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네빌 형제님. 정말 감사합니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아침 다시 이 태버내클에 와서 말씀을 전하고 병든 이들을 위해 기도하며 주님을 섬길 수 있으니 참으로 귀한 특권입니다. 저는 오늘을 주신 것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막 들어오다가 놀라운 일을 만났습니다. 한 형제님이 다가와서 “저는 병이 나은 뒤에도 감사할 줄 몰랐던 그 나병 환자처럼 되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라이트 형제님이었습니다. 제가 그분을 위해 기도했는데, 주님께서 완전히 고쳐 주셨습니다. 그분이 눈물을 흘리며 다가와 제 손을 잡고, 병을 고쳐 주신 주님께 감사드리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돌아와서 감사를 드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병이 다 사라졌습니다. 이제 완전히 건강해지셨습니다. 이런 간증들을 들으니 감사합니다.
찰리, 제프리스 형제님과 함께 원하시면 여기 올라오셔서 이 자리에 앉으십시오. 서 계시지 않도록 기꺼이 모시겠습니다. 저기 계신 다른 형제님, 우즈 형제님도 이리 올라오십시오. 이 긴 의자에 자리가 두어 개 있으니 서 계시지 않아도 됩니다. 여기에도 자리가 두어 개 있는 것 같습니다. 이리 오셔서 앉으시면 참 좋겠습니다. 우리는 기쁩니다… 누군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지요. “그들이 내게 말하기를, 우리가 주의 집으로 들어가자, 할 때에 내가 즐거워하였도다.” 주님의 집에 가는 것,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특권이자 기쁨입니다.
둘러보니 오늘 아침 제 친구들이 많이 오셔서 정말 기쁩니다. 오하이오에서 오신 다우 형제님과 자매님을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저 뒤에는 멀리 오하이오에서 오신 암스트롱 형제님과 자매님도 보입니다. 여러분에게도 하나님의 복이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아, 둘러보니 오신 분들이 너무 많아 이름을 다 말씀드리기가 어렵겠습니다. 후버 자매님, 저 아래 켄터키에서 오늘 아침 오셨군요. 반갑습니다. 찰리와 넬리, 제프리스 형제님과 가족분들, 그 밖에도 시외에서 참 많은 분들이 오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 주님 안에서 귀한 시간을 갖게 되리라 기대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 주셔서 우리의 혼에 복을 주시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베풀어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이곳을 둘러보며 여기 있는 친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기 시작하면 아침 시간 대부분을 그렇게 보내게 될 것입니다. 다시 교회에 와서 모두를 보니 마음이 참 좋습니다. 이렇게 만나게 되니…
우리가 천국에 가서 하나님의 보좌 주위에 함께 모여 영원토록, 끝없이 교제하는 그 귀한 시간을 맞이하고, 우리가 그토록 소중히 여겨 온 복들을 누릴 때는 어떻겠습니까? 거기서 우리는 그분의 모습을 닮아 그분의 형상대로 될 것이며, 그분의 영이 우리 위에 계셔서 영원무궁토록 그분을 경배하고 섬기되 결코 지치지 않을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가끔은 하다가 싫증이 나지 않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찰리, 그런 일 중에서 우리가 좋아하며 가장 많이 한 일은 아마 다람쥐 사냥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계속하면 지치지요. 저는 산에 들어가 그저 걷고 또 걷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도 때로는 지쳐서 다른 일을 하고 싶어집니다. 저는 운전하는 것도 좋아합니다. 때로 좀 지치고 기진맥진하고 신경이 곤두서면, 저는 그냥 차에 올라타고 나갑니다. 운전대를 잡고 길을 달리며 “나도 그들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으니 참 기쁘네” 같은 노래를 부릅니다. 운전대를 꼭 잡고 노래하며 발을 구르고 외칩니다. 그러다가 얼마쯤 지나 지치면 집으로 돌아와 다른 일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새로운 왕국에서 하나님을 경배할 때에는 한순간도 지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언제나 복된 시간이 끝없이 이어질 것입니다. 물론 그때 우리는 변화되어 지금과 같지 않을 것입니다. 달라질 것입니다. 지금의 우리와는 다른 존재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쁩니다.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찰리 형제님, 제가 전에 이 이야기를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얼마 전 그분과 켄터키에 갔을 때, 그분이 “브래넘 형제님, 천년왕국에서도 우리가 다람쥐 사냥을 하게 될까요?” 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러지 않을 것 같습니다, 찰리”라고 했습니다. 그분이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좋아하는데, 천년왕국에 가서도 하지 않을까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닙니다. 천년왕국에서는 아무것도 죽임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이 “그래도 우리는 그게 참 좋은데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찰리, 형제님이 한때 돼지였다가 더 높은 존재인 인간이 되었다는 것을 제가 납득시킬 수 있다고 해 봅시다. 다시 돌아가 돼지가 누리는 즐거움을 맛보고 싶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분은 “아닙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보십시오. 이제 인간이 되었으니 돼지보다 훨씬 높은 존재가 되어, 다시는 돼지가 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차이를 만 배로 늘려 보십시오. 지금의 상태에서 앞으로 될 모습으로 변화되면 바로 그렇게 될 것입니다. 다시는 인간이 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무언가 전혀 달라질 것입니다. 언젠가 우리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리라는 것을 아니, 생각만 해도 참 기쁩니다.
자,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다음 일요일, 그러니까 대략… 그다음에는 좋은 친구 한 분과 와이오밍으로 떠날 것입니다… 아니, 제 좋은 친구인 마이너 아간브라이트 형제님, 그리고 그리스도인 실업인회의 클레이턴 손모어 형제님과 아이다호로 갈 것입니다. 다음 주… 다다음 주가… 이제 7일에는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열리는 보이스 오브 힐링 대집회에 참석하게 됩니다. 제가 말씀을 전하는 날 밤이 7일입니다. 그다음에는 돌아와서 아간브라이트 형제님과 그리스도인 실업인회와 함께 아이다호로 갈 것입니다. 떠나기 전에 미니애폴리스에서 하룻밤 집회를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 실업인회 조찬 모임이 한 번 있습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다음 일요일 아침에 다시 이 태버내클에 오고 싶습니다. 가능하고 주님의 뜻이라면 “바람 속의 회오리바람”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말입니다.
그 주제가 한 주 내내 제 마음에 있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이른 아침, 새벽 네 시쯤 잠에서 깨어났을 때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갈보리의 그날.” 오늘 아침에는 그것에 관해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갈보리의 그날입니다. 이제 성경을 봉독하기 위해 마태복음 27장을 펴겠습니다. 27절부터 말씀의 일부를 읽어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런 다음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설교가 끝나면 병든 이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지난번 이곳에서 제 새로운 형태의 사역을 다시 본궤도에 올려놓았는데, 그 집회 이후에 돌아온 간증이 오랫동안 가졌던 어느 집회 때보다도 많았습니다. 아무리 초자연적인 일이 많이 나타나도, 그 사람과 직접 접촉해야 하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그러나 치유는 각 사람의 믿음에 달려 있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에게 믿음이 있고, 성령께서 회중 가운데서 역사하시며 어떤 일들을 말씀하시는 것을 봅니다. “당신의 이름은 이러이러하고, 당신은 어느 곳에서 왔으며, 이런 일을 한 적이 있고, 앞으로 이렇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이 말씀하신 그대로 일어나는 것을 봅니다. 그렇다면 거기 앉아 있는 그 사람은 위를 바라보며 “이것은 분명 하나님이십니다! 저는 저의 치유를 받아들입니다”라고 해야 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제가 낫도록 제게 손을 얹고 기도해 주십시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곳 미국에서 우리는 그렇게 믿도록 가르침을 받았고, 그것은 분명 성경적입니다. 그런데 아프리카나 다른 곳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기만 하면 온 회중이 일제히 손을 뻗어 자기들의 치유를 받아들이는 것을 봅니다. 그들은 아무런 가르침도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치유에 관한 가르침을 받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런 일을 보면 살아 계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압니다. 그분이 살아 계신다면 그분은 지극히 높으시고 치유하시는 분이니,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분이 치유자이시며 사람들을 고치신다는 기초, 토대가 이미 놓였기 때문입니다. 그다음에 그분의 임재가 그분의 교회를 통해 역사하는 것을 보면 “이것으로 확실해졌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것뿐입니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병든 사람에게 안수하는 것 등을 배웠습니다. 미국에서 그 일이 그다지 잘되지 않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자, 다음 일요일 아침을 기억하십시오.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물론 네빌 형제님께서 광고하시겠지만, “바람 속의 회오리바람”입니다.
