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 잠시 기도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처럼 주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자세로 주님 앞에 나아와, 주님을 우리 아버지라 부를 수 있음을 아는 것은 참으로 큰 특권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영으로 태어나 주님의 자녀가 되었으며, 원하는 것을 구할 수 있고 믿음으로 그것을 받을 수 있는 특권을 누립니다. 지극히 거룩하고 의로우신 하나님, 이로 인해 감사드립니다. 오늘 밤 도움이 필요한 이들, 자기 혼의 구원이 필요한 이들에게 말씀해 주시기를 구합니다, 주님. 또 병들어 절박한 상태에 있는 이들,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이들, 병원에 있는 이들, 입원해 있어서 집회에 올 수 없는 이들을 위해 간구합니다. 오, 위대하신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시여, 오늘 밤 그들의 병상으로 가셔서 병든 몸에 손을 대 주시고, 병원에서 나와 주님을 섬길 수 있게 해 주옵소서. 우리에게 죄지은 자들을 우리가 용서하듯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셔서, 오늘 밤 우리 가운데 주님의 은혜가 있게 하옵소서. 주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이니이다. 주님, 그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옵소서. 주님의 말씀이 우리 가운데 살아 역사하게 하옵소서. 주님의 아드님이신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앉으셔도 됩니다.
이제 잠깐… 메시지를 이어가겠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전에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일, 곧 물 위를 걸을 수 있었다는 뒤플레시 형제님의 메시지를 서서 듣고 있자니 정말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우리도 그저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그대로 믿는다면 전에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많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분은 어떤 약속을 하시든 반드시 책임지고 이루십니다.
형제님들, 일요일에는 예배가 몇 시에 시작합니까? 일요일 두 시 반이군요. 그러면 기도 카드를 받으실 분들은 한 시 반쯤 오셔야겠습니다. 기도 카드를 나눠 드리다가 집회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한 시 반에 오십시오. 예배는 두 시 반에 시작합니다. 집에 가셔서… 드실 수 있도록 제시간에 마치겠습니다. 여기서는 저녁 식사를 ‘디너’라고 합니까, ‘서퍼’라고 합니까? 저는 남부 사람이라 ‘서퍼’라고 합니다. 그걸 ‘디너’라고 부른다면 제 ‘서퍼’는 어떻게 된 겁니까? 어디선가 한 끼를 놓치는 셈이군요. 그러니 집에 가셔서 저녁을 드십시오. 저는 그렇게 부르겠습니다. 그런 다음 여러분의 교회로 가십시오. 또 우리를 찾아오신 나그네 여러분께도 저희가… 이곳을 방문하신 분들, 이 좋은 교회들에서 일요일 아침에는 주일학교가 있고 일요일 저녁에는 예배가 있을 것입니다. 마음에 드는 곳을 찾아 그 예배에 참석하십시오. 저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이번 집회가 참 기쁩니다. 이곳에 다시 오기를 얼마 전부터 고대해 왔기 때문입니다.
오늘 밤에는 욥기에서 한 절, 23장 3절을 인용하고 싶습니다. 어디에서 그분을 만날지 내가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그분의 자리에라도 간다면 좋으리로다! 욥기 23장 3절입니다. 주제라고 부를 수 있다면,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이라는 주제로 몇 분 동안 말씀드리겠습니다.
많은 것이, 사실 거의 모든 것이 변합니다. 시대가 변하고, 사람이 변하고, 날씨가 변하고, 나라가 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변치 않으십니다. 그분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언제나 동일하십니다. 하나님은 무한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저는 ‘무한하다’는 말을 설명할 수 있는 다른 말도, 그 말을 설명할 방법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무한함이기 때문입니다. 그분께는 시작이 없으셨고 끝도 없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어떤 상황에 개입하여 행동하시거나 결정을 내리실 때, 그분이 행동하시는 방식이나 내리시는 결정은 영원히 동일합니다. 그분은 그것을 바꾸실 수 없습니다. 무한하시고 완전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어떤 말을 했다가도 내년에는 아마 그것을 바꾸어 다르게 해야 할 수 있습니다. 또는… 우리는 유한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분은 완전하시므로, 그분의 첫 번째 결정은 반드시… 두 번째 결정은 첫 번째와 같아야 합니다. 만일 다른 결정을 내리신다면, 첫 번째 결정을 내리셨을 때 올바르게 행동하지 않으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그분도 저나 여러분처럼 유한한 분이 됩니다. 이 치유 예배가 시작되기 전에 제가 하려는 일은 여러분 안에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심어 드리는 것입니다. 치유나 구원에는 그것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보다 더 위대하시지도, 자신의 말씀보다 더 완전하시지도 않습니다.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은 바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자신의 말보다 더 나은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도 자신의 말씀보다 더 나은 분이 아니십니다. 여러분의 말이 곧 여러분 자신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곧 하나님 자신입니다. 한 번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하나님을 불렀고 하나님께서 그의 믿음을 보시고 그 사람을 구원하셨다면, 다음 사람이 하나님을 부를 때도 첫 번째 사람과 같은 근거 위에서 나아오는 한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구원하셔야 한다는 것을 누구나 압니다. 또 병든 사람이 하나님께 긍휼을 간구하여 하나님께서 그의 믿음을 근거로 긍휼을 베풀어 치유해 주셨다면, 다음 사람이 바로 그 같은 근거 위에서 나아와 같은 것을 구할 때도 하나님께서는 똑같이 행하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처음에 행하셨을 때 잘못 행하신 것이 됩니다.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을 실제로 살아 계시고 변치 않으시는 분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구원이나 치유를 구하며 하나님께 나아오는 모든 혼은 그와 같은 근거 위에서 나아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것과, 그분께서 부지런히 자신을 찾는 자들에게 보상해 주는 분이시라는 것을 믿으며 나아와야 합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너희가 어떤 것들을 원하든지 너희가 기도할 때에 그것들을 받는 줄로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그것들을 받으리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내 이름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아버지께 구하라. 그러면 받으리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그것은 틀림없는 진리입니다. 정직한 마음으로 나아와 하나님께 무엇을 구했는데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때로는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자신의 말씀을 지키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고 그것에 대해 거짓말을 하시면서도 여전히 하나님이실 수는 없습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분은 영원히 자신의 말씀을 지키셔야 합니다. 그것은 진리입니다.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고 말씀할 때, 그것은 진리입니다. 저에게는 그분이 행하신 모든 일이 다시 나타나게 할 만큼의 믿음이 없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 만한 믿음이 있는 사람을 제가 결코 가로막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는 그런 믿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릴 것입니다. 어쨌든 그분이 하신 모든 약속은 절대적인 진리입니다.
