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정말 감사합니다, 형제님. 이곳에 오게 되어 기쁩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앉으셔도 됩니다. 오늘 아침 생전 처음으로 투산의 강단에 서게 된 것은 참으로 큰 특권입니다. 오늘 아침 이곳으로 오면서, 주님께서 제가 세계 곳곳의 얼마나 많은 도시를 방문하고 회중에게 말씀을 전하게 해 주셨는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야 이 미국에 있는 아름다운 도시에 처음 와 보게 되었습니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저희는 이곳 사람들과 이곳의 분위기, 좋은 날씨와 아름다운 산들과 사막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이곳에는 저를 머물고 싶게 하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참 고요합니다. 어제 사막에 나가 둘러보았는데, 그곳에 있으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만 같습니다. 아무것도 서두르지 않고, 어디로 가려 하지도 않고, 무슨 일로 흥분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고요하고 편안합니다. 제가 여기서 만나는 사람들도 아주 비슷한 것 같습니다. 편안합니다. 서두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무슨 일이든 서두르지 않습니다. 그러니 신경이 예민한 목회자가 마음을 가라앉히기에 좋은 곳입니다. 서두를 일이 없습니다. 살다 보면 우리는… 흔히 말하듯 부산하게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이것은 몇 분 안에 끝내야 하고 저것은 정해진 시간 안에 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 오면 “그런데 뭘 그렇게 서두릅니까?” 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게 좋습니다.
사막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한번 살펴보면 우리에게 유익할 것 같습니다. 저 선인장 가시들 말입니다. 제가… 그 가시들을 보면, 어떤 기계로도 그만큼 날카롭게 갈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제 아들도 거기에는 “아멘” 할 겁니다. 어제 온종일 그 아이 몸에서 가시를 뽑아 줘야 했으니까요. 그런데 그 작은 선인장이 제가 사는 고장에 있다면, 펼쳐져서 아름답고 부드러운 잎이 될 것입니다. 사실 그것은 잎이 돌돌 말린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연이 그것을 그렇게 날카롭게 만든 것입니다. 그렇게 자신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것을 잠시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자, 이 사막에 물을 주고 여러 해 동안 그대로 두면, 그 선인장에 잎이 돋아나 부드러워질 것입니다. 교회도 영적인 물 없이 지내다 보면 때로 그렇게 됩니다. 아주 단단하게 오그라들어서 서로를 찌릅니다. 그러나 물을 주면 부드럽게 펴지고 유연해집니다. 그리고… 저는 바로 그래서 교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를 온유하고 부드럽게 지켜 주는 영적인 물을 그곳에서 얻어 하나님께 쓰임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유연해져서 서로를 찌르지 않고 다른 사람의 어깨에 부드럽고 다정하게 기대며, 우리 각자가 서로의 짐을 져서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생전 처음 뵈었는데 참 훌륭한 분이셨습니다. 그분에게 이 훌륭한 교회와 이 회중이 있다는 것이 감사합니다. 그리고 제 좋은 친구이자 이곳 교인인 분도 있습니다… 노먼 형제님과 노먼 자매님은 잠시 여러분과 함께 지내셨지만, 이제는 여기 정착해서 사시려는 것 같습니다. 그 마음을 이해합니다. 형제님이 제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교회를 지으면서 마지막 계단에 못을 박을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 하나님, 제 친구 브래넘 형제님이 언젠가 이 계단을 밟고 올라가 회중에게 말씀을 전하게 해 주십시오.’” 조금 전에도 저 뒤에 서서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셨다며 눈물을 흘리고 계셨습니다. 이곳에 올 수 있는 특권을 주셔서 참 기쁩니다. 여러분은 참… 제가 만난… 제가 부를 줄 아는 이름은 토니 형제님뿐입니다. 그 이탈리아 이름은 발음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분을 만났는데 참 좋은 분입니다. 또 한 분은 오토라고 부르셨던 것 같습니다. 오토, 그와 비슷한 이름이었습니다. 저는 이름을 발음하는 데 별로 능숙하지 못합니다. 어제 저희는 국제 집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독일인도 있고 이탈리아인도 있고 또 여러 사람이 있었으며, 저는 아일랜드인으로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건 국제 집회로군요”라고 했습니다. 그분들 중에는 해외에 나가 다른 나라 사람들과 싸운 분들도 여럿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모두가 어제 사막에 서 있던 저희와 같은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더는 전쟁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형제가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해답이십니다.
이 아름다운 골짜기와 주위에 우뚝 솟은 산들을 바라보니 참 좋습니다. 높은 곳에 앉아 이 도시를 내려다보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지나간 세월에 얼마나 많은 탐광자들이 금광을 찾다가 이 땅을 지나 바로 이 사막에서 죽었을까?” 이제 그런 시대는 거의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금광을 찾았으니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은 여기 산에서 그것을 캐내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얻는 것입니다. 이제 오늘날 우리는 더는 금광을 찾아다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모든 약속을 이루시고 풍성한 복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라고 기대합니다. 그분은 여전히 하나님이시며, 우리가 구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만큼, 아니 그보다 더 간절히 우리가 구하는 것을 주기 원하십니다. 그분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아니하고 영존하는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인이었고 그분에게서, 하나님의 공동체에서 떨어져 있었을 때에도 우리를 사랑하셨다면, 오늘 아침에는 우리가 행하거나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 이상으로 심히 넘치도록 얼마나 더 기꺼이 주시겠습니까. 저희는 이 도시에 잠시 들렀습니다. 이제 내일은 캘리포니아로 떠나 북쪽 지역으로 올라가고, 또 세계 여러 곳으로 가게 됩니다. 그러나 오늘 아침 이 아름다운 하나님의 성회 교회에 서게 된 것은 제게 참으로 큰 특권입니다. 하나님의 성회는 세계 곳곳에서 저를 크게 후원해 주셨습니다. 이 교단에는 훌륭한 사람들이 속해 있습니다. 훌륭한 목회자들과 훌륭한 평신도들이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백성은 모두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디서 만나든 훌륭한 분들입니다.
저는 선교사로서 많은 곳을 다니며 세계를 일곱 바퀴쯤 돌았습니다. 그러면서 알게 된 것은 성령께서… 태국이나 일본, 남아프리카, 또 호텐토트족이 사는 오지 같은 곳에 가 보면, 남녀가 옷을 한 조각도 걸치지 않고 교회에 옵니다. 달리 할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수만 명이 함께 누워 지냅니다. 여러분이 그들의 말로 “어느 쪽이 오른쪽이고 왼쪽입니까?”라고 물을 수 있다 해도, 그들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를 것입니다. 그들이 아는 것은 잡을 수 있는 것을 잡아먹는 것뿐입니다. 어떻게든 먹을 것을 구해서 살아남는 것입니다. 동물이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그들과 우리를 하나로 만드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 회중 가운데 서서 성령께서 그들에게 내리시게 하면, 그들도 여러분이 성령을 받았을 때와 똑같은 일을 하고 똑같이 행동합니다. 이것은 사도행전 4장에서 말하듯 하나님께서는 사람이나 민족을 차별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어떤 민족도 차별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다만 그분을 두려워하는 모든 사람은… 그러니 우리에게는 공통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조금 전에 아내에게 전화를 했는데, 그곳은 기온이 영도쯤이라고 합니다. 눈에 온통 파묻혀 학교들까지 문을 닫았고 길도 몹시 미끄럽답니다. 동부에서 오신 분이 계시면, 지금 여기 서부에 계신 것을 다행으로 여기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곳은 아주 춥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제가 사는 곳과 이곳은 서로 같지 않을 수 있지만, 제 하나님과 여러분의 하나님은 공통됩니다. 같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주 예수님께서 제게 허락하셔서 세계 곳곳에서 감당하게 하신 사역을 조금 소개하려고 오늘 아침 왔습니다. 저희가 하룻밤만 이곳에 있기 때문에, 오늘 아침 일요일 성경학교 시간이 사람들에게 설명해 드릴 좋은 기회가 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몸의 치유를 위해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수 있는지 말입니다. 또 처음 이곳에 오다 보니 여러분에게 조금 낯설게 보일 수도 있는 일들에 대해서도 말입니다. “왜 이런 식으로 합니까? 왜 다른 식으로 하지 않습니까?” 하는 것들을 설명해 드릴 수 있겠습니다. 보통 저희가 큰 집회를 하러 어느 도시에 가면, 모든 교회가 협력하고 연합하여 함께 모여 주시기를 요청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사이에 나뉘어 계시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가운데 계신 동일한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감리교, 침례교, 오순절교, 하나님의 교회, 성결교, 모든 교단이 함께 모이도록 힘씁니다. 그런 다음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늘의 처소들에 함께 앉아, 하나님께서 성령을 우리에게 부으시고 “심히 넘치도록” 행하시기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저는 언제나 이렇게 말해 왔습니다. 제가 선교침례교인이었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저는 성령을 받은 선교침례교인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오순절이 하나의 교단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오순절은 누구든지 원하는 사람이 와서 받을 수 있는 체험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그 주위에 울타리를 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울타리를 넘어 퍼져 나가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그러므로 저는 사람이 감리교인이든 침례교인이든 가톨릭교인이든 누구이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진심으로 의지하고 있다면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가톨릭교인으로서 교회가 자신을 구원한다고 믿는다면, 그 사람은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오순절교인으로서 교회가 자신을 구원한다고 믿는다면, 그 사람도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든, 어느 교회에 다니든,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공로를 진심으로 의지하고 있다면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어느 교회에 속해 있든 상관없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받기 때문입니다. 은혜로 말입니다.
