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저는… 원하시면 저와 함께 마태복음 14장을 펴 주십시오. 기도받을 분들을 앞으로 부르기 전에 몇 분 동안 말씀을 나누려고, 배경이 될 본문을 조금 읽겠습니다. 조금 전에 제 아들이 사람들에게 기도 카드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잠시 후에 그분들을 줄 세워 기도해 드리려는 것입니다. 자, 마태복음 14장을 펴시고 22절부터 읽겠습니다. 즉시 예수님께서 자기 제자들을 강권하사 자기가 무리들을 보내는 동안 배를 타고 자기보다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무리들을 보내신 뒤에 …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셨다가 저녁이 되매 거기 홀로 계시더라. 그러나 이제 배는 바다 한가운데 있었고 바람이 반대로 불므로 파도로 인해 요동하더라. 밤 사경에 예수님께서 바다 위로 걸어 그들에게 가시니 그분께서 바다 위로 걸어오시는 것을 제자들이 보고 불안해하여 이르기를, 그것은 영이다, 하며 두려워서 소리 질렀으나 즉시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니라. 제목을 붙인다면 “나니라”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몸집이 큰 그 어부가 우람하고 근육질인 등에 힘을 주어 작은 배의 뱃머리를 물속으로 밀어 넣기 시작했을 때는, 아마 해가 저물 무렵이었을 것입니다. 바다 건너편으로 뱃머리를 향하게 하고 자기도 배에 올라, 배 가운데쯤 자기 형제 안드레 옆에 자리를 잡고 앉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합니다. 사람이 노를 저어 가는 배였으므로, 그들은 노를 물에 담그기 시작했습니다. 배는 작은 물결을 일으키며 바다를 건너갔습니다. 물론 물가에 서 있던 무리들은 그저… 그날 오후에 이 사람들을 통해 큰 표적들과 이적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숨이 멎을 만큼 놀랐습니다. 그 무렵에는 이스라엘 사람들 대부분이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수천 명이 물가에 서서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하고 “어서 돌아오십시오”라고 외쳤습니다. 여러 사역자가 찾아와 사람들 가운데서 그날 그들이 보았던 것 같은 일을 행하고 그런 모습을 보여 주었다면,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작은 배가 바다를 건너가기 시작할 때, 가끔 한 사람이 노를 놓고 손을 흔들어 답례하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물가에서도 누군가 손을 흔들고 손수건 같은 것을 흔듭니다. 얼마 후 무리들이 저마다 집을 향해 돌아가기 시작했을 때는, 아마 배가 물가에서 전혀 보이지 않을 만큼 멀어졌을 것입니다. 한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고 잠잠했다고 생각해 봅시다.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일행 가운데 나이가 더 어렸던 젊은 요한이 노 젓기를 멈추고 얼굴의 땀을 닦으며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들인 형제 여러분, 이제 우리는 어떤 광신자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신해도 됩니다. 이분은 자신이 말씀하시는 바로 그분입니다. 오늘날 우리 민족 중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처럼 광신자도 아니고, 거짓 선지자도 아닙니다. 제가 아주 어렸을 때가 기억납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아름다운 저의 히브리인 어머니는 저를 무릎에 앉히고 구약성경의 이야기들을 들려주시곤 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어떻게 이 땅으로 인도되었는지, 옛날의 위대한 선지자들은 어떠했는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는 엘리야와 수넴 여인에 관한 이야기, 곧 어린 아기를 다시 살려 낸 이야기를 듣는 것을 얼마나 좋아했겠습니까. “어머니는 제게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얘야, 한때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과 함께 계셨을 때에는 그들에게 부족한 것이 없었단다.’ 그리고 어머니가 들려주시던 놀라운 이야기들 가운데, 숨이 멎을 만큼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옛 백성이 이집트에서 팔레스타인으로 가는 길에, 여전히 자기들의 본분을 다하고 있었는데도 빵이 없는 형편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들을 먹이셨는가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자녀들에게 줄 빵이 없고, 여행을 계속할 양식도 더는 남아 있지 않았을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미 익힌 빵을 하늘에서 비처럼 내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천사들을 시켜 밤마다 땅 위에 정성스럽게 놓아 주셨습니다. 우리 백성이 나가서 그것을 거두어들였고, 그것은 꿀에 담갔던 것인데 그 맛이 어떠했는지도 들려주셨습니다. 위대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사십 년 동안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우리 백성을 먹이셨습니다. 그들이 자기들의 본분을 다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형제 여러분,” 그는 분명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오늘 그 이야기가 제게 새롭게 와닿지 않았겠습니까? 이분은 어떤 면에서 여호와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분이 거기 서 계실 때 저는 그분 뒤에 있는 바위에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그 빵 다섯 개를 가지고, 여전히 자신의 굶주린 백성을 먹이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분에게는 창조주 하나님과 연결된 무언가가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저는 궁금해서 어머니께 묻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십 년 동안 사람들을 먹이실 그 많은 밀가루를 어떻게 하늘에 마련하실 수 있었나요? 그 많은 만나를 전부 꿀에 담그려면 꿀이 필요한데, 그 꿀을 만들 만큼 많은 벌을 어디서 찾으실 수 있었나요?’ 그러면 어머니는 ‘얘야, 하나님은 창조주시란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형제 여러분, 오늘 바로 그 하나님께서 사람의 손으로 빵을 집어 드시는 것을 보았을 때, 여러분의 마음이 뜨거워지지 않았습니까…? 저는 위로 올라가서 그분께서 빵 하나를 떼어 건네주시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그것이 한 번 일어나는 것만 본 게 아닙니다. 오늘 오후에 오천 번도 넘게 일어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람의 두 손이 빵과 익힌 생선을 창조하여 오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먹였습니다. 저는 오늘 이분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러자 아마 시몬 베드로가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여러 해 전에, 아버지와 제가… 여기 계신 형제들 중 많은 분이 제 아버지를 아셨고, 아버지가 신앙심 깊은 분이었다는 것도 아셨습니다. 아버지는 우리 교파에서도 엄격한 분이셨습니다. 바리새인이셨지요. 우리 바리새인들은 하나님께서 한 말씀도 빈말로 하시지 않는다고 믿었습니다. 우리는 그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제 아버지는 훌륭하고 엄격한 분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지키신다고 믿으셨습니다. 