오늘 밤 저는 이 말을 분명히 기록으로 남길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께서 하신 어떤 거룩한 약속에 대해서든 올바른 마음 자세를 가지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면,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그 약속을 대하는 자세가 올바르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그 약속은 여러분의 것이요 여러분 개인의 소유라는 것을 안다면 말입니다. 바로 그렇게 받아들이는 순간, 그것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은 씨 뿌리는 자가 뿌린 씨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씨가 생명력이 있는 씨이고 땅에 심어지면, 햇빛과 수분의 조건이 알맞을 때 그 씨 안에 있는 생명을 싹 틔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그렇습니다. 사람이 그 말씀을 받아 마음에 심고 알맞은 햇빛과 알맞은 온도를 줄 수 있다면, 여기서 말하는 것은 해를 뜻하는 s-u-n이 아니라 아들을 뜻하는 s-o-n입니다. 그 안에 알맞은 믿음의 온도를 주면, 그 씨와 약속은 처음 그 약속을 받은 사람에게서처럼 여러분에게도 살아 역사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실패하실 수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타나시는 방식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우상으로 만들려고 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께 무엇을 해 달라고 구하고는, 우리가 구한 바로 그 방식으로 해 주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으셨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할 때, 곧 그분의 말씀을 그대로 믿지 않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약하게 하고 우리의 간증도 약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응답하십니다. 그 누구도 구한 적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받으리라. 찾으라. 그러면 찾으리라. 구하는 자마다 받고, 찾는 자마다 찾으며, 두드리는 자마다 그에게 열릴 것이니라.” 제가 늘 깨달은 것은 하나님께 무엇이든 받을 수 있는 길은 오직 그분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그분이 보내 주시는 방식 그대로 믿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한 바로 그 방식으로 받지 못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꼭 우리 방식대로 응답하셔야 한다고 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우상으로 만드는 셈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건 아무 소용도 없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응답하지 않으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 방식으로, 특이한 방식으로 응답하십니다. 그때도, 모든 것도 뜻밖입니다.
예를 들어 모세를 보겠습니다. 모세는 여든 살이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그를 다루시기에는 거의 너무 늙은 나이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릅니다. 그는 노인이었으며, 그 나이에 하나님께서 그를 다루시리라고는 예상하기 어려웠습니다. 또 그는 호렙산 아래, 뜻밖의 장소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뜻밖의 나이에, 뜻밖의 장소에서, 뜻밖의 방식으로 그를 만나셨습니다. 하나님은 보통 사람들을 만나시던 방식으로 모세를 만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모세를 만나기로 택하신 그 방식, 특별한 방식으로 모세를 만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기도에도 그렇게 응답하십니다. 가장 좋다고 생각하시는 방식으로 응답하시며, 그분의 방식은 언제나 옳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구했는데 그것이 하나님께서… 아니, 우리가 생각하기에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셔야 할 바로 그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우리는 믿음을 잃고 뒤로 물러납니다. 하나님께 구하고, 말씀 위에 굳게 서서 그것이 참되다고 말하며, 그분이 보내 주시는 방식 그대로 받읍시다. 여러분은 그렇게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응답이 알아보기 어려운 모습으로 올 수도 있습니다. 다른 방식으로, 돌아가는 길로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방식으로 오든 우리가 구했다면 우리는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으며,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그것으로 영원히 확정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믿기 시작하면…
모세가 이렇게 말했다면 어떻겠습니까? “나는 하나님께 나를 군인으로 만들어 달라고 기도했는데, 하나님은 여기 불타는 떨기나무 가운데 계시는구나.” 하나님께서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셨든, 나타나셨다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오셔서 응답하시고 우리가 그것이 하나님이심을 알아보면 되는 것입니다. 또 다른 인물인 야곱은 두 상황 사이에 끼여 있었습니다. 그는 장인 라반에게 못된 짓을, 좀 교활한 속임수를 썼습니다. 장인을 피해 어머니가 계신 집으로 돌아가던 중이었는데, 그때… 알고 보니 자기가 비열한 속임수를 썼던 형이 군대를 거느리고 자기를 만나러 오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죄가 여러분을 찾아낸다는 것을 꼭 기억하십시오. 그러자 야곱은 온통 불안하고 당혹스럽고 곤경에 처한 채, 아내들을 작은 시내 건너편으로 보내고 자신은 다시 이쪽으로 돌아왔습니다. 뜻밖의 장소에서, 뜻밖의 때에, 뜻밖의 방식으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씨름을 하다가 하나님을 만나다니, 얼마나 놀라운 방식입니까! 그러나 그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불타는 떨기나무 가운데 계시든, 씨름하는 가운데 계시든, 그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야곱이… 그는 꿈도 꾸고 환상도 보는 등의 경험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손으로 붙잡고 “하나님이시다.”라고 할 수 있는 대상을 만난 것입니다. 그리고 축복이 올 때까지 붙들고 있을 수 있었습니다. 오,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든 어디에서든 우리가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자리를 찾아, 하나님이심을 알아보고 축복이 올 때까지 붙들고 있을 수 있다면 말입니다! 하나님과 끝까지 씨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찾으면 찾을 것이요, 구하면 받을 것이요, 두드리면 열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말씀이 참됩니다! 야곱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붙잡을 수 있는 대상을 붙들고 그분이 하나님이심을 알았을 때, 놓아 드리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 온 기독교계가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여러분이 실제적인 무언가를 손으로 붙잡을 수 있다면 말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의 임재를 보며, 하나님께서 응답과 축복을 보내 주실 때까지 붙드십시오. 사람들이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살아 계신 하나님의 권능, 그 실재하는 것을 어떤 형태로 나타나든 볼 수 있다면, 이 털사에 얼마나 큰 부흥이 일어나겠습니까! 우리에게는 우리 생각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보내시고 기도에 응답하시는 방식이 있습니다. 이 도시에서는 부흥을 위한 기도 모임이 오랫동안 이어져 왔습니다. 우리가 눈을 뜨고 받을 준비만 한다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방식으로, 자신의 때에 우리에게 부흥을 보내 주시리라고 저는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구했다는 것을, 그리고 구했다면 받으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는 붙들고 있었습니다. 뜻밖의 때에, 뜻밖의 장소에서, 뜻밖의 방식으로 만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심을 알아보았을 때 그는 붙들고 있었습니다.
