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은혜로우신 주님, 주께서 행하신 일을 저희가 알고 마음에 감사하며, 또 앞으로도 저희를 위해 넘치도록 풍성하게 행하실 것을 믿는 믿음으로 오늘 밤 다시 주님 앞에 나오게 되어 감사합니다. 방금 저 응급실에서 가엾고 병들어 죽어 가는 사람들 곁에 있을 때 제 마음 깊이 확고히 새겨 주신 것으로 인해 감사드립니다. 주님, 불과 조금 전에 주께서 죽음을 막으셨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기쁩니다. 하나님, 오늘 밤 이 건물 안 어디에서나 죽음과 질병을 막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예배가 끝날 때 저희 가운데 연약한 사람이 하나도 없게 하옵소서. 아버지, 저희에게 승리를 주옵소서. 모든 곳에 있는 주의 백성을 복 주옵소서. 주님의 양 떼를 돌보는 목자들인 사역자들을 복 주옵소서. 주님, 그들의 마음에 큰 용기를 주셔서 앞으로 나아가 성령께서 온전히 나타나시는 일을 전파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허락하옵소서.
모든 교회와 모든 사람을 복 주옵소서. 주께서 영광을 받으옵소서. 아버지, 여기 작은 꾸러미들이 많이 놓여 있습니다. 기도를 받으려고 여기 가져다 놓은 손수건과 작은 천 조각들입니다. 성경은 사람들이 성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과 앞치마를 가져다가 대었을 때 사람들에게서 악한 영들이 나가고 질병들이 치유되었다고 가르칩니다. 저희는 성 바울이 아니지만 주님은 여전히 예수님이십니다. 아버지, 이 사람들에게 이렇게 할 믿음이 있었다면, 그들의 간구가 응답되리라고 믿는 믿음을 저희에게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 손수건을 통해 치유를 구하는 모든 질병이, 손수건을 그 사람들에게 대는 즉시 그들에게서 물러가게 하옵소서. 아버지, 오늘 밤 잃어버린 자들을 구원하옵소서. 병든 자들을 치유하옵소서. 주께서 영광을 받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옵나이다. 아멘. 앉으셔도 좋습니다.
오늘 밤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 우리 형제들과 여기 계신 여러분과 함께 다시 이 건물에 오게 되어 참으로 기쁩니다. 오늘 밤 큰 승리를 거두리라고 믿습니다. 어쩐지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지난 저녁에도 놀라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성령의 권능이... 아, 저는 그저 기뻐서... 집에 돌아간 뒤에도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주님의 임재가 원수를 물리치고 승리를 가져다주시는 것, 사람들이 성령 침례를 구하러 나아가는 것,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고 하나님의 영광이 사람들 위에 임하는 것을 생각하기만 해도 말입니다. 그런 일이 제게 힘을 줍니다.
여러분, 저는 전에 인디애나주 밀타운에 있는 제일침례교회에서 목회했습니다. 그곳에 내려갈 때면 시골에 사는 어떤 분들 집에서 묵곤 했습니다. 제가... 일종의 순회 사역처럼 했습니다. 부흥회를 열곤 했고, 라이트라는 분들 집에서 묵곤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늘 신기하게 여겼습니다. 여기에도 나이팅게일이나 흉내지빠귀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저희 고장에는 그런 새들이 아주 많습니다. 저는 그 새들이 미국 전역으로 저를 따라다닌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어디를 가든 따라옵니다. 마당의 잔디를 깎으러 나가면 라디오를 켭니다. 바로 나이팅게일과 흉내지빠귀를 비롯한 온갖 새들이 노래하는 소리입니다. 저는 그것이 하나님의 라디오라고 생각합니다. 제 평생 들어 본 소리 가운데 새들의 노랫소리가 가장 좋습니다.
대부분의 남자아이들은 새들에게 돌을 던집니다. 하지만 여기 맨 앞자리에 앉은 이 두 아이는 새들에게 돌을 던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요. 그리고 제 작은 로빈새들에게는 절대로 돌을 던지지 마세요. 알겠지요? 로빈은 제가 좋아하는 새입니다. 가슴이 붉은 그 새를 본 적이 있나요? 어떻게 붉어졌는지 아나요? 그 새에게 돌을 던지지 않도록 제가 이야기해 주겠습니다. 어느 날 한 분이 십자가에서 죽어 가고 계셨습니다. 모두가 그분을 버렸습니다. 그분의 두 손은 십자가에 못 박혀 있었습니다. 얼굴에서는 짠 눈물과 피가 흘러내렸고, 몸에는 사람들이 뱉은 침이 묻어 있었습니다. 그분은 거기에 못 박혀 계셨습니다. 작은 새 한 마리, 작은 갈색 새 한 마리가 그분을 너무나 불쌍히 여겼습니다. 그 새는 그분의 손으로 거듭 날아가 못을 뽑으려고 했습니다. 발로도 날아가 못을 뽑으려고 했습니다. 어떻게 되었는지 아나요? 그 작은 가슴이 피로 온통 붉게 물들었고, 그때부터 가슴이 붉어졌답니다. 그 새에게 돌을 던지고 싶지 않겠지요? 그렇지요, 그렇지요.
저도 그분을 만나러 갈 때, 못을 뽑으려고 애쓰다가 제 가슴도 피로 덮여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우리 모두 그런 마음이지 않습니까? 그분을 거기에 못 박은 것은 제 죄였습니다. 어떻게든 제가 그것을 거두어 낼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분은 저를 위해 죽으셔야 했습니다. 그 나이팅게일들은 그곳 바깥에 앉아서 밤이면 노래하곤 했습니다. 저는 돌아올 때마다 나이팅게일을 살펴보았습니다. 저는 자연을 관찰하기 좋아합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저는 자연을 사랑합니다. 나이팅게일을 살펴보니, 때로는 폭풍우가 몹시 치는 밤에도 밖에 앉아서 줄곧 위를 올려다봅니다. 그러다가 검은 구름이 지나가고 작은 별 하나라도 눈에 들어오면 곧 노래하기 시작합니다. 어딘가에서는 해가 빛나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별과 달과 그런 것들은 햇빛을 반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어젯밤 같은 좋은 집회를 볼 수 있는 한 계속 노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땅을 향해 비치는 것을 보면, 어딘가에서는 해가 빛나고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자, 성경을 가지고 계시고 저와 함께 읽기 원하시는 분들은 요한복음 1장을 펴 주십시오. 그리고 내일 밤에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죄인인 친구 한 사람씩을 데리고 오시기를 바랍니다. 내일 밤 말입니다. 주님의 뜻이라면, 제가 이 집회에 온 뒤로 그토록 간절히 기도해 온 일들을 내일 밤에는 성령께서 허락해 주시리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일요일 오후에 이 대전도 집회를 마칩니다. 제게는 참으로 좋은 시간, 놀라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야키마에 오기를 기다려 왔는데, 이곳에 머무는 동안 참으로 즐거웠습니다. 다니시는 교회가 없거나, 다니시는 교회에서 일요일 오후에 예배를 드리지 않는다면 꼭 저희와 함께 참석해 주십시오. 여러분이 오셔서 함께 기도하고 저희를 도와주시면 기쁘겠습니다. 여러분이 함께 계신다는 것만으로도 저희에게는 큰 힘이 됩니다. 또 이곳에서 기도하시며 다른 사람들을 돕는 저희를 거들어 주실 수 있습니다.
저희는 매일 밤 병든 분들을 위해 기도하려고 합니다. 사람이 너무 많지 않으면 제가 기도 줄에 서서... 특히 그런 환상들을 볼 때 말입니다. 믿는 분들은 이해하시리라 확신합니다. 이 사역도 이제 거의 마지막 순회에 이르렀습니다. 언젠가 야키마에 다시 오게 된다면, 이런 식으로 병든 분들을 위해 기도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보다 더 나아갈 것입니다. 아시겠죠? 이제 거의 마지막 순회입니다. 이 사역이 물러나기 시작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온 세계를 서너 번 돌았습니다. 그러므로 머지않아 이 사역이 떠나고, 이것을 훨씬 뛰어넘는 새로운 사역이 있을 것입니다. 제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에도 지금의 이 사역이 올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초창기에 제가 그렇게 알리는 말을 들으신 분이 이 안에 얼마나 계십니까? 어디에 계시든 손을 들어 보십시오. 그렇습니다. 오래전에 이 사역이 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왔습니까? 그분이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이제 이것을 훨씬 뛰어넘는 또 다른 사역이 오고 있습니다. 그것은 위대한 사역이 될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았으면 좋겠지만, 저는 모릅니다. 다만... 그것이 온다는 것은 압니다.
요한복음 1장 29절부터 조금 읽고, 그 말씀에서 본문을 취하겠습니다. 다음 날 요한이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오시는 것을 보고 이르되, 세상 죄를 제거하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이분은 내가 전에... 내 뒤에 한 사람이 오시는데 그분께서 나보다 앞서신 것은 그분께서 나보다 먼저 계셨기 때문이라, 하고 말한 분이라. 내가 그분을 알지 못하였으나 그분께서 이스라엘에게 드러나셔야 하므로 내가 와서 물로 침례를 주노라, 하니라. 또 요한이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니 성령께서 비둘기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오사 그분 위에 머무셨더라. 오늘 밤 이 상징들을 가지고 “어린양과 비둘기”라는 주제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 양은 아주 민감하고 특이한 동물입니다. 양에게 털을 만들어 내라는 요구를 한 적은 없습니다. 양이기 때문에 털이 나게 하라는 것입니다. 양인 한 털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양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열매를 만들어 내라는 요구를 한 적은 없습니다. 열매를 맺으라는 요구를 하셨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은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믿음, 화평, 오래 참음, 온유, 부드러움, 인내”라고 했습니다. 이것들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닙니다.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산물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겉으로 살아가는 삶이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입증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만들어 내려고, 성령의 열매를 만들어 내려고 애썼고, 그 결과는 언제나 위선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만들어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안에 거하시며 스스로 열매를 맺으시는 영으로 말미암아 체험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만들어 낼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교육으로 이루어 보려고도 하고 교단의 틀에 넣으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위선과 실패를 낳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방식대로 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계신 영께서 자신의 임재를 드러내는 열매를 맺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결코 바뀔 수 없습니다.
오늘 밤 이 본문은 몹시 색다른 본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범상한 분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범상치 않은 때에, 범상치 않은 사람들과 함께, 범상치 않은 방식으로 일하십니다. 그분은 모든 면에서 범상치 않으십니다. 저는 이것이 성경 전체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땅에 있는 자신의 아들을 상징으로 나타내기 원하셨을 때, 그분을 어린양이라고 부르기를 기뻐하셨습니다. “세상 죄를 제거하시는 하나님의 어린양.”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상징으로 나타내려 하셨을 때에는 비둘기로 나타내셨습니다. 잘 보십시오. 땅 위를 돌아다니는 모든 생물 가운데 어린양만큼 온유하고 부드러운 것은 없습니다. 어린양만큼 순진한 것은 없습니다. 온유하고 부드럽습니다. 그리고 비둘기를 보면, 하늘을 나는 새 가운데 비둘기만큼 온유하고 부드러운 새는 없습니다. 모든 새 가운데 가장 민감한 새입니다. 또 어린양은 모든 동물 가운데 가장 민감합니다.
그러므로 보시면, 어린양과 비둘기는 영도 같고 본성도 같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까마귀가 어린양 위로 날아 내려왔다면 어린양은 그것을 견딜 수 없었을 것입니다. 비둘기가 이리 위로 날아 내려왔다면 비둘기는 견딜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 본성이 같지 않았을 테니까요. 그러므로 함께 살 수 있으려면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을 함께 상징하는 것이 어린양과 이리... 아니, 어린양과 비둘기여야 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어린양으로 나타내셨을까 자주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초장에 있는 양들입니다. 보시면, 어린양은 가장 특이한 동물 중 하나입니다. 어린양은 길을 잃으면 돌아오는 길을 찾지 못합니다. 저는 양을 길러 보았습니다. 양이 길을 잃으면, 그 자리에 서서 죽을 때까지 울고 있을 것입니다. 돌아오는 길을 찾을 수 없습니다. 목자가 와서 데리고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도 목자를 통하지 않고는 어떤 다른 길로도 돌아올 수 없습니다. 인류는 길을 잃었으므로, 목자의 인도를 받아 돌아와야 합니다.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서는 돌아오는 길을 찾을 수 없습니다. 과학을 통해서도 돌아오는 길을 찾을 수 없습니다. 종교들을 통해서도 돌아오는 길을 찾을 수 없습니다. 돌아오는 길은 오직 하나, 목자를 통하는 길뿐입니다.
비둘기는 아주 특이한 새입니다. 우리가 아는 한, 쓸개가 없는 새는 비둘기뿐입니다. 비둘기는 쓸개가 전혀 없습니다. 다른 모든 새는 쓸개가 있습니다. 하지만 비둘기는 쓸개가 없으므로 그 안에는 쓴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 안에도 쓴 마음이 없고, 비둘기가 거하며 인도하는 사람 안에도 쓴 마음이 없습니다. 비둘기가 그렇게 만들어진 이유는 먹이 때문입니다. 비둘기는 독수리가 먹는 것을 먹을 수 없습니다. 먹으면 곧바로 죽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비둘기에 대해 한 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비둘기가 하늘을 나는 새 가운데 가장 깨끗한 새 중 하나라는 점입니다. 비둘기만큼 깨끗한 것은 없는데도, 스스로 깨끗함을 유지하려고 신경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그 몸에서 나오는 기름이 깃털로 퍼져서 끊임없이 몸을 깨끗하게 해 줍니다. 아, 얼마나 훌륭한 상징입니까! 믿는 사람에게는 그 안에 거하시는 영의 기름이 있어서 깃털을 깨끗하게 해 줍니다. 먼지 같은 것은 비둘기에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작은 몸에 기름이 있어서 먼지 같은 것들이 달라붙지 못하게 합니다. 기름이 끊임없이 흘러나옵니다. 비둘기가 날면 먼지는 날려 갑니다. 바로 그런 목적을 위해 그 몸에서 특별한 기름이 나오므로 먼지가 달라붙을 수 없습니다. 때가 묻을 수 없습니다. 얼마나 훌륭한 상징입니까! 오 하나님, 오늘 밤 제 등잔을 그런 기름으로 채워 주옵소서. 세상의 온갖 쾌락과 부와 화려한 매력이 저희에게 달라붙지 못하게 하옵소서. 안에서 나와 밖으로 작용하며 교회를 깨끗하게 해 주는 기름으로, 저희가 그런 것들을 떨쳐 버리게 하옵소서.
