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오늘 밤 다시 주님의 집에 돌아와, 주 예수님 안에서 똑같이 보배로운 믿음을 가진 형제자매 여러분과 예배드리게 된 것은 큰 특권입니다. 어젯밤에는 제가 좀 너무 오래 붙들어 둔 탓이 컸던 것 같습니다. 저는 예배를 오래 드리기로 소문이 나 있습니다. 밤을 꼬박 새우는 것보다 더 오래 한 적은 없습니다. 그보다 훨씬 길게 한 적은 없지요. 그런 면에서는 사도 바울과 비슷합니다. 그가 밤새 설교할 때 한 청년이 발코니에서 떨어져 죽었지요. 바울이 그 위에 몸을 엎드리자 그 청년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이 제게 “브래넘 형제님, 말씀을 좀 너무 오래 하십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할 말이 너무 많아서 한꺼번에 다 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그저...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임재로 저를 채워 주신 뒤로는 그것에 관해 할 말이 너무나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오늘 밤에는 여러분을 일찍 보내 드리려고 합니다. 멀리 가셔야 하는 분들, 일하러 가셔야 하는 분들 등을 생각해서 배려해야 하니까요. 주중에 조금 더 지나서는 시간을 조금 더 늘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젯밤에는 병든 분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치유 집회라고 부르는 시간이었지요. 물론 우리는... 우리가 누구를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들을 위해 기도할 뿐이라는 것을 압니다. 저 자신이 누구를 치유한 적은 아직 한 번도 없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병든 사람들을 치유하시는 것을 보면서, 기도에 참으로 놀라운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여기 온 것입니다. 이런 일들을 중심으로 여러분과 교제하고자 온 것입니다. 몸의 치유뿐 아니라 혼의 치유도 말입니다. 혼의 치유는 몸의 치유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충분히 오래 산다면 다시 병이 들 수도 있습니다. 질병은... 성경은 “의로운 자의 고난이 많으나 하나님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그를 구출하시는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많은 고난이 약속되어 있지만, 거기에서 구출되는 것도 약속되어 있습니다.
한번은 이런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고인이 된 잭 코 형제님이... 아시는 분이 많을 겁니다. 그분은 저와 아주 가까운 친구였습니다. 저는 잭 형제님을 무척 아꼈습니다. 그분에게는 그런... 이런 표현을 용서하십시오만, 치유를 위해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불도그 같은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누가 목발을 짚고 나오면 도끼 같은 것을 거기에 갖다 놓고 목발을 잘라 버리곤 했습니다. 그들을... 기도해 주기도 전에 목발을 부숴 버렸습니다. 그 환자가 그 목발을 짚고 돌아갈 일은 더는 없었습니다. 걸어 나갈 수 없다면, 충분한 믿음이 생겨서... 그때까지 기어서라도 나가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거기에 작은 모루와 망치를 놓아두었습니다. 어떤 분이 눈을 위해 기도받으러 안경을 쓰고 나오면, 손을 뻗어 안경을 벗겨서 모루 위에서 완전히 깨뜨리고 한쪽으로 던져 놓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플로리다에서 곤경을 겪게 되었습니다. 사탄이 그분에게 덫을 놓았습니다. 그분이 보조기를 벗겨 준 아이 하나를 이용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여러분도 그 이야기를 아실 겁니다. 그곳 재판에 고든 린지 목사님이 참석해 있었는데, 판사가 말했습니다. “그 아이가 치유되었다고 주장하시는 겁니까?” 잭 형제님이 말했습니다. “그 아이는 치유되었습니다.” 판사는 “아,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보조기를 벗겨 주었을 때 그 아이는 강단을 가로질러 걸었습니다. 자기가 치유되었다고 말했습니다.” 판사가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일을 하신 성경 구절을 하나라도 제시할 수 있다면, 여기서 치유가 된다든지 했다가 그것이 잠깐만 지속되는 그런 일이 있다면, 저는 기꺼이 물러서겠습니다.” 린지 형제님이 일어나 말했습니다. “제가 성경 구절을 제시하겠습니다.” “어디 들어 봅시다.” “어느 날 밤 폭풍이 이는 바다에서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물 위로 걸어 자기에게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가 걸어오는 동안에는... 믿고 있는 동안에는 물 위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믿지 않으려 하자 가라앉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판사는 그 소송을 기각했습니다. 더는 문제 삼을 수가 없었습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보십시오, 그랬던 것입니다. 그가 걸어가는 동안에는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의심하기 시작하자 가라앉고 말았습니다. 신유가 지속되는 기간도 바로 그와 같습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믿는 동안입니다. 구원이 지속되는 기간도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믿는 동안입니다. 얼마 전 어떤 분이 제게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형제님이 무엇을 보여 주든, 무슨 말을 하든, 다른 누가 무슨 말을 하든 상관없습니다. 형제님이 죽은 사람 열 명을 살리고 걷지 못하는 모든 사람을 걷게 한다 해도, 저는 여전히 믿지 않겠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물론 믿지 않으실 겁니다. 그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믿는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니까요.” 그것뿐입니다. 오직 믿는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믿는 자들에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아예 포함되지도 않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저 딱한 분들입니다. 어딘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믿는 사람이라면 그것은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믿는 사람이 아니라면 여러분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말했습니다. “형제님, 한번...?” 어느 날 길에 나가 있었을 때였습니다. “저 모퉁이에 서 있는 사람에게 어디가 아픈지 말해 주시겠습니까?” 저는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사람은 데려가셔도 자신의 영은 거두어 가지 않으십니다.” 엘리야 위에 있던 그분의 영이 엘리사에게 임했고, 그다음에는 요한에게 임했습니다. 예수님 위에 있던 영이 교회에 임했고, 시대를 따라 계속 내려왔습니다. 사탄도 똑같이 합니다. 자신의 사람은 데려가지만 자신의 영은 거두어 가지 않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 그날 아침 법정에서 사람들이 예수님의 눈을 천으로 가리고 갈대로 머리를 치면서 ‘예언해 보아라. 누가 너를 때렸는지 말하면 우리가 너를 믿겠다’고 했던 일이 생각납니다.” 그분은 입을 열어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을 위해 광대 노릇을 하신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순종하셨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사탄은 그분께 말했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여기 내 앞에서 기적을 행해 보아라. 내가 보게 해 보아라.” 여러분도 그런 말을 들어 보셨을 겁니다. 기억하십시오. 그것은 마귀입니다. 바로 그자입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기적을 행해서 이 빵을... 이 돌을 빵으로 바꿔 보아라. 그러면 내가 너를 믿겠다.” 그분은 “기록된 바,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라고 하였느니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는 사탄과 그 제사장들이 말했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그러면 우리가 너를 믿겠다.” 그분은 그렇게 하실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랬다면 사탄에게 순종하는 것이 되었을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분은 사탄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하십니다. 하나님의 종이라면 누구나 똑같이 합니다. 그저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말을 들을 때는 그것이 어디서 나오는지 기억하십시오. 그 사람들을 멸시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완전한 어둠 속에서 눈먼 채 있고, 어쩌면 그런 정죄를 받도록 정해져 있을지도 모르니 불쌍히 여기십시오. 그렇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참으로 안타까운 일 아닙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그저 불쌍히 여기며 계속 나아가고, 겸손하며 그리스도인답게 살아야 합니다.
오늘 밤에는 여러분에게 작은 주제 하나를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어쩌면... 조금... 우리 회중의 마음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온갖 미신적인 생각이 사라지기 시작할 때까지 말입니다. 어젯밤에는 처음인데도 그렇게 많은 분이 성령께 응답하시는 것을 보고 상당히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바로 이 안에도 그것이 속임수라든지 그런 것으로 생각한 사람을 적어도 열두 명은 셀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어차피 있게 마련입니다. 아시지요. 그러니 그들이 실제로 믿는 분들을 방해하게 두지 마십시오. 그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 불신자들이며 형편이 좋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오늘 밤에는 회의라는 주제를 다루고 싶습니다. 이사야 1장 18절에 있는 성경 말씀을 읽겠습니다. 주께서 말씀하시느니라. 이제 오라... 우리가 함께 변론하자. 너희 죄들이 주홍 같을지라도... 눈같이 희게 될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되리라. 이것은 오래전부터 아주 익숙한 복음의 본문입니다. 아마 여러분의 목사님들도 여러 번 다루셨을 겁니다. 저는 이것이 구약에서 가장 두드러진, 또는 가장 연민이 어린 본문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과 회의를 열어 함께 의논하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과 그 위의 모든 피조물을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런데도 사람들과 회의를 열자고 요청하시는 것입니다. “함께 의논해서 어떻게 될지 알아보자” 하시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는 회의에 관한 이야기를 참 많이 듣습니다. 그동안 회의가 아주 많이 열렸고, 전국과 전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회의가 열리고 있습니다. 몇 주 전에 저는 일리노이주 바이셀리아에 있었습니다. 아니, 캘리포니아주 바이셀리아에 몇 주 전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곳과 비슷하거나 조금 더 큰 무기고 건물을 사용했습니다.
첫날 오후에는 해가 지기도 전에 너무나 많은 사람이 몰려들어, 대략... 수백 명이나 돌려보냈습니다. 다음 날 밤에는 돌려보낸 사람이 거의 이천 명이나 되었으므로 더는 그곳에 머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웃 도시의 박람회장으로 옮겼습니다. 그날 오후 세 시가 되자 거기에도 사람이 너무 많이 들어차서 문을 닫아야 했고, 오후 세 시 이후에는 사람들을 들여보낼 수 없었습니다. 그저 밀려들었습니다.
지금은 또 다른 이웃 도시에 큰 모임을 위한 거대한 건물, 곧 시립 강당을 지을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비용이 몇백만 달러였는지 잊어버렸습니다. 아주 많았는데, 아마 이천오백만이나 삼천만 달러쯤 되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들이 말하기를, 라디오와 신문에도 발표했는데, 회의만 유치해도 이 년 안에 그 건물 비용을 다 회수하고도 남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큰 장소를 마련하게 되니, 자기들 회의를 여는 여러 큰 단체들과 지회 같은 곳들이 이미 몇 년 앞까지 예약하려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회의나 모임 등에 참석하려고 도시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그 도시에 돈을 쓰게 되는 것이지요.
이 마지막 날들에는 예전보다 사람들이 함께 모이는 일이 훨씬 많아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이제 하나님의 백성도 더 많이 함께 모이기 시작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라. 우리가 함께 변론하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교회들이 함께 모여서, 우리 사이의 사소한 차이를 무너뜨리고, 함께... 하나가 되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가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것에 의해 모든 사람들이 너희가 내 제자임을 알리라.” 지금 이때야말로 우리가 함께 모여 더욱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는 나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지문이 서로 같지 않고 식성도 아마 같지 않듯이, 우리에게는 서로 다른 생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우리는 인간입니다. 그리스도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교단들에는 차이가 있지만, 그래도 하나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으로 태어나고 그분의 피로 씻긴 하나님의 자녀들이므로 하나입니다.
바로 그래서 오늘 밤 우리가 이곳 집회에 모인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함께 모이는 것이 집회입니다. 나라 차원에서도, 국가적인 회의들이 있었습니다. 지난 세계대전 때 말입니다. 제 또래이거나 그보다 훨씬 젊은 분들도 제2차 세계대전과 그때 열렸던 회의들을 기억하실 겁니다. 회의란 무엇이며... 도대체 무엇 때문에 여는 것일까요? 집단 안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들이 함께 모여 어떤 일을 할 전략을 세워 보려는 것입니다. 보통 회의는... 위기가 닥칠 때 소집합니다. 위기의 때에 말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온 교회가 그런 회의를 연다면 참으로 좋겠지요? 우리가 직면한 위기, 곧 공산주의와 온갖 것들... 세상의 여러 주의들 때문입니다. 교회가 식어 가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함께 모여 의논하고, 이런 일들을 놓고 함께 모여야 할 때입니다.
