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잠시 그대로 서서 머리를 숙이고 기도하겠습니다. 지극히 은혜로우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주님의 신성한 은혜의 보좌에 나아오면서 저희는 주님의 공의의 그늘 아래 섭니다. 주님, 은혜로 저희의 죄와 허물을 용서해 주시기를 구합니다. 저희는 긍휼을 원합니다. 저희의 삶과 행위에 따라 저희를 심판하지 마옵소서. 저희에게 공의대로 갚지 마시고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아버지, 주님의 임재로 말미암아 오늘 오후가 오래 기억될 시간이 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아침 이 도시 곳곳에서, 온 계곡에서, 온 세상에서 행하신 일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예수님께서 오실 때까지 계속 저희와 함께하시며 주님의 은혜와 긍휼을 베풀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읽을 말씀과 그 말씀에 관하여 할 이야기를 복 주옵소서. 저희가 무엇을 하든, 무엇을 말하든 주님의 영께서 함께하여 주옵소서. 병들고 고통받는 이들을 치유해 주옵소서.
주님, 병상에서 회복 중인 이들, 이곳에 올 수 없는 이들도 잊지 않겠습니다. 오늘 오후 성령께서 그들의 침상 곁에 서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 건물 안에 있는 많은 이들이 그들을 위해 짐을 지고 있사오니, 그들이 치유받게 하옵소서. 삶이 끝나 저희가 주님 앞에 설 때, 겸손히 엎드려 감사드리며 모든 찬양을 주님께 돌리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옵나이다. 아멘. 앉으셔도 좋습니다.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회중에게 말씀을 전하러 오는 것은 참으로 기쁜 일입니다. 그분께서 결코 우리를 떠나지도 버리지도 않으시며, 우리가 겪는 모든 시련 속에서 함께하신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저 겸손한 믿음으로 그분을 믿고, 우리의 구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그분께 의지하는 것입니다. 오늘 오후가 몹시 덥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이곳과 벨기에령 콩고, 저 남아프리카가 얼마나 다른지 아시면 놀라실 것입니다. 그곳 사람들은 아침에 와서 온종일 그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 아래 땅바닥에 누워 있곤 했습니다. 하루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제가 그 나라에 도착하기까지 이삼 주씩 그곳에서 기다렸습니다. 사랑하는 이들을 널빤지 같은 데 실어 메고 정글을 헤치며 왔습니다. 사자가 나타나면 그 사람을 나무 위로 밀어 올려 놓고, 사자가 떠날 때까지 하루쯤 기다렸다가 다시 내려와 길을 갔습니다. 조금 더 가다가 흐르는 물을 마시려는데 악어가 아이 하나를 물어 가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계속 길을 갔습니다. 몇 시간 울고 나서 이미 끝난 일임을 알고 다시 갔습니다.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더위에 개의치 않습니다. 생명을 찾으려는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이해를 뛰어넘는 평안을 주는 무언가를 찾으려는 것입니다.
오늘 오후 이 자리에 앉아 있는 동안 그런 신실함을 마음에 두도록 합시다. 덥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우리가 날씨를 다스릴 수는 없습니다. 열매 같은 것들이 맺히려면 더운 날씨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풍성한 소출을 먹고 살도록 그분의 땅을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지 아십니다. 비만 오고 늘 그늘져 있다면 우리는 굶주릴 것입니다. 그러니 이곳에 있게 된 것이 참으로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손에 부채를 들고 계신 것이 보입니다. 이제 전력만 있으시면 되겠군요. 그러면 괜찮을 것입니다. 조금은 시원해지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제 요한복음 14장의 말씀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주님의 뜻이라면 내일 저녁부터 믿음을 세워 주는 몇 가지 주제로 연이어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제가 할 수 있고 하나님께서 도와주신다면 말입니다. 다음 주에 이어질 집회를 위해 여러분의 믿음을 세워 드리고 싶습니다. 할 수 있으시면, 힘써… 여러분 가운데 많은 분들이 일을 하셔서 나오기가 어렵다는 것을 압니다. 제가 굳이… 여러분이 단지 오시도록 이런 말을 하려는 것은… 이런 말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곳에서는 그런 일이 전혀 없었기를 바랍니다만, 많은 경우 사람들은 어떤 헌금을 거두려고 많은 사람이 나오기를 원합니다. 또 많은 군중이 사람들에게 주는 심리적인 효과 때문에 많은 사람이 나오기를 원하기도 합니다. “큰 군중이 모이지 않으면 나는 설교하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저는 큰 군중에게도, 작은 군중에게도 설교했습니다. 얼마나 모이든 상관없습니다. 얼마 전에는 스무 명을 수용하는 교회에서 부흥회를 했습니다. 영하의 날씨에 사람들이 밖에 서 있었으니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하지만 저는 돈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경비를 충당해야 하고, 여러분께 부탁드리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제가 직접 그 경비를 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그런 부탁도 드리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평생 헌금을 거둔 적이 없습니다. 한번은 형편이 어려워졌던 일이 기억납니다. 그것이 어떤 것인지 아시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오늘 오후 제 아내가 여기 앉아 있는데, 제가 이 이야기를 하면 대개 조금 쑥스러운 표정으로 저를 바라봅니다. 제가 막 집에 돌아왔는데… 저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퍼슨빌의 태버내클에서 17년 동안 목회하면서 사례비를 단 한 푼도 받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제가 쓸 돈 가운데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으면 헌금했고, 늘 십일조도 드렸습니다.
그런데 집에 와 보니 도저히 살림을 꾸려 갈 만큼 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있잖아요. 오늘 저녁에는 헌금을 거두어야겠어요.” 아내는 “당신이 헌금 거두는 걸 꼭 가서 봐야겠네요”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뒤에 앉았습니다. 그때는 전쟁 중이거나, 아니면 전쟁 직전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헌금을 내놓았을 것입니다. 아내도 사람들이 내놓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저를 도우려고 식탁에서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줄여 주기까지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도 그 사실을 알았기에, 그런 마음을 이용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젊었고, 일을 하고 있었으며, 일할 수 있는 형편이었습니다. 순찰 일을 맡아 광야 같은 곳을 하루에 30여 마일씩 걸었습니다. 무척 힘든 일이었고, 시간당 45센트를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헌금을 거두러 교회에 갔습니다. 잊을 수 없는 일입니다. 저의 오랜 친구가… 제가 말했습니다. “여러분, 오늘 저녁 제가 조금 궁한 형편입니다. 5달러쯤 필요합니다. 곧 납부해야 할 청구서가 있는데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그 밖에도 돈이 나갈 데가 있고요.” 제가… 우리 교회에는 헌금 접시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누가 제 모자를 가져다주시면, 5센트든 얼마든 함께 모아서 헌금을 좀 거두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제 교회의 회중은 이 층에 계신 분들과 거의 비슷한 규모였습니다.) 제가 그렇게 말하자… 와이즈하트 씨가 제 모자를 가지러 갔습니다. 그런데 보니 조그마한 할머니 한 분이 계셨습니다. 참으로 다정하신 분으로, 옛날 어머니들처럼 조그만 점무늬 앞치마를 두르고 계셨습니다. 그런 앞치마는 안쪽에 주머니가 있었지요. 그런 것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제 할머니도 그런 앞치마를 두르셨는데, 대나무 담뱃대를 피우셨습니다. 남자들에게 담배 피우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으셔서 그 주머니에 담배를 넣어 다니셨습니다. 남자들이 오는 것이 보이면 앞치마 밑으로 손을 넣고 엄지손가락으로 담뱃대 구멍을 막은 채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그들이 떠나면 그 낡은 담뱃대를 물고 방을 가로질러 오시곤 했습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의 일이 기억납니다. 110세이셨습니다. 에이브러햄 링컨이 암살된 일도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평생 자동차는 딱 한 대 보셨는데, 제가 저 깊은 산골까지 몰고 갔던 차였습니다. 기차는 평생 보신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할머니를 품에 안고 기도했습니다. 몸이 바싹 마르셔서 아마 몸무게가 50파운드쯤 되었을 것입니다. 참으로 다정하신 분이었습니다. 할머니는 구원받으셨고, 제 목을 팔로 감싸 안으시며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네 고운 마음에 지금부터 영원토록 복 주시기를 바란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 곁으로 가셨습니다. 제 친할머니였습니다.
그런데 그 할머니가 생각납니다. 그분도 조그마한 앞치마를… 교회에 올 때 두르는 앞치마가 있었습니다. 멀지 않은 곳에 사셨고, 우리 모두 가난했습니다. 그분이 그 작은 주머니 안으로 손을 넣더니, 위에 똑딱이 잠금쇠가 달린 작은 지갑을 꺼내어 5센트짜리 동전을 찾으셨습니다. 아, 제가 그것을 받았다면 그 돈, 은 서른 개를 받은 유다처럼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분이 손을 넣는 것을 보고… 그 모습을 보니 목이 꽉 메어 왔습니다. 목에 커다란 덩어리가 걸린 듯한 그 느낌을 아시지요. 제가 말했습니다. “아, 여러분께 농담한 것입니다! 정말 그러려던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이 뭐라고 하실지 보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러자 교회의 집사님이 모자를 손에 들고 저를 바라보며 “어떻게 할까요?”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냥 제 모자를 걸어 놓으세요. 농담이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분이 5센트나 10센트를 넣으셨다면 저는 견디지 못했을 것입니다. 잊을 수 없는 일입니다. 여보, 아내도 그 일을 압니다. 제가… 저는 건너갔는데, 낡은 자전거 한 대가 있었습니다. 존 라이언 형제님이 타고 와서 제게 주신 것이었습니다. 머리가 긴, 정말 다윗의 집 신도 같은 분이었습니다. 그 자전거는 타락한 것이 아니라 그저 낡았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10센트 상점에 가서 페인트 한 통을 사다가 칠하고 앞에 내놓아 5달러에 팔았습니다. 헌금을 거둘 필요가 없었습니다. 제가 헌금을 거둘 뻔한 일은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런 목적으로 여기에 온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을 돕고자 왔습니다. 이 동네에서 옳은 일을 하기가 조금 더 쉽고, 잘못된 일을 하기는 조금 더 어렵게 만들 무언가를 하려고 왔습니다. 여러분의 삶이 조금 더 기뻐지도록,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병을 치유하시고 수명을 늘려 주시며, 잃어버린 이들을 구원하시고 교회들을 도우시도록 말입니다. 이분들이 저를 후원하는 분들입니다. 제가 믿는 것을 똑같이 믿는 분들입니다. 믿지 않으셨다면 여기 올라와 앉아 계시지 않을 것입니다. 제게는 이분들이 가장 훌륭한 분들입니다. 진심입니다. 그저… 저기 계신 분들 가운데는 백발이시고 저보다 연세가 많으신 분들도 있습니다. 제가 죄 가운데 살던 소년이었을 때, 기타와 탬버린을 들고 이곳 길모퉁이에서 설교하시던 분들입니다. 그러니 오늘 오후 이분들 앞에 서는 제가 작게 느껴집니다. 이 자리는 그분들이 서셔야 할 자리입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전하면서 제가 걸어올 길을 수월하게 닦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은 심고 다른 사람은 물을 주며,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삶이 끝나고, 저 위대한 아침에 하늘의 장막을 가로질러 상이 차려지면, 우리가 그 혼인 만찬에 앉게 될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저는 그 자리에 꼭 있고 싶습니다. 아, 정말 그곳에 있고 싶습니다! 저는 그곳에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제가 바르게 살고 힘써 노력하면 하나님께서 그곳에 가게 해 주실 것입니다. 제가 한 일로 말미암아서가 아니라 그분의 은혜로 말미암아서입니다. 상 건너편으로 손을 내밀어 여러분 가운데 몇 분과 악수하며 말할 것입니다. “당신이 기억납니다. 지상에서 야키마에 계셨지요.” 아시겠습니까? 틀림없이 기쁨의 눈물이 우리 뺨을 조금 타고 흘러내릴 것입니다. 그때 가장 위대한 일이 있을 것입니다. 왕께서 그 모든 아름다움 가운데 나오셔서 우리 눈의 눈물을 닦아 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시는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얘들아, 울지 마라. 이제 다 끝났다. 세상의 창건 이래 너희를 위해 예비된 주님의 기쁨에 들어가라.” 저는 그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그때 우리는 지금의 이 존재에서 변화되어 죽지 않게 되고, 그분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이 될 것입니다. 그때는 더운 날의 수고도, 부채질도, 그런 모든 것이 끝날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토록 주님의 평안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날까지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수고하고, 일하고, 기도합시다.
요한복음 14장, 7절부터 12절까지 읽겠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분을 알고 또 보았느니라. 빌립이 그분께 이르되, 주여,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소서. 그러면 우리에게 족하겠나이다, 하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있었는데도 네가 아직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는데 어찌 네가 말하기를…,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소서, 하느냐?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들은 내가 스스로 하지 아니하며 오히려 내 안에 거하시는 아버지 곧 그분께서 그 일들을 하시느니라.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다는 내 말을 믿으라. 그러지 못하겠거든 바로 그 일들로 인해 나를 믿으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또한 내가 하는 그 일들을 할 것이요, 이것들보다 더 큰 일들도 하리라. 이는 내가 내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라.” 오늘 오후 제가 전할 주제는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소서 그러면 족하겠습니다”입니다. ‘족하다’는 말은 ‘만족하다’라는 뜻입니다. 아버지를 보여 주시면 우리가 만족하겠습니다.
