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오늘 아침 주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교제하며 참으로 놀라운 시간을 보낸 뒤에, 오늘 오후 다시 이 자리에 오니 무척 좋습니다. 이 대초원에 계신 훌륭한 여러분을 다시 찾아뵙게 되어 기쁩니다. 오늘 아침에는 성취와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길에 관해 말씀드렸습니다. 아침 성경 공부에 참석한 분들께, 사람들은 늘 스스로 무언가를 이루어 “내가 이것을 했다”, “내가 저것을 했다”라고 말하려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우리가 이야기한 것은, 사람들이 비를 조절하여 농작물에 내리게도 하고 그치게도 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한다면 얼마나 놀랍겠으며, 그 소식이 순식간에 온 세상으로 퍼져 나가리라는 것이었습니다. 또 어디선가 늙은 남자와 여자를 다시 젊어지게 하여 영원히 살게 해 주는 약을 발견한다면, 그 소식을 사방에 전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이루려고 애쓰지만, 그것은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이것을 이루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신 성취이시며, 우리는 그분을 믿어야 합니다.
이 집회들은 ...이 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신유 집회라고 불립니다. 저는 사람을 치유할 수 있는 인간은 아무도 없다고 믿습니다. 치유는 구원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이루어진다고 믿습니다. 아무도 우리의 죄들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죄들은 이미 용서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갈보리에서 죽으셨을 때 세상을 죄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자신에게 주어진 은혜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무런 유익도 얻지 못합니다. 치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병들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하실 수 있는 모든 일을 갈보리에서 죽으셨을 때 이루셨습니다. 그분은 그것을 우리를 위해 사셨습니다. 그것이 그분의 성취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받으려면 우리 각자에게 속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구원을 생각해 봅시다. 제가 오늘 “여러분 중에 십 년 전에 구원받은 분이 얼마나 됩니까?” 하고 물으면 많은 분이 손을 드실 것입니다. “작년에 구원받은 분은 얼마나 됩니까?” 하면 또 손을 드실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십 년 전이나 작년에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천구백 년 전에 구원받았습니다. 십 년 전이든 언제든, 그때 그것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다 이루어진 일입니다. 성경은 “그는 우리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도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아시겠죠? 과거 시제입니다. 이미 이루어진 일입니다. 이토록 단순하면서도 신유는 성경의 위대한 걸작 중 하나이며, 그리스도인 교회에 주어진 하나님의 걸작 중 하나입니다. 오래전부터 오랫동안 잊혀 왔지만, 이것은 우리에게 속한 것입니다. 바로 여러분 각자에게 속한 것입니다.
이제 와서 그렇지 않다고 하기에는 너무 늦었습니다. 저는 세계를 약 일곱 차례 돌았고, 나라마다 그런 일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눈먼 사람, 귀먹은 사람, 말 못 하는 사람, 몸이 불편한 사람, 암과 종양과 나병에 걸린 사람 수만 명에게서 보았습니다. 심지어 죽은 지 여러 시간이 지났다고 의사가 진술서를 써 놓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일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일은 단지 누가 하는 말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그런 식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의사가 그렇게 말해야 합니다. 아시겠죠? 우리가 발표하려면 진술이 확실한 근거를 갖추어야 합니다. 발표되지 않은 일들도 수만 건이나 있습니다. 저는 우리끼리 나누는 경우가 아니면 그런 일을 발표하는 데 그다지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느 대목에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그저 가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날 우리가 발표나 과시에 너무 큰 비중을 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과시하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겸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믿도록 정해지지 않았다면 사람이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분 당시에도 믿지 않는 사람이 많았지만, 그분은 믿는 사람들에게 오셨습니다.
얼마 전 어떤 사람이 제게 말했습니다... 기사를 읽고서 하는 말이었습니다. 멕시코의 한 아기가 집회 중에 죽었는데... 아니, 그날 아침 아홉 시쯤 죽었고, 집회 때는 밤 열한 시였습니다. 의사는 그날 아침 아홉 시에 그 아기에게 사망 선고를 내렸다는 진술서에 서명했습니다. 그런데 밤 열한 시에는 아기가 살아 있었습니다. 저는 환상을 본 뒤 그곳에서 아기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약... 오만 명이나 칠만 오천 명이 보는 앞에서 그 어린 아기에게 손을 얹고 기도했습니다. 아기가 발을 차고 울기 시작했고, 다시 살아났습니다. 제가 아는 한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의사가 그 일에 관한 진술서에 서명했습니다. 제가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본 것은 대략 다섯 번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제게 “이것이 사실인지 조사해 보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수고를 덜어 드리겠습니다. 여기 의사의 진술서가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당신이 살려 낼 수 있다 해도... 당신이 가서 수천 명을 위해 기도하여 그들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고 암들이 낫는다 해도, 나는 여전히 믿지 않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물론 그렇겠지요. 이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믿는 사람들만을 위한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믿는 사람들을 통해서만 일하실 수 있습니다.
불신은 하나뿐입니다. 이것을 마음에 새겨 둡시다. 죄는 하나뿐입니다. 술 마시고, 도박하고, 간음하고, 욕설하는 것, 그것은 죄가 아닙니다. 그것은 불신의 속성이 드러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지 아니하는 자는 이미 정죄를 받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주님 당시에도 그분은 거룩한 삶을 사는 사람들을 많이 보셨습니다. 깨끗하고 존경할 만한 신사들이었습니다. 학자들이었고, 학문으로는 최고 수준에 이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분은 그들에게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그분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메시지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그들을 불신자로 만들었습니다. 그분은 그들을 도우실 수 없었습니다. 자신의 고향에서도 불신 때문에 도우실 수 없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불신 가운데 있으면 그분은 여러분을 구원하실 수도, 치유하실 수도 없습니다. “그저 믿으라”는 말처럼 그렇게 단순합니다.
무엇을 믿으려면, 먼저 자신이 무엇을 왜 믿는지 어느 정도는 알아야 합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단지 치유의 권능을 보여 주려고 사람들을 치유하신다고 믿지 않습니다. 그분이 자신의 말씀을 성취하시고 약속을 지키신다는 것을 보여 주시려고 치유하신다고 믿습니다. 그분은 처음 이 땅에 오셨을 때, 선지자들을 통해 하신 말씀이 성취되도록 이런 일을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 성취되어야 합니다. 전부 다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보리에서 죽으셨을 때, 그분의 혼은 지옥으로, 몸은 무덤으로, 영은 하나님께로 갔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갈보리에서 그분은 “내 영을 아버지 손에 맡기나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의 영은 아버지 하나님께, 그분의 손에 맡겨졌습니다. 성경은 그분의 혼이 지옥에 가서, 노아의 날들에 오래 참고 기다리시는 동안 회개하지 않아 감옥에 있는 자들에게 선포하셨다고 말했습니다. 그분의 몸은 무덤에 넣고 돌로 봉했다는 것을 우리가 압니다. 큰 돌을 굴려다가 봉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 자신, 그분의 영은... 여러분 각자도... 그분 안에 계신 분은 하나님의 영이셨지만, 이렇게 장벽 뒤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기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셋째 날까지는 일어나실 수 없었습니다. 다윗이 “내가 그의 혼을 지옥에 남겨 두지 아니하며, 나의 거룩한 자가 썩음을 보지 아니하게 하리라”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몸은 칠십이 시간이 지나면 썩기 시작한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압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그 칠십이 시간 안에 어느 때인가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분이 그들에게 “이 몸을 헐라.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일으키리라”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안에 일어나... 그것을 일으켜 세우리라.”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성취하기 위해, 그분은 약속을 붙드시고 하나님의 말씀 뒤에 계시면서 그 사흘이 온전히 차기를 기다리셨습니다. 셋째 날이 지나자 그 벽이 허물어졌습니다. 그 아침, 때가 찼을 때 그분의 영은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와 무덤에 이르러 그분의 몸을 일으키셨습니다. 사망과 지옥과 무덤의 봉인을 깨뜨리시고 일어나셔서 영원토록 살아 계십니다.
지금도 그분은 혼과 몸과 영이 살아 계십니다. 그분은 살아 계십니다. 우리 대집회의 주제는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입니다. 이것을 바탕으로 말씀드리는데... 저는 누구도 “신유의 치유자 브래넘 형제님”이라고 말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저는 그런 사람이 있다고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치유자이시며, 그분이 우리를 이미 치유하셨다고 믿습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도다.” 그리고 여러 번... 오늘 오후 이 작은 교회에는 틀림없이 여러 분이 함께 모여 계실 것입니다. 아마 온갖 교단에서 오셨을 것입니다. 여러 교단, 아니 많은 교단이라고 말씀드려야겠군요. 그중에는 신유를 반대하는 가르침을 받은 분도 많을 것입니다. 신유를 반대하여 가르치는 사람들은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면서, 그것이 잘못 전해졌기 때문에 그릇되게 이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때로는 진리도 잘못 전해져서 그저... 진리 자체가 훼손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유는 옳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의 말씀에 믿음의 근거를 두어야 합니다. 아시겠죠? 이제... 그리고 이것은 이미 이루어진 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이미 이루신 일입니다.
이제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반드시 성취되어야 하며, 하나님 자신은 무한하시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분은 오류가 없으시고, 어디에나 계시며,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으며, 무한하십니다.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그러한 분이시라면 처음부터 끝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분이 무한하시다면, 세상이 있기 전부터 오늘 오후 우리가 이곳에 모일 것을 아셨습니다. 세상이 시작되기도 전에 여러분이 마음속으로 무슨 생각을 할지 아셨습니다. 바로 이 순간 무엇을 생각할지 아셨습니다. 땅 위에 있을 작은 날벌레 하나하나와, 그것이 눈을 깜빡일 때마다 그 모든 것을 아셨습니다. 무한하다는 것은 그런 뜻입니다. 그분이 무한하지 않으시다면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아시겠죠?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처럼 시간과 공간 안에 있는 유한한 존재를 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무한하신 분을 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하나님께서 무한하신 것과 똑같이 그 말씀도 무한합니다. 아시겠죠? 바로 그것입니다. 여러분은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그것이 역사하게 되는 길은 오직 그 길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씨입니다. 여기 계신 농부 여러분은 씨를 땅에 심고 잘 돌보면, 그 씨가 알맞은 땅에 있을 때 그 씨에 맞는 열매를 맺는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씨입니다. 그것을 믿음이라는 알맞은 땅에 심고 잘 돌보면, 말씀 그대로의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치유에 관한 말씀이라면 치유를, 구원에 관한 말씀이라면 구원을, 기쁨에 관한 말씀이라면 기쁨을 맺을 것입니다. 성경의 모든 약속은 참됩니다. 이것을 기억하십시오. 이 말은 제가 한 말로 기록해 두셔도 좋습니다. 하나님의 어떤 거룩한 약속이든 그것을 대하는 올바른 마음가짐은 그 약속을 이루어지게 합니다. 여러분이 그 약속을 올바른 태도로 대할 수 있다면... 성경은 “처음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이 하나님이셨더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하나님이셨다면, 지금도 그 말씀은 하나님이십니다.
어느 누구도 자기가 한 말보다 더 나은 사람일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제 말을 믿을 수 없다면 저는 결코 여러분의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 제가 여러분의 말을 믿을 수 없다면 여러분을 신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의 말을 믿고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하나님께도 그렇게 하십시오. 어느 누구도 자기가 한 말보다 더 나은 사람일 수 없습니다. 약속했다면 언제나 지키거나, 지킬 수 없는 이유를 말해야 합니다. 상대방에게 알려 주십시오. 사람이 한 말은 그 사람의 보증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보증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지키지 않으신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분이 자신의 말씀을 지키신다면, 그분은 자신의 말씀 안에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자신의 말씀 안에 계십니다. 그분의 말씀이 여러분 안에 들어오면, 여러분의 말이 그분의 말씀이 됩니다. 바로 그것이 여러분이 무엇을 구했든 이루어지게 합니다. 그만큼 단순합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습니다. 좋은 것은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잘못된 것, 악한 것은 올바른 것이 왜곡된 것입니다.
사탄은 창조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탄은 치유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는 여러분을 치유할 수 있는 약이 없습니다. 어떤 의사도 자기가 여러분을 치유할 약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의사를 반대하지 않습니다. 의사들과 그들이 쓰는 약에 감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상 가장 좋은 의사, 가장 좋은 약, 가장 좋은 병원을 갖춘 시대에 살면서도, 이전 어느 때보다 병이 많습니다. 이전 어느 때보다 불신이 많기 때문입니다. 사정은 바로 그렇습니다. 저는 존스홉킨스와 메이오 형제들과 면담한 적이 있습니다. 이런 사역을 하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아실 것입니다. 지미 메이오와 그들이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우리는 스스로 치유자라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자연의 작용을 돕는다고 합니다. 치유자는 한 분, 곧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이를 뽑을 수 있지만, 이가 빠진 자리는 누가 아물게 합니까? 충수를 잘라 낼 수 있지만, 누가 치유합니까? 무언가가 창조해야 합니다.”
