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감사합니다, 형제님. 감사합니다, 슬레이터 형제님. 주님의 복이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앉으셔도 좋습니다. 이렇게 환영해 주시는데 어떻게 사양할 수 있겠습니까? 슬레이터 형제님, 이렇게 따뜻하게 환영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씀하셨을 때 다른 형제님들, 곧 협의회와 관계된 모든 분의 마음을 대신 전하신 줄 압니다. 그리고 회중 여러분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누군가 환영의 말을 해 주면 언제나 더 환영받는 느낌이 들지요. 한번은 어떤 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제가 설교를 마치고 나가는데 어떤 분이 “브래넘 형제님, 정말 좋았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제 옆에서 걸어가던 다른 목사님이 “사람들이 나를 칭찬하지 않아서 다행입니다.”라고 하더군요. “저는 사람들이 저를 칭찬하는 게 싫습니다.” 저는 “글쎄요, 저는 좋습니다. 저는 그런 말이 좋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이 “글쎄, 저는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는 게 정말...”이라고 하기에, 제가 말했습니다. “목사님과 저 사이에는 차이가 딱 하나 있습니다. 저는 사실대로 말하고, 목사님은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그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일을 잘한다고 말씀하셔서 제가 평소보다 두 배나 더 열심히 일하게 하시곤 했습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그런 말을 좋아합니다. 그런 말을 듣고 싶어 합니다. 또 저는 선의로 해 주시는 좋은 지적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누군가 “여기서 실수하셨습니다. 이런 일을 하셨지요.”라고 하면 제가 알게 됩니다. 그러면 그것을 바로잡으려고 합니다. 저는 언제나 지적을 고맙게 여깁니다. 여러분도 올바른 지적이라면 그렇지 않습니까? 잘못하고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요. 저는... 어떤 분은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제가...”라고 합니다. 물론 말씀해 주셔야지요. 제 형제라면 제게 말해 주셔야 합니다. 저는 알고 싶습니다.
저와 함께 인디애나에 가고 싶은 분 계십니까? 조금 전에 아내에게 전화했는데 눈이 10인치나 내렸답니다. 온통 얼어붙었습니다. 도로가 모두 막혔습니다. 다리도 통행이 금지되었습니다. 그래도 저와 함께 가신다면 얼마든지 환영합니다. 며칠 있으면 녹을 겁니다. 이 계절도 끝나 갈 때라 오래 남아 있지는 않을 겁니다. 저희는 오늘 오후 예배가 끝나자마자 떠납니다. 집에 도착하면 거의 한쪽 문으로 들어갔다가 다른 쪽 문으로 나오는 셈이 되겠습니다. 이틀 정도 머물 수 있습니다. 그런 다음 다시 집에서 약 900마일 떨어진 버지니아로 갑니다. 큰 해병대 기지, 아니 해군 기지 등이 있는 해안으로 내려갑니다. 그분들에게 복음을 전하러 갑니다. 그곳 목회자 모임과 함께 그물을 내려, 어디서든 혼들을 좀 얻을 수 있을지 보려는 겁니다.
거기서 돌아와 오하이오로 올라갑니다. 그다음에는 일리노이주 블루밍턴으로 가고, 시카고로 가서 늘 모이던 레인 공업고등학교에서 집회를 합니다. 4천 명에서 5천 명쯤 앉을 수 있는 크고 좋은 강당입니다. 거기서 우리는... 그 집회는 그리스도인 실업인회 시카고 지부가 후원합니다. 4월 마지막 주가 될 겁니다. 그리고 5월에는 브리티시컬럼비아에 가고, 도슨크리크, 그랜드프레리, 포트세인트존 등으로 계속 올라갑니다. 어떻게 다니는지 아시지요. 그래서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저를 위해 한 가지 해 주셨으면 합니다. 해 주시겠습니까? 기도하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그렇게 해 주시겠습니까? 제가 해외에 가서 주술사들이 서 있고 사방에서 마귀의 세력이 몰려올 때, 여기 저를 위해 기도하는 참된 친구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기도로 저를 붙들어 주신다는 것을 알면 담대히 앞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협의회와 집회를 후원하신 모든 목사님께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습니다. 말씀드렸듯이 며칠 전 아침에 그분들과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그 후로 몇 분이 더 함께하게 된 것 같습니다. 이렇게 훌륭하게 협력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여러 교단이 함께 참여해서 벽을 허물고... 우리는 형제입니다.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그곳에서 이 마음이 결코, 결코 사라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늘 그렇게 지내십시오. 우리는 형제입니다. 그렇게 하신 덕분에 하나님께서 바로 이곳에서, 제가 여러 해 동안 참석한 집회 가운데 가장 좋은 작은 부흥회 중 하나를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이곳 사람들만큼 하나님을 갈망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습니다. 미국 어디에서도 이 골짜기에서 보는 것만큼은 보지 못했습니다.
제가 가게에 들르기도 합니다. 제가 머무는 모텔에서 한 젊은 가톨릭 여성이 침대를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오순절 교인들 옆집에 산다고 했습니다. 그분이 “오순절 교인이세요?”라고 물었습니다. 제가 “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저는 가톨릭 신자예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저도 그렇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어떻게 가톨릭 신자이면서 동시에 오순절 교인일 수 있죠?”라고 하더군요. 제가 말했습니다. “보세요. 가톨릭 성경이... 가톨릭 신자들은 성경이 초기 가톨릭교회의 역사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분은 “네.”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톨릭교회를 세우셨지요?” “그렇지요.” “제자들도 모두 가톨릭 신자였고요?” “네.” “그리고 그들이 성경을 기록했지요?” “네.”
제가 “그렇다면 저는 옛 방식의 가톨릭 신자입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것을 믿으니까요.”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초기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이었다면 저도 가톨릭 신자입니다. 요즘 이런 가톨릭이 아니라 옛 방식의 가톨릭,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 말입니다. 그리고 본래 ‘가톨릭’이라는 말은 ‘보편적’이라는 뜻이지요. 그러니까 그저... 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순절 날 세우신 보편적인 신앙을 믿습니다. 그러니 저는 오순절 가톨릭 신자입니다. 전에 그런 사람 보셨습니까? 참 좋습니다. 비용을 모두 감당해 주신 여러분 한 분 한 분께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모두 지불된 모양이지요? 사랑의 헌금도 거두었습니까? 모두 지불되었군요. 사랑의 헌금도 거두었답니다. 만일 아직 지불하지 못했다면 그 사랑의 헌금을 그 비용에 보태시면 됩니다. 모두 지불되었다고,
형제님들이 방금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는 집회 재정에 관해서는 전혀 모릅니다. 다른 분들이 맡아 주십니다. 저는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며, 하나님께서 어디로 이끄실지, 이 지역에 있는 동안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살피는 일에 전념합니다. 그런데 모든 비용이 지불되었고 저를 위한 사랑의 헌금도 거두었다고 합니다.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없었습니다. 비용만 지불해 주시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하지만 형제자매 여러분, 한 가지는 약속드립니다. 여러분의 생활비에서 떼어 주신 그 돈은 제가 아는 최선의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제게 주실 모든 지혜를 다해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 쓰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처럼 용감하게 나서 주시고 이 사역이 이 골짜기에 올 수 있도록 도와주신 데 대해 하나님께서 갚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백 배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에서 주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이들 곧 내 작은 자들 중 가장 작은 자에게 그것을 하였으므로[그것이 저일 겁니다] 내게 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일로 하나님께서 여러분께 큰 복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이제, 그 돈은... 해외 선교를 위해 쓰일 겁니다. 외국 선교지로 가서 한 푼도 없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 쓰일 겁니다. 신발도 없고 셔츠도 없이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복음을 전합니다. 그런 분들이 어떻게 집회를 후원할 수 있겠습니까? 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저를 초청해서 오가는 경비를 댈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내신 돈은 바로 그 목적을 위해, 예수님께서 구원하려고 죽으신 사람들을 구원하는 일을 돕는 데 쓰일 겁니다. 그 돈이 제 손에 맡겨지는 순간부터 제가 그 돈의 청지기가 된다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 날에 제가 그것에 대해 답하게 하실 겁니다. 반드시 답하게 하실 겁니다. 그래서 저는 선한 청지기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제... 여러분의 귀한 기도와 협력에도 감사드립니다. 매일 밤 이곳이 가득 차서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고 돌아갔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주님의 뜻이라면... 저는 주님께서 가라고 이끄시는 곳에만 가려고 합니다. 인도하심을 느끼는 곳이면 갑니다. 그렇게 갔다가 장애물에 부딪히면 주님의 이름으로 서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사탄아, 보아라. 길을 비켜 주는 게 좋을 것이다. 이것이 주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나는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왔다. 너는 비켜서야 한다.” 우리도 그렇게 사역에 주의를 기울이고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일만 한다면... 잘못된 것처럼 보이든 옳게 보이든 하나님께서 이끄신다면 계속 나아가십시오. 그러면... 먼저 생각할 것은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하는 점입니다. 그다음은 여러분의 동기와 목적입니다. 목적이 바르고 동기가 바르다면 이 산더러 옮겨지라고 말하십시오. 그러면 옮겨질 겁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뜻이고 여러분의 목적과 동기가 바르다면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인내하며...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 재단의 이사님들께도, 혹은 이곳을 어떤 방식으로 운영하시든, 우리가 이 박람회장에서 집회를 열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분들께도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밖에 계신 그 훌륭한 관리인, 아니 문지기 분께도 감사드립니다. 아주 친절한 분입니다. 늘 손을 흔들어 주시고 참 친절하십니다. 또 모든 것... 음악도요... 로스앤젤레스에서 이곳까지 오신 파이퍼 자매님의 찬송을 들었습니다. 정말 좋았습니다, 자매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프레즈노와 베이커즈필드 등 여러 지역에서 오신, 사업을 하시는 제 모든 친구분께도 온 마음으로 감사드립니다. 제가 무언가 빠뜨렸다면 용서해 주십시오. 해 주신 모든 일과 모든 수고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이제 저희가 계속 길을 갈 때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여기 기도를 받으려고 놓아두신 손수건들이 보입니다. 물론 기도하겠습니다. 손수건을 여기 가져다 놓지 못하셨다면 인디애나주 제퍼슨빌, 사서함 325번으로 제게 편지해 주십시오. 그러면... 손수건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보내 드릴 것은... 손수건은 아닙니다. 손수건을 보내 드릴 형편은 안 되니까요. 한 장에 15센트나 20센트쯤 하는데, 한 달에 수천 장을 보내면 어떻게 될지 아시지요. 그럴 형편은 안 됩니다. 하지만 리본과 작은 천 조각들이 있습니다. 한 자매님이 저를 위해 그것을 만들어 주시고, 가져다가... 잘라서 준비해 주십니다. 그리고... 비서가 보내는 정해진 형식의 편지를 받으실 겁니다. 비서가 준비해 드릴 겁니다. 어디서나 늘 기도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편지에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 기도 천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적혀 있습니다. 원하신다면 지금 당장 쓸 일이 없더라도 편지해서 하나 받아 두십시오. 성경 사도행전 19장에 끼워 두십시오. 거기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옵니다. 그리고 그대로 두십시오. 어느 날 밤 아기가 아파서 깨거나 누군가 다치면 그 천을 꺼내 그 사람에게 얹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십시오. 그저 믿으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의 표가 될 겁니다.