젊은 선지자 이사야는 멋진 삶을 살아왔습니다. 선한 왕의 팔에 기대어 지냈고, 모든 일이 잘 풀렸습니다. 잘 먹어서 살이 찌고 몸이 비대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왕이 죽었습니다. 이사야는 환상에 사로잡혀 주님의 옷자락을 보았습니다. 천사들이 날개로 얼굴을 가리고, 날개로 발을 가리며, 두 날개로 건물 안을 날아다니면서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전능자여!” 하고 외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광경을 보고 자신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 있음을 알았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게 화가 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부정한 백성 가운데 살고 있나이다.” 주님은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까?” 하고 외치고 계셨습니다. 천사가 부집게로 제단에서 숯을 가져다가 그의 입에 대어 그를 깨끗하게 했습니다. 선지자에게는 특별한 광경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다루신 방식은 특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아십니다.
이사야는 교육을 받았고 왕과 함께 학교에도 다녔습니다. 아마 지적인 면에서는 받을 수 있는 최상의 교육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자신을 계시하시고, 그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실제적인 것을 주셔서 그를 선지자로 만드셔야 했습니다. 이제는 문헌과 읽고 쓰는 일이 중심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에 관해 읽고 들었던 것들이 바로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그러자 그는 “나는 입술이 부정하며, 부정한 백성과 어울리고 그들 가운데 거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예언할 날들을 위해 준비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일하십니다. 신비한 방식으로 행하십니다. 선지자 엘리야도 잠시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그는 동굴 깊숙한 곳에 누워 있습니다. 며칠 전에는 하나님의 권능을 보았습니다. 사십 일 전에는 하나님의 권능을 경험했습니다. 그가 기도하자 삼 년 육 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산 위에서 다시 기도하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희생물을 태워 버렸습니다. 또다시 기도하자 비가 내려 땅을 적셨습니다. 그런데 왕비의 협박이 두려워 광야로 도망쳤습니다. 그는 자기에게 무언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자기 안에 아직 바로잡히지 않은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그가 동굴 안으로 물러나 있을 때, 밖에서 지진이 일어나 그가 앉아 있던 동굴을 뒤흔들었습니다. 강하고 급한 바람이 불어왔고, 천둥과 번개와 거센 바람이 일었습니다. 그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었지만 선지자의 관심을 끌지는 못했습니다. 어쩐지 그의 마음에는 와닿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권능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산들을 흔드셨고, 강한 바람을 일으키셨으며, 하늘에서 불을 보내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다렸습니다. 그러자 그의 깊은 내면에 작고 고요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그것이 선지자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거기에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분의 임재를 느꼈고, 자기 마음에 말씀하시는 작고 고요한 음성을 느꼈습니다. 그러자 선지자는 일어나 동굴 입구로 나갔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어떤 것을 구하고도 그와 정반대의 것을 받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런 방식으로 응답하셔야 한다는 자기 생각을 따라, 하나님을 우리가 원하는 모습으로 만듭니다.
이스라엘도 또 하나의 사례입니다. 이스라엘은 쇠막대기로 로마인들을 쳐부술 강력한 왕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주셨습니까? 아기를 주셨습니다. 강력한 왕 대신 싸매는 천에 싸인 아기를 주셨습니다. “구유에 누워 있는 그를 너희가 보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그들이 예상했던 방식으로 오지 않으셨고, 그들은 거절했습니다. 우리 방식대로 와야지 그렇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도로 데려가십시오!”라고 말했고, 그분은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보내 주시는 방식 그대로 받아들이고 기뻐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작은 무언가를 굳게 심으시고 “이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면, 믿고 붙드십시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분은 여러분에게 그 말씀을 확증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분이 말씀을 확증해 주시면 붙드십시오. 그렇습니다. 그들은 그 아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왕을 보내 주실 수 없다면 우리는 그 아기를 받지 않겠습니다. 그냥 도로 데려가십시오.” 보십시오.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방식으로 행하시며, 그분의 방식은 언제나 올바른 방식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것에 관해 하신 말씀을 믿어야 하고, 그것이 절대적인 진리임을 알고 끝까지 지켜야 합니다. 꼭 붙드십시오!
