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오늘 저녁 다시 롱비치에 돌아와 앞으로 몇 주 동안 이런 교제의 시간을 갖게 된 것은 참으로 큰 특권입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롱비치에 머물게 된다는 것을 알고는 저도 좀 놀랐습니다. 아간브라이트 형제님이 피닉스에서 서부 해안으로 와 달라고 전화했을 때, 로스앤젤레스에서 하룻밤, 이곳에서 하룻밤을 부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제가... 하룻밤이 아니라, 그러니까 각 곳에서 일주일씩 말입니다. 죄송합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곳에서는 2주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일요일부터 그다음 일요일까지였던가요. 아니, 화요일부터 일요일을 지나 그다음 일요일까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참 좋은 시간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모두 함께 주님을 경배해야만 주님 안에서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합니다. 오늘 목사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떤 집회를 생각하고 계시는지 여쭈었습니다. 부흥회를 기대하고 계시는지, 아니면 치유 집회를 해야 하는지 말입니다. 목사님은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하십시오”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바랄 수 있는 가장 좋은 대답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곳으로 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자유롭게 행하시도록 해 드리면 모든 일이 잘될 것입니다.
이곳 타버내클에 온 것은 이번이 두 번째인 것 같습니다. 진 형제님, 2, 3년 전쯤 어느 날 밤 우리가 왔던 곳이 여기였지요? 2년쯤 전이었군요, 그렇습니다. 또 제가 처음 서부 해안에 왔을 때 이곳 시립 강당에 한 번 온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제가 여러분의 한 사람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단지 이곳에 와 본 적이 있어서만이 아닙니다. 저도 구원을 찾으러 여러분과 같은 곳, 갈보리에 갔기 때문입니다. 그곳이 우리가... 제가 아는 유일한 샘은 갈보리의 그 샘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복을 부어 주신 곳입니다. 저도 그곳, 주 예수님의 피 아래에서 제 몫을 받았습니다.
주님의 뜻이라면 어느 날 밤 치유 집회를 열어 기도받고 싶어 하시는 분이 얼마나 되는지 보고 싶습니다. 여기저기 손을 들어 보시겠습니까? 치유 집회를 하기에 꽤 좋은 수가 모였군요. 적어도 한 교회에서 하기에는 말입니다. 그러면 내일 저녁은 어떻습니까? 내일 저녁에 치유 집회를 하면 좋겠습니까? 괜찮겠습니까? 좋습니다. 집회의 다른 순서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제가 젊은이들을 이곳으로 보내서 6시 반쯤 기도 카드를 나눠 드리게 하겠습니다. 그러고 나서 하나님의 뜻이라면 내일 저녁 병자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그다음에는 주님께서 계속 어떻게 인도하시는지, 얼마나 많은 분들이... 이런 작은 교회 집회에서는 하룻밤에 모든 병자를 위해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곳에서 열세 밤을 지낸다면 상당한 치유 집회가 되겠습니다. 사람들이 계속 오고 병자들이 계속 몰려오면, 오는 대로 계속 기도해 드리겠습니다.
이번 주에, 아니, 다음 주에 주님의 뜻이라면... 제가 올해 순회 집회를 떠나기 전에 제 타버내클에서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마지막 일곱 교회 시대에 관한 연속 설교를 마쳤습니다. 주님의 뜻이라면 다음 주에는 요한계시록의 네 말 탄 자를 다루고 싶습니다. 말과 그 말을 탄 자마다 하룻밤씩 시간을 내어 무엇을 나타내는지, 우리가 어떤 때에 살고 있는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닥칠 일들에 대해 모두 경고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교회에 부족한 것은 준비하라는 경고입니다. 솔직히 저는 교회가 오늘날보다 40년 전에 그리스도의 오심을 맞이할 준비가 더 잘되어 있었다고 믿습니다. 40년 말입니다... 얼마 전 웨스트워드 호에서 열린 순복음 실업인 대집회에서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교회가 광야에서 그랬던 것처럼 40년 동안 어떻게 뒤로 물러났는가에 대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옛 싸움꾼들이 죽었으니, 우리도 하나로 모여 하나님의 왕국을 향해 나아가고, 건너가 충만한 복을 차지해야 할 때입니다. 이번 주에는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준비하는 일에 관해 그런 주제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목회자가 부흥을 가져올 수는 없습니다. 어떤 설교자도 부흥을 가져올 수 없습니다. 부흥을 짐에 넣어 가지고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충실한 것입니다. 부흥은 사람들을 통해 와야 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 여러분의 삶에서 와야 합니다. 부흥은 교회에 새 교인을 더하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되살리는 일입니다. ‘소생시키다’라는 말은 다시 돌아오게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부흥은...
몇 년 전, 저는 처음으로 큰 물가에 서 보았습니다. 미시간호였습니다. 그때 저는... 선교 침례교회에서 막 안수를 받았을 때였습니다. 스무 살이나 스물한 살쯤 되었을 것입니다. 그곳에 갔을 때 호숫가에서 큰 부활절 일출 예배가 열렸습니다. 저는 폴 레이더와 아는 사이였는데, 그가 그 집회에서 말씀을 전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시카고에 있는 동안 그 타버내클에도 가 보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넓은 물을 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저는 레이크쇼어 드라이브로 나가 잠시 서 있었습니다. 파도들이 위아래로 뛰며 마구 물보라를 일으키는 것이 보였습니다. ‘무엇 때문에 저렇게 흥분했을까? 대체 무슨 야단일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작은 파도가 일어나 밀려 나가더니 아주 큰 파도가 되어 서로 부딪치고 부서졌습니다. 거품이 솟구쳤다가 다시 안으로 밀려왔습니다. 그러고 나면 또 큰 파도가 밀려와 물가에서 부서지는 것이 보였습니다. 이곳의 여러분에게는 익숙한 광경이지요. 그러나 내륙에만 살던 이 종에게는 새로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켜보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 호수가 부흥회를 하고 있는 게 틀림없군. 분명히 그런 거야. 위아래로 뛰면서 아주 신이 났구나.” 저는 ‘좋구나. 참 좋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흥회를 하는 동안 물이 많이 불어나는 것일까?’ 생각해 보니 아니었습니다. 완전히 잔잔할 때보다 물이 한 방울 더 들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조금도 더 많지 않았습니다. 같은 물인데, 부흥회를 하느라 위아래로 뛰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무슨 유익이 있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렇게 부흥회를 하며 위아래로 뛸 때, 물속의 쓰레기를 모두 씻어 물가로 밀어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교회에 필요한 것이 바로 부흥입니다.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들을 모두 씻어 내어 다시 맑고 아름답게 되는 것입니다. 다 잔잔해지고 나면 물의 양은 그대로입니다. 그런데 바다가 그렇게 움직이는 까닭은 바람이 불어와 파도와 수면을 밀어 물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녁 교회에 필요한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강하고 세차게 부는 바람이 다시 교회 위에 내려와 교회를 소생시키고,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들을 모두 몰아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부흥이 시작됩니다. 그러고 나서 잔잔해지면, 교회는 하나님께로부터 영적 은사와 복을 받기 시작할 준비가 다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저는 우리가 기다리는 부흥이 우리가 예상하는 방식으로 오리라고 믿지 않습니다. 언제나 우리가 예상한 것과 반대로 옵니다. 그리스도도 다르게 오셨고 침례자 요한도 그랬습니다. 누군가 생각했다면... 요한 시대에 성경을 해석하던 사람 중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기를,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분의 행로들을 곧게 하라’...” 그들 중에는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회랑을 내려 보내시고, 천사들의 호위대가 땅으로 내려오며, 위엄 있는 위대한 선지자가 영광 가운데서 걸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 일은 얼마나 엄청난지 모든 낮은 곳은 높아지고 모든 높은 곳은 낮아질 것이었습니다. 산들은 작은 숫양처럼 뛰고, 모든 잎사귀는 손뼉을 치게 될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굉장한 일이겠습니까! 그 시대 사람들은 대체 어떤 광경을 보리라고 기대했겠습니까. 그런데 실제로 나타난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양가죽을 두르고 털이 덥수룩한 설교자가 광야에서 걸어 나왔습니다. 아마 서너 달 동안 목욕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진흙에 무릎까지 빠진 채 서서 “너희는 회개하라. 하늘의 왕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고 외쳤습니다. 그때 높은 곳이 낮아지고 낮은 곳이 높아진 것입니다.
사람이 위대하다고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어리석다고 하십니다. 사람이 어리석다고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위대하다고 하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계획으로 돌아가,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알아내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유일한 길은 기도입니다. 기도가 열쇠입니다. 그것이 해답입니다. 기도는 상황을 바꿉니다. 기도는 인간에게 맡겨진 무기 가운데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원자폭탄도 수소폭탄도 기도만큼 강력하지 않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도 바꿉니다. 그것을 아셨습니까? 한 번은 실제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한 선지자가 방 안에 있는 왕에게 보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올라가 그에게 전하라.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그는 그 침상에서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지금 있는 바로 그곳에서 죽을 것이다.’” 이사야가 올라가 히스기야에게 그 말을 전했습니다. 문에 있던 모든 고관들과 바깥뜰에 있던 평민들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들어가면서 “오, 하나님의 선지자여, 우리 왕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왕은 죽을 것입니다.” 군인들에게 나가자 그들도 물었습니다. “오, 위대한 선지자여, 주님께서 우리 왕에 대해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왕은 죽을 것입니다.” 그 말은 옳았습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계속 내려가 광야 어딘가에 있는 자기 작은 오두막으로 들어갔습니다.
히스기야는 얼굴을 벽으로 돌리고 몹시 울며 말했습니다. “주 하나님이여, 간청하오니 저를 헤아려 주십시오. 저는 완전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서 걸었습니다. 제 왕국을 바로 세우려면 15년이 더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인가 말씀하시려 했다면, 그가 하나님께 말씀드리고 있을 때 답해 주셨을 법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는 일을 행하시는 방식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방식과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수단을 따라 나아와야 합니다. 우리 힘으로 끼어들려고 하면 되지 않습니다. 서로를 본뜨기만 해서도 안 됩니다. 각자가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 땅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물론 왕이었습니다. 하늘에서 가장 높으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땅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 하늘에서 가장 높은 사람과... 하늘에서 가장 높으신 분과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늘의 큰 권능은 왕에게 직접 답해 줄 수 없었습니다. 왕은 그런 일을 하도록 정해진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저 왕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선지자인 이사야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그에게 말하라. 내가 그의 기도를 들었으며 그에게 그 15년을 더 살게 해 주리라.” 그 선지자가 바로 되돌아오면서 얼마나 난처했겠습니까. “선지자여, 무슨 일로 돌아오십니까?”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왕은 살 것입니다.” 방금 그 문을 떠날 때는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왕은 죽을 것입니다” 하고 말했는데, 돌아와서는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왕은 살 것입니다.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왕은 살 것입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무엇이 그것을 바꾸었습니까? 기도입니다. 그것이 비결입니다. 기도가 문을 엽니다. 기도입니다. “너희가 믿고 기도할 때에 무엇을 구하든지 모든 것을 받으리라.” “너희 기쁨이 충만하도록 풍성히 구하라.”