그 후로 저는 여러 번 그때 일을 생각했습니다. 고기잡이가 끝난 늦은 저녁에, 아버지는 저를 데려다가 제 자그마한 팔의 근육을 쥐고 들어 올리시며 ‘시몬아, 너는 쇠처럼 힘이 세구나’ 하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그리고 제 머리를 뒤로 쓰다듬고 품에 안아 주셨습니다. 제가 아버지를 토닥이며 나이가 들어 흐려져 가는 눈을 바라보면,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시몬아, 앉거라. 너에게 잠깐 이야기하고 싶구나. 시몬아, 내가 늙어 가는구나. 언젠가는 떠나야 한다. 내 배와 그물도 네게 맡기고 가야겠지. 나처럼 너도 이 바다에서 그물을 쳐 고기를 잡을 거다. 아마 너도 내가 다니던 그 회당에 다닐 테지. 나는 평생 오실 한 분을 기다려 왔다는 것을, 너의 어린 유대인의 마음에 심어 주려고 애써 왔다. 그런데 그분이 오실 날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더 멀어진 것처럼 보이는구나. 그래도 시몬아, 어쩌면 네가 사는 동안 그분이 오실지도 모른다. 네가 사는 동안에도 오시지 않으면, 네 아들에게 가르쳐 주거라. 그때에는 겉만 번지르르한 것들이 많을 거다. 그러나 시몬아, 언제나 선지자가 한 말을 기억하거라. 우리 이스라엘 사람들은 우리 선지자들을 믿기 때문이다. 선지자 모세는 이 메시아께서 오실 때 자신과 같은 선지자이실 것이라고 말했다. 그분은 교육자도, 어떤 위대한 신학자도 아니고 선지자이실 것이다. 모세가 “주 너희 하나님께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라” 하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 메시아께서 오시는 것을 볼 때 기억하거라. 바로 그것이 그분이 메시아라는 표적이 될 것이다. 그분은 선지자이신 하나님이실 것이기 때문이다. 선지자의 모습으로 오신 하나님이실 것이고, 그것으로 너는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제 형제 안드레가 그 집회들에 다녀와서는, 갈릴리에서 온 어떤 치유자가 기도로 병든 사람들을 고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아, 저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안드레가 나사렛 예수라고 하는 이분의 말씀을 들으러 가자고 저를 설득했습니다. 안드레는 벌써 그분을 메시아로 믿고 있었지만, 저는 제 고기잡이 그물만 붙들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집회에 갔습니다. 배를 떠나 물가를 따라 그분이 계신 곳으로 내려가 그분 앞에 섰습니다. 그분은 저를 알지 못하셨는데도 눈길을 돌려 저를 보셨습니다. 그 눈은 제 혼 구석구석을 비추어 살피는 빛과도 같았습니다. 그리고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이름은 시몬이요, 너는 요나의 아들이니라.’ 그러자 아버지께 배운 모든 것이 한순간에 떠올랐습니다. 이분이 참으로 그 메시아였습니다. 그분은 선지자이신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제 이름만 아셨던 것이 아니라, 경건했던 제 늙은 아버지도 아셨습니다. ‘너는 요나의 아들이니라’ 하고 말씀하셨으니까요. 그날부터 저는 마음에 한 점 의심도 없이 그분을 따랐습니다. 세상이 그분을 뭐라고 하든, 우리 민족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제게는 그때부터 그분이 메시아이셨습니다.”
요한이 말했습니다. “오늘 그분께서 빵과 생선을 창조하시며 성경 속 이야기와 자신을 연결하시는 것을 보았을 때, 저는 그분이 그 메시아이실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분명 그분이십니다.” 그런 다음 제 생각에는, 바로 뒤쪽, 배의 고물 쪽에서… 그때 배는 물에 떠서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땅거미가 지고 있었고, 그들은 힘껏 노를 젓다가 오늘날 우리가 말하듯 ‘숨을 돌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마 빌립이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도 저와 함께 있었어야 했습니다. 시몬 형제님, 그날 그분께서 서 계시다가 형제님의 이름이 시몬이라고 말씀하시고, 지금 우리가 부르는 이름인 베드로로 바꾸어 주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 저도 알던 형제님의 아버지에 관해서 말씀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때 너무도 확신하게 되어 모두에게 알리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짧은 이야기를 잠깐 멈추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것이 진리라는 것을 한 번 확신하게 되면,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꼭 알려야 합니다. 도저히 잠자코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생명이며, 여러분은 모두가 그것을 알기를 원합니다.
빌립이 말했습니다. “제게 한 친구가 있었지요. 지금은 주 안에서 사랑하는 우리 형제인 나다나엘입니다. 그는 집회가 열리던 곳에서 십오 마일쯤 떨어진 곳에 있었습니다. 저는 산을 돌아 걸어갔습니다. 마침내 그의 집에 도착해서 문을 두드렸더니, 그의 다정한 아내가 문으로 나왔습니다. 저는 나다나엘이 어디에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녀가 ‘빌립, 남편은 정원에 산책하러 나갔어요’ 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정원으로 나갔습니다. 저쪽 나무 아래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는 이렇게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오, 위대하신 여호와여, 주께서 우리에게 구원을 보내 주실 때를 우리가 간절히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이제 구원자를 보내 주시지 않겠습니까? 주의 백성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모세를 보내셨듯이, 이제 우리에게 도움을 보내 주소서!’ 저는 도움이 왔다는 소식을 그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에 사로잡혀, 그가 무릎을 꿇고 있다가 일어났을 때 다른 말은 별로 하지도 못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와서 우리가 누구를 만났는지 보게. 메시아,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님이시네.’ 다른 이야기를 할 틈도 낼 수 없었습니다. 그 일이 마음에 가득 차서, 그저 터뜨리듯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의 마음을 붙드셔서 참으로 확신하게 하시면 그렇습니다. 도저히 잠자코 있을 수가 없습니다. 누군가에게 알려야 합니다. 이것을 숨겨 둘 수는 없습니다. 촛불을 켜서 바구니 아래에 두어 봐야 소용없습니다. 여러분의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그는 곧바로 본론을 꺼냈습니다. “와서 우리가 누구를 만났는지 보게. 나사렛 예수님이시네.” “물론 형제 여러분도 아시듯이, 나다나엘은 원래 상당한 신학자였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이보게, 잠깐만 기다려 보게, 빌립. 내가 자네를 오랫동안 알아 왔고, 제정신에 생각이 건전한 사람이라고 여겼네. 그런데 지금 무슨 광적인 열정에 휩쓸리거나 극단으로 치달아, 이른바 광신적인 선지자라는 사람에게 빠져 길을 잃었다는 말은 아니겠지. 정말 메시아가 오신다면 대제사장이 그 사실을 알지 않겠는가? 그분이 우리 교파로 오셔서 우리에게 알려 주시지 않겠나?’” 그러나 여러분도 아시듯이,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것이라면 반드시 우리 교파로 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옳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대개 모든 교파 밖으로 보내십니다. 그리하여 그들 모두를 당혹스럽게 하시고, 무언가를 바라며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보내십니다.