예수님은 장성하셨을 때도 겸손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천국의 왕께서 얼굴에 침 뱉음을 당하시고 머리에 헝겊이 둘러진 채 계실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이 그분을 막대기로 때리며 말했습니다. “이봐, 네가 선지자라더군. 누가 너를 때렸는지 말해 봐라. 그러면 우리가 믿겠다.” 그런데 그분은 입을 열지 않으셨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겠습니까? 그들이 기다리던 왕은 세상을 쳐부술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왕을 보내셨는데도, 하나님께서 자신의 방식으로 보내셨다는 이유로 그들은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보내시는 방식을 가지고 계셨고, 그분의 말씀으로 예고하신 방식과 다르게 보내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반드시 다른 방식이어야 한다고 마음을 정해 놓았습니다. 친구 여러분, 우리가 잘못하는 것이 바로 그 점입니다. 바로 거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앞서가는 자, 곧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인 침례자 요한이 왔을 때를 보십시오. 성경은 높은 곳은 모두 낮아지고 낮은 곳은 모두 높아지며, 이런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산들이 어린 숫양들처럼 뛰고 나뭇잎들이 손뼉을 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그들은 큰 진동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고운 아마포로 잘 차려입고 머리에 왕관 같은 것을 쓴 이 사람이 천국의 회랑에서 내려올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은 광야에 있는 한 늙은 설교자를 보내셨습니다. 그는 양가죽 한 조각을 몸에 두르고 있었습니다. 얼굴에 수염이 가득해서 털북숭이 애벌레처럼 보였습니다. “아, 메뚜기와 들꿀이나 먹는 그런 사람은 치워 버리시오! 우리는 그런 자와 아무 상관도 하고 싶지 않소! 어떻게 저런 사람이 메시아보다 앞서갈 수 있겠소?”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께서 메시아보다 앞서 보내시는 방식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방식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방식을 기뻐하십니다. 그것이 그분의 방식입니다. 그분은 모든 지혜와 모든 권능을 지니셨고, 전능하시며 어디에나 계십니다. 오, 그분은 하나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십니다! ‘나는 있었다’도, ‘나는 있을 것이다’도 아닙니다. 영원히 동일하신 ‘나는 있는 자’이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시며 신비한 방식으로 일하시지만, 자신의 영광을 위해 그렇게 하십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가장 좋기 때문에 그렇게 행하십니다. 우리는 그분이 보내 주시는 방식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가 그려 놓은 도표와 달력 같은 것들을 보십시오. 어떤 것은 예수님께서 구름을 타고 오시는 모습이고, 그다음 것은 백마를 타신 모습이며, 모두 그런 식입니다. 저는 그분이 오실 때에는 전혀 다를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우리가 그려 놓은 방식과 같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알아보지 못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알아보지 못할 것입니다. 바로 지금, 많은 사람이 메시아의 오심을 알리는 표적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많은 사람이 알아보지 못합니다. 바로 눈앞에 있는데도 보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아마 누가복음에서 말씀하신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소돔의 날들에 상황이 어떠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도 그러하리라. 노아의 날들에 상황이 어떠했던 것같이…” 그분이 노아의 날들에 살던 사람들의 도덕적 상태를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보셨습니까?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소돔을 말씀하실 때는 그냥 그 부분을 빼셨습니다. 소돔을 태운 것은 불이었습니다. 오늘날 땅을 사르는 것도 불입니다. 몇 분 동안 그것을 다시 살펴봅시다.
아브라함은 아무 일도 예상하지 않은 채 거기 앉아 있었습니다. 그는 가장 척박한 땅에 있었습니다. 하루 중 가장 더운 때, 무슨 일이 일어나기에는 뜻밖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걸어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세 사람이었습니다. 마음속 무언가가 그분이 하나님이심을 알려 주었고, 그는 그것을 붙들었습니다. 그들이 그냥 지나가게 두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 하나님, 여기서도 그런 일이 일어나게 하옵소서! 그냥 지나가게 두지 마십시오! 꼭 붙드십시오!
“들어오셔서 상수리나무 아래 앉으십시오. 제가 물을 조금 가져오겠습니다. 제가 시중을 들겠습니다. 발을 씻겨 드리게 해 주십시오. 빵 한 조각을 가져다가 당신들의 혼을 만족하게 해 드리겠습니다. 그런 다음 길을 가셔도 됩니다. 이런 까닭으로 내 주께서 제게 오셨습니다.” 아직 아주 확신하지는 못했지만, 그는 마음속에서 무언가 불꽃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때가 된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 사람이 앉아서 그와 이야기할 때 무슨 일을 하셨는지 보십시오. 그분은 내려다보시며 “아브라함아”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낯선 분인데, 그의 이름이 아브라함인 줄 어떻게 아셨을까요?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그분은 그에게 아내가 있다는 것도, 그 이름이 사라인 것도 아셨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아브라함은 그분께 “당신 뒤에 있는 장막 안에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세상의 상속자인 것을 보니, 내가 아브라함에게 무엇을 숨기겠느냐? 그가 세상의 상속자인데 말이다.” 또 말씀하셨습니다. “생명의 때를 따라 내가 너를 찾아오리라.” 그분 뒤의 장막 안에 있던 아흔 살 된 사라는 그분을 본 적도, 그분에 대해 아는 것도 없었습니다. 그분도 사라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셨습니다. 그런데 사라는 속으로 웃었습니다. 아마 이렇게 손으로 입을 가렸을 것입니다.
그러자 등을 돌리고 계시던 이 천사가 “어찌하여 사라가 웃었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누구셨습니까? 아브라함은 그 사람이 그런 분이시리라고는 거의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떠나시려 할 때 아브라함은 그분을 ‘엘로힘’, 곧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보여 주는 표적이었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 세상이 불타기 전 마지막 날들에 성령의 모습으로 자기 백성에게 오셔서, 육체 가운데 자기 백성 사이에 거하시며, 불이 내리기 직전, 세상이 멸망하기 직전에 자기 교회에 자신을 알리시리라는 표적이었습니다. 엘로힘, 하나님, 성령께서 자기 백성 가운데 오셔서 그때 행하셨던 표적들을 행하실 것입니다. 오, 그분은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이 그분이 유대인들에게 자신을 알리신 방식입니다. 사마리아인들에게 자신을 알리신 것도 그와 같은 방식이었습니다. 교회에 속한 많은 사람이 그분을 믿었습니다. “아, 그는 바알세붑이다.” 그러나 그것을 보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임을 알아본 사람들은 그분이 누구신지 알아보았습니다.