돈은 받지 않습니다. 어떤 것에도 돈을 받지 않습니다. 그저 편지해서 받으시면 됩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저희에게 편지만 하십시오. 325라는 숫자가 생각나지 않으면 3달러 25센트를 생각하십시오. 그것도 기억나지 않으면 그냥 인디애나주 제퍼슨빌이라고 쓰십시오. 모두 저를 압니다. 경찰들까지도요. 그러니 꼭 제게 전달해 줄 겁니다. 편지를 보내 주시면 기꺼이 여러분을 섬기겠습니다. 그렇습니다. 경찰들 중에도 제 교회에 오는 분이 많습니다. 판사도 제 교회에 옵니다. 저희는 주변 모든 분과 교제합니다. 혹시... 환상이나 그 밖의 일에 관해 의문이 있으시다면, 그런 일이 어디서... 제퍼슨빌로 오셔서 그 도시의 공무원들에게 물어보시면 어떻겠습니까? 이 환상들이 언제나... 한 번이라도 틀린 적이 있는지 알아보십시오. 아니면 집회에 가서 지켜보신 분에게 물어보십시오. 한 번이라도 틀렸는지 보십시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식당에 앉아 있을 때든, 차를 타고 길을 갈 때든, 어디에서든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여기 줄에서 그것의 아주 작은 부분만 보십니다. 결국 그것을 일으키는 것은 여러분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그것을 일으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사용하실 때는 대개 큰일을 두고 처음부터 끝을 말씀해 주십니다. 조금 전에 방에 앉아서 사랑하는 아겐브라이트 형제님과 이야기했습니다. 그런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아직 일어나기도 전에 어떻게 말할 수 있는지 이야기했습니다. “어떻게...?” 그분은 말했습니다. “저는 정말 이해가 안 됩니다. 어떻게 여기 앉아서 내일 일어날 일을 말할 수 있습니까? 다음 주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디서 누구를 만날지, 그 사람이 무엇을 하고 있을지,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그 사람이 정확히 어떤 질문을 할지, 바로 어떤 상황을 만나게 될지 말입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분이 약속하셨습니다. 그분은 모든 것을 말씀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알기를 원하시는 것만 말씀해 주십니다.
여러분이 “브래넘 형제님, 그분이 저에 관해서는 뭐라고 말씀하실까요?”라고 하신다면, 저는 모릅니다. “뭐라고 말씀하실까요? 모든 것을 알려 주셔서 어려움을 피해 가게 해 주시나요?” 아닙니다. 많은 경우 저는 그런 어려움 속으로 곤두박질치듯 곧장 들어갑니다. 그렇습니다. 만일... 제 어머니가 여기 누워 죽어 가시며 “아들아, 네가 먹을 것을 주려고 나는 배고픈 채로 밥상을 떠난 적이 많단다. 네가 아기였을 때 내 젖으로 너를 길렀지. 내가 나을까, 못 나을까?”라고 하신다면 어떻겠습니까? 저는 모릅니다.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그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여쭈어야 합니다. 그분이 알려 주시면 어머니께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알려 주시지 않으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제가 모르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저...
모두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습니다. 그분께 달려 있습니다. 사람은 거기에 관여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우리를... 한 사람 한 사람 모두를 그렇게 두신 겁니다. 그분은 여러분에게도 똑같은 말씀을 하실 수 있습니다. 누가 되었든 상관없습니다. 그러니 우리 가운데 크거나 위대한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어린 자녀일 뿐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각기 다르게 대하시지만, 그렇게 하시는 분은 동일하신 하늘 아버지십니다. 오늘은 나누어 드린 기도 카드를 가진 모든 분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했습니다. 제가 빌리에게 “몇 장이나 나갔니?”라고 물었습니다. 빌리는 “아, 4백 장이나 5백 장쯤이요. 그게 전부예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조금 전에 이렇게 말하더군요. “나누어 줄 게 너무 많아서 모두에게 기도 카드를 드리도록 형제들을 불러 도움을 받아야 했어요.” 그러니 어서 시작해야겠지요? 그렇지 않으면 끝내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주님께서 도와주실 겁니다. 저는 지난 닷새 동안 바로 지금 이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우리가 그저 일어나도록 맡겨 드리면, 무언가 일어날 시간입니다.
우리는 선물들과 부르심에는 뜻을 돌이키는 일이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일하시도록 허용하는 만큼만 우리가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신유는 설교자가 서류 가방에 넣고 다니는 무언가가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설교자의 손에 들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신유는 그리스도께서 갈보리에서 여러분을 위해 이루어 놓으신 일에 대한 여러분 자신의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행하신 일입니다. 조금 전에 보더스 형제님이 성경을 읽으셨던 것 같습니다. 히브리서... 아니 로마서 4장에 있는 아브라함에 관한 말씀 말입니다. 오늘 오후에는 창세기 22장, 창세기 22장 14절을 본문으로 삼아 읽고 싶습니다. 하지만 읽기 전에 먼저 기도로 그리스도께 나아가야겠습니다. 고개를 숙입시다. 기도 중에 기억해 드리기를 원하시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손을 들고 “하나님, 제게 긍휼을 베푸소서.”라고 하십시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우리가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지극히 겸손히 나아옵니다. 이 귀한 회중을 바라보며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이들을 바라보며 ‘이분들을 이렇게 다 함께 다시 볼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다시 못 볼지도 모릅니다. 일 년 뒤에 다시 온다 해도, 여기 있는 많은 분이 그때는 여기 계시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하는 말에 대해... 심판 날에 답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압니다. 오늘부터 일 년 뒤에는 저 자신도 여기 없을지 모릅니다. 우리 모두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든지 오실 수 있습니다. 그분이 오시면 우리는 그분과 함께 본향으로 갈 것입니다. 우리가 갈 수 있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님, 여기에는 주님을 알지 못하고 갈 준비가 안 된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돌보고 싶은 사람은 바로 그런 분입니다. 오늘 오후에 그들의 마음을 주님께로 돌이킬 어떤 일이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손을 든 모든 분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중 많은 분은 성령으로 충만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틀림없이 대부분이 그러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병들고 도움이 필요합니다. 오, 위대하신 여호와 하나님,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 주소서. 그것은 이미 완성된 일이 이루어졌음을 믿는 믿음일 것입니다.
주님, 지난 네 번의 예배 동안 우리는 이분들의 믿음이 갈보리에서 이미 이루어진 일과,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 그리스도와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이 날에 관해 한 약속에 머물도록 애썼습니다. 주님께서 그 모든 말씀이 진리임을 확증해 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께서 여기 계심을 압니다. 사람들이 기도받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본문을 가지고 말씀을 전할 때 열매를 맺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 말씀에 두신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아버지, 이제 말씀의 사역을 기다리며 주님을 바라보는 우리 모두에게 복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이제 창세기 22장 14절입니다. 아브라함이 그곳의 이름을 여호와이레라 하였으므로 사람들이 이르기를... 주의 산에서 그들이 그것을 보리라, 하느니라.
이제 여호와의 그 한 이름, ‘여호와 이레’를 본문으로 삼고 싶습니다. 하나님께는 구속을 나타내는 일곱 가지 복합 이름이 있습니다. 여호와 이레, 주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희생물을 예비하시리라. 여호와 라파, 너를 고치는 주. 그리고 여호와 닛시 등, 우리의 방패, 우리의 깃발이십니다. 이 이름들은 서로 나눌 수 없습니다. 그분이 여호와 이레이시라면 여호와 라파이기도 하십니다. 그러므로 구속을 나타내는 이 이름들을 분리할 수 없습니다. 여호와 라파라는 이름이 예수님께 적용되지 않는다면, 여호와 이레라는 이름도 그분께 적용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분이 치유자가 아니시라면 구원자도 아니십니다. 그분이 구원자이시라면 치유자이기도 하십니다. 그리고 그 일은 이미 완성되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아브라함에 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이레... ‘이레’라는 말은 ‘주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희생물을 예비하시리라’라는 뜻입니다. 이제 아브라함에 관해 말하면서 창세기 12장, 15장, 17장, 18장, 20장, 22장에서 몇 가지 성경 구절을 준비했습니다. 그 말씀들의 중요한 대목, 핵심 부분만 짚어서 함께 엮어 보고 싶습니다. 오늘 오후의 가르침을 통해 작은 출애굽을 이루고, 그것을 아주 분명하게 드러내어 여러분이 참으로 믿음을 가질 수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한 분도 빠짐없이, 특히 기도를 받으실 분이나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계신 분은 이제 아브라함의 삶에 관한 말씀을 주의 깊게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 언약은 아브라함과 맺어졌습니다. 아브라함만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그의 뒤를 이을 씨에게 주어졌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아브라함의 씨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민족으로 유대인이라고 해서 유대인이 아닙니다. 속으로 유대인인 사람이 유대인입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을 때 아브라함의 씨가 됩니다. 아브라함의 씨가 되어 아브라함과 함께 그 언약 안에 들어갑니다. 그 약속이 아브라함에게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아브라함의 씨가 됩니까? 아브라함이 가졌던 믿음을 가질 때입니다. 보더스 형제님이 성경을 읽으실 때 주목하셨다면, 이것이 아브라함에게 이른 때가 할례를 받은 뒤였습니까, 할례를 받지 않았을 때였습니까? 그가... 할례를 받기 전이었습니까? 그러니 행위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우리의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고,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는 것, 곧 그에게 의로 주어졌다는 것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그가 어떻게 했습니까? 읽은 성경 말씀을 보면, 그는 불신으로 하나님의 약속에 관해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강하여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습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의 씨라면... 이제 잘 들으십시오. 따끔한 말씀이 될 겁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의 씨라면 무엇도 우리를 흔들어 하나님의 약속에서 떠나게 하지 못할 겁니다. 무슨 일이 닥치든 누가 다른 말을 하든, 여러분이 아브라함의 씨라면 아브라함의 씨는 결코 그 약속을 떠나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흔들려서 떠나며 “글쎄, 저는 받지 못했습니다. 다른 세대에 해당하는 말씀이었나 봅니다. 제게는 통하지 않네요.”라고 한다면, 그것은 아브라함의 씨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체험에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시면 그 약속을 지키셔야 합니다. 그 약속을 지키시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그러나 그분이 그 약속을 지키실 때, 그 약속이 살아 움직이게 되는 유일한 길은 여러분의 믿음이 그것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씨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주셨을 때... 아브라함 이후 우리에게는 수천 년의 경험이 쌓였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이 약속을... 아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뒤를 이을 씨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이해하셨습니까? “아멘.” 하십시오. 아브라함과, 그리고... (접속사입니다. 문장을 연결해 줍니다.) 아브라함과 그의 뒤를 이을 씨에게입니다. 그의 ‘씨들’이 아니라 그의 ‘씨’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오리라고 믿었던 그분의 씨입니다. 그를 통해 이삭이 왔고, 이삭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오셨으며, 그리스도를 통해 여러분과 저, 아브라함의 씨가 왔습니다. 여럿을 가리키는 씨들이 아니라 씨, 약속의 씨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아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이스마엘이 있었고, 사라가 죽은 뒤 다른 여자에게서 딸들 외에도 일곱 아들을 두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약속은 아브라함의 씨에게 주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에는 아이를 낳지 못하던 자유로운 여자를 통해 오리라고 그가 믿었던 그 씨에게 말입니다.