그래서 빌립이 말했습니다. “제가 그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었더니, 그가 ‘빌립,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겠나? 자네도 알지 않나’ 하고 말했습니다.” 그때 빌립은 제가 들어 본 가운데 가장 좋은 대답을 한 것 같습니다. “집에 앉아서 비난하지 말고, 와서 직접 보게.” 참 좋은 말입니다. 오늘날 성령께서 사람들 가운데 역사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감정일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가장 좋은 대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와서 직접 보십시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십시오.” 온갖 삶을 살아온 사람들, 악한 자와 술주정뱅이와 매춘부 등 온갖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바로잡히고 깨끗해져 성도가 됩니다. 그러려면 심리학이나 인간의 신학, 혹은… 그런 것 이상의 것이 필요합니다. 사람의 혼과 생각과 삶의 방식을 바꾸려면 성령의 권능, 거듭나게 하시는 그 권능이 필요합니다.
빌립이 말했습니다. “형제 여러분, 나다나엘은 준비를 했습니다.” 물론 작은 배는 계속 흘러가고 있었고, 날은 어두워지고 있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나다나엘은 들판을 가로질러 길을 떠났고, 저는 시몬 형제님에 관한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그도 형제님을 기억했습니다. 우리가 형제님께 여러 번 생선을 샀고, 형제님의 아버지께도 샀으니까요. 저는 형제님이 교육을 받은 분이 아니어서 생선값 영수증에 서명조차 할 수 없었지만, 그분이 메시아라는 것을 알아볼 줄은 아셨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이 메시아의 표적이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는 것을 아셨고, 그 약속을 믿으셨기 때문이지요. 제가 그를 우리의 복되신 주님 앞으로 데려와, 그분이 병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계시던 곳까지 줄을 따라 다가갔습니다. 그분께서 나다나엘의 얼굴을 보시자마자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났습니다.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을 보라. 그의 속에는 간사함이 없도다!’ 나다나엘은 너무 놀라서 ‘랍비여, 언제 저를 아셨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평생 저를 한 번도 보신 적이 없으신데, 제가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것을 어떻게 아셨습니까?’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분은 옷차림을 보고 아신 것이 아닙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옷을 대체로 비슷하게 입었고, 피부색도 다소 검었습니다. 수염을 기르고 터번을 쓰고 긴 옷을 입는 것 등이 비슷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그가 이스라엘 사람임을 아셨습니다.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을 보라. 그의 속에는 간사함이 없도다!” “그가 ‘랍비여, 언제 저를 아셨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나무 밑에 있을 때 내가 너를 보았노라.’ 그것으로 분명해졌습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 모두 아시듯이 그날부터 나다나엘은 확고한 신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랍비여, 선생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선생님은 이스라엘의 왕이시니이다’ 하고 말했으니까요.
그분의 표적들과 이적들은 우리를 놀라게 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행동과 말씀으로 압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그저 어떤 일을 말만 하는 분이 아닙니다. 말씀하시는 것을 실제로 이루시는 분입니다.” 오늘날에도 그분이 자신의 말씀에서 하신 말씀을 그대로 행하신다는 것이 얼마나 기쁩니까. 저는 수천, 수만의 이슬람교도들 앞에서 한 손에는 코란을, 다른 손에는 성경을 들고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 둘이 서로 모순되므로 둘 다 옳을 수는 없습니다. 말씀하시고, 행하시고, 자신이 하겠다고 하신 것을 이루시는 분, 그분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합시다. 자신의 말씀을 지키시는 분을… 그분이 한때 하나님이셨다면 지금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불멸하시므로 변하실 수 없습니다. 무한하시고, 모든 것을 아시며, 어디에나 계시므로 변하실 수 없습니다. 그분은 결코 틀림이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오늘 밤에도 그러하시고, 언제나 동일하실 것입니다. 완전하시기 때문에 지금의 그분과 다른 분으로 변하실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이 자신의 말씀에서 무엇을 말씀하시든 그것이 진리임을 확신하고 여러분의 생명을 걸어도 됩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결정을 내리시도록 요청받으시면, 그 결정은 완전하기 때문입니다. 훗날 다른 시대에 와서 ‘내가 잘못 판단했구나’ 하고 말씀하실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유한하여 실수하므로 그럴 수 있지만, 그분은 무한하시므로 실수하실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에덴동산에서 타락한 한 사람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서시도록 요청받으셨을 때, 그분은 그 사람이 구원받을 길을 마련하시고 그를 구원하셨습니다. 그와 똑같은 근거, 똑같이 마련하신 길에 따라, 죄 없는 희생물이 흘린 피로 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 오는 모든 죄인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병들어 의사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한계도 지나 버린 채, 치유를 원하여 하나님께 나아왔다고 합시다. 하나님께서 나서셔서, 그분을 믿는 그 사람의 믿음을 근거로 그를 고쳐 주셨다면, 다음 사람을 위해 하나님을 부를 때도 똑같이 행하실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처음에 행하신 것이 잘못이었다는 말이 됩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러니 한 번은 치유자이셨다가 다음에는 치유자가 아니실 수 없습니다. 어느 날에는 기적의 하나님이셨다가 다음 날에는 기적의 하나님이 아니실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여전히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이 어떤 약속이든 올바른 마음가짐으로 대한다면… 여러분이 성경에서 읽는 그것은 진리입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그것을 다른 시대, 지나간 때나 앞으로 올 시대에 해당하는 것으로 돌리려 해도 그렇습니다. 그분은 한 번도 자신을 ‘나는 전에 있었다’라고 선언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언제나 ‘나는 있다’이십니다.”
