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모든 것이 가능함을, 주여, 믿습니다. 주여, 믿습니다, 주여, 믿습니다. 모든 것이 가능함을, 주여, 믿습니다. 이제 머리를 숙여 기도합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주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아십니다. 성령의 임재 안에서 이 사랑하는 분들과 영적으로 교제하며 경배하는 이 시간을 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오 하나님, 이 작은 교회와 각처에 있는 모든 산하의 작은 교회들, 그리고 학교를 축복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버지, 어디에 있든 주의 백성을 축복해 주십시오. 친히 영광을 받으시고, 이제 말씀을 통해 저희에게 더 말씀해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앉으셔도 좋습니다.
아버지 윌리엄스 형제님과 아들 윌리엄스 형제님, 오스본 형제님, 그리고 형제자매 여러분, 이 영이 결코 사라지지 않고 늘 살아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아침, 이 모든 세월이... 약 십사 년이 지나 이 교회에 돌아와 보니, 그때와 똑같은 영광스러운 영이 사람들 가운데 역사하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기쁩니다. 이것은 참으로 보배이며,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참으로 보기 드문 일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얼마나 복된 형편에 있는지 오늘 아침 미처 모르실 것입니다.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영광이 빛나는 것을 보니 제 눈이 참으로 편안해집니다. 토미 형제님과 저는 저기 앉아서 어린 여자아이들과 남자아이들까지도 주님을 경배하는 데 함께하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여자분들, 어린 소녀들부터 중년과 노년에 이르기까지 모두 깨끗이 씻은 얼굴을 하고 있고, 남자분들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이것은... 여러분에게는 날마다 있는 일이니 그저 익숙하시겠지만, 제게는 보배입니다.
한번은 바다에서 돌아오는 늙은 어부가 있었고, 쉬러 바다로 가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줄곧 일을 해 왔습니다. 그는 화가였습니다. 이제 쉬겠다고 하며 바다로 내려갔습니다. 그는 바다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바다에 관한 글을 읽고 그림을 보기는 했지만, 직접 본 적은 없었습니다. 그날 아침 바닷가로 내려가는 길에 그는 바다에서 돌아오는 노련한 뱃사람, 늙은 선원을 만났습니다. 선원이 물었습니다. “이보시오, 어디로 가시오?” 그는 말했습니다. “아, 선생님, 저는 내려가서 좀 쉬려고 합니다. 바다로 가는 길입니다. 짠 바닷물이 이리저리 출렁이며 해변에서 뛰노는 그 파도의 소금 냄새를 어서 맡고 싶습니다. 갈매기가 머리 위로 지나가며 내지르는 울음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무엇을 하려는지 설명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늙은 뱃사람이 그에게 말했습니다. “내게는 그리 매력적인 게 하나도 없소. 나는 바다에서 사십 년을 지냈소. 매력적인 게 하나도 없소.”
제 생각에는 바로 그것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아시겠죠? 여러분은 그저 깨닫지 못하시는 것입니다. 늘 그 안에서 지내고 계시니까요. 하지만 제게는 이것이 하늘에서 온 꽃다발입니다. 실제로 있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너무 익숙해지면 별로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에 관해 읽고 듣다가 마침내 그 안에 직접 들어서게 되면, 무언가가 있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막막해집니다. 몇 주 전 애리조나에 있는 아웃로 형제님의 교회에서 저는 작은 환희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가서... 사람들 가운데서 하는 제 사역을 통해 모든 조직과 교단을 방문하려고 애씁니다. 사람들을 위해 갈라진 틈 사이에 서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그날 그곳에 올라가 모인 사람들을 둘러보고, 오늘 아침처럼 성가대가 노래하는 것을 듣고, 젊은 남녀들이 거기 서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저 그... 얼굴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둘러보니 연세 드신 분이 앉아 계셨는데, 그분의 눈도 똑같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이었습니다. 저는 그만 옷깃을 풀고 웃옷을 뒤로 젖혔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다시 그 가운데 들어온 것입니다. 어쩌면 제가... 이제 또 한 주를 지내게 된다면, 좀... 너무나 좋습니다.