오늘 저녁 하나님께 아무것도 아끼지 마시고 하늘의 권능을 부어 달라고 구합시다. 우리를 흔드시고 산산이 부수셔서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 다시 빚어져야 한다면, 그것이 필요한 일이라면 저는 그것을 원합니다. 마음이 정직한 모든 신자도 무엇이 필요하든 그것을 원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집회가 계속되는 동안 그 점을 마음에 새깁시다. “주님, 무엇이 필요하든 상관없습니다. 저를 소생시켜 주시기를 원합니다. 제가 하고 있는 어떤 일이든, 해서는 안 되는 일이든, 마땅히 했어야 하는 일이든, 저를 산산이 부수고 다시 만들어 주십시오. 제가 주님께 순종하게 해 주십시오.” 마음에 그런 뜻을 품으면, 제가 이 강단 뒤에 서 있는 것이 확실한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반드시 역사하러 오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한, 지금까지 집회를 다니면서 치유 집회가 아닌 부흥회를 열러 어떤 곳에 온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렇게 계획된 것이 참 기쁩니다. 저는 로스앤젤레스로 올라가기도 하고, 이곳에서 며칠 밤을 보낸 뒤 그곳으로 올라가기도 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이렇게 일이 풀렸습니다. 아니, 하나님의 큰 경륜 속에 계획되어, 제가 이 교회에서 2주 동안 부흥회를 열게 된 것 같습니다. 아마 하나님께서 그렇게 원하시는가 봅니다. 그러니 그분께 맡겨 드립시다. 그분이 주관자시지요? 그분을 사랑하시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아, 모두들... 좋습니다. 그러면 모두 믿는 분들인 것 같군요. 좋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말씀을 나누며 내일 저녁 치유 집회를 위해 마음을 준비합시다. 주님의 뜻이라면 목요일 저녁부터는 곧바로 전도 설교 본문으로 시작하겠습니다. 일요일까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큰 부흥 가운데 두셔서,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주위에 비처럼 내리고, 하나님께서 큰 이적과 표적으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며, 수백 명이 성령을 받고 그 일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도록 기도하십시오.
그렇다고 지금 우리가 ...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참되고 큰 부흥은 신문에 대서특필되거나 그러지 않습니다.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는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지는 않지만, 실제로 그러셨습니다. 예수님께는 한 가지, 현대적인 흥행 수완이 없으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을 과시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누구나 크게 보도되기를 원하고 자기가 하는 일을 자랑하려 합니다. 허세만 가득한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종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종은 겸손하며 자신을 뒤로 감춥니다. 부흥이 올 때 언제나 어떻게 왔는지 보십시오. 예수님 시대에 왔을 때도 소수에게, 몇몇 사람에게만 왔습니다. 요한이 강가에 있을 때를 보십시오. 주변 지역에서 그의 말을 들으러 모인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들 중 약 99퍼센트가 그의 메시지를 거절하고 떠났습니다. 그런데도 그것은 큰 부흥이었고, 뒤흔드는 때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흔드시는데도 사람들은 그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아시겠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교회를 흔드십니다. 부흥은 그분의 교회를 위한 것입니다. 저는 이제 교회가 불러냄을 받았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소생시켜야 할 것은 소생시키고, 그 교회를 흔들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게 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말했습니다. “왜 오순절파니, 성령에 취해 구르는 사람들이니 하는 무리와 어울립니까?” “제가 보냄을 받은 곳이 그곳입니다. 저도 그들 중 한 사람입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왜 이런 표적을... 왜 더 큰 곳, 더 높은 곳으로 가서 행하지 않습니까?” 잘 보시면 우리 주님께도 바로 같은 말을 했습니다. 그분의 형제들까지 말했습니다. “왜 가야바 앞이나 높은 곳에 올라가서 자신을 보여 주지 않습니까? 당신이 그 사람, 그리스도라면 당신이 누구인지 그들에게 알리십시오.” 그분은 “너희 때는 언제나 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들과 함께 올라가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의 때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자신을 과시하는 분이 아니셨습니다. 저는 그것이 오늘날 교회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는 충분히 모시지 못하면서 보여 주는 데만 지나치게 치우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원합니다. 볼거리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원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준비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그 자리에 이르면 하나님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분은 실패하지 않으십니다. 잠시 머리를 숙입시다. 말씀에 다가가기 전에, 그 말씀을 주신 분께 먼저 나아갑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오늘 저녁 이렇게 자유로운 나라에 함께 모여 각자 양심이 이끄는 대로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으니, 우리는 참으로 큰 특권을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이 일로 인해, 또 우리나라에 아직 문이 열려 있다는 사실로 인해 참으로 기쁩니다. 이제 머지않아 이 기회마저 우리에게서 빼앗길 줄 알고 있습니다. 주님, 그렇게 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 될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여 마침내 우리의 마음이 하나로 모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곧 시작되는 롱비치 집회와, 하나님의 자녀들이 함께 모이는 ‘하나님의 성회’라 불리는 이 교회를 위해 기도합니다. 교회는 그 몸을 이루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이 목사님을 위해 기도합니다. 주님, 그를 축복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부흥이 시작되기를 바라며 두 팔과 마음을 활짝 열었사오니, 그들의 기도가 헛되지 않게 하옵소서. 주님, 이번 주에 우리에게 응답하셔서 이 서부 해안 전역으로 불길이 번져 나가는 큰 부흥을 주옵소서.
하나님의 백성은 에스겔 시대에 뼈가 뼈에 맞붙고 그 위에 살갗이 덮여 일어섰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그들 안에 생명이 들어가도록 여전히 그들에게 예언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우리가 조직을 만들고 교회들을 함께 모으며 손을 맞잡아 뼈와 뼈가 이어지게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다시 생명이 돌아오려면 여전히 우리를 뒤흔드는 바람에 대한 예언이 필요합니다. 아버지, 그저 오랫동안 계속하는 집회가 아니라, 모든 마음과 모든 가정과 모든 교회와 모든 교인을 참으로 흔들어, 마침내 모든 사람의 삶을 성령께서 온전히 주관하시는 부흥이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그곳에서 일꾼들이 거리 모퉁이와 샛길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부끄러운 얼굴이 아니라 용감한 군사들처럼, 스데반의 얼굴처럼 불타는 얼굴로 나아갈 것입니다. 세찬 바람 속에서 불타는 집과 같았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산헤드린 공회도 그를 막지 못했습니다. 그는 그들을 향해 외쳤습니다. “목이 뻣뻣하고 마음과 귀에 할례받지 않은 자들아...” 죽음 자체도 그의 메시지를 막지 못했습니다. 그 메시지가 다소 사람 사울에게 닿았습니다. 하나님, 주님께서 그에게 불을 붙여 내보내실 때까지 그 메시지는 그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방인 시대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 한 사람이 죽어 가면서 무릎을 꿇고 “예수님께서 하나님 오른쪽에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라고 말했을 때, 그의 얼굴에 나타난 그 표정...
하나님, 죄를 깨닫게 하시는 강한 권능으로 성령을 보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 교회에 모이는 모든 마음과 모든 얼굴에 그러한 결단의 모습이 나타나게 하옵소서. 주님, 허락하셔서 자신의 혼을 살피는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가 늦은 시각에,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늦은 시각에 살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주님께서 “너희가 생각하지 않는 시각에” 오리라고 하셨으니, 어느 때라도 오실 수 있습니다. 아버지, 저를 도와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조금 전에 네 말 탄 자에 관해 살펴보는 일과 신유에 관해 말씀드렸지만, 어떤 일이 되든 주님, 우리는 주님께 마음을 엽니다. 오셔서 우리의 필요에 따라 우리를 다루어 주옵소서. 주님, 우리에게서 세상을 모두 잘라 내어 주옵소서. 주님의 날카로운 양날 달린 검, 말씀을 취하셔서 우리 마음속과 머릿속의 생각들을 분별하옵소서. 우리가 어디에 부족한지 기억나게 하옵소서. 기도에 응답받는 것을 볼 때까지 기도를 그치지 않게 하옵소서. 아버지, 허락하옵소서. 제 입술에 할례를 베푸시고 사람들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셔서, 저는 주님의 말씀을 전하고 그들은 듣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것을 구합니다. 아멘.
이 시간부터 부흥이 시작되어 모두가 주리고 목말라 하게 되기를 주 예수님께 기도합니다. 이제 각자 준비하십시오. 이웃을 기다리지 마십시오. 이웃의 일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일입니다. 금식합시다. 기도하고 하나님을 부릅시다. 전화를 들어 누군가에게 연락하고 이곳으로 데려오십시오. 자녀들이 기도하도록 이끕시다. 가족들이 함께 모입시다. 마음을 활짝 열고 “주님, 저희가 여기 있습니다”라고 말합시다. 내일 저녁 치유 집회를 준비하는 일에 관해서 말씀드리면, 젊은이들이 6시 반쯤 기도 카드를 가지고 올 것입니다. 기도 카드를 원하시는 분들은 오시고, 병자들은 여기 제 주변으로 가까이 앉게 해 주십시오. 여러분 중 많은 분이 집회에 참석해 보셔서 어떻게 진행되는지 아실 것입니다. 믿음을 품고 앉아 있는 분이라면, 저 뒤보다 이 앞에 앉아 있는 편이 좋습니다. 때로는 제가 저 뒤에 있는 사람을 볼 때 사이에 너무 많은 사람이 있어서... 제가 통로라고 부르는 것, 곧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믿음의 광선들이 혼선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것은 회중 전체에, 수천에 수천 명이 모인 곳에도 미칩니다. 그래도 병자들을 이 앞, 제가 있는 주위로 모시고 싶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한 가지 주제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먼저 성경에서 한 구절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누가복음 2장 26절에 있습니다. 보라,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그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더라. 성령님께서 그 위에 계셨으며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는 것이 성령님에 의해 그에게 계시되었더라. 저는 ‘기대’를 주제로 삼고자 합니다. 기대를 가지려면 그 기대에 믿음이 함께해야 합니다. 오늘 저녁 세상을 지배하는 요소는 오직 두 가지, 두려움과 믿음입니다. 러시아는 모두가 자기들을 두려워하게 하려고 애쓰고, 우리는 모두가 하나님을 믿도록 힘씁니다. 그것이 차이입니다. 모든 나라를 지배하고, 모든 사람을 지배하고, 모든 교회와 개인을 지배하는 두 요소는 두려움과 믿음입니다.
두려움에는 아무런 가치도 없습니다. 전혀 없습니다. 끝도 없고, 그것은... 좋은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습니다. 제가 내일 아침 총살을 당할 예정이라고 합시다. 두려워해서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저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여러분은 “그렇다면 믿음은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하고 물으실 것입니다. 믿음은 저를 구해 줄 수 있지만, 두려움은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저 스스로 온통 흥분해서, 총이 발사될 때가 되면 전보다 더 불안해질 뿐입니다. 그러니 믿음을 가집시다. 믿음은 저를 구해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두려움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믿음을 떠나지 말고 굳게 붙드십시오.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하나님과 함께 머무십시오.
이제 우리가 말씀을 읽고 말씀을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저는 어떤 일에서도 말씀 밖으로 나가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반드시 이렇게 믿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지키십니다. 반드시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신다면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무한하십니다. 무엇이 무한하다는 것은... 무한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유한합니다. 그래서 무슨 말을 했다가도 다음 날이나 한 시간 뒤, 또는 5분 뒤에는 말을 바꾸어 “아, 제가 잘못 알았습니다”라고 해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무한하시다면 그렇게 하실 수 없습니다. 그분께서 자신의... 그분께서 약속하시면 결코 그 약속을 거두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약속은 언제나 최선이며, 그분의 결정은 언제나 완전합니다. 완전하다면 더 완전해질 수 없습니다. 그러니 언제나 옳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믿음이 있다면...
