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환한 얼굴로 큰 기대를 품고 기다리며... [테이프에 공백 있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참으로 잘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조금 전 빌리와 제가 저쪽으로 들어서는데, “우리 주 예수님은 놀랍지 않으십니까?” 하는 찬송이 울려 퍼지더군요. 저는 “아멘”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놀라우십니다. 아, 제가 지난해 떠난 뒤로도 여러분에게 잘해 주셨습니까? 아, 참 좋습니다. 제게도 정말 잘해 주셨습니다. 오늘 저녁 라스무센 형제님과 다른 도시에서 오신 여러 친구들을 이곳에서 만나니 기쁩니다. 이번 주가 지나가는 동안 서로 만나 많은 교제를 나누게 되리라 확신합니다. 제가 전에 이런 말을 하곤 했는데, 불경스럽게 들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서로를 얼마나 잘 알게 되는지, 서로 씹던 껌까지 씹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야말로 형제의 사랑이지 않습니까? 정말 가까운 교제입니다.
저희는 바다 건너 섬들로 몇 차례 다녀왔습니다. 그곳에서도 주님께서는 저희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또 여러분 모두 아시는, 이곳에 계신 데이비드 듀플레시 형제님과 함께하는 특권을 누려 왔습니다. 데이비드 형제님과 저는 이 나라 여러 곳을 다니며 참으로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앞으로도 함께 길을 가는 동안 주님께서 저희 사역에 계속 복을 주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들려오는 좋은 소식도 들었습니다. 지난번 치유 대전도 집회에서 많은 사람이 치유받았다는 편지들을 받고 있습니다. 여기 아래 앉아 계신 분들이 키드 형제님 내외분이신 것 같습니다. 아, 이렇게 뵈니 정말 좋습니다. 제가 이곳에 오시게 될 거라고 말씀드린 것 기억하십니까? 그렇습니다. 정확히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참 좋습니다. 물론 여러분 모두 키드 형제님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셨지요? 모르셨습니까? 아주 위중하셨습니다. 의사들은 며칠밖에 살지 못하실 거라고 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저희가 올라왔을 때... 그분을 위해 기도하러 새벽 두 시쯤 집을 떠났습니다. 그 주말에 오지 않으면, 그러니까 사흘쯤 더 지나면 그분이 이곳에 안 계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땅에 안 계실 거라는 말입니다. 기도를 마친 뒤 저는 “키드 형제님, 저 셔토쿼에서 형제님을 만나 악수하고 싶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는 늘 그 어르신들을 존경했습니다. 우리가 어린아이였을 때 벌써 복음을 전하고 계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건 참으로 뜻깊은 일입니다. 그분들이 길을 막던 그루터기를 모두 치워 주셔서 우리가 큰길을 순탄하게 달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참 좋은 일입니다.
듀플레시 형제님이 말씀을 전하시고 다른 강사들도 오신 것으로 압니다. 저는 마트손 형제님을 찾고 있습니다. 어디 계십니까? 아직 뵙지 못했습니다. 그분은 대집회에...? 내일 아침에 오시는군요. 마트손 형제님을 뵌 지 참 오래되었습니다. 다시 뵈면 고향에 돌아온 것 같겠습니다. 그러니 오늘은 주님께서 주시는 참으로 많은 좋은 메시지로 가득할 것이며, 우리는 큰일이 일어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에 치유 예배를 드리기를 원하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아, 좋습니다. 참 좋습니다. 알겠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치유 예배를 드릴 길을 열어 주실지 지켜봅시다. 이곳에 계신 분 중 이번 주에 성령 받기를 원하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아, 세상에. 참 좋습니다. 형제님들, 부흥이 일어날 것 같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어젯저녁 제 교회에서 이렇게 알렸습니다. “여기 계신 분 중 성령을 받지 못한 분은 모두 셔토쿼로 오십시오. 돌아오기 전에 받으실 거라고 저는 거의 확신합니다.” 아멘. 그분들이 들어가 기도할 곳이 마련되어 있습니까? 바로 저쪽이군요. 자, 참 좋습니다. 애벌레들이 서로 뒤를 따라가듯, 줄을 지어 저쪽으로 돌아가시면 됩니다. 언젠가 버디 로빈슨이 이렇게 말했다고 생각합니다. “주님, 제게 성령을 주지 않으시면, 주님께서 돌아오실 때 바로 이 들판에 제 뼈만 수북이 쌓여 있는 것을 보실 겁니다.” 그때 그가 성령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서 진지해지면,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을 진지하게 대해 주십니다. 하나님을 두고 “...어쩌면 주실 거야, 어쩌면, 주셨으면 좋겠어...” 하며 마음이 조금씩 흔들리는 것만 떨쳐 버릴 수 있다면 말입니다. 그분은 주실 것입니다. 약속하셨으니까요. 아시겠죠? 우리는 그렇게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매일 저녁 새 힘을 얻어 다시 오실 수 있도록 밤에 너무 오래 붙들어 두고 싶지는 않습니다. 사역하시는 형제님들과 모든 분들을 뵙게 되어 기쁩니다. 그러면 오늘 저녁 짧은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말씀을 펴기 전에, 고개를 숙이고 기도합시다. 오늘 저녁 기도하기 전에, 고개를 숙이고 계신 여러분 가운데 죄인이 계십니까? 이 집회를 시작하면서 하나님께 “주님, 이 집회가 끝나기 전에 제 혼을 구원해 주십시오”라고 말씀드리고 싶은 죄인이 얼마나 계십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분도요. 그렇습니다. 그저... 아니, 고개는 그대로 숙이고 계십시오. 손만 드십시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여기 성령을 받지 못한 분 중 “주님, 예배가 끝나기 전에 성령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라고 하실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아, 세상에. 참 많으시군요.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실 것입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은혜로우신 하늘 아버지, 저희가 주님의 긍휼의 보좌로 나아가 주님의 공의의 그늘에 서서, 고개뿐 아니라 마음도 주님 앞에 겸손히 숙입니다. 주님, 주님께서 주신 이 땅의 삶을 어떻게 살았는지 언젠가 주님 앞에 서서 아뢰어야 한다는 것을 저희가 알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화해를 이룰 길은 오직 하나, 주님의 아들 주 예수님의 피를 통하는 길뿐임을 압니다. 그래서 이러한 대집회를 여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가 설교하고 애쓰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왕국으로 힘써 들어가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주님, 손을 들었던 죄인들이 오늘 저녁 이 예배가 끝날 때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성령을 받으려고 손을 든 모든 사람 위에 오늘 저녁 성령께서 풍성히 임하셔서, 그분의 선하심과 긍휼로 그들을 채우시고 남은 인생길을 인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병들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치유해 주십시오. 주님, 우리 가운데, 우리 마음속에 옛날과 같은 부흥이 일어나 바깥세상이 목말라하게 해 주십시오.
“너희는 땅의 소금”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소금은 목이 마르게 합니다. 하나님, 이 집회장과 건물 주변, 어디든 함께 모여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그토록 짠맛을 내게 하셔서, 믿지 않는 사람이 “주님, 저도 저 남자나 저 여자처럼 되게 해 주십시오”라고 말하게 해 주십시오. 주님, 허락해 주십시오. 저희를 돌보아 주십시오. 저희는 어둠의 세상을 걸으며 빛이 오는 위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아버지, 이 모든 것을 허락하시고, 이번 대집회가 우리가 가진 가장 위대한 대집회 가운데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모든 강사와 모든 사역자와 모든 그리스도인, 그리고 집회에 참석하는 모든 사람을 축복해 주십시오. 우리 모두에게 영광스러운 시간이 되게 해 주십시오. 우리가 마치고, 예배가 끝나고, 부흥회 혹은 대집회가 끝나 집으로 돌아갈 때, 엠마오에서 돌아온 사람들처럼 우리 모두가 이렇게 말하게 해 주십시오. “그분께서 길에서 우리와 말씀하실 때에 우리 마음이 우리 속에서 뜨겁지 아니하더냐?” 주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물론 대집회는 강사들이 말씀을 전하고 함께 모이기 위한 자리입니다. 그러나 대집회를 여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 혼이 복을 받고, 병든 사람들이 치유받고, 혼들이 구원을 받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제 이 대집회를... 우리 각자가 힘을 보태도록 합시다. 누구는 이 교파에, 누구는 다른 교파에 속해 있다는 차이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저는 포드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인데, 여기에는 아들의 쉐보레를 타고 왔습니다. 그래서... 아들이 쉐보레를 샀다고 해서 아들과 다투지 않았습니다. 저는 포드 말고는 거의 다른 차를 타 본 적이 없어서 포드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제 포드로 갈 수 있는 곳이면 아들의 쉐보레도 어디든 저를 데려다주더군요. 그러니 차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저는 신앙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기를 원하십니다. 그 방향은 예수 그리스도께로 향하는 것입니다.
자, 오늘 저녁 성경을 읽기 위해 요한복음 6장을 펴겠습니다. 66절부터 읽겠습니다. 성경 구절을 적어 두시는 분들은 참고하십시오. 그때부터 그분의 제자들 중 많은 사람이 돌아가고 다시는 그분과 함께 다니지 아니하므로 그때에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하시니 그때에 시몬 베드로가 그분께 대답하되, 주여, 영원한 생명의 말씀들이 주께 있는데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리이까? 우리는 주께서 그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확신하나이다. 주님께서 읽은 말씀에 복을 더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을 설교 본문이라고 한다면, 저는 잠시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겠는가”라는 주제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시다시피 사람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세상을 떠돌며 쾌락을 찾고, 안절부절못하며, 결코 만족하지 못하고, 바른 결론에 이르지도 못하며, 안식을 찾지도 못합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 살아 보려고 나왔을 때와 거의 같은 형편입니다. 그때부터 줄곧 제힘으로 살아가려 애써 왔으며, 그 길이 험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그런데 너무도 많은 사람이 이 삶의 끝에 어디로 가게 될지 별로 상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앉아서 자신을 살피며 이렇게 물어볼 수 있다면 말입니다. “우리는 왜 여기에 있는가? 어떻게 이 땅에 오게 되었는가? 무엇이 우리를 이곳에 데려왔으며, 우리의 영원한 목적지는 어디가 될 것인가?”...
우리 모두 평생에 단 5분만이라도 진지하게 그렇게 생각한다면, 베드로처럼 말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베드로는 다른 사람들에게 없는 무엇인가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우리가 어디로 가겠습니까?”가 아니라,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겠습니까? 영원한 생명의 말씀들이 주께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다른 사람들과 그토록 다르셨던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분께서 왜... 아니, 다른 사람들에게 없는 무엇을 가지고 계셨던 것일까요? 예수님께는 그때까지 아무도 갖지 못했고 어느 사람에게도 없던 무엇인가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그분을 다르게 했습니다. 오늘 저녁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되면 다른 모든 삶을 사는 사람들과 다른 무엇인가가 그에게 생깁니다. 그가 아무리 선한 사람이고, 훌륭한 시민이며, 한 걸음 더 수고하는 사람이고, 좋은 이웃이라 해도, 예수님을 만나면 무엇인가가 그를 변화시킵니다. 무엇인가가 그를 다르게, 눈에 띄게 다르게 만듭니다.
며칠 전, 나중에 어느 예배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만, 제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다. 주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그 모든 환상들... 제게 어떤 일이 일어나 저를 변화시켰습니다. 분명한 변화가 생겼습니다. 전에 가 본 적 없는 어떤 곳으로 이끌려 갔기 때문입니다. 저는 언젠가 그곳으로 꼭 다시 가기를 바랍니다. 다른 집회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겠는가, 혹은 누구에게로 갈 수 있겠는가 하는 이야기를 하면서, 한번 살펴봅시다... 저는 여기에 일곱 가지를 적어 두었습니다. 다른 누구에게도 없고 오직 예수님께만 있는 이것을 찾기 위해 우리가 그분께로 가야 할 이유입니다. 일곱 가지 이유입니다. 이유는 수천 가지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저녁 이 일곱 가지 이유에서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출발할 때 붙잡을 무엇, 우리에게 열의를 주고 더 굳게 붙잡도록 격려할 무엇인가 말입니다.
