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대단히 감사합니다. 형제님, 주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교회 여러분, 오늘 오후 다시 성막에 오게 되어 참 기쁩니다. 여러분은 “여기는 교회가 아니라 재향군인회 건물인데요” 하고 말씀하시겠지요. 교회가 여기 들어와 있는 동안에는 이곳이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교회 안에 계십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 안에 계십니다. 그러니 그분의 백성이 그분의 교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늘의 처소들에 함께 앉아 복된 교제를 누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모든 더러움에서 깨끗하게 하십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주님께서 언제 우리를 부르시든 아무 거리낌 없이, 살짝 날아올라 곧바로 천국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우리가 떠나고 나서 불과 이 초쯤 뒤면 말입니다. 참 좋지 않습니까? 얼마나 복된 확신입니까!
얼마 전에 제가 그리스도인 실업인회에서 말씀을 전한 적이 있습니다… 티후아나였던 것 같습니다. 아니, 죄송합니다. 자메이카, 자메이카의 킹스턴이었습니다. 그곳에는 유명 인사들이 모두 모여 있었고, 쿠바 사람들도 많이 와 있었습니다. 그날 밤 말씀을 마친 뒤 어떤 분이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경마장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지만, 그날 밤에는 유명 인사들이 모인 어떤 큰 장소에 내려가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분이 “말씀 좀 묻겠습니다. 여기 와 계신 그 설교자 아니십니까?” 하더군요. 저는 “예, 그렇습니다” 했습니다. “이 실업인들과 함께 여기서 무엇을 하십니까?” 저는 “저도 사업가입니다” 했습니다. “아, 그건 몰랐습니다.” “예, 저도 사업가입니다.” “어떤 사업을 하십니까?” “보험업을 합니다.” “무슨 보험업입니까?” “영생 보험입니다.” 저는 지금도 그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 저와 보험 계약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은 분이 계시다면 언제든 기꺼이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영생 보험입니다. 저와 함께 학교에 다닌 윌머 스나이더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아주 좋은 친구였습니다. [녹음 공백]
…신명기 32장 11절입니다. 독수리가 자기 둥지를 휘저으며 자기 새끼들 위에 너풀거리고… 자기 날개들 위에 받아 업는 것같이. 오늘 말씀드리겠다고 알려 드린 주제는 “자기 둥지를 휘젓는 독수리”였습니다. 독수리가 자기 둥지를 휘젓듯이 말입니다. 이제 너무 오래 붙잡아 두지 않겠습니다. 여러분이 준비해서 교회에 갈 시간이 있어야 하니까요. 여러분 모두 오늘 아침 좋은 예배를 드리셨습니까?
[녹음 공백.] …그분의 상속 백성을 독수리에 비유하셨습니다. 제가 한때 독수리에 관한 글들을 읽다가, 독수리는 약 사십 종류가 있고 성경에는 약 여덟 종류가 언급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중 일부는… 썩은 고기를 먹기 때문에 일부는 대머리수리였다고들 주장하지만, 그것은 틀렸습니다. 저는 독수리를 알기 때문에 그 글을 쓴 분과는 의견이 다릅니다. 독수리는 살아 있는 것의 고기만 먹습니다. 대머리수리는 썩은 고기를 먹습니다. 하지만 진짜 독수리는 자기가 먹을 짐승을 직접 죽입니다. 신선한 고기여야 합니다. 회색곰과 흑곰도 마찬가지입니다. 흑곰은 썩은 것을 먹는 동물입니다. 썩은 고기를 먹습니다. 하지만 회색곰은 매일 밤 새로 짐승을 잡아야 합니다. 아니면… 먹으려 할 때 직접 잡아먹습니다. 독수리도 그렇습니다. 독수리는 신선한 고기를 구합니다. 오래되거나 남은 것이나 남에게서 넘겨받은 것은 원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먹을 고기는 직접 구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니 지금 우리는 위대한 주제와 위대한 새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저는 늘 독수리를 좋아했습니다. 독수리 때문에 곤란을 많이 겪었지만 말입니다. 제가 잡은 사슴을 얼마나 많이 먹어 치웠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저는 독수리를 존중합니다. 독수리는 맹금입니다. “독수리”라는 말 자체가 “부리로 찢는 자”라는 뜻입니다. 부리로 찢어서 먹습니다. 그렇게 보면 좋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입으로 먹이시며, 그분의 입은 그분의 말씀, 곧 그분의 말씀이 나오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상속 백성인 우리를 그분의 새끼 독수리들에 비유하셨습니다. 그분 자신은 여호와 독수리이십니다. 알고 계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여호와 독수리라고 하십니다. 그분 자신이 독수리이십니다. 그분은 아빠 독수리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자녀인 작은 새끼 독수리들입니다.
저는 독수리를 연구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저는 자연을 무척 사랑합니다. 제가 처음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분을 지켜본 곳이 자연이었습니다. 아직 죄인인 소년이었을 때 저는 꽃들을 관찰했습니다. 작은 꽃들을 보면, 서리를 맞고 조그만 고개를 숙이면서 작은 검은 씨앗들을 떨어뜨리곤 했습니다. 꽃들에게도 장례 행렬이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알고 계셨습니까? 물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장례 행렬을 마련하십니다. 분명히 그러십니다. 가을비가 내려 커다란 눈물방울을 뚝뚝 흘리며 그 꽃씨들을 묻어 줍니다. 분명히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장례 행렬을 마련하십니다. 그렇게 씨앗들이 겨울 내내 누워 있습니다. 땅은 얼고 작은 줄기는 말라 버립니다. 알뿌리도 마릅니다. 꽃잎은 사라지고, 작은 씨앗은 얼어서 터집니다. 씨앗 속의 내용물은 전부 흘러나옵니다. 그 흙을 한 움큼 가져다가 실험실에서 아무리 거듭 검사해도, 그 안에 남은 씨앗의 흔적은 하나도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해가 비치기만 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그 씨앗 어딘가에, 그 땅속 어딘가에 숨겨 두신 생명의 싹이 있습니다. 그 씨앗에서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씨앗이 다시 살아날 길을 마련하셨다면, 나와 여러분이 다시 살아날 길은 얼마나 더 마련해 놓으셨겠습니까?”
제가 인디애나주 수렵 감시관이었을 때, 하루는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습니다. 스펄전 형제님이라는 연로한 감리교 설교자가 계셨습니다. 아주 훌륭한 어르신이었고, 인디애나주 헨리빌에 계셨습니다. 우리는 높은 의자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조금 먹으며 교제를 나누고 있었는데, 라디오에서 농업 시간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루이빌의 작은 4-H 클럽에서는 기계를 하나 완성했는데, 밭에서 기른 옥수수 낟알과 꼭 똑같아 보이는 낟알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기계로 만든 낟알 한 자루와 밭에서 자란 낟알 한 자루를 손으로 섞어 놓으면, 전혀 구별할 수 없었습니다. 실험실에 가져가서 잘라 보아도, 각각 칼슘이 얼마, 수분이 얼마, 아주 똑같았습니다. 그것들을 다시 구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땅에 묻는 것이었습니다. 둘 다 썩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이 만든 것은 그것으로 끝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에는 생명의 싹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시 살아났습니다.
우리가 교인이 되어 선하게 살려고 노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형제님,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생명입니다. 두 사람이 꼭 똑같아 보입니다. 둘 다 교회에 다니고, 둘 다 집사이며, 둘 다 목사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에게는 생명의 싹이 있고 다른 사람에게는 생명의 싹이 없습니다. 그러니 그 차이는… 그런 본성을 발견하는 곳, 곧 새로 태어남에 있습니다. 그 안에 무언가가 있어서 모든 의심을 없애고, 여러분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 갔다는 것을 이 안에서 확신하게 해 줍니다. 여러분의 영과 그분의 영이 같기 때문입니다. 둘이 서로 증언합니다. 아, 우리에게 임하여 성령으로 우리 마음에 넓게 부어진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을 안다는 것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그와 같은 것은 없습니다.
제가 이 녀석들, 이 독수리들을 살펴보고 그 습성을 관찰하던 어느 해, 콜로라도에서였습니다… 저는 사냥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좋아하지 않는 것은… 저는 마구 죽이는 사람이 아니라 사냥꾼입니다. 그저 밖으로 나가 산에 올라 앉아서 동물들을 지켜보며 어떻게 움직이는지 관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평생 한 번도 무엇이든 제한된 수 이상으로 잡은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냥하시는 여러분도 이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리스도인이 법을 어기는 것은 죄입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여기 있는 꼬마들아, 내 울새들을 쏘지 말아라. 안 된다! 그건 내 새들이란다.
꼬마들아, 울새에 관한 전설을 들어 본 적이 있니? 집참새를 쏘고 싶다면, 그건 너희와 아빠 엄마가 알아서 할 일이란다. 하지만 내 울새와 비둘기는 쏘지 말아라. 기억하렴. 그건 내 새들이란다. 울새의 조그만 가슴이 어떻게 빨개졌는지 아니? 그 전설을 들어 본 사람은 몇이나 되니? 어느 날 한 분이 십자가 위에서 죽어 가고 계셨단다. 모든 사람이 그분을 버렸어. 하나님 자신까지도 그분을 버리셨단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니? 작은 갈색 새 한 마리가 그곳에 계신 그분을 보고 너무나 안타까워했어. 새가 보니, 그분의 손에는 못이 박혀 있었고 발도 십자가에 못 박혀 있었단다. 그분은 갇혀 계셨어. 그 작은 갈색 새가 어떻게 했는지 아니? 그분이 너무나 안타까워서 곧바로 달려들어 그 못들을 뽑으려고 했단다. 그러다가 작은 가슴이 피로 온통 빨갛게 물들었어. 그 뒤로 울새의 가슴은 빨개졌단다. 그런 새를 쏘고 싶지는 않겠지? 아주 착한 작은 새란다. (저를 올려다보는 저 작고 초롱초롱한 눈들을 보셔야 할 텐데요!) 아, 자연입니다.
제가 독수리에게서 배웠던 일이 생각납니다. 한번은 콜로라도에 앉아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봄에 소들을 몰아들이던 때였는데, 저는 언덕으로 올라갔습니다. 독수리 한 마리가 새끼들을 어떻게 데려오는지, 새끼들에게 무엇을 하는지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정말 놀랍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쌍안경으로 그 어미가 있는 곳을 바로 가까이에서 보듯 들여다보았습니다.
또 어느 해에는 엘크 사냥을 하러 그곳에 올라가 있었습니다. 엘크가 내려오려면 눈이 와서 몰아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야생동물이니까요. 때때로 낚시꾼 같은 사람들이 개울을 따라 올라오는 골짜기로는 내려오지 않습니다. 아주 높은 곳에 머무는데, 그때는 엘크를 아래로 몰아낼 눈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목장 주인과 저는 따로 흩어졌습니다. 이삼 일 뒤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사냥하다가 마주치는 곳에서 보기로 했습니다. 그는 분수령 한쪽에서, 저는 반대쪽에서 사냥하기로 했지요. 저는 짐말 두 마리와 타고 다닐 말 한 마리를 가져왔습니다. 그날 이른 아침, 말을 데려가지 않을 높은 곳까지 올라가서 더 높이 올라갔습니다. 말은 잠시 풀을 뜯도록 앞다리를 묶어 두고, 저는 아주 높이 올라갔습니다. 그곳은 가을, 십월 무렵이면 비가 오다가 눈이 오곤 합니다. 여기 삼월 날씨와 거의 비슷하지요. 그러다가 해가 나오면 전부 말려 버립니다. 그런데 폭풍이 몰려왔습니다. 갑자기 북쪽에서 몰아치는 폭풍이었습니다. 가까이에 쓰러진 나무가 있었습니다. 저는 거의 수목 한계선까지 올라와 있었습니다. 나무 뒤로 들어가 폭풍이 그칠 때까지 이렇게 서 있었습니다. 폭풍이 지나간 뒤에도 거기 서 있었습니다. 폭풍이 몰아치는 동안 바람이 몹시 차가워졌습니다.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니, 가을비가 내리니 상록수들이 얼어붙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저 멀리 서쪽에서 해가 나왔습니다. 햇빛이 내리쬐어 산비탈을 비추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 상록수들이 얼어 있었지요. 그것이 협곡을 가로질러 무지개를 만들었습니다. 서쪽 저편에 있는 거대한 눈이 이쪽을 바라보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온 땅 전역을 이리저리 달리는 하나님의 눈과 같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찾으려 하기만 하면, 어디를 가든 하나님을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분은 어디에나 계십니다. 하지만 먼저 그분을 이 안에 모셔야 합니다. 그런 다음 그분께서 여러분의 눈으로 보시게 하십시오. 그분을 이 안에 모시면 여러분의 혀로 말씀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온 존재를 쓰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분께 맡기는 만큼 그분께서 쓰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자신을 그분께 내어 맡기게 하시느라 참 애를 먹으십니다. 삼손이 그랬습니다. 삼손은 여자들에게 마음을 쓰는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힘은 하나님께 맡겼지만 마음은 드리려 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은 들릴라에게 주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쓰실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힘뿐이었습니다. 여러분이 그분께 드리는 만큼, 그만큼을 그분께서 쓰실 수 있습니다. 아, 우리 모두를 그분께 드립시다.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저를 받아 주십시오” 하고 말씀드립시다.
우리가… 제가 거기 서서 그것을 바라보았습니다. 무지개를 보고 말했습니다. “이것 좀 봐. 하나님께서 이 산꼭대기까지 와 계시는구나. 저 무지개 안에 계시는구나.” 요한계시록 1장에서 그분의 모습을 보지 않습니까? 무지개, 일곱 금등잔대 사이를 거니시는 분, 그 모습은 벽옥과 홍보석 같고, 베냐민과 르우벤, 처음과 마지막입니다. 그것을 바라보며 “정말 아름답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언덕 위에서 회색 늑대 한 마리가 울부짖었고, 아래쪽에서 짝이 대답했습니다. 저는 “그래, 그 안에도 하나님께서 계시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폭풍 때문에 엘크 떼가 흩어져 있었습니다. 그 떼에는 대략… 팔십여 마리가 있었습니다. 누구나 아시듯 가장 큰 수컷들을 골라 잡으려 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소 떼를 관리하듯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쏠 수 있다고 해서 마구 잡아 없애고… 그러고 싶지는 않습니다. 늙은 놈들만 골라내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무리에 해가 되니까요.
