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오늘 아침 다시 이곳에 오게 되어 참 기쁩니다. 방금 이 눈에 관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콜로라도에 있다면 이 눈은 아주 부드럽고 보송보송할 테고, 기온은 영하 40도쯤 될 것입니다. 이렇게 [브래넘 형제님이 입으로 붑니다] 후 불면 바닥의 흙먼지가 나올 때까지 눈이 날아갈 것입니다. 겨울 내내 그럴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는 이런저런 기후의 중간 지대라서 눈이 아주 축축하고 질척거리고 좋지 않습니다. 이럴 때면 그냥 애리조나로 날아가서 봄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돌아오고 싶습니다. 우리가 모두 감기에 걸리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병균 같은 것들이 땅바닥에 있다가 얼었다 녹았다, 또 얼었다 녹았다 합니다. 그러다가 위로 올라오면 우리가 그것을 들이마셔서 목이 아프고 머리가 아프고 온몸이 쑤시고 아픕니다. 아이고, 이런 날씨, 이런 곳이라니요! 그러나 강 건너에는 한 땅이 있네, 사람들이 복된 영원이라 부르는 곳, 오직 믿음으로만 그 기슭에 이를 수 있네. 한 사람씩 그 문에 들어가, 불멸의 이들과 함께 살리니, 언젠가 그 황금 종이 그대와 나를 위해 울리리. 그러면 우리가 돌아가 영원히 머물 집이 바로 그곳이지요? 우리가 기다리는 날이 바로 그날입니다.
지난밤 형제님들에게서 들은 훌륭한 설교와 모든 말씀을 참으로 즐겁게 들었습니다. 팻 타일러 형제님은 어디 계십니까? 오늘 아침 나오셨습니까? 팻, 아, 못 봤습니다. 바로 거기 버젓이, 아주 편안하게 앉아 계시는데도 못 봤군요. 팻 형제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처음 들었습니다. 정말 좋았습니다. 우리 모두 그랬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설교처럼 불같은 간증을 하신 그 형제님이 계셨지요. 정말 기관총을 쏘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오하이오에서 오신 어떤 형제님인데, 제가 만났습니다. 오늘 아침 여기 어디 계십니까? 네빌 형제님도 그분이 얼마나 빠르게 말씀을 쏟아내시는지 말씀하셨습니다. 그다음에는 J. T. 파넬 형제님이 하셨고, 빌러 형제님 차례까지는 가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파넬 형제님은 여기 계십니까? 파넬 형제님? 빌러 형제님? 잘 모르겠습니다. 빌러 형제님을 본 것 같았는데요.
이 조명이, 이게... 새 예배당을 지을 때는 이것을 좀 다르게, 조금 다르게 설치했으면 좋겠습니다. 이곳은 처음 지은 곳이라 시험 삼아 해 본 것입니다. 그러니 새 예배당을 짓게 되면 이것과는 조금 다르게 하고 싶습니다. 앞이 안 보입니다. 저는 예배당의 회중석이 이렇게 아래로 경사지도록 지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언제나 회중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특히 분별 집회에서는 이렇게 쭉 둘러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이쪽저쪽으로 사람들을 짚어 볼 수 있지요. 작은 발코니를 내야 하더라도 그편이 더 낫습니다.
빌리가 여기 있다면 말씀드리는데, 리틀필드 형제님이 어젯밤 제게 전화하셨습니다. 제가 헌당했던 그 예배당의 명세를 보내시겠답니다. 건축가들이... 우드 형제님, 제 기억으로는 건축가가 설계도를 그리는 데만 500달러가 들었다고 합니다. 그분이 설계도와 함께 모든 자재의 가격이며 들어가는 2인치 곱하기 4인치 각재 하나하나와 다른 규격의 자재까지 전부 보내 주시겠답니다. 그것을 보내 주시고 직접 오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목재상 등에도 가서, 자기 예배당을 지을 때처럼 값을 깎아 줄 수 있는지 알아보시겠다고 했습니다. 아름다운 예배당입니다. 아주 크지는 않지만 참 아름다운 건물입니다. 그래서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빌리에게 보내 주시면 곧바로 관리위원들과 집사들에게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그분들이 예산이 얼마나 되는지, 건축을 시작하려면 얼마가 필요한지 알아보도록 하지요.”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시작하시면 제가 가겠습니다. 작업복을 입고 그동안 내내 함께 있겠습니다.” 리틀필드 형제님은 참 우아한 분, 은혜로운 분이십니다. 아주 좋은 분입니다.
자, 이제 새해를 시작할 준비가 모두 되셨습니까? 아멘. 새해를 향해 힘차게 나아갑시다. 주님을 섬기며 올바르게 시작하고 싶습니다. 오늘 아침 일어나 지난 한 해와 그 한 해가 가져다준 모든 것을 주님께 감사드리고, 지나간 잘못은 잊어 주시라고 구한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저희는 일어나 침대 곁에서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그런 다음 식탁으로 갔습니다. 보통 식탁 주위에 모여 기도하며 작은 가정 제단을 쌓습니다. 또 우리는 언제나 밤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 기도하는 습관을 들이려고 합니다. 저는 처음 회심했을 때부터 그렇게 해 왔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가 걸어가기에는 너무 어둡고 안개가 짙습니다.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주님께 제 손을 잡고 온종일 인도해 주시기만을 구하면...
아직 제가 젊고 빌리 폴이 서너 살쯤 되었을 때, 바로 이 길 건너편에 살던 때가 생각납니다. 어느 날 밤 빌리가 물을 마시고 싶어 했습니다. 물은 부엌에 있었고, 물통 안에 국자가 있었습니다. 제가 말하기를... 아, 저는 너무 피곤했습니다. 하루 종일 고되게 일하고 한밤중까지 설교했습니다. 아이가 말했습니다. “아빠, 물 마시고 싶어요.” 제가 말했습니다. “빌리, 저기 부엌으로 가 보렴. 작은 탁자 위에 있단다.” 제가 그렇게 말하자... 아이가 일어나 눈을 비비며 그쪽을 보더니 “아빠, 무서워서 못 가겠어요” 하고 말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괜찮아. 그냥 얼른 가서 물 마시렴, 얘야. 아빠는 너무 피곤하단다.” 여기서 저 창문까지밖에 안 되는 짧은 거리였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그래도 무서워서 못 가겠어요, 아빠” 하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일어나 그 어린것과 함께 갔습니다. 아이가... 손을 내밀어 제 손을 잡았습니다. 그러기를 잘했습니다. 네댓 걸음도 못 갔을 때 미다가 바닥에 왁스를 칠해 놓은 곳의 깔개를 밟았습니다. 리놀륨 바닥 위였지요. 그게 어떤지 아시지요. 아이가 쭉 미끄러졌지만 제가 손을 잡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제 손을 더욱 꼭 움켜쥐었습니다. 저는 잠시 거기 서서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그렇습니다. 주님이 제 손을 잡아 주시지 않으면 단 한 걸음도 내딛고 싶지 않습니다. 언제 미끄러질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크고 힘센 손이 제 손을 잡고 계신 것이 느껴지는 한, 제가... 하는 때에도 주님이 저를 붙들어 주실 줄 압니다.”
그래서 저는 그렇게, 제 손을 주님의 손에 맡기는 습관을 들이려고 합니다. 때로는 제 눈에도 우스꽝스러워 보이고 인간의 생각으로는 너무나 자연스럽지 못해 보이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대로 맡겨 두고 보면, 그것이야말로 올바르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여기서는 옳지 않아 보이는 일이라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그 일로 인도하신다면 저 앞 어딘가에서는 옳게 드러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도할 줄 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모든 것이 넉넉한 은혜이시고, 우리에게 필요하거나 우리가 바라는 모든 것이 그분 안에 있으니, 그분 외에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변치 않는 손을 붙잡읍시다.
우리가 여기서 부르던 노래가 있습니다. 오랫동안 듣지 못했습니다. 저는 노래를 잘 못하고, 여기... 낯선 분은 안 계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노래를 조금씩 불러 보는 것입니다. 그저 노래가 참 좋기 때문입니다. 진 형제님, 이것까지 테이프에 담아 밖에 내보내시면...! 여기서 이런 노래를 부르곤 했습니다. 세월은 빠른 변화로 가득하고, 이 땅에는 흔들리지 않는 것 없네. 영원한 것에 소망을 두고, 하나님의 변치 않는 손을 붙잡으라! 이 노래를 들어 보신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아, 저는 참 좋아합니다. 여러분도 그렇지요? 한 절 불러 봅시다. 하나님의 변치 않는 손을 붙잡으라! 하나님의 변치 않는 손을 붙잡으라! 영원한 것에 소망을 두고, 하나님의 변치 않는 손을 붙잡으라! 한 절 불러 봅시다. 우리의 여정이 끝나고, 하나님께 신실하게 살았다면, 아름답고 밝은 영광의 집을, 기쁨에 찬 그대 혼이 보리라! 하나님의 변치 않는 손을 붙잡으라! 하나님의 변치 않는 손을 붙잡으라! 영원한 것에 소망을 두고, 하나님의 변치 않는 손을 붙잡으라! 원하시면 잠깐 일어나 기도합시다. 한 손을 하나님께 들고 다시 부르겠습니다. 하나님의 변치 않는 손을 붙잡으라! 하나님의 변치 않는 손을 붙잡으라! 영원한 것에 소망을 두고, 하나님의 변치 않는 손을 붙잡으라! 이 세상의 헛된 재물을 탐내지 말라, 그것들은 너무나 빨리 썩어 없어지네. 영원한 것에 소망을 두라, 그것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으리!
하늘에 계신 아버지, 주님, 이렇게 서서 그 옛 노래들을 부르는 것이 참 좋습니다. 그 노래들은 우리 마음 깊은 곳까지 들어가서 살아 계신 하나님, 주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표현하게 해 줍니다. 주님, 오늘 아침 손을 든 것은 “주님, 우리 손을 잡아 주옵소서” 하는 작은 기념의 표시였습니다. 제가 빌리 폴이 제 손을 꼭 잡았던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제가 붙잡아 주지 않았더라면 아이는 넘어졌을 것입니다. 오 하나님, 주님이 우리의 손을 잡아 주시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얼마나 많이 넘어졌겠습니까! 그 어린 아기가 엄마도 없이... 그리고 살아오면서 그 아이가 택했던 길들을 생각하면 벌써 오래전에 목숨을 잃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 손이 닿지 않는 곳까지 뻗어 나가 붙잡아 주실 수 있는 큰 손이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주님, 우리 혼이 이 몸에서 떠나는 것을 느낄 때에도 우리가 내밀어 붙잡을 수 있는 손, 우리를 강 건너로 인도할 손이 여전히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참 기쁩니다. 이런 것들을, 이런 확신을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이 복된 확신은 우리가 이 여정을 걸어가거나 인생의 엄숙한 바다를 항해하는 동안 우리를 흔들리지 않게 붙드는 혼의 닻입니다. 아버지, 시인이 말한 것처럼 기도합니다. “버림받고 파선한 형제가 우리가 용골을 곧게 세우고 흔들림 없이 나아가는 것을 보고,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용기를 얻어 다시 시도하게 하소서.” 우리가 걸려 넘어지거나 쓰러지더라도 모든 것이 넉넉하신 하나님의 큰 손이 우리를 도우려고 계신다는 것을 알게 하소서. 그분의 은혜는 넉넉합니다.
하나님, 이제 기도합니다. 오늘 아침 우리가 찬송하며 노래하고 기뻐하면서 새해를 시작하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인생의 여정 내내, 또 죽음의 강을 건너 약속의 땅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인도하실 줄 압니다. 오늘 아침 우리의 눈은 요르단의 넘실거리는 물결 너머, 클로버 들판과 늘 푸른 들판이 자라는 곳을 바라봅니다. 하나님, 우리 혼이 그 광경을 붙잡고 결코 놓지 않게 하소서. 언젠가 건너야 할 그 강물에 내려갈 때, 옛날 엘리야 때처럼 하나님의 겉옷이 죽음의 물결을 치게 하시고, 우리가 두려움 없이 건너가게 하소서. 주님, 허락하소서. 주의 말씀에 다가갈 때 우리를 도와주소서. 오 주님, 주님의 성령께서 이 말씀들에 기름부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가르치는 자가 아니므로 이것을 가르치기에는 참으로 부족합니다. 우리가 이것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 위대한 스승께서 오셔서 우리 마음에 거처를 정하시고, 우리의 생각과 사고를 온전히 주장하셔서 우리에게 거룩한 성경을 풀어 주시는 것임을 압니다. 우리는 그것을 온 마음으로 의지합니다.
하나님, 생각해 보니 참으로 놀랍습니다. 그처럼 살아 계신 아버지, ...부터 계셨으며 영원의 바로 그 시작이신 분께서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내려오셔서 우리를 도우시고, 주의 말씀을 가져와 우리의 입과 마음과 귀에 주시니, 우리가 듣고 살게 하시며 저주에서 구속하시려는 것입니다... 아버지, 그 저주가 들어오는 데 우리는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인류가 저지른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첫 부부의 자손으로서 죄 가운데 태어나고 불법 가운데 형성되었습니다. 그러나 의로우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은 우리가 그 일에 관여하지 않았음을 아시고 피할 길을 마련하셔서, 나아올 특권을 주셨습니다. 아버지의 집으로 온 것이 얼마나 기쁜지요!
이제 여기 우리 교회와 우리의 용감한 목사님이자 주님의 겸손한 종인 네빌 형제님을 축복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집사들과 관리위원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분들에게 지금까지 중 가장 좋은 한 해를 주옵소서. 주님, 허락하소서. 오래 살게 하소서. 주님, 힘을 주옵소서. 그들은 주님의 종들입니다. 언제나 맡은 자리에서 용감하게 서 있게 하소서. 평신도들과 교인들, 이 집에 오는 주님의 사랑하는 귀한 자녀들을 축복하소서. 하나님, 이 집 문턱을 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혼을 우리가 구합니다. 주님을 위해 그 혼을 구합니다. 성령으로 말씀을 아주 쉽고 참되게 전하여 그들이 주님을 닮고 싶어 하게 만드는 사역자들이 되도록 우리를 도우소서. 주님, 허락하소서. 이곳에 오는 병들고 고통받는 사람들과 온 세상의 그런 사람들을 고쳐 주소서. 하나님의 모든 집에서 그렇게 하소서. 마지막으로 주님이 일을 마치실 때, 우리가 주님의 문 안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환영의 식탁에 앉아 끝없는 세월 동안 함께 먹고 살게 하소서. 그때까지 건강과 힘, 행복과 기쁨, 권능과 능력을 누리게 하시고 성령의 복으로 인도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오늘 아침 훌륭한 연주에 감사합니다. 겨우 시간에 맞춰 들어왔습니다. 저 뒤 문간에서 좋은 친구인 스캐그스 형제님과 진 형제님, 또 다른 형제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일부밖에 듣지 못했지만 녹음기에는 아주 아름답게 담기고 있었습니다.
요한계시록 말씀은 즐겁게 듣고 계십니까? 좋습니까? 저도 저 뒤에 있는 어린 딸 사라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제게는 계시록이 “회전록”이 되었습니다. 돌고 또 도는 회전이지요. 지금부터 3월이나 4월까지 시간이 있어서, 여기 뒤쪽을 가로질러 아주 큰 캔버스를 걸어 놓고 낮에 내려와 그 그림들과 도표 전체를 그린 다음, 창문 가리개처럼 올렸다 내렸다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니까... 언젠가 어딘가에 아주 큰 예배당을 마련하는 꿈을 늘 꾸어 왔습니다. 손을 뻗어 이 도표를 끌어내리고, 요한계시록과 주님이 제게 주신 해석을 강단 이 끝에서 저 끝까지 펼치는 것입니다. 지시봉을 들고 거기서부터 시작하여 이 시대들을 차례로 살펴보는 것입니다. 그것을 다 마치면 위로 올리고, 이렇게 다른 것을 내린 뒤 그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가르치는 것입니다. 아, 작은 천국 같지 않겠습니까? 겨울 내내 앉아서, 주님과 함께 그 계절을 보내는 것입니다. 주님과 단둘이 있는 것은 참 좋습니다! 우리가 이런 노래를 부르곤 했지요. “내 주 그리스도와 단둘이 있고 싶은 때가 있네. 단둘이서 내 모든 괴로움을 그분께 아뢸 수 있네.” 그렇게 해야 합니다. 예전에 부르던... 로이 데이비스가 “조용히 물러가 예수님과 기도하라”라는 짧은 노래를 부르곤 했습니다. 모든 것이 그분을 가리킵니다... 바라보는 모든 것이 언제나 다시 예수 그리스도께로 이어지지 않습니까?
지난 여드레 동안 집회에서 이야기했던 교회 시대들에 관해서는... 그리고 어젯밤에는 요한계시록 4장 2절까지 살펴본 것 같습니다. 모두 어젯밤 이곳에 계셔서 들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오늘 아침에도 한두 절 더 나아갈 수 있을지... 주님이 어디까지 인도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여기 6절이나 7절쯤까지 살펴보았습니다. 어제 공부한 부분인데, 성경 여러 곳으로 돌아가 그 내용들을 찾아올 수 있도록 관련 구절을 조금 적어 두었습니다.
자, 우리는... 어젯밤에는 아마 2절에서 마치고 3절을 시작하려던 것 같습니다. 나팔 같은 음성, 그 음성이 울리는 곳에서 마쳤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다시 이어 갈 수 있도록 모두 읽겠습니다. 이 일 뒤에 내가 보니, 보라, 하늘에 한 문이 열려 있더라. 또 내가 들은 첫 번째 음성 곧 나팔 소리같이 내게 이야기하던 음성이 이르시되, 이리 올라오라. 이후에 반드시 있을 것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즉시 내가 영 안에 있었는데, 보라, 하늘에 한 왕좌가 놓여 있고 그 왕좌에 한 분이 앉아 계시더라. 그 왕좌에 앉으신 분... 앉으신 분의 모습은... 벽옥과... 홍보석 같고 왕좌 둘레에... 에메랄드 같은 모습의 무지개가 있으며.
