세우겠습니다. 가서 이 일을 하겠습니다. 저 일을 지원하겠습니다”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좋습니다. 그에게도 다른 사람에게 있는 것과 같은 제단이 있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제단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좋은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영적으로 계시된 진리였습니다. 하나님의 영께서 그것을 계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반석 위에...”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반석, 영원한 반석, 아벨의 어린양이 죽은 그 반석 위에 말입니다. 어린 아벨이 그 어린양 위에 손을 얹고 돌을 집어 들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창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그 작은 목을 내리찍고 거듭 쳤을 때 그 작은 양의 흰 털은 흠뻑 젖었습니다. 불쌍한 작은 양은 죽어 가고, 피가 그의 손을 흠뻑 적시고, 그 작은 양의 털은 온통 피에 젖은 채 울며 부르짖었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말하고 있었습니까? 사천 년쯤 뒤에 오실 하나님의 어린양이 영적으로 계시되고 있었습니다. 교회는 그분을 거절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분을 바알세붑이라 하고 마귀라 불렀습니다. 모든 선지자가 그것을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선지자들을 부인했습니다. 그분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오, 너희는 그들의 돌무덤을 만들고 그들을 그 안에 넣는구나. 너희 회칠한 담들아.” 그들에게는 영적 분별이 없었습니다. 그분께서 하나님의 어린양이심을, 그분께서는 그렇게 되시고 그렇게 행동하셔야 했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분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성령의 교회도 그처럼 행동하고 그런 일들을 행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보십시오. 베드로는 오순절 날 “이것이 바로 그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들, 멀리 떨어져 있는 자들, 곧 주 우리 하나님께서 부르실 모든 사람들을 향한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영감을 받은 그 동일한 선지자들은 저녁빛이 비칠 것이며, 은혜의 날들처럼 이른 비와 늦은 비가 함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여기 보십시오. 무엇입니까? 이른 비는 넘어오고 있고, 늦은 비는 벌써 내렸어야 할 때를 넘겼습니다. 그래서 서로 겹쳐 함께 있게 되었습니다. 이른 비와 늦은 비가 함께 있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과 부활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함께 모이는 것입니다. 이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분께서는 “노아의 날들에 그러했던 것같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의 은혜는 오래 참았습니다. 오늘날도 여기 오래 참으심이 있고, 서로 겹치는 일이 있습니다. 옛날의 구름과 오늘의 구름을 함께 모으시는 것입니다. 이른 비가 먼저 들어왔습니다. 우리가 처음 받은 비입니다. 이제 늦은 비가 넘어오고, 이른 비가 늦은 비 위로 넘어오면서 동과 서가 함께 만납니다. 두 비가 함께 내립니다. 신유에 더하여 하나님의 천사가 마음의 비밀들을 드러내고 모든 것을 이루고 있습니다. 오, 참으로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자녀들이라면 그것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영께서 계시하시는 것입니다. 계시, 예수님께서 교회가 그 위에 세워지리라고 하신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면 누군가 일어나서 “물론입니다. 우리 아무개 교단은 그것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라고 할지도 모릅니다. 그분의 말씀을 조금 더 살펴봅시다. 그분께서 교회에 마지막으로 주신 사명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온 세상으로 가서 모든 창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 온 세상입니다.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합니까? 온 세상입니다. 얼마나 많은 이에게입니까? 모든 창조물에게입니다. “믿고 침례를 받는 자는...” 교회가 아닙니다. “그”는 인칭대명사입니다. “믿는 그 사람”, 곧 개인입니다. 데이비드 뒤플레시 형제님이 손자들에 관해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왕국에는 손자들이 없습니다. 자녀들입니다! 여러분의 아버지가 오순절 교인이었고, 그분이 이곳 11번가와 가필드에 와서 성령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여러분이 이 교회에 나오며, 그저 손자로 들어온 것이라면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자신을 계시하셔야 합니다. 아무도 지적인 이해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라 부를 수 없습니다. 자기 죄를 뉘우치고 와서 회개한다는 이유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라 부를 수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오직 성령의 계시가 그에게 그것을 알게 해 주셔야만 예수님을 그리스도라 부를 수 있습니다. “이 반석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결코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 거기에 계시가 있습니다. 바로 그것 위에 그분께서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누가 그것을 했습니까? 베드로입니까? 아닙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누가 했습니까?