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안녕하십니까? 앉으셔도 됩니다. 오늘 밤 텍사스주 보몬트에 다시 오게 되어 참으로 영광입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부터, 다시 와서 사역하며 사랑하는 여러분과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교제하고 싶은 마음이 늘 있었습니다. 그 마음이 떠난 적이 없습니다. 지난번 이곳 보몬트에 왔을 때 일어난 큰일들이 많이 기억납니다. 아마 열두 해쯤 된 것 같습니다. 기억이 납니다. 그때... 사람들이... 바로 전에 휴스턴에서 큰 집회를 마쳤습니다... 아니, 여기서 휴스턴으로 갔던가요? 휴스턴에서 이곳으로 왔습니다. 바로 거기서 주의 천사가 내려왔고, 사람들이 그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습니다. 그 후로 여러 곳에서 그런 사진을 여섯 장인가 여덟 장쯤 찍은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는 독일에서 세 장을 찍었습니다. 캘리포니아의... 어느 박람회장에서 코다크롬 컬러 사진도 한 장 찍었습니다. 캘리포니아주 레이크포트였습니다. 거기서 그리스도인 실업인회가 그분의 임재를 담은 참으로 아름다운 사진을 얻었습니다. 호박빛 불이 둘레에서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물론 이 사진은 흑백으로 찍어서 하얗게만 나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호박빛입니다. 제가 늘 말했듯이, 여기 있는 이 어린아이들처럼... 저는 그것을 연두빛 노랑이라고 했습니다. 호박빛이 무엇인지 몰라서 그냥 연두빛 노랑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얼마 전 새해 첫 전도 여행을 시작하면서 어느 방향으로 갈지 젊은이들이 기도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때 제 마음에 맨 먼저 떠오른 곳이 텍사스주 보몬트였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연락할 곳이 있니?” “여러 군데 있습니다.” “그러면 전화를 해 보아라. 거기서 시작해서 주님께서 어디로 인도하시는지 보자.” 새해 들어 이번이 첫 집회입니다.
조금 전 아들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는 잭 무어 형제님의 딸과 함께 호텔에서, 아니, 모텔에서 이곳으로 왔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마 빌리가 제게 말했을 것입니다. 이 교회의 목사이신 형제님이, 제가 여기서 [불분명한 말] 뵌 적이 있지 않다면 처음 뵙는 분인데, 보몬트에 다시 오게 해 달라고 여러 해 동안 기도하셨다는 것입니다. 아, 언젠가 우리가 강을 건너가기 전까지는 이렇게 신실한 친구들이 얼마나 고마운지 다 알지 못할 것입니다. 주 예수님께서 제게 주신 사역을 그토록 믿어 주시는 분입니다. 이번에 보몬트밖에 생각나지 않았던 것도 당연합니다. 기도는 상황을 바꿉니다. 그분과 함께 기도하던 또 다른 형제님은 이미 영광으로 가셨다고 들었습니다. 조금 전 잭 형제님과 빌리와 제가 호텔에서 내려오면서 빌리가 그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오늘 밤 그분은 틀림없이 이곳보다 더 좋은 땅에서 이 일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저는 사람이 죽으면 그저...
죽음은 분리를 뜻합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게 될 뿐, 그는 언제나 살아 있습니다.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정죄에 이르지 아니할 것이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느니라.” 아, 저는 그것을 믿습니다. 우리는 죽을 수 없습니다. 영생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원합니다. 영원한 것은 무엇이든 시작도 끝도 없습니다. 그러니 그것은 하나님 자신의 생명입니다. 거기서 영생이라는 말은 그리스어 ‘조에’에서 나온 것으로, 하나님 자신의 생명이 우리 안에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면 하나님께서 사시는 것처럼 삽니다. 그분께서 죽으실 수 없는 것처럼 우리도 죽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분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이라는 것이 기쁘지 않습니까?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우리가 여는 집회 가운데 가장 좋은 집회들은 교회에서 열리는 것 같습니다. 저는... 때로 집회에 군중이 너무 많이 모이면 작은 교회에도, 큰 교회에도 다 들어갈 수 없게 됩니다. 하지만 교회 건물에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습니다... 지난번 여러분을 뵌 뒤 제가 엉뚱한 생각에 빠졌다고 여기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저는 교회라는 곳은 하나님께서 머무시는 곳이라고 믿습니다. 천사들은 교회들 가운데 거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도록 봉헌된 곳입니다. 그런데 강당 같은 데서는 잔치도 하고 춤도 추고 술도 마시고 온갖 일을 합니다. 그래서 어딘가 바르지 않은 영이 느껴집니다. 그저 마치... 반면에 교회 안에 있을 때는 성령께서 언제나 참으로 다르게 역사하시는 것 같습니다. 특히 성령 충만한 좋은 교회, 사람들이 성령으로 충만하고 큰 표적과 이적들이 일어나는 교회, 이런 일들이 참되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는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교회입니다. ‘교회’라는 말은 ‘불러내어진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세상에서 불러내어 하나님과 동행하게 된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것이 교회입니다. 오늘 밤 저도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것이 참으로 기쁩니다. 제게 백 번의 삶이 주어지고, 죽은 뒤 내세가 전혀 없다 하더라도, 그 모든 삶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고 싶습니다. 제게는 그만큼 소중합니다.
잭 형제님이 제게 광고를 보여 주셨습니다... 내려오는 길에 어젯밤 그분의 교회에 들렀습니다. 루이지애나주 슈리브포트에 있는, 아주 훌륭하고 영적인 교회입니다. 몇 년 전 제가 그곳에 갔을 때 신문에 실었던 사진을 보여 주시더군요. 참 많이 변했습니다. 같은 사람인 줄 모르겠더군요. 하지만 어쩐지 이 인간의 몸은... 늙고 썩습니다. 그뿐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은 그대로이며 죽을 수 없습니다. 어젯밤 잭 형제님의 교회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이해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이것은 제 손이고, 이것은 제 손가락이며, 이것은 제 귀이고, 이것은 제 코이고, 이것은 제 눈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입니까? 이것을 소유한 나는 누구입니까? 이것이 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제가 소유한 것입니다.” 아시겠죠? 여러분은 영입니다. 여러분은 저를 보지 못합니다. 저를 드러내 주는, 제 소유를 보지만, 저 자신은 본 적이 없습니다. 성경에 “아무도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보지 못하였으되 아버지의 독생자께서 그분을 밝히 드러내셨느니라”라고 한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셔서 세상을 자신과 화해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을 나타내셨기에,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보았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신성의 모든 충만이 몸으로 거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을 나타내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딸이고 그 왕국에서 그분과 함께 상속받는 자들이므로, 우리도 삶으로 그분을 나타냅니다. 때로... 우리 가운데 많은 사람이 설교를 말로만 전하지 말고 그 설교대로 산다면, 그저 그렇게 살아간다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제게 설교를 해 주는 것보다 삶으로 설교를 보여 주는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여러분의 삶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보시고, 세상도 우리의 삶을 봅니다. 그분은 우리의 삶이 어떠한지 보고자 하십니다. 사람들은 우리를 압니다. 아무리... 우리의 행동이 내는 소리가 너무 커서 우리의 간증을 묻어 버립니다. 우리가 무슨 말을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그렇게 살지 않으면, 사람들은 사실이 다르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인이고,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며, 그리스도인답게 살면,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우리의 삶이 말해 줍니다. 우리의 삶... 우리는 모든 사람이 읽는, 기록된 서신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러분이 어떻게 걷는지 지켜봅니다. 얼마 전 성령으로 봉인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인은 양쪽에 찍힙니다. 사람들이 여러분이 오는 것도 보고 가는 것도 봅니다. 성령으로 봉인되어 있으면, 올 때도 그리스도인답게 보이고 갈 때도 그리스도인답게 보입니다.
오늘 밤 저와 함께 오신 설교자가 있습니다. 잭 무어 형제님입니다. 여러분 모두 아시리라 믿습니다. 저는 병든 분들을 위해 기도하려고 내려왔고, 잭 형제님이 저를 대신해서 설교하시기로 했습니다. 그러니 그분의 메시지를 잘 들으셨으리라 믿습니다. 설교를 잘하시는 분입니다. 저는 설교자가 아니어서 그저... 늘 저를 예비 타이어라고 했습니다. 예비 타이어는 펑크가 났을 때 쓰는 것입니다. 보시다시피 오늘 밤은 펑크 난 곳이 없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어쨌든 예비 타이어로 조금 굴러 보겠습니다. 내일 밤에는 다른 장소로 가기로 한 것 같습니다. 밖에 계신 분들께 말씀드리는 것인데, 거기는 앉을 자리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요, 목사님? 이 형제님의 기도에 응답하는 사람이 되어 이곳에 올 기회를 얻은 것이 참으로 감사합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교회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형제님과 온 회중과, 함께 협력하는 훌륭한 목사님들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누군가 제게 말해 주었는데... 몇 개 교회가 함께 집회를 열기 위해 협력하는지는 잊었습니다. 형제님들,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나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모두 한 몸입니다. 그것은 휴스턴에서 주의 천사가 처음으로 사진에 찍혔을 때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공통된 일이 있을 때... 우리 모두가 믿는 신유가 쟁점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작은 견해 차이는 잊었습니다. 모두 힘을 합쳐 하나가 되었습니다.
솔로몬이 첫 성전을 지었을 때를 생각합니다. 온 세계에서 재료를 다듬어 운반해 왔습니다. 채석장에서 돌을 떠내고, 레바논에서 백향목을 베어 욥바까지 물에 띄워 보낸 다음 소달구지로 실어 왔습니다. 솜씨가 어찌나 훌륭했는지, 성전을 조립할 때 온갖 작고 이상하게 생긴 돌들이 있었지만, 설계도를 펼쳐 보니 모두 그 설계도에 있었습니다. 성전을 짓는 사십 년 동안 톱이 윙윙거리는 소리도 망치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자기 백성을 모두 다듬어 놓으셨다고 생각합니다. 성품이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 그리스도인이고, 으뜸 모퉁잇돌이신 그리스도 예수 위에 함께 맞추어 연결된 돌들입니다. 아, 그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그 귀한 모퉁잇돌을 거절합니다. 우리는 모두 그 위에서 함께 지어지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단단히 결합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이 있으면 아무것도 우리를 갈라놓지 못합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한 아무것도 우리를 나눌 수 없습니다. 저는 삼십일 년 동안 사역해 왔습니다. 온갖 은사를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큰일을 행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제 삶에서 본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이었습니다. 어떤 것이든 막아 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은 사랑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움직인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사랑은 위대한 핵심인데, 우리가 빠뜨리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사랑은 영원합니다.
오늘 내려오면서 무어 형제님께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사랑을 예로 들어 봅시다... 자연적인 사랑, 정으로 사랑하는 것은 필레오 사랑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아가파오입니다. 그런데 필레오 사랑의 경우, 밖에 나가서 메리와 마사를 만납니다. 가령 마사와 사귀고 있는데 메리를 만나게 됩니다. 메리에게는 마사와 다른 무언가가 있습니다. 마사가 더 예쁘지만 그래도 메리를 더 사랑합니다. (여기 메리나 마사라는 분이 계시다면, 그저 예를 드는 것입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그 여자에게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보자마자 사랑한다는 것을 압니다. ‘아, 저 여자와 딱 한 번만 데이트할 수 있다면!’ 하고 생각합니다. 마침내 그렇게 됩니다. 그러면 그 마음이 채워질 것 같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계속 사귈 수만 있다면 될 거야’ 하고 생각합니다. 마침내 계속 사귀게 되지만 그래도 아닙니다. ‘언젠가 잘 자라는 키스를 허락해 주기만 한다면 될 거야.’ 마침내 그렇게 되어도 아닙니다. ‘나와 결혼해 주면 틀림없이 될 거야.’ 그래도 아닙니다. 부부 사이가 되어도 그렇습니다. 너무 사랑해서 그녀를 자기 몸속으로 끌어당겨 통과시키고, 뒤로 손을 뻗어 다시 끌어오고 싶은 듯한 마음이 듭니다. 어떻게든... 표현이 거칠었습니다.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닙니다. 아시겠죠? 제 말은... 제가 말하려는 것은,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해도 만족할 곳을 찾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녀가 여러분의 혼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도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와서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모시게 되면 멈출 곳이 없습니다. 계속 나아가며 이것도 필요하고 저것도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사랑, 얼마나 풍성하고 순결한지, 얼마나 헤아릴 수 없고 강한지. 성도들과 천사들이 노래하는 그 사랑, 영원토록 지속되리라.” 아,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헤아려 보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썼습니다. 바다를 먹물로 채우고 하늘을 양피지로 삼으며, 땅 위의 모든 줄기를 붓으로 삼고 모든 사람이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아도, 저 위 하나님의 사랑을 기록하려면 바닷물도 모두 말라 버리리라. (아!) 두루마리를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펼쳐도 그 사랑을 다 담을 수 없으리라. 하나님의 사랑은 얼마나 놀랍습니까! 우리가 믿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요한은 에게해에 있는 밧모섬에서 돌아온 뒤에 오직 “어린 자녀들아, 서로 사랑하라”라는 말만 할 수 있었습니다. 참된 무언가를 발견한 것입니다. 그 요한은 사람들이 먹을 것을 주지 않는다고 하늘에서 불을 내려 그 도시를 태워 버리고 싶어 했던 제자였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그를 얼마나 붙들어 주셨습니까! “너희가 어떤 영에 속해 있는지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생명을 멸하려 하다니. 우리는 생명을 구원하러 왔느니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서로를 향한 사랑입니다.
여러분을 뵌 이후 사역을 하며 거의 온 세계를 다녔습니다. 해외로 여러 번, 일곱 번인가 여덟 번 다녀오며 이교도들이 있는 곳을 비롯해서 곳곳에 갔습니다. 그러면서 이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것은 사랑입니다. 누군가를 위해 기도할 때, 제 마음으로 그 사람의 심정을 느끼지 못하면 결코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내가 저 사람의 처지라면, 저 아이가 내 아이라면, 저 사람이 내 어머니라면, 내 아내라면, 내 누이라면, 내 형제라면 어떨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들을 그렇게 느낄 때 무언가가 움직여 나가기 시작합니다. 긍휼이 나아가 환자를 붙잡고 돌아오게 합니다. 친구 여러분, 저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압니다.