이제 배경을 조금 살펴봅시다. 창세기 12장에서 시작해서 창세기 22장 14절까지 나아가겠습니다. 자, 주목하십시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우리가 아브라함의 씨이며, 약속에 따라 그와 함께 상속자가 된다는 것을 이해하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좋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다는 것은 세상의 것들에 대해 죽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성품을 가져야 하겠습니까? 우리가 아브라함의 씨이고 그 약속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아브라함과 함께 상속자라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우리의 성품과 행동은 우리 속에 무엇이 있는지를 드러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약속에 관해 흔들리고 “글쎄, 저는 받지 못했습니다.”라고 한다면 우리는 아브라함의 씨가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씨라고 하면서 나가서 세상의 일들을 행한다면, 아브라함의 씨라고 말만 할 뿐 실제로는 아브라함의 씨가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에 관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오래전에, 성품에 관해 말하자면... 사람들은 제가 교회가 완전히 바뀌어 새롭게 세워지도록 그 성품을 호되게 지적한다고 흔히 저를 나무랍니다. 하지만 저는 교회가 그 특성을 잃기 시작하면 그 특성과 함께 성품도 사라진다는 것을 압니다. 교회가 무너집니다. 성품을 잃으면 특성도 함께 사라집니다. 세상처럼 행동하고 세상처럼 보이며 세상과 어울리기 시작하면 그리스도께서 떠나시고 세상이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저는 남부 사람입니다. 오래전 남부의 여러 주에서는 아프리카에서 노예들을 데려오곤 했습니다. 보어인들이 그렇게 해서 남부에서 그들을... 일하는 말처럼 팔았습니다. 저는 노예들을 해방한 에이브러햄 링컨이 우리가 가졌던 가장 위대한 대통령 가운데 한 분이라고 분명히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누구도 노예가 되도록 의도하지 않으셨습니다. 피부색이나 신조가 어떻든, 어떤 이유로든 사람은 결코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형상대로, 자신과 같은 모습으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노예를 만든 것은 사람이지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들은 노예들을 데려와 팔곤 했습니다. 자동차 매매장에서 중고차를 사듯 사람을 살 수 있었습니다. 중개인들이 돌아다니며 사들였습니다. 농장들을 찾아가 서로 바꾸기도 했습니다. 아주 크고 건장한 남자가 있는데 그 아내는 작고 가냘픈 여자일 수 있지요. 그러면 더 덩치 큰 여자를 사 와서 그 큰 남자와 그 큰 여자 사이에서 더 큰 노예가 태어나게 했습니다. 가축처럼 말입니다. 그런 일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면서 노예 제도를 옳다고 믿을 수는 없습니다. 얼마 전 어느 날, 어떤 박물관을 둘러보고 있었습니다. 머리 둘레에만 양털처럼 하얀 머리카락이 조금 남은 흑인 노인 한 분을 보았습니다. 모자를 손에 들고 전시물을 보고 계셨습니다. 그러다 작은 유리 진열장 안을 들여다보더니 갑자기 뒤로 물러섰습니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고, 그분은... 기도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 노인을 몇 분 지켜보다가 다가갔습니다. “어르신, 무엇 때문에... 무슨 기도를 하십니까?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마음이 움직이셨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분은 저를 아주 이상한 눈으로 보시더니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었소.”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무엇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하시는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저는 목사입니다. 알고 싶어서... 방금 어르신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분은 “이리 와 보시오. 저걸 보시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옷, 여자 옷밖에 보이지 않는데요.”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그런데 저기 얼룩이 보이시오?”라고 물으셨습니다. “네.” 그분은 “저것이 에이브러햄 링컨의 피요.”라고 하셨습니다. “내 옆구리에 손을 대 보면 노예 가죽띠의 자국을 만질 수 있을 거요. 저 피가 내게서 그 노예 가죽띠를 벗겨 주었소.” 저는 생각했습니다. ‘흑인 한 분이 자신에게서 노예 가죽띠를 벗겨 준 에이브러햄 링컨의 피에 대해 저렇게 느낀다면, 자기 혼을 지옥에서, 노예 상태에서, 세상의 것들에서 건져 내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보며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우리가 왜 다시 돌아가 마귀의 노예가 되겠는가?’
사람들은 이 흑인들을 사면서... 여러분이 무엇을 사듯이 소유 증서, 아니 매매 증서를 받곤 했습니다. 어느 날 한 중개인이 어떤 농장에 들렀습니다. 그는... 그 농장에 와서 “팔 노예가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주인은 “여기 백 명쯤 있습니다. 한번 둘러보시면 거래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라고 했습니다. 고향인 아프리카에서 이곳으로 끌려온 사람들은 비통하고 슬펐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을 일하게 하려고 채찍질했습니다. 큰 채찍을 들고 때려서 일하게 했습니다. 그들은 일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일할 기운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완전히 의욕을 잃은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중개인이 돌아보는 동안 눈에 띈 사람이 있었습니다. 훤칠하게 생긴 크고 힘센 청년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채찍질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가슴을 펴고 턱을 든 채 곧바로 나서서 일했습니다. 그래서 중개인이 “저기, 저 노예를 사고 싶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저 사람은 팔지 않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다른 노예들을 모두 감독하는 사람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주인은 “아닙니다. 노예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럼 저 사람은... 혹시 다른 사람들과는 음식을 좀 다르게 먹이십니까?” 주인은 “아닙니다. 모두 저쪽 식당에서 함께 먹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왜 다른 노예들과 그렇게 다릅니까?”
주인은 말했습니다. “저도 그 까닭을 알기 전까지는 늘 궁금했습니다. 고향에서 저 사람의 아버지가 부족의 왕이라는 겁니다. 비록 타국에 있지만 자기가 왕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 왕의 아들답게 행동하는 겁니다.” 노예가 된 흑인도 자기 아버지가 부족의 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왕이심을 아는 남자나 여자는 어떤 행실을 보여야 하겠습니까...? 비록 우리가 이 땅을 걸어가는 타국인이고, 아브라함의 씨라고 고백하는 순례자와 나그네이지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설계하고 만드시는 도시, 언젠가 임할 그 도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행실은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세상처럼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딸답게 행동해야 합니다. 왕의 자녀답게 처신해야 합니다. 유행의 노예, 정욕의 노예, 교만의 노예처럼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어야 하며 그에 맞게 행동하고 처신해야 합니다. 우리의 대화와 모든 것에 하나님의 영이 배어 있게 합시다. 그 언약은 아브라함과 그의 씨에게 주어졌습니다. 주목하십시오. 그 언약은 전적으로 은혜였습니다. 온전히 은혜였습니다. “네가 이렇게 하면”, “네가 이렇게 하지 않으면”, “네가 이것을 하면 내가 이것을 하겠다”라는 조건이 없었습니다. 그분은 “내가 이미 이루었다.”라고 하셨습니다. “네가 무언가를 하면...”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언약을 맺으셨지만 아담은 그것을 깨뜨렸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을 때마다 사람은 그 언약을 깨뜨립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구원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무조건적인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오, 바로 이것입니다.) 아브라함과 그의 씨와 맺으셨습니다. 그 언약은 여러분에게도 조건 없이 주어졌습니다. “네가 하면”이 아니라 “내가 이루었다”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제가 이것이나 저것을 하면 저를 고쳐 주시겠습니까?”라고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은 이미 이루셨습니다. 조건이 없습니다. 이미 이루셨습니다. 여러분은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여러분 안에 계신 하나님의 영이 외치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해 주시겠습니까...?”라고 합니다. 여기 간이침대에 누워 계신 이 연로한 어머님이나, 여기 휠체어에 앉은 이 잘생긴 젊은이, 마비 증세로 떨고 계신 어머님처럼 말입니다. “하나님, 제가 무엇을 해야 하나님께서 저를 고쳐 주시겠습니까?” 그분은 이미 이루셨습니다.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그저 아브라함의 씨가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됩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으로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조건이 없습니다.
“그러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믿기만 하면 됩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그저 받아들이십시오. 바로 여러분 앞에 놓여 있습니다. 여러분은 손을 내밀어 받기만 하면 됩니다. “이것은 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셨습니다.”라고 하십시오. 그리고 무슨 일이 생기든 그 일로 흔들리지 마십시오. 기도를 받은 뒤에 밖으로 나가서 “글쎄, 아무 느낌도 없었어요.”라고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그런 생각이 속에 들어오거나 무언가가 그런 말을 하기만 해도 그것이 마귀인 줄 아십시오. 여러분은 고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조건 없이 여러분은 고침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은 “글쎄요, 저는 고침받을 자격이 없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저도 없습니다.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어떤 사람이냐에 달린 것이 아니라 그분이 어떤 분이시냐에 달려 있습니다. 오, 세상에! 자신을 보지 말고 희생물을 보십시오. 구약 시대로 돌아가서... 희생물에 관한 율법 아래에서 어린 노새 한 마리가 태어났다고 해 봅시다. 그 어린 노새가 귀는 축 늘어지고, 눈은 사팔뜨기이고, 무릎은 안으로 굽어 맞붙고, 꼬리는 꼿꼿이 솟아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참으로 흉한 모습일 겁니다. 그 어린것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할 수 있다면 “아, 이런! 내게는 먹이를 안 줄 거야. 나는 먹을 자격이 없어. 정말이야. 이 귀 좀 봐.”라고 하겠지요. 노새는 귀가 축 늘어져 있으면 좋지 않은 노새입니다. 사팔뜨기에 무릎까지 안으로 굽었으니 전혀 쓸모가 없습니다.
그 녀석은 “나를 가진 주인이 나오기만 하면 도끼를 가져다가 내 머리를 내리치겠지. 나는 먹일 가치가 없으니까.”라고 하겠지요. 그렇습니다. 그런 가치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어미가 말할 수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잠깐 기다려라, 아가야. 말해 줄 게 있단다. 너는 살게 될 거야.” “왜요, 엄마?” “너는 내 맏새끼이기 때문이야. 너에게는 맏아들의 권리가 있단다. 주인이... 제사장은 네가 좋은지 나쁜지 살피지 않을 거야. 네가 살 수 있도록 흠 없는 어린양이 너를 대신해야 하거든.”
자신을 보지 말고 여러분의 어린양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받아들이시는 것은 여러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어린양을 받아들이셨습니다. 그 어린양이 여러분의 자리를 대신했습니다. 오, 하나님! 여러분, 이것이 보이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아닙니다. 여러분에게는 자격이 없습니다. 제게도 없습니다. 우리 중 누구에게도 자격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분께는 자격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렇다고 하셨습니다. 그분을 받아들이셨습니다.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그를 매우 기뻐하노라. 이 사람은 내 아들이니 그의 말을 들으라.”라고 하셨습니다. 아들로 세우시는 날에 “바로 이 사람이라.”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의사가 저는 절대 낫지 못할 거라고 합니다.”라고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의사가 한 말입니다. 의사는 과학을 다루는 사람입니다. 자연이 진행되는 방식을 살펴보고 여러분이 결코 낫지 못한다는 것을 봅니다. 과학적으로 그렇게 나타납니다. 그는 그것을 보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같은 것을 바라본다면 결코 낫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그가 한 말을 바라보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얼마나 쇠약해지고 있는지 바라보지 말고 여러분의 희생물을 바라보십시오. 바로 그것입니다. 여러분이 아브라함의 씨이며 그와 함께 상속자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렇다면 그 약속을 붙드십시오. 그분을 여러분의 치유자로 받아들이고 바로 거기에 머무십시오. 아브라함은 그것을 믿었지만 아이가 태어나기까지 25년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약해지는 대신 날마다 더 강해졌습니다. 더 강해졌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이것이... 불경스럽게 들리지 않기를 바랍니다만, 한 노인을 상상해 보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오셔서 그를 만나셨을 때 그는 일흔다섯 살이었습니다. 아내 사라는 예순다섯 살이었습니다. 자녀가 없었습니다. 사라는 아이를 낳지 못했고 아브라함도 생식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녀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내가 네 아내 사라를 통해 네게 아이를 주겠다. 그 씨를 통해 모든 민족을 구원하겠다. 그것은... 너는 많은 민족들의 아버지가 될 것이다.” 그렇게 나이 든 노인이 예순다섯 살인 아내를 데리고 의사에게 가서, 아이를 낳을 병실을 잡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을 받아들이면... 여러분이 참으로 아브라함의 씨라면 세상의 것들이 어리석게 보입니다. 그리고 세상은 여러분을 어리석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다른 두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아, 지난여름에 아내와 함께 먹을 것을 사러 가게에 갔습니다. 대전도 집회 하나를 마치고 돌아왔는데, 제 고장에서 이상한 광경을 보았습니다. 식료품점으로 가다가 치마를 입은 여자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야, 저 여자는 참 구식이구려. 그렇지 않소?”라고 했습니다. 다른 여자들은 모두 몸의 십분의 구를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제가... 아내가 말했습니다. “빌리, 한 가지 물어볼게요. 보세요. 저 여자... 저 사람들은 성가대에서 노래도 하고 교회에도 다녀요. 왜 저렇게 하는 걸까요?”