얼마 전에 한 의사와 그의 환자 중 치유받은 사람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 의사는 제 친구인데 이렇게 말했습니다. “빌리, 전혀 의심의 여지가 없네. 분명히 암이 있었어. 내가 수술했지만 제거할 수가 없었네. 목구멍에 있었거든.” 그 환자는 그 의사와는 인척 관계였습니다. 의사는 “완전히 사라졌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집회를 열고 있는 동안 몇몇 사람이 모텔을 운영하는 그 사람을 찾아갔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그 일과, 믿음이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를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의사는 말했습니다. “그래, 빌리, 나도 그걸 믿네. 그런데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내 생각에는 그 사람이 밖에 나가 나무를 만지고, 거기에 믿음이 있다고 말했다면...” 저는 “아닙니다. 그렇게는 되지 않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믿음이 있어도 말인가?” 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믿을 근거가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나무를 만지며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미신입니다. 믿음에는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 의해 오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오느니라.” 그러니 먼저... 이것을 그저 어떤 신문 기자의 말쯤으로 받아들인다면 거기에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기자들은 인간이기에 실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성경은 틀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완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그분의 말씀의 신실하심과 다르지 않습니다. 아니... 여러분도 자기 말보다 나을 수 없고, 저도 제 말보다 나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무엇을 말씀하시면 그것은 영원히 확정된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어떤 일에 대해 결정을 내려 달라는 부름을 받으셔서 결정을 내리셨다면, 다시 같은 일로 부름을 받으실 때 그 결정은 그대로여야 합니다. 한 사람에게는 바꾸셔서 “이 사람에게는 해 주었지만 저 사람에게는 해 주지 않겠다”라고 하실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신다면 처음 결정하셨을 때 잘못 결정하신 것이 됩니다. 그래서 그분은 자신의 말씀을 이렇게 주셨습니다. “네가 만일 믿을 수 있거든...” 어떤 사람이 죄를 용서해 달라고 구해서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죄를 용서하셨다면, 여러분이나 원하는 누구든 똑같은 근거로 나아와, 믿음에 근거하여 겸손히 용서를 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처음 그 사람에게 하셨던 것과 똑같이 해 주셔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병들어 하나님을 부를 때, 하나님께서 단 한 사람이라도 고쳐 주신 적이 있으시다면, 그분께서 치유를 위해 그 사람에게 갖추게 하셨던 것과 같은 근거로 다시 부름을 받으실 때 똑같은 결정을 지키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시다면 실수하신 것입니다. 실수하셨다면 무한하지 않으신 것이고, 무한하지 않으시다면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결국 이 말씀이 진리라는 것을 아는 데로 돌아와야 합니다. 바로 그것이 제가 그리스도 안에서 담대히 설 수 있는 까닭입니다. 저는 그 말씀이 진리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말씀은 결코 실패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실패하실 수 없는 것처럼 말씀도 실패할 수 없습니다. 말씀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이 하나님이셨더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히브리서 4장은 하나님의 말씀에 권능이 있고, 양날 달린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양쪽으로 베며, 갈라 나누고 뼛속 골수에까지 이르며... 마음의 생각과 의도까지 분별한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회중을 바라보시고 그들의 생각을 아셨을 때, 그것이 무엇이었습니까? 그분은 말씀이셨습니다. “처음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이 하나님이셨더라.” 그들은 그분께서 나타나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았어야 합니다. 바로 그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 곧 성령께서는 여러분이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어떤 약속이든 나타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기대는 그 뒤에 믿음이 받쳐 주는 무언가를 바탕으로 세워져야 합니다. 무엇인가 기대한다면, 그것이 약속되었거나 그와 같은 근거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기대를 가지려면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노아를 보십시오. 때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터무니없어 보이는 일을 하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이 이 부흥회에 들어와 무엇인가를 따져 이해하려 한다면, 차라리 처음부터 나가는 편이 낫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렇게는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머리로 아시는 것이... 아니, 사람은 머리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으로 그분을 압니다. 에덴동산에서 사람이 하나님과 사탄 사이에 나뉘었을 때, 사탄은 사람의 머리를 차지했고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차지하셨습니다. 사람은 지성을 가지고 여러 가지를 이치로 따져 이해하려 합니다. 그러나 마음속에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으면 이성으로는 입증조차 할 수 없는 것들을 믿게 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오, 형제님, 이것을 제대로 깨닫고 마음속 깊이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모든 마귀가 지금 당장 펄쩍 뛰며 떠나갈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정말 그렇게 됩니다. 저는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압니다. 제가... 사역한 지 올해로 31년이니,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압니다. 저는 평생 이 성경을 펴 놓고 진심으로 하나님께 무엇을 구했을 때, 그분께서 주시거나 왜 주실 수 없는지 말씀해 주시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물론 제가 원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분께서 더 잘 아시기에 주실 수 없는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도 언제나 오셔서 그 이유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이 참인 줄 압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지키십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의지하셔도 됩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고 하셨을 때, 그는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움직였습니다. 그가 알았기에... 비판하는 사람들이 무슨 말을 했을지 상상할 수 있습니까? 노아는 비가 오기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비가 올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때까지 땅에는 비가 내린 적이 없었습니다. 비판하는 사람들이 “저것 봐. 저 불쌍한 늙은이가 조금 정신이 나간 모양이군” 하고 말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그들은 말했습니다. “노아, 그 비가 어디 있소? 어디 있는지 말해 보시오. 저 위에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데. 저 위에서 내릴 비 같은 것은 없소. 지금까지 내린 적도 없고 앞으로도 내리지 않을 거요.” 그러나 노아는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소. 그것으로 끝이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면 원하실 때 저 위에 비를 창조하실 수도 있소.” 그래서 그는 비가 오기를 기대했고 비에 대비했습니다. 오, 저는 그것이 좋습니다. 준비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그 일이 일어날 준비를 하고, 기대하며 기다리십시오. 이런 말을 하니 벌써부터 신앙의 감동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렇다면 기대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이곳에 부흥을 약속하셨다면 우리는 부흥을 맞이할 것입니다. 부흥을 위해 준비합시다. 하나님께서 치유를 약속하셨다면 그것을 준비합시다. 예수님은 “너희는 또한 내가 하는 그 일들을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을 준비합시다. 모든 것을 치우고 준비하십시오. 우리는 바로 제때 와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어리석어 보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시대에, 이 모든 것이...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하고 물을 것입니다. 그것에 반대되는 것이 무엇이든 저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틀렸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볼 수 없고, 아무런 희망도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면 그래도 행합시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그 일은 일어날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오신다고 믿습니다. 과학은 무엇에선가 꽃가루를 조금 가져다가 점액과 함께 두고, 거기에 무엇을 넣는 식으로 하면 된다고 입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거의 인간의 생명까지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얼마나 똑똑한지... 하늘에 스푸트니크를 띄워 놓고 그 안에서 사람의 심장이 뛰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저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언젠가는 당신이 말하는 그 종교가 전부 미친 소리라는 것을 알게 될 거요.” 아닙니다,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곳에 오실 것입니다! 우리는 천년왕국을 맞이할 것입니다! 영광의 본향으로 갈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기대하기에 준비하고 있습니다. 날마다 기다리고 있습니다! 준비하십시오! 그분께서 언제 오실까요? 저는 모릅니다. 그러나 오늘 오시지 않으면 내일도 기다릴 것입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기에 저는 기대하며, 날마다 그 기대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기대를 가져야 합니다. 노아도 그랬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갈대아 땅 우르 도시에서 내려왔습니다. 아마 시날에서 내려왔을 것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어쩌면 이교도 가정 출신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농장에서 일하는 농부였다고 합시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75세였고 그의 아내는 65세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네 아내 사라에게서 아이를 얻으리라.” 그러자 그는 내려가 모든 준비를 갖추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언제라도 아이가 생길 것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28일 안에 알게 될까요?” “모르겠소. 그때가 아니면 다음 28일일지도 모르지.” 첫 달이 지난 뒤 그가 처음으로 사라에게 이렇게 물었을 것 같습니다. “여보, 몸이 어떻소?” “달라진 것이 없어요.” “하나님께 감사하오. 그래도 우리는 아이를 갖게 될 거요.” “아기 신발을 만들고 작은 옷을 준비하시오. 버즈아이 천 기저귀와 핀도 모두 준비하시오. 우리에게 아이가 생길 테니까. 그렇소. 나는 기대하고 있소! 그렇소. 혼수 상자에 넣어 두고 준비하시오. 아이가 올 테니까.” 일 년이 지났습니다. “여보, 달라진 것이 있소?” “조금도 없어요.” “그래도 우리는 아이를 갖게 될 거요. 나는 기대하고 있소.” 하나님께서는 “네 친족에게서 떠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많은 불신으로부터 떠나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할 때까지는... 온전히 순종하기 전에는 복이 오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는 아버지를 데리고 갔고, 그로 인해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러고는 마침내 롯 때문에 문제가 생겼고... 목자도 말입니다. 그러다가 그런 모든 것에서 떠나자 비로소 온전히 순종했습니다. 그가 온전히 순종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습니다.
오순절 교회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 모든 은사와 그 밖의 것들이 회복되기를 기대해 왔습니다. 그러나 방언을 말하고 통역하기 시작하자마자 조직을 만들고 서로 다른 조직들을 세워 스스로 갈라서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은 40년 동안 이리저리 싸워 왔습니다. 계속 그렇게 하는 한 싸움은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순절 날에 그랬던 것처럼 여러분이 함께 모이면... 함께 모인 다음 하나님께서 무엇인가 행하시기를 기대하십시오. “내 이름으로 불리는 백성이 함께 모여 기도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겠노라.” 우리가 그렇게 하면 무엇인가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기 전에는 기대하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회와 하나님의 교회와 사중복음 하나님의 교회, 일신교와 이신교와 삼신교와 오신교, 그리고 여러분이 빠져든 그 밖의 온갖 작은 주의들이 서로의 차이를 잊고 함께 모여 기도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저는 하늘에서 무엇인가 들려오기를 기대하겠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하겠습니다.”
얼마 전 제가 텍사스주 보몬트에 있을 때 어떤 교단에서... 강단에 누군가를 앉혔기 때문입니다. 한 교회가 저를 후원했습니다. 약 42개 교회였고, 모두 좋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방회 감독이 전화를 해서 말했습니다. “저는 선을 긋겠습니다. 브래넘 씨, 이제부터 당신을 그 선 밖으로 내놓겠습니다. 당신은 침례를 잘못 받은 사람을 강단에 앉혔습니다.” 저는 “저는 다르게 하겠습니다. 다른 선을 그어서 형제님을 그 안에 넣겠습니다. 형제님은 선을 그어 저를 밖으로 내놓으셨지만, 저는 다른 선을 그어 형제님을 다시 안으로 모시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의 장막을 저 멀리까지 넓혀 모든 형제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리라고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 전에는 응답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속한 것들로부터 떠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순절 교회가 세상에 속한 이것저것을 계속 탐낸다면 차라리 그만두는 편이 낫습니다. 다시 참된 복음으로 돌아가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며,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로 돌아가기 전에는 결코 형통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했을 때, 그는 알았습니다... 그가 온전히 행하자 곧 세 천사가 찾아와 아이의 탄생을 알렸고,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계속 기대하고, 계속 기대했습니다. 마침내 자신을 온전히 주님의 뜻 안에 두자 그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 전에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사람들은 때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남들이 보기에 이상하게 행동합니다. 모세는 대단한 신학자였습니다. 이집트 사람들의 모든 지혜를 배웠습니다. 물론 모세가 모르는 것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광야에서 40년 동안 양을 치면서 ‘이집트로 돌아가 내... 아, 수학 실력이나 조금 더 다듬어야겠다’ 하고 생각했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는 아는 것이 너무 많아서 선생들을 가르칠 수도 있었습니다. 교육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을 알고 있었기에 무엇을 배울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많이 알면서도 실패자였습니다.
