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잠시만 더 서 계시기 바랍니다. 머리 숙여 기도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을 은혜의 왕좌 앞으로 데려갈 때, 하나님 앞에서 기도로 기억해 드리기를 원하시는 분이 여기 계십니까? 우리가 기도하는 동안 주님께서 여러분의 간구를 들어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주의 아들 주 예수님의 이름, 모든 필요를 채우기에 충분한 그 이름으로 주의 긍휼의 왕좌 앞에 나아갑니다. 주님, 저희는 연약하며 주의 도움이 필요함을 고백합니다. 저희의 큰 대적이며 주의 대적이기도 한 원수가 울부짖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삼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께서는 “내가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고 너를 버리지 아니하리라.” 하고 약속하셨습니다. 주님, 저희는 그 약속을 참으로 엄숙한 마음으로 믿습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함께 모인 곳, 거기에 나도 그들의 한가운데 있느니라.” 하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온 마음으로 그것을 믿습니다.
아버지, 사람들이 이곳에 편지들을 보내왔습니다. 이 편지들 안에는 병들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보낼 손수건과 천 조각들이 들어 있습니다. 오, 아버지 하나님, 성경은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갔을 때 사람들에게서 악한 영들이 떠나고 질병들이 나았다고 가르쳐 줍니다. 전에 말씀드렸듯이 저희는 저희가 바울이 아님을 압니다. 그러나 주께서는 여전히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십니다. 저희는 이 일을 행한 분이 바울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주님, 사람들의 믿음에 응답하신 주의 영이셨습니다. 오늘날에도 똑같은 필요와 똑같은 부르짖음이 있고, 주께서는 동일한 하나님이십니다. 똑같은 결과가 나타나게 하옵소서. 바로 그 목적을 위해 이것들을 주께 맡깁니다. 주께서는 이 회중이 든 손을 보셨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아십니다. 저마다 구한 바로 그것을 받게 하옵소서. 주님, 허락하여 주옵소서.
이제 저희가 말씀을 읽을 때 저희의 기도를 들으시고, 주의 성령으로 말씀을 저희에게 나누어 주옵소서. 오늘 저녁 예배를 마치고 저마다 집으로 돌아갈 때, 엠마오에서 오던 사람들이 말한 것처럼 “우리 마음이 우리 속에서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말할 수 있게 하옵소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행하셨던 것과 똑같은 일을 오늘 저녁 저희 가운데서 행하셔서, 주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으며 더 이상 죽어 계시지 않고 영원토록 살아 계신 주님이심을 세상이 알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앉으셔도 됩니다.
저는 오늘 시카고를 ‘바람의 도시’라고 부르는 것은 이름을 잘못 붙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이름은 털사에 붙였어야 할 것 같습니다. 어젯밤에는 바람이 너무 심해서 잠을 거의 이루지 못했습니다. ‘내가 시카고에 여러 번 가 봤지만, 어젯밤처럼 바람이 부는 것은 한 번도 못 봤는데.’ 하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예배 때도 바람이 몹시 불며 소리를 내서 다소 어수선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귀한 분들을 만나 뵈니 그 모든 것을 보상받았습니다. 오늘 람사 성경을 번역하신 람사 박사님을 만나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참으로 귀한 기회였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세상을 떠난 뒤에 화환 하나를 통째로 받는 것보다 지금 작은 장미 봉오리 하나를 받는 편이 더 좋습니다. 아마 그분도 같은 생각이실 것입니다. 저는 분명히 그분의 번역을 지지할 수 있습니다. 직접 만나 뵙고 참된 그리스도인 신자의 아름다운 영을 지닌 분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고귀한 혼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람사 박사님보다 더 영적인 분을 만나 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주님께서 그분을 풍성히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또 오늘 개인 면담 등을 통해 다른 훌륭한 분들도 많이 만나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이곳 오클라호마에는 참으로 좋은 분들이 계십니다. 저는 그분들을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저에게도 오클라호마와 약간의 인연이 있습니다. 제 어머니가 바로 이 털사 근처에서 몇 년 동안 사셨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텍사스에 있는 패리스라는 곳으로 이사하셨습니다. 텍사스주 패리스입니다. 거기서 켄터키로 가셨다가 인디애나로 이사하셨고, 다시 서부로 가셨습니다. 제 아버지는 말을 타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때 어머니와 아버지가 결혼하셨습니다. 그 후 두 분은 켄터키에 자리를 잡고 사시다가 제가 태어난 뒤에 인디애나로 이사하셨습니다. 그 뒤로 저희는 거기서 살아왔습니다. 그러니 이 미국에는 훌륭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참으로 훌륭한 세상이며, 어디서든 하나님의 백성을 만나면 훌륭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피부색이 무엇이든, 어느 나라 출신이든, 그들은 언제나 같습니다. 저 멀리 실론과 여러 다른 곳에서, 오른손과 왼손도 거의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성령을 받으면 여러분이 성령을 받을 때와 똑같이 행동합니다. 그들 중에는 오른손과 왼손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성령을 받으면 여러분이 성령을 받을 때와 똑같이 행동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제 곧바로 진행해야겠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병자들을 잠깐 줄지어 모시고 기도해 드리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람들을 고친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누구라도 그런 주장을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희는 그분들을 위해 기도한다고 말할 뿐입니다. 누군가가 “브래넘 형제님, 형제님은 신유를 행하는 치유자이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아닙니다. 저는 신유를 행하는 치유자가 아닙니다. 하지만 기도에 대한 놀라운 응답은 분명히 받아 왔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니 그 일로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누군가를 돕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제가 여기 온 목적은 여러분의 삶의 짐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해 드리려는 것입니다. 삶은 어떻게 보든 힘겨운 싸움입니다. 우리 모두 그것을 압니다. 서로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 줄 수 있다면, 그것이 서로를 향한 참된 형제 사랑과 보살핌을 보여 준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저녁에는 성경에서 마태복음 12장을 읽으려 합니다. 성경 구절을 적어 두시는 분이 계시다면, 12장 42절입니다. 심판 때에 남쪽 여왕이 이 세대와 함께 일어나 이 세대를 정죄하리니 이는 그녀가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의 맨 끝 지역에서 왔기 때문이라. 그러나,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예수님께서는 그분을 믿지 않은 도시들과 사람들을 책망하고 계셨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모든 일들을 보여 주셨지만, 그들은 종교 제도에 너무 얽매여 자기들 나름의 방식과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우리 중 많은 이가 주님께서 어떻게 오실지 이미 자기 나름대로 그려 놓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때는 한 사람은 그분께서 흰말을 타고 오신다고 믿고, 다른 사람은 흰 구름을 타고 오신다고 믿기 때문에 갈라져 나가 교단을 만듭니다. 그분께서 오시기만 한다면 그것이 무슨 상관입니까? 중요한 것은 준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분께서 오실 때는 어차피 아마 우리가 생각해 놓은 것과는 전혀 다를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해 놓은 방식이 없습니다. 그저 그분께서 오시는 것을 보고 싶을 뿐입니다. 그것뿐입니다. 그분께서 여기 오실 때 준비되어 있기만 하십시오.
그들은 자기들 나름의 방식을 정해 놓고 있었는데, 자기들의 신학이 조금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을 부인했고, 심지어 마귀들의 우두머리를 뜻하는 바알세붑이라는 천한 이름으로 그분을 불렀습니다. 예수님께서 땅에 오셨을 때, 붙일 수 있는 가장 낮은 이름이 그분께 붙었습니다. 그분은 가장 낮은 도시로 가셨고, 머리 둘 곳도 없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분을 높이셨을 때는 하늘들보다 더 높은 곳으로 데려가셨습니다. 하늘을 보시려면 내려다보셔야 할 정도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이름 위에 있는 이름을 그분께 주셔서,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을 위해 하신 일과 우리가 그분께 한 일을 보십시오. 우리는 그분을 학대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높이셨습니다.
이제 그분은 자신이 어떻게 행하셨는지, 어떤 기적들과 표적들을 행하셨는지를 그들에게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이런 일들이 다른 세대에서 행해졌더라면, 그 도시들이 아직도 서 있었으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훌륭한 신학자라면 그분께서 저주하신 도시들은 오늘날 남아 있지 않지만, 그분께서 축복하신 도시들은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고 알려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매우 인상적인 일입니다. 저는 참으로 훌륭한 성경 학자들이 그것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성경이 메시아가 오리라고 예언한 모든 모습 그대로 오셨습니다. 하나님이신 선지자로 오셨습니다. 성경이 그분께서 오시리라고 한 바로 그 모습으로 오셨는데도, 그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오, 그분께서 두 번째로 오실 때 우리의 태도가 그러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들은 그분의 초자연적인 역사를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과 교회들이 초자연적인 것에서 너무 멀리 떠나 있었기 때문에, 일어나고 있는 그 초자연적인 일에 대해 자기 회중에게 답을 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무엇으로든 분류해야만 했습니다. 자기들의 생각을 내려놓고 성경으로 돌아가 알아보는 대신, 회중에게 그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자는 마귀일 뿐입니다. 그저 점쟁이거나 그런 부류입니다. 그에게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분께서 초자연적인 일을 행하셨을 때, 그런 일에 눈이 먼 사람들은 대개 더욱 눈이 멀어졌습니다. 그들의 상태가 더 나빠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세대에나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자신의 일꾼들을 두셨습니다. 때로는 그 수가 단 한 사람까지 줄어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어느 세대에나 손가락으로 가리키실 수 있는 누군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들은 내 백성이며, 내가 하라고 하는 대로 행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실 수 있는 사람들을 언제나 두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같은 장 41절에서 이전 일을 언급하시며 요나와 니느웨의 시대에 관해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제 본문으로 들어가기 전에 잠시 요나에 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 선지자를 정죄합니다. 그를 정죄해서는 안 됩니다. 의로운 사람의 걸음은 주님께서 정하시며, 그분께서는 모든 일이 꼭 맞게 이루어지도록 하십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요나를 니느웨 대신 다시스로 보내신 데 목적이 있었다고 믿습니다. 그것이 니느웨 사람들에게 그분의 말씀을 확증하시려는 하나님의 목적이었다고 믿습니다. 그러다가 요나가 다시스로 가는 길에, 우리가 알다시피 큰 폭풍이 일었습니다. 그는 선장에게 자기에게 잘못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손발을 묶어 배 옆으로 물에 던졌습니다. 성경은 이 큰 물고기가 그를 삼켰다고 말합니다.