저는 예전에 콜로라도에서 소를 몰았습니다. 소들을 모아 산 위로 몰고 올라가곤 했습니다. 트러블섬강 골짜기에서는 헤리퍼드 협회가 소들을 방목합니다. 이곳에도 같은 법이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낙인과 허가증을 받으려면… 상공회의소 등에서 말입니다. 자기 농장에서 건초를 1톤 생산할 수 있으면, 숲에서 소를 방목할 권리를 얻어 소를 들여보낼 수 있습니다. 목장에서 생산할 수 있는 건초 1톤당 소 한 마리씩입니다. 저희가 트러블섬강, 그 강의 서쪽 지류와 동쪽 지류를 따라 올라가는 곳에는 소떼를 막는 큰 울타리가 있습니다. 봄철에 소를 모아 올려 보낼 때면, 저는 아침에 그곳에 앉아 안장 손잡이 위로 한쪽 다리를 걸친 채, 거기 서서 지나가는 소들을 지켜보는 관리인을 바라보곤 했습니다. 어느 날 그렇게 앉아 있다가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천국의 큰 문에 이르면 이와 같을 것이다.” 그곳을 지나가는 소들을 보니 낙인이 열다섯이나 열여섯 가지쯤 되었습니다. 어떤 것은 다이아몬드 바였는데, 그 위 목장에 사는 그라임스 씨의 것이었습니다. 제프리스 씨의 것은 칠면조 발자국이었습니다. 그렇게 여러 낙인이 있었습니다. 관리인은 낙인을 그리 눈여겨보지 않았습니다. 그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귀에 붙은 혈통 표지는 확인했습니다. 순종 헤리퍼드가 아니면 그 목초지에 소를 들여보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확인하려는 것은 순종이라는 점이었습니다. 혈액 검사를 받아야 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심판 날에도 꼭 이와 같을 것이다. 그분은 내가 침례교인지 오순절교인지 장로교인지, 무슨 낙인을 달고 있는지 보지 않으실 것이다. 피를, 그 피의 표지를 보실 것이다. ‘내가 그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라.’” 우리가 들어가는 것은 우리가 누구냐에 달린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냐에 달려 있습니다.
자, 오늘 저녁 예배에 올 때에는… 목사님, 예배가 몇 시쯤 시작합니까? 7시 45분이군요. 그러면 6시 30분쯤, 아마 6시에서 6시 30분 사이에 몇 사람을 이곳으로 보내 기도 카드를 나누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예배가 시작된 뒤에 방해되지 않도록 조금 일찍 나누어 드릴 것입니다. 아픈 분들은 제가 가까이 있을 수 있도록 여기 앞쪽에 앉으십시오. 기도 카드를 나누어 드릴 것입니다. 아들이 카드를 일정 수 가져와 여러분 앞에서 모두 섞은 다음, 원하는 분에게 한 장씩 드릴 것입니다. 아시겠죠? 기도 카드를 원하는 분은 누구나 받으실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전에는 집회에 앞서 이렇게 보내곤 했습니다… 협력하는 목사님마다 회중에게 나누어 주시도록 카드를 백 장씩 보냈습니다. 그런데 가장 먼저 자기 교인들을 들여보낸 분이 있으면,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나머지 분들은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제가 그곳에 사흘 밤 정도만 머물 경우에는 그렇게 많은 사람을 기도 줄에서 다 만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방법은 안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다음에는 목회자 한 분을 데리고 다니며 기도 카드를 나누어 드리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어떤 교단에 속해 있었고, 자기 교단에 조금이라도 특혜를 주지 않으면 문제가 좀 예민해졌습니다.
저는 보통 시작할 때 열 명이나 열다섯 명을 단 위로 부릅니다. 그런데 기도 카드가 1번에서 15번 사이에 들지 않으면, 사람들이 그냥 바닥에 버리곤 했습니다. 자기들은 불리지 않을 테니 필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방법도 안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다음에는 저기 있는 어린 남자아이 같은 아이를 데려다가 “얘야, 이리 올라오너라” 했습니다. (엄마 무릎에 앉아 있는 여자아이 같은 아이에게도 말입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수를 셀 줄 아니?” “네.” “그럼 세어 보렴.” 세기 시작했습니다. 셋, 넷, 다섯, 여섯, 이렇게 올라가다가… 아이가 멈추는 번호에서 제가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믿으실지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여전히 사람의 약점이 있습니다. 엄마가 자기 카드 번호에 맞춰 어디서 멈추라고 아들에게 일러 줄 줄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도 안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한 번은 기도 줄에, 아니 단 위에 먼저 올라가게 해 주겠다며 기도 카드를 파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것도 안 됐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밤 주님께서 제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사람들을 내려보내 기도 카드를 나누어 주게 하되, 회중 앞에 서서 카드를 모두 섞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이 사람은 1번, 이 사람은 35번, 저 사람은 62번, 그 옆 사람은 또 다른 번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모두 섞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도 카드를 나누어 주는 사람이 단 위에 올라올 사람을 정하는 것이 아님이 드러납니다. 그 사람도 누가 올라올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모두 섞여 있으니까요.
그리고 제가 집회에 내려오면, 어떤 때는 1번부터, 어떤 때는 25번이나 50번부터 시작합니다. 어떤 때는 (말씀을 전하면서 혼자 속으로) 이쪽 의자에 앉은 사람 수를 세어 저쪽에 앉은 사람 수와 곱하기도 합니다. 그저 아무 방법이나 쓰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회중 누구든 선택될 수 있게 됩니다. 참고로, 단 위에서 한 사람이 치유될 때 회중석에서는 약 쉰 사람이 치유됩니다. 이 메시지는 누군가를 치유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치유는 이미 값을 치르고 사 놓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원도 이미 값을 치르고 사 놓으셨습니다. 여러분은 지난주나 작년이나 5년 전에 비로소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갈보리에서 여러분을 위해 죽으셨을 때 구원받았습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구원이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2주 전이나 2년 전, 언제든 그것을 받아들였을 뿐입니다. 치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우리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도다[과거 시제].” 그러므로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임재가 가까이 있음을 보고 깨닫게 하려는 것뿐입니다. 그것이 수천 명이 치유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자, 말씀에 다가가기 전에 먼저 그 말씀을 쓰신 분께 짧게 기도하며 다가갑시다. 머리를 숙이겠습니다. 은혜로우신 하늘 아버지, 오늘 아침 저희는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것에 충분한 이름으로 아버지의 거룩하심 앞에 나아갑니다. 그분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이든 구하면 주신다고 말씀 안에서 그분께 배웠기 때문입니다.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라고 확신하며 의지할 다른 이름이 없습니다. 오직 모든 것에 충분한 주 예수님의 이름뿐입니다. 아버지, 먼저 저희를 위해 이미 행하신 일들, 저희에게 베풀어 주신 많은 복과 갖가지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또한 오늘 아침 이 도시에 기념이 되도록 세워진 이 새 교회에 설 수 있는 은혜를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이곳에 세워진 교회입니다. 방황하는 죄인들이 들어와 구원받고, 이 땅의 의사들, 의사들의 이해와 능력을 넘어선 병자들도 여전히 더 높은 권능을 지니신 전능하신 분께 나아와 치유받을 수 있도록 세워졌습니다. 오 아버지, 저희가 아버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요. 이 모든 일에 얼마나 감사드리는지요. 그리고 저희는 특권을 누리는 백성입니다… 오늘 아침 러시아 사람들을 생각해 봅니다. 하늘에 떠 있는 큰 스푸트니크 안에 사람이 앉아 있고, 땅에서도 그 심장 뛰는 소리를 듣습니다. 마지막 때가 얼마나 가까이 와 있는지요. 그것이… 나라 위로 날아와서는 “항복하라. 그렇지 않으면 멸망이다!”라고 합니다. 오 하나님! 그들이 저 원자 미사일들을 쏘기 시작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 오래된 지구가 흔들려 우주로 튕겨 나가고, 더는 시간이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복된 말씀은 이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교회가 주님과 함께 있기 위해 본향으로 간다고 가르칩니다. 오, 비가 내리기 전에 노아는 방주에 들어갔고, 불이 내리기 전에 롯은 소돔에서 불려 나왔습니다. 주님, 저희는 큰 멸망이 오기 전에 교회가 땅에서 들려 올라갈 것을 믿습니다. 그때가 가까워지고 있음을 알기에 참으로 기쁩니다. 아버지, 오늘 아침 저희가 바라보며 아는 것은, 밤이 되기 전에도 이 일이 일어나 이 나라나 세상이 산산조각 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작은 나라나 광적인 사람이 저 미사일들 중 하나만 발사해도, 서로를 겨누고 있으니 모두 터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하나님… 휴거가, 나팔이 울리고 저희는 주님을 만나러 하늘로 부름받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아침 저희는 어떤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무화과나무에 싹이 돋는 것과 큰 표적들을 보고, 과학에서도 자정 3분 전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며, 기뻐하고 머리를 들어야 합니다. 거의 어느 때든 닥칠 수 있습니다.