옛 찬송 가사처럼 말입니다. “내 등잔에 기름을 주셔서 계속 빛나게 하소서.” 하나님께서는 안에 거룩한 기름을 넣어 주십니다. 성경에서 기름은 영을 상징하며, 교회를 깨끗하게 해 줍니다. 그러나 비둘기는 날짐승입니다. 한 마리의 새일 뿐입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줄곧 비둘기가 등장합니다. 저는 그 새를 무척 많이 살펴보았습니다. 저희 고장과 미국의 거의 모든 주에서는 비둘기를 신성한 새로 여깁니다. 저희는 비둘기를 사냥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어떤 주에서는 사냥을 허용합니다. 저는 한 마리도 쏠 수 없을 것입니다. 저희 주에서는 신성한 새입니다. 한 마리만 죽여도 즉시 백 달러의 벌금을 물게 됩니다. 신성한 새입니다.
방주 안에서는 비둘기와 까마귀가 같은 횃대에 앉아 있었습니다. 둘 다 새였습니다. 한쪽이 날아가는 곳에는 다른 쪽도 날아갈 수 있었고, 한쪽이 할 수 있는 일은 다른 쪽도 거의 다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선택하도록 풀어 놓았을 때에는... 비둘기를 먼저 풀어 주었는데, 그 작은 새가 날아다녔습니다. 성경은 “비둘기가 발바닥 놓을 곳을 찾지 못하고”라고 했습니다. 앉을 만한 것을 찾을 때마다 죽은 사체였고, 세상에 속한 어떤 죽은 것이었습니다. 비둘기는 거기에 내려앉을 수 없었습니다. 자기 본성에 어긋났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그 비둘기의 영을 안에 품고 태어났다면, 그 사람이 떠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무슨 일이 생겨 어디론가 날아가 버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참으로 그 비둘기의 영을 가졌다면, 그 안에 있는 혼이 쉴 곳을 찾지 못할 것입니다. 믿음에서 물러난 사람이여, 여러분은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사람입니다. 어디에서도 즐거움을 찾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간증은... 베드로가 한 말과 같을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리이까? 어디로 갈 수 있겠나이까? 영원한 생명의 말씀들을 가지신 분은 주님뿐이시니이다.” 참으로 다시 태어난 그리스도인도 때로는 교회에서 일어난 어떤 일 때문에 화가 날 수 있습니다. 그것이 그 사람 속을 독으로 채울 것입니다. 하지만 참된 비둘기라면 돌아올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에 계신 것만큼 확실히 돌아올 것입니다. 그 사람 안에 있는 무엇인가가 그런 죽은 사체 위에, 로큰롤 파티나 술집에 내려앉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에게는 그런 것들이 그저 악취를 풍깁니다! 다시 태어난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든 견딜 수 없습니다. 그런 것을 소화할 쓸개가 그 안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까마귀를 풀어 놓자, 까마귀는 더없이 행복하게 이 사체에서 저 사체로 날아다니며 배불리 먹었습니다. 까마귀는 그렇게 합니다. 까마귀는 위선자입니다. 어디서나 까마귀를 사냥할 수 있어서 저는 기쁩니다. 까마귀는 고약한 녀석이며 오래 살기도 합니다. 죽은 사체에 내려앉아 원하는 만큼 실컷 먹고는 곧바로 들판으로 날아가 비둘기와 함께 밀을 먹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밀을 먹는 비둘기는 다시 날아가 까마귀와 함께 먹을 수 없습니다. 그처럼 위선자들은 교회에 가서 소리 높여 외치고 부산하게 행동하고 명부에 자기 이름을 올린 다음, 밖으로 나가 카드놀이와 술과 담배와 춤과 로큰롤과 그 모든 것을 즐기다가 다시 교회에 돌아와 교회의 양식을 먹을 수 있습니다.
저도 한때 그것을 이상하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환상을 보았습니다. 한 사람이 나가서 밀을 뿌리는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그가 잠든 사이 원수가 와서 가라지를 뿌렸습니다. 성경에 있는 내용입니다. 밀이 나서 익어 갈 때 잡초도, 가라지도 함께 자라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가뭄이 들었습니다. 가뭄이 들자 모두가 비를 내려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커다란 검은 구름이 와서 비를 쏟았습니다. 작은 밀은 이렇게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작은 고개를 들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비를 내려 주신 주님을 찬양하십시오!” 작은 잡초도 밀과 똑같이 벌떡 일어나 말했습니다. “비를 내려 주셨으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할렐루야!” 저는 “이걸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군요.”라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비는 의로운 자들과 불의한 자들 위에 모두 내린다는 것을 다시 보았습니다. 비는 밀을 위해 내렸지만, 가라지도 그 안에 있어서 같은 비의 혜택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 가입에 얼마나 열심을 내는가, 이것이나 저것에 얼마나 충성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그것이 그 남자나 여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 줍니다. 그들 안에 무엇인가가 있어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던 생명이 여러분 안에 있어서 스스로를 나타냅니다. 예수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들어 내거나 신학을 배워서 되는 무엇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 안에 계신 성령께서 그분의 부활과 살아 있는 권능의 열매와 증거를 맺으시는 것입니다.
아, 그렇습니다. 비둘기는 정겨운 새입니다. 저는 비둘기와 얽힌 경험이 많습니다. 한번은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을 위해 기도하러 갔습니다. 그분의 증조할머니가 적십자를 창설했습니다. 율리우스 스타드스클레브가 쓴 「선지자, 아프리카를 방문하다」라는 책에 그분의 사진이 있습니다. 제가 런던에 들어갔을 때 비행기가 멈추자, 저를 찾는 안내 방송이 들렸습니다... 그곳에는 저를 안내할 사람들이 모두 나와 있었습니다. 누군가 “여기 죽어 가는 부인이 있습니다. 남아프리카에서 비행기가 방금 들어왔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쪽으로 갈 수 없었습니다. 인파를 뚫고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보내 그분을 다른 곳으로 모시겠다고 전하게 했습니다. 왕을 위해 기도하는 일 등 그곳에 온 용무를 마치는 대로 피커딜리 호텔로 돌아갈 테니, 그곳에서 저를 만나면 된다고 했습니다. 제가 그 부인의 방에 들어갔을 때...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양은 제게 편지를 보내 와서 자기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분의 몸무게는 겨우 60파운드 정도였습니다. 사진을 보시면 말입니다. 사진을 찍으려면 무엇인가를 이렇게 가로질러 덮어야 했습니다. 린지 형제님이 그렇게 했습니다. 몸에 가느다란 헝겊 한 가닥만 걸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다리는 엉덩이 가까운 부분까지 둘레가 겨우 이 정도였습니다. 정맥도 쭈그러들어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 부인이 살아 있었는지 저는 모릅니다. 제가 방에 들어갔을 때... 그분은 교회 바로 뒤에 있는 교구 숙소에 있었고 간호사가 두 명 있었습니다. 제가 “나이팅게일 양이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보니 양쪽 턱 부위가 움푹 들어갔고 광대뼈가 튀어나와 있었으며, 두개골이 서로 맞물리는 네모난 부분 같은 데가 드러나 보였습니다. 살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분이 울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분의 몸에 눈물을 흘릴 만큼의 수분이 어디에 있을까 싶었습니다. 포도당을 공급받고 있었고, 뱃속의 창자가 모두 암에 얽혀 있었습니다. 어떻게 살아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분이 입술을 움직이자 간호사가 몸을 숙이고 무슨 말인지 들었습니다. 그분은 “브래넘 형제님께 하나님께 저를 죽게 해 달라고 기도해 달라 하세요.”라고 했습니다. 아, 제가 그분의 손을 잡으려고 하자 간호사가 그 팔을 들어 제 손에 올려 주었습니다. 뼈와 힘줄만 남은 죽은 듯한 팔은 차디찼고, 마디와 관절이 겨우 이어져 있었습니다. 사람이 그렇게 누워 있는 모습을 보는 심정이란! 저는 병든 분들이 낫도록 기도하러 왔으므로 그분이 죽게 해 달라고 기도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곳 사역자에게 부탁했습니다. 방에는 일고여덟 명이 있었습니다. 제가 “무릎을 꿇읍시다.”라고 했습니다.
영국에 가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안개가 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날은 안개가 몹시 짙었습니다. 택시도 안개를 뚫고 가려고 가능한 한 조심조심 움직여야 했습니다. 저희가 해안 가까이에 있었는데 안개가 큰 물결처럼 밀려왔습니다. 안개가 너무 짙어서 저는 창문 옆에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는 것만 겨우 볼 수 있었습니다. 창문 옆에서 무릎을 꿇으니 창턱이 이 정도 높이, 제 얼굴과 같은 높이에 있었습니다. 저는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영원한 생명의 창시자이시며 모든 좋은 선물을 주시는 분이시여, 여기 죽어 가는 이 가엾은 사람에게 주의 복을 내려 주옵소서.” 하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도를 시작하자마자 작은 비둘기 한 마리가 어디선가 날아와 창턱에 앉더니, 이리저리 걸으며 구구 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기도하는 제 얼굴에서 겨우 1피트 정도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저는 그 집에서 기르는 새인 줄 알았습니다. 영국에 온 지 겨우 네댓 시간쯤 되었으므로 그 집에서 기르는 새겠거니 했습니다. 비둘기는 작은 창턱 위를 이리저리, 왔다 갔다 걸었습니다. 마침내 제가 기도를 마치고 “아멘.” 하고 일어나자 작은 비둘기는 날아가 버렸습니다. 제가 “기르시는 비둘기입니까?” 하고 물으려는데, 사역자들이 “저 비둘기는 저기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하고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기르시는 비둘기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아닙니다.”라고 했습니다. 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몸을 돌려 그 부인을 보려 하자, 제 앞에 튼튼하고 건강한 여자가 서 있었습니다. 저는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당신은 죽지 않고 살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책의 다음 장을 넘겨 일 년 뒤의 그분 모습을 보십시오. 지금은 튼튼하고 건강하게 영국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가에 앉은 비둘기의 모습으로 자신의 사자를 보내셨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제 어린 딸과 아내가 죽었을 때의 이야기를 아시지요? 저는 오랫동안 저녁마다 묘지로 가서 거기에 앉아 있곤 했습니다. 아, 그들을 보내 주기가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저는 아직 젊은 청년이었고, 가족이 모두 떠나 빌리와 저만 남았습니다. 저는 그곳에 가서 무덤 곁에 앉아 있곤 했습니다. 그런데 매일 오후 다섯 시쯤만 되면 어김없이 멧비둘기 한 마리가 덤불 사이로 날아와 그곳의 삼나무 한 그루에 앉아 구구거리며 노래했습니다. 저는 두 손을 들고 주님을 찬양하곤 했습니다. 덤불 사이로 바람이 내려오며 이렇게 노래하는 것 같았습니다. “강 건너에는 한 땅이 있네. 사람들은 그곳을 아름다운 영원이라 부르네. 우리는 믿음으로만 그 기슭에 이르네. 한 사람씩 문 안으로 들어가 죽지 않는 이들과 함께 살리. 언젠가 그들이 당신과 나를 위해 저 금종을 울리리.” 작은 비둘기의 구구 소리를 들으며, 처음에 저는 그것이 제 어린 딸의 불멸의 혼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딸이었다면 와서 제게 말을 했겠지요. 그러나 비둘기는... 하나님께서 비둘기가 되어 자신을 나타내셨던 것입니다.
이제 어린양을 보겠습니다. 비둘기는 자신을 깨끗하게 하려고 기름을 내고, 어린양은 비바람을 막아 주는 라놀린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어린양에 비유됩니다. 이 어린양이 어떤 어린양이었는지 잘 보시기 바랍니다. 이 어린양은... 어린양은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이 귀한 어린양도 인도를 받으셨습니다. “내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 원하나이다.” 도살장으로 끌려가셨습니다. 때로는 그들이... 어떤 분이 “예수님께서는 왜 갈보리로 끌려가셨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성경은 그들이 그분을 끌고 갔다고 했습니다. 목에 밧줄을 걸고 끌고 갔습니다. 왜입니까? 그분이 하나님의 어린양이셨기 때문입니다. 왜 구유에서 태어나셨습니까? 어린양이셨기 때문입니다. 외양간에서 태어나셔야 했습니다. 그분은 어린양이셨고, 어린양으로 태어나 도살장으로 끌려가셨습니다.
