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감사합니다, 형제님. 이제 머리를 숙이고 기도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오늘 밤 다시 이렇게 함께 모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는 이런 부흥 집회에 밤마다 모이며, 주님, 해마다 이렇게 해 왔습니다. 언제 어디서일지는 모르지만, 언젠가는 마지막으로 모이게 되고, 부르심을 받아 답변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아버지, 오늘 밤 여기 주님을 자신의 구주로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오늘 밤 준비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높은 곳으로 올라와 심판대 앞에 서라는 부름이 올 때, 갈보리에서 온전히 씻음을 받고 갈 준비가 되어 있게 하옵소서.
아버지, 오늘 밤 이 건물 안에 있는 병들고 고통받는 사람들과 밖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여기 병들고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보낼 손수건과 천들이 놓여 있습니다. 저희가 이렇게 하는 것은 성경에 사람들이 성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과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자들에게 대자, 악한 영들이 사람들에게서 나가고 질병들이 떠났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성 바울이 아니라는 것은 압니다. 하지만 주님은 여전히 병자를 고치셨던 그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압니다.
성경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맡겨진 사명을 따라, 해야 할 일을 곧바로 행하며 가고 있을 때, 약속의 땅으로 향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그 길을 홍해가 가로막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불기둥을 통해 내려다보시자, 바다가 겁을 먹고 길을 열었고, 그들은 마른 땅을 걷듯 건너갔습니다. 이제 주님, 하나님의 자녀들이 기도하는 이곳에서 나아가 맡겨진 일을 할 이 손수건들이 병자들 위에 놓일 때, 하나님께서 불기둥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우리 범법들로 인해 채찍에 맞으시고 상처를 입으신 주님의 아들의 피를 통해 보아 주옵소서. 그분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습니다. 저 갈보리에서 겪으신 고난과 그 약속을 통해 보아 주셔서, 모든 병과 질병이 물러가고 이 사람들이 하나님의 약속 안으로 들어가게 하옵소서. 사도는 “무엇보다도 네가 건강하기를 내가 바라노라.”라고 말했습니다. 아버지, 허락해 주옵소서.
저 아래 오르간 옆에 제 형제님이 서 있습니다. 어느 고마운 가정에서 하나님의 음악을 연주하도록 저희에게 내준 오르간입니다. 주님, 그분들은 모두를 섬기는 일에 쓰도록 이것을 주님께 드리고자 합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이것을 복 주셔서 어디서 연주되든 사람들의 마음에 찔림을 주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것을 연주하는 손이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시고, 시온의 노래들을 연주하게 하옵소서. 이로 인해 혼들이... 결코 분명하지 못한 소리를 내지 않게 하옵소서. 바울이 “만일 나팔이 분명하지 못한 소리를 내면...”이라고 말한 것처럼 말입니다. 분명한 소리,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전하는 소리를 내게 하옵소서. 이것을 드리는 사람들과 기도하는 모든 사람을 복 주시고, 모든 사람을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앉으셔도 좋습니다.
데이비드 형제님, 눈길을 무사히 뚫고 오셨습니까? 조금 전에 집에 전화했더니, 지금 인디애나에 눈이 12인치나 새로 쌓였다고 하더군요. 우리 그냥 여기 머뭅시다. 좋은 생각이지요? [뒤플레시 형제님이 말한다. “주님께서 이때 우리를 여기로 보내 주셔서 그 모든 것을 피하게 하셨으니 참 잘해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주님은 선하시지요? [뒤플레시 형제님이 성령의 충만을 구하는 감리교인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아멘. 참 좋습니다. 언제 또 형제님 대신 나서 보겠습니다. 다시 한번 해 보겠습니다. 참으로 좋습니다.
제 작은 책,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를 읽어 보신 분이 몇 분이나 됩니까? 오래전부터 계신 분들 가운데 몇 분이 계시는군요. 제가 직접 썼습니다. 엉망입니다만, 내용을 잘 모아 보시면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계시해 주실 수 있습니다. 거기에 한 여자가 오는 것을 제가 보았다는 이야기가 있는 것, 보셨습니까? 참으로... 원래는 흰옷이었는데 온통 얼룩져 있었고, 그 여자의 이마에는 ‘웨슬리 감리교 양’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제가 “그 아름다운 옷이 왜 온통 얼룩졌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환상에서 말입니다. 그 여자가 말했습니다. “저는...” 제가 말했습니다. “감리교인들이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 여자가 말했습니다. “제가 너무 바빴어요.” 제가 말했습니다. “그렇지요. 여러 모임도 너무 많아졌고, 옛 기도 모임과 신유, 감리교회에 속해 있던 하나님의 권능을 모두 버렸습니다.” 그 여자가 말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면 제 남편을 깨우러 가겠어요.” 그러고는 가서 삽을 가져와 존 웨슬리라는 이름이 적힌 무덤 옆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환상이 사라졌습니다. 언젠가는 감리교회에 부흥이 일어날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러니 데이비드 형제님, 그 일이 바로 그 흐름에 맞을지도 모릅니다. 얼마 전에도 훌륭한 분 한 분이 오셔서 제가 사는 곳의 모텔에 며칠 머무셨습니다. 그분은 감리교회를 위해 신유에 관한 논문을 쓰고 계셨습니다. 감리교의 모든 조직 전체에 들어갈 글입니다.
이제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이 남았습니다. 토요일 아침에는 실업인 조찬 모임이 있습니다. 이미 광고했겠지요. 주님의 뜻이면 그렇게 할 것입니다. 모든 준비가 되었다면, 금요일 밤에 자세히 알려 드릴 것 같습니다. 윌리엄스 형제님, 형제님이 아시기로는 어디였지요? 그렇습니다. 토요일 아침 조찬 모임 말입니다. 데이비드 뒤플레시 형제님은, 여기 앉아 계시기 때문에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만... 저는 녹음테이프 외에는 이분의 가르침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서로 가까이 있게 되면 같은 집회에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데이비드 형제님이 앤젤러스 템플이나 저희가 다녀온 곳들에서 말씀하신 녹음테이프 등을 들었습니다. 제가 아는 한 오늘날 메시지를 가르치는 가장 훌륭한 교사 중 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분은 매일 아침 열 시에 11번가와 가필드가 있는 곳에서 집회를 하시는 것으로 압니다. 이분의 가르침을 들어 본 적이 없다면, 꼭 가서 들어 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녹음물 판매대에 있는 청년들이 제게 말해 주었습니다. 얼마나 팔리는지 말씀드리지요. 제 기억이 틀릴 수도 있지만, 제 테이프를 열 개 팔았다면 이분의 것은 아흔 개쯤 팔았다고 했을 겁니다. 그러니 누구에게로 향하는지 아시겠지요. 그게... 이분은 가르치는 일에 훌륭한 사역을 가지고 계십니다. 데이비드 형제님의 말씀을 들으러 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늘 밤 잠시 성경 예레미야서 8장을 펴 주시기 바랍니다. 선지자 예레미야의 글, 8장 20절과 21절, 22절을 읽겠습니다. 수확할 때가 지나고 여름이 끝났으나 우리는 구원을 받지 못하였도다. 내 백성의 딸의 상처로 인해 내가 상하였고 암담하게 되며 놀라움에 사로잡혔도다. 길르앗에는 유향이 없는가, 거기에는 의사가 없는가? 그런데 어찌하여 내 백성의 딸의 건강은 회복되지 아니하였는가? 저는 오늘의 주제를 “왜?”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참으로 선하게 대해 주셔서 위험을 피할 길을 마련해 주셨는데, 우리가 그 길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왜?” 하고 물으십니다. 저는 그분께서 왜냐고 물으실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유익하도록 이 길을 마련하시느라 그 모든 수고를 하시고 우리 앞에 놓아 주셨는데, 우리가 등을 돌려 거절하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왜냐고 물으실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왜 그렇게 했느냐고 말입니다. 우리는 그 대신 자기 나름의 길을 만들려고 합니다. 사람은 자기 길을 만들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스스로 무화과나무 잎으로 앞치마를 만든 것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사람은 늘 하나님의 생각에 자기 생각을 끼워 넣고, 하나님의 생각을 자기 생각에 맞추려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길을 받아들이고, 거기에 의문을 제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저 나아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대로 행하고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결국 무엇이 가장 좋은지는 그분께서 아시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에 뒤플레시 형제님과 성령의 인도하심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형제님이 해 주신 말씀이 무언가 저를 감싸 자라난 것처럼 제 마음에 붙어 떠나지 않았습니다. 형제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저는 늘 이런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저 성령께서 저를 인도하시게 맡겨 드리고, 제 생각을 앞세우지 않는 겁니다. 제 생각과 반대되는 길로 이끄시더라도, 그저 인도하시게 맡기고 순전한 마음으로 따르는 겁니다. 성령을 따르기만 하면 언제나 잘됩니다.” 그때 저는 생각했습니다. “뒤플레시 형제님, 우리는 정말 한 형제입니다.” 저도 바로 그런 방식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인도하시게 맡기십시오. 성령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도록 보내 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피할 길을 마련하시고, 구원의 길을 마련하시고, 치유의 길을 마련하십니다. 이 모든 것을 마련하셨는데도 우리는 그대로 가 버립니다. 그러면 그분께서 “왜?” 하고 물으십니다. 성경 열왕기에는 한때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왕이 나옵니다. 그는 아합의 아들로, 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자란 배경부터 악했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사는 삶은 자녀들에게 반영됩니다. 그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며칠 전 데모스 샤카리안이 제게 전화해서 “브래넘 형제님...” 하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오늘 밤 여기 어딘가에 앉아 있을 제 어린 아들, 어린 요셉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아이가 태어나기 6년 전에 환상에서 보았습니다. 저희에게는 어린 딸이 하나 있었는데, 아내의 건강 때문에 아이를 제왕절개로 낳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의사는 아내가 더는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것으로 끝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아이가 하나 더 생길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의사는 “그럴 수 없습니다, 브래넘 씨. 그러다 부인을 죽게 만들 겁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 주님께서 제게 아들을 약속하셨고, 그 아이의 이름은 요셉이라 불릴 겁니다.” 그로부터 두어 해 뒤, 저희 집에 아기가 태어나리라는 것을 알게 되자 어떤 분들이 “그 아이가 요셉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모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태어난 아이는 어린 딸이었고, 사람들이 저를 얼마나 놀렸는지 모릅니다. “요세피나를 말한 거였군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닙니다. 요셉이라고 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의사는 “이제 부인이 아이를 또 낳는 것은 불가능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아이를 하나 더 낳을 겁니다. 또 아기를 낳을 것이고, 그 아이가 요셉일 겁니다.” 그리고 4년 뒤 아내가 다시 어머니가 되려 하자, 사람들이 “이번에는 요셉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모릅니다. 하지만 요셉은 올 겁니다.” 그래서 그날 아침 간호사가 내려와 제게... “어느 분이 브래넘 목사님이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접니다.”라고 했습니다. 간호사가 말했습니다. “목사님, 7파운드 3온스 되는 건강한 아들을 얻으셨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요셉아, 얘야, 여기 오기까지 참 오래 걸렸구나. 아빠는 너를 보니 참 기쁘단다.” 간호사가 “요셉이라고 부르셨네요.”라고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주님께서 6년 전에 그렇게 부르라고 하셨습니다.”