첫째로 생각할 것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날 것입니다. 그것은 확실합니다. 그러니 잘못된 방향으로 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날 때 천국에 가기를 원합니다. 누구나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 천국은 하나뿐입니다. 천국이 넷이나 다섯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 모두 압니다. 천국은 하나이며, 그 천국에 이르는 길도 하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그 길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께로 가야 합니다. 그분이 그 길이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다른 길이라고 주장하는 것들도 있다는 것을 압니다. 사람들은 “내가 황금률대로 살면, 십계명을 지키면, 육식을 그만두면” 하고 말하려 합니다. 혹은 어떤 종교적 행위를 말합니다. 그렇게 믿기를 원한다면 그래도 좋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것은 천국으로 가는 길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그 길이십니다. 그런 일들을 하고자 하는 여러분이 천국에 가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먼저 예수님을 찾아야 합니다. 그분이 그 길, 유일한 길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보기에 옳은 길이 있으나 그 끝은 사망입니다. 우리 나름대로 가려고 하는 길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친목 단체에 속해 있습니다. 저희 목사님은 얼마 전 인척 관계에 있는 자매를 장사하셨는데, 우리는 그분에게 소속된 친목 단체가 자신을 천국에 데려다줄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게 하려고 애썼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어느 친목 단체의 특정 모임에 속해 있다는 이유로... 물론 그런 단체에 속하는 것은 각자의 일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정죄하려고, 죄를 짓는 죄인들을 정죄하려고 여기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더 높은 차원에서 사람을 책망하려고 여기 있습니다. 죄인을 정죄하려는 것이 아니라 죄를 정죄하려는 것입니다. 사람은 죄인이기 때문에 생명을 잃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생명을 받아들이기를 거절하기 때문에 생명을 잃습니다. 그 생명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영생을 가지신 분은 그분뿐입니다. 그런데 그 여자는 자기 친목 단체가 어떤 교회나 다른 무엇 못지않게 좋다는 생각을 버리려 하지 않았습니다. 암을 앓던 여자였는데, 그저께 목사님이 그분을 장사하셨습니다.
자, 그저 선하게 살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길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선하게 사는 것으로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모세의 율법 아래 있던 사람들도 선하게 살았습니다. 또 교회라는 길이 있어서, 우리는 교회를 통해 천국에 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교회가 아무리 좋아도... 저는 누구나 어떤 교회에든 속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다고 해도, 교회가 아무리 좋아도, 여전히 교회가 그 길은 아닙니다. 교회는 여러분에게 그 길을 가리켜 줄 수 있을 뿐이며, 예수님께서 그 길이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 길을 왜곡하여 교리문답을 배우거나 신조를 암송하거나 규칙 책을 따르는 것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 모든 것이 아무리 좋아도 그것이 그 길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그 길이십니다. 그분만이 유일한 길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가지 못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에 이르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는 길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입니까?” 하고 물을 때면 저는 종종 놀랍니다. “저는 감리교인입니다”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입니까?” “저는 침례교인입니다”, 혹은 “장로교인입니다”라고 합니다. 심지어 오순절교인이나 필그림 성결교인이라든지, 어떤 교회에 속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런 것들도 좋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질문은 그것이 아닙니다. 질문은 “그리스도인입니까?”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기 전에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셔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천국에 갈 겁니다. 제 믿음이 그렇다고 말해 주기 때문입니다. 저는 교회에 속해 있고, 제 믿음은 제가 괜찮다고 말해 줍니다.” 저도 하나님의 은혜를 믿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여러분의 믿음이 어떠하든, 여러분은 믿음에 따라 심판받는 것이 아닙니다. 행위에 따라 심판받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죽을 때, 죽음이 여러분의 영을 바꾸지는 않습니다. 사는 곳만 바꿀 뿐입니다. 여러분의 집만 바꾸어 주는 것입니다. 죄 가운데 죽으면 지금 사는 곳보다 더 나쁜 거처로 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죽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됩니다. 그분께서 그 길이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이런 사람이 한 명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는 혼인 잔치에 와서 상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왕이, 혹은 신랑이 들어와 그를 보니 혼인 예복을 입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친구여, 너는 어디서 왔느냐?”라고 말했습니다. 달리 말하면 “어떻게 여기 들어왔느냐?”라는 것입니다. 동방에 다녀온 분들은 그곳의 결혼 풍습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십니다. 오늘날도 그대로입니다. 우리 주님의 그 유명한 비유에서 혼인 잔치가 마련되면 신랑이 초대장을 나누어 줍니다. 초대받은 모든 사람의 초대장에 각각 서명합니다. 그리고 종을 건물 입구에 세워 둡니다. 문 가까이에 있는 작은 보관함에는 겉옷이 수북이 쌓여 있습니다. 초대장 하나마다 겉옷 한 벌씩을 마련해 둔 것입니다. 손님이 옵니다. 옷을 잘 입고 몸단장을 잘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에 오면 그에게 겉옷을 입혀 줍니다. 그러면 그 겉옷을 입고 들어갑니다. 그다음에는 그저 웬만하게 차려입은 사람이 옵니다. 보통 수준의 옷차림이라고 합시다. 그에게도 부자가 입은 것과 같은 겉옷을 입혀 줍니다.
그다음에는 혼인 잔치에 가거나 참석하기에 알맞은 옷이 없는 가난한 형제가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문에 오면 그에게 겉옷을 주기 때문입니다. 부자에게 준 것, 중간 형편의 사람에게 준 것과 같은 겉옷입니다. 그래서 상에 앉으면 모두 똑같이 보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자녀가 그분께 그렇게 보입니다. 우리가 문을 통해 왔다면 모두 똑같습니다. 이 겉옷은 성령을 상징합니다. 성령은 영의 형태로 계시는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그는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신랑은 그를 묶어 바깥 어둠 속으로 내쫓으라고 명령했습니다. 그가 그곳에 들어온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은 무엇을 나타냈습니까? 그가... 창문으로 들어왔을 수도 있고, 뒷문으로 들어왔을 수도 있습니다. 마련된 길이 아닌 다른 길로 들어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쫓겨났습니다. 오늘날에도 마련된 길이 있습니다. 우리의 신조나 다른 무엇을 통하는 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는 길입니다. 그분이 그 길이십니다.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 성령을 받고, 들어오는 다른 모든 사람과 똑같이 옷을 입습니다.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모두 똑같아집니다. 그분을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 10장에서 그분은 “나는 양 우리의 문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양 우리에 들어가려면 문을 통해 와야 합니다. 그분이 그 문이십니다.
그러니 약 2년 전 루이빌에 살던 한 사람이 생각납니다. 그의 한쪽 귀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동네 의사에게 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병이 진행되기 시작했습니다. 의사는 원인을 알 수 없어서 그를 전문의에게 보냈습니다. 전문의도 “무슨 병인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를 세인트루이스의 귀 전문의에게 보냈습니다. 도착해 보니 그 노의사는 은퇴하여 뉴올리언스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비행기를 타고 뉴올리언스로 내려갔습니다. 이리저리 수소문하여 그 노의사를 찾아냈습니다.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 귀가 좋지 않은데, 의사들은 어떤 병이 아닐까 걱정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병이 무엇이었는지 모릅니다. 그 병명을 말해도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를 것이고, 여러분도 아실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것은 어떤 귀의 질환이었으며, 이름이 아주 길었습니다. 어쨌든 그 노의사는 귀를 들여다보고 그 병이 맞으며 많이 진행된 상태라고 말했습니다. 젊은이는 “그렇다면 선생님, 수술해서 제 목숨을 구해 주시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더 진행되면 뇌로 번져서 가망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의사는 “젊은이, 나는 너무 늙었네. 그 수술을 할 수가 없어. 내가 아는 한, 그 수술을 할 수 있는 의사는 이제 전 세계에 한 사람밖에 없네”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디서 그분을 찾을 수 있습니까?” “지금 뉴욕에 있는데, 6개월간 휴가를 보내려고 유럽으로 떠나는 중이네. 그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면 자네는 죽을 걸세. 그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수 없어. 지금 그와 연락해야 하네.” 젊은이는 다급해졌습니다. “제가 그분과 연락할 방법을 아십니까? 누구에게든 전화해 주십시오. 어떻게 좀 해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의사가 그 젊은이의 병을 진단한 뒤, 병이 이미 진행되어 죽음을 향해 가고 있으니 무엇인가 해야 하며, 목숨을 구하려면 찾아갈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뿐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젊은이가 그 의사에게 이렇게 말했다면 상상이 되십니까? “아주 좋은 말씀이었습니다, 선생님. 참 인상 깊었습니다. 나중에 형편이 될 때 다시 들으러 오겠습니다.” 아닙니다. 자기 목숨이 위태로웠고, 그 목숨을 구할 의사는 한 명뿐이었습니다. 그는 그 의사가 누구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오늘 저녁 우리도 그 사람이 자기 목숨과 귀의 질환을 걱정한 만큼 우리 혼을 생각한다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는 분은 단 한 분뿐이며, 길은 하나뿐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길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는 길 말고 우리가 아는 다른 길은 없습니다. 그분은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십니다. 영생에 이르는 길이십니다. 그분만이 유일한 길이십니다.
둘째로, 그분은 진리이십니다. 많은 사람이... 제가 교회들에 가 보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우리에게 진리가 있습니다. 우리의 신조가 옳습니다. 조상들에게서 물려받은 것입니다. 우리에게 진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이러한 일들을 합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우리는 이러한 날들을 지키고, 이러한 달들을 지키며, 이런 일을 합니다. 우리에게 진리가 있습니다”라고 합니다. 모두 잘못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7장 17절에서 “아버지, 진리로 그들을 거룩히 구별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이니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처음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이 하나님이셨더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진리이십니다. 다른 참된 것들이 있을 수 있지만, 예수님께서 바로 그 참 진리이십니다. 하늘에서 난 진리, 우리에게 보내 주신 하나님의 영원한 진리, 유일한 길이며 유일한 진리이십니다. 다른 것들도 참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바로 하나님의 그 진리, 하나님의 구원의 진리이십니다. 하나님의 계획의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 곧 길이요 진리이신 그분입니다.
셋째로, 그분은 빛이십니다. 유일한 빛이십니다. 아, 러셀라이트(러셀파)도 있고 캠벨라이트(캠벨파)도 있으며 온갖 “라이트”, 곧 빛들이 있다는 것은 압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참 빛이십니다. 그분은 빛이십니다... 우리가 어둠 속을 걷지 않고 빛 가운데 걸을 수 있도록 세상에 오시는 분입니다. 그분은 그 영원한 빛이십니다. 아, 생각해 보면 생명을 주는 방법은 실제로 하나뿐입니다. 바로 태양, 영어로 s-u-n입니다. 겨울철에 나뭇잎들이 떨어질 때...