오 하나님, 오늘 아침 주님의 권능과 주님의 갖가지 지혜로 교회를 강하게 움직여 주십시오. 오늘 교회에 역사하시고, 주님의 크신 날개를 오늘 이 작은 건물 위에 펼쳐 주십시오. 암탉이 병아리들을 품듯 자녀들을 그 아래 품으시고, 병든 이들을 육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돌보아 건강을 되찾게 해 주십시오. 주님, 허락해 주십시오. 이 교회를 축복해 주십시오. 이곳에 서 있는 목적과 이 교회가 섬기는 뜻을, 목사님과 장로들과 집사들과 재산관리위원들과 평신도들과 저희 문 안에 들어온 모든 나그네를 축복해 주십시오. 이 교회뿐 아니라 온 나라의 모든 교회를 축복해 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오늘 이 작은 모임으로 말미암아 옛날과 같은 부흥이 시작되어 이 애리조나를 이 끝에서 저 끝까지 휩쓸게 해 주십시오. 주님, 허락해 주십시오. 저희는 주님 앞에 겸손히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아버지의 사랑하는 아들이시며 저희 구주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기 때문입니다. 아멘.
이제 설교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늘 저녁 일을 위해 마음을 준비하며 조금 정돈하려는 것입니다. 저희는 하늘 아버지께서 저희와 만나 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러고 나서 주님께서 뜻하시면, 적절한 때에 다시 와서 좀 더 오래 머물고 싶습니다. 함께 모이고 형제들도 함께 모일 수 있도록 말입니다. 이번에는 그저 잠시 들른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복음 2장 25절, 26절을 읽고 싶습니다.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는 것이 성령님에 의해 그에게 계시되었더라. 저는 “기대”라는 주제를 사용하려고 합니다. 기대는 대개 믿음에 근거합니다. 무엇인가를 기대하려면 먼저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구약에 나오는 많은 하나님의 종들처럼 말입니다… 믿음은 들음에 의해 오며, 들음은 말씀에 의해 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지킬 책임이 있으시다고 자주 말해 왔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한두 마디라도 읽기를 좋아합니다. 제가 하는 말은 틀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람이니까요. 그러나 그분의 말씀은 틀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어느 때든 하나님께서 어떤 상황에 임하셔서 결정을 내리셔야 한다면… 하나님께서 처음 내리시는 결정은 언제나 동일한 결정이어야 합니다. 바로 거기에 여러분의 믿음을 진지하게 두어야 합니다.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유일한 소망, 유일하게 확고한 소망은 하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무한하시고 실수하실 수 없으며 완전하시므로, 그분의 모든 약속도 그분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완전해야 합니다. “처음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이 하나님이셨더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말씀 자체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종이 위에 담긴 하나님 자신입니다. 사람은 자기 말보다 더 나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의 말을 믿을 수 없다면, 저는 그 사람과 아무 거래도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정직하고 진실해야 합니다. 특히 자기가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한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이것은 아주 짧은 본문입니다. 그러나 분량이 얼마나 되느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질이… 아니, 양이 아니라 말씀의 질이 중요합니다. 그 말씀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옛날 이 시므온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음을 보지 않으리라고 성령께서 약속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는 그것을 기대할 권리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그에게 계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께는 그것을 계시하실 이유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옛날 아브라함이 일흔다섯 살이고 그의 아내 사라가 예순다섯 살이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셔서 아내 사라를 통해 아기를 얻게 되리라고 계시하신 것을 봅니다. 그는 생식 능력이 없었고, 아내도 아이를 낳지 못했습니다. 평생 그랬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그가 사라를 통해 아이를 얻게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약속 때문에 자신을 분리하라고 요구하셨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을 때에는, 주위에 있는 그 말씀에 어긋나는 모든 것에서 자신을 분리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가서 “제가 치유받았다고 생각하십니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그것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분리하라는 요구를 받았고, 아이를 얻게 되리라는 큰 기대를 품고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25년이 지나서야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첫 달에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믿음이 약해진 것이 아니라, 그는 계속 강해졌습니다. 기대가 더 커졌기 때문입니다. 사라가 한 달 더 나이를 먹으면 기대도 한 달만큼 더 커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지키시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예순 살에 아이를 낳는 것보다 백 살에 낳는 것이 훨씬 더 좋을 터였습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갈수록 더 큰 기적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약해지지 않고 계속 강해졌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죽음으로 아브라함의 씨가 되고 약속에 따른 상속자가 됩니다. 아브라함이 약속을 받았으므로, 우리도 아브라함과 함께 그 약속을 상속받습니다. 우리가 아브라함과 함께 상속자라면,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가졌던 그 믿음을 우리 자신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시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아는 믿음입니다. 다른 결과가 있을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나가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그와 사라가 그렇게 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는 일흔다섯 살, 아내는 예순다섯 살이었습니다. 폐경이 된 지 약 15년이나 20년이 지난 때였습니다. 사라는 그의 이복누이였습니다. 그는 그녀가 처음 자신과 결혼했을 때부터, 아마 열여섯이나 열일곱 살 때부터 함께 살았지만 자녀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사라가 아기를 낳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것이 이루어질 것을 기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상상할 수 있습니다… 일흔다섯 살 된 노인과 예순다섯 살 된 여인이 아기를 낳을 병원 수속을 하려고 의사를 찾아가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이 그들에게 뭐라고 하겠습니까? 의사는 뭐라고 하겠습니까? “이 노인은… 정신적으로 뭔가 문제가 있군요. 저 노인에게 뭔가 문제가 있어요.” 그런데 믿음으로 하나님을 붙들고 그분의 약속을 받아들이는 남녀는 모두 이 세상에서 이상한 사람이나 광신자로 여겨집니다. 이 세상의 것들은 하나님께 너무나 어리석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위대하다고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어리석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믿었습니다. 폐경이 된 지 약 15년이나 20년이 지난 사라에게, 첫 28일이 지났을 때 물었습니다. “여보, 몸은 좀 어때요?” “아무 변화도 없어요.” “자,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그래도 우리는 아기를 갖게 될 거예요.”
기대가 얼마나 컸던지, 사라는 작은 아기 신발과 담요를 뜨개질했을지도 모릅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무슨 일이 이루어지리라고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일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해가 거듭할수록 아브라함은 더욱 강해졌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마침내 그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루어지리라고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아흔 살이 되었을 때… 아니, 그가 아흔 살이 되었을 때, “아브라함, 이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쯤에서 포기하겠습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그래도 아기를 갖게 될 겁니다. 옷도 이미 따로 마련해 두었고 모든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그걸 준비해 둔 지 얼마나 됐습니까?” “25년입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아기를 보내 주실 겁니다.” 저는 이것이 좋습니다. 확고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면 그것으로 확정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결정을 내리시면, 그 결정은 영원해야 합니다. 저는 결정을 내렸다가 5분 뒤에 돌아가 다른 결정을 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처음 결정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그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유한하니까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무한하시므로 실수하실 수 없습니다. 그분은 오류가 없으시고 전능하시며 어디에나 계시고 무한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아멘. 그분의 결정이 내려지면 그것은 영원히 확정됩니다. 돌아오셔서 “내가 틀렸다”라고 하실 수 없습니다. 그러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에 믿음에 근거하여,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믿으면 모든 약속을 이루어 주시겠다고 결정하셨다면, 지금도 그 약속에 대해서는 무한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실패하실 수 없습니다. 반드시 그래야 합니다. 확실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믿으면 반드시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다면… 교회들이, 어떤 목회자들이 말하듯 기적의 시대는 지나갔고 하나님께서는 더는 사람들을 치유하지 않으신다고 합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한 번이라도 병자에게 임하셔서 그의 믿음을 근거로 치유해 주셨다면, 다른 병자가 그분께 나아올 때도 똑같이 하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첫 사람을 치유하셨을 때 잘못 행하신 것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 순종한 사람에게 사도행전에 약속하신 그대로 성령을 주셨다면…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손들과 멀리 떨어져 있는 자들 곧 주 우리 하나님께서 부르실 모든 사람들을 향한 것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그 조건을 갖추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에 따라 그를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실 책임이 있으십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신다면 실수하신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실수하신다면, 그분은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우리처럼 유한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자손인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놓지 않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여전히 그 자리를 굳게 지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그것으로 확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있는 척해서는 안 됩니다. 