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오늘 밤 여기 블루밍턴에서 말입니다. 저는 지난 2년 동안 이곳에 오기를 고대했습니다. 이 지역으로 와야 한다는 인도를 느껴 왔습니다. 듣기로는 많은 전도자들이 이곳에는 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미국의 저명한 전도자들 가운데도 이 지역에 한 번도 오지 않은 분들이 있습니다. 저는 이 일이 참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성령께서 이끌어 주시는 것을 느껴, 이곳에 와서 여덟 날 밤 동안 주님의 이름으로 이 형제님들과 함께 사역하고, 우리 몫의 그물을 드리워 혼들을 낚으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곳에 온 목적은 하나님의 교회가 권능과 성도의 수에서 성장하고, 하나님의 왕국이 영광을 받는 것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또 우리는 병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것도 복음의 일부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고 병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전도 집회 기간 중에 이렇게 병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밤들을 갖습니다. 우리는 치유자라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다만 다른 누구와도 마찬가지로 병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한다고 할 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해 주실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미 갈보리에서 여러분을 위해 값을 치르고 사셨다고 믿습니다. 그분은 갈보리에서 죽으실 때 구원의 계획, 곧 혼과 몸의 구속을 완성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구원의 보증이신 성령을 받습니다. 또한 우리에게는 부활의 보증도 있습니다. 곧 우리 몸이 병들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치유자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약 1900년 전에 그리스도께서 이런 것들로부터 우리를 구속하시려고 죽으셨을 때, 갈보리에서 우리를 위해 완성하신 일에 근거한다고 믿습니다. 누구도 죄를 용서할 수는 없다고 저는 믿습니다. 자신에게 지은 죄라면 몰라도 말입니다. 여러분이 저에게 죄를 짓고 용서를 구한다면, 저는 용서할 수 있고 또 용서할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하나님께 지은 죄는 하나님만이 용서하실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저는 신유도 구원과 마찬가지로 믿음에 근거한다고 믿습니다. “그는 우리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도다”라는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가 이것을 과거형으로 말한 것을 보십시오. “...우리가 고침을 받았도다.” 구원이 과거형인 것처럼 이것도 과거형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보리에서 죽으셨을 때, 그분은 온 세상을 구원하셨습니다. 장차 땅 위에 있게 될 모든 사람의 죄 문제가 예수님께서 죽으셨을 때 단번에 해결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여러분이 받아들이기 전까지는 이 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해서 그것을 얻을 자격을 갖출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공로와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해 주신 일이며, 여러분은 그저 믿음으로 받아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받을 수 있도록 단순한 믿음으로 받게 하셨습니다.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배우지 못한 사람이든 배운 사람이든, 우리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의 손이 닿는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저 어린아이처럼 단순하게, 갈보리에서 완성된 그 일에 나도 포함되었다고 믿는 것입니다.
신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신유가 그리스도께서 갈보리에서 우리를 위해 값을 치르고 사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완성해 놓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믿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것을 “믿음으로 치유받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렇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어느 개인에게 달린 일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치유할 수 있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솔직히 하나님 외에는 여러분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는 네 모든 질병을 고치는 주니라.” 성경은 오류가 없으며 깨뜨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의학은 치유한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의학은...우리가 의학에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의학도 주님께로부터 왔지만, 의학은 치유할 수 없습니다. 의학은 하나님의 신유 계획 안에서 자연의 작용을 도울 수 있을 뿐입니다. 누구를 치유한 약은 이제껏 없었습니다. 의사라면 누구도 그렇게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얼마 전에 메이요 브라더스에서 저와 면담한 적이 있습니다.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도니 마틴의 기적에 관한 기사가 실린 일 때문이었습니다. 그 면담에서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브래넘 씨, 우리는 치유자라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다만 자연의 작용을 돕는다고 할 뿐입니다. 치유자는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예를 들어 제가 팔이 부러져 의사에게 가서 “위대한 치유자여, 제 팔을 치유해 주십시오. 저는 일을 계속해야 합니다”라고 한다면, 의사는 “정신부터 치유받으셔야겠군요”라고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그런 말을 한다면 말입니다. 의사는 뼈를 맞출 수 있습니다. 전문적인 의학 지식으로 팔뼈를 맞출 수는 있지만 팔을 치유할 수는 없습니다. 치유란 세포가 늘어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생명과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생명이십니다. 제가 손을 베이고 쓰러져 죽었다면, 사람들은 그 베인 상처에 약을 바를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 해 동안 페니실린 주사를 놓아도 결코 낫지 않을 것입니다. 제 시신을 방부 처리해서 본래 모습대로 보존할 수 있다 해도, 가령 50년 동안 그렇게 한다 해도, 상처는 낫지 않을 것입니다. 약에는 치유하는 성질이 없기 때문입니다. 약은 균을 죽이고 깨끗하게 유지할 뿐이며, 그동안 하나님께서 치유하십니다. 아시겠죠? 그런데 약은...저는 손에 난 상처를 치유할 약이라면 제 외투의 찢어진 곳도 치유할 것이라고 자주 말했습니다. 그러면 누군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잠깐만요. 약은 외투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몸을 위한 것이지요.” 그렇다면 생명이 떠난 뒤에는 왜 낫지 않습니까? 몸을 위한 것이라면 그때는 왜 낫지 않습니까? 아시겠죠? 그곳에서도 여기서만큼 치유해야 할 것입니다. 몸을 위한 것이라면 몸을 치유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생명이 있어야 하지요”라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그렇다면 생명은 하나님이고, 하나님께서 치유자이십니다. 결국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치유자이시다”는 데로 돌아갑니다.
성경은 서로 모순되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자체적으로 모순되는 구절이 없습니다. 저는 여러 해 동안 그런 구절을 제시해 보라고 했습니다. 모순될 수 있는 구절이나 진술은 없습니다. 나머지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바로 맞추어 보면 풀리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그것을 하나님께 감사하셨습니다. 지혜롭고 분별 있는 자들의 눈에는 숨기시고, 배우려는 아기 같은 사람들에게 드러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이 일에서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 그것에 대한 우리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혼의 구원이든 몸의 구원이든, 하나님께 무언가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것입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계획을 통해 와야 합니다. 가령 산 이쪽에 시간당 수백만 갤런의 물이 솟아오르는 자분정이 있고, 반대편에서는 농작물이 물이 없어 타들어 간다고 합시다. 여러분이 서서 편도선이 빠질 만큼 소리를 지르며 “오, 위대한 물이여, 이리 와서 내 농작물에 물을 주어라”라고 외칠 수는 있습니다. 그래도 물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중력의 법칙에 맞게 일을 해서, 그 물이 산을 돌아와 농작물에 흐르게 하면 물을 댈 수 있습니다. 그 법칙에 따라 일한다면 그렇게 될 것입니다.
이 방에도, 제대로만...이 방을 밝힐 만한 전기가 있습니다. 우리가 어두운 넓은 들판에 나가 있다고 합시다. 프랭클린과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입증했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과학이 말입니다. 공기 중에 전기가 있다는 것입니다. 구리선을 하나 가져다가 위로 올려 늘어뜨리면, 정전기, 곧 전기가 모입니다. 공중으로 1마일 높이까지 올린다면 거의 땅을 밝힐 만큼, 땅을 불태울 만큼 모일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 들판에 서서 아무리 큰 소리로 “길을 잃었습니다! 길을 잃었습니다! 위대한 전기여, 어서 와서 길을 밝혀, 이 어둠에서 빠져나갈 길을 보게 해 주어라”라고 외쳐도 소용없습니다. 결코 그렇게 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전기의 법칙에 따라 일하면, 전기는 여러분이 빠져나갈 수 있도록 길을 밝혀 줄 것입니다. 다만 그 법칙에 따라 일해야 합니다. 하나님께도 법칙이 있습니다. 그 일에 관한 하나님의 계획과 법칙에 따라 일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정하신 뜻에는 치유와 구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런 방식으로 집회를 계획해야 합니다. 그렇게...저는 세계를 일곱 번 돌았습니다. 온갖 인종과 온갖 부류의 사람들, 수만 명의 사람들에게 갔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행하신 위대한 일들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언제나 제가 보게 되는 것은, 사람들이 자신을 낮추고 그 일에 대한 자기 생각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저 하나님의 생각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일해야 합니다. 곧 그분이 하신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여기 그리스도인 대학의 이 구내에서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있으니,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라는 말에 우리 모두가 마음을 다해 “아멘”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그분은 동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분은 애초에 하나님이신 적이 없습니다. 또 하나님은 무한하십니다. 그분은 무한하시고, 어디에나 계시며,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권능을 가지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속성들이 그분 안에 없다면 그분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분은 위대하고 영원하신 분입니다. 그분에게는 시작이 없었으며 끝도 없을 것입니다. 시작이 있는 것은 무엇이든 끝이 있습니다. 시작이 없었던 것만이 끝이 없으며, 그것이 영원한 것입니다. 영원에는 시작도 끝도 없습니다. 우리가 영생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분의 일부를 우리 안에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생명을 우리 안에 가진 아들과 딸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므로 우리는 영생을 갖습니다. 그러므로 영생을 받으면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영원합니다. 그렇게 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분의 영으로 태어나는 것만이 우리가 영생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무한하시고, 그분이...그렇다면 그분은 완전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일에 대해 결정을 내려 달라는 요청을 받으셨다면, 그분이 처음 결정을 내리신 방식은—앞으로 집회가 진행되는 동안 이것을 잊지 마십시오—처음 결정을 내리신 방식과 다음 결정이 같아야 합니다. 그 후에 내리시는 모든 결정도 같아야 합니다. 만일 바꾸신다면 처음 결정을 내리셨을 때 잘못하신 것이 됩니다. 우리는 유한합니다. 제가 무슨 말을 했다가도 취소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저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운데 가장 똑똑한 사람도 해가 지날 때마다 말을 취소해야 합니다.
300년 전에 한 프랑스 과학자가 지구본 위로 공을 굴려 입증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이 만약...시속 30마일이라는 엄청난 속도에 이를 수 있다면, 그가 지구 밖으로 튕겨 나간다는 사실이 중력으로 입증됩니다.” 그런데 지금은 시속 약 2000마일로 달리고, 지상에 붙어 있으면서도 시속 약 400마일이나 500마일로 달립니다. 그러니 과학은 뒤돌아보며 자신들이 했던 말을 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시겠죠? 자신들이 했던 말을 돌아보려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것이 과학적 증명이었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공을 그 속도로 굴려 보고는, 시속 30마일이면 사람이 지상에서 들려 올라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터무니없는 말입니다. 그러니 이 일에서 우리가...그 사람들은 유한했습니다. 그것이 그들이 아는 한 최선이었습니다. 저는 그 일로 그 사람을 비난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그가 아는 한 최선이었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옳지 않았으므로 지금은 그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러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면...그분은 무한하시며, 그것은 완전하다는 뜻입니다. 잃어버린 자기 혼을 구원해 달라고 부르짖는 사람을 구원하시도록 하나님께서 요청을 받으셨고, 어떤 사실들, 곧 사실에 대한 고백을 근거로 그를 구원하셨다면, 다음 사람도, 하나님께 나아오는 모든 사람도 그 같은 사실들을 충족할 때 그분은 같은 방식을 쓰셔야 합니다. 그분은 반드시...그 조건들이 충족된다면 하나님께서는 같은 방식으로 행하셔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신다면 첫 사람을 구원하셨을 때 잘못하신 것이 됩니다. 또 사람이 자기 믿음에 근거하여 치유받는다면...병든 사람이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그 병든 사람이 하나님께 부르짖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의 믿음 때문에 치유하셨다면, 다른 사람도 하나님께 부르짖고 똑같은 믿음을 사용할 때 하나님께서는 같은 방식으로 행하셔야 합니다. 아시겠죠? 그러므로 제가 여러분에게 보여 드리려는 것은
오늘날 여러 곳에서 신유라는 이름과 명목 아래 행해지는 많은 일들 가운데, 결코 이 사역 현장에 있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일종의 감각적인 체험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체험에 속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굳게 서 있는 것은 말씀,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신뢰성은 그분의 말씀과 다르지 않습니다. 다른 누구도 자기 말의 신뢰성 이상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에 기록하지 않으신 일은 행하지 않으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분은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든 하실 수 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지만 제가 그저...여기에 기록된 것만으로도 제게는 충분합니다. 그분이 주신 약속들, 이것들이 이루어지게만 할 수 있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뒷받침될 수 있다는 것을 저는 압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뿐입니다.