아마 그 무렵 시몬 옆에 앉아 있던 안드레가… 우리 모두가 함께… 오늘 밤 제가 “그분의 은혜로 구원받은 분의 간증을 듣고 싶습니다”라고 한다면, 새벽 두 시에야 집회를 마쳐야 할 것입니다. 한 번이라도 그분을 알게 되었다면, 누구나 그분에 대해 아는 것을 말하고 싶어 합니다. 아, 모두에게 말해 주고 싶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자기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기 때문입니다. 어떤 것에 대한 혼란스럽고 어중간한 믿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무언가…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구주로 받아들이고 성령께서 여러분의 삶에 들어오셨다면, 여러분은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압니다. 그 자리에 여러분이 있었고, 그 일이 일어난 당사자가 바로 여러분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권능으로 한 번이라도 치유를 받았다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여러분의 생각에서 그 사실을 지워 버릴 수 없습니다. 아무리 설명해서 부정하려 해도 그럴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복음을 전하러 나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성령침례를 직접 체험하기 전에는 나서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자격이 그것이었다고 믿습니다. “권능을 입을 때까지 예루살렘 시에 머물라. 그리하면 너희가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루이지애나주 슈리브포트에서 나의 증인이 되리라.” 만일 그렇게 읽는다면 말입니다. 이 말이 신성모독처럼 들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제 뜻은 여러분도 아실 것입니다. 누구든 아무리 교육을 잘 받았어도, 성경을 아무리 잘 알아도, 마귀는 여러분보다 두 배나 더 잘 압니다. 그렇습니다. 마귀는 마음만 먹으면 성경을 비틀어 여러분을 초급 독본에 나오는 네드 같은 풋내기로 보이게 할 수 있습니다. 틀림없이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한 번이라도 체험을 하고 하나님을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여 만났다면, 지옥의 마귀들이 아무리 많아도 여러분에게서 그것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자기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온갖 훈련을 받아서 이집트 사람들에게 신학을 가르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이집트로 돌아간 것은, 또 하나님께서 그를 돌려보내신 것은, 수학이나 전쟁 전략을 더 연마하게 하시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대학에서 다른 학위를 더 받으라고 보내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 뒤편의 거룩한 모래 땅, 불붙은 떨기나무 곁에서 그를 만나셨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설명해서 부정하려 해도 지울 수 없는 체험을 그에게 주셨습니다. 그 많은 신학 지식이 있었지만 그는 잘못을 저질렀고, 하나님을 피해 도망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여 만났을 때,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 이집트로 돌아갈 준비가 되었습니다. 상황이 어떻든 그는 길을 떠났습니다. 체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았습니다. 성령을 받은 모든 신자가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밤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 작은 배에 있던 제자들도 오늘 밤 여기 있는 우리와 같았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누군가에게 말해 주고 싶고, 체험을 나누고 싶습니다. 그 일을 자세히 들려주고 싶습니다. 그들도 그랬습니다.
그러니 다음에는 아마 안드레가 말했을 것입니다. 더는 잠자코 있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미 노를 배 안으로 거두어들였고, 그때는 아마 배가 그냥 떠서 흘러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형제 여러분, 이것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 뭐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여리고로 가던 중에 그분께서 사마리아를 거쳐 가셔야 한다고 말씀하셨던 때를 기억하십니까? 우리는 왜 저 사마리아 사람들 쪽으로 돌아서 올라가려 하실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분께서 그 도시에 이르러 우물가에 앉으시고, 우리에게 먹을 것을 구해 오라고 도시 안으로 보내셨습니다. 우리가 돌아왔을 때를 기억하십니까? 우리 모두가 이 일의 증인입니다. 우리는 가까이 다가가 그분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자신에게 말을 건네고 있는 그런 여자와 이야기하시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는 놀라웠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끼어들어 덤불 뒤에서, 아니 담 뒤에서 귀를 기울였을 때 대화가 들렸습니다. 그분께서 여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자여, 마실 물을 내게 가져오라.’ 여자가 말했습니다. ‘당신들 유대인이 사마리아 사람, 곧 사마리아 여자에게 호의를 구하는 것은 관례에 어긋납니다. 우리는 서로 분리되어 있습니다. 서로 상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분께서 여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네게 말하는 자가 누구인지 네가 알았더라면.’”
아, 바로 그것입니다. “네게 말하는 자가 누구인지 네가 알았더라면.” 저는 확신합니다. 여기 있는 모든 죄인이, 오늘 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늘의 처소들에 함께 앉아 있는 임재와 분위기를 느끼며, 마음에 속삭이는 그 작은 느낌이… 여러분에게 말씀하시는 분이 누구신지 안다면 말입니다. 여러분은 마음속으로 ‘너도 이런 체험을 해야 해. 어쩌면 저 사람들이 옳을지도 몰라’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누가 말씀하시는지 알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말하는 자가 누구인지 네가 알았더라면, 네가 내게 마실 물을 구하였으리라. 그러면 내가 네게 물을 주어 여기로 물을 길으러 오지 않게 하였으리라.’ 여자가 ‘우물은 깊고, 선생님께는 물 길을 그릇도 없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 밖에도 여러 말을 했지요. 그런데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주는 물은 생명이요, 솟아나는 영생이니라.’ 그러다가 어디에 가서 경배해야 하는가 하는 종교적 논쟁으로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여자가 말했습니다. ‘당신들은 우리 모두 예루살렘에 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 조상 야곱은 이 우물을 파서 가축과 가족에게 마시게 했습니다. 우리는 이 산에서 경배하는데, 당신들은 “예루살렘에서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분께서 곧바로 말씀하셨습니다. ‘이 산에서도 아니요, 예루살렘에서도 아니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그분께 경배하는 자들이 반드시 영과 진리로 그분께 경배할지니라. 영과 진리로.’ 그러고는 여자의 영과 접촉하여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내셨을 때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네 남편을 데리고 여기로 오라.’ [테이프 끊김.]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게 말하고 있는 내가 그니라.’ 더 말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여자는 그분이 구약성경에 약속된 바로 그 메시아라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테이프 끊김.] 여자는 세상의 모든 것을 잊었습니다. 심지어 물 항아리도 거기에 놓아둔 채 도시로 달려가서 말했습니다. ‘와서 내가 행한 일들을 내게 말한 사람을 보십시오. 이분이 바로 메시아가 아니십니까?’ 그 도시의 남자들은 그 여자의 증언 때문에 그분을 믿었습니다.”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데, 오늘 밤 라이프 태버내클에 오셔서 그때 하셨던 일들을 행하신다면, 슈리브포트의 남자들이 그분을 믿을지 궁금합니다. 우리도 그처럼 확신하게 되어 이웃과 사람들에게 “와서 내가 행한 일들을 내게 말한 사람을 보십시오. 이분이 메시아가 아니십니까?” 하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러면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참으로 이분이 메시아이십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이 성령, 세상이 광신주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입니다. 똑같은 표적들, 똑같은 이적들, 똑같은 권능, 똑같은 구원으로 동일한 메시아이심이 입증되었습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여러분이 마련할 수 있는 모든 방공호보다 더 큰 보호가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휴거에 이르게 하는 체험일 것입니다.