몇 달 전, 지난가을에 우드 씨와 함께 다람쥐 사냥을 하러 켄터키에 내려갔습니다. 그곳에는 불신자로 알려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우드 씨가 “그 사람 땅에 가서 사냥합시다. 도랑 같은 것이 있고 지금은 말라 있으니, 그 도랑을 따라 걸어갈 수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8월 중순쯤이었습니다. 저는 “불신자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제가 사냥하도록 허락해 줄 것 같지는 않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가서 물어봅시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차에 앉아 있었고, 우드 씨가 다가가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말을 걸었습니다. “저희가 잠깐 사냥을 해도 될까요?” 그가 “자네가 짐 우드의 아들인가?”라고 했습니다. 오늘 저녁 뱅크스와 짐 두 분 다 여기 계신 것 같습니다. 우드 씨는 “그렇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은 “그렇다면 내 땅 어디서든 사냥해도 되네. 자네 아버지는 정직하고 바른 사람이었지. 그러니 원하는 곳 어디서든 사냥하게. 여기에 숲이 500에이커나 있으니 마음껏 하게”라고 했습니다.
우드 씨가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르고는 말했습니다. “저희 목사님도 모시고 왔는데, 그분도 사냥하셔도 될까요?” 그 노인은 입안에 씹는담배를 한 덩어리 크게 문 채 모자를 벗고 땅에 침을 뱉더니 말했습니다. “우드, 자네가 그렇게 나빠져서 가는 곳마다 설교자를 데리고 다녀야 한다는 건 아니겠지?” 저는 차에서 내려 걸어갔습니다. 그들은 사과나무 아래 앉아 있었습니다. 우드 씨가 “이분이 저희 목사님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했습니다. 그는 “그러니까, 말씀드리자면, 당신도 사냥해도 좋습니다. 저는 설교자들에게 유감은 없지만, 아시다시피 불신자로 알려져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 그다지 자랑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그렇습니다. 저도 압니다. 자랑할 일은 아니지요. 하지만 저는 하나님이라고 여길 만한 무엇인가를 늘 찾고 싶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약 2년 전에 한 설교자가 저쪽 액턴의 감리교 야영 집회장에 와서 사흘 밤 집회를 했습니다. 바로 이곳과 비슷한 곳입니다. 여기 언덕 위에 사는 어떤 할머니가 위암을 앓고 있었습니다. 아내와 저는 그분 밑에 깔린 시트를 당기러 올라갔습니다. 이제 아내는 그분이 변기를 사용하시도록 몸을 움직여 드릴 수도 없었습니다. 병세가 너무 심해서 시트를 잡아당겨 시트에 누운 채로 몸을 돌려 드려야 했습니다. 그날 밤 그분의 여자 형제가 그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그 설교자는 이 고장에 한 번도 온 적이 없는데, 돌아서서 그 여자에게 ‘지갑에 있는 그 손수건을 가지고 당신의 여자 형제에게 가십시오.’ 그분의 이름이 무엇이든 그 이름을 말했습니다. ‘그분 위에 그것을 놓으십시오.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그분이 치유받을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날 밤 저는 구세군 전체가 저 언덕 꼭대기에 다 모였나 싶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그 할머니가 일어나 햄과 달걀을 부치고 있었습니다. 그 뒤로 줄곧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 설교자가 다시 오면 저는 설교를 들으러 갈 겁니다.”
우드 씨가 저를 쳐다보기에 저는 그에게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시면 믿는 사람이 되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그렇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군요. 참 좋습니다”라고 저는 말했습니다. 그때 저는 온몸에 다람쥐 피가 묻어 있었고, 지저분한 수염이 이만큼 자라 있었습니다. 숲에서 2주 동안 야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나서 “이 사과나무는 몇 년이나 되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한 30년 되었습니다. 제가 약 30년 전에 거기에 심었지요”라고 했습니다. “그렇군요. 해마다 사과가 열립니까?” “그렇습니다. 맞습니다.” 저는 “궁금한 게 있습니다. 지금 겨우 8월 첫째 주나 둘째 주쯤인데 저 나무에서 잎이 다 떨어지고 있군요. 왜 그렇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아, 수액이 뿌리로 내려갔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수액을 내려가게 했습니까?” 그는 “위에 그대로 있으면 겨울에 나무가 죽겠지요. 수액이 나무 위에 있으면 겨울에 죽게 됩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러면 겨울에 죽지 않도록 무엇인가가 그 수액을 뿌리로 내려가 숨게 했다는 겁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그러고는 내년 봄에 올라와 다시 사과를 맺어 주는군요.” “예, 그렇습니다.” 저는 “그렇다면 말씀해 보십시오. 아직 서늘한 날씨가 오기도 전에 어떤 지혜가 그 수액을 나무에서 내려보내 겨울 동안 뿌리에 숨게 하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다면,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바로 그분께서 제게 저 여자에게 가서 치유받을 것이라고 말하라고 하셨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같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모든 자연 속에서 일하십니다! 어디를 보아도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태양은 모든 식물의 생명을 자라나게 합니다. 작은 씨앗이... 겨울에 보도를 만들어 보신 적이 있습니까? 큰 돌을 놓고 보도를 만들면서 콘크리트를 3~4피트 간격으로, 아니 폭을 그렇게 해서 길게 붓습니다. 다음 해에 풀이 가장 많은 곳은 어디입니까? 바로 콘크리트 가장자리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생명을 감출 수 없기 때문입니다. 태양이 비추기 시작하면 그 생명이 나옵니다. 보도 한가운데 깊이 묻힌 작은 씨앗도 콘크리트 사이로 길을 찾아, 돌과 나뭇가지와 그 밖의 온갖 것들 위로, 둘레로, 밑으로 뚫고 나갑니다. 마침내 밖으로 나와 작은 머리를 내밀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생명을 감출 수는 없습니다. 봄이 오고 따뜻한 태양이 땅을 감싸기 시작하면 반드시 생명이 돋아납니다. 모든 식물은 그 안에 생명이 있으면 살아납니다. 이것이 s-u-n, 태양입니다. 그런데 영생을 가져오는 길은 오직 하나입니다. S-o-n,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께서 오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죽은 것은 무엇이든... 바다에 묻든 어디에 묻든, 그 빛이 비추기 시작하면 나올 것입니다. 그분은 빛이십니다. 유일한 참 빛이십니다.
태양, s-u-n은 우리가 그 빛을 따라 걸을 수 있는 유일한 참 빛입니다. 여기 있는 이런 불빛들은 인공적인 빛이며, 어둠 속에서 비춥니다. 오늘 저녁 우리는 인공적인 빛을 따라 걸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밤의 자녀가 아니라 낮의 자녀입니다. 우리에게는 그리스도께서 계시며 그분은 영원한 빛이십니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 걷습니다. 그분께서 빛이시며, 길이시며, 진리시며,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가지 못하느니라.”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께로 가야 합니다. 그것이 그분께서 다른 모든 사람과 다르셨던 이유입니다. 우리에게 주실 이 모든 것을 가지신 분은 그분뿐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디로 갈 수 있겠습니까? 다른 데 가서 빛을 구해 보십시오. 어떤 다른 빛 말입니다. 아시다시피 악한 것들은 밤에 돌아다닙니다. 뱀과 벌레, 온갖 곤충은 밤에 날아다닙니다. 악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해가 뜨면 있는 힘을 다해 어두운 곳으로 달아납니다. 왜 그렇습니까? 어둠에 속해 있어서 빛을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세상이 그렇게 되어 가고 있습니다. 참되고 진실한 복음의 빛을 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참 빛은 사람의 행위를 드러냅니다.
이렇게 어리석은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나는 해가 비친다는 것을 믿지 않겠어.” 그러고는 얼굴을 가리고 지하실로 들어가 문을 닫은 뒤 이렇게 말합니다. “해는 비치지 않아. 나는 믿지 않아. 너희 광신자들끼리나 밖으로 나가.” 그런 사람은 우리가 어떻게 해 줄 수 없습니다. 정신이 잘못된 것입니다. 거기 머물러 있다가 밤이 올 때까지 기다려 작은 등불을 들고 밖에 나가 살펴보면서 자신에게 빛이 있다고 생각하려 한다면, 그렇게 하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아무리 말해도 소용이 없으며, 그도 태양의 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내리쬐는 그 훌륭한 광선, 건강을 주는 광선을 누리지 못할 것입니다. 실제로 그 빛 속으로 나와 빛 가운데 걷기 전에는 창조 세계의 아름다움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빛이십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들어가는 것은 좋습니다. 신조를 따르는 것도 좋습니다. 친목 단체에 속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일들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것들을 반대하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제가 하려는 말은 이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빛이 필요합니다. 그 빛은 그리스도이십니다. 빛을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그분뿐입니다. 옥수수 낟알이 아무리 많이 들어 있는 흙더미에 여기 이 불빛을 비추어도, 그 빛은 결코 생명을 싹트게 하지 못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런 인공적인 빛은 생명을 싹트게 하지 못합니다. 햇빛, 태양의 광선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태양만큼 밝기만 하다면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라고 하실 겁니다. 그 빛에는 생명을 싹트게 하는 광선의 힘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어떤 신조나 다른 무엇의 빛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빛이십니다.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그분의 임재 안에 살면 행동도 달라지고, 모습도 달라지고, 말도 달라지고, 우리 자신도 달라집니다. 우리가 빛 가운데 걷는 빛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그 빛 안에 사십시오. 그 빛에 온몸을 맡기고, 생명을 주는 그 흐름을 누리십시오. 그것을 얻으려면 그분께 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어떤 신조를 통해서는 그것을 찾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신조, 저는 여러분의 신조를 정죄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신조가 있고 그리스도도 계시다면 말입니다. 아멘. 아시겠죠? 그러나 신조만 있고 그리스도께서 안 계시다면 여러분은 비참한 형편에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런 식으로 들어가려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빛을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평생 비틀거리며 걸어가면서, 왜 이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고, 왜 외치고, 왜 손뼉을 치고, 방언을 하는지, 신유와 하나님의 권능이 무엇인지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어떤 인공적인 빛으로는 결코 알 수 없습니다. 참 빛, 곧 오는 모든 사람을 비추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빛 안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그 빛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빛이니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가지 못하느니라.”
넷째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분만이 영원한 기초이십니다. 그렇습니다. 다른 기초가 많이 있지만 그리스도만이 영원한 기초이십니다. 그리스도 외에는 모든 것이 무너질 것입니다. 여러분은 부를 기초로 삼을 수 있습니다. 돈을 많이 가지고 자녀들에게도 많은 돈을 남겨 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가져옵니까? 부는 무엇으로 이어집니까? 마음의 아픔, 실망, 다툼, 불화, 사이가 벌어지는 일, 총격, 강간, 살인, 마침내 때로는 자살로 이어집니다. 돈... 은행이 파산하거나 문을 닫을 수 있습니다. 무슨 일이 생기거나 도박을 할 수도 있습니다. 돈을 잃고는 총을 집어 자기 머리를 쏘아 버립니다. 아시겠죠? 그런 기초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돈에는 영원한 기초가 없습니다. 인기를 영원한 기초로 삼을 수도 없습니다. 인기를 얻으려고 하는 것이 미국의 큰 죄입니다. 여자들은 인기 있는 옷차림을 하려고 하고, 남자들은 인기 있게 행동하려 합니다. 이런저런 일들이 벌어지고, 돌아가는 모습이... 첫날 밤부터 이 이야기를 시작할 필요는 없겠지요. 하지만... 셋째 날 밤에도 안 하겠다는 말은 아닙니다. 아니... 오늘 밤은 이쯤에서 넘어갑시다. 그러나 인기를 얻는다는 것은... 인기는 대개 죄와 수치로 이어집니다. 분명히 그렇습니다. 서너 번 결혼하고 온갖 일이 생깁니다. 거기에는 영원한 기초가 없습니다.