앞으로 계속 진행하면서 이것을 기억합시다. 하나님은 무한하시며 변하실 수 없고,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분은 자신의 말씀을 지키셔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만일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면 가톨릭교회가 전적으로 옳습니다. 말씀이 아니라 교회가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말씀이라면, 요한계시록 22장에서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여기서 한 말씀을 빼거나 무엇이든 더하면, 그 사람 역시...생명책에서 그의 부분을 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진리입니다.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지게 할 만한 믿음이 제게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에녹처럼 말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얼마나 믿었던지, 그분과 오후에 산책하다가 땅에 머무는 것이 싫어져서 그분과 함께 본향으로 올라가 버렸습니다. 제게는 그런 믿음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믿음을 가진 다른 사람의 길을 가로막지는 않겠습니다. 오후에 산책하다가 죽지 않고 그대로 그분과 함께 올라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저는 하나님께 감사하겠습니다. 저도 그런 믿음을 갖고 싶습니다. 인생길 끝에서, 아니 가능하다면 그 전에 그런 믿음을 갖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을 함께 모으려고 여기에 왔습니다. 새로운 것이 아니라, 지금껏 여러분에게 전해져 온 바로 그 복음입니다. 그저 이 형제님들과 함께 제 그물을 넣고,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 한 무리의 사람들로 함께 끌어당기려고 왔습니다. 교회에 새 생명을 주고, 이분들의 사역에 제 사역을 합하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형제입니다. 무언가를 더하거나 빼려고 여기에 온 것이 아닙니다. 이미 선포된 것, 살아 계신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가 믿는 것을 더욱 드러내려고 온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왕국은 바다에 가서 그물을 던진 사람과 같으니라. 그가 그물을 끌어 올렸을 때 온갖 종류가 들어 있었느니라...” 복음의 그물에는 그렇게 온갖 것이 잡힙니다. 거북이며 개구리며 뱀이며 도마뱀이며, 모든 것이 잡힙니다. 복음의 그물이 그렇게 합니다. 어느 것이 무엇인지 판정하는 일은 제 일이 아니며, 다른 누구의 일도 아닙니다. 결정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속한 일입니다. 다만 저는...어떤 사람이 한쪽에서 그물을 던지고 끌어당기며 고기를 잡는데, 다른 사람이 지나가다가 도와주는 것과 같습니다. 제가 이 블루밍턴에 온 것도 바로 그런 일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느껴 이곳에 와서 형제님들의 그물에 제 그물을 합하고, 이 지역에 널리 던져 그들과 함께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 끌어당기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모든 혼을 끌어들이려는 것입니다.
신유는 부차적인 것입니다. 부차적인 것을 주된 것으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누구나 그것을 압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제 사역을 돕던 책임자 가운데 한 분인 F. F. 보스워스 박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와 해외 사역을 함께 하셨고, 얼마 전 84세로 영광의 본향에 가신 분입니다. “브래넘 형제님, 신유는 물고기를 잡으려고 낚싯바늘에 다는 미끼와 같습니다. 물고기에게 바늘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미끼를 보여 주는 것이지요. 물고기는 미끼를 덥석 물었다가 바늘에 걸립니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신유와 병든 사람들을 치유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이 사람들의 관심을 끕니다. 그러면 복음을 전하여 그들을 그물에 잡아들이고 혼을 치유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몸의 치유보다 수백만 배 더 큰 일입니다. 맞습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복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저는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굳게 믿습니다. 이 복된 옛 성경의 어느 부분에든 제 혼을 맡깁니다. 저는 지금까지 31년 동안 세계를 거듭 돌며 이 말씀을 전해 왔고, 아직 한 번도 실패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앞으로도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우리가 그분이 하신 말씀을 뒷받침하는 믿음을 갖고 있는 한, 하나님께서는 하시겠다고 말씀하신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은 씨 뿌리는 자가 뿌린 씨와 같으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좋은 비옥한 땅에 떨어진 씨는 무엇이든 그 종류대로 열매를 낼 것입니다. 성령의 도움으로 제가 여러분의 마음에, 믿지 않는 사람의 마음에, 미지근한 사람의 마음에, 병든 사람의 마음에 씨를 뿌릴 수만 있다면, 그 씨에 생명이 움트게 하십시오. 알맞은 땅과 알맞은 조건에 있다면 그 씨는 살아날 것입니다. 최근에 보니, 사람들이 이집트에 내려가서 그 안에 거의...몇천 년이었는지 잊었습니다만, 그렇게 오래 있던 해바라기 씨를 가져왔다고 합니다. 요셉이 아주 오래전, 2500여 년 전에 곡간에 넣어 둔 밀도 얼마 가져왔습니다. 그것을 땅에 심자 밀 수확을 거두었습니다. 씨눈이 살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씨눈이 그 안에 들어 있습니다. 누구든 하나님의 씨를 마음에 받아들이면, 알맞은 조건 아래서 그 씨는 말씀 그대로 이루어 낼 것입니다. 저는 그것으로 육종암이 치유되는 것을 보았으며, 그것이 참되다는 것을 압니다.
먼저 알맞은 땅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 땅은 신학이 아닙니다. 그 땅은 믿음입니다. 우리 사이에 차이가 있으니 신학은 잠시 내려놓고, 이제 말씀드릴 믿음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겨울에 보도를 콘크리트로 포장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풀이 가장 무성하게 자라는 곳이 어디입니까? 보도 옆, 가장자리입니다. 왜 그럴까요? 풀에서 떨어져 보도 밑에 들어간 씨는 콘크리트로 덮여 있습니다. 하지만 태양, 영어로 s-u-n인 태양은 모든 식물에 생명을 줍니다. 태양의 상태가 알맞게 되면 그 생명은 나와야 합니다. 봄철에 태양의 따뜻함이 그 생명을 끌어낼 것입니다. 그것을 감출 수는 없습니다. 풀이 보도 한가운데 묻혀 있을지라도, 따뜻한 태양이 알맞게 비추기만 하면...그 생명을 감출 수 없습니다. 그것은 곧 뚫고 올라와 고개를 내밀고 하나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태양, s-u-n이 빛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아들, 영어로 S-o-n인 하나님의 아들께서 오실 것입니다. 모든 생명, 어디에 있든 다시 태어난 생명이며 하나님의 말씀의 씨눈을 품은 생명은 솟아 나올 것입니다. 재 속에 묻혀 있든 바다 밑에 있든 상관없습니다. 그것은 창조자의 모습으로 일어나 영원히 살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제 잠시 말씀의 저자와 이야기하는 동안 고개를 숙입시다. 죽은 자들로부터 예수님을 다시 일으키신 지극히 은혜로우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이 위대한 일과 이 큰 확신을 주시니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는 우리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고 우리 불법으로 인해 상하였도다. 그가 징벌을 받음으로 우리가 화평을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도다.” 또한 우리가 말씀을 통해 물로 씻음으로 정결하게 되었음을 압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영생을 가졌습니다. 질그릇 안에 간직한 이 보배는 사람이 넣어 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활의 권능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시인이 쓴 노래를 듣습니다. “살아서는 날 사랑하셨고, 죽으셔서는 날 구원하셨네. 장사되셔서는 내 죄를 멀리 가져가셨네. 부활하셔서는 값없이 날 영원히 의롭게 하셨네. 언젠가 주 오시리, 오 영광스러운 날!”
주님, 우리는 자연과 함께 탄식하며, 곧 다가올 그 큰 날을 기다립니다. 아버지, 오늘 밤 우리의 마음을 살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혹시 어떤 죄, 곧 불신이 있다면...우리가 아무리 종교적이어도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다면 우리는 죄인입니다. “믿지 아니하는 자는 이미 정죄를 받았느니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날에는 모든 마음의 비밀이 드러날 것을 우리는 압니다. 하나님의 그 위대한 빛이 오늘 밤 우리의 마음을 비추어 살피고, 우리에게 부정한 것이 있는지, 하나님이나 그분의 말씀에 대한 불신이 있는지 살펴볼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 그 모든 것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셔서, 이곳 일리노이에서 다시 한번 크게 휩쓸고 가는 부흥을 보게 하옵소서. 주님, 바로 이 블루밍턴에서 시작되어 주 전역과 전국으로 퍼지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밤 모인 이 사람들과 협력하는 모든 교회 가운데 하나님의 권능이 크게 나타나서, 그들이 그것을 보고 다시 새 힘을 얻게 하옵소서. 주님, 이 강당을 쓰도록 허락해 준 이 대학에도, 휘턴과 저 아래 애즈베리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처럼 부흥이 일어나게 하옵소서. 주님, 밤낮으로 기도회가 이어지고, 사람들이 동쪽에서 서쪽까지 각지에서 찾아오게 하옵소서. 하나님, 이들에게 옛날 존 웨슬리 때와 같은 부흥을 주옵소서. 이 대학을 떠나갈 젊은이들의 마음에 불타는 열심을 주셔서, 그들 또한 또 다른 애즈베리처럼 나아가게 하옵소서. 아버지, 허락해 주옵소서. 주님의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우리의 삶과 이 집회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립니다. 아버지, 우리에게 말씀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늘 밤 말씀에서...저는 어떤 집회도...오늘은 그저 서로 좀 알아가는, 작은 만남의 밤입니다. 저는 여러분 가운데 많은 분에게 낯선 사람인 것을 압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그렇게 느끼지는 않으셨으면 합니다. 저는...여러분의 형제입니다. 저는 여러분을 돕고 여러분도 저를 도와서, 그리스도를 더 잘 알기 위해 여기에 왔습니다. 익숙한 본문을 펴겠습니다. 이 대전도 집회를 따라다니신 분들은...저는 그저...우리가 사람들에게 무엇을 전하려 하는지 기본적인 배경을 알려 드릴 수 있도록, 잠깐 이 주제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요한복음 12장 20절입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13장 8절, 또 사도행전 3장...3절, 1장 3절도 참고할 수 있겠습니다. 그 명절에 경배하러 올라온 자들 가운데 어떤 그리스 사람들이 있었는데 바로 그 사람들이 갈릴리 벳새다 출신의 빌립에게 가서 그에게 요청하여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님을 뵙기 원하나이다. 또 히브리서 13장 8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사도행전 1장 3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보이셨습니다. 절대 확실한 많은 증거들, 절대 확실한 많은 표적들로 자신이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음을 사람들에게 보이셨습니다.
오늘 밤 여러분에게 이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앞으로의 집회들이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진행될 것이니, 아주 주의 깊게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읽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아니면 그저 다른 책 한 권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온 마음을 다해 믿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여기에 한 질문이 있습니다. 한 그리스 사람, 아니 그리스 사람들이라고 해야겠군요. 그들이 한 질문입니다. 그들은 명절, 오순절 명절을 지키러 올라왔고, 예수님을 뵙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갈릴리 벳새다 출신인 빌립에게 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들이여, 우리가 예수님을 뵙기 원하나이다.” 그리스도의 종인 빌립이 그들의 요청이 이루어지도록 주선했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뵈었습니다. 마음이 갈급하여 예수님을 뵙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누구든 언제라도 예수님에 대해 듣거나 읽은 사람이라면 그분을 뵙고 싶어 하지 않을 사람이 없다고 믿습니다. 주 예수님을 뵙는 것, 그것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마음에 품은 소원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수고하며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언젠가 그분을 뵐 수 있도록 살아가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고 분명히 말한다면, 왜 우리는 오늘 그분을 뵐 수 없을까요?
우리에게도 그 그리스 사람들만큼이나 그분을 뵙게 해 달라고 요청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들은 그분을 뵙게 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선생님들이여, 우리가 예수님을 뵙기 원하나이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종에게 요청하자, 그 종은 그들이 예수님을 뵐 수 있도록 모셔 올 수 있었습니다. 그분의 일들을 보여 달라고 하지도 않았고, 그분의 지혜를 듣게 해 달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예수님을 뵙게 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종을 통해 그 특권을 얻었습니다. 우리가 부활을 기념한 지도 며칠밖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는 많은 사람에게는 그것이 전부입니다. 부활절을 역사적 사건의 기념일로 인정하는 데서 끝납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 이상입니다. 그날은 그저 시작된 날일 뿐입니다. 이제 그것은 계속되고, 계속되고, 또 계속됩니다. 끝나지 않습니다. 그분은 영원토록 살아 계십니다. 누가는 그 사건으로부터 65년 뒤에 사도행전, 아니 사도들 안에서 행하신 성령의 행적을 기록하면서, 그분이 절대 확실한 증거들, 표적들, 절대 확실한 표적들로 자신이 땅 위를 걸으셨던 바로 그 예수님이심을 보여 주셨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살아 계시며 부활하신 주 예수님이심을 절대 확실한 표적들로 보여 주셨습니다. 이제 그로부터 1900년, 혹은 그 이상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영원에 비하면 그것은 점 하나도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여기에 천만 년을 있다 해도 여전히...옛말처럼 이렇습니다. “그 사람이 다리에서 뛰어내렸을 때 어디에 있었습니까?” 아시겠죠? 답을 낼 수 없습니다. 누군가 “물속이요”라고 합니다. 아직 뛰어내리지 않았습니다. “다리 위요”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아직 다리 위에 있는 것이지요. 뛰어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그는...보십시오, 여러분은...거기에는 시작도 끝도 없습니다.