도살하는 우리 근처에 가 본 적이 있습니까? 양을 도살하러 데려갈 때 무엇이 양들을 도살대까지 이끕니까? 염소입니다. 그곳에는 양들을 앞장서 이끄는 염소가 있습니다. 염소는 특정한 지점까지 양들을 데려간 뒤 옆으로 뛰어내려 빠지고, 양들은 그대로 안으로 들어가게 둡니다. 언제나 그래 왔습니다. 그분을 죽음으로 이끈 것도 염소였습니다. 그 양들을 도살하는 사람들이 제게 말해 주었는데, 만일 염소를 잡아야 할 때가 되면 염소는 정말 야단법석을 떤다고 합니다. 하지만 염소는 늘 양들을 도살장으로 이끌려고 합니다. 마귀도 그렇게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언제나 도살장으로, 길가의 술집이나 나이트클럽 같은 곳으로 이끌려고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분은 기꺼이 자신을 내어 주는 어린양이셨다는 점을 보시기 바랍니다. 기꺼이 자신을 내어 주는 어린양이셨습니다. 어린양에게는 가진 것이 하나뿐입니다. 몸에 난 털, 양털뿐입니다. 하지만 기꺼이 내어 주는 어린양입니다. 가진 것 전부를 기꺼이 포기합니다. 자기 털을 내어 줍니다. 그것밖에 없는데도 여러분과 저를 위해 가진 것을 내어 줍니다. 우리가 자신을 어린양,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부른다면, 하나님을 따르기 위해 기꺼이 자기 생각을 포기합니다. 기꺼이 그렇게 합니다. 하지만 아, 우리 미국인들은 인도를 받을 줄 모릅니다. 그렇지요. “아, 선생님, 우리는 학교에 가서 이끄는 법을 배웠습니다. 인도를 받을 수는 없습니다. 철학박사, 법학박사 같은 학위를 받았고, 다 알고 있고, 이끄는 법도 압니다. 그러니 비둘기가 우리를 인도할 수는 없습니다.” 이런 태도를 가지면 인도를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사람들을 이끌어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의 교회를 위해 두신 인도자는 한 분, 바로 비둘기이십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백성의 인도자이십니다. 그분이 인도자이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너무 많이 알고 신학을 너무 많이 알게 되면, 어린양이 우리를 인도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생각에 어긋나고,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포기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아, 기적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학교에서 그렇게 배웠습니다. 신유 같은 것은 없다는 걸 우리는 압니다. 오순절 사람들이 받았다고 말하는 그런 성령은 없습니다. 그런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학교에서 그렇게 배웠습니다.” 여러분이 그런 것을 믿는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시겠습니까? 기적의 시대가 지나갔다고 생각하는 여러분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치유하시겠습니까? 그러실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계속 “글쎄...” 하고 말합니다. 여전히 교회도 있고 큰 조직도 있고 교단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 하나님의 성품의 모양은 있으면서, 그 비둘기, 곧 인도하시는 비둘기는 부인합니다. 우리 나름의 종교와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거기에 다른 무엇이 섞여 들어오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성경이 무슨 말을 하든 상관없습니다...”라고 합니다. 제게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을 여러 번 만났습니다. 얼마 전에도 어떤 사람이 제 앞에 서서 말했습니다. “당신이 아무리 많은 치유를 보여 주어도 나는 여전히 믿지 않겠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물론이지요. 그것은 믿지 않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믿는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오직 그런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애초에 믿지 않는 사람을 위해 의도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인도를 허락하는 만큼만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인도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함께 일하시도록 허락하는 사람과만 그분은 일하실 수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자신이 인도하고 통하여 일하실 수 있는 누군가를 찾으려고 하시는 것을 늘 안타깝게 여겼습니다.
얼마 전에 삼손에 대해 읽었습니다. 그 사람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과 비슷하게 여자를 좋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전혀 쓰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자기 힘은 기꺼이 주님께 내어 드렸지만, 자기 마음은 결코 주님께 드리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도 자기 힘은 주님께 빌려 드립니다. 아, 물론입니다. “백만을 들일 조직을 세우고, 이것저것 다 하겠습니다.” 하지만 성령의 신성한 인도를 받기 위해, 성령께서 생명수의 샘들로 우리를 인도하시도록 마음을 내어 드리려 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결코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머릿속에 받아들이는 일이 가장 어려운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딸들은 하나님의 영에 의해 인도를 받습니다. 감독이나 추기경 같은 이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에 의해 말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생각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어린양이라면 하나님의 영에 의해 인도를 받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보면서, 저는 때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실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우리가 양 대신 염소가 되어 버린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비둘기는 염소를 인도할 수 없습니다. 염소는 인도를 받지 않으려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자기가 앞장서려 합니다. 염소는 앞장서 이끌지만, 여러분은 염소를 인도할 수 없습니다. 형제님, 한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염소 우는 소리와 양 우는 소리를 듣고 둘을 구별할 수 있다면, 분명 아주 영리한 목자여야 할 것입니다. 둘 다 소리가 거의 같습니다. 성경은 마지막 날에 마귀가 너무나 교활해져서 가능하다면 바로 그 선택받은 자들까지 속일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탄이 얼마나 교활하게 들어올지 보십시오. 이제 마지막 날들에 무슨 일이 일어나려 하는지 지켜보십시오. 다가오는 선거와 그런 일들을 지켜보십시오. 사탄이 어떻게 그 일을 벌일지, 사람들의 눈을 가리려고 어떻게 할지 보십시오. 전에도 한번 시도했다가 실패했습니다. 성공할 때까지 시도할 것입니다. 결국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렇게 할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저는 1933년에 그것을 예고했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될 것입니다. 제가 환상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때가 되기 전에 그 크고 강력한 것이 미국에 일어섰고, 미국은 지푸라기처럼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일은 일어날 것입니다. 저는 “자동차가 달걀 같은 모양으로 나올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1933년 자동차가 어떻게 생겼는지 아실 것입니다. 또 저는 “사람이 운전할 필요도 없이 도로를 달리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미 그런 차가 나왔습니다. 얼마 전에 제가 보았습니다. 전자 장치 같은 것이나 자석 기둥으로 제어해서 속도를 낮추기도 하고 높이기도 할 것입니다. 차끼리 서로 부딪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저는 1933년부터 그것을 책에 적어 두었습니다. 그렇게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그때에 이르고 있습니다. 바로 그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성령께서 교회를 인도하시며 다가올 위험을 경고해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들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십시오. 예전에는, 오래전에는... 자, 제게 화내지 마십시오. 보여 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교단들에 대해 말했는데, 이제 우리 오순절 쪽으로 조금 돌아오겠습니다. 우리 오순절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예전에는 우리 여자들이 머리를 자르는 것을 아주 끔찍한 일로 여겼습니다. 정말 끔찍하게 여겼습니다. 저는 그들과 함께한 지 몇 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것을 기억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괜찮다고 하며 머리를 자릅니다. 성경은 여자의 머리털이 그 여자에게 영광이 된다고 했습니다. 또 여자가 머리를 자르면 자기 머리인 남편을 욕되게 한다고 했습니다. 여자가 머리를 자르면 남편에게는 그 불명예스러운 여자와 이혼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것이 고린도서에서 바울이 가르친 내용입니다. 따지고 싶으시면 바울과 따지십시오. 이 말이 아프게 들린다는 것을 압니다.
어머니는 저희를 데려다가, 제게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토요일 밤마다 저희는... 낡은 삼나무 통에서 목욕을 해야 했습니다. 제가 맏이였는데, 저보다 먼저 여덟 명이 같은 통에서 목욕을 했고, 그저 뜨거운 물만 조금 더 부었습니다. 그리고 토요일 밤마다, 우리가 먹고 지내는 형편 때문에 피마자유를 한 번씩 먹어야 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것을 견디지 못합니다. 코를 틀어쥐고 헛구역질을 하며 어머니에게 가서 “엄마, 이건 도저히 못 먹겠어요!”라고 하곤 했습니다. 어머니는 “속을 아주 뒤집어 놓지 않으면 아무 소용도 없단다.”라고 하셨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여러분의 속을 조금이라도 뒤집어 놓고, 여러분에게 어떤 작용을 하지 않는다면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진리입니다. 우리 오순절 여자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잔디를 깎거나 다른 일을 할 때 아주 조그마한 옷들을 입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오순절 여자들이 자기 어린 딸들도 그러고 나가도록 내버려 둡니다.
사람들은 청소년 비행을 말하지만, 문제는 부모의 비행입니다. 그러면서 켄터키 사람들의 문해력을 운운합니다. 그곳의 옛날 어머니들 가운데는, 딸이 요즘 여자들처럼 새벽 다섯 시에 얼굴이 엉망이 되고 머리를 저렇게 부풀린 채 들어오면, 히코리나무 가지를 꺾어다가 남은 옷마저 벗겨지도록 매질을 하고 가죽까지 벗겨 놓을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고는 그것을 무지하다고 부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런 어머니들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아십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우리 여자들은 이제 담배까지 피우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목사님, 잠깐만요! 그건 미국인인 제 권리입니다.”라고 하시겠지요. 압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어린양이라면 그 권리를 포기할 것입니다. “저는 아무개 교회에 다닙니다.” 좋습니다. 어린양이라면 자기 권리를 포기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러던데...” 그렇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다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달라야 합니다. 어떤 부인이 “저는 반바지를 입지 않고 긴 바지를 입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건 더 나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여자가 남자에게 속한 옷을 입는 것은 가증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이 집회 중 한 곳에서 제가 그 이야기를 했더니, 어떤 부인이 아주 긴 편지를 보내 왔습니다. 그분은 “잠깐만요.”라고 했습니다. “지금 사람이 만든 교리로 빠져들고 계십니다.”라고 했습니다. 또 “모기가 들끓는 곳에서 말을 타고 소를 몰아야 하는 여자는 어떻게 하라는 말입니까?”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그것은 여자가 할 일이 아닙니다. 자기 자리를 지킨다면 거기에 나갈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지금 문제는... 저는 우리 자매들을 사랑합니다. 그렇습니다. 참 좋은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자기 자리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저는 우리 오순절 여자들이 얼굴에 매니큐어를 바르는 것이 끔찍한 일로 여겨지던 때를 기억합니다. 아, 말을 잘못했습니다. 저는 늘 그것을 잘못 말합니다. 뭐라고 하지요...? 화장, 화장입니다. 매니큐어는 손톱에 하는 것이지요. 맞습니까? 저는 그런 것은 전혀 모릅니다. 하지만 화장은... 예전에는 여자가 얼굴에 색을 칠하며 화장하는 것을 잘못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합니다.
어느 나이 든 감리교 사역자가 이런 노래를 부르곤 했습니다. “우리가 울타리 빗장을 내렸네. 우리가 울타리 빗장을 내렸네. 죄와 타협했네. 우리가 빗장을 내리자 양들은... 그런데 염소들은 어떻게 들어왔나?” 여러분이 빗장을 내려 버린 것입니다. 많은 경우, 여기 계신 형제들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많은 경우 설교자들은 복음보다 밥줄을 더 소중히 여깁니다. 전도자들이 돌아다니면서... 부끄러운 일입니다... 얼마 전에 이름난 전도자 한 분이 제게 “그러다가 형제님의 사역을 해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무엇이든 해를 끼친다면... 진리를 전해서 제 사역이 해를 입는다면, 그 사역은 해를 입어 마땅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사람들을 화나게 하면 그들이 아무것도 주지 않을 겁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무엇을 달라고 한 적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또 “문제는 심판 날에 제가 거기서 답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자매님, 들어 보십시오. 성경에서 얼굴에 화장을 한 여자는 단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그 여자는 하나님을 만나려고 화장한 것이 아니라 남자를 만나려고 화장했습니다. 그 여자의 이름은 이세벨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여자를 어떻게 하셨는지 아십니까? 개들의 먹이로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온통 화장한 여자를 보시면 “안녕하세요, 개 먹잇감 아가씨.”라고 하실 수 있습니다. 주님 앞에서는 바로 그런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하지만 다른 여자들도 그렇게 하는데요.”라고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어린양이라면 자기 권리를 포기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여자답게, 숙녀답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점점 그렇게 되어 갑니다... 전쟁 때 저는 산림 관리소로 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수렵 감시원이었습니다. 그곳에 올라갔는데, 저 안쪽에 어떤 남자가 앉아 있었습니다. 용접공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제 평생 들어 본 것 중 가장 더러운 농담이 오가고 있었습니다. 남자들끼리 모여 앉아 있는데도 저는 부끄러울 정도였습니다. 그 사람이 저를 돌아보며 “밖이 춥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저는 “네, 춥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이 “수렵 감시원이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네, 그렇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제 옆에 앉아 있던 사람은 여자 용접공이었습니다. 멜빵 작업복을 입고 기름때가 묻은 채 큰 보호안경을 머리 위에 얹고 있었습니다. 거칠고, 남자처럼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욕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모습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자가...
하나님께서 처음 사람을 만드셨을 때, 영으로는 그 안에 남성과 여성을 함께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셨고,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그를 나누어 육체 안에 두셨을 때 남자의 몸에는 남성의 영을, 여자의 몸에는 여성의 영을 넣으셨습니다. 여기에 어긋나는 것이 있다면 어딘가 왜곡된 부분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남자처럼 행동하려고 하는 여자를 보시면, 어딘가 조금 잘못된 것입니다. 어디선가 세포가 뒤섞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남자가 너무 여성스러워서 누군가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 봐 죄나 그런 것에 맞서 설교하지 못한다면, 그 역시 어디선가 뒤섞인 것입니다. 육체적 출생뿐 아니라 영적 출생에서도 말입니다. 아,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남자는 남자가 되고 여자는 숙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의도하셨습니다. 옷도 다르게 입어야 합니다. “여자들만 몰아세우시는군요.”라고 하시겠지요. 이제 남자들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내가 담배를 피우고 그런 반바지를 입고 그렇게 행동하도록 내버려 두는 남자는, 제 생각에 남자다운 구석이 거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자기 아내가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두는 남자에 대해 저는 제 생각이 있습니다.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입니까?”라고 하시겠지요. 형제님, 문제는 이것입니다. 남자는 이런 힘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 저 사람이야말로 사나이야! 키가 6피트나 되고 근육도 저렇게 커.”라고 합니다. 저는 몸무게가 200파운드에 키가 6피트 반이나 되면서도 남자다운 면은 한 줌도 없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어머니의 품에서 아기를 빼앗아 내던지고 그 어머니를 강간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남자는 그것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짐승 같은 것입니다. 힘이란 짐승 같은 것입니다. 남자는 인격으로 평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같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분에게 견줄 사람은 없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그를 흠모할 만한 아름다움이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왕처럼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작은 분이셨고, 아마 몸이 굽고 키도 작고 체구도 작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 같은 사람은 결코 없었습니다. 남자는 짐승 같은 힘이 아니라 인격으로 평가합니다.