저는 성경학교를 믿습니다. 우리가 그런 일을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성경학교가 있어야 합니다. 제 아들은 얼마 전에 왁사해치에서 나왔습니다. 딸 하나도 그곳에 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텍사스주 왁사해치에 있는 하나님의 성회 학교입니다. 저는 그런 학교를 믿습니다. 그러나 형제님, 우리 학교와 신학교에서 그저 말을 제대로 하는 법이나 그 밖의 교육 같은 것만 가르친다면... 오늘날 신학교와 모든 곳에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교육 계획이 아니라 구원의 계획입니다. “너희는 온 세상으로 가서 신학교를 세우라.” 아닙니다. “너희는 온 세상으로 가서 교회를 지으라.” 아닙니다. 그런 일들도 좋습니다. “가서 병원을 세우라.” 아닙니다. 교회가 위임받은 일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교회는 병원을 세우고, 학교를 세우고, 건물을 짓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어진 사명은 이것이었습니다. “너희는 온 세상으로 가서 복음을 선포하라.” 복음은 무엇입니까? 바울이 말했듯이 말씀만이 아니라 말씀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복음은 말로만 우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권능과 성령을 실증함으로 이르렀습니다.” 다시 말해 “너희는 온 세상으로 가서 부활의 권능을 나타내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라”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가르치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그 말씀을 다시 살아 움직이게 하려면 말씀 뒤에 성령의 권능이 있어야 합니다. 아멘. 말씀은 살아 움직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그것은 2천 년 전 일이잖습니까”라고 말합니다. 좋습니다, 비판하는 분이여. 지금 당장 그 입을 다물게 해 드리고 싶습니다. 얼마 전 라이프 잡지를 보시면, 사람들이 이집트의 큰 곡물 창고에 들어가 요셉이 저장해 놓은 밀을 꺼내 땅에 심었더니 자랐다고 합니다. 또 무엇이었지요? 해바라기 씨였던가, 무엇이었는데, 4천 년 전의... 옛 투탕카멘 왕의 무덤에서 꺼낸 해바라기 씨를 심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생명을 보존해 두셨던 것입니다! 분명히 그렇습니다. “살갗의 벌레들이 이 몸을 멸할지라도 내가 여전히 내 육체 안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소멸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 위에 알맞은 조건을 갖추어 심으면 처음에 행하셨던 것과 똑같은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맞습니다.
얼마 전 저는 켄터키에서 다람쥐 사냥을 하다가 앉아 있었습니다. 저는... 긴장을 풀려고 그렇게 합니다. 사냥하고 표적을 쏘고 총을 만지작거립니다. 그저 취미입니다. 제게 윈체스터 75번 모델 소총 한 자루가 있었습니다. 사격장에서 50야드 거리에 서서, 카펫용 압정 아홉 개를 연달아 맞혀 종이를 뚫고 박아 넣었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총을 쏠 때... 다람쥐가 있으면 그 눈의 네 귀퉁이가 다 보여야 했습니다. 저를 바라보고 있으면 쏘지 않았습니다. 등을 돌리고 있어도 쏘지 않았습니다. 알맞은 자세로 앉아 있어야 했습니다. 30야드 거리에 있어도 그냥 두었고, 20야드여도 그랬습니다. 꼭 50야드여야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도 충분히 잡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소총이 틀어져서 아무리 해도 다시 제대로 맞힐 수 없었습니다. 총몸이 총상에 맞물리는 자리도 다시 잡아 주고,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습니다. 조였다가 풀었다가 했습니다. 이곳에서 진동이 1천분의 5만 달라져도 100야드에서는 반 인치가 빗나갑니다. 한 부분은 꽉 조여 있고 다른 부분은 느슨한 셈입니다. 제대로 맞추어야 합니다. 그래서 윈체스터 회사에 다시 보냈습니다. 그때 받은 편지가 지금도 집에 있습니다.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브래넘 목사님, 그 소총에는 아무 이상도 없습니다. 이 소총은 25야드에서 탄착군이 1인치 안에 모입니다. 75번 모델은 그보다 더 좁게 모이지 않습니다. 애초에 표적 사격용 총이 아닙니다. 고정 나사 하나만으로 결합되어 있으므로 진동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총을 설계하고 제작한 윈체스터 회사, 총을 시험하는 사람들이 한 말이었습니다. 평생 그 일을 해 온 사람과 총을 설계한 기술자들이 “25야드에서 탄착군이 1인치보다 더 좁게 모일 수는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총으로 50야드 거리에서 압정을 박아 넣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저는 나무 아래 앉아 그저 울고 있었습니다. 우즈 형제님과 제 친구 두 명이 저쪽에서 다람쥐를 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다람쥐 어디를 맞히든 저는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쏘는 것이지요. 어디에 맞아도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저 자신은 ‘조준점이 내려가 뺨에 맞거나 귀 뒤쪽에 맞을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눈을 맞혀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저는 ‘윈체스터 회사가 무슨 말을 하든 상관없다. 나는 이 총이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실제로 그렇게 하는 것을 보았으니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작고 구부러진 나무 아래 앉아서 울고 있었습니다. 너무 신경이 예민해져서 울음이 나왔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주님, 저는 집회를 떠나 여기 숲속에 와서 쉬려고 합니다. 저처럼 이렇게 조그맣고 신경이 예민한 사람이 말입니다. 대체 왜 저를 집회에 보내려고 하셨습니까? 저는 처음부터 실패자입니다. 왜 저 같은 사람을 보내셨습니까? 정말 사내다운 사람, 침착하고 조용한 사람을 택하셨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앉아 계속 울며 주님께 말씀드렸습니다. 두 손을 들고 있었고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그때 음성이 들렸습니다. 덤불 속에 있던 그 빛이었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목적이 있어서 너를 그렇게 만들었다. 이제 너는 그... 그 소총이 제대로 될 때까지 만족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누가 무슨 말을 하든 너는 그것이 50야드에서 압정을 박아 넣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고는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그렇게 만든 까닭이 그것이다. 누가 무슨 말을 하든 상관없기 때문이다. ‘기적의 시대는 지나갔다. 성령 침례 같은 것은 없다’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들으십시오.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사실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사도들도 바로 그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환상을 보고 죽은 자를 일으키고 병자를 고치며 큰 기적과 표적과 이적을 행했습니다. 우리도 영점만 제대로 맞춘다면... “그 시대는... 저 교회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교회가 가장 오래되었습니다. 이것은 저것이었습니다”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제게는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들이 그 총으로 압정을 박아 넣었다면 다시 박아 넣을 수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권능과 약속으로 세상을 뒤흔드는 부흥을 일으켰다면, 우리도 그 약속을 받아들이고 그 일이 일어나기를 기대할 때 똑같이 할 것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믿어야 합니다. 어중간하게 믿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아십니까? 그분께서 말씀하신 뒤 제가 그 나무 아래에서 일어나 밖으로 걸어 나왔을 때, 소총에는 한 번도 손대지 않았습니다. 여기 저와 함께 탄약을 재장전하는 젊은이가 앉아 있습니다. 그 소총은 그때부터 줄곧 50야드에서 그 압정들을 박아 넣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전혀 손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게 무엇인가를 행하시고, 제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보여 주시려 했던 것입니다. 어려운 때에 사람들이 “브래넘 형제님...” 하고 말할 때 말입니다.
얼마 전 어떤 사람이 제게 말했습니다. “우리 교단에 들어오시면 우리가 이러이러하게 해 드리겠습니다. 몇 가지만 타협하시면...” 저는 “타협이라고요? 타협이요?”라고 했습니다. “형제님처럼 박사 학위까지 가진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종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타협하라고 하다니 놀랍습니다. 제 피에는 그런 것이 흐르지 않습니다. 절대로 안 됩니다.” 저는 바로 말씀에 영점을 맞추고 있겠습니다. 저는 성령과 성령의 권능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심을 믿습니다. 그분께서 초대 교회와 같은 권능을 지닌 교회를 일으키셔서 그분을 맞으러 나아가게 하시리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대한다면 틀림없이 그렇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분께서 그 일을 행하시리라고 믿으십시오. 기대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그 모든 신학 지식을 가지고도 아무 진전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겁쟁이가 되어 광야의 산 뒤로 도망쳐 장인의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을 체험했습니다. 그러고는 이집트를 차지하러 내려갔습니다. 여든 살이나 된 노인이 수염을 이렇게 길게 늘어뜨리고, 아마 대머리는 햇빛에 벌겋게 빛나고, 온통 수염에 뒤덮인 채 가는 모습은 무척 우스워 보였을 것입니다. 손에는 구부러진 막대기를 들고, 아내는 노새 위에 앉아 옆구리에 어린아이를 끼고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모세, 어디로 가시오?” “이집트로 내려가 차지할 것이오. 그 나라를 차지하러 가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대로를 믿으면 세상 사람들 눈에는 어리석게 행동하게 됩니다. 한 사람의 침공입니다. 오늘날 러시아만큼 큰 나라를 차지하러 내려가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내려가서... 그런데 그는 그 나라를 차지했습니다. 해냈습니다! 전에는 그곳에서 한 사람을 죽였다가 곤경에 빠졌는데, 다시 내려가서는 온 나라를 죽이고 그 일로 영광을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한 사람을 죽였을 때는 살인자였는데, 그 무리 전체를 죽였을 때는 성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 번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지키신다는 것을 알고 기대하며 내려갔습니다. 아멘. 그는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모세,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오?” “모릅니다. 하지만 그분께서 하시리라는 것은 압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니까요.” 그것이면 됩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250만 명을 이 광야로 데려와 먹이겠다는 것이오? 어떻게 먹일 것이오?”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인가 해 주시리라고 기대합니다.” 실제로 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그는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교회에 가서 찬송가를 부르고, 목사님이 장미와 꽃 이야기를 하고 나면 집으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아, 그래서 우리가 아무 데도 이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오순절 교회들의 문제입니다. 그것이... 저는 여러분의 등을 두드려 주려고 이곳에 온 것이 아닙니다. 진리를 말씀드리러 왔습니다. 오순절 교회는 건물 짓기에 열을 올리고, 교단 만들기에 열을 올렸습니다. 사방으로 흩어지고 갈라지고 나뉘며, 빠져나오고 분리되고 따로 떨어져 나갔습니다. 아, 이제는... 이것이 가장 커져야 하고, 저것이 가장 커져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는 한 여러분은 결코 아무 데도 이르지 못할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제가 주님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함께 모이면, 아!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할 때...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것에 의해 모든 사람들이 너희가 내 제자임을 알리라.” 신학을 조금 덜어 내고 그 안에 사랑을 조금 채우면, 역사와 이적과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사랑을 가져야 합니다. 누구를 향한 사랑입니까? 모든 사람을 향한 사랑입니다. “저 하나님의 성회 무리까지 말입니까? 저 하나님의 교회 무리나 일신교니 삼신교니 오신교니 하는 무리까지요? 내가 그들을 사랑하라고요?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적그리스도입니다.” 형제님, 그렇게 생각한다면 형제님 자신이 길을 잃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 바르게 서 있지 않은 것입니다. 가장 지독한 원수에게도 손을 내밀어 그를 그리스도께 인도하려고 하지 못한다면, 그리스도의 영이 여러분 안에 계시지 않은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자기 땅에 오셨어도 그분의 백성이 그분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원수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렇게 하셨습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여러분 안에 계신 하나님의 영은 여러분도 모든 사람에 대해 똑같은 마음을 품게 하십니다. 여러분이 그런 데 이르면... 그저 그런 척할 수는 없습니다. 마귀는 여러분이 연기하는지 아닌지 압니다. 어느 날 그곳에 있던 간질 앓는 아이가 눈에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보다 열흘 전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마귀들을 내쫓고 죽은 자를 일으키며 병자를 고치고 온갖 기적을 행할 권능을 주셨습니다. 그들은 꽤 잘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돌아와서는 “마귀들도 우리에게 굴복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아주 신이 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에는 모두 꼼짝 못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저 아래서 한 사람을 만났는데, 그가... 자기들 모임에 들어오려 하지 않자 마귀를 내쫓는 것조차 못 하게 했습니다. 쓴 마음이 들어오는 것이 보입니까? “우리가 그를 막았습니다. 그는... 우리 모임에 들어오려 하지 않기에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지 말라. 내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고서 쉽사리 나를 비방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느니라. 그들은 나를 반대하지 않는다. 내 편인 자들은 나를 반대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 태도로는... 거기 간질 앓는 소년을 놓고 울고 기도하고 발을 굴렀습니다. 그들 중 한 사람이 나서며 이렇게 말했을 것 같습니다. “나는 이렇게 했습니다. 형제들은 뒤로 물러서십시오. 다들 방법을 모르시는군요.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가슴을 잔뜩 내밀고 말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 아이를 흔들고 기름을 조금 붓고 다시 흔듭니다. “나는 이렇게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오늘날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잘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잠시 뒤 어떤 분이 조용히 걸어 내려오셨습니다. 아버지가 그분께 달려가 말했습니다. “주님, 제 아이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십시오. 마귀 때문에 몹시 시달리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아이에게서 악한 영을 내쫓으시자 제자들이 와서 물었습니다. “왜 우리는 하지 못했습니까? 우리에게 무슨 문제가 있었습니까?” 그분은 “내가 너희에게 준 권능을 거두었기 때문이다”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주어 사용하게 한 권능을 발휘할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오늘날 교회의 문제입니다. 교회는 느슨해졌습니다. 교회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저 축 처져 죽은 듯 앉아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대를 갖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노성도 시므온은 평판이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잠깐만요. 저는 사업가입니다. 저는 의사입니다. 저는 교수입니다.” 여러분이 다른 사람보다 나을 것은 없습니다.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한다면, 마땅히 되어야 할 모습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아시겠죠? 여러분이 어떤 데 이르면... 여러분은... 서로에게서 존귀를 받기를 기대하면서 어떻게 믿음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언제나 서로를 먼저 존중해야 합니다. 형제자매를 먼저 존중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삶입니다. 그들이 잘못했어도 괜찮습니다. 그들을 걷어차고 몰아붙여서는 결코 더 나아지게 할 수 없습니다. 팔로 감싸 주고 일으켜 주십시오. 저는 이 옛 신앙이 좋습니다. 이 신앙이 무엇을 하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턱시도를 입은 사람과 작업복을 입은 사람이 나란히 앉아 서로 어깨를 감싸고 “형제님”이라고 부르게 합니다. 그렇습니다. 무명옷을 입은 여자와 비단옷을 입은 여자가 서로 “자매님”이라고 부르게 합니다. 분명히 그렇습니다. 총신처럼 곧고 하늘빛처럼 맑습니다. 반드시 그렇게 할 것입니다.