아, 얼마나 아름다운 말씀입니까! 오늘 아침 내려오기 직전에 여기 6절까지 살펴보았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 이 부분은 그냥 지나갈 수가 없구나. 이 6절에는 짐승들을 다룰 때 모든 사람이 아주 잘 들어야 할 내용이 있구나.” 여기 나오는 짐승들의 여러 정의를 원어에서 살펴보면, 하나는 어떤 종류의 짐승이고 나머지 네 짐승은 다른 종류입니다. 하나는 그리스어로 “들짐승” 같은 동물입니다. 다른 것은 킹제임스 성경에서 정확히 번역되지 않았습니다. “짐승들”이 아니라 “살아 있는 창조물들”이기 때문입니다. 그 창조물들이 어떠했고, 무엇이었는지... 사람도 아니었고 천사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살아 있는 창조물들”입니다. 그들에게 어떻게 네 얼굴과 네... 아, 이것을 곧바로 복음과 연결한 다음, 다시 가져와 오늘날에 놓으면 여기에 나오는 것과 똑같이 완벽하게 들어맞습니다. 그리고 기억하십시오. 넷은 땅에 속한 수입니다. 그 부분은 아주 아름다운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거기까지는 못 나갈 것 같습니다. 어쩌면 나갈 수도 있겠지요. 정말 놀랍습니다!
주님 뜻이라면, 우리가 여기 있을 경우 다음 일요일에 다시 해 볼 수 있겠습니다. 떠나기 전에 이 4장을 끝까지 마칠 수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처음 어디로 떠나게 될지는 아직 정확히 모릅니다. 자, “이후에...” “이 일들 뒤에”라고 했습니다. “뒤에”라는 말은 교회 시대들이 끝난 뒤를 뜻합니다. 그때 요한은 더 높은 곳으로 올라오라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리 올라오라”는 “여기 위로 올라오라”는 뜻입니다. 주님은 교회 시대에 세상에서 일어날 모든 일을 그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그런 다음 교회 시대들이 끝났을 때, 요한은 그리스도께 위로 올라오라는 부름을 받을 모든 참된 신자의 모형이었습니다. 그렇지요? “이리 올라오라”는 부름입니다. 그에게 말씀하신 음성은 나팔 같은 음성으로, 맑고 분명했습니다. 여기 땅에서 그에게 말씀하셨던 것과 같은 음성이었습니다. 주님은 일곱 금 촛대 가운데 계시는 동안 그들에게, 아니, 그곳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아, “촛대들에서 말씀하셨다”는 말이 저는 좋습니다. 그분은 촛대들 안에 계셨고 그곳에서 자기 교회에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다가 교회 시대가 끝나자 땅을 떠나 하늘들로 올라가셨고, 구속하신 자들을 자신과 함께 올라오도록 부르셨습니다. 아, 아름답지 않습니까? 제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이런 일들을 이야기할 때, 저는 특히 새로 회심하신 분들, 여기 안나 자매님, 아니 이나 자매님과 남편, 로드니와 아내, 찰리와 그분들이 이 일들을 이해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가운데 많은 젊은 분들은 이제 막 주님께 나아와 아직 이 길을 멀리 걷지 않았고, 그분을 맛보아 선하시고 은혜로우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뿐입니다... 우리가 이 일들을 이야기하며 하려는 것은 여러분의 믿음을 굳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말씀을 하시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결코 어긋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백만 마일이나 떨어져 있어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어 보이더라도, 하나님은 모든 것을 움직여 반드시 이루십니다. 그렇게 하셔서 여러분을 시험하십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을 보십시오. 그가 아들을 25년이나 기다린 뒤에 “네 아들을 이 산꼭대기로 데리고 올라와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를 여기로 데리고 올라와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내가 너를 민족들의 아버지로 삼겠다.” 아브라함은 백 세였고 아내는 아흔 살이었으며, 그들의 외아들은... 그때 아브라함은 약 115세였습니다. 그러니 그가 말하기를,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저는 이렇게 나이 많은 노인이고 25년을 기다렸습니다... 제가 75세였을 때 약속해 주셨는데 이제 백 세입니다. 사라는 65세였는데 이제 아흔입니다. 어떻게 됩니까? 우리가 이 아기를 얻었는데... 이 오랜 세월 사라와 함께 살아온 뒤에, 저 옛날 25년 전 제가 75세였을 때 아기를 얻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생식 능력이 없었고 사라도 아이를 낳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됩니까? 그런데 주님은 제게도 생식 능력을 주시고 사라에게도 아이를 낳을 수 있게 하셨으며, 이렇게 오셔서 이 아기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아이를 열다섯 살까지 키웠습니다. 이 아이를 통해 이방인들과 세상의 모든 민족을 축복하시고, 심지어 저를 이방인들의 아버지로 삼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저를 아버지로 삼아, 주님, 장차 오는 시대들에 이 아이를 통해 하늘 아래 모든 민족의 아버지로 삼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아이를 통해 구속자가 오고, 그 구속자를 통해 온 인류를 구속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주님, 어떻게 하시려는 것입니까?” 그것은 아브라함의 생각이 아니었고 아브라함의 질문도 아니었습니다. 순종입니다! 그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제가 상관할 일이 아닙니다. 주님이 말씀하셨으니 주님의 말씀이 옳음을 압니다. 제게 하신 말씀을 지키실 수 있고, 제가 75세였을 때 저를 부르셔서 ‘너를 분리하고 낯선 땅으로 떠나라’고 하셨던 그 말씀을 제게 입증하실 수 있다면... 저는 이 땅에서 25년을 살았습니다. 노인이 되어 떠나왔고, 아내가 소녀였을 때부터 함께 살아왔습니다. 아내는 이복 누이였습니다. 그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 주님은 약속하신 이 아기를 주셨습니다. 저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나온 사람처럼 받았습니다. 주님이 ‘그를 죽이라’고 하시면, 다시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실 수도 있습니다.” 아, 바로 그렇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분은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여 이삭의 머리카락을 얼굴에서 쓸어 넘기고, 자기 아들, 자기 독자를 죽이려고 칼을 뽑았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본보기를 보여 주고 계셨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하셨습니까? 그럴 필요는 없으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이 악으로 가득한 이 어둡고 두려운 날에 여러분과 제가 이런 일들을 바라보며,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신다는 것을 알게 하시려고 그렇게 하셨습니다. 아무리 가망없어 보이고 아무리 불가능해 보여도, 하나님은 여전히 하나님이시며 하신 모든 약속을 지키십니다.
우리가 여기 치유 집회에 서 있을 때 제가 여러분에게 하려는 말이 그것입니다. 여기 서서 여러분은 “저는 아픕니다”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틀림없습니다. 여러분은 아픕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십니다! 그러면 그분이 내려오실 것입니다. 그분은 여러분을 고쳐 주시기 위해 여기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그분이 하신 일이 그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그것을 믿으라는 것뿐입니다. 아브라함처럼 굳게 붙드십시오. “하지만 의사는 제가 하루밖에 더 살지 못한다고 합니다.” 상관없습니다. 좋습니다. 그 사람이 아는 것은 그것이 전부입니다. 그가 알 수 있는 최선입니다. 아브라함이 이미 아이를 여기 올려놓았고 하나님의 말씀이 “가서 그 아이를 죽이라”고 하셨는데, 어떻게 이 아이를 다시 받겠습니까? 어떻게 그렇게 할 것입니까?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라고 하셨으면 그것으로 결정된 것입니다. “의사는 나을 수 없다고 하는데 어떻게 낫겠습니까?” 제가 따져 물을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나을 것이라는 사실이 여러분에게 계시되면, 여러분은 반드시 나으리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것을 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온전히 순종하며... 하나님은 어떻게 하실 것입니까? 마지막 순간, 마지막 5분, 마지막 3분, 마지막 2분, 마지막 1분, 마지막 30초, 마지막 1초가 다가왔습니다. 아이의 목숨을 빼앗으려고 이미 손을 들어 올렸을 때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거기서 멈추어라. 거기서 멈추어라. 네가 참으로 나를 신뢰하는 것을 알겠다. 아브라함아, 내가 이렇게 한 것은 장차 브래넘 태버내클에 보여 주려는 것이었다. 앞으로... 그들이 나를 신뢰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조금도 나를 의심해서는 안 된다. 나를 신뢰해야 한다!” 바로 그때 그가... 여기 희생물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일을 헛되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닙니다. 헛되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바로 그때 양 한 마리가 울었기 때문입니다. 작은 숫양 한 마리가 그 광야에서 뿔이 걸려 있었습니다. 우리가 그 이야기를 얼마나 많이 살펴보았습니까. 그 숫양이 어떻게 거기까지 갔습니까? 그 모든 들짐승 사이를 어떻게 지나갔습니까? 사람이 사는 곳에서 백 마일이나 떨어진 곳, 사자와 자칼과 늑대와 온갖 들짐승이 있는 곳, 물도 풀도 없는 높은 산꼭대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하나님이 창조하셨습니다. 그저 거기에 두신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도 그분을 보게 되다니요! 오늘 아침에는 제가 말하려는 바를 전하려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많이 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시작하기 전에 이렇게 배경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들리는 이 이야기들이 개인적인 뜻에서 하는 말이 아님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본보기를 보여 드리려는 것뿐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에 여러분의 믿음이 굳게 자리 잡고, 주님의 약속 위에 안식하시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을 더없이 완전하게 지키시며, 이제 우리에게 보여 주십니다...
아브라함이 여호와이레라고 불렀던, 바로 그 동일하신 분을 보십시오. 그 히브리어의 뜻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해 희생물을 마련하실 것이다”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길을 만드셨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셨다면... 노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그건 아브라함에게만 있었던 일이잖아요”라고 할지 모릅니다. 아닙니다. 모든 시대에 걸쳐 말씀하셨고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오늘 아침 살펴보듯이, 옛날 노아에게 “비가 올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습니다. 가장 큰 물줄기라고 해야 하나님이 땅에 물을 대시던 시냇물, 어디선가 솟아나는 작은 샘이었습니다. 그것이 당시 가장 큰 물줄기였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말합니다. “도대체 저 위에서 어떻게 물이 내려오겠느냐? 저 뜨거운 태양 아래 위쪽 어디에 물이 있는지 보여 다오.” “저 위에 물이 없더라도... 하나님이 방주를 지으라고 하셨고 비가 온다고 하셨다면, 내가 할 일은 방주를 짓고 준비하는 것입니다. 비가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여호와이레이십니다. 저 위에 물을 마련하실 수 있습니다.”
그분이 하신 일은 그저 인간, 어리석고 미련한 인간이 자기 과학으로 그분이 오리라고 아셨던 일을 그대로 일으키게 두신 것뿐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멸하신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세상을 멸합니다. 하나님은 아무것도 멸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보존하려 하십니다. 인간이 자기 지식으로 자신을 멸합니다. 에덴동산의 그 나무에서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어떤 광신적인 사람이 어딘가에서 원자력을 손에 넣었습니다... 그들에게는 그것이 있었습니다. 그때도 원자력을 다룰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아직 배우지 못한 일들을 당시에는 그것으로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만큼 발전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하던 일을 우리가 하려면 앞으로 서너 해, 혹은 그보다 더 걸릴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등을 지었습니다. 우리는 결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재현할 수 없습니다. 원자력을 얻지 않고서는,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습니다. 휘발유 동력이나 전력으로는 그 돌덩이 하나도 들어 올릴 수 없고 땅바닥에서 떼어 낼 수도 없습니다. 그중에는 공중으로 도시 한 블록 높이까지 올라가 있는 것들도 있고 무게는 10억 톤이나 됩니다. 어떻게 그 위에 올렸습니까? 그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풀어놓았습니다. 옛날에 누군가 그 원자폭탄 하나를 다른 이들의 방어망 안으로 날려 보냈습니다... “노아의 날들에 그러했던 것같이...” 그때처럼, 그런 문명, 그렇게 영리한 사람들이 있던 것처럼, “노아의 날들에 그러했던 것같이 그렇게 되리라. 사람의 아들이 오는 때에도 그렇게 되리라.” 그때 있었던 일이 되풀이되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얼마 전에는 현대식 상수도 시설을 발굴했습니다. 홍수 이전에 여기 아래쪽 멕시코에 있던 시설입니다. 신문에서 보셨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 것과 같은 현대식 상수도 시설이 땅속 아주 깊이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어떤 원자력 관련 일이 그것을 덮어 버린 것입니다. 폭발해서 이렇게 뒤집힌 것입니다.
자, “노아의 날들에 그러했던 것같이”—원자력이며 모든 것을 가진 영리한 사람들이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등을 지을 수 있었지요—“그날에 그러했던 것같이 그렇게 되리라.” 그러나 이 시대에는 그 일을 단축하실 것입니다. 에녹처럼 휴거되어 들림 받을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 그 일을 통과해 건너가게 될 사람들도 있습니다. 오늘 아침 우리는 그 부류, 노아가 홍수를 통과한 것처럼 건너가는 사람들에 속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전에... 이것을 잊지 마십시오! 빗방울 하나 떨어지기 전에, 하늘에 무엇 하나 나타나기 전에, 노아가 방주를 완성하기도 전에 에녹은 본향으로 옮겨졌습니다. 에녹은 죽지 않고 휴거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저 걷기 시작했는데 중력이 더 이상 그를 붙들지 못했습니다. 한 발이 조금 더 높이 올라가고, 다른 발이 조금 더 높이 올라가고, 또 다른 발이 조금 더 높이 올라가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어느새 그는 “세상이여, 잘 있거라” 하고 말했습니다. 그대로 걸어서 영광 안으로 올라간 것입니다. 노아가 주위를 둘러보니 어디에도 에녹이 없었습니다... 둘러보았습니다. 에녹이 어디로 갔는지 몰랐습니다. 그러자 “이제 방주 짓기를 시작할 때구나” 하고 말했습니다. 남은 자들을 건너가게 할 방주를 짓기 시작한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교회가 하늘로 들려 올라갔고, 이제 요한도 함께 올라갑니다. 어젯밤 살펴본 것처럼 부활한 이들의 모형인 것입니다. 그에게 땅에서 뒤를 돌아보라고 부르셨던 바로 그 음성이 위로 올라오라고 부르셨던 동일한 음성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 모든 그리스도인이여! 찰리, 어느 날 저기 켄터키에서 돌아서라고 부르셨던 그 음성이 “올라오라!” 하고 부르실 바로 그 음성입니다. 에번스 형제님, 기쁘지 않습니까? “돌아서라!” 하셨던 음성, 그 동일한 음성이 “올라오라!” 하실 것입니다. 아, 얼마나 놀라운 부르심입니까! 얼마나 확실한 실재입니까! 나팔처럼 맑고 분명하게, “돌아서라. 나를 섬기라! 내가 있는 곳으로 올라오라.”
거기서 우리는 그들이, 죽은 자들이 나타나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모세는 죽었다가 살아난 성도들을 나타내고, 엘리야는 마지막 날 자기 무리, 휴거된 무리와 함께 거기 서 있습니다. 모두 주 예수님 앞에 있습니다! 요한은, 그것을 계시받아... 예수님은 그가 죽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주님의 오심을 볼 때까지 산다고 해도 그들에게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그러자 제자들이 그 말을 퍼뜨렸습니다. 아, 지금 잠시라도 교회에게 아주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마다 하나님과 개인적인 삶을 산다는 것을 모두 압니다. 그것은 개인적인 일입니다. 영에 속한 일들은 여러분을 감히 말할 수도 없는 곳들로 데려갑니다. 제 작고 보잘것없는 사역에서도 이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어떤 말을 하고도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며, 그 말이 옳아 보이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 누군가 무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제가 지켜보면, 그 일이 더없이 완벽하게 돌아서 그 말에 맞아떨어집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이루십니다! 제가 그저 무언가 말하고 싶어서... “자, 잠깐만요. 아무개, 그 사람이 저기서 이런 일을 겪을 텐데,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정말이지 왜 그렇게 말했는지 저도 모릅니다. 그런데 어느새 정확히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십니다!
이 제자들이 “아, 예수님께서 ‘이 사람은 죽지 않으리라’고 말씀하셨다”고 했지만, 예수님은 결코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올 때까지 그가 산다 해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그 말을 퍼뜨리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은 손을 내밀어 요한을 붙잡아 위로 데려가셨고, 그 모든 일을 미리 겪어 보게 하셨습니다. 주님이 오시는 일을 미리 보게 하신 것입니다. 요한은 교회를 보았습니다. 교회 시대의 끝을 보았습니다. 유대인들의 끝을 보았습니다. 재림을 보았습니다. 모든 순서를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하셔야 했던 일을 보십시오. 저 아래서 그를 기름에 약 스물네 시간 삶게 하셔서, 그가 신적인 존재임을 그들에게 보여 주셔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혼에 속한 것, 바깥쪽의 혼에 속한 것, 혹은 여러분이 무엇이라고 부르든 그 인간의 육체에 기름을 부으셨고, 거기에 하나님의 능력을 깊이 새겨 놓으셨으므로, 스물네 시간 동안 펄펄 끓는 기름도 그를 그슬리지 못했습니다. 사람을 삶아서 성령을 빼내려 한다니, 그런 일은 할 수 없습니다. 그런 다음 그를 밧모섬으로 보냈고, 그는 그 책을 쓴 뒤 돌아와 여러 해 동안 설교했습니다.
물론 그는 나쁜 이름을 달고 다녀야 했습니다. “그는 점쟁이다. 그는 마법사다.” 요한이 마법사라고 불렸다는 것을 아시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틀림없습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불리셨습니다. 세상은 이런 일들을 전혀 모릅니다. “그는 남의 마음을 읽는 사람이다.” 그들은 요한이 기름에 마법을 걸 정도로 대단한 마법사여서, 그가 마법을 걸어 놓았기 때문에 기름이 그를 태울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단지 그가 그들의 가톨릭 사상에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뿐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겸손한 종이었습니다. 저 아래에 작은 선교회를 맡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 커다란 것들과 타협하려 하지 않았으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키시고 보존하셨습니다. 성 마르틴과 이레니우스, 시대마다 이어져 온 모든 이에게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오늘날에도 똑같이 하시며 계속 내려오십니다.