그리스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류가 없으신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다면, 오늘도 언제나 그러셨던 것과 똑같으십니다. 그렇지 않다면 성경이 틀린 것이 됩니다. 그러면 오늘 밤 제 눈앞에 있는 이 회중 가운데 몇 분이나 손을 들고 이렇게 말씀하시겠습니까? “저는 예수님을 뵙고 싶습니다. 선생님들이여, 우리가 예수님을 뵙기 원하나이다.” 이제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인지 살펴봅시다. 우리는 믿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뵙기를 간절히 원한다면, 거의...그리스 사람 두 명이 와서 그분을 뵙고 싶어 했고, 그들의 소원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오늘 밤 이곳에는 적어도 200명이나 300명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뵙고 싶어 하는 사람이 여기에 더 많이 있습니다. 그분을 보고 싶어 한다는 이유로 할례받지 않은 그리스 사람들에게 기꺼이 자신을 보이셨다면, 구원받고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태어난 자기 자녀들에게는 얼마나 더 자신을 보이셔야 하겠습니까? 그분이 여러 모임에서 그 40명과 다른 사람들을 만나셨을 때처럼, 오늘 밤 우리에게 자신이 살아 계심을 더욱 기꺼이 보이시지 않을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질문이지만, 동시에 약속입니다. 또 히브리서 13장 8절이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고 했다면, 그분은 원칙에서도 같으시고, 권능에서도 같으시고, 모든 면에서 어제와 같으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동일하시지 않은 것입니다. 누군가는 “어떤 면에서는 동일하시지요”라고 말합니다. 아닙니다. 성경은 그분이 동일하시다고 말합니다. 과거에 계셨고, 오늘도 계시며, 영원히 계실 바로 그 예수님이십니다. 제가 이 회중을 두루 살피며 침례교인, 감리교인, 오순절교인 등 여러 부류의 사람들에게 “여러분 교회에서도 그것을 가르칩니까?”라고 묻는다면, “예, 물론 가르칩니다”라고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합니다. 맞습니다. 그것은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하나님께 그것을 나타내 달라고, 여러분에게 실제가 되게 해 달라고 요청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단지 역사 속의 그리스도가 아니라,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말입니다.
많은 사람은 지옥이 두려워서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 구원 없이 죽는 것이 두려워서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분을 자신의 주님으로 받아들였습니까? 여러분의 가장 깊은 곳에 서서 믿음의 문들을 열어 주실 수 있는 주님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을 그분의 손에 온전히 맡겼습니까? 그렇게 한다면 그분이 이 안에 있는 모든 약속에 “아멘”으로 응답하시리라 확신합니다. 왜냐하면...성경을 기록하신 그분의 영께서 여기에 계시며 “아멘”이라고 응답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이 성경의 저자이십니다. 그러니 그저 그분을 믿고 마음을 연다면...이제 우리는 그분께서 오셔서 예전에 하셨던 것처럼 우리에게 자신을 알려 주시기를 요청할 것입니다. 가령 제가 “여러분의 침례교 신조에서 그분을 찾을 수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예.” “감리교 신조에서도요?” “예.” “오순절 신조에서도요?” “그렇습니다.” 맞습니다. 거기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 안에 기록되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물어봅시다. 그분이 어제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동일하시다고 되어 있습니까? 그렇다면 우리가...제가 여러분의 침례교 신조나 감리교 신조나 오순절 신조에서 그런 것을 찾으려 한다면, 여러분은 “이러이러합니다”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한 사람은 “아닙니다. 이렇습니다”라고 할 것입니다. 또 다른 사람은 “아닙니다. 우리 신조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라고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배웠습니다.”
그것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공정하게 밝힐 유일한 길은 돌아가서, 그분이 어제 어떤 분이셨고, 어제 무엇을 하셨으며, 어제 어떻게 행하셨는지 알아보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그분이 오셔서 오늘도 똑같이 하시는지 보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의 육체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오른편,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 계시며 우리의 고백을 근거로 중보하고 계시다는 것은 모두가 믿고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모두 믿습니까? 그리고 그분 위에 계셨던 성령, 곧 그리스도 안에 계셨던 하나님께서 여기에 계십니다. 이제는 교회 안에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한때 불기둥 안에 계셨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나간 로고스, 광야에서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갔던 언약의 천사였습니다. 그다음 그 동일한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그 육신이 그분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분은 처녀를 덮으시고 혈구 하나를 창조하셨으며, 그 육신의 몸, 하나님의 아들 안에 사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아들이 자신의 생명과 몸을 희생물로 내어 주셨고, 하나님께서 사흘째 되는 날 그 몸을 일으키셔서 높은 곳에 있는 자기 오른편에 앉히셨을 때, 성령께서 다시 오셨습니다. 오순절 날에, 성경은 불의 혀들이, 혀 같은 것들, 불꽃 같은 것들이 그들 각 사람 위에 머물렀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계셨던 바로 그 성령이셨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은 예수님이 아니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분이 죽으시고 장사되시고 부활하신 뒤, 사울이 다마스쿠스로 내려가는 길에 큰 빛이 그를 쓰러뜨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땅 위에서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와서 하나님께로 가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이 죽으시고 장사되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뒤, 사울은 다마스쿠스로 내려가는 길에 땅바닥으로 쓰러졌습니다. 그가 올려다보니 빛이 있었고, 그 빛 때문에 눈이 멀었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라는 외침이 들렸습니다. 그가 “주여, 누구시니이까?”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나는 예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인도했던 바로 그 불기둥으로 돌아가셨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에서 사람들이 여러 생각과 일들에 대해 그분과 논쟁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아브라함만큼 오래되었다고 했지. 아브라함을 보았다고 했지만, 너는 나이가 50세도 안 된 사람이다. 이제 우리는 네가 미쳤고 마귀가 들린 것을 알겠다.” 그분께서는 “아브라함이 있기 전에 내가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있기 전에 그분은 계셨습니다. 불타는 떨기나무 안에 계셨던 “스스로 있는 자”가 그분이셨기 때문입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인도한 불기둥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나시고, 죽으시고, 높은 곳으로 올라가셔서 성령을 다시 보내신 동일한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분은 요한복음 14장 7절에서 “나를 믿는 자는 또한 내가 하는 그 일들을 할 것이요, 이것들보다 더 큰 일들도 하리라. 이는 내가 내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5장, 5장 19절에서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은 아버지께서 어떤 일을 하시는 것을 보고 그 일을 할 뿐이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느니라. ...아들도 똑같이 하느니라. 그분은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대로 행하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신유를 베푸는 치유자라고 주장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말씀하신 것을 환상으로 보고 그대로 행할 뿐이라고 하셨고, 교회도 같은 일을 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조금 있으면 세상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나를 보리라.” 이제 보십시오. “세상, 곧 코스모스, ‘세상의 질서’를 뜻하는 세상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리라.” 믿지 않는 사람들은 더 이상 그분을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너희는 나를 보리라.” 너희, 곧 믿는 사람들입니다. “내가”—‘나’는 인칭대명사입니다—“세상 끝까지 너희와 함께, 너희 안에 있겠기 때문이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그분이 동일하시다면, 그분의 권능과 부활의 생명이 교회 안에서 살아 계셔서 땅 위에 계실 때 하셨던 동일한 사역을 나타내야 합니다. 그분이 그것을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이것을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압니다. 정죄를 받도록 태어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에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지어다.” 아시겠죠?
이제 그분이 무엇을 하셨는지 알아봅시다. 그러면 지금 무엇을 하실지도 알 것입니다. 그분이 어떤 분이셨는지, 지금 어떤 분이신지 알아보고, 우리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있는지 봅시다. 그분은 처녀에게 잉태되어 태어나셨고, 서른 살에 요르단강에서 침례자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셨습니다. 그러고는 곧 광야로 인도되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거기서 40일을 보내신 뒤 나오셔서 땅에서의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요한복음으로 시작했으니, 이제 요한복음 1장으로 돌아갑시다. 이번 주 내내 이것을 계속 살피면서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연결해 보겠습니다. 제정신인 비평가라면 누구도, 어떤 방법으로도 반박할 수 없도록 말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 안에 계십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믿습니까? “처음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이 하나님이셨더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요한복음 1장입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4장은 하나님의 말씀이 양날 달린 검보다도 예리하여, 뼈를...찔러 둘로 나누기까지 하고, 마음의 생각까지 분별한다고 했습니다. 곧 말씀이 우리 안에서 육신이 될 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땅에서의 사역을 시작하시자 곧 병든 사람들을 치유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이제 주의 깊게 들으십시오. 그 사람들, 곧 유대인들은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땅 위에는 세 부류, 곧 세 인종의 사람들만 있습니다. 함과 셈과 야벳의 후손들, 노아의 세 아들에게서 나온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면 그렇습니다. 그들은 모두 거기서 나왔습니다. 대홍수 때의 멸망이 그들 모두를 쓸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들 외에는 온 세상이 멸망했고, 그 세 아들로부터 땅의 모든 인종이 나왔습니다. 보시면, 그것은 유대인과 이방인과 사마리아인이었습니다. 베드로는 마태복음 15장에서 왕국의 열쇠들을 받았습니다. 오순절 날 그는 유대인들에게 문을 열었습니다. 빌립이 내려가 사마리아인들에게 말씀을 선포하고 침례를 주었지만, 성령께서는 아직 그들에게 임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내려가 그들에게 안수하자 그들이 성령을 받았습니다. 사도행전 10장 49절에서는...이방인인 고넬료가 자기 집에서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도 지붕 위에서 그곳으로 가라는 환상을 받았습니다. “그가 아직 이 말들을 할 때에 성령님께서” 이방인들에게 “내려오시매.” 그때부터는 온 세상에, 곧 유대인과 이방인과 사마리아인 모두에게 열려 있었습니다.
베드로에게 열쇠들이 있었습니다. 그가 전한 그 유명한 설교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모든 교회는, 가톨릭이든 개신교든 무엇이든 상관없이,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세우신 교회는 오순절 날에 있었습니다. 오순절 체험을 한, 믿는 오순절 교회였습니다. 초기 교부들의 니케아 공의회든, 어떤 역사를 보든, 모두 그곳으로 돌아가게 할 것입니다. 첫 교회는 성령으로 충만하고 표적과 이적과 기적이 따르는 오순절 교회였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무한하시지 않다면...하나님께서 오순절 날 교회를 그렇게 세우셨다면, 교회를 바로 세우실 때마다 똑같을 것입니다. 반드시 그래야 합니다. 그분은 무한하시므로 그것은 바뀔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교리와 신학이 우리를 한쪽으로 끌고 가서, 우리는 광야를 헤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성경은 여전히 동일하고, 하나님의 영도 여전히 동일합니다. 지금은 마지막 날들입니다. 선지자가 “저녁때에 빛이 있으리라”라고 말한 바로 그때로 돌아왔습니다.
그들이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다면...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그리스인은 지혜를 구한다는 것을 아시는 분이 몇 분이나 됩니까? 바울은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하노라”라고 말했습니다. 유대인이 메시야를 받아들이려면, 그분께 메시야의 표적이 있어야 했습니다. 신명기 18장 15절부터 22절까지가 메시야께서 어떤 분이실지 입증하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메시야이심을 보이는 표적으로 그들에게 보여 주셨던 것은, 앞으로 오는 모든 세대에도, 그것을 받아들일 사람이 있는 한 계속될 것입니다. 모세는 신명기 18장 15절부터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 너희 하나님께서 너희 가운데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라.”