“브래넘 형제님,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합니다.”라고 하시겠지요.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하든 저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안에 쓴 쓸개가 있다면 어딘가 잘못된 것입니다. 세상을 소화해 내면서 여전히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어딘가 잘못된 것입니다! 얼마 전에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이 그곳에 앉아 있었는데, 사역자들이었습니다. 칼라를 뒤로 돌려 입은 사람들이었는데, 앉아서 칵테일을 서너 잔 마셨습니다. 아내와 저와 가족이 앉아서 그들을 보았습니다. 서로 음란한 농담을 조금씩 주고받더니, 식사를 마치고는 아주 큰 시가를 꺼냈습니다. 그것을 물고 앉아 피우는 모습이 마치... 뿔을 잘라 낸 텍사스 황소 같았습니다. 비둘기가 그런 모습을 인도하신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그 비둘기는 거룩하십니다. 할렐루야! 거룩한 기름을 내십니다. 염소는 그렇게 할 수 있어도 어린양은 그러지 않습니다. 성령의 열매 말입니다. 그것은 성령의 열매가 아닙니다.
사람들은 로큰롤을 즐기고 춤을 추러 갑니다. 우리 YMCA들은 그것을 지지하고 로큰롤을 가르칩니다. 우리 교회 단체들 가운데 많은 곳이 지하층이나 이런 오락실을 이용해서 자기 교인들에게 로큰롤을 가르칩니다. 그것은 지옥에서 나온 것이며 아프리카 춤입니다. 얼굴에 색을 칠하는 것은 이교도의 특징입니다. 아프리카에서는, 저는 선교사입니다만, 그곳에서 오른손과 왼손도 분간할 줄 모르던 사람들, 그 여자들이 진흙이며 온갖 것으로 어떻게 얼굴에 색을 칠하는지 보십시오. 바로 그렇습니다. 이교도적인 것입니다! 마귀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우리 교회 안으로 스며들고도 우리는 자신을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부릅니다. 제가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비둘기를 다시 찾아야 합니다. 이제 여러분은 “그건 잘못입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교회에서 그렇게 설교하면 어떤 이들은 “다시는 안 갈 겁니다!”라고 합니다. 이리처럼 콧김을 내뿜습니다. 여러분이 이리처럼 콧김을 내뿜으면 어린양은 어떻게 합니까... 비둘기는 어떻게 합니까? 날아가 버립니다.
“저런 말은 더 이상 듣지 않겠어. 우리 목사님은 점점...” 그러면 비둘기는 곧바로 날아가 버립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세상이 뒤섞인 곳에는 머물지 않습니다. 그 냄새를 견딜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견딜 수도, 먹을 수도, 용납할 수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세상과 뒤섞이기 시작하면 비둘기는 날아가 버립니다. 교회들이 “기적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신유 같은 것은 없습니다. 아, 그건 무슨 심리적인 현상일 겁니다. 그런 기적을 행하고 표적을 보이는 것은 마귀입니다. 마귀에게서 나온 것입니다.”라고 말하기 시작하면, 바로 그때 비둘기가 날아가 버린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비둘기는 비둘기의 먹이를 먹기 때문입니다. [녹음 끊김]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녹음 끊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은 미국인인 내 권리입니다. 이웃과 어울려 술 한 잔 하고 싶거나, 밖에 나가 이것저것 하고 싶다면, 그것은 내 권리입니다.” 맞습니다. 여러분의 권리입니다. 여러분이 그저 나라의 정신으로만 태어났다면 계속 그렇게 할 것입니다. 하늘의 영으로 태어났다면 더 이상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에게 교회가 그저 교단일 뿐이라면, 교회 안에 있으면서도 줄곧 똑같이 살고 그런 것을 용납할 것입니다. 하지만 어린양의 본성을 가졌다면 견딜 수 없습니다. 한번 상상해 보시겠습니까...? 들판에서 알팔파를 먹는 어린양이 보입니다. 그곳에서 알팔파를 먹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돼지가 죽은 말을 먹고 있습니다. 돼지가 “어린양 씨, 이리 와서 나와 함께 좀 먹어요.”라고 말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어린양은 꼭 그래야 한다 해도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저는 죄인들이 그런 일을 한다고 탓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돼지이기 때문입니다. 별것 아닙니다. 저는 그냥 하도록 둡니다. 그들이 저 아래에서 술을 마시고 야단법석을 떨고 욕하고 더러운 농담과 음란한 말을 하며 세상적으로 행동하고 “나는 신유 같은 것은 믿지 않아.”라고 말하는 것을 보십시오. 물론입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어차피 돼지일 뿐이니까요. 죽은 사체 위에 있는 것이 그에게는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 독수리 말입니다. 저를 놀라게 하는 것은 주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그런 일을 하는 모습입니다. 어딘가 잘못되었습니다. 어디선가 무엇인가 잘못된 것입니다. 그 비둘기가, 비둘기가 그 어린양 안에 들어오려면 먼저 그것이 어린양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비둘기는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와 비슷한 것을 만들어 내어 그리스도인인 척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이라면 비둘기가 여기 기록한 모든 말씀에 동의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인도를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코웃음을 치며 콧김을 내뿜습니다. “흥! 신유 같은 것은 없어. 그런 집회 중 하나에 가 봤어. 거기에는 가까이 가지 않는 게 좋아. 마귀에게서 나온 것이야. 그 사람은 점쟁이야. 사람들에게 주술을 거는 거야. 그뿐이야.” 그것은 “바알세붑이다.”라고 말했던 바로 그 마귀입니다. 똑같은 마귀입니다. 여러분이 거기에 가까이 가지 못하게 하려고 합니다. 말씀으로 시험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말씀으로 시험하십니다. 양의 양식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분의 어린양들은 이 그늘진 푸른 초장에서 먹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왜 부흥을 누릴 수 없는지 의아해합니다. 왜 부흥을 누릴 수 없습니까? 무엇이 문제여서 부흥을 누릴 수 없습니까? 잘못된 인도를 따르기 때문입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회심이나 길게 이어지는 집회는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참된 부흥에 대해서는 무엇이 문제입니까? 교회 안에 세상이 너무 많이 스며들도록 내버려 두고 있습니다. 사역자 형제 여러분, 그렇게 믿으십니까?
우리 교회 안에는 세상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가 오순절이라면 오순절답게 됩시다. 오순절답게 행동합시다. 오순절답게 살아갑시다. 오순절의 복을 굳게 지키고 오순절이 우리에게 약속한 일들을 행합시다. 우리에게는... 오순절은 교단이 아닙니다. 오순절은 체험입니다. 여러분이 어린양이 되고, 비둘기가 여러분을 붙들어 인도하기 시작하는 때가 바로 그때입니다. 그때 우리가 오순절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어린양을 위로 보내셨고 그분이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셨으며, 그 뒤 오순절 날 비둘기가 다시 내려와 교회를 인도하셨을 때 그곳에서 일어난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요르단에서 첫 어린양 위에 임하셨던 바로 그 성령이십니다. 오늘날 인도하시는 분도 바로 그분이십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콧김을 내뿜으며 “나는 아무개요. 이 교단에 속해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것은 믿지 않습니다.”라고 한다면, 온유하신 성령께서 어떻게 여러분을 먹이시겠습니까? 그러면 무언가 잘못된 것입니다. 염소는 그것을 받아들일지 몰라도 양은 그러지 않습니다. 양, 어린양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인도하십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또 한 번의 체험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비둘기가 다시 오셔서 교회 위에 내려앉으시고, 교회를 인도하시며 우리의 눈을 여시고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가 그분의 임재가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아, 여기 있는 우리 모두가 염소처럼 의심하는 그 낡은 마음을 버리고 오늘 밤 비둘기가 들어오시게 할 수만 있다면! 비둘기가 여러분의 마음속으로 날갯짓하며 내려와 자리를 잡으시는 것을 느낄 수만 있다면! 멀리 가신 것이 아닙니다. 저 위 어딘가 횃대에 앉아서 여러분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실 뿐입니다. 멀리 가시지 않았습니다. 곧 돌아오실 것입니다. 여러 해 전 기도회를 열고 밤새도록 기도하던 때를 기억하십니까? 그 집회들을 기억하십니까? 옛날에, 사람들이 부르는 것을 제가 들었습니다만, ‘홀리롤러’라고 불리던 사람들이 있었던 것을 기억하십니까? 그들은 길모퉁이에 가서 설교하고 기도했습니다. 여자들은 긴 치마를 입고 서서 탬버린을 두드렸습니다. 얼굴은, 머리를 깐 양파처럼 뒤로 바짝 당겨 묶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는 수지를 사랑해’를 보는 여자 중 누가 그런 식으로 거리로 나가겠습니까? 그럴 리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는 어린양이라고 말하려 합니다. 이 염소 같은 사람아. 도대체 무엇이 문제입니까? 그렇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도를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먹을 수 있는 어린양들이 더 많아지는 것입니다.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옷을 입겠어. 내 일이야.”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입니다. “내 가족은 내가 원하는 대로 돌보겠어. 설교자가 그런 일에 참견할 권리는 없어.” 제게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돌보라고 하신 방식대로 돌보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런 어리석은 짓을 모두 그만두십시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무슨 일인지 아시겠습니까? 우리가 빗장을 내려 버렸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성령께서 날아가셨습니다. 여러분이 그런 식으로 행동하기 시작하자 성령께서 떠나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교회에 다시 오시면 여러분은 무슨 일인가 하고 의아해하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것은 무슨... 그런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아마 “글쎄요, 저는 밖에 나가 그런저런 일을 하지는 않을 겁니다.”라고 하실 것입니다. 가장 작은 것에 유죄이면 전체에 유죄입니다. 자신을 하나님께 내어 드리고 성령께서 인도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도대체 죄란 무엇입니까? 죄는 불신입니다. “믿지 아니하는 자는 이미 정죄를 받았느니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죄인인 것은 믿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옛날 그 제사장들, 예수님께서 죄인들, 독사들, 풀 속의 뱀들이며 그들의 아버지는 마귀라고 하셨던 그 사람들은 할 수 있는 한 깨끗하게 살았습니다. 하지만 자기 교회의 인도를 받았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았다면 그분을 알아보았을 것입니다. 그분은 “너희가 내 아버지를 알았더라면 나도 알았으리라. 내가 만일 내 아버지의 일들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비둘기가 그분 안에 있었고, 비둘기가 자신을 나타내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중요한 대목입니다. 잘 들으십시오. 오늘날 우리 안에 있는 비둘기도 그 어린양 안에서 행하셨던 것과 똑같은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같은 사역, 같은 표적, 같은 이적입니다. “나를 믿는 자는 또한 내가 하는 그 일들을 할 것이요, 이것들보다 더 많은 일들도 하리라. 이는 내가 내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라. 조금 있으면 세상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나를 보리라. 이는 내가 세상의 끝까지 너희와 함께, 곧 너희 안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
아, 어린양과 비둘기가 함께하는 것,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되고 하나님과 사람이 하나가 되는 것을 보는 것은 얼마나 확실한 증거입니까! 어린양과 비둘기가 함께 하나가 되었을 때, 세상의 죄는 입맞춤 속에 사라졌고, 모든 거친 것과 모든 죽음과 모든 슬픔과 모든 질병도 입맞춤 속에 사라졌습니다. 여러분과 하나가 될 때에도 똑같은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비둘기와 어린양이 함께할 때 그 본성은 같습니다. 이제 사람들이 왜 그렇게 말하는지 아시겠습니까? 거창한 성직자 칭호를 가진 사역자들, 존귀하신 신부님이니 아무개 박사니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신유 같은 것은 믿지 마시오. 저 오순절 사람들 같은 홀리롤러의 것은 믿지 마시오. 그런 것은 믿지 마시오.”라고 말하는지 아시겠습니까? 아시겠죠? 어린양 대신 염소이기 때문입니다. 어린양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습니다. 그것이 어린양의 양식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인도하십니다. 그분이 첫 어린양을 인도하셨던 방식은... 예수님께서 일어나 “잠깐만요. 모세는 위대한 선지자였습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그런 시대는 지나갔습니다.”라고 하셨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렇다면 어린양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분은 언제나 이렇게 입증하셨습니다. “그 일들을 행하는 이는 내가 아니라 내 안에 거하시는 내 아버지시니라. 내가 만일 내 아버지의 일들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라. 그러나 내가 내 아버지의 일들을 행하거든, 너희가 나를 믿지 못할지라도 그 일들은 믿으라.” 어린양은 그렇게 인도하고 계셨습니다. 그분 안에 계신 하나님이셨습니다. 교회 안에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오늘날 그분의 백성 안에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교회 안에 거하시고 그분의 어린양들 위에 임하시는 성령을 통해 자신을 나타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잠시 머리를 숙입시다.
비둘기와 어린양입니다. 여러분이 듣고 계시는 동안, 제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인상적인 성경 말씀 중 하나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아버지여(생각해 보십시오), 아버지여, 그들을 위해 나 자신을 거룩히 구별하나이다.” 생각해 보십시오. “아버지여, 그들을 위해 나 자신을 거룩히 구별하나이다.” 그분은 무엇을 하고 계셨습니까? 본을 보이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어린양이셨습니다. 무엇을 하셨습니까? 그분에게는 집을 가질 권리가 있었습니다. 사람이셨기 때문입니다. 결혼할 권리도 있었습니다. 사람이셨기 때문입니다. 좋은 옷을 입을 권리도 있었습니다. 사람이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신을 거룩히 구별하셨습니다. 포기하셨습니다. 그분은 다 자란 성인의 모습으로 천사들의 무리와 함께 영광의 회랑을 걸어 내려오실 수도 있었습니다. 물론입니다. 그러나 자신을 거룩히 구별하셨습니다. 적어도 어딘가의 좋고 깨끗한 침대에서 태어나실 수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거름 더미 위에 있는 구유에서, 빌린 구유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자신을 거룩히 구별하셨습니다. 왜입니까? 어린양이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공장에서 찍어 내듯 하는 종교와 이런 온갖 것들로 돌아가면서 참된 것들로부터 멀어지고 있습니다. 자신을 낮추십시오. 겸손을 지키십시오. “주님, 저를 거룩히 구별하옵소서.”