윌리엄스 형제님, 이 큰 사역을 하시는 형제님과 아드님께 하나님께서 늘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여기 계신 형제님, 선교사님들, 그리고 다른 모든 분들, 제가 이것을 얼마나 감사하게 여기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절대로, 절대로 이것에서 멀어지지 마십시오! 이것을 계속 붙드십시오. 계속 붙드십시오. 아시겠죠? 경배하는 그 영과 그 깨끗한 거룩함이 여러분 가운데서 결코 사라지지 않게 하십시오. 그 빛을 계속 밝히십시오. 그것이 교회의 생명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그분의 교회 안에 계신 그리스도입니다. 여러분에게 오래도록 말씀드릴 수도 있겠습니다만, 조금 있으면 또 다른 집회가 있습니다. 저는 보통 그런 치유 집회 전에 잠시 하나님의 임재 안에 머물기를 좋아합니다. 그곳에 가서 기도하고 살피며, 그분의 임재가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알 때까지 기다립니다. 그리고 오늘 오후에는 기도 줄을 세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언제라고 약속드릴 수는 없지만, 이곳을 지나다가 혹시... 이제 여기 주소를 받아 두었습니다. 전에는 어디 계신지 몰랐습니다. 저는 서쪽으로 갈 때 이 유료 고속도로를 자주 지납니다. 예배가 있는 날 저녁에 이곳을 지나게 되면, 저를 위해 다시 그렇게 찬송해 주신다면 들어오겠습니다. 그러면 정말 좋겠습니다. 저는 그것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저는 노래를 잘한 적이 없습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음을 맞추지 못합니다. 하지만 여러분, 언젠가 여러분 모두가 본향에 가셔서 저 언덕 꼭대기에 있는 커다란 저택에 살게 되실 때, 저를 위한 작은 오두막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 아래 숲 한구석 말입니다. 어느 날 아침 여러분이 현관에 서서 언덕 너머를 바라보고, 새벽별들이 함께 노래하는 것을 보고 계실 때, 저 아래 숲속에서 노랫소리가 들려올 것입니다. “놀라운 은혜, 그 소리 얼마나 감미로운가.” 그러면 여러분은 이렇게 말씀하시겠지요. “아,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 브래넘 형제님도 오셨군요. 저 아래서 한창 노래하고 계시네요.” 제가 거기에 가게 된다면 그것은 참으로 놀라운 은혜일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분의 복에 참으로 감사합니다.
오늘 아침 여러분과 함께 예레미야 8장 22절을 보려고 합니다. 길르앗에는 유향이 없는가, 거기에는 의사가 없는가? 그런데 어찌하여 내 백성의 딸의 건강은 회복되지 아니하였는가? 아주 짧은 본문입니다만, 얼마나 짧으냐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가치가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은 양을 따지지만, 우리는 질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렸던 한 어린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 아이가 발견한 것은... 제가 사는 곳에서 강 건너편에 있는 어느 다락방에서 누렇게 보이는 낡은 우표 한 장을 발견했습니다. 그 아이는 아이스크림을 먹을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거리를 따라 내려가 우표 수집가를 찾아가서 물었습니다. “이 우표를 얼마에 사 주실래요?” 그는 말했습니다. “아, 1달러를 주마.” 아이는 겨우 5센트나 받을 줄 알았기에 그것을 1달러에 팔았습니다. 얼마 뒤 그 우표 수집가는 똑같은 우표를 500달러에 팔았습니다. 그 후에는 수천 달러까지 올라갔는데, 지금은 값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그 조그만 누런 종이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 종이는 바닥에서 주울 가치도 없었을 테니까요. 중요한 것은 그 종이 위에 무엇이 있느냐였습니다. 여기 이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종이 위에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성경은 키드슨 형제님이 사신 것입니다. 약 십사 년 전, 제가 초창기 부흥회들 중 하나를 열었던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키드슨 형제님이 이 성경을 주셨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저는 이 성경으로 설교해 왔습니다. 성경책 값은 아마 20달러쯤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그 안에서 읽은 그 말씀은 믿는 모든 사람에게 영생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저는 단 한 단어를 주제로 삼으려고 합니다. “왜?” “왜?” 여러분,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해 피할 길을 마련해 주셨는데 그들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분은 왜 그런지 묻고자 하십니다. 그들은 왜 그렇게 했습니까? 왜입니까? 우리는 각자 그에 대해 해명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치유받을 길을 마련해 주셨는데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분은 “왜?” 하고 물으십니다. 우리가 그분이 주신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분에게는 왜 그러느냐고 물으실 권리가 있습니다. 한번은 성경에 어떤 왕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왕이며 아합과 이세벨의 아들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현관의 격자 위를 걷다가 현관 바닥을 뚫고 떨어져 다쳤습니다. 그는 아주 위중하게 병들었습니다. 그래서 부하 두 사람을 불러 에그론으로 보내어 그 나라의 큰 신인 비엘세붑에게 알아보게 했습니다. 그가... 자신이 살지 죽을지 그 신에게 물어보게 한 것입니다. 한편 저 아래 어딘가 개울 둑에 있는 허름한 진흙 오두막에는 선지자 엘리야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시자 그는 나가 길에 섰습니다. 그는 그 두 사자를 멈춰 세우고 말했습니다. “돌아가서 왕에게 말하시오. 왜 여기 있는 이 신에게 사람을 보내려 하십니까? 왜 여기 있는 이 신, 이방 신에게 사람을 보내려 하십니까?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입니까? 이스라엘에는 이런 일들을 물을 선지자가 없어서입니까? 그렇다면 왜 그곳으로 사람을 보내려 하십니까?”
