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대단히 감사합니다. 앉으셔도 됩니다. 오늘 저녁 다시 이 교회에 오게 되어 참 기쁩니다. 우리가... 교회는 정확히 말해서 교회 건물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교회입니다. 오늘 저녁 주 하나님께서 그분의 크고도 풍성한 복을 우리에게 내려 주시리라 믿습니다. 어제 열흘 동안 집회를 갖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보니 사람들이 병든 분들을 다시 데려오기 시작하더군요. 내일 저녁 치유 집회를 갖기 원하시는 분은 얼마나 됩니까? 한 번 더 치유 집회를 갖는 데 관심이 있으십니까...? 좋습니다. 그러면 내일 오후 일찍, 아니, 내일 저녁에 청년들이 기도 카드를 나누어 주도록 하겠습니다. 대략... 몇 시에 시작합니까? 일곱 시에 문을 여시는군요. 내일 오후 일곱 시쯤에... 그러면 병든 분들을 위한 기도 집회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나올 수 있는지 봅시다.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아는 모든 분, 기도해 드릴 수 있는 모든 분을 위해 최선을 다해 기도하겠습니다.
어젯밤에는 교회의 훈련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우리가 교회를 참으로 영적인 자세로 이끌 수만 있다면 실제로 부흥이 일어날 것이며, 병든 분들을 위해 기도하는 데에도 훨씬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의 상태가 침체되어 있으면 마땅히 붙잡아야 할 만큼 붙잡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충분히 기도하고, 마음이 한껏 고조되고, 큰 기대에 차 있을 때는... 제가 강단에 올라갔을 때, 오천 명, 육천 명, 칠천 명이 모여 있는데도 강단에 나서자마자 허약한 사람이 한 사람도 남지 않았던 일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휠체어와 간이침대와 들것 등에서 일어나 그대로 걸어 나갔습니다. 그들이 그저... 그만큼 큰 기대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이 사역이 시작되던 초기, 다른 누구도 아직 이 사역의 현장에 나서지 않았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한동안 다소 느슨해졌습니다. 그때는 모두가... 그것이 새로운 일이었기에 사람들이 무엇이든 일어나리라 기대했습니다. 지금도 똑같이 기대하신다면 똑같은 결과를 얻습니다. 아시겠죠?
병든 사람을 고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병든 사람을 고칠 수 없습니다. 병든 사람을 고치는 것은 사람의 능력에 속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의사의 능력에 속한 일도 아닙니다. 의사는 병든 사람을 고치지 않습니다. 다만 병든 사람을 도울 뿐입니다. 모든 병을 고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의사는 팔이 부러지면 뼈를 맞추고, 베인 곳이 있으면 꿰매고, 나쁜 이를 뽑거나 충수를 떼어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빠져나온 자리를 아물게 하지는 못합니다. 치유란 세포가 증식하고 자라서 상처를 아물게 하는 것입니다. 그 일을 하는 것은 생명입니다. 하나님은 생명이십니다. 그러므로 치유는 그렇게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람의 몸은 그렇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사고를 당하고 몸에 칼을 대게 될 것 등을 알고 계셨습니다. 얼마 전에 의사였던 것 같은데, 어떤 분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류머티즘열 같은 것으로 심장 판막이 손상되면 플라스틱 판막을 넣는 새로운 심장 수술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몸에서 그렇게 할 수 있는 곳은 달리 없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그 부위에서만 심장 동맥의 나머지 부분이 그 플라스틱 판막을 덮어 그렇게 달라붙고 붙들어 준다는 것입니다. 몸의 다른 곳에서는 그것을 밀어내 버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수술이 필요하게 될 줄 아셨던 것입니다.
손을 베어서 동맥이 끊어진다면... 수도관의 경우, 도시 어딘가에서 수도관을 막아 버리면 어떻게 되는지 보십시오. 어딘가가 반드시 터져야 합니다. 물이 거꾸로 밀려올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피가 그곳을 우회하여 여전히 흘러가도록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피가 심장으로 역류해서 순식간에 죽고 말 것입니다. 아무리 작은 정맥이라도 베기만 하면 순식간에 죽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몸을 다치게 될 줄 아셨기에 그에 대비해 우리 몸을 마련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하심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귀한 오럴 로버츠 형제님이 잘 표현하셨듯이,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분이 선하신 하나님이심을 압니다. 그러나 그것만 너무 믿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기억하십시오. 그분은 또한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의 거룩하심 때문에 그분은 공의로우시며, 그분의 법과 요구는 충족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분이 선하신 하나님이라면 선하셔야 합니다.
우리는 선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혼동할 때가 많습니다. 동정이 무엇인지, 긍휼이 무엇인지 혼동합니다. 긍휼에 관해 잠깐 이 점을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긍휼 그 자체이셨다고 믿는 분은 얼마나 됩니까? 물론 그러셨습니다. 그분은 베데스다 연못으로 내려가셨습니다. 거기에는 수많은 무리가 누워 있었습니다. 한 무리라고 하려면 이천 명은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 거기에는 수많은 무리가 누워 있었던 것입니다. 다리를 저는 사람, 눈먼 사람, 걷지 못하는 사람, 몸이 마비된 사람이 물이 움직이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를 둘러보시다가 한 사람을 찾으셨는데, 그는... 글쎄요, 몸을 못 쓰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제가 연못으로 내려가는 동안 다른 사람이 저보다 먼저 들어갑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그 병을 삼십팔 년 동안 앓고 있었습니다. 그 병이 그를 죽게 하지는 않을 것이었습니다. 진행이 더딘 병, 아마 결핵이나 전립선 질환 같은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깔개에 누워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온전하게 하신 다음 걸어가셨습니다. 몸이 마비되고, 걷지 못하고, 다리를 절고, 눈먼 그 많은 사람들을 남겨 두고 가셨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그분은 긍휼을 가지신, 긍휼이 많으신 구주셨습니다.
사람들이 그 일에 관해 물었을 때, 19절에서 그분이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보셨습니까?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은 아버지께서 어떤 일을 하시는 것을 보고 그 일을 할 뿐이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느니라. 아들도 그와 같이 하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긍휼을 베푼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긍휼은 바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것을 전부 혼동합니다. 거기에 인간적인 요소를 끌어들이려고 합니다.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인간의 사랑처럼 사용하려고 합니다. 아내를 사랑하듯이 하나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남편이나 여자 친구나 남자 친구를 사랑하듯이 하나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그 둘은 완전히 다른 사랑입니다. 그리스어 단어도 서로 다릅니다. 하나는 필레오라고 하는데, 아내를 향한 사랑이 그것입니다. 그런 사랑 때문에 사람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질투해서... 그러나 아가파오의 사랑, 곧 하나님께 속한 사랑은 그 사람을 죽이는 대신 죄에 빠진 그의 혼을 위해 기도하게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만큼 다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인간적인 요소를 그리스도인의 요소, 하나님께 속한 요소와 뒤섞어서 엉망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우리는 인치와 피트와 마일 같은 것, 온스와 파운드 같은 것으로만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우리는 시간 속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 그분께는 인치도, 마일도, 어제도, 내일도 없습니다. 그분께는 모든 것이 영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크고 무한하신 생각을 우리의 작고 유한한 생각으로 끌어내리려고 합니다. 그러니 그저 혼란에 빠집니다. 그러므로 가장 좋은 것은 그분의 말씀을 읽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말씀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저는 삼십일 년 동안 사역해 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로잡을 수 없는, 다른 성경 구절과 모순되는 구절을 보여 주는 사람이 있다면 일 년 치 품삯이 얼마든지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말씀이 서로 모순된다고 하거든,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말씀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지혜롭고 분별 있는 사람들의 눈에는 감추시고 배우려는 아기들에게 드러내시려고 말씀을 수수께끼와 비유로 기록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신문을 읽듯이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영적인 계시입니다. 배우는 데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계시됩니다.
학교에서 배워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신학을 통해서도 알 수 없습니다. 계시로 알아야 합니다. 성경 전체와 구원의 계획 전체, 성경 안의 모든 것과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에 근거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아셨습니까? 그들이 산에서 내려왔을 때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나 곧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 하느냐?” 그들 중 몇 사람이 “엘리야나 모세나 선지자들 등이라고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분이 “하지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베드로가 “주께서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요나의 아들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살과 피가 이것을 네게 계시하지 아니하였고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것을 네게 계시하셨느니라. 이 반석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는 그분이 베드로를 가리켜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베드로는 “작은 돌”이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그 직후에 타락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어떤 교회에 속하게 되는지 아시겠죠. 그런가 하면 개신교에서는 그분 자신 위에 교회를 세우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말씀을 주의해서 보시면, 그 반석인 그분 자신 위에 세우신 것이 아닙니다. 아닙니다. 베드로에게 주어진, 그분 자신에 대한 영적인 계시 위에 세우신 것입니다. 에덴에서도 똑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아담이 어떻게... 아벨이 어떻게 밭의 열매가 아니라 어린양이라는 것을 알았습니까? 영적인 계시였습니다. 언제나 영적인 계시였습니다. “이 반석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 오, 그리스도인이여, 오늘 저녁 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메시지를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많은 사람이 진리를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성경은 수수께끼가 됩니다.
얼마 전 어떤 유명한 사람이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요한이 아마 고추 같은 것을 먹고 밧모섬에서 악몽을 꾸었던 모양입니다.” 저는 “부끄러운 줄 아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두고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신성을 모독하는 일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어느 한 부분도 빠짐없이 참되고 순전한 하나님의 계획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다만 여러분 자신을 하나님의 영께 맡겨 그분이 그것을 계시하시게 해야 합니다. 그분은 배우려는 아기들에게 계시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고백하고, 다만 그분의 영께서 우리를 통해 그분의 뜻을 이루시도록 내어 드리는 데 이르면, 그분이 우리를 가르치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너무 많이 알아서 그분이 가르치실 수 없게 되면, 우리는 아무 데도 나아갈 수 없습니다.
오늘 제가 말씀드리는데, 온 나라에 기도를 촉구해야 할 때가 있다면 바로 지금입니다. 온 나라에... 한 시간만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닙니다. 어디선가 잠깐 묵념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때까지, 모든 밀주 술집을 닫고 모든 담배 회사를 없애고 온갖 죄를 없애며, 여자들이 다시 옷을 갖춰 입고 남자들이 신사답게 행동하게 하고, 예전에 하던 옛날식 기도 모임을 교회에 되찾아 올 때까지, 날마다 밤낮으로, 한 주 또 한 주 계속해서 온 나라가 기도 모임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만이 우리가 평안을 얻을 유일한 길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을 줄 저는 압니다. 아시겠죠? 성경이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마지막 때를 맞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저녁 교회인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준비하십시오. 어느 순간, 어느 시각에 그분이 나타나실지 여러분은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의 은혜로운 말씀을 펴서 읽기 전에, 이제 고개를 숙입시다.
참으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모든 말과 모든 생각이 기록된다는 것을 아십니다. 오늘 우리가 바라보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위대한 교회를 향해 우리 마음이 열심으로 가득합니다. 주님이 오실 시간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교회가 미지근하게 될 것이라고 아버지께서 미리 말씀하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뜨겁지도 차지도 않으므로 아버지의 입에서 토하여 내리라고 하셨습니다. 오 하나님, 그렇기에 하나님의 참된 종은 마음속으로 부흥을 외칩니다. 오늘날 온 나라를 누비며 자신의 온 생명과 모든 것을 쏟아부어, 교회가 돌아오도록 외치는 훌륭한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아버지, 오늘 저녁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오니, 이곳 클래머스폴스와 이 나라 온 땅에 부흥을 보내 주옵소서. 혼들을 구원하는 부흥, 교회를 뒤흔들어 깨우는 부흥이 되어 살아 계신 하나님의 모든 성도들이 기도와 금식을 시작하게 하옵소서. “내 이름으로 불리는 백성이 함께 모여 기도하면 내가 하늘에서부터 들으리라”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 오늘 저녁 허락해 주옵소서.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점점 갖게 되는 그 침체되고 차갑고 무관심한 마음, 자신들이 교회에 나오며 그곳에 속해 있다는 것만 아는 그런 마음을... 하나님, 그 오래된 이기적인 마음과 그릇된 만족을 깨뜨려 주옵소서. 주님, 성령으로 다시 침례를 받아 참으로 만족하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과 혼을 불로 채워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온 나라에 큰 치유 대전도 집회와 부흥이 일어나게 하옵소서. 병든 사람들이 치유받게 하옵소서. 오늘 저녁 이곳 들것과 간이침대에 누워 있는 분들, 그리고 청중 가운데 심장병과 암을 앓는 분들을 바라봅니다. 주님, 그들은 치유받기 위해 어디에선가 믿음을 모아 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고통을 고치시는 치유자는 아버지이심을 알게 하옵소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모든 자들아, 너희는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 주님, 오늘 저녁 허락해 주옵소서. 오늘 저녁 사람들이 성령의 기름부음을 느끼게 하옵소서. 그것이 모든 마음을 사로잡게 하옵소서. 오늘 저녁 우리에게 너무나 분명해져서, 우리 가운데 죄인도 타락한 사람도 한 명도 없게 하옵소서. 이 예배가 끝날 때 병든 사람이나 허약한 사람이 한 명도 남지 않게 하옵소서. 아버지, 허락해 주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을 축복해 주옵소서. 이제 교회의 훈련에 관해 말씀드릴 때, 주님, 그 말들에 기름 부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버지께서 보시기에 좋게 여기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분을 위하여 간구하옵나이다. 아멘.