시므온은 평판이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여든 살쯤 된 나이 많은 현자였습니다. 그는 돌아다니며 모든 사람에게 “나는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성경은... 시므온이 왜 그렇게 했습니까? 성령께서 그 위에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다릅니다. 성령께서 그 위에 계셨습니다. 그가 속한 큰 교단에서는 이렇게 말했을 것 같습니다. “불쌍한 노인이군. 한 발은 무덤에 들어가 있고, 다른 발도 빠르게 미끄러지고 있어. 그냥 두게. 얼마 안 있으면 다 끝날 거야. 곧 죽을 테니 하던 대로 즐겁게 지내게 두게. 조금... 무슨 작은 망상 같은 것이 생긴 모양이야. 약간 이상이 있는 거지.” 그러나 시므온은 여전히 믿었습니다. 자기 평판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알렸습니다. 그분을 뵙기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높으신 랍비들이 일어서서 젊은이들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무엇이든 다 안다는 젊은이들, 철학박사와 법학박사와 그 밖의 온갖 박사 학위로 속이 꽉 찬 사람들에게 말입니다. “저 불쌍한 노인이 젊어서는 좋은 제사장이었지만... 아, 그냥 두게. 정신이 조금 이상해졌어.” 그러나 시므온은 돌아다니며 이야기했습니다. 현자로서의 평판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가 말하는 까닭은 성령께서 그 위에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성령께서 내게 계시해 주셨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보게 되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모든 준비를 마쳤습니다. 그분을 뵈면 무엇을 할지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모든 것을 준비했습니다. 그분을 뵙기를 기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령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두 분이 아닙니다. 성령은 오직 한 분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오직 한 분이십니다. 시므온에게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믿도록 인도하신 바로 그 성령께서 제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아멘. 저는 그저 믿습니다! 여러분에게도 똑같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것을 기대합시다. 그 일을 위해 준비합시다. 준비하십시오. 여행을 떠나듯 짐을 모두 싸십시오. 다만 이런 여행에는 짐을 전부 풀어놓아야 합니다. 이미 너무 많이 싸 놓았습니다. 문제는 짐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여행에서는 짐을 내려놓으십시오. 길 한가운데로 들어서야 합니다.
사랑하는 형제들 가운데 한 분, 그 형제님... 드위스라고 하려 했는데, 아마... 아닙니다. 그것은 오럴 로버츠 쪽입니다. 아, 인디애나주 하나님의 성회 감독님입니다. 지금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군요. 어쨌든... 위드 형제님, 로이 위드입니다. 여러분도 모두 아실 것입니다. 위드 형제님입니다. 어느 날... 제 사촌 비버트 형제님은 인디애나주 에번즈빌에서 동부 지역의 가장 큰 오순절 하나님의 성회 교회 중 하나를 맡고 있습니다. 도시의 한 구획 전체가 교회 모임 공간입니다. 그들에게는... 아마 ‘500인실’이라고 불렀던 것 같습니다. 길 건너에 정비소가 있었는데 비버트 형제님이 그것을 통째로 샀습니다. 그의 형제도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주일학교에 몇천 명씩 모을 수 있는지를 두고 경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는 일요일 아침에 그가 직접 가르치는 남성반이 있었는데, 한 반에 500명이었습니다. 제가 그날 아침 남성반에서 말씀을 전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로이 형제님 뒤에 앉아 있었습니다. 로이 형제님이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길 한가운데가 있어야 할 자리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 사람이 저였습니다. 그는 “길 한가운데라고 하더군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 35장에서 “거기에 큰길이 있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나사렛 교인 여러분 중 많은 분이 ‘거룩함의 큰길’이라고 노래하곤 했습니다. 아닙니다. “거기에 큰길과...” ‘그리고’는 접속사입니다. 문장을 이어 줍니다. “그리고 한 길이 있으리니 그 길은 거룩함의 길이라 불리리라.” ‘거룩함의 큰길’이 아니라 ‘길’입니다. 제대로 만든 도로는 물이 쓰레기를 한쪽이나 다른 쪽으로 씻어 내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한쪽으로 가면 아주 차갑고 딱딱해지고, 다른 쪽으로 가면 광신자가 됩니다. 그러나 길은 도로의 바로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곧장 갈보리를 향해, 도로를 따라 곧게 올라갑니다.
위드 형제님이 일어나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것은 올바른 운전 수칙이 아닙니다. 길 한가운데로 운전하면 죽습니다. 그것은 올바른 운전 수칙이 아닙니다.” 그는 제가 뒤에 앉아 있는 줄 몰랐습니다. 저는 그의 어깨를 건드렸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형제님. 너무 땅의 일에만 매여 계시군요. 형제님은... 이 길에서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저쪽으로만 가는 일방통행입니다.” 그는 참 다정하고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형제입니다. 아, 로이 위드보다 더 좋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 모습이 참 재미있었습니다. 그가 “길 한가운데로 운전하면 차에 부딪칩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위드 형제님, 우리는 부딪치지 않습니다. 한 방향으로 곧장, 저쪽으로만 가니까요. 아예 돌아오지 않습니다.” 편도 표입니다. 저는 그 표가 있어서 기쁩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습니까? 편도 표입니다. 성령께서 자신의 말씀을 통해 계시하시는 것이 진리라고 저는 믿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굳게 지킵니다.
시므온은 사람들 사이에서 평판이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중에는 성령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계시를 하나님께 받습니다. “그래도 내가 그렇게 하면... 나는 여기 존스 씨네 사람들과 어울리는데, 그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겠어?” 여러분 여자들 중에는 수지가 머리를 짧게 잘랐다는 이유로 따라서 자른 분이 있습니다. “머리를 길러야 한다면 사람들이 나를 구식이라고 할 거야.” 그렇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것과 다르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 믿지 마십시오. 거짓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침례교인들이 하니까, 장로교인들이 하니까 오순절 교회 안에 끌어들인 이 모든 다른 것들 말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나를 구식 광신자라고 생각할 거야.” 우리 오순절 여자들이 살갗처럼 꼭 달라붙는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봅니다... 얼마 전 한 여자가 제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브래넘 형제님, 그런 옷 말고는 만들지를 않아요.” 그러나 재봉틀도 있고 옷감도 있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면 심판 날에 간음을 범한 죄가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누구든지 여자를 보고 그녀에게 음욕을 품는 자는 이미 마음속으로 그녀와 간음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옷을 입고 죄인이 여러분을 바라보면, 그 사람은 심판 날에 그 일에 대해 답해야 합니다. 여러분도 그 사람 앞에 그런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낸 일에 대해 답해야 합니다. 그러니 실제 행위를 했든 하지 않았든 간음을 범한 죄가 있게 됩니다. “누구든지 바라보는 자”라고 말씀하셨는데 여러분이 자신을 내보였기 때문입니다. 죄인은 실제로 그렇게 할 것입니다. 오, 오순절 교회여, 하나님께로 돌아오십시오! 돌아오십시오!
아주사 거리에서 시작된 때부터 지금까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오순절 운동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 아주사 거리에서는 교회에 찬송가 책을 두는 것조차 부끄러워했습니다. 그들은 영 안에서 노래했습니다. 모든 것이 영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데이비드 듀플레시가 말했듯이 “우리에게 오순절의 손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하나님께는 손자가 전혀 없습니다. 아들과 딸만 있으십니다. 여러분은 자녀를 교회에 데려왔습니다. 부모가 오순절 교인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아이들도 들어와 영아부에 이름을 올리고 자라면서 오순절 교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여자들과 남자들과 교회들을 깨끗하게 했던 그 체험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저도 이제 입을 다무는 편이 낫겠군요. 하지만 이것은 진실입니다! 우리는 다시 그 체험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좋습니다. 저는 주님께서 오시기 전에 무엇인가 행하시리라고 기대합니다. 그리고 제가 그것을 보게 되리라고 믿습니다.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시므온에게 계시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말씀 위에 설 수 있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성령께서 내가 죽지 않을 것이라고 계시해 주셨습니다. 내가 노인인 것은 압니다. 하지만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않을 것입니다.” 다윗도 그것을 기다렸고 모세도 기다렸으며, 에덴동산 이래로 4천 년 동안 사람들이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말했습니다. “나는 보게 될 것입니다! 아멘. 나는 보게 될 것입니다.” “보게 될 줄 어떻게 아십니까?” “내게는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성령께서 계시해 주셨습니다.” 아! 오늘 저녁 저 간이침대에 누워 계신 형제님, 그분께서... 아니, 저 의자에 앉아 계신 여러분에게, 여러분을 낫게 하시겠다고 계시해 주십니까? 그렇다면 받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죄인이여, 성령을 받게 될 것이라고 그분께서 계시해 주십니까? 계시해 주신다면 받게 될 것입니다. 심장병이나 암이나 종양이나 무엇이든 앓는 여러분에게 치유받을 것이라고 계시해 주십니까? 받게 될 것입니다! 그저 인도하심을 따르십시오.