자, 제가 오늘 오후 손을 베었다고 합시다. 그러면... 모든 의학을 통틀어도 제 손에 난 칼자국을 낫게 할 약은 없습니다. 하나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아니요, 브래넘 형제님, 있습니다”라고 하실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무엇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많은 사람이 칼에 베여 죽습니다. 무엇이 치유하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여러분은 “그곳에 페니실린을 바르지 않습니까?”라고 하실 것입니다. 페니실린은 치유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치유하시는 동안 깨끗하게 해 줄 뿐입니다. 여러분은 “글쎄요...”라고 하실 것입니다. 제 손의 칼자국을 낫게 하는 약이라면, 제 웃옷의 칼자국도 낫게 할 것입니다. 이 책상에 난 칼자국도 낫게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약은 웃옷이나 책상을 위해 만든 것이 아닙니다. 몸을 위해 만든 것입니다”라고 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오늘 오후 손을 베고 쓰러져 죽었다고 합시다. 여러분이 저를 여기 시체 안치소, 장의사의 시설로 데려가면, 거기서는 제 몸을 방부액으로 처리해서 오십 년 동안 본래 모습처럼 보이게 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날마다 제게 페니실린 주사를 놓는다고 합시다. 영국과 독일, 어디에서든 최고의 의사들을 불러다가 오십 년 동안 저를 치료하게 하십시오. 그 칼자국은 맨 처음 베였던 날과 정확히 같을 것입니다.
약이 사람의 몸을 치유하도록 만들어졌다면 왜 몸을 치유하지 못합니까? 아시겠죠? 그러니 약은 사람의 몸이든 무엇이든 치유하도록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몸에서 생명이 떠났기 때문이지요”라고 하십니다. 이제 핵심에 이르렀습니다. 그렇다면 치유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약입니까, 생명입니까? 여러분이 생명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시면, 저는 하나님이 무엇이신지 보여 드리겠습니다. 아시겠죠? 하나님이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약은 세포를 만들어 내지 않습니다. 제가 밖에서 차를 수리하다 팔이 부러져 여기 의사에게 달려갔다고 합시다. 그것은 합당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한다면, 이 말은 합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의사 선생님, 제 팔을 빨리 낫게 해 주십시오. 오늘 오후에 차 수리를 마쳐야 합니다.” 의사는 저를 보고 “브래넘 씨, 뭐라고 하셨습니까?”라고 할 것입니다. “제 팔을 낫게 해 주십시오. 선생님은 치유자 아닙니까? 제가 차를 고칠 수 있도록 팔을 낫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의사는 “정신부터 고치셔야겠습니다”라고 할 것입니다. 그것은 맞는 말일 것입니다. 아시겠죠?
의사는 제 팔을 치유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치유하시도록 뼈를 제자리에 맞출 수는 있습니다. 의사가 칼슘과 생명을 만들어 그 뼈를 붙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의사는 자신의 지식으로 뼈를 제자리에 맞추지만, 치유는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아시겠죠? 시편 103편 3절은 “오 내 혼아, 주를 찬송하며 그분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그분께서 네 모든 불법을 용서하시고 네 모든 질병을 고치시며”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실패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치유자이십니다. 우리는 늘 그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치유자이십니다.
이제 우리 주 예수님께서 오시기 직전인 이때, 우리에게... 오늘 아침 말씀드렸듯이, 제가 이곳에 온 목적은 잠시 휴가를 보내기 위해서였습니다. 집회가 끝나면 몇몇 형제님이 저를 이 근처로 데리고 가서 낚시와 사냥을 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육 개월 동안 쉬지 않고 사역 현장에 있었습니다. 지치고 피곤합니다. 아마 이제 곧 다시 해외로 떠날 것입니다. 전에 한번 여러분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 이곳을 지나면서 이렇게 좋은 분들이 계신 곳을 그저 지나쳐 버리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 여러분과 교제를 나누며, 우리가 힘을 합쳐 우리 가운데 계신 주 예수님을 다시 바라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사흘 밤, 아니 사흘 동안 이곳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교제하고, 여기 형제님들과 그리스도께 속한 것들을 중심으로 교제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에 생각을 모으기만 한다면 이곳에서 큰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믿음을 가지십시오.
여기 계신 기혼 남성 여러분은 왜 아내와 결혼하셨습니까? 그 여자가 참된 아내와 어머니가 될 것이라는 신뢰와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성 여러분도 남편에 대해 마찬가지입니다. 연인들은 결혼을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결혼할 남자나 여자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 사람을 믿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결혼하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배우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얻으러 오는지, 그것을 믿어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구속에 속한 모든 복은 이미 값을 치르고 사신 것입니다. 이것을 온 마음으로 믿을 수 있습니까? 구속에 속한 모든 복을 이미 사셨다는 것을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갈보리를 통해 우리를 위해 그것을 이루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을 다 이루셨습니까? “구원의 계획 전체,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 내가 한 모든 약속을 다 이루었다.” 모든 죄가 용서되었다는 보증금이 하나님 앞에 놓였습니다. 우리는 노예 시장에서 되돌아왔고, 모든 것이 구속되었습니다. “그는 우리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고 우리 불법들로 인해 상하였도다. 그가 징벌을 받음으로 우리가 화평을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도다.” 모든 것이 다 이루어졌습니다.
이제 잠시 말씀으로 들어가고 싶습니다. 그 전에 고개를 숙여 기도하면서, 말씀을 기록하신 분께 나아갑시다. 지극히 은혜롭고 영광스러우신 거룩한 아버지, 주 예수님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일으키신 전능하신 하나님, 주님께서는 그분을 일으키시고 살아 계신 분, 하나님의 아들로 우리에게 나타내셨으며, 그분은 천구백 년 동안 이 땅에서 자신의 백성과 동행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참으로 기쁩니다. 이처럼 비극적인 시대에, 연구를 통해 지구를 산산조각 낼 미사일을 개발했으며 거의 모든 나라가 그것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 마지막 날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과 정확히 들어맞는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는 그런 일을 보고, 나라들, 죄 많고 경건치 않은 나라들이 그 무기들을 가지고 있는 것을 봅니다. 거의 언제라도 폭발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혹은 어느 나라에서 날아오는 미사일이 레이더에 포착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모든 나라가 미사일을 발사할 것입니다. 세상은 살아남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아침이 오기 전에라도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음을 압니다. 그러나 이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예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영접하러 오신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분이 “노아의 날들에 그러했던 것같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멸망하기 직전, 비가 내리기 전에 노아는 방주에 들어갔습니다.
또 “롯의 날들에 그러했던 것같이...” 천사는 말했습니다. “서둘러라. 속히 오라. 여기서 나오라. 네가 이곳을 떠나기 전에는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노라.” 롯이 소돔에서 나간 다음에 불이 내렸습니다. 소돔은 완전히 멸망했고, 오늘날 사해 바닥에 가라앉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노아의 날들과 롯의 날들에 그러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도 그러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과학에서는 자정까지 삼 분이 남았다고 합니다. 세상이 우리가 직면한 이 시간들을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보고, 언제든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 주님의 오심은 얼마나 가까운 것입니까? 오 하나님, 앞으로 있을 이 세 번의 집회에서 이 작은 대초원 지역을 이전에 없었던 방식으로 흔들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 대초원의 모든 교회에 부흥을 허락해 주옵소서. 이곳 대초원 곳곳에 있는 스칸디나비아 출신을 비롯한 많은 귀한 사람이 그리스도께 나아오게 하옵소서. 그래서 예수님께서 나타나실 때 무덤들이 열리고, 우리가 나와서 그분을 만나러 가 영원히 그분과 함께 있게 하옵소서. 그분의 오심 외에 우리가 이 땅에서 더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아버지, 이제 오늘 오후 우리 자신을 주님께 맡깁니다. 여기 모인 우리 모두에게 함께 복을 주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풍성한 교제를 나누게 하옵소서. 집회가 끝나고 우리가 일어나 축도를 드린 뒤 각자의 집으로, 어떤 이는 대초원으로, 어떤 이는 시내로, 또 여러 곳으로, 모텔과 호텔로 돌아갈 때, 그 부활의 아침에 엠마오에서 돌아온 사람들처럼 말하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그들과 온종일 걸으셨지만 그들은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주님께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풀어 주셨지만, 그래도 그들은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이 귀한 농부들과 사랑하는 이들은 여러 번 바로 문 앞까지 닥쳐온 죽음을 보았습니다. 어쩌면 그 일을 하신 분, 자신들의 목숨을 지켜 주신 분이 주님이심을 알아보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엠마오에서 돌아온 사람들은 “그분께서 길에서 우리와 말씀하실 때에 우리 마음이 우리 속에서 뜨겁지 아니하더냐?”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말하게 하옵소서. 영광스럽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오늘 오후 우리 가운데 오셔서, 지금도 살아 계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며, 두세 사람이 모이는 곳마다 함께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이제 요한복음 12장 20절에 있는 성경 말씀을 읽고 싶습니다. 그 명절에 경배하러 올라온 자들 가운데 어떤 그리스 사람들이 있었는데 바로 그 사람들이 갈릴리 벳새다 출신의 빌립에게 가서 그에게 요청하여 이르되, 선생님들이여, 우리가 예수님을 뵙기 원하나이다, 하매 그리고 히브리서 13장 8절을 본문으로 삼고 싶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기억하십시오. 저는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날 그리스 사람들이 한 요청은 오늘 우리의 소원과 꼭 들어맞는다고 믿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 대해 들었습니다. 그분에 대해 듣고서도 그분을 보고 싶어 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제가 오늘 오후 “이 건물 안에 계신 분 중에 예수님을 보고 싶은 분이 얼마나 됩니까?”라고 하면, 아마 모두 손을 드실 것입니다. 한번 봅시다. 예수님을 보고 싶은 분이 얼마나 됩니까? 참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분에 대해 듣는 사람은 누구나 그분을 보기를 간절히 원한다고 믿습니다. 그분은 다른 누구와도 다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 같은 사람은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당시 그리스의 학식 있는 철학자들과는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교회와 유대인들의 전통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한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교육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사도 베드로, 위대한 성경 신학... 아니, 제자들 중에서는 사도 바울을 제외하고 아무도 교육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예수님을 알기 위해 자신이 알던 모든 것을 잊어야 했다고 우리에게 말했습니다. 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사람의 유혹하는 말로 너희에게 나아가지 않았다. 너희의 믿음이 [다시 말해] 사람의 지적인 생각에 세워지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성령의 권능과 나타나심 가운데 너희에게 나아갔으니, 이는 너희의 믿음이 하나님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다.”
사도 베드로는 자기 이름을 쓸 만큼의 교육도 받지 못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왕국의 열쇠들을 주셨습니다. 야고보와... 아니, 베드로와 요한이 아름다운 문이라는 문을 지나갈 때, 사람들은 그들이 무식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임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었다는 것을 알고 그들을 주목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구하는 것은 예수님과 함께하며 그분과 사귀는 것입니다. 한번 그분과 사귀고 나면 다시는 이전과 같을 수 없습니다. 사실입니다. 예수님과 한번 사귀고 나면 이전과 같은 사람으로 남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위대한 분, 곧 육체로 오신 하나님이신 그리스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분은 이 땅의 누구도 같을 수 없었고, 앞으로도 같을 수 없는 위대한 분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분이 어떻게 되셨는지 궁금해합니다. 어디 계십니까? 그분은 어떻게 되셨습니까?