실제로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허세를 부려서는 안 됩니다. 허세는 통하지 않습니다. 사탄은… 여러분이 허세를 부리는지 아닌지 압니다. 그러나 허세가 아닐 때도 압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는 확신이 여러분의 마음에 닻을 내리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믿었습니다. 기대 속에서 25년을 기다렸고, 그 기대는 점점 더 커졌습니다. 마침내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그가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을 분리했습니다. 무엇 때문에 기다려야 했는지 주목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모든 친족에게서 떠나라고 하셨으며, 그가 온전히 순종할 때까지는 더 이상 복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따라다니는 동안에는 그 노인이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그다음에는 롯과 함께 있었고, 그러자 롯이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모든… 그가 자신을 분리하고 모든 불신에서 벗어나 그것을 떨쳐 버렸을 때에야 하나님께서 내려와 그에게 말씀하셨고,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온갖 작은 불신의 영들을 떨쳐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을 때… “누가 무슨 말을 했든 상관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저는 바로 그 자리를 지키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응답하기 시작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복을 주시고 지켜 주시고 먹여 주시며 이곳저곳으로 인도하셨습니다. 하지만 그가 세상의 모든 작은 것에서 완전히 자신을 분리할 때까지는, 온전히 복을 주시고 그 약속을 주지는 않으셨습니다. 조카가 원한다면 소돔으로 내려가게 두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가게 두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도 죽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그 땅을 바라보라. 내가 그것을 다 네게 주노라. 동쪽과 북쪽과 서쪽과 남쪽을 바라보라.” 그렇게 말씀하셨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교회가, 사람들이 세상의 것들에서 자신을 완전히 분리하는 자리에 이르면, 성경의 모든 약속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모두 여러분의 것입니다. 그것은 아주 큰 상가와 같습니다. 우리는 한 성령에 의해 침례를 받아 그 상가 안으로 들어갑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령침례를 통해 그 상가에 들어와서는 “자,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들어왔습니다.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제가 여기 있습니다”라고 할 뿐입니다.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제게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뭐라고 하셨습니까? “일어나 온 땅을 둘러보라. 모두 네 것이다.” 저도 그와 같이 그리스도 안에 들어왔을 때 둘러보고 싶었습니다. 그분께서 저를 구원하셨다는 것만이 아니라, 그 안에 또 무엇이 제게 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누군가 제게 큰 상가를 주어서 그 안에 들어갔다면, 저는 살펴보며 제게 무엇이 있는지 알고 싶을 것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살펴보며, 그 약속들이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오라” 하는 약속임을 알아보지 않습니다. 좀 높은 곳에 무엇이 있다면, 저는 접사다리를 가져다 올라가 선반을 들여다보며 무엇이 제 것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들은 때때로 무엇이 자신의 것인지 살펴보지 않습니다. 치유도 여러분의 것이고 구원도 여러분의 것이며, 기쁨도 화평도 성경의 모든 약속도 여러분의 것입니다. 사람이 성령으로 충만해지면, 하나님께서는 그 아래에 예수님의 이름이 적힌 수표책을 주십니다. 써서 보내십시오. 수표를 쓰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보내면 그분께서 약속하신 풍성한 복을 여러분에게 내려 주실 것입니다. 모세는 이미 소망을 포기한 상태였습니다. 광야 저편에서 장인 이드로의 양떼를 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아침 그 광야 저편에서 떨기나무가 불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그 떨기나무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모세는 신학자였습니다. 이집트 사람들의 지혜와 모든 학문으로 훈련받았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에게서 자신이 어떤 목적을 위해 부름받았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신학적 경험이 그에게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습니다. 저는 신학적 경험을 깎아내리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것이 하나님을 만날 때 얻는 그 체험을 결코 대신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 일어납니다. 사람이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때로는 그 체험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이상한 일을 하게 됩니다.
저는 이튿날 아침의 모세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십보라는 어린 게르솜을 옆구리에 안고 노새에 앉아 있고, 모세는 손에 마른 막대기를 지팡이로 들고 이집트를 장악하러 내려갑니다. 수염은 양쪽으로 바람에 휘날립니다. “모세, 어디로 가십니까?” “이집트를 장악하러 내려갑니다.” 단 한 사람의 침공입니다. 한 사람이 러시아를 장악하러 가는 것과 같습니다. 백 살 된 노인이, 아기를 안은 아내를 노새에 태우고 장악하러 내려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가 해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고, 모세는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키실 것을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집트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한 번은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서 나가 한 사람을 죽였고, 그것은 그의 손에 오점이 되었습니다. 그다음에 내려갔을 때에는 온 나라를 죽였는데, 그것은 그의 손에 영광이 되었습니다. 한 번은 모세가 했고, 그다음에는 하나님께서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차이를 만듭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출하시리라고 기대했습니다. “내가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었고 그들의 고난을 보았으며, 내가 (인칭대명사입니다) 그들을 구출하려고 내려왔노라. 모세야, 내가 나를 대신하여 너를 보내노라”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으로 된 것입니다. 그분은 여러분의 고통을 보셨습니다. 의사가 “더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라고 하는 것을 보셨습니다. 여러분이 그분께 맡기기만 하면, 그분은 성령의 모습으로 내려와 친히 맡아 행하십니다. 그분께서 행하시기를 기대하십시오. 그렇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음을 알고 그분의 말씀을 붙드십시오. 그분께서 행하시겠다고 하셨으니 기대하십시오.
시므온은 아주 명망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시므온은 나이 많은 현자였고 사람들 사이에서 명성이 높았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자세히 읽어 보셨다면 아실 것입니다.) 그는 존경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거의… 여든 몇 살쯤 되는 노인이 다니면서 “나는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랍비들은 이렇게 말했을 것 같습니다. “저 불쌍한 노인, 참 딱하군. 노인이 정신이 좀 이상해졌어. 우리는 4천 년 동안 메시아를 기다려 왔잖아. 에덴 이래로 우리 민족은 메시아를 기다려 왔어. 그런데 지금 우리는 로마의 지배 아래 있어. 모든 상황이 막혀 있고… 이런 일이 이루어질 만한 증거는 모두 우리에게서 가려져 있어. 우리는 속박당하고 있잖아. 이제는 하나의 나라도 아니야. 로마 정부 아래 이렇게 흩어져 버렸어. 그런데 이 노인은 한 발을 무덤에 넣고 다른 발도 기울어져 있으면서, 자기가 주의 그리스도를 볼 거라고 하네. 아,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거야.”
그러나 시므온은 그 일이 이루어지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젊은 랍비들 중에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냥 그 노인을 내버려 두세요. 해가 없는 분입니다. 아무도 해치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여기저기 다니면서 모든 사람에게 자기가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할 것이며, 살아서 메시아께서 오시는 것을 보리라고 간증하고 다니기는 합니다.” “그런데 시므온, 무슨 근거로 그러십니까? 왜 그런 말을 하십니까?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다윗도 그분을 기다렸고 엘리야도, 옛 선지자들도 기다렸습니다. 우리도 모든 시대에 걸쳐 그분을 기다려 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기적의 시대는 지나갔고 모든 것이 어두워졌습니다. 우리에게 말라기라는 선지자가 있었던 것도 400년 전입니다. 그런데 어르신은 오셔서 메시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하십니다. 그 일이 이루어질 줄 어떻게 아십니까?” “성령께서 제게 계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그의 토대였습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토대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저의 토대가 되어야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계시하시고 그것이 말씀과 일치하면, 어떤 것도 그것을 막지 못합니다.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계시하셨고, 여기 살펴보니 말씀 속에 그 약속이 있을 때 말입니다.
신유는 말씀 속에 있는 약속입니다. 성령께서 그분이 여러분을 구원하기 위해 죽으신 것처럼 치유하기 위해서도 죽으셨다는 것을 계시해 주시면, 치유받을 것을 기대하며 오십시오. 하나님께서 반드시 받게 해 주실 것입니다. 의사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냥 내버려 두세요. 해가 되지는 않겠지요. 어차피 죽을 사람인데요.”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다면, 상황이 어떠하든 그 약속 위에 굳게 서십시오. “저는 암에 걸렸습니다.” “저는 결핵에 걸렸습니다.”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시하셨다면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지키십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저는 요나를 자주 생각합니다. 증상에 관해 생각해 보면, 사람들은 자기 증상을 바라봅니다. 요나에게는 정말 심한 증상이 있었습니다. 손발이 묶인 채 고래 뱃속에 있었고, 온갖 토사물 속에 있었습니다. 폭풍이 이는 바다, 그 바다 밑바닥의 고래 뱃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에게는 정말 증상이 있었습니다. 이쪽을 봐도 고래 뱃속이고, 저쪽을 봐도 고래 뱃속이었습니다. 어디를 보아도 고래 뱃속이었습니다. 여기 그만큼 심한 처지에 있는 분은 없으리라고 확신합니다. 그런데 그가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그것들은 거짓되고 헛된 것들입니다. 저는 그것들을 믿지 않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다시 주의 거룩한 전을 바라보리이다.” 그 성전을 봉헌할 때…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하던 날 기도하며 이렇게 말한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주님, 주의 백성이 어디에서든 곤경에 빠져 이 거룩한 성전을 향해 바라보거든, 하늘에서 들어 주십시오.” 요나는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기도를 들으셨음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는지 아십니까? 그 밑에서 사흘 낮과 밤 동안 그의 생명을 지켜 주시고 니느웨까지 데려가셨습니다. 아마 그 물고기가 그를 거기까지 데려가려고 헤엄치는 데 그만큼 걸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나는 고래 뱃속에서 사흘 낮과 사흘 밤을 지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무엇인가를 행하시기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자기가 그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고, 그는 그 약속을 믿었습니다.