저는 “저 사람들은... 이 땅에 속하지 않았소.”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아프리카로 가면 아프리카의 정신을 갖게 됩니다. 스위스로 가면 스위스의 정신을 갖게 되고, 독일로 가면 독일의 정신을 갖게 됩니다. 미국에 오면 미국의 정신을 갖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런데 왜...? 여러분은 “미국 사람들은 모두 저렇게 행동합니까?”라고 묻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미국의 정신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아브라함의 씨라면 이제 더 이상... 여러분은 여기 살고 있습니다. 이곳은 여러분의 나라입니다. 이 나라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참으로는 미국인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입니다. 여러분의 영은 위에서 옵니다. 그래서 여기 아래에 있는 사람들처럼이 아니라, 저 위에서 하는 것처럼 행동하게 합니다. 거룩하고 깨끗하고 의로우며, 사랑하고 서로 존중하며 서로에게 경건한 사랑을 품습니다. 여러분은 위로부터 태어났습니다. 여러분의 영이 저 위에서 왔기 때문에 다르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 약속을 받았습니다. 첫 달이 지난 뒤 사라에게 이렇게 물었을지도 모릅니다. “여보, 몸은 어떻소?” “달라진 게 없어요.” “하나님을 찬양하시오. 그래도 우리는 아기를 갖게 될 거요. 준비하시오. 가서 기저귀감과 옷핀, 아기 신발이며 모든 것을 사 오시오. 우리는 아기를 갖게 될 거요.” 아무런 징후도 없었습니다. 또 28일을 기다렸습니다. “사라, 어떻소?” “아무 변화가 없어요, 여보.” “하나님께 영광! 이제 지난달에 이루어졌을 때보다 더 큰 기적이 될 거요.” 보십시오. 준비하고 있습니다. “옷핀이며 모든 것을 가까이 준비해 두시오. 아기가 올 거요.” 10년이 지났습니다. “여보, 몸은 어떻소?” “달라진 게 없어요.” “하나님께 영광! 전보다 10년이나 더 큰 기적이 되는 거요. 그래도 아기를 갖게 될 거요.” 약해지는 대신 더 강해졌습니다. 25년이 지나 이제 그는 백 살, 사라는 아흔 살이 되었습니다. “사라, 어떻소?” “달라진 게 없어요.” “할렐루야! 그래도 우리는 아기를 갖게 될 거요.” “어떻게 알아요?”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소.” 이제 여러분의 치유에 대해서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까? 젊은이, 자신의 치유에 대해 그렇게 믿을 수 있습니까? 자매님은요? 저기 계신 여러분도 그럴 수 있습니까? 무슨 일이 생기든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으로 확정됩니다. 믿으십시오. 그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아브라함의 자녀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사람이냐가 아니라 그분이 어떤 분이시냐는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언제나 여러분의 희생물을 바라보십시오.
이제 창세기 15장입니다. (여기에 좀 더 오래 머물 수 있으면 좋겠지만 시간이 없습니다.) 창세기 15장입니다. 15장에서 그 언약이 그에게 확증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일이 이루어지기 전에, 언약이 확증되기 전에 온전히 순종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자기 백성에게서 떠나 분리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세상에서 분리되는 대신 세상을 끌고 들어오려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리를 원하십니다. 오늘날 교회에서는 목사를 투표로 선택할 때 정말로... 잘 어울리는 사람을 원합니다. 여러분은 “우리 목사님은 사람들과 참 잘 어울리십니다.”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분은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리시키는 사람들을 원하십니다. 그렇습니다. 분리시키는 사람들입니다. “아, 그분은 참 잘 어울리십니다. 우리와 카드놀이도 조금 하시고 농담도 하십니다. 호수에 가서 우리와 수영도 하시고, 젊은 여자들과 나이 든 여자들까지 모두 데리고 가서 거기 누워 햇볕에 피부를 태우기도 하십니다. 아시다시피 참 잘 어울리는 분입니다.”라고 하지요. 그래요. 여러분은 좀 따끔하게 살갗이 타야 합니다.
저에게는 딸이 둘 있습니다. 그 아이들도 그런 일을 할지 모릅니다. 저는 모릅니다. 만일 그런다면 정말 따끔하게 살갗이 타게 될 겁니다. 저 위에 있는 태양 때문일지, 아니면 제 아버지 찰스 브래넘의 아들인 저 때문일지는 모르겠습니다. 제가 통 널빤지로 있는 힘껏 때릴 테니까요. 틀림없이 제대로 혼이 날 겁니다. 오래갈 겁니다. 앉지도 못하고 벽난로 선반에 음식을 올려놓고 서서 먹게 될 겁니다. 자, 주목하십시오. 말씀드리지만, 우리가 원하는 것은... 잘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라 분리시키는 사람입니다. 분리하십시오. 불신에서 자신을 분리하십시오. 여러분이 어울리는 사람이 “아, 저 홀리롤러 무리 말은 듣지 마.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한다면, 그 사람과 떨어지십시오. 그렇습니다. 여자들의 바느질 모임에 속해 있습니까? 바느질하고 꿰매고, 꿰매고 바느질하고, 또 바느질하고 꿰매면서 아무개 여자의 이야기를 하는 그런 모임 말입니다. 거기 앉아서 “글쎄, 내 말 좀 들어 봐요. 나도 한때는 저 홀리롤러라는 것을 믿었어요. 하지만...”이라고 합니다. 그런 것들에서 자신을 분리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것이면 무엇이든 그것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하십시오.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그들 가운데서 나오십시오. 그들의 부정한 것들을 만지지 마십시오. 그것이 영적으로 말해서 건전한 분별이며 이해입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저들 가운데서 나오고 그들의 부정한 것들을 만지지 말라. 그러면 내가 너희를 받아들이리라.” 세상을 가지고 들어올 수는 없습니다. 그분은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여러분이 할례를 받으면 세상이 여러분에게서 잘려 나갑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의 씨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셨듯이 자신의 약속을 인정하시고 할례를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믿음을 인정하실 때에도 똑같습니다. 그러면 세상을 여러분에게서 잘라 내시고 성령을 주십니다. 그때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든 참으로 믿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그전까지는 가졌다고 말하는 사람일 뿐 실제로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자,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보십시오... 그가 “제가 이런 일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말입니다. 형제 여러분, 잠깐 아주 주의 깊게 들어 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내가 어떻게 할 것인지 알려 주겠다.”라고 하셨습니다. 그 언약은 조건 없이 맺어졌습니다. 그러나 “내가 그것을 네게 어떻게 확증할지 보여 주어, 내가 어떻게 할 것인지 알려 주겠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가서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양 등을 가져다가 둘로 쪼갰습니다. 산비둘기와 집비둘기도 가져왔습니다. 그러고는 어두워질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새들이 오지 못하도록 계속 쫓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만나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렇게 그가 새들을 모두 쫓고 있는데 어두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십시오. 큰 어둠이 아브라함을 덮었고, 그는 잠이 든 것처럼 되었습니다. 태어난 모든 사람에게 마땅히 돌아올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제 그분이... 그분의 언약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에게 어떻게 그것을 확증하셨는지 보십시오. 이 말씀을 들으면 장로교인도 환호해야 할 겁니다. 이제 그가... 어두워졌습니다. 사방이 어두워졌고, 그는 말하자면 죽음의 잠에 빠졌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될 겁니다. 죽을 것입니다. 남자든 여자든 소년이든 어린아이든, 여러분 앞에는 죽음이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그 너머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였습니다. 모든 죄인, 모든 남자와 여자와 소년 소녀가 마땅히 가야 할 곳, 지옥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타락이었습니다. 아담이 우리에게 안겨 준 것입니다. 우리는 죄 가운데 태어나고 불법 가운데 형성되었으며 거짓말하며 세상에 나왔기 때문에 지옥에 가야 마땅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중에는 의로운 사람이 없습니다. 자신을 의지할 수 없습니다. 그분을 의지해야 합니다.
가장 작은 것에서 죄가 있어도 전체에 대해 죄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완전함을 요구하십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완전하게 될 수 있습니까? 자신을 바라보면서 완전하게 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완전하신 한 분, 제 자리를 대신하신 분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분이 완전하신 분입니다. 이제 그 너머로 작은 흰빛이 나아왔고, 그것들이 그 희생물들 사이를 곧장 지나갔다는 것을 봅니다. 이 모든 것을 하나하나 설명할 시간이 있다면 좋겠지만... 시간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거기서 무엇을 하고 계셨는지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여기 작은 종이 한 장이 있습니다. 잠깐 이것을 사용하겠습니다. 우리 미국인들은 서로 언약을 맺을 때 어떻게 합니까? 보통 만나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를테면 이런 식입니다. 우리가 말하기를... 제가 슬레이터 형제님에게 말한다고 해 봅시다. “슬레이터 형제님, 형제님이 어떤 일을 하시면 저도 이러이러한 일을 하겠습니다. 그러시겠습니까?” “그러지요.” “좋습니다. 다음 주에 다시 오겠습니다.” “네, 좋습니다.” “그렇게 합의한 겁니까?” “그렇습니다.” 그러고는 서로 악수합니다. “자, 손을 주시오.” 그것이 언약입니다. 합의한 겁니다.
일본에서는 언약을 맺을 때 서서 서로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언약을 글로 쓰고 합의한 뒤에 무엇을 하는지 아십니까? 서로에게 소금을 뿌립니다. 소금을 뿌립니다. 소금에는 맛이 있지요. 그것으로 접촉하는 겁니다. 그래서 서로에게 소금을 뿌립니다. 그것이 언약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 시대에는 이런 식으로 언약을 맺었습니다. 양피지나 가죽 조각을 가져다가 그 언약을 적었습니다. 어떻게 하겠다는 것을 글로 썼습니다. 그것이 합의 내용입니다. 그런 다음 짐승 하나를 죽였습니다. 희생물이었습니다. 짐승을 죽이고 그 두 조각 사이에 섰습니다. 그리고 이 언약을 두고 맹세한 다음, 이것을 찢었습니다. 한 사람은 한 조각을 가지고, 다른 사람은 나머지 조각을 가졌습니다. 똑같이 만들어 낼 수는 없습니다. 그 언약이 확증될 때, 곧 다시 한데 맞출 때에는 각자 가진 종잇조각이 완벽하게 맞아야 합니다. 한 사람은 이쪽 조각을, 다른 사람은 저쪽 조각을 쥐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말씀하고 계셨습니까? 아브라함의 씨를 통해 이삭이 왔고, 이삭을 통해 예수님께서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제 갈보리에서... 그분이 이 땅에 계실 때는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계신 하나님이셨습니다. 하지만 갈보리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찢어 나누셨습니다. 그분을 찢어 나누시고 몸은 일으켜 자신의 오른편에 앉히셨습니다. 그리고 그 몸 안에 계셨던 영을 교회 위에 다시 보내셔서, 그 몸 안에서 하셨던 일을 계속하게 하셨습니다. 바로 거기서 언약이 확증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교회는 그 동일한 영 안으로 침례를 받을 것이며, 동일한 표적과 동일한 이적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분 위에 계셨던 동일한 성령께서 교회 안에 계실 것입니다. 정확히 같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 영이 내려오셨을 때 오순절에 120명의 믿는 사람들 위에 내려오셔서, 그들에게 침례를 주어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위에 계셨던 동일한 성령께서 교회 위에 계셨습니다. 계속 이어졌습니다.
“조금 있으면 세상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나를 보리라. 내가 너희와 함께, 곧 너희 안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 내가 하는 일들을 너희도 할 것이며, 이보다 더 많은 일도 하리라. 내가 내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라.” 보십시오. 동일한 영께서 아브라함의 씨를 부르십니다. 아브라함의 씨를 통해 그리스도께서 오셨고,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찢어 나누셔서 자신의 영을 교회 위에 두시고 희생물은 자신과 함께 본향으로 데려가실 것이었습니다. 아멘. 형제여, 이것이 마귀를 도망가게 할 겁니다. 마귀를 제자리에 돌려놓을 겁니다. 사람들은 “아, 당신들은 거룩한... 당신들은 이런 사람도 아니고, 이런 짓도 했잖아요.”라고 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무엇을 했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은혜로, 하나님의 약속으로, 성령으로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사람이냐가 아니라 여러분의 희생물이 어떤 분이시냐에 달려 있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느니라.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자는 내게 올 것이니라.” 무엇 때문에 겁을 냅니까? 무엇이 두렵습니까? 여러분은 “글쎄요, 어쩌면 저는 올바른 그리스도인이 아닐지도 모릅니다.”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여러분을 부르시지 않았다면 어떻게 하나님께 올 수 있겠습니까? 그분은 미리 아신 모든 사람을 부르셨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부르신 모든 사람을 의롭다 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의롭다 하신 모든 사람을 이미, 과거형입니다, 이미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아멘. 세상의 기초가 놓인 때부터 완성된 일입니다. 그리스도인 여러분, 보이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누릴 수 있는 특권에 못 미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고 있습니다.