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계시를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가져다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조금 있으면 내가 너희를 떠나겠으나, 내가 아버지께 구하면 그분께서 위로자를 너희에게 보내시리니, 그분께서 이 일들을 너희가 기억하게 하시리라.” 맞습니까? 오늘 아침 그분께서 하고 계신 일이 그것입니다. 또 무엇을 하십니까?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너희에게 보이시리라.” 마지막 날들에 교회 안에 계시는 성령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말합니다. “형제님, 할렐루야, 바로 제 교회입니다.”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3장 35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에 의해 모든 사람들이 너희가 내 제자임을 알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것에 의해 모든 사람들이 너희가 내 제자임을 알리라.” 영께서 계시하신, 장차 올 하나님의 왕국에 관한 진리입니다. 저 끝을 바라보며 선지자들이 무엇을 두고 부르짖었는지, 예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셨는지 봅니다. 그러면 여기 여러분 안에 계신 같은 성령께서 곧바로 응답하여 부르짖으십니다. “맞다! 맞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영적으로 계시된 진리입니다. 저는 제 형제들이 어느 교회에 다니든 사랑합니다. 이른 비든 늦은 비든, 비가 전혀 없든,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으면서 무언가를 이루려 한다면 사랑합니다. 이 땅에서 자기 자신을 드러내려는 어떤 목적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오심의 영광을 위한 목적, 곧 그분께서 속히 나타나실 것을 드러내고 알리려는 목적을 위한 것입니다.
이제 마무리하면서 이것을 생각해 봅시다. “이 반석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라.” 정확합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4장 7절을 보면 그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하는 그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 내가 하는 그 일들을.” 그분께서 자신을 알리려고 어떤 일들을 하셨습니까? 우리가 이야기해 온 베드로에 관한 일, 기억하시지요? 빌립, 우물가의 여인은 어떻습니까? 그 일이 이방인들에게로 가지 않을 것이지만 마지막 날들에는 있을 것이라고 미리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소돔의 날들에 그러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도 그러하리라.” 거기에 계시가 있습니다. 바깥세상, 곧 그것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세상에는 이처럼 신비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사랑하는 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어둠의 자녀가 아닙니다. 밤의 자녀가 아니라 빛의 자녀이며, 그분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빛 가운데서 걷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서로 교제하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 모두에게서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하게 씻어 주십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주님의 종들입니다.
예수님... 여기에 적어 둔 성경 말씀을 인용하려는데, 마가복음 16장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마가복음 16장입니다. 그분께서 “너희는 온 세상으로 가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께서 세우신 교회는 이런 교회입니다. 교회에 마지막으로 주신 사명입니다. “너희는 온 세상으로 가서 모든 창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 믿고 침례를 받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나 믿지 않는 자는 정죄를 받으리라.” 자, 여기 보십시오. 영적 분별을 보십시오... “믿고 침례를 받는 자는.” 그분은 정확히 어떤 방식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는데, 우리는 그 일, 또 다른 일을 두고 다투려 합니다. 아시겠죠? “믿고 침례를 받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그가 어떤 방식으로 침례받기를 원하든 그것은 그에게 달렸습니다. 그가 이루려는 것이 하나님의 왕국을 위한 것이라면, 형제님, 함께 갑시다. 우리는 같은 영으로 전진하고 있습니다. 제가 틀렸다면 여러분이 말해 주실... 그렇게 드러날 것입니다. 여러분이 틀렸다면 그것도 그렇게 드러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과 동기와 목적은 저 하나님의 왕국을 향해 있습니다. 우리는 거기를 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갈보리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저와 제 생각을 보십시오. 제 형제들 중에는 저만큼 체리 파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지만, 우리는 형제입니다. 아시겠죠? 저만큼 사냥과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도 없지만, 우리는 형제입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제게는 제 나름의 생각이 있지만, 그렇다고 그가 제 형제가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의 아버지가 제 아버지이고, 그의 가족이 제 가족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족장들은 모두 서로 달랐지만 아버지는 한 분이었고, 모두 한 가지를 위해 일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가운데 중요한 그 한 사람을 배척했습니다. 그가 영적이라는 이유였습니다. 보이지 않으십니까, 형제 여러분? 제가 무슨 말씀을 드리는지 보이지 않으십니까?