얼마 전 과학에 대해 많이 아는 어떤 분이 제게 한 말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분은 “브래넘 형제님, 그 이야기는 사실일 수 없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왜 그렇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분은 “고래의 목구멍은 사람을 삼킬 만큼 크지 않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선생님, 성경을 제대로 읽지 않으신 것입니다. 이것은 특별히 준비된 물고기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물고기를 꼭 맞게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위해 물고기 한 마리를 준비해 두셨습니다. 요나가 들어갈 수 있도록 그 목구멍을 넓히신 것입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든 하실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요나를 삼킬 수 있는 물고기를 그를 위해 준비하셨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특별한 물고기였습니다.
그러다가 그 물고기가 먹을 것을 찾아 물속을 돌아다니다가... 물고기는 먹이를 먹고 나면, 여러분의 작은 금붕어에게 먹이를 주고 한번 보십시오. 먹이를 먹은 뒤에는 어항 바닥으로 내려가 작은 지느러미를 바닥에 대고 쉽니다. 그러니 이 큰 물고기도 요나를 삼킨 뒤 바다 밑바닥으로 내려갔을지 모릅니다. 니느웨 앞바다 그곳의 깊이가 몇 길이나 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가련한 선지자가 어떤 처지에 놓였는지 상상이 가십니까?
누구에게 자기의 증세를 내세울 만한 이유가 있었다면, 바로 요나였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를 보십시오. 우리는 그가 믿음에서 타락했다고 생각하려 하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폭풍 치는 바다에 있었고, 고래 배 속에서 손발이 묶인 채 머리에는 해초가 온통 감겨 있었으며, 고래의 토사물 속에 누워 바다 밑바닥에 있었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 중에 그만큼 나쁜 처지에 있는 분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것만은 확실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참된 신자를 하나님에게서 숨길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저는 요나가 몸을 뒤집어 반듯이 눕는 모습을 그려 볼 수 있습니다. 이보다 더 확실한 증세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쪽을 봐도 고래 배 속이고, 저쪽을 봐도 고래 배 속이었습니다. 어디를 보든 고래 배 속이었습니다. 그는 끔찍한 처지에 있었고, 증세도 수없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아십니까? “이것들은 거짓되고 헛된 것들입니다.” 그는 “주님, 다시 주의 거룩한 전을 바라보리이다.” 하고 말했습니다. 요나는 솔로몬이 그 성전을 봉헌할 때 기도하면서 대략 이런 말을 한 것을 기억했기 때문입니다. “주님, 주의 백성이 어디서든 어려움을 당하여 이 거룩한 성전을 바라보고 기도하거든, 하늘에서 들으소서.” 요나는 하나님을 믿었고 솔로몬의 기도를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고래 배 속에서 건져 내셨습니다.
여기에 그토록 나쁜 처지에 있는 분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고래 배 속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매일 저녁 하나님의 손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요나는 바다 밑바닥 고래 배 속이라는 처지에서도 그와 같은 믿음을 가졌습니다. 땅에 속한 사람이 기도하고 땅에 속한 백성이 지은 성전을 바라보며, 자기 기도의 응답에 어긋나는 것은 무엇이든 보기를 거절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얼마나 더 믿음을 가지고 하늘을 바라보아야 하겠습니까? 거기에는 예수님께서 하나님 오른편에 앉아 우리의 고백을 근거로 중보하고 계십니다. 물론입니다. 어떤 것도 우리 앞을 가로막을 수 없어야 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사흘째 되는 날 다시 일어나시고 하늘로 올라가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 성령께서 밤마다 그분이 여기 계심을 증언하십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얼마나 자꾸 눈에 보이는 것을 바라보며 “아, 내 손을 봐요. 내 손가락을 봐요.” “아직도 속이 아파요.” 하고 말합니까? 아,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주님, 다시 주의 거룩한 전을 바라보리이다.” 오늘 저녁 그분은 거기에 앉아 계시며, 자신의 피 묻은 옷을 두르신 채 우리의 고백을 근거로 중보하고 계십니다. 오, 얼마나... 무엇을 바라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자기 증세만 바라보면 나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증세를 바라보기를 거절하고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바라보십시오. 무엇을 바라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봅니다.
여러분이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믿음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교의 전신 갑주는 모두 초자연적입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고 교회에서 설교하면서, 초자연적인 것은 믿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전신 갑주, 그리스도교의 전신 갑주는 모두 초자연적인데 말입니다. 그리스도교의 갑주가 무엇입니까? 사랑, 기쁨, 평안, 오래 참음, 선함, 온유, 인내, 믿음, 성령입니다. 이 모든 것이 초자연적입니다. 사랑이 무엇입니까? 기쁨이 무엇입니까? 약국에 가서 25센트어치만 사다 주십시오. 지금 당장 필요합니다. 아시겠죠? 사랑, 기쁨, 평안, 오래 참음, 선함, 인내, 부드러움, 믿음은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살 수 없습니다. 그것은 초자연적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전신 갑주는 모두 초자연적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고 명합니다. 온몸을 두르라는 것입니다. 전신 갑주를 말입니다.
요나는 고래 배 속에서 몸을 돌려, 자기가 아는 한 성전이 있는 쪽을 향해, 고래의 위쪽을 바라보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큰 물고기를 돌려세워 한 가지 목적을 위해 요나를 곧장 니느웨로 데려가셨습니다. 우리는 니느웨 사람들 대부분이 믿음에서 타락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그것이 떠나가고... 제가 한 번 읽은 이야기에는 그들 중 많은 사람이 이교로 돌아서서 우상들을 숭배하고 있었고, 고래를 바다의 신으로 믿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고기잡이를 업으로 삼고 있던 때에... 여기 고래가 해안으로 헤엄쳐 와서, 바다의 신이 입을 벌리고 선지자를 물가에 뱉어 놓은 것입니다. 그들이 그의 말을 들은 것도 놀랄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을 어떻게 이루어야 하는지 아십니다. 어떻게 만드셔야 하는지 아십니다. 여러분이 원하신다면 그 이야기를 그렇게 받아들이셔도 됩니다. 그것도 괜찮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핵심은 이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우리에게 표적을 보여 주십시오.” 하고 청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연약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한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표적을 받을 것입니다. 어떤 표적입니까? 부활의 표적입니다. 저는 우리가 지금 연약하고 악한 세대에 살고 있다고 믿습니다. 신학자들은 뒤죽박죽 혼란에 빠져 있고, 교회들은 온통 한데 뒤엉켜 있어서 사람들은 무엇을 믿어야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연약한 세대가 부활의 표적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우리가 지금 그것을 받고 있다고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죽지 않으셨습니다. 살아 계시며, 오늘 저녁 여기서 우리 안에 사시고, 약속하신 바로 그것을 실행하고 행하시려 합니다. 오, 그분께서는 니느웨가... 그때 그 세대가 니느웨와 같았더라면...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고는 솔로몬의 시대로 넘어가 “솔로몬의 시대에는...” 하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땅에 선물을 보내셨는데 사람들이 그 선물을 거절하면, 하나님의 선물을 거절한 그 나라와 백성에게 언제나 혼란이 닥친다는 것은 누구나 압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세상에 주신 가장 위대한 선물이셨습니다. 그런데 유대 백성은 그 선물을 거절했고, 그때부터 온 세상에 흩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선물을 보내시는데 사람들이 그것을 알아보기를 거절하고 받아들이기를 거절하면, 흩어지게 됩니다. 사람들이 말입니다. 그들은 목자 없는 양과 같아집니다.
오늘 저녁 우리가 솔로몬 시대에 그들이 했던 것처럼 하기만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분별의 은사를 보내셔서 솔로몬에게 부어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이 위대한 하나님의 권능, 분별의 권능이 솔로몬에게 임한 것을 보자마자 그 은사를 귀히 여기고, 그 사람을 존중하며 그를 왕으로 삼았습니다. 성경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때가 이스라엘의 황금시대였음을 압니다. 솔로몬 시대는 황금시대라고 불렸습니다. 이스라엘은 번영했습니다. 그들은 성전을 건축했습니다. 전쟁도 거의 없었습니다. 모든 나라가 그들을 두려워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것을 그들이 귀히 여겼기 때문입니다. 오, 오늘 저녁 방공호 이야기를 하신다면... 사람들은 원자폭탄을 피할 수 있는 강철 시설을 만들 장소를 찾으려고 땅 밑으로 수백 피트나 파 내려가려 합니다. 그러나 그 폭탄이 땅에 떨어지면 백 피트 깊이까지 날려 버린다는 것은 누구나 압니다. 그보다 아래로 오백 피트 내려가 있더라도 온몸의 뼈가 부러질 것입니다. 하지만 이 땅에는 단 하나 외에는 피난처가 없습니다. 피난처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강철로 만든 것이 아니라 깃털로 만든 것입니다. 그분의 날개 아래가 머물 곳입니다. 제가 아는 가장 좋은 피난처는 그분의 보호하시는 날개 아래입니다.
솔로몬 시대에는 모든 사람이 교회와 백성에게 보내진 그 위대한 하나님의 은사 주위로 모여 하나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미국이 자기들에게 보내진 선물을 중심으로 하나가 된다면 어떻겠습니까? 이 마지막 날들에 이 위대한 선물, 성령의 선물이 부어진 이곳에서 우리 미국인 모두가 그렇게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모든 목회자와 모든 평신도와 모든 교회가 함께 성령을 중심으로 하나가 된다면 어떻겠습니까? 우리를 인도하고 이끌며 질서를 바로잡아 주시려고 우리에게 보내신 하나님의 선물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감독과 대감독과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이 교회를 이끌도록 뜻하셨습니다. 그분이 우리의 인도자이십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보내지신 분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이끄시는 그분, 오직 그분의 다스림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말씀 안에, 말씀 안에서 바르게 머무르게 됩니다. 성령께서는 여러분에게 양의 먹이를 먹이십니다. 양의 먹이는 성경이며, 양은 성령을 먹고 삽니다. 하나님을 갈망하는 혼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삽니다. 우리 모두 그것을 중심으로 하나가 된다면 땅 밑으로 한 피트도 팔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어떤 원자폭탄 공격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안전한 곳에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운데 혼란은 전혀 없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한데 모일 것이며, 나라들은... 러시아... 오, 러시아도 우리만큼이나 그것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핀란드에서 그 어린 소년이 죽었다가 살아났던 그날 밤, 여러분 모두가 아시고 책에도 인쇄되어 있듯이 자동차 사고로 죽었던 그 아이 말입니다... 저는 이삼 년 전에 환상 가운데서 그 어린 소년을 보았습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그 일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자기 성경에 적어 두게 했습니다. 그 어린 소년이 죽었다가 살아난 그날 오후... 그날 밤 제가 메수할리로 내려갔을 때, 수천 명의 러시아인이 거기 서 있었습니다. 군인들도 거기 서서 러시아식 경례를 하며 뺨으로 눈물을 흘리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런 하나님이라면 받아들이겠습니다.” 물론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찾으러 오는데, 여러분은 그들에게 신조 한 무더기를 줍니다. 그들은 붙잡을 수 있는 실제적인 것을 원합니다. 저는 그들을 탓하지 않습니다.