자, 이것을 가지고… 사람이 생겨난 이래로 인간의 마음은 늘 하나님이 어디 계시는지 알고 싶어 했습니다. “하나님을 볼 수만 있다면.” 저는 하나님을 보는 네 가지 방법에 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어젯밤에는 요한복음 12장에서 “선생님들이여…”라는 주제, “선생님들이여, 우리가 예수님을 뵙기 원하나이다”라는 주제로 말씀드렸습니다. 어젯밤 이곳에 계셨던 분들 가운데 정신이 온전하고 성경을 조금이라도 아시는 분이라면, 그분께서 사람들 가운데서 일하시는 것을 보셨으리라고 믿습니다. 보지 못하셨다면, 거의 소망이 없는 지경에 이르셨다고 생각합니다. 아시겠습니까? 그것을 보지 못하셨다면 말입니다. 창세기에서부터 성경을 따라 내려오며, 이 마지막 날들에 무엇을 약속하셨는지 성경으로 확고하게 제시했습니다. 그리고 어젯밤 그분께서 이 건물 안으로 들어오시는 것을 우리가 보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아십니까? 그리스도인의 모든 무장은 보이지 않습니다. 사랑, 기쁨, 평안, 오래 참음, 선함, 온유, 부드러움, 인내 말입니다. 성령의 모든 열매는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나는 미주리 출신이오. 보아야 믿겠소”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결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분을 믿어야 합니다. 어젯밤 우리는 그분께서 영으로 임하시고 움직이시며, 그분의 백성 가운데서, 이 건물 안에 있는 믿는 이들 가운데서 확증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분께서 이 땅에 계실 때 행하셨던 것과 똑같은 일을 행하시며, “내가 하는 그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라는 성경 말씀을 확증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께 그토록 온전히 복종하여 성령께서 그들을 통해 일하실 수 있게 되었을 때 똑같은 결과가 나타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성령께서 예수님을 통해 일하신 것과 똑같이 말입니다. 그분은 방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와 내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내 아버지께서 내 안에 거하시며 그 일들을 하시느니라. 내 말들이 아니라 그분의 말들이니라.” 아시겠습니까? 그분은 하나님께 그처럼 복종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거하실 교회를 위해 죽으시고 그 교회를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그분께서 두 번째로 오실 때, 재림하실 때까지 그 교회 안에서 자신의 일들을 계속하시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하나님을 볼 수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을 보고 싶으신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어린아이 같은 일이라는 것을 압니다만, 우리는 어린아이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많은 것을 안다고 생각하게 되면, 정작 알아야 할 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했습니다. 우리는 결코 대단한 지성을 지녔다고 느끼며 남보다 높거나 남보다 더 많이 안다고 여겨서는 안 됩니다. 그저 평범하고 단순하게 지내십시오. 사람들은 하나님을 설명하려다가 정작 하나님을 지나쳐 버립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여기 서 계시는데도 사람들은 저 멀리서 하나님을 찾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게… 그저…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그렇지 않으신데도 무언가 대단한 존재로 만들려는 크고 강한 지성은, 오히려 그 단순함 때문에 혼란에 빠집니다. 그분은 여기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저… 그분은 여러분의 일부이십니다. 여러분을 이루는 한 가닥이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살 중의 살이요, 그분의 뼈 중의 뼈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자녀이므로 그분의 일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거하셨던 것처럼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이제 네 가지 방법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겠습니다. 셋이면 확증이 됩니다만, 오늘 오후에는 확실히 하기 위해 하나를 더 보태겠습니다. 둘이면 증언이 되고 셋이면 확증이 된다는 것은 누구나 압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당신이 스스로에 대해 말하니 당신이 마귀인 줄 우리가 압니다”라고 했습니다. 증언이 성립하려면 둘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한 사람이요, 내 안에 거하시는 아버지가 또 한 분이시니라. 나를 믿지 못하겠거든 그분께서 내 안에서 행하시는 일들을 믿으라”라고 하셨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러므로 둘로 확증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셋은… 이제 하나님을 보는 네 가지 방법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그분의 우주 안에 계신 하나님, 그분의 말씀 안에 계신 하나님, 그분의 아들 안에 계신 하나님, 그분의 백성 안에 계신 하나님입니다. 그분의 우주 안에 계신 하나님, 우주 안에서 그분을 찾을 수 있는지 보겠습니다. 그분의 말씀 안에 계신 하나님, 말씀 안에서 그분을 찾을 수 있는지 보겠습니다. 그분의 아들 안에 계신 하나님, 그분이 아들 안에 계신지 보겠습니다. 그다음은 그분의 백성 안에 계신 하나님, 그분이 백성 안에 계신지 보겠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네 가지 방법입니다. 불신자는 “그분을 내게 보여 주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얼마 전 제가 길모퉁이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었는데, 다음 모퉁이에서는 한 불신자가 연설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성경을 거기 펼쳐 놓고 “이것은 지금까지 쓰인 책 가운데 가장 더럽고 못된 책이오”라고 했습니다. 아, 계속 그런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사제였거나, 수도원에서 사제가 되기 위해 공부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상당한 신학 지식을 갖추고 말씀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씹는 담배를 씹고 있었습니다. 저는 작은 식료품 가게 옆에 서 있었는데, 그 사람이 식료품을 사러 들어오면서 설교자와 불신자가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아, 당신이 여기서 그렇게 크게 소리를 지르는 그 설교자군요.” “예, 그렇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설마 자기가 하는 그 말을 믿는 것은 아니겠지요?” 저는 “온 마음으로 믿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수도원에 있었으니 똑똑하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예, 온 마음으로 믿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의 지략은 제가 당해 내기 어려우리라는 것을 알았지만, 제게는 마귀가 무엇을 내놓든 맞서실 수 있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실지 기다리며 버텼습니다. 그는 “당신이 말하는 것에는 아무 실체도 없다는 것을 내가 증명하면 받아들이겠소?”라고 물었습니다. “그렇게 하실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 같은 것은 없소”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것은 선생님의 견해입니다. 제 생각은 다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자, 보시오. 사람의 몸에는 감각이 몇 가지 있소?” 제가 말했습니다. “감각이 있지요.” “학교는 어디까지 다녔소?” 저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 만큼은 다녔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그럼 사람의 감각을 말해 보시오”라고 했습니다. 저는 “보고, 맛보고, 만져 느끼고, 냄새 맡고, 듣는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위한 인간의 하나님이라면, 틀림없이 그 감각 가운데 하나로 그분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하오. 그분을 본 적이 있소? 맛보거나, 냄새 맡거나, 만져 느끼거나, 들어 본 적이 있소?” 저는 “그분을 느꼈습니다. 지금도 그분을 느낍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나도 그분을 느껴 보게 해 주시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느낀다는 감각은 손가락으로 만져 느끼는 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그분을 느껴도 선생님은 느끼지 못할 수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아, 아니오, 안 되오! 내게 그런 심리적인 수법은 통하지 않소”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핀 하나를 꺼내 그를 찔렀습니다. 그러자 그는… 처음에는 저를 때릴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의 손이 닿지 않게 뒤로 물러섰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선생님, 뜻이 있어서 그렇게 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한 가지를 설명하려는 것뿐입니다. 느끼셨습니까?” 그는 “물론 느꼈소”라고 했습니다. 저는 “하지만 저는 느끼지 못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나도 당신을 찔러 보게 해 주시오”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렇습니다. 제가 믿는 것을 선생님도 믿으시면 같은 결과를 얻으실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여러분의 배가 뒤틀려 아파도 저는 전혀 모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에게는 실제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저도 똑같이 배가 아프거나, 머리가 아프거나, 무엇이든 같은 일을 겪지 않는 한 제게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자…”라고 하며 생각하고 있는데, 그 사람은… 아시다시피… 어머니는 “소에게 줄을 충분히 풀어 주면 제 목을 스스로 매게 된다”라고 말씀하곤 하셨습니다. 그런 식으로… 저는 그의 심리에 맞장구를 쳤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아십니까? 선생님은 아주 똑똑한 분이십니다.” 그는 “우리 어머니는 바보를 기르지 않으셨소”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것 참 좋은 일입니다. 저로서는 알 수가 없지요”라고 했습니다. “성경에서 ‘어리석은 자가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하나님은 없다, 하였도다’라고 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때는 제가 원하는 지점까지 그를 이끌어 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만나 이야기해 본 분들 가운데 선생님처럼 명석한 생각을 지닌 분은 드뭅니다.” 그는 “그렇소”라고 했습니다. 아, 우쭐해졌습니다. 바로 그때 저는 제가 이겼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선생님께 생각이 있다는 것은 인정하시지요?”라고 했습니다. 그는 “물론이오. 왜 그러시오? 당신은 정신 나간 사람처럼 구는구려”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닙니다.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다만 선생님께 정말 생각이 있는지 궁금할 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라고 했습니다. 제가 “그것은 인간의 생각이지요?”라고 하자, 그는 그제야 제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아차렸습니다. 그는 “자, 잠…”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닙니다, 선생님. 저는 예의를 지켜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했습니다. 몸의 감각들을 말해 보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는 “당신도 알지 않소”라고 했습니다. 저는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저도 안다고 말씀드렸을 때 선생님께 그 감각들을 말해 드렸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보고, 맛보고, 만져 느끼고, 냄새 맡고, 듣는 것이오”라고 했습니다. 저는 “선생님의 생각을 본 적이 있습니까? 냄새 맡거나, 맛보거나, 들어 본 적이 있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없소.” 제가 “그러면 선생님께는 생각이 없는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아, 내게 생각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소”라고 했습니다. 저는 “선생님, 저도 제게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압니다. 그저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모든 무장은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이 바라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에 아브라함이 없는 것들을 있는 것처럼 불렀던 것과 같습니다. 오늘 오후에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이제 네 가지 방법으로… 열두 가지도 들 수 있겠지만, 하나님께서 지금 살아 계시다는 확증으로 이 네 가지만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오후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곳에, 바로 이 방 안에 계십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함께 모인 곳, 거기에 내가 그들 가운데 있으리라”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제 먼저 그분의 우주 안에 계신 하나님에 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구는 어떻게 지금 있는 공간에 떠 있을 수 있습니까? 도대체 어느 쪽이 위이고 어느 쪽이 아래입니까? 누가 압니까? 북극에… 아니, 남극에 있는 사람들도 북극에 있는 사람들만큼이나 자신이 위에 있다고 느낍니다. 그러니… 그들은 이쪽으로 밀고 있는데, 그것은 아래로 미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이 위를 가리킨다고 생각합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들은 위를 가리킨다고 생각하지만 우리에게는 아래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위를 가리키면 그들에게는 아래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처럼 지구가 공중에 떠 있습니다. 무엇이 지구를 거기에 붙들어 둡니까? 공 하나를 공중에 던지고 원하는 만큼 빨리 돌려 보십시오. 이 지구는 시속 1,000마일이 조금 넘는 속도로 돌고 있습니다. 둘레가 25,000마일인데, 24시간마다 한 바퀴를 완전히 돕니다. 그러니 시속 1,000마일이 조금 넘게 도는 것입니다. 자, 공을 공중에서 그와 똑같은 속도로 돌려 보십시오. 같은 궤도로 한 바퀴도 돌지 못할 것입니다.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위로 가든지, 아래로 가든지, 옆으로 가든지, 어떻게든 움직일 것입니다. 무엇이 지구를 거기에 붙들어 둡니까? 우리는 지구가 6,000년 동안 여기에 있었다는 것을 압니다.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달과 별들을 기준으로 그 시간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추어 1초도 어긋나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달과 해가 지날 때 언제 일식이 일어날지 20년 앞서 예측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창조물은 하나님과 조화를 이루어 움직입니다. 사람만 제외하고 말입니다. 사람은 아버지보다 자기가 조금 더 안다고 느끼는 그분의 아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께서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믿지 않고 모든 것을 이해해 보려고 애씁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얼마 전 한 불신자가 제게… 달과 해에 관하여, 작은 조각이 어떻게 떨어져 나왔는지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그것을 어떻게 증명하시겠습니까? 믿음으로 증명하는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말씀드리지만, 제 믿음은 그것을 믿기에는 너무 약합니다. 저는 그저 성경이 말한 것을 믿습니다. 제가 믿음을 두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만드셨다고 말씀하셨고, 저는 그대로 믿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가진 믿음은 하나님께서 그것에 관해 하신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오늘 오후 저 작은 꽃, 저 덩굴은 어떻게 살아 있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 없이 어떻게 살 수 있습니까? 아니, 식물 말입니다. 온 세상의 과학자들을 다 모아도 거기 달린 잎 하나를 만들 수 없습니다. 닮은 것은 만들 수 있겠지요. 그러나 그 잎 자체는 만들 수 없습니다. 그 잎에는 생명이 있고, 과학은 결코 생명을 만들어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작은 꽃을 생각해 보십시오. 여기 계신 여성 여러분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이 계곡도 추워집니다. 지금은 제가 돌아다니며 여러분의 꽃밭을 봅니다. 조금 전에도 하나님께 마음을 두려고 차를 타고 돌아다니며 기도했습니다. “주님, 이 계곡에서 무언가를 행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백성을 도와주옵소서. 참으로 어두운 때입니다.” 이렇게 길을 오가며 기도하다가 아름다운 꽃들을 보았습니다. 머지않아 그 작은 꽃에 서리가 내릴 것입니다. 꽃은 작은 고개를 떨구고 죽음을 맞을 것입니다. 어린 꽃도, 한창인 꽃도, 늙은 꽃도 있을 것입니다. 그 안에서 작은 검은 씨앗 하나가 떨어집니다. 믿으시든 믿지 않으시든,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꽃들을 위해 장례 행렬을 마련하십니다. 그것을 아셨습니까? 참으로 그러십니다. 가을비가 와서 하늘에서 굵은 눈물을 쏟으며 그 작은 검은 씨앗을 땅속에 묻습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겨울이 와서 씨앗을 얼리고 터뜨리면 속살이 흘러나옵니다. 이제는 몇 인치 깊이까지 얼어붙습니다. 줄기도 없어지고, 구근도 없어지고, 꽃잎도 없어지고, 씨앗도 없어지고, 속살도 없어집니다. 그것으로 그 꽃은 끝난 것입니까? 아닙니다. 해가 동쪽에서 떠올라 따뜻하게 비추기 시작하면… 전등을 가져다 비춰서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햇빛이 필요합니다. 햇빛을 받아 따뜻해지기 시작하면 그 꽃은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작은 생명의 씨눈을 어딘가에 감추어 두셔서 다시 살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식물입니다. 하나님께서 목적을 두고 이곳에 두셨고, 꽃은 불평하거나 안달하지 않습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이곳에 두신 목적을 이루며 삽니다. 우리도 그렇게 하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곳에 두신 목적을 이루며 사는 것입니다. 그저 “돼지를 길러야 한다”—그것도 좋습니다—“이것을 해야 한다, 저것을 해야 한다” 하기 위해서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어 그분께 영광을 돌리고, 작은 꽃처럼 그분을 찬양하도록 이곳에 두셨습니다.
얼마 전 “백합들을 보라”라는 주제로 설교하면서 백합, 백합 목사님을 예로 들었습니다. 그가 어떻게 마음을 열면 벌이 제 몫을 가져가고, 나그네들은 지나가며 그 아름다운 향기를 맡는지 말입니다. 모두가 백합 씨에게서 한몫씩 얻습니다. 그것을 만들어 내려고 그는 밤낮으로 수고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우주 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지 않으십니까? 어디에나 하나님이 계십니다.