산비탈 저쪽에서 늙은 수컷 한 마리가 다른 무리와 떨어져 길을 잃고 나팔 같은 울음소리를 내는 것이 들렸습니다. 아! 정말이지… 다윗이 말한 “깊음이 깊음을 부르는” 것입니다. 그 높은 곳에 서서 저쪽 늑대의 울부짖음을 듣고, 이쪽 엘크의 나팔 같은 울음을 듣는 것입니다. 제 마음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부글부글 솟아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오, 하나님!” 하고 생각했습니다. “여기 있는 것이 좋습니다. 장막 셋을 지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너무나 기뻐서 작은 소총을 나무 옆에 세워 놓고, 그 나무를 빙빙, 빙빙 돌았습니다. 목청껏 소리 지르고, 펄쩍펄쩍 뛰며, 두 팔을 앞뒤로 흔들었습니다. 빙빙 돌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하고 외쳤습니다. 누가 그 숲에 있었다면 미친 사람이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저는 덤불 주위를 있는 힘껏 빙빙 돌며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하고 외쳤습니다. 있는 힘껏 달렸습니다. 너무 좋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이 저를 보든 말든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저… 그저 증기를 내뿜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터질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기적을 울려야 했습니다… 기적을 통해 증기를 조금 내보내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있는 힘껏 빙빙, 빙빙 돌았습니다. 한참 뒤 멈춰 서서 두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저 무지개 안에 그분이 계시는구나. 여기 아래 늑대의 울부짖음 속에도 계시는구나. 여기 엘크의 울음 속에도 계시는구나. 내 마음속에도 계시는구나. 아, 주님께서는 어디에나 계십니다.” 그리고 다시 그 나무 주위를 빙빙, 빙빙 돌았습니다. 저는 “아, 여기 있는 것이 좋다. 오두막을 짓고 여기서 살 수 있으면 좋겠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의 경우와 같다. 바로 산 아래에 병든 아이가 있다. 내려가야 한다.”
그렇게 서 있다가 보니, 제가 작은 소나무다람쥐 한 마리를 흥분시킨 것 같았습니다. 여기 텍사스 분들이… 아, 물론이지요. 다른 곳에 있는 것이라면 텍사스에도 다 있지요. 작은 소나무다람쥐 한 마리가 쓰러진 나무 옆 그루터기 위로 뛰어올랐습니다. 그리고 제게 온갖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그렇게 뛰어다니는 바람에 그 작은 녀석이 혼비백산했나 봅니다. 쳐다보니 앉아서 작은 꼬리를 휙휙 흔들며, “재잘재잘재잘… 재잘재잘재잘… 재잘재잘재잘”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작은 녀석아, 왜 그러니? 나는 바로 너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단다. 좀 더 보고 싶니? 자, 간다.” 또 빙빙, 빙빙, 빙빙 돌았습니다. “어떠냐? 너도 잠깐 뛰어다녀 보지 그러니?” 하지만 녀석은 그저… 거기 앉아서 “재잘재잘재잘… 재잘재잘재잘” 할 뿐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 주님과 제가 여기서 이렇게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왜 저 작은 녀석에게 제 눈길을 돌리셨습니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 녀석을 보았습니다. 원래 눈이 크고 툭 튀어나와 있지요. 특히 흥분하면 뺨 위로 눈이 불거진 것처럼 보입니다. 녀석이 이렇게 아래를 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나를 보는 게 아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알고 보니 폭풍 속에 불던 바람이 커다란 독수리 한 마리를 그 나뭇더미 아래, 쓰러진 나무 아래로 몰아넣었던 것입니다. 커다란 갈색 독수리가 그 아래에서 슬금슬금 나오고 있었습니다. 작은 다람쥐는 그것 때문에 흥분한 것이었습니다. 제게 뭐라고 하는 게 전혀 아니었습니다. 저 때문에 흥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독수리가 자기를 아주 쉽게 낚아챌 수 있으니까, 아래 있는 독수리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커다란 독수리가 그곳으로 뛰어나왔습니다. 저는 “아니, 저런 일이 있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 큰 독수리가 뛰어나와 커다란 벨벳 같은 눈으로 두리번거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녀석이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제게서 약 십 피트 떨어진 곳에 서 있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이 나무 주위를 계속 빙빙 돌게 두시지 않고, 왜 이제 저 독수리에게 제 눈길을 돌리셨습니까? 왜 저런 녀석을 보게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사슴을 잡고 잘 덮어 두지 않으면, 저 녀석이 물고 가 버릴 텐데요. 그런데 왜 제가 저런 녀석을 보아야 합니까? 저는 저 무지개 안에서 주님을 바라보고, 저기서 주님을 보고… 늑대와 이 모든 것들 속에서 주님의 소리를 듣고 있는데요.” 저는 말했습니다. “저 독수리 안에는 주님께서 어디에 계십니까? 하지만 성경은 주님께서 여호와 독수리이시고 우리는 새끼 독수리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저 독수리 안에 어떻게 주님께서 계실까 궁금합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저 녀석에게서 무엇을 볼 수 있을까? 엘크에게서는 볼 수 있다. 엘크는 아주 큰 왕이다. 숲의 왕이다. 쓸쓸히 울부짖는 늑대에게서도 볼 수 있고, 무지개에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저 녀석은? 저 녀석의 무엇이 하나님을 닮았을까?”
문득 눈에 들어왔습니다. 녀석이 거기 앉아 있는데 제가 말했습니다. “너 그거 아니? 이 녀석아, 내가 마음만 먹으면 널 쏠 수도 있어.” 저는 말했습니다. “널 쏠 수 있다고. 그 말을 믿니?” 녀석은 제게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저 앉아서 커다란 머리를 들고, 그 눈으로 하늘을 훑어보다가 다시 저를 보았습니다. 저는 녀석이 그 줄무늬다람쥐를 지켜보는 것을 계속 눈여겨보았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 줄무늬다람쥐를 잡으려고 노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니, 땅… 소나무다람쥐 말입니다. 인디애나에서는 줄무늬다람쥐라고 부르지만, 실제로는 소나무다람쥐입니다. 녀석이 그것을 지켜보는 것이 보였습니다. “저 녀석은 어떤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두려워하지 않는구나.” 그리고 “얼마나 겁내는지 한번 보자” 했습니다. “내가 널 쏠 수 있다는 거 아니?” 녀석은 그저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제가 총 쪽으로 손을 들기 시작했습니다. 녀석이 깃털들을 움직이는 것이 보였습니다. 저는 “알겠다. 무엇인지 알겠어” 했습니다. 녀석은 제가 소총에 손을 대기도 전에 자기는 숲속으로 날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날개가 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위험을 피할 수 있도록 날개 둘을 주셨습니다. 저는 녀석이 자기 깃털을 느껴 보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오, 하나님! 이제 주님께서 어디에 계시는지 알겠습니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분이 제게 말했습니다. “언젠가 저 위에서 실수하게 될까 두렵지 않으십니까?” 아, 아닙니다.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그분의 임재가 제 주위에 있음을 느낄 수만 있다면,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든 하게 두십시오. 아무 상관 없습니다. “누가 총으로 쏠까 봐 두렵지 않으십니까?” 아닙니다, 아닙니다. 두렵지 않습니다. 그분의 임재, 하나님께서 주신 권능을 느낄 수 있는 한 두렵지 않습니다. 그뿐입니다. 그저 주위에 계신 그분의 임재를 느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광신자라고 몰아붙일까 두렵지 않으십니까?” 이미 그렇게 했습니다. 아무 소용 없었습니다. 저는 똑같이 계속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상관 없습니다. 그저 주위에 계신 그분의 임재를 느끼며, 깃털 하나하나가 제자리에 잘 놓여 있는지 살피는 것입니다. 아! 우리도 가끔씩 점검하여 모든 상태가 어떤지 살펴봐야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저는 그것이 좋습니다. 바로 지금 제가 느끼는 것처럼, 참 편안한 그 느낌을 느끼는 것입니다. 지금 그분께서 바로 주위에 계십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제 무엇인지 알겠다. 또 한 가지, 녀석은 자기가 어디에 서 있는지 알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는구나. 자기가 얼마나 할 수 있고 얼마나 할 수 없는지 정확히 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자기 은사가 위험에서 벗어나게 해 줄 것을 믿고 있구나.” 하나님께서 본능으로 독수리에게 그만한 확신을 주실 수 있다면, 성령의 권능이 우리 위에 있을 때 우리는 얼마나 더 확신을 가져야 하겠습니까? 아멘. 그 권능이 우리를 위험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날아가 버리십시오. 그렇습니다. 바로 거기서 벗어나십시오. 그저 일어나 믿으십시오. 우리가 이런 상태로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병들어 있거나, 갈라지고 나뉘어 백… 구백육십구 개의 서로 다른 조직 같은 것들로 분열되어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거기서 날아갑시다. 아멘. 빠져나오십시오. 우리는 무엇에도 매여 있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곧바로 날아가십시오. 사람들은 “아, 기적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하고 말합니다. 그 말을 믿지 마십시오! 여러분을 구원하고 성령으로 가득 채워 주신, 하나님께서 주신 그 권능을 주위에서 느끼십시오. 그것이 무엇입니까? 주위에 계신 성령을 계속 느끼십시오. 모든 것, 모든 톱니바퀴가 제대로 돌아가는지 살피십시오. 안약으로 기름칠도 잘하고, 모든 것을 그렇게 해 두십시오. 그러면 때가 되었을 때 정말로 날아오를 수 있습니다.
그 뒤 잠시 지켜보니, 녀석은 저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작은 줄무늬다람쥐, 작은 소나무다람쥐가 앉아서 “재잘재잘재잘, 재잘재잘재잘, 재잘재잘재잘” 하는 소리에는 질려 버렸습니다. 충분히 들은 것이지요. 어쩌면 본능적으로 제가 어차피 자기를 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앉아 있는 그 녀석을 감탄하며 보고 있었으니까요. 저는 용감한 것은 무엇이든 좋아합니다. 겁쟁이는 싫습니다. 저는 어떤 사람이… 강단에 서서 자기가 확신하는 것을 전하기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면 싫습니다. 형제님, 말씀드립니다만, 저는 누가 저를 쏜다 해도 똑같이 말할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권능으로 치유받은 사람이 사무실에 가서는 그것에 관해 말하기를 두려워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예, 저는 주님께서 치유자이심을 믿습니다” 하면서도 그것을 증언하기를 두려워합니다. 아, 형제님! 성령을 부끄러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쓰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용감한 사람들을 원하십니다. 아멘. 우리는 사자, 유다 지파의 사자와 한 혈육입니다. 그렇습니다. 굳셈, 확고함, 용감함입니다. 아, 이 본문을 떠나 그 사자에 관해 얼마나 많이 이야기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 독수리 이야기로 돌아가서, 저는 몇 분 동안 녀석을 지켜보았습니다. 얼마 뒤 녀석은 그 재잘재잘 소리를 듣는 데 싫증이 났습니다. 그래서 크게 한 번 뛰더니 날개를 대략… 그렇게 세 번쯤 퍼덕이자 벌써 그 숲 너머로 가 있었습니다. 저는 “야, 얼마나 힘센…” 하고 생각했습니다. 녀석이 날아오를 때 그 날개가 이렇게 올라가며 일으킨 바람에 저는 거의 쓰러질 뻔했습니다. 곧바로 그 숲까지 올라가 있었습니다. “야, 아주 멀리 날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십니까? 그 뒤로 녀석은 날개를 한 번도 더 퍼덕이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그저 날개를 어떻게 펼쳐 놓아야 하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그 바람을 타고 조금 더 높이 올라갔습니다. 다시 날개를 맞추었습니다. 협곡을 따라 바람이 올라오면 조금 더 높이 올라갔습니다. 한 번도 더 퍼덕이지 않고 그저 바람을 타고 날아갔습니다.
저는 거기 서 있었습니다. 눈물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틀림없이 또 한바탕 하게 되겠습니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보니 녀석은 계속 날아갔습니다. 저 높은 공중에서 작은 검은 점이 될 때까지 바라보았습니다. “주님, 바로 그것입니다.” 여기 가입하고 저기 가입하고, 여기서 퍼덕이고 저기서 퍼덕이며 이곳저곳 옮겨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권능 안에서 날개를 어떻게 펼쳐야 하는지 알고 날아가는 것입니다. 땅에 매인 그 줄무늬다람쥐는 거기 앉아서 이렇게 말하게 두십시오. “재잘재잘. 기적의 시대는 지나갔어. 재잘재잘, 성령 같은 건 없어. 재잘재잘재잘. 다 허튼소리야. 억지로 흥분을 만들어 낸 거지. 열광일 뿐이야. 그런 건 없어.” 아! 그저 날개를 펼쳐 놓으십시오. 할렐루야! 성령께서 파도처럼 밀려오시면 이렇게 그 위에 올라타십시오. 그 소리에서 벗어나 높이, 높이, 높이 올라가서 더 이상 들리지 않게 하십시오.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영역으로 높이 올라가, 이 아래서 재잘거리는 소리조차 듣지 않게 되십시오. 그 소리는 여러분에게 죽은 것이 됩니다. 여러분은 하늘의 처소들에 올라가 있는 것입니다.