교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사람들이 쓰레기통에서 음식을 주워 먹게 내버려 두었을 때, 바로 그것이 공산주의를 시작하게 했습니다. 배고픈 아이는 쓰레기통에서 주워 먹습니다. 그렇게 하는 유일한 이유는 깨끗한 식탁으로 초대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잘못입니다. 분명히 교회의 잘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것을 뜻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발견하는 것은 무력함뿐이며, 교회에 속한다는 것이 친목 단체에 속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뿐입니다. 우리는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교회에 올 때는 모든 영적 은사들과 하나님의 권능이 역사하여 그들에게 갈증을 일으켜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땅의 소금이지만 만일 소금이 제맛을 잃으면, 그 뒤에는 그것이 아무 데도 쓸모없으므로 사람들의 발밑에 밟힐 뿐이니라.” 하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사람들이 소금을 바로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소금이 제 효력을 발휘할 힘을 잃었을 때, 교회가 권능을 잃었을 때, 교회는 다른 친목 단체와 다를 바 없게 됩니다. 사실입니다.
하지만 소금에 힘이 있어서 닿기만 하면 맛을 냅니다. 여기에 고기가 있고 저기에 소금이 있다면, 고기를 보존하려면 그 둘을 함께 놓아야 합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소금은 닿으면 보존합니다. 하지만 소금이 힘을 잃었다면 고기에 온통 쏟아부어도 고기는 어차피 상하고 맙니다. 문제는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자기 구주로 알지도 못하고 성령으로 충만하지도 않은 채, 교회에 가입하고 명부에 이름을 올립니다. 하나님을 갈망하는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와서도 아무것도 찾지 못합니다. 그저 메마른... 별이나 달 같은 것에 관한 짧은 지적인 이야기, 또는 누가 다음 대통령이 될지에 관한 이야기뿐입니다. 그런 이야기들도 괜찮지만, 강단에서 할 이야기는 아닙니다. 강단은 심판석입니다. 그곳은 하나님의 권능을 그분의 권능으로 선포해야 하는 자리입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그러나 솔로몬 시대에는 얼마나 달랐습니까! 그들은 모두 한데 모였습니다. 오,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그들이 모두 이 은사를 중심으로 모였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솔로몬의 명성과 하나님의 명성이 여러 나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텔레비전이나 전보나 전화 같은 것이 없었습니다. 소식을 전하는 유일한 길은 입에서 귀로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지나가는 모든 사람... 온 이스라엘이... 낯선 사람이 지나갈 때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뜨거웠을지 상상이 가십니까? “아, 성전에 꼭 올라가 보십시오. 주 우리 하나님께서 은사를 보내셨습니다. 우리 형제 솔로몬에게 그 은사가 머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우리의 왕으로 세우셨고, 그 은사가 그에게 임해 있습니다. 오셔서 그분이 지닌 분별의 지혜를 보셔야 합니다.” 사람들은 그곳을 지나가면서 마음이 기뻤을 것입니다. 그러고는 가서 다른 이에게 말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의 명성이 온 세상에 퍼져, 땅의 맨 끝 지역인 저 멀리 스바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곳은 당시로서는, 제 생각에 당시 문명세계에 알려진 땅의 끝이었을 것입니다.
그곳에 한 여왕이 있었습니다. 그 여왕이 이교도였다고 생각해 봅시다. 낙타 대상이 지나갈 때마다, 팔레스타인 근처에서 온 누군가가, 사하라 사막을 온통 가로질러 온 누군가가 그곳으로 내려와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있잖습니까, 무슨 일이 있는지 아십니까? 팔레스타인에 올라가 보셔야 합니다. 그곳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들은 그분을 여호와라고 부릅니다. 그분은 죽은 신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우상이 아닙니다. 솔로몬이라는 사람 안에 바로 살아 계십니다. 평생 그런 것은 보신 적이 없을 것입니다. 그분의 분별의 권능은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것을 훨씬 뛰어넘습니다. 그들에게는 실제로 붙잡고, 자기들의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다고 말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믿음은 들음에 의해 옵니다. 많은 사람이 간증하자 마침내 그 여왕의 마음이 동요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뒤, 여왕은 그처럼 많은 간증을 듣다가... 믿음은 들음에 의해 옵니다. “전혀 어긋나는 일이 없습니다. 가서 보셔야 합니다. 나오는 사람마다 백 퍼센트 정확합니다. 꼭 보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놀라운 은사입니다. 그들에게는 위대한 하나님이 계십니다.”
이 여왕이... 이렇게 한번 생각해 봅시다. 어느 날 여왕이 앉아서 자기의 이교 경전을 읽었습니다. 그 우상이나 그와 비슷한 무엇 안에 살고 있는 위대한 신에 관한 약속이 있었습니다. 할머니도 그것을 알고 계셨고, 할아버지도 그것에 관해 생각하셨고, 그런 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여왕은 이런 간증들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글로 적힌 어떤 신학이 아니라 살아 있는 실재였습니다. 한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장막 뒤에서 나와 우리가 ‘삶’이라고 부르는 이 빛 속으로 들어온 사람이라면, 이곳을 넘어갈 때 어디로 가는지 궁금해하지 않는 사람은 세상에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본능입니다. 우리 모두 찾고 있습니다. 장막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싶어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찾고 있습니다. 이 여왕은 갈망하기 시작하며 ‘아, 가 봐야겠어.’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결심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해 주는 것만 듣는 데는 지쳤어. 그것이 옳은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내가 직접 가서 보겠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가서 직접 알아보십시오. 집에 머물러 비판만 하지 마십시오.
빌립은 나다나엘을 만났을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와서 우리가 만난 분을 보라.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님이시다.”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하고 물었습니다. 빌립은 “와서 보라.” 하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스스로 확신하게 되는 가장 좋은 길입니다. “와서 알아보라.” 빌립은 어떤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대답을 나다나엘에게 주었습니다. “와서 직접 확인하고 확신을 가져라.”
그 여인은 가서 그것이 옳은지 아닌지 직접 확인해 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진리를 알아보려는 여왕 앞에는 부딪혀야 할 일들이 많았습니다. 여러분이나 저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우선 떠나기 전에, 여왕은 큰 권한을 가진 통치자였습니다. 그곳의 큰 교회 명부에서도 여왕의 이름은 분명 상당한 무게를 지니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기의 이교 제사장에게 가서 이야기하고, 교회를 떠나 올라가 이 다른 종교를 알아봐도 되는지 허락을 구하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어떤 대답을 들었을지 여러분도 상상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이교 제사장이 서서 말하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 같습니다. “자, 잠깐 기다리거라, 딸아. 그런 헛된 철학을 따르고 싶지는 않겠지. 내가 말하마. 살아 있는 신이 있다면 그건 우리 신일 것이다.” 아시다시피 우리에게 이교도는 없을지 몰라도 그런 종류의 제사장들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일을 하시려 한다면 여기 우리 교회에서 하실 것입니다. 저기로 가서 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서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하나님께서는 원하시는 곳에서 원하시는 방식으로 행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따질 일은 아닙니다.
그러고 나서, 제사장이 이렇게 말하는 모습을 그려 볼 수 있습니다. “딸아, 보아라. 네 할머니도, 증조할머니도, 그보다 훨씬 앞선 조상들도 모두 여기 있는 이 위대한 우상을 숭배했다. 위대한 신이다.” 여왕은 말했습니다. “예, 아마 그 말씀이 맞겠지요. 저도 그에 관한 두루마리를 다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무엇을 하겠다는 이 두루마리의 이야기는 듣고, 또 듣고, 또 듣고, 또 들었습니다. 그가 무엇을 하리라, 무엇을 하리라 하는 이야기 말입니다. 그런데 그가 한 번이라도 움직이는 것은 보지 못했습니다.” 좋은 대답입니다. “아무 일도 보지 못했습니다. 제가 보는 것은 거기 놓인 돌덩어리뿐입니다.” 형제님, 여러분에게 있는 것이 그것뿐이라면 여러분도 여왕과 거의 다를 바 없는 처지입니다. 그렇습니다. 커다란 돌덩어리 같은 건물이나 그 비슷한 것을 두고 “이것이 내 교회입니다.” “이것이 내 교단입니다.” 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도 괜찮지만, 제가 말하는 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저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죽지 않으시고 지금도 살아 계시며, 어느 때 못지않게 실제로 여기 계신 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그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고는 여왕이 말했습니다. “자, 제사장님. 저는 그가 움직이는 것을 본 적이 없고, 무슨 일을 하는 것을 본 적도 없습니다. 제 할머니도 그가 무슨 일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으며, 할머니의 어머니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살아왔는데, 살아 계신 분이 계시다는 소식을 듣고 있습니다. 저는 그분을 보러 가겠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든 저는 가겠습니다.” 저는 그런 용기가 좋습니다. 직접 알아보십시오. 여왕은 말했습니다. “그것이 사실이 아니면 돌아와서 사실이 아니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으로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알게 될 것입니다.” 떠나기 전에 여왕이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라고 상상해 봅니다. ‘사실이 아니면 어떡하지? 그런데 사실이라면 어떡하지? 사실이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 움직이시며 자신이 살아 계심을 보여 주고 계신다면, 돌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이라면, 그렇다면 나는 내가 가진 모든 것으로 그 일을 뒷받침하겠어. 그럴 가치가 있어.’
