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대단히 감사합니다. 앉으셔도 좋습니다. 클레어 허친스 형제님이 저를 쏘겠다고 하더니... 그러고도 무사히 넘어가셨군요. 오늘 밤 이곳에 오니 참 좋습니다. 웨스턴 형제님도 계시고, 매트슨 형제님도 이 근처 어디엔가 계실 텐데요. 아, 매트슨 형제님, 다시 뵈니 반갑습니다. 어젯밤에도 형제님 소식을 물었습니다. 참 좋습니다. 이렇게 많은 분을 뵙고, 클레어 허친스 형제님도 뵙고, 해외에서 전해 온 인사도 들으니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참으로 좋습니다. 어젯밤 데이비드 듀플레시 형제님이, 제 생각에는... 보이지 않네요. 먼저 둘러보면서 어디 계신지 찾아보려고 했는데... 여기 계시는군요. 돌아가는 길에 이 회중에게 불리한 말씀을 하신 것 같습니다. 함께 차에 탔는데 제가 내려다보고는 “아, 거의 열 시가 되었군요”라고 했습니다. “데이비드 형제님, 제가 저분들을 너무 오래 붙잡아 둔 것 같습니다”라고 했지요.
그랬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저분들도 저와 같은 생각일 겁니다. 우리는 자그마한 설교자들이 자그마한 그리스도인들에게 들려주는 자그마한 설교에 지쳤습니다.” 그 말에 힘을 얻어 오늘 밤 두 시간 더 설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 대개는 한 시 전에 마칩니다만, 제가... 예전에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한 시면 이제 막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였습니다. 우리는 밤새 머물며 주님을 찬양하곤 했습니다. 그런 데서 멀어진 것이 참 안타깝지 않습니까? 정말 그렇습니다, 설리번 형제님. 이제는 지적인 설교를 이십 분 하는 식이 되었는데, 도대체 그런 것이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너무 많이 본뜨려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것이 우리 가운데 너무 많이 들어온 것 같습니다. 거기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식탁에 앉으면 조금씩 잘라 먹고, 또 잘라 먹으며 오래 앉아 있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주님의 상에서도 오래 머물고 싶습니다. 얼마 전 저녁에 저희 목사님이 사십오 분가량 설교하셨습니다. 시계를 올려다보시는 것을 보고 저는 ‘네빌 형제님도 그렇게 되어 가시는군요. 사십오 분이라니’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 정도면 시작하기에도 부족합니다. 우리는 좀 더... 막 흥미로워지던 참이었습니다. 제 마음도 막 뜨거워져서 아주 좋아지고 있었는데, 그만 끝내셨습니다. 얼마나 아쉬운 일입니까. 그런데 이곳에서는 날마다 예배가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참으로 좋은 시간을 보내고 계실 줄 압니다. 여기 오하이오주 밖에서 오신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오하이오주에서 오지 않은 분들은 손을 들어 보십시오. 아주 좋습니다! 참 좋군요. 회중의 절반 이상이 오하이오주 밖에서 오신 것 같습니다. 여러분이 이곳에 오셔서 정말 기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복을 더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각자 사시는 주로, 집으로 돌아가실 때 기뻐하고 행복해하며 주님을 찬양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에는 로마서 8장에 있는 성경 말씀을 읽고 싶습니다. 여기 11절쯤부터 읽겠습니다... 아니, 9장입니다. 10절쯤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리브가도 한 사람 곧 우리 조상 이삭으로 말미암아 수태하였는데 (그 아이들이 아직 태어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도 아니하였을 때에 선택에 따른 하나님의 목적이 행위로 말미암아 서지 않고 부르시는 분으로 말미암아 서게 하시려고) 그분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형이 동생을 섬기리라, 하셨나니 이것은 기록된 바, 야곱은 내가 사랑하였으나 에서는 미워하였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여기서 세 단어를 주제로 삼고 싶습니다. 듣고, 받아들이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살펴보기 전에 잠시 고개를 숙이고 이 말씀을 쓰신 분께 말씀드립시다. 은혜로우신 하늘 아버지, 오늘 밤 주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모든 일에 감사드립니다. 주의 선하심과 주의 은혜로 우리에게 부어 주신 풍성한 긍휼에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그런 것을 받을 만한 일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주께서 우리에게 선을 베푸시고 우리의 불의를 보지 않으셨으며, 주의 은혜를 한없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밤 이 집회장에 오면서 의사들의 증언을 듣습니다. 몇 주 전에는 죽을 것이라고 했는데 이제 그 부위가 아물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우리를 위해서도 기도해 달라고 해 주십시오”라는 말을 전해 옵니다. 주님, 그 말을 들으니 우리 마음이 참으로 기쁩니다. 그들이 죽은 것으로, 아니면 죽을 것으로 여기고 포기했던 이 사람에게 하나님의 손길이 임했으며 이제 그가 살아서 건강하게 지낸다는 것을 기꺼이 인정하는 그 의사들과 간호사들을 위해 우리가 기도했습니다. 이 일로 주께 얼마나 감사드리는지요.
또 어젯밤, 이 많은 사람이 주의 영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줄을 지어 그 방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늙은 사람이나 젊은 사람이나, 죄인들이 이 제단 앞에 서서 우는 모습을 보니 이 모든 일로 우리 마음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쁩니다. 참으로 주께서는 지금도 하늘의 위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밤 읽은 말씀에 복을 주시고, 이 본문의 뜻을 풀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성령께서 오셔서 이 말씀을 우리 마음에 해석해 주시옵소서. 이제 우리 사방에 커튼을 내려 바깥세상을 가리고, 오직 우리 마음을 주께 향한 채 살게 하옵소서. 우리 마음이 열리게 하시고, 오늘 밤 이 건물 안에 영의 압력이 너무도 강해서 우리 마음의 모든 틈과 구석까지 들어오셔서, 깨끗이 준비되어 채움을 기다리는 모든 부분을 채워 주시옵소서. 이곳에 있는 모든 병든 사람을 고치시고, 길 잃은 모든 혼을 구원하시며, 주린 모든 마음을 성령으로 채워 주시옵소서. 주님,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주의 종들인 사역자들, 우리의 인자하고 귀한 형제들에게 영감을 주시옵소서. 그들은 주께서 부르시고 따로 세우신 양 떼의 목자들이며, 섬기는 일에 삶을 바친 사람들입니다. 주님, 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들은 이들을 맡을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혼과 몸이 병든 이들을 받아들여 나을 때까지 기름과 포도즙을 계속 부어 줄 여관 주인들입니다. 그 비유에서 그가 그들에게 이 데나리온을 주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구원과 치유, 두 가지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를 더 쓰든지 내가 다시 올 때에 갚으리라”라고 했습니다. 주님, 오늘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있다면, 우리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오늘 밤 성령께서 그 부족한 것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우리 사역자들을 도우셔서 순수한 양심과 깨끗한 마음으로 주의 백성을 섬길 수 있게 하옵소서. 아버지,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주의 아들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지극히 겸손히 간구합니다. 아멘.
오늘날 세상은 두 큰 세력, 두 큰 종교 세력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머지않아 그 세력들이 절정에 이르러 결판을 내게 될 것입니다. 오늘 밤 읽은 성경에서 이삭의 두 아들, 에서와 야곱이 그것을 잘 보여 줍니다. 그리고 그들이... 이 두 세력을 대표합니다. 둘 다 같은 아버지와 같은 어머니에게서 나왔습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거룩한 사람, 이삭... 그가 태어나기 이십오 년 전에 하나님께서 그의 아버지에게 이 아이를 얻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구별되고 성별된 어머니, 처녀 리브가에게서 난 것입니다. 이 두 아들은 같은 태 안에 있었습니다. 서로 다투고 싸우며, 서로 전쟁을 하면서 세상에 나왔습니다. 그때부터 줄곧 서로 싸워 왔으며, 마지막 때까지 그럴 것입니다. 오늘 밤 세상은 이 세력들에 심각하게 사로잡혀 있습니다. 이제 제가 할 말과 여기 적어 놓은 성경 구절 등에 관해 여러분 모두가 알아주셨으면 하는 것이 있습니다. 제가 때로 교회의 어떤 상태나 교파 같은 것을 언급하면 형제들이 제 말을 오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성령으로 충만하여 목자로 서서 하나님의 양 떼를 먹이며, 그렇게 하도록 성령께서 세우신 사람들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들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육적인 신자들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에서가 참으로 육적인 신자를 대표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세상에 속한 사람이었고 땅에 속했으며, 종교에 대한 성향도 매우 강했습니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처럼 그에게도 자기 종교가 있었습니다. 사람들과 이야기해 보면 거의 모두가 교회에 다니든 다니지 않든 어떤 종류의 종교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 년에 한 번쯤이나... 여자들은 새 모자를 자랑하려고 부활절에 가기를 좋아하고, 남자들은 재미있는 행사가 있을 때 이따금 가기를 좋아합니다. 아기였을 때 물을 뿌리는 의식을 받았고 교회 명부에 이름이 올라 있으니, 자신들이 교회의 소유라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생각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교회의 소유도, 국가의 소유도 아닙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소유이며 하나님의 아들딸입니다. 값을 치르고 사셨으므로 우리는 그분께 속해 있습니다. 그 값이 얼마나 귀합니까. 바로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러나 에서는 종교를 가지고서 “나는 다른 사람 못지않게 선하고, 내 종교도 당신 종교만큼 좋으니, 나는 아주 만족합니다”라고 하는 그 부류를 잘 대표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쌍둥이 동생 야곱은 선택에 따라, 곧 미리 아심에 따른 예정으로 세상에 나왔으며, 영적인 사람들을 대표하는 영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영적으로 분별할 줄 알았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 위에 세워져 있다는 것을 이해하신다면... 어떤 희생물이 요구되었는지 계시받지 않았다면 아벨이 어떻게 가인보다 더 뛰어난 희생물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었겠습니까? 어떤 희생물이 요구되었는지를 말입니다.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 곧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 하느냐?”라는 질문이 주어졌을 때, 베드로는 망설이지 않고 방언을 말하는 사람처럼 불쑥 말했습니다. “주께서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살과 피가 이것을 네게 계시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네가 어떤 지적인 교육 과정을 통해 이것을 배우지 않았고,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것을 네게 계시하셨느니라. 너는 베드로라. 이 반석 위에 [베드로 위도, 그분 자신 위도 아니라, 그분이 누구신지에 대한 영적 계시 위에] 이 반석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 그것들이 교회를 대적하겠지만, 결코 이기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영적인 교회는 영원 속으로 계속 나아갈 것입니다. 그곳에 있도록 정하신 하나님께서 계신 것만큼 확실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으로 태어나면 하나님의 아들딸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만족을 주는지요. 야곱에게는 이것이 너무도 중요했지만, 에서에게는 장자권이 아무런 의미도 없었습니다. 사실 그는 그것을 멸시했습니다. 제가 지극히 경건한 마음으로 말씀드립니다만, 그의 자녀들은 지금도 그렇습니다. 맞습니다. 그것을 멸시합니다. “내가 왜 그걸 해야 합니까? 왜 성령을 받아야 합니까? 나는 당신 못지않게 선합니다. 내 종교도 당신 종교만큼 좋습니다. 내가 왜 그 모든 것을 거쳐야 합니까? 나도 당신만큼 선합니다. 나는 교회에 다니고, 명부에 이름도 올라 있습니다. 나는 그저... 나는 이런저런 사람입니다.” 당신이 그런 사람인 것은 알겠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다시 태어나야 하며, 영적인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에서에게는 그것이 아무런 의미도 없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멸시했습니다. 오늘날 육적인 신자들도 여전히 그 장자권을 멸시합니다. 우리가 알듯이 장자권은 성령입니다. 육적인 신자는 그것을 멸시합니다. “아, 그런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이제 성령을 받는 일 같은 것은 없습니다. 그런 일은 사도 시대에나 있었지요”라고 말합니다.