우물가의 여인이 말했습니다. “선생님, 메시아께서 오실 줄을 우리가 알며, 그분이 우리에게 이런 일들을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분의 선지자이신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네게 말하고 있는 내가 그니라.” 여인은 도시로 달려가 “와서 한 사람을 보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분을 만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메시아께서 땅에서 자기 백성 가운데 거하고 계신 것을 발견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오늘날도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기대하지 않습니다… 다른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폭탄 같은 것들이 떨어질 것을 예상합니다. 아마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교회 사람들 사이에 어떤 거대한 연합이 이루어질 것을 기대합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일 가운데 하나님은 자기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을 사람들 가운데 보내셨고, 그들은 새로운 오순절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부어지고 있으며, 오래전에 행했던 바로 그 표적들과 이적들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람들 가운데 있습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것은 모든 교회 등이 하나로 연합하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성령이 부어지기를 기다립니다. 성령께서 오셔서 우리가 예상하지 못할지도 모르는 일들을 하실 것입니다. 저는 지금 그분이 여기 계신 것을 압니다. 저는 성령께서 이 집회에 계신 것을 압니다. 또 그분이 “어디든 두세 사람이 내… 함께 모인 곳에는 내가 그들 가운데 있으리라.”라고 약속하신 것을 압니다. 예수님께서 그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어디든 두세 사람이… 그것이 권능이며, 초대 교회가 의지했던 것은 바로 예수님의 임재였습니다. “어디든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내가 그들 가운데 있으리라. 그리고 그들이 무엇이든 한 가지 일에 뜻을 모아 구하면 받을 것이니라.” 그것은 참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분은 변치 않으십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며, 지금 여기 계십니다. 믿으십니까?
잠시 고개를 숙이고 기도하겠습니다. 기도하기 전에, 고개를 숙이신 채로, 여기 이렇게 말씀하실 분이 계십니까? “브래넘 형제님,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제 영적인 눈이 열려 그분을 보고 알게 해 주십시오. 저는 얼마나 그분을 뵙고 싶고, 얼마나 그분을 사랑하는지요!” 손을 들어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라고 말씀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저 자매에게 복을 주옵소서. 하늘의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시기를 바랍니다. 여기 제 오른쪽 뒤에도 다른 분이 계십니다. “브래넘 형제님, 기도할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 그분의 권능과 선하심이 드러나는 것, 하늘의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긍휼과 인자와 은혜를 베푸시기를 바랍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 시간 주위를 둘러보며 사람들의 손이 올라가는 것을 보고, 이 회중을 주님께 데려옵니다.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께서는 이적을 행하시려고 신비한 방식으로 일하십니다. 오 하나님, 주님의 성령, 주님의 영께서 오늘 밤 이곳 모든 사람의 마음에 거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들의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옵소서. 주님, 그들이 믿음을 갖게 해 주옵소서. 그들 안에 용기를 넣어 주셔서, 주님께서 언제나 함께 계시고 항상 살아 계셔서 중보하시는 줄 알게 하옵소서. 주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오른편, 그분의 왕좌에 앉아 계십니다. 성령께서 땅에 계시는 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귀하신 몸은 거기에 앉아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고백을 근거로 중보하시려고 우리의 대제사장으로 거기 계십니다. 그분이 행하실 것이라고 우리가 고백하는 바로 그 일을 이루시려고 거기 계십니다. 그분 앞의 큰 접시에는 자신의 피가 담겨 있고, 자신의 옷에는 피가 묻은 채 그곳에 앉아 계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와 질병을 짊어지셨으므로 하나님께서는 그 피를 통해 보시면서 불의를 보실 수 없습니다. 오 아버지 하나님, 그분은 우리의 연약함을 몸소 느끼실 수 있는 대제사장이시오니, 오늘 밤 이 건물 안에 있는 모든 연약함을 느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영적인 것이든 육체적인 것이든 모든 연약함에서 치유를 받게 하시고, 부흥이 일어나 이 도시에서 수많은 혼을 하나님의 왕국으로 이끌어 내게 하옵소서. 주님, 허락하옵소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옵소서. 아버지, 우리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오셔서 약속하신 일을 행하시기를 큰 기대 가운데 기다립니다. 그들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여러분은 온 마음으로 그분을 사랑하십니까? 그분이 우리가 행하거나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보다 넘치게… 풍성하게 행하시기를 기대하십니까? 그분은 우리가 행하거나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보다 심히 넘치도록 풍성하게 행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자, 예수님께서 땅에 계셨을 때 자신을 치유자라고 주장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아시는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그분이 치유자가 아니셨다는 것을 아시는 분은 몇 분이나 계십니까? 여러분은 성경을 그 정도밖에 모르신다는 말씀입니까?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일들을 행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안에 거하시는 아버지 곧 그분께서 그 일들을 하시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고, 요한복음 5장 19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은 아버지께서 어떤 일을 하시는 것을 보고 그 일을 할 뿐이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느니라. 아들도 똑같이 그 일을 하느니라.” 그분이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요한복음 5장 19절입니다. 그분은 병들어 자리에 누워 있던 한 사람이 어디 있는지 아셨고, 그에게 그의 믿음이 그를 온전하게 하리니 자리를 들고 집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그분에게 따져 물었습니다. 그분은 다리를 저는 사람, 걷지 못하는 사람, 눈먼 사람, 몸이 뒤틀린 사람들 수천 명을 거기 누워 있는 채로 남겨 두셨습니다.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아버지께서 하라고 말씀하시거나 보여 주시는 일만 한다.” 자… “나는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내가 보는 그 일을 한다.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지금까지 일한다.” 바로 그것이 그분의 영입니다. 예수님 자신은 하나님께서 먼저 보여 주시지 않으면 어떤 치유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이 성경 말씀입니다. “아버지께서 먼저 보여 주시지 않으면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먼저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보여 주시면, 그분은 가셔서 아버지께서 말씀하시는 일을 행하십니다.