이제 시간을 너무 많이 쓰지 않으려 합니다. 성경 한두 구절을 읽고 잠깐, 아니, 몇 분쯤 이야기하며... 영의 움직임을 좀 느껴 보고 싶습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은 영입니다. 아시지요. 여러분은 육체입니다. 몸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여러분의 소유입니다. 그 안에 있는 여러분은 누구입니까? 아시겠죠? 그것이 여러분의 영입니다. 우리가 붙잡아야 하는 것은 바로 그 안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도와 달라고 기도하며 구합니다. 이제 기도로 그분께 나아가면서 잠깐 머리를 숙입시다. 밖에 계신 여러분도 주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창문으로 보니 밖에 계신 분들도 머리를 숙이고 계십니다. 참으로 굳건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은혜로우신 주님, 저희가 이제 함께 모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모든 불의에서 저희를 깨끗하게 하시는 가운데 서로 교제할 수 있고 또 교제하고 있으니 참으로 기쁩니다. 전에 이곳 텍사스주 보몬트에서 만난 뒤로 수많은 위험과 수고와 올무를 지나온 일을 생각합니다. 얼마나 많은... 오늘 밤 저희 한 사람 한 사람이 일어나 그때 이후로 겪어 온 일을 간증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지금까지 저희를 안전하게 인도하셨다는 것을 생각합니다. 끝까지 인도하시기에도 주님의 은혜는 충분하다고 믿습니다. 이 교회와 이 사람들과 함께 협력하는 교회들, 이 나라 곳곳에 있는 주님의 모든 자녀를 인해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텍사스주 전역에 있는 용감한 사역자들, 주님의 종들로 말미암아 영광 가운데 텍사스 사람들이 아주 많이 있을 줄 믿습니다... 그들이 복음을 전하고 주님의 왕국을 위한 백성을 낳았습니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으로 인해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사랑의 띠로 저희의 마음을 아주 가까이 묶어 주셔서, 현재 있는 것이나 미래의 것이나 앞으로 올 어떤 것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저희를 갈라놓지 못하게 하옵소서. 주님, 허락해 주옵소서.
이제 오늘 밤 긍휼을 구하려고 주님께 나아갑니다. 오늘 밤 이 교회에 모인 분들 대부분은 이곳 교인들인 줄로 생각합니다. 아버지, 큰 권능으로 오셔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있는 병들고 고통받는 모든 사람을 고쳐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 복이 믿는 자에게 주신 복임을 압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셨고, 저희는 그 모든 말씀이 진리임을 믿습니다. 오늘 밤 위대하신 성령께서 이 복들을 허락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저희가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주님을 찬양하겠습니다. 아버지, 이번 주 남은 날들과 저희를 이곳에 머물게 하시는 동안, 무엇보다 먼저 혼들이 구원받기를 바라고 믿습니다. 성령 침례를 받지 못한 이들이 들어와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며, 성령 침례로 주님의 임재의 셰키나 영광 가운데 걷게 하옵소서. 주님, 주님의 종들인 사역자들, 제 형제들, 주님의 자녀들을 도와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주 하나님, 그들에게 큰 감동을 주셔서 새롭게 마음을 다잡게 하시고, 지금까지보다 더 멀리 복음을 전하겠다는 결심을 가지고 집회를 떠나게 하옵소서. 그들의 수고의 대가로 혼들을 주시고, 큰 기적과 표적들이 그들의 사역을 따라 주 예수님을 높이게 하옵소서. 모든 교회를 축복해 주옵소서. 주님, 모든 교회를 가득 채워 주시고, 저희가 지금의 경계를 훨씬 넘어 장막 말뚝을 박게 하옵소서. 주님, 교단의 경계마저 넘어 말뚝을 박게 하셔서, 이 나라 곳곳에 있는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에게 사랑의 팔을 벌리고 그들을 주 예수님의 교제 안으로 이끌어 오게 하옵소서. 주님, 허락해 주옵소서. 저희가 주님을 찬양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복들을 구합니다. 아멘.
오늘 밤 기도 줄을 세워 병든 분들을 위해 기도하기 전에 잠깐 복음서 말씀을 읽겠습니다... 제 아들이나 여기 고드 씨나 머시어 씨, 이렇게 제 사역의 세 동역자, 혹은 무어 형제님 가운데 누군가가 매일 저녁 그날 집회가 열리는 교회에서 기도 카드를 나누어 드릴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많은 분은 지난번에 어떻게 했는지 기억하실 것입니다. 기도 카드를 나누어 드리고, 집회에 들어가면 어느 번호에서부터 시작해 몇 분을 강단으로 부릅니다. 때로는 기도 카드를 나누어 드리지 않고 그냥 임의로 올라오시게 하기도 합니다. 또는 성령께서 그냥 회중 가운데로 나아가 사람들을 찾아내시기도 합니다. 그러니 그것은... 기도 카드는 여러분의 치유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기도 카드가 치유를 좌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여러분의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처럼 계속 역사하시면, 다음 하루 이틀 밤 사이에 그것을 알게 되실 것입니다. 때로 강단에서 한 사람이 치유받는 동안 저 밖에서는 오십 명에게 치유가 일어납니다. 강단에 올라오는 사람이 다 치유받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믿음에 따라 고치십니다. 아시겠죠? 교적에 따라서도 아니고, 여러분의 의로움에 따라서도 아닙니다. 성도가 지나가면서 치유를 받지 못하는데 그 뒤에 따라온 매춘부가 치유받는 것도 보았습니다. 아시겠죠? 여러분의 믿음에 따릅니다. 여러분의 믿음에 달려 있습니다. “네가 만일 믿을 수 있거든 모든 것이 가능하니라.”
이제 요한복음 12장을 펴십시오. 처음... 요한복음 12장에서 두 절, 20절과 21절을 읽겠습니다. 설교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잠깐 말씀을 인용해서 기름부음이 건물 안으로, 또 건물 밖으로, 어디든 임하여 오늘 밤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고치시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오직 한 분, 주 예수님께 곧바로 향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기억하십시오. 어떤 사람도 치유자가 아닙니다. 그런 생각은 잘못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실 수 있는 일은 모두 갈보리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거기서 모든 계획, 구원의 계획... 치유와 구원을 위한 속죄, 그분의 생명의 모든 속성이 우리에게 비칠 수 있도록 하는 모든 것이 갈보리에서 이루어지고 완성되었습니다. “구원이라고요? 브래넘 형제님, 저는 갈보리에서 구원받지 않았습니다.” 만일 그때 구원받지 않았다면 앞으로도 결코 구원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천구백 년 전에 구원받았습니다. “아닙니다, 형제님. 저는 지난주에 구원받았습니다.” 아닙니다. 지난주에 그것을 받아들이신 것입니다. 값은 이미 지불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실제로 천구백 년 전에 구원받았습니다. 천구백 년 전에 치유받았습니다. 그러면 언제 그것을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지금입니까? 좋습니다. 바로 지금이 받아들일 때입니다. 그 일은 끝났습니다.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땅에서 영광으로 가는 여정에 필요한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또 여러분 안에 계신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어 있습니다.
나무가... 여기 텍사스 분들은 과일 재배를 잘하시지요. 요만한 어린 나무, 가령 어린 복숭아나무를 심을 때... 제 어머니는 텍사스주 패리스 출신이십니다. 그러니 저도 조금은 텍사스 사람입니다. 텍사스와 이곳 사람들을 아주 좋아할 만큼은 됩니다. 자, 어린 나무가... 어머니는 복숭아가 나는 고장으로 오셨습니다. 키가 고작 반 인치밖에 안 되는 작은 나무 안에, 앞으로 그 나무에 열릴 모든 복숭아가 이미 들어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그렇지 않다면 어디서 나옵니까? 나무를 땅에 심으면 자라야 하고 물을 마셔야 합니다. 땅의 물을 마시면서 비타민과 여러 성분을 땅에서 빨아들입니다. 그런데 자기에게 필요한 몫보다 더 많이 마십니다. 그래서 더 많이 마실수록 더 멀리 뻗어 나갑니다. 가지를 내고, 잎을 내고, 꽃을 내고, 복숭아를 냅니다. 그리스도인도 그렇습니다. 다함이 없는 생명의 샘이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심기면,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그때 우리 안에 있습니다. 계속 마시고 뻗어 나가며, 마시고 뻗어 나갑니다. 하나님이 더 필요하면 계속 마시고 뻗어 나가십시오. 무엇이 필요하든 그저 마시고 뻗어 나가십시오. 그것이 전부입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땅을... 네가 어디에... 네 발이 밟는 모든 땅을 내가 네게 소유로 주노라.” 그러니 발자국은 소유를 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필요로 하고 구하는 모든 복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것을 차지하는 것뿐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져다가 손에 쥐여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가서 가져와야 합니다. 여러분의 것입니다. 이제 모두 이해하시겠습니까? 우리가 차지해야 합니다. 우리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집트에 있던 모세에게 “내가 네게 그 땅을 주리라”라고 말씀하셨지만, 거기에는 아모리 족속, 헷 족속, 그리고 온갖 ‘족속’들이 득실거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거기로 가셔서 폭풍으로 전부 쓸어 버리신 다음 “자녀들아, 들어오너라” 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내가 그것을 너희에게 주었으니, 이제 가서 차지하라”라고 하셨습니다.
무엇을 바라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정탐하러 간 정탐꾼들 가운데 여러 사람, 열 사람이 돌아와 나쁜 보고를 했습니다. “우리는 못합니다. 거기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보다 큽니다.” 이런저런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증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돌아왔습니다. 무엇을 바라보고 있었느냐에 달린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아모리 족속과 헷 족속 등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능히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오늘 밤 여러분은 무엇을 바라보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고 계속 마시며 뻗어 나가십시오. 그렇게 하시면 무언가가 일어날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복이 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절대로 이곳에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러분을 속이려고 와서 이런 말씀을 드리지는 않습니다. 이것이 진리라는 것을 몰랐다면 집에 있었을 것입니다. 내려와 악수를 나누고, 여러분과 함께 지내며, 가서... 어느 집 음식이 가장 맛있는지 알아보고는 집으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함께 낚시를 하든가, 그와 비슷한 무언가를 했겠지요. 그러나 제가 말씀드리는 신유와 구원은 참된 것임을 압니다. 우리가 여기 앉아 있는 것보다도 더 참됩니다. 이제 말씀을 읽으면서 온 마음으로 믿읍시다.
요한복음 12장 20절과 21절입니다. ... 그 명절에 경배하러 올라온 자들 가운데 어떤 그리스 사람들이 있었는데 바로 그 사람들이 갈릴리 벳새다 출신의 빌립에게 가서 그에게 요청하여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님을 뵙기 원하나이다. 이제 이것을 짧은 설교 본문, 짧은 말씀이라고 한다면 히브리서 13장 8절을 택하고 싶습니다. 오랜 세월 줄곧 제 주제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이제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해 봅시다. 이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오늘 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도 그들과 같다고 믿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 관해 듣고 그분을 뵙고 싶어 했습니다. 사랑스러운 주 예수님에 관해 듣고도 온 마음으로 그분을 뵙고 싶어 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그 이름을 들었을 때, 그 이름에는 그처럼 달콤한 무언가가 있어서, 그분을 뵙고 싶었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원했다면... 그들도 여러분과 저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분에 관해 듣고 그분을 뵈려고 올라왔습니다. 그분을 뵙고자 했고, 그분을 뵙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이제 만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가 ‘만일’이라고 한 것을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불경스럽게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요점을 말씀드리려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고 우리도 똑같은 소원을 가지고 있다면, 그분께서 여전히 동일하신데 왜 우리는 그분을 뵐 수 없겠습니까? 성경이 그분께서 동일하시다고 말한다면, 그분은 동일하셔야 합니다. 동일한 구원자, 동일한 치유자이시며 예전과 똑같으십니다. 달라진 것은 그때는 보이는 몸 안에 계셨지만 지금은 보이지 않는 몸 안에 계신다는 것뿐입니다. 하지만 그분은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조금 있으면 세상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나를 보리라. 이는 내가 [‘내가’는 인칭대명사입니다], 내가 시대가 완결되는 끝까지 너희와 함께, 곧 너희 안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
그분이 동일하시고, 이렇게 약속하셨다면 말입니다. “너희는... 이제 조금 있으면 세상은 (그것은 세상 질서를 뜻하는 코스모스입니다.)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나를 보리라. (그것은 교회, 믿는 사람입니다.) 이는 내가 세상의 끝까지 너희와 함께, 곧 너희 안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 그러니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요한복음 14장 12절에서 “나를 믿는 자는 또한 내가 하는 그 일들을 할 것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 말씀을 봅니다. 그 말씀들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거기에 있습니다. 우리에게 그 말씀이 응답되게 할 믿음이 없다면, “믿기는 하지만 그렇게 할 믿음은 없습니다”라고 말합시다. 저도 에녹과 같은 믿음이 있었으면 합니다. 어느 날 그는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오백 년이 지난 뒤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는 간증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발을 땅에 딛고 있는 것이 싫증나서 오후에 잠깐 산책을 나갔다가 그분과 함께 본향으로 올라갔습니다. 저도 그렇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제게 그렇게 할 믿음이 없다 해도, 그런 믿음이 있는 사람의 앞길을 가로막지는 않겠습니다. 그것을 할 수 있는 믿음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도 그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치유받는데 다른 사람은 받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그저 믿음이 부족한 것, 그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녀를 이 사람은 이렇게, 저 사람은 저렇게 대하지 않으십니다. 믿음에 달려 있으며 우리는 그것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면, 우리가 똑같은 질문을 드릴 수 있다면... 지금 여기 계신 많은 분은 하나님을 섬겨 오셨습니다... 제가 어린아이이고 죄인이었을 때도 여러분은 하나님을 섬기고 계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이 그리스 사람들이 드린 것과 똑같은 질문을 하나님께 나아가 드릴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님을 뵙기 원하나이다. 우리는 그분을 뵙고 싶습니다.” 오늘 밤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여기 텍사스주 보몬트에 모인 하나님의 자녀들도 이것을 원할까?” 여러분은 그분을 뵙고 싶습니까? 저는 정말 그분을 뵙고 싶습니다. 우리가 그분을 뵐 수 있을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물론입니다. 영적으로 눈먼 사람이 아니라면 그분을 볼 수 있는 길이 많습니다. 저는 오늘 오후 해가 질 때 그분을 보았습니다. 깊은 바다의 거품 이는 파도에서 그분을 봅니다. 새벽별에서, 저녁별에서 그분을 봅니다. 독수리가 산을 가로질러 내려올 때 그 울음에서 그분의 외침을 듣습니다. 늑대의 울부짖음에서 그분의 소리를 듣습니다. 엘크가 나팔 소리처럼 울 때, 사슴이 낮게 울 때 그분의 소리를 듣습니다. 물론입니다. 아기의 울음에서 그분의 울음을 듣습니다.