한번은 훌륭한 교회에서 한 저명한 분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오순절은 건물을 지을 때 쓰는 비계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니 건물이 완성되고 나면 더는 비계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배가 끝난 뒤 그분과 악수하려고 다가갔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박사님, 오늘 아침 메시지에 찬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오순절이 비계였다는 말씀에 저도 동의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계속 건물을 짓고 있는 동안에는 그 비계가 여전히 필요합니다.” 맞습니다. 비계는 맨 마지막에 철거합니다. 꼭대기에 첨탑 끝을 올릴 때까지는 여전히 비계가 필요합니다. 오늘 밤 저는 그 비계 위에 서서 건물을 짓고 있다는 것이 기쁩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습니까?
이제 이 장자권이 야곱에게는 전부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장자권 말고는 다른 어떤 것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어떤 대가를 치르든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죽 한 그릇이 그 값이라면 기꺼이 에서에게 주었습니다. 영생을 얻도록 정해진 사람, 하나님께서 영생으로 부르신 남자나 여자라면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그 장자권을 얻기 위해서는 세상의 무엇이든, 어떤 것이든 기꺼이 내놓습니다. 여러분이 뭐라고 불러도 좋습니다. 정신이 나갔다고 하든, 너무 지나쳤다고 하든, 광신자 무리라고 하든 좋습니다. 여러분이 뭐라고 부르든 상관없이 그들은 그 장자권을 구합니다. 그것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 장자권을 얻으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든 얻어야 한다면 기꺼이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육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께서 장자권을 자기 수준으로 낮춰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저와, 참으로 다시 태어난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수준에 맞추어 그것을 받아들인다고 믿습니다. 제가 무엇을 해야 하든, 무슨 말을 해야 하든, 어떻게 행동해야 하든 상관없습니다. 오직 그것을 원합니다. 그것은 제 인기보다 중요합니다. 제 직장보다 중요합니다. 제 어머니보다 중요합니다. 제 아내보다, 제 자녀들보다, 제가 가진 모든 친구보다 중요합니다. 그 장자권을 제게 주십시오! 어떤 값을 치러야 하든 상관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요구하시든, 저는 그분의 요구에 따라 하나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흙먼지 속에 엎드리는 것이든, 방언으로 말하는 것이든, 건물 안을 뛰어다니며 미친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이든, 물구나무를 서는 것이든,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그것을 받기만 한다면, 그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영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바로 그렇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장자권을 원합니다. 그것을 원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받자마자 그 가정에 있었던 것과 같은 반응이 일어납니다. 마침내 갈라서야 할 때가 옵니다. 사람은 얻어야... 이 장자권을 얻으면 야곱이 그랬듯이 세상과 자신을 분리해야 합니다.
아, 때로는 혼자 걸어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참으로 신실하고, 참으로 장자권을 받았다면 혼자 걸어가는 것도 개의치 않습니다. 이웃이 더는 식사에 초대하지 않고, 아무도 여러분을 상대하려 하지 않는다 해도, 장자권을 가지고 있는 한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그것이 여러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성취입니다. 제가 성령으로 태어났다면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제가 천국으로 가는 길에 있다면, 우리가 영 안에서 걷고 있다면,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든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영으로 태어난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은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아, 언제나 거룩함과 깨끗함의 아름다운 빛 가운데 걷습니다. 그러나 에서에게는 그 장자권이... 그는 세상처럼 육적이었으므로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자신이 종교를 가졌고 아버지와 어머니도 종교를 가졌으니,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일어난 모든 부흥이 쌍둥이를 낳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모든 부흥에는 쌍둥이가 있습니다. 그 안에 육적인 신자들의 무리와 영적인 신자들의 무리가 있습니다. 모든 부흥은 에서와 야곱을 낳습니다. 함께 가다 보면 어느새 육적인 쪽에서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합니다. “저 사람들은 너무 지나치는군. 나는 저들과 갈라서는 게 좋겠어.” 그들은 지적인 쪽으로 돌아갑니다. 듣기 좋은 말을 해 줄 목사를 원합니다. 강단에서 성령께 순종하며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성령 충만한 목사는 원하지 않습니다. 요한이 “도끼를 나무뿌리에 대라”라고 말했듯이, 나뭇조각이 어디로 튀든 개의치 말아야 합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는 그런 설교를 강단에서 몰아내기로 표결할 것입니다. 맞습니다. 분리가 일어날 것입니다. 언제나 그렇습니다. 감리교 시대에도, 침례교 시대에도, 오순절 시대에도 그랬습니다. 모든 시대에 그럴 것입니다.
한번은 존 웨슬리가... 제가 그에 관한 글을 읽었습니다. 그가 좁은 길을 걸어오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성공회의 죄와 그들이 행하는 일들에 항의하고 있었고, 사람들은 그를 미친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참으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모든 자는 핍박을 받을 것이나.” 여러분은 멸시받고 배척받을 것입니다. “그들이 집주인을 바알세붑이라 불렀거든 그의 제자들은 얼마나 더 심한 말로 부르겠느냐?” 그런데 성공회의 관리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덩치가 아주 큰 사람이었는데, 몸집이 작은 존이 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 큰 사람이 길 한가운데를 가로막았습니다. 웨슬리가 가까이 왔지만 그를 지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실례합니다. 제가 지나갈 수 있도록 좀 비켜 주시겠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그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나는 바보에게 길을 비켜 주는 법이 없소.” 웨슬리는 공손히 모자를 살짝 들어 인사하고 그 사람 옆으로 비켜 가면서 말했습니다. “저는 언제나 비켜 줍니다.” 그 정도면 이야기가 끝난 것 같습니다. 그는 언제나 비켜 준다는 것입니다.
이런 차이는 가인과 아벨 때부터 언제나 있었습니다. 가인과 아벨 말입니다. 땅에서 처음으로 생명을 낳은 인간인 아담과 이브는 둘을 낳았는데, 하나는 이런 부류이고 다른 하나는 저런 부류였습니다. 가인과 아벨이 있었습니다. 에서와 야곱이 있었습니다. 그 뒤로도 줄곧 언제나 그랬습니다. 교회 안에서 두 영이 서로 싸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수없이 보았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분리해야 할 때가 오고야 말았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은 하나님께서 건축하시고 만드신 도시를 찾으려고 길을 나섰습니다. 롯은 육적인 인물이었습니다. 마침내 아브라함과 롯이 갈라서야 할 때가 왔습니다. 그래야 그들이... 아브라함이 약속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서로 갈라서야 했으며, 오늘 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세상에 속한 것들과 자신을 분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걸어야 합니다. 저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들과 교제해야 한다는 것을 굳게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서로 뜻이 맞지 않으면 함께 걸을 수 없습니다. 먼저 그리스도와 뜻을 같이하십시오.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서 뜻을 같이하는 모든 사람이 여러분과도 뜻을 같이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기 전에 아브라함과 롯은 갈라서야 했습니다. 롯은 미지근한 교인이면서도 얼마나 육적인 상태였는지 보셨습니까? 그는 아브라함이 저 위에서 장막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보셨습니까? 아브라함의 신앙은 너무도 엄격했기에 롯은 천사에게 “제 삼촌 아브라함에게 올라가게 해 주십시오”라고 청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여기 아래에 작은 도시가 있습니다. 저 도시로 가게 해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여전히 아브라함과는 관계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시겠죠? 오늘날도 그렇습니다. 무슨 수를 써도 육적인 사람은 영적인 사람과 어울릴 수 없습니다. 기름과 물을 섞을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섞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에는 철저한 정결함이 필요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옛날과 같은 부흥, 모든 것을 쓸어내는 부흥, 주님의 권능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기꺼이 내놓고, 자기 뒤의 모든 다리를 불태울 남자들과 여자들이 필요합니다. 우리 사역자들은 옛 노르웨이 사람들이 한 나라를 차지하던 것처럼 오늘날 세상을 차지해야 합니다. 그들은 배를 타고 들어가 해안에 닿으면 자기들이 타고 온 배에 불을 질러 뒤에서 태워 버렸습니다. 도망칠 길이 없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모든 다리와 모든 도피로를 불태워 버리십시오.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 모든 것을 내놓고 계속 나아가십시오. 멈출 곳은 없습니다. 타협할 곳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타협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의 교회가 세상처럼 보이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세상처럼 행동하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세상에 복음을 전하고 사람들을 불러내는 것 외에는 세상과 아무 관계도 맺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구별되는 사람들을 원하시고, 교회는 섞이는 사람들을 원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너무 엄하지 않고 좋은 말만 해 주며, 깊이 파고들어 자신들의 가죽을 벗겨 내듯 꾸짖지 않는 목사를 원합니다. 형제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런 꾸짖음입니다. 몇 주 전 어느 곳에서 제가 환상을 보았습니다. 작은 고양이가 베개 위에 누워 있었는데, 제가 이렇게 쓰다듬으니 그저 가르랑거렸습니다. 그 위에 이름 하나가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저는 참 귀여운 녀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치 잠이 드는 듯 계속 가르랑거렸습니다. 그러자 영께서 “한번 반대 방향으로 쓰다듬어 보아라”라고 하셨습니다. 반대 방향으로 쓰다듬었더니, 여러분이 들어 본 온갖 콧김 소리와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내고 초록색 눈을 번뜩였습니다. 제가 본 것 중 가장 흉측한 괴물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아, 사람들이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기만 하면, 그들은 여러분에게 개박하를 좀 내줄 것입니다. 그러나 막상 어떤 지점에 이르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개박하가 아닙니다! 교회 안에, 이 건물 안에 성령의 권능이 다시 임해야 합니다. 우리를 깨끗하게 하고 새로운 창조물로 만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독한 포도주이지 개박하가 아닙니다. 그런 것은 아기들에게나 주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아이들이 배가 아프면 어떤 개박하 약을 주시곤 했던 것 같습니다. 교회는 배가 아픈 정도가 아닙니다. 빈혈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수혈이며, 교회에 다닌다는 사람들을 죄의 생활에서 깨끗하게 할 성령의 권능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는 여자들과 남자들이 춤추러 가고, 세상적인 큰 파티에 가고, 도박하고, 담배를 피우고, 춤을 춥니다. 여자들은 머리를 자르고, 반바지와 긴 바지를 입고, 그런 온갖 일을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릅니까? 어딘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능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의 강단 아니면 여러분 자신, 둘 중 하나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사실입니다. 깨끗이 씻어 내야 합니다. 육적인 것은 언제나 적대합니다. 물론 힘든 싸움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영생을 얻도록 정해졌다면, 저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모든 자는 내게 올 것이요”라는 말씀을 믿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나도 당신 못지않게 선합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형제여, 여러분은 자신이 행한 일에 따라 심판받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행위가... 그것이 여러분이 어떤 사람인지를 증명합니다. 얼마 전 한 사람이 제게 말했습니다. “제 믿음으로 심판받는다면 저는 구원받습니다. 제 행위로 심판받는다면 저는 멸망합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당신의 행위가 당신의 믿음을 증명합니다.” 맞습니다. 주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모든 것에 온전히 따르고, 그 말씀을 끝까지 지킬 것입니다.