데모스가 제게 물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형제님 자녀들도 환상을 봅니까?” 제가 말했습니다. “요셉은 벌써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 아이는 일이 일어나기 약 6주 전에 이웃집 소년이 오토바이를 타다가 넘어지는 것을 보고, 살갗이 어디까지 벗겨질지, 어느 팔다리가 다칠지 정확히 말해 주었습니다. 저희는 어린아이가 꿈을 꾸었겠거니 생각했지만, 꿈이 아니었습니다. 그 소년은 요셉이 말한 바로 그 장소에서 넘어졌고, 다리의 살갗도 말한 그대로 벗겨졌습니다. 조금도 틀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세 살입니다. 보십시오, 반영되는 겁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의 할머니 로이스에게서 온, 자기 안에 있는 은사를 불붙이라고 말했습니다. 히브리서 7장에서 바울은 십일조에 관해 말하며, 형제들에게서 십일조를 받으라는 하나님의 명을 받은 레위 자신도 십일조를 바쳤다고 했습니다. 레위의 고조부인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을 만났을 때, 레위는 아직 아브라함의 허리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레위도 십일조를 바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여러분의 삶은 자녀들에게 인상을 남기고... 여러분이 그들 앞에 보이는 본을 통해 자녀들에게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저는 우리가 경건한 부모로서 자녀들 앞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는 것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본을 보이고, 본이 되십시오.
그런데 이 사람은 복음에 미지근한 아버지와 믿지 않는, 곧 이교도인 어머니 밑에서 자랐으니, 애초부터 대단한 인물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왕위를 이을 권리에 따라 왕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집 안을 돌아다니다가 격자창을 뚫고 현관에서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그러고는 병이 들어, 자기가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이자 이스라엘의 왕이면서도, 자기가 신임하는 종 두 사람을 에그론으로 보내어 그곳의 신인 바알세붑에게 자기가 나을지 알아보고 물어보게 했습니다. 보십시오. 사람은 그런 형편에 처했을 때에도, 어딘가에 초자연적인 것이 있다는 것을 알려 주는 무언가가 속에 있습니다. 어딘가에는 접촉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겁니다. 왕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되었지만, 그 두 사람 외에는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숲속 어딘가 작은 흙벽돌 오두막에서 하나님께서 선지자 엘리야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올라가 길에 서 있다가 이 군사들이 지나가면 이렇게 물어라. ‘이스라엘에는 하나님이 없느냐? 너희가 물어볼 선지자가 이스라엘에는 없어서 바알세붑에게 사람을 보내야 하느냐?’” 나라에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이었습니까!
오늘날에도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때로는 위자 보드나 영매 집회에 가고, 그런 온갖 허튼짓과 운세, 점치는 일 따위를 찾아다닌다는 것은 나라에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입니까! 그런 것은 마귀에게 속한 것입니다. 하늘에 하나님이 안 계셔서 그렇습니까? 그분의 교회에 선지자들이 없어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 여쭈어 볼 수 있는 은사와 계시와 통역이 교회에 없어서 그렇습니까? 왜 우리가 그렇게 저급하고 타락한 것을 찾아가야 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왜? 왜 그랬느냐?” 하고 물으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안 계셔서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분께 선지자가 없어서 그런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만든 것은 왕 자신의 악하고 고집스러운 태도였습니다. 오늘날 미국 사람들이 앞날을 물어보려고 강신술 집회와 마귀 들린 그런 것들에 몰려가는 것도, 하나님이 계신 교회가 우리에게 없어서가 아닙니다. 그들 자신의 고집스러운 태도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런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이 왕도 바로 그랬습니다. 엘리야가 언제나 자기 죄를 지적했기 때문에 엘리야와 어울리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힘듭니다. 해야 할 일은 오직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기준에 맞추어 서서, 그분의 선을 지키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은 내려놓으십시오.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이 일들에 대해 이유를 물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유를 대라는 요구를 받을 때, 우리는 뭐라고 대답하겠습니까?
그가 이 경건한 선지자와 교제하려 하지 않았던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의 고집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이스라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을 위치에 있었고, 이스라엘 사람으로 태어난 권리로 이미 그 복 아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길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다른 길로 갔습니다. 심판 날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물으실 것입니다. “너는 왜 성령을 받지 않았느냐? 왜 영으로 태어나지 않았느냐? 왜 이러저러한 사람이 되지 않았느냐? 그것을 가르치는 교회가 우리에게 없어서였느냐? 이 땅에 성령 침례를 전하는 설교자가 없어서였느냐? 왜 이런 일을 했느냐?”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셨는데도 사람들이 그 안에서 행하기를 거절한다면, 그분께서 이유를 물으실 것입니다.
약을 먹지 않으려고 의사의 문 앞에서 죽어 가는 사람과 같습니다. 의사에게는 처방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앓는 병을 고칠 약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의사의 문 앞에 앉아 약을 먹기를 거부합니다. 그러다가 그 문 앞에서 죽습니다. 의사에게 처방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그 병을 고칠 약이 없어서도 아닙니다. 그 사람 자신이 고집을 부려 의사의 약을 먹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에 죽는 것입니다. 그러니 약이나 의사를 탓할 수 없습니다. 둘 다 그를 도울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거절한 것은 그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밤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받기 원하는 모든 믿는 사람을 위해 성령을 준비해 두셨습니다. 이 땅에는 기름부음을 받아 밤낮으로 그것을 전하는 설교자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 자신의 고집스러운 태도가 문제입니다.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해서, 복음의 빛 가운데 행하기보다 세상에서 살기를 더 좋아합니다. 여러분, 빛 가운데, 주 예수님의 빛 가운데 행하며 그분과 교제하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여러분은 모릅니다! 성령과 교제하는 것은 신성한 영광입니다.
그런데 세상과 성령, 양쪽과 동시에 교제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세상의 것들을 멀리하고 깨끗하고 존귀하며 올바르고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여러분과 함께 거하시고, 여러분과 함께 일하시고, 여러분을 통해 기적을 행하시며, 여러분을 치유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길로 행하면 기쁨과 평안, 사랑과 오래 참음, 선함과 부드러움, 인내와 믿음을 주실 것입니다. 성령은 넉넉히 계십니다. 저는 자주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하늘에는 참된 구원이 가득한데, 왜 사람들은 구원을 대신할 다른 것을 받으려 할까요? 여러분을 위해 깨끗하고 좋은 식탁이 차려져 있는데, 왜 쓰레기통에서 주워 먹으려 합니까? 그것은 정신적으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저는 오늘날 이 나라의 문제가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 곧 성령을 마음에 받아들이고, 사도행전에서 하셨던 것처럼 그분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행하기를 거절한다면, 그 사람은 정신적으로 무언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사람들은 종교에 너무 빠지면 미친다고 합니다. 잘못된 것에 너무 빠지면 미치게 되겠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은 여러분이 미쳐 있더라도 제정신이 들게 해 줍니다. 다시 태어나기 전에는 여러분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다시 태어나기 전에는 정신도 올바르지 않습니다. 사람은 다시 태어나기 전에는 올바른 상태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태어나 본성의 영이 그 사람에게서 빠져나가고, 하나님의 영이 그 자리를 차지하여 다스리시기 전까지, 사람은 마음속으로 짐승입니다. 하나님의 영께서 그를 모든 진리와 생명으로 이끌고 인도하십니다. 그렇습니다. 그것 없이는 지옥으로 가게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은 생각에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왜 받아들이지 않을까요? 왜 그럴까요? 이 도시에 로데오 공연을 연다고 합시다. 여기 피닉스에는 한 50만 명이나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이 살겠지요. 인구가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그 가운데 3분의 1 이상이 와서 입장권 한 장에 5달러를 내고 들어갈 것입니다. 가고 싶다면 가는 것은 괜찮습니다. 또 이곳에 텔레비전 스타를 데려다가 로큰롤 파티를 열면, 피닉스 인구의 거의 50퍼센트가 갈 것이라고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모두 가운데 친히 오셔서 복을 주시고, 자신이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말씀으로 보여 주시고 입증하시는 복음 집회를 이곳에서 열면, 도시에서 겨우 한 줌의 사람들만 나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내 아버지께서 먼저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느니라.” 저는 그들이 알곡 중의 알곡, 곧 선택받은 사람들이라고 느낍니다. “내 양들은 내 음성을 듣고, 낯선 자를 따르지 아니하느니라.” 여러분 속에서 무엇이 여러분을 끌어당기고 움직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메시지를 보내시는 대상은 언제나 선택받은 사람들입니다. 언젠가는 그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받을 것입니다. “왜? 너희는 왜 하지 않았느냐? 피닉스에 집회가 없어서였느냐? 이 세대에 피닉스에서 성령을 전하지 않아서였느냐?” 심판 때가 되면 우리는 누구나 거기 서야 합니다. 거기 서서 답변해야 할 것입니다. 피닉스는 변명할 것이 없을 겁니다. 이곳에는 복음과 성령 침례를 전하고 병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아주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우리는 많은 것을 겪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무슨 일을 겪었든 상관없습니다. 여러분에게는 말씀으로 옳고 그른 것을 알아볼 만한 분별력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 보십시오. 말씀을 살펴보십시오. 어떤 사람이 의사의 문 앞에 누워 있다가 의사의 약을 먹지 않겠다고 하여 죽었다고 합시다. 그 안에 약이 없다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하지만 거기에 약이 있고, 그 약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아는 의사도 있는데, 그 사람이 자기 병으로 죽는다면 그것은 의사의 잘못도, 약의 잘못도 아닙니다. 죽게 된 것은 그 사람 자신의 잘못입니다. 죽을 필요가 없습니다.