세계적인 회의들 가운데 하나를 4대 강국 회의라고 불렀습니다. 4대 강국이 함께 모였던 것을 기억하시는 분이 많을 겁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 그리고 처칠과 세계의 다른 강대국들이 4대 강국 회의를 소집했습니다. 위기가 닥쳤기 때문입니다. 나라들이... 평화를 사랑하는 나라들이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히틀러와 나치가 온 세상의 숨통을 거의 끊어 놓으려 하고 있었고, 평화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과 우리의 위대한 유산이 위태로웠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회의를 위해 모였습니다.
제네바 회의도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 제네바 회의와 파리 회의를 기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어떻게 하는지 보십시오. 위기가 닥쳐오는 것을 보면 그들이 아는 가장 뛰어난 사람들을 소집합니다. 각국의 지도자들이 함께 모여 무엇을 할지 서로 의논합니다. 특정한 장소를 고르는데... 영감을 주는 곳을 택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생각을 모읍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의 위대한 지도자, 하나의 위대한 나라, 하나의 위대한 군대로, 모두 하나가 되어 함께 나아갈 수 있을지 의논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구속받은 하나님의 모든 교회가 함께 모여 똑같이 할 수 있다면 우리는 큰일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을 실제로 갈라놓는 사소한 생각과 작은 차이들을 모두 내려놓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큰 부대로 하나가 되어 모일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큰 군대가 함께 모이기만 한다면 공산주의는 달아날 것이고, 다른 모든 주의들도 달아날 것입니다.
그렇게 함께 모이는 장소를 정할 때는 영감을 주는 곳을 찾으려고 합니다. 저는 제네바 회의가 열렸던 제네바에 가 본 적이 있습니다. 그곳은 정말 영감을 주는 곳입니다. 여러분이 있는 장소와 주변의 여건에는 분위기를 이루는 어떤 것이 있고, 그것이 여러분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제 삶에서 가장 좋았던 때들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야외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산으로 나가 해가 지는 것을 바라보고 야생 동물의 울음소리와 새들의 지저귐을 듣는 때입니다. 그것은 영감을 줍니다. 무언가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함께 모여 영감을 받을 수 있는 장소, 모임의 장소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어떤 이들은 마음이 식거나 조금 달라져서, 수요일 밤 기도 모임에 가지 않고 집에 남아 방송되어서는 안 될 어떤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봅니다. 사람들은 그런 것에 빠져서 어리석은 프로그램을 보느라 기도 모임에 빠집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런 부흥 집회에 함께 모이는 것은 우리의 은사와 사역을 한데 모으고, 그것을 부흥을 위해 모아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려는 것입니다. 참된 부흥이 일어나도록 함께 모이려는 것입니다. 또는 이제 교회가 본향으로 돌아가도록 말입니다. 우리는 마지막 때에 가까이 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마지막에 가까이 와 있다는 것은 분명히 알려져 있습니다. 이제 집회의 방향을 살펴보면서, 하루 이틀 진행하며 성령께서 어느 쪽으로 인도하시는지 보면서, 주님의 뜻이라면 그 이야기로 들어가겠습니다.
그런데 영감에 관해 말씀드리자면, 여러분이 들어가서 영감을 받을 수 있는 장소와 여건이 있습니다. 저는 야외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산에 올라가 야생 동물의 울음소리를 듣는 것을 좋아합니다. 어릴 때부터 그것을 좋아했습니다. 짐승을 사냥하려는 마음보다는 그저 숲속에 있고 싶어서입니다. 그곳에는 제게 영감을 주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몇 해 전, 제가 사냥 안내인으로 일하는 콜로라도의 한 업체에 가 있었습니다. 여러 해 동안 사람들을 데리고 다녔습니다. 어느 날 목장 주인과 저는 늦게 다시 산으로 들어갔습니다. 이른바... 도시에서 온 손님들이 많이 와서 사슴 등을 잡고 돌아간 뒤에, 우리는 다시 아주 높은 산속으로 들어가곤 했습니다. 저는 그곳에 올라갈 때마다 주님과 단둘이 작은 회의를 갖습니다. 모든 것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면 그분은 언제나 제게 무언가를 보여 주시거나 저를 가까이 이끌어 주십니다. 그해에는 눈이 좀 늦게 와서 엘크 무리가 높은 곳에 있었습니다. 정상 쪽에는 눈이 있었으므로 엘크를 찾으려면 높이 올라가야 했습니다. 어느 날 오후, 그 위에서... 시월 말 무렵이었습니다. 낮은 곳의 사시나무들은 바싹 말라 잘 부서져서 폭죽 같았습니다. 저는 눈이 있는 곳에 올라가 있었습니다. 그곳에서는 날씨가 아주 빨리 바뀝니다. 한순간 비가 오다가 눈이 오고, 그러다가 해가 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폭풍이 몰려왔습니다. 저는 나무 뒤로 들어가 소총을 내려놓고 거센 바람이 지나가기를 기다렸습니다.
제가 있던 곳은 수목 한계선 근처, 오래전에 나무들이 바람에 쓰러진 곳 바로 옆이었습니다. 수목 한계선이란 나무들이 자라는 가장 높은 곳입니다. 그보다 위로는 키 작은 가문비나무 같은 것들이 나오지요. 그러다가... 저는 놀랐습니다. 어떻게... 저는 큰 소나무 뒤에 앉아 바람 부는 소리를 들으며 주님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조금 뒤 폭풍이 잦아들었습니다. 저는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제가 다가가려고 했던 큰 엘크 무리는 폭풍이 부는 동안 흩어져 있었고, 커다란 수컷들이 나팔 같은 울음소리를 내는 것이 들렸습니다. 아, 그 녀석들의 우렁찬 울음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살아나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 동물들을 무척 존중합니다. 그때 건너편 산에서 늑대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고, 아래 골짜기에서는 그 짝이 대답했습니다. 서쪽을 바라보니 해가 지고 있었습니다. 산틈 사이로 비치는 그 커다란 신비로운 눈이 마치 하나님의 눈처럼 산봉우리들과 푸른 지평선 너머를 바라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바람이 지나간 곳을 보니 상록수 위에 물이 얼어붙어 있었고, 협곡을 가로질러 끝까지 이어지는 무지개가 생겨 있었습니다.
아, 그 모든 광경이 한데 어우러지자 저는 어린아이처럼 울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거기에 그분이 계셨습니다. 무지개, 곧 언약 가운데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알파와 오메가, 벽옥과 홍보석, 르우벤과 베냐민, 처음과 마지막으로 바라보는 그분이 계셨습니다. 저 위에서는 늑대의 울부짖음 속에 계셨고, 여기서는 엘크의 우렁찬 울음소리 속에 계셨습니다. 그 위에서는 어디를 보아도 하나님이 계신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렇게 영감 받기를 좋아합니다. 그토록 높은 곳에 올라가 하나님과 단둘이 있는 것입니다. 몇 마일이고 몇 마일이고 멀리 떨어져서, 내려가려면... 우리가 있던 곳에서 말을 매어 둔 곳까지 내려가려면 이틀쯤 걸릴 만큼 멀리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하나님과 단둘이 있는 것입니다. 그날 밤도 그 산속에서 노숙하는 것입니다.
그 위에 있는 동안, 제게는 그처럼 참으로 기뻐하는 영이 임했습니다. 오순절 성도 여러분에게는 낯선 일이 아니리라 생각합니다. 너무나 기뻐서 총을 나무에 기대 놓고 그 나무 주위를 빙빙 돌기 시작했습니다. 있는 힘껏 뛰면서 목청껏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하고 외쳤습니다. 만일 누가 그 숲에 들어왔다면 정신병원에서 나온 사람이 있는 줄 알았을 겁니다. 저는 있는 힘을 다해 나무 주위를 빙빙 돌면서 소리치고 솔잎을 발로 차올렸습니다. 어디로든 이 벅찬 감정을 터뜨리지 않으면 제가 터지고 말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저 놀라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그분과 회의를 가지며, “주님 참 위대하십니다. 참 위대하십니다” 하고 말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어디에나 계십니다. 저 하늘에도 계시고, 온 땅을 이리저리 살피는 태양의 신비로운 눈에도 계십니다. 무지개에도 계시고, 늑대에도 계시며, 엘크에도 계십니다. 바람에도 계십니다. 저 소나무 사이로 불어가는 바람 소리가 마치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시는 것 같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여기저기로 움직이시는 것입니다. 영감을 받으며, 하나님과 참되고 진실한 회의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방해를 받았습니다. 저는 그런 때 방해받는 것을 정말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흡족해질 때까지 마음껏 소리치기를 좋아합니다. 그때 보니 작은 소나무다람쥐가 한 마리 있었습니다. 아, 그 녀석은 요만한 개구쟁이로, 숲속에서 파란 제복을 입은 경찰 노릇을 합니다. 그 녀석이 온 동네의 동물들을 놀라게 합니다. 동물들도 다 그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그 녀석은 언제든 무언가를 향해 “재잘재잘” 떠들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요. 그 녀석이 거기 있던 오래된 그루터기인지 통나무 위로 뛰어올라 저를 바라보더니, 있는 힘껏 “재잘재잘, 재잘재잘” 짖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저 작은 녀석이 왜 그러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게 마음에 안 드니? 그렇다면 이것 좀 봐라” 하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나무 주위를 빙빙, 빙빙 돌았습니다. 그러자 그 녀석은 더욱 재잘거렸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얘야, 나는 나를 창조하신 분을 찬양하고 있단다. 그분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어. 우리는 여기서 회의를 열고 있단다. 내가 비어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그분이 나를 채워 주고 계셔. 알겠니? 이렇게 하는 거야.” 그리고 다시 나무 주위를 빙빙 돌았습니다. 그런데 문득 그 작은 녀석이 저를 그다지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작은 고개를 자꾸 옆으로 기울이며, 작은 눈이 거의 볼 밖으로 튀어나올 듯한 모습으로 이렇게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멈추어 서서 ‘무엇이 나를 방해하는 거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나무들이 쓰러져 있는 아래쪽을 보았습니다. 폭풍이 부는 동안 큰 독수리 한 마리가 나무들이 겹쳐 쓰러져 있는 덤불 속으로 밀려 내려와 있었습니다. 몇 년 전 바람에 쓰러진 나무들이었습니다. 다람쥐는 그 독수리를 향해 찍찍거리며 야단을 치고 있었고, 큰 독수리는 덤불 밑에서 기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독수리는 저를 올려다보더니 통나무 위로 뛰어올랐습니다.
저는 ‘자, 너한테는 하나님을 닮은 것이 무엇이 있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독수리를 바라보며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어째서 제가 주님을 경배하고 외치는 것을 멈추고, 그저 저 독수리를 보게 하셨습니까?’ 그런데 독수리는...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독수리에 비유하십니다. 또 자신의 선지자들을 독수리라고 부르십니다. 독수리는 다른 어떤 새보다도 높이 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새도 따라갈 수 없습니다. 매가 따라가려 한다면 공중에서 몸이 부서질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독수리는 그 높은 곳에 올라간 뒤에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가 그렇게 살 수 있는 만큼만 높이 뛰십시오. 아시겠습니까? 그것뿐입니다. 위에 올라가서 아무것도 볼 수 없다면 올라간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지만 독수리는 위에 올라가서, 먼 곳의 것들이 여기 오기도 전에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독수리를 자신의 선지자들에게, 아니 자신의 선지자들을 독수리에 비유하신 것입니다. 자신을 여호와 독수리라 부르시며, 우리는 새끼 독수리들입니다.