요나가 그런 상황에서도, 말씀과 일치하고 자기 믿음과 일치했기에 하나님께 그런 기적을 받을 수 있었다면… 그런 상황에서도 그럴 수 있었다면, 오늘 아침 우리는 얼마나 더 치유받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사람의 손으로 만든 성전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솔로몬은 결국 믿음에서 물러났습니다. 그의 아내들이 그를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오른편을 바라봅니다. 그곳에 예수님께서 자신의 피를 가지고 앉아 계시며, 항상 살아 계셔서 우리의 고백에 따라 중보하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어떤 질병이든 얼마나 더 담대히 이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거짓되고 헛된 것이다. 나는 그것을 믿지 않는다. ‘그는 우리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고 우리 불법들로 인해 상하였도다. 그가 징벌을 받음으로 우리가 화평을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도다.’ 그러니 사탄아, 네 갈 길로 가라. 여기서 나가라.” 아시겠죠?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이루어질 것을 기대합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지금 당장 이루어지지 않으면 조금 뒤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오늘 안 되면 내일 될 것입니다. 내일 안 되면 다음 주에 될 것입니다. 언제든 결국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믿음을 가지는 자리에 이르고 있습니다. 기대하십시오. 하나님께서 하시겠다고 말씀하신 일은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그분은 거짓말하실 수 없습니다.
그러니 시므온은… 명성이 높은 사람이었습니다. 명성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 교회에, 심지어 오순절 교회에까지 그런 것이 너무 많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유행이 너무 많고, 명성… 그런 것이 너무 많습니다. 사회에서 대단한 명성을 얻었다고 하는 것 말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옛날식의, 소박한 시골의, 푸른 하늘처럼 맑고 죄를 죽이는 신앙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총신처럼 곧은 것, 타협 없이 복음을 전하고 나뭇조각이 어디로 튀든 상관없이 도끼질하는 것입니다. 권능을 가지고 서서 교회를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로 되돌려 놓을 하나님의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무언가 잘못되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깨닫습니다.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 다들 의식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들이 떨어져 나가고 약해지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 교단이 하나 더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또 하나의 늦은 비가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성경을 믿는 믿음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혼을 뒤흔드는 체험이 교회 안에 다시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우리 교회와 교단 전체를 깨끗이 하고 바로잡는 일이 필요합니다. 이것저것 따지며 작은 경계선을 긋는 일을 그만두십시오.
얼마 전 어떤 교단에서는, 제가 그 교단에 속하지 않은 다른 목회자를 단에 앉게 했다는 이유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선을 그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우리 울타리에서 형제님을 제외시켰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저는 또 다른 선을 긋겠습니다. 아주 크게 그어서… 여러분을 다시 안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저를 밀어낼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여러분의 선을 넘어 또 선을 그어서 여러분을 도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아시겠죠? 그것은… 우리는 형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나뉘지 않았네. 우리 모두 한 몸이네.”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영으로 태어나고 그분의 피로 씻음받은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답게 행동해야 합니다. 남자나 여자나 그리스도인답게 처신해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에 부족한 것 하나가 바로 그리스도인답게 처신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죽은 파리처럼 행동하며 다닙니다. 끔찍합니다. 믿음이 없습니다. 믿음을 잉크라고 한다면 영문 소문자 i에 점 하나 찍을 만큼도 없습니다. 우리는 분명 무언가를 잃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어깨를 펴는 일입니다.
오래전에는 이 남부, 특히 조지아 같은 곳의 노예 시장에서 노예를 팔곤 했습니다. 바다 건너 아프리카로 가면 보어인들이 노예를 데리고 왔습니다. 그들을 자메이카로 데려왔다가 플로리다로 실어 날라 팔았습니다. 사람의 생명을 말입니다. 그것은 잘못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만드셨고, 사람이 노예를 만들었습니다. 어떤 사람도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롭습니다. 우리는 어떤 나라의 노예도 아니고 어떤 교단의 노예도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남녀입니다. 쓰러진 형제가 어디에 있든, 그 모든 형제에게 팔을 내미십시오. 우리 모두를 위한 자리가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떤 자리에 이르면… 그들은 여러 농장을 돌아다니며 노예를 샀습니다. 어디 중고차 매매장에서 차를 사듯 매매 증서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돌아다니며 노예를 샀습니다. 그들은… 저는 남부 출신의 위대한 인물 아브라함 링컨에 관한 글을 읽었습니다. 그가 뉴올리언스에서 배에서 내렸는데, 노예 거래장에서 덩치가 아주 크고 건장한 흑인 남자를 경매에 부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가엾은 그의 작은 아내는 아기 둘과 함께 밖에 서서 울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더 큰 노예를 낳게 하려고, 그를 몸집이 더 크고 건강한 여자들과 짝짓기시키기 위해 팔려던 것입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이렇게 주먹을 내밀며 말했습니다. “이것은 잘못되었다. 내 목숨이 들더라도 언젠가는 내가 이것을 치겠다.” 실제로 그의 목숨이 들었지만, 그는 그것을 쳤습니다. 무너뜨리기까지 했습니다.
형제님, 말씀드리겠습니다. 불신은 마귀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주님, 제가 그것을 치게 해 주십시오. 제 목숨이 들어도 상관없습니다. 교회를 덮고 있는 그것, 저 경계선 같은 것들을 제가 깨뜨리게 해 주십시오. 우리가 모두 한 성령에 의해 침례를 받아 한 몸 안으로 들어왔고,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우리는 형제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교회에 속하고 저는 하나님의 성회에 속하며, 이 사람은 침례교나 장로교에 속해 있어도 우리는 형제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정체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입니다. 깨뜨립시다. 이 경계선들을 허물어 버립시다. 우리는 모든 형제에게 팔을 내밀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 사람들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우리 교단에 가입만 하신다면…” 저는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저는 여러분의 교단과 함께합니다. 그러나 제가 어떻게 할지 말씀드리지요. 저는 양쪽으로 팔을 뻗어 모든 사람을 품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입니다.
어느 날 이 중개상이 한 농장 집에 들렀습니다. “노예가 몇 명이나 있습니까?” 주인이 대답했습니다. “백 명이 넘습니다.” “한번 살펴보고 싶군요.” “그러시지요.” 그들은 모두 일하고 있었고 낙심해 있었습니다. 다시는 고향에 돌아갈 수 없고, 다시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뵙지 못하며, 자녀들도 다시는 보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 몹시 우울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인들은 채찍으로 때려 일을 시켰습니다. 끌어당기는 일이든 다른 일이든 해야 할 일을 하게 했습니다. 어느 날 이 노예 매매상이 왔을 때, 그는 사람들이 노예들을 때려서 일하게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젊은 남자 한 사람만은 예외였습니다. 그에게는 채찍질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어깨를 펴고 턱을 든 채 언제든 곧바로 일에 나섰습니다. 중개상이 말했습니다. “저 사람을 사고 싶습니다.” 주인이 말했습니다. “아, 저 사람은 팔지 않습니다. 팔 수 없어요.” “보아하니 저 사람은 꾸짖을 필요가 없군요.” “그렇습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저 사람이 다른 노예들을 모두 관리합니까?” “아닙니다. 저 사람도 노예입니다.” “혹시 다른 노예들과 다른 음식을 먹입니까?” “아닙니다. 모두 식당에서 함께 먹습니다. 그저 노예입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저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그렇게 다릅니까?” 주인이 말했습니다. “저도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알게 되었지요. 저 사람이 온 고향 아프리카에서 그의 아버지가 부족의 왕이라는 것입니다. 비록 타향에 와 있지만, 그는 자신이 왕의 아들임을 알고 왕의 아들답게 처신합니다.” 오 하나님!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딸이며 하늘 왕의 자녀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처신해야 하겠습니까? 나약하게… 뒤로 밀려나 있어야 하겠습니까? 아닙니다. “내 아버지는 집과 땅이 많은 부자시라네. 세상의 재물을 그 손에 쥐고 계시네. 루비와 다이아몬드와 은과 금, 그 보물창고 가득하니, 헤아릴 수 없는 재물 있네.” 우리는 왕의 자녀이니 그에 맞게 처신합시다…
여성 여러분, 세상과 같아지지 마십시오. 세상처럼 옷 입지 마십시오. 저런 최신 유행들과 사람들이 하는 온갖 일들을 따라가지 마십시오. 멀리하십시오. 여러분은 왕의 딸입니다. 남성 여러분,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짓눌려 구석으로 밀려나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왕의 아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일어서서 가슴을 펴고 맞서십시오. 분명히 그것은…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무엇인가를 행하시기를 기대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모두 반쯤 죽은 것처럼 축 늘어져 있으면, 그분은 우리를 위해 아무 일도 하실 수 없습니다. 그분은 살아 움직이는 교회를 원하십니다. 교인들이 살아 있는 돌이 되어 믿음의 집으로 세워지기를 원하십니다. 그분을 믿고 받아들이며 그분의 말씀을 그대로 믿는 집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말합니다. “브래넘 형제님, 저는 명성이 대단합니다. 저는 사업가입니다. 제가 속한 사교 모임에서는 카드놀이를 합니다.” 형제님, 여러분에게 무엇이 있든 상관없습니다. 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의 모임보다 더 위대한 모임은 없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거기에 가입할 수 없습니다. “저는 교회의 회원입니다”라고 하십니다. 교회는 오직 하나이며, 길도 하나, 문도 하나뿐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다른 길로 들어가는 자는 도둑이며 강도입니다. 우리는 모두 한 성령에 의해 침례를 받아 그 몸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형제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왕의 아들딸입니다. 그에 맞게 처신해야 합니다. 이 땅에서 우리의 명성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서고 싶은 곳인 천국,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아야 합니다.