아, 그들은 모두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그 무렵 날이 어두워졌을 것입니다. 사탄은 그분 없이 그들끼리만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 마귀가 원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스도 없는 교회를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무엇이든, 이름을 아무리 금글씨로 써 놓았든 상관없습니다. “우리는 거룩한 교회다. 우리는 이런 교회다.” 거룩한 교회가 아닙니다. 거룩한 교회라는 것은 없습니다. 거룩한 산이나 거룩한 유물 같은 것도 없고, 심지어 거룩한 사람이라는 것도 없습니다. 거룩하게 만드는 것은 사람들 안에 계신 성령입니다! 성령입니다. 사람들은 “아, 그는 거룩한 사람이야” 하고 말합니다. 그 사람이 거룩한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 안에 성령이 계시는 것입니다. 저는 “사도행전”이라는 말에도 늘 조금 다른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도들이 행한 일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사람이었습니다. 그 큰 승리를 이루어 낸 것은 사도들 안에서 성령께서 행하신 일들이었습니다.
사탄은 그 작은 교회가 그리스도 없이 있는 것을 보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내 기회다. 나를 모독하면 어떻게 되는지 가르쳐 줄 때가 왔다.” 그리고 자기 입김을 불어 바다 위로 폭풍을 몰아오기 시작했습니다. 갈릴리에 있던 그 작은 배는 아마 거의 가라앉을 지경이었을 것입니다. 파도가 너무 거세서 그들은 거의 바닥까지 내려갔습니다. 아마 파도가 번쩍일 때마다, 번개가 번쩍일 때마다 마귀는 저 밖에서 웃으며 말했을 것입니다. “이제 저놈들을 잡았다. 그분 없이 떠나왔으니까.”
제가 한 번은 그 일을 이야기했더니, 나중에 어떤 분이 제 말을 바로잡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브래넘 형제님, 그분께서 강권하셔서 그분 없이 떠나게 하셨잖습니까?” 저는 “그렇습니다. 그래도 그렇게 한 것은 그들이 잘못한 것입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엘리야와 엘리사가… 그들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모형이었는데, 엘리사는 영의 두 몫을 받았습니다. ‘내가 하는 이 일들을 너희도 할 것이요, 이것들보다 더 큰 일들도 하리라.’ 그분께 있던 겉옷, 곧 그분께 임해 계시던 성령이 교회 위에 내려오실 때 그렇습니다. 그분은 단 한 사람이셨지만, 교회는 온 세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버지께로 가므로 너희가 이것보다 더 많은 일을 하리라.’ 엘리사는 선지자였으므로, 오늘날의 교회보다 그 일을 더 잘 알았습니다. 둘이 함께 있을 때 엘리야가 말했습니다. ‘너는 여기 머물라. 주께서 나를 저쪽으로 부르셨다. 나는 선지자 학교로 올라간다.’ 그러나 엘리사는 오늘날 교회가 마땅히 해야 할 것처럼 말했습니다. ‘주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저는 당신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마음속에 목표가 있었고, 그의 동기는 분명히 옳았기 때문입니다. 선지자 학교에 이르렀을 때 엘리야가 말했습니다. ‘너는 여기 머물라. 주께서 나를 요르단으로 부르셨다.’ 엘리사가 말했습니다. ‘주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혼이 결코 죽지 않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저는 당신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그는 엘리야를 떠날 수 없었습니다. 두 눈을 엘리야에게 고정하고 그를 붙든 채, 바로 곁에 머물렀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해야 할 일이 바로 이것입니다. 무엇이 오든 무엇이 떠나든, 그분을 붙드십시오! 교회가 식어 가더라도,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하나님의 변함없는 손을 붙드십시오! 갈보리를 붙들고 거기에 머무십시오! 그것이 하나님께 무언가를 받는 길입니다. 굳게 붙드십시오. 마귀가 여러분을 흔들어 떨어뜨리지 못하게 하십시오. 그 제자들도 ‘주께서 가시는 곳에 저도 가겠습니다’라고 했어야 합니다.”
룻이 나오미에게 말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 모압 여인 말입니다. “어머니의 백성이 내 백성이 되게 하소서.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겠습니다. 어머니께서 묻히시는 곳에 나도 묻히겠습니다. 어머니의 하나님이 계시는 곳, 그분이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 나는 어머니와 함께 있겠습니다.” 그 여인은 그렇게 해서 보아스를 얻었습니다. 교회도 그렇게 해서 그리스도를 얻습니다. 세상이 무슨 말을 하든, 여러분이 극단으로 치달았다고 하든, 이것저것을 했다고 하든, 그리스도와 함께 머무십시오! 그분을 붙드십시오! 끝까지 그렇게 하십시오.
사탄은 그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오늘날에도 보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축복하셨습니다. 아, 사십여 년 전 오순절의 은혜가 처음 임하기 시작했을 때, 우리가 얼마나 큰 집회들을 가졌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대대적인 건축 사업에 빠져들었습니다. 목사들이 더 유창하게 말하도록 학교와 신학교 같은 것을 세워야 했습니다. 그들을 가르쳐 박사로 만들고, 총감독과 신학박사로 만들며, 온갖 거창한 직함을 붙여 주려 했습니다. 사탄은 그 모든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바다는 거칠어졌습니다! 그는 교회가 대규모 건축 사업이나 그런 식의 어떤 거창한 일에 나서면서 그분 없이 떠나 버린 것을 봅니다. 교회가 격식을 갖추고 딱딱해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옛날과 같은 부흥입니다! 성령의 권능이 다시 교회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교회에 그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격식에 치우쳐 다른 교회들처럼 행동하려 합니다. 다른… “너희는 특별 소유 백성이요, 왕가의 제사장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구별되어 부르심을 받아 나온 자들이니라.” 하나님께서는 교회가 다시 성령과 함께해야 한다는 것을 아십니다. 설령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든, 그분을 떠나지만 마십시오. 그분과 함께 머무십시오.