독수리와 닭은 아주 많이 다릅니다. 둘 다 새이지만, 하나는 땅에 매여 있고 다른 하나는 하늘을 향합니다. 아주 많이 다릅니다. 그저 사촌쯤 되는 관계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닭이 발을 땅에서 떼지 못하더라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애초에 닭이니까요. 그 닭은 저 하늘 높은 곳을 날 수 있는 독수리처럼 올라가서 독수리가 아는 것을 결코 알지 못할 것입니다. 저는 그 녀석이 거기 앉아 커다란 회색빛 눈으로 저를 지켜보는 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저 녀석에게서 한 가지 마음에 드는 점은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겁쟁이를 싫어합니다. 하나님도 그러하십니다. 그러므로 치유받고도 그것을 간증하기 두려워하는 사람,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셨는데도 자기가 구원받고 성령으로 충만해졌다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 부끄러워하는 사람이라면, 저는 그 사람의 구원을 별로 신뢰하지 않습니다. 정말 그것을 받으면 누구에게나 말하고 싶어집니다. 가만히 있을 수가 없습니다. 교회에 필요한 것은 교회를 움직이게 하는 성령과 불이 더 많이 임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움직이려면 불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 독수리를 잠시 지켜보았습니다. 조금 뒤, 제가 감탄하며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그 녀석도 알아차렸을 때 저는 말했습니다. “야, 네가 그 통나무에서 날아오르기도 전에 내가 널 쏠 수 있다는 것 아니?” 그저 저를 두려워하는지 보려고 한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두려워하지 않고 그냥 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알아차렸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자신만만하지?’ 보니 그 녀석은 날개를 계속 움직이며 깃털이 모두 제대로 되어 있는지 살피고 있었습니다. 자기 날개를 아주 믿고 있었고, 제가 그 소총에 손을 대기도 전에 자기는 저 숲속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저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이 회의에서 내가 무언가를 배우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 독수리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두 날개가 있었고, 그 녀석은 그 날개를 믿고 있었습니다. 그 날개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고 있었으므로 저를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소총에 손을 대기도 전에 자기는 저 숲속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두 날개를 가진 저 독수리가, 내가 어떻게 해 보기도 전에 피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면, 성령을 받은 그리스도인은 어떠해야 하겠는가...?’ 여러분 주위에 계신 그분의 임재를 느낄 수 있고 모든 것이 제대로 되어 있다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들은 육신을 따라 걷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 걷느니라”, 그렇게 모든 것이 잘 되어 있음을 느낄 때는 사탄이 무슨 일을 할지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저... 그때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고 있으니까요. 저는 그렇게 독수리를 지켜보았습니다. 알고 보니 그 녀석은 저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저 작은 땅다람쥐, 거기에 앉은 작은 소나무다람쥐가 자기를 갈기갈기 찢어 놓기라도 할 듯 “재잘재잘, 재잘재잘” 하는 소리를 듣기 싫어했을 뿐입니다. 사실 다람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겁니다. 너무 작으니까요. 독수리가 집어 들면 그걸로... 독수리 발이 다람쥐보다 더 컸습니다. 그런데도 그 작은 다람쥐는 독수리를 갈기갈기 찢어 놓을 듯 펄쩍펄쩍 뛰었습니다. 그저 허세를 부리는 것이었지요.
마침내 독수리가 참을 만큼 참았습니다. 그래서 크게 한 번 뛰어오르고 날개를 두 번쯤 퍼덕인 다음 날개를 쭉 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 서서 눈물이 날 때까지 그 독수리를 바라보았습니다. 그 녀석은 날개를 계속 퍼덕퍼덕하지 않았습니다. 수목 한계선 위로 올라갈 때까지 두어 번 퍼덕였을 뿐입니다. 그다음에는 산을 타고 올라오는 기류에 어떻게 날개를 펼쳐 맡겨야 하는지 알고 있었고, 그 기류가 그 녀석을 계속, 계속 실어 올렸습니다. 마침내 조그만 점이 될 때까지 말입니다. 깃털 하나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아닌가? 감리교에 가입했다가, 그다음에는 침례교에 가입하고, 또 하나님의 성회에 가입하고, 또 하나님의 교회에 가입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퍼덕퍼덕, 저기서 퍼덕퍼덕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하나님의 권능 안에 믿음의 날개를 어떻게 펼쳐야 하는지 아는 것이다. 그러다가 영광이 밀려오면 그것을 타고 계속, 계속 나아가는 것이다.’ 땅에 매인 저 작은 다람쥐들에게서 벗어나십시오. “재잘재잘, 기적의 시대는 지났어. 신유 같은 건 없어. 이제 성령도 없어. 그건 오래전 사도들을 위한 것이었어” 하는 것들에게서 말입니다. 그저 날개를 펴고 날아가십시오. 계속, 계속, 계속 나아가서 더는 그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갖고 싶은 회의는 그런 것입니다. 우리를 그늘 위로 들어 올리고 멀리 데려가, 온갖 비난이나 어떤 소리도 더는 들리지 않게 하고, 오직 하나님과 단둘이 있게 하는 회의입니다. 이곳에 가입했다가 저곳에 가입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믿음을 어떻게 펼쳐야 하는지 아십시오.
그렇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을 두십시오. 구약과 신약이 펼쳐져 그분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는 것을 보여 줄 때, 하나님의 권능이 밀려오면 함께 타고 가십시오. 그저 위로, 위로, 위로, 위로, 위로 끝까지 올라가십시오.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그분은 실패하실 수 없습니다. 아, 이런 회의들을 우리 모두 기도하는 마음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국가적인 회의든 교회 회의든 무엇이든, 그냥 열리도록 내버려 두고 기도하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언제나 기도해야 합니다.
제 친구인 한 목사님, 훌륭한 그리스도인 형제가 있었는데... 제네바 회의가 열렸을 때 라디오로 그 결과를 들으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운명과 선조들이 싸워 지킨 위대한 유산이 걸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의롭고 선하며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앉아서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수염을 기르고 지저분한 차림을 한 요즘의 비트족이었습니다. 도대체 미국의 젊은이들이 어떻게 그런 것에 빠져서 저렇게 나돌아다닐 수 있단 말입니까...? 그 사람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습니다. “선생님, 제가 쓴 시와 노래를 좀 팔려고 왔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들어 주질 않습니다. 말할 기회도 주지 않아요. 선생님이 이 도시에서 영향력 있는 분이라고 하더군요.”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여보게, 들어와서 잠깐 앉게. 지금 그 회의 결과를 듣고 있네.” 하지만 그 사람은 잠자코 있지를 못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자기 일이 나라의 운명보다 더 중요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인도 그렇게 됩니다.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보잘것없는 사소한 일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참 교회보다 더 중요해집니다. 우리의 사소한 일들은 잊어버리고 날아오릅시다. 회의의 결과에 귀를 기울입시다.
이제 잠깐 말씀드리고 싶은 또 다른 회의가 있습니다. 동서 양측이 만났던, 유엔 건물에서 마지막으로 열렸던 회의입니다. 흐루쇼프가 구두를 벗어 탁자를 두드렸던 곳이지요. 아이젠하워와 흐루쇼프가 만났습니다. 아이젠하워는 자유 세계를 대표했고, 흐루쇼프는 동방의 공산 세계를 대표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은 그 의미를 전혀 깨닫지 못했고, 그 일을 두고 기도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주의해 보셨다면, 그때 그것은 직접적인 응답이었고 예언의 직접적인 성취였습니다. 바로 예언이었습니다. 동서 양측은 다니엘이 말한 것을 정확히 성취했습니다. 열 왕국이 있게 되는데... 쇠와 진흙이 서로 섞이지 않듯이 섞이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러시아어로 ‘흐루쇼프’라는 말은 ‘진흙’을 뜻하고, 영어로 ‘아이젠하워’라는 말은 ‘쇠’를 뜻합니다. 쇠와 진흙은 하나가 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아, 이런 일들이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무릎을 꿇고 부르짖어야 합니다. “오 주 예수님, 저희를 위해 속히 무언가를 행해 주십시오. 하나님의 왕국으로 데려올 수 있는 마지막 한 사람까지 끌어오도록 힘쓰게 해 주십시오.” 우리 힘을 한데 모으고, 회의와 모임을 열며, 밤새 기도 모임으로 모여야 합니다. 오늘 밤 교회의 문제는, 그저 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다가 몇 번 하품을 하고는, 너무 졸리고 피곤하니 집에 가서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초기의 오순절 교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온종일, 밤새도록 기도했습니다. 저는 사십 년 전부터 신앙생활을 한 옛 성도들을 만나 보았습니다. 그들은 온종일 밤새 기도하고, 거리로 나가 걸었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격식을 갖추고 큰 교회들에 견주려 합니다. 바로 거기서 잘못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십 년 전의 교회가 오늘 밤의 교회보다 주님의 오심을 맞이할 준비가 더 잘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라오디게아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 교회는 예수님께서 자기 교회 밖에서 문을 두드리시며, 자기 교회 안으로 다시 들어오려고 하시는 모습이 나타난 유일한 교회였습니다.
우리의 차이와 형제들 사이의 분열, 그리고 하나님의 것 대신 세상의 것들을 좇아간 우리의 모습이 그분을 쫓아낸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가나안 땅 깊숙이 들어갔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 광야에서, 옛날 그들이 그랬듯이 빙빙 돌며 다시 헤매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들에는 온갖 은사와 표적과 이적이 나타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대신 하나님께서 무언가를 일으키시면 우리는 모두 겁을 먹고 물러나 “우리는 이런 일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들이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같은 땅을 빙빙 돌며 무엇을 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도 사도행전 2장 4절, 사도행전 2장 4절, 사도행전 2장 4절만 붙들고, 닳도록 되풀이해 왔습니다. 계속 나아갑시다! 약속의 땅이 저기 있습니다. “너희가 어떤 것들을 원하든지 너희가 기도할 때에 그것들을 받는 줄로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그것들을 받으리라.” 사도행전 2장 4절도 맞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그보다 더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의 모든 약속이 우리의 것입니다. 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고, 그분의 위대하고 능하신 손이 붙들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땅을 차지할 때입니다. 그렇습니다.
회의입니다. 아, 세상이 회의를 열고 함께 모이면 무엇을 합니까? 대개 위스키와 칵테일을 마련해서 마시고, 서로 거짓말하고 속이고 기만합니다. 온갖 계획 등을 세우면서도 등 뒤에는 칼을 감추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그들이 그렇게 하리라고 한 그대로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회의를 여시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사람들은 금식하고 기도하며 명령을 기다린 다음 움직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세계적인 회의와 국가적인 회의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생각해 볼 수 있는 회의가 많이 있지만, 이제 하나님께서 여신 회의들을 생각해 봅시다. 그 가운데 몇 가지를 떠올려 봅시다. 처음 위급한 일이 생겼을 때 하나님께서 최초로 여셨던 회의를 생각해 봅시다. 그것을 에덴 회의라고 부르겠습니다. 그것이 첫 번째 비상사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에덴에 두신 자신의 아들과 딸, 자신의 자녀들이 은혜의 자리를 잃고 하나님을 떠났으며, 신앙에서 돌아서서 벌거벗었다는 소식이 하늘에 전해졌습니다. 하늘도 더는 그분을 붙들어 둘 수 없었습니다. 그분은 땅으로 내려오셔서 동산을 이리저리 거니시며 “아담아,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고 부르셨습니다.