하나님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영에 의해 인도받습니다. 다른 어떤 광신자나 조직이나 그 밖의 무엇에 의해 인도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에 의해 인도받습니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를 길러 낼 감독자와 선생이 되시도록 교회에 주어졌습니다. 우리의 주교나 추기경 같은 사람들이 아니라 성령이십니다. 저는 성령을 기대합니다. 교단도, 주교도, 가톨릭 사제도, 침례교 설교자나 오순절 설교자도 아닙니다. 성령께서 내려오셔서 그리스도의 권능과 부활로 충만하여 그분을 맞으러 갈 교회를 바로 세우시기를 기대합니다. 저는 그것을 기대합니다.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점이나 주름이 없는 교회가 있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에 저는 기대합니다. 어떤 사람이 제게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어느 날 밤 저 위에서 분별할 때 실수할까 두렵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그분께서 제 곁을 지키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분께서 그렇게 해 주시리라고 기대합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그 예언들 중 어떤 것이 틀릴까 두렵지 않습니까?” 두렵다면 말하기를 그만둘 것입니다. 제게 말씀하시는 분을 신뢰하지 못한다면... 그러나 저는 그대로 되리라고 기대합니다. 그분께서 행하시겠다고 하셨고, 저는... 지금까지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결코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성령을 통해 계시하신 그분의 말씀을 지키시리라고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영에 의해 인도받습니다...
이제 마치기 전에 짧은 장면 하나를 그려 봅시다. 내일 저녁 큰 치유 집회를 기대하시겠습니까? 내일 저녁 주님께서 복을 부어 주시기를 기대하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기대합시다. 기대하는 마음으로 계십시오. 저는 교회에 불이 붙고 주님의 영광이 곳곳에 임하며, 죄인들이 제단 주위에 모이고 사람들이 구원받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는 큰일을 기대합니다. 저의 바람과 기대는 아주 높이 올라가 있습니다. 저는 캘리포니아로 나오도록 인도받았다고 느꼈습니다. 그분께서 누군가를 위해 무엇인가 행하실 것입니다. 그것만은 확실합니다. 그렇게 하도록 인도받았다고 느끼기에 저는 그 일이 일어나리라고 기대합니다. 제가 하는 말을 하도록 인도받는다고 느낍니다. 지금 하는 일을 하도록 인도받는다고 느낍니다. 그렇지 않다면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성령의 인도를 받기 원합니다. 그러면 무슨 일이 일어나리라고 기대합니다.
월요일 아침이라고 합시다. 당시 이스라엘에는 약 250만 명이 있었고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늙은 시므온이 들어옵니다. 아마 교회에서 맡은 일이 있었을 것입니다. 잠시 뒤 그가 저 뒤에 서 있습니다. 두루마리를 집어 듭니다. 그는 서재에 앉아 있습니다. 아직 밖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늙었습니다. 아주 늙었습니다. 그곳에 앉아서 두루마리를 집어 들었습니다. 그날 아침에는 이사야서를 펼쳤다고 합시다. 이사야 9장 6절쯤을 읽었습니다. “한 아이가 우리에게 태어났고, 한 아들이 우리에게 주어졌는데... 그의 이름은 조언자... 강력하신 하나님, 평화의 통치자...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할 것이기 때문이라.” “아, 선지자는 누구를 말씀하셨을까? 오실 그 메시아를 말씀하신 것이구나. 성령께서 내가 뵐 것이라고 계시해 주신 바로 그분이야.”
감사하게도 그 시대에는 텔레비전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온갖 선전과 뉴스, 신문과 보도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태어나셨습니다. 그러고 8일 뒤, 250만 명 가운데서 그날 아침 남자아이에게 할례를 받게 하려고 나온 어머니가 수백 명은 되었을 것입니다. 어머니들은 자기 어린아이를 얼마나 사랑합니까. 이도 없는 아기들의 턱을 톡톡 두드립니다. 저는 이가 없는 아기를 보는 것이 참 좋습니다. 작은 잇몸만 반짝거리지요. 어머니들이 고운 수가 놓인 작은 담요에 아기를 안고 줄지어 서서, 아기 뺨을 건드리며 어르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어린 처녀가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안고 걸어옵니다. 제가 역사 기록에 관해 들은 바로는, 우리 주님을 감쌌던 포대기는 외양간에 걸려 있던 소 멍에의 등 쪽에서 벗겨 낸 천이었다고 합니다. 그 멍에로 밭을 갈다가, 거기에 감겨 있던 천을 풀어 아기를 감쌌다는 것입니다. 그 상류층 여자들, 할리우드에서도 손꼽힐 만한 여자들이 그곳을 걸으며 교회에 서 있는 모습이 상상됩니다. 교적부에 이름도 올라 있습니다. 아! 인기 있는 교인들입니다. 작은 아기에게 향수를 뿌리고, 수놓은 것과 아기 신발과 모든 것을 갖추어 앞으로 나옵니다. 제사장은 그들이 헌금 접시에 돈을 많이 내는 사람들임을 알아봅니다. “예, 아무개 부인, 남편분이 아무개 박사님이시지요.” 그들은 그런 대접을 얼마나 좋아하겠습니까! 아, 온통 우쭐해집니다.
그런데 이 어린 여자는 소 멍에의 등 쪽에 감겨 있던 천으로 아기를 싸서 안고 들어옵니다. 몇몇이 말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쉿, 소문 들었어요? 그 소문 말이에요. 저 여자는 요셉과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요셉의 아이를 낳았대요. 아, 끔찍해요. 정말 끔찍하지요. 참 수치스러운 일이에요. 그런데 자기는 처녀로서 낳았다고 한다네요.”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자기의 작은 보물을 품에 안고 있었습니다. 그 아기가 누구의 아들인지 마음속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비웃으며 “그 여자와 어울리지 마세요. 사람들이 함께 있는 것을 보면 당신도 그 부류로 여길 거예요”라고 해도 상관없었습니다. 오늘날도 그렇습니다. 저는 그것이 우리 오순절 교회들에 생긴 문제가 아닌가 걱정됩니다. 여러분은 더는 그들 중 하나가 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성령 침례를 받는 그 옛 체험을 원하지 않습니다. [테이프에 공백] 역시 구식입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그녀는 계속 걸었습니다. 그 아기가 누구의 아들인지 마음속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하고 싶은 대로 말하게 두십시오. 그녀는 그 아기가 누구의 아들인지 알았습니다. 여러분도 그 체험이 어디서 왔는지 압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태어난 아기 그리스도 말입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말했습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그 복음이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권능이기 때문이라.” 저는 그 말이 좋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가 어느 날 서서 베스도에게 말하고 있을 때, 아니, 아마 벨릭스였던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이 말했습니다. “네가 나를 설득하여 거의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도다.” 바울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이단이라 하는 그 길을 따라”—미쳤다거나 정신이 나갔다고 하는 것입니다—“나는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께 그렇게 경배합니다.” 저는 오늘 저녁 그와 손을 맞잡을 수 있어서 기쁩니다. 오순절 교인 여러분도 그렇지 않습니까? 오늘 저녁 “저도 그들 중 한 사람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서 기쁘지 않습니까? 우리가 부르던 짧은 오순절 찬송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다락방에 함께 모여 모두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했네. 성령으로 침례를 받고 섬길 권능이 임했네. 그날 그들에게 행하신 일을 그대에게도 똑같이 행하시리. 나도 그들 중 하나라 말할 수 있어 참 기쁘네. 여러분도 기쁘지 않습니까? 아, 저도 그들 중 한 사람이라 참으로 기쁩니다.
그녀는 아기를 안고 걸었습니다. 모두 “지금 그 여자 가까이 가지 마세요. 저 여자는 성령에 취해 구르는 사람이에요”라고 하거나 그와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보십시오... 제가 방금 잘못된 말을 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렇지 않았기를 바랍니다. 그녀는 그 아기를 알았습니다. 누구의 아들인지 알았습니다. 아무리 수치스럽게 여겨져도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러분도 성령을 받은 적이 있다면 그것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체험임을 압니다. 여러분이 어디서 나왔는지 압니다. 어떤 구덩이에서 건져졌는지 압니다. 무엇이 여러분을 구원했는지, 무엇이 여러분을 달라지게 했는지 압니다. 그녀는 계속 걸으며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든 괜찮아. 신경 쓰지 않으련다. 사랑하는 아가야, 나는 너만 바라볼 거야.” 오순절 교회도 그렇게 그리스도를 사랑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주님, 사랑하는 주님, 저는 주님만 바라보겠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분이시지만 개들에게 내던져지셨습니다. 저는 제 자신을... 참된 그리스도인답게 행동하겠습니다. 사랑과 다정함으로 팔을 내밀며 십자가의 빛 안에서 걷겠습니다. 사랑하는 주님, 저는 주님이 누구의 아들이신지 압니다. 주님은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선물입니다.”
그런데 잠시 뒤, 방 안에 앉아 이사야 9장 6절을 읽던 시므온에게 성령께서... 보십시오.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무엇인가 약속하셨고 여러분이 그것을 기대해 왔다면, 이제 여러분이 그것으로 인도받도록 하시는 것은 성령께 달려 있습니다. 부흥을 기대해 오신 분이 얼마나 됩니까? 좋습니다. 어쩌면 지금이 그분께서 여러분을 그곳으로 인도하신 때일 수 있습니다. 부흥이 준비되고 있다면 그분께서 여러분을 곧장 그 안으로 데려가실 것입니다. 치유를 기대해 오신 분은 얼마나 됩니까? 물론입니다. 좋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지금 바로 그 샘에 와 계십니다. 다윗은 말했습니다. “깊음이 깊음을 부를 때...” 여러분 안에서 깊음이 부르고 있다면, 그 깊음에 응답할 깊음이 어딘가에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그 전에... 여러분은 바닷가에 사는 분들입니다. 물고기 등에 지느러미가 있기 전에, 먼저 그 물고기가 헤엄칠 물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지느러미도 없었을 것입니다. 땅에서 자랄 나무가 있기 전에 먼저 땅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 안에서 자랄 나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제가 자주 말씀드렸듯이, 얼마 전 신문에서 이런 기사를 읽었습니다. 학교에서 한 어린아이가 연필에 달린 지우개를 자꾸 먹었습니다. 학교에서는 집에 연락하여 어머니에게 그 아이가 왜 그러는지 물었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가 보니 아이가 밖에서 자전거 페달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를 검사실로... 아니, 병원으로 데려가 혈액 검사 등을 받게 했습니다. 아이를 검사해 보니 유황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작은 몸이 유황을 갈구하고 있었습니다. 고무에는 유황이 들어 있습니다. 자, 보십시오. 유황을 갈구하는 마음이 생기기 전에 먼저 그 갈구에 응답할 유황이 있어야 했습니다. 다시 말해 창조물이 있기 전에 그 창조물을 창조할 창조주가 있어야 합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을 더 갈망하고 있다면... 하나님을 더 충만히 누리고 싶은 분이 얼마나 됩니까? 물론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누릴 하나님의 충만함이 더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렇습니다. 치유받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을 치유자로 믿는 것이 확실한 만큼, 어딘가에 열린 샘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런 소원도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령을 받기를 갈망한다면, 그것은 어딘가에 성령으로 가득 찬 샘이 열려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창조물을 창조하는 창조주가 반드시 계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 창조물에 응답할 무엇인가도 거기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는 그를 그 샘으로 인도하실 책임이 있었습니다. 아멘. 여러분이 기대하고 있다면 바로 그 성령께서 여러분을 그 샘으로 인도하십니다! 어딘가에는 반드시 열려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그 불타는 갈망이 있다면, 성령께서는 여러분을 그곳으로 인도하실 책임이 있습니다. 임마누엘의 혈관에서 나온 피로 가득 찬 그 샘으로 말입니다. 죄인들, 곧 믿지 않는 자들이 그 피 물결 아래로 잠기면 모든 불신을 잃어버립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생각 속의 어떤 의심도 뛰어넘을 수 있는 자리에 이르기 원합니다. 그렇게 되고 싶지 않습니까? 그렇게 해 주는 샘이 어딘가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찾고 또 찾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찾고, 간증하고, 약속되었기에 기대해 왔다면... 이 책 안에 있는 모든 약속은 여러분의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찾고 있습니다. 그것이 시므온 가까이에 있었다면, 그를 그리스도께서 계신 그곳으로 인도하는 것은 성령의 책임이었습니다. 그것이 성령의 책임입니다. 여러분이 치유를 믿는다면, 여러분을 바로 그 샘까지 인도하시는 것은 성령의 책임입니다. 꼭 그 안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여러분을 그 앞까지 인도하여 보여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령을 구한다면, 그분께서 인도하시도록 맡기기만 할 때 성령께서는 여러분이 성령을 받을 수 있는 바로 그곳까지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날 아침 시므온이 있던 방에서 성령께서 “일어나라!”라고 하시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주님, 제가 어디로 가기를 원하십니까?” “네가 알 일은 아니다. 그저 계속 걸어라.” 그가 옵니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그저 걷습니다. 걸어 나와 방 안에서 사방을 둘러봅니다. “시므온아, 계속 걸어라.” “주님, 어디로요?” “그저 계속 걸어라. 계속 걸어라.” “무엇을 해야 합니까?” “그저 계속 걸어라. 내가 너를 인도하겠다.” 그분께서 그렇게 하시도록 맡기시겠습니까? 자신의 생각을 따르지 말고 그분의 생각을 받아들이십시오. “그리스도 안에 있던 생각을 너희 안에 품으라.” 비판하지 마십시오. 이해할 수 없으면 성경에서 찾아보고 그것이 옳은지 아닌지 확인하십시오. “그저 계속 걸어라.”