때로는 예쁜 소녀에게 그 아름다움이 저주가 됩니다. 누군가 예쁘다고 말해 주면 자신이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려고 하기보다 어떤 영화배우처럼 되고 싶어 합니다. 그것을 자기 삶 전체의 기초로 삼습니다. 진정으로 생명력이 넘치는 기간은 열다섯에서 스무 살까지, 고작 5년뿐이고 그 뒤로는 죽어 가기 시작한다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한 늙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든 소망을 거기에 둡니다. 여러분은 늙어야 하고, 쇠약해져야 합니다. 지금 가진 아름다운 얼굴도 언젠가 저 무덤에서 썩어 벌레들의 먹이가 됩니다. 그러니 인기, 곧 여러분이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에는 영원한 기초가 없습니다. 거기에는 진정한 기초가 없습니다. 그런 기초는 거기에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건축 자재 위에 자기 기초를 세우려고 합니다. 오늘날 미국과 그 대규모 건축 사업들을 보십시오. 얼마 전 저녁에 올라가 어떤 교회에서 설교했는데, 그곳은 거의 하나의 도시가 되어 있었습니다. 불과 10년이나 15년 전까지만 해도 저는 그 숲에서 다람쥐 사냥을 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큰 도시가 들어섰습니다. 전에 토끼 사냥을 하던 곳에 가 보면 사방에 주택 단지가 들어서 있습니다. 건축하는 시대입니다. 모두들 미친 듯이 건물을 짓고 있습니다.
제가 아는 어느 훌륭한 분도 사방에 건물을 짓는 데 정신이 팔렸습니다. 돈이 많았고 갈수록 더 많이 지었습니다. 그런데 몇 주 전 멕시코에서 부부가 담뱃불을 붙이다가 방 안에 새어 나온 가스가 폭발해 두 사람 모두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어떤 기초가 있습니까? 그런 것들에는 기초가 없습니다. 그것들은 건초와 지푸라기라서 그 위에 영원한 기초를 세울 수 없습니다. 참된 기초는 오직 하나,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몇 해 전 저는 여기 뉴욕에서 버그 형제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어떤 건물 앞을 지나는데, 어마어마하게 큰 건물이 있었습니다. 아, 아름다웠습니다. 건축가는 어떻게 지을지, 어떤 품격으로 지을지 몹시 공을 들였습니다. 그런데 건물에 다다르자 놀랍게도 거의 다 완성되었는데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아무도 입주해 있지 않았습니다. 저는 함께 있던 분에게 “어떻게 된 겁니까?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그 건물은 쓸모가 딱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건축업자가 건물에 무엇을 넣을지에만 몰두한 나머지, 제대로 된 기초를 놓을 만큼 깊이 파는 것을 잊었습니다. 그래서 사용 금지 판정을 받았습니다. 거의 언제라도 흔들려 무너질 수 있는 건물입니다. 아무도 임대하려 하지 않고, 아무도 원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아름다워도 올바른 기초 위에 세우지 않았으니까요”라고 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여러분이 얼마나 열심히 교회에 다니고, 얼마나 잘 차려입으며, 얼마나 좋은 이웃인지는 상관없습니다. 시간을 들여 예수 그리스도라는 그 기초까지 파 내려가 저 견고한 반석 위에 소망을 두지 않았다면... 여러분의 아름다운 교회 건물, 가운을 입은 성가대, 그 밖의 무엇이든, 다 좋습니다만 언젠가 썩어 무너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정죄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라는 반석 위에 세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분만이 유일한 기초이십니다.
우리가 큰 집회를 열었던 멕시코시티에서 작은 아기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우리가 집회를 열던 그 큰 곳에서, 이튿날 형제 한 분이 도시를 구경시켜 주려고 저를 데리고 나갔습니다. 멕시코시티는 아름다운 곳입니다. 그러나 나가서 무엇을 보았겠습니까? 도시를 내려다보니 제가 본 것 가운데 가장 현대적인 건축물들이 있었습니다. 아, 온 힘을 다해 지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올바른 기초를 찾을 만큼 땅을 파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멕시코시티의 상당 부분은 건물들이 앞으로 기울었거나, 뒤로나 옆으로 기울어 있었습니다. 반석까지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아름답게 보여도 반석 위에 단단히 세워진 건물이 아니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향해 출발할 때, 어떤 거짓 기초 위에 자신을 두지 마십시오. 감정 위에 두지 말고, 어떤 신조 위에 두지 마십시오. 영원한 기초이자 으뜸 모퉁잇돌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손에 여러분의 삶을 맡기십시오. 그다음부터 지어 나가십시오. 빠르든 느리든 상관없습니다. 올바른 기초가 있으니까요. 그분 위에 자신을 두십시오. 안전을 보장하는 기초는 그분뿐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안전합니다. 그분 안에 있는 한 폭풍으로부터 안전합니다. 그분만이 유일한 기초이십니다.
이것이 넷째였습니다. 다섯째로, 그분만이 영원한 행복과 기쁨과 평안이십니다. 제가 무슨 말을 더 하겠습니까? 그분만이 영원한 기쁨이요, 영원한 행복이요, 영원한 평안이십니다. “내 화평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그것을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방식과 같지 아니하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그분만이 유일한 평안이며 유일한 행복이십니다. 아, 여러분은 미친 듯이 웃을 수도 있고, 어떤 영화배우의 농담 같은 것에 배꼽을 잡고 웃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저 소리를 내고 있을 뿐입니다. 곧 사라집니다. 몇 분만 지나면 다 없어집니다. 그러나 사람이 자기 죄가 용서받았고, 자신은 죽었으며, 자기 생명이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고, 성령으로 봉인되었다는 것을 아는 기쁨을 발견하는 데 이르면, 그것은 이루 말할 수 없고 영광이 가득한 기쁨이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권능입니다. 그분의 사랑과 은혜 안에서 안전히 쉬고 있음을 아는 것입니다! 세상일이 잘 돌아가든 말든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우리 모두, 설리번 형제님이나 저나, 열여덟 살 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물론 그렇습니다. 그러나 열여덟 살로 돌아가서 500년을 산다면 어떻겠습니까? 골동품 같은 사람이 되지 않겠습니까? 분명히 그렇습니다. 차라리 그대로 살아가며 늙고, 수염도 길게 기르고, 그렇게 500년을 사는 편이 더 나을 겁니다. 열여덟 살로 돌아가서는... 현대 생활이 발전하는 속도에 맞추어 우리도 그렇게 발전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오늘날 십 대들은 제가 어렸을 때의 십 대들과 같지 않습니다. 다음 시대에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오늘 저녁 여러분의 건강이 완벽하다면 어떻겠습니까? 어디 한 군데 쑤시거나 아픈 곳도 없다면, 그래도...? 여러분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압니다. 그러나 이 삶에서, 이 삶만으로는, 그리스도께 닻을 내리기 전까지는 만족도 영원한 행복도 없습니다.
오늘 저녁 여러분이 어떻게 알겠습니까...? “저는 아주 건강합니다, 브래넘 형제님”이라고 하십니다. 지금 여러분의 어머니가 죽어 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어떻게 아십니까? 아버지가 몇 분 전에 목숨을 잃지 않았다는 것을 어떻게 아십니까? 아기가 차에 치여 죽지 않았다는 것을 어떻게 아십니까? 그런 일들을 어떻게 아십니까? 아시겠죠? 이곳의 평안은 불안정합니다. 여러분에게 평안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이곳에서 평안을 누리도록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세상에 익숙해져 버릴 테니까요.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이 세상에 익숙해지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분 안에서 쉬기를 원하십니다. 그분께 오십시오. 그러면 평안이 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상관없습니다. 러시아 사람들이 바로 지금 원자폭탄을 발사하려고 방아쇠를 당기려 한다고 말해도, 진정으로 다시 태어난 그리스도인은 마음속에 영원한 평안이 있습니다. 그 무엇도, 그 어떤 것도 그를 해칠 수 없습니다. 발사하라고 하십시오. 연기가 여기 길 건너로 흩어지기도 전에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영광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불멸의 존재가 되어 그분의 모습을 닮아 그곳에 서서, 다시는 병들지 않고, 다시는 마음 아프지 않고, 다시는 실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무엇인가를 기초로 삼아 여러분을 그곳에 데려다줄 수 있는 곳을 한번 찾아보십시오. 그만큼 만족을 줄 수 있는 무엇인가를 찾아보십시오. 찾거든 와서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저는 제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 보았고, 힘에 부치는 일까지도 시도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권능이 생명을 주며 흘러드는 것만큼 제 속 깊은 곳에 와닿은 것은 아직 하나도 찾지 못했습니다. 형제여, 그날 밤 성령께서 제게 임하셔서 제 혼의 닻을 그분의 영원한 구원에 내리셨을 때, 강 같은 평안이... 샤카리안 어르신 형제님은 “강 같은 평안”을 부르곤 하셨습니다. 무엇인가가 일어났습니다. 살든 죽든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우리는 그분의 임재 안에 있을 것입니다. 다시 젊은 남녀가 되어 영원무궁토록, 영원히 그렇게 살 것입니다. 그러니 무엇을 걱정하겠습니까? 그 밖에는 완전한 행복이 없습니다. 그분은...
첫째, 그분은 길이십니다. 둘째, 진리이십니다. 셋째, 빛이십니다. 넷째, 유일한 영원한 기초이십니다. 다섯째, 유일한 영원한 행복과 기쁨이십니다. 여섯째, 그분만이 영원히 남는 성취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여러분이 갈 수 있는 어떤 곳, 할 수 있는 어떤 일, 이룰 수 있는 어떤 성취가 영원할 수 있는지 말씀해 보십시오. 영원히 남을 집을 지을 수 있는지 말씀해 보십시오. 영원할 인기를 쌓을 수 있는지 말씀해 보십시오. 영원한 재물이 될 만큼 충분한 부를 얻을 수 있는지 말씀해 보십시오.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그런 영원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분은 영원한 성취이십니다. 여러분이 평생 아무리 많은 일을 이루었더라도, 그리스도 예수님을 만나 마음속에 모시기 전에는 아직 영원한 것을 이루지 못한 것입니다. 그분이 영원한 성취이십니다.
일곱째이자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분만이 우리를 들려 올리시는 분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분 안에서만 여러분이 들려 올라갈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 오실 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을 그분과 함께 데려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들려 올라가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아, 우리에게는 다른 온갖 것들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얼마 전 실업인 조찬 모임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푸에르토리코였던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제게 “당신은 설교자인데, 이 실업인들 가운데서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저도 사업가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업을 하십니까?” 저는 “보험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무슨 보험을 파십니까?” 저는 “복된 확신, 생명보험입니다. 보험에 가입하는 데 관심이 있으시면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군요”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관심이 있습니다.