저는 오하이오강가에 삽니다. 아, 저는 물을 참 좋아합니다. 그 도시에 사는 한 어린 소년이 있었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아주 착한 아이였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여쭤볼 게 있어요. 목사님이 하나님은 정말 위대하시다고 말씀하시는 걸 들어요. 그런데 누가 하나님을 볼 수 있는지 궁금해요.” 어머니는 “얘야, 주일학교 선생님께 여쭤보렴. 엄마는 대답할 수 없구나. 그런 것은 전혀 모르겠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주일학교 선생님께 여쭤보니, 선생님은 “아, 나도 그것은 모르겠구나. 목사님께 여쭤보는 것이 좋겠다”라고 했습니다. 아이는 목사님께 가서 여쭤보았습니다. 목사님은 “아니란다, 얘야. 아무도 하나님을 볼 수 없어. 하나님을 보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단다. 그건 할 수 없는 일이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는 실망했습니다. 그 아이는 강가에 사는 늙은 어부와 어울렸습니다. 어느 날 그들이 식스마일섬 근처에 올라가 있었는데—실례합니다—폭풍이 몰려왔습니다. (실례합니다.) 폭풍이 몰려왔고, 물이… 비가 내리고 나면 어떻게 되는지 아시지요. 나뭇잎들도 모두 깨끗이 씻깁니다. 늙은 어부는 다시 배에 올라 노를 저으며 강을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노를 젓는 사람이나 배를 타는 사람은 누구나 압니다. 노에 닿는 잔물결이 얼마나 조화를 이루는지 말입니다. 그는 물고기 상자를 뒤에 끌고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이쪽 서편으로 해가 나왔습니다. 늙은 어부는 동쪽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하늘에 무지개가 걸렸습니다. 아이는 배의 고물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백발의 수염을 기른 늙은 어부가 무지개를 바라보며 가는 동안 뺨에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이는 마음이 뜨거워져 배 한가운데로 달려가 어부의 무릎을 붙들고 그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 “할아버지, 여쭤볼 게 있어요. 주일학교 선생님도, 엄마도, 목사님도, 아무도 대답해 주지 못했어요. 누가 하나님을 볼 수 있나요?” 늙은 어부는 감격에 겨워 노를 배 안으로 거두어들이고 아이를 품에 안았습니다. “얘야, 하나님께서 네 고운 마음에 복 주시기를 바란다. 지난 50년 동안 내가 본 것은 온통 하나님이었단다.” 그 사람 안에 하나님이 그토록 가득하셨기에 바라보는 모든 것에서 하나님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 하나님을 모실 때 말입니다. 그분께서 여러분의 눈으로 바라보시게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손과 발과 입술과 혀와 귀와 눈을 쓰실 수 있을 때, 여러분은 그렇게 하나님을 위해 일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 계신 하나님께서 밖에 계신 하나님을 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우주 안에 계십니다. 그분은 무지개 안에 계셔서, 그 누구도 해결하지 못했던 질문을 그 자리에서 해결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모두 아시듯이 저는 사냥을 하는 사람입니다. 제 어머니는 절반이 아메리카 원주민 혈통이셨고, 제가 회심했다고 해서 제게서 그 기질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저는 지금도 콜로라도에 올라갑니다. 그곳의 공인 안내인이기도 합니다. 저는… 가을마다 제가 오랫동안 소를 치던 높은 산속으로 올라가곤 합니다. 거기 앉아 수없이 하나님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거기에 앉아 다리를 걸치고… 헤리퍼드 협회가 트러블섬강 계곡에서 소를 방목하는 곳에서, 봄철에 소 떼를 몰고 올라와 방목하러 들여보내는 목장 주인들을 바라보던 일이 생각납니다. 제가… 초교파적인 이유 한 가지가 여기 있습니다. 관리원이 소 떼를 막는 울타리 곁에 서서 소들을 살폈습니다. 목장에서 건초를 한 톤 생산할 수 있다면, 건초를 생산하는 톤수만큼 숲에 소를 넣을 수 있었습니다. 이곳에도 같은 규정이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곳에 서서 소들을 지켜보는 목장 주인은 소들에게 어떤 낙인이 찍혔는지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우리 낙인은 트라이포드였고, 그 위에 있던 다른 목장의 이름은 터키트랙이었습니다. 그보다 위에는 막대기 모양… 다이아몬드바 낙인을 쓰는 큰 목장인 그라임스가 있었습니다. 많은 목장에서… 어떤 목장에서는 수백 마리씩 소를 들여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관리원은 낙인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습니다. 귀에 붙은 혈통 표지를 살폈습니다. 그 숲에 헤리퍼드를 들여보내려면, 아니, 그 숲에 소를 들여보내려면 순종 헤리퍼드여야 했습니다. 등록된 헤리퍼드여야 했습니다. 저는 심판 날에 하나님께서 제가 하나님의 성회에 속했는지, 하나님의 교회에 속했는지, 어떤 교회에 속했는지, 어떤 낙인을 달고 있는지를 보시지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분은 피의 표지, 그분 자신의 아들의 피를 찾으실 것입니다. 그분께서 보실 것은 그것입니다. 다시 태어난 그리스도인 외에는 아무도 그곳에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엘크 사냥을 하던 때였습니다. 그해에는 엘크들을 아래로 내려오게 할 눈이 내리지 않아서 엘크들이 아주 높은 곳에 있었습니다. 목장 주인 중 한 사람인 제프리스 씨와 저는 그 일대 숲속 땅을 100마일에 걸쳐 구석구석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제가 소를 치며 소금을 먹이고 했기 때문입니다. 짐말 행렬을 이끌고 깊이 들어가 소에게 소금을 먹이고 소 떼를 모으곤 했습니다. 우리는 사냥을 갔습니다. 그는 아주 뛰어난 사냥꾼이었습니다. 그는 왼쪽으로 가서 우리가 웨스트포크라고 부르는 곳으로 들어갔고, 저는 이스트포크로 갔습니다. 나흘이나 닷새 뒤에 만나기로 했습니다. 잡은 엘크든 무엇이든 걸어 놓았다가, 말을 한데 모으고 짐을 챙겨 가서 사냥감을 싣고 내려오기로 했습니다. 저는 높은 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눈은 이렇다 할 만큼 내리지 않았습니다. 가을의 높은 산에서는 눈이 왔다가 비가 왔다가 해가 납니다. 10월쯤 날씨가 바뀔 때 어떤지 아시지요.
저는 거의 수목 한계선에 이를 만큼 높이 올라가 걷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북쪽에서 폭풍이 몰려오더니 하늘이 잠시 초록빛으로 변했습니다. 아, 바람이 불고 비와 진눈깨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나무 뒤로 가서 서 있었습니다. 가까이에 쓰러진 나무가 있어 소총을 거기 내려놓고 생각했습니다. “오 하나님, 얼마나 위대하십니까. 얼마나 놀라우십니까. 주님은 참으로… 산들을 만드시고, 샘물을 쏟아 내시며, 산을 솟아오르게 하셨습니다. 주님, 주님의 귀한 손으로 저를 계속 붙들어 주옵소서.” 비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서 있는데 바람이 더욱 거세졌습니다. 폭풍이 지나가고 나자 수컷 엘크가 울기 시작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폭풍 속에서 길을 잃은 것입니다. 저 높은 산비탈에서 코요테가 울자 더 아래쪽에 있던 짝이 대답했습니다. 다윗이 “깊음이 깊음을 부른다”라고 한 말씀을 아시지요. 야생 동물들이 서로 부르는 소리를 듣는 데서 저는 무언가 하나님다운 것을 느꼈습니다. 저기 엘크가 있었습니다. 뒤돌아서 서쪽, 이곳 워싱턴 쪽을 보니 산의 틈새로 해가 지고 있었습니다. 커다란 눈 하나가 바라보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렇지. 그분의 눈은 온 땅을 이리저리 달리시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디를 보아도 하나님이셨습니다. 온통 하나님다웠습니다.
그리고 이쪽을 돌아보니 무지개가 있었습니다. 비가 내려 상록수들이 얼어붙은 곳에… 햇빛이 비쳐 계곡을 가로질러 무지개를 이루었습니다. 늑대는 울고, 엘크는 소리 내어 울고, 해는 지고 있었습니다. 아! 저는 거기 서서 어린아이처럼 울었습니다. 뒤돌아보며 말했습니다. “그렇지. 무지개에는 무엇이 있나? 언약이요, 약속이다.” 요한계시록 1장에서 그분은 벽옥과 홍보석 같은 모습으로 보이셨습니다. 그것은 베냐민과 르우벤, 처음과 마지막입니다.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고 앞으로 오실 분, 다윗의 뿌리요 후손, 새벽별이십니다.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 그 모든 칭호가… 그분께서 저기 무지개 안에 앉아 계셨습니다. 저는 “아, 얼마나 아름다운가! 여기에 있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너무 기뻐서 나무 주위를 힘껏 돌고 또 돌며 목청껏 소리를 질렀습니다. 사람이 있는 곳에서 35마일쯤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저는 계속 소리를 지르고 환호했습니다. 누군가 숲에 들어왔다면 저 위 정신병원에서 누가 빠져나왔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저는 그저 소리를 지르며 환호했습니다. 개의치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었습니다. 혼자서 참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잠깐 멈추어 “그렇지. 그분은 알파와 오메가이시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다시 힘껏 나무를 돌고 돌고 또 돌았습니다. 안에서 끓어오르는 것을 조금은 내보내야 했습니다. 아시지요? 무언가가 끓고 있었습니다. 저는 목청껏 소리를 질렀습니다.
잠시 후 작은 소나무다람쥐 소리가 들렸습니다. 형제 여러분이 그 동물을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숲에서 푸른 제복을 입은 경찰 노릇을 하는 녀석입니다. 나무 그루터기 위로 올라가 “재잘재잘재잘! 재잘재잘재잘!” 했습니다. 저는 “작은 녀석아, 무엇 때문에 그렇게 흥분했니? 나는 너를 만드신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단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힘껏 나무 주위를 돌고 또 돌았습니다. “나는 바로 너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단다. 그분은 나의 창조주이시다. 나는 그분을 사랑한다. 경배하고 있는 거야.” 그렇게 계속 나무를 돌았습니다. 잠시 후 제가 말했습니다. “이게 마음에 들지 않니? 너도 그렇게 해야지. 너도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물이니 직접 그분을 경배해야 한단다.” 그런데 알고 보니 녀석은 저를 보고 있지 않았습니다. 조그만 머리를 옆으로 기울이고 쓰러진 나무 안을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바람이 독수리 한 마리를 그 안으로 몰아넣었던 것입니다.
독수리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새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선지자들을 독수리에 비유하십니다. 그분 자신도 독수리라고, 여호와 독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뜻이라면 언젠가 여러분께 “독수리가 자기 둥지를 휘저음같이”라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 다람쥐가 그렇게 옆으로 내려다보면서 거기 있는 독수리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이 커다란 독수리가 밖으로 뛰어나왔습니다. 아주 크고 회색빛으로 보이는 눈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 저것 때문에 흥분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을 유심히 보며 생각했습니다. “주님, 저 엘크의 울음소리 안에 주님이 계시는 줄 압니다. 늑대의 울음소리 안에도, 무지개 안에도, 지는 해 안에도 계십니다. 제 안에도 계십니다. 어디에나 계십니다. 모든 꽃 안에도 계십니다. 참으로 어디에나 계십니다. 그런데 제가 주님을 경배하는 것을 멈추게 하시고, 저기 서 있는 저 독수리를 보게 하신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저 녀석에게는 별것이 없지 않습니까? 남의 것을 빼앗는 녀석인데요. 저 녀석에게 무엇이 있습니까?” 제가 말했습니다. “왜 저 녀석을 나오게 하셨습니까? 무엇이… 저 밖에서는 하나님을 보겠는데, 저 독수리 안에서는 하나님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문득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이봐, 내가 너를 쏠 수 있다는 것을 아니?” 녀석은 제가 자기를 감탄하며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그 용기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녀석이 지켜보는 동안… 제가 살펴보며 “왜 나를 무서워하지 않니?”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녀석이 날개를, 그 깃털들을 움직이며 이렇게 상태를 느껴 보는 것이 보였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저… 저는 “아, 알겠습니다. 주님, 알겠습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녀석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두 날개가 있었습니다. 제가 소총에 손을 대기도 전에 저 숲속으로 들어가 더는 보이지 않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저 녀석이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저 독수리가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두 날개로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교회가 주위에 계신 성령의 권능을 느낄 때는 얼마나 더 그러해야 하겠는가.”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믿음으로 모든 질병과 모든 병과 세상의 모든 것에서 벗어나 날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 깃털들이 제 기능을 하는 한, 독수리는 자신이 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을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령의 바로 그 권능이 우리 위에 있고, 이 건물 안을 움직이시며 그분이 계심을 보여 주시는데도 앉아서 의아해하고 이리저리 더듬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디를 보든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믿지 않으십니까? 하나님은 독수리 안에 계시고, 늑대의 울음소리 안에 계시며, 저녁놀 안에 계시고, 그분의 우주 안에 계시며, 그분의 꽃들 안에 계십니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십니다. 그저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이 이야기를 마저 하겠습니다. 저는 그 독수리를 잠시 지켜보았습니다. 이 조그만 소나무다람쥐는 저 위에 앉아서 저를 보고 “재잘재잘” 하다가 독수리를 보았습니다. 얼마 후 독수리는 그 소리가 지겨워졌습니다. 그래서 크게 한 번 뛰어올라 날개를 두어 번 퍼덕이더니 날아갔습니다. 제가 보니 그 뒤로는 깃털 하나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푸른 숲 위로 올라가자 날개를 쫙 펼쳐 고정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산을 타고 바람이 올라와 “휘익” 불 때마다, 그 바람을 타고 올라가고 또 올라갔습니다. 저는 서서 그 모습을 보았습니다. 아, 점점 작아지더니 마침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저는 “바로 그것입니다! 주님, 바로 그것입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병이 들거나 궁한 일이 있을 때 “여기로 퍼덕퍼덕, 저 교회로 이명증서를 옮기자. 하나님의 성회에서 잘 대해 주지 않으면 하나님의 교회로 가자. 거기서도 잘 대해 주지 않으면 침례교로 돌아가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그저 믿음의 날개를 하나님의 권능 속에 어떻게 펼쳐야 하는지 알고, 그 권능을 타고 벗어나는 것입니다. 계속 나아가십시오. 성령께서 움직이기 시작하시면 그 움직임을 타고 올라가십시오. “퍼덕, 퍼덕, 퍼덕, 퍼덕, 퍼덕, 퍼덕. 여기로 가야지. 잘 대해 주지 않으니 저기로 돌아가야지. 로버츠의 기도 줄을 통과해야지. 브래넘 형제님이 오시니 그분의 기도 줄을 통과해야지”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권능에 믿음을 두고 벗어나십시오.
독수리는 그 작은 얼룩다람쥐, 아니, 다람쥐를 거기 앉은 채로 두고 떠났습니다. 녀석은 “재잘, 재잘, 재잘. 기적의 시대는 지나갔다. 신유 같은 것은 없다. 성령 침례도 없다”라고 했습니다. 독수리는 그저 바람을 타고 떠났습니다. 아,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 위로 올라가십시오. “신유 같은 것은 없다. 하나님은 그분의 말씀을 지키지 않으신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지 않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서 벗어나십시오. 그저 하나님의 권능 속에 날개를 펼치고 떠나십시오. 그렇습니다.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올라가고, 그들은 혼자 앉아 있게 두십시오. 그들의 말이 전혀 들리지 않을 만큼 귀를 닫으십시오. 그저 거기서 벗어나십시오. 하나님은 그분의 우주 안에 계십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피조물들 가운데서 움직이십니다.
작은 오리를 보십시오. 저는 가끔 사냥하러 북쪽 숲으로 갑니다. 온 세상을 다니며 사냥했습니다. 북쪽 숲으로 가면 저 호수에서 태어난 작은 오리가 있습니다. 녀석은 그 호수를 떠난 적이 없습니다. 그해 봄 거기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산꼭대기가 눈으로 덮이고 첫 찬바람이 산을 넘어 내려오면, 그 연못에 있는 어느 작은 오리, 조그만 수오리가 연못 한가운데로 나옵니다. 작은 주둥이를 공중으로 치켜들고 “꽥, 꽥” 하면 연못의 모든 오리가 그에게 모여듭니다. 그렇습니다. 녀석이 무엇을 하겠습니까? 그곳에서 날아오를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녀석은 그 연못을 떠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연못에서 곧장 날아올라 모든 오리를 이끌고 루이지애나의 논까지 갈 수 있는 가장 곧은 길로 갑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곳이 온통 얼어붙을 것입니다. 우리도 적어도 오리만큼의 분별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오리의 본능을 사용하여 그 백성, 아니, 동료 오리들을 얼어붙을 곳에서 이끌어 내실 수 있다면, 성령의 권능도 마땅히 우리를 치유자이신 그리스도께 이끌고 위험에서 벗어나게 해 주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오리에게 본능을 주셨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성령을 주셨습니다. 아, 지금 제 마음에 믿음의 감격이 솟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그런 것들을 피하도록 성령을 주셨습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라디오를 켜면 “내일은 춥겠습니다” 혹은 “덥겠습니다”라고 할 것입니다. 라디오가 무엇을 말하든 말입니다. 이를테면 “내일은 따뜻하겠습니다. 따뜻하겠습니다”라고 한다고 합시다. 그런데 저 암퇘지가 언덕 북쪽에 있는 나뭇가지들을 물어다가 반대편으로 옮기는 것을 보십시오. 라디오에서 말하는 사람의 말은 신경 쓰지 마십시오. 그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지만, 그 돼지는 압니다. 밖에 나가 토끼들이 덤불 밑으로 바싹 파고드는 것을 보십시오. 그 사람이 “날씨가 맑겠습니다”라고 해도 그 말은 신경 쓰지 마십시오. 그 일에 관해서는 토끼가 그 사람이 평생 알게 될 것보다 더 많이 압니다. 하나님께서는 토끼에게 그런 것을 피할 길을 주셨고, 토끼는 그것을 믿고 대비합니다.