저는 두 부류의 사람을 보게 된다고 자주 말했습니다. 한쪽은 오순절 교인들이고, 다른 한쪽은 근본주의자들입니다. 근본주의자는 자신의 지위가 무엇인지, 어디에 서 있는지 알지만 믿음이 없습니다. 오순절 교인은 믿음은 있는데 자신이 누구인지 모릅니다. 은행에 돈은 있는데 수표를 쓸 줄 모르는 사람과 같습니다. 다른 사람은 수표를 쓸 줄 알지만 은행에 돈이 없습니다. 이 둘을 함께 모을 수만 있다면... 제가 오순절 교인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하나님의 아들딸이며 아브라함과 함께 상속자라는 것을 깨닫게 할 수만 있다면, 어떤 마귀나 어떤 것도 하나님의 백성을 붙잡아 둘 수 없을 겁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그분이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떠나십시오. 하나님이시라면 끝까지 붙드십시오. 아멘. 그분은 언약을 확증하셨습니다.
창세기 17장에서 하나님께서는 기적을 위해 아브라함에게 힘을 주셨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하고 계십니다. 기적을 위해 교회에 힘을 주고 계십니다. 창세기 17장에서 그분은 엘 샤다이라는 이름으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 뜻은... 거기에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어는 ‘엘 샤다이’입니다. 강한 분이라는 뜻입니다. 또는 ‘샤드’는 여자의 젖가슴과 같은 젖가슴을 뜻합니다. 하지만 그냥 ‘샤드’가 아닙니다. ‘샤다이’는 젖가슴을 가졌다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은 백 살, 아흔아홉 살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내가 조건 없이 언약을 맺었다. 네가 자신을 분리했을 때 내가 네게 복을 주었다. 내가 무엇을 할 것인지 네게 보여 주었다. 이제 너는 백 살이고 네 아내는 아흔 살이다. 이제 네게 말하겠다. 너를 위한 내 이름은 이것이다. 나는 젖을 가진 하나님이다.” 오, 놀랍습니다. 두 젖가슴입니다. 그분은 우리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셨고, 그분이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습니다.
병든 어린아기와 같습니다. 건강을 잃고 보채며 울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머니가 그 작은 아기를 안아 가슴으로 데려와 품에 안고, 아기는 젖을 빨아 어머니의 힘을 자기 속으로 받아들입니다. 어머님, 여기 의자에 앉아 계신 어머님이 바로 그렇습니다. 휠체어에 앉은 젊은이도 그렇습니다. 저기 암에 걸려 의사들이 손을 놓은 분도 그렇습니다. 심장병을 앓는 분도, 무슨 병이든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아브라함의 씨이며 그분은 엘 샤다이십니다. 오, 죄 문제로 도움이 필요하다면 이 약속에 기대십시오. 젖을 빨듯 힘을 얻어 구원에 이르십시오. 믿음에서 물러났다면 돌아오십시오. 약속을 붙들고 자신이 더 강해지는 것을 느낄 때까지 그 젖을 빠십시오. 몸의 치유가 필요하다면, 그분은... 그분이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습니다. 힘이 자라기 시작할 때까지 엘 샤다이의 그 젖, 그 약속을 빠십시오. 여러분은 자신이... 느끼기 시작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은 만족을 줍니다. 여자의 젖은 아기에게 만족을 줍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젖은 믿는 사람에게 만족을 줍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다른 것이 무슨 상관입니까? 만족을 주고 힘을 줍니다. 오, 참으로 그렇습니다. 그뿐 아니라 아기가 만족합니다. 더는 보채거나 소란을 피우지 않습니다. 아직 완전히 튼튼해진 것은 아니지만 어머니의 젖을 물고 있는 동안에는 만족합니다. (오, 형제여.) 어머니의 힘을 빨아들입니다. 아기 자신의 힘이 아니라 어머니의 힘입니다. “내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제가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아니라 주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셨느냐입니다. 아멘. 그것으로 됩니다. 만족합니다. 만족을 주는 분입니다. 그 품에 기대어 젖을 빠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25년 동안 바로 그 가슴에 기대어 결코 놓지 않았습니다. 아멘. 어머니가 어떻게 아기를 계속...? 아기가 힘을 빨아들이는 어머니의 젖을 자꾸 놓아 버린다면, 어머니가 어떻게 아기를 계속 만족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아기가 젖을 빨 것처럼 하다가 떠나 버리기를 계속한다면 어떻게 낫고 튼튼해질 수 있겠습니까? 먹으려 하지 않고... 더는 젖을 먹지 않겠다고 거부하는 겁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오, 형제여, 모르시겠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백 살 된 사람에게 얼마나 놀라운 말씀이었겠습니까! 성경은 그의... 남자로서 그가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고 말씀했습니다. 사라의 태도 죽었습니다. 그러니 이런 말씀은 얼마나 놀라운 약속이겠습니까? “아브라함아, 남자로서 네 힘은 죽었다. 사라의 태도 죽었다. 너는 늙었다. 하지만 나는 강한 이다. 내가 그 젖가슴이다. 너는 아기나 다름없지만 나는 젖을 가진 이다. 내가 약속을 주었다. 내가 다시 네게 힘을 줄 수 있다.” 아멘. 오, 무엇을 하시려는 겁니까? 곧 일어나려는 기적을 맞을 준비를 시키시는 것입니다.
이제 창세기 18장으로 넘어가 그분이 무엇을 하셨는지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나는 젖을 가진 이다.” 바로 다음 장인 18장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아브라함은 자기 장막 문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그는 백 살이었고 사라는 아흔 살이었습니다. 한낮의 더위 속에, 열한 시나 열두 시쯤 바깥에 앉아 있었습니다. 형편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는 주님을 따르는 멸시받는 소수와 함께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냉방이 되는 교회는커녕 작은 선교소조차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나무 아래 앉아 있었습니다. 그래야 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원해서였습니다. 그는 아브라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였습니다. 그는... 세상의 것들에서 자신을 분리하고 하나님을 위해 살고 있었습니다. (데이비드, 그걸 잊지 마십시오.) 보십시오. 여러분은 무슨 말인지 몰랐을지 모르지만, 제가 말을 건넨 사람은 알아들었습니다.
나무 아래 앉아 있는데 옷에 먼지가 묻은 세 사람이 다가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했는지 주목하십시오. 며칠 전 밤에도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들은 세 천사였습니다. 두 천사와 하나님 자신이었습니다. 그들은 소돔으로, 그곳 교회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 교단 교회는 혼란 속에 있었고 미지근하고 믿음에서 물러나 있었습니다. 마땅히... 세상의 것들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세상과 함께 그곳으로 내려갔으니 세상과 함께 멸망할 참이었습니다. 오늘날 교회도 그렇게 될 겁니다. 교회 안에 있는 세상은 세상과 함께 멸망할 겁니다. 죄 가운데 사는 사람은 죄와 함께 멸망할 겁니다. 하나님을 향해 사는 사람은 하나님과 함께 일어날 겁니다. 이 천사들이 거기 앉아 있는데...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내가 어떤 일을 위해 너를 준비시키겠다.” 그리고 다른 두 사람을 보내셨습니다. 그들은 오늘날의 설교자가 하듯 말씀을 전하러 소돔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뒤에 남은 이분의 행동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그분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그가 “당신 뒤에 있는 장막에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생명의 때를 따라 너를 찾아오겠다. 내가 너를 찾아와 이제 그 아이를 주겠다.” 그런데 왜 자신을... “네게 약속한 이가 바로 나다. 내가 바로 그이다. (어떻게 하나님이셨다는 것을 의심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네게 약속했다. 찾아올 이도 나다. 아이를 줄 이도 나다. (‘내가’라는 인칭대명사입니다.) 그렇게 말한 이가 바로 나다. 내가 생명의 때를 따라 너를 찾아오겠다.” 그 말씀에 사라가 웃었습니다. “내가 백 살이고 내 주인도 늙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라고 했습니다. 주목하십시오. 그분이 그들에게 무엇을 하셨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오, 그들을 어떻게 준비시키셨습니까! 참으로 철저히 준비시키셨습니다. 보십시오. 사라가 웃었습니다. 그러자 장막을 등지고 계시던 천사께서 “사라가 왜 웃었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사라가 나와서 웃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천사께서는 사라가 한 말... 입으로 한 말이 아니라 마음속으로 생각한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무엇을 하고 계셨습니까? 아브라함이 믿도록, 그분을 믿도록, 그에게 약속된 아들을 받을 수 있도록 준비시키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하셨습니까? 은혜로 여러분을 오순절의 체험 안으로 부르셨습니다. 조건 없이 할례를 주셔서 그 언약을 여러분에게 확증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동일한 하나님이신 자신을 여러분 안에서 나타내고 계십니다. 보이십니까? 동일한 그분이 여러분의 마음의 생각을 아심으로, 약속하신 아들, 우리의 구원자 그리스도께서 오실 일을 맞도록 여러분을 준비시키고 계십니다. 약속하신 아들을 맞도록 여러분을 준비시키고 계십니다. 그분은 약속된 아들을 맞도록 아브라함을 준비시키고 계셨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기다리는 약속된 아들을 맞도록 아브라함의 씨를 준비시키고 계십니다. 오, 그분을 뵙게 되면 얼마나 영광스럽겠습니까?
그분은 무엇을 하셨습니까? 기억하십시오. 그 일이 있고 곧바로, 그 방문이 있고 바로 뒤에 아들이 왔습니다. 소돔은 불탔습니다. 성경을 읽는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이 기다리던 아들, 그 약속이 이르렀습니다. 지금 교회, 아브라함의 씨는 하나님의 아들이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무엇을 하셨습니까?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확증하셨던 것처럼, 여러분을 그 모든 과정 하나하나로 이끌어 오셨습니다. 성령을 주시고 영께서 말하게 하시는 대로 방언을 하게 하시며, 약속하신 이 모든 여러 일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여러분을 바로 여기까지 이끄시고 여러분 가운데 그분의 영을 보내셔서, 바로 직전에 하나님의 분별을 주고 계십니다... 오실 아들을 맞도록 여러분을 준비시키시려는 것입니다. 아멘. 이것이 교회가 받을 마지막 표적입니다.
오늘 아침에 샤카리안 형제님과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분이 전화를 하셨는데 막 워싱턴에 다녀오셨답니다. 그곳 사람들이 모두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지 말씀하시더군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릅니다. 어느 순간이든 서 있는 사람 하나가 무언가를 누르면 세상이 영원 속으로 들어가 버릴 수 있습니다. 모든 산소와 수소가 갈라져 나갈 겁니다. 바다도 마르고 그 밖의 모든 것이 그렇게 될 겁니다. 땅에는 숯덩이밖에 남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교회는 본향으로 갑니다. 비가 한 방울이라도 떨어지기 전에 노아는 방주 안에 있었습니다. 롯이 소돔 밖으로 나온 뒤에야 하나님께서 그 도시를 불태우실 수 있었습니다. 그 폭탄이 터질 때 교회는 영광 가운데 있을 겁니다. 오늘 저녁 해가 지기 전에 그 폭탄이 터질 수도 있다면, 아들의 오심은 얼마나 가깝겠습니까? 여러분이 이해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 가운데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소돔의 날들에 그러했던 것처럼 사람의 아들이 오실 때에도 그러할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온 모든 세월 동안 그분은 이방인들에게 이런 일을 하신 적이 없습니다. 이방인의 역사에서는 이런 일을 본 적이 없습니다. 책과 역사가들의 기록을 찾아보십시오. 한 번도 없습니다. 이것은 저녁 빛입니다. 아침에 비쳤던 바로 그 빛입니다. 저녁때입니다. 그분은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을 맞도록 교회를 준비시키고 계십니다.