오늘 저녁 본문으로 마태복음 17장, 그중에서도 5절의 마지막 몇 말씀을 택하고자 합니다.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주님께서 원하시면, 저는 5절의 마지막 세 단어를 가지고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그의 말을 들으라.” 세 단어입니다. 어젯밤 말씀드렸듯이 이것은 아주 짧은 본문이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여기에 다 있습니다. 가치 있는 말씀입니다. 이 짧은 본문이 시키는 대로만 한다면, 오늘 저녁 이 건물 안에 실망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그저 그분의 말을 들으십시오. 그분이 무엇을 하라고 하시든 그대로 하십시오. 병들었다면 그분의 말을 들으십시오. 죄 가운데 있다면 그분의 말을 들으십시오.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분의 말을 들으십시오. 그분께는 여러분이 이 여정에서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주시려고 그것을 마련하고 기다리십니다. 값은 이미 치러졌습니다. 여러분이 치를 값은 없습니다. 그저 그분의 말을 들으십시오. 그분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 귀를 기울이십시오.
작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바로 그 짧은 성경 말씀, 그 세 단어만으로도 온 세상에 부흥을 일으키고 세상의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에 충분합니다. 몇 년 전에 잡지에서 짤막한 글을 읽었습니다. 싱클레어 휘발유였던 것 같은데, 어떤 유명한 휘발유를 광고하는 글이었습니다. 어떤 종류의 기계를 충분히 튼튼하게 만들 수만 있다면 싱클레어 휘발유 일 갤런으로 스핑크스를 땅에서 십 인치나 들어 올릴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 싱클레어 회사는 자기네 휘발유의 힘을 얼마나 자랑하고 싶어 하는가. 아주 적은 양으로 얼마나 큰 일을 할 수 있는지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저녁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 한 방울이면 모든 죄인을 진흙 구덩이에서 끌어 올리고, 모든 병원에서 질병을 없애고, 모든 감옥과 교도소의 문을 닫게 하고, 모든 정신병원의 병들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해방하며, 온 세상에 기쁨을 가져다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 한 방울로 말입니다.
그러니 집회에 와서 이렇게 짧은 본문을 택할 때... 기억하십시오. 저는 기도하며 온 마음을 다해 그렇게 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성령께서 무엇을 가르치거나 말씀하도록 이끄시는지 찾아내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저는 주 예수님의 실제 피 한 방울을 접시에 담아 가질 수만 있다면 어떨까 하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그것을 손에 들고 가슴에 꼭 대고 “오 아버지, 지금 제가 주 예수님의 피를 가슴에 품고 있습니다”라고 외칠 것입니다. 작은 유리잔 같은 것에 주 예수님의 피 한 방울을 담아 들 수 있다면 얼마나 감격스럽고 기쁘고 복된 일이겠습니까! 그런데 아시겠습니까? 그분이 보시기에 오늘 저녁 제게는 그보다 더 귀한 것이 있습니다. 오늘 저녁 저는 그분의 피로 사신 여러분을 가슴에 품고 있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피보다 여러분을 더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여러분을 거룩하게 하여 그분의 임재 안으로 데려오시려고 그 피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아, 작은 것들입니다. 우리가 행하는 큰일들이 아니라, 우리가 하지 않고 내버려 두는 작은 일들이 문제입니다.
어젯밤에 저는 그 작은 우표 이야기를 했습니다. 영국의 왕이었던 고 조지 왕이 브리티시컬럼비아를 지나 밴쿠버에 왔을 때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학교가 왕을 보러 나왔습니다. 캐나다 사람들은 자기들의 왕에게 왕다운... 아니, 충성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어린아이들 모두에게 작은 영국 국기를 하나씩 주고 거리에 서 있게 했습니다. 국왕 폐하가 지나가시면 아이들은 그 작은 깃발을 흔들어 왕을 지지하며 그의 백성임을 나타내곤 했습니다. 선생님들은 어린아이들을 모두 내보냈습니다. 왕이 지나간 뒤, 어느 학교에서는 모든 아이들이 돌아왔는데 아주 어린 여자아이 하나만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몹시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큰 아이들을 모두 불러 “어린 마사는 어떻게 되었니?” 하고 물었습니다. 아이들은 마사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하고 같이 있었는데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마사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선생님은 제정신이 아닐 만큼 다급하게 거리로 뛰어나가, 돌아오지 않은 그 어린 여자아이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 왕을 지켜 주소서”를 부르며 왕을 따라가서 거리가 텅 비었습니다. 그때 그 아이를 찾았습니다. 아이는 전신주 뒤에 서서 작은 머리를 두 손에 기대고 가슴이 미어지도록 울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아이를 안아 올렸습니다. “마사야, 아가, 왜 울고 있니? 왕께 깃발을 흔들지 못했니?” 하고 물었습니다. 아이는 “아니요, 선생님. 깃발은 흔들었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선생님은 “그러면 왕을 보지 못했니?” 하고 물었습니다. 아이는 “아니요, 선생님. 왕을 봤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럼 아가, 왜 그렇게 울고 있니?” 아이는 “선생님, 저는 왕을 봤어요. 그런데 제가 너무 작아서 왕은 저를 못 보셨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왕 예수님은 그렇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작고, 아무리 작은 일을 해도 상관없습니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그분이 전부 아시지 못하는 일은 없습니다. 그분은 여러분이 겪는 작은 마음의 아픔 하나하나, 견디는 작은 고통 하나하나, 실망하는 작은 일 하나하나를 아십니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그분은 여전히 모든 것을 아십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주님은 사람들이 있는 여러 자리에서 만나 주십니다. 때로는 큰 무리 가운데서 만나 주십니다. 때로는 적은 사람들과 만나 주십니다. 부활하신 뒤 한 번에 오백 명을 만나셨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또 칠십 명을 만나셨고, 열두 명과도, 심지어 세 명과도 만나셨습니다. 그런가 하면 단 한 사람만 만나 주시는 때도 있습니다. 제게는 바로 그것이 그분이 하나님이심을 보여 줍니다. 그분은 겸손 그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행을 많이 하고 위대한 사람들을 만나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위대한 사람이 되려고 애쓰는 사람들을 만나면... 그런 사람은 언제나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별로 대단한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위대한 사람들은 오히려 여러분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느끼게 해 주려고 합니다. 그러나 위대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밑바닥까지 파고들어 보면 허세뿐인 사람임을 알게 됩니다. 이것은... 제가 너무 직설적으로 말씀드리려는 것은 아닙니다.
막 성령을 받은 감리교 형제님들 몇 분이 제 교회, 제가 전에 목회하던 곳에 찾아왔습니다. 인디애나주에 사는 훌륭한 분들이었습니다. 그분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성령을 받고 나서 책을 좀 읽었습니다. 우리 사역이 무엇인지 주님께서 말씀해 주시도록 주님을 기다리며 구해야 할까요?” 저는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가 “그런데 그 책에서는...” 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잠깐만요, 형제님”이라고 했습니다. 너무나 열심이어서 언제나 무엇이든 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신뢰하실 수 없습니다. 성경을 주의해서 보시면, 하나님께서 쓰신 사람은 그 모든 것에서 벗어나려고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께서 쓰셨습니다. 예를 들어 바울이나 모세 같은 사람들을 보십시오. 바로 그 일에서 달아나려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맡기셨는데 그가 거기에 너무나 열심이라면, 어느새 잔뜩 우쭐해져 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일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어쨌든 하나님께서 얼마 동안은 쓰실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 사람에게서 무언가 이끌어 내실 수만 있다면... 하지만 대개 나가서 온 세상을 뒤흔들고 무너뜨리려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신뢰하실 수 없습니다. 그가... 자기가 직접 그 일을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 스스로 자기 길을 가로막습니다. 사람이 가려고 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거의 떠밀어 넣으셔야 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대개 쓰시는 사람은 그런 사람입니다. 저는 “그저 그분을 위해 사시고 온 마음으로 그분을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그분이 원하시는 자리에 여러분을 두실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사람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그 소명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오늘 저녁 읽은 마태복음 17장 말씀에 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집에 돌아가시면 그 장 전체를 읽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보면, 예수님께서는 큰일을 하시려 하고 계셨습니다... 중대한 일이 일어나려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큰일을 하실 준비를 하실 때 대개 가장 먼저 하시는 일은, 먼저 위 하늘에 그것을 알리시는 것입니다. 그분은 언제나 땅에서 행하시기 전에 하늘에서 자신의 일을 알리십니다. 주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때를 보십시오. 누가 제일 먼저 왔으며, 무엇이 먼저 그것을 알렸습니까? 별 하나가 하늘을 가로질러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동방 박사들이 저 멀리 동쪽 인도에서 예루살렘까지 왔습니다. 세 박사였습니다.
제가 인도에 갔을 때도 여전히 그와 같은 사람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길거리에 그대로 앉아 있는, 지혜자 또는 박사라고 부르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이들은 별을 관찰하는 사람들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땅에서 행하시기 전에 하늘에서 일을 알리십니다. 이것은 특별한 일이었습니다. 베드로는 나중에 그것을 거룩한 산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그 사도가 그 산 자체가 거룩하다는 뜻으로 말한 것은 아니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곳은 그저 산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는 전투도 벌어졌고 온갖 일이 있었습니다. 거룩한 산이 아니었습니다. 거룩한 것은 산이 아니라, 그 산 위에 계신 하나님이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거룩한 교회나 거룩한 사람들이라는 말을 아주 많이 듣습니다. 거룩한 교회도 거룩한 사람들도 없습니다. 거룩함을 이루시는 분은 사람들 안에 계신 성령이십니다. 거룩한 교회나 거룩한 사람들이 아니라, 교회 안에 계신 성령이십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증인이 될 세 사람을 택하셨습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따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주의해서 보시면, 그분은 큰일을 하러 가실 때마다 늘 그 세 사람을 데리고 가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소망과 믿음과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은사 가운데 가장 큰 세 가지, 소망과 믿음과 사랑입니다. 물론 요한은 사랑이므로 사랑을 나타내며, 야고보는 소망, 베드로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분은 소망과 믿음과 사랑을 데리고 가셨습니다. 주시려고... 알게 하시려고... 아니, 그분이 하시려는 일을 그들 안에 심어 주시려고 말입니다. 그분이 나중에 “거룩한 산” 또는 “하나님께서 계셨던 거룩한 곳”이라고 불린 그곳으로 올라가셨을 때를 보면, 그들이 산 위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께서는 증언하게 하시려고 하늘에서 온 세 분을 두셨습니다. 그 산 위에는 모세와 엘리야와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그리고 여기 땅에는 땅에 속한 세 사람,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있었습니다. 거기 모세와 엘리야와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하늘의 세 증인과 땅의 세 증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실 준비를 하실 때는 언제나 그 일을 증언할 증인을 두십니다. 오늘날 주님께서 오시기 전에 주위를 둘러보며 그분이 나타나실 것을 증언하는 것들을 볼 수 있어 참 기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가 가까웠음을 보여 주는 표적들을 교회에서 보고,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성취되는 것을 봅니다. 주 예수님께서 나타나시기 전에 교회에 주어질 마지막 표적까지도 지금 교회 안에서 역사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일이... 기억하십시오. 그분은 “소돔의 날들에 그러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도 그러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소돔의 죄인들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보십시오. 주의 천사가 그 일에 대해 증언하러 내려왔을 때 무엇을 했는지 보십시오. 그 세 천사, 세 천사 모두가 무엇을 했는지 보십시오. 오늘날 세상이 죄 가운데 있는 모습을 보십시오. 오늘날 교회가 롯과 같은 상태에 있는 것을 보십시오. 부르심을 받아 나온 교회가 아브라함처럼 분투하고 있는 것을 보십시오. 오늘날 하나님을 위해 살려고 하는 남자나 여자는 계속 나아가기 위해 분투해야 합니다. 힘써 하나님의 왕국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아,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살펴봅시다. 보십시오. 아래에는 죄인들이 있었습니다. 그 죄가 무엇이었는지 보십시오. 남자들이 자신을 너무나 더럽혀서 더 이상 아내와 정상적인 관계를 맺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세상을 보십시오. 교회와 나라 안에 죄가 너무나 많이 스며들어 온통 벌집처럼 죄로 구멍이 숭숭 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말이 구식으로 들린다는 것을 압니다. 얼마 전에 한 목사님이 저를 따로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형제님의 사역이 오늘날 미국에서 가장 큰 사역이 아닌 이유를 아십니까?” 저는 “미국에서 어떠한지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저는 저 위 하늘의 책들에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지, 거기에서 어떠한지를 알고 싶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람들을 그렇게 책망하시기 때문입니다. 호되게 꾸짖으시니 사람들이 상처를 받습니다. 그것만 그만두시면 형제님의 사역이 성장하고 잘될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한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타협해야 하는 지경에 이른다면, 그때는 그만두고 사역의 현장을 떠나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을 부르셔서 그 일을 하시게 하겠습니다.” 어떻게 잠잠할 수 있습니까? 정직하려거든 정직하십시오. 어느 시대든 한 사람이라도 말씀해 보십시오... 말씀해 보십시오. 저는 “저를 선지자라고 부르신 분은 선생님입니다. 제가 저를 그렇게 부르는 것이 아니라... 직접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신 분은 선생님입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어떤 일을 위해 제게 기름을 부으실 때 제가 어떻게 잠잠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누군가는 그것에 맞서 외쳐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돌들로도 아브라함에게 자손들을 일으키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정직해야 하며 그 일에 대해 진실을 말해야 합니다. 보셨습니까...? 아, 물론 미국에서의 사역은 해외에서만큼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물론 그렇습니다. 미국은 이미 불이 훑고 지나간 곳이기 때문입니다. 끝났습니다. 이쪽저쪽으로 되풀이해 샅샅이 훑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왕국이 그물을 가져다가 바다에 던져 끌어 모으는 사람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때로 그물에는 가재도, 뱀도, 도마뱀도, 개구리도, 물고기도 걸렸습니다. 그러다 보면 그물에 도마뱀과 개구리만 가득 걸려 나옵니다. 물고기는 이미 모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지막 한 마리까지 잡힐 때까지 계속 그물을 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오실 것입니다. 그들이 누구인지 어떻게 압니까? 그저 복음의 그물을 던져 끌어 올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형제님들과 함께 이곳에 와서, 어딘가 한쪽에 서서 그분들과 함께 그물을 던지고, 제 사역으로 멀리 뻗어 나가 그물을 끌어당기며 “형제님들, 여기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러나 이곳은 이미 불이 훑고 지나간 곳입니다. 제가 처음 이곳 오리건에 여러분을 찾아왔을 때를 보셨습니까? 사방에서 사람들이 왔습니다. 수천수만 명이 몰려들었습니다. 아, 참 좋았습니다. 저는 그저 계속 병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돌아와 진리를 분명히 전하고 복음을 분명히 전하기 시작하자, 아, 많은 사람이 돌아섰습니다.