그때 인간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여실히 드러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와 “아버지,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라고 하는 대신, 몸을 숨기고 무화과나무 잎으로 자신을 감쌌습니다. 오늘날도 인간은 그렇게 하려 합니다. 나아와 자기가 믿지 않는 사람이라고 고백하는 대신, “저는 장로교인입니다, 침례교인입니다, 감리교인입니다, 루터교인입니다”라든지 다른 말을 하려 합니다. 하나님의 의로 자신을 감싸고, 자신이 잘못했으며 믿지 않는 사람이라는 죄를 고백하는 대신, 어떤 교회의 신학 뒤에 숨으려 합니다. 그 뒤에서 나오십시오, 아담이여, 믿지 않는 사람이여. 보십시오. 그런데도 인간은 그렇게 합니다. 그리고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녀를 찾으러 천사를 내려보내지 않으셨습니다. 직접 오셨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저는 생각합니다... 오늘날 현대주의적인 종교의 시대, 사회적인 종교가 이 나라를 지배하며 온갖 교단으로 스며드는 이 시대에,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신성을 벗겨 내고 그분을 그저 인간으로 만들려 한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 저는 한 여자분과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형제님의 메시지는 참 좋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너무 강조하십니다. 그분을 너무 자랑하세요.” 저는 말했습니다. “제게 혀가 천만 개 있다 해도 그분을 충분히 자랑할 수 없을 겁니다. 그분은 제가 자랑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가 있어요. 형제님은 그분을 하나님으로 만들려 하십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아니에요. 그분은 그저 사람이셨습니다. 선한 사람이셨지요.” 그들은 그분의 속죄의 피를 믿지 않습니다. 들으십시오. 만일 그것이 유대인이나 이방인의 피였다면 우리는 모두 멸망한 사람들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자신의 피였습니다. 그분은 유대인도 이방인도 아니셨습니다. 육체 안에 나타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어떻게 된 것입니까? 피는 남성에게서 옵니다. 우리는 그것을 압니다. 암탉이 알을 낳을 수는 있지만 수탉과 짝짓기를 하지 않았다면 그 알은 결코 부화하지 않습니다. 수정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자에게서 태어나는 아기는 어머니의 피에 둘러싸여 있지만, 어머니의 피는 한 방울도... 헤모글로빈은 남성에게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를테면 이제 봄이 오고 있는데, 어미 새들이 여기 나와 둥지를 만들고 그 둥지 가득 알을 낳는 것을 봅니다. 어미 새는 너무 야위어서 둥지에서 날아오르지 못할 때까지 그 둥지에 앉아 알을 품을 수도 있습니다. 알을 얼마나 정성껏, 얼마나 귀하게 대하는지요. 이쪽으로 굴렸다가 저쪽으로 굴립니다. 자기는 굶어 죽어 가면서도 둥지를 떠나 날아가면 알들이 그대로 노출될까 봐 두려워합니다. 충실한 어미로서 그 알들을 품으려 애씁니다. 하지만 알을 낳은 그 암컷이 수컷, 곧 자기 짝과 짝짓기를 하지 않았다면, 그 알들은 아무리 품어 주고 아무리 잘 돌보아 주어도 둥지 안에서 그대로 썩어 버립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오래되고 차갑고 형식적인 많은 교회가 바로 그런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둥지 가득 썩은 알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입으로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들일 뿐, 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적이 없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은 그것을 깨끗이 치우고, 교회의 짝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접촉한 남녀들과 함께 다시 시작하는 것뿐입니다. 믿을 수 있는 것이 그들 안에 아무것도 없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권능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남부 출신인 저의 어머니는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얘야, 순무에서는 피를 짜낼 수 없단다. 그 안에는 피가 없으니까.” 믿음을 가질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에게서 어떻게 믿음을 끌어낼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영으로 다시 태어난 적이 없다면,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에 관한 첫 번째 원리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아, 우리 가운데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교회에서 헌금을 많이 내는 사람들이고, 우리는 그들을 집사로도 세우고 온갖 직분을 주며 품어 줍니다. 하지만 그들은 애초에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짝을 맺을 때를 생각해 보면 이 말이 얼마나 참됩니까? 짝이... 지금이야말로 짝을 맺을 때여야 합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와 접촉하여 참되고 진실한 성령의 믿음을 얻는 때여야 합니다.
그 여자분이 제게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형제님은 근본주의자라고 하셨지요. 성경에 기록된 것만 말하고 거기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렇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그분이 하나님이 아니셨다는 것을 증명해 드릴 수 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그분이 하나님보다 못한 어떤 존재였다면, 세상에서 가장 큰 기만자였을 것입니다. 성령, 곧 하나님께서 처녀를 덮으시고 태 안에 혈구를 창조하셨습니다. 이 혈구가 하나님의 아들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피를 통해 죄들의 사면을 받습니다. 어떤 남자도 그 여자를 안 적이 없었습니다. 그 여자는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자신이 인간과 함께 거하고 계신 것이었습니다. 바로 하나님 자신이셨습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분을 하나님으로 만드시는군요.” 저는 말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형제님이 보시는 그 성경으로 그분이 하나님이 아니셨다는 것을 증명하겠습니다.” 저는 “어디 말씀해 보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요한복음 11장에,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무덤으로 가실 때 성경은 ‘그분께서 우시더라’라고 했습니다. 그분이 하나님이셨다면 우실 수 없었을 겁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아, 자매님, 그 주장은 굶어 죽은 닭의 그림자로 끓인 국물보다도 더 멀겋군요. 어떻게 그것을 근거로 어떤 신학을 세울 수 있습니까? 그분은 인간이시면서 하나님이셨습니다.” 아무도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보지 못하였으되, 아버지의 독생자께서 그분을 밝히 드러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셔서 세상을 자신과 화해하게 하셨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그분이 나사로의 무덤에 가셔서 사람처럼 우셨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작은 어깨를 펴시고 그곳을 바라보며 ‘나사로야, 나오라’ 하셨을 때, 죽은 지 나흘 된 사람이 제 발로 서서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것은 인간 이상의 분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통해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 안에 계신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날 밤 배가 고파 산에서 내려와 나무 주위에서 먹을 것을 찾으실 때 그분은 사람이셨습니다. 배고파하실 때 그분은 사람이셨습니다. 하지만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오천 명을 먹이셨을 때는 인간 이상의 분이셨습니다. 창조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셨습니다. 또 다른 물고기가 아니라 익힌 물고기를, 밀이 더 생긴 것이 아니라 구운 빵을 만드셨습니다. 그분은 창조주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날 밤 배 뒤쪽에 누워 계실 때 그분은 사람이셨습니다. 그때 마귀들은 그분을 물에 빠뜨려 죽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아마 만이나 되는 바다의 마귀들이 “이제 저자가 잠들었으니 우리가 물에 빠뜨려 죽일 수 있다”라고 했을 것입니다. 작은 배는 폭풍 속에서 병마개처럼 이리저리 요동쳤습니다. 그들은 ‘이제 잡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역으로 지치고 피곤하여 주무실 때 그분은 사람이셨습니다. 하지만 배의 돛줄 위에 발을 올려놓으시고 위를 바라보며 “잠잠히 있고 고요히 있으라” 하셨을 때, 바람과 파도가 그분께 순종했습니다. 그때 그분은 인간 이상의 분이셨습니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그분은 사람처럼 부르짖으셨습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긍휼을 베푸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죽으실 때 그분은 사람이셨습니다. 하지만 부활절 아침, 사망과 지옥과 무덤의 봉인을 깨뜨리고 다시 일어나셨을 때는... 아, 그것은 지금까지 있던 모든 시인과 찬송 작가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조금이라도 가치 있는 일을 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분이 하나님이셨음을 믿었습니다. 그것은 오랜 세월 시인들과 선지자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어떤 이는 이런 시를 썼습니다. “영광의 왕께서 돌아가신 놀라운 십자가를 바라볼 때, 내 모든 명성을 그저 손실로 여깁니다.”
에디 페로넷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 이름의 권능을 모두 찬양하라. 천사들도 엎드리라. 왕의 면류관을 가져와 만유의 주께 씌워 드리라.” 눈먼 패니 크로스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온유하신 구주여, 나를 지나치지 마시고 겸손한 내 부르짖음을 들으소서. 다른 이들을 부르실 때 나를 지나치지 마소서. 주님은 내 모든 위로의 샘이며 내 생명보다 귀한 분이십니다. 땅에서 주님 외에 누가 내게 있으며, 하늘에서 주님 외에 누가 내게 있습니까?” 또 다른 이는 이렇게 썼습니다. “살아서 나를 사랑하셨고, 죽어서 나를 구원하셨네. 묻히셔서 내 죄를 멀리 가져가셨네. 부활하셔서 나를 값없이 영원히 의롭게 하셨네. 어느 날 그분 다시 오시리, 아, 영광스러운 날이여.” 그분이 하나님이셨음을 믿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습니다.
아, 하나님께서 에덴에서 회의를 여셨을 때 그분의 아들이 잃어버린 바 되었고, 그분의 자녀들이 잃어버린 바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구속의 일을 어떤 천사나 다른 어떤 것에도 맡기지 않으시고 직접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피로 구속받았습니다. 이제 그 혈구가 있기에 우리는 그분의 말씀 위에 담대히 설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마귀들과 반대 세력 앞에서도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의 피로 덮인 채 나아간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피 안에는 신성한 권능이 있습니다. 이제 그분을 보십시오. 이 회의에서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을 거쳐 오시는 모습을 봅니다. 무언가를 해야 합니다. 비상사태가 생겼습니다. 그분의 자녀들이 잃어버린 바 되었습니다. 그분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십니다. 동산으로 내려오셔서 그들을 찾기 시작하십니다. 그들이 인간이 만든 어떤 신조 뒤에 숨어 있는 것을 발견하셨을 때, 그분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특정한 나무 하나를 고르시고 그들을 불러내셨습니다. 그리고 회의를 여셨고, 인간이 어떻게 구속받아야 하는지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그 이후로 인간은 줄곧 무화과나무 잎을 가지고 애써 왔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처음에 시작하신 피 외에는 아무것도 인정하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시대의 남녀, 모든 선지자, 모든 사람은 언제나 그 원칙을 따라 나아갔습니다. 욥도 그 원칙 위에 굳게 섰습니다. 이스라엘이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흘린 피 아래였습니다. 셰키나 영광이 임한 유일한 장소는 흘린 피 아래였습니다. 셰키나 영광이 임할 유일한 장소는, 침례교 성도님들과 장로교 성도님들, 부디 기분 상하지 마십시오만, 셰키나 영광이 임하는 유일한 장소는 피 아래입니다. 여러분이 이 오순절의 셰키나 영광을 느끼는 것은 피 아래, 곧 하나님의 아들이 흘리신 피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셰키나 영광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자신의 피를 가지고 휘장을 둘로 찢으셨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셰키나 영광 안으로 들어갑니다. 거기서 그분의 복이... 아, 그것은 옛사람을 새사람으로 만듭니다.
아론은 자기 지팡이를 거기에 일 년 동안 두었는데, 셰키나 영광의 임재 안에 있는 동안 싹이 나고 꽃이 피었습니다. 누구든 하나님의 셰키나 영광의 임재 안에 머물면... 그 영광은 죄와 범법들 가운데 죽어 있던 오래된 죽은 죄인을 취하여,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창조물로 꽃피게 할 것입니다.