이제 다시 주목하십시오. 그렇게 하시려면 아브라함이 이 아들을 받을 수 있기 전에 큰 힘을 주셔야 했습니다. 이제 이 점에서는 제 말을 믿어 주셔야겠습니다. 아니... 원하신다면 말입니다. 잠깐 본론에서 벗어나겠습니다. 성경은 사랑의 편지입니다. 아시다시피 세상에서 제게 가장 사랑스러운 여자는 브래넘 부인입니다. 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아내를 사랑합니다. 정말 사랑합니다. 우리 사이에는 율법주의가 없습니다. 우리는 전적으로... 은혜를 믿습니다. 사랑을 믿습니다.
제가 해외로 나갈 준비를 할 때, 손을 뻗어 아내를 붙잡고 “사랑하는 브래넘 부인이여, 그대는 다른 남편들을 두어서는 안 되느니라. 다른 남자에게 눈웃음을 쳐서는 안 되느니라.”라고 하지 않습니다. 아내도 제 옷깃을 움켜쥐고 “나의 사랑하는 브래넘 형제님, 당신도 다른 아내들을 두어서는 안 되느니라.”라고 하지 않습니다. 정말 대단한 가정이 되겠지요? 여러분은 교회를 그렇게 만들려고 합니다. 아닙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저는 아내를 사랑합니다. 아내를 사랑하는 한 저는 아내에게 충실할 겁니다. 아내가 저를 사랑하는 한 아내도 그럴 겁니다. 우리는 그 일로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런 다음 우리는 무릎을 꿇고 기도합니다. 아내는 하나님께 저를 도와주시라고 기도합니다. 아내는 집에 남아 아이들을 돌봅니다. 저는 주님을 위해 일하러 나갑니다. 지난 15년 동안 제가 집에 있었던 날은 아주 조금뿐입니다. 아내는 젊은 나이에 집에 머물면서 사람들을 맞이하고 자기 몫을 다하려고 애쓰다가 머리가 눈처럼 하얘졌습니다. 제 아내는 참으로 사랑스러운 여자입니다.
가령 제가 해외에 나가 몹시 외로워하는데 어떤 젊은 여자가 “브래넘 형제님, 오늘 밤 예배가 끝나면 저를 데리고 드라이브하시겠어요?”라고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제가 “너무 외롭군요. 그러는 게 좋겠습니다.”라고 한다고 해 봅시다. 그러면 집에 돌아가서 아내에게 말해야 할 겁니다. 아내는 그 일로 저를 용서해 줄 거라고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를 용서해 줄 거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형제여, 저는 그런 일을 하느니 그 자리에서 죽겠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내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아내를 사랑합니다. 오, 그런 일을 하면 저는 견딜 수 없을 겁니다. 그런 일을 하고 아내를 마주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아내를 그토록 사랑한다면 주님께는 어떻겠습니까? 바울은 “모든 것이 적법하나 모든 것이 적절하지는 아니하니라.”라고 했습니다.
아내는 제게 편지를 씁니다. “사랑하는 빌리, 오늘 밤 여기 앉아 있어요. 방금 아이들을 재웠어요. 오늘 빨래를 했고, 이러이러한 일을 했어요. 전화는 3백 번도 넘게 울렸어요. 사람들이 당신이 어디 있는지 물어요. 당신 생각을 많이 하고 있어요.” 이렇게 씁니다. 하지만 저는 그 행간을 읽고 아내가 무슨 뜻으로 말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이 사랑의 책을 아는 것도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이 책을 그토록 복잡하게 여기는 이유는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성경은 서로 모순됩니다.”라며 이런저런 말을 합니다. 그저 저자를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뿐입니다. 이것은 사랑의 편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행하시고 그의 씨에게도 약속하신 일을 보십시오. 다음으로 일어날 일, 곧 아들의 오심 바로 전에 행하신 일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무엇을 하셨는지 아십니까? 두 사람을 다시 젊은 남자와 여자로 돌려놓으셨습니다. 여러분은 “아, 브래넘 형제님, 그건 말도 안 됩니다.”라고 하겠지요. 좋습니다. 알아봅시다. 천사가 그곳에서 사라를... 그들을 만나고 난 직후를 보십시오. 그들은 그랄까지 약 300마일이나 내려가는 긴 여행을 했습니다. 그 나이에... 300마일을 여행하기에는 꽤 나이가 많지 않습니까? 자, 보십시오. 사라는 아흔 살이었습니다. 작은 할머니가 조그만 모자를 쓰고 어깨에는 작은 숄을 두르고 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있습니다. 여기 아브라함은 아주 긴 수염을 늘어뜨리고 어깨를 구부린 채 이렇게 걸어갑니다. 여러분은 “아, 잠깐만요, 브래넘 형제님. 그때 사람들은 오래 살았...”이라고 하겠지요. 아닙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성경은 두 사람 모두 나이 많아 연로했다고 말씀합니다. 그들이 그랄로 내려갔습니다.
사람들이 흔히 믿는 식으로 믿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들이 그곳에 도착했을 때, 블레셋 땅의 왕 아비멜렉은 그 많은 아름다운 블레셋 처녀들 가운데서 사랑할 여자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가 오는 것을 보고는 “내가 기다리던 사람이 바로 저 여자다. 저 여자야. 나는 저 여자에게 사랑에 빠졌다. 오늘 밤에...”라고 했다면 말입니다. 그는 정말 사라에게 반했습니다. 그리고... 그렇지 않습니까? 사라를 아내로 맞으려 했습니다. 백 살 된 할머니를 말입니다. 아닙니다, 형제여. 아닙니다.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라는 아름다운 젊은 여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라는 다시 젊은 여자로, 아브라함은 다시 젊은 남자로 돌려놓으셨습니다.
그들이 이 위대한 표적을 본 뒤 다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아브라함이 “여보 사라, 당신의 예쁜 눈 아래 주름이 사라지고 있소.”라고 말하는 모습이 보이는 듯합니다. 아브라함이 말하... 사라는 이렇게 대답했겠지요. “아브라함, 당신 수염이 다시 검어지고 어깨도 펴지고 있어요.” 무엇이었는지 아시겠습니까? 다시 젊어지고 있었습니다. 이제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사라가 아이를 낳을 수 없었다면, 그 태가... 기억하십시오. 그 당시 여자들은 오늘날처럼 담배를 피우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에는 여자가 담배를 피우면 그 아기들 가운데 80퍼센트가 니코틴 중독으로 18개월 안에 죽는다고 통계에 나옵니다. 젖병에 우유를 넣어 먹여 길러야 합니다. 아기들이 니코틴을 받아들입니다. 그렇게 되면 여기 있는 리키니 엘비스니 하는 아이들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신경증 환자가 됩니다. 그저 신경증 환자들입니다. 정확히 그렇게... 자녀에게 그런 이름을 지었다면 이름을 바꾸십시오. 영적으로 말하면 그 이름은 유다를 뜻합니다.
자, 보십시오. 그가 여기 있었을 때... 그들은 등이 굽은 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자, 보십시오. 그가... 사라가 이 아이를 낳기 전에... 한 가지 묻겠습니다. 사라가 이 아이를 낳기 전에 하나님께서 그 태가 아이를 낳을 수 있게 만드셔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아브라함에게도 같은 일을 하셔야 했습니다. 사라가 이 아이를 낳기 전에... 그들에게는 위생적으로 만든 건강용 젖병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사라가... 그 줄기들, 젖줄기가 말라 있었습니다. 새 젖줄기를 만들어 주셔야 했을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요. 그리고 그 일을 하시기 전에, 어떻게 여자가...? (오, 자매님들, 용서하십시오. 여기서 한 가지 말씀드려야겠습니다.) 백 살 된 여자가 그런 심장으로 어떻게 진통을 겪을 수 있겠습니까? 심장 때문에 죽을 겁니다. 백 살 된 여자입니다. 마흔 살 가까운 여자도 진통을 겪다가 죽습니다. 그러니 백 살 된 여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새 심장을 주셔야 했을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라를 여기저기 기워 주신 것이 아닙니다. 아예 새롭게 만드셨습니다. 아멘. 오, 할렐루야! 아시겠습니까?
아비멜렉은 사라에게 반했고 결혼하려 했습니다. 오, 그가 목욕을 하고 기도를 드린 뒤 잠자리에 들어 다리를 쭉 뻗는 모습이 보이는 듯합니다. “저 아름다운 히브리 처녀, 내일 저 여자와 결혼해야겠다. 밖에 있는 남자는 저 여자의 오라버니니까. 자기가 그렇게 말했으니까.”라고 했겠지요. 그러자 하나님께서 “너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라고 하셨습니다. “너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그 여자는 그 남자의 아내다. 나는 네 기도를 전혀 듣지 않겠다.” 그가 “제 마음이 온전한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저는 거룩하게 사는 사람입니다. 제 마음이 온전한 것을 아십니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도 안다. 하지만 그 여자의 남편은 내 선지자다. 이제 그의 아내를 돌려주고 그가 너를 위해 기도하게 하라. 나는 그의 기도는 듣겠지만 네 기도는 듣지 않겠다.”라고 하셨습니다. 오, 형제여! 하나님의 주권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자기 사람들을 얼마나 잘 아십니까.
아브라함의 씨 말입니다. 제가 무엇을 말하는지 아십니까? 교회입니다. 하나님... 은사들은 어디로 옵니까? 아브라함의 씨인 교회로 옵니다. 오늘날을 보십시오. 어디에 있습니까? 방언하는 이 은사들과 다른 모든 은사가 어디에 있습니까? 어디에 있습니까? 아브라함의 씨 가운데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그것을 인정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아, 그 사람들은 나쁜 일을 많이 했어요.”라고 합니다. 아브라함도 그랬습니다.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했습니다. 남자가 그런 일을 하다니... 그렇지요. 그런 일... 그들이 무엇을 했든 상관없습니다.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희생물을 보고 있으니까요. 그렇습니다. 자, 보십시오. 그 직후 그 어린아이가 태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보여 주셨습니까? 아들이 오고 있다는 그분의 표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면 그다음에는 무엇을 하셨습니까? 그들이 아들을 받을 수 있는 상태가 되게 하셨습니다.
“주께서 오실 때까지 살아서 남아 있는 우리가 잠자는 자들보다 앞서지 못하리라. 나팔 소리가 나고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일어나리라. 우리가 순식간에, 눈 깜짝할 사이에 변화되리라. 함께 채여 올라가 공중에서 주를 만나고 영원히 주와 함께 있으리라.” 오고 계신 그 위대한 아들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분이 교회를 준비시키시는 것이 보입니까?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마지막 표적을 보여 주고 계십니다. 그다음은 무엇입니까? 휴거입니다. 휴거입니다. 아들께서 나타나시고 우리는 변화됩니다. 지금 우리는 공중으로 가서 그분을 맞을 수 없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갈 수 없을 만큼 높이 계십니다. 하지만 조상 아브라함이 그랬듯이 우리는 순식간에, 눈 깜짝할 사이에 변화되어 함께 채여 올라가 공중에서 그분을 만날 것입니다.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것입니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을 것입니다. 오, 하나님! 우리 앞에 얼마나 놀라운 시간이 놓여 있습니까! 아브라함의 씨는 얼마나 행복해야 하겠습니까! 아, 시간이 다 어디로 가 버리는 겁니까? 저는 아직 시작도 못 했습니다. 여기 참고할 성경 구절이 여덟 개나 열 개쯤 더 있습니다. 하지만 그만두어야겠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이제 흐름이 이해되십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씨에게 그 언약들과 약속들과 표적들을 어떻게 주셨는지 보이십니까? 그 분별의 은사는 어디로 갔습니까? 소돔으로 내려갔습니까? 아닙니다. 교단 교회들 가운데로 갔습니까? 아닙니다. 선택받은 교회로 왔습니다. 소돔의 사람들은 복음을 전해 들었습니다. 두 천사가 그곳으로 내려가 설교했습니다. 하지만 뒤에 남으신 이분은 선택받아 불러냄을 받은 교회와 함께, 주님을 따르는 멸시받는 소수와 함께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친히 “소돔의 날들에 그러했던 것처럼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도 그러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 말이 들리십니까? “아멘.” 하십시오. 믿으십니까? “아멘.” 하십시오. 우리가 다음으로 기다리는 것은 무엇입니까? 휴거입니다! 오시는 아들을 만나러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변화되어 채여 올라가야 합니다. 지금 모습 그대로는 채여 올라갈 수 없습니다. 너무 무겁습니다. 오, 하지만 형제여, 어느 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겁니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몸을 갖게 될 겁니다. 그분을 그분께서 계신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 아브라함의 씨인 사랑하는 여러분, 약속을 붙드십시오. 끝까지 붙드십시오. 누구도 그것을 여러분에게서 빼앗아 가지 못하게 하십시오. 여러분이 길을 벗어나 세상으로 나갔고 여자들이 세상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했으며 남자들이 그런 행동을 허용하기 시작했다면, 부끄러운 줄 아십시오. 여러분은 집안의 가장이어야 합니다. 다스리는 사람입니다. 성경은 남자가 다스리라고 말씀했습니다. 독재자가 되라는 말은 아닙니다. 발닦개... 그분은 남자에게 돕는 짝, 사랑하는 이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을...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돌아오시겠습니까? 오늘 하나님께 돌아오겠다고 제게 약속해 주시겠습니까? 저는 언젠가 여러분을 만나야 합니다. 그곳에 서 있어야 합니다. 그날 그분이 저를 들어가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온 마음으로 그분을 섬기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주신 헌금은 제 아이들을 먹이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저를 위해 여러 일을 해 줄 겁니다. 제가 어떻게 여러분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짓을 한다면 저는 비열한 위선자일 겁니다. 하지만 제가 여러분에게 전하는 설교를 들으십시오. 주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어서 하나님께 돌아오십시오. 어서 달려 돌아오십시오. 이렇게 말하십시오. “주님, 제가 주님에게서 멀리 떠났습니다. 주님, 이제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것을 모두 버리겠습니다. 저는 왕의 딸이 되고 싶습니다. 왕의 아들이 되고 싶습니다. 의롭게 서고 싶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상관없습니다. 저는...”