독수리는 하늘의 새로 지어졌습니다. 분명히 그렇습니다. 다른 어떤 새도 독수리를 따라올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독수리는 새들 가운데 왕입니다. 사실입니다. 매는 눈이 날카롭다고들 하지요. 그런 말을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매는 풋내기입니다.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릅니다. 매가 독수리와 함께 날아가려고 했다가는 공중에서 산산이 부서질 것입니다. 독수리는 특별한 몸을 가진 새입니다. 그래야만 합니다. 다른 어떤 새보다 더 높이 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독수리도 특별한 몸을 갖지 않았다면, 저 높은 곳에 올라갔을 때 산산이 부서졌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기가 아닌 다른 무엇이 되려고 흉내 낼 때도 그렇습니다. 길에서, 제가 말하는 것은 인생길에서 온갖 파탄이 생기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흉내 내려 하지만, 자기는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위해 지어지지 않았습니다. 이 말이 마음에 와닿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랬기를 바랍니다. 어쨌든… 아, 그렇습니다. 아멘. 할례받지 않은 이집트 사람들이 할례받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따라가려다가, 그들도 바다 밑에서 산산이 부서졌지 않습니까? 그들은 건널 수 없었습니다. 바퀴가 진창에 빠져 버렸습니다.
이제 독수리를 보면… 독수리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분의 선지자들을 독수리에 비유하신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렇게 높이 올라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독수리는 특별히 만들어진 새입니다. 그 깃털은 어찌나 단단히 박혀 있는지, 펜치로도 뽑기가 어렵습니다. 그렇게 단단히 박혀 있는 것은, 그렇지 않으면 저 높은 영역에 올라갔을 때 깃털들이 빠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땅으로 떨어져 산산이 부서질 것입니다. 매가 따라가려고 하거나 까마귀가 따라가려고 하면, 독수리는 저만치 앞서 나가 버립니다. 더 높이 올라간다면… 그 새들은 어느 높이까지 올라가면 그 이상은 올라갈 수 없습니다. 까마귀나 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독수리는 계속 올라갑니다. 그런데 아주 멀리까지 볼 수 있는 눈도 갖추지 못했다면, 저 높은 곳에 올라가서 무엇 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높이 살지도 않으면서 높이 올라간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올라가는 높이에 걸맞게 사십시오. 뛰어오르는 만큼 높이 사십시오.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요. 교회가 그토록 비난받는 것은 사람들이 아주 높이 뛰면서도 삶은 아주 낮게 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뛰어오르는 높이만큼 높이 사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독수리가 저 높은 곳에 있을 이유가 없다면, 그렇게 만들어지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독수리를 만드시고 그분의 선지자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선지자는 이사야와 예레미야 같은 이들처럼 더 높이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아주 높이 올라갔습니다. 높이 올라갈수록 더 멀리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늘 땅에만 있으니, 시야가 바로 여기까지일 뿐입니다. 하지만 올라가면, 더 높이 올라갈수록 더 멀리 볼 수 있습니다. 아! 어떤 사람들의 시야가 그토록 좁은 것도 당연합니다. 아직 땅에서 발조차 떼지 못했으니까요. 아, 더 높이 올라갈수록… 독수리는 모든 새 중에서 가장 높이 올라갑니다. 다른 어떤 새보다 더 높이 올라갈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따라갈 수 없습니다. 비행기라도 독수리에게 닿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녹음 공백] …거기서 자체적으로 공기를 만들어 내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저 높은 곳에 올라가면, 이 새, 저 위에 살아 있는 이 새는 주위를 둘러봅니다. 볼 수 있습니다. 그 눈은 매의 눈보다 훨씬 뛰어나서 저 높은 곳에 올라가 사물들을 볼 수 있습니다. 폭풍이 다가올 때 여러분이 공중에 충분히 높이 떠 있다면 수백, 수백 마일 밖에서도 볼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충분히 높이 올라가 있다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이사야, 요한 같은 그분의 선지자들을 붙들어 아주 높이 올려 주셔서, 그들이 저 멀리 천년왕국까지 내다보게 하셨습니다. 아멘! 아주 먼 앞날까지 말입니다.
얼마 전 피닉스에 있는 아웃로 형제님을 찾아갔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시기를… 그리스도인 형제에게는 무시무시한 이름이지만, 아주 좋은 분입니다. 제… 키드슨 형제님, 형제님과 제가 그곳에 갔을 때 그분의 교회에 갔었지요. 거기에는 성가대가 있었습니다. 경건해 보이는 여성들이었는데, 얼굴에 매니큐어를 바르지 않았고 머리는 길었으며 드레스를 입고 있었습니다. 저는 늘… 그게 뭐죠? 뭐라고 하지요? 그것을 뭐라고…? 저는 늘… 마스카라요. 그 말도 아닌 것 같은데요. 아무튼 입술에도 바르고… 온통 다 바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실은 칠이지요. 그래요, 그것도 맞겠지요. 무엇이든 말입니다. 어쨌든 그 여성들은 그렇게 꾸미지 않았습니다. 그 작은 얼굴들은 껍질을 벗긴 양파처럼 환했습니다. 그리고 한 작은 소년이 앞에 서서 “우리는 올라갑니다, 올라갑니다, 올라갑니다” 하고 노래했습니다. 소년은 말했습니다. “첫째 단은 의롭게 됨, 둘째 단은 성화, [녹음 공백] 영화롭게 됨. 그러자 성령께서 내려오셨네.” 그리고 “나는 위로 위로, 위로 위로 위로, 위로 위로, 위로 위로 위로 올라가 새하얀 은하수에 닿았네” 하고 불렀습니다. 저는 그때 제 자신이 떠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저 느끼면서… 그것이 날아오르는 독수리입니다. 위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저 높은 곳에서는 주님께서 오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 그 여인이 저 리치먼드로 그랜트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내 눈은 주께서 오시는 영광을 보았네… 진노의 포도가 쌓인 곳에서 포도즙 틀을 밟으시네” 하고 말한 것도 당연합니다. 그렇습니다. 올라가며 주님께서 오시는 광경을 보는 것입니다.
독수리는 특별한 몸을 가진 새입니다. 더 높이 날 수 있고, 저 높은 곳에 올라가면 멀리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 아빠 독수리께서는 저 높은 하늘에 앉아 계십니다. 아! 그분께서 이 땅에 계실 때에는 붙일 수 있는 가장 낮은 이름, 바알세붑이라는 이름을 받으셨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도시인 여리고로 가셨고, 너무나 낮아지셔서 그 도시에서 가장 작은 사람을 보시려면 나무 위를 올려다보셔야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의 온갖 이름, 나쁜 이름과 온갖 이름으로 불리셨습니다. 하지만 높여지셨을 때에는 하늘과 땅에서 불리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받으셨습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온 가족이 그분의 이름을 따라 이름을 얻습니다. 그분은 너무나 높이 높여지셔서 하늘을 보시려 해도 내려다보셔야 합니다. 그분께서 거기 올라가셨을 때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그 차이입니다.
이제 여러분도 올라가기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가 죄인일 때는 더 내려갈 수 없을 만큼 낮습니다. 올라가기 시작합시다. 새하얀 은하수로 올라가, 거기에 닿아서 계속 나아갑시다. 이제 우리가 아는 것은… 위로 올라가고, 위로 올라가, 하나님의 왕국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이 선지자들은 거기 올라가면, 지성을 가진 다른 새들은 볼 수 없는 곳까지 아주 높이 올라갑니다. 그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애당초 거기까지 올라갈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선지자들이 그분의 독수리들이라고 하셨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성경에서 독수리의 날개로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셨다고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분의 날개였습니다. 아, 길을 인도하는 그 불기둥,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날개로 이스라엘을 업어 나르셨습니다.
아, 얼마 전 그들이 데려오던 때, 팔레스타인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던 때였습니다. 레위 페트루스가 이란 등지에서 올라오는 유대인들에게 신약성경 백만 권을 보냈습니다. 그들은 그 신약성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주 예수님께서 땅에 오셨다는 이야기를 전혀 들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로마인들에게 끌려간 이래 줄곧 그 아래 지역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말했습니다. “이분이 메시아라면, 선지자의 표적을 행하시는 것을 보여 주시오. 그러면 믿겠소.” 아, 그 사역을 펼치기에 얼마나 좋은 자리입니까! 저는 곧바로 출발했습니다. 이집트 카이로까지 갔을 때 제… 삼십 분만 더 가면 팔레스타인이었습니다. 그런데 무언가가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저는 격납고 뒤로 나갔습니다. “아직 그때가 아니다” 하셨습니다. 저는 돌아서서 그리스로 갔다가, 거기서 인도로 건너갔습니다. 그 유대인들을 불러낼 때가 아직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믿습니다, 형제님. 그렇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 형제들을 거기로 불러내 이렇게 말하기에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이 메시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예언되었던 그 메시아시라면, 그분께서 선지자의 표적을 행하시는 것을 보고 그분을 믿겠다고 여러분이 말씀하셨다는데 사실입니까? 그렇습니까?’”
그리고 저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 중에서 몇 사람을 골라 이리로 올라오십시오. 그분께서 여전히 그 선지자이신지 아닌지, 정말 그러신지 확인해 봅시다. 여러분의 조상들이 성령침례를 거부했던 바로 이 땅에서 이제 그것을 받으십시오.” 아, 그러면 복음이 유대인에게 전해진 것이고, 이방인의 날은 그때 끝납니다. 문이 아주 조금 열려 있습니다. 작은 새끼 독수리 여러분, 날갯짓을 하며 여기서 나갈 준비를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머지않아 자비의 문이 닫힐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입니다. 아,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들이… 비행기를 그곳에 보냈을 때입니다. 아마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읽으셨을 것입니다. 아니, 말씀드리자면 「룩」 잡지였습니다. 제게 「자정까지 삼 분」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자정까지 삼 분입니다. 팔레스타인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실물 크기의 영상으로 보여 줍니다. 아간브라이트 형제님과 많은 친구들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이… 유대인들을 업어 들이고 있었습니다. 나이 들고 몸이 불편한 이들을 등에 업고 왔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가서 인터뷰를 했습니다. “고국에서 죽으려고 돌아오시는 겁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아니오. 메시아를 보러 오는 겁니다.” “무화과나무가 가지를 내면…” 아, 형제님, 이스라엘이 그곳에서 다시 나라가 되고 있습니다. 다윗의 옛 육각별,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깃발이 나부끼고 있습니다. 이천오백 년 만에 처음으로 나부낀 것입니다. 이제 그들은 자기 땅에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달력입니다. 그들이 거기 서서 그분을 기다리는 것만큼이나 확실하게 메시아께서 오실 것입니다. 우리는 마지막 때에 있습니다. 아, 작은 새끼 독수리 여러분, 힘써 자비의 문을 통과해서 있는 힘껏 날아가십시오.
그들을 데려올 때, 그 유대인들을 데리러 비행기들이 내려왔을 때, 그들은 여전히 수백, 수천 년 전과 같이 낡은 나무 도구로 밭을 갈고 있었습니다. 남아프리카에서는 아직도 그렇게 합니다. 그래서 그때… 그들은 비행기를 두려워했습니다. 비행기에 타는 것을 무서워했습니다. 연로한 랍비 한 분이 앞으로 나서서 “두려워하지 마시오” 하고 말했습니다. “우리 선지자가 언젠가 우리가 독수리 날개를 타고 고국으로 돌아가리라고 약속했소.” 그 큰 TWA 비행기가 유대인들을 태우고 떠올랐습니다. 선지자가 본 것이 그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비행기라고 부를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독수리 날개를 타고 돌아올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천오백 년 전에 그 비행기가 저기서 떠오르는 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이제 바로 지금 그것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독수리 날개를 타고 그들을 데려오는 것입니다.
독수리는 정말 대단한 새입니다. 신시내티 동물원에서… 저는 어떤 면에서는 아이들을 그곳에 데려가기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무엇이든 우리에 갇혀 있는 것을 보면 싫습니다. 저는 야생동물을 사랑하기 때문에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집에는 아무것도… 개 한 마리도 기르지 않습니다. 매어 놓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든 갇혀 있는 것은 보기 싫습니다. 감옥만 아니면 좋겠습니다. 불쌍한 동물들을 거기 집어넣고, 누구나 와서 빤히 쳐다보고 둘러보게 합니다. 저는 정말 가엾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돈만 있다면 전부 사서 원래 살던 곳에 데려다 풀어 주고, “자, 이제 힘껏 달려라. 멀리 가거라” 하고 말해 주고 싶습니다. 저는 탓하지 않습니다… 분칠한 것들이 잔뜩 둘러서서 동물들을 쳐다보며 코에 담배 연기를 뿜어 댑니다. 아! 저 자신도 그렇게 서 있어야 한다면 정말 싫겠습니다. 오히려 반대가 되어야 합니다. 담배 연기를 뿜는 사람이 그 안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 가두기에는 그 사람이 더 적합할 것입니다. 자기 몸을 돌볼 만큼의 분별력도 없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내려갔습니다. 어린 딸 사라를 데리고… 우리는 손을 잡고 걷고 있었습니다. 새들이 있는 곳으로 내려갔는데, 거기에 아주 큰 우리가 하나 있었습니다. 막 잡아 온 녀석이 틀림없었습니다. 아주 큰 독수리였습니다. 그곳에 넣어 두었습니다. 아, 엄청나게 큰 녀석이었습니다. 발도 아주 컸습니다. 송아지를 낚아채서 날아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퍼덕이는 소리가 들리고 깃털들이 날리고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라와 저는 그쪽으로 걸어갔습니다. 사라는 아주 작은 꼬마였습니다.