메시야는 선지자, 곧 하나님이신 선지자여야 했으며, 선지자의 표적을 행하실 것이었습니다. 그 밖에도 우리가 찾아볼 수 있는 성경의 여러 곳에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가운데 영적인 사람이나 선지자가 있으면, 나 주 하나님이 나를 그에게 알리리라. 이 선지자가 말하는 것을 지켜보라. 그것이 이루어지면 그의 말을 들으라. 그러나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의 말을 듣지 말라.” 이것이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오실 위대한 메시야의 표적이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신 선지자로서 선지자의 표적을 보이셔야 했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임하는 사람이 바로 선지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그분의 오심은 경륜 전체와 모든 것을 바꿀 것이므로, 자신이 그 선지자이심을 입증할 선지자의 표적을 가지셔야 했습니다. 반드시 그러셔야 했습니다. 모든 것이 바뀌고 있었으므로 사람들이 그것을 알아야 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예언된 그대로 오셨음을 압니다. 하지만 당시의 교회들은 그것을 전혀 다른 식으로 생각했습니다. 아마 하나님께서 하늘의 회랑을 낮추시고 불의 날개 같은 것을 타고 내려오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침례자 요한, 곧 오기로 되어 있던 엘리야도 대단한 인물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산들이 숫양처럼 뛰고, 잎사귀들이 손뼉을 치며, 높은 곳은 낮아지고 낮은 곳은 높아질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나라를 뒤흔들 엄청나고 두드러진 무엇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왔을 때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양가죽 한 조각을 걸치고 얼굴에 수염이 가득하며, 메뚜기와 들꿀을 먹고 살다가 나와서 요르단강의 진흙투성이 강둑에서 설교하며 교회들을 흔들어 회개하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많은 사람이 침례를 받으러 오는 것을 보고 말했습니다. “독사들의 세대야, 누가 너희에게 경고하여 진노를 피하게 하더냐? 너희 속으로, 우리에게는 아브라함이 우리 아버지로 있다, 하고 말할 생각을 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에게 자손들을 일으키실 수 있느니라.” 또 “도끼가 나무의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 속에 던져지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보십시오, 모든 것이 전혀 달랐습니다. 그들은 그를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셨을 때 사생아라는 이름을 달고 오셨고, 거룩한 혼인 밖에서 태어난 아이로 오셨습니다. 성경이나 역사 어디에도 그분이 신학교나 학교나 그 밖의 어떤 교육기관에 단 하루라도 다녔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제사장들을 놀라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셨기 때문에, 하시는 모든 말씀을 뒷받침하는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이 그분께 있었습니다. 그분의 가르침은 그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서기관처럼 가르치지 않으시고 주님의 말씀을 가진 분처럼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가르침은 당시 교회들이 이해하던 것과 전혀 달랐습니다. 오늘날 그분이 여기 계신다면 아마 지금의 교회들과도 많이 다를 것입니다.
이제 살펴봅시다...먼저 요한복음 1장을 보겠습니다. 시몬이라는 사람이 있었고, 그에게는 안드레라는 형제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어부였습니다. 이제 잘 들으십시오. 이 부분을 놓치지 마십시오. 아마 안드레는 집회에 내려가서,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주 예수님 위로 내려오시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이 큰 빛이 하늘로부터 내려오는데 날개가 있는 듯했고, 그분 위에 내려앉았습니다. 그리고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그 안에 거하기를 기뻐하노라”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 일을 본 뒤 안드레가 시몬에게 이야기했을 것입니다. 그가 자기 형제에게 틀림없이 말했을 것이므로, 시몬은 예수님을 만나러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잘 배운 바리새인이었던 시몬은, 자기 아버지가 하나님을 깊이 경배하는 분이었고 메시야께서 오시면 어떤 분이실지 가르쳐 주셨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날에는 혼란이 있을 것이다. 틀림없이 그 직전이나 그날에 온갖 거짓된 것들이 일어날 것이다. 하지만 시몬아, 잊지 말아라. 이 메시야는 하나님의 선지자이시며 선지자의 표적을 보이실 것이다. 모세가 ‘주 우리 하나님께서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라’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시몬아, 그분은 선지자이실 것임을 기억하여라.” 이제 우리는 어제 계셨던 그분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시몬이 하나님 앞에 정직한 마음을 가지고 올라와, 예수님께서 서 계신 줄로 들어섰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시몬을 보시자마자 그에게 눈길을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네 이름은 시몬이요, 너는 요나의 아들이라.” 오, 시몬은 그 말에 기세가 완전히 꺾였을 것이라고 저는 상상합니다. “네 이름은 시몬이요, 너는 요나의 아들이라.” 시몬은 아마 휘청거리며 그분을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그분은 시몬뿐 아니라 그의 경건한 아버지까지 아셨습니다. 그러자 시몬의 마음에 “바로 그분이시다”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시몬이 주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리자, 예수님께서 “이제부터 너는 베드로라 불리리니, 작은 돌이라는 뜻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왕국의 열쇠들을 주셨습니다.
그곳에는 나다나엘이라는 사람이 서 있었습니다. 그는 이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의심 없이 알았습니다...아니, 빌립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밤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그 사람 말입니다. 그는 그 일을 보고 산을 돌아 달려갔습니다. 여기 계신 분 가운데 팔레스타인에 가서 그곳에 표시해 놓은 지점들을 보신 분이 있다면 아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설교하시던 곳에서 돌아서 그의 친구 나다나엘을 만난 곳까지는 약 15마일입니다. 그는 집에 가서 문을 두드리고, 틀림없이 나다나엘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을 것입니다. 나다나엘은 성경을 열심히 연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아내가 아마 “저 뒤쪽 무화과나무 밑 어디에선가 과수원을 살펴보고 있을 거예요”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는 산을 돌아 작은 무화과나무에 이르렀고, 그곳에서 나다나엘이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들으십시오! 그가 기도하는 모습을 보자, 빌립은 그리스도인 신사답게 기도가 끝날 때까지 움직이지 않고 기다렸습니다. 그 사람이 기도를 마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나다나엘이 일어나 옷을 털자, 빌립은 곧바로 말했습니다. “와서 우리가 만난 분을 보게.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님일세.” 여러분도 아시듯 나다나엘은 정통 신앙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이렇게 말했을 것이라고 저는 상상합니다. “빌립, 자네가 좋은 사람인 것은 아네. 하지만 분명히 너무 지나쳤군. 자네 말이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겠나?” 그때 빌립은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대답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와서 보게.” “집에 있으면서 비판하게”라고 하지도 않았고, “일어나서 나가 버리게”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와서 직접 보게”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산을 돌아갔습니다. 빌립이 이렇게 말했을 것이라고 상상해 봅니다. “우리가 그때 물고기를 샀던 시몬이라는 그 영감님을 알지?” “알지.” “그런데 며칠 전에 그 사람이 메시야 앞에 왔더니, 메시야께서 ‘네 이름은 시몬이라’라고 말씀하셨어. 그 사람이 자기 이름도 쓰지 못할 만큼 배우지 못했다는 것 기억하지?” 성경은 왕국의 열쇠들을 가졌던 베드로가 무식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글을 몰라 자기 이름조차 쓸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기뻐하셔서 그에게 왕국의 열쇠들을 주셨습니다. 배우지 못하고 무식한 사람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빌립이 말했습니다. “그분은 시몬에게 그가 누구인지, 그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말씀하셨어. 나다나엘, 자네도 메시야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여야 한다는 것을 알지. 메시야 안에는 하나님께서 계셔야 해. 그분은 선지자들의 왕이셔야 하니까. 그리고 성경에 따르면 그분은 우리에게 메시야의 표적을 주셔야 하네. 이분이 그런 일을 하신다면, 자네도 그분이 선지자이심을 믿지 않겠나?” 나다나엘이 이렇게 말했을 것이라고 상상합니다. “잠깐만, 빌립. 우리에게는 수백 년, 수백 년 동안 선지자가 없었네. 그런데 어떻게 이 갈릴리 사람이, 어떻게 이 나사렛 사람이...? 어느 학교에 다녔는지, 어디에 있었는지 기록도 없지 않은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겠나?” “그냥 와서 알아보게. 와서 직접 확인해 보게.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닌지 보게.” “저 아래에 있는 그 거친 사람, 요한에 대해서는 들었네.” “그는 그저 앞서 가는 사람이었네. 그가 이사야...그가...아니, 그분보다 앞서 오기로 되어 있던 선지자였네. 그런데 그는 이제...오기로 되어 있던 엘리야가 바로 그 사람이야. 이제 이분은 메시야이시네. 메시야의 표적을 보이시니까.”
그것이 어제 메시야의 표적이었다면 오늘도 동일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분이 잘못된 표적을 주신 것이 됩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이 그분을 메시야가 아니라고 부인하며 죽인 일이 옳고 정당했을 것입니다. 그분이 사기꾼이 되는 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분이 메시야이심을 입증하셨기 때문에 그분을 죽였습니다. 남김없이 모든 것이 밝혀져 있었습니다. 이번 주에 더 살펴보면 여러분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분은 메시야이십니다. 나다나엘은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릅니다. “빌립, 자네를 믿고 싶지만 도저히 못 믿겠네. 그런 일이 일어났다니 도무지 믿을 수가 없어. 너무나 좋은 일이어서 믿기 어렵군.” 그러자 빌립은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나다나엘, 자네가 그분 앞에 가면 자네가 누구인지 말씀하셔도 나는 놀라지 않을 걸세.” “그런 일은 절대로 없을 거야. 아니, 못 믿겠네. 먼저 직접 보아야겠어.” 그들은 와서 마침내 예수님께서 계신 집회에 도착했습니다. 나다나엘이 기도 줄에 들어왔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모릅니다. 회중 가운데 앉아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들이 어떤 모습이었든, 땅에 앉아 있었든 서 있었든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눈길이 그에게 닿자마자—들으십시오!—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을 보라. 그의 속에는 간사함이 없도다.” 그것이 어제의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스라엘 사람을 보라. 그의 속에는 간사함이 없도다.”
그 사람은 너무나 놀라서 “랍비여, 언제 저를 아셨습니까?”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어떻게 제가 정직하고 의로운 이스라엘 사람인 것을 아셨습니까?”라는 뜻입니다. 옷차림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동방 사람들은 모두 비슷하게 옷을 입었습니다. 수염을 기르고, 터번을 쓰고, 긴 옷을 입었으며, 피부도 검었습니다. “어떻게 저를 아셨습니까?” 그분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그 나무 밑에 있을 때 내가 너를 보았노라.” 그것이 어제의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분은 그렇게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나다나엘은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랍비여, 선생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선생님은 이스라엘의 왕이시니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것을 네게 말하였으므로 네가 믿는구나. 그렇다면 더 큰 일들을 보리라.” 그는 믿는 사람이었고, 영생을 얻고 하나님의 일들을 보도록 정해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거기 서 있는 사람들 중에는 그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당시의 랍비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거기 서 있었습니다. 자기 회중에게 답을 해 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피할 길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그곳에 서서 그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고, 그들은 성경이 메시야께서 그렇게 하실 것이라고 가르친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에게 답을 해야 했습니다. 그들이 뭐라고 했습니까? 소리 내어 말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바알세붑이야. 점쟁이거나 어떤 악한 영이지. 그는 마귀들의 통치자, 점쟁이야. 그래서 이런 일들을 하는 거야. 점술로 하는 거지.” 예수님께서는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그 일은 내가 너희를 용서하겠노라. 그러나 언젠가 성령께서 오시리니, 그 성령을 대적하는 말을 한마디라도 하면 이 세상에서도 오는 세상에서도 결코 용서받지 못하리라.” 그렇게 부를 때 우리가 어떤 처지에 놓이는지 보십시오...성령을 모독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성경에 예고된 일을 그대로 행하시던 하나님의 영을 마귀의 힘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 일은 이 세상에서도 오는 세상에서도 결코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셨으므로 거짓말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거짓말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분 안에 계셨습니다. 그분은 “내가 아니라 내 안에 거하시는 아버지시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은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분 안에 계신 영이셨고, 그 영께서 그분을 통해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이제 그분이 그 유대인들에게 무엇을 하셨는지 아시겠습니까? 그들을 만나셨을 때, 생명을 얻도록 정해진 사람들은 알아보았습니다. 교회여, 이것을 놓치지 마십시오! 생명을 얻도록 정해진 사람들은 알아보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믿지 않은 사람들은 물리침을 받아 멸망으로 갔습니다. 예수님께서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안다는, 아니 안다고 주장하는 그 거룩하고 성별된 사람들에게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느니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정확히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죄를 흡연이나 음주나 도박으로 규정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죄가 아닙니다. 그것은 불신에서 나타나는 속성들입니다. 죄는 불신입니다. 평생 담배에 손도 대지 않았고 술도 마시지 않았으며 악한 일을 한 번도 하지 않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다면 여전히 죄인입니다. 죄는 불신입니다. 영은 두 가지뿐입니다. 하나는 믿고, 다른 하나는 믿지 않습니다. 아무리...우리는 모든 생각의 근거를 어떤 거룩한 행위, 우리가 하고 싶은 일, 우리가 해 놓은 일에 두어 왔습니다. “존스네가...그때 내가 석탄을 좀 주었으니, 나는 천국에 갈 권리가 있어.” 하나님을 믿기 전에는 천국에 갈 권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를 믿는 믿음에 근거하여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다른 어떤 길로도 권리를 얻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여러분은 충실한 교인, 뼛속까지 오순절교인일 수 있습니다. 아니면 뼛속까지 감리교인이나 침례교인이나 가톨릭교인일 수 있습니다. 어느 교회에 속했는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로 믿고 자신의 구주로 받아들였다면, 그분을 믿는 여러분의 믿음으로...어느 교회에 다니든 상관없습니다. 여러분은 믿음으로 구원받으며, 그것 없이는... 거룩한 교회는 없습니다. 거룩한 사람들도 없습니다. 사람들 안에 계신 성령께서 거룩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람들 가운데 사시는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거룩함을 이루십니다. 제가 한 일이나 여러분이 한 일이나 우리가 했을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입니다. 그것이 성경입니다.