이것을 결코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큰 흔들림과 크고 능한 일들을 약속하셨습니다. 지금 적고 계신 노트에 이것을 쓰십시오. 인간이 능하고 크다고 하는 것을 하나님은 어리석다고 하시고, 인간이 어리석다고 하는 것을 하나님은 크다고 하십니다. 잊지 마십시오. 잊지 마십시오. 앞으로 여러 해 동안 여러분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더 큰 일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더 큰 것을 받고 있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모릅니다. 노아의 날에도 알지 못했습니다. 요한의 날에도, 예수님의 날에도, 사도들의 날에도, 이레니우스의 날에도 알지 못했습니다. 어느 시대든 그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잔 다르크도 그저 어린 소녀였을 때부터 거룩한 여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환상 가운데 그녀에게 말씀하셨고, 천사가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가톨릭교회가 무엇이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저 여자는 마녀다.” 그래서 기둥에 묶어 불태워 죽였습니다. 가톨릭 사제들이 그녀를 죽인 것입니다. 마녀라는 이유로 사형을 선고했고, 잔 다르크는 마녀로 죽었습니다. 약 200년 뒤 그들은 그녀가 마녀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제자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성도에게 똑같이 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조상들이 박해하지 않은 자가 누구냐? 선지자가 와서 그들에게 거절당하지 않은 적이 있느냐?” 또 말씀하셨습니다. “회칠한 담들아, 너희가 가서 선지자들의 무덤을 꾸미지만, 그들을 그 안에 넣은 자들이 바로 너희다.” 음! 참으로! 그분은 조금도 봐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대로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은 말했습니다. “뱀들의 세대야, 누가 너희에게 경고하여 다가오는 진노를 피하게 하더냐? 너희 아버지가 아브라함이라고 말하기 시작하지 말라.” “우리는 어떤 큰 조직에 속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십니까?” “아, 저는 감리교인입니다.” “저는 장로교인입니다.” “저는 오순절교인입니다.” 그런 것은 전혀 해당되지 않습니다. 눈이 햇빛과 상관없는 것만큼이나 아무 상관도 없습니다.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여러분은 다시 태어난 하나님의 종입니다.
요한이 왔을 때... 어젯밤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이 부분에 올 때, 전체 문맥을 위해 제가 말씀드렸던 것을 기억하십시오. 지금 세상이, 교회 세계가 이제껏 겪어 본 것 중 가장 강한 흔들림을 겪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요한의 날과 예수님의 날에는 틀림없이 큰 절기 행사도 있었고 뛰어난 연설가들도, 지성이 뛰어난 위인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수만 명에 수천을 곱한 수많은 사람을 모았습니다. 가야바가 모임을 소집하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온 예루살렘을 모았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구석구석에서 모두 불러 모았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 가야바가 이러이러한 말을 하면 참 대단할 거야” 하고 말했습니다. “랍비님, 목사님, 박사님, 감독님, 성경을 믿으십니까? 성경을 믿으십니까?” “물론 성경을 믿지요. 나는 이름난 학자입니다.”
“좋습니다. 여기 성경을 보면 언젠가... 모든 산이 어린 숫양같이 뛰고 모든 잎사귀가 손뼉을 치며, 높은 곳들은 모두 낮아지고 낮은 곳들은 모두 높아지는 때가 온다고 했습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음성으로 그것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랍비님, 성직자님, 박사님, 목사님, 그 말씀을 믿으십니까?” “물론 믿습니다.” “어떻게 이루어지겠습니까?” “언젠가 하나님이 이 땅에 능력 있는 사람을 보내실 것입니다. 아, 그 사람은 위대할 것입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음성이 되어, 곧 오시는 메시아에 앞서 갈 것입니다. 그가 올 때 하늘에서 내려와 성전으로 올 것이 틀림없습니다. 바로 여기 성전에 내려와 말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로마인들을 전부 때려죽일 것이다. 그것뿐이다. 모든 로마인을 때려눕힐 것이다.’ 그런 다음 ‘메시아여, 내려오소서’ 하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면 메시아가 내려오시고, 우리가 모든 가지치기 낫을... 아니, 칼을 쳐서 쟁기 보습과 가지치기 낫으로 만들 것이며 더 이상 전쟁이 없을 것입니다.” 예, 그것이 그들의 해석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왔을 때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하늘의 거창한 광경은 없었습니다. 그들은 보지 못했습니다... 있기는 있었지만 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들은 그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모든 산이 어린 숫양같이 뛴 때가 언제였습니까? 높은 곳들이 모두 낮아지고 낮은 곳들이 높아진 때가 언제였습니까? 얼굴에 수염이 덥수룩한 설교자가 광야에서 걸어 나왔는데, 그 사람은 글자도 몰랐습니다. 역사에 따르면 아홉 살에 광야로 들어가 서른이 될 때까지 다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메뚜기와 들꿀을 먹고 살았습니다. 메뚜기라는 것은 그 길쭉한 메뚜기들입니다. 사람들은 늘 그것을 먹습니다. 바로 여기에서도 살 수 있습니다... 나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원하면 바로 여기 슈퍼마켓에서도 살 수 있습니다. 뒤영벌, 꿀벌, 메뚜기, 방울뱀,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는 메뚜기와 들꿀을 먹고 살았습니다. 대단한 식단이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권능이 그를 지키셨습니다. 어젯밤 파넬 형제님인지 어느 분이 말씀하셨듯이, 그는 옷깃을 뒤로 돌린 옷을 입지 않았습니다. 기다란 예복이나 그런 옷을 입지 않았습니다. 커다란 양가죽 한 장을 몸에 두르고 광야에서 나왔습니다. 제가 말씀드렸듯이, 아마... 우리는 날마다 목욕해야 하지만, 그는 그 광야에서 서너 달에 한 번도 목욕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저는 모릅니다. 겉모습은 볼품이 없었습니다. 강단도 없었습니다. 대도시로 들어가 대전도 집회를 열지도 않았습니다. 요르단 강둑, 진흙이 무릎까지 올라오는 곳에 서서 말했습니다. “독사들의 세대야, 누가 너희에게 경고하여 다가오는 진노를 피하게 하더냐?” 바로 그때 높은 곳들이 낮아지고 낮은 곳들이 높아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다가 어느새 그들은 메시아가 천사들과 함께 내려와 성전 바깥에 마련해 놓은 덮개 위에 자리 잡으시리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분이 오시도록 그곳을 만들어 놓았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여러 나라에 거대한 장소들을 짓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그분은 어떻게 오셨습니까? 그 모든 회당과 그 모든 조직을 지나쳐 마구간으로 내려오셨습니다. 그들이 그분을 그렇게 몰아넣은 것입니다. 오늘날도 그렇습니다. 그분은 어떤 상황들로 몰리시고, 그렇게 하실 수밖에 없고, 초교파적이실 수밖에 없습니다. 그분의 메시지가 교단들과 뜻을 같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그분의 사역자들이 전하는 그분의 메시지는 초교파적입니다. 교단들이 그분을 쫓아내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분은 자기 교회 바깥에서 들어오려고 문을 두드리고 계셨습니다. 바로 그런 상태입니다. 오늘날도 똑같습니다.
그러니 기억하십시오. 사람에게 커 보이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는 작습니다. 그래서 온갖 화려한 장식이 필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시 오실 때,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저 뒷골목의 세탁하는 여인을 보고 여러분은 놀라실 것입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의 비밀을 간직한 채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살아가는 그 사람을 보고 놀라실 것입니다. 놀라실 것입니다. 얼마 전 저는 심판에 관해, “심판 때의 놀라움”이라는 설교를 했습니다. 밀주 장수가 거기 있는 것은 놀랍지 않을 것입니다. 그 사람은 자기가 거기 가리라는 것을 압니다. 물론입니다. 거짓말쟁이와 간음하는 자와 그런 사람들이 거기 있는 것도 놀랍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그러나 놀랍고 실망스러운 일은, 자기는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거절당하는 것입니다. “잠깐만요. 어머니도 이 교회에 다니셨고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다니셨습니다. 저는 평생 그 교회 교인이었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말입니다. “불법을 행하는 자야, 내게서 떠나라. 나는 너를 알지도 못하였노라.”
옛날 그 보잘것없고 알려지지 않은 시므온, 명성도 없는 그 사람을 보십시오... 성경에서 그에 관해 아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는 것이 성령으로 그에게 계시되었다고 했습니다.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이것입니다. 또 보십시오... 침례자 요한은 누구였습니까? 숲속에 살던, 좀 별난 사람, 산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 계시되었습니다. 그는 나와서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보십시오! 그 작은 안나는 누구였습니까? 작은 처녀 마리아는 제퍼슨빌처럼 악한 나사렛이라는 도시에 있었습니다. 죄와 온갖 것이 가득한 곳이었지만, 언젠가 메시아가 오실 것을 알았기에 자신을 순결하게 지켰습니다. 목수 요셉은 아내를 잃고 이 어린 처녀에게 구애하고 있었습니다. 성령이 바로 그런 가운데 임하셨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와서 그것에 “성령에 열광하는 자, 오순절교인” 같은 악명을 붙입니다. 악명을 붙인 것입니다. “저 아이는 거룩한 혼인 밖에서 태어났어.” 그들은 그렇게 믿었고 겉보기에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들의 눈을 가리시고 배우려는 어린아이들에게 드러내시려고 그렇게 하십니다.
잠시 뒤 제가 어떤 부분을 다룰 때 이해할 수 있도록 배경이 충분히 설명되었기를 바랍니다... 제가 보여 드리겠습니다. 이 기름이 보이십니까? 지금까지 말씀드린 배경은 이것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이것을 가리켜 보겠습니다. 좋습니다. 자, “이리 올라오라” 하는 음성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열었을 때 그는 나팔 소리를 들었고, 즉시 요한은 영 안에 있었습니다. 영 안에 있었습니다. 영 안에 들어가자마자 여러 가지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도 영 안에 들어가면 여러 가지를 보기 시작합니다. 먼저 영 안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야구 경기에 가서 “나는 정말 야구를 좋아해”라고 말한다고 합시다. 예. 맨 앞줄, 바로 박스석에 앉아 양키스든 불도그스든 어느 팀이 경기하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모두 멋진 경기를 펼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응원하는 편이 막 지려는 참입니다. 그때 갑자기 현대의 베이브 루스가 이렇게 방망이를 돌리며 말합니다. “저 멀리 보입니까?” 주자가 셋이나 나가 있습니다. 쾅! 공을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만큼 날려 버립니다. 모자를 벗어 부채질을 합니다. 1루로 걸어가 둘러봅니다. 저 선수들이 모두 2루로 가서 2루수와 악수하고, 걸어서, 천천히 걸어서 다시 홈으로 돌아옵니다. 아, 그 비명과 뜀박질, 고함과 환호와 “만세!” 소리라니요! 그들은 정말...
저는 사람들이 이런 것을 하는 모습을 실제로 보았습니다... 옛날의 납작한 밀짚모자를 기억하십니까? 어느 날 야구 경기에 갔는데, 어떤 선수가 홈런을 쳤습니다. 제 앞에 밀짚모자를 쓰고 앉아 있던 사람이 너무 흥분해서 모자를 붙잡아 아래로 확 잡아당겼습니다. 윗부분이 뚫려 나가고 모자가 이렇게 목둘레의 깃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정말 신이 났던 것입니다! 제정신이 아닐 정도여서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그저 발을 구르고 만세를 외치고 소리치고 펄쩍펄쩍 뛰었습니다. 제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십니까? 그 사람은 정말... 야구를 사랑했습니다. 담배에 푹 빠진 사람이나 술에 푹 빠진 사람처럼 야구에 푹 빠진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예수님께 푹 빠진 사람입니다. 그게 참 좋습니다. 여러분도 예수님께 푹 빠진 사람이 되면, 어떤 것에 푹 빠진 사람이... 그런데 그 사람이 “물론 나는 야구에 푹 빠져 있지”라고 말한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자기편이 막 지려다가 그렇게 나와서 이기는 것을 보고는 주위를 둘러보며 “그래, 괜찮았던 것 같군”이라고 합니다. 그러고도 야구를 사랑한다고 하겠습니까? 아, 뭔가... 여러분은 말할 것입니다. “야구를 좋아하지 않는군요? 뭔가 이상하군요.” 야구에 푹 빠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말할 것입니다. “저 사람 왜 그래? 뭔가 잘못됐어. 저기 가만히 앉아 있는 것 좀 봐. 참, 아...” 이제 둘을 연결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예수님께 푹 빠져 있고 성령께서 그 말씀을 깊이 새겨 주시는 것을 느끼면, 속에서 무언가 외쳐 나옵니다! 아, 자신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이분이 저를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가까이 앉아 계시는데, 여기 앉아 계신 키 크고 검은 머리의 형제님입니다. 어느 날 밤 저기 복도에 서 계셨습니다. 누군가 무슨 말을 했는데... 그분에게 그렇게 복이 되는 말이었습니다. 이 가엾은 형제님이 몹시 힘든 일을 겪었다는 것을 저는 압니다. 주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아내가 떠나고 이혼 소송을 냈습니다. 사실입니다. 누군가 예수님에 관해 이야기했는데, 이분도 그렇게 푹 빠진 사람 가운데 한 분이었습니다. 그는 전쟁에 나가 온몸에 총상을 입고 온갖 일을 겪었습니다. 참 안됐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과 아내가 있었습니다. 그는 주님을 섬기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복 주시기 시작하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자마자, 아내는 등을 돌리고 이혼 소송을 내고 떠났습니다. 그를 매정하게 내버려 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예수님께 푹 빠져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밤 그가 거기 서 있을 때, 누군가 예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지에 관해 이야기하자 “오, 영광!” 하고 외쳤습니다. 두 팔을 확 뻗었는데, 주먹이 이렇게 벽을 뚫고 들어가 있었습니다. 자기가 그런 줄도 몰랐습니다. 주먹이 벽에 박혀 있었습니다. 그는 “빌 형제님, 제가 수리비를 내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아마 우드 형제님이 내려와 그 부분을, 새 판을 대셨을 것입니다. 벤 형제님, 우리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형제님이 그렇게 푹 빠져 있다는 것이 그저 기뻤습니다.
성령이 여러분에게 무슨 일을 하시면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습니다. 무언가 넘쳐흐릅니다. 아멘. 무언가 여러분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푹 빠지게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면 속에서 무언가 뻗어 나가 붙잡고, 주리고 목마릅니다. 예수님은 “그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받았든 받지 못했든 목말라하는 것만으로도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더 원하시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좋습니다. 하나님을 더 원한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여러분은 복이 있습니다. 아직 받지 못했어도 여전히 복이 있습니다. “주리고 목마른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저 주리고 목마른 것만으로도 복이 있습니다. 그것을 원하니 복이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 밤에 했던 제 설교를 기억하십니까? 그 어리석은 사람은 상자는 간직하고 선물은 버렸습니다. 그렇지요? 상자를 취하지 말고 선물을 취하십시오.
좋습니다. 이제, 즉시... 영 안에 있었는데, 보라, 하늘에 한 왕좌가 놓여 있고 그 왕좌에 한 분이 앉아 계시더라. 이제 주목하십시오. 조금 뒤에, 아니 아마 어젯밤 살펴보았지요. 이 왕좌 위에... 처음에는 그 왕좌에 아무도 없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왕좌에 한 분이 계십니다. 예수님이 자기 교회와 함께 영광 안으로 올라오셔서 자신의 왕좌에 앉으셨음을 보여 줍니다. 왕좌에 앉아 계십니다. 그것은 교회 시대 이후입니다. 이제 잠시 뒤 그 부분을 살펴보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그러면 오늘날 그분의 왕좌는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물을 것입니다. 네빌 형제님, 제가 지나쳐 버리면 잠시 뒤에 오늘날 주님의 왕좌가 어디 있는지 물어봐 주십시오. 그 부분까지는 갈 것 같습니다. “지금 그분이 자기 왕좌에 안 계신다면, 지금 그분의 왕좌는 어디 있습니까?” 지금은 자기 왕좌에 앉아 계시지 않습니다. 아닙니다.
좋습니다. 앉으신 분의 모습은... 벽옥과... 홍보석 같고 왕좌 둘레에, 그 모습이... 보기에 에메랄드 같은 무지개가 있으며. 이제 3절부터 시작합시다. “벽옥”, 왕좌에 앉으신 분의 모습이 그와 같았습니다. 다시 말해 그분을 바라보니 그토록 찬란하고 그토록 아름다우셨다는 것입니다! 아, 그분을 뵙고 싶습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습니까?
어느 날... 캐들 자매님, 하워드 캐들 자매님이 생각납니다. 기억하시는 분이 많을 것입니다. 저는 길 건너편에 있었습니다. 지금 저기 앉아 있는 아내도 기억합니다. 방이 추워서 아내가 떨고 있었고 제가 일어났습니다. 거기에 작은 난로가 있었고... 연통에 달린 오븐에서 빵을 구웠습니다. 몹시 추웠고 바람이 불었습니다. 겨울이라 땅에 눈이 쌓여 있었고 바람이 굴뚝 아래로 내려왔습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불이 붙지 않아 몹시 속상했습니다. 뭔가 넣으면 또 불이 꺼졌습니다. 빌리도 춥고 아내도 추웠습니다. 저는 불을 피우려고 애쓰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라디오를 켰습니다. 바로 몇 분 전에는 제가 좀 달아올라 있었습니다. 라디오가 나오는데 캐들 자매님이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저 멀리 있는 기슭, 그 땅에 이르면 예수님을 뵙고 싶네. 그대도 그렇지 않은가?” 아! 저는 그 자리에, 방바닥 한가운데 털썩 앉아서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분이 얼마나 노래를 잘하셨는지 아시지요. 흉내지빠귀처럼 정말 감미로운 그 목소리... 저 너머 경계를 넘어가면 그분의 노래를 듣고 싶습니다. “예수님을 뵙고 싶네. 그대도 그렇지 않은가?”라고 불렀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오 하나님, 그렇습니다. 언젠가 그분을 뵙고 싶습니다. 구름이 모두 흘러가고 나면 예수님을 뵙고 싶습니다. 왕좌에 앉으신 그분과 그 아름다움과 찬란함을 뵙고 싶습니다! 아, 요한이 섰던 곳에 서서 그저 그분을 바라보고 싶습니다.”