예수님께서는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할 사람들, 열두 사람을 훈련하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거룩히 구별된 삶을 사시고, 그들을 위해 세상의 모든 즐거움을 포기하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로 인도하려고 하는 사람들, 곧 밖에 있는 세상 사람들을 위해 세상적인 옷차림과 세상의 즐거움과 그런 것들을 포기해야 합니다. 오늘 밤 비둘기가 들어오시게 하십시오. 참된 믿음의 비둘기가 들어와 거하실 수 있도록 자신을 거룩히 구별하십시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 어린양과 비둘기의 메시지를 생각합니다. 작고 순진한 어린양이 어떻게 인도를 받아야 하는지 말입니다. 어린양은 자기 생각을 쓰려고 하지 않습니다.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목자가 인도할 수 있도록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오 하나님, 저희 안에서 잘난 체하는 모든 것을 제거해 주옵소서. 거만하고 교만한 마음과 모든 것을 다 안다는 생각을 모두, 주님, 저희에게서 제거해 주옵소서. 스며든 모든 의심과 어긋난 것들을 제거해 주옵소서. 주님, 제거해 주옵소서. 오늘 밤 비둘기가 날아 내려와 모든 마음에 들어오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저희가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미국 시민으로서 권리가 있다고 여기는 모든 것을 포기하게 하옵소서. 저희가 그것을 포기하게 하셔서, 비둘기가 저희를 평강과 선함과 긍휼과 하나님의 영광으로 인도하시게 하옵소서.
아버지, 이어질 이 치유 예배를 위해 오늘 밤 저 자신을 주님께 내어 드립니다. 주님, 비둘기가 날아 내려오게 하옵소서. 제 마음과 입과 생각과 눈과 목소리 안에 들어오시게 하옵소서. 주님, 저기 있는 사람들이 주님이심을 알게 하옵소서. 그분이 저들 안에도 들어오시게 하옵소서. 함께 있는 저희 가운데서 그분이 죄를 정죄하시고 질병을 정죄하시게 하옵소서. 죄의 모든 속성이 오늘 밤 물러가게 하옵소서. 오늘 밤 이 교회가 깨끗이 씻기고 거룩히 구별되고 가득 채워진, 성령으로 충만한 믿는 교회가 되어 이곳을 나가게 하옵소서. 주님, 오늘 밤부터 전진하게 하시고, 저희가 기도하는 큰 부흥이 온 지역에 일어나게 하옵소서. 다시 혼들이 제단 주위에 모이고 부흥의 불길이 타오르며, 모든 교회가 가득 차 새 교회를 짓고 일요일학교 교실을 증축해야 하는 것을 보게 하옵소서. 오 하나님, 주 예수님의 오심이 가까운 이때에 오늘 밤 허락하옵소서. 저희는 그때가 곧 이르리라고 믿습니다. 세상에 속한 모든 것을 포기하여 저희 삶에서 그리스도를 찾고 그분의 영의 인도를 받게 하옵소서. 주님, 허락하옵소서.
제가 목이 쉬지 않도록 목소리를 아끼며 전한 이 짧은 메시지가 좀 두서없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오늘 밤 어떻게든 마음에 뿌리를 내리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바로 이 자리에서부터 깊고 견고하고 확실한 무엇인가가 생겨, 이곳의 모든 사람이 열매를 맺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무엇을 만들어 내거나 꾸며 내려 하지 않고, 그저 자신을 성령께 내어 드리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믿음과 화평과 기쁨과 선함과 긍휼과 절제, 그리고 하나님의 모든 좋은 선물의 열매를 맺게 하옵소서. 교회들 안에 예언과 방언과 통역과 지식과 지혜가 임하게 하옵소서. 주님, 허락하옵소서. 이 위대한 오순절 교회가 일어나 몸의 먼지를 떨치고, 다시 옛길로 돌아가게 하옵소서. 주님, 그 길을 물으며 그 길로 걷게 하옵소서. 그것이 선한 옛길이기 때문입니다. 옛날의 복음의 길입니다. 비난을 받지만 이 땅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길입니다. 비둘기가 인도할 어린양들을 찾으러 내려오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그분이 자신의 귀한 생명까지 내어 주시고, 젊은 나이에 기꺼이 십자가로 가셔서 우리를 위해 죽으실 수 있었다면, “내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 원하나이다.”라고 하실 수 있었다면, 하나님, 그분의 구원을 누리고 다가올 시대들에 영생을 누리기 위해 저희도 마땅히 자신의 죄와 세상에 속한 것들을 포기할 수 있습니다. 그 귀한 하나님의 어린양이 죽음을 통해 주시려던 것을 저희가 찾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 주님, 오늘 밤 허락하옵소서. 조용하고 엄숙하게 모든 마음 깊이 확고히 새겨 주옵소서. 주님, 병든 주의 자녀들을 기도하러 부르면서 이 모든 것을 주님께 맡깁니다. 오늘 밤 그 어린양이 맞으신 채찍으로, 기도 줄에 나오거나 이 건물 안에 있는 모든 어린양이 치유받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옵나이다. 아멘.
저는 성령의 다정하심이 좋습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습니까? 제 속 깊은 곳까지 스며듭니다. 생각해 보면... 제가 나왔던 구덩이를 돌아보십시오. 돌아보십시오. 저는 제가 하듯이 죄를 정죄하는 것이 괴롭습니다. 때로는 누구를 개인적으로 겨냥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사역자로서, 제 삶의 직분 때문에 그것을 정죄해야 합니다. 여러분, 그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누구에게 상처를 주려는 뜻은 없지만, 죄는 정죄하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의 다정함으로 그렇게 한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십니다.
얼마 전에 어떤 도시에서 집회를 열고 있었습니다. 제가 어느 곳에 들어갔습니다. 저희는 길 건너에 있는 작은 덩커드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오하이오주 어딘가였습니다. 여보, 어디였는지 기억하오? 저는 잊었습니다. 오하이오주 어딘가였습니다. 저희는 큰 무기고 건물에서 집회를 했는데, 수천 명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제가 어디에 묵는지 아는 사람이 그곳에 너무 많아서 저를 시골에 머물게 했습니다. 그래서 시골로 나가 있었고, 건너편의 작은 덩커드 식당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아주 얌전하고 단정한 부인들이 그곳을 오가며 일하고 있었고, 모든 것이 참 좋았습니다. 그런데 일요일에는 문을 닫고 교회에 갔습니다.
저는 이틀 동안 먹지 못했기 때문에... 그날 오후에 설교를 해야 해서, 길 건너 현대식의 작은 식당으로 갔습니다. 길 건너, 아니, 큰길들이 교차하는 건너편으로 갔습니다. 그곳에 들어가 보니 부끄러운 광경이었습니다. 제 또래의 경찰관 한 사람이 서서 슬롯머신을 하고 있었습니다. 결혼한 사람이었는데, 한 팔로 여자를 음란하게 감싸 안은 채 슬롯머신을 하고 있었습니다. 오하이오에서는 도박이 불법인데도 말입니다. 이렇습니다. 저 건너편으로 눈을 돌려 보니, 엘비스 프레슬리 흉내를 내는 사람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뒤통수에 오리가 앉은 듯한 머리를 하고 온갖 어리석은 짓을 하는 불량배들이었습니다. 바지를 이렇게 내려 입고 있었습니다. 어린 여자를 품에 안고 앉아서... 남녀가 함께 있는 자리에서는 차마 말할 수 없습니다.
오른쪽을 보니 나이 든 부인이 앉아 있었습니다. 거의 제 할머니뻘이 될 만한 나이였습니다. 입술에는 보라색을 바르고 발톱에도 같은 색을 칠한 채, 작고 음란한 옷을 입고 앉아 있었습니다. 가엾은 그 노부인은 팔의 살갗이 이렇게 늘어져 있었고, 얼굴에는 이렇게 작은 파란 점들을 칠해 놓았으며 머리카락도 파랗게 물들였습니다. 그것을 보고 저는 “아이고!” 하고 생각했습니다. 나이 든 남자 둘도 앉아 있었습니다. 여름이었는데 한 사람은 커다란 군용 외투를 입고 목도리를 이렇게 늘어뜨리고 있었습니다. 그 가엾은 부인과 함께 앉아 여기저기 맥주를 놓고 마시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올려다보며 “비가 대황을 상하게 할까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고는 양해를 구하고 화장실로 갔습니다. 저는 그곳에 서서 말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저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견딜 수가 없는데, 거룩하신 주께서는 어떻게 저 모습을 보고 참으실 수 있습니까?” 저는 “왜 저런 것을 땅에서 쓸어 버리지 않으십니까? 더 이상 여기에 두지 마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제 어린 사라와 리브가가 저런 것 가운데서 자라야 합니까?”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땅에서 쓸어 버리옵소서. 주님은 거룩하십니다. 어떻게 그러실 수 있습니까?” 무엇인가가 제게 “문 뒤로 가거라.”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문 뒤로 가서 서 있었습니다. 잠시 기다리자 환상이 나타났습니다. 세상이 돌아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세상 둘레에는 피가 뿌려지는 듯한 안개가 있었습니다. 그 안을 보니 제가 잘못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무슨 잘못을 할 때마다 제 죄가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기 시작했고, 하나님께서는 그 죄 때문에 저를 죽이려 하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완충 장치처럼 거기에 서 계셨습니다. 그분이 그것을 막으셨습니다. 그분의 뺨으로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이 보였습니다. 제가 또 나쁜 일을 하면 그분의 피가 그것을 막아서, 그것이 제게 닥치거나 저를 죽이지 못하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죽이셨을 것입니다. “네가 그것을 먹는 날, 그날에 죽으리라.” 저는 그것을 보았습니다. 환상 속에서 그분께 다가가 말했습니다. “주님, 제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온갖 악한 일이 기록된 제 책이 그곳에 놓여 있었습니다. “제가 주님을 저런 상태에 이르게 했습니다. 주님, 저를 용서해 주시겠습니까? 제 죄 때문에 저를 위해 죽으셔야 했습니까? 오 어린양이시여, 제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 그분은 손을 뒤로 뻗어 이렇게 손을 톡톡 두드리시더니, 자신의 피로 책 위에 크게 “용서받음”이라고 쓰시고 자기 뒤로 던져 버리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새 책을 펼치셨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이 하라고 하시는 것은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주 예수님, 사랑합니다.”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행한 모든 일을 내가 값없이 용서해 주었다.” 그러고는 몸을 돌리셨고, 그 여자가 제게 보였습니다. 그분은 “그런데 너는 저 여자를 땅에서 쓸어 버리고 싶어 했구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 저는 제 자신이 이만큼 작아진 것 같았습니다. “주님, 용서해 주옵소서.”라고 했습니다. 환상이 사라진 뒤, 저는 그 여자가 앉아 있던 작은 탁자로 가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습니다. 그 여자는 반쯤 취해 있었는데, 고개를 들더니 딸꾹질을 두어 번 하고 “아, 안녕하세요.”라고 했습니다. 제가 “앉아도 되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여자는 “고맙지만, 저는 일행이 있어요.”라고 했습니다. 제가 “그런 뜻이 아닙니다. 그저 한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여자는 “말씀하세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앉아서 “이런 생활을 하신 지 얼마나 되셨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가엾은 노부인이 저를 건너다보았습니다. 저는 “아, 그분이 어떤 일을 겪었든...”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제게 일어난 일을 말씀드렸습니다.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여기 내려오신 그 사역자, 브래넘 씨이신가요? 그...?” 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렇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떨리는 손을 뻗어 제 손을 잡더니 울기 시작했습니다. “선생님, 제 남편은 설교자였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남편이 죽은 뒤에... 제게는 딸이 둘 있습니다. 둘 다 일요일학교 교사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제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분은 “저는 이제 가망이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바로 살고 싶습니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바로 지금 시작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문 뒤에서 제게 보여 주셨습니다. 그 환상을 말입니다. 저는 부인을 쓸어 버리고 싶어 했는데... 그분은 저를 용서했다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부인을 정죄하려고 했습니다. 부인,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그곳에서 그분은 제 손을 잡았습니다. 저는 그 짧은 반바지를 입은 그분을 그대로 이끌고 바닥 한가운데로 나왔습니다. 우리는 거기 무릎을 꿇고 참된 기도회를 가졌습니다. 제가 기도를 마쳤을 때 사람들이 울며 주위를 오가고 있었습니다.