이것은 각 사람의 문제입니다. 그분은 데려가실 때... 포스퀘어 교인만 데려가시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성회만, 일신교만, 이신교나 삼신교만, 혹은 그 밖의 어느 무리만 데려가시는 것도 아닙니다. 각각의 무리에서 마음이 진실한 사람들을 데려가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교회나 조직의 문제가 아니라 각 사람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그분께 돌아오십시오. 그렇습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퍼져 나갈 겁니다. 그 사람들도 그렇게 하고 싶어질지 모릅니다. 여러분의 빛을 비추십시오.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들이 멸망하기를 바라지는 않으시겠지요. 만일 그들이 멸망하기를 바란다면 여러분의 마음에 문제가 있는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원수였던 우리가 구원받도록 죽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마치겠습니다. 우리가... 보십시오. 그 어린아이가 열두 살이 된 직후... (이제 마치고 기도 줄을 시작하겠습니다.) 이 말씀을 아주 주의 깊게 들으십시오. 그 어린아이가 열두 살쯤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저 비살리아에 있는 사람들에게 내가 참으로 약속을 지킨다는 것을 보여 주겠다. 나 자신을 두고 그 약속을 지키겠다고 맹세했기 때문이다.” 그분은 맹세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만 아니라 그의 뒤를 이을 씨에게도 맹세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것과 똑같이 여러분에 대해서도 맹세하셨습니다. 언약이 아브라함과 그의 씨와 맺어졌음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그들이 내 말씀을 굳게 붙들기를 원한다는 것을 보여 주겠다. 언젠가 내게 윌리엄 브래넘이라는 종이 있을 것이다. 그가 그곳에서 설교할 것이고, 그의 앞에는 병든 사람들이 모여 있을 것이다. 그때는 바로 마지막 때일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그런 표적들을 행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들이 말씀을 굳게 붙들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다. 그것이 말씀이 아니라면 내가 확증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미 그들을 고쳤다. 그들도 무언가를 해야 한다. 내가 그저 가져다가 그들 속에 부어 넣을 수는 없다. 그들이 직접 와서 받아야 한다.” 여러분 모두 이 말을 들으십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이중으로 확실히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아이를 데리고 내가 보여 줄 산꼭대기로 올라가거라. 거기서 그를 죽여라. 내가 그 아이에게서 나오는 민족들의 아버지가 되게 너를 만들겠다. 그의 씨에서 그 영원한 씨를 일으키겠다. 너를 민족들의 아버지로 만들겠다. 하지만 그를 산으로 데려가 죽여라.”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제 그는 이미... 백열다섯 살쯤 되었습니다. 어떻게 아들을 산으로 데려가 죽여서 자기의 유일한 소망을 없애 버릴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보십시오. 그는 종 하나를 데리고 갔습니다. 아이의 어머니에게는 말할 수 없었습니다. 아이를 데려가 죽이겠다고 그 아름다운 어머니에게 말하는 것은 너무나 괴로운 일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그저 나무를 쪼개 자루에 넣고 노새 등에 실었습니다. 그리고 종 두 명을 데리고 사흘 길을 갔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의 발은 휘발유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걸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순찰 일을 할 때 7년 동안 하루에 30마일을 걸었습니다. 그것도 썩 잘 걷는 편은 아닙니다. 건강한 남자라면 누구나, 적어도 당시 아브라함처럼 젊은 사람이라면 하루에 25마일쯤 걸을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75마일이나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그러고는 머리를 들어... 아니, 눈을 들어 멀리 있는 산을 보았습니다. 그는 그 산으로 갔습니다. 거기 도착해서 말했습니다... (이것을 보십시오. 이제 창세기 22장에서 마치려 합니다.) 노새를 맡은 종들에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여기 머물러 있으라. 나와 아이는 저기에 가서 경배하리라. 나와 아이가 돌아오리라.” 어떻게요? 어떻게 아이가 돌아옵니까? 그 아이를 죽이러 데려가는 것이 아닙니까? 아브라함은, 나중에 그에 관한 하나님의 해설이 기록되었듯이, 하나님의 약속에 관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가 죽은 자에게서 받듯 그 아이를 받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자신이 백 살로 거의 죽을 나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이를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실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나와 아이가 돌아오리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삭의 등에 나무를 지웠습니다. 자기 나무, 제단의 나무를 등에 지신 그리스도를 보여 주는 얼마나 완전한 모형입니까! 그렇게 산을 올라갔습니다. 그들은 그곳에 이르러 제단을 만들었습니다. 풀과 나뭇가지 사이로 나가 돌들을 주워 늘어놓고 그 위에 불을 놓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손에 불을 들고 있었고, 그 불로 제단에 불을 붙였습니다. 어린 이삭이 이상하게 여겼습니다. “아버지, 여기 제단이 있고 나무가 있고 불도 있습니다. 그런데 희생물로 드릴 어린양은 어디 있습니까?”라고 했습니다. 형제 여러분, 이 말을 들으십시오. 여러분의 마음 깊은 곳까지 들어가게 하십시오.
아브라함이 아이를 보며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어린양을 예비하시리라.” 오, 놀랍습니다. 어떻게요? 어떻게요? 그것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그들은 그 높은 산꼭대기에 있습니다. “이삭아, 얘야, 등을 돌려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이의 손을 묶었습니다. 이삭을 보십시오. 발버둥 치거나 소리 지르지 않고 죽음에 자신을 내맡겼습니다. 아브라함의 참된 씨이신 하나님께서 기꺼이 우리를 대신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자기 아버지에게 손이 묶이고 발이 묶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아이를 제단 위에 눕혔습니다. 아브라함의 마음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사랑스러운 어린 아들의 작은 곱슬머리, 유대인의 검은 머리카락을 잡아 눈을 가리지 않도록 이렇게 뒤로 넘겨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엄마가 뭐라고 생각할까?’라고 생각했습니다. 머리를 뒤로 넘겼습니다. 아닙니다. 그런 생각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아버지께서 어떻게 생각하실지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칼을 뽑아 자기 아들의 작은 머리를 이렇게 뒤로 젖혔습니다. 손이 떨리고 가슴이 거의 입 밖으로 튀어나올 듯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여 자기 아들의 목숨을 거두려고 손을 들었습니다. 그 손을 내리치려는 순간 성령께서 그의 손을 붙드셨습니다. “아브라함아, 손을 멈추어라. 이제 네가 나를 믿는 줄 아노라.”라고 하셨습니다. 바로 그때 아브라함에게 무슨 소리가 들렸습니다. 바로 뒤에 숫양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암양이 아니라 숫양, 수컷 양이 풀숲에 뿔이 걸려 있었습니다. 몇 분 전에는 거기 없었습니다. 거기서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100마일이나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사자도 있었고 자칼과 온갖 짐승도 있었습니다. 늑대가 잡아먹었을 겁니다. 또 한 가지, 물도 없는 산꼭대기에 있었습니다. 어떻게 거기에 왔습니까? 여호와 이레, 주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희생물을 예비하셨습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였습니다. 그것은 환상이 아니었습니다. 환상이 아니었습니다. 환상은 피를 흘리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숫양을 가져다가 제단 위에 놓고 목을 베었습니다. 그의 아들 대신 그 양에게서 피가 흘러나왔습니다. 환상이 아니었습니다. 숫양이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분은 창조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위하여 희생물을 예비하실 수 있습니다. 젊은이, 어떻게 낫겠습니까? 의사의 도움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저기 앉아 그렇게 떨고 계신 어머님은 어떻게 낫겠습니까? 저기 있는 젊은이, 그... 마비된 채 누워 있는데 어떻게 낫겠습니까? 여기 앉아 계신 분은 어떻게 낫겠습니까? 어떻게 그렇게 되겠습니까? 그것은 여러분이 생각할 문제가 아닙니다. 그분은 여호와 이레이십니다. 더구나 그분은 여러분을 위해 이미 어린양을 예비하셨습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예비되셨고, 그분이 이미 치유를 이루셨습니다.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받아들이는 것뿐입니다. 믿으십시오. 그렇게 하십니까? 오, 놀랍습니다.
잠깐 고개를 숙입시다. 하나님 앞에서 잠잠히 있는 동안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기 계신 분 중에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그 희생물을 받아들이기 원하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 온 건물 곳곳에 계십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들은 말씀을 믿습니다. 무엇 때문에 손을 들었겠습니까? 주님께서 말씀을 지키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말씀해 주시지 않았다면 그들은 그렇게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삭처럼 순종했습니다. 자기 생각에 대해 죽을 준비가 되었고, 의사가 무슨 말을 했든 그 말에 대해서나 그 밖의 어떤 것에 대해서도 죽을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의 자녀입니다. 자신들이 다시 태어났다고 믿습니다. 성령으로 침례도 받았습니다. 주님을 믿습니다. 죄인들도 주님의 자녀가 되기를 원해서 손을 들었습니다. 주님, 그들을 받아 주소서. 그들은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 이번 주 내내... 다섯 번 연속으로 전한 설교가 지금 이 시간을 향해 나아왔습니다. 곧 그 시간이 옵니다. 우리가 이르렀습니다. 주님, 무언가 일어나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이 나아갔습니다. 주님의 표적들이 나아갔습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확증하셨습니다. 이제 사람들에게 달렸습니다. 주님, 이들이 이 줄을 지나가며 기도받을 때 믿음을 갖게 하소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이 강단을 내려가게 하소서. 그 일이 이루어지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약속을 하신 하나님께서 오늘 이 건물 안에 계십니다. 아버지, 허락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해 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허락해 주옵소서. 주님, 그렇게 되게 하소서. 아멘. 좋습니다. 기도받을 분이 3백 명이나 4백 명쯤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을 떠나실 때 입에서 나온 마지막 말씀,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 이것이라고 믿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 사람들이 나으리라.” 그분이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그분은 그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여기 집회에 한 번도 참석해 보지 않은 처음 오신 분이 계십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전에 한 번도 참석하지 않으셨다면 손을 들어 주십시오. 꽤 많군요. 그러면 여러분은 제게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마지막 날들에 여기에 계시며 사람의 육체 안에 거하실 천사에 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육체 안에 거하시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이런 일에 관해 전혀 모르지만 형제님은 그런 일이 있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소돔의 때에 있다는 것을 보여 주시려고 그분이 그곳에서 하셨던 것처럼 행하시는 것을 저는 본 적이 없습니다.” 저기 계신 분 중에 병들었고 저를 모르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도움이 필요한 분은 손을 들어 보십시오. 어디에 계시든 상관없습니다. 아주 경건히 계십시오.
