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보더스 형제님, 대단히 감사합니다. 앉으셔도 됩니다. [누군가 브래넘 형제님에게 질문한다.] 네, 그렇게 해 주십시오. 오늘 저녁 이 아름다운 도시에서 대전도 집회를 시작하게 되어 참으로 큰 특권으로 여깁니다. 제가... 제가 저것에 너무 가까이 있군요. 저 밖에서도 잘 들리십니까? 뒤쪽에서도 잘 들리십니까? 좋습니다.
저희는 한동안 이곳에 오기를 고대해 왔습니다. 사역 초기에 이곳 오리건에서 사역하던 때가 생각납니다. 주님께서 얼마나 놀랍게 복을 주셨는지 모릅니다. 오늘 밤 이곳에도 1948년, 49년 무렵 그 대전도 집회에 참석하셨던 분들이 틀림없이 계실 것입니다. 포틀랜드와 애슐랜드와, 제 기억으로는 세일럼에서도 했습니다. 아, 그 밖에도 여러 도시에서 했는데 다 생각나지는 않습니다. 유진과 그랜츠패스에서도 큰 집회가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놀랍게 복을 주셨습니다. 저는 늘 이곳에 다시 와서 여러분이 놓치는 송어를 좀 잡고 싶었습니다만, 아직 기회가 없었습니다. 올 때마다 설교하는 사명을 띠고 오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제가... 아닙니다. 은퇴할 수는 없습니다. 사역자들은 은퇴하지 않지요, 형제님들? 도무지 은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언젠가 하루 시간을 내서 이곳 형제님들과 낚시하러 가야겠습니다. 오늘 내려오면서 보니 가는 곳마다 낚시 면허, 사냥 면허를 판다고 써 있더군요. 지치고 기진맥진한 설교자에게는 참 반가운 광경이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아름다운 도시에서 열흘간의 대전도 집회를 시작하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이 집회가 여러분과 저에게 큰 복이 되리라고 믿습니다. 저희가 여기 온 목적은 오직 저희 사역을 여러분에게 가져와, 여러분이 지금 힘써 지키고 있는 일을 더욱 돕기 위해서입니다. 곧 한 번 성도들에게 전달된 믿음입니다. 다른 무엇을 전하러 온 것이 아니라, 형제님들을 도우러 왔습니다. 저희 사역을 그분들의 사역과 합하여 하나님의 왕국을 향해 함께 나아가려는 것입니다. 저희는 주 예수님께서 올라가실 때와 똑같이 언젠가 육체의 몸으로 오실 것을 참으로 믿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때가 분명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그분의 오심을 알리는 온갖 표적이 나타나고 성경이 성취되는 것을 보면, 우리가 그토록 오래 기다려 온 그 복되신 분을 뵙기까지 얼마나 더 남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지난번 오리건에 왔을 때, 아니면 그중 한 번 왔을 때, 저는 F. F. 보즈워스 박사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참으로 용감한 분이셨습니다. 얼마 전 여든네 살에 돌아가셨습니다. 죽으신 것이 아니라, 그저 잠드신 것입니다. 제가 그분을 찾아뵈었습니다. 돌아가실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찾아뵈었습니다. 제가 도착했을 때, 연로한 그 선지자께서는 작은 침대에 누워 계셨습니다. 제가 문으로 들어가자 그 가느다란 두 팔을 내미셨습니다. 저희는 아프리카에서 큰 대전도 집회를 함께 마치고 돌아온 뒤였습니다. 저는 그분을 품에 안고 울며 외쳤습니다.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것의 기병들이여.” 그리스도를 위해 싸워 온 참으로 용감한 노병이었습니다. 제가 그곳에 있는 동안 여쭈었습니다. “보즈워스 형제님,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오시면서 언제가 가장 행복하셨습니까?” 그분은 “바로 지금입니다, 브래넘 형제님.”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떠나시게 될 줄 알고 계십니까?” 하고 여쭈었습니다. 그분은 “물론이지요.” 하셨습니다. 저는 “죽음이 바로 눈앞에 와 있다는 것을 아시면서 어떻게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습니까?” 하고 여쭈었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제가 오십 년 넘게 지키며 살아온 그 모든 것, 바로 그분께서 어느 순간 저 문으로 들어오셔서 저를 데려가시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는 「인생 찬가」가 떠올랐습니다. 위대한 이들의 삶은 모두 우리에게 일러 줍니다. 우리도 우리의 삶을 숭고하게 할 수 있으며, 떠날 때 뒤에 남길 수 있다고, 시간의 모래 위에 발자국을. 제게는 그것이 하나의 발자국이었습니다. 오십오 년 넘게 사역 현장에서 일하시고, 제가 태어나기도 오래전부터 설교하셨던 분에게, 인생길 끝에 이르러서도 예수님이 평생 어느 때보다 더 소중하셨다는 사실 말입니다.
그분이 주 예수님과 함께 계시러 가시기 약 한 시간 전, 주님께서 들어오셔서 그분을 데려가시기 전이었습니다. 그분은 침대에 누워 주무시다가 깨어나 방 안을 보셨습니다. 아내분과 아드님, 사랑하는 여러 사람이 들어왔습니다. 그분은 방 안을 둘러보시더니 몸을 일으켜, 삼사십 년 전에 먼저 떠난 친구들과 한 시간 넘게 악수하셨습니다. 악수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아, 당신 기억납니다. 졸리엣에서 열린 제 집회에서 그리스도께 나왔지요. 당신도 기억납니다. 몬트리올에 계셨지요. 그때 당신이...” 여러 해 전에 죽어 먼저 떠난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성도들은 죽지 않습니다. 그저 주님과 함께 있으러 가는 것뿐입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어머니와 아버지와 모두를 만나신 뒤, 돌아와 그곳의 작은 간이침대에 누우셨습니다. 두 팔을 포개고 눈을 감으신 채 주님을 만나러 가셨습니다. 참으로 용감한 분이셨습니다. 주님께서 오시기 전에 우리가 그 위대한 땅을 찾아갈 특권을 얻게 된다면, 그곳에서 친구들과 행복하게 지내며 영생의 지극한 기쁨을 누리시는 보즈워스 형제님을 뵙게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저희는 이곳의 귀한 형제님들, 여러 교단과 여러 갈래의 기독교 신앙에 속한 분들의 초청을 받고 이 도시에 왔습니다. 이 지역 사회와 이 도시와 주변 지역에 유익을 끼치고자 그분들과 힘을 합하러 왔습니다. 이 집회가 끝난 뒤에는 이곳에서 잘못을 저지르기가 더 어려워지고, 옳은 일을 하기가 더 쉬워지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을 조금 더 즐겁게 해 드리고자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지역의 병든 사람들을 고쳐 주시도록 믿음의 기도를 드리고, 형제님들과 함께 죄인들에게 부르심을 전하고자 합니다. 어쩌면 그들에게는 평생 마지막으로 듣는 부르심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이 구속받은 사람들만 갈 수 있는 그 복된 땅에 들어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저희가 여기 온 목적입니다. 가장 큰 목적은 여러분이 그것을 위해 준비되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그다음은 병든 분들을 위해 주님께 기도하여 그분들이 낫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교회에서 멀어졌던 분들이 자기 교회로 돌아가 믿는 사람들 가운데서 다시 교제를 나누게 하는 것입니다. 또한 믿음에서 물러나 떠나 버린 분들을 다시 교회의 귀한 교제로, 성도들 가운데로 돌아오게 하고 싶습니다.
매일 밤 여러분을 오래 붙들어 두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오늘 밤은 제가 이곳에 처음 온 날이라, 제가 평생 한 번이라도 뵌 분이나 저를 보신 분은 이곳에 대여섯 명도 안 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시다시피 첫날 밤은 대개 좀 어렵습니다. 여러분은 “저 설교자는 넥타이 맨 모양이 마음에 안 드는군.” 하실지도 모릅니다. 제 아내도 그렇습니다. 또 이런저런 것들이 있겠지요... 전에는 머리 빗은 모양이 마음에 안 든다고 말하곤 했습니다만, 지금은 그런 말은 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저 직접 만나 봐야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만나 봐야 합니다. 그러고 나면 하루 이틀 밤이 지나 서로 익숙해집니다. 그때 성령께서 임하셔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시작합니다. 제가 늘 말하듯, 그런 사소한 마찰과 자잘한 문제들이 다 정리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경배에 들어갈 준비가 됩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에게는 이를 위한 열흘의 시간이 있습니다. 이 시간이 큰일을 이루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것은 제 집회가 아니라 우리 집회입니다. 우리는 함께하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와 보라고 말하는 작은 노력까지도,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입시다. 사람을 보내 딱한 병자 한 분을 데려와 기도를 받게 하십시오. 길을 잃고 헤매는 불쌍한 죄인을 데려와 구원받게 하십시오. 믿지 않는 사람을 데려와 뒤에 앉아 집회를 지켜보게 하십시오. 어쩌면 그 사람이 태도를 바꿀지도 모릅니다. 기억하십시오. 완강한 불신자들 중에도 그저 복음을 듣다가 회심한 사람이 많습니다. 복음을 듣지 않고서야 어떻게 회심할 수 있겠습니까? “믿음은 들음에 의해 오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오느니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 귀한 말씀을 펴서 한 절이나 두 절을 읽겠습니다. 짧은 본문을 삼아 그에 관련된 내용을 살펴보려 합니다. 그리고 오늘 밤 빌리가 기도 카드를 나누어 주기로 했던 것 같은데, 나누어 주었습니까? 받으신 분이 계시면 손을 들어 보십시오... 나누어 주었군요. 좋습니다.
때로는 첫날 밤에 병자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기도 합니다. 그저... 저희는 딱 정해 놓은 틀에 박힌 순서를 따르지 않습니다. 그저 성령께서 인도하시도록 맡깁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도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의 영께서 인도하시도록 맡기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하게 하실지는 모릅니다. 다만 우리가 늘 충분히 기도하며 준비하고 있으면 됩니다. 과식하지 마십시오. 될 수 있는 대로 적게 먹고 기도하십시오. 전화를 걸어 누군가 오게 하시고, 가능한 한 모든 집회에 참석하십시오. 그렇게 힘쓴다면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나아가는 것보다 더 많이 우리 쪽으로 다가오시리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자, 그분의 말씀을 읽기 전에... 우리는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습니다. 이것이 참된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습니다. 이 안에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온 교회 여러분, 이것을 믿으십니까? 좋습니다.
불과 몇 주 전의 일입니다. 제가 사는 곳에서 골목을 따라 조금 떨어진 곳에 식료품 가게를 하는 분이 삽니다. 아주 독실한 가톨릭 신자입니다. 그분이 제게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왜 가톨릭 신자가 아니실까 하고 늘 궁금했습니다.” 제가 “저는 가톨릭 신자입니다.” 했습니다. 그분은 “아,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했습니다. 저는 “네, 저는 가톨릭 신자입니다.” 했습니다. 그분은 “우리 교회에서는 한 번도 뵌 적이 없고, 여기에는 형제님 교회가 따로 있잖습니까.” 하더니,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그럼 한 가지 여쭤보겠습니다. 가톨릭교회는 이 성경을 초기 가톨릭교회의 역사라고 믿지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톨릭교회를 세우셨고, 베드로가 초대 교황이었으며, 사도들의 행적이 초기 가톨릭교회의 행적이라고 믿는 것이 맞습니까?” 그분은 “바로 그렇습니다.” 했습니다. (물론 제 친족 중에도 가톨릭 신자가 많습니다. 저는 아일랜드계라 그들의 교리를 어느 정도 압니다.) 그분은 “그렇습니다.”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성경대로 살지 않는 이유는, 교황이 교회를... 교황에게는 성경에서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바꿀 권리가 있기 때문이군요. 그런 권리를 받았으니까요. 그리고 이것은 단지 초대 교회의 역사일 뿐이라는 것이지요.” 그분은 “네, 그렇습니다.”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자, 아시겠죠? 저는 제가 선생님보다 더 가톨릭다운 신자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요즘 가톨릭 신자들 중 한 분이어서 오늘날 가톨릭교회의 교리를 받아들이십니다. 하지만 저는 옛날 가톨릭 신자들이 기록하고 행한 것을 믿는 옛날 방식의 가톨릭 신자입니다. 그분들이 틀림없이 더 잘 알지 않겠습니까? 그분들은 주 예수님과 동행했습니다. 그리고 초대 교황인 베드로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 외에 다른 중재자는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저는 그 말씀을 믿는 편입니다.” 했습니다. 또 “저는 초기 가톨릭교회가 했던 것과 똑같이 가르칩니다. 그들이 성경에 기록한 것과 행했던 것을 그대로 가르치는 것입니다.” 했습니다. 그분은 “젊은이, 자네 말이 일리가 있군.”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참으로 사랑합니다. 함께 공부하고 읽는 것이 우리에게 참으로 양식이 됩니다. 저는 신학자가 아닙니다. 신학자가 될 만큼 교육을 받지 못했고, 신학자가 되려 하지도 않습니다. 저는 그저 주 예수님을 사랑하며, 그분이 걷기 원하시는 길을 걸으려 하고, 그분이 하게 하시는 말을 하려 하고, 병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뿐입니다. 그분은 지금까지 제게 복을 주셨고, 오늘 밤에도 우리에게 복을 주실 줄 믿습니다. 이제 그분의 귀한 말씀을 펴기 전에, 잠시 고개를 숙이고 이 말씀의 저자께 말씀드립시다.