그분도 한때 아기이셨습니다. 표적을 말하자면, 이사야 9장입니다. 사람들이 표적을 구했을 때 하나님은 초월적인 표적을 주셨습니다. “처녀가 수태하여 아이를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조언자, 평화의 통치자, 강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하리라.” 놀라운 일이었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아기가 되셨습니다. 하나님이신 여호와께서 아기가 되어, 거름 더미 위의 구유에서 울고 계셨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십 대 소년이 되어 놀고 계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목수가 되어 못을 박으셨습니다. 아! 무엇보다도 여호와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놀라운 일이었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분을 볼 수 있습니다. 그분은 죽지 않으셨습니다. 얼마 전 제가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멕시코에서였습니다. 그날 밤 잭 형제님도 거기 계셨습니다. 삼만 명가량이 모였고 우리는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표적과 기적들을 행하고 계셨습니다. 거기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아기가 있었는데 그날 아침 아홉 시에 죽었습니다. 그때는 밤 아홉 시쯤이었고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빌리가 제게 와서 말했습니다. “아버지, 저 여자가 줄에 끼어들지 못하게 막을 수가 없습니다. 도무지 말릴 수가 없습니다. 제정신이 아닙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기도 카드는 나누어 주었니?” 그 형제님의 이름이... 우리는 그냥 ‘마냐나’라고 불렀습니다. 너무 느렸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기도 카드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저 여자에게는 기도 카드가 없습니다. 그 형제님도 더는 가진 카드가 없고요. 저 여자는 여기 계속 서 있었지만 기도 카드를 못 받았습니다. 안내하는 사람들이 여럿 있는데도 줄에 들어오는 것을 막지 못합니다.”
제가 무어 형제님께 “내려가서 그 아기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라고 했습니다. 아시겠죠? 무어 형제님을 내려보냈습니다. 그런데 무어 형제님이 내려가려 할 때 제 앞을 보니, 작은 아기, 작은 멕시코 아기가 제 앞에 앉아서 옹알이를 하며 웃고 있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잠깐만요. 제가 내려가는 편이 좋겠습니다.” 그래서... 작은 담요가 젖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그 여인을 데려왔습니다. 여인은 오자마자 울부짖기 시작했습니다. “파드레, 파드레.” 제가 말했습니다. “부인, 잠깐만요.” 그 여인은 영어를 못했습니다. 담요 아래에 아기를 안고 있었습니다. 제가 어린 아기에게 손을 얹고 말했습니다. “주 예수님, 조금 전 제게 환상을 보여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보여 주신 아기가 이 아기입니까? 아침부터 죽어 있었는데, 거기 앉아서 웃고 있던 그 아기입니까?” 제가 기도하기 시작하자 그 어린것이 담요 아래에서 발을 차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이 일을 글로 쓰기 전에 의사를 찾아가 오늘 아침 아홉 시에 아기가 죽었다는 확인서에 서명을 받으십시오.” 그가 그렇게 했습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생명이십니다. 그분은 생명, 그들에게 영생이십니다... 죽은 아기의 영을 그 어린 몸속으로 다시 불러오셨습니다.
하나님, 그분께서 그토록 크시다면... 얼마 전, 제가 사는 오하이오강 근처에 강으로 내려가곤 하는 어린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늙은 어부와 가깝게 지냈습니다. 그 어부는 제 교회에 다니곤 했습니다. 길고 흰 수염이 있었습니다. 우리보다 조금 상류에 식스마일섬이라는 곳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낚시하곤 했고, 늙은 어부도 그곳에 그물 등을 쳐 두었습니다. 그래서 소년은 그물을 살피러 가는 어부와 함께 배를 타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곤 했습니다. 그 아이는 시내에 있는 주일학교에 다녔습니다. 어느 날 아침에 가서... 어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지난 일요일에 주일학교 선생님이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 분인지 말씀해 주셨어요. 모든 공간을 덮으시고 시작도 없으셨다고 하셨어요. 그렇게 크시다면, 정말 그토록 크시다면 저보다 크시잖아요. 그렇게 크시다면 산보다 크시고, 강보다 크시잖아요. 그런 것들은 다 볼 수 있는데, 하나님이 그렇게 크시면 왜 저는 하나님을 볼 수 없어요?” 꽤 좋은 질문입니다. 어머니가 대답했습니다. “얘야, 엄마는 주일학교 선생님이 아니야. 주일학교 선생님께 여쭈어 보렴.” 그래서 주일학교 선생님께 갔습니다.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나는 대답해 줄 수 없구나. 목사님께 가 보렴.” 목사님은 “아니란다, 얘야. 아무도 하나님을 볼 수 없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크신데... 어떻게 볼 수가 없어요?” “못 본단다. 아무도 그분을 볼 수 없어.” “그러면...” 아이는 그 대답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냥 돌아갔습니다. 자기가 찾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가장 높은 분이 목사님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늙은 어부와 함께 강을 내려오는데 폭풍이 일어나, 어부가 배를 강둑에 댔습니다. 폭풍이 지나간 뒤 두 사람은 다시 함께 강을 따라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아, 비가 내린 뒤 공기가 얼마나 상쾌했는지요. 해는 서쪽으로 지고 동쪽에는 무지개가 나타났습니다. 소년은 배 뒤쪽에 앉아 있었고 늙은 어부는 노를 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부의 희끗한 수염 위로 커다란 수정 같은 맑은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이 보였습니다. 소년이 어부가 무엇을 보는지 돌아보니 무지개였습니다. 두 사람은 한동안 신앙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소년이 배 가운데로 가서 말했습니다. “아저씨, 엄마도 주일학교 선생님도 목사님도 제가 납득할 대답을 못 해 주신 질문을 하나 할게요. 하나님이 저 무지개를 만드셨지요?” “그렇단다, 얘야. 그분께서 만드셨지. 다시는 물로 세상을 멸하지 않으시겠다는 약속으로 주신 거야.” “하나님이 그렇게 크시면, 아저씨... 그토록 크시다면 왜 저는 그분을 볼 수 없어요?”
늙은 어부는 소년의 질문에 가슴이 벅차올라, 노를 배 안에 거두고 소년을 두 팔로 감싸 가슴에 안았습니다. 아이를 안아 올려 그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네 어린 마음을 축복하시기를 빈다, 얘야. 내가 지난 사십 년 동안 본 것은 온통 하나님뿐이었단다.” 그 속에 하나님이 너무나 충만해서 밖에서도 그분을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보려면 그렇게 해야 합니다. 속에 그분을 모시고, 그분께서 여러분의 눈을 통해 바라보시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는 거의 마비된 상태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이런 일들이 너무 흔하게 여겨집니다.
얼마 전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아마 켄터키주 루이빌이었을 것입니다. 어린 아들을 데리고 십 센트 잡화점을 돌아다니며, 아이에게 보여 주려고 작은 물건들을 딸랑딸랑 흔들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그저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눈여겨보기 시작했습니다. 여인은 점점 흥분하며 “얘야, 봐, 이것 좀 봐”라고 했습니다. 아이는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여인은 다른 진열대로 가서 그 나이 아이가 좋아할 만한 것을 집어 들고 “얘야, 이것 좀 봐”라고 했지만, 아이는 여전히 멍하니 있었습니다. 마침내 여인은 감정에 북받치고 지쳐서 진열대 위로 몸을 쓰러뜨리고 “안 돼, 안 돼, 안 돼!” 하며 울부짖었습니다. 가게 안에 있던 사람들이 다가와 “부인, 무슨 일이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여인이 말했습니다. “제 어린 아들에게 무슨 일이 생겼어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주 명랑한 아이였는데, 무슨 일이 생겨서 그냥 앉아 허공만 바라봐요. 그 나이 아이가 관심을 가질 만한 것이 아무것도 이 아이의 관심을 끌지 못해요. 그냥 멍하니 보기만 해요. 의사에게 데려갔더니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이 나이 아이가 볼 만한 것들을 전혀 보려고 하지 않으니까요. 그저 허공만 멍하니 바라봐요.”
교회들이 빠져들고 있는 상태도 바로 그와 같습니다. 이런 일들... 하나님께서 온갖 기적과 표적을 교회 앞에 흔들어 보여 주셨는데도,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듯 그저 앉아서 허공만 바라봅니다... 지난 몇 년 동안 하나님은 큰 권능으로 이 나라를 전례 없이 흔드셨습니다. “나라를 흔드셨다고요? 미국이라는 나라를 말합니까?”라고 하십니까? 그 나라, 곧 하나님의 나라, 그분의 왕국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세상 나라를 흔드시겠다고 약속하지 않으십니다. 자기 교회를 흔드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것은 세상 나라를 흔드는 메시지가 아니라 교회를 흔드는 메시지입니다. 그분의 교회에 와서 그들을 깨웁니다. 밖에 있는 나라는 어차피 믿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한 나라 전체를 찾아가신 것이 아니라 자기 백성에게 가셨습니다. 자기 백성이 그분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세상 전체를 찾아오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그분께서 방문하시는 동안 팔레스타인에 계셨다는 것조차 몰랐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교회에 보내지는 것입니다.
감리교 형제님들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까?” 하고 물으면, “그렇습니다. 우리 감리교 안에 그분이 계십니다. 동일하신 줄 압니다”라고 대답하실 것입니다. 침례교인도 똑같이 말할 것입니다. 각 교회가 똑같이 말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서로 다른 교단이 대략 육백 개에서 팔백 개 가까이 있으니, 누군가는 옳고 누군가는 틀려야 합니다. 모두 옳을 수도, 모두 틀릴 수도 없습니다. 어딘가에는 옳은 것과 그른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 제가 침례교의 관점에서 접근하든, 감리교나 오순절의 관점에서 접근하든, 어떤 관점으로 접근하든 다른 형제들의 신용을 떨어뜨리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제 사실을 토대로 접근합시다. 성경의 관점에서 접근합시다. 어제 그분께서 어떤 분이셨는지 알아봅시다. 어제 어떤 분이셨는지 알 수 있다면 오늘도 동일한 분이실 것입니다. 우리의 신학이 어떠하든, 사람들은 그분께서 동일하셨다고 말합니다. 자, 어제 어떤 분이셨는지 알 수 있다면 오늘 어떤 분이신지도 알게 됩니다.
제가 나가서 사람을 하나 데려다가 손에 못 자국을 내고 이마에 가시 자국을 낸다면, 그것은... 속일 수 있는 일입니다. 그 사람이 사기꾼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흉내 내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 어떤 분이셨는지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분의 생명이 교회 안에서 움직이는 것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생명이... 호박 덩굴에 호박이 열리면 그 덩굴 안에는 호박의 생명이 있습니다. 거기서 조롱박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호박이기 때문입니다. 수박이면 수박입니다. 수박 덩굴에서 나옵니다. 그리스도인의 덩굴이면 그리스도를 증언할 것입니다. 그러니 어제 그분께서 어떤 분이셨는지 알아봅시다. 그러면 오늘 어떤 분이신지, 영원토록 어떤 분이실지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 모두 공정하게 살펴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요한복음 1장으로 돌아가 그분께서 어떤 분이셨는지 알아봅시다. 우리가 요한복음을 읽고 있으니, 여기 요한복음 1장으로 돌아가 이 말씀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분의 삶의 시작부터 몇 구절을 살펴봅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내일 밤에 더 이어서 살펴보게 될 것이고, 그렇게 계속 그분께서 어떤 분이신지 알아갈 것입니다. 하지만 기도 줄을 시작하기 전까지 십이 분, 십사 분 정도밖에 남지 않았으니, 어제 어떤 분이셨는지 생각해 봅시다. 여기 요한복음에서 그분을 봅니다. 다른 모든 복음서가 시작하는 것처럼, 그분의 탄생에서부터 살펴봅니다. 그 일이 얼마나 신비했는지 우리는 압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셨고, 에덴동산에서 약속된 바로 그 여자의 씨이셨습니다. 그리고 서른 살에 침례자 요한에게 요르단강에서 침례를 받으셨습니다. 침례를 받으시고 곧바로 물에서 올라오실 때, 성령, 곧 하나님께서 비둘기 같은 모습으로 하늘에서 내려오셨고 음성이 났습니다.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그 안에 거하기를 기뻐하노라.” 그것을 올바로 번역하면 “내가 그 안에 거하기를 기뻐하는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예수님 위에 내려오시자 예수님은 기름부음 받은 분, 메시아가 되셨습니다. 이어서 광야로 가셔서 시험받으신 것을 봅니다. 시험을 받으시고 돌아오자마자 두루 다니며 병자를 고치고 마귀들을 쫓아내며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그러면 살펴봅시다. 먼저 복음을 전하고, 병자들 곧 마귀에게 억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기 시작하셨습니다. 이제 그분의 표적 몇 가지를 살펴봅시다. 그분은 메시아이십니까? 그분께서 땅에 오시기 전에도 신유가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것을 아는 분은 얼마나 됩니까? 베데스다 연못은 치유의 표적이었습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온갖 치유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메시아에게는 따라야 할 표적이 있었습니다. 그분께는 메시아의 표적이 있었습니다. 그분이 기름부음 받은 분, 그리스도라는 뜻의 메시아이셨다면, 메시아의 표적이 그 메시아를 따라야 했습니다. 믿는 자에게도 따르는 표적이 있습니다. 믿으십니까? 하나님은 표적과 이적과 기적의 하나님이십니다. 처음에 그런 분이셨다면 두 번째도 그런 분이시고, 세 번째도 그런 분이시며, 언제나 그런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기억하십시오. 우리 개신교인들은 이것을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상황에 행동하시도록 부름을 받으시고 결정을 내리셔야 할 때, 그 일에 행하신 방식대로 그 뒤의 모든 일에도 동일하게 행하셔야 합니다. 저는 오늘 어떤 결정을 내렸을 때 그것이 옳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내일 똑같은 결정을 내리면 틀릴 수 있습니다. 어쩌면 애초에 잘못된 결정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결정을 내리시면 그것은 완전합니다. 우리는 유한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실수를 합니다. 하나님은 오류가 없고 무한하셔서 실수하실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완전히 옳습니다. 그분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나서신 적이 있다면, 그 죄인에게 취하신 태도를 그 뒤에 오는 회개하는 모든 죄인에게도 똑같이 취하셔야 합니다. 병자를 고치시려고 나서신 적이 있다면, 그 병자에게 취하신 태도를... 그분께 오는 모든 병자에게 똑같이 행하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처음 행하셨을 때 잘못하신 것이 됩니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십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니 예수님께서 어제 어떤 분이셨든 오늘도 동일하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제 잘못하신 것입니다. 그때 사람들에게 보여 주신 메시아의 표적이, 그것이 잘못이었다면, 오늘도 똑같은 말씀을 하셔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옳아야 합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때 그분께서 옳으셨고 그것이 표적이었다면, 오늘도 동일한 표적이고 영원토록 그럴 것입니다.