우리는 불신 때문에 그분의 시대는 지나갔다고 설명하려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그분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고 한 성경 말씀을 충족할 수 없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소원이 “선생님들이여, 우리가 예수님을 뵙기 원하나이다”라고 했던 그리스 사람들의 소원과 같다면... 그들은 그 특권을 받았습니다. 그분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예수님을 보고 싶어 하고, 그분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면, 왜 우리에게는 그 소원이 이루어질 수 없겠습니까? 저는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분이 “조금 있으면 세상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이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세상이란 말은 학자이신 형제님들도 아시듯이 그리스어 코스모스에서 온 말로, “세상의 질서”를 뜻합니다. “세상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 곧 교회는 나를 보리라. 나, 곧 내가” — ‘나’는 인칭대명사입니다 — “끝이 다할 때까지 너희와 함께, 심지어 너희 안에 있으리라.” 아시겠죠? 끝까지 말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그저 겉모습이 비슷하거나 어느 정도 닮은 분이어서는 안 됩니다. 동일하셔야 합니다. 태도도 동일하고, 권능도 동일하며, 육체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동일해야 합니다. 그 육체는 하나님 오른편에 앉아 계십니다. 그분의 영은 자신을 나타내시고, 우리의 삶을 취하여 자신의 삶과 정확히 같게 만드시려고 여기 우리 안에 계십니다. 그것이 그분이 약속하신 것입니다. “성령께서 오시면 나에 대하여 증언하시고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너희에게 보이시리라.” 우리는 그것이 참되다는 것을 압니다. 그렇다면 제가 오늘 오후 여기 감리교 형제님들께 “그분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고 믿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여러분은 “물론입니다, 브래넘 형제님” 하고 그분이 동일하시다고 대답하실 것입니다. 제가 여기 침례교 형제님들, 오순절교나 장로교, 성공회, 나사렛교, 순례성결교, 우리가 어느 교단에 속했든 여러분께 “그것을 믿습니까?”라고 묻는다면, “그럼요. 물론 그분은 동일하십니다. 우리는 그분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고 믿습니다”라고 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분은 치유자이십니까? 오늘날 그분은 무엇을 하십니까? 여러분의 교회에서 지난날과 똑같은 그분의 모습을 보십니까?” 바로 그것이 문제입니다. 아시겠죠? 여러분은 지적인 관점, 이해로는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분이 동일하십니까? 그것이 핵심입니다.
성경은 그분이 동일하시다고 말씀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정도까지는 그렇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까지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동일하시다고,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고 했습니다. 어쩌면 여러분 중 어떤 분에게는 아주 이상하게 들릴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저는 그저 성경을 인용할 뿐입니다. 그것을 기록한 책임은 제게 없습니다. 제가 쓰지 않았습니다. 성령께서 기록하셨고, 그분이 책임지십니다. 제가 아는 것은 오직 거기에 그렇게 쓰여 있으며, 저는 그것을 믿어야 한다는 것뿐입니다. 제가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진리임을 믿어야 합니다. 어떤 예외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제게는 이 모든 말씀이 다시 살아 역사하게 할 만큼의 믿음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 믿음이 있는 사람의 길을 결코 막지 않겠습니다. 제가 에녹처럼 걸으며 죽음을 보지 않을 수 없다 해도, 어느 날 오후 산책하듯 걷다가 죽지 않고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없다 해도, 제게 그만한 믿음이 없다면 저는 결코... 그만한 믿음으로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께 감사할 것입니다. 저는 결코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동일하시고 우리가 그분을 보고 싶어 한다면, 그분이 여전히 동일하신 이상 우리는 그들이 보았던 바로 그 예수님을 보아야 합니다. 이치에 맞는 말이지요? 이제 알아봅시다... 제가 “감리교 형제님들, 이것을 믿습니까? 침례교 형제님들과 제가 앞서 말씀드린 분들도 믿습니까?”라고 묻는다면, “그렇습니다.” 그러면 유일한 방법은... 여러분은 “그분은 우리 교회에 계십니다”라고 합니다. “우리 교회에 계십니다.” 저는 “맞습니다. 저도 믿습니다. 하지만 한번 알아봅시다...”라고 하겠습니다. 이것을 올바르게 살펴보고 말씀이 참된지 아닌지 밝혀 보려면, 물론 말씀은 참됩니다만, 유일한 방법은 과거로 돌아가 그분이 어떤 분이셨는지 알아보는 것입니다. 그분이 어떤 분이셨는지 알 수 있다면, 지금 어떤 분이신지, 또 영원히 어떤 분이실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충분히 분명한 말씀입니까? 아시겠죠? 그분은 과거에 그러하셨던 바로 그분이십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찾으러 간다면 어떤 사람에게 가겠습니까? 우리 교회 안으로 그분을 찾으러 간다면 그분은 어떤 영이시겠습니까?
어떤 것을 찾을 수 있는지 하나씩 살펴봅시다. 오늘날 소위 위대한 성직자들처럼 옷깃을 거꾸로 하고 머리에 터번을 쓴 사람을 찾겠습니까? 예수님은 그렇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평범한 사람들처럼 옷을 입으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입는 옷을 입고 사람들 사이를 드나드셨습니다. 우리는 지식이 많은 학자를 찾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분이 단 하루라도 학교에 다녔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찾겠습니까? 메시아, 기름부음 받은 분을 찾을 것입니다. 이제 저... 제가 요한복음 12장을 읽었습니다. 앞으로 날마다... 아니, 집회마다 성경을 살펴보면서 이것이 옳다는 것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요한복음에서 시작했으니 요한복음 첫 부분으로 돌아갑시다. 여기서 바로 읽지 않으셔도, 인용한 구절을 적어 두셨다가 집에서 읽으셔도 됩니다. 이제 돌아가서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셨는지 알아봅시다. 그분이 어떤 분이셨는지 우리가 알 수 있고, 그분이 오늘도 동일하시다는 것을 친히 입증해 주신다면 기쁘시겠습니까? 그분이 오늘도 동일하시다는 것이 드러난다면 여러분 모두 아주 기쁘시겠습니까?
이제 우리는... 저는 해외 사역지에서 한 손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종교들 중 하나인 이슬람교의 코란을, 그리고 불경과 성경을 각각... 이 손에 들고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틀린 것이 틀림없습니다. 차이가 너무 큽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누군가는 옳아야 합니다. 이제 어느 것이 옳은지 입증해 봅시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진위를 판가름하는 것을 결코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분은 언제나 그 자리에 계실 것입니다. 그러니 믿음을 갖고 그분을 믿으십시오. 거기에 무엇을 더하거나 빼려고 하지 마십시오. 기록된 그대로 믿고 “이것은 이렇습니다”라고 말하십시오. 그리고 조금의 의심도 없이 믿으십시오. 여러분이 참으로 믿는다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이루실 의무가 있으십니다. 믿는 척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허세를 부리지 않으십니다. 사탄은 허세가 아닙니다. 허세이기는 하지만, 여러분을 허세로 속일 수 있다면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참된 믿음으로 나아갈 때, 그는 여러분이 허세를 부리는지 아닌지 압니다.
제자들이 병든 사람들을 치유하는 권능을 받은 뒤, 열흘 후에 뇌전증에 걸린 한 아이 앞에서 패배한 것을 보게 됩니다. 베드로가 “잠깐만요. 가버나움에서 내가 어떻게 했는지 보여 주겠습니다”라고 했을 것 같습니다. 다른 제자는 “내가 어떻게 했는지 보여 주겠습니다”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 마귀를 아이에게서 떠나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아버지가 예수님을 찾아가 “아이를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데려왔으나 그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께 데려왔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네가 믿으면 내가 할 수 있느니라. 믿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아이에게 전에 없이 심한 발작이 일어났습니다. 그 마귀는 자기가 사도들이 가졌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믿음을 만났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완전한 믿음을 만난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이 완전하게 역사하도록 하는 완전한 믿음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는 조금의 의심도 없이 믿어야 합니다.
이제 갈릴리로 돌아가 봅시다. 한 이십 분 동안 마음속으로 여행을 떠납시다. 갈릴리에 가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셨는지 알아봅시다. 우리는 그분의 탄생과 흠 없는 잉태, 그분이 어떻게 태어나셨는지 압니다. 요한은 아홉 살쯤에 광야로 들어가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며 금식했습니다. 서른 살에 나와서 오실 메시아를 전했습니다. 어느 날 평범한 작은 사람이 강둑으로 내려왔는데, 그분 위에는 표적, 곧 메시아의 표적이 있었습니다. 요한은 그것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는 “나는 이분이 그분인 줄 알았다. 광야에서 그분이 누구실지... 알려 주셨던 그 표적을 보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신 다음,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시험을 마치고 나오신 뒤에는 즉시 공적인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오늘 오후 우리가 여기서 살펴보는 것도 바로 그 공적인 사역의 시작입니다. 그분이 병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실 때 그들이 낫기 시작했고, 그 일로 교회들 사이에 큰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이 사람은 누구인가?” 그들의 신조에는 답이 없었고,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안드레라는 나이 든 어부가 있었는데, 그에게 시몬이라는 형제가 있었습니다. 안드레는 시몬을 집회에 데려가려고 애썼고, 마침내 어느 날 시몬이 가겠다고 했습니다. 시몬이 주 예수님 앞으로 나왔을 때, 자, 잘 보십시오. 그가 주 예수님께 나왔을 때, 그분은 그에게 문학사 학위를 받았느냐고 묻지 않으셨고, 어느 조직에 속했느냐고도 묻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여러분이나 저처럼 그저 걸어왔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보시자마자 “네 이름은 시몬이며 너는 요나의 아들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시몬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의 아버지 요나는 바리새인이며 훌륭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읽어 보셨다면, 그가 아들에게 언젠가 메시아께서 오실 것이라고 말한 것을 아실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요한을 메시아라고 생각했다는 것을 아십니까? 참된 교회는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십시오. 그분은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만 오십니다. 그분이 자신을 구원하실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만 구원하십니다. 그분이 자신을 치유하신다고 믿는 사람들만 치유하십니다. 시몬은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에덴 이래 사천 년 동안 약속되어 오신 분이었습니다. 선지자들이 그분에 대해 말했습니다. 그들은 모세의 율법에 따라 살았습니다. 모세는, 찾아보시려면 신명기 18장 15절부터 22절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주 너희 하나님께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라. 누구든지 이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면 백성 가운데서 끊어지리라.”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은 온 이스라엘은, 여러분, 이것을 잊지 마십시오. 메시아께서 선지자로 오셔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자기 선지자들의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가운데 영적인 사람이나 선지자가 있으면, 나 주 하나님이 환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고 꿈으로 그에게 말하리라. 이 선지자가 말한 것이 이루어지면 그 선지자의 말을 들으라. 그러나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선지자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그와 함께하지 않기 때문이라. 그러나 그가 한 말이 이루어지면 너희는 주의하라. 내가 그 선지자를 보냈느니라.”
그래서 그들은 요한이 선지자임을 알았습니다. 그가 앞으로 올 일을 말하고 메시아를 소개했기 때문입니다. 이 메시아께는 표적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 표적은 그분이 하나님이신 선지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그저 선지자이기만 한 분이 아니라 하나님이신 선지자이셨습니다. 그분은 선지자들의 하나님이셨지만, 그분의 메시아 표적은 선지자의 표적을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천으로 그분의 얼굴을 가렸을 때 “선지자의 표적을 행해 보시오. 그러면 믿겠소”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그분은 선택받은 사람, 믿을 사람 앞에 계셨습니다. 그분은 시몬을 평생 한 번도 보신 적이 없으셨는데, 그를 바라보셨습니다. “보라, 그 속에... 이스라엘 사람이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니, 죄송합니다. 그분은 “네 이름은 시몬이며 요나의 아들이니라. 이제부터 너는 베드로라 불리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평생 자기를 본 적도, 만난 적도 없는 그분이 자기가 누구이며, 이름은 무엇이고, 아버지는 누구인지 말하는 것을 보고 그 바리새인의 기세가 꺾였을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메시아의 표적이었습니다. 그것이 어제의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분은 그렇게 자신이 메시아임을 사람들에게 알리셨습니다.
그곳에는 빌립이라는 사람이 서 있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요한복음 1장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빌립이라는 선하고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나타나시는 것을 보면 잠자코 있을 수 없게 하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그 일을 전해야 합니다. 그분을 사랑한다면 말입니다. 그래서 빌립은 너무나 기뻐하며 “내 친구 나다나엘에게 가서 말해야겠다”라고 했습니다. 여기 계신 형제님들 중에는 팔레스타인에 가 보신 분도 많을 것입니다. 당시 예수님이 계시던 곳에서 나다나엘이 있던 곳까지 짚어 보면, 산을 돌아 약 십오 마일쯤 되는 거리입니다. 빌립은 산을 돌아가 나다나엘을 찾아냈습니다. 여기서 잠시 그 장면을 작은 극처럼 펼쳐 봅시다.