그것을 지난날 우리 주님 때와 비교해 보십시오. 그분이 병들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고치실 때는 많은 사람이 그분께 왔습니다. 오천 명을 먹이셨을 때도 많은 사람이 왔습니다. 그러나 앉아서 그들에게 진리를 말씀하기 시작하시자 어떻게 되었습니까? 모두가 돌아서기 시작했습니다. 칠십 명도 돌아섰습니다. 그분은 제자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리이까?”라는 위대한 말을 했습니다. 아시겠죠? 그러나 그것이 그분의 기적을 멈추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분은 그대로 계속 나아가셨습니다. 며칠 뒤에는 눈구멍에 안구조차 없는 사람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기적은 더 커졌지만 무리는 더 작아졌고, 그분의 인기는 점점 줄어들어 마침내 사람들이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이 있다면 정확히 똑같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동일하시고 사람들도 여전히 똑같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보면, 그분은 자신이 하시려는 일을 증언하게 하시려고 이들을 데리고 가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증인들을 함께 부르실 때는 분명히 어떤 일이 일어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거기서 하시려던 일은 우리가 말하는 ‘아들로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구약을 보면, 큰 영지를 가진 사람의 집에 아들이 태어났을 때, 물론 그 아들은 태어나자마자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자기 지위에 세워져서... 그 가정에서 양자됨을 받기 전까지는 유산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것을 양자됨이라고 부릅니다. 이상하게 들립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바로 여기서 오순절 교회가 계속 나아가지 않고 빗나갔거나 멈추었습니다. 저도 오순절 신앙을 가진 사람입니다. 제게 성령이 없다면 이곳에 서서 여러분에게 성령에 대해 말하고 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이 말씀을 드리지 않을 것입니다.
보십시오. 옛 전통을 따르는 가정에 아이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는 할 일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들은 태어나자마자 아들이었습니다. 오순절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태어나자마자, 혹은 어느 교회든 하나님의 왕국 안에 태어나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거기서 멈추었습니다. 오순절 교회는 방언과 통역의 은사를 받고는 거기서 멈추었습니다. 그곳은 멈출 곳이 아닙니다. 시작할 곳입니다. 아직 손대지 않은 자원이 우리 주위 곳곳에 있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성경의 모든 약속은 우리의 것입니다. 문제는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왕국에서 우리와 같은 시민인 감리교와 침례교 형제님들에게 가서 신유와 하나님의 권능을 이야기하면, 그들은 무디가 거기에 관해 뭐라고 했는지, 다른 누가 뭐라고 했는지를 들추어 내며 뒤를 돌아봅니다.
오순절 형제님들에게도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선조들이 오십 년 전에 받았을 때 우리가 저 옛날에 받은 것은...” 결코 뒤를 돌아보지 마십시오. 앞을 보십시오. 계속 앞을 보십시오. 과학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정신 차리지 않으면 과학자가 연구를 통해 설교자보다 먼저 하나님을 발견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약 삼백 년 전에 한 프랑스 과학자가 지구 같은 공을 굴려서 증명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사람이...” 이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했습니다. “만일 사람이 시속 삼십오 마일이라는 엄청난 속도로 갈 수 있다면, 중력 때문에 지구 밖으로 떨어져 나갈 것이다.” 오늘날의 과학자가 그런 말에 귀를 기울이겠습니까? 물론 아닙니다. 지금은 시속 이천 마일로 가고 있습니다. 거기서 멈추지도 않고 계속 나아갑니다. 그런데 우리는 뒤를 돌아보며 다른 누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보려고 합니다.
믿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하나님을 나타내 보이기 위해 사용할, 아직 손대지 않은 하나님의 자원이 우리 손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셨을 때 그를 신으로 만드셨습니다. 땅을 다스릴 권한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타락한 상태에 이르면서 그것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아담으로 인해 잃은 것을 그리스도께서 회복하셨습니다. 그분은 “너희가 이 산에게 ‘옮겨져라’ 하고 말하며 마음속으로 의심하지 않고 너희가 말한 것이 이루어질 줄 믿으면, 너희가 말한 것을 받을 수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것입니다! “너희가 어떤 것들을 원하든지 너희가 기도할 때에 그것들을 받는 줄로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그것들을 받으리라.” 아멘. 그분은 우리가 아담 안에서 잃어버린 모든 것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그저 교회에 나가고, 명부에 이름을 올리고, 물에 잠기든 물을 뿌리든 무엇이든 받고, 회중과 목사님과 악수하면 그것으로 다 된 줄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오순절에 이릅니다. 우리는 성령을 받습니다. 성령이 우리 위에 임하시고 우리는 외치며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내려왔고 우리는 방언으로 말했으며, 통역하는 소리와 말씀을 장엄하게 인용하는 소리, 예언 등을 들었습니다. 좋게 들립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저 멈추어 버립니다. 그것은 시작일 뿐입니다. 계속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계속, 계속, 계속 나아가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의지하고 계십니다.
이 아들이 그 집에 태어났을 때, 지위상으로는 아들, 그 아버지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어떻게 했습니까? 사업이 컸기 때문에 그 아들 한 사람과 함께 있을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정교사, 곧 아이를 기를 사람, 선생을 고용했습니다. 자기 아이였기 때문에 적합한 사람을 찾을 때까지 온 땅을 살폈습니다. 언젠가 그 아이가 아버지의 모든 것을 물려받을 것이므로, 아이가 올바르게 자라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적합한 사람을 찾을 때까지 온 사방을 살폈습니다. 자기 체면을 세우려고 거짓말을 하거나, 아이가 잘하지 못하는데도 “아드님은 잘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 사람은 아이가 자라는 과정을 보고해야 했습니다. 이것이 아들로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여기 계신 목사님들은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고 아십니다. 아들로 세우는 것, 바울이 갈라디아서 등에서 말하는 것, 구약에서 아들로 세우는 것입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라고 했을 때, 킹제임스의 번역자들은 그런 개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집은 하나의 영지였습니다. 아버지의 집에는... 구약에서처럼 아버지의 집에는 많은 종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그 종들에게 갔고, 아들을 가르칠 시간이 없어서 대신 가르칠 다른 사람, 적합한 사람을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변화산이라고 부르는 이곳에서, 친히 하시고 계신 일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하시지 않을 일을 사람에게 하라고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그것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친히 하시지 않은 일을 여러분에게 하라고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보십시오. 이 아들이... 학교에 다닐 나이가 되기 시작하면, 그 가정교사는 아들과 함께 다니고 곁에 있으면서 아들이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아버지에게 보고했습니다. 아들이 게으르고 아버지의 일에 마음을 두지 않는다면, 가정교사가 아버지 앞에 나아가 말할 때 얼마나 부끄러웠겠습니까? “주인님,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아드님이 별로 잘하고 있지 않습니다. 도무지... 배우려 하지 않고, 관심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을 떠나 교회를 남겨 두실 때, 그분은 교회를 위한 가정교사를 택하셨습니다. 교회를 기를 사람, 정직하고 진실을 말할 사람, 올바르게 기를 사람을 택하셨습니다. 어떤 대주교나 교황이나 총감독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성령을 보내 교회의 감독과 가정교사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감독과 그 밖의 온갖 것을 받아들여 교회의 가정교사로 삼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계획이 아닙니다. 우리의 선생님은 성령이십니다. 교회의 가정교사는 성령이십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하셔야 하는데, 우리는 온갖 사상과 온갖 학교와 신학 등을 받아들였습니다.
바로 그 때문에 오늘 저녁 교회가 이런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고 사람의 인도를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은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습니다. 하나님의 영께서 교회를 인도하셔야 합니다. 사람은 무슨 말이든 할 수 있지만, 성령께서는 여러분에 관해 사실대로 말씀하실 것입니다. 오늘 저녁 성령께서 아버지 앞에 나아가 이렇게 말씀하셔야 할 때 어떤 심정이시겠습니까? “아버지, 아버지의 교회가, 음... 아십니까? 아버지의 교회 사람들 가운데 절반은 일요일에도 교회에 오지 않습니다. 네, 수요일 저녁에는 ‘우리는 수지를 사랑해’를 보려고 집에 있습니다.” 텔레비전에서 하는 그게 무엇이든 말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향한 찬양과 하나님의 권능보다 세상에 있는 것들을 더 사랑합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텔레비전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것도 나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그런 어리석은 연극을 보려고 교회에 오지 않고 집에 있다면, 그 사람의 삶에 무언가 일어난 것입니다. 성령께서 어디론가 떠나셨습니다. 여러분은 아버지의 일을 돌보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성령께서 아버지 앞에 나아가, 그분의 딸들, 그분의 자녀들, 그분의 사랑스러운 딸들이 반바지라고 부르는 이런 부도덕한 옷을 입고 있다고 말씀하셔야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분의 딸들이 말입니다...
얼마 전에 제가 그 말을 했더니 어떤 여자가 제게 말했습니다. 건물 뒤쪽에서 저를 만나 “브래넘 형제님, 제 말을 들어 보세요. 저는 반바지는 안 입어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것 참 좋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여자는 “저는 긴 바지를 입어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것은 더 나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여자가 남자에게 속한 옷을 입는 것은 가증한 일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변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남자는 남자답게, 여자는 여자답게 보이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남자들은 너무나 여성스러워져서 어떻게 옷을 입어야 할지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또 여자들, 하나님의 딸들이 담배를 피웁니다. 세상에 이보다 더 큰 자멸 행위는 없었습니다. 저는 러시아가 미국을 무너뜨릴까 봐 두렵지 않습니다. 미국은 스스로 자신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사과를 쪼아 먹는 울새가 사과를 망치는 것이 아닙니다. 사과를 죽이는 것은 속에 든 벌레입니다. 오늘날 교회와 나라의 문제가 바로 그것입니다. 속에 있는 죄, 하나님을 떠난 것입니다.