노아가 방주를 지은 것과 같습니다. 비가 한 방울도 내리기 전에 방주를 준비했습니다. 아멘. 여러분은 오늘 오후 날아 떠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까? 이 병들과 질병들과 의심과 혼란에서 벗어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우주 안에 계십니다. 얼마 전, 몇 년 전 아버지와 제가 밭을 갈고 있었습니다. 더운 아침이었고, 옥수수밭의 마지막 김매기를 하던 중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자…”라고 하셨습니다. 말들이 자꾸 콧김을 내뿜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아버지, 말들이 왜 저러지요? 저 뒤에 코요테가 있나요?” 아버지는 “아니다. 아니야. 폭풍이 오고 있어”라고 하셨습니다. “뭐가 온다고요?” “폭풍 말이다.” 저는 “어디에도 폭풍은 보이지 않는데요”라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빌리, 잠깐 멈추어라. 네가 모르는 게 있구나. 하나님께서는 말에게 폭풍이 다가올 때 알아차리는 본능을 주셨단다”—말을 타 보신 분들은 번개가 말갈기 위로 어떻게 번쩍이는지 아실 것입니다—“말에게는 안전한 곳으로 피하려는 본능이 있단다. 그래서 콧김을 내뿜는 거야. 외양간으로 가고 싶은 게지”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폭풍이라고요? 천둥도 없고 번개도 없고, 어디에도 구름 한 점 없는데요”라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몇 분만 지켜보아라”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두 바퀴도 채 갈기 전에 폭풍이 몰려왔습니다. 아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본능을 주셨습니다. 그저 살펴보면, 하나님은 어디에나 모든 피조물 안에 계십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우주 안에 계십니다. 믿으십니까? 참으로 그러하십니다.
몇 년 전, 한 불신자가 전국을 돌아다녔다는 글을 읽었습니다. 그 사람은 너무나 똑똑하고 지적이어서 목사들도 상대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약 50년 전 일이었는데, 그는 사람들을 그리스도교에서 불신으로 돌아서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건강이 무너져 휴식을 취하러 콜로라도에 갔습니다. 어느 날 야영지에서 밖으로 걸어 나가 바위들을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정말인가? 내가 틀렸는가? 너희를 거기에 두신 존재가 계신가?”라고 했습니다. 나무들이 앞뒤로 흔들리고, 바람이 불며,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마침내 저 밖의 통나무 위에 앉아 바위들을 바라보던 그 불신자는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말했습니다. “제가 틀렸습니다. 하나님이여, 죄인인 내게 긍휼을 베푸소서.” 성경에서 “만일 이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즉시 소리를 지르리라”라고 한 것도 당연합니다. 무언가가 일어날 것입니다. 사람이 우주를 둘러보면 하나님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우주 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지 않으십니까?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우주 안에 계십니다.
이제 잠시 그분의 말씀 안에 계신 하나님을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우주 안에 계심을 믿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분명히 그분의 우주 안에 계십니다. 이 이야기로 오후 내내 계속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습니다. 나머지 두 요점도 다루고 싶습니다. 자, 그분의 우주 안에서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까? 그분의 우주 안에서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분은 얼마나 계십니까? 이 모든 서로 다른 것들 안에서 말입니다. 물론 볼 수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 안에 계시는지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말씀 안에 계십니다. 얼마나 그러하신지, “처음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이 하나님이셨더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말씀 안에 계십니다. 우리는 그것을 믿습니다. 그분은 말씀을 지키십니다. 우리는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이든 말씀하시면, 우리는 그 말씀이 그대로 내려와 나타나고, 그분께서 말씀하신 일이 정확히 이루어지는 것을 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 안에 계신 줄 압니다. 그분께서 아브라함에게 사라를 통해 아이를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아브라함은 25년을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지키셨습니다. 노아에게는 비가 내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신 모든 일이 그렇습니다. 120명에게 올라가서 오순절 날이 완전히 이를 때까지 예루살렘에서 기다리라고 하시며, 아버지의 약속을 보내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말씀을 지키셨습니다. 언제나 그분의 말씀을 지키십니다. “내가 하는 이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말씀을 지키십니다. “조금 있으면 세상은”—세상 체계는—“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나를 보리라. 세상의 끝까지 내가 너희와 함께, 너희 안에 있으리라.” 그분은 말씀을 지키십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말씀 안에 계십니다.
지난번 저녁에 말씀드렸듯이, 하나님은…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은 씨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씨 뿌리는 자가 씨를 뿌리러 나갔는데 그 씨가 싹이 났다”는 말씀 등이 있습니다. 모든 씨는 제대로 된 씨라면 자기와 같은 것을 낳습니다. 다시 자기와 같은 것을 만들어 냅니다. 몇… 3년이나 4년쯤 전에 저는 친구인 늙은 감리교 목사님과 제과점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이제 영광 가운데로 가셨습니다. 우리는 앉아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목사님이 이런 노래를 지으셨습니다. “우리가 빗장을 내렸네. 우리가 빗장을 내렸네. 죄와 타협했네. 우리가 빗장을 내리니 양들이 나갔네. 그런데 염소들은 어떻게 들어왔나?” 저는 말했습니다. “그것이야 간단하지요. 빗장을 내리셨으니까요. 그게 전부입니다. 타협하기 시작하니 그렇게 염소들이 들어와 양들의 먹이를 다 먹어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염소들은 그 먹이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잡초, 교회 제도의 잡초가 있어야 합니다. 염소는 잡초로 만족하지만 양에게는 참된 먹이가 필요합니다.
잘 보십시오. 그분과 인디애나주 헨리빌의 작은 제과점에 있을 때 라디오가 켜져 있었습니다. 우리는 거기서… 저의 아주 좋은 친구인 노목사 스펄전 박사님이었습니다. 라디오가 켜져 있었고 농업 시간이 방송되고 있었습니다. 켄터키주 루이빌의 작은 4H 클럽에서 기계 하나를 만들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밭에서 자란 것과 구별할 수 없을 만큼 완벽한 옥수수 알갱이를 재현해 내는 기계였습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밭에서 자란 옥수수를 자루에서 한 줌 꺼내고, 기계가 만든 옥수수도 자루에서 한 줌 꺼내 함께 섞으면, 다시는 둘을 구별하지 못할 것입니다. 잘라 보면 칼슘 양도 같고 수분 함량도 같으며 속의 씨눈도 정확히 같습니다. 똑같은 옥수숫가루, 똑같은 옥수수빵, 똑같은 콘플레이크를 만들 수 있습니다. 완전히 같습니다. 둘을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땅에 묻는 것입니다. 기계가 만든 것은 썩어서 다시 살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은 다시 살아납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인처럼 보이고 그리스도인처럼 행동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면, 싹트게 할 생명의 씨눈이 그 안에 없다면, 그는 부활 때에 결코 일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맞습니다. 일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를 다시 일으킬 것이, 씨가 그 안에 없습니다. 농사짓는 여러분, 씨를 묻을 때를 보십시오. 밖에 나가 옥수수를 심어 놓고, 아침마다 가서 파헤치며 “어디 보자. 자라고 있나? 무슨 일이 생겼나? 아니네” 하고 다시 묻지는 않습니다. 다음 날 늦게 “잘되고 있는지 봐야겠다” 하며 또 파헤치지도 않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결코 자라지 않습니다. 씨를 다룰 때 여러분이 하는 일은 땅에 맡기고 덮어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입니다.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하실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똑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성경에 주신 어떤 신성한 약속이든 가져다가 마음에 심고, 그것이 이루어질 것을 믿으며 날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으로 물을 주면 자랄 것입니다. 자꾸 건드리는 일을 그만두지 않으면, 그저 내버려두면 말입니다. “어디 보자. 오늘은 손가락을 좀 더 잘 움직일 수 있나? 몸이 좀 나아졌나? 두통이 조금 덜한가?”라고 하지 마십시오. 아, 아시지요. 그런 식으로는 결코 되지 않습니다. 그저 하나님께 맡기고 돌아서서 그대로 두십시오. 그것은 하나님의 씨입니다. 자랄 것입니다.
얼마 전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 갔을 때, 어느 날 아침 저를 호되게 비난하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전날 밤에는 눈보라가 몰아쳤습니다. 저는 작고 값싼 호텔로 돌아갔습니다. 저는 늘 그런 곳에 묵으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이 땅에서 가장 좋은 것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겸손해야 합니다. 제 생각에는… 설령 그럴 형편이 된다고 해도 본을 보여야 합니다. 제 주님은 머리 둘 곳조차 없으셨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새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그분은 머리 둘 곳이 없으셨습니다. 세상에 오실 때는 태어날 구유를 빌리셨고, 빌린 태를 통해 오셨으며, 떠나실 때는 빌린 무덤에 들어가셨습니다. 아, 하늘의 하나님께서 그러셨습니다! 우리도 겸손함을 보여야 합니다.
들어가 보니 어느 대학 학장이 보낸 22쪽짜리 편지가 있었습니다. 아, 얼마나 저를 호되게 꾸짖었는지 모릅니다. “브래넘 씨”라고 했습니다. 저를 형제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브래넘 씨, 그렇게 많은 사람 앞에 서면서 신학은 그렇게 형편없다니 도대체 말이 됩니까? 평생 그런 것은 들어 보지도 못했습니다. 설교한 지 31년 되었다고 자랑하더군요. 젊은이, 나는 자네가 태어나기 전부터 설교했네.”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그토록 오래 설교한 분이라면 당연히 존경해야지.” 그러고는 “좋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도대체 말이 됩니까? 어젯밤 당신은 하나님의 종이… 나는 그리스도의 종의 말씀을 들으려고 앞도 안 보이는 눈보라를 뚫고 15마일을 운전했습니다. 그런데 가 보니 그럴듯하게 꾸민 점쟁이 하나가 있을 뿐이었습니다.” 자… 그는 말했습니다. “당신은 마귀가 치유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을 가르치는 사람이 성경을 그 정도밖에 모르다니, 마귀가 치유할 수 없다고 할 만큼 무지하다니요. 알아 두십시오. 제가 사는 이 동네에는 부리는 영이 있는 여자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 여자에게 찾아가면, 여자는 커다란 앞치마를 두른 채 그들의 온몸을 이렇게 더듬습니다. 사람들은 그 앞치마에 돈을 넣습니다. 그러면 여자는 자기 머리카락을 몇 올 뽑고 그들의 핏줄을 찔러, 그 머리카락에 피를 묻힌 뒤 자기 뒤쪽의 작은 개울로 내려가 던집니다. 사람들은 그 여자 앞에 서 있습니다. 여자가 이렇게 걸어 올라오다가 어쩔 수 없이 뒤를 돌아보게 되면, 그 병이 사람들에게 다시 돌아갑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의 피를 자기 머리카락에 묻혀 개울에 던짐으로써 병을 떼어 냅니다. 우리는 그것을 기록해 두었습니다. 적어도 그들 가운데 20퍼센트나 30퍼센트는 치유됩니다. 그런데도 마귀가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고 내게 말하겠습니까?”
저는 그저 생각했습니다. “대학 학장이라는 분이! 참… 이토록 훌륭한 편지이니 먼저 답장을 해야겠군.” 제 편지를 읽어 보신 적이 있다면 아시겠지만, 제 글씨는 거의 저밖에 읽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앉아서 최대한 정성껏 썼습니다. “사랑하는 형제님.” 그분은 저를 그저 “브래넘”이라고 불렀지만, 저는 “사랑하는 형제님”이라고 했습니다. 진심이었습니다. 50년 동안 설교한 분은 그만한 대우를 받아야 합니다. 비록 틀렸다 해도 그만한 대우는 받아야 합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님,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형제님이 하신 말을 제가 용서하며 하나님께서도 용서해 주시기를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형제님보다 훨씬 더 오래 설교했던 바리새인들도 똑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마귀의 힘, 바알세붑의 힘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마지막 날들에 성령께서 그 일을 행하실 때 그 일을 대적하여 한마디라도 하면, 이 세상에서나 오는 세상에서나 결코 용서받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가령, 제가 옳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렇다면 형제님이 설교하신 50년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형제님 자신의 혼이 영원히 지옥의 정죄를 받게 하신 것입니다. 그 일은 결코 용서받지 못할 것입니다. 형제님, 모르고 그렇게 하신 줄 압니다. 이 말에 마음 상하지 마십시오.”