빌립이 집 문 앞에 가서 문을 두드리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나다나엘의 아내가 문으로 나오자 그가 “나다나엘은 어디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과수원을 거닐고 있어요.” “당장 만나야 합니다.” 그는 과수원으로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나다나엘이 나무 밑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마 이렇게 기도했을 것입니다. “오 하나님, 저희는 오실 메시아를 오랫동안 기다려 왔습니다. 언젠가 그분을 보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주님, 그것을 믿습니다. 그분이 오실 때 저는 그분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아멘.” 빌립은 그리스도인다운 예의를 갖춘 사람이었으므로 기도를 방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물론입니다. 그는 나다나엘의 기도가 끝날 때까지 경건하게 서 있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나다나엘이 일어나 옷을 털기 시작하자, 곧바로... 빌립은 “농사는 잘되고 있나?” 같은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전할 소식이 급했습니다. 당장 그에게 알려 주어야 했습니다.
형제님들, 오늘날도 그렇습니다. 메시지는... 우리에게는 십오 년 동안 학교에 다닐 시간이 없습니다. 메시지가 긴급합니다. 세상은 끝에 이르렀습니다. 때가 가까웠습니다. 이번 집회를 통해 여러분이 보게 될 바로 이런 일들은, 다음에 있을 일이 주님의 오심, 교회가 옮겨지는 일임을 입증합니다. 성경에 있는 일입니다. 겁을 주려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준비하라는 경고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이 어느 순간에 오실지 모릅니다.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십시오. 그는 “우리가 만난 분,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님을 와서 보라”라고 했습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그렇게 말했습니다. 나다나엘은 철저한 정통 신앙인이었습니다. 아마 몹시 뻣뻣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아마 이런 식으로 말했을 것입니다. “자, 잠깐만.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아마 그들은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분이 오신다면, 물론 우리 바리새인들을 통해 오시겠지.” 혹은 사두개인들은 “우리 교회를 통해 오시겠지”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분이 오신다면 당연히 하늘의 통로들이 열리고, 메시아가 곧장... 성전 위로 내려와서 “존귀한 대제사장 가야바여, 내가 여기 왔노라”라고 말씀하실 것이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식으로 일하지 않으십니다. 이전에도 그렇게 하지 않으셨고, 앞으로도 그러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분은 오셔서 세상의 어리석은 것들을 취해 무엇인가로 만드시고, 자신의 말씀을 성취하심으로 자신을 입증하십니다. 성경을 찾아보고 이것이 사실인지 확인하십시오. 그분은 보잘것없는 것을 취하십니다. 사도들을 부르실 때 어떤 사람들을 택하셨습니까? 어부들,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왜 교양 있는 사람들을 택하지 않으셨습니까? 왜 제사장들을 택하지 않으셨습니까? 당시에는 우리가 지금껏 보아 온 누구보다도 훨씬 뛰어난 사역자들이 있었습니다. 제사장이 되려면 레위의 혈통에서 나와야 했습니다. 그들의 여러 대 윗조상들이 모두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분은 그런 사람들에게 가지 않으셨습니까? 아시겠죠? 그분은 아무것도 아닌 것을 취하셔서 자신이 하나님이며,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무언가를 만드실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셨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우리가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는 바로 그 순간부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일하기 시작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의 지적인 생각을 치워 버리고 그저 “하나님, 제가 믿습니다. 저의 믿지 아니함을 도와주옵소서”라고 말할 때 말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말씀이 그렇다고 하면 그것은 참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뒷받침하시고, 자신의 말씀 안에 계시며, 그분 자신이 말씀이십니다.
이 철저한 정통 신앙인이 빌립을 바라보며 아마 이런 말을 했을 것입니다. “빌립, 나는 자네를 좋은 사람으로 알고 있었네. 우리는 여러 해 함께 교회에 다녔지. 그런데 자네가 너무 엉뚱한 데로 빠진 것 같군. 뭔가 잘못된 게 틀림없어. 무슨 환각을 본 모양이야. 갈릴리 출신의 사람이 메시아라는 말인가? 그 사람이 오래전에 사생아로 태어났다고들 말하던, 내가 들었던 그 아기인가? 시작부터 오명이 붙어 있었는데, 이제 와서 그 사람이 메시아라고 말하는 건가? 아, 빌립, 정신 좀 차리게.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겠나?” 빌립은 우리 모두가 더는 할 말이 없게 만드는 대답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올바른 대답을 했습니다. “와서 보라.” 바로 그것입니다. 집에 있으면서 비난하지 마십시오. 성경을 가지고 와서 옳은지 보십시오. 우리에게 좋은 가르침입니다. 와서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성경기록들을 탐구하라. 그것들은 나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들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와서 보라.”
그들이 돌아가려고 길을 나섰을 때를 상상해 봅니다. 다음 날... 십오 마일 거리입니다. 돌아오는 데 아마 이틀이 걸렸을 것입니다. 길을 걸어가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들의 대화를 잠깐 들어 봅시다. 성경에 어긋나게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들이 대화하는 중에 빌립이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나다나엘, 자네는 그 일을 믿을 수 없을 거야. 내 형제여, 자네는 신학자 아닌가. 성경에 정통한 사람이지. 메시아에 관해 무엇이라고 읽었나? 메시아께서 오시면 어떤 분이실까? 우리는 어떤 분을 기다려야 하지?” 나다나엘이 말했습니다. “그분은 선지자이실 걸세. 성경에서 선지자이실 것이라고 했으니까. 우리의 거룩한 성경이 그분은 선지자이실 것이라고 말하고 있네.”
“그러면 자네가 그날 생선을 샀던 시몬이라는 나이 든 어부를 기억하나? 자기 이름도 쓸 줄 모를 만큼 배우지 못했던 사람 말이야.” “그럼, 잘 기억하지.” “그 사람이 이 나사렛 예수님 앞으로 나왔는데, 나사렛 예수님께서 그가 누구인지 말씀하셨어. 그뿐 아니라 그의 경건하고 연로한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말씀하셨지. 그분이 자네가 누구인지 말씀하신다 해도 나는 놀라지 않을 거야.” 그러자 나다나엘이 이렇게 말하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렇다면... 모르겠네. 내가 가 본 적은 없지만, 그 말이 사실이라면 그분이 메시아이실 걸세. 그것이 바로 그분이 하셔야 하는 일이니까. 그분은 선지자이시니까. 우리가 마지막으로 선지자를 본 지 사백 년이나 되었네. 지금껏 선지자가 없었지. 그래서 다음 차례로 오실 이 메시아를 기다려 온 것 아닌가.” 우리는 이천 년 동안 선지자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한 분을 기다리고 있네. 이 메시아, 그분이 메시아이시라면 표적을 행하시는 것을 보겠네.”
그들은 회중 가운데로 들어왔습니다. 아마 나다나엘은 기도 줄에 있었을 수도 있고, 회중 속에 서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모릅니다. 하지만 어쨌든 예수님께서 돌아서서 그를 보시자마자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을 보라. 그의 속에는 간사함이 없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를테면 그 자리에 비판적인 사람이 있었다면 “물론이지. 이스라엘 사람처럼 옷을 입고 있었으니까”라고 했을 것입니다. 아닙니다. 동방 사람들은 모두 비슷하게 옷을 입습니다. 긴 겉옷과 속옷을 입고 터번을 쓰며 수염을 기릅니다. 그러므로 그것으로는 그를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는 그리스 사람일 수도, 다른 민족 사람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분은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을 보라. 그의 속에는 간사함이 없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의 뻣뻣하던 기세가 당장 꺾였을 것 같습니다. 그는 “랍비여[선생님이라는 뜻입니다], 언제 저를 아셨습니까? 저희가 만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스라엘 사람이며 간사함이 없는 사람인 줄 어떻게 아셨습니까?”라고 했습니다. 들으십시오! 그분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나무 밑에 있을 때 내가 너를 보았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눈입니까! 성경을 알던 이 확고한 신자는 뭐라고 했습니까? “랍비여, 선생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선생님은 이스라엘의 왕이시니이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네게 그렇게 말하였으므로 네가 믿느냐? 이제 네가 더 큰 일들을 보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어제의 예수님이셨고, 그분이 자신이 메시아임을 사람들에게 알리신 방법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면, 그분이 동일하시다면 오늘도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반드시 그래야 합니다. 다른 인용할 구절도 많지만, 이제 사십오 분 정도밖에 남지 않은 줄 압니다. 성경을 따라 계속 살펴보십시오. 저는 한... 이쯤으로 가 보고 싶습니다. 이렇게 말해 봅시다. 땅 위에는 세 인종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나는 이 민족이다, 저 민족이다”라고 하시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인종은 셋뿐입니다. 우리 모두 노아의 아들들에게서 나왔습니다. 성경은 옳습니다. 함과 셈과 야벳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이들이 유대인, 이방인, 사마리아인으로 나뉘었습니다. 사마리아인이라고 불리는 민족이 있었는데, 유대인과 이방인이 반씩 섞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메시아를 보고 싶어 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그 자리에 서서 예수님이 그 일을 하시는 것을 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그들은 위대한 설교자와 교사들이었으며, 정통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바알세붑이다. 점쟁이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그들이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았는데도 그분은 그들의 생각을 아셨습니다. 이것이 성경에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압니다. 그분은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그들을 향해 돌아서서 “그 일에 대해서는 너희를 용서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악한 생각들, 곧 하나님의 일을 악한 영이 하는 일, 바알세붑이나 점쟁이가 하는 일이라고 한 것을 말입니다. 오늘날도 그런 이름이나 텔레파시 같은 것으로 부를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에 악한 이름을 붙이는 것입니다. 그분은 “그러나 언젠가 성령께서 오셔서 같은 일을 하실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이것이 우리를 어떤 자리에 놓는지 보십시오. “그것을 대적하는 말은 한마디라도 이 세상에서나 오는 세상에서나 결코 용서받지 못하리라.” 그만큼 거룩한 일입니다. 그것을 대적하는 말은 한마디라도 이 세상에서나 오는 세상에서나 결코 용서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그분이 이런 일을 하고 계신다면, 우리가 어떤 위치에 놓이는지 아시겠죠. 그것은 우리를 어느 한쪽에 확정해 놓습니다. 가르는 때, 살펴서 판단하시는 심판들이 이르렀습니다.
다른 곳에서도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다음 장으로 가 봅시다. 우선 이렇게... 유대인과 이방인과 사마리아인이 있습니다. 그분은 이방인 앞에서는 단 한 번도 그 표적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성경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방인은 우리 앵글로색슨인들이었습니다. 이방인인 우리는 어떤 메시아가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지 않았습니다. 등에 몽둥이를 메고 우상들을 경배했습니다. 아시겠죠? 이교도와 로마인 등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오십니다. 그날에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분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면, 오늘도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그분은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들, 그 그리스 사람들처럼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에게 오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뵙기 원하나이다.”
그분은 여리고로 내려가시는 길이었습니다. 여리고는 산 아래에 있고, 예루살렘은 산 위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사마리아를 거쳐 수가라는 도시로 가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마리아는 이쪽 길 위에 있습니다. 이쪽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여리고로 내려가야 하니, 한참 돌아가는 길입니다. 하지만 그분은 사마리아에 있는 그 도시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앉으신 뒤 제자들을 먹을 것을 구하러 보내셨습니다. 그들이 떠나 있는 동안 한 여자가... 음, 행실이 좋지 않은 여자였습니다. 여기 미국에서는 행실이 좋지 않은 여자라고 불렀을 것입니다. 그 여자에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아시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결혼 서약을 어겼습니다. 남편이 다섯 명 있었고, 아마 아름다운 여자였다고 해 봅시다. 모두 자리를 비우고 있었습니다. 그곳에 가 보셨다면 아시겠지만 그 우물은 지금도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작은 광경이 펼쳐집니다.
예수님은 서른 살밖에 되지 않으셨습니다. 혹은 서른세 살이 채 되지 않으셨지만, 더 나이가 들어 보이셨던 것 같습니다. 요한복음 6장에서 유대인들이 명절을 지키며 광야에서 맞은 반석에서 나온 물을 나타내는 물을 마실 때, 그분은 그들에게 말씀하시며 “내가 광야에 있었던 그 반석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의분을 터뜨리며 “당신은 오십 살도 안 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다는 말이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오십 살로 보이셨지만 서른 살밖에 되지 않으셨습니다. 아마 사역 때문에 그렇게 되셨을 것입니다. 어쩌면 머리가 조금 희어지셨거나 그랬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은 그들에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아브라함이 있기 전에 내가 있느니라.” 그분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셨지만, 그곳에서는 평범한 사람처럼 옷을 입고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조금 나이 들어 보이셨을 수 있습니다.