형제 여러분, 우리는 때로 죄에 맞서 말해야 합니다. 사람에게 상처를 주려는 것이 아니라 깨닫게 하려는 것입니다. 깨달을 수 있는 자리에 이르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처럼, 상처를 주거나 못되게 굴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십니다. 그런 것은... 제 혼 안에 그런 마음이 있어서는 결코 안 됩니다. 다만 사람들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깨닫게 하려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우리가 모든 불신과 세상의 것들을 버리고 돌아와서, 참으로 다정하고 겸손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그분을 위해 살게 하려고 제가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오늘 밤 비둘기를 보내 주셔서 저희 모두를 조용하고 다정하게 그 참된 자리로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엘리야는 굴 안에 누워 있었고, 굴에서 바람이 지나가고 번개가 번쩍이고 천둥이 울리고 땅이 흔들렸지만, 선지자를 이끈 것은 고요한 작은 음성이었습니다. 하나님, 오늘 밤 허락하옵소서. 저희는... 모든 것이 지나갔습니다. 오늘 밤 그 고요한 작은 음성이 사람들을 참으로 거룩히 구별된 삶으로 이끌게 하옵소서. 자기 하나님 곁을 지키고, 자기 교회를 지키며, 자기 목회자를 지지하고, 그리스도의 일을 지지하고, 깃발을 높이 드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그렇게 살고 행동하고 옷 입고 다니며 사람들과 어울리고, 그런 환경에서 살아 소금처럼 짠맛을 내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되고 싶어 갈망하게 하옵소서. 주님, 허락하옵소서. 저희 교회가 오염되어 세상과 똑같이 보이고 죄인과 성도를 분간할 수 없는 지경에 결코 이르지 않게 하옵소서. 하나님, 참된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아버지, 참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밤 저희를 도우시고, 주께서 이 일들을 뒷받침하시려고 여기 계심을 선언해 주시기를 구합니다. 주의 아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머리를 숙이고 있는 동안, 오늘 밤 이 건물 안에 그런 참으로 평안하고 다정한 삶을 살며 어린양의... 아니, 비둘기의 인도를 받기 원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아니, 얼마나 계십니까? 모두 머리를 숙이고 눈을 감아 주시기 바랍니다. 앞으로 나오시라고 하지는 않겠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알고 싶을 뿐입니다. 손을 들고 이렇게 말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이 건물 안 어디를 보아도 손이 올라옵니다. 어디에서나 그렇습니다. 물론 여러분은 그렇게 살고 싶으실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허락하옵소서. 하나님, 부디 그렇게 해 주옵소서. 여기 있는 많은 사람들은 제가 오늘부터 일 년 뒤에 돌아온다면 이 자리에 없을 것입니다. 주님, 저 역시 일 년 뒤에는 여기 없을 수도 있습니다. 언젠가 그 모든 사람들 앞에서 주님을 뵈어야 합니다. 주님, 지난번에 제게 보여 주신 그 환상에 따라, 저는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누군가를 주님께 인도하기 원합니다. 오늘 밤 그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옵소서. 성령의 인도를 통해 하나님의 비둘기가 저희를 더 깊은 곳, 더 높은 곳으로 인도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옵나이다. 아멘.
제가 들어오다가 밖에서 아들을 만났는데, 아까 아들이 말하기를 오늘 밤 사람들에게 나눠 준 기도 카드가 50장이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분들을 줄 세워 기도하겠습니다. 무엇이었는지 잊었는데... C, C, 1번부터 50번입니다. 이제 이분들을... [녹음 끊김] (체크무늬 옷을 입은 작은 부인이 저 위에... 어느 지역이었지요... 남쪽 어딘가였습니다. 제가 여기서 이야기하는 동안 생각이 나시면 [불명확한 말])
비가 아주 세차게 내리고 있었고, 그곳은 사람이 가득 차서 벽을 따라 사람들이 서 있었습니다. 빌리는 기도 카드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한 어머니가 아기를 담요로 감싸 안고 이리저리 걷고 있었습니다. 또 한 나이 든 부인이 거기 앉아 있었는데, 깅엄 체크무늬 옷인가 하는 그런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앞쪽에 앉아 있던 그리스도인 성도였습니다. 그분은... 아기를 안은 어머니는 앉을 곳이 없었습니다. 앉아 있던 그 어머니 같은 부인은 아기와 그 아기를 안고 왔다 갔다 하는 여자가 가엾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성령께서 그 부인에게 “저 아기를 위해 기도하거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아, 저 여자에게 물어볼 수는 없어요.”라고 했습니다. “아기를 위해 기도하거라.” 아,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대로 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다음번에 내 옆을 지나가면 아기를 위해 기도해도 되겠느냐고 물어봐야지.”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어머니가 지나갈 때 보니 기도 카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부인은 “아, 저 아기를 위해 기도하겠다고 할 수는 없겠어. 브래넘 형제님께서 저 아기를 위해 기도하실 테니까.”라고 했습니다. 마치 그것이 다른 사람이 기도하는 것보다 더 의미가 있다는 듯이 말입니다. “브래넘 형제님께서 저 아기를 위해 기도하실 거야.”라고 했습니다.
성령께서는 계속 그 부인의 마음을 움직이셨고, 시간은 흘렀습니다. 저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그 작은 부인은 마음에 너무나 강한 찔림을 느끼고 마침내 말했습니다. “자매님, 아기를 안고 여기 앉으시겠어요?” 그 어머니는 “아, 자매님 자리를 빼앗고 싶지는 않아요.”라고 했습니다. 아마 그 어머니 같은 부인이 그 아기에게 품은 연민은 제가 품었을 연민보다 더 컸을 것입니다. 그분은 “자매님, 이 자리에 앉으세요. 그런데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자매님이 그리스도인인 줄 알아요.”라고 했습니다. 그 어머니는 “네, 맞아요.”라고 했습니다. 그 부인은 “저도 그리스도인이에요. 하나님께서 제게 계속 ‘저 아기를 위해 기도하거라.’라고 말씀하셨어요.”라고 했습니다. 또 “그런데 기도 카드를 가지고 계시네요. 브래넘 형제님께서 그 아기를 위해 기도하실 거예요.”라고 했습니다. 그 어머니는 “오늘 밤 제 번호를 불러 주셨으면 좋겠어요. 아기를 데리고 왔거든요.”라고 했습니다. “아기가 아주 많이 아파요. 제 번호를 불러 주셨으면 좋겠어요.”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부인이 말했습니다. “여기 앉으세요. 제 마음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아기를 위해 기도하게 해 주세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마음에 가책을 느낄 것 같아서요.” 그 어머니는 “아, 물론이지요. 자매님, 아기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라고 했습니다. 그 부인은 짧게 기도했습니다. “주 예수님, 주께서 제 마음에 일러 주셨기에 이 작은 아기에게 손을 얹었습니다. 주님의 종이 기도해 주어야 하는데 제가 이렇게 하는 것이 잘못이라면, 주님, 그것이 누가 되지 않게 하옵소서. 저는 그저 마음의 짐을 덜려고 합니다.” 그 작은 부인에게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신 분은 성령이셨습니다.
그 부인은 작은 아기를 위해 기도한 뒤, 기도 카드를 가지고 아기를 안고 있던 어머니에게 자리를 내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저 위 발코니로 올라가 서 있었습니다. 얼마 뒤 비가 조금 잦아들어 제가 들어갔습니다. 안으로 들어와 단상에 올라 잠시 설교한 다음 기도 줄을 불렀습니다. 모두 분별 사역으로 진행하려고 했기 때문에, 기도 카드 열 장 정도만 불렀습니다. 처음 시작하는 집회라면 그렇게 열 사람째쯤 되면 때로는 제 기력이 거의 다 빠집니다. 그래서 그들이... 제가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믿음입니다. 여러분이 믿어야 합니다.” 번호를 불렀을 때, 제 생각에는 20번부터 30번인가, 아니면 30번부터 40번인가, 아무튼 그중 하나였을 것입니다. 아기를 데리고 있던 그 여자는 줄에서 네 번째쯤이었습니다. 기도해 준 그 어머니 같은 부인은 그때 참 기뻤습니다. 아기와 어머니가 앞으로 나왔습니다. 아기는 담요로 이렇게 덮여 있었고 아주 아팠습니다. 기도 줄이 진행되는 곳까지 나왔습니다. 제 앞에 왔을 때 제가 “안녕하세요?”라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녹음되어 있습니다. 아시겠죠? 그래서 제가 이 모든 일을 아는 것입니다. 제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습니다. 그 어머니도 “안녕하세요?”라고 했습니다. 제가 “우리는 서로 처음 만나는 사이인 것 같군요?”라고 했습니다. 그때 저는 그분의 영과 접촉하려 하고 있었습니다. 아시겠죠? 그분은 “네, 그렇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자신을 위해 나오신 것이 아니라 아기를 위해 나오셨군요.”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맞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아기가 백혈병에 걸렸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맞습니다. 의사들은 이제 몇 달밖에 살지 못한다고 했어요.”라고 했습니다. 제가 “잠깐만요.”라고 했습니다. “아기는 이미 치유되었습니다. 작은 깅엄 체크무늬 옷을 입은 부인이 조금 전에 아기를 위해 기도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몇 분 전에 아기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바로 저 위에 서 있는 분입니다. 이름은 아무개 부인이고, 또...” 그분이... 그러므로 순종하는 것이 희생 헌물보다 낫습니다.
오늘 밤 여러분에게 “나는 비둘기다. 내가 여기 있다. 너는 나의 어린양이다. 너를 치유하고 싶다.”라고 증언하신 바로 그 영께, 그저 “하늘에 계신 아버지, 감사합니다.”라고 말씀드리십시오. 그리고 치유받은 채 그대로 걸어 나가십시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좋습니다. 기도 줄을 부르겠습니다. 여러분은 참 좋은 청중으로 이토록 주의 깊게 앉아 들어 주시니, 제가 자꾸만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어디 봅시다. 기도 카드... 모두 앞으로 모시고 그분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녹음 끊김]
성령께서 그저 붙드실 수만 있다면... 여러분은 열심히 애쓰고 있습니다. 저도 압니다. 아시겠죠? 어떻게든 그 안으로 들어가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저... 억지로 들어가려고 애쓰지 말고 힘을 빼십시오. 아시겠죠? 하나님께서 하시도록 두십시오. 하나님께서 하시도록만 한다면 참으로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병든 사람이 한 명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 모두가 온 마음과 온 힘을 다해 믿으시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치유해 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믿으십니까? 이미 일어나고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아, 계속되기만 한다면! 아직 아무도 기도 줄에 들어오기 전에, 바로 방금 그 빛이 이렇게 원을 그리며 도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 빛이 누구 위에 멈추는지 지켜보고 있었는데, 이쪽으로, 이 방향으로 움직였습니다. 믿음을 가지십시오.
여기서 주의 천사의 사진을 보신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이곳에도 있습니다. 책 같은 데에 있습니다. 제가 조금 전에 보고 있던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저쪽 어딘가에서 와서 이쪽으로 돌더니, 이편으로 왔습니다. 그 빛은 기도 줄에 임할 때 언제나 제 오른쪽으로 옵니다. 늘 그랬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들을 그쪽에서 오게 합니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오게 하지 않는 기도 줄은 세우지 않습니다. 그분이 항상 그곳에 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분을 보는 쪽은 언제나 그쪽입니다. 예전에는 사람들을 왼쪽에서 오게 했습니다. 그 손으로 사람들의 손을 잡을 때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방식은 환상입니다. 그분은 이쪽에 서 계십니다.
사역자 형제 여러분, 모두 온 마음으로 믿어 주시기 바랍니다. 믿음을 가지고 저 사람들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이십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이심을 믿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시며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입양된 자녀들입니다. 그분이 비둘기이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자신이 그분의 어린양이라고 믿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좋습니다. 좋습니다. 이제 그분께서 우리를 인도하시게 합시다. 제가 청중 가운데 있는 누군가를 보고 싶습니다. 그러면 여기 줄에 선 사람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이 보실 것입니다. 그저... 그런... 왜 기도 카드를 나눠 주는지 아십니까?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여기에는 기도를 받기 원하는 분이 아마 이삼백 명, 아니 사백 명쯤 더 있을 것입니다. 분별 사역을 하는데, 형제님, 서로 앞다투어 뛰어들면 무질서해집니다. 이곳은 경기장이지만 오늘 밤은 아닙니다. 오늘 밤은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여기 앉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일이 질서 있게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무질서해지도록 내버려 두면 성령께서 얼마나 빨리 날아가시는지 보십시오. 아, 몹시 조심스러우십니다.
누군가 불신하기 시작하도록 내버려 두면, 그분이 얼마나 빨리 저를 떠나시는지 보십시오. 불신이 있는 곳에는 머물려 하지 않으십니다. 결코 그러지 않으십니다. 몹시, 몹시 조심스러우십니다. 그래서 형제님, 귀한 자매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만, 제가 여자들의 옷차림에 대해 말하는 것은... 여러분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멋대로 행동하는 요즘 여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보십시오. 저는 앞으로 자라날 여러분의 자녀들과 그런 일들 때문에 여러분에게 경고하려는 것뿐입니다. 걸음마다 조심하십시오. 여러분은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 어젯밤 저는 이쪽과 저쪽에서 십 대 소녀들, 젊은 여자들이 구원을 받으려고 뒤쪽으로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참으로 인생의 갈림길에 서 있는 나이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그런 일을 해 주시다니, 얼마나 은혜로운 일입니까!
자, 모두 들어왔습니까? 쉰 분이 모두 있습니까? 저 밖 어딘가에 믿음을 가지려고 애쓰는 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저... 굳이... 제가 이것을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해도,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아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하나님을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온갖 노력과 미신들이...
에덴동산에는 나무가 두 그루 있었습니다. 아시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하나는 생명나무였고, 다른 하나는 지식의 나무였습니다. 사람이 생명나무를 떠나 지식의 나무에서 먹으면 언제나 자신을 파괴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지식으로는 결코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믿음으로 그분을 알아야 합니다. 그저 믿어야 합니다. 지식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입니다. 아시겠죠? 그러므로 우리가 여기서 한 입씩 베어 물 때마다... 사람들은 베어 물었습니다... 첫 입은 창조주와 나누던 교제를 끊어 놓았습니다. 그다음에는 화약을 한 입 베어 물었습니다. 동료와 친구를 죽입니다. 그다음에는 자동차를 한 입 베어 물었습니다. 온갖 화약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입니다. 이제는 원자폭탄을 한 입 베어 물었습니다. 그것으로 무엇을 하려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시겠죠?