하루는 아주 친한 친구인 윌버 스나이더가 찾아왔습니다. 우리는 함께 어울려 다니던 사이였습니다. 그는 프루덴셜 생명보험을 팔고 있었는데, 저희 집에 와서 “빌리, 자네와 보험 이야기를 좀 하고 싶네”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 나는 확신이 있네”라고 했습니다. 그는 “아, 미안하네. 몰랐어, 빌리. 자네 부인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던 것 같은데”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 있네”라고 했습니다. 아내가 ‘이 사람이 어떻게 된 거지?’ 하는 눈으로 저를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저를 보며 “빌리”라고 했습니다. 저는 “물론이지, 여보. 내게는 확신이 있어. 나는 ‘보험’이라고 하지 않았어. ‘확신’이라고 했지. ‘내게 확신이 있다’고 했어”라고 말했습니다. 윌버 스나이더가 “빌리, 어떤 확신이 있나?”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복된 확신, 예수는 나의 것. 아, 하나님의 영광을 미리 맛봄이여. 나는 구원의 상속자, 하나님께서 값을 주고 사신 자. 그분의 영으로 태어나 그분의 피로 씻음받았네.” 그는 “아, 빌리, 참 좋군. 좋은 말일세. 내 형제 중에도 설교자가 있지. 자네도 하워드를 알잖나”라고 했습니다. 저는 “알지”라고 했습니다. 그는 “하지만 빌리, 그걸로는 자네를 저 묘지에 묻어 줄 수 없네”라고 했습니다. 저는 “알고 있네. 하지만 그건 나를 묘지에서 나오게 해 줄 걸세. 나는 거기 들어가는 게 걱정이 아니네. 나는 그저... 거기 들어가는 일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어. 내가 알고 싶은 건 어떻게 거기서 나오는가 하는 것이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확신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묻어 줄 장의사에게 돈을 많이 지불합니다. 가끔은 언젠가 우리를 위로 데려가실 분도 생각합시다. 우리를 들려 올리시는 유일한 분, 무덤에서 이끌어 내실 수 있는 유일한 분, 흠도 없고 점도 없고 주름도 없이 우리를 아버지 앞에 세우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할렐루야! 물론 침례교인들도 외칩니다. 그렇습니다. 참된 신앙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외칩니다. 외칠 만한 것이 있으니까요. 골목 아래 살던 어느 흑인 노인이 제게 말하곤 했습니다. “빌리, 자네는 소리치며 외치는 그 신앙을 믿지?” 저는 “그렇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자네 그거 아나...?”라고 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그분이 지나가다가, 약 아흔 살 된 분이었는데, “자네에게 할 말이 있네”라고 했습니다. 저는 “좋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립?”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내 말 들어 보게. 늙은 수탉 한 마리가 있다고 하세. 발을 묶든, 상자에 못 박아 꼼짝 못 하게 하든, 어떻게 해도, 날이 밝아 오면 그놈은 몸을 뒤집어서라도 운다네. 그렇지. 빌리, 왜 그러는 걸까?”라고 했습니다. 저는 “수탉이고, 날이 밝아 오기 때문이지요. 본성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영으로 태어나 그 안에 영생이 있으면, 성령께서 임하실 때 소리쳐 외칠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인가가 일어나야 합니다.
믿으십시오. 마음으로 체험하는 옛날의 참된 구원은 기쁨과 행복의 눈물을 흘리게 하며,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평안을 가져다줍니다. 아, 그분은 강이시며, 그분은... 아, 그분은 저의 모든 것이십니다. 그분께서 제게 어떤 분이신지 아무리 찬양하고 아무리 말해도 다 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입니다. 우리가 그러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 안에 있는 본성입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태어나면 여러분 안에 소리쳐 외치게 하는 본성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한번은 그 바리새인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달리 말하면, “저 사람들 때문에 제 등골이 오싹합니다. 저들을 조용히 하게 하십시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작은 노새를 타고 들어오실 때였습니다. 그가 “왜 저들을 조용히 하게 하지 않으십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분께서는 “만일 이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즉시 소리를 지르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인가가 일어나야 했습니다. 할렐루야! 그분께서 흰 군마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오시는 것을 우리가 보게 될 때, 그때야말로 얼마나 큰 소리가 나겠습니까! 아, 우리가 말해 왔던 이 모든 일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것을 볼 때, 정말 대단한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물론입니다. 그분만이 우리에게 있는 유일한 소망이십니다. 나라들이 무너지고 모든 나라가 쇠하며, 모든... 건강도 쇠하고, 세상도 쇠하며, 질병은 늘어나고, 죄는 판을 칩니다. 그러나 실패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귀한 말씀입니다. 그분만이 유일한 보장이요, 유일한 소망이요, 생명이십니다. 우리가 바라볼 분은 그분뿐입니다. 우리를 들려 올리실 유일한 분이십니다.
한번 이렇게 해 보십시오. 알아보고 싶다면... 내일 아침 출발해서 여기 큰 도시들로 내려가 보십시오. 갈 수 있는 약국은 다 가 보시고, 어떤 의학 연구로 만들어진, 들려 올라가게 하는 약 한 병을 사 보십시오. 여러분을 들려 올릴 권능을 어디서 살 수 있는지 말씀해 보십시오. 그것을 얻으려면 예수님께 와야 합니다. 의사에게 가서 다음 주에 수술을 받고 싶은데, 자기 안에 있는 모든 죄를 도려내고, 들려 올라갈 만큼 가볍게 만들어 달라고 해 보십시오. 얼마나 난감한 일이 될지 보십시오. 예수님만이 우리를 들려 올리시는 분입니다. 무덤에서 여러분을 데려오실 수 있는 유일한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누구든지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할렐루야! “아,
나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자요, 영원무궁토록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사망과 지옥의 열쇠들을 가지고 있노라.” 그분은 생명의 샘이십니다. 아,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유일한 기초, 유일한 길, 유일한 진리, 유일한 빛, 유일한 기초, 유일한 영원한 행복, 유일한 참된 성취, 우리를 들려 올리실 유일한 분입니다. 그분이야말로 모든 것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이 성경에 이러한 복된 약속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누구에게로 갈 수 있겠습니까? 어느 약국인지 말씀해 보십시오. 어느 곳인지 말씀해 보십시오. 어떤 친목 단체에 가입하면 되는지, 어떤 교회에 들어가면 되는지, 여러분에게 이것들을 줄 수 있는 무엇이든 말씀해 보십시오.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에게로 돌아서야 합니까? 누구에게로 가겠습니까?
우리가 영생을 찾고 싶다면 어떻겠습니까? 저는 약국에 가지 말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 가지 말라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 일들은 여러분이 하시면 됩니다. 그러나 반드시 기초를 바르게 놓고, 올바르게 출발하십시오. 먼저 예수님을 모십시오. 그러고 나서 교회에 들어가십시오. 침례를 받으십시오. 성가대에서 노래하십시오. 성령께서 하라고 하시는 일이면 무엇이든 하십시오. 그러나 먼저 그 기초 위에 서십시오! 작은 나무가 하나 있습니다. 거기에는... 사과나무입니다... 알맞은 터에 심기만 하면 사과를 맺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갈망하는 마음이 있고, 하나님의 권능을 보기 원하고, 그분의 영생이 고동치는 것을 느끼고 싶고, 성령께서 실제로 계시는지 알고 싶다면, 여러분의 작은 나무를 알맞은 터에 심어 보십시오. 그러면 무엇인가가 일하기 시작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아! 여러분은 생명수를 빨아들이기 시작하고, 그 작은 나무는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시작할 것입니다. 분명히 자라기 시작합니다. 제대로 심겼기 때문입니다. 올바르게 출발해야 합니다. 부흥도 올바르게 시작해야 합니다.
여기 성령을 구하는 분이 많이 계십니다.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성령을 받기 전에는 오늘 밤을 그냥 보내지 않는 것입니다. 날이 밝을 때까지 받지 못했다면 낮에도 계속하십시오. 밤이 될 때까지 받지 못했다면 밤에도 계속하십시오. 성령을 받을 때까지 그곳에 머무십시오. 1분도 더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께서 지금 바로 여기 계십니다. 바로 이 순간 여러분에게 부어 주시고, 그분의 부활 생명에서 솟구치는 권능으로 가득 채우시며, 그 부활에 대한 소망, 영원한 소망을 주십니다. 무엇인가가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흑인 친구 여러분, 양해해 주십시오. 얼마 전 어느 흑인 노자매가 간증하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그분을 조롱하며 “아, 당신은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했답니다. 그분은 “그럴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한 가지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나는 마땅히 되어야 할 사람도 아니고, 되고 싶은 사람도 아니지만, 한 가지는 알아요. 예전의 나는 아니라는 겁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좋은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마땅히 되어야 할 사람이 아닐 수 있고, 되고 싶은 사람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압니다. 그리스도를 만난 뒤로 우리는 예전의 우리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 기초에 왔습니다. “임마누엘의 혈관에서 흘러나온 피로 가득한 샘이 있네. 죄인들이 그 피의 물결에 잠기면 모든 죄의 얼룩을 씻네.”
그것이 영생의 소망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이 바로 여기 이 책에 있습니다. 하나하나 모두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그분의 말씀이며, 이것이 그리스도이시며, 이것이 그분의 약속입니다.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와서 물을, 생명수의 샘물을 값없이 마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한 푼도 들지 않습니다. 모든 값이 이미 지불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세상 그 무엇도 핑계로 댈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죄를 담당하시는 분으로 앞서 가셨습니다. 여러분의 죄를 지셨습니다. 여러분의 모든 불법을 지셨습니다. 그것을 자기 몸에 짊어지시고 죄 없으신 분으로 갈보리에 가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그곳에 가셔서 우리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죄와 제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그분을 죽이셨습니다. 여러분이 그분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하나님께 어떻게 답하시겠습니까? 그분께 어떻게 답하시겠습니까? 언젠가 여러분의 혼에 대해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저는 교회에 들어갔습니다. 성결이라든지 그런 이름으로 불리는 길이 있다는 것은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올바르게 행동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라고 하시겠습니까? 들어와 잠시 살펴보십시오. 그 물속으로 걸어 들어와 보십시오.
제가 어린아이였을 때 우리는 옷이 많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서로 누가 마지막으로 물웅덩이에 뛰어드나 보자며 내기를 하곤 했습니다. 모두 늘 헤엄치던 물웅덩이로 달려갔습니다. 한 가지는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제가 맨 먼저 들어갔습니다. 벗을 옷이 가장 적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멜빵바지 한 벌뿐이었고, 낡은 여물 묶는 끈을 둘러 못 하나로 여며 놓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달려가고... 우리 모두 달려갔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신발 같은 것을 벗고, 셔츠도 벗고, 어쩌면 속옷도 벗어야 했습니다. 저는 그런 것 때문에 시간을 보낼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저 있는 힘껏 달려가 못을 뽑고 그대로 뛰어들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아시겠죠? 그러면 그만이었습니다. 저는 물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늘 제가 물이 어떤지 알아봐 주기를 기다렸습니다. 제가 손가락 하나를 들면 물이 차갑다는 뜻이었습니다. “얘들아, 들어오지 마. 천천히 해.” 덜덜 떨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손가락 두 개를 들면 물이 좋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면 옷이 사방으로 날아가고 아이들이 뛰어들었습니다.
오늘 저녁 성령을 한 번도 받지 못한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형제여, 저는 손가락 두 개를 들고 있습니다. 좋습니다. 물이 따뜻합니다! 들어오십시오! 낡은 자기 의와, 지나간 모든 날들과, 예전의 파티들과, 오래전의 옛 교우 관계들, 곧 죄악된 삶을 모두 벗어 물가에 내려놓으십시오. 그리고 그 “임마누엘의 혈관에서 흘러나온 피로 가득한 샘, 죄인들이 그 피의 물결에 잠기면 모든 죄의 얼룩을 씻는” 그 샘에 뛰어드십시오.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 저의 모든 죄를 씻어 주소서. “주님의 상처에서 흘러나온 그 시내를 믿음으로 본 이래, 구속의 사랑이 내 노래의 주제가 되었고 죽을 때까지 그러하리라. 이 어눌하고 더듬거리는 혀가 무덤에서 잠잠해질 때, 나는 더 고상하고 더 감미로운 노래로 주님의 구원하시는 권능을 노래하리라.”
이 책에 있는 모든 약속이 여러분의 것입니다.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오라.” 오십시오. 모든 사람이 초대받았습니다. 이 약속은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테이프 끊김]... 알아보십시오. 정말 좋습니다. 그렇습니다. 베드로는 오순절 날에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손들과 멀리 떨어져 있는 자들 곧 주 우리 하나님께서 부르실 모든 사람들을 향한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그 성경 구절들을 사사로이 해석하는 것... 그 말씀은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오라는 뜻이었습니다. 성경의 마지막 책은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오라. 누구든지 빼거나 더하면 그 사람의 몫도 생명책에서 빼앗기리라”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 말씀에서 아무것도 빼거나 더하고 싶지 않습니다. 모두를 초대하고 싶습니다. 누구든지 원하는 사람은 올 수 있습니다.