유대인들을 보십시오. 생명을 얻도록 정해진 사람들은 그것을 진실로 믿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자기 신앙에 굳건한 정통파였고, 꼿꼿했습니다. 그들은 글자 하나조차 쓰려 하지 않았...레위인이 되고 가르치는 자가 되려면, 할아버지에서 할아버지로, 또 할아버지로, 대대로 이어 내려오는 제사장 가문에 속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참된 말씀이 아니라 전통으로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아비...너희 아비는 마귀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받아들이고 믿으려는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겸손한 어부들은, 가르침을 받아 메시야께서 어떤 분이실지 알고 있었으므로, 그것을 보는 순간 알아보고 믿었습니다. “참으로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랍비여, 우리는 주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님이심을 압니다.”
니고데모가 그것을 잘 표현했습니다. 교회는 그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했지만, 그래도 그는...“우리는 당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님이심을 압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지 않으면 아무도 당신이 하시는 일들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확실한 것을 압니다. 당신은 메시야이십니다. 메시야이심을 나타내는 표적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모세가 당신이 오실 것이라고 말했음을 압니다. 성경이 당신이 오실 것이라고 말함을 압니다. 당신은 하나님이신 선지자이셔야 한다는 것도 압니다. 그런데 지금 여기서 우리 마음속의 생각까지 아시며 우리에게 입증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당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님이심을 압니다.” 그분은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만 오십니다. 당시 우리 이방인들, 앵글로색슨 사람들과 로마인 등은 이교도였습니다. 등에 몽둥이를 메고 우상들을 숭배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과 이방인의 피가 반씩 섞인 사마리아인이라는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도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제 빨리 하겠습니다. 5분 정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리고로 내려가시는 길이었지만, 사마리아를 거쳐 가셔야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제 아주 주의 깊게 들으십시오. 어떤 도시에 이르셨을 때, 그분은 제자들을 먹을 것을 구하러 보내시고 자신은 우물가에 앉으셨습니다. 그곳에 가 보셨다면 아시겠지만, 탁 트인 우물이며 지금도 그 자리에 있습니다. 여기 이것과 좀 비슷하지만 이만큼 높지는 않고, 주위에는 덩굴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물을 길으러 오는 공동 우물입니다. 여자들은 지금도 그곳으로 나와 큰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워 머리 위에 얹고, 아주 자연스럽게 걸어갑니다. 여자들이 서로 이야기하는 데 능한 것은 아시지요. 그렇게 이야기하며 걸어가면서도 한 방울도 흘리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곳에 물을 길으러 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신 대로 피곤하셔서 앉으셨습니다.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러 도시로 갔습니다. 그들이 없는 동안 아름다운 젊은 여자가 나왔습니다. 평판이 좋지 않은 여자였습니다. 혼인 서약을 더럽힌 사람이었습니다. 다섯 번 결혼했고, 여섯 번째 남편과 살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나왔다고 합시다...그 당시 실상은, 그녀가 이른 아침에 다른 여자들과 함께 나올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올바른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서로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는 모두 뒤섞여 어느 쪽이 어느 쪽인지 구별할 수 없습니다. 옷차림도 같고, 모습도 같고, 말하는 것도 같습니다. 똑같습니다. 모두 담배를 피우고, 밖에 나가 제멋대로 행동하고, 머리를 자르고, 화장을 합니다. 구별할 수가...그저 서로 물고 뜯습니다. 바로 그런 형편입니다. 그렇게들 옵니다.
그 여자는 다른 여자들이 모두 떠난 뒤에 우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내려보내려는데...줄을 감아 올리는 틀이 있고, 갈고리가 달린 커다란...사실 양동이가 아니라 항아리나 솥 같은 것으로, 목이 길고 고리가 두 개 있습니다. 그 팔처럼 생긴 손잡이 밑으로 줄을 걸어 우물에 내려 물을 길은 뒤 다시 감아 올리는 것입니다. 그 여자가 항아리를 우물에 내리려 할 때, 어떤 남자가 “여자여, 내게 마실 물을 가져다 달라”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녀가 쳐다보니 유대인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분은 서른세 살 정도밖에 안 되셨지만, 쉰 살쯤 되어 보이셨던 모양입니다. 사람들이 그분을 보고 쉰 살쯤 되어 보인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네가 아직 50세도 안 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다고 하느냐?”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그분의 사역이 몸을 많이 지치게 했던 모양입니다. 그분은 그렇게 우물에 기대어 앉아 계셨습니다. “여자여, 내게 마실 물을 가져다 달라”라고 하셨습니다.
여자는 돌아보며 그 지역에는 사람들을 구분하는 차별이 있다는 것을 그분께 일러 주었습니다. “당신은 유대인이고 저는 사마리아 여자입니다. 여기에는 당신이 제게 그런 부탁을 하는 관습이 없습니다.” 그 질문에 어떻게 답하시는지 보십시오. “그러나 네가 알았더라면”—오 하나님!—“네가 누구와 이야기하고 있는지 알았더라면, 내게 마실 물을 구하였을 것이다. [테이프 끊김.] 생명의 물이 솟아오르고 있느니라.” 그러다가 산에서 경배해야 하는지 예루살렘에서 경배해야 하는지에 관한 문제가 나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하고 계셨습니까? 그분은 사마리아를 거쳐 가셔야 했고, 아버지께서 보여 주시기 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그곳을 거쳐 가셔야 했던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그분을 그곳으로 보내셨고, 틀림없이...요한복음 5장 19절에서 그분은 “나는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기 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노라. 아버지께서 무엇을 해야 할지 먼저 환상으로 내게 보여 주시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성경 구절을 읽어 보신 분이 몇 분이나 됩니까? 요한복음 5장 19절입니다. “그렇다. 나는 아버지께서 먼저 하시는 것을 보기 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그 후에 보여 주신 그대로 행하노라.”
그분은 이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셨고, 여자가 오는 모습도 보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에게 질문하셔야 했습니다. 그녀의 영을 찾으려 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래서 그분은...그것이 “내게 마실 물을 가져다 달라”라고 말씀하신 이유입니다. 환상을 통해 그 여자의 모습이 어떠한지 아셨습니다...그래서 여자가 그런 모습일 것임을 아셨습니다. 아마 곱슬머리가 얼굴 위로 늘어져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 단정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물을 길으러 왔습니다. 그분은 그녀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여자는 “우리는 이 산에서 경배해야 합니다. 우리 조상들이 여기서 경배했고,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들도 하나님께서 하나님이신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메시야가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신들은 예루살렘에서 해야 한다고 하시는군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분은 “너희가 예루살렘에서도 이 산에서도 경배하지 않을 때가 오는데 바로 지금이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그분께 경배하는 자들이 반드시 영과 진리로 그분께 경배할지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질문이 이어지고 계속 이야기를 나누시다가, 마침내 그녀의 영을 파악하셨습니다. 제가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입증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바로 이 부분은 말씀으로 입증할 수 없지만...여러분이...그분이 그녀와 말씀하고 계셨으므로 그랬음이 틀림없습니다. 그분이 여자와 말씀을 나누셨다는 것은 아시지요. 그분은 여자의 영을 파악하시고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셨습니다. 그 여자의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아시는 분이 몇 분이나 됩니까? 그렇습니다. 그녀는 살고 있었...남편이 여섯 명 있었습니다. 그분은 “여자여, 가서 네 남편을 데리고 여기로 오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보십시오. 이분이 메시야이십니다. 여러분은 그분이 메시야이셨다고 믿습니까? “가서 네 남편을 데리고 여기로 오라.” 그 여자는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의 말씀을 얼마나 단호하게 부인한 것입니까.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진실을 말하였도다. 네게는 다섯 남편이 있었고 지금 네가 함께 사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가 진실을 말하였도다.” 그 여자를 보십시오. 그 제사장들보다 하나님에 대해 얼마나 더 많이 알고 있었는지 보십시오. 형제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그 제사장들은 “그는 바알세붑, 점쟁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여자는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선생님이여, 제가 보니 선생님은 선지자이십니다. 우리는 압니다. 우리 사마리아인들은 메시야께서 오시면 그것이 그분의 표적일 것을 압니다. 메시야께서 오시면 이런 일들을 우리에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 곧 기름부음받은 분이라 불리는 메시야께서 오시면 이런 일들을 말씀해 주실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런데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분은 “네게 말하고 있는 내가 그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 놀랍습니다! 여자는 물 항아리를 버려두고 도시로 달려갔습니다. “와서 제가 한 일들을 제게 말씀하신 분을 보십시오. 이분이 바로 메시야가 아니십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성경은 그 도시의 남자들이 그 여자의 말로 인해 그분을 믿었다고 했습니다. 성경을 가르치는 여러분, 맞습니까? 그 여자의 말로 인해 그들은 그분을 믿었습니다. 그것이 어제의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분은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모두에게 그렇게 자신을 알리셨습니다. 그러나 이방인들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방인 앞에서는 단 한 번도 그런 일이 행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저녁때에 그것이 올 것이라고 예언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어디에 그런 말씀이 있습니까?”라고 묻습니다. 좋습니다. 이제 마치면서 성경 한 구절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소돔의 날들에 있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도 그러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소돔을 보면서 그분이 무엇을 하셨는지 살펴봅시다. 소돔에서...미지근한 신자였던 롯은 따로 떨어져 소돔으로 내려갔고, 그곳에서 좋은 평판을 쌓았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소돔 밖에 머물며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에 따라 살았습니다. 언제나 세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든 집회에 있고, 모든 도시에 있고, 모든 교회에 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 믿는 척하는 사람들, 믿는 사람들입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언제나 그러했습니다. 오늘도 그렇습니다. 모든 회중, 사람들이 함께 모이는 모든 곳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왔을 때에도, 거기에 그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 소돔의 모형에서...그분이 얼마나 세밀하게 이것을 말씀하셨는지, 어떻게 말씀하셨고 어떤 말을 쓰셨는지 잘 보십시오. 소돔에서는 불이 내리기 바로 직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내리려 하는 것도 바로 불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압니다. 이 세상은 멸망할 운명입니다. 우리는 압니다. 세상은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없이 길을 잃었습니다. 휴거를 준비한 사람들은 적은 남은 무리뿐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이번 주에 그것을 말씀 한 마디 한 마디로 입증하겠습니다. 보십시오. 우리는 멸망할 사람들...아니, 세상이 그렇습니다. 교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남은 무리가 있음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보십시오. 이제 소돔이 받은 마지막 표적을 주목하십시오...그분은 그동안 줄곧 아브라함과 함께 계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소돔과 고모라 도시가 불타기 바로 직전에...그곳에는 변태들이 많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나라들을 보십시오. 사람들의 마음에서 나오는 모든 생각이 악하여, 성적인 일들에서 자신을 타락시키고 있었습니다.