육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 곧 지적으로 잘 훈련받은 그런 사역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두고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자, 여러분, 그건 광신주의입니다. 그런 것은 믿지 마십시오.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 것을 믿지 마십시오.” 그것이야말로 개박하입니다. 제가 말씀드립니다만, 그런 말은 사람들을 잠들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참된 종은 여러분의 그 가죽을 벗겨 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러분을 뒤흔들고,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알려 줄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저는 그 사람의 설교에 오 센트도 주지 않겠습니다.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밥줄이나 그 밖의 무엇을 잃을까 두려워서 일어서서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말하지 않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언젠가 오순절 집회에 들어가 참된 오순절의 충만함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해결됩니다. 주님과 동행하려고 가진 것을 모두 포기해야 했던 그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그것이 무엇이었습니까? 그들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사람들이었습니다. 무엇을 버려야 하든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감리교인, 침례교인, 장로교인들이 어디서나 나오고 있습니다.
데이비드 듀플레시 형제님이 그런 일은 저보다 더 잘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그분이 그 일을 더 잘 아십니다. 그분은 메시지를 전하면서 그것이 사람들을 뒤흔드는 일이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듀플레시 형제님은 지식인들 사이에서 어디서나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마지막 날들에 하나님께서 그 사람들을 불러내고 계십니다. 감리교인, 침례교인, 장로교인들을 말입니다. 오순절 교인 친구 여러분, 정신을 바짝 차리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에게 자손들을 일으키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움직이실 것입니다. 점이나 주름이 없는 교회를 가지실 것입니다. 그분께서 손을 얹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는 사람들을 가지실 것입니다. “이들은 내 것이다! 이것이 내 교회이고, 이들이 내 백성이다. 내 백성을 살펴보았느냐?” 욥에게 말씀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들과 같은 자들은 땅에 없다. 그들은 완전하다. 그렇다. 그들은 나를 위해 산다. 세상에 속한 것들은 개의치 않는다. 그것은 오래전에 정리했다. 내가 이 사람에게 가라고 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고 하면 온다.”
계시받기 전에는 이것을 가질 수도,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영적 계시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들어야 하고, 그런 다음 알아보아야 하며, 그런 다음 행동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계시되고 다른 사람에게는 계시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라는 말씀을 읽으면, 육적인 생각은 “글쎄요, 어떤 면에서는 그렇지요”라고 말할 것입니다. 영적인 생각은 “모든 면에서 동일하십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너희는 온 세상으로 가서 모든 창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육적인 생각은 “그것은 사도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영적인 생각은 “그분은 온 세상에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나도 그 안에 속합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의 백성은 특별한 백성, 영적인 백성, 구별된 백성이며, 그분의 교회입니다. 교회라는 단어 자체가 불러냄을 받은 이들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교회를 불러내셨습니다. 세상에서 불러내어 더는 세상과 함께 있지 않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세상에 속한 것들과 자신을 분리하십시오. 성경은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너희 안에 있지도 아니하니”라고 말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교인이라 해도 그것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물론 남자들도, 여자들도, 아이들도 교회에 속해야 하고 우리 모두 교회에 속해야 합니다. 그러나 먼저 장자들의 교회 안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 안으로 태어나야 합니다. 이제 이런 계시가 오면 사람이 그것을 듣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에게서 왔음을 알아보고, 그러고 나서 그 말씀대로 행동합니다. 육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은 그것을 듣고 “어리석은 소리군” 하며 떠나갑니다.
자, 오래전 성경 시대에 노아가 어느 날 들에 나가 있었을 때를 상상해 보십시오. 그는 농부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말씀하셨습니다. “비가 올 것이다. 온 땅을 덮을 것이다. 내가 이 세상의 모든 악을 멸하겠다. 이제 끝나야 한다.” 노아가 가서 “글쎄, 혹시 비가 올지도 모르니 방주를 하나 지어 두는 것이 좋겠군” 하고 말했겠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계시되었습니다. 그저 그런 정도로 받아들였다면, 처음으로 조롱하는 사람이 와서 “저 늙은 광신자 좀 봐”라고 했을 때 모든 것을 집어치우고 “아, 그만둡시다”라고 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시작은 했지만 마귀가 저를 되돌아가게 했습니다”라고 말할 때 하는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마귀가 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스스로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오는 사람은 누구나 시험을 받고 연단을 받아야 합니다. 반드시 그렇습니다. 참된 신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고,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알아보았으며, 그 말씀대로 행동할 것입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노아는 물론 그러지 않았습니다. 조롱하는 사람들이 지나가며 비웃어도, 그는 그 방주에 계속 망치질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신이 들은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는 것을 알아보았고, 그 말씀대로 행동했습니다. 그는 행동하고 있었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에 그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렇습니다.
모세를 상상해 볼 수 있겠습니까? 그곳에서 모세가 이렇게 말했겠습니까? “자, 이렇게 해야겠군. 전에 한번 실패했던 이집트로 다시 내려가야겠어. 그동안 심리학을 많이 공부했으니 이제는 파라오를 제대로 속여 넘길 수 있을 거야. 내게는... 학위를 하나 더 딸 수도 있겠지. 학위를 받을 수 있는 곳에만 있다면 학위를 하나 더 줄 거야. 아마 문학사나 신학 박사 같은 것을 말이야. 다른 어떤 것을 줄지도 모르지.” 애초에 자기 지식 때문에 곤경에 빠졌던 모세가 그렇게 말했겠습니까? 그런데 오늘날 문제는 교회가 바로 그 상태, 육적인 생각에 빠져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선교사였다는 것을 아십니까? 제가 방금 들었는데,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는 선교사가 해외로 나가기 전에, 교회에서 그를 보내려면 정신과 의사의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지적인 능력이 충분한지, 정신적 자세가 올바른지 검사받아야 해외로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이제 어디 가서 정신과 의사를 찾아 이집트로 내려갈 만한 정신적 능력을 갖추었는지 알아봐야겠군” 하고 말했겠습니까?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런 일이 저 밖의 명목상 교회들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순절 안에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뒤에도 모세가 이집트로 내려가 그곳을 차지할 능력이 있는지 알아보려고 정신과 의사 앞에 서야 했다면, 상상이 가십니까? 아닙니다! 어느 누구도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정신과 의사가 사람을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부르십니다. 사람을 보내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교회가 그런 지경에 이르렀다면 비참하게 뒤로 물러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지식에 의지하므로 그렇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부르시고 그를 선교사로 만드십니다. 성경은 첫째가 사도들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선교사들입니다. 둘째는 선지자들, 교사들, 목사들, 복음 전도자들 등입니다. 교회 안에 세우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의학 협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께서 교회 안에 선교사들과 선지자들, 목사들과 교사들과 복음 전도자들을 세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교회 안에 두셨습니다. 그들은 정신과 의사 앞에 설 필요가 없었습니다.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메시지를 주시면 그는 듣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에게서 왔음을 알아보고, 그 말씀대로 행동합니다. 그것은 다른 누구의 일도 아닌 그의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보내셨습니다. 그는 왕의 일을 하고 있으며, 모든 것은 왕께 길을 내드려야 합니다. 맞습니다. 영국에서 왕의 업무에 관한 전갈을 가지고 거리를 나서면 모든 경찰관이 교통을 정리하고 모든 것을 처리해 줍니다. 왕의 일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맞습니다. 왕이 있는 어느 나라든 왕의 일을 하고 있으면 우선 통행권이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립니다. 오늘 밤 우리에게도 우선 통행권이 있어야 합니다. 형제여, 한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람들이 인정하려 하든 말든, 이제 갑니다. 우리에게 우선 통행권이 있습니다! 아멘. 맞습니다. 가슴을 펴고 머리를 들고 전진하기만 하면 성령께서 길을 열어 주십니다. 아멘!
설리번 형제님, 오늘 밤 저는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느낍니다. “우리가 충분히 그곳을 차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참된 옛 오순절 부흥을 충분히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마지막 날들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우리는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필요한 것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오늘 밤 이 지붕 아래에 온갖 은사와 하나님의 온갖 권능이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그것 앞에서 좀 위축되어 있을 뿐입니다. 담대히 맞서십시오. 아멘. 하나님께서는 겁쟁이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여호수아가 군중을 조용히 시키고 말했습니다. “잠깐 조용히 하십시오. 여기 경계선에 있는 이 신자들은 이미 가나안의 포도를 맛보고도 우리가 그곳을 차지하지 못할까 두려워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백 년 전에 우리가 차지할 수 있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그 땅에 들어가 차지했습니다. 불평한 사람들은 아무도 그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은 죽었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죽었습니다. 영원히 분리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들이 말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모두 죽었느니라. 그러나 나는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이니, 사람이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리라.” 아멘. 오늘날 우리가 가진 양식은 얼마나 다릅니까! 우리가 받는 이 양식은 여러분에게 통나무처럼 굳센 등뼈를 주고, 여러분 혼의 지붕 꼭대기까지 풍성한 지식을 채워 주어야 합니다.