오늘날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때로 우리 교회들에서, 오늘 아침 이곳에 들어왔을 때처럼... 남자가 왜 길가 술집에 가고 싶어 하겠습니까? 젊은 여자가 왜 춤추는 곳에 가고 싶어 하겠습니까? 이 모든 복과 하나님의 권능이 여기 우리를 위해 있는데, 사람들이 왜 위스키를 마시며 아픈 마음을 달래려 하겠습니까? 우리를 행복하고 자유롭게 해 주시는 성령의 권능이 여기 있는데, 왜 우리가 어떤 교단의 신조에 서명하며 자신을 내맡기려 하겠습니까? 왜 그런 일을 하고 싶겠습니까? 이것은 의사가 치료약을 가지고 있는 병에 걸린 사람이 그 의사의 문간에서 죽는 일을 생각나게 합니다. 의사에게는 치료약이 있고 그 사람은 병에 걸렸는데, 의사의 현관까지 와서는 그 치료약을 거부하다가 거기서 죽는다면 변명할 여지가 없습니다. 물론 없습니다. 의사가 그 사람의 병에 맞는 치료약을 가지고 있고, 그 병을 막도록 접종할 혈청, 톡신(toxine)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데도 그 사람이 의사의 문간에서 죽는다면, 그것은 의사의 잘못이 아닙니다. 톡신의 잘못도 아닙니다. 그 사람이 톡신을 맞으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그가 죽는 이유는 톡신을 맞기를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죽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교회 의자에 앉아서 죄로 죽어 가는 이유도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톡신, 곧 마음의 아픔과 갖가지 질환과 병, 마음과 혼과 생각의 병을 고치는 치료약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그저 거부합니다. “아, 저건 광신자 무리야. 오순절파 무리야”라고 말하면서,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주신 그 복된 것을 계속 억누르려고 합니다. 남자가 왜 술을 마시는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남자가 왜...? 여자들이, 어린 소녀들이 왜 마르디그라 축제에 나온 것 같은 차림으로 나가 그런 퇴폐적인 술집 같은 곳에 드나듭니까? 그들의 마음속에는 무언가에 목말라하는 자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목마름을 느끼도록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을 향해 목말라하라고 그렇게 지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세상의 것들로 그 복되고 거룩한 갈증을 잠재우려 합니다. 여러분은 바로 하나님께서 자신을 갈망하라고 사람들에게 주신 것을 왜곡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세상의 것들로 채우려 합니다. 그렇게는 안 됩니다. 결코 그렇게는 안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마귀는 여러분이 그렇게 하도록 만들 수 없으면, 그저 교회 명부에 이름을 올려놓고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게 합니다. 그것으로 그 갈증을 채우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친히 마음속에 들어와 다스리시고 사람들을 만족하게 하시며, 복을 주시고, 그들의 마음속에 그분이 창조하신 것들을 주시기 전까지는 만족이 없습니다. 그분은 그 빈자리를 채우고자 하십니다. 세상에는 그 자리를 채울 수 있는 것이 달리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 그 사실을 절대 잊지 마십시오.