자, 우리가 보는 것은… 시므온을 좀 더 따라가 봅시다… (보니 이제 5분쯤 남았군요.) 조금 더 따라가 보겠습니다. 우리는 시므온이 그렇게 하는 데에는 확실한 이유가 있었다는 것을 압니다. 성령께서 그에게 죽음을 보지 않으리라고 계시하셨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얼마나 들었든, 다른 무슨 일이 있든, 그분을 보려고 애쓰다 보지 못한 사람이 얼마나 많든, 그 자신은 개인적으로 주의 그리스도를 보게 될 것이었습니다. 오 형제님, 자매님, 지금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계시해 주셔서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바로 제가 치유받을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이번에는 제 차례입니다. 지금이 제가 치유받을 시간입니다.” “지금이 제가 성령을 받을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계시하셨습니다. 저는 받을 것입니다.” 다릅니다. 어떤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깊음이 깊음을 부르는 것과 같습니다. 다윗은 “주의 폭우 소리에”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 여기 안에 부르짖는 깊음이 있다면, 그 부름에 응답할 깊음이 저 밖에도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과 더 가까이 동행하고 싶은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치유하시는 분임을 믿는 분은 몇 분이나 계십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물론입니다. 자, 여러분 안에 그것을 말해 주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 갈망에 응답할 무언가가 저 밖에도 있어야 합니다. 이와 같습니다. 물고기 등에 지느러미가 생기기 전에, 먼저 헤엄칠 물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지느러미가 없었을 것입니다. 땅에서 자랄 나무가 있기 전에 먼저 땅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거기서 자랄 나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얼마 전… 제가 방금 생각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최근에도 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 도시에 사는 어린 남자아이가 학교에서 연필에 달린 지우개를 모두 먹었습니다. 선생님이 어머니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는 아이가 뒤쪽 현관에서 자전거 페달을 먹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고무로 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알아보려고 검사실로 데려갔습니다. 의사는 그 작은 몸에 유황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고무에는 유황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몸 안에 유황을 갈망하는 것이 있다면, 먼저 유황이 있어야 했던 것입니다. 오 형제님,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여기 안에 갈망이 있을 수 있으려면, 먼저 저 밖에 유황이 있어야 합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하나님을 더 깊이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을 위한 신유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셨던 것입니다. 그분의… 아브라함이 찾고 있던, 그 건축자와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것을 기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습니까? 보십시오. 피조물이 있기 전에, 그 피조물을 창조할 창조주가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신유를 믿는다고 느끼는 한, 어딘가에 열린 샘이 있습니다. 여러분을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실 하나님이 계시다고 믿는 한, 어딘가에 열린 샘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결코 그것을 갈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른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갈망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계시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는 계시되었습니다. 무엇으로 말미암았습니까? (지금 저는 신앙의 감격이 꽤 벅차오릅니다.) 아시겠죠? 무엇입니까?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계시하신 것입니다. 시므온에게 계시하셨던 바로 그 성령께서 말입니다. 그분께서 계시하신 이상, 어딘가에 열린 샘이 있습니다. 오, 우리가 그것을 볼 수만 있다면! 어딘가에 그 샘이 열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치유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계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샘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십니다. 그 샘은 어디에 있습니까? 보십시오. 샘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여러분의 마음에 그 갈망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다른 모든 것에 대한 생각을 잊게 됩니다. 그것이 모든 것을 압도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존재 구석구석을 믿음으로 가득 채웁니다. 성령은 두 분이 아닙니다. 성령은 오직 한 분이며, 시므온에게 계시하셨던 그 성령께서 여러분에게도 계시하셨습니다. 성령으로 계시된 것입니다.
“임마누엘의 핏줄에서 흘러나온 피로 가득한 샘이 있네. 죄인들이 그 물결에 잠기면 모든 죄의 얼룩을 씻는다네.” 그것은 모든 죄인을 위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오순절 날 이렇게 말했습니다. “회개하고 너희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 죄들의 사면을 얻으라. 그러면 너희가 성령님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오, 세상에! 어떻게 그것을 과거로 돌려 역사 속의 일로만 만들어 버릴 수 있습니까?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손들과 멀리 떨어져 있는 자들 곧 주 우리 하나님께서 부르실 모든 사람들을 향한 것이니라.” [녹음 공백] … 오순절의 복으로 가득하고, 하나님의 권능이 그분의 교회를 데려가려 합니다. 그분은 실패하지 않으십니다. 쇠하지도 않으십니다. 오늘도 언제나처럼 밝고 새로우시며, 앞으로도 영원히 그러하실 것입니다. 그분은 영원하십니다. 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습니다. 데이비드 듀플레시스가 한번 말했습니다… 그것에 관해, 하나님의 아들들에 관해서 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습니다. 여러분 모두 그것을 믿으시지요?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 교회가… 그가 말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손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손주가 없습니다.
자, 감리교인 여러분, 잠시 귀 기울이십시오. 여러분의 외투를 내려 보겠습니다. 우리에게 여전히 하나님의 감리교인 아들딸들이 있다면 좋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침례교인 아들딸들이 있다면 좋습니다. 루터교, 나사렛교, 순례성결교, 오순절교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다른 교단들이 그랬듯이, 우리 오순절교인들도 그러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 안에 있었다는 이유로 자녀들을 데려다가 교회에 들이고 오순절 교회의 회원으로 만듭니다. 그것은 손주입니다. 하나님께는 손주가 없습니다. 그 아들이나 딸도 우리가 치른 것과 같은 값을 치르고, 우리처럼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손주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식으로 받아들이지 않으십니다. 아들과 딸이 있을 뿐입니다. 손주는 없습니다. 하나님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감리교회에 다닙니다. 저희 어머니도 거기 다니셨어요”라고 합니다. 그것은 손주입니다. 하나님께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감리교회의 손주이고 오순절 교회의 손주일 수 있지만, 하나님께는 손주가 없습니다. 모든 남녀가 개인적으로 다시 태어나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그들을 영으로 충만하고 생명으로 충만하게 하는 것입니다.
봄이 오고 있습니다. 조금 있으면 여기의 작은 새들이 저 밖 선인장 꼭대기와 덤불에 나가 둥지를 틀 것입니다. 어미 새는 작은 둥지를 예쁘게 지어 새끼들이 아주 아늑하게 지내도록 만들고, 알을 한 둥지 가득 낳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알들 위에 앉아 [불명확한 말] 알맞게 뒤집어 주며, 몹시 배가 고파도 굶다시피 하다가 너무 야위어 둥지에서 날아가지도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미 새가 짝과 함께하지 않았다면, 그 알들은 결코 부화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수정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혈액은 수컷 쪽에서 옵니다. 헤모글로빈 말입니다. 사실입니다. 여자는, 암컷은 난자만 내놓지만, 수정하게 하는 것은 수컷에게서 옵니다. 오늘날 교회들의 문제가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 오순절교인들은… (이 훌륭한 교회와 여러분의 훌륭한 목사님을 비난하는 말이 아닙니다. 저는 그분을 만났고 무엇을 믿으시는지 압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교회는 어느 때보다 더 커졌는데 믿음은 더 낮아지고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보십시오. 우리는 회원들, 손주들을 들여오고 있습니다. 형제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저 어미 새가 아닙니다. 제가 말했듯이, 그 새는 둥지에 앉아 있다가 너무 야위어 거기서 날아가지도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짝과 함께하지 않았다면 그 알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대로 놓여 있다가 썩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르는 닭을 보아도 압니다. 그대로 있다가 썩습니다.
형제님, 할 일은 하나뿐입니다. 둥지를 청소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우리 오순절 운동에 필요한 것은 둥지를 청소하는 시간입니다. 썩은 알들을 둥지에서 꺼내야 합니다. 교인들을 받아들여 집사로 삼고 또 다른 직분을 주며, 교회에 헌금을 좀 많이 낸다고 등을 두드려 줍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을 아는 것은 호텐토트족 사람이 이집트 기사를 아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시 태어나는 체험입니다. 성령침례로 돌아가 우리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향한 참되고 진실한 오순절 믿음이 실제로 역사해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의 인도를 받는 일이 일어납니다. 말씀이 말씀하시면 여러분은 “아멘” 하고 그것을 믿습니다.