하나님께서는 아무것도 파괴하지 않으십니다. 사람이 지식으로 자신을 파괴합니다. 그것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아무것도 파괴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 아무것도 파괴하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사람은 자기 지식으로 자신을 파괴합니다. 우리가 어떤 지점에 이르러 “성령 같은 것은 없습니다. 신유는 잘못입니다.”라고 말한다면,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은 자신의 무지로 파괴되는 것입니다. 지식이라고 생각하지만 무지입니다. 그렇게 자신을 파괴했고, 그렇게 함으로 자기 혼을 하나님으로부터 아주 멀리 보내 버렸습니다. 아시겠죠? 왜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오 하나님의 비둘기시여, 오셔서 저를 인도하옵소서.”라고 하지 않습니까? 아시겠죠? 그분이 여러분을 어디로 데려가시는지 보십시오. 곧장 그분의 말씀으로 다시 데려가십니다.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기도 줄에 계신 분 가운데 저를 모르고 저도 여러분을 모르는 분, 저를 모르시는 분이 얼마나 되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런 분들은 손을 들어 보십시오... 저기 계신 분들 가운데 저를 모르시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발코니에 계신 분들도요? 좋습니다. 제가 아는 한, 하나님께서 제 판단자가 되십니다만, 제가 아는 분들은 이 귀한 형제들 가운데 몇 분과 안면을 익힌 것뿐입니다. 특히 여기 진행 책임자인 홉슨 형제님을 알고 있습니다. 또 서로 아는 형제 두어 분을 만났습니다. 모두와 악수도 했습니다. 하지만 형제 여러분, 여기서 여러분을 깊이 알게 되지 못하더라도,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면 물 건너에서 여러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저도 여러분과 함께 그곳에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함께 사역하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제가 아직 어린 죄인일 때부터 이 복음을 전하신 분들도 계십니다. 사실 이 자리에 서셔야 할 분은 여러분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것입니까? 여러분이 덤불을 베고 길을 평평하게 닦아 놓으셔서, 제가 달리는 것이 여러분 때보다 훨씬 쉬워졌습니다. 제가 마음속으로 그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어느 영광스러운 날 저편의 식탁을 사이에 두고 악수할 때, 면류관이 누구에게 돌아가는지 보게 될 것입니다. 상을 얻기 위해 참으로 싸우셨고 제 길을 편하게 만들어 주신 형제 여러분 말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일들이 올 것이라고 전하셨습니다. 제가 사역을 시작하기도 훨씬 전, 여러 해 전에 이런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전하셨습니다. 아시겠죠? 여러분이 길을 닦으셨습니다. 여기 있는 분들은 여러분에게 설교를 듣고 이곳에 와서 바로 그 일을 보는 사람들입니다. 언제나 여러분의 목회자를 존경하십시오. 여러분이 드릴 수 있는 모든 존경을 받을 만한 분입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또 “너는 곡식을 밟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라고 했습니다.
오래전에 그들이 길모퉁이에 서고, 도시에서 쫓겨나고, 철길에서 주운 옥수수를 먹으며 무슨 일을 겪었든, 그들은 이 일을 위한 길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결코 그것을 잊지 마십시오. 새로운 전도자들이 어떤 사역을 가지고 나타나면... 하지 마십시오... 기억하십시오. 수술을 받아야 한다면 경험이 전혀 없는 갓 배우는 학생에게 맡기지는 않을 것입니다. 경험 있는 사람을 원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혼이 수술을 받아야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렇습니다, 형제 여러분. 참으로 그렇습니다.
이것은 은사입니다. 잠깐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이것은 은사이며, 제가 그저 제 자신을 비둘기께 내어 드리는 방식입니다. 그러면 저는 제 생각이나 제 눈이나 제 말을 쓰지 않습니다. 그저 그분 앞에서 힘을 빼고 맡깁니다. 그렇게 하는 법을 아는 것이 은사일 뿐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지금 저는 그렇게 힘을 빼고 있습니다. 아시겠죠?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은 영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죽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불신이 있으면 그것이 들어오는 것을 제가 느낍니다. 조금만 의심해도 느낍니다. 하지만 믿음이 있을 때에도 느낍니다. 아시겠죠? 이 환상들을 불러오는 것은 여러분의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아십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제가 아니라 여러분의 믿음입니다. 제가 그것을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저를 조종합니다. 저는 그저 제 힘을 빼고, 그분이 무엇을 하시든 말합니다. 그러다가 아주 기운이 빠지기 시작하면 몸이 휘청거리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면 저는 그저... 그대로 계속하면 얼마 안 가서 여기 로이 형제님이나 빌리 폴이 저를 붙들어 주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또 다른 집회들과 다른 날 밤의 집회들도 있기 때문에, 저는 그 상태에서 빠져나오려고 합니다... 은사는 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제가 무엇을 알고 싶어서 “주님, 무엇입니까? 무엇입니까?”라고 해도, 그분은 원하실 때가 아니면 말씀해 주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제가 은사를 통해 제 자신을 내려놓으면 여러분이 그것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해하시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여러분 자신의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옷자락을 만졌던 여자처럼 이쪽을 바라보시고, 그분이 대제사장이심을 믿고 아십시오. 아시겠죠? 하나님의 은사로부터 무엇을 얻는 유일한 길은 경외심과 존중하는 마음으로 다가가는 것입니다. 마르다가 이렇게 말했다면 어떻겠습니까? “주님은 여기 계시지 않았습니다. 제가 부를 때 왜 오시지 않았습니까? 제 오라버니 나사로는 죽은 지 나흘이나 되었습니다. 저희는 주님이 위선자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주님과는 더 이상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그랬다면 그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수로페니키아 여자가 말했을 때... 그 여자가 그렇게 했다면 어떻겠습니까? 그 여자는 “주님, 제 딸에게 긍휼을 베푸소서. 마귀에게 여러모로 시달리고 있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분은 “내가 자녀들의 빵을 집어 너희 개들에게 주는 것은 합당하지 아니하니라.”라고 하셨습니다. 휴! 여러분이라면 무엇이라고 했겠습니까? “내가 개라고요? 이 홀리롤러 같으니, 당신과는 아무 상관도 않겠어요. 가 버려요.” 그 여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주여, 참으로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주인의 상 밑에서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돌아서서 “이 말을 하였으니...”라고 하셨습니다. 그 여자의 다가가는 태도입니다. 아시겠죠? 마르다는 “주여,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으리이다. 그러나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 하나님께 구하시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주께 주실 줄을 내가 아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아! 그분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누구든지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고 하셨습니다. 그 여자는 “그러하오이다, 주여.”라고 했습니다. 그분을 그분의 실제 신분대로 “주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하오이다, 주여. 주께서는 세상에 오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형제님, 무엇인가가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뿐입니다. “그를 어디에 묻었느냐?”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 일이 일어나게 하는 데 필요한 것은 그것이었습니다. 언제나 그 일이 일어나려면 그것이 필요합니다.
기도 카드 없이 저기 계신 여러분도 바로 그런 경외심으로 하나님께 다가가십시오. 저는 여기 줄에 선 분들을 위해 기도만 하겠습니다. 그렇게 된다는 것을 보여 드리려고... 저는... 하기 전에 이 시계를 벗는 것을 잊지 않도록... 제가 혹시... 저는 기도 줄에 있는 이분들을 위해 기도만 하겠습니다. 그러면 분별을 하는 사람은 여러분입니다. 온 마음으로 믿기만 하십시오. 온 마음으로 믿기만 하십시오. 집회가 시작되기도 전에... 기도 줄이 시작되기도 전에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자매님, 그 천식성 기침에서 벗어나고 싶습니까? 하나님께서 낫게 해 주실 것을 믿습니까? 믿음을 가지고 의심하지 않으면 나을 수 있습니다.
바로 이 뒤에 한 남자분이 앉아 계십니다. 심장병이 있고 병원에 계셨던 분입니다. 선생님, 온 마음으로 믿으시면 하나님께서 치유해 주실 것입니다. 하워드 씨, 믿음을 가지십시오. 선생님, 기도 카드가 있습니까? 없으시다고요? 저는 처음 보시는 사람입니다. 저는 선생님을 모릅니다. 제 평생 한 번도 뵌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서로 전혀 모르는 사이입니다. 방금 말한 것이 무엇이든 사실입니까? 사실이라면 손을 들어 보십시오. 좋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 선생님을 낫게 하십니다. 집으로 가십시오. 치유받으셨습니다.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지금 어떠십니까? 자매님, 이제 좀 나으십니까? 그 기침이 이제 멎었군요. 집으로 가서 건강하게 지내십시오. 네가 만일 믿을 수 있거든.
저 뒤에 다리가 불편하신 선생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께서 낫게 하시고 치유해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거기 앉아서 저를 바라보고 있는 젊은 분, 하나님께서 낫게 해 주실 것을 믿습니까? 온 마음으로 믿으면 받을 수 있습니다. 아멘. 의심하지 말고 믿으십시오. 저기 남편을 위해 기도하는 부인이 앉아 계십니다. 남편의 근육에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남편을 낫게 하실 것을 믿습니까? 그렇게 믿으신다면, 믿으시면 구하는 것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의심하지 말고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저 뒤에 앉아 계신 부인, 사람들이 누구신지 볼 수 있도록 일어나십시오. 좋습니다. 온 마음으로 믿기만 하십시오. 그것이 그 여자에게 어떤 일을 했는지 보십시오. 그 남자에게 어떤 일을 했는지 보십시오. 그들은 무엇입니까? 비둘기가 들어오시게 한 어린양들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자매님, 오십시오. 저를 그분의 선지자로... 아니, 그분의 종이라고 말씀드리려던 것입니다. 그렇게 믿으십니까? 그 말 때문에 걸려 넘어지는 분들이 있어서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믿으십니까? 우리는 서로 처음 만나는 사이이지요? 좋습니다. 우리는 전에 만난 적이 없고, 평생 처음 만나는 것입니다. 저는 자매님을 모르고 자매님도 저를 모릅니다. 이렇게 처음 만났습니다. 자매님께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저는 전혀 모릅니다. 왜 여기 서 계시는지도 전혀 모릅니다. 어쩌면... 병이 있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을 대신해서 서 계실 수도 있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일 수도 있고 가정 문제일 수도 있으며, 어쩌면... 저는 무엇인지 모릅니다. 제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자매님도 아십니다. 우리가 아는 한 그것이 사실이라면,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손을 들어 보십시오. 아시겠죠?
이렇게 우리가 여기 있습니다. 보십시오. 그저 힘을 빼고 맡기는 것입니다. 저는 이 여자와 이야기하겠습니다. 여기 여자가 있고 저는 남자입니다. 우리는 평생 처음 만났습니다. 예수님과 사마리아의 우물가 여자처럼 말입니다. 우물에서 만났습니다. 그분은 그 여자의 영을 파악하기 위해 잠깐 말씀을 나누셨습니다. 아시겠죠? 지금은 그것이 심장 박동처럼 사방에서, 어디서나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바로 사람들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저는 자매님을 모르지만, 하나님은 자매님을 아시고 저도 아십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무엇이 문제인지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제게 어떤 것을 알려 주신다면 말입니다. 그 이야기를 읽으신 기억이 있습니까? 요한복음 4장입니다. 그분은 그 여자의 문제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여자는 “선생님, 제가 보니 선생님은 선지자이십니다. 우리는 [우리 사마리아인들은]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 하는 분이 오실 줄을 압니다. 그분께서 오시면 이런 일들을 우리에게 말씀하실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메시아의 표적이라는 것을 그 여자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네게 말하고 있는 내가 그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여자는 도시로 달려가 사람들에게 그 일을 말했습니다. “와서 내가 행한 일들을 내게 말한 사람을 보라. 이분이 바로 그 메시아가 아니냐?” 그 도시의 사람들은 그 여자의 간증 때문에 그분을 메시아로 믿었습니다.
그것이 성경 말씀이지요? 사역자 여러분, 그것이 성경 말씀입니까? 좋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청중이며, 어떤 여자가 와서 이야기해 줄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여기서 직접 보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메시아, 하나님의 아들께서 성경에서 약속하신 그대로, 성령의 모습으로 여기 계셔서 우리를 통해 일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겠습니까? 믿으시겠습니까? 그렇다면 무엇이 여러분을 가로막겠습니까? 그저 “저는 주님의 어린양이고 주님은 비둘기이십니다. 주님, 저를 건강으로 인도하옵소서.”라고 말하십시오. 저는 그분이 그렇게 하실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보십시오. 저 역시 믿음으로 거기에 다가가야 합니다. 지금 그것을 믿기 위해 믿음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그분이 하지 않으실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잠시 이야기를 하며 청중 가운데서 일어난 환상들로부터 조금 회복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것이 기도 줄 때문도, 다른 무엇 때문도 아니며 그런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을 테니까요. 저기 계신 여러분입니다. 그저,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십니다. 그렇게 믿지 않으십니까? 그분은 어디에나 계십니다.
이 자매님은 관절염으로 고생하고 계십니다.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애쓰는 모습이 보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려고 할 때가 다른 어느 때보다 더 심합니다. 맞습니다. 맞으면 손을 들어 보십시오. 겉으로는 그렇게 보이지 않지요? 하지만 앓고 계십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환상입니다. 그분이 무언가를 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제 생각에는 침대 같은 데서 몸을 움직이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잠깐만 아주 경건한 마음으로 계십시오. 이 자매님에게는 무슨 이유로 슬픔이 있습니다. 그냥 보내 드리려고 했는데, 그 너머 깊은 곳에 무엇인가가 있어서 슬퍼하고 계십니다. 기억하십시오. 이 자매님 주위에는 슬픔과 어둠이 있습니다. 아,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분 때문입니다. 남편입니다. 병원에 계십니다. 재향군인 병원인데, 왈라왈라, 왈라왈리인가 하는 비슷한 이름의 도시에 있습니다. 맞습니다. 암에 걸렸습니다. 자매님은 오리건주에서 오셨습니다. 성함은 레퍼슨 부인입니다. 사실입니다. 이제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그러면 가십시오.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믿으신 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좋습니다.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믿음을 가지십시오. 의심하지 마십시오. “주님, 제 안의 모든 것을 다해 믿습니다. 믿습니다.”라고 말씀드리십시오. 이제 온 마음으로 믿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누가 이 일을 하고 있습니까? 비둘기이십니다. 비둘기이십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계십시오. 그저... 이분이 다음 환자입니까?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하나님께서... 제가 자매님께 한마디도 말씀드리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치유해 주실 것을 믿으십니까? 이리 오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주님의 영광을 위해 이 여자가 치유받게 하옵소서. 아멘. 이제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믿음을 가지십시오.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제가 선생님께 한마디도 말씀드리지 않아도 여전히 온 마음으로 믿으시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남자가 치유받게 하옵소서. 아멘. 믿으며 오십시오.