은혜로우신 하늘의 아버지, 저희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께 나아옵니다. 사랑이 많으신 주님의 아들,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주님께 가까이 나아옵니다. 그분께서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이든지 구하라. 내가 그것을 행하리라.” 하셨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희가 주님께 나아갈 권리가 있음을 압니다. 그분의 이름을 통해, 십자가를 통해 나아와 자비와 죄의 용서와 병든 몸의 치유를 구합니다. 또 주님, 이 집회에서 주님께서 임재하시는 은혜가 밤마다 계속 저희와 함께하기를 구합니다. 이 시작과 이 부흥이 이 골짜기와 모든 교회와 모든 사람 가운데 일어날 옛날과 같은 부흥의 시작이 되게 하옵소서. 사람들이 주님을 배우려고 이 산들을 넘어 사방에서 오게 하옵소서. 주님, 허락해 주옵소서. 사역하는 형제님들을 축복해 주옵소서. 이들은 기름부음 받은 주님의 제자들로, 이곳을 굳게 지키면서 복음의 진리를 드러내고, 사람들의 호의를 구하지 않고 그것을 전하며 진리를 위해 서 왔습니다. 주님께서 그들에게 얼마나 복을 주셨는지 모릅니다. 주님, 이 집회가 그들에게 디딤돌이 되어, 그들의 집회와 교회와 성도들 가운데서 그들을 고무해 주기를 기도합니다.
이 집회들이 끝날 때 우리 가운데 주님의 영을 받지 못한 사람이 한 명도 없게 하옵소서. 우리 가운데 연약한 몸으로 다니는 사람이 한 명도 없게 하시고, 성령께서 모두를 고쳐 주옵소서. 주님, 허락해 주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떠나갔던 사람들을 다시 교제로 불러 주옵소서. 오늘 밤 우리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 내일 새날을 시작할 때, 엠마오에서 돌아온 사람들처럼 “그분께서 길에서 우리와 말씀하실 때에 우리 마음이 우리 속에서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말하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하셨던 것과 똑같은 일을 그들 앞에서 하셨음을 압니다. 다른 어떤 사람도 그렇게 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들을 안으로 들어오게 하시고 문을 닫으신 다음, 전에 하셨던 그 일을 행하시자 그들은 곧 그분이심을 알아보았습니다.
하나님, 오늘 밤 저희는 이 학교 강당에 들어왔으며, 이 장소를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학교와 교사들과 교장들과 이사들과 관계된 모든 사람을 축복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들이 신앙 집회를 위해 문을 열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안으로 들어와, 말하자면 세상을 문밖에 두었습니다. 오늘 밤 저희 가운데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하셨던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내 주옵소서. 그러면 주님께서 부활하신 주님이심을 알겠습니다. 주님, 그것이 저희 믿음을 굳세게 할 것입니다. 저희가 주님께 찬양을 드리겠습니다. 저희 구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옵나이다. 아멘.
이제 주님께서 말씀 봉독에 복을 더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요한복음 12장 20절에서 짧게 성경을 읽고자 합니다. 그 명절에 경배하러 올라온... 어떤 그리스 사람들이 있었는데, 바로 그 사람들이... 벳새다 출신의 빌립에게 가서 그에게 요청하여... 갈릴리의, 그에게 요청하여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님을 뵙기 원하나이다. 자, 우리의 주제는 이것입니다... 제가 전에 이곳에, 아니 오리건에 왔을 때부터 줄곧 제 주제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히브리서 13장 8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그리고 이제 여러분 중 많은 분에게 익숙한 이 짧은 성경 말씀, “선생님들, 우리가 예수님을 뵙고 싶습니다.”를 본문으로 삼겠습니다.
이 그리스 사람이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그는 사역자인 빌립에게 가서 주 예수님을 뵙게 해 달라고 청했고, 주 예수님의 사역자를 통해 주 예수님을 뵙는 특권을 얻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면, 빌립이 이 그리스 사람들을 주 예수님께 데려간 것처럼 오늘날 우리 사역자들도 사람들에게, 아니 사람들을 주 예수님께 데려갈 수 없겠습니까?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이치에 맞는... 성경적인 이야기입니다. 그분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면,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합당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성경이 잘못된 것을 말할 수 없다고 믿습니다. 성경에 있는 많은 것을 충분한 믿음으로 사람들에게 실제로 보여 줄 수 있기를 얼마나 바라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저는 결코 그 사람을 가로막지 않겠습니다. 제가 에녹처럼 어느 날 오후 주님과 함께 산책하다가 너무나 기뻐서 그대로 주님과 함께 본향으로 걸어 올라갈 수 없다 하더라도, 그만큼 믿음이 있어서 이 세상에서 죽거나 죽음을 맛보지 않고 주님과 함께 본향으로 걸어 올라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저는 그를 가로막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마지막 때가 가까워지는 것을 보며 오늘날 애쓰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주 예수님께서 예고하신 대로 마지막 때에 그분이 나타나시는 일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분이 하신 말씀은 무엇이든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은 유한합니다. 우리는 많은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저야말로 누구보다 많이 실수합니다. 우리가 유한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무한하시기에 실수하실 수 없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무엇인가를 약속하고,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정말 진심이라고 말해도,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할 수 있습니다. 상황이 달라지면 사정도 바뀔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이루실 수 없는 약속을 하실 수 없습니다. 모세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아니, 아브라함입니다. 그는 “믿지 아니함으로써 하나님의 약속에 관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오히려 강하여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하나님께서 이행하실 수 있음을 온전히 확신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성경 말씀은 약속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인간의 요소, 시간이라는 요소에 얽매여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인치와 피트와 야드와 마일, 치수와 날과 주와 시간과 달과 해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 우리의 능력과 지성에는 한계가 있지만, 하나님은 모든 면에서 무한하십니다. 그분은 모든 것을 아시며, 세상이 시작되기 전부터 모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오늘 밤 이곳에서 이 집회가 열릴 것도 알고 계셨습니다. 세상이 있기 전에 모든 것을 아셨습니다. 시작부터 마지막 때에 있을 일을 말씀하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그분을 하나님이시게 합니다. 다른 어떤 것도, 다른 누구도, 다른 어떤 존재나 사람도 결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 우리는 그분이 그처럼 위대하신데도 왜 우리가 그분을 더 많이 보지 못하는지 궁금해합니다.
오늘 밤 제가 시내에 내려가 각 교단의 교회를 찾아가서, 그 훌륭한 목사님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고 믿으십니까?” 하고 묻는다면, 그분은 “물론 믿습니다.” 하실 것입니다. 저는 “참 좋습니다.” 하겠지요. 그러고 나서 “그분이 여전히 예전과 동일한 구주이심을 믿으십니까?” 하고 묻겠습니다. 그분은 “물론이지요. 확실히 믿습니다.” 하실 것입니다. “다만 성령의 인격으로 계실 뿐, 오늘날에도 그때처럼 살아 계심을 믿으십니까?” “물론 믿습니다.” 그렇다면 그분이 죽으시고, 갈보리에서 주신 그 위대하고 거룩한 피를 통해... 그것은 유대인의 피도, 이방인의 피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피였습니다... 피는 남성에게서 옵니다. 이 경우에는 그 남성이 하나님이셨습니다. 처녀의 태 안에 혈구를 창조하셔서 하나님의 아들이 태어나셨고, 그 안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장막을 펴시고 사람들과 함께 거하셨습니다. 임마누엘입니다.
그 피를 통해 그분은 교회를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그 교회 안에 친히 사시면서 자신의 일을 계속하시기 위함입니다. 그것이 복음입니다. 그로써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우리는 어떤 복도 받을 자격이 전혀 없습니다. 그것을 얻을 만한 공로를 세우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공로 없이 받는 은혜로 우리에게 그분의 자녀, 그분의 아들딸이라 불리는 이 특권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죄를 고백할 때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우리에게서 세상을 깨끗이 씻어 내십니다. 성령으로 우리를 통해 일하시며, 자신의 일을 행하고 뜻을 이루시려는 것입니다.
그분은 땅에 계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하는 그 일들을 너희도 할 것이요, 이것들보다 더 큰...” 거기에 알맞은 번역은 “더 많은”입니다. 누구도 더 큰 일을 할 수는 없겠지만, 그분이 더 많은 곳에 계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한 사람 안에 나타나셨습니다. 이제는 온 세계의 교회 전체에, 어디에나 나타나십니다. 누구든 마음을 열고 주 예수님이 들어오셔서 자신을 통해 그분의 뜻을 이루시도록 맡기는 남자와 여자 한 사람 한 사람을 통해 하나님께서 일하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알파벳조차 몰라도 상관없습니다.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하나님께 겸손히 복종하는 마음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통해 그분의 뜻을 이루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많은 것을 알 필요는 없습니다. 오직 한 분, 곧 주 예수님을 알면 됩니다. 그분을 아는 것이 생명입니다. 영생을 얻으려면 오직 그분 한 분만 알면 됩니다. 성경책을 아는 것이나 신조들을 아는 것이 아니라, 그분을 아는 것이 영생입니다. 그분을 자신의 개인적인 구주로 아십시오. 그분은 여러분을 자신의 선하심과 자비로 채우시고, 여러분에게서 세상을 내쫓으신 분입니다. 그것을 내보내셨습니다. 멀리 보내셨습니다. 구약의 속죄 염소가 광야로 가서 죽어 없어지도록 보내진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이 죄를 짓고 예전에 하던 일들을 하게 만들었던 바로 그것이, 그분의 귀한 피로 여러분에게서 쫓겨났습니다. 그 피가 여러분을 거룩하게 하고 주님을 섬기도록 구별하셨습니다. 그분이 여러분을 통해 자신의 뜻을 이루시고, 여러분을 통해 일하시기 위함입니다. 그처럼 단순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 사역자와 손을 맞잡고 “우리는 이런 것들을 믿습니다.” 하겠습니다. 이제 제가 그 사람에게 “육체의 몸을 제외하고는 그분이 모든 면에서 동일하시다고 믿으십니까?” 하고 물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가 “글쎄요, 그분이 지금도 기적을 행하신다고는 믿지 않습니다.”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분은 동일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동일하셔야 합니다. 오늘날에도 그때와 똑같은 구주이십니다. 오늘날에도 그때와 똑같은 치유자이십니다. 선지자가 “그는 우리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셨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보십시오, 과거형입니다. 저는 사람에게 남을 고칠 마술적인 힘이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그 권능은 기도받는 사람 안에 있다고 믿습니다. 치유를 일으키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그 사람의 믿음입니다. 치유받는 모든 길 가운데 가장 근본적이고 은혜로운 길은 복음이 전해지는 것을 듣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것이 유일한 길입니다. 구원의 복음, 해방의 복음, 충만한 복음입니다. 온전한 사람을 위한 충만한 복음, 온전한 아들과 온전한 딸을 위한 충만한 복음입니다. 복음 전체, 그분이 말씀하신 모든 것과 행하신 모든 것과 약속하신 모든 것은 그것을 믿는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오라.” 감리교인, 침례교인, 오순절교인, 장로...
자, 오순절은, 저는 한 번도... 저는... 아시다시피 저는 침례교 사역자였고, 지금도 예전과 다름없는 침례교인입니다. 오순절은 교단이 아닙니다. 오순절은 체험입니다. 감리교인이든 침례교인이든 가톨릭 신자든, 누구나 받기 원하면 기꺼이 와서 받을 수 있는 체험입니다. 체험이므로 그것을 조직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행하신 어떤 일입니다. 아시겠죠? 어느 교회에 속해 있든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나 그것을 행해 주실 것입니다. 이 일에... 물론 우리에게는 교제 모임과 조직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주 좋습니다. 형제님들이 함께 모여 조직을 만드는 것은 참으로 옳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물론입니다. 하지만 제가 말하는 것은 “오순절교회에 와야만 그 체험을 얻을 수 있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원한다면 들에서도 얻을 수 있고, 저 숲에서도, 길모퉁이에서도 얻을 수 있습니다. 어디에 있든 어느 교회에 있든, 여전히 그리스도를 주리고 목말라 한다면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영의 충만한 권능으로 여러분을 채우시려고 여기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어디에 있든 어느 교회에 속하든 그것은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그분이 동일하시다면 반만 동일하시거나 삼분의 이만 동일하신 것이 아닙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그분의 말씀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조금 있으면 세상은”—거기에 쓰인 그리스어 ‘코스모스’는 ‘세상의 질서’를 뜻합니다—“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나를 보리라.” 교회를 말합니다. “이는 내가”—‘내가’는 인칭대명사입니다—“내가 세상 끝까지 너희와 함께, 곧 너희 안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 내가 세상 끝까지 너희와 함께, 곧 너희 안에 있으리라.” 그분의 죽으심과 묻히심과 부활이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아시겠습니까? 교회를 깨끗하고 거룩하게 하여 따로 구별하고, 그분의 권능으로 채워 그분이 하시던 것과 똑같은 일을 계속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채 계속해서 일하시는 것입니다.
이 본문에서 우리가 말하려는 것을 이끌어 내는 유일한 방법은 그분이 어제 어떤 분이셨는지 알아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모습이 오늘의 그분이며, 영원토록 그러하실 그분입니다. 그분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그날이 가까워지는 것을 보며, 제가 여러 도시를 지날 때 거리를 바라보고 신문을 보고 읽으며 방송 등을 통해 죄가 넘쳐 나는 소식을 들으면 몸서리가 쳐집니다. 주님께서 오실 그날은 계속해서 더 가까이,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잘못된 것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잘못된 것, 악한 것을 반대하여 말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정복하고 막아 낼 수는 없을 것입니다. 들을 귀가 있는 사람들만 들을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자는 내게 올 것이요. 내 양들은 내 음성을 듣느니라.”