시므온은 성령의 감동을 받았고 그 약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제 마치면서 이런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어떤 때가 왔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때에는 소식이 지금처럼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어린 마리아를 보십시오. 처녀였던 그녀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남자를 알지 못했지만, 성령께서 그녀를 만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게서 태어날 그 거룩한 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아들의 아버지가 되실 것이다.” 그녀는 하나님께서 말씀을 지키시리라고 기대했습니다. 돌아다니며 “잠깐만요. 제가 좀 보겠습니다… 태동이 느껴지면 그때 간증하겠습니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무엇을 느끼느냐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느꼈느냐?”라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것을 믿었느냐?”라고 하셨습니다. 믿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저는 아무것도 달라진 느낌이 없는데요”라고 합니다. 그것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겉에 있는 손과 몸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안에서 믿는 것에 관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머지를 지배합니다. “믿었느냐?”라고 하셨습니다. 마리아는 천사가 말해 주자마자 “주의 여종을 보소서. 당신의 말씀대로 그 일이 내게 이루어지기 원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유대의 산간 지방으로 올라가 간증했습니다. 사촌 엘리사벳을 찾아가 남자를 알지 못하면서도 아기를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엘리사벳은 놀라서 말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어린 요한은 어머니 태 속에서 이미 여섯 달째 몸이 형성되어 있었지만 생명이 없었습니다.
그 위대한 천사가 사가랴에게 나타났는데, 사가랴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했습니다. 천사는 “아기가 태어날 때까지 네가 말을 못하게 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아시다시피 하나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에게 자손들을 일으키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받아들이려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받아들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말했습니다… 그가 알게 되었을 때… 마리아가 문안하면서 말했습니다. “오, 성령께서 제게 내려오실 것이고 저는 수태할 것입니다. 그 거룩한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며, 저는 그 이름을 예수라 할 것입니다.” 어린 요한은 여섯 달 동안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누구나 그것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아무리 늦어도 서너 달인데, 여섯 달이 되도록 움직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사벳이 역시 기대하고 있던 마리아의 그 문안을 귀로 듣자마자, 두 사람 모두… 마리아가 말했을 때… 주 예수님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 이름이 사람의 입술에서 처음 발음되었을 때, 어머니 태 속의 작은 죽은 아기가 기뻐 뛰놀았습니다. 요한은 어머니 태 속에서 성령을 받고 기뻐 뛰놀기 시작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사람의 입술에서 처음 발음되었을 때 죽은 아기가 어머니 태 속에서 기뻐 뛰놀게 되었다면, 다시 태어난 교회에서는 권능을 위한 믿음을 얻도록 얼마나 더 큰 일이 일어나야 하겠습니까? 저는 흥분해서 이러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어디에 있는지 압니다. 아시겠죠? 다만 이런 것들을 이야기하다 보면 때로 기분이 참 좋아집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그 이름에 생명이 있다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권능과 믿음으로 그 이름을 부르면, 그 앞에 버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오, 물론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딸들입니다.
자, 시므온이 서재 안쪽에 앉아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아마 월요일 아침이었을 것입니다. 제사장들은 모두 자기 일을 하고 있습니다. 당시 팔레스타인에는 유대인이 약 250만 명 있었으니, 간밤에도 아기들이 여럿 태어났을 것입니다. 남자아이들은 여드레째 되는 날 할례를 받아야 했습니다. 시므온이 자기 방 안쪽에 앉아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말씀을 펴 놓고 이렇게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두루마리에서, 아마 이사야서, 이사야 6장 9절을 보게 됩니다. “한 아들이 우리에게 태어났고 한 아이가 우리에게 주어졌는데.” 그런 말씀입니다. “그의 이름은 조언자, 평화의 통치자, 강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할 것이니라.” 그가 거기 앉아 있는 모습을 그려 볼 수 있습니다.
그동안 어린 마리아는 아기가 할례를 받게 하려고 그곳으로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기도 줄이든 무엇이든, 할례를 받으러 올라가는 줄에 들어섭니다. 아기들은 모두 바느질을 곱게 한 예쁜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귀여운 아기들, 이도 나지 않은 아기들 말입니다. 저는 아기들을 참 좋아합니다. 귀여운 아기들을 안고 있는 다정한 어머니들을 보십시오. 그런데 여기 그분은… 강보에 싸여 계셨습니다. 그 강보를 어디서 구했는지 아십니까? 외양간의 소 멍에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그런데도 바로 그분이 하늘과 땅의 창조주셨습니다. 우리는 50달러짜리 양복만 입어도 코를 치켜듭니다. 마치… 비가 오면 빗물에 빠져 죽을 정도로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 구주께서는 태어나셨을 때 몸을 쌀 옷조차 없으셨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 둘 곳이 없도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저는 이 도시에서 가장 큰 교회에 다닙니다.” 오, 자비를 베푸소서. 형제님, 자매님, 그런 마음을 갖는 바로 그 순간 여러분은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은 제게 의무가 있으십니다.” 그분께는 아무 의무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그분께 의무가 있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몫을 다하셨습니다. 나머지 사람들이 믿었던 것처럼 여러분도 믿어야 합니다. 그들이 온 것과 같은 길로 와야 합니다.
시므온이 저 안쪽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때 갑자기 어린 마리아가 건물 안으로 들어옵니다. 다른 여자들이 모두 거리를 두는 모습이 보입니다. 다시 태어난 여러분은 무슨 뜻인지 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녀가 거기 서 있었습니다. 여자들은 거리를 두면서 말합니다. “저 여자 보이지요? 성스러운 혼인 밖에서 저 아기를 낳았대요. 요셉과 결혼한 지 겨우 두 달쯤 됐는데, 아기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아기 엄마가 될 몸이었다고 해요. 아니, 결혼하기 전부터 아기 엄마가 될 몸이었다는 말이지요. 사생아예요. 하나님의 성전에 저 사생아를 안고 들어오는 것 좀 보세요. 가까이 가지 마세요.” 참된 신자들은 그런 식으로… 그러나 마리아는 그 작은 아기를 품에 안고 있었습니다… 외양간에서 소의 목에 얹는 멍에에서 가져온 강보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그 아기가 누구의 아들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모든 신자도 그렇습니다. 의사는 “아, 그런 광신주의는 믿지 마십시오”라고 할지 모릅니다. 여러분의 어머니가 그렇게 말할 수도 있고, 남편이, 아내가 그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마음속에 무언가가 태어났을 때 그것을 압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계시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일이 일어나리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 교회에는 가지 마세요. 거기 갈 필요 없어요.” 괜찮습니다. 여러분 안에 무언가가 있다면 그래도 오게 될 것입니다. “아, 그들은 광신적으로 뒹구는 사람들 무리예요.” 뭐라고 부르든 상관없습니다. 어쩌면… 그들의 강보는 아주 보잘것없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그 안에 무엇이 싸여 있는지 압니다. 오순절의 강보 안에 무엇이 싸여 있는지 압니다. 그렇습니다. 그 안에 별별 것이 다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그 강보에는 성령께서도 싸여 계십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이렇게 아기를 품에 안고…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든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거리를 두었습니다. 여러분이 성령을 받으면 표시가 납니다. 사람들이 모두 여러분에게 표를 붙입니다. 그들은 압니다. 압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아, 저 여자는 방언하는 사람들 중 하나예요. 저 오순절 무리에 다녀요. 가까이하지 마세요. 카드놀이 모임에 초대하지 마세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녀가 성령을 받았다면 어차피 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조금 뒤에 보니 다른 방에서 사람들이 킥킥거리며 웃고 있습니다. “봐요, 저 여자예요.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예요. 아시겠죠.) 저 여자예요.” 그녀는 알고 있었습니다. 괜찮았습니다. 아기에게 마음을 쓰고 있었습니다. 아기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에게는 그 아기가 모든 사교 모임과 그 밖의 모든 것보다 더 소중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믿지 않아도 되었지만, 그녀는 자신에게 무엇이 있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무엇이 있는지 압니다. 그 약속이 무엇인지 압니다. 이제 그분께서 처음으로 성전에 계십니다. 인간의 모습으로 자신의 성전에 계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셔서 세상을 자신과 화해하게 하셨습니다. 여기 이 아주 작은 아기 여호와께서 지금 어머니의 품에 누워 계십니다. 다른 아기들과 똑같이 작은 아기였지만, 거기에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우리도 여러분처럼 교회에 다닙니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차이가 있습니다. 아시겠죠? 올바른 자리, 올바른 것을 갖게 되면 말입니다. 그녀가 건물 안으로 들어옵니다. 성령께서 시므온에게 그것을 계시하셨다면, 자신의 말씀이 이루어지도록 하시는 것은 성령께 달려 있습니다. (이제 잠깐 극처럼 그려 보겠습니다.) 시므온은 성전 저편에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그가 그 성경 말씀을 읽고 있을 때, 성령께서 말씀하십니다. “시므온아, 일어나라!” “어디로 가기를 원하십니까? 무엇을 하기를 원하십니까?” 할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상관할 일이 아닙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십시오. 일어나십시오. 그가 일어납니다. “걷기 시작하라.” “어디로 갑니까?” “상관없다. 계속 걸어라.” 걸으십시오. 여러분은 하나님의 아들딸들이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다고 믿습니까? 그가 걷기 시작합니다. “어디로 갑니까?” “상관없다. 계속 걸어라.” 걸어 나갑니다… 사람들은 늙은 시므온이 회중 앞으로 나와 이리저리 훑어보는 것을 봅니다. “아버지, 어디로 갑니까?” “여기 여자들이 서 있는 이 줄로 가거라.” 저쪽으로 2백 명쯤 서 있습니다. 그가 곧장 내려옵니다. “무슨 일일까?” 그는 이사야 두루마리를 들고 있습니다. 책, 두루마리 말입니다. 이사야 9장 6절입니다. 아마 거기에 손가락을 대고 있었을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이상한 일들을 행하십니다. 형제 여러분, 그것을 믿습니까? 이상한 일들입니다. 그가 걸어 내려옵니다. 그러다가 정확히 이 어린 여자가 있는 곳에 이릅니다.