그분의 옷에 손을 댄 여인의 경우에는 그분이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하셨다고 말씀하신 적도 없습니다. 그분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문에 있던 눈먼 바디매오에게는 “네 믿음이 너를 온전하게 하였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이 그 일을 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었으므로, 그들의 믿음이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 여인이 그분께 손을 댔습니다. 그분의 옷에 손을 댔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그것을 육체적으로 느끼지 못하셨습니다. 팔레스타인에서 입는 옷에는 속옷이 있고 겉옷은 느슨하게 드리워지기 때문입니다. 여인은 그 옷자락에 손을 댔습니다. 마음속으로 “내가 그분의 옷에만 손을 대도 온전하게 되리라.”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분께 손을 댔습니다. 그러자 여인은 자기 안에서 느꼈습니다… 그 옷에 손을 댈 수만 있다면 자기가 나으리라는 믿음이 있었으므로, 하나님의 권능을 자기에게 가져다주리라고 생각한 그 행동을 했고, 그것으로 온전히 충분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과연 충분했습니다. 그 여인이 믿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돌아서서 회중을 둘러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베드로가 그분을 나무라며 말했습니다. “누가 손을 대었느냐고요? 모두가 주님께 손을 대고 있습니다.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그분은 “내가 약해진 것을… 아니, 내게서 효능이 나간 것을 내가 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효능은 힘이라는 뜻입니다. “내가 약해졌다. 누군가 다른 방식으로 내게 손을 대었다.” 그분은 회중을 둘러보시다가 그 여인을 찾아내셨고, 그 여인에게 믿음이 그녀를 낫게 했으므로 피 흘리던 것이 멈추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어제의 예수님이시며, 오늘도 바로 그 예수님이십니다. 내일이 있다면 내일도 같은 예수님이실 것이고, 영원히 그러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도 지키지 않으신다고 사람들이 생각할 때… 이슬람교도들이든 그 누구든, 저는 한 손에는 성경을, 다른 손에는 코란을 들고 이렇게 말해 왔습니다. “둘 중 하나는 옳고 하나는 틀립니다. 서로 반대되기 때문에 둘 다 옳을 수는 없습니다.” 저는 말합니다. “여러분의 선지자가 죽었다는 것은 여러분 자신이 증명합니다. 그는 땅속에 있습니다. 우리의 예수님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그분이 행하신 일들을 우리도 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자, 여러분이 무함마드의 일들을 행하는 것을 보여 주십시오.”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일들은 성령께서 오셔서 사람들에게 기름부으실 때 그 성령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그것을 믿으십니까? 물론 우리는 믿습니다. 우리가 믿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으니 그것으로 확정된 것입니다.
사람은 그런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초자연적인 일입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제 몇 분밖에 남지 않았으니 그것을 설명하고 싶습니다. 보십시오. 사람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사람 안에 계신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한 그 나무의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사람을 자신의 대리자로 사용하셨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아들을 사용하여 자신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분은 사람을 위해 죽음을 당하시려고 내려오셔서 사람의 모습을 취하셨습니다. 영으로는 죽으실 수 없었지만, 육체 안에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또 하나님은 아브라함 안에 계셨고, 이삭 안에 계셨고, 야곱 안에 계셨고, 요셉 안에 계셨고, 다윗 안에 계셨습니다. 그 옛날의 모든 사람들, 선지자들 등 그들 안에 계셨습니다. 사람들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이 신약 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그분의 교회를 깨끗하게 하고 거룩하게 합니다. 그분의 성령께서 모든 시대를 통하여 하나님의 일을 계속 이어 가실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그분은 똑같으십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이 성경에 대한 거짓 증인입니다.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성경도 참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복음을 전해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알려져야 할 때입니다. 이교도들이 그 말씀을 짓밟으려 할 때, 우리에게는 저 히브리 청년들 같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여기서 구출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동일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치유하실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시고 여러분의 불법으로 인해 상하셨으며, 여러분의 화평을 위한 징벌을 받으시고 그분이 채찍에 맞으심으로 여러분이 고침을 받았을 때, 이미 그 일을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과거 시제입니다. 오늘 밤 그분이 제게 주신 이 양복을 입고 여기 서 계시더라도, 여러분이 구한다고 해서 여러분을 치유하실 수는 없습니다. 그분은 “내가 이미 행하였다. 너는 그것을 믿어라.”라고 하실 것입니다. 그분 자신이심을 여러분이 알도록 어떤 일을 하실 수는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그렇게 행하십니다. 그분은 자기 백성을 통해 자기 백성에게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알리십니다.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밤에도 그분은 그처럼 실제로 계십니다. 저는 그분이 여기 계신 것을 압니다. 주님의 천사, 그 빛이 찍힌 사진을 보신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많은 분이 보셨군요. 제 생각에는 여기 어딘가에 그 사진이 있습니다. 청년들이, 진과 일행이 뒤쪽 탁자에 가지고 있을 겁니다. 그 빛 말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제가 이 땅에서 여러분을 다시 만나지 못하더라도 그날에는 만날 것입니다. 그 빛은 지금 제가 서 있는 곳에서 이 피트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이 약속하셨고, 저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수만 명의 이교도와 맞설 때도 저는 그 빛을 보았습니다. 양쪽에 주술사들이 있던 때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그들을 꼼짝 못 하게 하여 거기 앉아 있게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든지, 아니면 하나님이 아니시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든지, 아니면 사기꾼이셨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그분은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분은 죽어 계시지 않고 살아 계시며,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십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그것을 믿으시는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분이 바로… 나타나실 수 있다고 믿으시는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우리가 기도 카드를 나눠 드리지는 않았지요? 저기 계신 분들 가운데 병들어서 치유를 원하시는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손을 드십시오. “하나님, 저는 병들었습니다. 치유가 필요합니다.”라고 말하십시오. 손을 드십시오. 병들어서 치유를 원하는 분은 누구나 손을 들고 “하나님께서 저를 낫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라고 말씀하십시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계신다면 손을 드십시오. “기도합니다. 하나님, 긍휼을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말씀하십시오. 이 건물 안에는 제가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다만… 제 생각에는, 만일… 바로 여기 앉은 사람이 팻인지 확실하지는 않습니다만, 팻 타일러입니다. 여러분이 그를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또 여기 앉아서 메시지를 녹음하고 있는 진 고드 형제님이 있습니다.