누가 이 약속은 다른 시대를 위한 것이라고 말하더라도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이 약속은 바로 지금을 위한 것입니다. 지금도 유효한 약속입니다. 누구든지 원하는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아직 경험해 보지 않아서 모를 수도 있습니다. 그토록 가까이 있으면서도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가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자, 제퍼슨빌에서 오신 분들에게 초대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특히 그곳에서 꽤 오랫동안 성령을 구해 온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우리가 데려왔... 길 위쪽에 있는 한 청년이 어젯밤 제 교회에서 몇 사람에게 침례를 주려고, 침례탕으로 내려와 그곳을 쓰고 싶다고 했습니다. 제게 있다가 나가서 교회를 세운 청년 중 한 명입니다. 오늘 저녁 러들 형제님이 여기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젯밤 그가 침례를 받을 열아홉 사람을 데리고 내려왔습니다. 그때... 그 사람들은 성령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들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제가 토요일 밤에 설교했더니 그들이 제단에 나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어젯밤 휘장을 젖히고 어떤 여자를 데리고 들어왔습니다. 그 여자에게 침례를 주자마자 그분은 힘껏 방언을 하며 물에서 나왔습니다. 아, 여러분이 그 소리를 들으셨어야 합니다. 모두 그쪽으로 달려왔습니다. 위쪽에서 온 그 사람들이 “저게 무슨 뜻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바로 그것이 아니라면, 그것이 올 때까지 이것이라도 간직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선지자 요엘을 통해 말씀하신 바로 그것이니라. 하나님이 말하노라. 마지막 날들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아들딸들은 예언하리라. 또 내가 내 여종들과 하녀들에게 내 영을 부어 주리라. 내가 위로 하늘과 아래로 땅에 표적들을 보이리라.”
하나님께서 부르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움직이고 계십니다. 우리는 길의 끝에 와 있습니다. 시간의 끝에 와 있습니다. 시간이 끝에 이르렀습니다. 형제여, 그것을 입증해 드릴 수 있습니다. 언제일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아침이 오기 전일 수도 있습니다. 다음 한 시간 안일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 5분 안일 수도 있습니다. 언제이든 가까이 와 있습니다. 주 예수님의 오심 외에는 더 일어날 것이 없습니다. 교회가 분발하여 모이고, 스스로를 흔들어 깨우고 있습니다. 사람들 가운데 이런 움직임을 본 적이 있습니까? 분명히 무엇인가가 일어나려 합니다. 주님께서 오시는 것입니다. 온 땅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 바깥의 자연, 사람이 그 다스릴 권한을 받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셨을 때... 처음 사람을 만드셨을 때 그분은 “엘로힘”이라 불리셨습니다.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다음 장에서 “여호와”라 불리셨을 때는, 그분께서 무엇인가를 만드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람에게 주셨고, 사람은 땅을 다스릴 권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신이었습니다. 그는 땅의 신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을 그렇게 부르지 않았느냐...? 왜 나를 정죄하느냐? 너희 율법에서 말씀이 임한 자들을 ‘신들’이라 불렀느니라.” 또 “내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데, 말씀이 임한 그들, 곧 선지자들을 너희가 신들이라고 한다면,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했다 해서 어떻게 나를 정죄할 수 있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분명히 온 세상은 주 예수님께서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때 사람은 다시 이 땅의 다스릴 권한을 얻을 것이며, 모든 나무와 그 밖의 모든 것이 살 것입니다. 모든 동물과 그 밖의 모든 것도 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 형제여!
사람들은 인생이 마흔부터 시작된다고 합니다. 거짓말입니다. 생명은 제단에서 시작됩니다. 바로 그곳에서 시작됩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께 올 때 영원한 생명이 시작됩니다. 모든 약속이 여러분의 것입니다. 모두 여러분의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살펴보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 약속이 자신에게 주어진 것인지 알아보려고 들여다보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정말로 받으리라고 믿지 않고서는 와서 성령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받기를 바라는 것보다 더 간절히 여러분에게 주기를 바라십니다. 더 간절히 말입니다. 여러분이 받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의 것입니다. 여러분 개인의 소유입니다. 그분께서는 여러분을 자신에게로 데려오셔서 자신을 경배할 존재를 가지시려고 예수님을 보내 죽게 하셨습니다. 그분께서 엘로힘이셨을 때는 홀로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분 안에는 속성들이 있었습니다. 그 속성들은 아버지가 되시는 것, 하나님이 되시는 것, 경배를 받으시는 것, 치유자가 되시는 것, 구원자가 되시는 것,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삶이 그 속성들을 나타냅니다. 그분께 오는 순간 여러분은 그분의 아들이 됩니다. 여러분은 그분을 경배합니다. 그것이 그분께서 참으로 되고자 하신 것이며, 여러분이 그렇게 하도록 지으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기에 있는 목적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영과 진리로 경배하기 전에는 그분을 올바르게 경배할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 4장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아버지께서 영과 진리로 자신에게 경배할 그런 자들을 찾으시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진리를 기초부터 바로 세우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십니다. 악수하거나 교회에 가입하는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도 좋습니다. 물론 악수하십시오. 물론 교회에 들어가십시오. 그러나 그것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먼저 기초로 오십시오. 그분 위에 여러분 자신을 두십시오. 그분을 받아들인 뒤에 목사님과 악수하고 교회에 들어가십시오. 그렇습니다. 이런 일들을 한 뒤에... 그러나 먼저 올바르게 출발하십시오. 올바른 방향으로 향하십시오. 다윗이 물매를 사용할 때와 같습니다. 먼저 그 돌의 방향을 제대로 잡아야 했습니다. 여러분은 조준해야 합니다. 표적에 정확히 맞추어야 합니다. 정확히 맞추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조준하십시오. 그분께서 길이요 진리요 빛이요 기초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모든 것이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얼마 전 이곳 미국에 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가엾은 노인이 너무 가난해서 사람들이 그분을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몰랐습니다. 마침내 구호 기관 사람들을 보내 무엇을 해 줄 수 있는지 알아보게 했습니다. 찾아가 조사해 보니 정말 가난했습니다. 먹을 것도 없었고 가구도 모두 팔아 버렸습니다. 형편이 몹시 어려웠습니다. 그들은 “자녀가 없으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분은 “있지요. 아들이 하나 있어요”라고 했습니다. “그 아드님은 어디 계십니까?” “인도에 있어요. 인도에서 사업을 하고 있지요.” “그런데 왜 어머니를 돌봐 드리지 못합니까?” 그분은 “아, 말씀드리자면, 그 아이는 정말 사랑스러운 아들이에요”라고 했습니다. 어머니들이 어떠한지 아시지요.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편지들을 보내 준답니다. 그렇게 다정한 편지를 써 주니 도움을 청할 수가 없어요. 도저히 그럴 수가 없지요. ‘사랑하는 어머니, 어떻게 지내세요?’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써요. 제 사정을 말하기가 참 어려워요. 물론 저를 도우려고 무엇이든 해 줄 아이라는 것은 알아요. 게다가 제가 본 것 중 가장 예쁜 그림들도 보내 준답니다.” 그들이 “무엇을 보내 준다고요? 그림이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래요.” “어떤 그림입니까?” “잠깐만 기다려요. 말씀드릴게요. 성경에 넣어 두었어요. 2~3년 동안 모아 왔지요.” 그분은 성경을 펼쳐 그것들을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무엇이었는지 아십니까? 그분은 수만 달러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것들은 그림이 들어 있는 인도의 송금환이었습니다. 그분은 그것이 무엇인지 전혀 몰랐습니다. 그러나 성경 속에서 그것들을 찾아냈습니다. 부자이면서도 그 사실을 몰랐던 것입니다. 굶어 죽어 가면서, 굶주림으로 죽어 가면서, 구호에 매달려야 했습니다. 자기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오늘 저녁 많은 사람이 그와 같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이루 말할 수 없고 영광이 가득한 기쁨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 권능과 영존하는 생명을 모릅니다. 여기 이 안을 들여다보면서, 그 사도들에게 주셨던 약속이 누구든지 원하는 자에게 주어졌으니 오라는 것을 알아보기 전까지는 자신이 얼마나 부유한지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그 모든 것이 값없이 여러분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받고 싶으십니까? 성령으로 충만해지고, 구원을 받아 여러분의 죄가 피 아래 있게 되고, 성령으로 충만해지며,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마음속에 들려 올라갈 권능을 갖고 공중에서 그분을 만나러 올라가기를 원하십니까? 그 복된 확신을 가지고 오늘 밤 이 건물을 나가고 싶으십니까? 차가 여러분을 치더라도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아, 그렇게 되면 이 낡은 집을 완전히 새집으로 바꾸는 것뿐입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그저 낡고 쇠약해진 남녀에서 결코 죽지 않을 젊은 남녀로 옮겨 가는 것입니다. 어제도 없고 내일도 없이 모든 것이 오늘인 곳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 스스로 계신 분, 영원하신 분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분과 함께 영원합니다. 바로 그렇게 됩니다. 결코 늙지 않고, 결코 병들지 않고, 결코 마음 아프지 않고, 결코 실망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저 이것을 저것으로 바꾸는 것뿐입니다.
자, 제 친구여, 들으십시오. 여러분 안에 생명의 영이 없이 죽으면 그곳으로 갈 수 없습니다. 들으십시오. 처음에 말씀드렸듯이, 죽음은 여러분의 영을 바꾸지 않습니다. 사는 곳만 바꿉니다. 며칠 전 저녁에 그것을 가르치다가 이 주제에 이르렀습니다. 사울이 하나님을 떠나 타락했을 때, 우림과 둠밈도 그에게 대답하지 않았고 예언하는 선지자도 대답해 줄 수 없었습니다... 주님께로부터 오는 꿈조차 꾸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내려가 엔돌의 마녀에게 사무엘의 영을 불러 달라고 했습니다. 사무엘은 죽은 지 19년이 되었습니다. 확실히 알아보려고 방금 찾아봤는데, 죽은 지 19년이었습니다. 엔돌의 마녀가 사무엘의 영을 불렀을 때에도 그의 모습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마른 몸에 어깨에는 겉옷을 걸치고 서 있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의 삶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같은 사무엘이었고, 여전히 선지자였습니다.
여러분은 “아, 그건 좀 미심쩍습니다. 엔돌의 마녀였으니까요”라고 하실 겁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가 사무엘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변화산은 어떻습니까? 모세가 죽은 지 800년이 되었고 표시도 없는 무덤에 묻혀 있었는데 말입니다. 그것은 어떻습니까? 약 500년 전에 병거를 타고 본향으로 간 엘리야는 어떻습니까? 그 두 사람이 너무도 생생하게 그곳에 서 있어서 사람들이 알아보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사람의 몸이 있었고 하나님의 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할렐루야! 형제여, 하나님께서 그대의 마음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드립니다. 그곳으로 가려면 생명이 있어야 합니다. 생명 없이는 일어날 수 없습니다. 씨앗 하나를 땅에 심어도, 작은 벌레가 그 씨앗 속으로 들어가 씨눈을 죽이면 절대로 올라오지 못합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그러나 벌레가 들어가지 못하게 하면 그 씨앗에는 핵심이 살아 있습니다. 그 안에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주위 환경이 알맞게 되면 반드시 올라올 것입니다. 오늘 저녁도 그렇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성령을 받으려는 작은 소망이라도 있다면, 알맞은 분위기 속으로 들어가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마음 자세를 가지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생명이 여러분 안에 들어올 것이며... 여러분은 들려 올라가는 것을 향해 일어서기 시작할 것입니다. 아, 우리가 여기서 받는 것은 그저 그림자의 그림자의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죽으면 그 그림자가 그림자의 그림자가 되고, 그림자로, 흩뿌리는 물방울로, 습기로, 개울로, 호수로, 그... 아, 계속 나아가 영원한 임재 안으로 들어가면, 그곳에 영원히 있게 됩니다.