회의입니다. 회의에서 하나님께서 결정을 내리셨습니다. 우리가 에덴 회의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시간이 너무 빨리 갑니다. 아시겠습니까? 시작도 하기 전에 벌써 마칠 시간이 됩니다. 에덴 회의에서의 셰키나 영광입니다. 이제 또 다른 회의가 있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두세 가지를 더 빨리 살펴봅시다. 또 다른 회의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불타는 떨기나무 회의’라고 부릅시다. 한때 도망친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도망친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밖으로 나가 아내를 얻고 게르솜이라는 어린 아들을 두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모세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드로의 모든 양 떼를 물려받게 될 것이었고, 꽤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산 아래에 있었지요. 아, 그는 형편이 꽤 좋아져 있었기에, 이집트에 있는 백성의 짐은 이미 잊어버렸습니다.
오순절 교회가 바로 그런 처지가 된 것 같습니다. 저 죄인들의 짐을 잊어버렸습니다. 오순절 교회만이 아니라 감리교와 침례교와 장로교도 그렇습니다. 그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대신에 말입니다. 그리고 누구든... 여러분이 어떤 신학자이든, 어느 교회에 속해 있든 상관없습니다. 교회는 하나였으며, 모든 그리스도교는 오순절 날 오순절의 체험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가톨릭교회는 그것이 자기들이었다고 했습니다. 모두가 자기들의 뿌리를 그곳에서 찾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그들이었다면, 어째서 그때와 같은 영광과 같은 표적이 그 교회를 따르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런데 회의가 열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도망친 자신의 선지자를 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도록 사람을 택하시면, 그는 그것에서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그를 따라다니십니다. 오늘 밤 여기 계신 여러분 가운데도 혹시 신앙에서 돌아선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께 자신을 내어 드릴 때까지 평생 괴로울 것입니다. 그래야 마땅합니다. 모세가 그런 처지에 있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어떤 여자분들, 어떤 남자분들은 그런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배우고서도 다시 세상으로 나가 춤추는 모임 같은 곳에 갑니다. 오늘날 우리 오순절 교회가 이 지경이 되었다는 것이 부끄럽습니다. 얼마 전 데이비드 뒤 플레시가 우리가 어디까지 왔는지 말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오순절 교회도 우리 감리교회와 똑같습니다. 오늘 밤 우리가 그들의 건물에 있지요. 침례교회나 장로교회와도 같습니다. 감리교가 존 웨슬리의 가르침으로 돌아간다면 좋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침례교가 존 스미스에게로 돌아가고, 루터교가 마르틴 루터에게로 돌아가고, 오순절이 오순절로 돌아간다면, 그렇습니다, 그러면 괜찮을 것입니다.
시작은 옳았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손자들을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손자들이 없습니다. 그분께는 손자들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아들들만 있습니다. 우리는 감리교나 침례교, 그 밖의 모든 교단처럼 자녀들을 데려다가 유아 명부에 올립니다. 그들이 교회에 들어오면 우리는 오순절 성도로 받아 줍니다. 하지만 그들은 토끼가 눈 위에서 신는 설피에 관해 아는 것보다 하나님에 관해 더 아는 것이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체험하는 자리로 돌아가 다시 성령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방금 그 표현은 용서하십시오. 불경하게 들리는군요. 그런 식으로 말하려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는 손자들이 없습니다. 아들들은 계시지만 손자들은 없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하나님께 손자가 있었다는 곳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와서 똑같은 대가를 치러야 하며, 똑같은 길로 와야 합니다. 하나님께는 오직 한 길, 곧 예수님이 계시며, 여러분도 그 길로 와야 합니다. 그 길 외에는 그분께 갈 길이 없습니다.
모세는 꽤 만족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모든 일이 잘 풀렸고, 저 아래 속박 가운데 있는 백성을 향한 부담을 모두 잊어버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기로 결정하셨습니다. 그래서 한 장소, 특정한 나무를 고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내려오시는 곳에는... 어떻게 된 일인지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에는 언제나 불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 가까이에 있으면 소리도 많이 나고 불도 많습니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언제나 그랬습니다. 그것은 성경적입니다. 그렇습니다. 언제나 불이 많습니다. 어쨌든 교회를 움직이려면 불이 필요합니다. 다른 방법으로는 결코 할 수 없습니다. 그들을 무화과나무 잎으로 입혀서는 결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오순절의 무화과나무 잎으로 입혀서도 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불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한번은 저와 제 형제가 어렸을 때, 길을 가다가 거북이를 보았습니다. 그 녀석이 다리를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 지금까지 본 것 가운데 가장 우습게 생긴 동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일리노이 분들은 거북이가 어떤 동물인지 아시지요. 그 녀석이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야, 참 우습게 생기지 않았니?”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복음으로 건드리면 이런 모습을 보이는 많은 사람이 생각납니다. 그들은 “슉” 하고 자기 등딱지 속으로 들어갑니다. “나는 누구누구입니다. 나는 이 교단에 속해 있습니다.” 그것은 아무 상관도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어디에 속해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그런 말을 하는 것이 부끄러울 것 같습니다. 정말 힘써 회개한다면 그것도 용서받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것에 대해 용서받을 수도 있겠지요. 하나님께서는 어떤 교단도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자기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인정하십니다. 그것뿐입니다. “내가 그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라.” 저와 그 아이는 거기서 그 거북이를 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얘야, 내가 어떻게 할지 아니? 저 녀석을 거기서 나오게 하겠어.” 가서 회초리를 하나 가져와 마구 때렸습니다. 조금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때려서 그렇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그저 그렇습니다. 때려서 그들을 돌아오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도 십 년 동안 그렇게 해 보았지만 할 수 없었습니다. 때려서는 그들을 거기로 돌아오게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말했습니다. “내가 어떻게 할지 말해 줄게. 저 녀석을 혼내 주겠어.” 거기에 개울이 흐르고 있었으므로 내려가서 그 녀석을 물속에 넣었습니다. 거품 몇 개만 올라왔고, 그것뿐이었습니다. 형제님, 얼굴을 앞으로 하든 뒤로 하든, 세 번을 하든 다섯 번을 하든 침례를 줄 수 있지만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거품 몇 개만 올라오고, 남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제가 그렇게 하겠다고 했잖습니까” 하고 마는 것입니다. 대체로 그게 전부입니다. 마침내 제가 어떻게 그 녀석을 움직이게 했는지 아십니까? 작은 불을 피워 그 위에 그 녀석을 놓았습니다. 그제야 움직였습니다. 교회에 필요한 것은 다시 한번 오순절의 불, 곧 성령이 임하여 교회가 하나님의 멍에를 다시 메고 움직이게 하는 것입니다. 다시 그 멍에 아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어느 교단에 속해 있는지 상관하지 않으십니다. 어차피 그 모든 교단에 반대하시니까요. 그러니... 사실입니다. 성경으로 증명할 수 있습니다. 가톨릭이 최초의 조직이었으며, 그것은 창녀였고 딸들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받아들이든...
니케아 공의회나 니케아 이전 교부들의 글 같은 것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것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알 것입니다. 처음에는 하나님께서 미워하신 니골라당의 행위였습니다. 그러다가 어느새 교리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었습니까? ‘니코’는 정복한다는 뜻입니다. ‘레이티’는 평신도입니다. 평신도를 정복하는 것입니다. 거룩함은 강단 위에 두고 평신도들에게 그 비용을 내게 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그와 같은 발자취를 따라, 있는 힘껏 다시 어둠 속으로 돌아갑니다.
저는 예전에 소를 몰았습니다. 한번은 그곳에 서 있었습니다. 헤리퍼드 협회가 트러블섬강 계곡에 소를 방목하는데, 자기 목장에서 건초 일 톤을 기를 수 있으면 소 한 마리를 목초지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자기가 기를 수 있는 건초의 톤수만큼 자기 목장에서 소를 기를 수 있는 것입니다. 소들에게 낙인을 찍어 그곳으로 올려보냈습니다. 산에서 내려올 때 사유지로 흘러들어 가지 못하도록 차단 울타리도 쳐 놓았습니다. 저는 여러 날 관리원과 함께 거기 앉아, 안장 뿔에 다리를 걸치고 소들이 지나가는 것을 지켜보곤 했습니다. 관리원은 거기에 서 있었습니다. 우리 목장의 낙인은 터키 트랙이었고, 이웃 목장은 트라이포드였으며, 다이아몬드 바도 있었고 우리 옆에는 그라임스도 있었습니다. 그 일대 온갖 낙인이 찍힌 소들이 그곳을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아십니까? 관리원은 낙인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어쩌다 흘끗 보고 주위를 둘러볼 수는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낙인을 눈여겨보지 않았지만 혈통표는 반드시 검사했습니다. 등록된 헤리퍼드종이 아니면 어떤 소도 그 목초지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심판대에서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분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교회에 속했는지, 하나님의 성회에 속했는지, 오순절 성결교회에 속했는지 묻지 않으실 것입니다. 일신교든, 둘이니 셋이니 넷이니 다섯이니 주장하든, 여러분이 무엇이든 묻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분은 피의 표를 살피실 것입니다. 여러분을 들어가게 하는 것은 피일 것입니다. “내가 그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라.” 형제 여러분, 정말 그렇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이제 돌아가서 보면, 회의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다 잊어버렸습니다... 모세는 그곳에서 자기 신조들에 빠져 그 부담을 잊어버렸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한 장소를 택하시고 회의를 여셨습니다. 그리고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모세야, 신을 벗으라. 네가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라. 내가 내 백성의 부르짖음을 들었고, 아브라함에게 한 약속들을 기억하였노라. 내가 너를 내려보내 그들을 구출하게 하리라.” 모세는 그 음성이 성경에 맞았기 때문에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누구든 지나가다가 어떤 음성을 접했을 때 그 음성이 성경에 맞지 않는다면, 그대로 내버려 두십시오. 성경이 그렇게 말한다면 믿으십시오. 성경에 맞는 음성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천사 같은 것을 보기도 합니다... 조셉 스미스도 천사를 보았습니다. 저는 조셉 스미스의 말이 성경에 맞지 않아서 그와 견해를 달리합니다. 그렇다고 그 사람이 천사를 본 적이 없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그 사람의 말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이 천사 같은 것을 본 일은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천사라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1장 8절에서 “하늘로부터 온 천사가 와서 내가 이미 너희에게 선포한 복음 외에 다른 어떤 복음을 선포하면 그는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을 굳게 붙드십시오. 바로 말씀을 붙드십시오. 말씀이 말씀하시는 그대로 굳게 붙드십시오. 거기서 벗어나지 마십시오.