의약품의 경우에는 때로... 장티푸스 예방약이 없던 때가 있었습니다. 없었습니다... 어린아이들의 소아마비를 예방하는 소크 백신이 나온 것도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없던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있습니다. 장티푸스 예방 접종도, 파상풍이나 발진티푸스 예방 주사도 없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없었지만 지금은 있습니다. 하나님의 예방약도 그다지 좋지 못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좋기는 했지만 완전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지금은 완전합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약을 찾아냅니까? 치료제를 알아내고, 약을 어떻게 써야 할지 어떻게 알아냅니까? 먼저 실험실로 가져가 여러 화학 물질을 섞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특정한 병균을 상대로 시험해 보니 이 물질이 그 병균은 죽이고 생명에 유익한 균은 살려 둔다는 생각에 이릅니다. 때로는 항생제 같은 것이 유익한 균까지 일부 죽입니다. 좋은 균도 나쁜 균도 죽이는 겁니다. 하지만 대개는 몸에 해로운 병균을 죽이도록 시험합니다. 그런 다음... 다음으로 하는 일은 기니피그 한 마리를 가져다가 그 혈청을 주입하여 병에 걸리게 한 다음, 기니피그의 몸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보는 것입니다. 기니피그가 살아남으면 그다음에는 여러분에게 투여합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에게, 모든 사람에게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가령 페니실린 한 번을 투여해도 어떤 사람에게는 도움이 되지만, 그다음 사람에게는 그것을 투여해서 죽게 할 수도 있습니다.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약을 먹을 때에는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하지만 오늘 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하나님의 유향인 성령은 어쩌다 맞거나 짐작으로 맞히는 것도 아니고,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완전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좋습니다! 하나님의 유향, 길르앗의 유향입니다. 병든 모든 혼, 죄로 병든 모든 혼을 위해 준비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미국에서 사망 원인 1위가 심장병이라고 합니다. 저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미국의 사망 원인 1위는 죄입니다. 심장의 문제가 아니라 혼의 문제입니다. 마음속, 그 마음 안에 있는 혼, 그것이 가장 큰 원수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듣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저는 바르게 살고 싶습니다.” 어린 소녀들과 소년들, 나이 든 사람들도 제게 그렇게 말했습니다. “바르게 살고 싶지만 술을 끊을 수가 없습니다. 음욕을 버릴 수가 없고, 이런 곳들을 멀리할 수가 없습니다.” 이유는 한 가지뿐입니다. 여러분이 그 유향을 써 보지 않은 것입니다. 이 길르앗의 유향, 하나님의 유향을 받으면, 그것이 모든 죄와 세상의 것들에 대해 여러분에게 예방 접종을 해 줄 것입니다. 마음속에 하나님의 사랑을 너무나 충만히 넣어 주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세상의 것들이 죽은 것이 되어 버립니다. 물론입니다. 위대한 길르앗의 유향입니다. 하나님의 치유하는 유향입니다.
여러분은 “저도 그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할 수 있습니다! 넉넉히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늘에 가득합니다. 이 나라 곳곳에 그것을 전하는 설교자들이 있습니다. 이 나라 곳곳에 그것으로 접종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접종을 받기 때문에 죄의 문제가 그들을 떠납니다. 죄인들과 술주정뱅이들, 도박꾼들, 폭력배들, 밀주업자들, 매춘부들, 그들 모두가 갈보리로 와서 하나님의 영광과 권능의 유향으로 접종받으면, 죄의 문제는 영원히 해결됩니다.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결코 심판에 이르지 아니할 것이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느니라.” 하나님의 영으로 접종받아 세상의 것들이 죽고,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새 피조물, 새로운 창조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접종을 받은 것입니다. 옛것들은 모두 지나갑니다. 새 생명이 들어오고, 새로운 갈망이 들어옵니다. 그런데 그것이 없다면, “사람이 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 결코 하나님의 왕국을 볼 수 없느니라.” 그러니 심판 날에 세상은 이유를 묻는 질문을 받을 것입니다. “너희는 왜 그것을 받지 않았느냐?”
사람들이 의사의 문 앞에서 죽어 가듯, 오늘날 남녀들이 교회 좌석에 앉아서 죽어 가고 있습니다. 죄인들이 그곳까지 옵니다. 경계선에 선 신자들처럼, 남녀들이 교회 좌석에 앉아서 죽어 가며, 아무 소망도 없이 하나님을 만나러 영원 속으로 떠납니다. 복음을 전하지 않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을 위한 유향이 부족하기 때문도 아닙니다. 그들이 유향을 받기를 거절하고, 의사의 약인 새 출생을 거절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지난번 밤에 말씀드렸듯이, 새 출생은 엉망진창이 되는 일입니다. 어디를 가든 마찬가지입니다. 엉망진창입니다. 어떤 출생이든 그렇습니다. 엉망진창이고, 새 출생도 엉망진창입니다. 자기가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게 됩니다.
수년 전 제 타버내클에서 설교하던 때가 생각납니다. 그때... 저는 선교침례교인이었습니다. 시내에 있는 제일침례교회의 주일학교 교사가 찾아와 밖에 서 있었습니다. 저는 언제나 거룩함을 믿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영으로 태어나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바르게 살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그 사람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그 교회의 주일학교 교사였습니다. 우리는 믿지 않았습니다... 저희 교회에는 야구팀이 없었습니다. 그쪽 교회에는 있었습니다. 그들은 일요일에 야구 같은 것을 하게 해서 사람들을 데려오곤 했지만, 저희는 그런 일을 옳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이 말했습니다. “빌리, 지난번 밤에 당신 설교를 들으러 갔었어요.” 제가 말했습니다. “그러셨어요? 저는 못 봤는데요.” 그가 말했습니다. “갔다가 밖에 서 있었어요. 안에는 사람이 많아서 안에 서 있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밖에 서 있었지요. 메시지는 감사히 들었습니다만, 뒤쪽에서 어떤 여자가 벌떡 일어나 울기 시작하고, 두 손을 들고 울면서 저 앞으로, 제단으로 달려가는 바람에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어요. 메시지의 마지막 부분은 못 들었어요. 그 여자가 울기 시작하니까, 저는 꼭... 얼어 죽을 것 같더군요.” 제가 말했습니다. “형제님, 많이 달라지셔야겠어요. 천국에 가시게 되면 거기서는 얼어 죽겠군요. 거기에는 외치는 소리와 환호하는 소리가 아주 많을 테니까요.” 그가 말했습니다. “그건 감정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제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과학적으로 말해서 감정이 없는 것은 죽은 것입니다.” 성령으로 태어난 교회든 사람이든, 조금의 감정도 없다면 죽은 것입니다.
보십시오. 아기가 태어났는데 울지도 않고, 칭얼거리지도 않고, 낑낑거리는 소리도 내지 않는다면, 그 아기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것입니까? 죽은 채로 태어난 것입니다. 오늘 밤 교인들의 문제가 바로 그것입니다. 많은 교인들이 죽은 채로 태어났습니다. 의사는 그 어린 아기에게 생명을 불어넣으려고 무엇을 합니까? 발뒤꿈치를 잡고 들어 올려 원형질에 자극을 좀 줍니다. 그렇습니다. 아기가 울음을 터뜨릴 때까지 힘껏 엉덩이를 때리는 겁니다. 오늘 밤 교회에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옛날식의 따끔한 매입니다. 교회를 다시 불러내고, 흔들어 생명을 일깨워 줄 매가 필요합니다. 교회에 필요한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출생이 일어나면 울음이 나오고, 침도 흐르고, 온갖 일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은 그것을 받기에는 너무 고상하고 점잖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왜 그랬느냐고 물으실 것입니다.