저는 아이들 덕분에 참 즐겁습니다. 여러분도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으십니까? 이 작은 사라 말입니다… 몇 해 전, 집회에 갔다가 어느 날 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이들이 아빠가 들어오기를 기다리며 잠을 자지 않고 있었습니다. 둘 다 아빠에게 달라붙는 딸들이지요. 그렇게 기다리고 있었는데, 제가 아주 늦게까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엄마가 아이들을 재웠습니다. 저는 두세 시쯤 들어왔습니다. 집회 때문에 너무나 마음이 흥분되어 있었습니다. 그 환상들과 그런 일들은 저를 몹시 흥분시킵니다.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섯 시쯤 일어나 거실에 가서 의자에 앉았습니다. 그냥 앉아서 집회에 관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딸아이들 방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습니다. 보니 큰딸 베키가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베키는 다리가 좀 길고, 사라는 아주 조그맣습니다. 베키가 있는 힘껏 달려오더니, 이렇게 제 무릎에 뛰어올라 다리를 벌리고 앉았습니다. 두 팔로 저를 감싸 안고 “아빠, 아빠, 아빠” 하고 소리치며 꼭 껴안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뒤를 바라보았습니다. 이런 일은 아버지의 가슴을 벅차게 하지요. 보니 동생 사라가 물려받은 옷을 입고 오고 있었습니다. 둘째에게는 늘 잠옷 발 부분이 이만큼 남아돌지 않습니까? 사라를 보니 작은 초교파 교회가 생각났습니다. 다리가 긴 다른 아이는 오래전부터 있었으니, 오랫동안… 아는 것도 많았지요.
베키는 저를 두 팔로 껴안았습니다. 사라보다 먼저 온 것입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내 동생 사라야.” (작은 사라가 멈춰 섰습니다.) “내 동생아, 이것을 알아 둬. 내가 먼저 왔고 아빠는 내가 다 차지했어. 네 몫은 하나도 안 남았어.” 불쌍한… 그들이 우리에게 하는 말도 대체로 이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옛날부터 오랫동안 있던 그 다리 긴 이들 말입니다. 그래서 베키가… (그분을 다 차지했다는 것입니다.) “아빠는 내가 다 차지했어. 네 몫은 하나도 없어” 했습니다. (문을 닫는 게 낫겠다는 것이지요.) 작은 사라는 거기 서서 조그만 입술을 축 늘어뜨렸고, 작고 검은 두 눈에는 눈물이 맺혔습니다. 저는 그 아이를 바라보고 윙크를 했습니다. 손가락으로 오라고 손짓하며 다른 쪽 다리를 내밀었습니다.
아이가 발을 이리저리 퍼덕이며 달려오더니 제 다리 위에 뛰어올랐습니다. 그런데 좀… 아직 안수받은 지 오래되지 않았거든요. 좀 비틀비틀했습니다. 그래서 떨어지지 않도록 두 팔을 뻗어 붙잡아야 했습니다. 저는 아이를 제게 바짝 끌어안았습니다. 아이도 저를 껴안고 잠시 꼭 붙들었습니다. 그러더니 커다란 눈에, 얼굴에는 웃음을 띠고 돌아보았습니다. “내 언니 리브가야, 나도 할 말이 있어.” 그리고 말했습니다. “언니가 먼저 와서 아빠를 다 차지한 건 맞을지도 몰라. 하지만 이것도 알아 둬. 아빠는 나를 다 품고 계셔.” 바로 그런 것입니다. 저는 그분께서 저의 전부를 가지시기 원합니다. 신학이니 무슨 학이니, Ph니 HHD니 QUD니 하는 것은 다 모릅니다. 제가 아는 것은 그분께서 저의 전부를 여기 품고 계신다는 것뿐입니다. 그분의 영께서 그분의 자비와 선하심 안에 저를 감싸 안고 계심을 아는 한, 제가 바라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제 공로를 세우려는 것도 아니고, 제가 공로를 세울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제가 할 수 있는 것도 없습니다. “내 두 손에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고, 오직 주의 십자가만 붙듭니다.” “주님, 저의 전부를 받아 주십시오.”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작은 사라와 저는 계속 걸어갔습니다. 그 일이 있은 지 며칠 뒤, 아이의 손을 잡고 그 독수리 우리로 내려갔습니다. 거기서 제가 지금껏 보았던 것 중 가장 가엾다고 생각한 광경을 보았습니다. 막 잡혀 온 큰 독수리가 우리 안에 있었습니다. 제가 다가갔을 때 녀석은 등을 바닥에 대고 누워서, 아주 큰 날개를 이렇게 펼치고 있었습니다. 날개 앞쪽 전체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고, 머리에서도 온통 피가 흐르고 깃털이 벗겨져 있었습니다. (날개 가장자리에서도 그랬습니다.) 저는 “저 불쌍한 새가 왜 저럴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작은 사라를 들어 올려 두 다리를 제 목에 걸치게 했습니다. 우리 안을 볼 수 있도록 말입니다. 아이가 “아빠, 피가 나요” 했습니다. 저는 “그래, 아마… 저 안에는 싸울 상대가 없는데, 무엇과 싸우는지 모르겠구나” 했습니다.
잠시 뒤 녀석이 일어나 지친 머리를 흔들고, 머리를 돌려 이렇게 쳐다보았습니다. 독수리는 하늘의 새입니다. 우리 뒤쪽으로 물러났다가, 큰 날개를 퍼덕이며 있는 힘껏 우리를 가로질러 달려왔습니다. 그러더니 또다시 머리를 우리에 세차게 부딪쳐 뒤로 나동그라졌습니다. 빠져나오려고 날개를 우리에 부딪쳤기 때문에 날개에서 피가 흘렀습니다. 이번에는 너무 세게 부딪쳐 그대로 누워 있었습니다. 지친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저는 “오, 하나님! 얼마나 불쌍합니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제 마음에 무언가가 와닿았습니다. “아니다. 우리에 갇힌 동물이 내가 본 가장 가엾은 것은 아니다. 내가 본 가장 가엾은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도록 태어났으면서도, ‘기적의 시대는 지나갔다. 성령침례 같은 것은 없다’고 말하는 어떤 조직이나 신조에 억눌려 있는 사람이다. 할렐루야! 그런 낡은 교파의 신조 속에 누워 이렇게 주위를 둘러보는 사람이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도록 태어났습니다. 신조가 그를 우리에 가두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나오기를 원하십니다. 아멘. 거기서 나오십시오. 여러분은 태어났습니다… 그 독수리를 거기 넣은 것은 사람이 한 일이었습니다. 여러분을 신조와 교파 안에 집어넣는 것도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그것들은 모두 마귀에게 속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조로 사람을 옭아맵니다. “기적의 시대는 지나갔다. 성령의 기쁨 같은 것은 없다. 기쁨으로 외치는 일도 없다. 방언을 말하는 일도 없다. 신유도 없다.” 아! 얼마나 가엾습니까. 자유롭게 살도록 태어난 하나님의 아들들이 갇혀 있는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그 사람들을 멸시하지 마십시오. 멸시하지 마십시오… 그들을 그 안에 묶어 놓은 사슬, 그들을 위해 그것을 끊어 주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을 멸시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도록 태어났습니다. 자유롭게 살도록 태어났습니다. 아무도 여러분을 그런 것 속에 가두지 못하게 하십시오. 바로 그것입니다. 그 낡은 우리들에 들어가지 마십시오. 바로 그렇습니다.
독수리는 참 놀라운 새입니다. 그 습성, 저는 독수리가 무엇을 하는지 그 습성을 지켜보기를 좋아합니다. 가령 소 떼를 모을 때, 독수리들이 둥지를 짓는 것을 여러 번 지켜보았습니다. 쌍안경을 맞추고 관찰했습니다. 아, 아침 일찍 소를 몰기 시작하기도 전에 올라가 쌍안경을 들고, 그 독수리가 둥지에 또 무슨 일을 하는지 보곤 했습니다. 녀석은 밖으로 나갑니다. 여러분도 보셔야 할 텐데요. 독수리는 절대로 땅에 둥지를 짓지 않습니다. 독수리는 땅에 둥지를 짓지 않습니다.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곳, 가장 높은 봉우리에 둥지를 짓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독수리를 그분의 교회에 비유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산 위에 놓인 촛불입니다. 그렇습니다. 높은 포부와 높은 기대, 우리는 큰일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나는 오순절교인이니 그것으로 됐다” 하고 말하지 않습니다. 저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저는 더 큰일을 기대합니다. “나는 침례교인이다. 나는 감리교인이다. 나는 일신교다. 이신교다. 삼신교다.” 여러분이 무엇이든 말입니다. 그것으로 저는 만족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분을 만날 때까지 계속 나아가려는 포부가 있습니다. 위로 위로, 위로 위로, 위로 말입니다. “나는 성령을 받았다. 그것으로 됐다.” 저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계속 받아들이며 더 높이, 더 높이 나아가고 있습니다. 아주 높이 나아갑니다. 높은 포부, 높은 기대, 포부를 품고 말입니다. “우리에게는 꽤 괜찮은 작은 교회가 있다. 나와 이 작은 무리는 여기서 안주하겠다. 다른 사람은 아무도 우리 모임에 들어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아닙니다. 저는 타락한 모든 신조에게, 아니 [불분명한 말]에게 손을 내밀고 싶습니다. 그를 안으로 데려오십시오. 포부를 품고 무엇인가 하십시오. 진리 가운데 걸어 본 사람이 진리를 보기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를 깎아내려서는 결코 안으로 데려올 수 없습니다. 팔로 그를 감싸 안고 사랑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형제라는 것을 알려 주십시오. 그러면 무언가가 일어날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호와와 한 혈육이라면 그렇게 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그분의 영이 있습니다. 그분은 자신을 미워하고 멸시하며 얼굴에 침을 뱉는 사람들에게 오셨습니다. 그래도 그들이 구원받기를 기도하셨습니다. 물론입니다. 그것이 사람 안에 계신 하나님의 영입니다.
자, 독수리는 닭과 얼마나 다릅니까? 닭도 독수리와 똑같이 새입니다. 알고 계셨습니까? 닭도 독수리 못지않게 새이지만, 닭은 독수리의 교파 형제입니다. 그들은 그저… 어떤 신조 안에 안주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축사 마당 어디쯤에 둥지를 지으니, 온갖 쥐가 달려들어 둥지를 찢어 놓고 새끼들을 흩어 놓을 수 있습니다. 위스키, 담배 피우기, 반바지 입는 여자들, 짧게 자른 머리, 아, 온갖 것들이 그들을 갈기갈기 찢어 놓습니다. 하지만 진짜 독수리는 둥지를 높은 곳에 만듭니다. 세상의 온갖 더러운 것들이 그 안으로 기어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독수리는 둥지를 가지고 올라가, 태어날 새끼들을 너무나 높은 곳에 두기 때문에 그 더러운 입김조차 새끼에게 닿지 못합니다. 휴! 지금 저는 정말 신앙의 감동이 솟습니다. 어쩐지 기분이 참 좋습니다. 그렇습니다. 새끼를 저 높은 곳으로 데려가는 것입니다. 저는 독수리가 둥지를 어떻게 만드는지 지켜봅니다. 먼저 아주 큰 나뭇가지들을 가져다가 이렇게 바위틈에 놓습니다.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둘레를 쌓습니다. 그다음 밖으로 나가 가시덩굴을 가져다가 둘둘, 둘둘 감습니다. 단단히 묶는 것입니다. 이 나라의 어떤 건축가도 그보다 더 잘 짓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독수리는 높은 봉우리 위에 둥지를 짓는 법을 압니다. 짐승이나 쥐가 그곳에 올라올 수 없으니 새끼들은 안전합니다.
얼마 전 한 유명한 복음전도자가 말했습니다. “제가 어느 도시에 들어가면…” 그분은 우리 빌리 그레이엄 형제님이었습니다. 저는 그분이 훌륭한 복음전도자라고 생각합니다. 루이빌에서 그날 아침 목회자 조찬 모임에 말씀하시던 때였습니다… 저도 모디카이 햄과 함께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는 저와 친한 형제였고, 빌리 그레이엄을 주님께 인도한 사람이었습니다. 모디카이와 저는 이웃이었으므로 아주 친한 사이였습니다. 우리는 같은 식탁에 앉아 있었습니다. 빌리가 일어나서 말했습니다. “이 성경이 기준입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어느 도시에 가서 한 사람을 회심시켰습니다. 이듬해에 돌아가 보니 그 한 사람이 삼십 명을 회심시켰습니다.” “저는 어느 도시에 가서 삼만 명을 회심시킵니다. 그런데 이듬해에, 아니 이 주일 뒤에, 한 달도 채 안 되어 돌아가 보면 삼십 명도 찾을 수 없습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그가 한 말은 이렇습니다. “문제는 여러분 게으른 설교자들입니다. 뒤에 앉아 책상에 발을 올려놓고, 직접 찾아가 만나지 않고 카드만 보냅니다.” 저는 그분의… 감탄했지만, 이유는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직접 찾아간 그 사람은 누구였습니까…? 바울은 다시 가지 않았습니다. 그 회심자를 남겨 두고 떠났을 뿐입니다. 그뿐입니다. 빌리, 문제는 그 모든 것이 보이지 않을 만큼 멀리 데려가지 않는 데 있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 삼만 명이 성령침례를 받게 해 보십시오. 그리고 삼십 일 뒤에 돌아와 그 한 사람을 찾아보십시오. 그렇습니다! 그저 작은 신조를 부채질해 준 것입니다. 그들을 데리고 나가서는 말합니다… 이름을 보여 주십시오. “자, 다른 어떤 교회에서 교적을 가져와 이쪽에 넣으십시오.” 그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죄를 없애고, 저 영광 가운데 있는 어린양의 생명책에 여러분의 이름이 기록되게 하십시오. 성령침례가 그곳에 임하게 하십시오. 그러면 독수리처럼 날아갈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여기 땅에서 벌이는 이 온갖 구린내 나는 짓들 위로 올라오게 될 것입니다. 정말 사실입니다.