이날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하나님께서 전국에 큰 부흥을 보내시는 것을 봅니다. 침례교인 여러분에게는 빌리 그레이엄 같은 분을, 감리교인 여러분에게는 잭 슐러 같은 분을, 오순절교인 여러분에게는 오럴 로버츠 같은 분을 보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참으로 큰일을 하셨습니다. 여러 나라 곳곳에서 큰 표적과 이적과 기적이 일어났는데도, 이 나라는 계속 죄 속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이것이 사실이라고 믿으십니까? 바로 우리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도무지 어찌할... 끊임없이 점점 더 악해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니 작은 이야기 하나가, 아니 약 육 개월 전 켄터키주 루이빌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납니다. 어떤 여인이 어린 아기를 데리고 루이빌의 오 센트, 십 센트짜리 물건을 파는 잡화점에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그 젊은 자매에게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여인은 작은 물건들을 집어 들며 “아가, 이것 봐. 아가, 이것 봐.” 했습니다. 그러다가 초조해져서 다른 진열대로 달려가 “아가, 이것 봐. 아가, 이것 봐.” 했습니다. 그런데 어린 아기는 그저 앉아서 멍하니 바라보고 또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그 여인은 또 다른 진열대로, 또 다른 진열대로 갔고 점점 더 초조해졌습니다. 마침내 딸랑거리는 작은 장난감을 집어 들었습니다. 그것을 흔들며 “얘야, 이것 좀 보렴.” 했습니다. 그런 것이면 무엇이든 어린아이의 시선을 끌 만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그냥 앉아서 바라보며 허공을 응시할 뿐이었습니다. 그 여인은 진열대 앞에 주저앉아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아, 안 돼. 이럴 수는 없어.” 하고 말했습니다.
가게 안에 있던 사람들이 무슨 일인지 알아보려고 그 여인에게 다가갔습니다. 그 여인은 말했습니다. “우리 아이가 한 일 년 전부터 허공만 멍하니 바라보기 시작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 봤어요. 의사에게도 데려갔어요. 의사는 좀 나아진 것 같다고 했지만, 나아지지 않았어요. 그 나이 또래 남자아이라면 관심을 보일 만한 작은 장난감들로 아이의 시선을 끌려고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 봤어요. 이 작은 것, 이 작은 말 수레에는 딸랑이는 방울이 달려 있어요.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이런 때면 어린 남자아이는 눈 속에서 울리는 이런 작은 방울 소리 같은 데 귀를 기울여야 할 텐데요. 그런데 이 아이는 그저 앉아서 허공만 멍하니 바라봐요. 전혀 나아지지 않았어요.” 그 어머니의 가슴은 아기를 위해 울부짖었습니다. 아기에게 정신적으로 뭔가 잘못된 것이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날 교회도 그와 아주 흡사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교회 앞에서 온갖 은사와 보여 주실 수 있는 모든 것을 흔들어 보이셨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그저 앉아서 허공만 바라봅니다. “아주 좋은 집회였지요. 로버츠 형제님이 훌륭한 집회를 하셨습니다.” “빌리 그레이엄 형제님은 말씀을 참 잘하십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혼을 뒤흔드는 부흥입니다. 깊이 파고들어 밤새 기도 모임이 이어지게 하고, 남녀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게 하며, 도시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 무엇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큰 표적과 이적이 계속 더해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은사를 보내어 우리 눈앞에서 흔들어 보이시는데 우리가 그것을 거절한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더 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 어머니가 자기 아기를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면, 오늘 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교회를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우리 앞에 그토록 많은 것들이 주어졌고, 이 나라에 위대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토미 오스본, 앨런 형제님, 아, 얼마나 많은 위대한 사람이 전국 곳곳을 다녔습니까? 이 마지막 때에 온갖 표적과 이적이 나타났습니다. 그런데도 교회는 멍하니 앉아서 “꽤 좋았어. 하룻밤 더 가서 다음 집회에는 어떤 일이 생기나 볼까.” 하고 말합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일하시는 것을 보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부르짖으며 우리가 할 줄 아는 모든 것을 해야 합니다. 이 마지막 날들의 복음에 우리의 관심을 기울입시다. 성경은 이 복음이 날마다 그렇게 되어 갈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루터 시대에 그가 성화를... 아니, 의롭게 됨을 가르쳤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것은 소수 가운데 임했습니다. 그분께서 성화를 통해 웨슬리의 감리교 시대로 들어오셨을 때 말입니다. 그러다가 사람들이 교회로 자리를 잡고 그것으로 전부라고 여기자, 하나님께서 오순절을 일으키셨습니다. 이제는 오순절마저 형식적이고 무관심해지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계속 나아가십니다. 결코 멈추지 않으시고 계속 나아가십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불기둥을 따라갔습니다. 그 불이 멈출 때마다 그들도 함께 멈추었습니다. 그들이 움직이지 않았다면 광야에 남겨졌을 것입니다. 불이 움직이는 곳으로 그들도 움직여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언제나 그렇게 합니다. 불과 함께 움직입니다.
마르틴 루터가 첫 종교개혁 때 그 불을 보고 가톨릭교회에서 나왔으며, 그 불 아래 자기 교단을 세웠습니다. 불이 성화로 옮겨 갔습니다. 그는 이미 그 아래서 조직을 만들었기에 그렇게 할 수가, 더 나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감리교인들이 그것을 받아들여 그 아래서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그들도 더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오순절이 와서 그들에게서 그것을 이어받았습니다. 이제 우리가 조심하지 않으면 불은 또다시 앞으로 옮겨 갈 것입니다. 불 아래 머물고, 불 아래서 경배하며, 영의 권능 가운데 경배합시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모든 무거운 것과 너무 쉽게 우리를 얽어매는 모든 죄를 떨쳐 버립시다. 죄가 무엇입니까? 불신입니다. “믿지 아니하는 자는 이미 정죄를 받았느니라.” 세상에는 오직 두 가지 죄,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믿음이고, 다른 하나는 불신입니다. 간음하고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그것은 죄의 속성이 드러난 것입니다. 여러분이 믿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합니다. 믿는 사람은 그런 일을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믿거나, 믿지 않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어디에서든 대개 집회에 참석하는 사람은 세 부류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 믿는 체하는 사람, 그리고 참으로 믿는 사람입니다. 어디에나 늘 이 세 부류가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참으로 믿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온 마음을 이 말씀에 쏟고, 이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각자에게 최종 판단 기준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저를 위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사역자인 저를 위해 해야 할 일입니다. 집회에서 성경과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신다면, 여러분은 제게 와서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렇게 해 주셔야 합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일들도 행하신다고 믿습니다. 그렇게 믿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므로 원하시는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일이 이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벗어나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일임을 제가 아는 한, 저는 그것으로 확신을 얻습니다. 그것을 붙들 수 있는 한 저는 어떤 것으로든 만족할 것입니다... 다른 어떤 것도... 제가 바로 그것과 함께할 수 있는 한, 그것만큼 저를 만족시킬 것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면, 오늘날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 알아보는 유일한 길은 돌아가서 어제 어떤 분이셨는지 알아보는 것입니다. 논리에 맞지 않습니까? 이치에 맞지 않습니까? 그러면 돌아가 봅시다. 제가 조금 전에 요한복음 12장을 읽었던 것 같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12장 20절과 21절이었습니다. 이제 요한복음의 첫 책으로 돌아갑시다. 여러분도 저와 함께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이번 주 내내 함께 공부하면 한 번에 너무 오래 머무르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방금 울린 소리를 들으셨을 것입니다. 제 시계였습니다. 스위스제 알람 시계가 있는데, 충분히 말했다고 생각되는 때에 알람이 울리도록 맞추어 놓습니다. 하지만 아직 시작도 못 했으니 그냥 꺼야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요한복음 1장으로 돌아가 알아봅시다... 여러분이 어떤 책을 읽는데 “메리와 존은 그 뒤로 언제까지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고 되어 있다면, 메리와 존은 누구입니까? 책의 처음으로 돌아가 책을 쭉 읽기 전에는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고 말한다면, 그분이 어떤 분이셨는지, 오늘날 어떤 분이셔야 하는지 우리가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돌아가서 어제 어떤 분이셨는지 보는 것입니다. 맞습니까? 자, 알아봅시다. 요한복음 1장을 펴겠습니다. 성경 구절 몇 군데를 인용할 테니 여러분이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밤에는 몇 장을 살펴보고, 내일 밤에는 좀 더 살펴보며, 그렇게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계속하겠습니다. 그분이 어제 어떤 분이셨는지 알아봅시다. 우리가 어제 그분의 모습을 정확히 보고, 그분이 오늘 우리 가운데 오셔서 똑같은 일을 행하시는 것을 본다면, 이곳의 병든 분은 누구나 일어나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걸어 나가야 합니다. “이제 다 끝났습니다.” 하고 말입니다.
그 이야기에 들어가기 전에 기억하십시오. 신유는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외워 주는 마법의 주문 같은 것이 아닙니다. 신유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이곳의 모든 병자가 이미 치유되었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범법으로 인해 부상을 당하셨습니다.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무슨 말씀이십니까?” 하실 것입니다. 좋습니다. 때로 저는 “이십 년 전에 구원받으신 분이 몇 분입니까?” 하고 묻습니다. 그러면 많은 손이 올라갈 것입니다. “이 년 전에 구원받으신 분은 몇 분입니까?” 그러면 많은 손이 올라갈 것입니다. 그렇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여러분은 천구백 년 전,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갈보리에서 죽으셨을 때 구원받았습니다. 단지 이십 년 전이나 이 년 전에 그것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것이 여러분의 구원입니다. 그 계획은 완성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의 구속에 관한 모든 계획이 완성되었으며, 인생 여정에 필요한 모든 복이 십자가에서 완성되었습니다. 거기서 “그는 우리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고 우리 불법으로 인해 상하셨습니다. 그가 징벌을 받음으로 우리가 화평을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습니다.” 이것을 믿으십니까? 바로 이것입니다.
이제 그분이 어떤 분이셨는지 알아보러 돌아갑시다. 요한복음 1장을 보면 안드레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탄생과 그분의 설교를... 마귀에게 시험받으러 광야로 들어가신 일을 알고 있습니다. 사십 일이 지난 뒤에 그분은 다시 나오셨습니다. 그때 안드레라는 사람이 자기 형제 베드로를 데려오려고 갔습니다. 그렇게 시몬 베드로를 데려왔습니다. (그때 이름은 아직 그렇게 불리지 않았습니다. 이름이 시몬이었지, 베드로는 아니었습니다. 베드로는 ‘작은 돌’이라는 뜻입니다.) 안드레가 그를 주 예수님 앞으로 데려왔습니다. 그때는 주님의 사역이 막 시작되던 때였습니다. 요한복음 1장입니다. 그를 주 예수님께 데려오자, 예수님께서는 그를 보시자마자 “네 이름은 시몬이요, 네 아버지는... 너는 요나의 아들이니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맞습니까? “네 이름은 시몬이요, 네 아버지의 이름은 요나이니라.” 그는 글도 모르는 어부였고, 성경은 그가 “배우지 못해 무식한 사람”이었다고 말합니다. 가톨릭교회의 교리에 따르면 초대 교황이었던 사람이 배우지 못해 무식했다고 성경에 쓰여 있는 줄 아십니까? 성경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는 배우지 못해 무식한 사람이었습니다.” 요한복음 4장입니다. 아니, 사도행전 4장입니다. (죄송합니다.) 그는 배우지 못해 무식한 사람이었지만, 사람들은 그가 예수님과 함께 있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습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자마자, 그는 곧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아보았습니다. 왜입니까? 왜 알아보았습니까? 왜냐하면... 이곳에 유대인이 계신다면 아실 것입니다. 성경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오실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맞습니까? 모세는 “주 너희 하나님께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라.”고 했습니다. 맞습니까? 그들은 이 메시아가 하나님이신 선지자로서 모세와 같은 선지자의 표적을 나타내실 줄 알았습니다. 그들이 기다리던 분이 바로 그 선지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시몬에게 “네 이름은 시몬이요, 너는 요나의 아들이니라.” 하시자, 그는 곧 그분이 자기들이 기다리던 메시아이심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뒤에 빌립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참으로 만나 크게 감격했습니다. 저는 사람이 한 번 그리스도를 만나면 평생 다시는 예전과 같을 수 없다고 조금도 의심 없이 믿습니다. 그분께는 다른 어떤 남자나 어떤 사람과도 다른 무언가가 있습니다. 한 번 그분을 만나 보십시오. 전에 그런 분을 만난 적이 없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돌아가서 “결코 아무도 이 사람처럼 말하지 아니하였나이다.” 한 것도 당연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말씀하시는 그분의 고요한 작은 음성을 한 번 들어 보십시오. 그 음성이 선지자를 이끌었습니다. 불이나 천둥이나 다른 어떤 것도 그의 주의를 끌지 못했지만, 그 고요한 작은 음성은 달랐습니다. 그는 얼굴을 가리고 굴 어귀로 나왔습니다. 그렇게 그리스도를 한 번 만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보십시오. 빌립은 주 예수님을 만나자 자기 친구들 모두를 생각했습니다. 그분께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그분을 만나면 여러분이 너무나 달라져서, 다른 모든 사람도 그 놀라운 교제를 누리기를 원하게 됩니다. 그 안에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아, 그것이 사람을 끌어당기고 마음이 간절히 사모하게 만듭니다. 그 귀한 보배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한 번 발견하면, 그것이 여러분을 북쪽의 얼어붙은 지역으로, 남쪽의 열대 밀림으로 이끌어 갈 것입니다. 온갖 마귀 숭배와 그 밖의 모든 것 한가운데로 들어가 원수의 손에서 한 혼을 구해 내게 할 것입니다.