단상에 있는 분들은 어젯밤 만났습니다. 제 평생 만난 사람들 가운데 가장 훌륭한 분들입니다. 그러나 제가 정말 개인적으로 아는 분은 바로 저기 계신 형제님입니다. 제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저를 후원해 주셨습니다. 여기서 제가 정말 아는 분들은 윌리엄스 형제님과 그 아들, 보더스 형제님, 데이비드 형제님, 하비 형제님뿐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모두 아십니다. 그분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면, 그분께서 직접 입증하시게 해 보십시오. 그분은 하나님이십니까? 그것이 사실입니까? 그분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모두 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 오실 때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유대인들에게 어떻게 입증하셨습니까? 베드로가 누구인지를 그에게 말씀하셨을 때입니다. 나다나엘에게 그가 어디에 있었는지 말씀하셨습니다. 나다나엘이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 그 나무 아래에서 기도하는 그를 보셨을 때 말입니다. 그는 “선생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선생님은 이스라엘의 왕이시니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유대 민족에게 주어진 메시아의 표적이었습니다. 제사장들은 뒤로 물러가 “그는 점쟁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두고 그렇게 말하는 것은 내가 용서하겠다. 그러나 성령이 오시면 그때는 성령을 대적하여 말하지 않는 것이 좋으리라. 그것은 이 세상에서나 오는 세상에서나 결코 용서받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점을 보십시오…
사람은 세 부류뿐입니다. 함과 셈과 야벳의 후손들입니다. 곧 유대인과 이방인과 사마리아인입니다. 오순절의 베드로를 기억하십니까? 그는 유대인들에게 전하여 왕국의 문을 열었습니다. 또 사마리아인들에게도 전했습니다. 빌립이 내려가 그들에게 침례를 주었지만, 그들은 아직 성령을 받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고넬료의 집에서도 전했습니다. 그러자 함과 셈과 야벳의 후손이 모두 들었습니다. 그때 성령은… 그 목적을 위해서는 더 이상 베드로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성령께서 모든 사람에게 가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우리 이방인들은 메시아가 오시기를 기다리지 않던 앵글로색슨족이었습니다. 우리는 등에 몽둥이를 메고 다니던 이교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메시아를 기다리던 이들은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이었습니다. 그들은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나타나셨을 때 어떤 표적을 행하셨습니까? 모세가 말했던 그 선지자, 곧 하나님이신 선지자의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참으로 영적인 인도를 받던 사람들은 그것을 보았습니다. 그분이 그 표적을 행하시는 것을 보고 “저분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온갖 지적인 교육을 받은 다른 사람들은 “이자는 바알세붑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분은 사마리아로 가셨습니다. 가실 필요가 있었습니다. 한 여인이 우물에 나오자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마실 물을 내게 달라.” 여인이 말했습니다. “그것은 관례에 어긋납니다. 여기서는 서로 분리되어 지냅니다.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은 상종하지 않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여자여, 네가 누구와 말하고 있는지 알았다면 내게 마실 물을 구하였으리라.” 여인이 말했습니다. “우물은 깊고 선생님께는…” 그분은 무엇을 하고 계셨습니까? 여인의 영과 접촉하고 계셨습니다. 그녀의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셨을 때, 우리 모두 그 문제가 무엇이고 어디에 있었는지 압니다만, 그분은 “가서 네 남편을 데리고 여기로 오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인이 말했습니다.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옳게 말하였다. 네게는 남편이 다섯 있고, 지금 함께 살고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라.” 여인이 “선생님, 제가 보니 선생님은 바알세붑이십니다.”라고 했습니까? 아닙니다. 여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보니 선생님은 선지자이십니다. 선생님이 선지자이신 것을 제가 압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 사마리아인들은 가르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메시아께서 오시면 우리에게 이런 일들을 말씀해 주시리라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것이 메시아의 표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누구십니까?”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네게 말하고 있는 내가 그니라.”
오, 세상에. 기억하십시오. 그분은 이방인들에게는 결코 그렇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이방인들에게는 그것을 행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그분이 무한하신 하나님이시면서 그들을 그대로 두시고, 지적인 가르침으로… 오늘날 우리에게 있는 것만큼 말입니다. 우리가 이 시대, 곧 우리에게 주어진 경륜을 지나가면서도 똑같은 나타남을 보지 못한다면, 그분은 그들에게는 행하셨으면서 우리에게는 행하시지 않은 것이 됩니다. 그러나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그분은 그렇게 행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분은 무엇을 하셨습니까? 성경 구절이 많지만, 제가 방금 인용한 구절을 보겠습니다. “소돔의 날들에 상황이 어떠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도 그러하리라. 그와 같이 되리라.” 불이 내리기 직전에 같은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분, 무한하신 하나님께서 거기 계십니다. 오늘 밤 여기 계십니다. 대단한 말이지만 성경이 그렇게 말씀했으며, 성령께서 여기 계셔서 그것을 뒷받침하고 참되다고 말씀하십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오 주님, 저기 누군가 고통받고 있습니다. 틀림없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버지, 긍휼을 베푸시고 주님께서 하나님이심을 알려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그저 말씀만 하옵소서. 이곳에서 주님을 찾는 불쌍한 혼이, 우리의 연약함을 몸소 느끼실 수 있는 대제사장께 손을 댈 수 있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적어도 한두 사람에게라도 허락해 주옵소서. 한두 증인, 아니 두세 증인의 입으로 모든 말이 확정됨을 사람들이 알게 하옵소서. 아버지, 허락하옵소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리고 주님, 오늘 밤 메시지와 그것이 그러하다고 선언하는 주님의 말씀을 위해 구합니다. 펼쳐지고 드러날 때가 가까웠으며,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주님께서 여기 계신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하옵소서. 아멘. 이제 여러분이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온 마음으로, 여러분 안의 모든 것을 다해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기 계신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저기 계신 분 가운데 저와 초면이어서 제가 여러분을 모르는 분은 몇 분이나 됩니까? 손을 드십시오. 건물 안 어디에 계시든 손을 드십시오. 아마 여러분은 이것을 모르셨을지도 모릅니다. 이제 만일… 저는 성령을 따라야 합니다. 성령께서 말씀하시면 여러분은 대답하십시오. 성령께서 말씀하실 것이라고 제가 단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그렇게 하시기를 기도한다는 말씀입니다. 아시겠죠? 그렇게 하시기를 말입니다. 그분의 말씀이 아니고서는 제가 그렇게 말할 권리가 없습니다. 그분은 허락하시겠다고 말씀하셨고, 우리는 허락될 것을 믿습니다. 이제 기도하십시오. 여러분의 믿음입니다. 여러분이 그분께 손을 대기 전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분이 제게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이 믿을 수 있다면 말입니다. 네가 만일 믿을 수 있거든.