얼마 전 저는 한 목장 주인과 함께 있었습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함께 다녔습니다. 저는 도무지 그를 그리스도께 인도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아주 높은 산속에 있었습니다. 그는 등이 조금 굽은 사람이었는데, 등에 커다란 사냥총을 메고 걷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거의 발을 들인 적 없는 나무들 사이로 빛이 비쳐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가 갑자기 멈춰 주위를 둘러보더니 말했습니다. “여기는 대성당 같군.” 저는 “제프, 저는 고개를 넘어 들어온 때부터 이 안에서 그분을 느꼈습니다” 했습니다. 그는 두 팔로 저를 감싸 안으며 말했습니다. “빌리, 바로 여기 그분의 대성당에서 그분을 만나고 싶네.” 바로 그것입니다. 그는 위를 향했습니다. 그는 담배 같은 것도 전혀 피우지 않았고, 목장 주인이어서 자동차도 싫어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빌리, 여기 위에서는 휘발유 냄새도, 담배 냄새도 안 나지?” 저는 “예, 제프, 여기가 그분께서 사시는 곳입니다. 그래서 제가 여기 올라오는 것입니다” 했습니다.
높이 올라가십시오. 영적인 영역에서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닭처럼 여기 아래 머물러 있지 마십시오. 거기서 날아가십시오. 벗어나십시오. 닭은 헛간에서 나오는 온갖 쥐에게 잡힙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가입하고 일요일마다 오십시오. 작은 번코 게임도 하고 뒷마당에서 크로케도 하겠습니다” 하는 데서 더 나아가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형제님, 그것이 아닙니다. “수프 만찬을 열어 목사님 사례비를 마련합시다.” 또 이런 온갖 일들입니다… “수영복을 입고 수영하러 갑시다. 햇볕에 피부를 태우십시오. 피부를 태워야 합니다.” 제게 딸 둘이 있습니다. 언젠가 아이들이 그것을 해 보려 할지도 모르지만, 그러면 한 아들에게 따끔하게 혼날 것입니다. 해를 뜻하는 s-u-n이 아니라, 브래넘 씨의 아들, s-o-n에게 말입니다! 있는 힘껏 아이들 엉덩이를 때려 줄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따끔한 맛입니다. 그렇습니다. 아!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울 때의 그 참된 부흥이며, 성경의 성령께서 다시 교회 안에 오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독수리의 포부는 높습니다. 닭은 땅에 머물러 있습니다. 둥지를 지으면 온갖 쥐와 뱀과 썩은 것을 먹는 짐승들이 들어와, 새끼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알에서 부화하기도 전에 알을 먹어 버립니다. 그렇습니다.
빌리가 회심자들을 모두 잃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온 나라의 온갖 쥐들, 담배 피우는 사람, 춤추는 사람, 온갖 것들이 들어와 그들을 데려갑니다. 언젠가 그 둥지를 좀 더 높은 곳에 짓고, 그들을 조금만 더 높이 올려 보십시오. 그것들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벗어나게 하십시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세상과 세상의 것들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너희 안에 있지조차 않다” 하셨습니다. 요한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세상의 것들에서 그들을 나오게 하십시오. 그것들이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나오게 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한번 맛본 사람에게 세상은 죽은 것입니다.
집에 작은 성경이 한 권 있습니다. 제가 처음 가졌던 성경들 중 하나입니다. 얼마 전 집어 들어 펼쳐 보았습니다. 뒤쪽에 제가 적어 둔 것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자꾸 질문을 했습니다. “담배를 피우는 것이 잘못입니까?” 그때 저는 침례교회에 있었습니다. “담배 피우는 것이 잘못입니까? 술 마시는 것이 잘못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짧은 시를 적었습니다. “어리석은 질문을 내게 하지 마십시오. 마음에 이것을 새겨 두십시오. 주님을 마음 다해 사랑한다면, 담배를 피우지도 씹지도, 밀주를 마시지도 않습니다.” 저는 그것이 지금도 그대로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상에서 한번 먹고 나서 어떻게 쓰레기통에서 주워 먹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물론입니다.
그다음에 독수리에 비유하신 것은… 아, 할 말이 너무나 많지만 전부 다룰 시간은 없습니다. 다음은 독수리가 젊음을 되찾는다는 것입니다. 시편에서 그렇게 말했지요. 잠언에서 그렇게 말했습니다. “독수리가 자기 젊음을 되찾듯이…” 젊음을 새롭게 합니다. 독수리는 젊음을 새롭게 합니다. 독수리는 이따금 깃털이 전부 빠지고 젊음을 다시 새롭게 합니다. 그것을 그분의 교회에 비유하셨습니다.
제가 처음 오순절 사람들을 보았을 때가 생각납니다. 여기 인디애나의 라이얼 형제님 성막에서였습니다. 제가… 미시간, 그곳이었습니다. 도와지액, 도와지액 근처였습니다. 아, 지금 그 지명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아! 인디애나였는데, 바로 미시간 경계에 있었습니다. 인디애나주 미셔와카였습니다. 맞습니다. 미셔와카입니다. 저는 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날 밤 강단에는 설교자가 육십 명쯤 있었습니다. 그분이 “설교자들은 모두 올라오십시오”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도 올라갔습니다. 저는 침례교인이었습니다. 그렇게 올라가 앉았습니다. 그날 몇몇 설교자들, 그 젊은 분들이 모두 예수님께서 어떠하셨는지, 얼마나 놀라운 구원자이셨는지 등을 설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날 밤 주요 설교 시간에는 연로한 흑인 한 분을 모시고 나왔습니다. 그 불쌍한 어르신은 거의 부축해 드려야 할 정도였습니다. 커다랗고 낡은 푸른빛 도는 프린스 앨버트식 긴 예복을 입고 계셨습니다. 이런 칼라가 달린, 옛 설교자들이 입던 옷이었습니다. 그분이 나오셨습니다. 흰 머리카락이 테처럼 조금 남아 있는 분이 그렇게 강단으로 나오셨습니다. 저는 “왜 젊은 신학자들 중 한 사람을 내보내서 말씀을 전하게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 어르신이 나와 이렇게 강단에 자리 잡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오늘 밤 본문을 욥기에서 택하려 합니다.” 아마 7장, 7장 37절인가, 그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세상의 기초들을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그것들은 어디에 고정되었느냐?) 새벽별들이 함께 노래하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기뻐 소리를 지를 때에 말이다.” 저는 “왜 저 노인을 세워 설교하게 할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분들은 모두 예수님께서 이 아래에서 하신 일을 설교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저 먼 곳, 영원이 시작되기 전부터 시작하여 예수님을 온 하늘을 가로질러 모셔 오더니, 재림 때 수평으로 펼쳐진 무지개를 타고 내려오시게 했습니다. 그때 성령께서 그분을 사로잡으셨습니다. 그분이 “야호!” 하고 외치며 펄쩍 뛰어올라 이렇게 빙빙 춤을 추셨습니다. (여기보다 공간이 두 배는 넓었습니다.) 그리고 강단에서 걸어 내려오며 “여기는 내가 설교하기에 너무 좁군요” 하셨습니다. 강단에서 걸어 내려오셨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야, 내가 원하는 것이 저것이구나. 저런 노인도 저렇게 움직이게 한다면, 젊은 사람에게는 어떻게 하겠는가?”
독수리가 자기 젊음을 새롭게 하듯이, 그렇습니다! 부흥은 여러분 안의 오래된 이상한 감정들을 모두 흔들어 털어 버리고, 저 높은 영역으로 날아가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상속 백성을 독수리에 비유하셨습니다. 독수리가 자기 젊음을 새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사람을 외치게 합니다. 교회를 보십시오. 모두 메마른 채로 앉아 있다가, 어느새 성령께서 그들을 사로잡으십니다. 그러면 노인들이 벌떡 일어나 뛰고 외치며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다시 젊음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젊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합니다. 그저 뛰고, 소리 지르고, 목청껏 외치고, 기뻐 외치는 것입니다. 독수리는 자기 젊음을 새롭게 합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그것을 믿습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습니까?
인디애나에 농부가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그는 좋은 농부였습니다. 헛간은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여기저기 틈이 벌어져 있었습니다. 또 다른 농부가 있었는데, 돈이 많아서 여러분이 본 것 중 가장 좋은 헛간을 지었습니다. (설교자들에게 유익한 이야기입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그가 여러분이 본 것 중 가장 좋은 헛간을 지었다는 것입니다. 트랙터도 있고 무엇이든 다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너무 게을러서 농사를 짓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 모두… 다른 농부, 허름한 헛간을 가진 농부, 어딘가의 작은 선교회 같은 그 농부는 부지런히 일하는 진짜 농부였습니다. 그래서 그해에 좋은 알팔파 건초와 여러 가지를 넉넉히 길러 거두어들였습니다. 그다음… 그해에 두 헛간에서 각각 송아지 한 마리가 태어났습니다. 이듬해 봄 따뜻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부자 농부가 자기 작은 송아지를 내보냈습니다. 불쌍한 작은 녀석이었습니다. 너무 말라서 비틀거리며 나왔습니다. 바람이 불면 옆으로 쓰러질 것 같았습니다. 제대로 걷지도 못했습니다. 먹을 것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 안에는 묵은 잡초들, 낡은 교파의 잡초들만 있었습니다. “우리는 누구누구다. 우리가 거물이다.” 그런 것으로는 결코 혼을 살찌울 수 없습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하지만 다른 작은 송아지는 지낼 헛간이 대단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형제님, 밖으로 내보내자 그 녀석은 비타민을 듬뿍 먹고 살이 통통하게 올라 있었습니다. 아! 더할 수 없이 둥글고 통통했습니다. 녀석이 뒷발을 차올리며 바람 속으로 뛰어들었고, 바람이 녀석에게 부딪쳤습니다. 녀석은 그저… 세차게 부는 바람이 닿자 아주 신이 났습니다. 뒷발을 차올리며 이리저리 뛰어다녔습니다. 불쌍하고 야윈 송아지가 어떻게 했는지 아십니까? 울타리 틈으로 가엾은 작은 머리를 내밀더니 말했습니다. “쯧, 쯧, 쯧. 저런 광신주의라니!” 무엇이 문제였습니까? 교파의 잡초를 먹으며 굶주렸던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교회 안에 성령의 비타민이 공급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젊음을 새롭게 할 것입니다. 교회의 젊음을 새롭게 하고 다시 오순절로 되돌리며, 여러분에게 체험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아멘. 살이 찌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많이 쏟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 오순절 사람들의 문제입니다. 요즘 우리는 건물에 너무 많은 것을 쏟으면서 예수님께서 오신다고 주장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일에 나서서, 밖에 나가 누군가를 안으로 데려오고 혼들을 구원하며, 하나님의 권능으로 그들에게 하나님의 비타민을 먹이는 것입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이제 마침내 독수리는 자리를 잡고… 독수리에 관해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제 중요한 부분만 짚어야겠습니다. 시간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독수리가 둥지를 짓는 모습을 봅시다. 둥지 가득 새끼들을 갖게 될 것입니다. 언덕 꼭대기, 아주 높은 곳에 자기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주 단단히 묶습니다. 그런데 그 둥지는 온통 가시투성이입니다. 독수리는 그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새로 회심한 여러분의 교인들이 그 모든 가시를, 그곳에 이르기까지 여러분이 얼마나 싸워야 했는지를 다 알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독수리가 어떻게 하는지 아십니까? 밖에 나가 둥지에 푹신한 것을 깝니다. 여러분도 보셔야 할 텐데요. 어미 독수리는 밖에 나가 토끼 가죽을 구해 옵니다. 토끼를 먹고 그 가죽을 가져다가 이렇게 작은 틈마다 쑤셔 넣습니다. 아주 푹신한 곳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아, 새끼들이 태어날 가장 예쁘고 아늑한 작은 둥지를 만듭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하십니다. 아! 처음 구원받았을 때 기분이 좋지 않으셨습니까? 그 곱고 보드라운 털 위를 걷는 것처럼 말입니다. 아! 작은 연한 발에 참 좋습니다. 아, 정말 좋습니다. 새끼들이 태어나면 아빠가 새끼들을 바라보며 둥지를 이리저리 걷는 모습을 보십시오. 아! 어깨를 뒤로 젖히고 으스대며 새끼들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셨습니까? “모두 나와 꼭 닮았구나.” 그렇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또한 내가 하는 그 일들을 할 것이다. 나처럼 박해받고 조롱받고 바알세붑이라 불리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예.” “내가 침례받은 그 영으로 너희도 침례받을 수 있느냐?” “예.” “나와 꼭 같구나.” (자기 새끼들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아, 얼마나 으스대는지요.)
그런데 갑자기 그 작은 녀석들 중 하나가 까마귀여서, 둥지 위로 날아올라 “까악, 까악, 까악, 까악” 하고 외친다면 어떻겠습니까? 그것은 잡종일 것입니다. 오늘의 문제가 그것입니다. 둥지 안에 믿는 진짜 독수리들이 아니라, 잡종 대머리수리와 까마귀가 너무 많습니다. 잡종 종교가 너무 많습니다. 기름과 물을 섞으려 합니다. 그것들은 섞이지 않습니다. 어떻게 될지 아십니까? 그 작은 까마귀가 뛰어올라 “까악, 까악, 까악. 기적의 시대는 지나갔어. 성령침례 같은 건 없어. 이건 전부 광신주의야” 하고 외친다면, 아빠 독수리는 녀석을 그곳에서 차 내쫓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 높은 둥지에 있던 녀석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래 닭들이 있는 곳에 떨어지기도 전에 산산이 부서질 것입니다. 분명히 그럴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닙니다. 아빠 독수리와 새끼들은 꼭 닮았습니다. 아빠가 믿는 것과 똑같은 것을 믿습니다. 아빠를 닮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빠처럼 만들어졌습니다. 아빠와 같은 몸을 가졌습니다. 아빠는 그들이 진짜 독수리라는 것을 압니다. 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그것, 진짜 작은 메시아입니다. 그분은 메시아이십니다. 메시아는 기름부음 받은 이들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자녀들로서, 그보다 적은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독수리, 그 큰 독수리와 우리는 같은 모습이며, 우리는 새끼 독수리들입니다. 그분은 메시아이시고, 같은 기름부음을 받은 우리는 작은 메시아들입니다. 아멘. 기름부음을 받은 것입니다. 메시아는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기름부음을 받았습니까? 아멘. 무엇으로 받았습니까? 그분께서 기름부음 받으신 바로 그 영으로 받았습니다. 우리는 분량대로 받았고, 그분은 한량없이 받으셨습니다. 그분은 육체로 나타나신 하나님이셨고,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들, 그분에게서 나온 그분의 지체들입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하는 바로 그 일들을 너희도 할 것이다.”