여왕은 낙타에 안장을 얹고 은과 금과 몰약과 유향을 잔뜩 실었습니다. 이제 떠날 준비가 되었습니다. 여왕은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사실이면 뒷받침하겠어. 하지만 사실이 아니면 내 돈을 집으로 가져오겠어.’ 미국도 그렇게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제가 그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잠깐 멈추고 그 말이 깊이 스며들게 하겠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일이라면 기도와 여러분이 가진 모든 것으로 뒷받침하십시오. 그 일이 앞으로 나아가도록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십시오. 돈으로 돕는 데 치중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물론 때때로 조금씩 돈을 보태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만... 필요할 때는 도우십시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일이 가능한 한 돈과 거리를 두게 하는 것입니다. 돈 대신 여러분 자신을 거기에 바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제단 위에 여러분의 돈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이 있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이... 하는 편이 더 좋습니다. 다가오는 부활절은 늘 저를 영적으로 좀 메스껍게 만듭니다. 제 영적인 소화 기능으로는 그것을 소화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올라가 제단에 커다란 백합 화분 하나를 올려놓는 일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단 위에 백합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을 원하십니다. 제단은 백합을 위해 세워진 것이 아닙니다. 가인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십시오. 제단은 여러분을 위해 세워졌습니다. 제단 위에 있어야 할 선물은 여러분입니다.
여왕은 “그렇지 않다면 내 돈을 가지고 돌아오겠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낙타들을 모두 준비했을 때... 물론 그곳 사람들 중에는 함께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이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기억하십시오. 여왕은 긴 여행을 해야 했고 사하라 사막을 건너야 했습니다. 냉방 장치가 달린 캐딜락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타고 갈 낙타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뜨겁게 끓어오르는 모래... 예수님께서 “그녀가 심판 날에 일어나 이 세대를 정죄하리라.” 하신 것도 놀랄 일이 아닙니다. 여왕은 그 사막을 온통 가로질러 왔습니다. 그렇게 하는 데 석 달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가운데 사시며 나타내시는 일을 보려고 길 건너편까지 삼 분을 걸어가려 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면서 성령에 취해 뒹구는 광신자 무리라고 몰아붙입니다. 이 나라가 심판을 받을 때가 된 것도 놀랄 일이 아닙니다.
여왕은 그 사막을 건너야 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그때 사막에는 이스마엘의 아들들이 있었습니다. 날쌘 말을 타는 자들이며 큰 강도들이었습니다. 얼마나 손쉬운 먹잇감이었겠습니까... 여왕이 데리고 간 작은 군대와 몇몇 시녀들 말입니다. 낙타에 앉은 그 여인은 아마 밤에 여행해야 했을 것입니다. 낮에는 내리쬐는 햇볕에 거의 타 버릴 지경이었을 것입니다. 사하라 사막을 가로질러 오면서 밤에 별을 따라 어느 물웅덩이까지 갈 수 있을지 살피고 찾았습니다. 오, 생각해야 할 것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들으십시오. 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에 말씀하시고 그 사람을 이끌기 시작하시면, 그곳에 이르는 것을 막을 만큼 많은 마귀가 지옥에서 나올 수는 없습니다. 그 사람은 그곳으로 갈 것입니다. “내 양들은 내 음성을 듣느니라.” 무언가가 사람의 마음을 파고들기 시작합니다. ‘어딘가에 하나님이 계신다. 나는 그분을 찾고 있다.’ 그 사람은 찾고, 움직이고, 뒤지고, 샅샅이 살펴서 마침내 찾아낼 것입니다.
옛날 다윗이 말했듯이 “깊음이 깊음을 부를 때...” 부르는 깊음이 있다면, 거기에 응답할 깊음도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들으십시오. 만일... 오늘 저녁 여기 앉아 계신 여러분, 신유가 있다고 말해 주는 성경 구절이 없더라도 저는 신유가 있다고 믿을 것입니다. 보십시오. 피조물이 있으려면 먼저 그 피조물을 창조할 창조주가 있어야 합니다.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시겠을지도 모르지만, 들어 보십시오. 얼마 전에 저는 우리보다 남쪽에 있는 어느 도시에서 한 어린 소년이 연필 끝에 달린 지우개를 먹고 있다는 신문 기사를 읽었습니다. 선생님이 몹시 걱정하여 어머니에게 소식을 보냈습니다. 어머니는 아이가 집 현관에서 자전거 페달을 뜯어 먹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고무를 먹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를 진료소로 데려갔고, 검사를 해 보니 아이의 몸에 유황이 필요하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고무에는 유황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유황을 원하기 전에, 그 욕구에 응답할 어떤 형태의 유황이 밖에 존재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이가 그것을 원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인간이 찾고 굶주리고 목말라 하며 하나님의 권능을 구하는 한, 그 부르짖음에 응답할 하나님의 권능이 어딘가에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피조물이 있으려면 먼저 그 안에서 그 피조물을 창조하는 창조주가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보기를 갈망한다면, 그 사람 안에 그런 갈망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어딘가에 반드시 계셔야 합니다. 깊음이 깊음을 부르고 있다면 거기에 응답할 깊음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안에 있는 그 부름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그 깊음이 먼저 있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 여인은 길을 떠났습니다. 모든 것이 여왕에게 불리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실제로 계신 하나님이라는 느낌이 한 번 들자, 하나님이 실제로 계신다는 것을 느끼자, 여왕은 목말라 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다른 사람이 와서 말했습니다. “아, 저는 그분이 서 계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본 것 중 가장 불가사의한 문제였는데, 그분은 자기 하나님의 권능 아래서 그것을 곧바로 풀고 그들에게 정확한 답을 알려 주었습니다.” 오, 그 이야기는 여왕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여왕은 말했습니다. “아, 나는 그것을 꼭 봐야 해. 꼭 봐야 해. 나도 인간이야. 내 삶, 내가 영원히 가게 될 곳이 내 앞에 놓여 있어. 나는 꼭 봐야 해.” 그 무엇도 여왕을 막지 못할 것입니다. 위험도 생각하지 않고, 비판도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무슨 말을 할지도 생각하지 않게 됩니다.
그날 밤 저 위에서 주님의 천사가 저를 만나 주셨을 때... 제 교회에 있던 모든 형제들이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환상들은... 그건 마귀야. 자네는 강신술사야.” 하지만... 제가 그분을 그토록 사랑하는데, 어떻게 그것이 그럴 수 있는지 저는 도무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날 밤 그곳에서 그분을 만났을 때, 오, 형제님, 깊음이 깊음을 부르고 있었고 거기에 응답하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저는 교회 감독을 찾아갔습니다. 그분은 “빌리, 자네가 악몽을 꾼 거야.” 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 교회가 이 일을 그렇게 생각한다면, 여기 제 교단 소속증이 있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분은 “아, 그런 뜻은 아니었네. 하지만 자네도 알다시피 그런저런 일은 일어날 수 없어.” 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좋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소속을 포기하는 편이 낫겠습니다. 어차피 얼마 뒤에는 저를 쫓아내실 테니까요. 그러니 지금 자유롭고 홀가분하게 출발해서 나아가는 편이 낫겠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된 것입니다. 깊음이 부르고 있을 때, 거기에 응답할 무언가가 있습니다.
그때 어떤 사람들은 저 밖에 있는 이 거대한 골리앗에 대해 말했습니다. 의학과, 세련되고 훌륭한 이 모든 교회들 말입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그 골리앗이 아무리 커도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하나님이십니다. 다윗의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살아 계십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살아 계십니다. 야곱의 하나님께서는 살아 계십니다. 그리스도 안에 계셨던 하나님께서 오늘 저녁 살아 계십니다. 그분께서 다스리십니다. 저는 그분이 실제로 계심을 압니다.” 어려움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그래도 가고 싶게 하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목적을 향해 올바른 동기를 가진다면, 그곳에 도달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목적을 향한 올바른 동기가 있어야 합니다. 저는 언제나 그런 식으로 하나님의 뜻을 찾습니다. 먼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생각하고, 그다음에는 그것을 향한 제 동기와 목적을 생각합니다. 동기가 올바르다면, 제가 가진 목적은...
만일 하나님께서 “저리로 가서 저 사람들에게 설교하라.” 하고 말씀하셨을 때 제가 “그러면 사랑의 헌금으로 얼마를 받게 됩니까?” 하고 묻는다면 어떻겠습니까? 물론 지금은 그런 것은 모두 없어졌습니다. 설교하든 하지 않든 저는 일주일에 백 달러를 받습니다. 그것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도, 제가 급여를 받기 전에도, 어디서든 상관없이 올바른 목적은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살피는 것이었습니다. 그분께서 가라고 인도하시는 곳으로 가십시오. 어디든, 자그마한 곳이든 작은 곳이든 상관없습니다. 저는 제 집회들이 커지거나 어떤 규모를 갖추게 한 적이 없습니다.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트레일러 한쪽의 작은 공간에 타자기 두 대가 있고, 제가 보수를 주는 청년 둘이 있습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저를 여기 작은 곳으로 부르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에도 스무 명이 들어가는 교회에서 부흥집회를 열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분께서 제가 해외로 가서 십만 명이나 이십만 명에게 설교하기를 원하신다면, 몇 명이든 상관없이, 저를 부르시는 바로 그때 누군가의 마음에 저를 그곳으로 보내려는 마음을 주십니다. 오,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그분을 위해 살고 날마다 그분을 신뢰하며, 깊음이 부르는 곳으로 나아가십시오.
그 여인은 “나는 어쨌든 가겠어.” 하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든, 어떤 일이 있든 상관없이 사막을 가로질러 계속 나아갔습니다. 마침내 성문에 도착했습니다. 낙타들에게서 짐을 모두 내려 금을 천막 안에 넣는 여왕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여왕은 그저 이런 말을 하려고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들어가 보겠어. 이 전도자에 대해 들었으니까. 들어가 앉아 있겠지만, 우리 교회 교리를 거스르는 말을 한마디라도 하면 곧바로 일어나 나가 버리겠어.” 그것이 1960년식입니다. 그때 사람들은 그보다 더 잘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런 태도부터가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음을 보여 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내 생각에 어긋나는 것이라면, 그 사람이 한마디라도 하면 나는 즉시 일어나 나가 버리겠어. 더는 듣지 않겠어. 절대로. 그 사람 말은 듣지 않겠어.” 아시겠죠? 올바른 동기로 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찾으려는 올바른 목적을 가지고 온 것이 아닙니다. 자기 지식만 온통 뒤엉키게 만들려고 할 뿐입니다. 아직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갈망하게 되면 여왕처럼 끝날 때까지 머물 것입니다.