그는 정통 신앙의 교회에 속한 친구가 있다는 생각이 곧 나서 그를 찾으러 나섰습니다. 여러분이 팔레스타인에 가 보시면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간 곳까지는 꼬박 하루가 걸린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산을 돌아가는 등 약 십오 마일을 걸어야 합니다. 저는 그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우리도 잠깐 길을 함께 가며 그의 말을 들어 봅시다. 그가 나다나엘의 집에 가서 문을 두드리고, 나다나엘의 아내가 문으로 나오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가 말합니다. “안녕하십니까? 나다나엘 형제님은 어디 계십니까?” “빌립 형제님, 오셔서 참 반갑습니다. 아마 과수원에 있을 거예요. 올리브나무들을 살펴보러 나갔거든요.” 그는 과수원을 지나갔고, 저 뒤 무화과나무 아래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물론 그는 그리스도인다운 예의를 갖춘 사람이었으므로, 기도가 끝날 때까지 가만히 서 있었습니다. 이것을 보십시오. 그는 곧장 달려들어 악수를 하며 이런저런 안부를 묻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면 마음에 불이 붙어서 예수님 외에 다른 것에는 시간을 쓸 수가 없습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누군가에게 그 이야기를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것입니다.
곧 어떻게 하는지 보십시오. 그가 말했습니다. “와서 우리가 만난 분을 보게.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님이시네.” “안녕한가?”라든지 “만사는 잘되고 있나? 올해 무화과 열매가 잘 열리나?”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닙니다. 메시지가 긴급했습니다. 그때 긴급했다면 지금은 어떻겠습니까? 복음이 전해질 시간이 아직 이천 년이나 남아 있던 그때에도 긴급했다면, 마지막 때인 오늘날에는 얼마나 더 긴급하겠습니까? 사교 활동이 너무 많고, 잔치도 너무 많고, 다른 일들도 너무 많습니다. 주 예수님의 참된 메시지의 핵심을 곧바로 전하는 일 외의 것이 너무 많습니다. “와서 내가 발견한 것을 보게. 와서 귀하신 성령을 체험하게. 그분이 내 삶에 들어오셔서 나를 변화시키셨고, 이전의 나를 회심시켜 지금의 내가 되게 하셨네.” 아, 이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빌립은 이 나무 아래서 나다나엘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와서 내가 만난 분을 보게.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님이시네.” 했습니다. 저는 정통 신앙을 지닌 이 훌륭한 신자가 일어나 팔레스타인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 내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빌립, 나는 자네가 착하고 정신이 바른 사람인 줄 알고 있네. 그런데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와서 나사렛 예수님을 보라’니?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겠나?” 저는 빌립의 대답이 평생 들어 본 대답 중 가장 훌륭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와서 보게.” 했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집에 앉아 비판하지 말고 와서 직접 보십시오. 주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성경기록들을 탐구하라. 너희가 그것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줄로 생각하는데 그것들은 나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들이니라.” 자, 그는 “와서 보게.” 했습니다.
저는 그들이 길을 따라 가는 모습을 상상합니다... 어쨌든 나다나엘은 기꺼이 가기로 했습니다. 아, 빌립이 주 예수님께서 침례받으실 때 성령이 그분 위에 내려오시는 것을 보았다는 이야기와, 그분이 광야로 나가셨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들리는 듯합니다. 빌립이 말했습니다. “처음에는 우리가 이 땅에 들어올 때 이스라엘 자손을 따라오던 바로 그 불기둥이었네. 그런데 가까이 다가오자 비둘기처럼 보였네. 그다음에는 세 가지 서로 다른 상징으로 나타났네. 그러고는 그분 안으로 내려왔고, 음성이 들려왔네.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그를 매우 기뻐하노라.’”
그런 다음 빌립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 들리는 듯합니다. “전에 우리가 생선을 사러 갔던 그 나이 든 어부를 아나? 자네가 영수증을 달라고 했는데, 그 사람은 글을 몰라서 영수증에 자기 이름도 쓰지 못했잖나?” “그래, 기억하네.” “그런데 바로 어제, 내가 떠나기 전에, 그 사람이 주 예수님 앞에 왔네. 자기 형제가 가서 데려온 거야. 그렇게 그를 데려왔는데, 주님께서 베드로를... 아니, 시몬을 보시더니 ‘네 이름은 시몬이요, 너는 요나의 아들이니라.’ 하셨네. 아, 나다나엘, 자네가 그분 앞으로 가면 ‘네 이름은 나다나엘이니라.’ 하셔도 나는 놀라지 않겠네.” “아, 잠깐만, 빌립. 그건 조금 너무 깊이 들어가는군. 그분은 결코 내 생각을 읽지 못하실 거야. 알다시피 나는 정신력이 강한 사람이네. 그분은 결코 내 생각을 읽지 못하실 거야. 난 절대 그런 걸 믿지 않겠네.”
그렇게 그는 주 예수님 앞까지 다가왔습니다. 틀림없이 그분의 말씀을 듣자마자, 지금까지 들어 본 어떤 사람과도 다르게 말씀하신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분은 권위를 가지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빌립과 나다나엘이 왔을 때 그분이 서서 말씀하고 계셨든, 기도 줄에 계셨든, 어떤 위치에 계셨든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눈길을 돌려 회중을, 아니면 기도 줄을, 어디였든 그쪽을 바라보시며 “이스라엘 사람을 보라. 그의 속에는 간사함이 없도다.” 하셨습니다. 어떤 비평가는 “거기가 팔레스타인이었으니 그가 이스라엘 사람인 줄 아신 게 당연하지.” 할지도 모릅니다. 그곳에는 그리스 사람도 있었고 아라비아 사람도 있었습니다. 모두 동방의 옷을 입었습니다. 그의 옷차림 때문도 아니고, 갈색 피부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아무런 차이를 만들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가 정통 신앙을 지닌 신자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을 보라. 그의 속에는 간사함이 없도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빌립은... 나다나엘은 잘 훈련받은 학자였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랍비여”—이는 ‘선생님’이라는 뜻입니다—“언제 저를 아셨습니까? 제게 간사함이 없는 줄 어떻게 아셨습니까?” 오늘날이라면 ‘정직하고 선한 사람’이라고 말하겠습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주님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나무 밑에 있을 때 내가 너를 보았노라.” 하셨습니다. 그것이 어제의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분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면, 그것이 오늘의 예수님이십니다. 그분께서 이렇게 하셨을 때 빌립이 무엇이라고 말했는지 아십니까... 아니, 나다나엘이 말입니다. 그는 “랍비여, 선생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선생님은 이스라엘의 왕이시니이다.”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내가 이것을 네게 말하였으므로 네가 믿느냐? 그러면 네가 이것들보다 더 큰 일들을 보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바로 이것입니다. 아시겠죠? 그는 그것을 믿었습니다. 메시아가 하나님이신 선지자, 곧 서서 예언하며, 앞날을 말하고 미리 보고 선포할 수 있는 분일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분은 임마누엘이실 것이었습니다. 그는 “랍비여, 선생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선생님은 이스라엘의 왕이시니이다.” 했습니다. 그는 믿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밤 그의 이름은 사람들 가운데 영원히 남아 있고, 그의 혼은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삽니다. 그는 처음에 알아보고 “랍비여, 선생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했기 때문에 영원히 살 것입니다.
물론 곁에 서 있던 사람들 중에는 그것을 믿지 않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많은 제사장이 곁에 서 있었습니다. 훌륭한 사람들, 종교적인 사람들, 선한 사람들이 곁에 서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기 회중에게 답을 해 주어야 했습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그것은 병자를 고치는 것보다 더 큰 기적이었습니다. 병자가 일어나는 일은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음속의 일을 알아보는 그것은 그런 식으로 일어날 수 없었습니다. 어떤 초자연적인 권능이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것을 설명하려는 대신 어떻게 했는지 아십니까? 그냥 마귀의 일로 분류해 버렸습니다. 그들은 “그는 마귀들의 통치자 바알세붑이다. 그것을 힘입어 이런 표적을 행한다.”고 했습니다. 바알세붑, 점쟁이라는 것입니다. 점치는 일이 마귀에게 속한다는 것은 누구나 압니다. 그것은 마귀이며 마귀의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는 마귀다.” 하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인 나를 대적하여 그렇게 말하는 것은 내가 용서하리라. 그러나”—[다른 말로 하면 이런 뜻이다]—“성령이 오셔서 같은 일을 하실 날이 오느니라. 누구든지 그것을 대적하여 한마디라도 말하는 자는 이 세상에서도 오는 세상에서도 결코 용서받지 못하리라.” 아시겠죠? 그때는 그것이 그들에게 새로운 일이었습니다.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죽으셨습니다. 이제 성령께서 여기 계십니다. 그다음 구절을 읽어 보십시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영을 부정한 영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니라.” 그런 것들을 아시고, 하나님이신 선지자가 하셔야 하는 대로 마음의 비밀에 관한 것을 드러내시던 하나님의 영을 두고, 그들은 말했습니다. “그는 악한 사람이다. 그 안에 악한 영이 있다. 어떤 바알세붑, 어떤 마귀가 그 안에 들어 있어서 저 사람들의 생각을 읽는 것이다. 그것이 그런 일을 하고 있다.”
아, 얼마나 끔찍한 죄입니까! 불신입니다. 그 사람들의... 그들의 생활에는 흠잡을 것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거룩하고 의로운 사람들이었으며, 제사장의 혈통에서 난 제사장들이었습니다. 레위인이어야 했습니다. 어떤 정해진... 혈통에서 태어나야 했습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와 증조할아버지, 그 위로 거슬러 올라가 모두 제사장이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알았습니다. 말씀을 한 글자 한 글자 정확히 알았으며, 어려서부터 밤낮으로 그 안에서 살았습니다. 그들의 삶을 두고 손가락질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느니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그들이 믿지 않았기 때문에 정죄하셨습니다. 가장 나쁜 일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존재하는 유일한 죄가 바로 불신, 그것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그들과 조금 더 가 봅시다. 이제 저쪽으로 가 봅시다... 사도행전... 요한복음 1장... 2장입니다. 요한복음 4장으로 가 봅시다. 그때 세상에는 세 부류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세상에도 세 부류의 사람, 세 혈통의 사람, 아니 세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노아의 세 아들에게서 나왔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믿는다면, 온 세상, 모든 혈통, 세상의 모든 사람은 그 세 자녀, 곧 함과 셈과 야벳에게서 내려왔습니다. 그 세 아들, 유대인과 이방인과 사마리아인입니다. 사마리아인들도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메시아가 오실 때에는 그분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오십니다. 이것을 믿으십니까? 저는 그분이 자신의 교회를 데리러 오실 때, 그분이 오시기를 기다리는 교회에 오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것이 그때와 같아지게 하지는 마십시오. “그분께서 자기 땅에 오셨어도 그분의 백성이 그분을 받아들이지 아니하였으나.” 하지만 그때 그분은 이 특별한 표적을 행하심으로 유대인들에게 자신을 알리셨고, 그들은 그분이 메시아이심을 알았습니다.
이제 그분은 사마리아를 거쳐 가셔야 했습니다. 사마리아는... 사역자들과 성경을 읽는 여러분은 사마리아 민족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아실 것입니다. 그들도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수가에 있는 그 우물로 오셨고, 정오 무렵 제자들을 보내 먹을 것을 구해 오게 하셨습니다. 거기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 여인이 평판이 나쁜 여자였다고 생각해 봅시다. 여섯 번째 남편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그 여인이 물을 길으러 우물로 나왔습니다. 여러분의 목사님도 틀림없이 이 이야기를 여러 번 설교하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분이 어제 어떤 분이셨는지 말씀드리려는 것입니다. 그래야 오늘날 어떤 분이실지 여러분이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유대인들에게 자신을 알리셨습니다. (다른 여러 대목도 나중에 살펴보겠습니다. 지금은 요점만 짚고, 몇 분 뒤에는 기도 줄을 부르려 합니다.)
이제 그분이 이 여인에게 오십니다. 아니, 이 여인이 물을 길으러 오는 것입니다. 정오 무렵입니다. 머리를 빗지 않고 풀어 헤친 채 나오는 여인의 모습이 보입니다. 동방의 여인들이 보통 그러듯, 어깨에 물동이를 메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머리에 물 오 갤런, 옆구리에 오 갤런, 이쪽에 또 오 갤런을 얹고 서로 이야기하며 걸어가도 한 방울도 흘리지 않습니다. 그만큼 완벽하게 균형을 잡습니다. 이 여인도 아마 그런 물동이를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어디 봅시다. 어쩌면 이 여인은... 밤새 밖에 있다가 막 들어왔기 때문에, 그래서... 아니면 늦잠을 잤는지도 모릅니다. 혹은 점잖은 여인들과 함께 우물에 올 수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 당시에는 그런 점에서 엄격한 구분이 있었습니다. 부정한 여인은 정결한 여인들과 어울릴 수 없었습니다.
어쨌든 그 여인은 우물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곳은 일종의 파노라마 같은 모습이었는데, 수가의 우물은 이런 모습입니다. 담 위로 덩굴이 자라 있었고, 사람들이 물을 길으러 오는 마을 우물이 있었습니다. 여인이 다가와 커다란 손잡이 두 개를 잡고 거기에 갈고리를 걸어, 도르래로 물통을 내려 물을 길으려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때 “여자여, 마실 물을 내게 가져오라.” 하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여인이 바라보니 우물 맞은편에 중년의 유대인 남자가 앉아 있었습니다. 어쩌면 실제 나이보다 조금 더 들어 보이셨을 것입니다. 그분이 서른 살쯤이었을 때 사람들이 쉰 살로 보인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당신은 아직 쉰 살도 채 안 된 사람인데, 아브라함을 보았다고 합니까?” 했습니다. 그분은 “아브라함이 있기 전에 내가 있느니라.”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그분은 겨우 서른 살인데도 쉰 살처럼 보이셨습니다. 그래서 그곳에 앉아 계신 모습이 조금 나이 들어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머리나 수염에 흰빛이 조금 섞여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큰 짐, 곧 세상의 죄가 그분의 어깨에 놓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그곳에 앉아 계셨습니다.