그때는 텔레비전도 없고, 라디오나 언론도 없었습니다. 입에서 귀로 전해질 뿐이었습니다. 이 아기가 태어났다는 소식은 아직 퍼지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그저… 어쨌든 특이한 일이었습니다. 아무도 신문에 싣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날 이런 일이 일어났더라도, 추문을 만들거나 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신문에 싣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내려와서 시므온은 바로 그녀 앞에 멈춰 섰습니다. 그쪽을 바라보았을 때… 보십시오. 주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는 죽음을 보지 않으리라는 것이 성령께서 그에게 주신 계시였습니다. 사람들이 조롱하던 바로 그것, 성령께서 그를 정확히 그곳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분께서 오늘 아침에도 같은 방식으로 여러분을 인도하셨다고 믿지 않습니까? 같은 일이 아닙니까? 같은 성령이 아닙니까? 그분께서 그를 바로 이곳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시므온은 그리스도를 뵙기를 기대하고 있었고, 그곳으로 걸어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보자마자 알아보았습니다.
여러분도 오늘 저녁에 오십시오. 오십시오. 의심이 있다면 그냥 자리에 앉으십시오. 앉아서 몇 분만 지켜보십시오. 오늘 저녁 그분께서 이곳에 나타나시기를 기대하십니까? 저는 기대합니다. 저는 기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기대하면 그분께서 행하실 것입니다. 시므온은 그 아기를 발견하자마자, 어머니의 품으로 손을 뻗어 아기를 받아 자기 가슴에 끌어안고 말했습니다. “주여, 이제 주께서 주의 말씀대로 주의 종이 평안히 떠나도록 허락하소서. 이는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기 때문이니이다.” 오, 세상에! 성령의 인도를 받은 것입니다. 이제 이 말을 여러분의 마음에 간직하시고, 오늘 저녁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되는지 지켜보십시오. (잠시 후면 마치겠습니다. 이것을 마음에 두십시오.) 오늘 저녁 성령께서 여러분을 인도하셔서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하십시오. 그분은 마지막 날들에 그렇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시는지 보십시오. 기대하십시오. 시므온이 그랬던 것처럼 오늘 큰 기대를 품으십시오.
그날 기대하고 있던 사람이 또 있었습니다. (마치면서 그 여자도 이야기하겠습니다.) 이름은 안나였습니다. 여선지자였습니다. 성전에 있었으며 앞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성전의 벽 너머를 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각각의 모든 교단도 자기 교단의 벽 너머를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교단도 좋습니다. 그러나 그 벽 너머를 보십시오. 눈먼 안나가 앉아 있는데, 갑자기… 그녀도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앞을 보지 못했습니다. 성령께서 “안나야, 일어나라!”라고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그녀는 일어났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아 사람들 사이를 이리저리 지나오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했습니까? 기대하고 있었고, 성령께서 그녀를 인도하고 계셨습니다. 눈먼 그 할머니가 사람들 사이를 지나 인도를 받으며 다가왔습니다. 여기 시므온은 눈처럼 흰 수염 위로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주여, 주의 종이 평안히 떠나도록 허락하소서.” 그때 킥킥거리던 무리가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합니다. 이 요란한 소동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들은 말했습니다. “저기 늙은 안나가 있네. 앞도 못 보잖아. 저기 시므온도 있어. 늙어서 정신도 반쯤 나갔잖아.” 그러나 그들은 올바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상태가 어떠하든, 올바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제가 서고 싶은 곳도 바로 그곳입니다. 하나님, 저를 올바른 자리에 서게 해 주십시오! 안나가 사람들 사이를 이리저리 지나왔습니다. 성령께서 눈먼 그 할머니를 이 모든 사람 사이로 인도하여 그분께 이르게 하실 수 있었다면, 오늘 저녁에는 얼마나 더 여러분을 이 거리들을 지나 인도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분께서 병자를 치유하시고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시리라고 우리가 믿는 그곳으로 내려오도록 말입니다. 그녀가 다가옵니다. 그곳에 이르자마자 (그녀도 그 자리를 찾았습니다), 손을 들고 하나님을 찬송하며 그분에 대해 말했습니다. 마리아의 마음에 박힐 가시 같은 것들에 관해 말하고 예언했습니다. 보십시오. 그녀는 여선지자였고 하나님의 영께서 그녀 위에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눈먼 그 할머니가 그곳에 이를 때까지 군중 사이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녀가 그분께서 오시기를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분을 기대합니다. 여러분도 그분을 기대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대를 채워 주실 것입니다.
불과 몇 년 전에 위대한 음악가 한 사람이 러시아에 갔습니다. 서곡을 연주했는데, 얼마나 훌륭하게 연주했던지 러시아 사람들이 목청껏 환호했습니다. 사람들은 일어서서 외치고 또 외치며 박수를 보냈습니다. 한 번만 더 연주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서 있었습니다. (자, 들으십시오.) 사람들은 그 훌륭한 서곡을 다시 연주해 달라고 또 환호하고 발을 굴렀습니다. 그런데 그 젊은이를 보며 말했습니다. “정신이 딴 데 가 있나 봐. 우리 박수에도 관심이 없네. 알아채지도 못하잖아. 우리가 다시 불러내어 연주하게 하려는데.” 그러나 그들이 보니 그는 그저 그렇게 서서 한곳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잠시 뒤 사람들이 몸을 돌려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박수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의 늙은 스승, 노대가가 회중석 위쪽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는 스승이 어떻게 평가하는지 보고 싶었습니다. 스승이 박수를 보낼지, 잘했다고 고개를 끄덕일지 알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스승이 어떻게 말하는지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기적의 시대는 지나갔으며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지 않으시다고 말하더라도, 사람들이 하는 말에 신경 쓰지 말고 그 말씀을 기록하신 주님을 올려다보십시오. 시선을 그 위에 두십시오. 그분께서 그것에 관해 뭐라고 하시는지 보십시오. 신유가 옳은 것인지, 오늘 그분의 말씀을 살펴보시고 오늘 저녁 기대하며 오십시오. 잠시 머리를 숙이겠습니까?
은혜로우신 주님, 지금까지 이곳에 앉아 기다린 이 작은 회중으로 인해 감사합니다. 그들의 마음속에 씨앗을 심어 주셔서, 오늘 저녁 그들이 큰 기대를 안고 와서 다리를 저는 이들이 걷고 눈먼 이들이 보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저녁 저희 가운데 연약한 사람이 하나도 없게 해 주십시오. 심장 질환과 암이 모두 치유되게 해 주십시오. 주님의 영께서 내려오셔서, 오늘 오후 그들이 교회에 오기도 전에 집에서 치유되게 해 주십시오. 주님, 저희는 큰 일들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오늘 저녁 사람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해 주십시오. 죄인을 인도해 주십시오. 어머니가 눈물을 닦아 주던 귀여운 아기였지만, 오늘은 술집 바닥에 누워 있는 그 방황하는 아들을 인도해 주십시오. 밤새 밖을 돌아다니는 그 방황하는 딸도 인도해 주십시오. 성령께서 말씀하셔서 그들의 발걸음을 하나님의 집으로, 이어서 오늘 저녁 제단 앞으로 인도하시어 그들의 구주이신 그리스도를 찾게 해 주십시오. 저희도 옛날의 시므온처럼 오늘 저녁 믿음의 팔로 귀하신 주 예수님을 저희 마음에 끌어안고, 저희 마음을 요람으로 삼게 해 주십시오. 그분과 함께하는 저희의 체험이 강보와 같게 하여, 이제부터 다른 삶을 살게 해 주십시오. 주님, 오늘 이곳의 형제 목사님과 다른 목회자들, 그리고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축복해 주십시오. 축복해 주십시오… 오늘 모든 교회에 훌륭한 예배를 허락해 주시리라고 믿습니다. 결코 잊지 못할 날이 되게 해 주십시오. 이제 저희가 주님을 섬기도록 강건하게 지켜 주십시오. 집으로 돌아가는 이 백성을 축복해 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이제 예배를 목사님께 넘겨 드리겠습니다. 시간을 넘겨 붙잡아 두어서 죄송합니다. 열두 시에 마치는 줄 아는데 지금은 12시 15분이군요. 그러나 제게는 이 정도면 짧은 편입니다. 어떤 때는 제가… 너무 좋아서 언제 멈춰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여기서 두세 시간씩 이렇게 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잘 호응해 주시는 회중과 함께라면 저는 그저 너무 좋습니다… 오늘 저녁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크고 놀라운 일들을 행하시리라는 기대를 안고 오겠습니다. 그때까지 하나님께서 늘 여러분과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예배를 여러분의 목사님께 다시 넘겨 드립니다. 여러분 모두 들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