여왕은 천막과 모든 것을 내려놓고 준비를 마친 뒤, 궁전 뜰 어딘가에 진을 치고 말했습니다. “끝까지 확인할 때까지 여기 머물겠어. 옳으면 옳은 것이고, 그르면 그른 것이지.” 그러고는 예루살렘으로 내려가 히브리 두루마리를 있는 대로 모두 사는 여왕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이 하나님께서 어떤 성품을 지니셨는지 알아보려는 것입니다. [테이프 공백.] “... 그러면 너희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 줄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들은 나에 대하여 증언한다. 너희가 보는 것들이 성경적이지 않다면 믿지 말라.” 여왕은 그렇게 하려고 했습니다. 두루마리들을 가져다가... “이 여호와가 어떤 하나님이신지 알아보자.” 여왕은 모두 읽고 익혔습니다. “이제 그분께서 어떤 분이실지 정확히 알겠어.” 하고 말했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하기만 한다면, 미국 사람들이 그만한 담대함만 가진다면, 정말 하나님을 그만큼만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좋겠습니다... 그분께서 이 일을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까? 이것이 그분의 뜻입니까?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까? 이것이 성령입니까? 어떤 성품을 지니고 있습니까? 어떻게 행동합니까?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그것입니다. 그것이 성령인지 알아보십시오. 앞으로 걸어 나가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예수님이 그분의 아들이심을 믿습니다. 저는 받아들입...” 하고 말한 다음 견진을 받는 것입니까? 그런 것은 결코 없었습니다. 견진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성령에게서 태어나는 것입니다. 영에게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옳은지 살펴보십시오. 자세히 알아보고, 물을 뿌리는 세례를 받아야 하는지 물에 잠기는 침례를 받아야 하는지 확인하십시오. 교회에 가입해야 하는지 성령을 받아야 하는지 확인하십시오. 제가 브래넘 가문과 함께한 지 다음 수요일이면 쉰한 해가 됩니다. 그들은 제게 그 가문에 가입하라고 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저는 브래넘으로 태어났습니다. 그것이 이유입니다. 여러분도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 안에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것은 체험입니다. 여러분은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거하시면, 그분 자신의 말씀과 일치하는 증언을 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누군가 “그것은 다른 시대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고 말한다면, 기억하십시오. 그 사람 안에는 하나님의 영이 없습니다.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하고 말하는데 여러분이 “어떤 면에서만 그렇습니다.” 하고 말한다면, 기억하십시오. 여러분 안에 있는 것은 마귀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말씀에 “그렇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아멘. 아멘. 내가 그것을 기록했다. 아멘.” 하시는 것입니다. 옛사람들이 성령의 움직이심을 받아 성경을 기록했습니다. 성령께서 어떻게 그것을 부인하실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께 소리를 지르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야외에서 설교하는 데 익숙해서 그렇습니다... 여러분의 귀가 어둡지 않다는 것은 압니다. 하지만 저는... 그저 신앙의 감격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뿐입니다.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그것은 성령입니다. 제가 말하고 있는 것이 진리, 하나님의 진리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 여인은 그곳으로 올라갔습니다. 첫날 아침에 서둘러 머리를 빗고 세수한 뒤 그리로 가는 여왕의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여왕은 “모인 사람들이 모두 어떤지 보겠어...” 하고 말했습니다. 사방에서 온 사람들이 넓은 뜰에 모여 있었습니다. 얼마 뒤 시편 몇 편을 노래한 다음, 솔로몬 목사님이 나와 자기 자리로 걸어가 왕좌에 앉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러자 첫 번째로 어떤 사안이 그 앞으로 나왔습니다. 그것이 나오자 여왕은 말했습니다. “자, 이제 이것을 보고 어떻게 되는지 알아보겠어. 지혜가 그렇게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지. 저 가련한 여인을 봐.” 혹은 거기 서 있던 사람이 누구든 말입니다. “어떻게 되는지 보겠어.” 그 일이 솔로몬 앞에 이르렀을 때, 솔로몬은 그 여인에게 정확히 맞는 말을 해 주었습니다. 여왕의 가슴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아, 그것이 사실인가 봐. 이 두루마리를 보자. 정확히 맞아. 분명히 옳아.”
하루하루가 지나갔습니다. 여왕은 앉아 있었습니다. 아마 밤이면 돌아가 촛불 아래 앉아 성경을 읽고, 읽고, 또 읽었을 것입니다. 이사야서를 읽고 모든 선지자의 글을 읽으며,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해하면서 준비했습니다. 다음 날 다시 가 보면, 자기가 읽었던 바로 그 하나님께서 친히 지으신, 죽을 수밖에 없는 한 인간 안에 살아 계시며 그 사람을 통해 자신을 나타내고 계셨습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께 그토록 자신을 내어 드렸기에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일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한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은 그저 여러분이나 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생각하기를, 그것은...이 아니라... 베드로는 한때 변화산을 ‘거룩한 산’이라고 불렀습니다. 저는 그 사도가 ‘거룩한 산’을 뜻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산이 거룩했던 것이 아니라 그 산에 계신 하나님이 거룩하셨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교회인 것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 계신 성령께서 교회를 거룩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거룩한 백성이나 거룩한 사람인 것이 아닙니다. 거룩한 사람, 거룩한 교회, 거룩한 이것이나 저것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교회 안에, 사람들 안에 계신 성령, 사람들을 통해 친히 역사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 샘, 마르지 않는 생명의 샘은 그리스도입니다. 여러분을 위해 행하시려는 그분의 위대한 사랑과 권능과 기꺼운 마음은 아무리 써도 다할 수 없습니다. 그분의 선하심과 긍휼은 인간의 이해를 넘어섭니다. 우리는 그저 그 안에 누워 몸을 담그면 됩니다. 그것뿐입니다. 그분의 긍휼 안에서 말입니다.
그렇게 여왕은 하루하루 지켜보았습니다. 마침내 여왕의 기도 카드가 불릴 때가 되었습니다. 아니, 무엇이었든 말입니다. 기도 카드는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무엇이었든 솔로몬 앞으로 나아갈 차례가 온 것입니다. 여왕은 “제게 몇 가지 일이 있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여왕에 관해 솔로몬에게 숨겨져 그가 알지 못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아멘. 숨겨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는 여왕에게 모든 것을 말해 주었습니다. 만일 그것이... 솔로몬에게 임했던 영은 어떤 영이었습니까? 솔로몬이었습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우물가에서 어떤 여인에게 말씀하시고, 그 여인의... 여인이 간음하며 살고 있는 것을 말씀해 주신 바로 그 영이었습니다... 그 여인은 가서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와서 지금까지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보라.” 그분이 그 한 가지를 말해 주실 수 있다면 모든 것을 말해 주실 수 있다는 것을 여인은 알았습니다. 숨겨져서 솔로몬이 여왕에게 말해 주지 못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여왕은 무슨 말을 했습니까? 여왕이 무엇을 했는지 아십니까? 여왕은 모인 사람들 앞에 공개적으로 서서 말했습니다. “제가 당신에 관해 들은 모든 것, 당신에 관해 들은 모든 좋은 일들이 사실이었습니다. 제가 당신에 관해 들었던 것보다 더합니다.” 여왕은 스스로 체험했습니다. 여러분이 들었던 성령에 관한 이야기가 실제라고 믿어지지 않는다면, 직접 체험하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십시오. 이런 말을 하게 되는지 보십시오. “그보다 더합니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좋겠다고 생각해서 저도 그것을 원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받으면 “내가 보았던 것보다 더합니다.” 하고 말할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에게 무언가가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지식의 형태로가 아니라 새로 태어나는 형태로 여러분에게 자신을 나타내실 때 말입니다.
여왕은 그곳에 서서, 그뿐 아니라 그 사람 안에 하나님께서 계시고 그것이 하나님의 은사임을 알아보았습니다. 여왕은 “제가 들었던 것은 모두 사실이며, 제가 들었던 것보다 더합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과 함께 있는 사람들도 복이 있습니다. 날마다 여기 당신과 함께 앉아 이 위대한 하나님의 은사가 역사하는 것을 보는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지금 당신과 함께 서 있는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이교도가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여왕은 그분이 참 하나님이심을 증언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녀가 심판 날에 일어나 이 세대를 정죄하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길 건너편으로 걸어가려고도 하지 않는 세대, 혹은 들어와 앉아서 잠깐 둘러보고는 “아, 별것 아니군.” 하고 말하며 떠나 버리는 세대 말입니다.
솔로몬으로부터 불과 몇 세대 뒤인 그 세대를 여왕이 심판 날에 정죄한다면, 그리고 예수님께서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하고 말씀하셨다면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예수님께서 여기 계셨을 때보다 더 큽니다. 그들은 그분을 바알세붑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역사하시는 것을 강신술사 같은 것이라고 불렀고, 그분께서 그런 일을 하신다는 이유로 바알세붑이라고 불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희를 용서하겠다. 그러나 성령이 오시면, 그분을 대적하여 한마디라도 말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도 오는 세상에서도 결코 용서받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위대한 선물들 가운데 하나는 그분의 아들이었습니다. 성령께서 자신을 나타내실 수 있도록 한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여인이 그 세대를 정죄한다면, 지금은 그로부터 이천 년 뒤인데, 그날 털사 앞에 섰을 때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 세대의 온 미국 앞에 섰을 때 여왕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 세대를 정죄할 것입니다. 여왕은 어떤 제약에도 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왕의 마음은 갈망하고 있었고, 여왕은 그것을 알아보았습니다. 하나님을 찾고 두루마리들을 살펴본 뒤 그것이 옳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받아들였고, 일어나 그를 축복하고 백성을 축복했으며, 자기가 온 것을 참으로 기뻐했습니다. 저도 어느 날 그것이 진리임을 알게 된 것을 얼마나 기뻐하는지 모릅니다. 오, 제게는 이렇게 되었습니다. “주는 내 모든 위로의 샘, 내게 생명보다 귀한 분. 주 외에 땅에서 내게 누가 있으며, 하늘에서 주 외에 누가 있으리까.”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하나님의 참된 선물, 성령의 모습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을 우리 마음에 모십시다. 머리 숙입시다.