보십시오. 세 분이 아브라함을 만나러 오셨습니다. 사람처럼 보였고, 옷에는 먼지가 묻어 있었으며, 자신들은 나그네라고 하셨습니다. 그중 두 분은 열 사람을 찾아보려고 소돔에 설교하러 내려갔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소돔, 곧 미지근한 교회로 내려갔습니다. 오늘날의 빌리 그래함 같은 이들이 소돔에 내려가 복음을 전하며, 복음으로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하는 것입니다. 전도자 빌리 그래함과 오럴 로버츠와, 그 밖의 많은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그렇게 했습니다. 사람들을 흔들었습니다. 이 나라는 흔들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 사람들의 위대한 사역으로 세상이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의 사역으로 나라들을 흔들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교회라는 말은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을 뜻합니다. 아브라함은 그런 모든 것에서 자신을 분리했습니다. 그래서 남아서 아브라함과 이야기하신 그분, 아브라함이 “주님”이라고 부른 그분은...하나님이셨습니다. 여러분이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성경을 보십시오...그분과 이야기하고 있던 아브라함이 그분을 주님, L-o-r-d, 엘로힘, 주 하나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분은 무엇을 하고 계셨습니까? 아브라함은 송아지 고기와 우유와 버터와 빵을 대접했고, 그분은 그것을 드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엘로힘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그 일을 언급하셨습니까? 이제 보십시오.
그로부터 며칠 전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아니,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바꾸셨습니다. 사래, S-a-r-a-i를 공주라는 뜻의 사라, S-a-r-a-h로 바꾸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자신의 이름 일부를 주셨습니다. 엘로힘, 아브라함, 민족들의 아버지로서 말입니다. 그리고 앉아서 그와 이야기하시는 이분을 보십시오. 옷을 입고, 그 옷에는 먼지가 묻어 있으며, 다른 사람과 똑같이 고기를 드시는 분입니다.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성경을 잘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당신 뒤에 있는 장막에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내가 너를 찾아오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그분이 누구신지 입증했습니다. “내가 네게 준 약속대로 너를 찾아오리라. 내가 너를 찾아오면, 너는 25년 동안 기다린 이 아기를 갖게 될 것이다. 이제 사라는 90세이고 너는 100세이지만, 내가 그 아기를 네게 주리라.” 사라는 마음속으로 웃었습니다. 성경은 속으로 그랬다고 했습니다. 천사는 등을 돌리고 계셨고, 사라는 장막 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늙은 내가 저기 있는 내 주와 즐거움을 누리겠는가? 그도 늙었는데?” 등을 돌리고 계신 그 천사, 육신으로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사라가 웃으며 속으로 이렇게 말하느냐...?”
예수님께서는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소돔의 날들에 있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도 그러하리라.” 바로 그 동일한 일, 곧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육신 안에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천사들이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으로 태어나 가슴속에 영생을 가진 사람들이 그때 소돔에서 그 천사가 행하신 것과 같은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선생님들이여, 우리가 예수님을 뵙기 원하나이다.” 그분이 오늘 살아 계시며 이 교회 안에 계신다면, 그때 하셨던 것과 똑같이 하실 것입니다. 지금은 이방인 시대의 끝입니다. 선지자는 낮이라고도 밤이라고도 할 수 없는 한 날이 있을 것이지만, 저녁때에는 빛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태양은 지리적으로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집니다. 동일한 태양입니다. 그렇다면 아들, S-o-n이 동방 사람들에게 떠오르셔서 기적의 권능을 나타내셨을 때... 우리에게는 어둑하고 비 내리는 날 같은 한 날이 있었습니다. 교회에 가입하고, 조직을 세우고, 좋은 시간을 보내고, 그리스도인이 되어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만큼의 빛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후로는 그 햇빛이 쏟아져 비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문명은 태양을 따라 움직여 왔습니다. 가장 오래된 문명은 중국입니다. 우리가 왔...문명은 동쪽에서 태양과 함께 서쪽으로 움직여 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서부 해안까지 왔습니다. 성경은, 선지자는 “저녁때에 빛이 있으리라”라고 말했습니다. 동쪽에서 떠올랐던 그 동일한 태양이 동방 사람들에게 비쳤던 것과 똑같은 권능으로 서방 사람들에게 비칠 것입니다. “선생님들이여, 우리가 예수님을 뵙기 원하나이다.” 왜 우리는 뵐 수 없습니까? 그분이 약속하셨는데 왜 뵐 수 없습니까?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그것은 성경 말씀이지만 실제로 이루어질까요?”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이라면 이루어질 것입니다.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믿습니까? 그분이 오늘 밤 이 회중 가운데 오셔서, 예전에 여기 계실 때 하셨던 것과 같은 일을 행하신다면, 그분에게...여러분에게 그분이 여기 계심을 알게 하시려고, 동일한 그리스도께서 동일한 일을 행하신다면, 여러분은 그분을 믿겠습니까? 손을 들고 “그 일이 행해지는 것을 볼 수 있다면 믿겠습니다”라고 말씀하십시오.
고개를 숙입시다. 전능하시고 모든 권능을 가지신 하나님, 오 거룩하신 아버지, 우리에게 주신 약속을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약속들이 참됨을 압니다. 바깥은 궂은 밤이지만 안은 영광스러운 밤입니다. 안은 밤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께서 우리의 마음과 삶 속에 빛나시는 낮입니다. 믿는 사람들을 주시니 감사드리고, 그 믿는 사람들에게 오셔서 자신을 나타내겠다고 약속하신 그리스도로 인해 감사드립니다. 이 마지막 날에 이방인들에게 보이시려고...아버지, 우리가 알기로는 역사상 초기 교회가 사라진 뒤로 지금까지 이런 일이 없었습니다.
옛날 바울과 그 사람들에게 환상이 열렸고, 그들이 같은 일을 행한 것을 생각합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일, 그리고 그날 밤 바다에 있던 바울의 일 말입니다. 주님의 천사가 그의 곁에 섰고, 그는 나가서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초기 교회에서 하나님의 위대한 권능들이 그렇게 알려졌습니다. 주님은 마지막 날들에 그것을 다시 약속하셨습니다. 아버지, 주님의 종의 잘못들을 용서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제 성령께서 나오게 하옵소서. 이것은 그분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들 앞에서 행하시게 하옵소서...아버지, 저는 이들에게 구원이란 이미 갈보리에서 그들을 위해 이루어진 일이며, 신유란 주님께서 갈보리에서 그들을 위해 행하신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주님, 이제 그들이 자신들의 믿음에 달려 있음을 깨닫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권능으로 나오셔서 그때 하셨던 것처럼 행하시는 모습을 보면, 그 약속을 하셨던 동일한 예수님이심을 알게 될 것입니다. 주님, 허락해 주옵소서.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 우리 자신과 이 회중을 주님께 맡깁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이제 부탁드리겠습니다. 앞으로 10분에서 15분 사이에 나가셔야 할 분은 집회를 방해하지 않도록 지금 나가 주십시오. 이제부터, 지금 이 순간 이후로는 돌아다니지 말아 주십시오. 자리에 그대로 앉아 계십시오. 우리가 병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날마다...누군가 나가셔야 하는 동안 이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하지만 가능하다면 15분만 더 머물러서 말씀이 참된지 지켜보십시오. 누구나 와서 그런 말을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실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맞습니다. 이제, 만일...저녁에 병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날마다, 우리는 이곳으로 내려올 것이고 청년들이 기도 카드를 나누어 줄 것입니다. 제 아들 빌리 폴이거나, 여기 있는 진 고드, 녹음을 맡은 청년들 가운데 한 사람이지요. 또 레오, 레오 머시에라는 청년도 있습니다. 그중 한 사람이 카드를 나누어 줄 것입니다. 그들은 회중 앞에 서서 카드들을 모두 섞을 것입니다. 그리고 내려와 여러분에게 기도 카드를 나누어 줄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에게 어떤 기도 카드를 주는지, 누가 앞으로 불려 나오고 누가 불려 나오지 않을지 그들도 모릅니다. 그러니 그들은 공정한 것입니다. 또 그날 밤 성령께서 어느 번호에서 시작할지 마음에 주시기 전까지는, 어디서 시작할지 아무도 모릅니다. 물론 그것이 사람들의 치유와 관계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누군가를 여기 단상으로, 주님의 영 앞에 모셔 오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니 회중 가운데 기도 카드가 없는 분들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 자리에 앉아서 온 마음을 다해 믿으며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십시오. 이제 제가 드린 말씀을 잘 들으시고, 더 이상 돌아다니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시간에는 아무도 사진을 찍지 말아 주십시오. 왜냐하면...그 이유는 조금 뒤에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것은 빛, 곧 주님의 천사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것이 불기둥이었다는 것을 압니다. 독일과 스위스와 미국에서 찍은 사진, FBI 앞에 제출된 사진도 여기 있었고, 모두 입증되었습니다. 그것은 초자연적인 존재입니다. 잠시 후 단상에 계실 것입니다. 그리고 정확히 동일한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그러니 이제부터 집회가 진행되는 동안 사진을 찍지 마십시오. 사람들이 앞으로 나오는 동안 앉아서 아주 경건하고 조용하게 계십시오.
제 생각에는...당신이, 아니 빌리가 나누어 주었지요...1번부터 100번까지입니까? 시간이 늦어서 너무 많은 분을 부를 수는 없겠지만, 카드를 잘 가지고 계십시오. 몇 분을 이 앞으로 불러 보겠습니다. 기도 카드 1번을 가진 분은 누구십니까? 일어나실 수 있으면 일어나시거나 손을 들어 주십시오. 기도 카드 1번입니다. 거기에 무슨 글자가 있습니까? A, A 1번입니다. 가지고 계신 분이 있습니까? 어딘가 잘못된 것 같습니다. 그러면 시작을...아, 죄송합니다. 좋습니다. 자매님, 바로 이리로 오시겠습니까? 2번입니다. 기도 카드 A 2번, 손을 들어 주십시오. 좋습니다. 자매님, 바로 이리로 오십시오. 3번,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좋습니다. 3번입니다. 제가 보았나요? 예, 저 뒤에 계시는군요. 4번,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저 뒤에요. 좋습니다. 다음 번호...그 청년은 이 건물 어디서든 원하는 분들에게 카드를 나누어 줍니다. 5번입니다. 기도 카드 5번을 가진 분은 누구든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좋습니다. 6번,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제가 볼 수 있도록 손을 들어 주십시오. 좋습니다, 형제님. 바로 이리로 오십시오. 7번, 8번, 9번, 제가 부르는 대로 나오십시오. 10번입니다. 좋습니다. 여기가 농구장이거나 경기장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밤에는 경기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을 경외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1, 2, 3, 4, 5, 6, 7, 8, 9. 10번입니다. 기도 카드 10번을 가진 분은 누구십니까? 좋습니다, 자매님. 11번입니다. 좋습니다. 12번. 12번, 13번, 14번? 14번? 14번? 14번? 이 정도면 됐습니다. 거기서 시작합시다.