이제 그가 여자들이 줄지어 있는 곳으로 걸어갑니다. 어쩌면 300명이나 400명이 서 있었을 것입니다. 그가 그 줄을 따라 걸어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주님, 이상합니다. 주님께서 어느 날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제 위에 임하신 성령께서 많은 것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한 번도 저를 저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아침 저를 어떻게 하시려는지 모르지만, 그저 계속 걸으라고 하셨으니 제가 이렇게 걷고 있습니다.” 잠시 뒤 그의 눈에 그 젊은 여자가 들어왔습니다. 다른 이들은 모두 경계선에 선 신자들처럼 뒤로 물러나 옆에 서서 “기적의 시대는 지나갔다”라는 등의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굶주린 마음은 그것을 찾았을 때 그곳이 어디인지 압니다. 자신이 어떤 곳에 도착했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시므온이 그 아기가 있는 곳 가까이 왔을 때... 늙은 현자의 수염 난 뺨에서 반짝이는 큰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는 손을 뻗어 아기를 품에 받아 안았습니다.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보았습니다. 아, 얼마나 벅찬 마음이었겠습니까! “주여, 이제 주께서 주의 말씀대로 주의 종이 평안히 떠나도록 허락하소서.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모든 사람이 비판하고 조롱하던 바로 이것이 주님의 구원입니다. 이제 주님의 말씀대로 주님의 종이 평안히 떠나게 하옵소서. 이제 갈 준비가 되었습니다. 제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저 뒤 구석에는 눈먼 늙은 여선지자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지자였기에 그 벽들을 꿰뚫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녀도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고 있었고 영께서 그 위에 계셨습니다. 눈이 먼 채 구석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녀가 일어났습니다. 성령께서 “안나야, 일어나라”라고 하셨을 것입니다. 그녀가 성전 안으로 걸어옵니다. 육신의 눈은 멀었지만, 그곳에 성한 눈으로 서 있던 많은 사람보다 훨씬 더 멀리 볼 수 있었습니다. 아, 제가 원하는 시력이 바로 그것입니다. 눈먼 그녀가 건물 안을 이리저리 돌아 걸어옵니다. 그러고는 그 아기가 있는 곳으로 곧장 왔습니다. 아! 그녀는 손을 들고 하나님을 찬송하고 마리아를 축복했습니다. 그들 앞에서 곧바로 예언했습니다. 그 아이가 이스라엘의 많은 사람을 넘어지게 하고 다시 일어나게 할 것이며, 칼이 마음을 찌를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 선지자들이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 어떻게 말했는지도 이야기했습니다.
그 눈먼 노인이 육신의 눈도 없이 그곳으로 인도되어 피로 가득 찬 그 샘을 볼 수 있었다면, 오늘 저녁 성한 눈을 가진 여러분을 십자가로 인도하여 영적인 눈으로 보게 하시는 것은 얼마나 더 잘하실 수 있겠습니까. 세상의 박수를 바라지 마십시오. 그런 박수는 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명성을 기꺼이 희생하십시오. 여러분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 희생하십시오. 기도하기 위해 시간을 희생하십시오. 삶을 희생하고, 카드놀이를 버리고, 세상의 모든 것을 내려놓으십시오. 마귀에게 넘겨주십시오. 그가 갖게 두십시오. 그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동행하십시오.
몇 년 전, 한 위대한 미국 음악가가 러시아를 방문하여 모스크바에서 서곡을 연주했습니다. 그는 원래 대단한 천재였는데, 그날 얼마나 눈부시게 연주했는지 수천 명의 청중이 일어나 소리를 지르고 발을 구르며 다시 연주해 달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젊은이는 그저 서 있었습니다. 이렇게 계속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모두 그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의아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박수를 받아 주지 않는 것입니까? 모두 박수를 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문제도 그것입니다. 우리는 누군가 등을 두드리며 “당신은 이렇고 저렇고...” 하고 말해 주기를 바랍니다. 그런 것을 바라지 마십시오. 세상은 결코 그렇게 해 주지 않을 것입니다. 격려가 온다면 주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두드려 주시는 것으로 올 것입니다. 세상이 “존스 부인은 참 훌륭한...” 하고 말해 주기를 바라지 마십시오. 아닙니다. 그런 것을 바라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비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모든 자는 핍박을 받을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그런 일이 없다면 어딘가 잘못된 것입니다. 살펴보고 돌아와 우리가 어디서 벗어났는지 확인하십시오. 우리는 무슨 자랑거리를 찾습니다. “우리는... 오순절에서 가장 큰 교단에 속해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 속해 있습니다. 저기에 속해 있습니다.” 그런 것을 바라지 마십시오. 그렇게 하면 곧고 좁은 길에서 벗어나 걷는 것입니다.
그 음악가에게 사람들은... 박수를 치고 환호하며 말했습니다. “저 사람이 인사라도 해야지. 그렇지.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 정말 감사합니다. 이번에는 좀 더 좋은 곡을 연주하겠습니다’라고 말해야지.”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고, 사람들은 멈췄습니다. 모두 서로를 바라보다가 다시 박수를 치고 발을 굴렀습니다. 그러나 그 젊은이는 사람들이 발을 구르든 손뼉을 치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사람들은 그의 눈길이 저 위 발코니에 고정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그가 그곳을 올려다보며 보고자 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의 옛 선생님, 나이 많은 음악의 거장이 거기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는 그분이 무슨 말씀을 하실지 알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든 상관없었습니다. 그분이 어떻게 말씀하실지가 궁금했습니다. 저는 다가오는 이 부흥회에서 우리도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생각할지에 마음을 두지 맙시다. 계속 위를 바라보며 스승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실지 살핍시다. 우리에게 성령을 주신 스승, 바르게 살도록 가르치신 스승, 자신의 말씀을 주신 스승, 자신의 생명을 주신 스승이십니다. 우리를 위해 죽으신 그분을 위해 삽시다. 세상에 신경 쓰지 말고 그분께서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살핍시다. 그러한 마음으로 내일 저녁 큰 기대를 품고 와서, 하나님께서 병들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치유하시는 일을 나타내시는 것을 봅시다.
잠시 머리를 숙입시다. 교회 여러분, 기대하고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을 부어 주시기를 기대하고 계십니까? 오늘 저녁 시작하고 싶은 죄인이 여기 있습니까? 제단 앞으로 나와 이렇게 말하고 싶은 분이 있습니까? “브래넘 형제님, 저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싶습니다. 오늘 저녁 하나님께서 저를 구원해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그 기대를 품고 저 문으로 들어왔습니다.” 여기 계신다면 나오십시오. 청년이여, 무엇이 그대를 저 문 안으로 인도했습니까? 젊은 자매여, 무엇이 그대를 저 문 안으로 인도했습니까? 무엇이 그랬습니까? 무엇이 그대를 세상에서 무모하게 사는 십 대 무리로부터 끌어냈습니까? 며칠 전 저녁 이 도시에 들어왔을 때, 한곳에 거의 불량배 무리 같은 사람들이 나와 있었습니다. 오토바이 재킷을 입고 바지를 엉덩이 반쯤까지 내려 입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머리카락이 얼마나 많은지... 여자들보다도 더 풍성하게 머리 위로 올리고 그렇게 앉아 있었습니다. 이 세상이 어떻게 되어 가는 것입니까? 무엇이 문제입니까? 오, 젊은 남녀 여러분, 그 미친 듯한 상태에서 빠져나오십시오! 오늘 저녁 성령께서 여러분을 이곳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손을 들고 오늘 저녁 그분을 여러분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이십시오. 그분께서 여러분의 모든 죄를 없애시고, 받아들이기 전에는 아직 전혀 알 수 없는 기쁨을 주실 것입니다. 젊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이 든 분도 똑같이 할 수 있습니다.
마치는 기도에서 기억해 주기를 바라시는 분은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형제님,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라고 말씀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여기저기 모든 분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좋습니다. 곳곳에 계십니다. 좋습니다. 마음에 간구가 있다면 이렇게 말하십시오. “하나님, 이 부흥회에서 제게 응답해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제게는 구원받지 못한 자녀가 있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아버지나 어머니, 형제나 자매, 사랑하는 사람이나 이웃이 있습니다. 주님, 그들을 기억해 주십시오.” 손을 드십시오. 그분께서 들으실 것입니다. 아실 것입니다.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씀하십시오. “이 사랑하는 사람을 구원해 주십시오.” 그분께 손을 드셨다면 이제 가서 그 사랑하는 사람을 데려오십시오. 데려오십시오. 그렇게 하십시오. 이곳으로 데려와 그들을 샘으로 인도하십시오. 빌립이 가서 나다나엘을 주 예수님께 데려왔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분은 그가 발견되었을 때 어디 있었는지, 나무 아래 있었다는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오늘 저녁 이 교회에 서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특권을 주셔서 기쁩니다. 주님의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주님, 주님의 말씀은 생명입니다. 우리가 구하는 부흥을 보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제 주님, 제 개인적으로도 한 가지 구합니다. 사랑하는 하늘 아버지, 사람들의 마음에 기대를 넣어 주옵소서. 그것을 결코 잊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가 계속 집회를 열게 된다면, 이어지는 모든 저녁마다 오늘 저녁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그들은 기대하고 있습니다. 밤마다 나와 이렇게 말합니다. “어젯밤에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내일 저녁을 기대하겠습니다. 내일 저녁일 것입니다. 제가 그 사람이 될 것입니다. 제가 성령을 받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제가... 제 죄를 회개하기 위해 가장 먼저 제단에 나오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시고 제 안의 세상을 모두 없애 주시는 첫 사람이 되겠습니다. 주님, 제 삶이 부끄럽습니다. 지금까지 해 온 행동이 부끄럽습니다. 제게서 그것을 없애 주시기를 원합니다. 주님, 너무나 위대한 것을 제게 주셔서 다시는 그 돼지 진창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게 하옵소서. 성경이 분명히 말하듯이 ‘돼지가 뒹굴던 진창으로 돌아가고, 개가 자기가 토한 것으로 돌아가듯’ 하지 않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는 많은 오순절 교인이 똑같이 행동하는 것을 봅니다. 세상에서 나왔다가 곧장 다시 그 안으로 들어갑니다. 하나님, 부디 제가 그들을 꾸짖으려 한다고 생각하지 않게 하옵소서. 저는 그저 그들 앞에 성경을 놓아 주려는 것입니다. 주님, 그들이 계속 나아가려면 그것을 밟아 넘어가고 밀쳐 놓아야 할 것입니다. 모든 사람과 저 자신과 우리 모두가 자기 삶을 살펴보고 하나님의 요구에 비추어 보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버지, 허락하옵소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우리의 실수와 잘못을 용서해 주옵소서. 오늘 저녁 주 예수님의 피로 이 작은 교회를 거룩하게 하옵소서. 오 하나님, 이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지금 곧 성령의 만지심을 받게 하옵소서. 아버지, 허락하옵소서. 임하게 하옵소서. 주님, 부디 그렇게 하셔서 바로 이 도시에서 부흥을 시작해 주옵소서. 주님, 허락하옵소서. 이 교회를 본이 되는... 본이 되는 교회로 삼아 주옵소서. 여러 곳에서 사람들이 와서 이 안을 들여다보며 이들의 행실을 보게 하옵소서. 세상에 속한 것들을 떨쳐 버리고 참되고 진실한 오순절의 길, 참되고 진실한 오순절 체험의 길로 돌아와 주님과 흠 없이 동행하는 모습을 보게 하옵소서. 주님, 허락하옵소서. 그러면 다른 교회들도 볼 것입니다. 그들은 말할 것입니다. “저 형제의 교회가 저렇게 되고, 저 모든 사람이 함께 모이며 마음이 하나가 되고, 모든 사람에게 팔을 내밀 수 있다면... 사람들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보십시오.” 주님, 그러면 그들도 주리고 목말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땅의 소금이지만 만일 소금이 제맛을 잃으면 그 뒤에는 아무 데도 쓸모없으므로 밖으로 던져져서 사람들의 발밑에 밟힐 뿐이니라.”