버디 로빈슨이 말했듯이 말입니다. “이빨이 하나라도 남아 있는 동안 마귀와 싸우게 하소서. 그러고 나서는 죽을 때까지 잇몸으로 물겠습니다.” 똑바로 일어서서 그것과 맞서 싸우십시오. 여러분은 “하지만 브래넘 형제님, 저는 이 담배를 도저히 버릴 수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아닙니다. 아직 맞는 약을 찾지... 얻지 못했을 뿐입니다. 아직 그것을 고칠 치료제를 얻지 못한 것입니다. 성령을 마음에 모셔 보십시오. 그러고 나면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보십시오. “저는 이것을 도저히 그만둘 수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아, 아직 올바른 것을 얻지 못했을 뿐입니다. 구약의 다윗처럼 말입니다. 그는 “바위 속에 꿀이 있도다”라고 했습니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작은 목자 주머니에 꿀을 넣어 가지고 다녔습니다. 양이 병들면 그 꿀을 가져다 석회암 바위 위에 발라 놓았습니다. 그러면 양이 그 바위를 핥기 시작했습니다. 바위의 꿀을 핥아 먹다 보면 꿀과 함께 석회질도 몸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것이 병든 양을 고쳤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형제여, 보십시오. 여기 제 주머니에 그것이 가득 들어 있습니다. 저는 여기 이 꿀을 반석이신 그리스도 예수님 위에 바르겠습니다. 다른 것 위가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님 위에 말입니다. 병든 양들인 여러분, 핥기 시작하십시오. 제가 말씀드립니다. 그 꿀을 핥으면서 손을 들고 그분을 찬양하십시오!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석회질을 조금 얻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치유하는 능력을 조금 얻게 될 것입니다. 죄를 조금 용서받게 될 것입니다. 조금이 아니라 전부 다 말입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 꿀을 핥는 동안 여러분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것이 여러분을 세상에 속한 것들로부터 분리시킬 것입니다. 또 [불명확한 말]...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위해 살고, 그리스도를 행하도록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렇고말고요.
모세는 이집트로 내려갈 능력이 있는지 알아보려고 어떤 학교에 가거나 심리학자들 앞에 서지 않았습니다. 물론입니다. 그는 덤불 꼭대기에 감겨 있는 불기둥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보고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그의 주의를 끌었습니다. 그래서 그 안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내 백성의 부르짖음을 들었고, 내 언약을 기억하였으며, 그들을 구출하려고 내려왔노라.” 그가 처음 한 일은 듣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말씀이었으므로 하나님이심을 알아보았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말씀으로 살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말씀 안에서 약속하셨다면, 그 약속을 뒷받침할 것을 보내실 것입니다. 아멘. 아, 형제여. 저는 이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꿀을 좀 먹었군요. 그렇습니다. 아, 그분이 하시는 일을 보십시오! 그분은 아브라함의 아버지에게... 아니, 모세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습니다. 그의 백성이 낯선 땅에서 사백 년 동안 머물겠지만, 다시 이끌어 내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실 줄 알았습니다. 이제 수백 년 뒤에 모세가 여기 있었고, 그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에게 말씀하시는 음성은 순전히 성경 말씀 그대로였으므로, 그는 행동에 나섰습니다. 아멘. 바로 그것입니다! 아멘.
오순절 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사람들아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까?”라고 외치기 시작했을 때,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회개하고 너희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 죄들의 사면을 얻으라. 그러면 너희가 성령님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손들과 멀리 떨어져 있는 모든 자들 곧 주 우리 하나님께서 부르실 모든 사람들을 향한 것이니라.” 할렐루야! 저는 교회가 방언을 말하고, 외치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언하고, 큰 기적들과 표적들을 행하는 것을 볼 때 성경을 내려다봅니다. 약속입니다. 그래서 저는 들었고, 알아보았으며, 행동에 나섰습니다. 아멘. 저는 삼십일 년 동안 그렇게 행동해 왔습니다. 영광을 돌립니다! 기분이 좋습니다. 신앙의 열정이 솟습니다. 아멘. 그것이 저를 행동하게 했습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여러분은 “제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라고 묻습니다. 그저 자신을 맡기십시오. 나머지는 그분이 돌보실 것입니다. 저는 행동에 나섰습니다. 모세도 행동하고 있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때로는 행동이 이상해 보이기도 합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이제 여든 살이 된 노인을 상상해 보십시오. 수염이 이렇게 길게 늘어지고, 아마 머리카락도 어깨를 덮었을 것입니다. 그의 아내는 조그마한 노새 위에 두 다리를 벌리고 앉아 한 팔에 아이, 자기 아기를 안고 있습니다. 그는 손에 낡고 굽은 지팡이를 들고 절뚝절뚝 걸어갑니다. 누군가 물었을지도 모릅니다. “모세, 어디로 가시오?” “이집트로 내려가 그곳을 차지하려고 하오.” 육적인 생각으로는 얼마나 우스꽝스럽습니까! 그들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불쌍한 모세 영감. 햇볕을 너무 쬔 게 틀림없어. 그뿐이야.” 아닙니다. 그에게 태양, 영어로 선, 에스 유 엔이 너무 뜨거웠던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아들, 역시 선이지만 에스 오 엔이 그에게 가까이 오신 것입니다. 그것이 이유였습니다. 그 불기둥이 불타는 덤불 안에 있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그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있기 전에 내가 있느니라.” 맞습니다.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주시고, 그분의 영이 오시면 그 약속을 이루십니다. 먼저 여러분은 그 약속이 선포되는 것을 듣고, 그것이 하나님의 진리임을 알아본 다음, 행동에 나섭니다. 육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은 여러분이 그저 너무 지나쳤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일은... 그것은 혼자서 이집트를 침공하러 내려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한 사람이 러시아를 차지하러 가는 것과 같았습니다. 물론 똑같은 일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가 해냈다는 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올바른 음성을 들었고, 알아보았으며,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저는 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말씀하시면 그것이 그분의 약속임을 알아보고 행동에 나서십시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십시오. 우리는 차지할 것입니다. 걷지 못하는 사람은 “저는 걸을 수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걸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멘. 맞습니다. “너희가 어떤 것들을 원하든지 너희가 기도할 때에 그것들을 받는 줄로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그것들을 받으리라.” 어쩌면 암에 걸린 사람이 “저는 살 수 없습니다”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모세, 이집트를 차지하러 내려간다고요? 그건 불가능합니다.” “어쨌든 나는 차지하러 갑니다.” “어떤 무기를 쓰려고 합니까?” “이 지팡이요.” 낡고 굽은 지팡이 하나였습니다. “어떤 무기를 쓰려고 합니까?” 물론이지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영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은 그것을 붙잡습니다. 필요한 것은 그것뿐입니다. 자신에게 능력이 있는지, 그 일을 할 정신적 능력이 있는지 알아보려고 의사나 정신과 의사에게 검사를 받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으니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그래서 계속 나아갔습니다. 모든 신자가 그렇습니다. 말씀 안에 있고 성경이 그렇게 말한다면,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그대로 믿습니다.
오순절 교인 여러분이 약 오십 년 전에 처음 시작했을 때도 그랬습니다. 교회들은 여러분이 바보 같은 무리라고 했습니다. 이십사 시간 안에 그 불이 다 타서 꺼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무것도 되지 못할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흠! 다 타서 꺼지는 것이 아니라 활활 타오르고 있습니다. 아멘. 오순절 교회는 전진하고 있습니다. 가장 많은 회심자가 있습니다. 얼마 전 가톨릭의 「선데이 비지터」에도 실렸습니다. 일 년 동안 전 세계 어느 교회보다 더 많은 회심자를 얻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불붙은 사람들입니다. 불타는 덤불을 만난 사람들입니다. 듣고, 알아보고, 그분의 말씀대로 행동하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개의치 않습니다. 그것은 장자권입니다. 길모퉁이든, 농가 마당이든, 어디서 설교해야 하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전할 것입니다. 듣고 하나님에게서 왔음을 알아보았으며, 그 말씀대로 행동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성령께서 오셨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열정으로 불타고 있습니다. 젊든 늙었든 어떻든, 그들은 가야 합니다. 그는 현장으로 나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으로 끝입니다.
갈멜산의 엘리야를 예로 들어 보면 어떻겠습니까? 그가 거기 있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기도하며 “오, 발람이여, 와서 이런저런 일을 해 주십시오”라고 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는 “소를 잡아 여기 위에 올려놓으십시오”라고 하고, 그 위에 물을 모두 붓게 했습니다. 그들은 ‘저 불쌍한 영감. 아무래도 뭔가 잘못됐군’ 하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셨다면 엘리야는 “잠깐만. 이것을 확실히 해 두는 게 좋겠어. 불이 내리지 않을지도 모르니”라고 했을지 모릅니다. 아, 엘리야가 그렇게 말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임을 알아보았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물을 통에 담아 가져오십시오. 그 물통들을 그 위에 부으십시오. 나는 불이 내릴 줄 압니다.” 왜 그렇습니까? 준비를 제대로 갖추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들었고, 받아들였으며,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대로 행동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성령을 주실 것을 믿지 못하겠다면, 듣고 알아보고 여기 나와 보십시오. 그분이 주시는지 아닌지 보십시오. 깨끗한 마음으로, 신실한 뜻을 품고, 자신을 그분께 맡긴 채 나오십시오. 온 마음으로 믿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보십시오. 그렇습니다. 그것이 여러분 머릿속에서 나온 어떤 지적인 생각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부르시는 것이라면, 제 이름이 빌 브래넘이라는 사실만큼 확실하게 그분은 여러분을 성령으로 채우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들은 것이 하나님에게서 왔음을 알아보고 그 말씀대로 행동하면, 그분은 반드시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계속 “글쎄, 아닐 수도 있지. 저 설교자가 내게 뭔가 잘못된 말을 하는 것일지도 몰라”라고 한다면 말입니다.