여러분이 성경에서 마태복음 27장을 찾으시도록 잠깐 시간을 드렸습니다. 마태복음 27절부터 읽겠습니다. 이제 봉독하는 말씀을 주의 깊게 들으십시오. 그때에 총독의 군사들이 예수님을 공동 집회장으로 데리고 들어가 군사들의 온 부대를 그분께 모은 뒤 그분의 옷을 벗기고 주홍색 긴 옷을 그분께 입히며 또 그들이 가시나무로 왕관을 엮어 그분의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분의… 손에 쥐여 주며 그분 앞에서 무릎을 꿇고 그분을 조롱하며 이르되, 만세, 유대인들의 왕이여! 하고 그분께 침을 뱉으며 갈대를 빼앗아 그분의 머리를 치더라. 그들이 그분을 조롱한 뒤에 그분에게서 그 긴 옷을 벗기고 그분께 그분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기 위해 그분을 끌고 나가더니 그들이 나가다가 시몬이라 하는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에게 억지로 그분의 십자가를 지고 가게 하였더라. 그들이 골고다 즉 해골의 장소라 하는 곳으로 가서 쓸개를 섞은 식초를 그분께 주어 마시게 하였는데… 그분께서 그것을 맛보시고 마시려 하지 아니하시더라. 그들이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은 뒤에 그분의 옷들을 나누고 제비를 뽑으니 이것은 대언자를 통해, 그들이 자기들끼리 내 옷들을 나누며 내 겉옷을 놓고 제비를 뽑았나이다, 하고 말씀하신 것이 성취되게 하려 함이더라. …그들이 거기에 앉아 그분을 지켜보았고 그분의 머리 위에… 이 사람은 유대인들의 왕 예수라고 적혀 있는 그분에 대한 고소 명목을 붙였더라. 그때에 그분과 함께 두 강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서 하나는 오른쪽에 다른 하나는 왼쪽에 있더라.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그분을 모욕하여 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 안에 짓는 자야, 너 자신이나 구원하라.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고 그와 같이 수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그분을 조롱하며 이르되, 그가 남들은 구원하였으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라면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러면 우리가 그를 믿으리라.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였으니 그분께서 그를 구원하시려거든 이제 그를 구출하시리로다. 그가 말하기를,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같은 말로 그분께 욕을 하더라. 한편 여섯 시부터 아홉 시까지 어둠이 온 땅을 덮었는데 아홉 시쯤에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그것은 곧,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는 말이라. 거기 서 있던 자들 중 몇 사람이 그것을 듣고 이르되, 이 사람이 엘리야를 부른다, 하니 즉시 한 사람이… 달려가서 해면을 가져다가 식초에 적신 뒤 갈대에 달아 그분께 주어 마시게 하였으나 나머지 사람들은 이르되, 가만두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구원하는지 우리가 보자, 하더라. 예수님께서 다시 큰 소리로 외치시고 숨을 거두시니 보라,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둘로 찢어지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들이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잠든 성도들의 많은 몸이 일어나 그분의 부활 뒤에 무덤 밖으로 나와서 거룩한 도시로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나타났더라. 한편 백부장과 또 그와 함께하며 예수님을 지켜보던 자들이 지진과 또 이루어진 그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며 이르되, 진실로 이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잠시 머리를 숙이고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하나님이심을 저희가 압니다. 이 성스럽고 거룩한 말씀을 읽고 보니, 주님의 성품은 변하지 않으셨음을 지금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실 것처럼 보였습니다. 악한 자들의 손에 붙잡히셔서 온몸이 찢기고, 침 뱉음을 당하고, 조롱을 당하셨으며, 십자가에 달려 피를 흘리며 죽어 가셨습니다. 어디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것 같았고, 마침내 그분께서도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고 외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다른 어느 것도 움직일 수 없는 바로 그 순간에 행동하십니다. 주님, 저희가 건널 수 없는 강이 있고 뚫고 지나갈 수 없는 산이 있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다른 이들이 할 수 없는 일을 전문으로 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그런 일을 하시는 전문가이십니다. 주님께서는 갈보리의 그날이 왜 있어야 하는지 아셨기 때문입니다. 무한하신 하나님이신 주님은 이 시간이 반드시 와야 한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러나 그 일이 이루어졌을 때, 주님은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셨습니다. 누가 주인이신지를 보여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땅을 흔드시자 땅속에 잠들어 있던 성도들이 나왔습니다. 주님께서 해를 밤중에… 밤의 어둠처럼 캄캄하게 하셔서 하나님이심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토록 오랫동안 잠잠하신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 일에서 저희가 이런 결론을 얻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손에 이끌려 영 안에서 걷고 있는 한, 무엇이 잘못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저희는 갈보리를 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알맞은 때, 정확한 시간에 말씀하실 것입니다. 이제 아버지 하나님, 저희의 죄들과 범법들을 용서해 주시기를 구합니다. 주님의 영으로 저희를 인도해 주시기를 구합니다. 비둘기가 어린양을 이끌었던 것처럼 저희를 이끌어 주옵소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잘 이루시며 결국 잘되리라는 것을 알고, 무슨 일이 닥치더라도 순종하게 하옵소서. 오늘 이 예배에 저희와 함께하옵소서. 구원받을 준비가 되어 구원을 구하는 이들을 구원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영생을 구하는 이들을 영생으로 채워 주옵소서. 병들고 고통받는 가운데 치유를 구하여 온 이들을 고쳐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면 저희가 그 일로 주님을 찬양하겠습니다. 주님의 아들, 저희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오늘 아침 말씀을 전하면서, 제가 선택한 주제인 “갈보리의 그날”에 여러분의 주의를 돌리고 싶습니다. 때에 조금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성금요일에 전해야 할 말씀 같지요. 그러나 갈보리는 날마다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갈보리에 관해 참 많이 들었고, 참 많이 읽었습니다. 설교자들은 태초부터 그 일에 관해 설교해 왔습니다. 노래하는 이들은 여러 시대에 걸쳐 그 일을 노래해 왔습니다. 선지자들은 그 일이 일어나기 사천 년 전에 예언했고, 오늘날의 선지자들은 그 일이 일어났던 때를 되돌아 가리킵니다. 그토록 중요한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밝아오게 하신 모든 날 가운데 가장 중요한 날 중 하나입니다. 갈보리가 인류에게 그토록 중요하다면, 우리가 그때로 돌아가 살펴보고 그것이 우리에게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마지막 시각에, 우리는 하나님에 관해 알 수 있는 중요한 것은 모두 찾고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알아낼 수 있는 모든 것을 배우려고 우리가 여기 있습니다. 우리를 위해 무엇이 마련되어 있는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 또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겠다고 약속하셨는지를 알아보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오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설교자가 말씀을 전하는 이유도 그것입니다. 그가 성경을 공부하고 묵상하며 영감을 구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을 섬기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무언가를…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에게 하시려는 말씀, 그들에게 도움이 될 무언가를 찾으려고 합니다. 그것이 그들의 죄를 책망하는 말씀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그들을 일으켜 주어, 죄를 버리고 일어나 주님을 섬기게 하는 도움이 될 것입니다. 사역자들은 이런 것들을 구해야 합니다.