얼마 전, 저... 노예제도가 있던 때의 이야기입니다. 오늘 아침 여기 계신 흑인 친구들을 생각하며 이 말씀을 드립니다. 나이 든 흑인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가 작은 모임에 갔습니다. 예전에는... 켄터키에서는 사람들이 이렇게 함께 노래를 부르곤 했습니다. 콕스 어머님과 그분들은 사람들이 찾아가 함께 노래 부르던 때를 기억하실지도 모릅니다. 집집마다 찾아갔지요. 젊은이들이 오르간을 치고 모두 함께 노래했습니다. 여기 유티카와 시골 여러 곳에서 그렇게 하곤 했습니다. 지금은 어딘가 로큰롤 파티에서 위스키 한 쿼트를 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 옛 찬송 모임 중 한 곳에서 나이 든 흑인 형제님이 구원을 받았고, 주님이 그를 설교하도록 부르셨습니다. 다음 날 그는 농장의 노예들에게 돌아다니며 말했습니다. “어젯밤 주님이 나를 구원하셨고, 내 형제들에게 설교하라고 부르셨습니다.” 마침내 그 말이 목장 주인, 아니 농장 주인의 귀에 들어갔습니다. 주인은 그를 불러 말했습니다. “샘보, 이리 들어와라. 내 사무실로 올라와라.” 그가 대답했습니다. “예, 주인님.” 사무실로 올라갔습니다. 주인이 말했습니다. “네가 노예들 사이에서, 저 밖의 내 일꾼들, 내 노예들 사이에서 주님이 너를 자유롭게 하셨다는 말을 퍼뜨리고 다닌다는데 그게 무슨 말이냐?” 그가 말했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주인님, 저는 주인님의 노예입니다. 주인님의 돈으로 저를 사셨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어젯밤 하나님이 저를 자유롭게 하셨다는 것은, 예수님이 죄와 수치의 삶, 죽음의 삶에서 저를 자유롭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저를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주인이 말했습니다. “샘보, 진심으로 하는 말이냐?” 그가 말했습니다. “진심입니다.”
주인이 말했습니다. “네가 여기 농장에 있는 네 사람들에게 설교하기 시작할 거라고 들었다.” 그가 말했습니다. “예, 주인님! 제가 하려는 일이 그것입니다. 제 사람들에게 이 복음을 전하려고 합니다.” “샘보, 정말 그렇게 하려느냐?” “정말 그렇습니다.” 주인이 말했습니다. “나와 함께 법원으로 가자. 나도 네게 자유를 주겠다. 너는 내게서도 자유롭고, 더 이상 노예살이를 할 필요도 없다. 내가 너를 샀고 너는 내 것이니, 네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너를 자유롭게 해 주겠다.” 그는 내려가 해방 문서, 곧 선언문에 서명했고, 그 사람은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노예로 팔릴 수 없었습니다. 자유인으로서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여러 해 동안 자기 형제들 가운데서 설교했습니다. 많은 백인도 그의 사역을 통해 회심했습니다. 어느 날 그 노인이 죽음을 앞두게 되었습니다. 삼사십 년, 혹은 그보다 더 오래 설교한 뒤였습니다. 죽음을 앞두고 방에 누워 있었습니다. 백인 형제들도 많이 방 안에 모여 있었는데, 두세 시간 동안 그가 이미 떠난 줄 알았습니다. 마침내 그가 깨어나 방 안을 둘러보며 말했습니다... “샘보, 어디에 있었습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아, 내가 여기 다시 돌아왔습니까? 다시 돌아왔습니까?” “샘보, 무슨 일입니까?” “아, 저는 저편 나라로 건너갔었습니다.” “말씀해 주세요.” 그가 말했습니다. “제가 막 그분 앞에 들어섰습니다. 거기 서 있는데 천사 하나가 다가와 ‘당신 이름이 샘보 아무개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들어오십시오.” “안으로 걸어 들어가 거기 앉아 계신 그분을 바라보았습니다.” 천사가 말했습니다. “샘보, 이제 이리 오십시오. 그분을 뵈었으니 이쪽으로 나오십시오. 당신의 예복을 드리겠습니다. 당신의 하프를 드리고 왕관을 드리겠습니다.” 샘보가 말했습니다. “하프나 왕관이나 예복 이야기는 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당신은 보상을 받을 만한 일을 하셨습니다. 당신의 보상을 드리려고 합니다.” “보상 이야기는 하지 마십시오. 그저 천 년 동안 여기 서서 그분을 바라보게 해 주십시오. 그것이 제 보상이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그렇게 느낄 것 같습니다. 그저 서서 그분을 바라보게 해 주십시오. 아, 그분을 바라보려면 지금 가진 몸과는 다른 몸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온몸의 모든 부분이 그저 그분을 바라보려고...
거기 요한이 서서 왕좌에 앉으신 그분을 보았는데, 그 모습이 벽옥과 홍보석 같았습니다. 성경에서는 모든 것과 모든 말에 의미가 있습니다. “벽옥과 홍보석.” 살펴보면 성경의 다른 부분과 서로 들어맞습니다. 앞서 살펴본 성경 부분에서 그분은 알파와 오메가이셨습니다. 시작과 끝, 처음과 마지막이셨습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셨습니다. 그분은... 모든 것이 그분 안에 한데 모여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17장은 변화산에서 모든 것이 그분 안에 모여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벽옥”은 보석이고 “홍보석”도 보석입니다. 색깔은 잠시 뒤에 살펴보겠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주목시키고 싶은 것은, 족장들도 저마다 태어났을 때... 예, 모든 사람에게는 탄생석이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4월에 태어났으니 다이아몬드입니다. 달마다 나타내는 보석이 다릅니다. 족장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족장이 태어날 때마다 그에게 탄생석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잠깐 멈추겠습니다. 그 히브리 어머니들이... 친구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 한 가지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믿음이 말씀 위에 확실히 세워질 것입니다. 그 히브리 어머니들이 해산할 때마다, 이 아이들을 낳으려고 산고를 겪을 때마다, 출산 중에 한 바로 그 말들이 그 사람, 자기가 낳은 아기의 이름을 정했고, 주님이 오실 때 그가 있을 팔레스타인 땅의 자리까지 정해 주었습니다. 어머니의 그 산고가 말입니다! 예를 들어 “에브라임”은 “바닷가”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에브라임은 바닷가에 자기 몫을 받았습니다. 또 “유다”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런 짧은 시간에는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찾아볼 여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돌아가 살펴보십시오. 유다는, 유다가 무슨 뜻이든,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정해진 자기 자리를 뜻합니다.
창세기 48장과 49장을 보십시오. 야곱이 죽어 가면서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고, 눈이 어두워진 채... 세상 끝에 그 자녀들이 어느 자리에 있을지 말해 주었습니다. 그들이 고국으로 돌아간 뒤로 지금 정확히 그 자리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요셉에게는 “너는 담 곁의 열매 많은 포도나무”라고 했습니다. “우물 곁”, 물 곁이지요. 그가 넘어갔습니다. “네가 주 하나님을 신뢰하였고, 주 안에서 네 가지를 강하게 하였다.” 미국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언젠가 그 포도나무가 다시 담을 넘어 돌아올 것이었습니다. 지금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거의 3천 년 전에 그가 한 말 그대로, 다시 돌아온 것입니다. 에브라임에게는 발을 기름에 담갔다고 했는데, 에브라임은 큰 유전이 있는 바로 그곳에 자리 잡았습니다. 정확합니다. 그 사람들이 한 말이 말입니다. 그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 위에 무엇이 있었습니까? 하나님이 그들의 온몸을 붙드시고 그들 안에서 움직이고 계셨습니다!
로마 제국이 그들을 흩어 버렸을 때, 다른 이들이 그들을 흩어 버렸을 때, 히틀러에게 미움을 받았을 때를 보면, 수만에 수천을 곱할 만큼 많은 사람들이... 정맥에 공기 방울을 주입받아 죽었습니다... 그들의 시신이 아기들과 함께 울타리에 매달려 있고, 뼈들이... 그리고 그 뼈로 비료를 만들었습니다. 그저 밖으로 끌어내 주사를 놓고 수레에 실었습니다. 그들은 밖으로 나갔습니다... 출발해서 마지막 장소에 이를 때, “메시아가 오시면 우리가 다시 포도의 피를 마시리라” 하고 노래했습니다. 그 유대인들이 죽어 가면서 쓰러질 때, 몇 번만 더 뛰면 심장이 멈추리라는 것을 알고 걸어 나가면서, “우리는 곧 메시아를 보리라” 하고 노래하며 쓰러졌습니다. 아! 그들의 뼈로 비료를 만들다니요. 여기 계신 군인들 중 많은 분이 그 일을 알고 직접 보셨습니다. 저도 히틀러와 그 무리가 사람들을 불태우고 온갖 일을 저질렀던 그 땅에 서 보았습니다. 러시아의 스탈린을 보십시오. 그들도 모두 똑같은 짓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 유대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고국으로 돌아가도록 내몰린 것입니다. 지금 그들이 서 있는 곳이 거기입니다. 저는 “자정 3분 전”이라는 훌륭한 영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유대인들이 들어올 때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돌아오십니까? 고국에서 죽으려고 오십니까?” 그들은 말했습니다. “메시아를 보려고 왔습니다.” 아멘. 음! 우리는 마지막 때에 있습니다.
그 자녀들은 태어날 때마다 각자의 탄생석이 있었습니다. 그 모든 자녀 위의 대제사장인 아론은 가슴판을 착용했습니다. 그의 옷에... 제가 조금 더 기다렸다가 이 6절로 들어가려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구약의 모든 상징이 바로 그 안으로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모든 기구와 모든 것은 하늘에서 보인 것의 모형이었고, 그것을 인간에게 맞게 본뜬 것이었습니다. 여기 아론의 가슴판이 있습니다. 그는 대제사장이었습니다. 주목하십시오. 지파마다 그 탄생석이 그 안에 나타나 있었습니다. 하나씩... 탄생석, 각자의 보석을 그 안에 넣었습니다. 에브라임 지파, 므낫세 지파, 갓 지파, 베냐민 지파, 모두 이 안에 나타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탄생석들, 아름다운 보석들을 가져다가 이렇게 기둥에 걸어 놓았습니다. 어떤 선지자가 예언하면, 옳게 들리든 그렇지 않든 그를 이 우림과 둠밈 앞으로 데려가 자기 예언을 말하게 했습니다. 거기에 거룩한 빛이 나타나 이 보석들을 한꺼번에 번쩍이게 하면, 하나님이 응답하여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온 지파를 위한 것, 그들 모두, 모든 지파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중 첫 번째 보석은... 첫째 아이가 누구였는지 아시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이름이 무엇이었습니까? 르우벤입니다. 좋습니다. 마지막은 누구였습니까? 베냐민입니다. 그렇습니다. 르우벤의 탄생석은 벽옥이었고, 베냐민의 탄생석은 홍보석이었습니다. 그분의 모습은 르우벤과 베냐민, 처음과 마지막 같았습니다.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앞으로 오실 분입니다. 그분은 알파, 그리스어 알파벳의 A이셨고, 오메가, 그리스어 알파벳의 Z이셨습니다. 처음과 마지막이셨습니다. 베냐민에서 르우벤까지, 르우벤에서 베냐민까지이셨습니다. 아! 그분이 거기 계셨습니다. “모습이 홍보석과 벽옥 같더라.” 그분은 이 왕좌에 앉아 계셨습니다.
영광 가운데 앉으신 그분을 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얼른 요한계시록 21장 10절을 펴서 여기 계신 그분을 바라봅시다. 좋습니다. 21장 10절부터 11절입니다. 영 안에서 나를 크고 높은 산으로 데려가 하늘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저 큰 도시 곧 거룩한 예루살렘을 내게 보여 주었는데, 그 도시에 하나님의 영광이 있더라. 그것의 빛은 지극히 귀중한 보석 같고... 벽옥과도 같으며 수정같이 맑더라. “그것의 빛.” 그 빛입니다! 누가 그 빛입니까? “그 도시는 해가 필요 없었으니, 어린양께서 그 도시의 빛이시기 때문이라.”
벽옥과 홍보석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은 그분의 교회입니다. 그분은 처음이셨습니다. 무엇이셨습니까? 시간의 시작이셨습니다. 시간의 끝이십니다. 족장들의 처음이셨습니다. 족장들의 마지막이십니다. 그분은 그 안에 있던 교회... 에베소 교회 안에 계셨던 영이셨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영이십니다. 그분은 처음과 마지막, A에서 Z까지, 처음과 마지막이십니다. 전에도 계셨고 앞으로 오실 분, 다윗의 뿌리요 후손, 새벽별, 골짜기의 백합, 샤론의 장미이십니다! 아, 성경에는 그분을 가리키는 호칭이 400개도 넘습니다. 그분이 어떤 분이셨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데도 하나님께 찬양이 올려지는 가운데 구유에 태어나신 겸손한 주 예수님이셨습니다. 무엇이든 겸손한 것이 있으면 눈여겨보십시오. 그것이 옳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든 거창한 것은 속 빈 허세이니 신경 쓰지 마십시오. 바람만 잔뜩 들었을 뿐, 아무것도 없습니다. 좋습니다.
그분의 모습은 벽옥과 홍보석 같았습니다. 돌아가 봅시다. 아직 시간이 조금 있지요? 40분쯤 남았습니다. 살펴봅시다. 에스겔 1장으로 돌아가 봅시다. 성경의 구약 에스겔로 가서, 에스겔도 그분을 보았던 부분을 읽읍시다. 이 성경 구절들을 비교하여 우리가 어디쯤 있는지 봅시다. 에스겔 1장입니다. 좋습니다. 잠시 읽겠습니다. 먼저 1절부터 5절까지 읽고, 그다음에는 여기에 표시해 둔 26절부터 28절까지 읽겠습니다. 먼저 선지자 에스겔의 1장 첫 절들을 읽읍시다. 좋습니다. 제삼십년 사월 곧 그달 오일에... 내가 그발 강가에서 포로들 가운데 있을 때—그발이 맞습니까? C-h-e-b-a-r, 그발—하늘들이 열리며 하나님의 환상이 내게 보이니라. 그달 오일에—자, 보십시오—그달 오일에, 그달은... 여호야긴 왕이 포로가 된, 갈대아 사람들 땅에 있는 그발 강가에서 주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였고 거기서 주의 손이... 그의 위에 계시더라. 내가 보니, 보라, 북쪽에서 회오리바람이 오는데...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595년 전의 이 선지자를 보십시오. 그의 환상이 요한의 환상과 어떻게 들어맞는지 보십시오. ...북쪽에서 회오리바람과 큰 구름과... 스스로를 펼치고 있는 불이 오는데 그것의 주변에는 광채가 있고 그것의 한가운데 곧 그 불의 한가운데로부터 호박색을 띤 것 같은 것이 나오며. 또한 그것의 한가운데로부터 살아 있는 네 창조물의 모습이 나오더라. 그들의 모양이 이러하니 곧 그들이... 사람의 모습을 가졌더라. 주목하십시오. 이 네 창조물의 모습 위에 계셨던 하나님의 영의 색은 호박색이었습니다. 호박색은 황록색입니다. 보십시오. 황록색, 호박색입니다. 아, 그분은 어제나... 에스겔에게 자신을 드러내셨습니다. 에스겔의 환상 가운데 살아 있는 네 창조물 위로 나타나는 것을 본 이 빛은 황록색이었습니다. 요한에게 오셨을 때는 에메랄드로 나타나셨는데, 그것 역시 황록색입니다. 이제 계시를 받는 자에게 황록색으로 오십니다. 우리에게도 황록색으로 오십니다. 그 빛입니다! 빛 가운데 걸으십시오. 그분이 빛이십니다.
이제 26절로 가서 28절까지 읽겠습니다. 26절, “그... 위에는.” 집에 돌아가시면 표시해 두었다가 그 부분을 전부 읽으시기 바랍니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의 머리들 위에 있는 궁창 위에는 홍보석 모양 같은 돌의 모습이 있었고, 그 왕좌의 모습 위에는 사람의 모양을 닮은 모습이... 그것 위에 위로 있더라. 그분은 사람의 아들, 그리스도이셨습니다. 여기서 그분이 어떻게 둘러싸여 계셨는지 보십시오. 또 내가 보니 호박색 같았으며—보십시오, 이 사람의 아들 주위에—그 안에서 사방으로 불타는 불의 모양 같았고, 그분의 허리 모양으로부터...
들으십시오! 영적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하십시오. 여기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당부합니다. 이 일은 여러분 마음속에 간직하십시오. 다만 얼마나 복된 것인지 기억하십시오! 27절부터 다시 시작합시다. 여러분 모두 들으십시오! 지금 잘 이해하십시오! 또 내가 보니 호박색 같았으며—그것이 황록색입니다—그것의... 사방에 있는 불의 모양 같았고—호박빛 초록색 주위에 불이 있습니다. 자, 그분의 허리 모양으로부터 위로...—허리에서 위로—또 그분의 허리 모양으로부터... 아래로 내가 보니 불의 모양 같았고, 그것이 사방에 광채를 가지고 있더라—사방에 불이 있습니다. 비 오는 날 무지개의... 빛깔에 나타나는 모양같이, 사방으로 퍼지는 광채의 모양도 그러하더라. 이것은 주의 모양과 모습과 영광이더라. 내가 그것을 볼 때에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말씀하신 분의 음성을 들으니라.