저 바다에서 물 한 숟가락을 떠내도 바다에서 줄어든 것을 전혀 알아채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혹시 빠져나가도 그렇게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바다 전체에 있는 것과 똑같은 화학 성분이 그 한 숟가락 안에도 있습니다. 같은 물입니다. 저쪽에는 그 양이 더 많을 뿐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여러분이 “저기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고 묻습니다. “바닷물입니다.” “여기 있는 이것은 무엇입니까?” “바닷물입니다.” 정확히 같습니다.
아빠 독수리가 새끼들을 그렇게 생각하며 으스대고 돌아다닙니다. 아빠가 새끼들에게 소리를 지르면 새끼들도 응답하여 소리를 지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나는 전에 있었던 자다.” “아멘, 아빠.” “나는 지금 있는 자다.” “아멘, 아빠.” “나는 앞으로 올 자다.” “아멘, 아빠.” “나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다.” “아멘, 아빠.” “나는 여전히 치유자다.” “아멘, 아빠.” “나는 지금도 성령을 준다.” “아멘, 아빠.” “나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다.” “아멘, 아빠.” “아멘.” 작은 까마귀가 “까악, 까악, 까악” 합니다. “이 작은 대머리수리 녀석아!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둥지에서 나가라! 이 작은 대머리수리야, 어차피 너는 독수리 먹이를 먹을 수도 없잖느냐.” 그렇습니다. 아!
그렇게 새끼들이 훌륭한 작은 독수리들이라는 것을 알고 아빠가 돌아다닙니다. 그러다가 어느새 엄마는 자기 새끼 독수리들이 땅에 매인 닭처럼 되게 하지 않겠다고 결심합니다. 늘 그 푹신한 것 위에서만 걷게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몇 가지 시련을 주어 어떻게 해내는지 보려 합니다. 하나님께 나아오는 아들마다 징계를 받고 시험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뒤로 물러서면서 “아니요, 저는 마땅히…” 하고 말한다면, 아, 여러분은 애당초 아들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징계를 견디지 못한다면, 성경은 여러분이 사생아가 되고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그들을 가려내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나가서, 하나님의 왕국은 이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바다에 그물을 던졌습니다. 끌어 올려 보니 민물거북과 가재와 도마뱀, 그 밖의 온갖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것들을 물가로 끌어냈습니다. 그것이 설교자의 일입니다. 우리는 어느 것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어떤 것은 물고기, 어떤 것은 도마뱀, 어떤 것은 뱀, 어떤 것은 가재입니다. 거기에 있는 가재를 보십시오. 누가 “영광, 할렐루야, 주님을 찬양합니다” 하면, “흥, 흥, 흥, 흥. 나는 저런 건 믿을 수 없어” 하고 곧장 물속으로 돌아갑니다. 뱀은 머리를 쳐들고 “교회에 온 줄 알았더니 광신자들이었군” 합니다. 그러고는 가 버립니다. 무엇이었습니까? 애당초 뱀이었던 것입니다. 애당초 가재였던 것입니다. 암거미는 텀벙텀벙, 곧장 다시 진흙 구덩이로 갑니다. 곧장 다시 밖으로 나가 반바지를 입고 머리를 자릅니다. 돼지가 뒹굴던 곳으로 돌아가고 개가 자기가 토한 것으로 돌아가듯, 바로 그런 것입니다. 화내지 마시고 가만히 앉아 계십시오.
제가 어렸을 때 우리는 켄터키에 살았는데 형편이 어려웠습니다. 엄마는 옥수수빵을 준비하시곤 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실지 모르겠습니다. 검은눈콩과 순무 잎도 준비하셨습니다. 그 옥수수빵을 만드실 때… 우리에게는 돼지기름이 없었습니다. 엄마는 고기 껍질을 녹여 기름을 내셨습니다. 그리고 고기 껍질에서 낸 그 기름을 옥수수빵의 쇼트닝으로 쓰셨습니다. 살림이 참 어려웠습니다. 토요일 밤마다 우리는 모두 몸을 푹 씻어야 했습니다. 커다란 삼나무 욕조가 있었습니다. 거기에 물을 붓고 따뜻하게 했습니다. 우리는 아홉 명쯤 되었는데, 모두 목욕을 했습니다. 물은 갈지 않았습니다. 뜨거운 물만 더 부었습니다. 제가 마지막이었습니다. 제 몫의 목욕을 해야 했는데, 어쨌든 목욕은 했습니다. 그런데… 그 뒤에는 일요일 성경학교에 갈 준비를 해야 했습니다. 지금 말한 것은 토요일 밤이었습니다. 일요일이면 우리가 먹고살던 음식 때문에 모두 피마자유를 한 번씩 듬뿍 먹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너무나 역겨웠습니다. 코를 막고 헛구역질을 하곤 했습니다. 저는 “엄마, 저는 도저히 이것을 견딜 수가 없어요” 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엄마는 “얘야, 속을 뒤집어 놓지 않으면 몸에 도움도 안 된단다” 하셨습니다. 이 복음도 그렇습니다. 여러분의 영적인 소화기관을 온통 뒤흔들어 정말로 속이 뒤집히게 하지 않으면, 여러분은 그것이 옳은지 아닌지 파고들어 알아보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 아, 그렇습니다. 여러분에게 좋은 것입니다. 여러분을 온통 뒤흔들어 바로잡고, 휴거가 올 때를 위해 준비시킬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
그래서 이 어미는 자기 새끼 독수리들이 그저 교파의 닭이 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아, 절대로 안 됩니다! 그렇게 결심했습니다. 그러니 새끼들을 그 둥지에서 나오게 해야 합니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돌아갈 때 시련을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는지 아십니까? 둥지 안으로 들어와서 그 큰 부리로, 엄마와 아빠가 함께, 깔아 놓았던 것을 모조리 밖으로 던져 버립니다. 그러면 거칠어집니다. 아! 오순절 뒤에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박해와 온갖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작은 독수리가 앉으려 할 때마다 펄쩍 뛰었습니다. 가시에 찔렸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그런 경험이 있으십니까? 어디로 가든 가시입니다. 저는 세상에 적응하고 싶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적응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부드러운 것 위로만 걸어 다니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아! 멸시받는 주님의 적은 무리와 함께 그 길을 갑시다. 그렇습니다.
작은 독수리는 좀… 어미는 새끼가 둥지에 너무 익숙해져 안주하지 않도록 일부러 그렇게 했습니다. 새끼는 독수리이지 닭이 아닙니다. 어미는 새끼가 밖으로 나가 자기에게 있는 것을 믿고 의지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얼마 뒤 새끼는 도무지 앉을 수가 없습니다. 아주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때 어미는 새끼를… 만들기로 결심합니다. 새끼가 독수리라는 것을 압니다. 새끼를 살펴보고 “그래, 독수리가 맞구나” 합니다. 이제 둥지를 떠날 준비가 되었습니다. 이 세상의 낡은 것들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곧 어미가 말합니다. “이 새끼가 독수리인데 늘 이대로만 있으면 닭이 되어 버리겠구나. 그러니 여기서 데리고 나가 경험을 시켜야겠다.” 어미는 둥지 위로 내려옵니다. 커다란 날개를 활짝 폅니다. 아, 여러분도 보셔야 할 텐데요! 어떤 독수리는 양쪽 날개 끝을 펼치면 십사 피트나 됩니다. 어미가 이렇게 큰 날개를 펼치고 “까악, 휘르르” 하고 크게 외칩니다. 그 큰 날개들을 흔듭니다. 작은 독수리들은 이렇게 뒤로 몸을 젖히고, 바람이 이렇게 불어옵니다. 아! 어미가 큰 날개로 그렇게 바람을 일으킬 때… 새끼들의 헐거운 깃털을 전부 털어 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높은 곳에 올라갔을 때 죽게 됩니다. 저 위에서 깃털이 빠지면 큰일이니까요.
오늘 교회의 문제가 그것입니다. 날개에 있는 헐거운 깃털들을 털어 내려면 둥지를 제대로 한번 휘저어야 합니다. 걸핏하면 시비를 걸고, 원한을 품고, 그런 것들을 지니고 있으면 날아가다가 죽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서로 다투며 “나는 이것이다, 나는 저것이다” 하고, 원한과 온갖 것들을 품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표적과 이적과 기적이 있는 교회를 가지실 수 있겠습니까? 성령께서 급히 몰아치는 바람처럼 내려오실 때까지 날갯짓을 하십시오. 모든 차이와 교파주의, 그 자잘하고 헐거운 깃털들을 부쳐 날려 버리십시오. “나는 이것이다, 나는 저것이다.” 여러분은 마땅히 되어야 할 그 무엇도 되지 못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헐거운 깃털들을 모두 부쳐 날려 버리십시오. 아! 모두 단단히 박히게 하십시오. 어미는 머지않아 새끼들을 정말로 날게 할 것입니다. 단독 비행입니다. 아! 첫 단독 비행입니다. 어미가 그 깃털들을 모두 부쳐 날리면 둥지가 이렇게 들끓습니다. 헐거운 깃털들이 사방으로 날립니다. 깃털들을 모두 날려 내어 단단한 깃털들만 남게 합니다. 그리고 새끼들을 살펴보며 준비되었는지 확인합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그분의 교회에 하려 하시는 일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도무지 교회를 준비시킬 수가 없습니다. 그 깃털들이 계속 헐거워집니다. 단단하게 하려면 영적인 비타민이 더 필요합니다. 독수리 비타민 말입니다. 그것이 말씀입니다. 그 깃털들을 단단하게 하십시오.
어미가 그것을 모두 털어 낸 다음에는 새끼들이 자기를 믿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커다란 날개를 활짝 펴고 목청껏 외칩니다. 이렇게 날갯짓을 합니다. 급하고 강력한 바람이 내려옵니다. 아! 작은 독수리들은 그저 뒤로 몸을 젖힙니다. 밖을 내다보며 “존스 박사가 이것에 대해 뭐라고 했는지 보자” 하지 않습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위를 올려다봅니다. 아, 그 커다란 날개들을 봅니다. 어미가 무엇을 하려는지 아시겠습니까? 작은 새끼 독수리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큰지, 자기의 힘이 얼마나 큰지 깨닫게 하려는 것입니다. 새끼들은 그 큰 날개들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하십니다. 여러분에게서 그 깃털들을 모두 부쳐 날리십니다. 그리고 그분께는 날개가 둘 있습니다. 하나님께 말입니다. 그 여호와 독수리를 아십니까? 그 두 날개는 신약과 구약입니다. 그분께서 여러분 앞에서 그 날개들로 부채질하십니다. 아! “나는 모세의 하나님이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다. 나는 나사로를 무덤에서 일으킨 하나님이다. 나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자이며, 영원무궁토록 살아 있다.” 신약과 구약을 앞뒤로 부채질하십니다. 작은 독수리들은 뒤로 기대어 말합니다. “주님은 얼마나 위대하신지요, 얼마나 위대하신지요.” “나를 믿고 의지하라.”
카나리아에게 날개를 위한 비타민을 먹이고 튼튼한 뼈와 날개를 갖게 한 다음, 우리에 가두어 두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설교자들에게 신학과 역사와 그 밖의 모든 것을 가르친 다음, 기적의 시대는 지나갔다고 말하며 어떤 교파 안에 가둔다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말도 안 됩니다! 풀어 주어 날게 하십시오. 독수리라면 말입니다. 아멘! 기적의 시대는 전부 지나갔다고 말하다니요. 그것은 독수리가 아니라 대머리수리입니다. 그렇습니다. 죽은 것들을 먹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십시오. 어미가 새끼들이 보도록 하면, 작은 독수리들이 거기 누워 말합니다. “주님은 얼마나 위대하신지요, 얼마나 위대…”
밤에 밖으로 나가 바라보신 적이 있습니까? 제가 여기 팔로마산에 갔던 것 같습니다. [녹음 공백] …보몬트를 빙 둘러서 말입니다. 그래도 제… 안에서는 그것을 다 나누지 못했을 것이고, 그 너머까지 말입니다. 그런데 그분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저 손에서 그것들을 훅 불어 내셨습니다. 주님은 얼마나 위대하신지요, 얼마나 위대하신지요. 홍해를 가르신 모세의 하나님을 보십시오. 불타는 용광로 속의 히브리 청년들을 붙드시고, 다니엘을 사자 굴에서, 나사로를 무덤에서 이끌어 내셨습니다. “내게는 권능이 있다…” 하나님께서 그분을 일으키셨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분께서는 “내 생명을 내놓을 권능도 있고, 그것을 다시 취할 권능도 내게 있다” 하셨습니다. 아멘. 주님은 얼마나 위대하신지요. “나를 믿고 의지하라. 나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다.” 그 커다란 날개들! 신약의 예수님이 구약의 여호와이심을 알게 됩니다. 그 큰 날개들이 위아래로 부채질하며 급하고 강력한 바람을 일으키고, 그 안으로 불어 넣습니다… 아, 저는 그 바람 속에 누워 있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주님은 얼마나 위대하신지요, 얼마나 위대하신지요. 둥지를 휘젓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어미는 하늘이 파랗고 아름다운 날이라고 판단합니다. 그래서 작은 새끼 독수리들을 처음으로 날게 해 주기로 합니다. 새끼들은 이미 성경을 끝까지 읽었고 어미가 얼마나 큰지 보았습니다. 어미는 언제나와 똑같습니다. 큰 날개와 큰 깃털을 가졌습니다. 새끼들을 돌보는 데 필요한 것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날개를 활짝 펴고 이렇게 몸을 뒤로 눕히며 말합니다. “얘들아, 올라타라.” 아, 신조 위로 뛰어오를 필요가 없어서 저는 참 기쁩니다. 여러분은 십자가로 뛰어오르는 것입니다. 아멘. 그분께서 펼치시는 것을 보았을 때… 내 두 손에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습니다. 주님, 주님을 믿고 의지합니다. 어떻게 해 나갈지 모르겠습니다. 저를 침례교회에서 내보냈을 때, “제가 무엇을 할지 모르겠습니다. 주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변함없는 하나님의 손을 붙들겠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해 나가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주님께서 저를 세우셨고 병자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몇 주 안에 저를 정신병원에 집어넣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얼마나 위대하신지요. 얼마나 위대하신지요!”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저는 모릅니다. 그저 그분께서 인도하시는 곳이면 어디든 갑니다. 교회에서 제게 안수해 준 한 형제님이 말했습니다. “자네가 결국 어떻게 될지 아나?” 저는 “언젠가 영광 가운데 있게 될 것입니다. 저는 십자가를 붙들고 하나님을 붙들고 있습니다” 했습니다.