카드를 가지고 계신 분들은 그대로 가지고 계십시오. 부를 것입니다. 이 회중의 아마 99퍼센트는 저와 처음 만나는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와 처음 만나는 분들은 모두 손을 들어 주십시오. 거의 100퍼센트인 것 같습니다. 좋습니다. 여기 기도 카드가 없지만 병들어 있고, 하나님께서 치유해 주시기를 원하는 분은 몇 분이나 계십니까? 기도 카드도 없고 저와 처음 만나는 분들입니다. 이 건물 어디에 있든 손을 들어 주십시오. 어디에 계시든 상관없습니다. 거의 모든 곳에 계시는군요. 사람들이 줄을 서도록 안내하는 동안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죽은 소녀, 야이로의 딸을 일으키러 가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혈루증을 앓는 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말했습니다. “나는 그분이 메시야이심을 믿어. 그러니 그분의 옷 가장자리, 옷단에 손을 대기만 해도 나을 거야.” 그 이야기를 읽어 보신 분이 몇 분이나 됩니까? 물론 읽어 보셨을 것입니다. 그녀는 그분의 옷에 손을 댔습니다. 그것이 그녀가 하고 싶었던 일이었습니다. 그녀는 그분을 믿었습니다. 이전에는 그분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지만 믿었습니다. 그분을 보는 순간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그분의 옷에 손을 댔습니다. 그분은 그것을 몸의 감각으로 느끼실 수 없었습니다. 팔레스타인 의복은 헐렁하게 늘어져 있고, 그 안에는 속옷이 있습니다. 그러니 느끼실 수 없었습니다. 그 작은 여자가 그분의 옷에 손을 댔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그분과 악수를 하고, 그분을 끌어안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그분께서...여자는 회중 가운데로 들어가 앉았든 어떻게 했든 그곳으로 갔습니다. 그분께서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그분을 책망하며 “주님,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라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주님께 손을 대고 있습니다.” 그분은 “그러나 내가 약해진 것을 느끼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에는 “효능”이라고 되어 있는데, 효능이란 힘입니다. “내게서 효능이 나간 것을 내가 아노라.” 그분은 회중을 두루 살피시다가 그 작은 여자를 찾아내시고, 그녀가 혈루증을 앓았다는 것과 그녀의 믿음이 그녀를 구원했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맞습니까? 그렇다면 기도 카드가 없는 여러분, 그분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면, 오늘 여러분이 그분께 손을 댈 때도 같은 방식으로 행하시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여기 계신 목사님들, 그리고 저기 계신 목사님들과 성경을 읽는 분들 가운데 몇 분이나 이것을 알고 계십니까?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지금 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을 느끼실 수 있는 대제사장이시라고 했습니다. 맞습니까? 지금 그분은 대제사장이십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형제 여러분? 그러면 그분이 그때와 동일한 대제사장이시라면, 지금 어떻게 행하시겠습니까? 그때와 동일한 대제사장이시라면 똑같이 행하실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분은 동일한 대제사장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시며 변하실 수 없습니다. 이전의 그분과 다르실 수 없습니다. 이 동일한 메시야의 표적 없이 이방인 교회가 그냥 지나가게 하신다면, 그들, 곧 사마리아인과 유대인에게는 해 주시고 우리에게는 해 주시지 않은 일이 있는 것이므로 공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신학만으로 넘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신학이 잘못되었음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으로 그들 앞에 나타나는 때가 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역시...지금 이방인 교회도 그것을 받고 있습니다.
이제 다시 부탁드립니다. 돌아다니지 마십시오. 제발 그러지 마십시오. 성령께서는 아주 수줍어하시는 분이십니다. 때로 여러분이 움직이면...여러분은 영이며 혼입니다. 그러니 움직이면 방해가 됩니다. 아주 조용히 앉아 계십시오. 경건하게 계십시오. 어떤 일이 이루어진 뒤에, 성령께서 어떤 일을 하신 뒤에 “주님을 찬양합니다”라고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셔도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과 접촉하고 있을 때는 아주 조용히 계십시오. 그저 계속 기도하십시오. 저기 기도 카드가 없는 분들은 이렇게 말씀하십시오. “주 예수님, 저 사람이 저를 모른다는 것을 압니다. 또 그가 그저 사람이라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주님은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믿습니다...그는 성경을 읽어 주었고, 제게 진실을 말해 주었습니다. 저는 병들었고 도움이 필요합니다. 아버지, 제가 주님께 손을 대게 해 주십시오.”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십시오. “이제 그를 통해 말씀해 주십시오. 그는 그저 말씀을 전하는 도구일 뿐입니다”라고 하십시오. 보십시오. 이 마이크는 무언가가 그 안에 말하기 전에는 소리를 내지 못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여러분 가운데 누구도 모릅니다.
이 기도 줄에 계신 분들 가운데 제가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아는 분은 모두 손을 들어 주십시오. 그 줄에 계신 분들, 제가 여러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아시지요. 저도 손을 듭니다. 제가 아는 한, 저는 저 사람들을 평생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저 줄에서 제가 전에 본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이 건물 안에서도 제가 아는 사람은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이쪽에 앉아 계신 분이 시카고에서 온 제 좋은 친구 스캐그스 형제님이라면 모르겠습니다만...스캐그스 형제님이십니까? 저는 그분인 줄 알았습니다. 또 프레드 소트먼 형제님이 계신 것을 압니다. 아마 건물 안 어딘가에 계실 것입니다. 톰 심프슨 형제님도 아마 이 건물 어딘가에 계실 것입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어디 계십니까? 프레드 형제님, 톰 형제님, 여기 계십니까? 밖에서 두 분의 차를 보았는데...예, 여기, 저 뒤편에 계시는군요. 좋습니다. 이제 아주 경건하게 계십시오. 좋습니다. 사람들이 좀 지치면 의자를 드리십시오. 자매님, 바로 이리로 올라오십시오. 자, 여기 말씀이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읽어 드리고 설교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약속이라고 믿는 분은 몇 분이나 됩니까? 여기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 제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말씀이 이루어질까요? 이분이 믿고, 저도 믿으며, 은사를 통해 저 자신을 하나님께 맡겨 그분께서...제 자신은 비켜서고 그분께서 말씀하시도록 하면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님께서 하실 법한 일이 무언가 일어난다면, 그것은 반드시 영께서 하시는 것임을 여러분도 알 것입니다.
이제 조금 전에 제가 인용했던 요한복음 4장을 생각해 봅시다. 전에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여자와 남자가 있습니다. 서로 처음 만나는 사람들입니다. 제가 말씀드렸던 작은 장면과 같습니다. 요한복음 4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자를 만나 잠시 말씀을 나누시며 그녀의 영을 파악하신 뒤, 그 여자의 문제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제가 자매님을 모른다는 것을 자매님도 아시는데, 오늘 밤 그분이 자매님에게 똑같은 일을 해 주신다면...하나님은 자매님을 아십니다. 자매님도 저를 모르십니다. 제 이름이나 그 밖에 어떤 것을 아실 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그분이 같은 일을 하신다면 온 마음을 다해 믿게 되시겠습니까? 그러시겠습니까? 회중도 온 마음을 다해 믿게 되겠습니까?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곳의 모든 혼이 성령의 다스림 아래 있기를...이 마이크를 조절하는 담당자가 누구시든, 제 목소리가 작아지면—저는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작아질 때 소리를 높여서 회중이 들을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이제 이 여자분과 잠깐 이야기하는 동안 아주 경건하고 조용하게 계십시오. 자매님, 바로 이쪽 맞은편에 서 주시면 사람들이 잘 듣는지 제가 확인할 수 있겠습니다. 바로 맞은편에요.
우리 주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자에게 가셨을 때, 그 여자를 만나기 위해 사마리아를 거쳐 가셔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물론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분을 그곳으로 보내셨습니다. 그분은 그 여자를 만나셨지만 그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셨습니다. 평생 그 여자를 본 적이 없으셨고, 여자도 그분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분은 유대인에게 주셨던 것과 같은 표적을 그 사마리아 여자에게 주셔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자매님은 이방인 여자입니다. 아시겠죠? 그러니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한 예수님이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분이 그런 일을 하신다면, 그것이 어떤 영에게서 나와야 한다는 것을 자매님도 아실 것입니다. 반드시 영이어야 한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자매님이 바리새인들, 당시의 종교인들 편을 들어 그것이 마귀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자매님과 하나님 사이의 일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라고 말씀하신다면 그분의 상급을 받게 됩니다.
이제 성령께서 제게 말씀해 주신다면... 가령 제가 이곳에 와서 “자매님, 제게는 신유의 은사가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자매님에게 손을 얹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시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성경은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 사람들이 나으리라’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자매님은 그것을 믿고 가실 수 있습니다. 그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마음속에 조금은 의문이 남을 수 있습니다. 정말일까 하고 말입니다. 성경이 “너희 가운데 영적인 사람이나 선지자가 있으면, 그가 말한 것이 이루어질 때 그의 말을 들으라. 그러나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의 말을 듣지 말라”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진위를 가릴 때가 왔습니다. 제가 진실을 말했습니까?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하나님의 약속입니까? 그렇다면 그분이 그것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이제 이 여자는 사람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임재 가운데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아주 부드럽고 겸손한 느낌입니다. 맞습니까? 그렇다면 모두가 알 수 있도록 손을 들어 주십시오...저와 이 여자 사이에 그리스도의 영, 그 빛이 계십니다. 이 여자는 신경 질환 때문에 기도를 받으러 왔습니다. 신경 상태가 아주 심각합니다. 맞다면 손을 들어 주십시오. 여러분은 믿습니까? 결국...첫날 밤에 이런 일이 없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누군가 마음속으로—지금 자기 생각을 숨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숨길 수 없습니다—제가 그것을 짐작해서 말했다고 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알도록 책망의 뜻으로,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보겠습니다. 첫날 밤에는 매번 무언가를 말하면...지금 저는 이 여자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하나님의 영이시며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도록, 이것은 여러분에게 분명한 책망이 될 것입니다. 자매님은 좋은 분이고, 좋은 영을 가진 분입니다. 그런데 지금...예, 다시 보입니다. 이 여자가 제게서 멀어져 가고 있습니다. 신경 질환과 장 질환으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사실입니다. 여러분이 저를 주님의 종으로 믿는지 아닌지 보여 드리겠습니다. 저기 의자 끝에 앉은 여자도 장 질환으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맞다면 자매님, 손을 들어 주십시오. 맞습니다. 저 마귀들이 슬쩍 넘어가려는 것 보이십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자매님, 이제 자매님을 위한 일은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자매님은 위장병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신경성 위장병입니다. 제가 이 기름부음 아래 서서 말씀드리는 하나님의 종임을 믿으시도록, 자매님이 알 수 있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남편분도 여기 와 있습니다. 그분도 신경성 위장병이 있습니다. 두 분은 이 주나 이 도시에서 오신 분들이 아닙니다. 캔자스에서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매님이 누구신지 아신다고 믿습니까? 월턴 부인입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자매님과 남편분도 치유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집으로 돌아가 온전하게 되실 수 있습니다. 이제 믿습니까? 제가 그것을 짐작할 수 있었겠습니까? 고개를 숙이고 경배합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감사드립니다. 온갖 일들 가운데서도 주님은 여전히 물결을 타고 오십니다. 주님은 하나님이시며 결코 실패하지 않으십니다. 이제 이 사람들에게 복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좋습니다. 여기 이 여자분입니다. 일어나고 있는 이 일들이 하나님의 영께로부터 온다고 믿습니까? 자매님, 믿습니까? 우리는 서로 처음 만나는 사이입니다. 그러므로 만일...어떤 일이 일어나서 제가 자매님에 대해 무언가를 알게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매님의 과거를 말씀하실 수 있다면, 틀림없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과거를 아신다면 미래도 아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이심을 입증합니다. 그리고 제가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것임을 자매님도 아십니다. 저는 그저 여기 서 있는 사람, 자매님의 형제이기 때문입니다. 맞습니다. 오늘 밤 회중 가운데 처음부터 큰 믿음이 있습니다. 그 영께서 제게서 떠나 회중 쪽으로 가셨습니다. 자매님은 조금 전에 치유받은 것이 너무 기뻐서, 옆에 앉은 여자에게 손을 얹으셨습니다. 예, 유방에 종양이 있는 분입니다. 맞다면 손을 들어 주십시오. 저와 처음 만나는 사이입니까? 손을 좌우로 흔들어 주십시오.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저 여자는 무엇에 손을 댔습니까? 저에게서 20피트 떨어져 있습니다. 무엇을 했습니까? 대제사장께 손을 댔습니다. 하나님께서 여전히 살아 계시고 동일한 주 예수님이심을 아시겠습니까? 그저 믿으십시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그 영께서 저를 통해 말씀하시는 대로만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그 영이 어디로 가시든 함께 가야 합니다. 아시겠죠?
자매님은 유방에 종양이 있습니다. 위장병도 있습니다. 또 여기 함께 온 분도 아픕니다. 남편분입니다. 그분은 설교자이며 신경성 위장병이 있습니다. 슈어드 부인, 집으로 돌아가 두 분 모두 온전하게 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유받으십시오. 믿음을 가지시고 의심하지 마십시오. 그저 믿으십시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믿습니까? “선생님들이여, 우리가 예수님을 뵙기 원하나이다.” 바로 그분이십니다. 주 예수님이십니다. 여러분은 그것이 무엇인지는 말해야 합니다. 여러분도 그것을 아십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손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 일들을 행하시는 분은 그분의 영이십니다. 그저 믿음을 가지십시오. 이제 자매님 차례입니까? 우리는 서로 처음 만나는 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 예수님께서는 우리 둘 다 아십니다. 자매님은 제가 자매님에 대해 모른다는 것을 아십니다. 그런데 그분이 자매님에 관한 무언가를 제게 계시해 주신다면, 자매님은 힘을 얻고 믿을 수 있는 믿음을 갖게 되시겠습니까?