여러분은 그런 기회를 거절할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얻는 것보다 더 큰 어떤 성취를... 어떤 투자를... 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저녁 성령을 받는 것, 그분께서 친히 침례받으셨던 바로 그 영이 여러분 위에 임하시는 것보다 더 큰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셋째 날 그분을 일으키셨던 바로 그 영께서 마지막 날에 여러분을 일으키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멘. 아, 그분은 놀랍지 않으십니까? 이제 고개를 숙이고 잠시 기도합시다. 피아노 치시는 분, 누구시든... 오늘 저녁 이곳에 그분을 구주로 알지 못하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브래넘 형제님, 저는 제 집을... 멕시코가 그 도시를 세운 것처럼, 뉴욕의 그 건축업자가 그 건물을 지은 것처럼 세웠습니다”라고 하실 분 말입니다. 그 건물은 한 가지 용도로만 쓰였습니다. 그는 견고한 기초 위에 세우지 않아서 가진 모든 것을 잃었다는 것을 알고, 건물 꼭대기에 올라가 뛰어내렸습니다. 여러분이 그저 교회에 가입하고 어디 명부에 이름만 올렸을 뿐이라는 것을 죽을 때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자신은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그 성질과 죄 가운데 살며 세상의 것들을 계속 사랑하고 있다면 말입니다. “
여러분이 세상이나 세상의 것들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 안에 있지도 않습니다.” 친구여, 왜 그런 모험을 하십니까? 오늘 저녁 이 문제를 해결합시다. 다음 순서로 넘어가기 전에 이곳에 있는 모든 죄인이 여기 앞으로 나와 잠시 서서 함께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나오시겠습니까? 이 건물 안에 있는 모든 죄인은, 우리가 기도하는 동안, 그리스도인들이 기도하는 동안... 죄인 친구여, 잠시 이리로 오십시오. 이리로 오십시오. 그만큼만 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하나님을 믿고, 그렇게 하기를 원한다는 것을 보여 주십시오. 여러분은 그 위에 세워지기를... 올바르게 출발하기를 원하십니다. 바로 이리로 와서 제 손을 잡으십시오. 그냥 이리로 오십시오. 여성 여러분,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다른 분도 오시겠습니까? 오십시오. 죄인은 모두 나오십시오. 잠시 바로 이리 앞으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제가 이 제단 바로 여기서 여러분께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밖에 계시든 어디에 계시든 곧바로 오십시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브래넘 형제님이 마이크에서 물러난다.] 자, 오십시오. 이 네 분의 여자분들에게 말씀드렸듯이, 여러분이 살아오면서 훌륭한 일을 많이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지금까지 한 가장 위대한 일입니다. 이제 올바르게 출발했습니다. 평생 한 번, 올바른 방향을 향했습니다. 선하고 충실한 일들을 비롯해 다른 많은 일을 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사라질 것입니다. 여러분도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믿기 때문에, 반석이신 그리스도 위에 서려고 나오고 계십니다. 이것이 여러분이 해 온 가장 위대한 일입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이러 오는 때가 여러분이 가장 위대한 일을 이루는 때입니다.
다른 죄인들도 모두 나오시겠습니까? 오셔서 잠시 여기 서십시오. 그저 함께 잠깐 기도하려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께 가서 함께 기도하고 싶습니다. 나오시겠습니까? 젊은 분이든 나이 드신 분이든 곧바로 오십시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또 계십니까? 곧바로 일어나 오십시오. 젊은 아가씨, 오십시오. 그렇습니다. 그저 이리로 오십시오. 해가 될 일은 없습니다. 여기 오시면 결코 잘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형제님,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브래넘 형제님이 마이크에서 멀어진다.] 잠시 기다리는 동안 죄인 친구여, 오십시오. 이제 “피로 가득한 샘이 있네”를 조용히 부릅시다. 피로 가득한 샘이 있네, 임마누엘의 혈관에서 흘러나온 피. 죄인들이 그 피의 물결에 잠기면 영원히 남는 유일한 분, 예수 그리스도께로 오십시오. ...죄의 얼룩을. 샘이 열려 있고 올 수 있는 기회가 있는 지금, 오시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의 삶에서 이룰 수 있는 유일한 위대한 성취를 향해 오십시오. 길이요 진리요 빛이신 분께 오십시오. 그것을 얻으려면 어디로 갈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께로 가는 것 말고는 다른 곳이 없습니다. 모든 죄의 얼룩을 씻네. 죄인들이 그 피의 물결에 잠기면 모든 죄의 얼룩을 씻네.
우리가 잠시 조용히 있는 동안 여쭙겠습니다. 이곳에서 성령을 아직 받지 못했는데 받기를 원하며, 하나님 앞에서 진지한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주님, 저는 그 길로 왔습니다. 주님을 제 구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성령침례를 받기 원합니다. 제 안에 저를 들려 올릴 그 생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이제 압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에게서 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 결코 들어갈 수 없느니라.” 여기 강가, 바로 이 둑 아래에는 물이 충분하고 사역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다시 태어나기 위해 성령침례를 받기 원합니다. 다음 절을 부르는 동안 오십시오. 성령침례를 원하는 모든 분은 잠시 바로 여기로 오셔서 저와 함께, 이 소중한 회개의 사람들과 함께 서시겠습니까? 성령침례를 받기 위해 나와 서시기 바랍니다. 죽어 가던 강도는 그날 그 샘을 보고 기뻐했네. 그처럼 더러운 나도 그곳에서 내 모든 죄를 씻으리. 내 모든 죄를 씻으리, 내 모든 죄를 씻으리. 나도 그 피의 물결 아래서 내 모든 죄를 씻으리.
구하는 사람이 모두 나오는지 기다려 보겠습니다. 오늘 저녁 제 앞에는 사랑스러운 한 형제, 감리교 설교자가 서 있습니다. 성령침례를 받으려고 저와 함께 여기로 올라왔습니다. 콜린스 형제님, 오늘 저녁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바로 지금입니다. 아멘. 그의 형제는 오늘날 사역 현장에서 손꼽히는 감리교인 중 한 분입니다. 이분이 성령을 받아 자기 형제에게 가서 그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다시 태어난 뒤 얼마나 달라지는지 말해 주기를 바랍니다. 콜린스 형제님, 저는 오늘 밤이라고 믿습니다. 지금이 그 시각이며, 지금이 그때입니다.
더 계십니까? 여러분이 성령을 구하고 있다면 지금 시작하십시오. 이 말씀이 그냥 머리 위로 지나가게 두지 마십시오. 곧바로 내려오십시오. 단순합니다. 이처럼 작고 단순한 설교입니다. 무슨 뜻인지 아십니다. 자, 오십시오. 이곳입니다. 기초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유일한 성취요, 유일한 행복입니다. 이것을 얻기 전에는 행복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것입니다. 이것입니다. 지금 여기 서서 죄를 고백하는 이 죄인들도 함께 들어갈 것입니다. 이분들도 저분들과 함께 들어가 성령을 받기를 바랍니다. 침례를 받지 않았다면 여기 사역자들이 많이 있고 물도 충분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일을 행하는 법을 아는 만큼, 모든 일이 올바르게 이루어지도록 하겠습니다. 교회는 여러분이 선택하십시오.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며 그리스도께서 오심을 믿는 곳으로 가십시오. 여러분의 선택입니다.
아, 세상에. 이것이... 며칠 뒤 저녁에 제게 일어난 일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면 제가 왜 이렇게 하는지 알게 되실 것입니다. 어떤 여자가 저를 두 팔로 감싸 안는 것을 보았는데, 열여덟 살쯤 되어 보였습니다... 저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제 몸이 앉아 있는 곳을 보았습니다. 다시 이쪽을 올려다보며 그 여자를 보았는데, 그분이 저를 자기 형제라고 불렀습니다. 저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당신이 그분을 그리스도께 인도했을 때는 아흔이 넘었지요”라는 말이 들렸습니다. 아흔이 넘었는데, 그곳에서는 다시 젊어져 영원히 그 모습으로 있었습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님”이라고 하는 것도 당연했습니다. 그것이 제 마음을 뜨겁게 했습니다.
친구 여러분, 오늘 저녁 여러분은 하나님의 영을 향해 손을 뻗으며 서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닿을 수 있는 곳에 계십니다. 우리가 무엇을 할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바로 여기서 여러분을 위해 회중이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그런 다음 형제님들이 바로 저쪽에 마련해 둔 작은 방으로 갈 것입니다. 우리도 무리 지어 그곳에 들어가 여러분이 성령을 받을 때까지 기도하겠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우리가 여기 온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형제님들, 맞습니까? 이 집회가 있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좋습니다. 이제 고개를 숙입시다. 성령을 받으신 여러분, 성령을 구하고 있는 여러분, 이제 그 마음을 계속 품고 계십시오. 저는 먼저 그리스도인이 아니었는데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이고 싶어서 나온 이분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먼저 잠시 이분들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에서 “내 아버지께서 먼저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입니다. “아무도 올 수 없느니라... 내 말을 듣는 자, 아니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일으키리라.”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느니라.” 무엇인가가 여러분의 마음을 두드렸고, 여러분은 일어나 두 발로 서서 이 통로를 따라 걸어 나왔습니다. 무엇인가가 여러분을 이끌었습니다. 이제 성경이 무엇이라고 하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미리 아신 모든 자들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신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부르신 자들을 의롭다 하셨고, 의롭다 하신 자들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이는 순간, 이제 영화롭게 되는 단계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러면 성령을 구할 저 방으로 들어가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 위에 성령을 부어 주셔서 여러분이 성령으로 충만해질 것입니다. 그것이 여러분에게 살아갈 권능을 줍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모든 것을 회복하실 때까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권능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그분과 함께 영광 가운데로 들려 올라가 그 3년 반 동안 함께 있다가, 천년왕국을 위해 땅으로 돌아오고, 그 뒤로 그분과 영원히 살 것입니다. 자, 이분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이제 여러분, 성령을... 받고 싶어 하는 여러분은 기억하십시오. “의에 주리고 목마른 너희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채워지리라.” 그저 “한 번 더 해 보러 가야겠어”라고 생각하며 들어가지 마십시오. 지금은 대집회입니다. 우리에게는 이곳에서 보낼 밤이 여섯 번 더 있습니다. 지금이 받을 때입니다. 그곳에 들어가 성령을 받을 때까지 머무십시오. 오늘 밤 성령을 원하는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진지하게 나아가십시오. 지금 당장 죽든지 아니면 성령을 받든지 하겠다는 각오가 되어 있다면 손을 드십시오. 그렇습니다.
조금 전 이 어린 소년과 함께 여기 서 있던 여자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으며 그분을 구주로 받아들이기를 원하십니까? 오늘 저녁 그분께서 여러분을 이 제단으로 부르셨다고 믿습니까? 여러분을 부르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셨다고 믿는다면 손을 드십시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나를 시인하는 자는 나도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이제 사람들이 기다리는 동안 회중이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그런 다음 우리끼리 조용히 기도할 수 있도록 뒤쪽 방으로 가겠습니다. 어디 계시든 고개를 숙입시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이분들은 여러분이 영원히 함께 서 있을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중 많은 분이 저를 잘 아셔서 이 점도 아시리라 믿습니다... 제가 광신자라면 저 자신은 그것을 모릅니다. 얼마 전 아침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번 주 후반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더는 예전과 똑같을 수 없습니다. 저는 환상이 무엇인지 압니다. 수천 번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환상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어떤 곳에 갔습니다. 그때부터 제 마음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려는 열망으로 타올랐습니다. 아, 제가 하는 모든 움직임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기 위한 것이기를 원합니다.