이제 끝으로 주목하십시오. “너희는 온 세상으로 가서 모든 창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 믿고 침례를 받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그...” [녹음 공백.]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내쫓고 새 언어들로 말하리라.” 무엇입니까? 영적 계시입니다. “그들이 새 언어들로 말하리라. 그들이 뱀들을 집어 올리거나 치명적인 것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 사람들이 나으리라.” 새로운 교회는 그러했습니다. 모든 선지자가 외쳤던 이 위대한 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실 교회가 바로 그런 교회였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영께서 이편에 오셔서, 사람들 안에 계신 그분의 영이 그분께서 하셨던 일들을 그대로 다시 행하리라고 예고하시는 것을 봅니다.
이 말씀으로 마치겠습니다. 여기에 성경 구절이 열두 군데쯤 더 있지만 시간이 없습니다. 아시겠죠? 그러나 이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이 말씀으로 마치겠습니다. 참으로 다시 태어난 주님의 선지자든, 설교자든, 일요일 학교 교사든, 선견자든, 사도든, 선교사든, 무엇이든 그의 온 마음은 굳게 정해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너무나 충만하고 기름부음을 받았으므로, 그토록 기름부음을 받았으므로, 그의 직분이 무엇이든, 설교든 가르침이든 복음 전도든 환상을 보는 일이든, 무슨 일이든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께서 그 사람을 통해 다시 말씀하시고, 그것이 하나님의 왕국임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침례교인인 제가 오순절 교인인 여러분을 보면, 여러분은 제 형제입니다. 여러분은 침례교회에 속하지 않았지만 저는 속해 있었습니다. 제가 이제껏 속했던 유일한 교회는 침례교회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제게 걸림돌이 되지는 않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영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신 것을 봅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하려 하는지 봅니다. 침례교인인 제가 그렇게 느낄 수 있다면, 하나님의 성회와 하나님의 교회, 연합 오순절 교회와 독립 교회들, 우리 모든 형제도 함께 같은 목적을 위해 일하려 한다는 것을 분명히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영적으로 분별합시다.
자, 들으십시오. 마치면서 마지막으로 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많은 사람이 병들고 약하며, 많은 사람이 잠들어 있습니다. 영적으로 죽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속한 이 몸이 병들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희를 도우셔서 하나님의 왕국에 대한 그 계시를 영적으로 분별하게 하시고, 성령에 의해 저희 마음에 넓게 부어진 하나님의 사랑을 분별하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우리는 형제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제 말뜻을 아시겠습니까? 여러분에게 있는 작은 은사 하나하나를 우리 자신을 대단한 사람으로 만들려는 데 쓰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 사용합시다. 모든 사람과 함께 일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대의를 높이려고 합시다. 그분의 오심이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믿으십니까?
여러분을 이렇게 오래 붙잡아 두어서 참으로 죄송합니다. 내일은 데이비드 형제님이 오셔서 성경을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지금은 잠깐 머리를 숙입시다. [한 형제가 다른 언어로 말한다. 한 자매가 통역한다.] 전진하라, 그리스도인 군사들이여! 싸움터로 나아가듯 행진하라. 예수님의 십자가를 앞세우고. 우리는 갈라지지 않았네. 모두 한 몸이네. 소망과 교리도 하나, 사랑도 하나라네. 전진하라, 그리스도인 군사들이여! 여러분이 그렇다고 믿으십니까? 손을 드십시오. 싸움터로 나아가듯 행진하라. (무엇을 앞세우고요?) 그... (우리의 목표입니다.) 예수님을 앞세우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여러분의 목사님께 넘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