얼마 전 어떤 사람이 제게 편지를 써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우리 모두는 형제님이 선지자라고 믿습니다. 주님의 영이 형제님 위에 계셔서 사람들을 분별하고 그런 일을 하실 때, 그 분별을 보면 선지자라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형제님의 가르침은 형편없습니다.” 형제여, 그 사람은 선지자가 무엇을 뜻하는지도 모릅니다. 주님의 말씀이 누구에게 임했습니까? 선지자에게 임했습니다. 선지자는 무슨 뜻입니까? 단지 앞일을 보는 사람, 앞일을 예고하는 사람, 또는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라는 뜻만은 아닙니다. 선지자란 이런 뜻입니다. 그에게 그것이 주어진 것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는 사람임을 입증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틀림없습니다. 영광을 돌립니다! 어떻게 그처럼 독단적일 수 있습니까? 사람들이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은 육적이라는 증거입니다. 그들은 어떤 신조 같은 것을 조금 붙잡고, 교리 문답서를 읽으러 가거나 이런저런 말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형제여, 호텐토트 사람이 이집트 기사에 대해 아는 것만큼도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께서 증언하시고, 하나님께서 표적들과 이적들을 보내십니다. 그래서 오순절 교인들 가운데서 치유 집회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들 안에는 하나님께서 실제로 살아 계신다고 말해 주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바라보며 믿습니다. 감리교인들과 침례교인들이 나오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르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모든 자는 내게 올 것이요.” 할렐루야! 저는 계속 나아가고 싶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모든 자는 내게 올 것이요.” 맞습니다. 하나님께서 두드리시면 여러분은 응답하기만 하십시오.
엘리야가 말했습니다. “주의 명령에 따라 이 모든 일을 했습니다. 주님, 하라고 명령하신 대로 했습니다. 주의 음성을 들었고, 주님이심을 알아보았으며, 지금 행동하고 있습니다. 아직 불이 내리지 않았지만, 여기 수소가 있고, 여기 물이 있고, 돌이 있고, 모든 것이 있습니다. 모두가 저를 대적하고 저는 홀로 서 있지만, 행동하고 있습니다.” 아멘. “어머니는 다시 집회에 가면 집에서 쫓아내겠다고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와서 집회에서 끌어내 짓밟겠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여기 있습니다. 저는 알아보았고, 행동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아멘. “남편은 저를 쫓아내겠다고 했고, 아내는 다시는 집에 들어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무슨 상관입니까? 여러분은 듣고, 알아보고, 행동합니다. 아멘. 이웃이 뭐라고 하든, 누가 뭐라고 하든 상관없습니다. 듣고, 알아보고, 그 말씀대로 행동하십시오. 아멘.
엘리야가 말했습니다. “주님, 이 모든 일을 주의 명령에 따라, 말씀하신 그대로 했습니다. 주의 말씀을 들었고, 주님이심을 알아보았으며, 그 말씀대로 행동하고 있습니다. 자, 여기 있습니다. 주님, 제가 진실을 말했고 이것이 주님의 역사라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바로 그때 불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은 준비만 갖추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이 하나님의 약속임을 아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나라의 제사장들이 모두 나서도 그의 마음을 돌려놓을 수 없었고, 아합의 왕권이 아무리 커도 그것으로 그를 속일 수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알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으며, 하나님이심을 알아보았고,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그대로 행동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나와야 합니다.
이 대집회가, 교파를 초월한 형제들과 교파에 속한 형제들과 여러분이 누구든, 오순절 교인들이 모인 이 오순절 대집회가 말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오심을 바로 앞둔 마지막 날들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보기만 한다면, 우리 교회들이 한데 모여들어 육적인 것과 영적인 것이 그 충돌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깨닫는다면 말입니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감리교인, 침례교인, 가톨릭교인, 장로교인, 그 밖의 모든 사람을 불러내어 성령을 받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움직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행동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 환상을 붙잡기만 한다면 이 집회장에서 부흥이 시작되어 우리는 결코 이곳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맞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시간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하노라. 마지막 날들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라는 말씀을 듣고 그것이 하나님의 약속임을 알아볼 수만 있다면 말입니다. 아, 그것이 하나님의 약속임을 알아보기만 한다면 좋겠습니다. “너희는 온 세상으로 가서 복음을 선포하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지적인 세상이 뭐라고 하든 여러분은 거기에 동조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들었고, 성경에 있으므로 하나님의 말씀임을 알아보았으며, 그런 다음 그 말씀대로 행동합니다.
저는 친아버지가 저를 집에서 내쫓으셨던 일을 기억합니다. 제 옷가지는 종이봉투에 들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여기서는 그런 식으로 행동하지 못한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렇게 행동할 곳은 이 넓은 세상에 얼마든지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떠났습니다. 물론입니다. 저는 성령을 받았고, 제 마음속에서는 무언가가 불타고 있었습니다. 저는 들었고, 믿었으며, 받아들였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약속임을 알아보았습니다. “‘내가 내 영을 부어 주리니... 이런 표적들이 그들을 따르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손들을 향한 것이니라.’ 거기에 제가 있었습니다.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오라.’ 거기에 제가 있었습니다.” 저는 아주 크고 두꺼운 안경을 썼습니다. 난시 때문에 늘 머리가 흔들렸습니다. 저는 거의 소년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러나 신유를 믿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들었고, 그것이 하나님의 약속임을 알아보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가 다니던 침례교회로 가서 목사님에게 물었습니다. “기름부음에 쓸 기름이 있습니까?” “기름은 뭐 하려고 그러느냐?”라고 하셨습니다. “기름부음을 받고 싶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무엇 때문에?” “제가 아픕니다.” “어디가 아프냐?” “제가 잘... 눈이 나쁩니다. 거의 볼 수가 없습니다. 이 안경을 벗으면 다른 사람이 저를 이끌고 다녀야 합니다. 난시입니다.” 그분은 “아, 빌리야!”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정말입니다. 기름이 없으십니까? 제가 가져다드리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내려가 기름을 구해 그 위에 기도하고, 올라와 그분께 드렸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제게 기름을 발라 주셨습니다. 저는 “할렐루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섰습니다. 그것으로 된 것이었습니다.
의사는 제가 고형 음식을 한 입만 먹어도 죽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제 위가 온통 피가 나는 커다란 궤양 하나나 다름없다고 했습니다. 집에 가니 아버지가 앉아 계셨고, 옥수수빵과 콩이 있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아시지요. 제가 말했습니다. 우리 집에서는 한 번도 식탁에서 축복 기도를 드린 적이 없었습니다. “잠깐만 모두 고개를 숙여 주시겠습니까?” 아버지가 저를 쳐다보셨고, 어머니도 이상하게 쳐다보셨습니다. 저는 “하나님, 저는 기도할 줄 모릅니다. 하지만 어쩐지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고쳐 주셨다고 믿습니다. 저는 기름부음을 받았고, 주의 말씀을 받아들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제 앞에 끓인 물과 자두 주스를 놓아 주셨습니다. 제가 먹는 것은 그것뿐이었습니다. 약 일 년 동안 그것과 통밀 크래커만 먹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너 설마...? 뭘 먹으려고 그러니?” 제가 말했습니다. “콩과 옥수수빵이요. 그 양파도 한 조각 주세요.” 어머니는 제가 정신이 나갔다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래서 의사에게 전화를 거셨습니다. 의사가 말했습니다. “그걸 먹으면 죽습니다. 그 음식이 위에 들어가자마자 죽을 겁니다. 급성 소화불량이 생겨서 죽을 겁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의사는 그렇게 말했지만, 저는 들었고, 믿으며, 받아들였습니다. 이제 제가 믿는 대로 행동하겠습니다.” 할렐루야! 맞습니다. 저는 들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 이 성경임을 알아보았습니다. 성경에 나온 말씀이었습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이든 구하라. 내가 그것을 행하리라.” 그분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저는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께서 제게 말씀하시는 것임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래서 행동에 나섰습니다. 아,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렇습니다. 엘리야가 한 일이 그것입니다. 모세가 한 일이 그것입니다. 노아가 한 일이 그것입니다. 침례자 요한도 사람들 사이에서 선지자로 인정받은 뒤에... 아, 사람들은 요한도 좋은 선지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알아보고, 그 사생아로 태어난 아이,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렇게 여겼던 그 사람이 메시아라고 말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와 그 제사장들과 모든 것을 호되게 꾸짖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러자 그가 말했습니다. “요한, 그 말은 취소해야겠소. 저 사람은 여기 우리 공동체 전체를 무너뜨리고 있소. 성령의 침례가 올 것이라고 하고, 그런 온갖 말을 하면서, 희생물 드리는 일이 폐해질 것이라고도 하오.” 요한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광야에서 제게 ‘가서 물로 침례를 주라’고 하신 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이 누구에게 내려와 그 위에 머무는 것을 네가 볼 터인데, 바로 그 사람이 성령과 불로 침례를 줄 자니라.’” 아멘! 그가 말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은 그것뿐입니다. 광야에서 그 음성을 들었고, 하나님이심을 알아보았으며, 가서 침례를 주었습니다. 그 영께서 내려와 그분 위에 머무시는 것을 보았을 때, 바로 그분이 성령과 불로 침례를 주실 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다만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대로 행동하고 있을 뿐입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그는 보았고, 들었고, 알아보았으며, 행동에 나섰습니다.
교회에 필요한 것이 그것입니다. 우리는 듣고 알아보지만, 그 말씀대로 행동에 나서기를 두려워합니다. 병든 사람들의 문제가 그것입니다. 어젯밤 이곳에서 성령께서 이 집회장 전체에 침례를 주고 계실 때 제가 말했습니다. “서로에게 손을 얹으십시오. 믿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모두가 손을 들었습니다. “서로에게 손을 얹으십시오.” 그러고 나서는 행동에 나서야 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곧바로 나서서 “바로 이것입니다”라고 하십시오. 행동에 나서십시오. 그것이 전부입니다. 여러분은 “저는 약을 그만큼 많이 먹어야 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랬지요.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아시겠죠? 그 말씀대로 행동에 나서고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계속 나아가십시오. 멈출 곳은 없습니다.