젊은 자매 여러분, 여기 있는 이 어린 소녀들, 예쁜 아이들아, 여러분은 이곳에서 머리를 길게 기르고 옷을 단정하게 입도록 배우며 자랄 것입니다. 하지만 사탄의 표적이 될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권능이 여러분 위에 머물도록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가지고 들어오신 이 크고 귀한 보배, 이 행복과 기쁨을 주는 성령 침례가 결코 떠나지 않게 하십시오. 제가 소년이었을 때, 어린아이였을 때 저는 제 나이에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해 보았습니다. 아직 할 나이가 안 된 일도 많이 있었지만, 그런 일들까지도 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저를 성령으로 채워 주시기 전까지는 만족을 주는 것을 아무것도 찾지 못했습니다. 성령께서 제 마음속에 무언가를 넣어 주셨고, 그것은 저에게 완전한 만족을 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병을 막을 톡신을 어떻게 만드는지 여러분도 아실 것입니다. 자, 그 선지자가 물었습니다. “길르앗에는 유향이 없는가(그것이 톡신입니다), 유향이 없는가? 거기에는 의사가 없는가? 의사도 없고 톡신도 없는가? 그런데 어찌하여 내 백성의 딸의 건강은 회복되지 아니하였는가?” 무엇이 문제입니까? 무엇 때문에 그렇습니까? 변명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면 톡신은 어떻게 찾아냅니까? 먼저 과학계에서는 어떤... 여러 가지 화학 물질을 연구하고, 실험실에서 그것들을 혼합합니다. 그리고 균을 시험하면서 그 위에 이 톡신을 붓습니다. 그다음에는 좋은 균과 나쁜 균을 함께 놓고 연구하여, 항생제가 아니라면, 나쁜 균은 죽이고 좋은 균은 남겨 두는 것을 찾아냅니다. 이제 완성되었다고 생각하면 그 혈청을 기니피그에게 주어서 그 기니피그가 살지 죽을지 알아봅니다. 그런데 때로는 사람에게 효과가 없습니다. 약은 확신할 수가 없습니다. 어떤 약은 한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만 다른 사람들은 죽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 암을 고치려고 어떤 종류의 약인가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요전에 공산주의자들이 그 병을 들고 일어나 세상 앞에 흔들며 말했습니다. “여기 우리에게는 마비된 사람, 마비되어 근육의 기능이 멈춘 사람의 근육을 다시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에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해방은 공산주의에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해방은 교회에 주어졌습니다. 그렇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에 주어졌습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교회는 지난 생각들을 거슬러 더듬고 있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 안에서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있는 이 모든 큰 권능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저는 기적을 울리는 것을 좋아합니다. 정말 좋아합니다. 제게 아직 그만큼 어린아이 같은 데가 있습니다. 저는 기적 소리를 듣기 좋아하지만, 기차가 철로를 따라 달려갈 때 기관도 움직이도록 증기를 넉넉히 남겨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 큰 권능이 어디 있는지 우리가 찾아낼 수만 있다면... 우리가 그것을 올바르게 유지하기만 하면, 그것은 병을 고치고 마음의 생각을 분별하며 죽은 자들을 일으키고 크고 놀라운 일들을 행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사망 원인 1위가 심장병이라고 합니다. 제 생각은 다릅니다. 사망 원인 1위는 죄라는 병입니다. 나라를 죽이는 것은 죄라는 병입니다. 죄는 불신입니다. 그것이 교회 안에 들어와 사람들을 인간이 만든 어떤 신학과 갖가지 신조에 얽어매 놓습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그 사람은 믿지 않는 사람이 됩니다. 여전히 종교적이지만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종교는 다루기가 묘한 것입니다. 적그리스도가 진짜와 너무나 비슷해서 할 수만 있으면 바로 그 선택받은 자들도 속일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가인도 아벨과 똑같이 헌물을 드렸습니다. 제단을 쌓고, 엎드려 경배하고, 제단 위에 헌물을 놓았습니다. 