보십시오! 준비되셨습니까? 들으십시오! 이제 이것을 간직하십시오. 그저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에게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진 형제님, 이 테이프는 보류해도 됩니다. 들으십시오! 아니, 그 부분을 보류할 필요는 없습니다. 괜찮습니다. 제 말은 테이프를 잘 간직하라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이 내용을 들을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주목하십시오. 주님과 함께 있는 빛, 주님을 따르는 주님의 빛, 주님께 속한 빛의 색이 호박색, 황록색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와 함께 있는 빛도 같은 색입니다. 과학자들이 사진에 담은 그 빛은 황록색, 호박색입니다. 어린 소년이었을 때 처음 그것을 보았습니다... 여기 오래 계셨던 분들은 기억하실 것입니다. 실제 사진이 찍히기 전부터 제가 늘 말씀드렸습니다. 그 빛은 황록색, 곧 호박색이었다고 했습니다. 이제 주님의 영이...라는 것을 알려 드리려는 것입니다. 그는 그 앞에 서 있던 살아 있는 창조물의 허리에서 위로는 불처럼, 빛처럼 보였고, 허리에서 아래로도 빛에 덮여 있었다고 했습니다. 사방에는 무지개처럼 여러 색이 있었습니다. 그렇지요?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같은 색들 가운데 존재하십니다. 허리에서 위로 불, 호박색입니다. 영화 촬영기, 또는 컬러 카메라로 찍었습니다. 허리에서 위로, 허리에서 아래로 호박색이고, 사방에는 비가 온 뒤 하늘의 무지개처럼 여러 색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성령은 이 마지막 날에도 여전히 권능 가운데 계시고, 여전히 자기 교회 안에 계십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제가 아닙니다. 저는 그저 거기에 서 있었을 뿐이고, 이것은 찍힌 사진입니다. 이것을 보시기 바랍니다. 에스겔이 보았던 것과 정확히 같습니다. 같은 색, 같은 모습, 같은 움직임, 같은 번쩍임입니다. 그 살아 있는 창조물들의 모습 말입니다. 무엇입니까? 살아 있는 창조물들은 살아 있는 교회, 그리스도의 권능과 부활로 살아가는 교회를 나타냅니다. 똑같은 호박빛이 허리에서 위로, 허리에서 아래로 그것을 덮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추측이 아닙니다. 과학이 사진을 찍었습니다. 색을 보십시오. 그 안의 불빛, 무지개의 색을 보십시오. 이 노란빛을 띤 에메랄드색을 보십시오. 이쪽 사진은 그저 일반 사진사의 카메라로 찍은 것입니다. 이쪽 카메라로는 컬러 사진, 코다크롬 컬러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 안의 호박색을 보십시오. 어딘가 빛에 비추어 뒤쪽에서도 볼 수 있게 할 수 있다면... 이제 보입니까? “무지개와 같이.” 무지개처럼 이리저리 뻗어 있는 줄기들을 보십시오. 하나하나 색이 다릅니다. 몇 분 뒤에 그것을 살펴보겠습니다. 그 색들은 무엇이며 무엇을 비추어 보여 줍니까? 아! 그저 제 이 작은 가슴이 기쁨으로 뛰게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그리스도께서... 다른 모든 기반은 가라앉는 모래이고, 다른 모든 기반은 그렇습니다. 저는 생각합니다. “왜 이것을 전할 수 없을까? 왜 세상이 이것을 보게 할 수 없을까?” 세상은 이것을 보도록 되어 있지 않습니다. 세상은 보지 않을 것이고, 결코 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이제껏 겪은 것 중 가장 강한 흔들림을 받고 있습니다!
그 시대에는 이것을 사진으로 찍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은 기계 장치가 있으니 찍을 수 있습니다. 기계 기술을 이용해 하나님을 부인하려는 사람들이 도리어 돌아서서 하나님이 계심을 입증합니다. 그렇습니다. 호박색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제가 꾸며 낸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그대로 읽어 드리고 있습니다. 제가 읽는 것을 주목하시고, 보십시오. 동일한 주 하나님이심을 보십시오. 아무 차이가 없습니다. 27절을 보십시오. 또 내가 보니... 호박색 같았으며, 불의 모양과도 같았고... 보십시오. 불꽃이 날름거리는 것 같습니다. 불에서 나오는 호박빛이지요. 이제 보입니까? 호박색입니다. 이것이 불에서 나오는 호박빛입니다. 여기 아래에는 이렇게 나옵니다. 무지개와 같은 모양... 곧 무지개가... 비가 온 뒤의 날들에... 무지개, 비가 온 뒤의 날들에 나타나는 무지개입니다.
거기 살아 있는 창조물이 있었습니다. 요한이 나타냈던 것, 온 교회가 들려 올라갔습니다. 제가 말씀드렸지요. 여기 환상 가운데 있는 한 사람이 덮여 있는 그리스도의 몸 전체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이제 보십시오. 또 내가 보니... 호박색 같았으며, 그것의 사방에... 있는 불의 모양 같았고, 그분의 허리 모양으로부터 위로, 또 그분의 허리 모양으로부터 아래로 내가 보니 불의 모양 같았으며... 보십시오. 불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보십시오. 무엇에서 나옵니까? 무지개, 일곱 색에서 나옵니다. 보십시오. 거기 정확히 일곱 색이 있고 무지개에도 일곱 색이 있습니다. ...내가 보니 불의 모양 같았고, 그것이 사방에 광채를 가지고 있더라. 사방으로 퍼지는 그 광채의 모양은 마치 비 오는 날 구름 속에 있는 무지개 모양 같았는데—하나님의 왕좌 둘레입니다—이것은 주의 영광의 모습을 가진 모양이더라. [지금 주님 자신이 아니라 주님의 영광입니다.] 주님의 영광이 그분의 교회를 덮고 있습니다. 그분이 자기 교회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아멘! 아, 지혜 없는 자들에게는 어리석게 들리지만 믿는 이들에게는 얼마나 위대한 일입니까. 이것은 주의 영광의... 모습을 가진 모양이더라. 내가 그것을 볼 때에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으니라. 이어서 그는 그 환상이 무엇을 뜻하는지 말하지만, 오늘 아침에는 그것까지 들어갈 시간이 없습니다.
이제 주님이 큰 긍휼 가운데 우리에게 이런 것들을 주셨음을 보십시오. 다른 하나를 살펴봅시다. 에스겔과 요한은 모두 그분의 색과 빛의 신비 가운데 그분을 보았고, 그것을 호박색이라고 불렀습니다. 훗날 요한이... 성경 구절을 적으시는 분들은 요한일서 1장 5절부터 7절을 적으십시오. 요한은 밧모섬에서 약 3년 동안 지내며 그 책을 썼습니다. 훗날 90대 노인이 되어 돌아온 뒤 요한일서 1장 5절과 7절에서 “하나님은 빛이시다”라고 했습니다. 요한에게는 체험이 있었습니다. 그분을 보았고 그분이 빛이심을 알았습니다. 빛, 영원한 빛입니다. 우주의 빛도 아니고, 등불이나 전깃불이나 햇빛도 아니라 영원한 빛입니다. 아, 저는 그분을 참 사랑합니다. “하나님은 빛이시다.”
이제 다시 돌아가 어디까지 왔는지 봅시다. 아직도 3절이지요? 진도를 나갈 수 있을까요? 그러기를 바랍니다. 좋습니다. 그분의... 모습은 벽옥과 홍보석 같고 왕좌... 둘레에 보기에 에메랄드 같은—황록색의—무지개가 있으며. 자, “무지개”입니다. 무지개였다는 것을 보셨지요. 창세기 9장으로 돌아가 살펴봅시다. 창세기 9장 13절입니다. 여기서 “무지개”가 처음 나타났을 때를 찾아보겠습니다. 창세기 9장, 13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창세기 9장 13절입니다. 여러분 모두 이런 공부가 좋습니까? 아, 저는 사랑합니다! 그저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합니다. 보십시오.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노니 그것이 나와 땅 사이에 있는 언약의 증표가 되리라.—주목하십시오! 증표입니다. 무엇 사이입니까? “나와 노아 사이”입니까? 아닙니다. “나와 땅 사이”입니다. 내가 구름을 가져다가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서 보이면, 내가 나와 너희 사이에 있는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이제 그분은 그들 사이의 언약으로 돌아오셨습니다. 그러나 무지개 언약은... 노아에게 주신 언약은 생명, 곧 그를 살려 주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자신과 맺으신 언약은 무지개였습니다. 다시는... 잠시 뒤에 노아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이 무엇이었는지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여기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신과 맺으신 언약입니다. 아멘. 무지개입니다.
그러면 언약은 증표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증표입니다. 하나님이 여기서 증표라고 하셨지요? “내가 내...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노니.” 그것은 세상이 멸망한 뒤, 물로 멸망한 뒤였습니다. 노아 외에는 모든 육체가 멸망했습니다. “그것이 나와 땅 사이에 있는 언약의 증표가 되리라.” “나와 세상 사이”가 아닙니다. 세상은 “코스모스”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나와 땅 사이”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그 땅을 만들었다. 그런데 내가 그것을 너무 혹독하게 다루어 뒤집어 버리고 산산조각 내었다. 아마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또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슬펐다. 너무나 끔찍한 일이었다.”
이제 그분이 진노 가운데 오시면 어떻겠습니까? 죄인인 친구여, 바른 관계를 가지십시오. 오, 그 광경을 보려고 깨어 기다리라, 그분이 다시 오시네.—믿으십니까? 그분이 다시 오시네.—저는 이 말이 좋습니다. 여러분도 그렇지요? 오, 그대는 그분의 원수 중 하나로 헤아려지겠는가? 저는 그렇게 되고 싶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그렇지요? 절대로 아닙니다. 원수가 되거나... 그분의 원수가 되는 것 말입니다. 그분과 함께라면 좋겠지만 그분을 거스른다면... 속을 흠 없이 지키며, 깨어 기다리라, 그 광경을 보려고. 그분이 다시 오시네.
자, 언약은 무엇의 증표입니까? 무엇의 증표입니까? 받아들여진 희생물의 증표입니다. 이제 창세기 8장 20절과 22절을 펴십시오. 창세기 8장 20절과 22절, 좋습니다. 바로 맞은편 페이지에 있습니다. 노아가 주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날짐승 중에서 취해 제단 위에 번제 헌물을 드렸더니, 주께서 향기로운 냄새를 맡으시고 주께서 마음속으로 이르시되, 내가 이후로는 사람으로 인해 땅을 다시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이 마음으로 상상하는 것이 어려서부터 악하기 때문이라. 내가 이후로는 전에 행한 것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치지 아니하리니. 이제 마지막 절을 읽으십시오. 땅이 남아 있는 동안에는 씨 뿌리는 때와 거두는 때와...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그치지 아니하리라.—언약입니다. 요한이 보았던 것과 똑같습니다. 하나님이 받아들이신 언약이신 예수님이 하늘에서 둘러싸여 계십니다. 그분 주위로 왕좌 둘레에 무지개가 있고, 보기에 에메랄드 같은, 호박빛 초록색의 빛이 왕좌를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보십시오! 노아의 무지개는 기본적으로... 노아의 무지개는 기본적으로 일곱 색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무지개에 일곱 색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압니다. 그 색들은 무엇입니까? 빨강, 주황, 보라... 아니, 빨강, 주황, 초록, 파랑, 남색, 보라입니다. 그것이 무지개 색들입니다. 여기 깊은 내용이 있지만, 시간이 너무 늦어져서 요점만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주황... 아니,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남색, 보라입니다. 보시면 일곱입니다. 주목하십시오. 일곱 무지개... 제 말은 일곱 색, 일곱 빛깔의 무지개입니다. 그것은 일곱 무지개를 뜻했습니다. 일곱 무지개, 일곱 빛을 비추는 일곱 교회입니다. 각 빛은 다른 빛 안에 감싸여 있습니다. 빨강에서 시작했습니다. 빨강입니다. 빨강 다음에는 빨강이 반사된 주황이 왔습니다. 주황 다음에는... 주황 다음에는 노랑이 왔습니다. 빨강과 주황이 섞여 노랑이 됩니다. 그다음은 초록입니다. 초록과 파랑은 검정을 만듭니다. 그다음에 남색이 오고, 남색 다음에는 파랑의 일부인 보라가 옵니다. 아! 할렐루야! 모르시겠습니까? 일곱 빛깔의 무지개 안에 계신 하나님, 그분이 맺으신 언약입니다. 일곱 색의 일곱 교회 시대를 통해 땅을 구원하시겠다는 언약입니다.
그분은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기억하십시오. 그분은 자신의 색으로 땅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이 무지개는 수평으로, 활 모양으로 땅의 절반만 덮습니다. 노아의 무지개가 덮은 것은 땅의 절반뿐입니다. 아치 모양이었습니다. 여러분이 볼 수 있는 것은 그뿐입니다. 그러나 요한이 에메랄드빛 가운데 그분을 보았을 때, 그분은 하나님의 왕좌 전체를 둘러싸고 계셨습니다. 아직 절반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땅에서는 그저 아치 모양일 뿐입니다. 절반일 뿐입니다. 그것이 교회 시대들입니다. 그러나 요한이 이 호박빛 가운데 그분을 보았을 때, 그 호박빛으로 후광처럼 사방을 둘러 감싸셨습니다. 후광입니다! 호박빛 후광이 그분의 존재를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아시겠죠? 한 색, 모든 것 위에 계시고 모든 것을 통하시며 모든 것 안에 계신 한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교회 시대는 일곱입니다.
큰 다이아몬드를 보십시오. 예전에는... 아프리카에서는 길바닥에 놓인 것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다듬지 않은 것이므로 감히 가지고 있을 수 없습니다. 다듬지 않은 다이아몬드를 하나 가지고 있으면 즉시 감옥에 가며, 소지했다는 이유로 종신형을 받습니다. 발견하는 즉시 넘겨줘야 합니다. 그 다이아몬드를 가져다가... 아, 참 단단합니다. 이렇게 세워진 거대한 40톤짜리 분쇄기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안에 푸른 돌을 부어 넣고 돌려 갈면, 바위를 거의 재처럼 으스러뜨립니다. 그러나 다이아몬드는 으스러뜨리지 못합니다. 저 위 회전축에 매달린 40톤짜리가 커다란 돌기들을 달고 빙빙 돌면서 바위를 산산조각 내지만, 다이아몬드는 그대로 통과합니다. 그 40톤짜리 주물을 밀어 움직입니다. 아! 부서진 것들이 아래 체를 통과하고, 또 다른 체들로 내려가고, 물에 씻겨 내려가다가 마침내 긴 수로로 흘러갑니다.
그 거대한 킴벌리 다이아몬드 광산의 관리자가 그곳 제 집회의 줄에서 안내위원으로 일했습니다. 참으로 겸손하고 다정한 형제님이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물이 흘러가는 곳에 약 3피트에 걸쳐 코스몰린을 발라 놓습니다. 그것 아시지요... 그 물질을 뭐라고 부르지요? 미다, 저기 찬장 안 병에 든 것 말이야. 바셀린입니다! 그 바셀린을 여기 경사로 위쪽에 약 1인치 두께로 바릅니다. 흘러 내려옵니다. 보십시오. 돌은 거기를 지날 때마다 바셀린 위에서 그대로 굴러 떨어집니다. 그러나 다이아몬드가 지나가면 달라붙습니다. 다이아몬드는 말라 있어서 거기에 달라붙습니다. 저는 그들이 아주 조그만 것까지 집어 들어 확대경으로 살펴 분류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무엇에 쓰려고 그렇게 하는지 물었습니다. 미국에 팔아서 빅트롤라 축음기 바늘 같은 것을 만든다고 했습니다. 닳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큰 다이아몬드들은 그저 하나의 커다란 덩어리로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가져다가 전기 기계로 깎아, 세공한 다이아몬드를 만듭니다. 그렇게 깎는 것은 그 캐럿에 담긴 불꽃 같은 색들을 반사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것도 일곱 색을 비춥니다. 아, 예수님이 얼마나... 여러분에게 돈이 많을 수도 있습니다. 캐딜락을 여러 대 소유했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거대한 영안실 같은 교회나 대성당의 목사일 수도 있습니다. 감독이나 대주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형제여! 그 보석, 그 다이아몬드를 발견하면 사람은 자기가 가진 재산을 전부 팔고, 다 내어 주고, 다른 모든 것도 내놓습니다.
잠자는 처녀를 보십시오. 아, 그녀는 어떻게 했습니까? 기름을 사기 위해 무언가를 팔아야 했습니다. 무엇을 팔아야 했습니까? 낡은 신조와 교단 같은 것들입니다. 그 위대한 보석, 그리스도를 찾기 위해 가진 것을 전부 팔았습니다. 예수님, 그 몸은 [테이프에 공백이 있음.]... ...? ...어느 어두운 아침, 열차가 지나갈 때 천국으로 갈 차표가 제게 있습니다. 아,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오, 귀하도다 그 흐르는 피, 나를 눈같이 희게 하네. 다른 샘은 알지 못하니, 오직 예수님의 피뿐이네. 인기도, 큰일도, 아무것도, 재물도, 아무것도 필요 없습니다. 그저 그 귀한 흐르는 피를 주십시오. 그것뿐입니다! 빈손으로 나아와, 오직 주의 십자가만 붙드네.
그 위대한 보석! 무엇이었습니까? 완전했습니다. 서른세 살 반이 되었을 때 하나님은 그것을 커다란 타격 기계에 넣으셨습니다. 그쪽으로 가져가 다듬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그분을 깎고, 으깨고, 상하게 하셨습니다. 그는 우리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고... 우리 불법으로 인해 상하였도다. 그가 징벌을 받음으로 우리가 화평을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도다. 하나님은 그 완전한 사람에게 무엇을 하셨습니까? 세상에 그런 분은 단 한 분뿐이었습니다. 온 세상에 단 한 분, 바로 그분이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쪽을 깎아 내셨습니다. 그분은 우리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셨습니다. 제가 죄인이었기에, 일곱 교회 시대의 무지개 빛을 제 위에 비추셔서 그분이 제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셨음을 알게 하셨습니다. 거기에 일곱 빛깔의 무지개가 있습니다. “그는 우리 불법으로 인해 상하였도다. 그가 징벌을 받음으로 우리가 화평을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도다.” 하나님은 그분을 깎고 상하게 하시며, 으깨고 깎으셨습니다. 죽어 가시는 그 상처들을 통해 죄의 용서, 기쁨, 화평, 오래 참음, 선함, 온유함, 부드러움을 비추시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일곱 영은 그분의 백성 안에서 되비칠 성령의 일곱 열매입니다. 그분은 상하시고 다듬어지고 모양을 갖추셨습니다. 그 한 사람의 몸을 통해 비치는 하나님의 빛이 온 세상을 구속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땅에서부터 들리면 모든 사람들을 내게로 이끌리라.” 그 무지개 빛깔들이 비치는 것을 보십시오.
그러나 여기서 요한이 그분을 보았을 때는 어떠했습니까? 구속의 날이 끝났습니다. 모든 것이 끝났으므로, 그는 본래의 상태, 호박색으로 돌아오신 그분을 보았습니다. 세상의 절반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저... 태양은 돌아가면서 한 번에 세상 절반에만 비칩니다. 그러나 요한이 보았을 때 그분은 벽옥과 홍보석 같은 모습, 호박빛으로 앉아 계셨습니다. 그 둘을 섞으면 호박색이 됩니다. “왕좌 둘레에 호박색이 있더라.” 아! 정말이지, 저는... 계속해서 끝없이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일곱 영, 일곱 색, 일곱 교회 시대, 일곱 사역자, 일곱 빛, 모든 것이 일곱입니다. 하나님은 일곱으로 완전하십니다. 하나님은 엿새 동안 일하시고 일곱째 날 쉬셨습니다. 세상은 6천 년 동안 존재하고, 일곱 번째 천 년이 천년왕국입니다.