이제 그분의 행동 몇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그분께서 설교하기 시작하신 직후 안드레가 있었습니다. 아시지요. 그날 요르단에서 요한에게 침례받으신 그분을 보고 따라가기 시작한 사람들이 어디에 사시는지 물었습니다. 그 뒤 안드레가 자기 형제 시몬을 찾아서 예수님께 데려왔습니다. “자, 와서 보아라.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 시몬은 어부였습니다. 거기 서 계신 주 예수님 앞으로 왔을 때, 예수님께서 맨 먼저 무엇을 하셨습니까? 틀림없이 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시고 “네 이름은 시몬이다. 너는 요나의 아들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아니, 시몬 말입니다... 그 후에 게바라고 불렸는데, 번역하면 돌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그는 그것을 믿었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메시아가 오시면... 참된 유대인은 메시아가 오시면 선지자이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아버지가 그렇게 가르쳐 주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은 언제나 자기들의 선지자들을 믿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압니다. 모세가 “주 너희 하나님께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라”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신 선지자, 으뜸 선지자, 선지자들의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표적은 선지자이신 것이었고, 사람들은 그 선지자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당신이 그 선지자입니까? 당신이 그 선지자입니까?” 하고 말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십니까? 요한에게 “당신이 오기로 되어 있는 그 선지자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분께서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엘리야라 하고 어떤 사람은 모세라 하며, 또 어떤 사람은 오시기로 한 그 선지자라 합니다.” 사람들은 그분께서 선지자이셔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시몬 베드로에게 “네 이름은 시몬이고 네 아버지의 이름은 요나이다”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는 오시리라고 예언된 그 선지자이심을 즉시 알았습니다. 자기 이름을 쓸 만큼 배우지도 못했지만, 그것은 그에게 메시아의 표적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렸고, 나중에 왕국의 열쇠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분께 무엇이 따라야 하는지 알았습니다. 선지자의 표적, 그것이 하나님이심을 알았습니다.
그때 빌립이라는 사람이 곁에 서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1장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습니다. 빌립은 이것이 놀랍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을 보았을 때, 그분이 예언된 그 선지자, 메시아이심을 확신했습니다. 그분이 어제 메시아이셨고 그것이 어제 메시아의 표적이었다면, 그분께서 동일한 메시아이신 이상 오늘도 메시아의 표적일 것입니다. 맞습니다. 동일할 것입니다. 그렇게 그분께서는 자신이 메시아이심을 그들에게 밝히셨습니다. 빌립에게는 나다나엘이라는 좋은 친구가 있었습니다. 팔레스타인에 가서 그곳들이 어디에 있는지 보신 적이 있습니까? 산을 돌아 약 십오 마일 거리였습니다. 그가 그곳으로 달려갔습니다. 이 친구의 이름은 나다나엘이었습니다. 이 기쁜 소식을 전하려고 나다나엘을 찾아갔을 때...
여기에는 특별한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확신하게 되면 혼자만 알고 있을 수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말해야 합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고도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는지 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아! 얼마 전 어떤 분이 여러 해 동안 그리스도인이었다고 하기에 제가 물었습니다. “이웃들도 그것을 압니까?” “아니요. 그냥 우리끼리만 알고 지냅니다.” 아! 그럴 수는 없습니다. 아, 우리 교회에 있던 한 자매님이 이런 노래를 부르곤 했습니다. “달려가네, 달려가네, 달려가네. 이 소식을 전하고 싶네.” 맞는 말입니다. 누군가에게 말해야 합니다.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고, 여러분은 그것이 일어났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그는 그분이 메시아이심을 확신했습니다. 잠깐 장면을 그려 봅시다. 나다나엘이 나서는 모습이 보입니다. 산을 돌아, 하루쯤 걸리는 길을 가며 돌이 깔린 길을 지나, 마침내 나다나엘이 사는 집에 도착합니다. 문을 두드리니 나다나엘의 부인이 나옵니다. “어머, 빌립이군요. 반가워요.” “나다나엘은 어디 있습니까?” “빌립, 방금 저쪽 과수원으로 산책하러 나갔어요. 저 뒤 어디쯤 있을 거예요. 가면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뒤쪽 올리브나무나 무화과나무 같은 것을 살펴보고 있어요. 저 뒤 나무들 사이 어디엔가 있을 테니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나다나엘이, 아니, 빌립이 그를 찾아 그리로 내려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얼마 뒤... 나다나엘은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있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대개 그리스도를 만나는 때가 바로 무릎 꿇고 있을 때입니다. 좋은 방법입니다. 아시겠죠? 자주 무릎을 꿇으십시오. 좋습니다.) 그가 나무 아래에서 기도하고 있을 때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물론 빌립은 그리스도인 신사였으므로, 기도가 끝날 때까지 서서 기다렸습니다. 이제 나다나엘이 일어나 이렇게 무릎의 먼지를 털며 “아, 주님을 찬송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돌아서서 “빌립!” 하고 말합니다. 빌립은 “과수원은 다 잘되어 가나?”라든가, “식구들은 모두 어떤가? 존과 조와 다른 사람들도 다 잘 지내나?” 하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시겠죠? 그런 말이 아니었습니다. “와서 우리가 누구를 만났는지 보게!”라고 했습니다. 아, 그는 벅차서 넘쳐흐를 지경이었습니다. 그분에 관해 무슨 말이든 해야 했습니다. 저는 그런 모습이 좋습니다. 아, 성령께서는 정말 넘쳐흐를 때까지 채우신다고 믿습니다. 다윗은 자기 잔이 넘친다고 했습니다. 성령께서 여러분을 붙드시면 그저 넘쳐흐릅니다. 농장 이야기를 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와서 우리가 누구를 만났는지 보게. 메시아일세! 우리가 메시아,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를 만났네. 와서 우리가 누구를 만났는지 보게. 이분이 예언된 그 선지자일세.”
이 점잖은 정통 유대교 신자가 이렇게 말했을 법합니다. “빌립, 잠깐만 기다리게. 자네가 좋은 사람인 줄 아네. 좋은 사람이지! 그런데 무슨 엉뚱한 생각에 빠졌나? 도대체 어디에 정신이 팔렸나? 자네 어딘가 잘못되었군. 나는 늘 자네가 건전하고 온전한 정신을 가진 사람인 줄 알았는데, 왜 여기 와서 그런 소리를 하나? 누구를 만났다고? 자네 말로는 나사렛 예수라 했지. 나사렛이라는 도시 말일세. 메시아가 오실 것은 우리도 아네. 그런데 메시아가 오시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나? 하늘의 회랑이 열리고 그분께서 곧바로 우리 교단의 우두머리에게 내려오실 걸세. 그렇지. 그분께서 [불분명한 말] 바로 땅 위에... 성전의 덮개들 말일세. 우리 교단으로 오시지 않는다면 그분이 아닐세. 그분이 아니란 말일세. 우리에게 오셔야 하네.” 그런 나다나엘들이 아직 다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우리 무리에게 오셔야 해. 그렇지 않으면 아예 오시는 게 아니야.”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원하시는 방식대로 행하십니다. 그분의 방식입니다. 그래서 그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라고 말하는 것을 봅니다. 빌립은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와서 보게. 와서 보게나. 집에 앉아서 비판하지 말고 직접 와서 보게.” 그것이 가장 좋습니다. “우리 교단은 그 집회를 후원하지 않습니다. 협력하지도 않으니 저는 그냥 집에 있겠습니다. 그리고...” 그러면 결코 알지 못할 것입니다. 그뿐입니다. 아시겠죠? 와서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성경기록들을 탐구하라... 그것들은 나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들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옳은지 아닌지 알아보십시오. 그래서 빌립은 “와서 보게”라고 말했습니다.
이제 상상해 봅시다... 길가를 걸어가며 나누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들어 봅시다.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나다나엘, 그것을 믿을 수 없나?” “없네.” “그런데 성경에 주 우리 하나님께서 모세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신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지.” “그러면 메시아는 선지자이시겠지?” “그렇지, 선지자이실 걸세.” “선지자의 표적을 보이시겠지?” “그렇지, 선지자의 표적을 보이실 걸세.” “그것이 메시아의 표적이겠지?” “그렇겠지.” “좋아. 그날 우리가 물고기를 샀던 저 아래 무식한 어부를 아나? 자네 영수증에 서명도 못할 만큼 배우지 못했었지.” “그래, 그래, 기억하네. 아, 그렇지. 안드레의 형제 시몬 말이군.” “그래, 그 사람일세. 덩치가 크고 건장하게 생겼는데 머리가 벗어지고 기름때 묻은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지.” “맞아, 그 사람이야. 영수증에 서명을 못했지. 그래, 맞네.” “그런데 그가 우리가 메시아라고 아는 이분 앞에 왔네. 그 사람 아버지 이름을 기억하나?” “물론이지. 함께 교제한 적이 있네. 요나일세. 그래, 그분을 알지. 요나야.” “그런데 그가 이분 앞에 오자마자 그분께서 바라보시며 ‘네 이름은 시몬이며, 요나의 아들이라’ 하셨네. 이건 어떤가?” 빌립이 말했습니다. “아...” [아니, 나다나엘 말입니다.] 빌립이 말했습니다. “자네가 거기에 가면 그분께서 자네가 누구인지 말씀하셔도 나는 놀라지 않을 걸세.” “아, 잠깐만. 그건 모르겠네. 아니야.”
얼마 뒤 두 사람은 도착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도 줄에 서 계셨을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그들이 기도 줄로 들어왔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모릅니다. 어쩌면 나다나엘이 회중 뒤쪽에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어디에 있었든, 그가 주 예수님 앞을 지나자 예수님께서 돌아서서 그를 바라보시며 “이스라엘 사람을 보라. 그의 속에는 간사함이 없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에 그는 기세가 꺾였습니다. “아, 옷차림을 보고 아셨겠지요”라고 하시겠지만, 아닙니다. 아닙니다. 동방 사람들은 모두 똑같이 입습니다. 긴 겉옷과 터번 등을 두르는, 피부색이 짙은 사람들입니다. “아, 이스라엘 사람을 보라. 그의 속에는 간사함이 없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제 말로 하면, 선하고 정직한 사람, 선하고 신앙심 있고 정직한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불분명한 말], 그를 조금 놀라게 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랍비여, [선생님이라는 뜻입니다.] 언제 저를 아셨습니까? 저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시지 않습니까? 저는 평생 선생님을 뵌 적이 없고, 선생님도 평생 저를 보신 적이 없습니다. 제가 이스라엘 사람이고 정직한 사람이라는 것을 어떻게 아십니까?” 들으십시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나무 밑에 있을 때 내가 너를 보았노라.” 얼마나 놀라운 눈입니까! 얼마나 놀라운 눈입니까! 죽음도 그 눈을 흐리게 하지 못합니다. 영원토록 살아 있습니다. “내가 너를 보았노라. (전날, 산을 돌아 십오 마일이나 떨어진 곳에 있었습니다.) 내가 너를 보았노라.” 그는 어떻게 응답했습니까? “랍비여, 선생님은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 선생님은 하나님의 아들,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 아무런 의문도 품지 않았습니다. 오늘 밤 그의 이름은 사람들 가운데 영원히 남아 있습니다. 그분의 발 앞에 엎드려 “랍비여, 선생님, 선생님은 단순히 사람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메시아께서 이런 일을 하셔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곁에는 그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서 있었습니다. 아시지요. 이렇게... 뒷짐을 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기 회중에게 대답해야 했습니다. 회중이 와서 그 일에 대해 물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말했습니다. “흠, 물론 이 사람은 바알세붑을 힘입어 이런 일을 하는 것뿐입니다. 점쟁이입니다. 아시겠습니까? 바알세붑을 힘입어 이런 일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일에 대해서는 너희를 용서하노라. 그러나 성령께서 오셔서 똑같은 일을 하실 때가 오는데, 그것을 대적하는 한 마디 말도 이 세상에서나 오는 세상에서나 결코 용서받지 못하리라.” 그러니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 아시겠지요. “너희를 용서하노라. 나를 대적하여 그렇게 말하는 것은 용서하노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이...라고 불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을 부정한 영이라고 했습니다. 영들을 분별하시는 하나님의 영을 그렇게 분류한 것입니다... 선지자,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거기 서서 약속된 표적으로 자신을 알리시고 성경 말씀이 눈앞에서 성취되고 있는데도, 교단에 너무 얽매여서... “우리에게 오지 않았으니 마귀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문제는 한동안 아주 신랄하게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여기 계신 분들이 하실 일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그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들은 언젠가 성령께서 오셔서 똑같은 일을 하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바로 그런 방식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성경을 믿는다면 땅에는 오직 세 부류의 민족이 있습니다. 함과 셈과 야벳의 후손들입니다. 유대인, 이방인, 사마리아인입니다. 오순절 날 열쇠를 가지고 있던 베드로를 기억하십니까? 그다음 사마리아인들에게로, 이어서 이방인들에게로 갔고 그것으로 끝났습니다. 유대인, 이방인, 사마리아인입니다. 우리 이방인, 앵글로색슨족은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자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만 오십니다. 아, 이 말이 마음에 깊이 와닿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앞에 여기 있는 나무들만큼 높이 서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눈을 뜨고 보면 그것을 보지 않을 수 없도록 말입니다. 그분은 자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만 오십니다. 우리 이방인들은 아무도 기다리고 있지 않았습니다. 메시아를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유대인과 사마리아인들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분께서 어떻게 자신을 알리셨는지 우리는 보았습니다.