초등학교 교육 좀 받았다고 모자를 머리 한쪽으로 비스듬히 쓰고, 50달러짜리 외투를 걸친 채 자기가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듯 걸어 다니는 분은, 자기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태어났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다른 누구와도 똑같이 지저분한 출생을 겪었습니다. 말씀드리지만, 애초에 여러분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영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다시 태어나면, 그것이 여러분에게 어떤 일을 해서 독수리보다도 머리를 높이 들게 합니다. 다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물으실 것입니다. “너는 왜 그것을 받지 않았느냐? 무엇이 문제였느냐? 원인이 무엇이었느냐?” 여러분은 “그것을 전하는 것을 한 번도 듣지 못했습니다.”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들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가지 않았어도 라디오에서 들었거나, 언제인가 신문에서 보았거나, 거리의 전도지에서 보았습니다. 여러분은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것입니다. “너는 왜 하지 않았느냐? 왜? 내가 길을 마련했다. 내 사람을 보냈고, 내 사도들을 보냈으며, 내 선지자들을 보냈다. 내 성령을 보냈다. 표적들과 이적들을 보였다. 이 은사들이 일하는 것과 성경을 통해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그것이 바로 나였음을 입증했다. 그런데 너는 왜 받아들이지 않았느냐?” 바로 그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지난번 밤에 누군가 제게 히브리서 10장에 관해 질문했습니다. “고의로 죄를 지은 자들, 고의로 죄를 짓고 다시 자신을 새롭게 하여 회개해야 하는 자들에게는, 심판을 두렵게 기다리는 것밖에 남아 있지 아니하니라. 모세의 율법을 멸시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인해 죽었거든,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자기 발아래 짓밟고, 그것을 거룩하지 않은 것으로 여기며, 은혜의 역사에 무례히 행한 자가 당연히 받을 것으로 생각되는 형벌은 얼마나 더 극심하겠느냐?” 제가 말했습니다. “신명기 14장을 읽어 보십시오. 이스라엘 사람들인 그 정탐꾼들이 갈렙과 여호수아와 함께 경계 지대까지 가서, 그 땅에서 가져온 포도를 맛보았습니다. 하지만 돌아왔을 때는 믿지 않는 겁쟁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말했습니다. ‘아, 우리가 차지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너무 벅찹니다. 아, 그들은 메뚜기 같아... 아니, 우리가 그들 곁에 서면 메뚜기 같습니다. 도시마다 성벽이 둘러쳐져 있습니다. 우리가 차지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갈렙은 그들을 진정시켰고, 여호수아는 말했습니다. ‘우리는 차지할 수 있습니다.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소수일지라도 차지할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정탐꾼들은 형편과 자기들이 치러야 할 대가를 보고 있었지만, 갈렙과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약속을 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그 땅을 주었다! 가서 차지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광입니다! 성령은 이 혼인 만찬에 부름받은 누구에게나 주어집니다.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든 상관없습니다. 가서 받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받지 않으면 그분께서는 왜 받지 않았느냐고 물으실 것입니다. 왜입니까? 여러분을 위해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그 땅을 차지하지 못했다면, 왜 못했습니까? 그들은 “우리를 대적하는 자들이 너무 많았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위하면 누가 너희를 대적할 수 있느냐?”라고 하셨습니다. 거기 있는데, 무엇이 문제입니까? 그 사람에게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자, 보십시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마음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느끼는 젊은 사역자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자기 죄를 회개하고 학교에 가서 교육을 받습니다. 그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돌아와서도 여전히 담배를 피울지 모릅니다. 아직 음욕의 영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저는 그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제게서 없애 주십시오.” 하나님의 영께서 오셔서 그의 혼을 거룩하게 하시고, 그 욕망을 없애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그는 바로 경계선까지 이끌려 와, 집회에 앉아서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것을 지켜봅니다. 다른 사람들이 치유받는 것을 보고,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듣고, 표적들과 이적들이 일어나는 것을 봅니다. 둘러앉아 지켜보면서도 거기에 손을 대기는 두려워합니다. 그것이 경계선에 선 신자입니다. 그런 사람은 돌아서 떠나 버리면 더는 사면을 받을 수 없습니다. 바로 여기까지 와서 그 땅을 들여다보기까지 합니다. “진리에 관한 지식을 받은 자”입니다. 진리에 관한 지식을 얻었고, 그것이 옳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체면 때문에... “아, 내가 이렇게 하면 이런 일이 생길 거야. 저것을 받아들이면 저런 일이 생길 거야.” 보십시오, 그들은 거절하고 돌아서 떠나 버립니다. 그분께서는 “자기를 거룩히 구별한 언약의 피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거기까지 온 겁니다. 문턱까지 와서 안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는 구원받고 거룩하게 되었지만, 여기까지 와서 성령을 받는 것, 그 새 출생을 들여다보고는 아무 상관도 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할 겁니다. “아, 그런 사람들에게는 괜찮겠지만, 나는... 아,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언젠가는 하겠지.” 바로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 사람은 병들었으면서도 의사의 약을 먹으려 하지 않습니다.
아, 이러니 어머니가 저희에게 피마자유를 먹이시던 때가 생각납니다. 저희는 시골에서 자랐습니다. 고기 껍질을 가져다가 낡은... 낡은 설거지 대야에 넣고 끓여 기름을 내고, 그것으로 빵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옥수수빵과 검은눈콩을 먹었습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여기 남부 출신으로 그것을 먹어 본 분이 몇 분이나 됩니까? 순무 잎은요? 아, 세상에, 오늘 밤 잠잘 짚 요까지 있다면 꼭 집에 온 기분이겠군요. 보십시오, 그렇게 해서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토요일 밤마다 저희 꼬마들은 모두 목욕을 해야 했습니다. 브래넘 집안의 꼬마들 여덟아홉 명이 쭉 서 있었습니다. 제가 맏이였으니 마지막으로 목욕했지만, 물은 맨 처음 아이가 쓴 바로 그 물이었습니다. 낡은 나무통에 낡은 주전자에서 물을 조금 더 부어 줄 뿐이었습니다. 학교에 가는 저희는 모두 피마자유를 한 번씩 먹어야 했습니다. 월요일 아침 학교에 갈 때 몸이 괜찮도록 말입니다. 저희 몸속을 모두... 저희가 먹어야 했던 그 음식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 냄새를 견딜 수 없습니다. 제 차례가 될 때마다 코를 틀어막았습니다. “엄마...” 제가 맏이였으니 먼저 먹어야 했습니다. 저는 “아, 엄마, 구역질이 나요. 정말 못 먹겠어요.”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속이 메스껍지도 않다면 네게 아무 효험도 없지.”라고 하셨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이 여러분을 뒤흔들어 속이 메스꺼울 정도로 만들지 않는다면... 그것은 여러분에게 유익할 것입니다. 의사의 처방입니다. 의사가 지시한 것입니다. 코를 틀어막고 먹으십시오. 그것이 가장 좋습니다. 여러분의 뻣뻣한 기운을 빼 줄 것입니다. 그렇게 할 것입니다. 여러분을 풀이 죽게 할 것입니다. 자기가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일을 하게 만들 것입니다. 조금 엉망진창이 되게 할지는 몰라도, 분명히 여러분을 바로잡아 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 사람이 하나님께서 “너는 왜 하지 않았느냐? 왜 받지 않았느냐?” 하고 물으실 때 어떻게 답변하겠습니까? 여러분 가운데 가톨릭 신자들에게 말씀드리자면, 동정녀 마리아를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아들을 낳은 뒤에 그것은 마리아에게 다소 쓴 약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기 전에, 다락방으로 이어지는 바깥쪽의 그 작은 사다리를 올라가, 성령으로 너무나 충만하여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릴 때까지 거기 머물러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마리아도 들어가기 전에 그렇게 하게 하셨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그보다 못한 상태로 들어가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너는 왜 하지 않았느냐?” 하고 물으실 것입니다. “너는 왜 하지 않았느냐?”라는 질문에 이유를 대야 할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왜냐고 물으실 것이고, 여러분은 그 이유를 대야 합니다. 뭐라고 대답하겠습니까? 왜입니까? 왜 하지 않았습니까?
의사가 약을 두고 갔는데, “왜 먹지 않았습니까?” 하고 묻습니다. 그러고 나니 열이 높이 올랐습니다. “왜 먹지 않았습니까? 왜 안 먹었습니까? 제 약을 먹지 않으면 제가 어떻게 치료해 드릴 수 있습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의 약을 받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여러분을 구원하실 수 있습니까? 그 약을 받지 않으면 어떻게 여러분을 고치실 수 있습니까? 제가 말씀드렸듯이, 첫째가는 문제는 심장병이 아니라 죄의 문제입니다. 그러면 죄란 무엇입니까? 담배를 피우는 것이 죄가 아닙니다. 간음하는 것이 죄가 아니며, 술을 마시고 욕하는 것이 죄가 아닙니다. 그것들은 죄의 속성입니다. 죄는 하나뿐입니다. 그것은 불신입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한 아무리 거룩하고 경건하고 선하게 살더라도, 기적의 시대는 지나갔다고 말하며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라고 한 성경 말씀을 부인한다면, 그 사람은 죄인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 바리새인들은 할 수 있는 한 거룩하게 살았습니다. 장로들의 전통을 지켰습니다. 깨끗하고 올바르고 훌륭하고 교육도 잘 받은 사람들이었지만,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메시아셨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시고, 자신에 관해 말한 성경기록들을 성취하신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왜?”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자기들의 장로들이 말했기 때문입니다... 자기들의 장로들이 말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성경기록들을 성취하셨습니다. 언젠가 왜 성령을 받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도 그럴 것입니다. 교회가 여기 있고, 설교자들이 여기 있으며, 하나님의 권능이 여기 있고, 그리스도께서 여기 계십니다. 마지막 날에 있을 것이라고 그분께서 약속하신 표적들과 이적들이 여기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질문을 받을 것입니다. “너희는 왜 성령을 받지 않았느냐?
왜 그랬느냐?” 하나님께서 길을 마련하셨습니다. 그러면 왜 받아들이지 않습니까? 이 약에 관한 문제는 어느 정도 따져 볼 수 있을 겁니다. 어떤 사람은 돕고 어떤 사람은 죽게 하니, 의문을 가질 만합니다. 그다지 정확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의 몸이 기니피그와 같지는 않고, 우리 모두가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가능하다면 이번 주에 그 점을 다루고 싶습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흉내 내려고 하는 것에 관해서 말입니다. 여러분은 결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똑같은 사람을 둘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성령께서 이끄시는 길로 가십시오. 세상의 수많은 사람을 살펴보아도 엄지손가락 지문이 같은 사람은 둘도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다르게 만드셨습니다. 그분은 다양성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들을 다르게 만드셨습니다. 옆 사람을 흉내 내려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하라고 하시는 일을 하고, 그 일을 계속 붙드십시오. 하늘에서도 땅에서도 여러분의 자리를 대신할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목적을 가지고 여러분을 만드셨습니다. 그것을 지키십시오.
우리는 이 약을 기니피그에 접종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동물입니다. 동물에게 접종한 뒤 그 혈청을 사람에게 투여합니다. 그다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 접종이 여러분에게는 효과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접종은 여러분에게 효과가 있습니다. 완전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진짜 혈청이 오기 전까지는 황소와 염소와 양 등의 피를 통해 그것의 견본이 주어졌습니다. 그것은 그리 대단하지 않았습니다. 동물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느 날 하늘에서 가장 거룩하신 분, 하나님의 아들이 오셨습니다. 그분은 유대인도 이방인도 아니셨습니다. 하나님이셨습니다. 유대인도 이방인도 아니셨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인종을 나누는 선은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피가 남성에게서 온다는 것을 압니다. 생명의 씨는 남성을 통해 옵니다. 이 경우에 마리아에게는 난자가 있었지만, 씨, 곧 혈구는 그것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에게서 왔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유대인이셨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아니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위대하신 성령께서 동정녀를 덮으시고 혈구 하나를 창조하셨습니다. 거기에는 성적 욕망이 전혀 없었으며, 거룩했습니다. 그 세포가 그 안에서 형성되어 하나님의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그 동정녀 탄생과 갈보리에서 대신 겪으신 고난과 죽음, 흘리신 피를 통해 거룩하게 된 교회가 나옵니다. 그 교회를 창조하신 영으로 채우시려는 것입니다. 아멘. 바로 그것입니다! 그것이 복음입니다. 어차피 여러분은 저를 광신도라고 부를 테니, 지금부터 부르셔도 좋습니다. 그렇습니다. 아, 오직 예수님의 피뿐입니다! 아, 귀한 그 피의 흐름 나를 눈처럼 희게 하네. 다른 샘은 알지 못하니, 오직 예수님의 피뿐이라네. (바로 그것입니다!) 무엇이 나의 죄를 씻을 수 있을까? 오직 예수님의 피뿐이라네. 무엇이 나를 다시 온전하게 할 수 있을까? 오직 예수님의 피뿐이라네. 아, 귀한 그 피의 흐름.