제가 말했습니다. “그런데 형제님은… 저에 대해 자꾸… 저를… 제 신학을 몰아붙이셨습니다. 제가 마귀는 치유할 수 없다고 했다는 이유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테이프의 빈 부분.] 성경 말씀을 뒤엉키게 해서는 안 됩니다. 분명하고 곧게 지켜야 합니다.” 맞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사탄이 치유할 수 없다고 하셨고, 형제님은 그가 치유했다고 하셨습니다. 이제 실례가 안 된다면 형제님 동네에 있는 그 마녀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물론 그 사람들은 치유됩니다. 제가 아프리카에서도 사람들이 우상에게 가서 치유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알자스 로렌에는 가톨릭교회에 어떤 죽은 여자를 기리는 기념물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가서 그 죽은 여자를 보고 ‘성모송’을 외우고 치유받습니다. 물론입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간다고 생각하고,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근거로 치유하시기 때문입니다. 어디서든 믿음을 만나시면 하나님께서는 그 요구에 응하셔야 합니다.” 맞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오늘날 이 나라에는 자칭 신유 치유자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내 손에 권능이 있습니다. 영광, 할렐루야! 우우! 그것을 느끼십니까?’라고 합니다.” 미국 사람들은 그것에 얼마나 잘 속아 넘어가는지 모릅니다. 굶주린 떠돌이가 핫케이크에 달려들듯 합니다. 사람들은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자기들이 치유받는 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일을 믿는 여러분의 믿음입니다. 치유는 거기에 있습니다. 누가 자기에게 치유하는 권능이 있다고 말하거든, 절대로 그 말을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그런 권능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빚을 갚으셨는데, 어떻게 다시 구속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잡혀 있던 전당포에서 완전히 갚았다는 영수증을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로 구속받았습니다. 여러분에게 치유하는 권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하는 일은… 하나님을 나타내는 은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여기 계신 제 형제님들처럼 훌륭한 설교자를 통해 그분을 나타내는 은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분들은 저보다 훨씬 더 잘 이 자리에 서서 이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그것이 그분들의 부르심이기 때문입니다. 제 부르심은 다른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각 사람에게는,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위해 죽으셨을 때 여러분을 치유하셨다는 것을 알려 드리기 위한 은사가 있습니다. 그분은 여러분의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셨고, 그분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여러분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알게 해 주는 무언가가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믿지 못하면, 그분께서는 표적과 이적을 보내셔서 자신이 부활하신 그리스도이심을 증명하십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은 거기서, 그분을 믿음으로 치유를 받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제가 염려하는 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루터교 대학의 학장이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교리를 세우지 않고 감각이나 체험 위에 교리를 세운다는 점입니다.” 그렇습니다. 아, 어떤 감각이든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합니다. 맞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대학의 학장이시고 50년 동안 설교하신 분이 교리를…” 이 말은 그분에게 꽤 아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지 않고 어떤 여자가 겪은 체험 같은 것에 교리를 근거하시다니요. 하나님께서 ‘사탄은 치유할 수 없다’라고 하셨다면 그것으로 결정된 것입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시면 그것은 영원히 옳습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분의 학교로 오라는 초청을 받았습니다. 그분이 똑똑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무어 씨가 저와 함께 갔습니다. 크고 유명한 그 대학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그곳에는 학생들이 일해서 학비를 마련할 수 있도록 수백 에이커의 옥수수밭이 있었습니다. 그날 식사가 끝나자 학장이 접시를 뒤로 밀어 놓고 말했습니다. “브래넘 씨, 몇 가지 질문을 드리려고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저는 “선생님, 대답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신학자가 아니라 병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형제일 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자…”라고 했습니다. 신학자인 무어 씨가 제 곁에 앉아 말했습니다. “그분이 너무 거세게 몰아붙여 감당하기 어려우면 제 무릎을 살짝 건드리세요.” 그래서… 제 무릎으로 말입니다. 제가 앉아 있는데 그가 말했습니다. “브래넘 씨, 당신의 삶을 거슬러 살펴보니 침례교인이더군요.” 저는 “그랬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왜 침례교회를 떠나셨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제가 떠난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저를 떠났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제가 성경에서 전하고 있던 메시지를 부인했을 때 교회가 저를 떠난 것입니다.” 그는 “브래넘 씨,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그렇게 하셨다면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무엇 때문에 오순절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셨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들은 말씀을 믿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그들에게 무엇이 있습니까? 제가 가서 보니 탁자를 걷어차 뒤집고 의자를 넘어뜨리더군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 물론입니다. 그렇지요”라고 했습니다. “창문을 깨거나 그런 일도 하더군요.” 저는 “그렇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저는 “성령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성령이라고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물론입니다. 바퀴를 제대로 굴리는 데 쓰지 않으면, 어딘가 기적을 울려 증기를 내뿜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증기가 많이 있으니까요”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사실입니다. 이 오순절 교회가 그 많은 찬양을 실제 일에 쏟는다면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 무언가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성령을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성령으로 환호하고 찬양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은사와 이적에 쏟고, 거리로 나가 죄인들을 데려오는 일 같은 데 쓰십시오. 그러면 교회가 자라나고 모든 일이 잘될 것입니다. 기적을 울려 증기를 내보내지 말고, 실제로 움직이게 하십시오. 바퀴를 굴리십시오. 복음 열차를 말입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루터교인들에게는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신은…? 우리는 믿을 때 성령을 받는다고 믿습니다만?” 저는 “사도행전 19장에서 바울은 다른 의견을 말씀할 것입니다. 그는 ‘너희가 믿은 이래로 성령님을 받은 적이 있느냐?’라고 했습니다. 그는 결코… 그리스어나 히브리어든 무엇이든 원하시는 것으로 살펴보십시오. ‘믿은 이래로’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믿습니다. 우리 침례교회도 믿을 때 성령을 받는다고 가르쳤지만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바울은 “너희가 믿은 이래로 성령님을 받은 적이 있느냐?”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들은 환호하고 있었고,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큰 집회들을 열어 모든 일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너희가 믿은 이래로 성령님을 받은 적이 있느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우리는 성령님이 계신지도 알지 못하노라”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그들에게 다시 침례를 주고 안수하자 성령께서 그들에게 임하셨고, 그들은 방언으로 말하며 예언했습니다. 그때 그들은 성령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우리 루터교인들에게는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했습니다. 저는 “잠재적으로는 여러분이 옳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제가 말했습니다. “제가 정확히 어떻게… 작은 비유 하나를 들겠습니다. 여러분은 여기서 무엇을 하십니까? 봄에 나가 밭을 갈고, 줄기들을 모두 긁어 내고, 옥수수를 심습니다. 다음 날 아침 나가 보면, 어느새 이렇게 말하게 됩니다… 옥수수에서 작은 싹 두 개, 잎 두 개가 돋아납니다. 제가… 여러분은 그 작은 싹들이 나오는 것을 보고 ‘주님을 찬양합니다! 옥수수 수확을 얻었습니다’라고 합니다. 정말 옥수수 수확을 얻은 것입니까?” 그는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잠재적으로 옥수수 수확을 얻은 것입니다. 그것이 첫 번째 종교 개혁 때의 여러분 루터교인들입니다. 그러다 줄기가 자라고 잎이 커져 어느새 수꽃이 나왔습니다. 그것이 두 번째 종교 개혁 때의 존 웨슬리, 곧 성화였습니다. 두 번째로 분명하게 이루어지는 은혜의 사역이었습니다. 그다음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수꽃이 아래의 줄기와 잎을 돌아보며 ‘너희는 필요 없어. 우리는 성화되었지만 너희는 그저 루터교인일 뿐이야’라고 했습니다. 얼마 후 꽃가루가 나와 옥수수 잎 속에 떨어졌고, 옥수수가 나와 이삭이 맺히고 알갱이가 달렸습니다. 그것이 오순절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자 오순절이 올려다보며 ‘너희 둘 다 필요 없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두 작은 잎 안에 있던 똑같은 생명이 수꽃을 만들었고, 알갱이도 만든 것입니다.” 맞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우리는… 아시겠습니까? 오순절은 회복입니다. 오순절에는 성령이 계십니다. 그런데 은사들의 회복입니다. 땅에 들어간 바로 그 알갱이, 바로 그 예수님께서 자신을 다시 나타내고 계십니다. 줄기를 통해 올라오셔서 이제는 처음에 땅에 들어갔던 것과 같은 원래의 알갱이들 안에서 충만하게 자신을 다시 나타내고 계십니다.” 아멘. 그가 “그럼 우리를 무엇이라고 부르시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저는 “오순절 교회는 한 단계 더 나아간 루터교회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한 단계 더 나아간 루터교회, 나사렛교회, 필그림 성결교회, 그 모두입니다. 그저 더 나아간 교회인 것입니다. 저는 “우리 옥수수 이삭에 곰팡이가 많이 피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알갱이들도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것이 본래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말씀 안에 계시며, 말씀은 씨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 씨는 자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가 점이나 주름 없이 그 자리에 있게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 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하나님은 그분의 말씀을 취하시고, 그분의 말씀을 지키시며, 그 말씀의 약속을 지키십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분께서 하시려는 일은 반드시 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우주 안에 계십니다. 아멘입니까? 하나님은 그분의 말씀 안에 계십니다. 믿으십니까? 이제 여기에 “그분의 아들 안에 계신 하나님”이라고 적어 두었습니다. “그분의 아들 안에 계신 하나님.” 좋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아들 안에 계십니까? 성경은 그렇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셔서 세상을 자신과 화해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일신교든, 둘을 믿든, 셋을 믿든, 넷을 믿든, 무엇을 믿든, 지금 이것을 마음에 새긴다면 서로 악수하며 우리는 형제라고 할 것입니다.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셔서 세상을 자신과 화해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마리아를 덮으시고 태 안에 혈구 하나를 창조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우리는 유대인의 피로 구원받았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우리는 유대인의 피로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그것도 다른 모든 피와 똑같이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방인의 피로 구원받았습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인간의 피로 구원받은 것조차 아닙니다. 하나님의 피로 구원받았습니다. 하나님의 피입니다! 생명의 씨눈은 혈구에서 나오며, 이 혈구는 창조주 하나님에게서 왔습니다. 그분께서 혈구 하나를 창조하셨고, 그 혈구가 하나님의 아들을 낳았습니다.
옛날 경배자가 어린양을 데리고 제단에 나아가 경배할 때, 양을 제단 위에 놓고 그 위에 손을 얹어 자기 죄를 고백했습니다. 사람들이 양의 목을 베어 혈구를 터뜨리면 양은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들어올 때와 똑같은 상태로 돌아갔습니다. 죄는 용서받았지만 똑같은 욕망을 지닌 채 돌아갔습니다. 도둑질을 했든, 총을 쏘았든, 간음했든, 무엇을 했든 똑같은 욕망을 지니고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의 머리에 손을 얹으면… 왜 그는 떠나지… 하나님의 아들께 손을 얹었을 경우와 같은 상태로 돌아갔습니까? 그 어린양의 혈구 안에는 동물의 생명이 있었고, 동물의 생명은 인간의 생명과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생명이 돌아와도 인간의 생명에 동물의 생명이 오는 것이어서 그에게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혈구가 터졌을 때, 그 혈구 안에 살고 계시던 하나님의 영께서 성령의 형태로 돌아오셔서 그 사람은 죄에서 자유로워집니다. 죄를 의식하는 것 자체가 정죄를 받은 것입니다. 아멘. 저는 온 마음으로 그것을 믿습니다! “한 번 깨끗하게 된 경배자는 더 이상 죄를 향한 욕망이 없느니라.” 성경은 ‘의식’이라고 하는데, 실제로는 ‘욕망’이라는 뜻입니다. 경배자가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머리에 손을 얹고, 그 사람이 어린양에게서 느꼈듯이, 떨리는 살을, 죽어 가며 울부짖는 죄 없는 분을 느끼고, 하나님의 아들께서 자기를 대신하여 죽으셨다는 것을 온 마음으로 믿는다면, 그 고백을 할 때 여러분을 거룩하게 한 그 혈구로부터 성령께서 여러분의 삶 안으로 들어오십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창조물이 됩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여러분 안에 있고, 그분께서 여러분을 양자로 삼으셨으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아멘! 놀라지 마십시오. 아멘은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라는 뜻입니다. 여러분을 해치지 않습니다.
보십시오.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영께서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셔서 세상을 자신과 화해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예수님이 되시기 전에는 손이 없으셨습니다. 예수님이 되시기 전에는 발도, 팔도, 다리도, 그런 것들이 없으셨습니다. 그분이 나타내셨습니다… “아무도 어느 때나 아버지를 보지 못하였으되 독생자께서 그분을 밝히 드러내셨느니라.” 그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 안에 거하셨습니다. 이 사실은 충격으로 다가와야 합니다. 사람들이 놀라워해야 할 일입니다. 그분께서 원하셨다면 모든 천사들의 경례를 받으며 천국의 회랑을 곧장 내려오실 수도 있었습니다. 완전히 성숙한 어른으로 태어나실 수도 있었습니다. 천국의 모든 위엄과 영광을 지니고 내려오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을 택하지 않으셨습니다. 마구간으로 오셔서 거름더미 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아기 여호와께서 구유에서 우시고, 어린 여호와께서 소년으로 노시며, 여호와께서 사람이 되어 수고하셨습니다. 그분은 신분의 경계를 넘어 우리와 같은 자리에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셨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 인간이 되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나타내셨습니다. 그분은 수고하고 일하셨으며 십 대 청소년의 마음도 이해하셨습니다. 우리가 겪는 모든 시험을 겪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그분 자신의 심판을 공의롭게 행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분의 심판은 공의로워야 합니다. 공의가 없다면 심판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또 형벌 없는 심판이라면 아직 심판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분은 자신의 심판에 따르는 형벌을 직접 짊어지시고 죄인처럼 죽으셔서 세상의 죄를 정죄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분의 공의를 통해 하나님과 화해하여 다시 그분의 보좌로 나아가, 에덴동산에서 그랬듯이 교제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복음이 아니라면 저는 복음을 모릅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보배로우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아들 안에 계셨습니다.
어떤 특정 종교를 지목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어느 하나를 대표하지 않고 그 모두를 대표합니다. 얼마 전 리틀록의 로빈슨 강당에 갔습니다. 목발을 짚는 노인 한 분이 계셨는데, 그분이 불려 나왔습니다. 여러 해 동안 길모퉁이에서 연필을 팔던 분이었습니다. 나사렛교인이었습니다. 다음 날 그분은 그 낡은 목발들을 들고 길을 걸어가며 “나의 오랜 친구들아, 이제 너희는 필요 없구나”라고 간증했습니다. 그날 저녁 제가 설교하려고 강단에 서자 그분이 “브래넘 씨, 잠깐만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예, 어르신”이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발코니에 계셨습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설교를 듣고는 당신이 나사렛교인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거룩함을 전하시니까요. 그런데 누군가 당신이 침례교인이라고 하더군요. 여기 있는 사람들은 거의 다 오순절교인인데, 저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아, 어르신, 간단합니다. 저는 오순절 나사렛 침례교인입니다.” 그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대표합니다.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교단이 아니라 여러분의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한 여성이 있었습니다. 크리스천 사이언스 교회에 속한 아주 훌륭한 분이었습니다. (물론 그들은 예수님의 신성을 믿지 않습니다.) 그 여성이 말했습니다. “브래넘 씨, 저는 당신의 가르침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당신이 예수님께 신성을 부여하려는 것만은 몸서리가 쳐질 만큼 거슬립니다. 그분을 너무 자랑하시는군요.” 저는 “아무리 자랑해도 모자랍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여성은 “그분을 늘 자랑하고 또 자랑하시잖아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혀가 만 개 있어도 그분을 충분히 자랑할 수 없습니다. 그분께서 제게 해 주신 일을 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여성은 “하지만 그분께 신성을 부여하시잖아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분은 신성을 지니신 분이셨습니다. 그렇지 않으셨다면 온 세상은 잃어버린 상태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그 여성은 “당신은 근본주의자이고 오직 성경을 따른다고 하셨지요”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여성이 말했습니다. “제가 성경으로 그분께 신성이 없었다는 것을 증명하면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저는 “성경이 그렇다고 하면 받아들이겠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여성은 “아, 분명히 그렇게 말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어디에 있습니까?” 그 여성은 “자, 요한복음 11장에서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무덤으로 가실 때 성경은 그분께서 우셨다고 합니다. 브래넘 씨, 우셨다면 신성을 지니신 분일 수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부인, 그 주장은 굶어 죽은 닭의 그림자로 끓인 국물보다 더 묽습니다. 부인께서는… 그것은 성경적인 주장이 아닙니다. 보십시오. 그분은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사람이셨습니다. 나사로의 무덤에서 우실 때 그분은 사람이셨습니다. 하지만 작은 어깨를 펴시고 ‘나사로야, 나오라!’라고 말씀하시자 죽은 지 나흘 된 사람이 제 발로 일어서서 다시 살았을 때, 그것은 사람 이상의 존재가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그 일을 하려면 신성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셨습니다.”