그 여인은 이 유대인을 보았습니다. 그때는 인종에 따라 서로 분리되어 지냈습니다. 예전에 북부와 남부에서 백인과 유색인이 분리되어 지냈던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여인이 말했습니다. “당신 같은 유대인이 사마리아 여자에게 그런 것을 부탁하는 것은 관례에 맞지 않습니다. 우리는 서로... 서로 상종하지 않습니다.” 돌아오는 음성을 들어 보십시오. “여자여, 네게 말하는 자가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네가 내게 마실 것을 구하였으리라. 내가 네게 주는 물을 받으면 너는 물 길으러 이곳에 오지 않으리라.” 여인은 “우물은 깊은데 선생님께는 물 길을 그릇도 없습니다.” 했습니다.
이 산에서 경배하는 것과 예루살렘에서 경배하는 것 등에 관한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얼마 뒤 그곳에 계신 예수님은... 그분이 그곳을 거쳐 가셔야 했던 것은 아버지께서 그곳으로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그때 그분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셨습니다. 무엇을 하고 계셨습니까? 그 여인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아내려 하셨던 것입니다. 그 문제를 알아내셨을 때...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아시는 분이 몇 분입니까? 물론입니다. 그 여인은 죄 가운데 살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가서 네 남편을 데리고 여기로 오라.” 여인은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 했습니다. 그분은 “네가 잘 말하였도다. 네게는 다섯 남편이 있었고, 그러므로 지금 함께 살고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라.” 하셨습니다. 그때 여인이 “이 사람은 바알세붑이구나.” 했습니까? 아닙니다. “이 사람은 분명... 뭔가 잘못됐어. 지독한 독심술에 걸린 것이 틀림없어.” 했습니까? 아닙니다. 그 여인은 오늘날 사역자들 중 절반보다 하나님에 관해 더 많이 알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여인은 “선생님이여, 제가 보니 선생님은 선지자이십니다.” 했습니다. 아멘. “제가 보니 선생님은 선지자이십니다. 우리 사마리아인들은 메시아께서 오시면 이런 것들을 말씀해 주실 줄 압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누구십니까?” 그분은 “네게 말하고 있는 내가 그니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만큼도 알지 못한다는 것이 참 안타깝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여인은 말했습니다. “우리는 압니다. 우리 사마리아인들은 압니다. 그 메시아가 오시면 하나님이신 선지자이실 것입니다. 그분께서 이런 것들을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그 여인은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아직 죄 가운데 있었지만, 그것을 보았을 때 무엇을 알아보아야 하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여, 제가 보니 선생님은 선지자이십니다. 메시아께서 오시면 이런 것들을 말씀해 주실 줄 압니다.” 했습니다. 그분은 “네게 말하고 있는 내가 그니라.” 하셨습니다. 여인은 물동이를 놓아두고 도시로 달려갔습니다. 그 여인의 말을 들어 보십시오. “와서 내가 행한 일들을 내게 말한 사람을 보십시오. 이분이 바로 그 메시아가 아니겠습니까?” 성경은 그 도시의 남자들이 여인의 말로 인해 그분을 믿었다고 했습니다. 아, 놀랍습니다!
그것이 어제의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자신을 알리셨습니다. 이방인들 가운데서는 단 한 번도 그런 식으로 자신을 나타내지 않으셨습니다. 왜입니까? 이방인들은 그분을 기다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방인들은... 그 당시 우리는 어깨에 몽둥이를 메고 우상들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메시아를 기다렸고, 사마리아인들도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천 년 동안 교회가 있는 세상에서 살아왔고, 마지막 날들에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분이 똑같은 일을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줄 아십니까? 이번 주 뒤에 그것을 살펴보겠습니다. 지금 하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저기에... 마치기 전에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경에서... 그분의 재림에 관해 말씀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바다가 울부짖고, 파도와 모든... 네 가지 일이 일어나고, 강력한 표적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소돔의 날들에 그러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도 그러하리라.” 하셨습니다.
그분께서 노아의 날들을 말씀하실 때,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알려 주셨다는 것을 알아보셨습니까? 영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지혜롭고 분별 있는 자들의 눈에는 그것을 숨기셨습니다. 이제 영적인 눈으로 보십시오. 영적으로 이해하십시오. 그분은 “노아의 날들에 그러했던 것같이 그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더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또 “소돔의 날들에 그러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도 그러하리라.” 하셨습니다. 자, 보십시오. 언제나 세 부류의 사람, 세 민족, 세 가지 서로 다른 상태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보십시오. 그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소돔의 죄인이 있었습니다. 그 아래 소돔에서 설교하던 미지근한 교인 롯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르심을 받아 나온, 택함받은 아브라함이 있었습니다. 지금 제 안에 신앙의 감동이 일어납니다. 형제여! 부르심을 받아 나온 사람들, 구별된 모든 사람들입니다. 교회는 ‘구별된 자들, 세상에서 부르심을 받아 나온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부르심을 받아 나온 아브라함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다소 고된 삶을 살며 박해와 조롱을 받았고, 광야의 상수리나무 그늘 아래 맨땅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메시지가 올 시간이 되었을 때, 한낮의 더위 속에서 밖을 내다보다가 옷에 먼지가 온통 묻은 세 사람이 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브라함은 다시 보았습니다. 뭔가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참으로 다시 태어난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영이 임할 때 그 영을 알아봅니다. 그렇습니다. “내 양들은 내 음성을 아느니라.” 아브라함은 재빨리 살펴보았습니다. 그들이 있는 곳으로 나가 말했습니다. “잠시 들르십시오. 이리 오셔서 상수리나무 아래 앉아 조금 쉬십시오. 제가 물을 좀 가져다가 발을 씻어 드리고, 빵 한 조각을 드리겠습니다. 그런 다음 길을 가십시오.”
그들은 들러서 앉았습니다. 낯선 땅에서 온 낯선 이들이었습니다. 아, 물론입니다. 아주 먼 곳에서 왔습니다. 그들은 나무 아래 앉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얼른 장막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들의 대화를 잠깐 들어 봅시다. “여보, 사라, 내가 여기 서 있는 것만큼이나 확실히 그분이 바로 저 밖에 서 계시오. 어서 가서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하시오. 가루를 잘 쳐서 곱게 만들고 저 화덕에 준비하시오. 빵을 좀 구워 주시오.” 그는 밖으로 달려 나가 이리저리 만져 보며 찾을 수 있는 가장 살진 어린 송아지를 골라 잡고 손질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나와서 그들에게 고기와 우유와 빵을 대접했습니다. 나이 든 아브라함이 파리 쫓는 나뭇가지를 들고, 말하자면 파리를 쫓는 모습이 보입니다. 이곳에 켄터키 출신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그 차이를, 파리 쫓는 나뭇가지가 무엇인지 아시는 분 말입니다. 없군요. 제가 고향에서 너무 멀리 왔군요. 아, 아니군요. 그렇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저도 그런 것을 들고 식탁 곁에 서 있던 때가 많습니다... 싱싱한 나뭇가지를 구할 수 없을 때면 어머니는 막대기에 종이를 달아 주곤 하셨습니다. 방충망이 없던 시절에 그것으로 파리를 쫓았습니다. 작고 낡은 오두막 문이 있고, 바닥도 깔려 있지 않았습니다. 구석에는 껍질로 만든 작고 낡은 잠자리가 하나 있었고... 물론 옥수수 껍질 말입니다. 저는 아버지가 옥수수 껍질로 만든 그런 면도솔을 쓰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옥수수 껍질을 가져다가... 면도솔을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렵게 살았습니다.
옛날 그때의 아브라함이 그곳에 서서 지켜보는 모습이 보입니다. 아시다시피 뭔가가 있는 것입니다. 그때 여자들은 오늘날처럼 뻔뻔하지 않았습니다. 그 시절에는 뒤에 머물며 자기 일을 돌보았기 때문에, 사라도 장막 안에 있었습니다. 오늘날 여자는 남편의 일과 그 밖의 온갖 일까지 전부 자신이 맡아야 한다고 합니다. 물론 여기 계신 자매님들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닙니다. 여러분은 그러지 않으시니까요. 저는 세상의 여자들을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라는 자기가 있어야 할 장막 안에 머물렀습니다. 아브라함이 말했습니다... 그들 중 한 분이 소돔 쪽을 바라보기 시작하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 중 두 분이 일어났습니다. [녹음 공백.] ...이 두 분은 메시지를 전하러 갔습니다. 그야말로 오늘날의 빌리 그레이엄과 같은 이들로, 회개를 전하러 간 것입니다. 회개는 언제나...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한 것 외에는 기적이 없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면 믿지 않는 사람의 눈이 멀게 됩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그분은 아래로 내려가 설교하셨고, 교회인 롯에게 가셨습니다. 그리고 롯과 함께 그... 죄를 깨닫게 하려 하셨습니다. 그들의 눈을 멀게 했는데도... 그들은 밤새 더듬으며 그들을, 이 사람들을 찾으려 했습니다. 그들은 더할 나위 없이 철저히 더럽혀져 있었습니다.
이제 남아 계신 이분을 보십시오. 바로 그것이 메시지입니다. 오늘날 명목상의 교회는 빌리 그레이엄 같은 이들과 그 교단의 위대한 사람들을 통해 자기들에게 주어진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바빌론에서 나오라는 메시지를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 그들이 듣지 않았던 것처럼 오늘날도 듣지 않으려 합니다. 하지만 잠깐 보십시오. 남아 계신 천사 한 분이 있었습니다. 그들 중 한 분이 뒤에 남으셨습니다. 그것이 사실임을 아시는 분이 몇 분입니까? 한 분이 택함받은 교회인 아브라함과 함께 뒤에 남으셨습니다. 그분이 무엇을 하셨는지 봅시다. 그분은 회개를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무엇을 하셨는지 봅시다. 예수님께서는 똑같은 일이 다시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점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 천사께서 하실 일을 하시고 아브라함의 눈앞에서 사라지신 뒤, 아브라함은... [녹음 공백.] 육체, 마지막 날들에 그분이 자신의 교회의 육체 안에서 행하실 일을 미리 보여 주신 것입니다. “소돔의 날들에 그러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도 그러하리라.” 교회의 육체 안에 사시는 하나님입니다. 무엇을 하십니까? 그곳에서 하셨던 일, 땅에 오셨을 때 하셨던 일입니다. 그분을 보십시오. 무엇을 하셨습니까?
그분은 그곳에 앉아 아브라함을 바라보셨습니다. 성경은 그분이 장막을 등지고 계셨다고 했습니다. 그분은 “아브라함아,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하셨습니다. 읽어 보셨습니까?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아브라함이 결혼한 줄 어떻게 아셨으며, 아내가 있는 줄 어떻게 아셨고, 그의 이름이 사라인 줄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것은 어떤 독심술이었습니까? 아브라함은 “당신 뒤에 있는 장막 안에 있습니다.” 했습니다. 그러자 천사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생명의 때를 따라 내가 너를 찾아오리라.” [우리가 아는 대로 스물여덟째 날입니다.] “내가...” 사라는 늙은 여인이었습니다. 그분은 “생명의 때를 따라 내가 너를 찾아오리니, 네가 사라를 통해 이 아이를 얻으리라. 내가 네게 얻을 것이라 말한 그 아이니라. 내가 내 약속을 이루리라.” 하셨습니다. 그분 뒤의 장막 안에서 사라가 속으로 웃었습니다. 맞습니까? 천사께서는 이쪽을 보신 채 “어찌하여 사라가 웃었느냐?” 하셨습니다.
“소돔의 날들에 그러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도 그러하리라.” 그분은 이방인 교회에 오실 것입니다. 이방인들에게는 이 시대 전까지 어느 시대에도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그것이 오늘날 여기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동일한 주 예수님께서 동일한 표적을 나타내시고, 동일한 성령께서 오늘날 교회 안에 사시면서 그분이 하셨던 바로 그 일들을 행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4장, 제 기억으로는 8절쯤에서 “나를 믿는 자는 또한 내가 하는 그 일들을 할 것이요.”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분이 어제 어떤 분이셨는지 봅니다. 그런 분이셨습니다. 사람들은 그분이 메시아이셨고, 메시아이심이 입증되었기 때문에 믿었습니다. 그분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면,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의 시대가 끝날 때 하셨던 것과 똑같이, 이 이방인 시대가 끝날 때도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시다면 그들을 위해서는 하셨지만 우리를 위해서는 하지 않으신 일이 있게 됩니다. 그러면 그분은 공정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분은 무한하시므로 자신의 계획을 바꾸실 수 없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이 이방인 시대에 우리를 그분의 임재 앞으로 오게 하시면서, 옛날 그들에게 하셨던 것과 똑같은 일을 우리에게 행하고 보여 주지 않으신다면, 그들에게는 하셨지만 우리에게는 하지 않으신 일이 있게 됩니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가 그렇게 되게 두지 않으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시는 이 시간에 와 있습니다. 그분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셨습니다. 죽어 계시지 않습니다. 살아 계시면서, 자신을 내어 맡겨 성령께서 움직이시게 하는 교회 안에서 어제와 똑같은 일을 이루고 행하십니다.