제가 자매님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는 것을 자매님도 아십니다. 하지만 제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 온 마음으로 믿으시겠습니까? 무엇인가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이리 오십시오. 제 손 위에 손을 얹으십시오. 손을 얹으십시오... 여성의 질환, 부인병이 있습니다. 보십시오. 그것은 환상으로 알아낸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알아낸 것입니다. 무엇인가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이제 제 손을 보십시오. 보통 사람의 손과 같지요? 여기 말입니다. 이제 이 손을 잡고 이쪽에 놓으십시오. 여전히 똑같습니다. 이제 손수건을 옮겨서 이쪽에 놓으십시오. 이제는 같지 않습니다. 붉어지고 부어오르며, 작은 하얀 것들이 그 위를 움직입니다. 이제 손을 떼십시오. 제가 손을 그냥 가로질러...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 그 손을 다시 그 위에 얹어 보십시오. 또 나타났습니다. 무엇인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아시겠지요. 신비로운 점은, 그것이 여러분에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말해 준다는 것입니다. 지금 주님께서 원하신다면 환상으로도 제가... 환상을 불러... 여러분은... 하나님께 구하면 계속해서 이어질 것입니다. 이제 잠깐 이것을 보십시오. 치유받으실 것을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주님, 이 여자에게 긍휼을 베푸소서. 내가 이 원수에게 명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그를 내쫓는다. 그 여자에게서 나와라! 이제 손을 보십시오. 무엇인가 일어났지요? 보십시오. 아까 하신 그대로 이제 이 손을 올려놓으십시오. 이제 제 손을 그 위에 놓으십시오. 조금도 변하지 않습니다. 이제 이 손을 다시 주십시오. 무엇인가 일어났지요? 치유받으셨습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분은 놀라우시지 않습니까?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제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안수만 한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남자가 치유받게 하옵소서. 선생님, 오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남자가 치유받게 하옵소서. 자매님, 오십시오.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슬프십니까? 치유받으실 것을 믿으십니까? 믿으신다고요? 좋습니다. 또 믿으십니까... 스페인계이십니까? 아, 일본계와 또 뭐라고요? 스페인계와 일본계군요. 좋습니다. 여기서 태어나셨습니까? [“멕시코요.”] 아, 저는 그곳을 좋아합니다. 참 좋은 곳이지요. 주님을 사랑하십니까? 당뇨병이 사라져 이제 집에 가서 건강하게 지내실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좋습니다. 그러면 가십시오. 믿음을 가지십시오.
제가 아무 말도 하지 않더라도 치유받으셨다고 믿으시겠지요? 그러십니까? 하지만 허리의 문제가 떠나서 건강해지기 원하시는군요.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주님, 이 사람이 치유받게 하옵소서. 이제 신장이 괜찮아질 것을 믿으며 가십시오. [불명확한 말] 그래서 거기서 그렇게 강하게 느껴졌던 것입니다. 선생님도 허리 때문에 불편을 겪고 계셨군요. 맞습니다. 이제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온 마음으로 믿으시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가서 치유받으실 수 있습니다.
좋습니다. 오십시오. 제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고 있다는 것을 아십니다. 그러면 제가 말씀드릴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여러 가지 문제가 있지만, 기도받기 원하는 주된 것은 관절염입니다. 이제 가서 건강하게 지내십시오. “주 예수님, 감사합니다.”라고 말씀드리십시오. 제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안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제가 기도해 주기를 원하는 가장 큰 문제를 말씀드리면 도움이 되겠습니까? 심장병입니다. 그저 믿고 가셔서 치유받으십시오. 믿음을 가지고 전혀 의심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환상입니다. 하지만 아, 그러고 나면 거의 죽을 지경이 됩니다. 아시겠죠? 그분이 여기 계심을 믿으십니까? 물론 여기 계십니다.
자, 기도합시다. 자매님, 오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 자매가 치유받게 하옵소서. 아멘. 온 마음으로 믿으며 가십시오. 선생님, 믿음을 가지셔야 합니다. 그것을 아시지요. 그 암은 선생님을 죽일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 암을 치유하시고, 낫게 되실 것을 믿으십니까?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 암에게 이 사람에게서 나가라고 명한다. 이제 믿으며 가십시오.
믿음을 가지고 온 마음으로 믿으시면 심장병으로 죽지 않고 나으실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좋습니다. 믿으며 가십시오. “주님을 찬양합니다!”라고 말씀하십시오. 좋습니다.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 여자가 치유받게 하옵소서. 아멘. 이제 믿으십시오. 아기를 위한 것입니까? 제가 안수하면 나을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기가 치유받게 하옵소서. 아멘. 의심하지 마십시오. 괜찮아질 것입니다. 믿음을 가지십시오. 아, 긍휼을 베푸소서. 형제님, 믿으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계속 안으로 파고들 것입니다. 하지만 괜찮아질 것을 믿으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마귀가 이 남자에게서 떠나게 하옵소서. 아멘. 믿음을 가지십시오. 믿으십시오. 선생님, 이제 이 아이를 위해 믿으십니까? 얘야, 이리 오렴. 주님, 이 어린아이를 치유하옵소서.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들에게 하신 일을 기념하여 제가 이 아이를 품에 안고 손을 얹으니, 허락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치유받게 하옵소서. 아멘. 이제 가시고 의심하지 마십시오. 괜찮아질 것입니다.
선생님, 오십시오. 아버지 하나님, 이 남자를 치유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 증세가 그에게서 떠나게 하옵소서. 아멘. 믿음을 가지십시오. 이제 온... 믿기만 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 자매가 치유받게 하옵소서. 아멘. 좋습니다. 선생님, 오십시오. 믿으시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제 형제가 치유받게 하옵소서. 아멘. 이제 믿음을 가지고 의심하지 마십시오.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좋습니다. 자매님, 오십시오. 왜 그렇게 조용하십니까? 하나님께서 한 사람 한 사람을 복 주고 계심을 아십니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면 저는 줄을 멈추었을 것입니다. 아시겠죠? 똑같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저... 보십시오. 문제는, 여러분도 보시듯이... 브래넘 형제님 외에 다른 무엇인가가 이 일을 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아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제가 할 수 없다는 것을 아십니다. 그렇다면 여기 어떤 기름부음이 있는 것이지요? 성경에서 말한 바로 그것이라고 믿으십니까?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그 약속을 하신 바로 그 예수님, 바로 그 비둘기께서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 사람들이 나으리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환상은 저를 거의...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게 합니다. 아시겠죠? 성경이 그것을 가르친다는 것을 아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물론 그렇습니다. 성경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압니다. 그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멈춰 있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더라도, 하나님은 똑같으시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성령께서 저 위에서 제게 말씀하셨을 때입니다. (잠시만 시간을 주시면 제가 조금 회복하겠습니다.) 그분은 “너는 병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도록 태어났다. 너의 특별한 출생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사진에 보이는 그 빛이 제가 태어났을 때 제 요람 위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저는 작은 짚 매트리스와 옥수수 껍질 베개가 있는 곳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는 열다섯 살이셨고 아버지는 열여덟 살이셨습니다. 아침 다섯 시였습니다. 집에는 창문이 없고 작은 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보신 적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작은... 창문 구실을 하지만 그저 열어 놓는 작은 문 같은 것을 보신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하나님의 그 천사가 아침 다섯 시, 1909년 4월 6일 아침 다섯 시에 곧바로 들어와 제가 누워 있던 작은 침대 위에 서셨습니다. 사람들은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저보다 앞선 가족들은 가톨릭 신자였습니다. 하지만 그곳에는 가톨릭 교회가 없어서 저를 작은 침례교회로 데려갔습니다. 그것이 제 첫 교회 방문이었습니다. 그 침례교회의 이름은 포섬 킹덤 침례교회입니다. 포섬 킹덤 침례교회입니다. 제가 처음 교회를 방문한 곳이 거기였습니다. 두 살쯤 되었을 때 첫 환상이 나타났습니다. 그때부터 계속, 계속, 계속 나타났고, 이제 저는 쉰한 살입니다. 그러므로 아시겠죠? 환상입니다. 그분이 “너는 이 목적을 위해, 병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도록 태어났다.”라고 말씀하셨을 때 저는 “사람들이 저를 믿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모세에게 두 표적이 주어졌듯이 네게도 두 표적이 주어진다.”라고 하셨습니다. “그중 하나는 그저 사람들의 손을 잡고 네 생각을 쓰지 않는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아시겠죠? “그러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네게 알려질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렇게 했습니다. 한동안 사람들을 지켜보며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살펴보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다른 하나도 일어날 것이라고 여러분에게 말씀드렸습니다. 이제 보십시오. 일어났습니다. 이제 다음 것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아시겠죠? 아마 대부분 해외에서 이루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해외로 이끌리는 것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심을, 그분이심을 아시도록... 형제님, 자매님, 그 환상과 그 천사,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는 그것이 사실임을 아십니다. 제가 여기 서서 여러분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 무슨 이득이 있겠습니까? 저는 이 일로 보수를 받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아십니다. 제 교회에서 제게 보수를 줍니다. 제게 주시는 사랑의 헌금은 해외 선교에 쓰입니다. 여기 사무 담당자에게 물어보십시오. 그렇습니다. 아시겠죠? 저는 그 돈을 보지도 않습니다. 해외로 갑니다. 저는 외국으로 가서 복음을 전합니다. 경비는 지불됩니다. 형제들과 진행 책임자들이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다. 저는 돈을 받지 않습니다. 제게는 그 돈이 없습니다. 제 교회에서 일주일에 백 달러를 받습니다. 집에 머물면서 매일 낚시를 하고, 수요일 밤과 일요일 아침에 그 작은 침례교 타버내클에서 목회해도 그 돈은 받습니다. 아시겠죠? 돈 때문이 아닙니다. 돈을 원했다면, 제가 원하기만 했다면 백만장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한 번은 한 차례의 헌금으로 150만 달러를 받았습니다. 여러 사람이 낸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FBI 요원들이 제게 가져왔습니다. 신문에서 오려 둔 기사 같은 것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쳐다보는 것조차 거절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받지 않겠습니다! 아닙니다. 원하지 않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저는 무엇 때문에 여기 서 있습니까? 왜 저는 집에서 가족과 모든 것을 곁에 두고, 훨씬 편하게 그런 삶을 살고 있지 않습니까? 가족을 떠나 고생하고 지치고 울며, 사람들을 이끌고 설득하는 대신에 말입니다. 제게 맡겨진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해야 합니다. 여러 번 의심하는 사람들이 일어나고, 사람들이 “아,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아주 많이... 마음이 아픕니다. 아시겠죠? 그래도 저는 꽃이 깔린 편안한 침상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런 일을 예상합니다. 그렇습니다. 다스리려면 싸워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그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도 그러셨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제가 아는 최선의 방법으로 여러분을 도우려고 여기 있습니다. 여러분을 도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부디 저를 믿어 주십시오. 제가 무엇을 말했을 때 하나님께서 뒷받침하시고 그것이 참되다고 하신다면, 성경은 “그의 말을 들으라. 내가 그와 함께 있기 때문이라.”라고 했습니다. 맞습니까? 이제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치유받을 수 있다고 말씀드립니다. 그것을 알아보기만 한다면 여러분은 이미 치유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다음은 누구입니까? 여기 이 여자분입니까? 여기로 오십시오. 여기 이 자매님과 같은 경우를 보겠습니다. 자매님, 보십시오. 우리는 서로 처음 보는 사이입니다. 저는 자매님을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고 있다는 것은 자매님도 아십니다. 제가 그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치유받으실 것을 믿으십니까? 믿으신다고요? 그렇게 믿어야 합니다. 그렇게요. 여러 병이 겹쳐 있습니다. 여러 가지가 잘못되었습니다. 맞습니다. 관절이 뻣뻣해지고 있습니다. 꽤 오래 그렇게 지내셨습니다. 충돌이 보입니다. 아니면... 아, 자동차 사고 때문에 그렇게 되었군요. 이것은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입니다. 사실입니까? 사실이라면 손을 들어 보십시오. 아시겠죠?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그렇게 믿지 않으십니까? 예수님의 이름으로 가서 나으십시오. 제 형제님, 오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가서 나으십시오. 제 자매님, 오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주님, 제 위에 계신 영께서 이 여자에게 기름부어 주옵소서. 하나님,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들이 치유받게 하옵소서. 형제님, 오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가 치유받게 하옵소서. [불명확한 말] 그것을 믿으시면 허리의 문제가 떠나고 천식도 떠날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버리고 싶은 습관이 하나 있습니다. 담배를 피우는 것입니다. 끊으시겠습니까? 온 마음으로요? 제가 누구신지 말씀드리면 정말로 사라졌다고 생각하시겠지요? 커닝햄 씨입니다. 길을 가시며 기뻐하십시오. “주님, 감사합니다.”라고 말씀드리십시오.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이제 여기 계신 여러분 모두 서로에게 손을 얹으십시오. 오 비둘기시여, 오시옵소서, 비둘기시여. 주님, 주의 어린양들 위에 내려오옵소서. 오 어린양들이여, 비둘기의 인도를 받으십시오. 치유받으십시오. 사탄아, 너는 패배했다! 사람들은 머지않아 네가 패배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너는 그들을 붙들 힘이 없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기 계시며, 그분이 너를 패배시키셨다. 너는 패배했다. 이천 년 전부터 패배해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들에게서 나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