그분은 유대인이셨고, 당시에는 인종 간의 분리가 있었습니다. 지금 루이지애나와 조지아에서 흑인과 백인 등의 분리 문제로 시끄러운 것처럼 말입니다. 여기 조지아에서 온 친구들도 앉아 있습니다. 당시에는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사이가 그랬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자가 오는 것을 보셨을 때... 동방에 가 보셨다면 아시겠지만, 그들의 관습은 변하지 않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그 여자는 행실이 바른 여자들과 함께 나올 수 없었습니다. 아시겠죠? 그들은 나와야... 처녀들이 일찍 나와서 물을 길어 갑니다. 저는 그들이 물을 담은 항아리 하나, 오 갤런이 들어가는 항아리를 머리에 이고 양쪽 옆구리에 하나씩 낀 채 걸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자들이 으레 그러듯 이야기를 하면서도 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습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머리에 인 그 커다란 물 항아리가 조금도 움직이지 않게, 얼마나 반듯하고 꼿꼿하게 걷는지 보면 놀랍습니다. 항아리에는 큰 손잡이가 두 개 달려 있어서 그것으로 우물 안에 내려 물을 긷습니다.
이 젊은 여자가 그곳으로 나왔습니다. 아마 관습대로 항아리를 옆구리에 끼고, 갈고리는 팔 아래에 걸고 있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간밤에 자기가 한 일을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 여자는 행실이 바른 여자들과 어울릴 수 없었습니다. 항아리를 우물 안으로 내리려는데, 이런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여자여, 마실 물을 내게 달라. 마실 물을 내게 달라.” 돌아보니 담벼락을 덮은 덩굴 곁에 중년의 유대인 한 사람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 여자가 곧바로 말했습니다. “유대인이 사마리아 여자에게 무엇을 부탁하는 것은 관습에 어긋납니다.” 그만큼 인종 간의 분리가 심했습니다. “우리는 서로 상종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유대인이고 저는 사마리아 여자인데, 어떻게 제게 마실 물을 달라고 하십니까?” 그 대답을 들어 보십시오. “여자여, 네가 누구와 말하고 있는지 알았더라면” — 오, 오늘날도 바로 그것입니다! — “네가 누구와 말하고 있는지만 알았더라면 내게 마실 물을 구했을 것이다. 내가 네게 물을 가져다... 네가 여기로 길으러 오지 않아도 되는 물을 주었을 것이다.” 그 여자는 “우물은 깊고, 선생님께는 물 길을 그릇도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하고 계셨습니까? 이 점에서는 여러분이 제 말을 믿어 주셔야 합니다. 그렇게 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분은 그 여자의 영과 접촉하고 계셨습니다.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아버지께서 그분을 그곳으로 보내셨으므로 그 여자가 올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요한복음 5장 19절에서 그분이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은 아버지께서 어떤 일을 하시는 것을 보고 그 일을 할 뿐이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아버지께서 그분을 그곳으로 보내신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분은 바로 그 여자임을 보셨고, 그 여자의 영과 접촉하셔야 했습니다.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알아내실 때까지 그 여자와 말씀을 나누셔야 했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여자가 “당신들은 예루살렘에서 경배하고, 우리는 이 산에서 경배합니다”라고 했습니다. 대화는 꽤 오래 이어졌습니다. 마침내 예수님께서 그 여자의 문제를 알아내셨습니다. 자, 들으십시오! 죄송합니다. 여러분에게 소리를 지르려는 것은 아닙니다. 야외에서 설교하고 그러다 보니, 제가 소리를 많이 내는 것 같습니다. 여자가 말했습니다. “물 길을 그릇도 없으신데 어떻게 물을 얻으실 수 있습니까?”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누구와 말하고 있는지 알았더라면 내게 마실 물을 구했을 것이다. 내가 네게 여기로 길으러 오지 않아도 되는 물을 주었을 것이다.”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그분은 “가서 네 남편을 부르고 여기로 오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 그 여자의 눈이 번쩍 뜨이는 모습이 보입니다. 여자는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충격이었겠습니까. 그분은 “네가 잘 말하였도다. 네게는 다섯 남편이 있었고 지금 네가 함께 사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가 잘 말하였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매춘부, 이 행실이 좋지 않은 여자의 말을 들어 보십시오. 그 여자는 미국 설교자들의 절반보다 하나님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바알세붑, 마귀입니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이여, 제가 보니 선생님은 선지자이십니다.” 자, 들으십시오. “우리는 압니다. 우리 사마리아인들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을 압니다. 곧... 그리스도, 기름부음 받은 분이라 하는 메시아가 오실 것을 압니다. 그분이 오시면 이것이 그분이 보여 주실 표적일 것입니다. 이런 일들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선생님은 선지자이시지만, 우리는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메시아가 오시면 이런 일들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그분의 표적일 것입니다.”
오, 교회여! 이것이 보입니까! 바로 메시아이십니다. 이것이 메시아의 표적입니다. “그분이 오시면 이런 일들을 우리에게 알려 주실 것을 우리가 압니다.” 그 여자는 “당신은 바알세붑입니다. 점쟁이인 게 틀림없습니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설교자들, 당시의 높은 성직자들인 제사장들은 그분을 그렇게 불렀습니다. “저자는 텔레파시를 쓰는 자다. 정신적인 심령술사다. 점쟁이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용서하노라. 그러나 언젠가 성령께서 오셔서 그 일을 하실 것이다. 그것을 대적하여 한마디라도 말하면 결코 용서받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날이 이르렀습니다. 이제... 다른 세대에게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보십시오. 그 여자는 겸손하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은 선지자이신 것이 틀림없습니다. 우리 사마리아인들은 압니다. 우리는 메시아가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메시아께서 오시면 모든 선지자를 뛰어넘는 선지자이심을 보여 주는 표적을 행하실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분이 오시면 이런 표적들을 행하실 것이므로, 그분이 선지자이신 줄 우리가 알 것입니다.” 그분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네게 말하고 있는 내가 그니라.” 이전에도, 이후에도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네게 말하고 있는 내가 그니라.” 그러자 그 여자는 물 항아리를 내려놓고 도시로 달려가서 “와서 한 사람을 보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자, 여러분, 성경을 읽는 분들은 잘 들으십시오. “와서 제가 한 일들을 제게 말한 사람을 보십시오. 이분이 바로 메시아가 아닙니까?” 그러자 사람들이 나와서 그분께 도시로 들어와 달라고 청했습니다. 성경은 그 도시의 남자들, 곧 사람들이 그 여자의 증언 때문에 그분을 믿었다고 말씀했습니다.
이것이 속이는 일일 수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성경 말씀이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것이 어제의 예수님이셨다면, 오늘의 예수님도 그러하십니다. 보십시오. 우리 모두 그때가 유대인들에게 주어진 날이 끝나 가던 때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메시아를 거절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압니다. 그들은 메시아를 기다렸지만, 메시아가 오셨을 때 그분은 거절당하셨습니다. 메시아의 표적을 행하셨을 때는 부정한 영이라고 불리셨습니다. 다른 민족, 곧 이방인에게는 결코 그 일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다시 일어나셨으며, 그 후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메시지를 전하는 등의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결코 이방인에게 그 일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마지막 때에 이방인들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고 약속하셨으며,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을 어기실 수 없습니다. 선지자는 “낮이라고도 밤이라고도 할 수 없는 한 날이 있으리라. 그러나 저녁때에는 빛이 있으리라”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런 날을 지나왔습니다. 해는 어떻게 뜹니까? 동쪽에서 뜹니다. 같은 해가 하늘을 가로질러 서쪽에서 집니다. 다른 해가 아니라 같은 해입니다. 동쪽에서 떠올랐을 때는 동방 사람들인 사마리아인들과 유대인들을 비추었습니다. 그분은 그곳에 계실 때 자신이 메시아임을 보여 주는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천 년 동안 흐릿한 날을 보내 왔습니다. 지금 바깥 날씨와 같거나 조금 더 어두운 날이었습니다. 우리는 주어진 그 희미한 빛 가운데 걸으면서 큰 부흥들을 경험했습니다. 큰 조직들을 세우고, 큰 교회와 학교와 신학교를 지을 수 있는 날이 있었습니다. 다 좋은 일이지만, 이제는 저녁때입니다. 해가 지고 있습니다. 문명은 해를 따라 이동해 왔습니다. 가장 오래된 문명들은 동방에 있습니다. 중국이 가장 오래된 문명입니다. 문명은 해를 따라 이동해 왔습니다.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습니까? 서해안에 있습니다. 조금만 더 가면 다시 동쪽으로 돌아갑니다. 우리는 저녁때에 있습니다. 저녁때에는 빛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같은 해입니다.
하나님은 무한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무한하십니다. 우리는 그것을 압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지적인 가르침이 이어진 뒤에 그분이...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의 때가 끝나기 전에 그들에게 오셔서 메시아의 표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 이방인들은 지적인 이해만으로 들어가게 하신다면, 그분은 동일하신 하나님이 아닐 것입니다. 그분은 반드시 같은 일을 하셔야 하며, 이방인 교회에 그렇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성직자인 형제님들이 어쩌면 조금 더 분명하게 이해하실 수 있도록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소돔의 날들에 그러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도 그러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잠시 살펴봅시다. 그리고 제가 여기서 어떤 교회나 여러분의 특정 교단을 반대하는 것처럼 말하더라도, 제발 그런 뜻으로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저는 한 가지 요점을 밝히려는 것뿐입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그는 그의 왕가의 씨, 곧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질 민족의 아버지였습니다. 그런데 그 약속 전체가 유대인들에게 이루어질 수는 없었습니다. 이삭을 통한 약속은 모두 유대 민족에게 해당하지만, 이 마지막 날들에 그분은 그것을 아브라함과 그의 씨에게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씨는 그리스도이셨습니다. 교회는 이쪽에 있습니다. 아브라함뿐 아니라 그의 씨에게도 말입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시고 제게 한두 시간 더 여유가 생긴다면, 여러분께 아브라함과 그 뒤를 이은 그의 씨에 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아브라함을 의롭게 됨과 성결과 성령 침례라는 전환점들로 이끄셨는지 보십시오. 바로 여기서 하신 것과 정확히 똑같습니다. 그를 아들로 세우셨고, 소돔이 멸망하기 직전에 말입니다. 항상 세 부류의 사람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유대인, 이방인, 사마리아인처럼 말입니다. 곧 믿는 사람과 믿는 척하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보게 됩니다. 모든 집회에서, 모든 무리 가운데서 그들이 나타납니다. 늘 있게 마련입니다. 이제 그날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소돔으로 내려가지 않았지만 롯은 소돔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는 여전히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보통 교회처럼 의식에 치우친 신자였습니다. 그래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돈을 좀 더 벌거나 인기를 좀 더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소돔에 내려가 있었습니다. 아마 그곳 도시의 시장이나 그와 비슷한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아내는 그곳의 온갖 모임에 가입해 있었고, 그래서 떠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일어나기 직전에...
자, 보십시오. 거기에는... 아브라함은 선택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선택받은 교회를 위해 오시며, 휴거되는 이들은 남은 자들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 압니다. 우리는 그것을 압니다. 선택받은 교회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심판을 통과하지만, 선택받은 사람들은 먼저 휴거로 올라갑니다. 그들은 심판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믿는 자에게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느니라.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결코 심판에 이르지 아니할 것이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이미 심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는 우리의 믿음에 따라 우리를 판단하셨습니다. 우리는 성령에 의해 침례를 받아 그 몸 안으로 들어가 그리스도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선택받은 교회입니다. 아브라함은 선택받은 교회를 나타냈습니다. 바로 오늘날 그 뒤를 이은 그의 씨로 이루어진 선택받은 교회와 같습니다. 이해되십니까? 아브라함, 아브라함뿐 아니라 그 뒤를 이은 그의 씨도 말입니다. 그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였고, 바로 우리가 오늘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아일랜드계이며, 어떤 분은 인디언일 수 있고, 어떤 분은 노르웨이계이며, 또 다른 민족 출신들도 있습니다. 아시겠죠? 우리 모두 여기 앉아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민족을 한 피에서 만드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입니다. 한 영에 의해 우리 모두 침례를 받아 한 몸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선택받은 교회입니다.