그렇습니다. 여기 있습니다. 잠깐만요. 바로 여기 제 왼쪽에 한 여인이 앉아 있습니다. 몸집이 좀 있는 분입니다. 아주 심하게 앓고 있습니다. 심장 질환이 있고 암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으며, 마귀로 인한 영적인 침울함… 아니, 억압을 겪고 있습니다. 바로 여기 앉아서 고개를 숙이고, 이쪽으로 저를 보고 있는 여인입니다. 자매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매님을 낫게 해 주실 것을 믿습니까? 믿습니까? 믿으십니까? 받아들이십니까? 놓쳤습니다. 이제 그것을 이겨 내셔야 합니다. 하늘과 땅의 창조주이신 주 하나님, 주님, 사람들이 깨달을 수 있도록 알려 주옵소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십시오. 여기 바로 뒤에 앉아서 아내를 위해 기도하는 남자가 있습니다. 아내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내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아내가 수술도 받고 그 밖의 치료도 받았지만,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정확히 맞습니다. 이분은 목사입니다. 네이선 목사님, 제이컵 네이선입니다. 아내가 옆에 앉아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내를 낫게 해 주실 것을 믿습니까? 선생님, 받아들이십니까? 받아들이시면 손을 드십시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계속하십시오.
저는 그 남자를 평생 본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을 지나쳐 가게 두지 마십시오. 그분은 영원무궁토록 하나님이십니다. 여기 한 여인이 앉아 있습니다. 바로 저기서 고개를 숙였습니다. 지금은 앉아서 저를 보고 있습니다. 이 여인은 어딘가 다리가 불편합니다. 발밑에는 걸을 때 짚는 목발이 있습니다. 자매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늘 밤 그 목발 없이 이곳을 걸어 나가게 해 주실 것을 믿습니까? 바로 거기 앉아서 저를 보고 계신 분, 믿으십니까? 치유를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손을 드십시오. 저는 평생 자매님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믿으시면 그 목발을 거기 놓아두고 걸어 나가실 것이며 온전하게 되실 것입니다. 자매님의 믿음에 도전합니다. 그것을 믿으십시오. 네가 만일 믿을 수 있거든. 여기 뒤쪽은 어떻습니까? 목사님들은 어떻습니까? 형제님들, 믿으십니까?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윌리엄스 형제님을 제외하면 여러분은 모두 저와 초면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여러분은 그분의 자녀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형제가 되려고 여기 왔습니다. 하나님의 영께서 여기 계십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것을 전하고 말했습니다. 그저 믿음을 가지고 믿으십시오. 무언가 잘못된 곳이 있으면 그분께 구하십시오.
바로 여기 앉아서 저를 보고 계신 이분, 정확히는 선생님이 아닙니다. 저기 앉아 계신 선생님의 아버지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으신다면, 아버지에게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하나님께서 제게 말씀해 주실 수 있다고 믿습니까? 발에 문제가 있습니다. 맞으면 일어서십시오. 저기 아버지가 앉아 계십니다. 머리가 좀 벗겨진 연로한 분이 바로 저기 앉아서 지금 저를 똑바로 보고 계십니다. 여기, 여기를 보십시오. 그 빛이 보이지 않습니까? 여기 이 작은 여인 위에 있는 빛을 보십시오. 이분도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는 바로 저기 앉은 여인, 그 작은 여인을 압니다. 하나님께서 이분에게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제게 말씀해 주실 수 있다고 믿습니까? 믿으시겠습니까? 다리에 문제가 있습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저분이 주님의 천사이심을 믿으십니까?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바로 그 예수님이심을 믿으십니까? 그분은 여전히 하나님이시며, 해칠 수 있는 것도, 방해할 수 있는 것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히 사시고, 중보하시려고 항상 살아 계십니다. 우리가 그저 믿고 믿음을 가지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나머지를 이루실 것입니다. 온 마음으로 그것을 믿으십니까?
이제 메시아께서 오실 때가 가까웠음을 믿으십니까? 저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저는 그들 중 한 사람도 평생 본 적이 없으며, 하나님께서 그것이 사실임을 아십니다. 이제 여러분이 그것을 시작하게 했습니다. 이제 온 건물 안으로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바로 지금이 그때입니다. 지금이 여러분의 치유를 받을 때입니다. 서로에게 손을 얹으십시오. 서로의 몸에 손을 얹고 지금 믿으십시오. 이제 여러분이 붙잡았습니다. 이제 믿음 안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오 주 하나님, 하늘과 땅의 창조주여, 주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오늘 밤 알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그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의 성령께서 이 백성 가운데 내리셔서 주님이 위대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시며, 여전히 동일하시다는 것을 그들에게 입증해 주옵소서. 어제나… 사탄아, 너는 패배했다. 이 백성에게서 나와라. 살아 계신 하나님의 권능으로 네게 엄히 명하노니,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 백성에게서 나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