오순절 신자 여러분 중 많은 분이 성령 침례를 받고 방언을 하며 메시지를 전하고 그런 일들을 해 오셨습니다. 그것은 정확히 성경이 가르치는 것입니다. 정확히 옳습니다. 여러분은 예언도 하고 그 밖의 일들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것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을 보면서 왜 우리는... 우리는 거기에 안주해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교회를 조금 더 높이, 또 조금 더 높이 이끄십니다. 꼭대기에 가까워질수록 마침내 하나의 꼭짓점에 이르는 피라미드와 같습니다. 피라미드가 거절되었다는 것을 보셨습니까? 이집트에 가 보셨다면 아시겠지만, 주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놓일 돌은 결코 그 위를 덮지 못했습니다. 왜입니까? 머릿돌이 거절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돌이 무엇입니까? 돌 하나하나는 꼭대기에 다가갈수록 머릿돌에 정확히 맞도록 다듬어져야 했습니다. 이제 루터와 웨슬리와 오순절을 거쳐 올라온 교회는 머릿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과 교회가 서로 맞물릴 때까지 모양을 갖추어야 합니다. 할렐루야! 그리하여 교회 전체가 함께 완성되어, 그분의 이름을 믿다가 죽은 모든 사람이 부활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멘. 저는 오늘 우리가 이곳에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여전히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고 믿습니다. 여러분도 믿으십니까?
그분이 오늘 밤 이 가운데 오셔서 그때처럼 일하고 행하신다면... 여러분은 “저를 고쳐 주실까요?” 하고 묻습니다. 여러분을 고치실 수 없습니다. 이미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저를 구원해 주실까요?” 여러분을 구원하실 수 없습니다. 이미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분은 이곳에 자신이 계심을 보여 주실 수 있습니다. 저 뒤에 있는 어떤 성도가 방언으로 말하고 다른 사람이 통역하는 일이나, 그와 같은 다른 방법으로 여러분에게 입증해 주실 수 있습니다. 또는 선지자 한 사람이 일어나 정확히 참된 것을 말하거나, 성경에서 그분이 마지막 날들에 행하시겠다고 한 어떤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그분이 우리와 함께 사시고 우리 안에 계심을 믿을 수 있을 것입니다. 바울은 말했습니다. “너희가 모두 방언으로 말하는데 통역하는 사람이 없고, 배우지 못한 자들이 그 가운데 앉아 있다면, 그들이 나가서 너희가 모두 미쳤다거나 정신이 나갔다고 하지 않겠느냐?” 아시겠죠? “그러나 선지자 한 사람이 예언하여 마음의 비밀을 드러내면, 그들은 모두 엎드려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 계신다.’고 말하리라.” 맞습니까? 우리는 모두 그것이 사실임을 압니다. 초대 교회에 그것이 있었다면, 이 이방인 시대의 끝에 있는 이 교회에도 그것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마지막 때에 와 있습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고 믿습니다.
여러분은 “선생님, 예수님을 뵙고 싶습니다.” 하고 말합니다. 저는 오늘 밤 그분이 여러분 가운데 자신을 알리시기를 온 마음으로 믿고 바랍니다. 어떻게 하실까요? 그때와 같은 방식으로, 그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하실 것입니다. 그분은 그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마지막 날들에 그렇게 되리라고 말씀하셨고, 우리는 지금이 마지막 날들이라고 믿습니다. 마지막 날들의 표적이 곳곳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교회가 식어 가고, 모든 일이 지금처럼 흘러가고, 믿음에서 떨어져 나가는 일이 있으리라 하신 것과 말씀하신 모든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날에 이런 일들이 있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그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역을 시작하실 때 그 당시의 일에 관해서는 그다지 많이 말씀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알아보셨습니까? 그분은 땅에 처음 오신 일보다 다시 오실 일에 관해 더 많이 말씀하셨습니다. 이날에 어떤 일이 있을지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제 그분이 오신다면... 어떤 은사가 이곳에 있든, 저기에 어떤 은사가 있든 서로 함께 만나야 합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여인이 주님의 옷에 손을 대고 치유받은 것은 믿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있었습니다. 한 여인이 무리를 뚫고 나아갔습니다. 어쩌면 그 여인은... 그때 기도 카드가 있었다고 해 봅시다. (물론 없었지만, 있었다고 해 봅시다.) 그 여인은 주님께 갈 수 없었습니다. 그분께 다가갈 길이 없었습니다. 그분께 나아갈 아무런 수단도 없었습니다. 오늘 밤 회중 가운데도 이곳으로 올라와 기도받을 길이 없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저희는 번호가 돌아오는 대로 모셔야 합니다. 할 수 있다면 모두를 모시겠습니다. 그리고 그전에... 기도 카드를 가진 남자분과 여자분 모두, 카드를 잘 가지고 계십시오. 조만간 여러분의 차례가 올 것입니다.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영께서 인도하시는 그대로 하겠습니다.
그 여인은 어떻게 했습니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분의 옷에만 손을 댄다면... 나는 저분이 진리를 말씀하셨다고 믿어. 내가 치유받을 줄 알아. 물론이지. 그분이 그렇게 약속하셨으니까.” 그렇습니다. 그 여인의 믿음이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주님께 손을 대었을 때... 아, 모두가 그분을 만지고 있었습니다. 팔로 그분을 감싸기도 하고, “호산나!” 하고 외치기도 하고, 비판하기도 하고, 온갖 일이 있었습니다. 물론 또다시 뒤섞인 무리, 군중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모이게 하시는 집회에는 언제나 믿는 사람, 믿지 않는 사람, 믿는 체하는 사람이 나타납니다. 그들이 왔을 때... 그 여인은 그분의 옷에 손을 댄 뒤, 오늘 밤 여러분처럼 회중 속으로 들어가 아마 앉았을 것입니다. 서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모릅니다. 어쨌든 예수님께서 돌아서서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하셨습니다. 그러자 사도 베드로는 그분을 나무라기까지 하며 말했습니다.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모두가 주님께 손을 대고 있습니다.” 주님은 “그러나 내게서 효능이 나간 것을 내가 아노라.” 하셨습니다. 효능은 힘입니다. 그분은 힘이 빠지셨습니다. 여인이 그분께 손을 대자 그분은 힘이 빠지셨습니다. 그분은 회중을 둘러보시다가 여인을 찾아내셔서 그 여인의 혈루증에 관해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그 순간부터 여인은 자신이 치유받았다고 믿었으며, 실제로 치유되었습니다. 맞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면, 여러분은 그분이... 믿으십니까? 신약의 히브리서는 그분이 지금 높은 곳에서 하나님의 오른편 권능의 자리에 앉아 계시며, 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을 느끼실 수 있는 대제사장이시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이 이 기도 줄에 있지 않고 저기에 앉아 있더라도, 온 마음으로 믿으며 병들어 있다면 이렇게 말하십시오. “주 하나님, 저도 병들었습니다. 제게 도움이 필요합니다. 오 주님, 저를 도와주시겠습니까?” 그분이 무엇을 하시는지 보십시오. 물론입니다. 여러분이 온 마음으로 그분을 믿는다면, 그분은 대제사장이십니다. 제게 손을 대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저는 그저 은혜로 구원받은 죄인일 뿐입니다. 우리 가운데 다른 누구에게 손을 대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은혜로 구원받은 죄인들일 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영이 우리를 넘어 저 위로 나아가 이렇게 말하게 하십시오. “주 하나님, 우리가 마지막 날들에 살고 있음을 온 마음으로 믿습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말씀하신 표적들입니다. 이 사람이 성경에서 그것을 읽고, 성경에 근거하여 말했습니다. 저도 읽겠습니다. 여러 번 읽었습니다. 그것을 알고 있으며, 그것이 진리임을 믿습니다.” 그분이 오늘 밤 우리 가운데 오신다면, 저는 오실 것이라고 단정하지 않습니다만, 오신다면 여러분은 “오 주 하나님, 저도 그렇게 하게 해 주십시오.” 하십시오. 그러고는 그분의 옷에 손을 대 보십시오. 그분이 곧바로 돌아서셔서 어제 하셨던 것과 똑같이 행하시는지 보십시오.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기도합시다.
하늘의 아버지, 저희는 주님의 종이어서 참으로 행복합니다. 주님께서 살아 계심을 알아 참으로 기쁩니다. 이 중대한 날에 저희는 역사가 흘러가는 방향으로도 알고, 세상의 형편으로도 알고, 유엔과 여러 나라가 모양을 갖추어 가는 모습으로도 압니다. 우리가 이곳에 머무를 날이 그리 길지 않음을 압니다. 머지않아 누군가 잘못된 일을 저지를 것임을 압니다. 그 미사일 중 하나를 쏠 것입니다. 온 세계 곳곳의 큰 섬들에는 원자 미사일과 수소폭탄이 가득합니다. 가로세로 백칠십오 마일에 걸쳐 땅속 백오십 피트까지 미칠 폭탄들입니다. 그런 것들이 수천 개나 이 나라 전역과 세계 곳곳의 모든 도시를 한쪽에서 다른 쪽까지 겨누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처음으로 화면에 잡히면 다른 쪽에서도 발사할 것입니다. 세상은 그것을 견딜 수 없습니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나기 전에 우리가 떠날 것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오심은 얼마나 가까운 것입니까? 그런 일이 어느 때든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주님의 오심은 얼마나 더 그러하겠습니까?
아버지 하나님, 오늘 밤 이곳에 모인 저희가 작은 무리에 지나지 않음을 압니다. 그러나 주님, 저희가 한마음이 되어 있으리라고 믿으며 이곳에 있습니다. 저희는 믿고 있습니다. 저희가 지금까지 붙들어 온 이것을... 여기 단 위에는 제가 설교를 시작하기 훨씬 전부터 복음을 전해 온 사역자들이 앉아 있습니다. 회중 가운데도 마찬가지로 이날을 말하고 예언해 온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아버지, 저희는 끝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시간이 너무 짧습니다. 저희는 하룻밤에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고 애씁니다. 오늘 여기 있는 죄인이 내일 밤에는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님, 오늘 밤 그 혼을 붙잡아 주옵소서. 허락해 주옵소서. 오늘 밤 성령께서 오시게 하옵소서. 저희에게 기름부어 주시고, 회중에게 기름부어 주시고, 단 위의 사역자들에게 기름부어 주시며, 주님의 합당하지 못한 종인 저에게 기름부어 주옵소서. 주님, 저희를 사용하셔서 주님께서 이루시겠다고 약속하신 말씀을 성취해 주옵소서. 주님은 “내가 하는 그 일들을 너희도 할 것이요. 조금 있으면 세상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셨습니다. 주님, 그렇습니다. 이 집회를 거리마다 곳곳에 알렸습니다. 그런데도 세상은 여전히 제 갈 길을 갑니다. 물이 제 높이를 찾아 스며들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더위를 뚫고 와서 오늘 밤 이 작은 건물에 앉아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주리고 목말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에 관해 더 알기를 원합니다. 저는 이곳에 서서 주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주님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심을 전하며 그들을 격려했습니다. 그들이 주님을 갈망한다면 주님은 그들을 구원하시려고 여기 계십니다. 치유를 갈망한다면 주님은 그들을 고치시려고 여기 계십니다. 주님께서 친히 이곳에 임재해 계시며, 그들이 믿으면 그 임재가 그들을 고칠 것입니다. 그들이 믿으면 그들을 구원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 하나님, 오늘 밤 오셔서 그때 하셨던 것과 같은 일을 행해 주옵소서. 조금 전에 말씀드렸듯, 그 일은 엠마오에서 돌아오던 이들에게 증거가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신 예수님이심을 그들에게 입증했습니다. 다른 분이 아니라, 동일한 그분이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하셨던 것과 똑같은 일을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살아 계심을 알았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오늘 밤 이곳에는 아직 이것을 체험하지 못한 남녀가 있을지 모릅니다. 오늘 밤 체험하게 하옵소서. 주님, 주님의 존귀와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교회의 다른 이들과 함께 저 자신을 주님께 맡기오니, 주님의 존귀를 위해 저희를 사용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제가 병든 사람을 낫게 할 길이 있다면 반드시 그렇게 하겠습니다. 기꺼이 그렇게 하겠습니다. 제게는 치유하는 능력이 없습니다. 다른 누구에게도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사람에게 말입니다. 의사에게 있다고도 믿지 않습니다. 치유는 하나님께 있다고 믿습니다. 의사에게는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무엇을 옮겨 내거나, 이를 뽑거나, 꿰매거나, 충수나 농양이나 무엇이든 떼어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직을 만들어 내지는 못합니다. 약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연이, 하나님께서 그것을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모두 하나님에게서 옵니다. 팔이 부러지면 의사에게 가서 뼈를 맞추게 하십시오. 그러나 의사가 고치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맞출 뿐입니다. 치유는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그분이 고치십니다. 뼈를 낫게 하는 칼슘과 그 밖에 뼈에 필요한 것을 공급하십니다. 오늘 밤 이곳에 병든 분이 몇 분 계십니까? 병들어서 몸의 치유가 필요하신 분은 손을 들어 보십시오. 회중의 절반이군요. 제 아들이 기도 카드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모두를 한꺼번에 부를 공간은 없습니다. 그러니 몇 분만 부르고, 나중에 나머지 분들을 모시겠습니다. 어쩌면 오늘 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내일 밤이나 그다음 밤, 또는 주님께서 움직이실 때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저는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그분이 행하실 것이라고 단정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분께 달려 있습니다. 제가 그렇게 되리라고 보장할 방법은 없습니다. 그러나 한 번에 오십만 명이나 모인 자리에서도 그분은 지금까지 한 번도 저를 실망시키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밤에도 그러지 않으실 것입니다. 저는 그러지 않으시리라고 확신합니다. 이제 기도 카드를... 기도 카드에는 번호가 적혀 있습니다. 1, 2, 3, 4, 5, 그런 식으로 번호가 있습니다. 모두를 세울 수는 없습니다. 아마 1번부터 시작했을 것입니다. 아마 1... 그 아이는 어디 있습니까? 기도 카드 1번을 가지신 분 계십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어디 봅시다. 아이가 여기 없군요. 기도 카드 1번이 있습니까? 1번을 가지신 분 계십니까? 아마 제가... 아마 시작을... 아, 여기 이 흑인 여성분입니까? 좋습니다. 이리로 오십시오. 바로 이쪽으로 돌아오십시오. 기도 카드 2번, 가지신 분은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저 남자분이십니까? 선생님, 바로 이쪽입니다. 기도 카드 3번은요? 좋습니다. 이리로 오십시오. 4번은요? 4번? 좋습니다. 5번은요? 기도 카드 5번을 누가 가지고 계십니까? 가지고 계신 분은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여기 이 여자분이 가지셨습니까...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한 분씩 부르는 것은 귀가 들리지 않아 못 듣는 분이 계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6번? 그러면 오십시오. 일어나실 수 없다면, 저희에게... 여기 서 계신 분들이 안내위원이십니까? 좋습니다. 오실 수 없으면 이분들이 옮겨 드릴 것입니다. 좋습니다. 6번, 7번? 가능하면 얼른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기도 카드를 보십시오. 7번? 좋습니다. 8번? 8번? 기도 카드 8번? (본문 누락)
기도 카드를 받으시면 본인이 가지고 계십시오. 가져가서 이웃에게 주지 마십시오. 이웃도 기도를 받으려면 직접 와서 설명을 듣게 하십시오. 기도 카드는 서로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러면 줄에서 나오셔야 합니다. 아시겠죠? 직접 말씀을 들으셔야 하고, 직접 오셔야 합니다. 차례를 놓치셨다면 저희가 여러분의 번호를 불렀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8번은 여기 없습니까? 카드를 받고 건물 밖으로 나가지 마십시오. 카드를 가지고 여기 계십시오. 좋습니다. 8번, 9번? 9번? 기도 카드를 가지신 분... 좋습니다. 그 여자분을 데려오십시오. 10번? 11번? 그렇습니다. 11번? 12번? 12번? 12번은 없습니까, 11번이나 12번? 13번? 13번? 13번은 없습니까? 14번? 14번? 13번? 저 여자분이 13번을 가지고 계십니까? 좋습니다. 뭐라고요? 좋습니다. 13번, 14번? 14번? 15번? 이렇게 부르는 이유는... 여기는 경기장이 아닙니다. 교회입니다. 아시다시피 여러분이... 집회에 가 보셨다면 이런 모습을 보셨을 것입니다... 아, 서로 뒤엉켜 밀고, 참으로 불경스럽게 행동합니다. 저희는 그런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복음에 대한 경건함과 존중을 원합니다.