요한이 말했습니다. “저는 주님께서 제게 말씀하신 대로 할 뿐입니다. 저는 들었고 그것이 하나님에게서 왔음을 알아보았습니다. 저는 특별한 출생을 통해 태어났고, 아홉 살 때부터 이 광야에서 살았습니다. 그분께서 제게 가서 물로 침례를 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이 누구에게 내려오는 것을 네가 볼 터인데...’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여러분 제사장 중 누구에게도 그것이 임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 것을 전혀 본 적이 없습니다. 여러분 위로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그를 매우 기뻐하노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라고 하는 것을 들은 적도 없습니다. 여러분 위에서 그런 음성을 들은 적은 없습니다. 그리고 그 음성이 가리킨 분이 바로 그분... 그래서 저는 그분을 알아보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저는 오직 제가 들었고 하나님에게서 왔음을 알아본 것에 따라 행동할 뿐입니다.” 아멘.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계실 때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보여 주시는 것만 행하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5장 19절입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버지께서 보여 주지 아니하시면 아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하노라.” 다시 말해 아버지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시고, 아버지이심을 아셨으며, 가서 아버지께서 하라고 하신 일을 그대로 행하셨다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여러분도 듣고, 알아보고, 그런 다음 행동합니다. 그래서 그분께서 저 위로 돌아... 사마리아를 지나가셔야 했고, 거기서 그 여자를 만나셨습니다. 여리고로 가시는 길이었는데 어떻게 사마리아를 지나가셨겠습니까? 아시겠죠? 그런데도 사마리아를 지나가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버지께서 “사마리아로 올라가 거기 앉아서 기다려라”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해야 한다고 아신 일은 거기 앉아 기다리는 것뿐이었습니다. 한 여자가 다가왔습니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말을 걸려는 사람이 저 사람이다. 이제 그 여자에게 말하여라.” 그분께서 그 여자에게 말을 걸기 시작하셨고, 마침내 그 여자의 문제가 무엇인지 아시고 “가서 네 남편을 데려오라”라고 하셨습니다. 여자가 “남편이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맞다. 네게는 다섯이 있고, 지금 함께 사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라.” 보십시오. 그분은 들으셨고, 아버지이심을 아셨으며,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그대로 행동하고 계셨습니다. 아멘. 우리도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한번은 백이십 명이 핍박을 받는 가운데 다락방으로 올라갔습니다. 사람들이 지나가며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그거 아나? 저 광신자 무리가 열흘째 저 위에 있어. 뭘 먹고 사는 거지?” 그들은 금식하고 있었습니다. “식료품 배달하는 아이가 올라가는 것도 못 봤는데.” 물론입니다. 그들은 금식하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이것 좀 봐, 저 위에 있잖아. 왜 그러지? 문마다 빗장을 다 걸어 놓았어. 들어갈 수가 없어. 저기 성전 꼭대기로 올라가는 저 좁은 계단으로 가 봐. 그 방까지 거의 한 사람씩밖에 못 올라가. 위에 올라가 봐도 들어갈 수가 없으니, 그냥 저 위에 있게 내버려 두는 수밖에 없겠어. 굶어 죽고 싶다면 그렇게 하라지.” 왜 그렇습니까? 육적인 생각입니다. 그렇지만 그들도 종교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모두 오순절을 지키려고 올라와 있던 아주 종교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에서의 무리였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야곱의 무리는 저 위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높은 곳으로부터 오는 권능을 입을 때까지 예루살렘 시에 머물라... 성령이 너희에게 오신 뒤에 너희가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세상 맨 끝까지 이르러 나를 위한 증인들이 되리라.” 무엇입니까? “먼저 기다려라.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이 약속이 올 때까지 거기서 기다려라.” “주님, 주께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그렇다. 그것은 좋다.” “마귀들을 내쫓을 권능도 주셨습니다. 그것도 좋지 않습니까?” “그것도 좋다. 그러나 나는 너희가 저 위로 가서 기다리기를 원한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분이 무슨 사생아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우리 가운데 육신이 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그것을 알았기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올라가서 기다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음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행동에 나섰습니다. 그 결과가 어땠는지 아시지요. 술 취한 사람들처럼 비틀거렸습니다. 방언으로 말했습니다. 그들은... 아, 평생 들어 본 것 가운데 가장 요란한 무리여서 사람들이 “이 사람들이 새 포도즙으로 충만하다”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아닙니다... [녹음 공백]
바다에 나가 있던 바울이 있습니다. 이제 마치겠습니다. 바울은 바다에 나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어디론가 항해하게 하고 계셨습니다. 그들은 해안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전하라고 하셨을 때 바울은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선장은 지식 있는 사람이었지요. 하나님보다 바다를 더 잘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를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배를 풀어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열나흘 밤낮 동안 달도 별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작은 배에는 물이 가득 찼습니다. 모든 희망이 사라졌습니다. 배를 가볍게 하려고 거의 모든 것을 바다에 던졌습니다. 모든 희망이 사라진 상태였습니다.
바울은 아래쪽 어딘가 배의 조리실이나 격벽 쪽에서 오르락내리락 걸으며 “주님, 아무래도 저는 이 바다에서 주께로 가게 될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날 밤 쇠사슬을 뒤로 끌면서, 그저 왔다 갔다 하며 기뻐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갑자기 그가 갑판 위로 뛰어 올라옵니다. 그 작은 두 손은 쇠사슬에 묶여 있고, 발에도 쇠사슬을 뒤로 끌면서 이렇게 손을 흔들고, 흥분한 사람처럼 말합니다. “기운을 내십시오!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이 사람, 무슨 일인가?” 그 작은 매부리코 유대인이 위에서 손을 흔들며 야단입니다. “바울, 무슨 일이오?” “기운을 내십시오. 자, 뭔가 드십시오. 너무 오래 드시지 않았습니다. 이제 너무 오래 금식했습니다. 무엇 좀 드십시오. 기운을 내십시오. 아무것도 잃지 않을 것입니다.” “바울, 어째서 그렇게 확신하시오? 무슨 일이 있었소? 정신이 나간 것 아니오? 너무 오래 금식하다가 정신이 혼미해졌는지도 모르겠군.” “아닙니다, 아닙니다. 어젯밤 제가 섬기는 하나님의 천사가 제 곁에 서서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할렐루야. ‘한 사람도 생명을 잃지 아니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분께서 제게 말씀하신 그대로 될 것입니다.” 무엇입니까? 그는 들었고, 하나님에게서 왔음을 알아보았으며, 아무 일도 일어나기 전에 행동하고 있었습니다.
달은 여전히 저 멀리 있었고, 해는 여전히 캄캄했으며, 별들은 여전히 빛나지 않았고, 배는 여전히 금방이라도 가라앉을 것 같았습니다. 마귀는 파도마다 올라앉아 입을 닦고 이를 번쩍이며 말했습니다. “다음 파도에는 그를 잡겠다. 다음 파도에는 잡겠다.” 그러나 천사가 마귀보다 먼저 그곳에 도착했습니다. 아, 그렇습니다! 바울은 듣고, 알아보고, 행동에 나섰습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벌써 육지에 앉아 있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왜냐고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다 끝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계속 갑니다.” 그대로 되었습니다. 언제나 그렇습니다. 듣고, 행동하고, 믿는 것입니다.
아,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중대한 때를 보십시오. 이제 잠시 후에 몇 마디 날카로운 말씀을 드리려고 하니 들어 주십시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중대한 날... 이 모든 세력이 세상을 움켜쥐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경이 예민한 사람이 그렇게 많은 것입니다. 모든 것이 그렇고, 정신병원들은 가득 차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무엇인가에 붙잡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 거대한 세력들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모든 것이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모든 것이 끝에 이르렀습니다. 보십시오. 정치를, 우리나라의 정치를 예로 들어 봅시다. 형제여, 이번에 있을 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면, 파도가 한 번만 더 밀려와도 그걸로 끝입니다. 끝입니다. 육적인 생각입니다! 아,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습니까! 모든 것이 성경 말씀 그대로 모습을 갖추어 가고 있습니다. 정치는 사방으로 썩어 있습니다.
정부의 법을 보십시오. 우리 도시의 법을 보십시오. 십 달러면 매수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를 아느냐에 따라 돈으로 해결합니다. 이 나라의 다른 수많은 도시도 그렇습니다. 저는 그것이 사실임을 압니다. 다른 세력들... 교육의 힘을 보십시오. 과학을 보십시오. 과학은 원자와 분자와 그 밖의 것들을 쪼개는 데까지 내려왔습니다. 그러다가 국가 간의 관계가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아무것도... 나라들 사이에 혼란이 있습니다. 성경이 그런 일이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나라들 사이의 고통입니다. 작은 나라마다 두려워합니다. 러시아는 우리가 폭탄을 되돌려 보낼까 두렵지만 않다면 지금 당장 이곳에 폭탄을 날릴 것입니다. 맞습니다. 이제 그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릅니다. 막다른 곳에 이르렀습니다. 과학이 막다른 곳에 이르렀습니다. 아, 도덕도 막다른 곳에 이르렀습니다. 어머니다움과 여자다움도 막다른 곳에 이르렀습니다. 교회도 막다른 곳에 이르렀습니다. 육적인 교회는 곧장 교회 연합체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틀림없습니다.
영적인 교회도 길의 끝에 이르렀습니다! 자기 머리이신 주 예수님의 오심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그 절정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주님의 오심 안에서 절정에 이르고 있습니다. 교회의 머리이신 주 예수님께서 오고 계십니다. 그분은 무엇을 하실 것입니까? 모든 성도를 부활시키고 영광스러운 몸을 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교회가 그 절정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기쁩니다! 마지막 때가 다가오면서 두 가지 큰 것으로 모아지고 있습니다. 짐승의 표와 하나님의 인입니다. 하나님의 인은... 하나님의 인이 성령의 침례라는 것은 어느 사역자나 압니다. 틀림없습니다. 에베소서 4장 30절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을 슬프게 하지 말라. 그분에 의해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봉인되었느니라.” 아멘! 제가 이상하게 행동한다고 생각하시는 것을 압니다. 어쩌면 저는... 기분이 좋습니다. 아, 그렇습니다. 끝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이제 기억하십시오. 짐승의 표는 무엇입니까? 짐승의 표는 육적인 에서가 그 장자권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에서는 그 장자권을 다시 회복하려고 쓰라리게 울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뜻을 돌릴 곳이 없지 않았습니까? 성령을 거절하면 여러분 스스로를 하나님의 긍휼 밖에 봉인하는 것입니다. 아멘.
여러분은 이렇게 말합니다. “브래넘 형제님, 우리의 병 같은 것을 말씀해 주신다면 선지자라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저는 여전히 같은 사람입니다. 맞습니다. 여전히 성경이 말씀하는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틀림없습니다. 아멘. 그것은 여전히 진리입니다. 그리고 짐승의 표를 향해 모아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아, 앞으로 어떤 표가 생길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이미 표가 찍혔습니다. 성령을 거절하기만 하면 표가 찍힙니다. 성령을 받으면 표가 찍힙니다. 아멘. 맞습니다. 한번 받아 보시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십시오! 한번 받아 보십시오. 그것이 하나님의 표이며, 여러분은 영원한 목적지까지 봉인됩니다. 철로 위의 화차와 같습니다. 검사원이 다가옵니다. 어젯밤 그 방에 들어갔어도 성령을 받지 못한 분이 있다면 오늘 밤 점검해 보십시오. 검사원이신 성령께서 여기 계시며, 오셔서 여러분을 살펴보고 계십니다. 저는 전에 펜실베이니아 철도에서 일했습니다. 화차에 통조림 같은 것을 실으면 검사원이 와서 살펴보았습니다. 모든 것을 흔들어 보며 느슨한 데가 있는지 확인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교회에 하시는 일도 그렇습니다. 흔들어서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보십니다. 여러분 안에 그분의 영을 부으시기 전에 느슨한 데가 있는지 살펴보십니다. 교회가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그 안에 자신의 영을 붓지 않으실 것입니다. 여전히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의 일들을 하고 싶어 한다면, 그런 상태에서는 결코 성령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혼란을 겪을 수는 있고, 입술이 더듬거릴 수도 있으며, 혹은... 방언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성령을 받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영원한 목적지까지 봉인하십니다. 맞습니다.