아, 다른 여러 곳으로 계속 여러분을 이끌어 갈 수도 있지만, 한 장 더 넘겨 봅시다. 그분께서 베데스다 연못을 지나가신 일을 봅니다. 그보다 며칠 전에 한 여인이... 기도 줄에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아마 기도 카드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 여인은 그분께 손을 대기만 하면 치유받으리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가까이 갈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그분을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새 틈을 비집고 들어가 그분의 옷자락에 손을 댔습니다. 그분께서 멈추어 서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누군가 그분께 손을 댔습니다. 베드로가 그분을 나무라자, 그분께서 “그러나 내가 약해진 것을 느끼노라. 내게서 효능이 나갔노라”라고 하셨습니다. 회중을 둘러보시다가 그 여인을 찾아내시고 피 나오는 것이 멎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여인의 믿음이 그를 구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하신 것이 아니라, 그분을 향한 여인의 믿음이 한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그 여인의 믿음입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여기 이 점을 더 잘 설명하실 수 있는 분들, 무어 형제님과 다른 많은 사역자들께 말씀드립니다. 거기에 쓰인 똑같은 단어가 ‘소조’입니다. 구원받았다는 뜻으로, 몸이든 혼이든 같습니다. 육체적으로 구원받든 영적으로 구원받든, 같은 방식으로 받는 것입니다. 그 여인은 그분께 손을 댔습니다.
“하지만 브래넘 형제님, 알아요... 그 여인은 그분께 손을 댔지요. 저도 할 수 있을까요?”라고 하실 것입니다. 성경은 그분께서 바로 지금 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을 느끼실 수 있는 대제사장이시라고 말합니다. 그렇지요? 그렇다면 그분께서 동일한 대제사장이시니, 여러분이 그분께 손을 대면 똑같이 행동하실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밤 믿음으로 그분께 손을 내밀어 대십시오. 그 여인이... “저는 그분의 옷에 손을 댈 만큼 가까이 있지 않습니다”라고 하시겠지만, 그것 때문에 된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그것을 느끼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옷에는 속옷이 있고, 크게 너울거리는 겉옷이 있습니다. 먼지가 그 겉옷 밑으로 올라갑니다. 그래서 세족 같은 것을 했습니다. 발의 먼지를 씻어 내려고 말입니다. 팔레스타인의 옷이 이렇게 퍼져 있으니, 그 여인은 ...에는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그 옷자락에 손을 댄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을 팔로 감싸던 사람들은 왜 느끼지 못하셨을까요? “안녕하세요, 랍비여.” “목사님,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왜 느끼지 못하셨을까요? 그들은 여인보다 더 많이 그분께 손을 댔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은 그분의 내면에 손을 댔습니다. “내게서 효능이 나간 것을 느꼈노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뒤 베데스다 연못을 지나가셨는데, 거기에 병든 사람이 누워 있었습니다. 절뚝거리는 사람, 눈먼 사람, 걷지 못하는 사람, 몸이 오그라든 사람, 온갖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 사이를 지나며 둘러보시다가 바닥에 편 요에 누운 사람을 보셨습니다. (아마 그것을 요라고 불렀을 것입니다. 우리 남부 사람들은 요가 무엇인지 다 알지요? 저도 요에서 자라났습니다.) 그렇게 요에 누워 있었는데... 그는 다리를 못 쓰거나 눈먼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가령 전립선에 문제가 있었을 수도 있고 결핵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진행이 더뎠습니다. 그 병으로 죽게 되지는 않을 것이었습니다. 삼십팔 년 동안 앓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둘러보시다가 그를 찾으셨습니다. 그리고 “네가 온전하게 되기를 원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선생님이여, 저를 물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제가 가는 동안 다른 사람이 저보다 빨리 가서 먼저 물에 들어갑니다. 아시겠습니까? 저보다 앞서, 먼저 내려갑니다.” “네 자리를 들고 네 집으로 가라”라고 하셨습니다. 아시겠죠? 무엇입니까? 성경은 “예수님께서 아셨기 때문이라...”라고 했습니다. 아시겠죠? 그분께서 그 일로 질문을 받으셨습니다. 요한복음 5장, 요한복음 5장 19절입니다. 질문을 받으셨을 때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은 (몸 말입니다)... 아들은 아버지께서 어떤 일을 하시는 것을 보고 그 일을 할 뿐이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느니라.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하느니라. 나는 보기 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느니라.” 그러니 그분께서 보셨다면, 아버지께서 그 일을 행하시는 것을 환상으로 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해야 할지 환상으로 보여 주셨고, 그분께서는 가서 행하셨습니다.
나사로가 부활한 일을 보십시오. 그분께서 무덤에 오셨을 때입니다. 무덤에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을 보십시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이미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셨습니다.) 그러나 곁에 서 있는 이들 때문에 내가 그것을 말하나이다. 나사로야, 나오라.” 나사로가 살아났습니다. 아! 물론입니다. 이미 그 일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서 보여 주시기 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는 자기에게서 효능이 나갔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여인에게 일어난 일보다 얼마나 더 큰 기적이었습니까! 하지만 아시겠죠? 그때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은사를 사용하신 것이고, 여인의 경우는 그 여인이 하나님을 사용한 것이었습니다.
[녹음 공백.] ... 그러나 여인은 올 수 있을 때 와야 했습니다. 그래서 물 항아리를 가지고 왔습니다. 어쩌면 자기가... 전날 밤의 일을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물을 길으려고 항아리를 내렸습니다. 두레박 감는 장치로 이렇게 감아 올려 내려놓고 바라보는데... 누군가 “여자여, 마실 물을 내게 가져오라”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고개를 돌려 보니 저쪽에 유대인이 앉아 있었습니다. 여인은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여인이 말했습니다. “당신네 유대인들이 그러는 것은 관례에 맞지 않습니다... 여기 계신 당신은 유대인이신데 사마리아 여자인 저에게 청하시다니요.” 그분은 젊은 분이셨습니다. 실제로 겨우 서른 살이셨지만 성경에서는 쉰 살로 보였다고 합니다. 아십니까? 사역 때문에 조금 희끗해지셨던 모양입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당신은... 넘은...” 요한복음 6장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오십 세도 안 된 사람이면서 아브라함을 보았다고 합니까?” 그분께서는 “아브라함이 있기 전에 내가 있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맞습니다. 아시겠죠? 그런데... 아마 쉰 살로 보이셨던 것 같습니다. “당신은 오십 세도 안 된 사람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여인이 거기 앉아 있는 유대인을 보았을 때, “당신 같은 유대인이 사마리아 여자인 제게 그런 것을 청하는 것은 관례에 맞지 않습니다. 우리는 서로 상종하지 않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네가 누구와 말하고 있는지 알았다면 내게 마실 물을 구하였으리라.” 여인이 말했습니다. “우물은 깊습니다.”
그분께서는 무엇을 하고 계셨습니까? 이 점은 제 말을 믿으셔야 합니다. 그 여인의 영을 접하고 계셨습니다. 그 영을 찾아내려 하고 계셨습니다. 아시겠죠? 아버지께서 그분을 거기로 보내셨습니다. 사마리아를 거쳐 가셔야 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도착하셨을 때는 기다리는 것 외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셨습니다. 그때 이 여인이... 오늘 밤 이곳도 똑같다고 하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보몬트로 보내셨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실지 보려면 기다려야 합니다. 저는 모릅니다. 그저 기다립니다. 조금 있으면 그분께서 보내셨는지 아닌지 알게 될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분께서 거기 앉아 여인과 말씀을 나누셨습니다. 무엇을 하셨습니까? 그 여인의 영을 접하시면서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찾아내셨습니다. 무엇이었는지 아는 분 계십니까? 그렇습니다. 남편이 다섯 있었습니다. 실제로는 여섯이었습니다. 다섯 남편이 있었고, “지금 함께 사는 사람도 네 남편이 아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께서 그 여인의 문제를 알아내신 뒤 “여자여, 가서 네 남편을 데리고 여기로 오라”라고 하셨습니다. 여인이 말했습니다.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 “그래, 네가 진실을 말하였도다. 네게 다섯 남편이 있었고 지금 함께 사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가 진실을 말하였도다.”
그 여인은 어떻게 했습니까? 목깃을 뒤로 돌려 입고 온 나라의 신학을 다 갖추었다는, 자칭 제사장들과는 달랐습니다. 그런 처지에 있었는데도 미국 설교자들의 절반보다 하나님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었습니다. 돌아서서 “선생님이여, 제가 보니 선생님은 선지자이십니다”라고 했습니다. 아멘. “우리는 압니다. 우리 사마리아인들은 그것이 메시아의 표적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렇지요? “그리스도라 불리는 메시아께서 오시면 이런 일들을 말씀해 주실 줄 압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누구십니까?” 아! 그분께서 “네게 말하고 있는 내가 그니라”라고 하셨습니다. 형제여, 그때 여인은 그분의 샘에서 마셨습니다. 물 항아리를 거기 버려두고 온 힘을 다해 도시로 달려갔습니다. 무슨 말을 했는지 들어 보십시오. “와서 내가 행한 일들을 내게 말한 사람을 보라. 이분이 바로 메시아가 아니냐?” 성경은 그 도시 사람들이 여인의 말 때문에 그리스도를 믿었다고 합니다. 그것이 어제 메시아의 표적이었다면 오늘도 메시아의 표적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제 한 구절만 더 인용하겠습니다. 조금 길지만 잠깐만 더 용서해 주십시오. 여기는 교회입니다. 정해진 시간에 문을 닫아야 하는 것은 아닐 줄로 생각합니다. 이 말씀 하나를 더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마치겠습니다. 그 표적이 이방인 앞에서는 결코 행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아셨습니까? 그들은 그분을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에게 주어진 표적이었습니다. 베드로가 가서 그들에게 전하기 전까지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조차 이르지 않았습니다. (사도행전 10장 49절.) 그들은 이교도였습니다. 그러니 그분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오신 것이 아닙니다. 믿는 사람들에게 오셔서 메시아의 표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제 잘 들으십시오. 밖에 계신 회중 여러분, 이제 영적으로 생각하십시오. 여기서는 말에 담긴 뜻을 읽어 내셔야 합니다. 그리고 마치겠습니다.
그분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 사람들은 세상 끝이 올 표적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그분께서 “소돔의 날들에 어떠했던 것같이...”라고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노아와 비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노아에 대해 말씀하실 때, 이어서 노아의 날들에 있었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의 도덕성, 얼마나 부도덕할 것인지,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다음 소돔으로 넘어가셨습니다. “소돔의 날들에 어떠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도 그러하리라.” 이제 잘 들으십시오. 주목하십시오. 아브라함은 택함을 받고 불러내어진 백성을 나타냈습니다. 언제나 세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기억해 두십시오. 롯은 미지근하고 형식적인 교회를 나타냈습니다. 소돔 사람들은 세상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모든 불신에서 자신을 분리하여 나와 있었습니다. [녹음 공백.] ... 택함 받은 교회입니다. 이제 기억하십시오. 아브라함을 만나러 온 세 천사는... 세 사람이었고, 하나님의 세 천사였습니다. 그중 한 분은 하나님 자신이셨습니다.
얼마 전 한 사역자가 제게 말했습니다. “설마 그분이 하나님이었다고 하시는 것은 아니겠지요?” 제가 말했습니다. “성경이 하나님이셨다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은 그분을 ‘주’, 대문자로 L-o-r-d, 엘로힘이라고 불렀습니다. 아브라함이 알았겠지요. 직접 그분과 말한 사람이니까요.” 그가 말했습니다. “그건 그저 신현이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신현은 송아지 고기를 먹고 버터밀크를 마시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형제들이여, 그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이 세 천사에 대해 그가 말했습니다. “그들이 천사들이었다는 말씀입니까?” 제가 대답했습니다. “물론입니다.” “먼지 묻은 옷을 입고 음식을 먹는데도요?” “물론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얼마나 크신 분인지 모르시는군요. 그분은 소돔의 상황을 조사하려고 내려오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상상합니다...”
우리 몸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습니까? 열여섯 가지 원소입니다. 칼륨, 칼슘, 석유, 우주 광선... 그분께서 그저 손을 뻗어 열여섯 가지 원소를 가져다가 “후!” 하고 불어서 뭉치신 다음, “가브리엘, 이리 오너라. 이 안에 들어가거라”라고 하셨습니다. 물론입니다. 저쪽에서 미가엘을 위해 하나를 불어 만드시고, 자신을 위해 또 하나를 만드셨습니다. 그 안에 들어가셔서 내려오셨습니다. 아, 제가 그분을 아는 것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언젠가 제 몸이 그저 땅 위에 날리는 먼지가 되어 있을 때, 그분께서 “후! 돌아오너라”라고 하실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을 알게 되어 참으로 기쁩니다. 그저 불어서 하나로 모으시면 됩니다. 그뿐입니다. “자, 오너라. 네가 적은 것에 신실하면 많은 것을 다스릴 자로 삼겠다고 약속했노라.” 아시겠죠?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것을 상속받는 자입니다. 그는 그분이 누구신지, 얼마나 크신 분인지 정말 깨닫지 못합니다.