모든 것을 아벨 못지않게 종교적으로 행했지만, 잘못된 길로 나아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받으실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사람들의 명령들을 교리로 가르치며 내게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우리는 올바른 선로에 올라서야 합니다. 제가 말씀드립니다. 사람은 그곳으로 이끄는 하나님의 튼튼한 선로에 올라서기 전까지는 결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죽여야 할 바로 그 병을 죽여야 합니다. 바로 그 병을 찾아내야 합니다. 죽여야 할 병은 죄라는 병, 곧 불신입니다. 그리고 올바른 톡신을 얻기 전까지는 결코 그 병을 잡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올바른 톡신을 얻어야 합니다. 그 올바른 톡신은 하나님께서 마련해 두신 것 가운데 어딘가에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분께서 처방전을 쓰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지점에 이르기 전까지, 그곳에 이르기 전까지는 결코 해결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을 찾아봅시다. 어디에 있는지, 처방전이 있는지, 그 톡신이 무엇인지 알아봅시다. 그것을 찾으면, 그때는 그 병을 죽일 것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자, 잠깐만요. 저는 도저히 담배를 끊을 수가 없습니다. 교인이지만 도저히 끊을 수가 없어요. 저는 춤추러 다니는데, 그걸 그만둘 수가 없어요.” 무엇이 문제인지 아십니까? 그들은 아직 톡신을 맞지 않았습니다. 아직 접종을 받지 않은 것입니다. 이 톡신은 기니피그에게 시험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기니피그에게 넣지 않으셨습니다. 친히 자신에게 넣으셨고, 효과가 있는지 알아보려고 자신에게 시험하셨습니다.
톡신이 그리 좋지 못했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것을 양과 염소와 암송아지 등에 넣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하나님 자신 안에서 입증되었습니다. 오셔서 그 톡신을 맞으신 분이 바로 그분이셨습니다. 요르단 강가에서 그분은 접종을 받으셨습니다.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영이 내려와 그분 안에 거하셨을 때, 그분은 접종을 받으셨습니다. 그분은 요르단 강가를 걸으셨습니다. 마귀들을 내쫓으셨습니다. 사람들이 그분의 얼굴에 침을 뱉었지만 그분은 다른 뺨을 돌려 대셨습니다. 사람들은 그분의 수염을 한 움큼씩 뽑았습니다. 그것은 받을 수 있는 모든 시험을 받았고, 참되다는 것이 입증되었습니다. 그분은 기니피그에게 맞으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친히 맞으셨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감당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친히 그 톡신을 맞으신 것입니다. 그것을 발견하신 분도 그분이셨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시험하신 분도 그분이셨습니다. 다른 누구에게 맞으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자기 몸에 친히 맞으셨습니다.
그다음, 그분이 십자가에서 죽음을 마주하신 날에도 그 톡신의 효력이 유지되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톡신은 입증되었고, 올바른 것이었습니다. 거기서 사람들이 자신에게 침을 뱉어도 여전히 그들을 위해 기도하실 수 있다는 것을 그분은 확인하셨습니다. 사람들이 그분의 손에 못을 박을 때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그분은 자신이 전하신 것을 실천하셨습니다. 그대로 행하셨습니다. 그분이 접종받으신 톡신의 효력이 끝까지 유지되었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어떤 사람이 물었습니다. “제 아들들이 오른쪽과 왼쪽에 앉을 수 있습니까?”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니라. 그러나 내가 접종받은 것과 같은 혈청을 너희도 접종받을 수 있느냐? 하나님의 접종을 받을 수 있느냐?” 갈보리에서 그 효력이 유지되었고, 올바른 것임이 입증되었습니다. 이제 입증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죽은 자를 일으킬 것인가? 부활절 아침에도 그 접종의 효력은 여전했습니다. 무덤을 둘러싼 봉인들이 깨지고 주의 천사가 나와 돌을 굴려 냈으며, 무덤에 계셨던 하나님의 아들, 곧 우리 가운데 육신이 되신 하나님 자신이 나오셨습니다. 그 접종의 효력이 계속된다는 것을 입증하시려고 나오신 것입니다. 유혹 속에서도, 질병 속에서도, 죽음 속에서도, 부활 때에도 그 효력은 여전히 지속될 것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지속됩니다.