그 검사원이 와서 흔들어 보았을 때 화차가 단단하고 튼튼하면, 문을 닫고 펜실베이니아 철도의 봉인을 붙였습니다. 그 화차가 목적지에 이르기 전에 그 봉인을 뜯는 사람에게는 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참으로 그분께 모든 것을 바쳤음을 보시고 성령으로 채우시면, 여러분은 목적지에 이를 때까지 성령으로 봉인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을 슬프게 하지 말라. 그분에 의해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봉인되었느니라.” 성경이 정확히 그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고 계속 나아가십시오. 성령을 받으십시오. 모든 것이 그것으로 귀결되고 있습니다.
신실한 사람들, 참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오늘날 살아갈 이유가 얼마나 많습니까. 여러분 앞에 무엇이 놓여 있는지 깨닫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내일 밤이나 그다음 날 밤, 아니면 언제 한번 제 환상을 말씀드려서 우리 앞에 무엇이 놓여 있는지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모든 것이 앞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가 진실하게 살아야 할 이유가 얼마나 많습니까! 한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입술에 담았던 여러분이 어떻게 다시 세상으로 나가, 자신을 거룩하게 한 그 피에 등을 돌릴 수 있습니까?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저는 여러분이 처음부터 그것을 가지지 않았다고 확신합니다. 맞습니다. 주님의 선하심을 맛본 사람에게는 세상에 속한 것들이 한밤중처럼 죽은 것이 됩니다. 맞습니다. 들어와 성령을 받으십시오. 교회 놀이를 하지 마십시오. 이웃을 흉내 내지 마십시오. 들어와서 이렇게 말하십시오. “주님, 참된 성령으로 저를 채워 주시기를 원합니다.” 왜 설교자의 손을 잡고 악수하고, 몇 번 물을 뿌리는 의식을 받는 것 같은 것으로 대신하려고 합니까? 하늘에 오순절 권능이 가득한데, 왜 사람이 만든 신조의 신학을 대용품으로 받으려 합니까? 아멘. 참되고 진정한 오순절입니다.
신자에게는 살아갈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에 맞게 살아야 합니다. 날마다 하나님께 받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붙잡으려고 손을 뻗고, 세상을 뒤로하며, 배를 불태우고, 날마다 지나온 길을 불태워야 합니다. 계속 움직이고, 손을 뻗고, 끌어당기고, 구하고, 하나님을 향해 주리고 목말라 하십시오. 그 일에는 정말 광신적이 되십시오. 계속 나아가십시오. 광신자란 지나치게 열광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정말 광신자입니다. 제 주님께 지나치게 열광합니다. 그분께서 어떻게 저 같은 사람을 구원하셨을까요? 어떻게 제게 성령을 주셨을까요? 왜 제게 설교를 하게 하셨을까요? 어떻게 제가 사람들을 사랑하고 사람들이 저를 사랑하게 하셨을까요? 아, 그분을 생각하면 가슴이 벅찹니다. 저는 제 안의 모든 것을 다해 계속 손을 뻗습니다. 그분께 닿으려고 피부가 늘어나도록 몸을 뻗고, 제가 가진 모든 것으로 움직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그것입니다.
얼마 전에 들은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미국의 미술가들 한 무리가 미술을 공부하러 로마에 갔습니다. 아마 오늘 저녁 신문이었던 것 같은데, 미술가 몇 사람이 머지않아 이 근처 어느 도시에 와서 미술관을 연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저는 미술을 사랑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미술 안에 계십니다. 올바른 미술 안에 말입니다. 음악 안에도 계십니다. 올바른 음악 안에 말입니다. 춤 안에도 계십니다. 올바른 춤 안에 말입니다. 외침 안에도 계십니다. 올바른 외침 안에 말입니다. 죄는 왜곡입니다. 올바른 것을 가져다가 그릇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어떤 교회가 방송에 나온 것처럼 말입니다. 얼마 전에 누군가 저를 불렀습니다... 큰 교회였고, 텔레비전에 나오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저를 불러 말했습니다. “목사님, 이리 오십시오. 잠깐 내려와 보십시오. 보여 드리고 싶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큰 교파 가운데 하나가 교회 안의 어떤 물건들을 덮어 놓고, 가톨릭교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것은 개신교회였습니다, 그 물건들을 덮어 놓고 로큰롤을 연습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로큰롤이라는 아름다운 예술을 오랫동안 버려두고 무시해 왔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왜곡된 영이 아니라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로큰롤은 마귀에게 속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종교적인 노래를 얼마나 많이 부를 수 있든 상관없습니다. 로큰롤과 부기우기와 그런 것들은 아프리카의 밀림에서 나왔습니다. 틀림없습니다. 그것은 마귀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얼굴에 색을 칠하고 화장하는 것 말입니다. 그것이 어디서 나왔는지 아시기만 한다면... 그것은 이교도의 풍습입니다. 그들을 보십시오. 아프리카에 가서 그 여자들을 보십시오. 여러분의 할머니가 화장을 하기 수백 년 전부터 그들이 어떻게 진흙을 만들어 자기 몸에 칠했는지 보십시오. 물론입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마귀에게 속한 것입니다. 오순절 교회 안에는 그런 것이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그런 무리들 안에는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제가 말씀드립니다. 강단에서 청소부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는 옛날과 같은 성령의 철저한 씻음이 필요합니다. 틀림없습니다. 성령의 씻음으로 우리 사람들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남자들, 오순절 남자들이 “저는 도저히 담배를 끊을 수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아내를 둘이나 둔 사람이 교회에서 집사를 합니다. 그를 내보내십시오. 물론입니다. 그렇게 해야 합니다. 일을 바로잡아야... 성경은 집사가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틀림없습니다. 오순절 교인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아내가 둘이나 셋입니다. 형제여, 이런 것을 깨끗이 정리하기 전에는 부흥이 있을 수 없습니다. 바르지 않은 기초 위에 어떻게 건물을 세울 수 있습니까?
어젯밤 말씀드렸듯이, 저 아래 멕시코에서는 그 아름다운 도시를 지으면서 겉모습을 아주 화려하게 꾸밀 수 있다고 자신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도시는 뒤로 기울어져 있고, 크고 멋진 건물들도 뒤로 기울어지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기초까지 살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전혀 살피지 않았습니다. 얼마 전 어떤 사역자가 어린아이를 전화기... 마이크 앞으로 데려와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아이가 네댓 명이었습니다. 그는 그곳에 서서, 성경의 어떤 중요한 가르침을 두고 “그런 것은 없다”라고 말한 뒤, 그 어린아이를 데려와 소금 뿌리는 통을 집어 들고 아이의 머리에 물 세 방울을 뿌리며 “내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네게 침례를 주노라”라고 했습니다. 그러고는 아직 생후 육 개월도 안 된 그 어린아이를 교인이 되었다며 넘겨보냈습니다. 그 불쌍한 아이에게는 기회조차 없습니다. 처음부터 잘못된 기초에서 시작한 것입니다. 그것은 성경에 있지도 않습니다. 이교도의 풍습입니다. 성경 안에 있지도 않습니다. 형제여, 기초 위에 서서 올바르게 시작하기 전에는 결코 출발할 수 없습니다. 성령으로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세우십시오. 틀림없습니다. 성경에서 물 뿌림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 일은 없습니다. 그리스어로 침례를 준다는 말은 “덮이다, 묻히다, 감추어지다”라는 뜻입니다.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합니까? 신조 같은 것을 잔뜩 가져다가 그것들을 따라 살아갑니다. 그런 온갖 것들 말입니다. “아무개 박사가 그렇게 말했어.” 저는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씀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그분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에게서 왔음을 알아보고, 그러고 나서 그 말씀대로 행동하게 해 주십시오.
이 미술가들, 한 무리의 미술가들이 미술을 공부하러 로마로 갔습니다. 그들은 모두, 거의 모두가 밤에 나가서 술에 잔뜩 취하곤 했습니다. 남자들과 여자들이 함께 밤을 지새웠습니다. 요즘 일부 미국 사람들이 하듯이 밖에서 밤을 지새웠습니다... 저는 바로 이 주에서 대집회가 열리는 어느 곳에 갔었는데, 평생 그렇게 당황스러운 적이 없었습니다. 덩치가 큰 사람이 저 위에 앉아 있었고, 이렇게 꽃 장식이 가득한 큰 모자를 쓰고 온갖 예복 같은 것을 걸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열여섯, 열일곱 살 된 어린 남자아이들과 여자아이들이 호텔 방에서 함께 자고 있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는 모두 내려와 아무개 신부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습니다. 아, 세상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어 순수하고 거룩하며, 하나님의 권능으로 성별되고 어린양의 피로 씻기도록 기르셨는데, 저 불쌍한 아이들의 생각을 그런 것들로 왜곡하다니요!
이런 말 때문에 때로는 사람들이 저를 미워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저 건너편에서 만날 때에는 여러분이 저를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진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것이 기초입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신실하게 진실을 말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에게서 왔음을 알아보십시오. 그분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는 거룩할지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죄 가운데 사는 것을 그만두십시오. 이 사람들은 나가서 술을 마시며 제멋대로 행동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한 청년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는 깨끗하게 살았습니다. 밤에는 집에 와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신사가 살아야 할 모습으로 살았습니다. 어느 날 나이 든 관리인이 말했습니다. “젊은이, 자네와 함께 산책하고 싶군.” 청년이 “좋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지는 해를 향해 함께 언덕을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관리인이 말했습니다. “젊은이, 자네도 저 미국인들과 함께 왔지?” 청년이 “예, 그렇습니다”라고 했습니다. “하나 물어보고 싶네.” “말씀하십시오.” “어째서 자네는 저들처럼 나가서 술을 마시고, 제멋대로 행동하며, 여자들과 밤새 어울리고, 다음 날 아침에 돌아오는 그런 일을 하지 않나?” 청년은 멈추어 서서 노인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말했습니다. “저기 서쪽으로 해가 지는 것이 보이십니까?” 노인이 “그래, 보이네”라고 했습니다. 청년이 말했습니다. “저 지는 해 너머, 뉴잉글랜드의 여러 주 가운데 어느 한 주가 있습니다. 그 주에 어느 도시가 있고, 그 도시에 어느 집이 있으며, 그 집에 한 처녀가 있습니다. 이곳에 오기 전에 저는 그 처녀에게 충실하겠다고 서약했습니다. 제가 돌아가면 결혼하기로 했습니다. 그녀도 제게 서약하고 약속했습니다. 그래서 어르신, 여자에 관한 한 제 모든 관심은 그곳의 그 처녀에게 향해 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저는 다가올 내일을 위해 오늘을 삽니다.” 얼마나 훌륭한 간증입니까.