그런데 저 소돔에는 성령 침례를 믿지 않는 교회가 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소돔에서 하는 일들을 합니다. 빙고, 번코, 수프를 먹는 저녁 모임 등 온갖 일을 합니다. 세상처럼 옷을 입고 세상처럼 행동하면서, 여전히 자신을 교인이라고 부릅니다. 아시겠죠? 그것이 소돔의 교회입니다. 이제 끝이 오기 직전에... 기억하십시오. “교회”라는 말은 불려 나왔다는 뜻입니다. 불신에서 분리되고 구별되어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아브라함은 아무리 오래 걸려도 불신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여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사라가 예순다섯 살이고 아브라함이 일흔다섯 살이었을 때, 그는 생식 능력이 없었고 그녀도 아이를 가질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서 아기를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것을 믿고 준비했습니다. 이십오 년이 지난 뒤에도 아무런 증거가 없었지만 여전히 같은 것을 믿었습니다. 가능성은 갈수록 더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데 여러분은 기도를 받고서도 “나는 아무 달라진 것이 보이지 않네”라고 하며 돌아갈지 모릅니다. 아시겠죠? 그것은 아브라함의 씨가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씨가 그 약속을 붙잡으면 아무것도 그것을 흔들 수 없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바로 거기에 머물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들어와서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사라.” “네, 여보.” “방금 저기서 하나님을 만났소.” “어머?” “우리가 아기를 갖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소.” 일흔다섯 살의 노인과 예순다섯 살의 노부인이 의사에게 가서 출산 준비를 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의사는 “이 노인, 가엾은 양반이 정신이 나갔군”이라고 할 것입니다. 영적인 사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좀 이상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법입니다. “저 노인은 그냥 내버려 둬. 해를 끼치지는 않으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런 사람들에게서 너 자신을 분리하라. 나와서 그 불신에서 떠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매님들, 죄송합니다만 여기서 한 가지를 분명히 해야겠습니다. 아마 첫 달이 지나거나 며칠이 지난 뒤 아브라함이 “어떻게 되었소...?”라고 물었을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사라는 폐경이 된 지 약 이십 년이나 되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몸은 좀 어떻소, 여보?” “달라진 게 없어요.” “하나님을 찬송하오. 그래도 우리는 아기를 갖게 될 것이오. 아기 신발도 만들고 작은 담요들도 준비하시오. 어쨌든 아기를 갖게 될 것이오.” “어떻게 아세요?”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소. 그것으로 끝이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소.” 일 년이 지났습니다. “어떻소, 여보?” “달라진 게 없어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오. 이제는 처음보다 더 큰 기적이 될 것이오. 그래도 아기를 갖게 될 것이오.”
이십오 년이 지났습니다. 사라는 이제 자그마한 할머니가 되었고, 아브라함도 늙고 나이가 많이 들었습니다. “여보, 이제는 몸이 어떻소?” “달라진 게 없어요, 여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오. 그래도 우리는 아기를 갖게 될 것이오.” “어떻게 아세요?”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소.” 아브라함의 씨는 똑같은 입장을 취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기도를 받았지만 달라진 것은 없는 것 같아요”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씨가 아닙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씨는 믿습니다.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의사 오십 명이 서서 여러분이 죽을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아닙니다. 의사 선생님, 그만 가십시오.” “어떻게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으로 끝입니다.”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여러 해가 지났습니다. 아름다움은 사라졌고 사라도 늙고 아브라함도 늙었습니다. 어느 날 아브라함은 여전히 분리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세상에서 분리되어 불려 나오고 따로 구별된 아브라함의 씨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 참으로 믿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따로 구별되어 불려 나온 사람들입니다. 아브라함은 저 언덕 위에 있었는데 사정이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부유하지 않았습니다. 가축들은 굶주리고 있었습니다. 롯은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소돔에 내려가 있었습니다. 도시의 시장이었고, 아내는 온갖 모임에 가입해 있었으며, 딸들도 온갖 사교 모임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들은 소돔 사람들과 똑같았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소돔에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브라함은 자기 장막이 있는 곳의 참나무 그늘에 앉아 있다가 세 사람이 걸어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보면 알아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사람들을 보고 달려 나가 맞이했습니다. 이교도처럼 “나의 주님들이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나의 주여, 들러 주십시오. 나무 아래 앉아 쉬십시오. 제가 물을 조금 가져다가 발을 씻어 드리겠습니다. 쉬면서 기운을 차리십시오. 드실 빵도 조금 가져오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들을 대접하고 싶었던 것은 마음 깊이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것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시겠죠? 그래서 그들은 앉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장막으로 돌아가 자기... 주된 장막에 이르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는 “사라, 가루를 좀 체에 치시오”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빵 반죽을 하라는 것입니다. 빵 반죽이 무엇인지 아시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어머니께 커다란 체와 큰 가루 통이 있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우리는 거기에 옥수수 가루를 넣었습니다. 어머니께는 쐐기 모양의 도구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으로 체 위를 쓱 밀고, 가루를 흔들어 체에 내려 옥수수 빵을 만드셨습니다. 그는 가서 “곡식 가루, 아니 밀가루를 반죽하시오. 화덕에 납작한 빵을 좀 구우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소 떼 사이로 달려가 어린 송아지 한 마리를 골라 손질하여 사람들에게 주었습니다. 아니, 잡아서 하인에게 손질하라고 주었습니다. 그 후 다시 나가 그들 앞에 섰습니다. 고기를 가져다 차려 놓았습니다. 기억하십시오. 그들은 고기를 먹고 우유를 마시고 빵을 먹었습니다.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누구에게 그 음식을 대접했습니까?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분을 “엘로힘”이라고 불렀습니다. 형제님들은 아실 것입니다. 엘로힘은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입니다. 창세기 1장의 시작과 같습니다. 엘로힘. 엘로힘, 위대하신 “스스로 있는 자”께서 사람의 육체로 고기를 드시고, 우유를 마시고, 옥수수 빵을 드시며, 옷에는 먼지를 묻힌 채 나무 그늘에 앉아 계셨습니다.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분이 사람 이상의 분임을 알았습니다.
그들 중 두 사람이 일어나 소돔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들은 설교하러 소돔으로 내려갔습니다. 여러분이 영적이라면 아마 이것을 깨달으실 것입니다. 주목하셨습니까? 그곳에 내려간 두 사람은 문을 찾지 못하게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한 것 외에는 아무 기적도 행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을 전하면 믿지 않는 사람들의 눈이 멉니다. 그러나 그곳에 내려가 설교한 두 사람이 있었으며, 롯을 소돔에서 이끌어 내기 위해 갔습니다. 오늘을 보십시오. 이 마지막 날들에 이런 일이 있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시대를 지나오면서, 아브라함의 씨의 시대와 교회의 전환점들을 지나오면서 무디, 생키, 피니, 녹스, 칼빈, 스펄전, 웨슬리 등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 번도... 빌리 선데이도 있었지만, 이전에는 빌리 그래함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보십시오. 천사는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바꾸었습니다. 철자는 A-b-r-a-h-a-m이며, 그에게 그분 자신의 이름 일부를 주신 것입니다. 아브라함, 엘로힘입니다. 그도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 시대를 거치는 동안 지적인 교회가 이름 끝에 h-a-m이 붙은, 국제적으로 알려진 사자를 받은 적은 이전에 한 번도 없었습니다. 어디에 이르렀는지 아시겠습니까? 오늘날의 빌리 그래함이 소돔에 내려가 “그곳에서 나오십시오!”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빌리 그래함이 외치는 말입니다. “나오십시오. 끝이 가까웠습니다!” G-r-a-h-a-m입니다. 교회 역사상 한 번도 없었지만, 이제 이것이 바로 그때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그 일을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보십시오.
그러고 나서 한 천사는 일어나 아브라함과 함께 남았습니다. 그분이 그 선택받은 교회에 어떤 기적을 보여 주셨는지 보십시오. 그분은 장막을 등지고 계셨습니다. 왜 그를 아브람이라고 부르지 않으셨을까요? 그분은 “아브라함아, 네 아내는 어디 있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S-a-r-a-i가 아니라 S-a-r-a-h였습니다.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아브라함은 “당신 뒤에 있는 장막 안에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성경은 장막이 그 천사, 곧 사자의 뒤에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곳에 앉아 고기를 먹고 우유를 마시던 사자입니다. “당신 뒤에 있는 장막 안에 있습니다.” 그분은 “아브라함아, 내가[인칭대명사입니다], 내가 네게 약속한 대로 생명의 때를 따라 너를 찾아오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저는 남녀가 함께 있는 자리에서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젊은 여성 여러분, 이 말이 불쾌하게 들린다면 양해해 주십시오. 한 가지를 분명히 하려는 것입니다. 성경은 두 사람이 모두 나이가 많아 연로했다고 했습니다. 부부로서의 관계는 여러 해 전에 그쳤습니다. 보십시오. 그들은 백 살이었습니다. 아마 이십 년 동안 부부 관계를 갖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라는 마음속으로, 속으로 웃으며 말했습니다. “백 살이나 된 늙은 여자인 내가 내 주인과” — 자기 남편 말입니다 — “다시 즐거움을 누린다고? 그럴 수는 없지. 그런 일은 우리에게서 여러 해, 아주 여러 해 전에 그쳤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그녀는 속으로 웃었습니다. 그러자 천사가 말씀했습니다. “어찌하여 사라가 이런 일이 결코 있을 수 없다고 하며 웃었느냐?” 우리 주님께서는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소돔의 날들에 그러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도 그러하리라.” 무엇입니까? 이방인들에게 약속된 저녁 빛입니다. 그곳에서 사람의 몸으로 자신을 나타내셨다가 순식간에 사라지신 바로 그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들 저녁 빛이 비칠 때 성령의 모습으로 한 백성, 믿는 사람들의 육체 안에서 자신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에게입니까? 이방인들, 여러 민족으로 이루어진 아브라함의 씨에게입니다.
그들에게는 교단 교회에 표적을 행하는 사자가 있었습니다. G-r-a-h-a-m입니다. 그는 자기 표적을 행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제 선택받은 교회에는 하나님의 천사, 하늘로부터 오시는 천사인 성령께서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는 것을 입증하는 사자이십니다. 그때 하셨던 일을 지금도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지 안에 있는 생명이 가지를 내면, 포도나무 안에 있는 것과 같은 생명을 나타낼 것입니다. 또 “내가 하는 일들을 너희도 할 것이요, 이것보다 더 많은 일들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라”라고 하셨습니다. 지적인 교회에는 그들의 사자가 있습니다. 초자연적인 교회에도 그 사자, 곧 성령께서 계십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 행하셨던 바로 그 표적들을 행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빛은 무엇입니까?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선생님들이여, 우리가 예수님을 뵙기 원하나이다.” 그러므로 어제 그러하셨던 그분은 오늘도 그러하실 것입니다. 누구에게 그 일을 하셨습니까?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에게 하셨고, 이방인들에게는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저녁때에는 아브라함의 씨에게 같은 일이 있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에 관해서는 한 시간쯤 더 말씀드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분의 한마디가 저나 다른 어떤 사역자가 하는 천만 마디보다 더 클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이 진리임을 압니다. 그것이 성경 말씀입니다. 그것이 약속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분이 그렇게 하실까요?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분이 하실까요? 우리는 어디에 있습니까? 저녁때에 있습니다. 우리는 저녁 빛 아래 살고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동쪽에서 떠오르는 바로 그 해가 서쪽에서 비치는 바로 그 해입니다. 저쪽에서 떠오르는 태양, s-u-n은 이쪽에서 지는 바로 그 태양, s-u-n입니다. 그곳에서 빛을 비추셨던 아들, S-o-n은 마지막 날에도 바로 그 아들, S-o-n이십니다. 자신을 기다리는 사마리아인들과 유대인들에게 비추셨고, 이제는 저녁때에 그분을 기다리는 우리 이방인들에게 비추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긍휼히 여기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서둘러 집에 가서 저녁을 드시고 다시 교회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기억하십시오. 성경을 찾아보십시오. 종이를 가져오셔서 제가 인용하는 성경 구절들을 적어 두십시오. 그것들이 옳지 않다면 여러분에게는 저를 찾아와 알려 주어야 할 엄숙한 의무가 있습니다... 저는 틀리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그렇다고 말씀하고 하나님께서 그것을 확증하시는 한, 저는 틀리지 않습니다. 사람은 무슨 말이든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감히 누가 그것을 의심하겠습니까? 그것은 그분 앞에서 영원히, 영원토록 분리되는 일입니다. 예수님이 지금도 살아 계신다는 것을 깨닫고 알아낸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예배에 가면서 마치 장례식에 가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대신에 말입니다. 우리는 승리자를 경배하고 환호하는 대신, 죽은 분에게 경의를 표하러 갑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망을 이기셨고, 지옥을 이기셨고, 무덤을 이기셨으며, 죄를 이기시고 질병을 이기셨습니다! 우리는 승리자를 향해 환호하고 있습니다. 수천 년 전에 선한 삶을 살다가 죽은 누군가가 아니라, 다시 일어나셔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그리스도를 향해서입니다. 제가 조금 감정이 북받쳐 보일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도 저처럼 느낀다면 감정이 북받칠 것입니다. 지금 제 마음은 신앙의 열정으로 뜨겁습니다. 그분이 살아 계시고 성경 말씀이 참되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살아 계시므로 여러분도 살 수 있습니다.