주목하십시오. 반원에서는... 아직 절반도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것들은 분명 무언가를 나타냅니다. 출애굽기 23장 13절과 히브리서 6장 12절에서 하나님은 자신과 언약을 맺으시고 자신을 두고 맹세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3장, 아니 9장 13절에서 그분이 자신을 두고 맹세하셨다고 말합니다. 맹세할 때 내세울 더 큰 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말씀하셨을 때... 그때 아브라함에게 그와 언약, 영원한 언약을 맺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언약은 언제나 맹세로 맺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도... 사람은 자기보다 더 큰 이를 두고 맹세합니다. 어머니를 두고, 나라를 두고, 무언가를 두고, 하나님을 두고 맹세합니다. 그러나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아니면 맹세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큰 이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자신을 두고 맹세하셨습니다. 아멘! 이 언약을 확증하시겠다고 자신을 두고 맹세하셨습니다. 아멘. 아브라함의 씨를 보존하시겠다고 맹세하신 것입니다. 이방인에게 아브라함의 씨는 무엇입니까? 성령의 침례, 아브라함의 씨입니다. 자신을 두고 맹세하셨습니다. “내가 그들을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일으키겠다. 영생을 주고 여기 이 땅에 다시 두겠다.” 얼마나 생각해 볼 만한 일입니까.
그래서 우리는 초록색, 호박빛의 둥근 무지개 안에 계신 그분을 봅니다. 이 초록빛, 초록은 무엇을 나타냅니까? 생명입니다. 초록은 늘 푸른 것, 언제나 푸르게 있는 것이며 생명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이 옛날 창세기에서 맹세하셨을 때, 하늘에 무지개를 두시겠다고, 다시는 물로 이 세상을 멸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다는 뜻입니다. 또한 아브라함의 모든 씨를 일으키겠다고 맹세하시고 자신을 두고 서약하십니다. 이 세상은 온갖 뒤흔드는 심판을 견뎌 낼 것입니다. 앞으로 살펴볼 심판들, 이후에 이어질 가르침에서 이 세상이 어떻게 솟구치며 화산처럼 변하고, 산산조각 나고, 뒤집히고 온갖 일을 겪는지 보여 드릴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멸하지 않으시고 다시 고르게 하셔서, 천년왕국 동안 그 땅에 자기 자녀들을 두겠다고 자신을 두고 맹세하십니다. 아! 나는 기다리네, 기쁜 천년왕국의 날이 오기를, 복되신 우리 주님 오셔서, 기다리는 신부를 데려가실 때를. 오, 내 마음 그리워하며 부르짖네, 복되게 풀려날 그날을, 우리 구주 다시 이 땅에 오실 때를. 아, 우리는 얼마나 그날 보기를 갈망합니까. 그분은 위대한 천년왕국이 올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또 하나, 그분이 그렇게 둘러싸여 계셨던 이유는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자기 언약을 지키십니다!
아무튼 다음 절로 가 봅시다. 아, 한 절은 더 하고 싶은데, 그러려면 10분에서 15분 정도밖에 없습니다. 너무 피곤하십니까? 계속하기를 원하십니까? 좋습니다. 4절을 봅시다. 또 그 왕좌 둘레에 스물네 자리가 있더라. 내가 보니 그 자리들에 스물네 장로가 흰옷을 입은 채 앉아 있는데 그들이 머리에 금왕관을 썼더라. 이 절을 끝까지 다 못할 수도 있겠지만 4절을 시작합시다. 보십시오. 요한이 그분을 보았을 때 에메랄드빛이 그분을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무지개의 모든 색과 그 모든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4절에서 그가 처음 하는 말은 이것입니다. 4절입니다. 또 그 왕좌 둘레에... 보십시오! 여기에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이 있습니까. 놓치지 마십시오. “왕좌”입니다.
모세에게로 돌아가 봅시다. 찾아볼 시간이 없으니 제가 하는 말을 들어 주십시오. 모세가 시내산 위에서 환상을 받았을 때... 이것은 더 이상 은혜의 왕좌가 아니었다는 점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피는 이미 사라졌고, 희생물은 다시 돌아왔으며 받아들여졌고, 피는 속죄소에서 거두어졌습니다. 이제는 그곳에서 천둥과 번개가 나오므로 심판석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기억하십시오. 시내산과 같았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으로 올라갔을 때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천둥과 번개였습니다. 소든 송아지든 양이든 누구든 그 산에 닿기만 해도 죽어야 했습니다. 성경은 그 흔들림이 너무 심해 모세조차 두려워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모세... “여기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자손들을 데리고 건너가 유산을 나눠 줄 위대한 용사 여호수아도 산 중턱까지만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모세는 저 위에 서서 하나님의 색들, 주위의 번쩍이는 빛과 번개와 에메랄드빛 속에서 명령들이 기록되는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 있는데 저기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모세야, 어디 있느냐? 신을 벗으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다.” 이제는 심판석이었습니다. 구속받은 자 외에는 아무도 거기 설 수 없었습니다. 죄인은 전혀 가까이 갈 수 없었습니다. 끝난 것입니다. 심판석입니다. 좋습니다.
모세는 땅에서 여러 가지를 만들고 성막을 지었는데, 하늘에서 본 것처럼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알지요? 바울도 같은 일을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분명히... 히브리서 9장 23절입니다. 모세가 본 그대로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바울도 환상 가운데 하늘에 올라갔을 때... 그 위대한 히브리서를 가르칠 때, 자기 환상에서 모세가 보았던 것과 같은 것을 보았음이 틀림없습니다. 그가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 놀라운 히브리서를 가르치며, 그리스도교가 어떻게 구약의 실체인지를 설명했습니다. 바울은 위대한 교사였습니다. 그때 그것이 그분의 왕좌였습니다. 그러면 그 안에서...
잠깐... 이 부분은 그냥 지나가려 했지만 도저히 안 되겠습니다. 칠판은 어디...? 도로 가져갔습니까? 닥, 뒤에 있습니까? 여기서도 여러분이 알아보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자, 연필과 종이를 준비하십시오. 여기서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아침 앉아 있는데 어떤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어떻게 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보시면 여기 뒷면에 그려 놓았습니다. 영께서 주신 대로, 그것이 어떤 모습일지 그저 여기 그려 놓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서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왕좌에 앉으시면 그때는 재판관이십니다. 그렇지요? 재판관이 언제... 재판관이 됩니까? 자기 심판석, 왕좌에 나아왔을 때입니다. 이제 구약의 구조가 어떠했는지, 그분의 왕좌에 나아가는 뜰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요한이 여기서 어떻게 보았는지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아침에 그것을 전부 다루지는 못하겠지만... 요한이 그분께 나아가는 똑같은 뜰들을 어떻게 보았는지, 그분의 뜰에 어떻게 나아가는지를 보십시오. 아, 저는 이것이 참 좋습니다.
구약에는 사람들이 모이는 “회중”이라고 부르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 회중 안으로 들어오기 전에, 그곳에 들어가려면 먼저 흘린 피 아래로 나아와야 했습니다. 바깥뜰입니다. 먼저 정결하게 하는 물 앞으로 나아왔습니다. 붉은 암송아지를 잡아서 정결하게 하는 물을 마련했던 곳입니다. 그것은 와서 말씀을 듣는 죄인입니다. 바로 그런 식으로 이 훌륭한 유대인 랍비가 최근 주님께 인도되었습니다. 털사에서 제가 그 주제로 설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털사였습니다. 오클라호마주 털사였습니다. 그는 그저 구경하는 사람으로 거기 왔습니다. 예배 뒤에 그가 가서 말했습니다. “저는 압니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랍비 일곱 사람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는 그리로 오면서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인 실업인회가 어떤 곳인지 보고 싶습니다. 그들을 오순절교인들이라고 부르더군요. 가서 앉아 들어 보고 싶습니다.”
주님이 제게 그 붉은 암송아지 희생에 관해 말씀하게 하셨는데, 예배가 끝난 뒤 그가 뒤쪽에서 형제님들을 만나 말했습니다. “그분을 만나고 싶습니다. 교육조차 받지 못한 분이라는 것은 압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여러 가지 나아가는 절차들을 다 아는 유대인 랍비입니다. 그런데 평생 그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한 번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제 그는 성령으로 충만한 오순절 랍비가 되어 곳곳을 다니며 복음을 전합니다. 스스로 “오순절 랍비”라고 부릅니다. 얼마 전 잭 형제님 계신 곳에서 함께 모였을 때, 그는 워싱턴 유리 호텔로 갔습니다. 거기 여직원이 그를 알아보고 말했습니다. “랍비님, 좋은 방이 있습니다만 텔레비전은 없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그건 지옥비전입니다. 내다 버리세요! 어차피 방에 두고 싶지 않습니다. 있었어도 내다 버리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랍비님!” 그가 말했습니다. “저는 오순절 랍비입니다.” 할렐루야! 그가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이스라엘에 가실 때 함께 가고 싶습니다. 우리 백성에게 이것을 가져갈 수 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지금은 아닙니다, 랍비님. 지금은 아닙니다. 지금은 아닙니다. 아직 그때가 아닙니다. 조금 기다리십시오.”
이 거룩한 장소들을 보십시오. 뜰로 들어오면 첫째는 뜰, 바깥뜰이었습니다. 그다음은 희생물을 드리던 제단, 놋제단이었습니다. 그 놋제단 바깥쪽 여기에는 휘장이 걸려 있었고, 그것을 지나 지성소로 들어갔습니다. 그 안에 속죄소가 있었고, 그 안에 그룹들이 있었습니다. 다음 시간에 살펴보고 싶은 것이 바로 그 속죄소를 덮고 있는 그룹들입니다. 아! 그것을, 그 그룹을 한 달 내내 다룰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들어갔는지 보십시오. 회중은 거기까지 올 수 있었고, 제사장들은 여기 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대제사장만 해마다 한 번, 피를 가지고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는 특정한 방식으로 옷을 입고, 정해진 의복을 착용해야 했습니다. 방울 하나와 석류 하나가 서로 번갈아 달려 있어야 했습니다. 걸을 때도 정해진 방식으로 걸어야 했습니다. 걸으면 그 방울들과 석류가 함께 울려 “주님께 거룩, 거룩, 거룩. 주님께 거룩, 거룩, 거룩” 하고 연주했습니다. “거룩, 거룩, 거룩!” 왜 그렇습니까? 손에 언약의 피를 들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피를 지닌 채 특정한 향유로 기름부음을 받고, 아,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 그의 옷은 성령으로 충만한 손으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지정된 손들이 그 옷을 만들었습니다. 샤론의 장미, 그 기름부음의 기름을 머리에 부었습니다. 그 향기로운 왕의 향유가 수염을 타고 흘러 그 몸까지 내려왔습니다. 석류와 방울을 달고 죄 없는 어린양의 피를 가지고 갔습니다. 바깥에서 감히 그 휘장에 다가갔다가는 서 있던 바로 그 자리에서 죽을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정해진 방식으로 걸어가야 했습니다. “주님께 거룩, 거룩, 거룩. 주님께 거룩, 거룩, 거룩”—하나님께 나아갑니다—“거룩, 거룩, 거룩!”
그는 해마다 한 번 거기에 들어가 속죄소에 피를 드렸습니다. 그 안에 있는 동안 셰키나 영광을 볼 특권이 있었습니다. 불기둥, 그 호박빛이 내려와 자손들을 이스라엘에서 이끌어 냈을 때... 그분은 아무도 보지 못하도록 성전까지 연기로 가득하게 하셨습니다. 주님의 영광이 내려와 온통 연기가 자욱했습니다. 그리고 그분 자신이 들어오셔서 휘장 뒤로 가, 지성소 안 속죄소 위에 자리 잡으셨습니다. “가장 거룩한 곳”, 곧 지성소라고 부릅니다. 그는 특정한 방식으로 옷을 입고, 특정한 방식으로 걸으며, 특정한 방식으로 기름부음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 안에 들어갈 수 있는 특별한 사람이었습니다. 회중이 그를 얼마나 부러워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이 죽으셨을 때 성전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대제사장만 아니라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셰키나 영광의 동일한 기름부음을 받고, “주님께 거룩, 거룩, 거룩” 하며 거룩한 삶을 살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앞세워 하나님이 계신 바로 그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를 데리고 들어가... “주 예수님, 여기 병든 사람이 누워 있습니다. 제 형제입니다. 지금 임종의 자리에 누워 죽어 갑니다. 제가 주님께 나아갑니다. ‘주님께 거룩, 거룩, 거룩.’” “무엇을 위해서냐?” “대제사장으로서입니다.” “무엇을 위해서냐?” “제 형제를 위해서입니다. ‘주님께 거룩, 거룩, 거룩.’”
바로 그것입니다! 날마다의 걸음과 말과 행실, 여러분의 마음과 혼과 모든 것이 “주님께 거룩, 거룩, 거룩”입니다. 쓴 뿌리도 다른 아무것도 없이, “주님께 거룩, 거룩, 거룩. 주님께 거룩, 거룩, 거룩” 하며 형제를 위해 나아가기 시작합니다.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기름부음을 받고, 앞에 피를 두고, 피가 먼저 나아가는 가운데 “주님께 거룩, 거룩, 거룩” 하고 울리며 나아올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깥뜰과 성소와 지성소였습니다. 땅에 있는 하나님의 성소였습니다. 보십시오. 하늘에 있는 그것을 본뜬 것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다시 바로 이 성경 구절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아, 요한계시록을 살펴보는 내내 곧바로 여기로 다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이제 요한은... 요한은 어디에 서 있습니까? 뜰에 있습니다. 그 광경을 이해하시도록 여기서 조금 더 읽어 봅시다. 그 왕좌로부터 번개들과... 천둥들과... 음성들이 나오고 왕좌 앞에는 일곱 등불이—이 부분을 다룰 때까지 기다려 보십시오!—타고 있었는데 그것들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하나님의 빛을 교회 안으로 비춥니다. 하나님의 왕좌에서 곧바로 비춥니다. 신학교를 통해서도 아니고 어떤 감독을 통해서도 아니라, 그분의 부활의 권능에 관한 계시로 하나님의 왕좌에서 비추어, 그분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심을 나타냅니다. 거기 서 있는 일곱 별이 그 빛, 지성소의 셰키나 영광에서 나오는 셰키나 빛을 비춥니다. 이 촛대들 위에 놓인 일곱 등불이 타오르며, 그분의 빛과 색, 그분의 부활의 권능을 교회 안으로 곧바로 비춥니다. 아멘! 그 왕좌 앞에는... 수정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왕좌 한가운데와 왕좌 둘레에는 앞뒤에 눈이 가득한 네 짐승이 있더라. 그는 이어서 이 짐승들, 에스겔이 보았던 바로 그것들을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그 파수꾼들, 하나는 사람 같고 하나는 사자 같고 하나는 독수리 같은 것들, 그것은 무엇입니까? 이제 보십시오. 그것들을 가져와 유다 지파의 사자와, 네 벽에 자리 잡은 각 지파의 다른 모든 것들을 보여 드릴 때... 그들은 이 속죄소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아, 얼마나 멋진 광경입니까! 아, 저는 그저... 앞으로 큰 날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것들을 보면... 그것은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왕좌였습니다. 모세가 그것을 땅에 본떠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왕좌였습니다. 그분의 심판석이 이 땅에서는 지성소에 나타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온 이스라엘이 긍휼을 얻으려고 그 한 장소로 나아왔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흘린 피 아래에서만 만나 주셨기 때문입니다. 잘 들으십시오. 그러던 어느 날 셰키나 영광이 그 속죄소에서 떠올라 다른 성막에 내려앉았습니다. 아멘! 바로 이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모든 심판을 아들에게 맡기셨느니라.” 하나님의 심판석입니다. “너희가 나를 대적하여 말하면 용서받으리라. 다른... 앞으로 오실 다른 분, 또 다른 속죄소를 대적하여 말하면... 너희가 사람의 아들을 대적하여 말할 수 있고, 내가 용서하리라. 그러나 언젠가 성령이 오셔서 사람들의 마음에 거하실 것이다. 그분을 대적하는 말 한마디는 결코 용서받지 못하리라.”
심판이 갈수록 점점 더 엄해집니다. 죄인들이 자기에게 나아와 화해하도록 하시면서 하나님은 끊임없이 인내를 다 써 가시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저 위 하늘에 계시며 별들을 통해 빛을 비추셨습니다. 두 번째로는 땅에서 셰키나 영광을 통해 빛을 비추셨습니다. 그다음에는 오셔서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여전히 인내를 써 가셨습니다. 그런 뒤 자기 피로 인간을 구속하시고, 성령의 모습으로 자기 교회 안에 들어오셨습니다. 그것을 대적하여 말하면 끝난 것입니다. 끝입니다. 이제 흔들림이 어디서 오는지,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는 그때가 어디인지 보이실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것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첫 번째 왕좌는 하늘에 있었으며 심판석이었습니다. 두 번째 왕좌는 그리스도 안에 있었습니다. 세 번째 왕좌는 인간 안에 있습니다. 이제 여기 그려 놓은 이 작은 그림을 보겠습니다. 우리가 만들 것은... 칠판이 있으면 좀 더 알아듣기 쉽게 설명할 수 있을 텐데요. 이제 뜰들을 그리되, 둥근 원으로 그려도 되고 이렇게 그려도 됩니다. 어느 쪽이든 좋습니다. 이제... 아마 이렇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습니다. 뜰들을 그리겠습니다. 사람은 무엇입니까? 몸과 혼과 영으로 이루어진 삼중의 존재입니다. 아시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하나님이 다가오시는 길을 보십시오. 사람의 마음은 무엇입니까? 제 메시지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을 자신의 관제탑으로 택하셨다”를 기억하십니까? 마귀는 자기 관제탑으로 사람의 머리를 택했습니다. 눈으로 보게 하여 여러 가지를 보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마음속에서 사람이 볼 수 없는 것들을 믿게 하십니다. 아시겠죠?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에 계십니다. 사람의 마음 안에 하나님의 왕좌가 있습니다. 이해하십니까? 사람은...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에 자기 왕좌를 만드셨습니다. 이제 보십시오. 사람의 첫 번째 부분은 무엇입니까? 첫 번째 부분은 몸입니다. 다음 부분은 혼인데, 그 사람을 그 사람으로 만드는 영의 본성입니다. 이제 그분이 다가오십니다. 사람의 세 번째 부분은 영이고, 그 영은 마음 중심에 있습니다. 그 마음 중심이 하나님이 오셔서 왕좌를 삼으시는 곳입니다.