무엇이 저를 고쳤습니까? 예수님의 피입니다. 무엇이 저를 구원했습니까? 예수님의 피입니다. 그것이 제 소망과 주제의 전부입니다. 제가 부르짖는 것도, 간구하는 것도 오직 예수님의 피뿐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쓰시는 약입니다. 여러분을 다른 사람으로 만듭니다. 새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예방약, 유향을 시험하려 하셨을 때... 유향이란... 그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길르앗에는 유향이 없는가? 거기에는 의사가 없는가? 그렇다면 왜, 어찌하여 내 백성의 딸은 그 병에서 회복되지 않았는가? 왜 아직도 이런 상태인가? 유향이 없고, 의사가 없으며, 도와줄 자도, 진리를 말해 줄 자도, 올바른 약을 줄 자도 없는가? 왜 이같이 병들어 있는가?”
우리가 계속 서로 갈라진다면 심판 날에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실지 궁금합니다. 유향에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권능에, 예수 그리스도께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그분께서는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것에 의해 모든 사람들이 너희가 내 제자임을 알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말씀을 어떻게 할 겁니까? 여기에는 유향이 없습니까? 여기에는... 여기에는, 우리에게 무엇이 문제입니까? 왜입니까? 교회는 왜 아직 병들어 있습니까? 우리를 하나로 모을 유향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의사이신 성령이 안 계시기 때문도 아닙니다. 우리가 고의로 그것을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이유입니다.
다시 주목하십시오. 그 유향이... 저는 유향을 예방약이라고 부릅니다. 그 예방약을 시험하실 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기니피그에게 주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 요르단강 가에서 주셨습니다. 그것은 그분의 일생 동안 효력을 유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 자신의 육체에 그 예방약을 주신 지 몇 분, 아니, 며칠 뒤에... 하나님께서 육체가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그저 철학자, 평범한 사람, 한 선지자라고 부릅니다. 그분은 철학자 이상이셨고, 선지자 이상이셨으며, 사람 이상이셨습니다. 그분은 동정녀에게서 나셔서 육체로 나타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성령, 그 영께서 마리아를 덮으셔서 성막, 곧 사람의 몸을 낳게 하셨습니다. 그 몸이 하나님의 아들이었고, 하나님께서는 그 안에 거하시며 세상을 자신과 화해시키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처럼 보이셨고, 하나님처럼 행동하셨고, 하나님처럼 말씀하셨고, 하나님처럼 치유하셨습니다. 육체로 나타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분은 사람 이상이셨습니다. 육체로 나타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사망이 그 육체에 자기 침을 박으려 했을 때, 지금까지 쏘았던 그 어떤 것과도 다른 무언가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선지자를 쏘면 그 선지자는 죽었습니다. 선지자 하나를 쏘고 나면 또 다른 선지자를 쏘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아들을 쏘았을 때에는 그 침이 거기에 박혀 버려, 사망에게서 빠져나왔습니다. 오늘날 사망에게 쏘는 침이 없는 것은 하나님의 육체가 그 침을 붙잡아 뽑아 버렸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그분이 누구신지 몰랐습니다. 줄곧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것을 해 보아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것을 해 보아라.”라고 했습니다. 그분의 얼굴에 천을 둘렀습니다... 그분께서는 그런 환상들을 보셨지요. 마귀는 자기 하수인을 시켜 그분의 얼굴에 그렇게 천을 두르고, 머리를 치며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누가 너를 때렸는지 말해 보아라.”라고 하게 했습니다.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드러내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그 마귀가 침을 박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면 그 침을 뽑아 버리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 갈보리에서 그분을 쏜 뒤로 마귀에게는 더 이상 침이 없습니다. 윙윙거리며 떠들어 대고 온갖 소리를 낼 수는 있지만, 그 침은 저쪽에 있습니다. 할렐루야! 갈보리에 박혀 있습니다. 그러니 바울이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도 당연합니다. “오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무덤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노라.” 아,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예방약을 시험하려 하셨을 때, 자신의 아들에게 접종하셨습니다. 사람들이 그분의 얼굴에서 수염을 한 움큼 뽑아내고 얼굴에 침을 뱉었을 때, 그분께서는 다른 쪽 뺨도 그들에게 돌려대셨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접종받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마귀가 그분을 시험하며 말했습니다. “너는 기적을 행하는 자라지. 여기 이 사람을 고쳐 봐라. 이것도 해 봐라.” 우리에게 그런 권능이 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마 돌아서서 그렇게 해 보이고는 “봤지? 내가 할 수 있다고 했잖아.”라고 할 겁니다. 하지만 그분은 접종을 받으셨습니다. 효력이 유지되었습니다. 아버지께서 하라고 하신 것만 행하셨습니다. 우리에게 그만한 권능이 주어진다면, 조끼에 엄지손가락을 끼고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 여기 있는 여러분 모두 잘 알아 두십시오. 여러분은 제 교파로 와야 합니다. 그것을 가진 사람은 저니까요.” 보십시오. 그분은 어떠셨습니까? 그분은 접종받으셨습니다.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아버지께서 보여 주시기 전에는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고,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본 그대로 아들도 행하느니라.” 그 접종은 효력이 유지되었습니다.
그분께서 갈보리에 가셨을 때에도 효력이 유지되었습니다. 죽음으로 들어가셨을 때에도 유지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접종이 여러분을 죄에서 지켜 줄 수 있음을 입증하셨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부활절 아침에도, 주님의 이름을 찬송할지어다, 그 접종은 효력이 유지되었습니다. 그분께서 죽으시고 그 몸이 무덤에 있은 지 사흘이 되어도 효력이 유지되었습니다. 그분께서는 그 접종으로 말미암아 부활절 아침에 무덤에서 일어나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둘러보며 “그 접종이 내게도 좋겠군.” 하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참된 신자들 말입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우리가 무엇을 할지 알려 주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엠마오에서 오던 한 사람, 길 위에 있던 두 사람을 봅니다. 한 사람이 나타나 함께 걸으며 하루 종일 그들과 이야기했습니다. 앉으셨고, 더 가려는 듯이 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 죽으시기 전에 하셨던 것과 똑같은 어떤 일을 하셨습니다. 그들은 부활하신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 길에서 그분과 이야기할 때 우리 마음이 우리 속에서 뜨겁지 아니하더냐?”라고 말했습니다. 그분께서 부활하시기 전, 아니, 죽으시기 전에 하셨던 것과 똑같이 행하시는 것을 봅니다. 부활하신 뒤에도, 그 뒤에 하셨던 것과 똑같이 일하시고 행하셨음을 봅니다. 그들은 그분이 부활이요 생명이심을 알았습니다. 그분만이 유일하십니다. 오직 그분뿐입니다! 교회도, 사역자도, 선지자도, 그 무엇도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영생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영생을 주시는 분은 오직 그분뿐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가지 못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멘.
교회 신조로 어떻게 그분을 만나겠습니까? 교파로 어떻게 그분을 만나겠습니까? 악수나 물을 뿌리는 의식으로 어떻게 그분을 만나겠습니까?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은 여러분도 압니다. 여러분은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모든 자들아, 너희는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 다른 누구도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는 왜 그랬느냐는 질문을 받을 것입니다. 그때 120명이 이것을 받을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이 모든 일을 지켜본, 겁 많은 유대인 120명을 데려오셨습니다. 그들은 그분의 기적들을 보았고, 그분 안에서 접종의 효력이 유지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분께서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않으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분의 온유함과 다정함을 보았습니다. 치유하시는 권능을 보았고, 무덤에서 일어나시는 권능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보고도 여전히 겁쟁이였습니다. 혈청은 있었지만, 그들은 아직 받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위층으로 올라가 작은 촛불, 기름으로 켜는 불 하나를 밝혀 놓고 방 안에 틀어박혀, 열흘 밤낮 동안 의사가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아! 갑자기 급하고 강력한 바람 소리 같은 소리가 들렸습니다. 접종할 약이 왔고, 그분께서 120명에게 접종하셨습니다. 형제님, 그분께서 접종하시자 그들은 거의 발작이라도 하는 듯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온갖 요란한 행동을 했습니다. 뛰고 춤추고 방언으로 말하며 거리를 달렸습니다. 하지만 접종을 받은 것입니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혈청이 두려운 겁니다. 그것을 받으면 행동이 이상해집니다. 하지만 아, 접종받았을 때의 그 느낌, 여러분에게 주어지는 그 안전함이란! “사람이 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왕국을 볼 수조차 없느니라.”