이날이 이처럼 중요하고 가장 위대한 날 가운데 하나라면, 그날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세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수백 가지를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아침에는 갈보리가 우리에게 의미하는 핵심적인 세 가지만 골라, 잠시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 말씀이 여기 있는 모든 죄인을 책망하고, 모든 성도를 무릎 꿇게 하며, 모든 병든 사람의 믿음을 하나님께로 끌어올려 치유받고 돌아가게 하기를 기도합니다. 모든 죄인이 구원받고, 모든 타락한 신자가 돌아와 자기 자신을 부끄러워하며, 모든 성도가 기뻐하고 새로운 소망을, 새로운 소망을 얻기를 기도합니다.
갈보리가 우리와 세상에 주는 가장 크고 중요한 의미 한 가지는, 죄 문제를 단번에 영원히 해결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죄를 지은 자로 판명되었고, 죄에는 아무도 감당할 수 없는 형벌이 따랐습니다. 그 형벌이 너무 커서 누구도 그것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정하셨다고 참으로 믿습니다. 형벌이 너무 커서 아무도 감당할 수 없게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그 값을 치르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죄의 형벌은 죽음이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죄 가운데 태어났고, 불법 가운데 형성되었으며, 거짓을 말하며 세상에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운데 합당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온 땅에서도 합당한 사람 하나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죄는 땅에서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죄는 하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마귀 루시퍼는 이 땅을 덮치기도 전에 불순종 때문에 정죄받은 피조물이었습니다. 죄는 하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사들과 다른 존재들을 인간과 똑같은 조건 아래 두셨습니다. 지식입니다. 지식의 나무… 생명나무와 지식의 나무 사이에서 사람이 선택할 수 있었던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루시퍼는 선택할 특권을 받자 하나님께서 가지신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원했습니다. 거기서 문제가 시작되었습니다.
죄에는 요구되는 대가가 있었습니다. 그 대가는 죽음이었습니다. 죽음이 그 형벌이었습니다. 그것은… 이 문제는 아주 자세히 다룰 수도 있습니다. 저는 죽음이 오직 하나뿐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생명도 하나입니다. 저는 영생을 가진 사람은 결코 죽을 수 없다고 믿으며, 죄를 짓는 그 혼은 완전히 소멸한다고 믿습니다. 성경에서 “죄를 짓는 혼, 그 혼은 반드시 죽으리라”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아니라, 죄를 짓는 혼입니다. 그러므로 사탄도 반드시 죽어 완전히 멸망해야 합니다. 사탄도 구원받을 것이라고 말하는 보편구원론자들과 저는 전혀 동의하지 않습니다! 사탄은 죄를 지었고, 죄를 처음 일으킨 자입니다. 그의 혼이 죄를 지었으며, 그는 영이었습니다. 그 영은 완전히 소멸하여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
태초에 죄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검은 장막처럼 땅을 덮쳤을 때, 그것은 문자 그대로 땅을 마비시켰습니다. 땅 위의 모든 피조물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을 속박에 빠뜨렸습니다. 사람은 죽음과 질병, 고난과 슬픔에 매이게 되었습니다. 온 자연도 함께 타락했습니다. 죄는 실제로 땅을 마비시킨 마취제였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아무 소망도 없이 이곳에 놓였습니다. 땅의 모든 피조물이 죄 아래 있었고, 이 땅에 태어나는 사람은 누구나 죄 아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구속은 죄가 없는 어떤 곳에서 와야 했습니다. 이 땅에서 올 수는 없었습니다. 우리 중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구속할 수는 없었습니다. 다른 분에게서 와야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자기가 하나님과 분리되었다는 것을 깨닫자 방랑자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눈물을 흘렸고, 부르짖었으며, 수고하고, 산과 광야를 두루 방황하면서 하나님께서 건축하시고 만드신 도시를 찾았습니다. 다시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그분과 그 문제를 의논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돌아갈 길이 없었습니다. 사람은 길을 잃었고,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곳으로 돌아갈 길을 어디선가 찾으려고 그저 방황하기 시작했습니다! 자기 안의 무언가가, 자기가 완전한 곳에서 왔다는 것을 말해 주었습니다.
오늘 아침 제 눈앞에 있는 회중 가운데서나, 세계 곳곳에 전해질 이 녹음을 듣는 사람들 가운데서나, 여기든 어디든 그 완전함을 찾지 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밀린 돈을 다 갚으면 그것으로 해결되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돈을 다 갚고 나면 가족 중 누군가가 병듭니다. 병이 나으면 또 갚아야 할 돈이 생깁니다. 그러다 어느새 머리가 희어지기 시작하면 다시 젊어지고 싶어집니다. 그 죄의 물결 때문에 늘 끊임없이 무언가가 생깁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마음속으로 그것을 찾고 있다는 사실은, 어딘가에 완전함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어딘가에 무언가가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죄인이 여전히 방황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아름다운 젊은 여성이 인기를 얻으려고 머리카락을 잘라 버리고, 예뻐 보이려고 얼굴을 화장하며, 몸매를 드러내는 옷을 입습니다. 어디선가 자신에게 돌아올 무언가를 찾으려는데, 남자들이 자기를 보고 휘파람을 불고 손을 흔들며 추근거리게 하는 것 말고는 찾을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젊은 남자들도 여성을 상대로 똑같이 합니다. 그 여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려고 합니다. 사람들은 이웃집보다 조금 더 좋아 보이도록 집을 짓고 이런저런 모양으로 꾸밉니다. 언제나 그렇습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찾고 있지만, 또 다른 무언가가 계속 그보다 조금 더 위에 있습니다.
그 젊은 여성은 자기보다 더 인기 있는 다른 젊은 여성을 발견합니다. 그 이웃은 자기 집보다 더 좋아 보이는 집을 발견합니다. 그 여자는 자기보다 더 멋져 보이게 옷을 입은 다른 여자를 발견합니다. 우리 안의 무언가가 어떤 것을 찾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길을 잃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우리는 만족을 가져다줄 무언가, 마음속에 굶주린 그 자리를 채워 줄 무언가를 찾고 싶지만, 찾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오랜 세월 그것을 찾아보려고 애썼습니다. 그것을 얻으려고 눈물을 흘리고 부르짖었습니다. 할 줄 아는 모든 일을 다 해 보았지만, 여전히 찾지 못한 채 세상을 방황했습니다.