그날 밤 산에서 내려와 배가 고파서 저 아래를… 아니, 그날 아침 말입니다. 무화과나무에서 먹을 것을 찾으셨으나 아무것도 찾지 못하셨을 때 그분은 사람이셨습니다. 배고파하실 때는 사람이셨습니다. 그러나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을 먹이셨을 때는 사람 이상이셨습니다. 사람 안에 살아 계신 하나님이셨습니다! 분명히 그러셨습니다. 그날 밤 조그만 배에 누워 피곤해하셨을 때 그분은 사람이셨습니다. 낮 동안 환상 같은 일을 통해 그분에게서 권능이 나갔습니다. 아마 그날 밤 마귀가, 바다의 마귀 만 마리쯤이 그분을 물에 빠뜨려 죽이겠다고 맹세했을 것입니다. 그분은 저 바다의 작은 배 안에 계셨습니다. 거센 바다의 폭풍 속에서 병마개처럼 이리저리 던져지는 배였습니다. 그렇게 떠다니는 배의 고물에 그분께서 누워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파도조차 그분을 깨우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피곤하고 지치셨습니다. 주무실 때 그분은 사람이셨습니다. 그러나 한번 일어나셨을 때는—할렐루야! 아!—배의 밧줄에 발을 얹고 “잠잠히 있고 고요히 있으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바람이 제 만으로 돌아갔습니다. 아기가 제…로 가듯이 말입니다. 바람과 파도가 순종했습니다. 그것은 사람 이상의 존재가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이셔야 했습니다. 영감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 일을 하려면 신성의 권능이 있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 안에 계셨습니다. 믿으십니까?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그분은 긍휼을 구하며 외치셨습니다. 사람이셨습니다. 십자가에서 긍휼을 구하며 외치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부활절 아침에 일어나 사망과 지옥의 봉인을 깨뜨리고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셨을 때, 그분은 사람 이상이셨습니다. 무덤에서 일어나려면 사람 이상의 존재여야 합니다. 그 일을 하려면 하나님이셔야 합니다. 시인이 이렇게 말한 것도 당연합니다. “살아 계셔서 나를 사랑하셨고, 죽으셔서 나를 구원하셨네. 묻히셔서 내 죄를 멀리 가져가셨고, 부활하셔서 값없이 영원히 나를 의롭게 하셨네. 언젠가 그분 오시리. 오, 영광스러운 날!” 그렇습니다. 그분 안에 신성의 모든 충만이 몸으로 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셔서 세상을 자신과 화해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우주 안에 계심을 믿으십니까? 그분의 말씀 안에 계심을 믿으십니까? 그분의 아들 안에 계셨음을 믿으십니까? 이제 제가 여기 적어 둔 다음 요점은 그분의 백성 안에 계신 하나님입니다.
이제 그분께서 그분의 백성 안에 계심을 보여 드릴 수 있는지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며, 언제나 사람을 사용하여 이 땅에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분의 아들 안에서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 안에 계셨습니다. 아셨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 안에 계셨습니다. 다윗은 왕으로서 거절당했을 때 언덕 꼭대기로 올라가 뒤돌아보며 울었습니다. 거절당한 왕으로서 말입니다. 500년 후 다윗의 아들도 거절당한 왕으로서 같은 언덕에 앉아 예루살렘을 보며 우셨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요셉이 영적인 형제로 태어났을 때 그의 안에는 그리스도께서 계셨습니다. 다른 형제들은 그를 미워했습니다. 오늘날 저 교회를 보십시오. 다른 형제들은 이유 없이 그를 미워했습니다. 그는 아버지에게 사랑받고 형제들에게 미움받았습니다. 그들은 이유 없이 그를 미워했습니다. 환상을 보고 꿈을 해석하도록 태어난 것이니 그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를 미워했습니다. 오늘날도 똑같은 일을 합니다.
마귀는 자기 사람은 데려가지만 자기 영은 결코 데려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분의 사람은 데려가시지만 그분의 영은 결코 데려가지 않으십니다. 엘리야 위에 계셨던 영께서 엘리사에게 임하셨고, 엘리사에게서 침례자 요한에게로 임하셨으며, 마지막 날들에 다시 오실 것으로 예언되어 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아들에게서 영을 취하여 교회로 다시 보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사람은 데려가시지만 그분의 영은 결코 데려가지 않으십니다. 마귀는 자기 사람은 데려가지만 자기 영은 결코 데려가지 않습니다. 시간이 시작된 이래 그 두 영은 인간의 육체 안에서 서로 싸워 왔습니다. 맞습니다. 끝날 때까지 싸울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저 성경을 살피고 그것이 어떻게 역사하는지 지켜본다면, 그분을 구주로 받아들이고 성경을 따라 이끌어 주시는 안내자로 받아들인다면, 길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작은 배를 타고 엄숙한 인생의 바다를 항해하는 동안, 그분께서 함께 타시고 여러분의 배를 조종하시게 하십시오.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세 안에 계셨음을 압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 안에 계셨습니다. 저 밖의 동굴에 누워 있던 엘리야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복을 빌어 주었던 수넴 여인이 아이를 얻었는데 그 아이가 죽었고, 엘리야가 그곳에 왔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들어갔을 때 아이는 그의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먼저, 엘리야는 자신이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을 자랑하거나 떠벌리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하나님의 사람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 낡은 지팡이에 의지해 걸어 다녔습니다. 그래서 게하시에게 “그 지팡이를 가져다가 아이 위에 놓아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안에 계시기에 자기가 만진 모든 것이 복을 받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여인도 똑같이 믿게 할 수 있다면 말입니다.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진 여인의 경우도 같은 이치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속한 분이시고,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 안에 계셨다면 예수님 안에도 반드시 계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여인은 그것을 알았습니다… 우리 오순절 사람들이 서로를 그렇게 존중할 수 있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딸이라는 것을 서로 알아본다면, 우리는 결코 서로를 헐뜯지 않을 것입니다. 형제가 되고 자매가 될 것이며 우리 가운데 수치스러운 일도 결코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교회 안에, 그분의 백성 안에 거하십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 안에 계십니다. 믿으십니까?
이 선지자를 보십시오. 그 여인은 지팡이를 믿지 않았습니다. 저는 바울이 자기 몸에서 손수건들을 가져가게 한 것도 여기서 생각을 얻었다고 봅니다. 바울은 말씀에 있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전하지 않았으리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손수건들을 보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 안에 계셨고,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들을 가져다가 자기 몸에 대자 마귀들이 나가고 병들이 치유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 안에 계셨습니다. 믿으십니까? 바울 안에 말입니다. 죽은 아이가 있는 곳으로 불려 간 엘리야 안에 하나님께서 계셨습니다. 아이가 죽어 있었고, 그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저 방바닥을 앞뒤로, 이리저리 걸었습니다. 아, 저는 이것이 좋습니다! 성령께서 오시기를 기다리며 방 안을 이리저리 걸었습니다. 얼마 후 영께서 자기에게 임하시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걸음이 조금 빨라졌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아시지요? 조금 더 빨리 걸었을 것입니다. 아, 그는 영을 느꼈습니다! 아이 위에 자기 몸을 눕히자 아이가 일곱 번 재채기를 하고 살아났습니다. 그분의 백성 안에 계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 외에 누가 죽음에서 생명을 되돌려 올 수 있습니까? 아멘. 휴! 지금 제 마음에 참으로 믿음의 감격이 솟습니다. 아, 침례교인은 환호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분명히 환호합니다. 아, 그분의 백성 안에 계신 하나님!
한 늙은 어부가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오늘날 우리는 지적인 사람, 대학을 나와 온갖 학위를 갖추고, D.D.D.와 Ph.D.를 비롯해 온갖 D.D.를 달고 있는 거물을 찾습니다. 그러다가 그 사람이 올라와 모든 것을 아는 듯이 말하면, 우리는 바로 저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한번은 작은 어부 하나를 그분의 다스림 아래 두셨습니다. 자기 이름조차 쓰지 못하는, 글도 모르고 배운 것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안에서 일하시는 것을 보았고, 마침내 실제로 그 어부의 그림자 안에 누워 치유를 받았습니다. 그의 그림자가 지나간 사람은 모두 치유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 안에 계십니다. 믿으십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우주 안에 계십니다. 믿으십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말씀 안에 계십니다. 믿으십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아들 안에 계십니다. 믿으십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 안에 계십니다. 믿으십니까?
보십시오. 어젯밤 “내가 하는 그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라는 말씀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그분께서 하신 일들을 살펴보며 그것이 무엇인지 보여 드렸습니다. 그분은 이곳에 계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여러분은 “하지만 하나님은 다른 시대에 사셨잖아요”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살아 계십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죽으실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몸을 죽였지만 하나님께서 그 몸을 다시 일으키셨고, 그분은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십니다. 그분의 영께서는 오늘날 교회 안에 살아 계십니다. 그분의 영께서 지금 여기 계십니다! 그분의 영께서 그분의 백성 가운데 계십니다. 스스로를 증명하십니다. 어떤…에 의해서가 아닙니다. 이것으로도 자신이 살아 계심을 증명하실 수 있습니다. 저녁놀로도 살아 계심을 증명하실 수 있습니다. 그분의 말씀으로도 살아 계심을 증명하실 수 있습니다. 그분께 자신을 맡기는 남녀들을 통해, 지금 이 건물 안에 계신 그분의 영으로도 살아 계심을 증명하실 수 있습니다. 아멘. 여러분 자신을 그분께 맡기십시오. “브래넘 형제님, 그런 환상을 보실 때는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라고 묻습니다. 긴장을 풀고 윌리엄 브래넘을 옆으로 비켜 놓는 법을 아는 은사가 있는 것뿐입니다. 제게 가장 큰 적은 윌리엄 브래넘입니다. 그가 늘 제 앞길을 가로막습니다. 아니, 늘 하나님의 길을 가로막는다고 해야겠습니다. 그는 언제나 하나님의 길을 가로막습니다. 너무 피곤하다며 이것도 하기 싫고 저것도 하기 싫어합니다. 제가 그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을 수만 있다면 하나님께서 이것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몸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여기 마이크가 있습니다. 저나 누군가가 대고 말하기 전에는 말을 못합니다. 마이크 스스로는 말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환상을 볼 수 있습니까? 사람이 어떻게 병자를 치유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손을 얹어서 죽은 아이를 살리는 그런 일을 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 안에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저녁놀 안에 계신 하나님과 똑같습니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영으로 태어나 그분을 알아보고, 그분을 기다리며 살피고 싶습니다. 그분은 여러분에게 참으로 가까이 계십니다. 다시 태어난 여러분, 그분은 여러분 가까이에 계실 뿐 아니라 이미 여러분 안에서 그분의 뜻을… 이루려 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마귀가 거기 서서 말합니다. “믿지 마라. 믿지 마라. 믿지 마라. 그것은 너를 위한 것이 아니다. 다른 시대를 위한 것이다.” 아, 이렇게 말하십시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내가 하는 그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께서 사탄을 이기신 방법이 그것입니다. 그분은 자신의 권능을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육신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이셨지만 자신의 권능을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천국에 있는 모든 은사가 그분 안에 있었지만 그것을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아버지의 말씀을 취하셨습니다. “기록된 바, 너는 주 네 하나님께 경배할지니라. 기록되었다. 기록되었다. 기록되었다. 기록되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탄을 이기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디에서나, 어떤 자리에서나, 어떤 상황에서도 사탄을 이길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우주 안에 살아 계십니다. 그분의 말씀 안에 살아 계십니다. 그분의 아들 안에 살아 계십니다. 그분의 백성 안에 살아 계십니다. 어디에서나 하나님이십니다. 지금 그분을 모셔 들이기만 하면, 오늘 오후 우리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다시 살아 역사하시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머리를 숙입시다. “하나님의 말씀은 양날 달린 어떤 검보다도 더 예리하고 더 권능이 있어, 찔러 나누고 뼈의 골수까지 이르며,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분별하는 분이시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 안에 들어와 생각을 분별하십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생각을 알아차리셨습니다. 그것이 맞다면 “아멘” 하십시오. 그분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처음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이 하나님이셨더라. 말씀이 육신이 되었느니라.”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율법에 너희는 신들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내가 나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다고 너희가 나를 정죄하느냐?”
사람은 신이 되도록 지음받았습니다. 그의 통치 영역은 땅입니다. 온 땅은 지금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뒤처져 있는지 보십시오. 그러나 선지자들을 기억하십시오. 그분께서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자들을 신들이라 하였다면…”이라고 하셨습니다. 선지자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말씀을 하나님께 받아 해석하는 사람이었고, 하나님의 해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가 앞일을 예언하고 미리 아는 표적들은 그가 선지자임을 백성에게 입증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유대인이 말한 것이 그것입니다. “그분께서 이 성경을 취하시는 것을 봅시다. 성경에는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셨으며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고, 내가 한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분께서 선지자의 표적을 행하시는 것을 보게 해 주십시오. 그러면 그것이 그 영임을 믿겠습니다.” 그분은 메시아이셨고, 다시 그분의 사람 안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그 사람이 그분의 선지자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분께서 그 안에서 일하십니다.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습니까? 오직 하나님으로만 가능합니다. 그것을 하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뿐입니다. 기도할 때 기억해 주기를 원하십니까? 손을 들고 이렇게 말하십시오. “하나님, 제게 긍휼을 베푸소서. 이제 온 마음으로 주 예수님을 믿고 싶습니다. 제가 영원을 향해 가는 피조물임을 압니다.” 여러분이 아무것도 아니었고 어디에도 없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여러분이 어떤 존재로든 어디엔가 있지 않을 때가 결코 없을 것입니다. 죄인이라면 오늘 오후 결단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도우시고 구원하시려고 여기 계십니다. 여러분은… 저는 사람들을 제단 앞으로 설득해 불러내는 일을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마음 상하지 마십시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자는 내게 올 것이요, 내 아버지께서 먼저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올 수 없느니라.” 우리는 그저 그물을 던질 뿐입니다.
여러분은 죄인입니까? 그저 손을 들어 보시겠습니까? 제단 앞으로 나오라고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말하십시오. “브래넘 형제님, 저는 죄인입니다. 하나님께 손을 들겠습니다. 하나님, 저를 참된 사람이 되게 하셔서 저 늙은 어부처럼 주님을 볼 수 있게 하옵소서. 주님의 온 우주 안에서, 말씀 안에서 주님을 뵙고 싶습니다. 주님을 보고 싶습니다.” 손을 들고 “형제님,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라고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또 다른 분, 손을 드십시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 뒤쪽 분에게도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제 오른쪽 발코니에 계신 분들은 어떻습니까? 머리도 마음도 숙이고 계시면서 아직 주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분이 그 위에 계십니까? “브래넘 형제님, 기도하실 때 저를 기억해 주세요”라고 하십시오. 그쪽은 모두 그리스도인이십니까? 이제 여러분께 맡기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어떤 사람인지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세상이나 세상의 것들을 사랑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 안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가볍게 여길 수는 없습니다. 실제입니다. 실제로 태어나는 것이며, 실제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 가는 것입니다. 제 왼쪽 발코니에서 손을 들고 이렇게 말할 분이 계십니까? “브래넘 형제님, 저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기도할 때 저를 기억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설교자인 형제님께 손을 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손을 드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제게 긍휼을 베풀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계십니까? 좋습니다. 다시 아래층에 계신 분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또 계십니까? 제가 누구를 위해 기도하는지 확실히 알 수 있도록 말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제 기도를 들으신다고 믿습니다. 그분은 제게 “네가 신실하고 사람들이 너를 믿게 한다면 네 기도 앞에 아무것도 서지 못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제가 교육을 받지 못했으니 사람들은 저를 믿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모세가 구출하러 보냄받았음을 입증하도록 두 가지 표적을 받은 것처럼 너에게도 두 가지 표적이 주어지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손을 들고 “브래넘 형제님, 기도할 때 저를 기억해 주시면 좋겠습니다”라고 하십시오. 이 아래층에 아직 손을 들지 않은 분이 또 계시다면… 좋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들을 주님께 맡깁니다. 오늘 오후 들어 올린 손들이 있습니다. 제가 본 것은 아래층의 두 분이었습니다. 주님, 이 시간에 이 사람들을 만져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사람들은 주님께서 함께 계시다는 데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 일로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아버지, 의심의 그림자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 아래 서 있지 않게 하옵소서. 절대적으로 확신하게 하옵소서. 그날 아침은 무서운 아침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강에는 안개가 짙을 것입니다. 저는 그 시간을 위해 제 표가 틀림없는지, 지금 모든 것이 바로 되었는지 확실히 하고 싶습니다. 기회가 없을지도… 기회가 없을 것입니다. 그때는 긍휼이 없을 것입니다. 긍휼의 자리에서 피가 거두어지고 그곳이 심판석이 될 것이며, 저는 답변을 요구받을 것입니다.