어떤 부인이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이제는 그런 옷을 만들지 않아요. 우리도 이런 종류의 옷을 입을 수밖에 없어요.” “자매님, 아직도 천을 만들고 재봉틀도 만듭니다. 전혀 핑계가 되지 않습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더러운 영이 그들 위에 임한 것입니다. 예전에는 오순절 신앙을 가진 우리 여자들이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이 잘못이었습니다. 이제 아픈 데를 찔렀지요?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머리가 아프다며 두통이 심하다고 하곤 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성경은 여자가 머리카락을 자르면 자기 남편을 욕되게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불명예스러운 여자는... 그런 여자와 함께 사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못됐다는 뜻은 아닙니다. 제 말은, 마귀와 나약해진 몇몇 강단의 사람들이... 설교자 노릇을 할 것이 아니라 밖에 나가 돼지나 부르는 사람과 함께 있어야 할 이들이 말입니다... 나서서 그 일에 관해 진실을 말해 주어 여러분이 무엇이 진리인지 알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형제님들, 그렇지 않습니까?
제게는 이런 노래를 부르곤 하던 감리교인 친구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울타리 빗장을 내렸네, 우리가 울타리 빗장을 내렸네. 우리가 죄와 타협했네. 우리가 울타리 빗장을 내리니 양들은 나가 버렸네. 그런데 염소들은 어떻게 들어왔는가? 무엇이 문제입니까? 빗장을 내렸습니다. 교회를 인도하고 모든 진리로 이끄시는 성령의 옛 기준을 내려 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진실입니다. 구식일지 모르며 조금 아플지도 모릅니다.
제가 어린아이였을 때 말입니다... 지금도 견딜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는데, 피마자유입니다. 냄새만 맡아도 일주일은 속이 아플 것입니다. 우리가 어린아이였을 때 어머니는 저 아래 가게, 정육점에 가서 고기 껍데기를 얻어 오시곤 했습니다. 그것을 낡은 설거지통에 넣고 삶아서... 아니, 구워서 기름을 받아 호케이크라고 부르는 것, 옥수수 전병을 만드셨습니다. 동부콩과 순무 잎도 먹었는데, 꽤 맛있는 음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점심도 아침도 저녁도 그것만 먹다 보니... 토요일 저녁마다 우리 아이들은 모두 목욕을 해야 했습니다. 어머니가 우리를 데려다 커다란 낡은 삼나무 통에 넣으셨던 기억이 납니다. 아기가 먼저 목욕을 했습니다. 아이가 열 명이었는데 저는 맨 마지막이었습니다. 같은 물에 물을 조금 더 붓고 따뜻하게 해서 씻었습니다. 그리고 학교에 다니는 우리 아이들은 모두 피마자유를 한 번씩 먹어야 했습니다. 제 차례가 되면 코를 막았습니다. “엄마, 엄마, 제발 먹이지 마세요. 이걸 먹으면 속이 너무 아파요”라고 했습니다. 남부 출신의 제 자그마한 어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시던 것이 기억납니다. “하지만 빌리야, 속이 아프지 않으면 약효도 없는 거야.”
제가 복음을 전하는 방식도 그렇습니다. 이것 때문에 여러분 속이 아프다면, 성경을 소화하는 여러분의 속을 좀 자극해서 무언가 움직이게 할지도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옛날식 복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권능과 성령이 다시 들어오시고, 할리우드와 텔레비전의 스타들은 모두 나가야 합니다. 부인 여러분,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곧 남자들에게도 말씀드리겠습니다.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하지만 부인 여러분께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은 더러운 영이 여러분에게 임한 것이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어떤 여자가 온통 선정적인 차림으로 거리를 걸어간다면, 그 여자는 간음한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아십니까? 물론 그 여자는 남자 친구나 남편에게 백합처럼 순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여자를 보고 그녀에게 음욕을 품는 자는 이미 마음속으로 그녀와 간음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여러분이 그렇게 옷을 입고 어떤 죄인이 여러분을 그런 눈으로 바라본다면, 심판 날 그가 간음한 것에 대해 책임을 질 때 그 간음의 상대는 여러분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잘못일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에게 자신을 그렇게 내보였기 때문입니다. 내일 저녁에는 다시 오지 않으실지 몰라도, 한 번은 이 말을 듣게 되실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악하고 더러운 영입니다. 성령께서 아버지 앞에 나아가 그분의 자녀들이 그렇게 행동하고 있다고 말씀하실 때 어떤 생각이 드시겠습니까?
오래전 남부에서는 흑인들을 붙잡아 노예로 팔곤 했습니다. 그것은 결코 옳은 일이 아니었습니다.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만드셨고, 사람이 노예를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와서 그 불쌍한 이들을 사 갔습니다. 여기 중고차 매매장에서 차를 사듯이 매매 증서 하나를 작성하고 사람을 팔았습니다. 중개인들이 와서 그 사람들을 살펴보곤 했습니다. 몸집이 크고 건장한 남자들을 아내에게서 떼어 놓고, 더 나은 노예들을 얻으려고 더 큰 여자 같은 사람과 짝지어 자식을 낳게 했습니다. 에이브러햄 링컨이 모자를 벗고 이렇게 손을 치며 “이것은 잘못되었다. 언젠가 내가 이것을 치겠다”라고 했던 것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다시 에이브러햄 링컨 같은 대통령을 우리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그가 그렇게 말한 것은 옳았습니다.
얼마 전에 이곳 일리노이주의 한 박물관에 갔던 일이 기억납니다. 머리 뒤쪽에 테두리처럼 머리카락이 조금 남은 늙은 흑인 한 분이 걸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분은 박물관을 둘러보다가 멈춰 서서 무언가를 바라보았습니다. 몸을 뒤로 움츠리더니 울기 시작했고 얼굴에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는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몇 분 동안 지켜보다가 가까이 다가가 “어르신, 안녕하십니까?” 하고 인사했습니다. 그분도 “안녕하십니까?” 하고 인사했습니다. 저는 “저는 목사입니다. 왜 기도하셨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감격하셨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분은 “이리 와 보세요”라고 했습니다. 작은 유리판 아래를 들여다보니 드레스 한 벌이 놓여 있었습니다. 저는 “드레스군요. 딱히 눈에 띄는 것은 보이지 않는데요. 사람이 뒤로 물러나 기도를 드리게 할 만한 것은 없어 보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하지만 보세요. 제 몸에는 아직도 노예 허리띠 자국이 남아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것은 에이브러햄 링컨의 피입니다. 에이브러햄 링컨의 피가 제게서 그 노예 허리띠를 벗겨 주었습니다. 선생님도 감격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저는 뒤로 물러서서 말했습니다. “에이브러햄 링컨의 피가 허리띠를 벗겨 주었다는 이유로 노예를 감격하게 한다면, 다시 태어났다고 고백하는 교회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그 권능 가운데 선포될 때는 어떤 일이 일어나야 하겠습니까? 어떤 일이 일어나야 하겠습니까?”
어느 날 그들이... [테이프의 공백.] 그들은 채찍을 들고 노예들을 때려서 일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어느 농장에서 한 젊은이를 눈여겨보았습니다. 그 사람은 채찍질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형제여, 그는 가슴을 펴고 고개를 들고 자기 일을 똑바로 했습니다. 중개인이 “저 노예를 사고 싶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저 사람은 팔지 않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중개인은 “다른 사람들과는 아주 다르군요”라고 했습니다. 주인은 “그렇습니다. 저도 그것을 알게 되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중개인은 “아마 다른 노예들을 모두 감독하는 사람인 모양이지요?”라고 했습니다. 주인은 “아닙니다. 그저 노예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중개인은 “그렇다면 다른 노예들보다 더 잘 먹이시는 모양이군요”라고 했습니다. 주인은 “아닙니다. 모두 저 식당에서 함께 먹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중개인은 “그런데 무엇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그렇게 다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주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도 오랫동안 그것이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가 온 고향에서는 그의 아버지가 부족의 왕이랍니다. 그는 고향을 떠나 이 낯선 나라에 와 있는 이방인이지만, 자신이 왕의 아들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왕의 아들답게 처신하는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낯선 나라에 온 아프리카 사람이 왕의 아들에게 걸맞게 처신하고 행동할 수 있었다면, 우리 아버지께서 왕이신데 하나님의 아들딸인 우리도 그에 걸맞게 행동하고 하나님의 아들딸답게 처신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여자들은 하나님의 딸답게 옷을 입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남자들은... 아, 참으로. 자기 아내가 반바지를 입고 담배를 피우도록 내버려 두는 남자를 저는 남자라고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가정의 머리여야 합니다. 그것을 보면 그 집에서 누가 주인인지 알 수 있습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아.
남자는 근육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짐승을 평가하는 방법입니다. 남자는 인격으로 평가합니다. 몸무게가 이백 파운드나 나가고 온몸이 근육인데도 남자다운 면은 조금도 없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엄마 품에서 아기를 내던지고 그 여자를 능욕합니다. 그것은 남자가 아닙니다. 짐승입니다. 야수입니다. 남자다움은 인격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같은 남자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분에게 우리가 흠모할 만한 아름다움이 없었다고 말씀합니다. 아마 몸집이 아주 작고 어깨가 굽었거나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모두 그분을 피하듯 얼굴을 감추었습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인격은 없었습니다. 그것이 참된 남자다움입니다. 남자를 근육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느라 바지 무릎이 얼마나 불룩해졌는지로 평가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인격으로 남자를 평가합니다. 사실입니다.
성령께서 아버지 앞에 나아가 이렇게 말씀하실 때 얼마나 얼굴을 붉히셔야 하겠습니까? “아십니까? 아버지의 종들이 타협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기적의 시대는 지나갔다. 신유 같은 것은 없다. 그렇게 외치고 방언하고 은사를 나타낼 필요가 없다. 그저 교회로 있자’라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 안의 권능에서 모든 영광을 빼앗고, 아마 어떤 조직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조직도 괜찮습니다. 그 조직이 하나님의 권능과 함께하는 한, 하나님께서 그 조직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날 제가 오순절 신앙을 가진 이유가 그것입니다. 제가 본 어느 조직보다 하나님의 권능이 더 많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순절의 권능이 오순절 교회를 떠나면 저는 그 권능을 따라가겠습니다. 그렇습니다. 물론입니다. 하나님과 함께하십시오.
이스라엘 사람들이 따라갈 때는 불기둥을 따라갔습니다. 불기둥이 멈출 때마다 바로 그 아래에 진을 쳤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불이 로마 교회를 떠나는 것을 처음 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의롭게 됨 아래서 그 불을 따라 나갔습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그는 자신의 조직을 세우고 모든 신조를 써 놓은 다음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이것이 전부다. 우리가 믿는 이것이 루터교다.” 그러자 어느새 불기둥이 움직여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루터는 그것과 함께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미 신조를 세워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의 교회는 조직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존 웨슬리가 그것을 보았습니다. 은혜의 두 번째 역사인 성결이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따라 나갔습니다. 온 세상을 불타오르게 하고, 영국과 미국에 의롭게 됨을 가져왔습니다. 모든 위대한 사람들이... 우리가 경험한 가장 큰 부흥 가운데 하나가 웨슬리의 부흥이었습니다. 우리가 경험한 가장 큰 부흥 가운데 하나로 꼽힙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결을 발견한 뒤 어떻게 했습니까? 그 아래에 조직을 세우고 작은 울타리를 쳤습니다. “우리 감리교인들은 이것과 이것과 이것과 이것을 믿는다.” 그리고 교리에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이것이다.”
주의 천사가 움직여 나갔습니다. 그러나 감리교인들은 함께 갈 수 없었습니다. 오순절 사람들이 그것을 보았습니다. 성령 침례, 은사들의 회복이었습니다. 그들은 힘껏 달려 나갔고, 감리교인들을 훨씬 뒤에 남겨 두었습니다. 필그림 성결교회와 나사렛 교회, 그리고 계속 나아가려 하지 않았던 사람들을 뒤에 두고, 그들은 그것과 함께 계속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그... 어느새... 지금 오순절에는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작은 모임 하나를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불기둥은 그대로 움직여 나갔습니다. 그것을 따라갑시다. 우리 교회들을 데리고, 우리 형제들을 데리고, 루터교인과 침례교인과 감리교인도 함께 데리고 갑시다. 제가 말했듯이 오순절은 조직이 아닙니다. 오순절은 체험입니다. 저는 침례교인이었지만 오순절의 복을 받았습니다. 이곳에는 감리교인, 루터교인, 온갖 사람들이 성령을 받고 있습니다. 가톨릭교인, 유대인, 불신자, 누구든지 와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의 충만한 권능 가운데 그분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받습니다.