그리스도인도 얼마나 훌륭한 말을 할 수 있습니까! “왜 담배를 피우지 않습니까?” “왜 좀 즐기지 않습니까?” “왜 다른 사람들처럼 이것을 하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아, 어느 별 너머에 한 도시가 있고, 그 도시에 한 분이 계십니다. 할렐루야! 그분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기에 나는 그분을 위해 삽니다. 언젠가 그분께서 오십니다. 나는 다가올 그 생명을 위해 삽니다.” 아, 형제여, 저를 믿으십시오. 저는 진실을 말씀드립니다. 진리가 무엇인지 말씀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진실을 말하는 것을 아십니다. 그저 온 마음으로 저를 믿으십시오. 어쩌면 여러분은 주님의 오심이나 육적인 교회 등에 관한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바로 이 주에 사시는 분들 중에도 제게 편지를 보내 이렇게 말한 분들이 있습니다. “형제님께 기름부음이 임하면 영들을 분별하실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물론 우리가... 그럴 때는 형제님이 선지자라고 믿습니다.” 저는 제가 선지자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런데 여러분은 그러면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브래넘 형제님, 성령을 받는 것과 이 모든 것, 살아가는 방식에 관한 그런 광신주의적인 가르침은 믿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영원 전부터, 세상이 있기 전에... 선택되었다느니 하는 그 밖의 모든 것도...” 여러분이 그렇다고 말한 것은 성경입니다. 저는 거기에 대해 무슨 말을 덧붙인 적이 없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성경이 말한 것을 말할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짐승이 땅에 있는 모든 자, 곧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어린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자들을 속이느니라.” 맞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사람들이 부름받지 않았다면 어떻게 올 수 있겠습니까? 맞습니다. 저는 누가 부름받았고 누가 그렇지 않은지 모릅니다. 그저 그물을 던질 뿐입니다. 가재나 뱀이나 물거미나 그 밖의 온갖 것을 잡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그물을 끌어 올리는 것입니다. 판단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제가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의 영께서 여기 계십니다. 하나님의 영께서 여러분 마음의 비밀을 제게 알려 주실 수 있다면, 하나님의 영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알아보시고 곧바로 돌아와 그 말씀을 선포하실 수도 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이 성경에 있는 것 말고는 다른 것을 설교한 적이 없습니다. 줄곧 성경을 따랐습니다. 저는 성령의 침례를 믿습니다. “침례교인이라고 하셨잖아요.” 저는 성령을 받은 침례교인입니다. 성령의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습니다. 그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을 믿으며, 기록된 그대로 설교합니다. 아무것도 바꾸거나 영적인 뜻으로 돌려 해석하지 않습니다. 그저 “기록되어 있으니, 저는 그대로 믿습니다. 듣고, 하나님에게서 왔음을 알아보고, 그 말씀대로 행동합니다”라고 말할 뿐입니다. 아멘.
성령께서는 오늘날도 예전과 똑같이 실제로 계십니다. 가짜나 믿는 체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참된 성령께서 여기 계십니다. 참되신 예수님, 그분은 죽지 않으셨습니다. 살아 계십니다. 죽지 않으셨습니다. 그분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조금 있으면 세상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나를 보리니, 내가 세상의 끝까지 너희와 함께, 심지어 너희 안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 저는 그것을 믿습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함께 모인 곳, 거기에 내가 그들의 한가운데 있으리라”라고 하신 말씀도 믿습니다. 여러분도 믿습니까? 그분이 그렇게 말씀하셨고, 저는 믿습니다. 저는 그분이 지금 여기 계신다고 믿습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분은 “내가 하는 그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믿습니까?
한번은 한 여자가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와 그분의 옷단에 손을 대었습니다. 그분께서 돌아서서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모두가 주위를 둘러보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분께서는 그 여자를 찾으시고 그 여자의 문제가 무엇인지 말씀하셨으며, 여자는 나았습니다. 그녀의 피 흘리던 병이 멈췄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바로 그 예수님께서 오늘 밤 대제사장이심을 믿습니다. 바로 그분입니다. 그분께서는 결코 실패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저녁들 가운데 하루는 치유 예배를 드리며 사람들을 앞으로 나오게 하려고 합니다. 제게 주어진 새로운 사역이 있습니다. 방금 말씀드린 것은 이전 사역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니, 기도 카드는 없지요? 아무도 기도 카드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기도 카드를 나누어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좋습니다. 이 메시지가 성령에게서 왔다고 믿으신다면... 이곳에 병든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제가 여러분을 모른다는 것을 아시는 분들은 손을 들어 보십시오. 좋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믿으십시오.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설교를 전하시는 그 성령께서 마음의 비밀을 아시는 바로 그 성령이신지 보겠습니다. 말씀이 임하는지... 하나님의 말씀이 선지자에게 임하는지 아닌지 보겠습니다. 선지자는 제가 아닙니다. 그분이십니다. 바로 그분입니다. 믿으십시오. 믿음을 가지십시오. 하늘의 주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위해 허락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분께서 이 일을 하시면, 제가 전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으시겠습니까? 계속 기도하시고, 잠시 아주 경건한 마음으로 계십시오. 잠깐 조용히 하십시오. 성령께서 누군가에게 역사하시는 것을 찾아보겠습니다. 계속 기도하며 이렇게 말씀드리십시오. “주 하나님, 저는 병들었고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주님, 정말 필요합니다. 제게는 반드시 주님이 계셔야 합니다. 주님이 제게 계시지 않으면 저는 죽고 맙니다.” 여기 앉아 계신 남자분. 선생님, 조금 전에 손을 드셨습니까? 손을 드셨지요? 하나님께서 선생님을 아신다고 믿습니까? 저는 선생님이 처음 뵙는 사람이지요? 맞습니까? 저는 선생님을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 하나님께서 선생님을 고치실 수 있다고 믿습니까? 어디가 잘못됐는지 제가 말씀드리면 믿으시겠습니까? 그런 경우에는 사실이어야 하겠지요. 하나님께서 제게 알려 주시면 치유를 받아들이시겠습니까? 그러시겠습니까? 궤양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궤양에서 나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좋습니다. 출혈성 궤양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그것 때문에 여러 곳에 가셨습니다. 메이오 형제 병원에도 가셨습니다. 그곳으로 가시는 모습이 보입니다.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맞습니다. 맞습니다. 그들은 선생님을 받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거절하지 않으십니다. 들으십니까? 알아보십니까? 그 말씀대로 행동하시겠습니까?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집에 가서 건강해지십시오.
하나님을 믿습니까? 지금 말씀을 전하시던 바로 그 성령께서 그것을 분별하시며, 말씀을 실제가 되게 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에게 무엇을 알려 주십니까? 그것이 진리라는 사실입니다. 바로 저기에도 궤양이 있는 분이 앉아 있습니다. 셔츠를 입지 않은 남자분, 검은 콧수염... 아니, 저기 콧수염이 있는 분, 셔츠가 없는... 제 말은 여기 위쪽의 셔츠 깃을 열어 놓고 넥타이를 매지 않은 분입니다. 제가 하나님의 선지자라고 믿습니까? 우리는 서로 처음 보는 사이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궤양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낫기를 원하시지요? 이 도시에 사는 분이 아닙니다. 아닙니다. 클리블랜드에서 오셨습니다. 맞습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주머니에 손수건 두 장이 있는데, 집에 있는 사랑하는 두 사람을 위해 제가 그 손수건에 기도해 주기를 바라며 저를 만나려고 하십니다. 맞다면 이렇게 손을 흔들어 보십시오. 그것을 가져다가 그 두 사람에게 얹으십시오. 그들도 나을 것입니다.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믿습니까?
어떤 영이 설교합니까? 분별하는 바로 그 영입니다. 여기, 저 뒤에 연세 드신 여자분이 앉아 계십니다. 자동차 사고로 다친 사위를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저 기둥에서 바로 앞쪽에 앉아 계십니다. 자매님, 그가 나을 것을 온 마음으로 믿습니까? 온 마음으로 믿으시면 받을 수 있습니다. 그 뒤에 앉은 체격이 큰 여자분은 고혈압이 있습니다. 바로 여기 뒤쪽, 기둥 옆에 앉아 계십니다. 온 마음으로 믿으신다면, 몸에 돋은 그 발진이 사라질 것을 믿습니까? 좋습니다. 그러면 받으실 수 있습니다. 아멘. 그분에게 손을 얹어 주십시오. 그렇습니다.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여러분은 그분을 사랑합니까? 건물 맨 뒤쪽, 저 뒤에 남자분이 계십니다. 따님을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조금 전에 제가 사고를 언급했는데, 따님도 사고를 당했습니다. 척추를 다쳤습니다. 맞습니다. 인척 되는 자매분도 목과 머리에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고치실 것을 믿습니까? 골든 선생님, 선생님께 말씀하시는 그 음성이 하나님의 음성임을 알아보시겠습니까? 좋습니다, 선생님. 그러면 일어서십시오. 좋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집에 가서 그들이 나은 것을 보십시오. 아멘.
동일하신 예수님,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입니다!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속속들이 받아들일 수 없습니까? 들을 수 있습니까? 알아볼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말씀대로 행동하십시오! 이곳에 있는 모든 병든 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위해 죽으시도록 예수님을 보내셨을 때 이미 여러분을 고치셨습니다. 그것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일어서서 그분을 여러분의 치유자와 구원자로 받아들이십시오. 손을 드십시오. 행동에 나서십시오. 휠체어에서든 어디에서든 일어나십시오.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입니다. 손을 들고 그분을 찬양하며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주 예수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들을 주께 데려옵니다. 주님, 주의 권능이 이 일을 허락하시기에 충분하게 하옵소서. 오늘 밤 이 건물 안에서 마귀의 모든 힘이 사람들을 놓아주게 하시고, 사람들이 치유받게 하옵소서. 사탄아, 내가 너를 쫓아낸다. 네가 속이는 자라는 죄목으로 너를 대적한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그분의 이름으로 온다. 성령께서 이들에게 기름부으시는 동안 제가 이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이들은 듣습니다. 하나님이심을 알아봅니다. 그 말씀대로 행동할 것입니다. 나와라, 사탄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들을 떠나라. 여러분 모두 치유받으십시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