모세는 자신이 하나님과 갖는 회의, 아니 하나님께서 자신과 갖고 계신 회의가 정확히 성경에 맞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고 그들을 구출하시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모세야, 내가 너를 택하였으니 네가 내려가 그 일을 할 것이니라.” 모세는 곧바로 이집트로 내려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기적들을 행했습니다. 제가 원하는 만큼 자세히 이야기할 시간은 없지만 여러분은 이해하실 것입니다. 그가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끌고 약속의 땅을 향해 나왔을 때, 맡은 일을 수행하며 가는 길 바로 앞에 홍해가 놓여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자녀들을 막다른 곳으로 곧장 이끄시는 모습은 참 이상합니다. 때로는 휠체어에 앉게 되는 처지로, 때로는 심장마비로, 때로는... 그분은 자기 자녀들을 이끄십니다. 왜 그러십니까? 그들이 어떻게 행동할지, 어떤 일이 닥쳤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지, 무엇을 할지 보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아오는 아들은 누구나 시험과 시련을 받아야 합니다. 구약에서는 아들이 한 가정에 태어나도 가르침을 받고 양육받으며 시험을 거쳐야 했습니다. 그런 다음 아들의 자리에 세워졌습니다. 곧 양자로 세워져 몸 안에 자리를 얻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한 번 자리에 세워지고 나면, 수표에 쓴 그의 이름은 아버지의 이름과 똑같은 효력이 있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의 상속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시험을 주시며 바로 그 자리로 이끌고 계십니다. 맡은 일을 수행하며 가는 길 바로 앞에 홍해가 놓여 있었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온 자연이 그들을 위해 울부짖는 것 같았습니다. 파라오의 군대와 병거들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양옆에는 산이 있었습니다. 홍해 때문에 그들은 꼼짝없이 갇혔습니다. 마치... 그 골짜기에 이백오십만이나 되는 큰 무리가 칼도 없고 싸울 것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있는 모습을 보고, 자연도 비명을 지를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비상사태가 생겼습니다. 모세는 특정한 바위 하나를 골라 그 뒤로 들어가 회의를 소집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이 좋습니다. “주님, 제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지금 모든 교회가 회의를 소집한다면 좋지 않겠습니까? 일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회의를 소집하여 현실을 깨닫고 돌아가서 하나님께서 처음에 어떤 교회를 세우셨는지 알아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회의를 소집해서 서로 함께 의논하는 것입니다. 첫 교회가 무엇을 했는지, 어떤 영이 그들 안에 있었는지, 어떤 표적이 그들을 따랐는지, 어떤 사역이 있었는지, 그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한다면 놀랍지 않겠습니까? 참으로 놀라운 일일 것입니다. 모세는 그렇게 했습니다. 어딘가 바위 뒤로 기어 들어가 말했습니다. “주님,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이 백성이 여기 있습니다. 저는 맡겨 주신 일을 그대로 수행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하라고 하신 바로 그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이 일에 부딪쳤습니다.”
어쩌면 오늘 밤 여기 앉아 계신 여러분 가운데 많은 자녀를 키운 연세 드신 어머니가 계실 것입니다. 수재나 웨슬리만큼 자녀를 많이 키우셨을지도 모릅니다. 그분에게는 자녀가 열일곱이나 있었지만, 하루에 세 시간씩 시간을 내어 기도하고 그들을 하나님께 인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에게 찰스와 존이 있었던 것입니다. 요즘 우리는 버튼만 누르면 설거지가 되고, 버튼만 누르면 빨래가 됩니다. 그런데도 아무것도 할 시간이 없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어딘가 잘못되었습니다. 아, 마귀가 사람들을 얼마나 휘두를 수 있는지요.
보십시오. 그렇게 회의가 열렸고, 모세는 하나님께 여쭈었습니다. 그는 아담처럼 명령을 받을 때까지 그곳에서 기다렸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명령이 내려올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모세는 저 위에서도 그랬듯이 명령을 받을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제가 어떻게 그들을 구출합니까?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내려가서 그들에게 ‘스스로 계신 분께서 너를 보내셨다’고 말하라.” 그것이었습니다. 이제 그는 다시 명령을 그대로 따르며, 맡겨진 일을 그대로 수행하고 있는데 적이 다가옵니다. 어쩌면 여러분에게 왔을지도 모릅니다. 여기 계신 분에게, 저기 계신 분에게, 이분에게, 저분에게, 여기저기 계신 여러분 모두에게 말입니다. 심장병, 질병, 몸의 고통들이 닥치면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충분히 기도하셨습니까? 모든 것이 바르게 되어 있습니까? 그렇다면 회의를 가집시다. 아멘. 무엇을 해야 할지 알아봅시다.
여러분은 말합니다. “브래넘 형제님, 저는 성령을 받으려고 애썼습니다. 하나님을 구했습니다. 하나님을 구했는데 성령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회의를 갖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아봅시다. 성령은 마음의 비밀을 드러내시는 분입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아봅시다. 여러분이 성령을 받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봅시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아봅시다. 회의를 가집시다. 모세는 회의를 가졌고 명령을 받을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저는 오늘날 이 나라에 있는 요란스럽게 부풀린 신유 주장들에 많이 반대합니다. 이 말을 들으면 저를 좋아하지 않으실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말하겠습니다. 대단한 것처럼 떠벌리는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아, 신유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할 일은 오직, 할렐루야, 안수받는 것뿐입니다. 오, 하나님께 영광!” 그렇지 않습니다. 회개하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십시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회개입니다.
얼마 전 루터교회에서 온 편지 한 통을 읽었습니다... 자랑하려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십니다. 이 성경 앞에서 진심으로 말씀드립니다. 그는 어느 전도자의 신유에 관한 과장된 생각들을 아주 호되게 비판하고 있었습니다. “어린 데브라 스타드스클레브는 어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그 어머니가 이곳에 와서 그 자리에 서 있었을 때... 그 어린 아기는 그날 밤 죽었고, 그때는 그다음 날 오후였습니다. 죽어 있었습니다. 의사도 사망을 선고했고, 몸도 차갑고 뻣뻣했습니다. 그 아기를 제 팔에 안겨 주어서 제가 기도했습니다. 아기가 울기 시작했고, 저는 그 아기의 어머니 품에 다시 안겨 주었습니다. 스타드스클레브 부인은 그 자리에 서서 그 일을 보았습니다. 스타드스클레브 부인은 독일에서 자기 어린 아기가 병들었을 때 편지를 보냈습니다. 율리우스 스타드스클레브 대위는 빌리 그래함의 친구이며 제 집회의 동역자 중 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여기서 받아 보시는 「한 선지자의 아프리카 방문」이라는 책을 쓴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는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그 사진을 찍었을 때, 집회에 내려오는 그 불기둥이 내려왔을 때에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사진으로 찍었고 그 모든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의 아기가 죽었을 때 그 젊은 어머니는 마음의 평안을 찾지 못했습니다. 독일에서 전화를 걸어왔고, 미 공군의 제트기가 저를 독일로 데려가려고 했습니다. “이 아기는 다시 살아날 수 있어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주님께서 뭐라고 하시는지 알아보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이틀이 지났습니다. 의사는 아주 친절했습니다. 그들은 심지어 ...하지도... 사람들이 그곳에서 아기 주위에 모여 소리를 지르고 외치며 야단을 치는 등 온갖 행동을 했지만, 생명은 없었습니다. 저는 계속 기다렸습니다. 어느 날 아침 성령께서 저를 깨우시며 말씀하셨습니다. “그 일에 손대지 말라. 그것을 꾸짖지 말라. 그것은 주님의 손이니라.” 저는 그들에게 그 말을 전했습니다. 그 루터교 목사님은 말했습니다. “당신은 왜 그렇게 하나님께 분명한 결정을 받을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알게 됩니다.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를 받을 때까지 기다리십시오. 그러면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됩니다.
[녹음 끊김] ...어딘가에서 무언가 잘못되었습니다. 지금은 분명히 그렇게 합니다. 그들은 두통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형제님, 이 나라에 두통이 있어서는 안 되겠군요. 그렇습니다. 어딘가 잘못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오순절 여자 성도들이 그렇게 하는 것이 잘못이었습니다. 제가 오순절 운동 안에 있었던 기간은 얼마 되지 않지만, 그 모습이 점점 번지고 또 번져서... 여러분은 텔레비전을 너무 많이 보고, 보아서는 안 될 것들을 너무 많이 보고 있습니다. 예전처럼 기도하는 밤들을 가지며 기도 모임을 열고 하나님의 교회로 돌아가야 하는데 말입니다. 우리가 부흥을 누리지 못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오럴 로버츠나 토미 힉스 같은 사람들을 나라 곳곳에 보내 주셔도, 우리가 옛날 사도 바울의 부흥으로 돌아가 교회 안에 다시 성령이 살아 역사하시게 하기 전까지는 여전히 세울 바탕이 없습니다. 교회 집사들이 네다섯 번씩 결혼하고 온갖 이런 일을 벌입니다. 그것이 성경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입니다. 아멘.
얼마 전 제가 한 여자분에게 말했습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저는 그런 짧은 반바지는 입지 않아요. 슬랙스를 입지요.” 저는 “그게 더 나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성경은 여자가 남자에게 속한 옷을 입는 것을 가증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더러운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여자분은 이제 옷을 만들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아직 재봉틀은 만들고 있고, 천도 살 수 있습니다.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성령 침례입니다... [불명확한 말] 이 조롱거리... 사실입니다. 아멘. 여러분은 제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하시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제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렇게 옷을 입고 거리에 나갑니다. 여러분이 남편에게 더할 나위 없이 정숙한 아내이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더할 나위 없이 순결한 아가씨일지라도, 심판 날에는 간음에 대해 답해야 할 것입니다. 간음한 죄가 있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여자를 보고 그녀에게 음욕을 품는 자는 이미 마음속으로 그녀와 간음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자신을 그런 모습으로 내보였고, 죄인이 여러분을 바라보았습니다. 그가 간음에 대해 답할 때 누구에게 죄가 있습니까? 자신을 그런 모습으로 내보인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아멘.
이것은 진리입니다. 제게 화내지 마십시오. 이것은 주님의 말씀입니다. 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순절 안에서의 회의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오순절 회의로 돌아가야 합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명령을 주실 때까지 그곳에 서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바위 뒤에서 나와 “앞으로 나아갑시다”라고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들이 말했을 겁니다. “앞으로 어디를 간다는 겁니까?” “그냥 계속 나아가십시오. 그것뿐입니다.” 그의 발이 물에 닿자 홍해가 물러갔고, 가로질러 마른 땅이 드러났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회의를 가졌기 때문에 마른 땅으로 건너갔습니다.
아, 우리가 말할 수 있는 회의는 많이 있습니다. 불타는 용광로에서의 회의가 있었고, 사자 굴에서의 회의가 있었습니다. 많은 회의가 있었습니다.
또 하나를 살펴봅시다. 겟세마네 회의라고 부릅니다. 그것은 무서운 회의였습니다. 그분은 젊은 나이에 죽으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하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잃어버린 인류가 처한 상태를 보시고 “내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 원하나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천사들이 와서 그분을 섬겼습니다. 그것이... 그분께서 죽으시고 묻히시고 부활하신 뒤에는 또 다른 회의가 있어야 했습니다. 그리스도인 교회를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가 하는 회의였습니다. 감독들이 운영해야 할지, 교황들이 운영해야 할지,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24장 49절에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예루살렘 시에서 기다리고 있으라. 나는 아버지와 회의를 하러 올라가노라. 조금 뒤에 소식을 내려보내겠지만, 너희는 거기서 기다리라.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 알려 주겠노라.” (베드로가 첫 교황이 되어야 할지, 감독들과 대주교들과 지방 장로들을 비롯한 온갖 직분을 두어야 할지 말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다려 보면 알게 될 겁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른바 오순절 회의를 가졌습니다. 바깥에 난 작은 계단을 올라가 다락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에는 백이십 명이 모였고 작은 기름초 하나가 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열흘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기다렸습니다. 회의의 결과가 무엇일까요? 꽤 긴 회의였습니다. 그들은 열흘을 기다렸고, 마침내 그 결과가 내려왔습니다. 아, 그렇습니다.