그분은 교회의 가정교사이십니다. 바로 그분이십니다. 성령께서 교회 안에 살아 계시도록 길을 내어 드리십시오. 그때 참된 집회가 열릴 것입니다. 여러분의 목사님 말씀을 들으십시오. 그가 하지 않게, 그... 보십시오. 마귀는 여러분이 하나님의 참된 것을 보지 못하도록 막을 수 없으면, 그것을 가지고 여러분을 지나친 극단으로 밀어 버릴 것입니다. 그렇게 여러분을 광신자가 되게 할 것입니다. 광신자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참되고 진실한 것이 너무나 많으므로 광신자가 될 필요가 없습니다. 아, 오순절의 온 하늘에 그것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목사님 말씀을 들으십시오.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한 사람, 여러분을 내보내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려 줄 선생입니다. 그 자신이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를 지켜보십시오. 그는 말씀에 꼭 붙어 있을 것입니다. 말씀이 정확히 말씀하는 그대로 그 말씀에 머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말씀을 축복하실 것입니다. 어디에 있든 상관없습니다.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그 말씀을 축복하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거기에 머물 것입니다.
여러분도 말씀에 꼭 머무르십시오. 그 말씀은 생명입니다. 말씀을 받아들일 때마다 여러분은 생명을 받습니다. 그것을 마음속으로 받아들이고 자기 소유로 믿으십시오. 모든 약속은 여러분의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령을 받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맨 아래에 예수님의 이름이 서명된 수표책을 주셨습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원하든지 쓸 수 있도록 주신 것입니다. 거기에 써넣기가 두려우십니까? “내 이름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구하라. 하나님께서 그것을 너희에게 주시리라.” 저는 그 말씀이 좋습니다. 아, 참으로 순전한 믿음으로 서십시오. 구하고 믿으십시오. 그러면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이제 아버지가 앞으로 나아가면, 아니, 가정교사가 아버지 앞에 나아가면... 기억하십시오. 그분은 그저 연줄을 동원하고 잔꾀를 부리며 이렇게 말하는 사람을 택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드리자면, 그는 좋은 사람입니다. 교회에 헌금을 많이 하니 집사직에서 해임할 수 없습니다. 서너 번 결혼했더라도 말입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그는 교회의 주된 재정 후원자니까요.” 그는 교회에 방해가 되는 사람입니다. 분명히 그렇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참되고 진실하며 깨끗해진, 성령으로 충만한 교회입니다. 성령으로 가득 차 준비되고 충만하며 하나님의 거룩한 영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교회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전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침례교인이나 장로교인이나 다른 누군가를 일으켜 전하게 하실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반드시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그분은 그곳에 점도 주름도 없는 교회를 세우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님들, 몸을 흔들어 떨치고 먼지 속에서 일어납시다. 몸을 털고 위대하고 오랜 복음의 길에 들어서서 큰길을 따라 행진합시다. 우리가 할 일은 오직 “그리스도의 군사들이여, 전진하라”입니다. 지금은 느슨해지거나 편히 쉴 때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왕국을 향해 나아갑시다.
그러면 이제... 만일 이 아들이 훌륭한 아들이라면 어떻겠습니까? 가정교사가 아버지 앞에 나아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얼마나 즐거웠겠습니까? “아버지, 이 말씀을 드리게 되어 참 기쁩니다. 아버지의 아들은 꼭 아버지를 닮았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읽고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은 정확히 진리야. 내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이야. 내 아버지는 거짓말하실 수 없어. 나는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믿어.’” 아버지는 얼마나 기쁘게 “그 애가 내 아들이지”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아시겠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하시고 싶어 하십니다.
이제 그 아들이 태어났다면, 잘 들으십시오. 그 아들이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올바른 아이가 되지 않고, 아버지의 가르침을 따르려 하지 않으며, 아버지의 일을 돌보려 하지 않았다면, 그 아들은 언제나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유산은 전혀 받지 못했습니다. 그것을 아셨습니까? 그는 유산을 전혀 받지 못했습니다. 그저 버림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도 언제나 아들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의 아들 또는 하나님의 딸입니다. 그것은 분명히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빛 가운데 걷지 않고, 말씀 가운데 걷지 않고,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유산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은 정확히 그렇습니다.
자, 이것을 보십시오. 만일 그 아들이 의로운 신사라면 어떻겠습니까? 그는 아버지를 사랑했습니다. 아버지의 일을 돌보기를 좋아했습니다. 모든 포도원이 제대로 정돈되고 모든 사람이 각자의 직무를 지키는 것을 보기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일을 게을리하는 사람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그 사람에게 다가가 팔로 감싸 주며 말했습니다. “며칠 전, 아버지, 아드님이 저쪽으로 갔다가 이 사람이 일을 게을리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다가가 그 사람의 어깨에 손을 얹고 ‘선생님, 선생님은 제 아버지의 종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꼭 아버지께서 하셨을 것처럼 했습니다.” 아버지는 “나는 정말 그 애가 좋네. 내 아들이야”라고 말할 것입니다. 미국에서 말하듯이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인 것입니다. 아시겠죠? “내 아들이야. 나는 그 애가 자랑스러워.”
그 아들이 일정한 나이가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십니까? 그 아들은 가정 안에서 양자됨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했습니까? 그를 공개된 장소로 데려가 특별한 옷을 입히고 예식을 거행했습니다. 그 도시의 모든 사람이 둘러 모여 지켜보았습니다. 사람들이 이 아들을 바라보는 가운데 아버지가 양자됨의 예식을 거행했습니다. 그 뒤에는... 아, 이것을 놓치지 마십시오. 그 아들이 양자됨을 받은 뒤에는, 수표책에 쓰인 그의 이름이 아버지의 이름과 똑같은 효력을 가졌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이끌어 가고자 하시는 곳이 바로 거기입니다. 그저 이 산에게 “옮겨져라” 하고 말하면 산이 옮겨질 것입니다. 권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입니다! 온 창조 세계가 신음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병든 사람에게 “일어나라!” 하면 그대로 되는 그 지점에 이르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눈먼 사람들이 보게 될 것입니다.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 지금은 우리가 그들을 위해 기도하지만, 그때는 여러분이 명령할 것입니다. 그분은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그들이 병든 자를 위해 기도하리라”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이 마귀들을 내쫓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하겠다”가 아니라 “그들이 하리라”입니다. “너희가 이 산에게 말하면...” “내가 말하면”이 아닙니다. “너희가 이 산에게 ‘옮겨져라’ 하고 말하며 마음속으로 의심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양자됨입니다. 아들딸들에게는 양자됨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교회, 곧 오순절 교회와 감리교와 침례교 교회들이 훈련을 받기 전까지 어떻게 양자됨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먼저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권능을 교회에 맡기실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무슨 일을 할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자기 유산 전체를 망쳐 버릴 수도 있는 아들에게 어떻게 사업을 맡길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교회는 훈련된 상태에 이르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그 일, 훈련을 하고 계십니다.
아버지는 그 아들을 데리고 나가 예식을 거행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내 아들이다. 나는 그를 내 가족 안에 양자로 세운다. 그가 무엇을 말하든 나도 그렇게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그곳에서 예수님께 똑같이 하고 계셨습니다. 그분이 그들에게 요구하신 일을 친히 정확히 행하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분을 기쁘시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을 데리고 올라가셨고, 땅에 속한 세 증인인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소망과 믿음과 사랑을 데리고 가셨습니다. 또 모세와 엘리야를 내려오게 하셔서 이 위대한 양자됨을 증언하게 하셨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성경은 그분의 모습이 변하셨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분의 옷이 해처럼 빛났습니다. 특별한 옷이었습니다. 아멘. 특별한 옷, 특별한 기름부음이었습니다! 그들이 올려다보았을 때 그분이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빛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한 음성이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 참으로!
오늘 저녁 하나님께서 교회에 하시려는 일, 한 개인에게 하시려는 일은 누군가를 찾으시는 것입니다. 찾으시는... 성령께서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그분이 그 사람을 어떤 곳으로 데리고 나가 말씀하시고, 기름을 부으시며, 특별한 것, 곧 그분의 뜻을 이루고 행할 큰 권능과 은사를 주실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끊임없이 와서 “아, 끔찍합니다. 그들은 그저 이것을 따라다닙니다. 오류를 따라갑니다. 교회에 가려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고 말씀하셔야 한다면 어떻게 그렇게 하실 수 있겠습니까? 교회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 보십시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 몸 전체에 그렇게 하실 수 없으면, 개인들을 골라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돌들로도 아브라함에게 자손들을 일으키실 수 있습니다.
보십시오. 첫 초자연적인 움직임이 일어나자마자, 베드로는 오늘날 세상과 아주 비슷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초자연적인 일이 일어나고 큰 기적이 행해지자마자... 모세 때에도 마찬가지로 섞인 무리가 있었습니다. 모세가 이집트로 내려갔습니다. 그가 그곳에 내려갔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기적들을 행했습니다. 그러자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이 모두 함께 모였습니다. 기적은 사람들을 흥분시키기 때문입니다. 섞인 무리가 그들과 함께 나갔고, 바로 그 섞인 무리가 진영을 더럽혔습니다. 아멘. [불명확한 말들] ... 아니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이 행진하는 도중에 그들을 망친 것은 바로 그 섞인 무리였습니다. 그것이 오늘날의 정확한 모형이 아니라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섞인 무리,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이 섞인 것입니다... 그들이 와서 침례만 받겠다고 하면 교회 안으로 받아들입니다. 필요한 것은 그것뿐이라고 합니다. 형제여, 묻히기 전에 먼저 죽어야 합니다. 섞인 무리입니다.
베드로는 몹시 흥분했습니다. 초자연적인 것을 보자마자 곧바로 말했습니다. “여기에 장막 셋을 지읍시다.” 즉시 그렇게 말했습니다. 루터가 한 것과 같고, 웨슬리가 한 것과 같으며, 우리 오순절 형제들, 우리 모두가 한 것과 같습니다. “아, 우리는 이런 오순절 교단, 저런 오순절 교단, 또 이런 오순절 교단을 만들겠어. 우리 조직을 만들겠어. 그런데 이 사람들은 그분이 흰말을 타고 오신다고 믿는군.” “우리는 그렇게 안 믿어. 우리는 그분이 흰 구름을 타고 오신다고 믿어.” “그럼 저들은 가게 내버려 둬. 우리 편이 아니야.”
아, 바로 그것입니다. 초자연적인 일이 행해졌습니다. 그러자 뒤따라온 것이... 얼마 전에 주님께서는 은사들을 주시고 사람들을 보내셨습니다. 우리의 귀한 토미 오스본 형제님, 로버츠 형제님 같은 분들입니다. 그들이 나가서 초자연적인 일들이 행해지기 시작하자, 그들은 그저 자기 조직 안에 머물면서 계속 나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새 자신들만의 늦은 비, 이른 비, 안쪽 비, 바깥쪽 비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아, 참, 비, 비, 비, 온갖 비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초자연적인 일이 행해지면 섞인 무리가 나서기 시작합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사람들을 흥분시킵니다. 섞인 무리가 그들과 함께 갑니다.
자, 들으십시오. 베드로가 아직 말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가 “장막 셋을 지읍시다. 하나는 모세를 위해, 하나는 엘리야를 위해, 하나는 예수님을 위해 짓읍시다”라고 말하고 있는 동안이었습니다. 그가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성경이 뭐라고 말씀하는지 보십시오. “그가 아직 말할 때에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그만두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입니다. “모세의 말을 듣지 말라.” 저는 그것이 기쁩니다. 정말 기쁩니다. 모세는 율법을 나타냈습니다. 율법은 아무도 구원할 수 없었습니다. 율법은 경찰관이었습니다. 율법은 여러분을 정죄하여 감옥에 넣지만 꺼내 주지는 못합니다. 은혜가 여러분을 꺼내 줍니다. 율법은 여러분을 감옥에 넣습니다. 여러분을 정죄합니다. 은혜가 여러분을 꺼내 줍니다.
그때 베드로는 “장막을 하나 더 짓겠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싶어 하는 모든 사람을 위해 하나 짓고 그들을 이쪽으로 가게 합시다.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이 이쪽에 조직을 하나 갖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선지자들을 믿는 사람들도 있게 합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엘리야는 무엇을 나타냈습니까?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냈습니다. 그는 능력 있는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산꼭대기로 올라갔습니다. 주님께서 그곳으로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주님의 일에 끼어들어 그에게 어디로 가라, 무엇을 하라 하고 말했습니다. 엘리야가 일어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그들을 태워 버리기 원하노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불이 내려와 오십 명을 태워 버렸습니다. 사람들이 돌아가 왕에게 알렸습니다. 왕은 “아, 그건 아마 열뇌우 같은 것이었을 거야. 벼락에 맞은 거겠지. 다른 오십 명을 보내겠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또 오십 명을 보냈습니다. 엘리야가 일어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그들을 태워 버리기 원하노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또 오십 명이 죽었습니다. 이번에는 열뇌우가 아니었습니다. 아시겠죠? 그들은 그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였습니다.