기억하실 것입니다. 최근, 약 4년 전 시카고 신문에 실렸던 일입니다. 그 믿는 자... 아니, 믿지 않는 자가 하나님이 솔로몬을 통해 “사람이 자기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처럼...”이라고 말씀하실 때 실수하셨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심장에는 생각할 수 있는 정신 기능이 없습니다. 어떻게 심장으로 생각합니까? 머리를 말씀하신 것이겠지요.” 하나님이 머리를 뜻하셨다면 머리라고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모세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세가 만일... 하나님이 “모세야, 신을 벗으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다”라고 하셨을 때, “그럼 모자를 벗겠습니다. 그것도 똑같이 괜찮겠지요”라고 했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분은 “신”이라고 하셨습니다. “모자”라고 하지 않으시고 “신”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이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라”고 하셨을 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을 뜻하신 것이 아닙니다. 말씀하신 그대로를 뜻하셨습니다. “너희가 반드시 다시 태어나야 하리라”고 하셨지, “다시 태어나는 게 좋겠다”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라”고 하셨습니다. “어쩌면 따를지도 모른다”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뜻하시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시므로 그 말씀을 거두실 수 없습니다. 무엇이 완전한지 아시므로 그렇게 만드십니다. 그것이 그분이 뜻하신 방식이며, 여러분이 거기에 맞추어 올라가야 합니다. 그분이 여러분의 생각에 맞추어 내려오시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그분의 생각에 맞추어 올라가야 합니다. 그 차이입니다.
자, 이 몸과 혼의 구조에서... “혼”이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성경 사전이든 웹스터 사전이든 어느 것이든 “영의 본성”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 한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존 도입니다. 좋습니다. 존 도입니다. 여기에는 샘 도가 있습니다. 좋습니다. 존 도는 사람, 몸입니다. 샘 도의 형제입니다. 존에게는 영과 혼과 몸이 있습니다. 샘 도도 똑같이 몸과 혼과 영이 있습니다. 아시겠죠? 몸, 혼, 영입니다. 이 사람은 악하고 못되어 속이고 훔치고 거짓말하고 간음하며 할 수 있는 온갖 악한 일을 합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사랑과 화평과 기쁨으로 가득합니다. 두 사람 모두 혼과 몸과 영이 있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다릅니까? 이 사람은 과거를 돌아보며 “어머니가 기억납니다. 우리가 어릴 때 했던 일들이 기억납니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 그럴 수 있습니다. 둘 다 영이 있고 혼이 있고 몸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의 영의 본성은 악하고, 이 사람의 영의 본성은 선합니다. 그러므로 영의 본성이 사람의 혼입니다. 하나님은 어디에 들어가려고 하십니까? 사람의 영과 마음입니다. 영이 자리 잡는 곳은 마음입니다.
제가 그 이야기를 마치지 않았는데, 과학은 사람이 심장으로 생각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과학은 인간의 심장 안에 작은 공간이 있다는 것을 알아내기 시작했습니다. 동물의 심장이 아니라 인간의 심장입니다. 그 안에는 혈구 하나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들은 “혼이나 영이 차지하는 자리임이 틀림없다”고 했습니다. 그냥 두십시오. 자기들의 어리석은 것들로 하나님을 입증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어리석은 자들로 자신을 증언하게 하십니다. 그것이 신문에 커다란 제목으로 실렸습니다. 보즈 형제님의 어린 딸이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얼마 전에 하셨던 말씀 있잖아요? 보세요, 보세요. 과학이 벌써 알아냈어요.” 제가 말했습니다. “아,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자매님, 그 신문을 갖고 싶군요. 갖고 싶습니다.” 사람의 혼은 영의 본성이고, 영은 사람의 마음에 거합니다.
그러면 바깥뜰은 무엇입니까? 육체입니다. 처음 만나는 것이 육체입니다. 먼저 그것을 태워 없애야 합니다. 육체를 넘어서야 합니다. “일어나서 교회에 가고 싶지 않아. 길이 너무 미끄러워. 너무 더워. 아, 교회라, 모르겠어.” 그것이 육체입니다. 좋습니다. 그것을 태워 없애고 지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통과하셔야 합니다. 다음에 그분이 오시는 곳은 혼, 곧 본성입니다. “아, 존스네가 나를 뭐라고 할까? 아이고! 내가 그런 일을 하면 우리 교회에서 쫓아낼 텐데.” 그러나 그것도 지나가야 합니다.
그것을 지나가면 그분이 마음 안으로 들어가시고, 거기서 왕좌에 앉으십니다. 그것이 여러분 안에 계신 성령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를 걸려 넘어지게 하기보다는 연자방아 맷돌을 목에 달고 바다 깊은 곳에 빠져 죽는 것이 훨씬 더 나으리라.” 그들에게 해를 가하는 것뿐 아니라, 그저 그들을 불쾌하게 하고 어떤 일로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만이라도 말입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그렇게 마음 상하게 하느니, 스스로 물에 빠져 죽거나 아예 이 땅에 태어나지 않은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그분이 진심으로 하신 말씀입니까? 거짓말하실 수 있습니까? 사도들이 한 말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이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네가 걸려 넘어지게 한다면...”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라.” 어떤 거창한 사람이 말합니다. “아, 나는 그분을 믿습니다! 할렐루야!” “그분이 약속하신 대로 방언을 말하거나 방언을 통역하고, 마귀들을 내쫓거나 환상을 보는 등의 일이 있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런 시대는 지났습니다.” 그는 믿는 사람이 아니라 믿는 체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은 “온 세상과 모든 창조물 가운데서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라”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믿는 자에게 따르리라.” 그것이 그분이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아시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성경, 마가복음 16장입니다. 그러니 그 사람은 믿는 체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참으로 믿고 표적들이 따르는 신자를 만나고, 흉내 내는 사람이 아니라 그 삶에서 겸손을 보며, 그가 그리스도인이고 참으로 진실한 사람임을 알게 되면, 잠자코 계십시오. 오히려 그들과 함께하여 나아가십시오. 왕의 큰길을 따라 위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이것을 보십시오. 이방인 교회의 몸이 시작되었을 때 바깥뜰은 루터 시대였습니다. 기억하십시오. 두아디라로 들어간 주후 606년 무렵까지는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거의 모두 유대인 회심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 다음에는 이쪽으로 넘어와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있었지만, 대체로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이방인 시대로 들어오면서 이쪽으로 와서 마르틴 루터, 존 웨슬리 등이 나타났습니다. 이제 이 마지막 셋을 보십시오. 그 암흑시대 뒤에 중세를 거쳐 나아와 넘어온 것입니다. 그것이 나타날 때 이 바깥뜰을 보십시오. 육체, 혼, 영입니다. 바깥뜰은 육체입니다. 성소는 나사렛교회, 필그림 성결교회, 자유감리교회입니다. 그리고 지성소는 다시 오순절로, 처음 시작했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지금 그림을 그리고 계시다면 표시하고 싶습니다. 육체로 들어가 육체를 지배하는 문이 다섯 개 있습니다. 아시지요? 다섯 감각입니다. 몸을 지배하는 감각은 몇 개입니까? 다섯입니다. 보고, 맛보고, 느끼고, 냄새 맡고, 듣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것이 육체, 바깥뜰입니다. 육체이므로 의지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다음에는 안뜰이 있습니다. 안뜰, 곧 다음 제단입니다. 그다음 제단으로 들어가면 양심, 상상, 기억, 열정, 애정이 있습니다. 안뜰을 지배하는 다섯 감각입니다. 그것이 혼입니다. 애정의 감각, 그것이 혼입니다. 사랑 같은 것들입니다. 그다음에 여기 안의 이 감각에는 기억과 양심, 긍휼 등과 상상도 있습니다. 앉아서 어떤 것을 상상한다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육체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감각이 상상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안에 있는 안뜰입니다.
거기에는 문이 셋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이제 뚫고 들어가고 있습니다. 놓치지 마십시오. 육체와 다섯 감각에서 다음 부분, 혼, 곧 안뜰로 나아갑니다. 그런데 이제는 마음으로 들어갑니다. 여러분 선량한 필그림 성결교인들과 감리교인들이 저 바깥 제단에 머물렀던 것입니다. 루터교인 등은 뜰에, 육체에, 다섯 감각이 있는 그곳에 있습니다. 눈이 보고 알아낼 수 있는 것들입니다. 여기 필그림 성결교회가 왔는데, 사실상 자유감리교회였습니다. 다음 뜰로 들어와 거룩함을 믿었습니다. 희생물을 놓는 곳을 성소라고 불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해마다 한 번 대제사장이 출입이 금지된 지성소에 들어갔습니다. 루터 시대가 있었고, 그다음에 감리교 시대가 있었고, 그다음에 이 시대가 있습니다. 교회의 빛들이 나타나는 모습은 인간의 구조와 같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이 안으로 들어갑니까? 기억하십시오.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휘장, 걸려 있는 휘장이 있었습니다. 지성소는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여러분 마음의 왕좌에 앉으시는 곳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왕좌에 앉으십니다. 그분은 의롭게 됨을 통해 오십니다. 그렇지요? 성화를 통해 오십니다. 그런 다음 하나의—물입니까? 하나의 교회입니까? 하나의 신조입니까?—한 영으로 우리는 여기서 모두 침례를 받아 한 몸, 곧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들어갑니다. 무엇으로 말입니까? 성령으로입니다. 누가 들어옵니까? 감리교인, 침례교인, 장로교인, 오순절교인, 누구든지 원하는 자입니다. 그 휘장... 여러분의 마음을 가려 그것에 이르지 못하게 하는 휘장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준비되셨습니까? 그 휘장은 “자기 의지”라고 부릅니다. 이제 그림이 이해되십니까? 저 바깥의 감각들, 몸의 감각들과 혼의 감각들, 그리고 그것과 성소, 곧 지성소 사이의 휘장입니다.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기 의지를 행사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무엇입니까? 누구든지 악수하는 자입니까? 누구든지 물에 잠기는 자입니까? 누구든지 교회에 가입하는 자입니까? 누구든지 이명 증서를 옮기는 자입니까? 누구든지 무엇을 하는 자입니까...? 아닙니다.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휘장 너머로 오라.”
그리스도께서 감각에 이르게 해 보십시오. “나는... 한 가지, 지옥에 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교회에 가입하겠습니다.” 좋습니다. 루터교인입니다. “제 생각에는 될 수 있는 대로 다른 삶을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제단에서의 성화입니다. 좋습니다. 감리교인입니다. 그러면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찢어진 휘장을 통과하십시오. 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저는 저편에 있습니다. 그분의 이름에 할렐루야! 아!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자기 뜻의 장막을 찢어 버리고, 하나님이 마음속에 들어오시게 하십시오. 거기에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 안에 있는 자기 심판석에 계십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야 합니까?
여러분은 말합니다. “나는... 좋습니다. 음담패설을 해도 마음에 가책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가책을 받게 할 것이 여러분 안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꺼내 버릴 분이 안 계십니다. 여러분을 책망할 분이 안 계십니다. 여자들은 말합니다. “저는 머리를 짧게 해도 가책이 없습니다.” 당연합니다! 아시겠죠? “예, 반바지를 입어도 되고 이런 것을 해도 됩니다.” 어떤 남자는 말합니다. “시가를 피워도 괜찮습니다. 카드놀이를 하고 주사위 놀음을 해도”—무엇을 하든—“괜찮습니다.” 여전히 교회에 속해 있으면서 말합니다. “이런 일을 해도 괜찮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거기에 여러분을 심판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들어오시면 여러분은 마음에 제단을 세운 것이며, 죄가 날마다 제거됩니다! 위대한 성 바울은 말했습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노라. 그러나 내가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느니라.” 거기에 안쪽 휘장이 있습니다. 오, 형제여, 자매여!
서둘러야 하는데, 압니다... 아, 안 되겠습니다. 도저히 끝낼 수가 없군요. 시간이 지났습니다. 어디 봅시다. 제가... 아니, 안 하는 게 좋겠습니다. 스물네 장로를 다루고 싶은데, 여러분 모두 점심을 못 드시게 붙들고 있는 것을 압니다. 그냥... 어디 봅시다, 그... 스물네 장로를 다루자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좋습니다. 잠깐만 하겠습니다. “스물네 장로”—그럼 얼른 살펴봅시다—“왕좌 둘레에”, 그리고 스물... 왕좌 둘레에 있었습니다. 이제 아시겠지요... 지금 왕좌는 어디에 있습니까? 마음 안에 있습니다. 누구의 마음입니까? 일곱 교회 시대에 속한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들의 행위를 대적하여 한마디 하면 정죄를 받습니다. 심판 날에 그 일에 대해 답해야 할 것입니다. 누가 땅을 심판합니까? 성도들이 땅을 심판할 것입니다. 다니엘은 만만의 무리와 함께 오는 누구를 보았습니까? 성도들입니다. 책들이 펴졌습니다... 죄인들입니다. 또 다른 책이 펴졌는데 생명책이었습니다. 잠자는 처녀입니다. 아, 이것이 보이지 않습니까? 잠자는 교회, 신랑을 맞으러 나갔지만 등불의 기름이 꺼지게 두었던 사람들입니다. 이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고, 그리스도께서 자기 교회 안에 살아 계심을 입증하시도록 기적을 행하고 방언을 말하고 이적 등을 행하실 수 있게 그분께 주도권을 드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나는 예수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하시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셨다면 어떻겠습니까? 그저 “내가 여기 올라가 교회에 가입하겠다”고 하셨다면요? 그것이 하나님의 아들이었겠습니까? 그분이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내가 만일 내 아버지의 일들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라.” 아! 보이십니까? 하나님은 자신을 밝히 드러내십니다. 그렇게 하기를 좋아하십니다. 그분은 여호와이십니다. 자신을 알리기를 좋아하십니다. 아, 저는 그것이 참 기쁩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제게 자신을 알리셨고, 여러분에게도 그러셨음을 압니다. 막 회심한 젊은 분들 중에는 아직... 오래 믿은 그리스도인들이 아는 권능과 큰일들 가운데 그분을 알지 못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도 바로 그 안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왕의 큰길을 따라 올라가고 있습니다. 하지 마십시오... 그저 계속 바라보며 온 힘을 다해 밀고 나아가십시오. 달리고, 달리고, 달리십시오. 있는 힘을 다해 달리십시오. 무엇 때문에도 멈추지 마십시오. 계속 가십시오. 가엾은 스넬링 자매님이 늘 말씀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나는 달리네, 달리네, 달리네, 이제 막 건넜네. 달리네, 달리네, 달리네, 이제 막 건넜네. 달리네, 달리네, 달리네,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네. 가엾은 그 어르신. 오늘은 저편에 계십니다.
좋습니다. 거기에 왕좌들이 있었고 스물네 자리가 있었습니다. 스물에 넷이면 몇입니까? 스물넷입니다. 좋습니다. ...스물네 자리가 있더라. 내가 보니 그 자리들에 스물네 장로가—자리에 한 사람씩—...흰옷을 입은 채 앉아 있는데 그들이 머리에 금왕관을 썼더라. 자, “스물네 장로”입니다. 이들이 천사 같은 존재들이 아니었다는 것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천사들은 연관되지 않습니다... 하늘의 존재들은 왕관이나 왕좌와 연관되지 않습니다. 전혀 연관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천사입니다. 이겨 낸 적이 없습니다. 조금 뒤에 살펴보면 그들이 부른 노래 등이 천사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합니다. 그들은 구속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러므로... 천사는 구속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좋습니다. 이들은 구속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적고 계신 여러분, 이 부분을 다 다룰 시간이 없습니다. 그들이 구속받은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알고 싶으시면 마태복음 19장 28절을 보십시오. 좋습니다. 마태복음 19장 28절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1절, 그리고 마찬가지로 요한계시록 20장 4절, 요한계시록 2장 10절, 베드로전서 5장 2절과 4절, 디모데후서 4장 8절입니다. 그것을 보면 그들이 구속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아침 그 부분을 살펴보고 싶었습니다. 몇 주 동안 속속들이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천사 같은 존재들이 아니었습니다. 하늘의 존재들이 아니었습니다. 구속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옷, 옷 입은 모습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들의 지위와 그들이 가진 것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들의 노래, 무엇을 불렀는지를 살펴보면 그들이 천사 같은 존재들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부분까지 오기는 부담스럽지만, 성경 한 군데만 더 읽읍시다. 괜찮겠습니까? 좋습니다. 잠깐 다니엘 7장으로 돌아가, 여기 다니엘 7장에서 한 구절을 읽읍시다. 제가... 오늘 아침 남은 메시지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것을 읽고 보시면 훨씬 더 기쁘실 줄로 믿습니다. 무엇을... 다니엘, 다니엘 7장, 이제...부터 시작합시다. 다니엘 7장 9절을 봅시다. 이제 잘 들으십시오. 내가 보니 마침내 그 왕좌들이 무너져 내리고 옛적부터 계신 분께서 앉아 계시는데 그분의 옷은 눈같이 희고 그분의 머리털은... 순결한 양털 같으며 그분의 왕좌는 맹렬한 불꽃 같고—보이십니까? 다시 그 호박빛 불로 돌아옵니다—그분의 바퀴들은 타오르는 불 같더라. 불같은 시내가 그분 앞에서 분출하여 나오는데 천천이 그분을 섬기고 만만이—여기에 구속받은 자들이 나옵니다—그분 앞에 서 있으며 심판이 준비되었고 책들이—책들, 복수입니다—펴져 있더라. 주목하십시오. 이 심판이 준비되었습니다. 보십시오. 다니엘이 심판 때의 왕좌들을 보았을 때, 그 왕좌들은 비어 있었습니다. 왕좌들이 내려지는 것,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옛적부터 계신 분께서 하늘에서 내려오셨습니다. 그러나 요한이 보았을 때는 이미 예수님이 왕좌에 앉아 계셨고, 구속받은 제자들과 족장들의 왕좌도 이미 채워져 있었습니다. 다니엘은 그리스도의 시대보다 500년 앞서 그것을 보았습니다. 그다음 그리스도 이후를 더하면... 2,500년이 됩니다. 그리고 요한은 장차 올 시대에 들어가 살고 있었습니다. 다니엘은 보지 못했지만 요한은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것을 이미 보았습니다. 다니엘은 옛적부터 계신 분이 오시는 것만 보았습니다. 그분이 오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요한이 그분을 보았을 때 왕좌는 채워져 있었습니다. 왕좌들이 옛적부터 계신 분과 함께 내려졌고 심판이 준비되었습니다. 그러나 요한이 그분을 보았을 때는, 요한의 시대... 아니 다니엘의 시대에는 장로들이 아직 선택되지 않았지만, 마지막 때에는 그들이 이미 구속받은 뒤였습니다. 아! 그분은 놀랍지 않습니까?