목깃을 뒤로 돌려 입은 사제가 길을 걸어와 “이제 첫 성만찬을 거행하겠습니다. 여러분이 혀를 내밀면 제가 성체용 빵을 드리고, 포도주는 제가 마시겠습니다”라고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했다면... 어떻겠습니까? 또한 어떤 설교자가 길을 걸어와 “우리와 교제의 악수를 나누십시오. 여러분의 이름을 명부에 올리고 여섯 달의 시험 기간 동안 지켜보겠습니다”라고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아닙니다. 그런 것은 인간의 회의입니다. 인간은 공의회와 회의에서 그런 식으로 합니다.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회의의 결과가 내려왔을 때, 그들은 모두 한곳에 한마음으로 있었고, 갑자기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력한 바람 소리 같은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던 방 전체를 가득 채웠습니다. 불의 혀처럼 갈라진 것들이 그들 위에 앉았고,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충만하여 성령께서 그들에게 말하게 하시는 대로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총본부에서 내려온 결과였습니다. 성령께서 교회를 인도하셔야 했습니다. 인간이 만든 교리가 아니라 성령이셨습니다. 그것이 오순절 회의였습니다.
저는 마르틴 루터에서부터 오순절에 이르기까지 모두 돌아가 다시 회의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를 인도하셔야 하는 분은 성령이시며, 교리나 신조나 ‘성모송’이나 사도신경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사도신경을 찾아 제게 보여 주십시오. 그런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거기에 머리를 숙이고 그것을 암송하며, 그저... 그런 사람들은 단체에 가입하는 사람들이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영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성령께서 그들 안에 들어오시고, 그들은 그 영으로 충만해집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그들을 통해 살아 나타납니다. 그들은 온 세상에 나가 복음을 선포합니다. 어디까지입니까? 온 세상입니다. 이 세대만을 위해서입니까? 온 세상입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어디까지입니까? “온 세상, 믿는 모든 창조물에게”입니다. “그들이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내쫓고 새 언어들로 말하며, 뱀들을 집어 올리거나 치명적인 것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 사람들이 나으리라.” 그것이 명령이었습니다. 그 회의에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에게서 내려온 명령이었습니다. 결과를 내려보내신 것입니다. 급하고 강력한 바람이었습니다. 아, 어디까지...? 형제 여러분, 우리에게는 또 한 번의 회의가 필요합니다. 그 회의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들은 걸어 나와 “이제 당신과 악수하겠습니다. 이 교회의 교인이 되겠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소금통을 가져다가 흙이든 물이든, 뭐라고 부르든 상관없습니다만, 그들에게 서너 번 뿌리고 나가면서 “이제 교인이 되셨습니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물침례조차도, 그것이 아주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급하고 강력한 바람 소리 같은 소리가 하늘에서 내려왔습니다. 그들이 앉아 있던 온 집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것이 그 회의의 결과였고, 하나님께서 자기 교회를 운영하기로 결정하신 방식이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감히 거기서 한 획이라도 벗어나려고 합니까? 인간인 우리가 어떻게 감히 거기에 한 가지를 더하거나 한 가지를 빼려고 합니까?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교회는 바로 그렇게, 성령의 권능으로 운영되어야 합니다.
곧이어 또 다른 회의가 열렸습니다. 그 사람들이 나아가 복음을 선포하고 병든 사람들을 치유했습니다. 베드로와 야고보가 아름다운 문이라고 하는 문을 지나가는데, 거기에 어머니의 태에서부터 걷지 못한 사람이 누워 있었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으나 내게 있는 것을 네게 주노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걸어갔습니다. 그다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사람들이 그들을 감옥에 넣으려 했습니다. 신문에는 온갖 비난이 실렸습니다. 그들은 사도들을 비난하고 붙잡아 공회, 곧 교회의 총공회 앞에 세웠습니다. 산헤드린 법정에 세웠을 때, 다시는 그런 복음을 전하지 못하도록 금했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무엇을 해야 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들이 무엇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들은 또 다른 회의를 열었습니다. 그것을 사도행전 4장 회의라고 부릅시다. 사도행전 4장입니다. 그들은 자기 동료들에게 모였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자기 무리에 모이고, 또 모든 무리가 함께 모여 회의를 연다면 좋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공산주의가 우리나라를 벌집처럼 파고들고 있습니다. 공산주의가 우리나라 구석구석을 파고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식어 가며 의식만 지키는 곳이 되고 있습니다. 교회들은 서로 싸우고 맹렬히 비난하며, 교인들은... 그들에게 그리스도인이냐고 물으면 “저는 어디에 속해 있습니다”라고 할 것입니다. 그것은 아무 상관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교단을 이만큼도 [브래넘 형제님이 손가락을 튕긴다.]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여러분이 다시 태어났는지 알고 싶어 하십니다. 다시 태어나지 않았다면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을 자기 안에 받아들일 때만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여러분 안에 있으면 그리스도의 삶이 나타날 것입니다. 수박 넝쿨에서 복숭아를 딸 수 있겠습니까? 물론 그럴 수 없습니다.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십시오. 그들은 함께 모였고, 한자리에 모여 성경을 인용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하나님께 아뢰었습니다. “어찌하여 이교도들이 격노하며 백성이 헛된 일들을 꾀하는가?” 텔레파시니 점술이니 독심술이니 하는 온갖 헛된 일들 말입니다. 그들은 말했습니다. “어찌하여 그들이 헛된 일들을 꾀하였습니까? 진실로... 주의 거룩한 아이 예수님의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고.” 그들이 그 회의를 가졌을 때, 대략... 오순절 날에 삼천 명쯤 회심했고, 그 뒤에도 수백 명, 또 수백 명이 회심했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팔천 명이나 만 명쯤 되는 사람들이 한 방에 모여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한마음으로 모두 동시에 기도하자, 성경은 그들이 모여 있던 건물이 흔들렸다고 했습니다. 응답이 돌아왔고, 성경은 그들이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다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씀을 선포하기를 두려워합니다. 자기 교회나 교단에서 출교당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또 다른 회의, 사도행전 4장 회의가 필요합니다. 누가 무슨 말을 할까 봐 두려우십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면 그 말씀을 굳게 붙드십시오. 그 말씀대로 살고 그 말씀대로 죽으십시오. 그렇습니다. 그러면 그 말씀으로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일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그것입니다.
회의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회의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라. 우리가 함께 변론하자”라고 말씀하십니다. “만일 내 첫 교회가...” 하나님께서 오늘 밤 이 방에 들어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신다면 말입니다. “내가 내 첫 교회를 세웠고 그들 위에 오순절의 복이 있었다면...” 그들은 무엇을 했습니까? 나아가 부활의 표적들을 보였습니다. 오늘 밤 우리 오순절 교회들, 감리교회들, 침례교회들, 장로교회들에 왜 그런 일이 없는지 와서 함께 변론합시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무언가 잘못되었습니다. 그러니 와서 함께 변론합시다. 무엇으로 변론할 수 있겠습니까? 감리교의 기준으로 하겠습니까? 침례교의 기준으로 하겠습니까? 장로교의 기준으로 하겠습니까?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변론할 수 있습니다. 첫 교회는 성령으로 충만했고, 큰 표적들과 이적들을 행하며 나아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그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에서 나타났습니다. 우리 함께 나아갑시다...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함께 변론하자. 와서 함께 변론하자. 너희 죄들, 곧 너희 불신이 주홍 같을지라도 내가 눈같이 희게 하리라.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부흥을 주리라. 자벌레가 먹고 메뚜기가 먹어 치운 모든 햇수를 내가 돌려주리라.” 루터교가 남긴 것을 감리교가 먹었고, 감리교가 남긴 것을 침례교가 먹었으며, 침례교가 남긴 것을 오순절이 먹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돌려주리라”라고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회복을 보장하는 말씀입니다. 그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요엘서 2장에서 약속하셨습니다. “오라. 우리가 함께 변론하자.” 하나가 먹어 치우고 남긴 것을 다음 것이 더 먹어 내려가, 마침내 그루터기가 되었습니다. 참된 오순절 교회, 참된 오순절 성도들, 참된 오순절 체험이 이제... 역사 속의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떻게 여기 서서 여러분에게 신학을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한때 하나님께서 병든 사람들을 치유하시고, 걷지 못하는 사람들을 걷게 하시며, 눈먼 사람들을 보게 하셨다고 말하고, 자신의 영을 부어 주셔서 그들에게 영들을 분별하는 은사가 있었고 이 모든 일을 행했다고 말하며, 메시아의 표적, 곧 부활의 표적이 한 교회 시대 내내 그들을 따랐다고 말한 다음, 이제 그 시대는 지나갔다고 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오늘날에도 동일한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역사 속의 하나님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여러분의 카나리아에게 비타민을 먹여 깃털을 좋게 하고 날개뼈를 튼튼하게 만든 다음, 새장에 가두어 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지금도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사람에게 알려 줄 수 없다면 신학교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분이 그저 역사 속의 존재이시라면 과거의 분이십니다. 하지만 그분은 죽지 않으셨습니다.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십니다. 지금 여기 계십니다. 그분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함께 모여 의논해야 합니다. 처음에는 어떤 교회였습니까? 바로 그런 교회가... 하나님은 무한하시며 생각을 바꾸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결정을 내리시면 반드시 지키셔야 합니다. 참된 그리스도인 교회에 관한 그분의 첫 결정은 오순절의 체험 가운데 이루어졌습니다. 그것은 오순절 교단이 아니었습니다. 오순절의 체험이었습니다. 그 체험은 감리교인이나 침례교인, 가톨릭교인, 장로교인이나 원하는 누구에게나 임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에게 임하는 체험입니다.
사랑,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사랑은 세상에 있는 것 가운데 가장 강력한 것입니다. 무엇이든 정복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이것으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여러분은 정복할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고, 하나님의 일을 사랑하고,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고통받는 인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정복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회의를 가졌고 명령을 받았으며, 나아가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이제 또 하나의 회의에 관해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제네바 회의에 참석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라디오로 그 결과조차 듣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겟세마네 회의에 참석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그러셨지요. 홍해 회의에 참석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그러셨습니다. 이 모든 회의에 참석하지 못했을지라도, 여러분이 서게 될 회의 하나가 있습니다. 심판의 회의입니다. 여러분 모두 그곳에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서서,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을 어떻게 대했는지 회계 보고를 하게 될 것입니다.
회의가 열릴 것이며 여러분은 거기에 있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자기 생명을 어떻게 하든 상관없습니다. 너무나 죄책감이 커서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도 있습니다. 자기 몸을 화장한 뒤 바다로 가져가 사방으로 날려 보내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여러분은 그 자리에 있게 될 것입니다. 모든 무릎이 굴복하고 모든 혀가 자백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큰 회의가 있었을 수도 있고, 여러분이 참석하지 못한 회의가 많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참석하게 될 회의가 하나 있습니다.