“어찌하여 내 백성의 딸이 병들었는가? 길르앗에는 유향이 없는가?” 그것은 풍성하게 있습니다. 그분이 높은 곳에서 그것을 부어 주셨습니다. 제자들과 영생에 부름받은 사람들이 그 접종의 효력을 보았습니다. 이쪽 뺨도 저쪽 뺨도 돌려 댈 수 있고, 죽음 앞에 나아가면서도 성경 말씀이 옳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그 접종을 보았을 때... 하나님의 접종, 곧 성령의 접종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하신 모든 말씀에 동의할 것입니다. 그는 어떤 사람의 신학을 받아들이려고 성경을 결코 [단어 불명확]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기록하신 모든 말씀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그것은 진리입니다. 그것은 진리입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예수님께는 진리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에게 “나는 나의 거룩한 자가 썩음을 보게 하지 않을 것이며, 그의 혼을 지옥에 남겨 두지도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그분의 혈관을 찌르고 들어간 바늘이었습니다. 그러나 부활절 아침에 그분은 자신이 그곳에서 나왔음을 아셨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썩는 것은 일흔두 시간 만에 시작됩니다. 사흘 낮과 밤 안에 그분이 일어나셔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성경기록이 깨뜨려질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기록은 깨뜨릴 수 없습니다. 깨뜨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그저 그 말씀을 한 자 한 자 그대로 살아 내십시오.
어느 날 백이십 명이 그와 똑같은 접종을 받고자 했습니다. [여러 단어 불명확] 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접종을 원하거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기다리라. 들뜨지 말고 그저 기다리라. 내가 그것을 보내겠다. 위층에 온전한 처방이 마련되어 있다.” 그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하늘로부터 소리가 났습니다. 접종할 것이 오고 있었습니다. 급하고 강력한 바람 같은 소리가 나서 그들이 앉아 있던 온 집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갈라진 혀들이 불처럼 그들 위에 앉았습니다. 그들이 다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성령께서 그들에게 말하게 하시는 대로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그들이 접종을 받은 것입니다. 오, 그들이 거리로 나왔을 때,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보기 시작하자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뜻합니까?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해야 구원을 받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자기 교회에 설교자를... 설교자가 아니라 의사를 두셨습니다. “의사가 없는가? 혈청이 없는가? 유향이 없는가? 없는가...?” 유향은 풍성하게 있습니다. 그들이 그것을 보았습니다. 이제 그들에게는 올바른 처방전을 써 줄 의사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시몬 베드로 의사가 그들에게 무엇을 해야 할지 알려 주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회개하고 너희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 죄들의 사면을 얻으라. 그러면 너희가 성령님을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손들과 멀리 떨어져 있는 자들 곧 주 우리 하나님께서 부르실 모든 사람들을 향한 것이니라.” 베드로는 이것이 오늘만을 위한 처방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의 자녀들과 자녀들의 자녀들, 그리고 멀리 떨어져 있는 자들 곧 주 우리 하나님께서 부르실 모든 사람들을 위한 처방입니다. 그 처방은 그들에게 효과가 있었고, 저에게도 효과가 있었습니다. 그 처방은 여러분에게도 효과가 있을 것이며, 주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사람에게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자, 세상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죄로 병들었습니다. 여기 처방전이 쓰여 있습니다. 톡신은 풍성하게 있습니다. 오늘 아침 저는 그것이 제 온몸에 임한 것을 느꼈습니다. 지금도 제 온몸에 임해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톡신 안에 영생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것이 하찮은 죄인이었던 저를 일으켜 그리스도인,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무언가가 제 혼을 움직였습니다. 그것이 저를 온 세계로 보냈습니다. 토미 오스본과 여러 다른 분들, 그것은 여러분도 보낼 것입니다. 교회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처방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그뿐입니다. “길르앗에는 유향이 없는가? 의사가 없는가?” 오,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의사들이 있고 유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잘못된 처방을 주지 않을 것입니다. 올바른 것을 정확하게 써 줄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것이 처방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시몬 베드로 의사는 올바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그것은 언제까지 효력이 있습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너희와 너희 자손들과 멀리 떨어져 있는 자들 곧 주 우리 하나님께서 부르실 모든 사람들에게까지니라.” 이 처방은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처방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그것은 죄를 막는 접종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구원을 받겠습니까? 그러자 그가 처방전을 써 주었습니다. 길르앗에는 유향이 있고, 톡신이 있으며, 의사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왜 죽습니까? 왜 자기 죄들 가운데서 죽습니까? 처방전을 받아 그 처방대로 약을 짓기를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믿으십니까? 성령께서 지금 여기 계십니다. 이것이 죄로 병든 모든 혼을 위한 하나님의 톡신, 하나님의 톡신인 성령입니다. 오, 저는 마치... 시간이 이렇게 늦지만 않다면 이제 설교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야 좀 발동이 걸리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습니다.