그분께서 내려오셨습니다. 그런데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그 천사들 가운데 둘은 오늘날의 빌리 그래함 같은 이들로, 소돔 사람들에게 가서 설교했습니다. 그렇지요? 그들이 행한 기적은 오직 하나,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복음이 선포되면 믿지 않는 사람들의 눈이 멀게 됩니다. 그러나 그분은 거기서 그들에게 그 표적을 보이셨습니다. 거기서 나오라는 복음이 전해진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나오라고 부르시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이미 나와 있었습니다. 아, 참으로 기쁩니다. 아브라함은 택함 받은 교회, 불러내어진 교회를 나타냈습니다. 그런데 한 분은 아브라함과 함께 남아서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택함 받은 교회에 어떤 표적을 행하셨는지 보시기 바랍니다. 아시겠죠? 저 아래 있던 사람들에게는 그곳에서 나오라는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그러나 이 한 분은 아브라함과 함께 남으셨습니다. 말씀하시기를... 기억하십시오. 그분은 낯선 분이셨고, 옷에 먼지가 묻어 있었습니다. 먼 나라에서 오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아주 멀리서 오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결혼한 것을 어떻게 아셨고, 아내의 이름이 사라인 것은 어떻게 아셨습니까? “아브라함,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성경은 아브라함이 “당신 뒤에 있는 장막에 있습니다”라고 말했다고 분명히 기록합니다. 천사 뒤였습니다. 그 천사는 인간의 육체 안에 계신 하나님이셨습니다. 보십시오. “당신 뒤에 있는 장막에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보십시오. “생명의 때를 따라 내가 너를 찾아오리라.” 사라가 속으로 웃었습니다. 소리 내어 웃은 것이 아니라 장막 안에서 속으로 웃었습니다. 그런데 그분께서 장막을 등지고 계시면서 “어찌하여 사라가 웃었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그것이 무슨 텔레파시입니까? 무엇이었습니까? 그곳이 곧 불타게 되었다는 표적이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소돔의 날들에 어떠했던 것같이 되리라고 하셨고, 지금 세상은 소돔과 같은 상태입니다... 불이 떨어지기 직전에 주의 천사가 다시 오셔서 인간의 육체 안에 거하시며 똑같은 표적을 행하십니다.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에게 행하셨던 것과 동일한 메시아의 표적을 이방인들에게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보이십니까? 보셔야 합니다. 만일 이 교회가 단순한 신학만으로 그럭저럭 지나가도록 두신다면, 그들에게는 베푸신 은혜와 표적을 우리에게는 허락하지 않으신 셈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동일하시다면, 그리고 그분은 동일하십니다, 자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동일하게 행하시고 동일하게 행동하실 것입니다. 모든 세대에 동일하셔야 합니다. 그 시대가 끝날 무렵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에게 그것이 그분의 표적이었다면... 지금은 우리 시대의 끝입니다. 복음은 곧 다시 유대인에게 돌아갑니다. 유대인은 지금 그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표적이 자기에게 나타나기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가 돌아올 것입니다. 그것은... 엘리야와 모세가 그 일을 할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요한계시록 11장입니다.
이방인 교회는 이제 마지막 때에 와 있습니다. 그렇지요? 우리는 지금이 마지막 때이며 소돔이 불타는 일이 가까웠다고 믿습니다. 이미 저 격납고에는 세계의 이름이 적힌 원자폭탄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은 불탈 것입니다. 그것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불탈 것입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언제든 터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어떤 광신자가... 당기기만 하면 됩니다. 언젠가 이 미사일들 중 하나가 누군가의 화면에 잡힐 것이고, 그러면 모든 나라가 일제히 발사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때는 닥친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교회는 본향으로 갈 것입니다. 교회는 본향으로 갈 것입니다. 결코 그 속에 있지 않을 것입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그러나 바로 그 마지막 때에 이 표적이 다시 나타나야 합니다. [녹음 공백.]
... 소돔에서도 그랬습니다. 택함 받은 교회입니다. 미지근한 교회가 아닙니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주어진 것을 받았습니다. 택함 받고 불러내어진 교회입니다. 말에 담긴 뜻을 읽을 수 있습니까? 불러내어진 교회가 그 표적을 받을 것입니다. 그것이 메시아의 표적이었습니다. 우리 가운데 있는 메시아의 표적입니다. 우리가 메시아들은 아닙니다. 그러나 메시아께서 우리 안에 사십니다. 메시아는 기름부음 받은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모두에게 기름부어야 합니다. 한 사람에게 표적을 행하도록 기름부어도 다른 사람이 믿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리 모두 함께해야 합니다. 함께 말입니다. 오늘 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기 나타나셔서 저 옛날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앞에서 행하셨던 똑같은 메시아의 표적을 행하신다면, 여러분은 그분을 구원자와 치유자로 받아들이시겠습니까? 대단한 선언입니다. 그분을 여러분의 구원자로 받아들이십시오. 이제 기억하십시오. 그분은 치유하실 수 없습니다. 그분이 먼저 원하시는 것은 여러분이 그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 일을 하도록 정해 놓으신 사람들이 여기 있습니다. 그러나 그 외에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부르신 네 가지 직분을 교회 안에 두셨습니다. 사도는 실제로 선교사입니다. 선교사는 보냄 받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사도도 보냄 받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선교사는 사도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도, 선지자, 교사, 복음 전도자, 목사입니다. 넷이 아니라 다섯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시고 교회 안에 두신 다섯 직분입니다. 믿으십니까? 좋습니다. 그러니 사도와 선지자와 교사와 목사와 복음 전도자가 있다고 믿는다면, 네 직분이 있는 것입니다. 각 지역 교회에는 열두... 아니, 아홉 가지 영적 은사가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입니다. 몸을 통해 역사하는 아홉 가지 영적 은사입니다. 아시겠죠?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가능한 한 깨끗하게, 점이나 주름 없이 지키시려고 모든 것을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이방인 여러분, 우리는 마지막 때에 와 있습니다. 마지막 때에 와 있습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전히 메시아이심을 믿습니다. 그분께서 소돔이 불타기 전에 그곳에 내려오셔서 택함 받은 교회 곁에 서 계셨다면... 기억하십시오. 그분은 소돔으로 내려가지 않으셨습니다. 택함 받은 자들, 교회에 오셨습니다. 이 은사들은... 보내지는 것이 아닙니다.
“왜 큰 중심지들을 공략하지 않습니까?”라고 합니다. 중심지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교회로, 작은 곳들로 오십시오. 화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과시하는 분이 아니셨습니다. 사람들이 그분께 말했습니다. “왜 가야바에게 올라가지 않습니까? 왜 여기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습니까?”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으나 내 때는 아직 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과시하는 분이 아니셨습니다. 뽐내지 않으셨습니다. “당신은 저 아래 어부 따위의 거룩한 광신자들 무리와 함께 지내는군요. 여기 상류층 사람들에게 오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들에게 가셨습니다. 우리도 이런 일을 하도록 인도받기 때문에 행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자녀들을 인도하십니다. 그 뜻을 이해하셨기를 바랍니다.
그분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면, 치유에 관한 한... 누군가 와서 여러분을 고칠 수 있다고 말한다면 잘못입니다. 성경에 맞지 않습니다. 그분께서 이미 행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여러분의 죄를 용서할 수 있다고 말한다면 그도 틀렸습니다. 죄는 이미 용서되었습니다. 이미 용서되었습니다. 여러분은 그저 받아들이면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을 인도할 수 있는 목사들이 있습니다. 가르칠 수 있는 교사들이 있습니다. 복음 전도자들이 있습니다. 그 밖의 일들도 있습니다. 선지자들과 이런 여러 직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들에는 메시아의 표적이 교회 안에 나타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여기 휴스턴에서 찍힌 그 사진을 보신 분은 얼마나 됩니까? 지금 여기 어딘가에 있을 것 같습니다. 아시겠죠? 이제 전국 곳곳에서 사진이 찍혔고 매번 똑같은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것은... 불기둥입니다.
예수님께서 땅에 계셨을 때, 그분이 광야에서 그들과 함께 계셨던 그 천사이심을 믿는 분은 얼마나 됩니까? 그분께서 그렇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언약의 천사이십니다. 그리고 여기서 “나는 하나님께로부터 왔고 하나님께로 가노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지요? 그 뒤 죽으셨다가 일어나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어느 날 바울이... 아니, 사울이 다마스쿠스로 가고 있었는데 빛이 그를 쳐서 쓰러뜨렸습니다. 또 하나의 빛입니다. 베드로에게는... 그 건물, 감옥 안으로 들어와 그를 풀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빛이 들어와... 사울을 쳐서 무릎 꿇게 했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 “주여, 누구시니이까?” 하고 그가 물었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예수라. 나는 불기둥에서 왔노라. 내가 전에 있던 동일한 상태로 돌아가노라.” 그렇지요? 성경이 그것이 참되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참된 것이라면... 이것이 동일한 불기둥이라면 그분께서 하셨던 똑같은 일을 할 것입니다. 오늘 밤 우리와 함께 있는 그 불기둥이,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라면, 그분 안에서 행동하셨던 것처럼 여러분 안에서도 행동하실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그러면 그것이 참됨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그분께서 나타나셔서 예전에 하셨던 것과 똑같이 행동하시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다면, 여러분 모두 주 예수님이심을 믿으시겠습니까? 기도합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밤새도록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참으로 훌륭한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그저... 주님, 그릇처럼 주님께로부터 계속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아버지, 저는 그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그리고 이들이 아브라함의... 교회, 복음의 진리를 가지고 그것을 전하는, 불러내어 택하신 교회라고 믿는다는 것을 알기에 그렇습니다. 주님, 말씀드린 것처럼 많은 이가 여러 표적의 영역에 들어가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들어가는 다른 사람들의 길을 막지 않습니다. 주 하나님, 그들은 주님을 믿습니다. 말씀을 믿습니다. 제가 어린아이였을 때 이미 설교하던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 밤 이렇게 복음의 진리를 가슴에 간직한 분들 앞에 서 있습니다. 여자들도... 아내와 사랑하는 이들과 자녀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병들고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들은 이것을 지켜 왔습니다. 그들은... 여러 해 전에는 버림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다른 교회들에서 쫓겨나, 손에 탬버린을 들고 길모퉁이에 서 있었습니다. 여자들 중에는 스타킹을 살 돈조차 없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낡은 기타를 손에 들고 서서 줄을 퉁기며 메시지를 선포했습니다.
하나님, 이제 때가 왔습니다. 그 시간이 여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들은 길을 닦았고 광야에서 길을 곧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메시아께서 오늘 밤 그 길을 타고 내려와 그들 가운데 임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주님의 임재를 보여 주옵소서. “선생들이여, 우리가 예수님을 뵙기 원하나이다.” 그들이 이야기해 왔고, 그 이름 때문에 박해를 견디어 온 바로 이 예수님을 말입니다. 주님, 오늘 밤 그들 가운데 나타나셔서 주님께서 여전히 동일한 메시아이시며 죽지 않으셨음을 보여 주옵소서. 주님께서는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고 주님의 교회 안에 살아 계십니다. 줄곧 그들과 함께하시는 분이 주님이십니다. 아버지, 허락해 주옵소서. 그저 저희가 주님을 뵙게 해 주시면, 아버지, 그들 모두가 믿을 것입니다. 저희 자신을 주님께 맡깁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복을 허락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이제 여러분 모두 잠깐만 자리에 그대로 계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여기 서서 이런 일들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들이 사실입니까? 다음으로 따져 볼 것은 그것입니다. 사실입니까? 여러분 가운데 많은 분은 본 적이 없어도 여전히 믿습니다. 아시겠죠? 보지 않아도 믿습니다. 이제 그분께서 행하실지는 저도 모릅니다. 하지만 행하시리라 믿고 의지합니다. 그분께서 땅에 계실 때 하셨던 것과 똑같이 행동하고 행하신다면... 그분께서 그렇게 하실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제가 그분께 복종하고 저 자신을 내어 드리며 제 자신을 비켜 놓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자신을 비켜 놓으십시오. 그것이 유일한 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함께 메시아를 뵙게 될 것입니다. 저 혼자 자신을 내어 드리는 것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자신을 내어 드려야 하고 저도 자신을 내어 드려야 합니다. 그러면 함께 있는 우리 가운데 메시아께서 역사하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택함을 받고 그분의 피로 거룩하게 된 백성이며,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분은 그저... 성령께서 침례의 형태로 들어오실 때 저 작은 단추와 같다고 하면, 거기서부터 점점 퍼져 나가기 시작합니다. 우리에게서 모든 쓴 뿌리와 악을 없애면, 하나님께서 온전히 맡으셔서 움직이기 시작하십니다.
이 마이크를 보십시오. 마이크에 대고 말하는 것이 없다면 이 마이크는 말을 못합니다. 말하는 것은 마이크가 아니라 저입니다. 그러니 말하는 것이 저일 수는 없습니다. 그분이실 것입니다. 아시겠죠? 여러분이 말하는 것일 수 없습니다. 그분이십니다. 아시겠죠? 우리는 미래에 대해 아무것도 모릅니다. 우리는 모릅니다... 저는... 여기 앉아서 이 건물 안을 바라보는 동안, 제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무어 형제님과 여기 브라운 형제님, 제 뒤에 앉은 머시어 형제님, 저기 앉은 제 아들이라면 모를까 말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성함을 말씀해 주시거나 어디서 만났는지 알려 주시면 알아볼 분도 있을 것입니다. 모르겠습니다. 아마 설교자들은 알아볼 가능성이 더 있겠지요. 이 회중 가운데 저와 처음 보는 사이라는 것을 아는 분은 얼마나 됩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저는 여러분에 대해 아무것도 모릅니다. 여러분이 입은 피해나 질병이나 문제 같은 것도 모릅니다. 보십시오, 사방에서 드시는군요.