“선생님들이여, 우리가 예수님을 뵙기 원하나이다.” 그러니 주 예수님, 우리 가운데 오셔서 우리의 육체 안에, 제 동역자인 사역자 형제님들 안에, 제 안에, 저기 계신 여러분 안에 들어오십시오. 그저 오십시오. 우리가 자신을 주님께 내어 드리게 하시고, 그 후 주님께서 일하셔서 살아 계신 그리스도이심을 보여 주십시오. 우리 가운데 사시며 말씀을 행하고 지키시고, 약속된 것을 확증하시는 하나님의 영이심을 보여 주십시오. 이제 고개를 숙여 기도합시다.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주 하나님, 영존하는 생명의 창시자시며 모든 선하고 완전한 선물을 주시는 분이시여... 주님,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완전한 선물은 주님께서 주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분은 오늘도, 영원토록 살아 계시며, 이 흐릿한 시대 내내 교회와 함께 계셨습니다. 이제 오늘날 저녁때에 그 빛이 서방 사람들을 비추는 것을 보며, 주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한 글자도 어김없이 지키심을 입증하신다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 오늘 여기 있는 모든 남자와 여자가 이것을 받아들이고 그분을 믿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분을 자신의 구주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바로 지금 그분을 영접하며 “주님, 저의 믿지 아니함을 도와주옵소서”라고 말하게 하옵소서.
아직 섬기는 일을 위해 성령으로 충만해지지 못한 사람들은 위대하신 성령께 “예”라고, 영원히 변치 않을 그 한마디 “예”라고 말하게 하옵소서. 주님, 저는 오늘 주님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배우지 못하고 부족하여 성경을 전하거나 소개하기에 합당하지 않을 수 있으며, 결코 충분할 수 없지만, 제게 부족한 것을 성령께서 확증하심으로 채워 주옵소서. 주님, 허락해 주옵소서. 어린아이들도 알아보고 모두가 믿을 만큼 단순하게 하옵소서. 이곳의 병든 모든 사람이 보고 주목하며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살아 계시며, 저는 치유받기 위해 그분을 믿습니다”라고 말하게 하옵소서. 그들의 의사들도 틀림없이 곧 “상태가 아주 좋아졌습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마음속 깊이 예수님께서 들어오셔서 자신들의 병을 맡으셨으며, 자신들이 나으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주님, 허락해 주옵소서.
여기 강단 뒤에 앉아 계신 사역자들에게 복을 주옵소서. 틀림없이 여러 교회에서 오셨을 것입니다. 이 교회의 목사님께 복을 주시고, 집사들과 재산 관리 위원들에게 복을 주옵소서. 모든 곳에 있는 평신도들에게 복을 주옵소서. 이 골짜기와 대초원 곳곳의 모든 교회에 부흥을 보내 주옵소서. 성공회에도, 장로교에도, 오순절교에도, 모두에게 부흥을 보내 주옵소서. 주님, 이곳 그랜드프레리에 하나님의 성령께서 크게 임하시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지금도 살아 계신다는 소식이 여러 주와 나라들과 자치령들로 퍼져 나가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는 그분을 보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우리 형제님이 오늘 아침 잘 말씀하셨듯이, 이곳으로 오는 길에... 그랜드프레리로 어느 길을 따라 와야 하는지 표지판을 보며 따라왔다고 하셨습니다. 그를 이곳으로 데려온 것은 표지판이 아니었습니다. 표지판은 이곳으로 가는 방향을 가리켜 주었습니다. 제가 성경에서 “우리가 예수님을 뵙기 원하나이다”라고 인용했듯이, 사람들이 오늘 그것을 깨닫게 하옵소서. 주님, 이곳의 모든 사람이 부활의 권능 가운데 우리와 함께 살아 계신 주님을 볼 수 있게 하옵소서.
앞서 인용한 것처럼, 오늘 오후 이곳을 떠날 때 우리가 엠마오에서 돌아온 사람들처럼 집으로 가게 하옵소서. 그들은 주님과 온종일 걸었습니다. 주님께서 그들과 말씀하시고 성경을 풀어 주셨지만, 그들은 주님이심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날 저녁 주님께서 계속 지나가시려는 듯이 하셨을 때, 그들은 주님께 들어와 함께 머물러 달라고 강권했습니다... 오 하나님, 오늘날의 제자들도 글로바처럼 주님께 들어와 우리와 함께 머물러 달라고 강권하게 하옵소서. 주님, 그 작은 여관의 좁은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으신 뒤,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하셨던 것과 같은 어떤 일을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렸습니다. 누구도 꼭 그와 같이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우리는 사역자이며 성직자이며 언약의 사자들이지만, 주님처럼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주님께서 하신 일들을 우리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오셔서, 주님이 하신 일들을 우리도 하리라고 하신 말씀을 성취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님,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하셨던 것처럼 그 일들을 행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이 그리스도인들이 우리 주님께서 죽어 계신 것이 아니라 다시 일어나셨다는 확신을 갖게 하옵소서. 그리고... 글로바와 그의 친구처럼 집집마다 다니면서 “주님께서 참으로 일어나셨습니다”라고 말하게 하옵소서. 발걸음도 가볍고 마음도 가볍게, 자기 종교를 놓고 논쟁하려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일어나셨습니다”라고 말하게 하옵소서. 아버지, 허락해 주옵소서.
우리 자신과 우리의 몸과 영과 우리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지금 주님께 맡깁니다. 주님의 말씀 단 한마디 듣기를 기다립니다. 아버지, 그 한마디면 충분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곳 그들 가운데 살아 계심을 입증해 주시기만 한다면, 그들은 주님을 믿을 것입니다. 주님, 마음이 정직한 이 대초원 사람들은 주님을 믿을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집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브래넘 형제님이 이런저런 일을 했다”라고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제가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들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내 주님께서 살아 계십니다. 나는 그분을 사랑합니다. 그분을 경배하고 그분의 교회에 다니겠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내 의무를 다하겠습니다. 간증하겠습니다. 평생 그분을 믿겠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이것을 구하는 목적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여러분은 그분을 사랑하십니까? 감리교인 여러분 모두 그분을 사랑하십니까? 침례교인, 장로교인, 오순절교인, 모두 그분을 사랑하십니까? 짧게 한 절만 찬송합시다. 저는 말씀을 깊이 파고들고 난 뒤에 그분을 경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교회에서 오래 불러 온 좋은 찬송 “주님을 사랑합니다”로 그분을 경배합시다. 아시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주님을 사랑합니다. 그분께서...” 함께 부릅시다. 옆에 누가 앉아 있는지 신경 쓰지 마십시오. 무언가를 갖추려 하지는 마십시오... 제가 싫어하는 것이 있다면 지나치게 훈련된 목소리로, 얼굴이 파래질 때까지 음을 끄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소리를 지르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옛날식 찬송을 정말 좋아합니다. 전혀 음정을 맞출 줄 몰라도 마음으로 부르는 찬송을 말입니다. “저는 노래를 잘 못합니다”라고 하셔도 상관없습니다. 그러면 주께 즐거이 소리치십시오. 성경이 그렇게 말씀합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께서 먼저 나를 사랑하시고 갈보리 나무 위에서 나의 구원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다시 부르는 동안 서로 악수하십시오. 서로 다른 교단에서 오신 여러분, 서로 다른... 서로 악수하며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기서 함께 경배하게 되어 기쁩니다”라고 말하십시오. 제가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영께서 여러분 가운데 움직이시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께서 먼저 나를 사랑하시고 갈보리 나무 위에서 나의 구원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아십니까? 바울은 “내가 경배할 때 영 안에서 경배하고, 노래할 때 영 안에서 노래하리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 두 가지를 함께 합시다. 손을 살며시 들고 눈을 감읍시다. 영 안에서 아주 부드럽고 다정하게 부릅시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께서 먼저 나를 사랑하시고 갈보리 나무 위에서 나의 구원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고개를 숙이고 가락을 흥얼거립시다.
우리가 마음으로 경배하는 동안 피아노로 이 찬송을 연주해 주십시오. 오 예수님,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샤론의 장미요 골짜기의 백합화요 새벽별이시여. 주님, 세상의 수로 따지면 우리는 소수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듯이 우리에게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우리는 세상이 하는 거창한 심리 활동으로 세상과 경쟁하려 하지 않습니다. 구기 경기나 지적인 오락으로 그들보다 더 화려해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아버지, 우리는 그들을 당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밤의 자녀들이 낮의 자녀들보다 더 지혜롭다”라고 말씀하셨으므로 우리는 그것을 압니다, 아버지. 그러나 우리에게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들에게는 그분이 없습니다. 오늘 이곳에 예수님을 모시지 못하고, 자신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이 시간이 그분을 구주로 영접하고 그분의 영으로 충만해지는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그분의 이름으로 구하며 그분의 영광을 위해 기도합니다. 아멘.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께서 먼저 나를 사랑하시고 갈보리 나무 위에서 나의 구원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참 좋지 않습니까? 오, 얼마나 좋은 교제입니까! 오, 얼마나 거룩한 기쁨입니까! 영원하신 팔에 기대고 있습니다. 주님이 이토록 가까이 계시니 제게는 완전한 평안이 있습니다. 그저 그분의 영원하신 팔에 기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참 좋은 분들, 훌륭한 회중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무슨 일을 하실 줄 압니다. 제가 방금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보통 우리는 날마다 기도 카드를 나누어 줍니다. 카드가 있다고 해서 무엇이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카드를 가지고 있도록 하는 것은 우리가... 이 작은 회중을 통해 보여 드리겠습니다. 카드가 있든 없든, 여기서 기도받고 싶은 분이 얼마나 됩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온 회중 여기저기... 그러면 누가 먼저 나올까요? 바로 그것입니다. 아시겠죠? 줄을 세워 순서를 정할 방법이 있어야 합니다. 무슨 글자라고요? A입니다. A 1번부터 50번입니다. 좋습니다. A 1번부터 50번까지, 거기서부터 병든 분들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하겠습니다. [녹음 중단]
저는 이 청년을 모릅니다. 본 적도 없습니다. 오늘 오후 말씀드린 그 일처럼, 이 사람에게 등을 돌리겠습니다. 선생님, 저는 당신을 모릅니다. 우리가 서로 모르는 사이가 맞다면 손을 들어 주십시오. 지금 여기로 걸어 나오신 것 외에는 평생 당신을 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당신에게 등을 돌리고 있지만, 사람들, 회중에게 보여 주려는 것입니다. 그분이 이 일을 하신다면 자신의 약속을 지키시는 것입니다. 그때 육체로 오셔서 아브라함에게 자신을 나타내신 것처럼, 지금은 자신이 구속하신 육체 안에 오셔서 아브라함의 씨에게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이해하십니까? 하늘의 하나님께서는 제가 이 사람을 모른다는 것을 아십니다. 이제 저는 모든... 여기 그분이 계십니다. 지금 여기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곳의 모든 영을 제 통제 아래 둡니다. 사진에서 보신 그 불기둥, 그분은 지금 제가 서 있는 곳에서 이 피트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계십니다.
이제 제 뒤에 서 계신 분은 그저 기도하십시오. “주님...”이라고, 혹은 문제가 무엇이든 그것을 말씀드리십시오. 병이 있을 수도 있고, 재정적인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모릅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성령께서 바로 여기 여러분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옳음을 입증하시게 합시다. 하늘의 하나님, 이것을 주님의 품에, 주님의 손에 맡깁니다. 저는 주님의 종일 뿐입니다. 주님이 하나님이시며, 제가 주님의 메시지를 참되고 순수하게 전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옵소서. 주님, 저는 주님을 높여 드렸으며, 제가 전한 말씀을 존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저 자신을 주님께 맡깁니다. 이 사람들이 주님께서 하나님이시고 제가 주님의 종임을 알게 하옵소서.