기도하기 전에, 머리를 숙이고 눈을 감은 채로 오늘 저녁 기도로 기억해 드리기를 원하시는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입니다. “브래넘 형제님, 하나님 앞에서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저는 오늘날 성령께서 이 땅에 계심을 인정합니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하나님의 위대한 권능이 여전히 믿는 자들을 통해 역사한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내가 하는 그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 나를 믿는 자는’, 요한복음 14장입니다. ‘나를 믿는 자는 또한 내가 하는 그 일들을 하리라.’” 그분은 어떻게 자신이 메시아임을 알리셨습니까? 그들의 마음속 비밀을 아심으로써였습니다. 그것은 모든 시대에 걸쳐 언제나 하나님의 표적이었습니다. 여러분을 기억해 드리기를 원하십니까? 손을 드십시오. 여기저기 계신 여러분을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주께서는 말씀에서 “볼 수 있는 눈과 들을 수 있는 귀는 복이 있도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참으로 주께서 이끌지 않으시면 아무도 올 수 없습니다. 성령으로 인해 주께 감사드립니다. 오늘 저녁 이 자리에 있는 성령을 받은 사람들로 인해 주께 감사드립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여기서 아직 성령을 받지 못한 모든 사람이 오늘 저녁 성령을 받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들의 마음을 불신에서 깨끗하게 하시고, 단순하고 어린아이 같은 믿음으로 믿게 하옵소서. 고백하며 마음을 열면, 그분께서는 틀림없이 그들의 거처로 오실 것입니다. 주님, 허락하여 주옵소서. 주님, 이제 예배가 병자들이 줄을 서서 기도받을 순서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주의 종이... 주의 뜻이라면 제가 병자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여기에 죄인들,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면... 오, 그들은 신학자일 수도 있고 충실한 교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성령을 받지 않았거나 그분을 믿지 않는다면, 그들은 여전히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주님, 참으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고,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습니다. 그 후 하나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확증하는 것으로 할례의 인을 주셨습니다. 주님,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믿는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성령을 받기 전까지는 확증된 것이 아닙니다. 에베소서 4장 30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을 슬프게 하지 말라. 그분에 의해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봉인되었느니라.” 주님, 오늘 저녁 그런 일이 일어나게 하옵소서. 많은 사람을 하나님의 왕국 안에 구속의 날까지 봉인하여 주옵소서. 오늘 저녁 온전히 믿는 자들이 되게 하시고, 그들에게 성령을 주심으로써 그것을 확증하여 주옵소서. 이제 오, 주님,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그분께서 지금 오셔서 저희 마음을 겸손하게 하시고 저희가 하던 것을 멈추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그분께서 저희를 통해, 저희 안에서 일하셔서 그분의 뜻을 원하게도 하시고 그분의 뜻을 행하게도 하실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누군가가 방언으로 말하고 다른 사람이 통역한다. “... 네게 가까이 다가가는 주가 말하노라. 주 네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네 마음을 열고 그것들을 살피며 네 묵은 땅을 갈아엎고 네 자신을 내게 주라. 나는 주 네 하나님이기 때문이라. 내가 바로 오늘 밤에도 네게 내 말을 하였느니라. 내가 네게 내 영을 주었으니, 그러므로 내가 네게 나 자신을 계시하고 드러내고자 하노라. 네가 나를 만날 준비가 될 뿐 아니라 나를 섬기고 내게 순종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행할 준비가 되게 하려 함이라. 진실로 내 말은 헛되이 돌아오지 아니하고, 내가 기뻐하여 네게 보낸 그 뜻을 이루리라. 나는 네 하나님, 너를 건지는 자라. 나는 네 하나님, 네 큰 방패와 작은 방패라. 네 마음속으로 기뻐하며 나를 찬양하라. 내가 네게 내 영광을 보이리라.”]
전능하신 분이시여, 어린양께 찬양을 드립니다. 여러분, 이해하시겠지만 그것은 주님의 영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한 사람이 말하면 다른 한 사람이 통역하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여러분의 눈을 가린 것을 벗겨 주시고 자신을 여러분에게 나타내실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 얼마나 놀랍습니까! 그것이 기쁘지 않으십니까? 놀랍습니다. 제 아들이 말하기를 기도 카드 쉰 장을 나누어 주었다고 합니다. G 1번부터 50번까지입니다. 잠시 후 그 카드들을 부르겠습니다. 지난 며칠 저녁에는 대체로 기도 카드를 나누어 주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기도하기만 하는 가운데 분별이 이루어졌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이 좋으십니까? 저는 그것이 정말 좋습니다. 하지만 많은 분이 안수를 받고 싶어 합니다. 저희는 바로 여기서 그렇게 해 드리려 합니다. 그렇습니다.
자, G 1번을 가지신 분이 누구십니까? 기도 카드 1번입니다. [테이프 공백.] 그분이 대제사장이시라면... 성경은 그분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고 말합니까? 사랑하는 자매님, 그것을 믿으십니까? 좋습니다. 그분이 그러하시다고 믿으시는군요. 여기 의자에 앉아 계신 여자분도 그것을 믿으십니까? 그분이 대제사장이심을 믿으십니까? 좋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느끼시고 공감하실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제가 할 수 있다면, 할 수만 있다면 지금 바로 내려가 이 건물 안을 돌아다니며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을 고쳐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정말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여러분도 제 마음을 믿으시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할 수 있다면 하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할 수 없습니다. 저는 그것을 할 수 없습니다. 이미 이루어진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일을 하셨습니다. 그분은 여러분의 죄를 용서하실 수 없습니다. 이미 용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것을 받아들이고 믿기 전까지는 여러분에게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예, 주님. 저를 위해 행하신 일을 받아들입니다.” 하고 말하면, 그때 여러분은 구원받습니다. 또 여러분은 “주님, 저를 고쳐 주시기를 원합니다.” 하고 말합니다. 그분은 이미 그 일을 하셨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그분이 행하신 일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지금 그분은 전능하신 하나님 오른편에 앉아 우리의 고백, 또는 신앙 고백을 근거로 중보하시는 대제사장이십니다. 둘은 같은 말입니다. 그러니 무엇이든, 이제... 우리가 그분이 이미 그 일을 하셨다고 말하기 전까지는 그분이 우리를 위해 아무것도 하실 수 없습니다. 그분이 그 일을 하셨다고 우리가 고백, 곧 신앙 고백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분께서 그 일을 이루시며 중보하실 수 있습니다. 형제님들, 그렇습니까? 그것이 성경 말씀입니까? 우리의 신앙 고백을 근거로 중보하십니다... R
성경은 히브리서에서 말합니다. 오늘 저녁 이 자리에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성경 학자들이 계십니다. 히브리서에는 그분께서 지금 대제사장이시며, 항상 살아 계셔서 우리의 고백을 근거로 중보하신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그분은 우리의 연약함을 느끼시고 공감하실 수 있는 대제사장이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으로 그분께 손을 댈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분이 우리의 연약함을 느끼시고 공감하실 수 있는 대제사장이시라면, 실제로 그러하시며, 또 그분이 동일하시다면... 히브리서 13장 8절은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하고 말했습니다. 그분께서는 또 “내가 하는 그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메시아임을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어떤 일들을 행하셨습니까? 아시겠죠? 자신이 메시아라는 선지자의 표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알았습니다. 모세가 그분이 선지자가 되실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이해하시는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5장 19절에서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은 아버지께서 어떤 일을 하시는 것을 보고 그 일을 할 뿐이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느니라.” 하고 말씀하신 것을 아시는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그러므로 예수님 자신도... 그 말씀은 진리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해야 할지 환상으로 보여 주시기 전에는 기적을 단 하나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떻습니까? 그렇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보여 주는 환상이었습니다.
환상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여기 계신 번역자 형제님이 오늘 제게 말씀하시기를 성경의 약 사십 퍼센트가 환상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분께서는 참으로 좋은 예를 드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팔을 묶어 두고 몇 달 동안 쓰지 않은 다음, 어떻게 되는지 보십시오. 너무 약해져서 쓸 수 없게 됩니다.” 교회가 이런 것들, 하나님의 모든 은사를 그렇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묶어 두기만 하니 쓸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아시겠죠? 풀어 주십시오. 믿음을 행사하십시오. 믿음에 근육이 붙게 하십시오. 한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믿음은 가슴에 털이 난 장부 같습니다. 믿음이 말하면 다른 모든 것은 주저앉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이 입을 열면 다른 모든 것은 입을 다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느끼시고 공감하실 수 있는 대제사장이시라면, 저기 기도 카드가 없는 여러분, 오늘 저녁 그분의 옷에 손을 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럴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그럴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그런데 몹시 흥분해서 “아, 아, 서둘러야지. 한번 애써 봐야지.” 하고 말한다면, 아닙니다. 바로 거기서 놓쳐 버릴 것입니다. 아시겠죠? 믿음은 너무나 단순해서 자신에게 믿음이 있다는 것조차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그저 선물입니다. 그저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저 성경책에 손을 댈 수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할 수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압니까? 오직 믿음으로 압니다. 왜냐하면... 제게는 너무나 익숙해져서 그저 손을 뻗어 집어 들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바로 그렇습니다. 너무나 단순합니다. 그저 손을 뻗어 받는 것입니다. 이제 믿으십시오.
여러분은 모두 처음 뵙는 분들입니다. 이 기도 줄에 계신 분들 중 처음 뵙는 분이 몇 분이나 되십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저와 처음 뵙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좋습니다. 저쪽에도 저와 처음 뵙는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우리는 마귀처럼 무슨 위자 보드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환한 조명 아래,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서서 하나님께 약속하신 일을 행해 주시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여기 있는 이 줄은 분별을 위한 줄이 아닙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는 이분들을 위해 기도만 합니다. 분별은 저쪽에서 일어납니다. 이분들은... 몇 분이나 아십니까...? [회중 가운데 한 사람이 예언한다.] 아멘.