마침내 어느 날, 바로 갈보리의 그날에, 영광 가운데서 내려오신 한 분이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가지신 분께서 영광 가운데서 오셨고, 갈보리의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날 그 값이 치러졌고, 죄 문제가 영원히 해결되었으며, 우리가 이토록 주리고 목말라하던 것을 향한 길이 열렸습니다. 그로 인해 만족을 얻을 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갈보리에 가서 그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본 사람은 결코 이전과 같을 수 없습니다. 그곳에 이르면 그가 바라거나 갈망하던 모든 것이 충족됩니다. 그토록 중요한 날이었고 그토록 중요한 일이었기에, 세상을 뒤흔들었습니다! 세상이 그전에는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을 만큼 뒤흔들었습니다. ,
예수님께서 갈보리에서 죽으시고 죄 문제의 대가를 치르셨을 때, 죄 많은 이 세상은 암흑에 잠겼습니다! 한낮에 해가 졌습니다. 세상은 신경 쇠약으로 쓰러졌고, 바위가 흔들리고 산들이 갈라졌으며, 죽은 몸들이 무덤을 터뜨리고 나왔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갈보리를 겨냥하신 것입니다. 사탄이라는 그 짐승에게 영원히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히셨습니다. 그때부터 사탄은 더욱 사나워졌습니다. 그 일이 인류에게 빛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입니다. 상처 입은 짐승이 가장 사납다는 것은 누구나 압니다… 등뼈가 부러진 채 기어 다니는 짐승 말입니다. 사탄은 갈보리에서 쓰러졌습니다. 땅이 그 사실을 증명했습니다. 이제껏 치러진 것 중 가장 큰 값이 치러졌고, 그 값을 치를 수 있는 유일한 분께서 오셔서 갈보리에서 그 일을 하셨습니다. 그곳에서 그 큰 값이 치러졌습니다. 이것이 그 의미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요구하셨습니다. 아무도 합당하지 않았고, 아무도 능력이 없었으며, 아무도 그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친히 오셔서 사람이 되셨고, 인간의 욕구 아래서 인간의 삶을 사시다가 갈보리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사탄은 그분께서 그렇게 하지 않으시리라, 끝까지 감당하지 못하시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겟세마네를 통과하시고, 사람이 겪은 모든 시험을 통과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처럼 그 일을 겪으셨지만, 그 값을 치르셨습니다! 그것이 땅을 암흑에 잠기게 한 것입니다. 수술할 때 사용하는 마취제와 같습니다. 의사가 사람에게 마취제를 투여할 때… 수술을 하려면 먼저 그 사람을 의식이 없게 만듭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위해 수술하셨을 때, 세상은 마취제를 맞았습니다. 자연이 경련을 일으켰습니다. 당연합니다. 인간의 육신을 입으신 하나님께서 죽어 가고 계셨습니다. 세상이 기다려 온 시간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몰랐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일들을 기다리면서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빠져나갈 길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들은 여전히 세상의 쾌락과 다른 것들을 찾으며, 거기서 빠져나갈 길을 찾으려 합니다.
그날을 가리키는 많은 이정표가 있었습니다. 위대한 예표가 많이 있었습니다. 어린양과 수소와 산비둘기, 이 모든 것이 그날을 미리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끊을 수 없었습니다. 죽음의 그 지배를 끊을 수 없었습니다! 사탄이 땅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한때 이 땅에서 밟고 다녔던 바로 그 바위들, 불타는 유황 말입니다. 루시퍼는 아침의 아들이었고, 땅이 불타는 화산이었을 때 그 위를 걸어 다녔습니다. 그 후 식어 버린 바로 그 바위들이, 예수님께서 갈보리에서 죽으셨을 때 땅에서 분출했습니다. 값이 치러졌고, 사탄의 속박이 끊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찾고 있던 곳으로 돌아갈 길을 다시 사람의 손에 맡겨 주셨습니다. 사람은 더 이상 울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갈보리에서 사탄의 등뼈, 죄와 질병의 등뼈를 꺾으셨을 때, 그 일은 이 땅의 죽을 수밖에 없는 모든 사람을 죄를 용서받은 상태로 다시 하나님의 임재 안에 데려다 놓습니다. 할렐루야! 우리의 죄들이 용서받았습니다! 이제 사탄은 더 이상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차단할 수 없습니다! 큰길이 놓였고, 거기에 전화기가 있으며, 영광으로 연결되는 전화선이 있습니다. 누구나 그 전화선에 닿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죄로 가득한 사람이라 해도, 그 일로 그 사람은 교환국에 연결되었습니다. 그는 그 죄를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 죄의 값도 치러졌습니다! “저는 합당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여러분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결코 합당해질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합당하신 한 분께서 여러분의 자리를 대신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자유롭습니다! 더 이상 방황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땅에서 쾌락을 찾아다니는 사람으로 살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피로 가득 찬 샘이 있네, 임마누엘의 핏줄에서 흘러나온 피로. 이 샘에 죄인 잠기면, 온갖 죄의 얼룩 씻기네. 여러분은 길을 잃고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거기에 큰길이 있으리니 곧 한 길이며 그 길은 거룩함의 길이라 불리리라. 부정한 자는 그 길을 지나가지 못하리라.” 먼저 그 샘으로 와서, 그다음에 그 큰길에 들어서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사탄의 힘들을 꺾으셨습니다. 지옥의 감옥 문을 여셨습니다. 이 땅의 감옥에 갇혀 자기가 죽으면 죽음이 자기에게 무엇을 가져올지 두려워하던 모든 사람… 갈보리에서 그분은 그 감방 문들을 여시고 갇힌 사람을 모두 풀어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더 이상 죄에 짓눌릴 필요가 없습니다. 더 이상 자기 지체를 죄에게 내주어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도박하고, 거짓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정직하고 공정하며 올바르게 살 수 있습니다. 사탄은 그것을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줄을 붙잡았기 때문입니다! 만세 반석에 단단히 매인 생명줄을 붙잡았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여러분을 흔들어 거기서 떨어뜨릴 수 없습니다. 어떤 바람도 여러분을 떨어뜨릴 수 없습니다. 그 무엇도, 죽음 그 자체조차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갈보리의 의미입니다. 속박 아래 있던 사람들이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한때 죽음을 두려워하던 사람들이 이제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께서 건축하시고 만드신 도시를 사모하는 사람은 그 큰길에 들어서서 얼굴을 천국으로 향할 수 있습니다. 자유롭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그는 구속받았습니다! 더 이상 방황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기가 올바른 길에 있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는 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십니다. 우리의 죄들은 사라졌습니다. 갈보리의 그날 그 값이 치러졌습니다. 이 모든 것을 바라볼 때, 시인이 이렇게 쓴 것도 당연합니다. 갈라지는 바위와 어두워지는 하늘 가운데, 나의 구주 머리 숙여 숨을 거두셨네. 열린 휘장이 그 길을 드러냈네, 천국의 기쁨과 끝없는 낮에 이르는 길을.
아브라함은 더 이상 그 도시를 찾아 온 땅을 방황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죄인은 자기가 구원받을 수 있을지 더 이상 의문을 품을 필요가 없습니다. 병든 사람은 자기가 치유받을 수 있을지 더 이상 의문을 품을 필요가 없습니다. 갈보리의 그날, 열린 휘장이 완전한 승리로 가는 길을 드러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이기며 살도록 우리에게 그분의 영의 권능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오직 그것을 믿으라고 하십니다. 갈보리의 그날 그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와 같은 날은 이전에도 없었습니다.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더 이상 필요하지 않습니다. 값이 치러졌고, 우리는 구속받았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구속받았습니다. 이제 더 이상 방황할 필요가 없습니다. 더 이상 짐작만 할 필요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제거되었습니다. 휘장이 장막을 걷어 냈고, 우리는 큰길 위에 놓였습니다. 더 이상 의문을 품지 말고 믿으며 곧장 걸어가면 됩니다. 우리는 바로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아브라함도, 다른 사람들도 그 도시를 찾는 동안 자기들이 어떤 곳에서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무언가가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마비된 땅에 살고 있었습니다. 지진이 일어나고, 폭풍이 몰아치고, 전쟁과 살인이 일어났습니다. 이리와 어린양이 서로를 잡아먹었습니다… 아니, 이리가 어린양을 잡아먹고, 사자가 소를 먹습니다. 이것은 옳아 보이지 않습니다. 무언가 잘못되었습니다. 그들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형제가 형제를 죽이고,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고, 아들이 아버지를 죽였습니다. 무언가 잘못되었습니다. 사람은 늙어 가고, 죽어 가고, 쇠약해져 가며, 병이 들고, 속박 아래 있습니다. 나무도 자라지만 영원히 살지는 않습니다. 나무도 죽습니다. 산도 변합니다. 바다도 마릅니다. 물도 없어집니다. 무언가 잘못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이런 일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 곳, 그런 도시를 찾았습니다. 모든 것을 올바르게 만드신 분의 임재 안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그분과 그 문제를 의논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 죄인이여, 이제 여러분에게 그 길이 있다는 것을 오늘 아침 아는 것이 얼마나 큰 특권입니까. 갈보리의 그날 그 길이 열렸습니다. 저 모든 족장들이 그분을 찾아다니고, 그 길을 찾았습니다. 갈보리는 그것을 여러분에게 거저 주었습니다! 어떻게 그것을 거절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그것을 거절하고 교단에 가입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그것을 거절하고 다른 것으로, 세상의 쾌락으로 대신할 수 있습니까? 왜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까? 열린 휘장은 사람을 어떤 죄도 없는 상태로 곧장 하나님의 임재 안에 다시 데려다 놓습니다. 그리고 그가 찾고 있는 것으로 가는 길을 그 앞에 놓아 줍니다. 천국, 영광, 평안, 영생, 그 모든 것이 그의 바로 앞에 있습니다.