15번, 그분 오셨습니까? 15번? 16번? 17번? 18번? 19번? 그게 전부입니까? 몇 장을 나누어 주었습니까? 오십몇 장... 그렇군요. 어쩌면 조금 부끄럽고 주저되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저기 서 계시게 하십시오. 좋습니다. 이제 모두 경건하게 계십시오. 아무도 돌아다니지 마십시오. 경건하게 계십시오. 과학으로 촬영한 주님의 천사의 사진을 보신 분이 몇 분입니까? 바로 건물 위에 계신 모습 말입니다. (레오, 그것들을 가지고 있니? 레오?) 그들이 촬영했습니다. 워싱턴 D.C.에 있습니다. 저작권도 등록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사진에 찍힌 유일한 초자연적 존재이며, 이스라엘 자손을 인도하던 동일한 불기둥입니다. 최근에는 바로 아래 캘리포니아에서도 한 장이 촬영되었습니다. 그분이 단에 계실 때였습니다. 이제 그분은 그저...
예수님께서 “나는 하나님에게서 왔고 하나님께로 가노라.” 하셨습니다. 그분이 이렇게 말씀하신 것을 아시는 분이 몇 분입니까? 하나님에게서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오셨을 때 어떤 분이셨습니까? 언약의 천사이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압니다. 그분은 불타는 떨기나무 안에 계시던 불기둥이셨습니다. 맞습니까? 몇 분이나 믿으십니까? “아멘.” 하십시오. 좋습니다. 그분이 죽으시고 다시 일어나 아버지께 돌아가신 뒤,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바울을 만나셨을 때 어떤 모습이셨습니까? 동일한 불기둥, 바울의 눈을 멀게 한 빛이셨습니다. 아시겠죠? “나는 하나님에게서 왔고 하나님께로 가노라.” 그리고 바로 그 예수님께서 기계의 눈에까지 나타나셨습니다. FBI의 지문 및 문서 부문 책임자인 조지 J. 레이시가 그 사진을 조사했을 때 “빛이 렌즈에 닿았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 증언을 남겼고, 기록하여 자기 이름으로 서명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브래넘 씨, 저도 한때 당신을 비판했습니다. 심리 작용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그 사람들의 생각을 읽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카메라의 기계적인 눈은 심리 작용을 찍지 못합니다. 빛이 렌즈에 닿았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 큰 사진입니다. 그들은 그 뒤에도 네다섯 번 더 촬영했습니다. 얼마 전에는 독일에서도 촬영했습니다. 서로 다른 세 장의 사진으로, 내려오실 때와 기름부으실 때와 떠나실 때의 모습입니다. 독일에서도 조사한 뒤 똑같이 말했습니다. 독일과 스위스에서 말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그것은... 친구 여러분, 우리는 교회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 예수님의 임재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이 집회는 여러분의 집회입니다.
저기에 계신 분들 중 저와 처음 만나는 분이 몇 분입니까? 제가 모르는 분 말입니다. 손을 들어 보십시오. 제가 여러분을 모르고, 여러분에 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아시는 분은 손을 들어 보십시오. 여러분은 자신이 병들었고... 아마 온 회중이 그렇군요. 제가 보기에는 이곳에 제가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제 아들과 보더스 형제님... 저기 저 사역자 형제님은 만났습니다. 전에 뵌 것 같은데 정확히 어디서인지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계속 머릿속으로 떠올려 보고 있었습니다. 그 외에는 아무도 모릅니다. 기도 줄에 계신 분들 중, 제가 여러분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아시는 분이 몇 분입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기도 줄에 계신 여러분, 저는 여러분과 처음 만납니다. 저도 손을 듭니다. 저는 저분들 중 누구도 모릅니다. 여기 제 성경도 놓여 있습니다. 이분들은... 어쩌면 병들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저는 모릅니다. 재정적인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고... 무엇인지 모릅니다. 가정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모릅니다. 그러나 주 예수님은 아십니다. 맞습니까?
저기 계신 분들 중 기도 카드는 없지만 병들어서 예수님께서 고쳐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 몇 분입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곳곳에 계시는군요. 정말 어디에나 계신 것 같습니다. 아시겠죠? 좋습니다. 그저 믿음을 가지시고, 이제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그저 믿음을 가지십시오. 주님께서 오셔서 사람들에게 복을 주시기 시작하면 “주님, 저도 그렇게 해 주십시오.” 하십시오. 그리고 단 위에서 하시는 일을 여러분에게도 하시는지 지켜보십시오. 사람들 몇 분을 이곳으로 모시는 것은, 모든 사람이 바라보는 바로 이 단 위에서 그 일을 볼 수 있게 하려는 것뿐입니다. 자, 여기 이 여자분입니다. 주님께서 오늘, 이 밤에 지난날과 똑같은 일을 행하신다면, 그분이 이곳에 계심을 믿으실 분은 손을 들어 보십시오. 아, 감사합니다. 그 믿음을 계속 유지하시면 앞으로 열흘 동안 이곳에서 큰 집회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 믿음이 계속 움직이게 하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이 그렇게 하시자마자 제게서 무언가가 올라왔습니다. 아시겠죠? 바로 그때 기름부음이 제게 내려왔습니다. 아시겠죠? 지금 그분이 여기 계십니다. 주님께서 임재해 계십니다.
오늘 밤 제가 참으로 기쁘게 생각하는 것은... 여기 서 계신 분이 흑인 자매님이시니, 제가 방금 말씀드렸던 이야기로 돌아가게 되는군요. 요한복음 4장에는 남자와 여자가 만나는 장면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유대인, 한 사람은 사마리아인으로, 서로 다른 두 민족의 사람이 평생 처음 만난 것입니다. 맞습니까? 믿으십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그렇습니다. 그들은 처음 만났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인에게 말씀하시며 마실 물을 달라고 하셨습니다. 여인과 대화를 시작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여인의 영과 접촉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아시겠죠? 접촉하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그분은 그곳을 거쳐 가셔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그쪽으로 보내셨습니다. 그때 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다음 장으로 넘기시면, 어쩌면 내일 밤에 살펴보겠지만, 우물에 있던 사람... 다섯 행각에 있던 사람이 나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예입니까? 그분은 다리를 저는 사람들과 걷지 못하는 사람들과 눈먼 사람들과 몸이 오그라든 사람들을 지나쳐 그 한 사람에게 가셨습니다. 그가 그런 상태로 있었음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아버지께서 그분을 보내셨던 것입니다.
그러고는 돌아서서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5장 19절입니다. 사람들은 왜 모두를 고치지 않으셨느냐는 등의 질문을 했고, 이 사람이 안식일에 자기 침상을 들고 간 것을 비난했습니다. 주님은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은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맞습니까?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무엇을 해야 할지 환상으로 보여 주시기 전에는 단 한 가지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이 성경 말씀입니까? 들어 보십시오. 제가 인용하겠습니다. 요한복음 5장 19절입니다. “진실로 진실로”—이것은 ‘틀림없이, 틀림없이’라는 뜻입니다—“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느니라. 오직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는 대로”—듣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입니다—“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지금까지 일하느니라.” 다시 말해 그분은 “아버지께서 무엇을 하라고 먼저 환상을 보여 주시는 것을 보기 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노라. 그러고 나서 행하노라.” 하신 것입니다.
지난번 저녁에 람사 성경의 람사 박사님을 만났을 때, 그분은 “이 미국 사람들은 도대체 왜 이럽니까?” 하셨습니다. 저는 “모르겠습니다.” 했습니다. 성경의 칠십 퍼센트가 환상인데도 사람들은 믿지 못합니다. 지금은 사마리아에서와 똑같이 서로 다른 두 민족의 사람이 있습니다. 저는 아일랜드계이고, 이분은 아프리카계입니다. 우리는 파노라마 같은 이 작은 장면 속에서 두 사람으로 처음 만납니다. 그 당시에는 인종 간 분리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앞에서는 사람의 피부색이 아무 차이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을 그 여인에게 곧 알려 주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아담과 이브라는 한 가족에게서 나왔습니다. 우리가 살던 나라가 우리의 색깔을 바꾸었습니다. 노란색, 갈색, 검은색, 흰색 말입니다. 그런 것은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는 서로 수혈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피에서 모든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믿으십니까?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은 더운 나라에서 살고 다른 사람은 추운 나라에서 사는 등, 그런 환경에 적응하면서 피부색이 달라진 것입니다. 그것은 피나 혼이나 그 밖의 어떤 것과도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영과 진리로 자신을 경배할 사람들을 찾으신다는 것을 그 여인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이 여인과 저는 서로 모르는 사이입니다. 저는 평생 이분을 본 적이 없습니다. 아마 이분도 평생 저를 본 적이 없을 것입니다. 이제 우물가의 여인과 우리 주님처럼 이곳에서 처음 만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여전히 동일하시고, 그분이 만일... 이분이 병들어 있고 제가 “자, 자매님, 병드셨군요. 이리 올라오십시오.” 한다고 합시다. 올라오시면 손을 얹고 “내가 악한 영을 내쫓는다.” 하거나, 발을 구르거나, 무엇을 하든 말입니다. “사탄아, 이 여자에게서 나와라. 자매님, 집으로 가십시오. 나으십시오.” 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옳을 수 있습니다. 성경적입니다. 물론입니다. “그들이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내쫓으리라.” 많은 형제님이 그런 사역을 하고 계시며, 저보다 훨씬 큰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오럴 로버츠 형제님이 그렇습니다. 제 사역은 미국에서는 잘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해외에서는 받아들여집니다. 그곳에서는 참으로 힘 있게 나아갑니다. 저는 한 번의 초청으로 철저한 이교도 삼만 명이 그리스도께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단 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였습니다. 단 한 사람에게 말해 주는 일, 기적이 행해지는 것을 본 것입니다. 남아프리카의 더반에서 담요를 두른 원주민 삼만 명이 자기 우상을 땅에 내리쳐 부수고 그리스도께 나왔습니다.
우리는 서로 모르지만, 주 예수님은 이분을 아시고 저도 아십니다. 그분이 이분에게 과거에 한 일이나 앞으로 하려는 일, 또는 제가 모른다는 것을 이분이 알고 있는 어떤 일을 말씀해 주신다면, 분명히 과거에 어떠했는지 알려 주실 수 있는 분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아실 수 있습니다. 맞습니까? 성경에서 일어났던 것 같은 어떤 일이 이분에게 그것을 말해 준다면 얼마나 더 큰 일이겠습니까? 그분이 그렇게 하신다면, 동일한 주님이심을 믿으시겠습니까? 믿으실 것입니다. 그것이 여기 서 있는 여러분의 형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아십니다. 저는 그저 제 영을 내어 맡겨야 합니다. 이 마이크와 같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시기 전에는 소리를 낼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알겠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셔야 합니다. 이제 제가 자매님과 대화하는 것만으로 하나님께서 제게 알려 주신다면... 네, 그렇습니다. 저는 자매님의 영과 접촉하려고 합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방금 회중 쪽에서 그렇게 스쳐 왔는데, 그렇습니다.