잠깐만요. 기도 카드를 나누어 주었지요. 좋습니다. 먼저 기도 카드로 해 보겠습니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분을 이곳에 모실 수는 없습니다. 빌리, 무슨 글자였지? A였니? 기도 카드 A입니다. A 1번부터 100번까지입니다. 그중 어딘가에서 시작해야겠습니다. 오늘 밤은 어느 지점에서 시작하고, 내일 밤은 다른 곳에서, 그다음 밤은 또 다른 곳에서 시작하면 됩니다. 여기서는, 왜냐하면... 예전에는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여기 계신 많은 분이 기억하시듯 제가 카드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한 번은 어떤 사람에게 카드를 맡겼더니, 사람들을 기도 줄에 들어가게 해 주려고 기도 카드를 팔다가 들켰습니다. 저는 즉시 그것을 중단시켰습니다. 제 형제에게 그 일을 맡겼습니다. 그 뒤 제 아들이 자라서, 아들과 믿을 만한 사람들에게 카드를 나누어 주게 했습니다. 그런 다음 제가 왔습니다. 한동안은 이런 어린아이를 세웠습니다. 여기 어린 주니어를 세우듯이 말입니다. “주니어, 일어나서 숫자를 세어 보렴. 네가 세다가 멈추는 번호부터 내가 부르마.” 하! 믿거나 말거나 우리는 여전히 인간입니다. 엄마가 주니어에게 자기 번호에서 멈추게 했습니다. 아시겠죠? 그래서 그런 식으로 할 수 없었습니다. 불평들이 나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기도하는데 성령께서 그저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처음에는 이렇게 했습니다... 첫 집회에 나가서 모두에게 기도 카드를 주었습니다. 목사님마다 나누어 드리라고 기도 카드 백 장씩을 드렸습니다. 지난번 이곳 보몬트 집회에서도 그렇게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첫 번째 사람이 자기 무리를 줄에 들어가게 하면 나머지 사람들은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아시겠죠? 그래서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알아낸 유일하게 공정한 방법은 매일 나누어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매번... 누군가가... 기도를 받으려면 첫 집회에 와야 했고, 그렇지 않으면 기회가 없었습니다. 둘째 날에 온 사람은 기도 카드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셋째 날도, 어떤 사정이 있더라도... 먼저 온 사람들을 위해 먼저 기도해야 할 의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그래서 그들은 기도 줄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하는 방식은, 여러 해 동안 해 왔듯이, 날마다 모두에게 함께 카드를 나누어 드리는 것입니다. 그날 밤 내려와서 성령께서 제게 마음을 주시는 지점에서 시작합니다. 때로는 세어 보기도 했습니다. 이쪽에 몇 명인가... 이쪽에 몇 명인가 세고, 이쪽 사람 수로 나누어 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합니다. 어디일지는 우리도 모릅니다. 성령께서 제 마음에 주시는 곳이면, 그때 알게 됩니다.
기도 카드를 드리는 사람이 앞으로 나옵니다. 젊은이들이 먼저 여러분 앞에 나와 모든 기도 카드를 여러분 앞에서 섞습니다. 그런 다음 나와서 나누어 드립니다. 이분은 7번, 저분은 45번, 다른 분은 100번을 받는 식입니다. 바로 옆 사람은... 모두 섞여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내려올 때는 이중으로 확인된 것이므로 아무도 “누군가를 기도 줄에 넣어 주려고 카드를 판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보십시오. 모두 함께 섞여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는 곧바로 저 밖으로 나아가 기도 카드조차 없는 사람들을 골라내시고 앞으로의 일들을 말씀하십니다. 아시겠죠? 누군가를 이곳에 올라오게 하는 까닭은 그저 제게 기름부음이 임하고 여러분에게도 기름부음이 임하여 성령을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오늘 밤은 처음 시작이니 1번부터 시작해서 몇 분이나 올라오실 수 있는지 봅시다. 1번입니다. 기도 카드 1번을 가진 분은 누구십니까? 걷지 못하시는 분은 자기 카드 번호가 불리면 여기 형제들이 도와드릴 것입니다. 기도 카드 A 1번입니다. 어디 계십니까? 지금 카드를 보십시오. 기도 카드 A 1번입니다. 정말 카드를 나누어 준 게 맞니? 좋습니다. 그 부인이 걸을 수 있고 일어날 수 있으시면 이쪽으로 오시게 하십시오. 2번입니다. 2번은 누구십니까? 볼 수 있도록 빨리 손을 들어 주십시오. 바로 여기군요. 자매님, 이리 오십시오. 일어나실 수 없으면 손만 드십시오. 저희가 가서 들어서 모셔 오겠습니다. 아시겠죠? 2번입니까? 3번입니다.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이 부인입니까? 4번은요? 4번입니다. 질서를 지키려고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한 가지 보여 드리겠습니다. 여기 기도받고 싶은 분은 얼마나 됩니까? 이 건물 전체에서 손을 들어 보십시오. 좋습니다. 누가 먼저 받기를 원하십니까? 보십시오. 이렇습니다. 이렇게 해야 합니다. 질서를 지키려면 어쩔 수 없습니다. 1번, 2번, 3번, 4번입니다. 기도 카드 4번은 누구십니까? 좋습니다. 부인, 이리 오십시오. 5번입니다. 기도 카드 5번을 가진 분은 누구십니까? 부인, 바로 이리로 오십시오. 이제 모두 줄을 서십시오. 6번입니다. 6번은요? 여기 뒤에 계시군요. 좋습니다. 7번은요? 기도 카드 7번입니다.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기도 카드 7번입니다.
누가 이분들의 카드를 좀 봐 주십시오. 여기에는 다리를 못 쓰는 어린 소년이 앉아 있고 여자 두 분이... 저쪽에는 휠체어에 세 분이 계십니다. 그분들의 기도 카드를 살펴 주십시오. 아시겠죠? 7번입니다. 1, 2, 3, 4, 5, 6, 7번입니다. 8번입니다. 8번, 가능하시면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저 뒤쪽이군요. 9번입니다. 좋습니다. 10번, 10번입니다. 11번, 그렇습니다. 그렇게 하시면 됩니다. 11, 12, 13, 14번입니다. 좋습니다. 14번, 저쪽에 계십니까? 십오, 15번입니다. 16번입니다. 좋습니다. 17, 18번입니다. 제가 놓쳤군요. 18번, 18번입니다. 기도 카드 18번입니다. 자, 이만하면 됐습니다. 잠깐 거기서 멈추게 하십시오. 그러면 이분들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카드 번호가 불리면 바로 줄에 서십시오. 좋습니다. 자, 이제 여기... 자매님, 아니요, 저쪽으로... 카드 번호가 몇 번입니까? 18번이군요. 바로 저 뒤에 있는 줄로 가십시오. 바로 저 뒤로 가시면 젊은이들이 줄에 서도록 안내할 것입니다. 여기, 이쪽으로 지나가십시오. 부인, 여기로 오셔서 이쪽으로 돌아오십시오. 이쪽으로 올라오십시오.
여기 기도 카드가 없지만 병이 있어서 하나님께 고침받기를 원하는 분은 얼마나 됩니까? 좋습니다. 손을 들어 보십시오. 좋습니다. 어디 계시는지 알아보려는 것입니다. 거의 곳곳에 계시군요. 좋습니다. 기도 카드가 없는 분들께 어떻게 하시기를 바라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카드가 없는 분들은 이렇게 하십시오. 주님께서 강단 위의 사람들을 고치기 시작하시면 강단을 바라보며 “주님, 저분이 제게 말씀해 주셨습니다...”라고 하십시오. 여기 사역자들께 여쭈어 봅시다. 성경의 히브리서에, 예수님께서 지금 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을 느끼실 수 있는 대제사장이시라고 되어 있습니까? 그렇지요? 그러면 그분이 동일한 대제사장이시니, 여러분이 그분께 손을 대면 어떻게 행동하시겠습니까? 어제와 똑같이 하실 것입니다. 그분이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시다면... 그러면 그분은... 그렇다고 우리가 예수님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시겠죠? 우리는 그분의 종일 뿐입니다. 아시겠죠? 우리는 그분의 그릇이며, 그분은 우리를 통해 역사하십니다. 그분은 사람들을 자기의 그릇으로 사용하여 그들을 통해 일하십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좋습니다. 이제 각자 자기 자리를 지키고 아주 조용히 계시면서 계속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그 일이 일어나리라고 단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억하십시오. 만일 제가... 봅시다, 어디에... 잭 형제님, 제가 그를 돕도록 좀 도와주십시오. 자, 여기, 그가 [불분명한 말].
여기 계신 분들, 기도 줄에 서 있는 여러분 한 분 한 분을 바라보고 싶습니다. 모두 제가 모르는 분들입니다. 저는 이분들을 모릅니다. 여러분 모두 저와 처음 보는 사이라면 손을 들어 주십시오. 제가 여러분을 모르고, 여러분에 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뜻입니다. 이제 이 부인을 이리 모셔 주십시오. 제 말이 잘 들리십니까? 때로 그 기름부음이 임하면 제가 얼마나 크게 말하는지 모릅니다. 뒤에서도 잘 들리십니까? 음향이... 제가 이렇게 말해도 그곳에서 들리십니까? 이것이 놀라운 일 아닙니까? 여기서 이 성경이 참인지 거짓인지 드러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참인지 거짓인지 드러나야 합니다. 이분들이 저를 모르고 저도 그들을 모른다고 손을 들었습니다. 여러분 모두 손을 들고 계십니다. 말씀드립니다. 조금이라도 의심이 있으면 이렇게 말하십시오. “주 예수님, 저 사람은 저를 모릅니다. 저도 그가 그저 사람임을 압니다. 그러나 저는 기도 카드가 없으니 주님의 옷에 손을 대겠습니다. 주님의 옷에 손을 대겠습니다. 그러면 주님의 옷에 손을 댄 여인에게 말씀하셨듯, 저 사람을 돌아서게 하셔서 제게 말씀해 주옵소서. 제게 말씀하시면 평생 확신하겠습니다. 아시겠지요. 저 사람이 기름부음을 받게 되면 그렇게 해 주시기를 구할 뿐입니다.” 이제 예수님을 뵙고 싶으십니까? 어떻게 그분을 보시겠습니까? 그분께서 우리를 통해 움직이실 때입니다. 이제 기도하십시오.
자, 제가... 경건하게 조용히 계시라고 할 때, 그 뜻은... 우리가 여기 서 있을 때 저는 살펴보고 있습니다. 아무도 사진을 찍지 마십시오. 그것은 빛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일요일보다 한 주 전 일요일에 이 똑같은 불기둥이 제 교회에 십오 분 동안 머물렀습니다. 수백 명이 그곳에서 울고 무릎을 꿇는 등 여러 반응을 보였습니다. 온 회중 바로 앞, 그 자리에 십오 분 동안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바라보았습니다. 진 형제님, 그때 거기 계셨지요? 레오 형제님은요? 아니, 어디 봅시다, 형제님은 이 아래에 계셨군요. 맞습니다. 남부의 이쪽에 계셨습니다. 진 형제님과 몇몇 분들... 소스먼 형제님도 여기 어딘가에 계실 텐데요. 프레드 소스먼 형제님입니다. 형제님들, 모두 어디 계십니까? 여기 어딘가에 계십니다. 그분들은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네, 저 뒤쪽이군요. ... 거기 서서 십오 분 동안 그것을 바라보았습니다. 바로 우리 앞에 그렇게 서 있는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여기 보몬트에 계신 여러분을 위해 그것이 다시 나타나기를 바라고 믿습니다. 기억하십시오. 그것은 이스라엘 자손들을 따라갔던 동일한 빛입니다. 사울을 쳐서 쓰러뜨리고 감옥 안으로 들어왔던 동일한 빛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선생들이여, 우리가 예수님을 뵙기 원하나이다.”
이제 하늘에 계신 아버지, 인간이 갈 수 있는 데는 여기까지입니다. 저희는 지금 저희의 죄와 모든 불신을 고백하며, 오늘 밤 저희와 함께해 주시기를 구합니다. 이 말씀들과 약속들이... 주님께서는 “소돔의 날들에 어떠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도 그러하리라”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버지, 오늘 밤 저는 저희가 이방인이라는 점을 그들에게 설명해 보려 했습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이방인 신부를 데리러 오실 때, 이방인 시대의 끝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오늘 밤 저는 주님께서 유대인에게 그 백성의 메시아이심을, 사마리아인에게 메시아이심을 어떻게 입증하셨는지 성경에서 보여 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제 주님, 오늘 밤 동일한 메시아의 표적을 이방인들에게 보여 주셔서, 주님께서 죽지 않고 살아 계시며 주님의 백성과 함께 계심을 나타내 주옵소서. 주님, 저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죽음으로 아브라함의 씨이며, 약속 안에서 그들과 함께 상속받는 자들입니다. 오늘 밤 성령께서 오셔서 저희의 존재, 이 온 교회를 차지하게 하옵소서. 저희 가운데서 모든 불신을 몰아내 주옵소서. 오늘 밤 인용한 성경 말씀, “선생들이여, 우리가 예수님을 뵙기 원하나이다”가... 그때 그들은 마음의 소원을 이루었습니다. 오늘 밤 저희도 똑같이 이루게 하옵소서. “구하라. 그러면 너희가 받으리라”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주님께 맡깁니다. 아멘.