그날은 사탄의 힘에 치명타를 가한 날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끝냈습니다. 저는 거기 계신 그분을 볼 수 있습니다. 그분은 에덴의 어린양이셨습니다. 믿음으로 아벨이 가인보다 더욱 뛰어난 희생물을 하나님께 드렸을 때, 맨 처음 나타난 그 그림자부터 그분을 가리켰습니다. 아벨은 틀림없이 어린양의 목에 포도나무 덩굴을 묶어 바위로 끌고 갔을 것입니다. 손에 돌을 들어 창으로 삼고, 어린양의 작은 머리를 뒤로 젖혀 죽을 때까지 찍고 베었을 것입니다. 양털이 자기 피로 흠뻑 젖었고, 어린양은 자기 피 속에서 뒹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그림자였습니다. 그러나 갈보리의 그날에는 이 땅의 어린양이 아니라 하나님의 어린양이 죽어 가셨습니다. 자기 피 속에서 몸부림치셨습니다. 그분은 세상 사람들에게 베이고, 찍히고, 맞고, 침 뱉음을 당하고, 내동댕이쳐지고, 손바닥으로 맞으며, 온갖 일을 당하셨습니다! 그분의 머리카락에서 피가 떨어졌습니다.
아벨의 어린양은 죽을 때 아벨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소리를 냈습니다. 매애 하고 울었습니다. 하나님의 어린양께서 갈보리의 그날 죽으실 때에도,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그분은 온몸이 베이고 찢기신 하나님의 어린양이셨습니다. 그분은 아벨이 약속된 여자의 씨를 보면서 마음에 그렸던 바로 그 어린양이셨습니다. 그분은 다니엘이 본, “아무도 손대지 아니하였으나 산에서 잘려 나온” 어린양이셨습니다. 그분은 그 선지자에게 “한 바퀴의 한가운데에 있는 한 바퀴”이셨습니다. 그들이 미리 보았던 모든 것이 그날, 갈보리의 그날에 이루어졌습니다. 그 일로 그 위대한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그 일이 사탄의 등을 꺾었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그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보아야 합니다. 둘째로는 그날이 우리를 위해 무엇을 이루어 주었는지, 우리를 위해 무엇을 했는지 보아야 합니다. 이제 셋째로, 그날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마땅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그날을 깊이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날은 위대한 날, 모든 날 가운데 가장 위대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죄의 값이 치러졌습니다. 사탄의 힘이 꺾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에 대한 보답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보답에 관해 말하자면, 예수님께서 갈보리에서 죽으셨을 때, 갈보리의 그날에, 그분은 우리 죄의 값을 치르셨을 뿐 아니라 우리가 그분을 따를 수 있도록 값을 치르시고 길을 만드셨습니다. 우리는 구속받은 타락한 아담들이기에… 영께서 아담, 곧 첫 아담을 이끄셨던 것처럼, 온 자연을 다스리던 그 아담을 영으로 이끄셨던 것처럼, 우리 곧 둘째 아담, 다시 말해 땅에 속한 사람도 갈보리의 그날로부터 그리스도께 구속받았으므로 그분을 따를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갈보리에서 죽으셨을 때 길을 만드셨습니다. 영, 곧 성령을 내어 주시고, 여러분과 제가 그 영으로 살아가도록 그 영을 다시 땅으로 보내셨습니다. 이것이 갈보리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 곧 그분을 따르는 것입니다. 먼저 그 일을 깊이 살펴보십시오. 그 일이 우리를 위해 무엇을 했는지 보고, 이제 우리는 그 일에 대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살펴보십시오. 여러분과 저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우리는 “네, 감사합니다. 참 좋은 일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분 자신, 그리스도를 우리 마음에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죄에서 자유로워집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죄의 족쇄가 전혀 매여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 마치 우리가 한 번도 죄를 짓지 않았던 것과 같습니다. 완전한 희생물이 우리를 완전하게 만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는 완전할지니라”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더 해야 할 일은 없으며,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완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서 우리가 우리의 위치를 잃습니다. 주의하지 않으면 우리는 과거의 우리 모습을 되돌아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과거의 모습만 되돌아보고 있는 한, 그 희생물은 우리에게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아, 교회여, 이것이 보이지 않습니까? 저는 그 일을 해 보려고도 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할 수 없고, 여러분도 할 수 없습니다. 애써 볼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자기가 한 일을 바라보고 있는 한, 애초부터 길을 잃은 상태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한 일을 보지 말고, 갈보리의 그날이 여러분에게 무엇을 이루어 주었는지 보십시오! 그날 여러분의 값이 치러졌습니다. 그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너희 죄들이 주홍 같을지라도 눈같이 희도다. 진홍같이 붉어도 양털같이 희도다.” 그러니 여러분에게는 죄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완전히 죄가 없습니다. 무슨 일을 했든, 무슨 일을 하든, 여러분은 여전히 죄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받아들였다면 여러분의 죄들은 용서받았습니다. 용서받은 것은 무엇이든 사면되고 잊힌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은 어떤 일을 합니까? 그 상태가 된 뒤에는 그분의 영을 여러분에게 주어 그분을 따르게 합니다. 그리고 뒤따라오는 다른 이들을 위해 그분이 하셨던 것처럼 행하게 합니다.
그분은 한 사람, 완전한 사람이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셨고, 여러분에게 본을 남기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제가 가장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예수님은 결코 자신을 위해 살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의 삶은 다른 이들을 위해 쓰였습니다. 바로 그것이 온전한 영생입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다니고 좋은 일을 한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자기만을 위해 산다면 여러분에게는 영생이 없습니다. 영생은 다른 이들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영생이 하나님의 어린양 안에 왔을 때 그 사실이 증명되었습니다. 그분은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다른 이들을 위해 사셨기에, 살아 계셨고 영생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여러분도 그날을 받아들임으로 영생을 받습니다. 그러면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다른 이들을 위해 살게 됩니다.
누군가 “어떻게 사람들이 그렇게 심한 욕을 해도 가만히 참고 있을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위해 살지 않습니다. 그 사람을 구속하기 위해 다른 이들을 위해 삽니다. 여러분은 아들들이 됩니다. 문제는 교회가 자기가 아들들이라는 것을 잊었다는 데 있습니다. 여러분은 아들들입니다. 그리스도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아들들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위해 살지 말고 다른 이들을 위해 사십시오. “브래넘 형제님, 이 형제님은 정말 좋은 분이니 제가 이분을 위해 살 수 있습니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여러분을 미워하는 그 사람을 위해 사십시오! 할 수만 있다면 여러분을 죽이려 할 그 사람을 위해 사십시오. 그들이 그분께 바로 그렇게 했습니다. 그들이 그분을 죽였고, 그분은 그들을 구원하시려고 죽으셨습니다. 그것이 영생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가슴에 품으면, 여러분은 천국을 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자신의 것들을 희생해야 합니다. 양이 자기 털을 내주듯 그것들을 내주십시오. 계속 갈보리를 바라보십시오.