믿음을 가지십시오. 온유하게 믿음을 가지십시오. 이제 그저... 기도 줄에 계신 여러분은 이제 회중을 보시기 바랍니다. 아시겠죠? 그리고 기도하며 아버지께 이렇게 구하십시오. “아버지 하나님, 주께서는 제게 필요한 것을 아시고 치유가 필요하다는 것도 아십니다. 저를 도와주시겠습니까?” 그저 겸손하게, 혈루증을 앓던 그 가련한 여인처럼 오십시오. 그 여인은 그분의 옷자락에 손을 대고 온전하게 되었습니다. 이쪽 구석에 계신 분, 아까 고침받고 싶다고 손을 드셨지요? 이제 심장이 괜찮아지고 병이 나으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심장병이 있으셨지요? “주님, 제가 되게 해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고 계셨지요? 맞으면 손을 들어 보십시오. 좋습니다. 이제 심장병은 끝났습니다. 저는 저분을 모릅니다. 하지만 보십시오. 저분이 제게 손을 대셨습니까? 저분은 저에게서 삼십 피트 떨어져 계십니다. 아시겠죠? 저분은 무언가에 손을 대셨고, 무언가가 저를 통해 말한 것입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제가 한 것이 아닙니다. 저는 마치... 여기 있는 이 마이크도 무언가가 그것을 통해 말하지 않으면 완전히 벙어리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제가 어떻게 저분을 알겠습니까? 저는 전혀 몰랐습니다... 저분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저는 모릅니다.
자, 여러분이 다시 알 수 있도록 여기 보십시오. 바로 이 뒤쪽에 심장병을 앓는 남자분이 앉아 계십니다. 작은 [불명확한 단어]를 착용하고 셔츠 앞을 열어 두신 분입니다. 맞지요, 선생님? 좋습니다. 바로 그때 그분께서 선생님을 고쳐 주셨습니다. 선생님의 믿음이 선생님을 온전하게 했습니다. 이분이 무엇을 했습니까? 손을 댔습니다. 제게 댄 것은 아닙니다. 저는 저분을 모르고, 본 적도 없습니다. 하지만 저분은 간절히... “오, 주님, 브래넘 형제님이 제게 말하게 해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맞는지 아닌지 저분께 물어보십시오. 선생님, 맞으면 손을 드십시오. 거기 앉아서 저를 위해 기도하고 계셨다면 손을 들어 보십시오. 기도를 들으실 수 있는 하나님이라면 기도에 응답하실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바로 이 뒤에 앉아 계신 여자분은 손에 무슨 문제가 있습니다. 손에 문제가 있으신, 거기 앉아 계신 여자분, 하나님께서 고쳐 주시리라고 믿으십니까? 고침받고 싶으십니까? 좋습니다. 그러면 자매님의 믿음이 그분께 손을 댄 것입니다. 손이 나을 것입니다. 바로 뒤에 앉아 계신 여자분은 아주 힘든 수술을 받으셨고, 그분도 기도하고 계십니다. 자매님, 그렇습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좋습니다. 나으실 것입니다. 의사들이 실패한 곳에서... 사탄은 의사들에게서 숨었지만 하나님에게서는 숨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아십니다. 그러니 그는 떠나갔습니다.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바로 이쪽, 아기를 앞뒤로 흔들어 달래고 있는 곳 가까이에 앉은 여자분이 계십니다. 발의 문제를 놓고 기도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발을 고쳐 주시리라고 믿으십니까? 그것을 믿으신다면... 좋습니다. 여자분, 제가 누구를 말하는지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일어나 보십시오. 그렇습니다. 바로 거기 계신 자매님입니다. 그저 하나님께 사랑한다고 말씀드리십시오. 그분을 사랑하십니까? 좋습니다. 그러면 집으로 돌아가 건강하게 지내실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참 좋습니다.
그런데 자매님이 앉으실 때, 바로 옆에 앉아 계신 여자분이 몹시 감격하셨습니다. 방광에 문제가 있으신데, 자매님, 그것도 사라졌습니다. 자매님도 일어서서 그것을 받아들이셔도 됩니다. 자매님은 고침받으셨습니다.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이제 보시다시피... 우리는 그분께서 여기 계심을 압니다. 이제 경건한 마음을 가지십시오. 환상이 임하면 힘이 빠진다는 것을 아시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그것을 아시는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한 여인이 하나님의 아들의 옷에 손을 대었을 때 그분께서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하고 말씀하신 것을 아시는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그분께서는 주위를 둘러보시며 “내게서 효능이 나간 것을 내가 아노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효능은 힘을 뜻합니다. 그분에게서 나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힘을 소모합니다. 여기 있는 이 모든 사람이라면 어떻겠습니까? 하나님의 아들께도 한 여인이 손을 대었는데, 저쪽에는 일곱이나 여덟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니 아시겠죠? 그런데 여러분은 여전히 손을 대고 계십니다... 제가 그저 말하기만 해도, 아시겠죠, 그것은 여러분의 믿음입니다.
그런데 여기 줄에 계신 여러분은 믿으십시오. 예수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보십시오. 며칠 전 저녁에 앞을 못 보는 한 소년이 지나갈 때 제가 안수했습니다. 아이는 곧장 걸어 나가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하다가 시력을 얻었습니다. 그 일이 일어났을 때 여기 계셨던 분이 몇 분이나 됩니까? 그렇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앞을 못 보던 열여섯, 열일곱 살쯤 된 소년이 뒤를 향해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아, 브래넘 형제님, 보여요!” 그렇습니다. 저는 병을 고칠 수 없습니다. 그저 명령에 순종할 수 있을 뿐입니다. 아시겠죠? 그분께서 이런 일들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제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제가 여기서 하는 일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한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앞으로 다가오는 새 사역은 이것을 훨씬 뛰어넘을 것입니다. 저는 이미 그것이 네다섯 번 역사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와 함께 있는 많은 사람이 그것이 사실임을 압니다. 우리는 위대한 시간을 앞두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알 수 있도록... 여기 훌륭한 분이 서 계십니다. 자매님, 저와 자매님은 서로 처음 뵙는 사이이지요? 그런데 그분은 그렇지 않... 하지만 저는 이 여자분이 무엇을... 자매님,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제가 그러지는 않았... 아, 제가 전에 자매님을 위해 기도해 드렸군요. 물론 저는 그것을 몰랐을 것입니다. 제... 지금 자매님께 무슨 문제가 있는지는 모릅니다. 제가 자매님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아십니다. 아시겠죠? 하지만 사람들이 여기서도, 저기서도, 여러분의 믿음이 있는 어디서든 하나님은 똑같이 위대하시다는 것을 알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지금 마음을 가라앉히십시오. 아시겠죠? 저는 여러분의 믿음이 이쪽으로 끌어당기지 않도록 여러분에게서 제 주의를 돌리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어느새 저는 힘이 쭉 빠져 주저앉고 맙니다. 그만큼 많은 것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돌아서서 화제를 바꾸고, 다시 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힘을 유지해서 미국 사람들에게 안수하겠다는 제 약속을 지키려는 것입니다.
해외에서는 이렇게 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그런 식으로 한 가지 일만 말해 주어도 온 무리가 일어나 휠체어며 다른 모든 것을 버려두고 집으로 갑니다. 그것으로 다 끝납니다. 아시겠죠? 그런데 여기 미국에는 서로 다른 가르침으로 인한 혼란이 너무 많아 사람들이 무엇을 믿어야 할지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한 사람은 “아, 텔레파시야.” 하고 말하고, 다른 사람은 “마귀야.” 하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하세요.” 하고 말합니다. 안타까운 사람들입니다. 들으십시오. “모든 사람의 말은 거짓이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참되다 하십시오.” 그렇게 말하는 것만이 유일한 길입니다. 그분은 여기 계십니다. 이미 여러분을 고치셨습니다. 여러분은 그저 그것을 받아들이십시오.
자매님, 보십시오. 자매님은 제가 자매님에 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아십니다. 그런 자매님에 관한 무언가를 주 예수님께서 제게 계시해 주신다면, 주 예수님께서 초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임을 자매님이 아실 만한 무언가를 제게 계시해 주신다면, 더 잘 믿게 되시겠습니까? 그러시겠습니까? 회중도 더 잘 믿게 되겠습니까? 지금 이분은 제 가까이, 아주 가까이 계십니다. 이것은 요한복음 4장과 똑같은 장면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처음 만나는 장면입니다. 여기 앉아 있고, 아마 작은 우물이 이런 전경 속에 있었겠지요.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자매님은 그 여인이 아니고 저는 그분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분의 영은 여전히 살아 계십니다. 아시겠죠? 그때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리는 육신 안에 계셨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분의 은혜로 하나님의 양자가 된 아들들입니다. 그리하여 그분의 일이 계속되고, 여전히 그것을 알릴 수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이 여자분은 병이 아주, 아주 심합니다. 부인병이 있습니다. 여성의 질환입니다. 그렇습니다. 맞으면 손을 들어 보십시오. 이제 믿으십니까? 누군가 “짐작으로 말하는 거야.” 하고 말하는 것이 계속 느껴집니다. 그런 생각을 멈추십시오. 집회에 해를 끼칩니다. 저는 짐작해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권능입니다. 자, 잠시 가만히 서 계십시오. 아시겠죠?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떨쳐 버리도록... 어디 봅시다. 무엇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잠깐만, 제가 마침내... 예. 병원에 가셨군요. 여성의... 예. 그뿐 아니라 수술을 앞두고 계십니다. 맞습니다. 신장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방광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이 고장 사람이 아니시군요. 미주리에서 오셨습니다. 이름은 힐드레스 양입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곳으로 돌아가 온전해지십시오. 자매님,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자매님의 믿음이 자매님을 온전하게 했습니다. 그저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이제 나오시면서 믿으십니까? 제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믿으시겠습니까? 제가 병자들에게 안수하면 나머지 여러분도 이제 믿으시겠습니까? 이제 곧바로 나오십시오. 모두 이분들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전능하신 하나님의 권능이 이 여자분 위에 머물러 그분을 고쳐 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좋습니다. 나오십시오. 자매님, 믿으십니까? 그것이 자매님께 임했을 때, 의자에 앉아 계시는 동안 고침받으셨다고 제가 말씀드린다면 어떻겠습니까? 그것은 사라졌습니다. 자매님, 이제 이 온 교회가 자매님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하늘에 계신 아버지, 제가 이분에게 안수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치유를 구합니다. 아멘. 나오십시오. 제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안다는 것을 아시지요? 하지만 제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믿으시겠습니까? 그러면 가서 저녁을 드십시오. 위장병이 떠나갔습니다. 가서 드셔도 됩니다. 자매님, 믿으십니까?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분이 고침받게 하옵소서.