그분이 자매님에 관한 어떤 일, 여기 오신 이유를 알려 주신다면, 우물가의 여인이나 혈루증을 앓던 여인 같은 어떤 일을 알려 주신다면, 자매님은 온 마음으로 믿으실 것입니다. 저와 이 여인이 이곳에 서 있고,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이며, 지금 이 순간까지 제가 평생 이분을 본 적이 없다는 것을 아시면서, 회중 가운데도 믿으실 분이 몇 분입니까? 주님께서 그렇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그렇게 하실 것을 믿고 바랍니다. 그분이 그렇게 하시면 여러분에게 믿음이 생길 것입니다. 그분이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여러분에 관해 아신다는 확신을 얻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에 관해 아신다면 저기 계신 모든 분에 관해서도 아십니다. 그것은 그분이 이곳에 계심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사람이 그분을 받아들여 낫게 되지 않겠습니까? 또는 자신의 구주로 받아들여 구원받게 될 것입니다. 이제 아직 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분이 계시다면,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곳의 모든 영을 붙잡으러 왔습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고 있는 이 여인은... 이분은 극심한 신경과민으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정말 극도로 신경이 예민한 상태입니다. 맞습니까? 맞으면 손을 들어 보십시오. 이제 믿으십니까?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분에게 무엇인가를 말했습니다. 이분이 뭔가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손을 비틀어 쥐려는 것 같기도 하고, 무슨 일로 마음이 뒤숭숭하거나 그런 것 같았습니다.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그냥 짐작하신 거겠지요.” 하십니다. 짐작한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수만 번에 또 수천을 곱할 만큼 많은 경우에 매번 정확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짐작했다고 생각하신다면, 이분과 조금 더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여러분의 집회니까요. 제게는 좋은 분처럼 보입니다. 자매님은 그저... 저는 자매님이 ...하시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아무 생각 하지 말고 편안히 계십시오. 그저... 지금 주 예수님의 임재 안에 있다고 믿으십니까? 참으로 포근하고 좋은 느낌이 드시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맞으면 사람들 앞에서 손을 들어 보십시오. 아시겠죠? 저는 지금 이 여인 바로 위에 머물러 있는 빛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네, 이분은 마음이 아주 불안합니다. 신경이 예민하고 신경과민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를 걱정하거나 그를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어린 여자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에게 편도선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저기 앉아 있는 아이입니다. 그렇습니다. 맞지요? 좋습니다, 자매님. 끝났습니다. 그뿐 아니라 자매님은 사역자, 여성 설교자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자매님이 누구인지 아신다고 믿으십니까? 피터스 부인, 구하신 것이 응답되었습니다. 신경과민이 사라졌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집에 가셔서 건강하게 지내십시오.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그저 믿음을 가지십시오. 그저 믿으십시오. 그것이 어제의 그분이셨고, 오늘의 그분이시며, 언제나 그러하실 것입니다. 그분이 아브라함 앞에서 인간의 육체로 자신을 나타내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 나타나셨습니다. 믿으십니까? “그 일들을 하는 이는 내가 아니요, 내 안에 거하시는 내 아버지시니라.”
간단하지 않았습니까? 그저 믿는 것입니다. 저는 이분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구하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이분은 치유되었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했습니까? 그것이 무엇이었든, 이분의 믿음이 이분을 고쳤습니다. 그렇지요? 안녕하십니까?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입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우리 둘을 아십니다. 우리는 나이가 다른 남자들이며, 처음 만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선생님의 문제가 무엇인지, 또는 어떤 일을 계시해 주신다면 저를 그분의 선지자, 아니 그분의 종으로 믿으시겠습니까? 믿으시겠습니까? 위장병으로 많이 편찮으십니다. 아주, 아주 심합니다. 이 도시에 사는 분이 아닙니다. 다른 도시에서 오셨습니다. 밀을 재배하는 평평한 지역입니다. 오클라호마에서, 오클라호마주 털사에서 오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선생님은 이탈리아계이십니다. 전에 제 집회 중 한 곳에 오신 적이 있습니다. 털사 집회였습니다. 기도 줄에 들어오려고 했지만 기도 카드를 받지 못하셨습니다. 이것은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입니다. 이제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가서 저녁을 드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생님을 낫게 하십니다. 가서 기뻐하십시오. 선생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믿으십니까? 누구든 그저 믿음을 가지십시오. 의심하지 마십시오. 만일 믿을 수 있거든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이것을 믿으십니까? 믿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회중 가운데 “온 마음으로 믿습니다.” 하며 믿고 계신 분이 몇 분입니까? 치유받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저 믿음을 가지십시오. 안녕하십니까? 저를 그분의 종으로 믿으십니까?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자매님의 모든 것을 아심을 믿으십니까? 그분이 자매님을 낫게 하고 고치실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제가 자매님이 치유되셨다고 말씀드리면 어떻겠습니까? 제 말을 믿으시겠습니까? 분명히 믿으시겠군요. 남편도 치유되기를 원하시지요? 그분이 남편을 고치실 것을 믿으십니까? 남편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고 싶으... 제가 남편의 문제가 무엇인지 말씀드리기를 원하십니까? 방광 문제입니다. 자매님에게는 부인과 질환이 있습니다. 의사는 자궁이 내려앉는 것, 자궁탈출증이라고 합니다. 맞습니다. 자매님도 복음의 사역자, 여성 설교자이십니다. 가서 치유를 받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매님을 낫게 하십니다.
믿음을 가지십시오. 의심하지 마십시오. 자매님,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하나님께서 제가 알지 못하는 자매님에 관한 어떤 일을 계시해 주신다면...?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이지요? 제가 모른다는 것을 자매님이 아는 어떤 일을 그분이 제게 계시해 주신다면, 그것이 형제가 아니라 주님께서 하시는 일임을 아실 것입니다. 맞습니까? 이 집회 어딘가에 계신 분, 당신은 수술을 받아야 하는 병으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수술해야 한다고 합니다. 종양입니다. 하나님의 권능으로 종양이 어디 있는지 제가 말씀드릴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몸 옆쪽, 오른팔 아래에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가서 온 마음으로 믿으시고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치유받으십시오. 그저 믿음을 가지십시오. 의심하지 마십시오.
안녕하십니까?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인 것 같습니다. 집회에서 한 번 저를 보셨다고요? 그냥 집회에서 말이지요. 하지만 제 말은, 제가 자매님을 모르고 자매님도... 집회에 앉아 계시다가 저를 한 번 보셨다는 것이군요. 주님께서 자매님 마음의 비밀을 제게 계시해 주시고, 자매님이 하셨거나 하려고 계획하시는 일, 또는 몸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그 밖의 어떤 일을 알려 주신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어야 한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그것은 영이어야 합니다. 제가 하는 일일 수는 없습니다. 위장 문제와 목의 문제가 있고, 또 마음에 무거운 짐이 있습니다. 남자아이에 관한 일입니다. 제가 말씀드릴까요? 그 아이는 소년보호시설에 있습니다. 심장병이 있습니다. 주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아이를 건져 주실 것입니다. 믿음을 가지십시오.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이제 이것이 독심술이 아님을 아시도록, 여기 이 여자분을...
자매님, 이리 오십시오. 저는 이분을 모릅니다. (제 손 위에 자매님의 손을 얹으십시오.) 주 예수님께서 이런 식으로 자매님의 문제가 무엇인지 제게 보여 주신다면, 저를 하나님의 종으로 믿으시겠습니까? 믿으십니까? 좋습니다. 그러면 심장병이 자매님을 떠납니다.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제가 그분에게 그 말을 했을 때... 자매님은 제가 그분에게 그 말을 했을 때 아주 묘한 느낌이 드셨습니다. 자매님에게도 심장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온 마음으로 믿으며 가셔서 나으십시오. 여러분,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좋습니다. 이제 이 여자분은 치유받지 않으면 죽게 됩니다. 자신의 병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암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암을 없애실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이리 오십시오. 사탄아,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갈보리에서 대신 받으신 그분의 고난과, 너와 네 모든 무리를 이기신 그분의 승리를 의지하여 네게 명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여자에게서 나와라. 이 여자를 떠나라. 아멘. 온 마음으로 믿으며 가십시오.
신경과민과 심장병입니다. 가서 믿으십시오.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으십시오. 자매님, 오십시오. 영어를 하십니까? 주님께서 자매님의 문제가 무엇인지 제게 계시해 주신다면, 그때 하나님께서 자매님을 낫게 하실 것을 믿으십니까? 믿으십니까? 좋습니다. 여성의 질환, 부인과 질환입니다. 가서 믿으십시오. 그러면 주 예수님께서 그 모든 것을 멈추게 하실 것입니다... 만일 믿을 수 있거든. 하나님께서 그 심장병을 고쳐 건강하게 해 주실 것을 믿으십니까? 믿으십니까? 그분을 위해 어떤 것을 끊으시겠습니까? 어차피 끊고 싶으셨지요. 담배 말입니다. 버리십시오. 더 이상 피우지 마십시오. 기억하십시오. 죄를 지닌 채 이곳에 오지 마십시오. 그분은 아십니다. 아시겠죠?
자, 온 마음으로 믿으며 오십시오. 좋습니다. 좋습니다, 오십시오. 자매님, 그분을 데려오십시오. 괜찮습니다. 제가 안수하면 나으실 것을 믿으십니까? 주 예수님, 허락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제 온 마음으로 믿고, 낫는지 보십시오. 믿으십시오. 신경과민은 하나님께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분이 낫게 해 주실 것을 믿으십니까? 그러면 믿으며 가십시오. 주 예수님께서 고쳐 건강하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기 외치고 있는 분 곁에 앉은 여자분은 팔에 문제가 있습니다. 자매님, 거기 앉아 계신 채 하나님께서 낫게 해 주실 것을 믿으십니까? 지금 누구에게 손을 대셨습니까? 여러분의 연약함의 감정을 느끼실 수 있는 대제사장께 손을 대셨습니다. 그분이 자매님을 고치십니다. 집에 가서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그분이 누구에게 손을 대었는지 말씀해 보십시오. 제게 손을 댄 것은 아닙니다. 저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 모두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저 뒤 끝자리에 앉아 울고 계신 여자분, 방광에 문제가 있습니다. 자매님, 하나님께서 낫게 해 주실 것을 믿으십니까? 좋습니다. 손수건을 입에 대고 이렇게 울고 계십니다. 그렇지요?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방광 문제로 고생하고 계십니다. 몹시 화끈거리는 등의 증상이 있습니다. 이제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자리에서 일어나 치유를 받아들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 마귀에게 이 믿는 사람에게서 떠나라고 명합니다.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의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바로 저 뒤에 앉아 치질로 고생하시는 남자분, 선생님, 하나님께서 낫게 해 주실 것을 믿으십니까? 자리에서 일어나 받아들이십시오... 누구에게 손을 대셨습니까? 저와 이십 야드나 떨어져 계십니다. 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을 느끼실 수 있는 대제사장께 손을 대셨습니다. 집으로 가서 나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쳐 주시기를 바랍니다. 믿으실 수 있습니까? 모두 믿으실 수 있습니까?
자매님은 어떻습니까? 저 여자분... 아, 저분은 제가 압니다. 저기 앉아 계신 분은 다우 자매님입니다. 저는 그분을 압니다. 그 옆의 남자분, 선생님, 손을 드셨지요?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저는 주님의 천사께서 그곳에 나타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등허리 문제가 떠날 것을 믿으십니까? 좋습니다. 그것이 선생님의 문제였지요? 맞으면 손을 이렇게 흔들어 보십시오. 앞뒤로 손을 흔들어 보십시오. 좋습니다. 집으로 가십시오. 치유를 받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낫게 하십니다. 선생님, 돌아서서 단에서 내려가십시오. 심장병이 떠났으니, 이제 집에 가셔서 건강하게 지내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니까? 이곳에 그리스도인이 아닌 분, 그리스도인이 아니며 주님을 자신의 개인적인 구주로 받아들이기 원하는 분은 몇 분입니까? 그분의 임재 안에 계시는 바로 지금 자리에서 일어나십시오. 믿음에서 물러났다가 주님께 돌아오고 싶은 분, 여러분은 바로 그분의 임재 안에 있습니다. 그분을 믿으십니까? 지금 자리에서 일어나시면 저희가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어떤 죄인이든, 믿음에서 물러난 어떤 사람이든 자리에서 일어나십시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또 다른 분 계십니까?
선생님, 저는 이 여러 해 동안 선생님을 괴롭혀 온 악을 정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생님의 죄가 용서되었습니다. 가서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또 일어나서 “저는 예수님을 받아들이기 원합니다.” 하실 분 계십니까? 이곳에 병든 분으로, 그분이 임재와 권능으로 여기 계심을 믿는 분이 몇 분입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성경이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라고 말씀한 것을 아시는 분이 몇 분입니까? 여러분 중 믿는 분은 몇 분입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그분은 이 일이 이루어지리라고 약속하신 것과 똑같이, 믿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손을 얹고 믿음의 기도가 병든 자를 구원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서로에게 손을 얹으십시오. 그저 서로에게 손을 얹으십시오. 그렇습니다.
이제 자신을 위해 기도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손을 얹고 있는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저는 여러분 모두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하늘의 아버지, 성령께서 이 백성에게 침례를 주고 계시는 이때에 저희가 이 회중을 주님께 데려옵니다. 오 주님, 저희의 말을 들어 주옵소서. 저희의 말을 들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저희는 모든 질병을 정죄합니다. 이 믿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손을 얹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여기 계심을 압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심을 압니다. 주님께서 실패하실 수 없음을 압니다. 마귀와 그의 힘, 모든 정사와 권세를 이기셨음을 압니다. 주님은 모든 부정한 영을 결박하셨습니다. 땅에 계실 때 모든 마귀를 내쫓으셨습니다. 주님, 저희 기도를 들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이제 그들이 서로에게 손을 얹고 있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그들이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 사람들이 나으리라.” 사탄아,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네게 명한다. 이곳에서 손을 얹고 있는... 누군가의 손이 얹혀 있는 모든 사람에게서 나와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네게 명한다. 이 건물을 떠나고 사람들에게서 나와라. 오늘 밤 그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 자유롭게 되게 하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임재해 계시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