이 말씀이 여러분을 그런 자리에 이르게 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태버내클이, 모든 사람이 해야 할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사람이며, 목적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교회는 그저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러 가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바로잡음을 받는 곳입니다. 심판은 하나님의 집에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자신을 죽은 자로, 그리스도를 향해서는 살아 있는 자로 여겨야 합니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자신을 희생하여 그분을 섬기고 따를 수 있도록 길을 만드셨습니다. 우리가 그분을 따르면 그분께서 사셨던 삶을 살게 됩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예수님께서 그 일에 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에 관한 말씀을 몇 구절 인용하겠습니다. 주의 깊게 들으십시오. 놓치지 마십시오!
예수님께서는 그날에 사람들을 양과 염소처럼 갈라놓으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염소들에게는 “왼쪽에 서라” 하시고, 양들에게는 “오른쪽에 서라” 하실 것입니다. 또 염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게서 떠나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내게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 나를 찾아오지 아니하였으며, 헐벗었을 때에 내게 옷을 입히지 아니하였고, 목말랐을 때에 내게 마실 것을 주지 아니하였으며, 병들었을 때에 나를 찾아오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그러니 내게서 떠나라.” 그리고 양들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내게 먹을 것을 주었고, 헐벗었을 때에 내게 옷을 주었으며, 병들었을 때에 나를 돌보았느니라.” 주목하십시오. 교회여, 이것을 놓치지 마십시오! 이 말씀을 영원히 마음에 간직하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그렇게 하는 줄도 의식하지 못한 채 그 일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의무로 여기고 하지 않습니다. 마땅히 해야 하니까 여러분에게 무엇을 주는 사람, 마땅히 해야 하니까 여러분에게 먹을 것을 주는 사람에게는 이기적인 생각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 자신의 삶, 여러분 자신의 행동 그 자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 양들은 너무나 놀라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님, 어느 때에 주님께서 주리셨는데 저희가 먹을 것을 드리지 않았습니까… 어느 때에 주님께서 주리셔서 저희가 먹을 것을 드렸습니까? 어느 때에 주님께서 헐벗으셔서 저희가 옷을 드렸습니까? 어느 때에 주님께서 목마르셔서 저희가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어느 때에 주님께서 병드셔서 저희가 돌보아 드렸습니까?” 그것은 사랑에서 우러나 저절로 한 일이었습니다. 그들 안에 있는 생명이 그렇게 살아 낸 것뿐입니다. 하나님, 갈보리가 저희를 위해 무엇을 이루어 주었는지 사람들이 깨닫게 하옵소서. 너무도 자연스레 행했기에, “주님, 어느 때에 주님께서… 저희는 전혀 몰랐습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돌아서서 하신 말씀을 보십시오. “너희가 이들에게 그것을 하였으므로 내게 하였느니라.” 이기심 없는 삶입니다. 다시 생각할 것도, 곰곰이 생각할 것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세상 것들에 대해서는 완전히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는 살아 있으며, 그 큰길을 걷고 있으므로 이런 일들이 그저 저절로 이루어집니다. 여러분은 그냥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그렇게 하기를 원하실 거야” 하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그분의 일부입니다. 그분의 영이 여러분 안에 계시므로 여러분은 그분께서 행하셨던 대로 행합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옳으나 그것의 끝은 사망의 길들이니라.” “주여, 주여, 하고 말하는 자가 다 들어가지는 아니하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저 마음에서 우러나 기꺼이 행하는 것입니다. 갈보리의 그날은 우리가 그렇게 될 수 있도록 그 값을 치렀습니다. “있잖습니까, 한번은 존스 과부에게 석탄이 떨어져서 제가 가서 석탄을 사다 주었습니다.” 또는 “제가 말씀드리지요. 어느 형제님에게 옷 한 벌이 필요한 것을 보고 제가 가서 한 벌 마련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저는 그리스도인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 이런. 이기적이고 가련하며 비참한 사람이여! 여러분은 위선자입니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고,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십시오. 그리스도 안에서 철저히 죽어, 그냥 자연스레 그렇게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본성이고, 여러분이라는 사람의 됨됨이입니다. 여러분은 그냥 그렇게 합니다. 여러분 안에서 살아가는 생명일 뿐입니다. 여러분이 그 영께 자신을 온전히 내어 드렸으므로, 그 영이 여러분 안에서 자신의 삶을 사시는 것입니다.
아, 그 복된 영을 느끼십니까? 그 생명을 말입니다. 바울은 “사는 것은 내가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느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저절로 되는 것입니다. “브래넘 형제님, 말씀드리지요. 여기 있는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도 돕고 저런 사람들도 돕습니다.” 아, 부끄러운 줄 아십시오!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저 자연스럽게… 그렇게 행해지는 것입니다. 그 일은 그냥 잊어버리십시오. 다… 가서 행하십시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생명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셨습니다. 사람들을 섬기는 종으로 자신을 내어 주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생명을 기꺼이 주셨습니다. 꼭 그렇게 하셔야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아까워하시며 하신 것도 아닙니다. “형제들이여, 내가 여러분을 위해 죽으러 왔으니 여러분은 나를 아주 높이 여겨야 합니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일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죽으셨습니다! 그분 안에 계신 이가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안에 계신 이도 하나님이십니다! 제 안에 계신 이도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게 하십니다.
양들은 한쪽에 있습니다. 그들 중 한 사람은 “주님, 저는 이런 일을 했습니다. 주님, 저는 저런 일도 했습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분은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라. 나는 너희를 알지도 못하였노라”라고 하셨습니다. 교회가 이 근본적인 사실들에 이를 수만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애써 해 보거나 스스로 감정을 북돋워 행하는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 안에 태어나는 어떤 것입니다.
제 오순절교 친구 여러분, 용서하십시오. 저도 오순절교 사람입니다. 그러나 제 오순절교 친구들은 빠른 음악을 많이 연주하고, 악단이 요란하게 연주하거나, 손뼉을 치거나, 탬버린을 흔들어야 외침이 터져 나오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것은 감정에 불과합니다. 전투에 나가기 전에도 사람들에게 싸울 기세를 북돋우려고 군악대가 연주합니다. 저는 음악을 믿습니다. 손뼉 치는 것도 믿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것들이 좋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분명 옳습니다. 우리에게 그런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정작 큰일들을 행하지 않은 채 남겨 두었습니다. 자신을 희생하는 삶, 하나님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는 그 삶 말입니다. 옳은 일이기에 저절로 옳은 것을 행하며, 그저 계속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 일을 생각조차 하지 않고, 그저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그때 보십시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게 됩니다. 여러분은 그저… 여러분은 하지 않… 여러분은 그 큰길 위에 있습니다. 그것이 갈보리가 여러분에게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 큰길 위에 있는 것, 그날 여러분을 위해 열린 길 위에 있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은 절반은 염소이고 절반은 양일 수 없습니다. 둘은 섞이지 않습니다. “있잖습니까, 우리 모임에는 단체가 하나 있습니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을 돕습니다. 우리는 이런 일을 합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 일을 두고 스스로 나팔을 불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은밀하게 구제하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에게 그저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야 합니다. 목이 말라서 가서 물 한 잔을 마시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옆 사람도 목이 마르면 그 사람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옆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있으면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생각하듯 그 사람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대단하게 여기지 않고 그저 살아갑니다.
여러분은 절반은 양이고 절반은 염소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우리 교회에는 단체가 있습니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줍니다. 이런 일도 하고, 저런 일도 하고, 다른 일들도 합니다”라고 말한다 해도, 그것만 있고 다른 것, 곧 여러분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다면, 여러분이 하는 일은 전적으로 헛됩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내가 모든 재산을 바쳐 가난한 자들을 먹이고 또 내 몸을 희생물로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그것이 내게 아무 유익을 주지 못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듣기 어려운 말씀이지만 진리입니다. 여러분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이르러야 합니다. 갈보리가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이루어 주었는지 깨달으십시오.