제가 기도하는 동안 그리스도인 여러분도 한 분 한 분 이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 말입니다. 하늘 아버지, 오늘 저녁 먼저 이 여자들과 이 어린 소년을 주님께 올려 드립니다. 이들이 이 제단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제가 아는 한, 오늘 저녁 이 집회장에 있던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이들뿐일지도 모릅니다. 더 있다면 그들도 나오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이들은 공개적으로 나왔습니다. 이들은 영생을 원합니다. 주님께서는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이들은 자신들이 가진 믿음을 고백하러 나왔습니다. 주님을 자신의 구주로 받아들이며, 주님께서 영생을 주실 것을 믿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오늘 밤 이들 각 사람에게 죄 용서를 베풀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 죄가 갈보리의 결박 안에서 씻겨 없어지게 해 주십시오. 모든 죄를 용서받게 해 주십시오. 강 같은 평안을 누리게 해 주십시오. 그리스도만이 주실 수 있는 평안을 누리게 해 주십시오. 이 여자들이 남편과 자녀들에게로, 이 어린 소년이 아빠와 엄마에게로 돌아갈 때, 새로운 창조물, 새로운 사람이 되어 돌아가게 해 주십시오. 집으로 돌아가 이웃 가운데 증언하며 살고, 다른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도구가 되게 해 주십시오. 저희는 지금이 마지막 때이며, 주님께서 이 나라 전역에 마지막 부르심을 보내고 계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이들에게 이 복들을 허락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제 이들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갈 때, 성령을 받으러 가는 이들 모두를 위해 우리의 기도가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 여기 있는 이들 중에는... 제가 개인적으로 아는 이 콜린스 형제님이 주리고 목말라하고 있습니다. 저 뒤에서 그분의 아내가 울며 하나님께 간청하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 성령을 받았고, 사랑하는 남편도 성령을 받기를 원합니다. 아버지, 오늘 밤 그를 채워 주십시오. 오 하나님, 그가 복음으로 그 지역에 불을 붙이게 해 주십시오. 여기 서 있는 다른 이들, 젊은 남자들과 나이 든 남자들, 중년의 사람들과 젊은 여자들, 모든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 오늘 밤 이 무리 가운데서 사역자들과 복음 전도자들과 선교사들과 여러 일꾼이 일어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주님, 성령으로 그들을 채워 주십시오.
아,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손들과 멀리 떨어져 있는 자들 곧 주 우리 하나님께서 부르실 모든 사람들을 향한 것이니라.” 주님, 주님께서 약속하셨고, 이들은 그 약속을 받으러 여기 왔습니다. 주님, 제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 한 사람도 성령을 받지 않고 그 방에서 나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주님, 허락해 주십시오. 성령께서 그들 모두에게 임해 주십시오. 이곳에서 밤낮으로 계속되는 집회가 열려, 주님의 영을 끊임없이 부어 주십시오. 주님, 허락해 주십시오. 주의 종의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 주님께서는 “이 산에게 ‘옮겨지라’고 말하고 의심하지 말며, 자기가 말한 것이 이루어질 줄 믿으면 자기가 말한 것을 받을 수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 오늘 밤 마음이 준비되어 그 방으로 들어가는 모든 사람이 성령을 받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들어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제 여기 계신 사역자들이 여러분을 안내해 주실 겁니다. 저기 누가 있습니까? 바로 여기 이분, 여기 이분이 계십니다. 이제 이쪽으로 가셔서 방으로 들어가십시오. 저는 잠시 나머지 회중과 시간을 갖겠습니다. 이곳의 사역자들 중 들어가기를 원하는 여러분, 지금 안에서 사람들을 지도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제 모두 곧바로 들어가 성령을 받으십시오. 그리고 여기 계신 그리스도인 여자분들, 방금 이곳에서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여러분도 함께 들어가시겠습니까? 안에 계신 여러분, 이번 한 번은 브래넘 형제님을 하나님의 종으로 믿어 보십시오. 들어가서 “주님, 그분이 말한 그 영생을 제게 주십시오”라고 하십시오. 받으실 것입니다. 모두 여러분을 기다려 줄 것이며, 사랑하는 가족들도 기다려 줄 것입니다. 사랑하는 꼬마야, 들어가거라. 사랑하는 아이야, 하나님께서 너를 설교자로 삼으셔서 앞으로 올 날들에 혼들을 구원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한다. 그렇습니다. 아, 세상에. 예수님이 부르시네, 오늘 다정히 부르시네. 예수님이 부르시네, 오늘 부르시네, 오늘 부르시네, 오늘 부르시네. 나머지 분들 중 함께 따라가고 싶은 분이 계십니까? 곧바로 들어가십시오. 지금 믿는 사람들이 성령을 받으러 들어가고 있습니다. 함께 가시지 않겠습니까? 여러분도 초대받았습니다. 오늘 부르시네, 오늘 부르시네. 예수님이 부르시네, 오늘 다정히 부르시네.
아, 기분이 참 좋으십니까? 복음이 여러분 속을 말끔히 씻어 주어,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새로워지는 것 같지 않습니까? 기분이 좋지 않으십니까? 그런데 저기 계신 분 중 병들고 고통받고 있어서 하나님께 치유받기를 원하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아, 저 손들을 보십시오. 여기 앉아 계신 형제님과 자매님... 휠체어에 앉아 계신 두 분 모두 그리스도인입니까? 세 분이군요. 아니, 저기 두 분 말입니다.
아, 그저께, 아니 이제 사나흘 전쯤 일어난 작은 일을 하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분들이 뒤에 들어가 있는 동안 말씀드리겠습니다. 다 준비되었습니까? 좋습니다. 이제 그분들은 성령을 받으러 뒤쪽에 들어가 있습니다. 사역자들께서도 원하신다면 함께 뒤로 가셔서 그분들이 올바르게 지도를 받도록 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고, 사람들이 성령침례를 받을 때까지 올바르게 인도받는 모습을 보기 원하시는 사역자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협력을 진심으로 요청합니다. 그런 다음 그분들을 여러분의 교회로 초대하십시오. 데려가서 여러분의 침례탕에서 침례를 주고 교회로 받아들이십시오. 그분들은 여러분의 교인들입니다. 이곳에 계신 모든 복음 사역자 여러분, 지금 뒤쪽 방에서 여러분을 필요로 합니다. 좋습니다.
이제 잠시 병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려는 동안... 며칠 전 우드 씨가 저희 집 현관에 페인트칠을 해 주었습니다. 저는 병자를 심방하러 나가면서 문을 잠그고, 앞문으로 나와 문을 당겨 닫았습니다. 돌아와 보니 문이 잠겨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가족은 차 안에 있었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뿐이었습니다. 가서 망치를 가져와 창문을 깨고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서 창문을 깼습니다. 망치로 치자 작은 유리 조각이 사방으로 튀었습니다. 제 어린 딸 리브가는 가서 잘게 깨진 유리를 모두 쓸어 담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 부엌에 앉아 설거지를 하면서, 자매인 사라와 이야기하다가 유리잔 하나를 깨뜨렸습니다. 딸아이는 그것을 상자에 버리고 그 위에 다른 것들도 버렸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작은 사냥개 한 마리가 와서 쓰레기통을 뒤져 음식과 함께 그 유리를 먹었습니다. 가엾은 녀석이 둑에 누워 경련을 일으키며 뒹굴고... 아, 저는 개가 그렇게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주인이 누구인지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옆집 메이 씨가 “빌리, 데려가서 총으로 쏴 주는 게 가장 좋을 것 같네”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 남의 개를 쏘고 싶지는 않습니다. 좋은 사냥개 같은데요. 저는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녀석은 거기서 나흘이나 닷새쯤 피를 흘리며 누워 있었습니다. 아, 정말 끔찍한 상태였습니다. 더는 일어날 수도 없었고, 그저 이렇게... 그렇게 아픈 개는 본 적이 없습니다. 몸이 튀어 오르고 그렇게 경련을 했습니다. 저는 “수의사에게 데려가 보지 그러십니까?”라고 했습니다. “수의사는 안락사시킬 걸세”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렇다면 수의사에게 데려갈 필요가 없겠군요”라고 했습니다. 어린 요셉과 저는 쇠고기 국물 같은 것을 가져다주려고 마당으로 나갔습니다. 녀석은 너무 아파서 먹을 수도 없었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사실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형제입니다. 요셉이 “아빠, 도와줄 수 없어요?”라고 묻는 듯 저를 올려다보았습니다. 저는 “요셉, 아빠 손을 잡아라. 아빠가 이 작은 개 위에 손을 얹을게”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재판관이십니다. 저는 무릎을 꿇고 그 작은 개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녀석은 일어나 저녁을 먹고, 더없이 기쁜 모습으로 들판을 가로질러 내려갔습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전에 그 어미 주머니쥐가 치유받은 곳에서 불과 15피트쯤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이야기는 들으셨지요... 약 15피트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냥개를 위한 기도를 들어주신다면, 어린양의 피로 씻음받은 하나님의 자녀, 사람을 위한 기도는 얼마나 더 잘 들어주시겠습니까?
저기 앉아 계신 키드 형제님, 여러분도 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분의 의사에게 물어보셔도 됩니다. 그분은 사흘 정도밖에 살지 못할 형편이었습니다. 오늘 저녁 빌리의 말로는, 키드 형제님이 빌리의 등을 툭툭 치시면서 “얘야, 아주 좋아”라고 하셨답니다. 참 놀랍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들으십니다. 믿으십니까? 여기 계신 분 중 하나님의 치유의 권능을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좋습니다. 보십시오.
아시다시피 얼마 전 저는 송금환 하나를 받았습니다. 하늘에서 제게 보내온 것입니다. 아, 여기 있습니다. 마가복음 16장입니다. “너희는 온 세상으로 가서 모든 창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 온 세상입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언제까지 유효합니까? 모든 창조물에게입니다. 그것은 언제까지입니까? 모든 창조물이 들을 때까지입니다. 사도 시대에만이 아니라 모든 시대에, 온 세상과 모든 창조물에게입니다. “믿고 침례를 받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나 믿지 않는 자는 정죄를 받으리라.” 또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내쫓고 새 언어들로 말하며, 뱀들을 집어 올리거나 치명적인 것을 마셔도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그들이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 사람들이 나으리라”라고 했습니다.
믿으십니까? 우리는 부자이면서도 그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곳에 믿는 사람이 얼마나 계십니까?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그러면 서로에게 손을 얹으십시오. 그게 전부입니다. 서로에게 손을 얹으십시오. 우리는 신유를 행하는 치유자가 아닙니다. 믿는 사람들입니다. 아멘. 치유자는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일은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손을 얹기만 하면 됩니다. 믿으십니까? 옆에 있는 사람에게 손을 얹으십시오. 이제 기도합시다. 옆 사람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자신을 위해 기도하지 말고 옆 사람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렇습니다. 바로 그렇게 하십시오.
하늘 아버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며 실패할 수 없는 이 약속을 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 복음의 빛 가운데서 우리가 모든 질병과 모든 마귀와 마귀의 모든 힘을 정죄하며, 모든 족쇄를 끊습니다. 나와라, 사탄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거룩한 아들의 이름으로 네게 명하시니, 이 회중을 떠나라. 그들에게서 나와라, 사탄아. 저 사람들을 놓아주어 자유롭게 되게 하라. 성령께서 막힘없이 일하시게 하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