이제 우리는 이분들을 모릅니다. 저는 이 부인을 모릅니다. 아마 저보다 나이가 상당히 더 드신 것 같습니다. 저는 분명히 이 가련한 백발의 부인을 속이러 이곳에 오지 않았습니다. 제게도 오늘 밤 집에서 기도하고 계신 어머니가 계시며, 저는 어머니께 감사합니다. 틀림없이 이분도 누군가의 어머니이실 것입니다. 우리는 요한복음 4장과 꼭 같이 만나고 있습니다. 여기 여인이 있습니다. 부인은 저를 모르고 저도 부인을 모릅니다. 우리 손을 들었지요. 저는 부인을 모르고 부인도 저를 모릅니다. 이제 여기 우리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한 번도 보신 적 없는 여인을 사마리아 도시의 우물, 공동 우물에서 만나셨을 때... 이처럼 조금 탁 트인 곳이었는데, 두 분이 처음 만났습니다. 몇 분 동안 말씀을 나누시다가 그 여인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아내시고, 그 문제가 무엇인지 말씀하셨습니다. 문제를 말씀하시자 여인이 “선생님이여, 제가 보니 선생님은 선지자이십니다”라고 했습니다. “메시아께서 오시면 이런 일들을 말씀해 주실 줄 압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누구십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분께서 “내가 그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여인은 돌아가서 증언하며 모든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이분이 제 문제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메시아의 표적이 아닙니까?” 부인에게도 메시아의 표적이 되겠습니까? 오늘 밤 그분께서 오셔서... 여기 저는 남자이고 부인은 여자이며 처음 만났습니다. 그분께서 오셔서 부인의 문제나, 제가 모른다는 것을 부인이 아시는 어떤 일을 제게 말씀해 주신다면, 그러면 만일, 그것을 틀림없게 하려고, 그분께서 부인이 한 어떤 일, 과거에 무엇을 했거나 어떠했는지를 말씀하실 수 있다면... 부인이 어떠했는지, 무엇을 했는지를 아신다면,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분명히 아실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 신유의 은사가 그렇습니다. 틀림없이 오늘 밤 이 건물 곳곳에 그 은사, 많은 신유의 은사가 있을 것입니다. 제가 부인을 이곳에 모셔 놓고 안수하며 “할렐루야! 하나님을 찬양합니다!”라고 한다면... 우리 형제들 가운데 신유의 은사를 가진 이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은 “나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가십시오”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그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물론입니다. 그 형제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신유의 은사가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그 은사를 사용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여러 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책임을 물으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아시지요, 돈을 벌려고 사용한다든가 하는 것 말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들이 하나님의 은사라고 믿습니다. 그 은사들을 더 경건하게 대하면 더 크게 나타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렇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와서 자기에게 신유의 은사가 있다고 말하고, 그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형제라면, 어느 교회에 속했든 상관없이 저는 그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가 부인에게 안수하며 “제가 안수합니다. 가시면 나으실 것입니다”라고 한다면 저는 믿습니다. 물론입니다. 하지만 부인은 나을지 안 나을지 조금 의심할 수도 있습니다. 그저 그 사람의 말만 믿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그 모든 것까지 다 포괄하시고, 저 과거로 거슬러 가서 부인과 그 일에 대해 말씀하시고, 과거의 어떤 일을 알려 주시고, 여기 현재로 오셔서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무엇을 했는지 말씀하신다면, 어떤 능력이 작용하고 있음이 틀림없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는 이 성경과 하나님과 이 회중 앞에서 손을 들었습니다. 서로 모르는 사이입니다. 그런데 그분께서 부인의 문제나 하신 일이나, 하지 말았어야 할 일이나, 하려고 애쓰거나 막 하려는 일을 제게 계시하신다면... 부인은 다른 누군가를 위해 여기 서 계실 수도 있고, 재정 문제나 가정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모릅니다. 제게는 그저 거기 서 계신 여자분일 뿐입니다. 회중 여러분, 이해하십니까? 밖에 계신 분들도 이해하십니까? 예수님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면, 이 부인에게 무엇이 필요하든 그분께서 이미 마련하셨습니다. 그분께서 하실 수 있는 일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리시는 것뿐입니다. 그분께서 제게 주신 이 양복을 입고 여기 서 계신다 해도, 지금 하시는 것 이상은 하실 수 없습니다. 그분께서 부인을 위해 그 일을 행하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미 완성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여러분 모두 믿으십니까? 이 부인에게 그렇게 행하신다면, 저 밖에서 그것을 받아들이고 믿을 분은 얼마나 됩니까?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 이 안에 있는 모든 혼을 제 통제 아래 둡니다.
부인은 탈장으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맞으면 손을 들어 주십시오. 이제 믿으십니까? 제가 그 생각을 알아챘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제가 추측했다고 생각하셨습니다.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집회를 망치게 됩니다. 믿으셔야 합니다. 어딘가에서 그런 생각이 나왔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분은 좋은 분입니다. 그리스도인입니다. 좋은 영을 가졌으며, 그저 편승하려는 사람이 아닙니다. 부인은 그리스도인입니다. 제가 부인의... 느끼기 때문입니다. 죄인일 수도 있었겠지요. “이스라엘 사람을 보라. 그의 속에는 간사함이 없도다!” 아시겠죠? 부인의 영이 그리스도인임을 증명합니다. 네, 탈장이 있고, 안쪽으로 자란 갑상선종이 있고, 담낭에 문제가 있으며, 심장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입니다. 맞으면 손을 들어 주십시오. 이제 믿으십니까? 하나님께서 부인이 누구인지 아신다고 믿습니까? 부인이 누구인지 제게 말씀해 주실 수 있다고 믿습니까?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던 것과 같겠지요? 라운트리 씨, 집에 가서 온 마음으로 믿으시면 나으실 것입니다.
이제 믿으십니까?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이제 회중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저 밖에 계신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아주 경건하게 계시면서 계속 기도하십시오. 지금 제 앞에 서 계신 부인은 제가 모르는 분입니다. 저보다 젊으십니다. 저는 한 번도 본 적이... 여자와 남자가 만나는 것입니다. 평생 뵌 적이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분을 아십니다. 부인, 우리가 서로 모르는 사이라면... 그렇지요? 서로 모르는 사이입니다. 이제 아주 경건하게 계십시오. 저는 이분을 본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합니다. 그러니 성령께서 이분에 관해 무언가를 제게 계시하시면, 맞는지 아닌지는 이분이 판단하시게 합시다. 이분은 영적인 문제 때문에 오셨습니다. 영적인 어려움이 있습니다. 아이를 위해서도 기도하고 계시지요? 눈이 좋지 않은 어린 여자아이인데, 여기에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병원에는 인척 자매가 입원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병이 무엇인지 제게 말씀하실 수 있다고 믿습니까? 폐렴입니다.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이제 가시면서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시고 다스리심을 온 마음으로,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이제 온 마음으로 믿으셔야 합니다. 그러면 “선생들이여, 우리가 예수님을 뵙기 원하나이다”라는 여러분의 소원이 채워집니까? 제가 어떻게... 어떤 능력이 이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을 마귀의 힘이라고 부르고 싶다면, 좋습니다. 그렇게 하고 그 대가를 받으십시오. 아시겠죠?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교회를 사용하시는 것이라고 믿는다면...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임을 성경으로 충분히 설명했습니다. 그렇지요, 목사님...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아시겠죠? 들으십시오. 오늘날 오순절 사람들의 문제는, 우리 가운데 너무나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를 너무 많이 보아서 그것을 흔한 일로 여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분이 다음 분입니까? 제가 정신이 나간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때로는 영께서 회중 전체에서 저를 끌어당기십니다. 저는 부인을 모르고 부인도 저를 모릅니다. 서로 처음 보는 사이입니다. 성령께서 어떤 일을 제게 계시하시면,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부인이 아실 것입니다... 사실인지 아닌지 증언하실 수 있습니다. 몸이 쇠약하고 신경에 문제가 있습니다. 병원에 계셨고, 수술 때문에 쇠약해져서 고생하고 있습니다. 암이었고 장기의 많은 부분, 창자의 일부를 떼어 냈습니다. 그것은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입니다.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자, 보십시오. 여기 무언가가 부인을 알고 있으며, 지금 그 기름부음이 제 위에, 또 부인 위에 임해 있다는 것을 아십니다. 안수해 드리겠습니다. 주 예수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분의 치유를 구합니다. 아멘. 이제 가십시오. 의심하지 마십시오. 온 마음으로 믿으며 가십시오.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이제 믿음을 가지십시오. 믿기 시작하십시오.
안녕하세요, 자매님? 부인과 저도 서로 모르는 사이입니다. 저는 부인을 본 적이 없고 부인도 저를 본 적이 없으니 이번이 첫 만남입니다. 서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여러 해 차이를 두고 태어나, 처음으로 우리가... 처음 만났습니다. 이제 믿기만 하십시오. 계속 믿으십시오. 의심하지 마십시오. 부인이 그분께 손을 대셨습니다. 목의 문제가 사라지고 괜찮아질 것입니다.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거기 앉아서 눈물을 닦으셨지요. 온 마음으로 믿으시면 하나님께서 낫게 하실 것입니다. 그분이 무엇에 손을 댔습니까? 저에게서 삼십 피트나 떨어져 있습니다. 무언가에 손을 댔습니다. 대제사장께 손을 댄 것입니다. 바로 옆에 앉아 계신 부인도 눈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분도 눈의 문제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온 마음으로 믿으면 그분도 치유받을 수 있습니다. 아멘. 믿음을 가지고 의심하지 마십시오. 부인은 심장병을 앓고 있습니다. 심장에서 피가 새는 증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병을 고쳐 주시리라 믿습니까? 저를 하나님의 선지자, 또는 그분의 종으로 믿으십니까? 그 명칭 때문에 때로 걸려 넘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믿으십니까? 어떤 습관도 버리려고 애쓰고 계시지요? 코로 담배 가루를 들이마시는 습관입니다. 이제 끊기를 원하십니까? 마귀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네게 명하노니 이 여자에게서 떠나가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여자를 내버려 두어라. 믿으며 가십시오. 의심하지 마십시오.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안녕하십니까?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둘 다 아십니다. 그렇지요? (저 밖의 회중 가운데서 계속 끌어당기는군요.) 저는 부인을 모릅니다.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입니다. 저보다 훨씬 젊으십니다. 서로 여러 해 차이를 두고, 멀리 떨어진 곳에서 태어났으며 이번이 첫 만남입니다. 이것은 밤새도록 계속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믿음이 하나님께 확고히 향하기를 바랍니다. 이 부인에게도 그 일이 일어나면 여러분 모두 온 마음으로 믿으시겠습니까? 이분이 판단하시게 합시다. “여기 이분을 아는 사람이 있으면”이라고 하려 했는데, 이분은 이 도시 사람이 아닙니다. 다른 곳에서 오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신경... 폐의 문제와 부인병으로 고생하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올즈 씨, 집에 돌아가서 낫기를 원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돌아가셔서 나으십시오.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믿으십니까? 그분을 경배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시다. [불분명한 말.] 주님, 사람들에게 기름부어 주셔서 주님께서 참되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이심을 알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드립니다. 아멘.
좋습니다. 그 의자에 앉아 계실 때 이미 치유받았다고 말씀드리면 어떻겠습니까? 저를 믿으시겠습니까? 좋습니다. 그대로 나가십시오. 더는 심장 때문에 고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같은 병이 있으시군요. 하나님께서 심장도 고쳐 낫게 해 주시리라고 믿습니까? 온 마음으로 믿을 수 있다면 이제 가시면서 “주 예수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좋습니다. 이제 가서 저녁을 드십시오. 위장병이 떠났습니다.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어떤 병이 있든 그저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신경성 위장병이 있지만, 믿으면 하나님께서 낫게 하실 것입니다. 온 마음으로 믿으시겠습니까? 이제 가시면서 “주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하십시오. 하나님께 낫게 해 달라고 구하면 결코 관절염으로 몸을 못 쓰게 되지 않을 것입니다. 가십시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하나님은 여전히... 기도 카드 없이 밖에 계신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믿으십니까? 하나님은 하나님이시지요? 저기 계신 형제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 담배를 버리고 담배 피우기를 끊고 싶으십니까? 손을 들고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더는 담배 때문에 괴롭지 않을 것입니다. 그분 바로 옆, 이쪽에 앉아 저를 바라보는 여인이 있는데 기관지염이 있습니다. 부인, 하나님께서 그것을 고쳐 주시리라 믿습니까? 온 마음으로 믿습니까? 손을 들고 “받아들입니다”라고 말하십시오. 좋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분은 무엇에 손을 댔습니까? 그들은 무엇에 손을 댔습니까? 주님께 손을 댔습니다. 제게 댄 것이 아닙니다. 나머지 여러분 중에도 믿고 싶은 분 계십니까? 바로 여기 앉아 계신, 알레르기가 있는 부인, 자매님, 하나님께서 낫게 해 주시리라 믿습니까? 좋습니다. 손을 드십시오. 나으십시오. 저기서 저를 바라보고 계신, 커다란 보라색 모자를 쓴 부인은 치질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부인, 하나님께서 낫게 해 주시리라 믿습니까? 맞으면 일어서십시오. 바로 옆에 앉은 남편분은 정신적인 억압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형제님, 일어나서 치유를 받아들이십시오. 하나님께서 낫게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믿으십니까?
“선생들이여, 우리가 예수님을 뵙기 원하나이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그분들은 기도 카드가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분께서 치유하시려고 여기 계십니다. 그렇지요? 이제 하나님의 말씀이 참되다고 믿으신다면, 마가복음 16장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믿는 분은 얼마나 됩니까? 지금 손을 들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지요?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그러면 믿는 분들은 서로에게 손을 얹으십시오. 서로에게 손을 얹으십시오. 바로 지금 여기서 마귀가 패배할 때입니다. 모든 사람이 치유받을 수 있습니다. 서로에게 손을 얹으십시오. 손을 얹은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여기 기도 줄에 계신 여러분도 서로에게 손을 얹으십시오.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이제 모든 분, 한 분도 빠짐없이, 바로 지금 성령께서 이 건물 안에서 움직이시는 동안 제 말을 들으십시오. 제가 여기서 진리를 전했고 하나님께서 제가 진리를 말하고 있음을 확증하셨다면, 여러분 모두 치유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치유를 위해 죽으셨을 때부터 이미 치유받았습니다. 이제 서로에게 손을 얹으십시오. 자신을 위해 기도하지 말고 손을 얹은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지금 서로에게 손을 얹으십시오. 이제 저를 따라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주님, 제가 믿습니다. 제가 손을 얹은 이 사람이 치유받으리라고 믿습니다. 오 주 하나님, [불분명한 단어] 영존하는 생명의 아버지, 모든 좋은 선물을 주시는 분이시여... 사탄아, 내가 너를 꾸짖노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들에게서 나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