하나님, 주님께서 마음을 만져 주신 이 귀한 혼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지금 그들을 구원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말씀 가운데 “내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느니라”라고 하신 것을 알게 하옵소서. 그들이 손을 든 것은 손을 들라고 말씀하신 영께서 계셨음을 보여 줍니다. 그들은 하늘과 땅의 창조주께 하늘을 향해 손을 듭니다. 아버지 하나님, 그들의 이름을 생명책에 올려 주시기를 구합니다. 예수님의 피가 그들의 죄 많은 기록 위에 “사면되었음”이라고 써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 기록을 망각의 바다에 던지시고 더는 그들의 죄를 기억하지 마옵소서. 그들의 이름이 어린양의 생명책에 새롭게 기록되게 하옵소서. 그날 그 책에 주 예수님의 피가 뿌려져 그들에게 어떠한 죄도 돌려지지 않게 하옵소서. 아버지, 허락해 주옵소서. 이들을 주님께 맡깁니다.
이 삶에서 그들과 악수하지 못한다 해도, 수만 명이 저곳에 서 있을 그날에는 그 특권을 누리게 하옵소서. “브래넘 형제님, 그날 오후 야키마에서 손을 들었던 사람이 접니다”라고 그들이 외치는 소리를 듣게 하옵소서. 그들은 참으로 기뻐할 것입니다. 며칠 전 밤 주님께서 보여 주신 환상, 이 삶에서 저 삶으로 건너간 이들이 얼마나 기뻐하는지 보여 주신 그 환상처럼 말입니다. 아버지, 그들을 복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제 오늘 오후 기도 줄을 부를 때 주님 자신을 나타내시고 말씀을 확증해 주옵소서. 그분의 우주 안에 계신 하나님, 그분의 아들 안에 계신 하나님, 그분의 말씀 안에 계신 하나님, 그분의 백성 안에 계신 하나님을 저희가 바라보오니, 오늘 저희에게 그분의 백성 안에 계신 하나님이 되어 주옵소서. 아버지, 허락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옵나이다. 아멘.
사랑하는 여러분, 제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시계를 벗어 놓았습니다. 연달아 시계가 세 개나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차고 누군가의 팔을 잡으면… 그것을 위해… 시계가 멈춥니다. 떨어졌… 무엇인지는 말해 주지 않… 바로 이 도시의 보석상이 고쳐 주었습니다. 아니, 고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용두가 빠지고, 문자판이 떨어지고, 바늘들이… 스위스에서 선물받은 300달러짜리 벌칸 크리켓 시계로, 알람이 달려 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또 여기 캘리포니아에서 선물받은 새 시계가 있었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려고 이렇게 손을 얹었는데… 그것을 보신 분이 계십니까? 그 일이 일어날 때 그 자리에 계셨습니까? 그때 그 자리에 계셨다면 손을 드십시오. 시계가 멈추고 부품이 떨어져 나왔으며, 지금까지도 사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연달아 시계 세 개가 그랬습니다. 그래서 혹시 몰라 벗어 놓았습니다.
자, 이제… 어젯밤에는 무엇을 불렀지요? 기도 카드가… A였습니까? A입니다. 나누어 주었… 모두 합해서 백 장이 나갔습니다. 어젯밤에는 1번부터 50번까지 부른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아무도 나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보십시오. 놀라운 일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렇습니다. 대단한 일입니다. 고백하지 않은 죄를 지닌 채 이곳에 오신다면, 오기 전에 바로잡는 것이 좋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것을 틀림없이 정확히 드러낼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 오후에는 기도 카드 몇 장만 골라 그분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그리고 그저 기도 카드를 가지신 분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오후에는 그 안의 다른 번호에서 시작합시다. 여기 두어 분 정도를 세워 분별이나 그런 일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백 장 가운데 다른 곳에서 시작하겠습니다. 어디 봅시다. 어젯밤에는 15번이나 20번쯤까지 갔는데 사람들이 나오지 않게 되어, 제가 그냥… 이를테면 51번에서 시작합시다. 그 카드가 여기 있습니까? 51번, 기도 카드 51번을 가진 분은 누구십니까? 손을 드십시오. 여성분이군요. 좋습니다. 시작하기 좋군요. 부인, 바로 이리로 오십시오. 52번, 기도 카드 52번을 가지신 분은 누구십니까? 모두 부르겠습니다. 하지만 우선… 좋습니다.
제 아들이 이 건물 안에서 제 말이 안 들린다고 합니다. 그렇습니까? 저 위 발코니에 계신 분들, 제 말이 들립니까? 안 들립니까? 저쪽에서는 들립니까? 아, 귀한 여러분, 오후 내내 여기 앉아 계셨는데 들리지도 않으셨군요. 발코니에서는 한마디도 들리지 않는답니다. 뒤쪽에서는 안 들립니까? 뒤쪽에서는 들리는데 위쪽 발코니에서는 안 들리는군요. 아, 여러분의 신실한 마음에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제 구주이신 하나님께서 오늘 오후 여러분 한 분 한 분의 간구를 들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말은 들립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간구가 무엇이든 들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 내내 제가 말하는 동안 그곳에 앉아서 아무것도 듣지 못하셨다면, 하나님께서 다른 어떤 방법으로든 제가 여러분께 진실을 말하고 있음을 밝혀 주시기를 바랍니다. 좋습니다. 이제 기도 줄을 부르겠습니다. 저 위에도 기도 카드를 가지신 분들이 있을 수 있으므로 이렇게 큰 소리로 말해야겠습니다. 기도 카드… 어디까지 했지요? 기도 카드 52번입니까? 좋습니다. 기도 카드 52번, 누가 가지고 계십니까? 53번은요? 부인, 바로 이리로 오십시오. 오십… [테이프의 빈 부분.]
“주 예수님, 저를 치유해 주시겠습니까?” 그분은 “얘야, 나는 이미 그 일을 하였느니라”라고 하실 것입니다. “이미 하셨다고요? 잠깐만요. 그것은 조금… 저는 주님이 치유자라고 들었습니다.” “나는 치유자니라”라고 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저를 치유해 주지 않으십니까?” “얘야, 나는 이미 그 일을 하였느니라. 오래전에 네 치유의 값을 지불하였느니라. 내가 이 땅에 있던 날들에도 결코, 결코 그럴 수 없었고, 지금도 언제든 먼저 그것을 믿는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느니라.” 이것을 아시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그것이 근거입니다.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좋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주님이 주 예수님이신 줄 제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무언가를 해 주시겠습니까?”라고 할 것입니다. “물론이다. 손을 들겠다. 잠시 설교하겠다.” 하지만 “주님, 주님이신 줄 알게 해 주십시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이 땅에 계실 때 행하셨던 것과 같은 일을 하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알 수 있게 해 주는 무언가를 하셔야 합니다. 그러면 어젯밤 우리가 살펴본, 그분께서 그 사람들에게 자신이 메시아임을 알게 하신 표적은 무엇이었습니까?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분은 자신이 모세가 말한 그 선지자임을 보여 주려고 메시아의 표적을 주셨습니다. 그들의 마음속 비밀을 아셨습니다. 그것을 아시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주 너희 하나님께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라”라고 성경이 말한다는 것을 증언할 분은 얼마나 계십니까? 예수님은 그들의 생각을 알아차리셨고 마음속 비밀을 아셔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 안에 계시다면, 예수님 안에 있던 똑같은 생명이 여기 교회 안에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 안에도… 기도 줄을 헤치고 나아갔던 그 여인에게는, 오늘날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기도 카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회중 가운데 뒤쪽에 머물러 있으면서 그분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오늘날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을 느끼실 수 있는 대제사장이십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면 여러분이 그분께 닿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분께서 여기 계실 때 하셨던 것과 똑같이 행동하실 것입니다. 대개 몸을 움직이지 못하거나 그런 처지에 있는 분들은 “나는 이제 소망이 없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생각은 머리에서 지워 버리십시오! 하나님께는 더… 여러분이 믿음을 받는 일이 저 사람들이 믿음을 받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의 치유도 저 사람들의 치유만큼이나 확실합니다. 믿음을 가지시면 여러분의 치유도 똑같이 확실합니다.
자, 어느 분이… 어디서 시작합니까? 바로 여기 이 부인부터입니까? 좋습니다. 이리로 오십시오. 자, 미국에 계신 여러분. 쉰 명이 있다 해도 환상으로 열 명이나 열다섯 명만 지나가고 나면 저를 단에서 실어 내려가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저는 견딜 수가 없습니다. 이해하시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예수님에게서도 환상 하나로 권능이 나갔습니다. 그렇다면 환상 하나가 제게는 어떻겠습니까? 여기 휠체어를 탄, 몸이 불편한 여성이 있습니다. 제가 “저 여인은 몸이 불편합니다”라고 한다면, 그것은 누구나 압니다. 하지만 여기 있는 부인은 건강해 보입니다. 자, 기적은 이 부인에게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지를 아는 것입니다. 멀쩡하고 건강해 보입니다. 이 일을 의심하며 자기는 더 나은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여기 마이크가 있습니다. 바로 여기로 올라오십시오. 얼마든지 환영합니다. 믿지 않는 분은 올라와서 똑같은 일을 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내가 하는 그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 더 큰 일들을 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더 큰 일들이라고 하셨잖습니까?”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먼저 그분께서 하신 일들을 하는 것을 보여 주십시오. 그런 다음 더 큰 일들을 하십시오. 그분께서 하신 일부터 하십시오. 그것입니다. 그러면 더 큰 일들을 하게 될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먼저 그분께서 하신 일들을 해 보십시오. “내가 하는 그 일들을 그도 하리라.” 그다음에 더 큰 일들입니다. 번역문을 살펴보면 “이보다 더 많은 일들을 그가 하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분께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모두 하셨으므로 그보다 더 큰 일은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부인이… 이제 줄을 따라 나머지 분들을 위해서는 그저 기도하겠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성령께서 여기 계신 줄 알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이 부인에 관한 환상을 주실지 보겠습니다.
그분께서 제게 이 일을 하도록 보냄받았음을 이 두 표적이 입증해 줄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모세에게도 두 가지 표적이 있었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그곳으로 내려가 이스라엘 앞에서 그 표적을 한 번 행했고, 모두가 그를 믿어 40년 동안 행진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아브라함의 아들딸이라면 틀림없이 그만한 믿음은 있어야 합니다. 이제 믿읍시다. 부인, 우선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서로 모르는 사이라면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보십시오. 여기 우리가 있습니다. 마귀처럼 어두운 구석에 숨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께서 서셨던 것처럼, 우물가의 여인과 마주하셨던 것처럼 바로 여기 나와 있습니다. 그리스도교를 결코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어떤 약속이든 여러분의 혼을 걸어도 됩니다. 그 약속은 확실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그 약속을 확실하게 하려고 죽으셨습니다. 독수리가 자기 날개를 느꼈듯이, 제가 이곳에서 그분의 임재를 느끼지 못한다면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저도 모를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이 부인은 여기 서 있는 동안 사람 외에 다른 어떤 존재 앞에 있다는 것을 의식하게 되었습니다. 부인,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손을 들어 주십시오. 아시겠습니까? 이 부인 바로 위에 서 계십니다. 여러분의 눈이 영적이라면 분명히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여기 머물러 있는 저 빛이 보이지 않습니까? 부인 바로 위에 있습니다. 에메랄드 같은 빛입니다. 그 사진을 보신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이 집회에도 있습니다. 가져와 있습니다. 워싱턴 D.C.에도 걸려 있습니다. 이제까지 사진에 찍혀 과학적으로 입증된 유일한 초자연적 존재입니다. 여기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바로 보고 있습니다. 이 부인이 믿는 사람이므로 그 위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분은 저의 자매이고, 영께서 서로 오가며 증언하고 계십니다. 이제 제가 해야 할 일은 이분에게서 무언가를 포착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분께서 이 부인에게 무언가를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이분이 여기 서 있는 것은 가정 문제 때문이거나, 경제적 문제 때문이거나, 병 때문이거나, 다른 누군가 때문이거나, 무엇인가 때문입니다. 저는 모릅니다. 평생 이분을 본 적이 없습니다. 이제 성령께서 이 부인에게 무언가를 드러내 주셔서… 제가 그저 “예,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기 계십니다. 그분의 임재를 느낍니다”라고 한다면… 이분도 느낍니다. 어떤 느낌인지 보십시오. 참으로 달콤하고 겸손하고 온유한 느낌입니다. 부인,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회중을 향해 손을 좌우로 흔들어 보십시오. 보십시오. 저는 이분 바로 위에 있는 빛을 보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회중에게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실제로 제 지성은 다른 세계에, 어떤 차원에, 또 다른 세계에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부인에게 문제가 있습니다. 가슴에 있습니다. 종양들입니다. 암성 종양들입니다. 그 때문에 어떤 수술인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가슴의 종양들이 다시 생겨나고 있으며, 결국 이 부인의 목숨을 빼앗을 것입니다. 죽음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습니다. 부인, 맞다면 손을 흔들어 보십시오. 이제 믿으십니까? 여러분이 알 수 있도록, 마귀의 힘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보십시오. 이 부인은 실제로 여기… 제가 아직 영 안에 있는 동안 말씀드리면, 종양 같은 것입니다. 맞습니까? 바로 여기 또 한 분, 종양이 있는 여성이 앉아 있습니다. 부인, 맞습니까? 그렇다면 손을 드십시오. 그런데 그뿐 아니라 당뇨병도 있습니다. 손을 드십시오. 보십시오. 어둠의 영이 이쪽으로 당기고 있으며, 그 두 마귀가 서로 붙잡으려고 도움을 청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하나님의 권능은 이곳의 모든 의심을 뛰어넘어 그들을 압도해야 합니다. 아시겠습니까?
이제 믿으십니까?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 안에 계십니까? “브래넘 형제님, 하나님이 형제님 안에 계신다는 말입니까?”라고 하십니다. 저뿐 아니라 이 부인 안에도, 저 부인 안에도 계십니다. 아시겠습니까? 여기 계신 성령께는 오류가 없습니다. 두 사람 모두 안에 죽음의 힘이 있고, 그 두 죽음이 서로 힘을 합치려 합니다. 반면 하나님의 권능은 그것을 드러내어 밝히시며, 그분께서 이 여성들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고 계십니다. 그분은 이분들이 치유받기를 원하십니다. 믿으십니까? 부디, 부디 돌아다니지 마십시오. 바로 지금 그 통로를 끊으셨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러지 마십시오. 부디, 부디 부탁드립니다. 이런 것들이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옮겨 간다는 것을 아십니까? 모두 아주 경건하게 계십시오. 부인, 하나님께서 부인이 누구신지 제게 알려 주신다면 믿을 수 있는 큰 믿음이 생기겠습니까? 성함은 무어 부인입니다. 두 분 다 가십시오. 바로 그때 두 분 모두에게서 떠났습니다. 치유받으셨습니다. 가셔서 건강하십시오. “주님을 찬양합니다”라고 합시다. 그 은사가 역사합니까?