여러분, 흰머리 하나를 볼 때마다 여러분이 그곳으로 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사이렌 소리를 들을 때마다 여러분이 맞이할 회의를 떠올리게 합니다. 죽음이 여러분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젊든 늙든 누구이든, 여러분은 그 길을 가고 있습니다. 공동묘지를 지날 때마다 그것은 여러분이 그 회의로 오고 있다고 말해 줍니다. 설교가 전해지는 소리나 찬송이 불리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여러분이 그 회의로 오고 있으며 반드시 거기에 있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아들, 그분께서 여러분에게 보내신 성령을 어떻게 대했는지 답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답해야 합니다. 그 회의에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친구 여러분, 오늘 밤 이 자리에 계시면서 아직 하나님과 그 회의를 가진 적이 없다면... 어떤 사람들의 죄는 고백되어 그들보다 먼저 가고, 어떤 사람들의 죄는 뒤따라갑니다. 여러분의 죄, 여러분의 불신이 아직 고백되지 않았다면, 우리가 머리를 숙이고 기도하는 동안 그것을 생각해 보시지 않겠습니까? 이 경건하고 엄숙한 순간에, 모든 사람이 답해야 할 엄숙한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신실하게 임하시고, 이 시간이 여러분의 마음을 살피는 시간이 되게 하십시오. 이 회의가 끝난 뒤에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오늘 밤 이것도 회의입니다. 초대 교회 때 사람들이 강당 같은 곳에서 했던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려고 이 체육관에 함께 모였습니다.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었습니다. 언젠가 여러분은 그 말씀에 대해 답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밤 여기 계신 분 가운데 이렇게 제게 말씀하실 분이 있습니까? 얼마나 계십니까? 그런 분들이 계신다는 것을 압니다. “브래넘 형제님, 저는 하나님의 영으로 태어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성경으로 이토록 분명히 들었고 성령께서 증언해 주셨으니, 제가 그 회의에 선다면 그날 제 삶에 대해 회계 보고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께 손을 들어 제게 긍휼을 베풀어 달라고 구하겠습니다. 지금 당장 하나님과 회의를 갖고 싶습니다. 바로 지금 그분과 이 일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이제 모두 머리를 숙인 채로, 눈을 들어 보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지어다, 손을 들고 “브래넘 형제님,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저는 아직 성령을 받지 못했습니다”라고 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또 다른 분 계십니까? 이런 때에는 반드시 정직하셔야 합니다. 회의로 가고 있습니다. 자매님,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자매님,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여기 계신 분도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회의로 가고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교회에서 얼마나 착하게 지냈든 그것은 아무 효력이 없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여기 미국에 있는 우리 누구보다도 훨씬 더 거룩한 생활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죄인, 곧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었기에 악하게 여겨졌습니다. 제가 그 회의에 관해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교회를 원하시는지 결정하려 하셨을 때, 그것은 오순절에서 시작된 성령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아직 그 회의에 참여하지 못했다면 손을 들고 “브래넘 형제님,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라고 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분도, 저분도, 저분도요.
제 왼쪽 발코니에 계신 분들 중 조용히 손을 드실 분이 있습니까? 모두 머리를 숙이고 기도해 주십시오. 왼쪽 발코니, 뒤쪽 발코니, 오른쪽 발코니에 계신 분들, 기억하십시오. 제가 여러분에게 억지로 이렇게 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말씀을 전할 수 있을 뿐입니다. 결정은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바로 이 메시지가 여러분을 심판할 것입니다. 그것은 하늘의 자기 테이프에 녹음되어 있으며, 심판 날에 다시 재생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아직 받지 못했고, 오순절 회의에서 그들이 그랬듯이 그 회의를 가지며 만나 본 적이 없고, 아직 그분을 받지 못했다면, 손을 들고 “브래넘 형제님,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라고 하십시오. 아직 손을 들지 않으신 분... 손을 드십시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주님께서는 사람들의 손을 보십니다. 용기를 내어 손을 들고 기도해 주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얼마나 감사해야 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내 아버지께서 먼저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이곳에 앉아 있으면서도 손을 들지 않은 것으로 저희가 아는 이들을 생각해 봅니다. 주님은 마음을 분별하시는 분이십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는데도 손을 들지 않은 사람들은, 마지막 회의가 열리는 심판 날에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때에는 누가 받았고 누가 받지 않았는지, 누구의 이름이 책에 있는지 결정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내 왼쪽에 있는 자들에게 내가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해 예비된 영존하는 불에 들어가라’고 말하리라” 하셨습니다.
저희는 그때가 가까이 온 것을 압니다. 세상이 떨며 흔들리는 모습을 봅니다. 머지않아 원자들이 타고 하늘들에 불이 붙어, 사도 베드로가 말한 것처럼 뜨거운 열로 타오를 것을 압니다. 머지않아 땅의 원자들에 불이 붙을 것입니다. 그것이 연쇄적으로 이어져 사람들의 먼지조차 남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 그러고 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어쩌면 지금부터 오백 년 뒤, 휘몰아치는 바람과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 아래 저쪽에 쓰러진 오래된 묘비 하나에 여기 있는 누군가의 이름이 새겨져 있을지도 모릅니다. 땅이 천년왕국 전에 정결하게 되려고 태양 가까이에 놓일 때 말입니다. 떠도는 그들의 혼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들이 지금 이 현대적인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자기 마음속에서 말씀하는 메시지와 사자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게 하옵소서. 아버지, 손을 든 사람들을 축복하시고 성령을 받게 하옵소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이제 머리를 숙인 채 잠시만요. 정말 진심이셨습니까? 여기 제단 앞으로 나오시겠습니까? 손을 드신 분들은 지금 자리에서 일어나십시오. 손을 들지 않으신 여러분도, 앞으로의 집회들에 참석하셨다면, 여기서도 보시게 될 것입니다만, 기도를 통해 그분께서 눈먼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하시고, 걷지 못하고 몸이 뒤틀린 사람들을 치유하시며, 사람들에게 다가가 마음속 생각까지 분별하시는 것을 보십시오. 그분께서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말씀하시는 분은 그분의 영입니다. 오늘 밤 여러분이 여기서 보았던, 마음의 비밀을 아시는 그 영입니다. 바로 그 영이 제게 이곳에 나와야 할 사람이 많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일어나 이리로 와서 이 작은 강단 주위에 잠시 서십시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나오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자매님,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온유하신 구주여, 나를 지나치지 마소서. 누구든 나오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신다고 믿으십니까? 이 제단 주위로 오십시오. 다른 이들을 부르실 때, 나를 지나치지...
발코니에서 내려오시지 않겠습니까? 인생의 갈림길에 막 서 있는 젊은 여러분, 와서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구주로 받아들이십시오. 오늘 밤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성령으로 충만해지십시오. 지금이 그때이고 이곳이 그 자리입니다.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변명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 밤 여기 계신 바로 그 영이 심판 날에 여러분에게 불리한 증인으로 서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이 아니라면 제가 이런 말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여러분도 아십니다. 오늘 밤 내려오십시오. 구주여, 구주여... 경건하고 조용히, 자리에서 나와 몇 걸음만 걸어 이리 내려와 서시겠습니까? 나오신 이분들을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다른 이들을 부르실 때, 나를 지나치지 마소서.
얼마 전 저는 죽어 가는 한 젊은 여자의 곁에 서 있었습니다. 그 여자는 집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여자가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기도하지 마세요. 제 때는 지나갔어요. 어느 날 밤 형제님의 집회에서 남자 친구와 함께 앉아 있는데, 도저히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어요. 같이 나가겠느냐고 물었더니, 싫다고 했어요.” 그 여자는 말했습니다. “그날이 제게 주어진 마지막 날이었어요. 이제 너무 늦었어요.” 괜찮은 젊은 여자였지만, 고칠 수 없는 성병으로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제 친구인 장의사가 그 여자의 몸에 방부액을 주입했습니다. 계속 흘러들어 갔지만 그것이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냄새는 났습니다. 병이 그 젊은 여자의 몸을 파먹어 구멍들이 나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젊은 여자였습니다. 그 여자는 “그때 나갔어야 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여자는 교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여자가 죽어 가는데 목사는 그 자리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습니다. 그 여자가 목사에게 무엇이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사람들을 속이는 자예요. 저더러 괜찮다고 하셨지만 목사님이 틀리셨어요. 저는 죽어 가고 있고 구원받지 못했어요. 목사님 때문이에요.” 그 여자는 자신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려고 했던, 태버내클에 다니는 한 여자아이를 불러 달라고 했습니다. 둘은 같은 고등학교에 다녔습니다. 그 아이를 오게 하려 했지만 너무 늦었습니다. 그 아이가 도착하기 전에 그 여자는 죽었습니다. 그 여자는 회개하고 싶었습니다. 그 아이를 ‘광신자’라고 험한 이름으로 불렀던 것을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인생길의 끝에서는 언제나 진상이 드러납니다. 그곳에서 죽음의 천사와 회의를 갖습니다. 그 일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여러분은 그 천사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오늘 밤 도로에서 만날 수도 있고, 오늘 밤 잠자리에서 만날 수도 있습니다. 어딘가에서 반드시 만날 것입니다. 여러분은 회의를 갖게 될 것입니다. 지금도 그 천사는 가까이 다가와 있습니다. 하나님의 천사들이 가까이 와 있습니다. 그날에는 그들이 여러분을 변호해 주기를 바라게 될 것입니다. 지금 그들이 말하고 있습니다. 나오시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다시 한번 찬송하는 동안 나오십시오. 오직 주님의 공로를 의지하여, 여러분의 교회를 의지하지 마십시오. 그분의 공로를 의지하십시오. ...주님의 얼굴을 구합니다. 상처받고 상한 내 영을 치유하시고, 주님의 은혜로 나를 구원하소서. 구주여, 구주여, 겸손한 내 부르짖음을 들으소서. 개인 전도자들은 이제 나오시겠습니까? 다른 이들을 부르실 때, 나를 지나치지 마소서.
개인 전도자들이 앞으로 나와 각 사람 곁에 서실 때, 여자분들은 여자분 곁에, 남자분들은 남자분 곁에 서십시오. “주께서 말씀하시느니라. 이제 오라. 우리가 함께 변론하자. 너희 죄들이 주홍 같을지라도 눈같이 희게 될 것이요.” 나를 지나치지 마소서. 구주여, 구주여, 겸손한 내 부르짖음을 들으소서. 다른 이들을 부르실 때, 나를 지나치지 마소서. 주님의 긍휼의 보좌 앞에서, 달콤한 안식을 얻게 하소서... 지금 내려오시지 않겠습니까? 또 다른 분, 나오십시오. 예배 순서를 바꾸기 전에 나오고 싶은 분이 또 계십니까? 구주여, 오 구주여, 오, 겸손한 내 부르짖음을 들으소서. 다른 이들을 부르실 때, 나를 지나치지 마소서.
이곳에 계신 분 가운데 얼마나 많은 분이 자기 삶을 그리스도께 새롭게 바치고 싶으십니까? 손을 드십시오. 이렇게 말씀하십시오. “오늘 밤부터 앞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제 삶을 하나님께 바치겠습니다.” 신실한 그리스도인 여러분 모두 손을 드십시오. “제 삶을 다시 하나님께 바치겠습니다.” 병든 분들은 모두 손을 들고 말씀하십시오. “지금 바로 저의 치유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저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려고 나오는 이 사람들을 기뻐하신다고 믿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믿으십니까? 이제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새롭게 바치는 헌신 예배를 위해, 일어설 수 있는 분들은 모두 잠시 일어섭시다. 그리스도께 드리는 서원과 헌신을 새롭게 하도록 이제 일어섭시다. 그분을 사랑하십니까? 저는 그분을 사랑합니다. 이제 여러분 모두, 다 함께 부릅시다. 주님을 사랑하네, 주님을 사랑하네. 이제 그분께 헌신하십시오. 주님이 먼저 나를 사랑하셨기에, 갈보리 나무 위에서, 내 구원을 값 주고 사셨기에. 주님을 사랑하네, 주님을 사랑하네. 주님이 먼저 나를 사랑하셨기에, 갈보리 나무 위에서, 내 구원을 값 주고 사셨기에. 이제 각자 머리를 숙이고 헌신의 기도로 자신을 그리스도께 내어 드리십시오. 그동안 여기 계신 목사님 한 분께 나오셔서 헌신 기도를 드려 주시기를 부탁하겠습니다. 바로 여기 계신 형제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