하나님, 사람들이 제 말을 듣지 않았으면 합니다... 가능하다면 그들의 귀를 닫아 주옵소서. 아버지,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오순절 교회가 어떻게 되어 가는지 봅니다. 오 하나님, 거룩함을 고백하면서도 우리는 무엇이 되었습니까? 맛을 잃은 소금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속히 소금의 맛을 되돌려 주셔서 썩어 가는 이 세상에 닿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닿으면 맛을 낼 것이고, 그 안에 생명이 있으면 구해 낼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를 세상에 맛을 내는 사람들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 허락하옵소서. 우리 안에 맛을, 교회 안에 힘을 넣어 주옵소서. 사람들이 이 문으로 들어와 사람들 가운데 역사하시는 주 예수님의 부활의 권능을 보게 하옵소서. 그분께서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심을 나타내시는 것을 보게 하옵소서. 우리가 사람들의 박수나 사람들의 의견을 바라보지 않게 하옵소서. 부흥을 일으키려고 한 집회에 4만 명을 모으는 것, 오 하나님, 그것은 부흥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몇 사람의 마음을 붙드시고 교회를 흔드셔서 참된 오순절 부흥을 일으키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허락하옵소서. 주님께서 기도를 들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저는 들으실 줄 믿습니다. 이 집회와 사람들을 주님께 맡깁니다.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소원을 이루어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교회에서 부르던 이 좋은 옛 찬송을 부릅시다. 저는 이 찬송을 참 좋아합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찬송 중 하나입니다. 화음을 잡아 주십시오.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께서 먼저 나를 사랑하시고 갈보리 나무 위에서 나의 구원을 사셨기에. 아십니까? 실례합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이제 경배합시다. 우리를 베어 내는 메시지를 들었으니 이제 경배합시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께서 먼저 나를 사랑하시고 갈보리 나무 위에서 나의 구원을 사셨기에.
다시 부르는 동안 앞에 계신 분, 뒤에 계신 분과 악수합시다. 아직 집회가 끝난 것은 아닙니다. 노래하면서 악수만 하십시오. 감리교인과, 침례교인과, 일신교인과, 이신교인과, 하나님의 교회 교인과, 하나님의 성회 교인과, 사중복음 교인과 악수하십시오. 우리는 모두 반듯합니다. 어떤 교단의 장벽보다도 더 바깥에 선을 그어서 형제가 됩시다. 오늘 저녁 여기 앉아 계신 분들을 보니 알아보는 분들이 있습니다. 가톨릭 친구도 있습니다. 또 던커파 형제, 아미시 형제도 보이고... 그렇습니다. 오늘 저녁 이곳에 앉아 있는 우리는 모두 하나입니다. 한 영으로 우리 모두가 한 샘에서 마시게 되었습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께서 먼저 나를 사랑하시고 갈보리 나무 위에서 나의 구원을 사셨기에.
때로 말씀이 아주 깊고 세차게 베어 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할례를 받았습니다. 옹이를 잘라 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할례를 받았고, 말씀은 베어 냅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유익합니다. 여러분의 모양을 다듬어 줍니다. 나무의 가지를 쳐 주면 열매를 더 잘 맺습니다. 제멋대로 뻗는 가지가 너무 많아지게 두지 마십시오. 오늘날 문제도 그것입니다. 이쪽저쪽으로 제멋대로 뻗어 나가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단체도 너무 많고, 이것도 너무 많고, 저것도 너무 많습니다. 한 가지, 갈보리로 돌아갑시다. 그곳에서 마음으로 노래하고 겸손히 자신을...
저는 자꾸만... 여기서 어떤 문제를 피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냥 말하겠습니다. 서너 밤 전, 애리조나주 투산에서 열린 저의 마지막 집회에서 백인들이 들어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오순절 교인들이었는데 더없이 뻣뻣했습니다. 가난한 멕시코 사람들이 들어오는 것도 보았습니다. 제가 아침 예배에서 말씀을 전할 때 그들도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침 9시부터 온종일 바로 그 교회에 앉아 있었습니다. 아니, 그들이 들어온 때는 8시, 아마 7시나 8시쯤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앉아서 저녁까지 계속 교회 안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되어 성령께서 건물 안에 임하셨을 때 누가 치유를 받았습니까? 스페인계 사람들, 멕시코 사람들이었습니다. 성령께서 회중 가운데로 곧장 나아가 병들고 고통받는 사람들과 그런 모든 사람을 일으키시며, 바로... 스페인계 사람들, 겸손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기대하며 왔습니다. 세상 것은 바라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만 바라보았습니다.
저는 최근에 독일에 있었습니다. 아간브라이트 형제님, 여기 캘리포니아의 형제 중 한 분으로 그리스도인 실업인회에서... 아마 서기인가, 아니면 회계인가 무엇인가를 맡고 계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실업인회의 임원 중 한 분입니다. 참 좋은 형제입니다. 오늘 저녁 여기에는 계시지 않습니다. 계셨다면 강단 위에 앉아 계셨을 것입니다. 마이너 아간브라이트, 총신처럼 곧은 사람입니다. 훌륭한 분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마이너 아간브라이트를 신뢰하셔도 됩니다. 저는 온갖 집회에 그분과 함께 다녔습니다. 그분은 그날 밤 양쪽에서 주술사가 열다섯 명씩 그곳을 날려 버리려 했을 때에도 거기에 앉아 있었습니다. 폭풍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3만 명에서 4만 명쯤 되는 사람들이 있었고, 천막이 흔들렸습니다. 그 주술사들은 가위로 깃털을 자르고 그것을 저에게 겨누면서 주문을 외웠습니다. 폭풍을 부르겠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했습니다! 그들을 절대로 과소평가하지 마십시오. 그들이 폭풍을 부르며 “이곳을 날려 버리겠다”라고 했고, 그 거대한 곳이 이렇게 위아래로 요동쳤습니다. 저는 “아간브라이트 형제님, 기도하십시오”라고 했습니다. “로스터 형제님, 이 말은 통역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말했습니다. “주 하나님, 저는 며칠 전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 비행기에서 내렸습니다. 곤경의 때에 제 곁을 지키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지금까지 한 번도 저를 저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 이 군중이 모두 흥분해 있고, 수백, 수천 명의 공산주의자들이 여기 앉아 있습니다.” 그 눈먼 어린 소녀는 방금 치유를 받았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하나님, 이 일을 행하신 분은 주님이십니다. 주님께서는 저 구름을 옮기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저 구름을 꾸짖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로 말씀드립니다. 천막 한가운데 바로 위에서 구름이 갈라지며 이렇게 걷히기 시작했고, 1분도 안 되어 햇빛이 비쳤습니다. 천둥소리가 저렇게 멀어져 갔습니다... 그곳에 서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제가 스위스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스위스 사람들은 고생을 겪지 않았습니다. 미국 사람들 같습니다. 잘 먹고, 아! 이런 표현을 용서해 주십시오만 아주 거만합니다. “우리는 이러이러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츠빙글리파입니다. 우리는 루터교인입니다. 그런 소리는 들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가난한 독일 사람들은 온통 짓눌려 있었습니다. 우리가 세어 보니 버스 180대 분량의 사람들이 왔습니다. 유리 지붕을 단 그 큰 버스들이 사람들을 가득 싣고 들어와, 그 큰 경기장에 약 5만 명이 모였습니다. 그러다가...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성령께서 임하기 시작하자 거기 있는 모든 사람들... 그분께서 부르신 사람들은 독일 사람들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앉아 있던 곳에 그대로 두셨습니다. 여전히 병든 채, 여전히 죄 가운데 그대로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대를 품고 두 팔을 벌려 온 독일 사람들을 치유하셨습니다. 그들은 얼마나 짓눌렸던지... 히틀러와 그들 밑에 있던 그리스도인들은 너무나 짓눌려서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아,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십니다. 친구 여러분, 조심하십시오. 여러분은 그렇게 되지 마십시오. 기대를 가지고 오십시오. 준비하십시오. 여러분을 너무 쉽게 얽어매는 작은 짐을 모두 내려놓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지키시리라고 기대하며 오십시오. 그분께서 행하실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이제 눈을 감고 손을 듭시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께서 먼저 나를 사랑하시고 갈보리 나무 위에서 나의 구원을 사셨기에. 사랑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왜냐하면... 눈을 감고 그분께서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 떠올려 보십시오. 믿음으로 피 묻은 그분의 머리카락에 손을 얹고, 그분의 통증과 고통을 느껴 보십시오. ...갈보리 나무 위에서 나의 구원을 사셨기에. 이제 모두 자리에서 일어섭시다. 저는... 이제 그분을 경배하십시오. 손을 들어 그분을 경배합시다. 주님께서 먼저 나를 사랑하시고 갈보리 나무 위에서 나의 구원을 사셨기에.
그분께 콧노래로 불러 드립시다. 저 갈보리를 바라보십시오.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그분의 등은 십자가에 달라붙어 있고, 얼굴에는 피와 침이 묻어 있습니다. 주님, 저는 믿음으로 나아갑니다. 주님의 발과 손에 박힌 못을 바라봅니다. 주님의 옆구리에 찔린 그 상처에 제 손을 얹습니다. 못이 살을 찢는 아픔을 느낍니다. 주님, 제가 살도록 주님께서 죽으셨습니다. 주님, 저 자신을 잊게 하옵소서. 제 교만과 제 삶의 모든 어리석음을 버리게 하옵소서. 주님, 오늘 저녁 제 마음속으로 그것을 느끼게 하옵소서. 이 교회가 마음속으로 느끼게 하옵소서. ...나의 구원을 사셨네. 갈보리에서... 주님은 세상 죄를 제거하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시며, 죄 있는 사람은 저입니다. 제 죄를 없애 주옵소서. 오 하나님의 어린양이여, 제가 나아갑니다. 제 잘못을 고백하며 나아갑니다. 제 실수를 고백하며 나아갑니다. 저는 살 자격이 없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주님, 저를 위해 죽으신 분을 위해 살게 하옵소서. 세상에 속한 모든 것을 버려, 그분 안에서 참된 종으로 발견되게 하옵소서. 아버지, 우리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노래를 콧노래로 불러 드리며 마음에서 우러나 노래할 때 이 교회를 축복하옵소서. 주님께서는 “우리 마음속에서 기쁨의 선율을 만들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즐거움의 기름이 우리 혼 안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이제 마음속으로 경배하십시오. 주님을 사랑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