지난번 제가 이곳에 와서 누군가에게 손을 얹었을 때, 제 손에 진동 같은 것이 보였던 것을 기억하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이 부인에게 병균으로 인한 병이 있다면 그것이 작동할 것입니다. 병균으로 인한 병이 아니면 작동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경우에는 환상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모릅니다. 다음 환자분이십니까? 제가 정신이 나간 것은 아닙니다. 다만 가끔 제가… 젊은 자매님, 잠깐 이리로 오십시오. 잠시 손을 주십시오. 바로 이 손입니다. 맞습니다. 병균으로 인한 병입니다. 그렇습니다. 감염이 있습니다. 여성의 병, 부인과 질환입니다. 맞습니다. 그것이 맞다면 손을 드십시오. 정확히 그렇습니다. 보십시오. 감염이 있습니다. 그것은 병균입니다. 여기 제 손에 나타나 있습니다. 젊은 자매님, 한 가지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여기를 보십시오. 제 손을 보십시오. 여기 제 손 위에서 작은 흰 것들이 튀어 다니는 것이 보입니까? 좀 부풀어 있고 검붉게 보이지요? 이제 제 손에서 손을 떼십시오. 지금은 없습니다. 이제 이 손을 여기 얹으십시오. 지금은 없습니다. 지금은 없습니다. 이제 이 손을 여기에 얹으십시오. 여기 있습니다. 이 손도 저 손만큼이나 자매님의 사람 손입니다. 저 역시 자매님과 똑같은 사람입니다. 여기서는 작동하지 않고 저기서도 작동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환상 가운데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그것이 진실임을 알도록 그 사람의… 그들이… 아시겠습니까? 여러분이 오른손을 제게 내밀 때는 저를 믿는다는 것을 약속하는 것입니다. 그분은 “사람들이 너를 믿게 하고, 네가 신실하면 기도 앞에 아무것도 서지 못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 책을 읽어 보셨습니까? 여러 해 동안 책에서 그 내용을 읽어 보신 분은 얼마나 계십니까? 이제 보십시오. 저는 왼손을 드리겠습니다. 자매님은 저의 자매이기 때문입니다. 제 오른손은 하나님께 향합니다. 저는 그분이 제게 하신 그 약속을 믿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러면 자매님은 “저는 믿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왜입니까? 제 손에 나타나는 감각 때문이라기보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말씀드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저를 믿으시지요? 그러면 저는 하나님께 손을 들고 “하나님, 주님을 믿습니다”라고 합니다. 여기에 손을 얹고 “브래넘 형제님, 저는 형제님을 믿습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여기에 손을 얹으십시오. 젊은 자매님, 제가 손을 어떤 모양으로 하고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십시오. 혹은 어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라면 제가 어떻게 무슨 병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여기 제 손에 어떤 감각이 나타나는 것이 보이시지요? 작은 흰 것들이 제 손 위를 돌아다닙니다. 손을 떼자마자 사라집니다. 다른 손으로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제 이 손을 여기에 얹으니 다시 나타납니다.
부인, 보십시오. 아주 자세히 지켜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사라지면 치유받으신 것입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제가 그것을 계속 떠나 있게 할 수는 없습니다. “부정한 영이 사람에게서 나와 마른 곳들을 다니다가 다른 마귀 일곱과 함께 돌아온다”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곳에 오셔서 눈으로 볼 수 있게 무언가를 보여 주실 수 있고, 여러분은 무언가 일어나고 있음을 의심의 여지 없이 알며, 여기 영 안에서 여러분을 아시는 누군가가 계시고—그렇지요?—무언가가 여러분의 병을 분별했다면, 이제 그것이 떠날 때 계속 떠나 있으리라고 믿으시겠습니까? 좋습니다. 여성분들은 모두 잠시 머리를 숙이십시오. 부인께서는 제 손을 보시기 바랍니다. 먼저 기도하겠습니다. 자신의 믿음을 점검하십시오. 그리고 제가 손을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이 소녀를 위해 기도합니다. 이 몸에서 병고를 제거해 주옵소서. 주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제 팔이 여기 주님의 성경 곁에 놓여 있습니다. 주님께서 병자들을 치유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것이 주님의 말씀입니다. 저희의 온 마음으로 주님을 믿습니다. 아버지, 이제 그것이 이 소녀에게서 떠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자, 제가 머리를 들기 전인데, 그것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부인, 맞습니까? “예”나 “아니요”라고 말씀하십시오. 아직 거기에 있지요? 예, 여전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보십시오. 기도만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제 제 말뜻을 아시겠습니까? 보십시오. 다시 나타나 있습니다. 성경이 “그들이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내쫓으리라”라고 말한 것을 믿으십니까? 이런 일을 할 때는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주의해야 합니다. 주의해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모세는 치지 말아야 할 때 바위를 쳤습니다. 엘리야는 어린아이 마흔두 명을 저주했고, 아이들이 돌아가기도 전에 곰들이 그들을 죽였습니다. 아이들이 그를 대머리라고 하며 놀렸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성령께서 하신 일 같지 않습니다. 화가 난 선지자가 한 일이었습니다.
얘야, 잘 보아라. 제 손을 보십시오. 정직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아시겠습니까? 제가 움직이지 않았는데도 손이 이렇게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면 그것이 떠난 것입니다. 이제 모두 머리를 숙이십시오. 지금 그것을 떠나게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떠나게 하면 성이 납니다. 우리는 그것이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옮겨 갈 것임을 압니다.
사탄아, 14년 전 어느 날 밤 그린스밀에 하나님의 천사가 와서, 지역 목사였던 나에게 병자들을 위해 기도하도록 보냄받았다고 말씀하셨고, 이렇게 말해 주셨다. 너도 그것을 알고 있다. 네 정체가 드러났다. 너는 사람들 안에 불신을 일으킬 수 있다. 사람들을 의심하게 할 수는 있지만 그리스도께 어떤 일을 하게 할 수는 없다. 그분께서 네가 가졌던 모든 법적 권리를 빼앗으셨기 때문이다. 갈보리에서 죽으셨을 때 그분은 우리의 모든 죄와 불신의 빚을 갚으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종들에게 너를 내쫓을 권능을 주셨다. 나는 그분의 이름을 사용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왔다. 이 믿음의 결투에서 네게 도전한다. 이 소녀를 떠나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에게서 나와라. 자, 제가 머리를 들고 눈을 뜨기 전인데, 그것이 사라졌습니다. 맞습니까? 이제 눈을 뜨십시오. 무언가 일어났지요? 느낌도 달라졌지요? 여기를 보십시오. 바로 이것입니다. 잠깐만요. 자매님에게서 제 손을 떼겠습니다. 이제 아까 했던 것처럼 이 손을 얹으십시오. 어떻게 보이는지 보시겠습니까? 이제 아까 했던 것처럼 이 손을 얹으십시오. 어떻게 보이는지 보시겠습니까? 무언가 일어났지요? 치유받으셨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기뻐하면서 가십시오.
이제 잠시 이분의 손을 봅시다. 전립선에 약간 문제가 있어서 일어나야 하거나 하는 일로 신경이 예민해집니다만… 맞습니다. 밤에 일어나십니다. 하지만 정말 원하시는 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당신의 영에서 다른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좋습니다. 앞으로 몸을 못 쓰게 될 것 같습니까? 그 관절염 때문에 몸을 못 쓰게 되거나 그럴 것 같습니까? 이제 하나님께서 낫게 해 주시리라고 믿습니까? [“하나님께서 저를 치유하실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아멘. 그분께서 이미 하셨습니다. 기뻐하며 외치고 “주님을 찬양합니다”라고 말하면서 단에서 내려가십시오. 선생님, 한번 봅시다. 잠깐 이리로 오십시오. 손을 주십시오. 그렇습니다. 위장병입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치유하시리라고 믿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마귀가 이 젊은이를 떠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에게서 나와라. 아멘. 믿으며 가십시오.
좋습니다. 오십시오. 아기 때문입니까? 작은 손을 봅시다. 잠깐만요. 아기가 어떻게 지내나요? 안녕, 얘야. 그렇습니다. 아닙니다. 감염은 없습니다. 잠깐만요. 하나님께서 아기에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제게 알려 주실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 아기를 치유하시리라고 믿습니까? 예수님을 이 아기의 치유자로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심장병입니다. 심장이 좋지 않습니다. 의사들조차 어떻게 해야 할지 모릅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십니다. 사탄아,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 아이를 떠나라. 제가 마귀를 정죄하며 이 아이의 치유를 구합니다. 아멘. 이제 아기를 데려가십시오.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아기는 나을 것입니다.
오십시오. 얘야, 안녕? 예수님을 믿니? 이 아이의 작은 손을 봅시다. 자… 예. 신장병이 떠나고 괜찮아져서 건강해질 것이라고 생각하니? 그리스도께서 그것을 치유하시리라고 온 마음으로 믿니? 주 예수님, 이 아이를 해친 마귀를 정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떠나게 하옵소서. 아멘. 믿음을 가지십시오. 이제 믿고 의심하지 마십시오. 믿으며 가십시오. 온 마음으로 믿으면 그렇게 될 것입니다. 이제 손을 봅시다. 천식 증세가 있군요.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것을 치유하고 낫게 하실 수 있다고 믿습니까? 그분을 치유자로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우리 자매를 해친 마귀를 정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여인을 떠나라. 이제 믿으며 가십시오. 의심하지 말고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저기 기도 카드가 없는 분들 가운데 믿으실 분은 얼마나 계십니까? “저는 믿습니다”라고 실제로 말할 분은 얼마나 계십니까? 믿음을 가지십시오. 의심하지 마십시오. 바로 저 뒤에 앉아 저를 바라보는 연세 든 남성분, 그 관절염이 떠나리라고 믿습니까? 온 마음으로 믿으시면 하나님께서 치유하실 것입니다. 바로 여기 탈장이 있는 남성분이 앉아 있습니다. 선생님, 바로 거기 앉아 기도하시는 탈장이 있는 분, 하나님께서 치유하시리라고 믿습니까? 앞머리가 좀 벗겨지고 끈 넥타이를 매신 분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일어서서 치유를 받으십시오. 기도 카드가 있으십니까? 없으시군요. 부인께서 한 장 가지고 계시군요. 부인께서 가지고 계신 것이면 선생님은 없는 것이지요. 부인께서 기도 줄에서 치유받으시는 것처럼 선생님도 치유받아 함께 집으로 가실 수 있습니다. 아멘. 온 마음으로 믿으신다면 말입니다. 이것이 진실임을 믿으시라고 도전합니다. 여러분 모두 믿으십니까? 그러면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어딘가에서 무언가가 일어났습니다. 이분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치유하시리라고 믿습니까? 주님,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 여인을 치유해 주옵소서. 아멘. 이제 가셔서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이것을 믿고 의심하지 않으시면 그렇게 될 것입니다. 자매님, 오십시오. 제가 자매님에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고 있다는 것을 아시지요. 하지만 제가 말씀드리지 않아도 믿으시겠지요? 예, 그렇습니다. 그래도 말씀드리겠습니다. 신경과민이 떠났습니다. 집으로 가셔서 건강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의심하지 마십시오. 거기 앉아 계실 때 심장병이 떠났으니 그대로 계속 걸어가십시오.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제가 한마디도 하지 않아도 받아들이고 괜찮아졌다고 믿으시겠습니까? 좋습니다. 허리병이 떠났습니다. 그대로 집으로 가셔서 건강하십시오. 하나님을 믿고 온 마음으로,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주 예수님,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 여인을 치유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제 온 마음으로 믿으며 오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우리 형제가 치유받게 하옵소서. 보십시오. 이분들도 똑같이 치유받고 있습니다. 믿으십니까? 자매님, 오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 자매가 치유받게 하옵소서. 믿음을 가지십시오. 의심하지 마십시오. 저 가엾은 형제님은 몸을 쓰지 못하고 계십니다. 선생님, 하나님께서 치유하시리라고 믿으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 형제가 치유받게 하옵소서. 의심하지 마십시오. 이제 믿으며 가십시오. 나으실 것입니다. 선생님, 오십시오. 형제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형제님께 손을 얹습니다. 성경은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치유받으십시오.
자매님, 믿으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유받으십시오. 아멘. 저는 환상을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지금 너무 기운이 빠지고 다리가 아래에서 떨리는 것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분들이 치유받게 하옵소서. 이제 믿으시지요? 믿으시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분들이 치유받게 하옵소서. 아멘. 젊은 자매님, 오십시오. 믿으시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자매가 치유받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 자매가 치유받게 하옵소서. 형제님, 오십시오. 이제 이것을 믿으시겠지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 형제가 치유받게 하옵소서. 자매님, 오십시오. 물론 무엇인지 아시지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 자매가 치유받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 자매가 치유받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 자매가 치유받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 자매가 치유받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 형제가 치유받게 하옵소서. 형제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유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자매님, 오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 자매가 치유받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자매가 치유받게 하옵소서. 형제님, 오십시오. 이제 믿으시면 그것이 떠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저의 형제가 치유받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저의 형제가 치유받게 하옵소서. 형제님, 오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저의 형제가 치유받게 하옵소서.
의심하고 계십니까? 온 마음으로 의심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온 마음으로 믿고 계십니까? 믿으십니까? 저는 지금 분별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에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알고 계시지요? 여기, 이분은…? 아직 환자분의 손을 잡고 있습니다. 선생님, 보십시오. 저는 그저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말만 했고, 그대로 지나가시라고 했습니다. 그렇지요? 그래도 치유받았다고 믿으십니까? 좋습니다. 암이 있었습니다. 골반뼈에 있었습니다. 성함은 피터슨 씨입니다. 집으로 가셔서 치유받으십시오. 보셨습니까, 보셨습니까? 그것입니다. 그저 믿으십시오. 바로 거기에 습진이 있는 분이 앉아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치유하여 낫게 하시리라고 믿습니까? 기도 카드가 있으십니까? 없으시군요. 그래도 하나님께서 낫게 하시리라고 믿습니까? 좋습니다. 치유를 받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낫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여러분 한 분 한 분,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하나님께서 그분의 우주 안에 계심을 믿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 안에 계심을 믿으십니까? 그분의 아들 안에 계심을 믿으십니까? 그분의 백성 안에 계심을 믿으십니까? 지금 마음속에 하나님을 모셨다고 느끼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손을 드십시오. 좋습니다. 이제 제가 내려가 휠체어에 앉은 이분들을 위해 기도하는 동안, 서로에게 손을 얹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로이 형제님, 기도를 인도해 주십시오. 그동안 여러분은… 서로에게 손을 얹으십시오. 그저 서로에게 손을 얹으십시오.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주 예수님, 지금 오시옵소서. 주님은 여기 백성과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 안에 계십니다. 저희가 기도하는 동안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치유받게 하옵소서. 계속 서로에게 손을 얹고 계십시오. 계속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 안에 계십니다. 제가 이분들을 위해 기도하는 동안 그것을 믿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