기도 줄을 부르기 전에... 기도 줄에서는 분별을 하지 않을 겁니다. 할 수가 없습니다. 이곳을 지나갈 분이 3백 명이나 4백 명이나 됩니다. 그분들을 위해 기도하겠지만 분별은 하지 않을 겁니다. 지금 회중 가운데 계신 여러분을 대상으로 분별의 순서를 갖겠습니다. 저기서 제가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여기 프레드 소스만이라는 형제님이 와 있습니다. 톰 형제님이라는 분도 와 있고, 에번스 형제님도 와 있습니다. 저기 어딘가에 계실 겁니다. 어디 계십니까? 형제님들, 오늘 예배에 오셨습니까? 어디 계십니까? 저 뒤쪽 맨 끝에 계시군요. 저 뒤에요. 제가 아는 분은 그분들이 전부입니다.
뒤에 계신 형제님들, 목사님들 중에 이것을 경험할 기회가 없었던 분은 얼마나 계십니까? 저는 여러분을 모릅니다. 저쪽에서 만나기는 했지만 그것은... 여러분에 관해 아는 것이 없습니다. 병이든 무엇이든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자, 그렇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그건 좀 대담한 일이 아닙니까?”라고 하실 겁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분이 약속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약속하셨습니다. 이제 성령께서... 여러분이 이 기도 줄을 지나가기 전에 한 번 더 그렇게 해 주셔서, 여기 기름부음이 있다는 것을 보게 해 주신다면 좋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그저 성령께서 그 일을 하실지 보려는 것입니다. 제 주위의 각 구역을 차례로 등지고 서겠습니다. 그러면 각 구역에서 나오게 될 겁니다.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주님의 그 천사께서 진실을 말씀하셨다고 믿습니까? 제가 하나님의 영으로 이 일을 할 수 있다고 믿습니까? 좋습니다. 이쪽 구역부터 하고, 그다음에는 이쪽, 그다음에는 이쪽, 그리고 이렇게 돌아가겠습니다. 이제 기도만 하십시오. 그리고 보십시오.
그 천사는 누구였습니까...? 하나님이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분을 엘로힘이라고 했습니다. 이쪽 구역에서는 그저 기도하십시오. “주님, 저 사람은 저를 모르고 저에 관해 아무것도 모릅니다.”라고 하십시오. 이쪽 구역에 계신 분 중에 제가 여러분을 모른다는 것을 아시면서 병들고 도움이 필요한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좋습니다. 저는 등을 돌리겠습니다. 여러분은 기도하십시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이것은 구경거리가 아닙니다. 구경거리를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약속을 이루려는 것입니다. 주님은 제 마음과 목적을 아시며, 제가 이 일을 하는 동기도 아십니다. 이 일을 하도록 허락해 주신 데서 주님의 은혜를 압니다. 아버지, 사람들이 제가 진리를 전했음을 알 수 있도록 이 일이 다시 이루어지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브라함의 씨는 모든 약속에 대해 그와 함께 상속자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허락해 주옵소서. 주님, 모든 찬양은 주님의 것이 될 것입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분명히 말했고, 그들도 제가 주님의 종들 가운데 가장 보잘것없는 한 사람임을 압니다. 배운 것도 없고 어떤 능력도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요람에 누워 있던 작은 아기였을 때 주님께서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 어찌 된 일인지, 제가 제 자신을 내려놓으면 주님께서 말씀하실 수 있는 작은 은사를 주셨습니다. 오, 하나님, 그렇게 되게 하소서. 주님, 저를 도와주소서.
제가 인간으로 살아오며 범한 잘못과 실수를 용서해 주옵소서. 그러나 제 마음의 목적과 동기를 보아 주옵소서. 오늘 오후 우리 앞에 그것을 다시 나타내시는 것이 주님의 뜻이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제가 주님을 찬양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주님을 찬양하겠습니다. 사람들이 줄을 지나갈 때, 그들의 마음을 아시는 바로 그 하나님께서 그들의 상태도 아신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주님, 그때 비지 않는 휠체어가 하나도 없게 하소서. 비지 않는 간이침대가 하나도 없게 하소서. 우리 가운데 병든 사람이 하나도 없게... 어쩌면 아직 완전히 낫지 않을 수도 있지만, 아브라함처럼 그들에게는 약속이 있습니다. 그들이 그 약속을 붙들 것이며 주님께서는 확증해 주실 것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이시므로 언제나 그렇게 하십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영광과 그분의 영의 역사를 위해 이곳에 있는 모든 영을 제 통제 아래 둡니다. 제 뒤에 악한 힘이 있습니다. 검고 끔찍합니다. 간질입니다. 한 여자에게 있습니다. 그분은 간질을 앓고 있습니다. 이름은 캠벨 부인입니다. 일어나서 치유를 받아들이십시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고침을 받으십시오. 이제 믿으십니까? 바로 여기 제 가까이에 한 여자분이 앉아 계십니다. 그분은... 무슨 신장병을 앓고 있는데, 신장 결석입니다. 그리고 지금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남편을 위해서인데, 남편에게 정신 질환이 있습니다. 이분의 이름은 렌즈 부인입니다. 일어나셔서 치유를 받으십시오.
이제 믿으십니까? 믿음을 가지십시오. 동일한 주님의 천사라고 믿습니까? 자, 이쪽은 어떻습니까? 이쪽에 병든 분이 계십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제 바로 뒤에 한 여자분이 있습니다. 여자분인데 종양이 있습니다. 폐에 종양들이 있습니다. 이름은 스팽글러 부인입니다. 일어나십시오, 스팽글러 부인. 치유를 받아들이십시오. 이제 믿으십니까? 저는 이분들을 모릅니다. 본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쪽을 보십시오. 스팽글러 부인, 한 가지 해 주십시오. 옆에 있는 여자분에게 손을 얹으십시오. 그분은 신장병이 있어서 고침받기를 원합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옆에 있는 분에게 손을 얹으십시오. 그분도 신장병이 있어서 고침받기를 원합니다. 이제 앞에 있는 여자분에게 손을 얹으십시오. 저기 빨간 스웨터를 입고 남편을 위해 기도하는 분입니다. 그분은 몸이 쇠약해져 병원에 가야 합니다. 남편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믿으십니까? 그러면 고침을 받으실 겁니다. 아멘.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십시오. 의심하지 마십시오. 네가 만일 믿을 수 있거든...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뒤쪽 이 구역에 젊은 여자분이 보입니다. 아버지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젊은 자매님, 믿으십시오. 받으실 겁니다. 울지 말고 믿기만 하십시오. 또 다른 여자분이 제 앞에 나타납니다. 제 뒤쪽에 계십니다. 간에 병이 있습니다. (거기에 두세 분이 계십니다. 느껴지지만 제게 보이는 분은 한 분입니다.) 이름은 워커 부인입니다. 온 마음으로 믿고 치유를 받으십시오. 제 뒤에 오르간을 연주하는 자매님이 계십니다. 등에 문제가 있습니다. 뒤에 계신 목사님 한 분도 등에 문제가 있습니다. 의심하지 마십시오. 온 마음으로 믿습니까? 보십시오. 그분을 믿습니까? 나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왜냐하면... 이제 온 마음으로 믿습니까? ...먼저 나를 사랑하셨으니.
여기 계신 분들도 믿으시겠습니까? 이 간이침대들에 누워 계신 한 분 한 분도 믿으시겠습니까? 저기 계신 여러분도 믿으시겠습니까? 오늘 동일한 하나님의 천사께서 여기 계심을 아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믿습니다.”라고 하십시오. 그분이 얼마나 진실하시고 실제로 계신지 보이십니까? 이제 이 기도 줄을 지나가 안수를 받으면 고침을 받을 것이라고 믿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여러분의 목사님을 신뢰하고, 그분이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믿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저도 손을 들겠습니다. 저도 그분이 그렇다고 믿습니다. 이제 목사님께 여기로 나오셔서 저를 도와주시기를 부탁하겠습니다. 한 분 한 분 모두 여기 강단으로 나와 주십시오. 여기 기도 줄을 만듭시다. 절반은 이쪽에 서시고, 몇 분은 반대쪽에 서십시오. 기도 카드에 A라고 적힌 분은 모두 일어나 이쪽으로 오십시오. A... 갈보리 나무 위에서.
이제 모두 고개를 숙여 주십시오. “나는 주님을 사랑합니다”를 부르시는 동안 모두 기도하십시오. 저는 내려가서 여기 간이침대와 들것에 누워 계신, 회복 중이신 분들을 위해 특별히 기도하고 싶습니다. 모든 형제님도 저와 함께 기도해 주십시오. 잠시 후에 강단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제가 내려가는 동안 온 회중은 기도해 주십시오. 아브라함의 씨인 여러분, 치유를 받을 준비가 되었습니까? 그분들이 다 저기에 계시지 않습니까? 글쎄, 저는 아마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러니까... ...여기서 우리에게 기름을 부어 주셔서 우리가 어디 있는지도 모를 만큼 되게 하실지도 모릅니다. 제가 여러분을 사랑한다는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곧 다시 뵙기를 바랍니다. 다시 뵐 때까지 언제나 그 길을 따르십시오... 밤에 달을 빛나게 하시고 별들을 밝히셔서 길을 잘 갈 수 있게 하시는 그분을 따르십시오. 그분과 말씀을 나누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제가 그분을 사랑한다고 말씀드려 주십시오. 저곳에서 여러분을 뵙고 싶습니다. 좋습니다. 기도 줄은 준비되었습니까? 이제 모두 고개를 숙이고 줄이 지나가는 동안 “나는 주님을 사랑합니다”를 부르십시오.
아버지 하나님, 이들이 오고 있습니다. 목사님들은 모두 저기에 서셔서 이분들에게 손을 얹어 주십시오. 자, 저기로 가 주십시오. 그곳에 서서 지나오는 분들에게 안수해 주십시오. 계속 오십시오. [브래넘 형제님이 병자들을 위해 기도하려고 강단을 내려간다.] 이런 집회는 본 적이 없습니다. 제 평생 한 기도 줄에서 이렇게 많은 믿음을 느낀 적은 한 번도, 한 번도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오, 우리가 기다려 온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지금 지나오시는 분들은 그분을 찬양하며 오십시오. 그분을 믿으며 오십시오. 그렇게 하시면 됩니다. 여기를 지나갈 때 믿으며 오십시오... 사람을 지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지나가십시오. 여기 계신 여러분의 목사님을 알아보실 겁니다.
...여러분이 말하는 빠르게 지나가는 줄, 그리고 제가 이제껏 경험한 그 모든 집회 가운데서도, 여기 이 줄에서 느낀 것만큼 많은 믿음을 느낀 집회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이 강단에 서 있는 것만큼 확신합니다. 여러분은 형제들을... 이분들 가운데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될 겁니다.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목사님들이 자신이 하나님의 종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분들을 여기로 모셔서 기도하게 한 이유는, 여러분의 목사님에게도 저나 다른 어떤 사람과 똑같이 여러분을 위해 기도할 권위가 있음을 여러분이 깨닫고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저와 마찬가지로 이분들도 여러분에게 손을 얹었습니다. 앞으로 병이 나거든 어떤 특별한 사역을 가진 누군가가 찾아오기를 기다리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목사님이 기도하시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셨지요? 그때도 여러분은 고침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이분들은 하나님의 종입니다. 다른 일들과 마찬가지로 병든 사람에게 안수하고 병자를 위해 기도하도록 세우신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만일 제가 하나님의 종으로서 여러분의 눈에 은혜를 입었다면 제 말을 믿으십시오. 여러분의 목사님을 신뢰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을 신뢰하십시오. 이제 그분이 여기 목사님 몇 분과 함께 저와 내려가서 휠체어에 계신 이분들을 위해 기도하는 일을 도와주실 겁니다. 형제님들 중 몇 분이 저와 함께 강단에서 내려가 그분들을 위해 기도해 주신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