사람들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한 번이라도 그 안에 들어가 보기 전까지는 그 사람들이 미쳤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아편에 취한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까? 아편에 취할 수 있습니다. 아편 담뱃대를 피우는 것입니다. 얼마나 아프든, 어떤 상태든 상관없습니다. 아, 온 세상이 그저 자기 것이 됩니다. 그것뿐입니다. 그것은 세상에 속한 것, 의사가 쓰는 아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도 아편이 있습니다. 아편은 어디에서 얻습니까? 백합에서 얻습니다. 그분은 골짜기의 백합이셨고, 갈보리에서 그분을 짓이겨 아편을 짜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접종받을 수 있고, 날마다 일요일이 됩니다. 아, 이 사람들은 새 포도주에 취한 것이... 독주에 취한 것이 아니라, 이 새 포도주, 곧 하나님의 권능, 높은 곳에서 그들에게 부어진 성령에 취한 것입니다! 거기에 길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말합니다. “하지만 브래넘 형제님, 그것은 그 옛날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잖아요.” 아, 아닙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곳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사람들아, 형제들아, 우리는 어떻게 접종받습니까?” 그들 가운데 의사가 한 명 있었습니다. 아셨습니까? 시몬 베드로 의사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아, 여기 유향이 넉넉히 있습니다. 지금은 제가 의사입니다.” “처방을 주십시오. 우리가 어떻게 해야 구원받습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너희는 회개하고, 너희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 죄들의 사면을 얻으라. 그러면 너희가 성령님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 이 처방은 너희와 너희 자손들과 멀리 떨어져 있는 자들, 곧 주 우리 하나님께서 접종받도록 부르실 모든 사람에게 유효하니라.”
저는 그 처방을 써 보았습니다. 여러분도 그 처방을 써 볼 수 있습니다. 회개하고 침례를 받으십시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시오. 그러고 나서 성령께서 여러분 안에 들어오시지 않는지 보십시오. 이 처방은 언제까지...? 결코 어떤 사람의 이론을 처방으로 써 주지 마십시오. 그렇게 하면 곤란을 겪게 되고,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그분의 이론, 그분의 처방, 그 약속을 받으십시오. 사람들은 “아, 그 오래된 처방은 아주 오래전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지요.”라고 합니다. 아, 아닙니다. 시몬 베드로 의사, 예수님께서 보내신 그분의 의사 말입니다. 그분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왕국의 열쇠들을 네게 주노라. 내가 네게... 섞어 저을 그릇을 네게 주겠다. 거기에 회개와 물침례와 이 모든 것을 조금씩 넣어 함께 섞어라. 모두 한데 섞어라. 확인해 보아라. 듬뿍 먹어 보고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보아라.”
아, 그러면 어느새... 새 포도주를 말합니까? 그것을 마시면 여러분에게 어떤 일이 일어납니다! 아, 그들은 나가 모든 곳에서 복음을 선포했고, 주님께서 그들과 함께 일하시며 따르는 표적들로 말씀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아, 그것을 안다는 것은 얼마나 영광스럽습니까! 심판 날에 하나님께서 물으실 것입니다. “너는 왜 그 처방을 받지 않았느냐?” 여기 성경에 쓰여 있습니다. 여기 이유가 있고, 여기 성령이 계십니다. “주님, 저는 그것이...”라고 말합니다. “내 의사가 그것은 너희와 너희 자손들과 멀리 떨어져 있는 자들, 곧 병든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알려 주었다. 병든 모든 사람, 그들을 위한 치유의 유향이 있다.” 죄로 병든 혼을 위한 유향이 길르앗에 있습니다.
친구 여러분, 들으십시오. 우리는 이리저리 흩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회에 가입했다가, 일신교회에 가입했다가, 하나님의 교회에 가입하고, 그러고는 독립교회로, 감리교회로 갔다가 다시 침례교회로 돌아갑니다. 교적 증명서를 들고 이리저리, 돌고 또 돌며 다시 돌아다닙니다. 그런 것은 잊으십시오.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접종입니다. 그러면 어느 교회에 있든 상관없습니다. 접종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 안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오순절교에는 찌꺼기나 주워 먹는 자들이 많습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어느 곳이나 다 있습니다. 예수님께도 열둘 가운데 하나가 있었으니, 우리가 그분만큼 잘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물론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흉내 내는 자들, 연기하는 자들, 자기에게 없는 것을 가진 듯 행동하려는 자들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가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위조지폐 1달러짜리가 보인다면, 그것은 진짜 지폐를 본떠 만든 것임을 보여 줍니다.
친구 여러분, 성경기록들을 탐구하십시오. 교회에 가입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교회에 가입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저는 모든 사람이 교회에 가입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가 맡은 자리를 지켜야 한다고 전적으로 믿습니다. 자기 목사님이나 전도자나 누군가 거기서 설교할 때, 자기 자리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진 모든 것으로 그 교회를 지원해야 합니다. 십일조와 헌금으로, 또 무슨 일을 부탁받든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목사님이 교회에서 무엇을 해 달라고 부탁하시면 해야 합니다. 그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끝내지는 마십시오. 먼저 접종을 받으십시오.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려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먼저 성령을 받으십시오. 그러면 나머지도 잘 따라옵니다. 그런 다음 여러분이 원하는 곳, 여러분이 택한 어느 교회에든 들어가십시오.
이 성경에는 보물들이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손들과 멀리 떨어져 있는 자들, 곧 주 우리 하나님께서 부르실 모든 사람들을 향한 것이니라.”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는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또 “소돔의 날들에 그러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도 그러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과 같은 인간의 육체를 통해 일하는 사역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함께 같은 일을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직전에 이런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모든 선지자가 그것을 말했습니다. 성경기록들과 모든 것이 그것을 뒷받침합니다. 멀찍이 서서 “글쎄, 어떨까.” 하고 있지 마십시오. 성경을 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성경기록들을 탐구하라. 너희가 그것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줄로 생각하는데 그것들은 나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들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야 알 수 있습니다. 성경기록들을 탐구하십시오. 성령은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까? 성령은 이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까? 성령은 이 세대를 위한 것입니까? 성경은 그렇다고 했습니다. 믿는 자들의 표적들이 따라야 할 세대가 이 세대입니까? 성경기록들을 탐구하십시오. 그렇게 되리라고 했습니다. 이른 비와 늦은 비가 모두 이 세대에 부어질 것입니다. 어느 세대입니까? 저 무화과나무가 싹을 내는 것, 이스라엘이 돌아와 나라가 되는 것을 보는 세대입니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나고 있을 때, 교회 안에서도 이런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여기 그것들이 있습니다.
아, 친구 여러분, 여러분에게 있는데도 모르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기회가 있습니다. 그것을 전하는 말씀도 들었습니다. 여기서 저에게 솔직히 “브래넘 형제님, 저는 아직 성령을 받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할 분이 몇 분이나 됩니까? 손을 드십시오. 솔직하게 하십시오. 그저 손을 들고 “저는 성령을 받지 못했습니다.”라고 하십시오.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건...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건...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신실한 태도입니다. 여러분은 아직 성령을 받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받을 수 있습니다. 그 약속은 여러분을 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브래넘 형제님, 저는 장로교인입니다.”라고 하실지 모릅니다. 그런 식으로 어떤 사람인지는 상관없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께서 위해 죽으신 피조물이며, 그 약속은 모든 세대와 모든 사람을 향한 것입니다. “누구든지 오기 원하는 자는...” [녹음 공백]
...제 기억으로는 그 여자가 집을 팔고, 가진 모든 것과 살림살이를 다 팔았는데도 굶어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래서 카운티에서 그 사정을 조사하러 왔습니다. 아직 노령연금을 받을 나이는 아니었기에, 그저 사정을 알아보러 와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부인, 친척이 아무도 없습니까?” 그 여자가 말했습니다. “있지요. 제게는 더없이 귀한 아들이 하나 있어요.” 그 사람이 물었습니다. “아, 어디에 있습니까?” “인도에 있어요.” “아, 인도에요. 거기서 무엇을 합니까?” “사업가예요.” “인도에 있는 사업가군요.” “네.” 그 여자가 말했습니다. “참 사랑스러운 아들이지요. 사업가예요.” 그 사람이 물었습니다. “도움을 보내 주지는 않습니까?” “아니요, 보내 주지 않아요.” “아들에게서 소식도 못 듣습니까?” 그 여자가 말했습니다. “늘 소식을 들어요. 제가 본 것 중에 가장 예쁜 그림들을 보내 주지요. 하지만 돈은 한 번도 보내 주지 않아요. 그 가엾고 사랑스러운 아이는 짐이 너무 무거워서, 어떻게 해야 할지도... 사업에 짓눌려 있으니 아무것도 보내 줄 수 없는 모양이에요. 그래도 참 착한 아들이에요. 사업이 아주 잘되고 모든 일이 얼마나 잘 풀리는지 이야기해 주거든요. 하지만 돈을 보내 주지 않는 것을 보면 그럴 형편이 안 된다는 걸 알아요. 그래도 아주 예쁜 그림들은 보내 줘요.” 그 사람이 물었습니다. “부인, 어떤 그림들입니까?” 그 여자가 말했습니다. “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았어요. 전부 가지고 있어요. 성경책 안에 넣어 두었지요.”
그 여자는 가서 성경책에서 약 10만 달러어치의 인도 은행 환어음을 꺼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던 것입니다. 거기에는 예쁜 그림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몰랐습니다. 그 여자는 부자이면서도 그것을 몰랐습니다. 성경책에서 자기 보물을 발견한 것입니다. 형제님, 오늘 밤 한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여자에게는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었습니다. 부자이면서도 몰랐던 것입니다. 오늘 밤 여러분도 부자이면서 모르고 있습니다. 여기 성경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영으로 부요하게, 생명으로 부요하게 할 약속들을 써 두셨다는 사실이 여러분의 눈에 가려져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 결코 일어나리라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을 여러분에게 해 줄 것입니다. 그것들이 여기 있습니다. 찾아서 여러분의 것으로 붙잡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의 것입니다. 이 책의 모든 약속이 나의 것이라네. 모든 장, 모든 절, 모든 줄이. 나는 그분의 신성한 사랑을 의지하네, 이 책의 모든 약속이 나의 것이기에.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와서 생명수의 샘들에서 값없이 마실지니라.” 그러고 나서 우리가 이유를 묻는 질문을 받으면, 그때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때는 어떻게 하려나, 그때는 어떻게 하려나?”라는 옛 노래를 들어 보셨지요? 마지막 것이 열리면 그때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메시지를 거절한 사람들이 이유를 대라는 요구를 받으면, 그때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언젠가는 마지막으로 나팔이 울릴 것입니다. 성경은 강단 위에 닫힌 채 놓여 있고, 흉내 내던 자는 마지막 연기를 하며, 해는 서쪽으로 지고, 무기들은 마지막으로 모아 세워질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보내 주신 이 보물들을 가지고 무엇을 했는지 이유를 묻는 질문을 받을 것입니다. 이것은 보물의 책입니다. 그것을 생각하면서 머리를 숙이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부요하심이 한 편지, 성경의 메시지를 통해 저희에게 보내졌습니다. 저희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아들 예수님의 피를 통해 성령을 정하셔서 저희에게 이 메시지를 전하게 하셨습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참된 증인이십니다. “그분, 곧 성령께서 오시면, 너희에게 이 일들을 기억나게 하시리라.”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 안에... 이 책의 페이지들에 말로 다 할 수 없는 보물과 부요함이 여러분에게 있다는 것을 기억나게 하십니다. 그뿐만 아니라, 앞으로 일어날 일들도 보여 주실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들을 성령께서 저희 안에서 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일들이 참되다는 것을 알기에 저희는 참으로 기쁩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셨고, 성경에도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분을 믿은 모든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아들들과 딸들이 되는 권능을 주셨느니라.”