우리는 그것을 보고 “아, 그렇군요. 좋은 일입니다”라고 합니다.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그 아들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려고 갈보리에 가셔야 했다면, 그분께 오는 모든 아들도 갈보리에 가야 합니다! 그에게도 갈보리가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도 갈보리의 그날을 맞아야 합니다. 저도 갈보리의 그날을 맞아야 합니다. 그것이 죄 문제를 해결합니다. 설교자와 악수하는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니며, 악수해서 교회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이명 증서로 들어가는 것도 아니며, 신앙을 고백해서 들어가는 것도 아닙니다. 태어남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분은 증서를 주시지 않았고, 고백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태어남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들어갑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저절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갑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절반은 염소이고 절반은 양인 것, 그런 것은 없습니다. 여러분은 절반은 염소이고 절반은 양이 아닙니다. 염소든지 양이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여러분이 그저 좋은 일들을 하고 그것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갈보리의 그날은 필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율법에 그것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갈보리의 그날은 바로 이것을 가져오기 위해 필요했습니다. 우리가 단순히 교인이 되는 데 그치지 않고 하나님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갈보리의 그날이 바로 그런 날이었습니다. 그날이 여러분에게 의미하는 것은 여러분이 예수님처럼 행하고, 따르고, 행동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강물은 동시에 위로도 아래로도 흐르지 않습니다. 강물은 한 방향으로만 흐르며, 하나님의 영도 한 방향으로만 흐릅니다. 다른 것을 거기에 섞지 않습니다. 똑같은 방향으로 흐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예수님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내가 하는 그 일들을 너희도 할 것이요, 이것보다 더 큰 일들도 하리라. 이는 내가 내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주로 이곳 교회에 하려는 말씀이 아닙니다. 아시다시피 이 메시지들은 녹음됩니다. 전 세계에서 수만 명이 듣습니다. 지금 비판하는 사람을 위해 그 질문에 답하겠습니다. 저는 여러 번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성경을 믿는군요.”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는 이 일들을 너희도 할 것이요, 이것보다 더 큰 일들도 하리라. 이는 내가 내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생, 어떻게 그렇게까지 잘못될 수 있습니까? 지적인 신학과, 모든 것을 머리로 이해하려는 생각으로, 분별에서 얼마나 멀리 벗어나 방황할 수 있습니까? 제가 사랑하는, 길 잃은 친구 여러분, 이 성경은 영적으로 해석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시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학식 있고 영리하고 지혜롭고 분별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갈보리로 나아올 어린아이 같은 자들에게 드러내실 것을 감사하셨습니다.
이제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주목하십시오. “내가 하는 일들을…” 그분은 바로 그때 그 일들을 하고 계셨습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들[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일으키며, 눈먼 자의 눈을 뜨게 하는 일들], 이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 너희가 나를 믿으면 이런 일들을 하리라. 너희는 이 일들을 할 것이요, 그다음에는 이것보다 더 큰 일을 하리라. 이는 내가 내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라. 조금 있으면 세상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나를 보리라. 나는 세상의 끝까지 너희와 함께, 곧 너희 안에 있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로 없이 버려두지 아니하리라. 내가 아버지께 구하면 그분께서 다른 위로자, 곧 성령을 너희에게 보내시리라. 세상은 그분을 받아들일 수 없으나 너희는 그분을 받아들일 수 있느니라.”
주목하십시오. 더 큰 일이란, 교회가 기도로 병든 사람을 고치고 기도로 마귀들을 내쫓는 권능뿐 아니라, 믿는 이들에게 영생을 전해 주는 권능을 갖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성령께서 오셔서 생명을 전해 주도록 교회의 손에 맡겨지실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갈보리의 의미였습니다. 갈보리는 움츠러들고 타락한 남녀들을 데려다가 하나님의 아들딸의 자리로 높여 주었습니다. 그들이 병든 사람을 고치고, 순종하는 믿는 이들에게 성령을 줌으로써 영생을 전해 주게 하였습니다. 한때 믿지 않던 사람들이 믿는 사람이 되고, 영적인 영생을 전해 주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더 큰 일입니까… 여기 누워 있는 이 병든 여자에게 “제가 믿음의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라고 해서 그 여자가 고침받는다면, 그것은 큰일입니다. 그분께서 그때 하고 계셨던 일이 그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이것보다 더 큰 일을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권능을 주어, 그를 잠시 일으켜 세울 뿐 아니라 그에게 영생을 주게 하리라. 영원무궁토록 영원할 생명을 주게 하리라.” 가련하고 눈멀고 비참한 사람들이여, 어떻게 그것을 놓칩니까? 무엇이 더 큰 일인지 보이지 않습니까? 사람들에게 영생을 전해 주는 것, 그것은 일어날 수 있는 일 가운데 가장 위대한 일입니다!
영생이 무엇입니까? 그분께서 사셨던 생명입니다. 그분 안에 있던 그 생명을 다른 이들에게 전해 주는 것입니다. 사람이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은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누구의 죄들이든지 사면하면 그것들이 그들에게 사면될 것이요, 누구의 죄들이든지 그대로 두면 그것들이 그대로 있으리라.” 바로 여기서 가톨릭교회와 다른 많은 이들이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들은 나가서 “내가 당신의 죄들을 용서합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다. 성경에서는 사람들이 어떻게 죄를 용서받았습니까? 베드로가 오순절 날 그 질문에 답했습니다.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여러분이 받은 이것을 어떻게 받을 수 있습니까?” 베드로는 그 처방을 제시했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 주었습니다. “너희 각 사람이 하나님을 향해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라”라고 했습니다. 무엇을 위해서입니까? “너희 죄들의 사면을 위해서라.” 거기에 더 큰 일이 있습니다.
오늘 아침 여기 계신 설교자 여러분 가운데 몇 분이나, 녹음으로 제 말을 듣고 계신 여러분 가운데 몇 분이나, 오늘 아침 갈보리에 기꺼이 가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거기서 여러분을 위해 하신 일을 바라보고, 교단의 신조들을 버리고, 복음을 전하시겠습니까? 할렐루야! 이제 여러분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회개와 죄들의 사면이 그의 이름으로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온 세상에 선포되어야 하리라.” 할렐루야! 갈보리는 여러분에게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날이 여러분에게 무엇을 이루었습니까? 어떤 신학으로 여러분을 잔뜩 채웠습니까? 여러분을 거들먹거리는 사람으로 만들었습니까? 아니면 모든 것을 주님께 내어 드린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었습니까? 할렐루야! 죄들이 사면되었습니다. 너희는 이것보다 더 큰 일들을 하리라. 여기서 ‘너희’가 누구인지 아시겠지요? “이것보다 더 큰 일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들을 사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조와 교단과 그 밖의 것들이 여러분을 옭아매어, 여전히 세상을 섬기는 자리에 머물게 했습니다.