다니엘 7장입니다. 다니엘은 무엇을 했습니까? 심판을 미리 보았고, 놓여 있는 왕좌들이 비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비어 있어야 했던 것입니다. 요한이 본 때에는 교회가 휴거된 뒤였으므로 구속받은 장로들이 거기에 앉아 있었습니다. 장로란 무슨 뜻입니까? “장로”라는 말을 보면, 제가 여기... 그 정의들을 모두 적어 놓았습니다. 지금은 건너뛰며 살펴보고 있습니다. 장로는 “도시의 우두머리” 혹은 “지파의 우두머리”라는 뜻입니다. 장로, 어떤 집단의 우두머리입니다. 제가... 지금 네빌 형제님이 이 교회의 장로인 것과 같습니다. 무엇입니까? 이 지역 교회 공동체의 우두머리입니다. 도시의 시장은 그 도시의 장로, 도시의 장로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 시대에 도시의 장로들이 있었던 것을 기억하십니까? 장로는 “도시의 우두머리” 혹은 “지파의 우두머리”라는 뜻입니다.
몇 사람이었습니까? 스물에 넷, 스물네 장로였습니다. 그렇지요? 자... 아! 누구였습니까? 열두 사도와 이스라엘 열두 지파, 열두 족장이었습니다. 다른 가르침들로 들어가면서 계속 살펴보고 그것이 옳다는 것을 입증하겠습니다. 그러니 지금 적어 두시니 기쁩니다. 열두 족장과 이스라엘 열두 지파입니다! 이제 보십시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어느 날 물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받겠습니까? 아버지와 어머니, 남편과 아내, 자녀들과 다른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따르려고 아내와 자녀들, 아버지와 어머니, 집과 땅을 버렸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열두 왕좌에 앉아 열두 지파를 재판하리라.” 바로 그것입니다. 구속받은 자들, 구속받은 장로들입니다.
그리스도를 보여 주는 다윗을 보십시오. 다윗이 권세를 얻으러 나아갈 때, 먼저 권세를 얻기까지 몹시 어려운 일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 위에는 기름부음이 있었습니다. 기름부음이 그 위에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은 그를 그저 하찮은 반역자, 남들과 좀 다르고 무언가를 무너뜨리려는 작은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가 장차 왕이 되리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끝까지 그의 곁에 있었습니다. 형제여, 함께 걸어가는 그들을 그에게서 떼어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산 위에 서서 내려다보니 자기가 사랑하는 작은 성읍이 적에게 포위되어 있었습니다. 거기 서서 어릴 때 양들을 이끌고 그곳을 지나가며 물을 마셨던 일을 떠올렸습니다. 정말 좋은 물이었습니다. 얼마 전 여기서 “생명수”라는 제목으로 그것을 이야기했지요. 그는 그곳을 생각하며 “내가 저기서 물을 마셨는데” 했습니다. 그의 작은 바람 하나도 부하 누구에게나 명령이었습니다. 형제여, 그중 두 사람이 칼을 움켜쥐고 좌우로 베며 블레셋 사람들 사이를 15마일이나 싸워 뚫고 나갔습니다. 그 우물에서 물 한 모금을 길어다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가 장차 권세를 얻을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한 번은 그들 중 하나가 그를 구하려고 구덩이에 뛰어들어 혼자 사자를 죽였습니다. 그들은 용사였습니다. 다윗이 권세를 얻었을 때 무엇을 했는지 아십니까? 각자에게 한 성읍씩 맡겨 다스리는 자로 삼았습니다.
거기서 그리스도가 보입니까? “이기는 자는 한 도시를 다스리리라.” 이기는 자들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분이 권세를 가지고 오신다는 것을 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을 다스리실 것입니다. 독일도 미국도 모두 무너져야 합니다. 모든 나라가 무너져야 합니다. 이 세상의 왕국들이 우리 하나님과 그분의 그리스도의 왕국들이 되었고, 그분이 그것들을 다스리며 통치하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이 권세를 가지고 오시는 줄 알기에, 그분의 가장 작은 바람도 우리에게는 명령입니다. 50센트의 돈도 없고 가난한 사람들밖에 없는 작은 팀북투 같은 곳에서 그분을 대표하기를 원하십니까? 그것이 그분의 바람이라면, 아멘! 사람을 몇 명 이상 모을 필요도 없고 이것을 해야 한다는 조건도 없습니다. 그분이 가기를 원하신다는 것만 알려 주십시오. 아멘. 그것뿐입니다. 그분이 제가 다르게 살고 다르게 행동하기를 원하신다면—이 자매님들처럼 말입니다—어떤 특정한 일을 하기를 원하신다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제게는 특권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세상이 무슨 말을 하든 그분이 권세를 가지고 오시는 줄 압니다. 모든 무거운 것과 저를 너무 쉽게 얽어매는 죄를 떨쳐 버릴 수 있다면, 제 앞에 놓인 경주를 인내로 달리게 하십시오. 우리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시며 권세를 가지고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십시오!
그 “장로들”, 스물네 장로입니다. 좋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이것을 봅니다. 요한계시록 21장쯤에 보면 예루살렘 도시에 열두 기초가 있었습니다. 그렇지요? 또 열두 문이 있었습니다. 각 면에 셋씩, 3 곱하기 4는 12입니다. 광야에서 성막이 놓였던 방식과 정확히 같습니다. 요한이 말하고 본 것은 모세가 저 위에서 보았던 것과 정확히 같았으며, 바울이 본 것과도 같았습니다. 그리고 열두 기초에는 사도들의 이름이 있었습니다. 열두 문에는 각 지파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이것을 바라보면 그 열두 장로, 열두 지파, 열두 사도, 열두 기초, 열두 문이 얼마나 선명히 보입니까! 아! 하나님의 그 수들을 따라가면 어디에서도 틀릴 수 없습니다. 언제나 어디서든 정확히 맞아떨어집니다.
그래서 세상이 수고해 온 이 엿새가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일곱째 날에 아주 가까이 와 있습니다. 처음 2천 년이 되었을 때 하나님이 물로 세상을 멸하셨습니다. 두 번째 2천 년이 되었을 때 그리스도가 오셨습니다. 지금은 1961년입니다. 바로 문 앞에 있으며, 시간이 조금밖에 없습니다. 보십시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 시간이 끝까지 다 가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그 일을 단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원자폭탄이 모든 육체를 멸할 것이다. 아시겠죠? 선택받은 자들을 위해 내가 의 가운데 그 일을 단축하겠다. 시간의 일부를 잘라 내겠다.” 그런 다음 천 년의 천년왕국, 그 위대한 날입니다. 그동안... 교회는 6천 년 동안 죄에 맞서 수고해 왔고, 일곱 번째 천 년은 천년왕국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지으시느라 6천 년을 보내시고 일곱 번째 천 년에 모든 일을 쉬신 것과 같습니다. 교회도 6천 년 동안 죄에 맞서 수고하고, 일곱 번째 천 년에는 쉽니다.
장로들이 입은 흰 예복은 성도들의 의입니다. 흰색은 “의”를 뜻합니다. 그들이 예복을 입었다는 것은 제사장이나 재판관임을 보여 주었습니다. 흰 예복을 입은 제사장, 재판관, 선지자 같은 이들, 그들이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흰 예복을 입은 스물네 장로였습니다. 스물네 장로가 있을 것입니다. 그중 열둘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위해 있고, 열두 사도는 교회를 위해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위대한 왕의 뜰에 앉아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이들은 저기에 앉아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신부와 그리스도께서 계십니다. 그분이 자기 왕좌에 앉으시고 그 아내인 교회가 그분 곁에 앉아 있습니다. 스물네 장로... 성전의 환관 14만 4천 명이 그분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분이 일어나시면 아내도 함께 갑니다. 아! 장차 올 그 위대한 시대에, 모든 죄와 죄의 흔적까지도... 오늘날 사람들이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크고 훌륭한 건물들, 모든 돈과 정욕과 모든 죄, 아름다운 여자와 남자, 자신의 몸을 어떻게든 꾸미려고 하는 모든 것들, 마귀가 그들의 혼을 지옥으로 보내는 덫이 되게 하는 것들은 사라지고 썩으며, 살을 먹는 벌레들이 먹어 치울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 벌레들까지... 한때 그들이었던 모든 것이 화산의 불 속으로 들어가, 낙진과 화산재만 남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친구여, 어느 날 아침, 어느 날 아침 그 모든 것이 끝나면 땅은 다시 꽃을 피울 것입니다. 하얀 클로버로 뒤덮인 들판과 장미 향기가 생명나무의 꽃과 어우러지고, 어느 아침 그리스도께서 돌아오실 것입니다. 큰 새들, 비둘기들이 나무에 앉아 구구 울고, 더 이상 죽음도 슬픔도 없을 그때입니다. 그리스도와 그분이 구속하신 자들이 땅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늙은 사람들이 아니라 영원히 젊은 사람들로 돌아옵니다. 불멸의 존재로 그분의 모습대로 서서, 해와 별들보다 더 밝게 빛날 것입니다. 나는 그 아름다운 도시로 가네, 내 주께서 자기 백성을 위해 예비하신 곳. 모든 시대의 구속받은 자들이, 흰 왕좌 둘레에서 “영광!” 노래할 곳. 때로는 천국이 그리워지네, 아직 보지 못한 그 영광이. 내 구주를 뵐 때 얼마나 기쁘랴, 그 아름다운 황금 도시에서! 얼마나 그분을 뵙고 싶은지요! 아, 그분을 뵙고 싶습니다! 저는 그 아름다운 도시로 갑니다! 요한은 밧모섬에서 그 도시가 남편을 위해 단장한 신부처럼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언젠가 그 영광을 보고 싶습니다. 그분을 뵙고, 그 얼굴 바라보고 싶네, 거기서 구원의 은혜 영원히 노래하리. 영광의 거리에서 내 목소리 높이리, 근심 다 지나고 마침내 본향에 와 영원히 기뻐하리.
눈길에서 조금씩 이리저리 미끄러지는 일, 낮의 약간의 더위와 수고... 아내와 메이블이 나와서 그 노래를 불러 주면 좋겠습니다. 할 수 있다면... “길 끝에 이를 때면 길에서 겪은 수고는 아무것도 아닌 듯하리.” 그렇습니다. 복음 전도 사역을 시작하려고 제가 교회를 떠나던 밤, 여러분이 울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분들은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아마 스펜서 형제님과 자매님, 그리고 오래 계셨던 몇 분은 여기 계실 것입니다. 그때 여기서 울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너는 가야 한다...!”고 하셨을 때...
여러 달 떠나 있다가 처음 집회를 열었을 때가 기억납니다. 미다가 존즈버러로 내려왔습니다. 베키가 아주 조그만 아기였지요. 그 오래된 코튼벨트 열차를 타고 내려왔습니다. 거기 도착하는 데 며칠이 걸렸습니다. 그날 밤 아내가 도착할 때 저는 밖에 서 있었습니다. 우리는 세 블록 떨어진 집회장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경찰들이 이렇게 길을 통제하고 있었습니다. 거리까지 꽉 차 있었습니다. 저를 데리고 거리를 지나 빙 돌아서 그 장소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미다가 말했습니다. “빌, 이 사람들이 당신 설교를 들으려고 왔어요?” 제가 말했습니다. “아니야.” 그런 다음 우리는 노래했습니다. 그들은 동과 서에서 오네, 먼 나라에서 오네, 우리 왕과 잔치하며 그 손님으로 식사하려고. 이 순례자들 얼마나 복된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빛나는, 그 거룩한 얼굴 바라보네. 은혜에 참여한 복된 이들, 그 왕관의 보석처럼 빛나리. 오, 예수님 곧 오시니, 그때 우리의 시련 끝나리. 오, 만일 우리 주께서 바로 지금 오신다면, 죄에서 벗어난 이들을 데리러 오신다면, 오, 그대에게 기쁨이겠는가, 아니면 슬픔과 깊은 절망이겠는가? 우리 주 영광 가운데 오시면, 공중에서 그분을 만나리. 아멘! 아, 저는 그분을 사랑합니다! 그것이 여러분에게 슬픔과 깊은 괴로움을 가져오겠습니까, 아니면 기쁨을 가져오겠습니까? 우리 주님이 영광 가운데 오시면 공중에서 그분을 만날 것입니다. 이 생각을 마음에 품고 고개를 숙입시다. 주님 뜻이라면, 다른 때에 이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 그들이 동과 서에서 오고 먼 나라들에서 올 것입니다. 그 위대한 휴거를 생각합니다. 제가 아프리카와 인도와 세계 곳곳에서 설교했던 사람들, 그 얼굴을 다시 보게 될 것을 생각합니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울면서 비행기까지 따라 나와 울타리 너머로 몸을 내밀고 소리치며 울었습니다. 한 번은 사람들이 바울과 함께 나가 무릎을 꿇고 기도했던 일이 생각납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확실히 여러분 중 아무도... 여기 계신 많은 분이 제 얼굴을 다시는 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동과 서에서 오네, 먼 나라들에서 오네, 우리 왕과 잔치하며 그 손님으로 식사하려고. 이 순례자들 얼마나 복된가! 그 거룩한 얼굴 바라보네, 에메랄드 영광 가운데, 하나님의 빛으로 빛나는 얼굴. 그저 등불이나 촛불이 아니라 하나님의 빛, 하나님의 빛으로 빛나는 얼굴입니다. 은혜에 참여한 복된 이들, 그 왕관의 보석처럼 빛나리. 오 하나님. 숯불이 선지자에게 닿아, 그를 더없이 깨끗하게 하였을 때, 하나님의 음성이 “누가 우리를 위해 갈꼬?” 하시니, 그가 대답했네. “제가 여기 있나이다. 저를 보내소서.”
오, 오늘 아침 천사를 보내 주옵소서. 이사야가 본 것처럼 여섯 날개를 가진 그룹들이 이 건물 안을 날아다니며 “주님께 거룩, 거룩, 거룩” 하고 외치게 하소서. 젊은 선지자 이사야는 “저는 입술이 부정하며 부정한 백성 가운데 있는데, 제 눈이 주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성전의 기둥들이 흔들렸습니다. 천사가 제단에서 집게를 집어 들어 숯불을 가져다가 그의 입술에 대고 말했습니다. “네 입술을 깨끗하게 한다. 이제 예언하라, 사람의 아들아.” 주님, 오늘 아침 천사를 보내셔서 우리 입술의 모든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하소서. 우리 마음을 깨끗하게 하시고 들어오소서, 주님. 자기 의지를 무너뜨려 주소서. 주님 안에서 제 뜻이 주님의 뜻이 되게 하소서. 오 하나님, 제 안에 주님의 뜻을 원하는 의지를 주옵소서. 저와 제 교회와 제 백성이 주님의 것이 되게 하소서, 오 주님. 우리 자신을 주님께 맡깁니다.
아버지, 시인이 이어 말했듯이, 수백만의 사람들 지금 죄와 수치 가운데 죽어 가네. 저 아프리카와 인도와 세계 곳곳에서 한 시간에도 수천 명씩, 주님을 알지 못한 채 주님을 만나고 있습니다. 수백만의 사람들 지금 죄와 수치 가운데 죽어 가네. 하나님, 그것을 생각하면 제 혼이 찢어집니다. 그들의 슬프고 쓰라린 부르짖음 들으라. 서둘러라, 형제여, 서둘러 그들을 도우러 가라. 어서 대답하라. “주님, 제가 여기 있나이다.” 주님, 허락하소서. 다시 허락하소서. 아버지, 지난 한 해 저는 온갖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것들을 용서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이 새해에 제게 새롭게 기름부어 주소서. 저기 죄와 수치 가운데 앉아 있는... 죽어 가는 수백만의 사람에게 가게 하소서. 주님의 진리에 관한 이 위대한 계시를 전하고, 성령의 기름부음을 가져가게 하소서. 그날에 그들이 주님의 왕관에 있는 보석처럼 빛나며 동과 서에서 올 수 있게 하소서. 주님, 제가 내려가 광맥을 찾고 그들을 땅속에서 캐낼 수 있도록 도우소서. 그들이 살고 있는 땅의 흙과 더러움과 오물 속에서 캐내게 하소서. 그들을 깨끗하게 하시고 그리스도인답게 살게 하시는 거룩한 하나님을 보게 하소서. 주님 앞에서 성화되어 순결하게, 악과 온갖 세상 오락을 버리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서게 하시며, 그 위대한 날을 위한 주의 왕국의 대표자들이 되게 하소서.
주님, 오늘 아침 이 작은 교회를 거룩하게 하소서. 주의 영으로 여기 모든 사람을 거룩하게 하시고, 성령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들어오시게 하소서. 자기 의지로 이미 마음을 열고 자기 뜻을 부인하여 주님의 뜻을 알게 된 사람들 안의 영을 새롭게 하소서. 주님, 그 어린 사람들, 그들 중 많은 이가 아직 아기들인데, 주님은 얼마나 품에 안아 길러 주셨습니까! 어머니가 어린 자녀를 돌보며 눈물을 닦아 주고, 사랑하기에 특별한 것들을 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주님, 다시 태어난 어린 아기들을 그처럼 사랑하십니다. 아직 걷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합니다. 할 수 있는 것은 울면서 엄마를 바라보는 것뿐입니다. 오 하나님, 어린양들처럼 부드럽게 품에 안아 주시고, 자라서 걸을 수 있을 때까지 인도하소서. 그런 다음 주님, 섬김의 길을 따라 인도해 주옵소서. 허락하소서. 우리에게 죄를 지은 자들을 우리가 용서하는 것같이 우리의 죄들을 용서하소서. 우리를 인도하사 시험에 들지 말게 하시고 악에서 우리를 구출하옵소서. 왕국과 권능과 영광이 영원토록 아버지의 것이니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이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아침 주님이 여러분에게 무언가를 해 주셔서, 이 한 가지를 바탕으로 새해를 시작하게 되셨기를 믿습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며, 언젠가 그분을 뵙고 사랑하고 영원히 함께 살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 단 한 사람도 잃어버려지지 않고, 모두 구원받고 성령으로 충만해져 그분이 오실 날까지 보존되기를 바랍니다. 그날이 곧 다가왔다고 저는 믿기 때문입니다. 이제 예배를 네빌 형제님께 다시 넘겨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