때로는 그렇게 하는 것이 아주 큰 의미를 지닙니다. 때로는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는 것은 가질 가치가 없습니다. 위대한 것은 모두 값을 치러야 합니다. 오늘 이 추수감사절에 우리가 경배를 드릴 수 있는 것, 종교의 자유를 누리는 것에는 많은 미국인, 수백만 명의 피라는 대가가 들었습니다. 그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만한 가치가 있다면 목숨을 바칠 가치도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이 신앙, 우리 위에 임하신 이 오순절의 성령, 천구백 년이 지난 뒤에도 살아 계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다시 모셔 오는 이것은, 우리의 모든 시간과 수고와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바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모든 것을 바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패니 크로스비가 말했습니다. “나의 모든 위로의 근원이신 주, 내 생명보다 더 귀하신 주, 이 땅에서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까? 하늘에서도 주 외에 누가 있으리까? 오, 온유하신 구주여, 나를 지나치지 마소서.” 그렇습니다. 우리는 돌아와서 그분을 붙들어야 합니다.
제자들은 모든 소망이 사라진 것을 보았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거의 그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우리가 세운 거창하고 훌륭한 수백만 달러짜리 유엔들과 교회들의 유엔, 수백만 달러짜리 교회 건물 등 그 모든 것을, 작은 원자폭탄 하나가 쓸어 버릴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오, 와서 내게서 기름과 포도즙과 불로 정제한 금을 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온 세상이 불타오를 때, 저는 그때에도 견딜 수 있는 것을 원합니다. 저는 무언가를 원합니다. “만세 반석이시여, 나를 위하여 갈라지셨으니, 내가 주 안에 숨게 하소서.” 주 안에 숨게 하소서. 제 기억으로는 찰스 웨슬리였던 것 같습니다. 그가 길을 걷고 있는데 폭풍이 몰려왔고, 작은 새 한 마리가 그의 품으로 날아들었습니다. 그는 찬송을 지을 영감을 얻으려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 새를 자신의 작은 오두막으로 데려가 폭풍이 지나갈 때까지 품어 주었습니다. 밖으로 나가 손가락 위에 올려놓자 새는 날아갔습니다. 그때 그는 “만세 반석 안에 나를 숨기소서”라는 찬송을 썼습니다.
자, 그가 보았을 때… 그들이 그것을 보았을 때, 사탄은 독기 어린 입김을 불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을 뒤흔들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배는 거의 끝장날 지경이었습니다. 오늘 밤, 인생의 엄숙한 바다를 건너가는 우리의 작은 배를 생각해 봅니다. 혹시 사탄이 여러분의 항해를 뒤흔들어 놓지는 않았습니까? 여러분에게 암을 주거나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어, 여러분이 하나님에게서 떠나게 되었거나, 어딘가에서 여러분을 뒤흔들어 놓지는 않았습니까? 문제가 닥쳐와 살아날 소망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도 아시듯이, 그때나 지금이나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무 멀리 가 계시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분께서 그 지역에서 가장 높은 산에 오르셨다고 믿습니다. 그분께서… 높이 올라갈수록 더 멀리 보입니다. 그분은 그들을 지켜보시려고 산꼭대기에 오르셨습니다. 어려움이 닥쳐오는 내내, 그분은 저 위에 앉아 그들을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에서 그분을 죽이고 빌린 무덤에 장사했지만… 부활절 아침에 그분께서 나오셨을 때, 그분은 올라가기 시작하셨습니다. 달을 지나고 별들을 지나 올라가셔서, 마침내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편에 앉으셨습니다! 시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분의 눈은 참새를 살피시니, 나를 지켜보심도 나는 아네.” 저는 이 날이 다가오는 것을 봅니다. 선지자는 마지막 날들에 어느 날이 오리라고 말했습니다. 밤도 아니고 낮도 아닌, 그저 어둑어둑한 날 말입니다. 그러나 그는 “저녁때에 그것이 빛이 되리라”라고 말했습니다. 자, 그 빛은… 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에서 집니다. 영어로 s-u-n, 해 말입니다. 그리고 S-o-n, 아들께서도 동쪽에서 동방의 백성에게 오셔서 오순절 부흥의 빛을 비추셨습니다. 그분의 부활을 보여 주는 표적들과 이적들이 그들 가운데 나타났습니다. 그분께서 하셨던 일들을 그들도 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요한복음 14장 7절인 것 같습니다. 거기서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또한 내가 하는 그 일들을 할 것이요. 조금 있으면 세상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나를 보리라.” 여기서 ‘너희’는 교회, 믿는 사람입니다. “너희는 나를 보리라.” 그분께서는 세상의 끝까지 항상 그들과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고 너를 버리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온 세상으로 가서 복음을 선포하라.” 어디까지입니까? “온 세상.” 누구에게입니까? “모든 창조물에게.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그분은 여전히 동일한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고 나서 어느 날이 왔습니다. 한 날이, 한동안의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여기 루이지애나와 아칸소, 이 나라 곳곳에 안개가 끼듯 어둑어둑한 날입니다. 해를 볼 수는 없어도 해가 빛을 주고 있다는 것은 압니다. 우리에게는 교파를 만들 만큼의 빛이 있었고, 교회에 가입할 만큼의 빛이 있었고, 그분을 구주로 받아들일 만큼의 빛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지자는 마지막 날들, 마지막 시간들에 해가 비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녁때에 그것이 빛이 되리라.” 이제 해가 지고 있습니다. 해는 동방의 백성 위에 떠올랐고, 서방의 백성 위에서 지고 있습니다. 동쪽을 비추었던 바로 그 해가 서쪽에서 집니다. 동쪽에서 뜨고 서쪽에서 지는 것은 같은 해입니다. 우리는 마지막 날들에 살고 있습니다. 그 동일한 아들, S-o-n이신 그 동일한 분, 그 동일한 성령의 권능이 동방의 백성에게 임했던 것처럼 서방의 백성에게 임하여 같은 복음의 빛을 보여 주는 날에 이른 것입니다. 신학도 아니고, 교회 조직도 아니고, 가입하는 것도 아닙니다. 권능입니다! 그분의 부활과 치유하시는 권능의 증거, 그리고 마지막 날들에 그분께서 그들 가운데 계심을 보여 주는 표적들과 이적들입니다. 저녁때에 빛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 있습니다. 우리가 이곳에 이르렀습니다.