말씀해 보십시오. 어떤 남자든 어떤 여자든, 갈보리에 와 놓고서 누군가가 무슨 말을 했다고 해서 대단한 사람이 되려고 할 수 있습니까? 말씀해 보십시오. 어디서 여러분이 갈보리를 바르게 바라보고, 갈보리의 그날을… 어떻게 자기의 갈보리 날을 맞고도 거들먹거리는 사람이 되어 나올 수 있습니까? 어떻게 어떤 조직의 꼭두각시가 되어 사람이 만든 교리를 전할 수 있습니까? 왜 그 일이 여러분을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손하게 하지 못합니까? 정말 그곳에 가면 여러분은 겸손해져서 나올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낮추셔서 온몸이 찢기고 얼굴에 침 뱉음을 당하셨습니다. 사람들이 그분의 옷을 벗기고 온 세상 앞에서 십자가에 못 박아 수치와 모욕을 당하셨지만, 그분께서는 그 수치를 멸시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여러분은 자기 조직 안에서 명예를 뽐내며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갈보리에 갔다가 그분과 다른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까? 불명예, 수치를 당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 그러면 저를 쫓아낼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쫓아내게 두십시오. 여러분 자신의 갈보리 날을 맞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그분의 뜻을 이루실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자신의 갈보리 날을 맞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그분의 뜻을 이루실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오 하나님, 지금 저희 모두를 갈보리로 데려가 주옵소서. 주님, 자아에서 벗어나게 하옵소서. 사람에 대한 두려움, 남들이 무슨 말을 할까 하는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하옵소서. 온 세상이 그분을 비웃고 조롱했지만, 그분은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치욕을 당하는 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연방 정부 아래서도 순종하셨습니다. 저희는 사탄이 이 땅을 쳤을 때 그가 이 땅의 통치자요 권세를 가진 자가 되었다는 것을 압니다. 그는 우리 주님 앞에서도 같은 사실을 증언하며 “이 왕국들은 내 것이다. 내가 원하는 대로 하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저희는 그날부터 지금까지 저주 아래 있는 이 세상이, 세상을 저주한 자의 통치를 받아 왔음을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 오 하나님, 저희는 저주가 없는 왕국을 섬깁니다! 아버지 하나님, 오늘날 주님께서 영화계에서 큰일을 하신 것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십계」와 같은 훌륭한 영화들이 나오게 하셔서, 교회 문턱조차 넘으려 하지 않는 남녀들도 그것을 보고 어떤 것인지 알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길은 세상이 거절하는 길입니다. 우리는 마치 공산주의 치하의 러시아에 들어간 사람들과 같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이 세상 안에 있지만, 이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 저희는 갈보리에 갔습니다.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 그분께 속한 자가 되기 위해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세상이 뭐라고 하든, 저희는 주님과 함께 멸시받는 그 소수의 사람들과 같은 길을 갑니다. 저희는 부활을 향해 나아갑니다. 주님, 저희는 그때가 곧 올 줄 믿습니다. 저희가 부활하여, 다니엘이 미리 본 것처럼 이 세상을 차지할 왕국에 들어갈 때가 말입니다. 그것이 온 세상을 부수어 작은 겨같이 만들었고, 바람이 여름 타작마당에서 그것을 날려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 산, 그 돌은 자라서 큰 산이 되어 온 땅을 덮었습니다. 그 돌이 올 것입니다. 오 하나님, 저희도 그 일부가 되기를 원합니다! 저희 자신을 부인하고, 날마다 십자가를 지며, 그리스도를 위해 살고 다른 이들을 위해 살게 하옵소서. 허락하옵소서, 주님.
오늘 아침 여기 계신 분 중에 그분을 구원자로 알지 못하며, 마치는 기도에서 기억해 주기를 원하고, 오늘이 자신의 갈보리 날이 되기를 원하는 분이 계시면 손을 들어 이렇게 말씀하시겠습니까? “브래넘 형제님,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저는 그분을 저의 구원자로 알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젊은이. 또 다른 분 계십니까? 저 뒤에 계신 형제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또 이렇게 말할 분이 계십니까? “저는 그분을 알기 원합니다. 오늘이 저의 갈보리 날이 되기를 원합니다. 저는 이제 지긋지긋합니다. 제가 태어난 바로 그 목적을 두고 이렇게 꾸물거리며 지내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저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려고 태어났습니다. 그렇게 태어났는데, 여기서 세상 것들을 붙들고 있습니다. 하나님, 오늘 저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주옵소서. 오늘 제 자신과 제 생각들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하셔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고 다른 이들을 위해 살게 하옵소서. 사람들이 제게 무슨 짓을 하든, 저를 비웃고 박해하며 저를 거슬러 온갖 악한 말을 한다 해도, 그분께서 그러셨듯 저도 어린양처럼 온유하고 겸손하게 걸어가게 하옵소서. 언젠가 마지막 날에 저를 다시 일으키시겠다고 그분께서 약속하셨습니다. 저는 그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손을 드실 분이 더 계십니까? 저 뒤에 계신 분, 그리고 그쪽 분도,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좋습니다. 더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기 직전에 더 계십니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베드로가 오순절 날 말씀을 전했을 때 “믿는 사람들이 모두 교회에 더해졌더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참으로 온 마음으로 믿었습니다. 방금 손을 든 이분들도 온 마음으로 믿었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렇다면 여기 물이 담긴 침례탕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분들이 죄를 용서받기 원한다면, 여기 그 이름으로 침례를 줄 사람이 있습니다. 그 이름은 하늘 아래 사람들 가운데 주어진 유일한 이름이며, 우리는 그 이름으로 구원받아야 합니다. 제가 조금 전에 성경을 인용한 대로, “회개와 죄들의 사면이 그의 이름으로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온 세상에 선포되어야 하리라”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에서 회개와 죄들의 사면이 선포되었을 때, 사도는 그들에게 성경 말씀을 전하며 먼저 회개하고 그다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설교자가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회개하고, 설교자는 그들의 죄들의 사면을 위해 침례를 주는 것이었습니다. “너희가 누구의 죄들이든지 사면하면 그것들이 그들에게 사면될 것이요, 누구의 죄들이든지 그대로 두면 그것들이 그대로 있으리라.”
아버지, 세상은 어쩌다가 지금처럼 발끈하여 엉뚱한 길로 빠져 버렸습니까? 왜 단순한 복음을 믿지 않습니까? 그들은 심지어 그것을 대신한다며 거짓된 이름들과 거짓된 침례들과 거짓된 성령 침례들을 들여옵니다. 사역자들과 악수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라는 칭호들을 사용합니다. 그런 것은 성경에 전혀 없으며, 로마 사람들이 만든 문서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없는, 그리스도인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칭호들을 통해서는 죄들의 사면을 받을 수 없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통해서 받을 수 있습니다. 아버지, 이것이 매우 인기가 없다는 것을 저희도 압니다. 주님의 길은 언제나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아침 남녀들이 그날, 갈보리의 그날에 이르게 하옵소서. 예수님께서는 그날을, 옷이 벗겨지고 온몸이 찢기며 침 뱉음을 당하고 온 세상과 교회와 마땅히 그분을 사랑해야 했던 사람들에게 조롱을 당하는 그 수치를 멸시하셨습니다… 그런데도 그 모든 일 가운데서 그분은 입을 열지 않으셨고, 가셔서 자기를 조롱하던 바로 그 사람들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하나님, 오늘 아침 저희를 갈보리로 데려가 주옵소서. 사람들이 저희를 미쳤다고 하거나 성경을 잘못 이해했다고 하거나, 무슨 말을 하고 싶든 하게 두옵소서. 하나님,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 앞에 서서 이것이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성경으로 자기 죄들을 가릴 수 없습니다. 성경은 그들의 죄들을, 그들의 불신을 드러냅니다. 인기를 얻으려 하고 나머지 무리처럼 하려는 것을 드러냅니다. 오늘 아침 그들이 갈보리로 와서 예루살렘에서 시작하게 하옵소서. “회개와 죄들의 사면이 그의 이름으로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하리라.” 그들도 똑같이 십자가에 못 박히는 그 걸음을 내딛게 하옵소서. 온몸이 찢기고 침 뱉음을 당하며 조롱받고, 신앙의 변절자라는 온갖 이름으로 불리게 되더라도 말입니다. 교회를 무너뜨리는 자라고 하든, 무슨 이름으로 부르고 싶든 부르게 두옵소서. 주님, 오늘 아침 저희가 주님과 함께 멸시받는 그 소수의 사람들과 같은 길을 가게 하옵소서. 사도들이 걸었던 것처럼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걸으며, 선한 마음에서 우러나 하나님을 섬기게 하옵소서. 허락하옵소서, 아버지. 이제 기도받는 줄로 나오는 병들고 고통받는 이들을 고쳐 주옵소서. 손을 든 이들이 바로 지금 마음으로 회개하게 하옵소서. 그토록 오래 뒤로 물러서 있던 이들이 속히 물로 나아와, 희생물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자기 죄들의 사면을 받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