선생님, 나오십시오. 몇 분 전에 계단을 올라오실 때 심장병이 떠나갔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제가 그렇다고 말한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주님, 감사합니다.” 하고 말씀하시면서 길을 가십시오. 이제 나오십시오. 자매님,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관절염이 사라지고 온전해지리라고 믿으십니까? 주님,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렇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나오십시오. 제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안다는 것을 아시지요? 제가 말씀드리기를 원하십니까? 원하시는 것 같습니다. 좋습니다. 그러기에는 나이가 아주 어리지만 신경과민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정신적인 신경과민으로 마음이 불안하고, 늦은 오후가 되면 몹시 지쳐 물건을 떨어뜨립니다. 정확히 그렇게 하십니다. 생각이... 늘 다리에 닿기도 전에 건널 걱정부터 하십니다. 잊어버리십시오. 집으로 가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전하게 하십니다.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나오십시오. 아버지 하나님,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오니 이 여자분을 고치시고 온전하게 하옵소서. 아멘.
아버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분을 고쳐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톰린 자매님, 이제 믿으시겠습니까? 나오십시오. 자매님, 이 아이를 위해 온 마음으로 믿으시겠습니까? 하늘에 계신 아버지, 주께서는 어린 소년들을 받아 주시고 그들에게 손을 얹으셨으며, 그들은 고침받았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성령께서 여기 계십니다. 모든 사정을 아시는 바로 그 성령이십니다. 이제 조금도 의심하지 않으시면 아이는 이겨 내고 괜찮아질 것입니다. 믿으며 가십시오. 아시겠죠? 지금 이 줄을 지나가시는 여러분, 여러분의... 아시다시피, 여러분은 계속 생각하고 계속 궁금해하며 제가 말씀드릴지 지켜보고 계십니다. 만일... 그러면 사람들이 와서 저를 줄에서 데리고 나갈 것입니다. 그러면 나머지 분들은 줄을 다 지나오지 못하게 됩니다. 아시겠죠? 그러니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 그분은 여전히 여기 계십니다. 그 모든 사정을 아십니다. 모든 것을 아십니다. 그것을 믿지 않으십니까?
자매님, 그것을 믿으십니까? 우리는 서로 처음 뵙는 사이이지요? 하나님은 우리 둘 다 아십니다. 그렇지요? 하나님께서 자매님의 문제가 무엇인지 제게 알려 주실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그분께서 이 여자분에게 그렇게 해 주시면, 나머지 여러분도 오늘 저녁 남은 시간 동안 온 마음으로 믿으시겠습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여기 제 손도 듭니다. 저는 이 여자분을 모르고, 본 적도 없습니다. 좋습니다. 그저 믿음을 가지십시오. 갈비뼈가 부러졌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정확히 맞습니다. 다른 누군가를 위해 마음에 짐을 지고 기도하고 계십니다. 시아버지입니다. 맞습니다. 그분은 앞을 보지 못하고 위암이 있습니다. 나머지도 말씀드려도 괜찮겠습니까? 그분은 너무 가난해서 집회에 올 수 없었습니다. 집회에 올 돈이 없었습니다. 자, 주님의 이름으로 이것을 그분에게 대십시오. [불명확한 단어] 그러면 나으실 것입니다. [회중이 외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동안 브래넘 형제님이 계속 병자들을 위해 기도한다.]
신경과민이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소화성 궤양을 일으켜 식사 뒤에 신물이 입으로 올라오고 그런 일들이 생기게 했습니다. 가서 햄버거를 드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소화성 궤양이 나았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 소년을 위해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이 아이를 온전하게 하여 주옵소서. [불명확한 단어]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얘야,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란다. 믿음을 가지십시오. 어린 아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것 때문에 기도를 받고 싶으신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이 아기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제게 알려 주실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그렇게 하면 도움이 되겠습니까? 심각한 일임이 보입니다. 뇌에 문제가 있습니다. 일종의 지적 발달 지체 같은 것입니다. 수술을 세 번 받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기도를 들으실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그러면 제가 내쫓... [회중이 외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동안 브래넘 형제님이 계속 병자들을 위해 기도한다.] 의심하지 마십시오. 아이는 괜찮아질 것입니다.
주님,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분을 고쳐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온 마음을 다해 믿으며 가십시오. [테이프 끊김.] 회중 가운데서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다. 회중 가운데 누군가가 고침받았습니다. 잠시만요.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기도받으실 분이십니까?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폐에 무슨 이상이 있습니다. 폐에 문제가 있습니다. 얼마 전에 신경쇠약을 겪으셨습니다. 여기 분이 아니시군요. 캘리포니아에서 오셨습니다. 목회자이십니다. 올솝 선생님이십니다. 집으로 가서 건강하게 지내십시오.
오, 주님, 오셔서 허락하여 주옵소서. 주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자매님, 나오십시오. 이제 모두 온유한 마음으로 기도하십시오. 기도하고, 기도하고, 기도하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불명확한 단어]. 선생님, 나오십시오. 온 마음으로 믿으시면 그 나팔을 치우셔도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렇게 하신 줄 압니다. 믿으십시오. 이 몸이 불편한 어린 소년, 오, 주님, 이 어린아이를 고쳐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걸으며 기뻐하며 돌아가게 하옵소서. 아멘. 의심하지 말고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좋습니다. 사랑하는 자매님, 나오십시오. 온 마음을 다해 믿으십시오.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분이 고침받게 하옵소서. 형제님, 가질 수 있는 모든 믿음을 가지고 나오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침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나오십시오. 오, 아버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분이 고침받게 하옵소서. 온 교회가 기도하십시오. 이제 함께 기도하십시오. 여기 지나가는 이들이 여러분의 자녀라면 어떻겠습니까? 나오십시오. 오, 하나님,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 어린 소년을 고치시고 온전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선생님, 나오십시오. 주님,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분의 간구를 들어주옵소서. 나오십시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이 간구를 들어주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이분이 고침받게 하옵소서. 아멘.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의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버지 하나님, 이분의 간구를 들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불명확한 단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렇게 되게 하옵소서. 아멘. 이제 온 마음으로 믿으며 나오십시오. 온 마음으로 믿고 계십니까? 오, 하늘에 계신 아버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오니 이 간구를 들어주시고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 이분이 고침받게 하옵소서. 아멘.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 이분이 고침받게 하옵소서. 아멘. 어르신, 저기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어르신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지 보십시오. 꼭 이겨 내셔야 합니다. 꼭 그러셔야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주의 영광을 위해 이분의 치유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허락하여 주옵소서. 어린아이를 위해 믿으십니까? 아이를 이리 데려오십시오. 오, 하나님. 이제 더 이상 의심하지 마십시오. 아시겠죠? 자꾸 애를 쓰시는데, 그러지 마십시오. 아버지, 이런 악한 일을 저지른 마귀가 저주를 받게 하옵소서. 아이가 낫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신다고 믿으십니까? 분명히 아실 수 있도록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밤 아이 머리 둘레에 끈을 둘러서 재어 보십시오. 끈을 잘라 두십시오. 그러고는 내일 아침이나, 내일 저녁 여기 다시 오시기 전에 또 재어 보십시오. 그런 다음 얼마나 줄었는지 제게 보여 주십시오. 그 끈을 여기 책상 위에 놓고 얼마나 줄었는지 보십시오. 믿음을 가지십시오. 거기 누워 계신 분도 믿으시겠습니까? 여러분 모두 믿으시겠습니까? 이제 믿음을 가지십시오. 여러분이 무엇을 믿든 그대로입니다.
자, 기도받으실 분이십니까? 주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저를 그분의 선지자, 혹은 그분의 종으로 믿으십니까? 저를 그분의 종으로 믿으십니까? 선지자라는 말은 사람들을 당황하게 합니다. 아시겠죠? 어딘가에서 사람들이 제 말을 듣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아시겠죠? 힘이 아주 빠졌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시리라고 믿으십니까? 좋습니다. 들으십시오. 자매님의 문제는 옆구리에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도하고 계신 사랑하는 분이 한 분 있습니다. 그 사랑하는 분은... 일종의 정신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맞습니다. 그분이 나으리라고 믿으십니까? 가지고 계신 그 손수건에 그것이 전해지리라고 믿으십니까? 해머 부인입니다. 자매님의 이름입니다. 여기 분이 아니시군요. 오클라호마의 와그너에서 오셨습니다. 이제 돌아가셔서 그 손수건을 가져가시고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저기 계신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모두 믿으십니까? 어떻게 하실지 말씀드리겠습니다. 하실 수 있다면 손을 뻗어 누군가에게 안수하십시오. 안수하십시오... 젊은이, 저분에게 손을 얹어 주시겠습니까? 저 어린 소녀에게 손을 얹으십시오. 좋습니다. 누군가 저기로 가서 손을 얹으십시오. [불명확한 말들] 여러분 모두 말입니다. 여러분은 믿는 자들입니까? “아멘.” 하십시오. 형제님들, 이리 오십시오. 한 분씩 이 마이크를 하나씩 잡으십시오. 머리를 숙이십시오. 지금 여기 계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아십니다. 저는 힘이 너무 빠져 거의 견딜 수가 없습니다. 이제 어떤 상태인지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 사람들이 나으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믿는 분이라면 그저 누군가에게 손을 얹고 그분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그분도 여러분을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이제 저는 여러분 모두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 기도를 들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기도를 들으실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문제가 있든 상관없습니다. 지금 바로 믿으십시오. 그러면 여러분 한 분 한 분 모두가 나으실 것입니다.
저기 휠체어에 앉아 있던, 몸이 불편한 어린 소녀가 주님의 이름으로 일어났습니다. 주님, 이제 기도합니다. 이 시간 사람들의 마음속에 주의 권능과 은혜가 부족함 없이 있게 하옵소서. 그들이 스바의 여왕처럼 일어나 “참으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가운데 계십니다.” 하고 말하게 하옵소서. 사탄아, 너는 사람들을 [불명확한 단어]. 내가 너를 속이는 자로 고발한다. 네게 아무 힘도 없음을 선언한다. 너는 속이는 자일 뿐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네가 가진 모든 힘을 이기셨고 네 모든 힘을 빼앗으셨다. 너는 사람들을 속이고 있으며, 오늘 저녁 네 정체가 드러났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몸들에서 나와라. 저 사람들을 떠나라. [불명확한 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