아버지, 오늘 밤 기도합니다. 성령을 받지 못한 이 사람들, 혹은 여기 아직 구원받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권능을 주셔서, 오늘 밤 성경에 있는 메시지를 받아들이게 하옵소서. 베드로가 오순절 날에 말한 것처럼,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손들을 향한 것이니라.” 아버지, 제가 그것을 처방에 빗대어 말했습니다. 그 처방은 모든 세대에 유효해서, 누구나 그것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 주님의 은혜와 긍휼로 이 말씀을 이루어 나타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 사람들이 오늘 밤 얻으려고 온 것을 한 사람 한 사람 받게 하옵소서. 자기의 질병, 혼의 죄라는 병, 불신과 미신의 병에서 온전해지지 못한 채 이곳을 나가는 사람이 한 명도 없게 하옵소서. 자기 교회로 돌아가 이전보다 더 좋은 교인이 되어, 그들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통해 영생이 있다는 빛을 전하게 하옵소서. 아버지, 허락해 주옵소서. 아멘.
[한 자매가 방언으로 메시지를 전한다. 다른 사람이 통역한다.] 방금 전해진 그 메시지는 특정한 사람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교회 전체에 하신 말씀이 아니라, 한 사람에게로 간 것입니다. 누군가 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느끼고 알게 될 것입니다.
성령께서 여기 계십니다.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여러분 중에는 좋은 가르침을 받으며 자라 오신 분들이 계십니다. 제가 여러 번 보았는데, 성령께서 메시지를 주실 때, 때로 사람들은 압니다... 기분이 참 좋고 마음에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매일 밤 얼마나 질서 있게 되었는지 보셨습니까? 그분들은 설교 메시지를 결코 방해하지 않습니다. 강단에서 전해지는 메시지에 기름부음이 있다면, 그분들은 잠잠히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대언자들의 영은 대언자들에게 통제를 받습니다. 아시겠죠? 그리고 메시지가 끝난 뒤 영께서 말씀하시고 통역을 주시는 것을 보셨습니까? 보십시오, 정확히 성경에 맞고 질서가 있습니다. 그것이 성령께서 그렇게 되도록 정하신 방식입니다.
여기 누군가가 그 메시지의 영향을 느끼고 있습니다. 잠깐 기다리시는 동안 제가... 보십시오, 어떤... 저는 그것이 옳다는 것을 알고, 제단 앞으로 초청하는 것도 믿습니다. 사람들이 앞으로 나와 고백하는 것 같은 일 말입니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그분을 믿는 모든 사람이었습니다. 보십시오, 믿는 모든 사람입니다. 여기 성령을 어정쩡하게 구하면서 이리저리 다니던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혹은 하나님을 모르는 어떤 죄인이, 서너 번 시도는 해 보았지만...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누구든지 그 사람의 마음속으로 그 메시지가 지금 깊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지금이 바로 여러분을 위한 때입니다.
성령께서 이 메시지들을 주시고, 역사하시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일들을 행하고 계십니다. 여기 병들어 도움이 필요한 분이 몇 분이나 됩니까? 손을 들고 이렇게 말씀하십시오. “제게는 도움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 손을 듭니다. 제 몸의 병이 낫기를 원합니다.” 좋습니다. 주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아시도록... 오늘 밤 이곳에서는 그런 것을 느끼지 않지만, 사람들은 제가 자기들의 생각을 읽는다고 생각하며, 저는 그것을 여러 번 느꼈습니다. 독심술 말입니다. 강단에 있는 누군가를 바라보고 그 사람과 이야기하니까요. 하지만 독심술의 원리를 하나라도 아는 사람은 그것이 틀린 생각이라는 것을 압니다. 심리학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틀렸음을 압니다. 아시겠죠? 기억하십시오. 그 두 영은 너무나 비슷해서 바로 그 선택받은 자들까지 속일 정도입니다.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같이...” 그것은 미신적인 지각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세상에는 그 이름 아래 일어나는 일이 아주 많습니다. 하지만 보십시오, 유령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것은 거기에 없으니까요. 그러나 주의 천사는 사진이 찍혔습니다. 여러분이 여기 그 사진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주 여러 번, 거듭거듭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은 오래 남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영을 알도록 말입니다.
성경은 말씀했습니다... 자, 봅시다. “소돔의 날들에 그러했던 것같이.” 그 말씀을 붙잡읍시다. 보통은 “그분의 옷에 손을 대라.”라는 말씀을 사용합니다. 이번에는 이 말씀을 생각해 봅시다. 주님, 오늘 밤 병든 사람들을 위해 소돔의 날들에 있었던 일을 붙잡고자 합니다. 그 육체 안에 계셨던 하나님의 천사가 아브라함에게 표적을 주셨습니다. 소돔, 곧 세상이 멸망할 때가 가까웠다는 표적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기억하시는 분이 몇 분이나 됩니까? 물론 기억하시지요. 창세기에 있습니다. 신약에서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때, 곧 사람의 아들이 오기 직전에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소돔에서 그러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도 그러하리라.”
저기 계신 병든 분들이... 오늘 밤 여기 제가 아는 사람이 앉아 있다는 것은 압니다. 바로 여기 앉아 계신 분은 윌리엄스 형제님이고, 또 바로 여기 앉아 있는 세 분이 있습니다. 저는 이분들을 압니다. 아칸소에서 온 이 세 분, 바로 여기 있는 이 세 남자분들 말입니다. 그 밖에는 여기 앉아 있는 진 고드 형제님이 있습니다. 진 형제님과 리오 형제님은 제 동역자들입니다. 하지만 저 안쪽은, 제가 볼 수 있는 한... 여기서 저 안쪽의 누군가를 알아보기조차 어렵습니다. 여기 사역자 누구에게 물어도 그렇다고 할 것입니다. 아시겠죠? 하지만 기도합시다. 주님께서 도와주시고 저희 위에 긍휼을 베풀어 주실지 구해 봅시다. 기도 카드는, 지금 저희에게는 하나도 없습니다. 걷어들였고, 그들은... 저희는... 나누어 주지 않았습니다. 금요일 밤에는 모든 분을 위해 다시 기도 줄을 세울 것입니다. 기도 카드를 한꺼번에 많이 나누어 줄 것입니다. 원하는 분은 누구든, 지난번 밤처럼 줄을 따라 바로 앞으로 지나오시게 할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러면 모두가 기도를 받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기도 카드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필요 없습니다.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제가 여러분에게 진실을 말했다는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을 때... 사마리아에서 그 여자가 이 표적을 받았을 때, 사람들이 그것을 믿지 않았다면 어떻게 할 겁니까? 나다나엘이 “선생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이스라엘의 왕이시니이다.”라고 말했을 때, 유대인들은 어떻게 할 겁니까?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가 어디 있었는지 말했거나, 베드로에게 그가 누구인지 말해 주는 등의 일을 했기 때문에 네가 믿느냐? 그렇다면 너는 이것들보다 더 큰 일들을 보리라.” 오늘 그분의 메시지와 그분의 영을 믿는 여러분은 더 큰 일을 볼 것입니다. 언젠가는 부활을 볼 것이며, 우리는 주 예수님을 뵐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기도하는 동안 저는 등을 돌리고 있겠습니다. 뒤플레시 형제님과 이야기하겠습니다. 저는 그저... 뒤플레시 형제님, 그곳에서 좋은 집회를 가지셨지요. 제 오랜 친구 맥낼리 형제님도 여기 뒤에 앉아 계십니다. 사역자이신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좋습니다. 이제 지켜보십시오. 이 회중 가운데 누군가가 성령과 접촉하고 있습니다. 제 뒤쪽, 바로 이쪽 뒤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도록... 병든 분은 모두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병든 여러분 한 분 한 분 모두 기도하십시오. 지금 제 안에서 누군가가 성령께 손을 대고 있음을 느낍니다. 그렇습니다. 이제는 그런 분이 많이 있습니다.
바로 여기, 이 방향에 앉아 있는 한 여자가 방금 성령과 접촉했습니다. 심장병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바로 저 아래 앉아 있습니다. 음식에 소금을 넣어 먹는 것 같은 일에 문제가 있습니다. 자매님,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일어서십시오. 사실이지요? 이제 다 끝났습니다. 집에 가시면 건강할 것입니다. 그분이 무엇에 손을 댔는지 제게 말해 보십시오. 무엇에 손을 댔습니까? 성령입니다. 이제 믿으십니까? “네가 만일 믿을 수 있거든...” 이제 다시 회중에게 등을 돌리겠습니다. 여러분은 기도하십시오. 보십시오, 여러분, 꼭 바라보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여기 서 있는데 한 여자가 보입니다. 기도하고 있습니다. 안경을 쓰고 있고, 눈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눈이 침침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 바로 이쪽, 여기 뒤에 안경을 쓰고 앉아 있습니다. 전에 제 집회에서 한 번 치유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맞습니다. 그것이 사실이며, 기도하고 계셨던 내용입니다. 좋습니다. 이제 집으로 가십시오. 온 마음으로 믿고 나음을 받으십시오.