저는 그분의 공의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분의 율법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분의 긍휼을 원합니다. 제가 간구하는 것은 긍휼입니다. 오 주님, 어떤 율법으로도 저를 심판하지 마옵소서. 저는 정죄받을 것이고 견딜 수 없습니다. 제게 공의대로 갚지 마옵소서. 저는 마땅히... 저는 죄인이므로 지옥에 가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주님, 제게 아버지의 긍휼과 사랑과 은혜를 주옵소서.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그의 말을 들으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도, 공의도, 율법도 아닙니다. “그의 말을 들으라. 그에게는 너희를 위한 긍휼이 있느니라. 너희를 위한 선물들이 있느니라. 그는 높은 곳으로 올라가 사람들에게 선물들을 주었느니라.” 하나님께서는 그곳에서 자기 아들을 양자로 세우실 때 행하셨던 것과 정확히 같은 일을 행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이제 더 이상 내 말을 듣지 말라. 나는 하나님이지만 내 아들을 양자로 세웠느니라. 아들을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올 수 없느니라.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아,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교회를 취하여 양자로 세우기를 얼마나 원하시는지요. 그분은 교회를 낳으셨고, 이제 양자로 세우고 싶어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가만히 있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감리교 가운데서 일어나면 침례교는 상관하려 하지 않습니다. 한 교회 가운데서 일어나면 다른 교회는 상관하려 하지 않습니다. 이리 비틀고 저리 돌아섭니다. 왜 그렇습니까? 섞인 무리이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똑같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함께 모여 기도 모임을 갖고, 하나님께서 성령의 양자됨을 보내실 때까지 그곳에 머무는 것입니다. 성령을 내려 보내시고, 교회 안에 사도와 선지자와 교사와 복음 전도자와 목사를 세우실 때까지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것입니다. 교회에 필요한 것은 그것입니다. 그런 교회는 타협하지 않을 것입니다. 말씀에 머물 것입니다. 세상에 추파를 던지지 않고, 죄와는 어떤 관계도 맺지 않으며, 죄에서 등을 돌리고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아름다움 가운데 걸으며 하나님을 위해 사는 교회입니다. 살든 죽든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내가 하나님 편에 있기만 하다면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그것을 이루시려고 애쓰십니다. 그렇게 하시려고 애쓰십니다. 그분은 자신이 그 일을 하고 계심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시려고 때때로 그렇게 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은사들을 교회 앞에서 흔들어 보이실 때, 지난번 저녁에 제가 말했던, 십 센트 가게에서 여자와 함께 있던 아기처럼 교회는 왜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까?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 월요일, 화요일, 닷새 밤입니다... 이 넓은 지역에, 천이백 석짜리 강당인데 빈자리가 이백 석이나 됩니다. 의에 굶주리고 목마르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여러분을 꾸짖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진실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무엇이 문제인지 아십니까?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오늘날 사람들은 오락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미국 사람들은 오락을 너무 많이 즐겨서 이제는 반드시 오락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그들 안에 있는 영을 먹여 살립니다. 오락을 즐기는 영입니다. 그들을 즐겁게 해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지 않으십니다. 사람들을 책망하십니다. 심판은 하나님의 집에서 시작됩니다. 교회가 설교자의 보수를 마련하려고 수프 만찬과 춤과 번코 주사위 놀이, 온갖 시답잖은 중고품 바자회를 열어야 하는 지경에 이른다면, 하나님께서 그 교회를 불쌍히 여기시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음! 우리에게는 권능과 양자됨 가운데 임하시는 성령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사역이 분명히 말할 것입니다. 아멘. 그러나 사람들은 무언가를 보러 갈 때 특정한 사역을 보러 갑니다. “여기 이 형제에게 특별한 사역이 있대.” 그래서 가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 그래. 꽤 괜찮네. 응, 좋아. 그래, 괜찮아. 그런데 내일은 어디로 갈까?” 또 다른 것을 찾습니다. 아시겠죠? 그것은 그들의 관심조차 끌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너무나 많이 보았기 때문에, 그저 아무 생각 없이 그것을 떠나 버립니다.
영국의 옛이야기 하나가 생각납니다. 어느 사람이 바다에 관한 글을 읽었다고 합니다. 바다가 얼마나 아름답고, 소금기 가득한 거대한 파도가 얼마나 장엄하게 솟구치며, 갈매기가 그 위로 어떻게 나는지 읽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요. 그는 바다를 본 적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 돈을 충분히 모아 바다로 가게 되었습니다. 내륙을 지나 내려와 해안 가까이 이르렀습니다. 그러다가 바다에서 오는 늙은 바닷사람, 곧 선원을 만났습니다. 그 선원이 “여보시오, 어디로 가시오?” 하고 물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 저는 바다에 관해 읽었습니다. 지금 바다로 가는 중입니다. 아름답고 장엄한 파도가 부서지는 모습과 소금기 가득한 커다란 흰 물거품을 제 눈으로 보려고요. 짠 바다 공기를 맡아 폐에 가득 채우고, 갈매기 우는 소리도 들으려고 합니다.” 그 넓은 바다를 보게 된다는 생각에 그는 얼마나 들떠 있었는지요. 늙은 선원이 그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나는 오십 년 전에 바다에서 태어났소. 뭐가 그렇게 대단한지 모르겠군.” 아시겠죠? 그는 바다를 너무 많이 보아서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더 이상 아름답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그곳에 서서 파도 위로 흔들리면서도 아무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을 대하는 모습이 그렇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부흥 집회에서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사람들을 흔드시고, 사람들이 휠체어에서 일어나는 것을 봅니다. 다리 저는 사람들이 걷고 눈먼 사람들이 봅니다. 하나님의 영이 집회에 임하여 마음속의 생각들까지 분별하십니다. 위대한 예언의 말씀이 나가고 매번 완벽하게 정확히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교회는 “그거 괜찮네”라고 합니다. 커다란 껌 덩어리를 씹으며 앉아서는 “그래, 그거 괜찮아. 하지만 내일 저녁에는 루시를 볼 거야. 우리는 그냥 안... 알겠어? 목사님이 우리를 정죄하려고 해. 정죄하게 내버려 둬. 우리를 정죄하고 싶다면 우리는 다른 교단으로 가면 되지. 저쪽으로 가서 가입할 거야... 하나님의 교회에서 쫓겨나면 하나님의 성회로 가겠어. 성회에서 쫓겨나면 일신교로 가지. 일신교에서 쫓겨나면 두 분을 믿는 교파로 가지. 그리고... 두 분을 믿는 교파에서 쫓겨나면 세 분을 믿는 교파로 가지. 우리가 갈 곳은 많으니까”라고 합니다. 아시겠죠?
그렇습니다. 갈 곳은 많습니다. 그러나 형제여, 그분께 오고 싶다면 그곳에는 그리스도와 여러분을 위한 자리만 있습니다. 오 하나님, 오늘날의 교회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여러분을 화나게 하고 싶지 않으므로 오늘 저녁까지만 이렇게 하겠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끔찍한 상태에 있다는 것을 알려 드리기 위해 이 며칠 저녁을 통해 이 사실을 여러분에게 깊이 새겨 드려야 했습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우리의 열심이... 우리는 그저 게으르고 흐트러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런 모습이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이 시가 생각납니다. 슬픈 시구로 내게 말하지 마라, 인생은 그저 헛된 꿈이라고! 잠든 혼은 죽은 혼이며, 사물은 보이는 그대로가 아니니. 삶은 참되고, 삶은 진지하다! 무덤은 삶의 목적지가 아니니,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리라는 말은 혼을 두고 하신 말씀이 아니었다. 저는 이 「인생 찬가」의 한 구절을 좋아합니다. 위대한 이들의 삶은 모두 우리에게 일깨우네. 바울, 베드로, 야고보, 요한입니다. 위대한 이들의 삶은 모두 우리에게 일깨우네, 우리의 삶도 고귀하게 할 수 있음을, 떠날 때 우리 뒤에 남길 수 있음을, 시간의 모래 위에 발자국을. 그 발자국을 어쩌면 다른 사람이, 엄숙한 인생의 바다를 항해하다가, 외롭고 난파당한 형제가, 그대의 발자국을 보고 다시 용기를 얻으리.
술주정뱅이가 회심하여 거룩하고 경건하게 살아가는 발자국을 보면, 얼마나 많은 술주정뱅이가 그것을 바라보겠습니까? 고귀한 여자가 일어나 숙녀답게 옷을 입고 숙녀답게 행동하며, 교회에 다니고 온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보면, 얼마나 많은 여자가 용기를 내겠습니까? 그때 여러분은 인침을 받은 것입니다. 그때 여러분에게 표가 찍힌 것입니다. 모두가 여러분을 알아봅니다. 여러분은 땅의 소금입니다. 그러나 소금이 제맛을 잃으면, 그 뒤에는 아무 데도 쓸모없으므로 밖으로 던져져서... 사람들의 발밑에 밟힐 뿐입니다.
제 기도는 “하나님, 오순절 교회를 살려 주옵소서”입니다. 그분이 우리를 그런 자리에 이르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바로 이곳에서 오늘 저녁 그렇게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저녁 바로 여기 있는 이 무리를 취하여 양자로 세워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를 그분의 아들딸로 세워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아들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우리를 아들딸로 세워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얼마나 권능 있는 집회가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바로 오늘 저녁 이 교회 안에 은사들을 세우시면... 모레 저녁 이맘때면 무언가... 이 근방의 모든 사람이 저 학교 건물에서 무언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분명히 그럴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께서 사람들 가운데 살아 계시기 때문에 그들이 알게 될 것입니다. 아, 저는 얼마나 그렇게 되기를 원하는지요. 여러분 한 분 한 분도 그것을 원하지 않으십니까? 제가 너무 거칠게 말한다고 화내지 마십시오. 그러나 늘 말씀드렸듯이, 여기 제 형제는 목수인데 이렇게 말합니다. “못을 단단히 박지 않으면 버티지 못해. 흔들려서 바로 빠져 버리지.” 그러니 이 말씀이 흔들려 빠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바로 그 자리에, 그 자리에 남아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도 두 손으로 그것을 꼭 붙드십시오.
그 이야기를 하니, 오래전에 사냥철 초입이면 콜로라도에 올라가곤 했던 일이 생각납니다. 저는 엘크와 사슴 사냥을 좋아합니다. 휴가를 내서 가곤 했습니다. 어느 날 그곳에서 결코 잊지 못할 장면을 보았습니다. 여러 해 전, 저는 대륙분수령 뒤쪽 능선에 올라가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트러블섬강이라는 강이 있습니다. 저는 예전에 그곳에서 목장 일을 했습니다. 트러블섬강의 동쪽 지류와 서쪽 지류가 갈라지는 곳이었고, 헤리퍼드 협회가 그 골짜기에 소를 방목했습니다. 건초를 일 톤 생산할 수 있으면 소 한 마리를 그 목초지에 넣을 수 있습니다. 각 목장은 건초를 몇 톤씩 생산하는지에 따라 나뉘어 있어서, 여러분은... 이곳 오리건도 같은 방식인 것 같습니다만, 소를 목초지에 넣는 것입니다. 봄철에 소들을 모아 위로 몰고 올라갈 때면 저도 그곳에 가곤 했습니다. 사유지와 정부 소유지를 나누는 소몰이 울타리가 있었습니다. 저는 한쪽 다리를 안장 앞의 뿔 모양 손잡이에 걸치고 앉아서, 관리인이 그곳에 서서 소들이 지나가는 것을 살피는 모습을 지켜보곤 했습니다.
우리 목장의 낙인은 삼각대 모양이었고, 저 위 그라임스 씨의 낙인은 마름모와 막대 모양이었습니다. 이십 곳이나 삼십 곳의 서로 다른 목장주들이 소를 그곳으로 통과시켰습니다. 그런데 보니 그 목장주는 소에 어떤 낙인이 찍혀 있는지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살폈는지 아십니까? 귀에 달린 혈통표를 보았습니다. 순종 헤리퍼드여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목초지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심판 날 그렇게 하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분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성회에 속했든, 하나님의 교회에 속했든, 어디에 속했든 상관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형제여, 그분은 피의 표를 찾으실 것입니다. 그 표가 있으면 들어갈 것입니다. 없으면 어떤 낙인을 달고 있든 상관없이 거절당할 것입니다. 그것뿐입니다.