어미 독수리가 “자, 올라타라” 하고 말합니다. 그 작은 녀석들이 어떻게 붙드는지 보셔야 할 텐데요. 작은 발로 움켜쥘 만한 깃털 한 움큼을 이렇게 찾습니다. 꽉 움켜쥐고 작은 부리를 아래로 뻗어 다른 깃털 하나를 붙잡습니다. “좋아요, 엄마. 준비됐어요.” 어미가 둥지를 떠납니다. 어차피 이미 아주 높은 공중에 있습니다. 이제 새끼들은 대머리수리가 아니라 독수리이기 때문입니다. 저 높은 곳에서 태어났습니다. 이 아래서 태어나지 마십시오. 저 위에서 태어나십시오. 여기 아래서 태어나면 교파의 형제입니다. 괜찮습니다. 여러분도 새이니까요. 하지만 형제님, 여기 위에서 태어나면 어떤 신조 안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 안에서 태어난 것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은 여기 높은 공중에 있습니다.
어미는 이렇게 살짝 뛰어오르며 큰 날개들을 펼쳐 맞춥니다. 바람이 알맞게 불어오면 높이, 더 높이 올라갑니다. 여기 있는 작은 독수리가 옆을 보며 말합니다. “존스 형제님, 어떻습니까? 아, 놀랍지 않습니까?” “음, 저는 아주 마음에 듭니다. 형제님은요?” “그럼요.” 꼭 붙들고 있습니다. 아! 계속, 계속, 계속, 계속, 계속 올라가, 어미는 그 작은 녀석들을 데리고 아예 시야에서 사라집니다. 그 녀석들이 대머리수리였다면 벌써 떨어졌을 것입니다. 까마귀나 심지어 매였다 해도… 독수리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견딜 수 없습니다. 비행을 떠나기 전에 시험을 받습니다. 우리에게 비행이 그리 많지 않은 이유가 그것입니다. 어쩌면 그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미 했으니…
어쨌든… 아, 저 높은 곳까지 올라가면 어미가 어떻게 하는지 아십니까? 뒤를 돌아보며 “얘들아, 아주 잘했다. 이제 다시 둥지로 데려다줄게” 할까요? 아닙니다. 새끼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털어 떨어뜨립니다. 독수리들이니까요. 날 수 있습니다. 독수리라면 날 수 있습니다. 아멘. 독수리입니다. 독수리라면 날 수 있습니다. 어미는 새끼들을 털어 떨어뜨리고 멀리 날아갑니다. 그냥 내버려 둡니다. 형제님, 새끼들은 공중에서 펄럭펄럭, 퍼덕퍼덕, 펄럭펄럭 날갯짓을 합니다. “얘들아, 더 높이 날아라. 그저 작은 날개들을 계속 퍼덕여라. 너희는 독수리란다.” 새끼들은 오순절 집회를 열고 있습니다. 공중에서 뒤집히고 또 뒤집히며, 푸른 하늘에서 아주 즐겁게 지냅니다. 아멘! 저 교파의 닭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저 높은 푸른 하늘에서 말입니다. 할렐루야! 저 높은 푸른 하늘에서 날갯짓을 하며 아주 즐겁게 지냅니다. 왜 그렇게 즐거운지 아십니까? 땅 쪽으로 내려다보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 기분이 참 좋습니다. 그들은 자기가 있어야 할 높은 곳에 있습니다. 다시 태어난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저 높은 영역에 올라가기를 좋아합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어미가 한쪽으로 휙 날아가, 큰 날개를 펼친 채 새끼들을 지켜보기 때문입니다.
아, 새끼들은 어미를 완전히 믿고 있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아, 저를 여기로 데려오신 분이 저를 돌보실 것입니다.” 약속하신 분은 그 약속을 지키실 수 있습니다. 어미도 새끼들을 다시 받아 낼 능력이 있습니다. 새끼 하나가 혹시 질서를 벗어나면, 사람들은 “불길이 너무 걷잡을 수 없군” 하고 말합니다. 저는 불이 전혀 없는 것보다는 걷잡을 수 없는 불길이라도 조금 있는 것이 낫겠습니다. 적어도 날개를 퍼덕일 공간은 충분하니까요. 그러니 하나가 뒤집혀 어쩔 줄 몰라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엄마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스스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을 보면, 어미는 쏜살같이 내려가 날개 위로 받아 다시 은혜의 자리로 업어 올립니다. 좋은 칼빈주의 교리입니다. 하지만 형제님, 그것은 좋은 것입니다. 옳습니다. 그들을 다시 바로 그 은혜의 자리로 올려놓습니다. 업어 올리는 것입니다. 말씀의 날개 위에 태우고 “얘야, 지금 너는 말씀에서 벗어났구나. 잘못된 쪽으로 가고 있어. 다시 올라와서 한번 더 해 보렴”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그를 다시 은혜 안으로 바로 데려옵니다. 아멘. 아, 새끼들에게는 확신이 있습니다. 믿습니다. 형제님, 새끼들은 아주 즐겁게 지내며 날갯짓하고, 소리 지르고, 외치고, 신나게 움직입니다. 영락없는 오순절 집회를 열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래 있는 닭들은 그것을 하나도 모릅니다. 위를 올려다보며 말합니다. “저게 다 무슨 일이지? 저런 건 들어 본 적이 없는데.” 그러십시오. 원하시면 땅에 머물러 있으십시오. 예.
어느 농부가 암탉에게 알을 품게 하려 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디 봅시다, 한 번에 몇 알을 품지요? 열다섯 알입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암탉 한 번에 열다섯 알입니다. 저기 좋은 어머니 한 분이 “맞아요” 하시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엄마가 알마다 연필로 표시해 놓으시던 것이 생각납니다. 새로 낳은 알이 그 안에 들어왔는지 구별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잘 살펴야 했습니다. 새로 낳은 알은 소중했으니까요. 그래서 엄마는 암탉에게 열다섯 알씩 품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농부에게는 알이 열네 개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절벽으로 올라가 독수리 알 하나를 가져다가 암탉 밑에 넣었습니다. 알이 부화하자 병아리 열네 마리와 독수리 한 마리가 나왔습니다. 대개 그 정도 비율입니다. 한 번 품은 알들 중 하나입니다. 그렇습니다. 대체로 그런 식입니다. 한 번 품은 알들 중에 한 마리쯤입니다. 그 작은 독수리가 태어났을 때, 저 아래 그 교파 안에서 얼마나 별난 녀석이었을지 짐작하실 것입니다. 암탉이 돌아다니며 “꼬꼬꼬, 꼬꼬꼬. 자, 기적의 시대는 지나갔단다. 꼬꼬꼬, 꼬꼬꼬”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새끼는 “뭐가 잘못된 거지?” 했습니다.
암탉은 축사 마당으로 나가 여기저기 땅을 헤집었습니다. “오늘 밤 수프 만찬을 열겠습니다. 모두 참석하십시오.” 그런 식이었습니다. 그런데 독수리는 몰랐습니다. 그런 먹이가 싫었습니다. 먹으면 속이 메스꺼웠습니다. 모두가 독수리를 놀렸습니다. 아, 우리도 모두 그런 경험을 했지요? 우리를 놀립니다. 작은 암컷 독수리도 어딘가 달랐을 것입니다. 날개도 짧게 싹둑 자르지 않았습니다. 긴 날개가 있었습니다. 음. 여러분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저는 여러분을 너무나 사랑합니다. 하지만 형제님, 가끔씩 털을 거슬러 쓰다듬어 주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새끼는 작은 날개를 달고 돌아다니며 말했습니다. “나는 왜 다른 새끼들과 같지 않을까? 나는 왜 저런 일들을 즐길 수 없을까? 왜 이럴까?” 여러분은 그저 다른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뿐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부터 독수리가 되도록 예정되었습니다. 대머리수리나 닭이 아니라 말입니다. 새끼는 그렇게 돌아다녔습니다.
암탉이 거름 더미 위에서 무언가를 찾습니다… 세상의 낡고 죽은 것들을 긁어 헤치며 말합니다. “자, 모두 수영하러 가는 해변에서 굴렁쇠 경주를 하겠습니다.” 아, 세상에! 견딜 수 없었습니다. “지하실에서 번코 게임을 하겠습니다.” 그 작은… 빙고, 그것입니다. 빙고입니다. 저는 그런 이름을 모릅니다. 좋습니다. 번코는 무엇입니까? 그런 겁니까? 제가 틀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빙고, 무엇이든 말입니다. 어쨌든 “그것을 하겠습니다” 합니다. 작은 독수리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자기가 먹어 오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도무지 마음에 맞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도 거기 있을 때 그렇게 느끼셨습니까? 아, 저는 그랬습니다. 세상에! 저는 그 모든 것에서 악취를 느꼈습니다. 그러면서 그리스도인이라고요? 목사는 강단으로 돌아오기 전에 담배를 피우려고 예배를 십오 분 일찍 마쳐야 했습니다. 저에게는 그것이 옳게 들리지 않았습니다. 집사들도 모두 돌아다녔습니다. 저는 그들이 교회 여자들과 어울려 다니며 그런 짓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 같지 않았습니다. 도무지 맞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새끼는 돌아다녔습니다. 언제나 뒤쪽에 있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여러분에게 어떤 자리도 맡기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래서 그들은 닭처럼 보이는 그곳으로 나가야 했습니다. 그렇게 마당을 돌아다녔습니다. 독수리는 정말 별난 존재였습니다. 그런 뒤죽박죽인 곳에 있는 다시 태어난 그리스도인도 그렇습니다. 그런 곳에 있는 독수리는 모두 별난 존재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 작은 녀석은 달리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도 그랬을 것입니다. 달리 몰랐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십니까? 엄마는 알을 두 개 낳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른 비와 늦은 비입니다. 그중 하나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래서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 날개들을 퍼덕이며 날아왔습니다. 사물을 꿰뚫는 커다란 눈으로 주위를 살폈습니다. 그 눈은 어디든 볼 수 있었습니다. 어미가 축사 마당 위로 날아왔습니다. 그리고 “아들아!” 하고 불렀습니다. 그것은 “꼬꼬꼬, 꼬꼬꼬” 소리가 아니었습니다. 아닙니다. 새끼는 작은 고개를 돌려 올려다보며 말했습니다. “저 소리는 진짜 같아. 어디서 난 소리지?” 아!
하나님께서 처음 여러분에게 말씀하셨을 때를 기억하십니까? 아, 영광입니다! 어차피 저를 광신자라고 부르실 테니, 지금부터 그러셔도 좋습니다. 아! 제가 처음 그분의 음성을 들었을 때, 그것은 많은 물들의 소리처럼 울렸습니다. 아! 졸졸 흐르는 시냇… 잔물결 이는 시냇가에서, 그는 누워 몸을 씻고 위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아! 새끼가 올려다보며 “저게 무슨 소리였지?” 했습니다. 어미가 다시 날아왔습니다. “얘야, 너는 내 새끼란다! 너는 애당초 그곳에 속하지 않았어.” “너희는 저들 가운데서 나와 너희 자신을 분리하라.”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들의 부정한 것들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하나님이 되리라. 너희는 내 아들딸이 되리라.” “너는 저 암탉의 새끼가 아니야. 저 낡은 조직은 기적의 시대가 지나갔다고 하지. 너는 내 새끼야. 너는 독수리란다.” “아, 듣기 좋아요. 저는 그런 말을 알아들을 수 있어요” 하고 새끼가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애당초 독수리였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독수리였는데, 잘못된 둥지에 들어갔을 뿐입니다. 그뿐이었습니다. 형제 여러분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만, 저는 그저 진실을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잘못된 둥지 안에 있습니다.
“아, 잘못된 둥지라고요, 엄마? 그렇게 된 거예요?” “그래.” “엄마가 제 엄마예요?” “그래, 나는 네… 아버지이자 어머니이며, 자매이자 형제란다. 나는 네게 모든 것이란다.” “그 말씀 참 좋아요, 엄마. 이제 저는 무엇을 해야 하죠?” 어미가 말했습니다. “얘야, 이렇게 해야 한단다. 뛰어야 해. 뛰어서 발을 땅에서 뗀 다음, 그 작은 날개들을 퍼덕이기 시작하렴. 힘껏 퍼덕이기만 하렴. 너는 독수리니까 올라갈 수 있어. 너에게는 긴 깃털이 있잖니. 날아라. 땅을 박차고 뛰어서 힘껏 날갯짓을 시작하렴. 내가 받아 줄게.” 그 작은 독수리는 그 교파들에서 나오면서 뛰어올라 크게 네댓 번 날갯짓을 했습니다. 그러더니 축사 마당의 말뚝 위, 오순절 교파 한가운데에 내려앉았습니다. 오순절을 조직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교파로 만들 수 없습니다. 오순절은 조직이 아니라 체험입니다. 감리교인 여러분, 침례교인 여러분, 장로교인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 둘레에 울타리를 치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독수리들은 그 위를 훌쩍 날아 넘을 것입니다. 분명히 그렇습니다. 그런 것에는 신경 쓰지 마십시오.