동방은 저 멀리까지 왔습니다. 문명은 동쪽에서 나와 서쪽으로 이동해 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서해안에 있습니다. 더 멀리 가면 다시 동쪽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우리는 마지막 때에 있습니다. 배들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문명들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교회들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여러 해 전에 쓰인 그 찬송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민족들은 무너지고, 이스라엘은 깨어나네.” 이스라엘은 이제 자기 나라를 이루었고, 자기 고국에 있습니다. “선지자들이 예고한 표적들, 이방인들의 날은 얼마 남지 않았고 공포로 짓눌리니, 오, 흩어진 자들아, 너희의 땅으로 돌아오라.” 지금은 식어 갈 때가 아닙니다. 뜨거워질 때입니다! 기도회를 열 때입니다! 우리는 라오디게아 시대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때이며, 부흥할 때입니다. 조금 전에 뒤에서 라일 형제님을 만났는데, 그가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지금 여기서는 집회마다 부흥의 조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것이 우리가 원하는 것입니다. 오, 주님, 지금 권능을 보내 주소서. 우리는 부흥을 원합니다. 교회에 가입하는 것이 아니라 부흥을 원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것을 다시 살아나게 해 주십시오.
그 제자들은… 우리는 그들이 저지른 것과 같은 실수를 하지 맙시다. 모든 소망이 사라져서, 그들은 더는 부흥을 경험할 수 없고 이 땅에 살아 있는 동안 다시는 예수님을 뵐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소망이 사라진 가장 어두운 시간에, 그분께서 물 위를 걸어 그들에게 오셨습니다. 그분은 오늘도 우리에게 걸어오십니다. 물 위를 걸어오십니다. 계시록 17장 15절은 “네가 본 물은 빽빽이 모인 사람들과 무리들이니라”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백성 가운데 걸으시며 역사하시고, 그 옛날 행하셨던 것과 똑같은 일들을 행하시는 것을 볼 때 말입니다. 그 제자들과 다른 사람들이 그분을 메시아로 알아보았을 때 그들의 마음이 감동되었습니다. 우리의 마음도 감동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날 밤 갈릴리 바다에서 그들이 저지른 실수를 하지 맙시다.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유일한 분, 그들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분, 그들을 건져 낼 수 있는 유일한 분을, 그들은 두려워하며 유령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우리는 같은 실수를 하지 맙시다. 그분이 그렇게 하신다면, 전능하시므로 어디에나 계시는 그분, 지금 아시고 들으시는 그분께서! 오늘 밤 자신의 백성 가운데 걸으시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그때 하셨던 일들을 행하시기만 한다면, 여러분은 우리가 전하는 이 복음이 사람이 만든 신학도 아니고 사람이 만든 이론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백성 가운데 걸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입니다. 그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을 도울 수 있는 유일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기적의 시대는 지나갔다. 성령은 예전과 같지 않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더라도 믿지 마십시오.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습니다. 오늘 밤 살아 계십니다. 제 기도는 그분께서 오늘 밤 우리 가운데 걸으시며 일하시고, 병든 사람들을 고치시고, 그때 하셨던 것과 똑같은 일들을 행하셔서, 그분이 우리와 함께 계시며 동일한 분이심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나니라.” 아, 사람들은 “저 사람은 정신력이 강하군. 저 여자에게는…” 하고 말합니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심리학이 아닙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제게 아무리 기름을 부어 주셔도, 여러분이 믿도록 여러분에게도 기름을 부어 주셔야 합니다. “그분은 자신의 고향에서 그들의 불신 때문에 많은 기적을 행하실 수 없었습니다.” 그분은 제게 기름을 부으시는 것과 똑같이 여러분에게도 기름을 부어 주셔야 합니다. 오늘 밤 오셔서 우리 모두에게 기름을 부어 주신다면… 아, 제가 보고 싶은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교회 안에, 사람들 위에 임하시는 성령의 기름부음, 곧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말할 것입니다…
바울이, 그 위대한 성 바울이 말했습니다. “너희 가운데 있는 모두가 방언으로 말하고 아무도 통역하지 않을 때 배우지 못한 자들이 들어오면, 그들은 나가서 ‘너희가 모두 미쳤다’고 하리라.” 다시 말해서, 모두 방언을 말하는데 통역하는 사람이 없으니 정신이 나갔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말했습니다. “만일 선지자가 있고, 예언하는 자가 마음의 은밀한 것을 드러내면, 그들이 엎드려 ‘참으로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 계신다’고 하리라.”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언제나 그 선지자가… 그들은 그것을 알았습니다. 옛날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가운데 영적인 사람이나 선지자가 있으면 나 주가 그에게 나를 알리리라. 그가 말한 것이 이루어지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라.” 그러므로 그 시대의 유대인들에게는 변명할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모세가 말한 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사야가 말한 것, 구약성경이 말한 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입증되었습니다. 그분은 그 선지자이셨고, 진리를 말씀하셨으며, 하나님께서 그분의 표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물론, 그들이 눈멀어야 했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에게 기회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기회가 있도록 그들은 눈멀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루터기가 거룩하고 우리가 접붙여진 포도나무라면, 우리는 어떻게 걷는지 조심해야 합니다. 밤의 자녀가 되지 맙시다. 낮에 걸읍시다. 예수님을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신 성령께서 오늘 밤 오신다면… 그분께서는 약속하셨습니다. “조금 있으면 믿지 않는 자는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나를 보리라. 나, 곧 ‘나’는 인칭대명사인데, 내가 세상의 끝, 곧 완결될 때까지 너희와 함께, 너희 안에 있으리라. 내가 세상의 끝까지 너희와 함께, 너희 안에 있으리라. 내가 하는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 이것이 약속이 아닙니까? 약속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루어질까요?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것이 이루어진다면 전부 이루어집니다. 그분께서 살아 계심을 입증하실 수 있다면 말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살아 계심을 입증하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분께서 여러분 안에서 그것을 입증하시게 하고, 저도 제 안에서 입증하시게 한다면, 제가 여러분에게, 여러분이 저에게 그분이 살아 계심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분은 오늘 밤 자신의 백성 가운데서, 그때처럼 물 가운데를 걷고 계십니다. 그분을 두려워하지 말고 믿읍시다. 이제 잠시 기도하기 위해 고개를 숙입시다.