제 뒤에 서 계신 분은 자신을 위해 기도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데, 그 사람은 어린아이입니다. 아이는 이곳에 없습니다. 아이는 탈장을 앓고 있습니다. 온 마음으로 믿으시면 그 아이에게서 탈장이 떠날 것입니다. 맞습니까? 맞으면 손을 들어 주십시오. 그러면 가셔서 믿고 구하신 것을 받으십시오. 이제 여기 여성분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한때 우물에서 한 여자를 만나셨습니다. 우리도 아마 평생 처음 만나는 것 같습니다. 서로 모르는 사이입니다. 당신은 저보다 훨씬 젊고, 우리는 아마 여러 마일 떨어진 곳에서 여러 해의 차이를 두고 태어났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처음 만납니다. 예수님께서도 한때 한 여자를 만나셨습니다. 저는 그분이 아니며, 당신도 그 여자는 아닙니다. 그러나 그분의 말씀이 성취되도록, 그저... 사람들이 그분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는 것을 보게 합시다.
회중 가운데 누군가가... 회중 가운데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다. 저는 그저 그것을 따라가야 합니다. 빛이 보입니다. 환상인데, 저쪽으로 움직여 갑니다. 말씀드린 대로 저는 당신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와 같은 작은 장면에서 한 여자를 만나셨습니다. 그 마음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잠시 이야기를 나누시고, 그 여자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여자는 곧바로 “선생님이여, 제가 보니 선생님은 선지자이십니다. 메시아께서 오시면 이런 일들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실 줄을 압니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하고 있는 내가 그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여자는 도시로 달려가 “와서 제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말해 준 사람을 보십시오”라고 했습니다. 무엇을... 자기가 행한 일들을 말입니다. “그분이 바로 메시아가 아닙니까?”라고 했습니다.
자매님, 오늘 오후 저도 당신을 모르고 당신도 저를 모릅니다.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예수님 안에 계셨던 성령께서 여전히 동일하시고... 우리 안에 계신다면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며 세상을 자신과 화해시키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셨고, 우리는 하나님의 양자로 받아들여진 아들딸들입니다. 그분께서 당신이 한 일이나 하려고 계획한 일, 혹은 여기 온 목적, 질병이나 기도받기를 원하는 다른 사람에 관한 일 등 무엇인가를 제게 말씀해 주신다면, 당신은 믿고 믿음을 갖겠습니까? 회중의 다른 분들도 믿으시겠습니까? 이 여자를 아는 분이 계십니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그리스도인입니다. 당신의 영에서 오는 떨림을 제가 느끼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당신은 그리스도인입니다.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그저 겸손히 믿으십시오. 당신이 앓는 것 중 하나는 신경성 질환입니다. 신경이 몹시 예민합니다. 맞습니다. 여성 질환, 부인과 질환이 있으며, 분비샘이 처져 있습니다. 사실입니다.
제가 그것을 짐작으로 말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어디서 오는지 알아보려 하고 있었습니다. 짐작한 것이 아닙니다. 추측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자매님, 사실입니까? 손을 들어 주십시오. 저는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릅니다.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녹음을 듣는 것입니다. 그것이 기름부음입니다. 다른 세계, 다른 차원에 있는 것입니다. 네, 여기 이 여자가 나타납니다. 보입니다. 신경성 질환입니다. 특히 저녁 늦게, 몹시 피곤할 때 그 증상으로 고생합니다. 그때 아주 지칩니다. 그리고 네, 검사에서 여성 질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 보입니다. 맞습니다. 이 여자는... 또 담낭에 이상이 있고, 심장병, 신경성 심장 질환도 있습니다. 이 일들이 사실이지요? 맞습니다. 치유받기를 바라는 다른 사람도 있지요? 바로 여기 앉아 있는 남편입니다. 하나님께서 남편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제게 말씀해 주실 수 있다고 믿습니까? 제가 말씀드리면 남편도 그것을 자신의 치유로 받아들일 것 같습니까? 그러겠습니까? 그러면 당신이 믿는다면 천식이 남편에게서 떠날 것입니다. 이제 가셔서 믿으십시오. 의심하지 마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낫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그저 믿음을 가지십시오. 의심하지 마십시오. 안녕하십니까? 저기 맨 뒤에 앉아 있는 여성분은 담석으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자매님, 방금 그것이 떠났으니 이제 나아서 가실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낫게 하십니다. 저는 당신을 모릅니다.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제게 알려 주신다면, 저를 그분의 종으로 믿겠습니까? 그분이 살아 계신 것도 믿겠습니까? 당신에게 이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계십니다. 참으로 달콤하고 겸손해지는 느낌입니다. 맞으면 회중이 볼 수 있도록 손을 들어 주십시오. 지금 저는 이 빛을 똑바로 보고 있습니다. 여기 형제님들도 보시려면 저 사이를 보십시오. 에메랄드빛 같은 빛이 움직이는 것이 보입니까? 이제 여기 여자가 제게서 멀어져 갑니다. 네, 혹이 있습니다. 혹은 가슴 왼쪽, 왼쪽 가슴 아래에 있습니다. 이것은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입니다. 온 마음으로 믿으시면 치유받을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습니까?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이제 의심하지 마십시오. 그저 믿음을 가지십시오. “저는 믿습니다”라고 말하십시오.
두통이 있지요? 기도 카드가 있습니까? 이제 더는 필요 없습니다. 저는 당신을 모릅니다. 맞으면 손을 들어 주십시오. 무엇을 만졌습니까? 여러분께 묻겠습니다. 이 여자는 무엇을 만졌습니까? 저에게서 이십 피트나 삼십 피트 떨어져 있습니다. 저를 만진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여자의 연약함의 감정을 느끼실 수 있는 그 대제사장을 만졌습니다. 그래서 이 여자가 치유받을 수 있습니다. 믿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담대히 믿어 보십시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십시오. 이분이 그 여성분입니까...? 자매님, 안녕하십니까? 우리도 아마 서로 모르는 사이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둘 다 아십니다. 그렇지요? 하나님께서 우리 두 사람 다 아신다고 믿습니까? 노르웨이어를 하십니까? 이리 오십시오. 독일어를 하는 분이 계십니까? 독일인 형제님은 어디 계십니까? 독일어를 하십니까?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입니다. 아니요, 이분께 대신 전해 주십시오. 저는 당신을 모릅니다. 좋습니다. 잠깐만요. 이제 보십시오. 환상에서... “환상”이라고 말해 주시겠습니까? 만일... 저는 환상을 봅니다. 이분의 문제를 말씀드리면, 이분이 믿는다면... 제가... 이분이 원하면... 독일어를 하십니까? 좋습니다. 잠깐만요. 어떤 환상인지 봅시다. 이제 잘 알아들으셔야 합니다. 아주 빨리요. 제게서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제가 말하는 것을 그대로 전해 주십시오. 물론 독일어로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이 무엇 때문에 여기 왔는지 제게 계시해 주신다면, 저를 그분의 종으로 믿겠습니까? 그렇다면 손을 들어 주십시오. 당신은...을 앓고 있습니다. 지금 보고 있는데, 제가 다시 볼 때까지 기다리십시오. 보고... 오지 않았습니다. 제가 보는 그대로 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보고 있었는데 환상이 잠시 제게서 떠났습니다. 이 여자는 신경성 질환 때문에 위장병을 앓고 있습니다. 신경성 질환이 위장병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제가 이 사람의 말도 못 하는데 어떻게 알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제게 계시해 주십니다. 마음에 품고 있는 일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도 기도받기를 원하십니다. 남편입니다. 귀에 문제가 있습니다. 이곳에는 없지만, 당신이 믿으신다면... 이제 이분이 영어를 알아듣고 있습니다. 이제 가셔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받으십시오. 구하시는 것을 얻으십시오.
자,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통역해 주시자 그 여자는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오면... 아마 그렇게 될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언어든 여러분이 원하는 말을 이해하게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보게 하시려고 말입니다. 제가 환상 가운데 있으면서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를 때, 그 여자는 그것을 영어로 알아들었습니다. 아시겠죠? 바로 그 일이 일어났습니다. 오, 그분은 참으로 살아 계시지 않습니까? 그분이 우리 주 예수님이시며,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십니다. 그저 제 손 위에 손을 올려놓으십시오. 온 마음으로 믿습니까? 그러면 당뇨병이 떠날 것이며, 나아서 집에 가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당신이 거기 서서 제 말을 대신 전하고 있을 때... 관절염 때문에 절뚝거리며 다니셨습니다. 아침에는 거의 일어나지 못하셨습니다. 저는 힘들어서... 그 때문에 제가 환상들 사이에서... 당신의 믿음이 너무 커서 내내 저 여자에게서 끌어당기고 계셨습니다. 앓고 계시던 그 관절염은 잊으십시오. 이제 가십시오. 괜찮아지고 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낫게 하십니다.
자, 등은... 좋습니다. 이제 집에 가셔서 건강하게 지내실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낫게 하십니다. 제가 그렇게 말했을 때 기분이 정말 좋지 않으셨습니까? 당신도 같은 병이 있었고, 동시에 치유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라고 합시다. 다시 같은 문제, 등의 질환입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온 마음으로 믿으며 가십시오. 당신은 신경성 질환으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모두 “정신 좀 차려요”라고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무언가가 당신을 두렵고 불안하게 합니다. 제가 당신의 생각을 읽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은 당신의 삶을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습니다. 아시겠죠? 당신은 “오늘 밤 여기서, 여기서부터 새로 시작하겠어”라고 할 수 있는 지점을 찾으려고 애써 왔습니다. 그렇습니까? 지금 바로 그 지점에 서 계십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시오. 신경과민이 당신에게서 떠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가셔서 건강해지십시오.
당신은 종양 때문에 수술을 앞두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종양을 치유하실 수 있다고 믿습니까? 어깨에서 그것을 없애고 당신을 낫게 하실 수 있다고 믿습니까? 왼쪽 어깨에 있습니다. 가서 믿으십시오. 그러면 그것이 떠날 것입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라고 합시다. 관절염입니다. 그분이 당신을 낫게 하시고 치유하실 것을 온 마음으로 믿습니까? 하나님을 믿으며 가십시오.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몇 분 전 여기 올라오셨을 때 제가 당신을 불러야 했는데, 당신은 조금 지쳐 있었습니다. 저는 당신이 지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심장병이 있는 사람은 결코 지쳐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더 이상 그 병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낫게 하시니, 그대로 가시면 됩니다. 저기 계신 여러분도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여기 앉아 저를 바라보는, 정맥류가 있는 여성분은 어떻습니까? 자매님, 하나님께서 당신을 낫게 하실 것이라고 믿습니까? 그것을 받아들이십니까? 그렇다면 손을 들어 주십시오. 믿으십시오.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저기 뒤에 앉아 다리에 문제가 있는 여성분, 하나님께서 그 다리를 치유하고 당신을 낫게 하실 것을 믿습니까? 믿으시면 그저 받아들이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라고 하십시오. 그러면 받으실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 한 분 한 분께 담대히 믿으라고 말씀드립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자신이 여전히 메시아이심을 나타내는 표적을 보여 주시는 일임을 믿으십시오.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믿으십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이제 그분의 말씀을 인용하겠습니다. 그분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그분이 여기 계십니다. 저는 그런 일들을 할 수 없습니다. 저는 점점 힘이 빠집니다. 이제 여러분이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아시겠죠? 점점 희미해지기 때문입니다. 그 일들 중 하나만으로도...
한 여자가 그분의 옷을 만졌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여러분 생각에는 어떤 영향이 있겠습니까...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저는 은혜로 구원받은 죄인입니다. 다니엘은 환상 하나를 보고 여러 날 머릿속이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형제님들? 그런 일을 겪으면 어떤 상태에 이르게 되어... 게다가 저는 육 개월 동안 계속 다닌 탓에 이미 약해져 있습니다. 이제 그분이 여기 계십니다. 하나님의 그리스도께서 여기 계십니다. 지금까지 믿지 않았지만 손을 들고 “브래넘 형제님,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이제 저는 온 마음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을 제 구주로 영접합니다”라고 하실 분이 계십니까? 저기 뒤에 계신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또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선생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기 뒤에 계신 분도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가운데 통로 쪽에는 계십니까? 저는 지금 부활하신 그리스도 앞에 서 있습니다. 심판 날 제가 그 앞에 서게 될 분이십니다.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은 오늘 오후에 한 일을 설명하기 위해, 심판 날 지금 여기 계신 바로 그 영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분을 영접하시겠습니까? 그분을 영접하시겠습니까? 여기 왼쪽 통로 쪽에는 안 계십니까? 그저 손을 들고 이렇게 말씀하십시오. “저는 교인이었습니다. 참으로 다시 태어난 적은 없습니다. 온전히 헌신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 제 삶을 그분께 드립니다. 그분이 이곳에 임하여 계시는 동안 저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알고...” 여러분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라고 하십니다. 바로 지금 여러분의 마음에 말씀하시는 분이 그분이십니다.