어미가 지나가는데 새끼가 거기 앉아 있습니다. “엄마, 저 잘하고 있죠? 이제 제가 어디에 있는지 보세요, 엄마.” 어미가 말했습니다. “아들아, 그보다 더 높이 뛰어야 한단다. 안 그러면 내가 널 받지도 못해.” 어미가 다시 그곳으로 쏜살같이 내려왔습니다. 새끼는 작은 발을 공중으로 박차 올리고 있는 힘껏 날개를 퍼덕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어느새 자기가 위로, 위로, 위로 들려 올라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마침내 새하얀 은하수에 닿았습니다. 아멘. 그러자 스스로 날 수 있었습니다. 충분히 높이 올라가자 스스로 날 수 있었습니다. 형제님, 오늘 교회의 문제가 그것입니다. 조직 같은 것에서 벗어나 자기가 날 수 있는지 알아볼 만큼 높이 올라가 본 적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날 수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압니까? 날개를 쓰십시오. 할렐루야! 뛰어드십시오. 날개를 퍼덕여 보고 알아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여러분을 받아 주실 것입니다. “내가 그를 독수리 날개에 업으리라.” 아멘. 아! 휴! 아! 왜 우리가 이토록 행복하고 자유로운지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을 많이 만납니다. 나는 성령으로 충만해졌고, 거기에는 의심이 없습니다. 내가 이렇게 된 것은 그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아! 요르단을 건너 아름다운 가나안 땅으로 왔습니다. 이곳은 제게 천국 같습니다. 형제님, 자매님, 그렇지 않습니까?
오늘 여러분이 독수리인 것이 기쁘지 않으십니까? 여호와 독수리께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은 여호와 독수리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저는 그분을 사랑합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으십니까? 머리를 숙입시다. (바로 방금 그분께서 제게 무언가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 중에서 낡은 대머리수리 횃대에서 날아가 그리스도 안으로 나아가고, 영 안에서 자유롭게 살고 싶은 분은 몇이나 되십니까? 손을 들고 “브래넘 형제님,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하고 말씀하십시오. 아, 저 손들을 보십시오. 주리고 목마른 자들은 복이 있습니다. 교회 여러분, 오늘 메시지는 몹시 거칠었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거친 것입니다. 저는 신학자가 아닙니다. 그저 자연을 관찰하고, 하나님께서 자연을 정하셨다는 것을 아는 제 방식이 좀 거칠 뿐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지금도 여기 계시며 모든 것을 아십니다. 잠시 조용히 계십시오. 그분께서 제게 무엇을 하라고 하시는지 알아보려 합니다. 그저 기도하십시오. “주님, 제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제 손을 들겠습니다. 제 손을 붙잡으시고 지금 저를 그늘 위로 들어 올려 주십시오.” 주님은 얼마나 위대하신지요. 얼마나 위대하신지요. 그분은 놀랍지 않으십니까? 이제 그저 그 안에 잠기십시오. 메시지는 베고 멍들게 합니다. 그저 그분의 달콤하심에 몸을 적시십시오. 사람의 혀로 부르는 가장 달콤한 이름, 지금껏 불린 가장 달콤한 찬송, 아, 예수님, 복되신 예수님.
이제 마음속으로 조용히 기도하십시오. 성령께서 여러분의 혼에 깊이 스며드시게 하십시오. “주님, 있는 그대로 저를 받아 주십시오” 하고 말씀드리십시오. 이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나머지는 그분께서 하셔야 합니다. 그저 기도하십시오. “아버지” 하고 말씀드리며, 원하시는 대로 마음속으로 조용히 기도하십시오. 손을 드신 분들은 “주 예수님, 지금 저를 받아 주십시오. 저는 독수리가 되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날아가 그분의 권능 안에 있고 싶습니다” 하고 말씀드리십시오. 그렇습니다. 임마누엘의 혈관에서 흐르는 샘이 있습니다. 죄인들이 그 물결 아래 잠기면 모든 죄의 얼룩을 씻습니다. 지금 그저 기도하십시오. 얼마나 영광스럽습니까. 이렇게 적셔 주시는 것을 느끼는 것이 좋지 않으십니까? 제가 말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그저 여기 서 있는데, 발가락은 오므라들고 두 손은 꼭 쥐어지며, 하나님의 영께서 건물 안에서 움직이고 계십니다. 그것이 아주 깊이 스며들게 하십시오. 사람들이 잠깐 생각할 수 있게 말입니다.
이런 생각들을 해 보십시오. “나는 누구인가? 내가 오늘 하루를 끝까지 살아 있을지 아는가? 하나님께서 내 생명을 거두시면 나는 어디로 갈 것인가? 나는 이제 무엇이 진리인지 안다.” 우리 [불분명한 말]… 눈을 감고 계십시오. 저는 건물 안에서 무언가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 거룩함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지금 여러분의 마음 깊은 곳에 그분의 둥지를 만드십니다. 이제 말씀을 가져오셔서 그곳에 두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그것을 여러분의 마음에 둥지처럼 자리 잡게 하십니다. “나는 전에 있었고, 지금 있고, 앞으로 올 자다.” 그것을 여러분의 마음에 자리 잡게 하십니다. 주님은 얼마나 달콤하신지요. 여러분은 그분을 사랑하십니까? 그러면 더욱 고귀하고 달콤한 노래로 구원하시는 주의 권능을 노래하리라. 이 서툴고 혀짧으며 더듬는 혀가 무덤 속에 고요히 누울 때에.
이제 그분을 느끼며, 그분께서 둥지를 트시고 여러분의 마음에 말씀들과 무언가를 넣어 주셔서 이곳을 나설 때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음을 아는 분들, 여러분을 독수리로 만들어 줄 독수리 비타민이 이제 마음에 있다고 느끼는 분들은 아주 조용히 그분께 손을 들어 보십시오. 그렇습니다. “주님, 주님의 은혜로 저를 독수리로 만들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저는 합당하지 않지만, 이제부터 주님의 독수리입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날 수 있습니다.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여기 주님의 위대한 말씀을 바라보며 주님께서 동일하시다고 말할 수 있는 한, 저는 주님께서 동일하시다고 믿습니다. 온 마음으로 믿습니다.” 그 달콤한 느낌입니다.
방금 주님의 그 천사, 그 빛이 저를 향해 곧장 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여기 어딘가에 계신 줄 알았습니다. 이제 강단 가까이에 계십니다. 저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곳의 모든 혼을 제 책임 아래 맡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믿음을 가지고 믿기를 바랍니다. 의심하지 마십시오. 믿음을 가지십시오. 자, 아주 천천히 머리를 드십시오. 이제 이쪽을 보십시오. 여호와 독수리, 그분의 위대한 권능… 새끼 독수리는 그분의 자손입니다. 그렇습니까? 아빠 독수리가 하는 일은 그 작은 아들 독수리도 똑같이 합니다. 그렇습니까? 여호와 독수리라면, 그분의 아들 독수리들입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딸 독수리들도 모두 같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몇 분 전 구원을 위하여 든 손이 적어도 사십이나 오십, 아니 그보다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제가 그분들에게 일어서 달라고 부탁하기 전에, 바로 지금 주님의 영께서 건물 안으로 들어오십니다. 저는 바로 뒤 여기쯤, 저 구역 어딘가에서 그 빛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계속 그쪽으로 움직이다가, 강단 위를 가로질러 올라왔고, 내려가서는 저쪽으로 갔습니다. 그러더니 여기 뒤에서 사라졌다가 다시 바로 이쪽으로 올라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건물 전체를 한 바퀴 돈 것입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다고 말씀하지 마십시오. 저는 압니다. 무엇에 관해 말하는지 압니다. 그 빛이 여기 있습니다. 그분께서 그렇게 하신 뜻은 온 회중을 둘러 돌고 계셨다는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여러분을 원하십니다. 여러분이 그분을 섬기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은 그분의 것이고, 그분은 여러분의 것이십니다. 그분은 여러분의 주님, 여러분의 구원자이십니다. 이제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 믿는 것뿐입니다. 그뿐입니다.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입니다. 여러분이 믿으면,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주심으로 여러분의 믿음을 확증하십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확증하시려고 할례의 봉인을 주셨습니다. 성령을 받지 않은 동안에는 믿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아직 그것을 확증하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이 봉인되면 구속의 날까지 봉인됩니다. 에베소서 4장 30절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을 슬프게 하지 말라. 그분에 의해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봉인되었느니라. 놀랍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분은 구원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치유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구원도 하십니다.
저는 그 영께서 움직이시는 것을 지켜봅니다. 물론 어떤 상태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만들어진 것은 아닙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성경에서도 그랬습니다. 분명히 그랬습니다. 언제나 그랬습니다. 저는 그분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이제 다시 돌아왔습니다. 지금 제가 바로 그 빛을 보고 있습니다. 다시 저기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저 알맞은 말을 하십시오. 그저 옳은 말을 하십시오. 여러분이 하는 말에 달려 있습니다. 그 책을 읽으신 분이 몇이나 되십니까? 아마 녹음에 있을 것입니다. 이 새로운 사역이… 그 여인이 그저 옳은 말을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이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하시는지 보십시오. 바로 지금 주실 것입니다.” “브래넘 형제님, 무엇을 구해야 합니까?” 저는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요” 했습니다. “여기 자매님의 몸이 불편한 여자 형제가 앉아 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가난하시고, 자매님은 돈도 없으며 과부입니다. 무엇을 원하십니까?” 그분이 “무엇이든요?” 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참인지 아닌지 알아보십시오” 했습니다. 그것이 이제 새롭게 나아오는 사역입니다. 저는 여기 서서 십오 분, 이십 분 동안 그것을 기다려 왔습니다. 그저 원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먼저 제게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저는 “해티 자매님,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말씀하십시오” 했습니다. 그분은 “제 마음의 가장 큰 소원은 저기 있는 십 대인 제 두 아들이 구원받는 것입니다” 했습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 아들들을 자매님께 드립니다” 했습니다. 그 아이들은 바로 거기서 어머니의 무릎 위로 쓰러졌습니다. 아, 그런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네가 만일 믿을 수 있거든… 바로 여기, 이 앞에 앉아 기도하는 이 부인은 신경쇠약을 앓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가망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미시시피에서 오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을 아시도록 말씀드립니다. 아버지도 편찮으시지요? 설교자이시지요? 맞으면 손을 들어 보십시오.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자매님을 그 쇠약에서 해방시킵니다. 한센 씨, 가십시오. 치유받으셨습니다. 저는 평생 이분을 본 적이 없습니다. 이 말들이 사실인지 이분에게 물어보십시오. 부인, 사실입니까? 맞으면 손을 흔들어 보십시오.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입니까? 손을 흔들어 보십시오. 이분이 무엇을 만졌습니까? 무엇입니까? 아!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내가 하는 일들을 너희도 할 것이다.” 여러분은 믿는 사람들입니까?
부인, 밤에 교회에서 집으로 돌아가면 잠을 이루지 못하시지요? 거기 누워 이리저리 뒤척이며 움직이시는 모습이 보입니다. 어젯밤은 무척 괴로우셨지요? 그렇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선지자, 혹은 종인 것을 믿으십니까? 믿으십니까?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좋습니다. 그렇게 믿으신다면, 제가 무엇을 해 드리면 도움이 되겠습니까? 해방되셨다고 제가 말씀드리면 믿으시겠습니까? 자매님 위에 어두웠던 것이 밝아졌습니다. 이름은 후저 씨이십니다. 좋습니다. 집으로 돌아가 온전해지실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매님을 온전하게 하십니다. 부인, 그 옆에 앉아 계신 분이요. 이분을 찔러서 자기에게 하는 말임을 알게 해 주셨지요. 참 친절하셨습니다. 이 부인을 찌르며 말씀하신 것 아닙니까…? 저에 관해 말씀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마음에 품은 일이 있으시군요. 그러니 만일 자매님이…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기적을 행하실 것을 믿으십니까? 좋습니다. 온 마음으로 믿으시면 그 알코올 중독자가 온전해질 것입니다. 자매님은 오랫동안 자매님의 형제분을 위해 기도해 오셨습니다.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여러분, 이것은 교회 놀이가 아닙니다. 주 하나님의 권능입니다. 여기, 여기 앉아 저쪽을 바라보시는 연로한 부인이 계십니다. 무슨 일인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십니다. 바로 여기 뒤에 앉아 계신 부인입니다. 저것이 머물러 있습니다… 안… 그것을 물어볼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바로 그분 위에 머물러 있는 빛을 보고 있습니다. 그분은 고통받고 계십니다. 병이 있으십니다. 신장병이 있습니다. 심장병도 있습니다. 자기에게 하는 말인지 모르시는군요… 위어 부인,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치유받으십시오. 제가 자매님을 모르고 자매님도 저를 모르신다면, 사람들이 알도록 손을 좌우로 흔들어 보십시오. 그분께서 말씀하신 것이 모두 사실이었습니까? 맞으면 사람들이 그것이 사실임을 알도록 자리에서 일어나십시오. 자매님께 말씀드린 것이 모두 사실이라면, 자매님과 저는 서로 모르는 사이입니다. 할렐루야! 푸른 하늘로 나가 날개를 퍼덕이십시오. 아멘.
할렐루야!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독수리입니까? 날아갈 준비가 되었습니까? 날아갈 준비가 되었다면 자리에서 일어나, 여러분의 치유와 구원과 필요한 모든 것을 받으십시오. 여러분에게 어떤 문제가 있든 상관없습니다. 자, 새끼 독수리 여러분. 일어나 날아가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