이 일이 제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보이실 것입니다. 저는 너무나 기운이 빠져서 거의 서 있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압니다. 회중도 알고 계시리라 확신합니다. 그것을 아시는 분이 몇 분이나 됩니까...한 번의 환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우리 주님께서 자신에게서 효능이 나가는 것을 느끼셨다면, 은혜로 구원받은 죄인인 저에게는 어떻겠습니까? 그분이 “내가 하는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 이보다 더 많은 일들을 하리라”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킹제임스 성경에는 “더 큰”이라고 되어 있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원래 번역을 살펴보십시오. 어떻게 더 큰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분은 자연을 멈추셨고, 죽은 자들을 일으키셨으며, 하실 수 있는 모든 일을 행하셨습니다. 하지만 “더 많은” 일입니다. 그분은 온 세상의 교회 안에 계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이보다 더 많은 일들을 하리라.” 이것은 그분의 은혜입니다.
자매님은 다른 사람을 위해 이곳에 오셨습니다. 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따님의 문제가 무엇인지 제게 말씀해 주실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눈입니다. 맞지요? 이제 눈이 나을 것이라고 믿습니까? 무언가에 닿으셨지요? 그것이 주 예수님이심을 믿습니까? 앞으로 나왔던 사도에게 하셨던 것처럼, 그분이 자매님이 누구신지 제게 말씀해 주시면, 그분을 믿을 큰 믿음이 생기겠습니까? 그러면 니컬스 양,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치유하여 온전하게 하실 것을 믿으십시오. 여러분, 모두 믿고 계십니까? (제발 돌아다니지 마십시오. 제발 돌아다니지 마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저는 자매님을 모릅니다. 평생 자매님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자매님을 아십니다. 그분이 자매님이 무엇 때문에 여기 오셨는지 제게 알려 주신다면...경제적인 문제일 수도 있고 가정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질병이나 구원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모릅니다. 저는 그저 여기 서 있는 사람이며, 우리는 평생 처음 만났습니다. 한 가지는, 자매님은 신경이 아주 예민합니다. 맞습니다. 자매님이 침대에서 아주 천천히 일어나려 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관절염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또 전에 받은 수술 때문에 좋지 않은 후유증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담낭 수술이었습니다. 맞다면 손을 들어 주십시오. 이제 믿습니까? 그러면 가십시오. 믿으신 대로 될 것입니다.
제가 하나님께서 관절염을 치유하셨다고 말하면, 그것이 자신의 이야기라고 믿으시겠습니까? 그러면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아버지, 감사합니다”라고 하시면서 그대로 가십시오. 하나님께서 빈혈을 치유하셨다고 제가 말씀드리면, 그분이 자매님도 치유하실 것이라고 믿으시겠습니까? 온 마음을 다해 믿으며 하나님께 감사드리면서 그대로 가십시오. 여러분, 모두 한마음으로, 온 마음을 다해 믿고 계십니까? 제가 한마디도 하지 않고 그저 손만 얹는다면 어떻겠습니까? 믿으시겠습니까? 좋습니다, 형제님. 지나가십시오.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가서 온전하게 되십시오. 의심하지 마십시오. (제발 돌아다니지 마십시오. 그러면 영께서 슬퍼하시며 제게서 떠나시므로 제가 붙들 수가 없습니다. 부탁드립니다. 그리스도인 형제로서 정중히 부탁드립니다. 믿지 않으신다면 이 건물에 머물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어쨌든 여기 머무는 것은 여러분에게 위험합니다.) 그저 믿음을 가지시고 의심하지 마십시오.
제가 손을 얹으면 나을 것이라고 믿으시겠습니까? 이리 오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 형제님이 치유받게 하옵소서. 오십시오. 제가 문제를 말씀드리든 말씀드리지 않든, 저를 그분의 선지자...아니, 그분의 종으로 믿으시겠습니까? 그러면 등에 있던 문제는 끝났습니다. 가서 믿으십시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십시오. 자매님, 오십시오. 제가 한마디도 하지 않고 그저 손을 얹기만 해도 믿으시겠습니까? 그러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자매님이 저기 아래 줄에 들어가 서 계셨을 때, 처음 그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셨지요. 그때 심장병이 떠났으니 이제 집으로 가셔도 됩니다. 저 줄에 들어간 뒤로 걸음걸이가 달라졌지요? 줄에 있는 동안 관절염이 떠났습니다. 그러니 온 마음을 다해 믿으며 그대로 가십시오. 자매님, 물론 자매님의 큰 문제 하나는 우리 모두가 압니다. 그런데 그것은 이 회중의 약 95퍼센트가 똑같이 고생하는 문제, 곧 신경 질환입니다. 신경이 아주 예민하시지요? 어떻게 그런 분들을 일일이 부르기 어려운지 보여 드리겠습니다. 저기서 신경 질환으로 고생하는 분은 모두 손을 들어 주십시오. 보셨습니까? 자매님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찾으려 애쓰셨습니다. 사람들은 자매님에게 정신을 차리라고 했습니다. 사탄은 자매님이 정신이 이상해질 것이라고, 그 밖에도 이런저런 말을 했지만,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온 마음을 다해 믿습니까? 그러면 바로 여기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가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온전하게 되십시오. 네가 만일 믿을 수 있거든...
저기 잠시 동안 앉아서 울며 저를 보고 계신 남자분, 가슴에 문제가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온전하게 해 주실 것을 믿으십니까? 형제님, 믿으면 받으실 수 있습니다. 받아들이신다는 뜻으로 손을 들어 주십시오. 집으로 돌아가 온전하게 되십시오. 관절염은 끝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집으로 돌아가 온전하게 되십시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기서 방금 손을 들어 뒤통수에 대신 여자분, 피부병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온전하게 해 주실 것을 믿습니까? 기도 카드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어도 됩니다. 어쨌든 치유받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매님을 치유하시고 온전하게 하십니다.
저기 계신 여러분 모두 이제 믿는 사람들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을 진실로 믿습니까? 그분이 그렇게 행하시고 자신의 말씀을 지키신다면, 여기 계신 분이 그분의 영이심을 믿습니까?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저를 치유해 주실 수 있습니까?”라고 묻습니다. 아닙니다. 저는 할 수 없습니다. 그분이 이미 하셨습니다. 아시겠죠? 그분이 행하신 일입니다. 그분은 그저 여기...그분이 이 양복을 입고 여기에 서 계신다 해도 여러분을 치유하실 수 없습니다. 이미 치유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그것을 믿지 않겠느냐?”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저 자신이 여기 계심을 알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온 마음을 다해 그것을 믿는 분은 몇 분이나 됩니까? 이제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치유받도록, 여러분에게 해야 할 일을 드리겠습니다. 믿는 사람이 몇 분이나 계시다고 했습니까? 어디에 계시든 모두 손을 들어 주십시오. 예수님께서는...교회에 마지막으로 맡기신 사명...처음 맡기신 사명은 “가서 병든 자들을 고치고, 죽은 자들을 일으키고, 마귀들을 내쫓으라”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맡기신 사명은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그들이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내쫓고 새 언어들로 말하며,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 사람들이 나으리라”였습니다. 맞습니까?
이제 여러분 각자 믿는 사람으로서 옆 사람에게 손을 얹으십시오. 어디에 계시든 그냥 손을 뻗어 얹으십시오. 믿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하십시오. 여러분에게도 다른 누구와 마찬가지로 서로에게 손을 얹을 권리가 있습니다. 이제 자신을 위해 기도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손을 얹은 그 사람이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옆 사람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들은 여러분을 위해 기도할 것이고, 저도 이 단상에서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예수님을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셔서 영원토록 살아 계시게 하신 하늘의 하나님께서 오늘 밤 여기에 계시며, 하신 모든 말씀을 이루십니다. 그분의 임재입니다. 이제 제가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는 동안 고개를 숙이십시오. 하나님께서 제 기도를 들으실 것을 그저 온 마음을 다해 믿으십시오. 제가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이해하실 것입니다. 이제 성령께서 하나님의 말씀이 참되다는 것을 입증하셨습니다.
기도하기 직전, 고개를 숙인 채로, 이곳에 믿지 않는 사람으로 왔다가 이제 믿는 사람이 된 분이 있다면 일어서 주시겠습니까? 우리가 기도할 때 그분을 알아보고 함께 기도하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고 싶은 분, 지금 그분의 거룩한 임재 가운데 계시는 동안 우리가 기도 중에 기억할 수 있도록 일어서 주시겠습니까? 바로 지금 그분을 영접하고 싶어 일어설 분이 여기 계십니까? “사람들 앞에서 나를 증언하는 자는 나도 내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 앞에서 그를 증언하리라.” 지금 일어나 “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제 구주로 받아들이겠습니다”라고 말씀하십시오. 그런 분이 여기 계시고 저는 그것을 압니다. 하지만...그분이 제게 여러분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교회에 등록되어 있다는 사실에 의지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끝입니다. 이제 기억하십시오. 제가 아닙니다. 성령께서 자신의 말씀을 이루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일어서고 싶으신 분은 우리가 기도하는 지금 일어서십시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지금은 이 세상 역사의 마지막 시간입니다. 이제 남은 해결책이 없음을 우리는 압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오심이 가까웠습니다. 그분은 “소돔의 날들에 있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도 그러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원자폭탄과 수소폭탄을 보며, 모든 작은 나라가 누군가 하나를 발사하기만을 기다리는 것을 봅니다. 그러면 이 땅은 태양이 터지듯 저 공중으로 날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그리고 우리는 그것이 아침이 오기 전에도 일어날 수 있음을 압니다...어느 순간에라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과학자들이 말하듯 오래전부터 자정 3분 전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손이 시간을 멈추고 기다리고 계심을 압니다. 노아의 날들에 그러셨던 것처럼 오래 참으시는 것입니다. 이제 주님은 소돔이 불타기 직전에 행하겠다고 하신 마지막 일을 입증하셨습니다. 그 표적이 끝나자 곧 소돔이 불탔습니다. 하나님, 이제 거의 끝났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이끄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한 분뿐입니다. 주님은 “내 아버지께서 먼저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사람이 보고 들으면서도 계속 어둠 속을 걸어갈 것입니다. 유다서가 말한 것처럼 이 정죄를 받도록 정해진 사람들입니다. 비뚤어진 생각을 가진 자들, 길 잃은 별들처럼 떠도는 혼들, 자신의 불신이라는 수치의 거품을 뿜어내는 바다의 성난 물결들입니다. 오늘 밤 우리가 말씀을 가져오시고, 말씀을 기록하시고, 말씀을 확증하시며, 약속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친히 이 자리에 임하시는 위대한 성령 앞에 서 있음을 압니다...서로에게 손을 얹은 이 믿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들의 병든 몸을 치유하시고 모든 악한 영을 쫓아내 주시기를 온 마음을 다해 기도합니다.
사탄아, 너는 싸움에서 졌다. 너는 패배자다. 너에게는 더 이상 아무 권리도 없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갈보리에서 죽으셨다. 주님, 갈보리에서 터져 흘러나온 거룩하고 순수한 피, 전능하신 하나님의 피를 통해 주님은 인류를 구속하셨습니다. 바로 그 피로 사탄을 패배시키시고, 그가 가진 모든 힘을 빼앗으셨습니다. 주님은 오늘 밤 여기 일리노이주 블루밍턴, 이 대학의 체육관 바닥에 살아 계십니다. 오늘 밤 주님의 백성 가운데 살아 계시며,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임을 입증하고 계십니다. 사탄도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자기의 때가 가까운 것을 압니다. 사탄아,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엄히 명한다. 네 허세를 꿰뚫어 보았다. 너는 더 이상 이 병든 사람들을 붙들 수 없다. 그들에게서 나와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들에게서 떠나 그들을 내버려 두어라. 하늘의 주 하나님께서 너를 책망하시기 원하노라, 사탄아. 너는 어떤 힘도 가질 수 없다. 예수님께서 네 위에 계신다. 그분이 네 힘을 빼앗으셨다. 그분이 인류를 구속하여 자신에게로 되돌리셨다. 나와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엄히 명하니, 이 사람들에게서 떠나라. 이제 서로에게 손을 얹은 채, 여러분의 교회에서 기도하는 방식대로, 곁에 있는 사람에게 손을 얹고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여러분 교회에서 하시는 그대로 기도하십시오. 누군가에게 손을 뻗어 얹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지금 이 자리에 계신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여러분의 혼속으로 쏟아져 내려 여러분을 믿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을 느끼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신의 치유를 받아들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