어느 날 저 높은 산속에서 말입니다. 그 늙은 목장주와 저는 아주 좋은 친구였고, 그는 훌륭한 사냥꾼이었습니다. 그는 짐말을 끌고 서쪽 지류로 갔습니다. 저는 코럴피크스라고 부르는 동쪽 지류 쪽에 있었습니다. 아직 눈이 오지 않았습니다... 아니, 쌓여 있을 만큼 오지 않았습니다. 이른 때였습니다. 눈보라가 아직 오지 않아서 짐승들은 높은 곳에 있었습니다. 저는 말을 묶어 두고 하루 걸음을 걸어 수목한계선 가까이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가을, 시월에 오는 그런 폭풍이 밀려왔습니다. 비가 세차게 쏟아지다가 진눈깨비가 내리고, 그다음에는 눈이 오다가 해가 나고, 또 비가 내리곤 합니다. 가을 날씨가 어떤지 아시지요. 그런 폭풍이 왔습니다. 저는 아주 높은 수목한계선에 올라가 있었고, 땅은 너무 말라서 발자국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무 뒤로 가서 이렇게 몸을 웅크렸습니다. 이런 표현이 좀 우습습니다만. 저는 나무 뒤에 서서 소총을 내려놓았습니다. 폭풍은 지나갔습니다. 폭풍이 지나간 뒤에... 폭풍이 부는 동안 날씨가 서늘해졌습니다. 비도 아주 세차게 내렸습니다. 폭풍이 지난 뒤 저는 거기에 서서 하나님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오 하나님, 얼마나 놀라우신 분이신지요”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언제나 자연 속에서 하나님을 봅니다. 그곳에서 그분을 보는 것입니다. “주님, 주님은 얼마나 놀라우신 분이신지요. 아, 이곳에서 제게 내려오셔서 저를 본향으로 데려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저를...” 제가 죽거든, 제가 죽었을 때 저를 위해 인디언들의 기도를 드려 주십시오. “주 하나님, 영이신 위대한 아버지, 그가 길게 뻗은 짐승들의 오솔길을 따라 걸어가 저편에서 사랑하는 이들을 만나게 하옵소서.” 저는 “그렇습니다, 주님. 이 세상을 떠날 때 이런 땅으로 가게 해 주옵소서”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저 서 있었고 폭풍은 그쳤습니다. 깊이 생각에 잠겨 있다가 몸을 일으켜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저쪽 서편, 이곳 오리건 쪽을 바라보니, 산 사이 틈으로... 오후도 저물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로 해가 커다란 눈처럼 비치고 있었습니다. 마치 하나님처럼 말입니다. “그분의 눈은 참새를 지켜보시네.” 저는 “오 하나님, 저 석양 속에 계시는군요”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보니 상록수에 내린 비가 얼어붙은 곳에 무지개가 생겨 골짜기를 가로질러 걸려 있었습니다. 저 높은 산꼭대기에서 늙은 회색 늑대가 울부짖었습니다. 아래쪽에서는 그 짝이 응답했습니다. 커다란 수컷 엘크도 울기 시작했습니다. 폭풍이 부는 동안 길을 잃었던 것입니다. 깊음이 깊음을 부른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아, 참으로. 저는 “왜 이곳을 떠나야 할까? 여기가 내 집인데. 영원히 여기 머물 수 있다면 좋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베드로처럼 느꼈습니다. “장막 셋을 짓고 여기 머뭅시다. 이곳이 머물 곳입니다.” 자기 짝을 부르는 그 늑대의 울음소리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저는 “그렇습니다, 하나님. 저를 부르시는 아버지의 음성입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엘크의 울음에서도 똑같이 들었습니다. 무지개가 걸린 것을 보고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무지개는 언약을 뜻합니다. 아버지께서는 알파와 오메가, 시작과 끝, 무지개의 양 끝이십니다. 전에도 계셨고 오시는 분, 다윗의 뿌리와 후손, 새벽별, 골짜기의 백합, 샤론의 장미이십니다.” 아, 그분은 얼마나 많은 것이 되시는지요. 또 생각했습니다. “무지개 안에 언약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에서 그분을 보았을 때처럼, 그 모습은 무지개 같으시며 처음과 마지막이십니다. 베냐민에서... 그리고 르우벤에서 베냐민까지, 처음과 마지막이며 모든...” 그저... 성경 말씀이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저는 “오 하나님, 얼마나 위대하신지요. 얼마나 위대하신지요”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발을 구르기 시작했고, 온 힘을 다해, 가능한 한 빠르게 나무 주위를 빙빙 돌며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하고 외쳤습니다. 그렇게 달렸습니다. 멈춰 서서는 “오 하나님, 얼마나 위대하신지요.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하고 외쳤습니다. 저는 그 산 위에서 구세군 전체를 혼자 모아 놓은 것 같았습니다.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사는 곳에서 삼십오 마일이나 사십 마일이나 떨어져 있었으니까요. 저는 주님께 환호하며 외치고 있었습니다. 침례교인은 그렇게 외치지 않는다고 생각하십니까? 제 소리를 들으셨어야 합니다. 저는 힘껏 그곳을 뛰어다니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를 외쳤습니다. “아, 얼마나 놀라운가. 주님, 여기 머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더는 대전도 집회를 열지 않더라도, 주님이 저를 데리러 오실 때까지 이곳에서 주님과 함께 머물 수 있다면요.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요”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날 산 위에 있던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의 경우처럼, 산 아래에는 고침받아야 할 병든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며칠 뒤에는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게 서 있는데, 갑자기 작은 소나무다람쥐 한 마리가 나타났습니다. 이곳에도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 숲속에서 파란 제복을 입은 경찰관 같은 녀석입니다. 제가 들어 본 것 가운데 가장 시끄러웠습니다. 녀석이 뛰어올랐습니다... 그곳에는 바람에 쓰러진 나무가 있었는데, 녀석이 그 그루터기에 올라가 “재잘재잘재잘. 재잘재잘재잘. 재잘재잘재잘” 하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얘야, 뭘 그렇게 흥분하니? 넌 무슨 일을 하기에는 몸집이 너무 작잖아. 뭘 그렇게 소리치는 거니?” 저는 말했습니다. “뭐 때문에 야단이니? 내가 널 놀라게 했니? 아까 것이 마음에 안 들었다면 이것 좀 봐라. 내가 얼마나 떠들 수 있는지 보여 줄게.” 그리고 다시 나무 주위를 빙빙 돌았습니다. “어떠냐?” 하고 생각했습니다. “아, 우리의 창조주는 놀라우신 분이야. 너도 그분을 찬양해야 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보니 녀석은 저를 보고 있지 않았습니다. 작은 머리를 옆으로 갸웃하고, 볼 옆으로 눈이 툭 튀어나온 채 이렇게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잠시 뒤 그 아래에서 기어 나온 것은... 바람에 밀려 내려온 커다란 갈색 독수리였습니다. 아, 아름다운 새입니다. 저는 독수리를 좋아합니다. 그 독수리가 그 위로 뛰어올랐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 그것 때문이었구나. 그래. 그래서 그렇게 야단이었구나. 저 독수리가 무서웠던 거야.” 커다란 독수리가 그 위로 뛰어올랐는데, 얼마나 거대한 녀석인지요. 큼직하고 회색빛이 도는 눈을 깜박이며 이리저리 둘러보았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주님, 왜 무지개와 늑대와 이 모든 것에서 제 주의를 돌려, 이것을 보게 하셨습니까? 저 독수리에 하나님을 나타내는 것이 무엇입니까?” 또 생각했습니다. “저 작은 다람쥐에게는 하나님을 나타내는 것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독수리에게도 그런 것이 보이지 않아. 저 독수리의 무엇이 하나님을 나타내는 걸까?”
그래서 자세히 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독수리를 보며 “내가 널 쏠 수 있다는 걸 아니? 여기 내 총이 있어. 널 쏠 수 있어”라고 말했습니다. 녀석은 제가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조금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내가 무섭지 않니? 내가 그렇게 외쳐서 무서웠니? 그것은 우리의 창조주를 향한 것이었어. 나는 그저 그분을 찬양한 거야. 너도 그래야 해.” 저는 그저... 누군가 숲에 왔다면 그곳에 정신 나간 사람이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주님을 경배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문제는 바로 그것입니다. 너무 격식을 차리고 너무 두려워합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이곳에는 나와 하나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뿐입니다. 그것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웃이 나를 뭐라고 할까?” 하고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올바르게 사십시오. 그러면 이웃도 여러분과 함께 다닐 때 무슨 일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저는 그 작은 다람쥐의 소리를 듣고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독수리를... “너는 왜 그렇게 자신만만하니?”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 독수리를 자세히 보기 시작했습니다. 녀석은 커다란 날개를, 그 깃털을 이렇게 부풀렸다가 바로 펴곤 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알겠다. 그래. 너는 그 날개를 믿고 있구나. 내가 손을 뻗어 저 소총을 잡고 어깨에 대기도 전에 너는 저 숲속으로 들어가서 내 눈에 다시는 보이지 않을 것을 아는구나.” 아시겠죠? 저는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위험을 피하라고 날개를 주셨기 때문에 네가 그 날개를 그토록 신뢰할 수 있다면,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의 권능을 얼마나 더 신뢰해야 하겠는가? 그 권능은 교회가 질병과 병환과 어려움과 죽음과 지옥을 벗어나, 언젠가 주 예수님의 품에 안겨 하나님께 날아가게 할 수 있는데 말이다.” 그저... 저는 생각했습니다. “녀석은 계속 느껴 보고 있어. 날개가 제대로 움직인다는 것만 느낄 수 있으면 괜찮은 거야. 자기 처지가 어떤지 알고 있어.”
그런데 성령께서 교회 위에 임하셔도 사람들은 도로 물러섭니다. “아, 모르겠어요. 다시 한번 기도해 주시면 괜찮아질지도 모르겠네요.” 아시겠죠? 그것은 그저... 아, 참으로 끔찍합니다. 저는 한동안 그 독수리를 지켜보았습니다. 그 녀석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한동안 지켜보며 그쪽을 바라보다가 “아, 네가 참 훌륭하구나. 하나님, 저 독수리 안에서 아버지를 봅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녀석은 저를 그다지 두려워하지 않았고, 녀석이 보았던 것은... 저는 그 독수리가 멋지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무엇이든 줏대가 있는 것이 좋습니다. 사람이 교회에 와서 찬양을 실컷 하고도, 밖에 나가서는 거리에서 간증하기를 부끄러워하고 식당에서 먹는 음식에 축복을 구하기를 부끄러워하거나 하는 모습을 보기 싫습니다... 아, 참으로. 겁이 많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겁쟁이를 쓰실 수 없습니다. 그분은 사내다운 사람들을 원하십니다. 그저 소원만 비는 ‘소원뼈’를 빼내고 그 자리에 등뼈를 넣기를 원하십니다. 옛 버디 로빈슨이 이렇게 말했듯이 말입니다. “주님, 제게 통나무만 한 등뼈를 주옵소서. 제 혼의 박공 쪽에 지식을 듬뿍 넣어 주시고, 이가 하나라도 남아 있는 한 마귀와 싸우게 도와주옵소서. 그 뒤에는 죽을 때까지 잇몸으로라도 물어뜯게 하옵소서.” 우리 모두에게는 그런 간증이 있어야 합니다. 오래된 나사렛 교회 형제님들 가운데 버디 로빈슨을 기억하는 분들이 많이 계시지요?
저는 그 독수리를 보며 “너는 정말 멋진 새구나. 네가 참 좋다. 나는 네 이야기를 설교에서 여러 번 했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네가 정말 좋구나”라고 말했습니다. 독수리는 작은 소나무다람쥐가 자기를 갈기갈기 찢어 놓기라도 할 듯 “재잘재잘재잘. 재잘재잘재잘” 하는 소리를 듣는 데 싫증이 났습니다. 다람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너무 작았으니까요. 충분히 들었다 싶었는지 독수리는 한 번 크게 뛰어오르고 날개를 두어 번 퍼덕였습니다. 그러자 저는 울었습니다. 그 독수리를 바라보며 서 있는 제 두 뺨으로 눈물이 흘렀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목적을 위해 그곳에 두신 것이 분명했습니다. 독수리는 날갯짓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두어 번 퍼덕여 나무들 위로 올라간 다음, 바람에 맞추어 날개를 펼칠 줄 알았던 것입니다. 바람이 한 차례씩 밀려올 때마다 조금 더 높이, 조금 더 높이, 조금 더 높이 올라가더니 작은 점처럼 보이게 되었습니다.