오, 예수님을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일으키시고, 그분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심을 선포하시도록 교회 앞에 그분을 나타내신 주님, 우리는 참으로 기쁩니다. 우리는 세계 곳곳에서 이교도들이 손에 우상을 들고 집회에 들어오는 것을 보았고, 주술사가 온갖 주문을 걸려고 하다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마비되어 꼼짝하지 못하고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상을 숭배하던 원주민이 자기 우상을 땅에 내리쳐 부수며 “저 하나님, 권능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게 하라”라고 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주님은 여호와, 권능의 하나님, 기적의 하나님이십니다. 주님, 우리 고국에서도 학자들과 선생들까지 주리고 목마른 것을 보니 참으로 기쁩니다. 오, 주께서는 “주리고 목마른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이기 때문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위대한 사람들이 빛이 터져 나오는 것을 보고 있음을 알게 되니 기쁩니다. 오, 하나님, 오늘날 이스라엘이 고국으로 돌아와 한 나라를 이루고, 저기에 옛 다윗의 육각별이 펄럭이는 것을 보니 기쁩니다. 돌아오는 저 유대인들은 고국에서 죽으려고 돌아온 것이 아니라 메시아를 보려고 왔다고 말합니다. 하나님, 그렇다면 우리의 날들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압니다. 노아가 에녹을 지켜보며 에녹이 온 직후에 심판이 땅에 닥치리라는 것을 알았던 것처럼, 우리도 지켜보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방주가 다시 준비되는 것을 볼 때, 우리는 들려 올라갈 때가 가까이 왔음을 압니다. 아버지, 우리는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 밤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작은 무리 가운데서 기도합니다. 많은 이들이 팔다리가 아플 때까지 서 있었습니다. 주님, 오늘 밤 그들에게 보답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들을 축복해 주소서. 병든 저 여자들과 남자들, 어린 자녀들을 여기에 데려온 그들이 지금 마음을 가라앉히고 하나님의 전신갑주가 초자연적이라는 것을 알게 하소서. 자연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모두 초자연적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초자연적인 것을 믿어야 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갑주는 사랑, 기쁨, 믿음, 화평, 오래 참음, 선함, 온유, 부드러움, 인내, 성령입니다. 이 모든 것은 보이지 않지만 실재하며, 죽지 않습니다. 영원히 살아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이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압니다. 어린 자녀들을 품에 안고 껴안고 꼭 끌어안아도 마음이 채워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혼을 그들의 혼 속으로 끌어들이고 싶습니다. 오늘 내려오면서 땅을 바라보고 풀이 죽어 가고 나무들이 죽어 가는 것을 보며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저도 죽어 가고 있습니다. 온 세상이 죽어 가고 있습니다.’ 분명 어딘가에는 살아 있는 세계가 하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밤 나침반과 닻을 제자리에 갖추게 하소서. 이 땅의 항구에서 매인 것을 풀고 떠나, 약속을 주신 그분께 믿음으로 날아가게 하소서.
이제 아버지, 오늘 밤 제가 기도받을 분들을 줄 세워 기도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이 주께서 나타나셔서 방금 우리가 이야기한 일들을 행하시는 것을 볼 수 있도록 말입니다. 주께서는 “사람이 나를 믿으면 내가 하는 일들을 그도 하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메시아가 계시며 그것이 그분의 표적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주께서는 “노아의 날들에 그러했던 것같이… 또 롯의 날들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날들에 오늘날의 빌리 그레이엄 같은 이가 소돔으로 내려가 복음을 전하고, 육적인 교회인 롯을 데리고 나왔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교회인 아브라함과 사라에게는, 그들과 함께 머물며 초자연적인 표적을 보여 주신 한 분이 계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장막을 등지고 계시면서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아내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분은 낯선 분이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당신 뒤에 있는 장막에 있나이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분은 생명의 때를 따라 아브라함을 찾아오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장막 안에 있던 사라는 마음속으로 웃었습니다. 그러자 천사가 “어찌하여 그녀가 웃었느냐?” 하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세상이 불타기 바로 얼마 전에 주어진 표적이었습니다. 주께서는 “그날에 그러했던 것같이 이날에도 그러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주께는 여전히 천사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천사가 사람의 육체 안에 나타나셨음을 깨닫습니다. 곧 아브라함 앞에서 사라지셨고, 아브라함은 그분을 “엘로힘”, 곧 하나님이라고 불렀기 때문입니다.
이제 주님, 오늘 밤 우리의 육체에 오셔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소돔에서 보여 주셨던 것과 똑같은 표적들을 보여 주소서. 어딘가에 서 있거나 앉아 있는 믿지 않는 이가 있다면, 이제 불이 임할 때가 되었음을 보게 하소서. 롯의 날들에 이 천사가 자신을 알리셨을 때 임한 것은 불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오늘 밤 그분을 보내 주소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주의 성령께 내어드립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행하셨던 것처럼, 성령께서 예수님이 행하셨던 일들을 행하게 하소서. 그 뒤에 그분께서 글로바와 다른 한 제자를 방 안에 있게 하시고 문을 닫으신 뒤 그들 앞에서 그 일을 행하셨을 때,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분께서 길에서 우리와 말씀하실 때에 우리 마음이 우리 속에서 뜨겁지 아니하더냐?” 그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행하셨던 것처럼 무언가를 하셨기 때문에, 그들은 그분이 부활하신 주님임을 알았습니다. 이제 아버지, 오늘 밤 우리가 이야기한 그 작은 배 안에서 제자들이 이야기하고 있던 것과 똑같은 일들을, 오늘 밤 우리 가운데서 행하여 주소서. 많은 사람이 길을 걸어가며 “그분께서 길에서 우리와 말씀하실 때에 우리 마음이 우리 속에서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말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