이제 이쪽을 봅니다. 여기 한 남자가 앉아 기도하고 있지만, 그 남자가 아닙니다. 다른 남자가 제 앞에 서 있습니다. 그는... 제가 그를 볼 수만 있다면... 목에 기관지 문제가 있습니다. 저 뒤쪽에 앉아 있습니다. 불그스름한 셔츠를 입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기 계신 선생님입니다. 이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니까? 믿으셔야 합니다. 좋습니다. 선생님, 이제 집으로 가시면 건강할 것입니다. 선생님의 믿음이 낫게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십시오. 바로 여기 아래 앉아 있는 저 부인에게도 같은 것, 기관지 문제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닉슨 부인, 그게... 성함이 그렇습니다. 좋습니다. 자리에서 일어서십시오. 제가 부인을 모르지요? 그렇습니다. 부인이 바로 그분입니다. 그것이 부인의 문제입니다. 부인의 믿음이 부인을 낫게 했습니다. 집으로 가십시오.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이번에는 이쪽 뒤에 계신 분은 어떻습니까? 기도하십시오. 아버지, 이것은 주님께서 하셔야 합니다. 주의 천사가 장막을 등지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여전히 동일하신 하나님이시며, 사람들이 모든 일에서 주님께 손을 댈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주옵소서. 제가 한 남자를 보고 있는데, 제 눈에는 스페인 사람처럼 보입니다. 옆구리에 무언가 문제가 있습니다. 하는 일 때문에 몸에 독이 들어갔습니다. 또 그는... 마음에 메시지가, 혹은 무언가가 있습니다. 설교하기를 원합니다. 병들고 고통받는 사람들, 특히 병원에 있는 사람들을 가엾이 여깁니다. 이름은 리 씨입니다. 리 선생님, 온 마음으로 믿으신다면, 바로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하신 것을 주십니다. 저는 선생님을 모릅니다. 그렇지요, 선생님? 저는 선생님께 낯선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가서 구하신 것을 받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생님을 낫게 하십니다.
건물 곳곳에 계신 여러분, 그분께서 여기 임재해 계심을 믿으십니까? 주의 천사를 믿으십니까? 여기 말씀이 있고, 약속이 있으며, 그에 따른 반응이 있고, 성취된 약속이 있습니다. 이제 구원받고 성령으로 충만해지기 원하는 분이 몇 분이나 됩니까? 앞으로 나와 여기 잠깐 서십시오. 진심으로 관심이 있고, 성령을 원하며, 구원받기를 원한다면, 지금 이곳으로 나와 제단 주위에 서십시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고 싶으시면 올라오십시오. 어떤 분이든 상관없습니다. 그저 여기로 나오십시오. 지금이 바로잡을 때입니다. 그다음에는 나머지 병든 분들을 위해서도 똑같이 기도하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영 안에서 “그만하면 됐다.”라는 제지를 느꼈습니다. 적어도 세 번은 되었지요? 세 번보다 많았지요? 셋이면 확증이 됩니다. 저는 사람들이 바로 이렇게 오는 것을 좋아합니다. 제단 초청도, 노래도, 아무것도 없이, 그저 일어나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심을 압니다. 제가 나아갑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알기 때문에 나아갑니다. 저는 바르게 되고 싶습니다. 언젠가는 이유를 묻는 질문을 받을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나아가 하나님을 향한 제 믿음을 고백하며, 바로 지금 받으리라고 믿습니다.”
의심하지 마십시오. 이제 의심하지 마십시오. 받으려고 온 것을 받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조금이라도 의심하면, 아무 유익도 없을 것입니다. 아시겠죠? 믿으면서 와야 합니다. 하지만 바로 지금, 하나님 앞에, 말씀을 확증하시려고 여기 계신 성령 앞에 나오십시오. 그분께서 여기 계시고, 여러분 마음의 소원을 주실 것을 알기 때문에 나오십시오. 그분께서 여기 계신 목적이 바로 여러분 마음의 소원을 주시려는 것입니다. 나오시겠습니까? 좋습니다. 참 좋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께서 무엇을 하시고 누구를 부르실지 보려고 잠깐만 더 기다리겠습니다. 친구 여러분, 제가 보기에는 여러분이 여기 있으면서 티끌만 한 의심이라도 있다면... 기억하십시오. 언젠가는 제가 여러분을 보고 여러분이 저를 보는 마지막 날이 올 것입니다. 그다음에 여러분이 저를 보고 제가 여러분을 보는 때에는 하나님 앞에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입니다. 기회는 단 한 번뿐입니다. 그것뿐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체험에 조금이라도 의심이 있거나, 아예 그리스도인이 아니거나, 자기 체험을 의심하고 있다면, 왜 지금 나오지 않습니까? 보십시오, 원수가, 제가 어젯밤에 말한 너무 많은 음성들처럼, 원수가 “너는 너무 지쳤어. 아, 나는 받지 못할 거야.”라고 말하려 한다면, 그에게 거짓말쟁이라고 말하십시오. 오늘 밤 받을 것이라고 말하십시오. 또 이렇게 말하십시오. “나는 오늘 밤 받겠다고 결심할 거야.” 그렇게 해야 합니다.
여기 순복음 사역자나 장로교, 침례교, 어느 교파든, 사람들이 그 옛날에 받았듯이 오늘날에도 성령 침례를 받을 수 있으며 그 처방이 그들을 위한 것이라고 믿는 사역자가 몇 분이나 계십니까? 사역자 여러분, 손을 드십시오. 여러분이 혼들에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압니다. 이제 이분들에게 손을 얹는 일을 도와주시도록, 와서 이쪽에 이분들과 나란히 서십시오. 바로 올라와 이곳을 따라 서시고, 이분들에게 손을 얹으십시오. 좋습니다. 제가 무엇이라고 말씀드렸습니까? 길르앗에는 유향이 없습니까? 물론 있습니다. 거기에는 의사가 없습니까? 의사들이 오는 것을 보십시오. 이 말씀의 의사들입니다. 그들은 분명히 믿습니다. 보십시오. 놀랍지 않습니까? 오늘 밤 이곳에 모인 300명이나 400명 정도 되는 작은 회중 가운데 있는 사역자들을 보십시오. 여기 서 있는 스무 명, 서른 명, 마흔 명의 사역자들을 보십시오. 이것을 믿는 사역자들입니다. 성경의 의사들이신 여러분, 여러분은 써 주십니까... 오순절 날에 주어진 그 처방을 내리십니까? 그 처방을 내리십니까? 물론입니다. 그것은 이중의 치료입니다. 이중의 치료입니다. 만세 반석, 나를 위해 갈라지셨으니 그 안에 나를 숨겨 주소서. [브래넘 형제님이 “만세 반석”을 흥얼거린다.] 이제 머리를 숙이고 조용히, 만세 반석, 나를 위해 갈라지셨으니.
아, 여러분이 죽음을 맞는 시간에, 죽음을 맞는 시간에, 이 노랫말을 얼마나 듣고 싶겠습니까. “주님의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물과 피가 죄를 위한 이중의 치료가 되어, 진노에서 구원하고 나를 깨끗하게 하소서.” 여러분은 죽으려고 이곳에 왔습니다.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먼저 죽는 것입니다. 그래야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 이제 기도드리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주님의 아들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 사람들을 다정하고 겸손하게 주님께 데려옵니다. 그들을 위한 제 기도를 분명히 드리고자 하며, 그들이 주님을 받아들이도록 제가 할 줄 아는 모든 일을 다했음을 분명히 하고자 합니다. 주님께서는 너무나 선하셔서, 저희의 이 낡고 연약한 몸을 취하시고 성령께서 이 몸을 통해 말씀하시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되려면 분명히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했습니다. 저희는 죄인이며, 전혀 선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령께서는 예수님의 피로 저희 마음을 깨끗하게 하시고 저희 입술을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제단에서 그 선지자에게 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 발화된 하나님의 말씀이 흘러나와, 이 세대가 답변하러 영원으로 들어가기 전에 그분의 임재를 입증합니다. 오늘 밤 많은 사람이 성령을 받으려고 이 제단 주위로 나왔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이들 중 한 사람도 성령으로 충만해지기 전에 이곳을 떠나지 않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그리스도의 권능과 부활로 충만하게 하옵소서. 주님, 허락해 주옵소서. 이곳의 병들고 고통받는 사람들도 치유받게 하옵소서. 병들고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어떤 문제가 있든, 하나님의 권능이 임하여 한 사람 한 사람 모두를 고쳐 주옵소서. 진실로 온 마음을 다해 이 기도를 주님께 드립니다. 예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이제 사역자들이 가까이 나와 이분들에게 손을 얹어 주시기 바랍니다. 데이비드 형제님과 다른 형제님들도 여기 제단을 따라 바로 내려오십시오. 그저 흉내만 낼 필요는 없습니다. 조금도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성령을 받으러 여기 왔습니다. 그렇지요? 원하십니까? 진정으로 원하십니까? 이제 그것은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혹시 그리스도인의 침례를 받은 적이 없다면, 아직 받지 않으셨다면 침례를 받겠다고 하나님께 약속하시겠습니까? 무슨 일이 닥치든, 하나님께서 어떤 방식으로든 여러분을 쓰시게 맡기겠다고 약속하시겠습니까? 그분의 말씀을 믿고 받아들이겠습니까? 이 건물 안에서, 이분들이 성령을 받으리라고 믿는 분이 몇 분이나 됩니까? 손을 드십시오. 이분들이 성령을 받으리라고 믿는다면, 손을 들어 주십시오.
이제 여기 목사님께 이 기도를 인도해 주시도록 부탁하겠습니다. 아마 저보다 오순절 신앙 안에 훨씬 오래 계셨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 계신 목사님들, 설교자들, 전도자들, 어떤 분이든, 또 교인 여러분, 형제님이 인도하시는 동안 우리 모두 한마음으로 기도하기 바랍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 모두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도 기도하시고, 지금 받으리라고 믿으십시오. 좋습니다. 머리를 숙입시다. [형제님이 기도를 인도하고, 다른 사역자들도 기도한다.] 오 하나님. 예, 주님. 예. 바로 지금 성령으로 채워 주옵소서. 주님, 허락해 주옵소서. 오시옵소서, 주님. 예, 주님, 허락해 주옵소서. 주님의 영을 부어 주옵소서. 주님, 길르앗의 유향이 부어지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