그 독수리는 땅에 매인 작은 소나무다람쥐를 그곳에 남겨 두었습니다. 다람쥐는 앉아서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재잘재잘재잘. 기적의 시대는 지나갔어. 성령 같은 것은 없어. 그런 것은 전혀... 방언으로 말하는 것은 다 잘못이야. 오순절 같은 것은 없어. 그건 저 먼 옛날 일이야.” 독수리는 바람의 힘에 맞추어 날개를 펼칠 줄 알았던 것입니다. 교회도 하나님의 권능 안에 믿음을 둘 줄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교회에서 저 교회로 옮겨 다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타고 올라가 “기적의 시대는 지나갔다. 성령 같은 것은 없다”라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까지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부인,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것이 진리라고 믿으십니까? 자매님도 믿으십니까? 믿으신다면, 원하실 경우 오늘 저녁 그 들것에서 벗어나 날아오르실 수 있습니다. 그저... 이 집회에 가고 저 집회에 가고, 이 사람에게 기도를 받고 저 사람에게 기도를 받고, 어느 특정한 설교자나 어느 특정한 복음 전도자에게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날개를 펼치십시오. 믿음을 굳게 두십시오. “나는 흔들리지 않으리라.” 할렐루야! 성령께서 임하실 때마다 그 바람을 타고 올라가십시오. 더 높이, 더 높이, 더 높이, 더 높이 올라가십시오. 그것입니다.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형제여, 믿으신다면 그저 날개를 펼칠 줄 아십시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거짓말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온전히 진실하십니다. 제가 여러분을 고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저는 아무도 고칠 수 없습니다. 다른 누구도 사람을 고칠 수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진 사람은 여러분, 바로 여러분 자신입니다. 오늘 저녁 성령께서는 이 건물 위에 끊임없이 물결치듯 임하고 계셨습니다. 믿으십니까? 물론입니다. 그분의 교회를 책망하고 징계하고 깨끗하게 하시면서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려는 일은 그것입니다.
옛날에 금을 두드리던 사람들 말입니다... 그것이 참으로 좋은 금인지 어떻게 알았는지 아십니까? 금을 가져다가 두드리고 두드리고, 뒤집어서 또 두드려, 찌꺼기를 모두 두드려 빼냈습니다. 찌꺼기가 다 빠졌는지 어떻게 알았는지 아십니까? 그 금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면 황철광과 그 밖의 것들이 모두 빠졌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돌과 다른 물질이 전부 빠진 것입니다. 금을 두드리는 사람이 자기 모습을 볼 수 있으면 순금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하시는 일도 그렇습니다. 그분은 교회를 두드리고 뒤집고, 두드리고 뒤집고, 또 두드리십니다. 어떻게 설교자가 그토록 나약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고, 남자와 여자들이 잘못 살고 있는데도 말해 주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런 부도덕한 옷을 입는 것이 잘못이라고 말하십시오. 담배를 피우는 것이 잘못이라고 말하십시오. 교회에 오지 않고 집에 있는 것은 잘못입니다. 도박이나 경주를 보러 다니고, 오늘날 교회가 하듯이 멋대로 행동하며, 복권 같은 것을 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제가 그렇게 해야 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막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결코 안 됩니다. 그것을 두드리십시오. 마침내... 예수님께서는 그 안에서 자신의 모습이 비칠 때까지 성령으로 두드리십니다. 그러면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의 일들이 행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때 교회는 휴거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순금입니다. 여러분 모두 믿으십니까?
좋습니다. 이곳에 병든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손을 들어 주십시오. 여러분은 믿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지요? 좋습니다. 여러분께 한 가지 부탁하겠습니다. 이쪽 두 목사님은 이 간이침대 쪽으로 내려와 주십시오. 저쪽 두 목사님은 저 간이침대로 가 주십시오.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님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아멘. 이분들은 믿는 사람들입니다. 다른 분들도 믿지만, 저는 이 두 분을 택했습니다. 둘이면 증인이 됩니다. 좋습니다. 나머지 여러분 가운데 지금 믿는 분은 얼마나 됩니까? 좋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옳습니까? 물론입니다. 옳습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맞습니까?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라고 하셨습니다. 맞습니까? 만일 그것이 옳지 않다면 여러분은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같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그러니 그것이 옳지 않다면 여러분은 구원받지 못했고, 천국도 없으며, 내세도 없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 사람들이 나으리라.” 이제 믿는 모든 사람은... 이런 표적들이 사역자들을 따르리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그들이 누구든지,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 사람들이 나으리라.”
자매님, 아기를 위해 기도받으려고 기다리고 계십니까? 아기가 아프거나 해서 기도받기 원하셨습니까? 아기가 많이 아프군요. 형제님, 목사님이십니까? 좋습니다. 저기 머리카락이 붉은 아기에게 가서 손을 얹어 주십시오. 다른 누가 안수받기를 원하는지 주위를 둘러보고 있습니다. 좋습니다. 보통은 우리가 분별의 사역을 합니다. 지금도 할 수 있습니다. 물론입니다. 틀림없습니다. 우리가 믿는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어야 합니다. “네가 만일 믿을 수 있거든 모든 것이 가능하니라.”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기도하며 하나님께 진심으로 구하면, 이 교회가... 우리는 한 몸입니다. 함께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진심으로 구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한 것을 이루어 주실 책임이 있으십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그것을 행하리라.” 이것이 진리입니까? 잠깐만요. 이것이 진리입니까? 물론입니다. 저는 제 혼을 그 말씀에 맡기겠습니다. 이미 그렇게 했습니다. 삼십일 년 동안 저는 이 말씀을... 요한복음 5장 24절을 기대하며 살아왔습니다. 읽어 보시려거든 한 손의 다섯 손가락, 또는 달걀 두 다스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아시겠죠? 요한복음 5장 24절입니다.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할 것이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느니라.”
저는 그것을 믿습니다. 저는 어린 소년이었을 때, 그저 소년이었을 때 사역자가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줄곧 설교해 왔습니다. 복음을 위해 제 생명을 드렸습니다. 드릴 생명이 만 개라도 있다면 좋겠습니다. 참으로 놀랍습니다. 저는 그 모든 순간이 즐겁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그렇다면...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다른 이것도 사실이 아닙니다.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그것도 사실이 아닙니다. 이것이 그것이라면 그것은 이것입니다. 아시겠죠? 그러니 우리는 준비되었습니다. 기도할 준비가 되셨습니까? 좋습니다. 이제 여기 계신 모든 분은 곁에 있는 누군가에게 손을 얹어 주십시오. 형제님들은 한 분은 이 들것의 발치에, 한 분은 머리 쪽에 서서 손을 얹어 주십시오. 그 어린... 그리고 저기 어린 남자아이와 이분들에게도 손을 얹어 주십시오. 이제 일어섭시다.
아, 저는 이런 순간이 참 좋습니다. 무언가... 모두가 숨을 죽인 듯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십시오. 여러분이 그저 돌리면... 이제 믿음을 마음껏 발휘하십시오. 믿음이 그대로 내려와 이렇게 말하게 하십시오. “이 자매님이 치유받을 거야. 이분도 치유받을 거야. 저 남자분도, 이 여자분도, 이분도, 이분도, 저분도, 저분도 모두 치유받을 거야. 치유받을 거야. 이것으로 끝이 날 거야. 내일이면 저분들이 너무나 달라져 있을 거야. 아, 정말 놀라울 거야.” 믿지 않으십니까? 우리는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오늘 저녁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양자로 세우시지 않으리라고 누가 알겠습니까? 우리는 그분의 명령에 순종하고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 각자가, 마치 여러분의... 지금은 자신을 위해 기도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에게 손을 얹고 있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자, 모두 서로 손을 얹은 채 고개를 숙입시다. 여러분 모두 제가 하는 이 기도를 따라 해 주십시오.
전능하신 하나님, 하늘과 땅의 창조주, 영존하는 생명의 창시자, 모든 좋은 선물을 주시는 분, 저의 아버지, 제가 손을 얹고 있는 이 사람을 위한 믿음을 제게 주옵소서. 아버지의 권능으로 이 사람이 치유받으리라는 것을 온 마음으로 믿게 하옵소서. 제가 죄를 짓고 어떤 면으로든 아버지를 믿지 않았다면 용서해 주옵소서. 모든 찬양과 모든 영광을 아버지께 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것을 약속합니다. 아멘. 이제 고개를 숙인 채 계십시오. 여러분이 무슨 말을 했는지 아십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위해 여러분의 입술을 통해 드리게 하신 기도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다른 사람도 여러분을 위해 똑같이 기도했습니다. 이제 하나님과 여러분만 있게 하십시오. 지금 이곳에는 여러분과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그저 믿음으로 하나님의 권능이 내려와 그 병든 몸들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느끼십시오. 조금 전에 성령을 느끼셨지요. 지금도 느끼십니까? 여러분 안을 움직이며 어루만지듯 흐르는 그 느낌, 몸을 충전하듯 채우는 그것이 그분의 치유하는 권능입니다.
오 하나님, 아버지께서 가까이 계십니다. 위대하신 여호와여, 아버지는 영존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주님, 지금 성령을 보내 주옵소서. 이곳의 각 사람이 아버지의 권능으로 충만해져, 손에서 손으로, 이곳에서 저곳으로 전해지고, 마침내 병든 모든 사람이 낫게 하옵소서. 그러면 치유가 사람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할 것이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일으키실 것입니다. 그들이 어떤 죄를 지었을지라도 용서받을 것입니다. 주님, 허락해 주옵소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옵소서. 저는 그들 모두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사역하는 제 형제들과 누군가에게 손을 얹고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기도합니다. 성령께서 그들에게 너무나 실제가 되셔서 하나님의 권능을 느낄 수 있게 하옵소서. 그것이 그들에게 큰 용기를 주어, 이 시간이 이 무리인 우리에게 양자됨의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그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과 그 영역 안으로 양자됨을 받게 하시고, 지금 하나님의 권능이 한 사람 한 사람을 통해 힘차게 흐르며 모두 치유받게 하옵소서.
오 주님, 아버지께서 가까이 계십니다. 이곳에 계십니다. 저는 조금도 의심 없이 아버지께서 여기 계시며 지금 아버지의 권능이 들어와 복을 내리고 있음을 압니다. 아버지께서 복을 주신 것은 복을 받을 것입니다. 말씀하신 것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에 넣어 주신 것은 그대로 될 것입니다. 주님, 그렇게 되게 하옵소서. 우리는 사탄에게 명합니다. 너 마귀야, 너는 죄를 씌우며 이 사람들을 묶어 놓은 악한 힘이다. 이 악한 일을 한 자야. 너는 싸움에서 졌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셨고, 참으로 셋째 날 다시 살아나셔서 네가 가진 모든 정당한 권리를 빼앗으셨다. 너는 허세뿐이다. 사탄아, 오늘 저녁 우리는 네 허세를 드러내고 있다. 악한 영아, 이 사람들을 놓아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네게 명한다. 지금 이 사람들에게서 모든 의심이 사라지고 성령께서 그들의 몸 안에 오셔서 한 사람도 빠짐없이 질병과 병환과 고통과 고난과 악한 힘들로부터 자유롭게 하실 것이다. 오 사탄아, 너는 패배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너는 패배했다. 너는 졌다. 너는 허세뿐이며 우리는 네 허세를 드러냈다. 나와라. 우리가 말하노니, 예수님의 이름으로 네게 명한다. 이 청중을 떠나라. 병들고 고통받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온전하게 될지어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나는 믿을 수 있고, 믿겠으며, 참으로 믿습니다. 나는 믿을 수 있고, 믿겠으며, 참으로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나를 고치심을. 위대하신 의사께서 지금 가까이 계시네, 우리 아픔을 함께 느끼시는 예수님. 낙심한 마음에 기쁨을 주시려고 말씀하시네, 다른 이름 아닌 예수님.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 없었다면 지금 움직여 보십시오. 한쪽 귀가 들리지 않았다면 다른 쪽 귀를 손가락으로 막아 보십시오. 어떤 상태에 있든, 믿음을 사용하기 전에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일하실 기회를 드리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무언가 하실 기회를 드리십시오. 믿음의 기도가 드려졌고 여러분에게 안수도 이루어졌습니다. 이제 주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저는 마귀가 여러분을 떠나고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온전하게 되도록 명합니다. 아멘. 믿으십니까?
이것을 믿는 모든 분은 지금 일어서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치유를 받아들이십시오. 아멘. 그렇습니다.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의심하지 마십시오. 똑바로 일어서십시오. 아멘.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분들을 데리고 가셔도 됩니다. 이분들도 나을 것입니다. 의심하지 마십시오. 그대로 나와 자유롭게 되십시오. 주님을 찬양합니다. 좋습니다. 아멘. 이제 모두 손을 들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저는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이 치유되었음을 선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