머리를 숙입시다. 주 예수님, 영생을 주시는 위대한 분, 의로운 자들의 영의 위대한 아버지, 주님의 선하심과 긍휼에 감사드립니다. 오 주님. 주님, 이 작은 교회와 이 교회가 지키는 모든 것, 그 선함과 주의 이름으로 행한 일들에 대해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오 아버지 하나님, 성경은 그분이 지친 땅의 바위이시며, 주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이므로 의로운 자는 그곳에... 그 안으로 달려가 안전을 얻는다고 말씀했습니다. 오, 저희가 다니는 이 지친 땅에서 세상에 삼켜진 사람들을 보고, 형식적이고 무관심하며 톡신을 거부하기 때문에 죄 가운데 죽어 가는 교회들을 봅니다. 그런 곳에서 지친 땅의 그 바위 앞에 나아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요. 오, 아버지, 이 교회가 언제나 그렇게 서 있게 해 주십시오. 톡신으로 충만한 채 서 있게 해 주십시오. 오 주 하나님, 허락해 주십시오. 지친 혼들이 이곳에 들어와 구원을 받게 해 주십시오. 주님, 허락해 주십시오.
그들에게 주시고... 저희의 윌리엄스 형제님, 아버지와 아들 두 분 모두를 축복해 주십시오. 선교지로 나가는 이 선교사님과 함께 협력하는 목사님들, 여러 교회에서 오신 분들을 축복해 주십시오. 더없이 친절한 저희의 토미 오스본 형제님, 주님, 그가 세계 곳곳을 다닐 때 함께해 주십시오. 그에게 혼들을 주십시오. 기록된 대로 이 작은 교회를 폭풍 속의 피난처로 지켜 주십시오. 저희가 선교지를 오가다가 이 안으로 달려와 혼에 새 힘을 얻고, 쉼과 회복을 얻으며, 오 주님, 이 땅의 그늘에 앉아 주의 천사가 저희에게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그것을 얼마나 감사하게 여기는지 모릅니다. 그것이 결코... 주님, 그 불빛이 결코 희미해지지 않게 해 주시고, 가루 통이 비거나 기름병이 마르지 않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분명하고 바르게 처방전을 쓰고, 말씀을 전하며 그 어떤 부분에서도 타협하지 않는 참된 의사들에게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먹임을 받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조금 전 그 형제님이 말씀하신 대로 이곳에 성령의 부흥이 일어나게 해 주십시오. 그것이 모든 마음속에서 타오르게 하셔서 죄로 병든 혼들이 죄를 막는 접종을 받게 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마지막 날에 그들을 데리러 오시는 주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확신과 소망을 품게 해 주십시오. 주님, 허락해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참으로 놀라운 시간입니다. 오, 제게는 여기가 천국 같습니다. 아프신 분은 손을 들고 “기도받고 싶습니다”라고 말씀하십시오. 하나님은 치유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위대한 치유자이십니다. 지난 사십오 분 동안 제 앞에 어떤 이름이 계속 떠오릅니다. 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집회에서일 수도 있고 다른 어디에서일 수도 있습니다. 모르겠습니다. 그 이름은... 누군가 기도하고 있거나 무언가를 구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습니다만, 무슨 일이든 주님께서 허락하실 것입니다. 그 이름은 코자드, K-o-z-a-r-d, 아니면 그와 비슷하게 보입니다. 제가 계속 보는 것 같습니다... 코자드, 코자드인가 하는 이름, K-o-z-a-r-d가 제 귀에 울립니다. 어쩌면 어디 집회에 누군가 있을 것이고 그 일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이름이 제 마음속에 계속 울려 퍼집니다. 그리고 제 앞에 그 이름이 계속 보입니다. 누군가 어디에선가 무언가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자, 주 예수님은 모든 것을 아십니다. 모든 것을 마련하시고 준비하십니다. 이제 아프신 분이 계시면 머리를 숙여 기도합시다. 오 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